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23. 10. 30. 13:09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발송 안내.

 

안녕하세요. 올해 5월 27일에 『전강선사일대기』를 간행하였습니다.

이에 간행을 기념하고 신도분들이나 관심이 있는 분들의 수행 정진에 보탬이 되고자 『전강선사일대기』 약간 분량을 준비하여 원하시는 분들께 보내 드리고자 합니다.

 

원하시는 분은 아래 메일로 신청하시면(이름, 주소, 전화번호, 크기) 착불 택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강선사일대기』는 2가지의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크기 비교 사진 첨부). 꼭 원하는 크기 하나를 선택하여 신청하십시오. ①일반판.(18.5cm x 24.5cm)  ②큰글자판.(23cm x 30cm)

 

 

메일 주소 ; sonaduim@gmail.com

 

 

*<전강선사 일대기 가이드>도 같이 보내 드립니다. <전강선사 일대기 가이드>는 일대기 법문을 자세히 소제목으로 정리해서 『전강선사일대기』 법문을 더 쉽게 찾아보고, 또 유튜브 영상도 QR코드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수집된 개인 정보는 이번 발송을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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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는 전강 선사(1898~1974)께서 제자들의 청법(請法)에 인천 용화사에서 1970년 11월 20일(음)부터 설하신 18편의 법문(法門) 녹음(錄音)한 것을 고대로 활자화한 법문집입니다.

 

전강 선사께서 어린 시절과 17세에 해인사에 출가하셔서 20세에 강원을 수료하시고, 직지사 선원에서 용맹정진하신 것, 23세에 곡성 태안사 동리산 너머 산밑에 징검다리를 건너시다가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신 내용.

그리고 혜봉 스님, 혜월 스님, 한암 스님, 용성 스님, 보월 스님, 만공 스님, 당시 여섯 분의 대선지식(大善知識)과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두르면서 맞부딪치는 법거량을 해서 인가(印可)를 받은, 오늘날까지 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의 등불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온 한 장면이 전강 선사의 「일대기(一代記)」 법문 속에 낱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위의 역사적인 내용과 더불어 전강 선사께서 평생 선양하신 참선법(參禪法),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의 구체적인 수행 방법의 내용—포구발심(怖懼發心) · 화두(話頭) · 수참활구(須參活句) 막참사구(莫參死句) ·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삼요(三要, 신심 분심 의심) · 묘관(妙觀) · 의단독로(疑團獨露) · 화두타파(話頭打破) · 확철대오(廓徹大悟) · 용무생사(用無生死) 현중현(玄中玄) · 고봉 선요 법문· 법문 듣는 법 · 경책(警策) 등등 전강 선사께서 후학을 위하여 일대사(一大事),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을제시하는 간절하신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허 스님과 제산 스님의 만남, 해인사 이회광 스님 진산식 때 일화, 오대산을 넘으며 겪으신 일화, 경봉 스님과 탁마, 홍도여관에서의 무애행, 무주 안국사 시절, 상기병(上氣病) 자연치료와 추천원 스님의 호랑이 이야기와 차력하는 김익수, 가야금을 타는 박홍록과의 만남, 1920~30년대 신여성(新如性), 다꾸시(택시)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전강선사 일대기> 동영상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전강선사 일대기'에도 자세한 용어풀이와 함께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잘 비교해서 선택해주세요🙏

 

Posted by 닥공닥정
301~400/(376~400)2023. 8. 17. 16:55

(No.387)—1989년 법보재(89.4.21) (65분)

 

(1) 약 33분.

 

(2) 약 32분.



(1)------------------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야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堂堂)한 대도(大道)가 밝고 밝아서 분명해. 사람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서 낱낱이 뚜렷하게 다 이루었더라.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다.
그렇게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대도를 낱낱이 가지고 있건마는 다못 한 생각 어긋지는 바람에 이렇게 영겁(永劫)토록 만 가지 얼굴을 나투더라.

본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이나 우리 모두가 똑같은 존재였어. 그런데 비로자나 법신불은 한 생각을 어긋지지 아니했기 때문에 영원히 법신불로서 온 우주 법계에 두루하고 계신 겁니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바로 그 도리를 깨달아서 비로자나 법신과 한마음, 한 몸이 되셨건만 우리 중생은 한 생각 어긋남으로 해서 업상(業相) ・ 전상(轉相) ・ 현상(現相), 삼세(三細)의 세 가지 그 미세한 망념이 동(動)해 가지고 여섯 가지 머트러운 생각[六麤]을 일으켜서 육도 법계(六道法界)를 이렇게 생사(生死) 속에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여.


오늘 기사년(己巳年) 3월 16일(음력) 용화선원의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 각 열위 영가(各列位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보재(法寶齋) 대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이 법보단에 봉안되어 있는 만년위패 각 열위 영가는 숙세(宿世)로부터 많은 인연을 맺어서 그래서 이렇게 법보단에 만년위패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이 우주 법계에 그 영가(靈駕)가 몇 백억만의 영가, 천문학적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 많은 영가 가운데에,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 만년위패에 현재 모셔 있는 위패(位牌)가 대략 1만6천 이상 올라가고, 그 한 위패에 두 분 내지 세 분씩 모신 위패도 있어서 2만2천여의 영가가 지금 모셔져 있습니다.
그 우주 법계에 빼어 난 틈없이 가득차 있는 영가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이 법보단의 만년위패에 모시게 되었는가? 이것은 결단코 우연한 인연(因緣)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불법(佛法), 정법(正法)의 인연을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맺어 왔기 때문에 사후(死後)에 영가로서 이렇게 모시게 된 것입니다.

모시게 된 그 인연은 효심(孝心)이 있는 아들이나 딸이나 며느리가 있었고, 또 인연 깊은 아내가 있고, 또는 인연이 있는 자비(慈悲)한 일가친척이 있어서 그러한 연분(緣分)으로 해서 여기에 모셔지게 되었고, 또 본인이 스스로 이렇게 모시고 간 분도 계시지만, 그거야 어떻게 되었든 여기 만년위패에 모시게 된 것은 그러한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어. 그래서 여기에 모시게 된 것이여.
한 생각 어긋짐으로 해서 육도(六道)를 윤회(輪廻)하다가 결국은 영가로서 여기에 따악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그 ‘한 생각 어긋진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목련존자(目連尊者)라고 하는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대성현이 계시는데, 부처님의 왼팔이요, 사리불존자(舍利弗尊者)는 부처님의 오른팔이라고 할 만큼 그러한 부처님의 아주 대제자인데, (목련존자) 그분이 5백 생 동안을 그렇게 물매를 맞아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저 5백 생 이전에, 몇 겁 이전에—결혼을 해 가지고 아내와 너무 가깝게 지내고,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한테 썩 효심이 있고 그랬었는데 결혼한 뒤로는 아내한테 빠져 가지고 부모한테 등한히 하니까 그 어머니가 ‘그놈이 계집을 얻더니 미쳐 가지고 에미를 본체만체한다’고 밤낮 그런 꾸지람을 하시니까, 처음에는 한두 번 그냥 들었었는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니까 그냥 신경질을 내면서 ‘어떤 기운 센 놈이 그냥 저 늙은이 좀 뚜드려 팼으면 좋겠다’고 이런 입에 못 담을, 부애 김에 푹 해 버렸다 그 말이여. 그 과보(果報)로 5백 생 동안을 죽을 때는 맞어 죽었어.

신통(神通)이 자재(自在)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한 분이 되어 가지고도 마침내 돌아갈 때에는 맞어 죽어. 외도에, 집장 외도(執杖外道)한테 맞어서 돌아갔어.
물론 뭔 잘못이 있어서 맞어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그 외도들이 그전에는 자기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모두 부처님한테 다 개종을 하고 귀의를 하니까, 그 신도를 다 빼앗기게 되니까 ‘어떻게 하면은 이걸 막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가장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에 훌륭한 제자를, 왼팔 오른팔을 꺾어 버리면 되겄다 싶어서 목련존자를 그렇게 죽였는데, 그래도 그 과보(果報)는 전생에 그런 한 생각 푹 신경질을 내 가지고 어머니한테 욕을 퍼부은 그 관계로 5백 생을 그렇게 맞아서 돌아가셨다 그 말이여.


회한당초일념차(悔恨當初一念差)로  황포환각자가사(黃袍換却紫袈裟)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아본서방일납자(我本西方一衲子)로  연하유락제왕가(緣何流落帝王家)ㄴ고
나무~아미타불~

회한당초일념차(悔恨當初一念差)로  황포환각자가사(黃袍換却紫袈裟)다.
참! 한탄스럽고 한탄스럽구나, 당초에 한 생각을 어긴 탓으로 가사(袈裟)를 황포(黃袍), 곤룡포(衮龍袍)로 바꾸어 입었구나.

아본서방일납자(我本西方一衲子)로  연하유락제왕가(緣何流落帝王家)냐.
내가 본래 저 서방(西方), 인도 천축(天竺)의 한 수행 납자(衲子)로서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제왕가(帝王家)에 떨어졌던가.

이건 중국 청나라 순치황제(順治皇帝)가 18년 동안을 황제로 잘 나라를 다스리다가 18년만에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온 나라를 다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순치황제는 황제의 지위를 헌신짝같이 버려 버리고 어느 절로 들어가서 부목 노릇을 했습니다. 부목 노릇을 하면서 이 시를 읊은 것입니다.
수행승으로 도를 닦다가 어느 제왕의 행차를 보고 ‘하! 나도 한번 저렇게 황제가 되어 가지고 한번 정치를 잘해 볼까’ 그러한 잠깐 한 생각 낸 그 과보로 제왕가에 태어나서 천자가 되어 가지고 18년 동안을 그렇게 황제 노릇을 하다가 이렇게 출가를 한 거여.


또 운문(雲門) 선사라고 대도사가 계셨는데 그분은 두 분의 다른 도반(道伴)과 서이 도반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데, 그때 마치 임금님 행차하는 것을 보고 또 잠깐 한 생각을 냈어. ‘아, 나도 임금 노릇이나 한번 해 볼까’ 그런 생각을 잠깐 낸 그 과보로 3생 동안을 임금 노릇을 했습니다.
다른 도반은 목주(睦州)와 영수(靈樹) 선사, 이 두 분은 진즉 3생 동안에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대도인이 되어서 조실(祖室)로서 천 명, 천오백 명 모다 제자를 거느리고 선지식이 되어 가지고 있는데, 이 운문 선사는 한 생각 잘못 먹은 관계로 임금 노릇을 한 생하고, 또 그다음 생에 다시 또 임금 노릇을 하고 그래서 3생 동안을 임금 노릇을 했어. 그리고서 겨우 출가를 했어.

홍도 비구란 스님은 다겁 동안을 수행을 잘해 가지고 머지않아서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견성성불을 하게 되었는데, 정진 중에 병이 나서 문을 열어 놓고 문턱에 손을 놓고서 떠억 앞산을 바라보면서 정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가지고 문이 닫혀졌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문이 닫혀지면서 손가락이 깨졌어. 그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폴쏙 진심(瞋心)을 냈다 그 말이여.
‘아, 못된 바람이 이렇게 불었다’고 하고, 아픈 손을 움켜잡으면서 가벼운 진심을 냈는데, 아! 그 과보로 뱀의 몸을 받아 뱀이 되어 가지고, 그 절에 나타나 가지고 그 모래를 요렇게 꼬리로 골라 가지고 꼬리로써 글씨를 썼어.

아석비구주차암(我昔比丘住此庵), 내가 옛날에 비구로서 이 암자에 머물러서, 다겁근수근성불(多劫勤修近成佛)터니, 다겁 동안을 부지런히 수행을 해서 성불이 가까왔었는데,
송풍취타병중좌(松風吹打病中座)요, 솔바람이 불어 쳐 가지고 병중에 자리에 냅다 쳤다. 일기진심수사신(一起嗔心受蛇身)이다. 한번 진심을 낸 바람에 이렇게 뱀 몸뚱이를 받았다.

그 꼬리로써 글씨를 써. 이러한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건 전부 역사적인 실화입니다.

한 생각 망령된 생각을 낸다던지, 탐심 진심을 낸다던지, 어리석은 생각을 내면 그 한 생각이 한데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것이 과보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몸뚱이로 누구를 꼭 죽여야만 그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누구 죽일 생각을 낸다던지 미워하는 생각하면 그것도 한데에 떨어지지 않어. 결국은 한 생각, 번갯불 치듯한 그 사이에 일어나는 한 생각이 결국은 그러한 무량겁으로 끼치는 윤회(輪廻)의 과보(果報)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해야 하느냐? 한 생각을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할 줄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열반경』에 말씀이 25리, 25리면 우리나라 이수(里數)로는 250리여. 250리 동안 그 넓은 광장에 수십만 명이 거기에 꽉 차 있게 해 놓고, 마치 여의도광장보다도 그 몇십 배 되는 그 광장에 몇 수십만 명이 꽉 찼다 그 말이여.
그런데 왕이 한 신하에게 특명을 내려 가지고, 바리때에다가 기름을 가득 넘실넘실하니 부은 바리때를 들고 그 250 리 동안을 그 바리때를 들고 그 사이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서 갔다오도록. ‘바리때를 엎질러서 기름을 엎지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삐끗 기울어져 가지고 기름이 한 방울이라도 한데에 떨어지면 안 된다’
그래 가지고 또 한 장군에게 명령을 해서 잘 든 큰 칼을 빼서 떠억 들고서 그 뒤을 따라. 따라가면서 기름만 엎지르기만 하면 한 칼로 목을 치도록 그렇게 딱 명령을 내렸어.

그 신하는 왕명을 받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넘실넘실 넘치는 바리때를 들고서 250리를 가는데, 가는 도중에 별별 일을 다 당해.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그 가운데는 모다 금은 목걸이 장식을 하고 참 양귀비와 같이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도 있고 별별 참 유혹 당할만한 그런 일들이 있지만 그런 데에 한눈도 팔 겨를이 없어. 어떻게 전신(全身)이 긴장을 했던지 땀이 비오듯 하는데 그 바리때를 들고 그걸 갔다가 돌아온다 그 말이여.
얼마나 조심을 하면은 한 방울도 엎지르지 않고 250리를 갔다올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더군다나 삐긋해서 한 방울만 엎질러도 장군의 잘 드는 칼로써 모가지가 달아날 텐데.

이 말씀은 무엇에다가 비유한 말씀이냐 하면은 수행자가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기를 가득 든 기름이 넘실거리는 바리때를 들고 250리를 갔다올 때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해라 이거거든.
오욕(五欲), 재산 ・ 보물 ・ 명예 ・ 권리 ・ 색, 일체 오욕락이 전후좌우에 꽉 차 있다 하더라도 기름이 가득찬 바리때를 들고 250리를 갔다올 때 그런 것이 눈에 띨 리도 없고, 한 생각도 생각이 거기에 흩어질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불보살, 조사(祖師)들은 한 생각 방일(放逸)하지 않기를 마치 그와 같이 하셨다 이거거든.

오욕락(五欲樂)은 막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마지막 숨질 때까지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특히 그저 바르게 살려고 할수록에 그런 유혹은 더 심하고, 특히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열심히 닦을라고 할수록에 그러한 유혹은 더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의 손길이 뻗쳐 오는 것입니다.

또 『열반경』에 한 말씀이 있는데 그 잔나비, 원숭이를 잡아서 파는 엽사(獵師)가 무슨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느냐 하면은 끈끈이, 딱 들어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끈끈이를 떠억 넙덕한 상(床) 위에다가 떠억 발라 논다 말이여.
원숭이란 놈이 보고 먹음직스럽게 이렇게 꾸며 가지고 따악 이렇게 해 놓으면 원숭이란 놈이 그놈을 보고 쫓아와서 그놈을 손으로 턱 움켜잡어. 손이 거기에 닿자마자 두 손이 딱 들어붙어 버려. 두 손이 딱 들어붙으니까 암만 띨라고 해도 안 떨어지니까 그걸 띠기 위해서 두 발을 거기다가 버티고서 막 띨라고 하니까 두 발까지 거기에 딱 들어붙어 버려.
두 손이 들어붙고 두 발이 들어붙으니까 이제는 최후 수단으로 입으로 막 그놈을 물어뜯어서 띨라고 하니까 주둥이까지 거기에 딱 들어붙어 버렸다. 그러니 옴싹달싹도 하도 못하고 딱 들어붙어 버리니까 엽사가 와 가지고 그놈을 작대기로 떠억 뀌어 가지고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갔어.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도(道)를 닦을라고 마음을 먹으면 마왕(魔王) 파순(波旬)이가 오욕락으로써 떠억 우리 기회를 봐 가지고 낚시밥을 던진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잠깐 눈을 거기다가 한눈을 팔던지 거기에 집착심을 내면 간단하게 마왕 파순이의 낚시밥에 걸려 가지고 마구니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마구니는 무슨 원수가 져서 발심한 수행인을 그렇게 끌어가는가? 발심을 해서 도를 닦아 가지고 도를 통한 도인(道人)이 생겨나고 부처님이 생겨나면, 마구니 궁전이 흔들리고 마구니 설 땅이 없어져 버려.
마치 경찰이 타락하고 무능하면 그 틈을 타서 온갖 범죄가 날뛰듯이, 경찰이 애국심을 가지고 자기의 임무를 철저히 하고 그러면 치안이 잘 유지가 되고 하면 크고 작은 범인이 날뛰지를 못하는데, 경찰이 타락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부정과 야합을 하거나 하면 날뛰는 것은 온갖 강도 절도 사기가 범람을 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그러한 범죄자들은 어쨌든지 나라의 법이 확립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는 법이여.
그래서 마왕 파순이는 갖은 수단을 써 가지고 어쨌든지 발심한 수행자를 현혹시키고 발심한 신도, 불제자(佛弟子)를 갖다가 갖은 수단으로 현혹하고 유혹을 하고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오욕락(五欲樂)은 마치 원숭이 잡는 끈끈이와 같은 것이고, 그래 끈끈이는 탐진치(貪瞋癡) 오욕이고, 엽사 사냥꾼은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에다 비교하고, 모든 수행하는 사람은 잔나비에다가 비유한 말씀인데, 우리가 바르게 살고 발심을 해서 불법(佛法) 정법(正法)에 귀의해 가지고 도를 닦을라고 하면 크고 작은 많은 그런 마왕 파순이의 유혹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 빠지지 아니하고 그리고 그럴라면은 한 생각 한 생각 단속해서 살아 나가기를 기름이 가득찬 바리때를 들고 가는 그러한 경건하고 엄숙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도를 닦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단속하기를 그렇게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처음~33분27초)





(2)------------------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한데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하니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한데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강호에 강산에 봄이 다하니 꽃 떨어진 바람이야. 봄바람이 부니 활짝 만발했던 꽃이 바람에 휘날리는구나.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여. 해가 저무니 한가한 구름이 푸른 하늘을 지나는구나. 바람이 부니 곱게 피었던 꽃도 떨어지고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 있던 그 구름도 모양이 변하면서 저리 휘날려 없어지는구나.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 그것을 보고 인간의 무상(無常)함을 깨닫게 되는구나. 그 청황적백으로 오색이 찬란하게 그렇게 아름답게 피었던 꽃이 부는 바람에 허망하게 져 버리고, 새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보기 좋게 피어 있던 그 구름도 금방 모양새가 바뀌면서 저리 흩어져 없어지는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의 오욕, 명예 ・ 권리 ・ 재산 ・ 권리 이런 것들이 정말 무상하고 허망한 것을 정말 분명히 알 수 있구나.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여. 정말 비긋이 웃는 웃음 속에 인간 만사(萬事)를 다 잊어버리게 되는구나.

인간의 무상(無常)한 것을 정말 확실히 깨달아 버린다면 어찌 그까짓 재산이라든지, 명예라든지, 권리라든지, 색이라든지 그까짓 것 때문에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그것을 위해서 싸울 수가 있겠는가.
그것을 좀 많이 차지할라고 국법을 어기고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망하도록 인류가 망하는 데도 그것을 불구하고 자기만 부자가 될라고, 자기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 공장 폐수를 막 강물에 흘려보내 가지고 강에 있는 고기들이 다 죽고, 거기에 날아오는 모든 학과 철새들이 다 죽고, 그 물을 마시고 사람들이 다 병들어 죽게 만드는 그러한 짓을 할 수가 있겠느냐?
자기가 정권을 잡고, 자기가 권리를 잡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백성을 죽이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한 짓을 해 가지고 동서고금의 모든 권리 좋아하는 사람들 다 쓸쓸하게 죽어가고, 우리 눈으로 지옥에 간 곳은 우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마는 그 사람들의 말로(末路)가 어떻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현실적으로 보면서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막 자기가 나라야 망하거나 말거나, 회사야 망하거나 말거나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불법을 믿은 사람은 정말 철저하게 오욕(五欲)이 정말 무상(無常)하고 허망하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본다면은 우리 불법을 믿는, 정법을 믿는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는 정말 숙세(宿世)에 얼마나 선근(善根)을 심어 왔으면 우리는 그런 데에 얽혀 들어가지 아니하고 이렇게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해서 영원한 해탈도를 향해서 이렇게 정진(精進)을 하고 한 회상(會上)에서 법문을 듣게 된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이 법보단에 모셔 있는 2만 수천의 영가들도 참 숙세에 깊은 선근을 심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시면 과연 어떠한 공덕(功德)이 있을 것인가?

첫째, (영가가) 마음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편안한 거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조상을 정성스럽게 받드는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이 점점 흔들리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돌아가신 영가(靈駕) 조상을 잘 받드는, 집집마다 옛날에는 사당(祠堂)이 있었는데 이제 사당 있는 집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가가 계실 곳이 없어져 버렸어.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이렇게 만년위패로 모시게 되었으니 영가가 얼마나 흐뭇하고 편안하시겠느냐 이거거든.

더군다나 그냥 막연하게 모셔 놓은 데에 그치지 아니하고 아침마다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을 올리고, 법회가 있을 때마다 축원을 해 드리고 이렇게 좋은 법문을 들을 수가 있으니 무량겁으로부터 오는 모든 업장(業障)이 봄눈처럼 소멸이 되고, 설사 과거에 그 얽히고설킨 원한(怨恨) 관계가 있다손 치더라고 자꾸 법문을 듣고 듣다 보면 스르르르 하니 다 풀어져 버려. 그러니 마음속에 맺히고 맺힌 원한과 미움이 풀어져 버리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구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서 풀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원망(怨望)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풀어 버려야 해. 부부간에, 형제간에, 일가친척간에 어쨌든지 원망 원한이 있으면 내가 자진해서 풀어 버려야 하는 거여. 그것을 어찌 오래오래 끌고가고 내생에까지 끌고간다면 그것은 큰 일인 것입니다.

네 번째는 좋은 도반(道伴)들을 만나. 이 만년위패에 2만 수천의 영가들이 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해서 좋은 도반이 되는 것입니다. 영가의 세계는 항상 배고프고 목마르며 그렇게 외롭고 괴로운 것인데, 이 법보단에 모심으로 해서 많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서, 많은 영가들과 한 도반이 됐고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외롭지를 안 해.

다섯 번째는 항상 이렇게 어떠한 크고 작은 재사(祭祀)나 천도재(薦度齋)가 있어도 이 법보단에 모신 모든 영가들이 정식으로 초빙이 되어 가지고 같이 운감(殞感)을 하시고, 그렇게 천도를 받을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배고프고 굶주린 것이 없어져.

여섯째는 자손과 그 가족들이 모두가 다 편안하고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할 수가 있게 되어.
그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나, 그 영가가 원한을 품고 돌아가시게 되면 그 영가가 갈 곳이 없고 거리 중천(重泉)을 헤매다가 항상 그 집안을 맴돌면서 하소연을 하기 때문에 집안이 편틀 못하고 자꾸 마장과 장애가 일어나고 자꾸 비명(非命)에 횡사(橫死)하는 그런 사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수가 있는데, 그 영가를 편안히 이렇게 모셔 드리니 집안에 그런 우환(憂患)이 끊어지고, 또 그 영가를 여기다 모셨으니 자연히 여기 신도가 되어서 와서 법문을 듣고 그러니 발심을 해서 그러니 또 그러한 좋은 공덕(功德)을 얻게 되는 것이여.

그리고 여덟 번째는 이 영가와 우리 모두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천상 극락(極樂)에 왕생(往生)을 하고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지 않게 되어. 이렇게 보리심을 발해 가지고 정법에 귀의해 가지고 참선 수행을 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삼악도에 떨어질 수가 있느냐 이거거든.
그래서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 이렇게 법보단을 창설을 하셔서 우리 모든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하여금 이렇게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인연 있는 영가를 모심으로 해서 이런 여덟 가지 공덕을 얻도록 자비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겨우 열 분, 스무 분, 일 년 내 들어온 분이 겨우 이렇게 몇십 분밖에 안되었는데, 해마다 가속도가 붙어서 이제는 이 법당이 거의 얼마 안 가서 위패가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득차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이 법보전을 증축을 할 수밖에는 없어서 금년에 양쪽으로 세 칸을 밑으로부터 위에까지 3층으로 이렇게 증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도분들도 법회 때마다 이 법당에 다 들어오시지를 못하고 저 앞뜰에 잔디밭에, 여름에 그 뙤약볕에도 그 밖에서 들으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미안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양쪽으로 법당을 늘키면은 신도님네들도 와서 법회에 참석하시기 좋고, 영가들도 몇 해 동안 잊어버리고 이렇게 또 모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어올 뿐만 아니라 외국에 가 계신 모든 교포들도 서로 다투어서 여기 위패를 모시는 바람에 이렇게 많은 법보가족(法寶家族)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법보단에 위패(位牌)를 모신 분, 또 생축(生祝)으로 올리신 분, 우리는 모두가 남녀노소와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한 형제간이 된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세세생생에 여읠 수 없는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서 기어코 우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일체중생을 다 제도(濟度)할 때까지 우리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한 목적지를 향해서 우리는 가야 할 그러한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세속에 인연은 혈통으로 맺고, 무슨 은혜로 맺고 원수로 맺고 이래 가지고 설사 어떤 좋은 인연으로 선연(善緣)으로 은혜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거든. 끝없이 얽히고설켜서 삼악도(三惡途)로 가는 인연인데,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인 것입니다.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한번 자신의 본마음 왕, 본심왕(本心王)을 위배(違背)하고 나와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몇 번이나 삼악도에 빠졌다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거쳐 왔던가.

태(胎)로 들어갔다가, 알[卵]로 들어갔다가, 습(濕)으로 들어갔다가, 화(化)로 들어갔다가, 태란습화 사생의 몸뚱이를 받아 나면서 삼악도를 돌고 돌아 오늘 여기에까지 와서, 법보제자로서 최상승 법문(最上乘法門)을 듣고 무량겁으로부터 쌓아 온 그 번뇌를 깨끗이 씻어 버리게 되었습니다.(今日滌除煩惱染)
한 생각 어긋남으로 해서 무량겁 생사윤회를 받았지마는, 거꾸로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영원한 해탈도로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의 묘(妙)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하고 죄를 많이 지었으니, 어떻게 우리 같은 죄 많은 중생이 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을까,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한 생각 삐끗 어겨 가지고 지옥에도 갈 수 있지만, 한 생각 자성(自性)으로 탁! 돌이킴으로 해서 해탈도로 들어갈 수가 있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여. 한번 뛰어 가지고 부처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여. 거기에 이 최상승법의 고마움이 있고, 최상승법의 묘(妙)가 있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에 한 생각 돌이키면은 더 빨리 천상(天上)에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 한마디 바로 알아듣고 한 생각 돌이켜 버리면 바로 마음의 고향(故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심왕(本心王), 우리의 자성(自性)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기사년(己巳年) 법보재 법요식을 맞이해서 경향(京鄕) 각지에서 저 일본과 미국에서 사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법보가족이 이렇게 모이셨습니다.
부디 금년에 동참하신 이 인연 공덕으로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消滅)이 되고, 가정도 태평하고 여러분이 경영하는 모든 일이 장애 없이 잘 풀려서 뜻과 같이 성취되시기를 바라고, 거기에서 더 정법에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뭣고 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키는 방법입니다.

‘이뭣고?’ 이것이 시심마(是甚麼),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話頭)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고,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고 다 그 나름대로 참 공덕이 많지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읽고 온갖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다 닦고 그러한 공덕 다 합친 만큼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이여.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프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에 업장이 팍팍 녹아져 버려. 지옥고를 받다가도 ‘이뭣고?’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은 찰나간에 거기서 벗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이뭣고?’ 한마디는 정말 우리가 목숨 바쳐서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저를 따라서 다 같이 ‘이뭣고?’를 한번 하십시오.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제 소리를 내지 말고 속으로 ‘이뭣고?’

‘이뭣고’가 좋다니까 남 자고 있는데 ‘이뭣고? 이뭣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그것도 안 되고, 기차간에서나 어디서나 속으로 해야지 거기 앉아서 ‘이뭣고? 이뭣고?’ 해싸면 그거 안 된다 그 말이여.
때와 장소를 가려서, 가끔 혼자 있을 때에는 잠이 오고 망상이 일어나면 소리를 한번씩 내서 ‘이뭣고?’ 해도 좋습니다마는 여러 인원이 있는 데서는 속으로 하셔야 되어.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숨을 내쉬면서 ‘이뭣고?’
분통이 나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억울하고 속이 상할 때 그렇게 한 여나무 번 속으로 하시라 말이여. 사람이 없는 데에 가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아주 속에 아주 이런 놈이 다 녹아 빠지도록 “이뭣고?~~~~” 이렇게 몇 번만 하면 그렇게 가슴이 미어질라고 한 것이 스르르르 하니 다 풀어져 버린다 그 말이여.

그리고 일요법회, 매달 첫째 일요법회 오후 2시 꼭 빠지지 말고 오시고 또 부득이해서 못 오실 때라도 못 오신 분은 녹음 법문 테이프(錄音法門tape)를 구해 가지고 가셔서 항상 녹음 법문이라도 자주 들으시고.
결제 ・ 해제 ・ 초파일 ・ 칠석 그런 때도 꼭 참석을 하셔서 법문을 듣고 그렇게 해서 자꾸, 까딱하면 풀리기가 쉬운 것, 아무리 가다듬고 할려고 해도 사흘 못 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 푸르르 스르르르 풀어지거든. 그래서 또 법문을 듣고 가면 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가다듬고 또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게송을 한마디 읊고 법보재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내시환희거시비(來時歡喜去時悲)하니  공재인간주일회(空在人間走一回)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여불래역불거(不如不來亦不去)하고  야무환희야무비(也無歡喜也無悲)를
나무~아미타불~

내시환희거시비(來時歡喜去時悲),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모두가 다 축복을 하고 모두가 기뻐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면은 모두가 다 슬퍼한다 그 말이여.
공재인간주일회(空在人間走一回)라. 공연히 인간으로 태어나 가지고 쓸데없이 한바탕 울고 웃다가 그렇게 한바탕 돌아치고 가는구나.

불여불래역불거(不如不來亦不去)요  야무환희야무비(也無歡喜也無悲)다.
차라리 오지를 말고 또 이렇게 가지를 말 것을, 공연히 오고 공연히 가 가지고 기뻐할 필요도 없고 또 슬퍼할 것을 없을 것을.

이것은 순치 황제가 출가해 가지고 읊은 시인데, 산승(山僧)의 생각은 이 세상에 이렇게 태어난 것을 저는 괜히 왔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내생(來生)에도 천당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왜 그러냐?
인간으로 태어나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다시 이 참선(參禪)을 해 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일체중생을 제도할 것이고, 인간으로 태어나야 다시 여러분과 또 만나게 되어서 같은 불회상(佛會上)에서 이 최상승법을 닦게 되기 때문에 저는 다시 인간으로 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괴로운 일이 많지만 그 괴로운 일로 인해서 우리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슬픈 일을 많이 만나게 되지마는 그 슬픈 일로 인해서 우리는 무상(無常)을 깨닫고 발심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일, 슬픈 일을 어찌 일양(一樣)으로 나쁘다고만 하겠습니까.
그러한 것을 계기로 해서 우리가 발심을 하고 정법을 믿고 해탈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된다면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든 원한 관계가 다 불보살(佛菩薩)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화신(化身)이요, 법문(法門)이라고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좋은 일을 만나면은 그런 대로, 나쁜 일을 만나더라도 그 나쁜 일로 인해서 진심(瞋心)을 내고 슬픈 데에 빠지지 말고 철저하게 무상을 느끼면서 발심을 해서 다 같이 최상승법을 향해서 박차를 가합시다. (33분33초~65분15초) (끝)





[법문 내용]

(게송)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 / 용화선원의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시게 된 것은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기 때문 / 목련존자가 5백 생 동안을 죽을 때는 맞어 죽었다 / (게송) 회한당초일념차(悔恨當初一念差)~ / 한 생각 낸 과보—순치황제의 출가, 운문(雲門) 선사의 3생 동안의 임금 노릇, 홍도 비구가 뱀의 몸을 받은 것.

한 생각을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할 줄을 아는 사람 / 『열반경』의 비유. 수행자가 그 한 생각을 단속하기를, 기름이 가득한 바리때를 들고, 한 방울 기름도 떨어지지 않게 250리를 갔다오라. 한 방울만 엎질러도 모가지가 달아난다. 한 생각 방일(放逸)하지 않기를 마치 그와 같이 해야 / 『열반경』의 비유. 엽사(獵師)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놓고 끈끈이로 원숭이를 잡는다.

(게송)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 / 불법을 믿은 사람은 정말 철저하게 오욕(五欲)이 정말 무상(無常)하고 허망하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공덕(功德) / 법보단에 위패(位牌)를 모신 분, 또 생축(生祝)으로 올리신 분,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을 맺었다.

(게송)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 한 생각 어긋남으로 해서 무량겁 생사윤회를 받았지마는, 거꾸로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영원한 해탈도로 갈 수도 있다. 거기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의 묘(妙)가 있는 것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읽고 온갖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다 닦고 그러한 공덕 다 합친 만큼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뭣고?’ / ‘이뭣고?’ 한마디에 업장이 팍팍 녹아진다 / (게송) 내시환희거시비(來時歡喜去時悲)~ / 괴로운 일로 인해서 우리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다.


우주 법계에 빼어 난 틈없이 가득차 있는 영가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이 법보단의 만년위패에 모시게 되었는가? 이것은 결단코 우연한 인연(因緣)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불법(佛法), 정법(正法)의 인연을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맺어 왔기 때문에 사후(死後)에 영가로서 이렇게 모시게 된 것입니다.

한 생각 망령된 생각을 낸다던지, 탐심 진심을 낸다던지, 어리석은 생각을 내면 그 한 생각이 한데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것이 과보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몸뚱이로 누구를 꼭 죽여야만 그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누구 죽일 생각을 낸다던지 미워하는 생각하면 그것도 한데에 떨어지지 않어. 결국은 한 생각, 번갯불 치듯한 그 사이에 일어나는 한 생각이 결국은 그러한 무량겁으로 끼치는 윤회(輪廻)의 과보(果報)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해야 하느냐? 한 생각을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할 줄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 이렇게 용화선원에 법보단을 창설을 하셔서 우리 모든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하여금 이렇게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인연 있는 영가를 모심으로 해서 이런 여덟 가지 공덕을 얻도록 자비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 법보단에 위패(位牌)를 모신 분, 또 생축(生祝)으로 올리신 분, 우리는 모두가 남녀노소와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한 형제간이 된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세세생생에 여읠 수 없는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서 기어코 우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일체중생을 다 제도(濟度)할 때까지 우리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한 목적지를 향해서 우리는 가야 할 그러한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세속에 인연은 혈통으로 맺고, 무슨 은혜로 맺고 원수로 맺고 이래 가지고 설사 어떤 좋은 인연으로 선연(善緣)으로 은혜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거든. 끝없이 얽히고설켜서 삼악도(三惡途)로 가는 인연인데, 우리 법보가족은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향해서 가는 그러한 청정한 인연인 것입니다.

한 생각 삐끗 어겨 가지고 지옥에도 갈 수 있지만, 한 생각 자성(自性)으로 탁! 돌이킴으로 해서 해탈도로 들어갈 수가 있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여. 한번 뛰어 가지고 부처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여. 거기에 이 최상승법의 고마움이 있고, 최상승법의 묘(妙)가 있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에 한 생각 돌이키면은 더 빨리 천상(天上)에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 한마디 바로 알아듣고 한 생각 돌이켜 버리면 바로 마음의 고향(故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심왕(本心王), 우리의 자성(自性)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고, 법화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고 다 그 나름대로 참 공덕이 많지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읽고 온갖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다 닦고 그러한 공덕 다 합친 만큼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이여.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프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에 업장이 팍팍 녹아져 버려. 지옥고를 받다가도 ‘이뭣고?’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은 찰나간에 거기서 벗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이뭣고?’ 한마디는 정말 우리가 목숨 바쳐서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산승(山僧)의 생각은 이 세상에 이렇게 태어난 것을 저는 괜히 왔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내생(來生)에도 천당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왜 그러냐?
인간으로 태어나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다시 이 참선(參禪)을 해 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일체중생을 제도할 것이고, 인간으로 태어나야 다시 여러분과 또 만나게 되어서 같은 불회상(佛會上)에서 이 최상승법을 닦게 되기 때문에 저는 다시 인간으로 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괴로운 일이 많지만 그 괴로운 일로 인해서 우리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슬픈 일을 많이 만나게 되지마는 그 슬픈 일로 인해서 우리는 무상(無常)을 깨닫고 발심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일, 슬픈 일을 어찌 일양(一樣)으로 나쁘다고만 하겠습니까.
그러한 것을 계기로 해서 우리가 발심을 하고 정법을 믿고 해탈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된다면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든 원한 관계가 다 불보살(佛菩薩)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화신(化身)이요, 법문(法門)이라고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좋은 일을 만나면은 그런 대로, 나쁜 일을 만나더라도 그 나쁜 일로 인해서 진심(瞋心)을 내고 슬픈 데에 빠지지 말고 철저하게 무상을 느끼면서 발심을 해서 다 같이 최상승법을 향해서 박차를 가합시다.

Posted by 닥공닥정
1~100/(26~50)2023. 8. 5. 13:43

(No.038)—1977년 2월 관음재일 법어(음 77.2.24) (53분)

 

(1) 약 28분.

 

(2) 약 25분.

 

(1)------------------

정사년(丁巳年) 2월 24일 관음재(觀音齋) 법요식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은 처음 들으신 분은 ‘대관절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도저히 이해가 잘 가지 아니하고, 한 시간 가까이 들었지만 한 말씀도 머리에 남지 아니하고 알 수 없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어려운 법문인 거 같습니다.

원래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가히 설(說)할 수 없는 것이고, 말로써 뭐라고 설할 수 없기 때문에 가히 귀로써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큰스님네는 말로써 설할 수 없는 것을 능히 설하시고, 귀 밝은 사람은 귀로써 들을 수 없는 것을 능히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고서 ‘아하! 이러한 줄거리로 말씀을 하셨구나. 이러한 말씀이로구나. 과연 그렇구나’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조르르 하니 그 말씀의 줄거리를 이해를 하고, 그 법문을 듣고 난 뒤에도 환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그 들은 바 법문 내용을 질서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법문을 잘 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잘 듣고, 그 들은 법문을 다른 사람에게 고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법문을 잘 알아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들은 사람이 과연 제일 잘 법문을 들은 사람이냐?’ 하면은 그 법문을 한 말씀도 옮길 수는 없지마는, 그 법문을 들으면서 또 듣고 나서 알 수 없는 생각에 부딪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이,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다못 그 의심 하나만이 나타나 가지고 일체 번뇌 망상과 잡념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다맛 알 수 없는 화두만이 몰록 드러난 사람,
법문을 듣고 공양을 잡수시되 공양을 들은 그 순간 순간에도 밥이 맛이 있는지, 밥이 된지, 반찬이 짠지 싱거운지 그것마저도 알 수 없고, 다못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이 한 생각만이 현전(現前)해 가지고 있는 그분이야말로 법문을 참으로 잘 들으신 분인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하시는 최초에 ‘유정(有情) 무정(無情)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본래성불(本來成佛)인데, 운하(云何)로 홀생(忽生) 산하대지(山河大地)냐’ 이 법문은 『능엄경』에 있는 법문입니다.
유정(有情) 무정(無情), 유정은 꿈적꿈적할 줄 아는 놈, 일체 동물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벌레에 이르기까지 파리 · 모기 · 빈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동물은 그것이 유정이고, 무정은 나무 · 돌 이러한 것들이 식물이나 광물이나 이러한 것들은 전부 무정인 것입니다.
그러한 유정이나 무정이나 삼라만상(森羅萬象), 삼라만상이라고 하면은 해 ・ 달 ・ 별 ・ 지구,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거, 공중에 있는 모든 것이 전부 다 들어서 삼라만상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유정 무정도 역시 삼라만상 속에 갈라진 것입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본래성불(本來成佛)이다, 청정본연(淸淨本然)하다. 본래성불이라 생사(生死)가 없는 것이다. 청정본연해서 본래성불이어서 그래서 생사윤회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런데 어째서 문득 산(山)과 강(江)과 이러한 땅이 생겼느냐 이 말이여.
본래성불인데 어째서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짐승으로도 태어나고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생겨나 가지고, 생겨난 것은 반드시 찰나찰나에 변해 가지고 결국은 파괴되고 죽어 없어지는 것이냐 그 말이여. 본래성불인데 어째서 생사가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말로는—많은 경전을 읽고, 많은 법문을 들어서 ‘본래 생사가 없는 것이다, 본래성불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듣고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어지거나, 자기의 재산을 누구에게 빼앗기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 ・ 아내 ・ 자식 ・ 친구가 죽게 되거나, 자기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면 생이별, 사이별하게 되면은 자기가 자기를 수습하지 못할 만큼 가슴이 아프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본래 생사가 없는데 왜 자기 것,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로부터 떠나면은 그렇게 가슴이 아프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 이 말씀이여.

우리는 ‘본래 생사가 없다, 본래성불이다’ 하고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 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좋은 비니루 주머니에다가, 가죽 주머니 속에다가 똥과 피와 고름과 송장 뼉다귀 이런 것들을 한 가죽 주머니 속에다가 가뜩 넣어서 그래 가지고 그 자루 아가리를 피와 똥과 고름과 송장 뼉다귀 같은 것들이 나오지 않도록 꽉 쨈매 놔. 그러한 가죽 푸대가 있습니다.
그 가죽 푸대에다가 울긋불긋하게—속에는 그러한 더럽고 징그러운 것이 들었을망정 겉은 깨끗이 씻어 가지고 향수도 바르고, 거기다가 울긋불긋하니 단장을 하고 그래 가지고 비싸게 돈을 많이 주어서 좋은 천으로 그 가죽 푸대를 단장을 잘 해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보물처럼 애끼고, 누가 보고 ‘이쁘게 생겼다, 참 좋은 비단이다, 참 냄새가 좋은 향내가 난다’ 그러면 좋아서 못 견디고, 자기 나름, 자기 딴에는 정성을 다해서 새벽부터서 단장을 해서 그 가죽 푸대를 잘 단장을 해서 내놨는데, 남이 보고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하거나, 보기 싫게 생겼다고 하거나, 무슨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하면은 기분이 팩! 상해 가지고 울고불고 그날은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그러다가 어떠한 기회에 그 가죽 주머니에 구녕이 뚫어져 가지고—구녁이 뚫어지기 전에는 그 가죽 주머니를 잘 단장을 해 가지고 자기도 그것을 좋아하고 또 그 가죽 주머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와 가지고 그 만져 보고 뺨을 비비고 끌어안고 좋아서 못 견디다가, 그러다가 어떻게 잘못해 가지고 가죽 주머니에 구녁이 퐁 뚫려 가지고, 피고름이 뻐걱뻐걱 기어나오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그 속에서 똥 썩은 뼉다구가 툭 불거져 나오면은 코를 막고 눈을 가리고 혼비백산해 가지고 뒤로 벌떡 나자빠진다 그 말이여.
어째서 그 가죽 주머니가 뚫어지기 전에는 그렇게 좋아서 못 견디다가, 가죽 주머니가 뚫어져 가지고 더러운 것이 나오니까 그렇게 좋아하던 것을 뒤로 나자빠지냐 그 말이여.

가죽 주머니가 뚫어져 가지고 피고름이 나오면은 벌떡 나자빠질 줄 알면서, 어떠한 사람은 그 가죽 주머니가 뚫어져 가지고 완전히 속에서 피와 똥과 고름과 뼉다구가 터져 나와 가지고 코를 들을 수가 없고 눈으로 볼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그 가죽 주머니가 뚫어지기 이전에 잘 단장을 해서 향수 발라서 비단으로 칭칭 틀어 감아 놨을 때 그때만을 생각해 가지고 그 가죽 주머니를 보고 싶어하고, 그것을 다시 한 번 또 끌어안아 보고 싶고 그것을 못 잊어서 날마다 안타까워하고 울고 있다고 하면은 여러분들은 아마 그 사람을 보고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 가죽 주머니는 내가 이야기로 꾸며 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몸뚱아리가 바로 그 똥과 오줌과 피 고름 송장 뼉다구가 속에 들어 있는 가죽 푸대입니다.
그 가죽 푸대가 이상하게도 말도 할 줄 알고, 귀로 들을 줄도 알고, 손으로 만질 줄도 알고, 발로 걸어다닐 줄도 알고 그뿐이 아니라 그 가죽 주머니는 신기한 것이, 가죽 주머니 고대로 앉어서 서울도 왔다갔다하고, 부산도 왔다갔다하고, 미국도 왔다갔다하고, 10년 20년 어릴 적 시대로 시간을 거리낌없이 시간도 맘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앞으로 자유자재로 왕래를 한다 그 말이여.

가죽 주머니가 보통 가죽 주머니가 아니라 신기하고도 묘(妙)하고 신통(神通)이 자재(自在)한 그러한 보물의 가죽 머니다 그 말이여. 그 가죽 주머니 속에, 그 가죽 주머니를 째고 그 속을 들여다봐도 그 속에는 피와 오줌과 똥과 뼉다구 밖에 안 들었는데, 그 가죽 주머니가 이상하게도 그러한 신통이 자재한 그러한 가죽 주머니여.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신통이 자재한 보물이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을 아지 못하고, 냄새나고 피와 오줌과 똥이 가뜩 들어 있는 그 고약한 가죽 주머니만을 좋아하고 애끼고 그리워할 중 밖에는 모르고 있다 그 말이에요.

그러한 냄새나고 고약하고 징그러운 가죽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부처님 법(法)이요, 진리(眞理)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 보물만 발견을 해서 그 보물만 획득을 한다면은 그까짓 냄새나고 얼마 안 가면 언젠가는 터져서 썩어 없어질 고약한 가죽 주머니는 우리는 그것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 광산(鑛山)을 발견을 해 가지고 그 광산을 구녕을 뚫고 파 들어가서 광맥(鑛脈)을 찾아 가지고, 광맥 속에 들어 있는 광석(鑛石)을 캐내 가지고 그것을 방아를 찧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금(金)을 추려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광(金鑛)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나 보통 다른 산(山)과 마찬가지지마는 그 잘 아는 사람이 보면은 ‘이 산은 반드시 이 속에 금이 들어있겠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갖은 기계를 동원을 하고 인력을 동원을 해 가지고, 그 광산에 구멍을 뚫고 굴을 뚫고 들어가서 열 질 스무 질 지하로 몇백 메타를 파고 들어가면은 광맥이 있는 것입니다. 그 광맥을 찾아 가지고 광석을 캐내서 그래 가지고 방아를 찧으면은, 방아를 찧어서 물로 이루면은 한량없는 많은 금가루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 몸뚱이는 산(山)입니다, 광산(鑛山). 광산이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혀로 맛볼 줄 알고, 손으로 만질 줄 알고, 차웁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라운 것을 분별을 할 줄 압니다. 그러면서도 시간과 공간에 걸림 없이 왔다갔다하고, 그러한 여섯 가지 육식(六識), 육근(六根)이 있습니다.
그 육식을 통해서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울다가 웃다가 성내다가, 일평생을 그러한 번뇌(煩惱)와 망상(妄想), 중생심(衆生心)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중생심이 무엇이냐? 번뇌 망상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광맥(鑛脈)입니다, 광맥. 광맥, 광석, 그 광석(鑛石)을 캐내 가지고 그 광석을 방아를 찧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금(金)을 추려내.

번뇌 망상! 우리는 그 번뇌 망상 때문에 결국은 자기 뜻대로 뭣이 되어 가면 ‘행복하다’ 그러는 것이고, 자기 뜻대로 뭣이 안 되었다 하면 그것을 갖다가 ‘불행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것은 자기 뜻에 맞느냐, 안 맞느냐 그 차이뿐인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한 것이 어떠한 외부적인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내심(內心), 내심으로 그것을 자기 뜻에 맞다고 생각하느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여.

그래서 번뇌 망상 속에 들어 있는 ‘참나’가 있습니다. 그 참나라고 하는 것이 광석 속에 들어 있는 금(金)입니다. 광석 속에는 반드시 금이 들어 있듯이, 번뇌 망상 속에는 ‘참나’, ‘부처’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광산(鑛山) 속에 굴을 뚫어 가지고 광맥(鑛脈)을 찾아 들어가서 광석(鑛石)을 파내 가지고 방아를 찧어서 금(金)을 추려낼 줄을 알면서, 어째서 우리 몸뚱이에 광산, 번뇌 망상의 광석 속에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 이 말이여. 법문(法門)을 그렇게 듣고 알고 있으면서 왜 그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아니하냐 이 말이여.

산속에 들어 있는 금(金)은 설사 아무리 많은 금을 추려내 봤자 그것은 물질에 지내지 못한 것이라 일조일석(一朝一夕)에 큰 부자가 되었다고 자타가 야단이지마는 그 재산은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지내면은 언젠가는 나로부터 떠납니다. 떠날 때 곱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과 칼로 수천수만 번을 찌르고 째서 소금을 뿌리다시피 그러한 상처를 안겨 주고서 나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서운 독사보다도 더 무서운 그러한 이름에 보물을 얻었을 때는 그렇게 좋아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몇 번을 살림을 다 떨어바치고 친구의 재산, 일가친척의 재산을 다 끌어모아다가 그러한 사업을 하다가 다행히 잘되면 좋고, 안 되면은 일조일석에 처참한 거라지가 되고 말고 그러다가 결국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서운 것을 위해서는 생명과 재산을 다 바치면서 그것을 캐낼라고 애를 쓰면서, 이 몸뚱이 속에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보물! 열심히 찾기만 하면 반드시 찾고야만 마는 그러한 보물! 한 번 찾기만 한다면 영원히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고, 나로부터 떠날 수가 없는, 버릴라야 버릴 수 없는, 그리고 영원히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러한 보물은 찾는 데에 그렇게 인색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법문을 절에 10년, 20년, 30년 내지 일생을 절에 다니시면서 법문을 듣고 환히 다 알고, 천수(千手)를 두르르 외우고 온갖 경전을 다 외우고, 금강경을 다 외우고, 무슨 경전하면 출출출출 아! 그렇게 육두백판으로 다 안다 하더라도 내가 참나를 찾는, 나를 찾는, 나를 찾아서 깨닫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은 그러한 믿음, 그러한 신도는 참부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은 거두절미하고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빈부귀천과 그 사람의 지식 유무를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나!—설사 이 똥 주머니와 같은 이 허망하고 징그러운 이 몸뚱이는 얼마 안 가서 터져 가지고 한 줌의 흙, 냄새나는 추악한 한 줌의 흙이 될지라도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 참나를 찾아서 영원히 생사(生死)가 없는 행복의 길을 여러분에게 직접적이고 그리고도 간단하고도 쉬웁게 여러분에게 안내해 드리고 있는 수도원(修道院)입니다.
여기에 나오신 분 가운데에는 오래전부터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많이 듣고 잘 알고 열심히 공부하시고 계신 그러한 분도 계시지마는 오늘 처음 나오신 분도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허망한 몸뚱이 머지않아서, 여기에 앉으신 분은 머지않아서 차츰차츰 한 걸음 앞서가고 한 걸음 뒷서 가서 언젠가는 이 허망한 몸뚱이가 결국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날이 10년 후이냐, 20년 후이냐, 30년 후이냐? 또는 불행하게도 일 년 후이냐, 한 달 후이냐, 하루 후이냐? 오늘밤 일을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오래 30년 내지 50년 뒤까지 살아계시면 그러고 몸이 건강해서 오래오래 사시면 참 그 이상 다행할 수가 없지마는,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권리와 지위와 명예가 높다 하더라도, 또 평소에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음의 날짜에 대해서는 장담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 ‘기생 절개(節介) 있는 것 못 믿고, 겨울 날씨 좋은 것 못 믿고, 노인 정정한 것 못 믿는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비단 노인뿐만이 아니라 젊은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들 생사(生死)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사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한마디씩 말을 해봐라”
제자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루 동안에도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그다음 제자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생사는 한나절을 두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너도 공부하기가 틀렸구나”

또 한 제자가 말하기를 “밥 한 끼니, 밥 한 그릇 먹는 동안에도 죽을 수가 있습니다”
“너도 공부하기가 틀렸구나”

마지막에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죽음이라 하는 것은 숨 한 번 속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숨 한 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옳다. 너는 공부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렇게 죽음이 코앞에 딱! 다가져 있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느낀 사람은 그 사람이야말로 도(道)를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28분1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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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나이 젊으니까 아들딸 다 여워 놓고 그래도 집이라도 하나 다 사 놓고 그런 다음에 내가 참선을 해야지 지금은 아들도 아직 못 여웠고, 딸도 아직 시집을 못 보냈고, 아직 집도 제대로 장만을 못했으니 이래 가지고 내가 절에 가서 언제 참선을 해야? 우린 아직은 그럴 겨를이 없어 못한다’ 이러한 분을 종종 만납니다.

아들딸을 여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집을 얼마든지 돈을 잘 벌어서 집을 장만해야지 장만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 해 놓고 나서 참선을 하리라’ 하고 기다리다가는 죽음이 기다려 주지를 않기 때문에 다 하도록까지 기다려 주고, 그리고도 건강해서 백 년, 이백 년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보장된다면은 우선 급한 일부터 해 놓고 나중에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히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무상(無常)이 원수라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아들을 여의고, 딸을 여의고, 살림을 하면서 내가 나를 찾는 공부를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고 그럭저럭 살림에만 골몰하고 아들딸에만 얽매여 가지고 발버둥만 치다가 죽어가게 될 때에 아들이 나를 위해서 대신 죽어 줄 수도 없는 것이고, 딸이 나를 위해서 죽어 줄 수도 없는 것이고.
‘손자 때문에 집을 못 비우고 나온다’ 그 손자를 금이야 옥이야 하고 귀여워하고 그것을 똥, 오줌을 잘 닦아서 키워 주고, 그놈이 아프면은 같이 잠을 못 자고 밤을 지새우고, 당연히 그리해야 하고 인정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지마는, 그 짓만 하고 나를 찾는 공부를 안 한 사람은 나중에 내가 이 몸뚱이 찰나간에 그 가죽 주머니가 툭 터져 가지고 피와 똥 고름이 터져 나올 때에 그렇게 귀엽게 키워 주던 손자, 아들이 그 똥 주머니를 터지지 않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성의를 다해서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치료도 해 드리고, 병구완을 성의껏 하기는 하겠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일조(一朝)에 다가오는 죽음을 어찌할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 몸뚱이 살았을 때, 이만큼 건강할 때에 옳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바른 방법을 알아 가지고 생활하는 가운데에 열심히 열심히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참나를 찾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녹음 끊김)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져 가지고 그때는 아들딸도 귀엽지도 않습니다. ‘저놈들 때문에 내가 공부를 못해 가지고 이런 삼악도에 떨어져서 이 무서운 괴로운 고(苦)를 받는다’고 할 때에 그때에 가서 아들딸, 손자는 원수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귀여운 자식, 귀여운 딸, 귀여운 손자를 원수로 만들 작정입니까?

펄펄 뛰는 귀여운 아들이 얼마든지 눈앞에 죽어가는 그러한 일을 나는 요 며칠 새에도 많이 봤습니다. 우리 절 신도, 대전 신도, 광주 신도 그렇게 부처님께 빌고, 건강하고 오래 살고 부자로 되고 모든 소원이 되기를 부모님도 빌고, 스님네도 빌고 그랬지마는 자기가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지어 논 그 업(業)은 면할 길이 없어. 언제 가던지 한번은 가는데, 그 가는 아들을 위해서 가슴 아픈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울고불고 피를 토하면서 잠을 안 자고 밥을 굶고 슬퍼한다고 해서 그 아들이 다시 살아 오지도 않고,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 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기왕 가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자기가 과거에 그렇게 지어서 그렇게 가는 것이여. 누구 아무 탓도 아닌 것입니다.

설사 그 자식이 어떠한 강도의 손에 의해서 죽었다 하더라도 그 강도를 원망할 아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전생(前生)에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살생(殺生)을 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금생에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인연(因緣)으로 쫓아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인연으로 쫓아서 살다가, 인연으로 쫓아서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라 누구의 탓도 아니요,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기를, 오래 살다가 편하게 잘 가면은 천 번 만 번 다행하지마는 그러한 일들이 내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나를 찾는, 이 생사(生死) 속에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깨닫기 위해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고, 죽은 아들과 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또 해야 할 일은 피를 토하면서 울 일이 아니라 나를 찾는 길입니다.
나 한 사람이 마음을 수습해 가지고 이 무상(無常)한 것을 보고서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참나를 찾을 때, 화두 한 번씩을 들고 회광반조(廻光返照)해서 나를 찾을 때에 나만 생사 없는 대도(大道)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죽은 아들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청정(淸淨)하면 시방국토(十方國土)가 청정하다’고 이렇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방국토에 가득차게 칠보로 탑을 세운 공덕보단 한 생각 돌이켜서 마음을 깨끗이 가진 공덕이 더 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 그렇게 가슴 아프고 슬퍼할 줄 아는 놈, 대관절 아무리 만져 보고 찾아보아도 얇은 가죽 속에는 피에 범벅이 된 고기 덩어리요, 그 속에를 생각해 보면은 창자와 오장육부, 그리고 그 가죽 주머니를 지탱하기 위해서 뼉다구가 이리저리 얽켜 있는 것 뿐입니다.
그 속에서 그놈을 끌고 다니고, 그놈을 이리저리 명령하는 그 주인, 참나, 그놈이 무엇이냐 그 말씀이여. ‘이뭣고?’
‘이뭣고?’ 슬퍼할 때도 ‘이뭣고?’ 기쁜 일이 있어도 ‘이뭣고?’ 성이 날 때도 ‘이뭣고?’ 무엇이 이렇게 성을 낼 줄 알어? 무엇이 이렇게 가슴 아퍼할 줄 알며, 무엇이 이렇게 기뻐할 줄 아느냐 그 말이여.

이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기쁜 일을 당하면은 기쁜 데에 빨려 들어가서 나를 잃어버리고, 속상한 일을 당하면 속상한 일에 빠져들어 가 가지고 허우적거리면서 나를 잃어버리고,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속에 빠져들어 가서 슬픔에 노예가 되어 가지고 나 자신을 망각하고, 그렇게 몸부림치고 그렇게 발버둥치다가 자기 자신도 눈을 감게 되는 것이 우리 무상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 인생살이입니다.

이러한 허망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왕궁(王宮)의 태자로,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그러한 영화(榮華)와 공명(功名)을 한 몸에 타고나셨음에도 불구하시고, 그러한 부귀와 공명을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생사(生死) 없는 도리,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나를 몸소 깨달라 가지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이 안 계셨던들, 부처님이 그러한 지혜로운 길을 우리에게 가리켜 놓지 않으셨던들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서 이 생사 없는 영원한 행복의 길을 찾는 이 참선법(參禪法)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고, 영원히 육도윤회(六途輪廻) 속에서 울다가 웃다가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여기에서 죽었다 저기 태어나고, 저기서 죽었다 여기서 태어나고 하기를 한량없이 되풀이하면서 서로 죽이고 서로 죽음을 당하고 하면서 원수의 원수를 맺으면서 삼악도(三惡途) 속에서 몸부림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을 여읜 분들, 이것은 그분들에 국한된 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나 자신의 일입니다.
부디 주책없이 일어나는 잡념, 번뇌 망상 그 일어나는 생각, 아무리 안 할라고 해도 한도 끝도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왜 그러한 그 속에는 영원히 써도 다할 날이 없는 무진(無盡) 보물이 그 속에 들어 있거늘 어찌 그 보배가 담겨 있는 광석을 내버릴라고 하십니까?
한 생각 한 생각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쓸 필요도 없이, 일어나는 고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를 드십시오. 깨달음은 반드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쓰고도 남을 보물은 바로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참선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어나는 그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영원히 계속하는 것이지마는, 이 참선법을 아는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아는 여러분은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이 한 생각도 버릴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다못 돌이켜서 나를 찾으십시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앉었을 때나 누었을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것은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못 알 수 없는 한 생각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미련하고 바보스럽게 그렇게 외골수로 고대로 이렇게 지어 나간 사람, 그 사람은 깨달음을 단축을 시킵니다.

만일에 머리가 영리하고 지혜가 있어서 책 보기를 좋아해서 많은 경전 속에서 행여나 좋은 말이 없을까, 행여나 공부에 도움이 될 말씀이 없을까 해서 밤낮 경전을 뒤져거리고, 공부를 하면 답답하고 알 수 없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못인 줄 알고, 그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그것을 그것이 참으로 공부가 잘되어 간 것이건만 그것을 참지를 못해 가지고, 지루하고 답답한 것을 못 이겨 가지고 금방 책을 떠들고, 경(經)을 죽죽죽 읽어 보면은 좀 가슴이 시원하니까 그 맛으로 밤낮 경책(經冊)만 떠들어 보는 그러한 습관이 든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말씀도 부처님 말씀이라 다 주옥(珠玉)같은 말씀이지마는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는, 한번 활구참선을 시작한 이상에는 그러한 경전을 통해서 목적지에 도달할려고 하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물론 경전도 바르게 보면은 다 공부에 조도(助道)가 되는 것이지마는, 참선하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알 수 없다고 해서 노상 경전을 뒤져거린 것은 그것은 옳은 참선 태도가 아닙니다. 답답하고 알 수 없을수록에 ‘이뭣고?~~’ 간절히 그리고 외골수로 거두절미하고 미련스럽게 그렇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참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몸을 바르게 단정히 가지고 처음에 오른팔을 꼬부리고 그 위에, 아니 오른발을 다리를 꼬부리고 그다음에 왼다리를 그 위에다 올려놓고, 그 책상다리지요. 그리고서 오른손을 펴서 위로 요렇게 올려놓고 그 위에다 왼손을 포개서 올려논 다음, 엄지손 배를 이렇게 맞대 가지고 배꼽 있는 데 아랫배 앞에다 갖다가 딱 놓습니다.
그리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가운데다 딱 안정을 시킨 다음, 그러면은 몸뚱이는 앞이나 뒤나 좌우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단정(端正)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서 아무 긴장이 없이 긴장을 다 풀고서 단정히 가진 다음, 이를 따악 물고 혀는 위로 꼬불여서 입천장에다 혀끝을 딱 대고서, 눈은 약 3m 전방에다 눈을 떨구면 됩니다.
눈을 떨군다고 하는 것은 3m 전방에 어느 지점을 의식적으로 응시(凝視)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맛 떴을 뿐이지 아무것도 보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몸을 단정히 갖는 것이 됩니다.

몸을 단정히 한 다음에는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보통 호흡을 허파로 하지마는 수행하는 사람은 배로 합니다.
숨을 들어마셔서 허파를 경유해서 그 호흡이 숨이, 들어마신 공기가 배꼽 밑에 아랫배까지 주욱 들어가서 아랫배가 볼록하도록 들어마십시오. 손가락으로 눌러 보면 빵빵하도록.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터지도록 들어마셔서는 아니됩니다. 약 80%만 들어마셔서 눌러 보면은 마치 빵빵할 정도로 들어마신 다음,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그 뒤로 배를 홀쪽이 잡아댕기십시오. 그러면은 아랫배 빵빵했던 바람이 서서히 나가게 됩니다.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그냥 보통 숨이 들어간 게 아니라 이 허공계에 가득차 있는 우주의 정기, 우주의 바른 기운이 그 호흡...(녹음이 끊김) 내 몸에 완전히 흡수가 되고, 그리고서 조용히 배를 홀쪽이 하면서 내보낼 때에는 그 찌꺼기, 찌꺼기와 내 몸 속에 들어 있는 나쁜 찌꺼기가 그 나가는 숨을 따라서 밖으로 배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방안에 여러 사람이 문을 꼭 닫고 여러 사람이 앉어 보십시오. 30분이 못 가서 그 방안에 공기는 아주 탁해집니다. 방안에 앉어 있는 사람은 잘 모르지마는, 신선한 바깥 공기 속에 있던 사람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매캐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몸 안에 있는 나쁜 공기가 밖으로 배설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허파로만 그렇게 얕으게 호흡을 쉬면은 밖에서 빨아드린 바른 생기가 몸안에 완전히 배들지 못하고, 또 몸안에 있는 구석구석이 찡겨 있는 나쁜 찌꺼기가 불순물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밤낮 허파 안에서만 가볍게 들랑들랑하는 호흡은 그것은 좋은 호흡이 아닙니다.
호흡을 어쨌든지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쉼으로써 우주의 생기(生氣)는 몸안에 잘 배어들고, 몸안에 있는 불순물은 깨끗이 깨끗이 밖으로 배설이 되어서 몸이 가벼워지고 오장육부가 맑아지고 따라서 정신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참선하신다고 하면은 참선해 나가는 도중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빠른 시일 안에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 가지고 보약을 잡숫고 병을 치료하고 하지마는, 그러한 방법에 우선해서 먼저 근본적인 묘방은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통해서 복식 심호흡을 열심히 함으로써 이 몸을 맑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한 후에 약도 병용한다고 하면은 몸에 병도 훨씬 빨리 치유가 될 것이고, 더군다나 참선하는 데에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몸을 바르게 단정히 갖은 다음 복식 심호흡을 잘하고, 그 복식 심호흡을 잘한 위에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 이것이 진짜 참선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마는 무슨 생각이든지 우리는 생각이 부단히 일어났다가[生] 그 생각이 얼마동안 머물러 있다가[住]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異] 결국은 그 생각은 꺼지고[滅], 꺼지자마자 또 딴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일어나는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딴생각으로 갈라져서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또 꺼지고, 그 생각이 꺼지자마자 또 다음 생각이 일어나고 하기를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잠이 꼬빡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잠시도 쉴 새 없이 그러한 정신 작용이 계속되고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잠이 꼬빡 들었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놈이 놀지 않고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무슨 생각이 되었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몸을, 그다음에 호흡을, 마지막에 생각을 그렇게 바르게 잘 단속해 나간다고 하면은 이 생사(生死)가 무상한 허망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대로 삼세(三世)의 모든 불보살(佛菩薩)이 상주(常住)해 계시는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극락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자기가 그 극락 생활을 영위하느냐, 또는 이 세계를 그 무섭고 괴로운 삼악도(三惡途)를 만들어 가지고 그 삼악도 속에 괴로움을 못 이기고 울부짖는 삼악도의 지옥 찌꺼기가 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이 말씀을 뼛속 깊이 명심해 들으셔 가지고, 되건 안 되건 그것은 따질 것도 없습니다. 되거나 안 되거나 무조건하고 ‘이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해 나가심으로써 어느 지옥을 만드냐, 극락을 만드냐 하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28분17초~53분2초) (끝)





[법문 내용]

어떻게 들은 사람이 과연 제일 잘 법문을 들은 사람이냐? 본참공안(本參公案)이,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다못 알 수 없는 화두만이 몰록 드러난 사람 / ‘유정(有情) 무정(無情)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본래성불(本來成佛)인데, 운하(云何)로 홀생(忽生) 산하대지(山河大地)냐’ 『능엄경』 / 우리는 ‘본래 생사가 없다, 본래성불이다’ 하고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 도리를 깨닫지 못했다.

우리 모두의 몸뚱이는 바로 똥과 오줌과 피, 고름, 송장 뼉다구가 속에 들어 있는 가죽 푸대 / 냄새나고 고약하고 징그러운 가죽 푸대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부처님 법(法)이요, 진리(眞理)요, 가르침 / 광산(鑛山) - 우리 몸뚱이, 광석(鑛石) - 번뇌망상, 금(金) - 진여불성 / 이 몸뚱이 속에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영원히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보물을 찾아라.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것이어서, 그렇게 죽음이 코앞에 딱! 다가져 있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느낀 사람이야말로 도(道)를 닦을 수가 있다 /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 / ‘시방국토에 가득차게 칠보로 탑을 세운 공덕보단 한 생각 돌이켜서 마음을 깨끗이 가진 공덕이 더 났다’ / 부처님께서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나를 몸소 깨달라 가지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다.

일어나는 한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를 드십시오. 깨달음은 반드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 답답하고 알 수 없을수록에 ‘이뭣고?~~’ 간절히 그리고 외골수로 거두절미하고 미련스럽게 그렇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 참선의 자세. 복식 심호흡 /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무슨 생각이 되었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 지옥을 만드냐, 극락을 만드냐 하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들은 사람이 과연 제일 잘 법문을 들은 사람이냐?’ 하면은 그 법문을 한 말씀도 옮길 수는 없지마는, 그 법문을 들으면서 또 듣고 나서 알 수 없는 생각에 부딪쳐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이,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다못 그 의심 하나만이 나타나 가지고 일체 번뇌 망상과 잡념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다맛 알 수 없는 화두만이 몰록 드러난 사람,
법문을 듣고 공양을 잡수시되 공양을 들은 그 순간 순간에도 밥이 맛이 있는지, 밥이 된지, 반찬이 짠지 싱거운지 그것마저도 알 수 없고, 다못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이 한 생각만이 현전(現前)해 가지고 있는 그분이야말로 법문을 참으로 잘 들으신 분인 것입니다.

냄새나고 고약하고 징그러운 가죽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부처님 법(法)이요, 진리(眞理)요, 가르침인 것입니다.

번뇌 망상 속에 들어 있는 ‘참나’가 있습니다. 그 참나라고 하는 것이 광석 속에 들어 있는 금(金)입니다. 광석 속에는 반드시 금이 들어 있듯이, 번뇌 망상 속에는 ‘참나’, ‘부처’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광산(鑛山) 속에 굴을 뚫어 가지고 광맥(鑛脈)을 찾아 들어가서 광석(鑛石)을 파내 가지고 방아를 찧어서 금(金)을 추려낼 줄을 알면서, 어째서 우리 몸뚱이에 광산, 번뇌 망상의 광석 속에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 이 말이여. 법문(法門)을 그렇게 듣고 알고 있으면서 왜 그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아니하냐 이 말이여.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은 거두절미하고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빈부귀천과 그 사람의 지식 유무를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나!—설사 이 똥 주머니와 같은 이 허망하고 징그러운 이 몸뚱이는 얼마 안 가서 터져 가지고 한 줌의 흙, 냄새나는 추악한 한 줌의 흙이 될지라도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 참나를 찾아서 영원히 생사(生死)가 없는 행복의 길을 여러분에게 직접적이고 그리고도 간단하고도 쉬웁게 여러분에게 안내해 드리고 있는 수도원(修道院)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렇게 죽음이 코앞에 딱! 다가져 있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느낀 사람은 그 사람이야말로 도(道)를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조(一朝)에 다가오는 죽음을 어찌할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 몸뚱이 살았을 때, 이만큼 건강할 때에 옳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바른 방법을 알아 가지고 생활하는 가운데에 열심히 열심히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참나를 찾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설사 그 자식이 어떠한 강도의 손에 의해서 죽었다 하더라도 그 강도를 원망할 아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전생(前生)에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살생(殺生)을 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금생에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인연(因緣)으로 쫓아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인연으로 쫓아서 살다가, 인연으로 쫓아서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라 누구의 탓도 아니요,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청정(淸淨)하면 시방국토(十方國土)가 청정하다’고 이렇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방국토에 가득차게 칠보로 탑을 세운 공덕보단 한 생각 돌이켜서 마음을 깨끗이 가진 공덕이 더 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왕궁(王宮)의 태자로,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그러한 영화(榮華)와 공명(功名)을 한 몸에 타고나셨음에도 불구하시고, 그러한 부귀와 공명을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생사(生死) 없는 도리,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나를 몸소 깨달라 가지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쓸 필요도 없이, 일어나는 고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를 드십시오. 깨달음은 반드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쓰고도 남을 보물은 바로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