601~700/(676~700)2016. 10. 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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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89)—전강선사 30주기 추모재(05.01.11) (15분)


약 15분.


갑신년 섣달 초이튿날 오늘 전강영신(田岡永信) 대종사 조실 스님의 30주기 추모재를 맞이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을 직접 시봉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또 조실 스님을 친견하고 그 밑에서 정진하신 도반도 계실 것이고 또 청신사 청신녀 가운데에는 직접 조실 스님을 친견하고 또 그 법문을 듣고 그리고 참선을 하신 그러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직접 뵙지는 못하고 조실 스님은 영탱(影幀)을 통해서만 친견하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수없이 법문을 듣고서 그 조실 스님의 모습을 상상하시면서 정진하고 계신 그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중 되기 전 학생 때부터 조실 스님을 가끔 찾아가 뵈옵고 그리고 그 학생으로서 조실 스님 계신 절에서 참선도 했습니다.

광주 정토사, 계림사, 나주 다보사 또 무등산의 자운사, 조실 스님이 계시던 남평의 조그마한 봉암사. 그리고 중이 되 가지고는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그런 큰 절 주지를 하고 계실 때도 그 밑에서 모시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머리속에 남아 있는 조실 스님이 추모가 되는 시절은 광주 계림동에 있는 경양 방죽가에서 하꼬방 장사를 할 그 시절이 항상 마음속에 추모가 됩니다.

조실 스님과 저는 양복, 작업복 그런 것을 입고 하꼬방 장사를 했었습니다마는 낮에는 장사도 하고 또 광주천 또 공원, 경양 방죽가를 모시고 거닐면서 해 주시던 법문. 그리고 밤에는 그 조그마한 한 평도 못되는 방에서 모시고 정진을 하고.


조실 스님께서는 초저녁에 잠깐 목침(木枕)을 턱에다 괴시고 잠깐 눈을 붙이시고는 11시도 못되서 그때부터는 새벽 3시까지 이렇게 앉아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 밤중 정진은 조실 스님께서 평생토록 밤새 정진을 하신 것이 그것이 아주 습관이 되셔서 그렇게 일생을 정진을 하셨습니다.


저는 낮에 심부름하고 그러고 밤에 고단해서 자면 잠깐 놔두었다가 “무슨 놈의 잠이 그렇게 많으냐”고 꾸지람을 하시고, 그 일어나서 정진을 한 것이 그저 꾸벅꾸벅 졸면 밤낮 꾸중을 듣고 하던,


그래도 해남 대흥사 주지 하실 때나 구례 화엄사 주지를 하실 때나 그밖에 수없이 여러 군데 자자끔한 절을 맡으시기도 하고 잘 내놓기도 하셨는데.

그래도 그 하꼬방에 지낼 때가, 차라리 큰 절 주지도 안 하시고 일생 동안을 하꼬방에서 모시고 살았으면 제가 더 정진을 더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 이런 말씀도 여쭸습니다.

하도 절을 맡었다가 막 자리잡을만 하면은 의논 한마디도 안 하시고 사표 내 버리시고 뚝 떠나셨습니다. 그러면 그 뒤치닥거리만 하고서 또 조실 스님한테 가면은 또 벌써 절을 또 하나 맡으셨습니다. “인자 여기는 정진 실컷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셔 놓고는 그럭저럭 자리잡을만 하면 뚝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 이런 불효한 말씀을 여쭸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절에 주지로 계시면 저는 거기는 조실 스님을 따라가지 않겠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다가 선방을 해 놓고 조실로 계시면 저는 거기를 모시고 가서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말씀을 드렸고,

또 어쩐 때는 “앞으로 조실 스님께서 주지를 하시면 저는 퇴속(退俗)을 하겠습니다” 이런 불효한 말씀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30주기를 맞이하니까 그래도 이것이 추모재지, 무슨 다른 천도재도 아니고 추모재이기 때문에 지나간 그런 생각을 추모를 하게 되니까 이렇게 두서없이 이런 말씀을 하게 됩니다.


조실 스님은 엄격하실 때는 추상(秋霜)과 같이 그렇게 무섭고, 따뜻할 때는 봄날과 같이 그렇게 따뜻한 그러고 자비스러운 그러헌 스님이셨고, 매사는 너무 급하시고 두서가 없으신 그런 면도 있으셨습니다.

어쩐 때는 그 엄격한 법왕과 같으신가 하면은 어떤 때는 어린애와 같으시기도 하고 그러한 어르신인데, 선가구감(禪家龜鑑)에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오호라, 기위인야(其爲人也). 아! 그 사람됨이여. 본래(本來)에 무연(無緣)이요 본래무사(本來無事)다. 본래 인연이 없으며 본래 일이 없어. 기래즉식(飢來卽食)이요 곤래즉면(困來卽眠)이다. 배고픔이 오면 곧 먹고 졸음이 오면 또 한숨 잔다.

녹수청산(綠水靑山)에 임의소요(任意逍遙)하고 어촌주사(魚村酒肆)에 자재안한(自在安閑)이다. 연대갑자총부지(年代甲子總不知)한데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마는 바로 이 시구를 보면 조실 스님이야말로 정말 이와 같이 평생을 사신 그런 분이다. 서산대사의 선가구감에 이 글이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음미를 해 보시고 조실 스님의 행장에 대해서 추모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강영신 대종사, 우리 법보선원에 조실(祖室)로 계시고,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십니다.

‘열반(涅槃)하셨는데 왜 열반하신 분을 조실로 모시느냐?’ 그런 것에 대해서 물어온 분이 가끔 있습니다.


조실 스님은 열반하셨어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는 그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듣고 싶은대로 법문을 들을 수 있고, 언제라도 조실 스님 법문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그러한 조실 스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열반하신지 30년이 되어도 우리는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고 대원력과 대자비를 가지신 그런 분을 못 만나면 열반하셨어도 전강 대종사를 조실로 모신 것이 무엇이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정말 여기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서도 비록 열반하셨지만 살아 계신 조실 스님으로, 살아 계신 대선지식으로 그렇게 모시고 항상 마음속에 모시고 항상 우리의 곁에서 계신, 살아 계신 줄로 그렇게 믿고 정진하신다면 조실 스님은 언제나 우리가 있는 곳에 엄격하고도 또 자비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조실 스님은 정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이시고 영원한 우리의 스승으로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삽니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 여러 형제자매 여러분들도 그런 신심과 분심으로 오늘 30주기 추모재를 기해서 마음에 다짐하시면서 다 같이 목적지를 향해서 정진을 하시기를 다짐합시다.


오늘 법요식이 끝난 다음에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준비를 했으니 바쁘신 일이 있으시드라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공양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소한, 대한 추위에 갑자기 요새 이렇게 강추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원근에서 이 추모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처음~14분3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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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 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700여 시간 분량의 육성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영탱(影幀 그림자 영/그림 족자 탱,그림 족자 정) ;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으로 진영(眞影), 영정(影幀), 정상(頂相), 조사도(祖師圖)라고도 불리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목침(木枕 나무 목/베개 침) ;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퇴속(退俗 물러날·돌아갈 퇴/세상 속) ; 승려가 도로 세속(世俗)으로 돌아감[退].

*선가귀감의 글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37~38.

〇吾有一言(오유일언)하니  絶慮忘緣(절려망연)하고  兀然無事坐(올연무사좌)하니  春來草自靑(춘래초자청)이로다

내가 한마디 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일 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註解) 絶慮忘緣者(절려망연자)는  得之於心也(득지어심야)니  所謂閑道人也(소위한도인야)라

於戱(어희)라  其爲人也(기위인야)가  本來無緣(본래무연)하며  本來無事(본래무사)하야  飢來卽食(기래즉식)하고  困來卽眠(곤래즉면)하며  綠水青山(녹수청산)에  任意逍遙(임의소요)하고 漁村酒肆(어촌주사)에  自在安閑(자재안한)하야  年代甲子(연대갑자)를  總不知(총부지)하되  春來依舊草自青(춘래의구초자청)이로다  此(차)는  別歎一念㢠光者(별탄일념 회광자)니라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일 없는 도인’이다.

아! 그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일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세월이 가나 오나 내 알 바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 풀이 절로 푸르구나。이것은 특별히 한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