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400/(351~375)2023. 4. 10. 06:39

(No.358)—1988년 부처님오신날(88.05.23) (58분)

 

(1) 약 32분.

 

(2) 약 26분.


(1)------------------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하면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하고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 한 등(燈)에 등불이 능히 백천(百千)의 등불에 불을 붙일 수가 있다.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다. 마음에 인(印)이, 마음 인(印)의 그 빛이 널리 통하면 부처님의 정법(正法)의 법령(法令)이 널리 행하리라.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한디, 천성(千聖)이 전할 수 없는 이 등불을 아무리 불어도,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더라도 이 등불은 꺼칠 수가 없을 것이다.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다. 한 등(燈)으로 인해서 백천 등(燈)에 그 불이 옮겨져 가지고 그 등불이 온 세계에 환히 밝아지면 우주법계 구석구석이 어두운 구석이 없이 다 환히 다 밝아질 것이다.


오늘 불기(佛紀) 2532년 부처님오신날을 기해서, 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부처님오신날을 경축하기 위해서, 사람마다 정성스러운 등(燈)을 켜 가지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키었지마는 그것이 백천 등(燈)이 되고, 십만 등(燈)이 되고, 백만 등, 천만 등이 되어서 그 등불이 환히 다 밝아져 가지고 삼천리 강토(疆土)뿐만이 아니라 동양 서양을 막론하고 오대주(五大洲) 육대양(六大洋)이 환히 밝고, 이 지구만 밝아질 것이 아니라 이 태양계가 다 밝아지고, 이 태양계와 같은 수백억만 개의 태양계가 이 우주법계에는 있는데, 끝없는 이 세계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다 환히 밝아질 것이다.

어떻게 이 조그마한 등불이 그렇게 삼천대천세계를 비칠 수가 있느냐?
이 등불은 촛불을 켜거나, 조그마한 전등을 켜거나 우리 눈으로 보이는 등(燈)은 그런 물질적으로 된 것이지만, 그 조그만한 한 등불을 켤 때의 우리의 정성스러운 마음에도 또한 그 불이 켜지는데, 그 정성스러운 신심(信心)으로 켠 그 등불은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진리의 눈을 갖춘 사람이 볼 때에는 이 끝없는 삼천대천세계를 다 비추고도 남을 것이다.

앞으로 21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맞이한 이 무진년(戊辰年)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는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平和)가, 우리의 가정에 평화가, 우리 사회 국가에도 평화가, 그리고 온 세계에도 평화가 오게 해야 할 그러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훨씬 이전에 옛적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는 장재왕(長災王)이라 한 왕,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그 장재왕은 참 불법을 믿는 아주 어질고 착한 그런 성인의 풍도를 가진 임금이었습니다. 이웃나라에 아주 싸움을 좋아하고 그런 범달왕(梵達王)이라 하는 고약한 아주 강력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 범달왕은 호시탐탐 그 장재왕에 왕국을 침범할 것을 노리다가 어느 날 대군사를 일으켜 가지고 그 장재왕에 나라를 침범을 해서 순식간에 그 나라를 집어삼켰습니다. 그 장재왕과 그 왕비와 그 왕자는 어떻게 손도 써보지도 못하고 뒷문으로 해서 저 산중 깊은 골짜구니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이 범달왕은 군사를 풀어 가지고 방방곡곡이 뒤져 가지고 결국은 이 장재왕과 왕비와 왕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만인이 모이는 장터에서 그 왕과 왕비와 왕자를 살해하게 되었습니다. 용케도 어느 틈을 타 가지고 오직 그 왕자 한 사람만이 도망을 했습니다. 도망을 해 가지고 드디어 그 사형(死刑), 왕과 왕비를 그 사형에 처하는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왕자는 도저히 혼자만 숨어서 있을 수가 없어서 이상한 옷을 입고 얼굴에다가 모다 변장을 해 가지고 그 수많은 군중 속에 뚫고 들어가 가지고 자기의 부왕(父王)과 그 왕비, 어머니가 살해된 광경을 지켜보지 아니하면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살해될 마당에 그 많은 군중을 둘러보니까 그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서 있는 모습이 자기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알아 가지고 혼자소리로 독백을 했습니다.

"길게 보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급히 서둘러서도 아니 되느니라. 원한은 원한의 마음을 잊음으로써만이 원한을 풀 수가 있느니라" 이런 세 마디 말을 했습니다.
아무도 그 뜻이 무슨 소린지를 모르고 ‘그 왕이 죽게 되니까 간경(肝經)이 둘쒀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쯤 모다 생각하고 결국은 그 왕과 왕비는 무참하게도 목을 짤려서 죽었습니다.

그 왕자는 그 자기 부왕(父王)이 한 이해할 수 없는 세 마디 말만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채 빠져나와 가지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이를 갈아붙이고 여러 해 동안을 갖은 기술과 칼 쓰는 법, 창 쓰는 법, 활 쓰는 법을 비롯해서 무술을 다 익히고 나아가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법, 요리를 하는 법, 옷을 짓는 법,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을 다 연마를 해 가지고서 차츰차츰 그 범달왕(梵達王)이 있는 도시에 잠입을 해 가지고 차츰차츰 인증을 받고. 그래 갖고 대신(大臣)의 집에 또 고용이 되었다가 거기서 또 훌륭하니까 결국은 왕궁에까지 고용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해서 임금, 그 범달왕의 눈에 들어 가지고 가장 신임(信任)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아주 그 범달왕을 가깝게 모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잠시도 그 범달왕은 그 장재왕의 왕자를 띠어 놓고는 살 수가 없을 만큼 그렇게 눈에 마음에 쏘옥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범달왕은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왕자는 그 왕을 모시고 사냥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 왕이 아조 말을 달려서 사냥을 한바탕하고 나니까 너무너무 피로해서 좀 쉬어야겠다 그 말여.
그래서 모든 신하와 궁녀들을 다 물리치고 오직 그 왕자 하나만을 데리고 조용한 물가에 경치도 좋고 고요한 데로 가서 단둘이 푸욱 쉬게 되었습니다. 그 왕자는 온갖 무술을 다 익혔기 때문에 혼자만 옆에 있어 주어도 왕은 마음이 놓였기 때문에 여러 신하를 데리고 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고요한 데에 가서 그 왕자의 무릎을 비고서 누웠는데 금방 잠이 깊이 들었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왕자는 ‘이제사 비로소 복수를 할 때가 왔구나’ 이래 가지고 품안에 깊이 간직했던 그 멀금하게 간 칼을 빼 가지고 범달왕의 목에다 갖다가 터억 틀어 댔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주 일격을 가할려고 하다가 불현듯 그 부왕(父王)이, 장재왕이 그 처형(處刑) 당할 때 한 그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원한은 보복을 함으로써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 마디 말 가운데 마지막 끝에 한 그 말이 퍼뜩 생각이 나 가지고 찌를까 말까 한 판에 아! 범달왕이 눈을 번쩍 뜬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온몸에 아주 그냥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눈을 번쩍 떴는데, 아 그 목에다 틀어 대 갖고 있는 칼을 미차 숨기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칼을 갖다가 번쩍 들면서 “너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바로 그 웬수다”
그런데 그 왕이 눈을 뜨면서 하는 말이, “내가 장재왕의 그 왕자가 나를 내 목에다 칼을 대는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눈을 뜨는데, 진짜 눈을 뜨고 보니까 칼날이 자기 목에 와서 떡 닿아 있다 그 말이여.

“바로 내가 그 장재왕의 왕자다. 이놈, 너 이놈 오늘 죽어봐라” 그러면서 칼을 번쩍 해가 들고서 찌를려고 하다가 그 아버지가, 부왕이 마지막한 그 말이 다시 또 생각이 나 가지고 그 이를 악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지마는 차마 그 칼을 목에다가 꽂지를 못하고 그 칼을 내동댕이를 쳤습니다. 그리고서 통곡을 하면서 엎드려서 울었습니다. 사죄를 했습니다.

범달왕도 몸을 털고 일어나서 “좋다! 느그 부왕이 그렇게 착한 임금인줄을 나는 몰랐다. 네가 나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가 남긴 그 마지막 한마디를 마음속에 간직해 가지고 나의 목숨을 다시 살려주었으니 어찌 내가 너를 죽일 수가 있겠느냐” 피차 각자 자기의 잘못을 참회를 하고 뜨거운 악수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왕자에게 옛날의 자기 고국을 다시 돌려주고 두 나라는 아주 형제의 나라가 되어 가지고 오래오래 친목을 하고 화평하게 지냈다고 하는 설화가 부처님의 경전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왕이, 장재왕이 죽을 때, 첫 번째 ’길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웬수 원한에 마음을 오래오래 품고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함께 이 하늘 밑에 같이 살 수 없는 그러한 원한이라 하더라도 오래오래 그 웬수의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고.
’급히 서둘러서도 안 된다‘ 그 말은, 우정, 한번 서로 알게 된 맺게 된 우정은 사소한 일로 그렇게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원한은 원한으로써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 부왕(父王)에 유언을 갖다가 깊이 간직해서—만약에 그 왕자가 그 범달왕을 자기의 그 보복을 했다면 그 왕자인들 거기서 목숨을 부지하겠습니까? 아무리 무술이 뛰어난다고 해도 수백 명의 무사들에 둘러싸였으니 어느 칼에 맞어 죽을 줄 모르는 것입니다.


지끔 우리나라는 삼팔선(三八線)이 가로맥혀서 이북(以北), 이러한 참,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이러한 상황 속에 놓여져 있습니다. 6 · 25 동란(動亂) 또 (미얀마) 아웅산에서 일어났던 우리나라 각료들을 모다 폭파시킨 그러한 일들 생각하고 그리 생각하면 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칼기(KAL機)를 폭파해 가지고 백여 명의 참 무모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 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웃나라 일본을 생각해도,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가 있어 온 이래로 우리나라 동해와 남해 서해를 왜구(倭寇)들이 침범을 해 가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납치해 가고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400년 전에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또 와 가지고 무수한 생명을 죽였고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삼천리를 피로써 물을 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를, 일본 여론조사를 해 보면, 국민들을 해 보면 ‘세계에서 제일 미웁고 보기 싫은 나라가 어디냐?’ 하면 한국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인해서 일본이 그 완전히 야만한 야만족(野蠻族)이 사람노릇을 할 수 있도록 저 가야국 이래로 고구려 · 신라 · 백제 때를 통해서 계속 우리나라에서 가서 글을 가르키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키고, 유교 · 불교를 가르키고, 농업과 모든, 나라 다스려 가는 법을 다 가르키고 해서 일본 나라가 영원토록 우리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사람된 길을 가리켜 주는 문명(文明)의 은인으로 생각해야 할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우리를 그렇게 미워하고 우리를 그렇게 하냐?
그런 일을 생각하면 일 생 · 이 생 · 삼 생이라도, 성불(成佛)을 더디 연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놈들을 갖다가 응징을 하고 씨를 말려야 할 그러한 민족적 울분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소련(蘇聯)이나 중공(中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칼기(KAL機) 폭파 사건 일으키는 소련, 6 · 25 때 그 우리가 그 통일을 눈앞에 놔두고 백두산까지 처올라갔는데 인해전술로써 우리나라를 다시 이렇게 분단되게 맨든 그런 일을 생각한다든지, 이조 때, 고려 때 중국이 대국이라 해 가지고 우리나라를 그렇게 못살게 굴게 하고 속국을 만들어 가지고 짓이기고 약탈해 나가는 역사적인 일을 생각한다면은 세세생생에 중공을 중국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간 그러한 일을 생각해서 자손만대(子孫萬代)토록 보복을 할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부처님의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이렇게 당한 일들이 까닭 없이 우리가 당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러한 인과(因果)의 관계에 의해서 우리가 그러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미워한 나라가 일본인데, ‘그 어째서 우리의 은혜를 받은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우리나라를 그렇게 미워한단 말인가? 우리나라에 세세생생에 자손만대토록 은혜를 갚아야 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우리를 그렇게 못살게 굴고 우리를 죽일려고 했는가?’
내가 숙명통(宿命通)이 열리지는 안 했지만 인과(因果)의 법칙에 의해서 떠억 깊이 관찰을 해 보니까 나는 그 원인을 짐작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생긴 이래로 삼국(三國)이 벌어졌고, 삼국이 벌어져 가지고 계속 싸워서 자국에서도 혁명이 일어나고, 삼국이 싸워서 멸망하고, 저 나라가 자꾸 망하면서—고구려도 망하면 그 왕과 모다 대신들이 전부 일본으로 도망을 가고, 가야국이 망하면서도 일본으로 도망가고, 신라가 망해도 일본으로 도망가고, 백제가 망해도 모다 그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 그 말이여.
도망을 가 가지고 거기다가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거기다가 이 문명을 일으키면서 대대손손이 내려가면서 무엇을 생각했겠느냐 그 말이여. ‘언제라도 반드시 권토중래(捲土重來)하리라. 힘을 길러 가지고 나의 고국에 돌아가서 웬수를 갚고 다시 내가 그 나라를 세우리라’ 이러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이여.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일본은 본래 저 아이누 족[Ainu族]이니 뭐이네 해 가지고 아주 야만족들이 조끔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도 없고 그냥 그 야만족들이 살아서 그저 도둑질이나 해먹고, 해적질이나 해먹고, 노략질 해먹으면서 그럭저럭 그렇게 짐승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구려 · 가야 · 신라 · 백제 · 고려, 이런 데서 자꾸 우리나라에서 가 가지고 사람 되는 길을 맨들었는데, 그 나라에다가 최초에 나라를 세운 사람이 한국 사람이 세웠고, 일본에 그 황족이 혈통이 사실을 알고 보면 한국 사람이 일본 황실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것들이 다 밝혀질 것이고 지금 많이 밝혀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러기 때문에 일본은 아무 까닭도 없이—모릅니다 자기네들은, 모르면서도 천 년을 수천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한국을 갖다가 어쨌든지 다시 이것 자기가 차지해 가지고, 이걸 짓밟고 차지해 가지고 다시 나라를 세우리라 한 것은 ‘자기의 조국을 찾으리라’ 한 그 인과적인 그러한 원인이 있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 가장 우리나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조끔도 그 은혜는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그렇게 미워하고 빼앗아 갈려고 하는 까닭을 나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입각해서 내 나름대로 풀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중공이 우리나라를 그렇게 하고, 또 삼팔선이 갈라져서 하고, 모다 이러한 것들도 반드시 풀 수 있는 원인이 있을 것이고.

이번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서 뭐 전라도 · 경상도 · 충청도가 모다 갈라져 가지고, ‘참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지역감정(地域感情)으로 이럴 수가 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염려되는 그런 상황이 일어났었는데,
이것도 생각해 보면 고구려 · 신라 · 백제 이런 삼국 시대(三國時代)의 그때의 원한 관계가 삼국은 없어졌지마는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핏속에는 그런 우리의 업(業), 잠재의식 속에는 그러한 것이 아직까지도 흘러 내려오고 있는 그러한 잠재적인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에 행여나 그러한 보복을 할려고 하는 마음, 오래된 그러한 원한 관계, 이러한 것을 다 풀어버려야 우리는 스스로 발전할 수 있고 스스로 향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한 원한에 마음을 품고 있어 가지고서는 절대로 앞길이 열리는 법이 없고, 사회단체나 사회 · 국가 · 민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적개심(敵愾心)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런 것도 어느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한 사상적 교육과 고취가 뜻이 있겠습니다마는, 먼 안목으로 볼 때에는 적절한 시절이 돌아올 때에는 그러한 악심(惡心), 개인적인 또는 민족적인 그런 악에 사무치는, 원한에 사무치는 적개심은 좋은 방향으로 승화(昇華)시켜 나가는, 승화시켜 가지고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공통점을 찾아서 화해를 하고 이래 나가야만 개인도 발전을 하고, 나라도 발전을 하고, 세계의 평화도 이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림픽이 있고,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는 이념을 초월해서 모다 경제적인 교류를 맺고 그래 가지고 앞으로 우리나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발전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처음~31분55초)





(2)------------------

이러한 때를 맞이해서 첫째, 우리 불자(佛子)는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서로 미움이 있다면은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어야겠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어떠한 본의 아닌 좋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오늘을 기해서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잘못된 허물을 상대방에 미루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이렇게 해서 참회(懺悔)를 하고 화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간(兄弟間)에 동서 간에도 마찬가지고,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고, 어떠한 회사와 회사 관계, 단체와 단체 관계 또 지역감정도 그렇게 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
당(黨)과 당(黨) 사이에도 역시 그것을 풀고 근본적 민족 한겨레라고 하는 데에 돌아가서 서로 과거를 용서하고 그래 가지고 손에 손을 맞잡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단합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원한심을 깊이 품고서는 그 사람은 올바른 행복을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단합하지 않고서 참다운 통일은 오지 아니할 것이고, 참다운 통일 없이 세계에 평화를 이바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라크과 이란의 관계를 보십시요. 이웃지간에 살면서 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지금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요. 그 나라는 결국 두 나라가 다 망하고 말 것입니다.
황새가 저 해변가에서 큰 조개를 갖다가 탁! 찍었습니다. 그 조개는 황새의 입을 콱! 물었습니다. 어부지리(漁夫之利)란 말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황새도 잡히고 그 조개도 어부한테 잡혀서 죽고 말 것입니다.

이 남한에서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지역끼리 싸우고, 당이 다르다고 해서 당끼리 서로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나라가 기반이 흔들리게 되면 이북(以北)에서는 언제 밀고 내려올는지도 모르는 것이고,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이 통일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나라는 이웃나라에 결국은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제공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미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고 용서할 수가 있느냐?
아무리 며느리가 ‘내가 그러지 말아야겄다’, 시어머니는 ‘내가 며느리를 미워하지 말아야겄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마는, 하는 꼴을 보고 얼굴을 보면은 다시 속에서 주먹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중생(衆生)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가리왕(歌利王)이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토막토막 짤라 냈지마는 터럭끝만큼도 미워하는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바로 성불(成佛)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생(衆生)입니다. 중생이지만 우리도 성불할 수 있는 부처님과 똑같은 자성(自性)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성불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그 미운 생각을 없앨 수가 있으며, 원한심을 없앨 수가 있으며, 그 감정을 갖다가 깨끗이 돌이킬 수가 있을 것인가?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백팔참회(百八懺悔)를 하고 천 배, 이천 배, 삼천 배 내지 수천 배의 무수배례(無數拜禮)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왕경』이나 『금강경』, 『반야심경』 또는 『지장경』과 같은 그러한 경전을 백 일, 천 일, 만 일을 두고 지극정성으로 독송하는 그러한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방편(方便)으로 하면서도 그보다도 더 근원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뭣고?’인 것입니다.

‘이뭣고? 이 미워하는 생각, 이 내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단전호흡(丹田呼吸), 깊이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생각 생각이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미운 생각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이렇게 ‘이뭣고?’를 하면 처음에는 ‘이뭣고?’는 하지마는, 속으로 미운 생각은 아주 잘 가시지를 않을 것입니다마는, 한 달을 그렇게 해, 석 달을 그렇게 해, 일 년을 그렇게 하다 보면 저절로 ‘이뭣고?’를 안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이뭣고?’가 되면서 아! 그 미운 생각이 언제 어느 때 스르르르 담박해져.

부처님께 절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천 배, 삼천 배, 사천 배, 오천 배, 이렇게 하고 나면 그냥 속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면서 그렇게 미웠던 시어머니가 하나도 미웁지를 않고, 그렇게 미웠던 며느리가 하나도 미웁지를 않고, 그렇게 아주 복수에 치가 떨린 웬수가 조끔도 미운 생각이 없고, ‘전부가 다 내가 잘못했구나! 그 잘못한 것이 상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어!’ 아 그렇게 참회가 되면서 그 하염없이 흐른 눈물을 쏟아 버리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후련해지고 편안해지면서 미운 생각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속에서 일어난다 그 말이여.

예배(禮拜)를 해도 그러한 경지가 오고, 경(經)을 읽어도 그런 경지가 오고, 기도를 해도 그런 경지가 오고, 염불을 해도, ‘옴마니반메훔’을 해도 그런 경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 가지 방법도 다 좋지마는 ‘이뭣고?’를 하면 그런 경지가 더 빨리 오는 수가 있거든.
그러한 미워하는 생각만 없어질 뿐만 아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까지 하게 되니 이 참선법이 얼마나 좋은 것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이뭣고?’ 한마디 속에는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기도가 다 들었고, 삼천 배 내지 억만 배가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그 말이여.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물론 다 각기 울긋불긋한 이 등(燈)을 모다 켜시게 되겠지만 ‘이뭣고?’의 등(燈)을 마음속에다가 분명하게 환허니 밝도록—잠시 켰다가 금방 꺼져 버리고, 아침에 켰다가 점심 때도 못 가서 툭 꺼져 버리고, 앉아서 켰다가 일어서면서 훅 꺼져 버리고 그렇게 하지 말고,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고, 팔풍 경계(八風境界)가 일어나더라도 꺼지지 않도록 그렇게 환허니 밝도록 ‘이뭣고?’의 등불을 켜시라 그 말이여.


오늘 전장학, 전고경월 복위(伏爲), 망부(亡父) 전홍익 영가(靈駕)의 49재입니다. 그 재자(齋者)가 오늘 49재를 맞이한 전홍익 영가를 위해서 그 ‘이뭣고?’ 법문을 잘해 가지고 확철대오할 수 있도록 법문을 좀 해 달라고 한 달 전부터서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어찌 산승(山僧)이 그 영가를 위해서 법문을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수만에 영가를 위해서도 산승은 지금 가슴 뜨거운 마음으로 이 법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법보단(法寶壇)에 모셔져 있는 만년위패(萬年位牌) 여러 영가들을 위해서도 저는 간곡히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며 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차 있는 수많은 영가—전부 그 영가들이 우리들의 선망부모(先亡父母)입니다마는, 그 영가를 위해서도 산승은 법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법문, 그다음에 이 송담(松潭)이 설해 드리는 이 법문을 그 영가(靈駕)들이 다 듣고 그 영가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이뭣고?’의 등불이 켜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선망부모에 못지않게 ‘이뭣고?’가 ‘이뭣고?’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단속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을 해서 그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니라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허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니라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淸風拂)이다.
우리 낱낱이 얼굴 앞에는 밝은 달빛이 휘황창 희고, 사람사람의 다리 밑에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어느 사람 앞이라고 특별히 달빛이 밝고, 어느 사람 앞이라고 차별을 해서 달이 비추지 않겠느냐 이거거든. 어느 사람 앞에나 다 바람이 불면 다 시원한 바람이 불지, 누구라고 안 불고 누구라고 잘 불어줄 것인가 이 말이여.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하면, 우리의 업경대(業鏡臺)에, 우리 자신의 업경대를 갖다가 타파(打破)해 버려서 자취가 없어져 버리면—자기가 그 달빛을 싫다 하고 껌껌한 굴속으로 들어가서 ‘달이 자기한테 (안) 비춘다’고 하는 것이고, 자기가 문을 꼭꼭 처닫고 앉아서 더웁다고 찬바람, 시원한 바람이 안 들어온다고 해서 그런 것이지,
자기가 굴속에서 터억 나와서 달빛 있는 데로 몸을 나투고, 꼭꼭 닫았던 문을 활짝 열어제낀다면 어느 사람 얼굴에 달빛이 비치지 아니하며, 어느 사람 방에 시원한 바람이 안 들어갈 것이냐 이거거든.

자기가 마음에 문을 처닫고 그리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원망하고 스스로 자포자기를 해서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못 깨닫는 것이지, 마음에 문을 훨쩍 열어버리고 자기도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라고 하는 사실에 깊이 신심을 갖고 자기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이뭣고?’만 하면 결정코 확철대오할 수 있다고 믿고 끊임없이 수행을 해 나가면—꼭 절에만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 아니여. 집에서 살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살면서,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살면서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언제나 ‘이뭣고?’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단속해 나가면서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단속해 나가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화창한 봄날에 아름답게 핀 꽃가지 위에 그 예쁜 꽃에 새가 올라가서 아름다운 소리로 한 곡조 자연의 노래를 읊으더라.


생사(生死)는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생사가 있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는데 어찌 생노병사가 없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서 다 죽어 가는데 어찌 생사가 없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생사로 보이는 것이지, 생사 없는 이치를—‘이뭣고?’를 해 가지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를 하고 보면 생사(生死)가 생사(生死)가 아니여. 생사가 생사가 아니라 그말이여. 바로 그것이 열반(涅槃)의 소식이더라 그거거든. 깨닫고 보면 죽어 가면서도 그것이 죽음이 아니여, 그것이 바로 열반이다 그거거든.


부처님께서 춘다(Cunda)라고 하는 사람이 바친 독버섯을—그것이 독버섯이라고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학자들은 해석이 있지마는 하여간 독(毒)이 있는 버섯이여.
독버섯을 드릴 리는 없고, 맛있는 버섯의 요리를 해 드렸는데 그것이 어떻게 변질이 된 음식이였었던지, 부처님의 체질에 안 맞았던지, 그것이 부처님께서는 요새말로 식중독을 일으켜 가지고 그 너무너무 고통이 심하셔 가지고 피를 쏟으시면서 그렇게 아프신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구시나가라(拘尸那伽羅)를 향해서 계속해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행을 하셨습니다.

조끔 가다가 쉬시고, 조끔 가다가 쉬시고 그러시면서 결국은 구시나가라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라쌍수간(沙羅雙樹間), 사라수가 2개씩 2개씩 요렇게 서 있는 그 나무 사이에다가 자리를 펴고, 그때 자리라고 해 봤자 웃옷이니까 그때는 가사(袈裟), 가사지요. 가사를 떠억 펴서 깔고서 누우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그 상업 도시인 베살리(Vaiśālī) 도시를 터억 바라다보시면서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느냐? “아!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감미로운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열반경(涅槃經)』에 또 『유교경(遺敎經)』에 보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제자들이 어떻게 하라고 하신 것을 참 많은 법문을 하셨습니다마는, 원시경전(原始經典) 저 최초에 결집된 원시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면서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며 인간에 목숨은 감미로운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고통, 육체적으로는 그렇게 피가 넘어오도록 괴로우셨겠지마는 부처님은 조끔도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를 안 했고 마음에 추호도 동요가 없었습니다.
춘다가, 그 금속공(金屬工)의 직업을 가진 그 춘다(Cunda)가 바친 그 공양의 공덕이나, 부처님께서 최초에 그 수자타(Sujātā)가 바친 유미죽(乳糜粥)이나—부처님께서는 그 춘다(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을 잡숫고 기력을 회복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견성성불을 하셨는데, 그 수자타가 바친 그 유미죽의 공양이나, 춘다가 바친 그 버섯 공양을 잡수고 열반에 드시게 한 그 춘다에 공양의 공덕(功德)이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그 부처님의 그 깨달으신 심경이 우리의 중생으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높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맑고 고상한 그 뜻은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그 참경계는 우리가 깨달라 봐야 알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 각기 부처님과 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의 그 거룩한 그 뜻은 우리는 범부(凡夫)의 마음으로나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웬수를,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해야겠고, 그 속에 맺힌 원한심을 풀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화해를 하고 화합을 하고, 그래 가지고 우리 첫째의 용서하고 화합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스스로 평화가 오고, 가족에도 평화가 오고, 이웃에도 평화가 오고, 온 겨레에 평화가 오고, 온 세계에 평화가 오도록 우리는 2532년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그렇게 되새기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31분56초~57분54초) (끝)




[법문 내용]

(게송) 일등능속백천등~ / 정성스러운 신심(信心)으로 켠 그 등불은 이 끝없는 삼천대천세계를 다 비추고도 남을 것이다 /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는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平和)~온 세계에도 평화가 오게 해야 / 장재왕(長災王)의 아들과 범달왕(梵達王)의 설화 / 원한은 원한의 마음을 잊음으로써만이 원한을 풀 수가 있느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소련(蘇聯)이나 중공(中共)과의 인과(因果) 관계 / 전라도 · 경상도 · 충청도의 지역감정(地域感情)의 우리의 업(業), 인과(因果) / 개인, 사회단체나 사회 · 국가 · 민족 모두 원한에 마음을 풀어 개인도 발전을 하고, 나라도 발전을 하고, 세계의 평화도 이룩될 수가 있는 것.

우리는 중생(衆生)이지만 우리도 성불할 수 있는 부처님과 똑같은 자성(自性)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 / 미운 생각을 원한심을 없애는 근원적인 방법이 바로 ‘이뭣고?’이다. 미워하는 생각만 없어질 뿐만 아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까지 하게 된다 /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마음속에다 환허니 ‘이뭣고?’의 등불을 켜시라 / 산승(山僧)의 법문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차 있는 수많은 영가를 위해서 법문을 하고 있는 것.

(게송) 개개면전명월백~ /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 깨닫고 보면 죽어 가면서도 그것이 죽음이 아니여, 그것이 바로 열반이다 그거거든 / 수자타가 바친 유미죽의 공양이나, 춘다가 바친 그 버섯 공양이나, 공양의 공덕(功德)이 똑같다 / 첫째, 용서하고 화합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스스로 평화가 오고, 가족 · 이웃 · 온 겨레 · 온 세계에 평화가 오도록 우리는 2532년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되새기자.


어떻게 이 조그마한 등불이 그렇게 삼천대천세계를 비칠 수가 있느냐? 이 등불은 촛불을 켜거나, 조그마한 전등을 켜거나 우리 눈으로 보이는 등(燈)은 그런 물질적으로 된 것이지만, 그 조그만한 한 등불을 켤 때의 우리의 정성스러운 마음에도 또한 그 불이 켜지는데, 그 정성스러운 신심(信心)으로 켠 그 등불은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진리의 눈을 갖춘 사람이 볼 때에는 이 끝없는 삼천대천세계를 다 비추고도 남을 것이다.

앞으로 21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맞이한 이 무진년(戊辰年)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는 무엇이냐?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平和)가, 우리의 가정에 평화가, 우리 사회 국가에도 평화가, 그리고 온 세계에도 평화가 오게 해야 할 그러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길게 보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급히 서둘러서도 아니 되느니라. 원한은 원한의 마음을 잊음으로써만이 원한을 풀 수가 있느니라"

우리는 중생(衆生)입니다. 중생이지만 우리도 성불할 수 있는 부처님과 똑같은 자성(自性)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성불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그 미운 생각을 없앨 수가 있으며, 원한심을 없앨 수가 있으며, 그 감정을 갖다가 깨끗이 돌이킬 수가 있을 것인가?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백팔참회(百八懺悔)를 하고 천 배, 이천 배, 삼천 배 내지 수천 배의 무수배례(無數拜禮)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왕경』이나 『금강경』, 『반야심경』 또는 『지장경』과 같은 그러한 경전을 백 일, 천 일, 만 일을 두고 지극정성으로 독송하는 그러한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방편(方便)으로 하면서도 그보다도 더 근원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뭣고?’인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물론 다 각기 울긋불긋한 이 등(燈)을 모다 켜시게 되겠지만 ‘이뭣고?’의 등(燈)을 마음속에다가 분명하게 환허니 밝도록—잠시 켰다가 금방 꺼져 버리고, 아침에 켰다가 점심 때도 못 가서 툭 꺼져 버리고, 앉아서 켰다가 일어서면서 훅 꺼져 버리고 그렇게 하지 말고,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고, 팔풍 경계(八風境界)가 일어나더라도 꺼지지 않도록 그렇게 환허니 밝도록 ‘이뭣고?’의 등불을 켜시라 그 말이여.

생사(生死)는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생사가 있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는데 어찌 생노병사가 없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서 다 죽어 가는데 어찌 생사가 없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생사로 보이는 것이지, 생사 없는 이치를—‘이뭣고?’를 해 가지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를 하고 보면 생사(生死)가 생사(生死)가 아니여. 생사가 생사가 아니라 그말이여. 바로 그것이 열반(涅槃)의 소식이더라 그거거든. 깨닫고 보면 죽어 가면서도 그것이 죽음이 아니여, 그것이 바로 열반이다 그거거든.

『열반경(涅槃經)』에 또 『유교경(遺敎經)』에 보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제자들이 어떻게 하라고 하신 것을 참 많은 법문을 하셨습니다마는, 최초에 결집된 원시경전(原始經典)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면서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며 인간에 목숨은 감미로운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부처님의 그 참경계는 우리가 깨달라 봐야 알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 각기 부처님과 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의 그 거룩한 그 뜻은 우리는 범부(凡夫)의 마음으로나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웬수를,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해야겠고, 그 속에 맺힌 원한심을 풀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화해를 하고 화합을 하고, 그래 가지고 우리 첫째의 용서하고 화합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스스로 평화가 오고, 가족에도 평화가 오고, 이웃에도 평화가 오고, 온 겨레에 평화가 오고, 온 세계에 평화가 오도록 우리는 2532년에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그렇게 되새기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51~375)2022. 11. 9. 21:10

 

 

((No.354))—1988년 동안거 해제(88.01.15.음) (51분)

 

(1) 약 27분.

 

(2) 약 24분.


(1)------------------

억천공불복무변(億千供佛福無邊)호되  쟁사상장고교간(爭似常將古敎看)이리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백지상변서흑자(白紙上邊書黑字)여  청군개안목전관(請君開眼目前觀)이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억천공불복무변(億千供佛福無邊)호되, 억천(億千)의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리는 것이 그 복(福)이 갓이 없으되,
쟁사상장고교간(爭似常將古敎看)이리오. 어찌 항상 고교(古敎), 옛 가르침을 가져서 본 것만 같으리오.

이 옛 가르침, 고불(古佛)에 가르침, 고불에 경전(經典). 이 고불에 옛 가르침이라 하는 것은 불조(佛祖)가 항상 전(傳)하는, 불조가 서로서로 전해 내려오는 심인(心印), ‘마음에 인(印)’을 가리키는 말이고, 중생본유(衆生本有)에 일착자(一著子)다.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한 물건이여. 이것을 '예 고(古)' 자, '가르칠 교(敎)' 자, 고교(古敎)라 하는 것이여.
억천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그 공덕을 무슨 말로써 다 그 공덕(功德)을 다 표현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무량무변(無量無邊)이여. 그렇지마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이 한 물건, 본래 가지고 있는 이 한 물건이요, 불조가 서로서로 전해 내려오는 그 마음에 인(印)을, 그것을 가져서 보는 것만 어찌 같을 것이냐.

백지상변서흑자(白紙上邊書黑字), 흰 종이 상변(上邊)에다가 검은 글자를 써 가지고,
청군개안목전관(請君開眼目前觀)이다. 그대에게 청(請)하노니, 여러분께 청하노니 눈을 떠서 눈앞에 터억 관(觀)하라.

이 중생본유(衆生本有)에,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그 한 물건. 종이에다가 먹으로 쓴 글자가 아니여. 한 글자도 없건마는 그 글자를 우리 일용중(日用中)에—앉고 서고 눕고, 밥 먹고 옷 입고, 생각하고 썽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하는, 우리 인연(因緣) 따라서 수용(受用)하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소소영령(昭昭靈靈)하는 바로 그것이 백지상변서흑자(白紙上邊書黑字)여.
그 가운데에 알라야 알 수 없고, 볼라야 볼 수 없는 우리의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터억 거각(擧却)해서 그것을 관조(觀照)하는 것이, 바로 백지상변(白紙上邊)에 검은 글자를 써 가지고 항상 눈앞에 그것을 보라.
이 경전을 읽어야 참으로 부처님께서 전하신,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傳)해 내려오는 그 심인(心印)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삼세(三世)에 모든 부처님을 친견(親見)해서 거기에 공양(供養)을 올리는 공덕도 말로 할 수 없이 장하고, 또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장경(八萬藏經)—화엄경(華嚴經) · 법화경(法華經) · 금강경(金剛經) · 원각경(圓覺經) 이러한 경전(經典)을 항시 손에서 놓지 않고 그것을 독송(讀誦)을 하는 거, 그것도 참 공덕이 한량이 없지마는, 우리 최상승학자(最上乘學者)는 벌써 종이로 된 경전을, 또 먹으로 된 경전을 그것을 읽는 데에 그쳐서 될 것이냐.
진짜 경전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거기에서 찾아야, 거기에서 찾아야 참부처도 거기에서 친견할 수 있고 참경전도 거기에서 읽을 수가 있는 것이여.
그 경전, 그 참부처님을 친견하고 독송하게 하기 위해서 부득이해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라 하는 화신불(化身佛)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出現)을 하신 것이고, 이 문자(文字)로 된, 언어문자로 된 경전을 부득이해서 설하신 것이다 그 말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계축년(癸丑年)에 설(說)하신, 그 계축년 해제(解制) 때 설하신 그 법문(法門), 오늘 이 용주사 중앙선원에서 삼동결제(三冬結制)를 마치고 온 대중(大衆),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서 삼동안거를 마치고 온 대중, 그리고 이 경기도 일원(一圓)에 모다 회룡사라든지, 저 충청도, 옛날에 만공(滿空) 스님, 보월(寶月) 스님을 모시고 여기 전강(田岡) 조실 스님, 한국에 근대에 모다 여러 큰스님네들이 거기서 모다 정진을 하신 보덕사(報德寺) 거기 선원에서 난 대중까지도 여기에 오늘 해제에 참석을 했는데, 여기 멀고 가까운 여러 선원에서 정진을 하고 오늘 이 자리에, 이 용화사(龍華寺) 법보선원(法寶禪院)에 한자리에 모여서 해제 법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모도 들으니 각기 그 선원들에서 삼동 석 달 동안을 정말 여법(如法)하게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알뜰하게 모다 정진(精進)들을 하고, 모다 눈에는 정진을 해서 그 샛별같이 반짝거리는 그 참, 신심과 지혜로써 그 석 달 동안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놨으니 모다 업장(業障)이 소멸을 하고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화두(話頭)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그러한 정진 뒤끝이라 모다 몸에서는 향내가 진동을 하고 눈에서는 그 날카로운 빛이 아주 번쩍거린다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49년 동안을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을 설하시고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참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 내려오는 그 본지(本旨)가 무엇이냐 그거거든.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여기(인천 주안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창설하시고, (수원 용주사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시고 그러한 뜻이 오직 이 일대사를 위해서, 우리 모두 후학자(後學者)들을 위해서 터를 닦아 놓으신 것이고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런 부처님과 역대조사와 근대에 여러 선지식(善知識)들의 그러한 자비(慈悲)의 뒷받침이 없었던들, 어떻게 우리가 오늘날 이 말세(末世)에 우리가 참선(參禪)이라고 한 말을 어디서 들으며, 참선을 하는 방법(方法)을 어떻게 잘 알 수가 있었으며,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걱정 없이 이렇게 정진(精進)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생각해 보면, 불조와 선지식들의 은혜를 생각하면 정말 우리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신 지 삼천년이 지낸 이 말세(末世)입니다. 온 세계는 말세의 여러 가지 현상(現狀)이 도처에서 일어나 가지고 서로 죽이는 일만을 연구하고, 서로 죽이고 도처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 마치 파리 목숨만도 못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우리가 목숨 바쳐서 일대사를 위해서 도(道)를 닦을 수 있는 이, 과거에 우리가 무슨 숙연(宿緣)을 심어 가지고 우리는 이러한 법(法)을 만나게 되었는가. 참 뜨거운 것이 속에서 참 솟구쳐 올라올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이러한 정법을 만나 가지고 이렇게 이 중앙선원에서, 또 법보선원에서, 태화선원에서, 도처 선원에서 이렇게 옛날 부처님 때에부터서 내려오는 이 동안거 하안거, 이 안거(安居)의 법도(法度)에 따라서 한 철 한 철을 지내감에 따라서 점점 더 엄격하고 더 경건한 마음으로 이렇게 겨울살림 여름살림을 이렇게 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겉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그 생활 법도(法度)도 대단히 중요하지마는 그 내부에,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진정한 신심(信心), 정말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 발심(發心), 분심(憤心),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또 들고, 아무리 공부가 잘 안되어도 끈질긴 인내력으로써,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지혜롭게 용심(用心)을 해 가지고 알뜰히 정진을 해 나가면 기어코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제절로 들어지는 그러한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경계가 나타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계축년(癸丑年) 녹음법문을 들었습니다마는, 중국에 천목산(天目山) 고봉 선사(高峰禪師). 3년 사한(死限)하고 그 정진하신 말씀이 잠깐 나왔습니다마는, 우리는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할 때까지, 또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신참(新參) 구참(久參)을 막론하고, 남녀와 노소를 막론하고, 스님네나 또는 이 거사(居士)님이나 또는 이 청신녀(淸信女)를 막론하고 오직 이 고봉 스님께서 도를 닦으신 바와 같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도 그러한 대오(大悟)를 할 수가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하고, 소의지하(小疑之下)에는 소오(小悟)하고, 무의지하(無疑之下)에는 무오(無悟)라. 큰 의심, 크고 간절한 큰 의심을 가지고 그 큰 의심 아래에서는 큰 깨달음이 있고, 작은 의심 아래는 작은 깨달음이 있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달음도 없다'
이 말씀은 어쨌든지 우리는 큰 깨달음을 목표로 삼는데,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그 의심(疑心)이 커야 한다. ‘의심이 크다’는 말은 무엇이냐?
들다가 말다가, 좀 하다가 말다가, 환경에 끄달려서 시비(是非)에 빠지고, 이러한 상태에서는 큰 의심이 날 수가 없습니다. 큰 의심(疑心)이 날라면은 큰 분심(憤心)이 있어야 하고, 큰 분심이 일어날라면은 큰 신심(信心)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신심(信心)이던가?
‘나도 부처님과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는 존재다. 나도 본래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어쩌다가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이런 중생(衆生)의 꼴이 되어 가지고 육도(六道)를 윤회(輪廻)하다가 오늘날까지 왔지만, 본래는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 라고 하는 사실에 추호도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결정코 금생(今生)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근기(根機)가 약하니까, 내가 여자니까, 나는 몸이 건강틀 못하니까, 또는 나는 무식하니까' 등등 자꾸 부정적(否定的)인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의 근기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해봤자 어피차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미 늙었으니까 암만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해서,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앉어서 흉내만 내고 있어 봤자 무슨 공부가 되겠습니까?
여자가 되었건, 근기가 하열(下劣)했건, 나이가 먹었건 그럴수록에 백배 천배 더 분심(憤心)을 내서 목숨 바쳐서 정진(精進)을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경허(鏡虛) 큰스님께서 어려서부터 그렇게 총명(聰明)하시고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고 그러한 참 총명한 머리를 가졌지만 그 공부를 하실 때에, 처음에 경(經)을 배우실 때 다른 사람이 한 번 읽으면 당신은 열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을 읽으면 당신은 백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백 번을 읽으면 당신은 천 번을 읽었어. 한 번만 쑤욱 보기만 해도 외어버릴 수 있었지만, 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경(經) 한마디 한마디를 뼛속에 새기고자 해서 백 번, 천 번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셔 가지고 이십여 세의 아주 새파란 젊은 나이에 참 대강사(大講師)에 전강(傳講)을 받아 가지고 팔도에서 모여든 학인(學人)들에게 경(經)을 설하시다가, 참 퇴속한 은사 덕택으로 자신이 이렇게 대강사가 된 것이 너무너무 고마와서 인사차 그 은사를 찾아가다가 전염병이, 요새 같으면 장티부스 같은, 지금은 여러 가지 예방주사도 있고 모다 치료하는 방법이 있지마는, 옛날에는 그러한 전염병을 방지할 방책(方策)이 없어 가지고 걸렸다 하면은 온 마을이 다 모조리 다 죽었습니다. 그러한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서 차례차례 죽어가는 그런 마을에서 그러한 것을 보고서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해.

그래 가지고 스스로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다 보고 대강사가 되어서 그 경(經)을 강(講)하고 있지마는 이것이, 이러한 그 사람이 막 죽어가는 꼴을 보고 공포심이 난 것으로 봐서, 이것이 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종횡(縱橫)으로 설한들 이것이 어찌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
대발심(大發心)을 해 가지고 동학사(東鶴寺)로 돌아가서 학인들을 다 흩어버렸어. “각자 너희들 인연 따라서 다 흩어져라” 보내버리고서, 그 동학사 실상사(實相寺, 지금 동학사 실상선원實相禪院) 그 지금 암자는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있는데 그때는 거기에 암자가 있었어. 그 암자에서 문을 처닫고 그 구멍으로 밥을 넣어달라고 해 가지고는 아주 죽기로 각오를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나라 이조(李朝) 때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얼마 동안 침체를 하고 경을 숭상하는 시대가 있었는데, 이 경허 스님께서는 그러한 침체된 선풍(禪風)을 갖다가 부흥(復興)을 했어. 그래 가지고 한국에 침체했던 선풍을 갖다가 이렇게 진작(振作)을 해 가지고 오늘날에 참 이 최상승법이 이렇게 참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경허 스님 밑에 모다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이 모다 나오시고, 그 선지식 밑에 오늘날 이렇게 전국에 선풍이 이렇게 진작하게 된 것은 경허 큰스님의 그러한 참 출현(出現)으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到處)에 참선법(參禪法)이 이렇게 일어나고 있지만, 모두가 다 일본에서 모다 소개가 된 탓으로 모다 의리선(義理禪)—의리로 따지는, 의리로 따져서 공안(公案)을 통과하는 그러한 참선법이 모다 소개가 되어 있지마는, 우리 한국에 남아있는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이 경허 스님, 만공 스님으로 해서 이렇게 내려오는 이 법이 아직 남아있는 한 부처님의 정법(正法)은 끊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최상승법을 요원(燎原)에 불길처럼 다시 진작을 시켜서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이 활구참선법을 선양(宣揚)을 해서 불일(佛日)이 재휘(再輝)하도록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부대중(四部大衆)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어쨌든지 이 몸뚱이 있을 때 목숨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해 가지고 확철대오해서 고인(古人)의 전지(田地)에 이르러서 스스로도 생사해탈을 하고 이 정법(正法)을 세계에 선양을 함으로써 우리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실천을 해야 할 때가 바야흐로 온 거 같습니다.(처음~26분56초)





(2)------------------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허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호되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 봄에는 동해(東海)로 좇아 남(南)으로 주장자(柱杖子)를 날리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가을에는 서산(西山)을 향하다가 또한 북방(北方)으로 가는구나.
저 남방(南方)에서 해제를 하고 북방(北方)으로 가고, 북방에서 해제를 하고 저 남방으로 가고, 철철이 여기서 해제(解制)했다 저그 가서 결제하고, 저기서 결제(結制)했다 이리 오고 오고가고, 동서사방(東西四方)으로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 따라서 걸망을 짊어지고 왔다갔다한다 그 말이여.

삼백육순(三百六旬)을 장요요(長擾擾)허되, 삼백육십 일을 마냥 부산하게 왔다갔다하되,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여. 어느 날에 고향에 이르를까 알 수가 없구나.

인생(人生)으로 태어나서 인생에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출가(出家)를 해서 걸망을 짊어지고 선방(禪房)으로 이렇게 돌아다녀. 주지(住持)도 안 하고, 무슨 일체 것을 다 버려버리고 이렇게 걸망을 지고 선방에 나온 것만 해도 참 장하고 기특하고 훌륭하지.
그러나 결제하고 해제하고 걸망을 지고 동쪽 서쪽으로 이 선방 저 선방으로 다니는 것도 생각해 보면 장하고 또한 멋진 인생이라 할 수가 있지마는, 어찌 그것만으로써 청풍납자(淸風衲子)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정말 정든 고향을 버리고 부모형제를 버리고 인생의 오욕락까지 다 버려버리고 출가해 가지고도 명예와 이익, 명리(名利)를 다 버려버리고 탁 걸망을 짊어지고 나왔다면 진발심(眞發心)을 해야겄더라. 정말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나오는 천목산 고봉 스님처럼 정말 한번 목숨 바쳐서 한바탕 해봐야 할 것이다 그거거든.

여기서 한 철 지내보고는 또 그저 또 저리 걸망지고 가고,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쪼끔 해보다가 또 해제하면 이 선방에 오고, 철새처럼—저 오리, 기러기나 저 두루미 또 황새처럼 그냥 무의미하게 철 따라서 저 시베리아로 갔다가 저 한강(漢江)으로 왔다 낙동강으로 갔다가, 저 중국 양자강으로 갔다가 그렇게 무의미하게 그렇게 왔다갔다하면, 하나의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는 멋지게 사는 납자(衲子)일런지는 모르나 그렇게 참 철새처럼 살아서 또 뭣 할 것이여?
그렇게 살다보면 내생(來生)에는 그런 황새 같은 것이 되어가지고 또 세계를 계절 따라서 날아다니는 황새 밖에는 더 될 것이냐 그 말이여.

우리가 출가(出家)한 목적, 부처님께서 이 출가 제도를 만들아 논 이 목적은 황새처럼 떠돌아다니라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말이여. 정말 진발심(眞發心)을 해야겄더라.
어느 곳이고 한곳에서, 기왕 이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 왔으면 이 법보선원에서 그 간절한—녹음법문일망정,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살아계신 조사(祖師)의 법문으로 알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정말 한바탕 아주 뿌리를 뽑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한 번 닦아 주었으면. 여러 가지가 부족하지만, 이 송담(松潭)이 원력(願力)을 세우고 참 잘 외호(外護)를 해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한철 겨우 나고 또 걸망지고 갔다가 이럴 것이 아니거든. 한번 들어왔다 하면은 여기서 아주 뿌리를 뽑아버려야 돼, 아주. '죽어서 송장으로 나갈지언정 이 자리를 뜨지 아니하리라'
부처님께서도 정각산(正覺山)에 들어가서 ‘내가 여기서 성불(成佛)하지 아니하면 이 자리에 뜨지 않으리라. 일어서지 아니하리라’

고봉 스님도 ‘내가 여기에서 확철대오를 못하면은 여기서 내가 살아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는 이런 3년 사한(死限)을 하고. 이러한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이 아니고서는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3년을 사한(死限)을 하고 그 자나깨나 화두(話頭)를 들고 했지만 조끔도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들어지지도 않고 망상(妄想) 아니면 혼침(昏沈), 혼침 아니면 망상으로 3년을 그렇게 지내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가 안 된다고 한탄을 하고 다른 데로 떠날 생각을 하시지 안 했습니다. 고봉 스님이 만약에 한 철 해보고 안 되어서 다른 절로 가고, 또 거기서 안 된다고 이리 오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떠돌아다니고 말았다면 그러한 대각(大覺)을 성취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보살선방에 여러 보살님네들도, 이 정묘년 삼동안거(三冬安居)에 133명이라고 하는 많은 대중이 방부(房付)를 들이고 이렇게 정진(精進)을 했습니다. 방이 상당히 크고 저쪽 별당까지 모다 선실(禪室)을 했지마는, 그래도 모다 중좌(重座)를 하고 빡빡허니—그 공기도 나쁘고, 이 자동차 소음 소리는 밤낮을 끊이지 않고 그렇게 소란스럽고, 여러 가지가 시설도 불충분하고 하지마는, 그런 불평 한마디 없이 참 애써서 모다 정진들을 하셔서 원장(院長)으로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진에 있어서는 ‘이만했으면 되었다’ 한 그러한 한도(限度)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화두가 순일하게 잘 들리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린다 해도, ‘하! 참 공부가 잘된다. 참 기쁘다’ 그 생각 내면 벌써 정진이 아닌데, 어떻게 되어야 ‘이만했으면 공부가 잘된다’고 만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금강경(金剛經)』에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多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 이런 사과(四果)에 성현(聖賢)이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다 한 생각을 내면 수다원이 아니요,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하면 아라한이 아니요, 내가 보살과(菩薩果)를 증득(證得)했다 하면 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그 법문이 구구절절(句句節節)이 씌여 있습니다.

정진을 하다가 좀 화두가 순일하고 성성한 경계(境界)가 나타났다고 해서 어찌 그까짓 경계를 가지고 족(足)한 마음을 내서야 어찌 그것을 참 납자(衲子)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면 그만한 경계쯤이야.
무슨,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그 경계요, 경전이나 조사의 어록을 봐도 하나도 의심할 것이 없고 모두가 그 소식(消息) 같지마는, 그까짓 것을 어찌 이사(理事)에 맥힘이 없는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境地)라 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조사(祖師)의 경지, 불조(佛祖)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거든, 정진하다가 조끔 깨끗하고 고요한 경지를 맛보았다고 해서 그까짓 것을 족(足)한 줄을 알고. 체, 한 생각에 천만 길 지옥구뎅이로 떨어지는 결과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서는 안 되지만, 아무리 화두를 들어도 화두가 들리지를 않고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지를 않고, 들을 때뿐이지 금방 일 분도 안 되어서 딴생각이 일어나고, 딴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번뇌(煩惱)가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혼침(昏沈)이 일어나고, 그런다고 해서 '아 이거...' 퇴태심(退怠心)을 내고 자포자기를 할 수야 더군다나 없는 일이여. 그럴수록에 악착같이 대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자가 새끼를 낳아 가지고 그놈을 따뜻하게 품안에 안고 젖을 먹이고 그런 게 아니라, 그놈을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뜨려서 수십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려버리면 그놈이 떨어져 내려가지고 죽지 않고 뽁뽁 기어 올라온 놈, 고놈에 한해서 젖을 먹여서 키운다 그 말이여. 그 떨어져 갖고 맥을 못 추리고 죽어버린 것은 그건 버려버린 거고. 올라오지도 못하고 뻐르적거린 것도 그런 것도 돌아보지도 안 해. 그놈이 애미 있는 데를 찾아서 뽁뽁 기어 올라온 놈, 고놈이라야 되거든.

옛날,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는 오늘날처럼 이렇게 선방(禪房)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먹는 거 입는 거 처소(處所)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만한 그렇게 박(薄)한 상태에서 그래도 거기에서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해 가지고 그런 대도(大道)를 성취를 한 것입니다. 아무리 용화사가 공기가 나쁘고 주변이 시끄럽고, 공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수용(受用)이 박하다 해도 부처님께서 겪으신 그런 고행(苦行) 정진에다 비교하면 이것은 만 분에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도 참 무던히 여러 가지 좋지 않는 여건에서 참 정진하니라고 애들 쓰셨지만 앞으로는 여건이 나쁠수록에, 수용이 박할수록에 더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내서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를 해서 여러 단월(檀越)들에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의 몸뚱이를 낳아주신 부모에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로 하여금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선방과 전통을 남겨주신 우리의 조사(祖師)와 선지식(善知識)과 부처님에 은혜를 보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해제(解制)를 하고 계속해서 눌러서 정진을 하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부득이한 인연으로 다른 처소로 가시더라도 어쨌든지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말씀과 산승(山僧)에 이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기시고 정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거듭 부탁을 합니다. 게송 한마디를 읊고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뚧어버리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비로소 산하대지(山河大地) 너그러운 것을 깨달을 것이다.
상두관(上頭關), 우리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요철(了徹)해 버리면 이것이 상두관을 투득(透得)하는 것이여. 그래버려야 산하대지가 너그러운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대, 인간에 모든 시비(是非)와 분별(分別)의 경계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면, 어찌 녹수청산(綠水靑山)에 걸릴 것이 있느냐? 인간의 시비와 분별경계에 떨어지기 때문에 녹수청산에 걸리게 된다 이거거든.

여기 이 법보선원이 공기가 좀 나쁘고, 자동차 공장 모다 소음이 있고, 또 공양 모다 그런 수용이 박하고, 여러 가지 시설이 불충분하다고 한들,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해서 분별경계(分別境界)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면, 차라리 좀 시끄러운 것이 공부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수용이 좀 박한 것이 오히려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 좋은 채찍이 될 수도 있고, 여기에 모인 대중 가운데에 발심(發心)한 사람도 있고 발심이 덜 된 사람도 있고, 또 괴각(乖角)이 있어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이 있고, 그러한 것들이 발심만 제대로 하고 보면은 그러한 좋지 않는 여건이 훨씬 공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자기 자신이 발심(發心)이 부족하고 분심(憤心)이 부족하고 용맹(勇猛)이 부족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주변 환경의 좋지 않는 여건에다가 허물을 돌리지 말 것이다.
자기 밖에의 어떠한 경계(境界)에, 다른 사람에, 그런 허물을 돌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한은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를 간들 어찌 내게 맞는, 도업(道業) 성취할 수 있는 도량(道場)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모든 허물을 밖에서 찾는 한은 천당(天堂)에다 갖다 놔도 그 사람은 행복하지를 못할 것이여.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다 갖다 놔도 그 사람은 흡족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기(期)해서 모든 허물은 자기에서 찾고, 모든 부족한 것은 자기 스스로 점검(點檢)하는 데에서 해결을 한다면, 우리는 어디를 가거나 선지식(善知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어디를 가나 좋은 도반(道伴)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고, 어디를 가나 선불장(選佛場)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보살님 여러분들도 해제를 하고 오늘 다 댁으로 모다 돌아가시게 되는데, 댁으로 돌아가셔서 선방(禪房)과 같지 못하다고 불평을 하시지 말고, 바로 그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 시끄럽게 떠들고 모든 것이 내 마음과 같지 못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 나간다면, 그 복잡한 세속(世俗),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는 세속, 가정, 사회가 온통 다 불보살(佛菩薩)이요, 남편은 부처님이요, 아들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요, 며느리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요, 손자손녀는 남순동자(南巡童子)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또 한동안을 지내다가 다음 또 여름철에 오셔서 방부를 들이고 또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정진하게 되시기를 바라면서 법상(法床)을 내려가고자 합니다. (26분59초~51분6초) (끝)





[법문 내용]

(게송)억천공불복무변(億千供佛福無邊) 쟁사상장고교간(爭似常將古敎看) 백지상변서흑자(白紙上邊書黑字) 청군개안목전관(請君開眼目前觀).
고교(古敎), 고불(古佛)에 가르침이라는 것은 불조가 서로서로 전해 내려오는 심인(心印), ‘마음에 인(印)’을 가리키는 말, 중생본유(衆生本有)에 일착자(一著子)다.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한 물건이다 / 우리의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해서 그것을 관조(觀照)하는 것이, 바로 백지상변(白紙上邊)에 검은 글자를 써 가지고 항상 눈앞에 그것을 보라.

부처님께서 49년 동안을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을 설하시고 3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 내려오는 그 본지(本旨)가 무엇이냐? 오직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우리 모두 후학자(後學者)들을 위해서 터를 닦아 놓으신 것이고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진정한 신심(信心), 발심(發心), 분심(憤心),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끈질긴 인내력으로 지혜롭게 용심(用心)을 해 가지고 알뜰히 정진을 해 나가면 기어코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제절로 들어지는 그러한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경계가 나타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하고, 소의지하(小疑之下)에는 소오(小悟)하고, 무의지하(無疑之下)에는 무오(無悟)라. 큰 의심 아래에서는 큰 깨달음이 있고, 작은 의심 아래는 작은 깨달음이 있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달음도 없다'

큰 의심(疑心)이 날라면은 큰 분심(憤心)이 있어야 하고, 큰 분심이 일어날라면은 큰 신심(信心)이 있어야만 된다. 무엇이 신심(信心)이던가?
‘나도 부처님과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는 존재다. 나도 본래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어쩌다가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이런 중생(衆生)의 꼴이 되어 가지고 육도(六道)를 윤회(輪廻)하다가 오늘날까지 왔지만, 본래는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 라고 하는 사실에 추호도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결정코 금생(今生)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허(鏡虛) 스님의 포구발심 기연(機緣), 경허 스님께서 우리나라 침체된 선풍(禪風)을 부흥(復興)했다.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진발심(眞發心)을 해야 한다.

우리의 정진에 있어서는 ‘이만했으면 되었다’ 한 그러한 한도(限度)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조사(祖師)의 경지, 불조(佛祖)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게송)약인투득상두관~ / 발심만 제대로 하고 보면은 그러한 좋지 않는 여건이 훨씬 공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발심(發心)이 부족하고 분심(憤心)이 부족하고 용맹(勇猛)이 부족한 것을 한탄할지언정, 주변 환경의 좋지 않는 여건에다가 허물을 돌리지 말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을 기(期)해서 모든 허물은 자기에서 찾고, 모든 부족한 것은 자기 스스로 점검(點檢)하는 데에서 해결을 한다면, 우리는 어디를 가거나 선지식(善知識)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어디를 가나 좋은 도반(道伴)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고, 어디를 가나 선불장(選佛場)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51~375)2018. 2. 17. 04:44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6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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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한디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하면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나무~아미타불~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이다. 금강의 보배 칼이 하늘을 의지해서 서릿발이 치는데,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다. 한번 휘둘러서 능히 만 길이나 되는 봉우리를 갖다가 꺾어 버리더라.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두루 꽉 차 있는 그 마구니가 이로 좇아 떨어지니,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무슨 정매(精魅), 도깨비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속을 엿볼 수가 있겠는가.
 
 
방금 전강 조실 스님께서—갑인년이면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해인데, 그해 정월에 설하신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점은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활구참선!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요.
 
요새 참선, 많은 사람들이 참선(參禪)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모두 참선을 알려고 그러고, 참선을 할려고 노력을 하고—그런데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그 선양을 하신 그 참다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그말이여.
 
공안(公案)을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분석하고 따지고, 그래서 분별하고 따지면,
아무리 그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하는 그러한 공안이라 하더라도 중생심으로 따지고 분석하고 그러면 그 훌륭한 공안이 사구(死句)가 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백 년을 따지고 천 년을 따지고 무량겁을 따져도, 따질수록 점점 공안의 참뜻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고.
따라서 참 깨달음을 향해서 정진을 해야 할텐데 따지다 보면 깨달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가거든.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어져 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이여.
 
비단 조실 스님 법문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께서 설(說)하신 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을 설하신 것입니다.
 
성현이 가신 때가 멀고, 법은 마강법약(魔强法弱), 마구니는 강해지고 법(法)은 약해져.
그러니 부처님의 설하신 법도 중생 나름대로 사견(邪見)을 붙여서 사법(邪法)을 만들고, 조사가 선양하신 활구참선법도 이렇게 말세가 되니까 자꾸 중생의 소견으로 사량분별을 붙이고, 이치 길로 따지고 말 길로 따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자기 나름대로 온갖 삿된 소견을 붙여서 분석을 하니, 그것이 참다운 참선인 줄 알고 전부 후래(後來) 학자들은 그 공부 첫걸음부터 그르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기가 쉬우냐 하면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니 뭐라고 입을 벌릴 수도 없고, 이치 길이 끊어졌으니 뭐라고 거기 분석을 할 수도 없고.
밤낮 ‘알라야 알 수 없고,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의단(疑團)을 거각(擧却)하라!’ 그렇게 한 달을 해보고 두 달을 해보고 일 년을 해보고 이태를 해봤자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
 
그런데 일본 책이라든지, 그런 모다 공안을 이리저리 분석해서 따져 논 그런 책을 보면 모두 읽을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그말이여. 알아지는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고 그러니까.
그러니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다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 명색(名色)이 참선을 한답시고 한 것이 모두 의리선(義理禪)만 허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나라에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이후로 쭉 내려오는 활구참선법은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행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떠한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해도 사구참선(死句參禪)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
설사 10년을 하고 30년을 하고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 소견이 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갈지언정, 무슨 사량분별을 가지고 어떤 소견이 나기를 바래고 어떤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무슨 가늠이 가고 이러기를 바래지를 말어야 한다.
 
열 가지 공안 또는 백 개, 이백 개 내지 삼백 개, 천이백 공안에 대해서 해석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 소견이라,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얻어지는 해석은 생사심(生死心)만을 더욱 조장할 뿐 깨달음에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여.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대의단으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
 
 
증위탕자편련객(曾爲蕩子偏憐客)이여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반(乃何遊子不知返)하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증위탕자(曾爲蕩子)라 편련객(偏憐客)이여. 일찌기 방탕, 방랑하는 사람이 된지라, 치우쳐 객을 어여삐 여김이라.
 
부처님 자신이 무량겁을 두고 고향을 떠나서 육도(六途)를 돌면서 그 방랑자 된 그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러한 방랑생활을 한 그러한 뼈에 사무치는 그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치우쳐 객을 어여삐 여겨.
지나치리만큼 일체 중생의 그 생사윤회(生死輪廻)하고 있는 일체 중생에 대해서 정말 가슴깊이 불쌍하게 여기신다 그말이여.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다. 평생 동안을 술을 많이 먹고 과음 폭음을 해서 그렇게 이 술을 많이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술 취한 사람을 갖다가, 그 술 취한 사람의 속사정을 이해를 한다 그말이여.
 
내하유자부지반(乃何遊子不知返), 유랑하는 방랑하는 사람은 객지로 객지로 떠돌기만 하고, 본고향(本鄕)으로 자기집으로 돌아올 줄을 몰라.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다. 길이 타향에 길을 잃고 풍파를 쫓아가고 있구나.
 
 
모든 불보살과 역대조사와 선지식들은 자신이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 속에서 그렇게 많은 그 고통을 받아왔고 그렇게 받은 그러헌 스스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서 출가를 해서 대도를 성취하고,
대도를 성취한 뒤에도 일신상의 안락을 불구하고 일평생 동안을 중생과 후래 학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그 생사해탈(生死解脫), 어떻게 하면 이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그렇게 목이 쉬도록,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그렇게 간곡히 노바심절(老婆心切)하게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러주시건만 각자 업(業)이 지중(至重)해서 계속해서 그 업의 풍파, 업풍(業風)에 따라서 계속 객지로 객지로 떠돌고 있을 뿐 고향으로 그렇게 돌아오지를 못한다.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다른 외도(外道)를 믿는다던지 또는 불법을 믿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지 못하고 방편설(方便說)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활구참선을 의지해서 공부를 시작한 지가 벌써 오래된 그런 사람도 진정으로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활구참선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그 삼요는 대신심(大信心) · 대분심(大憤心) 그리고 대의심(大疑心) 대의단, 이 3가지를 한목 갖추어야 그래야 진실한 수행자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8분30초)
 
 
 
(2/4)----------------
 
 
대신심이란 게 무엇이냐? 무엇을 믿어야 대신심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냐?
내가, 내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내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는 것이 그것이 바로 대신심이여.
 
‘이론상으로는 우리도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을 해서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견성이다’ 이렇게 다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따로 있고, ‘내’라고 한 놈이 불성을 속에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줄 알고, 말을 들을 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그 당처(當處), 그 당처를 여의지 않고 그 당처가 바로 불성이라, 바로 그것이 자성불(自性佛)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놈을 철저히 믿어야 그놈을 여의고 따로 부처를 찾지 않게 되는 거여.
그놈을 여의고 따로 ‘참 부처’를 찾는 한에는 영원히 찾어도 부처님은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이 신심이 꽉 아주 견실(堅實)해야 그래야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있어.
 
 
 
그 다음에 대분심(大憤心).
왜 내 자신이 부처이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불보살, 역대조사는 진즉 이 문제를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을 해서 생사해탈을 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해 속에서 이렇게 헤매이고 있는가?
 
왜 멀쩡한 부처님이면서 부처님으로서 살지를 못하고, 부처님으로서 행하지를 못하고, 어찌 이렇게 업풍에 따라서 이렇게 윤회를 거듭하고 있고, 언제 그 기한 없이 이렇게 고취(苦趣) 속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뼛골에 사무치도록 분심! 한탄이라고 할까? 원망이라고 할까? 기가 맥힐 일입니다. 그러한 뼛속에서부터 사무치는 그런 분심이 없고서는 도는 닦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은 동시에 발(發)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과거 무량겁 무변 나유타 겁에 이 사바세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호(號)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부처님이셨다”
삼천년 전에 인도에 출세하신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마는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무량무변(無量無邊) 나유타(那由他) 겁(劫) 이전에도 이 사바세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다” 이것입니다.
 
중생을 위해서 대열반경(大涅槃經)을 설하고 계셨어.
 
그때에 한 친구로부터 ‘지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열반경을 설하고 계신다’ 그 말을 들었다 그말이여. 듣고서 마음 가운데에 큰 환희심을 내고서 바로 가서 공양(供養)을 올리고 법문을 듣고 싶었지만 너무 가난하고 아무 재산이 없어.
그래도 부처님을 가서 친견을 하고 법문을 들을려면 무엇인가 정성스럽게 공양할 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가서 공양을 올리고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문을 들어야 할텐데,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 끝에 ‘차라리 이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라도 공양구(供養具)를 만들어야겠다’ 이래 가지고 읍에 나가 가지고 “이 몸뚱이를 사시오. 이 몸뚱이를 살 사람이 없소”하고 외치고 댕겼다 그말이여. 워낙 박복(薄福)한 사람이 되어서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은 척도 안 해.
누가 몸뚱이를 살려고 한 사람이 있어야 팔텐데, 이 몸뚱이를 사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도 아무도 살려고 한 사람이 없어. 사람이 모여들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실망을 하고 집으로 허탈 상태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어. 혹 이 사람은 내 몸을 살랑가 해서 “이 몸뚱이를 사시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 내가 사겠다”고.
 
“그런데 나한테 무서운 병이 있는데 의사한테 진단을 해서 처방을 냈는데 ‘사람 고기를 하루에 석 냥[三兩]중씩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그러니, 당신이 나한테 팔려오면 내가 당신을 사면 날마다 당신 살을 갖다가 석 냥씩 내가 뜯어서 먹어야겠는데 그렇게 먹어도 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니까 “대단히 좋다”고.
 
“그러면 만약 내 집에 와서 하루에 석 냥씩을 나한테 바치면 내가 금전(金錢), 금으로 된 돈을 석 닢씩을 주겠다” 그렇게 해서 서로 언약이 되었어.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서 갔는데,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무슨 소원인고 허니는, 내가 이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 그 돈을 다른 데에 쓸려고 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리고 부처님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내가 이 몸뚱이를 팔려고 그런 것이니, 이 몸뚱이를 날마다 그렇게 석 냥씩 띠어내면은 내가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가 없으니 7일 동안을 나한테 허락을 해주면 내가 먼저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듣고 와서 그래 가지고 당신에게 이 몸뚱이를 바치겠다”하니까.
 
“그래 좋은데, 7일은 너무 많고 하루만 승낙을 하겠다” 그러면서 돈을 석 닢을 주어서 그래서 인자 그놈을 가지고, 공양구를 마련을 해 가지고 부처님께 그 공양을 올리고서 절을 하고서 열반경 설하신 것을 들었다.
듣는데, 다른 많은 법 설하신 것은 다 잊어버리고 머리가 우둔해 가지고 게송 하나만을 기억을 해 가지고 왔어.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하사  영단어생사(永斷於生死)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지심청(若能至心聽)하면  상득무량락(常得無量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사,
영단어생사(永斷於生死)다. 길이 생사를 끊으셨도다.
 
약능지심청(若能至心聽)하면,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들으면,
상득무량락(常得無量樂)이니라. 항상 무량의 낙을 얻으리라.
 
이 게송, 이 간단한 게송 한마디만 겨우 마음속에 새겨 가지고 돌아왔어. 그래 가지고 그 주인집에 와 가지고 날마다 그 게송을 속으로 읊어.
읊으면서 허벅지로 궁뎅이로, 살 좋은 데로 석 냥씩을 뜯어서 그래 가지고 그 주인한테 약으로 바쳤는데, 그러면서도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이 게송을 염송(念誦)하고 그러면서 했기 때문에 전혀 괴로운 줄도 모르고 아픈 줄도 몰랐어.
 
그러기를 날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해 가지고 한 달 동안을 그렇게 했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좋다는 약은 다 써도 백약이 무효인데, 한 달 동안을 그 사람의 그 인육을 갖다가 먹고서 그 무서운 병이 나았다 그말이여. 그 병 이름이 무엇이라고는 경에 쓰여져 있지 않지마는.
 
그래 가지고 병이 나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주인의 병이 다 낫자마자, 그 온 몸뚱이에 그 한 달 동안 30번을 갖다가 석 냥씩 띠어낸 그 상처도 깨끗이 다 아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날마다 그 석 냥씩이면 굉장히 그 많은 살점뱅이인데,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들어도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아리고 쑤시고 아픈 것인데, 한 번만 띠어내도 그 상처가 아물라면은 여러 달이 걸려야 그 상처가 아물고, 염증이 생기면 고름이 나고 그래 가지고 그 새살이 차오를라면 힘이 들텐데,
날마다 띠어낸 자죽이 한 달 동안을 그랬으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 얼마나 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겠지만,
 
부처님께 들은 그 열반경의 그 게송을 듣고서 그 게송을 갖다가 지극정성으로 독송하는 그 공덕으로 그 신심으로 아픈 줄을 전혀 몰랐고, 아픈 줄만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주인이 병이 다 나았다고 그 말을 듣고 그것도 기쁘려니와, 자기 상처도 이리 보니까 일시에 다 상처가 다 아물어서 다 나은 것을 보고서 너무너무 환희심이 났다.
 
그러자 대보리심(大菩提心)이 돈발(頓發)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원(願)을 세우기를 『내생에 내가 반드시 성불(成佛)을 하면 호를 석가모니불이라 허리라』 이렇게 원을 세웠어.
 
 
보리심을 발(發)해 가지고 원을 세우면은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떠한 소원이 있으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그러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지를 말고, 크고 작은 원이 있으면 보리심을 발해야 돼.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그리고 참선을 열심히 하시면서 원을 세우면 그 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18분30초~35분27초)
 
 
 
(3/4)----------------
 
그래서 언제나 이 기도할 때에도 말씀을 드리지만 ‘청정한 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그 기도를 성취할 수가 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마는,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뚱이를 팔고, 그래 가지고 한 달 동안을 날마다 살점을 띠어서 그 아픈 환자의 병을 낫으기 위해서 띠어 주면서도 계속 열반경에 그 부처님께 들은 그 게송을 외우면서 지극정성으로 했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오직 그 육체와 자기의 모든 것을 법을 위해서 바쳤어. 그래서 아픈 줄을 모르는 것이다.
 
 
세속에서도 그 어머니가 그 자식을 낳을 때, 그 고통이 참 낳아보지 아니한 사람은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고통이 심하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그 은중경(恩重經)을 통해서, 그리고 또 들은 바로서 그 고통이 매우 심하고, 그 애기를 낳으러 들어가면서 ‘다시 내가 또 이 신발을 신을 수가 있을런지’ 그렇게 참,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산고(産苦)라고 하는 것이 어렵다고 그러고.
 
또 애기를 낳아 가지고도 애기가 어디가 아프면은 그렇게 참, 밤잠을 안 자고 애기를 안고서 그 간호를 하고. 그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우면서 그 애기를 길러낸 어머니의 그 고통.
또 그 애가 커서 학교를 가고 시험볼 때—지금 여러분들도 다 겪고 계시지만 참, 그 애 학교 합격하기 위해서 같이 밤을 지새우면서 그러한 어머니의...
 
또 그 애가 커서 장가를 들고, 그 애가 커서 또 군인에를 간다던지, 그 어머니가 팔구십이 되고 애가 칠팔십이 되어도 그 칠팔십, 육칠십이 된 늙은 아들을 보고도 항상 애기처럼 생각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
그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괴로운 줄을 모르고 다 갖다가 거기 정성을 다 쏟으신 거다 그말이여.
 
그 생각을 미루어서 생각해 보면 정말 이 부처님의 그 전생, 저 무량 아승지겁 이전에 그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바치고 법을 위해서 살점뱅이를 띠어낼 때에 조금도 아픈 고통을 느끼지를 아니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치로 미루어 볼 때에 이해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법망구가 됨으로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허지만 참, 참선이 안된다. 정진이 잘 안된다. 혼침이 오고 망상심이 일어난다.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고 화두가 순일하지를 못한다. 무슨 잘못이 있어서, 공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공안을 타파를 못하고 확철대오를 못한 것이 아니냐’
많은 분들이 그것을 호소를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마는 순전히 그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세하게 따지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이 삼요(三要)를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단(大疑團), 이 삼요를 갖추지 못함으로 해서 공부가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는 것이지, 그밖에 딴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만 한목 발(發)해 버린다면, 마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첫 철에 직지사 제산 큰스님 회상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실 때에, 공양 목탁을 치면 가서 발우(鉢盂)를 펴고 공양을 드시고는 온전히 입선 방선이 없어.
법당 뒤에다가 방석을 하나 갖다 놓고 거기서 그저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혼침기가 있으면 일어나서 왔다갔다 일직선상으로 포행(布行)을 하시면서, 그래 정신이 깨끗해지면 다시 그 자리에 와서 또 앉고, 또 쪼금 혼침이 온 듯하면 금방 일어나서 또 포행을 하시다가 또 하고,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두 달,
 
처음에는 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지가 바로 무슨 공부나 한 척한다’고 모다 쑤군덕거리고 모다 그랬지마는.
열흘을 그렇게 해, 스무 날을 그렇게 해, 한 달을 그렇게 해, 두 달을 그렇게 해, 한결같이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쑤군덕거리고 모다 빈정거리고 하는 그런 말이 다 쑥 들어가 버리고.
 
예불(禮佛) 시간에 예불을 하면서 “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 엎드린 채 잠에 깊이 빠져 가지고 일어나지를 못해.
그래서 일으킬라고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 “내비둬라. 엎드린 채 좀 한숨 자게 놔둬라” 이렇게까지 모다 입승 스님을 비롯해서 대중스님네들이 모다 그 애껴주셨다 그말이여.
 
그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정말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어리신 나이로 공안을 타파(打破)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그러헌 참, 목숨 바치는 그런 위법망구적인 그러헌 그 정진이 없었다면 어떻게 조실 스님이 그렇게 어린 나이로 확철대오를 허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과거의 모든 불보살과 역대조사들이 다 도를 성취하신 데에 있어서는 그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헌 신심과 분심이 없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화두를 타서 정진을 시작을 하면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벙어리와 같고, 귀는 열려 있지마는 귀는 열려 있어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귀머거리와 같고, 입은 열려 있어서 부득이해서 무슨 말을 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아주 벙어리와 같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야 허냐 하면, 들을 소리 다 듣고 거기에 온갖 분별을 다 내고, 입이 열려 있다고 해서 온갖 말참견 다 하고 온갖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래 가지고 그러면서 어느 겨를에 화두를 들며, 들다말다 귀로는 온갖 시비에 다 참견하고, 입으로는 온갖 시비 다 참견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신기하고도 묘한 것이 우리의 그 일념(一念) 속에는 십법계(十法界)가 갖추어져 있어. 그리고 일법계(一法界) 속에 또 다시 십법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념(一念) 속에 백법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 되는 것이여.
그런데 그 일법계 속에는 30종의 세간(世間)이 들어 있는데, 따라서 백법계에는 삼천 종의 세간이 들어 있다 그말이여.
 
결론적으로 일념 속에 삼천 가지의 세간이 들어 있다. 그러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바로 일념 속에 들어 있다 그말이거든.
그 일념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 있는데 하루에 몇 생각이 일어나냐 그말이여.
 
눈뜨자마자 끝없는 생각이 일어났다가 얼마동안 딴 생각으로 이렇게 발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또 변해서 또 꺼지면은 꺼지자마자 또 따로 새 생각이 일어나고, 거의 단 1분 1초도 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 생각 속에 삼천 가지, 삼천 종의 세간이 갖추어져서 같이 휘몰아친다 그말이여.
그렇게 살아오기를 무량겁을 살아왔으니 그 생각을 안 할려고 한다고 해서 안 해질 수가 없는 것이여.
 
공부를 올바르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생각을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그래도 생각이 일어나면은 짜증을 내고 그러는데.
그 생각을 없앨려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를라고 헌다고 해서 눌러지는 것도 아니고 무장 더 일어나는 것이여.
 
그 생각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야 하느냐?
‘이뭣고?’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악한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슬픈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오직 ‘이뭣고?’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이뭣고?’ 빨리 챙기는 것에다가 정성을 쏟으라 그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살고, 이틀을 그렇게 살고, 열흘을 그렇게 살아. 한 달 두 달을 해도 조금도 공부가 더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석 달 열흘을 살아도 공부가 더 나아간 것 같지도 않아. 일 년, 이태, 삼 년을 한다고 해도 공부가 그렇게 썩 그렇게 순일하게 잘된 것 같지 않다 그말이여.
그래도 그 짜증을 낼 일도 아니고 또 포기를 해서도 안 된다 그말이여.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말이여.
 
당연한 것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바르게 대처만 해나가면 될 것을 자꾸 그 일어난 것을 갖다가 성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내가 이 공부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내가 참선을 헐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하고 한탄을 하는데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자꾸 화두를 들어.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그렇게 무섭게 했는데, 허실 때에 그 어릴 때 같이 크던 친구가 이게 참, 병으로 허망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렇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또 꿈에 지옥을 구경을 허셨는데 그 지옥고 받는 참혹한 그 광경을 보고 아주 몸서리치면서 꿈을 깨고서, 그래서 경을 배우다가 경을 덮어버리고 그 어린 나이로 선방(禪房)에 나가셨다 그말이여.
 
그때에 그 공부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잘 지도를 받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너무 급하게 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게 하지도 않고 해서 잘 잡드리를 해 나가셨으면 아무 그런 병환이 나시지 않고 대도를 성취했을텐데,
너무, 어린 마음에 워낙 철저하게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상을 깨닫고 분심이 솟구쳐 오르니까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막 해 제꼈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 상기(上氣)가 되아 가지고, 상기가 될수록에 점점 더 공부를 늦꾸지 아니하고 막 몰아붙였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까는 눈이 벌게지기 시작하면서 눈알, 그냥 눈이 핏기가 들어서 벌게지고, 목구녕에서는 피가 막 넘어왔다 그말이여.
 
이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해야 하고—종교를 믿건, 안 믿건 심지어는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참사람 되는데 있어서, 참나를 찾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길은 없지만, 잘못하면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그런 중병(重病)을—그런 중병, 상기병과 같은 무서운 병을 얻을 수도 있고, 또 바르게 공부를 못하면 미친 병이 걸리기도 하고, 또 사견(邪見)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러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도 「혈맥론」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다.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만 명 가운데에도 드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해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허는 법문을 항상 말씀을 하셨지마는.
이 참선이 그렇게 좋은 것이로되, 바르게 허지 못하면은 이 바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병, 정신적인 병까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방법으로,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위법망구적으로 열심히만 한다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백발백중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증명을 하셨습니다.
 
 
오조(五祖) 스님의 말씀에 이렇게 바른 법으로 열심히 이렇게 해서 깨닫지를 못하면,
‘이렇게 일러주는 것을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호랑이의 밥이 될 것이고, 내가 만약에 추호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이렇게 참 간곡한 말씀을 하시고.
또 몽산 스님도 「몽산법어(蒙山法語)」에 ‘이렇게 여법(如法)하게 3년을 해서 안 되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왕 불법을 믿을 바에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기왕 참선을 할 바에는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결정코 이 몸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기약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35분28초~55분5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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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부귀를 겸전(兼全)한 그런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부귀를 누리고 권세를 누린다고 한들 이것이 모두가 다 꿈속에서 있었던 일인 것입니다.
원효대사의 그 꿈이라고 하는 소설은 그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갖다가 소설화해서 영화로 꾸민 것이지마는, 그것이 하나의 전설이나 일화에 지내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하고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이해를 한다면은 피아(彼我)의 상(相)이 없어져 버려.
‘내다, 내 것이다, 내가 잘났다’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거기서 떨어져 버리는 거고, 능소심(能所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거여.
 
능소(能所), 능(能)이라 하는 것을 주관이란 말이고, 소(所)라 한 말은 객관이란 말인데,
주관 · 객관, 내가 이렇게 보는 놈이 있고 나에 의해서 보여지는 상대 이것이 바로 주관과 객관이요, 이것이 능소(能所)인데, 능소심이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능소심이 끊어진 것은 바로 아상과 인상이 무너진 것이여.
아상, 인상의 그 능소심이 끊어져야 무념지(無念智)가 나타난다. 생각 없는 지혜, 무념의 지혜가 현전을 헌 것이고. 평등! 평등의 이치가 나타난다 그랬거든.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가 권리가 높다’는 생각, 내가 참 부자라고 하는 생각, 그런 아상과 인상. ‘내가 불법을 더 많이 믿고 참선을 더 많이 했다’고 하는 생각,
무엇이든지 그러헌 아상과 인상이 있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도문(道門)의 첫 단계를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능소심이 끊어져버리고 아상과 인상이 무너져 버릴 때에 도(道)에 첫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되 분별심이 일어나지를 않은 거여. 비록 입을 벌려서 말을 하고 혀를 움직인다 하더라도 분별이 나지를 않아.
대중 법도에 따라서 밥을 먹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예불을 하고 십악참회를 하고, 대중 법도에 따라서 소지(掃地)를 하고 운력(運力)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할 뿐, 일체 분별이 나지를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갖다가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평상 일상생활을 그렇게 하면서도 완전무결한 벙어리가 되고, 완전무결한 귀머거리가 될 때에 깨끗하게 닦은 거울과 같아서 그 거울 앞에는 무엇이고, 빨간 것이 오면은 빨간 것이 나타나고, 파란 것이 오면은 파란 것이 나타나고.
빈 골짜구니에 소리를 지르면 “아!”하면 저 골짜구니도 “아!”하고 메아리를 치고, “어!”허면 “어!” 소리가 메아리쳐 오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래 가지고 치연(熾然)히 비추고 치연히 응하되 응한 바가 없어.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하고  풍고산상격(風鼓山相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이요  열반상여시(涅槃相如是)니라
나무~아미타불~
 
겁화소해저(劫火燒海底)요. 겁화(劫火)가 일어나가지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심지어는 저 바다 밑바닥까지 다 태워버리고,
그리고 바람이 불어가지고 산과 산이 무너져서 서로 맞부딪쳐. 설악산과 오대산이 맞부딪치고 백두산과 한라산이 맞부딪쳐서 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하더라도.
 
진상적멸낙(眞常寂滅樂), 진상의 적멸한 낙은—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해서 그래가지고 그 공안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버리면,
불이 일어나서 온 대천세계를 다 태워버리고 바다밑에까지 다 태워버리고 산과 산이 맞부딪쳐서 가루가 되어서 부서져 없어진다 하더라도 적멸락, 진상(眞常)한 그 적멸락(寂滅樂)은 그 열반(涅槃)의 상(相), 열반상은 바로 여여(如如)할 것이다 그말이여.
 
이 세계가 앞으로 팔백억 년 가면은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리라고 과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그 안에 부서져 버릴는지도 모르고 그 이상 더 가서 부서질란가 그것은 두고 봐야 알겠지마는 언젠가는 이 세계가 부서져 없어지고 말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연수(年數)로 따지면은 몇억 년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썩 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은, 억 년이나 천 년이나 백 년이나 십 년이나 지내놓고 보면 마찬가지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10년을 살다가 죽으나 50년을 살다가 죽으나 백 세를 살다 죽으나, 죽는 마당은 다 똑같은 것이여.
죽은 마당에 이르러서 일생을 돌이켜보면 천자(天子)로 일생을 살았거나 평민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국왕으로 일생을 살았거나 거지로 일생을 살았거나, 죽는 그 마당에서는 그 일생이 바로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꿈에 지내지 못한 그 일생을 그렇게 값어치 없이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 속에 끌려서 얽혀서 그렇게 몸부림치다 죽어갈 것은 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이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생사 없는 경계에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무진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정진을 해야 하느냐? 부처님의 인행(因行) 때의 열반경에 설화를 한마디 말씀을 드렸고.
 
앞으로 한 달 뒤에 5월 첫째 일요법회날은 바로 이 법보재날과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오후 2시에 있는 일요법회를 법보재 법요식과 합해서 오전 11시 반에 법회를 거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착오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56분6초~67분5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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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서릿발(이) 치다 ; ①서릿발이 생기다. ②기세가 매우 매섭고 준엄하다.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것.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정매(精魅 도깨비·정령·요괴 정/도깨비·요괴 매) ; 도깨비(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잡된 귀신의 하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명색(名色) ; ①어떤 부류에 붙여져 불리는 이름. ②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경허 스님,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게송) ‘曾爲蕩子偏憐客 慣愛貪盃惜醉人’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야부 스님 게송 참고.
*(게송) ‘乃何遊子不知返 長在迷途逐風波’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업풍(業風) ; 업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 업의 바람. 업의 세력[業力]을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선하거나 악한 업력에 따라 생사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중생의 현실이 마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날리는 낙엽이나 배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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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 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당처(當處) ; ①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②그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곳에서.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견실하다(堅實-- 굳을·강할 견/열매·실하다 실) ; ①튼튼하고 굳건하다. ②의지가 굳고[堅] 착실(着實)하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고취(苦趣) ; 고통의 세계. 공포와 고통이 극심한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 취(趣)는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발하다(發-- 일어날 발) ; 생기게 하거나 일어나게 하다. 생기거나 일어나다.
*대열반경 법문 ; 『대열반경』(남본南本) (혜엄, 혜관 등 번역) 제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참고(0740c07~). 『열반경(2)』 (이운허 옮김 | 동국역경원) p494~495 참고.
*무량무변(無量無邊) ; 한없이 크고 넓음. 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음.
*나유타(那由他) ; 나유다(那庾多)라고도 한다. 지극히 큰 수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의 수인지는 명확하지 않음. 천만이나 천억에 해당된다.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석 냥[三兩]중 ; 냥(兩)은 무게의 단위. 귀금속이나 한약재 따위의 무게를 잴 때 쓴다. 한 냥은 37.5그램으로 귀금속의 무게를 잴 때는 한 돈의 열 배이고, 한약재의 무게를 잴 때는 한 근의 16분의 1이다.
‘-중(쭝重)‘은 ‘무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게송)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 ; 『대열반경』(남본南本) (혜엄, 혜관 등 번역) 제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참고.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염송(念誦 생각할 염/욀·암송할 송) ; 마음속에 부처님을 염원(念願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간절히 바람)하며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 이름)나 경(經), 진언(眞言) 등을 외는 것.
*살점뱅이 ; 살점배기. 살점(살點 : 큰 고깃덩어리에서 떼에 내거나 떨어져 나온 살조각이나 살덩이).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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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경(恩重經)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돈황본 『부모은중경』과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지금까지 널리 유통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있다. 내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고,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는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열 가지가 있는데, ①아이를 배어서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회탐수호은 懷耽守護恩). ②출산하실 때에 고통을 받으신 은혜(임산수고은 臨産受苦恩). ③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신 은혜(생자망우은 生子忘憂恩).
④쓴 것은 어머니가 삼키고 단 것은 아이 먹이신 은혜(연고토감은 咽苦吐甘恩). ⑤마른 데 아이 누이고 젖은 자리 어머니 누우신 은혜(회건취습은 廻乾就濕恩). ⑥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유포양육은 乳哺養育恩). ⑦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세탁부정은 洗濯不淨恩).
⑧멀리 갈 때 걱정하시는 은혜(원행억념은 遠行憶念恩). ⑨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 하신 은혜(위조악업은 爲造惡業恩). ⑩끝없는 연민으로 사랑해주는 은혜(구경연민은 究意憐愍恩)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한량없는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①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어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骨髓)가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②설사 예리한 칼로 부모님을 위하여 자기의 눈동자를 도려내어 여래(如來)에게 바치기를 백천겁을 하더라도,
③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위해 몸을 심지로 삼아 불을 붙여서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④설령 어떤 사람이 뼈를 부수고 골수를 꺼내며, 또는 백천 개의 칼과 창으로 한번에 몸을 찌르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또한 위와 같은 여러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셨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중생을 보니 어리석고 미련하여 부모님의 큰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공경치 않고 은혜를 저버려 부모님께 어질지 못하고 효성스럽거나 의롭지 못하다. 이같이 부모님의 은덕은 한량없지만 불효한 허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불효한 사람은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져, 감당하고 참기 어려운 무서운 고통을 받아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죽고 또 다시 태어나기를 몇 겁이 지나도록 조금도 쉬지 않고 받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갚는 갚으려면 음력 7월 15일의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부모를 위해서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이 경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재계(齋戒)를 받아지니고, 부모님을 위하여 보시하고, 복을 닦도록 설하셨다.
그리고 부모를 위한다면 이 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잘 받아지니고 읽고 쓰며, 잠깐이라도 보거나 들은 사람은 오역(五逆)의 중한 죄라도 영원히 다 소멸된다고 하셨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일념삼천(一念三千) ; 일념삼천이란, 우리의 일념(一念) 가운데 삼천(三千)의 세계가 갖춰진다는 천태사상의 세계론이다.
[참고] 『마하지관(摩訶止觀)』 (隋天台智者大師說 | 門人灌頂記) 제5권(上)
〇夫一心具十法界 一法界又具十法界百法界 一界具三十種世間 百法界卽具三千種世間 此三千 在一念心 若無心而已 介爾有心卽具三千
 
일심이 십법계를 갖추고, 하나의 법계에는 또한 십법계를 갖추어 백법계가 되며, 백법계 중 하나의 법계가 각각 30종류의 세간(五陰 · 衆生 · 國土 등 3세간에 각각 十如是가 갖추어져 있어 30세간이 된다)을 갖추므로 백법계는 3천종의 세간(世間)을 갖춘다. 이 삼천세간이 한 생각하는 찰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삼천세계를 갖춘다.
 
*일념(一念) ; 범부가 현실의 일상생활에서 일으키는 아주 미세한 미혹으로서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일념은 진여심(眞如心)이 아니라 중생심(衆生心)의 일념이다.
*십법계(十法界) ; 열 가지 법계. 십계(十界)라고도 한다. 세계를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10종으로 분류하여,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하늘[天]의 미혹한 세계[迷界:六途]와 성문 · 연각 · 보살 · 불(佛)의 깨달음의 세계[悟界]로 나눈 것이다.
*십계호구(十界互具)란 십계 속에 또 각각 십계가 갖춰져 있다는 사상이다. 말하자면 인간계 가운데, 지옥계에서 부처님[佛]의 세계까지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내재해 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악한 마음과 동시에 착한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가능성으로서 모든 세계는 그 내면에 모든 다른 세계를 갖추고 있으며, 다만 그 많은 세계 가운데 인간 혹은 다른 한 세계가 현실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삼세간(三世間) ; 세 가지로 분류한 세간. 삼종세간(三種世間)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색과 마음 등 모든 법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이 이루는 세간인 오온세간(五蘊世間, 五陰世間)과 중생이 의탁하고 사는 국토인 국토세간(國土世間), 그리고 중생세간(衆生世間)은 오온으로 이루어진 가명의 중생들이 각각 차별된 특성을 가지는 세간을 가리킨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십여시(十如是) ; 제법의 실상을 상(相) · 성(性) · 체(體) · 역(力) · 작(作) · 인(因) · 연(緣) · 과(果) · 보(報) ·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등 10가지 범주로 나타낸 것. 다르지 않으므로 여(如)라고 하며, 어긋남이 없으므로 시(是)라고 한다. 부처님의 세계에서 지옥까지의 10가지 세계[十法界] 각각에 십여시가 갖춰져 있다.
①여시상(如是相) : 표면에 나타난 모양. ②여시성(如是性) : 변함 없는 내면의 바탕. ③여시체(如是體) : 바탕과 모양을 갖추고 있는 주체. ④여시력(如是力) : 주체 내면에 잠재한 힘. ⑤여시작(如是作) : 내면적 힘이 밖으로 나타난 작용. 조작. ⑥여시인(如是因) : 작용에 필요한 직접적인 제일원인. ⑦여시연(如是緣) : 인(因)을 도와 과(果)를 낳게 하는 간접적인 보조 원인. ⑧여시과(如是果) : 인연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결과. ⑨여시보(如是報) : 과(果)에 의해 일어나는 갚음[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상(相)부터 보(報)까지의 9여시(九如是)가 모두 동등한 실상이어서 궁극[究竟]에는 평등(等)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삼천의 세계가 나오게 된 자리가 마음이 없다면 모르되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순간의 일념에도 반드시 삼천의 세계를 갖추며, 그 삼천의 세계가 그대로 미혹한 세계도 되고 깨달음의 세계도 된다는 것이 곧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六O二 ~ 六七五)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一二三一 ~ 一二九八 또는 一三O八)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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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능소(能所) ; 어떠한 동작이나 행위, 인식이나 사건의 주체적인 측면을 능(能)이라 하고, 객관적인 측면을 소(所)라 한다. 능동(能動)과 피동(被動), 주체와 객체 또는 주인과 손(賓) 같은 말로도 표시된다.
대상을 반연하여 인식하는 주체가 능연(能緣) · 능식(能識)이라면, 반연되고 인식되는 객관은 소연(所緣) · 소식(所識)인 것이다. 또 보는 주체는 능견(能見)이고 보이는 것은 소견(所見)이다.
귀의(歸依)하는 주체인 중생이 능귀(能歸)라면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는 소귀(所歸)이고, 교화하는 주체인 부처님이 능화(能化)라면 교화되는 대상인 중생은 소화(所化)이다. 어떠한 내용을 지시하는 언어, 곧 문장이나 어구가 능전(能詮)이라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소전(所詮)이 된다.
 
이와 같은 대립(對立)이 있게 되면 상대가 끊어진[絶對境] 참 이치[眞理]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대립을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인식하는 대상과 인식하는 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상태, 주객일치(主客一致)와 능소일여(能所一如)의 상태가 바로 무분별지(無分別智)이고, 귀의하는 중생과 귀의의 대상인 부처님이 둘이 아닌 것을 능소일체(能所一體)라 한다.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p491~493.
〇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恒河,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은 일체법이 아(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 여실한 진리. 확실한 앎)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수승하리라.
 
【육조(六祖)】 通達一切法 無能所心者 是名爲忍 此人 所得福德 勝前七寶之福也
일체법을 통달하여 능소심이 없는 이를 이름하여 인(忍)이 된다 하니 이 사람의 얻는 바 복덕은 앞의 칠보를 보시한 복보다 수승한 것이니라.
 
【야부(冶父)】 耳聽如聾 口說如啞
귀로 들어도 귀머거리 같고 입으로 말하여도 벙어리와 같도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知法無我 則彼我相 泯 得成於忍 則能所情 忘 能所情 忘則無念智 現 彼我相 泯則平等理 現 到伊麼時 眼見耳聞 分別不生 開口動舌 分別不生 不生不生 何啻如聾若啞
법(法)이 아(我)가 없음을 알면 곧 피아상(彼我相,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어짐이요, 인(忍)을 얻어 이루면, 곧 능소(能所, 주관과 객관)의 정(情, 생각)을 잊을지니 능소의 정이 없어지면 무념지(無念智, 무념의 지혜)가 나타나고 피아상(彼我相)이 없어지면 평등의 이치가 나타남이라.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요, 입을 열고 혀를 움직여도 분별이 생기지 않음이니,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도 나지 않으면 어찌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와 같을 뿐이리오.
 
直如明鏡照物 空谷應聲 熾然照應 而無照應 所以 道 常應諸根用 而不起用想 劫火燒海底 風鼓山相擊 眞常寂滅樂 涅槃相如是
이는 곧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춤과 같고 빈 골짜기가 소리에 응함과 같아서 치연히 비추고 응하되 비추고 응한다 함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말하되 「항상 모든 근[六根]에 응하여 쓰되 그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라. 겁화(劫火)가 바다밑까지 태우고 바람이 몰아쳐 산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참답고 항상한 적멸의 즐거움’인 열반의 모습은 이와 같다」 (육조단경 ‘參請機緣’) 하시니라.
*무념지(無念智) ; 무념(無念)의 지혜.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德異本) ‘제1 오법전의(悟法傳衣, 법을 깨닫고 가사를 전해 받다)’에서.
善知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선지식들이여, 지혜로 비추어 보면 안팎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아나니 만일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며, 만일 해탈을 얻는다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또는 이것이 무념(無念)이니라.
 
何名無念 若見一切法 心不染着 是爲無念 用卽徧一切處 亦不著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 出六門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어찌하여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일 모든 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무념이니, 작용을 일으킨 즉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六識)으로 하여금 여섯문(六門)을 나오더라도 육진(六塵) 가운데 물들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유롭고 널리 쓰되 걸림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고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若百物 不思 當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
그러나 만일 백가지를 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주 생각을 끊는 이것은 법에 얽매인 것이며 한쪽에 치우친 견해[邊見]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無念)의 법(法)을 깨달은 이는 만법에 걸림없이 통하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느니라.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게송) ‘겁화소해저~’ ; 『육조단경(六祖壇經)』 ‘參請機緣(청법의 기연)’ 게송 참고.
*겁화(劫火) ; 세계가 파괴되는 시기(壞劫)에 들면 세계를 허물어트리는 3가지 큰 천재지변이 생기는데, 화재(火災) 풍재(風災) 수재(水災)가 그것이다. 이때에 화재가 욕계(欲界)를 불태우고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까지 불태운다고 한다.
*진상(眞常) ; 진여상주(眞如常住)라는 뜻으로, 깨달음(열반)의 경지라는 뜻.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여여(如如) ; ①모든 법의 평등한 자성 또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 법이(法爾)와 같은 의미이다. 자성에서 같다[如]는 뜻이지만 온갖 차별된 법이 모두 그렇기 때문에 복수의 뜻으로 ‘여여’라 한다. 법계무차별의 바탕으로서 평등 부동(不動) 부전도(不顚倒) 등의 취지가 수반된다. ②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③진실한 경계.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주요 내용]
 
(게송)금강보검의천한~ / 활구참선을 해야 / (게송)증위탕자편련객~ / 삼요 / 부처님 인행(因行) 때의 열반경 설화 / (게송)여래증열반~ / 위법망구의 정진.
정진을 시작하면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야 / 일념삼천 / 바른 스승의 지도 / 능소(能所) / 도문(道門)의 첫 단계 / (게송)겁화소해저~ / 인생은 한바탕 꿈, 빨리 보리심을 발해야.
 
 
 
[주요 문구]
 
열 가지 공안 또는 백 개, 이백 개 내지 삼백 개, 천이백 공안에 대해서 해석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 소견이라,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얻어지는 해석은 생사심(生死心)만을 더욱 조장할 뿐 깨달음에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여.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소원이 있으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그러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지를 말고, 크고 작은 원이 있으면 보리심을 발해야 돼.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그리고 참선을 열심히 하시면서 원을 세우면 그 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단(大疑團), 이 삼요를 갖추지 못함으로 해서 공부가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는 것이지, 그밖에 딴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해야 하고—종교를 믿건, 안 믿건 심지어는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해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위법망구적으로 열심히만 한다면 백 명이면 백 명 다 백발백중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증명을 하셨습니다.
 
확실히 이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하고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이해를 한다면은 피아(彼我)의 상(相)이 없어져 버려. ‘내다, 내 것이다, 내가 잘났다’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거기서 떨어져 버리는 거고, 능소심(能所心)이 다 떨어져 버리는 거여.
 
그 능소심이 끊어져버리고 아상과 인상이 무너져 버릴 때에 도(道)에 첫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되 분별심이 일어나지를 않은 거여. 비록 입을 벌려서 말을 하고 혀를 움직인다 하더라도 분별이 나지를 않아. 치연(熾然)히 비추고 치연히 응하되 응한 바가 없어.
 
꿈에 지내지 못한 그 일생을 그렇게 값어치 없이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 속에 끌려서 얽혀서 그렇게 몸부림치다 죽어갈 것은 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이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보리심(菩提心)을 발해서 생사 없는 경계에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51~375)2017. 10. 9. 21:3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59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19분.

(1/3)----------------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달이 둥굴매, 아무리 달이 둥글고 더이상 둥글 수 없이 둥글다 하더라도 보름을 넘지를 못해. 보름이 되면, 보름날이 되면은 그 이튿날부터서는 차츰차츰 이그러져 가고.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다. 해가 정 중천(中天)에 오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어. 정오가 되면은 되는 그 찰나부터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달도 보름을 넘지 못해서 기울어져 가고, 해도 정오를 넘자마자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건만 오직 뜰 앞에 잣낭기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홀로 춘하추동 사시(四時)에 푸르른구나.



지금 삼복(三伏) 중에 이 폭염(暴炎)이 최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일기(日氣)만, 날씨만 이렇게 더운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불구덩이 속에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저 이란과 이라크라는 데는 땅을 한 치라도 더 뺏고 뺏기 위해서 그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싸우고, 세계 도처에서는 서로 자기 나라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서로 경제적으로 싸우고 있고,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싸우고 있고,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는 자기네 종교를 보다 더 펴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 가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올림픽에 어떻게 하면 이걸 잘 치르느냐?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다 더 메달을 많이 따느냐?’ 이런 문제로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피땀을 흘리고 있고. 여당과 야당은 자기 당의 세력을 펴기 위해서 당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 무더위 속에 그 속에서 불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헌 싸움은 설사 그 싸움에 이겼다 하더라도, 또 이기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잠정적(暫定的)인 것뿐인 것입니다. 잠시 그러다가 금방 또 기울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이기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용광로처럼, 사방팔방(四方八方) 일체처 일체시에 이렇게 용광로처럼 중생의 욕심의 불이—입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을 부르짖고, 세계의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시커먼 중생(衆生)의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욕심의 불이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욕심의 불이 언제 꺼지느냐?

꺼질 기약이 없습니다. 그 욕심의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는 세계의 평화도, 국가의 민주주의도, 민족의 통일도 행복도 이루어질 가망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복더위가 치성을 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더위에 이기지 못해서 어떻게 허면 이 더위를 좀 피헐 수가 있을까?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이렇게 해서 좀 피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지 근본적으로 그 더위를 모면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면(四面)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고봉 선사도 「진대지(盡大地)가 이렇게 훨훨 타고 있는 이 불구덩이인데 어떻게 허면 이 불구덩이로부터 살아날 수가 있겠느냐?」 이런 실중삼관(室中三關) 속에 이러헌 공안(公案)을 설하시기도 했습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그 태양이 이글이글 이렇게 타므로 해서 이렇게 더운 것쯤은 차라리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또 선풍기도 돌리고 에어컨도 틀고 해서 부채질도 하면서 그럭저럭 허다 보면, 오늘이 바로 입추입니다마는 입추를 지내고 또 말복이 지내면 금방 처서(處暑)가 오고 해서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해서 그까짓 것쯤은 별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타 일어나고 있는 이 중생의 탐진치에 욕심의 불, 이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불인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워가지고, 물론 비는 오지 아니하고 이렇게 혹서(酷暑)가 계속이 되면 세계 어딘가는 더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도 없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더위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말은 아직은 못 들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그것이 뜨거워서 타 죽지는 여간해서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재진출진(在塵出塵)이요 불가잠폐(不可暫廢)다. 티끌 속에 있으면서 티끌에서 뛰어나며. 그 티끌 속에서 티끌에서 뛰어나는 그 도리, 그것을 불가잠폐(不可暫廢)여. 잠깐 동안도 등한(等閒)히 헐 수가 없어. 정지헐 수가 없는 일이다.


‘티끌 속에서, 티끌 속에 있으면서 그 티끌에서 뛰어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전체가 티끌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티끌이고, 우리의 식(識)으로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부가 그것이 다 티끌인 것입니다.

티끌 속에서 도저히 우리는 일 초 동안도, 한 걸음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왼발을 들면 오른발이 땅에 닿아 있고 오른발을 들면 왼발이 땅에 들어있어. 공중으로 뛰어 봤자 1미터도 못 뛰고 다시 도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도 이 생각 저 생각 희로애락 일체 생각이 선 · 악 · 무기(無記)의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서 그 생각이 또 꺼지자마자 또 다른 생각이 또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이것이 모두 티끌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 티끌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그 티끌 속에서 뛰어날 수가 있느냐?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에 설하신, 갑인년이 바로 조실 스님 열반하시던 해인데 지금부터 15년 전입니다. 그해에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이 무엇고?’

잠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탐진치 삼독에 번뇌와 망념이 불타듯이 이렇게 훨훨훨훨 타오르고 있는데, 그 일어나는 그 생각 거기에서, 바로 거기에서 그놈을 뛰어나는 방법이 있다.

그놈을 피해가지고 서늘한 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거기에 즉(卽)해 가지고 거기에서 뛰어나는 도리가 바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여.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번뇌의 대해(大海)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치는 그 번뇌의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일체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우리 중생의 본업(本業)이고, 우리의 재산이고,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번뇌와 망상을 여의고 살 수가 없지만, 바로 그 번뇌와 망상 그놈이 없으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다가 큰 바다가 깊고 넓고 파도가 쳐서 그놈 함부로 들어가면,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면 휘떡 엎어져 갖고 그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도저히 그 바다 속에 있는 그 희귀한 보물을 얻을 수가 없어.


이 번뇌 망상 이놈 때문에, 아!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



‘참선, 참선’ 다 좋은 줄 다 알고 참선(參禪)이야말로 우리 불법 가운데에 최고의 수행 방법이고, 참선만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다 인증을 하지마는, 견성성불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흔치 않은 것은 무엇이냐?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놈을 어떻게 그놈을 타고 넘어서 그 속에 있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를 캘 수가 있느냐?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번뇌 망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일어나는 대로 나둬. 어떻게 바다에 가서 그 파도를 없앨라고 해봤자 그 없어지겠습니까?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아무리 몽둥이로 팬들 그 파도가 없어질 리가 없어. 오히려 더 파도가 일어날지언정 없어질 리는 없어.


일어나는 파도를 고대로 놔두고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탁!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말이여.(처음~20분26초)



(2/3)----------------


화두를 이 생각을 해, ‘이뭣고’—화두를 생각하는 것과 화두를 거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러요.

‘이뭣고’ 자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허듯이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밤낮 그렇게 허라고 권고는 합니다마는 그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거든.


화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뭣고, 이뭣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만 밤낮 생각해봤자, 그것이 백천만 겁을 무량겁을 그놈을 생각허고 있어 봤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이뭣고?’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그 알 수 없는—‘이뭣고?’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하거든.


그 의심을, 간절한 의심을 관조허는 데에서, 거기에서 그 의심이 점점 간절해지고 점점 의심이 더 깊어지고 그 의심이 점점 커져서 더이상 의심이 커질래야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래야 간절할 수가 없이, 그래 가지고 화두를 들면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간절히 일구월심(日久月深)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생각을 내서 들라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때는 화두를 안 들어도 의단이 턱! 앉으나, 서나, 누웠으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이 독로허게 되거든. 좀 잊어버리고 딴 생각을 좀 헐려고 해도 안 되는 것여.

이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경계에 가서 그놈이 툭! 터지게 되는 것이거든.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니,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도 여의지 못할 것이니, 가히 여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니라’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도라고 허는 것은 잠깐도 여읠 수가 없는 것이여. 여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여.

화두도 의심이 잠깐 있다가 없다가 밤낮 그러면은 그것은 참다운 의심이 아니여. 진의(眞疑)가 아니여. 그것은 주작(做作)이여. 억지로 지어서 들 때는 잠시 있고 금방 의심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은 그것은 참의심[眞疑]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참의심[眞疑]이 돈발(頓發)허냐? 신심. 신심(信心)과 분심(憤心). 분심이 밑바탕이 되어야 거기에서 참다운 큰 의심이 거기서 나는 것이여.


그래서 어떻게 허면은 그 신심과 분심이 일어나냐 하면은, 마치 이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또 머리털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을 때처럼.

눈썹에 불이 타고, 불이 머리에 붙어 덩겨 가지고 불이 훨훨훨 타고 있는데, 그런 경우를 만나서 어떤 사람이 그 머리와 눈썹이 타고 있는 것을 놔두고 다른 급한 일을 있다 해 가지고 다른 데에다 생각을 쓸 겨를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 하더라도 곧 죽는다 해도, 지금 곧 저 방에서 죽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머리에 붙은 불버텀 훽 꺼버리고 끄고서 그리 쫓아가지, 자기 불이 훨훨 타는 것을 놔두고 ‘아들 죽을라고 하는 데 먼저 가보자’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있을 수가 없어.


도를 닦는 것이, 우리가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할 때에 있어서 마치 눈썹에 불이 덩기고 머리털에 불이 덩근 것처럼 그것을 끄듯이 화두를 들어라.


언제 어디서라도 화두를 들어! 화두를 들고서,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를 들고서 남편도 생각하고 아들도 생각하고 살림도 생각하고 사업도 생각을 해야 해. 일차적으로 자기 머리털에 불부텀 끄듯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허드라도 화두부터 들고 따져라 이거거든.

이렇게 허지 않고서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자기를 이 생사(生死)의 불구덩이에서 구제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허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해태(懈怠)허지 말 것이니, 중국에 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는 저녁에 잠이 오면은 송곳으로써 무릎을 찌르면서 잠을 깨와 정진을 하고, ‘고인(古人)네는 도를 위해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관절 나는 이 무슨 사람이냐?’

‘과거에 모든 선지식(善知識)과 불보살은 진즉 이 생사 문제를 요달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대관절 어떠한 인간이기에 무엇이길래 오늘날까지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자기를 꾸짖고 고인에 견주어서 용맹심을 내면서 정진을 했어.


이러헌 마음가짐으로 하루 하루를 단속해 나가고 1시간 1시간을 단속해 나간다면 어찌 신심이 돈발하지 아니하며, 어찌 분심이 돈발하지 아니하며, 어찌 대의정(大疑情)이 돈발허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매우 더워서, 여러분은—모두 다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는데—이 더위에 이렇게 일요법회에 이렇게 많이 법회에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구태여 이러헌 경책의 말씀을 누누이 해 드릴 필요도 없이 진정 여러분은 이 법당 안에 더운 속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으로부터 들을 것도 없는 소리를 그래도 열심히 듣고 계십니다. 그러헌 신심이면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부를 지어 가는 데 있어서 의근하복탁사유(意根下卜度思惟), 사량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공안을 따지고 이치를 따지고 이러헌 것을 허지 말어라.

중생심으로 아무리 이리저리 따져 봤자 그래 가지고 따져 가지고 아무리 그럴싸한 어떠헌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소견(所見)이지 참다운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량복탁(思量卜度), 공안을 따져.

자꾸 이 선지식이 “일러라!" 어떤 공안을 내놓고 “한마디 일러라! 당장 앉은자리에서 해결을 해야 해. 바로 일러야지, 이르기 전에는 잠도 자지 말어라” 이렇게 막 다그치니까, ‘이걸 한번 이것을 내가 한마디 이르고야 말겠다!’해 가지고 밤새 잠을 안 자면서 사량분별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따져보고.


그렇게 사량분별로 따져 갖고 되는 것이 아니야! 절대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알아질 수는 있을런가 몰라도, 알아진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 소견이지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이 생사 문제가 급허고 이 공안 타파가 급하다 하드라도 급할수록에 바른 방법으로 참구(參究)를 해나가야지, 중생의 사량분별 사량복탁으로써 이것을 따져 가지고 무슨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따져 가지고서는 공부가 조끔도 나아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또 참다운 의정도 거기서는 나지도 아니한 것이여. 참다운 의정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깨달음은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유복탁(思惟卜度)하는 이 네 글자는 바른 신심을 막아버리고, 바른 수행을 막아버리고 겸해서 도(道)의 눈[眼]까지도 가리워 버리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도학자(道學者)는 사량복탁 하는,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지는 것을 부모를 죽인 웬수처럼 알아 여겨야 헌다 그거거든. 사량복탁을 아주 부모 죽이는 웬수처럼 생각하고 잠깐 동안도 사량복탁을 허지를 말어라. 탁!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 ‘이뭣고?’ ‘이뭣고?’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이요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여과객(光陰如過客)이요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록(柳綠)은 앵전신(鶯傳信)이요. 푸른 버들은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요. 꾀꼬리가 전하는 봄의 소식이요.

화홍(花紅)은 연소원(燕訴寃)이다. 꽃이 붉은 것은, 벌겋게 핀 꽃은 제비가 원한을 호소하는 것이다.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 무엇이며, 제비가 호소하는 그 원한이 무엇입니까?


광음(光陰)은 여과객(如過客)이여. 그 세월은 과객(過客)처럼 그렇게 잠깐 왔다가 스쳐서 지나가 버리는 손과 같어.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다. 나도 또한 잠깐 훨훨 타다가 사라져 버리는 하나의 혼백(魂魄)에 지내지 못한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하나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전부가 다 유위법(有爲法)입니다.

봄이 아무리 버들이 푸르르고 아름다운 꽃이 울긋불긋 피었다 하더라도 잠시인 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려 봤댔자 잠깐인 것입니다.

부귀영화. 그 참,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불과 같아서—불이 없어서는 안 되지마는 그 불을 잘못 다루면 그 불에 집도 타고, 재산도 타고, 내 몸뚱이도 타고 생명도 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부귀영화. 참, 사람마다 부귀영화를 싫어헌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다 부귀영화에 탐착(貪着)을 하고 부귀영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과연 자기를 참다웁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 허면은 그러기커녕은 그놈 좀 어떻게 남보다 더 많이 긁어 담을라다가 그 쇠고랑을 차게 되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고 내생에도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산중에, 저 깊은 산중에 가면은 곰이 살고 있는데, 그 곰이란 놈이 이렇게 슬슬슬 땅도 뒤지고 바위도 뒤지고 허다 보면 바위 속에서 뭐 이상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뭐 토끼같은 거, 여우같은 거, 그런 것이 그 바위 굴속에 이렇게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인자 살고 있는데, 그 바위와 바위 사이로 공기통이 있어서 그 공기통으로 그놈들이 숨을 쉬고 있는데, 곰이 그리 지나가다가 돌 틈바구니에서 그 토끼나 여우나 모다 그러헌 짐승의 노랑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그래서 씩씩씩씩 냄새를 맡다가 그 돌 틈으로 그 곰이란 놈이 손을 집어넣어 가지고 이렇게 꽉! 잡았다 그말이여. 잡었는데, 암만 뺄라고 해도 그놈이 돌 틈바구니에 콱 찡겨 가지고 그놈이 빠지들 않는다 그말이여.

한 시간 두 시간을 갖다가 주먹에서 피가 나오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그놈을 뺄라고 해도 팔이 빠질라고 할지언정 주먹이 안 나온다 그말이여.


쥐었던 그놈이 토끼 대가리가 되았던, 여우 배떼기가 되았건, 그놈을 놔 버리면 빠질 텐데, 잡은 놈을 죽어도 안 놓을라다가 결국은 그놈이 콱! 찡겨 가지고 결국은 그놈이 포수한테 앵기면은 총에 맞아서 죽을 것이요, 나무꾼한테 앵겨 놓으면 몽둥이에 대가리가 깨져서 죽을 것이고, 혹 그런 사람을 못 만나면 그놈이 굶어서 죽을 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놈의 곰이란 놈은 어떻게 미련하던지 아! 그놈을 놔 버리면 손이 빠질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만 놔버리면 그냥 수르르르~ 하나도 안 아프게 손이 빠질 텐데, 아! 그 모처럼 만난 그놈을 잡아 갖고 놓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끝끝내 그놈을 놓을 줄을 모르고 억지로 손을 뺄라다가 팔목이 빠져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놈이 죽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20분27초~40분56초)



(3/3)----------------


중생의 욕심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사욕(私慾), 사리사욕(私利私慾) 그놈만 놔 버리면 온갖 재앙이 다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사리사욕, 그 탐진치(貪瞋癡), 그 욕심 그것만 놔 버리면 세계 평화도 거기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도 정말 뭐 얼마 안 가서 금방 민주주의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가 다 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일어난 그 사리사욕만 놔 버리면 민주주의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남북 통일도 그것만 양쪽에서 다 놔 버리면 통일이 왜 그것이 어려울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깨달음. 도저히 암만 참선(參禪)을 하고 10년, 20년 참선을 그렇게 애를 쓰고 해도 신심(信心)이 안 나고, 분심(憤心)이 안 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지 못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한다 하지만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중생에 탐진치 사욕만 놔 버리면 어찌 거기에서 신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의단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자꾸 버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버리고, 일체처 일체시에 자꾸 버리고 또  버리는 가운데에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다 거기서 떨어져 나가고, 거기에서 번뇌와 망상도 떨어져 나가고, 일체 장애도 거기에서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 선정(禪定) 그런 것이 다 참되게 닦을 수가 있고, 마침내는 지혜(智慧)의 바라밀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푸른 버들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이뭣고?’를 들라고 허는 법문(法門)으로 듣고, 붉은 꽃 노란 꽃을 봐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어서 속히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허는 불보살(佛菩薩)의 법문으로 듣고,

그러면서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니라

나무~아미타불~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가히 우습다, 세간(世間)의 애정이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로구나. 얼음이 녹고 기와가 깨지는 때로구나.

세간의 부모 자식 간의 애정, 부부간의 애정, 모든 그 얽히고설킨 끊을라야 끊을 수 없는 그 애정이 잠깐 사이에 얼음이 녹고 기왓장이 깨지는 거와 같다.


얼음이 딱딱하게 얼어져 갖고 있을 동안에는 유리와 같고, 참 그렇지만 금방 영하 0도를 벗어나면은 슬슬슬슬 녹아 버리고 100도가 되면은 그냥 증기로 다 날아가 버린다 그말이여.

기왓장이 그놈이 성할 때에는 하늘에 내리는 비도 막고 그렇지마는 그것이 불이 난다든지 깨져서 바삭바삭 깨져 버리면 그 뭐 기왓장이라고 헐 것이 무엇이냐 그말이여.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은혜. 은혜스럽고 은혜가 많으면은, 참 그 은혜를 많이 입고 은혜를 입으면은 참 좋다고 모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래지만, 은혜가 지중(至重)하면 그것이 변해 가지고 원한이 극하게 사무치게 된다.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다. 사람은 슬픈 것보단 기쁜 일을 당하면은 모두가 다 당하고 무엇이든지 기쁘기를 바래고 기쁜 일이 끝없이 자기 주변에 일어나기를 바래지마는 그 기쁜 일이 극하면 도리어 슬픈 일로 변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식을 위해서 집도 사 주고, 차도 사 주고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면 부모는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한때는 그 자식이 그 부모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면은 부모가 고맙다고 좋다고 하지만,

자기의 욕심이 차지를 않고 ‘행여나 형을 더 많이 준가? 동생을 더 많이 준가? 누나를 더 많이 준가?’해 가지고 욕심이 치솟으면 자기 평생 먹을 만큼 받아 놓고도 욕심이 더 끝이 없어서 ‘더 많이 주지 아니헌가?’해 가지고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죽이기도 하고 재판질을 하고 그러헌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가난해서 별로 잘 맥이지도 못하고 잘 입히지도 못하고 또 많은 재산을 가 집 한 채도 사 주지도 못하고, 차라리 그런 가난한 집에서는 형제간에 우애하고 또 부모를 위해서 효도를 하고 그러헌 사람이 더러더러 있지마는 돈 많은 사람으로서 효도허는 집안은 내가 별로 보지를 못해.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 돈 많이 벌어서 많이 물려줄라고 행여나 그런 짓 하지 말고, 어쨌든지 어지간히 있으면은 돈 많이 벌라 하지 말고 참선을 많이 하고.


있는 재산 될 수 있으면은 어쨌든지 유용하게 다 버려야 돼. 보시를 해서, 절에도 보시하고 또 다른 이웃에도 보시를 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도 보시해서 자꾸 버려버려.

자식한테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켜 주는 것으로써 그것을 유산으로 그것을 물려주면, 지가 노력을 해서 저 먹을 것을 지가 벌게 해야지, 돈 많이 주면 자식은 타락하고 그 자식의 참다운 사는 길을 배울 겨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생명을 바치고 인생을 바칠 곳은 내 생명,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어.

‘이뭣고?’ 이 하나로써 더위도 이겨나가고 슬픔도 이겨나가고 고통도 이겨나가는 오직 이 ‘이뭣고?’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여.


더워도 자꾸 선풍기 틀어 놓고 시원한 데만 찾지 말고, 바다로 강으로 헤매지 말고 턱! 가부좌(跏趺坐)를 하고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를 해보시라 그말이여.

등어리에 설사 더워서 땀이 줄줄, 저는 흐르라고 놔두고서 ‘이뭣고?’를 간절히 들면 얼마 안 가서 정말 더운 줄을 모릅니다. 더운 줄을 몰라.


더움 속에서 더운 줄을 망각해야 더위를 피하는 것이지, 덥다고 부지런히 부채질을 허면은 그냥 더 가슴은 답답허고 그냥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아주 그냥 미칠 것 같이 못 견딘다 그 말이야. 섰다 앉았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그냥 안절부절할수록 무장 더 더운 거여.


‘지가 더우면 설마 내가 타 죽기 허랴’ 터억 버티고 앉어서 ‘이뭣고?’를 허면서 턱 한번 해보시라 그말이여. 더위는 거기에서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턱 하고 나서 찬물로 등목을 한번 허고, 샤워라도 한번 하고서 그때 가서 부채질을 한번 설설 해보란 말이여. 이것이 참 멋스럽게 피서(避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복(伏)이 한 일주일 나면 복이 끝나는데, 그동안에 강이나 바다로 가고 싶으면 물에 풍덩 들어갔다 나왔다 허지 말고, 그 뜨거운 모래 속으로 피서를 한번 해 보셔.

머리만 내놓고 모래를 6센티 내지 9센티 가량, 가슴은 너무 많이 덮으면 숨이 가쁘니까 얇게 덮고, 팔다리는 두툼허니 덮고서 얼굴에 우산이나 양산, 수건으로 얼굴만 딱 덮고서, 그 더웁지마는 터억 더운 것을 즐겨 보시라 그말이여.


‘지가 더우면 얼마나 더울까?’하고, ‘그 더워 허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그놈을 탁 관조하면서 있으면 그렇게 따겁든 것이 언제 시원한 것으로 변허는 거여.

몸은 득신득신득신 혈관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그 더운 줄 아는 놈을 그놈을 관조를 허면 하나도 더웁지를 안 해. 시원허다 그말이여. 그 뜨거운 국물을 여름에 훨훨 마시면서도 “아, 시원하다” 그러잖아요?


그렇게 화끈화끈화끈 더웁지마는,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면 그 더운 것이 시원한 것으로 변헌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신경통도 낮고, 관절염도 낫고, 배안에 모든 숙변도 빠지고, 간장 나쁜 것도 낫고, 위장병도 낫고, 온갖 병이 그 더위 속에서 ‘이뭣고?’로써 피서를 허면서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는 속에서,

모래, 그 뜨거운 모래가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그 몸안에 독소를—태양의 그 더위는 땀구멍을 가짓껏 열어주고 또 모래는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몸안에 독소를 흡입을 해내는 거여. 쫙 빨아내. 그래가지고 몸에 독소가 빠지니까 몸이 가벼워지고 병이 다 녹아지는 거여.


이렇게 그 '모래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또 이것이 좋다하고 가서 너무 무리하게 해 가지고 병이 나선 안됩니다. 한 두어 시간—오전에 한 두어 시간, 오후에 한 1시간 내지 2시간, 자기 체질과 연령에 따라서 적당허니 허면 참 좋은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더위를 ‘이뭣고?’로써 잘 피서를 허시면 금방 또 찬바람이 올 것입니다.


이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은 거기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이 인생의 고해(苦海)를 고해 속에 바로 파고 들어가서 그 고해에 즉(卽)해서 그 고해를 해탈(解脫)하는, 생사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그 생활의 지혜를 여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눈을 바로 지금 오늘 이 산승(山僧)의 말 속에서 터득을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는 바로 이 적광토(寂光土)로 변조를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이 더위 속에서 바로 서늘한 이 청량으로 변조하는 이 수단을 우리는 터득을 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40분57초~59분1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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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중천(中天 속·한가운데 중/하늘 천) ; 하늘의 한가운데.

*잣낭기 ; 잣나무. '낭기'는 '나무'의 사투리.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폭염(暴炎 사나울·세찰 폭/불꽃·더울 염) ; 폭서(暴暑 매우 심한 더위). 불볕더위.

*일기(日氣) ; 날씨.

*주야불철(晝夜不撤 낮 주/밤 야/아닐 불/거둘·철수할·그만둘 철) ; 불철주야(不撤晝夜). ①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晝夜]을 가리지[撤] 않음[不]. ②밤낮없이.

*잠정적(暫定的 잠깐·잠시 잠/정할·머무를 정/대상·것 적) ; ①우선 임시[暫]로 정(定)한 것[的]. ②잠시 동안 그런 것.

*사방팔방(四方八方 넉 사/모·방위·방향 방/여덟 팔) ; ①사방(四方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과 팔방(八方 동, 서, 남, 북, 동북, 동남, 서북, 서남). ②모든 방향과 모든 방면.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부처님께서도 「사면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불타고 있고, 물질(色)과 안식(眼識)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뜻(意)도 불타고 있고, 법(法)과 의식(意識)과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사면(四面) ; 전후좌후의 모든 방면(둘레).

*실중삼관(室中三關) ; '방장실의 3가지 관문' 고봉 스님이 학인을 제접(提接)할 때 사용하던 관문(공안)이라고 하며, 또는 깨달은 뒤 자신의 보림(保任)이라고도 한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175~176.

室中三關(其二九)

杲日  當空에  無所不照어늘  因甚被片雲  遮却고.  人人이  有箇影子하야 寸步不離어늘 因甚踏不着고.  盡大地  是箇火坑이니  得何三昧하야사  不被燒却고.


돋는 해가 허공에 당도함에 비추지 않는 곳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조각구름에 가리움이 되었는가?

사람마다 하나의 그림자가 있어서 몸에서 조금도 떨어지지를 않는데, 무엇 때문에 밟혀지지 않는가?

온 대지가 하나의 불구덩이이니, 무슨 삼매를 얻어야 불에 타지 않을까?

*실중(室中) ; 실중(室中)은 실내(室內)의 뜻인데, 일반적으로 종사(宗師)가 머무는 곳으로 조실(祖室), 방장실(方丈室)을 가리킨다. 선종에서 전법(傳法)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면밀하고 친절하게 지도하는 장소를 말한다. 또는 스승이 제자에게 구전(口傳)한 가르침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삼관(三關) ; 3가지 관문. 종사가 세 가지 질문(공안)을 설정하여 학인의 수행 정도를 시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을 제시하는 스님에 따라서 고봉삼관(高峰三關), 황룡삼관(黃龍三關), 도솔삼관(兜率三關), 자운삼관(慈雲三關) 등이 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처서(處暑) ;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월 23일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혹서(酷暑 독할 혹/더울·더위 서) ; 몹시 심한 더위.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식(識) ; 오온(五蘊) 중 하나.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세 번째 지분으로 지각(知覺), 요별(了別)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알게 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6식설은 그 발생 근거에 따라 6가지 식(識)을 열거 한다.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 등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의 6가지 외부적인 대상인 6경(六境)을 대할 때 생겨나는 6가지 인식작용이 6식(六識)이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眼識)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耳識)이 있으며,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鼻識)이,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舌識)이, 몸이 감촉을 대할 때 느끼는 신식(身識)이 있으며, 의(意)가 법(法)을 대할 때 '안다'는 의식(意識)이 있다.

이와 같이, 6근 · 6경 · 6식은 서로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意識)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전오근(前五根), 곧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전5식(前五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은 일종의 감각지각이고, 제6의식(意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지각과 언어를 매개로 한 인식 등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8식설은 앞의 6식설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것이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서, 범부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번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을 제거하면 7식이 맑아져서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된다. 장식이란 곧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생사 속에 있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상실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제8식에 대한 견해는 불교에 여러 학설이 있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즉해(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

[참고]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제8 불도품(佛道品)

是故當知  一切煩惱爲如來種  譬如  不下巨海  不能得無價寶珠  如是不入煩惱大海  則不能得一切智寶

이와 같이 모든 번뇌야말로 여래가 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넓은 바다 밑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무가(無價)의 보주(寶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곧 일체지의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현장玄奘 역) 제8 보리분품(菩提分品)

又善男子  譬如有人  不入大海  終不能得  吠琉璃等無價珍寶  不入生死煩惱大海  終不能發無價珍寶一切智心  是故當知  一切生死煩惱種性  是如來種性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폐유리 등의 무가(無價)의 진보(珍寶)를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의 번뇌라는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끝내 무가의 진보인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생사 번뇌의 종성(種性)이 여래의 종성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무진장(無盡藏 없을 무/다할 진/감출·곳집 장) ; ①다함이 없는[無盡] 창고[藏]라는 뜻으로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 불교에서는 덕(德)이 광대하여 쓰고 또 써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②배우고 배워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 ③무한량으로 많은 재물.

*무가보주(無價寶珠) ;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보배구슬이라는 뜻. 불성(佛性), 반야(般若), 일승(一乘) 등과 같은 불교의 요체(要諦)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무가보(無價寶) · 무가지보주(無價之寶珠) · 무가대보(無價大寶) 등이라고도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정명경(淨名經) ; 『유마경(維摩經)』. 3권. 405년(후진 홍치 8년)에 구마라습 번역. 정식 명칭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또는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이라고도 한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공(空)의 사상에 기초한 윤회와 열반, 번뇌와 보리, 예토(穢土)와 정토(淨土) 등의 구별을 떠나, 일상 생활 속에서 해탈의 경지를 체득하여야 함을 중인도 폐사리(吠舍離)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한 유마힐을 중심으로 설한 경.

유마힐(維摩詰)은 범어로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 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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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니,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도 여의지 못할 것이니, 가히 여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니라’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74~175.

道不可須臾離(도불가수유리)니  可離(가리)면  非道也(비도야)요  工夫(공부)를  不可須臾間斷(불가수유간단)이니  可間斷(가간단)이면  非工夫也(비공부야)니라  眞正叅究人(진정참구인)은  如火燒眉毛上(여화소미모상)하며  又如救頭然(우여구두연)하나니  何暇(하가)에  爲他事動念耶(위타사동념야)리요

古德(고덕)이  云(운)호대  如一人(여일인)이  與萬人敵(여만인적)하야  覿面(적면)에  那容眨眼看(나용잡안간)이리요하니  此語(차어)가  做工夫(주공부)에  最要(최요)라  不可不知(불가부지)니라


도는 잠시도 여의지 못할지니, 가히 여의면 도가 아니요。 공부를 잠시라도 끊이지 못할지니, 끊이면 공부가 아니니라。 진정 참구하는 사람은 마치 불이 눈썹을 태우는 듯하며, 또한 머리에 붙은 불끄듯 할지니, 어느 겨를에 딴 일을 위해서 마음을 움직이리오?

옛 어른이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만 사람으로 더불어 싸운다면 마주 보고 어찌 눈인들 깜짝임을 용납하리요」하니, 이 말이 공부 지어 가는 데 가장 요긴한지라 몰라서는 안되느니라.

*진의(眞疑) ; 화두에 의심이 끊어지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에서.

〇話頭上(화두상)에  有疑不斷(유의부단)하면  是名眞疑(시명진의)니  若疑一上少時(약의일상소시)하고  又無疑者(우무의자)이면  非眞心發疑(비진심발의)라  屬做作(속주작)하니라  是故(시고)로  昏沈掉舉(혼침도거)가  皆入作得(개입작득)하리라

화두에 의심이 끊이지 아니하면 이 이름이 참의심[眞疑]이니, 만약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주작(做作)에 속하느니라。이런 연고로 혼침과 잡념이 다 마음에 들게 되느니라.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버텀 ; ‘부터’의 사투리.

*덩그다 ; '불이 붙다'의 사투리.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자명초원(慈明楚圓) : (九八七 – 一0四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공부를 지어 가는 데 있어서 의근하복탁사유(意根下卜度思惟), 사량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공안을 따지고 이치를 따지고 이러헌 것을 허지 말어라’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77.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得向意根下卜度思惟(부득향의근하복탁사유)니  使工夫(사공부)로  不得成片(부득성편)하며  不能發得起疑情(불능발득기의정)이니  思惟卜度四字(사유복탁사자)는  障正信(장정신)하며  障正行(장정행)하며  兼障道眼(겸장도안)이니  學者(학자)가  於彼(어피)에  如生寃家相似(여생원가상사)하야사  乃可耳(내가이)니라


공부를 짓되 의근(意根)을 향하야 헤아리고 따지지 말 것이니, 공부로 하여금 한 조각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며 의정(疑情)이 일어날 수 없게 하나니, 사유복탁(思惟卜度) 네 자는 바른 믿음을 막고 바른 행을 막는 것이며 겸하야 도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이것을 마치 원수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게송) ‘유록앵전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석춘(惜春)’ 참고. 鶯, 鷪, 鸎, 䴍은 모두 같은 글자(꽤꼬리 앵).

*과객(過客 지날·들를·떠날 과/손님·나그네 객) ; 지나가는 나그네.

* ; 손님. 객(客). ①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②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 남의 집이나 여관 따위에 묵고 있는 사람. ③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노랑 냄새 ; 노린내(노린 냄새 :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마음에 거슬리는, 역逆한 기름내).

*앵기다 ; 잡히다. 잡다(붙들어 손에 넣다. 짐승을 죽이다)의 피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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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아애(我愛) ; 아(我)에 대한 깊은 애착심. 아탐(我貪).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아(我)에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네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중 나머지 세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게송) ‘가소세간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태희사미귀령(太熙沙彌歸寧)’ 참고.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등목 ; 목물(바닥에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주요 내용]


(게송)월원불유망~ / 중생의 탐진치 욕심의 무서운 불을 끄는 것이 참선이다 / 재진출진(在塵出塵) 불가잠폐(不可暫廢) /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야 거기에서 지혜 보물을 얻는다.

‘이뭣고?’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 머리털에 붙은 불 끄듯이 화두를 들어라 / 사량분별로 따져 갖고 알아지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게송)유록앵전신~ / 탐진치, 사리사욕을 놔 버려라 / (게송)가소세간애~ / 내 인생 바칠 곳은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다 /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을 터득해야.



[주요 문구]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번뇌 망상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


도학자(道學者)는 사량복탁 하는,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지는 것을 부모를 죽인 웬수처럼 알아 여겨야 헌다. 사량복탁을 아주 부모 죽이는 웬수처럼 생각하고 잠깐 동안도 사량복탁을 허지를 말어라.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


사욕(私慾), 사리사욕(私利私慾) 그놈만 놔 버리면 온갖 재앙이 다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사리사욕, 그 탐진치(貪瞋癡), 그 욕심 그것만 놔 버리면 세계 평화도 거기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도 정말 뭐 얼마 안 가서 금방 민주주의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가 다 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일어난 그 사리사욕만 놔 버리면 민주주의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남북 통일도 그것만 양쪽에서 다 놔 버리면 통일이 왜 그것이 어려울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은 거기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이 인생의 고해(苦海)를 고해 속에 바로 파고 들어가서 그 고해에 즉(卽)해서 그 고해를 해탈(解脫)하는, 생사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그 생활의 지혜를 여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눈을 바로 지금 오늘 이 산승(山僧)의 말 속에서 터득을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는 바로 이 적광토(寂光土)로 변조를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이 더위 속에서 바로 서늘한 이 청량으로 변조하는 이 수단을 우리는 터득을 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51~375)2017. 1. 11. 16:30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353)—88 신수기도 회향(88.02.26) (53)


(1/3) 약 22분. (2/3) 약 20분. (3/3) 약 12분.


(1/3)----------------


오는 무진년 정월 초아흐레신수기도 회향(廻向법요식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순치황제(順治皇帝출가 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순치황제가 19 동안 중국의 천자(天子노릇을 하다가 무상(無常) 느끼고 중국 천하와 천자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

마치 우리 부처님께서 가비라(迦毗羅왕국의 태자(太子) 고귀한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정든 부모와 가정과 청춘을 버리고 출가한 인연 모두가 일맥상통(一脈相通) 점이 있는 것입니다.


출가(出家)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입니다. ‘크게 버리는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가지 뜻이 있고재가(在家)에도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 청신사(清信士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삼독(三毒)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러한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에 완전히 오욕락(五欲樂) 버리고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에 명리나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출가 사문은 바로 그러한 분인 것입니다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한국일본에 많이—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해서 그렇지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계실  아주 부자 집안이 있었는데아들을 하나 밖에는 기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주 신심이 돈독해서 항상 부처님께 나아가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너무 부처님 법문에 감동을 받아가지고 ‘내가 세속에 이렇게 묻혀서 있을 것이 아니라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정말 대도(大道)를 성취하리라’ 이런 마음을 먹고서아주 마음의 결정을 하고 부모님께 출가할 의사(意思) 표시를 했습니다.


 부모는 “우리 늙은이 앞에 자식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는데네가 출가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것이냐도저히  된다” 이렇게 허락을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도저히 출가할 뜻을 굽힐 수가 없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래가지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돈을 갖다가 부모님께 드리면서 “부모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나 내가 출가해서 도업(道業) 성취하고자 하는  깊고도  뜻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동안   재산을 옴막 드릴테니 이것을 마음껏 잡숫고 싶은 대로 잡숫고입고 싶은 대로 입고 그리고서 남은 돈은 보시를 하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고서 적당한 날이 돌아오면은 출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워낙 간탐심(慳貪心) 많아가지고  많은 재산을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한푼도 쓰지 않고 땅속 깊이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었습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남에게 보시도 못하고서 땅속에다 묻어 놓은 행여나 누가 그걸 손댈까봐 밤낮으로 그걸 지키면서 벌벌 벌벌 떨었습니다그러다가 결국은  부모가 돌아갔습니다.


 한푼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장례를  지내고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되기는 안되었지마는 드디어 내가 출가할  있는 기회는 왔구나’ 이리하고서 가산을 버려 버리고서,

부처님께 나아가서 출가를 해가지고 어떻게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밥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행정진(加行精進용맹정진(勇猛精進)  가지고 대도를 성취를 했습니다아라한과(阿羅漢果) 증득(證得) 했어.


아라한과를 증득을 해가지고서 갠지스 (Ganges)—항하(恒河가에다가 암자(庵子) 짓고서 거기서 보림(保任) 하고 있는데밤이 으스름해지면은 어디서  이상한 슬피 우는  귀신 소리가 .


‘그  이상하다?’  소리  데를 살살 걸어가서 보니까, 머리를 갖다가 산발(散髮)을 하고서 그리고서 얼굴은 어떻게 험상궂게 생긴 데다가 손가락 발가락은 앙상해가지고 마치 불에다가 끄슬러 놓은  같이 그렇게 생겨 가지고는  통곡을 하면서 운다 그말이여.


대관절 네가 누구길래  공부하는  가까이  가지고 그렇게 밤만 되면 통곡을 하는고?” 물어보니까,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자(聖者) 어미입니다내가어미가 죽어가지고 이러한 아귀(餓鬼) 꼴이 되었습니다성자가 되셨으니 자비로써 이 어미를 갖다가 제도를 해주시오하고 간곡히 부탁을 했어.


 말을 듣고  성자는 너무  기가 막혀.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으니 생사에 초월을 하고 무슨 거기에 인간의 얽매임이 있으리오마는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세상에 저러한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어.


 아귀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아귀가 되어가지고 목이 말라서 물을 먹기 위해서 강변으로 쫓아가면은 강은 순식간에 말라버리고배가 고파서   데에 과일 밭이 보여서 과일을 실컷 먹기 위해서 쫓아가면 순식간에 과일 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려. 이렇게 해서 여태까지 내가   모금  먹고과일  개를 먹지 못하고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한데”


몸뚱이는 장구통만큼이렇게  절구통 같이 배는 크고목구멍은 실낱  모가지여그래서 아귀의 모습은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모가지라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데.


 성자가 말하기를 “어머니께 전생에 보시를 하라고 그렇게 말씀을 내가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그것을 탐심이 과해 가지고 쓰지도 못하고남에게 보시도  하고 그렇게 그러시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셨구려” 그러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귀가 부탁하기를 “내가 그때  많은 재산을 아까워서  쓰고 울타리 밑에다가 묻어놨는데 그것을 파다가 스님네와 부처님그리고 여러 대중에게 고루고루 베풀고가난한 사람한테도 베풀고 해서 보시를 좀 해주시고, 그리고 부처님께 설법을  해서  이름을  불러주면서 나를  천도(薦度)  달라 부탁을 했어.


그래서  성자는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와 가지고 울타리 밑에를 그럴만한 데를 여기저기 파보니까, 과연  항아리 속에 엄청난 금은보화(金銀寶貨)가 들어있어서 그걸 갖다가 널리 보시를 하고  대시회(大施會) 열어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공양을 하셨는데 아귀가  공양 석상(席上 갓에 가서 벌벌벌벌 떨면서 울면서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거기 서 있었는데,

 공양이  끝나자  아귀가 엎드려서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하면서 “석가 세존(世尊)이시여 불쌍한  많은 중생을 위해서 참회(懺悔) 받으시고 설법을 해서 제도해 주시옵소서” 아주 간곡히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말을 듣고  아드님이신 성자도  같이 엎드려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시여원컨대  조그마한 공양하는 공덕으로 참회를 받으시고  불쌍한 아귀 중생에게 빨리 해탈을 얻도록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심(慈悲心) 일으키셔서 방편력(方便力)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거기에 운집(雲集) 모든 대중과  우주 법계에 가득한 유주무주(有主無住) 고혼(孤魂)들까지라도 모두 해탈을 하고 아귀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워낙 죄를 많이 짓고 간탐이 심해서 해탈도는 증득을 못하고 겨우 아귀의 몸을 간신히 벗었던 것입니다.


 후에  성자가 참선을 하면서 선정(禪定중에 ‘지금쯤은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 태어나셨나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하고 가만히 작관(作觀) 해보니까 아직도 귀신의 몸을 벗지를 못하고서고통은 받지는 않는데 아주 재산이 많은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살아있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지마는 귀신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수는 없으나 하여간 경전에 아주 부자의 귀신이 되어가지고  재산을  지키고 있다 그말이여.


사람이 탐심이 많으면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자기의 재산을자기가 모아놓고 평생에 쓰지 못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재산을 항상 지키면서  애착 때문에 떠나지를 못하고 있는 수도 있고.

 구렁이 같은 것이 되어가지고  집안에 용마루 밑에나어디 창고  사이나 모다 그런데 가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여러  동안을 그것을 지키면서 있는 것입니다그걸 ''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성자가 거기를  가지고서 “옛날에 어머니가 그렇게 간탐심이 심해가지고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것을 벌써 잊었습니까? 부처님의  공덕으로 그렇게 고통을 잠시 벗었으면은 아주 벗어 버릴 일이지어찌 다시 이런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지금도 간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눈물로써 호소를 했으나 “나는  재산 없으면 못살어내가  재산 지키는 재미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버린다 아주 그냥 잡아뗀다 그말이여.


그래도 아주 여러 시간을 두고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하고 해가지고 간신히 무엇을 얻어냈냐 하면백목(白木 필을 겨우 얻어냈습니다.


얻어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지고 스님네께 보시 공양을 하리라하고 아직은  어떤 스님한테 임시로 그것을 맡겨 놨는데얼마 있다가 그걸 찾아다가 팔려고 가니까 그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이상하다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 어머니가 다시 훔쳐갔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어머니한테 가서 보니까 과연  백목  필이  어머니한테 가서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설득을 해가지고  찾아다가 다시 맡겨놨는데  찾아가고 번을 그렇게 찾아왔다가  도둑을 맞고찾아왔다가 도둑을 맞고그러니까  맡았던 스님이 진심(瞋心) 내는데 ‘ 앞으로 이거  맡겠다.


그래서   없이 그걸 팔아서 대중에게 나눠드릴  아니라, 아주  자리에서 조금씩 잘라서 나눠드릴  밖에 없다 해가지고  자리에서 그것을 끊어 가지고 스님네한테 전부  나눠드려가지고  자리에서 모두 옷을 해서 그래가지고 입었습니다. 그런데  옷이  자고 나면 없어져 버려.


그래서 그런 탐심이라 하는 것은중생의 탐심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탐심 때문에  무서운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도 정을  떼시고, 또 재물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간신히 보시한 것이 그것이  아까워 가지고  번을 훔쳐오더니 번째는 옷을 만들어서 입고 있는 것도 잠깐 벗어 놓은 차에 그것도  훔쳐 가버린다 말이여.(처음~2131)



(2/3)-----------------


부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대중이 그렇게 옷을 도둑맞았다고 하는 그러한 모다 사실을 부처님께서 들으시고서 대중하게 설법을 하시기를,

탐욕의 불이라고 하는 것은 간탐하는 욕심의 불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길이길이 악도(惡途) 떨어져서 무량겁(無量劫)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탐욕의 무서운 독이로구나! 너희들은 어서 속히 중생들의  탐욕의 때를 빨리 벗어 버릴지니라


그래서  탐욕을 벗어 버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 것입니다.


보시라 하는 것은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시라고 생각하고, 재산이라든지재산 가운데에는 돈도 있고 금은보화 또는 먹을  또는 입는  이런 물질 보시를 대충  보시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절에다 시주를 한다든지스님네께 공양을 한다든지 또는 양로원이나 고아원 또는 형무소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그러한 물질을 보시한 것이 바로 보시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그것도 보시가 아닌 것은 아니야.


 밖에도 몸뚱이신체의 보시가 있어몸뚱이를 배고픈 호랑이한테 보시를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행(因行때에 배고픈 호랑이에게  몸뚱이를 보시하는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거라든지,

 스님네가 돌아가실 때에 산중에서 돌아가시면은 산중에 사는 모두 산짐승에게 보시를 하고  물에서 돌아가시면은 수중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고이러한 몸뚱이를 보시하는 것이여.


  몸뚱이의 살과 뼈만이 아니라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노력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노력을 보시하는 것도 또한  보시의 종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시 있어마음의 보시는 수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보시고.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것도 하나의당신이 누려야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그것도 보시고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치황제 출가하신 것도 또한 보시여.


수행을 해서 () ()하고() 공하고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하는 것이 그것도 또한 엄격히 말하면 그것도 하나의 마음의 보시라  수가 있는 것이여.


그리고 법보시(法布施) 있는데경전을 인쇄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이것 법보시고 또 자기가 수행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던지경전을 봐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인연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법을 믿도록 인도하는  이것도 또한 법보시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까 마음의 삼독심을 버리고 아공과 법공구공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의 보시 했지만우리가 일상 생활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남의 잘못을 용서(容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존심만을 내세우고 남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항상  사람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나의 주장을 양보하고  사람의 뜻을 따라주는 부부간에도 그렇고친구 간에도 그렇고형제간에도 그렇고.

자기의 뜻이 옳다고 주장하고 자기의 의견만을 내세우면 이것은 마음의 보시가 아닌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곳에서 일체 중생을 수순(隨順)하고그것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속에 제일 첫번째 있는 단바라밀(檀波羅蜜), 보시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 보시하고몸뚱이로 보시하고 또는 법으로 보시하고 보시를 자꾸 부처님께서 권장하시는 뜻은 보시를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의 보시의 참뜻을 터득하게 하려는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를 못하고남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해대고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보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견을 국집(局執) 것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고 항아리에다 담아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지키다가 아귀가 되고 구렁이가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기의 아만(我慢) 아애(我愛), 아치(我癡) 자기의 마음의 재산으로 삼아서 그것에 국집해 가지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남에게 양보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싸우고남편과 싸우고부모 자식간에 싸우고친구 간에 싸우고모든 이웃과 싸운다면  사람이 어떻게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어떻게  사회가 복을 받게 되며행복한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가 이룩되겠습니까.



이번 무진년 새해를 맞이해서 신수기도를 일주일간 참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새벽부터  법당에 가득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기도에 많은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이 참석을 하셔서 기도하신 것은 대단히 기특하고감사하고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기도를 통해서 보시의 참뜻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보시신체의 보시마음의 보시법보시 이러한 여러 가지 보시를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서상황이 따라서자유자재로 보시를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보시를 하면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며 소원을 성취를 하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런 재산이라든지몸뚱이라든지 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존심이라 하는 것이 전부가 (소생(所生) 것입니다업으로 뭉쳐진 것이여요.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탐욕의 소산(所産)으로 결국은 그런 재산이 뭉쳐졌고 몸뚱이도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몸뚱이를 받아나게  것이고,

자기의 자존심도아무리 학식이 높고  세상에 제일가는 명예와 권리를 가졌다 하더라고  마음속에 자기의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러한 것들도 전부 탐진치 삼독의 소산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탐진치 삼독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비근한 예를 들어봐도  수가 있습니다. 꿈을 꾸면구렁이나 그런 뱀 꿈을 꾸거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 해가지고  이튿날 당장 나가서 복권을 삽니다.


어째서 구렁이 꿈이나 돼지꿈을 꾸면물론 용도 구렁이의  종류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용꿈이나 구렁이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 가지고  이튿날 복권을 사면은 1억짜리가 당선된다고 믿고 다투어  꿈을 서로 살려고 그러고 그런데 돼지도 완전히 탐욕의 권화신(權化身) 것입니다.


돼지는 욕심이 많아가지고 먹을 것을 보면은 제 새끼도 소용없고옆에 누가 올까봐서 오면  물어뜯어 버리면서 배아지가 터지도록  먹어 대는 것입니다.

사람도 식탐이 많은 사람은 먹을 것을 보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고잔뜩 먹고 옆구리가 빵빵해져야 “어째서 빨리들  먹어?” 자기가 배가 부르기 전에는 옆에 사람 배고픈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가만히  사람 한참 먹고 있을  눈을 보면 영락없이 돼지 눈입니다돼지라든지 구렁이라는 것이 전부 전생(前生) 탐심이 많아가지고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탐심 많은  탐착심자기가 모아 놓은 재산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갔다 하면은 백발백중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묵은 집을 뜯으면은 귀 달린 구렁이가 나온다고 그럼니다.

이게   집안에  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아가지고  재산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물려주고서 그놈 아까워서 어디로  떠나지를 못하고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그걸  ‘이라고 그러죠그러한 구렁이.


그리고 꿈에 똥항에 빠졌다든지똥을 옷에다가 쌌다든지무슨 똥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똥이라든지 구렁이라든지 용이나  돼지 이런 것들은 바로 그것이 재물재산과 동격인 것입니다그래서 꿈에 그러한 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좋아들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어디를 지나가시는데부처님께서 제일 앞에 서서 바리때를 들고 이렇게 가시는데 요리 골짜구니를 보시고서 “어이쿠구렁이 봐라독사(毒蛇봐라” 그러고 부처님 지나가시니까,

 뒤에 따라가던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차츰차츰 제자들도 이리 보면서 “어이쿠독사 봐라” 가면서 그러니까그러면서 제자들이 쑤욱  지나갔는데.


저만큼서 풀을 뜯던 사람이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저기 독사가 있다고 깜짝 깜짝 놀라면서 지나가시는데 대관절 무슨 무서운 독사가 있기에 그런고?하고 살금살금 가서 조심스럽게 골짜기를 들여다보니까,


아따금은보화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데 ‘ 이상하다어째서 저것을 독사라고 하고 지나갔을까 눈에는 저것이 헛보이나 보다’ 해가지고, 무서워서 돌멩이를 거기다가 던져보니까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는데저것이 독사 같으면 꿈틀거리고 물러 쫓아올텐데 오히려  번쩍번쩍하면서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고.

아, 몇 번을 던져 봐도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지고는 작대기로 이리저리 쑤석거려 봐도 독사 커녕은 분명히 칠보(七寶) 분명하다 말이여.


그놈을 갖다가 속적삼을 벗어서 싸아 가지고는 누가 쳐다보나 어쩌나 두리번거리면서 마침 아무도  보고 있으니까 그놈을 갖다가 집으로 가지고  가지고는 그냥 벌벌 벌벌 떨면서 마당  뒤에다가 구덩이를 파고서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어놓고는.


그놈을 해놓고는 너무너무 좋아서 잠이  오네그래가지고는 밤중에면 가만히 가서 뚜껑을 열고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고 넣고.

이렇게 좋은 것을 그냥 묻어만 놔서 안되겠고, 조금씩 뜯어다가 맛있는 것도  먹고  집도 고치고논도 사고 해서 차츰차츰 인자 심심하면 한덩어리씩 내다팔고 팔고 그랬는데.


며칠 있더니 관가에서, 지금 같으면 형사대들이 그냥  가지고는 집을 둘러싸고는 “이놈 나오라 고함을 질러서 그래가지고는 무슨 일인고 하고 나갔더니, “ 이놈” 다짜고짜로 때려 묶어서 끌고가 가지고는 아주 그냥 뒈지게 뚜드려 패서 몰골이 났다 그말이여.


 이놈바른대로 대라나라의 보물이 잃어버린 지가 여러 날이 되어도  곳이 없는데 이놈네놈이 훔쳐다 팔아먹어?”

아닙니다제가 팔아먹지를 않았습니다


이놈 팔아먹어네가 갖다가 아무데 금방에다가  번을 이러이런 것을 팔아먹지 않았냐?”

훔치지는 절대  했고 골짜구니에서 주워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쁜 놈의 자식주워 골짜구니에  나라의 창고에  놈이 거기에 있어 나쁜 요놈이 맛을 봐야 ” 어떻게 뚜드려 맞았던지 볼기가 아주 그냥 개떡처럼 뚜드려 맞았어.

그래가지고는 기절을 했다가 찬물을 찌그려서  뚜드려 패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뚜드려 맞고 번을 죽었다 살아나가지고 아주 그냥 궁뎅이가 말로  수가 없어.


꿍꿍 앓으면서 “아휴그때 부처님이 독사라고 그러더니 정말 이놈이 독사로구나!”

그냥  말을  해버렸다 그말이여그러니까  말을 옥졸이 듣고 가서 보고를 했어. “그놈 잡아오너라


부처님이 어떻고 어때?” 그러니까, “사실은 부처님이 지나가시면서 ‘이거 독사’라고 그랬는데 내가 아무리 봐도 독사가 아니기에 주워 왔습니다

급히 사람을 부처님께 보내 가지고 “정말  골짜구니에서 독사를 보신 일이 있었습니까?”하니까, “그걸 봤지


사실이 확인이 되니까, “ 이놈아무리 그걸 주웠기로서니  많은 보물을 주웠으면 당연히 나라에다 바쳐야 하는 것인데네가 숨겨놓고 살살 그놈을 팔아먹은 죄가 마땅히  사형을 시킬 일이로되부처님과 관련이 되어졌어그러니 부처님의  공덕으로 봐서 너를 살려준다 가지고는 풀어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은 그런 재물을 분명히 그것을 독사로 보셨기 때문에 깜짝 깜짝 ‘이크이크!’하면서 지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이야 그까짓 것이  금이나 자갈이나 그것가지고 탐내실 분은 아니로되, 만약에 부처님 제자 가운데에 좀 아직 확실히 도를 이루지 못한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서만약에 그놈을 살며시 훔쳐다가 놓고 팔아먹었다 하면은 진짜  스님도 독사에 물렸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확실히 그것이 독사인  아셨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지나가셨으므로 그런 국법에 저촉을 받으시지를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나무꾼이 그것을 독사라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그걸 현혹이 되어가지고 그놈을 훔쳐다 놓고 팔아먹다가    당할 그런 곤욕을 당하게  것입니다.(213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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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독사요똥보다도  더럽고 독사보다도  무서운 것이여.

그러나 세속에 살면서는 그것이 나중에 독사가 되었건똥이 되었건 우선 그것이 없으면 당장 먹고  수가 없고집도 재산인데 그것이 없으면  몸뚱이를 갖다가 거처(居處)를  수가 없고 자녀들도 가르킬 수도 없고아무것도 안되어 버려져.


출가한 스님네는 그저 () 열심히 닦으면은  닦다가 굶어 죽은 일이 없기 때문에 나가서 돈벌이  필요도 없고 그렇다 하지만세속에 사시면서는 천상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어.

어디 나가서 자기 동기 간한테 가서  벌려도  주지도 않고친구 간한테도  가난해서 돈이 없다고  달라고 하면 당장  이튿날부터선 친구도 별로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 돈 있으되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벌고 열심히 벌고벌어서 요긴하게 쓰고 그리고  적당하게 보시도 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은 하되,

그것이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땅에다 묻어놓고 벌벌 떨다가 아귀가 된다든지구렁이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탓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福祿)  누릴 수가 있는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 모든 재액(災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쓰고 남을 복(福)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7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졌고 업장이 소멸이 되었습니다.


 회향날  이러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이런 말씀을 듣고서 ‘과연 옳은 말이다내가 그동안에 아까 와서 아낄 줄만 알았지 정말 보시의 참뜻을 내가 몰랐구나!’ 이리 생각을 하고,

앞으로는  재산을 옳게 관리하고옳게 쓰고옳게 베푼다면그거  버리면 아주 없어질  알고늙으면은 간탐심이 굳어져 갖고 보시를  못합니다.


젊어서는  생기거니 하고생길 수도 있고  수도 있으니까 더러 쓰다가, 나이가  오십 육십 되면 인자  내가  수도 없고누가  갖다주지도 않으니까 ‘이것 떨어져 버리면 내가 인자 꼼짝을 못하겠다가지고 열 스무  꽁꽁 싸가지고는 깊은 데다 넣어 놓고 있다가 결국은 죽어버리면  그거 못쓰는 것입니다.


 회향날을 맞이해서 보시(布施) 마음의 업장을 소멸하고나아가서는 「참 보시」는 물질적 보시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보시야말로 보시의 참뜻이라고 하는 .


그리고 남에게 보시 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 하는 생각’ ()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보답을 해야 한다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 아닌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라야  공덕이 무량무변(無量無邊) 것이지유주상(有住相)으로 하면  보시가 아주  조그만한 한계가 있는 그러한 보시 밖에는 안되고 보시 공덕으로 얻어봤자 유루(有漏)  밖에는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무루복(無漏福)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기러기는  하늘가에 날아갔는데  기러기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남아 있고,

인거황천(人去黃) 명재가(名在家)로구나사람은  황천(黃泉)으로 떠났는데  이름만 자기 살던 집에 남아 있구나.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벌이 일백 가지 꽃에서 꿀을 따다가 놨는데,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이다 벌이  이백  밖에까지 나가서 온갖 풀과 , 그리고 심지어는 시궁창변소간장독   썩은 모든 짐승이 썩은 쇠똥 가지 가지 물건에서 꿀이 될만한 요소를 빨아다가 그래서 모아 놓은 것입니다.


 고통이 얼마며  벌의 세계에 있어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해가지고  법도가 엄한 것이며놀고먹는 벌은  물어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지 가지 고통을 사양하지 않고 모아 놓은 자기네들도 함부로 먹지 않고 꿀통에다가 그렇게   내에 모아 놓은 꿀을벌의  고통은 아랑곳없는 사람이 그놈을  도려서 따다가 먹어버리는것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젊어서부터서 공부하고 피땀 흘려서 노력을 하고밤잠  자고 공부하고 그래가지고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 검사가 되고도지사 장관이 되고 그러한 하늘을 찌르는 높은 명예와 권리를 얻었다 해도,

마치 기러기 하늘 끝에 날아간 뒤에 발자취만 모래밭에 남듯이황천에 한번 떠나 버리면 아무  일없이 이름만 얼마동안 세상에 남아 있다가 오래되면 그것마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놨던 재산가는 길에 한푼 가져가지 못하고  재산은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백년을  못다 사는  무상한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났으되 무엇을 위해서 그러면은  몸뚱이와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명예도 헛것이요권리도 헛것이요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수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처님의 정법(正法) 믿고 그것을 실천해그래서 ‘참나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영원히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금년에 삼재(三災)가 드신 분들은 지난 입춘에 기도를 열심히 하셨을 것이고  이번에 신수기도에도  열심히 새벽같이 나와서 열심히 하셨을  생각합니다.

많이 업장이 소멸이 되고 삼재를 면하셨을 것입니다마는 아주 정말 깨끗이 뿌리째  삼독의 악귀를 갖다가 내버리려면은 이웃의 가난한 사람병든 사람에게 보시하시고  절에 불사(佛事) 있으면 보시하시고  병든 스님네가 있으면 보시를 해서 아주 마지막  끝마무리를 잘하십시오.


이번 한번 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에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서 그러한 무주상 보시를 하시는 것은 세세생생에 삼재팔난(三災八難) 면하고무량무변의 무루복을 증득해서 () () 구족(具足)한 그러한 인격완성을 성취하실 것입니다.(411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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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廻向)회전취향(回轉趣向)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년에 태어나 1643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청나라  3 황제재위 기간은 1643~1661.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 아버님 정반왕(淨飯王) 다스리던 나라실달다(悉達多태자(太子 석존(釋尊) 태어난 .

*역대조사(歷代祖師)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代代)의 조사(祖師).

*일맥상통(一脈相通)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재가(在家)①세속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스님처럼 도를 닦음또는 그런 사람②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

*청신사(清信士)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올바르지 않은 견해그릇된 견해.

*삼독(三毒)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귀의(歸依)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정법(正法)①올바른 진리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부처님의 가르침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염의(染衣 물들일 / ) ; 출가자의 출가하여 속세의 옷을 벗고 법의(法衣) 입는 것도 염의라 하고, 출가할 때에 머리나 수염을 깎고 염의를 입음으로써 스님이 되는 것을 낙발염의(落髮染衣), 체발염의(剃髮染衣)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사문(沙門)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 음역(근식(勤息정지(淨志등으로 번역여러 선법(善法) 근수(勤修)하고악법(惡法) 행하지 않으며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 들어 도를 닦는 사람.

*거사(居士)①고대 인도에서 ·공업에 종사하던 부호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 받은 재가(在家) 남자.

*도업(道業)() 깨달음()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진리의 실천.

*옴막 ; '전부(全部)' 사투리.

*간탐심(慳貪心 아낄 /탐할 /마음 )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 마음.

*가행정진(加行精進)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아라한과(阿羅漢果)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깨달음의 경지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가장 윗자리이다.

*증득(證得)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항하(恒河)갠지스 (Ganges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길이는 2,510킬로미터).

*보림(保任)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천진함을 보전하고  자재함을 따른다 뜻이다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성자(聖者)모든 번뇌를 버리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

*아귀(餓鬼)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하나인 아귀도(餓鬼道) 이르게  죽은 사람의 영혼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없어서  굶주린다고 한다.

*천도(薦度)불교 의례의 하나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

*시회(施會)베푸는 모임.

*대중공양(大衆供養)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석상(席上) ; [주로 일부 명사 뒤에 쓰여]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

* ; ‘(바깥쪽 경계가 되는 가장자리 부분이나  부근)’ 사투리.

*오체투지(五體投地)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佛法僧삼보(三寶)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먼저  무릎을 꿇고 팔을 땅에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세존(世尊) : []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로가나타(路迦那他로가야슬타(路伽惹瑟)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자비(慈悲)()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 ‘연민동정 원의(原義)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방편력(方便力)뛰어난 교화방법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지혜의 방편의 작용.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세상에 펼치는 지혜의 작용.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유주무주(有主無主)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선정(禪定)산스크리트의 디야나(dhyāna), 팔리어 자나(jhāna) 음역(音譯) ()  의역(意譯) () 합하여 생긴 () (정려(靜慮기악(棄惡사유수(思惟修등으로 의역한다.

6바라밀의 하나마음 고요한 내관(內觀). 마음의 번뇌를 가라 앉히는 정신 집중의 수련좌선에 의해 몸과 마음이 깊게 통일  상태.

*백목(白木)무명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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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도(惡道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삼악도(三惡道).

*무량겁(無量劫)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劫과  동자(同字).

*보시(布施) : []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 하고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 하고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 한다.

*아공(我空)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 대해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 대해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소지장은 참된 지혜 보리(菩提)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아공(我空) 법공(法空)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다시  아공(我空)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또한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수순(隨順)남의 뜻에 따르거나 순순히 따름.

*육바라밀(六波羅蜜)바라밀(波羅蜜)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 음사로도피안(到彼岸(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감완전한 성취완성수행의 완성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지혜의 완성.

*단바라밀(檀波羅蜜)육바라밀(六波羅蜜) 하나() 산스크리트어 dāna 음사(音寫) 보시보시(布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바라밀(波羅蜜) ()•도피안(到彼岸)이란 뜻임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수행의 법을 말함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같음.

*국집(局執)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사리(事理)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오온(五蘊)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업장소멸(業障消滅)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 사라져 없어짐.

*똥항(똥缸 항아리 ) : 재래식 화장실(칙간)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권화신(權化身)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속적삼 ; 저고리 속에 껴입는 적삼저고리 모양의 윗도리로 땀이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입는 홑옷이다.

*다짜고짜로 ; 어떤 일의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덮어놓고 바로.

*몰골 ; 볼품없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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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居處 있을· /머무를· ) ; ①일정하게 자리를 잡고 머무는 ②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무름.

* 벌리다 ;  따위를 귀찮게 요구하다.

*복록(福祿  / )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의 녹봉(祿俸 예전에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에 대한 보수로 주던 곡식이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이라는 뜻에서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업장(業障)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업장소멸(業障消滅)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재액(災厄)재앙으로 입게 되는 불운.

*세세생생(世世生生)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태어날 때마다세세(世世)토록.

*()①모습형태 ②특징특질 ③생각관념()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하나() 머뭄() 없는(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보시니라.

(註解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아닌 것이  몸이요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수보리야보살은 () 응당히 머문  없이 보시를 할지니이른바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만약 보살이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복덕은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과보가 다하면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 쾌락을 구하지 않고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 마음도 없고베푸는 물건도 없으며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 행할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얻는 복이 시방(十方)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일설에 '()' '(넓다)', '()' '(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 보시(眞布施)' 하며, 또 일설에는 '()' '' 육진 경계(六塵境界)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돌아가서 만법(萬法)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 더하므로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 없는 것이  선법(善法) 것이라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없고능소심(能所心)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무량무변(無量無邊)한없이 크고 넓음또는 헤아릴  없이 많음.

*유루복(有漏福)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명예권리오욕락 따위의 복으로유루(有漏)—샘이 있는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보시도 무주상(無住相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법보시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사람노릇  수도 없고생활도  수도 없고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무주상(無住相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법보시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게송) 採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甘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당대시인(唐代詩人나은(羅隱 833~909)  《봉() 참고.

*황천(黃泉)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아랑곳없다 ;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관심을  필요가 없다.

*불사(佛事)①불법(佛法) 알리는 제사법회 따위의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삼재팔난(三災八難)사람의 태어난 (十二支) 따라 9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①대삼재(大三災) 하여 (水災), (火災), 바람(風災)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가지 재해(災害 곡식이 익지 않는 (), 채소가 익지 않는 (), 과일이 익지 않는 ()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들삼재)이라고 하며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눌삼재·앉은삼재)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여러 ()으로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사주(四洲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임.

*구족(具足 갖출 /충족할 ) ; 빠짐없이 두루 갖춤.



[주요 내용]


출가(出家), 재가(在家)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 돈은 열심히 벌고 쓰고보시해야 / 남의 잘못을 용서(容恕)하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부처님이 금은보화를 보고 독사(毒蛇) 하심 / (게송)안비천말적유사~.



[주요 문구]


출가(出家)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입니다. ‘크게 버리는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하시길 탐욕의  간탐하는 욕심의 불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길이길이 악도(惡途) 떨어져서 무량겁(無量劫)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탐욕의 무서운 독이로구나! 너희들은 어서 속히 중생들의  탐욕의 때를 빨리 벗어 버릴지니라

탐욕을 벗어 버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 것입니다.


마음의 보시는 수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보시고. 또 부처님께서 출가하신당신이 누려야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그것도 보시고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치황제 출가하신 것도 또한 보시여.


아까 마음의 삼독심을 버리고 아공과 법공구공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의 보시 했지만우리가 일상 생활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남의 잘못을 용서(容恕)하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를 못하고남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해대고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보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견을 국집(局執) 것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고 항아리에다 담아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지키다가 아귀가 되고 구렁이가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물질로 보시하고몸뚱이로 보시하고 또는 법으로 보시하고 보시를 자꾸 부처님께서 권장하시는 뜻은 보시를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의 보시의 참뜻을 터득하게 하려는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福祿)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 모든 재액(災厄) 갖다가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것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시 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 하는 생각’ ()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보답을 해야 한다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 아닌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라야  공덕이 무량무변(無量無邊) 것이지유주상(有住相)으로 하면  보시가 아주  조그만한 한계가 있는 그러한 보시 밖에는 안되고 보시 공덕으로 얻어봤자 유루(有漏)  밖에는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무루복(無漏福)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명예·권리·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수가 없는 것이라면부처님의 () 믿고 그것을 실천해서 ‘참나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내가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51~375)2016. 10. 27. 20:1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351)—신수기도 입재(88.02.20) (26)


(1/2) 약 21분.  (2/2) 약 4분.


(1/2)----------------


오늘 무진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입재일을 맞이해서 방금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었습니다. 
신수기도 하면 그해 1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碍)해서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비는 그러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내용은 기도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해야 기도를 성취한다고 하는 기도에 관한 구체적인 법문이 아니고, 순전히 내가 나를 깨닫는 그러한 심지(心地)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알아들을  아는 사람에게는 정말 신수기도 기도 성취를 위해서는 이보다  간곡한 법문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무량겁래(無量劫來) 생사윤회(生死輪廻)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한량없는 생사의 () 짓고   업에 의해서 생사의 윤회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는데  생사업(生死業) 무엇이냐? 탐심(貪心)이요, 진심(瞋心)이요, 치심(癡心)입니다.


탐내는 마음. 무엇이고 탐을 ! 욕심을 내고 탐을 내 가지고  욕심내는 대로 뜻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성을 냅니다.

 이어서 욕심을 내고 그것이 이루지 못하면 성을 내고  욕심내고 그러기를 날이면 날마다 무량겁을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오는데,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아하!  욕심을 낸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이리 생각하고 () 알아야 하고 () 줄을 알면 쓸데없는 허욕(虛慾) 내지를 아니할 것이고, 허욕을 내지 아니하면 성낼 것도 없고 그러면 그것이 지혜 있는 사람인데,


욕심을 내다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성을 내고 하기를 끝없이 계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리석다하는 것이고,  어리석음 때문에 무량겁 생사윤회를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께서는  집안 식구 가운데에 삼재(三災) 들었거나, 또는 어떠한 가정사 또는 어떤 회사나 직장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거나  중대한 그런 문제가 있어서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극복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어려움을 풀고서 뜻대로 소원을 성취할 것인가?

그런 나름대로 중대한 () 있어서 지금 모두 이렇게 모이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서 초아흐렛날까지 7 동안 엄숙하게 경건하게 기도를 봉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의 목적을 정말  세워야 합니다.

첫째, 목적을  세운 다음에는  기도를  나가는데 있어서 정말 올바르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 성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을 어떻게 세우냐? 우선 당면(當面) 당장 급한 문제를 성취하기 위해서  문제를 목표 삼아서 간절히 기도하는 , 그것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금방  문제 다음에는  하나의 문제가  나타날 것입니다.   문제를 위해서 열심히 원을 세워서 기도를 합니다. 설사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다음에는 꼬리를 이어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먹은 만큼 낱낱이  성취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생살이인 것입니다.

성취가 안되어도 고통이요 근심 걱정이요, 성취가 되어도  끝없는 걱정이 끝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그러한 조그마한 원을 위해서, 조그마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중생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기도를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사윤회를 해 왔는가?’  근원을 밝게 판단을 해 가지고, ‘어떻게 했으면  근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영원히 행복한 목적을 달성할  있을 것인가?’ 그러한 까닭으로 해서 심지법문(心地法門) 설해 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  무렵에 산중에 아주 궁술(弓術), 활을  쏘는 무사가 있었습니다.    쏘는 무사는 활만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무예(武藝) 대해서 통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가 있었습니다. 아주 예쁘고 아리따운  하나만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사윗감을 하나 골라서 딸을 결혼을 시켜야겠는데,

기왕이면  사위도 자기 못지않은 그러한 무술에 달통한 그런 사위를 두어서  사위로 하여금 자기의 무예를 전수받게 했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항상 원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청년이  산중에 훌륭한 무사(武士) 있다는 말을 듣고 무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와서  선생님을 찾아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매일 무술을 배우는데  선생님한테 아리따운 딸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이  서로  아름다운 처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둘이  처녀 하나를 놓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선생님의 눈에 들고 무술에 있어서 합격이 되어 사위가 되어 가지고  처녀와 결혼을 해서 선생님의 무예를 갖다가 이어받으리라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정말 몸과 목숨을 바치다시피 해 가지고 무술을 공부하는데,


 사람은 천부적인 무술에 소질이 있어서  같이 배우는데 그렇게  숙달이 되어서 궁술 뿐만 아니라 검술로 그 밖에  태권도로, 있는 무술은 그저  하늘에 솟구쳐서 십팔 변화를 일으켜서 떨어지고 하는 무술을  익혔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겨우  가지 밖에는,  쓰는  가지 밖에는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람을 무술 시합을 붙여 가지고 결국은  사람이 이겨서   사람한테 딸을 여의었습니다.
 가지 무술 밖에 익히지 못한 사람은   없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스승 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술이 부족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너한테 뺏겼지만 내가 언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복수를 하리라 자기가 무술이 모자라 가지고 뜻을 이루지 못해 가지고서, 무슨 허물을 갖다가 스승한테 돌리고 허물을 갖다가 자기 친구한테 돌려 가지고 원한심을 품고 떠났다 그말이여.


어디를 갔느냐 하면은 저 다른 산중으로  가지고 산적 있는 데로 들어갔어. 그래 가지고 산적 밑에서 자기 나름대로 무술을  익히고 그래 가지고 산적의 두목이 되었어.


산적 두목이 되어 가지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 길목을 지켜서 보물과 재산을 빼앗아 가지고 그렇게 산적 두목이 되어서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언젠가는  친구를 갖다가 죽이고  처녀를 뺏어서 자기 마누라를 삼으리라 이렇게 하루도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청년이 아내와 더불어 수레를 타고  산적이 있는 골목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불가불 거기를 지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요로(要路) 지나가는데 앞서가던 많은 장사꾼들이 수레를 멈추고 나아가지를 않아.


그래서   가고 거기 멈추어 있느냐?” 그러니까  앞에 가면 산적들이 있어 가지고 가다가는 재산을  뺏기고 목숨까지 잃게 되기 때문에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적,  같은 것이 무서워서  가겠느냐, 내가 간다.


그래 가지고는 수레를 몰고 거기를 지나가니까, 졸개들이 보고서 바로 자기 두목한테 보고를 했어.

다섯 놈의   쓰는 놈을 보내 가지고  놈들을 , 연놈들을 잡아오너라 다섯 놈이 달려드는데 당해  수가 없어. 다섯 놈이  거꾸러졌습니다.  다시  놈을 보냈는데, 놈이 삽시간에 모가지가  떨어져 버렸어.


  없이 인자 산적 자신이 칼을 들고 나와 가지고 오늘날에사 비로소 내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리 들어오너라 가지고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멀찌감치 서서 아주  싸움이 벌어졌는데,  사람은 오백 개의 활을  산적한테 대해서 활을 쏴서, 오백 개 중에 사백구십구 개를 쐈는데 쏘는 족족  산적의 칼에 맞아서 화살이 동강이가 나서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화살 하나 남아서 그것을 활에다가 끼워 가지고, ! 산적을 향해서 화살을 갖다가 끼워 가지고 있는데 활을 쏘지를  . 그러니까 저쪽에서도 칼을 빼들고  하나 깜짝 아니하고 노려보고 있고.


그런데   쏘는 사람 부인이  마지막 화살을 쏴서 저놈을 죽이지 아니하고  그렇게 노려보고만 있느냐?” 그러니까 이것 하나 쏴서 이것마저 실패하면 당신도 죽고 나도 죽게 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과연  여자가 생각할  틀림없이 쏴봤자   칼에 맞아서 부러질 것이 빤하고, 그렇다면은  사람이 죽거나 자기는 도둑놈의 계집이 되거나, 이렇게 되었다 그말이여.

여자가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까 영락(零落)없이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퍼뜩  지혜가 떠올랐어. 무슨 지혜가  올랐냐?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따운 몸매로  잘생긴 얼굴로 요염(妖艶) 부리면서  나비같이 춤을 추고 하는데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그 산적이  모습을 보고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아니한, 사랑과 원한이 사무치는  여자가 눈앞에서 그렇게 요염하게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거기에 아주 황홀경(恍惚境)에 빠져있다 그말이여.


그때에 바로 화살을 숨통에다가 쏴대 가지고 산적이  자리에 쓰러진 것입니다.

쓰러지면서 산적이 뭐라고 말을 했느냐? “네가 활을  쏴서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내가  쓰는 솜씨가 부족해서 내가 죽은 것이 아니다. 오직  여자의 지혜 때문에 내가 졌노라 이렇게 말을 하고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살아갈 때에 또는 어떤 회사나, 어떤 기업체를 운영할 때에 또는 국가와 국가 간에 어떤 무역이나 외교를    수행을 하는 사람이 팔만사천 마군(魔軍)이와 대적을 해서 싸워나갈 ,

최후에 그 극진처(極盡處) 들어가서 어리석은 생각을 내면 실패를 하는 것이고,  생각 돌이켜서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지혜의 힘을 발휘하면 영락없이 죽게  , 영락없이 실패해서 망하게  때에 승리를 거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탐심을 내지 말고, 진심을 내지 말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지 말고, 생각을 터억 돌이켜서 마음을 안정을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話頭) !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어떤 불화가 있건, 자기가 경영하는 회사에 어떤 어려운 사건이 있건, 대인 관계나,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 안정을 해 가지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아는 그러한 여유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거기에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당황을 해 가지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불같은 욕심내고 그런다고 해서 일이 해결이 되지 않고 점점 앞이 캄캄하고 어둡고 일은 점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이 났다든지, 어떤 도둑이 들어왔다든지, 갑자기 어떠한 사건이 벌어졌을  평소에 참선(參禪)  사람은 그럴  가서 ! 마음을 돌이켜서 심기일전할  있는 지혜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평소에 참선을 아니  사람은 보통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곧잘  훌륭하고 침착하고 일을  처리하지만, 어려운 일이 갑자기 일어나게 되면 당황하고 불안하고 초조해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처음~2146)



(2/2)----------------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30 이상 참선을 하시고 그리고 기도를 하시고,  기도를 하고 가시는 걸음걸음도 또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저녁에 자리에 누우시기 전에  최소한도  시간 내지 30분은 참선을 하시고 그러면서 일주일 동안을 기도를 하시면 기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기도는 첫째,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진실치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청정하지 못한 마음으로 아무리 불같은 욕심을 가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봤자 그런 기도는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참된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를 하시면 기도와 참선이 둘이 아닙니다.


일념 진실함으로써 진실한 마음으로 화두를 거각(擧却)하듯이,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정근(精勤) 정성껏 하시면 삼재도 거기에는 녹아 없어질 것이고, 여러분의 크고 작은 유루(有漏) 복이 되었건, 무루(無漏) 복이 되었건, 복과 지혜를 쌍으로 성취하시게  것입니다.


오늘, 마치 손톱 밑에 조그만한 가시가 들어서 그것을 빼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까,  병원 의사가 손톱 밑에 비집던 것은 별로 문제시(問題視) 하지 아니 하고 그 사람의 심장에  병이  것을 발견을 해서  중대한 심장병을 고쳐준 거와 같은 경우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삼재라든지 여러분의 가정이나 가족의 조그마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도에 참석하셨는데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 하는 그런 심지(心地) 법문과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보물을 구할려다가 평생 동안 또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쓰고 남을 그런 보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7일간이 하루처럼 그렇게 알뜰하게 정진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실 것입니다.(2148~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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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진리에 이르는 .

*심지(心地) ; 마음이 일체 만법을 내는 것이 마치 땅에서 ·나무 등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함.

*심지법문(心地法門) ; 마음바탕, 근본 마음자리 법문. '내가 나를 깨닫는' 법문.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허욕(虛慾) ; 분수를 넘는 헛된 욕심.

*삼재(三災  /재앙 ) ; 사람의 태어난 (十二支) 따라 9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 하여 (水災), (火災), 바람(風災)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유행함)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가지 재해(災害)  곡식이 익지 않는 (), 채소가 익지 않는 (), 과일이 익지 않는 ()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삼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삼재가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항시 3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문단속을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  것이고,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군이를  생각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고 있는 것도 역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생각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락(零落)없이 ; ①조금도 다르지 않고  같게. ②예상이나 기대가 조금도 틀리지 않고  들어맞게.

*요염(妖艶 아리따울 /고울 ) ; 사람을 홀릴 만큼 매우 아리따움.

*몽매지간(夢寐之間) ;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동안.

*황홀경(恍惚境) ; 놀랍거나 감격스럽거나 하여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마음이 달뜨는 경지나 지경.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 뜻함.

*극진처(極盡處) ; 힘이나 마음을 다하는 .

*심기일전(心機一轉) ; 어떤 계기에 의하여  전까지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듯이 바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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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이나 공부에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 힘써 일하는 . ②기도를   별념(別念)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시(問題視) ; 논의하고 해결해야  대상으로 삼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주요 내용]


심지법문(心地法門) / 산적과  여자의 지혜 일화 / 심기일전(心機一轉)하는 지혜의 힘은 참선 공부에서 온다.



[주요 문구]


조실 스님께서는 조그마한 원이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중생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기도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했으면  생사윤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영원히 행복한 목적을 달성할  있을 것인가?’ 그러한 까닭으로 해서 심지법문(心地法門) 설해 주신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안정을 해가지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아는 그러한 여유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거기에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참된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기도하시면 기도와 참선이 둘이 아닙니다.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화두를 거각(擧却)하듯이, 일념 진실한 마음으로 정근(精勤) 정성껏 하시면, 삼재도 녹아 없어질 것이고, 여러분의 유루복이 되었건, 무루복이 되었건, 복과지혜를 쌍으로 성취하시게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51~375)2016. 7. 9. 11:21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65)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2분.


(1/3)----------------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晝夜) 불철(不撤)하고 년이고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동쪽에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몸뚱이도 것이 아니여. 소유라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그렇거든 밖에 다른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세월, 무상한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간수하고 몸뚱이도 몸뚱이다, 것이다하고 수가 없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텐데, 내가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야 하는데,

몸뚱이도 몸뚱이라고 수가 없는데, 몸뚱이 밖에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때는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無常)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귀의(歸依) 가지고 어쨌든지 몸뚱이 있을 생사해탈(生死解脫) 해라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이루어졌고,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먹고 입고, 명예와 권리 오욕락(五欲樂) 인생의 전부인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나타나고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저울대에 달면은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보는 상대 객체(客體)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듣는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이라는 크게 말하면은육도(六途) 윤회(輪廻)하는 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는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찰나에 일념에다가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 육경(六境) 상대하는 바로 찰나(刹那)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때에 바로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낭연독존(朗然獨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은,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하지 않도록.


처음에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저것이 산이다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 ‘산이 높다, 푸르다, 산에 구름이 끼었다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들리게 되어. 그래서 몸뚱이가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의단이 !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밑구녁이 빠져서 통에 담아논 것이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가지고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끊을려고 하는 생각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


심지어는낳다 죽었다 생사가 싫으니까,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냐? 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생사심 때문에 ()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생사(生死) 들어갈라면은 () 들어가야 하고, 태에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생사(生死)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본래 없는 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35)



(2/3)----------------


그러나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더운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없다 하면, ‘없다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자성이 없다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없다 하시고, 성현들이없다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없다 하면 말을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성현의 말씀을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그냥 없다 !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그게 그렇게, 당장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 가지고 어린애들을 갖다 울면은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는애비 나온다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그러니까, ! ‘곶감 있다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곶감을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밖에서 가만히 종초지말(從初至末) 들어보니까 ! 호랑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호랑이가 왔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왔다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 ‘곶감 있다! ’ 그러니까 울음을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상황은 수가 없으나도대체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 다시는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호랑이란 놈은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믿고는 다시는 집에 가듯이,

우리가 ! 믿을 수만 있으면, ! 믿어버리기만 하면 무서운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점쟁이의 한마디, 무당의 한마디를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합니다.

그러냐 하면,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몇백만 , 몇십만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 그렇게 믿어.


!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믿는 같다 그말이여.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믿는다 그말이여.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텐데 ! 그것을 속속들이 믿는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 경지를 요달(了達)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죽음이 있는데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없는 생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前五識) 6(六識, 意識) 7(말나식), 8(아뢰야식), 이런 ()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으로 해서 업을 짓고, ()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는데,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육근, 육경, 육식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 변하는 것이여.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를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 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成佛)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

광명이 적적(寂寂) 비추니,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 공아가(共我家).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나의 집이더라. 바로 참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생각이 움직이면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대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 통해서 ()하면 벌써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병통을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 진여(眞如)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 세간(世間) 수순(隨順)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바로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이뭣고?’


당하는 일을좋다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나가는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2136~4311)



(3/3)----------------


오늘 무진년 칠석날입니다. 칠석(七夕)이라는 대관절 무엇이냐?

전설로는 하늘나라 은하계에 견우성(牽牛星) 직녀성(織女星) 있는데 서로 남녀의 별이 그렇게 사랑하건마는 은하에 가로 막혀서 가지를 못하다가 칠석날에 까막까치가 다리를 주면은 다리를 건너가서 오작교(烏鵲橋)인데, 오작교를 건너가 가지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그래서 칠석날 이후에 까막까치 대가리를 보면, 견우 직녀가 대가리를 밟고 지내갔기 때문에 대가리 껍데기가 벗어져 있다. 오늘 여러분들은 까막까치를 보거든 정말 대가리가 벗어졌는가 유심히 살펴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째서 그러한 전설로 내려오는 칠석날이 그렇게 우리 한국민에 있어서 그렇게 하나의 신앙으로써 그렇게 신라 때부터서 수천 년을 두고 이렇게 칠석날이 우리의 명절로써 쇠어지고 내려오는가?

칠석날은 절에 가면은 칠성(七星)님께 공을 들이고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면은 모두 부모형제 아들딸들이 모두 수명장수하고 복덕구족한다이것은 우리의 토속 신앙(土俗信仰) 되어버렸습니다


본래 북극성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숭배하고, 북두칠성은 칠성여래(七星如來) 숭배를 하고, 해와 달은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 하고,

하늘나라의 무수한 별들은 치성광여래와 좌보처 일광보살, 우보처 월광보살 하는 부처님의 여러삼태육성(三台六星) 이십팔수(二十八宿) 주천열요(周天列曜) 제성군중(諸星君衆)’이라 해서 전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대중이다 그말이여.


석가모니 부처님께는 십대제자(十大弟子) 십육 대아라한(大阿羅漢) 그리고 천이백오십 인의 제자가 상수제자(上首弟子) 항상 계셨지마는 치성광여래는 좌보처(左補處) 우보처(右補處) 일광 월광 양대 보살이 계시고, 하늘나라에 가득찬 모든 별들이 치성광여래의 거느리시는 대중이시다.


어떻게 해서 별을 부처님으로 이렇게 승격을 시켜서 숭배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아마도 중국에서 도교에서 그렇게 숭배하던 종교가 불교에 이렇게 받아들여져 가지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서 이렇게 해서 불교 사찰 안에 칠성단(七星壇) 모시고 이렇게 내려왔는데, 절절이 작은 절에 가면 칠성님 모시고 산신단도 모시고 이래서 하는데,
우리 용화사는 오직 비로자나 법신불 분만을 모시고, 각단 탱화라든지 그런 것을 조실 스님께서는 모시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칠석날에는 계속 이렇게 법회를 거행해 오신 것입니다.

 

눈으로 보면은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 북극성 북두칠성, 견우 직녀 은하계에 수억만의 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양과 그리고 지상의 산천초목과 기와쪽, 돌맹이 하나 이르기까지 전부가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눈으로 있는 모든 색상이 비로자나 법신의 몸뚱이요, 우리 귀로 들을 있는 모든 소리바람 부는 소리, 우는 소리, 흘러가는 소리,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우는 소리, 짖는 소리, 밖의 어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지금 옆에 모두 숨쉬는 소리, 일체 모든 소리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설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모든 우리 눈으로 있는 것은 부처님 아닌 것이 없고, 듣는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은 칠석날 칠성님을 숭배하고, 북극성을 치성광여래로 숭배하고, 해를 일광보살로 받들고, 달을 월광보살로 숭배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등(何等) 그것을 미신이라고 배척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용화사에서는 법신불(法身佛)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최상승법(最上乘法) 믿고 오직 화두 하나로써 팔만대장경을 요달(了達)하고, 삼세제불의 면목(面目) 철견(徹見) 하고, 이러한 최상승법을 믿고 닦아가는 도량이기 때문에 법신불 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여. 얼마나 간결하고 얼마나 좋으냐 그말이여.

부처님 속에 치성광여래도 계시고, 칠성여래도 계시고, 일월광보살도 계시고, 부처님 속에 팔만대장경도 속에 들어 계시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우리가 생각 단속함으로써 팔만사천 번뇌를 거기서 항복을 받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거기서 항복을 받고, 그래 가지고 일념무생(一念無生) 도리를 요달함으로써 삼명육통(三明六通) 거기서 요달한 것이다 그말이여.


최상승법, 여러분은 무슨 (), 무슨 경을 그렇게 많이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열어 봐도 종이와 먹으로 경이 아니고, 떠들어 봐도 글자도 쓰여 있지 않어. 한마디 화두, 의단(疑團), 이놈 하나를 단속을 나갈 뿐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때나, 직장에서 일을 때나, 절에 오셔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때나, 후원에서 소임을 맡아서 공양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비를 들고 쓸고 걸레로 닦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오직 생각만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나간다면 거기에는 일체의 모든 복덕과 지혜가 거기에서 갖추어질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무당 만신 그런 데에 가서 칠성단에 공을 들이고 우리 남편 우리 자식들을 어쨌든지 건강하고 목숨 길게 해달라고 손을 싹싹 비비고, 참기름에다가 불을 놓고 그렇게 빌고, 그리 쫓아가시지를 않고.

여기 와서 맛없는 생각 단속해서 화두를 들어라’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 가지고 화두를 타파해 버리면 거기에서 삼세제불(三世諸佛) 면목과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과 바로 나의 면목을 수가 있다만날 듣고 만날 귀에 따깽이가 들도록, 그런데 하필 칠석날 얘기를 하냐?


여러분 가운데는 빨리 법회가 끝나 가지고, 그거 우리 아들 만신 집에다 공들여 가지고 아들 낳았는데 거기를 가면은 만신이 노해 가지고 골을 내면은 행여나 우리 아들한테 해로울까, 그래 가지고 빨리 거기를 쫓아가야겠는데, 빨리 법문 그만 했으면 그러실 분이 계실란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러분은 이미 모다 동참(同參) 하셨고, 부처님께 모두 정성스런 폐백을 올렸고, 이렇게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만신 집에 쫓아가지 해도 여러분의 칠석날 공은 들여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 염려를 하시지 말고, 앞으로 정말 영원히 무서운 생사윤회(生死輪廻) 끊어버리고, 영원히 생사 없는 열반(涅槃) 세계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실라면은 금생에 몸뚱이 있을 어쨌든지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삼불형의총부진(三佛形儀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제조산화일양춘(啼鳥山花一樣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불형의(三佛形儀) 총부진(總不眞)이요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흙으로 뭉쳐서 만든 부처님, 나무로 깎아서 만든 부처님, 쇠를 녹여서 조성한 부처님, 가지 종류의 부처님의 형체가 총부진(總不眞)이여. 모두가 참다운 부처님이 아니여. 그러냐?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은 물에 들어가면 풀어져 버리고,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은 속에 들어가면 버리고, 쇠붙이로 녹여서 지어붓은 부처님은 용광로(鎔鑛爐) 속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린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러한 부처님의 불상(佛像) 갖다가 참다운 부처님이라고 수가 있겠느냐?


안중동자면전인(眼中瞳子面前人)이다. 속에, 동자(瞳子) 속에 나타나 있는 그것이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더라 그말이여.

사람마다 눈동자 속에 보면은 사람 모습이 있는데, 눈동자 속에 있는 모습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여. 사람의 모습이 바로 눈동자 있는 데에서 찾아봐야 사람의 모습이 거기에 비추어져 있다 그거거든.


약능신득가중보(若能信得家中寶)하면, 만약 능히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집안에 있는 보배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죽을 평생 먹고 쓰고도 남을 보물의 구슬이 있었는데, 보주(寶珠) 아들한테 전해 주어야겠는데 아들이 너무 어려가지고 보물을 전할 수가 없어서 아들의 속에다가 보물을 넣어놓고 그래 가지고 꽁꽁 꿰메서 두었다 그말이여.

혹은 집안에 어디다가 깊이 간직을 놨는데 아들한테는 일러줄 수가 없으니까, 자기의 친구한테 그것을 일러주었어. ‘ 자식이 철이 들거든 거기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켜 줘라일러주고서 죽었는데.


아들이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혈혈단신(孑孑單身)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랑걸식(流浪乞食) 하고 돌아다녔다 그말이여.


자기한테 그런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평생 쓰고 먹고 남을 보배가 있는 모르고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면서 거지 신세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났어.
그래 가지고바로 너의 속에 보배가 있다또는너의 어디에 가면은 보배가 있다그래 가지고 보배를 발견을 가지고 평생토록 유족(裕足)하게 살았다 하는 경전에 있는 말씀인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하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 그것을 갖다가 집안의 보배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신 거여.

부르면 대답할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배고프면 먹을 아는, 그리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아는 바로 그놈.


성내고 울고불고하는 그러한 작용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말이여. 탐심도 줄도 알고, 고약한 마음을 내는데, 마음 아는 , 그러한 작용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작용이 일어나는 바로 당처(當處), 그것은 우리는 수가 없어. 중생심으로는 그놈은 수가 없고, 중생견으로는 그것을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육안으로는 보일 수도 없어.


그런데 그놈으로부터서 온갖 중생의 육식(六識) 거기서 발동을 한다 그말이여.

발동하는 그놈을, 발동하는 근본, 당처를 진실로 얻어버리면, 그놈을 깨달라 버리면, 제조산화(啼鳥山花) 일양춘(一樣春)이다. 우는 새와 산에 울긋불긋 피는 꽃이 한결같은 봄이더라.


우는 새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법문이요, 산에 울긋불긋 피어있는 꽃이 바로 부처님의 몸뚱이더라이렇게 해석을 붙이면 경전은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바로 봄이 돌아오니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한다 이거거든. 거기에다기 무슨 변명을 붙이고, 변명을 붙이면은 그것은 깨달음의 소식이 아니라 중생의 망견(妄見)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동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니 그리고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렸으니 여러분은 유루(有漏), 무루(無漏) () 영생토록 쓰고 남을 복록을 받게 되셨으며,

최상승 법문을 들었으니 여러분은 생사해탈을 해서, 영원히 고해(苦海) 육도윤회(六道輪廻) 해탈을 해서 생사 없는 열반의 세계에서 삼세제불과 더불어 무생곡(無生曲) 읊을 있게 되었습니다.(4312~6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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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불철주야(不撤晝夜 아니 /거둘·치울·그만둘 / / ) ; 어떤 일에 몰두하여 조금도 사이 없이 밤낮[晝夜] 가리지[] 아니함[].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지옥이 정해진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찰나(刹那 ·짧은시간 /어찌 )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동자(同字).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소승(小乘) : []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 깨치면 아라한(阿羅漢)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 깨치면 연각(綠覺)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대승(大乘) : [] Mahayana 대승(大乘)이란 수레를 뜻한다。큰 ()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 만행(萬行)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세상에 온갖 물질과 (森羅萬象)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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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고냥 ; 그냥.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고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 nirvana  []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무명(無明) : []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 이름. <기신론(起信論)> 이것을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 이치에 어둡게 처음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 하나.

①의식 기능[]으로 의식 내용[]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前五識)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 [산스크리트어] manas 음사로, ()라고 번역.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6(第六識) 의식(意識) 구별하기 위해서 ()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八識: 8가지의 ) 가운데 하나로 7(第七識), 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 ()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 산스크리트어 dhātu)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 제외한 12가지를 12()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 ()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 뜻은소의(, basis) 발동근거를 바꾼다()’ 성도(聖道)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 변형시키는 ,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 획득(獲得) 성취(成就) 말한다.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 마음인 ‘8’(八識 : 전오식, 6의식, 7말나식, 8아뢰야식)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 오염된 8아뢰야식(阿賴耶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 해당하는 오염된 7말나식(末那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6(第六識) 의식(意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모든 ()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④성소작지(成所作智) ; ····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5(前五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인도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 파괴·변화, () 가운데·간격을 뜻함.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생물들의 세계.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산하대지. 세상.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 .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생기는데, 육식(六識)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있는 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 동시에 ()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우주 법계가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소소영령(昭昭靈靈) 우리의참나라고 하는 불성(佛性) 생사(生死)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 이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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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빛이 밤하늘의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 모신 .

*하등(何等) ; 주로하등의 꼴로 부정어와 함께 쓰여, ‘아무런 뜻을 나타내는 .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 닦는 .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 같은 .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게송) 삼불형의총부진~’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용광로(鎔鑛爐 녹일 /쇳돌 /화로 ) ;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 , 구리, 따위의 쇠붙이를 뽑아내는 가마.

*혈혈단신(孑孑單身 외로울 / / ) ; 의지할 없이 외로운 홀몸.

*유랑걸식(流浪乞食 흐를·떠돌 /물결·떠돌아다닐 / / ) ;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 의미하는 .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그곳. 또는 이곳.



[주요 내용]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 공화(空花) / 믿음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 자기 안에 있는 보배 / (게송)광명적조변하사~ / (게송)단제번뇌중증병~.



[주요 문구]


무상한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몸뚱이 있을 생사해탈(生死解脫) 해라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 경지를 요달(了達)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