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No.280))—1972(임자)년 동지 법문(전강선사 + 송담스님 법문)(임자72.11.17) (64분)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설하신 법문이 있습니다.

(1/4) 약 16분.

전강선사280-1:4(1972임자년 동지 법문:전강선사 + 송담스님 법문:임자72.11.17:약16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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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약 17분.

전강선사280-2:4(1972임자년 동지 법문:전강선사 + 송담스님 법문:임자72.11.17:약17분).mp3
15.40MB

 

(3/4) 약 17분.

전강선사280-3:4(1972임자년 동지 법문:전강선사 + 송담스님 법문:임자72.11.17:약17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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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약 15분.

전강선사280-4:4(1972임자년 동지 법문:전강선사 + 송담스님 법문:임자72.11.17:약15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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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 스님이 이름이, 저 당호(堂號)가 호가 송담(松潭) 스님데. [앉어 그만, 뭣이든 가만히 앉었어] 송담 스님인데, 송담이라는 그 이름은 절에 들어와서 인자 참 도(道)를 얻어야 도를 깨달라 얻어야 호를 해주는 이름이여. 그 이름, 제일 높은 이름이, 당호 이름이 송담이다 그 말씀이여.

그런데 송담이라고 하면 몰라. 아무도 몰라. [그만 앉어 계셔. 그대로 앉어 계셔] 묵언(默言) 스님이라고 해야 안다 그 말이여. 어찌 묵언인고 하니 10년 동안을 말을 안 했어. 세상에, 귀 뚫어지고 벙어리가 없어. 환허니 들으면서 10년 동안을 묵언을 했는디, 나이 올해 근 오십 되었습니다. 오십 되었는데 지금 어디 오십 되아 보이요, 오십도 안 돼 보이제.
아주 젊을 때 도 닦을 때 10년을 딱 정허고 묵언을 따악 해 가지고는 10년 만에 대오(大悟)를 헌 이여. 도(道)를 통했다 그 소리여. 내가 이런 말허면 ‘내 권속 내 제자’ 이런 게 아녀. 나 그런 말은 뭐 내 부모라도 일없고. 전국에 다 아는 분이여. 전국에서 ‘묵언수좌(默言首座)’ 허면 다 안다 그 말씀이여.

여가 이 자리가 이래 뵈도 누가 올라와요? 못 올라와. 하나도 이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없어. 여그서 내가 10년 동안 설법을 했는디 올라간 사람 없어. 묵언 스님 자리밖에 내 안된다 그 말이여. 내가 고리 넹겨서 아조 여그 원장(院長)이 되았습니다. 여 원장 스님, 나 죽으면 조실(祖室)이 되지, 시방 죽기 전에는 조실 못 되오. 원장만 되지.

아, 조실 스님이 나이 팔십이 되았으니, 인자 칠십도 못 올라가거든. 아 그래 너무 체면없이 팔십 살까장 올려 보낼라고 허니 될 것이요? 그래서 인자 이 원장 스님한테로 이 좌(座)를 넹겨서 오늘 올러가서 인자 마음대로 설법헐 텐게 잘허던지 못허던지 그만 도(道)는 한국에서 젊은이로는 송담 스님밖에 없다 그 말이여. 다 압니다. 아 그 뭐 누구라고 허면 모르는 이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믿고.

스승 하나 옳게 믿으면 그만이제. 스승을 보고 절에 댕겨야지, 절은 마찬가지라고 아무디나 부처님은 똑같다고 모도 이러드구만, 말헐 때 들으면. 그것 소용 하나 없는 것이여. 옳은 스승을 찾아서 댕겨야 옳은 법을 듣고 그러제. 아무때나 또 그러면 아무때나 가 놓으면 무당도 뭐 뭐 부적케니 범연히 알아서 해? 잠깐 간단히 말씀해 마칩니다. 설법 잘 들으십시오. 옷을 뚱뚱허니 입고 두어야 인자 듣고 나오네. 조그만, 인자 나와서 허라는 대로 혀!


<송담스님 법문>

조실 스님께서 너무 올라가기를 강경히 명령을 하시기 때문에 부득이 올라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法)을 설(說)한다’고 허는 것은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허신 바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하면은 그 설하는 사람은 마구니의 왕이 되고, 또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대중은 마구니의 권속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허셨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 자리에 함부로 올라올 자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헌 사람이 능히 법을 설헐 수가 있느냐?’ 하면은, 한 말도 설하지 아니하되 이 삼천대천세계 어느 한구석에도 들리지 아니한 곳이 없을 만큼 또 단 일분일초 동안이라도 그 설법이 근친 바가 없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꽉 차는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헐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허면 입을 열지 아니허되 그 설법이 끊이지 않고 대사자후를 헐 수 있는 사람, 다시 종일 일평생토록 법을 설허되 한 말도 설헌 바가 없는 사람, 능히 이러헌 사람만이 감히 법을 설헌다고 이 자리에 올라올 수가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헐 때에 본인으로서는 감히 이 자리에 올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큰스님의 강경한 그 명령으로 올라오기는 했습니다마는 감히 제가 이 자리에 와서 아무 헐 말씀도 없고 법을 설헌다고 헐 수 없습니다.
이걸 법이라고 생각허시지 말고, 또 저도 법을 설헌다고 그런 생각으로 여기를 올라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점을 먼저 다짐을 드리고서 옛날 조사(祖師) 스님께서 우리에게 공부를 어떻게 허라고 경책(警策)해 주신 말씀 한마디를 소개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다 참선의 그 바람이 일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다 ‘불교’ 허면 참선, 그 참선을 모다 좋아하고 모다 헐려고 애를 쓰고, 그러고 있는 것은 대단히 좋은 현상이라고 반가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밖에서 어떤 학문 배우듯이 배워서 그 힘을 얻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가 해서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지, 어디서 배워서 익혀 가지고 체득을 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마다 다 참선을 헌다고 허지마는 사실은 바르게 허기는 퍽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바르게 허지를 못하기 때문에 3년 10년 내지 일생을 해도 정말 화두(話頭) 하나를 바르게 들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참선할려면은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나지 아니해야 그 참선을 잘허는 것이고, 번뇌와 망상, 중생심이 일어나면 그것이 참선이 잘 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앉어서 어쨌던지 그 망상이 안 일어나기를 바래고, 망상이 일어나면은 그 공부가 잘 안된다고 이리 생각해 가지고 고민을 허고 번민을 허고 한탄을 허고, 허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마는, 그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지 아니헌다고 하는 것은 벌써 목석(木石)이나 죽은 사람은 아무리 번뇌를 일으킬라고 해도 일어나지 아니헐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고 하는 증거로써, 우리가 불성(佛性)이 있다고 허는 그 증거로써 번뇌와 망상이 일어난 것이니 번뇌와 망상이 일어난다고 허는 것은 그것을 미워허고 싫어허고 한탄헐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 우리도 깨달을 수 있는 분명히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허는 증거로써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생각기에 따라서는 아주 다행한 일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그놈과 더불어 일생을 살면서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자고 해도 능히 세속 사람은 살 수가 있고 아들딸도 날 수도 있고 형편 따라서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는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와 권속을 다 버리고 독신으로서 산중에서 못 먹고 못 입고 이 고생을 허며, 신도님들도 집에서 그저 아들을 안고 손자를 희롱허면서 그저 형편따라 재미있게 살 수 있는데 다달이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바쁜 틈을 타서 이렇게 오셔 가지고 큰스님네 법문을 듣고 참선을 헐랴고 애를 쓰시느냐?
우리가 먹고 입고 배불리 먹고 편허게 잠자는 것으로써만이 우리의 인생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하루아침에 다시 불행으로 뒤바꿔질 우려성이 다분히 있는 위험한 생활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것에서 벗어날려고 이 불법(佛法)을 찾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공부허는 과정에 있어서 그 번뇌(煩惱)를 없이 하고 어떠한 청정(淸淨)한 경계가 나타나기를 바래고 무한히 애를 씁니다마는, 그 마음 자세가 제가 생각기에는 또는 옛날 부처님과 조사와 큰스님네의 법문에 의지해서 본다면은 그 번뇌를 없이 하고 어떤 청정한 경계가 나타나기를 바래면서 공부를 헌다고 허는 것은 마음 자세가 틀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번뇌 그놈을 없이 헐려고 허는 디에서 「없이 헐려고 허는 번뇌」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을 아지 못하고, 거기에서 「‘없이 헐려고 허는 그 생각’ 일어나는 것을 꺼려하고 한탄하는 그 생각」 때문에 화두 한번 드는 것이 늦어지는 것이고,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놓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은 어떠한 지나간 일이 되었건, 현실에 닥쳐 있는 일이 되었건 또는 미래에 자기 앞에 돌아올 어떤 사건에 관한 일이 자기 마음속에 일어난다 할 때에 그 일어나는 그 마음에 즉(卽)해서, 바로 그 마음으로 조실 스님께서 일러주신 그 화두(話頭)를 터억 들으신다고 허면은 일어나는 그 번뇌 망상이 우리의 깨달음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그러헌 상대가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화두를 거각(擧却)할 수 있도록 채찍질해 주는 훌륭한 법문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헐 때에 번뇌가 백 번 일어나면 백 번 화두를 들게 되는 것이고, 만 번 일어나면 만 번 화두를 들어서, 들고 또 들면 그것이 염념상속(念念相續)해서 일념만년(一念萬年) 이래 가지고 1년 이태 3년 그렇게 여법(如法)히 공부해 나간다면은 어찌 깨닫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볼 때에 번뇌가 많이 일어나는 사람일수록 화두를 더 잘헐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하나는 우산 장수를 허고 하나는 세탁소를 경영을 했는데, 비가 오면은 그 세탁업을 허는 아들이 빨래를 말리지 못해서 장사가 잘 안되겠다고 한심 걱정을 허고, 또 비가 안 오면은 우산 장수 허는 자식이 돈벌이가 안 되겠다고 이렇게 걱정헌, 일평생을 걱정으로써 세월을 보내는 그러헌 할머니가 계셨다고 합니다.
생각기에 따라서는 비가 오면은 우산이 잘 팔려서 좋고, 비가 안 오면은 빨래허는 자식이 돈벌이가 잘되리라고 이렇게 참 재미스럽게 생각헐 수 있을 텐데, 그놈을 까꾸로 생각해 가지고 비가 오나 안 오나 걱정을 허게 된다면은 그 할머니는 비가 오던지 안 오던지 재미있고 다행하게 생각하면서 생활할 수 있을 텐데 생각을 잘못 먹었기 때문에 일평생을 자식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불행 속에 사는 할머니와 같은 그러헌 식의 공부는 우리는 지양(止揚)을 허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헌 종류의 번뇌가 일어나드라도 그 번뇌로 인해서 정진을 다시 다잽이허고, 어떠헌 몸에 병이 생기고 뜻에 어긋나는 어떤 사건들이 우리 앞에 제출이 되드라도 그러헌 것을 계기로 해서 생각생각이 단속을 허고 정진을 해 간다면은 우리는 설사 금년에 또는 이태 삼 년에 견성을 못하드라도, 마지막 죽을 때까지 설사 큰스님의 인가를 못 받는다 하드라도 조금도 한탄할 일이 아니라 그럴수록에 한 생각 한 생각 단속하면서 정진을 한다면은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한 도인(道人), 자리가 완전히 잡힌 수행자라고 존경을 해도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과거에 큰스님네 법문을 보고 듣고 그래서 속으로 느낀 바도 있고 그래서 참고로 말씀을 드리고, 참으로 훌륭한 법문을 조실 스님께서 허실 테니 그걸 잘 들으시고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15분35초)





(2/4)----------------

<전강선사 법문>

(주장자를 들으시고) 다 보시었제? 이걸 이걸 못 봐? (주장자를 내리시고 ‘쿵’) 잘 보고 잘 들었지요.

그 보는 놈. 이 주장자(柱杖子), 보는 주장자 그만두고 보는 놈, 그놈. 그 참 신령하제. 보는 놈이 그놈이 그 무슨 물건이여? 소리 ‘땅’ 듣는 놈은 또 무슨 물건이여? 보는 놈이 다르고, 듣는 놈이 다른 게 아니여. 보는 놈이나 듣는 놈이나 똑같지. 그 뭐가 보고 뭐가 듣냐 그 말이여.

아 그놈이 낱낱이 우리가 낸디, 내가 낸디, 아 그놈을 모르다니. 이것 참 엄청난 일이지. 그놈을 몰라 놓고 깜깜 칠통(漆桶). 그 내가 낸디, 내가 나를 몰라 놓고, 사람이라고 그래도 내가 사람이라고 돌아댕기면서 살았다고 돌아댕기면서, 기가 찰 일이지. 이것 하나 깨달아 아는 것, 이 물건 하나 아는 것이 그게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법이,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깨달라 가지고는 여태까지 이 사바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에다가 그 죄만 퍼짓는, 죄 퍼짓고 죄 받는 중생한테 그렇게 가르켜줄라고 49년 동안이나 설법을 해서 ‘어쨌든지 그놈의 죄, 숭악헌 중생 죄, 인생 죄, 그놈의 죄에만 파묻히지 말고 깨달라라, 깨달라라. 삼계화택(三界火宅)에 윤회(輪廻)허지 말고 어서 네가 너 깨달라서 해탈(解脫)해라. 그 자리에 해탈이 있다. 헌데 그저 한번 깨달으면 깨달은 그 각전지(覺田地)에 그대로가 해탈이다. 아무 고통도 없고’ 이렇게 일러주고 이렇게 말해줬는데 이렇게 깜깜혀.

아, 나도 여기 와서 10년 동안을 늘 이 말뿐인데, 아 이렇게 깜깜혀. 천하에 쉬운 것은, 천하에 참선보담 더 쉬운 법이 있다면 말을 해 봐. 참선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참선, 내가 나 깨달은, 그 뭐여, 손을 뒤집었다 이랬다 허고, 그만큼 가깝다고 할 수가 있나? 그것도 멀제. 틈도 없어, 틈도. 나를 깨달을 그 깨달른 동안이, 어느 때 깨달을런지 또 시간도 없어. 안 해서 못하고, 믿지 안 해서 안 하고, 믿지 안 해서 못허고 이렇지, 못한 법이 없어. 이렇게 쉬운 참선법, 생사(生死) 없는 법을 왜 그렇게 듣고도 못해야?

여태까장 또 얼마 동안을 내가 안 허다가 그전에 헌 그 홍인대사(弘忍大師) 법문 한마디 또 해야겠구만. 왜 그러냐? 그 법문을 들은 분들이 몇 분이 부탁을 또 해싸. ‘한 번만 더 들었으면은 알겠다’고. ‘그때 그 송구를 잘 모르겠다’고 쌓고 이러니깐, 또 좋고 괜찮허고 해서 시간은 좀 걸리지마는 잠깐 헐터니깐 잘 들어 두십시오.
꼭 듣고 설법을 듣고 ‘꼭 해야겄구나’ 그 마음이 나도록 들으란 말씀이여. 믿어버리면은 그만이니깐. 안 믿은 사람이 큰일이제, 한번 옳게 믿어버리면은 그만이니까.

부처님이 설산 속에 들어가서 여섯 해 만에 깨달랐지. 6년 만에 깨달랐지. 햇수는 6년 만이지마는 턱 깨달을 때는 그것, 시간도 암것도 없어. 그렇게 쉽게 깨달은 시간만 말하자면 그 6년이니, 뭐 여섯 시간이니, 무슨 뭐 6분이니 붙일 것도 없어.
여섯 해 동안은 어떻게 참선을 했는지 그 망상만 퍼일어나고 그 모도 공상만 퍼일어나고 안 되다가 되다가 야단쳤제. 부처님만 그런 것이요? 다 그랬제. 그동안 치지 말고, 그놈의 망상 번뇌 퍼일어나는 그때는 그만두고 확철대오헐 때만, 탁 깨달을 때만 그 시간을 따져 보자면 당초에 분단(分段)도 없는 거여, 시간도 없고. 금방까장 미(迷)했다가 툭 깨버렸단 말이여. 내가 거짓말을 혀? 내가 바로 혀. 내가 당해 놓고 직접 대해서 내가 얘기헌디 거짓말을 혀?

아, 식전에 아침에 10년을 묵언헌 날이 오늘이여. 오늘 마지막이여. “10년을 묵언할 때에는 참선 한바탕해서 견성헌다고 중이 되아 가지고 묵언했지? 10년을 묵언허고 나서 오늘이 10년인데, 오늘 이까장 깜깜허고 있어? 한마디도 못 이르고 깜깜혀?” 아 내가 그러고는 들어왔네. 들어왔는데, 밥 먹고 나서 또 물은게 웬일이여? 그 참 이상혀. 밥 먹고 나서.

아니 글쎄 어째서 그 원 아무리 둔재(鈍才)라고 원 10년이나 말까장 않고, 그 한 이십 시절 청춘에 10년을 그대로—어머니 아버지한테도, 가다가 수레에 떨어져서 수레 타다가 떨어져서 말 못헌다고 그래 가지고는 거짓말까장 해 놓고서는 나허고는 밤중마다, 밤중에 나허고는 말을 했으니깐 꼭 정밤중이면. 내가 뭐 요만큼 하나 틀린 말혀?

그 10년을 그렇게 해 놓고 나서는 ‘오늘이 마지막 가는 날이니 어떻게 혀?’ 내가 통탄을 했다 그 말이여. 밥 먹고 나더니 터크덕 이르는데 거참 환장, 기가 멕히제. 환장 아니라 그만.
아 이런, 말 들으면 아니까. 딴 공안을 물어보니 차! 그대로 했어. 그 공안 일러 봤던들, ‘이뭣고?’를 일러 봤던들 무슨 별다른 것이 뭣이 있어? 뭐 뻘건 것이 있어, 무슨 허연 것이 있어? 거기에 무슨 뭔 광명이 나와, 무슨 뭣이 나와? 뭐가 있냔 말이여? 아무것도 없제. 원 싱겁기를 참 천하에 짝이 없제.

이즉돈오(理卽頓悟)다, 이치는 몰록 깼다. 아무리 이즉돈오(理卽頓悟)지마는, 이치는 몰록 깼지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똥 싸고 오줌 싸고 똑같어. 사상사(事象事)가 똑같지, 다른 법 없어. 다른 법이 있다면 외도(外道)여. 모르는 것을 아는 것도 외도여. 뭐 별 이상스런 것이 하나 깨달았은게 코빼기라도 붙으면 마구니 외도여. 참선법은 그런 거여.
이즉돈오여. 이치는 몰록 깼다. 이치는, 생사 없는 이치 바로 봐 버리는 것이여. 죽고 사는 생사, 생사 이치가 없는데 거가 뭐가 있으리요.

그렇게 깨 가지고, 오! 인자 그 깬 그때부텀 지끔 또 치면은 몇 해나 된지 모르겄오마는 자최를 감촤버려. 인자 겨우 나타났오. 아! 자취 한번 감춰버리더니 그만이여. 아, 그만큼 깼으니 깨달았으니 인자 어디 가서 산중에 들어가던지, 아무디를 가던지, 말을 맥여주던지, 어디 가서 수연득묘(隨緣得妙)해라. 인연을 따라서 지내라 했더니 한번 간 뒤에는 그만이여. 아, 그랬더니 노동판 그런 디 가서, 그만 그 보 막는디 무슨 개 막는디 이런 디 가서 일을 허다가 허리를 그만 다쳐 가지고는 그 허리가 아파서 또 댕김서 고생하고. 참 이런 묵언 스님이 송담(松潭) 스님입니다.

내가 묵언 스님, 송담 스님이 없다면은 내가 여그 와서 아무리 있으라고 해도 내가 여그 와서 있을 사람은 아니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어디 가서 지내든지 그래도 정전강(鄭田岡)하면, 한국에 정전강, 다 ‘정전강 스님이 우리를 가르킬만한 도인(道人)이다’ 다 그 마음, 불법(佛法) 신심을 가진 이는 다 그거 있습니다. 여기 학자(學者)들이 다 모였지만 그 생각이 없으면 오들 안 헐 학자여. 여기에 수십 명이 지나갔지마는 전부 전강 스님한테 한철 지내기를 원해 가지고 왔었습니다. 허지마는 다 방부도 못 받고. 내 힘이 뻗질러야제.

큰 대본산, 수천 석을 받는 수백 석을 받는 디도 아 선객(禪客) 한 몇십 명 기르자면은 한량없는 금액이 들어가고, 경제가 모자라서 못허고 헌디, 아 여그다가 뻘건 이런 무슨 저 터 하나, 빈터 하나 남은 디다가서 절을 이만큼 이걸 어떻게 아무때나 하꼬방처럼 건설했어도 건축을 허고, 아 여그서 한 사오십 명씩 지내기도 하고, 한 20여 명 30명 이렇게 지내오기를 한 10년 동안 되았습니다.
그런디 내가 건축을 이만큼 허고 저 솔밭 저짝에다 인자 천 평을 하나 만들아 놓고, 또 그 말 허게 됩니다마는 집도 또 저 아래 한 채 사서 이백이십오 원짜리인가 하나 사놓고, 또 거다가 기밀비로 내가 똑 두고 세상없이도 그건 손도 안 대고 그 두었던 놈 기밀비 백만 원허고 다해서 묶아 가지고 도장허고 딱 해서, 어제 내 생일날인디 어제 내가 다 인계 넹기고 오늘은 법좌(法座)에 올라가서 설법해 달라고 그렇게 해야 올라왔습니다.

허나 ‘지끔 조실 스님 계신 동안에는 내가 법상에 올라올 수 없습니다’ 허고 그래 쌓는 것을, 내가 못헌디 어쩔 것이냐? 이 말이여. ‘내가 설법상에 올라가서 설법허는 것이 아닙니다’ 허니 나만은 노인 대접도 하고 또 법사 스님 대접도 하고 그래 올라간다고 해서 오늘 와서 첫 때 했습니다.

그런디 내가 이 부처님 앉어 계신 사자좌(獅子座)를 아무나 올려놓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는 전강은 어찌 여그 자꾸 이 자리를 올라오느냐?
여그 학자(學者)들이 다 인증합니다. 학자들이 인증 못허면 인준 안 허면 나는 못 올라오는 것이고, 나는 학자들이 인준 없는데 올라와서 설법을 이렇게 헌다면은 죽은 물건입니다. 그거 썩은 물건이여. 학자들이 여지없이 인증을 해주기 땀새 내가 여기에 올라와서 설법을 허고 그동안에도 주욱 설법을 해 나온 것입니다.

왜 학자들이 인증하느냐? 뻘로 인증해 될 것입니까? 나도 과거에 한국 선지식이, 6대 선지식(六大善知識)이 계셨는데 그 6대 선지식이 한목 날 인가(印可)를 다 했습니다. ‘옳다. 바로 공안을 바로 본 정영신(鄭永信)이다’고 해주어서 내가 인가 가지고 다 올라와서 여그 와서 했제, 인가 없이 내가 여그 와 했다면 여러분을 속였고 여러분을 속인 것보담도 죽은 놈입니다. 그렇게 못합니다.
허면, 내가 묵언수좌를 내가 10년을 데리고 이 일을, 차사(此事)를 마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올라온 사람이니깐 의심할 것 하나 없으니 차후는 어쩠든지 대중이 송담 스님한테 여기 원장 스님한테 설법 잘 들으시고.

인자 나 죽은 뒤에는 조실노릇을 할 것이요마는 내가 있을 동안까장은 조실이란 말은 안 할 것이요. 그 성격이 죽어도. 내 설법 대신으로, 할 수 없어, ‘전강 스님이 나이 많아서 설법을 할 수 없으니까 부득이 내가 대로 합니다’ 시방 이겝니다. 허니 다 그러신 줄 알고.

아주 살아 나갈 길이란 건 참선밖에 없으니 참말로 살아 나가실라거든 꼭 참례(參禮)해서 설법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인천 주안 용화사 용화선원, 중앙선원입니다. 유명헌 선원이니깐 인자 그리 알으시고 꼭 그렇게 행해주시기를 바랍니다.(15분38초~32분27초)





(3/4)----------------

정말 설법헐라고 헌 그것을 헐라고 허다가 보니 여까장 나왔군요. 또 설법이 좀 늦어지니깐 자꾸 저 오는 것 봐. 오늘도 모도 이렇게 늦게 동지(冬至) 시간이 9시인디 새벽 한 시까장 오신다 그 말이여. 그 뒤에 시방 자꾸 또 오는구만. 이리 들어앉으십시오. 좀더 들어앉으세요. 인자 법문은 진짜로 나올 것인게.
앗따 어떻게 또 동지날을 지내 갈고 했더니, 설법은 해야 겄는데 어짤고 했더니, 송담 스님 설법이 진짜 설법이 나왔어. 그 그런 설법 내 처음 들었구만. 그 망상 그놈을, 그 ‘참선 안된다’고 헐 때에, 아 그놈 왜 ‘참선 안된다’고 허는 망상을 내서 왜 망상 하나를 더 갖다 붙이느냐고.

아 그거 그 누가 망상 없이 참선허는 사람이 있어? 참선이라면 벌써 화두를 들거드면 망상인데. 망상부텀 앞에 일어나는 것이여. 그러니 일어나는 놈도 그만두고, ‘참선 안된다’고 걱정허는 놈을 더 갖다 붙여놓으니 아 그것 쩔름뱅이가 그만 아주 두 다리 다 못쓰게 되아버리는 것이여. 그 법문 아까 허드라 그 말이여. 그거 요긴헌 말이지.

망상 일어난 것 걱정 말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만 허시면은 그 화두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 말이여.

물 좀 떠오니라. 나 목이 말라, 내 목이 붙어서 말을 못혀. 얼른 빨리 가져와.
그전 같으면은 이 대중이 들어앉으면은 못 들어앉습니다. 어디 앉어 놓니 시방 반이 남았습니다. 반도 더 남았어, 꽉 찰라면. 그 좁다고 야단을 치시고 모도 법당 좁다고 쌓더니 법당을 이렇게 지어놨으니 인자 보살님네 책임이 많소. 이 법당을 좀 채아줘야제. 똑 혼자만 오고 그러지 말고 한 댓씩 여나뭇씩 포교를 해야 되아. 포교 안 허면 되아? 나만 견성허고 말테여?

내 조는 보살님, 졸고 앉었는 보살님 발견했은게, 또 자오는가 나 볼란다. 왜 그것 집에서 잠자고 오지, 절에 와 잠잘라고 와? 인자 안 자는가, 어쩌는가? 눈이 똑똑허구만.
법문이 하도 안된게, 자지 마시오. 참선법을 그렇게 알고는, 잠자면서 듣키오? 아 잠자면서 들으면 좀 자시오. 자면서 들어. 그 잠자니 좋고 법문 들으니 좋고. 인자 잘 듣지.


요요산적적(寥寥山寂寂)이요  운습좌선의(雲濕坐禪衣)니라
나무~아미타불~
낙화삼척심(落花三尺深)인데  풍요학소영(風搖鶴巢影)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요요산적적(寥寥山寂寂)이다. 고요 고요헌디 산(山)도 적적(寂寂)허구나. 요요산적적(寥寥山寂寂)이다. 내가 나를 찾는디 ‘이뭣고?’ 화두를 떠억 들고 앉었으니, ‘이뭣고?’ 하나가 딱 나와서 알 수가 없으니 요요(寥寥)헌 것 아닌가. 고요허단 말이여. 그런디 또 산(山)도 적적(寂寂)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 번뇌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팥죽 끓듯이 하는디 아 ‘이뭣고?’를 하나 추켜들고 보니 다 없어져 버렸네. 일체 만념이 거그 와서는 어디 생겨 날 곳이 없어. 그래서 요요혀. 요요헌디 또한 이 참선방 공부해 나가는 곳도 적적허다.

운습좌선의(雲濕坐禪衣)로구나. 그 산속에서 이렇게 공부를 허니 구름이 끼었으니깐 습혀. 습기가 많혀. 구름속에는 비 습기가 많어서 좌선하는 옷을 모도 적신다 그 말이여. 옷이 축축혀. 집이나 아니나 어디 집이 있나? 옛날에는 참선헐 때 모도 석굴같은 디 돌 사이다가서 뭣 하나 걸치고 앉어 공부했지.

낙화삼척심(落花三尺深)이다. 꽃은 떨어져서 석 자나 깊다. 모도 핀 꽃이 떨어져서 석 자나 깊어.
풍요학소영(風搖鶴巢影)이로구나. 바람은 불어서 집 지어놓고 산 학(鶴) 집을 흔들거려. 근들근들 흔들혀. 그러헌 도경(圖景), 화두 학자가 모도 이런 도경이여.

무엇을 생각해야? 무슨 망상이 있어? 그까짓 놈의 번뇌 망상에 뭐 끄들려서 그럴 것이 있어? 이까짓 놈의 몸뚱이 가졌다가 곧 내버릴 것인디, 오늘 내버릴런지 내일 내버릴런지 모르는 놈의 몸뚱이 애착 뭣 혀?
쏵! 한번 버려버려라. 버릴라고도 말고 화두만 추켜들어라. 아 인자는 저렇게 방 뜨뜻허니 해놨겄다, 거그 앉어서 헐 것밖에 더 있어? 참선밖에는 더 있어?


우리 부처님은 6년 동안에 깨달라 가지고 전해주어서 오조(五祖) 스님까장 따악 내려왔네. 오조 스님은 전할 디가 있나? 아 그렇게 어려운 거여. 왜 어렵냐? 어려울 것이 없는디 어려워.
안 믿고 안 신(信)허니까 어려워. 믿고만 허기만 허면 되는데, 안 믿기 따문에 어려운 것이여. 믿는다 해도 그만 뭐 들을 때 뿐이제, 그만이여. 여지없이 믿어보란 말이여. 안 되는 법이 있는가.

오조 스님 때까지 오면서 똑 일인전(一人傳)을 해 왔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이렇게 전해 왔는데, 오조 스님 때 와서는 전할 데가 없어. 오조 스님이 어따가 인자 깨달았으니 제자한테 전해줘야 허겠는데, 어디가 있나? 아무리 전할래야 전할 데가 없어. 날마당 근심허고 있는데 하루는 팔십 노인이 걸망을 짊어지고 오더니 “아이고, 제가 오조 큰스님을 찾아오니라고 죽을뻔 했습니다”
“아, 팔십이나 된 사람이 왜 왔는고?”
“견성을 해 가지고 왔습니다”

“견성을 했어. 그러면 일러보소. 자네 깨달은 도리를 일러보소” 깨달은 도리를 이르는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거든. 옳게 깼어. 거 참 옳게 깨기가, 혼자 깨기가 어려운데, 옳게 깨달라 가지고 왔어.
아, 그런 때 당시에도 깨달은 그 인가(印可) 받은 선지식(善知識)은 참 어렵고, 하나 일 인 일 인으로 왔지마는 공부허는 이는 더러 있었을 것 아니요? 젊을 때부텀 해 가지고는 팔십 살만에사 깼어. 그 설찬히 어려운 건 어려운 것인가 봐. 그래 인가를 받어야 허거든. 인가 없으면 소용없으니까.

“인가를 해 주십시오”
“아 이 사람아 나이 팔십이 되았는데, 나는 육십이요 팔십인데, 팔십 살 먹은 사람한테 인가를 해주면 인가해서 법을 전해주면 자네가 인자 6대를 이었는데 6조인디 중생을 몇이나 교화허겄는가? 아 나보담 머냐 죽을 터이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가서 몸뚱이를 바꿔 가지고 오소”

그러니까 아 어찌헐 도리가 없지. 그 말 듣고 그 스님 앞에다가서 송(松) 대 하나를 놔 놓고. 그전에 듣는 이는 잘 들었지마는, 못 듣는 이는 또 잘 들으란 말여. 오조 스님 방문 앞에다가서 송 대 하나를 놔 놓고, 솔 쬐끄만헌 걸 하나, 새끼 솔을 심어 놓고 “스님, 그러면 댕겨오겄습니다” 허고 내려갑니다.
동천(洞川)을 내려가는디, 돌아서 내려가니까 다시 부르더니 “내가 자네 이름을 하나 해줌세. 그 내 방 앞에다 송(松) 대를 심었으니 묘허네. 송 대 심은 걸로 해서 이름 하나 지어줄 테니깐 이름을 받아 가지고 가소” 불명(佛名)을. 그래 이름을 재송(栽松)이라 지어주었습니다. ‘간조런헐 재(栽)’ 자, ‘솔 송(松)’ 자. 솔과 간조런허게 몸뚱이 받아 가지고 오소. 그 늙은 몸뚱이 내버리고 새 몸뚱이를 이 솔과 같이 받아 가지고 오소. 그래 지어준 이름입니다.

‘예, 그렇게 허겄습니다’ 허고 재송이라고 이름을 받아 가지고는 그 골짜구니를 내려갑니다. 그 향수내가 진동허고 좋은 계곡인디 한 몇백 키로를 내려가니까, 요새 키로라고 허니께 키로로 한번 말해봅시다. 한 5리나 원 된가, 원 몇백 키로면?

아 또랑가에서 개천가에서 빨래를 댕긴 처녀가 참 인물이 절색(絶色)인디 빨래를 씻고 있어.
그런디 또 그 오조 스님이 부탁을 허기를, 아니 사조(四祖) 스님이 부탁을 허기를 ‘우교즉지(遇橋卽止)하라. 다리를 만나거든 그쳐라’ 그랬거든. 내려오다가 참 그 빨래 씻는 처녀한테를 당도허니까 다리가 있어. 다리가 큼직허니 있어.

아 여가 모도 비었는디 안으로 좀 들어오시면 좀 좋은가. 꽉 찼는디 거그서 모도 모다 이렇게... 허 이것 참.

‘우교즉지(遇橋卽止)하라. 다리를 만나거든 근처라’ 그랬으니, 내가 여그서—저 다리가 있고 처녀가 빨래를 씻그니 그 처녀, ‘아 여그 근치란 말이 여그서 몸뚱이 바꾸라는 말씀이로구나’ 싶어서, 거그 앉어서 그 처녀 보고 “나 댁에 하룻밤만 자고 갑시다”
“내가 어떻게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팔십이나 된 노인이니깐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으면 좋겄으나 부모가 있으니깐 내가 승낙없이 말헐 수 없으니까, “저 집이 우리집이니까 우리집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직접 좀 허시지요”
“아이고, 늙은 것이 한 걸음이 어렵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하룻밤 자고 가겄습니다” 그럼 그렇게 허시라고 승낙을 했거든.

그만 그 자리에서 그대로 걸망 벗어 놓은 채 이런 작대기 하나 짚고, 따악 앉어서 입정(入定)했습니다. 입정은 죽었단 말씀이여. 그대로 그만 죽어 버려.
그러니 팔십이나 된 노장님이 아 처녀를 보더니 ‘하룻밤 자고 간다’고 승낙 받고는 그 돌아가셔 버려. 그것이 그 생사해탈(生死解脫)입니다. 마음대로 죽는 것이여. 그건 마음대로 해야 허는 것이여.

참선헌다고 다 그와 같이 되면 뭐 뭐 참선헌 이가 다 되게. 허지마는 젊을 때부텀 참선을 해 가지고 팔십 살까장 애를 써서 공부를 허다가 보니 견성(見性)허면서 동시에 정력(定力)이 있어. 인자 보림(保任)을 해서 정력이 있어. 자꾸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한 놈을 또 생각하고 하도 오래오래 해노니깐 거그서 일체 망상은 없어져 번지고 정력이 있어. 그 화두와 그 그만 한목 그 이사(理事)가 다롸진 것이여.(32분28초~48분53초)





(4/4)----------------

번뇌 망상도 그만 화두 견성험서 그대로 다 없어져 번지고, 아 그 정력이 그러고 나버려서 마음대로 하거든. 그 처녀 배때기 속에 맘대로 들어가. 죽어서 그만 처녀 배때기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여. 처녀는 시집도 못 가보고 아들만 뱄네. 그래 가지고는 어디 아들이 뭐 오늘 들어갔다고 어디 당장 배가 부른가?

아, 이 처녀는 빨래를 씻다가서는 깜짝 놀래 집에 들어가서 부모한테 말하니까, 그 부모님이 ‘하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 웬일이 그런 일이 있나?’
아, 그 나와 보니까, 참 물가에 좋은 깨갓헌 개천가에서 돌아가셨으니까, 그 뭐 짚단 좀 가지고 와서 묶아서 그 당양지지(當陽之地), 그저 그 과히 험악허지 않은 디를 파 가지고 묻어 주었습니다. 그 도인의 죽음이 뭐 아무 죽든지 말든지 그거 뭐 상관 있어?

그러고 난 뒤인디 한 댓 달 지내니까, 아 처녀 배때기 속에는 아 그속에서 인자 그 노장님이 들어가서 살든가부여. 차츰차츰 7달 되아 8달 된게 아 그만 배가 불러, 이만허니 불러. 어머니가 보니께 결국은 자식이여. 그거 어머니는 애기를 나봤은게 알거든. 옆에 누워서 자는 걸 보면 아주 숨소리가 가빠. 그 애기가 그렇게 한 7~8개월 되면 숨소리가 가뿐갑등만. 헐헐 가빠.
아, 그래 가지고는 차츰 그 잠자는 아이를 깨워 가지고 일받아 가지고 조용헌디 “너 말해라, 네 뱃속이 이상하다. 배가 왜 그리 커졌니? 배는 왜 그리 커졌으며 숨소리는 왜 가쁘니? 말 좀 해봐”
“뭔 말을 내가 해요”

“아 말해봐. 에미를 속이지 말고 말해봐”
“아 내가 무슨 말을 해요”

“네 속에 든 것이 아무래도 어린아다. 애기를 뱄다. 그 애기 뱃으면 그 어찌헐 것이냐? 처녀가”
옛날에는 처녀가 애기 배면은 그만 안 된답디다. 아니 그만 죽여버려. 그런 아주 고약한 일이 났다고 그만 죽여버린 때가 있었어, 옛날에 양반에 집안에. 참 기가 맥혀. 아 이러니 “큰일났다. 어떻게 허겠느냐?”
“나는 애긴지 뭣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알아서 허세요. 나는 모릅니다”

일러줘야제, 안 일러줘. 그 일, 애기 밴 사건을 좀 말해 달라고 해도, 있어야 해주제. 아 물으니, 알 수가 있어야 해주제. 아, 말도 못허고는 자꾸 그러니 애가 터져 죽겄다 그 말이여. 그냥 울어버려. ‘에에’ 허고 울고, 뭔 말만 물으면 울어버려, 말을 못하니까. 안 했다면 곧이 안 듣고.
암만 해야 안되아. 할 수 없어. 아흡 달이나 되았든가, 원 배가 비비허니 배꼽이 그냥 푹 나와버리고, 다 나와 뭐 야단 나버렸어.

샌님을 불렀제. 바깥양반을 불러서 ‘아 이런 사실이 있으니 어찌해야 허겄습니까?’ 허니까, 보더니 눈이 그만 쪼그만헌 눈이 크단해지면서 ‘끙’ 허고 숨을 한번, 황소 숨 소리 한번 쉬더니 담배를 내서 이만헌 놈에다 뻑끔뻑끔 먹더니 툭툭 치더니 “에잇, 그 고약헌 일이로고” 묻고 않고 뭐 뭐.
‘야들아’ 어쩌고 부르더니 그만 몸종들을 불러다가선 ‘당가[擔架]에다 메 가지고 용소(龍沼)에다 갖다 집어넣어라’고. 헐 수 없제, 뭐 다시 뭐.

어서 들어오십시오. 앗따 이렇게 늦게 오신다. 자꾸들 오신데. 내가 그럴 줄 알고 지금, 이 안에 많이많이 늘었습니다. 밖에는 앉지 마세요. 그래, 너는 좀 깔지 말고 저 드려. 그냥 앉어 계십시오, 그냥.

아, 그 샌님이 그냥 갖다가 명령을 허되 죽여버리라고 해버렸어. 그러니 뭐 무도헌 하인들이 그 뭐 별 수 없어. 당가[擔架]에다 메고 가서 용소(龍沼)에다 집어널라 하니까, 그 처녀가 그래도 그 지혜가 있는 처녀인가, 뭐 부잣집 처녀로서 그 모도 패물 금 같은 거 이런 것을 몸띵이 가지고 있다가 ‘내가 이걸 드릴 터니까 나를 용서해 달라’고. ‘내가 그러면 애기를 뱄다고 해서 부모한테 쫓겨나 가지고 이 용소로 들어가니 두 목숨이 죽지 않나. 내 속에 든 것이 나는 애긴지 뭔지도 모르지마는, 할 수 없이 내가 이러헌 죄로 내가 이 용소로 들어가기가 참 억울허니까 그저 좀 용서해 달라’고.

그 처녀가 참 아주 얌전해서, 그 모도 종들을 잘 길러놔서 참 인정은 가득헌디, ‘아 샌님 명령이니 우리가 그냥 여그서 놓아준다면은 우리가 죽을 터이니 어떻게 헐 것이냐?’고. 참 엄중허든 모양이지. 옛날에 모도 종을 넹기고 다 이럴 땐디.

그래 패물을 주면서 ‘날 좀 살려 달라’고. ‘이놈 가지고 두 분이 나놔 쓰고 살려 달라’고 비니까, ‘그러면 우리가 여그서 놓아주면 어떻게 헐 테냐?’ ‘어디든지 내가 멀리, 내가 그만 산 넘고 물 넘어 월남(越南)처럼 먼 디로 갈라니까 날 살려 달라’고 애걸을 해서 그래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라’고. ‘그저 우리는 용소에 넣어버렸다고 헐 텐게 알아서 그만 이 국토에만 있지 말라’고 그만 부탁을 했어.

그만 거그서 놓여서 남복(男服)을 마침 한 벌 준비했든가 이놈을 입고서는, 날은 추워지고 겨울날이 돌아오니까, 그 여자가 지혜가 있어서 남쪽으로만 갑니다. 남행으로만 산정수정해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하고, 그저 물 건네고 산 넘고 해서 남방으로만 얼마만큼 가 가지고는 인자 가서, 인자 이만침 왔으면은 우리 땅 우리 고향도 멀어지고 얻어먹기도 그저 괜찮허고, 몸에 아무것도 다 주어 버렸으니 없고, 총각 맵시를 해 가지고—옛날에는 총각들도 머리 안 깎았으니까 머리 딴 놈을 질끈 동이고는 총각으로 해 가지고는 돌아댕김서 얻어먹습니다.

아 그러다가, 이것 남의 집에서 들어가서 원청 얻어먹어도 미남자니까 다 환영허는데, 집에 들어와 자라고 허지마는 못 자. 남의 집에 들어가 자다가 여그 기어나오면 어쩔 거여? 아 이게 나오면 그 헐 수 없제, 그 혼자. 그러니까 못 자고 밥만 얻어먹고 나와서 넘의 울타리 밑에 자. 그 추운디. 그 어느 부잣집 대문 뒤에 울타리 밑에서 한디서 자다가 그만 밤중에 아 그만 나온 모양이여.

아, 이놈이 나오는디 아 혼자 이거 어떻게 혀? 그러지만 당해 논게 할 수 없지. 아 이놈이 나와 가지고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자수(自手)로 모도 수속을 해 가지고는, 모도 뭐 질렁질렁 붙어 있는 것이 있드랑가. 아 그놈을 모도 어떻게 인자 떼고 어떻게 끊고 해 가지고는 옷에다 둘러싸 가지고는, 옷이나 뭐 속옷 그런 것에 둘러싸 가지고는 끌고 나가니깐 개천에 물소리가 꼴꼴꼴꼴 난다 그 말이여. 그래 물속에다 집어넣어 버렸제.

그러고는 도로, 어떻게 날이 추우니까 할 수 없어, 동지 때니까. 동지로써서 양력설 때 그때 안 춥습니까? 동지 쇠고 나서. 우리도 인자 이렇게 때가 닥쳐 왔구마는.

그래 그 자리에 와서 밤을 새우고, 그 애기를 내던지고와 새우고 새벽에 어찌 됐는가 싶어서 나갔습니다. 나가서 이래 보니깐 구녁이 쪼끄만 뚫어졌는디, 물이 퐁퐁퐁퐁 떨어지는 구녁에 안 얼었어. 고리 집어넣버렸는디, 아 그곳에서 수조(水鳥)가 들어 살아, 물새가. 물에 살다가는 아 이놈들이 깨끗이 몸뚱이를 씻겨 가지고는 영 때가 돼 가지고 아침에 가니까 내놓는단 말이여, 애기를. 이놈이, 막 오리란 놈들이 그런 새가 내놔.

원 세상에 저런 짐승도 아 목숨을 저렇게 살려 가지고 내놓으니 참 기맥혀서 아이고 저건, 얼른 보듬았제. 보듬아 가지고는 그만 싸 가지고는 촌락으로 밖에 들어갈 디가 있어야제. 총각 맵시를 거두아버리고 그만, 어떻게 그저 거지처럼 인자 했은게, 애기를 끌어안고 촌간을 들어가니까 반가와헙니다. 얼마나 반가워헌지 몰라.

그 어린아가 말이여, 보통 어린아 같으면은 그렇게 반가헐 리가 있을런지 모르지마는 도를 많이 닦은 도인(道人)이기 따문에 도인을 보듬고 들어가니까 보는 사람마당 감심(感心)이 동(動)허든 것이여. 아주 고맙게 대접허고. 그래 그만 가서 미역국에다가 밥을 해 주는디 잘 먹고는 그 해복(解腹) 풀이를 허고 며칠 있다가서—자꾸 있으라고 해도 미안스러우니까 오래 있들 못하고 한 일주일 있다가서 그 어린아를 끌어안고 나왔습니다. 또 다른 집에 가면 역시 그려. 그렇게 고맙게 왼통 대접을 기맥혀.

이 아이는 버럭버럭 크더니 그만 ‘엄마’ 소리 허더니, 차츰차츰 그만 아 이놈이 걸기 시작허더니 보면 다 알아. 뭐든지 보면 다 알아. 아, 그 견성을 해 가지고는 태어났으니까 그 그만큼 또 수양력(修養力)이 있으니까.
견성해 가지고는 그렇게 아는 법이 없어. 인자 보림(保任)을 해야 알지.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무슨 뭐 난리날 걸 알고, 무슨 뭐 귀신을 보고 뭐 그러면 그거 견성헌 사람이여? 그거 그 기합술도 아니지.

아, 이거 한 7살이나 먹더니 ‘어머니 갈랍니다’ 간다고 혀. ‘어디로 갈래? 어디 간단 이유가 뭐냐? 왜 가야?’
‘아 어머니한테 내가 하룻밤 자고 간다고 허고 와 가지고 이 몸뚱이를 얻었는데, 7살이나 7년이나 어머니한테 의탁했는데 인자는 가야겄습니다’ 환허니 말을 허면서 ‘갈 길이 바쁘니께 가야겄습니다’

아, 그만 그 어떻게 생겨난 이유도 뭐 알 수 없이 뱃속에 들어와서, 그 인자 거그 낳아서 길러서 아 그만큼 된턴디 갈라고 하니까 기맥히다 그 말이여. 자식 정(情)은 마찬가진 것이여. 그 아무때나 났지마는, 아 이 아버지도 없이 났지마는 그리 키워 놓고 난께 기맥히든 것이여.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고, 그 민첩헌 법과 7살 먹은 놈이 어떻게 말도 잘허고 얌전허고 예쁘던지 말할 수가 없어. 모자(母子)의 정이 꽉 걸렸단 말이여. 그놈의 애정. ‘너 간다는 이유나 좀 말해라. 어째 갈락 하느냐’ 그러니까 이유를 말허는 것이여.

그런데, 법문을 아무리 헐라고 해도 못허겠어. 시장해서 못허지마는, 난 요새 죽을 똑 한 숟깔썩 먹는디 기운이 없어 못허겄어. 영 못허겄어. 그런게 오늘 동지 팥죽 점안 잘 올리고. 여까장만 들으면 다 됐지, 뭐 더 헐 것 없고. 배가 고파서 도저히 못허겄어.

그래 인자는 법문이, 내가 헐 때가 아니예요. 넘어간 해 거 다시 뭐, 넘어간 핸디 뭐 거 다시 소용 없고, 꼭 송담 스님한테 법문 들어주시기를 믿습니다.
아무리 헐라고 해도 법문이 안 되어서 못허겄습니다. 여까지만 허고 마치야겄어. 나는 과거에 많이 늘 해드렸으니깐, 다 그때 그 법문, 또 허면 또 그 법문이 그 법문이니까.(48분54초~1시간4분11초)(끝)





[법문 내용]

<전강선사 법문>
전강선사의 송담스님 소개. ‘송담스님은 아주 젊을 때 도 닦을 때 묵언을 해 가지고는 10년 만에 대오(大悟)를 헌 이여’, ‘이 설법 좌(座)를 송담스님한테로 넘긴다’

<송담스님 법문>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 번뇌망상이 화두를 거각(擧却)할 수 있도록 채찍질해 주는 훌륭한 법문.

<전강선사 법문>
보는 놈, 듣는 놈, 이 물건 하나 아는 것이 그게 참선법(參禪法) / 삼계화택(三界火宅)에 윤회(輪廻)허지 말고 어서 네가 너 깨달라서 해탈(解脫)해라 / 참선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믿지 안 해서 못허고 이렇지, 못한 법이 없어. 이렇게 쉬운 참선법, 생사(生死) 없는 법을 왜 그렇게 듣고도 못해야?

송담스님이 묵언하며 참선하기 10년째, 전강선사의 물음에 아침 식전까지 깜깜하니 있다가 밥 먹고 나더니 터크덕 일렀다. “내(전강선사)가 묵언수좌를 내가 10년을 데리고 이 일을, 차사(此事)를 마치도록 했습니다“

(게송)요요산적적~ / 재송도인(栽松道人) 이야기.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의 제자인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 602~675)의 별명이 재송도인(栽松道人)이다.


〇 ‘어떠헌 사람이 능히 법을 설헐 수가 있느냐?’ 하면은, 한 말도 설하지 아니하되 이 삼천대천세계 어느 한구석에도 들리지 아니한 곳이 없을 만큼 또 단 일분일초 동안이라도 그 설법이 근친 바가 없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꽉 차는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헐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허면 입을 열지 아니허되 그 설법이 끊이지 않고 대사자후를 헐 수 있는 사람, 다시 종일 일평생토록 법을 설허되 한 말도 설헌 바가 없는 사람, 능히 이러헌 사람만이 감히 법을 설헌다고 이 자리에 올라올 수가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〇 무엇 때문에 큰스님네 법문을 듣고 참선을 헐랴고 애를 쓰시느냐?
우리가 먹고 입고 배불리 먹고 편허게 잠자는 것으로써만이 우리의 인생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하루아침에 다시 불행으로 뒤바꿔질 우려성이 다분히 있는 위험한 생활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것에서 벗어날려고 이 불법(佛法)을 찾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〇 어떠한 지나간 일이 되었건, 현실에 닥쳐 있는 일이 되었건 또는 미래에 자기 앞에 돌아올 어떤 사건에 관한 일이 자기 마음속에 일어난다 할 때에 그 일어나는 그 마음에 즉(卽)해서, 바로 그 마음으로 조실 스님께서 일러주신 그 화두(話頭)를 터억 들으신다고 허면은 일어나는 그 번뇌 망상이 우리의 깨달음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그러헌 상대가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화두를 거각(擧却)할 수 있도록 채찍질해 주는 훌륭한 법문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헐 때에 번뇌가 백 번 일어나면 백 번 화두를 들게 되는 것이고, 만 번 일어나면 만 번 화두를 들어서, 들고 또 들면 그것이 염념상속(念念相續)해서 일념만년(一念萬年) 이래 가지고 1년 이태 3년 그렇게 여법(如法)히 공부해 나간다면은 어찌 깨닫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볼 때에 번뇌가 많이 일어나는 사람일수록 화두를 더 잘헐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〇 천하에 쉬운 것은, 천하에 참선보담 더 쉬운 법이 있다면 말을 해 봐. 참선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참선, 내가 나 깨달은, 그 뭐여, 손을 뒤집었다 이랬다 허고, 그만큼 가깝다고 할 수가 있나? 그것도 멀제. 틈도 없어, 틈도. 나를 깨달을 그 깨달른 동안이, 어느 때 깨달을런지 또 시간도 없어. 안 해서 못하고, 믿지 안 해서 안 하고, 믿지 안 해서 못허고 이렇지, 못한 법이 없어. 이렇게 쉬운 참선법, 생사(生死) 없는 법을 왜 그렇게 듣고도 못해야?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No.275))—1972(임자)년 동안거 결제(전강선사 + 송담스님 법문)(72.10.15)(82분)

**전강선사 법문 중간에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설하신 법문이 있습니다.

 

(1/4) 약 21분.

전강선사275-1:4(전강선사+송담스님:약21분).mp3
9.60MB

 

(2/4) 약 22분.

전강선사275-2:4(전강선사+송담스님:약22분).mp3
9.89MB

 

(3/4) 약 19분.

전강선사275-3:4(전강선사+송담스님:약19분).mp3
17.26MB

 

(4/4) 약 21분.

전강선사275-4:4(전강선사+송담스님:약21분).mp3
18.76MB



(1/4)----------------

이 묵언(默言) 스님이 인자 호(號)가 송담(松潭)인데, 송담 스님을 10년 전부터 “네가 법상에를 올라다니면서 여러분들 설법 좀 해 주고 교화해라. 법(法)을 알아 가지고 포교를 중생을 교화(敎化) 안 허면은 그 법을 애끼는 것도 그것이 돈 간탐(慳貪)과 부귀 간탐보다도 더헌 것이다. 법을 가지고, 좋은 법을 가지고 여러분 설법을 해 드려서 아! 도(道)를 깨게 맨들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허게 해야지, 일체중생이 같이 생사 없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증(證)해야지, 나 혼자만 해 가지고, 안 해 쓰겄느냐?”

오늘은 내가 송담한테 다가서 “내가 인가(印可)해서 법위(法位)를 전해주니 그리 알라”고.
아! 내가 게송(偈頌—傳法偈)까장 잘 지어서 그래줬더니 죽어도 마다하고, “이름은 그대로 가지겄습니다마는 저는 교화 못 허겄습니다”
“왜 못 허겄느냐?”
“언변(言辯)도 없고 또 당최 헐 마음도 없고 못 허겄습니다”
“그러면 고인(古人)도 대도(大道)를 통해 가지고도 보림(保任)을 헐라면은 포교고 뭣이고 그만 저 무인절도(無人絶島)에 들어가서 보림허는 법이 있으니 보림을 잘해라. 그러면 네 대로 가거라”

10년을 내 밑에 있다가—10년을 묵언허고 10년만에 너는 바로 ‘마조원상(馬祖圓相)’ 법문에 바로 깨달라 나한테 대답을 했으니, 그래 내가 그것 하나 대답한다고 되아?
이 공안 저 공안, 공안(公案)을 모두 탁마(琢磨)를 해본 즉 아! 주욱 꿴다 그 말이여. 허! 세상에 기특헌 일이다.

나는 어찌 이렇게 내가 그 인가하는 무슨 그런 자격이 있으리요마는 그것은 한국의 과거에 6대 도인이 있었으니, 6대 선지식이 있었으니 6대 선지식의 인가가 내게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인가를 해 주리요.
허지마는 과거에 6대 선지식이 인가헌 것은 조르르르 내 설법에도 다 나와 있지마는 구참선객(久參禪客)은 다 알고 있으며, 그러고 틀림없이 다 듣고 아는 이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는데, 아무리 해야 안되아. 인자는 나이 80이니 곧 오늘내일이여. 오늘내일이니깐, 내가 하도 권허니깐 오늘은 설법헐라고—저를 설법허라고 허니께 겨우 아무 말도 안해. “예. 허겄습니다” 허고 나를 가만히 봐.
그만, 설법허라고 허니까 그만 얼굴이 이만해 가지고 미안헌 생각만 잔뜩 가지고 있어. 말도 않고. “그래도 헐 수 없어” 했더니 인자 올라가서 설법을 헐 것입니다.

헌디 ‘나보다 설법을 더 잘 헌다’ 그건 믿지 말라 그 말씀이여. 나는 50년 동안 설법했어. 아직 50년은 다 못 되었소마는 아! 인자 처음 설법헌 사람이 무슨 설법을 헐 것이여?
아 그렇게 확철대오한 보월 스님은 법상에 올라와서 설법허라고 하니까, 젠장 설법을 거꾸로 헌단 말이여. 설법 거꾸로 허는데 안 봤어? 다 설법허고 마지막 내려오면서 하는, 꺼꾸로 그 꽁댕이를 하면서 그나마 설법도 ‘웬굉~’ 운단 말이여. 울어. 설법하면서 울어버렸어.

대중이 그만 그 많은 대중이 ‘아, 그 보월 스님, 대도를 깨달은 스님이 설법을 허니 얼마나 장하랴’ 야단치고 듣는데,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 이 노래를 못 하고는.

만공 스님 항상 하는 소리 들었거든.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라 허고 내려오면 그 소리가 구수허게 좋으니까 자기도 올라가면 그렇게 헐 줄 알고, (몸집은) 이만헌 이가 목은 찌끄만하게 (가는 목소리로) ‘아, 이사람아!  아, 그사람 참 별 사람이네’ 이런다 그 말이여.
헌디 ‘웬굉~벱계~제중생~~’ 아! 그러고 운다 그 말이여. 세상에 그렇게 우는 걸 보고 안 웃는 이가 없네. 다 웃네. 그중 앞에는 조카상좌라고 이만 허니 또 그렇게 뚱뚱헌 사람이 있는데, 고것 쳐다보고는 ‘아이고! 죽겄다’고 웃는다 그 말이여. 웃음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 뭔 법문을 잘 헐 것이요? 허지마는 인자 불가불 이 절 원장(院長)이요, 이 절 조실(祖室)이요, 이 절을 어떻게 헐 거여? 아무리 허기 싫어도, 나 혼자만 깨닫고 나 혼자만 생사해탈하고 말 것이여?
대전이 아무리 좋고 대전에다 큰 절 하나 지어놓고—참 나 가본게 터가 참 우리 절터보다 좋단 말이여. 허지마는 여그는 아주 내 본사(本寺)고, 여그는 아주 조실이고, 거그도 부속 선원으로 댕기면서 인자 봐주고 이렇게 되았습니다.

그러신 줄 아시고 오늘 설법상에 올라가서 보월 스님처럼 또 그렇게 울런지, 히히 헐란지 알 수 없소마는 ‘잘 허리라’ 생각은 말란 말이여. 그저 인자 한번 올라가면 차츰차츰 인자 설법이 설통(說通)이 나와. 그렇게 알고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잠깐 허고 내려오면 또 내가 또 올라가서 설법을 헐테니 또 잘 들으십시오.

“올라와. 어서 와. 헐 수 없어”

 


< 송담스님 법문 >

부처님 49년 설(說)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아함경을 12년 동안 설하시고 방등경 8년, 그리고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21년 동안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경을 8년 동안을 설허셔서 그걸 합하면은 49년이 됩니다.

그런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그 49년 동안에 왜 아함경 12년부터서 말을 하고, 맨 처음에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신 『화엄경(華嚴經)』은 그 49년 동안에 빼놓고 얘기를 허게 됩니다.
그것은 아함경 설하시기 전에 21일 동안에 걸쳐서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설하신 법문이기 때문에 49년 속에 계산을 넣지 않고 얘기를 허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 화엄경은 그 화엄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교주(敎主)로 계시는데 그 비로자나불은 입을 열지 않고, 한마디도 비로자나불의 법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보살들이 각기 자기가 느끼고 깨달고 보는 바를 그렇게 각기 많은 보살들이 번갈라가면서 설해 놓은 것이 모아 놓은 것이 그게 화엄경이예요.
결국은 그 보살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네들 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비로자나불의 뒷받침에 의해서 설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법문을 많은 보살들의 입을 통해서 설해졌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樂士)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에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헌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허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헌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허는 말을 듣고 계신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 놓고 절만 많이 허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의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善知識)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계발(啓發)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헌다면 나도 성불(成佛)헐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외도(外道)들이 말한 바와 같이 우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기어이 났으니 어떻게 살다가 가야 바르게 살았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머지않아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나 한번은 또 가게 됩니다. 갈 때에 어떻게 가야 허느냐?’ 이러헌 중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헌 중대한 문제를 우리는 탐심(貪心)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 이러헌 삼독심(三毒心)으로 말미암아 그런 데에 눈을 팔다 결국은 그런 중대사를 망각하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하룻날 숨 한번 내쉬었던 숨을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우리는 이 받기 어려운 몸을 버리고 또 어느 곳을 헤매게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뚱이를 받았고, 사람 몸을 받어 가지고서도 그 많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들어오기 어려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 들어왔습니다.
불법 문중에 들어와서도 그 많은 절이 있고 많은 스님네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 정법(正法)을 전해 이어받으신 (전강) 조실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참불법'을 듣고 수행할 수 있는 이러한 길에 들어섰다고 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 한결같이 다행한 일이요, 희유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들어오기 어려운 정법 문중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형식에 얽매여서 ‘결제니까 절에 가야겠다, 7일 날이니까 절에 가야겠다, 또는 관음재니까 절에 가야겄다’ 이것이 하나의 의식화 되아서 그 의식화된 가운데에 절에 왔다갔다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큰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아! 내가 쫌 열심히 화두(話頭)를 듣고 공부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불꽃같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벌써 집에 돌아가서 아들 손자 며느리 만나서 살림 걱정하는 소리 듣고 어쩌고 허다 보면은 금방 절에서 그 불꽃같이 일어난 신심은 간 곳 없고 다시 사회의 그 오욕락(五欲樂) 속에 휩쓸려 들어가고 말아버립니다.

비단 보살님들 뿐만 아니라 출가한 스님네도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서 정든 고향과 부모형제 권속을 다 여의고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철저히 수행할 것을 명심하고 각오한 지가 한두 번이 아니지마는, 또 하룻밤 자고 이틀밤 자고 사흘 나흘 엿새 가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그 굳었던 결심이 스르르 녹아지고 그래가지고 또 다시 또 자기를 참회하고 반성하고 해서 또 결심을 해 가지고 또 정진을 애쓰고.
이렇게 애는 쓰고 있지마는 10년 20년 30년 이렇게 절에서 정진을 한답시고 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확철대오를 하지 못한 것은 그 결심이, 한 생각이 만년을 가지 못하고 또 풀어졌다 또 세웠다 이러기 때문에—물에 잠긴 돌이, 물이 채이면은 물속에 쟁기고, 물이 빠지면 또 돌 꼭대기가 물위로 솟았다, 또 물이 채이면 또 가라앉았다, 밤낮 이래가지고 끝장을 조매 보지 못하고 한 세상을 또 마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마치 비로자나불이 한 대관현악에 지휘자가 되셔서 그 지휘자의 지휘봉에 의해서 많은 악사들이 느리게 또는 빨리, 뭣헌 데는 격하게 또 뭣헌 데는 조용허게 이렇게 해서 그 수천 무량수의 그 악사들이 한 분의 지휘봉에 의해서 관혁악을 연주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이 중생 교화하는 데 있어서도 그 부처님이 하나의 위대한 그 각본을 저술한 작가이시요 또 지휘자이시고 또 감독이시고 연출이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실 스님이 이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 교화하신 것도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은 청정법신 비로자불의 지휘 · 감독 · 연출에 의해서 일생을 스스로 닦아서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시고 나아가서 80 고령에 이르시도록 설법을 해서 많은 제자를 교화하신 것도 하나의 연극, 그 대관현악의 한 부분이라고 말헐 수가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올라온 것은 멀리는 비로자나불의, 가깝게는 (전강) 조실 스님의 지휘에 의해서 하나의 배우로서 또는 악사로서, 다시 비근(卑近)허게 말허면 꼭두각시로서 여기에 올라왔다고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가해서 근 30년이 되었습니다마는 본래 근기(根機)가 우둔하고 발심이 철저허지를 못해서 노상 생각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투철한 공부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역시 출가할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조실 스님의 지도하에 정진허고 있는 하나의 수행인에 지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해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다고 한다면은 ‘조실 스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하루 한 시간, 일분일초라도 시간을 애끼고 챙겨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철저한 지도 아래 다문 조끔이라도 더 철저히 공부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같이 공부를 하십시다’ 이러한 권고의 말씀을 드릴 이외에는 아무 말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처음~21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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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실 스님께서 이 용화사에 주석(駐錫)하신 지가 벌써 10여년 입니다마는, 그동안에 많은 광장설(廣長舌)로써 그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헌 최상 법(法)을 여러분의 근기에 맞도록 그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참 훌륭하신 법문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 그늘 잔영(殘影)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녹음기에 녹음이 다 되어 있고 그것이 낱낱이 조실 스님의 시자의 노고에 의해서 원고가 결집이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그 원고를 정리허고 교정해서 그것이 하나의 설법집으로 간행할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러헌 녹음기나 또는 설법집에 의해서 여러분이 공부허는 데에 좋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것보다는 조실 스님 몸이 살아계실 그동안에 여러분께서 공부를 허셔서—여러분이 공부허신 만큼 밖에는 조실 스님이 어떻게 더 이상 지도를 못 허십니다. 자기가 열 근을 들을 만한 힘이 있는 사람에게 열 근의 무게를 주어지고 짐을 줄 수가 있습니다. 열 근 밖에 들 수 없는 사람에게 스무 근 내지 백 근의 그런 무거운 짐을 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만큼 열심히 공부를 허느냐에 따라서 조실 스님의 법문도 여러분의 근기에 설해지게 되고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도 여러분의 근기에 따라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실 스님이 가지고 계신 그 능력을 전부 그리고 철저하게 지도를 받을려면 여러분이 그만큼 철저히 정진을 허심으로써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들어보면은 청법(聽法) 대중이 모다 구참납자(久參衲子)요, 철저히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정진허는 그런 납자들이 터억 앞에 자리를 잡고 앉어 계시고, 또 신도님들도 철저한 신심 있는 분들이 법당에 꽉 들어차서 위법망구적으로 발심헌 마음으로 들어주실 때에 조실 스님은 30년을 모시고 있어도 듣지 못한 그런 법문을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토하신 것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아무리 정정허시고 건강하시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은 하나의 기계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기계라고 하는 것은 그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설사 조실 스님의 법력과 도력에 의해서 백 년 내지 이백 년을 사실 수 있는 그런 신통력과 법력이 계시다 하드라도, 부처님께서 그런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육신통(六神通)을 다 갖추신 무량삼매를 갖추신 그런 부처님도 79세에 열반(涅槃)을 보이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언제 어떻게 그 열반을 보이실는지 그것은 우리는 모릅니다. 그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우리는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날이 돌아오기 전에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께서는 정말 이를 악물고 대분발을 해서 철저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리고 입을 다물겠습니다.(24분55초)

 



< 전강선사 법문 >

주중야문적(舟中夜聞笛)하고  하처숙어옹(何處宿漁翁)고
나무~아미타불~
일출무인견(日出無人見)하니  조제화자홍(鳥啼花自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저 참 망망창해(茫茫滄海) 저 섬 중에서 도를 닦는데, ‘이뭣고?’ 참선을 허고 있는데 어디서 젓대소리가 나. 잘 부는 젓대소리가 처억 난다 그 말이여.
그 하처숙어옹(何處宿漁翁)고? 그 어느 곳에서 어옹(漁翁)이 있어서, 고기 잡는 그 어옹이 있어서 이런 젓대를 부는가? 그 젓대가 활연대오(豁然大悟)하는 젓대여. 젓대소리를 듣고 툭 깨 버렸어.

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그러니 본래면목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켜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혀.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하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설법을 허되 첫 설법에 올라가서 우세나 하고 보월 스님 울고 내려오데끼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대의(大意)가 참 분명허단 말이여. 꼭 그렇지.
그런데 나는 스물세 살 먹어서, 세상에 내가 그때 주전도 없지. 허지마는 한번 올라갈 용기가 있어서 첫 설법을 청하길래 좋아서, 아! 대중이 한 7-80명 대중이 직지사 선원에서 모여서 법문해 달라고 청한다 그 말이여.
그때도 그래도 뭔 좀 소견이 났다고 헐 때인데, 그래도 내가 체면상 못 올라갈 텐데, 그때 다 통쾌한 선지식한테 다 내가 말을 들었기 따문에 한번 올라간 것인데, 올라가서 첫 설법을 허는데 내 첫 설법 좀 들어 보시오.

아주 올라가서 얼마나 허고 싶던지 ‘내가 올라가면 한바탕하리라’고. 아, 올라가 놓으니깐, 법상에 올라가 놓으니깐 떨려. 떨릴 것이 하나도 없는디 속에는 아무 일 없는디, 아따! 그래서 ‘에이 그까짓 것 떨 것도 없다. 모도 그만 모도 개미같이 봐라’ 너무 황송한 미안한 말이지만, 개미떼같이 그냥 속으로 그냥 생각을 해 버렸다 말이여.

내가 그러고는 설법을 허되, 주장자를 들었다고, 날 봐!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且置)하고 여하시차사(如何是此事)냐?”
일러. 일러! 왜 못 일러? 한번 일러 봐? 어디 우리 또 대중도 남녀가 있나? 남녀상(男女相)이 없는 게 법인데. 내 첫 설법에 헌 거여, 이게.

그때도 물었어. 대중에 물었어.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아무도 대답이 없어.

 


〇 만공 스님의 인가, 전법게.

그래서 만공 큰스님한테—만공 큰스님 십답, 한암 스님과 열 가지 문답(問答)이 있는데—‘열 가지 문답 가운데에 다 물어 주십시오’ 문답을 다 물어서 대답 내가 다했다.

(대답)허고 마지막 나올 때 “저는 스님 하직합니다” 스님 밑에 있어 뭣 할 것이여? 나도 스님 법 내가 다 탁마해서 내가 다 가졌는데, 나도 인자 가서 중생 교화해야 할 것 아니여.
“갑니다” 허고 절을 허니까, “어이 가소. 저그 저 별이 있는데 저 하늘에 별이 있는데, 저 별—부처님 깨달은 별은 저 별 새벽별인데, 그 부처님은 새벽별을 보고 깼지마는 자네는 깨달은 별이 무슨 별인가? 어떤 별에 깨달았는가?”

(내가) 땅을 허부적 허부적.
“선재(善哉) 선재(善哉)로구나” 선재란 건, ‘착할 선(善)’ 자는 ‘착하다’는 말이 아니여. ‘옳다. 옳다’ 그 말이여.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인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헌디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 내가 그렇게 “자네 별은 어떤 별인가?” (만공스님 묻는 말에 내가) 땅을, 왜 땅을 파? 왜?
“선재 선재다. 착하고 착하다”

불조(佛祖)도 미증전(未曾傳)인디, 불조도 일찍이 전(傳)허들 못했는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일세.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네.
차일(此日)에 추색모(秋色暮)인데, 오늘날에 추색(秋色)이 저문데, 이 가을날이여. 가을날이 저물었는데,
원소(猿嘯)는 재후봉(在後峰)일세. 원숭이 휘파람은 뒷봉에서 우네.

그러헌 인가(印可)가 어디 있냐 이 말이여.
만공집(滿空集)에도 있어. 만공 큰스님 집(集)에 있는 것도 내가 갖다 내가 고승집에 이리 내놨어. 왜 어찌 거짓말을 허냐 그 말이여. 어떻게 거짓말을 해. 거다가 어떻게 뻘소리를 붙여 놓냐 그 말이여.

인가(印可) 없이 '인가 있다'고, 인가 없이 나와서 조실(祖室) 노릇허고 있어? 차라리 지옥 귀신이 되어 가지고 귀신 노릇하면서 ‘아이고 나 죽겠다’ 소리를 허지, 인가 없이 주뎅이를 벌려 조실 노릇혀? 못허는 법이다 그 말이여.
내가 그러고 나왔으니, 직지사에 올라와서 설법 한번 헐 마음이 나지 않나? 불끈 난다 그 말이여, 속에서는.

아, 그래 올라가서 설법을 헌 것이 ‘입만 열면 그르치니,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걸’ 물은 게 아니여?
「차사(此事)는 착(錯) 불착(不錯)이니 이 일은 입만 열면 그르치니, 그르치고 그르치지 않는 건 그만두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대답이 없어.

“촛불이 밝다” 병율이야, “촛불이 밝다” 그래.
“이놈아! 촛불 밝은 걸 내가 물었어? 차사(此事)를 물었지”
별 것 다했자 소용 없어. 그래 이른 거 아니여. 이른 것은 바로 일러야 이른 것이지, 그깟은 놈의 소리를 불청허고 소용도 없고.

대번 했기 따문에 등당으로 인자 나와 했기 따문에 만공 큰스님한테 내가 법문을, 『소승이 영신(永信)이가 법상에 올라가 설법을 했는데 큰스님한테 불가불 점검을 받어야 허겠습니다. 설법을 법상에 올라가서 주장자를 들어 대중을 보이고,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니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물었는데, 답이 없어 큰스님께 보내니 답해 줍소사』

그랬더니 만공 큰스님이 답을 해서 보내되, 요만한 종이에다가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그림이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그렸어. 요렇게 그려놨어. 아니 그렇게 그린 게 아니라 그림이 요렇게 요렇게 꼬부라게, 요렇게 꼬부라게 그려놨어. 이 위에서 꼬부래. 아니 이놈이 꼬부라졌어, 밑으로.
거 무슨 도리일까? 아시겠어? 그 꼬부랑을 그려놨다 그 말이여. 뭐여? 그 무슨 그림이여? 만공 큰스님 답이여, 이게.
알겠어? 견성(見性) 못허면은 헐 수가 없어. 잘 보면, 문제가 다른 문제 아무것도 없고 견성 문제여.

우리 모도 모아서 견성, ‘이뭣고?’ ‘이뭣고?’ 잘해서 같이 생사해탈하자. 너 허고 나는 안 허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지옥 귀신이 되고 말 것이냐?
우리가 지금 지옥 귀신 면한 줄 아시오? 아이고, 생각해 보면 큰일나. 생각을 못허고 이러고 있으니 그렇지, 역사 없는 우리가 과거에 지옥고(地獄苦)를 얼마를 받았어. 

포구발심(怖懼發心)이여. 무서운 발심. 무서워서 죄 안 짓고, 무서워서 도 닦는 것이여. 한번 또 들어가면 언제 나와?
지금 우리가 나왔단 말이여. 요까짓 것 나와서 잠깐 나왔지마는 또 죄를 퍼지어 간다 그 말이여, 틀림없이. 지옥은 안 가고는 못 견뎌.
참선(參禪)이 아니면 못 견뎌. 과연 우리 이렇게 모아 참선 법문 배우라고, 참선 설법 들으라고, 우리 설판재주(說辦齋主)가 터억 나와 가지고 이 설판을 해서 이리 지어 놓으니깐 이렇게 많이 나왔네.(21분3초~42분38초)





(3/4)----------------

전체가 나 뭣해서 뭣허고 모도 그냥 갔는데, 이 남는 것 좀 봐. 참 해탈복 지었다. 해탈복을 짓고 무루복을 지었지마는 ‘해탈복 지었다’는 ‘무루복 지었다’는 그런 상(相)도 두지 마시오. 상을 뭣하게 둬, 그까짓 상(相).
장한 일이여. 장한 일이지마는 뭣 할라고 그 말을 내가 헐까? 그만 두고.


우리 여기 모이신 대중 가운데 공부허는 이야기 한마디, 과거에 고인(古人)들 이야기헌 놈 한마디를 내가 오늘 헐라고 시방 작정인디.
‘이뭣고?’를 헌다. ‘이뭣고?’ 헌 학자가 참 잘했든 모냥이여. 날마당 때마당 그러나 저러나 그저 내가 이것 못허면 생사에 불출(不出)이니, 생사에 나올 기약이 없으니, 생사에 죽고 사는디 나올 기약이 없는 것은 생사라는 것은 지옥인디,
죽고 사는 곳에 나올 곳이 없으니 ‘이뭣고?’ 밖에 없으니 안 헐 수 있나?

그저 ‘이뭣고?’를 날마당 해 가지고는 쫓아 들어가서 답을 헌다. 뭐라고 생각이 났던지 답을 해. 아! 이녀러 것 공부를 좀 허되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했으면은 뭔 지견(知見)을 답헐 게 없을 텐디, 아! 이놈의 것이 하루 똑 해 가지고 가 답을 허네. 제 지견 난 대로.
이 자식 이놈 주뎅이를 집어뜯어 버려. 쥐어박아 버려. ‘무슨 놈의 소리 이따구 소리가 있나? 이놈’ 방맹이라니깐 그래. 쫓겨나고. 또 가서 죽을 지경이 되어 가지고서는 ‘이뭣고?’를 헌다. 아 그저 ‘이뭣고?’만, 그저 알 수 없는 ‘이뭣고?’만 자꾸 헌다.

그렇게 물을 말이 없는데, 이녀려 저석 참선이 무슨 놈의 참선인고? 날마당 묻는다. 내 그전에 늘 헌 법문이여.

그 이튿날은 또 물으면 처음에는 한 방맹이를 주어 치든 놈의 방맹이가 두 방맹이 때린다. 하루 그려, 이틀 그려, 암만 안 헐라고 해도 할 수 없어. 사흘을 이리 혀 놓고 나니 아! 그만 지견이 뭣이 일어나, 그만 냅대 쳐. 뭐 지견이라도 있다 없다 소리여? 그런 건 아니지.

아! 마침 똑 저 『염송(拈頌)』에 사기처럼 아! 그놈을 그렇게 모도 뭣을 붙여서 또 대답을 허면 치고 치고 때려 쳐내기를 구십 닷새를 때렸습니다. 에지간허지. [문 열어줘. 뭐 누가 잠갔나? 문을 좀 열어줘! 장삼 입어라. 그 장삼 입고]

구십 닷새를 어떻게 그만 벼락을 주었던지 참 그건 뭔 말할 수가 없어. 무슨 놈의 법, 생사법을 당하고 말지, 이놈의 방맹이를 못 맞겠다고 그만 그러고는—사정이 있나? 뭐 사정없지.
에지간하면은 구십 닷새를 견딜 사람이 누구여? 구십 닷새켕이는 세 번만 해도 부해 내고 한 번만 해도 꼬라지가 나고 도망갈 것인디 구십 닷새를 냅대, 나중에는 그만 문을 다 걸어 잠그고 별짓 다해도 소용없고는 기어니 뜰 앞에 그러 앉아서 아! 그 짓을 헌다 그 말이여. 허! 죽이지도 못허고 살리도 못허고 이건 낭패여.

아! 구십 닷새만에는 여지없이 들어와서 턱 들어서더니 아! 그만 뭔뭔뭔 기세가 그만 말할 수가 없어. 눈 뚝 바로 뜨고 턱 오더니 “깨달았습니다. 물으십시오” “그 어디 깨달았으면 일러라. 너 깨달은 도리를 일러라” 그런게 아! 이르는디 뭐 벼락이여. 틀림없어. 아! 그렇게 공부를 그 그놈의 공부를 그 상량(商量)을 했든지 원 어떻게 했든지, 아! 깨달랐어. 구십 닷새만에는.
그것 참 희한한 일이로다. 아! 그놈 참선이 못쓸 참선, 사견 참선이여. 뭣이 나오고 뭣이 자꾸 보이고 허면 사견이라 못써. 그건 상견 사견 참선이란 못쓴 것이여.

일평생 못 깨달드래도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 독로(獨露)허면은 천하에 제일가는 참선인디, 천하에 제일가. 아무것도 없어. ‘이뭣고?’ ‘이뭣고?’만, ‘이뭣고?’만 그저 늘 그저 ‘이뭣고?’만 배꼽 밑에서 항상 있으면은 견성(見性)보담 나아. 보림(保任)까지 한목 해 나가니까. 

아! 무슨 놈의 참선이 구십 닷새를—구십 나흘까장 날마당 ‘알았다’고 와서, 때리고 쳐내 쫓고 쫓고, 아! 죽어도 오네, 죽어도 와.
참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여. 그렇게 믿어야 참선법이지, 그까짓 것 뭔 명예적으로, 뭐 아주 무슨 기계적으로, 무슨 뭐 옛적으로, 무슨 좀 들어 보고 믿어 보고. 뭣이여? 그까짓 것이.

아! (구십) 엿새만에는 참말로 깨달았네. 깨달라 가지고 답을 헌디 여지없다. “옳다. 바로 바로 알았다” 인가(印可) 받았지, 거 인가여. 활구참선 인가법이니까.

아! 그럴 때인디 마침 그런 못된 학자—요새 와 참선한다 해도 그 믿을 똥 말 똥 헌 것이 공연히 들어와서 선방에 와서 밥이나 먹고, 놀고, 얘기나 하고, 잠자기 좋고—고런 것이 있어.
깨을배기고 고런 것이라도 그게 그 속에 그 무슨 이상스런 마음이 있어. 거짓 견성이라도. 몰리 당기면서 그 똑 법(法) 알았다고 대답한 놈을 저 숨어서 들어. 가만히 와 들으면은 환히 듣킨 곳이 있는디, 들으면 뭐라고 대답을 딱 허면 아니라고 방맹이를 맞고 쫓겨나고. 또 그 이튿날은 또 와서 허면 듣고 쫓겨나면 또 듣고 구십 닷새를 꼭 들었다.
구십 나흘을 꼭 같이 몰리 댕김서 듣고, 저 혼자만. ‘뭐라고 대답을 해서 뭐라고 말을 해서 인가를 얻는고?’ 그 도(道)를 좀 그렇게 들어 알라고. 저는 알 수가 없으니까. 거 도적이여, 그 도청(盜聽)이여. 도둑 도청을 허는 것이여. 그 도둑질로 인자 그렇게 듣는 것이여.

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남한테 인자 헌 것 보고 들을라고. 그래 들으면 뭐 소용 있을까니? 소용없어. 없지마는 (구십) 나흘을 꼭 들었네. (구십) 닷새만에 “옳다. 깨달랐다” 인가하는 놈[대답]은 못 들었네. 아! 이런 꼬라지가 있나.
아따 그만 인가한 놈[대답]을 못 들어놓으니까 환장하겠네. “옳다” 아! 이놈의 대답은 어떻게 헌 대답인지 못 들었어. 말로만 허면 된가? 피이익 해도 알고. 피이익, 가섭(迦葉)은 안 웃었어? 히히 해도 안디.

아! 잠 좀 자올지 마시오. 법문도 나 원 시원찮소마는 저 원장(院長) 스님 법문 헌게는 모도 안 자올고 잘 듣더니 내 법문은 그보담도 나은디 그래도 자올고 앉었네. 사람 참말로.
안 그렇소? 내 바로 털어놓고 말이, 내 법문 나는 생각헌데 내가 나은 것 같은디 그려. 아! 그래 그걸 꺼꿀로 들으시오. 내가 뭔 내가 더 잘헌다고 헌 걸 꺼꿀로 들어.

아 그래 아따 인가 받고 나오니까, 그 친구가 같은 친구인디 그 공부 도청(盜聽)헌 놈이, 몰래 들은 놈이 “아이고! 이 사람아” 친구니까 “아이고! 이 사람아, 자네 뭐라고 대답하고 인가 받았는가? 자네 인가 받은 놈, 날 일러주소”
“아! 이런 썩은 자식 보소. 아! 이놈의 자식이 공부를, 남 공부헌 것 저 견성해서 인가 받은 걸 제가 인가 가르켜 달라 하네. 너 네 공부허지, 넘 인가 받은 거 알아 가지고 뭣 헐래? 에이 썩은 자식 빌어먹을 자식”

욕을 실컷 해 주고는 그냥 돌아온게 “아이고! 이 사람아, 나 그저 그것만 일러주면 자네 종노릇이라도 해 줌세”
“종이고 자식아 지랄이고 어디 견성을 내가 일러주고 말고 해야? 견성은 제가 하지 넘이 일러준다냐? 남이 해 준다냐? 자식허고는. 참 썩은 자식” 점점 더 안 일러줘.

“아이고 이 사람아, 그러면 내가 자네 3년 내가 종노릇 해 줌세. 3년 내가 똥방자(똥房子)라도 해 줌세. 일러주소”
“야 이 저석아 그런 소리 말어. 자기는 3년 똥방자 아니라 삼백 년 똥방자를 해도 소용없어. 가 이놈아”

“그러면 내가 3년 자네 시봉(侍奉)질을 해 주면 일러줄랑가? 똥방자라도 내 별일 다해 주면 일러줄란가?”
“오냐. 그러면 내가 3년만 해 주면 일러주마. 썩 내가 허라는 대로 다해라”
“그러면 내가 그저 뭔 똥이라도 빨아 먹으라면 핥아먹으께. 그저 일러달라”고. 아! 그렇게 허락을 떡 받았지.

받고는 큰일나부러. 그날부텀 인자 아 이놈을 시봉을 시키는디, 아! 젊은 사람이 친구가 시봉허는디 미안키는 허지. 미안키는 허지마는 그저 불 가져오라면 불 가져오고, 물 가져오라면 물 가져오고, 내 똥 쌌으니 똥 닦으라면 똥 닦고, 뭐 어떤 뭔 말할 것 없지. 안 시켜 걱정이지. 천만사를 시킨 대로 다 해 주지. 그렇게 3년을 참 했습니다.
허다가, 불과해야 그저 사흘 냉겨 놓고 3년이여. 죽을 병이 들었어. 어떻게 죽도록까지 참 못할 일을 없이 다 허다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어. 꼼짝없이 죽게 되어서 “아이고! 이 사람아 나는 죽게 되았네. 죽게 되았으니 나를 위해서 그 자네 인가 받은 그 인가 법문 좀 해 주소”
“아 이녀러 자식이 미쳤나? 이 자식아 사흘 남았는디 사흘도 못 채우고 일러달란 자식이 어디 있어? 안 되야, 소용없어. 천하 미친놈 같으니” 방(棒)만 더 우수(雨水)지. 거 3년 헐 사람이, 누가 말은 그렇지 그 있겄소?

아! 그래도 꼭 죽게 되었어. 숨이 넘어가. 자기가 생각허건대 살 수 없어. 그놈을 못 듣는 것이 제일 죽겄어. 이 목숨 무너지면 넘어가면 생사죄 받을 걸 생각하면, 지옥에 들어갈 걸 생각하니 정신없어. 똑 그 법문만 들어야사만 생사를 면할터니, “아이고! 어떻게 일러주소” 점점 방맹이만 더 내린다. 벼락이지.

그러기에 조실 스님은, 법 깨달은 조실 스님은 인정 있으면 못써. 인정 있으면 절대 못쓴 것이여. 인정 보면 못써. 사정없어야 되아. 인정 있는 조실은 일찍이 치워야 하는 것이여. 견성했어도 못써. 꺼떡허면 그만 비구니나 보면 뭘 한마디 대답 “이-” 그러면 “거 안 맞으니 다시 한번 일러라” 그러면 “야 옳다”
“오늘 이 견성했습니다” “일러봐라” “오늘이 나흘입니다” “아이고 내가 그거 아닌데 다시 일러봐” “오늘이 나흘이란 말이요” “아야 옳다” 이 짓을 허구 자빠졌구만.

내가 오직해야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 망한다’고 허겄소. 내가 누가 그런다는 말은 내가 헙디여? 허나 법(法)부텀 바로 배와야 헌다 그 말이여.
소용없어. 마구니짓 배우고 못된, 불법 망허는 그런 물건이 되어 버리는 것이여.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은 제 차지고. 안 되는 법이란 말이여. 내가 이것 거짓말을 할 것이여? 그러니까 달마 스님도 제일 걱정이 처음에 불급심사(不急尋師), 스승 안 찾으면 안 된다 했어.

꼭 죽게 되었는디 일러달라고 해도 안돼. 죽어도 안돼. 인제 이 숨은 넘어간다 넘어가는디 “안 일러주어?”
“못 일러주어. 이놈아!”

칼이 옆에 하나 있던가 칼을 이만헌 놈을 가지고 오더니, 아! 죽을 놈이라도 원청 분헌게 그냥 칼을 그냥 추켜들고는 찔러. ‘에이 이놈의 것, 내 칼에 죽는다’고. 찔러 죽어 버릴라고 자기.
일러주지 않으니, 내 일러주지 않는 도(道) 그거 배워 뭣허며 나는 그대로 칼에 죽어버릴란다고 칼을 빼 가지고는 그만 자살을 헐라고 작정했습니다. 찔르라고 허니까 “주(住)해라. 칼 놓아라” 거기서 일러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답했드니라”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했습니다. 확철대오를 했어.

그건 뭐냐? 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입니다. 그러헌 신심과 분심을 가지고 3년 동안에 그 꼭 들을라고 애쓰든 그것이 화두(話頭)여. 그만 더 더 크게 깨달라 버렸네. 그 큰 분심에 칼을 그만 칼로 내 찌를라고 작정헌디 툭 일러준게 툭 깼습니다. 3년 만에.
참선법이란 게 그런 법입니다. 이런 법이니까 여간 그 방(棒) 주고 뭐 어쩌고 그 큰스님이 그런다고 해서 그 퇴태(退怠)허시지 마십시오. 퇴태하면 못쓰는 법입니다.

막 쫓아내기를 글쎄 90일을 했어, 90일을. 그것이 참선법인디, 참선법을 갖다가서 보통 무슨 뭐 인정법으로 알고 ‘아이고! 고맙습니다’만 하면 좋은 줄 알아. 아이고! 대접만 허면 제일인지 알고, ‘대접이니 잘 허니 그 절 가자’
아! 당신네 뭔 대접 잘 받을라면은 돈 많이 있고 부자 아! 그런 어른이야 뭐뭐뭐 자꾸 그저 대접이나 해 주면 좋다고 그런 디나 댕기고 서로 그러지, 뭣 허게 불법 배운다 해야?(42분38초~1시간1분28초)





(4/4)----------------

왜 나옹 스님 같은 이는 그 좋은 밥이 없어서—그 좋은 월정사 같은 디서 그 좋은 밥에 옷에다 모도 소용없고, 그저 헌 짓이 못된 짓만 허고는 대중한테 쫓겨나고 그저 밉상 받고 있음서 내버린 비지 찌꺼리나 먹고, 내버린 시궁창 밥이나 건져다가 씻거서 먹고. 그것도 혼자 먹는 게 아니여. 씻거 가지고 깨끗이 해 가지고. 괴기도 좀 주면 먹고—그랬겠소?
아! 그러헌 천둥이가 되고 그런 고행자(苦行者)가 되고 그래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고행자입니다. 고행자, 고만 받고 아주 진지리 몸서리나게 산고수활(山高水闊) 산 넘고 물 넘으면서 선지식(善知識) 찾아 도(道) 찾아 대도를 통헌 것이 그것이 학자(學者)고, 그래 생사를 해탈하는 법이지.

생사(生死)가 뭣인디, 생사 생사헌게 생사가 뭣이여? 죽는 줄을 다 알지. 사는 줄 다 알지. 생사가 지옥이여. 죽였다 살렸다 죽였다 살렸다 헌 게 그게 지옥이여.
우리가 지금 나왔으니께 살았지. 그것 나오는 건 그건 생(生), 죽으면 사(死), 고것이 지옥이다 그 말이여. 우리 곧 나왔다 곧 죽을 것 아니요? 여기 이 가운데도 언제 죽을지, 나갔던 숨 안 들어오면 죽는 것 아니요? 이러헌 공부 아니요! 이 무서운 참선 아니냐 이 말이여. 참선 않고도 되겄소?

여태까장 참선법이, 몰라서 세계적으로 몰라서 우리 부처님이 삼천 년 전에 나와 가지고 이 법을 가르쳐 주었는디, 쬐끔씩 발전되아 게우 발전되아 이 어리석은 중생한테 참선허는 법이 쬐끔씩 쬐끔씩 돌아와 가지고 지금 우리 한국에도 꺼질 똥 말 똥 꺼질 똥 말 똥. 우리 선객이요 지금 누가 이 가운데에도 옳게 믿는 선객이 몇 되겠느냐 그 말이여. 몇이냐 그 말이여. 들으면 자빠져 자고 몇이나 되아?

생사뿐이여, 생사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뿐이여. 고(苦)! 고 견디겄어?
당허면 더 못 견디는 것이 더 안 신(信)혀, 더 믿지 않고. 생사에 당하면 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왼통 떨면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아이고! 아이고!’ 막 뒈진 시늉 더 허면서 참선은 안 믿어.

참으로 야물딱지게 믿고 바로 할 것은 참선뿐이니깐. 견성헐라고 애쓰지 말어. 어쨌든지 알 수 없는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대기 이빨에 털났는고?’ 그 이놈이 좋은가 저놈이 좋은가 그러지 말란 말이여. 그래서는 절대 못써.
‘이뭣고?’ 헌 이는 꼭 ‘이뭣고?’ 허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헌 사람은 꼭 ‘판치생모(板齒生毛)’ 허고. 본참(本參)을 바꾸지 말어. 바꾸는 법이 절대 없는 법이여. 아! ‘이뭣고?’가 천하에 알 수 없지. 내가 나를 모르니 꼭 ‘이뭣고?’ 법을 꼭! 잘해주시기를 믿습니다.

여그는 영원히 참선허는 아주 도량(道場)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말씀 늘 했지마는 공정 증명(公正證明)을 내놨으니까 이건 공정적으로 나라에서 다 압니다. 인자 공정 증명으로 법보선원(法寶禪院)을 다 알았습니다.
법보선원, 아주 증인이 돌아가시면 또 나올 것이고 또 나올 것이고, 여기에 여그 공정 증명을 헌 어른이 계십니다. 여그 그 어른이 계시고, 그 어른 돌아가시면 또 올 것이고 또 여그 증인이 또 있습니다. 이 어른 계시고. 다 여그 짜여 다 있으니깐 그러신 줄 아시고 염려 마시고 여그 그동안에 모두 시주(施主)헌 돈은 이 땅 샀고, 이 집 다 지었고, 또 내가 참 장헌 일이 있소. 넘이 누가 장허다고 못 해 주어, 갬히.

내가 장헌 일을 했으니, 방생(放生)을 내가 천 관(貫)을 채울라고, 오늘 얘기하길 천 관 채우고 말헐라다가 미차 못 채워서 960 뭐 9백 얼매냐? (935관입니다) 935관을 했소. 인자 6백 그 몇 관만 허면 되오? 605관만 허면 되오? (65관) 그러면 천 관 채우요. 내가 누구보고 방생, 뭐 일전 한푼 달란 말 없소. 모두 그 돈이 보살님네 돈이여.
누구보고 내가 ‘방생허러 갈란게 돈 좀 주시오, 뭣 주시오’ 내가 그런 말 헌 일 없습니다. 있으면 있다고 하시오. 쌀 든 것도 또 좀 맡기면 ‘아 그러면 돈도 없는디 뭘라고 내시오? 머냐도 하도 많이 내쌌는디’ 그래 번지요, 내가. 쓴 놈 가지고 그것도 안 돼 요만큼도 안 붙였습니다. 거그다가 내가 또 한번씩 허면 언제든지—그 똑 다 같이 있은게 말이지, 10만원 안쪽은 안 했습니다. 그 모도 비용 뭐 다 제하면 넘지, 안 안됩니다.

아! 그런 것을 내가 우리 법보선원 재주(齋主), 우리 법보선원 일동 신도 그저 동참(同參) 인연을 맺아서 어쩌든지 같이 모도 동성성불(同成成佛)해서 생사해탈허자는 똑 장상(狀上)에 들어서 내가 띄웠지, 무슨 나 혼자 내가 뭐 내가 내 돈으로 했소? 내가 이런 방생 안 헌 걸 했다고 허겠소. 그것 썩 자랑거리 아니여? 아! 그 또 자랑거리도 자랑거리고 또 선전도 해야 여러분들도 다 알고 다 허시지. 내가 허기 전에는 내가 그런 말 허지도 안 했어. 누구보고 둘보고 그런 ‘나 오늘 방생헌다’ 소리, 하나 헌 일 없어.

탁 가서 앵기면 딱 사 가지고는 그냥 갖다 강상(江上)으로 갖다 띄우고 띄우고 그러고 돌아와서—아침도 안 먹고 가서 점심 굶었지. 아! 돌아오다가 또 그럭저럭 뭐 이럭저럭 오다가 그만 또 뭘 좀 먹어논게 그만 딱 체했지. 죽을 뻔해서 이것도 또 죽다가 살아났소. 아! 그러다 죽으면 또 그만이지, 그것 뭐 별것 뭐 있냐 이 말이여.
방생허다 죽으면 뭐 잘 죽었지, 뭐 죽을 것 뭐 있나 말이여? 아! 또 살아나서 오늘 내가 이 말씀까장 드렸습니다. 앞으로 앞으로도 더 죽지 않고 오래오래 있으면은 그저 더 어쩠던지 우리 법보선원 내생 내생 영원헌 내생까장 똑 확철대오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헐 모도 그저 참선법을 가르켜 드릴 것이고, 그 인연법 모도 맺아드릴 것이고. 여그 송담 스님이 인자 계속해서 이렇게 헐 것이니깐 거 그겋게 잘 믿어 주시고.

참 이번에 감사합니다. 참 어디가 절 지을 디가 없어, 절 지을 디는 하도 꽉 찼을것이요마는 서울 인천 사이에 법보선원을 이렇게 잘 지어 주어서 이렇게 설판(說辦)해 주시고 이래 주셔서 참 그 말씀을 다 헐 수 없습니다.
허지마는 뭔 내가 뭐 나 혼자 복을 받을라고 헌 것도 아니고, 나 혼자 해탈헐란 것도 아니고, 영원히 인자 앞으로써 이 10세 정명(定命) 오드락까장 여그서 이 선법(禪法)을 가르킬 것 아니요. 그 일 외에 뭣을 해야 더 좋은 일이 있겠소? 생각해 보시오. 그러헌 일 권허는 것이, 넘을 권허고 당신도 허고 또 설판재주(說辦齋主) 나오. 세상에 무루복(無漏禪)에 제일이여. 다함이 없는 복이다 그 말이여. 중생을 교화허는 복이다 그 말이여. 천하에 더 있겠소?

그런헌 법을 우리 사바세계 중생들이 까마득 몰라 가지고 죄업만 퍼지어 가지고 악도(惡途)에만 처들어가니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시오. 얼마나 똑 내 자식이나 내 딸이나 내 손자나 그런 것만 들여다보고 내 손자 내 자식인 줄 알지, 무량 과거에 여가 죽어 저가 나고, 저가 죽어 여가 나고 사차생피(死此生彼)에 모도 부모고 모도 형제자식을 모르요.
원융평등(圓融平等) 무애자비(無碍慈悲)헌 우리 부처님의 정법 다 같이 이렇게 잘 닦아서 성불해서 일체중생 제도허기를 바랍니다. 이 좋은 복 지었으니 거기에 이런 송구(頌句) 하나 또 있습니다. 그 송구가 뭐냐?


재세약무호말선(在世若無毫末善)이면  후세하물답명후(後世何物答冥候)요
나무~아미타불~

재세(在世)에 만약 이와 같은 복을 한번 지어 놓지 못하면은 죽은, 이 몸뚱이 내버린 뒤에 바로 지옥 들어갈 때는 바로 들어가니 뭐라고 할 테여? 뭣 때문에 안 들어간다고 할 테여? 이런 일을 해 놨으니 오라고나 허나?

또 「절 모르고 시주한다」는 말이 있지. 「아무데나 절 시주한다」는 말이 있지. 그것 자기가 아무나 절 해 주고, 독살림이나 해서 먹고, 그저 그래 살라고 이런 것 다 있고, 이러한 짓이 다른 것이여. 어찌 똑같여? 같다고 할 사람 어디 있어?

그 사람 죽게 되었으니 살려준 것은 자선사업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마는 그 사람은 자선사업만 알지. 그 사람이 죽게 되었으면은 달리 원 빌어먹든지 뭣 허든지 살게 만들던지 이것 그것이 차라리 낫지, 절 잘 지어 주어서 그 절에다 부처님 모시고 부처님 팔고 모두 법 팔고 모두 절 팔고 해서 가지가지 협잡질해서 먹고 살게 맨들아 해준 것이 그것이 복 되야? 그처럼 죄(罪) 지어준 건 모르고? 아! 이렇게 세상에 이 복(福)진 것을 한 번 떠억 생각하셔야지.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꼭 이와 같이 참 꼭 어쨌든지 참선, 가나 오나 참선, 오나 가나 참선, 그저 누우나 자나 자다가도 일어나면 참선, 그저 ‘이뭣고? 이뭣고?’ 이걸 이대로 안 했다가는 한만단(恨萬端)이니라. 한(恨)이 기맥힐 것인게 알아라.

오늘 법문 마쳤습니다. 다 그렇게 돌아가셔서 잘 허시길 바라고, 올 삼동(三冬)에도 또 선방을 여그 다 같이 또 헐라고 했더니 헐 수 없이 못허게 되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집을 짓기 시작해 이리저리 허고 나니 못 짓게 된 걸, 그만 뜻밖에 설판재주(說辦齋主)님이 원력을 세우셔서 시작해서 늦게 해 가지고 인자사 마쳤습니다. 아직 덜 마쳤습니다. 저리 차가 못 댕겨. 아시바 그놈 매놔서 못 댕겨서 톱밥을 못 가져와서 톱밥을 장만허지 못해 가지고 못 대서 도저히 헐 도리가 없습니다.

여그는 다른 냉기도 없고, 실어 올 수도 없고, 큰 차도 못 들어오고, 쪼그만 차도 구리마도 못 올라옵니다. 삼동에는 막 눈이 채이고 비가 채이면 미끄러져서 다 올라오도 못허고 헐 수가 없어 삼동에는 못허게 됐으니깐 그러신 줄 아시고. 오늘 설법 들으시고 잘 돌아가서 계신 디 가 공부 잘 허시고.
그다음에 또 와서 설법 들을 때에는—금년 여름에는 거그서 댁에서 잠자고 새벽에 와서 일찍 와서 설법 듣고, 저녁에 초저녁에 얼른 와서 밥을 먹어도 밥을 해드릴 테지마는 밥을 이렇게 해 줄라 해도 소용없고, 기어니 밥 먹고 와서 자고 새벽에 법문만 듣고는 가고 가고 요렇게 허기를 세 분인가 됐습니다. 참 그 신심이 놀라웠지. 그 공부를 알뜰히 잘혀. 고렇게도 헌 이가 있다 그 말이여, 절에서. 그래 여그서 그렇게 허실 이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고 여그에... 뭔 말을 헐라고 허다가 잊었나? 이런 참 나... 금년... 그래 금년 겨울 동안에는 그저 그렇게 된 것을 잘 이해해 주시고, 그 가운데 우리 저 몇 분들이 기어니 꼭 있어야겠다고 그렇게 말씀허면 우리 참선은 우리 방에서 헙시다. 넨장칠 거 뭐 참선헌 이가 방이 따로 있소? 우리 방에 내 방에 와서 나랑 같이 용맹정진 한번 해보자 그 말이여. 뭐 그거 지레 못헌다고 허시지 말고 그래라도 해보시지.
하두 어쩔 수 없어서 올해는 이렇게 되았으니 잘 이해해 주시고, 이다음에 이렇게 많이 많이 인자 모여도 여그서 설법 잘 듣게 이 법당이 되았으니 좀 좋습니까? 마치고 내려갑니다.

고대로 섰어. 고대로 가만히 섰어. 저 달달이, 이렇게 잘 잊어번져. 달달이 8일 날 기도를 시작해서 24일 날 마치기로 작정을 했더니, 그렇게 해 놓고 보니 쪽쪽 들어오면은 고대로 5백원씩만 내드래도 고대로 가지고도 우리 선방 대중스님네는 모시고 나갈만도 허고, 이 절 해 나갈만도 헌디.
아무리 해 봐야 해 보니 소용없어. 한 두서너 번 처음에 들어오더니 일대로 된 법이 없어. 안 되고는 도로 그만 아무것도 아니라. 다 이만저만 되버리고 안 되아. 소용 없어서 그걸 전폐해 번지고 백일 결제기도, 결제기도 좋은 것입니다. 결제기도 딱 해서 결제날까장 딱 여그 오면 고놈 거그 축에 들면 고놈을 가지고는 우리 대중공양을 해 올리고 세상에 선방 양식 댄 것이 그 공덕이 어떻다고 했소? 『42장경(四十二章經)』 좀 구해 보시오. 굉장허지.

그래 대 드리고 남겨지는, 만약 거기서 남거드면은 남겨지는 일전푼인들 낭비를 혀? 어따가 써 드릴 것이여? 우리 법보선원 대중 보살님네 제일간—제일 죄 많이 짓는 것이 살생인디 막 때려 죽이는 살생인디, 고놈을 살려주는 복을 지어 드리는디 그 안 되았어? 그런 복을 좀 못 짓겄어? 그래서 결제기도로 돌렸으니 그렇게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다 대중들이 다 대중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해서 그렇게 헌 것이니까, 대중스님 보살님네 다 어떠십니까? 다 옳으면 옳다고 해 주시오. 아! 옳다고 해주시오. 다 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결제기도로, 일 년에 여름결제 한 철, 동결제 한 철, 두 철인디 두 철에 이 결제날 따라서 해제날까장 고렇게 꼭 두 번 해 드리는디, 두 번 결제기도만 해 드리고 그다음에는 축원 않느냐?
법보 축원은, 우리 법보대중에 여그 오는 축원은 날마당 불 받아감서 해 드림서 그런다 그 말이여. 또 법보축원에 오른 이는 제사 다 지내 주어감서 그렇게 해 드린다 그 말이여. 3월 16일 날[법보재(法寶齋)] 꼭 제사 지내고. 알아듣겄지요? 예. 잘 알아들었읍니다.(1시간1분28초~1시간22분5초) (끝)





[법문 내용]

 

<송담스님 법문>
전강선사 명(命)으로 송담스님이 하신 법문 / 화엄경,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삼라만상 전부 /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비로자나불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 산승이 말허는 말을 듣고 계신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신심 / 조실스님 계실 때 조끔이라도 더 철저히 공부를 합시다.

 

<전강선사 법문>
(게송) 주중야문적(舟中夜聞笛)~ /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 / 직지사에서 조실스님의 첫 설법. “차사(此事)는 개구즉착(開口卽錯)이여. 입만 열면 그르쳐. 착(錯) 불착(不錯)은 차치하고 어떤 게 차사(此事)냐?” / 만공선사의 인가, 전법게.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 / 포구발심(怖懼發心).

구십 닷새를 매일 방을 맞으면서도 찾아가 깨달은 학자, 그 인가 받은 대답을 듣고자 3년 시봉을 하겠다는 도반의 이야기 / 법 깨달은 조실 스님은 인정 있으면 못써. 사정없어야 되아.

생사뿐이여, 생사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뿐이여. 고(苦)! 고 견디겄어? 참으로 야물딱지게 믿고 바로 할 것은 참선뿐 / 용화선원은 영원히 참선허는 도량(道場) / 방생(放生)을 935관을 했소 / (게송)재세약무호말선(在世若無毫末善) 후세하물답명후(後世何物答冥候) / 「절 모르고 시주한다」 / (게송)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


〇그러면은 그 많은 화엄경을 하나의 큰 교향악(交響樂)으로 비유해서 본다면은 그 많은 위대한 대교향악의 총지휘자는 바로 비로자나불이고, 그 대관혁악의 악단은 그 화엄경에 나타난 많은 불보살들이 전부 그 교향악단의 악사(樂士)라고 말할 수가 있고, 아울러서 그 화엄경이 우리가 보는 그 책으로 된 그것만이 화엄경이 아니라,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위대한 화엄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정(有情) · 무정(無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낱낱이 우리도 그 대관현악(大管絃樂)의 한 단원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 그 가운데에 자기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눈 한번 깜짝이고 손 한번 움직이고 발 한번 움직이고 웃고 울고 헌 그것들이 그 대관현악의 악단으로서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 악단을 지휘하는 비로자나불 바로 그분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십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말허면은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헌 상호(相好)를 가지고 또 계신 걸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사실은 그 비로자나불은 지금 산승이 말허는 말을 듣고 계신 낱낱 여러분 가운데 바로 그 비로자나불이 계신 겁니다.

들을 줄 알고, 볼 줄 알고, 배고픈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그 속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계신 것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심(信心)입니다. 
부처님 앞에 돈과 쌀과 모다 그 떡과 그런 것을 많이 차려 놓고 절만 많이 허고 그런다고 그것이 신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낼 줄 알고 욕할 줄 알고, 탐심 낼 줄 알고 진심 낼 줄 아는 그 우리의 중생심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선지식(善知識)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것을 계발(啓發)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나도 반드시 바른 지도를 받아서 노력을 헌다면 나도 성불(成佛)헐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신심입니다.

〇아까 그 송담 스님이 여기 원장(院長) 스님이 또 올라와서 설법할 때, 그 비로자나가 설법을 했는데 입 하나 뗀 법이 없이 설법했는데 보살들이 백만 천만 억만 보살들이 설했자 설할 수가 없어. 만년을 설했자 역사를 넣을 수 없어. 그러니 49년 설법에 보탤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 본인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비로자나 전신체(全身體)다 그 말이여. 그러니 본래면목 우리의 본래면목, 그 언제든지 가르켜 줄 스승은 있지마는, 옳은 스승을 만나야만 깨닫지마는, 오(悟)는 자기가 깨닫지 부처가 깨달아 주지 못혀. 그 비로자나 전신체, 생사 없는 몸뚱이.

그러고 화엄경은 그렇게 81권이니—81권 뿐이여? 81권이 화엄경이여?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 화엄경인데, 미진수품(微塵數品) 화엄경이 그것이 내 본래면목, 비로자나 전신체.
그 비로자나 전신체가 내 마음인데 내 본래면목인데, 그 본래면목이 별별 놈의 소리를 다허고, 별별 놈의 못할 소리가 없고, 뭐 말 한마디를 가지고 천만 가지를 맨들수 있고, 이것이 비로자나불이여.
이 비로자나불이 이렇게도 별말 다하지마는 그 근본 자체, 비로자나불 근본면목 속에 들어가서 사견(邪見)도 없고 상견(相見)도 없고 유(有)도 무(無)도 비유(非有)도 비무(非無)도 없는데, 무엇으로 뭣을 나투어서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놔? 못혀. 입 뿐이지, 입으로만 뿐이지, 하덜 못혀.

필경에는 내가 나를 깨달지, 부처가 깨달라 주지 못혀. 그걸 비로자나 전신체라. 진대지(盡大地)가 비로자나 전신체여, 그러기 때문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여. 아까 그 설법이여.

〇포구발심(怖懼發心)이여. 무서운 발심. 무서워서 죄 안 짓고, 무서워서 도 닦는 것이여. 한번 또 들어가면 언제 나와?
지금 우리가 나왔단 말이여. 요까짓 것 나와서 잠깐 나왔지마는 또 죄를 퍼지어 간다 그 말이여, 틀림없이. 지옥은 안 가고는 못 견뎌. 참선(參禪)이 아니면 못 견뎌.

〇일평생 못 깨달드래도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 독로(獨露)허면은 천하에 제일가는 참선인디, 천하에 제일가. 아무것도 없어. ‘이뭣고?’ ‘이뭣고?’만, ‘이뭣고?’만 그저 늘 그저 ‘이뭣고?’만 배꼽 밑에서 항상 있으면은 견성(見性)보담 나아. 보림(保任)까지 한목 해 나가니까.

〇생사뿐이여, 생사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뿐이여. 고(苦)! 고 견디겄어?
당허면 더 못 견디는 것이 더 안 신(信)혀, 더 믿지 않고. 생사에 당하면 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왼통 떨면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아이고! 아이고!’ 막 뒈진 시늉 더 허면서 참선은 안 믿어.

참으로 야물딱지게 믿고 바로 할 것은 참선뿐이니깐. 견성헐라고 애쓰지 말어. 어쨌든지 알 수 없는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대기 이빨에 털났는고?’ 그 이놈이 좋은가 저놈이 좋은가 그러지 말란 말이여. 그래서는 절대 못써.
‘이뭣고?’ 헌 이는 꼭 ‘이뭣고?’ 허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헌 사람은 꼭 ‘판치생모(板齒生毛)’ 허고. 본참(本參)을 바꾸지 말어. 바꾸는 법이 절대 없는 법이여. 아! ‘이뭣고?’가 천하에 알 수 없지. 내가 나를 모르니 꼭 ‘이뭣고?’ 법을 꼭! 잘해주시기를 믿습니다.

〇그런헌 법을 우리 사바세계 중생들이 까마득 몰라 가지고 죄업만 퍼지어 가지고 악도(惡途)에만 처들어가니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시오. 얼마나 똑 내 자식이나 내 딸이나 내 손자나 그런 것만 들여다보고 내 손자 내 자식인 줄 알지, 무량 과거에 여가 죽어 저가 나고, 저가 죽어 여가 나고 사차생피(死此生彼)에 모도 부모고 모도 형제자식을 모르요.
원융평등(圓融平等) 무애자비(無碍慈悲)헌 우리 부처님의 정법 다 같이 이렇게 잘 닦아서 성불해서 일체중생 제도허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No.52)—1984(갑자)년 동안거 결제 법어(84.10.17)(6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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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삭파삼천계(眼光爍破三千界)헌디  이유동정벽모한(裏有瞳睛碧眸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흉차쇄락혼망세(胸次洒落渾忘世)헌디  중유뇌정기우신(中有雷霆氣宇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안광삭파삼천계(眼光爍破三千界)헌디  이유동정벽모한(裏有瞳睛碧眸寒)이로구나

눈빛이 빛나서 삼천계를 비추었는데 그 가운데에 눈동자가 푸르고 차웁구나.

 

흉차쇄락혼망세(胸次洒落渾忘世)한데, 가슴속은 물 뿌려서 쓸어 놓은 것처럼 쇠락(灑落)헌디, 온 세상을 다 잊어버렸어.

중유뇌정기우신(中有雷霆氣宇新)이여. 그 가운데에는 우레처럼, 하늘에 우레가 울린 뒤에 그 기상이 새롭고 새롭다.

 

갑자년(甲子年) 윤10월 17일, 이 세등선원과 군산 흥천사 반야선원 대중과 대전 인근에 여러 사찰에 납자(衲子)들이 그리고 사부대중이 동안거 결제 법요식을 위해서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산승(山僧)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주장자를 들고 이 운집한 사부대중에 그 모습과 눈매를 살펴보니 그 눈빛이 살아서 삼천세계를 비추고 있다 그 말이여. 그 눈동자는 사못 푸르다 못해서 차운 기운이 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슴속에는 쇄락해서 온 세상에 영욕득실(榮辱得失)과 우비고뇌(憂悲苦惱)와 인간에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온통 다 잊어버렸어. 먹구름 속에 번개가 치고 벼락 친 뒤에 한바탕 장마비가 쏟아진 뒤처럼 산천초목은 생기가 발랄하고 그 공기는 맑고 신선한 그러한 모습이다 그 말이여.

 

삼천년 전에 우리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백만억 대중을 앞에 놓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하신 그때 그 분위기가 이 도량에 엄숙하고 경건하게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나는 느끼는 것입니다.

 

 

방금 전강대선사(田岡大禪師)에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우리는 경청했습니다. 10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는 전강선사의 법문을 살아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그 육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무상(無常)한 이 몸뚱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서 이루어진 이 몸뚱이, 얇은 가죽 속에는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차 있건마는, 그 무상하고 추악한 이 몸뚱이 속에 영원히 생사(生死)가 없는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견성성불하시기 이전에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중생(衆生)에 불과했습니다.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는 진즉 발심(發心) 수행해서 이 도리를 깨달라서 열반의 세계를 살고 계십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의 인연이 깊어서 이 오탁악세(五濁惡世) 말세(末世)에 태어났건마는 위없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몸뚱이가 정말 무상한 줄 뼈아프게 느낀다면 우리는 일분일초도 방일(放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망상(妄想) 퍼일어나는 것과 혼침(昏沈), 졸음이 오는 거, 이 두 가지를 들 수가 있는데 입선(入禪)하고 정진하지 아니할 때는, 방선(放禪) 중에 그저 잡담을 하거나 옆에 사람하고 뭐 이야기를 하며 그럭저럭 지낼 때에는 별로 그렇게 망상이 난 중도 모르고 졸음이 온 중도 모르는데, 입선 죽비(竹篦)만 치면 5분도 못 되어서 꾸벅꾸벅 졸음이 온다.

 

참선을 하지 아니할 때에는 망상이 일어난지 안 일어난지 별로 그 망상 때문에 괴로움을 받거나 그런 걸 모르는데, 참선만 시작하면 뭔 놈의 망상이, 지내간 얘기로부터서 현재 닥치고 있는 일부터서 미래의 일까지 뒤범벅이 들어 가지고 번갈라 퍼일어나는데 걷잡을 수가 없어.

겨우 망상이 퍼일어나다가 가라앉을만 하면은 혼침이 오고, 실컷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 좀 채릴만 하면 또 망상이 일어나고 두 놈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넘나들면서 괴롭히는데, 그놈만 없으면 얼마나 정진하기가 좋겠냐 그 말이여.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한 가운데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다면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게 지내가면서 그렇게 성성하고 그 몸도 가볍고 조금도 괴로울 것이 없고 힘이 안 드는데, 번뇌와 망상과 혼침이 뒤범벅이 되어 가지고 아무리 정신을 좀 채릴려고 해도 눈 뚜껑은 천근(千斤)이나 되게 무겁게 내려 누르고, 허리를 펴면 도로 탁 꼬부라지고, 허리를 펴면 탁 꼬부라지고.

무량겁을 그 혼침과 산란(散亂) 그놈 때문에 우리는 정진을 정진다웁게 해보지 못하고,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다겁장도(多劫障道)에 수마막대(睡魔莫大)다. 다겁에 도를 가로막는 것이 수마(睡魔)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수마(睡魔), 그놈은 실컷 자 주면 인자는 안 올랑가 해서 실컷 며칠을 자고 보니까 나중에는 밥 먹을 때도 잠 속에서 밥을 먹고, 그놈을 굴복을 받기 위해서 잠을 안 자고 며칠을 버텨 놓으면 그래도 소용이 없고. 마음껏 자도록 실컷 맡겨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안 자고 이놈을 오기로 두드려 잡을려고 해도 안되고,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보편적인 시간을 짤 때에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도록 그렇게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서 도량석(道場釋)을 하고 예불(禮佛)을 젓숩고 정진을 하도록 해 놓으셨지만, 자기가 분심(憤心)이 나서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할 생각이 있으면 대중은 9시에 자더라도 가만히 일어나서 한 시간씩을 더 정진할 수 있고, 또 두 시간씩을 정진을 하고서 10시 11시쯤 또 누울 수도 있고.

 

그리고 대중적으로는 3시에 일어나지만, 자기는 한 2시쯤 일어나 가지고 한 시간씩을 더 정진할 수도 있고 그런데 옆에 자는 분들에 방해가 되도록 해서는 아니되고, 어쨌든지 자기가 덜 자고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정진할라면 조용하게 해야 한다 그 말이여.

정진한답시고 상(相)을 내고 그런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어쨌든지 상이 없이 하되 속으로 알차게 정진을 하고 가행정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입선(入禪) 시간을 정할 때는 일반적인 상근기(上根機)로부터 중근기 하근기까지라도 전부가 다 따라서 할 수 있도록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되 두 시간씩만 딱 정해 놓고, 그렇게 하고서 그리고서 더할 사람은 각자 자기의 역량 따라서 얼마든지 더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묵언(默言) 구역을 정해 놓고, 방선(放禪) 시간이라 하드라도 대중적인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언제나 큰방은 묵언을 하도록 이렇게 정해 놓고서 방선 시간이라도 큰방에만 들어오면 자기 자리에서 얼마든지 정진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식은 (전강) 조실 스님께서 항시 그렇게 하도록 지도를 하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 법을 믿고 수행하는 선방에서는, 이 세등선원이나 또는 저 인천 용화사나, 용주사나, 회룡사, 또 원효암, 또 군산 흥천사 반야선원이나 시간은 항시 두 시간씩 그렇게 사분정진 하도록 딱 정해 놓고, 큰방은 묵언 구역으로 정해 놓고 방선 시간이라도 얼마든지 정진할 수 있도록 이렇게 분위기를 따악 만들어 놓으면, 참 실질적으로 공부를 그렇게 해 놓고 해보면 참 정진이 알차게 정진이 됩니다.

 

시간은 3시간씩 때로는 4시간씩 딱! 해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 겉으로 보기는 참 정진을 아주 무섭게 정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3시간 4시간이 되면은 무슨 폐단이 있는고 하니, 입선을 해 가지고 특히 겨울에는 날씨가 추우니까 문을 모다 닫아 놓고 하거든. 30분까지는 다 허리를 쭉 펴고 정진을 그런대로 성성하게 하는데, 30분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꾸벅꾸벅 하는 분이 불어나거든. 3~40명 가운데에 불과 몇 사람 내놓고는 전부 꾸벅거린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문을 닫아 놓고 하기 때문에 방안 공기가 점점점점 탁해져서 그런다. 3~40명이 앉아서 두 콧구멍으로 탄산가스(炭酸gas)를 불어 내고 팔만사천 모공(毛空)으로 가스를 발산을 하니, 밑바닥 방바닥은 뜨끈뜨끈한 데다가 사람 몸에서 불어 내는 독한 그 가스가 방에 가득차니까 그래서 그 가스에 취해 가지고 졸음이 오는 것이다 그 말이여. 아무리 정신을 채릴려고 해도 소용이 없거든.

 

그렇다고 해서 입선 시간에 들랑달랑 드나들면서 밖에 바람 쐬고 들어온다고 그러면은 영판 소란해서 안되고, 그러니 한 시간마다 포행(布行) 시간을 두되 2시간 후에는 2시간만 딱 하고 방선을 해서 방안 공기를 확 빼고, 밖에 나가서 마음껏 찬바람도 쐬고 포행도 하고 그리고 들어와서 자유정진을 한 시간을 하든지 두 시간을 이렇게 하면 참 실다운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비(竹篦)만 안 치고 2시간 3시간 있으면 잠이 안 오는데, 죽비만 치고 앉으면 잠이 오는 그런 그 이상한 노이로제 같은 것이 있게 됩니다. 선방에 여러 철을 다니면 죽비 치고 입선하면 조는 그 습관이 잠재의식 속에 따악 있어 가지고, 그 죽비 소리만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잠이 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12시가 되면은 그 사이렌을 울려 주는 때가 있었는데, 그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개밥을 주는 집이 있었습니다. 개는 아침밥은 잘 안 주고 점심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개밥 주는 시간을 12시 사이렌이 불면은 개밥을 줬는데 나중에 반공 연습을 한다고 12시도 아닌 다른 시간에 사이렌이 울리니까 개가 혀를 빼물고 침을 지르르르 흘립니다. 이것은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은 밥을 주던 그 습관에, 따악 그것이 잠재의식 속에 잠겨 있어서 12시가 아니라도 다른 때에도 사이렌만 불면 벌써 자기에게 밥을 줄줄 알고 그래 가지고 침을 지르르르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원리로 해서 죽비만 치면 졸으는 그렇게 습관이 된 구참(久參) 스님네가 많다 그 말이여. 그래서 죽비를 안 치고 정진을 하면 별로 졸지를 않고 정신이 깨끗한데, 죽비만 치면 5분도 안 되어서 허리가 딱 꼬부라져 가지고 심한 분은 코가 방바닥에 닿을 때까지 꼬부리고 엎져 있는 그러한 참 이름 있는 구참 스님 가운데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정진을 하는데 죽비를 안 칠 수도 없고, 죽비는 치되 한 시간 만큼씩 포행 시간을 두고, 두 시간이면 방선을 하고 그리고 남은 시간은 자유정진을 하되, 큰방에서는 묵언을 하도록 그렇게 내가 부탁을 드립니다.(처음~21분42초)

 

 

 

 

 

(2/3)----------------

 

정진(精進)은 억지로 앉어 있기만 한다고 해서 그 정진이 잘되는 것이 아니여.

정진은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차 타면서도 하고, 울력을 하면서도 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언제나 한 생각 단속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면 그것이 정진이지, 앉아 있는 것만 가지고 정진을 삼는다면 앉은뱅이는 태어날 때부터서 정진을 할 것이고, 일평생(一平生) 서 보지를 못한 앉은뱅이는 견성성불은 뽑아 논 당상(堂上)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를 못해서 앉아 있다고 정진의 전부가 아니여.

 

앉아서 반가부좌(半跏趺坐)나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하는 것은 그것은 정진의 기본자세여. 기본자세여서 하루에 네 차례씩 사분정진(四分精進)을 두 시간씩 하는 것은 기본자세이기 때문에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 하는 것은 참 기본자세로써 두 시간씩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나머지기 시간에는 포행(布行)을 하면서도 하고, 죽비를 치지 않고서도 하고, 거닐면서도 하고, 또 어떠한 대중을 위해서나 자기를 위해서 울력을 하던지—봄여름 같으면은 채소를 가꾸던지, 잡초를 뽑던지, 마당에 잔디를 베던지, 무엇인가 몸을 움직이면서 그럴 때 화두(話頭)가 순일(純一)하도록 그렇게 정진을 잡드리를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가끔 수행하는 수좌(首座)들이 와서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정진을 좀 애써서 할려고 해도 간절(懇切)하지를 못합니다. 간절한 의심(疑心)이 나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한 의심이 나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말을 의논해 온 분이 적지 아니 있었습니다.

“간절한 의심이 나야 하겠는데 화두는 들면은 들을 때뿐이고 금방 끊어져 버리고, 의심을 들어도 그냥 염화두(念話頭)로 「이뭣고」 하면 「이뭣고」 그것뿐이지, 「이뭣고」 한 뒤에도 그 간절한 의단이 이렇게 독로를 해야겠는데 그 간절한 의심이 안 나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참 그 말을 듣고 장군죽비(將軍竹篦)로 등어리를 몇 번을 처대 줘야 할는지, 뺨다구를 몇 대를 왼뺨 오른뺨을 쳐서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 할 것인지, 엎드려뻗쳐를 해서 궁뎅이를 주장자로 몇 대를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할는지, 달음박질을 한 10리쯤 달음박질을 해보라고 할 것인지, 참 그러한 말을 문의(問議)를 해 오면 자신으로서는 오직 답답하고 이렇게 흐리멍덩하니 허송세월하기가 너무너무 안되어서 일부러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와서 의논을 하는 말이겠지만, 내가 듣기에는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말이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왜 안 나냐 그 말이여. 간절한 마음 하나만 나면 거기에서 신심(信心)도 돈발(頓發)하게 되고, 거기에서 분심(憤心)도 돈발하게 되고, 거기에서 의심(疑心)도 돈발하게 될텐데 그 간절한 마음이 왜 안 나냐 그 말이여.

무상(無常)한 줄도 알고 있고 참선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는데, 저절로 간절한 마음이 속에서 우러나야 할텐데, 무상한 줄도 알고 참선도 해야 하는 줄 알아서 화두를 들라고 애는 쓰는데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고인(古人)네는 그래서 공동묘지에 가서, 중국이나 인도에 공동묘지는 땅속에다가 묻지를 않고 시체를 그냥 노출시켜서 그것이 비바람에 살이 썩고 난 다음에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서 뼈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대부분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래서 처음부터서 생송장 놔둔 것부터서 매일 그 옆에서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놈이 썩어서 해골이 드러나 가지고 앙상하게 될 때까지 그놈을 보며 계속 정진을 하는데, 그것을 백골관(白骨觀)이라 그러는데, 그렇게 수행을 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승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무상(無常)한 줄 깨닫고, 그 무상한 그 시체를 앞에다 놓고 정진을 하는데 어떻게 편안하게 잠을 자며, 일분일초도 방심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전(年前)에 도살장(屠殺場)에를 한번 관람을 간 일이 있습니다. 종정(宗正)을 지내신 고암 대선사와 또 열반하신 (전강) 조실 스님 두 큰스님을 모시고 제가 도살장에를 한번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소를 갖다가 수백 마리가 늘어섰는데 그 소를 끌고 들어가는데 그 소가 눈을 끔벅끔벅 눈을 감었다 떴다 하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끌려 들어가는데, 끌려 들어가 가지고 그 도끼로 뿔과 뿔 사이 그 뇌를 갖다가 뒤통수를 갖다가 치니까 그냥 비명을 지르면서 툭 쓰러지고 툭 쓰러지고 하는데, 그 쓰러진 소를 갖다가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살을 갖다가 도려내는데, 번개같이 그 살이 뼉다구로부터서 분리되는 광경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니, 참 저런 소들이 과거에 소 전신(前身)은 대부분 다 출가한 스님네들이 시주것을 먹고 그것을 그 값어치를 못하고, 도(道)를 철저히 닦아서 도를 이루지 못해서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소가 되어 가지고 평생 동안 일을 해 가지고 그 노동력으로써 보답을 하고, 똥을 눠 가지고서는 비료로써 보답을 하고, 죽어 가지고서는 피도 살코기도 거기서 나온 지방도 껍데기도 그 또 껍데기 위에 붙은 털까지라도 소는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이 다 사람들을 위해서 그 빚으로써 그것을 제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몇백 근 나가는 그 큰 몸뚱이가 뭘 먹고 사느냐 하면 영양가가 풍부한 식물성 동물성을 많이 섭취하고 그렇게 살이 쪄 가지고 그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풀만 먹고서 그렇게 그 큰 몸뚱이를 지탱을 하고, 그 무서운 노동을 하고 그 살과 모든 것을 갖다, 전신(全身)을 갖다가 사람들을 위해서 제공을 하는 것입니다.

 

비싼 영양가 있는 것을 잔뜩 먹게 되면 그것도 수지가 안 맞는 일이기 때문에 풀만 먹고, 제일 헐값이요 아무데나 있는 그 풀만 먹어야 자기는 먹는 것은 값이 적게 들고 제공하는 힘과 살코기는 비싸게 팔려야 빚을 빨리 갚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 그래서 이 소를 보면은, 어디를 가다가 소만 보면은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스님네는 지나가다가 소를 보면은 옛날 도반(道伴)을 만난 것처럼 “어서 발보리심(發菩提心)해라. 발보리심해라” 이렇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발보리심해라” 그러면은, 소가 우두커니 그 스님을 쳐다보면서 “너도” 그렇다는군요.

 

참 이 말을 하고 있는 자신도—이 말이 여기에 모이신 스님네와 사부대중에게만 하는 게 아니라, 송담(松潭)이 자신에게도 지금, 자신에게 하는 말이 좀 커지다 보니 여러분 귀에 들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해태심(懈怠心)을 부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지 밥이 되거나 질거나, 반찬이 짜거나 싱겁거나, 소가 그 제일 헐한 풀만 먹고 그 무서운 힘을 쓰듯이, 어쨌든지 시주(施主) 은혜가 적은 방향으로 먹고 그리고서 철저하게 무상한 마음을 발해서, 분심 신심을 발해서 대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어쨌든지 금생에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 가지고 도업(道業)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지 스님이나 총무 스님이나 재무 스님이나 원주 스님은 ‘옳다 되었다, 이제부터서는 꼽쌂이 밥에다가 반찬은 그저 김치 하나에 그저 된장국만 가지고 해도 스님네가 꼼짝을 못하겠다. 아무 소리 안 하고 도를 잘 닦겠다. 그러면 이 외호(外護)하는 비용이 적게 들겠다’

만에 하나도 그런 생각은 안 가지시겠지만, 스님네야 아무렇게 해줘도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것도 무서운 시주것이라 생각하고 정진을 잘 하시겠지만, 외호하는 입장에서는 최대한에 성의를 가지고 봉양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치문(緇門)』에 보면 그 소임장(所任章)에 보면은 「소임 하는 사람은 이렇게 외호하는 데에 주식비와 부식비에 이렇게 많이 들다가 보면 기둥뿌리도 안 남겠다. 이 다음 철에는 살림을 못하겠다. 이렇게 이러한 것을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리 잘 먹이고 잘 봉양을 하고 잘 대접을 한다 해도 부처님의 미간백호(眉間白毫) 하나 값도 다 못 먹는다」 이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때 삼천년 전이니까, 인수(人壽) 정명(定命)이 100세고 부처님과 같은 복과 지혜가 많으신 성현은 120세까지는 사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40년이라고 하는 당신의 수명을 덜 사시고, 그 40년 당신이 수용할 복(福)을 우리 말세의 제자들에게 유산(遺産)으로 남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부터 속담이 ‘흉년이 들어서 세 고을 원님이 굶어서 죽게 되어도, 박복(薄福)한 눈먼 중이 그때에사 저녁 끓일 양식을 걱정하게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흉년이 들어서 온 백성이 다 굶어 죽고 심지어 원이 굶어 죽게 되더라도 아무리 박복한 스님네도 굶어 죽진 않는다. 왜 그러냐?

부처님이 남겨 주신 유산, 40년 당신이 받으실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이 있어서,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책임을 지고 도(道) 닦는 스님네의 먹고 입고 살 의식주 문제를 책임을 맡고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도만 열심히 닦으면 굶어 죽고 얼어죽는 법이 없어. 저 태백산이나 지리산 그 깊은 바위굴 속에 토굴에서 정진을 해도 굶어 죽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지 스님이나 원주 스님은 어디서 도둑질해다가 봉양을 할 수는 없으나, 그 절에 있는 것이면 또 어떠한 정성과 힘을 들여서라도 할려고 신심만 내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탁! 떨어서 그 철에 다 쓴다 하더라도, 다음 철은 더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윤필암(潤筆庵) 같은 데는 김용사(金龍寺) 산내 말사(末寺)로 아무것도 재산이라고는 없는 곳이지만, 순전히 수좌들만  모여서 4~50명이 지낸다 하드라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철을 실컷 살고도 또 남았어. 남는 것입니다.

탁! 떨어서 먹고산다 하드라도 그러면 그 다음 철에 아무도 지내지 못하느냐 하면은 다음 철 또 지냅니다. 지내고 또 남습니다. 그러한 예를 이 자리에 정진하신 분 가운데에는 직접 거기서 지내고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참선을 하면은 참선만 열심히 하면 그 절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외호하는 입장에서는 있는 성의를 다해서 어쨌든지 스님네 잘 잡숫고, 공양 잘 잡숫도록 봉양을 할 것이고, 정진하는 입장에 있는 스님네는 너무 잘해주는 것을 항시 ‘내가 이렇게 잘 먹다가 소가 되면 어떻게 하나’ 너무 잘해주는 것도 과분하게 생각하고, 김치에 된장찌개에 보리밥을 줘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하고 정진을 알뜰히 하는 것이, 이렇게 한다면은 외호 대중(外護大衆)과 정진 대중(精進大衆)이 항시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아, 이 절에 와서 정진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항시 마음속으로 백 배 천 배를 하면서 외호를 하고,

정진하는 분은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 외호를 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가’ 이리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이렇게 해 간다면, 그 도량은 팔만사천 불보살(佛菩薩)과 선신(善神)이 항시 외호를 해서 아무 장애가 없을 것이고, 모두가 다 신심이 돈발(頓發)해서 자타(自他)가 일시(一時)에 성불(成佛)하시게 될 것입니다.(21분45초~40분13초)

 

 

 

 

 

(3/3)----------------

 

간절(懇切)한 마음은 무상(無常)한 마음을 느낀 데에서 간절한 마음이 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생각생각에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아니한다면 간절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몸뚱이가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10년도 살고 앞으로 20년 30년도 더 살리라’ 그렇게 뒷날 살날을 생각하기 때문에 무상을 느끼지를 못하고, 무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이 안 난 것입니다.

 

 

옛날에 그 누구냐, 아육왕(阿育王). 아쇼카(aśoka)왕이라고 하는, 부처님 때 그 수기(授記)를 받아 가지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는데 그 아육왕한테 동생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신심이 전혀 없어 가지고 그 형이 불법(佛法)을 그렇게 위하고 스님네를 그렇게 받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은근히 불평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니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스님네는 그 젊은 나이에 결혼도 아니하고, 우리는 마누라를 둘씩 셋씩 열씩을 가지고 살아도 그 부족한데, 스님네는 어떻게 해서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고서도 그렇게 독신으로 사는가 모르겠다. 아무래도 뒤에다가 다 처자가 있고, 이 기둥서방이 다 있어 가지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우리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 말은 은근히 스님네를 비방하는 뜻으로 그 형한테 그걸 물어본 것입니다.

 

아육왕이 그 말을 듣고 ‘저놈을 어떻게 해야 저놈을 갖다가 저런 괘씸하고 이 불량한 불사스러운 저런 마음을 고쳐 줄까?’ 가만히 며칠을 두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영의정을 불러다가 ‘내가 이러이러한 뜻이 있어서 내가 좀 내 동생한테 왕위를 물려줘야겠다. 그러니 내 뜻을 절대 복종을 해라’ 그렇게 영의정한테만 따악 짜고서, 하룻날은 만조백관을 다 모여 놓고 그래 가지고 그 동생도 참석을 시켜 가지고 중대한 선언을 했습니다.

“내가 나이 먹고 힘이 없어서 잠시 쉬어야겠으니 왕위를 동생한테 물려줘야겠다” 그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그 까닭을 모르는 만조백관들은 울며불며 통곡을 하면서 그러실 수가 없다고, 아직도 기력이 왕성하신데 왜 그러실 수가 있냐고 막 반대를 했지만, 영의정하고 딱! 짜놓은 이후로 그래서 해서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조건부(條件附)로 물려주었습니다.

 

무슨 조건이냐 하면 ‘7일 동안만 너에게 전륜성왕의 지위를 물려주겠다. 7일 동안에 너는 마음껏 먹고, 마음껏 궁녀들을 춤을 추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마음껏 하고, 이 궁녀 가운데 제일 아름다운 여성을 가지고 마음껏 즐겨라. 그 대신 7일 후에는 7일 지낸 뒤에는 너를 사형(死刑)을 하겠다. 그러니 그 7일 동안에는 온 천하는 네것이고, 이 온 궁중에 모든 궁녀며 재산이며 모든 것은 네것이니까 마음대로 해라’ 하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면류관(冕旒冠)을 갖다가 동생한테 씌워 주고 옥새도 다 인계를 하고, 다 했습니다.

 

그래 놓으니 참 좋기는 좋은데 7일 후에 죽을 일을 생각하니까.... (녹음 끊김) ....하고 그 예쁜 궁녀를 갖다가 옆에다 끌어안고 밤에는 자고, 저녁마다 미인을 갈아 들여서 잠을 자는데 아무 재미가 없어. 그 산해진미(山海珍味)로 음식을 차려놓고 먹어도 암 맛도 모르고, 술이 잔뜩 취하면 술김에나 잠시 잊을런가 해도 그래도 7일 뒤에 죽을 일을 생각하니까 아무 재미가 없다 그 말이여.

옆에다가 미인을 안고 자도 아무 재미가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재미가 없고 그럭저럭하다가, 그런데 하루 지나면 ‘이제 하루가 지났으니 엿새가 남았다’ 아육왕이 동생한테 딱! 엿새 남았다 하는 것을 일깨워 줘. 또 이틀이 지나면 ‘이제 이틀이 지나갔으니 앞으로 닷새 남았다’ ‘나흘 남았다’ ‘사흘 남았다’ 그러니 뭔 재미가 있느냐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7일 만에 인자 죽을 날이 닥쳐왔습니다.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불러서 앉히고 동생을 터억 갖다가 놓고는 “7일 동안에 어떻더냐? 음식이 맛이 있더냐?”

“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궁녀, 이 아름다운 미녀를 너한테 다 맡겨 주었는데 어찌 색심(色心)은 동(動)하드냐?”

“전혀 동하지 않았습니다”

 

“거 봐라. ‘죽을 사(死)’ 자를 이마에다 쓰고 무상한 마음이 머리끝까지 꽉 차 가지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무상한 마음,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데 어느 겨를에 색심이 동할 까닭이 있느냐? 더군다나 오계(五戒)를 받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예불 젓숩고 그리고서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사분정진을 하고, 그 청정한 도량에서 한 생각도 잡념할 겨를도 없는데 무슨 색심이 동할 까닭이 있느냐? 인자 잘 알겠느냐?”

“예, 잘 알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동생이 대발심을 해 가지고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무상을 철저히 깨달으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어디에 붙으며,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이 어디에 어리대겠습니까? 무상한 마음을 잊어버리면 거기에서 탐진치 삼독심도 일어나고, 오욕락도 일어나고, 문틈에 틈이 생기면은 거기에 햇빛이 들이비치듯이, 틈이 없다면 어느 곳에 잡념이 일어나며 해태심이 일어나느냐 그 말이여. 혼침인들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겠느냐.

간절한 마음 한 생각이 팔만사천 마구니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고, 일체 해태심도 일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황벽 선사(黃蘗禪師)가 납자(衲子)들을 위해서 읊으신 게송이 있습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塵勞),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진로를 멀리 해탈해 버리는 것이 실로 보통 일이 아니여. 범연한 일이 아니다 그 말이여.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히 확 승두(繩頭)를 잡어서, 화두를 잡어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뒤쳐서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요.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피는 매화라야 그 향취가 진동을 해서 코를 치는 법이여. 겨울에 이상 난동(異常暖冬)으로 날씨가 뜨뜻하고, 강추위를 하지 아니하고 날씨가 뜨뜻한 뒤에 매화꽃이 피면 그 매화에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에 이번 첫 철인 것처럼, 신참 구참을 막론하고 이번 첫 철 정진이라 이렇게 생각하고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정말 알차고 짬진 정진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백일기도에 신남신녀 여러분은 같이 스님네와 정진하는 뜻으로 백일기도에 모두 동참들을 하시고, 여기에 매일 출퇴근하시면서 정진하신 보살님도 계시겠습니다마는, 설사 가정에서 생활을 하시드라도 대중스님네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가정에서 생활하시면서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이 사시공양(巳時供養)은 옛날에 박고봉 대선사 시봉하시면서 정진하시던 상경 스님이라고 하는 분이 여러 대중스님네, 후배 되신 여러 대중스님네 이렇게 알뜰히 정진하시고, 그 상경 스님은 이 절 세등선원 원장스님 세등 스님과 복전암 주지 스님과 이 세 분이 참 한마음 한뜻으로 모다, 이 복전암 원주 스님이라든지 다 고봉 스님을 신(信)하고 또 조실스님 전강 스님을 참 친부모처럼 친아버지처럼 그렇게 신(信)하고 하시던 그러한 도반이십니다.

그래서 그 도반이신 세등 스님이 이렇게 세등선원을 짓고, 이렇게 팔도에 좋은 선객 스님네들이 와서 정진하시는 것을 알고서 주머니돈을 털어 가지고 오늘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시러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뵈옵게 되었습니다. 공양을 잘 잡숫고 모다 환희심으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비구니 법춘 스님이라고—풍어 스님이라고 하는 만공 스님 제자 풍어 스님의 동생이신데, 그 언니도 스님으로 있다가 작고하신 지 얼마 안 되고—이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불교대학 대정대학 대학원에서 또 불교학을 전공하고 그래 가지고 천안에 대불(大佛)이라고 여러분 가 보셔서 아시겠지만, 큰 부처님을 일본 교포한테 화주(化主)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원력을 세워서 천안 대불을 그렇게 세웠습니다.

 

그리고서 1978년도 지금부터 6년 전에 미국에 들어가서 미국 시카고, 세계에 두 번째 큰 도시죠. 그 시카고에 불심사(佛心寺)란 절을 짓고 미국에 그 교포들에게 불교 포교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거기 나이아가라 폭포 하류 미시시피강 호숫가에다가 약 5~6만평 땅을 잡어 놓고 그것을 사서 거기다가 한국 문화원을 지어 가지고 불교도 포교하고, 한국에 문화 예술과 역사와 전통 모든 것을 다 미국 시민들에게 모두 다 널리 선양을 하고, 또 미국에 교포들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교육이라든지 여러 가지 그 다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4억 내지 5억의, 한국 돈으로 5억원 정도에 예산을 가지고 문화원을 건립을 할려고 대원력을 세웠습니다.

 

이 한국에서 시간 시간이 익힌 서예와 사군자, 본인이 직접 그리기도 하고 또 한국에 불교 이 참선법을 선양하신 경허 선사에 제자이신 만공(滿空) 선사께서 친히 쓰신 글씨와 청담 선사 그밖에 또 송광사 구산 방장 큰스님 글씨, 모다 그런 큰스님네의 글씨라든지 그런 것도 있고 또 도자기 모다 그런 것도 해서, 지금 시내 은행동 라이카 예식장 앞에 여인 미술관이라 하는 데에서 지금 전시회를 그저께부터서 앞으로 이틀 뒤까지 전시회를 갖는다 그럽니다.

 

내가 법상에 올라와서 이런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젊은 나이로 미국에 가서 한국 불교를 선양을 해서 널리 불교도 선양할 뿐만 아니라 한국도 널리 선양을 해서 불교와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이 하도 기특하고 갸륵해서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 주변에 있는 사찰에서 오신 스님네들도 뜻이 있는 신도들을 인솔을 해서 그 전시회 관람도 하고, 그 도자기라든지 모다 작품 혹 그 만오천 원, 이만 원으로부터서 몇백만 원, 천만 원까지 나가는 작품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불사(佛事)에 수희(隨喜) 찬탄(讚歎)하는 뜻으로 가서 구경만 하셔도 좋고, 기왕이면 힘껏 조그만한 작품 하나라도 사시고, 형편이 되신 분은 좀 거기에 시주한 셈치고 협력을 하시면 이것이 다 자리이타(自利利他), 나도 좋고 미국에 불법을 펴서 미국 사람들이 이 불법을 믿게 된다면은 내 이 조그만한 정성이 큰 불사를 이룩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신남신녀 여러분 널리 널리 이 불사에 동참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한 움큼 버드나무 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여.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매어 두노라.(40분15초~61분4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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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안광삭파삼천계(眼光爍破三千界)~’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제15,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삼천계(三千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 • 중천 • 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쇄락(灑落 물뿌릴 쇄/떨어질 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영욕(榮辱 영화 영/욕될 욕)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과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득실(得失 얻을 득/잃을 실)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삼천년 전에 우리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佛].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 · 능유(能儒)라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칠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032-872-6061~4)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 · 멸도(滅度) · 적멸(寂滅) · 적정(寂靜) · 적(寂) · 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 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사(生死)가 없는 도리’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〇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범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무상(無上) ; ①해탈. ②부처님의 지혜. ③이 이상인 것이 없는 최고의 지고(至高). 최고.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정진(精進) : [범어(산스크리트어)]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수마(睡魔) ; 수행을 방해라는 ‘졸음 · 잠(睡)’을 마구니[魔]에 비유한 말.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 · 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에서.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이어다. 曠劫障道(광겁장도)는 睡魔莫大(수마막대)니 二六時中(이육시중)에 惺惺起疑而不昧(성성기의이불매)하며, 四威儀內(사위의내)에 密密廻光而自看(밀밀회광이자간)하라.

 

삼경(三更 : 저녁 9시에서 새벽 3시)이 아니면 잠자지 말라. 끝없는 오랜 세월 두고 수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 : 잠 ・ 수면)보다 더한 것이 없다. 12시간(현재의 24시간) 어느 때나 또렷이 깨어서[惺惺] 의심을 일으켜 흐려지지 말며,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다니거나 항상 자세히 빛을 돌이켜 스스로 마음을 살펴보라.

 

一生(일생)을 空過(공과)하면 萬劫(만겁)에 追恨(추한)이니 無常(무상)은 刹那(찰나)라 乃日日而驚怖(내일일이경포)요, 人命(인명)은 須臾(수유)라 實時時而不保(실시시이불보)니라. 若未透祖關(약미투조관)인댄 如何安睡眠(여하안수면)이리요.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만겁에 한이 될 것이다. 무상(無常)은 찰나와 같으니 날마다 놀라 두려워할 것이며, 사람의 목숨은 잠깐[須臾]이니 실로 늘 보존되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조사관(祖師關 : 화두)을 뚫지 못하였다면 어찌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겠는가?

 

頌曰(송왈) 睡蛇雲籠心月暗(수사운롱심월암)하니 行人到此盡迷程(행인도차진미정)이로다 箇中拈起吹毛利(개중염기취모리)하면 雲自無形月自明(운자무형월자명)하리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독사 같은 졸음[睡蛇]의 구름 끼어 마음의 달[心月]을 어둡게 하니, 도 닦는 이 여기 와서 길을 몰라 헤맨다. 이 가운데 취모리(吹毛利) 빼어 들면 구름 저절로 없어지고 달이 스스로 밝으리라.

*도량석(道場釋) ; 목탁석(木鐸釋). 절에서, 아침 예불 하기 전에 천지 만물을 깨우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는 뜻으로 목탁을 치면서 주위를 도는 의식. 주로 천수경을 소리 내어 외우거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등을 부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禮拜)하는 의식.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탄산가스(炭酸gas) ;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가스. 대기 중에 소량 존재하는 무색, 무취의 기체로 공기보다 약 1.5배 무겁다. 탄소를포함하고 있는 물질이 탈 때나 동물이 호흡할 때 생기며 식물의 광합성에 사용된다.

*포행(布行 펴다·흩어지다 포/다니다·가다·길 행)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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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상을 공부의 장으로 받아들였던 조사선(祖師禪)의 가풍에서 나온 말로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짝이 되어 많이 쓰인다.

*행주좌와(行住坐臥 다닐 행/머물·살 주/앉을 좌/누울 와) ;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일상(日常)의 움직임을 통틀어 이르는 말.

*어묵동정(語默動靜 말할 어/잠잠할·묵묵할 묵/움직일 동/고요할·쉴 정) ; 말하고, 묵묵(默默)하고, 움직이고, 쉬고 하는 일상적인 언동(言動)의 일체를 가리킨다.

*‘한 생각 단속’ ; 일념단속(一念團束).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뽑아 논 당상(堂上)’ ; ①어원 뜻은 임금이 특정 사람을 위해 ‘당상(堂上)’에 해당하는 벼슬자리를 따로 뽑아 놓았다. ②이 속담은 어떤 일이 확실하여 틀림없이 계획된 대로 진행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떼어 놓은 당상’, ‘따 놓은 당상’ 모두 같은 뜻의 표현이다.

*당상(堂上) ; 조선 시대, 정삼품(正三品) 상(上) 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문관(文官)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무관(武官)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종친(宗親)은 명선대부(明善大夫), 의빈(儀賓)은 봉순대부(奉順大夫)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순일하다(純一하다 순수할 순/하나 일) ; 다른 것과의 섞임이 없이 순수하다.

*수좌(首座 머리·우두머리·첫째·으뜸 수/자리·지위 좌)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坐禪)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53~54 (가로판 p53~55)

(13)凡本參公案上(범본참공안상)에  切心做工夫(절심주공부)하되  如鷄抱卵(여계포란)하며  如猫捕鼠(여묘포서)하며 如飢思食(여기사식)하며  如渴思水(여갈사수)하며  如兒憶母(여아억모)하면  必有透徹之期(필유투철지기)하리라.

 

무릇 본참공안에 대하여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공부하되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며,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아기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으리라.

 

(註解) 祖師公案(조사공안)이  有一千七百則(유일천칠백칙)하니  如狗子無佛性(여구자무불성)과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와  麻三斤(마삼근)과 亁屎橛之類也(간시궐지유야)라  鷄之抱卵(계지포란)은  暖氣相續也(난기상속야)요  猫之捕鼠(묘지포서)는  心眼(심안)이  不動也(부동야)요 至於飢思食渴思水兒憶母(지어기사식갈사수아억모)가  皆出於眞心(개출어진심)이요  非做作底心故(비주작지심고)로  云(운), 切也(절야)니 參禪(참선)에  無此切心(무차절심)하고  能透徹者(능투철자)가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조사들의 공안이 천칠백 가지나 있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라든지, 「뜰 앞에 잣나무」라든지 「삼서근」 「마른 똥막대기」 같은 것들이다. 닭이 알을 품을 때에는 더운 기운이 늘 지속되고 있으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주릴 때에 밥 생각하는 것 목마를 때에 물 생각하는 것 어린애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모두 진심(眞心)에서 우러난 것이요,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懇切)하다’고 하는 것이니, 참선하는 데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없이 깨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고 ❷]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9~162, 186~187 (가로판 p153~155, 177~178)

〇做工夫(주공부)호대  最要緊(최요긴)이  是個切字(시개절자)이니  切字(절자)가  最有力(최유력)하니라. 不切則懈怠生(부절즉해태생)하고  懈怠生則放逸縱意(해태생즉방일종의)가  靡所不至(미소부지)하리라. 若用心(약용심)이  眞切(진절)하면  放逸懈怠(방일해태)가  何繇得生(하유득생)이리요  當知(당지)하라 切之一字(절지일자)는  不愁不到古人田地(불수부도고인전지)하며  不愁生死不破(불수생사불파)이니라.

 

공부를 짓되 가장 요긴한 것은, 이 간절 절(切)자이니 절자(切字)가 가장 힘이 있느니라. 간절치 않으면 해태심이 생기고 해태심이 생기면 방종함이 이르지 아니함이 없으리라. 만약 마음씀이 참으로 간절하면 방일 해태가 무엇을 말미암아 나리요? 마땅히 알라. 절(切)자 한 자는 고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없으며, 생사를 깨뜨리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없느니라.

 

切之一字(절지일자)는  當下(당하)에  超善惡無記三性(초선악무기삼성)하나니  用心(용심)이  甚切則不思善(심절즉불사선)하며  用心(용심)이  甚切則不思惡(심절즉불사악)하며  用心(용심)이  甚切則不落無記(심절즉불락무기)하나니  話頭切(화두절)이면  無掉擧(무도거)하고  話頭切(화두절)이면  無昏沈(무혼침)이니라.

 

간절 절(切)자 한 자는 당장에 선과 악과 무기(無記) 세 가지 성품을 뛰어넘나니, 마음씀이 매우 간절한즉 선(善)을 생각지 않을 것이요, 마음씀이 매우 간절한즉 악(惡)을 생각지 않을 것이며, 마음씀이 매우 간절한즉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나니, 화두가 간절하면 산란심도 없고 화두가 간절하면 혼침도 없나니라.

 

切之一字(절지일자)는  是最親切句(최친절구)이니  用心(용심)이  親切則無間隙故(친절즉무간극고)로  魔不能入(마불능입)하고 用心(용심)이  親切(친절)하야  不生計度有無等(불생계탁유무등)하면  則不落外道(즉불락외도)하리라.

 

간절 절(切)자 한 자는 이 가장 친절한 말이니, 마음씀이 간절한 즉 틈이 없으므로 마(魔)가 침노하지 못하고 마음씀이 간절하야 「있다, 없다」하는 등 계교하고 헤아림이 나지 아니하면 외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〇做工夫(주공부)호대  疑情(의정)을  發得起(발득기)어든  更要撲得破(갱요박득파)니  若撲不破時(약박불파시)에는  當確實正念(당확실정념)호대  發大勇猛(발대용맹)하야  切中(절중)에  更加個切字(갱가개절자)하야사  始得(시득)다.

 

공부를 짓되, 의정이 일어났거든 다시 그 의정을 깨뜨려야 하나니, 만약 깨뜨리지 못한 때에는 마땅히 바른 생각을 확실하게 하되 큰 용맹심을 발하야 간절한 가운데 더한층 간절을 더해야사 옳다.

 

徑山(경산)이  云(운)  大丈夫漢(대장부한)이  決欲究竟此一段大事因緣(결욕구경차일단대사인연)인댄  一等打破面皮(일등타파면피)하야  性燥(성조)히  竪起脊梁骨(수기척량골)하야  莫順人情(막순인정)하고  把自己平昔所疑處(파자기평석소의처)하야  貼在額頭上(첩재액두상)호대  常時(상시)에  一似欠人(일사흠인)이  萬百貫錢(만백관전)하야  被人追索(피인추색)호대  無物可償(무물가상)하야  怕被人恥辱(파피인치욕)하야  無急得急(무급득급)하며 無忙得忙(무망득망)하며  無大得大底一件事(무대득대지일건사)라사  方有趣向分(방유취향분)이라 하니라.

 

경산(徑山)스님이 말씀하시되 「대장부가 결단코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궁구하고저 할진대, 첫째로 체면을 차리지 말고 성급히 척추뼈를 똑바로 세워 인정에 따르지 말고, 평소에 자기가 의심해 오던 것을 잡아 이마 위에 붙여 놓고 항상 남의 돈 백만 관을 빚진 사람이 빚장이에게 추심을 받되 갚을 물건이 없어 남에게 수치와 욕을 입을까 두려워하야,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없으며, 이보다 더 바쁜 일이 없으며, 이보다 더 큰일이 없는 것같이 하여야사 비로소 공부를 해나갈 분이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〇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2m의 큰 죽비.

*불원천리(不遠千里)하다 ; 천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백골관(白骨觀) ; 시신(屍身)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없어져 백골(白骨)만 남아 있거나, 흩어져 있는 모습을 관(觀)하여 몸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인생무상을 깨닫는 관법(觀法). 고골관(枯骨觀)이라고도 한다. 구상(九想)의 하나.

[참고] 구상(九想) ; 구상(九相)이라고도 한다. 탐욕을 제거하고, 혹업(惑業 무명번뇌와 업)을 멀리하기 위해 사람의 시신(屍身)에 대해 수행하는 9종류의 관상(觀相 깊이 생각에 집중하는 것).

부정관(不淨觀)의 9단계를 말한다.

①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상하는 창상(脹想).

②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쪼여 시신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하는 청어상(青瘀想).

③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관하는 괴상(壞想).

④부패를 끝내고 혈육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관하는 혈도상(血塗想).

⑤시체에서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살이 흩어져 낭자한 모습을 관하는 농란상(膿爛想).

⑥새나 짐승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관찰하는 담상(噉想).

⑦새나 짐승에게 먹혀 근골두수(筋骨頭手)가 분열, 파산되는 것을 관하는 산상(散想).

⑧육신이 이미 다해 백골만 남게 되는 것을 관하는 골상(骨想).

⑨백골이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것을 관하는 소상(燒想).

*연전(年前) ; 여러 해 전.

*도살장(屠殺場 잡을·가축을 잡거나 사람을 죽임·가를·칼로 베어 끊음 도/죽일·벨 살/마당·곳 장) ; 고기를 얻기 위해 소나 돼지 따위의 가축을 도살(짐승을 잡아 죽임)하는 곳.

*종정(宗正 마루·우두머리 종/바를·우두머리 정) ; ①불교 각 종단에서 정신적인 지도자로 받들어 모시는 스님. ②한 문중의 가장 높은 어른.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고]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65. 4권.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波斯匿王於閑靜處 作是思惟 佛所敎法 極有義利 能得現報 無有熱惱 不待時節 能將於人到于善處 語諸人言 汝等來 善示汝妙法 夫爲智者 自身取證 深得解達 須善友 須善同伴 恒應親友如是善友 不向惡友幷惡知識 遠離惡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바사닉왕이 조용한 곳[靜處]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은 지극한 뜻[義]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고, 심한 번뇌를 없애고, 때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서 좋은 곳에 이르게 하시며, 여러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오너라. 너희들에게 미묘한 법을 보여 주겠다고 하시니, 슬기로운 이는 몸소 증득해서 깊이 이해하고 통달한다. 그리고 착한 벗[善友]과 착한 동반자[善同伴]를 구해서 그와 같은 착한 벗[善友]을 항상 친근케 하며, 악한 벗[惡友]과 악한 지식[惡知識]에게 향하지 않게 하고 나쁜 도반[惡伴]을 멀리하게 하시는구나'

 

思惟是已 從坐處起 往詣佛所 在一面坐 白佛言 世尊 我於閑處 作是思惟 佛所敎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無諸熱惱 不待時節 乃至不與惡友交遊 佛告王曰 實爾 實爾 佛所敎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乃至不與惡伴交遊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조용한 곳[閑處]에서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며, 심한 번뇌를 없애고, 때[時節]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나아가 나쁜 벗[惡友]과 사귀지 못하게 하신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실로 그렇고 그렇소이다. 부처가 가르치는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하며, 나아가 나쁜 벗[惡伴]과 사귀지 못하게 하오"

 

我於往時 在王舍城耆梨跋提林 爾時 阿難比丘獨在靜處 作是思惟 善知識者 梵行半體 阿難起已 來至我所 頂禮我已 而作是言 善知識者 梵行半體 非惡知識 惡伴 惡友

 

내가 옛날 왕사성 기리발제(耆梨跋提) 숲 속에 있었을 때, 아난(阿難) 비구가 혼자 고요한 곳[靜處]에 있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소. '선지식(善知識)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절반의 힘은 되겠다(善知識者 梵行半體)'

그러고 나서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처소로 와서 나에게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소. '선지식(善知識)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절반의 힘은 되오니 그는 나쁜 지식[惡知識], 나쁜 도반[惡伴], 나쁜 벗[惡友]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我告阿難 止 止 莫作是語 所以者何 夫善知識 善友 善伴 乃是梵行全體 又善友伴者 不與惡知識 惡友 惡伴而爲徒黨 何以故 我以善知識故 脫於生死 是故當知 善知識者 梵行全體 如是之事 應分別知 佛所說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乃至不與惡友惡伴惡知識等而爲伴黨

 

나는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소.

"그만 그만,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지식(善知識)과 착한 벗[善友], 착한 도반[善伴]은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전체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 착한 벗과 착한 도반은 나쁜 지식[惡知識]과 나쁜 벗[惡友] 나쁜 도반[惡伴]과 무리를 짓지 않으니 왜냐 하면 나 역시 선지식(善知識) 때문에 생사를 해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전체적인 힘이 된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하며 그러한 일을 잘 분별해서 알아야 한다. 부처가 말한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나쁜 벗[惡友]과 나쁜 도반[惡伴] 나쁜 지식[惡知識]들과 무리를 짓지 않게 하오"

 

爾時 世尊卽說偈言 於諸善法中 不放逸最勝 若當放逸者 賢聖所譏嫌 若不放逸者 獲於天帝位 於諸天中勝 於作無作中 不放逸最勝 若不放逸者 坐禪盡諸漏 逮得於勝果 佛說是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착한 법[善法] 중에서 '방일하지 않는 것[不放逸]이 으뜸이니 만약 방일한 짓을 하면 성현들이 싫어하시네. 만일 방일한 짓 아니하면 천제(天帝)의 지위를 얻으며 모든 천(天) 중에서도 뛰어나리라. 짓고 짓지 않는 일 중에서 방일하지 않음[不放逸]이 가장 훌륭하나니, 만약 방일하지 않는 자라면 좌선할 때 모든 번뇌 없애서 수승한 과위를 얻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발보리심(發菩提心) ; 줄여서 발심(發心)이라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송담정은(松潭正隱) ; 스님은 1927년 8월 24일(음)에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리에서 박일규(朴日圭)를 부친(父親)으로, 이(李) 금강심을 모친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박종삼(朴鍾參).

서당에서 한학(漢學)을 배우고,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1945년 광주서중 졸업식날 이발소에서 삭발하고 출가를 결행하여, 이 해에 광주 무등산 자운선원(紫雲禪院)에서 전강선사를 은사로 수계하였다. 법명은 정은(正隱).

 

이후 수년간 전강선사와 함께 광주 계림동 경양방죽가에서 낮엔 하꼬방 장사를 하고 밤에는 묵언정진하였다. 1957년 31세 때에 담양 보광사에서 10년 묵언을 하며 정진 끝에 대오(大悟)를 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전강선사께서 날카로운 고금의 공안으로써 탁마를 하고 나서 흔연히 인가를 하시니, 경허 · 만공 · 전강으로 이어지는 불조의 제78대 법맥을 이었다.

전강선사께서 도봉산 망월사 조실로 있던 1961년에 정식으로 스님에게 송담(松潭)이라는 법호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이를 대중에게 공표하니 전법게는 이러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스님은 이후 오랜 동안 탄광 · 어촌 등으로 몸을 숨기고, 전국의 여러 기차역과 버스정류장의 화장실과 그 주변청소를 하기도 했으며, 서산 방조제를 막는 데 일꾼으로 일하기도 하면서, 그 가운데 투철히 보임수행(保任修行)을 했으니 이른바 ‘성스런 태를 오래오래 기른다[장양성태長養聖胎]’라 함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후 1970년에 수원 용주사 주지를 역임하였고,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에 전강선사께서 열반에 드시니 뒤를 이어 용화선원에서 현재까지 활구참선법을 널리 펴고 있다.

 

언젠가 누가 “왜 스님이 되셨습니까?” 하고 질문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 세상 모든 것은 무상하다. 사람들은 평생토록 잘 살기 위해 고생고생하지만 끝내는 환상과 꿈을 간직한 채 죽어가니, 결국엔 나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하는 고뇌 때문에 출가했다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하는 물음에 담담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배고플 때는 밥 먹고, 피곤할 때는 잠자고, 손님들이 올 때는 같이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손님들이 떠나면 조용히 시간을 보냅니다. 그냥 그대로...”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 · 구(口) · 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봉양(奉養) ; 받들어 모시고 섬기다.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부처님의 미간백호(眉間白毫)’ ; 백호상(白毫相).

*백호상(白毫相) ; 부처님의 32상(相) 중 하나. 부처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 오른쪽으로 말려 있고 여기에서 광명을 발한다고 한다.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 백모상(白毛相)이라고도 하며, 부처님 뿐만 아니라 보살상에도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의 길상(吉相) 중에서 가장 공덕이 크며, 어떠한 상(相)의 공덕도 이 백호상이 지닌 공덕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정명(定命 정할 정/목숨·수명壽命 명) ; ①날 때부터 정(定)하여진 운명(運命). ②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정(定)하여진 목숨. 증겁(增劫)과 감겁(減劫)에 의하여 수명에 차이가 있는데, 나이가 팔만 살부터 100년마다 한 살씩 줄어 열 살 까지 줄었다가[減劫], 다시 100년마다 한 살 씩 늘어 팔만 살까지 이른다[增劫]고 한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 신[天神]들의 제왕[帝]인 샤크라〔釋〕라는 뜻.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는 성(姓)씨이며 ‘능(能)이라 한역하고, ‘제바’는 ‘천(天)’이라 한역하며, ‘인달라’는 ‘제(帝)’라 한역하니 곧 ‘능천제(能天帝)’라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그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신(神)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에 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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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왕 동생 ; 아쇼카(aśoka)왕 동생.

[참고 ❶] 『아육왕경(阿育王經)』 제3권. 3. 보리수에 공양한 인연품[供養菩提樹因緣品] < 1) 비다수가(毘多輸柯 : 아육왕의 아우)의 인연(양梁 부남扶南 승가바라僧伽婆羅 한역漢譯 | 김영률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에서 요약 정리.

『아육왕전(阿育王傳)』 제2권. 3. 아서가왕제본연(阿恕伽王弟本緣)(서진西晉 안식삼장安息三藏 안법흠安法欽 한역漢譯 | 박용길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〇아육왕이 어느 날에 사냥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육왕의 아우 비다수가(毘多輸柯)가 그 산중에 한 선인(仙人)이 오열(五熱)로 몸을 달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고행하는 과정에서 참다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라 여기고 그곳으로 가서 그의 발에 예배드리고 말했다. “대덕께서는 이곳에 얼마나 머물렀습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12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또 물었다. “당신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누워 잡니까?”

대답했다. “항상 나무의 열매나 뿌리를 먹고, 띠풀을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고, 풀을 땅에 깔아놓고 눕습니다”

 

또 물었다. “당신은 어떤 일로 인해서 번뇌가 일어납니까?”

대답했다. “사슴이 성욕(性欲)을 행하는 것을 보면 나도 욕망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 욕심의 불길이 나의 마음속에서 타오릅니다”

이때 아육왕의 아우는 마음에 곧 의심이 생겼다. ‘이와 같이 고행을 하는 데도 오히려 욕심이 일어나는데, 부처님의 제자는 소락(酥酪)과 유미(乳味)를 먹고 갖가지 옷을 입으면서 낙행(樂行)을 닦으니 어찌 색욕(色欲)을 보고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미 욕심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그 욕심을 싫어하여 여읠 생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아육왕의 아우는 또 다시 말했다. “석가모니의 제자는 아육왕을 속여서 공덕을 짓게 했습니다”

 

이때 아육왕은 이 말을 듣고는 즉시 대신(大臣)에게 말했다. “나의 아우가 외도에게  믿음을 내고 있으니, 마땅히 방편을 써서 그가 불법에 들어가도록 해야겠다”

그러자 대신이 아육왕에게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제가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왕이 대신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목욕하러 저 욕실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천관(天冠)과 의복 등을 다 벗어 놓을 것이다. 너는 나의 옷과 장식품을 가져다 나의 아우를 장엄하여 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여라”

신하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뒤이어 아육왕이 장엄구(莊嚴具)를 다 벗어 놓고 욕실에 들어갔다. 이때 대신이 아육왕의 아우에게 말했다. “만약 아육왕이 계시지 않는다면 당신께서 마땅히 왕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시험삼아 천관을 쓰고 천의(天衣)를 입고 왕의 자리에도 한 번 올라보십시오”

대신은 이렇게 말을 하고는 바로 천관과 천의를 주면서 입게 하고, 왕의 자리에도 오르게 하였다. 그리고 대신은 아육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 시키신 대로 신이 모두 마쳤습니다”

 

그러자 아육왕이 나와서 그 아우가 천관을 쓰고 왕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내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너는 이미 왕이 되었구나” 아육왕은 화를 내며 즉시 그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몸에 푸른 옷을 걸치고 흐트러진 머리칼에 방울을 잡은 사람이 도착하여, 왕에게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이제 무엇을 하고자 하십니까?”

왕이 말했다. “나는 이 아우를 버리고자 하니 너는 그를 죽이도록 하라” 왕의 말이 끝나자 곧 많은 사람들이 여러 무기를 쥐고서 그를 에워쌌다.

이때 대신이 아육왕의 발에 예를 올리고 왕에게 말했다. “이 분은 왕의 아우입니다. 원컨대 왕께서 참으시어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마시옵소서”

 

이때 아육왕은 대신에게 말했다. “나는 마땅히 7일 동안 참겠다. 나의 아우에게 7일 동안 잠시 나라를 내주어 그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겠다. 그에게 가지가지 기악(伎樂)과 채녀(婇女)를 그에게 공급할 것이다.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그에게 가서 문안하도록 하라”

 

살인(殺人)을 집행하는 사람은 칼을 잡고 문 앞에 서서 날마다 왕에게 아뢰었다. “이제 하루가 지났으니 6일이 남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6일이 이미 지나고 남은 날은 겨우 하루가 되었다. 제7일째가 되자 왕의 장엄구와 천관과 의복이 아육왕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대신과 모든 사람들은 비다수가를 데리고 함께 아육왕을 찾아왔다.

이때 왕이 물었다. “너는 7일 동안 왕이 되어 갖가지 기악(伎樂)과 좋은 것을 듣고 보았느냐?”

아우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만약 사람이 색(色)을 보고, 소리를 듣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그렇다면 왕에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왕이 다시 말했. “나는 너에게 나라를 주어 7일간 왕이 되게 하였다. 백 가지 기악을 다 너의 마음대로 하게 했으며 무수한 사람들이 날마다 방문하여 너에게 주원(呪願)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 것도 듣지 못했으며 맛있는 것을 먹지도 못했다고 말하는가”

다시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7일 동안 보지도 소리를 듣지도 못했으며 냄새도 맛도 몰랐으며 또한 모든 감각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의 몸에 장엄구를 갖추고 여러 채녀들과 함께 했으나 죽음을 생각하니 두려움뿐이므로 이런 일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녀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나 궁전이나 침상도 대지의 온갖 진귀한 보배도 아예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살인을 집행하는 자가 칼을 잡고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또 요령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죽음의 말뚝을 심장에 박았으니 아름다운 5욕락(欲樂)도 알 수 없었고 이미 죽음을 두려워하는 병에 걸렸기에 편안하게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죽음이 장차 닥칠 것을 생각하니 밤이 이미 지난 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때 아육왕은 아우에게 말했다. “비다수가여, 너는 이 (7일 동안) 살아 있는 중에 죽음의 고통을 생각하느라, 비록 훌륭한 5욕락을 얻었어도 좋아하며 가질 수가 없었다. 하물며 출가한 비구는 12처(十二處 :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에서 한량없는 생사(生死)와 무상(無常)을 생각하고 있으니 어떻게 번뇌를 일으키겠는가? 또 지옥의 고통과 모든 축생(畜生)들이 서로 해치고 죽이는 것과 아귀(餓鬼)들이 배고픔과 갈증과 같은 온갖 고통에 핍박받는 것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사방으로 달음박질치면서 애초부터 안락함이라고는 없었던 것을 생각하며, 천상(天上)의 즐거움이 허물어질 때의 괴로움을 생각한다. 이와 같은 5도(五道 :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에서는 몸과 마음이 괴로울 뿐, 즐거운 곳이라고는 없다. 이렇게 5음(五陰)이 무상(無常)하여 괴롭고 공(空)하며, 무아(無我)하여 실체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나니, 마치 텅 빈 촌락에 거주하는 백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이 한다. 이처럼 ‘5음은 공하여 무아하다’, 무상의 불길이 세상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는 항상 이렇게 관찰하는데 어떻게 번뇌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너는 하루 중에 생사의 두려움만 생각하느라 기쁨과 즐거움이라곤 없었고 탐애심(貪愛心)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날마다 나고 죽음을 관찰하는데 어찌 기쁨과 즐거움이 일어날 것이며 번뇌의 마음이 일어나겠는가. 음식과 의복과 침구 등과 같은 물건에서도 해탈의 법을 생각하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몸을 보기를 원수의 집같이 하고, 3유(三有 : 三界, 욕계·색계·무색계)를 불타는 집[火宅]과 같이 여겨 무슨 방편으로 거기에서 해탈할까만 생각한다. 깊이 해탈의 법을 즐기고 5욕의 즐거움에 탐착하지 않으니 그 마음은 연꽃과 같아 물속에 있어도 물이 묻지 않는다네>

 

이처럼 아육왕은 훌륭한 방편과 불법으로써 비다수가를 교화하였다.

그러자 비다수가는 합장하고 왕을 보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는 지금 여래와 법과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했다. <저는 지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얼굴은 연꽃과 같으시어 하늘과 사람의 귀의처이오니 무루(無漏)의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참고 ❷] 『법원주림(法苑珠林)』 제84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西明寺沙門 釋道世 撰 | 송성수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85. 육도편⑤(六度篇第八十五之五) < 5) 선정부[여기에는 5부가 있다](禪定部第五 此別五部) < (2) 인증부(引證部).

 

〇또 『구리뢰옥경(求離牢獄經)』에서 말하였다.

당시 아육왕(阿育王)의 아우가 있었는데 이름은 선용(善容)[위타수기(違陀首祇)라고도 한다]이라 했다.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다가 모든 범지(梵志)들이 벌거숭이 몸으로 고행을 하는데도 얻은 바가 없음을 보고서 왕의 아우는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여기에서 도를 행하고 있는데, 무슨 근심[患]과 허물[累]이 있기에 성취가 없습니까?”

범지(梵志)들이 대답하였다. “앉아 있으면 사슴 떼들이 와서 자주 교미(交尾)를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들은 마음이 동하여서 자제할 수가 없습니다”

왕자는 이 말을 듣자 즉시 나쁜 생각을 일으켰다. ‘이들 범지는 바람을 먹고 공기를 마시느라 기력이 쇠약한데도 오히려 음욕(婬欲)의 허물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구나. 석자(釋子) 사문(沙門)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평상에 앉아 있고 의복은 철을 따라 입고 게다가 향기로운 꽃이 저절로 훈습하거늘 어찌 음욕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때 아육왕은 아우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을 듣고 몹시 근심하면서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아우 하나가 있을 뿐이다. 갑자기 삿된 소견을 일으켰으니 영영 미혹에 빠질까 두렵구나. 나는 방편을 써서 그의 나쁜 생각을 없애야겠다’

그리고는 곧 궁중으로 돌아가 궁녀들을 저마다 잘 꾸미게 한 뒤에 선용에게로 가서 함께 서로 재미있게 즐기게 하고는 대신(大臣)의 우두머리에게 명하였다.

“나에게 생각한 바가 있으니, 만일 내가 경(卿)에게 <선용을 죽이라>고 하면 경 등은 즉시 <7일 동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면 왕의 말씀대로 죽이겠습니다>고 말하십시오”

 

그래서 모든 궁녀들은 즉시 가서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은 몸소 가서 아우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의 궁녀와 처첩을 데려다가 네 멋대로 즐기고 있느냐”

그리고는 몹시 성을 내면서 윤(輪)을 공중에 던지고는 여러 대신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고하였다. “경들은 알고 계시오. 나는 아직 쇠하거나 늙지 않았소. 또한 바깥의 도둑이나 강한 적이 우리 국경을 침입한 일도 없소. 나는 일찍이 옛날의 어진 이들이 말한 속담에 <대저, 사람이 복이 있으면 사해(四海)가 귀순하여 오고, 복이 다하고 덕이 박해지면 좌우가 배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 나 스스로 살피건대 아직 이런 변은 없는 것 같지만, 그런데도 나의 아우 선용은 나의 궁녀와 처첩을 유혹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소.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나의 면목이 서겠소? 그대들은 데리고 가서 저자에 나아가 죽여버리시오”

그러자, 신하들이 간하였다. “대왕이여, 신(臣)들이 하는 말을 들어 주소서. 아우라고는 이 한 분만이 있을 뿐입니다. 또 아드님이 아직 어려서 계승할 이도 없습니다. 원컨대, 7일 동안 왕으로 삼으신 뒤에 왕명에 의거하라고 요구하십시오” 그러자 왕은 잠자코 있으면서 신들의 간한 바를 허락하였다.

 

왕은 다시 너그러운 은혜로 신하들에게 칙어(勅語)를 내려 왕자에게 허락할 것을 명하였다. ‘나의 복식(服飾)을 입히고 천관(天冠)과 위용(威容)을 나와 다름이 없게 한 뒤에 나의 궁전 안에 들어가 풍악을 잡히면서 함께 재미있게 즐기게 하시오’

그리고는 다시 한 신하에게 말하였다. “오늘부터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채 날카로운 칼을 뽑아 들고 선용 왕자에게로 가서 기한이 7일 동안이라고 알리시오”

그리하여 그 신하는 그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능력껏 마음을 터놓고 다섯 감관의 쾌락을 즐기십시오. 이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시면 죽은 뒤에는 후회하실 것이며 아무리 원망해도 쓸 데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에 그 신하는 다시 가서 말하였다. “6일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가서 말하였으며, 마지막 하루가 남자 신하는 가서 말하였다. “왕자여, 아셔야 합니다. 6일이 벌써 다 지났으니, 내일 하루만 있으면 죽으셔야 할 터이니, 마음껏 5욕을 즐기십시오”

 

마침내 7일이 다되자 왕은 신하를 시켜서 묻게 하였다. “어떠한가? 왕자는 7일 동안 마음껏 자유로이 쾌락을 누렸느냐?”

아우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아셔야 하십니다. 보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았거늘 무슨 쾌락이 있겠나이까?”

 

왕이 아우에게 물었다. “나의 복식을 입고 나의 궁전에 들어가 궁녀들과 즐겼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거늘 어찌하여 눈앞에서 보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았으며 쾌락을 누리지 않았다고 속이느냐?”

아우가 왕에게 아뢰었다. “죽어야 할 사람이라서 비록 아직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어도 죽은 것과 다름이 없사온데, 무슨 뜻이 있어서 5욕에 집착했겠나이까?”

왕은 아우에게 말하였다. “어허, 어리석음을 깨우친 게로구나. 너는 지금 하나의 몸을 백 가지로 근심하고, 한 몸이 없어진다고 해서 5욕이 있는데도 즐기지 않았다. 어찌 사문이 3세(世)를 근심하면서 하나의 몸이 죽어 없어지면 다시 하나의 몸을 받아서 억백천의 세상 동안 몸과 몸으로 고통을 받고 한량없이 괴로워하는 것과 비길 수 있겠느냐. 비록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남과 더불어 하인이 되기도 하고, 혹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의식이 궁핍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쓰라린 일을 염려하기 때문에 출가하여 도를 닦아서 무위(無爲)인 세간을 건너는 법요(法要)를 구한다. 만일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다시 몇 겁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왕자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리어 왕에게로 나아가 아뢰었다. “이제 왕의 가르침을 듣고서야 깨달았나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은 실로 싫어해야 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으로서 쉬지 않고 유전(流轉)하나이다. 원하옵건대, 대왕이여, 도를 닦도록 허락하여 주소서. 삼가고 조심하면서 수행하겠나이다”

왕은 아우에게 말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 줄 알 것이다”

 

그리하여 아우는 즉시 왕을 하직한 뒤에 사문(沙門)이 되어서 금계(禁戒)를 받들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쓰다가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으며 6통(通)이 맑게 사무쳐서 걸림이 없어졌다.

 

*‘아육왕(阿育王). 아쇼카(aśoka)왕이라고 하는, 부처님 때 그 수기(授記)를 받아 가지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는데’ ; 

[참고] 『아육왕경(阿育王經)』 제1권, 1. 태어난 인연품[生因緣品](양梁 부남扶南 승가바라僧伽婆羅 한역漢譯 | 김영률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에서 요약.

『아육왕전(阿育王傳』 제1권, 1. 본시토연(本施土緣)(서진西晉 안식삼장安息三藏 안법흠安法欽 한역漢譯 | 박용길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〇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죽림(竹林)의 가란타정사(迦蘭陀精舍)에 계실 때, 왕사성 안으로 걸식을 하러 들어가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걷다가 큰 길에 이르셨는데, 큰 길 가운데에 두 아이가 모래밭에서 놀고 있었다. 첫째 아이는 사야(闍耶)[승(勝)이라 번역한다]였고 둘째 아이는 비사야(毘闍耶)[불승(不勝)이라 번역한다]였다.

이 두 아이는 세존의 몸에 있는 32상(相)을 보자, 첫째 아이는 모래를 쌀로 생각하여 부처님 발우 안에 담아드렸고 둘째 아이는 합장하고 기뻐하면서 즉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자연스러운 큰 자비(慈悲)와 원만한 광명으로 몸을 장엄하셨으며 이미 생사(生死)를 멀리 여의셨네.

저는 이제 한 마음으로 생각하오니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까닭에 모래를 받들어 공양하나이다.>

 

이때 사야는 공양을 마친 다음에 이렇게 발원하며 말했다. “이 선근(善根)으로 말미암아 제가 마땅히 산지왕(繖地王)이 되게 하시고, 불법 가운데서 널리 공양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과 그 올바른 발원을 보시고, 미래의 세상에서 수승하고 오묘한 과(果)가 있게 될 것을 아셨다. 이런 연유로 불여래(佛如來)께서는 복전(福田)이 되기 위하여 자비심으로 그 모래를 받으셨다. 그러면서 곧 미소를 머금으시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내가 지금 아무런 인연 없이 웃은 것이 아니다. 인연이 있었기에 여래(如來) 응(應) 정변지(正遍知)는 이렇게 미소를 머금어 보인 것이다. 아난아, 너는 아이가 손으로 모래를 받들어 발우 안에 담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 아이는 내가 열반에 든지 백 년 뒤에 마땅히 파타리불다성(波吒利弗多城)의 왕으로 태어나 아육(阿育)이라 이름할 것이다. 사분(四分)의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정법(正法)을 믿으며 즐거워할 것이며, 마땅히 널리 사리(舍利)를 공양하여 8만 4천의 탑을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풍요롭고 이익 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마땅히 공작성(孔雀姓)으로 태어나 아육인왕(阿育人王)이라 이름할 것이며 법을 즐거워하며 널리 명성을 알리게 되리라.

나의 사리탑으로써 염부제(閻浮提)를 장엄할 것이니 이것은 그 공덕의 과보로서 모래를 보시하여 부처에게 바친 때문이라네.>

 

부처님께서는 이때 모래를 쥐어 아난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소의 똥을 가져다 이 모래와 잘 섞어서, 부처님이 경행(經行)하는 땅에 바르도록 하여라” 아난은 가르침을 받들어 즉시 땅에 발랐다.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신체의 특징) · 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 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한다.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불사스럽다 ; 어른이나 상급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되받아 대꾸하는 것을 말한다.

*면류관(冕旒冠) ; 제왕(帝王)의 정복(正服)에 갖추어 쓰던 관. 거죽은 검고 속은 붉으며, 위에는 긴 사각형의 판이 있고 판의 앞에는 오채(五彩)의 구슬꿰미를 늘어뜨린 것으로, 국가의 대제(大祭) 때나 왕의 즉위 때 썼다.

*만조백관(滿朝百官) ; 조정(朝廷,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나라의 정치를 의논하고 집행하는 곳, 또는 그런 기구)의 모든 벼슬아치.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0)계(340:1987년 10월 첫째일요법회:2분3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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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2분 3초)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 치암癡暗)—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 소리, 향기, 맛, 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산스크리트어(범어)]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煩惱)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도고마성道高魔盛]’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벽극풍동壁隙風動],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심극마침心隙魔侵]’고 하시니라.

*황벽(黃檗) : (? – 850) 법명은 희운(希運),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어려서 신동이라고 불리더니, 강서성 서주부 황벽산에 가서 출가하였다가, 백장에게서 마조의 할에 백장이 깨치던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나서 백장의 법을 이었다. 그 뒤에 배휴(裵休)의 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교화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그 산 이름을 처음 출가하던 산 이름 그대로 황벽산이라 하였다.

 

그가 염관사(鹽官寺)에 있어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의 선종(宣宗)이 그에게 법문을 묻는데, 그가 세 번이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 뒤에 선종이 즉위하여 그에게 「추행사문(麤行沙門)」 곧 ‘행실이 거친 중’이란 법호를 주려고 하자, 배휴가 간하기를 『황벽선사가 폐하에게 세 번 손질한 것은, 폐하의 삼제(三際 곧 三世) 윤회를 끊는 뜻입니다』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의 호를 내리게 되었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게송)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범연하다(泛然-- 물에 뜨다·넓다 범/그러하다·~이다 연) ; 범연(氾然)하다.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다.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다. 泛(범)은 氾(범)과 동자(同字, 같은 글자). 汎(범)과 통자(通字 같은 뜻의 글자).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이상 난동(異常暖冬 다를 이/항상 상/따뜻할 난/겨울 동) ;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게[異常] 따뜻한 겨울[暖冬]. 여느 해의 평균 기온을 웃도는 따뜻한 겨울.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딱 한번 오전 중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에 하는 공양(식사)을 말한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 · 물건 · 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수희(隨喜 따를 수/기쁠 희) ; 따라서[隨] 기뻐하는[喜] 것. 남의 좋은 일을 보고, 따라 좋아하기를 마치 자기의 좋은 일과 같이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찬탄(讚歎, 贊歎 기리다·칭찬하다 찬/노래하다·칭찬하다 탄) ; 좋은 점을 들어 칭찬(稱讚)하며 감탄(感歎)함.

*자리이타(自利利他) ; 스스로 이익을 얻고, 타인도 이로운 것. 스스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구제하고, 이로움을 주는 행위. 보살의 실천.

자리(自利)는 곧 이기(利己 자기 자신의 이익)의 뜻이니, 곧 자신의 공덕을 위해 노력하고 수행하는 것이며 이로써 생긴 선과(善果 선업을 지은 결과로 받는 과보)로 스스로 그 이익을 얻음. 이타(利他)는 곧 타인을 이익되게 함의 뜻이니, 곧 자기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모든 유정(有情 살아 있는 것, 衆生)을 구제(救濟)하기 위해 힘을 모아 선(善)을 수행함.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41)자리이타(세등24:1979기미년 동안거결제:1분44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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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4)—1979(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1분44초)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법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새에 두 날개가 있는 거와 같고, 수레에 두 수레바퀴가 있는 거와 같아서, 새가 날개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하나만 가지고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리이타, 이 세등선원을 짓는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요,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여러 신남신녀가 시주(施主)를 하고 화주(化主)를 하는 것도 이것 또한 자리이타를 하는 것이여.

 

부처님 출현하신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있어서야 원래 생사 없는 본각(本覺) 자리에 계시는데 무엇이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렇지마는 중생을 위해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것이다.

한 글자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다. 한 글귀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많은 어록(語錄)을 남기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한 자비심에서 나오신 소식이다.(63분14초~64분59초)

*(게송)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법문 내용]

 

(게송)안광삭파삼천계(眼光爍破三千界)~ / 망상과 혼침, 수마(睡魔) / 입선 시간은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되 두 시간씩만 딱 정해 놓고, 방선 시간이라도 얼마든지 정진할 수 있도록 큰방은 묵언 구역으로 / 죽비만 치면 조는 습관 경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언제나 한 생각 단속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하면 그것이 정진 / 수좌의 고민, ‘간절한 의심이 안 나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백골관(白骨觀) / 고암 대선사와 또 열반하신 전강 조실 스님 두 큰스님을 모시고 송담스님께서 도살장에를 간 일 / 소 전신(前身)은 대부분 도(道)를 철저히 닦아서 도를 이루지 못해서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소가 됐다는 말씀 / 외호 대중(外護大衆)과 정진 대중(精進大衆)이 항시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간절(懇切)한 마음은 무상(無常)한 마음을 느낀 데에서 간절한 마음이 나는 것 / 아육왕(阿育王) 동생의 출가 인연 / (게송)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 비구니 법춘 스님의 미국 포교를 위한 불사 동참 권유 / (게송)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〇무상(無常)한 이 몸뚱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서 이루어진 이 몸뚱이, 얇은 가죽 속에는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차 있건마는, 그 무상하고 추악한 이 몸뚱이 속에 영원히 생사(生死)가 없는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견성성불하시기 이전에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중생(衆生)에 불과했습니다.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는 진즉 발심(發心) 수행해서 이 도리를 깨달라서 열반의 세계를 살고 계십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의 인연이 깊어서 이 오탁악세(五濁惡世) 말세(末世)에 태어났건마는 위없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몸뚱이가 정말 무상한 줄 뼈아프게 느낀다면 우리는 일분일초도 방일(放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〇입선 시간은 항시 두 시간씩 그렇게 사분정진 하도록 딱 정해 놓고, 큰방은 묵언 구역으로 정해 놓고 방선 시간이라도 얼마든지 정진할 수 있도록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참 실질적으로 공부를 그렇게 해 놓고 해보면 참 알차게 정진이 됩니다.

 

〇철저하게 무상한 마음을 발해서, 분심 신심을 발해서 대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어쨌든지 금생에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 가지고 도업(道業)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〇옛날부터 속담이 ‘흉년이 들어서 세 고을 원님이 굶어서 죽게 되어도, 박복(薄福)한 눈먼 중이 그때에사 저녁 끓일 양식을 걱정하게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흉년이 들어서 온 백성이 다 굶어 죽고 심지어 원이 굶어 죽게 되더라도 아무리 박복한 스님네도 굶어 죽진 않는다. 왜 그러냐?

부처님이 남겨 주신 유산, 40년 당신이 받으실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이 있어서,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책임을 지고 도(道) 닦는 스님네의 먹고 입고 살 의식주 문제를 책임을 맡고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도만 열심히 닦으면 굶어 죽고 얼어죽는 법이 없어. 저 태백산이나 지리산 그 깊은 바위굴 속에 토굴에서 정진을 해도 굶어 죽는 법이 없습니다.

 

〇간절(懇切)한 마음은 무상(無常)한 마음을 느낀 데에서 간절한 마음이 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생각생각에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아니한다면 간절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몸뚱이가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10년도 살고 앞으로 20년 30년도 더 살리라’ 그렇게 뒷날 살날을 생각하기 때문에 무상을 느끼지를 못하고, 무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이 안 난 것입니다.

 

〇무상을 철저히 깨달으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어디에 붙으며,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이 어디에 어리대겠습니까? 무상한 마음을 잊어버리면 거기에서 탐진치 삼독심도 일어나고, 오욕락도 일어나고, 문틈에 틈이 생기면은 거기에 햇빛이 들이비치듯이, 틈이 없다면 어느 곳에 잡념이 일어나며 해태심이 일어나느냐 그 말이여. 혼침인들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겠느냐.

간절한 마음 한 생각이 팔만사천 마구니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고, 일체 해태심도 일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