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0/(251~275)2023. 4. 1. 10:06

(No.268)—1985년 6월 첫째일요법회 (45분)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소리가 튀거나 끊김이 자주 있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1) 약 23분.

 

(2) 약 22분.

 

(1)------------------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허고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다.
참선을 함에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뚧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心路] 끊어짐을 요하느니라. 참선은 조사관을,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조사관을 갖다가 뚧어버려야 하고, 묘한 깨달음을 얻을려면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우거진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런 곳에 들어가서 길이길이 샘[漏]이 없는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하노라.


여러분은 을축년(乙丑年) 6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한 시간 동안에 걸쳐서 전강선사(田岡禪師),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법문의 내용에 아마 72세 때, 77세에 열반하셨는데 72세 때 설하신 법문인 거 같습니다.폭포수가 쏟아지듯 하고, 저 태평양 바다에 그 산더미 같은 파도가 파도치듯 하며, 때로는 수십 질, 깊은 저 바다 밑까지 환히 들이비치듯 그렇게 또 잔잔한 가운데에 우리에게 너무나 감명을 주는 감동을 주는 그러한 법문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왕궁에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히말라야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목숨을 바쳐서 수행을 하셔서 대도를 성취를 하셨고, 또 방금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중국에 순치황제(順治皇帝)도 19년간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 산중에 들어가서 출가를 했던 것입니다.

도를 닦으려면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출가(出家)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출가하면 문자상으로는 '집[家]을 떠난다[出], 집을 나온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무조건 우리가 살고 있는 부모형제 가정을 버리고 저 산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일반적으로는 출가라고 말을 합니다마는, 진실한 의미에 있어서는 출가에 네 가지로, 네 가지 가운데에 참으로 어떻게 출가한 것이 바른 출가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몸은 출가했으되 마음은 출가하지 못한 그러한 출가가 있고, (둘째) 몸은 비록 속가(俗家)에 있으되 마음은 출가한 그러한 출가가 있고, 또 (셋째)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출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 몸도 마음도 다 같이 출가를 못 한 사람, 이렇게 해서 출가(出家) · 재가(在家)에 네 가지로 노나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서 일심으로 도를 잘 닦는 것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것이 되겠고.
속가(俗家)에 비록 몸은 담겨 있지마는 그 마음은 속가 탐진치(貪瞋痴)와 오욕락(五慾樂)에 염착(染着)됨이 없이 정법을 믿고 수행을 해 나가는, 세속을 버리지 아니하고 세속에 염착하지 아니하면서 도를, 수행을 여법(如法)하게 하는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은 비록 몸은 세속에 있으되, 마음은 출가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출가하지 못한 것은 설명하지 아니해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도를 닦으려면 몸도 마음도 출가를 하던지, 비록 몸은 세속에 있으되 마음만이라도 출가를 하던지, 어느 길이 되었건 일단은 출가를 해야 도를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하는 그러한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인도에 유마거사(維摩居士)나, 중국에 방거사(龐居士), 우리나라 부설거사(浮雪居士) 같은 그러한 대거사(大居士)는 몸은 비록 세속에 담아 있으되, 그 마음은 출가한 스님네와 조끔도 다름없이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보여주신 그러한 성현들인 것입니다.
세속에 몸이 담겨 있건, 그 몸이 세속을 벗어나서 스님이 되었건 그 마음이 출가하면 하등(何等)에 차이가 없는 것이고 또 깨달음을 얻은 그 궁극에 이르러서는 더군다나 추호도 차등(差等)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조사관(祖師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깨달음의 문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을 얻으려면은 우리 중생의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일체 사량분별(思量分別), 계교(計較), 복탁(卜度), 이리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하고 하는 그러한 우리의 사량분별로 이론적으로 따지는 그러한 마음, 마음이 끊어지... (녹음 끊김)

게송(偈頌)에 '솔바람 불고 칡덩쿨 우거진 사이로 달빛이 비치는 그러한 산중에 들어가서 길이길이 샘[漏]이 없는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한다' 그랬는데, 비록 차 소리가 나고, 기계 소리가 나고 모든 소음이,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음) <그치지 않는 세속에 살되 거기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아니하면 벌써 그러한 분이 계신 곳 바로 그곳은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송풍나월하인 것입니다. 아무리 솔바람 부는...>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를 탔으면 그 화두가 바로 본참공안(本參公案)이라 하는 것입니다. 화두(話頭)에는 천칠백 화두(千七百話頭)가 있지마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라 그렇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선지식으로부터 지정 받은 그 한 화두를 본참공안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화두 가지고 공부를 해봐서 조끔 잘 안되면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쪼끔 해보고, 그것 가지고도 잘 안되면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이것 쫌 해보다 저 화두 가지고 좀 해보다 이렇게 하면 공부는 올바르게 되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도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했습니다. 잘되건 못 되건 무조건하고 그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하나만을 향해서 참구(參究)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을 해 나가는데 눈을 부릅뜨고 눈에다가 잔뜩 독기를 품고서 눈을 부릅뜨고, 몸과 마음을 갖다가 잔뜩 무슨 이 용을 쓰듯이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 가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무엇인가 공부가 좀 된 것 같다’ 그럽니다.

'눈에 힘도 주지 아니하고, 목에 힘도 주지 아니하고, 또 몸에 힘을 주지 아니하고 그래가지고 맹하니 우두커니 앉었으면 도무지 공부한 것 같지도 않고 화두도 잘 들리지도 아니하니까, 몸에도 힘을 주고, 목에도 힘을 주고, 눈에도 힘을 주어 가지고 잔뜩 용(을 쓰고) 해 나가야 공부 좀 된 것 같다'
어찌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으나, 힘을 너무 힘을 주면 반드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또는 혈액이 고르지 못한 그러한 병을 유발할 우려성이 있는 것입니다.

몸은 어디까지나 단정하게 앉되, 목이나 등에다가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어서는 아니되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야 하는 것입니다.
눈을 너무 뚝! 부릅떠서도 아니될 뿐만 아니라 또 눈을 너무 작게 뜨면 스르르르—처음에는 눈을 감고 하거나, 눈을 조끔만 뜨고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조용한 것같이 느껴지지만, 눈을 감고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에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몸은 단정히 하되, 목과 몸에 힘을 다 빼고, 눈을 뜨되 눈에다 독기를 품지 말 것이며 평상으로 뜨되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2~3m 지점에다 눈을 떨구되 어떠한 특별한 점을 정해 놓고 그 점을 들여다볼 그럴 필요는 없고 눈은 평상으로 뜨되, 의식적으로 어떠한 점을 응시(凝視)하거나 주시(注視)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눈이 따악 정해지면 안정이 되면 마음도 또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몸도 따악 자리가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눈을 깜박거리고 눈동자가 왔다갔다하고 이러면은 벌써 마음이 안정이 안된 증거고, 마음이 안정이 안되면 몸을 갖다가 몸이 안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부시럭대 쌓고, 꺼떡거려 쌓고 이래서...

그러나 처음에 처음으로 한 분은 다리가 저리는 수가 있습니다. 다리가 저릴 때에는 위에로 올렸던 다리를 밑에로 내리고, 밑에 있던 다리를 위로 교대해 교환을 하는 것은 그것은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얼마 동안을 지내면 다리가 저린 것도 차츰 없어지게 되고, 한 시간가량 고대로 앉았어도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내일부터 석 달 동안 여름 결제(結制)가 시작이 됩니다마는, 한 시간마다 일어나서 포행(布行)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더 앉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포행 시간에는 다 같이 일어나서 포행을 하고, 화장실에도 다녀오고 해서 다시 새로운 정신으로 와서 앉는 것은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고—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몸이 안정이 되는데, 눈과 마음과 몸이 다 안정이 될 때에 그것으로써 능사(能事)를 삼지 말아라. '아 인자 되었다, 인자 공부가 잘되는구나!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그것에 만족한 마음을 갖지 말아라.
그 몸과 눈과 마음과 몸이 다 안정이 되어서 너무너무 고요하고 편안하고 그러니까 '아 인자 이거 되았다' 하고, 그러한 그 조용하고 깨끗한 마음에 빠져 가지고 화두(話頭)를 잊어버리면, 화두를 잊어버리면은 공(空)에 떨어져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과 마음과 몸이 안정이 된다 하드라도 그 고요하고 편안한 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한 그 본참공안에 대한 알 수 없는 그 의단(疑團)이, 그 의심(疑心)이 끊어지지 않도록 잡드리를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과 몸이 편안하고 경계가 조용하다 하더라도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은 옳게 공부를 해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도 안정이 되고, 몸도 편안하고, 너무너무 조용하고 깨끗하다가도 화두도 곧장 잘 들려 가다가도 뚝 변해 가지고—공부가 잘되는 것도 같고, 때로는 먹먹해서 영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마음도 산란하고 몸도 그렇게 괴롭고, 다른 때는 1시간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게 지내갔는데, 5분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매우 괴로웁게 느껴지는 그러한 경계가 온다 하더라도, 그러니 그럴 때에는 아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할 때가 그 대단히 중요한 고비인 것입니다.

흔히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조용하고, 화두가 순일(純一)해서 잘되어 가면 '아, 참 내가 공부가 잘되어 간다' 하고 좋아하고.
조끔 잘된 듯하다 화두도 잘 안 들리고, 정신도 좀 맑지를 못하고, 몸도 편안하질 못하고 하면 '아이고 이 공부가 잘 안된다'고 굉장히 그 번뇌심을 내고 걱정을 하고, '이게 공부에 내가 인연이 없어서 그런가? 공부를 잘못해서 이런가?' 해 가지고 이 대단히 번민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그걸 걱정할 만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고비야말로 앞으로 새로 발전을 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돌아온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재미없는 그러한 경계(境界)가 온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잘 용심(用心)을 해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잘 잡드리를 해서 화두를 들고 나가면 또 얼마 지나가면 또 그러한 그 재미없는 경계가 차츰차츰 안정이 되고 고요해져서 화두가 잘 들리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한 경계가 이르르면 그 정(定)에 들게 되는데, 그 정(定)이라고 하는 데에도 삿된 정과 바른 정이 있는 것입니다.
눈도 고대로 아주 못박힌 듯 눈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눈까풀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생각도 전혀 딴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몸도 아주 바윗덩어리처럼 고대로 까딱도 아니하면서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경계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는데 그런 경계에 들어가면 정에 들게 되는데 그 정에 사(邪)와 정(正)이 있다.
그러한 정(定)의 경지에 들어가서도 화두를 놓쳐 버리면 그 정은 삿된 정이 되는 게고, 그러한 정(定) 속에서도 화두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은 그것은 바른 정(定)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에 들게 되면, 들었다가도 또 포행을 한다든지 방선(放禪)을 할 때에 자리에서 일어서게 됩니다. 그러한 정에 들으면은 그 정이 행여나 흩어질까봐 일어서기를 싫어하고 그러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일어...(녹음 끊김) (처음~22분51초)





(2)------------------

몸과 마음이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걸어가거나, 똥을 누거나, 세수를 하거나, 무슨 소지를 하거나, 뭐 설거지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무엇을 하거나 조끔도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그 자기의 본참(本參)에 대한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드러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앉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가운데에서도 일여(一如)하게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이런 때 마음 씀[用心]을 매우 자세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 마음 씀[用心]을 자세히 하느냐?
앉아 있을 때나, 섰을 때나, 공부를 해 나감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할 정(靜)' 자와, '깨끗할 정(淨)' 자, 고요하고 맑은 그 두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앉아 있을 때는 고요하고 맑은데, 서 버리면 간 곳이 없고 흔들리고 화두도 잘 안 들리고 경계(境界)에 팔린다면 그 공부는 올바른 궤도에 들어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앉아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서서 포행을 하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또 무슨 운력(運力)을 하거나 하는 가운데에서도 화두가 떠억 들린 상태가 되어야 그래야 그 공부가 올바르게 되어간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상이, 자기 기분이 엄숙하고 그 풍모가 청정해서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에 마치 가을 하늘처럼 탁! 트여서 맑은 그렇게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면 이것을 첫째 정절(程節)이라, 첫째 과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려면, 참선을 시작해 가지고 깨달음에 이르려면은 세 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단계 중에 지금 말씀한 이것이 바로 첫째 단계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둘째 단계는, 그 첫째 단계—움직일 때나 고요히 앉어 있을 때나 조끔도 상관없이 그 마음 경계가 가을 하늘처럼 맑고 높이 툭 트여서 그러한 상태에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러한 경계에서 그 때 놓치지 말고 그 때를 타서 공부를 지어나가되 마치 맑은 가을 들물처럼, 여름에는 농사짓느라고 모다 들물이 흙탕물이 모다 내려가고 모다 그러는데, 농사 다 짓고 나면은 가을에 들에 나가면은 말간 물이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을 들물처럼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출출출출출출 끊임없이 흘러가되 계속 맑은 물이 흘러가고, 옛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옛 사당에 들어가 보면 그 적적한 가운데에 향로가 떠억 놓여 있는데, 그 향로처럼 그렇게 지극한 정(靜)에 들어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적적(寂寂)하면서도 성성(惺惺)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해. '적적(寂寂)하다' 하는 것은 일체 번뇌 망상이 다 끊어진 것을 말한 거고, '성성(惺惺)하다' 하는 것은 졸음이라든지 흐리멍덩하지를 않고 깨끗한 정신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적적하면서도 성성해야 하고, 성성하면서도 적적해야 그래 가지고 마음 길이 다 끊어졌을 때에 이럴 때에 이 몸뚱이가, 이 우리의 육체가 이 세상에 있는 인간 세상에 있는 것도 느끼지를 못하게 됩니다.
다맛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하는데, 그럴 때에 모든 번뇌 망상은 제절로 쉬어 버리고 그 경계는, 그 성성하고 적적한 그 경계는 환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빛이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녹음 끊김) ...가라앉어 버리고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한 바로 이 단계가 두 번째 단계인 것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자칫 잘못하면 지각심(知覺心)을 내게 됩니다. 지각심.
'빨리 깨달랐으면, 이럴 때 누가 와서 나를 탁 깨치게 해줬으면' 이러한 지각심을 내거나, 생각을 일으켜서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거나 이러한 생각을 내면 순일지묘(純一之妙)를 끊어버려. 머지않아서 깨닫게 될 텐데, 그러한 부질없는 생각을 냄으로 해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대해(大害)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각심을 내는 이러한 허물이 없이, 앉았거나 섰거나 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동정(動靜)이 한결같애. 앉았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되고, 일어서서 움직인다고 해서 뭐 화두가 달아나고 그러지를 않고,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한결같이 되고, 오매(寤寐)가 성성(惺惺)해서, 잠을 잘 때나 잠을 깰 때도 한결같이 성성해서 화두가 현전(現前)하면,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떠억 현전하면,
그때의 경계가 어떠냐 하면은 맑은 물에 달이 비추듯이, 아무리 그 물이 파도가 치고 물결이 인다 하드라도 그 물에 비친 달은 활발(活潑)해서—가만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파도도 치고, 물결도 치고, 이리저리 하지마는 거기에 부딪치는 달빛은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아지되 종내 그 밝은 빛이 없어지지 않듯이,
아무리 대질러 밖에서 어떠한 충격이 들어와도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그 경계를 흩어 버릴려고 해도 그 독로한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 의단이 독로한 상태가 없어지지 아니할 때에 그 마음 경계 고요한 것, 경계는 고요하고 밖으로 아무리 그 사람을 흔들어도 화두 의단은 흩어지지 아니해. 그런 경계가 흩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셋째 번 단계인 것입니다.

아무리 충격을 주고, 아무리 옆에서 떠들고 그래도 조끔도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가운데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이러한 경계가 바로 이 셋째 번 경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셋째 번 경계에 이르르면 의단이 파(破)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가 머지않다 이것입니다.

이 공부는 이것은 부처님 이후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것입니다.
숙세(宿世)에 많이 닦은 분은 이 세 가지 단계가 일시에 지나는 수도 있고, 차례차례 오는 수도 있고, 이것이 언하(言下)에 있기도 하고, 석 달 만에 있기도 하고 또는 일 년 만에 있기도 하고, 삼 년 만에 있기도 하고, 십 년 만에 오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인(當人)의 숙세로 닦은 업적과 금생에 얼마만큼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간은 결정이 날 것입니다마는,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어떠한 형태로던지 거쳐서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도 언제나 이러한 말씀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말씀을 해 주신 것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망상이 일어나서 공부가 잘 안된다. 혼침이 와서 공부가 안된다. 주변이 시끄럽고 복잡해서 공부가 안된다' 이러한 말씀을 종종 호소해 오십니다마는, 참으로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줄 깨닫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歸依)해서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나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노력을 하신다면 누구라도 한 분도 빠짐없이 다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한결같이 보증을 서시고 입증을 하신 겁니다.


내일부터 석 달 동안 하안거(夏安居) 여름 결제가 시작이 됩니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이 선원(禪院)에 오셔서 공부를 하시는 분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백일기도 동참을 하신 분도 내나 이 결제에 입방(入房)을 하신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하시고, 여러분 가정에서 항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으로라도 들으시면서 열심히 정진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으면 될 수 있으면 앉아서 하시고, 앉을 시간이 없으면은 행동하면서 생활하시면서 일체시(一切時) 일체처(一切處)에서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를 의심을 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 회광자간(廻光自看)을 하시면 오히려 고요한 데에만 탐착한 그러한 공부보단 오히려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시시때때로 챙기고 돌이키고 잡드리를 하는 가운데 정말 살아 있는 정진을 하실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석 달 결제에 입방을 하신 모든 신도 여러분, 인간은 정말 무상한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고, 평소에 건강이 좋고 나쁜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라도 무상한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우리의 앞뒤에서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을 느끼지 않고서는 이 공부는 할 수가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형언도는 받았으되, 그 집행일이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도 빼놓지 아니하고 언젠가는 우리는 목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날짜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마는, 그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반드시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끔 이 자리에서 바로 이 시간을 그 일 초 일 초를 범연히 넘기지 말고 앉어 있으면 앉어 있는 대로, 서 있을 때는 서 있는 대로,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대로, 일할 때는 일하는 바로 그 자세에서 화두(話頭)를 돌이켜 관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언제 어느 때 올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천재일우(千載一遇)로 그 깨달음이 올 그 찰나를 놓쳐 버리고 지나치면 또 (녹음 끊김) 몇 겁(劫)이 올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 깨달음이 올 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화두에 의심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마치 나라에 중대한 어떤 발표가 있되, 시간이 정확하지 아니할 때는 언제나 다이알을 딱 맞추어 놓고 그 중대한 발표를 기다리듯이 우리의 깨달음도 또 우리의 죽음이 언제 올런지를... (녹음 끊김) 언제나 그 다이알을 맞추듯이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모든 재앙을 방어하는 데에도 대단히 좋은 효과가 있어서 언제나 화두를 가다듬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다잡이해 나가면 그 사람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어떠한 마귀도 침범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해 나가면 앞에 말한 세 단계를 거쳐서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 생사진로(生死塵勞)를 멀리 벗어버리는 일이 이 보통 일이 아녀.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꽉! 그 승두(繩頭)를 잡어서, 화두를 잡어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이 한번 뼛골에 사무치는 추위를 만나지 아니하면,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요.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그 강추위 한 뒤끝에 피는 매화라야 그 향취가 진동한 법이지, 겨울에 강추위를 하지 못하고 이상 난동(異常暖冬) 끝에 매화꽃이 피면 별로 코를 치는 그런 향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정진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정말 특달(特達)한 회포(懷抱)와 신심(信心)과 결단심으로 여법(如法)하게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해야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내일 결제 법요식에 모두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모다 백일기도에도 동참을 하시고 또 여기 와서 직접 참선을 못하신 분도 가정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절에 나오신 분보다 못지않게 알뜰히 정진을 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22분52초~44분45초) (끝)




[법문 내용]

(게송) 참선수투조사관~ / 출가(出家). 어떻게 출가한 것이 바른 출가인가? / 깨달음을 얻으려면은 우리 중생의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법문 / 본참공안(本參公案) / 참선 자세는 단정하면서 몸에 힘을 주어서는 안된다 / 공부가 안된 그러한 고비야말로 앞으로 새로 발전을 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돌아온 것 / 삿된 정(定)과 바른 정(定) / 공부를 해 나감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할 정(靜)' 자와, '깨끗할 정(淨)' 자, 고요하고 맑은 그 두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 삼개정절(三箇程節).

살아 있는 정진을 하라 / 우리는 이미 사형언도는 받았으되, 그 집행일이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 /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참선은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조사관을 갖다가 뚧어버려야 하고, 묘한 깨달음을 얻을려면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서 일심으로 도를 잘 닦는 것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것이 되겠고. 속가(俗家)에 비록 몸은 담겨 있지마는 그 마음은 속가 탐진치(貪瞋痴)와 오욕락(五慾樂)에 염착(染着)됨이 없이 정법을 믿고 수행을 해 나가는, 세속을 버리지 아니하고 세속에 염착하지 아니하면서 도를, 수행을 여법(如法)하게 하는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은 비록 몸은 세속에 있으되, 마음은 출가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속에 몸이 담겨 있건, 그 몸이 세속을 벗어나서 스님이 되었건 그 마음이 출가하면 하등(何等)에 차이가 없는 것이고 또 깨달음을 얻은 그 궁극에 이르러서는 더군다나 추호도 차등(差等)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話頭)에는 천칠백 화두(千七百話頭)가 있지마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라 그렇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선지식으로부터 지정 받은 그 한 화두를 본참공안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화두 가지고 공부를 해봐서 조끔 잘 안되면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쪼끔 해보고, 그것 가지고도 잘 안되면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이것 쫌 해보다 저 화두 가지고 좀 해보다 이렇게 하면 공부는 올바르게 되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도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했습니다. 잘되건 못 되건 무조건하고 그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하나만을 향해서 참구(參究)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과 마음과 몸이 안정이 된다 하드라도 그 고요하고 편안한 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한 그 본참공안에 대한 알 수 없는 그 의단(疑團)이, 그 의심(疑心)이 끊어지지 않도록 잡드리를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과 몸이 편안하고 경계가 조용하다 하더라도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은 옳게 공부를 해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삼개정절(三箇程節) ; 세 개[三箇]의 정절(程節). 세 가지 단계.
정절(程節) : ①길목. 길가는 데 종요로운 어귀. ②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비.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 용화선원 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p60~64. (가로판 p60~63)
趁逐工夫하야 始終에 不離靜淨二字호리니 靜極하얀 便覺하고 淨極엔 光이 通達하나니라

공부를 해나감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 정(靜)과 조촐할 정(淨) 두 자를 여의지 말지니, 고요함[靜]이 지극하면 곧 깨칠 것이요 조촐함[淨]이 지극하면 광명이 통달하나니라.

氣肅風淸하야 動靜境界 如秋天相似時가 是第一箇程節이니 便宜乘時進步이니라

기운(氣韻)이 엄숙하고 바람이 맑아서 동정(動靜) 경계가 마치 가을 하늘 같을 때, 이것이 첫번째 정절(程節)이니, 곧 마땅히 그 때를 타서 나아갈지니라.

如澄秋野水하며 如古廟裏香爐相似하야 寂寂惺惺하야 心路不行時에 亦不知有幻身이 在人間하고 但見箇話頭綿綿不絕하리니 到這裏하얀 塵將息而光將發하리니 是第二箇程節이니라 於斯에 若生知覺心하면 則斷純一之妙하리니 大害也이니라

마치 맑은 가을 들물 같으며, 옛 사당 안의 향로 같아,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하야 마음길이 끊어졌을 때, 또한 이 육신이 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綿綿)히 끊어지지 않음을 보리니, 이 속에 이르르면 티끌은 장차 쉬고 광명은 장차 발하리니, 이것이 두 번째 정절이니라. 여기에서 만약 지각심(知覺心)을 내면 순일(純一)한 묘(妙)가 끊어지리니 크게 해로우니라.

無此過者는 動靜에 一如하고 寤寐에 惺惺하야 話頭가 現前호대 如透水月華하야 在灘浪中하야 活潑潑하야 觸하야도 不散하며 蕩하야도 不失時에 中寂不搖하며 外撼不動矣리니 是第三箇程節이니 疑團이 破하야 正眼開가 近矣리라

이러한 허물이 없는 사람은 동정(動靜)에 일여(一如)하고, 자나깨나 성성하야 화두가 앞에 나타나되 마치 물에 비친 달빛과 같아 여울물결 가운데 있어 활발발(活潑潑)하야, 대질러도 흩어지지 않으며 헤쳐도 잃지 아니한 때, 중심이 고요하야 흔들리지 아니하며 밖으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세 번째 정절이니 의단이 파하야 정안(正眼)이 열림이 가까우리라.

이 공부는 이것은 부처님 이후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다 이러한 삼개정절(三箇程節) 과정을 겪은 것입니다.
숙세(宿世)에 많이 닦은 분은 이 세 가지 단계가 일시에 지나는 수도 있고, 차례차례 오는 수도 있고, 이것이 언하(言下)에 있기도 하고, 석 달 만에 있기도 하고 또는 일 년 만에 있기도 하고, 삼 년 만에 있기도 하고, 십 년 만에 오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인(當人)의 숙세로 닦은 업적과 금생에 얼마만큼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간은 결정이 날 것입니다마는,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어떠한 형태로던지 거쳐서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줄 깨닫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歸依)해서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나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노력을 하신다면 누구라도 한 분도 빠짐없이 다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한결같이 보증을 서시고 입증을 하신 겁니다.

이것은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모든 재앙을 방어하는 데에도 대단히 좋은 효과가 있어서 언제나 화두를 가다듬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다잡이해 나가면 그 사람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어떠한 마귀도 침범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해 나가면 앞에 말한 세 단계를 거쳐서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22. 2. 26. 23:03

 

 

(No.257)—1985년 입춘법회(85.02.04) (63분)

 

(1) 약 33분.

 

(2) 약 31분.


(1)------------------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한 뒤로 몇 번이나 삼도(三途)에 들어갔으며 사생(四生)을 겪었던가. 본 마음자리, 본심왕을 등진 이래로, 등지고서 몇 번이나 지옥 · 아귀 · 축생 삼도에 들어가서 갖은 고통을 받았으며,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의 몸뚱이를 몇 번이나 겪었더냐.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의 때를 깨끗이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고향에 돌아가리라. 본심왕의 고향에, 심왕의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더라.

오늘은 을축년 입춘날입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스님들, 그리고 보살선방 청신녀 여러분과 용화사 법보제자 여러 신남신녀가 모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마는 우리의 역대 선망부모(先亡父母), 형제자매, 원근친척과 법계에 가득찬 유주무주(有主無主) 애혼(哀魂), 고혼(孤魂) 불자들도 이 법회에 초대를 받아서 왕림을 하셨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점지로 잠시 양씨 가(家)에 태어났다가 24세를 일기로 홀연히 온 곳으로 돌아가 버린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靈駕)의 초재를 맞이해서 함께 그 영가도 이 법문을 법상 앞에서 듣고 있습니다.

인생은 한번 왔다가 잠시 꿈꾸듯, 술 취한 듯 방황하다가 속절없이 몸을 버리고 홀연히 떠나가고야만 말 그러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물론 본성(本性)을 깨달아서 진리와 계합(契合)이 된 사람은 본래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지마는, 나의 본성을 망각하고 등져 버린 입장에서는 분명히 생(生)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입춘날은, 새해가 이 입춘날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 입춘날에는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부처님 앞에 모여서 법문을 듣고 공양을 올리고 또 기도를 하는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특히 삼재(三災), 뱀띠와 닭띠와 소띠 이 사 · 유 · 축(巳酉丑)생은 금년이 날삼재[出三災]라 해서 부처님 앞에 동참(同參)을 하고, 그래서 이 1년 동안 무장무애하게 지내고,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려는 그러한 간절한 생각을 가지시고 이 자리에 오신 분이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삼재는 꼭 사 · 유 · 축(巳酉丑)생, 뱀띠와 닭띠와 소띠에만이 한정해서 닥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 · 유 · 축(巳酉丑)생이라고 해서 꼭 모든 재앙을 받으라는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부터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이 삼재를 대단히 두려워하고 삼가하고 조심해 왔습니다. 많이 경험을 통해서도 이 삼재가 참으로 두려운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왜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내 마음에 맞고, 내 뜻대로 되는 그런 좋은 일만 있으면 좋으련마는, 왜 우리의 뜻에 어긋나고 바라지도 아니했던 어려운 일이 닥쳐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야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다른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이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자기가 짓고, 자기가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는 까닭인 것입니다.


『지도론(智度論)』에 보면 옛날 부처님 인행(因行) 때에, 몸뚱이 한번 내휘저어 버리면 산과 바다도 다 넘어져 버리고 뒤엎어져 버릴 만큼 그러한 위력을 가진 독룡(毒龍)의 몸을 받으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독룡은 어떻게 무섭고 위력이 있던지 어떤 사람이 그 독룡 앞에 나타나면, 힘이 약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를 해 버리고, 배짱이 세고 담력이 있고 힘이 강하다는 사람도 가서 기운이 빠져 가지고 죽어버리는 그런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독룡이 하루에는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부처님께 계(戒)를 받게 되었습니다. 계를 받은 뒤로 고요한 숲속에 들어가서 정(定)에 들어서 좌선(坐禪)을 했던 것입니다. 좌선을 하다가 피로해서 게으른 생각이 나 가지고 잠에 들었던 것입니다. 정진을 되게 하다가 깊은 잠에 들어 버렸어.

마치 그때에 사냥을 하는 포수(砲手)가 그 독룡이 잠들어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독룡이 깊은 잠에 들을 때에는 흡사 큰 구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독룡을 발견한 포수가 깜짝 놀랬습니다. 왜 놀랬느냐 하면은 그 독룡의 몸뚱이가 너무 찬란했던 것입니다.
몸뚱이가 울긋불긋 오색이 찬란하고 칠보로 장엄한 것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이 용의 가죽을 벗겨서 상감께 바쳐서 옷을 해 입도록 하면 큰 벼슬을 받고 상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작대기로 그 용의 머리를 누르고 그리고서 다른 사람들은 칼로써 그 독룡의 가죽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용이 놀래서 눈을 떠 보니 아! 어떤 포수가 작대기로 자기 머리빡을 누르고 조그만한 칼로 껍데기를 벗기는데, 그 용이 얼마만큼 크냐 하면 태산도 꼬리로 냅다 때려버리면 태산도 와그르르 무너져 버리고, 바다도 한번 쳐 버리면 바닷물이 바짝 다 말랐다가 다시 오므라질 정도로, 그 나라, 그까짓 것도 없애 버리려면 없애 버리고, 그 달라들어서 모가지를 누르고 가죽을 벗기는 사람들도 슬쩍 쳐 버려도 가루가 되어버릴 그러한 정도로 몸뚱이도 크려니와 기운이 센데,
‘부처님께 계를 받고 도를 닦는 그런 까닭으로 내가 차마 이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 이리 생각을 하고서 그것을 꽉 참고서 껍데기를 다 벗기도록 놓아두었던 것입니다.

머리빡부터서 껍데기를 벗기는데 눈도 빠지고 차츰차츰 숨도 막히게 됐습니다. 껍데기를 벗기는데 몹시 아팠지만 차마 그 조그만한 사람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껍데기가 다 벗겨지도록 아픈 것을 참으면서도 조금도 뉘우친 바가 없었습니다.
껍데기를 다 벗겨 버리고 완전히 벌건 살 덤뱅이만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날 구름 한 점 없는 태양이 쨍쨍 쬐어 가지고 껍데기를 활랑 벗겨 버린 독룡의 몸뚱이는 따갑고, 시시각각으로 말라비틀어지고 목이 말랐습니다.

몸뚱이를 굴려서 큰 물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그때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수천 마리 수만 마리의 조그마한 벌레며 개미떼들이 달라들어서 그 고기를 새카맣게 눌어붙어서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몸뚱이를 움직이면 그 살을 뜯어먹고 있는 개미떼들이 다 죽을 것이고, 그래서 몸을 까딱도 하지 아니한 채 참고 참다가 마침내 몸뚱이는, 차츰차츰 살 덤뱅이는 개미떼들이 다 뜯어가고 바짝 말라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그 독룡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금생에는 내가 이 몸뚱이로써 너희들에게 보시(布施)를 해 가지고 너희들을 배부르게 하려니와, 내가 성불한 날에는 법(法)으로써 너희들에게 보시해서 너희들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리라’ 한 이러한 맹서(盟誓)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자마자 그 독룡은 바로 제이 도리천(第二 忉利天)에, 도리천상에 태어나게 됐습니다.(20분1초)

이 설화는 부처님 인행(因行) 때의 설화인데, 그 독룡은 나중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시고, 그 독룡의 머리를 누르고 가죽을 벗기던 사람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태어나서 부처님을 괴롭히던 조달(調達)이었던 것입니다.
조달이는 10생(十生)을 부처님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방법으로 부처님을 괴롭히고 해꼬자하고 때로는 목숨을 앗을려고 그러고 때로는 모함을 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죽 벗겨진 독룡의 몸뚱이를 뜯어먹던 개미떼들은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고 최초로 녹야원(鹿野苑)에서 설법을 하실 때에 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팔만의 하늘나라, 팔만의 제천(諸天)들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날 그 독룡이 부처님의 계(戒)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목을 누르고 가죽을 벗기던 사냥꾼을 때려죽였던지, 그 개미떼들을 죽거나 말거나 몸을 움직여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던지, 이렇게 했더라면 부처님은 성불(成佛)을 하시지 못했을 것이며, 그 사냥꾼도 또 그 개미떼들도 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세세생생에 원수로서 만나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남을 좋게 해 주고 또 내가 남에게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이러한 것들이 다음 순간에는 은인으로 나타나고, 다시 원수로 나타나고, 원수가 은인이 되고 은인이 원수가 되고, 이리해서 세세생생을 거듭하면서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이나 육도법계의 수없는 모든 중생들도 선(善)이 아니면 악(惡), 악이 아니면 선으로 지어서 받고, 뿌려서 거두는 그러한 유위(有爲), 유루(有漏)의 인과 관계에서 찰나간도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삼재(三災)는, 재앙(災殃)은 바로 그런 원인으로 해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왕 과거에 지어서 금생에 돌아오는 삼재를 억지로 모면할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악(惡)의 씨를 뿌리고 선(善)의 과(果)를 거두려는 생각은,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잘못은 부처님께 진심으로 참회(懺悔)를 하고, 이미 자기에게 돌아오는 재앙은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곱게 깨끗하게 달게 그것을 받아넘기고, 그것을 달게 받아넘기면서 거기서 새로운 발심(發心)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야말로 인과법(因果法)을 믿는, 불법을 믿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다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일가친척이나 이웃간에도 우리가 아무리 그 사람이 나한테 야속하게 하고, 나를 직접 간접으로 또는 물심양면으로 해를 끼친 때가 있다하더라도 독심(毒心)을 품고 복수를 하려는 마음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싸움은 싸움으로써 끝나지 아니하고, 원수는 복수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삼재, 금년 을축년 날삼재를 안고 있는 뱀띠나 닭띠나 소띠의 가족을 가지신 분 또 직접 그 사 · 유 · 축(巳酉丑)생에 해당하신 분은 오늘 이후로 누가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험담을 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그러한 사람과 일을 만났을 때에 진심(瞋心)을 내지 말고, 바로 거기서 마음을 돌이켜서 인과법(因果法)을 관찰을 하고, 성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노력을 하신다면 어떠한 무서운 삼재도 그분 앞에는 악한 결과를 끼쳐주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재앙을 상대(相對)를 하고 모든 미운 사람, 악한 사람을 상대하신다면,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나의 스승이 되고, 나의 은인이 되고, 나의 도반으로서 나를 도와주고 나로 하여금 모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그러한 불보살(佛菩薩)로 변할 것입니다.

남을 해롭게 하면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고,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면서, 아무리 재앙을 면하려고 하고 큰 복을 받으려고 한다고 해도 이것은 소금을 많이 먹고 목마름을 낫으려고 하는 거와 같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올라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그렇게 해서 권리를 획득하고 재산을 많이 모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권리와 그러한 재산은 끝내 나를 배반하고 독사처럼 나를 물어서 나의 목숨과, 나의 명예와, 나의 모든 공덕을 하루아침에 다 빼앗아 가고 말 것입니다.(처음~31분29초)





(2)------------------

아육왕(阿育王)은 부처님 당시에 어린아이로서 길에서 소꼽장난을 하다가 모래와 흙으로 성(城)을 쌓고 길을 닦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부처님께 그 길을 터드리면서 ‘어서 이리 지나가십시오’ 하고 길을 내드렸습니다.
소꼽장난을 하면서 부처님께 길을 닦아 드리는 그 공덕으로,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백년 후에 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다’ 하고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전륜성왕은 무력으로써 천하를 통일한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으로써 천하를 통일하는 위대한 왕을 갖다가 천자를 전륜성왕이라 하는데, 전륜성왕도 부처님과 똑같이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아육왕이 과연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년 만에 인도에 태어나서 전 인도를 갖다가 통일을 하고 불법으로써 인도 천지를 다스린 그러한 성군(聖君)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육왕이 국토를 순례하며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네팔(Nepal)에 들렸을 때에 부처님의 탄생지인 그 룸비니(Lumbini) 동산에 높은 돌기둥 탑을 세우고 거기에다가, 「여기는 부처님께서 탄생한 곳이니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어라」하는 그러한 칙어(勅語)를 돌에 새겨 놨습니다. 그 돌기둥 탑과 그러한 그 돌에 기록한 비문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성지 순례로 가셨던 분들은 그것을 직접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아육왕(阿育王)은 일생 동안 그렇게 많은 보시를 행하고, 불법을 옹호하고, 불법으로써 부처님 진리로써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그 아육왕은 마침내 병을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병을 앓고 눕게 되자 보시하려는 마음이 더욱 높아져 가지고 밤으로 낮으로 황금 뭉탱이를 계원사(鷄園寺)라 하는 절로 갖다가 바쳤습니다. 절을 고치시도록 보내고, 대중공양을 하시라고 보내고, 그저 계속 날이면 날마다 황금을 보내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그때에 불법을 잘 믿지 아니한 한 대신이 태자에게 권해 가지고, 그때 태자(太子)는 삼파지(三波地)라고 하는 태자인데, 그 태자에게 권해서 그 황금을 쌓아 둔 창고 문을 굳게 닫고 그 황금을 내가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그 창고 문을 갖다가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아육왕은 계속해서 그 황금을 갖다 바치라고 했지만, 그 무서운 위력을 가졌던 전륜성왕도 병이 들어 앓아눕게 되자 그 왕의 명령은 시행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때에 왕은 점점 기력은 쇠해져 갔습니다.

왕은 게송을 읊기를,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반암마륵(唯半菴摩勒)이  어아득자재(於我得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다. 이제 나 아육왕이 아무런 자재력이 없구나. 아무 힘이 없구나.
오직 암마륵 반 조각에, 암마륵 과실만이 나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손에—암마륵이라고 하는 인도에서 나는 과일인데, 그 암마륵 과일 반 조각 밖에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구나.

이러한 처량한 게송을 읊고서, (아육왕을) 모시고 있는 신하를 시켜서 그 반 조각 암마륵 과일을 계원사로 보내드렸던 것입니다. 계원사 원주 스님은 그 반 조각의 조그마한 암마륵 과일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죽을 쑤는데 그것을 섞어 가지고 여러 대중이 고루고루 그것을 공양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인도를 통일해 가지고 날으는 새도 떨어뜨리는 그러한 위대했던 아육왕도 늙어서 병이 드니까 그리고 그 권한이 태자에게로 돌아가니까 아무 힘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고에는 산더미 같은 황금이 쌓여 있고, 칠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하더라도 늙고 병들면 이미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布施)라 하는 것은 언제나 바로 그때그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보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행하는 보시, 돈이 없어 병을 치료 못하는 그러한 사람에게 보시, 수행하는 스님네에게 보시, 그러한 보시는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대로 언제나 그때그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많이 돈을 벌어서 하리라’ 하면 그때는 자기의 뜻대로 되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왜 그때그때 하지를 못하고 ‘나중에 많이 벌어서 하리라’ 하는 생각을 내느냐 하면,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의 욕심인 것입니다. (녹음 끊김) ...하기보다는 이 작은 돈을 잘 굴려서 큰돈을 만들어 가지고 나도 잘살고, 그때 여유가 있으면 마음껏 보시를 하리라. 이것은 어리석고 탐심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것을 해 버리면 뭘 먹고 살며, 장사는 무엇으로 하며, 사업은 무엇으로 하느냐? 그러니 이때에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선 먹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고,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어 가지고 그때 해도 늦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갖기 때문에 그때그때 분(分) 따라서 할 수 있는 보시를 뒤로 미루고 못하게 되어서, 씨를 뿌리는 계절을 놓치기 때문에 정당(正當) 수확을 해야 할 가을철에 가서는 거둘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잔치 때 쓰기 위해서 우유를 짜지 아니하고 한 달 내 두었다가 잔칫날 짜려고 보니까 젖이 말라서 별로 많이 나오지 못했다'고 하는 『비유경(譬喩經)』의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젖은 매일매일 짜야 젖이 더욱 더 잘 나오는 것입니다. 짜지 않고 한 달 내 놔두면 젖이 밭아 버리고, 한 달 동안 모인 젖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할 줄을 모르고 자꾸 쌓아 모으려고만 할 때에 인정사정없이 남을 해롭게 하게 되고, 남에게 원한을 사게 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원수와 원수의 결과 재앙을 끌어드리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道)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거든.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보시는 재보시(財布施)가 있고, 법보시(法布施)가 있습니다. 재물, 자기에게 있는 금은전보(金銀錢寶)와 의복과 먹을 음식, 그러한 물질로 보시하는 법이 있고, 법을 설해서 법으로 보시하는 법이 있습니다. 또 물질로도 하고 마음으로 보시할 수도 있습니다.
보시의 형태는 크고 작은 것과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의미의 보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보시도 보시는 자기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업(業)의 종자(種子)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재앙을 미리 막는 가장 좋은 슬기로운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보시를 통해서 자기를 비우게 하는 그러한 항목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의 육바라밀의 첫째 항목에 넣어 놓은 것은 너무너무 부처님께서 설정을 잘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가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그러한 조항이지만 보시(布施)를 첫 꼭대기에다 넣은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중생은 무엇이던지 탐심과 욕심으로써 자꾸 쌓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깨뜨려 버리고 비움으로써 지혜(智慧)로 나아가는 첫 단계가 되기 때문에 보시는...

부처님이 아무리 안 잡수어도 법당의 부처님이 배고프다고 하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떡을 갖다놔도 한 덩어리도 잡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지(摩旨)를 짓고, 공양을 올려도 잡수지 않습니다.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으로써 마음을 비우고, 탐심과 욕심을 비우고, 모든 재앙을 소멸케 하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方便)인 것입니다.(49분51초)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욕심껏 쌓아 모으다가 그 돈을 한푼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사람도 적지 않는 것입니다.

늙어서 쓰기 위해서—젊어서는 쓰더라도 또 벌게 되니까 또 쓰고 벌고 그러다가도, 나이가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으면 '이제는 내가 돈도 벌 수 없고 이 돈 떨어지면 어디서 돈이 있어서 쓸 것인가, 돈이 떨어지면 이제는 나는 물이 말라버리는 고기와 같아서 꼼짝을 못할 것이다' 이래 가지고 쌓으고 또 쌓고 해 가지고 영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고 쓰지를 않고 있다가, 죽은 뒤에 보면 돈 뭉텅이가 10번, 20번 쌓고 쌓은 뭉텅이가 나오거든.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들장을 파고 구들장 밑에다가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갖다가 몇백만 원을 묻어 놓고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었는데, 그 구들장 위에 방석을 놔 놨는데 방석이 뜰썩뜰썩해서 보니까 큰 구렁이가—그 죽은 사람이 업이 되어 가지고, 그 업으로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자기가 묻어놨던 그 돈 항아리에 애착을 끊지를 못해 가지고, 그 방석 밑에 또아리를 틀고 혀를 널름널름, 이것은 몇십여 년 전에 어떤 절에서 있었던 실화인 것입니다.
죽은 뒤에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그 영단(靈壇), 영위(靈位) 그 위패 모신 상(床)에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며, 그 구렁이를 집어 버리니까 그 구렁이를 따라가니까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런 설화도 있습니다마는.

삼재(三災)를 면하려면 부작(符作)을 갖다가 붙이고, 무슨 액막이를 하고 그러기보다는 삼재를 든 분은 보시를 행하는 것, 그리고 방생(放生)을 하고 보시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차라리 훌륭한 지혜로운 방편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방편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근원에서 해결 짓는 방법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 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話頭)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입춘 법회가 끝나면 점심공양도 하시지 않고 어디를 가시는지 급히 문밖으로 도망치듯이 빠져나갈 분들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틀림없이 한 장에 5만 원, 10만 원, 20만 원하는 부작을 사러 점쟁이나 무당집으로 쫓아가실 것입니다.
부작 한 장으로 재앙을 막고, 자기가 지은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 있다면 우리 용화사에서도 부작은 몇만 장이라도 찍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는데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써 삼재가 면해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받게 됩니다. 기왕 받을 바에는 우리는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맺을 것이 아니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의 과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받으면서 오히려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을 만난 그러한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서 소화를 시킨다면, 깨끗이 받아서 해결 짓고서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또 이중 삼중으로 맺어 나가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이 너무너무 다행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생백년정하허(人生百年情何許)인고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 백년이 그 정(情)이 얼마나 되는가?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다. 영원히 이별한—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을 하는 이 광경, 다시 또 이렇게 서로 상(床)을 앞에 대하게 된다.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저 아스라니 가리키는 흰구름 돌아가는 길에, 먼산은 점점(點點)하고 하늘은 푸르르구나.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 잠시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가 24세를 일기로 홀연히 떠나갔는데, 잠시 와서 그 부모와 가족들에게 무상(無常)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 일가친척과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고, 인생은 허망한 것이고, 부귀와 공명도 한낱 뜬구름과 같다고 하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고,
그리고 다시 인연 따라서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다행히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다 같이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 되어줄 것을 기약하고 다짐하노라.


오늘 입춘일을 맞이해서 이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 여러분, 함께 이 법석(法席)을 같이 하는 인연으로 과거 무량세에 지었던 모든 죄업은 봄눈 녹듯이 소멸하시고, 앞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점심공양은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서 공양(供養)을 올리게 됩니다. 영가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맛있게 공양을 해 주시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시고, 삼재가 드신 분도 아무 탈이 없이, 오히려 모든 일이 더욱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축원(祝願)합니다.(31분31초~62분20초)(끝)





------------------(1)

*(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도(三途, 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 · 아귀 · 축생의 생존. 삼악도(三惡途),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愚癡 어리석음)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의구(依舊) ;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입춘(入春) ;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애혼(哀魂) ; 애처로운, 한이 맺혀 돌아가신 영가.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지도론(智度論) : 혹은 <대지도경론(大智度經論)> <대지석론(大智釋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론(大智論)> 또는 <대론(大論)> <석론(䆁論)>이라고도 한다.
용수(龍樹)보살이 지은 것으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해석한 것인데, 후진(後秦)때에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하면서 제일 서품(序品)만은 원문대로 번역하여 34권을 만들고, 그 나머지 제구십 촉루품(囑累品)까지를 간단하게 추려서 전부 100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온전히 번역한다면 천여 권이 되었으리라고, 구마라습의 제자인 승예(僧叡)는 말하였다.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맹서(盟誓 맹세 맹/맹세할 서) ; '맹세(盟誓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또는 그 다짐)'의 원래 말.
*도리천(忉利天) ; 욕계(欲界) 6천(六天)의 제2천. ‘도리’는 33의 음사(音寫)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Sumeru)의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제석천(帝釋天:Indra)의 천궁(天宮)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으며, 그 봉우리마다에 8천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하여 33천이 된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 성도(成道:붓다가야) ·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제천(諸天) ; ①모든 하늘. 욕계의 육욕천, 색계의 십팔천, 무색계의 사천(四天)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마음을 수양하는 경계를 따라 나뉜다. ②천상계의 모든 천신(天神).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유루(有漏) ; ①샘[漏]이 있는[有].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는. ②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③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구차(苟且 구차할 구/구차할 차) ; ①살림이 몹시 가난함. ②말이나 행동이 떳떳하거나 버젓하지 못함.
*모면(謀免) ; 어떤 일이나 책임을 꾀를 써서 벗어남.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2)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1,000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함.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함.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함.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함.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신체의 특징) · 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 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함.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함.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수기(授記) ;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 아쇼카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약 2백년 후,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269년 경에 즉위하여 36년간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치하였는데, 즉위 8년(B.C. 262)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그가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된다.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 - ①바른 인간관계 : 웃어른 • 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이 다르마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이 되던 해, B.C. 250년 무렵에 룸비니를 방문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룸비니 석주(石柱)이다.

*칙어(勅語) ; 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씀. 또는 그것을 공표한 글.
*(게송) ‘금아아육왕~’ ; 『아육왕경(阿育王經)』 제5권, 반암마륵시승인연품(半菴摩勒施僧因緣品)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정당(正當) ; ‘정당하다(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의 어근.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참고] 『제경요집(諸經要集)』 10권. 18. 육도부(六度部) [육도부에는 여섯 가지 편(篇)이 있음]
제1 보시편(布施篇第一)[보시에 따로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4)법시연(法施緣).
故智度論云 佛說 施中法施第一 何以故 財施有量 法施無量 財施欲界報 法施出三界報 財施不能斷漏 法施淸升彼岸 財施但感人天報 法施通感三乘果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는 법시(法施)가 제일이다. 왜냐 하면 재물의 보시는 한량이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한량이 없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욕계(欲界)의 과보를 얻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번뇌[漏]를 끊을 수 없으나 법(法)의 보시는 저 언덕[彼岸]에 청정하게 오르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다만 인간 세계와 천상의 과보를 감득(感得)하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승(三乘)의 과보를 감통(感通)하기 때문이다.

財施愚智俱閑 法施唯局智人 財施唯能施者得福 法施通益能所 財施愚畜能受 法施唯局聰人 財施但益色身 法施能利心神 財施能增貪病 法施能除三毒

재물의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다 할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게 국한되었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오직 보시한 사람만이 복을 얻을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보시한 사람과 보시를 받은 사람이 통틀어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짐승도 받을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총명한 사람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다만 색신(色身)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법(法)의 보시는 능히 마음과 정신까지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탐욕과 질병을 증장시킬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삼독(三毒)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니라'

제6 지혜편(智慧篇第六)[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2)구법연(求法緣第二)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者 濟一世之厄 增益生死 說法敎化者 能令衆生 出世間道 得三乘果 免三惡道 受人天樂 是故佛說 以法布施 功德無量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 동안의 목숨만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는 것은 한 세대의 재액을 구제해 주고 생사에 이익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나게 하는 도(道)로써 삼승(三乘)의 과(果)를 얻고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를 면하게 하여 인간이나 하늘의 즐거움[人天樂]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法)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금은전보(金銀錢寶) ; 금은(金銀)이나 돈[錢] 패물[寶].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운수(運數) ;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 하늘이 정한 운수)과 기수(氣數 저절로 오가고 한다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 ; 업은 한 집안의 재물 신격으로서 흔히 구렁이, 족제비 등으로 상징된다. 집안에 이런 동물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있어야 가업이 번창한다고 믿고 있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영위(靈位 신령 령/자리 위) ; ①혼백[靈]의 자리[位]. ②신위(神位). 또는 위패(位牌).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단언(斷言) ; 머뭇거리지 않고 딱 잘라서 말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게송) ‘인생백년정하허~’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81 ‘원상인(圓上人)을 이별하며 드림’ 게송 참고.
*아스랗다 ; (보이는 것이)까마득하게 멀거나 아슬아슬하게 높다.
*점점(點點)하다 ; (사물이 어떤 곳에)여기저기 점을 찍은 듯이 흩어져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한낱 ;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고]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65. 4권.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波斯匿王於閑靜處 作是思惟 '佛所敎法 極有義利 能得現報 無有熱惱 不待時節 能將於人到于善處 語諸人言 <汝等來 善示汝妙法> 夫爲智者 自身取證 深得解達 須善友 須善同伴 恒應親友如是善友 不向惡友幷惡知識 遠離惡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바사닉왕이 조용한 곳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은 지극한 뜻[義]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고, 심한 번뇌를 없애고, 때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서 좋은 곳에 이르게 하시며, 여러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오너라. 너희들에게 미묘한 법을 보여 주겠다〉고 하시니, 슬기로운 이는 몸소 증득해서 깊이 이해하고 통달한다. 그리고 착한 법과 착한 동반자를 구해서 그와 같은 착한 벗을 항상 친근케 하며, 악한 벗과 악한 지식(知識)에게 향하지 않게 하고 나쁜 도반을 멀리하게 하시는구나'

思惟是已 從坐處起 往詣佛所 在一面坐 白佛言 "世尊 我於閑處 作是思惟 '佛所敎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無諸熱惱 不待時節 乃至不與惡友交遊'" 佛告王曰 實爾 實爾 佛所敎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乃至不與惡伴交遊"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조용한 곳에서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며, 심한 번뇌를 없애고, 때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나아가 나쁜 벗과 사귀지 못하게 하신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실로 그렇고 그렇소이다. 부처가 가르치는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하며, 나아가 나쁜 벗과 사귀지 못하게 하오"

我於往時 在王舍城耆梨跋提林 爾時 阿難比丘獨在靜處 作是思惟 善知識者 梵行半體 阿難起已 來至我所 頂禮我已 而作是言 善知識者 梵行半體 非惡知識 惡伴 惡友

내가 옛날 왕사성 기리발제(耆梨跋提) 숲 속에 있었을 때, 아난(阿難) 비구가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소. '선지식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절반의 힘은 되겠다'
그러고 나서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처소로 와서 나에게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소. '선지식(善知識)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절반의 힘은 되오니 그는 나쁜 지식, 나쁜 도반, 나쁜 벗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我告阿難 '止 止 莫作是語 所以者何 夫善知識 善友 善伴 乃是梵行全體 又善友伴者 不與惡知識 惡友 惡伴而爲徒黨 何以故 我以善知識故 脫於生死 是故當知 善知識者 梵行全體 如是之事 應分別知 佛所說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乃至不與惡友惡伴惡知識等而爲伴黨'

나는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소.
"그만 그만,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지식과 착한 벗 착한 도반은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전체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 착한 벗과 착한 도반은 나쁜 지식과 나쁜 벗 나쁜 도반과 무리를 짓지 않으니 왜냐 하면 나 역시 선지식 때문에 생사를 해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전체적인 힘이 된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하며 그러한 일을 잘 분별해서 알아야 한다. 부처가 말한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나쁜 벗과 나쁜 도반 나쁜 지식들과 무리를 짓지 않게 하오"

爾時 世尊卽說偈言 '於諸善法中 不放逸最勝 若當放逸者 賢聖所譏嫌 若不放逸者 獲於天帝位 於諸天中勝 於作無作中 不放逸最勝 若不放逸者 坐禪盡諸漏 逮得於勝果 佛說是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착한 법 중에서 '방일하지 않는 것[不放逸]이 으뜸이니 만약 방일한 짓을 하면 성현들이 싫어하시네. 만일 방일한 짓 아니하면 천제(天帝)의 지위를 얻으며 모든 천(天) 중에서도 뛰어나리라.
짓고 짓지 않는 일 중에서 방일하지 않음이 가장 훌륭하나니, 만약 방일하지 않는 자라면 좌선할 때 모든 번뇌 없애서 수승한 과위를 얻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명복(冥福 저승 명/복 복) ; ①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 ②(불교)죽은 뒤에 받는 복덕.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법문 내용]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자기가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다 / 『지도론(智度論)』 부처님 인행(因行) 때, 독룡의 몸을 받으셨던 때의 설화 / 과거에 지은 잘못은 참회(懺悔)하고, 인과는 달게 받고, 거기서 새로운 발심(發心)의 계기로 삼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를 가져야.

(게송)금아아육왕~, 『아육왕경(阿育王經)』 제5권, 반암마륵시승인연품(半菴摩勒施僧因緣品) /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년 뒤에 인도에 태어나서 전 인도를 통일을 하고 불법으로써 인도를 다스린 아육왕(阿育王)이 늙어서 병들어 아무 힘이 없게 되었을 때 한 마지막 '암마륵 과일 반 조각' 보시 / 보시(布施)는 언제나 바로 그때그때에 해야 / 보시는 도(道)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 /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다 / (게송)인생백년정하허~.


인생은 한번 왔다가 잠시 꿈꾸듯, 술 취한 듯 방황하다가 속절없이 몸을 버리고 홀연히 떠나가고야만 말 그러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물론 본성(本性)을 깨달아서 진리와 계합(契合)이 된 사람은 본래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지마는, 나의 본성을 망각하고 등져 버린 입장에서는 분명히 생(生)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왜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내 마음에 맞고, 내 뜻대로 되는 그런 좋은 일만 있으면 좋으련마는, 왜 우리의 뜻에 어긋나고 바라지도 아니했던 어려운 일이 닥쳐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야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다른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이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자기가 짓고, 자기가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는 까닭인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잘못은 부처님께 진심으로 참회(懺悔)를 하고, 이미 자기에게 돌아오는 재앙은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곱게 깨끗하게 달게 그것을 받아넘기고, 그것을 달게 받아넘기면서 거기서 새로운 발심(發心)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야말로 인과법(因果法)을 믿는, 불법을 믿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이 됩니다.

금년 삼재에 해당하신 분은 오늘 이후로 누가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험담을 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그러한 사람과 일을 만났을 때에 진심(瞋心)을 내지 말고, 바로 거기서 마음을 돌이켜서 인과법(因果法)을 관찰을 하고, 성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노력을 하신다면 어떠한 무서운 삼재도 그분 앞에는 악한 결과를 끼쳐주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재앙을 상대(相對)를 하고 모든 미운 사람, 악한 사람을 상대하신다면,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나의 스승이 되고, 나의 은인이 되고, 나의 도반으로서 나를 도와주고 나로 하여금 모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그러한 불보살(佛菩薩)로 변할 것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道)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거든.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보시의 형태는 크고 작은 것과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의미의 보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보시도 보시는 자기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업(業)의 종자(種子)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재앙을 미리 막는 가장 좋은 슬기로운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안 잡수어도 법당의 부처님이 배고프다고 하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떡을 갖다놔도 한 덩어리도 잡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지(摩旨)를 짓고, 공양을 올려도 잡수지 않습니다.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으로써 마음을 비우고, 탐심과 욕심을 비우고, 모든 재앙을 소멸케 하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욕심껏 쌓아 모으다가 그 돈을 한푼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사람도 적지 않는 것입니다.

삼재(三災)를 면하려면 부작(符作)을 갖다가 붙이고, 무슨 액막이를 하고 그러기보다는 삼재를 든 분은 보시를 행하는 것, 그리고 방생(放生)을 하고 보시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차라리 훌륭한 지혜로운 방편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방편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근원에서 해결 짓는 방법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 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話頭)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받게 됩니다. 기왕 받을 바에는 우리는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맺을 것이 아니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의 과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받으면서 오히려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을 만난 그러한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서 소화를 시킨다면, 깨끗이 받아서 해결 짓고서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또 이중 삼중으로 맺어 나가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이 너무너무 다행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21. 4. 12. 16:53

 

 

((No.259))—1985년 신수기도 회향 (1985.01.09.음) (90분)

 

 

(1/5) 약 20분.

 

(2/5) 약 14분.

 

(3/5) 약 20분.

 

(4/5) 약 17분.

 

(5/5) 약 19분.


(1/5)----------------

가가문전통장안(家家門前通長安)허고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인유월방지정(水因有月方知淨)허고  천위무운시견고(天爲無雲始見高)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가문전(家家門前)에 통장안(通長安)하고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다.
집집마다 문 앞에로부터, 문 앞에 있는 그 길로부터 서울 장안(長安)으로 통하고, 곳곳마다 푸른 버드나무에는 말을 맬 만하더라.
아무리 산간벽지, 시골, 해변, 도시, 어디 어느 집이라도 문밖에 나가면 그 길로부터 서울 장안으로 길이 연결이 되어 있더라 그 말이여. 그리고 곳곳에 어디에 있는 버드나무, 푸른 버드나무든지 다 타고 가던 말을 갖다가 매 둘 수가 있더라 그 말이여.

수인유월방지정(水因有月方知淨)이요, 물은 달이 비추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바야흐로 알 수가 있고.
천위무운시견고(天爲無雲始見高)여.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야 비로소 그 하늘 높은 것을 볼 수가 있더라 그 말인데.


오늘은 을축년 정월(正月) 초아흐레, 정초(正初) 신수기도(身數祈禱) 회향(廻向)날입니다.
그동안 초사흘에 시작해서 오늘까지 칠 일간 여러분께서는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신수기도에 참례를 하셨습니다. 저 지방이나 서울이나 먼 데서 일부러 오셔서 기도하신 분도 계시고, 또 근처에 계신 분은 매일 출퇴근을 하시면서 새벽 · 오전 · 오후 그리고 밤에까지 그렇게 열심히 정진하셨습니다.

기도는 첫째, 정성(精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한결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으로 해야 해. 정성으로, 일심으로 해서 이루지 못할 원(願)이 없습니다.

기도는 이러한 신수기도나 그밖에 어떤 기도, 법당에 오셔서 기도, 절에 오셔서 기도하는 것도 기도지만, 또 저 양양 낙산사(洛山寺)라든지, 남해 보리암(菩提庵)이나 강화 보문사(普門寺)나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런 성지(聖地)에 가셔서 3일 내지 일주일, 백일 그렇게 일심으로 기도하실 수도 있고. 또 세검정(洗劍亭) 해수관음(海水觀音) 같은 그런 데에 가서 또 백일을 다니면서, 또는 천일(千日) 만일(萬日)을 다니면서 일심으로 소원을 비는 그런 기도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등상불(等像佛)을 모셔 놓은 곳에 가서야만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할 수가 있고 직장에서도 할 수가 있고, 또 절에 오셔서도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 ·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 · 지장보살(地藏菩薩) 그런 성현의 명호(名號)만을 일심으로 부른 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법당 소지를 계속해서 한다든지, 탁자 소지를 한다든지, 부처님께 꽃을 꽂아서 올린다든지, 향로 · 촛대를 항상 깨끗이 닦아 올린다든지, 또는 후원에서, 후원(後院)에 들어가서 채공(菜供) 일을 돕는다든지, 설거지를 돕는다든지, 또는 사중(寺中)에 이불이나 방석 같은 그러한 빨래를 한다든지, 또는 대중 스님네 무엇인가 의식주(衣食住)나 기타 약(藥)에 관한 그러한 공양을 올린다든지.
비단 부처님과 스님네와 사찰뿐만이 아니라 아들딸이 없이 외로운 그런 노인네의, 자기와 일가친척이 아니라도 그런 불쌍한 노인네를 잘 보살펴 드린다든지, 부모 없는 외로운 고아들을 잘 보살펴 준다든지, 어떠한 경우라도 지극정성으로 하면 바로 그것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또 훌륭한 것이 아니라, 미꾸라지나 붕어나 자래, 자라 새끼 같은 그러한 짐승이나 또는 이 물웅뎅이에 여름에 가물어서 그 물이 말라 가지고 죽게 되는 송사리떼 같은 것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 사심이 없는, 사심(私心)이 없이 행(行)한, 사심이 없이 죽어 가는 목숨을 살릴 때에는 크고 작은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일심으로 해야 한다',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욕(私慾)이 없는 거, 사심이 없이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함경도서 어떤 사람이 참 글을 읽어 가지고 서울로 과거(科擧)를 보러 가는데, 아주 가난해서 좁쌀—'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소원을 빌고 과거를 떠나면은 소원을 성취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 산중(山中)에는 좁쌀이나 수수 그런 것밖에는 곡식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좁쌀 한 되를 싸 가지고 절에 가서 마지(摩旨)를 지어서 딱 올리고서는,
"부처, 내 말 좀 듣게! 내가 이번에 과거를 떠나는데 이 귀한 좁쌀 한 되로 밥을 지어서 올리니, 이번에 잘 이것을 들고 내 과거만 합격만 시켜준다면 내가 원님이 되던지, 대신이 되던지 할 때는 그때는 하얀 쌀밥을 갖다가 실컷 대접을 할 모냥이니 내 말을 깊이 명심을 하고 어쨌든지 내가 이 과거에 합격만 해 주구려"

떠억, 아주 부처님 앞에 담뱃대를 꺼떡거리면서 단단히 당부를 하고서 큰 기침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과거를 봤는데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가만히, 떨어져 가지고 오다가 생각하니 부해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공연히 그 귀한 좁쌀 한 되만 갖다가 손해를 봤다' 생각하고, 부지런히 고향으로 돌아와서 오던 꼴로 절로 쫓아가서, "놀놀하니 앉아서 내 좁쌀만 똑 따먹고 과거도 시켜주지 안 했다"고 이러한 우스개 말이 전해옵니다마는.

여러분께서 혹시 기도를 하시되, 자기가 기도를 하는 그 정성은 그렇게 썩 정성스럽지 못하면서, 그렇게 일심(一心)으로 하지 못하면서 너무나 엄청난 공덕(功德)이 돌아오기를 바래는 그러한 분은 혹 안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백일 동안을 내가 아침마다 다니면서 부처님께 예배(禮拜)를 했다' 또는 '백일 동안을 부처님 앞에 매일 108배씩을 절을 했다' 그러한 절하는 횟수라든지, 절에 아침마다 다니는 날수라든지 또 자기가 무엇을 갖다가 얼마씩을 매일 보시를 했다든지.
그러한 형식적으로 나타나는 물질적인 것, 모다 그러한 것으로써 자기의 정성을 갖다가 수판(數板)을 놓아 가지고, 좁쌀 한 되를 바친 거와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고서 자기 남편이 벼슬을 올라가기를 바래고, 자기 아들이 명문대학에 합격되기를 바래고, 자기 아들이나 딸이 몹쓸 병에 걸린 것을 낫기를 바래고.
이래가지고 얼마 동안 해 봐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성취를 못하면 '에잇 그것,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자 마치 다른 종교에서 '자기가 믿는 데로 오면 그까짓 거 문제없이 병도 낫고 소원도 성취하고 부자도 된다' 하니까, 처음에는 반 타의(他意), 반 자의(自意)로 끌려가 가지고 말을 들어보니까 귀에 쏙 들어오고 '이것, 곧 뭣이 될 것 같으다!' 그래서 거기 가서 얼마 동안 댕기다가 또 뭐 마음먹은 만큼 성취가 안 되면은 또 저 어디 다른 데로 또 가보고 이리해서 갈팡질팡 이러한 분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댕기다가 팔이 부러진다던지, 발이 부러져 가지고 다시 찾아와 가지고 참회(懺悔)를 하는 그러한 분도 몇 사람을 봤습니다마는.

기도라 하는 것은 첫째, 사심(私心)이 없어야 돼.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집을 팔아서 갖다 바치라' 그런 말이 아니고, 마음을, 정성스러운 그 마음을 바란 바 없이 완전히 비워 버려야 한다.

'부처님이나 스님네께 보시를 하고, 가난한 노인이나 고아에게 보시를 하라, 물질적인 보시를 하라'고 가리키는 것은, 그런 물질적인 형식에 나타나는 보시를 허겄게 함으로 해서 자기의 탐심(貪心)과 사심(私心)을 버리는 도리(道理)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러한 방편(方便)을 써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그만한 물질적인 베품과 형식적인 어떤 행동을 얼마 정도 하고서 '나는 이러이러했다' 하는 상(相)을 가지고 있으면, 그리고서 자기의 중생으로서의 오욕락(五欲樂)에 소속한 욕심을 충족하려고 한다면, 그 보시와 그 기도는 정말 함경도 좁쌀 노인과 조끔도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칠일 동안 이 신수기도에 동참(同參)하신 분은 한 분도 그러한 분이 계시지 아니할 것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정말 그 일주일 동안 사심 없이,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빈 마음으로 일심(一心)으로 기도를 하셨으므로 마음이 빈 곳에는 최고에 공덕(功德)이 담기는 것입니다.
'웅덩이를 파 놓으면 너구리가 뛰어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평지에 웅덩이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뭣 물건이 꽉 차 있다면은 아무것도 더 담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흙을 파내서 빈 곳을 만들음으로 해서 거기에는 무엇이고 담길 수가 있듯이, 우리 마음을 비워 놓으면 우리 원(願)하는 것이 거기에 담기게 될 것입니다.

3일기도 · 7일기도 · 백일기도는 일심으로 그리고 정성스럽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비워져서 맑아지는 과정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하고,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평소에는 이 생각 저 생각, 번뇌와 망상,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가뜩차 가지고 있어서, 불공(佛供)을 드려도 그 가뜩차 있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도, 그런 가뜩차 있는 쓰레기통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불공 기도를 드리고 좋은 일을 한다 해도 역시 그렇고, 보시를 한다 해도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 그것도 되풀이해서 끊임없이 중단하지 아니하고 실천을 해 나가고 또 법문(法門)을 듣고 또 실천을 하고. 이렇게 해 가는 동안에 중단하지 않고 일심으로 한결같이 해 나가다보면 마침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음이 비워지고 청정한 그러한 경계(境界)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처음~20분17초)




(2/5)----------------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그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청정히 하고, 우리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마음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비워서 청정히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절로 이르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시 말씀하듯이 참선(參禪) 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화두를 타서 일심으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처음에는 번뇌와 망상이 더 많고 화두 드는 시간은 적지만, 번뇌 망상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자꾸 화두를 들고 간절히 참구를 하고 의심(疑心)을 해 나가면, 차츰차츰 번뇌 망상은 줄어지고 화두를 드는 시간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망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망상 일어나지마는 또 화두를 들면 망상이 다시 또 꺼지기도 하고.

망상이 심(甚)히 일어나서 도저히 공부가 잘 안돼. 그러한 경지를 만난다 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결국은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어서 마침내는 그 의단을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하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도도 그러한 마음,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참구하고 정진해 나가는 사람은 그 참선 정진하는 가운데에 기도에 공덕(功德)이 다 자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소에 참선을 열심히 하시다가 이렇게 정월, 매년 정초(正初)에 신수기도와 같은 특별한 그러한 기회에는 일주일 동안 그 정진하는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일주일 동안을 일심(一心)으로 기도를 한번 하시는 것도 참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虛妄)하기 그지없고, 내 마음대로 원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기도 어렵지만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래가지를 못하고, 또 이 세상에 제일가는 부귀(富貴)를 누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평생토록 누려지기가 어렵고 중간에 그것이 나로부터 떠나버리게 되고, 죽을 때까지 안 떠난다 하더라도 죽어갈 때는 하나도 가지고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망한 것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또 부귀공명(富貴功名) 그런 것이 또 없어서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필요한 만큼 재산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권리(權利)도 필요하게 되고.
오욕락이 우리를 육도윤회(六道輪廻)로 이끌어가는 쇠사슬이라고 하지만 인간 세상에 오욕락을 떠나서 또 살 수가 없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을 부당(不當)한 방법으로 얻을라고 그러고 지나치게 그것을 남용(濫用)을 함으로써 우리에게 재앙(災殃)을 가져다주는 것이지, 올바른 방법으로 그것을 얻고 그것을 쓰되 도리(道理)에 맞도록 잘 써 나간다면 그것 또한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불이라 하는 것이 사람이 잘못 취급하면 화상을 입히고, 화재가 일어나면은 사람이 데어서 죽기도 하고, 집이 타서 재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온 산을 다 태워 버리기도 하고, 온 도시를 다 태우기도 하고, 공장과 가게를 다 태우기도 하고 해서 무서운 재난(災難)을, 재앙이 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적당히 잘 사용을 하면 인간 생활로부터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공장에서 만약에 어떠한 형태든지 불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에 오욕락(五欲樂)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올바르게 사용을 하고 올바르게 얻어서 나간다면 그것은 나를 이롭게 하고 또한 남에게도 큰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일심으로 하면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데, 성취할 때까지는 정말 일심으로 합니다, 누구라도. 그 일심으로 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는데, 그것이 일단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면 그때부터서는 사람이 달라지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서 얻어진 바는 자기의 복(福)으로 그것이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현(聖賢)의 가피(加被)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착각(錯覺)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현의 가피로 자기에게 관리권(管理權)을 제수(除授) 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유용하게 잘 써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기 것인 줄 알고 딱! 오그려 쥐고 그렇게 살아가면 '너는 훌륭한 관리인이 못되는구나. 일심으로 정성을 드리고 해서 니가 쓸만한 사람인 줄 알고 너에게 관리권을 좀 주어봤더니 니가 영판 그 관리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로구나' 이렇게 인증을 받게 되면 그 관리권은 박탈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던지, 주력(呪力)을 하던지 해 가지고, 부자가 되었거나 권리를 얻은 사람은 각별히 이 점에 대해서 명심을 해 가지고—그렇다고 해서 자기는 쓰지를 말고 전부 다 흩어서 없애라는 것은 아닙니다. 삼등분(三等分) 내지 사분(四分)을 해 가지고 일부는 자기가 쓰고, 일부는 장차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일부는 부처님이나 종교 계통에 아는 그런 사회 복지 사업 내지 교화 사업에 쓰도록 하고, 일부는 직접 불쌍한 사람이나 그런 사람에게 보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적절히 써 나가면 '과연 이 사람이야말로 얼마든지 더 큰 재산을 관리할 만하다' 하는 그런 인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더 큰 재산을 갖게 되고, 더 오래오래 그러한 관리의 직책을 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잘 관리를 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고 '저 사람이야말로 참 오래오래 부자가 되고 오래오래 저 좋은 그런 권리를 가져줘야 되겠다' 그렇게 갖게 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다 바래게 되고 그렇게 되도록 모다 음(陰)으로 양(陽)으로 협조를 하게 되는 것이고.
관리를 잘 못해서 그 권리를 남용하고, 재산 관리를 잘못해서 탐심(貪心)만 강해 가지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면 모두 사람들이 그 사람을 시기를 하고 모다 저주를 하고. '지가 얼마나 오래 잘산가 보자' 이래 가지고 모두 그 사람 잘사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고 빨리 망해주기를 모다 바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오래오래 부자가 되고 오래오래 그런 권리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권리(權利)라 하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결국은 자기를 죽이고 자기 집안을 망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사회국가를 멸망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재산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도를 정성껏 그리고 일심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한 것도 대단히 어렵고 또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한 소원을 크고 작고 간에 성취를 했거든 그 성취한 뒤에 어떻게 그것을 관리해 나가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것은 참으로 더 중요한 것이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관리를 잘 못하고 잘 사용을 못하면, 별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러주지도 아니하면서 나갈 때에는 사람을 다 상(傷)해 놓고 떠나게 되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서 없었더라면 그러한 대로, 가난하지만 그러한 대로 살아갈 터인데, 갑자기 큰 부자가 되고 큰 권리를 누려 놓으니, 그것을 관리를 잘 못하고 남용을 하고 그래 가지고 오히려 그전에 잘살기 전에 만큼도 못 살고, 그때 있었던 것까지 쏵 긁어서 다 빠져나가고.
그러한 재산과 권리만 나간 게 아니라 나를 갖다가 무서운 병을 얻게 만들고, 잘못하면 쇠고랑을 차게 해 놓고서 그러한 재산과 권리를 나로부터서 빠져나가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권리 싫단 사람이 없고 재산이 싫다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좋은 점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무서운 나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 불자(佛子)들은 깊이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20분18초~34분32초)




(3/5)----------------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모든 함이 있는 법은, '함이 있는 법',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무위법(無爲法)의 반대가 되는 말인데—유위법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생겨났다가 그 조건이 흩어지면 그것이 또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하는 그것이 모두가 다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함[爲]이 있다[有].

생겨날 때는 생겨난 원인이 있고 또 없어질 때는 없어질 또 원인이 있어서, 그러면 이 몸뚱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 우리의 몸뚱이도 이것이 유위법의 범주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또 이 세계,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이것도 영원성이 없는 것이여.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서 결합이 되었다가 그 결합이 될 만한 원인이 무너지면 다 다시 흩어져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덩이도 영원히 있을 것 같지만, 다 언젠가는 이것이 없어질 때가 오고 저 태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뚱이도 유위법이요, 온 세계에 모든 것이 다 유위법이요.
우리의 생각, 생주이멸(生住異滅),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어느 발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또 사그라져 없어지는데.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끊임없는 그 생주이멸의 되풀이를 하면서 쉴 사이가 없습니다. 이것도 또한 유위법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은 것이며, 꼭두각시 환상과 같은 것이며, 물거품 같은 것이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이 꿈! 꿈이라 하는 것도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꼭 실지(實地)처럼 느껴지지만 깨 놓고 보면 간 곳이 없고, 환상도 그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실지, 실상(實相)처럼 보이지만 정신을 차려 놓고 보거나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은 그것은 실지로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물거품, 물에 어떠한 충격을 가하면 거기에 물거품이 생기는데, 물거품이라는 것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냐 말이여. 물이 있는 곳에 잠시 물거품이 생겼다가 금방 다시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물거품 자체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참, 유위법에 지나지 못하고.

그림자라 하는 것도 어떤 물체가 있는데, 그 물체에 광선(光線)이 비추면 그 광선의 반대쪽에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그림자라 하는 것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영원한 것이 아니라 물체와 광선이 만났을 때에 그 그림자라고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그림자는 본래 있는 것도 아니요, 영원성이 있는 것도 아니여.
그래서 역시 꿈과 같은 것이요, 환상과 같은 것이요, 물거품과 같은 것이요, 또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다 허망무실(虛妄無實)한 것이다.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이슬, 풀끝에 이슬과 같고 또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다.
이슬이 풀끝에 맺혀 있을 때 햇볕에 비치면은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지만 그것이 어찌 실다운 것이겠느냐 그 말이여. 바람이 불어서 풀잎이 움직이게 되면은 찰나간(刹那間)에 그렇게 찬란하게 빛났던 보석 같은 이슬 덩어리가 떨어져 없어져 버리고 말어.
응당 이와 같이 관(觀)을 지을지니다[應作如是觀].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할 것이다.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그밖에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내 마음대로 얻어지면 기가 맥히게 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부러워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한동안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즐길 때에는 이 세상이 온통 나를 위해서 존재한 것처럼 느껴지고,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싶으지만.
그런 것들이 잠시 반짝거리는 풀끝에 이슬과 같은 것이요, 번쩍하다 말아버리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요,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그리고 꿈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칠 만한 상대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몸뚱이도 또한 그렇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미워하고 이뻐하는 그러한 모든 감정들이 또한 그렇고, 명예와 권리와 모든 재산도 또한 그렇고,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원망하는 그러한 인간 관계도 또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허망(虛妄)하고 무상(無常)한 속에 우리는 이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나 가지고 그 무상한 속에서 무상한 것과 더불어 싸우며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끊임없이 굴러가고 또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상한 것을 마음대로, 마음먹은 만큼 얻어지기도 어려운 것이면서 얻어져봤자 끝내 나를 배반하고, 나에게 가슴 아픔만 한아름 안겨 주고서 매정하게 떠나 버릴 그러한 것들, 계속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지내왔고, 현재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한량(限量)없는 겁(劫)을 향해서 계속 몽둥이질을 당하면서 가슴을 할큄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또 그놈을 따라가야만 할 그러한 어리석고 가련한 중생(衆生)들.

다행히 우리는 그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을 만났습니다. 만났기에 우리가 그것들에 속지를 아니하고 정신 차려서 정법(正法)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숙세(宿世)에 너무 깊고 깊은 인연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벌레가 여름밤에 촛불을 보고 그것이 좋은 줄 알고 모여들어서 그 불을 맴돌고 이리저리 날다가 결국은 그 불꽃에 나래(날개)와 다리가 타서 무수히 떨어져 죽는 것처럼,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을 향해서 그칠 줄 모르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따라가다가 결국은 그것들로 인해서 일어서지 못할 만큼 무서운 뭇매를 맞고 꺼꾸러지고, 그것들로 인해서 얽혀 가지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갈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났고, 정법(正法)을 만났기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면서도 다른 어리석은 중생들이 그러한 것을 추구한 것과 같지를 않고, 그러한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원(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온전히 빠지지를 아니하고, 거기에서도 항시 정법을 믿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배반하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공부를 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 청정한 마음으로 잠깐 관(觀)만 해도, 잠깐 원(願)을 해도 그 원은 너무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참으로 꼭 성취를 할 마음이 있으신 분은 어쨌든지 참선을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리 신심(信心)이 있고 참선을 열심히 하신다 해도 또 가정에는 필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들 없는 분은 아들을 구하게 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재산을 구하게 되고,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없고서는 당장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 만큼 있으면서도 욕심에 욕심이 붙어 가지고 끝없이 탐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터무니없는 탐욕으로서가 아니라, 우선 가정이 살아가야 하고 애들 교육도 해야 하고 또 사람으로서 생활을 해 나갈 만큼의 재산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지나친 탐욕을 부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구하고 적당하게 사용을 해 나가면 절대로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고 다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잘살고, 한결같이 또 못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때는 잘살다가 또 한때는 못살다가 이렇게 됩니다. 그것은 과거(過去)에 우리가 짓기를 한결같이 좋은 일만 한 사람도 없고, 한결같이 나쁜 짓만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로는 나쁜 짓도 하고, 때로는 좋은 짓도 하고 이러한 생을 수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우리가 금생(今生)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한 5년 내지 10년, 길면은 한 20년 이리 잘살다가 또 그 중간에 한 5년이나 한 10년 뭔 사업이 잘 안되고 재앙이 잇따라 일어나고, 또 그러다가 또 몇 해가 지내면은 또 서서히 또 뭔 일이 또 뜻대로 되다가, 이리 파장(波長)을 이루면서 부귀와 모든 공명이 나로부터 떨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초년(初年)에 참 부모 밑에 호강하다가 중년(中年) 이후로는 아주 형편없이 가난한 재난(災難)을 만난 사람, 초년에는 참 피나는 고생을 하다가 중년 이후에는 잘사는 사람, 또 초년 중년은 몹시 어려운 속에서 살았지만 말년(末年)에 가서 잘사는 사람, 사람들이 모두 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인 것입니다.
이것은 음양가(陰陽家)들은 사주팔자(四柱八字)가 그렇다 하지만, 사주팔자는 무엇이냐? 전생(前生)에 내가 지은 바에 의해서 해필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時)에 태어난 것입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달통한 사람들은 그러한 원리(原理)를 수학적으로 풀어 가지고 운명(運命)을 점(占)치고 있습니다마는, 음양오행이라 하는 것은 우주에 질서를 수학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무시할 것도 못되나, 전적으로 그것에 얽매어 가지고 운명론자(運命論者), 숙명론자(宿命論者)와 같은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설사 사주(四柱)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실망할 것도 없고 생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올바르게 노력을 한다면 죽 먹을 사람이 밥을 먹게 되고, 밥 먹을 사람이 좀더 풍족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지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사람에게나 어떠한 일에나 대단히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정신을 가다듬고 참선을 열심히 하면서 노력을 한다면, 아무리 비색(否塞)한 운(運)을 만난다 하더라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 것입니다.(34분33초~53분58초)




(4/5)----------------

맨 처음에 읊은 게송(偈頌)에 물은 달이 있음으로 해서 달빛이 비추어 주어야 그 물이 맑은 것을 알 수가 있듯이, 사람은 어려운 일을 만나봐야 자기의 사람됨을 스스로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자기의 그릇이 얼마만큼 된 것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당해봐야, 부자가 되어봐야 그 사람이 인간성이 참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그 사람의 끈기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달이 비추지 아니하고 껌껌하면 그 물이 썩 맑은지 탁한지를 알 수가 없다가, 밝은 달빛이 환히 비추어 줌으로 해서 물의 청탁(淸濁)을 가려낼 수가 있고, 하늘에 구름이 꽉 차 있으면 그 하늘이 얼마만큼 넓은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이 쏵 없어져야 그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산을 많이 부자가 된 뒤에 그 사람을 봐야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가 있고, 그러다가 그 재산이 쏵 없어져봐야 그 사람의 참다운 인격(人格)을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道)를 닦아 가는데 있어서도 밤낮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여건하에서—아주 방사(坊舍)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의복이라든지, 모든 여건이 좋은 데에서만 정진(精進)을 하면 참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금방 큰 도를 깨달을 거 같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좋은 환경에서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衣食住)가 부족하기도 하고, 주변이 시끄럽기도 하고, 어떠한 어려운 일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려운 상태에 놓여서 봐야 자기의 수행력(修行力)이 얼마나 된가를 가늠할 수가 있고, 그런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한번 정진을 해봐야 거기에서 참으로 힘 있는 정진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고, 좋은 부모 밑에서 부모덕(父母德)으로 호강만 하고 자란 사람은 커서 별 볼 일이 없습니다. 조끔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감내(堪耐)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서 피나는 참 고생도 해 보고, 고통도 해 보고 그래야 어려운 사람의 사정도 알고, 그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많은 사람의 사정을 알아서 널리 덕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고행(苦行)을 쌓으시고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서 수없는 고통을 다 견디어내셨고, '손바닥만한 땅도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몸을 버리지 아니한 땅이 없다' 할 만큼 무수(無數)한 목숨을 중생을 위해서 보시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한량없는 보시와 공덕을 쌓으셨기에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실 수가 있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두루 갖추어서 모든 성현(聖賢) 가운데에 최고의 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을 스승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그러한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데에서 신수기도, 뭐 기도? 신수기도를 왜 해? 참선만 잘하면 그만이지, 기도는 그까짓 거 기복 불교(祈福佛敎)가 아니냐? 산신기도 · 칠성기도 · 신중기도, 기도라 하는 게 다 복(福)을 빌고 한다니 그것은 기복 불교지 그것이 최상승 불교(最上乘佛敎)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기도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신 분 가끔 만납니다마는.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심 정력(定力)으로 하면 반드시 자기의 원(願)하는 만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선조 대왕(宣祖大王) 때에 이응(李應)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관리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해 가지고 그 당쟁(黨爭), 그 사색정당(四色政黨)에 싸움이 치열해 가지고 훌륭한 사람,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하려고 하는 바른 사람들이 그 반대당에 의해서 모함을 받아 가지고 죽기도 하고, 귀양을 가기도 하고, 또 워낙 덕(德)이 있고 그런 사람은 저 제주도나 진도나 완도나, 지방 수령(守令)으로 좌천(左遷)이 되어 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이응이란 사람도 그 반대당의 모략으로 진도(珍島) 군수(郡守)로 좌천이 되어 갔는데—진도 군수로 있을 때 그 폭풍이 일어나 가지고 일본 사람이, 장사하는 일본 사람이 폭풍을 만나 가지고 진도, 그 섬 해변에 간신히 표류를 했습니다.

백성들의 보고를 받고 아전(衙前)들이 나가 가지고 그 사람들을 다짜고짜로 묶어서 감옥에다 때려넣고 그 배에 실은 보물을 전부 다 뺏을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이응이라고 하는 그 군수가 알고서 아전들을 갖다가 크게 꾸짖고, 그 감옥에서 그 사람들 다 포박(捕縛)을 지은 것을 풀어주고, 또 관아(官衙)에 방을 따뜻하게 불을 때서 방으로 하고, 옷도 다 갈아입히고 해 가지고 한 열흘 동안을 잘 먹이고, 그래 가지고 부서진 배도 다 수리를 하고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짐승도 내 집에 들어오면 잡아서 죽이는 법이 아닌데, 아무리 일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풍랑(風浪)을 만나서 표류(漂流)해 온 사람을 그 잘해서 돌려보내야지, 그것을 갖다가 죄 없이 포박을 지어 가지고 뚜드러패고, 싣고 온 보물을 갖다가 뺏을라고 한다면 어찌 그것이 참 훌륭한 처사(處事)라고 하겠느냐?" 그래 가지고 아전들을 꾸짖고 돌려보냈는데.

그 이응이라고 하는 사람에 손자가 이름이 '푸를 창(蒼)' 자, '바다 해(海)' 자 창해(蒼海)인데, 이창해(李蒼海)란 사람이 나중에 그 제주도 목사(牧使)가 되어 가지고 20여 명의 관속을 데리고 배를 타고서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폭풍을 만나 가지고 배가 뒤집어진 바람에 다 죽고, 그 창해란 사람과 또 다른 세 사람이 간신히 뱃조각 판때기를 붙잡고는 며칠을 표류를 해 가지고 도착을 했는데, 일본에 지마도(志摩島)란 섬에 도착을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일본 사람들이, 그 섬사람들이 와! 나와 가지고, 이창해를 비롯한 세 사람을 갖다가 무슨 간첩이나 무슨 그러한 걸로 취급을 해 가지고는 묶어서 때려 가뒀습니다.
"대관절 뭣 하는 놈들인데 이렇게 남의 땅에 이렇게 침입해 들어왔느냐?" 한게, "제주도로 그 목사로 가다가 폭풍으로 인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잘 곧이를 안 듣고 "바른대로 대라"고 막 고문을 하고 뚜드러패는데.

그 창해(蒼海)란 사람이 워낙 인품이 좋고 점잖해서 사실대로 다 말을 하니까, "음, 니가 그렇다면 혹 그 진도 그 군수로 있던 이응(李應)이란 사람을 혹 아느냐?" 하고 물어보는데, "바로 그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요" 그러니까, 그 자세히 이리저리 물어보니까 틀림이 없다 그 말이여.
그때부터서는 포박을 다 풀어주고, 그래 가지고 옷도 갈아입히고 음식도 잘 먹이고, 모다 상처도 다 하고 그런데.

그래 가지고 여러 날을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인자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야 겠는데 이 관속(官屬)들이 다 죽어버리고 자기네들만 가봤자 별로...
그렇지 않아도 반대당의 거시기로 제주도로 이렇게 귀양 가나 다름없이 이렇게 좌천되어 가는 판인데, 한국으로 돌아가봤자 반대당으로부터 참 좋은 소리도 못 듣고, 그러니 갈 수도 없고. 또 갈라고 해봤자 배가 없으니 갈 수가 없고. 천상 그 지마도(志摩島) 도주(島主)가 배를 만들어서 태와다 주기 전에는 갈 수가 없는데, 몇 날이 되어도 보내줄 생각을 안 하고.

찬찬히 그 겪어보니까 사람이 괜찮하고, 또 도주(島主)에는 그때 참 그 당혼(當婚)한 규수가 하나, 무남독녀(無男獨女)가 있었는데, 이창해한테 '내 딸이 있으니 내 사위가 되어 달라. 내 아들이 없으니까 데릴사위를 해 가지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물려줄 터이니 내 사위가 되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참 생각해 보니, '내가 이 폭풍을 만나 가지고 간신히 죽지 않고 살아났기는 하나, 해필 왜놈에 데릴사위가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랬으나 이리저리 생각해봤자 도저히 뾰족한 수는 없고, 그래서 승낙을 했습니다. 날을 받아서 융숭하게 결혼식을 했는데, 그 규수가 자기보다 한 7~8세 아래가 되는데 꽃같이 이쁜 미인(美人)이었습니다.

이 창해란 사람은 한국에 있을 때 여섯 살 때 결혼을 했는데, 자기보다 훨씬 십여 세 많은 여자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늙은 처녀하고 결혼을 해 가지고 별로 재미도 없이 살다가 이렇게 폭풍을 만나서 와 가지고 자기보다 7~8세 아래 되는, 설사 왜놈에 딸이지만 그 꽃같은 계집하고 결혼을 하게 되니, '참 인생이라는 게, 참 운명이라는 게 묘(妙)하다' 그래 생각했습니다.
속담에 '마누라가 죽으면 변소에 가서 씨익 웃는다'고 그러는데, 이 사람 참 고향을 떠나서 이렇게 참 폭풍으로 이렇게 해서 왜놈 섬에 와 가지고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별로 싫지는 않고, 운우(雲雨) 정몽(情夢)을 이루어서 애기를 한 30~40년 간에 아들딸을 열두 명이나 낳았습니다.

열두 명이나 자녀를 두어 가지고 있는데, 그 장인이 인자 늙어서 그 사위한테 그 도주(島主)에—거기는 도(島)가 일본 땅이라 하지마는, 그 사백여 년 전이니까 그렇게 교통수단이 좋지 못하고 해서 이것은 바로 그 도주가 그 섬에 왕 노릇을 했습니다.
일본 본토(本土)에 별 지배도 받지 않고 자기네끼리 그렇게 사는데, 그 섬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서로 섬끼리 싸워 가지고 그러다가, 이 창해가 그 장인으로부터 그 도주(島主)에 직책을 이어받아 가지고는 군사훈련을 시키고 해 가지고는, 그 주변 섬을 전부 정복(征服)해서 자기 영토를 만들어 가지고 아주 참 썩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향땅에 어머니는 어떻게 계시며 동생은 어떻게 사는가?' 이 달 밝은 밤이면은 저 한국 쪽을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시름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 세월을 지내다가 또 그 사람이 아들을, 열둘 가운데에 큰 아들이 썩 또 인물이 좋고 기운이 세고 해서 그 사람에게 또 그 자기의 직책을 다 물려주었습니다.
그때에 이창해의 나이는 칠십 고개를 넘어서 인자는 은퇴를 해 가지고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낚시질이나 하고 그렇게 참 소일(消日)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나 가지고는 쏜살같이 그 배가 달리고 달려가지고는 도착을 해서 잘 살펴보니까 한국에 강원도 고성(高城), 그 총석정(叢石亭) 있는 데에 도착을 했다 그 말이여.

그이가 본래 고성 사람이라, 그 강원도 뭐 십이경(十二景)인가 해 가지고 그 명승지(名勝地)를 다 두루 돌라봤기 때문에, 그러고 고향 지방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가 총석정이라 한 것을 알고서 그 인자 이...
근데 옷만 좀 젖었지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이 어떻게 그렇게 참, 이 요새 참 비행기처럼 빠른 그런 배가 달리듯이 그렇게 무사하게 동해(東海)를 건너서 총석정에 도달했다 그 말이여.(53분59초~1시간11분5초)




(5/5)----------------

그래서 기어올라 가 가지고는 '요가 내 거시기인데 여까지 왔으니...'
옛날에 자기 어머니 따라서 낙산사(洛山寺) 기도를 다니던 그 생각을 하고 '낙산사나 한번 가 보리라' 그래 가지고는 낙산사 쪽으로 인자 서서히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오는데, 와서 요리 보더니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보아 하니 당신은 일본 사람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서 일본 사람이 여기를 왔소?" 하고, 창해 보고 물어보니까, "내 입은 옷은 일본 옷이나, 사람인즉슨은 조선(朝鮮) 사람이오"

"조선 사람이 어떻게 일본 옷을 입고 요렇게 여그를 서성거리고 있소?" 한게, 자기 얘기를 주욱 했습니다. 하니까 그 사람이, "형님!" 하면서 달라들면서 그러니께,
"여 왠 사람이 멀쩡히 남보고 형이라 그러요?" 하니까, 자기가 남양(南陽)이라고 하는, "남양입니다. 내가 남양입니다" 한게, "하! 니가 남양이냐?"

그 창해(蒼海)에게는 남양(南陽)이라고 하는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남양이 왜 거기를 왔었냐 하면, 그 창해의 어머니가 오씨(吳氏)인데, 오씨는 평소에 불교의 신심(信心)이 돈독(敦篤)해서 항시 소원이 있으면은 그 낙산사에 와서 기도를 하고 집에서도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더욱이 그 창해가 제주도 목사로 떠난 날부터서는 더 열심히 기도를 하고, 또 그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전몰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서는, 그날 그 폭풍 일어나서 배가 파손이 된 그날을 기(期)해서 꼭 낙산사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또 천도를, 제사를 지내고 그렇게 하다가, 그 오씨는 연만(年晩)해서 작고(作故)하고, 그 둘째 아들인 남양에게 유언(遺言)을 해서 "니가 꼭 그날에는 낙산사에 가서 꼭 기도를 하고, 니 형의 제사를 지내라. 그리고서 살아 있으면 반드시 돌아오고, 죽었다면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도록 부처님께 기도를 해라. 그리고 고기를 사서 방생(放生)을 해라"

이렇게 유언을 해 가지고 그 남양이 그 어머님의 유언을 받아가지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데, 해필 그날이 그 창해가 제주도 목사로 부임하러 떠나다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던 바로 그날이다 그 말이여. 그날 총석정에 도착해 가지고 동생과 상봉(相逢)을 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여러분, 관세음보살을 평소에 지극히 염(念)한다든지, 고왕경(高王經)을 독송(讀誦)을 한다든지, 또는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기도를 한다든지,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신수기도(身數祈禱)를 정성껏 한다든지,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한결같은 마음, 정성(精誠)스러운 마음,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공(功)을 들이고 치성을 하고 기도를 하면 이와 같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성현의 가피(加被)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 이와 같은, 이보다도 훨씬 더 불가사의한 가피를 입은 예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번에 기도에 동참하셔서 기도하신 여러분들도 '칠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또 그럭저럭 지내자' 이러시지를 말고,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행동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그 일들 자체가 낱낱이 다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남편을 잘 뜻을 받들어서 내조(內助)를 잘하고, 또 남편은 아내의 그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와 정든 집을 떠나서 자기 하나를 믿고 내 집에 온 사람이니, 내 집에 와서 참 이 고생 저 고생 다하면서 아들딸 낳아서 내 집에 대(代)를 이어주는 사람이니 참, 마음으로 항시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고생을 하면 그 따뜻한 마음 말 한마디로—미안한 말이지만 여자는 말 한마디로써 그 가슴 아픈 것을 어루만질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써 독사(毒蛇)를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 되는 사람은 좋은 선물을 사다준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평상시에 그 아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괴로울 때, 따뜻한 눈매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써 씻은 듯이 그 괴로움을 씻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전(經典)에 보니까 부처님께서도 '아내에게는 선물을 가끔 해라' 하셨습니다. 물론 반지라든지, 목걸이라든지, 의복이라든지, 손가방이라든지, 신발이라든지, 그 종류는 각양각색(各樣各色) 다양할 것입니다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따뜻한 말 한마디는 돈 한푼 들이지 아니하지만 효과는 백배인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왜 그렇게 소중하냐 하면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 있는 곳에 따뜻한 말이 있고 또 따뜻한 마음 있는 곳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선물도 거기에서 다 나와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설사 썩 이쁘지 아니하고, 썩 훌륭하지 못한 아내라 할지라도 남편이 대장부(大丈夫)의 풍도(風度)를 가지고 잘 다스리고 잘 이끌어나간다면 훌륭한 아내가 되어서 내 아들딸을 잘 낳아서 잘 길러줄 것이요, 내 살림을 잘 보살피고 잘 일궈줄 것이며, 내 가문(家門)을 빛내주는 훌륭한 반려자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맨 부인보고만 잘하라고 말을 하고, 남편 잘하란 말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맨 여자만 갖다가 막 짓밟고, 무조건하고 남편을 잘 섬기라고 그런 거 아니냐?' 나한테 와서 따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마는, 가만히 보니까 항시 '저 소리를, 남편 잘하란 말도 가끔 해야 남편이 나한테 잘 할 텐데, 죄 없는 고생하는 여자만 갖다가 자꾸 잘하라고... 불공평하다' 그러한 생각을 속으로 듣고 나를 쳐다보고 계신 것 같애서, 내가 오늘은 남자 분한테도 내가 부인한테 잘하라고 한 말을 부처님의 말을 빌려서 내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돈도 중요하고 권리도 중요하고 모든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 부부간에 화목을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고기를 못 먹고 소채(蔬菜)에 밥을 먹고, 밥도 못 먹고 죽을 쒀 먹더라도 내외간(內外間)에 화목을 하고 부지런히 산다면 머지않아서 또 재산도 생기고 또 복이 돌아올 것입니다.
명예도 있고 권리도 있고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부부간에 밤낮 싸우고 입으로 싸우고 나중에는 살림을 때려 붓고, 다음에는 발길로 차고 몽둥이로 패고 해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다면 머지않아서 그 집은 재앙이 닥쳐오고, 소유하고 있는 재산도 복도 다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한 나라도 서로 상하(上下)가 합심이 되어서 나라를 위한,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 국민이 단합을 한다면 아무리 작은 나라도 이웃나라에서 침범을 못하고 그 나라는 결국은 발전을 해서 참 좋은 나라가 되는데, 한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이 화목으로써 단합을 해야 복이 돌아온 것이지, 싸우고 부시고 때리고 해 가지고 무엇이 되며, 아들딸들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기도를 열심히 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그 때를 잘 봐야 하고, 장소를 잘 알아차려야 하고 그렇게 해서 지혜롭게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소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금년 일 년 동안 또 이렇게 이 신수기도를 시초(始初)로 해 가지고 일 년을 단단히 실속 있게 알차게 보람 있게 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복을 부르느냐, 재앙을 부르느냐'는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도 관계가 있습니다마는, 금생(今生)에 내가 어떻게 노력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는 그것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를 하고, 기도의 입재(入齋)와 회향(廻向) 때 법(法)을 설하는 것은 그러한 까닭인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대로만 받고만 만다면 우리는 아무런 기도도 할 것이 없고, 노력도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장래는 전생에 지은 바와 금생에 노력 여하가 합해져 갖고 우리의 앞에 모든 것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미 전생에 지은 것은 부처님께 참회를 하려니와, 앞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 한 문제에 대해서는 온통 우리 자신들에게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일 년 동안을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음을 가다듬고, 시시때때로 그림자 없는 채찍으로 스스로를 경책(警策)하면서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한 걸음도 퇴전(退轉)함이 없이 노력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문일귀원최적담(問一歸源最的談)이여  작가친대칠근삼(作家親對七斤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헌디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기를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닜고?,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여쭈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내가 청주 땅에서 베적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참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되어서, 우리는 왜 '모든 법이 다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하고 묻는데 대해서 엉뚱하게 '내가 청주 땅에서 적삼을 하나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다'
도저히 우리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써는 종잡을 수가 없고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사량분별로 따질라고 하면은 이것은 얼토당토않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최상승학자(最上乘學者)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여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여염입수간불견(如鹽入水看不見)이나, 소금을 물에다 넣으면 그 물에 녹아버린 소금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긱착방지자미함(喫着方知滋味鹹)이다. 맛을 보면 바야흐로 짭짤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소금을 아무리 많이 타도 눈으로 봐 가지고는 도저히 맹물인지 소금물인지, 짠지 싱거운지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월에 간장을 모다 담으시게 되겠지만, 짜고 안 짠 것은 눈으로 봐 가지고는 알 수가 없으나, 맛을 보아야 비로소 얼마만큼 짜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못다 한 말을 주장자(柱杖子)에 부탁을 하고 내려가겠습니다.(1시간11분6초~1시간29분35초) (끝)





[법문 내용]

(게송)가가문전통장안~ / 기도는 첫째, 정성(精誠)이 제일인데, 정성이라 하는 것은 한결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심(一心)으로 해야 해. 정성으로, 일심으로 해서 이루지 못할 원(願)이 없습니다 / 어떠한 곳, 어떠한 경우라도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일심으로만 하면 바로 그것이 기도(祈禱)가 되는 것입니다 / '일심으로 해야 한다.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하는 것은 사욕(私慾)이 없는 것, 사심이 없이 하는 것을 말한다 / 기도라는 것은 첫째 사심(私心)이 없어야 돼. 탐심(貪心)과 사심(私心)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일심(一心)으로 기도를 함으로 해서, 그 마음이 빈 곳에는 최고의 공덕(功德)이 담기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 / 올바른 방법으로 재산 권리를 얻고 그것을 쓰되 도리(道理)에 맞도록 잘 써 나가야 / 기도를 해서 얻어진 바는 성현(聖賢)의 가피(加被)로 자기에게 관리권(管理權)을 제수(除授)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유용하게 잘 써나가야.

(게송)일체유위법~ / 생겨났다 없어지고 하는 그것이 모두가 다 '유위법(有爲法)', 우리의 몸뚱이, 우리의 생각도 유위법, 온 세계에 모든 것이 다 유위법.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꿈, 꼭두각시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은 것.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우리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심 정력(定力)으로 하면 반드시 자기의 원(願)하는 만큼 성취를 하는 것 / 오씨(吳氏) 부인의 낙산사 기도 가피(加被) 설화(說話).

평소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덕(德)을 베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행동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그 일들 자체가 낱낱이 다 기도가 되는 것 /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하다 / 기도를 열심히 하신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 자기 마음 다스려야 / (게송)문일귀원최적담~.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청정히 하고, 우리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마음으로 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비워서 청정히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절로 이르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시 말씀하듯이 참선(參禪) 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정성껏 그리고 일심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한 것도 대단히 어렵고 또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한 소원을 크고 작고 간에 성취를 했거든 그 성취한 뒤에 어떻게 그것을 관리해 나가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것은 참으로 더 중요한 것이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관리를 잘 못하고 잘 사용을 못하면, 별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러주지도 아니하면서 나갈 때에는 사람을 다 상(傷)해 놓고 떠나게 되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 청정한 마음으로 잠깐 관(觀)만 해도, 잠깐 원(願)을 해도 그 원은 너무 빨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참으로 꼭 성취를 할 마음이 있으신 분은 어쨌든지 참선을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고행(苦行)을 쌓으시고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서 수없는 고통을 다 견디어내셨고, '손바닥만한 땅도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몸을 버리지 아니한 땅이 없다' 할 만큼 무수(無數)한 목숨을 중생을 위해서 보시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한량없는 보시와 공덕을 쌓으셨기에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실 수가 있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두루 갖추어서 모든 성현(聖賢) 가운데에 최고의 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을 스승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그러한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씨(吳氏) 부인의 낙산사 기도 가피(加被) 설화(說話).

'복을 부르느냐, 재앙을 부르느냐'는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도 관계가 있습니다마는, 금생(今生)에 내가 어떻게 노력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는 그것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를 하고, 기도의 입재(入齋)와 회향(廻向) 때 법(法)을 설하는 것은 그러한 까닭인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대로만 받고만 만다면 우리는 아무런 기도도 할 것이 없고, 노력도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장래는 전생에 지은 바와 금생에 노력 여하가 합해져 갖고 우리의 앞에 모든 것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미 전생에 지은 것은 부처님께 참회를 하려니와, 앞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 한 문제에 대해서는 온통 우리 자신들에게 매여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21. 3. 20. 14:00

 

 

((No.252))—1984(갑자)년 동안거 결제 (84.12.07) (65분)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2분.

 


(1/3)----------------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한데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한데  지위무명불요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三界) 가운데에 가루 날으듯이 윤회(輪廻)를 하는 것은—지옥으로 떨어졌다, 천당에 올라갔다, 축생(畜生)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아귀(餓鬼)가 되었다가, 이렇게 해서 삼계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한 생각 남이 없어서 마음이 맑으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여.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

오늘 갑자년(甲子年) 윤(閏) 10월 보름날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을 맞이해서 도봉산 원효암(元曉庵) 대중과 회룡사(回龍寺) 대중도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 대중과 함께 이 법요식(法要式)에 참석을 했습니다.
해마다 10월 15일에 동안거 결제를 하는데, 금년에는 윤달이 들어서 본 10월에는 하지 아니하고 윤 10월 15일에 결제를 해 가지고 내년 을축년(乙丑年) 정월(正月) 15일, 지금으로부터 석 달 뒤에 해제(解制)를 하게 됩니다.

여름이 되면 여름 결제, 겨울이 되면 겨울 결제, 연례행사(年例行事)로 해마다 결제를 거듭하고 해제를 거듭하건마는, 마냥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으로 지고 또 동쪽으로 뜨는 해가 서쪽으로 지고 아무 특별한 것이 없어. 아무 특별한 것도 없고 기특한 것도 없는 가운데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하루 지내면 하루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이틀 지나면 이틀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지내다가 보면 한 달이 지내고, 한 달 한 달이 지내다 보면 일 년이 지내서, 일 년을 지낼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불어나는데, 일 년 일 년 지내다 보면 어언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서, 엊그제가 청년, 청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젖 먹고 밥 먹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이러는 가운데에 아무것도 마음에 얻은 것은 없고 업(業)만 짓고 나이만 먹으면서 죽음을 향해서 지옥으로 가는 벌이만 하고 있어서야 이것이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출가해서 사문(沙門)이 되어가지고 선방에 나와서 참선(參禪)을 하는 출가납자(出家衲子)들도, 철철이 선방에 나와서 결제를 하고 안거(安居)를 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지만, 처음에 발심(發心)해서 출가할 때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완되어 버리고.
그때의 그 열렬한 발심과 분심(憤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르~ 하니 가라앉어 버려서, 그러다가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또 용맹심(勇猛心)을 내나 그것이 사흘이 못 가서 또 스르르르르~ 하니 또 꺼져 버리고.
생각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도 실지로 허리를 쭉 펴고 정진(精進)을 해 보면 혼침(昏沈) 아니면 산란(散亂), 산란 아니면 혼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퍼뜩 석 달이 지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도인(道人)은 잠이 오면 그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무거운 바윗돌을 짊어지고 저 지리산을 하룻밤에 백 리(百里) 이상을 걸어 고개와 골짜구니를 넘고 넘으면서 밤새 길을 걷고.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반들반들하니 닳아져서 쌍계사(雙磎寺) 육조 스님 정골탑(頂骨塔) 앞에 그 돌이 놓여있는데. 그렇게 애를 쓰고.
자명(慈明) 스님 같은 이는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정진을 하고 한,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 그 많은 도인들이 혼침과 산란을 이겨내고 해태(懈怠)로부터 벗어나서 정진을 하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친 그러한 사례가 수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혼침과 산란은 번갈아가면서 우리 수행할라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 두 가지 몹쓸 것만 없으면 정진이 저절로 될 것이고 정진하는 데 아무 괴로울 것이 없건마는.
유시(有時)에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퍼일어나고, 그 번뇌와 망상이 좀 잠잠해질만 하면은 혼침이 와 가지고 눈뚜껑이 천 근이나 무겁게 쪄 누른다 그 말이여. 아무리 눈을 뚝 부릅뜨고 애를 써도 그 눈팅이 내려누르는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어.

그래서 옛날 중국 천목산(天目山)에 고봉 선사(高峰禪師), 고봉 스님은 '내가 삼 년 동안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견성을 못하면 자살을 해 버리리라' 이러한 결의를 하고서 정진을 하는데.
역시 그 고봉 스님도 혼침, 어떻게 앉기만 한면 혼침이 와 가지고 밥 먹는 시간,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는 마냥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했습니다. 포행을 해 가지고 조끔 졸음이 달아날만 하면 들어와서 또 앉으면, 앉기만 하면 금방 또 혼침이 와.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가 없어.

그렇게 도량을 포행으로 포행으로 애를 쓰는 가운데 3년이란 기한이 어언간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안 되면은 3년 기한이 차는데 착잡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어.
장부(丈夫)가 한 번 결심을 했는데, 3년 만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자결(自決)을 해 버릴라고 결의(決意)를 했는데 며칠이 안 남았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날마다 참 착잡한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며칠간을 정진을 하는데, 하룻밤 꿈에 단교(斷橋) 스님이 나타나서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를 떠억 주신다 그 말이여. 꿈에 그 단교 스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탔는데 눈을 뜨고 보니 너무 소소(昭昭)하고 영령(靈靈)하다 그 말이여.

그렇게 화두를 들면 들었을 때뿐이지 금방 딴생각이 들어오고, 또 새로 화두를 들면은 일 분도 못 가서 또 딴생각이 들어오고. 그렇게 애를 쓰기를 3년을 했는데.
꿈에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를 단교 스님으로부터 딱 받고서는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제절로 터억! 현전(現前)하는데 혼침도 간 곳이 없고, 번뇌 망상 산란심(散亂心)도 간 곳이 없어.
앉아도 화두요, 서서도 화두요,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 누고 오줌을 누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제절로 화두가 드러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는데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말씀을 하면 '나도 꿈에 그런 누구한테 화두를 한 번 타 봤으면' 혹 그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란가 모른지만, 꿈에 그 화두를 타게 되는 데에는 3년이라고 한 세월을 단 일분일초도 범연(氾然)히 지내지 안 했다 이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가지고 일 분도 못 되어서 화두가 없어져 버리면 또 들고, 일 분도 못 되어서 없어지면 또 들고, 혼침이 오면은 포행하고 산란심이 일어나면 화두를 들고.

그래서 혼침과 산란과 그 두 놈들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오는데, 그러한 사이에서도 일분일초도 그냥 혼침에다 맡겨 둔 채 지내지 아니하고, 산란심이 일어난 채 그냥 그놈에다 맡겨 두고 지내지를 안 했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애를 쓰고 이를 악물고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면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기 때문에 몽중(夢中)에 화두를 타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 말이여.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그 고봉 스님이 꿈속에서 단교화상으로부터 '만법귀일'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하는데 애써서 할 것이 없어. 제절로 의단이 독로하는데,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고 그러한 가운데 화두가 드러나는데, 앉으나 서나 누우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조끔도 털끝만큼도 힘을 들일 것이 없고 일부러 지어서 할 것이 없어.
지나간 3년 동안에는 온전히 억지로 지어서 했는데 이제는 지을 것이 없어. 애쓸 것이 없어. 제절로 화두가 독로하는데.

일부러 딴 생각을 좀 해 볼라고 해도 되지를 안 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옆에서 잡담을 해도 상관이 없고, 사람이 수십 명, 수백 명 있는 대중 가운데에 앉아서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를 안 혀.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대중 따라서 밥을 먹을 뿐이지, 밥 먹는 것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다맛 따라서 그저 밥 먹고 그저 똥 마려우면 똥 누고 그러지 화두에는 추호(秋毫)도 관계가 없어. 그렇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그러한 상태로 일주일이 갔는데.

일주일 만에 달마(達磨) 스님 제삿날에 탑전(塔殿)에, 대중과 합해서 그 탑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 오조 법연(五祖法演) 화상의 탱화(幀畵)에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한 글이 쓰여 있는데 그 글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백년이면은 날수로 치면은 삼만육천 일인데, 그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갔다 왔다 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바로 이놈이다' 한 그 게송(偈頌)에 화두를 타파(打破)했어. 천칠백 공안(公案)을 어느 공안을 들어봐도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비단 중국에 고봉 선사 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다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러분들도 3년을 기한을 정해 놓고 정진을 열심히 하신 것은 좋으나, 3년 지내고도 깨치지 못하면 꺼떡하면 자살 같은 거 하고 그러한 것을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3년도 길고 하루씩, 항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처음~21분33초)




(2/3)----------------

중생은 근기(根機)가 약해서 석 달이나 3년 길게 잡아 놓면,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벌써 사흘째 가면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늘어지게 되고 열흘이 지내가면 더 늘어지거든. 또 정신을 차려도 또 며칠 안 가면 또 풀어지고 이러니까 하루씩을 단속을, 작정을 하고 하면 풀어질 수가 없거든.

농사를 지어 보면 곡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면은 그것을 하지(夏至) 전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심을수록에 수확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일찍 심어 가지고 한참 날씨가 뜨겁고 그럴 때에 그때 필요한 만큼 그 벼가 자라게 해 주어야 제대로 수확을 보는 것이지, 그 자라야 할 때에 날씨가 춥거나 너무 오랫동안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비가 오지 안 해서 가물어 가지고 바짝 말라서 논바닥이 갈라지고 해서 수분이 없어서 자라지를 못하거나, 또 비료가 부족해서 자라지 못하거나, 논을 세 번 이상 매 주어야 하는데 논을 매 주지 못해 가지고 잡초 속에 우거져 있거나, 이리해서 자라야 할 그 시기에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지 아니하면 그 농사는 볼 것이 없습니다.

이 수행(修行)도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할 때에, 할 그 시기(時機)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그때에 채찍을 가해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그 시기에 참 알차게 공부를 해놔야 하는 것이지,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기름 참선이 되어서 나중에는 늙발에 가서 좀 할라고 해봤자 별 볼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님도 말씀하시기를 '삼십에 서지 아니하면 그 뒤에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별로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정진(精進)도 할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으면 10년 20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기름 참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연세가 많으신 보살님네들은, '하이고! 시기가 있다는데 인자 늙어서 선방에 와 봤자 나도 별 볼 일이 없겠구나' 혹 그렇게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젊어서 발심한 사람은 젊어서 발심한 대로 시기가 있고, 연령(年齡)이 많아 가지고 선방에 오셔서 발심한 분은 또 연령이 많은 그날부터서 첫 철이니까 한 살인 것입니다. 오십에 들어오시면 오십 세에 들어온 해가 법(法)의 나이로서는 그날이 한 살이고, 육십에 들어오셨으면 육십 살이 이 법의 나이로서는 한 살이여. 그것을 법랍(法臘)이라 그러는데.

한 살 되었으니 세속적(世俗的)인 나이 많은 것을 여기서 따질 것이 못됩니다. 그날 한 살로 생각하고 정말 나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세속에서 잘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식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간 세월에 절에 오래 댕겼다고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발심한 그날부터 부처님 제자(弟子)로 새로 태어났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대부분 오래 전부터서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정진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또 일부는 참선이 좋단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선방에 와서는 한 번도 지내보시지 아니한 그런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 참선은 꼭 선방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계시면서도, 가정생활하면서도 올바른 방법만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선방에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하시되 시비(是非)나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내고, 옆에 사람하고 말다툼이나 하고, 밤낮 앉어서 속 바글바글 썩고 앉어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참선커녕은 오히려 업(業)만 더 짓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금년 겨울에 한 팔십여 명이 방부를 들였습니다마는 그분들은 정말 스님네 못지않게, 출가한 스님네 못지않게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주실 줄 생각을 합니다. 그 팔십여 명 가운데에는 칠십을 훨씬 넘은 그런 노보살님네들도 상당수 계신 줄 생각합니다.
칠십 이상 넘어 놓면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혈압이 높거나 혈압이 너무 낮아서 어지럽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서 모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시고 모다 씻고, 법당(法堂)에 올라오시고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대중과 더불어 행동을 같이 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줄 생각하지만, 연세가 많다고 누가 나를 위해서 특별히 시봉(侍奉)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이고, 어쨌든지 몸조심하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중(寺中) 형편이나, 대중의 규칙 생활상으로는 연세가 많으면은 행동을 같이 따라서 하기가 퍽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마는, 연세가 조끔 많다고 해서 방부를 안 받아 놓면 인자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아니한데, 모처럼 이런 선방에 오셔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이 청정한 도량(道場)에서 정진할라고 오신 그 갸륵한 신심이 훌륭해서 연세가 좀 많아도 대중과 같이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이 없기만 하면 연령 가지고는 너무 심하게 하지 않도록 그렇게 배려를 해서 방부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보다도 노인일수록에 더 정진을 알뜰히 하셔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잡담을 하더라도 '나도 그럭저럭 잡담하다 내가 이렇게 늙어버렸소.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덜 먹어서 어쨌든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경책(警策)을 해 주신다면 젊은 분들도 거기서 참 발심(發心)을 해서 감동이 되어 가지고 정진을 잘할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지금 선방이 옛날 지대방을 털어 가지고 큰 방을 만들고, 지대방은 저 뒤채에다가 해 놨으니, 이쪽 선방에서는 아무 잡담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쪽 지대방에서라도 잡담을 하라고 그렇게 방을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여기 공부하러 오셨지 잡담하러 오신 것이 아니거든. 그러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잡담은 해서는 아니 되려니와 특히 이쪽 선방에서는 전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선 시간에,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이쪽 선방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떠억 앉어서 방선 시간이라도 각기 앉어서 묵묵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야지, '방선했다' 해 가지고는 대고 벌떡벌떡 드러눕고, 옆에 사람하고 수군순수군수군 뭔 얘기를 하고 그래 쌓면,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도 옆에서 떠들어 쌓는 통에 정진을, 공부를 못하거든.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어.
남을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남 목숨을 해롭게 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데, 도 닦는 것을 못 닦게 방해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크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 봤자 육체밖에는 죽일 수가 없어서 다시 뭐 새로 몸 받아나면 그만이고, 자기도 살생(殺生)하는 죄의 죄값만 받으면 되지만, 도(道) 닦는 것을 방해를 쳐 가지고 도를 못 닦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것을 못하게 한 죄가 되고, 그 사람 한 사람만 못하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그러한 대도인(大道人)이 되고 부처님이 될 텐데, 그것을 못하게 방해를 쳤으니 사람을 몇천만 명 죽인 죄보다도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선방에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좀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이해를 하시고 사소한 일에 말다툼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지를 말고서, 어쨌든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석 달 동안이 하루처럼 엄숙하고 경건하게 정진을 하시도록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이 선방에, 스님네 선방도 지대방을 털어서 큰 방을 만들고, 그 옆에 작은 방 두 개를 벽을 허물어서 또 합쳐서 거기를 지대방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진하는 스님네에게 좀 더—너무 방이 좁아 가지고 불편하기 때문에 지대방을 그렇게 했으니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어쨌든지 스님네도 열심히 정진을 하시되 '다른 선방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 여기는 이렇게 한다', '다른 선방은 이러는데 여기는 이렇게 안 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 꼭 다른 선방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자꾸 들춰내 가지고 불평을 하시지 말고, 이 용화사 법보선원은 법보선원 나름대로에 특성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선원은 다른 선원 나름대로 그 선방 나름대로에 또 가풍(家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선방이나 모든 것이 다 똑같으란 법은 없습니다. 이런 데는 이런 데를 만나면 그 법도(法度)에 따라서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그 속에서 정진을 알뜰히 하고, 또 다른 선방에 가면 그 선방 나름대로 법도가 있으면 그 법도에 순응하면서 거기에 적응하면서 정진을 할 따름인 것입니다.
마치 저 남방(南方)에 더운 데에 가면 더운 데에 따라서 옷을 입고, 저 북방(北方)에 추운 데로 가면 추운 데에 따라서 거기에 알맞는 더운 옷을 입으면서 지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음식도 또한 그렇고 모든 규칙과 법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거기에 적응할 때에 이(理)와 사(事)가 한목 병진(竝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 어디를 가거나, 동서남북 어디를 가거나 온통 자기 정진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도 거기에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꾸 자기는 경계(境界)에 속고 얽매임을 받아 가지고 계속 정진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헌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헌디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寒山頂上)에 월륜고(月輪孤)한데, 한산 산꼭대기에 둥근달이 밝았는데,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저 맑은 하늘에 그 달이 밝게 비추어서 한 물건[一物]도 없구나. 구름 한 점 없는 달이 휘황창 밝으니 무엇이 있느냐.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귀하고 귀한 그 천연에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사대(四大)로 뭉쳐진 육신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얽혀진 우리의 마음, 이 오음(五陰)의 몸뚱이 속에 그 무가(無價), 값없는 보배가 매장(埋藏)되어 있구나.

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한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쓰지를 못하고一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지는 삼천년이 되었지마는,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21분34초~43분11초)




(3/3)----------------

역대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無價寶)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은 삼동 결제(三冬結制)와 아울러서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입재(入齋) 날입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기도도 한 생각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기도가 되지 아니한 것이고, 참선(參禪)도 한 생각을 단속 못하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댁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정진하신 분,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모두가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알뜰히 정진을 하심으로 해서 기도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댁에 계셔도 항시 이 선방에 와서 정진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진을 하신다면 그 생활 속에서, 밥 하면서 빨래 하면서 애를 길르면서 생활하면, 그 가운데에 한 생각만 단속하면, 앉어 있어도 상관이 없고, 누워 있어도 상관이 없고, 서 있어도 상관이 없고, 걸어 다녀도 상관이 없고, 차를 타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뒤로 미루고, 지금 이 시간 이 시간을 단속을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공부를 못하고 말 것이고,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고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라도 그때그때를 단속해 나가면 차츰차츰 공부가 익숙해질 것이고.

복잡하고 어렵고 바쁜 속에서 공부를 단속해 버릇하면 그 다행스럽고—처음에야 어렵지마는, 어려웁다고 핑계 대지 아니하고 자꾸 해 버릇하면 나중에는 되어진 때가 오는 것이고, 나중에는 차츰차츰 자기의 성격이라던지, 자기의 공부하는 정진 힘이라던지를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가늠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옛날의 자기와 달라진,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해 갈수록 이 공부는 정진력(精進力)이 증장(增長)이 되는 것이고, 자꾸 핑계 대고 아니하면 1년 가도 그 모냥이요, 3년 가도 그 모냥이요, 일이 다 끝날 때가 없습니다.

'아들딸만 결혼시켜 놓으면 인자는 그때서 참선을 좀 하리라' 해도 아들 낳아 놓으면은 손자 손녀가 또 튀겨져 나오고.
'딸만 인자 여워 버리면 내가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때는 내가 선방에 가 참선하리라' 하지마는, 딸도 가기만 했다 하면은 일 년도 못 가서 뒤집어엎고 오게 되고. 또 가서 또 해산(解産) 수발해야 하고.

일이라는 것은 한(限)이 없고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 끝내 놓고 하리라' 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벌써 종자가 틀린 종자여.

일 속에서 할라고 마음을 먹어.

인생으로 태어났으니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시어머니 노릇도 해야 하고, 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고 해서 공부는 안 해봤자, 내 공부를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지를 안 하기 때문에, 딸 일 잘 봐주고 아들 일 잘 봐주고 살림 잘해 줬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조끔도 그건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거 하니라고 애썼으니까 빨리 천당에 가라' 절대로 그런 염라대왕은 아직 안 태어났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가 과거에 지은 업(業)이요, 과거에 지은 빚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되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공부 안 해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피할 수가 없으니 그것 해야 하고, 그거 하면서 자기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 생사(生死) 문제가 그것이 본업(本業)이 되고, 그밖에 일은 전부 빚 갚는 일인 것입니다. 빚 잘 갚었다고 누가 칭찬 안 해 줍니다.
그 자식을 키우는데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피나게 그 고생을 하면서 자식을 길러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그 자식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효도(孝道)를 하냐 하면 별로 그러한 속에서는 큰 효자가 나오질 않습니다.
아무것도 전해 줄 것이 없이 그래야지, 그 자식을 위해서 참 평생을 다 바친 자식일수록에 결혼해 놓고 보면 지 지집 밖에는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식을 이렇게 애써서 길렀으니, 길러서 장가만 보내주면 내가 효도를 받아서 늙발에는 내가 호강을 좀 하리라' 하고 기대를 했다면 백 명이면 백 명, 그건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길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잘 길르되 그 자식한테 바래서는 아니 됩니다. 바래지 말고 자기 공부 자기가 해 나가야 합니다.

또 돈도 자기가 늙발에 쓸 것을 좀 준비를 해 놓은 것이 좋습니다. 탁! 털어서 자식한테 다 해 놓은즉슨은 늙발에 용돈이 없어서 그 참! 피나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늙발에 쓸 돈도 준비를 해 놔야 하고.
또 자식한테는 부모의 의무는 할지언정 자식에게 아무것도 바래지 말아야 합니다. 효도해 주기도 바래지 말고, 돈도 늙발에 잘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바랬다' 하면은 그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래지를 아니해야 그런대로 불효는 안 하게 되는 것이고, '많이 바랬다' 하면 반드시 불효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은 여러분이 이해를 잘 못하면 '그 자식 길러 봤자 소용이 없고, 잘해 줘 봤자 소용없으니까 어쨌든지 외봉을 많이 쳐놨다가 늙발에 내가 써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고.
자식한테 바래서는 아니 됩니다. 바랜즉슨은 뒤에 가서 참 피눈물 나는 불효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이만큼 젊었을 때, 이만큼 건강할 때, 내가 내 마음 공부해서 수행을 해서 업(業)을 소멸(消滅)을 해 놔야 자식도 그런대로 괜찮하고, 며느리도 그런대로 괜찮한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따라서 며느리가 좋은 며느리도 되고 자식도 좋은 것이 되지, 내가 업(業)이 꽉 차 갖고 있으면 멀쩡한 자식도 불효자식이 되고, 멀쩡한 며느리도 아주 고약한 며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도 자기 친정에서 부모 밑에서 잘 배우고 잘 자라서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내 집에 왔는데, 그게 어찌 못쓸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시어머니 눈에는 눈에 안 차고 못쓰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업이 차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집가서 시어머니와 뜻이 안 맞아서 속이 상하고 원망을 하고 '시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또는 '다른 아들네 집으로 가버렸으면' 혹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고약한 심보를 가지면 자기는 복 받기는 틀린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속에 업(業)이 차 있기 때문에 멀쩡한 시부모가 고약한 시어머니로 비추는 것이지, 자기가 정말 업이 없어서 청정하고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시부모를 상대한다면은 시부모가 생전(生前) 사후(死後)를 그 자식 며느리한테 의탁(依託)을 할 판인데, 왜 그 며느리를 고약하게 들볶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 며느리한테도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서 스스로 자꾸 향상되어 갈라고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그 잘못된 점을 스스로 자기에게서 찾아야, 찾아서 자기를 갖다가 향상을 시키고,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착한 마음으로 며느리를 상대한다면 그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친정어머니와 친딸과의 사이처럼 그렇게 오손도손하고 서로 그렇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로 들었지만,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선방에 80명이 지내시는데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다 오셨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 · 젊은 분, 김 씨 · 이 씨 · 박 씨 뭐 별별 성(姓)바지가 다 모이시고, 별별 모다 성격이 다른 분들이 모이셨지만, 공연히 달란 것 없이 미운 사람 있고, 나를 뭘 자꾸 나한테 잘해 주고 뭘 잘 주어도 그거 싫은 사람, 이거 중생계(衆生界)에서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뭘 달라고 해도 주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로 좋은 사람도 있고.
그런데 이게 다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의 소치(所致)인 것입니다. 업으로 된 것을 업에만 맡겨 버리고 업에 따라서 행하면 언제 그 업을 소멸(消滅)하겠습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도 화두를 들고, 뵈기 싫은 사람을 만나도 화두를 들고 해서, 화두를 듦으로 해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상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방(禪房)이란 데는 자기 마음 맞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가지고서는 그 정진(精進)에 별 도움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와 안 맞은 사람하고 한 철을 지낼 때에 거기에서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자기에게 채찍을 가하고. 그래 가지고 자꾸 자기를 갖다가 갈고 닦아서 그래서 향상(向上)을 시켜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놀라울 만한 발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팔십 명이 모여 놨으니 참! 별별 성격의 소유자도 있겠지만, 그 자기 마음에 안 맞은 분을 미워하지 말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흘겨보면서 미워하고 그러지를 말고.
항시 자비(慈悲)스러운 눈매로 지켜 주며, 남 잘못한 것을 보고 허물로 생각하지 말고, 남 잘못한 것을 보고서 자기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신다면, 대중 가운데 몇 사람이 본의(本意) 아니게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중에 아무 해(害)가 되지를 아니할 것이고, 또 한두 번 잘못하다가 스스로 자기를 깨우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선방 스님네도 한철 아무 장애 없이 잘 지낸다고 하는 것은—사실은 아직까지 우리 용화사에서는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10년 동안 중간에 별 탈이 없이 잘 지냈습니다마는, 그것은 조실 스님을 신(信)하는 철저한 그런 신심으로 지내시기 때문에 별 장애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지 금년 겨울 석 달 동안도 지난 어떠한 결제 동안보다도 훨씬 알차고 짬진 한철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원효사나 회룡사 대중들도 거기 서로 비구니(比丘尼) 수좌(首座)끼리 모다 지내고 있지만, '항시 전강 조실 스님을 모시고 산다'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도 날짜를 정해 놓고 꼭 엄숙한 마음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 어쨌든지 여법하게 알차고 짬지게 정진(精進)을 하기를 부탁을 합니다.


본자허명절점하(本自虛明絶點瑕)한디  육창한월변하사(六窓寒月河沙)니라
나무~아미타불~
기간나유한장단(其間那有閑長短)하야  법계함용공일가(法界含容共一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자허명절점하(本自虛明絶點瑕)여,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서 조그마한 티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육창(六窓)에 한월(寒月)이 변하사(河沙)여. 여섯 창에 차운 달이 환히 비추어서 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다 비추고 있다 그 말이여. 자성(自性)의 달이 본래 밝고 밝아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창(六窓)을 통해서 삼천대천세계를 환히 비춘다 그 말이여.

기간나유한장단(其間那有閑長短)하야, 그 사이에 무슨 길고 짧은 그런 쓸데없는 것이 있겠느냐 그 말이여. 무슨 시비(是非)가 있고, 무슨 선악(善惡)이 있고, 친소(親疏)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법계함용공일가(法界含容共一家)여. 육도법계(六道法界)와 삼천대천세계가 온통 한 집이다 그 말이여.

내가 미(迷)한 생각으로 보니까, 중생의 업식(業識)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시비(是非)요, 차별(差別)이요, 죄악(罪惡)이요, 빈부귀천(貧富貴賤)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원근친소(遠近親疏)요 그런 것이지,
한 생각 비워져 버리면 눈으로 무엇을 봐도 그것은 불세계(佛世界)요, 귀로 무엇을 들어도 그것이 다 부처님 법문이요, 무슨 냄새를 맡아도 그것은 전단향(栴檀香)이요, 무엇을 먹어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금년 겨울 이 안거(安居) 결제일(結制日)을 맞이해서 이렇게 여러분과 더불어 법요식(法要式)을 갖게 된 인연으로 한 철이 정말 알뜰하고 짬진 한 철이 되어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자아를 철견(徹見)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이번 철에 각자 이루어지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43분12초~64분39초) (끝)




[법문 내용]

(게송)삼계지중분요요~ / 『선관책진(禪關策進)』에 수행에 몸과 목숨을 바친 기록 / 중국 고봉선사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 / 하루 결제, 하루 정진.

수행도 할 시기가 있다 / 기름 참선 / 선방에서 잡담 금지 /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다 /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라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우리는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다.

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기도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 / '일 끝내 놓고 하리라' 하지 말고, 일 속에서 참선하라 / 자기 생사(生死) 문제가 본업(本業)이 되고, 그밖에 일은 전부 빚 갚는 일 / 어쨌든지 이만큼 젊었을 때, 건강할 때, 내가 내 마음 닦는 수행을 해서 업(業)을 소멸해야 / 자기와 안 맞은 사람하고 지낼 때에 거기에서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자기를 갈고 닦아서 향상(向上)을 시켜야 / (게송)본자허명절점하~ /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
삼계,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한 생각 남이 없어서[一念不生] 마음이 맑으면,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

중국 고봉선사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

항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농사를 지어 보면 곡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면은 그것을 하지(夏至) 전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심을수록에 수확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정진(精進)도 할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으면 10년 20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기름 참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방선 시간이라도 각기 앉어서 묵묵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야지, '방선했다' 해 가지고는 대고 벌떡벌떡 드러눕고, 옆에 사람하고 수군순수군수군 뭔 얘기를 하고 그래 쌓면,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도 옆에서 떠들어 쌓는 통에 정진을, 공부를 못하거든.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어. 남을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남 목숨을 해롭게 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데, 도 닦는 것을 못 닦게 방해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크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 봤자 육체밖에는 죽일 수가 없어서 다시 뭐 새로 몸 받아나면 그만이고, 자기도 살생(殺生)하는 죄의 죄값만 받으면 되지만, 도(道) 닦는 것을 방해를 쳐 가지고 도를 못 닦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것을 못하게 한 죄가 되고, 그 사람 한 사람만 못하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그러한 대도인(大道人)이 되고 부처님이 될 텐데, 그것을 못하게 방해를 쳤으니 사람을 몇천만 명 죽인 죄보다도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거기에 적응할 때에 이(理)와 사(事)가 한목 병진(竝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 어디를 가거나, 동서남북 어디를 가거나 온통 자기 정진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도 거기에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꾸 자기는 경계(境界)에 속고 얽매임을 받아 가지고 계속 정진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한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쓰지를 못하고一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지는 삼천년이 되었지마는,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역대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無價寶)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기도도 한 생각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기도가 되지 아니한 것이고, 참선(參禪)도 한 생각을 단속 못하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댁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정진하신 분,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모두가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알뜰히 정진을 하심으로 해서 기도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미(迷)한 생각으로 보니까, 중생의 업식(業識)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시비(是非)요, 차별(差別)이요, 죄악(罪惡)이요, 빈부귀천(貧富貴賤)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원근친소(遠近親疏)요 그런 것이지,
한 생각 비워져 버리면 눈으로 무엇을 봐도 그것은 불세계(佛世界)요, 귀로 무엇을 들어도 그것이 다 부처님 법문이요, 무슨 냄새를 맡아도 그것은 전단향(栴檀香)이요, 무엇을 먹어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인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20. 11. 10. 18:32

 

 

(No.269)—1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

(1/3) 약 18분. (2/3) 약 18분. (3/3) 약 11분.

(1/3)----------------

 

광음승불계(光陰繩不繫)하고   쇠병약난의(衰病藥難醫)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광음양가석(光陰良可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光陰)은 승불계(繩不繫)요   쇠병(衰病)은 약난의(藥難醫)라.

흐르는 세월은 노끈으로 묶어 매 둘 수가 없고, 늙어서 노쇠해서 병나는 것은 약으로도 낫을 수가 없다.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이 세상에 났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것이 이 한평생만 끝난 것이 아니고 무량겁을 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이 생사의 이 중대사(重大事).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마는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오늘 을축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 말씀드릴 것이 없지마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지게 지내기 위해서, 서로서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큰 병(甁) 가운데에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새가 꾸벅꾸벅 졸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그 새가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좋은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잘 자라서, 그랬는데 기가 맥히게 참 예쁜 여자로 태어났는데, 절세미인(絶世美人)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나이가 15,6세 되니까 멀고 가까운 데에 널리 소문이 나서 그래서 여러 군데서 '며느리를 삼겠다, 아내를 삼겠다'해 가지고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가문도 생각하고 또 여러 가지 형편도 두루두루 다 살펴서 참 일등 신랑감을 골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그 신랑도 또한 훌륭한 대장부라, 높은 벼슬을 해 가지고 참 이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이 영화와 부귀를 한 몸에 다 안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이 세상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신랑이, 그래 인물도 잘나고 머리도 좋고 또 능력도 있고 그래가지고 승승장구 자꾸 높은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 정승까지 되었습니다.

정승이 되었는데 너무 임금님의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그 정승의 말이라 하면 임금님이 하나에서 백까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옳은 말로 적절하게 말씀을 여쭈니까 임금님이 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고 신임을 독차지하게 되고 그러니까 간신(奸臣)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역적(逆賊)으로 몰려서 귀양살이를 가 가지고 약그릇을 받게 되고 집안은 아주 몰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도 너무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그러한 괴로움을 받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남편이 억울하게 죽고 나니 자기도 병을 앓게 되고, 자식들도 모다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가지고 전부 멸종을 당하고 마침내는 자기도 어느 관가에 종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밤낮 남편 생각만 하고 자식 생각만 하고 그 원한에 사무쳐서 그래 가지고는 결국은 큰 병(病)이 나가지고 죽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에 숨이 딱! 끊어지자 다시 눈을 떠 보니까 병 속에 들어 있는 새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사람이 되어서 결혼을 해서 신랑이 그렇게 정승이 되고 그랬던 것은 병 속에서 한 마리의 새가 꾼 하나의 꿈에 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병 속에서 새 한 마리가 꾼 꿈이—인간 세상에 그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잘되고 자식을 낳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러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남편 죽고 자식들도 역적으로 몰려서 다 멸종을 당하고 자기도 마침내 병들어 죽었는데,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을 낱낱이 자상하게 모든 것을 늘여 놓자면 큰 소설책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가 병 속에서 꾼 꿈이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한 병 속에 들어있는 새가 꿈속에 지금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자로도 태어나고 여자로도 태어나고 또 김씨도 되고 박씨도 되고 또 그 가운데는 출가해서 비구승도 되고 비구니도 되고 그렇게 지내지만, 숨 한번 딱! 거두어 가지고 생각해 보면 병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될 것입니다.

이 육도법계(六道法界)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도법계 전체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천당에도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또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고, 아귀(餓鬼)나 수라(修羅)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육도에 좋은 곳에 태어나서 낙(樂)을 받고 나쁜 데에 태어나 가지고 고통을 받고, 아무리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독차지를 하고, 천상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낙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생사윤회하는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하고 '업의 불[業火]'에다가 섶을 집어넣는 그러한 결과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각자 우리 자신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깊이 이해를 한다면,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새가 잠깐 꾸는 꿈으로 태어난 이 몸이, ‘한다면,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눈뜨게 되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에 눈을 떠야 할 것인가? 남을 미워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집착을 해야 할 것인가? 사소한 일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시비에 말려들 필요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모든 사람을 다 디디고 올라서 봤댔자, 정신 차려 보면 병 속에 든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한 것을.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괴로우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느니라.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는 것도 고(苦)요, 늙어가는 것도 고(苦)요, 병드는 것도 고(苦)요, 죽어가는 것도 고(苦)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은 없느니라』

이 중생들은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이 그나마 고통의 뭉탱이에 지내지 못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 업(業)에 업을 거듭 지어가고 있으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며 전체가 괴로운 것뿐이라고 하는 것을 맨 먼저 우리에게 설해 주신 것입니다.

 

왜 괴로우냐?

모든 것에 대한—자기 육체에 대해서, 자기의 재산에 대해서, 명예와 권리에 대해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愛着)과 집착심(執着心)을 갖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괴로움을 없애야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 바로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어떻게 없애느냐? 도(道)를 닦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 도에는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만, 그 도 가운데에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처음~17분57초)

 

 

 

 

(2/3)----------------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인간대장부(人間大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옳고 그른 것, 니가 옳고 내가 그르고, 개인적으로나 또는 단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옳고 그른 모든 시비는 다 한 벼개의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무궁한 옛날부터서 영원한 미래까지 흘러가고 있는 길고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잠깐 꾸는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취산(聚散)은 일시정(一時情)이다. 만났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난 것. 만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으로도 만나고, 아내와 남편으로도 만나고, 형과 동생으로도 만나고, 친구 간으로도 만나고 한, 이 인간이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이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해.

금생에 부모자식 간에 인연이라 하면 가장 지중(至重)하고, 부부 인연이라 하면은 참 지중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일시(一時)의 정(情)인 것입니다.

 

물론 전생에 다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서 만나긴 하지만, 전생에 부모 · 전생에 할아버지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되기도 하고, 전생에 친구가 아내가 되기도 하고, 금생에 아내가 내생에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나고 만나졌다 헤어지고 하지만 우리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이고.

물론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다 알게 되겠지만, 숙명통이 열리기 전에는 '혹 저 사람이 전생에 나의 남편이 아니었나?' 혹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고, 전생일은 다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전생, 저 전생, 수억만 생이 있어 왔기에 금생에 또 부모 자식으로도 만나고, 처자 권속으로도 만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전생일은 이미 잊어버려서 알 수가 없고, 다못 금생에 이렇게 만났다가 잠시 5,60년 내지 6,70년 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해서 잠깐입니다.

그리고 또 헤어지게 되는데, 내생에 또 인연에 따라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이 되지만 또 확실히 만날지 어쩔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난다 해봤자 또 전생일은 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더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 · 애정 · 인정, ‘참 저 사람이 정답다, 정이 있다’, ‘그 사람은 무정하다, 매정하다’, 정이 있는 것을 참 좋아하고 다정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만, 자식을 기를 때에 있어서도 정에 너무 빠져서 정(情)으로 자식을 가르키면 사실은 업(業)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업을 점점 두텁게 맨든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이 사랑스럽지 아니하리요마는 그 정은 속에다가 담박(澹泊)허니 놔두고, 항시 바른 마음과 지혜로써 그리고 정(情)보다는 자비(慈悲)로써 자식을 잘 길러 나간다면 그 자식은 참으로 올바르게 잘 자라 나갈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자비가 없이 인간에, 그 중생에 애정적으로만 가르켜 놓으면, 자식이 자식이 아니라 업의 뿌리 밖에는 아니되는 것이고 '애물'에 지내지 못해서 피차 서로 얽혀 가지고 후생(後生)의 업을 장만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 버려.

그 정 때문에 본의 아닌 죄를 짓게 되고, 정 때문에 자기의 바른 길을 찾지를 못하는데, 그 정을 돌이켜서 지혜와 자비로 승화(昇華)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의 분을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푹 쉬어 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인간(人間)에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이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도 있고 또 보살님도 계십니다마는 또 경기 일원에 다른 선원에서 정진하시는 비구니 스님네들도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는 신도님네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 데에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하셔서 더 말씀할 것이 없지만,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이리저리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해 가지고는 한참 뻗어나가다가 그것이 또 언제 또 사그라져 버립니다. 사그라지자마자 또 '한 생각'이 또 일어납니다.

'한 생각' 일어나가지고 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발전을 해 나가다가, 혹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기분이 좋고, 혹 나쁜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공연히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괜히 그냥 누가 얄미워지고도 하고, 그러다가 또 그 생각이 또 언제 꺼진 중 모르게 또 꺼져 버리면, 또 다시 또 '한 생각'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몇만 건인 것입니다.

 

어려서 철모를 때는 모르지마는 철알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생사심의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기멸(起滅)이 끊임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이 그러고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미래의 생사윤회를 위한 씨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생에 우리가 일어난 '한 생각'이 금방 우리의 8식(八識)에 종자(種子)로써 심어지는데, 그 종자가 이 시간 이후에 적당한 인(因)과 연(緣)을 만나면 거기서 새로운 생사윤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 3가지 불능[三不能]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가 ‘중생계가 다할 날이 없다’ 이리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니 밤낮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육도(六途)에서 천문학적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중생의 생사윤회의 현장이 바로 이 육도법계인 것입니다.

물론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 낱낱이 모두가 불보살(佛菩薩)의 출현이요, 그 불보살의 설법이요, 모든 것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경전이요, 바로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의 모습이 되겠지만, 그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중생에게는 전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생사윤회의 현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사윤회는 우리를 괴롭혀 주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인데, ‘이 생사심을 어떻게 하면 이것을 깨트려서 생사 없는 근본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우리 불자(佛子)에 나아갈 길이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려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이 생사심은 영원히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지 못하면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일분일초도 쉴 사이가 없이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방편과 수단으로써 그 무상살귀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우리가 성불(成佛)할 때까지 이 생각은 잠시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마치 훨훨 불이 타고 있는 그러한 함정 가운데 우리가 빠졌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불이 타고 있는 이 함정에서 살아날 수가 있을까?’

공연히 이리저리 함부로 나부대봤자 불에 타서 죽을 것이고, 우두커니 서 있어 봤자 뜨거워서 결국은 자기한테 불이 달라들어서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것이고, 또 누가 와서 나를 살려 주었으면 그런 생각까지도 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다못 이러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불구덩이에서 살아날 수가 있을 것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나의 몸과 목숨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누가 와서 나를 구해주기도 바래지 말 것이며, 딴생각—집안 생각, 무슨 자식 생각 뭐 그런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여. 잠시도 우두커니 있지도 말 것이며, 다맛 무조건 하고 밖을 향해서 내닫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가 빼어난 틈이 없이 불이지만, 타 죽을 셈 치고 불도 보지 말고 막 밖을 향해서 나간다면 잠시 불에 몸이 닿을 동안에는 뜨거울는지 모르지마는, 번개같이 뛰어나가면 결국은 그 사람이 살아나올 것입니다.

참선해 나간 사람은 이만한,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18분3초~35분47초)

 

 

 

 

(3/3)----------------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인댄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이 잘하고 못한 것만을 어지러이 말을 하다가—누가 잘하니 못하니, 누가 옳고 그르니, 맨 남의 얘기.

선방에 와 가지고 방부를 들이고 참선을 하면서 맨 집안 얘기 아니면, 남의 집 며느리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시어머니가 어떻고, 맨 남의 잘하고 못한 이야기만 죽비(竹篦) 쳐서 방선(放禪)하자마자 시작을 해.

 

하도 말을 해 쌓어 지대방을 저 별채에다 해서 따로 딱! 띄어 놓고, 인자 큰방에서는 일절 잡담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해놨는데, 아마 큰방에서는 일체 잡담을 안 하시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워낙 참지 못한 분은 큰방에서도 간혹 혹 하시지 않는가? 내가 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또 저 별채에서 혹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인자 그런 분을 위해서 잠시 거기서 좀 허리도 좀 펴고 그러라고 별채를 한 것이지, 거기 가서 맘대로 잡담을 하시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 별채에다 뚝 큰방에서 떨어지게 해놨으니까 실컷 좀 얘기 좀 해보자' 그리고 아주 마음먹고 아주 잡담을 시작을...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별채도 널찍허니 해놨으니 아! 거기서도 얼마든지 참선 하실 수도 있고 또 허리가 아프면 허리도 쭈욱 펴고 눕되 누워서도 ‘이뭣고?’ 이렇게 하셔야지,

거기서 얘기를 하면—아! 허리 좀 펴고 좀 그럴라고 가신 분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잡담을 안 해야 하는데, 이 별채라고 해서 잡담을 하시면 언제 정진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뭐 별채라고 해서 생사 무상살귀(無常殺鬼)가 거기는 없는 것도 아니고, 거기도 역시 사면(四面)에서 타 오는 불구덩이 함정이 아닌 것이 아닌 것입니다.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여. 밤이 되면은 아주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데.

낮에 눈 떠 갖고 있을 때는 시비와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이 되면은 온통 내 세상이다 해 가지고 다리를 뻗고 코를 골면서 이 꿈속에서는 온갖 잡스러운 꿈을 꾸면서 그렇게 하다가, 낮에 되면은 또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입방선(入放禪)은 형식적으로 하고.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여,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해봤자,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여. 욕계 · 색계 · 무색계, 이 삼계(三界)에서 뛰어나기는 영판 어려울 것이다, 이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스님네나 금년에 모다 방부를 들이고 또 이 결제에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결코 그러한 분은 한 분도 없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공연히 내가 노바심(老婆心)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래도 우리가 결제를 맞이해서 도반(道伴)들에게 해 드릴 말씀은 우리가 서로서로 채찍질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결제는 정말 알차고 짬지게 정진을 해 보자고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도반으로서에 참 좋은 것이지 이것을 나쁘게 들으실 분은 안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는 채찍질을 할 필요가 없지만 더 잘 달리라고 채찍을 흔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뉴월 또 삼복더위가 돌아올 것입니다마는 아직은 그렇게 덥지를 아니합니다.

어쨌든지 시간을 아끼고 거의 묵언을 하시면서, 묵언(默言)은 벙어리처럼 말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은 간단히 한마디로 끝내버리고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리고서 항시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포행(布行)을 할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갈 때나, 세수를 하거나 공양을 하거나, 무엇을 빨래를 하거나, 도량 소지(掃地)를 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꼭 입선 시간에 큰방에 앉아서 정진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묵묵히 그러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반드시 이번 한철 동안에 공부에 힘을 얻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여건하에서 공부에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결제 때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의 면면을 내가 살펴보니 전부가 다 숙연한 마음으로, 『정말 이번 한철은 알차게 지내야겠다. 정말 내가 쓸데없는 시비와 잡담으로 단 일분일초라도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그러한 각오가 역력히 눈에 얼굴에 나타나 보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석 달 동안 계속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렇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아름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매어 두노라.(35분49초~46분32초)(끝)

 

 

 

 

-----------------(1/3)

 

*(게송) ‘광음승불계~’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8 ‘잡흥(雜興)’ 게송 참고. *繩(승)노끈. *繫(계)매다. 묶다. *惜(석)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에 의한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절세미인(絶世美人 끊다·끝나다·뛰어나다·비할 데 없다 절/세상 세/아름다울 미/사람 인) ; 이 세상(世上)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絶] 아름다운[美] 여자[人].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업의 불(業火) ; ①악업의 힘이 맹렬하게 중생을 태우므로 업(業)을 '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불같이 이는 노여움. ③악업(惡業)의 갚음으로 받는 지옥의 맹렬한 불.

*;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苦) ; [산스크리트어] duḥkha [팔리어] dukkha 마음이나 몸이 괴로워 편하지 않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함. 어지러운 생각에 부대끼고 시달려서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 미혹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불교에서는 이를 4고 · 8고(四苦八苦) 등으로 분류한다. 사고(四苦)는 생(生)·노(老)·병(病)·사(死)의 네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사제(四諦) ; 사성제(四聖諦).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 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 苦聖諦) : ‘고(苦,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 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말)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2/3)

 

*(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의 사투리.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정(情) ; ①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②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③[불교] 혼탁한 망념(妄念).

*지중(至重)하다 ; ①더할 수 없이 귀중하다. ②더할 수 없이 무겁다.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담박(澹泊)하다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애물 ;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

*후생(後生) ;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생사심(生死心).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 p103~105. (가로판 p101~103)

*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제8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말한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45~147. (가로판 p139~141)

做工夫호대  最初에  要箇破生死心堅硬하고  看破世界身心이  悉是假緣이라  無實主宰호리라. 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이 不破오  生死心이  旣不破인댄  無常殺鬼가  念念不停하나니  卻如何排遣고

 

공부를 짓되 최초에 생사(生死)를 파하려는 마음이 굳세고,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이 거짓 인연[假緣]이라 실다운 주재(主宰)가 없는 줄로 간파(看破)할지니라.

만약 '본래 갖추어진 큰 이치[本具底大理]'를 밝히지 못하면, 곧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하고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했을진댄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으리니, 도리어 어떻게 물리치겠는가?

 

將此一念하야  作個*敲門瓦子호대  如坐在烈火焰中求出相似하야  亂行一步不得하며  停止一步不得하며  別生一念不得하며  望別人救不得이니 當恁麼時하야는  只須不顧猛火하며  不顧身命하며  不望人救하며  不生別念하며  不肯暫止하고  往前直奔호대  奔得出하야사  是好手이니라.

 

이 일념(一念)을 가져 문 두드리는 기와쪽[敲門瓦子]을 삼되, 마치 훨훨 타는 불꽃 가운데 앉아서 나오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 함부로 한 걸음 걸을 수도 없고, 한 걸음도 멈출 수도 없으며, 한 생각이라도 딴 생각을 낼 수 없으며, 남더러 구원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나니,

이런 때를 당하여서는 다못 사나운 불길도 돌아보지 않으며, 신명(身命)을 돌보지 말며, 다른 사람이 구해 주기를 바라지 말며, 딴 생각 낼 것도 없으며, 잠시도 멈추지 말며 앞으로 곧장 나아가되 내달아서 벗어나야만 이 좋은 수단이니라.

 

*고문와자(敲門瓦子) : 기왓장을 문에다 걸어 놓고 손님이 와서 그 기왓장으로 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문을 열어 주는 현대의 초인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나부대다 ;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

 

 

 

 

-----------------(3/3)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게송)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법문 내용]

 

(게송)광음승불계~ / 이 세상에 각자의 생사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 병(甁)속의 새의 꿈, 이것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 /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는데,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니다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 불이 훨훨 타고 있는 불구덩이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은 아무것도 구하거나 바라거나 생각지 말고, 무조건 하고 번개같이 뛰어나가는 것과 같이 참선 수행도 이만한 정신으로 해야 한다.

 

(게송)종조난설인장단~ / 남의 얘기, 일체 잡담을 하지 말라 / 입방선(入放禪)을 형식적으로 하지 말라 / 이러한 공부하기 좋은 여건이 다시 어느 곳에 있겠는가?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마는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는데,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

 

전생, 저 전생, 수억만 생이 있어 왔기에 금생에 또 부모 자식으로도 만나고, 처자 권속으로도 만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전생일은 이미 잊어버려서 알 수가 없고, 다못 금생에 이렇게 만났다가 잠시 5,60년 내지 6,70년 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해서 잠깐입니다.

그리고 또 헤어지게 되는데, 내생에 또 인연에 따라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이 되지만 또 확실히 만날지 어쩔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난다 해봤자 또 전생일은 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닙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일어난 '한 생각'이 금방 우리의 8식(八識)에 종자(種子)로써 심어지는데, 그 종자가 이 시간 이후에 적당한 인(因)과 연(緣)을 만나면 거기서 새로운 생사윤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우리가 성불(成佛)할 때까지 이 생각은 잠시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불이 훨훨 타고 있는 불구덩이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은 아무것도 구하거나 바라거나 생각지 말고, 무조건 하고 번개같이 뛰어나가는 것과 같이 참선 수행도 이만한 정신으로 해야 한다.

 

어쨌든지 시간을 아끼고 거의 묵언을 하시면서, 묵언(默言)은 벙어리처럼 말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은 간단히 한마디로 끝내버리고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리고서 항시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포행(布行)을 할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갈 때나, 세수를 하거나 공양을 하거나, 무엇을 빨래를 하거나, 도량 소지(掃地)를 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꼭 입선 시간에 큰방에 앉아서 정진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묵묵히 그러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반드시 이번 한철 동안에 공부에 힘을 얻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여건 하에서 공부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20. 9. 12. 09:46

(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80분)

(1/4) 약 20분. (2/4) 약 21분. (3/4) 약 20분. (4/4) 약 17분.

(1/4)----------------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한데  도로성색본가풍(都盧聲色本家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한데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하니, 도로성색(都盧聲色)이 본가풍(本家風)이로구나.

앉아서 흰구름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모든 소리와 그 색상이 본래가풍(本來家風)이드라.

 

일륜상월(一輪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데,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다.

한 바퀴 서릿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휘황찬 밝은 서리친 밤에 그 둥근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차운 기러기는 북쪽을 향해 울며 날아가는구나.

 

 

오늘은 85년도 2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아울러서 우리 용화사에 어린이 법회를 시작한 이래로 2주년을 맞이하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하모니카 할아버지라고 그 이해창 선생님을 초빙을 해서 어린이 법회 2주년을 축하하고, 겸해서 6학년 어린이가 졸업을 하게 되니까 그 졸업 송별을 기념하는 뜻과 아울러서 오늘 이 법회에 이어서 그런 행사가 간단히 있겠습니다.

 

달마 스님께서 인도에서 140세까지 법(法)을 펴시다가, 140세에 중국으로 오셔서 9년면벽(九年面壁)을 숭산(崇山) 소림사에서 하시고, 혜가 대사에게 법을 전하셨는데,

그 달마 스님께서 설하신 『달마혈맥론(達摩血脈論)』,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 『달마사행론(達摩四行論) 』, 이런 대단히 요긴한 법문이 전해 오는데,

 

그 혈맥론에 볼 것 같으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한 말씀을 강조를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도 왼팔은 사리불(舍利弗) 존자(尊者)요, 오른팔은 목련(目連) 존자라. 사리불과 목련 존자는 그 십대제자 가운데에도 제일 손꼽는 그런 부처님의 수제자이신데, 그 두 제자는 금지국(金地國)이라고 하는 나라에, 그 전생은 금지국왕이고 하나는 그 왕비였습니다.

그 왕이 세상을 떠나니까 그 왕비가 자기도 같이 왕의 화장하는 불더미 속에 뛰어들어 가지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시 함께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뜻으로 죽음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다음 생에 태어나기는 같이 태어나기를 바랐지만, 닦은 바 업(業)이 서로 똑같지 아니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나, 그래도 같은 외도(外道)의 제자가 되어서 그 외도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 외도가 죽으니까 거기서 떠나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리불이 지혜가 뛰어난 그러한 훌륭한 아라한(阿羅漢)인데, 오늘은 그 사리불 존자에 대한 말씀을 우리가 듣고서 우리의 수행해 나가는 데에 좋은 채찍을 삼고 거울을 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을 하시고, 방선(放禪)을 하고 난 다음에 포행(布行)을 하시는데 부처님의 아들 나후라(羅睺羅) 존자가 부처님의 뒤를 따라서 모시고서 같이 이렇게 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당신의 아드님이신 나후라 존자를 이래 눈여겨보시니까 너무 야위었다 그말이여. 살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고 혈기가 없고 야위니까, “네가 몹시 여위었구나”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기에는 생사를 해탈하셨고, 일체 중생의 희로애락도 다 초월하셨고, 모든 인정과 그런 것도 다 초탈하신 그런 성현이시고, 땅에 발을 디디시지 아니하고 저 오색구름이 영롱한 위로 다니시며 우리 인간과는 영판 거리가 먼 그런 위대한 성현으로 우리는 받들어 모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시경전(原始經典)에 보면 부처님도 우리 인간과 조금도 다름없는 정말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따스한 면을 가지시고 그런 자비에 넘치는 눈매로 제자들과 일체 중생을 따뜻하게 이렇게 보살펴주시는 그러한 면이 넘쳐흐르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신의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당신을 따라서 출가를 했는데, 항시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그런 것이 관심이 있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니다. 어찌 그런 성현이 당신 아들에 대한 애착을 가질 것인가’

애착이 아니라 인연이 있기 때문에 “네가 참 몹시 여위었구나” 그 한 말씀하시는 데 우리는 너무너무 참 이 콧등이 찡하는 그런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나후라 존자가 말씀을 하기를, “만약 사람이 기름기 있는 것을 먹으면 힘이 생기고, 또 우유로 만든 소락(蘇酪)을 먹으면 피부가 윤택하고, 또 삼 찌꺼기나 채소 같은 것을 먹으면 몸에 기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대덕(大德) 세존(世尊)께서는 응당히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게송(偈頌)으로써 대답을 해 올렸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끄덕끄덕 하시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으시고 “대중 가운데에 누가 제일 상좌(上座)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후라 존자가 대답하기를 “화상(和尙) 사리불이 제일 윗자리에 앉으십니다”

 

본래 나후라 존자가 출가할 때에 사리불의 상좌(上佐)를 삼아 주셨던 것입니다. 사리불에게 당신의 어린 아들을 맡겨서 잘 가르키고 지도하도록 그렇게 사리불을 은사(恩師)로 삼아 주었는데.

“그 사리불이 제일 윗자리이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정식(不淨食). ‘아니 불(不)’자, ‘조촐할 정(淨)’자, ‘밥 식(食)’자, 깨끗하지 못한 식사를 했다.

 

원래 부정식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하구식(下口食). 입을 아래로 하고 얼굴을 아래로 두르고 일을 해서 먹고사는 직업을 하구식이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땅을 파서 곡식을 심어 먹는다든지, 나무를 심어서 이익을 얻는다든지 또는 약초를 심어서 약장수를 한다든지 이런 것은 모두 얼굴을 아래로 두르고 땅에서 그 땅을 이용을 해가지고 먹고사는, 직업을 삼는 이것을 ‘아래 하(下)’자, ‘입 구(口)’자, 하구식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앙구식(仰口食)이라 하는 것이 있는데, 얼굴을 하늘로 두르고 거기서 하는 직업.

예를 들자면은 별을 관찰한다던지, 해와 달을 관찰한다던지, 또는 바람이나, 비나, 번갯불 모다 이런 것을 갖다가 일기(日氣), 기상(氣象) 이런 것을 관측해 가지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것을 앙구식이라 하고.

 

그다음에 셋째는 방구식(方口食)이라 하는 게 있는데, ‘모 방(方)’자. ‘모 방(方)’자는 동서남북을 이것을 인자 사방(四方)이라 그러는데,

동서남북 사방의 그 방구식이라 하는 것은 동쪽, 서쪽에 있는 모다 권세 있는 집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그 앞에 굽신거리고 아첨하고 아부하고 해 가지고, 권문세도(權門勢道)에 붙어가지고 거기서 돈을 얻고 그 권리에 빙자(憑藉)해서 그래서 먹고사는 거, 그런 것을 갖다가 방구식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넷째는 사유구식(四維口食)이라. ‘유’자는 ‘오직 유(維)’자인데, 동서남북 그 사이사이에 있는 간방(間方)을 사유(四維)라 하는 것입니다. 동남간방, 동북간방, 서남간방, 서북간방, 이 간방을 사유라 그러고, 동서남북 그것을 사방이라 그러는데, 그 네 간방을 향해서 벌어 먹고사는 것.

그건 뭐냐 하면은 점(占)을 치고, 주술을 사용을 하고 그래가지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따져서 하는, 요새 같으면은 사주관상을 하고, 점을 치고 하는 그러한 직업을 갖다가 사유구식이라 하는데, 그러한 방법을 해가지고 먹고사는 것을 갖다가 사유구식이라 하는데.

 

하구식, 앙구식, 그리고 방구식, 사유구식, 이것을 사부정식(四不淨食)이라 그러는데, 원래 ‘비구, 비구니 출가인은 이 네 가지의 부정한 것을 직업으로 해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지 말아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그랬으니, 사리불이 설마 인자 막 말씀드린 이러한 유(類)의 부정(不淨)한 방법으로 직업을 삼아서 의식주를 조달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고.

이 독청(獨請). 어느 왕이나, 장자나, 대신이나 이런 신심 있는 신도가 공양(供養)을 청(請)할 때에 대중적으로 가는 것은 좋으려니와 단독으로 초청을 받아서 가서 하는 것, 이러한 것을 갖다가 이것도 하나의 이러한 의미의 부정식을 했다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했느니라”한 그 말씀이 나후라 존자를 통해서 했던지, 다시 또 다리를 건너서 갔던지, 사리불이 그 말씀을 듣고서 결심을 하기를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나를 공양을 청하더라도 나는 일체 응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딱!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파사익왕(波斯匿王)이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는데, 그 파사익왕과 수달장자(須達長者) 두 분이 회상(會上)에 와 가지고 사리불을 친견을 하고 “사리불 존자께서 공양을 청해도 오시지 아니하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도 공양을 청해도 잘 오시지 않고 또 그 수제자이신 사리불 존자도 공양을 청해도 오시지 아니한다면 우리 백의단월(白衣檀越) 신도들이 어떻게 신심을 돈독히 하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복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 보고 부정식을 했다고 하셨는데 내가 어찌 그 말씀을 듣고 감히 공양을 청할 수가 있겠는가”하고 딱 거절했습니다.

 

그러니 파사익왕과 수달장자가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도 공양에 응하시지 않고 사리불도 응하시지 아니한다면 우리 같은 세속에 사는 단월들이 어떻게 신심을 드높이고 공덕을 쌓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제발 사리불한테 특명을 내려서 그런 생각을 고쳐서 공양에 응하도록 좀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처음~20분10초)

 

 

 

(2/4)----------------

 

부처님 말씀이 “사리불은 마음이 굳기가 강철 같아서 아무리 내가 말해봤자 응하지를 않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사리불은 부처님의 그런 특명도 응하지 않고 그렇게 고집을 부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다름이 아니다.... ”

 

옛날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그 국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독사(毒蛇)에 물렸는데, 한번 물리면은 그 독이 전신으로 번져가지고 막 몸이 부어서 죽어 가는데,

국왕이 많은 의사를 불러다가 ‘빨리 이 내 병을 고치라’고 특명을 내려서 그래서 명의를 갖다가 여러 사람을 불러다가 치료를 하는데, 그 독사가 너무 무서운 독사여서 도저히 자기네들의 그 치료 방법으로서는 나을 수가 없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걸 고칠 수가 있느냐?’

‘이것은 그 문 그 독사를 다시 불러서 그 독사로 하여금 그 문 자리에서 독기를 스스로 빨아내게 하는 재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빨리 그 독사를 불러들여라’

그래가지고는 의사들이 주문을 외워가지고 그 문 독사가 제 발로 임금님 계신 데에 오게끔 했습니다.

 

독사가 오니까 그 옆에다가 장작불을 갖다가 쌓아서 불을 피워 놓고서, 그 독사 보고 하는 말이, ‘네가 이 상감마마를 물었으니, 상감마마에 그 문 자국에서 독기를 스스로 빨아내서 상감마마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면 네 목숨을 살려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은 너는 이 불더미 속에 넣어서 꼬실라 죽이겠다’

 

독사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내가 물어서 독한 독을 갖다가 뱉어 냈는데 어찌 감히 다시 그 독을 내가 다시 빨아먹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그럴 바에는 내가 이 불속에 뛰어들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그 불속으로 뛰어들어가 가지고 죽었는데, 그때 그 불속에 뛰어들어 죽은 독사가 사리불의 전신(前身)이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리불은 과거에 독사(毒蛇)가 되었던 그 인연—독사라 하는 것은, 원래 독사의 몸을 받는 것은 신경질을 잘 내고, 골을 잘 내고, 조그마한 일에도 불쑥불쑥 화를 잘 내고, 이러한 과보(果報)—진심(瞋心)을 많이 내면 그것이 인자 독사의 과보를 받는 것인데.

그런 독사의 몸을 받았던 과거가 있고 또 불속에 뛰어든 그런 성격으로 인(因)해서, 여러 생(生)을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를 닦고 마침내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지혜가 제일가는 그러한 성현이 되어가지고서도 사리불은 그 진심 내는 여습(餘習)이 항시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했다’ 그러면, 부정식만 아니하면 되었지,

‘일체 공양까지 내가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한 결심 그러한 성격은 다분히 신경질적인, 그러한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을 때 가졌던 그 진심(瞋心)의 여습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증거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 십대제자에 아나율(阿那律) 존자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부처님 법문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걸 보시고 부처님이 크게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도를 닦는 수행자가 법문을 들을 때 졸을 수가 있느냐? 똥을 가지고는 아무리 좋은 조각을 한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고, 변소에다가는 아무리 울긋불긋 단청을 해봤자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런 비유를 드시면서 크게 꾸지람을 하셨는데,

 

아나율 존자는 그 부처님의 꾸지람을 깊이 명심(銘心)을 해가지고 ‘내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명심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옆구리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자지 아니하고, 잠이 오면 일어서서 포행을 하고, 온갖 방법을 써서 잠을 쫓으면서 기어코 잠을 안 자면서 계속해서 가행정진을 용맹정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보름, 한 달이 되니까 잠을 안 자니까 눈이 발간 하니 되더니 나중에는 눈갓이 찌적찌적하니 물르고 나중에는 눈이 차츰차츰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것을 대단히 걱정을 하시고 기파(耆婆) 대감을 시켜서 치료를 시켰습니다.

기파대감이 아무리 약을 쓰고, 침을 놓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습니다마는 차도(瘥度)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제 좀 차도가 어떠냐?”

“저로서는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치료를 할 수가 없단 말이냐?”

“약을 쓰고 치료를 하면서도 잠을 푹 자야만 치료가 될 텐데. 잠을 일절 안 주무시니 아무리 치료해 봤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육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니 어찌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치료를 지연을 시킬 수가 있느냐, 잠을 자라”해도, “저는 도를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타이르고 꾸짖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나율 존자는 두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눈이 멀자 아나율 존자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 그랬습니다.

천안통을 얻었으나 육안(肉眼)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옷을 꿰맨다든지 모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부처님께서 손수 바늘귀를 끼워주시고, 바느질도 해주시고, 평생을 그렇게 보살펴 주시는 자비를 내리셨다고 하는 것이 전해 내려옵니다마는.

 

부처님의 십대제자나 육조 스님까지 삽삼조사(卅三祖師)는 다 전생에 불보살이 그런 화현(化現)으로 나타나가지고, 부처님의 법(法)을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왔다고 하는 말씀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삽삼조사는 아라한이지만 권아라한(權阿羅漢)입니다. 실지로 다생(多生)에 닦은 것이 겨우 아라한 밖에는 안 된 것이 아니고, 불보살 화현이 그 부처님의 법을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 권(權)으로, 방편으로 아라한의 몸으로 출세를 하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마는.

 

아라한의 성질은 다분히 그런 성현이면서도 조그마한 일에 탁! 골을 잘 내시고, 요새 말로 신경질적인 그러한 성격의 일모(一貌)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성(獨聖) 기도나 그런 기도는 정말 몸을 깨끗이 하고, 모든 음식으로부터 모든 조그마한 행실에 이르기까지도 어긋남이 없이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몸으로 기도를 해야지, 잘못하면 벌을 받고, 까딱하면 골을 내 가지고 벌을 주어서 입이 비틀어져 버린다든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다든지,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도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던 그 여습으로 해서 성현이 되어 가지고서도 그런 다분(多分)히 그런 진심(瞋心)의 여습이 있었다고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나 아나율 존자나 그런 진심(瞋心)을 냈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그 말씀 한마디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고 뼛속 깊이 새겨들었으면 말씀 한마디에 ‘내가 도를 이루지 않는다면 결정코 눈을 감고 자지 아니하리라’

‘결정코 내가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공양을 청한다 하더라도 나는 공양에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고서 세세생생에 청정한 공양을 받고 수행을 하리라’

 

이러한 결심은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굳은 결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쌓인 우리의 업(業)을 극복을 해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에다 술 탄 듯, 술에다 물 탄 듯,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할 것을 기약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속에 사업을 한다든지, 무슨 학문을 연구를 해서 학자가 된다든지, 무슨 예술가가 된다든지, 사업가가 된다든지, 무엇을 어떠한 방면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모질고 모진 그러한 무서운 굳은 결심이 있어야 그 가지가지 난관을 극복을 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닥치고, 두 번 실패,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 일을 성취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그러한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 무량겁 업을 극복을 해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이 도(道)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볼 때에 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시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부처님의 왼팔과 같은 사리불(舍利弗) 존자가 두 제자를 가르키는데, 한 제자에게는 백골관(白骨觀)을 하도록 가르키시고, 한 제자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을 하도록 지도를 하셨습니다.

 

백골관 ‘흰 백(白)’자, ‘뼈 골(骨)’자, 백골관이라 하는 것은 공동묘지에 가 가지고, 그 인도는 풍장(風葬)이라 해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지 아니하고 그냥 저 숲속에다 그냥 놔둡니다.

놔두면 독수리란 놈들이 달라들어서 삽시간에 그 눈알도 다 빼먹고 살도 다 뜯어먹고 뼈만 앙상하니 내놓습니다.

 

그래서 뼈가 풍마우습(風磨雨濕)에 닳고 닳고 얼고 불고 해 가지고는 나중에 인자 그것이 다 없어지는데, 처음에 시체를 갖다 놓으면은 차츰차츰 썩어 들어가 가지고는 피부가 인자 문드러져서 다 없어지고, 그 다음에 뼛골만 앙상하게 남아서 닳아져 없어질 때까지 매일 가서 밥만 얻어다 먹으면 계속 그 시체 옆에서 그것을 계속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걸 관찰을 하면서 거기서 정진하는데 그것을 백골관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식관(數息觀)이라 하는 것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조용히 내쉬고, 또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 내쉬고 해서, 한 번 들어마셨다 내쉬고 ‘하나’ 또 들어마셨다 내쉬고 ‘둘’,

그렇게 해서 셋, 넷, 다섯, 여섯... 해서 ‘열’까지 세어 올라가면 또 그다음에는 아홉, 여덟, 일곱, 여섯... 해서 거꾸로 세어 내려오고, 또 하나까지 내려오면 하나에서 열, 열에서 하나,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것이 잘되면 그다음에는 하나에서 스물까지 세어 올라가고, 또 스물에서 열아홉, 열여덟, 열일곱... 해서 거꾸로 세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중간에 딴생각이 나거나, 몇 까지 세었는가를 잊어버리면 다시 또 하나에서 시작하고.

이러기를 서른, 마흔, 쉰... ‘백’까지 세어 올라갔다가 ‘백’에서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해서 하나까지 거꾸로 세어 내려옵니다.

 

계속 새벽부터 저녁, 저녁부터 새벽까지, 날이면 날마다 그 자기의 호흡을 세는 것입니다. 세어 올라갔다... 이것을 수식관이라 하는데.

이 백골관이나 수식관이 우리 수행해 나가는데 대단히 요긴한 하나의 수행 방법이 될 것입니다마는.

 

그런데 그 두 제자가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그렇게 철저히 정진을 10년, 20년, 30년 이렇게 했습니다. 했는데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못하니까, ‘열반(涅槃)이니, 무루지법(無漏之法)이니, 그따위 것이 어디가 있어? 그러한 것이 있었다면 왜 내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했을까?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못했지, 그러한 참으로 깨달음이란 것이 있고, 무루지법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벌써 깨달음을 얻었어야 할 거다. 우리가 못한 것으로 봐서는 틀림없이 그런 것이 없어. 괜히 그런 것이 있다고 속여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왜 그런 것이 있다면 깨달을 텐데, 없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것이다’하는 생각을 하냐 하면은 ‘오계, 십계, 내지 250계, 계율을 하나도 어김없이 철저히 지키고, 새벽부터 저녁,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분일초도 게으름을 부리지 아니하고 이렇게 살이 다 마르고,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도록 이렇게 하는 데도 깨닫지를 못합니까? 그렇다면야 이거 열반이니, 견성이니, 성불이니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말을 스스로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막 분개해 가지고 막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서 사리불과 그 백골관과 수식관을 한 사람을 불러다 놓고서,

“사리불아! 네가 두 제자를 지도하는데 있어서 방법이 거꾸로 되었느니라. 한 사람은 세탁업을 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을 하던 사람인데,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호흡을 세는 수식관을 시켜야 옳고, 세탁업을 하던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너는 꺼꾸로 성냥간하는 쇠붙이 다루는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켰고, 또 세탁소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시켰어.

꺼꾸로 시켰기 때문에 그 수행 방법과 그 사람과의 인연이 맞지 아니해서 그렇게 피골이 상접하도록 정진을 했건마는 도업(道業)은 성취하지 못하고 마침내 사악(邪惡)한 소견을 일으켜서 정법을 비방하게 만들었느니라”

 

그렇게 사리불을 꾸짖으시고, 그 두 백골관하던 사람과 수식관하던 사람에게 이런 설법을 해서 언하(言下)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20분11초~41분26초)

 

 

 

(3/4)----------------

 

수행을 해 나가는 데는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던지, ‘아미타불’을 부른다든지 또는 백팔참회(百八懺悔)를 한다든지, 삼천배 예배를 한다든지, 또는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이러한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고. 또 주력(呪力)을 한다든지, 경을 외운다든지 또는 화두를 참구해서 참선을 한다든지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습니다.

 

있는데, 주력을 해서는 안 될 사람도 있고, 또 참선을 시켜서는 안 될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주력이나 참선을 해서 안 될 사람에게 이것을 시켜 놓으면 얼마 안 가서 미친병이 생기기도 하고, 헛것을 보고 자꾸 정신이 미치고 그래가지고 바르게 닦아가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정법(正法)에 누(累)를 끼치고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심을 품게 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때로는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내지 고왕경 같은 그런 경(經)을 외우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 같은 그런 염불(念佛)을 하게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 밖에 무슨 ‘능엄주(楞嚴呪)’라든지 그런 주력을 시킬 수도 있고.

 

대뜸 처음부터서 화두(話頭)를 주어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이 참선법(參禪法)을 해야 할 사람도 있는 것이어서, 또 화두도 ‘시삼마(是甚麼)’라든지, ‘무자(無字) 화두’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그 사람에게 적합한 화두를 간택을 해서 그 사람에게 맞도록 공부를 지어가도록 지도를 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은 사람도 있고, 그 사람에 한해서는 주력을 해서는 안 될 그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눈밝은 그러한 선지식(善知識)이라야 능히 중생의 근기를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보고서 거기에 맞춰서 지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사리불이 두 제자—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던 사람이나, 세탁업을 하던 사람, 그 두 사람을 갖다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저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누구나 수식관은 하면 다 좋을 것이고, 누구나 백골관 하면 다 좋을 것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마는.

부처님의 혜안(慧眼)으로 볼 때에는 그 조그마한 터럭끝 만한 차이로서 도를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마침내는 사견(邪見)까지 발동을 하게 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시게 되는 것입니다.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하니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한데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 법왕(法王)의 권(權)과 실(實)이 하여금 쌍(雙)으로 행하게 한다.

대법왕(大法王)은 권(權), 방편(方便)으로—팔만사천 가지의 그 좋은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도록 방편법을 쓰시고, 그 근기가 수승함에 따라서 그 방편을 거두시고서 실법(實法)으로써 제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방편법과 실법을 자유자재로 두 가지를 써서,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여. 이 뇌성벽력(雷聲霹靂)하는, 그 뇌성이 치고, 바람이 치달아서 바닷물이 넘치고 산이 거꾸러진다 그말이여.

 

법왕(法王)의 권실, 방편법과 실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그 거동이 마치 번개치고 폭풍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그래가지고 산이 넘어지고 하는 그렇게 참 자유자재하며 변화가 무쌍(無雙)하며, 어떠한 업(業)이 두터운 중생, 어떠한 악한 중생이라도 그 법왕의 권실쌍행(權實雙行)하는 앞에서는 다 봄눈 녹듯이 다 녹아져 버릴 것이다.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하면, 그렇게 뇌성벽력을 하고, 바람이 갖다가 폭풍이 불고 바닷물이 넘치고 산이 거꾸러지고 이러다가, 천지를 진동하는 그 벽력 한 소리에 구름은 다 흩어져버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원래로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到家元不涉途程)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기의 본고장을 잃어버리고 타향에 방랑객으로서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데다가, 이 도 닦아서 자기 본심을, 본 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을 갖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다가 비유해서 표현한 건데.

 

고향집에 돌아오는데 원래로 길을 걸어서 돌아올 것이 없다.

자기 서 있는 데가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바로 자기 고향집이더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이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그 앞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몸과 목숨을 다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바른 스승만 우리가 만난다면 도(道)는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다 도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여.

 

소를 끌어다가 맑고 깨끗한 물 있는 데다가 대준 거와 같아서, 소는 주인이 끌어다가 갖다가 대주면 믿고 꿀꺽 꿀꺽 꿀꺽 양껏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을 믿기 때문에 주인이 갖다가 끌어다가 대준 물이라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듯이, 바른 스승 또 내가 믿어지는 스승이라면 한마디 밖에는 더이상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가 전부고, 일생의 수도(修道)가 도 닦는 것이 바로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 선지식을 참으로 깊이 믿고 목숨 바쳐서 믿을 수 있다면, 입으로 법을 설하지 아니해도 먼빛으로 거동만 봐도 온통 화두(話頭)가 독로(獨露)하게 되고, 신심이 돈발(頓發)하게 되고.

웃거나, 울거나, 방귀를 뀌거나, 똥을 싸서 뭉게거나 그것이 하나도 허물로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신심이 돈발하고,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온통 몸과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뿐인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무엇을 많이 가르켜 주고, 말을 많이 해 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무엇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한번 탁! 봐 버리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고 무슨 그러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이것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도 닦아가는 사람이 먼저 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옳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한다’ 옳게 지어 나갈라면, 첫째 바른 사상이 탁! 중심 잡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바른 믿음, ‘나도 성불할 수 있다. 결정코 나도 도를 이룰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의 불보살과 모든 선지식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지어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시고 계시는데, 나는 오늘날토록 무엇을 하느라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오늘까지 도를 이루지 못했던가’ 그 분심(憤心)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지식으로부터 간택 받은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해서 대의심(大疑心)이 돈발(頓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밑받침되지 않고서는 대의정(大疑情)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확고하고 불같은 그러한 뜨거운 신심, 분심이 한목 솟구치지 않고서는 화두를 들어도 들 때뿐이고 금방 돌아서면 없어져버리고, 하루는 겨우 한 듯하다가 이틀 사흘 가면 차츰차츰 풀어져 버리고. 이것이 모두가 다 그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째서 화두를 들어도 간절한 의심이 안 나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진정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 점에 있어서 고민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지 못한 그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첫째에 그런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다면 그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여.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서—가부좌는 참선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입니다. 그래서 대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 또 성불하신 부처님 같은 성현도 항시 시간 있는 대로 숲속에서, 당신 처소에서 항시 가부좌를 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더 닦을 것이 있고, 무엇을 더 깨달을 것이 있으시리오마는, 그 가부좌를 하고 앉는 자세 그 자체가 훌륭한 것입니다.

일체 마군(魔軍)이 엿보지 못하고, 일체 악신(惡神)이 근접을 못하고, 항시 25선신(善神)이 그 주위를 호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을 믿는 사람, 불법을 믿는 사람은 어디 가서 앉던지—차를 타던지, 정거장에 대합실에 앉던지, 가정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항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기는 조금 어렵겠습니다마는 설사 가부좌는 안 하더라도 항시 허리를 쭉 펴고 머리끝과 회음부(會陰部)가 수직상에 놓여지도록 그렇게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세 하나만 바르게 가져도 벌써 정신 상태가 딱! 근엄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리를 꼬부리고 그리고서 턱이 앞으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앉으면 멀쩡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고, 농판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허리를 쭉 펴고 앉기만 하면 일자무식(一字無識)일망정 남 보매 호락(瓠落)하게 보이지 아니하고 아주 그분은 보면은 학문도 많고, 수행도 있고, 인격자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속은 똥만 가득 들어갖고 남 보매 인격자로 보이라고 한 말씀이 아니라,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함으로써 정신이 딱! 차려지기 때문에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육체를 먼저 바로잡으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도를 안 닦은 일반 세속 사람도 조금 뭐한 사람은 다 보면 자세가 훌륭하고, 앉은 자세나, 선 자세나, 그 자세가 바른 것입니다. 대학자나 또는 장군이나, 대실업가의 두목이나, 다 세속에 아무개 한 사람 보면은 자세가 바르고 늠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은 사람이, 순(純) 그 바르고 근엄한 정신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아니한다고 해서야 말이 안 될 것입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라니까 너무 어깨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에 힘도 빼야 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는 그 요령을 터득을 해야 합니다.

 

단정하게 앉으면서도 헛심, 쓸데없는 힘을 뺀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자기가 자기를 항시 요렇게 가늠해 보고 살펴보면서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

 

힘을 빼면서도 단정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너무너무 두 어깨의 선이라든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뒤에서 볼 때 너무너무 훌륭한 것입니다. 아름답기조차 하는 것입니다. 근엄하면서도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그 두 어깨의 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고 너무 힘을 주어가지고 뻣뻣하게 앉아 있으면 영판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공부하는 데에도 얼마 못 가서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앉는 법에 대해서 항시 스스로 잘 살피면서 또 잘 아는 분에게 점검을 받아서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교정을 받는 것도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41분28초~61분46초)

 

 

 

(4/4)----------------

 

좌선(坐禪)에 들어갈 때에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차츰차츰 이렇게 한가운데에다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포행을 한다든지, 방선(放禪)할 때 일어설 때에도 느닷없이 갑자기 불끈 일어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준비 운동도 하고, 다리도 앞으로 뻗어서 주무르기도 하고, 발목도 이리저리 돌려서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한 다음에 살며시 이렇게 두 손을 땅에다 짚고서 조용하게 일어나 가지고 기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불끈 일어나 가지고는 달음박질을 친다든지, 높은 데서 뛰어내린다든지, 이런 것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조용하게 앉았다가 갑작스런 운동으로 변하게 되면 피나 심줄이나 근육이 놀래기도 하고, 때로는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삐는 수도 있고.

 

그리고 정진은 앉아서만 하고 일어서면 아니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공부하다가 일어서더라도—일어서서 걷거나, 일을 하거나 하더라도 앉았을 때 공부하던 그 의단(疑團)이 고대로 유지가 되도록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랴면 자연히 앉은 자세에서 서는 자세로 옮길 그 한계선이 언제든지 중요한 것입니다.

앉았을 때까지는 잘되다가 불끈 일어서는 찰나에 놓쳐 버리기도 하고, 뭘 가만히 앉았다 무슨 소리가 딱! 들어오는 찰나에 화두를 놓치기도 하고, 뭘 보다가 딱!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옮기는 그 즈음 새,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에 그 중간 경계, 그런 데서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때 딱! 그 경계에 속지 아니하고 화두를 이어서 관조(觀照)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한 철, 두 철,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 터득되어질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죽었나 살았나를 볼려면은 그 호흡이 끊어졌느냐, 안 끊어졌느냐? 그것을 보면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알 수 있을 만큼 호흡은 바로 생사(生死)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오셨나? 이해창 선생님)

 

그래서 이 호흡을 뱃속에서는 배꼽을 통해서 숨을 쉰다고 하고, 태어나면 그때부터서 인자 코로 숨을 쉬게 되는데, 숨쉬기 시작해 가지고 숨을 못 쉬게 되면 그때는 인자 금생(今生)이 끝나는 것입니다.

밥은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석 달을 굶어도 안 죽습니다. 그런데 호흡은 3분 내지 5분만 딱 숨을 못 쉬게 하거나 안 쉬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요가라든지 그런 특별한 훈련을 쌓은 사람은 일주일씩도 숨을 안 쉬고 물속에 가만히 들어앉았다가 나중에 나와도 다시 또 살아나기도 하고, 인자 그러한 특수한 훈련을 쌓은 사람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마는, 일반적으로는 5분 내지 10분만 숨 못 쉬게 하면 금방 죽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호흡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누구나 무심 속에 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호흡을 하지만 올바른 호흡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전부 다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수행을 하는 사람은 배로 호흡을 해야 해.

마음이 딱 중심이 잡혀서 안정이 되면 저 호흡하는 선이 밑으로 내려가고, 마음이 들뜨거나 중심을 잃거나, 긴장하고 초조하고, 몸에 병이 나거나 열이 있거나, 그러면은 호흡은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아랫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호흡을 하다가 갑자기 놀래거나, 분을 내거나, 흥분해서 놀래거나 하면은 배로 호흡을 안 하고 가슴으로 호흡으로 하고, 가슴으로 씩쌕 씩쌕 하면서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차츰차츰 또 그 분한 생각이 가라앉고 안정이 되면 가슴 벌떡벌떡한 것이 없어지면서 호흡이 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숨을 들어마시면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도록 의식적으로 배를 내밀었다 또 홀쪽하니 했다 해서, 계속 호흡 들어마실 때는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니 해서 등허리가 딱 붙도록 해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데 우리의 의식을 거기다 두고서 호흡을 하면 우리의 생각이 아랫배 단전(丹田) 부위에 우리 의식이 고리 집중이 되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의식이 아래로 집중이 되면 우리 몸안에 있는 기(氣), 기(氣)도 밑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면 피도 머리로 모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몸안에 있는 기(氣)도 머리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막 깊이 생각하고 그러면은 상기(上氣)가 되고, 머리가 띵해지고 피로를 느끼게 되고, 눈도 벌게지고 뒤통수를 만져 보면 뜨끈뜨끈하고 그러거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30분, 1시간 이렇게 하고 난 뒤에 몸을 만져 보면 아랫배는 뜨뜻하고, 뒤통수를 만져 보면 시원하거든. 그것은 더운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수승화강(水昇火降), 시원한 물 기운은 위에로 올라가고, 더운 불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것.

물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고, 불은 밑에서 위로 타오르는 것이 그 원래 가진 성질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가 집중을 함으로써 우리의 불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랫배가 뜨뜻해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을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몸안에 있는 온갖 독소를 그 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배출해 버리고 그래서 몸은 가벼워지고, 정신은 안정이 되면서 맑아지게 하는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 수식관(數息觀)을 시키고, 대대로 내려오면서 단전호흡을 익혀서 수승화강을 하게 해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과 청정을 유지함으로써, 도 닦아 가는 데에 부작용—상기병(上氣病) 같은, 소화불량이나 혈액 부조화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도업(道業)을 장애 없이 빨리 성취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房付)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렇게 참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이렇게 삼위(三位)가 일체(一體)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그 이튿날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그 다음 날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인자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터얻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 터억—그 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하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리불 존자와 아나율 존자의 그 굳은 결심, 우리도 그러한 결심이 투철해야 할 것이고 또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끝내는 자기 스스로 터득한 그 의심관으로써 자기의 정진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다면, 누구라도 그만한 결심과 그만한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그리고 자기의 정신과 육체의 온갖 힘과 정성을 다 바쳐서 다듬어 나간다면 누구라도 자기의 면목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아름 버드나무 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다 걸어 두노라.

 

오늘 일요법회 법어를 마쳤습니다. (61분47초~79분2초)(끝)

 

 

 

[법문 내용]

 

(게송)좌간백운청수성~ / 사리불과 목련의 전생 인연 / 사리불의 부정식(不淨食)과 아나율의 졸음 / 사리불과 아나율의 결심 / 사리불의 독사 몸을 받았던 과거와 진심(瞋心) 내는 여습(餘習) / 권아라한(權阿羅漢) / 사리불 두 제자의 백골관, 수식관 뒤바뀐 수행 / 부처님의 혜안(慧眼).

 

(게송)법왕권실영쌍행~ /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도(道)는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 / 신심, 분심, 의심 / 바른 자세, 단전호흡, 수승화강(水昇火降)으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과 청정을 유지 / 일관(日觀) / 묘한 의심관(疑心觀) /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觀法)’

 

 

부처님의 십대제자나 육조 스님까지 삽삼조사(卅三祖師)는 다 전생에 불보살이 그런 화현(化現)으로 나타나가지고, 부처님의 법(法)을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왔다고 하는 말씀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삽삼조사는 아라한이지만 권아라한(權阿羅漢)입니다. 실지로 다생(多生)에 닦은 것이 겨우 아라한 밖에는 안 된 것이 아니고, 불보살 화현이 그 부처님의 법을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 권(權)으로, 방편으로 아라한의 몸으로 출세를 하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마는.

 

세속에 사업을 한다든지, 무슨 학문을 연구를 해서 학자가 된다든지, 무슨 예술가가 된다든지, 사업가가 된다든지, 무엇을 어떠한 방면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모질고 모진 그러한 무서운 굳은 결심이 있어야 그 가지가지 난관을 극복을 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닥치고, 두 번 실패,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 일을 성취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그러한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 무량겁 업을 극복을 해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이 도(道)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볼 때에 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시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아! 네가 두 제자를 지도하는데 있어서 방법이 거꾸로 되었느니라. 한 사람은 세탁업을 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을 하는 사람인데, 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호흡을 세는 수식관을 시켜야 옳고, 세탁업을 하던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너는 꺼꾸로 성냥간하는 쇠붙이 다루는 사람에게는 백골관을 시켰고, 또 세탁소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수식관을 시켰어.

꺼꾸로 시켰기 때문에 그 수행 방법과 그 사람과의 인연이 맞지 아니해서 그렇게 피골이 상접하도록 정진을 했건마는 도업(道業)은 성취하지 못하고 마침내 사악(邪惡)한 소견을 일으켜서 정법을 비방하게 만들었느니라”

 

그렇게 사리불을 꾸짖으시고, 그 두 백골관하던 사람과 수식관하던 사람에게 이런 설법을 해서 언하(言下)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사리불이 두 제자—쇠붙이를 다루는 성냥간 하던 사람이나, 세탁업을 하던 사람, 그 두 사람을 갖다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저 사람에게 백골관을 시키나, 누구나 수식관은 하면 다 좋을 것이고, 누구나 백골관 하면 다 좋을 것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마는.

부처님의 혜안(慧眼)으로 볼 때에는 그 조그마한 터럭끝 만한 차이로서 도를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마침내는 사견(邪見)까지 발동을 하게 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시게 되는 것입니다.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이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급히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그 앞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몸과 목숨을 다 바칠 수 있는 그러한 바른 스승만 우리가 만난다면 도(道)는 바로 거기에 다 도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여.

 

소를 끌어다가 맑고 깨끗한 물 있는 데다가 대준 거와 같아서, 소는 주인이 끌어다가 갖다가 대주면 믿고 꿀꺽 꿀꺽 꿀꺽 양껏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을 믿기 때문에 주인이 갖다가 끌어다가 대준 물이라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듯이, 바른 스승 또 내가 믿어지는 스승이라면 한마디 밖에는 더이상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가 전부고, 일생의 수도(修道)가 도 닦는 것이 바로 거기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 선지식을 참으로 깊이 믿고 목숨 바쳐서 믿을 수 있다면, 입으로 법을 설하지 아니해도 먼빛으로 거동만 봐도 온통 화두(話頭)가 독로(獨露)하게 되고, 신심이 돈발(頓發)하게 되고. 웃거나, 울거나, 방귀를 뀌거나, 똥을 싸서 뭉게거나 그것이 하나도 허물로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신심이 돈발하고,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온통 몸과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뿐인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무엇을 많이 가르켜 주고, 말을 많이 해 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이 무엇을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한번 탁! 봐 버리면 되는 것이지, 무슨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고 무슨 그러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사무쳐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믿지 않고서는 이것은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좌선 자세를 바르게 하라니까 너무 어깨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에 힘도 빼야 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는 그 요령을 터득을 해야 합니다.

단정하게 앉으면서도 헛심, 쓸데없는 힘을 뺀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자기가 자기를 항시 요렇게 가늠해 보고 살펴보면서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

 

힘을 빼면서도 단정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너무너무 두 어깨의 선이라든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뒤에서 볼 때 너무너무 훌륭한 것입니다. 아름답기조차 하는 것입니다. 근엄하면서도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그 두 어깨의 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정진은 앉아서만 하고 일어서면 아니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공부하다가 일어서더라도—일어서서 걷거나, 일을 하거나 하더라도 앉았을 때 공부하던 그 의단(疑團)이 고대로 유지가 되도록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랴면 자연히 앉은 자세에서 서는 자세로 옮길 그 한계선이 언제든지 중요한 것입니다.

 

앉았을 때까지는 잘되다가 불끈 일어서는 찰나에 놓쳐 버리기도 하고, 뭘 가만히 앉았다 무슨 소리가 딱! 들어오는 찰나에 화두를 놓치기도 하고, 뭘 보다가 딱!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옮기는 그 즈음 새,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에 그 중간 경계, 그런 데서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때 딱! 그 경계에 속지 아니하고 화두를 이어서 관조(觀照)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이렇게 삼위(三位)가 일체(一體)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일관(日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터얻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 터억—그 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리불 존자와 아나율 존자의 그 굳은 결심, 우리도 그러한 결심이 투철해야 할 것이고 또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끝내는 자기 스스로 터득한 그 의심관으로써 자기의 정진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다면, 누구라도 그만한 결심과 그만한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그리고 자기의 정신과 육체의 온갖 힘과 정성을 다 바쳐서 다듬어 나간다면 누구라도 자기의 면목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19. 3. 1. 15:3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264)—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

(1/5)약22분. (2/5)약21분. (3/5)약19분. (4/5)약18분. (5/5)약12분.

(1/5)----------------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하고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디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만산홍록(滿山紅綠)이 개묘체(皆妙體)여. 가득한 산에 붉고 푸른 것, 붉게 피는 꽃과 푸른 이파리가 모두가 다 진리의 체(體)더라.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다.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또한 전부 부처님의 설법이더라.


'부처님' 하면, 삼천년 전에 정반왕궁(淨飯王宮)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상(聯想)을 하고, 또 서방 극락세계에 아미타불을 연상하고, 또 법당에 모셔져 있는 황금으로 개금(改金)을 저순 법당의 등상불(等像佛)을 생각을 합니다마는.

'참 부처님'은 법당에만 계신 것도 아니요, 삼천년 전에 네팔국에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셔서 견성성불하신 그 부처님만이 부처님이 아니고, 온 산에 가득한 붉은 꽃과 푸른 이파리가 낱낱이 다 부처님의 모습이더라 그말이고.


부처님의 설법, 법문 하면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연상을 하고, 법화경이나 금강경 또는 화엄경 · 반야심경과 같은 이런 문자로 된 경전만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 설법'은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부처님의 살아 있는 설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데, 봄날이 돌아와서 날씨가 화창한데 봄 졸음이 족해. 엄동설한이 지나가고 해동(解凍)이 되어서 날씨가 화창한데, 마루에 앉았으면은 졸음이 오는데.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졸음이 와서 떠억 비껴 누워서 산새들이 노래하는 그 노래 소리를—가지가지 산새가 파랑새, 노랑 새, 큰 새, 작은 새가 마치 교향악이 울린 것처럼 그렇게 백 가지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떠억 누워서 그 노래 소리를 듣더라 그말이여.


이것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한 깨달은 도인의 한 장면을 게송(偈頌)으로 읊은 것입니다.


오늘은 을축년 4월 7일 첫째 일요법회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삼동이 지나고 어느덧 4월을 맞이했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이 사시절(四時節)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고,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시고 미륵불이 또 출세하신 모습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쉴 사이 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 모습이지마는,

나를 깨닫지 못한 중생의 경지에서는 이 1초 1초와 이 세월의 춘하추동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그러한 상황에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서 깨달은 분상(分上)에는 이것이 모다 설법이요, 부처님이요, 바로 이것이 극락세계요, 적광토(寂光土)인데,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루가 지나가면 죽을 날짜가 하루 다가와지고, 해가 한번 떴다가 지면 사형 언도를 집행하는 날이 하루 다가서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부처님이나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이나 똑같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달은 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극락세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를 갖다가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는데,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루하루 지내는 것을 마치 사형 언도 집행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더군다나 오탁악세(五濁惡世) 이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우리의 앞길은 암담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주 진절머리가 나고 아무 희망도 없고 그럴 텐데,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났기에 말세에 태어났으면서 이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면서, 온통 온 세계가 도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하루에면 몇십 명씩 몇백 명씩 죽어가기를 파리 목숨보다도 더 참 허망하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이러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이 허망한 몸뚱이를 이 세상에 이 시기에 받어 난 것을 너무 다행하고 경행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와 하나가 되는 것이여.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법인 것입니다.


산에 봄이 오면 붉고 누런 꽃이 피고 파란 잎이 피고 한 것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면은 그러한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에 출현하신 모습이요, 흐르는 물,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화엄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불법을 만난 김에 기어코 깨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나의 모든 것을 이 한 길에다 바쳐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 자기 자신,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번갈아 가면서 출세를 하신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제도(濟度)가 무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듯이 그렇게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우리 중생들이 낱낱이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 그것을 스스로 계발(啓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를 확인시켜서 그것을 잘 갈고 닦도록 하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진 의원과 같고 또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아서, 약을 일러주면 환자 자신이 그 약을 잘 먹으면 병을 낫을 것이요. 길을 일러주면 그 일러주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거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진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 대신해서 그 약을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리 안내를 잘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걸어가야지, 본인이 걸어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주안 용화사 이 자리에 오셔서, 이십 성상(星霜)을 한결같이 대자비(大慈悲)의 문을 열어서 정법(正法)을 선양(宣揚)을 하시고 또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10년을 걸쳐서 이 송담이 여기서 법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마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말을 했지만 언제나 그 핵심은 하나이고 그 돌아갈 곳은 한 가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말을 듣고 계십니다마는, 그 듣고 있는 바로 그놈을 스스로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총력(聰力)이 좋고 머리가 좋아서 화엄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법화경을 다 외우고, 금강경을 다 외운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외우는 데만 그쳐 가지고서는 그것은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화엄경과 법화경,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좋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를 해서, 참으로 옳게 이해를 한다면, 거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법은 경을 가르키지 아니하고, 경을 외우게 하지 아니하고, 경을 해설을 해 드리지 아니하면서 언제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 말할 줄 알고, 생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놈을 돌이켜 찾으라 이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삼천 겁을 계율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우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계율을 삼천 겁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운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 찾지 아니하면, 그 계율을 지키고 경을 외우는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외우되 바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경을 읽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 계율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고 경을 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경을 잘못 외우는 것이고 계율을 잘못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계율이라든지 경은 온전히 자기 자성(自性)을 깨닫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方便)이요, 길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불법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뭣고?’는 너무 맛이 없는 소리고,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해 봐도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안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맨날 해 봤자 죽 떠먹은 자리와 같아서, 무엇이 효과가 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할 효과도 나타나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나는 이 참선을 해서 이만큼 무엇이 얻어졌다’하고 내보일 것이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1년, 이태, 3년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한다고 해 봤지만 사실은 뭐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글씨를 배운다든지 또는 사군자를 배운다든지 무슨 음악을 배운다든지 하면, 한 달만 배워도 제법 내놓을 것이 있고, 두 달만 배워도 ‘이만한 것을 나는 하게 되었다’하고 긍지를 가질 수가 있는데,

이 참선은 정말 3년, 10년을 했어도 ‘이러한 것을 나는 얻었다’ 이렇게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 내놓을 만한 없는 것이 사실은 공부를 옳게 해 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을 해 가지고 밤에는 환히 불이 켜지고 또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내일은 누가 나를 찾아오겠다’ 이걸 알고, ‘이 다음에 손자를 낳겠다’ 또는 ‘딸을 낳겠다’ 뭐 그런 것이 알아지고, 이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참선을 잘못한 것입니다.

정말 올바르게 참선을 하면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알아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다가 그러한 알아지고 보이고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은 하나의 마경(魔境)이 잠시 스쳐 가는 것이어서 그것은 신경을 쓰지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마는.(처음~21분35초)




(2/5)----------------


그러면 1년, 이태, 3년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진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나타난 것도 없고 그러면 그걸 무슨 재미로 그것을 하며,

그렇게 하다가 부처님처럼 다행히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한다면 좋지만, 만날 해도 별로 얻어진 것도 없고 꾸벅꾸벅 졸음만 오고 그러다가 죽어버린다면은 그거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그러한 막연한 공부를 갖다가 사람들에게 권고를 하고, 자꾸 ‘이뭣고?를 하면 좋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실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참선은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아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 참선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어떠헌 공덕(功德)이 있느냐?

‘무슨 공덕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은 마경(魔境)이 일어나는 것이라 하니, 그거 참 너무 막연하지 않느냐?’하는데, 사실은 그러한 큰 목표를 설정을 하고 열심히 참선을 하다 보면 우리의 육체적인 정신적인 병도 차츰 나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생명력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모든 병이 회복되어 가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이렇게 자꾸 복잡해지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변화가 이렇게 극심해 가니까 모두가 다 노이로제 현상이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냉정하게 살펴보면, 어떠헌 각도에서 그 노이로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쪼들리는 분이라든지, 고등학교나 대학의 입시를 위해서 너무 지나치게 시달림을 받는 학생이라든지, 또 가정의 어떠헌 문제로 해서 주야로 고민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든지, 다 노이로제적인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법을 믿고 날마다 여법(如法)하게 노력을 해 가다 보면 모든 신경기능이 조정이 되고, 따라서 신경증이 차츰 정상화되는 예는 또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자타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조그만한 일에 신경질을 불쑥불쑥 내고 성을 잘 내는 그런 단기(短氣)한 사람, 마음이 느긋하고 여유있고 원만하지를 못하고, 신경질을 잘 내고 참지 못하는 그러헌 성미를 가진 사람이 차츰차츰 신경질을 내지 아니하고, 어지간한 일이면 상대방을 잘 이해하게 되고, 또 잠시 기분 나쁠 듯 하다가도 금방 생각을 돌이켜서 빨리 풀어져 버리고, 이러헌 기질 변화는 제일 먼저 나타나는 한 공덕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참선공부를 항시 하면 의지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무엇이든지 할랴고 마음을 먹어도 3일을 못 가서 비그르르 풀어져 버리고, 무엇을 헐라고 하면은 자신(自信)이 생기지를 않고 항시 스스로 불안하고 그런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 참선을 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집중력이 생기고 스스로 자기의 중심이 잡히니까, 모든 일을 당했을 때 의지력이 강해진다 이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건강도 좋아지고, 노이로제 같은 그러헌 증상도 정상화되고, 또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의지력이 강해지고 하니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어떠헌 일—사업가나 또는 공부를 하는 학자나 학생이나, 능률이 오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흩어지고 산란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내고, 몸에 건강도 좋지 못하고 정신도 정상적이 못되고 하면 무슨 일을 헌들 그것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이 참선을 허면 능률이 오르게 된다고 하는 것을 또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 집중력이 생기고, 또 창조력이 생기고, 지적 기능이 개발이 되니까, ‘머리도 좋아진다’ 그런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앞에 말한 그런 여러 가지 점이 차츰차츰 좋아지니까 인격(人格)이 조정이 된다.

앞에 몸이 건강하지를 못하고 정신이 정상적이지를 못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질을 내쌌고 의지가 박약하고, 모든 일에 능력이 오르지 아니하고 그리고 정신 집중력이 없어서 항상 불안하고,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이 어찌 인격자(人格者)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와 반대로 그러헌 것들이 모두가 정상화되고 잘 중심이 잡혀 나가니까 스스로도 편안하고 의젓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볼 때나 일가친척이 볼 때에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아! 그분은 옛날과 영판 달라졌다. 어째서 그분이 옛날에는 그러지를 못했는데 저렇게 참 훌륭해졌을까?’

그래서 그분을 인격자로 모두 존경하게 되고, 그분을 받들게 되고, 그분을 따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참선을 꾸준히 해 나감으로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차츰 향상되어 가고 개선되어 가는 이 참선의 공덕이겠습니다마는, 참선은 비단 이러헌 것만을 위해서, 이러헌 조그마한 목적을 위해서 참선을 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큰 목적, ‘내가 나 자신을 깨달라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그러한 원대한 목표를 향해서 공부를 하다 보면 앞에 말한 바와 같은 그러한 여러 가지의 좋은 공덕을 우리는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헌 마음을 가지고, ‘참! 참선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까 말한 여러 가지 좋은 것들 중에 한 가지만 얻어진다 해도 충분히 해 볼 만한 가치가 있거든,

하물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이뭣고?’하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을 항시 돌이켜 찾는 이러헌 간단한 방법만으로 그와 같이 여러 가지 것이 좋아지고 여러 가지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형식적으로 조금씩 허다 말 것이 아니라 아주 본격적으로 한번 해 볼 만한 일이 아니겠느냐!


부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좀더 이부자리 속에 같이 누워 있지 않고 일찍 뽀르르 일어나서 참선한다고 앉았으니, 항상 남편보다도 절을 더 좋아하고 참선을 더 좋아하고 허니 불만을 품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일어나서 참선을 한번 해 봐야겠다. 어찌 남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러헌 인격을 완성하는 수행에 있어서 여자에 뒤질 수가 있느냐.


이래가지고 거사(居士)가 먼저 앞장을 서고 이것을 해 나간다면 그 가정이야말로 정말 행복하고 모범적인 가정이 되어서, 그 가정은 바로 항시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이,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거룩한 불보살(佛菩薩)님이 그 가정에 머물러 계시게 될 것입니다.


절에 모셔 있는 이 등상불(等像佛) 부처님한테 가서 절만 해도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소원을 성취하거든, 직접 자기 가정에 살아계신 불보살(佛菩薩)이 왕림(枉臨)해 계신다면, 그 가정에 행복의 꽃이 피고 소원성취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오셔서 ‘참선은 좋다. 이뭣고?를 해라’ 이런 말씀을 수없이 귀에 들었지만, 실상 이 가운데에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고 계신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되시며,

참선이라고 헌 것에 대해서 얼마만큼 확실하게 이해를 하시고, 또 ‘이뭣고?’를 어떻게 해야 하며, 단전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하시고 실천하고 계신 분은 정말 그렇게 많지 못하시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는 것은 이것이 참선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또는 시간이 있는 대로 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항상 익혀서 습관을 들이도록.

처음에는 발목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그렇지만 그러한 고비를 참고 견디면서 꾸준히 하면 나중에는 한 시간을 까닥하지 않고 앉았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두 시간 내지 서너 시간씩을 앉았어도 다리가 저린 법이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오랫동안 앉었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앉었거나 섰거나 상관없이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화두에 대한 의심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 덩어리가 우리의 단전(丹田)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잘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부좌나 반가부좌는 참선의 기본자세인 만큼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은 서서도 헐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헐 수 있고,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차를 타거나 일을 하면서도 헐 수가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어데서, 언제, 무엇을 허고 있을 때라도 이 공부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을 때처럼 똑같이 잘되도록 우리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은 그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이 순서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기본자세는 바로 이 가부좌, 반가부좌인 것입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다 올려놓고, 또 왼발을 오른쪽 무릎에다 올려서 이렇게... 다리를 이렇게 해서 딱 앉고.

그리고 손은 오른손 위에다가 왼손을 포개 놓고,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딱 맞대서,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배꼽 앞에 아랫배 있는 데다 갖다가 딱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따악 이렇게 중심이 잡히도록 해 놓고서,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이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갖다 딱 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선하는데의 기본자세입니다.

눈을 너무 뚝 부릅뜨면 산란(散亂)하고, 눈을 너무 감으면은 혼침(昏沈)에 떨어지기 쉽고, 또 눈을 감고 하면은 처음에는 좀 밖의 경계가 보이질 아니하니까 잠잠하고 조용하고 공부가 더 잘된 것 같이 느껴지지만.


눈을 감고 참선을 해 버릇하면 나중에 이상한 헛것, 환상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이 망상(妄想)이 가라앉아서 심경(心境)이 고요해지면 그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에 떨어지기가 쉽기 때문에,

참선허는데 있어서 눈을 감고 익히지를 말고 눈을 항상 평상으로 떠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2미터나 3미터 정도에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凝視)허거나 주시(注視)를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2미터나 3미터 지점에다가 콩 같은 것을 하나 갖다 놓고 그것을 갖다가 응시하는,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 해서, 서양 사람이 참선을 소개하는 책을 보니까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써진 것을 내가 본 일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유치원 학생들에게는 혹 그 콩을 놓고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지 말고, 그 콩을 한 30분 꼼짝 말고 들여다보고 있어라’ 이렇게 해서 유치원 학생에게 참선을 시킬 때는 혹 그런 방법을 써볼 수도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른들은 그렇게 허시지 말고 그냥 눈을 평상(平常)으로 뜨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하지는 말고, 다맛 눈을 2미터 지점에다가 떨구기만 허되 의식적으로 어떤 점을 응시(凝視)를 허지 말아라.



그렇게 하고서 숨을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들어마시되, 가슴에 가뜩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해 보세요.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서 입으로 '후~'허고 다 내뿜어 보세요. 그러면 가슴이 미어질 듯 (숨이) 가득했던 가슴이 인제 더이상 바람이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다 토해 내는 것입니다.

다 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르 허니 또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또 가슴을 약간 들은 듯 허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다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입으로 후~ 허고 내뿜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허고 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저 가슴속에 구석구석 있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고, 새 공기가 가슴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에 들어가는, 단전호흡에 들어가는 ‘준비 호흡’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 호흡이 3번이 끝났으면 그다음에는 인자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본 호흡은 아까처럼 빨리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잔뜩 들어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스르르르르르 허니 코로 들어마셔요.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이 볼록해지도록 허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21분36초~42분26초)




(3/5)----------------


'이 들어마신 공기가 가슴을 통하고 윗배를 통해서 아랫배까지 이렇게 해서 밀어넣는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왜 큰일이 나느냐?


아무리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보낼라고 해도, 이 가슴까지 밖에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왜 그러냐?

허파가 가슴에만 있고 허파 밑에는 횡경막 가로막이 있어 가지고, 그 가로막 밑에까지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는데, 그놈을 억지고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넣을라고 하니까 이 가슴에 콱 맥혀 가지고.


처음에 한두 번은 괜찮은데 10번, 20번, 하루, 이틀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 오목가슴 눌러보면 아프고 답답하고 뻐근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이 좋다 좋다해서 단전호흡 허다가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답답한 병이 생겨서 고민을 허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그렇게 허기를 3번을 허되,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들어마신 호흡이 이리해서 아랫배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생각을 아니하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 아랫배가 앞으로 이렇게 나오도록 그렇게 생각을, 의식을 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뿜을 때도 이리해서 코로 이리 내보낸다’ 이렇게 생각허지 말고,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호흡을 허는 것입니다.


숨을 들어마실 때는 가슴은 그냥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허게 맨들면 되아요, 의식적으로.

또 숨을 내쉴 때는 물론 코로 나가지만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허지 말고,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져 등어리가 붙으면서 ‘호흡은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리 생각을 하고 호흡을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렇게 헌다면 가슴이 답답할 것도 없고, 오목가슴이 아플 것도 없고, 소화가 안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미 올바르게 호흡을 해서 단전호흡을 잘하고 계신 분도 계시겠습니다마는, 호흡법을 아직 확실히 통달허지 못한 분, 그런 분은 오늘 제가 말씀드린 방법에 의해서 단전호흡을 서서히 익혀가도록.


주의할 것은 숨을 들어마실 때에,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지만 그렇게 허는 것은 3번만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숨을 들어마시며 배가 앞으로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는데, 그때도 ‘배가 터지도록 맹꽁이처럼 잔뜩 들어마셔야 허냐’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8부쯤만 들어마셔. 앞으로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십분(十分) 다 들어마시지 말고, 100% 다 가득 터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8부쯤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부담이 없지요.

또 내쉴 때에도 완전히 다 내뿜는 게 아니여.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을 약간 조인 듯 허면서 완전히 다 내뿜지만,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내뿜을 때에도 너무 완전히 다 내뿜을라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드니까 8부쯤만 내뿜는 거여.


들어마실 때에도 8부쯤만 들어마시고, 내쉴 때에도 8부쯤만 내쉬어서, 부담없이 무리없이 편안하게 들어마시고 편안하게 내쉰다면, 30분을 계속해서 단전호흡을 한다 해도 하나도 힘들지를 않고 편안한 것입니다.


이 단전호흡을 잘못해 가지고—너무 100% 들어마셔 가지고 또 될 수 있으면 오래 참을수록 좋다 하니까, 꽉 참아서 얼굴이 뻘게지도록 10초 20초 30초씩 억지로 참았다가 또 내쉬니까, 10번도 못해서 헐근헐근하고, 중간에 한번씩 쉬었다가 호흡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피가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고, 그렇게 해서 오래오래 허면 백 살 이백 살도 산다 하니까, 그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기 위해서 이 단전호흡을 허다가 사십도 못 가고 피를 막 토하면서 그렇게 죽은 사람도 중국에나 한국에나 일본에나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좋다해도 잘 알아서 여법(如法)허게 해야지, 좋다고 한다고 마구잽이 막하면 반드시 해(害)를 보는 것입니다.


인삼, 녹용이 좋다 하니까 동이로 그놈을 삶아서 막 먹고 혈압이 올라서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요새 몸과 팔다리를 막 흔드는 에어라빅인가 그것 좋다고, 그러면 살이 빠지고 좋다니까, 그 몸이 비대하고 혈압 높은 분이 가서 막 흔들어 대다가 혈압이 막 오르고 해서 허리 아픈 생병(生病)을 얻은 그런 예도 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이 참선법도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러헌 좋은 것이지만, 이것도 방법을 잘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 잘못 허다가는 이것도 또한 얼마든지 병이, 생병이 날 수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이 호흡법도 잘 알아서 하되, 제일 중요헌 것은 ‘무리가 없이 허라’ 이거거든.


숨 한번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8부쯤 들어마셨으면은 일단 딱 정지해 가지고 약 3초 동안을 딱 정지를 했다가 또 조용허게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3~4초 내지 4~5초 조금 길게 시간을 잡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분은, 숨 들어마셨다 잠시 정지했다가 내쉬는 거 합해서 10초 내지 십이삼 초 이런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도 걸어다니다가 왔거나, 달음박질한 뒤끝에는 그렇게 안 됩니다. 그때는 숨이 급허면 급헌 대로, 숨이 짧으면 짧은 대로 하다가 차츰차츰 무리 없이 익혀 나가야지,

그래서 석 달이나 1년, 3년 나가면 이 숨도 차츰차츰 길어져서, 숨 한번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한 20초도 걸리기도 하고 30초도 걸리기도 허는데, 그것도 체질 따라서 숨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체질에 맞추어서—꼭 길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니까, 억지로 길게 늘릴려다가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하시기를 바라고.



이 자세를 바르게 허고, 또 단전호흡을 허는 것은, 참선을 올바르게 해 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기초가 되는 것인 만큼 앉는 자세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그렇지만, 이것도 10분 20분씩 차츰차츰 늘려가고 30분씩 늘려가고 또 나중에 1시간이 되면 더이상은 계속해서 앉을려고 말고, 1시간이 되면은 일어서서 포행(布行)을 헌다든지 다리를 뻗고 다리를 오그리고 또 발목을 돌리는 그러헌 운동을 해서 몸을 좀 풀고 그래 가지고 한 10분간 그렇게 쉬었다가. 그래 가지고 다시 또 앉아서 1시간, 이렇게 해서 2시간을 하신다면 중간에 1시간 (앉은 후)에 쉬는 시간을 갖고.

또 1시간을 헌다면, 중간에 한 30분쯤 해서 한 5분쯤 잠깐 포행을 하고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해서 중간에 그런 포행 시간을 갖고 이렇게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간다면 아무 부작용은 없이 공부는 나날이 익숙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세와 앉는 자세와 호흡을 단전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정식으로 화두(話頭)를 타서—그 화두라 하는 것은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혹 새로 오신 분도 있고 또 나오신 지가 얼마 안 되신 분이 있어서 간단히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 화두라 하는 것은 어떠헌 공부해 나갈 때에 우리의 정신을 갖다가 집중하는데 필요한 어떤 문제라고, 과제라고 이렇게 쉽게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막연허게 이렇게 앉았을 수가 없으니까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생각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러헌 이 화두라 하는 것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개나 되는데, 이 천칠백 가운데에 가장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한 문제를 말씀을 하겠습니다.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이 주둥이는 조그만하고 몸뚱이는 툭 퍼져서 크게 되어 있는 그런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 속에다가 오리 새끼 한 마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오리 새끼가 조그만하니까 그 주둥이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다 물도 넣어 주고 먹이도 넣어 주고 해서 그 오리를 길렀는데, 그 오리가 제법 그 안에서 잘 먹고 잘 커서 애미가 되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리를 꺼내야겠는데, ‘유리병도 깨지 아니하고 오리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서 어떻게 했으면 그 오리를 꺼낼 수가 있느냐?’ 이러헌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헌 문제면 이것이 어릴 때 하는 수수께끼와 비슷헌 건데.

‘어떻게 허면은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어떻게 허면은 유리병도 깨지 아니하고 오리도 다치지 않게 아주 통채 그 오리를 밖으로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처음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를 해답을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병을 깨지 아니하면 오리를 몸을 쪼가리 쪼가리 띠어 내거나, 억지로 철사로 올개미를 넣어 가지고 목아지를 걸어서 잡어당긴다면 몸뚱이가 푹 퍼졌으니 목아지가 떨어져 불 것이고.

도저히 아무리 생각해 봤자, 그 유리를 갖다가 불에다 녹여서 주둥이를 키워 갖고 낸다면 이미 병은 다친 것이 되기 때문에 안 맞을 것이고.

자기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렇게 해서 한 달을 연구허고 1년을 생각해 봤자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허다허다 못해서 지치니까 나중에는 '어떻게 꺼낼 수가 있을까?' 오직 이제는 단순허게 그러헌 의심(疑心)만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앉아서도 '어떻게 허면 꺼낼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꺼낼 수가 있을까?'

밥을 먹을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똥을 눌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차를 탈 때에도 '어떻게 허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까?'

일을 할 때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중에는 잠을 잘 때 꿈에도 그것을 생각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허다가 한 달을 그렇게 생각하고, 두 달을 그렇게 생각하고, 일 년을 그렇게 생각하고, 이태를 생각하다 보면, 나중에는 일부러 그것을 생각헐라고 안 해도 제절로 그냥 그 생각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그 생각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걸 생각하다가도 뭐 다른 일을 보거나 듣거나 하다가 깜박 잊어버리고, 뭘 다른 일 생각하다 잊어버리고, 그런데 나중에는 잊어버렸다 하면 또 퍼뜩 챙겨서 '어떻게 허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허고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허다 보면, 나중에는 챙길라고 안 해도 항시 자나깨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허거나 오직 그 생각 뿐이 될 것입니다.


그 생각만이 되기를 어떻게 되냐 하면은, 칠십 먹은 할머니가 외아들이 여행을 나가 가지고 돌아온다는 날짜가 여러 날이 지냈는데도 돌아오지 아니했을 때에 생각 생각이 아들 생각허듯이 오직 '어떻게 허면은 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석 달 이내에 해결허지 못하면은 너를 사형 언도를 허겠다’ 또는 ‘1년 이내에 이 문제를 해답을 얻어 오지 못하면 너를 갖다가 귀양을 보내겠다’한, 임금님한테 이런 문제가 나와 가지고 생명을 갖다가 걸고서 허게 된다고 헐 때에 얼마만큼 골똘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겠습니까?


이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오리를 꺼내는 이런 문제는 흡사 이것도 공안이지만, 마치 어린이들한테 수수께끼 문제와 같은 그러헌 종류의 공안이지만, 이건 어른들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인데,


여러분에게 그동안에 허던 ‘이 무엇고?’ 화두라든지 또는 ‘무자(無字)’ 화두라든지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같은, 이미 들고 있는 화두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이제부터서는 유리병 속에 오리 꺼내는 화두로 해야겄다, 이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혹 ‘그 참! 재미있다’해 가지고 ‘에잇! 오늘부터서 그것을 해야겄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가 없고,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그 화두(話頭)라고 하는 것이 어떠헌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 해드리기 위해서 내가 그 재미있는 화두를 하나 말씀을 드린 것 뿐이지, 절대로 이 화두를 가지고 오늘부터서 허시면 아니됩니다.


이것이 수수께끼와 같은 재미있는 화두지만, 사량분별로 해결헐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으니까, 수수께끼 풀듯이 이것을 이렇게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고 허는 것은 헛수고에 지내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아시고.(42분26초~61분31초)




(4/5)----------------


그런데 흔히 화두 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를 많이 말씀을 허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이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더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더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허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허는 가운데에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이 하택신회에,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 학자밖에는 못 되겠다’


이 불교(佛敎)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를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너는,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겄다’ 이렇게 점검을 허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허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하! 그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헌 물음에 대해서 꽉! 맥혀서 뭐라고 대답헐 수가 없어 몸을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그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허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꽉 맥혀 가지고 몸 둘 바를 몰라. 그 뒤로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8년 동안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그 생각, 서서도 그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일을 허면서도 그 생각, 똥을 누면서도 그 생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허기를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헐 것이 있느냐?’허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證)헐 것이 없들 않지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꽉!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캄캄하니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때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꽉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그 공부를 옳게 해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허는 것이 아닙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도 그렇고, 마삼근(麻三斤)도 그렇고, 무자(無字) 화두도 그렇고, 시삼마(是甚麼)도 그렇고, 무슨 화두(話頭)를 어느 큰스님한테 탔든지 간에 한번 탔으면 그 화두,

공부가 잘되거나 못되거나, 못될수록에 그 화두 하나에 전력을 쏟을 것이고, 잘된다 하드라도 기쁘다 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지어갈 따름인 것입니다.


꽉 맥혀서 답답허고 알 수가 없지만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것이 없고, 또 그렇게 해 가다 보면 화두가 순일하게 들려서 의심(疑心)이 순일(純一)하게 들린다 하드라도, 화두가 독로(獨露)한다 하드라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기쁜 마음을 내면 이미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기쁜 마음의 마구니가 벌써 침입해 들어온 것이고, 안된다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면 이미 번뇌의 마구니가 내 마음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라. 그래서 이 공부는 잘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도 내서는 아니되고, 잘 안된다고 해서 짜증낼 일도 아닌 것입니다.


다못 단전호흡을 허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러면 숨이 다~ 나가면 배가 홀쪽해지죠. 그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시면은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딱 정지헌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숨을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고... 허지만,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꼭 숨을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됩니다.

들었던 화두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냥 화두는 더 들지 않고, 그 있는 의심을 묵묵히 반조(返照)를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한번 들고서 숨은 3번, 4번, 5번 내지 10번을 쉬어도 그 화두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은 덮치기로 화두를 들지 않다가, 화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거나 딴 생각이 일어났다허면 그때 가서 또 화두를 떠억 한번씩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해 가면, 처음에는 그렇게 들랴고 해도 깜빡한 사이에 달아나 버리고 들면 또 달아나 버리고 하는데, 나중에는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항상 들어져 있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갖다가 공부가 많이 익숙해진 증거인 것입니다.


힘을 쓰지 아니해도 저절로 공부가 되어가니까 힘을 덜게 된다. ‘힘 덜게 되는 것을 득력(得力)이라, 힘을 얻는 것이라’ 이렇게 고인(古人)네들은 표현을 했습니다.


이 공부에 제일 주의헐 것은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 것이며, 설사 공부가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순일허게 잘 들리고 의단이 독로헌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 환희심(歡喜心)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순일허게 잘되어 갈 때에 ‘빨리 깨달랐으면, 이럴 때 누가 나로 하여금 탁! 깨닫게 해줬으면’ 그러헌 생각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잘되어 가게 되면은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떠한 그 신기한 경계(境界)가—혹 환한 빛을 광명을 본다던지, 꿈에 부처님을 친견하고 꿈에 어떤 깨달은 꿈을 꾼다든지, 또는 여러 가지 뭣이 알아진다든지, 그런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환상(幻相)이다’ 생각하고. ‘이거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러헌 그 외람(猥濫)되고 잘못된 생각을 내지 말고.


어떠한 신기한 불보살이 나타나고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허상(虛像)이요, 환상(幻相)이라 하는 것을 미리부터 잘 이해를 허시고,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 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스승을 바로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옳게 해 나가는 것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공부허다가 이런 허상과 환상과 마경(魔境)이 나타나면 이것이 도통(道通)헌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에 기쁜 마음을 내고 그것에 집착을 하고 신경을 써 가지고 영영 사도(邪道)에 빠지고, 까딱하면 정신병자가 되고 하는 예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시작할 때부터서 바르게 시작을 해야 하고, 중간에도 바르게 해 나가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이요 문자역조강(文字亦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인댄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묵조(黙照)는 시귀굴(是鬼窟)이요. 묵묵히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이 귀신의 굴택(窟宅)이요.

문자(文字)는 역조강(亦糟糠)이다. 문자,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다 찌꺼기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허되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허면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는 이것은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해 가지고, 이것은 아무리 평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허드라도 이것은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허드라도 이것은 정법(正法)이 아니고 외도선(外道禪)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經典)이라 하더라도 경전을 우리의 중생 분별심으로 사량분별로 이리저리 따져서 해석을 허고 있다면, 그것은 곡식의 바른 알곡을 먹지를 못하고 그 찌꺼기를 씹고 있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도 그 경전을 바로 읽고 바로 봐서 부처님의 그 참뜻을 옳게 깨달라야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따지고 문자로 그것을 분석해서 그렇게 일생 동안을 경을 읽고 연구를 헌다해도 그것은 찌께기—엿 국 다 뽑아내고 엿기름 찌께기를 그것은 돼지나 주는 것인데 그것을 갖다가—엿 국물은 받아서 구정물 통에 붓어 버리고 그리고 그 엿밥, 찌께기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이면, 그렇다면은 묵조(默照)도 아니오, 문자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종지(宗旨)가 무엇이냐?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것은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 무슨 목적으로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허고 묻는다면은,


방(棒)을 내리기를, 방맹이로 몽둥이질을 허기를 비 쏟아지듯이 몽둥이질을 허리라[棒行如雨滴].

‘그 무슨 공부를 허느냐? 그대가 하는 공부의 지취(旨趣)가 무엇이냐?’고 묻다가 뭇매를 맞게 된다 이것입니다.


어째서 ‘그대의 공부허는 종지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방맹이를 맞게 되느냐?

여러분이 참선을 열심히 허시게 되면 이 뜻을 스스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61분32초~1시간19분45초)




(5/5)----------------


앞으로 머지않아서 약 한 달 뒤에는 음력으로 3월 16일,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겠습니다마는 그날이 일요일입니다. 그날은 우리 용화사 법보재(法寶齋) 날입니다.


법보재 날에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제사를 합동으로 거행하는, 그래 가지고 우리의 이 용화사 법보전에 모셔 있는 여러 영가(靈駕)들과 우주법계에 가득찬 우리의 선망부모의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모다 영혼을 초청을 해서, 다 이 법(法)에 의해서 천도(遷度)를 허는 그러헌 용화사의 큰 연례행사가 거행되는 날입니다.

여기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헐 것도 없고, 설사 여기에 위패를 모시지 아니헌 분도 집안의 모든 영가를 임시 위패라도 모셔서 그날 동참(同參)을 허시면 참 좋고. 또 아직 안 모신 분은 그날 이전에 다 위패를 모셔 놓으면 참 좋은 일이고.


이 만년위패 제도는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마는,

우리의 선망부모나 또는 집안의 비명(非命), 액사(縊死)나 횡사(橫死)를 하신 그런 영가들을 여기 모시고서 조석(朝夕)으로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명절 때마다 차례(茶禮)를 저숫고, 3월 16일이나 또는 칠월 백중날에는 대천도 법요식을 거행을 해서 그 영가를 갖다가 천도하고.


이 용화사가 역사가 있는 한, 이 만년위패 영가들도 같이 이 법당에 모시고서 축원해 드리고, 차례 저숫고, 제사 지내고, 천도해 드리고, 법회 때마다 영가들도 살아 있는 우리와 함께 그 법문을 들으시게 됩니다.


그래서 아까 삼귀의(三歸依)를 하고 거량(擧揚)이라고 허는, 법주(法主)가 요령을 흔들면서 거량이라고 하는 법요식 순서가 있었는데,

그 거량이 뭐냐 하면 이 법당에 계신 영가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멀고 가까운 데에 있는 모든 영혼도 이 법당에 왕림을 해서 같이 법문을 들으실 수 있도록 청혼(請魂)을 하는 것이 바로 이 거량이라 하는 것입니다.


청(請)허지 아니하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청해야 떳떳하게 초대장을 가지고 참석을 허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회 때마다—지금 천여 명 사부대중이 모이셨습니다마는, 눈에 보이지 아니한 우리의 선망부모, 주인이 있는 주인이 없는 모든 영가들도 다 이 자리에 참석을 허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억 대중이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비인(人非人), 모든 그 영가들이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헌 영가들을 위해서 이렇게 법회 때마다 거량을 하고, 또 인연 있는 영가들은 이렇게 법보단에 이렇게 만년위패에 모시고서 항상 마음놓고 법문을 듣고, 마음놓고 축원을 받게 되고,

그래서 천하 없는 원결(怨結)이 있고 원한(怨恨)에 사무친 영가도 이 만년위패에 모시게 되면, 아침마다 축원을 하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그런 영가들도 같이 운감(殞感)을 하게 되고, 또 천도를 받게 되기 때문에 머지않은 세월에 그 원한이 다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한에 사무친 영가는 좋은 곳으로 떠나지를 못합니다. 그 원결에 얽혀 가지고 떠나지를 못하는데, 이렇게 만년위패에 모시고 축원을 해 드리고 항시 좋은 법문을 듣고 허기 때문에 원결이 스르르르 봄눈 녹듯이 다 녹아서 환희한 가운데에 이 도량에 머물러 계시다가, 인연이 도래허면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허시거나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을 허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모시지 못한 분은 속히 위패에 모시도록 하고 돌아오는 5월 5일, 음력 3월 16일에는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참석을 하시고,

많은 분들에게, 그런 비명(非命)에 가신 영가로 인해서 집안이 편안틀 못하고 계속해서 재난이 끊어지지 않는 그러헌 일가친척과 이웃이 계시면은 서로 권고해서 여기에 위패를 모시도록 하고, 법보가족이 되어서 다 같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서, 다 같은 도반(道伴)으로써 도를 닦아서 함께 성불을 허시게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복포사아귀(腹飽思餓鬼)허고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생행락처(人生行樂處)에 세월유수거(歲月流水去)니라

나무~아미타불~


복포사아귀(腹飽思餓鬼)하고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다.

배부르고 등 따실 때에는 아귀(餓鬼)를 생각을 하고. 아귀는 물 한 방울만 먹어도 목구녁이 맥혀서 불이 나고, 밥 한 숟갈만 먹어도 목구녁이 맥혀서 불이 나 타 죽습니다.


그래서 아귀는 어떻게 생겼냐 하면은 목구멍은 머리카락만한 실낱 끝 목아지고, 배는 산등이만 해 가지고 배는 항시 고픈데, 먹으면 목구녁이 실낱 끝 목아지라 아무것도 넘어가지를 않아 목구녁이 맥혀서 타 죽고. 그런데 배는 큰 태산만 해 가지고, 그러니 배부른 때가 없어서 항시 배가 고파.

뭣만 먹었다 하면은, 배가 고파서 먹었다 하면은 목구녁이 콱 맥혀서 불이 나서 죽고, 죽자마자 금방 또 아귀로 태어나서 또 그렇게 해서.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끝 목아지’가 이 아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배부르고 등 따시고 잘살지마는, 도(道)를 닦지 아니하고 그럭저럭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속에 빠져 가지고 이렇게 살다가는 머지않아서 아귀가 될 것이다’하는 것을 생각을 허라 그말이여.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요. 몸이 편안할 때에는 그 편안한 데에 빠져 가지고 그렇게 지내지 말고, 지옥고(地獄苦) 받을 일을 생각을 허라 그말이여.

우선 잘 먹으니까 배가 부르나 지옥에 갈 것이 두렵고, 우선 몸이 편안해서 좋기는 좋으나 그럭저럭 이렇게 편안히 살다가는 지옥에 갈 것을 한번 생각해 봐라 이거거든.


인생행락처(人生行樂處). 인생으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고 그렇게 이럭저럭 즐겁게 지내다가는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아서 눈 한번 감아 버리면,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세(來世)다 그말이여. 내세에 지옥 아니면은 아귀도에 떨어질 것을 생각을 하라.


고인(古人)이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탐진치 삼독에 얽혀서 배불리 먹고 등 따시게 자고 편안히 살다가 어언간(於焉間)에 지옥이나 아귀도에 떨어질 것을 경계(警戒)해서 읊어 주시는 게송이었습니다.(1시간19분46초~1시간31분12초)(끝)




----------------(1/5)


*(게송)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 ; 『청허당집(淸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71 ‘상추(賞秋)’ 참고.

*(게송)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71 ‘박상사(朴上舍)의 초당(草堂)’ 참고.

*묘체(妙體) ; 묘한 진리의 체(體).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개금(改金)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

*저순다 ; '다지다(굳고 튼튼하게 하다)'의 사투리.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음역어는 ‘실다(悉多)’ ‘실달(悉達)’ ‘실달다(悉達多)’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유유자적(悠悠自適 멀·한가로이 유/스스로 자/가다·즐기다·專一하다 적)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한가로이[悠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自適].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총력(聰力) ;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계율(戒律)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

계는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의 뜻으로 모든 불자가 지켜야 할 불교도덕이며, 율은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깨달음의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의 통제 규범.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2/5)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유자재(自由自在 스스로·저절로 자/말미암을 유/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인 것.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단기(短氣) ;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고 조급함.

*영판 ; 아주.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왕림(枉臨 굽다굽히다 왕/임할 림) ; 남이 자기가 있는 곳(집이 낮고 작아 몸을 굽혀야[枉] 들어올 수 있는[臨])으로 찾아오는 것을 높여 이르는 말. 스스로는, 남이 자기가 있는 곳(집이 낮고 작아 몸을 굽혀야[枉] 들어올 수 있는[臨])으로 오는 것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3/5)


*횡격막(橫膈膜) ; 포유류의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막. 수축과 이완에 따라 위아래로운동을 하여 폐의 호흡 작용을 돕는다.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4/5)


*임제, 육조, 하택신회, 남악회향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동용(動用) ;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씀[用]. 움직이고 작용함. 활동. 동용(動容)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회(86.08.03)에서.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33분18초~35분)

*지해종사(知解宗師)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를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벼람박 ; ‘바람벽(--壁,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벽)’의 사투리.

*마삼근 (麻三斤) : 화두의 하나。『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하였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반조(返照) ; 돌이켜 살펴보는 것.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환상(幻相) ; 실체가 없는 무상한 형상.

*외람되다(猥濫-- 함부로·외람할 외/함부로·넘치다 람) ; (언행이나 생각이)분에 넘치는 데가 있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게송)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 ; 『청허당집(淸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게송 참고.

*굴택(窟宅) ; 거처, 집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가로판 p99~100)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엿 국물(엿물) ;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에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 맛이 달고 끈적끈적하다. 엿 국물을 고아 굳힌 것이 우리가 보통 먹는 ‘엿’이다.

*엿밥 ; 엿을 만들 때 엿물을 짜내고 남은 밥찌끼.

*종지(宗旨 근원 종/뜻 지) ; ①종문(宗門, 종파宗派)의 교의(敎義 어떤 종교의 진리로서 공인된 가르침)의 취지(趣旨 긴요한 뜻). ②주장이 되는 요지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지취(旨趣 뜻 지/뜻 취) ; ①어떤 일에 대한 깊은 맛. 또는 그 일에 깃들여 있는 묘한 뜻. ②취지(趣旨 어떤 일에 대한 기본적인 목적이나 의도).




----------------(5/5)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現 대웅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삼귀의(三歸依) ;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몸과 마음을 바쳐 믿고 의지함.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을 말함.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르는 일. 법요식의 순서로서 설법하기 전에, 법회를 하는 법당에 계신 영가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멀고 가까운 데에 있는 모든 영혼도 이 법회를 하는 법당에 왕림을 해서 같이 법문을 들으실 수 있도록 청혼(請魂)을 하는 것.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청혼(請魂) ; 설법할 때에,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를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같은 말)거량(擧揚).

*인비인(人非人) ; ①인(人)은 사람, 비인(非人)은 팔부중(八部衆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여덟 신神—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 귀신 · 축생 등을 말함. ②긴나라(緊那羅) : 의인(疑人) · 인비인(人非人)이라 번역.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노래하고 춤추는 신神으로 형상은 사람인지 아닌지 애매하다고 함.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운감(殞感) ; 제사를 지낼 때에, 차려놓은 음식을 영가(靈駕 돌아가신 이의 영혼)가 와서 맛을 봄.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人道]로 다시[還] 태어남[生].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게송) ‘복포사아귀(腹飽思餓鬼)~’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43 ‘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게송 참고. p57 ‘탄서(歎逝)’ 게송 참고.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어언간(於焉間) ;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경계(警戒) ; ①뜻밖의 사고나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여 단속함. ②잘못이 없도록 미리 타일러서 주의하게 함.




[법문 내용]


(게송)滿山紅綠皆妙體 流水山鳥亦說法 春日快晴春睡足 臥聽山鳥百般聲 / 참선의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 / 우리는 이 불법을 만난 김에 기어코 깨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참선의 공덕(功德), 참선의 효과, ‘참선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 -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좌선 시간 / 화두(話頭)란 무엇인가? / <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화두>


‘이뭣고?’ 화두는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 육조 스님, 하택신회, 남악회양 / 단전호흡과 의심, 득력(得力) / 경계에 속지 말아야 / (게송)黙照是鬼窟 文字亦糟糠 若問解何宗 棒行如雨滴 / 만년위패 제도 설명 / (게송)腹飽思餓鬼 身安念地獄 人生行樂處 歲月流水去.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이 사시절(四時節)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고,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시고 미륵불이 또 출세하신 모습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쉴 사이 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 모습이지마는,

나를 깨닫지 못한 중생의 경지에서는 이 1초 1초와 이 세월의 춘하추동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그러한 상황에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깨달은 부처님이나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이나 똑같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달은 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극락세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를 갖다가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는데,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루하루 지내는 것을 마치 사형 언도 집행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불법(佛法)은 바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와 하나가 되는 것이여.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법인 것입니다.

산에 봄이 오면 붉고 누런 꽃이 피고 파란 잎이 피고 한 것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면은 그러한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에 출현하신 모습이요, 흐르는 물,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화엄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진 의원과 같고 또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아서, 약을 일러주면 환자 자신이 그 약을 잘 먹으면 병을 낫을 것이요. 길을 일러주면 그 일러주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거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진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 대신해서 그 약을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리 안내를 잘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걸어가야지, 본인이 걸어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선법은 경을 가르키지 아니하고, 경을 외우게 하지 아니하고, 경을 해설을 해 드리지 아니하면서 언제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 말할 줄 알고, 생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놈을 돌이켜 찾으라 이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 공부에 제일 주의헐 것은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 것이며, 설사 공부가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순일허게 잘 들리고 의단이 독로헌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 환희심(歡喜心)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순일허게 잘되어 갈 때에 ‘빨리 깨달랐으면, 이럴 때 누가 나로 하여금 탁! 깨닫게 해줬으면’ 그러헌 생각도 내지 말 것이다.


어떠한 신기한 불보살이 나타나고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허상(虛像)이요, 환상(幻相)이라 하는 것을 미리부터 잘 이해를 허시고,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 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고 그렇게 이럭저럭 즐겁게 지내다가는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아서 눈 한번 감아 버리면,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세(來世)다 그말이여. 내세에 지옥 아니면은 아귀도에 떨어질 것을 생각을 하라.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18. 4. 10. 10:00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62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는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오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길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는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오.

봄바람 한(限)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일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이 엄동설한(嚴冬雪寒)과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그 아름다운 향내가 온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 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參禪)만을 하지, 왜 신수기도를 할까?’ 혹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根機)따라서 소승법 · 중승법 · 대승법 · 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그 진리와 계합(契合)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業)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도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 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이 법당에, 부처님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에 영가(靈駕)의 위패(位牌)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산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또 기도 문(門)을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 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에 돌아와서 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도를 닦을 수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년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업(業)—주로 악업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년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밥 한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와 백체(百體)가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와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한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무를 가꾸려 할 때에 그 뿌리를 잘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그 나무는 잘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채, 아무리 그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그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일—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안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업(業)을 짓지 않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그 마음의 발로(發露)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때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그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해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그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그 바로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 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설(說)해 오신 이 활구참선법.


이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을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그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이 말씀을 하셨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가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이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이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한 집안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왜 사유축(巳酉丑)생이 그렇게 되고 그다음에는 또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술가(術家)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謹愼)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 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또 출근을 해야겠고, 또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參究)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분40초)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그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잘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또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은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잘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은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은 ‘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저것은 좋은 일이다, 저것은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分上)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아하,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



이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일 년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게 됩니다마는, 될 수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될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를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이 7일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이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이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저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그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할 것입니다. 일행이 두 사람 내지 열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도량(道場)에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을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그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그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될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그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는 말은 ‘말을 함부로 해 가지고 그 말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을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가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의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잘 지키기를 병마개 꽉 틀어막듯이 할 것이다.


꽉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그 음식을 한 끼니쯤 안 먹는 것이 낫고, 말을 해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할 때와 안 먹어야 할 것,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아니 해야 할 때를 잘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말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가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이 말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병(病)과 시비(是非)가 바로 이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역사(歷史)가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또 복을 짓기도 한 것입니다.


음식을 잘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될 것이고,

꼭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간에, 해야 할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그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20분40초~41분23초)




(3/3)----------------


이 삼재(三災)는 아까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그 구녕은 바로 코 밑에 있는 그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문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잘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이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될 것이며, 나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을 잘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눈에 어떤 형상이 딱!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그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올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그 한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 저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 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아!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그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 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또 비약을 해 가지고, 또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또 그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또 그 가지에 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러한 식으로 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때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그렇게 해서,

선(善) · 악(惡) · 무기(無記)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거기서 이리저리 솜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설켜 가지고 그것이 또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더 무서운 업(業)을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또 그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가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탁! 귀에 거슬리는 바로 그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몸이 아파도 ‘이뭣고?’ 속이 상해도 ‘이뭣고?’ 배가 고파도 ‘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할 때 맨 처음에 ‘이-’ 소리부터 하는데 『‘이-’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이’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 나간다면, 그 한 생각 한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그 근원에서 딱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그 근본(根本)을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가 있어야 해.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이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해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잘 안되고, 영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정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해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그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이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딴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해 나가면,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더 지혜롭게 더 알뜰하게 화두를 잘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해 나가면,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 삼재(三災)를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범심불식성하구(凡心不息聖何求)리요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甌)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리오

나무~아미타불~


범심(凡心)을 불식(不息)하면 성하구(聖何求)리오.

무릇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범부(凡夫)의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어찌 성과(聖果)를, 성현(聖賢)을 구하리오. 어찌 깨닫기를 바랄 수가 있으리오.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甌)로구나. 공양이 끝나고 산다(山茶), 차 한 잔을 마심이로다.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꽃이 지고 꽃이 피고 한 것을 시절(時節)에다 맡겨 버려.

꽃이 피면 핀 대로, 꽃이 지면 진 대로, 세상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영욕득실(榮辱得失)에 그냥 거기에 맡긴다 그말이여.


거기에 맡겨 두고 나는 내 마음 닦아가는 나의 근본 문제를 충실히 해 나가면,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냐. 어찌 세상에 몇 번이나 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하는 것을 알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의 근본사(根本事)를 방치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고, 꽃 피면 핀다고 거기에 굴림을 받고, 꽃이 지면 진다고 거기에 휘둘림을 받고, 무엇이 흥하면 흥한 데에 휩쓸리고, 무엇이 망하면 망한 데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어찌 참다운 인생이라 할 수 있으리오.


흥망성쇠와 꽃이 피고 지는 데에 일임(一任)해 버리고, 나의 본분사(本分事)에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고 했거늘, 오늘 신수기도 입재를 향해서 본의 아니게 재앙의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41분25초~61분46초)(끝)




----------------(1/3)


*(게송) ‘불불산향만로비~’ ;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 ‘유산(遊山)’ 공안에 대한 삽계익(霅溪益)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1 참고.

鸝(려,여)꾀꼬리,(리,이)꾀꼬리, 鵹와 동자(同字).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계합(契合 맺을 계, 합할 합)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 ‘갈마(羯磨)’이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지엽적(枝葉的) ; 사물이나 사건 따위에서 본질적이 아니라 부차적인 부분에 속하거나 관계된 것.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것. 달과 해, 겨울과 여름, 북과 남,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오행(五行) ;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를 이른다.

*술가(術家) ; 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송(讀誦) ; 소리를 내어 경(經)을 읽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2/3)


*육적(六賊)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여섯 도적들과 같다’는 뜻이다. (=육진六塵=육경六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6 참고.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본래신(本來身) ; 진여불성(眞如佛性).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되풀이되다 ; (같은 말이나 일이)반복되어 행해지다.

*그릇 ; ①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게. ②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게. ③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단명보(短命報) ; 사람이 생명이 짧은 과보(果報).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동서고금(東西古今) ;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를 아울러 이르는 말.




----------------(3/3)


*구녕, 구녁 ; ‘구멍’의 사투리.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성(三性) ; 모든 현상의 성질을 윤리적 측면에서 선(善), 악(惡), 무기(無記)로 나눈 것.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악(惡) ; 산스크리트어 pāpa 올바르지도 청정하지도 않아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르지 않음.

무기(無記) ; 산스크리트어 avyākṛta 선도 악도 아닌 것. 또는 그러한 마음 상태.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재삼(再三) ; 두세 번. 또는 몇 번씩. ‘거듭’, ‘여러 번’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오매(寤寐 잠이 깰 오/잠잘 매)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게송) ‘범심불식성하구~’ ; 법진일(法眞一)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1](동국역경원刊) p253 참고.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때.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영욕(榮辱 영화 영/욕될 욕)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과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득실(得失 얻을 득/잃을 실)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근본사(根本事) ; 참선법을 통해 내가 나를 깨달아 생사해탈을 하는 일.

*일임(一任) ; 모두 다 맡김.

*본분사(本分事) ; ①본분(本分)을 깨우치는 일[事]. 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本來)의 신분(身分)으로 되돌아가는 일[事].

납승(衲僧 참선 수행승)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일이므로 납승본분사(衲僧本分事) 또는 납승분상사(衲僧分上事) 등이라고도 한다. 일대사(一大事)와 같은 말.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풍파(風波) ; ①세찬 바람과 거센 물결. ②심한 분쟁이나 분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세상살이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요 내용]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마음의 틈으로 삼재가 들어온다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識神)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本來身)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 (게송)범심불식성하구~ / 모두 인연에 맡겨버리고 나의 본분사에 충실하는 것이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




[주요 문구]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을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그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이 말씀을 하셨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도(道)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병(病)과 시비(是非)가 바로 이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17. 2. 26. 15:35

(No.251)—1984년 12월 첫째일요법회(84.12.02) (78분)

 

 

(1/4) 약 20분.

 

(2/4) 약 21분.

 

(3/4) 약 20분.

 

(4/4) 약 18분.

 

 

(1/4)----------------

 

풍우황엽락(風雨黃葉落)한데  난지상설한(亂枝霜雪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천모불각(秋天暮不覺)한데  청산백운외(靑山白雲外)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우황엽락(風雨黃葉落)헌데, 바람이 불고 비가 온 뒤에 누런 이파리가 떨어지는데,

난지상설한(亂枝霜雪寒)이로구나. 이리저리 얽혀서 어지러운 가지에는 서리와 눈이 차웁더라.

 

추천모불각(秋天暮不覺)한데 청산백운외(靑山白雲外)여. 가을 하늘은 모르는 결에 저물어 가는데 청산은 백운 밖에 있구나.

 

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한참 단풍이 불타듯 아름답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느덧 소설(小雪) · 대설(大雪)이 닥쳤습니다. 아름답던 단풍은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찬바람 속에 울부짖고 있는 때가 돌아왔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평생을 이 강산에 살면서 그러헌 상황을 보고 지내지만 모르는 사람은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지고, 겨울이 오면은 눈이 내리고 다못 으레이 계절 따라서 그러한 것으로 알고, 봄에 등산 가고 가을에도 단풍놀이 가고 그저 그러한 정도로 지나치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계절 따라서 산천의 모든 경계가 변화한 그 아무렇지도 않는 평범한 그런 상황이 우리가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하고 그 도리를 알기 위해서 목숨 바쳐서 도(道)를 닦고 있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조금도 숨김없이 여지없이 그 도리를 자연이 설파하고 있는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오늘은 금년 마지막 12월 일요 법회날이면서 가사불사(袈裟佛事) 회향(廻向) 법요식을 겸해서 거행하는 날입니다.

그동안에 가사불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장애없이 여러 신남신녀와 비구 비구니, 사부대중이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가사불사를 원만히 마쳤습니다. 진즉 마쳤지만 일은 끝났지마는 그 회향 법요식을 오늘 이 일요 법회와 아울러서 거행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앞에 탁자 위에 봉안되어 있는 가사를 백 령(百領), 보통 백 바탕이라 이렇게도 말합니다마는, 백 령의 가사를 조성해 모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가사는 다섯 가지 덕이 있고 열 가지 이익이 있어서, 크게 추려서 말한다면 5덕과 10가지 이익이 있다 하지만, 미세하게 자상하게 말한다면은 입으로 다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원(元)나라 시대, 원나라 시대면 우리나라 고려 시대가 되겠습니다마는, 그 원나라 순제(順帝)라고 하는 그 원 순제 천자에게 한 공주가 있었는데 그 공주는 참 절세(絶世)의 미인이었었고 행실이 아름다웠었고 학덕이 높았었고 그러한 훌륭한 공주가 있었는데, 조정(朝廷)에서나 항간(巷間)의 민간들이나 본 사람 안 본 사람 할 것없이 그 공주의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상한 공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서, 누구든지 한 번만 보면 그 공주를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참 훌륭했었던 것입니다.

 

마치 그 조정의 젊은 관리 한 사람이 궁정에서 거닐고 있는 공주의 모습을 잠깐 보고서 완전히 아주 매혹이 되어가지고 자나깨나 공주의 그 삼삼한 얼굴과 거동이 잊을 수가 없어서 너무너무 혼자 짝사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부모한테도 말하지 아니하고 혼자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차츰차츰 밥을 잘 못 먹게 되고 잠을 잘 못 자게 되니까 살이 빠지고 몸이 수척해졌던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대관절 네가 무슨 걱정이 있어서 그렇게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그렇게 살이 빠지느냐?”

처음에는 말을 안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점점 세월이 지나가다 보니까 출근도 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되어서 앓아 눕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주마마에 자기를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있는 그런 사람으로 감히 공주를 넘나본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냈다가는 삼족(三族)을 갖다가 멸망을 당할런지도 모를 그러한 처지라, 어머니로서도 “그 공주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 이렇게 위안을 했지만 별 수가 없고 “그 여자 아니라도 너한테 적합한 여인이 이 천하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쨌든지 마음을 돌리라”고 달래고 꾸짖고 했지만 마침내 굶고 잠을 못 자고 하니까, 나중에는 헛소리를 하다가 결국은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었는데, 죽으면서 ‘이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 몸을 바꾸어서라도 기어코 그를 사랑하리라’ 하는 그러한 깊은 한을 품고서 그 젊은 사람은 죽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주는 그런 까닭도 전혀 모르죠. 그런 까닭도 모르는 사이에 있는데 하룻날은 낮에 곤해서 낮잠을 한숨 침대에서 자다가 몸이 이상하고 아랫도리로 배로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까, 아! 이상하다 그 말이여. 손으로 아랫배로 고리 더듬어 보니까, 무엇이 미끈덩 하는데 깜짝 놀랬다 그 말이여.

팔뚝만한 구렁이란 놈이 몸을 칭칭 틀어감고 그래 가지고 꼬리를 갖다가 두 다리 사이에다가 딱 꽂아 놓고는, 아! 그러고 구렁이란 놈이 있다. 기절을 해 가지고 고함을 질렀는데, 그 황후가 그 소리를 듣고 와서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러니 이것을 널리 소문을 낼 수도 없고 그래서 아주 믿을만한 하인을 불러다가 뱀을 갖다가 모가지를 잡어서 띨라고 하니 떨어지들 않어. 그래서 간신히 모가지를 졸라매 가지고는 억지로 그냥 생껍데기를 베끼다시피 해서 그냥 그놈을 띠어서 저 멀리 갖다가 던져 버렸는데, 금방 그놈이 그 이튿날이면 또 기어와 가지고 또 틀어 감고, 또 띠어내면 또...

하다 하다 못해서 그놈을 아주 짤라 가지고는 불에다 태워서 버렸는데도 며칠 안 있으면 도로 딴 놈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금방 죽어 가지고 원한에 사무쳐서 그것이 업(業)으로 태어난 경우는 금방 시간이 걸리지 않고 그렇게 커 버리는 것입니다.

 

 

옛날에 운광 법사라 하는 법사는 법문을 하면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지고, 어떻게 법문을 잘하던지 바윗돌도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바윗돌도 머리를 끄떡끄떡 할 정도로 그렇게 참 설법을 잘하고 훌륭한 운광 법사라는 법사 스님이 있었는데,

그 운광 법사가 법문을 하시기를 “시주(施主)것을 많이 받어 먹고, 많이 입고 해서 도를 이루지 못하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소가 되어서 그 빚을 갚게 되느니라. 그러니 죽어서 소가 되지 말기 위해서는, 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쨌든지 밤낮을 가리지 말고 열심히 도를 닦어라” 이러한 요지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그 법문을 듣고 어떤 스님이 묻기를 “그러면은 운광 큰스님께서는 소가 되지 아니할 자신이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까, “능히 (시주것을) 녹일 수가 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운광 법사가 죽어 가지고 죽자마자 큰 황소로 몸을 받아났는데, 그래 가지고 황소가 되었는데, 그 운광 법사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북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큰 절에 가면 큰 소가죽으로 만든 북을 보셨을 것입니다마는, 최초에 절에다가 북을 매달게 된 최초의 역사는 운광 법사가 소가 된 그 소가죽으로 만들은 것이 시초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새벽에 예불할 때는 종을 치고 또 북을 쳐서 ‘운광 법사와 같은 그러한 설법을 잘하고 계행이 청정하고 훌륭한 그런 큰스님도 죽어서 소가 되었는데, 대중들은 어서 정신을 차려서 정진을 하라’ 하는 그런 뜻으로 북을 치는데.

 

그래서 어째서 운광 법사와 같은 그러한 큰스님이 죽어서 소를 받았겠느냐?

“스님도 능히 그 시주 빚을 녹일 수가 있습니까?” 하니까 “능히 녹일 수가 있다. 능소(能消)! 능소!” 했는데 ‘어떻게 해서 소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공안(公案)의 하나입니다마는.

 

업으로 받아난 몸뚱이는 금방 태어나고, 그놈을 또 없애도 금방 또 태어나고 그런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태어나면은, 그놈을 갖다가 하룻밤 사이에 만 번을 죽였다 만 번을 살렸다 그러거든.

몸을 톱으로 머리 꼭대기에서 밑으로 썰어 내리기도 하고, 큰 돌 위에다가 수십 명 씩을 갖다가 뉘어놓고 큰 돌로 위에서 탁 눌러서 그렇게도 죽이기도 하고, 콩나물을 넣어서 맷돌에다 갈듯이 수십 명 씩을 한목 큰 맷돌에다 넣어 가지고 들들들 갈아서 그렇게 죽이기도 하고, 또 칼날, 바늘 칼산이 있는 데다가 옷을 발가벗겨서 내굴리기도 하고.

 

그러한 참혹하고 이야기조차도 할 수 없을 그런 무서운 벌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죽으면 금방 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태어나면 또 죽이고, 또 태어나면 또 죽이고—사람이 태어나면 한 10년 크고, 한 20년 커야 겨우 사람 구실을 하는데, 업으로 태어난 몸뚱이는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푹 커 버리고 푹 커 버리고 그러거든.

 

그래서 이 뱀을 갖다가 죽여 버리면 또 와서 그러고, 죽여 놓으면 새로 금방 또 생겨나 가지고 또 와서 틀어 감고, 그래서 처음에는 극비밀리에 그것을 띠어다 버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는데 워낙 자주 그래 놓으니 차츰차츰...

그 비밀이라 하는 것은 사람은 속에다 두고 말을 안 하면은 병이 나는 법이라, 결국은 소곤소곤 아는 사람한테만 극비밀로 귓속말한 것이 차츰차츰 번져 가지고 온 조정이 다 알게 되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다 알게 되고 온 항간에 그 소문이 좌악 번져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중국 천지에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비밀도 무엇도 없고, 인제는 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니까, 약을 먹어도 소용없고, 뱀한테 독약을 발라도 소용없고, 짤라내도 소용이 없다 그 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거지 복색(服色)을 하고 강산 유람을 나섰던 것입니다.(처음~19분27초)

 

 

 

 

 

(2/4)----------------

 

황하를 몇 번을 건너고, 양자강을 몇 번을 건너면서, 중국 저 북쪽으로부터서 저 남해와 동쪽 서쪽을 가릴 것 없이 방방곡곡이 거지로 당기면서 얻어먹고 댕기다가 인제 중국도 갈만한 데는 다 가고 나니까 다시 인제 한국에까지 왔던 것입니다.

고려, 한국에까지 왔는데, 그러다 보니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어디에 도달을 했느냐 하면은 춘천에까지 왔어. 춘천에 여러분이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거기에 청평강이라 하는 큰 강이—지금 댐을 여러 개를 막고 그랬는데, 그 청평강을 갖다가 건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걸 인제 건너 가지고 가니까 청평사(淸平寺)라 하는 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절 가까이 왔으니 한번 부처님께 절이나 하고 와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데, 아! 사람들이 자꾸 그 절로 들어가고 오고 들어가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절에서 무슨 좋은 행사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한다” 그러거든.

“그럼 내가 가사불사를 하는 데를 구경을 해야겠다” 그러고는, 그러니 뱀에 몸에 틀어 감긴 채 거길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뱀 보고 “너, 여기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면 내가 가서 부처님께 절도 하고 가사불사를 하는 것을 구경을 하고 올테니 여기 좀 있어라”

 

처음에 갈려고... 떨어지지 아니하니까, 10년을 단 한번도 떨어진 일이 없으니까, 그냥 갈려고 하니까 몸뚱이를 감고 있는 뱀이 막 요동을 부리면서 막 반대를 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왜 그러냐? 네가 그렇게 가기 싫어서 그런다면은 나만이라도 잠깐 갔다 올테니까 여기 있거라. 내가 도망가 봤자 어디를 도망가겠냐? 나는 인제 너하고 10년을 살아왔으니 너를 띠어 내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런 생각도 없으니까, 차마 너같은 흉한 몸뚱이를 몸에다가 감고 부처님한테 내가 갈 수가 있느냐? 그러니 너, 여기에 바위에 가만히 좀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을 했던지 구렁이가 스르르르 하니 풀어졌단 말이어. 풀어져 가지고 그 바위 위에 의지해서 또아리를 틀고서 가만히 있는데.

 

그래서 인제 그 공주는 그 강가에서—그 10년 동안을 거지로 돌아댕겼으니 눈만 빠끔하지, 도대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되었는데, 그래도 부처님한테 간답시고 거기서 옷을 벗고 머리도 좀 씻고 손도 씻고 얼굴도 씻고 발도 씻고, 옷은 남루하지마는 그렇게 하고서 인자 청평사를 떠억 들어가니까.

그때 스님네랑 모다 다, 전부 다 공양 시간이 되어서 다 공양을 하러 가고. 또 한 방이 비어 있는데 거기를 보니까 비단천을 온 방에다가 가득 널어 놓고 쪼가리 쪼가리 해서 바느질을 하고 뭐 다리미질을 하고 그러다가 잠시 빈 틈인데.

 

아! 이 공주가 들어가 가지고는, 그 하도 옛날 10년 전에 공주로 있을 때 입어 보던 비단, 그때 보고서 10년을 보지 못한 아름다운 빨간 비단을 보니까 울적하니 고향 생각이 나고, 부모 생각이 나고, 옛날에 그 화려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그 거지 주제에 방에 들어가 가지고 그걸 만져 보았단 말이어. 만져 보면서 그 바느질하던 실이 거기 고대로 바늘에 실이 꽂혀 있으니까, 자기도 고대로 몇 땀을 떠 보고 그랬단 말이어.

그러다가 아! 가사하는 편수 스님이 와서 보더니, “웬 거지가 여기 신성한 가사당(袈裟幢)에 들어와 가지고 이런 걸 만지느냐?”고 혼구녁을 내서 그냥 “나가라!”고. 그 통에 그냥 나왔다 그 말이여.

 

쫓겨나와 가지고는 눈물이 글썽글썽 해 가지고 부처님께 또 절을 하고서 그리고서 인자 일주문을 막 나올라고 하니까, 시커먼 먹구름이 일더니 뇌성벽력(雷聲霹靂)을 해 가지고 그냥 벼락을 치는데, 아주 눈앞이 그냥 번쩍하니 아주...

아! 그래서 비가 갤 때까지 일주문에서 따악 기다리고 있다가 비가 갠 다음에 아까 뱀과 이별했던 그 바위 있는 데로 가 보니까 바위가 산산이 부서졌는데, 아! 구렁이도 그냥 도막도막 시커멓게 타서 죽어버렸다 그 말이여.

 

‘참 이상하다 이거. 그렇게 띠어 내버릴려고 해도 안 떨어지고, 그렇게 죽여서 버려도 소용이 없더니 오늘은 어떻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가지고 그 구렁이를 갖다가 박살을 냈다’ 이걸 생각해 보니까 ‘틀림없이 이것은 부처님 가피력(加被力)이다’ 이리 생각을 하고 그길로 다부 돌아와서 부처님께 무수 백 배 천 배 절을 하고서,

‘내가 부처님께 이러한 참 은혜를 입었으니 내가 이런 몸으로 다시 고향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차라리 이 고려 땅에서 사는데, 기왕이면 절에서 공양주도 하고 채공도 하고 하면서 일생을 이렇게 마쳐야지 내가 구렁이에 감겨서, '상사(相思)뱀'한테 감겨서 살은 공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그 주지 스님한테 부탁을 해서 “내가 여기서 공양주(供養主)라도 하면서 여기서 살 수가 없겠습니까? 염불하면서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거지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하고 처음에는 아주 상대도 안 하더니 몇 번을 간청을 하고 말 안 들으면 또 부처님께 가서 절을 하고 와서 또 그러고 또 그러고 하면서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주욱 얘기하니까, 아! 주지 스님이 그 말을 듣고 감동이 되었던지 “그러면 여기서 염불도 하고 공양주를 하면서 대중시봉(大衆侍奉)도 하면서 여기 좀 있어 보라”고.

그래서 인자 본격적으로 목욕을 하고 옷을 주어서 옷을 갈아입고 그래 가지고 일심전력(一心專力)으로 공양주를 하고 채공(菜供)도 하고 나물도 가꾸고 해서 몇 달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절에서는 가사불사도 그럭저럭 끝나고 난 다음에 대중공사(大衆公事)를 해서 여러 스님네를 다 큰방에 오시라 해 가지고 “인자 가사불사도 끝나고 했으니 우리가 대웅전을 중수(重修)를 해야겠는데 대웅전을 중수할라면은 어느 스님이 자원을 해서 화주를 해서...’

전국에 인연 따라서 시주금을 갖다가 모집하는 그런 책임을 화주(化主)라 그러는데 “화주를 누가 자원을 하라” 그러니까, 서로서로 “나는 자신이 없어 못하겠다” 서로서로 안 할려고 뒤꽁무니를 빼.

 

그 말을 문밖에서 듣고서 그 공주가 “그 화주는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하니까 “어떻게 그런 책임을 할 수가 있겠느냐?” 처음에는 가당찮게 생각을 했지마는 하도 간곡히 “나한테 일임(一壬)만 해 주신다면은 내가 한번 해보겠다”

 

그래서 그 공주가 편지 두 장을 써 가지고 하나는 춘천 부사한테 보내고, 하나는 강원 감사한테 보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나 하면은 ‘자기는 저 원나라 공주로서 한국에까지 왔다가 지금 이렇게 이 절에, 청평사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법당을 갖다가 이번에 중수를 하게 되었으니 어쨌든지 춘천 부사와 강원 감사가 여기에 적극 협조를 해주셔야겠다’ 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니까, 편지를 받자마자 즉각 감사와 부사가 부하를 거느리고 그 청평사에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나라 조정에서 기별이 오기를 ‘공주가 혹 고려 땅에 건너갔을런지 모르니 자세히 봐 가지고 찾아서 잘 좀 보호를 해 달라’고 그런 요청이 있었는데 전혀 소식을 모르다가 이렇게 알았다고 그렇게 반갑게 와서 인사를 하고서. 그래서 감사가 조정에까지 또 보고를 해 가지고 그 엄청나고 거창한 불사를 원만하게 마쳐서 6·25 전까지도 그 절이 죽 유지를 해 오다가 6·25동란 때 그게 타버렸습니다. 타버리고 난 뒤에 또 그 절을 중수를 했다고 그럽니다.

 

여러분이 혹 청평댐이나 거기를 가실 기회가 있으면은 그 청평사란 절을 한번 찾아가 보시고, 그러한 가사불사와 유래가 있는 상사뱀의 전설이 있는 곳을 한번 찾아가 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를 들었습니다마는 이러한 원나라 공주의 일화뿐만이 아니라, 가사불사는 수없이 그런 일화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화경(悲華經)』이라는 경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저 옛날 보장불(寶藏佛) 부처님 앞에 서약을 하시기를 “제가 만약에 성불한 날에는 그때 성불한 뒤에 내가 입고 나의 제자들이 입는 그 가사불사에 동참을 한 사람이나, 그 가사를 입는 사람이나, 그 가사를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5가지 공덕이 있게 되기를 서약합니다”

아미타불도 법장비구(法藏比丘)라 하는 스님으로 있을 때, 마흔여덟 가지에 대한 원[四十八願]을 세워서 ‘내가 48가지의 원을 성취할 수 있기 전에는 성불(成佛)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원을 세우고 도를 닦아서 결국은 48가지의 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되어서 성불하시게 된 것입니다.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도 보장불 앞에 서약을 하시기를 “(첫째) 누구라도 가사를 일념으로 존중히 여기면, 어떠한 중한 죄를 지은 비구 · 비구니나 우바새 · 우바이도 그 죄가 소멸이 되고 삼승(三乘)의 도를 성취할 수기(授記)를 받게 하여지이다.

 

또 둘째는 하늘나라의 천룡이나 또는 사람이나 귀신도 조그만큼이라도 가사를 존중히 여기면, 삼승법(三乘法)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또 셋째는 어떤 귀신이나 모든 사람들도 가사불사하고 남은 조그만한 쪼가리 하나라도 몸에 지니게 되면은 그 사람은 평생 동안 음식에 배고픈 일이 없게 하여지이다. ‘고생고생해도 배고픈 고통만큼 큰 고통은 없다’고 그러는데, 이 가사 쪼가리 조그만한 것 하나만 몸에 지녀도,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고 살더라도 배고픈 고통을 면케 한다.

 

넷째는 중생과 중생이 서로 원한이 있어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 어긋났을 때, 부모 형제간이나 친구 간이나, 또 상관과 부하 관계나, 누구라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어긋나 가지고 좋지 않을 때도 이 가사를 생각만 해도 자비심이 일어나게 되어지이다.

 

또 다섯째는 전쟁터에서 서로 싸울 때에 이 가사의 조그만한 쪼가리 하나만 가지고 있거나 또 가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존중한 마음을 가지면 항상 싸움을 하면 이기게 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서도 자기 몸을 잘 보존을 할 수가 있게 하여지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조항에 대해서 보장불 앞에 맹서(盟誓)를 하셨는데, 과연 석가모니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사바세계에 출현을 하셔서 성불을 하셨습니다. 성불을 하셨기 때문에 이 가사에 대한 다섯 가지 공덕이 원만히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사불사에 동참을 하거나, 또 가사불사에 직접 와서 바느질을 하거나, 또는 가사불사하고 남은 쪼가리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몸에 지니게 되거나, 또 가사를 보고 존중하는 마음을 잠깐이라도 내게 된다면은 아까 말한 그런 다섯 가지 공덕을 우리는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비화경(悲華經)』이라고 하는 경전에 분명히 씌여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가사(袈裟)에는 그러한 공덕이 있느냐 하면, 이 가사는 성불을 한 부처님으로부터 견성한 도인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모든 수행자들이 이것을 수(垂)하는 그러한 법복(法服)이기 때문에 이 법복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무량 죄업이 소멸이 되는 그러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가사를 수하게 되기 때문에 가사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어야 하고 또 있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서약을 보장(寶藏) 부처님 앞에 하시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가사라고 하는 것은 몸을 가리우는 인도(印度)의 옷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방이 인도와 달라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그래서 그 한서(寒暑)의 계절 따라서 옷을 입게 됩니다마는, 인도는 상하(常夏)의 나라이기 때문에 옷이 별도로 따로 없고,

가사가 5조 가사(五條袈娑), 7조 가사(七條袈娑) 그리고 9조 이상 25조까지 있는데, 5조 가사는 소가사(小袈裟)라 그러고, 7조는 중가사(中袈裟)라 그러고, 9조 이상은 대가사(大袈裟)라 그러는데, 이 5조 가사는 속옷인 것입니다. 맨 속에, 살에 딱 닿게 입는 속옷이고, 7조 가사는 그 속옷 위에다가 일상생활하면서 입는 옷인 것입니다. 그리고 9조 이상 대가사는 외출할 때나 설법을 할 때나 또 법요식을 할 때나 그런 때 입는 옷인 것입니다.

 

그래서 5조 · 7조 · 9조 이상을, 항시 이 3가지 옷을 스님네는 자기의 옷으로 항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옷은 몸을 가리우는데 쓰기 위한 것이지마는 우리나라는 그것을 평상시에 입는 옷은 저고리 · 바지 모다 그 속에 다시 또 내복이 있고, 그 위에다가 특별한 때 인자 법복이라 해 가지고 장삼(長衫) 수하고 그 위에 또 가사 수하고, 장삼은 하지 아니하고 가사만 수하기도 하고 그럽니다마는.

그리고 춥고 더운 것을 막고, 모기나 모다 그런 벌레가 오는 것을 막기도 하고 또 사문(沙門), 스님으로서의 위신을 갖추고 또 모든 삿된 마음을 물리치기 위해서 가사를 수하면 그렇게 되고.

 

또 그래서 이 가사라 하는 것은 ‘공덕의(功德衣)다, 복전의(福田衣)다, 해탈의(解脫衣)다’ 이런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은 가사에는 그만한 여러 가지의 목적과 공덕이 있기 때문에 ‘복전의다, 해탈의다, 또는 공덕의다’ 이런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한 그 소중한 가사불사를 이번에 용화사에서 해 가지고 여러 스님네들이 또 그것을 수하시게 되는데, 여기에 동참하시고 또 직접 와서 바느질을 하시고 그런 분들은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고, 또 이 정법에 귀의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 반드시 해탈도를 증득하실 수 있는 대공덕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 가사불사하고 남은 쪼가리를 조그만한 명함만큼씩 이렇게 끊어서—아마 여러분이 일주문에 들어오실 때에, 아마 조그만한 쪼가리 하나씩을 모두 받으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을 패스포드 같은 데에다 잘 간직을 해서...

더 많이 남았으면 여러 장씩을 드렸으면 할 텐데, 그것이 많이 남지를 못해서 한 앞에 한 개씩만 이렇게 나눠 드렸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가사불사에 직접 와서 일을 하신 분은 그때그때 모다 얻어 갔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소중히 몸에 간직하시고 그리고서 항시 그 쪼가리를 볼 때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생각을 하시고 화두(話頭)를 열심히 들고 공부를 잘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19분28초~40분42초)

 

 

 

 

 

(3/4)----------------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다.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기다리듯 하고, 의원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이 참선(參禪)은 그만큼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做工親切處)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탐진치 삼독에 빠져 가지고 오직 익히느니 그것만을 익혀 왔는데,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만 익혀 왔는데, 금생에 그 속에서 그놈의 그러한 집착과 애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나’를 찾을려고 하니, 탐진치 삼독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이 오욕락은 무량겁을 익혀 왔기 때문에 안 할려고 해도 그것은 저절로 되어져 버리고.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은 할려고 해도, 화두를 아무리 들어도 들으면서도 금방 딴생각이 동시에 침범을 해 들어오고, 들을 때뿐이지 금방 없어져 버리고. 한두 번 해본 것도 금방 습관이 드는데 하물며 무량겁을 해온 그 습성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것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글씨를 쓰면, 벼루를 오른쪽에다 놓고 글씨를 쓰다가 한 서너 번 먹을 찍어다 쓰고서, 그쪽이 불편하니까 그 벼루를 왼쪽에다 갖다 놓고는 인자 쓰기 시작하면은 글씨 쓰다가 먹을 찍으러 가는데, 자기 손으로 오른쪽에 놨던 벼루를 왼쪽에다 놨는데 금방 먹을 찍으러 가기를 오른쪽으로 가게 됩니다.

아까 몇 번 오른쪽에서 찍어다 썼기 때문에 벌써 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지고, 분명 자기 손으로 왼쪽에다 옮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오른쪽으로 먹을 찍으러 간다 그 말이어.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그렇고.

 

평상시에 자기집을 다니던 사람은 이사를 해 동쪽에 살다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무의식 중에 간다는 것이 이사 간 줄을 깜박 잊어 버리고 동쪽으로 얼마 동안 가다가 ‘아! 내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어먼 데로 가는구나’ 그런 예를 얼마든지 경험을 할 수가 있고.

술을 잔뜩 먹어서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는데도 그 취중에도 자기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기집인 줄 알고 남의 집의 침실에 들어가서 실수를 하는 예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무의식 중에도 평소에 익혀 놓으면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똑같은 일을 거듭해서, ‘거듭한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그것이 습관이 체질화가 되고, 체질화가 되면은 무의식 중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업도 익히면 그것이 몸에 젖어서 체질화가 되고, 좋은 것도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話頭)도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동 잠이 안 오고 초롱초롱 하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려고 하면은 혼침(昏沈)이 오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괜찮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라면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퍼일어나고 그러거든.

참선을 해본 분이면 누구나 다 경험한 바시겠지마는 이 번뇌와 망상 그리고 혼침, 이것이 참선하는 데 있어서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인데, 이 잠이 오는 것과 망상이 일어나는 것만 없으면은, 그냥 화두를 한번 떠억 들면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다면은 공부하기가 하나도 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처음에는 잘된 듯 하다가 얼마 지나면은 뚝 변해 가지고 영 안 되고, 또 안 되지마는 계속하다 보면 또 잘되고, 잘되었다 안 되었다, 잘되었다 안 되었다 그러면서 수없는 고비를 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망상을 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수해 가지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거나, 옆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거나 말거나, 고대로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이 괴로운 줄도 모르고, 밤새 정진을 해도 괴롭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그렇다 그 말이어.

 

그래도 ‘아! 인제 되었다. 참 좋다! 이러다가 빨리 툭 터졌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은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오히려 공부를 갖다가 지지리 아홉 질 탑을 쌓는데, 여덟 질까지 쌓아 놓고 마지막 한 자 남겨 놓고 스스로 자기가 허물어뜨리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진이 잘되어도 ‘잘된다’는 생각, ‘좋다’는 생각,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그러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에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정진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게고.

 

또 공부가 영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이 퍼일어나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5분이 1시간보다 더 지루하게 지내간다 하더라도 짜증내는 마음을 내지 말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마는 잘 안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그러면 망상이 퍼일어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망상을 물리치거나 억지로 누를라고 하거나 쫒아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고대로 놔둔 채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의 화두만을 탁! 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을 쫓아 버릴려고 그러고, 억지로 누를려고 하면은 화두가 잘 들리기커녕은 누를라고 하는 그 망상이 하나 더 일어나게 되는 게고, 그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없앨려고 손으로 누르거나 손으로 갖다가 없앨려고 하면은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 데 아주 간단하고도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하고.

 

혼침(昏沈)이 올 때는 어떻게 하냐?

 

눈을 힘을 주어서 눈을 부릅떠도 눈텡이가, 눈 위에 껍데기가 천 근이나 되게 무겁게 덮어 누르고, 아무리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 뜯어도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집어 뜯어도 소용이 없다 그 말이여.

옛날 도인(道人)들은 졸음이 오면은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 같은 이, 경허(鏡虛) 선사 같은 그런 도인들도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밤잠을 안 자면서 정진을 하는 말씀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송곳으로 찌르면서 졸음을 쫓을 만한 그러한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서 낱낱이 다 송곳부터 사러 가시지 말고, 졸음이 올 때에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세수도 하시고 그러면서,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왔다갔다 포행을 일직선으로 정해 놓고 왔다갔다 한 5분 하면은 졸음이 나가면은 또 자리에 와서 또 앉고 이렇게 하면서 혼침을 이기도록. 그래도 안 들으면 송곳으로 한번 찔러서라도 한번 해봄즉 한 일이지요. 그러다 잘못하면 또 피가 많이 나면 안되니까 조심을 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서 모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또 직업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각기 다 자기의 소질 따라서 능력 따라서 서로 남녀 간에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다 이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서로 만나서 부부간이 되고, 부모 자식 간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고, 친구 간이 되고, 형제간이 되어서 이렇게 만나서 사는데, 이건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업으로 만나졌기 때문에 인연(因緣)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됩니다. 생이별(生離別)도 하고 사이별(死離別)도 하고 해서 헤어지는데, 지내 놓고 보면 이것은 분명히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꿈꾸고 있는 동안에는 호랑이를 보면 진짜 무섭고, 뱀이 달라들면 진짜 무섭고, 어디서 좋은 보물을 얻으면 진짜 기쁘고, 깨어 놓고 보면은 허망하기가 그지할 수가 없고, 하나도 무서울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지만, 실지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와 같이 인생살이도 깨닫기 전에는 분명히 현실입니다. 또 버릴 수도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충실히 최선을 또 다해야 합니다.

‘꿈이니까, 에이! 그까짓 것 소용없다. 가정도 버려 버리고, 재산도 버려 버리고, 직장도 버려 버리고, 사업도 다 팽개쳐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사람에 한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오직 이 한 일만을 할 각오가 선 사람은 그걸 버리고 출가하실 수가 있지만, 일반 청신사 청신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관리로서 농사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하면서 그 가운데에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해라’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애나면 ‘절로 가서 중이나 되어 버릴까’ 몇 번을 생각하다가, 또 부애가 풀어지면 언제 절 생각은 잊어 버리고 ‘여보, 어쩌고...’

 

도(道)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속가에 있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속가에 있으면 있는 대로 할 길이 있고, 출가한 스님은 출가한 스님대로의 수행해 나가는 법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있는 자리, 제일 이 도 닦아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刹那)인 것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하고, 앞으로 3년 더 있다 어떻게 하고, 내일 어떻게 하고, 한 시간 뒤에 어떻게 하고, 오늘 저녁부터 어떻게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가 이 참선에 있어서는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뭣고?~’

한 시간도 멀고, 일 분도 멀어요. ‘지금’ 이 찰나,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는 우리가 시간으로 딱 찍을 수가 없습니다. 탁! 찍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 것입니다. 번갯불을 갖다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번갯불은 지나가 버리고 없는 것처럼, ‘지금’이라고 하는 이 시간도 우리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잡을 수 없는 그 찰나에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일어서면서 하고, 걸어가면서 하고, 일하면서 하고, 밥 먹으면서 하고, 차 타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고, 세수하면서 하고, 발 씻으면서 하고, 옷 갈아입으면서 하고 이런 것이지, 언제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은 안되는 거여.

이 한 생각 한 생각, 그 찰나 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때그때, 그 찰나 찰나를 단속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휴! 너무너무 바빠서 못한다’ ‘아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못한다’ ‘대학만 들어가 놓으면 인제 조금씩 해볼라고 그럽니다’ ‘딸 시집보내 놓고 할랍니다’ 그것 다 틀어져 버리고, ‘김장이나 해 놓고 할랍니다’ 그것도 틀어져 버리는 거여. 다 틀어져 버리는 거여.

 

이건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生死)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 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 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두면 그놈이 차츰차츰 커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음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는데, ‘한 생각’ 딱!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그때 탁!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살생도 안 하고 끝나고, 도둑질도 안 하고 끝나고, 사음도 안 하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 천당을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미연(未然)에 부셔 버리는 것입니다.(40분43초~60분29초)

 

 

 

 

 

(4/4)----------------

 

그래서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도 보시면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다’

이 법성게는 그 80권 화엄경을 갖다가 간단한 몇 줄의 글로써 의상대사께서 지어 놓으신 것인데, 그 법성게의 뜻만 알면 화엄경의 진리가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은 ‘한 생각’이여, 한 생각.

이 한 생각, 이 찰나 속에 십세(十世) 고금(古今)과 시방(十方) 모든 세계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속에 다 들어 있고, 육도윤회(六道輪廻)도 그 속에 들어 있고, 천당 · 지옥도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말이어.

 

그러니 ‘이뭣고?’ 한마디, ‘이뭣고~?’ 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 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시고.

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이 화두법 이것은 용궁(龍宮)에 있는 대장경 속에도 안 들어 있다.

 

이 사바세계에 있는 경전은 많이 불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일부만이 전해 내려오지, 전부가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설사 결집(結集)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외도들에 의해서 많이 소각을 당해 버리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극 일부에 지내지 못하는데, 용궁에는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문이 다 거기에는 수장(收藏)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궁에 있는 장경(藏經) 속에도 ‘정전백수자’ ‘판치생모(版齒生毛)’ 이런 화두법, 최상승법인 이 화두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최상승법, 이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교(敎) 밖에 특별히 전하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전하신 특별한 최고의 법이여.

그래서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는 염불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 있고, 주력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 있고, 기도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 있고,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서 독송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불사 회향에 동참하시고 또 일요법회에 참석하신 공덕으로 이러한 최상승법을 이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 동참했고, 그 얻기 어려운 쪼가리도 가사불사할 때 틈틈이 훔쳐 담고 또 그런데다 오늘 또 이렇게 얻었으니까 ‘나는 이거 딸 줄 것도 있고, 아들 줄 것도 있고, 며느리 줄 것도 있으니까, 인제 아무 걱정이 없다’고 아주 흐뭇해 하시겠지만, 정말 ‘이뭣고?’ 한마디 한 것에다 댄다면, 가사불사 해 가지고 쪼가리 가지고 있는 것에다 대겠습니까?

물론 그 쪼가리 가진 공덕도 대단한 것이어서 말로써 다 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를 하시면 천(千) 쪼가리 만(萬) 쪼가리를 몸에다가 열 거듭 백 거듭을 감은 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한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이 한 몸뚱이, 인간, 이 세상이라는 것은 정말 이 한 나그네 손님이다 그 말이어. 잠시 이 사바세계에 나그네로 왔어.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여. 만사(萬事)는 다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 한 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그 말이어. 나그네는 오늘은 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또 그 이튿날 떠나면 또 어느 다른 지방에서 한잠을 자고 해서, 평생 동안을 나그네로 사는 거와 같애.

 

정말 여자의 몸을 받은 사람은 성년(成年)할 때까지는 그 어머니, 아버지 품안에서 그렇게 자라서 공부하고 그래 가지고 시집가면은 딴 타성바지 집에 들어가서 아내 노릇을 하고 며느리 노릇을 하고 그러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도 또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들도 또 장성을 해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하는데.

일평생 동안 그러고 사는 거처도 충청도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오기도 하고, 서울 살다가 저 부산으로 이사 가기도 하고, 우리나라 살다가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 금생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김 아무개, 박 아무개로 태어난 것 자체가 또 그것도 나그네인 것입니다. 전생에 사바세계에 살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 사람도 있겠고, 전생에는 천당에서 살다가 금생에 인도환생을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전생에 개나 돼지나 소로 있다가 금생에 그 탈을 벗어 버리고 사람이 되는 수도 있고, 그러니 이것이 분명히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러면 금생에 왔으면은 천년만년(千年萬年) 사느냐 하면은 많이 살아 봤자 백 년이요, 그렇지 않으면 팔십·칠십·육십·오십·사십·삼십, 열 살에도 죽고 다섯 살에도 죽고, 낳다가도 죽고, 배안에서 생기다 만 것이 죽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도 나그네가 분명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비 맞기도 하고 눈을 맞기도 하고, 차 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고, 차가 뒤집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배 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참! '인생살이라 하는 것이 나그네'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만사는 뜬구름과 같다’ 한 말도 참 적절합니다.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해지기도 하고, 엊그제 장관을 하다가 그만두고 평민이 되기도 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그러한 권리를 가지던 사람이 하룻밤 새 죽기도 하고 또 감옥에 가기도 하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그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하룻밤 여관에 방이 좀 춥기도 하고 더웁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골낼 것도 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집에서는 편안하게 살다가 여행을 떠나면 고생이 되는데, 그 고생하는 재미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바세계의 인생살이를 나그네라고 생각한다면, 고생도 능히 재미로 참을 수가 있고 또 좀 잘 먹고 편안히 잔다고 해서 자기가 금방 뭐 크게 팔자가 핀 것도 아니거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자로 살고 높은 벼슬을 하고 뭣 좀 권리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으시대고 꺼떡거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재미스럽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 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온 세계도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집안에도 그런 마음으로 온 식구가 산다면 집안은 온통 화기(和氣)가 애애(靄靄)하고 모든 일이 참 재미있고 흐뭇하고 여유 있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근본은 ‘한 생각 단속하는 일’이 자기의 일생을 행복하게 하고, 자기의 온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온 사회 · 국가를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그래 가지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살 수 있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佛法)은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불법을 위해서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세생생에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중생을 이 진리의 세계로 이끄르시는 데에 여념이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이 도를 이루신 다음에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앉은 자리 더울 겨를이 없이 일평생 동안을 인도 오천축(五天竺)을 갖다가 유행(游行)을 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신 것도 바로 이 도리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濟度)하신다’ 그러는데, 뭐 물에 빠진 걸 갖다가 건져내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도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다’

 

‘부처니 중생이니, 선이니 악이니’ 하는, 중생은 그러한 생각의 쇠사슬에 얽혀 가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생과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고, 깨달음과 미(迷)한 것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그 도리를 깨우쳐 준다면, 거기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그러한 소견을 씻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인 것입니다. 그거 씻어준 것이 바로 그것이 중생 교화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 책도 펴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 있는 것인 것입니다. 입을 벌리기 전에 이미 염불이 그 속에 되어져 있는 것이고, 경을 읽고 있는 것이며,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또 자기 자신도 불법을 설하는 도리가 바로 이 최상승법이라.

이상으로써 일요 법회와 또 가사불사 회향 법어를 마칩니다.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인고  청산백운다(靑山白雲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중(山中)에 하사기(何事奇)인고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청산에 무슨 일이 기특한고? 무슨 일이 볼 만한 것이 있느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무엇이냐?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푸른 산에 흰구름이 많느니라.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다.

젓대를 불고 소를 타고 가는 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여.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고, 동서에 자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왔다갔다하더라.(40분43초~77분41초)(끝)

 

 

 

 

 

----------------(1/4)

 

*(게송) ‘풍우황엽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4 ‘왕사국(王師菊)’ 게송 참고.

*으레이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몽매지간(夢寐之間) ;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동안.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가사(袈裟) : [범] kasaya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

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령(領 거느릴·옷 한 벌 령) : 가사(袈裟) 숫자 세는 단위. ‘바탕’이라고도 한다.

*절세(絶世 뛰어날 절/세상 세) ; 세상에 견줄 데가 없을 정도로 아주 뛰어남.

*조정(朝廷 조정·정사 조/조정·관청 정) ;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나라의 정치를 의논하고 집행하는 곳.

*항간(巷間 거리·마을 항/틈·사이 간) ; 일반 사람들 사이.

*미관말직(微官末職) ; 지위가 아주 낮은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삼족(三族) ; 부계(父系), 모계(母系), 처계(妻系)의 세 족속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만조백관(滿朝百官) ; 조정(朝廷)의 모든 벼슬아치.

*복색(服色) ; 예전에,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입던 옷의 빛깔과 꾸밈새.

 

 

 

 

 

----------------(2/4)

 

*편수 ; 공장(工匠, 수공업에 종사하는 장인)의 두목. ‘編首(엮을·만들 편/머리·우두머리 수)’로 적기도 한다.

*가사당(袈裟幢) ; 가사 짓는 곳.

*뇌성벽력(雷聲霹靂) ; 천둥소리와 벼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

*가피력(加被力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힘 력) ; 불보살(佛菩薩)의 위신력(威神力). 불보살이 중생에게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불가사의한 힘. 가호력(加護力)와 같음.

*다부 ; ‘다시’의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대중시봉(大衆侍奉) ; 대중(大衆 많은 스님이나 신도,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을 모시고 시중드는 일.

*일심전력(一心專力) ; 마음을 오직 한군데에 두어 온 힘을 기울임.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대중공사(大衆公事) ; 사찰에서, 사찰 운영이나 공지 사항 또는 스님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문책 등이 있을 때, 사찰에 있는 모든 스님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일.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비화경(悲華經) ; 담무참(曇無讖) 한역. 『비련화경(悲蓮華經)』이라고도 한다. 다른 한역으로는 역자 미상의 『대승비분다리경(大乘悲分陀利經』 8권이 있다.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본생(本生 : 붓다의 전생 이야기)을 설명하고, 이 두 가지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정토성불(淨土成佛)과 예토성불(穢土成佛)의 사상을 서술하지만, 무엇보다 석가모니불의 예토성불이 들어 있는 대비(大悲)를 찬양하는 내용이 중심이 된다.

첫 번째 「전법륜품(轉法輪品)」 두 번째 「다라니품(陀羅尼品)」 세 번째 「대시품(大施品)」 네 번째 「제보살본수기품(諸菩薩本授記品)」 다섯 번째 「단바라밀품(檀波羅蜜品)」 여섯 번째 「입정삼매문품(入定三昧門品)」으로 모두 6품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 네 번째 「제보살본수기품(諸菩薩本授記品)」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비(大悲)보살이었을 때 보장불(寶藏佛) 앞에서, 본인이 성불하였을 때 가사(袈裟)를 지니고 공경하여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공덕[袈裟五種功德, 또는 袈裟功德]을 서원하신 내용이 있다.

 

①世尊, 我成佛已若有衆生入我法中出家著袈裟者, 或犯重戒或行邪見, 若於三寶輕毀不信集諸重罪, 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 若於一念中生恭敬心, 尊重世尊或於法僧, 世尊, 如是衆生乃至一人不於三乘得授記莂而退轉者, 則爲欺誑十方世界無量無邊阿僧祇等現在諸佛, 必定不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세존이시여, 제가 성불하고 나서 만약 어떤 중생이 저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출가하여 가사를 입으면, 혹 무거운 계를 범하거나 혹 삿된 견해를 짓고, 삼보(三寶)를 경멸하여 믿지 않고 모든 무거운 죄를 모았더라도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니가 만약 한 생각만이라도 공경심(恭敬心)을 내어서 부처님이나 혹은 법과 승려를 존중한다면, 세존이시여, 이러한 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 등 삼승(三乘)의 수기를 얻지 못하고 퇴전한다면 곧 시방세계의 무량 무변 아승기 현재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므로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②世尊。我成佛已諸天龍鬼神人及非人, 若能於此著袈裟者, 恭敬供養尊重讚歎, 其人若得見此袈裟少分, 卽得不退於三乘中.

 

세존이시여, 제가 성불하고 나면 모든 하늘·용·귀신·사람·사람 아닌 것들이라 할지라도 만약 이 가사 입은 자를 공경 · 공양 · 존중 · 찬탄하거나 이 가사 자락을 조금만 보아도 곧 3승 가운데서 퇴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③若有衆生爲饑渴所逼, 若貧窮鬼神下賤諸人乃至餓鬼衆生若得袈裟少分乃至四寸, 其人即得飲食充足, 隨其所願疾得成就.

 

만약 굶주리고 목마른 중생이나 가난한 귀신이나 하천한 모든 사람이나 나아가 아귀 무리들이 가사를 조금만, 아니 네 치(寸)만 얻더라도 그가 곧 음식을 충족하게 얻고 그가 원하는 바에 의하여 빨리 성취하게 해 주십시오.

 

④若有衆生共相違反起怨賊想展轉鬪諍, 若諸天龍鬼神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拘辦荼毘舍遮人及非人, 共鬪諍時, 念此袈裟, 尋生悲心, 柔軟之心, 無怨賊心, 寂滅之心, 調伏善心.

 

만약 중생이 서로 어기고 반대하여 원수로 생각하고 투쟁하며, 모든 하늘·용·귀신·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구반다·비사차·사람·사람아닌 것들이 서로 투쟁할 때 이 가사를 생각하면 곧 자비심 · 부드럽고 순한 마음 · 원수와 적이 없는 마음 · 적멸한 마음 · 조복된 착한 마음이 생길 것이며,

 

⑤有人若在兵甲鬪訟斷事之中, 持此袈裟少分至此輩中, 爲自護故供養恭敬尊重, 是諸人等無能侵毀觸嬈輕弄, 常得勝他過此諸難.

 

만약 군병의 전란과 투쟁 · 송사로 결단나게 된 일에도 이 가사의 조그마한 조각만 가지고 가면 저절로 보호되기 때문에 공양 · 공경 · 존경 받게 되나니, 모든 사람들이 능히 침략하고 헐뜯고 야유(揶揄)하고 가볍게 희롱할 수 없어서 항상 상대방을 이기고 모든 어려움을 통과하게 해 주십시오.

 

世尊, 若我袈裟不能成就如是五事聖功德者, 則爲欺誑十方世界無量無邊阿僧祇等現在諸佛, 未來不應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作佛事也, 沒失善法必定不能破壞外道.

 

세존이시여, 만약 제 가사가 능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거룩한 공덕[五事聖功德]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곧 시방세계의 무량 무변 아승기 현재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니, 미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불사(佛事)를 짓지 못할 것이며, 착한 법을 잃어서 능히 외도(外道)들을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善男子, 爾時寶藏如來伸金色右臂, 摩大悲菩薩頂, 讚言, 善哉善哉, 大丈夫, 汝所言者, 是大珍寶, 是大賢善, 汝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是袈裟衣服, 能成就此五聖功德作大利益.

 

선남자야, 그때 보장여래께서 금빛의 오른팔을 펴서 대비보살의 이마를 만지면서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장부여, 그대가 말한 바는 바로 진귀한 보배이며, 크게 어질고 착한 것이로다. 그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면 그 가사와 의복이 능히 이 다섯 가지 거룩한 공덕을 성취하여 큰 이익을 지을 것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사십팔원(四十八願) : 아미타불이 지난 세상에서 수행할 때에,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 였을 때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 - Buddha) 앞에서 장차 자기가 성불하여 주지(住持)할 이상적인 국토의 구체적 조건을 들어서 그것이 실현될 때라야 성불한다고 맹세하고 발원하였던 것이다。마침내 그가 무한히 분투 노력하여 그의 복과 덕이 쌓이고 쌓여 그가 목표한 극락세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서원 가운데서 주요한 것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1. 그 나라 안에는 온갖 고통과 비참한 일이  아주 없을 것。3.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나 몸이 똑 같게 될 것。5.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육신통이 있을 것。15.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끝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을 가질 것。18. 어느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그 이름(아미타불)을 열 번만 염하면 그 나라에 태어날수 있을 것。33. 시방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모두 그의 빛을 쏘이면 그 몸과 마음이 함께 아름답게 될 것 등등。『무량수경』에 나오는 말.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삼승(三乘) ; 3가지 탈 것. 3가지 길을 걷는 자.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실천법. 산스크리트어 tri-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중생 각각의 능력·소질에 맞게, 즉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의 3가지 능력에 맞도록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는 가르침을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보살승(菩薩乘)으로 탈 것에 비유한 말.


「법화경」에 나오는 말로 윤회가 거듭되는 육도(六道)를 벗어나기 위해, 삼승에 의해 부처님의 세계에 이른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나 부처님을 지향하는 일승(一乘)에 중점을 두고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을 소승(小乘)이라 해서 격하하기도 하나, 「법화경」은 그 어느 것이나 역할과 의의를 인정하고 모든 것은 부처님의 자비로 구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일승(一乘)

*수기(授記) ; 부처가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그 교설(敎說).

*맹서(盟誓 맹세 맹/맹세할 서) ; '맹세(盟誓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또는 그 다짐)'의 원래 말.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수(垂)하다 ; 가사(袈裟), 장삼(長衫) 따위를 걸쳐 입다.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패스포드(passport) ; 여권. 여권케이스. 지갑.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3/4)

 

*(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색사(色事)·음식(飮食)·명예(名譽)·수면(睡眠).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어먼 : ‘애먼’의 사투리. 애먼:(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억울하게 느껴지는, 엉뚱하게 느껴지는.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 ; '길(길이의 단위.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또는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의 사투리.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자명 초원(慈明楚圓) : (987 – 104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

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 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4/4)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참고]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천8백 게송 천이백 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십세(十世) ; 화엄종의 교학에 있어서 시간 구분. 과거 현재 미래의 3세(三世)의 각각에 그 위에 과거·현재·미래가 있다고 하고, 이러한 9세(九世)를 포용하는 1세(1념)를 더하여 10세(十世)라고 한다.

*결집(結集) ;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어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수장(收藏) ; 거두어서 깊이 간직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가섭존자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가사불사(袈裟佛事) ; 절에서 가사를 짓는 일.

*(게송) ‘일신진역려~’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6 ‘산을 나가는 영암주(英庵主)를 보내며’, p115 ‘지사(芝師)를 보내며’ 게송 참고.

*역려(逆旅 맞이할 역/나그네 려) ;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여관(旅館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을 이르는 말.

*타성바지(他姓바지) ; 자기와 성(姓)이 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 감인토(堪忍土), 인계(忍界)라고 한역.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화목할 화/기운 기/아지랭이 애) ; (분위기가)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오천축(五天竺) ; 고대 인도에 있던 다섯 개의 정치적 구획.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천축을 이른다.

*유행(遊行)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게송) ‘산중하사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66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음’, ‘목암(牧庵)’ 게송 참고.

*젓대 ;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일상적으로 이를는 말. 적(笛)

 

 

 

 

 

[법문 내용]

 

(게송)풍우황엽락~ / 가사불사(袈裟佛事) / 원나라 공주 와 상사(相思)뱀의 청평사 가사불사 일화. 운광 법사 / 비화경(悲華經). 가사의 다섯 가지 공덕.

 

(게송)사중구의원~ / 습관이 체질화가 된다 / 번뇌와 망상, 혼침을 다스리는 법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한 생각 단속할 때 생사 문제가 해결된다 / 참선법은 교외별전 / 이뭣고? 한마디가 가사공덕보다도 훌륭하다.

 

(게송)일신진역려~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 (게송)산중하사기~.

 

 

왜 이렇게 가사(袈裟)에 다섯 가지 성스런 공덕이 있느냐 하면, 가사는 성불을 한 부처님으로부터 견성한 도인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 견성성불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모든 수행자들이 이것을 수(垂)하는 그러헌 법복(法服)이기 때문에 이 법복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무량 죄업이 소멸이 되는 그러헌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가사를 수하게 되기 때문에 가사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어야 하고 또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서약을 보장(寶藏) 부처님 앞에 하시게 된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만은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혼침(昏沈)이 올 때는 어떻게 하냐? 졸음이 올 때에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세수도 하시고 그러면서,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도(道)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속가에 있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속가에 있으면 있는 대로 할 길이 있고, 출가한 스님은 출가한 스님대로의 수행해 나가는 법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있는 자리, 제일 이 도 닦아 나가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刹那)인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뭣고?

이 한 생각 한 생각, 그 찰나 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때 그때, 그 찰나 찰나를 단속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生死)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시고.

그래서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는 염불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주력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기도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서 독송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불사 회향에 동참하시고 또 일요법회에 참석하신 공덕으로 이러헌 최상승법을 이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 책도 펴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 있는 것입니다. 입을 벌리기 전에 이미 염불이 그 속에 되어져 있는 것이고, 경을 읽고 있는 것이며,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또 자기 자신도 불법을 설하는 도리가 바로 이 최상승법이라.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16. 1. 5. 17:2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253)—85 1 첫째 일요법회(85.01.06)(66)

(1/4) 약 20분.  (2/4) 약 15분.  (3/4) 약 18분.  (4/4) 약 14분.

(1/4)----------------


상풍괄지소고해(霜風刮地掃枯)한데  수각동군영이과(誰覺東君令已過)리오

나무~아미타불~

유유영매선누설(唯有嶺梅先漏洩)한데  일지독향설중개(一枝獨向雪中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풍괄지소고해(霜風刮地掃枯)한데, 서릿바람이 땅을 깎고 마른 뿌리를 쓸어. 서릿바람이 서리와 눈바람이 어떻게 매섭고 거칠던지 땅을 깎으며 앙상하게 드러난 마른 뿌리를 갖다가 쓸고 지나가는데,

수각동군영이과(誰覺東君令已過). 누가 동군이—‘동녘 ()’, ‘임금 ()’, 봄을 갖다가 동군(東君)이라고 그러는데, 누가 봄이 이미 지내간 것을 깨달으리오.

서릿바람이 불고 눈바람이 매섭게 부니까 그것이 엄동설한(嚴冬雪寒)인줄 알고 춥다고만 생각을 하지만 매섭고 추운 바람 속에 벌써 봄바람이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유유영매선누설(唯有嶺梅先漏洩)한데, 오직 산말랑이에 매화가 먼저 봄뜻을 갖다가 누설을 했다 말이야.

일지독향설중개(一枝獨向雪中開)로구나. 매화 가지가 속을 향해서 홀로 피었구나.


지금 소한지절(小寒之節) 되어서, 영하로 수은주가 내려가서 매우 날씨가 춥습니다. 그러나 매섭고 춥지만 머지않아서 대한(大寒) 지내면 입춘 시절이 돌아옵니다.

입춘(入春) 되면 벌써 봄이 버린 거고, 입춘이 되기 전에 지금 매서운 추위 속에 이미 봄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산이나 들에 가면 벌써 매화가 잎을 벌리기 시작했고, 매화 말고도 다른 모든 꽃들이 앙상하게 보이지만 벌써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을축년 1985 1 6 첫째 법회날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빌어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 동남동녀(童男童女) 여러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빛이 두루 비추어서 모든 액난과 재난은 소멸이 되시고, 여러분의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원만히 성취되시기를 간절히 비는 바입니다.


작년 첫째 일요일에는 작년 동안 우리가 마음에 항시 간직하고 지켜갈 일에 대해서성을 내지 말자. 진심(瞋心) 내지 말자. 진심을 내면 온갖 재앙(災殃) 거기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진심을 내지 말고 기쁨과 자비로서 해를 살아가자이러한 말씀을 드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얼마만큼 동안을 명심을 하고 단속을 하시면서 동안을 지내셨는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시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일어나는 것을 돌이키지 못하고 생각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통해서 표현이 되고, 행동으로 옮겨져 버리면 다시는 그것을 쓸어 담지를 못하고,

벌써 생각 진심(瞋心) 일어나는 독기(毒氣) 밖에 퍼져 나가서 사람에게 닿으면 사람에게 해를 주고, 물건에 독기가 닿으면 모든 식물 생물도 () 입게 되고, 가구나 그릇에 독기가 닿으면 그것이 파괴가 되고,

어떠한 일에 성내는 독기가 닿으면 일을 망가뜨리고, 마침내는 생각 뿜어대는 독기가 남만 해롭게 할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과 자기 자신의 희망과 자기의 운명을 파괴하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생각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명심을 한다면, 우리는 밖에서 들어오는 도적을 막는 데에는 상당히 신경을 쓰지만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도적을 단속하는 데에는 등한(等閒)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밖에서 들어온 도적은 아무리 가지고 봤자 별것이 아니고,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도적은 자취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해독을 끼친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을 해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금년에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시는 불자(佛子)로서 어떠한 마음으로 동안을 지낼 것인가? 물론 작년이나 그러께 말씀드린 그것을 완전히 실천을 하고, 앞으로도 훌륭하게 실천을 있도록 노력을 하셔야겠지만 금년에는 좀더 구체적인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어떠한 일을 당했을 때에 상대방이 먼저 나에게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주도록내가 상대방에게 요구할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동안을 지내시도록 노력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언제나 자기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주기를 바라면서 상대방이 요구한 것을 내가 먼저 하려고 하는 생각은 뒤로 미루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부부간에도 그렇고, 형제 자매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이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을 하신다면 반드시 상대방도 나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설사 언짢은 일이 있더라도 내가 먼저 오해를 풀고,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내가 먼저 생각을 돌이키려고 노력을 하고, 내가 먼저 상대방을 용서를 하고, 이렇게 됨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엉어리가 풀리고 사이가 화목하게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중생들은 언제나 저쪽에서 먼저 자기에게 주기를 바라고 그래 가지고저쪽에서 자기한테 주니까 내가 그런다그렇게 피차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좀체 사이가 좋게 화해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나로 인해서 있는 것이지, 없이 상대방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 물론 어른이 중심이 되겠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각자 자기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그렇고, 사회에 있어서도 그렇고, 직장에 있어서도 그렇고, 국가에 있어서도 그렇고 언제나 자기가 세계의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해도 자기로 인해서 해가 거기 있는 것이고, 자기로 인해서 달이 거기에 있는 것이고, 자기로 인해서 산과 강이 있는 것이고, 자기로 인해서 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이 있는 것이고, 자기로 인해서 부모도 있고 형제도 있고 자녀도 있고, 자기로 인해서 주변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 우주 법계가 가장 중심점은 자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좋다, 나쁘다 것도 사실 전부 자기를 중점으로 해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 정치를 잘해도, 법률이 좋아도, 자기에게 해로우면나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법이 좋지 해도 자기가 유리하면 좋다 그렇게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현이 되어야,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아니한 사람이라야, 사심(私心) 극복한 사람이라야 자기에게 해로와도 법이 옳으면 옳다. 제도가 옳으면 옳다 말할 수가 있는 것이지,

사욕과 사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좋다그래도 우선 자기에게 해로우면 그걸 좋아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법이 있고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좋게는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맞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겨울이 추워서 모다 좋다해도 가운데는 겨울이 되기를 몹시 기다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은 스키 타기를 좋아하고 스케이트를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연탄 돈도 없고 방이 추워서 얼어죽거나 말거나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추워서 얼음이 꽁꽁 얼고 눈이 소복이 내리기만 하면 그것 생각만 하고 어쨌든지 춥고 눈이 많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은 좋아하지만 좀더 스케이트와 스키를 타고자 하는 사람은 봄이 되어서 날씨가 뜨뜻했다 하면은 그렇게 아쉬워서 좀더 겨울이 길기를 바라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근(卑近) 예를 들었지만, 중생은 각기 자기 () 다르고, 자기의 모습이 다르고, 자기의 처지가 낱낱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관점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자기의 판단과 행동이 차이가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모든 차별적인 상황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세상을 평등한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거든 먼저 자기의 마음을 비워라. 자기의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라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의 마음, 각자가 마음을 비워서 허공과 같이 한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마음이 것이며 따라서 세계는 평등한 세계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25)



(2/4)----------------


산을 깎아서 바다를 메움으로 해서 대지를 평평하게 만들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산을 깎아서 깊은 데를 메워 가지고 평평하게 만들려는 그러한 것은 설사 일시적으로 평평하게 만든 같지마는 그런 것은 악평등(惡平等)이라 하는 것입니다.


산은 높은 데로 높아서 좋고, 바다는 깊어서 거기에 물이 고이니까 거기에는 온갖 해초와 어류가 서식을 해서 바다는 바다대로 좋은 것이지, 산을 깎아서 바다를 메워 가지고 평지를 이루어야만 그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옳은 제도가 아닌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사람의 재산을 몰수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한다고 하는 그러한 제도는 지금 여러분께서도 잘아시는 바와 같이 그러한 제도를 가지고 사람 사람의 개성은 말살되고 자유는 박탈이 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사람이 잘사냐 하면 모든 사람이 악법, 악평등에 의해서 쇠사슬에 묶인 사람이면서 기계와 같이, 사람이면서 짐승과 같이, 멀쩡한 사람이 국민이 노예가 되어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무슨 일을 해서 재미가 있으며, 무슨 일이 의욕적으로 되어지겠습니까?


그래서 경제는 침체하게 되고, 개개인의 자유는 박탈이 되기 때문에 중공(中共) 같은 데서는 그러한 맑스주의 그런 사상으로부터 차츰차츰 벗어나서, 다시 그전에 그렇게 원수처럼 상대하고 공산주의를 부르짖었던 나라가 서서히 거기서 벗어나 가지고 자유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추라고 생각이 됩니다.


북한에도 빨리 그러한 생각을 고쳐서 남북통일이 하루빨리 앞당겨져서 핏줄을 받은 한겨레가 서로 왕래하고 서로 평화롭게 통일이 되어서 세계에 으뜸가는 그러한 민족의 보람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조그만한 나라에 38(三八線)으로 갈려서 적은 나라지만 남한만 가지고서도세계올림픽이다 또는 지체부자유자의 기능대회 그런데 나가도 많은 금메달을 따오고 그러는데 남북이 합해서 나간다면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북통일이나 세계 평화도 불법(佛法) 입각해서 보면 우선 나의 마음부터 작업이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2359)



신상착의방면한(身上着衣方免寒)하되  구변설식종불포(口邊說食終不飽)니라

나무~아미타불~

막괴좌래빈권주(莫怪坐來頻勸酒)하면  자종별후견군희(自從別後見君稀)로다

나무~아미타불~


신상착의(身上着衣) 방면한(方免寒)하되, 위에 옷을 걸치는 것은, 옷을 입는 것은 바야흐로 추위를 면할 있거니와,

구변설식(口邊說食) 종불포(終不飽). 입에 밥을 말하는 것은, 입갓으로 하고 얘기만 한다고 해서는 마침내 배가 부르지 않느니라.


몸뚱이 위에다가 쉐타를 입고, 자켓를 입고, 오바를 입고, 그렇게 해서 옷을 갖다가 걸치면 충분히 추위를 면할 수가 있지마는 가장자리에다가 입으로만 자꾸 먹을 얘기를 한다고 해서 배가 부르는 것은 아니다.


입으로만 조국통일 조국통일, 입으로만 세계평화 세계평화, 입으로만 선진조국 창조, 자꾸 입으로만 부르짖고.

입으로만 참선 참선, 입으로만 최상승법 최상승법, 입으로만 봤자 그걸 가지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지로 마음속에 그것을 실천을 때에 그러한 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막괴좌래빈권주(莫怪坐來頻勸酒)하는 것은, 서로 마주 앉기만 하면 자주자주 술을 권하는 것은이렇게 하라 만나기만 하면 술을 권하고, 자주 술을 권하는 것은,

자종별후견군희(自從別後見君稀). 마지막 이별한 뒤에는 다시 만나기가 어려울 같아서 그래서 이렇게 만나기만 하면은 술을 권한다.


법회 때마다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 들어라. 어쨌든지 참선(參禪) 해라. 밖으로 나가는 마음을 밖으로 쓰지 말고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 일어나는 곳을 관조(觀照)해라. 그래 가지고 참나를 깨달아라

자꾸 앉을 마다, 법회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한번 이별하게 되면은 다시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 다음 법회날 아무 날인데 그때 오면은 법문 들을 있고 만날 있을 테지, 저런 말을 하는가?”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심심치 않게 사람이 죽어가고교통사고로 죽고, 암으로 죽고, 뭘로 죽고 가지고, 멀쩡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그렇게 만나기가 어려운 것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너무 매일같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죽은 것만 알지, 자기가 어떻게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생사(生死) 언제 있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은하루 동안에도 생사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그러니까네가 아직 공부를 못하겠구나

다음 사람에게 물으니까생사는 한끼 먹을 사이에도 있습니다. 일향지간(一餉之間)에도 있습니다그러니까너도 공부를 아직 못하겠구나

사람은 호흡지간(呼吸之間) 있습니다.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는 사이에도 생사가 있습니다” “너는 공부를 있겠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사(生死)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천여 명이 앉아 계시지만, 생사는 도저히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젊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요,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닙니다.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과 건강과 병약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생사는 언제나 우리 코앞에 닥쳐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상을 철저하게 느껴야 비로소 발심(發心) 했다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발심한 사람이라야 도를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강수정이추월림(江水淨而秋月臨)이요. 강물이 맑아야사 가을달이 거기에 이르러 다다르고, 신심생이제불강(信心生而諸佛降)이다. 신심이 나야 모든 부처님이 강림(降臨) 하신다그랬습니다.

강물이 흙탕물이 된다면 아무리 하늘에 깨끗한 둥근달이 있다 하더라도 강물에 달이 비추지를 못할 것이고, 세상에 모든 부처님이 불보살이 계신다 하더라도 각자 마음에 신심(信心) 없다면 사람은 부처님과 천만 , 백억만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강물만 맑으면은 언제라도 달빛은 강에 비출 것이며사실은 강물이 맑고 더럽고 상관없이 바로 거기에 달빛은 있는 것입니다마는, 더러우면 강물에 거기에 비추지를 못하는 게고,

우리가 아무리 신심이 많고 적고, 악하고 선하고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불성(佛性) 있는 것은 그것은 원리요 사실이지만, 신심이 없으면 불성이 거기에 싹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심이 있는 곳에야사 비로소 불성의 씨에서 싹이 트고 잎이 피고, 가지 피고 피어서 열매를, 불과(佛果) 맺는 것이지, 신심이 없으면 불종자(佛種子) 속에 있어도 영원히 죽은 종자처럼 싹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1926~3348)



(3/4)----------------


금년 을축년을 맞이해서, 소라고 하는 짐승은 모든 짐승 가운데에 제일 순하고 부지런하고 진실하고 그러면서 참을성 있고, 한결같이 하나에서 백까지 오직 인간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갖다가 보시하고 제공해 주는 그러한 짐승입니다.


소를 관찰을 하면 너무나 배울 것이 많고 느낄 것이 많은 것입니다.

소는 많은 일을 하고, 사람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아주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그렇게 무엇을 요구하지를 않습니다.

먹는 것은 풀이나 짚이면 족하고, 잘해 주면 잘해 주는 대로 먹고, 못해 주면 못해 주는 대로 먹고 그러면서도 일은기운 없어 일을 못하겠다, 되니까 일을 못하겠다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죽기로 아주 각오를 하고 최선을 다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소는 빚을 갚기 위해서 왔다스님네한테는시주것만 먹고 도를 이루지를 못하면 죽어서 소가 되느니라이러한 말씀으로써 항시 경책(警策) 하고 그러한 법문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수도 생활을 하도록 그렇게 교육을 받아오고 있지마는.


소라고 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조금 일할 만큼 되면 코를 뚫어가지고 일을 시키는데, 죽도록 일하면서 살아서는 똥오줌을 비료로 쓰게 되고 그리고 힘이 있어서 일을 동안에는 죽도록 일을 시키고,

이제 늙어서 일을 못하게 되면은 그때는 소는 도살장(屠殺場) 가서 죽게 되는데, 죽어서는 뼈는 뼈대로 고아서 먹도록 되고, 고기는 고기대로 팔게 되고 창자와 오장, 내장,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사람에게 제공이 되고, 가죽은 벗겨서 가죽으로 쓰게 되고,

도무지 소라고 하는 것은 털끝만큼도 버릴 것이 없이 완전히 사람에게 제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생을 마치고 그리고서 빚이 갚아지면 다시 소로 태어나 가지고 그러한 일생을 살면서 빚을 갚게 되고, 비단 스님네만 죽어서 소가 되는 아니라 속인도 남의 빚을 지고 갚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결국은 금생에 갚지를 못하면 내생에 그러한 소가 되어 가지고 빚을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남의 것을 빌려서 쓰면은 반드시 그것을 갚도록 해야 하는데, 어떠한 무리들은 의도적으로 남의 것을 속여서 사기를 치고 결국은 훔치고 도둑질하고 이렇게 가지고 사기로써 직업을 삼는 그러한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금생에는 우선 배불리 먹을는지 모르지만 사기를 치고 훔치고 도둑질을 해봤자 내생에 하나도 남김없이 이자를 쳐서 그것을 갚게 되고, 자기 사람에서만 끝나는 아니라 대대로 내려가면서 자기 자손에까지 빚이 유산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하면은 덕으로써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덕이 넘어가지만, 악을 쌓고 빚을 쌓으면 악과 빚이 자손에 대대로 내려가면서 그것이 유산으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자기가 빚을 못다 갚으면 죽어서 집에 손자나 증손자로 태어나 가지고 빚을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사윤회(生死輪廻)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부모가 잘못해 갖고 자손이 죄를 받는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다시 집에 손자 증손자로 태어나 가지고 자기가 받게 되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지은 죄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은 죄는 아버지가 갚는 것이지, 그것을 갖다가 아버지의 죄로 인해서 자식이 빚을 갚는다 하는 것은 조금 맞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할아버지 없는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 없는 아들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요, 혈통이요, 서로 인과 인연으로 얽혀져서 공동책임이 있다고 봐야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남에게 베풀지언정 남에게 빚을 짓지 것이며, 빚이 있으면 어떠한 노력을 해서라도 그것을 갚도록 해야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덕을 베풀도록 노력을 하면 자기의 앞길도 행복과 평화로 자기 앞길이 열리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세세생생(世世生生) 내려가면서 무서운 과보이자까지, 복리까지 쳐서 그러한 과보를 받으면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과(因果) 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인 것입니다.

심은 나고, 심은 콩이 나듯이자기가 지은 행동으로 지은 , 입으로 지은 , 마음으로 지은 ,

중생은 행동으로 지은 죄만을 죄로 생각하고, 입으로 지은 것은 별로 그렇게 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마는 입으로 지은 죄도 행동으로 지은 죄나 조금도 차등이 없이 똑같이 무서운 것이고,

더군다나 마음으로 생각한 것은 숫제 죄가 전혀 것처럼 생각하지만 마음으로 지은 죄야말로 참으로 무서운 죄라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냐? 마음은 뿌리이고 입은 가지요, 행동은 가지에서 뻗어 나는 잔가지의 이파리이기 때문에 이파리와 잔가지는 줄기에서 나오고 줄기는 뿌리에서 나와서, 뿌리 없는 줄기도 없고 뿌리 없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라고 하는 것은, 모든 초목의 뿌리는 땅속에 묻혀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은 줄기나 가지나 밖에는 보입니다.


중생은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 있는 것은 등한히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 묻혀 있는 뿌리야말로 참으로 중대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큰일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에 처음에 생각 ! 일어날 때에 ! 그때 단속을 해버리면 가장 쉬운 것입니다.


성냥불 ! 쳤을 , 그때 ! 버리기는 아주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냥불이 차츰차츰 커져 가지고산에 가서 성냥불 하나, 담뱃불 하나 잘못해 가지고 그것이 불이 점점점점 번져서 나무에 붙어서 훨훨 타기 시작하면 아무도 불을 수가 없습니다.

몇십만 산을 삽시간에 태워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큰불이 최초에는 성냥개비 하나입니다. 담뱃불 하나 조그만한 것으로 인해서 엄청난 넓은 산을 태우고 마는 것입니다.(4537)



우리 인생에 있어서 모든 재앙도 생각때문에 무서운 재앙을 초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있어서는 마음 생각, 생각 마음 단속하는 것으로서 근본을 삼는 것입니다. 생각을 단속을 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 가지고 죄를 지어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고, 축생이 되는 것입니다.


저수지 둑이 무너질 조그마한 모래 구녁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모래 구녁이 생겨 가지고 그리 물이 질질질질 흘러 가지고 차츰차츰 처음에는 바늘귀만한 것이 주먹이 드나들게 되고, 나중에는 사람이 드나들 있고, 나중에는 황소가 드나들게 되면서 물줄기가 거세지면서 둑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둑이 바늘 구녁만한 구녁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재앙이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거기서 거친 말이 나오고, 생각이 점점 확대가 되어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졌을 사람도 죽이고, 도둑질도 하고 그래 가지고 큰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감옥에 10 징역, 20 내지 무기징역, 사형수들이 그게 본래부터 나쁜 짓을 태어나면서부터 하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사소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처음에 장난으로 하다가 나중에 버릇이 들어 가지고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 문제에 대해서 집집마다 걱정이 있고, 결국은 사회적으로도어린이를, 청소년을 어떻게 선도해야 하냐?’하는 문제는 대단히 문제로 대두가 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질만을 추구하고 정신을 경시(輕視)했을 , 다시 말하면 물질 문명만 발달을 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망각하고 이런 사회 구조에 있어서는 그렇게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에 모든 성현(聖賢)들은 수천 전부터서 그것을 염려를 하셔서 말씀마다 구구절절이 그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중생들을 말씀을 무섭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전부 성현의 뜻을 등지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는 지금은 모든 교육 제도마저도 완전히 그런 성현의 뜻은 숫제 잊어버리고 그런 말을 하면은 오히려 정신 이상(精神異常) 걸린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청소년은 정신적 중심을 잡을 줄을 모르고, 그런 교육 제도하에서 교육을 받아 봤자 사람되는 법을 배우지를 못하고 인간이 기계가 되는 법을 배웠고, 사회에 나가서 사람들이 무슨 일을 수가 있겠습니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인간에 행복을 가져다 있는 그러한 인간이 아니라, 사람이면서 기계거나 그렇지 않으면 잘되어 봤자 동물 같은 그러한 인간 밖에는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그러기 때문에 세계는 극도로 과학 문명이 발달이 되어서 살기 좋게 편리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과학 문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편리하게는 주면서 인간을 멸망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힘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입니다. 세계 사람이 이러한 진리에 눈을 뜨고, 성현의 말씀에 기울이고 마음에 명심해서 노력을 나간다면 지금이라도 늦지를 않은 것입니다.


이것도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가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3348~5150)



(4/4)----------------


지금 산승(山僧)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여러분과 인연이 있어서 여러분 귀에 자신에게 일러주는 말이 여러분의 귀에 도달하게 것을 나는 감사하고 다행으로 생각할 따름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제가 자신에게 이르는 말이 여러분 귀에 들리게 되게 되기 위해서 날씨가 이렇게 춥고 바쁘신 데도 불구하시고 여기를 오셨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숙세(宿世) 깊은 인연이 아니고서는 어찌 그렇게 것입니까? 아무리 오시라고 떡을 놓고 빌어도 오시지를 않을 것입니다. 인연이 없다면.


그러나 숙세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정초에 몹시 바쁘고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불구하시고 이렇게 경향 각지에서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이렇게 오셨습니다.

이것이 세세생생에 부처님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그러한 깊은 인연 관계로 해서 이렇게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뒤로 미루시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그리고 내가 먼저 이것을 실천에 옮기고, 작년에는 그럭저럭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뜻과 같이 못하셨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 하면,

금년에는 아무리 바쁘고 어렵다 하드라도 당장 시간부터서 실천에 옮기시고, 내가 먼저 이것도 실천을 하시면 거사(居士) 영향을 받아서 하시게 되고, 자녀분들도 따라서 하시게 되고 부인들도 따라서 하시게 것입니다.


내가 먼저 실천을 해서 차츰차츰 이것이 공부가 자리가 잡히면 여러 가지 점에서 있어서 스스로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훌륭한 포교(布敎) 되는 것입니다.


포교를 하기 위해서 많은 지식을 쌓고 교리도 연구하고, 말을 잘하고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훌륭한 포교는 자기가 먼저 실천을 해서 성격을 개선하고, 행동을 개선하고, 모든 점에 있어서 향상되어 가면 집안 식구가 그것을 보고 모다 감동이 되어서 모두 불법을 믿게 되고 참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가친척도 역시 나로 인해서 입으로믿어라, 믿어라 해도 내가 나날이 달라지고 다달이 향상되어 가면! 옛날에는 그렇지 안했는데 저렇게 사람이 달라졌다. 불법을 믿고 참선을 하면서부터 저렇게 사람이 달라졌다,

마음씨도 달라지고, 어쩌면 몸에서 풍기는 품위라든지, 눈에서 풍기는 맑고 자비로운 거라든지, 얼굴에 풍기는 총명하고 인자한 모습이라든지, 모든 점에 있어서 그렇게 향상되고 훌륭해 것을 보고서 그것을 보고 따라오지 아니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금년에는 내가 먼저 가지고, 모든 점을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자연히 따라오도록 이러한 해가 되도록 노력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조대향종화리출(鳥帶香從花裏出)하고  용함우향동중귀(龍含雨向洞中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대향종화리출(鳥帶香從花裏出)하고, 새는 향을 몸에 띄고 속을 좇아서 나와.

속에서 새가 이리 날고 저리 날고 꽃가지에 가지 가지로 옮겨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던 새는, 새가 푸르르르 속에서 날아오면 새의 몸에는 향이 묻어있다 그말이여. 향내가 풍기는 법이다 그말이여.


용함우향동중귀(龍含雨向洞中歸). 용은 구름이 없으면 수가 없거든. 그래서 항시 용은 비를 머금고 동굴 속을 향해서 돌아가. 용은 구름을 타고 움직이게 되고 비를 갖다가 수반(隨伴) 해야 승천을 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용은 비를 머금고 동중(洞中) 향해서, 동굴 속을 향해서 돌아가더라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실천한 사람에게는 마치 속에서 노래하고, 속에서 춤을 추고, 속에 의지해서 사는 새에서 향내가 나듯이, 불법을 믿고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비와 지혜의 향내가 몸과 얼굴과 말과 입김 속에 항시 지혜와 자비의 향내가 풍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불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설사 아무 말도 하더라도 몸에서는 지혜와 광명이 빛이 풍기는 것입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 암흑 세계라 하더라도 정법(正法) 믿고 불법을 믿는 사람에게서는 향내가 풍기는 법이고,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윤택(潤澤)하게 하는 청정한 물이 윤기가 있는 것입니다.

윤기(潤氣) 있다 하는 것은 사람이 각박(刻薄)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각박하면 그것이 인정이 메말라서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항시 마음이 넉넉하고 지혜와 자비가 넘쳐흐르면 사람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적셔 있는 그러한 윤기가 있어서 모든 사람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집안에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집안이 윤택하게 되고 향내가 풍기는 법이고, 사람이 있는 마을이 그렇게 되고, 사람이 있는 사회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만 있어도 그렇거든 하물며 법당에 계신 용화사 도량에 계신 수천의 모든 사부대중이 그러한 마음으로, 그러한 말씨와 그런 행동으로 생활을 나가신다면은, 경향 각지에 골골이 그런 분이 섞여서 사신다면,

우리나라도 온통 자비와 지혜의 향으로 가득차게 되고 모든 재앙과 업을 씻을 있는 감로(甘露) 비가 골마다 방방곡곡에 흐르고 넘쳐흐르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내가 먼저 하는 생각 돌이키는』 운동이 요원(燎原) 불길처럼 널리널리 번져서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이 몸담아 계시는 모든 직장과 사회가 부처님의 그러한 지혜와 자비로서 넘쳐흐르게 되도록 노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영축염화시상기(靈鷲拈花示上機)  긍동부목접맹귀(肯同浮木接盲龜)

나무~아미타불~

음광불시미미소(飮光不是微微笑)인댄  무한청풍부여수(無限淸風付與誰)

나무~아미타불~


영축산에서 우리 부처님께서 백만억 대중 앞에 꽃을 들어서 보이셨습니다. 오직 가섭 존자(迦葉尊者) 분이 파안(破顔) 미소를 했습니다. 비긋이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내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있는데 이것을 가섭에게 전하노라이것이 영산회상에 염화를 들어서 () 전하신 소식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 삼천년 전에 인도(印度) 영축산의 소식이지만 우리가 생각 돌이키면 바로 자리가 영산회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낱낱이 부처님이요, 여러분 낱낱이 가섭 존자가 되는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불법은 각자 자기에게서 찾는 것이지 삼천년 전으로만 가야 부처님이 계시고, 삼천년 전만 가야 가섭 존자가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생각에 삼세제불(三世諸佛) 출세(出世)하시는 것입니다.(5151~6549)()



----------------(1/4)


*(게송) 상풍괄지소고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 5염화(拈花)’ 남명천(南明泉) 게송 참고.

*서릿바람 ; 서리가 내린 아침에 부는 차가운 바람.

*엄동설한(嚴冬雪寒) ; 내리는 한겨울의 심한 추위.

*봄뜻 ; 봄이 오는 기운.

*누설(漏泄·漏洩 / ) ; ①비밀이 남에게 은밀히 알려짐. ②기체나 액체 따위가 밖으로 새어 나감.

*산말랑이 ; ‘산마루(산의 등줄기의 가장 높은 )’ 사투리.

*소한지절(小寒之節) ; 소한의 절기(節氣). 소한의 . 소한의 계절(季節).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동남동녀(童男童女) ;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아울러 이르는 .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등한(等閒等閒視)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김.

*불자(佛子) : 부처님의 아들이란 말이다。불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 목숨(慧命) 이어 가고, 법의 집과 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엉어리 ; ‘응어리(원한이나 울분 따위로 가슴속에 쌓여 맺힌 감정)’ 사투리.

*() ; (산스크리트어: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비근하다(卑近-- 낮을·가까울·알기 쉬울 /가까울 ) ; 주위에서 흔히 보고 들을 있을 만큼 가깝고 알기 쉽다.



----------------(2/4)


*악평등(惡平等) ; 옳고 그름이나 잘잘못을 가려 따지지 않고 무엇이든지 무조건 평등하게 하는 .

*38(三八線)2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 815 맥아더가 발표한일반명령 1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송)身上着衣方免寒  口邊說食終不飽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10황벽(黃檗) : 汝等諸人盡是噇酒糟漢송고(頌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0 390주조(酒糟)’ 운문고(雲門, 대혜종고) 게송 참고.

*(게송) 莫怪坐來頻勸酒  自從別後見君稀 ; [선종송고련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27 불안청원(佛眼淸遠) 게송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0 393형의(形儀)’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관조(觀照) ; ①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②지()로써 (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 (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 ()하여 바르게 아는 .

*일향지간(一餉之間  /식경食頃·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가다·이를 /사이 ) ; ‘  먹을 사이, ‘짧은 시간 동안 뜻한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게송)江水淨而秋月臨  信心生而諸佛降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8 소청성위편(召請聖位篇) 게송 참고(한국불교전서 11).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근본 성품, 각성(覺性), 자성(自性).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상태. 깨달음.



----------------(3/4)


*되다 ; ①일이 힘에 벅차다. ②물기가 적어 빡빡하다.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경책(警策 깨우칠 ,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도살장(屠殺場 잡을·가축을 잡거나 사람을 죽임·가를·칼로 베어 끊음 /죽일· /마당· ) ; 고기를 얻기 위해 소나 돼지 따위의 가축을 도살(짐승을 잡아 죽임)하는 .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숫제 ; ①아예 전적으로. ②처음부터 차라리.

*재앙(災殃 재앙 /재앙 )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구녁 ; ‘구멍 사투리.

*바늘귀 ; 바늘의 한쪽 끝에 실을 있도록 뚫어 놓은 구멍.



----------------(4/4)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숙세(宿世 지날 , 세상 )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 세상().

*불원천리(不遠千里)하다 ; 천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다.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공업에 종사하던 부호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 받은 재가(在家) 남자.

*(게송)鳥帶香從花裏出  龍含雨向洞中歸 ; [선종송고련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16 심문분(心聞賁) 게송 참고.

*수반하다(隨伴-- 따를 /따를· ) ; ①붙좇아서 따르다. ②어떤 일과 더불어 생기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향내 ; ①향기로운 냄새. ②향의 냄새.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윤택하다(潤澤-- 젖을·적실·은혜를 베풀·윤기·이익·광택·꾸밀 /·윤이 ·윤택하게 ) ; ①살림 따위가 여유가 있다. ②맵시나 빛깔이 부드럽고 번지르르하다.

*윤기(潤氣 젖을·적실·은혜를 베풀·윤기·이익·광택·꾸밀 /기운 ) ;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운 기운.

*각박하다(刻薄-- 새길·심할·모질 /엷을·메마를·정이 없을 ) ; ①인정이 없고 모질다. ②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③땅이 기름지지 않고 거칠다.

*감로(甘露) ; 감로수(甘露水). 산스크리트어 amṛta 팔리어 amata

①신들(諸天) 상용하는 음료. 이것을 마시면 불로불사(不老不死) 된다고 한다. 신약(神藥). 불사의 영약. 도리천(忉利天) 있다는 감미로운 영액(靈液). 장수하고 죽은 이를 환생시킨다고 . 최고의 자미(滋味) 비유함.

②맛은 달고, 마시면 죽지 않는다라고 일컬어지던 것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믿으면 끝없는 공덕과 이익을 얻는다는 뜻에서 ‘부처님의 가르침 다디단 이슬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③불사(不死). 영원의 () 의미. ④최대의 경지. 깨달음. 열반(nirvana) 동일. ⑤정갈하고 감미로운 .

*요원(燎原 화톳불·태울·들불 /언덕· ) ; 불타고 있는 벌판.

*(게송)영축염화시상기~’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 5염화(拈花)’ 삽계익(霅溪益) 게송 참고.

*파안(破顔) ; 얼굴 표정을 밝게 하여 활짝 웃음.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

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존자(尊者) ; ①산스크리트어 āyuṣmat 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 . ②성자. 현자.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정법안장(正法眼藏) ; 부처님의 바른 교법이라는 .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간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체득한 깨달음을 뜻한다.

*열반묘심(涅槃妙心) ;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오묘한 깨달음의 마음.

*영산회상(靈山會上) ;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주요 내용]


(게송)상풍괄지소고해~ /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무서운 도적 / 자기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라 / 악평등(惡平等) / (게송)신상착의방면한~ / 생사는 호흡지간에 있다 / 소가 되어 갚는 / 남에게 빚지지 말고 덕을 베풀어라 / ‘ 생각단속이 근본 / 가장 훌륭한 포교(布敎) / (게송)조대향종화리출~ / (게송)영축염화시상기~



[주요 문구]


밖에서 들어온 도적은 아무리 가지고 봤자 별것이 아니고,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도적은 자취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해독을 끼친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을 해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모든 차별적인 상황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세상을 평등한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거든 먼저 자기의 마음을 비워라. 자기의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라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사는 도저히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젊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요,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닙니다.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과 건강과 병약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생사는 언제나 우리 코앞에 닥쳐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상을 철저하게 느껴야 비로소 발심(發心) 했다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발심한 사람이라야 도를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심(信心) 있는 곳에야사 비로소 불성(佛性) 씨에서 싹이 트고 잎이 피고, 가지 피고 피어서 열매를, 불과(佛果) 맺는 것이다.


옛날부터소는 빚을 갚기 위해서 왔다스님네한테는시주것만 먹고 도를 이루지를 못하면 죽어서 소가 되느니라이러한 말씀으로써 항시 경책(警策) 하고 그러한 법문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마음)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큰일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에 처음에 생각 ! 일어날 때에 ! 그때 단속을 해버리면 가장 쉬운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모든 재앙도 생각때문에 무서운 재앙을 초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있어서는 마음 생각, 생각 마음 단속하는 것으로서 근본을 삼는 것입니다. 생각을 단속을 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 가지고 죄를 지어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고, 축생이 되는 것입니다.


항시 마음이 넉넉하고 지혜와 자비가 넘쳐흐르면 사람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적셔 있는 그러한 윤기가 있어서 모든 사람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법은 각자 자기에게서 찾는 것이지 삼천년 전으로만 가야 부처님이 계시고, 삼천년 전만 가야 가섭 존자가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생각에 삼세제불(三世諸佛) 출세(出世)하시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