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616)—19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50분)(초심자를 위한 법문14)
(1/3) 약 22분.
(2/3) 약 16분.
(3/3) 약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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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동서남북 정착한 데가 없어. 겨울에는 남쪽 선방(禪房)에 가서 지내고, 여름에는 저 북쪽 선방으로 가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갔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반(道伴)을 찾아서 또 지내기 좋은 도량(道場)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딱 정착한 데가 없이 계절 따라서 왔다갔다하는데,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수좌(首座)의 일생애(一生涯)라 하는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주장자(柱杖子)에 달려 있다 그 말이여.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혀끄터리는 다못 안개와 연기, 연하(烟霞)의 맛을 가늘게 씹는 것이다 그 말이여.
연하를 씹으면서 연하의 맛을—무슨 맛있는 고량진미(膏粱珍味), 산해(山海)의 진미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그 연하(烟霞)의 맛이라는 게 무엇이냐?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선열(禪悅)로 위식(爲食)하는 겁니다.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그 말이여.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봉(千峰) 다시 만봉(萬峰)을 향해서 들어가더라.
‘천봉 그리고 또 다시 거기서 더 만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 말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말 길[語路]을 더듬어서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바로 의심관(疑心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갈수록 깊고,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봉만봉갱만봉(千峰萬峰更萬峰)을 향해서 들어간다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 · 비구니 · 청신사 · 청신녀 형제자매 도반들이 여기에 모다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내는 처소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지마는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뜻을 같이한 도반끼리 한자리에 모여서 그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 선방에도 다 녹음 테이프(錄音tape)가 있어서 거기서 들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여기에 와서 지내는 데에는, 도반들 같은 도반들을 여기서 만나서 입을 벌려서 말은 안 하지마는 한번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마음과 마음이 마주침으로써 한 목표를 향해서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 선후배 도반이 만나는데 뜻이 있는 것이고, 석 달 동안을 알뜰히 정진을 하고 해제 때 또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 없는 가운데에 거기서 깊은 말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에 활구참선,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이냐?’ 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 조실 스님의 법문 속에 결제 법문은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어서 산승이 결제 법문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석 달 동안을 무장무애하게 그리고 알뜰하고 짬지게 지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마다, 철마다 여름이면 여름 결제, 겨울이면 겨울 결제 하는데, 처음에 첫 철에 나갈 때에는 엄섬하고 경건하고 아주 근신(謹愼)하는 마음으로 방부를 들이고 한 철을 지냅니다.
두 철이 또 지나가고 세 철, 네 철 지내다 보면 엄섬하고 경건한 그러한 기분은 차츰 사라지고 모다 아무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차츰 해이(解弛)해져서 그럭저럭 한 철 지내고, 또 거기서 해제를 하면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지내고 해서 ‘장판때’만 반들반들 묻어 가지고, 철저한 신심으로 정진하는 기운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해이해지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옛날 스님네들은 그 ‘장판때’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결단코 그러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말이 해당이 된다면 안 되겠다고 하는 도반으로서의 노바심(老婆心)에서 나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하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요,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묻어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꿀을 핥아먹다가 혀를 베게 되는 것이니 설사 칼끝에 꿀이 묻었다 하더라도 그 꿀을 핥아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여. 고독지가(蠱毒之家)라 하는 것은 그 흉가(凶家)—샘에 독이 풀어져 있는 집에 물은 아무리 목이 마른다 하더라도 그 물을 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무엇이 칼날 위에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에 물이라는 게 무엇이냐?
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해 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 주고, 약을 지어 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그러셨습니다. 다른 모든 짐승은 뿔이 두 개씩인데 코뿔소는 코끝에 뿔이 하나가 딱 있는데, 그 하나만을 앞세우고 일생을 사는데 ‘그렇게 외롭게 살아라’
이끗과 명예 모다 그런 데에 부합을 하지 말고,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말고, 돈 많이 주는 데 찾아당기고, 맛있게 해 주는 데 찾아당기고, 그런 데에 휩쓸리지를 말고, 먹고 잘 먹고 못 입는 것은 그것은 인연에다 맡겨.
가난한 데에 검박하고 그래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데를 찾아가야지, 돈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맛있게 잘 받들어 주는 데만 찾아다니면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다 혀를 짤리는 거고, 고독지가(蠱毒之家)에 물을 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말입니다.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도처가 간 곳마다 시비가 끊어지는 데가 없고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시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그 시비 속에서도 몸을 비켜서 나가는 거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표범과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런 속에 자재(自在)하게 행해야 한다 그 말인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종단이 퍽 시끄럽습니다. 총무원, 조계사 모다 전국승려대회도 일어나고, 이 파 저 파 해 가지고 천여 명씩이 모아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어떻게 하면 종단을 잘해 나갈까? 자기가 나가야 이 종단을 잘해 나가겠다’ 피차 그런 마음에서 하다보니까 충돌이 생기고, 외부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분은 그런 나름대로 종단을 걱정하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해서 자기가 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끓는 용기와 원력으로 모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것이 진정코 종단을 위하는 일인가? 불교를 위하는 일인가?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고, 일양으로 매도할 일도 못되고,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은 자각(自覺) · 각타(覺他) · 각행원만(覺行圓滿)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목표를 삼고 나가야 하는 것인데, 대발심(大發心)을 해서 대지혜와 대자비로 실천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각자 자신의 원력과 또 자기 믿는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는 사람 또 주력(呪力) 공부를 하는 사람, 염불을 하는 사람 또 나름대로 자기가 터득한 부처님의 말씀을 포교하는 데에다가 관점을 두고 또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수행을 해야겠다 또는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념주관(四念住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하는 신 · 수 · 심 · 법(身受心法)을 향해서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각자 그 근기(根機)와 수준에 따라서 이것이 그 단계에 따라서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직절근원(直截根源)하는 이 활구참선에 의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종단이 이렇게 시끄러울수록에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각자 다른 철보다도 훨씬 더 자가(自家) 중심(中心)을 탁! 세우고서 정말 알뜰하고 짬지게 이 한 철을 잘 지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금년 삼동안거(三冬安居)는 다른 안거 때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조용하게 말없는 가운데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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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보면은, 언젠가도 이 말씀을 도반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능히 헤어진 옷을 입고, 손추손(飱麤飱)하며,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고, 요연(了然)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인(亻) 변에 염소 양(羊)’ 한 자(字)는 ‘거짓 양(佯)’ 자인데, 양치(佯癡) ‘어리석을 치(癡)’ 자, 양치(佯癡)는 거짓 어리석은 척하는 것입니다.
양병(佯病)하면, 실제는 병이 안 났지마는 거짓 병을,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佯病)이라 그러는데, 설사 속은 환하니 지혜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지마는 완전히 바보처럼 하루하루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바보처럼 지내냐?’ 하면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짓을 하라’ 이겁니다. 뭔 말을 하면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아주 팔부(八부)도 못되는 바보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이여.
그렇게 하는 것이 최생기력이능유공(最省氣力而能有功)이다.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다 그말이여.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하고 선방에 와서 잘난 척하고 그래 가지고 꺼떡하면 시비가 일어나고, 그렇게 해 가지고 다른 분한테 공부하는 데 폐(弊)를 끼치고 선방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이러한 것은 진짜 똑똑한 사람도 아니요, 진짜 발심(發心)한 사람도 아니요, 선방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인가를 알 수가 없는 의심스러운 그러한 행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도 공부 못하고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되니, 칼을 들고 거리에 나가서 강도질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다 그 말이여.
칼 들고 강도질 해봤자 사람 죽이고 감옥에 가서 징역 살고 죽어서 지옥에 가면 그 사람 한 사람에 끝나는 거지만, 신성한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정진하는 사람을 마음을 흩어트려 가지고 공부를 못하게 하면 감옥에 가는 데에만 그치겠습니까?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가 가지고 무량겁토록 헤어날 기약이 없다.
왜 그러냐? 정진을 열심히 해서 성불할 사람을 방해를 쳤으니 사람 생명을 하나 둘 죽이고 재산을 뺏는 죄에다가 비교가 되지를 않는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헤어진 옷을 입고,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바보가 되어 가지고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을 해 나가면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다」 이렇게 오조홍인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는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 육조 스님에게 법을 전한 대선지식(大善知識)이신 것입니다.
항상 산승이 여러 도반들에게, 특히 이 보살선방에 계신 보살님네한테도 누누이 말씀을 했지마는, 세속에서는 자기를 과시하고 똑똑한 체하고, 자기의 역량을 항상 널리 남 앞에 선전하고 그래야 남이 알아주고, 그래야 자기가 대접도 받고 또 여러 가지 사회활동도 할 수 있고 그러지만,
절이라고 하는 데는 특히 선방에 수행하는 곳이라 하는 것은 거기서 무슨 표를 얻어 가지고 국회의원이나 무엇에 당선할라고 모이는 곳도 아니고, 자기가 재산이 많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려고 온 것도 아니고, 학식이 많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려고 온 것도 아니고,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냐 이 말이여.
무엇을 물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억울한 소리를 좀 하더라도 ‘예, 제가 잘못됐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항상 그러한 마음으로 산다면 자기도 장애가 없고 남에게도 피해를 안 주니, 그래서 이 선원에서는 조용하게 말없이 묵묵한 가운데 자기 소임을 하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알뜰하게 화두 단속을 하고, 항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석 달 동안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는 사이에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내가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오조 스님께서 「최상승론」 마지막에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분명하게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자기 본 마음,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이것이 제일이니라. 만약 부지런히 이렇게 정진을 안 한다면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냐. 내가 이렇게 말해 준 이것이 너희들을 속이는 것이라면 나는 당래(當來)에 18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하늘과 땅에게 맹세하노니 내가 이렇게 간곡히 너희들에게 말해 준 말을 너희들이 믿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다면은 너희들이야말로 세세생생에 호랑이한테 물려갈 것이다’ 대단히 무섭고도 엄섬한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는데,
이 오조 스님의 「최상승론」에 있는 아까 말씀드린 이 요점을 정말 깊이 믿고 일생에 좌우명을 삼도록 간곡히 부탁하는 표현이 이렇게 참 무서운, 하늘 땅에 맹세를 하고 말씀을 해 주신 것이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겹도록 큰 자비에서 나오신 법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율문(律文)에 입중오법(入衆五法)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첫째, 대중과 같이 살 때에는 하심(下心)을 하라 그랬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하심을 해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말고, 항상 하심하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비심(慈悲心)을 가지라 그겁니다. 어려운 소임은 자발적으로 맡고, 어쨌든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생활 가운데에 폐를 주지 않도록 그렇게 말 한마디라도 자비스럽게 하고, 모든 행동을 자비심을 가지고 해라 그거거든.
셋째는 공경심(恭敬心)이니, 항상 다른 스님네를—물론 후배가 선배 스님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배 스님도 덮어놓고 후배라고 해서 무시하고 억압을 할라고 그러고 짓밟을라고 그럴 것이 아니라, 먼저 중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수행을 얼마나 했가니 덮어놓고 후배를 업신여기고 자기가 목에다 힘주고 그래서는 안되는 거고, 또 후배는 하루를 먼저 되었다 하더라도 항상 선배를 공경히 여겨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러다보니 피차 서로 공경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보고 잘못된 점을 볼 필요가 없고, 성불(成佛)을 해도 부처님은 중생을 시봉(侍奉)하기 위해서 사시는 것이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아니한 땅이 없다고 할 정도로 불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그러시는 것이 불보살의 생애인 것인데, 하물며 우리 출가한—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목표로 하는 우리야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넷째는 지차서(知次序)니라. 차서(次序)를 알아라. 행주좌와 중에—공양할 때나, 법문을 들을 때나, 법당에 오르내릴 때나, 도량에서 운력을 할 때나, 항상 차서를 알아서 자기의 분(分)을 알아 가지고 그렇게 차서를 알아야지, 차서를 모르고 마구잡이 그렇게 하면 질서가 문란해져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게 되니 대중의 처소가 시끄럽게 되고 그런 것이니 차서를 알아라.
다섯째는 불설여사(不說餘事)니라. 나무지기 일을 말하지 마라.
나무지기 일이라는 게 무엇이냐? 우리는 자기 소임을 열심히 충실히 살면서 대중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무슨 딴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묵언(默言)’이라 하고 묵언표를 달 필요도 없이 하루에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 속에는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이 충실하고, 무엇을 보나 무슨 소리를 듣거나 그것이 귀에 들릴 것도 없고 눈에 보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뿐이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그 의심이 희미해지면 또 들고, 딴생각이 들어오면은 딴생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딴생각 일어나면 일어난 그대로 놔둔 채 터억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만이여. 그것이 딴 잡념과 망상 번뇌를 물리치는 방법이여. 물리치는 방법이 그대로 놔두고 화두만 딱 드는 것이 그것이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이여. 그러다 보니 무슨 잡담할 겨를이 있으며, 무슨 시비를 할 겨를도 없고, 내가 시비에 말려들 것도 없다 그 말이여.
입중오법(入衆五法)을,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이렇게 내가 부탁할 것도 없이 다 그렇게 지키고 계신 분이 대부분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간혹 한두 분이 이러한 것을 어기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이번 한 철 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지키고 보면 자기 자신도 장애 없이 잘 정진을 하게 될 것이고, 해제를 할 때에도 ‘참, 내가 이번 한 철은 내가 너무너무 짬지게 잘 지냈다’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해제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철 한 철을 지내고 보면 오조 스님의 그 「최상승론」에 있는 법문과 저절로 계합(契合)이 될 것이고, 호랑이한테도 안 물어가게 됩니다.
또 오조 스님도 이런 법문을 천지에다 대고 맹세를 하셨는데, 우리 후배 후손들이 그 법문을 가슴 깊이 명심을 하고 알뜰히 정진을 한다면은 오조 스님을 비롯한 역대조사와 삼세제불보살(三世諸佛菩薩)들도 다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우리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 정말 자비의 눈초리로 우리를 호념(護念)해 주실 것입니다.(21분31초~37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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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귀항(閻王自歸降)이리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선객(禪客)들이, 어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견줄 수가 있겠느냐? 천상천하에 독보(獨步)다 그 말이여.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재산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색(色)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청춘을 버리고 인생으로서 태어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일대사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 말이여. 아무도 견줄 수가 없어. 유아독보(唯我獨步)거든.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모든 인연이 다해 가지고 이승을 하직할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합장 공경을 할 것이다.(閻王自歸降) 이건 조사 스님의 게송(偈頌)인데.
참선이라 하는 것이 1년, 2년, 3년을 내지 7년, 10년을 해도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알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질 것도 없고, 얻어질 것도 없고, 무엇이 보일 것도 없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이거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정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읊으신 공안에,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그랬습니다.
알 수 없는 의단으로 정말... 그 의심이라 하는 것이 눈 미간(眉間)을 찌푸리면서 용을 쓰면서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심자(初心者)는 간절히 의심을 하라 하니까 용을 쓰면서 ‘이뭣고?’ ‘이뭣고?’ 하다가 상기(上氣)가 되어 가지고 골치가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세를 단정히 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다 빼고, 목의 힘도 다 빼고, 머리끝에 머리카락 하나를 들어 가지고 대롱대롱하니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거기에다 무슨 힘을 어디다 주겠습니까? 그러한 마음.
이건 좀 정진을 많이 해보면 머리카락 하나를 들고—가부좌(跏趺坐)를 하는 그 수행인이 머리카락 하나에 의해서 이렇게 대롱대롱하니 매달린 그 경지를 스스로 이해가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인 것입니다. 단정하면서도 모든 힘을 다 뺐어.
그리고서 눈은 감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뚝! 부릅뜨지도 말고 평상개안(平常開眼)이여.
그래 가지고 방바닥 보기로 한다면 약 3미터 지점, 3미터 내지 2미터 지점이 요렇게 보일 정도로 눈을 뜨되, 그 지점을 응시(凝視)를 하는 것이 아니여. 눈을 뜨고 볼려고 하면 그 자리가 보일 정도로 자세를 잡으라 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다가 무슨 콩이나 뭐 갖다 놓고 그놈을 들여다보고 있고 그런 짓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서 호흡을 하되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라 하니까 그것을 무리하게, 잘 몰라 가지고 억지로 하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오히려 더 상기(上氣)가 오고 이런 호소를 하는 분이 가끔 있는데, 단전호흡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하는 호흡으로 다맛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시고 내쉴 때 코로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또 내쉴 때는 그 아랫배가 약간 차츰차츰차츰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들어마실 때 너무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억지로 참고 그런 짓 하는 거 아니에요. 칠부나 팔부 정도 조용하니 들어마셨다가 잠시 멎구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여. 조금도 무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몇 번 하고 나서 ‘허후∼’ 숨을 몰아쉬어야만 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호흡을 하기 전에 준비호흡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숨을 급히 빨리 그리고 가뜩 들어마셔.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셔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내쉴 때는 입으로 ‘후∼’ 하고 내쉬는데 완전히 가슴을 홀쭉히 하면서 다 내뿜는 거여.
다 내뿜었으면 한번 더 가뜩 들어마셨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후∼’, 한번 더, 3번을 그렇게 해서 가슴 속에 있는 모든 묵은 공기를 다 뱉어버리는 것이여. 그것이 준비호흡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여.
그렇게 하면 기분도 상쾌하고 또 몸의 각 기관에 자극을 주어서 정신이 새로워지는 것이고, 그 준비호흡은 3번 처음에 시작할 때 그렇게 하는 거고.
정식(본호흡)으로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 자연스럽게 조용하게 코로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코로 내쉬는데 조금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들어마시는데 약 3초, 머무르는데 3초, 내쉬는데 약 3, 4초 이렇게 해서 그러면 합해서 한 10초 가량 걸리는데,
그런 정도 호흡은 누구든지 할 수가 있고 조금도 무리가 안 가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한 달 두 달 하다 보면은 차츰차츰 호흡이 안정이 되면 한 15초 또 더 잘되면 20초, 이렇게 늘려서 한 30초에 한번씩...
그것도 무리가 없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렇게 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은 부작용이 일어나서 못쓴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게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이것은 지극히 초학자를 위해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미 단전호흡도 잘되고 화두도 잘되는 분은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정진을 길들여 가면 상기병이다 소화불량이다 그런 병이 있는 사람도 낫게 되는 거고, 건강도 좋아지고 정진도 잘 될 것입니다.
오늘 백일기도 입재도 되고 하니 이 백일기도에 드신 분은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되, 가정에서도 항상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고, 그러면 가정이 바로 선방(禪房)이 될 것입니다.
요새 세상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렵지마는 불법을 믿는 사람은 오히려 이럴 때에 더욱 발심을 해서 잘 모든 것을 이겨 나가시면 또 세상이 다시 또 살기 좋게 될 것입니다.(37분28초~49분18초)(끝)
[법문 내용]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항상 첫 철 나갈 때의 신심으로 정진해야, 장판때 / (게송)~ / 칼끝의 꿀,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종단이 시끄러울수록 더 알뜰하게 지내야 /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 맹세 / 입중오법(入衆五法) / (게송)활구참선객~ /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단정한 자세, 단전호흡.
〇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해 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 주고, 약을 지어 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〇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〇『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청허당 휴저 엮음 | 연관 옮김 | 희양산봉암사)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다만 능히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거짓으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보처럼 하는 것이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니라.
若有人依文行者卽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그대를 속인다면 미래에 십팔 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않는다면 세세생생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리라.
〇*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〇참선이라 하는 것이 1년, 2년, 3년을 내지 7년, 10년을 해도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알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질 것도 없고, 얻어질 것도 없고, 무엇이 보일 것도 없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이거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정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읊으신 공안에,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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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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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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