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700/(626~650)2021. 7. 3. 17:01

 

 

((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45분)

 

 

(1/3) 약 14분.

 

(2/3) 약 17분.

 

(3/3) 약 14분.

 


(1/3)-----------------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야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간시비도불관(世間是非都不管)하고  일여청류소명월(日與淸流掃明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하니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로다.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하고, 올올히 일 없이 청산을 대한단 말은 일체를 도막사량(都莫思量) 하고 세상의 흥망성쇠와 생노병사까지라도 다 놓아 버렸으니 이것이 일 없는 무사(無事) 한도인(閑道人)이거든. 그리고서 청산을 떠억 대하고 앉아서 정진하는 거동(擧動)을 ‘올올무사대청산(兀兀無事對靑山)’이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더위도 잊어버리고, 일체 시비(是非)도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해서 석 달 해제를 맞이했어.
그러니 그 기상이 안고사해천마공(眼高四海天魔拱)이여. 그 청정하고 의연한 자세가 하늘에 뻗찌르는, 그러고 사해(四海)를 덮고도 남을 만한 그런 기상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천마(天魔),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그런 것들이 다 그 앞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 말이거든.

세간시비(世間是非)를 도막관(都莫管)하고, 세간에 옳고 그른 것을 다 놔 버리고,
일여청류(日與淸流)로 소명월(掃明月)이다. 날마다 흐르는 물이 마치 명월(明月)을 씻은 거와 같이 그렇게 모다—‘어떻게 흐르는 물이 명월(明月)을 씻느냐’ 하면은 하늘에 밝은 달이 물에 비추는데, 그 맑은 물이 계속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물에 의해서 물에 뜬 달이 씻겨진 것에다가 비유해서, 우리가 정진하고 있는 경지가 마치 흐르는 물에 밝은 달이 씻겨가는 것에다가 비유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석 달 동안을 정진을 하셔서 그리고 해제 법요식에 이렇게 여러 곳 선방에서 운집을 했는데 오늘은 7월 15일 백중날이거든.
‘백중(百中)날’ 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란분(盂蘭盆)이라고도 하는데, 인도말로 '우란분'이라고 하는데 '우란분'이란 말을 번역을 하면 구도현(救倒懸)이여.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救濟)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려 가지고, 갖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영가를 구제하는 그래서 ‘구도현(救倒懸)’인데, 그것은 『목련경(目連經)』에 나오는 설화가—여기서 불가불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데.

목련존자(目連尊者)는 세속에 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했어. 출가하기 전에는 큰 장사를 하고, 그런데 (큰 장사를) 나갈 때 홀로 계신 어머니께 ‘어떻게 어떻게 하고 어떻게 어떻게 하시고 잘 계시라’고 했는데, 그 뜻을 전부 어기고 날마다 정법에도 어긋나고 도덕에도 어긋나는 그러한 언행으로써 갖은 악한 짓을 하다가 결국은 지옥에 떨어졌어.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갖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 목련존자가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인 그런 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도인이 되었는데, ‘그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어떻게 구제를 할 것인가?’ 갖은 방법으로 다 구제하려고 해도 이루어지지를 못해서, 그래서 부처님께 "지옥고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니까,
"칠월 해제 때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하면 석 달 동안 열심히 도를 닦은 그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과 그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그 정신으로 작관(作觀)을 하고 그래서 너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 목련존자는 탁발(托鉢)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려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어머니를 구제했다고 하는 목련경에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오늘도 이 해제 법요식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다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고 또 많은 청신사(靑信士) 청신녀(靑信女)들도 이 자리에 많이 모이셨습니다.
물론 이 용화사 법당 안에 모셔진 만년위패 법보영가들의 백중 천도 법요식도 아울러서 행해지겠습니다마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많고 그러시겠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께도 효도를 하고,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 선망부모에게도 이러한 때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돌아가신 분들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삼악도(三惡道)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있을런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이런 법요식에 참례를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천상 사람이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윤회를 하다가 금생에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또 이렇게 불자(佛子)로서 도반(道伴)으로서 이렇게 만나게 된 그 인연을 생각해 보면 참 깊고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와 선망부모의 천도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들도 과연 그런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의 윤회(輪廻) 속에 빠지지 않고 해탈(解脫)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때에 냉정히 스스로를 반성을 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 그리고 청신사 · 청신녀 그리고 비구 · 비구니 여러 도반들께서는, 세상이 물질 문명은 점점 발달을 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달이 되어서 살기는 퍽 편리하게는 되었으나, ‘진정으로 우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물질 문명이 발달한 만큼 더 행복해진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속의 발달에 우리도 발을 안 맞출 수도 없고, 다 버리고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다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오직 인연 따라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별것이 아니겠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모든 흘러감을 외면하고 자기만 혼자 옛날처럼 살기는 퍽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전적으로 무시는 하지 아니하면서도 항상 불자(佛子)로서의 자기 마음 닦는 일에는 절대로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3분36초)





(2/3)-----------------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이요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는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요. 닭장 속에 있는 닭은 먹을 것이 있지만, 시간 맞춰서 먹이를 후하니 주어서 배불리 먹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펄펄 끓는 전골냄비가 기다리고 있고,
야학(野鶴)은 무량천지관(無糧天地寬)이다. 들에 훨훨 날아다니는 학은 특별히 누가 양식을 주거나, 양식을 쌓아 놓은 것은 없지마는 천지에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자유롭게 살고 있구나.

이것은 세속에서 부(富), 재산을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모여서 남 보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마는, 그런 것을 모이느라고 죄를 짓고, 그것을 관리하느라고 죄를 짓고, 그것을 쓰느라고 본의 아니게 죄를 지어서 자칫 잘못하면은 그러한 업(業)으로 인해서 삼악도에 떨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고,
그런 것을 다 무상(無常)한 것인 줄 철저히 깨닫고 그런 것을 다 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으면, 그건 마치 들 학과 같이 내 소유라고 하는 것은 땅 한 뙈기도 없고 아무것도 소유물도 없고 명예와 지위 부귀영화도 없지마는, 들 학처럼 걸망 하나 짊어지고 바리때, 장삼(長衫)만 하나 있으면 어느 선방에로 다니면서 도를 닦을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생사 요달(了達)을 해서 일체중생을 제도(濟度) 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도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을 보면서,
그 밑에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무루(無漏)의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기를 원하노라. 이런 고인(古人)의 시가 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비구 · 비구니, 도반 여러분은 이러한 게송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추위나 더위나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모든 그런 것을 신심과 용맹정진(勇猛精進)으로써 그런 것을 극복하면서 열심히 도를 닦어야 할 것이고, 머리는 깎지 않고 비록 세속에 몸을 담아 계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비록 몸은 세속에 있지마는 그 정신 만큼은 이런 출가한 스님네 못지않게 생사 속에서, 부귀영화 속에서, 무상(無常)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해서 스님네 못지않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각오를 가지고 공부를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생사 문제는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계시지만, ‘삼세제불이 우리를 제도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얘기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의 그런 힘으로도 어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 때 삼세제불의 제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이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서 삼세제불이 억만 번을 출세(出世)하신다 하더라도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그 법문이 문자화 된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에도 팔만대장경 장경각에 목각(木刻)을 해서 잘 봉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그걸 다 읽기도 어려운 일이고, 다 해석해서 다 알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고인네들은, 조사스님네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간단하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그것이 별 재미도 없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정말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다 보면 해 갈수록 뭣이 알아지는 것은 없어. 알아지는 것은 없지마는 해 갈수록 신심이 더욱 나오고, 더 무상을 철저히 느끼게 되고, 일분일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일에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은 '사람의 근기와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느냐'의 그런 차이로 해서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나오는 거와 같은 그러한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꼭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진을 하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가지가지의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데, 나타난다고 해서 꼭 좋을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아, 내가 이것이 견성(見性)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通)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앞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경지냐, 올바르지 못한 경지냐' 그것은 본인이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면 스스로도 그것을 점검을 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는, 느껴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신기하고 묘해서 그것을 무슨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좋아하고 집착을 할 수가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경지를 여기서 50여 가지의 경계(境界)를 낱낱이 얘기할 시간은 없고 대별(大別)을 하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업장(業障)이 소멸되어서 그래 가지고 식(識)이 맑아졌다 하면은 그것을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공부가 앞으로 잘 되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라면 거기에 집착을 아니하고 그런 것을 좋아할 겨를도 없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것에 집착을 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뭣이 알아진 것이 있고—무슨 조사의 어구(語句)나 『전등(傳燈)』 · 『염송(拈頌)』이나 경전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고 그런 수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 내가 한소식 했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한다면 그 공부는 거기서 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조금 더 보태서 시(詩)를 짓는다던지, 게송(偈頌)을 짓는다던지, 함부로 ‘자기가 한소식 했다’고 떠벌리고 과시를 한다던지, 또 막행막식을 하고 횡설수설해 가지고 많은 사람한테 자기가 도를 통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과시를 하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망하는 거고, 불법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 거고, 많은 신도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혼란심을 일으켜서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하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를 하시고,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하는 그러한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들은 전부 그러한 도반들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13분37초~30분20초)





(3/3)-----------------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다.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가 없어. 사자굴에는 오직 사자끼리만 사는 것이지, 사자굴 속에 어떻게 다른 짐승들이 사자하고 같이 살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다. 코끼리의 왕, 상왕(象王)이 터억 떼를 지어서 걸어가는 데에는 여우같은 그러한 간특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 끼여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발심한 여러 도반들, 바로 사자요 코끼리의 무리와 비교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도반들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기왕 우리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서 선방에 나와서 도를 닦는 최상승 학자일진대는 사자와 같이 상왕과 같이 그렇게 수행을 해 가야 할 것이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기왕 불법을 믿고 참선을 하실라면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그러한 마음과 그러한 행동으로 수행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에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다. 정말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혀라’ ‘이때[此時]’ 라는 게 ‘바로 지금’ 입니다.
이 가운데는 팔십 노령의 연세 높으신 그런 분도 계시고 아주 아직 젊으신 분도 많지마는 바로 우리가 이만큼 건강할 때에, 나이야 조금 많거나 적거나, 생활이 조금 어렵거나 풍부하거나, 그것도 따질 것도 없고 아직은 우리가 이만큼 이만큼 살 때 철저하게 도를 닦자 이거거든.

백년광영(百年光影)이 전두비(轉頭非)다. 많이 살아봤자 백 살 사는데, 백년(百年)이라고 하는 세월도 잠깐 동안에 지나가는 것이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를 말고.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이렇게 간절히 드리는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아! 그때 좀더 열심히 정진할 것을...’
더 늙어 가지고 육체가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대소변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행보도 자유롭지 못하고, 음식도 맘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자유롭게 못하게 될 그때에 가서 ‘그때 힘 좀 있을 때 정진을 열심히 할 것을...’ 그렇게 후회해 봤자 한(恨)만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오늘 여러 도반과 청신사 여러분께 여쭐 말씀을 대충 말씀을 했고, 몇 가지 광고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다른 게 아니고 평시나 또는 사십구재나 오늘 이렇게 백중 천도재 지낼 때 이 영단 앞에다가 여러 가지 정성이 담긴 과일과 갖가지 음식물을 갖다가 올렸습니다.
정성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참 그 정성스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겠지마는 또 여러분들이 망인(亡人)이 평소에 좋아하신 음식을 여러 가지로 갖다 놓으신 그 뜻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마는, 우리 용화사 법당에서는 술이라든지 고기라든지, 그러한 것들이 들어가 있는 여러 가지 적(炙)이라든지 포(脯)라든지 그러한 것을 올리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제사(祭祀)를 올리실 때에는 모다 그런 음식도 여러 가지를 다 장만해서 올리시고 또 그것을 모다 식구들이 잘 맛있게 잡숫고 음복(飮福)을 하시고 그런 것이 준례가 되어 있겠습니다마는, 절에서는 그런 것을 올리지 않기로 했으니 절에 와서 천도재(薦度齋)를 지내시고 할 때에는 절의 법도(法度)를 따라 주신 것이 참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한 절에서 금지하는 그런 음식물을 올리지 않기를 바래고 심지어는 그런 것을 올리고 그런 것을 법당에서 막 음복하신다 해 가지고 막 잡숫기도 하고 그런 예가 더러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또 한가지는 영단(靈壇)이나 불단(佛壇)에 촛불도 켜서 올리고 향불도 올리고 또 청수(淸水)도 어쩌다 올린 것이 그런 것이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준례입니다마는, 워낙 법당에 그 모시는 영가(靈駕)도 많고 신도도 많다 보니 너도나도 각기 자기가 정성을 다해서 다기(茶器)를 올린다, 촛불을 켠다, 향을 핀다, 그것 자체도 하나하나를 생각해 보면 모처럼 오셨으니 그 정성의 표시로 여러 가지 과일도 올리고, 꽃도 올리고 또 여러 가지 떡도 올리고, 향도 올리고, 촛불도 켜고 한 것 다 정성의 표현이라, 그동안에는 여러 가지로 법당이 다 연기가 너무 나고 열기가 나 가지고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천장이 시커멓게 끄슬리고 단청이 오색단청(五色丹靑)을 한 것이 꺼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정성을 차마 막을 수가 없어서 어지간히 그동안에 몇번인가 말씀을 드릴려고 했지마는 우리가 참고 참고 참았습니다. 이대로 계속 참다보면은 법당은 완전히 새까맣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신 여러 신도들은 방독면을 쓰고 참석을 해야 할 정도로 공기가 그렇게 혼탁하게 됩니다.

그러니 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물질로 표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용화사 법당에 오셔서는 누군가 먼저 촛불을 켰으면 그 촛불은 그대로 놔두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배도 하시고 또 불전(佛錢)도 놓으시고. 불전은 많이 놔도 우리는 그건 막지는 않습니다, 이건 농담이고요.
불전을 자기 정성껏 놓으시고 그리고 정성스럽게 참배를 하시고 하지, 촛불이 켜져 있는데 그놈을 끄고 또 가져온 걸 또 하고, 자꾸 그런 것이 되풀이된 것도 좋지 못하고, 또 향로가 불이 켜졌는데 계속 그놈을 끄고 끄고 한 쪽에서는 또 그놈을 너무 많이 켜서 굴뚝의 연기처럼 나오니까, 그 법당 책임자가 그걸 끄니까 '금방 올렸는데 그걸 뽑았다'고 또 시비가 일어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 촛불도 켜져 있으면 그 촛불을 놓고 정성스럽게 참배하시고, 향이 켜져 있으면 그 향이 다 탈 때까지는 정성스럽게 참배를 하시고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은 자기가 올린 촛불이라야 되고, 자기가 새로 켠 향이라야 자기의 정성이 전달된다고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근기가 아주 저 유치원 학생들은 혹 그런 생각을 가질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용화사에 다니는 최상승법을 믿는 상근(上根) 불자라면 능히 그런 것도 능히 이해를 하시고 소화를 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다음에 남의 촛불은 소용이 없고 내가 올린 촛불이라야 되고, 남이 올린 향은 소용이 없고 내가 직접 켜는 향불이라야 된다고 생각하신다면은 법당에 손님이 없을 때 조용한 때 오셔 하신다면 그것은 혹 모르거니와, 이렇게 손님이 몇천 명이 오셔서 향불도 많고 촛불도 많은데 기어이 자기도 한다면은 그분과 시비를 하지를 마시고, ‘저분은 아주 유치원 학생이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서로 그런 일로 싸운 일이 없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벌써 여기에 일 년 · 이태 · 삼 년 벌써 여러 해를 다니신 분은 고학년다웁게 상근(上根)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다웁게 솔선수범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계속해서 백중 천도법요식이 있겠습니다. 정성스럽게 동참을 하시고 법회가 끝난 다음에는 한 분도 빠지시지 마시고 여기에서 준비된 점심공양을 맛있게 공양을 하시고, 선망부모 천도와 여러분 자신이 금생에 결정코 스스로 자기를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생사해탈할 수 있도록 그런 다짐을 하시면서 앞으로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0분21초~44분45초)(끝)





[법문 내용]

(게송)올올무사대청산~ / ‘백중(百中)날’은 옛날부터 ‘부모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 / 『목련경(目連經)』 목련존자와 어머니 청제부인 / 칠월 해제 때 대중 스님께 공양(供養) 올린 공덕으로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조상 선망부모를 구제한다.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조사스님네들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깨달을 수 있도록 개척해서 남겨주신 최고의 훌륭한 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 공부하다 어떤 소견(所見)이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집착하지 말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된다 /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야.

(게송)사자굴중무이수~ / 기왕 불법을 믿고 최상승 참선을 하실라면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그러한 마음과 행동으로 수행을 하시기를 / (게송)금생약불종사어~ / 법당에서의 예절 법도 안내 말씀.


생사 문제는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계시지만, ‘삼세제불이 우리를 제도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얘기들 하지만, 우리 자신이 정법을 믿고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의 그런 힘으로도 어찌 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열심히 도를 닦을 때 삼세제불의 제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이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서 삼세제불이 억만 번을 출세(出世)하신다 하더라도 우리의 생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조사스님네들은 팔만대장경에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간단하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하는 그러한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에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다. 정말 이때를 향해서 자기를 밝혀라’ ‘이때[此時]’ 라는 게 ‘바로 지금’ 입니다.
이 가운데는 팔십 노령의 연세 높으신 그런 분도 계시고 아주 아직 젊으신 분도 많지마는 바로 우리가 이만큼 건강할 때에, 나이야 조금 많거나 적거나, 생활이 조금 어렵거나 풍부하거나, 그것도 따질 것도 없고 아직은 우리가 이만큼 이만큼 살 때 철저하게 도를 닦자 이거거든.
백년광영(百年光影)이 전두비(轉頭非)다. 많이 살아봤자 백 살 사는데, 백년(百年)이라고 하는 세월도 잠깐 동안에 지나가는 것이니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를 말고.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