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700/(676~700)2018.04.19 12:40

(No.683)—2004년 법보재 법회(04.05.04) (38분)

(1) 약 21분. (2) 약 17분.

(1)------------------


제법종인생(諸法從因生)이요  제법종인멸(諸法從因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연진고멸(因緣盡故滅)이라  아작여시설(我作如是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서 법신게(法身偈)를, 법신송(法身頌)을 설하시기를, 제법(諸法)은 종인생(從因生)이요.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 났으며 모든 법은 인연으로 좇아 멸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가 한평생을 살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데,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는 것을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인연으로 좇아 생한다. 인연이 다하면은 멸한다’ 그 말씀은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고 하는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왜 분명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 생이고, 숨을 거둔 것을 죽는다고 하는 것인데 어째서 생사가 없다고 하셨느냐?


우리 중생의 생각으로는 조금 납득하기가 어려운 면이 없지 않지마는,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새로 생했다고 말할 것이나 사실은 그 근본 자체는 생한 것이 없고, 다맛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의 인연이 모여가지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그 사대가 흩어져 인연이 다하면은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맛 인연이 다해서 우리 중생의 눈에 죽은 것으로 보일 뿐 그 본체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무생(無生)이라고 한다.


중생은 그 본체를 보지 못하고, 껍데기로 보이는 것만 보고 새로 태어났다고 기뻐하고 나중에 일평생을 살다가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면 죽었다고 그것을 슬퍼하지마는, 그것은 본체를 보지 못한 탓으로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은 그것은 인연이 뭉쳤냐, 인연이 흩어졌느냐 그 문제지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법신(法身) 본체를 우리가 분명히 깨닫는다면은 부처님의 말씀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확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법보재(法寶齋)를 맞이해서 비구, 비구니, 사미, 행자, 청신사, 청신녀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법요식(法要式)에 참례했습니다.

이 법보재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뜻으로 인해서 이 법보재가 생겨났느냐? 무슨 목적으로 이 법보재가 생겨났느냐?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대부분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마는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법보전(法寶殿) 안에는 오늘 7만9천3백9번까지 위패(位牌) 번호가 나와 있고, 이 위패에 모셔진 영가(靈駕)의 수는 12만2천2백5십5위에 영가가 봉안이 되었습니다.


이 영가 가운데에는 제 1번에 전강 대종사 조실스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위패가 1번에 모셔져 있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인연 있는 청신사 청신녀 또 비구 비구니, 다 이승을 하직한 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대통령을 지내신 분도 있고, 장관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도 있고, 교수님 박사님도 있고, 정치가 예술가 학자 농민 상업을 하신 분, 가지각색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학생도 있고, 그 가운데에는 잘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도 있고, 교통사고로 가신 분, 자살하신 분, 물에 빠져 돌아가신 분, 참 각양각색에 영가들이 모셔져 있습니다마는.


아까 법신 게송에 말씀하신 부처님의 뜻에 입각해서 본다면은 인연이 있어서 이 세상에 왔다가 이 사바세계의 인연이 다해서 숨을 거두신 분들이고,

깨달은 눈으로 보면은 생사는 본래 없다고 볼 때에 슬퍼할 것도 없고 기뻐할 것도 없는 것이다마는, 우리 중생들은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분명히 생(生)도 있고 사(死)도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조실 스님께서 창설하셨냐 하면은 우리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들과 딸, 형제자매, 친구, 많은 영가들이 영가의 상태로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거리중천에 고통을 받고 있는 영가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영가로 하여금 첫째,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나아가서는 그 영가로 하여금 법문(法門)을 듣고 천도(薦度)를 받아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해 드리기 위해서 이런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그칠 뿐만 아니라 효자 · 효부들, 효도하는 정성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만년위패에 모셔 드림으로 해서 그 인연으로 그 유족들도 정법(正法)을 믿게 되고, 정법에 의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고 수행을 함으로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결정코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가시도록,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지 않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 윤회를 하지 않고 해탈도를(解脫道) 증득하게 하려는 그러한 대자비심으로 이 만년위패 제도를 창설하신 것입니다.


어째서 만년위패를 모시면은 영가가 해탈도를 증득하냐?


보통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가 매장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풍수지리 그런 설에 입각해서 명당(明堂)을 찾아 가지고 좋은 길지(吉地)에다가 모시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종교가 되다시피 되어왔습니다. 현재도 역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땅에다가 매장을 하면 땅속에도 물이 있고, 불이 있고 그래서 얼마 안 가서 새카맣게 타기도 하고, 물구덩이에 쟁기기도 하고, 나무뿌리 풀뿌리가 들어가서 이 사대삭신과 눈 귀 코로 얽혀가지고 그 흉참(凶慘)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무덤 속에 개미가 들끓기도 하고, 심지어는 뱀이 들어가서 살기도 합니다.


명당을 써서 자손이 잘되고 복을 받기 원해서 명당을 썼다가 이러한 차마 말로 하기도 어려운 흉참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그 영가는 자기 가정에 들어가서 ‘내가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으니 나를 다른 데로 옮겨다오. 나를 화장을 해다오’

그렇게 말을 해도 영가와 살아 있는 사람과는 여간해서 언어가 의사가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집안에는 우환이 끓고, 비명액사로 가고,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수장법(水葬法)이 있는데, 죽으면 물에다가 갖다가 던지기도 하고, 여러분이 바이킹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습니다마는 배에다가 장작을 쌓고 그 위에다가 시체를 놓고 그래가지고 그 배를 저 바다에다 띄우고 화살에다 불을 붙여서 화살을 쏴가지고 그 배에 명중을 시키면 그 배에서 불이 나가지고 또 시체가 타는, 물 가운데에서 화장을 하는 그러한 화장법도 있고,

아주 물에다가 시체를 던져가지고 물고기들로 하여금 시체를 뜯어먹게 하는 그런 풍속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풍장(風葬)이라고 하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숲속에다 갖다가 버립니다.

버리면, 독수리나 산짐승들이 나와서 그걸 다 뜯어먹어서 뼈만 앙상히 남고, 뼈가 남으면은 그것이 풍마우습(風磨雨濕)해서 세월이 지내가면은 삭아서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화장(火葬)이 있는데, 화장법은 돌아가시면은 염불을 하면서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기도 하고 또 스님네들이 돌아가시면은 산중에서 스님네끼리 모여서 장작을 쌓고 화장을 하는 예식도 있습니다.

땅에다가 매장하고, 물에다 수장하고, 산에다가 버려가지고 풍장을 하고, 불로 태워서 화장을 하고, 네 가지 법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화장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화장을 하냐 하면은, 앞에 말한 세 가지 법보다는 훨씬 좋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은 땅에다 묻어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고, 흙으로 완전히 돌아갈 때까지는 그런 짐승들로 침해를 받고, 풀뿌리에 얽혀서 침해를 받고 그런 일이 없고.


땅에다 묻기로 하면은 병든 사람에 만약에 전염성이 있는 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을 땅에다 묻으면 그놈이 썩어서 그 균이 지하수로 스며들면 그 균이 다른 사람에게 또 전염이 될 우려성도 있는데, 화장을 하면 거기서 완전히 살균이 되어가지고 그 화장한 그걸로 인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까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 묻거나, 풍장을 하거나, 수장을 하면 영가가 자기가 한평생 의지하던 그 육체가 있는 곳에 가서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머물러 있게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을 해서 물에다 뿌리거나, 산에다 뿌리면 육체에 대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고, 더군다나 그 영가로 하여금 편안하게 안주할 곳을 마련해 드리면 거기에 계시다가 인연이 돌아오면은 다른 곳으로 탄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용화사 이 만년위패처럼 여기다가 딱 모셔 놓으면 아침마다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명절 때마다 차례(茶禮)를 봉행을 하고, 법회 때마다 영가로 하여금 법문을 듣게 해서 이생뿐만이 아니라 무량겁을 두면서 오늘날까지, 이생에 올 때까지 수없는 생사윤회 속에서 겪은 원한심, 슬픔, 괴로움, 그러한 영가들도 여기서 그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들으면서 영가로서 그 업장이 소멸이 되고 원한심이 다 소멸이 되어서, 그리고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은 도솔천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을 하실 것이고,

또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으면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시되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서 자기의 사명을 완성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도 하고, 자기 자신이 못다한 한이 있으면 그 목적을 달성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년위패에 동참을 하시면은 돌아가신 그 영가도 좋고, 그 영가를 만년위패에 모신 그 유족들도 그 인연으로 정법을 믿고, 좋은 일도 하고 나아가서는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열심히 하신다면은 그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사 문제가 거기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만년위패 제도는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도 좋고, 살아있는 사람에도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해탈을 증득을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대도사(大導師)가 될 수 있는 길을 가게 되니 이 만년위패 제도 이것이야말로 조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시고 창설해 주신 그 자비와 지혜를 정말 뼛속 깊게 감사하게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56초)




(2)------------------


그러한 만년위패 제도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는 방방곡곡에서 형제자매 법보가족(法寶家族) 여러분들이 이 한 법당에서 우리는 법요식을 봉행하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리고 오늘 천도 법요식을 함께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해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고, 한 도반이 되어서 한 분도 빠짐없이 세세생생에 다시 또 한 가족으로 만나고, 한 같은 도반으로 만나서 결정코 부처님 불회상(佛會上)에 만나고 정법도량(正法道場)에 만나서 우리는 영원히 생사해탈의 길을 가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 법보가족이 못 된, 만년위패 제도가 없는 분도 우리들로 인해서 다 한 가족이 되어서 손에 손을 잡고 해탈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먼 데에서 이렇게 오늘 법보재일을 잊지 않고 동참해주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께 이 원장으로서 대단히 반가운 인사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라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금강경(金剛經)의 게송(偈頌)입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풀 끝에 이슬과 같고, 번쩍하다 사라지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할지니다.


우리의 생사고(生死苦)는, 중생은 생사고,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해서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하는데,

그 원인은 모든 법이, ‘함이 있는 법[有爲法]’이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고 하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못 외우신 분이 안 계시겠지마는, 반야심경에 근본 뜻이 그 첫 줄에 나오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다.

오온(五蘊)이 다 공한 뜻을 비추어보면, 오온이라는 게 무엇이냐 하면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거든. 색(色)은 우리의 가깝게 말하면 육체고, 수상행(受想行)은 우리의 정신 작용이고, 끝터리 식(識)은 정신 작용을 일으키는 그 본체 본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또 정신작용이 그것이 공(空)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해가지고 거기에 집착을 하는 데에서 모든 슬픔과 고통과 원망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것은 공한 것이다.


이 ‘공했다’고 하는 뜻은 대단히 깨달아야만 확실히 아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론적으로 알아 갖고는 '비추어 본다, 조견(照見)'이라고 하는 것에 계합(契合)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했다’고 하는 것을 무식하게 쉽게 말하면 그것은 ‘없다’고 한 말과 아주 가깝습니다마는, 조끔 뜻이 다릅니다.


있기는 있으되 사실은 없다고 하는 거여.


그림자도 분명히 있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그 본래는 그것이 공한 것이거든.

그림자도 그렇고, 물거품도 그렇고, 꿈도 그렇고, 환(幻)도 그렇고, 그런 것은 우리 중생의 눈에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것은 공한 것이여.


공한 것을 실지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 그것이 중생의 소견이고.

확실히 그것은 본래 공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게 되면은 생사가 없는 도리를 바로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해탈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하는 것도 그 이치와 계합을 하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고, 경을 읽는 것도—그 이치와 확실히 그것을 요달(了達)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셨으니 경을 읽는 것도 그 도리를 깨달아야만 되는 것인데, 무식하거나 유식하거나, 무슨 직업을 가졌거나 간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참선법이여.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밥 먹을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미운 생각이 났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고 바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도 없어지고, 슬픈 생각도 거기에서 없어질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은 열심히 한 사람은 누구라도 그것을 체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결국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참선하는 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못하고, 사무실에서 녹음테이프를 구해가지고 가셔서 댁에서도 열심히 듣고 열 번, 스무 번, 백 번을 들으면서 앉는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법을 고대로 열심히 실천을 하시면은 반드시 여러분도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달음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가족 여러분!

정말 내가 목이 터지도록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한 말씀은 이 말씀 하나뿐입니다. 이것을 실천함으로써만이 모든 고통을 해탈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생으로써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도 있어야 하고, 권리도 있어야 하고 또 아들딸도 있어야 하나, 그것은 진정한 우리의 구경(究竟)의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추구하다 보면은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원한만 남고 고통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원수도 없어지고, 미운 사람도 없어지고, 한 가족끼리도 서로 화목을 하게 되고, 이웃과도 화목을 하게 되고,

온 국민이 이것을 하면은 온 국민이 설사 정치를 하더라고 나라가 망한 꼴을 보는 그러한 정치는 안 하게 될 것이고, 온 나라가 이것을 하게 되면은 자기 나라의 재산, 자기 나라만 잘살기 위해서 이웃나라를 침범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북이 갈라져 있습니다마는 절대로 우리가 적이 되어가지고 싸울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단군(檀君)의 한 핏줄을 이어받은 동포인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용천 폭파사건이 일어나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동포이고 같은 가족이기 때문에 분(分) 따라서 많고 적고 간에 거기에 의연금품(義捐金品)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몇년 전에 이리(裡里)에도 큰 폭파사건이 일어났습니다마는 앞으로 이십 년 내지 삼십 년 안에 울산 지방에 오사카와 고베에 일어났던 6도 내지 7도에 대지진이 일어나리라고 유명한 지질학자들은 과학적 증거에 의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한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지진이 안 일어나기를 바라지마는 권위 있는 지질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발표를 했으니 혹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울산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비우고 딴 데로 피난가기도 어려운 일이나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동포끼리 서로 모르쇠하고, 이웃나라끼리 모르쇠하고, ‘즈그들이 업(業)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구나!’ 다 불고(不顧)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재난을 안 만나게 될라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철저히 믿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이 없이, 할 수 있다면은 우리는 이웃을 도우며, 남의 어려운 처지를 항상 자비심(慈悲心)으로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줄줄 아는 그러한 가족이 되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무서운 죽음을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 죽음이 꼭 칠팔십 년 후에 오라는 법도 없습니다. 호흡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고 내생(來生)입니다.


그 죽음을, 생사 속에서 살면서 영원히 육체적인 생사를 면하는 법은 없습니다.

생사는 반드시 오고야만 마는데,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으면 생사 속에서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요, 정법이요, 활구참선법입니다.


백 번, 천 번도 목이 쇠도록 산승(山僧)이 여러분에게 법회 때마다 말씀드리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법보가족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숙세에 깊은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법보가족이 되었습니다.

법보가족이 되었으니 위패만 모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인연으로 우리는 정법을 믿고 열심히 생활 속에서 참선을 해가지고 확실히 우리가 생사 없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고 그 진리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항상 ‘이뭣고?’를 해서 그 의심이 잠시도 떠나지 않도록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반드시 우리는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우리 자신도 해탈(解脫)을 하고, 일체 중생을 해탈의 길로 안내를 해야 할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정말 열심히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주장자(拄杖子)를 한번 내리고 이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이 천도 법요식이 끝난 뒤에, 정성을 다해서 공양(供養)을 준비했으니 한 분도 빠지시지 마시고 공양을 잘 드시고 무사히 댁에 돌아가시고, 돌아가셔서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고 내년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다 같이 만나시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20분57초~37분54초)(끝)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51~275)2018.04.10 10:00

(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62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는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오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길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는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오.

봄바람 한(限)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일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이 엄동설한(嚴冬雪寒)과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그 아름다운 향내가 온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 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參禪)만을 하지, 왜 신수기도를 할까?’ 혹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根機)따라서 소승법 · 중승법 · 대승법 · 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그 진리와 계합(契合)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業)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도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 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이 법당에, 부처님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에 영가(靈駕)의 위패(位牌)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산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또 기도 문(門)을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 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에 돌아와서 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도를 닦을 수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년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업(業)—주로 악업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년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밥 한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와 백체(百體)가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와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한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무를 가꾸려 할 때에 그 뿌리를 잘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그 나무는 잘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채, 아무리 그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그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일—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안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업(業)을 짓지 않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그 마음의 발로(發露)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때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그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해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그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그 바로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전강 조실 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설(說)해 오신 이 활구참선법.


이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을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그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이 말씀을 하셨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가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이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이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한 집안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왜 사유축(巳酉丑)생이 그렇게 되고 그다음에는 또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술가(術家)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謹愼)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 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또 출근을 해야겠고, 또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參究)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분40초)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그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잘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또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은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잘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은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이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을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그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청·황·적·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은 ‘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그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저것은 좋은 일이다, 저것은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 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의 작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생사본(生死本)이여. 저 비롯함이 없는 저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 ‘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은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사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 ‘바로 이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分上)에 보면은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이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참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아하, 바로 이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 생각 낼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마는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수 있으나, 또 한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를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이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이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그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가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세하셔도 구제할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를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



이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일 년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게 됩니다마는, 될 수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될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를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이 7일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이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이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저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그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할 것입니다. 일행이 두 사람 내지 열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도량(道場)에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을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그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간다면 그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될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그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는 말은 ‘말을 함부로 해 가지고 그 말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을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가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의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잘 지키기를 병마개 꽉 틀어막듯이 할 것이다.


꽉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그 음식을 한 끼니쯤 안 먹는 것이 낫고, 말을 해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할 때와 안 먹어야 할 것,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아니 해야 할 때를 잘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말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가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이 말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병(病)과 시비(是非)가 바로 이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역사(歷史)가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또 복을 짓기도 한 것입니다.


음식을 잘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될 것이고,

꼭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간에, 해야 할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그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20분40초~41분23초)




(3/3)----------------


이 삼재(三災)는 아까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그 구녕은 바로 코 밑에 있는 그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문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잘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이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될 것이며, 나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을 잘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눈에 어떤 형상이 딱!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그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올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그 한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 저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 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아!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그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 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또 비약을 해 가지고, 또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또 그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또 그 가지에 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러한 식으로 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때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그렇게 해서,

선(善) · 악(惡) · 무기(無記)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거기서 이리저리 솜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설켜 가지고 그것이 또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더 무서운 업(業)을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또 그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가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탁! 귀에 거슬리는 바로 그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몸이 아파도 ‘이뭣고?’ 속이 상해도 ‘이뭣고?’ 배가 고파도 ‘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할 때 맨 처음에 ‘이-’ 소리부터 하는데 『‘이-’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이’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 나간다면, 그 한 생각 한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그 근원에서 딱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그 근본(根本)을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가 있어야 해.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이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해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잘 안되고, 영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정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해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그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이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딴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해 나가면,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더 지혜롭게 더 알뜰하게 화두를 잘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해 나가면,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 삼재(三災)를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범심불식성하구(凡心不息聖何求)리요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甌)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리오

나무~아미타불~


범심(凡心)을 불식(不息)하면 성하구(聖何求)리오.

무릇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범부(凡夫)의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마음을 쉬지 아니하면 어찌 성과(聖果)를, 성현(聖賢)을 구하리오. 어찌 깨닫기를 바랄 수가 있으리오.


반료산다자일구(飯了山茶自一甌)로구나. 공양이 끝나고 산다(山茶), 차 한 잔을 마심이로다.


화락화개임시절(花落花開任時節)하니, 꽃이 지고 꽃이 피고 한 것을 시절(時節)에다 맡겨 버려.

꽃이 피면 핀 대로, 꽃이 지면 진 대로, 세상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영욕득실(榮辱得失)에 그냥 거기에 맡긴다 그말이여.


거기에 맡겨 두고 나는 내 마음 닦아가는 나의 근본 문제를 충실히 해 나가면, 나지세상기춘추(那知世上幾春秋)냐. 어찌 세상에 몇 번이나 봄이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하는 것을 알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의 근본사(根本事)를 방치해 버리고 망각해 버리고, 꽃 피면 핀다고 거기에 굴림을 받고, 꽃이 지면 진다고 거기에 휘둘림을 받고, 무엇이 흥하면 흥한 데에 휩쓸리고, 무엇이 망하면 망한 데에 끌려간다면 그것을 어찌 참다운 인생이라 할 수 있으리오.


흥망성쇠와 꽃이 피고 지는 데에 일임(一任)해 버리고, 나의 본분사(本分事)에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고 했거늘, 오늘 신수기도 입재를 향해서 본의 아니게 재앙의 풍파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41분25초~61분4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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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불불산향만로비~’ ;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 ‘유산(遊山)’ 공안에 대한 삽계익(霅溪益)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1 참고.

鸝(려,여)꾀꼬리,(리,이)꾀꼬리, 鵹와 동자(同字).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계합(契合 맺을 계, 합할 합)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음역어는 ‘갈마(羯磨)’이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지엽적(枝葉的) ; 사물이나 사건 따위에서 본질적이 아니라 부차적인 부분에 속하거나 관계된 것.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그러께 ; 지난해의 바로 전해. (동의어) 재작년(再昨年), 전전해(前前해), 지지난해, 전전년(前前年), 거거년(去去年).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것. 달과 해, 겨울과 여름, 북과 남,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오행(五行) ;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를 이른다.

*술가(術家) ; 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송(讀誦) ; 소리를 내어 경(經)을 읽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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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六賊)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생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번뇌를 일으키는 여섯 도적들과 같다’는 뜻이다. (=육진六塵=육경六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5](동국역경원刊) p36 참고.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본래신(本來身) ; 진여불성(眞如佛性).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되풀이되다 ; (같은 말이나 일이)반복되어 행해지다.

*그릇 ; ①어떤 일이 사리에 맞지 아니하게. ②어떤 일이나 형편이 잘못되게. ③어떤 상태나 조건이 좋지 아니하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단명보(短命報) ; 사람이 생명이 짧은 과보(果報).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절도(節度) ;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동서고금(東西古今) ;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를 아울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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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녕, 구녁 ; ‘구멍’의 사투리.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성(三性) ; 모든 현상의 성질을 윤리적 측면에서 선(善), 악(惡), 무기(無記)로 나눈 것.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악(惡) ; 산스크리트어 pāpa 올바르지도 청정하지도 않아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르지 않음.

무기(無記) ; 산스크리트어 avyākṛta 선도 악도 아닌 것. 또는 그러한 마음 상태.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재삼(再三) ; 두세 번. 또는 몇 번씩. ‘거듭’, ‘여러 번’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오매(寤寐 잠이 깰 오/잠잘 매)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게송) ‘범심불식성하구~’ ; 법진일(法眞一) 선사 게송. [선문염송·염송설화 1](동국역경원刊) p253 참고.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때.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영욕(榮辱 영화 영/욕될 욕) ;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과 치욕(恥辱 부끄럽고 욕됨)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득실(得失 얻을 득/잃을 실) ; ①이익과 손해. ②얻음과 잃음. ③성공과 실패.

*근본사(根本事) ; 참선법을 통해 내가 나를 깨달아 생사해탈을 하는 일.

*일임(一任) ; 모두 다 맡김.

*본분사(本分事) ; ①본분(本分)을 깨우치는 일[事]. 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本來)의 신분(身分)으로 되돌아가는 일[事].

납승(衲僧 참선 수행승)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일이므로 납승본분사(衲僧本分事) 또는 납승분상사(衲僧分上事) 등이라고도 한다. 일대사(一大事)와 같은 말.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풍파(風波) ; ①세찬 바람과 거센 물결. ②심한 분쟁이나 분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세상살이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요 내용]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마음의 틈으로 삼재가 들어온다 / ‘한 생각’ 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것.

(게송) ‘학도지인불식진~’ /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識神)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本來身)으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 (게송)범심불식성하구~ / 모두 인연에 맡겨버리고 나의 본분사에 충실하는 것이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는 길.




[주요 문구]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을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그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이 말씀을 하셨지만, 도(道)라고 하는 것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도(道)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병(病)과 시비(是非)가 바로 이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이 ‘아,이것이로구나.’ 그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더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201~300/(226~250)2018.04.05 15:05

(No.232)—84년 동안거해제 법어(84.02.16) (74분)

(1/4) 약 18분. (2/4) 약 19분. (3/4) 약 21분. (4/4) 약 17분.

(1/4)----------------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泄天機)하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요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花笑山前)에 설루기(洩漏機)요, 꽃은 산 앞에서 웃어 가지고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고 있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구나. 새는 수풀 밖에 노래해 가지고 무생(無生)을 말하고 있드라.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는, 머리마다, 낱낱이 꽃이 웃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스스로 한없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로구나. 그 뜻을 깨달아 버리면, 그 한없는 뜻을 얻어 오면 그 근원을 만나지 아니하는 곳이 없어.



오늘은 계해년 10월 15일에 결제(結制)를 해 가지고 구십 일이 지내서 갑자년 정월 15일에 해제(解制)를 맞게 되었습니다. 삼동안거(三冬安居)에 해제인 동시에 백일기도 회향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동안 유독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랬습니다마는, 대중스님네와 보살선방 보살님네들이 모두가 그러한 추위와 바람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다 극복을 하시고 이렇게 아무 장애 없이 삼동안거를 마치고 오늘 이렇게 해제를 맞이했습니다.



파정(把定)하면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가로 놓였고, 방하(放下)하면 달이 차운 못에 떨어진다.

파정(把定)은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하는 거, 입정(入定)을 하는 것이고, 방하(放下)는 죽비를 치고 방선(放禪)을 하는 것인데,


안거를 시작하면, 결제를 하면 ‘죽비를 친다’고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을 하고, 또 ‘방선을 했다’고 해서 화두를 놓아 버리고 잡담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죽비 치고 입선하고, 죽비 치고 방선한 것은 많은 대중이 모여서 규칙 생활을 하기 위해서 부득이 시간 맞추어서 죽비를 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들고 안 들고 또는 정진을 하고 안 하고 하는 데에는 하등에 상관이 없는 것이여.


비단 90일 동안, 석 달 동안 이렇게 안거를 하고 정진할 때만 해당된 것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해제를 한 뒤에도 설사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시거나, 해제를 하고 떠억 걸망을 지고 행각(行脚)을 나서시건 간에,

해제 동안에 행각을 하면서 도중에서 죽비 누가 쳐 줄 사람도 없고 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러면 죽비를 안 치니까 참선을 안 하고 화두를 안 드느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석 달 동안 대중이 모여서 시간을 짜 가지고 그 시간대로 규칙 생활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은 해제 동안에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특별한 기간 동안 특별한 시간을 짜서 규칙 하에 대중이 정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결제(結制)는 인도에서 장마철에 비가 너무너무 연속해서 비가 내리니까 숲속에서 정진을 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국왕이나 또는 장자(長者)나 그밖에 신심 있는 분이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위해서 기원정사라든지 죽림정사라든지 그러한 선방을 지어드린 그 선방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 선방에 들어가서 대중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우기(雨期)가 끝나면은 각기 이리저리 흩어져서 숲속에서 자고, 숲속에서 정진하고, 인연 따라서 설법하고, 공양은 다 탁발(托鉢)을 해서, 발우(鉢盂)를 들고 하루 한 끼씩 얻어 자시고 그러면서 정진을 한 것이 그것이 결제 안거(安居)의 유래인데.

중국, 한국, 일본, 이 북방으로 오면 여름에 장마철뿐만이 아니라, 겨울이 돌아오면 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해서 날씨가 차우니까, 또 자유롭게 다니면서 정진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그래서 이 북방으로 와서는 겨울 석 달 동안 안거를 또 하게 된 것입니다.


죽비를 치고 대중이 모여서 규칙 생활을 하고, 입방선을 할 때는 여럿이 같이 살고 법도에 맞춰서 하니까 특별한 생각을 내지 안 해도 저절로 대중 따라서 정진을 할 수밖에는 없고,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마는,

해제를 하게 되면 그런 엄격한 규칙이 없이 동서남북으로 행각을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입승(立繩)이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주지(住持)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원주(院主)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 모든 소임을 한 몸에 다 가지고 소임을 하면서 정진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제 기간 보다 훨씬 더 해제 기간 동안에 자기를 단속을 엄격히 하고, 스스로 자기에게 채찍질을 호되게 가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야만 되는 그러한 계절인 것입니다.


계절인즉슨은 앞으로 석 달 봄철 동안 참 더웁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가장 정진하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옵니다.

그런 좋은 계절을 참! 알뜰히 단속을 하신다면, 결제 동안에 그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하기보단 또 여름 결제 그 더웁고 땀나는 그 기간 동안보단 이 봄철 산철 동안과 가을철 산철 동안 그 기간에 박차를 가해서 충분히 정진을 한다면 정진에 큰 향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해제 기간 동안에 득력(得力)을 하시고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깨닫는 그러한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파정(把定)하면, 마음을 가다듬고 정(定)에 들면 구름이 골짜기 곡구(谷口)에 가로 놓이고, 방하(放下)를 하면, 방선(放禪)을 하면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지더라.


유변(有邊)에 움직인 바가 되지 아니하면 근경법(根境法) 중에 그림자, 자취가 없고—근경법이라 하는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 육경(六境)—이 육근과 육진의 그 세계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지는 것이고,


무변(無邊)에 적적(寂寂)한 바가 되지 아니하면—무변에도 집착을 하지 아니하면, 빠지지 아니하면, 자변나변(這邊那邊)에 응하는데 이그러짐이 없어.

형이상학적으로나 형이하학적으로나 조금도 이그러짐이 없이 응할 수가 있다.


그러면 ‘자변나변에 응해 가지고 이그러짐이 없다’한 도리는 어떠하냐 하면 달이 한담(寒潭)에 떨어진 것이고, ‘근경법 가운데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졌다’하는 것은 바로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인 것이다. 이렇게 바꾸어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제 동안에 조용한 곳을 만나도 그 조용한 데에 집착하지를 말고, 시끄럽고 복잡한 그러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거기에 휘말려 들어가지를 말고서, 고요한 데에서도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아무리 복잡하고 시끄러운 그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거기에서 화두가 성성적적해서,

고요한 가운데에서나 또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나 한결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물샐틈없이 단속해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고요한 데에 처백히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데에 동요됨이 없을 것입니다.(처음~17분49초)




(2/4)----------------


아까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 가운데에도 정진하는 데에 나아가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한 법문이 계셨지만,

우리는 죽은 사람이 아니요, 목석(木石)이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는 무엇인가 눈을 뜨면 보이게 되고, 귀로는 무슨 소리인가 듣게 되고, 생각으로는 무슨 일이건 간에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가라앉었다 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생각에 좋은 생각이나 궂은 생각이나, 지내간 과거 생각이나 미래 생각이나,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든지 거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바로 화두를 돌이켜 거각을 해 나가면 보였던 것이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고, 먹되 먹은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되 껍데기로만 들고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계속해서 파동을 치고, 속이 상할 때도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기는 들지만 화두는 들면서도 그 속상한 생각은 여전히 훨훨 타오르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계속해서 화두를 들면 차츰차츰 그 화두를 관(觀)하는 힘이 강해지면, 한 생각 턱! 돌이키면 여지없이 앞 생각은 끊어져 버리고 오직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몰록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단속을 해 가면 나중에는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면서, 무슨 생각이 떠올라 와도 내가 그것을 상관을 안 하고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눈에 무슨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내가 생각을 주지 아니하고, 귀로 무슨 좋은 소리나 궂은 소리가 들려도 내가 거기에 신경을 써 주지 아니하고,

떠억 화두만을 갖다가 관(觀)해 나가면 그러한 밖의 경계나 일어나는 생각이 그냥 나한테는 아무 충격도 주지 아니하고 별 영향을 주지 아니하고서 그냥 스쳐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귓전으로 새소리가 스쳐 지나가고, 봄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꽃에서 나는 향내가 스쳐 지나간다 해서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나가면 설사 누가 속상하는 소리를 계속 내 앞에서 해 가지고 나의 오장을 계획적으로 뒤집어 놓기 위해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하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들고서 무심으로 상대하면,

상대방은 자기가 계속 그렇게 수작을 걸어오되 요쪽에서도 골을 내야 재미가 나서 더 달라붙을 텐데, 내가 화두를 떡 들고서 무심(無心)해 버리고 조금도 반응이 없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냥 입이 아퍼서 그만두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진하는 사람, 참선하는 사람이 근경법(根境法) 가운데에 그림자와 자취가 끊어지는 것이고, 자변나변(這邊那邊)에 응하되 이그러짐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최초의 단계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단속해 나가게 되면 선방에 앉았거나, 도량에 나가거나 또는 여기저기 행각을 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가 결제 중에 선방(禪房)에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서 지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정진이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결제 동안에 여름에 더울 때는 더운 대로 시간 맞춰서 정진을 하면 방안에 공기는 탁하고 더웁고, 궁뎅이는 땀이 나 가지고 옷이 젖고 또 겨울에는 추워서 문도 마음대로 열어 놓지 못하고 문을 닫고서 입선하게 되면,

10분 20분 처음에는 괜찮지만 한 이삼십 분 지내면 사람들의 코와 입과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 나온 탄산가스(炭酸gas)가 방안에 가득차 가지고 벌써 그 가스 기운에 취해 가지고 전부 맑은 정신이 없이 혼탁해 가지고 혼침(昏沈)에 떨어져서 꾸벅꾸벅 졸게 됩니다.


잠이 와서 좀 잠을 깨고 싶어서 아무리 허리를 펴고 눈을 부릅떠 봤자, 워낙 공기가 탁해 가지고 금방 또 스르르 눈이 감기게 되고, 가스에 취하면 본인은 졸면서도 조는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화재가 나면, 잠이 깊이 들었을 때 화재가 나 가지고 연기가 차면 타 죽게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눈을 떠 갖고 있을 때에는 연기가 나고 그러면은 박차고 문을 열고 나가지만, 잠이 깊이 들은 상태에서 불이 나면 차츰 차츰 연기가 차 가지고 그 연기에 꽉 질식(窒息)을 하되 눈을 뜰 줄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주 그냥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연탄가스로 죽은 것도 역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콧구멍에서 호흡하는 데에서 나오는 가스도 그것이 탄산가스라, 연탄가스보다는 조금 덜 독할런가 모르지만 그것도 역시 오래 들어마시게 되면 머리가 몽롱해지고 나중에는 골도 아파지고, 뼛골도 쑤시게 되고 몸도 무겁게 되고, 감기같은 것도 잘 걸리게 되고, 한번 감기에 걸리게 되면 잘 낫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졸음이 오고 정신이 흐리터분하고 탁하고 그러지만 죽비를 치고 입선을 했으니, 좀 밖에 나가서 찬바람도 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서 들랑날랑하면은 이십 명, 삼십 명 내지 오륙십 명이 각기 입선을 해 놓고 들랑날랑하면 그 어떻게 되겠냐 그말이여.


그래서 다른 대중을 위해서도 참고 앉아서 그 죽비 칠 때까지 시간을 기달라야 하고, 앉아서 기어코 그 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사실 그 흐리터분하고 혼침 속에서 억지로 그 시간을 채워야 하다가,

이렇게 해제를 하고 나가게 되면 죽비 칠 것이 없으니, 졸리면 나가서 포행(布行)하고 포행하다가 성성(惺惺)해지면 다시 와서 정진하고, 이 해제 동안을 잘 채찍질을 하면서 유용하게 정진을 해 가면 그래서 득력(得力)하는 율(率)이 많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고 또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이 해줄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공부가 잘되고 안되고를 따질 것이 없이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잘 들리게 되면 그럴수록에 더 알뜰하게 잘 단속을 해 나가야 할 것이고,

영 화두가 산만해서 집중력이 없이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영 정진이 잡히지를 않는다 할지라도 그럴수록에 지혜롭게 그 고비를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가 순일해서 잘 들릴 때도 대단히 그러한 경계를 잘 유지해 나가도록 주의를 해 나가야 되겠지만,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고 그럴 때에, 정말 그럴 때일수록 그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보면, 그 공부가 잘 안되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뒤틀리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을 때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중요하다고 하냐 하면, 그게 공부가 잘 못 되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해 가지고 한 고비 넘어갈려고 할 때에 그러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흔히 그렇게 되면은, 그런 경계를 만나면 “하! 내가 이 업장(業障)이 두터워 가지고 영 공부가 안 되고, 이거.... ” 그래 가지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고 한탄을 하고 그러는데,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인제 내가 이 고비를 잘 넘김으로써 공부가 한 계단 더 높이 올라간다. 그러한 중요할 때를 만났다’ 이렇게 생각을 함직하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계를 만나면 절대로 짜증을 낼 일이 아니라 지혜롭게 그것을 대처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그것을 대처를 하는 것이 되느냐?


첫째, 짜증을 내지를 말 것이고, 둘째는 그러헐 때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해서 그 고비를 넘기고,

또 혼침이 와 가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에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 가지고 일직선으로 한 50미터나 30미터쯤 이렇게 직선으로 적당한 장소를 딱 정해 가지고 꼭 그 직선상으로만 왔다갔다하면서, 한 10분 이렇게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에 화두를 들도록.


그러면 혼침도 없어지고 또 가슴이 그렇게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그런 것도 다 없어지고 그래서 상쾌해지면 다시 또 자기 자리에 와서 정진을 하고, 또 정진을 하되 한 얼마 동안 괜찮으면 괜찮을 때까지 고대로 쪽 정진을 하고.


또 답답하고 못 견디면 또 단전호흡을 해서 얼마 동안 그놈을 단속을 해서 고비를 넘기다가, 그래도 영 답답하고 골이 아프고 먹먹하고 지루하고 해서 잘 안되면, 또 가만히 또 나와서 포행을 하고.

이렇게 해서 그 고비를 넘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하다 보면 다시 깨끗하게 성성적적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하고, 순일하게 정진이 되어 가는데, 그전에 보단 훨씬 공부가 수월하게, 화두를 들려고 애를 쓰지 아니해도 화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순일하게 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한한 공력을 들이고, 무던히 끈기 있게 이 고비를 넘기기를 수없이 이렇게 닦아 가는 것입니다.(17분51초~36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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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에는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서 오십오위(五十五位) 점차(漸次)를 거쳐서 등각(等覺), 묘각(妙覺)을 갖다가 성취를 한다’ 그러는데,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것은 일아승지겁만 해도 몇억만 년인데, 삼아승지겁이면 얼마나 많은 천문학적 숫자로도 비유할 수가 없는 그런 긴 세월인데,


무엇을 삼아승지겁에다 비유했냐 하면 우리 그 중생심, 중생의 끊임없이—육진(六塵) · 육근(六根) · 육식(六識), 이 십팔계라고도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중생의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삼성(三性)의 생멸식이 그 고비 고비가 바로 삼아승지겁에다가 비유를 한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團束)을 하고, 또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을 하고, 단속하면은 그 단속하는 그 생각에서 또 생각이 일어나고, 좋은 생각이 일어나도 그렇고,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고,

수 없는 생각, 하루에면 몇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는데, 한 생각 속에 그놈을 더 미세하게 관찰을 하면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들어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일생 동안에 우리의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멸심(生滅心)을 무슨 전산기나 무슨 특별장치를 해서 그것을 갖다가 기록을 해서 그놈을 확대해 놓고 보면 정말 삼아승지겁이라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들을 단속을 하지 아니하고 방치해 두고, 또 일어나는 그 생각 따라서 자기도 같이 장단을 치고 춤을 추고, 생각으로 입으로 몸으로 놀아나서 업(業)을 짓게 되면 그것이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가 되는데.


무량겁을 육도윤회를 하면서 생사윤회를 하는데—천당에 갔다 지옥에 갔다, 축생이 되었다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되어도 빈부귀천 남녀노소로, 쪼끔 좋았다 나빴다, 울었다 슬펐다, 성냈다 풀어졌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그 많은 생사유전(生死流轉), 그것이 무량겁으로 연속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렇게 해 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 갈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는 불법을 만났고, 이 최상승법을 만났기 때문에...


그 아무 힘 안 들이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근원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왜 그런 것들이 일어나는 가도 모르고—그 일어나는 그 생각에 자기도 덩달아서 휩쓸려서 넘어가면서 고락(苦樂) 속에서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온전히 자기한테 있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전부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전가(轉嫁)를 시킵니다.

그래 가지고 크나 작으나 남을 원망합니다. 남에게 그 허물을 뒤집어씌우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웬수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잘해 주어도 웬수가 되고, 더군다나 못해 주면 더 큰 웬수가 되고.

잘해 주면 은인이 되어야 할 텐데, 잘해 주면 반드시 그 사람이 결국은 웬수가 됩니다. 못해 주면 당장 그 자리에서 웬수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잘해 주는데 왜 웬수가 되느냐 그말이여?

처음에는 좀 ‘고맙다’ 그러지만, 결국은 그렇게 해서 맺어진 인연이 나중에는 웬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웬수는 친한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그만한 은혜도 남이 나한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은 아무리 조그만한 것이라도 평생 동안 잊지 말고, 아무리 큰 웬수라도 즉시 잊어 버려라’ 이렇게 고인은 말씀하신 바도 있지만,


남이 나한테 은혜를 베풀어 주되 나는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듦으로써 그 사람의 은혜를 갚아야 하고,

남이 나에게 섭섭하게 하고,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화두를 듦으로써 그 사람이 나한테 해롭게 한 보답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가장 현명한 길인 것입니다.


그 말은 어찌 생각해 보면 현실에 맞지 않는 말같이 생각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왜 남이 나한테 잘못하면 즉각 방어를 해야 하고 대처를 해서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고, 또 남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 고마운 보답으로 물심양면으로 그 은혜를 갚으면서 살아야지,

어찌 남이 나를 해친다고 해서 화두만 들고 가만히 그것을 다 당할 수가 있으며, 또 남이 나에게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베풀었을 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보답을 해야지, 화두만 들고 다 똑똑 따먹고 있을 수가 있느냐? 이건 현실적으로 안 맞는 소리다’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도를 닦는 스님네라면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보시하는 것이나, 보시하는 물건이나, 받는 사람이 모두가 공적(空寂), 무심(無心)해 버리면 그것이 바로 청정(淸淨)한 것인데,

스님네는 혹 그럴 수가 있다 하지만, 세속에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화두만 들고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이 볼 때 미쳤다고 하거나 모자란다고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 똑똑 따먹고 다시는 보답하는 법이 없으면은 그 사람은 아주 숭악한 욕심쟁이라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또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점도 있습니다.

있으나, 화두를 드는 마음으로 또 물질적으로 보답을 할 때는 하고, 또 상대방이 나를 해(害)를 치면 지혜롭게 방어를 하되, 웬수의 마음을 가지고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대처를 하지 말고, 그 상대방이 나를 해를 가하되, 퍼뜩 화두를 들고서 먼저 이성에 입각해서 대처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놓쳐 버리면 감정에 떨어져 버리니까,

화두를 한 번 탁! 챙길 수 있는 여유만 있어도 우선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자기의 중심을 찾고서 모든 사리를 판단하게 되고 처리하게 되니까, 그리만 되어도 얼마나 훌륭한 일이며, 얼마나 지성인다우며, 얼마나 부처님 제자다우냐 이것입니다.


말은 쑥떡같이 해도 듣기를 참! 진수성찬으로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옳게 일러 주어도 사사건건이 삐뚤어지게 받아들이고 이상하게 해석을 붙이면 그건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되 현명한 답을 하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은 현명한 질문을 하되 어리석게 답을 하게 됩니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듣기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듣기를 잘 들어야 그것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도를 닦아 가는데 좋은 채찍이 되고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들으면, 이것이 자기의 분별심과 번뇌의 불에 섶을 얹히는, 가하는 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라. 마음에 얻으면, 마음에 도리를 얻으면 손에 응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다. 겨울이 되면 눈 내리고, 가을이 되면 밝은 달이 뜨며, 봄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꽃이 피어서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 가더라.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인데, 아침마다 새벽마다 닭은 오경(五更)에 울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봄이 오매 곳곳이 산에 아름다운 꽃이 울긋불긋 피더라.


무슨 색상을 보던지 무슨 소리를 듣던지, 그 보고 듣고 생각하는 데에 그 본질을 잃어버리면,

일상 생활하는 것을 그것이 다 복잡하고—밥해 먹고 옷 빨아 입고, 남편을 섬기고 자녀를 모두 돌보아주고, 살림을 꾸려나가고 세간살이를 해 나가고 한 것이 그것이 모두 복잡하고 그것 때문에 공부가 못한다 해 가지고, 그런 일용을 갖다가 다 버려버리고 따로 어떠한 특별한 생애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벌써 ‘가정 생활 그것이 공부에 방해가 되고, 그런 것들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집안 식구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그것이 다 업으로 만나는 원수 것들이다’ 이러한 생각이 속에서 뽁짝뽁짝 일어난 때에는 벌써 그 사람 공부가 잘 안되는 때거든.

화두를 놓쳐 버리고 공부가 안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속에서 막 퍼일어나 가지고 ‘어떻게 해야 이것을 벗어날꼬?’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님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속에서 일어나 가지고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어디로 갈까? 떠나 버릴까, 휘저어 버릴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날 때에는 벌써 공부가 안되는 때거든.

공부가 안되기 때문에 그 뜻을 얻지를 못해. 그 뜻을 얻지를 못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는 것이 그렇게 나를 갖다가 뒤흔들거든.


그 근원을 얻으면—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바로 거기에서 탁! 자기의 근본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자기의 근원으로 돌아온다면, 모든 기회와 모든 경계상에서 바로 그놈을 막 잡어 쓸 수가 있는 거여.


세수할 때는 세수한다고 그놈이 어디로 갈 거냐 그말이여.

먹을 때는 어디로 가? 그 먹는 놈 내놓고 그게 어디로 갈 거냐 그말이여.

비를 들고 마당을 쓸 때는 쓰는 놈 내놓고 어디 가서 찾느냐 그말이여.


바로 뜻을 얻어 가면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모든 색상(色相)이 바로 그것이 부처님 진신(眞身)이요, 이 세상에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는 일체가 다 법신불(法身佛)의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찾다가 저 죽는다” 그런 말씀이 있는데, 바로 그놈을 내놓고 따로 찾으면 그 무엇이 나올 거냐 그말이여.


이건 너무 가까워서—무슨 물건을 잃어 버렸을 때 자기 손에 쥐고 찾는다든지, 바싹 바로 자기 무릎 밑에 코앞에 있는 것을 놔두고 저 멀리 찾으면 그건 찾을 수가 없는 거여.

흔히 가까운 데다 놓고 멀리 찾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수가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자성(自性)을 찾는 데에도 언제나 가까운 데에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데 있는데 그놈을 멀리 찾으면 그건 없거든.(36분38초~57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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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데에 있으니까 「찾다가 저 죽는다」했으니, 찾지 아니하면 언제나 거기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부할 게 뭐 있느냐. 눈에 볼 때는 보는 놈이고, 귀로 들을 때는 듣는 놈이고, 무슨 생각을 할 때는 생각하는 놈 그놈인데 무엇을 찾을 거 뭐 있느냐.

그렇다면 뭐 참선도 군더더기고 찾는다는 자체가 틀려 버렸다니까, 안 찾고 고대로 놔두면 언제나 거기 있다’ 그 일리가 있는 말 같지만.


찾다 찾다가 아주 목숨을 바쳐서 찾고, 찾다가 찾다가 해 가지고 ‘찾는 놈’과 ‘찾으려는 놈’과 일체가 하나가 되어서 그래 가지고 ‘찾는다’는 생각까지 끊어지되,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의단이, 의관(疑觀)이 한담(寒潭)에, 파도 없는 못에 뚜렷한 달이 턱! 박히듯이,


알 수 없는 의단이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한 가운데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독로하되 거기에도 빠지지 말고 오직 의단만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그놈이 타파(打破)되어 가지고 그런 뒤에 바로 보는 놈이요, 듣는 놈이요, 생각하는 놈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총가옹(摠家翁)으로 이렇게 되는 게지,


그러한 고비를 넘지 아니하고 의리(義理)로, 들은 풍월(風月)로,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찾는 놈이 그놈이고, 듣는 놈이 그놈이고, 바로 이거 말하는 놈이 이놈이다’

이러한 생각 가지고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생사해탈도 아니요, 견성도 아니고, 그러한 것은 의리선(義理禪)도 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우리는 화두를 거각(擧却)을 해 가지고, 화두를 갖다가 여법(如法)하게 참구(參究)를 해서 화두 공안 타파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원래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자연 발생적으로 ‘대관절 이 인생이란 게 무엇이냐?’ ‘대관절 이 '내'라는 게 무엇이냐?’


형식적으로 화두를 어디서 타 가지고 그놈을 형식적으로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까닭도 없이 ‘대관절 이 인생이란 게 뭐냐?’ 자나깨나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자연 발생적으로 속에서 불타듯이 분심과 신심과 의단이 한데 뭉쳐서 돈발(頓發)을 해야 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중생의 근기(根機)가 미약해 가지고 이 3가지 요소가 한목 돈발하지를 못하고 또 일시적으로 돈발하되 이것이 오랫동안 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좋은 도반들과 서로 같이 방(榜)을 짜 가지고 또 선지식(善知識)에 의지해서 선지식의 지도하에서 가끔가끔 법문을 들으면서 서로서로 경책(警策)을 하면서 해야만,

힘이, 그 정진하려는 그 분심이 그런대로 지속이 되고 퇴타(退墮)를 하지 않고서 한 철 두 철 이렇게 알뜰히 해 나가다 보면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이 한목 이렇게 일어나는 때가 꼭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은 화두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계속해서 해 나가면 결국은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타파했을 때에 선지식의 점검을 받아서 이것이 옳은 경계인가 아닌가? 이것 체중현(體中玄)에 떨어진 것인가? 그것을 점검을 받아서 나아가야지,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소견(所見)이 난 것을 속으로 딱 깊이 간직하고 그것을 지켜 나가고, 말하자니 자신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딱 그놈을 들여다보고 앉었으면 그건 큰 공부는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한 것은 일신상으로 마음 편안한 것을 얻으려는 그러한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해서 온 법계(法界)가 부처님으로 가득차게 될 때까지 우리의 수행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의 과제는 계속 풀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대한 큰 원(願)을 가지고 우리는 정진하는 사람이라, 조끔 무슨 얻은 소견 그것을 가지고 만족함을 삼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나 자신도 수행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 내 일이 참 바쁘고,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누구 다른 사람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이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말할 분상도 아니지만,


전강 조실 스님의 은혜와 불조(佛祖)의 은혜와 여러 신도분들의 은혜가 지중해서 분에 넘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말은 여러분 들으라고 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향해서 항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입 밖으로 울려 나가 가지고 여러분의 귀에 들려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공부해 나가시는 데에 도움이 되신다면 이것은 뜻 밖에 공덕(功德)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법(法)에는 승속(僧俗)이 없고, 남녀가 없고, 노소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대중 스님네와 보살님네, 연세가 많다고 해서 양보를 하시지 말고, 여자라고 해서 양보를 하지 말고, 이제 금방 출가한 사미승(沙彌僧)이라고 해서 양보를 하지 말고, 각기 다 장부(丈夫)의 기상을 가지고 어서 속히 도(道)를 이루어서 이 산승(山僧)을 제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오늘은 해제날이요, 또 정월 대보름이 되어서 또 백일기도 회향이고 그래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천도 법요식(薦度法要式)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대광명 양정모 거사의 부친이신 정태진 영가의 특별 천도를 하게 됩니다. 그 천도재를 위해서 재자(齋者)가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께 대중공양(大衆供養)을 올리게 됩니다.


검소한 사중(寺中)의 공양이지만 어쨌든지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점심 공양을 잘 하시고,

또 이 법요식에 어쨌든지 화두를 들고 작관을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또 오늘 천도재를 올리는 이 정태진 영가, 여러 영가들이 오늘 해제를 기해서 무량억겁의 모든 업이 봄눈 녹듯이 다 녹고, 모든 인간 세상에 있어서의 애착과 미련을 깨끗이 다 끊어 버리고 그래 가지고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시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을 합니다.


인간의 애착(愛着)—아내가 남편, 남편이 아내,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모두 애착으로 얽혀서 우리는 이렇게 몸을 받아 나고 또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인간 세상에 애정이 없다면 참! 부모 자식도 아니요, 남남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면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또 생사유전(生死流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승(小乘)에 있어서는 목적이 태(胎) 속으로 안 들어가는 것을 구경(究竟)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태중(胎中)으로만 들어가면 태어나게 되고, 태어나면 생노병사가 있어 가지고 생사윤회를 하게 되기 때문에 열반의 경계에 탁 머물러 있어 가지고 멸진정(滅盡定), 그 멸진정에 들어가 가지고 영원히 뱃속으로 안 들어가는 거여.


어머니 뱃속으로만 들어갔다 하면은 태어나야 하고, 태어나면 또 병들어 늙어서 죽어야 하니까, 어쨌든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고 완전 무심의 경계를 거쳐서 멸진정에 들어가 가지고는 탁! 그 속에 잠겨 있으면 다시는 태 속에 들어갈 이유가 없거든.

이것은 소승의 경계로써, 부처님께서는 “차라리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할지언정 소승심은 내지 말어라” 그러셨거든.


대승법, 최상승법은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가 본래 없는 도리’를 깨닫는 것이여.

생사를 피해 가지고 열반을 구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눈에 생사로 보이는 이 생사 속에서 바로 생사 없는 도리를 요달(了達)해 버리는 거여.


그래서 사람이 되거나 짐승이 되거나, 지옥에 가거나 천당에 가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바로 그것이 해탈(解脫) 경계가 되도록 그러한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처음 공부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사상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피해 가지고 조용한 것을 구할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시끄러운 속에서 바로 ‘시끄러운 것 자체가 시끄러운 것이 아닌 도리’를 요달해 버리는 거여.


그 도리 요달하려는 방법이 바로 그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속에서 화두를 탁! 들어 버리거든.

이렇게 모든 생각, 모든 경계, 모든 시간에서 그렇게 자기를 잡드리를 해 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웬수는 싸움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57분6초~73분3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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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화소산전설천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설루(洩漏 샐·비밀이 흘러나오다 설/샐 루) ; [같은 말]누설(漏泄 샐 루/샐 설 : 비밀이 새어 나감).

*천기(天機) ; ①매우 중대한 기밀. ②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이나 대자연의 비밀. 또는 신비.

*누설하다(漏泄-- 샐 루/샐 설) ; 은밀히 알리다.

*수풀 ; ①풀이나 작은 나무, 넝쿨 따위가 한데 엉킨 곳. ②나무가 울창하게 가득 들어찬 곳.

*무생(無生) ; ①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②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의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부지런히 힘씀. ②불법(佛法)을 깨닫기 위해 수행에 힘씀.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여일(如一)하다 ; (사람의 언행이)처음부터 끝까지 꼭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우기(雨期) ; 일 년 중에 장마가 지거나 하여 비가 많이 오는 시기.

*탁발(托鉢 맡길 탁/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을 책임지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계절인즉슨 ; 계절로 말할 것 같으면.

*인즉슨 ;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의 뒤에 붙어, ‘~로 말할 것 같으면’의 뜻을 힘주어 나타내는 보조사.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파정(把定)하면... 방하(放下)하면... 구름이 곡구(谷口)에 가로 놓인 것이다 ;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에서.

(금강경 본문)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 야부 송(冶父 頌) 把定則 雲橫谷口 放下也 月落寒潭

- 함허 설의(涵虛 說誼) 不爲有邊所動 根境法中 無影迹 不爲無邊所寂 這邊那邊 應無虧 應無虧 月落寒潭 無影迹 雲橫谷口 把定 是 放行 是 把定放行 俱不是 一掃掃向三千外

*설의(說誼) ; 설의(說義). 의리(義理, 이유·도리)를 말함.

*자변나변(這邊那邊) ; 이쪽 저쪽.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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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목석(木石) ;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이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단전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모공(毛孔 털 모/구멍 공) ; 털구멍. 털이 나는 작은 구멍.

*탄산가스(炭酸gas) ;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가스. 대기 중에 소량 존재하는 무색, 무취의 기체로 공기보다 약 1.5배 무겁다. 탄소를 포함하고 있는 물질이 탈 때나, 동물이 호흡할 때 생기며 식물의 광합성에 사용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질식(窒息 막을·멈출 질/숨쉴 식) ; 숨통이 답답하거나 산소가 부족해서 숨이 막히게 됨.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율(率) ; 비율(比率).

* ; ①(주로 ‘없다’, ‘않다’, ‘못하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써 봐도 도무지. ②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또는 아주 심하게.

*대혜종고(大慧宗杲) : (1089 – 1163) 경산 종고(徑山宗杲). 법명은 종고, 자는 대혜(大慧), 법호는 묘희(妙喜)이며, 속성은 해(奚)씨. 안휘성(安徽省)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에서 났다.

17세에 출가하여 선주의 명교(明敎)선사에게 가서, 깨친 바가 있은 뒤, 조동종의 장로들께 많이 찾아다니다가 변경(汴京)의 천녕사(天寧寺)에 가서 원오선사의 법을 받아 가지고, 경산의 능인사(能仁寺)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그 때 나라의 정사를 비평하였다는 혐의로, 형주(衡州)에 귀양갔다가 또 얼마 뒤에 매주(梅州)로 옮기게 되었다. 그를 따라갔던 백여 명의 제자 가운데 반수 이상이 그 지방의 풍토병으로 죽었다.

17년 만에 석방되어 다시 경산과 아육왕산 광리사(阿育王山廣利寺)와 전당(錢塘)의 영지사(靈芝寺), 건강(建康)의 보령사(保寧寺) 같은 여러 곳에 있다가, 송나라 효종(孝宗) 융흥(隆興) 1년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정법안장(正法眼藏)> 6권, <대혜어록(大慧語錄)> 30권, <법어(法語)> 3권, <대혜보각 선사보설(大慧普覺禪師普說)> 5권, <종문무고(宗門武庫)> 1권, <서장(書狀)> 2권 등이 있고, 법을 이은 제자가 90여 명이 있었다.

그가 교화한 가운데 특히 애쓴 것은 천동 정각(天童正覺)이 주장한 묵조선(默照禪)을 부수어 버리고 활구(活句) 참선을 강조한 것이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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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말한다.

아승지겁(阿僧祇劫)은 보살이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아주 긴 시간. 이 수행의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라 한다.

*오십오위(五十五位) ; 처음 건혜지(乾慧地)를 지나 십신(十信) ·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 · 사가행(四加行) · 십지(十地)를 하나하나 거쳐서 올라가야 성불하게 된다는 말.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등각(等覺) ; ①등정각(等正覺), 금강심(金剛心), 일생보처(一生補處), 유상사(有上士). 보살의 지극한 지위이지만 지금부터 묘각(妙覺)의 불과(佛果)를 얻으려는 지위.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는 지위. 부처님의 깨달음과 거의 같은 깨달음이라는 뜻.

②부처의 다른 이름.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 평등하다는 뜻. 평등각(平等覺).

*묘각(妙覺) ; ①부처님의 불가사의 무상(無上)의 깨달음. 절묘한 깨달음. 깨달음 그 자체. 구경각(究竟覺).

②보살이 십지(十地), 등각(等覺)의 수행을 마치고 마침내 부처님의 과위(果位)를 얻는 것. 스스로의 깨달음과 남을 깨닫게 하는 자각(自覺)과 각타(覺他)의 각행(覺行)이 원만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을 말한다.

*삼성(三性) ; 모든 현상의 성질을 윤리적 측면에서 선(善), 악(惡), 무기(無記)로 나눈 것.

①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②악(惡) ; 산스크리트어 pāpa 올바르지도 청정하지도 않아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르지 않음.

③무기(無記) ; 산스크리트어 avyākṛta 선도 악도 아닌 것. 또는 그러한 마음 상태.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생멸심(生滅心) ; 변화 동요하여 그치지 않는 마음.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유전(生死流轉) ; 중생이 불교의 근본 원리에 통달하지 못하여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일.

*전가(轉嫁 돌릴 전/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삼륜공적(三輪空寂) ; 타인에게 물건을 줄 때, 실체가 공(空)한 것을 관(觀)하여 보시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시자(施者 베푸는 사람) · 수자(受者 받는 사람) · 시물(施物 보시한 물건)의 3륜(輪)이 모두 본래 공(空)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 삼륜체공(三輪體空),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도 함.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청정(清淨 맑을 청, 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숭악하다 ; ‘속이 응큼하다(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엉뚱한 욕심을 품고 있거나 음흉陰凶하다)’ ‘흉악凶惡하다(성격, 언행이 모질고 악랄하다)’의 사투리.

* ;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오경(五更) ; ①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룻밤을 다섯 시기로 나누었을 때의 다섯째 부분.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이다.

*진신(眞身) ;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뜻함. 법신(法身).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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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가옹(家翁) ; 집안의 주인(主人). 주인공.

*의리(義理)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

*풍월(風月) ; ①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지식. ②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읊거나 노래함. 또는 그 시나 노래.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참구(參究 헤아릴 참, 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퇴타(退墮 물러날 퇴, 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장부(丈夫) ; ①참선하는 수행자. ②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③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 법요식(薦度法要式)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생사유전(生死流轉) ; 깨달음, 붓다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이 무명, 번뇌에 의하여 생사 인과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삼계육도(三界六道)를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 윤회(輪廻)라고도 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주요 내용]


(게송)화소산전설천기~ / 결제(結制)의 뜻 / 파정(把定), 방하(放下) / 공부가 안될 때가 한 계단 높이 올라가는 중요한 때이니 지혜롭게 잘 대처해야.

한 생각 단속 / 생사유전(生死流轉) / (게송)득지재심응재수~ / “찾다가 저 죽는다” / 신심·분심·의단이 한목 돈발해야 /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할지언정 소승심은 내지 말어라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요달(了達).




[주요 문구]


석 달 동안 대중이 모여서 시간을 짜 가지고 그 시간대로 규칙 생활을 하면서 정진을 하는 것은 해제 동안에 일정한 규칙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정진이 여일(如一)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특별한 기간 동안 특별한 시간을 짜서 규칙 하에 대중이 정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나 또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나 한결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물샐틈없이 단속해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고요한 데에 처백히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데에 동요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단속해 나가게 되면 선방에 앉았거나, 도량에 나가거나 또는 여기저기 행각을 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 자리가 결제 중에 선방(禪房)에서 입방선(入放禪)을 하면서 지낸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정진이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에 보면, 그 공부가 잘 안되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뒤틀리고 먹먹하고 영 애를 먹을 때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중요하다고 하냐 하면, 그게 공부가 잘못 되어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부해 가지고 한 고비 넘어갈려고 할 때에 그러한 경계를 만나게 된다 그랬습니다.


남이 나한테 은혜를 베풀어 주되, 나는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듦으로써 그 사람의 은혜를 갚아야 하고, 남이 나에게 섭섭하게 하고,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화두를 듦으로써 그 사람이 나한테 해롭게 한 보답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가장 현명한 길인 것입니다.


세수할 때는 세수한다고 그놈이 어디로 갈 거냐 그말이여. 먹을 때는 어디로 가? 그 먹는 놈 내놓고 그게 어디로 갈 거냐 그말이여. 비를 들고 마당을 쓸 때는 쓰는 놈 내놓고 어디 가서 찾느냐 그말이여.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찾다가 저 죽는다” 그런 말씀이 있는데, 바로 그놈을 내놓고 따로 찾으면 그 무엇이 나올 거냐 그말이여.


흔히 가까운 데다 놓고 멀리 찾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수가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자성(自性)을 찾는 데에도 언제나 가까운 데에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데 있는데 그놈을 멀리 찾으면 그건 없거든.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일신상으로 마음 편안한 것을 얻으려는 그러한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해서 온 법계가 부처님으로 가득차게 될 때까지 우리의 수행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의 과제는 계속 풀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대한 큰 원(願)을 가지고 우리는 정진하는 사람이라, 조끔 무슨 얻은 소견 그것을 가지고 만족함을 삼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 법(法)에는 승속(僧俗)이 없고, 남녀가 없고, 노소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대중 스님네와 보살님네, 연세가 많다고 해서 양보를 하시지 말고, 여자라고 해서 양보를 하지 말고, 이제 금방 출가한 사미승(沙彌僧)이라고 해서 양보를 하지 말고, 각기 다 장부(丈夫)의 기상을 가지고 어서 속히 도를 이루어서 이 산승(山僧)을 제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소승(小乘)에 있어서는 목적이 태(胎) 속으로 안 들어가는 것을 구경(究竟)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태중(胎中)으로만 들어가면 태어나게 되고, 태어나면 생노병사가 있어 가지고 생사윤회를 하게 되기 때문에 열반의 경계에 탁 머물러 있어 가지고 멸진정(滅盡定), 그 멸진정에 들어가 가지고 영원히 뱃속으로 안 들어가는 거여.


어머니 뱃속으로만 들어갔다 하면은 태어나야 하고, 태어나면 또 병들어 늙어서 죽어야 하니까, 어쨌든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고 완전 무심의 경계를 거쳐서 멸진정에 들어가 가지고는 탁! 그 속에 잠겨 있으면 다시는 태 속에 들어갈 이유가 없거든.

이것은 소승의 경계로써, 부처님께서는 “차라리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할지언정 소승심은 내지 말어라” 그러셨거든.


대승법, 최상승법은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가 본래 없는 도리’를 깨닫는 것이여. 생사를 피해 가지고 열반을 구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눈에 생사로 보이는 이 생사 속에서 바로 생사 없는 도리를 요달(了達)해 버리는 거여.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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