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700/(601~625)2020. 3. 3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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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02)—1998년 2월 첫째일요법회(98.02.01) (87분)

(1/5) 약18분 (2/5) 약18분 (3/5) 약16분 (4/5) 약17분 (5/5) 약18분.

(1/5)----------------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렴(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 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나온 뒤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으며, 몇 번이나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거쳐 왔던가.


금일척제번뇌렴(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煩惱)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가, 우리 모든 중생들이 본래(本來)는 본심왕(本心王), '근본 마음의 왕'이라 한 것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요, 그런 본심왕과 같은 식구였었고, 같은 도반(道伴)이었었고 본심왕의 한 몸이었었어.


그런데 그 본심왕을 저버리고 등지고 거기서 한 생각 잘 못 먹고서, 한 생각 그릇 먹은 탓으로 거기서 떨어져 나왔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수없는 생(生)을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으로 돌고 돌며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의 몸을 받아가지고 돌고 돌다가,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았고 또 불법(佛法)을 만나서 이렇게 이 자리에 이렇게 형제자매 도반으로 불법을 믿고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최상승 법문을 듣고 믿고 마음에 계합(契合)해서 그 법문에 의지해서 여법(如法)히 수행할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했으니 그것으로써 우리의 역겁(歷劫) 다생(多生)으로 오면서 우리의 자성(自性)에 끼인 번뇌렴(煩惱染), 띠끌 먼지를 깨끗이 씻어 버리게 되었다 그말이여.


인연 따라서, 각자 자기의 어떠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이 나라에 남녀노소와 자기의 직업과 자기의 상황에 그 자리에 있어서 그렇게 살면서 그 속에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자기(自己)의 면목(面目)을 찾는 것 그 자체가 본심왕(本心王)이 계신 마음의 고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향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방금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실참실오(實參實悟), '실다웁게 진실하게 닦고 참되게 깨달아야 한다'는 간곡한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대저 수도(修道)의 본체(本體)는, 도를 닦아가는 참다운 근본은 무엇이냐 하면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하다. 본래 청정해가지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남[生]도 없고 멸(滅)함도 없으며 무유분별(無有分別)하다, 분별도 없다.


자성원만청정(自性圓滿淸淨)한 마음이 이것이 바로 본사(本師)니라. 본사(本師), 근본 스승이다.

본사라 하는 것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요, 바로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시다 이거여.

그렇게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렇게 확실히 믿고 그렇게 달관(達觀)을 해 버리는 거여.


그리해야 '이뭣고?'를 한번을 하더라도 그 한번의 '이뭣고?'가 바로 자성의 부처님과 바로 하나가 되어가는 길이여.

이렇게 해 나간 것이 승념시방제불(勝念十方諸佛)이니라. 시방에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느니라.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염(念)하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한 것도, 일심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해 가면 그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이고 좋은 수행 방법이기는 하지마는.

지금 오조홍인 대사의 「최상승론」에 말씀하신, 바로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 마음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무유분별(無有分別)하고, 이 자성원만청정심(自性圓滿淸淨心)이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철저한 신념과 달관(達觀)만이 이것이 최상승(最上乘)이요, 바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다 이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이러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 '이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앉어서나 서서나 일어서서나 일할 때나, 심지어는 골이 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외롭고 쓸쓸하고 슬플 때나, 오늘날과 같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 국가의 모든 어려운 난국(難局)을 만났을 때에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물질적 심적 고통과 곤란을 우리는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의지하고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우리를, 중심을 잡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어려운 속에서 어려운 일을 당해보지 않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난관(難關)에, 난관을 만나가지고 그 난관에 부딪혀서 그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 중심을 잡어 나가고, 사업이 되었건 학문이 되었건 또는 도(道)를 닦는 일이 되었건,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수월하게 편안하게 그러기를 바래지 말라 이거거든.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수월하게 되어가는 사업, 되어가는 공부는 힘이 하나도 없어.

운동 선수나 모든 것이 그런 난관을 부딪히면서 거기에서 자기가 야물아지는 거고 건강해지는 것이고 그리해야 더 큰 문제를 당했을 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도 목적을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끄떡이 없는 것이다 하는 그런 요지(要旨)의 법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저 오천년 전 단군(檀君) 이래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있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를 거쳐서 오면서, 고구려 양만춘 장군은 신라와 백제를 설득을 해서 '삼국(三國)이 합해가지고 당(唐)나라를 우리가 쳐서 평정(平定)을 해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결국은 당나라한테 짓밟히게 된다'고 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을 했지만, 신라 김유신 김춘추는 오히려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또 나당 연합군(羅唐聯合軍)을 만들어 가지고 백제를 쳤습니다.


그래가지고 신라가 삼국통일(三國統一)을 했다고 하지마는, 옛날과 같이 겨우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가는 시대에 경주(慶州)에다가 서울을 놓아두고 어떻게 이 백두산(白頭山) 이남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몇 배 된 저 넓은 만주(滿洲) 땅을 경주에 앉어서 다스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당나라 원군(援軍)과 합해가지고 고구려를 치는 대가(代價)로 압록강 이북 만주 땅을 다 주어버렸는지, 신라 경주에서 만주까지 다스릴 수가 없어서 포기를 했는지 그것은 역사 학자들이 연구해 볼 과제이지만, 차라리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으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만주까지 합해서 한국 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과 같이 쬐끄만 나라가 아니고, 정말 큰 나라가 되어 있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때 삼국이 단합해가지고, 한 나라가 되어가지고 당나라를 상대했어야 할 것을, 당나라를 끌어들여가지고 고구려를 치고 백제를 친 바람에 우리나라는 이 손바닥만한 쬐끄만 나라가 되어가지고, 약소국(弱小國)이 되어가지고 꺼떡허면 중국(中國)의 핍박을 당하고 탄압을 당하고 속국 노릇을 하고,

까딱허면 왜놈들이 와가지고 우리나라를 짓밟고,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을사조약(乙巳條約) 등 한일합방을 해가지고 우리나라는 인간으로서 참 당할 수 없는 그런 피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핍박의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군(檀君)의 후손으로서 단합하지 아니하고 서로 싸움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그러한 이웃나라로부터서 핍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처음~18분1초)





(2/5)----------------


임진왜란도 노론(老論)이니 소론(少論)이니,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해가지고 그러한 왜놈한테 짓밟히게 되었는데,

그때에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율곡 선생(栗谷先生)이 처음에 출가해서 젊은 나이로 견성(見性)을 했으나 세속에 인연이 더 있고 세속에 내보내야 나라를 위해서 나라의 위경(危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서산대사께선 생각하셔서 율곡 선생한테, '나가거든 벼슬을 해가지고 자기의 말이 통할 만큼 되거든 임금님께 상소를 해서 십만양병(十萬養兵)을 할 것이며, 병역을 개혁을 하고, 각 도성을 수리하고 개축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고 그런 등등 아주 구체적으로 상소(上疏)를 써서 올리도록' 그렇게 특별히 부탁을 해서 내보냈던 것입니다.


율곡 선생이 서산대사의 뜻을 받들어서 그러한 소(疏)를 올렸지마는, '이런 태평세월에 무슨 그런 것이 필요하느냐' 해가지고 나라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노론(老論)이니 소론(少論)이니 싸움만 들입대하면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결국은 임진왜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여러분들이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계시나, 그것이 서산대사의 부촉(咐囑)으로 율곡 선생이 나와서 그런 거 했다고 한 사실에 대해서는 혹 모르실 분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리고 '임진왜란(壬辰倭亂)'하면 우리는, '바다에서는 이순신이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가지고 했다' 그러는데,

그 거북선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송귀봉(宋龜峯) 선생이라는 분이 이순신한테 거북선을 만드는 설계도를 그려 주었던 것입니다.


송귀봉 선생은 천문 · 지리 · 의학 · 복서(卜筮) 모든 것에 통달한 분으로 서손(庶孫)이라 해가지고 천대를 받고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율곡 선생이라든지 당대의 대석학들이 다 이 송귀봉 선생이 비록 보통 사람들은 다 서손(庶孫)이라고 해서 업신여기고 상대도 안하고 했지마는, 율곡 선생은 그분을 다 알아보고, 우계 선생(牛溪先生)이라든지 율곡 선생, 당대에 다 정말 올바른 정신을 가진 선비들은 송귀봉 선생과 스승, 사제지간이나 친구의 인연을 맺어가지고 마음으로부터 다 존경하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그 송귀봉 선생으로부터 거북선 설계도를 받아가지고 거북선을 만들어가지고 바다에서 왜군 함정을 다 박살을 냈던 것입니다.


그때에도 노론이니 소론이니, 동인 · 서인 해가지고 이순신 장군을 잡어 올려가지고 안 죽을 만큼 고문을 하고 아주 그랬습니다. 그동안에 원균(元均)이란 사람이 그 좋은 거북선 다... 왜군하고 싸워가지고 다...

싸움이라 하는 것이 우격다짐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지혜(智慧)로써 병법(兵法)으로써 이것을 해야 비록 이쪽이 군력(軍力)이 약하더라도 몇 배, 몇십 배 되는 상대를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전략이요 병법인데, 이순신 장군과는—그분도 한편에서는 '원균(元均)도 훌륭한 장군'이라고 요새사 모다 그런 말을 하는데, 이순신 장군을 따를 수가 없어.


그래가지고 그 좋은 거북선 다 때려 부숴버리고 아주 완전히 바다가 못쓰게 되니까 이순신 장군을 할 수 없이 백의종군(白衣從軍)하도록 내려보내니까, 몸이 아주 삼백육십 골절(骨節)이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는 몸을 쩔룩거리면서 내려가가지고 배 몇 척 남은 것을 수리하고 어쩌고 해가지고 순전히 머리로써 왜놈들과 싸워서 그나마 수습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노론 소론, 그런 자기의 자당(自黨)의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눈이 어두워가지고 국가의 위기를 만나서도 그 싸움을 계속 조정(朝廷)에서는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때 그래가지고 나라가 만주를 다 잃어버리고 쬐끄만하게 되어가지고도 그랬는데, 이조(李朝)에 와가지고도 노론 소론이니 해가지고 결국은 왜놈들한테 짓밟혀가지고 참 피바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조선 말기 구한국(舊韓國) 시대에도, 그때에도 단합을 할 줄을 모르고 이완용이를 비롯한 정신 못 차린 사람은 왜놈들한테 붙어가지고 고관대작(高官大爵)을 하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대원군(大院君)과 며느리인 민비(閔妃)가 서로 국권(國權)을 잡기 위해서 서로 한편에서 청나라를 손잡으면 한편에는 일본하고 손잡고, 로서아(露西亞)하고 손잡고 해가지고 결국은 그럭저럭하다가 한국은 완전히 왜놈의 식민지가 되어가지고 36년 간의 식민지 압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1945년 해방(解放)은 유엔군의 힘으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어가지고도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나라를, 독립한 나라를 만들어가지고 잘하려고 하지를 못하고, 좌익(左翼)이니 우익(右翼)이니 또 갈라져가지고 피나는 싸움을 했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단독정부를 수립해가지고 그러다가 육이오 동란(動亂)을 맞이해서 민족상쟁(民族相爭)의 그러한 육이오 동란을 우리는 겪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한 삼십 년, 오일육 군사혁명 이후로 공업입국이라 해가지고 우리가 오천년 내려온 보릿고개는 겨우 면해가지고, 군사정권(軍事政權) 하에서도 일부 민주주의는 못했다고는 하지마는 어떻게 되었던지 경제적으로는 차츰차츰 성장을 해가지고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비교적 잘살게 되었고,

2천년대에 가서는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간다고 세계 각국에서 모다 한국을 눈을 부릅뜨고 보게 그런 데에까지 왔었다가, 88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다시 민주주의헌답시고 그러다가 국가가 대단히 혼란해 져가지고 김 정권에 들어와서 경제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 허물을 들추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살고, 어떻게 하면 나라가 잘 못 사는가'에 대해서 그점에 대해서 각자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러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리사욕(私利私慾)과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빠져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렇게 지내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인가?

어느 나라 사람이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도 당리당략을 위해서 사리사욕에 그런 생각을 버리지를 못한 것인가?


쉬운 말로, 형제간이 평소에 사이가 좋지 못해서 형제간에 싸우다가도 동생이나 형이 다른 사람과 싸우게 되면 형제간에 그동안에 싸우던 것을 그만두고 한마음이 되아가지고 다른 사람과 상대해서 싸우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나라에 몸담고 있는, 이 민족의 피를 받아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욕(私慾)을 버리지 못하고 각기 제 욕심만 차리고, 앞으로 돌아오는 5월이면 무슨 선거가 있다 해가지고 그것에 대비해가지고 서로 헐뜯고 단합을 못한다면 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당 야당이라 하는 것이 저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든지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서 나라와 민족을 잘살고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여당 야당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나라는 망하더라도 자기 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헐고 뜯고 싸우다가 나라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도록 놔두게 된 거 아닙니까?


앞으로 선거를 하게 될 때, 우리는 또 투표를 하게 됩니다.

'어느 당이 정말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당인가? 어느 당이 또 어느 후보가 진정한, 진실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할 사람인가?' 그걸 잘 알아서 표를 던져야 할 것입니다.


입으로 거짓 번드르르 하니 공약을 남발을 하는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 누구가 나가면은 정말 좋은 정치를 할 사람인가를 우리는 골라야 하는데,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 살다보면 '부부간에 싸우면 칼로 물 베기'라고 그런 말도 있습니다마는, 밤낮 싸우고 인자 다시 인제 헤어질 것처럼 무섭게 싸우다가 하룻밤만 잘 자고나면 그 이튿날은 또 괜찮고,

그 좋아졌으면 그대로 쭈욱 잘 살면 될 텐데 또 얼마 며칠 안 가면 또 싸우고, 또 하룻밤을 자고 나면 또 싸움이 좀 가라앉고.

애들, 아들딸들이 다 장성한, 또 아주 어린 아들딸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그 서로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조심하면서 그렇게 오손도손 살면, 첫째는 자기 자신들도 좋고, 자식들 보는 데에도 참 챙피하지 않고 이웃 보는 데에서도 좋고 그럴 텐데, 기왕 살 것을 왜 싸우냐 그말이여.


결혼 해가지고, 하자마자 뭐 예물을 적게 가져왔느니, 무슨 지참금을 적게 가져왔느니, 무슨 그런 문제를 가지고 싸워가지고 금방 이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게 말이 안되거든.


이야기가 나온 김에 결혼 비용에 대해서 절대로 분에 넘치게 많은 몇천만 원씩, 몇 억씩 그렇게 쓰지를 말고 아주 검소하고 간략하게 그렇게 비용을 절약을 하고, 그런 있는 돈 가지고서는 앞으로 살아가는데에 요긴하게 잘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방향으로 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리하게 잔뜩, 결혼 비용을 잔뜩 낭비를 하고서 결혼한 뒤에 부모가 빚더미 속에 앉아서 고생을 하게 한다면 그게 무슨 어리석은 지서리입니까?


속담에 예물을 차로 잔뜩 싣고 간 사람은 나중에 보면 별로 잘 못살고, 설혹 가난하게 셋방살이로 시작했지만 서로 절약하고 열심히 해서 10년 20년 뒤에는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그런 부부도 얼마든지 있는 것을 우리는 듣고 보고 알고 있습니다.(18분2초~36분9초)





(3/5)----------------


'법회에 무슨 결혼 예물 얘기를 허까?'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마는, 결혼 문제는 집집마다 다 겪어 왔고, 현재 겪고 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중대사(重大事)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대사(大事)라고, '대사 추린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그러는데.

여기에 앉어 계신 분들은 결혼하지 않고 부부가 없이, 이 세상에 부모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부부가 결합해가지고 아들을 낳고 또 그 아들이 또 부부가 결혼을 해가지고 아들 낳고 해가지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몸을 우리가 받어나,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결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냐 하면은, 남자는 양(陽)이고 여자는 음(陰)인데, 음과 양이 합(合)해져야 거기서 모든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식물까지라도 음양(陰陽)의 이치에서 벗어나가지고는 생성되지 아니하고 생존(生存)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밤과 낮도 음양(陰陽)이요, 해와 달도 음양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대소(大小)... 모든 것이 다 음양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극기(太極旗)가 바로 그러한 이치(理致)를 표현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단풍잎을 그 국기에다가 넣기도 하고, 삼색 오색을 넣어서 색동저고리처럼 하는 나라도 많고, 일본은 해를 떠억 그려가지고 국기라 그러는데, 또 중국은 별을 그리고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음(陰)과 양(陽)과 팔괘(八卦) 중에 사괘(四卦)를 넣어가지고 따악 했는데 우주의 진리, 우주의 생겨남과 우주의 생성에 대한 이치를 표현한 것이어서,

이것은 앞으로 이 한국이 언젠가는 세계의 중심 국가(中心國家)가 되고 세계 평화를 이루는데 중심 국가가 되고, 세계의 평화와 발전과 세계가 한집안이 되게 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는 중심 국가가 되기를 염원(念願)해서 그렇게 국기를 만들었을 것이고, 그러한 근본정신에 입각해서 우리가 잘 노력을 해 간다면 실지로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단군(檀君) 이래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으로 우리나라는 오늘날까지 100프로 완전히는 못했다 하더라도 근본이념이 홍익인간이기 때문이고, 유교(儒敎)와 불교(佛敎)의 성현의 정신을 우리는 국교(國敎)로 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다른 종교도 많이 들어와 있기는 합니다마는, 우리나라의 근본종교요 근본정신은 유교요 불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신이 바로 박히고 뿌리가 올바르면 잘 가꾸고 잘 가꿔 나가기만 하면은 반드시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잎이 무성하고, 좋은 꽃이 피고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분열이 되어가지고 '반대를 위한 반대',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비록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여당 야당이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국가와 민족, 우리 모두를 위해서 보다 더 발전하고 잘살기 위해서 여당 야당이 있어야지, 나라는 망하더라도 자기 당이 집권을 하기 위한 그런 싸움이 있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을 없애려면은, 유교나 기독교나 그런 종교는—현재 우리나라는 자유니까 무슨 종교를 믿던지 다른 종교를 내가 배타하는 생각은 없습니다마는—불교만큼 화합(和合)하고 전체가 한 식구가 되고 한 몸이 되는 그런 자비(慈悲)의 사상은 불교만큼 훌륭한 종교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종교도 그 종교의 경전(經典)을, 경을 떠들어보면 좋은 말씀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경전만큼 그렇게 훌륭하지를 못합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법상(法床)에서나, 사석(私席)에서 다른 종교를 헐고 뜯고 비난할 생각을 아니 가지고 있고, 될 수 있으면 안 할라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경전은 구절구절이 다 거룩하고 훌륭합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꿀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꿀은 겉을 먹으나, 파고 속을 먹으나, 저 밑바닥을 먹으나, 동서사방 아무 쪽에서 뜯어서 먹어봐도 다 달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냐 하면은 불법(佛法)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49년 동안 설하신 모든 경전이 어느 구절 어느 토 하나라도 다 진리의 말씀이고, 다 좋은 말씀이고 거룩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부처님께서 처음에 보리수(菩提樹) 하에서 깨달으셔 가지고 삼칠일(三七日) 동안 설하신 것이 <화엄경(華嚴經)>이시고 [最初華嚴三七日],

그다음에, 화엄경을 설하셔도 중생들이 아직 성숙이 안되어가지고 못 알아들으니까 <아함경(阿含經)>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그다음에 조끔 중생의 근기(根機)가 나아지니까 <방등경(方等經)>을 8년 동안 설하시고 [阿含十二方等八],

그다음에 또 수승이 되니까 21년 동안 <반야경(般若經)> 육백 부(六百部)를 설하셨습니다. [二十一載談般若]


그러한 다음에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이다. 마지막에 가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임종하실 때에 <열반경(涅槃經)>, 최후에 <유교경(遺敎經)>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방대한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법(法)을 설하시고도 그 구절구절이 다 거룩하고 훌륭한,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렇게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만, "내가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에 설법(說法)험으로부터 마지막 이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에 단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노라"

거기에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을 설(說)하신 것입니다.


그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이 오늘날 우리가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활구참선 법문으로 맥락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화엄경> <법화경> <원각경> <금강경> 그 좋은 법문(法門)을 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공부를 안 하고 덮어놓고 '이뭣고?'만 해 갖고 되냐?

육조(六祖) 스님 같은 분은 육신보살(肉身菩薩)로 보살 화현(化現)이기 때문에 일자무식(一字無識)이었지마는,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해가지고 그런 부처님으로부터 33대의 법등(法燈)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그런 분이 몇 분이나 되느냐?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범부중생(凡夫衆生)들은 '이뭣고?' 해 갖고 안된다. 어쨌든지 경전공부를 해야 하고, 또 '아미타불'을 불러서 죽어서 극락세계라도 가야지 '이뭣고?' 밤낮 해봐라. 누가 요새 세상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이렇게 그럴싸한 말을 가끔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경전이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보면, 내 마음을 닦어서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고 불법(佛法), 부처님[佛]과 법(法)과 우리 중생(衆生)이 바로 이 세 가지가 차별(差別)이 없다’고 하는 것을 구구절절이 말씀을 하신 것이고, 그 내 마음에 부처를 찾는 방법이 '이뭣고?'거든.


'이뭣고?'가, 유식하고 아이큐가 높고 그렇다고 해서 '이뭣고?' 꼭 잘하는 게 아니여.

낫 놓고 기역자를 몰라도 그 올바른 방법으로—첫째는 이 법(法)을 철저히 믿고 '참 부처님은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 그것을 철저히 믿기만 하면—올바른 방법, 올바른 방법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을 이론적으로 따지지 아니하고, 꽈악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해 갈수록 꽈악 맥혀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성(本性),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을 수가 있다고 믿고 그렇게 실천해 나가면 반드시 이것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수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생각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하면은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부터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물이 흘러가면 그 물을 거슬러서 올라가면 최후에 그 본원(本源), 물이 발생하는 그 발생하는 샘을 찾을 수 있듯이,

번뇌망상,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팔만사천 번뇌가 발꾸락에서 난 것도 아니고, 등어리에서 난 것도 아니고,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마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본성(本性) 자리에서 그것이 나온 것이라, 그놈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착...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꾸자꾸 하다 보면은 저절로 화두(話頭)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일체처(一切處)에서 바로 항상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면 반드시 그런 때가 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성(本性)을 찾을려고 노력을 해야 그 사람은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이고, 옳게 믿어야 옳게 수행(修行)을 할 수가 있어. 그래야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해야 자기도 중심(中心)이 잡히게 되는 것이고, 탐심과 치심과 허영(虛榮)과 허욕(虛慾)의 노예가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가정을 다스리며, 자기를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머리만 좋아가지고 고시에 파쓰(pass) 했다고 해서 훌륭한 판검사가 되고 훌륭한 변호사가 될 수 있으며, 시험에 행정고시 합격했다고 해서 자기를 바로잡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관리가 되며 훌륭한 장관이 되며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사리사욕(私利私慾)에 꽈악! 쩔은 인간이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하냐 이거여.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참선(參禪)을 하니까 나를 뽑아 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내가 또 정치 할 생각도 없고, 대통령에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누구든지 참선하는 사람을 꼭 뽑으라' 그런 얘기도 아닙니다.


정치를 바로 하려면은 바른 법을 믿고, 자기 마음을 닦을 줄 아는 사람이 해야 하고,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들이 앞으로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훌륭한 법률가가 되고 훌륭한 학자가 될라면, 어려서부터 젊어서부터 불법(佛法)을 믿고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하도록 그렇게 지도(指導)를 하시라는 뜻으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36분10초~52분38초)





(4/5)----------------


가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불법(佛法)을 믿고 스스로를 다스려서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아니해야 그래야 그 집안이 잘되는 거고, 자손들 교육도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요새 부쩍 불량소년들, 이렇게 소년들을 '불량(不良)하다'고 표현을 해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알기 쉽게 그렇게 말을 합니다.


탈선(脫線)하는 그런 학생들이 원래는 좋은 학생이었고, 좋은 집안에 깨끗한 어린이가 자라서 어떻게 중간에 친구를 잘 못 사귀거나 결손 가정에서 잘못 되어가지고 불량소년이니 모다 그러한 악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마는, 다 태어날 때는 다 좋은 애기였었을 것입니다.

천진난만한 애기였을 것이나, 부모를 잘못 만나고 가정을 잘못 만나고 여러 가지 좋지 않는 여건 하에서 나쁜 영향을 받아 가지고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해서 항상 생각해보면 안되었고 불쌍하고, 나날이 그런 학생들이 불어날 뿐만 아니라 나날이 청소년의 그 비행(非行)이 악랄해져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 살라면은 가정이 올바르게 경영이 되고 좋은 가정에서 애기들이 학생들이 올바르게 자라 주어야 하는 것이고, 학교에서도 점수 위주로 하는 교육은 당장 그걸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있고, 머리가 안 좋은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학생 나름대로 다 머리는, 아이큐는 좋지 않지마는 다 나름대로의 소질이 있고 그래서, 그 가지고 있는 소질을 살려 나갈 수 있는, 머리는 좀 안 좋지마는 안 좋은 대로 소질을 살려 나가서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자기 적당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자기도 살고 사회를 위해서도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길로 나아가도록 이렇게 해 준다면, 대학에 꼭 안 가도 되고 일류대학에 안 가도 될 것입니다.


일류, 일류 그것 해가지고 어려서부터서 점수만, 좋은 점수만 따도록 가정에서 압력을 가하고 학교에서 그렇게 압력을 가해가지고 사람을 기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고약한 교육을 해 온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그 학교(學校)라고 한 것이, 옛날에는 향교(鄕校)가 옛날에 이조 오백년 동안에 학교였었는데, 공자(孔子)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자기(自己) 자성(自性)을 깨닫도록, 자기 자성을 바로 잡도록' 인성교육(人性敎育)을 했습니다.


불교(佛敎)에서는 '살생(殺生)을 하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이렇게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를 가리켜서 어찌든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게 충성하고 자비(慈悲)로써 모든 사람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렇게 교육을 했고,

유교(儒敎)에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통해서 인성(人性)을 기르도록 그렇게 <소학(小學)>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 다 그렇게 가리켰습니다.


옛날에 더러 간신(奸臣)도 있었고 안 좋은 사람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청소년들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고 악랄하게 그러한 짓은 안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여러분 보십시오. 부모를 죽이고, 귀로 들을 수조차 없는 그런 흉폭한 그런 범행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법률을 엄하게 제정을 해서 징역을 살리고 사형을 하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은 꼭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서양 의학이 어디 아프면 무조건 잘라 내고 아프면 수술하고 그런 인술(仁術) 가지고서는 사람의 병을 올바르게 다스렸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탁! 진맥을 해가지고 '그 병(病)이 원인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내가지고 근본을 다스리는—내치(內治) 외치(外治), 근본을 다스리면서 약을 잘 써서 그렇게 해서 근치(根治)를 해야지,

대증요법(對症療法), 어디 아프면 근본은 따지지 않고 그 자리에다가 집중적으로 해 나가는 그런 방법 가지고서는, 의술 가지고서는 참으로 인간 건강을 도모하는 의술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좋은 자식을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고 싶거든, 어른들이 먼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바로잡고, 본성(本性)을 깨닫는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녀들의 교육이 올바르게 되어질 것입니다.


자기는 밤낮 부부간에 싸우고 사리사욕에 어두워져서 존경 받지 못할 심성과 언어와 행동을 하면서, 자식 보고는 돈 있으면 돈만 주면서 점수만 따라고 족쳐 댄다고 해서 그 자식이 올바르게 자랄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표현이 무식하게 표현을 하고 있지마는, 잘 가서 생각해 보시면 정말 자기 자손을 올바르게 가리키고 가정을 행복한 터전으로 만들고 정말 좋은 안식처를 만들고 나아가서 나라를, 사회를 정화해서 살기 좋은 평화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원동력이 제 말 속에 있습니다.


왜 그러냐?

내가 입만 내 입을 통했제, 근본은 부처님 말씀을 하고 있거든.


그래서 표현이 좀 두서(頭緖)가 없고 무식한 표현을 해도—『염송(拈頌)』이나 그런 데 어려운 공안(公案)을 가지고 알아듣지 못한 소리를 나도 그거 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은, 알기 쉬운 말로 자기를 다스리고, 가정의 평화를 도모하고, 사회 국가를 잘 할 수 있는 그런 말을 나는 여러분에게 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을 해드리는 것입니다.


경제가 지금 뭐, 외화가 없어서 뭐 파탄이 되고 부도가 나고 한다 하지만, 그거 별로 그렇게 크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각자가 자각(自覺)을 해서 검소하게 살고, 외화를 낭비하지 아니하고, 있는 돈은 예금을 하고, 허비 · 낭비 · 허영심을 고쳐 나간다면, 얼마 안 가면 이거 바로 잡습니다.


그동안에 우리가 좀 돈 좀 벌었다 해가지고 너도 나도 외국으로 나가고 좋은 옷에다가 좋은 집에다 좋은 차에다가, 뭐 전혀 정신없이 몇 년 동안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길에 나가면 차가 꽉 들이 차가지고 댕길 수가 없습니다.

차도 꼭 필요한 사람은 차도 있어야겠지만, 어지간하면은 전차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을 하면서—그 대신 국가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도록 여러 가지를 연구를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마는.

우리 각자도 조그만한 차도 괜찮을 것인데 될 수 있으면 큰 차를 사려고 그러고, 고급차를 사려고... 앞으로 우리나라는 무제한으로 외국차가 맘대로 들어오게 됩니다마는, 다투어서 외국차를 사려고 그러고 큰 차를 사려고 하면 우리나라는 진짜 경제적으로 식민지가 되고 짓밟히게 됩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전 국민이 정신 못 차리면 머지않아서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아서 되겠습니까?


"나는 안 그러고 다른 사람이 그러니까 그런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부터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첫째, 허영심(虛榮心)을 버릴 것은 당연히 버려야 하고, 차도 자기에게 꼭 필요한 만큼 조그만한 차를 사서—그것도 나라에서 '외국차 사지 말라'하면 그것도 안됩니다, 안되고.

각자가 외국차 안 사면 외국차 산때미 처럼 가져와봤자 팔아먹지 못하면 도로 짊어지고 가거나 헐값으로 버리고 갈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에서는 그런 소리 못 하고.


담배를, 그 피워도 좋지 않은 것을 끊으면 좋고, 부득이해서 피우더라도 조끔씩만 피우고, 그것도 우리나라 것도 세계 어디에다 내 놔도 괜찮을만한데 왜 외국 담배를 피냐고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 외국 담배를 핀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마는, 참...

담배는 당장 딱 끊을 수 있으면 끊어버리는 게 좋고, 못 끊으면은 조끔씩 조끔씩 줄여나가고.


담배 줄이는 방법은 처음부터 긴 놈을 가지고 빨 것이 아니라, 끊어 갖고 조끔씩 피는 게 좋아요.

긴 것을 피면 처음에 조끔 필 동안에는 맛이 향그럽고 좋은데, 삼분의 일만 타면은 별맛이 없으니까 턱! 버려버리거든. 버려버리고 또 새 담배 피는데.

그러지 말고 조끔 끊어서 딱 해가지고 빨치에다 끼워서 딱 피면 그다음에 또 조끔 피우면 밤낮 새 맛이다 말이여. 그러니 그것도 절약이 될 뿐만 아니라, 그것 많이 피워서 좋을 것이 뭐 있냔 말이여. 허파가 연탄재에 버무려 놓은 것 같이 될 건데.


그 사람이 조끔 결단성이 있는 사람이면 딱! 끊어버리고 인단(仁丹) 같은 것으로 따악...

내가 담배도 안 피워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까?

담배 안 피워 봤어도 다 잘 알고, 결혼해서 자식들 안 낳아 봤어도 여러분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좋은 자식을 낳는가?' 그것 나 잘 알고 있고요.

'어떻게 하면은 낳아가지고도 잘 길른가?'도 그것도 잘 압니다.

나는 그걸 다 부처님으로부터 다 배웠습니다. 경전 속에 그런 말씀도 다 있습니다.


나는 경전을 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니지마는 심심하면 한번씩—이 용화사 경내에서는 경전을 못 읽게 합니다. '이뭣고?'할 사람이 밤낮 경만 뛰적거리면은 공부가 더디니까 용화사 규율로 그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마는, 나는 용화사에 안 있는 때는 내가 조끔씩 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해 드려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애기를 잘 낳으려면은 첫째, 부모가 건강한 몸이어야 하고 건전한 정신이어야 합니다.

밤낮 싸우면서 술 잔뜩 먹고 그래가지고 조성을 해 놓으면 그것이 어떤 애기가 태어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늙어서 애를 낳으면은 그것을 '노인지자(老人之子)'라 해가지고 영 히마리... 건강한 자식을 낳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하물며 요새 더군다나 음식이라는 것이 전부가 방부제 넣고 흰 설탕 넣고, 밀가루가 되었건 흰쌀이 되었건 전부가 몸에 해로운 것들입니다.


인스탄트 식품은 전부가 다 방부제가 들어있는 거고, 그런데다가 술도 옛날에 어른들은 반주(飯酒)로 한 잔 조끔씩 먹으면 그거 약주(藥酒)가 되는 거고 몸에도 좋다는 건데, 조끔 기분만 나쁘면은 친구들 몰고 가가지고 일차 이차 삼차, 그러고 뭐 폭탄주라 해가지고는 술잔에다 독한 술을 집어 넣어가지고는 마시면은 몇백 배 삽시간에 취기(醉氣)가 올라가지고 완전히 위가 헐어져 가지고 피가 쭉쭉 흘르는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한번만 해도 여러 달 그 여독(餘毒)이 갈텐데, 일주일에 몇 번씩 그 짓을 하니 몸도 망가지고 그럴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몸 가지고 자식을 만드니 되겄습니까 그게? 그러니 자식 낳은 것이 모다 기형아를 낳고.


기왕 자기의 혈통을 이어갈 자식을 만들면 백일(百日) 동안을 참 근신(謹愼)을 하고 옛날에는 그래가지고 강감찬 장군 같은 분도 나오고, 옛날 다 위인들은 다 부모가 그렇게 해서 아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근기(根機)가 약해서 그렇게 까지는 못하더라도, 정말 자식 농사라는 것은 집안을 망하느냐,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자식한테 달려있습니다.


옛날에는 한번 부자가 되면 몇 대씩 내려갔는데 지금은 당대(當代)에도 망헙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놓았기 때문에 당대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부잣집 자손들이—물론 부잣집 자손도 훌륭한 또 자손을 두는 예도 있습니다. 그분은 다 그렇게 잘해서 그렇겠지마는, 벼락부자 된 사람은 대부분 자식을 잘못 두어 가지고 탁! 재산을 엎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탕진(蕩盡)하게 되는 것입니다.(52분39초~1시간9분57초)





(5/5)----------------


그전에 입덧을 하면은 '어떻게 하면 단시일 내에 그 입덧을 가라앉힐 수 있느냐?'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엎드려서 아라비아 숫자를 이렇게 8자를 기면서, 8자를 쓰면서 기라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려서 그것을 실천을 해보신 분이 있는가 어쩠는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것을 한번, 앞으로 현재 입덧을 하거나 아들 며느리, 따님들 입덧을 하거든 그것을 꼭 일러주십시오.


엎드려서 개처럼 기면서 8자를 쓰면서, 큰 방에서 요렇게 8자를 쓰면서 20분 간을 그렇게 하는데, 애기 배자마자 해서 열달 동안을 해도 좋지마는 입덧 날 때만 해도 됩니다.

그 한 번에 낫기도 하고, 늦어도 한 일주일만 하면 나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사람은 네 발로 기게 신체의 구조가 되어있는데, 생활상 편리하기 위해서 두 발로만 걸어 다니다 보니까 오장육부와 이 골조에 무리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리도 많이 아픈 것도 그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허리를 앓게 되는데, 옛날에 육체가 생긴 대로 기어서 댕김으로 해서 입덧이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은 입덧을 안 하게 되는 것이, 새끼 뱄어도 먹기만 잘하거든요.

그러니까 입덧을 가라앉히는 법을 작년엔가 언젠가 한번 일러드리고, 앞으로도 종종 그런 묘방을 일러 드린다고 했는데 뭐 다른 얘기하느라고 못했습니다.


그 참, 자식 농사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자식을 낳기 위해서는 어찌든지 포태(胞胎)하기 전에도 항상 부부는 화목하게 살아야 하고, 특히 애기를 뱄을 동안에는 절대로 부부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애기를 배면 자연히 산모(産母)는 신경이 예민해지게 됩니다. 짐승도, 동물도 그렇습니다마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포태를 하거든 신랑, 남편은 아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으로 살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조심을 하고 협조를 해야 합니다.

특히 밤늦게 오고 외박 같은 것을 안 해야 합니다. 그것을 헌즉슨은 아내는 오장이 확 뒤집어져가지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아내한테만 해로운 게 아니라 뱃속에 든 애기한테 치명상을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자녀를 낳고, 집안을 흥왕(興旺)시키는 좋은 아들을 두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을 낳을려면은 태교(胎敎)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성현(聖賢)들이 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다 말씀한 것이고, 여러분도 그것을 적극 실천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애기만 낳은 뒤에는 마음껏 싸워도 된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애기가 또 자라는 과정에 말 못할 때도 귀로는 환하니, 이 잠재의식으로는 다 듣기 때문에 애기 있을 때 싸워선 안되고, 커서도 더 말귀 알아들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은 안식처(安息處)이지, 생활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고 안식처이지 밤낮 싸우라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싸울라면 뭐하러 결혼을 합니까?


그래서 가정이 잘되어 가야 그 사람이 직장에 나가도 일이 잘되지, 집안에서 오장이 뒤집어져가지고 직장에 나가면 그는 일이 제대로 잽히겠습니까? 부하 직원들한테도 사소한 일에 말이 거세게 나와 가지고 직장에서도 여러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그 직장이 무엇이 됩니까?

그래서 가정이 조용하고 편안해야 하고, 부모가 싸우는데 자식들이 공부가 잘될, 제대로 될 학생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말조심, 마음으로는 안 그런데 말은 함부로 해가지고 남의 오장을 뒤집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이 그렇지 아니하면 말도 조심을 해야 하고 행동도 조심해야 하는데,

평상시에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항상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이뭣고?'를 하면,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깨끗하니까 나오는 말도 유순하고 부드럽고 좋은 말이 나오게 될 것이고 행동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기껏 한 시간 이상 말을 했지마는, 결론은 '이뭣고?'입니다.

'이뭣고?'를 해야 자기도 좋고 가정도 좋고, 애기도 좋은 애기를 낳고 국가도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중 박수)



내가 오늘 그만 내려가고 싶은데 하나를 더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은, 생활 식품 쓰레기가 우리나라에 쓰레기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을 돈으로 따지면은 8조 원어치가 버려진다고 그럽니다.

이것은 정부에서 통계를 내가지고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 거짓말이 아닐 것입니다. 1년 동안 음식 쓰레기로 나가는, 버려지는 먹을만한 음식이 8조 원이라고 하니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서 이 음식을 함부로 해가지고 버리게 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냐 하면은 첫째, 가정적으로 돈을 낭비한 것이 되는 것이고. 낭비를 안 하면 그것이 절약이 되니까 경제적으로 저축이 되는 것이고.


그다음에 자연을 더럽히지 않게 됩니다.

음식 쓰레기를 버려가지고 그놈이 썩어 문드러져서 나가면 강물이 오염이 되고, 강물이 오염이 되면은 그 강에 살고 있는 많은 생태가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썩은 물이 바다로 내려가면 어패류가 다 병들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사다 먹으면 암이 걸리고 360골절(骨節)과 오장육부의 온갖 병이 거기서 다 또 생기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네들이 버려가지고 그 독(毒)이 자기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함부로 하게 되면 복(福)이 달아납니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옛날에는 함부로 버리면은 "복(福) 달아난다" 어른들이 그랬습니다.

복이 달아난단 말은, '자기의 복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음식을—모든 물건도 다 마찬가지지마는—사람이 먹음으로 해서 생명(生命)을 유지해 나가는 건데, 그러한 생명과 직결되는 음식을 함부로 버리게 되면 머지않아서 그 사람은 빌어먹어야 마땅한 팔자(八字)를 타고 나는 것입니다. 금생에도 망할 수밖에는 없는 거고.


내 이런 고약한 말을 해서 미안한데, 하다 보니까 내가 조끔 흥분이 됩니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은 정말 금생에도 재산상으로도 손해가 막심하지만, 일생 동안 먹고살고 내생(來生)에까지 먹고살 복(福)까지 달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물건을 살 때 필요한 만큼 사고, 또 사다가 냉장고다 이렇게 보관하더라도 먹을 만큼 요리를 하고,

먹을 때에 잔뜩 갖다놓고 그냥 이 사람이 퍼다 먹고 이 사람이 집어다 먹고, 입에 들어갔던 놈으로 그 도로 그리하고 침하고 범벅을 해서 먹고 남으면 막 갖다버리고 그럴 것이 아니라, 부페(buffet)식을 하라 이거지요.


절에서는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기 때문에 많이씩 이래 담아서—쭉 두 가지면 두 가지, 세 가지면 세 가지—갖다 놓으면 거기에 있는 저분(젓가락)으로 덜어서 각자 이렇게 놓고 또 다음으로...

발우공양을 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것이 현대화 된 것이 부페식입니다.


부페식을 해서 그걸 큰 그릇에다가 끼니 먹을 만큼 장만해서 갖다놓고, 각자 그 접시면 접시, 그릇이면 그릇에다가 거기에 있는 숟갈이나 거기에 있는 저분으로 이렇게 각자 먹을 만큼 덜어서 먹고,

조금 모자라면 거기에 있는 젓가락으로—자기의 먹던 거로 빨아먹으면서 계속 들랑거리지 말고—거기에 있는 저분으로 이렇게 또 덜어서 먹고.

그러고 남은 반찬은 전혀 침이 섞여 있지 않는 깨끗한 반찬이니까 그것을 잘 덮어서 두었다 다음 끼니에 먹어도 좋고.


먹고 난 뒤에 식사시간 조끔 늦게 온 사람도 그걸 먹어도, 먹고 남은 찌끄래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고, 또 그다음 거진 먹었을 때 손님이 오더라도 그릇하고 저분 수저만 가져오면 거기서 또 덜어 먹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구잽이 그 하다보면은 그 감기 든 사람이 하면은 감기가 온 집안 식구한테 전염이 될 것이고, 폐결핵을 앓는 사람이 그 음식을 같이 먹게 되면은 그 폐균이 다 옮기게 될 것이고, 에이즈가 걸린 사람이 있으면 그런 병이 또 전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위생적으로도 가정에서, 절에서 하듯이 발우공양을 떠억 하기는 조끔 사실은 어려울 것입니다마는, 부페식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는 거고, 저 고급식당에 가서 부페식 하신 분은 다 아시겠습니다마는—그것도 욕심 많은 사람은 좋은 음식 본 김에 잔뜩 먹는다고 잔뜩 퍼다가 먹고 삼분의 일도 못 먹고 갖다 버리고 온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이거 부페식을 해도 꼭 먹을 만큼만, 좀 '아, 저것은 맛있겄다' 싶어도 그럴수록에 조금만큼만 갖다 먹고 그거 정 부족하면 다시 또 덜어다 먹고 이런 식으로 해서, 그렇게 먹고는 남은 그릇은 숭늉 넣어서 이렇게 잘 가셔서 먹고 또 한번 더 가셔서 먹고, 설거지 해봤자 별로 찌끄래기가 나오지 않도록 어른들이 먼저 시범을 보이시고.


애기들도 다 그렇게 먹고 난 밥그릇이, 국그릇 밥그릇이 깨끗하도록 이렇게 딱 하면 설거지하기도 대단히 좋을 것이고 수돗물도 적게 들어갈 것이고, 거기서 내려가는 하수도 물도 깨끗한 물이 내려가게 될 것이니 한강 물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한강 물이 깨끗해지면은 서해(西海)나 또 이 낙동강 물이 깨끗해지면 남해(南海) 모다 그런 영산강 물이 다 깨끗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국책(國策)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이런 식생활(食生活)부터서 이렇게 깨끗이 먹고 위생적으로 먹고 아껴 먹고, 이렇게 하면 낭비하라고 해도 낭비 안 합니다. 허영을 부리라고 해도 허영을 안 할 것입니다.


이것은 별일도 아니고 불법(佛法)도 아닌 것 같지마는, 이 속에 불법(佛法)이 들어있습니다.

인간을 바로 만드는 것이고, 인간의 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어찌 불법(佛法)과 관계가 없겠습니까?


송담(松潭)의 말이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박수 한번 더 치세요. (대중 박수)

됐습니다.


오늘부터서 우리도 그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면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감사합니다. (대중 박수)



아금지차길상수(我今持此吉祥水)를  관주일체대중정(灌注一切大衆頂)하니

진로열뇌실소재(塵勞熱惱悉消除)하야  자타조속법왕위(自他早續法王位)니라

나무~아미타불~


아금지차길상수(我今持此吉祥水)를, 내 지금 이 길상수(吉祥水)를 가지고,

관주일체대중정(灌注一切大衆頂)하니, 여러 대중 형제자매 도반들에게 이 길상수를 쏟아서 노놔드리니,


진로(塵勞)와 열뇌(熱惱)가 다 깨끗해져서,  자타조속법왕위(自他早續法王位) 하여지이다.

"모두가,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위(位), 법왕(法王)의 위(位)를 다 전승(傳承) 받게 되어지이다" 하는 축원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길상수(吉祥水)는, 부처님의 법(法)에 의해서 저의 입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일러드리는 이 말씀을 길상수에다가 비유한 게송입니다.(1시간10분3초~1시간27분26초)(끝)





[법문 내용]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오조홍인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夫修道之本體 須識當身心 本來淸淨 不生不滅 無有分別 自性圓滿淸淨之心 此是本師 乃勝念十方諸佛.

단군(檀君)의 후손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단합하지 아니하고 서로 싸움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이웃나라로부터서 많은 핍박을 당하게 된 것이니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단군(檀君) 이래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 근본이념 / 불교의 훌륭한 자비 사상.


부처님 법문에서도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이 오늘날 우리가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활구참선 법문으로 이어져 왔다 / 내 마음에 부처를 찾는 방법이 '이뭣고?'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기(自己) 자성(自性)을 깨닫도록, 자기 자성을 바로잡도록 인성교육(人性敎育)을 해야 한다 / 지금 나라가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 자식 농사를 잘 지으려면 부모가 건강한 몸, 건전한 정신이어야 합니다.


입덧 가라앉히는 방법 : 큰 방에서 개처럼 엎드려서 기면서 8자를 쓰면, 20분 간을 그렇게 하면 한 번에 낫기도 하고, 늦어도 한 일주일만 하면 낫는다. 애기 배자마자 해서 열달 동안을 해도 좋지마는 입덧 날 때만 해도 됩니다 / 태교(胎敎)가 중요하다 / 결론은 '이뭣고?'를 해야 한다.

음식을 함부로 하게 되면 복(福)이 달아난다 / 발우공양(鉢盂供養) 현대화 된 것이 부페식 / 가정에서도 식사를 위생적이고, 경제적이고, 환경에 좋은 부페(buffet)식을 하라 / (게송)아금지차길상수~.



오조홍인 대사의 「최상승론」에 말씀하신, 바로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 마음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해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무유분별(無有分別)하고, 이 자성원만청정심(自性圓滿淸淨心)이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철저한 신념과 달관(達觀)만이 이것이 최상승(最上乘)이요, 바로 내가 부처님이 되는 길이다 이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이러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 '이뭣고?'


난관에 부딪히지 않고 수월하게 되어가는 사업, 되어가는 공부는 힘이 하나도 없어. 운동 선수나 모든 것이 그런 난관을 부딪히면서 거기에서 자기가 야물아지는 거고 건강해지는 것이고 그리해야 더 큰 문제를 당했을 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도 목적을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끄떡이 없는 것이다.


여당 야당이라 하는 것이 저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든지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서 나라와 민족을 잘살고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여당 야당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나라는 망하더라도 자기 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헐고 뜯고 싸우다가는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다.


앞으로 선거를 하게 될 때, 우리는 투표를 하게 됩니다. '어느 당이 정말 나라를 국민을 위하는 당인가? 어느 당, 어느 후보가 진실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할 사람인가?' 그걸 잘 알아서 표를 던져야 할 것입니다.

입으로 거짓 번드르르 하니 공약을 남발을 하는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 누가 나가면은 정말 좋은 정치를 할 사람인가를 우리는 잘 골라야 합니다.


불교만큼 화합(和合)하고 전체가 한 식구가 되고 한 몸이 되는 그런 자비(慈悲)의 사상은 불교만큼 훌륭한 종교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종교도 그 종교의 경전(經典)을 떠들어보면 좋은 말씀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경전만큼 그렇게 훌륭하지를 못합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법상(法床)에서나, 사석(私席)에서 다른 종교를 헐고 뜯고 비난할 생각을 아니 가지고 있고, 될 수 있으면 안 할라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경전은 구절구절이 다 거룩하고 훌륭합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꿀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꿀은 겉을 먹으나, 파고 속을 먹으나, 저 밑바닥을 먹으나, 동서사방 아무 쪽에서 뜯어서 먹어봐도 다 달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냐 하면은 불법(佛法)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49년 동안 설하신 모든 경전이 어느 구절 어느 토 하나라도 다 진리의 말씀이고, 다 좋은 말씀이고 거룩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대한 팔만사천의 법(法)을 설하시고도 그 구절구절이 다 거룩하고 훌륭한,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렇게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만, "내가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 설법(說法)으로부터 마지막 이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에 단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노라" 거기에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을 설(說)하신 것입니다.

그 최상승 법문이 오늘날 우리가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활구참선 법문으로 맥락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경전이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보면, 내 마음을 닦어서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고, 부처님[佛]과 법(法)과 우리 중생(衆生)이 바로 이 세 가지가 차별(差別)이 없다’고 하는 것을 구구절절이 말씀을 하신 것이고, 그 내 마음에 부처를 찾는 방법이 '이뭣고?'거든.


정치를 바로 하려면은 바른 법을 믿고, 자기 마음을 닦을 줄 아는 사람이 해야 하고,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들이 앞으로 훌륭한 정치가가 되고, 훌륭한 법률가가 되고, 훌륭한 학자가 될라면, 어려서부터 젊어서부터 불법(佛法)을 믿고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하도록 그렇게 지도(指導)를 하셔야 한다.


좋은 자식을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고 싶거든, 어른들이 먼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바로잡고, 본성(本性)을 깨닫는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녀들의 교육이 올바르게 되어질 것입니다.


기껏 한 시간 이상 말을 했지마는, 결론은 '이뭣고?'입니다.

'이뭣고?'를 해야 자기도 좋고 가정도 좋고, 애기도 좋은 애기를 낳고 국가도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01~225)2020. 3. 21. 21:06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220)—1983
(계해년) 동안거결제 법회(83.11.19) (57)
(1/3)----------------

기린난봉불성군(麒麟鸞鳳不成群)하고  척벽촌주나입시(尺璧寸珠那入市)인고
나무~아미타불~
늠름위광혼태허(凜凜威光混太虛)헌데  천상인간총부지(天上人間總不知)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기린난봉불성군(麒麟鸞鳳不成群)하고, 기린과 난봉새는 다른 짐승들과 떼를 짓지를 아니하고,
척벽촌주나입시(尺璧寸珠那入市)인가. () 직경이  자나 되는 그런 크고 좋은 옥과,  구슬이 직경이  치나 되는 그런  좋은 보주(寶珠), 보배 구슬이 어찌 시장에 나돌겠는가.

기린(麒麟)이라고 하는 짐승은 머리에 뿔이 두 개가  것이 아니라 뿔이 하나만 , 그런 아주 성스러운 짐승인데.
 나라 왕이나 천자가 성인(聖人) 출세(出世)  가지고 임금님이 되면 천자가 되면  기린이라고 하는 동물이 나타나고, 성인이 아닌 무도(無道) 사람이 왕이나 천자가 되면 어디에 숨었는지 깊이 숨어 버리고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빡에는 뿔이 하나가 났는데  짐승의 성질이 아주 어질고 성스러워.

그리고 난봉(鸞鳳), 봉황(鳳凰) · ()새는 빛깔이 청황적백흑 오색(五色) 찬란하고 그리고서  소리는 궁상각치우 오음(五音),  아름답고 곱고 거룩한 음성을 지녔어.  새도 역시 그런 성현이 출세할 때에 한해서 나타나는 그러한 상징적인 새인데.
그러한 기린과 같은 성스러운 짐승이나, 그런 봉난새 같은 그런 좋은 새는 보통 짐승들하고 짝을 지어서 놀지를 안해.

그리고 직경이  자나 되는 그러한 좋은 () 직경이  치나 되는 그러한 보배 구슬은 시장에 나돌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누가 그런 절세(絕世) 보배를 갖다가 함부로 시장에 팔러 나올 것이냐 그말이여.

 기린이나 봉난새나 이런 척벽촌주(尺璧寸珠)는 무엇을 그것에다가 비유를 했냐 하면 차사(此事)거든.  .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부터서 있었으며, 천지가 무너져 없어져도 그것은 무너진 때가 없는,
부모한테 태어나기 이전부터서 있는데 태양보다도  밝고, 밝기로 말하면 태양보다도  밝고 검기로 말하면 옻칠보다도  검어.
그놈  때에는  법계 천지를  둘러 삼켜도 오히려 부족하고, ‘그놈 작을 때에는 바늘로 꽂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을 수도 있어.

그놈  먹고  입고, 오고 가고, 앉고 서고 눕고  슬플  울고 억울할  분(忿)을 내고, 그러한 행주좌와(行住坐臥) 시청언동(視聽言動)하는 사이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데 그놈 여읠라야 여읠수가 없어. 행주좌와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소소영령한데 어떻게 그놈 여읠수가 있냐 그말이여.
그런데 그놈 찾을려고 하면은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취가 없어. 육도법계(六途法界)를  두루 찾아도  곳이 없고, 그렇게 육도법계를  찾아도 자취가 없었던 것이  한번 깜박할 사이에 벌써 행주좌와 어묵동정하는 사이에 소소영령하다 그말이여.

바로 이놈 가리켜서 기린과 봉난새에다가 비유하고 척벽과 촌주에다가 비유를  것이여. 그러한 천상천하에 짝이 없는 그러한 보배를 우리 모두는 낱낱이  가지고 있습니다.

늠름위광혼태허(凜凜威光混太虛). ‘그놈 늠름헌  위엄스러운 빛이  끝없는 태허 속에 세차게 흐르고 있어.
그렇게 세차게 흐르고 있건만 천상인간(天上人間) 총부지(總不知). 천상과 인간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그말이지요.


오늘은 계해년 삼동안거(三冬安居) 결제날이고, 오늘 10 15일부터 내년 갑자년 정월 15일까지 백일기도 입재날입니다.
해마다 결제(結制)를 하고  해제(解制)를 하고  결제를 하고 해제를 연례 행사로 이렇게 거행을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그날이 돌아오면 결제를 하고 해제를 하고 그래서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준례가 되어서 의례(依例)히 그날은 하는 것이다. 이리 생각하고 별로 별스럽게 생각을 아니하는 그냥 담담한 마음으로 결제를 맞이하고 그럭저럭 하루 하루를지내다가   달이 언제 지나간 줄 모르는 사이에  해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은 나이는     5 10년이 어언간(於焉間) 지나 버리고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히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엊그제까지 여기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하던 그런 신심 있는 보살님이 벌써 이번 겨울철에 방부는 들여 놓고 벌써 저승으로 떠나 버리는 그런 신도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해마다 갖는 행사라고 해서 아무 마음에 결심이 없이 그렇게 맞이해서는 아니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생사(生死) 하는 것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어서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그것이 내생(來生) 것입니다.
진리를 터득한 눈으로 보면 생사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범부(凡夫)에게는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어서 정말 우리의 목숨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초() 다투어서 분일초를 아껴서 정신을 가다듬고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부셔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람이 해야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국가 민족을 위해서 또는 사회나 어떤 회사를 위해서 또는 자기 가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뜻있는 일들이 많지만, 내가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일대사(一大事) 보다는  절실(切實)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일은 내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이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하면은 또 다음에  기회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사 문제는   받았을  내가 해결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대신 이것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불보살(佛菩薩) 자비가 많으시다 하더라도 불보살도  대신  주시질  하고,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제자를 위해서 대신  주지  하고,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 하시더라도 자식을 위해서 대신  문제를 해결해 수는 없습니다.
금생에 이만큼 몸을 받아서 이만큼 건강하고 여건이 이만큼 갖추어졌을  결정코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를 모여 놓고, "죽음에 대해서 각기 자기의 소견(所見) 말해 봐라"

"죽음은 하루 동안에도  수가 있습니다"
"너는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그다음 제자가 대답하기를, "죽음은    먹을 사이에도  수가 있습니다"
"너도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제자가 나와서, "죽음은  한 번  사이에도  수가 있습니다"
", 너는 공부를 하겠다"

죽음이    먹은 사이도 오히려 길고, 더군다나 하루 24시간을 잡은 것은 참으로 너무 여유를 두고  말이어서 정말 우리의 죽음은   , 똑딱 1 동안에 () () 뒤바뀌는 것입니다.

천하에 허망한 목숨을 파리 목숨과 같다고 하지만, 파리란 놈은 파리채로 !   치면 금방 날아다니던 것이 꼼짝도 못하고 ! 죽어 버리는데,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보다  믿을 만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를 못하고 사람도 금방 1 전에, 1전에 이렇게 말을 하고 웃고 성내고 하던 사람이 1 후에 금방 송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번 죽어서 송장이 되어 버리면  몸뚱이는 10  가서 벌써 내장이 버글버글 썩기 시작을 합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물질로 모여서 배합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뚱이를 임시 이렇게 이뤄졌으나,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한  물건 이것이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수가 없어서 모양이 없어.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고 일정한 장소가 없어서 아무리  몸뚱이를 의사가 해부를  가지고 오장육부(五臟六腑)  갈르고 해부를 해서 찾는다 하더라도  소소영령한 이놈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찾을 수가 없고, 눈으로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그러한 놈인데,
 그놈  생각을 놓쳐 버리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가 벌써 들어와 가지고  몸뚱이 주인 노릇을 하고,  생각 돌이켜서 ! 정념(正念) 가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자취없이 물러가 버린 것입니다.

정법(正法) 믿고 정법에 의해서 항시 이놈을  다스리고 관리를 하면  몸뚱이가 바로 정법의 법왕(法王) 거처하는 궁전이 되는 것이고,  생각 놓쳐 버리면은  몸뚱이 고대로 있는  마왕(魔王)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마왕의 소굴(巢窟) 만드느냐, 대법왕의 궁전을 만드느냐하는 것은 오직  생각 다스리는 데에 달려 있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이 바로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 만드는 것이고, 극락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모든 부처님에 적멸궁(寂滅宮) 장엄(莊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처음~21분13초)




(2/3)----------------

오늘  결제라 하는 것은 앞으로   동안  법왕궁, 적멸보궁을 갖다가 탄탄하게 어떠한 외적이나 마구니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단속하는 그런 특별 공사기간이다. 이렇게 말을  수가 있을  같습니다.
각자 자기의 법왕궁을  적멸보궁을 각자 자기 손으로 건설을 해야지 남이 대신 만들어 주지를 못해. 보통  사회의 집이나 궁전은 목수를 시켜서 돈을 주어서 만들면 되겠지만,  부처님이 거처하는 적멸보궁은 자기가 자기 것을 지어야지 남이  만들어.

그래서 결제 기간 동안은 다른 사람의 시비(是非)  겨를이 없습니다. 누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 그거 시비에 참견하고 시비에 말려들면 자기의 법왕이 거처하는 궁전의 대공사가 늦어지거든.

금생에  공부할 때에 1 늦어진 것이, 그것이   몇십  몇백  성불(成佛) 늦어져 버리는 것이여.
시간은 오후도 있고, 내일도 있고, 내년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금 1초가,    깜박하는 찰나가 수십 백억 겁이 늦어져 버린다, 그르쳐져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행하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생각,  1초를 단속을 잘해야 .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하는 거여.
 생각 속아 갖고  법왕궁이 적멸보궁이 마왕의 소굴이 되고,  생각 삐끗해 가지고 무량(無量) 생사고해(生死苦海) 떠내려갈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렵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단속을 하느냐?

화두를 아무리 들려고 해도 의심이 간절히 나지를 않고 금방 이뭣고~?’ 해도, 입으로는 이뭣고?’하면서도, 금방  이뭣고?’ 껍데기만 이뭣고?’ 속으로는 온갖 번뇌와 망상이 들어오니 어떻게  공부를 하겠습니까?
아마 여기에 앉으신 사부대중(四部大衆) 대부분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충을 느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파염기(怕念起)하고 유공각지(唯恐覺遲)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은 망상(妄想)이죠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이나, 슬픈 생각이나, 괴로운 생각이나, 기쁜 생각이나 모든 어떠한 생각이건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 더딘 것을 두려워해라.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는 것을 성화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일어났다 하면은  일어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지 말고, ‘아이고,  망상이 일어났구나. 이놈의 망상 때문에 내가  공부를  하겠구나 그러한 등등의 생각을 내지 말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나면 일어나자마자 퍼뜩 화두를 들어 버려.

깨달은 사람은 바로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 단속을  가겠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떤 것이 원각대지(圓覺大智)인지  수가 없거든.
다못 우리는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밖에는 없습니다.  화두를 퍼뜩! 화두를 거각하면 아까 일어났던  망상은  곳이 없어져 버리거든.

그리고 화두에 대한   없는 간절한 의심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들고, 화두가 간절하고 아니하고 헌 것도 따지지 말고, 화두가 순일하고 순일하지 못한 것도 따지지 말고 다맛 들고,
  화두가 희미해지면  들고,  딴생각[別念]이 들어오면  들고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렇게 화두를 들려고 노력을 해도 화두가 들리지를 않고 간절하지 못하고 순일무잡하지를 못하던 것이,

한결같이 물러서지 아니하고 기어코 나도 도업(道業) 성취할  있다 하는 그러한 신념과 모든 불조(佛祖)가   문제를 해결을 했는데 나라고 해서  내가  문제를 못할 것인가? 불보살(佛菩薩)은 누구고 나는 누군가. 불보살도 깨닫기이전에는 나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는데 나도 정법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한다면 나라고  못할 것인가
이러한 대분심(大憤心)을 가지고 화두를 들고 여법(如法)하게 나간다면, 결정코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이여.

과거에 조사(祖師)들은 '3년을 그렇게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것이 되니  거짓말한 죄로 혀를 10리나  늘여 놓고  혓바닥을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그런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내가 떨어지리라' 이렇게 확연하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불보살을 믿고 불보살의 법에 의지해서 공부를  나가는 사람이 어찌 그것을 추호(秋毫)라도 의심을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은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여.

눈으로 무엇을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에  소리가  소리가 되었거나,  문을 여닫는 소리가 되었거나, 애들이 떠들고 고함 지르는 소리가 되었거나, 기차 소리나 전철 소리가 들렸거나, 무슨  비행기 소리가 나거나,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나, 무슨소리를 듣건 바로  듣는 바로 거기에서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해서 기쁜 마음이 나더라도 이뭣고?’
누가 나를 억울한 소리를 해서 속에서  오장이 뒤집어질려고 하는  찰나(刹那)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렇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색성향미촉법( 육경六境에 대하여) 여섯 가지 () 발동을  바로  찰나에 화두를 터억 들어보시란 말씀이여.

처음에는 아무 재미도 없고, '이렇게  갖고 뭣이  것인가?' 그렇게 느껴지지만  ,  ,  ,  , 이태 이렇게 철저한 신심(信心)을 가지고 꾸준히 한결같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모든 면이 자꾸 자꾸 개선되어 가고,
특히 자기의  고약한 성질이 어느새 자꾸 순화가 되어 가고, 옹졸한 생각이 하해(河海) 같이 커지고, 중생의  못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어느새 불보살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자꾸 승화되어 가는 것을 자기도 느끼고 다른 사람이 봐도 현저하게 자꾸 향상되어 가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냐 하면, 평생을 부처님을 믿고 그렇게 정성껏 불공(佛供) 드리러 다니고 기도하러 다니고  노래(老來) 와서는 선방(禪房) 그렇게 철철이 다니고 그래도, 며느리나 아들이나 딸이나 손자들이  때에  고약한 성질이 고쳐진 것이 눈에 띄지를 안해.
그래 가지고 며느리나 아들들의 눈에 '아,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절에를 다니시고 선방에를 다니시면서 참선을 하시는데 어째서  못된 성격이  고쳐질까? , 불교를 믿어도  믿지 않는가' 이렇게 며느리나 아들딸들이  때에 그렇게 보여진다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이 불교를 가장 진실하게 그리고 돈독하게 믿는 것처럼 입만 벌렸다 하면은 부처님, 관세음보살 며느리 보고도 관세음보살 불러라 아들 보고도 부처님을 믿어라’, 입으로는 부지런히 포교를 한답시고 부처님을 갖다가 입에다가 걸고 사는데,
 성격 쓰는  보면 별로 존경할 만한 것이  되어 가지고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佛法) 대한 회의심(懷疑心) 품게 하고 오히려  자기 어머니, 자기 시어머니 때문에 불교 믿을 생각이 나지 않게 만든다면 그러한  문제, 그러한  죄가 어디가 있겠느냐  말씀이여.

절에서는  신심 있는 보살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가정에 돌아가면 별로 그렇게 훌륭하게 느껴지지 못한 그런 일이 있다면  반성을 해서 내가  그렇게 된가?’ 그것을 한번 깊이깊이 반성을 해서 고쳐 나가야  것이고,
참으로  보다도   문제가 있는 것은 철철이 빠지지 않고 선방에 방부(房付) 들이 참선을 하시는데, 선방에  간단한 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간단한 규칙을 지키지를   가지고 대중 가운데 항상 문제를 야기(惹起) 시키고 다른 사람공부를 크고 작고 직접 간접으로 방해를 치는 그러한 분이 계시다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벌써 입선(入禪) 시간이 돌아오면  5분이나 10 전에  화장실이고 어디고 갔다 올 데  갔다 와서 따악 자리를 안정을 하고 죽비()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지리  방선(放禪) 시간에는 지대방에서 이러쿵저러쿵 잡담(雜談) 하다가 입선 시간 임박해 가지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하다가 시간을  맞추는 .
공양 시간도  시간 안에  일보고 와서 미리 와서  안정을 해가지고 해야 할텐데,  다른 사람 발우(鉢盂) 펴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사 모다 들어온다든지. 입선만 시켜 놓고는 밖에 나가서 뭣을 가서 목욕탕에 가서 뭣을 씻어 쌓고, 빨래를 해 쌓고 빨래를 만져 쌓고 야단이거든.

이러한  사소한 일이지만 이것이 벌써 처음 나온 사람도 그러지를 못할 텐데,  철을 나온 구참(久參) 보살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식으로 선방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하기 위해서 선방에 나왔는가를  수가 없습니다.
금년 겨울철은 보살님네 선방, 내가  철저하게 단속을 해서 정말 용화사 선원에 가면 정말 공부가 저절로 되고 거기를 가야 진짜 참선 정진할 수가 있다   있을 만큼 그러한  철이 되도록  철저하게 단속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구 스님네 선방도 해마다 전국에서 좋은  청풍납자(淸風衲子) 좋은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오셔서 아무 일이 없이 정진들을 잘하고 계십니다마는  못하는 데에도 천차만별이 있지만  잘해 나가는 데에도 이만큼만 하면 된다고 하는 한계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잘한 것처럼 형식상으로도 규칙을  지켜야 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정진이 참으로  중대하다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만큼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금년 겨울은 정말 알뜰하게 정진하셔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금년  삼동(三冬) 철에 아주 바닥을 내도록 결판을 내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봉산에 회룡사 대중, 원효사 대중   팔정사 대중들도 설사  도량(道場)에서   이상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항시   도량에서 전강 조실 스님을 모시고 여러 스님네와 같이  도량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동안이 하루와 같이 엄숙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정진을  주기를 바랍니다.(21분14초~4128)




(3/3)----------------

실다웁게 정진을 하고 실다웁게 깨닫는 것은 마치 팔십(八十) 고령에 할아버지, 그 노인이 바람을 거슬르고 물을 거슬르면서  척의 ,  척의  없는 쇠로 만든 배를 끌고 올라간 거와 같혀.

배라고 하는 것이 밑이 없으면은 나무로 만든 배도 가라앉아 버리는데, 쇠로 만든 배는  말할 것이 없거든.
바람을 따라서 뭣이던지, 바람을 등지고 가야 바람의 기운을 타서 수월하고, 물도 물의 흐름을 따라서 배를 끌고 내려가야 한결 수월할 텐데, 쇠로 만든 , 그나마 밑이 빠진 배를 바람도 거슬러바람을 거슬른다는 것은 바람을 안고  나아간다그말이여. 물도 역수(逆水) 해서,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향해서  없는  배를 끌고 간 거와 같다하니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냐 그말이여.

그나마  배를 요새 무슨 장사(壯士) 같은 그런  장사가 끌고 간다면   모르는데, 젊고 혈기 방장(血氣方壯)한 젊은 청년이라면  모르는데, 팔십 먹은 아주 기진맥진(氣盡脈盡) 그러한 노인이  없는 쇠로 만든 배를 바람과 물을 거슬러서 끌고 올라간 거와 같다 그래.

보통 사람 같으면 끌어 올릴려고 생각도 못하고 애당초 아주 포기를  버릴 것인데,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나이 많고 적은 것도 따지지 말고, 바람을 거슬르고  거슬르고  것도 따지지 말고,  물도 거슬르고  거슬르고  것도 따지지 않고, 쇠배거니 나무배거니,  밑이 있고 없고  것도 따지지 말라 이거여.  배를 어떻게 끌고 올라가질 것인가  것인가, 그것도 따지지 말라 이거여.

다못 생각 생각이 사이가 없어. 염염상속(念念相續)해서  걸음  걸음을 끌고 가는데,   걸음 속에다가 평생 기량을 갖다가  거기다 쏟으라 그말이여.
 먹던 , 아주  먹을 때의 힘까지 다해서  걸음  걸음을 이를 악물고 끌어 올려라 이거여.

그렇게  가지고  위에 끌어 올릴라고 끌어 올릴라고 해도  무거운 쇠로 만든  빠진 배가 바닥에 아주 가라앉아 버렸을 텐데,  무거운 배를 바람과 물을 (거슬러) 끌어 올리는데 아무리 끌어 올릴라고 해도 까딱도 안해, 까딱도 허거나 말거나  있는 힘을 다해서 끌어 올리는 거여.
그래 가지고 힘줄이 끊어지고 다리뼈가 부러졌을 때에 바람이 갖다가 반대 방향으로 불어 주고, 흐르던 물이 꺼꾸로 흘러 주면서 그렇게 까딱도 안하던  쇠배가 바람결 따라 물결 따라 수르르르~ 허니 움직이기 시작한 거와 같이.

그렇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간절하게 들리지를 않고, 그렇게 화두를 들고 애를 쓰지만 순수하게 들리는 때는 잠깐이고 금방 번뇌와 망상이 뒤죽박죽이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이  가지고   뚜깽이는 천근만근 무겁게  뚜깽이는 내려 눌리고, 머리 골치는  잠이 오는 잠을 억지로 잠을  잘려고 눈을 뒤집어 뜨고 그냥  참고 정신을 차릴려고 하다 보면은 골이 더럭더럭 아프고,
시간은  10분이 지나가기를  시간만큼 그렇게도 시간이 지루하고  넘어가고, 다리는 저리고 허리는 아프고 몸은 몸비듬을 틀어서 몸이 아주 주리(周牢)  것처럼 괴롭고 , 이런다 그말이여.

그렇지만, 옛날 사람은 입었던 저고리를 벗어서 땅바닥을 치고, 깔고 앉았던 방석을 들어서 방바닥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이거 조주가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신세를 이렇게 망친다' 아주 고인(古人) 갖다가 원망을 하기도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마는, 오죽 답답하고 답답하면 그렇게 방바닥을 치면서 고인을 한탄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리석은 생각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도 물러서지 아니하고  생각도 물러슬 겨를이 없이,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서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들고,
 혼침(昏沈)이  가지고 몸이 괴로울 때에는 조용허니 일어나서 밖에 가서  5, 이렇게 동서(東西)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면서 화두를 들면,  몸이 지루하고 골치 아프고 그랬던 것이  곳이 없이 다시 시원해지면  다시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 하루를 알뜰하게 이렇게 단속을  나간다면,

반드시  무거웠던  없는 쇠로 만든 배가 까딱도 안하던 것이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물이 방향을 바꿔서 흐를  처럼,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화두를 들려고 안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앉으나 서나 누우나 밥을 먹을 때나, 눈으로산을 보나 땅을 보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화두의  의단(疑團)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독로(獨露)해서 행주좌와와 어묵동정 간에 일부러 딴생각을  할려고 해도 딴생각이  일어나.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져 갖고 있는 때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자기 면목(面目)을 보게  소식이 가까와진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게 순수무잡한 경계가 와도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이럴 때에 어떤 선지식(善知識) 나를 ! 터지게  해줬으면 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조급한 생각을 내지 말고, 어떠한 생각도 내지 말고, 다못  순수무잡한 의단을 관조(觀照)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경계가  것이고 그런 경계가 왔을 때에 지혜스럽게 정진을 단속해 나가면 결정코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게  것입니다.

금년 계해년 삼동안거가 그러한  철이 되도록 각별히 노력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도안종래불용선(到岸從來不用船)하고  탄연대도투장안(坦然大道透長安)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요연원불인타오(了然元不因他悟)하고  면목분명총일반(面目分明總一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도안종래불용선(到岸從來不用船)하고,  언덕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는 데에는 본래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여.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강물, 강을 건너서  언덕으로 가는 데에는 목선이나 똑딱선이나 무슨 배를 타던지 배를 타고 건너가지만, 우리의 생사(生死) 건너서 깨달음의  언덕으로 가는 데에는 무슨 그러한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다.

탄연대도투장안(坦然大道透長安)이다. 탄연(坦然)  길이 있어서 어디서든지 장안(長安)으로 길이 똑바로 뚫려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동서남북 어디에서든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앉었을 때나  있을 때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어떠한 생각을 하던지 간에, 바로  자리에서 깨달음의 길에는 일직선으로 시간도 걸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있는 대도(大道) 뚫려져 있다 그말이거든.

요연원불인타오(了然元不因他悟).  길이 요연(了然)해서 원래 다른 것을 ()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여.

부처를 인해서 부처가 깨달라 주는 것도 아니요, 조사가 깨달라 주는 것도 아니고 원래 시간과 공간으로 거리가 없이 바로 길이 직선으로 뚫려져 있어서 면목분명총일반(面目分明總一般)이여.  면목(面目) 분명(分明)하다 말이여.
바로 무엇을  , 무슨 소리를 들을  촉목보리(觸目菩提). 눈으로 뭣을 ! 보면 보는  찰나에 분명하거든. 그것이 면목분명한 것이 총일반(總一般)이여. 모두가  일반(一般)이다 그말이여.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보살님네는 설사  결제에 참석을  하시고 댁에서 사신다 하더라도 백일기도에 동참했으면  삼동안거에 방부를 붙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생활하시면서 항시   용화사 선방에 계신 거와 같은 그러한 마음,  법당에 계신 그러한 마음으로 생활 속에서  생각  생각을 단속하고 생활 자체가 정진이 되고 생활 자체가 기도가 되도록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철을지내신다면 모든 업장(業障) 바로 거기에서  소멸(消滅)이 되시고, 업장이 소멸이 되면 자연히 여러분의 크고 작은 모든 소원도 성취가 되실 것입니다.(41분33초~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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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기린난봉불성군(麒麟鸞鳳不成群)~' ; 『금강경오가해』 제 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야부 게송 참고.
*(둥근 아름다운  ), (늠름할 ), (섞을많이 흐르는 모양 )
*( ), (마디 ), 1치[寸]는 약 3.03cm에 해당하고 1자[] 10분의 1. (어찌 )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무도(無道) ; 말이나 행동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나서 막됨.
*절세(絶世 뛰어날 /세상 ) ; 세상(世上) 견줄 데가 없을 정도로 아주 뛰어남[].
*보배 ; ①아주 귀하고 소중한 물건. ②아주 귀하고 소중하며  필요한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어언간(於焉間) ;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진리를 터득한 눈으로 보면 생사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범부(凡夫)에게는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어서 정말 우리의 목숨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3.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주해)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 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 생각 돌이켜서 ! 정념(正念) 가지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자취없이 물러가 버린 것입니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일체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법왕(法王) : [범]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마왕(魔王) ; 마귀(魔鬼 요사스럽고 못된 잡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의 우두머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적멸궁(寂滅宮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집·대궐·절·마음 궁) ; 적멸의 궁전은 적멸을 형상화한 말로서, 부처님의 깨달은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欲)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2/3)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고해(生死苦海) ;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바다.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윤회의 고통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참고] 『종경록(宗鏡錄)』 제38권 (영명연수 904 ~975)
禪門中云 不怕念起 唯慮覺遲 又云瞥起是病 不續是藥 以心生卽是罪生時故 是以初心攝念爲先 是入道之階漸 如諸經要集云 攝心一處 便是功德叢林 散慮片時 卽名煩惱羅刹 所以曇光釋子 降猛虎於膝前 螺髻仙人 宿巢禽於頂上

선문 가운데 이르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닫기가 더딜까 염려할 따름이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되 “갑자기 일어남은 병이요 계속되지 않음은 약이니, 마음을 낸즉 죄가 생기는 때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처음 마음이 났을 때 생각을 거두어들임이 으뜸이 되나니, 이것이 도에 들어가는 단계점차이다. 마치 제경요집경에서 이르되 “마음을 한곳으로 거두어들임은 공덕의 총림이요, 생각이 조각조각 흩어질 때를 곧 번뇌의 나찰이라고 한다”고 함과 같다.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 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祖師)를 말함.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과거에 조사(祖師)들은 '3년을 그렇게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것이 되니  거짓말한 죄로 혀를 10리나  늘여 놓고  혓바닥을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그런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내가 떨어지리라' 이렇게 확연하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불보살을 믿고 불보살의 법에 의지해서 공부를  나가는 사람이 어찌 그것을 추호(秋毫)라도 의심을  수가 있겠습니까' ; 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늙어 가는 무렵)’을 점잖게 이르는 말.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야기(惹起 이끌•어지러울 야/일으킬 기) ; 일이나 사건 따위를 끌어내어 일으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발우(鉢盂 바리때 발/바리•사발 우) ; '발(鉢)'은 (산스크리트어)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음식 그릇',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食器)를 일컬음.
나무를 그릇처럼 깎아서 칠을 한 스님의 공양(供養, 식사) 그릇. 보통 발우 한 벌은 4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지고, 4개의 그릇이 포개져서 하나의 그릇처럼 보관하며, 공양(식사)할 때 4개의 그릇을 펼쳐 놓는다.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 수행한 사람.
*청풍납자(淸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사람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淸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衲子]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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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다웁게 정진을 하고 실다웁게 깨닫는 것은 마치 팔십(八十) 고령에 할아버지, 그 노인이 바람을 거슬르고 물을 거슬르면서  척의 ,  척의  없는 쇠로 만든 배를 끌고 올라간 거와 같혀' ; 
[참고]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26. 「시중(示衆)」에서
若論實參實悟 正如八十公公 向逆風逆水裏 牽一隻無底鐵船相似 不問上與不上 徹與不徹 直須心心無間 念念無虧 一步一步 盡平生伎倆睚(厓?)將去 睚到著脚 不得處 筋斷骨折時 驀然水轉風回 卽是到家消息 卽今莫有到家底麼 (卓柱杖一下 云) 十萬八千

만일 실답게 정진을 하고 실답게 깨닫는 것을 말하자면 마치 80세의 늙은이가 바람을 거스르고 물살을 거슬러서 한 척의 밑 없는 쇠배를 끄는 것과 같으니, 올라가고 올라가지 못함과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함을 묻지 말고, 곧 마음 마음이 끊임없이, 생각 생각이 이지러짐이 없이 한 걸음 한 걸음에 평생의 힘을 다하여 끝까지 밀고 나아가야 한다.
밀어서 다리를 붙일 수 없는(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곳과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질 때 이르르면 별안간 물살과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집에 이르른 소식이다.
지금 집에 이르른 이가 있느냐? (주장자로 한 번 치고 말하기를) 십만(十萬) 팔천리(八千里)로다.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실참(實參), 실답게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다만 그 꽉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할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할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할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장사(壯士 장壯하다·굳세다·씩씩하다 장/선비·사내·남자 사) ; 기개와 힘이 아주 센[壯] 사람[士].
*혈기 방장하다(血氣方壯-- 피 혈/기운 기/바야흐로·이제 한창 방/굳세다·씩씩하다·크다·성盛하다 장) ; 혈기(血氣,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가 바야흐로[方] 왕성하다[壯].
*기진맥진(氣盡脈盡 기운 /다할 / /다할 ) ;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력(氣力)이나 맥(脈)이 다함[盡].
*애당초(-當初) ; ‘당초(當初, 일의 맨 처음)’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주리(周牢)를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때 주리(죄인의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긴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의 형벌을 주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게송) '도안종래불용선(到岸從來不用船)~' ; 『금강경오가해」 제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종경 스님 게송 참고.
*장안(長安) ; ①중국 산시 (山西省) 시안 (西安市)  이름. 전한(前漢) 당나라의 수도로 역사상 이름난 국제도시였다. ②수도(首都)라는 뜻으로 '서울(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을 이르는 .
*탄연(坦然 평탄할뚜렷할 /그럴명백할 ) ; 훤한 모양. 마음이 가라앉아 편안하고 고요한 모양.
*요연(了然 밝을 /그럴명백할 ) ; ①분명(分明) 모양(模樣). ②명백(明白) 모양(模樣).
*촉목보리(觸目菩提) ; 눈에 접촉 되는 , 일체가 그대로 보리(菩提, 깨달음)이다 라는 .
*일반(一般) ; ①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 ②서로 다를 바가 없는 마찬가지의 상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법문 내용]

(게송)기린난봉불성군~ / 차사(此事), 천상천하에 짝이 없는 보배를 우리는 낱낱이  가지고 있다 / 생사호흡지간 / 나의 생사 문제 해결이 가장 절실,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못한다 / 참선은 이 몸을 법왕궁을 만드는 것.

수행하는 사람은 한 생각 단속을 잘해야 / 불파염기(怕念起)하고 유공각지(唯恐覺遲)라,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 더딘 것을 두려워해라 /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찰나에 화두를 들어라 / 선방 대중생활 규칙을 잘 지켜라.

실다웁게 정진을 하고 실다웁게 깨닫는 것은 마치 팔십 고령의 노인이 바람을 거슬르고 물을 거슬르면서  척의  없는 쇠로 만든 배를 끌고 올라간 거와 같다.
참선하는 사람은 아무 조건도, 되니 안되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이를 악물고 끌어 올려라 / (게송)도안종래불용선~ / 촉목보리(觸目菩提). 눈으로 뭣을 ! 보면 보는  찰나에 분명하다.


행주좌와 어묵동정하는 사이에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 가리켜서 기린과 봉난새에다가 비유하고 척벽과 촌주에다가 비유를  것이여. 그러한 천상천하에 짝이 없는 그러한 보배를 우리 모두는 낱낱이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터득한 눈으로 보면 생사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우리 범부(凡夫)에게는 분명히 생노병사가 있어서 정말 우리의 목숨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 () 다투어서 분일초를 아껴서 정신을 가다듬고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부셔대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일은 내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이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하면은 또 다음에  기회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사 문제는   받았을  내가 해결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대신 이것을   사람은 없습니다.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이 바로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 만드는 것이고, 극락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모든 부처님에 적멸궁(寂滅宮) 장엄(莊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생각,  1초를 단속을 잘해야 .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하는 거여.
 생각 속아 갖고  법왕궁이 적멸보궁이 마왕의 소굴이 되고,  생각 삐끗해 가지고 무량(無量) 생사고해(生死苦海) 떠내려갈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렵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조사(祖師)들은 '3년을 그렇게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것이 되니  거짓말한 죄로 혀를 10리나  늘여 놓고  혓바닥을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그런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내가 떨어지리라' 이렇게 확연하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불보살을 믿고 불보살의 법에 의지해서 공부를  나가는 사람이 어찌 그것을 추호(秋毫)라도 의심을  수가 있겠습니까.

동서남북 어디에서든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앉었을 때나  있을 때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어떠한 생각을 하던지 간에, 바로  자리에서 깨달음의 길에는 일직선으로 시간도 걸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있는 대도(大道) 뚫려져 있다.

부처를 인해서 부처가 깨달라 주는 것도 아니요, 조사가 깨달라 주는 것도 아니고 원래 시간과 공간으로 거리가 없이 바로 길이 직선으로 뚫려져 있어서 면목분명총일반(面目分明總一般)이여.  면목(面目) 분명(分明)하다 말이여.
바로 무엇을  , 무슨 소리를 들을  촉목보리(觸目菩提). 눈으로 뭣을 ! 보면 보는  찰나에 분명하거든. 그것이 면목분명한 것이 총일반(總一般)이여. 모두가  일반(一般)이다 그말이여.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01~225)2020. 3. 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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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9)—1983년 11월 첫째일요법회(83.11.06) (57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15분.

(1/3)----------------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 놀던 모래밭에는 그 발자죽만 남아 있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구나. 사람은 저 황천(黃泉)으로 가 버렸는데, 황천으로 간 그 사람 이름만 자기집에 남아있더라.


KAL(대한항공)기 피습으로 인해서 그 많은 아까운 사람들이 비명에 죽어갔고, 또 얼마 안 되어서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그 아까운 우리나라 인재요, 일꾼이요, 그런 참 기둥과 같은 그런 분들이 이승을 하직을 했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서 짐승만도 못한 그러한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그러한 행동으로 아까운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많이 앗아갔습니다.


6·25동란(六二五動亂) 때 남침을 해가지고 그 많은 동족(同族) 살상을 한 그들이라 무슨 일을 못할까마는, 그러한 야만적인 대죄를 퍼지어서 그 과보로 무량겁을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을 그러한 괘씸하고도 가련한 중생들이요,

다른 사람 아닌 우리와 피를 같이한 동포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 더욱 우리의 가슴은 아프고 찢어질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 까닭 없이 이러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因果)의 법칙에 비춰서 보면 반드시 그럴만한 숙세(宿世)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일이고, 아무리 바늘 끝만한 조그만한 일이라도 원인이 없이 나타난 결과란 없는 것입니다.




<미묘 비구니 설화>


부처님 당시에 미묘(微妙)라 하는 비구니(比丘尼) 스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바라문(婆羅門)의 딸로 태어났어. 그 부친이 일국에 널리 이름이 날 만큼 인격이 높고 덕망이 있는 그러한 가정에 태어났는데, 그 미묘라 한 그 여성도 절세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래, 멀지 않는 곳에 또 한 바라문이 있어서 그 미묘라고 하는 그 여성이 그렇게 좋은 집안이요, 또 그렇게 인물이 아름답고 행실이 얌전하고 그러니까 거기서 며느리로 맞아 갔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랑과 결혼을 해서 머지않아서 첫아들을 낳습니다. 첫아들을 나서 온 집안에 경사가 일어났는가 싶어서 그리 좋아했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시고 이어서 또 시아버지가 병들어서 돌아가셨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즐거운 뒤끝에는 흔히 그러한 또 슬픈 일이 뒤따르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 시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또 그러한 슬픈 뒤끝에 언제 생겼는지 또 두 번째 애기를 또 뱄습니다.

그때에 풍습으로 애기를 배면 친정(親庭)으로 돌아가서 해산(解産)을 하는—역시 지금 우리나라에도 해산할 때는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한다든지, 친정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돌봐 주신다든지 지금도 역시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하기 위해서 남편과 의논을 해가지고 첫아들은 데리고 남편과 같이 친정으로 가는 길인데, 길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가는데 갑자기 가다가 해산이 임박했었던지 배가 아프고 진통이 일어나서 할 수 없이 근처에 나무 밑에다가 자리를 펴고 거기에 뉘였습니다.


뉘여서 얼마 동안을 기다리니까 배가 아프다 가라앉다, 아프다 더하다 그러다가 인자 해가 저물어도 애기는 아직 해산을 못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서 남편은 저만큼 다른 나무 밑으로 가서 지쳐가지고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사 배가 몹시 아프더니 해산을 했습니다.


몸부림을 치면서 불러도 남편이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영 오지를 않고, 간신히 혼자 애를 낳아 놓고 그리고서 남편을 아무리 불러도 안 오니까, 금방 애를 낳아 놓고는 기어서 남편 있는 데로 가니까 남편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꼼짝도 안한다 그말이여.

막 흔들어 봐도 영 움직이지 않아서 맥을 짚어보니까 이미 죽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독사가 와서 물어가지고 그 독이 몸에 번져서 그래가지고 죽어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남편이 죽은 것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해산할 때에는 산모(産母)가 신경이 날카롭고 그런 것인데 남편이 죽은 걸 보고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해가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새벽녘에 그 어린아이가, 그 장남이 막 우는 소리에 깨 보니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을 갖다가 숲 밑에다가 그럭저럭 긁어 묻어 놓고는 장남은 걸리고, 금방 난 애기는 보자기에다 싸서 품에 안고서 친정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얼마를 걸어가니까 큰 강물을 만났다 그말이여.


그 강을 건너야겠는데, 그 서이 같이 건너갈 수는 없고 그래서 장남은 그 강둑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일러 놓고는 갓난애기만 안고서 강을 건너가는데 굉장히 깊고도 넓어서 간신히 건너가가지고,

애기를 그 강 건너 언덕에다가 가만히 뉘여 놓고 다시 그 장남을 데리러 올라고 하니까, 장남이 그걸 참지를 못하고 엄마를 부르면서 저 혼자 강을 막 건너오다가 넘어져가지고 강물에 떠내려간다.


그래서 그 부인이 쫓아가니까 벌써 급류에 휩쓸려서 저 어디로 떠내려가서 찾지를 못하고 그래서 울면서 되돌아서 이쪽 언덕 갓난애기 있는 데로 향하고 있는데,

그동안에 그 갓난애기, 그 핏덩어리 애기, 그 애기 냄새를 맡고 늑대란 놈이 와서 애기를 꿀떡 삼켜 버렸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걸 보고는 또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했다가 다시 눈을 떠서, 다시 또 슬픔과 산후(産後)의 그 무거운 몸을 끌고서 울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친정을 가다가 어떠한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자기 친정아버지의 친구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사연을 전부 다 울면서 얘기를 하고서 친정 소식을 물으니, 아! 친정부모와 동생들이 며칠 전에 자다가 화재가 일어나가지고 친정부모도 타서 돌아가시고 동생들도 모다 타 죽었다 이말이여. 그 말을 듣고는 또 기절을 했어. 몇 번을 기절을 했어.


그래가지고는 눈을 떠 보니까—그 친정아버지의 친구가 업어다가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병구완을 해주어서, 눈을 떠 보니까 그 댁에 누워있다 그말이여.

몇백 리를 걷고, 그 연거퍼—시부모 돌아가고, 남편 죽고, 큰아들 죽고, 금방 난 애기 죽고, 친정부모 · 동생 다 죽고, 산후에 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받은 그 충격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면 아주 죽지 않고 살아난 것도 기적이라 할 수가 있지요.


그래 몇 달을 그렇게 친딸처럼 돌봐주어서 그래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데, 마치 이웃집에 바라문이 있어가지고, 어떻게 그 미모(美貌)로 생겼던지 청혼이 들어와서 그래서 그분하고 또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놓고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있어보니까 흉악한 술주정뱅이여. 뭔 사업한다고 나가서는 잔뜩 술을 먹고 들어와서 그 주벽(酒癖)이 심해가지고 꺼떡하면 뚜드려 패고, 도저히 하루 이틀을 참다 참다, 한 달 두 달을 참다 못해서 거기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해서 저 멀리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을 쳐가지고 인도에 그 베나레스(Benares)라고 하는 그 성밖에 나무 밑에 앉아서 거기다가 의지를 하고. 뭐 친정도 집이 다 없어져 버리고, 시집도 없어져 버리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래놓으니 인자 천상 그런 부잣집 딸로, 부잣집 며느리로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러한 부인이었었고 일세(一世)의 미인이었었지만, 그러한 연속적인 재난을 당하고 보니 갈 곳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밑에 의지해서 얻어먹으면서 지내고 있는데 날마다 근처 무덤에 와가지고 그 무덤 앞에 절을 하고 가고, 무덤 앞에 와서 울면서 절을 하고 가고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참 부잣집이요, 좋은 사람인데 상처(喪妻)를 해가지고 너무 아내가 그리우니까 날마다 그 아내의 무덤에 와 가지고 울고 가고 울고 가고 그랬는데,

그렇게 해서 몇 번 그 나무 밑에를 지나면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여인의 얼굴과 서로 마주치고 마주치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며칠이 지나자 서로 이야기가 되어가지고 또 청혼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도 남편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으로 인해서 마음 붙일 곳이 없고, 또 그 미묘라는 여인도 친정과 시집과 온 가족이 다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해가지고 의지할 곳이 없고 피차 외로운 처지에 우리가 서로 같이 사는 게 어떠냐 해가지고, 그냥 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사랑을 하고 참 심덕(心德)이 좋고 얌전한 사람이었었는데, 아! 그 남편이 병이 들어가지고 시늠시늠하다가 백약이 무효로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남편이 죽으면 여자도 같이 무덤 속에 산 채로 들어가서 같이 죽는 그러한 인습이 있어서 이 미묘라는 여자는 두 번째 결혼한 남자와 같이 생매장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무덤 속에 들어가서 그 며칠간 먹을 양식과 음식과 그 촛불 같은 것을 켜서, 인자 그 불도 꺼지고 먹을 것도 떨어지고 하면 그 안에서 그냥 죽는 거죠.(처음~20분30초)





(2/3)----------------


그래서 인자 그 안에서 얼마를 울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 밤중에 텅텅 무덤을 누가 파 들어오는데, 아! 자기를 꺼내서 데리고 간 뒤에 가서 보니까 흉악한 도둑놈들이여.

도둑놈이 '예쁜 여자가 생매장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 그 무덤을 파가지고 여자를 데려다 제 마누라를 삼았어.


도둑놈 계집이 되었으니 죽은 것보단 나을란가 모르겠으나, 그래도 죽지 못해서 도둑놈을 남편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아! 그 얼마 안 되어가지고 그 도둑놈이 요새 같으면 형사, 무슨 죄 있는 것이 들통이 나가지고 체포가 되어서 살인강도질을 했든가 그 교수형에 처해가지고 세 번째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우리의 주변에 말로 다 못할 기구한 그러한 참 처참한 환경을 당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아무리 많다 해도 이 '미묘'라고 하는 이 사람만큼 그렇게 처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소설에도 그렇게 비참한 사람은 구경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미묘 비구니의 출가, 정진>


그래가지고 거기서 비탄에 빠져가지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러다 어디서 말을 들으니까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하는 곳에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성현이 계시는데 그분은 전생(前生) 일도 환히 알고, 내생(來生) 일도 훤히 알고 하는 그러한 성현이 계신다'하는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자살할 수도 없고, 모진 것이 목숨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네 번째 남편을 또 얻을 수도 없는 것이고, 얻어봤자 또 팔자가 빤할 것 같고 그래서 '그 석가모니라고 하는 부처님한테 가서 대관절 내 팔자나 한번 물어보고 죽어야겠다' 그래가지고는 거기를 갔어.


그 기원정사를 찾아가서 멀찌감치 서서 이래 보니까, 막 춘삼월에 꽃이 활짝 핀 것처럼 환하고, 하늘에 그 많은 별 속에 둥근달이 떠있는 것처럼 그렇게 먼 데서 봐도 그렇게 위엄스럽고 거룩하고 환한 그런 어른이 계신데, '바로 저 어른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러거든.


그러나 감히 자기와 같은 그런 비참한 여인이 찾아가서 뵈올 수는 없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니까, 그 부처님이 떠벅 떠벅 자기 가까이로 걸어오셔서 ‘어디서 왔느냐? 이리 오라’해 가지고는, 그 지난 모든 사연을 두루 다 들으시고—그거 다 말씀을 다 여쭈었는데.


여쭙고서, "저와 같은 이러한 미천한 그런 여자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도(道)를 닦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한다면 왜 못 닦겠느냐"


그래가지고 고타미 비구니를 시켜서 머리를 깎이고 계(戒)를 설해서 그래서 비구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비구니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열심히 도를 닦았던지—인자는 누가 잘했다 못했다 그런 말도,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그런 시비도 자기한테는 귀에 들리지도 않고, 누가 다른 사람이 잘하고 못하고 한 것도 그런 것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그저 대중과 같이 탁발(托鉢)을 할 때는 따라가서 탁발을 하고, 밥을 먹을 때는 같이 먹고, 소지(掃地)할 때는 같이 소지를 하고, 그저 눈을 뜨나 감으나 앉으나 서나 부처님께서 지도하신 고대로 도를 닦아 가는데 세월가는 줄을 몰라.

비가 오는지, 해가 뜨는지 지는지, 도대체 그 여러 대중 속에 살아도 대중이 하나도 눈에 보이지를 안하는 거여.


지금도 누구를 막론하고 참선을 하려면은 그렇게 해야 돼!


앞으로 음력 시월(十月) 보름이 되면 또 겨울 결제가 시작이 되지만, 보살님네가 5~60명 내지 70명 방부(房付)를 들여도 그렇게 철저히 도를 닦아야 무엇이 뚫리던지 뚫리지,


밥이 되니 지니, 반찬이 짜니 싱거우니, 네 떡이 크고 내 떡이 작으니, 왜 너만 먹고 나는 안 주느니, 방이 더웁다 차웁다, 너는 왜 저만큼 안 앉고 내 바짝 옆에 왔느냐, 너는 왜 저기 안 앉고 여기 왔느냐, 여기가 내 자리다 네 자리다,

사사건건이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참선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남의 흉보느라고 언제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참선한다고 선방에 와 가지고 자기 집안 망신하고, 자기집에서는 절로 참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와 가지고 하는 짓이 똥싸고 뭉개는 그러한 참선을 해가지고 무슨 도를 통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렇게 무섭게 도를 닦아 가지고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는데, 겸해서 숙명통(宿命通)까지 툭 뚫어졌는데, 자기의 과거를 터억 숙명통으로 비추어보니까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참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서’ 털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한 사실을 분명하게 봤다 그말이여.




<미묘 비구니의 전생(前生)>


전생(前生)에 어느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부인도 얌전하고 가정도 넉넉하고 한데 아들을 못 낳아서 할 수 없이 작은 마누라를 얻어가지고, 아들을 보기 위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작은 마누라는 별로 양갓집 규수가 아니고, 천한 집 딸을 작은 마누라로 데려왔는데 얼굴은 참 기가 막히게 예뻤다 그말이여.

속담에 재취(再娶)나, 작은 마누라한테 미치지 아니한 남자는 ‘배안에 병신’이라고 그런 말도 있는데,

아들 낳는 것이 목적이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건만, 얻어가지고 살아보니까 큰 마누라보다는 훨씬 정이 그리 쏠린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머지않아서 포태를 해가지고 애를 낳는데, 마치 다행히 옥동자(玉童子)를 낳다 그말이여. 그렇지 않아도 예뻐서 죽겠는데 아들까지 낳았으니 얼마나 좋겠느냐 그말이여.

그러니까 큰 마누라는 그저 든든하게 저만큼 놔두고 그저 점잖하게만 상대하고, 밤낮으로 작은 마누라한테 아주 퐁 빠졌어.


그러다가 아들까지 낳으니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야단이고, 이웃집에서도 모다 야단이고 그런데, 그 사람마다 다 잘했다고 그러는데, 한 사람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슬프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말이여.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게 큰 마누라여.


가만히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좋아한 척하지마는 속으로는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이 재산도 저놈이 크면은 저놈 앞으로 다 갈 것이고, 저놈이 크면은 자기 생모(生母)만 알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남편도 작은 마누라와 자식만 좋아하지 나는 벌써 인자 저 무용지물로 취급을 하고, 지금도 그러거든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가서 생각해보면 빤하다 그말이여.


'그러니 저것을 어쨌던지 크기 전에 저것을 없애야겠다' 아! 이러한 못된 생각을 냈어.


그래가지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한 끝에 그 애기 정수리에다가 바늘을 갖다가 꽂아 넣었어.

그래놓으니 겉으로는 감쪽같은데 애가 울고 보채고, 젖도 안 먹고, 업어줘도 소용없고, 달래도 소용없고, 별짓을 해도 소용이 없어. 의사한테 별별 약을 갖다 먹여도 소용없고 열흘이 못되어서 그 애기는 결국은 죽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애기 엄마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그렇게 울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달덩어리 같은 어린아이가 왜 죽었을까?' 생각해보니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마음이 짚이는 데가 있는데, ‘틀림없이 이것은 큰엄마가 이것을 죽였지 않는가?’하는 의심이 단통 고리 간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애기는 당신이 죽인 거 아니요?"하고 물어보니까,

펄쩍 뛰면서 "자네가 그 애기를 낳지마는 그것이 바로 내 자식인데 내가 왜 죽일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면 이 애기가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병이 나서 죽을 리가 있느냐?"

"왜 내가 죽이냐? 내가 만약에 이 애기를 죽였다면, 내생(來生)에 내가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을 것이요,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이요, 친정부모와 동생은 불에 타서 죽을 것이요. 나는 생매장을 당할 것이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내가 맹세를 해도 나를 못 믿겠느냐?" 어떻게 그런 입에도 못 담을 무서운 맹세를 하고 펄쩍 뛰던지, ‘과연 큰 마누라가 죽이지는 안 했는가 보다’하고 그냥 비통하기만 하고, 큰 마누라에 대한 의심은 그런대로 그냥 일단락이 되었는데.


바로, 작은 마누라한테서 난 애기 머리에다 바늘을 꽂고 그 무서운 맹세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비구니였더라 그말이여.


그러니 그 비구니는 아무도 모르는 병을 혼자만 앓고 백방으로 약을 먹어도 안 낫는 병이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서 평생 동안 아라한과를 증득했어도 그 안 낫는 병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기가 아파! 여기가 득신득신 득신득신 정수리가 아파가지고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여, 일평생 동안을.

그게 전생에 그 애기 머리빡에다가 바늘을 꽂은 그 과보로 평생 동안을 머리 아픈 병을 면(免)치를 못했다 그거여.


소설에나 옛날 얘기에 가끔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와의 사이, 그 본마누라한테서 난 애기를 재취가 괄세하는 팥쥐 콩쥐 그런 얘기 뭐 참 많지만, 참 이러한 그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써 가만히 이 설화를 듣고 여러분도 생각해보시면 인과(因果)의 법칙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 인과는—이 여자가 지은 죄는 바늘로 애기를 하나 죽인 것 뿐인데, 그리고서 맹세를 하기를 그렇게 고약한 맹세를 했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의 혐의를 갖다가 엄폐(掩蔽)하기 위해서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했어.


그 맹세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꺼떡하면 그 맹세를 잘 하지요.

내가 뭐 모래에다 혀를 박고 죽어도 어쩌고 저쩌고 하고, 무슨 내가 당장 바가지를 차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네 돈은 안 쓰겠다는 둥—무슨 입에 못 담을 그런 독한 고약한 맹세를 하는데, 그거 하는 것 아닙니다.


설사 그러한 죄가 없을 경우라도 그런 맹세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한번 그 입에 그런 고약한 말을 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고약한 맹세, 자기의 그 혐의(嫌疑)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고약한 맹세는 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 입으로 맹세한 그것이 고대로 다 받아졌다 그말이여. 죽였기 때문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안했다 하더라도 그런 맹세를 하면 그 맹세한 그 과보로 그것이 그와 비슷한 과보를 또 받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행동으로도 죄를 안 지어야 하고, 입으로도 그러한 고약한 그러한 말은 혀나 입에 건너지를 말아야 하고, 생각으로도 그런 고약한 생각은 해서는 아니된 거다.


몸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은 다 마찬가지여.

마찬가지인데 제일 우리가 소홀히 취급한 것이 '마음으로 지은 죄'다 그말이여.


‘행동으로만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하지만 행동으로 안 해도 마음으로 이미 살생(殺生)을 할 생각을 먹으면 이미 살생죄를 범(犯)한 거여.

마음으로 ‘저것을 내가 훔쳐야겠다’하면 벌써 도둑질을 범한 것이고, '저 사람을 내가 한번 기어코 가까이 해야겠다'하는 그런 음심(淫心)을 품으면 벌써 음행(淫行)을 범한 것이다 그말이여.


이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먼저—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가지고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중대하거든.

성냥불은 성냥개비 하나지마는 그놈 하나 탁! 쳐댐으로 해서 큰 집도 태울 수 있고, 큰 공장도 태울 수도 있고, 한 도시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마음으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바늘로 찌르게 되고, 바늘로 찌른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무서운 여러 가지 맹세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그 마음에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20분31초~41분)





(3/3)----------------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이 탁! 일어나도 그 미워하는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 미워하는 생각이나, 또는 사랑하는 생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단속을 해서 화두(話頭)를 들도록 이렇게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뭣고?’해도 한번 속에서 부애가 나면은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해도 속에서 뽀글뽀글 화가 치밀어 오르지요.

그러지만 자꾸 하면은—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후우~하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2번 3번하면 그 치밀었던 화가 스르르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그렇게 해서 노여움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미운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억울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슬픈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기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면, 그것이 세월이 흘러가면,

탁! ‘이~’ 하면 벌써 턱!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면서 자취 없이 그 미웁고 노여운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해서 힘을 얻은 사람은 성도 낼라면 내고 안 낼라면 안 내고, 통곡을 하고 슬퍼할라면 하고 또 슬퍼 안 할라면 안 하고, 맘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저 버마에서 일어나는 그 통탄하고 분이 풀리지 않는 그러한 일을 참 당했지만 우리나라 백성들은 그 분통을 그 통탄의 마음을 진정을 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돌이켜 뭉쳤고, 다시 최상승법을 믿는 우리 불자(佛子)들은 그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나를 깨달아서 나와 진리가 하나가 되게 하는 불사(佛事)에 마음을 돌이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잘 지키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하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두가 다 마음을 합해서 나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해지냐 하면, 자기 마음을 비워야 해.

자기의 고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를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하거든.


독선(獨善)주의, 독단(獨斷)주의—‘내가 제일이고 나만이 옳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 그런 생각을 비워야만 내 마음과 저 사람 마음이 합해지는 것인데,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비워지냐?’하면 참선(參禪)을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거든.


아무리 내 마음을, 내 주장을 버리고 저 사람을 따라가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내가 이제부터서는 시부모 말씀을 순종하리라. 남편 말이라 하면은 무조건하고 따르리라' 또는 '내가 남편이지만 덮어놓고 아내를 윽박지를 게 아니라 아내의 말도 내가 좀 따라주리라'하고 평소에 마음은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일을 딱! 당하면 독사대가리 같은 아만(我慢)이 탁! 추켜들고 나서거든.


그래가지고 고집을 부리고 한바탕 큰소리가 난 뒤에사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공연히 내가 그냥 참아버리면 되었을 것을 공연히 내가 그랬구나' 싶으지만, '이 다음에는 다시는 안 하리라’해도 또 얼마 지내서 일을 당하면 또 그게 안 되거든.


늙어가면서 점점 더 못되게 되어 가. 심술이 더 고약해지고.

그거 왜 그러냐 하면은 ‘나이 먹는다’고 덮어놓고 좋아질 까닭이 없거든. 마음을 자꾸 수양을 하고 닦아야 좋아지는 거지, 닦지 않고 ‘나이 먹는다’고 좋아질 까닭은 도저히 없는 것이여.

곡식을 심어 놓고 손질을 잘하고 잘 가꿔야 좋은 결실을 맺는 거지, 심어만 놓고 날수만 찬다고 해서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닌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는 참선을 열심히 해야 하고,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닦아야 하고, 내 일신을 위해서도—일신의 행복과 생사해탈을 위해서도 참선을 해야 해.

한 가지 일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 일이 좋은 이 최상승법을 금생에 이렇게 만났을 때 아니하고 언제 하려고 미루느냐.

형식적으로 조금하다가 금방 바깥 경계에 끄달려 버리고, 이래가지고서는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해도 무슨 깨달음이 있겠느냐.


부애 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괴로울 때 ‘이뭣고?’

억울할 때 ‘이뭣고?’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사정이 허락할 때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기어코 금생(今生)에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어니와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떠억 정좌(靜坐)를 하고 ‘이뭣고?’를 하면, 참선(參禪)을 하면 그 공덕이 얼마만큼 훌륭하냐 하면,

칠보(七寶), 금 · 은 · 유리 · 호박 · 자거 · 마노, 이러한 칠보로써 탑을 항하사(恒河沙),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있는 그 모래수 알과 같은 그만큼 많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보다도 더 수승을 하다.


왜 그러냐 하면 아무리 훌륭한 칠보탑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천재지변이나 또는 전쟁으로 인해서 그것이 파괴되어 버릴 때가 있어.


그러나 잠깐 동안 정진(精進)한 그 공덕으로는, 그 인연공덕으로는 언젠가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입니다.

잠깐 동안 ‘이뭣고?’한 공덕으로도 언젠가는 성불(成佛)을 하거든, 하물며 밤잠을 안 자고 목숨을 바쳐서 참선을 한다면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일요법회입니다. 잠깐 동안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죽비를 치고 입선에 들거든, 처음 1분 간은 KAL기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 또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관(觀)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죽비 세번)


(정진)


(죽비 세번)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비록 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산[雲山]처럼 천만 가지 일을 설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하늘 위에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구나.(41분1초~56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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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36. (가로판 p142) 게송 참고.

*(게송)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36. (가로판 p142)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하늘갓 ; 하늘가(하늘의 끝). 천애(天涯 : 하늘의 끝.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業]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미묘 비구니 설화 ; 『현우경(賢愚經)』 제3권 제16. 「미묘비구니품(微妙比丘尼品」 (단본丹本에는 이 품이 제4권에 있으며 순번이 19이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해산(解産 풀다·가르다·떼어내다 해/낳다·나다·태어나다 산) ; 몸을 풀어[解] 아이를 낳음[産].

*서이 ; ‘셋’의 사투리.

*병구완(病구완) ; 병을 앓는 사람을 돌보아 줌.

*주벽(酒癖 술 주/버릇 벽) ; 술 마신 뒤에 나타나는 버릇.

*야반도주(夜半逃走 밤 야/가운데·한창·가장 반/달아날 도/달릴 주) ; 남의 눈을 피하여 한밤중[夜半]에 도망함[逃走].

*베나레스(Benares) ;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다. 바라나시(Varanasi) 또는 카시(Kashi)라고도 한다.

이 바라나시의 북방 약 10km에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초전법륜 初轉法輪]을 한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이 있다.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 사방 사/돌아볼 고/없을 무/친하다·가깝다·어버이·친척 친/친척·일가 척) ; 사방(四方)을 돌아봐도[顧] 친척(親戚)이라고는 아무도 없음[無]. 주위에 의지할 만한 친척이나 사람이 전혀 없음.

*심덕(心德) ; 마음이 너그럽고 착한 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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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 : 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 : 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계(戒) ; 계율(戒律).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

계는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의 뜻으로 모든 불자가 지켜야 할 불교도덕이며, 율은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깨달음의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의 통제 규범.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탁발(托鉢 맡길 탁/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는 것을 말한다.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재취(再娶 두·두 번 재/장가들다·아내를 맞다 취) ; ①아내를 여의었거나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하여 두 번째 아내를 맞음. ②아내를 여의었거나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하여 맞아들인 두 번째 아내.

*옥동자(玉童子) ; 옥(玉)같이 잘생긴 사내아이[童子]란 뜻으로 어린 사내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

*단통 ; 그 자리에서 대번에 곧장.

*엄폐(掩蔽 가릴 엄/가릴 폐) ; 보이지 않도록 가리어 숨김.

*혐의(嫌疑 싫어하다·의심스럽다·혐의하다·나쁜 일 혐/의심하다·의심스럽다 의) ; ①(법률)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봄(의심). 또는 그 가능성. 수사를 개시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 ②의심스러움. ③미심쩍음. 꺼리어 싫어함.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이것이 삼업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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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해코지(害코지) ; 해꼬자. 해꼬지.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독선주의(獨善主義) ; 남의 이해(利害)나 처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여기는 경향.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법문 내용]


(게송)안비천말적유사~ / KAL(대한항공)기 피습의 가슴 찢어지는 아픔 / 인과(因果)의 법칙, 원인이 없이 나타난 결과란 없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 / 미묘 비구니의 전생에 못된 '한 생각'의 무서운 과보.


미묘 비구니 설화(미묘 비구니의 전생에 행한 악행惡行과 그 악행을 덮기 위해 한 고약한 맹세로 인한 금생의 무서운 과보. 다행히 과거세에 연각緣覺에게 공양을 올리고 그와 같이 도를 얻게 되기를 서원한 인연으로 현생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닦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미묘 비구니는 아라한이 되었지마는 (전생에 둘째 마누라의 아들 정수리에 바늘을 꽂아 죽인 그 과보로) 항상 뜨거운 바늘이 정수리로 들어가 발바닥으로 나오는 듯 밤낮으로 그런 고통을 받아 쉴 때가 없었다고 한다. (『현우경(賢愚經)』 제3권 제16. 「미묘비구니품(微妙比丘尼品」 단본丹本에는 이 품이 제4권에 있으며 순번이 19이다)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둔다 /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 / (게송)약인정좌일수유~.



밥이 되니 지니, 반찬이 짜니 싱거우니, 네 떡이 크고 내 떡이 작으니, 왜 너만 먹고 나는 안 주느니, 방이 더웁다 차웁다, 너는 왜 저만큼 안 앉고 내 바짝 옆에 왔느냐, 너는 왜 저기 안 앉고 여기 왔느냐, 여기가 내 자리다 네 자리다,

사사건건이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참선을 할 것이며, 남의 흉보느라고 언제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참선한다고 선방에 와 가지고 자기 집안 망신하고, 자기집에서는 절로 참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와 가지고 하는 짓이 똥싸고 뭉개는 그러한 참선을 해가지고 무슨 도를 통할 것이냐.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가지고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중대하거든. 성냥불은 성냥개비 하나지마는 그놈 하나 탁! 쳐댐으로 해서 큰 집도 태울 수 있고, 큰 공장도 태울 수도 있고, 한 도시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바늘로 찌르게 되고, 바늘로 찌른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무서운 여러 가지 맹세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그 마음에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이 탁! 일어나도 그 미워하는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 미워하는 생각이나, 또는 사랑하는 생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단속을 해서 화두(話頭)를 들도록 이렇게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인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조금하다가 금방 바깥 경계에 끄달려 버리고, 이래가지고서는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해도 무슨 깨달음이 있겠느냐.


부애 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괴로울 때 ‘이뭣고?’

억울할 때 ‘이뭣고?’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사정이 허락할 때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기어코 금생(今生)에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