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400/(351~375)2017.10.09 21:32

(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59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19분.

(1/3)----------------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달이 둥굴매, 아무리 달이 둥글고 더이상 둥글 수 없이 둥글다 하더라도 보름을 넘지를 못해. 보름이 되면, 보름날이 되면은 그 이튿날부터서는 차츰차츰 이그러져 가고.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다. 해가 정 중천(中天)에 오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어. 정오가 되면은 되는 그 찰나부터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달도 보름을 넘지 못해서 기울어져 가고, 해도 정오를 넘자마자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건만 오직 뜰 앞에 잣낭기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홀로 춘하추동 사시(四時)에 푸르른구나.



지금 삼복(三伏) 중에 이 폭염(暴炎)이 최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일기(日氣)만, 날씨만 이렇게 더운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불구덩이 속에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저 이란과 이라크라는 데는 땅을 한 치라도 더 뺏고 뺏기 위해서 그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싸우고, 세계 도처에서는 서로 자기 나라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서로 경제적으로 싸우고 있고,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싸우고 있고,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는 자기네 종교를 보다 더 펴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 가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올림픽에 어떻게 하면 이걸 잘 치르느냐?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다 더 메달을 많이 따느냐?’ 이런 문제로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피땀을 흘리고 있고. 여당과 야당은 자기 당의 세력을 펴기 위해서 당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 무더위 속에 그 속에서 불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헌 싸움은 설사 그 싸움에 이겼다 하더라도, 또 이기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잠정적(暫定的)인 것뿐인 것입니다. 잠시 그러다가 금방 또 기울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이기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용광로처럼, 사방팔방(四方八方) 일체처 일체시에 이렇게 용광로처럼 중생의 욕심의 불이—입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을 부르짖고, 세계의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시커먼 중생(衆生)의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욕심의 불이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욕심의 불이 언제 꺼지느냐?

꺼질 기약이 없습니다. 그 욕심의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는 세계의 평화도, 국가의 민주주의도, 민족의 통일도 행복도 이루어질 가망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복더위가 치성을 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더위에 이기지 못해서 어떻게 허면 이 더위를 좀 피헐 수가 있을까?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이렇게 해서 좀 피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지 근본적으로 그 더위를 모면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면(四面)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고봉 선사도 「진대지(盡大地)가 이렇게 훨훨 타고 있는 이 불구덩이인데 어떻게 허면 이 불구덩이로부터 살아날 수가 있겠느냐?」 이런 실중삼관(室中三關) 속에 이러헌 공안(公案)을 설하시기도 했습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그 태양이 이글이글 이렇게 타므로 해서 이렇게 더운 것쯤은 차라리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또 선풍기도 돌리고 에어컨도 틀고 해서 부채질도 하면서 그럭저럭 허다 보면, 오늘이 바로 입추입니다마는 입추를 지내고 또 말복이 지내면 금방 처서(處暑)가 오고 해서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해서 그까짓 것쯤은 별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타 일어나고 있는 이 중생의 탐진치에 욕심의 불, 이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불인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워가지고, 물론 비는 오지 아니하고 이렇게 혹서(酷暑)가 계속이 되면 세계 어딘가는 더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도 없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더위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말은 아직은 못 들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그것이 뜨거워서 타 죽지는 여간해서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재진출진(在塵出塵)이요 불가잠폐(不可暫廢)다. 티끌 속에 있으면서 티끌에서 뛰어나며. 그 티끌 속에서 티끌에서 뛰어나는 그 도리, 그것을 불가잠폐(不可暫廢)여. 잠깐 동안도 등한(等閒)히 헐 수가 없어. 정지헐 수가 없는 일이다.


‘티끌 속에서, 티끌 속에 있으면서 그 티끌에서 뛰어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전체가 티끌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티끌이고, 우리의 식(識)으로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부가 그것이 다 티끌인 것입니다.

티끌 속에서 도저히 우리는 일 초 동안도, 한 걸음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왼발을 들면 오른발이 땅에 닿아 있고 오른발을 들면 왼발이 땅에 들어있어. 공중으로 뛰어 봤자 1미터도 못 뛰고 다시 도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도 이 생각 저 생각 희로애락 일체 생각이 선 · 악 · 무기(無記)의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서 그 생각이 또 꺼지자마자 또 다른 생각이 또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이것이 모두 티끌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 티끌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그 티끌 속에서 뛰어날 수가 있느냐?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에 설하신, 갑인년이 바로 조실 스님 열반하시던 해인데 지금부터 15년 전입니다. 그해에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이 무엇고?’

잠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탐진치 삼독에 번뇌와 망념이 불타듯이 이렇게 훨훨훨훨 타오르고 있는데, 그 일어나는 그 생각 거기에서, 바로 거기에서 그놈을 뛰어나는 방법이 있다.

그놈을 피해가지고 서늘한 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거기에 즉(卽)해 가지고 거기에서 뛰어나는 도리가 바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여.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번뇌의 대해(大海)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치는 그 번뇌의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일체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우리 중생의 본업(本業)이고, 우리의 재산이고,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번뇌와 망상을 여의고 살 수가 없지만, 바로 그 번뇌와 망상 그놈이 없으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다가 큰 바다가 깊고 넓고 파도가 쳐서 그놈 함부로 들어가면,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면 휘떡 엎어져 갖고 그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도저히 그 바다 속에 있는 그 희귀한 보물을 얻을 수가 없어.


이 번뇌 망상 이놈 때문에, 아!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



‘참선, 참선’ 다 좋은 줄 다 알고 참선(參禪)이야말로 우리 불법 가운데에 최고의 수행 방법이고, 참선만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다 인증을 하지마는, 견성성불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흔치 않은 것은 무엇이냐?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놈을 어떻게 그놈을 타고 넘어서 그 속에 있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를 캘 수가 있느냐?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번뇌 망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일어나는 대로 나둬. 어떻게 바다에 가서 그 파도를 없앨라고 해봤자 그 없어지겠습니까?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아무리 몽둥이로 팬들 그 파도가 없어질 리가 없어. 오히려 더 파도가 일어날지언정 없어질 리는 없어.


일어나는 파도를 고대로 놔두고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탁!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말이여.(처음~20분26초)



(2/3)----------------


화두를 이 생각을 해, ‘이뭣고’—화두를 생각하는 것과 화두를 거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러요.

‘이뭣고’ 자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허듯이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밤낮 그렇게 허라고 권고는 합니다마는 그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거든.


화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뭣고, 이뭣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만 밤낮 생각해봤자, 그것이 백천만 겁을 무량겁을 그놈을 생각허고 있어 봤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이뭣고?’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그 알 수 없는—‘이뭣고?’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하거든.


그 의심을, 간절한 의심을 관조허는 데에서, 거기에서 그 의심이 점점 간절해지고 점점 의심이 더 깊어지고 그 의심이 점점 커져서 더이상 의심이 커질래야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래야 간절할 수가 없이, 그래 가지고 화두를 들면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간절히 일구월심(日久月深)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생각을 내서 들라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때는 화두를 안 들어도 의단이 턱! 앉으나, 서나, 누웠으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이 독로허게 되거든. 좀 잊어버리고 딴 생각을 좀 헐려고 해도 안 되는 것여.

이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경계에 가서 그놈이 툭! 터지게 되는 것이거든.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니,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도 여의지 못할 것이니, 가히 여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니라’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도라고 허는 것은 잠깐도 여읠 수가 없는 것이여. 여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여.

화두도 의심이 잠깐 있다가 없다가 밤낮 그러면은 그것은 참다운 의심이 아니여. 진의(眞疑)가 아니여. 그것은 주작(做作)이여. 억지로 지어서 들 때는 잠시 있고 금방 의심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은 그것은 참의심[眞疑]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참의심[眞疑]이 돈발(頓發)허냐? 신심. 신심(信心)과 분심(憤心). 분심이 밑바탕이 되어야 거기에서 참다운 큰 의심이 거기서 나는 것이여.


그래서 어떻게 허면은 그 신심과 분심이 일어나냐 하면은, 마치 이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또 머리털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을 때처럼.

눈썹에 불이 타고, 불이 머리에 붙어 덩겨 가지고 불이 훨훨훨 타고 있는데, 그런 경우를 만나서 어떤 사람이 그 머리와 눈썹이 타고 있는 것을 놔두고 다른 급한 일을 있다 해 가지고 다른 데에다 생각을 쓸 겨를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 하더라도 곧 죽는다 해도, 지금 곧 저 방에서 죽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머리에 붙은 불버텀 훽 꺼버리고 끄고서 그리 쫓아가지, 자기 불이 훨훨 타는 것을 놔두고 ‘아들 죽을라고 하는 데 먼저 가보자’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있을 수가 없어.


도를 닦는 것이, 우리가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할 때에 있어서 마치 눈썹에 불이 덩기고 머리털에 불이 덩근 것처럼 그것을 끄듯이 화두를 들어라.


언제 어디서라도 화두를 들어! 화두를 들고서,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를 들고서 남편도 생각하고 아들도 생각하고 살림도 생각하고 사업도 생각을 해야 해. 일차적으로 자기 머리털에 불부텀 끄듯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허드라도 화두부터 들고 따져라 이거거든.

이렇게 허지 않고서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자기를 이 생사(生死)의 불구덩이에서 구제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허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해태(懈怠)허지 말 것이니, 중국에 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는 저녁에 잠이 오면은 송곳으로써 무릎을 찌르면서 잠을 깨와 정진을 하고, ‘고인(古人)네는 도를 위해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관절 나는 이 무슨 사람이냐?’

‘과거에 모든 선지식(善知識)과 불보살은 진즉 이 생사 문제를 요달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대관절 어떠한 인간이기에 무엇이길래 오늘날까지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자기를 꾸짖고 고인에 견주어서 용맹심을 내면서 정진을 했어.


이러헌 마음가짐으로 하루 하루를 단속해 나가고 1시간 1시간을 단속해 나간다면 어찌 신심이 돈발하지 아니하며, 어찌 분심이 돈발하지 아니하며, 어찌 대의정(大疑情)이 돈발허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매우 더워서, 여러분은—모두 다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는데—이 더위에 이렇게 일요법회에 이렇게 많이 법회에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구태여 이러헌 경책의 말씀을 누누이 해 드릴 필요도 없이 진정 여러분은 이 법당 안에 더운 속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으로부터 들을 것도 없는 소리를 그래도 열심히 듣고 계십니다. 그러헌 신심이면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부를 지어 가는 데 있어서 의근하복탁사유(意根下卜度思惟), 사량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공안을 따지고 이치를 따지고 이러헌 것을 허지 말어라.

중생심으로 아무리 이리저리 따져 봤자 그래 가지고 따져 가지고 아무리 그럴싸한 어떠헌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소견(所見)이지 참다운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량복탁(思量卜度), 공안을 따져.

자꾸 이 선지식이 “일러라!" 어떤 공안을 내놓고 “한마디 일러라! 당장 앉은자리에서 해결을 해야 해. 바로 일러야지, 이르기 전에는 잠도 자지 말어라” 이렇게 막 다그치니까, ‘이걸 한번 이것을 내가 한마디 이르고야 말겠다!’해 가지고 밤새 잠을 안 자면서 사량분별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따져보고.


그렇게 사량분별로 따져 갖고 되는 것이 아니야! 절대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알아질 수는 있을런가 몰라도, 알아진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 소견이지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이 생사 문제가 급허고 이 공안 타파가 급하다 하드라도 급할수록에 바른 방법으로 참구(參究)를 해나가야지, 중생의 사량분별 사량복탁으로써 이것을 따져 가지고 무슨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따져 가지고서는 공부가 조끔도 나아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또 참다운 의정도 거기서는 나지도 아니한 것이여. 참다운 의정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깨달음은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유복탁(思惟卜度)하는 이 네 글자는 바른 신심을 막아버리고, 바른 수행을 막아버리고 겸해서 도(道)의 눈[眼]까지도 가리워 버리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도학자(道學者)는 사량복탁 하는,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지는 것을 부모를 죽인 웬수처럼 알아 여겨야 헌다 그거거든. 사량복탁을 아주 부모 죽이는 웬수처럼 생각하고 잠깐 동안도 사량복탁을 허지를 말어라. 탁!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 ‘이뭣고?’ ‘이뭣고?’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이요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여과객(光陰如過客)이요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록(柳綠)은 앵전신(鶯傳信)이요. 푸른 버들은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요. 꾀꼬리가 전하는 봄의 소식이요.

화홍(花紅)은 연소원(燕訴寃)이다. 꽃이 붉은 것은, 벌겋게 핀 꽃은 제비가 원한을 호소하는 것이다.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 무엇이며, 제비가 호소하는 그 원한이 무엇입니까?


광음(光陰)은 여과객(如過客)이여. 그 세월은 과객(過客)처럼 그렇게 잠깐 왔다가 스쳐서 지나가 버리는 손과 같어.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다. 나도 또한 잠깐 훨훨 타다가 사라져 버리는 하나의 혼백(魂魄)에 지내지 못한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하나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전부가 다 유위법(有爲法)입니다.

봄이 아무리 버들이 푸르르고 아름다운 꽃이 울긋불긋 피었다 하더라도 잠시인 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려 봤댔자 잠깐인 것입니다.

부귀영화. 그 참,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불과 같아서—불이 없어서는 안 되지마는 그 불을 잘못 다루면 그 불에 집도 타고, 재산도 타고, 내 몸뚱이도 타고 생명도 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부귀영화. 참, 사람마다 부귀영화를 싫어헌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다 부귀영화에 탐착(貪着)을 하고 부귀영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과연 자기를 참다웁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 허면은 그러기커녕은 그놈 좀 어떻게 남보다 더 많이 긁어 담을라다가 그 쇠고랑을 차게 되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고 내생에도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산중에, 저 깊은 산중에 가면은 곰이 살고 있는데, 그 곰이란 놈이 이렇게 슬슬슬 땅도 뒤지고 바위도 뒤지고 허다 보면 바위 속에서 뭐 이상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뭐 토끼같은 거, 여우같은 거, 그런 것이 그 바위 굴속에 이렇게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인자 살고 있는데, 그 바위와 바위 사이로 공기통이 있어서 그 공기통으로 그놈들이 숨을 쉬고 있는데, 곰이 그리 지나가다가 돌 틈바구니에서 그 토끼나 여우나 모다 그러헌 짐승의 노랑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그래서 씩씩씩씩 냄새를 맡다가 그 돌 틈으로 그 곰이란 놈이 손을 집어넣어 가지고 이렇게 꽉! 잡았다 그말이여. 잡었는데, 암만 뺄라고 해도 그놈이 돌 틈바구니에 콱 찡겨 가지고 그놈이 빠지들 않는다 그말이여.

한 시간 두 시간을 갖다가 주먹에서 피가 나오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그놈을 뺄라고 해도 팔이 빠질라고 할지언정 주먹이 안 나온다 그말이여.


쥐었던 그놈이 토끼 대가리가 되았던, 여우 배떼기가 되았건, 그놈을 놔 버리면 빠질 텐데, 잡은 놈을 죽어도 안 놓을라다가 결국은 그놈이 콱! 찡겨 가지고 결국은 그놈이 포수한테 앵기면은 총에 맞아서 죽을 것이요, 나무꾼한테 앵겨 놓으면 몽둥이에 대가리가 깨져서 죽을 것이고, 혹 그런 사람을 못 만나면 그놈이 굶어서 죽을 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놈의 곰이란 놈은 어떻게 미련하던지 아! 그놈을 놔 버리면 손이 빠질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만 놔버리면 그냥 수르르르~ 하나도 안 아프게 손이 빠질 텐데, 아! 그 모처럼 만난 그놈을 잡아 갖고 놓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끝끝내 그놈을 놓을 줄을 모르고 억지로 손을 뺄라다가 팔목이 빠져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놈이 죽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20분27초~40분56초)



(3/3)----------------


중생의 욕심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사욕(私慾), 사리사욕(私利私慾) 그놈만 놔 버리면 온갖 재앙이 다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사리사욕, 그 탐진치(貪瞋癡), 그 욕심 그것만 놔 버리면 세계 평화도 거기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도 정말 뭐 얼마 안 가서 금방 민주주의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가 다 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일어난 그 사리사욕만 놔 버리면 민주주의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남북 통일도 그것만 양쪽에서 다 놔 버리면 통일이 왜 그것이 어려울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깨달음. 도저히 암만 참선(參禪)을 하고 10년, 20년 참선을 그렇게 애를 쓰고 해도 신심(信心)이 안 나고, 분심(憤心)이 안 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지 못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한다 하지만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중생에 탐진치 사욕만 놔 버리면 어찌 거기에서 신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의단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자꾸 버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버리고, 일체처 일체시에 자꾸 버리고 또  버리는 가운데에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다 거기서 떨어져 나가고, 거기에서 번뇌와 망상도 떨어져 나가고, 일체 장애도 거기에서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 선정(禪定) 그런 것이 다 참되게 닦을 수가 있고, 마침내는 지혜(智慧)의 바라밀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푸른 버들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이뭣고?’를 들라고 허는 법문(法門)으로 듣고, 붉은 꽃 노란 꽃을 봐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어서 속히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허는 불보살(佛菩薩)의 법문으로 듣고,

그러면서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니라

나무~아미타불~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가히 우습다, 세간(世間)의 애정이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로구나. 얼음이 녹고 기와가 깨지는 때로구나.

세간의 부모 자식 간의 애정, 부부간의 애정, 모든 그 얽히고설킨 끊을라야 끊을 수 없는 그 애정이 잠깐 사이에 얼음이 녹고 기왓장이 깨지는 거와 같다.


얼음이 딱딱하게 얼어져 갖고 있을 동안에는 유리와 같고, 참 그렇지만 금방 영하 0도를 벗어나면은 슬슬슬슬 녹아 버리고 100도가 되면은 그냥 증기로 다 날아가 버린다 그말이여.

기왓장이 그놈이 성할 때에는 하늘에 내리는 비도 막고 그렇지마는 그것이 불이 난다든지 깨져서 바삭바삭 깨져 버리면 그 뭐 기왓장이라고 헐 것이 무엇이냐 그말이여.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은혜. 은혜스럽고 은혜가 많으면은, 참 그 은혜를 많이 입고 은혜를 입으면은 참 좋다고 모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래지만, 은혜가 지중(至重)하면 그것이 변해 가지고 원한이 극하게 사무치게 된다.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다. 사람은 슬픈 것보단 기쁜 일을 당하면은 모두가 다 당하고 무엇이든지 기쁘기를 바래고 기쁜 일이 끝없이 자기 주변에 일어나기를 바래지마는 그 기쁜 일이 극하면 도리어 슬픈 일로 변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식을 위해서 집도 사 주고, 차도 사 주고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면 부모는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한때는 그 자식이 그 부모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면은 부모가 고맙다고 좋다고 하지만,

자기의 욕심이 차지를 않고 ‘행여나 형을 더 많이 준가? 동생을 더 많이 준가? 누나를 더 많이 준가?’해 가지고 욕심이 치솟으면 자기 평생 먹을 만큼 받아 놓고도 욕심이 더 끝이 없어서 ‘더 많이 주지 아니헌가?’해 가지고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죽이기도 하고 재판질을 하고 그러헌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가난해서 별로 잘 맥이지도 못하고 잘 입히지도 못하고 또 많은 재산을 가 집 한 채도 사 주지도 못하고, 차라리 그런 가난한 집에서는 형제간에 우애하고 또 부모를 위해서 효도를 하고 그러헌 사람이 더러더러 있지마는 돈 많은 사람으로서 효도허는 집안은 내가 별로 보지를 못해.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 돈 많이 벌어서 많이 물려줄라고 행여나 그런 짓 하지 말고, 어쨌든지 어지간히 있으면은 돈 많이 벌라 하지 말고 참선을 많이 하고.


있는 재산 될 수 있으면은 어쨌든지 유용하게 다 버려야 돼. 보시를 해서, 절에도 보시하고 또 다른 이웃에도 보시를 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도 보시해서 자꾸 버려버려.

자식한테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켜 주는 것으로써 그것을 유산으로 그것을 물려주면, 지가 노력을 해서 저 먹을 것을 지가 벌게 해야지, 돈 많이 주면 자식은 타락하고 그 자식의 참다운 사는 길을 배울 겨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생명을 바치고 인생을 바칠 곳은 내 생명,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어.

‘이뭣고?’ 이 하나로써 더위도 이겨나가고 슬픔도 이겨나가고 고통도 이겨나가는 오직 이 ‘이뭣고?’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여.


더워도 자꾸 선풍기 틀어 놓고 시원한 데만 찾지 말고, 바다로 강으로 헤매지 말고 턱! 가부좌(跏趺坐)를 하고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를 해보시라 그말이여.

등어리에 설사 더워서 땀이 줄줄, 저는 흐르라고 놔두고서 ‘이뭣고?’를 간절히 들면 얼마 안 가서 정말 더운 줄을 모릅니다. 더운 줄을 몰라.


더움 속에서 더운 줄을 망각해야 더위를 피하는 것이지, 덥다고 부지런히 부채질을 허면은 그냥 더 가슴은 답답허고 그냥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아주 그냥 미칠 것 같이 못 견딘다 그 말이야. 섰다 앉았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그냥 안절부절할수록 무장 더 더운 거여.


‘지가 더우면 설마 내가 타 죽기 허랴’ 터억 버티고 앉어서 ‘이뭣고?’를 허면서 턱 한번 해보시라 그말이여. 더위는 거기에서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턱 하고 나서 찬물로 등목을 한번 허고, 샤워라도 한번 하고서 그때 가서 부채질을 한번 설설 해보란 말이여. 이것이 참 멋스럽게 피서(避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복(伏)이 한 일주일 나면 복이 끝나는데, 그동안에 강이나 바다로 가고 싶으면 물에 풍덩 들어갔다 나왔다 허지 말고, 그 뜨거운 모래 속으로 피서를 한번 해 보셔.

머리만 내놓고 모래를 6센티 내지 9센티 가량, 가슴은 너무 많이 덮으면 숨이 가쁘니까 얇게 덮고, 팔다리는 두툼허니 덮고서 얼굴에 우산이나 양산, 수건으로 얼굴만 딱 덮고서, 그 더웁지마는 터억 더운 것을 즐겨 보시라 그말이여.


‘지가 더우면 얼마나 더울까?’하고, ‘그 더워 허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그놈을 탁 관조하면서 있으면 그렇게 따겁든 것이 언제 시원한 것으로 변허는 거여.

몸은 득신득신득신 혈관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그 더운 줄 아는 놈을 그놈을 관조를 허면 하나도 더웁지를 안 해. 시원허다 그말이여. 그 뜨거운 국물을 여름에 훨훨 마시면서도 “아, 시원하다” 그러잖아요?


그렇게 화끈화끈화끈 더웁지마는,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면 그 더운 것이 시원한 것으로 변헌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신경통도 낮고, 관절염도 낫고, 배안에 모든 숙변도 빠지고, 간장 나쁜 것도 낫고, 위장병도 낫고, 온갖 병이 그 더위 속에서 ‘이뭣고?’로써 피서를 허면서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는 속에서,

모래, 그 뜨거운 모래가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그 몸안에 독소를—태양의 그 더위는 땀구멍을 가짓껏 열어주고 또 모래는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몸안에 독소를 흡입을 해내는 거여. 쫙 빨아내. 그래가지고 몸에 독소가 빠지니까 몸이 가벼워지고 병이 다 녹아지는 거여.


이렇게 그 '모래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또 이것이 좋다하고 가서 너무 무리하게 해 가지고 병이 나선 안됩니다. 한 두어 시간—오전에 한 두어 시간, 오후에 한 1시간 내지 2시간, 자기 체질과 연령에 따라서 적당허니 허면 참 좋은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더위를 ‘이뭣고?’로써 잘 피서를 허시면 금방 또 찬바람이 올 것입니다.


이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은 거기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이 인생의 고해(苦海)를 고해 속에 바로 파고 들어가서 그 고해에 즉(卽)해서 그 고해를 해탈(解脫)하는, 생사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그 생활의 지혜를 여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눈을 바로 지금 오늘 이 산승(山僧)의 말 속에서 터득을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는 바로 이 적광토(寂光土)로 변조를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이 더위 속에서 바로 서늘한 이 청량으로 변조하는 이 수단을 우리는 터득을 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40분57초~59분16초)(끝)



----------------(1/3)


*(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중천(中天 속·한가운데 중/하늘 천) ; 하늘의 한가운데.

*잣낭기 ; 잣나무. '낭기'는 '나무'의 사투리.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폭염(暴炎 사나울·세찰 폭/불꽃·더울 염) ; 폭서(暴暑 매우 심한 더위). 불볕더위.

*일기(日氣) ; 날씨.

*주야불철(晝夜不撤 낮 주/밤 야/아닐 불/거둘·철수할·그만둘 철) ; 불철주야(不撤晝夜). ①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晝夜]을 가리지[撤] 않음[不]. ②밤낮없이.

*잠정적(暫定的 잠깐·잠시 잠/정할·머무를 정/대상·것 적) ; ①우선 임시[暫]로 정(定)한 것[的]. ②잠시 동안 그런 것.

*사방팔방(四方八方 넉 사/모·방위·방향 방/여덟 팔) ; ①사방(四方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과 팔방(八方 동, 서, 남, 북, 동북, 동남, 서북, 서남). ②모든 방향과 모든 방면.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부처님께서도 「사면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불타고 있고, 물질(色)과 안식(眼識)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뜻(意)도 불타고 있고, 법(法)과 의식(意識)과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사면(四面) ; 전후좌후의 모든 방면(둘레).

*실중삼관(室中三關) ; '방장실의 3가지 관문' 고봉 스님이 학인을 제접(提接)할 때 사용하던 관문(공안)이라고 하며, 또는 깨달은 뒤 자신의 보림(保任)이라고도 한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175~176.

室中三關(其二九)

杲日  當空에  無所不照어늘  因甚被片雲  遮却고.  人人이  有箇影子하야 寸步不離어늘 因甚踏不着고.  盡大地  是箇火坑이니  得何三昧하야사  不被燒却고.


돋는 해가 허공에 당도함에 비추지 않는 곳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조각구름에 가리움이 되었는가?

사람마다 하나의 그림자가 있어서 몸에서 조금도 떨어지지를 않는데, 무엇 때문에 밟혀지지 않는가?

온 대지가 하나의 불구덩이이니, 무슨 삼매를 얻어야 불에 타지 않을까?

*실중(室中) ; 실중(室中)은 실내(室內)의 뜻인데, 일반적으로 종사(宗師)가 머무는 곳으로 조실(祖室), 방장실(方丈室)을 가리킨다. 선종에서 전법(傳法)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면밀하고 친절하게 지도하는 장소를 말한다. 또는 스승이 제자에게 구전(口傳)한 가르침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삼관(三關) ; 3가지 관문. 종사가 세 가지 질문(공안)을 설정하여 학인의 수행 정도를 시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을 제시하는 스님에 따라서 고봉삼관(高峰三關), 황룡삼관(黃龍三關), 도솔삼관(兜率三關), 자운삼관(慈雲三關) 등이 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처서(處暑) ;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월 23일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혹서(酷暑 독할 혹/더울·더위 서) ; 몹시 심한 더위.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식(識) ; 오온(五蘊) 중 하나.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세 번째 지분으로 지각(知覺), 요별(了別)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알게 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6식설은 그 발생 근거에 따라 6가지 식(識)을 열거 한다.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 등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의 6가지 외부적인 대상인 6경(六境)을 대할 때 생겨나는 6가지 인식작용이 6식(六識)이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眼識)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耳識)이 있으며,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鼻識)이,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舌識)이, 몸이 감촉을 대할 때 느끼는 신식(身識)이 있으며, 의(意)가 법(法)을 대할 때 '안다'는 의식(意識)이 있다.

이와 같이, 6근 · 6경 · 6식은 서로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意識)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전오근(前五根), 곧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전5식(前五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은 일종의 감각지각이고, 제6의식(意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지각과 언어를 매개로 한 인식 등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8식설은 앞의 6식설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것이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서, 범부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번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을 제거하면 7식이 맑아져서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된다. 장식이란 곧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생사 속에 있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상실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제8식에 대한 견해는 불교에 여러 학설이 있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즉해(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

[참고]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제8 불도품(佛道品)

是故當知  一切煩惱爲如來種  譬如  不下巨海  不能得無價寶珠  如是不入煩惱大海  則不能得一切智寶

이와 같이 모든 번뇌야말로 여래가 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넓은 바다 밑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무가(無價)의 보주(寶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곧 일체지의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현장玄奘 역) 제8 보리분품(菩提分品)

又善男子  譬如有人  不入大海  終不能得  吠琉璃等無價珍寶  不入生死煩惱大海  終不能發無價珍寶一切智心  是故當知  一切生死煩惱種性  是如來種性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폐유리 등의 무가(無價)의 진보(珍寶)를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의 번뇌라는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끝내 무가의 진보인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생사 번뇌의 종성(種性)이 여래의 종성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무진장(無盡藏 없을 무/다할 진/감출·곳집 장) ; ①다함이 없는[無盡] 창고[藏]라는 뜻으로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 불교에서는 덕(德)이 광대하여 쓰고 또 써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②배우고 배워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 ③무한량으로 많은 재물.

*무가보주(無價寶珠) ;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보배구슬이라는 뜻. 불성(佛性), 반야(般若), 일승(一乘) 등과 같은 불교의 요체(要諦)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무가보(無價寶) · 무가지보주(無價之寶珠) · 무가대보(無價大寶) 등이라고도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정명경(淨名經) ; 『유마경(維摩經)』. 3권. 405년(후진 홍치 8년)에 구마라습 번역. 정식 명칭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또는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이라고도 한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공(空)의 사상에 기초한 윤회와 열반, 번뇌와 보리, 예토(穢土)와 정토(淨土) 등의 구별을 떠나, 일상 생활 속에서 해탈의 경지를 체득하여야 함을 중인도 폐사리(吠舍離)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한 유마힐을 중심으로 설한 경.

유마힐(維摩詰)은 범어로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 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3)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니,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도 여의지 못할 것이니, 가히 여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니라’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74~175.

道不可須臾離(도불가수유리)니  可離(가리)면  非道也(비도야)요  工夫(공부)를  不可須臾間斷(불가수유간단)이니  可間斷(가간단)이면  非工夫也(비공부야)니라  眞正叅究人(진정참구인)은  如火燒眉毛上(여화소미모상)하며  又如救頭然(우여구두연)하나니  何暇(하가)에  爲他事動念耶(위타사동념야)리요

古德(고덕)이  云(운)호대  如一人(여일인)이  與萬人敵(여만인적)하야  覿面(적면)에  那容眨眼看(나용잡안간)이리요하니  此語(차어)가  做工夫(주공부)에  最要(최요)라  不可不知(불가부지)니라


도는 잠시도 여의지 못할지니, 가히 여의면 도가 아니요。 공부를 잠시라도 끊이지 못할지니, 끊이면 공부가 아니니라。 진정 참구하는 사람은 마치 불이 눈썹을 태우는 듯하며, 또한 머리에 붙은 불끄듯 할지니, 어느 겨를에 딴 일을 위해서 마음을 움직이리오?

옛 어른이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만 사람으로 더불어 싸운다면 마주 보고 어찌 눈인들 깜짝임을 용납하리요」하니, 이 말이 공부 지어 가는 데 가장 요긴한지라 몰라서는 안되느니라.

*진의(眞疑) ; 화두에 의심이 끊어지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에서.

〇話頭上(화두상)에  有疑不斷(유의부단)하면  是名眞疑(시명진의)니  若疑一上少時(약의일상소시)하고  又無疑者(우무의자)이면  非眞心發疑(비진심발의)라  屬做作(속주작)하니라  是故(시고)로  昏沈掉舉(혼침도거)가  皆入作得(개입작득)하리라

화두에 의심이 끊이지 아니하면 이 이름이 참의심[眞疑]이니, 만약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주작(做作)에 속하느니라。이런 연고로 혼침과 잡념이 다 마음에 들게 되느니라.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버텀 ; ‘부터’의 사투리.

*덩그다 ; '불이 붙다'의 사투리.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자명초원(慈明楚圓) : (九八七 – 一0四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공부를 지어 가는 데 있어서 의근하복탁사유(意根下卜度思惟), 사량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공안을 따지고 이치를 따지고 이러헌 것을 허지 말어라’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77.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得向意根下卜度思惟(부득향의근하복탁사유)니  使工夫(사공부)로  不得成片(부득성편)하며  不能發得起疑情(불능발득기의정)이니  思惟卜度四字(사유복탁사자)는  障正信(장정신)하며  障正行(장정행)하며  兼障道眼(겸장도안)이니  學者(학자)가  於彼(어피)에  如生寃家相似(여생원가상사)하야사  乃可耳(내가이)니라


공부를 짓되 의근(意根)을 향하야 헤아리고 따지지 말 것이니, 공부로 하여금 한 조각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며 의정(疑情)이 일어날 수 없게 하나니, 사유복탁(思惟卜度) 네 자는 바른 믿음을 막고 바른 행을 막는 것이며 겸하야 도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이것을 마치 원수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게송) ‘유록앵전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석춘(惜春)’ 참고. 鶯, 鷪, 鸎, 䴍은 모두 같은 글자(꽤꼬리 앵).

*과객(過客 지날·들를·떠날 과/손님·나그네 객) ; 지나가는 나그네.

* ; 손님. 객(客). ①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②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 남의 집이나 여관 따위에 묵고 있는 사람. ③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노랑 냄새 ; 노린내(노린 냄새 :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마음에 거슬리는, 역逆한 기름내).

*앵기다 ; 잡히다. 잡다(붙들어 손에 넣다. 짐승을 죽이다)의 피동사.



----------------(3/3)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아애(我愛) ; 아(我)에 대한 깊은 애착심. 아탐(我貪).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아(我)에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네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중 나머지 세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게송) ‘가소세간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태희사미귀령(太熙沙彌歸寧)’ 참고.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등목 ; 목물(바닥에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주요 내용]


(게송)월원불유망~ / 중생의 탐진치 욕심의 무서운 불을 끄는 것이 참선이다 / 재진출진(在塵出塵) 불가잠폐(不可暫廢) /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야 거기에서 지혜 보물을 얻는다.

‘이뭣고?’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 머리털에 붙은 불 끄듯이 화두를 들어라 / 사량분별로 따져 갖고 알아지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게송)유록앵전신~ / 탐진치, 사리사욕을 놔 버려라 / (게송)가소세간애~ / 내 인생 바칠 곳은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다 /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을 터득해야.



[주요 문구]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번뇌 망상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


도학자(道學者)는 사량복탁 하는,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지는 것을 부모를 죽인 웬수처럼 알아 여겨야 헌다. 사량복탁을 아주 부모 죽이는 웬수처럼 생각하고 잠깐 동안도 사량복탁을 허지를 말어라.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


사욕(私慾), 사리사욕(私利私慾) 그놈만 놔 버리면 온갖 재앙이 다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사리사욕, 그 탐진치(貪瞋癡), 그 욕심 그것만 놔 버리면 세계 평화도 거기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도 정말 뭐 얼마 안 가서 금방 민주주의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가 다 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일어난 그 사리사욕만 놔 버리면 민주주의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남북 통일도 그것만 양쪽에서 다 놔 버리면 통일이 왜 그것이 어려울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은 거기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이 인생의 고해(苦海)를 고해 속에 바로 파고 들어가서 그 고해에 즉(卽)해서 그 고해를 해탈(解脫)하는, 생사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그 생활의 지혜를 여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눈을 바로 지금 오늘 이 산승(山僧)의 말 속에서 터득을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는 바로 이 적광토(寂光土)로 변조를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이 더위 속에서 바로 서늘한 이 청량으로 변조하는 이 수단을 우리는 터득을 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No.18)—무오년 하안거 결제 법어(78.04.17) (60분)

(1/3) 약 22분. (2/3) 약 18분. (3/3) 약 21분.

(1/3)----------------


승춘고하진선연(承春高下盡鮮姸)헌데  우후교림규두견(雨後喬林叫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정화루명월야(人靜畫樓明月夜)  취가환주낙화전(醉歌歡酒落花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봄이 오니 높고 낮은 데가 모두가  잎이 피고 꽃이 펴서 곱디도 곱구나. 더욱이 어젯밤 비가 내린 뒤끝이 교림(喬林)에는 두견새가 울고 우는구나.

사람 고요한 곱게 단청한 누각에는 달이 밝고, 한잔  먹고 노래를 부르며  떨어진 앞에서 춤을 추는구나.


 게송(偈頌) 부처님께서 이천육백  ,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신  도리(道理) 두고서 고인(古人) 읊으신 게송입니다.

이천육백 년 전에 무엇 때문에 (悉達) 태자께서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태어나셨느냐? 무슨 목적으로 태어나셨느냐?


실달 태자는 진묵겁(塵墨劫) 전에 이미 자아를 대각(大覺)하신 부처님으로서 어떻게 했으면 고해(苦海) 빠져서 갖은 고생 속에서 몸부림치는  불쌍한 중생들을 제도할  있을까?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부처님 태어나시기 이전에도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이 계셨고, 부처님 태어나신 뒤로도 많은 불보살의 화현(化現) 종종 출현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출현허셔서  진리법을 전수해 오면서 한량없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건만 아직도  사바세계(娑婆世界) 40억이 넘는 우리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고, 사람 수효 뿐만이 아니라 육도법계에 축생 · 아수라 · 아귀 · 지옥 등, 천상 · 인간에 가득차 있는 일체 영혼까지 하면은 천문학적 숫자로도 비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을 제도허셨건만  이렇게 중생이 한량없이 많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생이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 이것을 되풀이할 것을 생각하면,  중생수만큼의 부처님이 출현하셔야만 중생이  바닥이  것입니다.

중생수만큼 부처님이 출현을 허셔야 한다 허는 것은 일체 중생이  성불(成佛) 마칠  중생은 하나도 없어진다 말이 되겠습니다.


우선  세등선원 삼보전에 오늘 결제 법문을 듣기 위해서 오신  사부대중 먼저 견성성불(見性成佛) 해야만 되겠습니다. 이렇게 철철이 결제(結制)를 하는 목적도 또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금방 우리는 열반(涅槃)하신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祖室)로 모신  전강대종사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하늘보다도  높은 법문으로부터  바다보다도  깊은 법문, 유치원 학생도 들어서   있을 만큼 그러헌 쉬운 법문으로부터 역대조사의 위치에서도   없는 그러헌 깊은 법문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대사자후(大獅子吼) 우리의 마음을 울려 주셨습니다.


대관절 법문은 부처님께서 49 동안을 설허시고 열반에 드셨지마는  49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대장경에 법문이 그렇게 부수(部數)가 많지마는,

 가운데에는 방편설(方便說)로부터서 입으로 가히 설할  없는 법문(法門) 이르기까지,  많은 법문이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이뭣고?’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  한마디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낳아서부터서 울고,  먹고,  누고,  먹고,  입고, 울다가 웃다가 성내다가, 앉었다 섰다 달음박질허다,  타고, 자고, 이런 가운데에 수없이 많은 () 짓다가,  한번 내쉬고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죽게 됩니다.


대관절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온갖 좋은 , 나쁜 , 갖은 업을 짓는 이놈이 대관절 무엇인고?

아무한테도 배우지 아니해도 갖은 업을 지을  아는 이놈! 무엇이 들어서 이렇게 성냈다, 웃었다, 울었다, 앉었다, 섰다, 왔다갔다 하느냐?


내가 나를 몰랐으니 그것이 중생이여.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 그것이 바로 중생이고, 내가 나를 깨달으면 그것을 부처 하는 것이여.


깨닫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원인만 바로 안다면 우리는 결정코 금생에  몸뚱이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탐진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탐진치 삼독으로 오욕락(五欲樂) 즐기는데, 오욕락은 재산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심, ‘아무개’하는 명예와 권리를 누리려는 욕심, 편안히 놀고 잠잘려는 욕심.

 다섯 가지 욕심을 즐기는 가운데에 죄를 짓게 되고  죄로 인해서 짐승이 되았다, 지옥에 떨어졌다, 나찰(羅刹) 귀신이 되았다, 아귀(餓鬼) 되았다,  가운데 좋은 일을  하면은 천상(天上)에도 갔다.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 무량겁을 두고 계속해 내려오고 있고, 앞으로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참선(參禪) 공부 아니하면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육도윤회를 끊기 위해서 오늘 결제(結制) 법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육도윤회, 어떻게 했으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가장 빨리 육도윤회, 생사윤회를 벗어날 것인가,  점에 대해서 강조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은 철저히 발심(發心) 해가지고 오직 몸과 목숨을 바쳐서 참선하는  돈독한 마음 하나밖에는 없었습니다.

선방에도 지내고, 전국 방방곡곡에 선지식(善知識)  친견허고, 여기저기 좋은 선방  다니면서 참선을 했지마는, 아무리 애를 써서 해도 바닥이 나지를 않어.


그래서   없이  지리산 칡덩쿨 우거진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토굴(土窟) 하나 지어가지고 거기서 공부를 는데, 늦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그해도 탁발(托鉢) 해다가 보리쌀   얻어다 놓고, 나무를 줍고 산에 과일도  따고 해서 준비를  놓고 삼동(三冬) 공부를 들어갈라고 허는데,

해가 저물었는데 어디서 부인  분이 광주리에다가 산에 모다 과일도 산초도 따고 나물도 캐고 더덕도 캐고 그래 가지고 한 바구니 해가지고는 들어와서해가 저물었으니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 그날부터서 결제에 들어가서 삼동을 들어갈려고 허는데 부인이 떠억 와서 자자고 허니,  깊은 산중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자고 가자고 허니  재울 수도 없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서 공부하시는 비구(比丘) 스님인데, ! 부인하고 같이  수도 없고.


방이나 하나, 조그만한 됫박 방에 천상 같이 몸을 맞대고 같이   밖에는 없게 되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재우면은 산중에서 호랭이는 더글더글하고,

부처님 자비심으로 오늘 저녁에 천상 날새기를  수밖에는 없구나 이리 생각하고그러면 하루 저녁을 여기서 지내십시오


그날 저녁에 같이 한방에서 지내게 되는데  스님은 앉은 채 떠억 참선을 허고, 부인도 스님이  주무시는데  수는 없고, 앉어서 그저 벽에다 대고 졸다가 눈을 떴다가  갖은 몸부림을 치면서 하루저녁을 지내는데, 밤중 자정(子正) 넘으면서부터서 눈이 퍼부섰습니다.

눈이 와가지고 눈이 어떻게 많이 왔던지 도저히  이튿날 해가 떴지마는 길이 맥혀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지를 못하고 하루를 지내고 이틀 사흘이 되아도 눈이 녹지를 않고 길이  막혀서,   겨울을 같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이 지내고 봄이 되아도 눈이 녹지를 않고 그래서 천상 2 · 3 · 4월이  때까지 눈이  녹아서   속에서 여섯 달을 같이 지내는데.


,  부인도 대관절 스님 앉어서  무얼 생각합니까?”

참선을 헌다”고.

, 그러면 나도  가르쳐 주시쇼. 나도  앉어서 심심허니 나도 참선을  가르켜주시오


앉은 자세허리를  펴고, 고개를 반듯허게 들고, 아금니를 지긋이 물고서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갖다가 대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서 몸을 그렇게 단정허게 가진 다음에 심호흡을 허는데.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셔. 들어마신 다음에는  정지를 . 3 동안 정지를 했다가 조용허니 숨을 내쉬는데, 숨을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내쉰 다음에는  수르르르 숨을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셨으면  들어마신 상태로  정지를  상태로 3 동안을 머물렀다가  조용허니 숨을 내쉬어.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고.


이렇게 몸을 단정히 허고  다음에는 배로 숨을 심호흡을 하고.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 동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어.

 내쉬었으면  수르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셨다 3 동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러면은 우리가, 나는 부인 여자고, 스님은 남자 스님이고 그러니  좁은 방에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수도 없는 것이고, 기왕 우리가 자지 않고 앉어서  바에는 참선을 용맹정진(勇猛精進) 허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쪽에,  사람은 저쪽에 앉아서 가운데에다 기다란한 작대기를 하나 갖다 놓고, 스님이 졸면은 부인이 작대기로 스님 대골통을  때리고, 또 부인이 졸면은  스님이 작대기로 부인 머리빡을  때리고. 이렇게 해서 피차 잠을 깨워주면서 참선을 허기로 했습니다.


아, 그 부인이 처음에는  산중을 다니면서 더덕도 캐고 나물도 캐고 산초도 따고 허면서, 산과 산골짜기를 헤맸으니  졸음이 오겠어요? 스님한테 밤새도록 얻어맞았습니다.

맞었는데 이틀, 사흘, 열흘, 보름 이렇게 지내가면서 차츰차츰  보살은 잠을  자고, ! 스님이 자꾸 조는데 어떻게 맞었던지 대가리가 뿔이 많이 돋아났습니다.(처음~21분26초)



(2/3)----------------


“거 스님! 나는 인자 참선법을 처음 배웠는데, 나가 처음에는 많이 맞았지마는 스님이 그렇게 맞으니  안되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맞기로 약속을 했으니  때릴 수도 없고 단단히 정신을 채려야 겠습니다 ! 이러면서 때리는데, 어떻게 되게 때려 부리던지 기가 막혀서.

, 그러는 가운데 스님도 정신을 바짝 차려가지고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참선을 허는데, 그러다가 석달이 지내고, 석달이 되아도 눈이  녹아서 다시 석달해서 6개월이 되는데.


, 하루는 달이 훤허니 밝은데 같이 이를 악물고 용맹정진을 허는데,

! 졸음도  오는데, 깜빡할 사이에 분명히 졸지  했는데 깜빡허는데, !  보살이 ! 대골통을 때려부렸네. 깜짝 놀랜 바람에  깨쳐 버렸거든.

깨쳐 놓고 보니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냥 어떻게 감개무량(感慨無量)해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면서 일어서서  보살 앞에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했습니다.


절을 허며 내가 깨달았오

무엇을 깨달았냐? 깨달은 도리를 일러라. 대관절 스님이 깨달랐다니 옳게 깨달랐는지, 잘못 깨달랐는지 나도 한번 들어 봅시다.  깨달은 도리(道理) 한번 일러 보시오

 

답착평추경사철(踏著秤鎚硬似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답착평추(踏著秤鎚)하니 경사철(硬似鐵)입니다. 저울대 추를 밟으니 굳기가 쇠와 같습니다 ,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울대 추를 밟으니 굳기가 쇠와 같다고 허니  도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르시오


무수호손(無鬚猢猻) 도상수(倒上樹)니다.  나무~아미타불~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거꾸로 올라갑니다


 보살이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스님, 출가해서 30 수고 많이 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인데, 스님이 목숨 바쳐서 정진헐랴고 허는  신심(信心) 장해서 내가    겨울을 결정코 스님으로 하여금 견성성불(見性成佛)허도록 허기 위해서 내가 화현(化現)으로 나타났소. 그러니 행여나 어디 나가서 관세음보살을 보았다고 말을 허지 마시오


그러니까  스님이 일어서서 다시 절을 허고 얼굴을 드니까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목숨 바쳐서, 목숨 바쳐서 용맹정진을 허게 되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文殊菩薩)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 같은 그러헌 성현이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달을 수밖에 없도록 경책(警策)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세등선원이 창건된 이래로 4~5년이 지내갔는데, 한철 한철 지내갈수록 발심(發心)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날로 달로 수효가 불어서,

처음에는  세등선원을 조그마한 가족 선원을 헐까?하고 조그맣게 지을라다가, ‘가족만  것이 아니라 다른  스님네들도 오셔서 공부를 해야지 어찌 우리 식구만   있느냐 그래서 조끔 크게 지었습니다.


너무 크게 지었지 않냐?’하고 이렇게 걱정을 했는데,  30 지낼 정도로 지은다고 지은 것이, 지어 놓고 한 철 두 철 지내니까 40 · 50, 방부(房付) 들이러 오신 스님네를  받기로 허면 70 · 80명을 받아도 한이 없게 되았습니다. 이제는 방이 좁아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스님네가 오시니  받을 수도 없고,  받자니 받은 스님네까지 너무 불편을 느끼게 되겄, 이렇게 해서  즐거운 비명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방도 문제지마는,  스님네가 잡숫고 지내야  여러 가지 수용 문제도 중대하고, 겨울철에는 보이라 시설을  놨으니 천상 비싼 값으로 많은 기름을 사서 보이라를 때야  좋은 선방에서 참선을 허실 수가 있는데,  절을 짓느라고 너무 힘을 쓰고 아직도 초창기에 준비는  되아갔고 있고,

그러니 비싼 기름을 때서 불을 땔 수가 없어서 겨울철은 오시는 스님을 방부를 받지 아니하고, 겨우  10여명만 받아가지고  앞에 관음전 법당에서  명은 허고,  명은  옆에 조그만헌씩 방에서...(녹음 끊김)


.....부담은 적으면서도 신도님네들은 복을 짓게 하고  공덕(功德)으로 선방은 충분히 운영해 나갈 수가 있겠다. 이리해서 천일기도(千日祈禱) 지난 3 24일에 입재(入齋) 허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얼마만큼 참, 공덕이 장하다고 허는 것은 내가 설명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옛날에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 보조국사(普照國師)라고 허는  도인(道人) 계셨습니다.

여러분도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아시리라고 믿습니다마는.


 깊은 산중에서 어떤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있다가, 연기가 폴폴 나서  연기를 찾어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니 허연 영감님이 숯을,  옆에다가 숯불을 해놓고 숯을 굽는 할아버지가  분이 있었습니다.


 가니까 쬐끄만 오두막을 하나 해놓고 거기서 자면서 좁쌀밥을 해먹으면서 숯을 굽고 있는데,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렇게 허시라”고. “ 산중에 여기 아니고 어디를 가시겠느냐”고.


그래 좁쌀을 벅벅 씻어가지고 좁쌀밥을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그릇을 삶아가지고 드렸는데 어떻게 배가 고픈지 그것을 맛있게 잡숫고, 그날 저녁에 거기서 자는데 방바닥이 울퉁불퉁해 가지고는 하룻밤을 그저 등어리가 아픈지 마는지 하두 대간하니까 하룻밤을 자고서  이튿날 떠났는데.

 2~3일을 지나니까 등어리가 근질근질 아프고 이상해서 다른 사람보고 등어리가 무슨 까시가 백혔나 어떻나  보라니까, 갈자리 까시가 백혀 가지고는 등어리가 곪아서 그래서  까시를 빼고 며칠 동안을 치료를 해서 낫기는 나았으나  고생을 했습니다. 했는데,  스님이 누구냐 하면은 과거에 보조국사여.


보조국사는  도인으로 고려 말기에 보조국사하면  대도사인데,  도인은 너무나도 () 훌륭허시기 때문에  나한전(羅漢殿) 나한(羅漢)님허고 가끔 이야기도 하고 그런데,  나한님이 가끔 보조국사를 골리기도 허고 놀리기도 허고 그러는데, 하루는 나한이 나와 가지고는,

큰스님,  떡을 좋아허시는데 제가 오늘은 떡을 잡숫게  드릴까요?”

그래, 어디 떡을  가져오라”고.

가져올 게 아니라  등에 업히십시오.  있는 데로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나한의 등에 떠억 업혔는데, “눈을 감으십시오 떠억 업혀 가지고 눈을 감으니까,      날아 가지고는 한참 날아가서 ! 내려 놓는데, 눈을  떠보니까 거기가 어디 절인지도  수가 없고,

 나한전의 탁자 위에다 내려 놨는데지금 한창 제대성중(諸大聖衆)! 제대성중!”허면서 목탁을 치면서 기도를 허고 있는데,  탁자 위에다 떠억 내려놨는데 탁자에는 김이 물씬물씬 나는 떡이  시루가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떡을 먹을라고 그러니까 나한이 손을  잡으면서 이것은 안됩니다.  떡은  먹으라고 지금 채려 놨으니까 내가 먼저 먹어야지, 아무리 큰스님이라도 큰스님이 먼저 잡수면 안됩니다

에이, 뭐라고 허냐 이놈. 큰스님 먼저 먹어야지 니가 먼저 먹어서 되냐

먹을라고  집어서 입에다 넣으니까, “스님이  말을  듣는다면 나는 가버립니다. 스님이  말을  듣기나, 내가 스님   듣기나 마찬가지. 나는 갑니다. 스님  많이 잡수시오 나한이  날아가 버렸는데.


나한이  옆에 있을 때에는  탁자 위에 떠억 앉았는데도  기도하는 스님네도 보지를 못하고,  기도하러  궁녀(宮女)들이 와가지고,  울긋불긋한 원삼 족두리를  궁녀들이 여러 명이 와가지고 기도를 같이 하는데, 궁녀들도 보지도 못하고 그러더니,

! 나한이 골을 내가지고  떠나 버리자마자, 보조국사가 탁자 위에 앉아 가지고 떡을 울근불근 먹고 있는 것이 떠억 보이는데,  부전(副殿) 스님이랑 궁녀들이 깜짝 놀랬다 그말이여.

온데간데없는데 어떤 스님이 떠억 탁자 위에 앉아 가지고 떡을 먹고 있으니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날이 다른 날이 아니고 중국에 황후(皇后) 등창이 나가지고  나라의 명의(名醫) 명의는  불러대다가 침을 놓고, 쑥을 뜨고, 우황 사향으로 맨드는 종기약을 넣고 해도 백약(百藥) 무효해서   없이 등창이 점점 커져가지고 고름이  나와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한숨을 못 자고 허는데, 영  등창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한전이 하도 나한님이 영특하다 말을 듣고 거기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는데, 그날이 백일기도 회향날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하여간 스님을 갖다가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고, 기도 회향(回向) 중에 큰소리 소란을  수도 없고, 그런대로 놓고는 기도 회향을 마치고 축원(祝願)  했는데,

 축원허는 소리를 듣고서 보조국사는, ‘아하, 오늘이  황후의  등창  낫으라는 백일기도 회향날이로구나!’ 그것을  알았는데, ‘이거  난리났구나, 이거   먹다가 이거 된통 걸렸구나


기도 끝나고는 부전 스님이 대관절 스님이 어디 절에서 이리 오셨습니까?”

나는 한국에 순천 송광사에서  보조(普照)입니다

대관절 떡을  잡쉈으니 이리 내려 오십시오


그래 내려 모셔서 밑에 객실에다 갖다 앉혀 놓고는, 바로 사람을 보내 가지고 천자(天子)한테  사실을 보고를 했습니다.

오늘 백일기도를 회향을 마쳤는데, 기도 중에 한국 순천 송광사에 있는 보조 스님이라는 스님이 온데간데없이 탁자 위에 나타나가지고 떡을 먹고 있다 들켰습니다. 그러니  스님을 주리를 틀까요, 그냥 내보낼까요?”

!  무슨 말이냐. 이거 백일기도 회향에 반드시 기도성취할 그러헌 징조다. 그러니 바로  스님을 가마에다 모시고 궁중으로 모시고 오너라 궁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21분27초~3843)



(3/3)----------------


“인자 한국에 보조 스님이 어떻게 해서  나한전에 오셔서 떡을 잡숫게 되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한님 등에 업혀서 왔단 말을  수도 없고, “그럭저럭  중국으로 와서 행각(行脚) 허다가 배가 고파서 그냥 가만히 들어가서 떡을 먹었습니다  거짓말을 슬쩍 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오셨으니 등창 낫는 무슨 좋은 약을  모르십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등창을  낫어 줘야겠는데, “그러면 내가 목욕재계(沐浴齋戒) 허고  연구를 해야겠으니 일주일 동안 말미를 주시오

, 그러시라”고.


일주일 동안을 목욕을 떠억 하 향을 피고 정진을 하는데 암만 생각해도  수가 없단 말이여.

등창이 쬐끄만 등창도 아니고, 아주 그냥  달을 걸려 가지고 중국 천지에 명의는 명의는  불러 가지고도  낫은 등창인데, 도저히 낫을 길이 없어서 향을 피고는 이런 때는 나한을  불러가지고 꾀를 물어   밖에는 없겠다


향을 떠억 피고 참선을 허는데 나한이 떠억 나타나 가지고  병은 약이 없습니다. 스님이 한번만 만지기만 해도  병은 낫습니다. 그러니 「만져 갖고 나쉈다」고 하면은 중국 천지, 한국 천지에서 등창쟁이는  몰려들어 가지고 스님 보고 만져 달라고 헐테니   수가 없는 일이고,

찹쌀밥을 해가지고 입에다가 넣고 오래오래 씹어가지고 그놈으로 개떡을 맨들어 가지고 등에다 스님 손으로 붙여 주십시요. 그러면 영낙없이 고름 덩어리가 빠져 가지고는 새살이 차오를 것입니다


아, 그래서 그말대로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찹쌀밥을 해가지고 씹어서 개떡을 맨들어 가지고는  보조국사 손으로  만져 거기다가 붙여서 줬는데, ! 시원헌 것이, 고름 덩어리가 당장 붙일 때부터서  욱씬욱씬허고 벌건 것이 시원해지면서,

그날 저녁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하룻밤을 자고 나니까 고름 덩어리가 쑤욱 밖으로 삐죽허니 나오더니 이틀 사흘만에 주먹탱이 같은 고름 덩어리가  빠지면서, 자꾸  개떡을 해서 붙이고 붙이고 해가지고는 며칠  가서 새살이 차올라서 낫었습니다.


보조국사는 갈라고 해도, “, 기왕 오신  여기서  쉬어서 가시라”고. “우리도  좋은 인연을 맺게 쉬어서 가시라”고. “낫은 것을  보고 가시라”고. 이래 가지고는 며칠을 쉬었는데, 그래서 인자 영낙없이 낫게 되었는데.


무엇이고 원하는 대로 좋은 것 하나를 드릴테니 말씀을 허십시오

그거 뭐 스님이 되어 가지고 무슨 보물을 욕심을 내겠습니까? 금은보화를 욕심을 내겠습니까? 생각을 해보니, “, 나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필요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무엇이던지 말씀만 허시라”고.


그런데 천자로부터 황후로부터서  왕자 왕녀들이 주욱 와서 꿇어 앉어서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허고 앉았는데, 아무것도 욕심나는 것은 없고  셋째 왕자를 보니까  생겼는데,  셋째 왕자를 상좌(上佐) 주면은  도인(道人) 되게 생겼다 그말이여.


그래서 무엇이던지 내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요?”

!  무슨 말씀 입니까? 드리고 말고요


 황후 보고도 무엇이던지 내가 말하는 대로 듣겠습니까?”

! 무엇이던지 드리겠습니다. 생명에 은인인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왕자들 보고도  낱낱이 물어보니까 그러겠다”고.


그러면은  셋째 왕자를 저를 주십시오 ! 가슴이 덜커덕 앓은다 그말이여.

말허기 전에는 모가지라도 떼어 달라면 드릴  같은데, ! 아들 하나를,  아들이 자기네들 생각에도 제일 잘난 아들인데 그놈을 달라 하니, 쪽제비 잡아서 꽁뎅이 빼준 것처럼 도저히  주겠는데, 그렇게  다짐을 해놨으니  드릴 수도 없고.


 주겠습니까?”

,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마는 황후가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


황후는 어떻습니까?”

저는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본인이 어쩔란가 모르겠습니다


왕자 보고 그대는 생각이 어떻소?”

어머님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인데  제가 마다하겠습니까? 저도 출가해서 스님과 같은 도인이  수가 있다면 제가 출가를 허겠습니다

! 본인이 간다는데야 아무리 부모 속이 쓰리고 린들, 마다할 수가 없어서 보조국사를 딸려서 한국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때는 나한님 등에 업혀서  한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갔지마는  때는  나한의 신세를  수도 없고, 걸어서 걸어서 중국 천지를 구경허면서 요동 평야를 건너서 압록강을 넘어오는데, 배를 타고 오는데  둘이에다 사공(沙工)하고 이렇게,

그리고 호위병은 압록강까지만 따라 보내고는 거기서부터서는 되돌려 보내고는강을 건너서 순천 송광사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호위병들 딸려 보냈는디, 보조국사가 안된다. 여기서는 돌아가거라해서  보내고는 배를 타고 오는데.


배에다  짐도 싣지도 않고 그랬는데, 배가 그냥 어떻게 무거운지 넘실넘실 넘실넘실 해가지고 강물이  넘어오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거 , 왕자라고 같이 오는데 물에 빠져 죽었다하면 이러헌  난리가 없게 되어서,  가만히 생각한 결과 이거 큰일났다, 이거


그래서 왕자 보고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이어라 인자 상좌인데 뭐, 왕자고 뭣이고  그까짓 거 상좌인데  높일거... “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이어라

머리에다  버선을 입니까?”

그럴 일이 있다 스님의 명령이라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떠억 이니까,   가라앉게 생긴 배가 벌떡 일어서가지고  떠올랐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버선을 내려 놓으니까 그때부터서는 문제 하나없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어째서 버선을 머리에다 이니까 배가 가벼워졌습니까? 그걸 좀 가리켜 주십시오

니가 과거에 () 너무 많이 지어가지고 복을 잔뜩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복이 너무 무거와서 그렇게 배가 가라앉을라고  것이다. 그러니  버선짝이나 신발이나  하복, 치마나 아랫바지 같은 것을 머리에다 이면 박복(薄福)해지는 것이다. 복이 없어지는 것이다. 복이 없어지니까 감소가 되니까 가벼워져서 이렇게 배가  가라앉게  것이다” “! 그렇습니까


절에서는 양말이나  고의나 하복(下服) 그런 것은 절대로 빨랫줄에다가 널어가지고  밑으로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양말 같은 , 고의 같은 ,  속가(俗家)  보면은 고쟁이를 사람 다니는 데다  벌려서 널어 놓고는 아빠도  밑으로 들락날락, 엄마도 들락날락, 귀여운 아들도 들락날락 그러헌 것을 흔히 보고 아주 기분 나쁜 것을 많이 봅니다마는.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런 하복을 널라면은  한쪽으로 사람 다니지 아니헌 데다 너시고, 그리고 방에다가도 치마 같은 그런 것을 머리 위에다가 떠억 벽에다가 걸어 놓고  밑에 앉아서 꺼떡꺼떡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남자 분의 바지도   있으면 한쪽으로 너는 것이 좋은데, 여자  아랫도리 옷을 가지고 걸어 놓고 그건 아무리 안방이라도 그런 것은  조심허셔야 하고, 주무실  버선 양말짝 같은 것도 머리 위에다 놓지 말고   밑에다 놓고.

 세숫대야에다가 발도 씻고 걸레도 빨고 그러지 말고, 세숫대야와 양말이나  씻는 대야는 별도로 표를   놓고서 세숫대야는 세수만 하고, 발이나 걸레 그런 거 닦는 대야는 별도로 하고 이래야 됩니다.


 밥그릇에다가 오줌 싸고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아무리 깨끗허게 씻어 줄지라도 요강에다  담아 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밥그릇에다 오줌 누고 그래서도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분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소한  같지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오늘부터 당장 가셔서 세숫대야와 하복대야를 ! 갈라서 표를 아주  하셔야 돼. 빛깔을 달리 한다든가.  집안 식구들 조심하시고, 하복  널고 그러는 걸 조심하시고.


지금은 제가 말을 하는 시간이니까 제가 하고,  말씀이 끝나거든 실컷 허셔요.


이렇게 해서  왕자를 무난히 압록강을 배를 타고 같이 건너오셔서 순천 송광사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왕자가 어떻게 열심히 공부를 했던지 대도(大道) 견성(見性) 해서  왕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되었습니다. 스님도 국사가 되고,  왕자도  상좌도 국사가 되어서  도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산중에서  굽던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다니던그때  스님은 국사가 아니고, 걸망짐 짊어지고 다니는 일개 초라한 수좌(首座) 스님에 지내지 못했습니다 공부하러 다니는 수좌 스님에게 좁쌀밥  그릇 대접헌 공덕으로 황후가 되았고,  황후 뱃속에서 국사(國師) 낳게  것이여.

 좁쌀밥  그릇으로는 황후가 되고  뱃속에서 왕자를 낳았지만,  울퉁불퉁한 방바닥에 하룻밤 재워 보내다가  갈자리 까시가 등에 백힌  과보로는, 중국 천지에 명의가 들어도 낫으지 못할 만한 어마어마한 등창을 앓게 되었다 이 말씀이예요.


가만히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시면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얼마나 과학적인 것인가를  아실 수가 있을 것이예요.

 심은 데  나고,  심은 데  나는  무서운 인과법. 부처님 법을 믿는 부처님 제자들은  인과법을 올바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믿고 알아야 합니다.


인과의 법칙! 인과의 법칙을  이해하시고 실천하신다면은  세상에 법률도 필요 없고, 형무소도 필요 없습니다. 재판소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알아서  일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착한 일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을 눈꼽만큼이라도 남을 해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인과가 금방 돌아오는 것인데 어떻게 남을 해롭게 허냔 말여.  잘살기 위해서  욕심 챙기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법률이 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방 스님네 참선 잘하시고, 겨울에는 큰방에다가 뜨뜻허니 불을 때서 공부 잘하시게 허시기 위한 방법으로 선방이 되아서 한시라도 빨리 공부 잘해서  도인 스님이 나와서 우리 모두를 제도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얼마나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으며, 성취해야 할 소원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말이여. 그러한 목적을 달성허기 위해서라도  선방 천일기도에  분도 빠지시지 말고 여러분 가정에도  드실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사돈까지라도 두루두루 권고해서  천일기도에 다같이 동참(同參) 하시기를 바랍니다.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신심이 있는 분이라면, 설사 신심이 없다 하드라도 오늘  법문을 들으신 분이라면 점심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권고를 허실 것이고, 다  천일기도에 들으실  믿습니다.


오늘은 결제일로서 오늘부터 앞으로 석달 동안  오뉴월 삼복 성염(三伏盛炎)  무더운, ‘쇠도 무르고 나무도 무르고 바위도 물러 빠진다 삼복 성염을 덥다 생각 아니하시고,  몸에 땀띠기가 더덩캥이가 져도 그것을 두려워허지 아니하고 밤잠을  자고 정진허시는 스님네,

여러분들 형편 닿는 대로 서로서로 대중공양(大衆供養) 모다 내시고 그리해서 여러분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소원성취허시고.


 공덕으로 스님네는 열심히 열심히  건강하게 정진허셔서, 정진에  힘을 얻어서 대도(大道) 성취허시는 그 금년 한철이 되도록 사부대중이 일심 협력해서 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참선허는 법은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도 간곡한 법문이 들어 있고,  제가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게송 한마디를 읊고 내려가겠습니다.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