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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90) - 2018(무술)년 법보재 (40분)

(1) 약 21분. (2) 약 19분.

(1)------------------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인데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요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요,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다.

욕계, 색계 삼계(三界)의 육도법계(六途法界)가 바다보다도 더 넓고 넓다 그말이여.

그런데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다. 수억만 년 전부터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넓고 넓으며 시끄럽고 복잡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가 그렇게 바다와 같이 넓고 넓어서 수억만 년 전부터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생로병사와 성주괴공 그런 현상으로 그렇게 복잡하냐 그말이지.

그 근본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근본이 되어가지고 온 우주법계(宇宙法界)가 벌어진 것이다 그말인데.


우주법계가 그렇게 무한하고 끝이 없는데, 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그 세계가 벌어졌냐?

우리가 한 생각 일어나는 마음의 근본이 없다면은 우주가 있으나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며,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말이여.


우주법계의 흥망성쇠는, 그 근본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벌어진 것이요, 그 세계는 우리가 인증하므로 해서 흥망성쇠가 벌어지고 존재하는 것이지.

우주법계가 아무리 넓고 넓다 해도 그 근본은 우리의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닦아가고, 어떻게 깨닫느냐에 따라서 우주법계가 극락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세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불법(佛法)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우주법계를 정토(淨土)로 만드는 근본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닦고, 어떻게 깨달으고, 어떻게 써 나가느냐에 따라서 온 세계가 극락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세계도 될 수가 있다」

이렇게 인식을 해야 불법을 옳게 이해하는 것이고, 그렇게 철저하게 이해를 해야 '우리가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쓰며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확실히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


'불교(佛敎)'하면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언뜻 생각하지마는, 팔만대장경이 소중한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모아 놓은 경전이나—팔만대장경이 해인사에 봉안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 대단히 소중한 문화재이지마는, 그 문화재가 참으로 빛이 나고 우리에게 정말 이익을 갖다 주게 할라면은 그 팔만대장경을 인쇄해서 많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도 하나의 공덕(功德)이 아니된 것은 아니나,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 맛을 보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아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主人公), 우리의 자성불(自性佛)을 깨달음으로 해서 진짜 팔만대장경이 빛이 나고, 팔만대장경이 참으로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어서 지금 온 세계가 이렇게 있지마는, 아무리 지구가 넓고 온갖 사람들이 살고 있고 온갖 나라가 있지마는 이것은 언젠가는 성주괴공의 도리에 의해서 지구도 먼지가 되어 가지고 없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육체가 부모로부터서 받아 태어나서 눈을 통해서 보고 귀을 통해서 듣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살지마는 '이 몸뚱이,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우리의 주인공, 우리의 자성 이것이 어떻게 중심을 잡아나가느냐?'

따라서 이 육체가 한낱 보잘 것 없는 중생이 될 수도 있고, 허망하게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릴 수도 있는데.


정법을 믿고 철저하게 올바르게 수행을 해 나가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이 육체가 정말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 이 몸으로부터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정말 이 몸뚱이를 낳아 주신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부모에게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해 드리고 그런 것도 효도의 한 방법이지만 정말 부모에게 참다운 효도를 하는 방법은, 이 육체를 낳아 주신 그 부모님의 은혜를 참으로 갚는 방법은 참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자성 부처님을 깨닫는 그것이 최고의 효도인 것입니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성은 이 육체를 부모님이 낳아 주시지 않았다면은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었고, 이 세상에 낳아 주신 부모님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성 부처님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자성불, 그것은 아무리 해부를 해서 오장육부를 다 뒤져 봐도 그것은 현미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눈으로 아무리 볼라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알 수가 없으나 정말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고, 입을 통해서 음식을 먹고 말을 하는 이 자기의 주인공.


이것은 정말 부모님이 이 육체를 낳아 주심으로 해서 이것을 우리는 가지고 이 세상에 왔지마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것은 정말 어떻게 해서 부모의 뱃속을 통해서 이 육체를 이 세상에 나게 함으로 해서 이 몸뚱이 주인공을 우리는 갖고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것을 정말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서 이 '참나'를 바로 깨달으면 바로 이 육체로써 성불(成佛)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다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을 깨달음으로 해서 부처님이 되셨고 역대조사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다 이 육체 속에 들어있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하는 우리 주인공.

정말 이것은 우리는 알 수가 없고 해부를 해도 볼 수도 없고 아무리 박사가 되어서 연구를 해도 이것은 현미경이나 아무리 그걸로 조사를 해봐도 이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


이 육체는 지수화풍 사대(四大) 기운으로 뭉쳐서 이루어졌지마는 이 육체는 대단히 소중하고 육체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 육체는 오래 살아봤자 백 년 이쪽 저쪽에 다 결국은 죽어서 화장을 하거나 땅에다 묻게 되는데, 이 육체를 가지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보약을 먹는다 해도 백 년, 이백 년 못 삽니다.


결국은 이 몸뚱이는 살 만큼 살면 늙어서 결국 병들어 죽게 되는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 나의 자성, 나의 심성 이것은 불에다 넣어도 타지도 않고, 죽는다 해도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한 물건, 이 자성 자리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이 허망한 육체가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조사가 될 수도 있고, 우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자성의 부처님을 닦고 깨달은 사람은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것이고, 부모의 혈육을 받아서 이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난 진짜 은혜를 갚는 길은 나의 주인공, 자성을 깨닫는 길이 최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가 지금 60억이니 모다 이렇게 인구가 많지마는 이 최상승법—내가 나의 주인공, 나의 자성을 깨닫는 공부, 이 길을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것을 닦지 않고 깨닫지 아니하면 우리가 소나 개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배고프면 밥먹고 변소에 가고, 기분 나쁘면 골내고 마음에 좋은 일이 있으면 웃고 이렇게 사는데 그것은 개도 그럴 수가 있고 소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참나, 주인공을 찾는 공부는 축생들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으로 태어나야 참나를 찾아서 이 중생이 성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앞으로 살아봤자 백 년 뒤에는 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정법(正法)이 있는 줄을 알고, 이 정법을 ‘이뭣고?’를 통해서 수행을 함으로써만이 무상(無常)을, 이 허망하고 무상한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계에 많은 종교가 있지마는 불교가 어째서 위대하고 소중하냐 하면은 ‘참나를 깨닫는 법’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면서 명색이 불교 신도라고 하면서 ‘참나를 찾는 공부’를 아니하면 불교를 옳게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나를 깨닫는 방법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우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눈을 통해서 보는 그 찰나,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는 그 찰나, 그 찰나 찰나를 그냥 범연히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에 즉(卽)해서 바로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자기의 주인공을 찾는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인데.

참선 공부는 정말 간단하고도 쉬운 것인데, 사람 사람이 그것을 철저하게 닦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습니다.


이 육체는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 있어서 태어난 사람은 하루하루 살다보면은 10년 2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이 지나면 결국 늙어서 죽게 되는데 그것은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피할 수가 없고, 아무리 권리가 많아도 못 피하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이것을 피할 수가 없는데, 바로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입니다.


그러면 ‘이뭣고?’를 하면은 2백 살 3백 살 사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육체는 결국은 늙어서 70세 80세 백 살 되면 거의가 다 죽어 가는데, ‘이뭣고?’하고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늙어서 죽게 되더라도 죽는 그 찰나까지도 ‘이뭣고?’하면서 죽는다면 죽음이 그렇게 무서울 것도 없고 죽음이 바로 해탈(解脫)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를 찾는 ‘이뭣고?’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12초)




(2)------------------


세상에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명예를 구하는 일, 재산을 구하는 일, 사업을 하고 모다 일생을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있는데 그 일도 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이고, 일신을 유지하고 가정을 유지하고 회사를 유지해 나가는데 다 성의껏 해야 하는데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아도 결국은 늙어서 허망하게 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 가는 것이 중생인데,

비록 그 무상 속에서 속이 상할 때도 그 속상하는 일에 빠져 가지고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면 점점 속이 상하는데,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도 바로 ‘이뭣고?’ 바로 자성의 마음 부처를 찾는 그러한 생활이 습관화가 되고 그것이 생활이 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한다고 해서 안 죽는 것은 아닌데,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해서 숨이 넘어갈 때도 자식 걱정, 재산 걱정, 집안 걱정,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속에서 바로 ‘이뭣고?’를 하면서 딱 숨을 거두면 그 사람은 죽음이 하나도 두려울 것도 없고, 죽음이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는 길이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으로 가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60억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 정법을 믿고 이 최상승 참선법을 믿고 마음의 부처, 자성을 찾는 그런 수행을 살면서 무상한 속에서도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청신사 청신녀, 신남신녀 여러분!

산승(山僧)도 이제 백 살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앞으로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할런지 그것은 알 수가 없으나 내가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은 오직 이 세상에서 정말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고 등한히 하지 않고 항상 열심히 해야 할 일은 ‘나의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박수)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깊이 명심하고 당장 이 자리로부터서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설사 목숨이 다하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참나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는 뜻으로 박수를 치신 것으로 산승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여러분은 이 산승의 간곡하게 부탁드린 말씀을 정말 마음속 깊이 명심하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겠다고 하는 뜻으로 박수를 열렬히 쳐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로형탈(塵勞逈脫), 생사해탈 문제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은 아니고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인데 눈으로 무엇을 보다가 깜박 잊어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다가 잊어버리고,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잊어버려서 못하지, 어렵고 복잡해서 못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쉬웁고도 간단한 문제이지마는 할려고 열심히만 하면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밥먹고 옷입고 잠자고 웃고 울고 살아가는 인생이 앞으로 백 년 못가서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다 이승을 떠나게 되지마는 그때가지, 지금 이 순간부터서 그때까지라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는—잊어버려서 못하고 깜박깜박 잊어버리지마는, 자꾸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상할 때도 ‘이뭣고?’ 하다가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이뭣고?’가 떠억 되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속상하는 것을 아무리 옆에서 달래고 '그러지 말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그러면—속상하는 것이 속만 상하고 말면 육체 건강에만 나쁘되 아무 돌아오는 것은 없는데, 속상할 때에도 ‘이뭣고?’를 하면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자성의 부처님을 깨닫는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하는 방법을 진짜 믿고 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이 무상한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마는 여기서 성불로 가는 길이 자기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손과 발을 가지신 사람이셨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셨으니까 부처님이 되신 것이지, 부처님도 내나 밥 잡숫고 잠자시고 다 똥누고 오줌누고 그렇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우리도 비록 사바세계에 말세에 태어났어도 ‘이뭣고?’만 열심히 하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해서 자성의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이 사바세계가 바로 부처님이 살아계신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를 생사윤회의 그런 길로만 생각하고 그 속에서 살다 죽으면 우리는 불교를 믿는 본의가 어디가 있습니까?

비록 말세에 태어났고 이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사람의 몸을 받았으나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하면 이 사바세계가 바로 비로자나 법신불이 딱 상주(常住)해 계신 불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왜 나 한 사람이 ‘이뭣고?’를 한다고 해서 사바세계가 왜 불법세계(佛法世界)가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있을런지 모르나, 이 우주법계가 있어도 내 한 사람이 없으면 우주법계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함으로 해서 이 사바세계가 바로 부처님이 살아계신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인식를 하고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해야만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육체를 받아난 본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사바세계가 언젠가는 무너질 때가 오겠지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이 무상한 사바세계가 불국 정토(佛國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불국 정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불국 정토가 제대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세에 태어났고 이렇게 살지마는 이렇게 최상승법 법문을 말씀을 드리고 이 말씀을 듣는 여러 사부대중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에 안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정법을 만나서 참나를 깨달아 가지고 성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요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요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욕계, 색계, 무색계 이 우주법계에 생사 진로(塵勞)가 바다와 같고 허공과 같이 그렇게 넓고 한이 없지마는 그리고 무량겁 수억만 년 전부터서 미래제(未來際)로 몇억만 년 뒤까지 생로병사와 성주괴공이 끝이 없겠으나,

그것은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다. 그것이 모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생각에 따라서 그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말이여.


우주법계가 존재해도 그 자체는 존재하는 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동쪽이다 서쪽이다 남쪽이다 북쪽이다 우리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춘하추동으로 인식을 함으로 해서 그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체처 일체시에 무심하고 일체 생각이 끊어지면 우주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법계가 있은들 무슨 생각이 있습니까.

흥망성쇠와 성주괴공은 그것이 한마디로 말해서 무상한 것인데 우리는 그 무상한 속에 살아 있으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보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어도 듣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그것을 듣고 속을 상하고 슬퍼하고 그럴 것이 아니라 바로 ‘이뭣고?’로 자기 자성의 부처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세계나, 인간 세계나, 아수라 세계나, 지옥이나, 아귀, 축생, 육도(六途)가 있는데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므로 해서 이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듣게 되고 그것을 닦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는 비록 말세에 태어났고 무상한 세계에 태어났지마는 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이뭣고?’를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챙기고 또 챙기고 해서 알 수 없는 ‘이뭣고?’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되면 우리는 반드시 화두를 의단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산승이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데 여러분은 정말 이것을 열심히 해주시리라고 산승은 믿고 이 자리를 내려가고자 합니다.(21분13초~40분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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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尙廣錄」 제27권(上)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정토(淨土) : 「깨끗한 세계」란 말인데, 성인(聖人)들만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모든 더럽고 흐리고 험하고 슬픈 것이 전혀 없고, 오직 깨끗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기만 한 세계를 가리킴이다。이런 곳도 하도 많지마는 서쪽에 있는 극락 세계가 으뜸이 된다.


이런 정토에 가서 태어나는 길에 대하여 <유마경>에는 여덟 가지 길이 있다고 하였다.

1. 중생을 도와 주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또한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생을 달게 받는 것。2. 모든 중생에게 대하여 평등하게 겸손한 것。3.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는 것。4. 모든 경전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5. 대승법을 믿는 것。6.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는 것。7. 제 허물만 살피고 남의 잘못을 생각지 않는 것。8. 늘 온갖 공덕을 애써 닦는 것들이라 하였다.

또한 정토의 종류가 17가지나 있다고 하여, 곧은 마음(眞心), 깊은 마음(深心), 여섯 가지 건너는 법(六波羅蜜),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네 가지 거두어 건져 가는 법(四攝法), 십선법(十善法) (십선법은 하나로 잡는다)을 들어서 정신상의 정토를 말하였다。그리하여 마음을 닦고 보면 우리의 사바세계가 곧 정토임을 가르쳤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해탈(解脫) ;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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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불국정토(佛國淨土) ; 부처님이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정토(淨土).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주요 내용]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일체유심조 / 자성불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효도 / '참나'를 깨달으면 바로 이 육체로써 성불(成佛)을 하게 되는 것 /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불교를 옳게 믿는 사람,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주요 문구]


불법(佛法)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우주법계를 정토(淨土)로 만드는 근본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고, 어떻게 닦고, 어떻게 깨달으고, 어떻게 써 나가느냐에 따라서 온 세계가 극락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세계도 될 수가 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서 '참나'를 깨달으면 바로 이 육체로써 성불(成佛)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다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을 깨달음으로 해서 부처님이 되셨고 역대조사가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참나, 주인공을 찾는 공부는 축생들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으로 태어나야 참나를 찾아서 이 중생이 성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보는 그 찰나,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는 그 찰나, 그 찰나 찰나를 그냥 범연히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에 즉(卽)해서 바로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항상 자기의 주인공을 찾는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함으로 해서 이 사바세계가 바로 부처님이 살아계신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인식를 하고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해야만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육체를 받아난 본의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사바세계가 언젠가는 무너질 때가 오겠지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이 무상한 사바세계가 불국 정토(佛國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불국 정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불국 정토가 제대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세에 태어났고 살지마는 이렇게 최상승법 법문을 말씀을 드리고 이 말씀을 듣는 사부대중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에 안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정법을 만나서 참나를 깨달아 가지고 성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No.789)—2018(무술)년 동안거해제(18.03.02) (34분)

(1) 약 20분. (2) 약 14분.

(1)------------------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하니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무술년 음력 정월 15일 동안거(冬安居) 해제(解制)일입니다.

지난 석달 동안 정진하느라고 모두 애를 쓰셨습니다.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요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다.

죽음이 두려운 늘그막에사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상광음(頭上光陰)은 전두비(轉頭飛)다, 머리위에 광음(光陰)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구나.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이렇게 시간은 화살같이 지나가고 있고, 우리 자신들은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한 시간 한 시간 다가가고 있는데 아무리 죽음이 싫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래보았자 시간은 우리를 위해서 기달라 주지를 않습니다.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록 시간을 붙잡을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한탄하고 원망해 봤자 그렇게 해서 눈에 피눈물이 나도록 울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서 무상(無常)을 참으로 느끼고 깨달으고 일 분 일 초 지내간 것이 우리가 죽음을 향해서 일 초 일 초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뼛속 깊이 느낀다면은 바로 그때 그 장소를 놓치지 말고 ‘이뭣고?’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한다고 해서 죽음을 면할 수가 있느냐? 시간을 막을 수가 있느냐?

그것은 아니지마는 우리가 할 일은,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하늘같이 쌓다 하더라도 죽음은 막을 수가 없고 면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죽음을 우리가 대항해 나가는 길은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뭣고?’는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은—일 초 일 초 죽음을 향해서 가는 이 처지에 그것을 이겨 나가는 길, 그래도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은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평상시 이만큼 건강할 때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그리 가서 거기에 따라가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습니다.

다맛 눈으로 무엇을 보는 순간, 귀로 무엇을 듣는 순간 그리 정신을 팔리면 무상 속에 끌려나가는 것뿐이고.


바로 눈으로 무엇을 볼 그 찰나에 바로 ‘이뭣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그 때와 장소를 범연(泛然)히 지나치지 말고 바로 그때를 즉(卽)해서 ‘이뭣고?’

자꾸 자기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은 그것밖에는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별로 재미도 없고 만날 해봤자 무슨 결론이 날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이뭣고?’하고 자기가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이 공부밖에는 달리 다른 길이 없고, 다른 길은 가봤자 빤하기 때문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는 그 찰나에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항상 때와 장소를 즉해서 바로 참나를 찾는 ‘이뭣고?’ 이것이야말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다행히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참나를 찾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 그것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이뭣고?’

누가 나를 욕을 하더라도 그 욕에 의해서 속이 상하지 말고, 욕 들을 그 찰나에 나는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욕하는 것이 나를 찾게 하는 채찍이 되고, 참나를 찾게 하는 부처님 법(法)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 말세에 우리가 태어났다 하더라도 이 참나를 찾는 최상승법을 듣고 믿고, 그리고 ‘이뭣고?’를 실천하면 그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이 육체를 받아났는데 우리가 부모님께 해 드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나를 낳아서 키워서 가리켜서 이만큼 사람 노릇을 하게 해 주신 부모의 은혜가 소중하지마는 그 부모의 소중한 은혜를 갚는 길은 나를 낳아주신—이 육체를 낳아 주심과 동시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도 함께 우리는 받아났습니다.

그런 소중한 이 몸뚱이고, 이 소중한 자성 부처님을 가지고 있는 이 몸뚱이는 부모가 낳아 주셨지마는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은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거나 좋은 옷을 해 드리는 것으로써 만분의 일도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법(正法)을 믿고 항상 ‘이뭣고?’를 찾음으로써만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도리가 그속에 들어 있고, 모든 성현의 은혜를 갚는 길도 거기에 있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도 내가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길,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그것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 이 공부는 끝이 없지마는 이것은 내가 해야지 다른 사람이 내 대신 해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셔서 이만큼 살게 해주시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믿을 수 있게 해주시고.

여기에 모이신 머리를 깎은 스님네나 머리을 안 깎은 처사님이나 거사님도 다 부모님으로 인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님의 은혜는 다른 길로 은혜의 백분의 일도 못 갚습니다.

부모의 그 고마운 은혜를 갚는 길은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 ‘이뭣고?’를 함으로써만이 생사해탈 할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는 게 무엇이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라도 차츰 자라서 늙어서 병들어 죽기 마련인데, 그동안에 그럭저럭 살다보면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고 해서 결국은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 죽음을 향해서 가게 되는데, 바로 그래도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를 찾는 ‘이뭣고?’야말로 이것은 최상승법이요, 내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벼슬을 해봤자 그것을 내생에 하나도 관(棺) 속에 가지고 가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 몸뚱이는 60세 70세 80세 90세 되다 보면 결국은 육체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죽음을 만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이 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생사해탈하는 길을 알았고 믿었고,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은 사람은 죽음이라고 하는 것, 생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한테는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죽고 육체로 이백 년, 삼백 년 사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살 만큼 살면 가는데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그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숨이 마지막 딱 끊어질 그 찰나에도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하는 사람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러면서 숨을 딱 거두면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 원(願)에 따라서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인도환생을 하게 되면 그런 대로 좋고, 도솔천내원궁에 가면 그런 대로 좋고, 또 극락세계에 가게 되면 그것도 또한 괜찮습니다.

어떠한 소원으로 사느냐 하는 것은 각자 자기의 신심과 원력에 달려 있습니다.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생사는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살 만큼 살다가 마지막 숨 거둘 때도 ‘이뭣고?’ 하면서 숨을 거두면 그 사람은 극락세계가 아니면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참나를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한 사람이라고 해서 육체로 이백 년, 삼백 년 사는 것은 아니지마는 살 만큼 살다가 갈 때라도 ‘이뭣고?’를 한 사람은 생사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숨 꼴딱 넘어갈 때도 ‘이뭣고?’ 하면서 숨을 거두면 틀림없이 그 사람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날 것입니다.

최상승법인 내가 나의 자성불을 찾는 이 참선(參禪) 공부는 생사를 해탈하는,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처음~19분30초)




(2)------------------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백년광음(百年光陰)이 전두비(轉頭非)다.

정말 이렇게 말을 듣고 걸어다닐 수 있고, 밥 먹고 옷 입고 이러는 이러한 힘이 있을 때, 이럴 때 자기의 자성불을 잘 밝히라 그말이여.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라 그말이에요.


백년광영(百年光影)이 전두비(轉頭非)여. 우리가 오래 살아봤자 백년 정도 사는데 그 백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계신 여러분들은 다 칠팔십, 머지않아서 또 백세가 가까워집니다마는 이 시간에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를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아봤자 그것으로 생사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맛 ‘이뭣고?’밖에는 없습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는 찰나에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 ‘이뭣고?’ 속이 상할 때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 ‘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릴 것이 없습니다.

속으로 항상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것이, 이것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 열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산승(山僧)이 이렇게 구십이 넘어서 늙어가지고 여러분께 정말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건강하실 때에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고 이 말씀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허수히 듣지 말고, 앉아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하더라도 그말을 인해서 속이 상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는 말이 바로 나로 하여금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하게 해주는 법문(法門)이 되는 것이여.


비록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생로병사가 있고, 성주괴공이 있고—이 육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주법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지마는 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은 돈 가지고도 안 되고, 명예나 지위 부귀 권리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이 속에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이뭣고?’ 항상 자기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것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명예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맛 이만큼 건강하면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수도장(修道場)인 것입니다.


이 말세에 우리가 몸을 받아서 태어났지마는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나서 이렇게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말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또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인연을 갖은 여러분들은 정말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우리는 비록 말세라고 해서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이 육체를 받아난 사람은 결국은 죽게 되는데, 죽을 때도 ‘이뭣고?’ 이러면서 숨을 딱 거두면 숨 떨어지자마자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생을 살면서 본의 아니게 여러가지 업(業)을 지어왔을 것입니다마는, 업을 지어왔다 하더라도 그 업 속에 업으로 인해서 윤회에 떨어지지 않고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서 미륵 부처님을 친견하고 다시 인도환생을 할 수 있다면은 인도환생을 하면 좋고, 도솔천내원궁에서 영원히 살아도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그 길이 내가 내 자신의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산승이 구십이 넘어서 앞으로 얼마 동안 이러한 말씀을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께 말씀을 드릴 기회가 몇번이나 있을란가 그건 알 수가 없으나,

내가 여러분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은 이것밖에는 여러분께 해 드릴 말씀이 없고, 이렇게 해 드림으로 해서 이 말씀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면 여러분은 받드시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나시게 되리라고 나는 믿기 때문에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이뭣고?’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산승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옳다고 믿고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을 하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대중 손들고, 박수>


여러분이 정말 손을 들고 박수를 치신 그 뜻이 진심에서 나오신 행동이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의 그 마음을 믿습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살런지, 50년을 더 살런지 사람마다 다 연세가 연령이 다르지만 이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내가 나의 자성(自性) 부처님을 찾는 길이 최고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이 그 말을 옳다고 믿고 손을 들고 박수를 쳐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소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로다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우리가 이만큼 말귀를 듣고, 걸어다닐 수 있고, 밥 먹고 옷 입고 이만큼 건강이 있을 때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라 이말이여.

백년 세월이라는 것은 화살처럼 지금 날아가고 있으니, 시간은 아무리 기운이 세거나 권리가 있거나 돈이 많아도 시간은 붙잡을 수가 없어.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 말씀을 깊이 명심 (안) 하고 ‘이뭣고?’을 열심히 안 하시면 후세에 가서 아무리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아까 손을 들고 박수를 쳤기 때문에 여러분은 산승의 말을 깊이 명심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로애락, 모든 장소 모든 시간에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반드시 정법에 의해서 생사해탈을 해서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또 만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19분31초~33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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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162.

〇怕死老年에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파사노년(怕死老年)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글에 '이름 구할 젊을 적 공자님만 따랐고, 죽기 싫은 늙으막 부처님께 나가네(求名少日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고 하였다.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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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허수히 ; 짜임새나 단정함이 없이 느슨한 데가 있게.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 · 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주요 내용]


(게송)파사노년친석가~ / 자기가 자기의 자성불을 찾는 ‘이뭣고?’밖에는 생사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없다 / (게송)호향차시명자기~.




[주요 문구]


돈을 아무리 많이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하늘같이 쌓다 하더라도 죽음은 막을 수가 없고 면할 수가 없는데, 그래도 죽음을 우리가 대항해 나가는 길은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열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사는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살 만큼 살다가 마지막 숨 거둘 때도 ‘이뭣고?’ 하면서 숨을 거두면 그 사람은 극락세계가 아니면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참나를 찾는 ‘이뭣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산승(山僧)이 이렇게 구십이 넘어서 늙어가지고 여러분께 정말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건강하실 때에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고 이 말씀을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788)—전강선사 43주기 추모재(18.1.18) (11분)

약 11분.

편안하게 모두 앉으십시오.

오늘 전강 영신 대종사의 43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비구 · 비구니 · 사미 · 행자 · 청신사 · 청신녀 여러 도반들이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강 영신 대종사는 16세에 출가하셨고 23세에 견성(見性)하셨으며, 당시 6대 선지식(善知識)과 법거량(法擧揚)을 해서 모두 인가(印可)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대선사의 법맥(法脈)을 이으셨습니다.
33세에 젊은 연세로 법보종찰 양산 통도사 보광선원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셨으며, 그 뒤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77세를 일기로 열반(涅般)에 드셨습니다.

후학을 위한 7백 여개의 육성 녹음법문(錄音法門) 테이프를 남겨 주셨습니다.

과거에 부처님 이후 가섭존자로부터서 달마스님, 그 뒤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대대로 잘 법맥을 이어오셨지마는 과거에는 녹음법문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서 문자로 법어가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마는 육성으로 과거의 조사들의 법문을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전강 조실 스님은 상법 수좌(首座)가 정성을 다해서 녹음을 해놓았기 때문에 방금 우리가 들은 바와 같이 조실 스님의 육성 법문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습니다.

역대 선지식이 계셨기 때문에 조실 스님이 그 법을 이어받을 수가 있었으나 다행히 우리는 조실 스님이 남겨 놓으신 육성 녹음테이프를 통해서 생생하게 조실 스님의 육성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법문에 의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화두(話頭)를 들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 무엇고?’ 이렇게 일 초 일 초를 허수이 지내지 않고 화두를 들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찾는 공부를 게을리 아니한다면...

우리가 불법(佛法)을 믿는 본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내 자신이 내 몸안에 우리의 자성(自性)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러면서 자기 안에 불성이 있는 줄 모르고 산다면 불법을 믿는다고 할 것도 없고.
다행히 우리는 비록 말세(末世)가 되었다 하더라도 신심(信心)으로 불법을 믿고, 이 자리에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여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같이 듣게 되며, 같이 들으면서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사부대중 여러분!

「우리의 자성은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가지고 있는 자성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세가 되도록 우리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한 것은 부처님 탓이 아니고, 역대조사의 탓이 아니고, 나 자신이 열심히 나 자신을 찾는 공부를 게을리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비록 이 말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위시(爲始)해서 전국의 여러 선원에서 사부대중이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 말세가 되었다고 한탄할 것이 없고,
말세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열심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정진을 한다면 말세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시간은 일 초, 일 초 쉼이 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무상한 속에서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으며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그렇지마는,
그 계절에는 춘하추동, 우리 사람에게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지마는 한쪽으로 보면은 무상한 것이지마는 그 무상한 속에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지금 말법(末法)이라고 조금도 한탄할 것이 없고.

비록 부처님 열반하신 뒤에 삼천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열심히 정진한다면 지금 바로 부처님이 살아 계시고, 역대조사가 살아 계신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자성 부처님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대가 천 년, 이천 년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열심히 활구참선을 한다면 그때가 바로 정법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어서 한탄할 겨를도 없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기면서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하는 속에 빠져있지 말고, 그 찰나를 발판으로 해서 자기를 찾는 ‘이뭣고?’로 돌아온다면 우리 앞에 진행되고 있는 춘하추동이나, 우리가 전후좌우 이웃집에서 볼 수 있는 생로병사의 현장이 우리가 바로 나 자신을 깨닫는 정법도량(正法道場)이 되는 것입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정법을 믿고 올바르게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는 사람은 말세가 오히려 무상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참나를 찾을 수 있는 도량이 이보다 더 좋은 도량이 없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 사미 · 행자 · 청신사 · 청신녀 여러분!

오늘 조실 스님 43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이 법당에서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열심히 정진을 해서 여러분도 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성의 부처님을 깨닫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인사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다.(처음~10분50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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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만공 대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을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온,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의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위시하다(爲始--) ; (주로 ‘위시하여’, ‘위시한’의 꼴로 쓰여)여럿 중에서 어떤 대상을 첫자리 또는 대표적인 존재로 삼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말법(末法 끝 말/부처님의 가르침 법)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787)—2017년 동안거 결제 및 용화선원 중창불사 낙성식(17.12.2) (30분)
(1)------------------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요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요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다.
인생이 오래 살아봤자 백년인데, 그 백년이라고 한 것이 금방 지나가버리고 잠깐 동안에 지나가 버린다 그말이여.
막파광음(莫把光陰)을 당등한(當等閒)이다. 그러니 시간을 절대로 그럭저럭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 것이다.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만약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서 절절매면서 고문을 받지 않을라거든,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다. 바로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철저히 참(參)하야 뚫을지니다.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백년 살기가 어려운데 그래봤자 그 백년이라는 세월이 잠깐, 뭐 하는 것 없이 지나가 버린 것이여.

그러니 특히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의지해서 참나를 깨닫는 수행하는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정말 시간이 1분 1초, 하루 이틀, 시간 지내가는 것을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철저하게 한 생각, 두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입으로 맛을 보거나, 육체를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그때 그때 바로 거기에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무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사람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1분 1초를, 한 생각 한 생각을 놓치지 말고, 거기에 즉(卽)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 가는 사람이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철저하게 해서 결정코 이 몸 이렇게 살아 있을 때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돌이킴으로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한 달 두 달을 그렇게 살고, 앞으로 석 달 동안 삼동결제(三冬結制)를 하는데, 석 달 동안 어찌 보면 긴 시간이지만 금방 내년 정월 보름날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안에 석 달 동안을 어떻게 지내느냐? 어떻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본참공안을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느냐?

각자 그것을 철저히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제대로 발심(發心)한 사람이요, 제대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요.
1분 1초를 그럭저럭 지내면 하루 이틀이 그럭저럭 지내가게 되고, 하루 이틀이 그럭저럭 지내가는 사람은 한 달, 두 달도 금방 지내가고,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면 백년을 산다고 해봤자 금방 죽음의 문에 도달하고마는 것이여.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문초(問招)를 받고 고문을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몸을 받아 났을 때, 정법(正法)을 만났을 때 철저하게 한 생각을 단속할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염라대왕 앞에서 겁날 것이 없을 것이여.
우리는 언젠가는 금방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마는 하루하루를, 1분 1초를,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만 하면 염라대왕 앞에 가서 겁날 것이 없을 것이여.

이 몸뚱이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살아봤자 백년 이쪽저쪽에 다 몸을 버리고 죽어 가는데, 죽음을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는 없는데, 죽음을 맞이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끌려가서 그때 가서 후회하고 한탄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 호흡할 때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살면 죽음이 돌아와도 마지막 숨 끊어질 때까지 ‘이뭣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더라도 그 앞에서도 ‘이뭣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네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느냐?” 반드시 질문을 하고 고문을 할텐데,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뭣 했느냐?” 물어 보면, 어떤 스님은 “놀고먹지는 안 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한다고 그럽니다.

“놀고먹지 않으면 무엇을 했느냐?”
“‘이뭣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뭣고?’가 되느냐?”
“지금도 ‘이뭣고?’ 하고 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끌려가봤자 겁이 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몸을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살면 팔구십, 혹 백살 넘은 사람도 있으나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이 돌아온다 해도 겁날 것이 없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다고 해봤자 겁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 다행이고, 설사 확철대오를 못했다 하더라도 ‘이뭣고?’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떠억 ‘이뭣고?’
이 한마디를 열심히 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두려울 것도 없고,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온 세계가 전쟁이 일어나서 불바다가 된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어.

마지막 숨 끊어질 때까지도 ‘이뭣고?’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가 있는데,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열심히 한 사람은 성주괴공이 바로 있는 온 세계가 우리의 도 닦을 수도장(修道場)이고, 이 몸뚱이가 별로 결국 생로병사를 면할 수 없으나 생로병사 그 1초 1초가 참나를 찾는 수행장이요,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코로 냄새 맡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끼는 이 모든 것이 그 찰라찰라가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道場)이 되고마는 것이여.

그러니 어피차 온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이 몸뚱이를 받아난 사람은 생로병사를 면할 수는 없으나, 성주괴공이 있는 온 세계는 우리가 도 닦을 도장이고, 생로병사가 있는 이 육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도(修道)해서 참나를 깨닫는 이 중요한 몸뚱이여.

이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이 몸뚱이를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고 그래봤자 결국은 늙으면은 병나고, 병나면 죽게 되는데, 염라대왕 앞에서 “니가 살아 있을 때 뭣했냐?”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돈을 벌어놨다고 부자라고 해서 염라대왕이 알아주지도 않고, 높은 벼슬을 했다고 해도 염라대왕 앞에 내놔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겁없이 떳떳하게 내놓을 것은 ‘이뭣고?’뿐입니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니가 살아 생전에 뭣했느냐?”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할 수가 없고, 이 몸뚱이를 타고난 사람은 생로병사를 면할 도리는 없습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몸뚱이를 가진 이상은 경우에 따라서 병이 날 수도 있고, 병이 나면 괴로울 수도 있으나 그 찰나찰나가 내가 ‘이뭣고?’해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발판이요, 좋은 기회요, 좋은 수도장이요, 법문(法門)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여러 도반들께 내가 구십 세가 되도록 믿고 의지하고 살아 온 그 요긴한 대목을 여러분께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이 몸뚱이를 가진 사람은 결국은 죽음을 면할 수 없으나,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생로병사, 성주괴공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이 전부 내가 참나를 깨닫게 한 좋은 수도장이요, 법문이요, 선지식(善知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읊은, 인생이 오래 살아봤자 백년 사는데, 잠깐 지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머지않아서 곧 백년 한(限)이 차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소중히 알아야 하는 것이여.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말고, 잊어버렸다고 해도 금방 돌이켜서 ‘이뭣고?’

이것이 염라대왕 앞에 가서 떳떳하게—“니가 살아 있을 때 뭣을 했느냐?” 염라대왕은 돈 많이 번 사람, 권리가 높은 사람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염라대왕 앞에 떳떳하게 내놓을 것은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이뭣고?’를 항상 챙기고 또 챙기고, 속이 상할 때도 그 속상한 것을 생각하면 점점 속이 상하는 거고, 괴로울 때도 괴로운 것만 생각하면 점점 괴로운 일 면할 길이 없는 것이여.
‘이뭣고?’ 천하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한마디는 이것이 주문(呪文)도 아니고, 간단한 한마디 의심(疑心)이지마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는 요긴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판치생모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자기가 받은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챙기고 또 챙겨서 나중엔 챙기지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천지가 무너진들 걱정할 것도 없고, 설사 일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겁이 날 것이 없습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는 여러 도반들은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을 할 것을 부탁을 하면서 오늘 정유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니 내가 금년 겨울을 넘길런지, 사주(四柱) 본 사람은 금년엔 내가 죽으리라고 그러는데, 죽고 사는 것은 내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여러 도반들에게 이런 간곡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나는 대단히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깊히 명심하고 열심히 정진을 하겠다고 마음으로 결심한 분을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처음~20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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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기(佛紀) 2561년 정유년 음력 10월 보름날 결제날인데, 동안거 결제날입니다.
결제날을 의해서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 말씀을 이대로 끝나고, 오늘이 용화사 중창불사(重創佛事) 낙성식(落成式)을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능파 스님—능파 스님은 전강 조실 스님 상좌(上佐)고, 나와 사형(師兄) 사제지간(師弟之間)인데 일생 동안을 잘 수행을 하고 살아오다가 오늘이 사후 5재날입니다. 능파 스님을 위해서 오늘 5재 법요식을 하니 여러분들도 간곡한 마음으로 5재의 법요식에 경건한 마음으로 5재를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용화사 중창불사 낙성식이 있으니, 앞으로 사진을 찍게 되니 한 분도 빠지지 말고 사진 다 함께 찍어주시길 부탁을 합니다.


백계천방지위신(百計千方只爲身)이요  부지신시진중진(不知身是塵中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하라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계천방지위신(百計千方只爲身)이요. 백 가지 계획과 천 가지 방법이 인생이 살아가면서 다못 이 몸뚱이를 위해서 먹고 입고, 돈도 벌고 일도 하고 그런데, 이 몸뚱이를 엄격히 돌이켜보면은 티끌 가운데 티끌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티끌이 모여가지고 이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는데, 분석을 해보면 머리끝에로부터서 발톱 끄터리까지 티끌이 모여가지고 거기에 다맛 혈관이 통해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나 분석을 해보면 티끌이 모인 뭉텅이에 지내지 못해.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여. 머리에는 오십 세, 육십 세가 되면은 흰머리가 나는데, 그 흰머리 아무 말이 없지마는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여, 염라대왕이 ‘얼마 안 있으면은 너를 데리러 갈테니 그리 알아라’고 하는 염라대왕이 보내온 소식이다 그말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향엄 선사가 남겨 놓으신 게송(偈頌)인데,
이 몸뚱이를 받아 나서 온갖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하고 사업도 하고 일을 하는데, 그래봤자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 네 가지의 그 여러 가지 재료가 모여가지고 이 몸뚱이를 형성하고 있으나,

오십 살, 육십 세 되다보면 귀 위로 뒤로 흰머리가 하나씩 둘씩 나는데,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고 염라대왕 황천에서 ‘너를 언젠가는 데리러 갈테니 정신을 차려라’하는 황천(黃泉)에서 보내온 소식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흰머리가 나기 전부터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본참공안을 놓치지 않도록 단속을 잘해 놓으면 흰머리가 나와서 그때 가서 걱정하고 겁낼 필요가 없는 거여.

열심히 ‘이뭣고?’를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이 독로해서 항상 참나를 찾는 이 공부를 등한히 아니한 사람은 흰머리가 나도 걱정할 것 없고, 설사 죽음을 맞이해서 숨이 가빠진다 하더라도 그때도 의단이 독로하도록 화두를 들면 숨이 끊어진들 걱정할 것이 없어.

염라대왕 앞에 가서 끌려가 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 물어봤을 때 겁날 것이 없어.
“‘이뭣고?’하다 왔습니다”

“이뭣고가 무엇이냐?”
“이 몸뚱이 끌고다니고 오늘 여기 대왕 앞에 왔으나 나는 ‘이뭣고?’를 하니 겁날 것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나를 알아서 천당에를 보내던지, 지옥에를 보내던지, 축생으로 보내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하도록 보내던지 염라대왕이 알아서 하십시요”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겁이 안 나도록 하려면 이렇게 살아 있을 때 단전호흡(丹田呼吸) 하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시고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입으로 다하지 못한 말씀을 이 주장자(拄杖子)에게 맡기고 내려가겠습니다.(20분30초~29분18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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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년지시잠시간~’ ; [한가로운 도인의 길—나옹화상법어집](김달진 역주,세계사) p185에 있는 ‘경세(警世 : 세상을 경계함)’ 참고.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절절매다 ; ①어찌할 줄 몰라서 정신을 못 차리다. ②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눌리어 기를 펴지 못하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참(參)하다 ; 참구(參究)하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문초(問招 물을 문/부를·결박할 초) ; 물어보기[問] 위하여 불러옴[招]. 죄나 잘못을 따져 묻거나 심문(審問 자세히 따져 물음)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어피차 ; 어차피(於此彼).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귀결(歸結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그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되는 바.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귀결되는 바.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수행(修行 닦을 수/행할 행) ; ①궁극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것. 행하는 것. ②오로지 한 생각에만 집중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수도(修道) ;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함.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주문(呪文) ; ①어떤 바람이나 원망을 실현시킨다고 믿으며 외는 글귀. ②다라니(陀羅尼)의 글.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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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佛紀) ; 불가(佛家)에서 쓰는 연기(年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다.
*중창(重創 거듭할 중/만들 창)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낙성식(落成式 준공할 낙/이룰 성/의식 식) ; 건축물이 완성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법형(法兄)이라고도 한다.
*사제(師弟) ; ①한 스승의 제자로서 자기보다 나중에 계(戒)를 받은 스님을 일컫는 말. 법제(法弟), 제제자(弟弟子)라고도 한다. ②스승과 제자. 사자(師資)와 같은 말이다.
*(게송) ‘백계천방지위신~’ ; 『곤산잡영(崑山雜詠)』에 있는 충막(沖邈) 스님의 ‘취미산거시(翠微山居詩)‘ 25수(二十五首) 중에서 열 번째 게송 참고.
〇百計千般只爲身 不知身是冢中塵 莫欺白髮無言語 此是黃泉寄信人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요 내용]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참선을 하면 생로병사, 흥망성쇠가 두려울 것이 없고, 그것들이 전부 내가 참나를 깨닫게 한 좋은 수도장, 법문, 선지식이다 / (게송)백계천방지위신~ / 흰머리는 염라대왕이 보내온 소식.


[주요 문구]

이 세상에 몸을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살면 팔구십, 혹 백살 넘은 사람도 있으나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죽음이 돌아온다 해도 겁날 것이 없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다고 해봤자 겁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 다행이고, 설사 확철대오를 못했다 하더라도 ‘이뭣고?’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떠억 ‘이뭣고?’ 이 한마디를 열심히 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두려울 것도 없고,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온 세계가 전쟁이 일어나서 불바다가 된다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어.

어피차 이 세계는 성주괴공을 면틀 못하고, 이 몸뚱이를 가진 사람은 결국은 죽음을 면할 수 없으나,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한 사람은 생로병사, 성주괴공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이 전부 내가 참나를 깨닫게 한 좋은 수도장이요, 법문이요, 선지식(善知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몸뚱이 끌고다니고 오늘 여기 대왕 앞에 왔으나 나는 ‘이뭣고?’를 하니 겁날 것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나를 알아서 천당에를 보내던지, 지옥에를 보내던지, 축생으로 보내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하도록 보내던지 염라대왕이 알아서 하십시요”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겁이 안 나도록 하려면 이렇게 살아 있을 때 단전호흡(丹田呼吸) 하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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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86)—2017 동안거 해제(17.2.11) (15분)


약 15분.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이라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가운데에 한  쌀알을 탐착(貪着)하다가 금선대, 금대(金臺) 부처님 세계에 만  동안 먹을  있는 양식을 잃어버리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 실난측(實難測)이여. 생사 문제는 앞으로 팔십 , 구십 ,  세까지 사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실은 생사 문제는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 거고.

심지어는 1 후에도 죽을 수도 있고, 5 후에도 죽을 수가 있어서 그래서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것은 찰나간(刹那間)이라 헤아릴 수가 없어. 그러니 어찌 맹렬히 반성을 하고 급히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지 않을까 보냐.(胡不猛省急回頭)


‘꿈 가운데에 한 톨의 쌀에 탐착한다  말은,  사바세계(娑婆世界) 정말 꿈속의 생활인 것입니다. 생로병사와 빈부귀천 이런 것들이 전부 꿈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이고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지.

그런데  , 백이십 세까지 우리가 살거다하고 마음놓고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참으로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 아니고, 참으로 무상한 것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여.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 이십 , 육십 , 칠십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지내가는 것이 바로 생사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지.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질   속에 생사가 들어있는 것이고,  생사를 정말 무상한  깨닫고,  생사가 무서운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을 아는 사람인 것이여.


우리가 오늘   먹고 이렇게 법당에 와서 법회에 참석을  가지고 이렇게 법을 설하고 법을 듣고 이러고 있지마는 정말 무상한 줄을 확실히 깨닫고,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믿고 이렇게 말을 하고 여러분이 듣고 그러므로써 비록  사바세계가 무상한 세계이지마는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을 하는데,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 수행이고 생활이고 공부인데, 이 공부에 제일 해로운 것이 무엇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물론 그것이 우리 수행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지마는 그보다도  우리 정진하는데 해로운 것은 잡담(雜談) 것입니다, 잡담.


잡담은 누구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아무 생각없이 잡담을 하는 것은 정말 자기에게 아무 이익이 없고,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롭게 하는 거고.


잡담이라 하는 것은 자기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잡담을 듣는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여.  사람의 생각을 잡담을 함으로 해서 생각을 어지럽혀 주고, 잡담을 함으로써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게 되는 것이고.

잡담은 악의(惡意)가 없지마는 자기에게도 해롭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롭고, 특히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은 정말 해로운 것입니다.


잡담을 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10, 20, 30, 1시간, 2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입니다.

악의없이 하는 잡담이 자기의 시간을 뺏어 가고,  듣는 사람의 시간을 뺏어 가고, 시간만 뺏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거든.


그래서 잡담이라고 하는 것은  정법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삼가해야  종목인 것입니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모다 그런 것은 오계(五戒), 십계(十戒)에 들어있지마는,

 잡담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악의 없이 하는 것이 자기를 해롭게 하고 듣는 사람을 해롭게 하고, 자기의 시간을 빼앗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니 정말 수행을 하는 사람은 살생, 도둑질 그런 것은 물론 안 할 것이지마는 잡담은 무심코하는 소리가 그렇게 우리의 정진에 크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는  자리에 올라온 것은 법담(法談)을 하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 아니고 법문은 이미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들었습니다. 더이상 내가 거기다 덧붙여서 무슨 법을 설할려고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고, “잡담을 하지 말자!”


잡담은 자기의 시간을 빼앗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고, 자기의 마음을 혼잡하게 만들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무심코 풀풀풀풀 끝없이 하는  잡담은 대단히 해로운 것이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잡담을 하지 말자!’


이것을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도반들에게 부탁을 하고자  스스로도 잡담을 안 하도록 결심을 하면서 여러분들도  산승(山僧)의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을 깊이 명심하시고 잡담하지 말고,  잡담하는  ,  시간으로 이뭣고?’ 해서  사바세계 무상한 혼탁 세계에 우리가 태어났지마는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참선(參禪)인데.


참선에 아주 해로운 것이 잡담인 것입니다. 잡담은 시간을 빼앗아가고 자기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이니 잡담을 하지 말고,  잡담하는  입으로  시간으로 이뭣고?’ 하자고 하는 이런 간곡한 부탁을 여러 도반들께 부탁하고자 새해 인사로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 분은 전부 손을...(박수)


여러분이 이렇게 박수를 침으로 해서 저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앞으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잡담하는  시간에 이뭣고?’ 하고 정진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기로 나와 약속한 것으로 믿고 이것으로써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환자구의원(患者求醫員)이요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환자가, 끙끙 앓고 있는 환자가 의원을 구하듯이, 어린아이가 배가 고파서 엄마를 생각하고 우는 것처럼 그러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이뭣고?’ 함으로 해서 우리의 목적인 생사해탈(生死解脫)하고 참나를 깨달아서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을 반드시   살아있을  성취를 하기를 간곡히 약속을 하고 부탁을 합니다.(처음~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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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회두(回頭)’ 게송 참고.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찰나간(刹那間 ·짧은시간 /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잡담(雜談 섞일·잡동사니·여러 가지 /말씀·말할 ) ; ①쓸데없이 지껄이는 . ②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

*악의(惡意) ; ①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 ②옳지 않거나 좋지 않은 의미나 의도.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 신도가 지켜야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 있는 것에 ()하지 말라.

*무심코(無心코) ;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이.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 법화(法話) 같은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게송) 환자구의원 영해억모심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朴敬勛 ,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

그렇게 공부를 간절히 지어서 친절한 [친절처親切處 : 불도佛道와 매우 친하게 된 경지]에 이르면, 서쪽에 졌던 붉은 해가 그 이튿날 새벽이 되면 동쪽 산에 떠오를 것이다(반드시 확철대오 할 때가 올 것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주요 내용]


(게송)탐착몽중일립미~ / 잡담하지 말자! 무심코하는 잡담이 우리의 정진에 크게 해를 끼친다 / 이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참선 / (게송)환자구의원~.



[주요 문구]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질   속에 생사가 들어있는 것이고,  생사를 정말 무상한  깨닫고,  생사가 무서운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을 아는 사람인 것이여.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참나를 깨닫는 수행이고 생활이고 공부인데, 이 공부에 제일 해로운 것이 무엇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우리 수행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지마는 그보다도  우리 정진하는데 해로운 것은 잡담(雜談) 것입니다.


잡담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악의 없이 하는 것이 자기를 해롭게 하고 듣는 사람을 해롭게 하고, 자기의 시간을 빼앗고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니 정말 수행을 하는 사람은 살생, 도둑질 그런 것은 물론 안 할 것이지마는 잡담은 무심코하는 소리가 그렇게 우리의 정진에 크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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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85)—전강선사 42주기 추모재(16.12.30) (13)


약 13분.


오늘은 병신년 전강 대종사의 42주기 추모재 날입니다.

날씨도 춥고 그런데 사부대중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방금 우리는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전강(田岡) 조실(祖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녹음법문으로 경청을 했습니다. 비록 조실 스님께서는 열반하셔서 육신은 우리가 친견을  수가 없으나 조실 스님께서 남겨놓으신 칠백여 개의 생생한 녹음법문을 우리는 경청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실 스님은 신심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우리가 가까이 모실  있고 법문(法門)을 들을 수가 있어서 비록 육신은 화장을 해서 다비(茶毘) 모셨으나 조실 스님의 법문은 우리는 경청을  수가 있기 때문에 조실 스님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돌아가신 그런 분이라고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심(信心)으로 녹음을 통해서 법문을 듣고 열심히 정진만 한다면은 전강대종사 조실 스님은 항상 우리와 같이 살아계신다고 산승(山僧)은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마음으로 정성껏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면 항상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있는 길이 우리 앞에는 열려 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전라도 곡성에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16세에 출가하셔서 도반(道伴)이 죽는 것을 보고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시고 그때부터서 대분발을  가지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23세에 확철대오를 해서 그때 당시 6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인가(印可)라고 말은 했습니다마는  선지식(善知識)들이 무슨 공안을 물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조실 스님께서 대답을   가지고 옳다 하고 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조실 스님께서 확철대오를  가지고 6 선지식을 낱낱이 찾아가서 들어가자마자 법담(法談) 거량(擧揚)을 하셨습니다. 무엇을 옳게 일러가지고 옳다 하고 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니고, 6대 선지식들이 법담을  가지고 조실 스님 앞에 어쩔 수 없이 인가를 아니할 수가 없어서 인가를 하신 것으로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23세에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6 선지식을 낱낱이 친견해 가지고 법담을  가지고 인가를 아니할 수가 없어서 자동으로 인가가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23세에 깨달으신 뒤로 전국 여섯   선방에 가서   조실 스님과 법담을 하시고 자연히  선방에서 전강 조실 스님을 조실로 모실  밖에는 없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남기신 법문은 녹음 테이프(tape) 칠백여 개가 됩니다. 옛날 같으면 녹음기(錄音器)가 없어서  법문을 수록(手錄)을  가지고 책으로 내기도 하고, 경판(經板)에다 새겨가지고 이렇게 배포를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다행히 조실 스님 계실 때에는 녹음기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육성을 녹음을  가지고 우리가  육성 법문을 이렇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말세(末世)에 태어났지마는 과학의 힘으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육성으로 이렇게 경청을 하고, 철저하게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정진만 하면 언제라도 조실 스님을 모시고 정진하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올바르게 정진을 하고 있냐, 올바르게  하고 있느냐를 항상 반성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밤잠  자고, 먹을 것도  먹고 용맹정진만 하면 올바르게 정진이 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먹을  먹고,   자더라고 바른 선지식의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해야 자기가 옳게 정진을 하고 있느냐, 잘못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말세에 태어났어도 이런 선지식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자기 정진이 올바르게 하고 있냐,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우리 인생이라 하는 것은 무상한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어느 사이에 있느냐?” 선지식이 물으니까, “2, 3 안에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너는 정진하기 틀렸다


 다음 사람, “너는 생사가 어느 사이에 있는고?”  “2, 3 사이에도 있습니다

너도 정진하기 틀렸다


마지막에  사람이 와서 생사가 어느 사이에 있는고?”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습니다

오호, 너는 정진하겠구나  이러한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도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철저히 시간을 아끼고 발심을 해서 행주좌와 간에 항상 선지식의 법문에 의지해서 정진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경책(警策)을 하면서 좋은 도반들과 같이 정진을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전부가  그렇게 하실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게  각오가 있고, 그렇게 할려고 마음을 가지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고맙습니다.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일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살려면은 재산,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을 많이 마음껏 획득을 하고 누리면은 잘산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있습니다마는 오욕(五欲)이라고 하는 것은 믿을 것이  됩니다.

완전히 배제(排除)하고  수는 없으나 그것에 전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의지해서는 아니됩니다.


비록  세상은 무상(無常)하고 우리 인간도 무상하지마는 무상한 가운데 영원을 사는 길은 활구참선(活句參禪) 밖에 없습니다. 염불(念佛) 좋고, 주력(呪力)하는 것도 좋으나 기왕이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항상정진을 하는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해야  무상한 인생을 끝마치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더라도 떳떳하고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무상한 속에서도 영원을 사는 길이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여러분은 오늘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말씀을 가슴속 깊이 명심하시고, 무상한 속에서 영원한 인생을 살아가는 활구참선을 열심히 하면서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한량이 없으나 간단하게 이렇게 조실 스님 42주기 추모재를 맞이해서 여러 청신사 ・ 청신녀 ・ 비구 ・ 비구니 여러 도반들께 간곡히 부탁 말씀을 드림으로써 추모재 인사 말씀을 갈음하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처음~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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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 16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