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600/(551~575)2017. 1. 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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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60)—95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55)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12분.


(1/3)----------------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마타불~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별다른 것이 없다 그말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스스로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달마 스님께서  도(道)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수행자들이  도를 배우기 위해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하고 높고 길이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옛날에는 요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를 못해가지고  , 이백 , 중국 같은 데는 수천 리라도 걸어서 걸어서 선지식(善知識) 걸망을 지고 찾아갔다 그말이여.


 고생을 무릅쓰고 스승을 찾는 것이 다른 일이 없어. 특별히 무슨 다른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물이 귀해 가지고도반(道伴) 같이 부처님 회상(會上)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셨다 말을 듣고 수천 리를 걸어서 걸어서 가는데, 물이 귀해 가지고 목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우선 물을 먹어야겠는데, 간신히  웅덩이를 만났어. 만나서 물을 먹으려고 보니까  속에 자잘한 벌레가 우글우글우글 그러니 저것을 목마르다고 마시게 되면은 살생을 하게 되고,  마시면은 목이 말라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사람은 우선 벌레를 먹어서 살생을 하더라도 우선  목숨을 살아야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생사해탈을  거여하고 나는 먹어야겠다

 사람은 어찌  목숨 살자고  수없는 벌레를 내가 죽일 수가 있느냐. 내가 도를 닦는 것도   몸도 생사해탈을 하지마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그런 보살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내가 부처님도 찾아가는데,  살자고 벌레를 죽이다니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고 목이 말라서 부처님 회상에 오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져서 죽었고,   사람은  벌레 섞인 물을 마시면서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해 가지고 부처님 회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둘이 오다가 혼자만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를 하니까,   살기 위해서 벌레를 죽인 사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사람  꾸짖을 수도 없고,  사람  칭찬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각자  먹고 죽은 사람이 옳다 생각하면  먹고 죽는 것이고,

아니야, 내가 설사 저런 살생을 하고 벌레를 죽이고라도  물을 먹고 부처님을 친견해야겠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라도 부처님을 친견해서,  대신 정말 목숨을 바쳐서 도를 닦아가지고,

자기로 인해서  죽은 벌레까지라도 기어코 내가 제도를 해야겠다하는 그러한  ,  배의 신심과 분심으로 정진을 한다면 그것 또한 나쁘다고만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가는 곳마다 산도 좋고, 마음대로 마실  있는 물이 산마다 모다 있고 마을마다 있지마는,

지금은 인간의 무지하고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좋은 계곡물, 좋은 샘물이 오염이 되어서 마음놓고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이대로 각성(覺醒) 못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만  그러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연을 그렇게 오염을 시키고 망가뜨리면 사람도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건 짐승보다도  어리석은짐승도 돼지나 개가 자기 잠자리에다가 대소변을 보지 아니하고  멀리 가서 대소변을 보고 오고,

돼지도 가둬 놓았으니까  밖으로 마음대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저쪽 한쪽 구석에다가 자리를  봐놓고  거기다가 대소변을 보고, 자기가 누울 자리는 보송보송하게 그렇게 유지를  나가는 것을 나는 농촌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는데  고생을 하면서 목숨까지 바치면서 스승을 찾아가는 그러한 신심. 바로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도 그러한 신심으로  추위를 무릅쓰고  충청도에서, 전라도에서, 경기도에서 모다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습니다.


비록 전강 조실 스님은 열반하셔서 직접 친견하지는 못하지만 녹음을 통해서나마 그때 설하시던  법문을 귀로 듣고, 다음으로는 같은 뜻과 목적을 가진 도반들과  법당에서,  자리에서 법문을 들으면서 결제(結制)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모이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승(山僧) 무슨 덕숭문인(德崇門人)이다, 범어문중(梵魚門中)이다 무슨 그런 문중에 대한 생각이 별로 그렇게 없습니다.

누구든지 정법을 믿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믿고  법에 의지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그런 신심을 가지고 수행하는 사람이면 바로 그분이 사형(師兄사제(師弟), 그분이 바로  문중이고 좋은 도반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이러한 승속, 남녀노소의 도반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모여서 결제 법회를 가지게  것은 바로 그러한마을에서는 형제간이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모두  모여서 잔치를 하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결제 해제  이런 좋은 도반들이 이렇게 모인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것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스승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하다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뜻이 무엇이냐?


 공부는 책을 봐가지고  수도 없는 것이고, 스스로 혼자 연구해 가지고도몇백만  가운데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무사자오자(無師自悟者),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있을란가 몰라도 만중(萬中) 희유(希有).   가운데에도 희유하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스승을 찾아서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발심(發心) 하고 분심을 낼수록에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가령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정진하는 사람을 교통수단에다가 비유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사람에다가 비유하고, 그럭저럭 천천히 가는 수행을  사람을 걸어간 사람에다가 비유한다면, 차라리 그럭저럭  사람은 며칠을 간다 하더라도, 설사 잘못 간다 하더라도 몇십 리나 몇백  밖에는 틀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빠른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잠깐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몇천만 리를 엉뚱한 데로 날아가 버리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발심해서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공부를 바른 스승의 지도하에 바르게 해야 한다 그거거든.


가보지 아니한 처음 가는 길을 가는 거와 같아서 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가는 길도 가다가 보면  갈래 길도 나오고,  갈래 길도 나오는데 거기서 어느 길이 옳은지를  것이냐 그말이여.

먼저 가봐서  길을 아는 사람의 안내가 없이는 자기 혼자 가다가 ! 갈라지면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수가 없는 거여.


더군다나 마음으로 닦아 가는  참선(參禪) 공부는  갈래,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데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그말이여.

  

백척간두(百尺竿頭) 능활보(能闊步)하야사, 백척간두에,  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를 해야만, 항사제불(恒沙諸佛) 안전화(眼前花)니라. 항하사수(恒河沙數) 같은 모든 부처님이 눈앞에 공화(空花) 되는 것이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 신해년에 설하신 녹음 법문(錄音法門) 우리는 경청했습니다마는 화두(話頭)! 선지식으로부터 ! 지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렇게나, 천칠백 공안(公案)이나 있으니까 이리저리 책을 뒤적거리다가  『염송(拈頌)』이나 그런데 뒤적거리다가,

요새는 『염송(拈頌)』도 번역이 되어 나온 것이 있고 그래서 한문을  모르더라도 이리 보고 에잇! 나는  공안으로 한번 해 보자 조금  보다  안되면 에이! 이것으로 한번 해 보자  철마다 화두를 이리저리 바꾸고.


 어떤 선지식한테 가서 화두를 타서  ,    봤지만 암만해도 바닥이  나고  안되니까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서 화두를 타가지고 이리저리 해봐도 안된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곧잘   같아서 이제는 이것이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써 좋다 이리 생각하고  보면 나중에   안돼. 안되고는 먼저 했던 공안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것을 해 보니까 이제   것같다 그말이여.


그래서 말도 이놈도  보고, 저놈도  보고 그래서   타는 사람은 말을 가끔 바꿔보는 재미도 있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화두를 만약에 자꾸 이놈으로 해 보다 저놈으로 해 보다, 그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우물을 파는데 이놈 조금  보다가 안되면 저쪽에 가서   보고, 그놈 파서 안되면 이쪽에 파보고 해서  군데를 우물을  간신히 물이 나왔는데, 좋다 생각했는데 가무니까 물이  차츰차츰 줄어들어. 장마철에는 물이 출출출 넘고. 이러한 샘물은 그게 건수(乾水) 해서 먹을 수가 없는 거여.


화두도 처음에 조금 요리  보고 되니까 된다 그러다가, 안되니까  이리저리 바꾼 사람은 우물 파는 사람과 같애.

 사람은  소견이  봤자 그것은 의리선(義理禪) 따위이지 정말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확철대오한 것이 아니어.


그래서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믿을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

화두를  가지고   탔으면 확철대오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


 참선 공부라 하는 것이 처음에는 곧잘 잘된다고 느껴져. ‘ 좋다.  공부가 잘되는구나’하고.

! 변해 가지고  안돼.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에 주먹 같은 것이 치밀러 올라와가지고는 소화도  안되고, 숨도   쉬어지고 고약하다 그말이여.


‘이거 상기병(上氣病) 걸렸나? 호흡을 잘못해서 그랬나? 화두를 잘못 들어서 그러나? 심지어는  화두가 나한테 맞지 않아서 그런가?’ 이래 가지고 이리저리 번민을 하고 고민을 하고, 화두를 바꾸려고 했다가 또 선지식이  근기(根機)  몰라가지고 나한테 공부하는 법을 잘못 일러줘서 그랬나?’


 가지  가지 번뇌심이 일어나고, ‘차라리 이거 참선을 하지 말고 () 공부를 할까?  공부를 하지 말고 무슨 주력(呪力) 할까? 내가 업장(業障) 두터우니까 기도를 해가지고 업장을 소멸한 다음에 참선을 할까?’


이러다가 요새 비파사나(vipassanā)라고—‘사념주관(四念住觀)’이라고 관법(觀法) 있는데, 부처님 때부터  관법이 있어서 동남아에서는 그러한 관법이 지금까지도 전해 와서 그런 관법 수행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한국 스님이 동남아에  가지고  법을 배워가지고 와서 널리 권장을 하고, 포교를 하는 그런 분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그런 관법이 차츰차츰 중국으로 건너와서 중국에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임제종(臨濟宗) 화두로써 공부를 하는 그러한 참선으로까지 발전을 해서 한국에까지 지금 전해 와서 우리가 그런 간화선(看話禪) 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 따라서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方便) 설하셨습니다.

어느 하나도 나쁘다고 할 것은 없고   나름대로 중생의 근기에 맞으면마치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약이 약국에서 팔려지고 있지만, 어느 약이 좋다 나쁘다 하기가 어렵고, 약마다  체질과 병에 맞으면  병을 나을 수가 있는 것이고.(처음~2134)



(2/3)----------------


  약이 아직도 계속 약이라든지 의술이 발전 과정에 있어서  증상에는 잠시 효과가 있지마는 나중에 부작용이 남아서 좋지 않은 약을 장기간 복용을 하면은 작은 병은 나았지마는  병을 얻는 수가 허다 해서 약을 너무 함부로 남용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 데에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문을 외워서 주력을 하는 거라든지, 어떤 관법(觀法) 닦아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일수록에 바른 지도자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방법은 이것은 용화사에서는 최상승법(最上乘)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고, 산승도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마는,

이것은  년을 두고 많은 선지식들이  간화선을 통해서 수행을  오셨고, 그래서 이것은 바르게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바르게 정진을  가면 거의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간화선도 잘못하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다든지, 호흡을 바르게  한다든지,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의심하되, 잘못되게 화두를 의심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약을 먹고 효험을 봤다고 해서 체질도 다르고   먹는 방법을 잘못 먹고, 지나치게 과격하게 먹는다든지 잘못 먹으면  약을 먹고 () 입을 수도 있는 거와 같아서,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을 해라. 간절히  화두를 의심해라 그러니까 간절히 한답시고 너무 용을  가지고 미간(眉間)에다가 적을 ()’자를 쓰면서 이마를 찡그리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 했는고?’

이래가지고 너무 힘을 쓰다 보면, 용을 쓰면, () 위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눈이 벌게지고, 골이 뽀개지도록 아프고 이러한 병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아주 젊은 소년 시대에 발심을 해가지고 너무 그렇게 용을 쓰고 정진을 하다가 상기병(上氣病) 얻어서 머리가 터지고, 코로 입으로 피가 넘어오고 하는 그러한 경험을 가진 분의  분인 것입니다.
녹음 법문을 통해서 그러한 처절한  광경을 들으셔서 많이  알고 계실  압니다마는 여러 도반들은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자주자주 들으시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없는 의심을 간절히 들되, 단전호흡을 하면서,

단전호흡은 우리의 의식을숨을 들어마시면 배꼽 밑에 단전(丹田) 차츰차츰 차츰차츰 약간씩 이렇게 볼록해짐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들어마셨으면 잠깐 정지했다가  조용히 숨을 코로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들어마실 때도 너무 가득 들어마시려고 하지 말고 7(七部) 8부쯤 들어마셔.  머무르는 시간도 너무 얼굴이 벌게지도록 너무 오랫동안 참지 말고, 3 동안 잠시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되 뱃속이 완전히 등에 딱 붙도록까지 너무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자연스럽게 호흡을 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가지고  서너 , 네댓 번만 해도 숨이 가빠가지고 헛숨을 쉬어야 하고, 그런 무리하게 하니까 그래서  단전호흡 하다가  생병(生病) 나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리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도 단정(端正)하게 앉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 해가지고 허리에다가, 등에다가, 어깨에다, 목에다, 힘을 주고 뒤로 이렇게 뻣뻣하니 그렇게 하는  아니어.

단정하되 허리의 힘도 빼고,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눈도 평상으로 뜨되 눈에다 너무 독을 들여 가지고 그렇게 하는  아니다 그말이여.


몸을 그렇게 단정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 호흡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되 조금도 무리가 없이 하라 그말이여.


처음에는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화두를 하는 분은 이뭣고?’  () 화두를 하는 분은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어째서 () 했는고?’
  없는 의심!  이뭣고하는 글자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疑心) 있거든.  의심을 이마에다가 두고 이뭣고?’하지 말고, 밑에 단전(丹田)에다    없는 의심을 단전에다 두고 하라 그말이여.


이거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이마에다 두었다 또는 단전에다 두었다  수가 어떻게 있느냐 그러지만, 자꾸 하다 보면 아하, 단전에다 두라는 뜻이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자꾸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걸 터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성(惺惺)하고 그럴 때는 단전에다 두고 하고, 너무 혼침(昏沈) 오고 () 까라지고  때는 이마에다가 미간(眉間)에다가 화두를  두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졸음도 달아나고  무기력한 기운이 없어지고 다시  성성해지면 다시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하고. 이게 문무지법(文武之法)이여.


그때의 자기의 () 올라가면 밑에다 두고, 너무 침체하면 위에다 두고 하는 것은 그것도 나중에 인자 정진을 해서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러한 요령이라고 할까, 그런 방편을 써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못쓸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 공안을 분석하고 따지는 거여. 이건 일본에서 나오는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의 활구참선(活句參禪)에서는 대단히 꺼리는것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분석을  놨습니다. 그렇게 분석해서  의리선(義理禪)으로 따져서 공안마다 그럴싸한 해답을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말이여. 어떻게 그것이 생사를 면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참나 깨닫는데 있는 것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데 있는 것이지, 불조(佛祖)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그거 공안을 분석해서 따져가지고 어디다  것이냐 그말이여.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그것은 밥벌이도 되지도 않는 거고, 자기 생사도  면하는 거고. 결국은 저도 죽고, 그러한 식으로 남을 가리키면은 남까지 그르치고 정법을 멸망하는 결과 밖에는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설하신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그러한 무자(無字) 참구(參究) 나가는데 그런  가지의 잘못 공부해 나가는 법과 바르게  나가는 법을 가려놓으신 것인데, 여하약하(如何若何) 막론(莫論)하고   없는 의심으로 어째서 () 했는고?’ 그렇게만  가면 무자십절목이고 백절목이고 따질 것이 없어.


우리는  무자십절목 새기기도 어렵고, 바로 설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법문이지만,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궁금하니까 무자십절목을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가지고 그런 병에 걸리지 말아야겠다  그러한 생각을 내실는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없는 의심,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다맛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면 .


이것이로구나하고 생각하면 그게 아니어. 그런 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고.

오늘도 다맛   없는 의심 이뭣고?’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맥힌 의심으로만 나가야  공부는 바르게  나가는 거고, ‘아하,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면 그건 바른 공부가 아니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은 바른 깨달음으로 연결이 되지 아니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활구참선이 아니어. 죽은 참선이요, 사구선(死句禪)이여.

그래서 『알  없는 의심』으로만 나가야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 알아 들어가는  가지고는  되는 게여.


그래서 죽을 때까지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해도 상관이 없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없는 화두를 이뭣고?’ 그러다가 숨이  끊어진다면  사람은 진짜 수행자의 바른 열반이여 그게. 확철대오를 못했더라도 하나도 후회할 것이 없어. 금방  사람은  바꿔 나서 다시 정법문중(正法門中) 몸을 받아날 것이다 그말이여.


조실 스님께서 열일곱, 여덟 어린 나이로 출가해서 결국은 23살의 새파란 청년시절에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열반하신 조실 스님의 어릴  도반이신 고암 대종사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자네 스님은 전생 공부여

금생에 물론 머리가 터지도록 용맹정진을 하셔서 그렇게 깨달으시기는 했지만, 그렇게 해서 깨닫는다면 누가  하겠냐 그말이여.


물론 과거에 많은 조사(祖師) 선지식들도 목숨 바쳐서  그렇게 정진을 해서  깨달으신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듣고 여러 도반들이 나도 조실 스님처럼 그렇게 해야겠다 밤잠을  자고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  그러한 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이걸 강요하기가 어렵고, 자발적으로 속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이 섞여  가지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져야 하지, 억지로 권할 수도 없고 억지로 한다 해도 며칠  가면  떡심이 풀어져서 잘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속에 불이 붙어서 한다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바른 방법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가지고 하라 조실 스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이 그런 , 저런 것도 따지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하셨다 그말이여.

오기(傲氣)로,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가지고 결국은 병을 얻으셔. 병을 얻어 가지고도 공부를 그만두지 않고 죽을 폭을 대고 밀고 나가가지고 결국은 깨달으셨어.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에 그렇게 가행정진, 용맹정진 하다가 병이 났다고 해서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됩니다. 어쨌든지 단전호흡을 하면서라도 기어코 밀고나가야 합니다.


밀고나가서 기왕 병든 김에 공부하다 죽으면 내가 상관있느냐. 도업을 이루지 못하고 백년을 살면   것이냐. 차라리  공부를 하다가 죽어서 몸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내가 그만  수가 없다. 중도에 폐지할 수가 없다 하는 그러한 각오와 그러한 신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병이 나야만 확철대오 하는 것은 아니고, 조실 스님께서는 당신의 그런 너무너무  가슴 아픈 경험이 있으시기 때문에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기초로 잘해 가지고 하면은 아무리 용맹정진을 해도 그런 무서운 상기병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것을 자신을 가지신 것입니다.

 

임제종(臨濟宗) 계통의 모다 어록을 보면  단전호흡 소리는 있지도 않는데 무슨 단전호흡을 하느냐?’ 그렇게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주로  단전호흡을 주장하는 종파는 조동종(曹洞宗)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단전호흡을 권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임제종 계통의 선지식은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도 전강 조실 스님을 제외하고는 별로  단전호흡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많이 아니 하십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수식관(數息觀)이라든지 그런 것을 방편으로 권장을 하신 것을 보면,  조동종 이전에는  호흡에 관한 것이 없느냐 하면은 부처님 때부터서 있어 왔고, 그러니까 이것은 외도(外道)들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속단할 일이 아니고.


신선도에서 주로  단전호흡을 해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 도모하는 것은 사실이나, 부처님 때부터서  수식관법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조동종에도조동종도 외도가 아닙니다. 조동종도 분명히 육조(六祖) 스님 이하에서 벌어지는 오종가풍(五宗家風)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를 종주로 해서 발달한 당당한 선종(禪宗) 종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애당초에 며칠만큼씩 정기 법회를 여는 것은 부처님 회상(會上)에서는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라문(婆羅門) 계통 그런 외도들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든지, 열흘에 한번이라든지, 보름 만에 한번이라든지, 정기 법회를 열어가지고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한다고 하니, 우리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러면 그렇게 하자 가지고, 부처님께서도 보름마다 이렇게 정기 법회를 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도가 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우리 불법문중(佛法門中)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면 그것을 개혁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외도들의 하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이용을 해서 몸도 건강하고, 공부하다가 상기병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한다면은, 다 같이 병들지 않고 구경(究竟)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백척간두(百尺竿頭) 활보(闊步) 한다면은 삼세제불(三世諸佛) 눈앞에 공화(空花) 지내지 못하다.


불조(佛祖)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아서 불조의 득인증처(得人憎處), 패궐처(敗闕處) 바로  버린다면은 삼세제불이 눈앞에 공화(空花) 것이 분명하다 그말이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닦아 내버린 종이라고 하는 조사(祖師) 말씀도 깨닫게  것이다 그말이여.(2135~4313)



(3/3)----------------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결제 법문은 그새  들어 마쳤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올라와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마는,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각처에서 모이시고,  같이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되었으니 선배의 입장에서 새로 발심(發心) 신참(新參) 도반들을 위해서 장애 없이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바심절(老婆心切) 이러한 말씀을 하게  것입니다.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중(死中) 구의원(求醫員)이요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다.

환자가 깊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몸이 쑤시고, 아리고, 아프고, 가슴은 답답하고,     먹어봤자 효험은 없고, 어떻게 하면 명의(名醫) 만나가지고  병을 낫을까?  좋은 의원을 구하듯이 그러한 간절(懇切)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고.


영아(嬰兒) 억모심(憶母心)이여. 갓난아기가  엄마가 어디를 가서  오는데 배가 고파서 울어 싼다 그말이여. 발버둥을 치면서 울어 싸는데 엄마가 언제나 와서 젖을 줄까?’

  주기를 바래서,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어린 애기와 같이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그런 간절한 신심(信心)으로 화두(話頭) 거각(擧却) 하는데 처음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별로 맛도 없고, 되다말다 하고, ‘이뭣고?’해도 속으로는 온갖 번뇌 망상이 왔다갔다 하고 그렇지만,

내가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철저한 신심, ‘ 방법으로 하면은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수가 있다 하는 신심.


조급한 생각은 갖지 아니하되,  걸음  걸음 소걸음처럼 걸어가되 착실히 다져나가다 보면 반드시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어지는 때가 .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고 적적하면서도 성성하게,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까지,

저녁에 누워서도 화두를 들면서 자는데 언제 잠든  모르고 잠이 들었으되 아침에 눈을  뜨고 보면 어제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있어. 심지어는 꿈에서도  화두가 그렇게 성성하게 들어지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하여, 이틀을 그렇게 하여, 사흘, 나흘, 닷새, 엿새를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그렇게 되어가면 어떠한 찰나에 ! 터질 때가 온다 그말이여.

 맥혀서   없는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반드시  때가 오는 거다 그말이여.


주공진철처(做工親切處)라는 것이 바로 그거여. 공부를 지어서 친절(親切) 곳에 이르면, 확철대오하면 홍일(紅日) 상동(上東)하다. 어제 서쪽에 졌던  붉은 해가  이튿날 새벽이 되면 동쪽 산너머에서 떠오를 것이다. 반드시 확철대오  때가  것이다 그거거든.

  

오늘  자리에 모이신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행자  청신사, 청신녀, 여러 도반들, 오늘부터 내년 정월 보름까지   동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비록 회룡사나 세등선원이나 또는 위봉사나  밖에 크고 작은 절에나 토굴에서 정진하는 도반들도 언제나 한자리에서 우리가  같이 도반들이 모이고,  조실 스님을 모시고 공부한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야 정진도 제대로 되고  장애도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  계신다고 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럭저럭 지내면 반드시 장애가 일어나고, 나도 공부를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부를 못하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가 부모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세속의 모든 오욕락(五欲樂) 인생과 청춘을  버리고, 우리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 여러분도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이렇게 정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을 할려고 하는 발심(發心) 하셨으면 스님네 못지않는 지조와 결심이 있어야  것입니다.


과거에도 청신사나 청신녀들도 얼마든지 도를 이룬 사람들도 역사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해서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최상승법(最上乘法) 만났습니다.  사람도 낙오자(落伍者)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낙오자가 되어서 잘못되느냐, 끝까지 목적지까지 우리가 가느냐?’하는 것은 우리의 결심에 달려있는 것이지, 여건이 좋지 못하고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그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할수록에 정법을 믿는 사람은 더욱 채찍을 가해서 정진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불법도 실낱끈 같이 위태로운  법등(法燈) 이어가는 거고, 불법이 멸하지 아니해야 세상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산이 명산(名山)이라 하는 것은 산이 높고 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인(道人) 살아야만 명산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여기에 최상승법이 있고 불법이 살아 있으므로 해서, 불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으므 해서,  지구는 결코 멸망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고 여러 도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여기에  불이라 하는 것은 헤쳐 놓으면 꺼져버리고, 숯불이라든지 장작개비라든지 이렇게 모아서 놓으면 불이 붙어서  장작에서 난 불은  장작에,  장작에  불은  장작에, 해서 거기에서 서로 가열이 되어가지고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원(禪院)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원에서 지내다 보면 누군가  사람은 반드시 정말 불이 붙어가지고 가행정진(加行精進) 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비웃을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같이 동참(同參)해서 같이 정진을 하고,  다른 사람도 거기에  발심을 해서 같이 동참을 해서  철동안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가행정진을 하도록.


그렇게 해서  철이   동안이 어떻게 지내간  모르게  성취가 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4314~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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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게송 참고.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 ; 높은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꺼릴 ), (넓을 ).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수놓을 / / ) ; 비단(緋緞) () 놓은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삼천 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각성(覺醒 깨달을 /·잠에서  ) ; ①어떤 잘못이나 사실 등을 깨달아 . ②깨어나 정신을 차림. ③정신을 차리고 주의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태도.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문중(門中) ;  스승 아래 대대로 형성된 스님들의 계통.

*사형(師兄) ;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스승의 제자가  스님를 높여 이르는 .

*사제(師弟) ; ①한 스승의 제자로서 자기보다 나중에 () 받은 스님을 일컫는 . ②스승과 제자.

*위음왕불(威音王佛) : []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나타나는 부처님의 이름. 한량없는 과거의 부처님으로,  부처님 이전에는 부처님이 없었다고 하여 지극히 오랜 옛적 뜻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 /잊을 / ) : 자는() 것을 ()하고  먹는() 것을 잊으며() 일에 심혈을 기울임.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백척간두(百尺竿頭 일백 / /장대 /머리 ) ; ①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 ②모든 상대적 차별을 없앤 절대의 경지.

*항하사수(恒河沙數) ; 인도 갠지스 (Ganges) 모래와 같은 ()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공화(空花, 空華) ; ().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 .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 (No.521)  (No.636) 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생기는데,  육식(六識)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 동시에  ()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우주 법계가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소소영령(昭昭靈靈)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불성(佛性) 생사(生死)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 이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고] **송담스님(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더운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하면, ‘없다 믿으면 되는 거여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자성이 없다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 하시고, 선지식(善知識) 없다 하면  말을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성현의 말씀을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 !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그게 그렇게, 당장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 각각의 ()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건수(乾水 마를 ,  ) ;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곧잘 ; 제법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있는 사람이면,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 효과.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 분리해서vi  보는 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 무상(無常)하고 ()이고 무아(無我)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마음부수[心所물질[]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무아를 통찰하는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사념주관(四念住觀) ;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 사념처관(四念處觀) 같음.  종류의 수행방법.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 것이라고 관하는 .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 실체(實體) 없으며,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 하는 .

···(···)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 신수심법(身受心法) 부정(不淨)하며, ()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 한다.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6()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이르러 일가(一家)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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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관법(觀法) ;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분별적인 사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諸法] 인상이나 겉모습에 떠돌지 않고, 대상을 꿰뚫어서 대상[諸法]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는 수행. 이로써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涅槃 :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깨닫게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 ; [주로 용을 쓰다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7(七部)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80% 정도 만큼.

*헛숨 ; 아무 까닭 없이 내쉬는 .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

*단정하다(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저러하다는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막론하다(莫論--) ; 이것저것 따지고 가려 말하지 아니하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백척간두에서  걸음을 나아간다는 .

①이미 연구를 쌓을 만큼 쌓은 위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연구를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

②백척간두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서, 막다른 매우 위험한 지경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면 죽을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

③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더욱  깨달음을 넘어서 절대의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참고] **송담스님(No.560)—95 동안거결제 법회(95.12.07)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  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능히 활보(闊步) 한다면은 삼세제불(三世諸佛) 눈앞에 공화(空花) 지내지 못하다.

불조(佛祖)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아서 불조의 득인증처(得人憎處), 패궐처(敗闕處) 바로  버린다면은 삼세제불이 눈앞에 공화(空花)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말이고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닦아 내버린 종이라고 하신 조사(祖師) 말씀도 깨닫게  것이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세등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이니라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바로  본체(本體) 본래로부터 소리와 빛이 끊어졌다.  자리는 소리도 없고 색상이 없기 때문에,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이요. 찾은즉 알거라, 그대는  자취를 보지 못할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만 귀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고, 색상(色相) 있어야빛깔이나 무슨 모양이 있다면  자취를  수가 있건마는, 본래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라고 하거나, 귀로 들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다 그말이여. 


묘봉정상(妙峰頂上)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 수미산(須彌山)이란 말인데, 최고의 높은 산이여.  이상 올라갈  없을만큼 올라간 수미산 꼭대기 정상에서 한번 몸을 굴리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 백척(百尺)이나 되는 장대 위에서  걸음을 내디디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 시방세계(十方世界) 그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더라백척간두에서 행여나 떨어질세라 그놈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그를 만날 수가 없지만거기에서 목숨을 버리고  걸음을 내디딜 때에온통 눈으로 보이는 것은 전부 바로 그놈이요귀로 들을  있는 것은 모두가 그것이 아닌 것이 없어.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떡심 ; ①억세고 질긴 근육. ②성질이나 행동이 끈기 있고 질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떡심 풀리다 ; 실망하거나 의욕 따위가 상실되어 기운이 없어지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오기(傲氣 오만할 /기운 ) ;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어떤 일에 끝까지 덤비는 경향.

*우격다짐 ; 억지로 우겨 내몰거나 강요함.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六祖) 혜능(慧能)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 선양하였다.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 동이겠지만,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 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 면목으로써 종지(宗旨)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 1223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외도(外道 바깥 ,  ) ; 불교 이외의() 다른 ().

*장생불사(長生不死  / /아니 /죽을 ) ;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

*육조(六祖) 스님,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오종가풍(五宗家風)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六祖) 혜능(慧能) 이르러 크게 성했다.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남악회양(南嶽懷讓)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 가풍(家風, 전통적인 독자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2 백장회해(百丈懷海)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 청원행사 아래 3 운암담성(雲巖曇晟)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 청원행사 아래 5 설봉의존(雪峰義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 청원행사 아래 7 나한계심(羅漢桂琛)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01~206 참고.

[     ]  赤手單刀로  殺佛殺祖로다  辨古今於玄要하고  驗龍蛇於主賓이라  操金剛寶劒하야  掃除竹木精靈하며  奮獅子全威하야  震裂狐狸心膽이로다  要識臨濟宗  青天轟霹靂이요  平地起波濤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三玄) 삼요(三要)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 알아 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     ]  權開五位하야  善接三根하며  橫抽寶劍하야  斬諸見稠林하며  妙協弘通하야  截萬機穿鑿이로다  威音那畔에  滿目煙光이요  空劫已前에  一壺風月이로다  要識曹洞宗  佛祖未生空劫外에  正偏不落有無機로다


조동가풍 : 권도(權道) 오위(五位) 열어  가지 근기를  다루며, 보검을 빼어 들고 모든 사견의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묘하게도 맞추어서 모든 기틀의 천착(穿鑿) 끊음이로다

위음왕불 나시기  눈에 가득한 풍경이요, 공겁 이전 () 세계 경치로다。조동종을 알려는가? 부처님과 조사도  나시고 아무 것도 없던  , 정편(正偏) 유무(有無) 기틀에 떨어지지 않음이로다。


[     ]  劒鋒有路하고  鐵壁無門이라  掀翻露布葛藤하고  剪却常情見解하니  迅電은  不及思量이요  烈焰에  寧容湊泊이리요  要識雲門宗  柱杖子跋跳上天하고  盞子裡에  諸佛이  説法이로다


운문가풍 : 칼날에는 길이 있고 철벽에는 문이 없다。온 천하의 갈등을 둘러엎고, 못된 소견을 잘라  버리니, 번쩍 하는 번갯불은 사량으로 미칠  없거니,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머무를  있으리요。운문종을 알려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르고,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도다。


[     ]  師資唱和하며  父子一家로다  *脇下書字하니  頭角이  崢嶸이요  室中驗人에  獅子腰折이로다  離四句絶百非를  搥粉碎하니  有兩口無一舌이여  九曲珠通이로다  要識潙仰宗麼  斷碑는  橫古路하고  鐵牛는  眠少室이로다


위앙가풍 :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집에 살고 있네。옆구리에 글자 쓰고 머리 위에 뿔이 뾰족하구나。방 안에서 사람들을 시험하니 사자 허리 부러지다。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  망치로 부수었네。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구곡주를 꿰뚫었다。위앙종을 알려는가? 부러진 비석  길에 쓰러져 있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자네。


[     ]  言中有響하고  句裡藏鋒이라  髑髏  常干世界하고  *鼻孔은  磨觸家風이라  風柯月渚는  顯露眞心하고  翠竹黄花  宣明妙法이로다  要識法眼宗  風送斷雲歸嶺去하고  月和流水過橋來로다


법안가풍 :  가운데 메아리가 있고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해골이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가풍을 불어내네。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비치는 물가에는  마음이 드러나고, 푸른 대와 누른 꽃은 묘한 법을 환히 밝혀 주네。법안종을 알려는가? 맑은 바람 구름을 산마루로 보내 주고, 밝은  물에 떠서 다리 지나 흘러오네。

*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생활 습관이나 규범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가지[四種姓]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 관장했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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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신참(新參 ·처음 /참구할·참여할 )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

*(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朴敬勛 ,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낙오자(落伍者 떨어질 /대오 / ) ; ①어떤 집단이나 경쟁 상대를 쫓아가지 못하여 뒤로 처진 사람. ②편성된 대열에서 뒤떨어져 처진 사람.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 닦는 .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 같은 .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주요 내용]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불급심사(不急尋師) 공과일생(空過一生) / 벌레 있는 물을 먹고  것인가?  먹 죽을 것인가? / 바른 스승의 지도 / 비파사나(vipassanā), 사념주관(四念住觀) 관법(觀法), 간화선(看話禪).

간화선(看話禪) / 단정한 자세, 올바른 단전호흡, 다맛   없는 의심으로 나가야 / 의리선(義理禪)으로는 생사를  면함 / 전강 선사의 용맹정진과 단전호흡의 필요성.

(게송)사중구의원~ / ‘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수가 있다 하는 신심 / 선원(禪院)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



[주요 문구]


달마 스님께서  도를 닦으려면 불급심사(不急尋師)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했어.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낸다


마음으로 닦아가는  참선 공부는  갈래,  갈래가 아니라 몇백 갈래, 몇천 갈래로 갈라질 수가 있어. 그래서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달마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스승을 찾아서 도를 닦아 가는 그게 별것이 아니다. 다못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소를 타냐? 이건 자기의 소여. 자기의 마음소를 타고 자기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화두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타고, 제멋대로 책에서 골라 잡아가지고는 아니 되고, 정말 자기가 믿어지는 그리고  믿을  있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부터 어렵게 화두를 타야 . 화두를  가지고   탔으면 확철대오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화두를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편법이 팔만사천 가지가 있지마는 그런 방편법에 우선 잠시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편법에 떨어져 가지고 그런데 집착을 하게 되면 임시는 좋은  같아도 정말 구경(究竟)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렵고, 그러한 폐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방편법일수록에 바른 선지식, 그러한 방편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한 그러한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 그리고 호흡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되 조금도 무리가 없이 하라.


  없는 의심!  이뭣고 하는 글자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疑心) 있거든.  의심을 이마에다가 두고 이뭣고?’하지 말고,    없는 의심을 단전(丹田)에다 두고 하라.

이거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이마에다 두었다 또는 단전에다 두었다  수가 어떻게 있느냐 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아하, 단전에다 두라는 뜻이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자꾸 열심히 하면 스스로 그걸 터득하게 됩니다.


제일 못쓸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 공안을 분석하고 따지는 거여. 이건 일본에서 나오는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의 활구참선(活句參禪)에서는 대단히 꺼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참나 깨닫는데에 있는 것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데 있는 것이지, 불조(佛祖)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는데 있는 것이지, 그거 공안을 분석해서 따져가지고 어디다 것이냐.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죽을 때까지 확철대오를 못해도 상관이 없어!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때에도   없는 화두를 이뭣고?’ 그러다가 숨이  끊어진다면  사람은 진짜 수행자의 바른 열반이여 그게.


외도가 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우리 불법문중(佛法門中)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면 그것을 개혁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외도들의 하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이용을 해서 몸도 건강하고, 공부하다가 상기병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서 가행정진도 하고 용맹정진도 한다면은, 다같이 병들지 않고 구경(究竟)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내가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철저한 신심, ‘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수가 있다 하는 신심.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최상승법(最上乘法) 만났습니다 사람도 낙오자(落伍者) 있을 수는 없습니다낙오자가 되어서 잘못되느냐끝까지 목적지까지 우리가 가느냐?’하는 것은 우리의 결심에 달려있는 것이지여건이 좋지 못하고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그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할수록에 정법을 믿는 사람은 더욱 채찍을 가해서 정진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불법도 실낱끈 같이 위태로운  법등(法燈) 이어가는 거고불법이 멸하지 아니해야 세상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산이 명산(名山)이라 하는 것은 산이 높고 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인(道人) 살아야만 명산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여기에 최상승법이 있고 불법이 살아있으므로 해서, 불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으므 해서,  지구는 결코 멸망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고 여러 도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여기에  불이라 하는 것은 헤쳐 놓으면 꺼져버리고, 숯불이라든지 장작개비라든지 이렇게 모아서 놓으면 불이 붙어서  장작에서 불은  장작에,  장작에  불은  장작에, 해서 거기에서 서로 가열이 되어가지고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원(禪院)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원에서 지내다 보면 누군가  사람은 반드시 정말 불이 붙어가지고 가행정진(加行精進) 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