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선원No.40)—1982(임술)년 하안거 해제 법어(1982.06.17.음) (54분)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11분.
(1/3)----------------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허니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구름이 꽉 덮였다가 그 구름이 활짝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열리니까 툭 트인 파란 하늘이 무한히 끝없이 열렸다.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구나.
하늘에 낀 구름이 열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고, 가을이 되어서 잎이 떨어지면 그 이파리는 뿌리가 있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한데,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했고.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에 기대서 졸음에 잠겼는데 해는 이미 기울어졌구나.
지난 7월 17일에 통도사 호국선원 경봉대종사(鏡峰大宗師)께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이와 같이 가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 선지식(善知識)도 이렇게 가셨습니다. 우리가 신(信)하고 존경하던 수많은 선지식이 이렇게 가셨습니다.
역대조사와 천하 선지식과 삼세제불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자리에서 때로는 탄생의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때로는 닦을 것 없는 곳을 향해서 고행(苦行) 수도하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생사가 없는 자리에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기도 하고.
선지식 자기 분상에는 전연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즐거울 것도 없고, 이승을 하직했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는 것이지만 중생들은 태양처럼, 어두운 밤에 달처럼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던 선지식을 잃었을 때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한다 할지라도 그 슬픔이 위안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도 나의 생사(生死) 문제가 달려 있는, 일대사(一大事) 문제가 거기에 매달려 있는 등불을 잃었을 때의 슬픔은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수행인은, 불자(佛子)는 그러한 일시적인 감상으로 슬픔에 잠긴다든지, 또는 인사차례로 문상(問喪)을 가는 것으로써 여기서 저기서 많이 모여든 것으로써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출가를 해야 할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수 있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임술년 여름안거(安居)의 해제날입니다. 원래 7월 15일, 이 세등선원은 7월 17일에 해제를 해왔습니다마는, 금년에는 4월에 윤달이 들어서 6월 15일에 전국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해제를 하고 또 세등선원도 6월 17일에 해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해제를 기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15일에 해제를 하고 이 세등선원에 구름처럼, 수행한 납자(衲子)들이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도 해제날에는 멀고 가까운 데에서 정진을 하던 수행자들이 전부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모여서 자자(自恣)의 법요식을 거행을 했던 것입니다.
보름마다 계율의 계목(戒目)을 읽으면서 대중에 잘못을 참회(懺悔)하는 의식을 포살(布薩)이라 그러고, 해제 때 부처님으로부터 차례차례 대중을 향해서 호궤합장(互跪合掌)하고 “그동안 안거 기간 동안에 행여나 본인에 있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을 여러 대중스님이 보신 점이 있으면 자비심으로 기탄(忌憚)없이 지적을 해주십시오”
이렇게 대중을 향해서 합장을 하면 대중도 자비심으로 기탄없이, 스님이 그 동안에 어떠 어떠한 잘못이 있었다.
“대중 잡담이 너무 많아 가지고 본인 자신도 정진을 열심히 아니하고, 대중의 수행을 방해한 점이 많으니 그 점을 조심하시오”
또는 “뒷방에서 입선(入禪)시간에 입선도 하지 아니하고 너무 한만(汗漫)히 지내고 해태를 부려 가지고 수도원의 선방의 분위기를 곤란하게 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특별히 어떤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고 그래가지고 대중에 화합을 깨트렸으니 그 점을 조심하시오”
“패당(牌黨)을 지어 가지고 사소한 일에 물의(物議)를 일으켜 가지고 대중 전체의 수행을 방해를 했으니 그 점에 대해서 주의를 하시오”
“지나치게 외출을 심히 해 가지고 대중의 법도를 어겼으니 그 점에 대해서 조심을 하시오”
이러한 식으로 차례차례 잘못된 점을 지적을 하기를 대중이 많으면 초저녁부터서 자정을 지내서 새벽에 이르도록 그러한 의식이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원시경전(原始經典)에는 소상하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해제일을 맞이해서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선방과 암자나 토굴에서 수행하시던 수좌(首座)님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마치 부처님 당시에 자자의 법요식을 거행했던 그 원시경전에 쓰여 있는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여러 수행납자들이 모이니 얼굴마다 일대사 문제를 결정코 금생에 해결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의연한 결의가 보이고, 그 눈에는 생기가 넘쳐 흐르는 것을 볼 때에 너무너무 감개가 무량하고, 기특하고, 신통하고, 고맙기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 현사사비(玄沙師備)라고 하는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현사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설하시기를, 제방(諸方)에 노숙(老宿)들이—노숙은 조실(祖室) 스님, 선지식(善知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방에 노숙이 접물이생(接物利生)을 하는데 '물건을 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접물이생이라 하는 말은 ‘중생을 제도를 한다’
‘제방에 여러 큰스님들이 중생을 제도하시는데,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문득 세 가지의 병자(病者)를 만나면 어떻게 교화를 할 것인가?’
그 세 가지의 병인(病人)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눈먼 장님. 눈먼 장님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장자를 들어도 보지를 못할 것이고 또는 불자(拂子)나 그밖에 어떤 죽비같은 것을 법(法)으로 들어 보인다 해도 볼 수가 없으니, 어떻게 그 장님을 교화를 하며.
(둘째는) 귀를 꽉 먹은, 귀 먹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최상승법을 대사자후(大獅子吼)를 부르짖어서 부처님 이상 가는 설법을 한다 하드라도 귀가 꽉 먹었으니 어떻게 귀 꽉 먹은 사람을 교화를 하며.
셋째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 그 벙어리를 만나서는 무슨 법을 묻고 물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하니,
어떻게 이 눈먼 사람과 귀를 꽉 먹은 사람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 이 3가지 종류의 병자를 만나서는 어떻게 그것을 제도할 것인가?
참불법이라면 이 세 가지 종류의 벙어리를 제도할 수 있어야 참으로 불법(佛法)이 영험(靈驗)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법문을 현사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어떤 납자(衲子)가 설봉(雪峰)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운문(雲門) 선사에게 가서 이 현사 스님이 설하신 법문을 전하고, “스님께서는 이 세 가지 종류의 병신을 만났을 때 어떻게 그 세 가지 종류의 병신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여쭈어 봤다, 이 말씀이여.
그러니까 그 운문 스님이 ‘예배착(禮拜著)하라. 절을 해라’ 그러셨어. 그러니까 그 납자가 절을 떠억 했다 그 말이여.
절을 하고 일어서니까 주장자로 이렇게 툭 이렇게 했다 그말이여. ‘저리 뒤로 물러가라’고. 그러니까 그 납자가 뒤로 물러섰어. 물러서니까 운문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눈먼 장님은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러니 가까이 왔어. 가까이 오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가까이 오라고 하니까 말을 알아듣고 왔으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 도리를 알겠느냐?’ 하고 물으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벙어리는 아니로구나’ 아! 그 말 한마디에 이 승려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처음~21분20초)
(2/3)----------------
이 대중 가운데는 눈멀고, 귀먹고, 또 말 못한 벙어리는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장님이 아니었을진대는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주장자(柱杖子)를 들었을 때 그 주장자를 보았을 것이고, 귀머거리가 아니었으니 산승이 주장자를 쳐서 법상을 한번 쳤으니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벙어리가 아니면 여기서 확철대오한 소식이 있을 것이다.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년(不如緘口過殘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해를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
부처님을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부처님을 훼방을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은 방해를 치고—마지막에 부처님이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가비라(迦毗羅) 왕국에 태어나실 때는 그 사람이 사촌동생으로 왕실에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렸을 때부터서 적대(敵對)해.
처음에 왕실에 사촌이니 서로가 사촌 형제간으로 태어났는데, 까닭없이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에는 반대를 하고 미워하고 훼방을 놓고 못살게 굴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될 때에도, 부처님이 야수다라(耶輸陀羅)와 혼담이 있으니까, 자기도 그 야수다라를 지가 마누라로 차지할라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온갖 무술—씨름도 하고 활쏘기도 하고, 무슨 무거운 것을 역기를 들기도 하고, 말타기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힘겨루기를 해 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이 이기셔서 야수다라를 부처님께서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계속 부처님을 갖다가 훼방을 놓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출가하시니까, 자기도 또 이후에 출가를 해서 자기도 또 중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데, 부처님 제자는 자꾸 수효가 불어나고.
자기도 참 무서운 고행 정진을 해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안되니까 아사세왕(阿闍世王)이 태자로 있을 때, 그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빨리 부왕을 죽이고 당신이 신왕(新王)이 되시오. 그러면 나도 부처님을 어떻게든지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해 가지고 나는 신불(新佛)이 될테니까, 당신은 신왕이 되고 나는 신불이 되어서 이 불법을 펴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면 얼마나 좋겠오”
이래가지고 그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결국은 그 부왕(父王)을 갖다가 감옥에다가 때려 가두었습니다. 가둬서 어떠한 사람도 면회를 할 수가 없어. 면회를 탁! 제한을 하고 일체 밥을 넣어주지 아니하고 굶겨서 죽게 할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하루하루 날짜가 지내가면서 살이 빠져 가지고 피골이 상접을 했는데 벌써 15일이 되고, 20일이 되고 한 달이 되었어도 죽지를 안 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오직 그 어머니만을 면회를 허락을 했는데, 그 대신 음식물을 일체 못 들어가게 했는데도, 단단히 문지기를 세워 가지고 절대 먹을 것을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잠깐 면회만 하고 나오게 했는데 이상하게도 죽을 때가 되어도 안 죽는다 그 말이여.
그 드나드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한 사람 뿐인데, 그래서 나중에 몸수색을 자세히 하고 보니까, 그 어머니가 몸에다가 밀가루나 쌀가루를 갖다가 몸에다가 바르고 들어가서 그놈을 긁어 가지고 그놈을 먹겄게 해 가지고 안 죽은 사실이 드러나서 나중에는 어머니의 출입도 금지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아사세 태자의 부왕이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기 전에 ‘아! 부처님을 한번 친견하고 내가 숨을 거두었으면...’ 하고 옥중(獄中)에서 지극정성으로 죽기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떠억 그것을 아시고 옥중에 몸을 나투셔서, 신통력으로 몸을 나투셔서 죽어가는 왕에게 법을 설해 가지고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그 아사세 태자가 왕이 되어 가지고 조달(調達)이 한테 그렇게 귀의(歸依)를 했는데, 조달이가 그 부처님 회상(會上)에 와 가지고, 그때 마치 목련존자(目連尊者)나 사리불(舍利弗) 같은 수제자는 밖에 중생교화를 하러 떠나고 없고 다른 대중만 있었는데, 조달이가 부처님 회상에 와 가지고 연설을 해 가지고,
“부처님은 ‘아침밥을 먹어도 좋다. 또는 병들고 어리고 늙은 사람은 저녁에도 약석(藥夕)이라 해 가지고 저녁공양도 할 수가 있다. 정 아퍼서 죽게 된 사람은 약(藥)으로 마늘이나 파도 먹을 수가 있다. 또는 정 아퍼서 건강이 유지가 되지 않는 사람은 약으로 생선이나 오정육(五淨肉)을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계율이 엄정하지를 못하고 법도가 문란해서 이렇게 해 가지고는 무슨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겠느냐. 내 회상으로 오면 털끝만큼도 틈이 없고 서릿발 같이 법도가 엄격하고 그러니 내 회상에 와서 공부를 하면 백발백중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요달(了達)하니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한 어리석은 사람이 일어서니까 또 다른 사람도 우물쭈물하면서 일어서고, 여기서 일어서고 저기서 일어서고 해 가지고 수백 명이 조달이를 따라가 버렸어. 그리고 몇 사람이 안 남았어.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얼마 있다가 돌아와 보니 대중이 다 흩어져 버리고 없다 그 말이여.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당신 방으로 한참 돌아와 계시는데, 목련존자 사리불존자 돌아와서 보니 대중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사연을 알아보니까 '조달이가 와서 끌고 갔다' 목련존자와 사리불이 그길로 조달이 회상에 가서 다시 설법을 해 가지고 다시 쏵 다 끌고 와 버렸어.
끌려가서 보니까 정말 계율이나 법도가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서 계율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위한 계율'을 주장을 하고, '규칙을 위한 규칙'을 까닭없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내세워 가지고 대중을 갖다가 꼼짝을 못하게 다루는데, 거기 가서 그러한 생활을 해 보니까, 과연 부처님이야말로 대성현이시고 위대한 스승이시라 하는 것을 내심으로 짐작을 하고 있던 판에 목련존자가 가서 설법을 하니까 다시 다 따라와 버렸어.
조달이가 부애가 나가지고 이제는 이러한 미적지근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해가지고, 코끼리한테 술을 잔뜩 먹여서 흥분을 시켜가지고 미친 코끼리를 술을 먹여 가지고 부처님 어디를 가시는 데다 막 몰아댔다 그 말이여.
미친 코끼리가 쏜살같이 부처님을 향해서 가 가지고는 밀어붙여 가지고 짖밟게 그렇게 할려고 했는데, 부처님이 돌아보시더니 손을 내밀고 작관을 하시니까, 그렇게 미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를 쫓아가다가는 부처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는 조용하니 엎드려 버렸다 그 말이여. 그래 항복을 해 버렸다.
또 미친 코끼리 가지고도 안되게 생겼으니까,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못된 사람들과 같이 부처님이 어디를 가시는 길목에 절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큰 바윗돌을 갖다가 굴려가지고 부처님이 답싹 거기에 치이도록 그렇게 계획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그것을 아시고 저리 돌에 다치지 아니할 만한 자리로 조금 피해서 가셨다.
그러니까 더 약이 올라 가지고는 또 다시 다음날 인자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을 만한 장소를 선택해 가지고 또 바윗돌을 굴렸는데, 부처님께서는 다 아셨지만 짐짓 피하지 아니하시고 발뒤꿈치를 조금 다치셨어. 그래 가지고 피가 조금 났는데.
부처님께서 왜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시고 피하지 아니하고 결국 다치셨냐 하면 '이것이 다 전생에 맺어진 업연(業緣)으로 저러는 것을, 내가 신통력으로 피했다한들 그 업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여. 차라리 금생에 곱게 받아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래가지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으신 것입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이지만, 외도(外道)들의 돌팔매에 맞아서 몸이 산산이 부서진 채 열반에 드셨고, 비구니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인 연화색 비구니도 신통이 제일이라 미리 다 알고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조달이에 의해서 맞아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4조 사자존자(師子尊者)도 제자 하나를 잘못 두어 가지고 그 제자의 잘못으로 인해서 계빈국왕에 의해서 목이 짤려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그러한 예가 있지만, 설혹 이 대중 가운데 조달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면서 다른 대중스님네마저 도를 닦지 못하도록 방해를 친 사람이 없었는가?
응당 오늘은 자자일(自恣日)이 되아서 본인이 대중을 향해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애원을 해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대중의 이 성스러운 수도장에서 부모와 고향과 청춘을 다 버리고 생사 문제를 요달(了達)하기 위해서 모인 이 성스러운 대중에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고 남까지 도를 닦지 못하게 방해를 치는 조달이와 같은 물건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회(懺悔)를 해야 할 것입니다.
조달이는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생명을 앗을라고 하고, 드디어는 부처님의 몸에 피가 나게 하고 그러한 죄로써 조달이가 서 있는 땅이 쩍 갈라지면서 화염이 솟구치는 불구뎅이 속으로 생함지옥(生陷地獄)을 했습니다.
정법(正法)을 비방하고,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도 닦는 스님네를 도를 못 닦도록 방해를 치고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달이는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훼방을 치고 그러한 오역죄(五逆罪)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떨어졌는데, 부처님께서 아란존자를 시켜서 지옥에 가서 조달이한테 이렇게 물어봐라. ‘지옥고 맛이 어떤고? 이렇게 가서 물어봐라’ 하고 시켰습니다.
아란존자가 지옥에 가서, ‘지옥고 맛이 어떠냐고 부처님께서 물어보라고 하시더라’
‘지옥고(地獄苦) 맛이 천상락(天上樂)보다도 더 좋다’ 아! 조달이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 지옥에서 나오느냐?고 물어봐라’고 시켰습니다.
‘언제 지옥에 나오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석가(釋迦)가 지옥에 들어오면 내가 나가겠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는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오실 분(分)이 있겠느냐’ 그러니까,
조달이 대답이 ‘석가가 지옥에 들어올 분(分)이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 나갈 분(分)이 있겠느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조달이는 부처님으로 하여금, 석가여래로 하여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大道)를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보다도 훨씬 먼저 성불을 한 옛 부처님이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서, 그렇게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갖은 수단과 방편을 통해서 부처님을 경책(警策)을 해 드렸던 것입니다. 조달이의 분상(分上)에는 천당에 올라가나 지옥에 가나 조금도 차등이 없습니다.(21분21초~42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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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되 오늘 세등선원에서 전국 방방 선방에서 조달이와 같은 고불 화현(古佛化現)이 대중을 경책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신심과 분심과 대의단을 돈발(頓發)케 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자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또한 가하거니와, 그렇지도 아니하면서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은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량겁을 두고 지옥에 나올 분이 없을 것입니다.
산승의 이와 같이 설한 말씀을 듣고, 직접 자기가 그러한 조달이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은 자기가 고불 화현인가 아닌가를 반성을 해야 할 것이고, 대중은 ‘아무래도 그분이 조달이의 화현이나 고불 화현이 아닌가, 불보살의 화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 때문에 진심(瞋心)을 냈다면 참회를 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냈다면 참회를 하고, ‘틀림없이 그 사람이 불보살의 화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미운 생각을 다 풀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진을 앞으로 백배 열심히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지지 말고,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 의단(疑團).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어째서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의단이 독로(獨露)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앞으로 산철이 넉달 반이나 되는데, 그 넉달 반을 그렁저렁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擧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요달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연전에 모래찜을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말을 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스님네와 신도들이 많은 모래찜질을 해서 그 가운데 참 효험을 본 사람도 수없이 많고, 또 외래 모래찜을 잘못해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고 그러는데, 모래찜을 하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은 다른 게 아니고, 몸에 독이 아주 쩔으다 쩔으다 못해서 아주 병주머니가 된 사람이 모래찜을 조금 하니까, 그 독기가 쪼끔 빠져나오다가 말아 가지고, 모래찜을 한 뒤에도 계속해서 그 독이 나오다 보니 허벅지나 궁뎅이가 그 지금 독이 빠져나올라고 그 피부 구녁이 열려 가지고 가려움증이 있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모래찜을 잘못해서 피부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지금 독이 덜 빠져나온 독이 빠져나오느라고 그렇게 가려운 것이니까, 혹 그러한 가려운 증상이 일어나면 더운 물에 목욕을 몇 차례하면 피부약을 바르지 안 해도 저절로 낫게 될 것입니다.
‘아침 8시부터서 저녁 5시까지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8시간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은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그렇게 해도 또한 괜찮지만, 노인이나 너무 병약한 노인이나 너무 병에 걸려서 탈진한 사람은 그렇게 무리하게 할 것이 아니고, 아침도 가볍게 죽을 쒀서 먹고 한 1시간이나 2시간 가볍게 하고, 또 점심도 가볍게 먹고 좀 쉬었다가 오후에 또 한 1~2시간이나 3시간 이렇게 하고, 저녁도 또 죽을 쒀서 먹을만큼 먹고, 그렇게 해서 살살 자기의 근력과 연령과 모든 상태를 감안해서 지혜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너무 고지식해 가지고 8시간씩 사흘씩 연거퍼 하거나, 닷새 일주일씩 그렇게 연거퍼 해 가지고 탈진이 되어가지고 “아이고, 그놈의 모래찜 하다가 내가 꼭 죽을뻔 봤다”고, 다시는 그게 할 것이 아니라고 악선전을 하고 돌아다닌다.
아무리 좋은 약도 그 체질에 맞춰서 지혜롭게 먹어야 하는 게고, 아무 운동도 그 체질에 따라서 적당하니 해야 하는 것이지, 참선(參禪)이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해 가지고 어리석게 이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언제 그 말씀을 하셨냐 하면 부처님이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명성(明星)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교진여(憍陳如) 등 5비구(五比丘)를 향해서 맨 처음에 설하신 법문이 바로 지나치게 호의호식을 하고 그러한 정진을 한 것도 옳은 정진이 못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못살게 구는 고행을 위한 고행, 고행 일변도의 수행은 올바르지 못하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적당하게 모래찜을 한 번이나 두 번쯤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래찜에만 또 빠지지 말고 춥도 덥지도 않은 이 산철 동안을 잘 이용을 해서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헌디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 곡(曲)을 타고 두 곡을 타는데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비 개인 뒤 밤 연못에는 가을 물만 깊구나.(43분1초~54분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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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제4권 115칙 신주(新州)’ 송원(松源) 송(頌) 참고.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廻首煙波裏 漁歌過遠村’
*(게송) ‘회수간산취류하(回首看山醉流霞)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 ;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한다. 해가 넘어가는데 나무에 기대 졸음에 잔다’
[참고 ❶] 『전당시(全唐詩)』 540권 이상은(李商隱)의 시 ‘화하취(花下醉)’ 참고.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참고 ❷]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 문인(門人) 동산 혜일(東山慧日) 찬집(撰集) | 금천今天 옮김) 제1장 선지식 참문(參問知識章).
還歸海印寺할새 頌曰 伽倻名價高靑丘, 明心道師幾往來. 矗矗奇巖疊鱗高, 密密柏樹相連靑. 無限白雲滿洞鎻, 洪鐘轟轟碧空衝. 回首看山醉流霞, 倚樹沉眠日已斜.
해인사로 다시 돌아오셔서,
“가야산의 명성과 평판이 청구靑丘에 높으니 마음 밝힌 도사들이 얼마나 왕래하였던가!
우뚝 솟은 기암은 비늘처럼 포개어져 있고 빽빽한 잣나무는 서로 이어져 푸르구나.
무한한 흰 구름은 골짜기마다 가득하고 크게 울리는 범종 소리는 푸른 하늘에 사무친다.
고개 돌려 산을 보다가 저녁노을에 취해서 나무에 기대어 깊이 졸다 보니 해는 벌써 기울었네!” 라고 게송을 읊으셨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音寫). 멸(滅) · 멸도(滅度) · 적멸(寂滅) · 적정(寂靜) · 적(寂) · 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산스크리트어 kalyāņa-mitra. 팔리어 kalyāņa-mitta.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가라밀(迦羅蜜) • 가리야낭밀달라(迦里也曩蜜怛羅)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지식(知識) • 선우(善友) • 친우(親友) • 선친우(善親友) • 승우(勝友) • 시우(時友)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반대로 악도(惡道)로써 이끄는 사람을 악지식(惡知識)이라고 한다.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자리에서’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〇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의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〇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자자(自恣 스스로 자/물을·마음대로 자) ; 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자거(恣擧 마음대로 듦)하게 해 그것을 참회(懺悔)하는 의식. 또 타인의 뜻을 따라 자신의 허물을 자거(恣擧)하므로 수의(隨意)라고도 한다.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 · 오계(五戒) · 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계(戒)의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 항목(項目).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포살(布薩) ; 산스크리트어 poṣadha, upavāsa, upavasatha. 팔리어 uposatha의 음사(音寫). 단식(斷食) · 정주(淨住) · 선숙(善宿) · 근주(近住) · 장정(長淨)이라 번역.
출가자들은 음력 매월 15일과 29일(또는 30일)에 한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을 독송하면서 그 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재가(在家)의 신도는 육재일(六齋日) 곧 음력 매월 8·14·15·23·29·30일에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는 일. 포사타(布沙陀, 哺沙陀), 포쇄타(褒灑陀)라고도 쓴다.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기탄없이(忌憚-- 꺼리다·경계하다 기/꺼리다·두려워하다 탄) ; 꺼림칙하거나 마음에 걸림이 없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한만(汗漫 땀 한/흩어질 만) ;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등한함.
*패당(牌黨 패·방·명찰 패/무리 당) ; 패(牌). 서로 어울려 다니는 사람의 무리.
*물의(物議 살피다·헤아리다 물/의논하다·토의하다 의) ;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여)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처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상태.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및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 – 908) 속성은 사(謝)씨. 복건성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젊어서는 낚시질을 좋아하였는데, 30세에 출가하여 공부하는 길을 얻어 가지고는 고향에 돌아가서 음식을 겨우 목숨이 붙어 있을 만큼 먹어 가면서, 바위 밑과 산꼭대기에서 늘 좌선(坐禪)하였다.
설봉 화상이 그에게 선지식을 찾아보라고 권하였으나, 듣지 않고 혼자 공부하여 깨친 바 있었고, 또 『능엄경(楞嚴經)』을 보다가 크게 깨쳤다. 설봉의 법을 이어 가지고, 매계장(梅鷄場) 보응원(普應院)에서 교화하다가 얼마 안 가서 복주의 현사원에 옮기었다. 후량(後梁) 태조(太祖) 개평(開平) 2년에 74세로써 입적하였다.
그의 저술은 『현사어록(玄沙語錄)』 3권,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고, 그의 제자 천룡 중기(天龍重機)에게서 고려의 설악 영광(雪岳令光)선사가 나왔다.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운문의 가르침 ;
[참고 ❶]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9권 제88칙 ‘현사 삼종병 접물이생(玄沙 三種病 接物利生)’
擧 玄沙示衆云 諸方老宿 盡道接物利生 忽遇三種病人來 作麼生接 患盲者 拈槌竪拂 他又不見 患聾者 語言三昧 他又不聞 患啞者 敎伊說 又說不得 且作麼生接 若接此人不得 佛法無靈驗
현사(玄沙)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제방(諸方)의 노숙(老宿)이 모두 말하기를 ‘중생제도를 한다’ 하는데, 갑자기 세 종류의 병에 걸린 사람이 오면 어떻게 제접해야 하는가? 장님은 추(槌)를 집어 들거나 불자(拂子)를 세워도 저가 보지 못하고, 귀먹은 이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저가 또한 듣지 못하며, 벙어리는 그에게 말을 시켜도 또한 말을 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자, 어떻게 제접해야 하는가? 만일 이 사람들을 제접하지 못하면 불법(佛法)은 영험이 없는 것이다”
僧請益雲門 雲門云 汝禮拜著 僧禮拜起 雲門以拄杖挃 僧退後 門云 汝不是患盲 復喚近前來 僧近前 門云 汝不是患聾 門乃云 還會麼 僧云 不會 門云 汝不是患啞 僧於此有省
어떤 스님이 (현사의 이 말을 가지고) 운문에게 가르침을 청하니, 운문이 말했다. “그대는 절을 하라” 스님이 절을 하고 일어나자 운문이 주장자로 떠미니, 스님이 뒤로 물러섰다. 운문이 말했다. “그대는 장님이 아니구나” 다시 가까이 오라고 불러 스님이 가까이 오니, 운문이 말했다. “그대는 귀머거리는 아니구나”
그러고는 운문이 말했다. “(이 도리를) 알겠는가?” 스님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그대는 벙어리가 아니구나” 스님은 여기에서 깨달았다.
[참고 ❷]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6』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985칙 ‘삼종(三種)’ p181~182.
[참고 ❸] 『종감법림(宗鑑法林)』 53권. 大鑒下七世 福州玄沙師備禪師(雪峰存嗣).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숙(老宿) ; ①오랫동안 수행하여 덕이 높은 스님. 조실스님, 선지식을 말함. ②나이가 많아 경험이 풍부한 사람. ③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불자(拂子 먼지떨이 불/접미사 자) ; 짐승의 털이나 마(麻)를 묶어서 자루 끝에 매어 달은 것으로 벌레를 쫓는 데 쓰는 생활용구이었으나,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번뇌를 떨어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로 사용되고 있다. 주로 설법할 때 손에 지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설봉 의존(雪峰義存) : (822 – 908) 속성은 증(曾)씨. 복건성 천주부 남안현에서 여러 대로 불법을 진실하게 믿어 오는 집에서 났다. 나면서부터 종소리를 듣거나 불전에서 쓰는 물건을 보게 되면 곧 즐거워하는 표정이 나타났고, 파 마늘 냄새를 꺼리었다. 12살에 아버지를 따라 옥간사(玉澗寺)에 갔다가 그 길로 집에 오지 않고 중이 되었다.
참선을 시작한 뒤에 먼저 염관(鹽官)에 갔고, 투자(投子)에 세 번, 동산에 아홉 번 갔으나 얻은 바가 넉넉지 못하였는데, 덕산에게 법을 묻다가 한 방망이 맞고서 깨쳤으나 아직 훤칠하지 못하다가, 그 사형 암두(巖頭)가 크게 꾸짖는 데서 비로소 크게 깨쳤다.
뒤에 복주(福州)의 상골산(象骨山)에 들어가서 그 이름을 설봉산으로 고치고 40년 가까이 교화하니, 모인 대중이 어느 때나 1500명을 넘었고, 법을 이은 제자가 56인이 있었다. 그 중에는 신라의 대무위(大無爲)선사와 고려의 현눌(玄訥)과 영조(靈照)선사가 있었고, 그 제자 장경 혜릉(長慶慧稜)에게서 신라의 구산(龜山)화상이 나왔다. 후량(後梁) 태조(太祖) 2년에 87세로써 입적하였다.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
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 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 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 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운문 대사가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 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檢察)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병이니라』 하였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제24권. (혜심·각운 지음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제1025칙 ‘광불(光不)’
雲門大師 垂語云 光不透脫 有二般病 一切處不明 面前有物 是一 透得一切法空 隱隱地 似有箇物相似 亦是光不透脫 又法身 亦有兩般病 得到法身 爲法執不忘 已見猶存 墮在法身邊 是一 直饒透得 放過卽不可 子細檢點將來 有什麽氣息 亦是病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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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게송)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년(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1989년 3월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1분43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이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참 ‘생사문제를 해결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때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시(詩)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분40초~64분24초)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가비라국(迦毘羅國)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야수다라(耶輸陀羅, 耶輸多羅) ; 콜리야족 출신으로, 싯다르타의 아내, 곧 나후라(羅睺羅)의 어머니. 정반왕(淨飯王)이 세상을 떠나자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와 함께 출가하여 비구니가 됨.
*아사세(阿闍世) ; (산스크리트) Ajātaśatru (팔리어) Ajātasattu 부처님 제세 시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왕과 위제희(韋提希)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태자가 된 후,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가 부왕(父王)을 감옥에 가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부왕을 시해한 죄로 인해 온몸에 부스럼이 생겼는데, 기파(耆婆) 어의(御醫)의 권유로 부처님 앞에서 참회한 뒤 치유되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왕사성에 사리탑을 세우고 공양하였으며, 마하가섭을 비롯한 부처님 제자들이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을 행할 때, 대단월(大檀越)이 되어 음식 · 재물 · 당우(堂宇) 등을 지원하여 불교 교단을 외호하였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4권, 제24. 초품 중 찬제바라밀의 뜻을 풀이함[大智度論釋初品中羼提波羅蜜義]. (용수 지음 | 구마라집 한역 | 김성구 번역 | 김형준 개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是時 斛飯王子提婆達多 出家學道 誦六萬法聚 精進修行 滿十二年 其後爲供養利故 來至佛所 求學神通 佛告憍曇 汝觀五陰無常 可以得道 亦得神通
이때 곡반왕(穀飯王)의 아들인 제바달다(提婆達多)가 출가하여 도를 배워 6만의 가르침[法聚]을 외우고 부지런히 수행해 12년을 채웠다. 그 뒤 공양의 이로움을 얻기 위해 부처님께 와서 신통 배우기를 구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담(憍曇 : 제바달다의 성姓)아, 너는 5음(五陰)의 무상함을 관찰하면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신통도 얻을 수 있으리라”
而不爲說取通之法 出求舍利弗 目揵連 乃至五百阿羅漢 皆不爲說 言 汝當觀五陰無常 可以得道 可以得通
不得所求 涕泣不樂 到阿難所 求學神通 是時阿難未得他心智 敬其兄故 如佛所言以授 提婆達多受學通法 入山不久 便得五神通
그리고 더 이상 신통 얻는 법을 자세히 말씀하시지는 않으시니, 그는 나와서 사리불과 목건련 및 5백 명의 아라한에게 구했으나, 아무도 신통 얻는 법을 말해 주지 않은 채 다만 말하기를 “그대가 5음의 무상함을 관찰하기만 하면 도를 얻고 신통도 얻을 것이다” 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슬피 울면서 아난에게 가서 신통 얻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이때 아난은 아직 타심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형을 공경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 제바달다는 신통 얻는 법을 얻은 뒤에 산으로 들어가서 오래지 않아 5신통을 얻었다.
得五神通已 自念 誰當與我作檀越者 如王子阿闍世 有大王相 欲與爲親厚 到天上取天食 還到鬱旦羅越 取自然粳米 至閻浮林中 取閻浮果 與王子阿闍世 或時自變其身 作象寶 馬寶 以惑其心 或作嬰孩坐其膝上 王子抱之 嗚唼與唾 時時自說己名 令太子知之 種種變態以動其心
5신통을 얻고는 생각했다. “누가 나의 단월이 되어주겠는가? 아사세(阿閣世) 왕자는 대왕의 상호가 있으니, 그와 친해져야 되겠다” 그리고는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음식을 취하고, 다시 울단월(鬱旦越)에 들러 저절로 생긴 쌀[粳米]을 구하고, 다시 염부숲에 들러 염부 열매를 따 가지고 와서는 아사세 장자에게 주었다. 어느 때는 스스로의 그 몸을 변화하여 코끼리ㆍ말보배가 되어 그의 마음을 현혹시켰으며, 혹은 어린아기가 되어 그의 무릎에 앉기도 했는데, 왕자는 안고 입을 맞추거나 핥아 줄 때면 가끔 자기의 이름을 말해서 태자로 하여금 알게 하며, 갖가지 변태를 부려 그 마음을 흔들었다.
王子意惑 於奈園中大立精舍 四種供養 幷種種雜供 無物不備 以給提婆達多 日日率諸大臣 自爲送五百釜羹飯
提婆達多大得供養 而徒衆尟少 自念 我有三十相 減佛未幾 直以弟子未集 若大衆圍繞 與佛何異 如是思惟已 生心破僧 得五百弟子 舍利弗 目犍連說法敎化 僧還和合
왕자는 홀딱 반해서 나원(奈園) 안에다 큰 정사를 지어 바치고 네 가지 공양과 갖가지 물건을 공양하여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게 하였다. 그로써 제바달다에게 공양하고 날마다 대신들을 거느리고 가는 한편 스스로 5백 개의 솥에 국과 밥을 보냈다.
제바달다는 많은 공양은 얻었으나 무리가 적은 것을 섭섭해 하면서 생각했다. “나에게는 서른 가지 상호가 있으니, 부처님과는 불과 둘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제자가 모이지 않기 때문인데 만일 대중이 둘러싸 준다면 부처님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승단을 깨뜨려 5백 명의 제자를 얻었으나 사리불과 목건련이 다시 이들을 설법하고 교화하여 승단은 재차 화합하게 되었다.
爾時 提婆達多便生惡心 推山壓佛 金剛力士以金剛杵而遙擲之 碎石逬來 傷佛足指 華色比丘尼呵之 復以拳打尼 尼卽時眼出而死 作三逆罪 與惡邪師富蘭那外道等爲親厚 斷諸善根 心無愧悔
이때, 제바달다는 더욱 나쁜 마음을 내어 산을 밀어 부처님을 압사시키려 했으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금강저(金剛杵)로써 멀리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서진 돌조각이 날아와 부처님은 발가락에 상처를 입고 마셨다. 이를 본 화색(華色) 비구니가 그를 꾸짖으니, 그는 주먹으로 비구니를 때렸는데, 비구니가 눈알이 빠져 죽음으로써 세 가지 극악한 죄를 지었다. 그는 다시 나쁘고 삿된 스승인 부란나(富蘭那) 외도 등과 친교를 맺어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었다.
復以惡毒著指爪中 欲因禮佛以中傷佛 欲去未到王舍城中 地自然破裂 火車來迎 生入地獄 提婆達多身有三十相 而不能忍伏其心 爲供養利故 而作大罪 生入地獄
또한 독약을 손톱에 묻혔다가 부처님께 예배하는 기회에 해치려 했으나, 아직 왕사성에 채 이르기도 전에 땅이 저절로 갈라지고 불수레[火車]가 마중을 나오더니 산 채로 지옥으로 들어갔다. 제바달다는 몸에 서른 가지 거룩한 모습이 있으되 그 마음을 항복시키지 못하여 공양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갔다.
*귀의(歸依 돌아가다·돌아오다·몸을 의탁하다 귀/의지하다·믿다·따르다 의)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목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컫고,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과거 전생에 부모에게 한 악행의 과보로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로자(鶖鷺子) ·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역(漢譯)한다.
사리자(舍利子 · 舍梨子)는 샤리(Śāri)의 음역어 '사리'와 푸트라(putra)의 한역어 '자(子)'를 합한 것이다. 이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사리란 그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 어머니가 많은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제일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불렸다고 한다.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目犍連)과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Sañjaya)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 제도된 오비구(五比丘)중 한 분인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초기 경전의 여러 곳에 부처님께서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십대제자(十大弟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목련에게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그리고 또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어, 다비한 후 기원정사에서 장례를 치렀다. 수달장자는 존자를 위해 탑을 세웠다.
*약석(藥夕) ; 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말.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나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는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것(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것(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것(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것(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것(鳥殘).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업연(業緣) ; 업(業)의 과보(果報)를 초래하는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以外)의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아란(아난阿難)존자와 지옥고를 받는 조달의 대화 ;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1권 17칙 조달(調達)’ 참고. p137~138.
世尊因調達謗佛 生身入地獄 遂令阿難傳問 你在地獄安否 云我雖在地獄如三禪天樂 佛又令阿難傳問 你還求出不 云待世尊來便出 阿難云 佛是三界大師 豈有入地獄分 云佛旣無入地獄分 我豈有出地獄分
조달이 부처님을 비방한 죄로 산 채로 지옥에 빠졌는데, 세존께서 아난을 보내 물었다. “그대는 지옥에서 견딜 만한가?” 그가 대답하였다. “내가 지옥에 있는 것은 마치 3선천(禪天)의 쾌락과 같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을 시켜 물었다. “그대는 벗어나기를 바라는가?” 그가 말하였다. “세존이 여기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오면 곧 나가리라”
이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은 삼계(三界)의 대사이거늘 어찌 지옥에 들 분(分)이 있겠는가?” 그러자 조달이 말하였다. “부처님이 이미 지옥에 들어올 분(分)이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서 나갈 분이 있겠는가”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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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〇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〇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絶]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〇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〇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 자기 본분의 소식, 궁극적인 진실을 가리키는 선종의 화두이다.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미생면목(父母未生面目)이라고도 한다.
[참고] 『선문염송·염송설화(제15권)』 (5) (동국역경원) 제597칙 ‘일격(一擊)’ p375~378. 『전등록(제11권)』 (동국역경원) ‘등주 향엄 지한 선사’ p718~720.
〇대혜(大慧)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향엄(香嚴) 화상이 백장(百丈) 스님 문하에 있을 때 총명 영리하고 본 것, 들은 것이 많았으나 여러 해를 참선(參禪)해도 이루지 못했다. 백장 스님이 천화(遷化)하고 나중에 위산(潙山)으로 가니, 위산 스님이 묻기를 ‘듣자 하니 그대는 백장의 회상에 있을 때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는데, 이는 그대의 지식과 상념(想念)일 뿐이다. 그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일로써 한 구절 대답해 보라[父母未生時 試道一句看]’ 하였다.
선사는 위산의 이 한 물음을 받자 당장 앞뒤가 막막해져서 곧장 방으로 돌아가 평소에 읽었던 문자를 뒤적이면서 대답거리를 찾았으나 한 구절도 알맞은 대답거리를 구하지 못해 끝내 스스로 탄식하되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구나[畵餠不可充飢]’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주 위산에게 설파(說破)해 주기를 청했는데 위산은 ‘내가 만일 그대에게 설파해 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에게 원망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파해 줄 수 없다(전등록 :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고 하였다.
하는 수 없어 평생에 모은 문자와 서적들을 끌어내다가 불사르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이에 위산에게 하직을 고하고 곧장 남양(南陽)으로 가서 충(忠) 국사의 유적에 참배하고 거기에 머물렀다. 어느날 초목을 베다가 기와 조각을 주워 던진 것이 대나무에 맞아 소리가 나자, 자신도 모르게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콧구멍을 만났다.(깨달은 뒤에 다음과 같이 송했다)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蹤跡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한번 쳐서 알든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됐네. 행동하는데 옛길을 드날리니 초췌한 처지가 되지 않는다.
곳곳에 자취가 없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최상의 근기라 하네.
그때의 경지는 마치 어두운 데서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병든 이가 의원을 만난 것 같으며, 가난한 이가 보물을 얻은 것 같고, 아기가 엄마를 만난 것 같았다.
마침내 목욕 분향(焚香)하고 멀리 위산 쪽을 향해 절을 하면서 찬탄하되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가 부모보다 낫습니다. 그때 만일 제게 설파해 주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마삼근 (麻三斤) : 화두의 하나.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 하였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한 상태.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No.09)—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4분21초)
다맛 단정(端正)히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이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싹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또 무자(無字)를 허는 이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혹 혼침(昏沈)이 와 가지고 꾸벅 또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두 번 소리내어) 화두를 또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한 5분—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한 5분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또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마(魔)가 소멸(消滅)이 되고. ‘마가 소멸된다’는 것은 혼침도 그것이 마(魔)고, 산란심(散亂心)도 그것도 마(魔)다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마(魔), 안에서 일어나는 마(魔), 모든 것이 다 마(魔)여, 마(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그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그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악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12분8초~16분28초)
[참고 ❷]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6분28초)
〇화두를 들으라 들으라 하니까, "화두를 어떻게 듭니까? 어디가 놔졌어야 그놈을 들지, 어떻게 화두를 듭니까? 들어서 배꼽 밑에다가 딱 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그다가 붙이며.." 아주 그 대답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화두를 든다」고 하는 것은 「화두를 생각한다」고 우선 초학자(初學者)는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이고.
"생각은 되는데 관(觀)이 안 됩니다. 근데 그 어떻게 하면 관(觀)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묻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觀)이란 게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도 있는데.
「관(觀)」이라 하는 것도 내나 「생각」입니다. 생각에 일종인데, 그 생각을 자꾸 화두를 생각하고—사량심(思量心)으로 생각해 갖고는 안 되고, 사량심이 아닌 꽉 맥힌 의심(疑心),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한 번씩 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고 그러고.
한 번 '이뭣고?' 하고 화두를 한 번 생각하면, 들었으면, 그 생각이 한참 동안, 1분이 되었건 3분이 되었건 내지 10분 동안이라도 그 생각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여가 딱 있으면 그동안에 「화두가 들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딴생각이 쑥 들어와 가지고 화두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으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고.
또 딴생각이 들어오지는 안 했지마는 '이뭣고?' 한 그 생각이 희미해져 버려. 그래 가지고는 화두를 든 것인지 안 든 것인 중도 모르고 그냥 조용한 채 우두거니 앉어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기도 모른 새에 까빡 이렇게 (졸게) 되고 하는데. 그럴 때는 또 다시 화두를 떠억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한 번씩 챙기는 것이여.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딱 들어져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계속 그렇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서 그 생각이 쭈욱 있으면 자꾸 연거퍼 그 위에다 자꾸 포개 놓지 안 해도 되어요.
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화두(話頭)가 언제나 같이 되어 가도록 그렇게 익혀 나가면, 단전호흡을 터억 하면 화두는 그 가운데 제절로 딱! 들어지고, 또 화두를 딱! 들면 제절로 단전호흡이 제절로 같이 따라오도록 이렇게 나중에는 되어 가는 것입니다.(15분5초~19분2초)
〇내가 부모한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원래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 진여불성이라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마는 사실은 원래는 그러한 이름도 없는 것이고, 그런 특정한 모냥다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합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대관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조화(造化)가 무쌍(無雙)하냐 그 말이여.
여기 법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이 환하거든. 목포를 생각하면 목포가 환하고, 부산을 생각하면 부산이 환하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지리산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왔다갔다 번갯불보다도 더 빠르다.
눈을 통해서는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는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는 맛볼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손으로는 뭘 잡고, 대관절 무슨 물건이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손에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하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러면서도 알 수가 없으니, 그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벌써 그거 '이뭣고?' '이뭣고?'
자꾸 '이뭣고?'를 챙겨서 그놈이 무엇인가를 참구(參究)를 하다 보면, '이뭣고?' 하고 혀도 까딱도 않고 '이뭣고?' 소리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생각이 탁! 있거든. 그러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면 벌써 그것이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라.
지끔 요 얘기할 때도 환히 있거던, 화두가.
틀림없이 여러분들 지끔 제 말씀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뭣고?'가 타악 되어져 있을 거여. '이뭣고?'(37분50초~40분19초)
[참고 ❸] 송담스님(No.364)—19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5분2초)
‘참선, 참선’ 다 좋은 줄 다 알고 참선(參禪)이야말로 우리 불법 가운데에 최고의 수행 방법이고, 참선만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다 인증을 하지마는, 견성성불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흔치 않은 것은 무엇이냐?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놈을 어떻게 그놈을 타고 넘어서 그 속에 있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를 캘 수가 있느냐?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번뇌 망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일어나는 대로 나둬. 어떻게 바다에 가서 그 파도를 없앨라고 해봤자 그 없어지겠습니까?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아무리 몽둥이로 팬들 그 파도가 없어질 리가 없어. 오히려 더 파도가 일어날지언정 없어질 리는 없어.
일어나는 파도를 고대로 놔두고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탁!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화두를 생각을 해, ‘이뭣고’—화두를 생각하는 것과 화두를 거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러요.
‘이뭣고’ 자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밤낮 그렇게 하라고 권고는 합니다마는 그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거든.
화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뭣고, 이뭣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만 밤낮 생각해봤자, 그것이 백천만 겁을 무량겁을 그놈을 생각하고 있어 봤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냐 그 말이여.
‘이뭣고?’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그 알 수 없는—‘이뭣고?’ 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하거든.
그 의심을, 간절한 의심을 관조하는 데에서, 거기에서 그 의심이 점점 간절해지고 점점 의심이 더 깊어지고 그 의심이 점점 커져서 더이상 의심이 커질래야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래야 간절할 수가 없이—그래 가지고 화두를 들면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간절히 일구월심(日久月深)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생각을 내서 들라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온다 그 말이여.
그때는 화두를 안 들어도 의단이 턱! 앉으나, 서나, 누웠으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이 독로하게 되거든. 좀 잊어버리고 딴생각을 좀 할려고 해도 안 되는 거여. 이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경계에 가서 그놈이 툭! 터지게 되는 것이거든.(18분19초~23분18초)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그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이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함.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가 된다. 탄생(誕生 : 룸비니) · 성도(成道 : 붓다가야) · 입멸(入滅 : 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교진여(憍陳如) ; 산스크리트어 ājñāta-kauṇḍinya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 요본제(了本際) · 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오비구(五比丘)의 한 명.
우루벨라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다섯 명이 고행했으나 싯다르타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긴 여행을 하여 그곳을 찾아 설한 중도(中道)의 이치와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곧 붓다에게 귀의하였으며, 교진여는 그 자리에서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오비구(五比丘)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처음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 붓다가 출가하던 때 부왕(父王, 정반왕)의 명으로 이들은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들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됨.
①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音寫).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는 이름, 교진여(憍陳如)는 성(姓).
②아설시(阿說示) :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사(馬師)·마승(馬勝)이라 번역. 사리불(舍利弗)이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설시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③마하남(摩訶男) : 팔리어 mahānāma의 음사. 대명(大名)·대호(大號)라고 번역.
④바제(婆提) : 팔리어 bhaddiya의 음사. 인현(仁賢)·소현(小賢)·현선(賢善)이라 번역.
⑤바부(婆敷) : 팔리어 vappa의 음사. 기식(氣息)·장기(長氣)라고 번역.
*(게송)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 ; 한 곡(曲)을 타고 두 곡을 타는데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비 개인 뒤 밤 연못에는 가을 물만 깊구나.
[참고 ❶] 『벽암록(碧巖錄)』 (불과원오선사佛果圜悟禪師 저) 제4권 제37칙 ‘반산삼계무법(盤山三界無法)’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 송(頌) 참고. ‘三界無法 何處求心 白雲爲蓋 流泉作琴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참고 ❷]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3』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7권 253칙 ‘삼계(三界)’ 설두현(雪竇顯) 송(頌) 참고. p154~155.
盤山이 垂語云하되 三界無法하니 何處求心이며 四大本空하니 佛依何住오하다
반산(盤山)이 설법하여 말하였다. “삼계에 법이 없으니 어디에서 마음을 구하며, 4대가 본래 공하거늘 부처가 어디에 머무르겠는가?”
雪竇顯이 頌하되 三界無法하니 何處求心고하니 白雲으로 爲蓋하고 流泉으로 作琴이로다 一曲兩曲無人會하니 雨過夜塘秋水深이로다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삼계에 법이 없으니 어디에서 마음을 구할꼬 하니, 흰구름으로 일산(日傘)을 삼고 흐르는 개울로 거문고를 삼는다.
한 곡조, 두 곡조, 아는 이 없으니 밤비 지난 뜰 앞의 못에 가을 물이 깊구나.
[법문 내용]
(게송)운개공자활~ / 경봉대종사 열반 /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선지식의 열반상 / 포살(布薩) /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대한 운문 선사의 가르침.
조달의 역행, 고불화현 / 아난존자와 조달의 지옥에서의 대화 / 모래찜은 자기의 건강상태에 맞게 지혜롭게 해야 / 참선도 올바르게 정진해야.
〇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수 있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〇참선(參禪)이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해 가지고 어리석게 이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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