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600/(526~550)2017. 2. 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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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39)—94년(갑술년) 동안거결제 백일기도 입재(94.11.17) (52분)


(1/3) 약 14분. (2/3) 약 17분. (3/3) 약 21분.


(1/3)----------------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헌데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멱시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허되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  구슬, 반야(般若) 신령스러운 구슬이 묘(妙)해서 측량을  수가 없어. 그런데  반야의 영주(靈珠) 크다고  수도 없고, 작다고  수도 없어.

크기로 말하면은 대천세계(大千世界)  싸고도 남고, 작다고 하면은 바늘로 찌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을 수도 있는 것이여.


 구슬은 어디서 나왔냐? 법성해(法性海) 가운데에서 얻은 거여. 법성해는 시방세계(十方世界) 무한대로 끝이 없는 대법성의 바다에서 친히 얻은 것이다 그말이여.

금생에  반야영주를 부모로부터  몸뚱이를 받아날  같이  몸뚱이 속에  반야영주(般若靈珠) 따라왔어.


그러면 부모한테 태어나기 이전에는 없었느냐 하면은,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에도  반야영주는 우주법계에  차있는 거여.

무량억겁(無量億劫)  태어난 때가 없어. 생겨난 때가 없이  반야영주는  법성(法性) 바다 가운데 가득 차서 빛나고 있는 것이거든. 그런데 당장  몸뚱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이 몸뚱이 속에  반야영주가 들어있다 그말이여.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 태양이 아무리 밝다 해도 낮에만 빛나고 밤에는 태양빛을  수가 없지마는  반야영주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항상 빛나고 있다 그말이여.


멱시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이다. 그런데  반야영주, 어떻게 신통이 자재하고 묘하던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어.

태양빛이 아무리 밝아도  땅속 깊이 들어가면은 태양빛이 거기는 미치지를 못하고 무엇이 가로막으면 거기에는 비추지를 못하는데,  반야영주는 시간과 공간에도 걸리지 않고 언제나 빛나고 있건마는 찾아보면  수도 없고  수도 없어.  자취도 없다 그말이여.


그런데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일어설 때나 앉을 때나 항상 따라댕겨. 그래가지고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다 그말이여.

부르면 대답할  알고, 무슨 소리가 나면 들을 줄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신통묘용(神通妙用)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그러헌 놈을 우리가 낱낱이  가지고 있거든.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은 조실 스님께서 73—77세에 열반하셨는데 4 전에, 열반하시기 4  73  설하신 법문인데,

 법문 가운데에  할라야   수가 없다. 의심을  할라야    없고, 참선을 안 할래야   수가 없고. ' 된다' 소리가 무슨 말이냐?” 너무나도 분명하게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본질을 잘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놈이 어디로 깊이 깊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공간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여.


우리가 눈으로  , 귀로 들을 , 코로 냄새 맡을 , 혀로 맛을  ,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 배고프고 아프고 육체적인 모든 감각. 정신적으로 근심 걱정,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 원망스러움, 두려운 생각, 미운 생각, 일체 정신 작용하는 것이 바로  신령스러운 구슬로부터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작용이 일어날  바로 거기에 ()해서 우리는 그놈을 찾어야 한다 그말이여.


우리가 고양이를 찾을라면 고양이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고, 더러운 오물을 치울라면은 더러운 냄새나는 곳을 찾아가면 거기에 우리가 치워야  것들이 쓰레기가 있다 그말이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바로 우리가 우리의 신령스러운 구슬, ‘참나’를 찾을  있는 곳이요, 바로  때다 그말이여.


잊어버리기가  어려워!  하기가  어렵다!

완전히 죽어서 의식이 없어진 상태라면 모르지만, 살아서 숨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방법만을 바로 안다면  공부는 안 할라야   수가 없는 거여. 하나도 어려웁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누워서도 하고, 앉아서도 하고, 속이 상할 때도 하고, 배고플 때도 하고, 아플 때도 하고, 근심 걱정 있을 때도 하라. ‘이뭣고?’ 하라 그말이여.

속이 상할  계속 속상하는 일만 이리 생각, 저리 생각 해봤자  속상하는 것이 점점 커질지언정 해결이  되거든. 속상할  바로 ‘이뭣고?’  보라 그말이여.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주먹탱이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다가도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근심 걱정을 없애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고, 슬픔과 외로움을 없애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고.


처음에는 별로 잘된  같지 않고  재미도 없지만, 자꾸 하다 보면 할랴고  해도 저절로 되어. ‘이뭣고?’  번에 시커먼 가슴속에 먹구름이 흩어지게 된다 그말이여.

아무리 달이 밝아도 먹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으면은 껌껌한데 구름만 치워버리면 환히 밝아지듯이, 우리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먹구름 속에서 살고 있는데  먹구름을 찰나(刹那) 간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다 이거여.


어떤 사람이 “참선이 좋은 줄은 법문을 듣고  알겠는데 변소에 가서도 ‘이뭣고?’를 해도 괜찮습니까?

“변소에 가서도 해야지요”


“아! 그거, 경전을 읽을 때는 양치질도 하고 손도 씻고 그리고 떠억 향불을 켜놓고 금강경도 읽고 그런데 !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보다도  좋고 그런 경을 읽은 공덕보다도 훨씬 몇백 배가  수승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부른 공덕보다도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공덕이 낫고 그렇다는데 그렇게 좋은 것을 어떻게 화장실에 앉아서 실례하고 있으면서 ‘이뭣고?’ 수가 차마 있습니까?”


그분이 정말  참선이 소중하고  좋다고  것을 너무나도 깊이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운데도 그런 분이 계실란가 모르지만 전혀 염려할  없습니다. 변소에 가서 끙끙거리면서도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희로애락, 생로병사, 빈부귀천, 일체 시비와 흥망성쇠 속에서도 오직  ‘이뭣고?’ 하나라, 이것으로써만이 거기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가고, 나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자비로써 모든  해결할  있는 능력은 오직  길밖에는 없는 것이여.


병을 앓고 있을 때도 끙끙 앓으면서도 ‘이뭣고?’ 사람이 코앞에서  죽어갈 때도,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도 ‘이뭣고?’ 이렇게  나가야. 그러한 굳은 신념이 있다면 공부가  된다, 의심(疑心)이  난다 그러한 걱정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따라다니거든. 우리의 주인공(主人公) 여의고는 우리는  1분 1초도  수가 없는 것이고.  살고있다고 하는 자체가  신령스러운   물건’의 뿌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처음~143)



(2/3)----------------


오늘 갑술년 음력 10 15 삼동결제(三冬結制) 날인데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충분히 우리는 결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기왕 여기에 올라왔으니 아직 화두(話頭)를 타지 않고, 참선(參禪)을 하고자 방부(房付)는 들였고  선방에는 가야겠는데 아직 화두를 안 타신 분을 위해서 간단히 화두 드는 법을 () 드리겠습니다.


참선은 내가 나를 찾는 방법인데 첫째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자세는 가부좌가 되면은 온가부좌(온跏趺坐)를 하고 온가부좌가  안되면 반가부좌(半跏趺坐)만 해도 됩니다.


가부좌는 허리를  펴고 오른발을 왼발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왼발은 오른발 위에다 올려놓고 하면은 이것이 온가부좌고, 반가부좌는  다리만을 올려놓으면 됩니다. 왼쪽 다리만 올려놓고 하거나 또 다리가 저리고 아프면은  다리를 바꿔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손은  발목 위에다가 오른손을 먼저 놓고  다음에 왼손을 위에다 이렇게 포개고,

 다음에 양쪽 엄지손가락  끄터리를 이렇게  마주치게 하되 너무 힘을 주어서 위로 올라가게 하지도 말고 요렇게 비끄러져서 이렇게 손장난을 해도  되고, 단정하되 너무 힘을 주지도 말고 떨어지지도 않도록. 이렇게 해서  위에다 놓되 아랫배 배꼽 앞으로 다가서 이렇게 하고.


어깨는 몸은 앞으로 기울지도 말고, 뒤에로 자지바지 하니 뒤로 기울어지지도 않고,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단정하니 이렇게 하되, 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에 힘을  빼는 거여. 그렇게 해서 고개는  어깨 위에 단정히 올려놓되 눈은 평상(平常)으로 .


눈을 너무 ! 부릅뜨지도 말고 감지도 말고 너무 가늘게 뜰라 하지도 말고 평상으로 뜨되, 자기 앉은자리로부터서  2미터나 3미터 정도가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그러되  2미터나 3미터 지점에다 특별한 무슨 콩을 갖다 놓던지, 거기에 있는 어떤  특별한 것을 놓고 그거를 응시(凝視)하라는 것이 아니고, 볼라고 하면 거기가 보일 정도로 눈을 뜨되 실지로는 아무것도  바가 없어야 한다.


 바가 없어야 하는데 처음 하는 사람은 자꾸 거기에 무엇이 보여 싼다 말이여. 장판이나 또는 벽에 있는 어떤 무늬나 그림이나   자죽 같은 것이 자꾸 눈에 얼씬거려 가지고 암만  볼라고 해도 자꾸 보여.

그래 가지고 사람처럼 보였다가 개처럼 보였다가 고양이처럼 보였다가 그것이 점점 가까와 왔다가 멀리 갔다가 없어졌다  생겼다, 그렇지만 일부러 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자꾸  화두를 드는데.


화두를 들되 자세를 바르게 했으면 인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는데.

단전호흡이 대단히 쉬운 것인데 처음에 하는 사람은 대단히 힘이 들고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것이  그러냐 하면은 너무 무리하게 할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들고 어렵다 그말이여.


조금도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되 ' 호흡'을 들어가기 전에 '준비 호흡'을 먼저 해야 하거든.


준비 호흡은 속에 있는 가슴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완전히  내뿜어요. 배를 홀쪽히 하고 가슴도 홀쪽히 하면서 완전히  내뿜고, 내뿜은 다음에는 스르르르 허니 들어마시되 가슴이 아주 미어지도록 들어마셔. 더이상 들어마실  없을 만큼 들어마신 상태에서  참는 거여.

얼굴이  벌거질 때까지 참았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 ~’하고 내뿜는데 가슴을 홀쪽히 하면서 조이면서 가슴속에 있는 것을 완전히  내뿜어.


 내뿜었으면 입은 다물고 코로  스르르르 허니 들어마셔. 가슴을 약간 드는  하면서 가뜩 들어마셔. 들어마신 호흡을  들어마셨으면 참아. 참았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  내뿜어. 이러기를   내지   정도로 하는 거여.

이렇게는 뭐   이상 허도 못하고  그렇게  필요도 없고, 2,3번 그렇게 함으로 해서 가슴속에 있는 가슴 허파 속에 구석구석에 있는 묵은 공기를 완전히  씻어 내는 방법이여.


그리고 오장육부 사지에 모든 혈관과 모든 신경에 새로운 긴장을 주는 것도 되어서, 이래서  준비 호흡을  다음에는 정식으로  단전호흡에 들어가는데,


아까 준비 호흡은 코로 들어마셨다가 입으로 내뿜었지만  호흡은 코로 들어마셨다가 코로 내쉬되 가뜩 들어마신  아니라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아까 준비호흡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슴으로 쉬었지만 정식 단전호흡은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단전(丹田), 배꼽 밑에 아랫배로 하는 거여.


스르르르 하니 조용허니 들어마시면서 배꼽 밑에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되 가뜩 들어마신  아니라 7부나 8 정도만 들어마셔.  들어마실  있지만 가뜩하지 말고 78부 정도만 들어마셨다가 잠시  상태로 정지했다가  조용하게 코로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완전히  내뱉을라고 하지 말고 8부쯤만 내보내.


내보낸 상태에서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시는 시간이  3, 들어마셨다가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이  4,5초. 다 내쉰 다음에  스르르르 들어마셔.

그래서 숨은 코로 들어가고 코로 나오되, 몸안에 움직이는 것은 아랫배만 볼록해졌다가 잠시 고대로 있다가  차츰차츰 홀쪽해졌다, 아랫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그런데 약 3, 3, 45초면은 한번 호흡을 하는데 10 정도 걸리는데 누구라도 그런 정도는  수가 있어. 사람에 따라서는 3초가 길면 2초도 상관이 없지만 3 정도 하면 누구라도  수가 있고.


이렇게 해서  ,  ,  ,   이렇게 하다보면 나중엔 5초에 들어마셔 가지고, 5 머물렀다가, 5초나 6초에 내쉬고 호흡이 차츰차츰 길어지는 법이여.

나중에  이태 삼년 하다 보면 들어마신 시간이 10, 머무르는 시간이 10, 내쉬는 시간이 10 해서, 30초에 숨을 한 번 호흡을  수가 있게 되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되어져야지, 억지로 이렇게 늘릴라고 하면 무리가 가서 얼마 못해 가지고 ~’  이렇게 헛숨을 쉬게 되는데, 무리하게 하면 부작용이 일어나요.


그래서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기 체질에 맞도록  시간 하고  시간을 해도 조금도 피로하거나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되, 주의할 것은 공양을 하고  시간 이내에는 하지 말어라 그말이여.

식사를 하면은 위장 속에 음식물이 들어있는데 그놈을 호흡에 따라서 배를 내밀었다 홀쪽했다 하면은 위장에 무리가  가지고 위가 늘어나면 위하수(胃下垂) 같은 병이 걸리기가 쉬우니까 절대로 공양을 하고 2시간 이내에는 단전호흡을 하지 말고 그냥 평상으로 숨을 쉬어.


그러다  시간쯤 지난 뒤에는 정식으로 인자 준비 호흡을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은 조금도 무리가 없이 위장병도 낫게 되고 혈압도 내려가고, 무리하게 하면 혈압이 올라갈 수가 있지만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는 거야.

처음부터  시간씩 할려고 하지 말고, 처음에는  10 20 30 차츰차츰 요것도 늘려나가야 하는 거다 그말이여.



그런데 화두는 언제 드느냐? 초학자(初學者)는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쉴  이뭣고~?’ 이렇게. (숨이)  나가면은 스르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그래서 숨을 내쉴  ‘이뭣고?’를 허라 그말이여. 나중에 차츰 익숙해지면 숨이야  번을 쉬거나 ‘이뭣고?’ 뒤끝에 남은 알  없는 의심이 있으면 계속해서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해도 상관이 없어.


호흡을   해도 고대로   없는 의심이 터억 있으면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이뭣고?’하는 뒤끝에   없는 의심이 있잖아.  의심을 터억 관하는 거여. 그래서 그것이 의심관(疑心觀)이거든.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없는 의심(疑心)이 그것이 화두의 핵심이여. 그래서   없는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자꾸 입으로 ‘이뭣고 이뭣고  해도 상관이 없는 거여.


 먹을 때는  먹으면서도 알  없는 의심이 터억 있고, 변소에 가서도   없는 의심이 있으면 고대로 있지,

자꾸 ‘이뭣고, 이뭣고...’—‘관세음보살 하루에   한다, 또는 아미타불을 하루에 오만 번씩 한다 그렇게 결정을 해놓고 계속 염주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타불 타불 타불 타불...’이렇게 하는데, 오만  채운 것을 목표로 10 20 내지 평생을 하는 분도 내가 알고 있는데, 그분은 그런 대로 염불 참선이여 그저.


염불 하니까 그분 나쁘다고   없고, 우리가 본격적으로 참선을 할려면은 ‘이뭣고?’거든.   없는 의심을 관하는 거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 거여. 의심이 있어야!


의심이 점점, 처음에는 화두  때는 있다가 금방 의심이 없어지는데 자꾸 ‘이것밖에는   없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하면 화두를 들지 않아도 항상   없는 의심이 있거든.  의심을 항상 관(觀)해 나가. ‘이뭣고?’

  없는 의심이 차츰차츰 커지면은 의단(疑團)이 되는데 하늘을 봐도 ‘이뭣고?’요, 땅을 봐도 ‘이뭣고?’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요, 화장실에 가도 ‘이뭣고?’, 걸어갈 때나 앉았을 때나 항상 의심이 있는 거여 그냥. 간단(間斷) 없어. 간단히 없으면 그것이 의단이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됩니다.


애를 쓰면  만큼, 그런데 내동 잘되어 가다 ! 변해갔고  화두가  들리는 경우도 있어. ‘이뭣고?’해도 ‘이뭣고?’뿐이지 진짜 참의심[眞疑]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그거 번뇌심(煩惱心)  필요가 없어. 서서히 단전호흡을 하면서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챙기고.


가슴이 너무 미어질라고 하고 답답하고 숨도 가슴이   가지고 호흡도  안되고 그럴 때도 있거든. 그런 때는 조용히 일어나서 법당 뒤나 한가한 데에 가서 30미터나 50미터  정해놓고 왔다갔다 하면서 서서히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를 하면 가슴 답답한 것도 없어지고 혼침(昏沈)이 오는 것도 가라앉고 머리가 쾌청해지면 다시 와서  앉아서 떠억 해서.


빨리 깨달을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공부가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고 그러지도 말고,

오직 내가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과 모든 성현들도 오직  법으로 생사해탈(生死解脫) 했다.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난들  해서   리가 있느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있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터억 해가라 그말이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녀노소의 해야   직분이 있고 직업이 있으나 그것은 그것대로 허되  가운데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직업, 본업(本業)은 이뭣고?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것을 단속을  가시라 그말이여.(14분5초~31분13초)



(3/3)----------------


오늘은 결제일이기 때문에 불가불 우리 선방에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분에게 몽산법어(蒙山法語)의 한 편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약유내차(若有來此)하야 동감적요(同甘寂寥)인댄, 여기에 모두  가지고 같이 참선 정진을 하기 위해서 왔을진대는,

사차세연(捨此世緣)하며, 세속 인연을  버려 버려.   버려야 한다 그말이여.  도량에  가지고 다른 걱정, 나라 걱정, 정치 걱정, 경제 걱정, 집안 걱정  놔 버려야 하는 거야. 제거집착전도(除去執着顚倒)하야, 집착심과 잘못된 모든 생각을 쏴악  제거해 버리고.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하야, 정말로 생사대사(生死大事) 일대사(一大事) 위해서, 긍순암중규구(肯順菴中規矩)하야,  선원의 청규(淸規)를 자발적으로 솔선해서  순응해야 한다 그말이여.


절단인사(截斷人事)하고, 인사로 왔다갔다 하는 그것을 아주 끊어버려야 . 그래서 일체 편지 왕래도 하지  것이며 전화 왕래도 하지  것이며, 일단 선원에 방부를 들이면은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터억 해 가야  것이다 그말이여.


수연수용(隨緣受用)허되,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수용(受用)은 되는 대로 인연 따라서,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죽이 오면 죽을 먹고, 찰밥이 나오면 찰밥을 먹고, 국수가 나오면 국수를 먹고, 밥이 때로는  때도 있고  때도 있고, 반찬이 입에 맞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것이나, 되는 대로  끼니  끼니를,


이것은 수차수식(須此受食)이 단료형고(但療形枯) 위성도업(爲成道業)이 응수차식(應受此食)이라.  밥이  몸뚱이 마른 것을 막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라면 잘 씹으면서 이뭣고?’하는  의단(疑團)이 고대로 독로(獨露)한 상태에서 오십 ,   입안에서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으라 그말이여.


제삼경외(除三更外)에는 불허수면(不許睡眠)이여. 9시에 자서 3시에 일어나는데,  지정된 수면 시간 외에는 자지를 말고. 불허출가(不許出街)하며,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지 말며, 밖에서 공양 청장(請狀)이 오거나 그러더라도 그런 데에 나아가지 말라.


미유발명(未有發明)이어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까지는 경이나 어록이나 일체 보지를  것이며. 비공계청(非公界請)이어든, 공계(公界) 대중적으로 읽을  이외에는 경도 읽지를 말아라 이거거든.


이것은 용화선원의 청규가 바로 이것에 기본해 가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선원에 가서 공부하실 때에도 이러한 몽산 스님의 짤막한  법문을 명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신다면은 반드시 금생에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것이 의심이 없습니다.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普濟尊者) 각오선인(覺悟禪人)에게 보이신 법문에,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그것을 생사(生死)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생사(生死)  몸뚱이를 육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이라 그러고,  육체에 호흡이 끊어져서 써늘해지면 그것을 죽었다[死]’ 그러는데,

 참선하는 수행인의 분상(分上)에서는  육체를 기준으로  것이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 생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이 ()이고,  생각이 꺼지는 것이 ()이여. 죽음이여.


그래서  생각,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그말이여.


사실  생각 일어났다 꺼지는데,    들어마셨다 내쉬고,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來生)이거든. 사실도 그런 거여. 그래서 생사가 바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런데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의 즈음에 모름지기 힘을 다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라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純一)하면은 기멸(起滅) 없어지고, 기멸이 다하면은 그것을 ()이라 그래. 적(寂). 적멸(寂滅) ().


적(寂)한 적중(寂中) 화두가 없는 것을 무기(無記) 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망상이 없으되 화두가 없으면 그것이 무기(無記). 아무리 망상이  끊어져서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되 화두가 없는 상태에서 있으면 그것은 무기여.


무기(無記) 상태에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거여. 설사  무기의 상태에서  겁(劫)을 지낸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해.

그래서 적중(寂中)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의단이 독로해야지, 적적한 데에 빠져가지고 화두가 없으면 그것은 무기다 그말이여.


정진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번뇌와 망상이  없어지고 조용하고 깨끗해지면  깨끗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데에  잠겨 가지고 화두를 놓쳐, 화두를 들라고  해요.

화두를 들면  고요하고 깨끗한 것이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를     고요한 데에 빠져서 그놈을 맛보고 앉았거든.  아무짝에도 못 쓰는 참선이여. 아무리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아서 깨끗해져도 그 가운데 화두가 성성하도록 잡드리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가 ()하지 아니해야 그것을 ()이라 그러고,  공적(空寂) 가운데에 화두가 성성한 것을 그것을 영지(靈知)라고 그러는데, 공적영지(空寂靈知) 상태가 무너지지 아니하고 흐트러지지 아니해야, 그렇게 공부를 잡드리를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그렇게 잡드리를  나가면은 불일성지(不日成之). 머지않아서 공안을 타파하게  것이다.


이렇게 정진을  가지고 3 만에 깨닫지 못하면은, 이렇게 3 동안을 알뜰히 공부를 해가지고 깨닫지 못하면은 대중을 대신해서 내가 지옥에 가겠다 몽산 스님은 그렇게 대중한테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기왕 출가를 해서 선방에 나와서 마땅히 이렇게 잡드리를 해야  것입니다.



그리고 용화선원에는 자원봉사 제도가 있어서 자원해 가지고 후원(後院)에서 채공(菜供), 공양주(供養主)  추우나 더우나 이렇게 주일마다 교대해 가면서 이렇게 자원봉사자가 있고  사무실 컴퓨터를 또  자원봉사자가 나와 가지고 사무를 덜어주어서 우리가 정진을 하도록 그렇게 많이 도와주고 계시는데  공덕(功德)을 입으로서는  찬탄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냐 하면은 그분들이 나와서 봉사를 해주기 때문에 우리 스님네들이 정진을  수가 있고,  봉사자들이 없으면 스님네들이 전부 나서서 직접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그런 사무 보고 후원의  때문에 빼앗기게 되고  우리 스님네 소수의 스님 가지고서는  일을  추단을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다행히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  세상에  가지고 용화사 신도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후원에서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해주시는데, 워낙 일이 많고 복잡하니 하다 보면은 또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일을 보는 가운데에도 화두를 들고 터억 정진을 하면서 하면 힘이 들어도 힘이   모르고 할수록에  신심이 나고 신심이 날수록에 일은  잘되고,  손끝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은  참선하는 대중 스님네와 대중의 보살님네와 처사님네 참선하신 분들이 바로 그것을  음식을 들고서 더욱 신심이 나고 몸이  건강해서 공부가 잘될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는 월요일에 나오신 , 화요일, 일월화수목금토  요일마다  열다섯  이상씩 이렇게 해서 교대를 하는데, 하필 일이 많은  자기  봉사하는 날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속된 말로  잘못 생각하면 재수(財數)가 없어서 이런  만나 가지고  너무 힘들다’고 그렇게 생각하실 분도 아마 없으리라고 생각하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많은  만났으면 재수가 없는  아니라 오늘 정말 재수 대통했다. 이런  힘든  만나서 나는  많은 공덕을 쌓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야지 재수없이  많은  만났다’고 이렇게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하시지  것이며.


  많은 날은 그날 해당이 안되신 분도 오늘이 법보재 날이다. 또는 오늘이 조실 스님 제삿날이다. 오늘이 칠석날이다. 오늘이  그렇게 특별히 많은 날은 내가 나갈 날이 아니지만 오늘은 내가 나가서 좀 거들어야겠다, 이런 때 내가 한바탕   봉사를 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올  있는 분은 나와서 이렇게 거들어 주시고,  전화를 해서 나오시라고 하기까지 기다릴  없이 자진해서 나와서 거들고.


  많은  당하신 분은 오늘은  내가 재수가 대통해서  많은  했으니 한바탕 걷어붙이고 한바탕 해봐야겠다 이러한 마음으로 하셔서,

서로 자원봉사자가 마음과 마음을 합해서 서로 아! 저분이 진짜 보살 화현인가보다, 저분만 보살 화현이 아니고 나도 보살 화현 다웁게 오늘 한번 해보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신다면 더욱 그날 하루 일이 보람이 있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하시게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했습니다.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헌데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요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야사  방호출신대장부(方號出身大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요.

 물결이 일어나매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고. 조용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은   알의 돌멩이로 인해서 끝없이 물결이 퍼지고 퍼져서 만파(萬波)가 일어나서  끝까지 번져간다.


우리가  생각 일으키면은   생각이 자꾸  생각  생각으로 번져 가지고 끝없이 번지고 번져 가지고 얼토당토않은 때까지 발전을 해서 결국은 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예를   수가 없어.

동서고금의 모든 엄청난  사건이 최초에는  생각 잘못 먹어 가지고  생각이 번져 가지고 점점점점  가지고 엄청난  사고가 벌어져  전쟁이 일어나고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기를  생각이 그것으로 끝난  아니라 무량겁(無量劫)을 그렇게  왔어, 그러기를 개미란 놈이 쳇바퀴를 돌고 이리 돌고 돌고 돌고 하는 짓을 끝없이 돌고 도는 것처럼 그칠 날이 없다 그말이여.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이여. 오늘 그대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 끊어 버려야 한다 그말이여.


모든 세속의 인연, 모든 오욕락(五欲樂), 전부가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꿈이요, 물거품이요, 꼭두각시여.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올개미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그러니 출가한 수행자는 정말 명예니 권리니 지위 복이니, 일체 세속적인 모든 오욕락 똘똘 뭉쳐서 ! 끊어 버리고 오직 일대사만을 위해서 청춘과 우리의 몸과 우리의 목숨을 거기에다 바쳐야  것이다 그말이여.


비록 머리를 깎지 않고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부득이해서 인연 따라서 가족을 아주 끊을 수는 없을지언정 이것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일장춘몽(一場春夢) 지나지 못한  사바세계의 꿈이라고 하는 것을, 무상(無常)하고 허망하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을 하시되,


‘전생에 지은 빚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있는,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해야  최소한의 책임은 하되  가운데 ‘이뭣고?’를 철저하게 단속을 하셔야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야 방호출신대장부(方號出身大丈夫). 그것이  세상에 나온 정말 대장부(大丈夫)  것이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형제자매 모든 도반들을 위해서 같이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원장으로서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는 바입니다.(31분14~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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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차주비대역비소~’ ; [전등록(傳燈錄)] (제30권) 단하화상(丹霞和尙)의 ‘완주음(翫珠吟)’ 참고.

*반야(般若) : [] prajna  [] panna  파리어를 음대로  것인데, 지혜(智慧) 또는 밝은 것이란 말이다.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무량억겁(無量億劫) ; 헤아릴  없이  시간.

*법성(法性) ; ①있는 그대로의 본성, 상태. ②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변하지 않는 진실, 진리.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요요명명(了了明明) ; 요요(了了)하고 명명(明明)하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신통묘용(神通妙用) ; 신통(神通) 묘용(妙用).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①신기(神奇 : 신비롭고 기이하다) 정도로 ()하다. ②모든 것을 신기(神奇)롭게 통달(通達).

*묘용(妙用) ; 신묘(神妙 : 신통하고 기묘함) 작용(作用).

*자유자재(自由自在) ;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즉해서(卽--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주먹탱이 ; 주먹(다섯 손가락을 모두 오무려 쥔 손)같이 둥글고 단단하게 한데 뭉쳐진 어떤 것.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  -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찰나(刹那 ·짧은시간 /어찌 )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동자(同字).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 주인옹(主人翁).

*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 물건’ ‘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 11~13.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麼物  麼來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물건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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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 겨울철의  )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 음력 10 15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 말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온가부좌(온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자지바지 ; 좌선(坐禪)  몸에 너무 힘을 주어,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때는 몸을 단정(端正)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응시(凝視 엉길 /보일 )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단전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헛숨 ; 아무 까닭 없이 내쉬는 .

*위하수(胃下垂) ; ‘위 처짐(위가 정상 위치보다 처지는 증세)’ 위의 충만과 중압감, 구역질, 식욕 이상, 불면, 기억력 감퇴 따위의 증상을 보인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 의심 끝에 반드시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〇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  二六時中(이륙시중)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의심 끝에 반드시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 아울러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버리고 사위의(四威儀) 열두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간단(間斷 ·사이 /끊을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 사투리.

* ; (주로 ‘없다’, ‘않다’, ‘못하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②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또는 아주 심하게.

*진의(眞疑) ; 화두에 의심이 끊어지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에서.

〇話頭上(화두상)에  有疑不斷(유의부단)하면  是名眞疑(시명진의)니  若疑一上少時(약의일상소시)하고  又無疑者(우무의자)이면  非眞心發疑(비진심발의)라  *做作(속주작)하니라  是故(시고)로  *昏沈*舉(혼침도거)가  皆入作得(개입작득)하리라

화두에 의심이 끊이지 아니하면  이름이 참의심[眞疑]이니, 만약 의심을   잠깐하고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주작(做作) 속하느니라。이런 연고로 혼침과 잡념이 마음에 들게 되느니라。

*주작(做作 지을 /지을 )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

화두를   무상(無常) 느껴 발심(發心)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잠깐하고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도거()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散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번뇌심(煩惱心)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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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불(不可不) ; 어찌할 수 없이. 부득불(不得不 : 하지 아니할 수 없어).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 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세상 인연을  여의며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지키고 인사(人事)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3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

*끼니 ;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하루   일정한 시간에 먹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미음(米飮 쌀 미/마실 음) ; 쌀이나 좁쌀에 물을 많이 넣고 푹 끓여 체에 밭친 걸쭉한 음식.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장(請狀 청할 청/문서·편지 장) ; 청첩장(請牒狀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공안(화두 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공안(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공안(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念起念滅(염기염멸)  謂之生死(위지생사)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  寂中(적중)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  靈知(영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이르나니,  공적(空寂)과 영지(靈知)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一三二〇 ~ 一三七六)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후기의 스님으로 중국 구법승. 호는 나옹(懶翁), 본래 이름은 원혜(元慧), 실호는 강월헌(江月軒), 성은 (). 영해부(寧海府 : 경북 영덕군 영일면)에서 태어났다.

一三三九년(충숙왕 복위 8) 20세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공덕산 묘적암(妙寂庵) 요연(了然) 선사에게 출가하였다. 여러 산을 돌아다니다가 一三四四년(충혜왕 4) 양주 회암사(檜巖寺)에서 밤낮으로 정진하여 4년째 되는 어느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一三四七년(충목왕 3) 동짓달에 원나라로 가서 다음해 3 13일에 연도(燕都) 법원사(法源寺)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指空)화상을 만났다. 스님은 지공화상의 문하에서 5년을 지내고 다시 정자사(淨慈寺) 가서 임제 18대손인 평산처림(平山處林)선사의 법을 얻고 법의(法衣) 불자(拂子) 받았다.   그는 명주(明州)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으로 나아가서 관음을 참례하고 육왕사(育王寺) 무주(婺州) 복룡산(伏龍山) 등에서 훌륭한 선승을 만났다.

一三五五년(공민왕 4)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北京의  이름)으로 돌아가 원나라 순제(順帝) 명으로 광제선사(廣濟禪寺) 주석하고, 이듬해 그곳에서 개당(開堂) 법회를 여니 황제가 금란가사를 황태자가 상아불자(象芽佛子) 주었다.


다시 법원사에 가서 지공화상의 부촉을 받고 一三五八년(공민왕 7) 귀국하였다. 요양·평양·동해 등으로 다니면서 설법하다가 一三六〇년 가을에 오대산 상두암(象頭庵) 계시었다.

一三六一년(공민왕 10) 왕의 청을 받고 상경하여 내전에서 왕을 위해 법을 설하였다. 一三七〇년 광명사에 머물면서 선교 양종의 납자를 시험하는 공부선(功夫選) 관장하였다. 이듬해 왕사가 되고 수선사(송광사) 주지로  있었다.

다시 회암사 주지가 되어 절을 중수하고 교화 활동을 펴자 사람들이 본업을 잊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 멀리 밀양 영원사(瑩源寺) 옮기게 했으므로, 스님은 가는 도중에 여주 신륵사에서 병으로 수일을 머물다가  一三七六년(우왕 2) 나이 57, 법랍 37년으로 입적하셨다. 문하에는 환암 혼수(幻庵 混修), 무학 자초(無學 自超)  1백여 인이 있었다.

저술로는 『나옹화상어록』 1권과 『나옹화상가송』 1권이 있으며,   몇몇 별행 사간본도 전해지고 있다.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호흡지간(呼吸之間) ;   내쉬고() 들이쉬고()  사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 ; ()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 하고, 다시 줄여서 ()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시간단위. 지극히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 무한히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반석(盤石)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번씩 쓸어 반석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후원(後院) ;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공덕(隨喜功德)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재수(財數) ; 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길  있는 운수.

*(게송)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 준말.

*오욕락(五欲樂,五欲,五慾)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올개미 ; 올가미(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부득이(不得已)하다 ; 마지못하여   없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대장부(大丈夫 ·훌륭할 /어른·존칭 /사내·일꾼 )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 이치를 깨달은 사람.



[주요 내용]


(게송)차주비대역비소~ / 참선을 안 할래야   수가 없다 /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신령스러운 구슬[반야영주 般若靈珠], ‘참나’를 찾을  있는 곳이요, 바로  때다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준비호흡, 본호흡) / 의심이 화두의 핵심. 의심관(疑心觀) / 大疑之下 必有大悟 / 참의심[眞疑] /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있다 / 우리의 본업(本業)은 이뭣고?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한 생각,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자원봉사의 공덕이 크다 / (게송) 一波纔動萬波隨  似蟻循環豈了期  今日與君都割斷  方號出身大丈夫.



[주요 문구]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할라야   수가 없다. 의심을  할라야    없고, 참선을 안 할래야   수가 없고. ' 된다' 소리가 무슨 말이냐?” 너무나도 분명하게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본질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신통묘용(神通妙用) 자유자재(自由自在) 그러헌 놈을 우리가 낱낱이  가지고 있거든.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그놈이 어디로 깊이 깊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공간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바로 우리가 우리의 신령스러운 구슬, ‘참나’를 찾을  있는 곳이요, 바로  때다 그말이여. 잊어버리기가  어려워!  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달이 밝아도 먹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으면은 껌껌한데 구름만 치워버리면 환히 밝아지듯이, 우리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먹구름 속에서 살고 있는데  먹구름을 찰나(刹那) 간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다 이거여.


단전호흡은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자기 체질에 맞도록  시간 하고  시간을 해도 조금도 피로하거나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되, 주의할 것은 공양을 하고  시간 이내에는 하지 말어라.

식사를 하면은 위장 속에 음식물이 들어있는데 그놈을 호흡에 따라서 배를 내밀었다 홀쪽했다 하면은 위장에 무리가  가지고 위가 늘어나면 위하수(胃下垂) 같은 병이 걸리기가 쉬우니까 절대로 공양을 하고 2시간 이내에는 단전호흡을 하지 말고 그냥 평상으로 숨을 쉬어.


호흡을   해도 고대로   없는 의심이 터억 있으면    없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이뭣고?’하는 뒤끝에   없는 의심이 있잖아. 의심을 터억 관하는 거여. 그래서 그것이 의심관(疑心觀)이거든.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없는 의심(疑心)이 그것이 화두의 핵심이여. 그래서   없는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자꾸 입으로 ‘이뭣고 이뭣고  해도 상관이 없는 거여.


빨리 깨달을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공부가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고 그러지도 말고,

오직 내가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과 모든 성현들도 오직  법으로 생사해탈(生死解脫) 했다.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난들  해서   리가 있느냐.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있다’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가라.


우리가 보통 생사(生死)  몸뚱이를 육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이라 그러고,  육체에 호흡이 끊어져서 써늘해지면 그것을 죽었다[死]’ 그러는데,  참선하는 수행인의 분상(分上)에서는 육체를 기준으로  것이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 생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이 ()이고,  생각이 꺼지는 것이 ()이여. 죽음이여. 그래서  생각,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모든 세속의 인연, 모든 오욕락(五欲樂), 전부가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꿈이요, 물거품이요, 꼭두각시여.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올개미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그러니 출가한 수행자는 정말 명예니 권리니 지위 복이니, 일체 세속적인 모든 오욕락 똘똘 뭉쳐서 ! 끊어 버리고 오직 일대사만을 위해서 청춘과 우리의 몸과 우리의 목숨을 거기에다 바쳐야  것이다.


비록 머리를 깎지 않고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부득이해서 인연 따라서 가족을 아주 끊을 수는 없을지언정 이것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일장춘몽(一場春夢) 지나지 못한  사바세계의 꿈이라고 하는 것을, 무상(無常)하고 허망하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을 하시되,

‘전생에 지은 빚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가   있는,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해야  최소한의 책임은 하되  가운데 ‘이뭣고?’를 철저하게 단속을 하셔야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