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400/(326~350)2017.12.13 08:40
(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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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한데, 돌과 돌이 부딪치면 불이 번쩍 나는데,  석화(石火)같이 빠른 광음(光陰) 세월이 그렇게 달아나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홍안(紅顔), 청소년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모두가  허연 서릿발 같은 흰머리가 되고 말았구나.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 인간의   동안 꾸는 꿈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하루살이의 일생사와 같구나.

인간이 태어나서 빨리 죽은 사람은 태중에서 죽기도 하고, 출산하다 죽기도 하고, 10 이내에 죽기도 하고, 오래  사람은 구십 , 백  사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마는,

그저  년을 산다고  봤자 그동안에 잠자는 시간 빼고, 앓는 시간 빼고, 근심 고통 고민하는 시간 빼고 하면 정말 기쁘게 사는, 보람 있게 사는 시간은 불과 얼마가 되지를 않는,
꿈도 길몽이 아니라 기쁜 꿈이 아니라 정말 악몽에 시달리는 그러한 하루살이와 같은 일생에 지나지 못합니다.

엊그제 내가 소년 시절로 불그스레한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생기발랄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 육십을 넘어서 흰머리가 허옇게 나게 되는 것입니다. 너나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태풍과 폭우로 인해서 전국 방방곡곡이 모다  수재(水災)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오륙백   아까운 생명을 잃고, 많은 수십  되는 재산을 손실을 당했습니다.

 가운데에 오신  가운데에도 그러한  가족이나 일가친척 또는 친지 가운데에 그러한 재난을 당하신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그런 재난에도 불구하시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을 해서  법당에서 법문을 듣게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비록 우리는 그런  손실을 입지 않고 생명을 부지해 가지고  자리에 참석을 해서 ! 감사할 일이나  비참한 그러한 재난을 당한 사람을 생각을 하면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런지 가슴이 아플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재난이라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화재로 일어난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화두 법문,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마는, 비록 녹음을 통해서 들었으나 상태가 대단히 좋아서 그렇게 생존시에 대사자후(大獅子吼) 하신  육성을 마치 살아계셔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거기에 너무  감동적인 설법, 그리고 고구정녕(苦口叮嚀) 설법이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겠습니다마는, 오늘 8 일요법회는 새로 화두(話頭)를 타실  그리고 불명(佛名) 받으실   재가오계(在家五戒) 받으실 분들이 많이 신청을 하셔서 아울러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조용합니다.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상처를  아물게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생각으로 인해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 찰나간(刹那間) 윤회(輪廻) 하면서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 교화를 하시기 위해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서 대자비심을 일으키셔 가지고 사바세계(娑婆世界) 탄생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마는 중생을 어떻게 제도(濟度)합니까?
중생을 제도한다니까 무슨 돈을 많이 주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겠습니까? 무엇을 많이 주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순전히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신다 하는 것은  생각,  생각 돌이키고,  생각 다스려서 일념(一念) 속에 육도윤회를 해탈(解脫)하게 하는 그러한 의미의 중생 제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복을 빌고, 부처님을 믿는다고 삼십 , 사십  일생을 절에 다니지만 유루복(有漏福)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올리고 모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처님의 참뜻을, 부처님이 우리를 제도하시려는 참뜻을 이해를 못하고 유루복을 빌기 위해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물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참회하고, 불공을 드리면 소원을 이루지 아니한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그러한 것은  불법 옳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 다스리는 ,  생각 돌이켜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법』을 우리는 들어야 하고 그것을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화두를 새로 타고  불명(佛名) 타고, () 받으려고 하는 분들은 특별히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들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화두(話頭), 화두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법인 것입니다.
 법에 의해서 관청의 모든 사무를 보고  백성을 다스리고 하는 근본법을 갖다가 관공(官公) 기관의 ()이다, 법안(法案)이다 이래서 공안이라 그렇게도 말하고  꼬집어서 화두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화두라고 하는 것은 이론으로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속의 모든 문제, 모든 수수께끼나 문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그것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는 종합하기도 하고  비교하기도 하고 또는 적용해 보기도  가지고, 그래 가지고 어떠한 ! 이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얻어내는 것인데,
 참선(參禪)하는 데에 과제인  화두는 그러한 이론이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알려고 하는 그러한 방법은 올바른 참선이 아니고 올바른 수행이 아니고 올바른 참구(參究) 아닌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공안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불교의 교리나 어떤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리 따져서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아는 것은 그것은 의리선(義理禪)이라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이지 그것이 바른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무리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해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 것이요, 분별심인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과 분별은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힐 뿐이지, 깨달음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 쳐부수고, 중생심을 돌이켜서 참나 돌아가는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지, 무슨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근자에 일본식 참선,  의리선이 많이 한국에 흘러들어 와 가지고  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일본 참선에 물들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경향이 있습니다.
공안을 갖다가 의리로 따져 가지고  , 스무 ,   내지 오백 ,   이렇게 해서  공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통과를 하면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나아갔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의리선(義理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보고   말을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그러한 의리선을 오래전부터서  오고 지금도 역시  가고 있어서 오백 개를 통과를 하면은 법사(法師)로서 참선을 지도할 수가 있고,   이상을 통과를 하면 조실이  자격이 있다 이런 말도 내가 들었습니다마는.

우리 한국의 참선은 그러한 의리선이 아닙니다.
깨달을 때까지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화두를 갖다가 타파(打破)함으로써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일시에  터지는, 그래 가지고 자성(自性) 깨닫고 불조(佛祖) 면목(面目) 깨닫는 이러한 참선인 것입니다. (처음~21분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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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는 똑같은 중국으로부터서  받아들인 참선인데 그렇게 의리선으로 그렇게 나아가냐?
내가 생각해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섬사람들이 되어서 생각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고, 느긋하지를 못해서 빨리 무슨 마음의 얻은 바가 있고, 느끼는 바가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어야지,
한국처럼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내지 이십 , 삼십  내지 일생 마지막 숨질 때까지라도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잡드리 나가는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리선이 발달이 되지 아니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안을  , 이백 , 수백 개를 통과한들 그것이  깨달음 아니라면 그것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세속의 어떤 학문은 그만큼 열심히 해서 석사도 되고 박사가 되고 한다면 그것으로써 자기의 일생 동안 보람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고, 그걸 가지고 학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의  먹고사는 방책도 되겠지만,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인데 그것을  의리(義理) 따져서 안들 그것 했다고 해서 어디 취직을  가지고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 몇백  통과했다고 해서 생사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그거 했다고 해서 불조의 혜명(慧命)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지옥에  봤자 그것   알았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알아  바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애써서 참선을 해가지고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거 무얼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교를 만났고, 불교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 믿고 실천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대관절 무엇이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이 끊어진다 말이여.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알아 들어갈 것이 없어.  갈수록  막혀서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가는 것입니다.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이놈이 무엇인고?’  갈수록  수가 없고,  막혀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꾸  가면 무엇이 알아지는 것이 있고, ‘아하 그렇구나! 그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지면 중생심(衆生心)이여.
알아지는 참선은 그것은 분별만 조장을 시키고, 사량분별이라 하는 것은 더욱 생사심(生死心) 갖다가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거여. 불타는데 기름을 찌틀어 가지고  불이 훨훨 타게 만드는 것이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여.

 의심이 독로해서  막혀야 거기에서 분별이 끊어지고, 사량이 끊어지고, 생사심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여.
끊어짐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량분별을 점점 치성하게  가지고 참선한다고 앉아서 계속해서 분별로 따지고 앉아 있으면 언제 사량분별이 끊어질 것이냐 그말이여.

길을 막고 물어봐도 확연한 것이고,   먹은 어린애 보고 물어봐도 그렇게  갔고 깨달음에 나아갈 것인가?


 참선을 하려면 그래서 대신심(大信心) 있어야 . 대신심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대분심(大憤心) 있어야 하고, 대의심(大疑心)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지를 삼요(三要) 그러는데, 대신심이란 것이 무엇이냐?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올리고 모다 그런 것도 신심의  표현이라고  수가 있겠지만,  최상승법(最上乘法) 있어서 대신(大信)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부처다하고 믿는 거여.

 자신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
 생각 () 가지고 내가 부처인 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지, 본래 내가 원만(圓滿)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깨달으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견성성불(見性成佛) 수가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이것이 바로 대신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생각 () 가지고 중생노릇을 하고 있지만  실지 내용에 있어서는 부처님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성내고 괴로워하고 하는 이러한 작용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뚱이 속에 살아 있는 부처님의 작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마음도 내고, 탐심도 내고, 진심(瞋心) 내고 그렇지만, 그 자체는 다른 데에서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님한테서 나오는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작용을 일으킬  있는 사람이면 자기의 몸뚱이 속에 살아계신 부처님이 분명히 계신 증거이기 때문에 자기도 깨달을  있다’고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리 참선을 해봤자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깨달을  있다’고 믿어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 해보지도 않고 나는 깨달을 수가 없다’ ‘나는 중생이기 때문에 나는 지옥밖에는  간다 자꾸 스스로를 자포자기하고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그런  신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신심이 있어도 분심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공부가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분심은 바로 용기인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분심을 내야 공부를 계속해서  나갈 수가 있고 깨달음에 나아갈 수가 있지, 분심이 죽어버리고 용기가 없으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모든 조사, 선지식들은 진즉  문제를 해결을 해서 생사해탈을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육도(六途) 윤회하고 있는가
그러한 생각으로 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또는 재산 모다 그런 것에 관해서는 시기를 내고 질투를 내고, 그래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싸우면서, 심지어는 동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형제 친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도 싸우면서,
어째서 영원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기 위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그러한 분심을  수가 없느냐?

정말  문제에 관해서는 부모한테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분심을 내고 도업(道業) 성취하는데 있어서의  욕심은 아무한테도 양보해서는 아니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른 중생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양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욕심, ‘ 나는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는가?’  공부에 대한 분심은 천하 없이도 양보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밤을 패서 공부하고,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은 앉아서 하더라도 자기는 앉을 시간이 없으면은 서서 하고, 차를 타면서 하고, 방부(房付) 들이고금년에도 88명이나 방부를 들이고 보살님네들이 정진하고 계십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방(禪房) 와서 공부는 못하신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수가 있겠느냐! ’ 집에서 살림하고, 빨래하고, 소지하고,  짓고 또는 직장에서 이를 갈아붙이고  생각  생각을 무섭게 돌이켜 가며 다잡이를  간다면 그분이 먼저 대도를 성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심을 가지고,  다음에 대분심을 가져야 한다.


 번째 가서  의심(疑心) 가져야 한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화두를 일러 주셨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뭣고?’  가지를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하셔야 하고,

조실 스님께 이뭣고?’ 타셨거나 또는 산승으로부터 탔거나, 오늘 화두를 타시려는 분은 이뭣고?’
이뭣고?’  말은 한문으로는 시심마(是甚)’ 그러는데, 우리말로는 번역하면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거든.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그러거든.
, , , , , , 하면 일곱 자인데 , , 하면  자란 말이여. 그래서 간단하면서도 의심이  .
그래서 옛날부터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경상도 말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이냐?’한 거, ‘이것’을 무엇을 지칭해서 이것이라고 하냐 하면은,
『지금 말하는 바로 이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계시는데 무엇이 듣고 있느냐?’ 그말이거든. 『듣는 그놈』

그놈이 바로 욕도  줄도 알고, 칭찬할 줄도 알고  정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알고, 그놈이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악마가 되기도 하고, 그놈이  생각 ! 돌이켜서 착하게 쓰면은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도 있고, 비로자나 부처님이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이  수도 있고,
그놈이 나찰 귀신도  수도 있고, 독사도  수도 있고, 아귀도  수도 있고, 지옥찌꺼기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서 그놈이 그렇게 찰나간에 천당에 올라갔다가, 찰나간에 지옥에 떨어졌다가, 찰나간에 독사 배때기로 들어갔다가, 찰나간에 돼지가 되었다가, 찰나간에 사람이 되었다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신기하고 묘하기가 어디다가 비유할 데가 없어. 그래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이뭣고?’

의심을   라야   수가 없어!

의심을 할려고 해도 자꾸 화두가  잊어버린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분은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 분심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분심이 있다면 의심을  할라야   수가 없어! 일부러 의심을  하고  생각을  해볼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을 감으나 뜨나, 앉으나 서나, 그냥 제절로, 자동으로 그냥 이뭣고?’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하고 억울한 소리를 해도 이뭣고?’
옛날부터서  내온  습기(習氣) 있어서 잠깐 부애가   하다가도 냉큼 이뭣고?’ ! 챙겨 버리면 이뭣고?’거든.
언제 속상할 겨를도 없고, 언제 억울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고, 미워할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 하나 ! 챙길  알면 그냥  몸뚱이 요대로 바로 천사가 되고 싶으면 천사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이 되고,
자기가 일부러 독사가 되고 싶으면 독사도 되고, 호랑이가 되고 싶으면 호랑이가 되고, 지옥에도 한번 가보고 싶으면   수가 있다 그말이여.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다가도 !  생각 돌이켜 버리면 금방 천상에 올라간다 그말이여.

죽어서 지옥에 가고, 죽어서 천당에 가는 그렇게도 믿어야 하고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죽어서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찰나간에 생사 문제』가  소중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몸뚱이 살아서 이렇게  쉬고,  먹고,  입고  때에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화두에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서 공안을 타파하도록 노력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에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인연 따라서 천당에 가게 되면 가는 거고, 인연따라서 지옥에 가게 되면 가는 것이지,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참으로 죽어서 지옥에 가기 싫고, 축생에 가기 싫거든 지금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지금  생각 등한히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이지, 지옥에  사람이 미리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지옥에도 가고, 천당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고, 인도환생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를 믿어도 그렇게 믿어야 옳게 믿는 것이고, 그렇게 믿어야 최상승 학자의 믿음인 것입니다.(2118~4033)



(3/4)----------------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 투득(透得) 버리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관(生死關) 뚫어 버리면 비로소 산하대지(山河大地) 너그러운 것을 깨닫게 되더라.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사관을 타파하지를 못하면  우주법계와 산하대지가 이렇게 넓건마는  곳이 없습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겠습니까.

마치 파리란 놈을, 방안에서 문을 닫고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 천장에  붙고, 천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은 동쪽 벽에  붙고, 동쪽 벽에 붙은 파리를 내키면은 서쪽에  붙고, 어디가 붙든지 (자기)가 사방과 상하에 붙지, 지가 붙지 않고 어떻게  것이냐, 어디를  것이냐 그말이여.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생사관을 투득을 하지 못하면  곳이 어디입니까?
죽어서 지옥에 가고, 축생이 되고, 아귀 나찰이 되고, 중음신(中陰身) 되어가지고 허공계를 헤매면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영원토록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두를 열심히 참구(參究) 해서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고 보면 산하대지가 정말 걸림이 없어.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 인간의 분별계(分別界) 떨어지지 안혀.
인간의 분별계란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인간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냐. 푸른 , 푸른  무엇에 걸릴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이북(以北)은 여행도 마음대로 못하고, 이사도 마음대로 못하고, 가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가지를 못한다고 그럼니다.
우리야 설악산에 가고 싶으면 설악산에 가고, 오대산에 가고 싶으면 가고, 지리산에 가고 싶으면... 어느 좋은 산이 있다면 누가  가게  사람 하나 없습니다. 어느 , 어느 바다가 좋아서 갈라고 하면 어디라도 가지 우리가   것이 없습니다.
어디로부산 살다가 서울에 오든지, 서울 살다 부산을 가든지, 팔도에 제주도가 되었건, 강원도가 되었건, 이사 가고 싶은 데로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화두를 참구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순수무잡하게 되면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을 누나, 차를 타나,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거기에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다맛 의단이 독로하도록 단속을  나가면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 순수무잡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 시간가는 중도 모르고  몸뚱이가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모릅니다.

깨달음을 얻을려고 하는 생각도 없고, 누가 와서 나를 깨닫게  주기를 바라는 생각도 없습니다.
다맛 순수하고  깨끗하고 맑은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지혜롭게, 급한 생각도 없고, 늘어진 생각도 없이 다못 묘한 의심관(疑心觀)만이 독로하도록  가는 것입니다. 억지로 힘을  것도 없고.

그렇게 해서  순수무잡한 의단이 독로한  경계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 좋다 생각도 내지를 말며, ‘이러한 경계가 영원히 갔으면 그런 생각도 내면 못쓰는 것입니다. 벌써  생각 내면  생각에 아주  경계가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안되면 안된다’고 번민을 하고, 공부가 화두가 순일하게 되어가면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을 내고 기쁜 생각을 . 이것이  공부를 바르게   모르는 사람의 하는 짓인 것입니다.

 잡드리를 해서  경계가 깨지지 않도록 의단을 잡드리 해가면 어떠한 경계에  풍선이 터지듯이,
풍선을 부는 사람이 풍선을 계속해서 불다가 중단해 버리면 다시 바람이 피식  버리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불어야지 대번에 처음에 느닷없이 되게 불면 커지기도 전에  찢어져 버리는 거고.
풍선을   요령 있게  불면 점점점점 점점점점 커져 가지고, 커지다 커지다 더이상 커질  없을 지경에까지 가서 계속해서  불어 나가면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은 ! 최고로 커질  ! 터지도록.

우리가 화두를 의심해 나갈 때에 처음에는 화두를 들면 잠깐  때만 의심이 있다가 금방  생각이 들어오고  들면  그렇고, 그래도 계속해서 들면 나중에는   들어서 5분도 가고, 10분도 가고,
아침에 일어나서 들던 화두가 아침 먹을 때까지 있고, 아침 식사중에도 화두가 흩어지지 않고 식사가  끝나고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화두가 점심 때까지 되도록  화두가 흩어지지 않고,  화두가 저녁 먹을 때까지 잠자리에  때에도 화두가 고대로 있다 그말이여.

화두를   자리에 누웠는데 언제 잠이   모르게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고,
이래서 순일무잡하고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경계, 말로써 표현할  없는 그러한 경계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 터지는 것입니다.

분별로 따지지 안 해도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확연(確然)하고, 천칠백 공안에 ,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여 버린다 그말이여.
따져서 , 이런 것이다하고 아는 것이 아냐. 그냥 !  공안을  버린 거여.

이것은 역대조사(歷代祖師) 이렇게  실증(實證) 실오(實悟) 해서 우리에게  조사의 어록(語錄) 법어(法語) 통해서 소연(昭然)하게  증거를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 화두를 타신 분은, 그전에는  법회가 끝난 다음에 별도로  화두와 불명과 오계를 설하는 법회를 가졌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법회 시간에 화두를 바로 일러 드립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일러 주셨지만 다시 한번 화두를 일러 드립니다.

이뭣고?’ ‘이뭣고?’   없는 의심 이뭣고?’
화두를 한번 따라서  보십시오. ‘이뭣고?’  보세요. (신도)‘이뭣고?’

실지로 여러분이 참선하실 때에는 그렇게 소리를 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3 동안 정지했다가, 숨을 내쉬면서 이뭣고.... ?’
이뭣고?’ 길게, ‘이뭣고......?’ '' 길게 빼는 것입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이뭣고?’
숨이  나갔으면  스르르르 숨을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없는 의심(疑心),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한다하는 것은관도 역시 하나의 생각인데, ‘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한다 하는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관이라 그러는데, 이건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실지로 자꾸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해보면 스스로  의심관(疑心觀)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심관을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 자꾸  호흡과 맞춰서  나가다 보면    없는 의심관,  묘한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  의심관을 터득을 해야 참선의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갈수록  수가 없어.   없는 그 의심 이뭣고?’ 이렇게  나가야 망상을 끊으려고  해도 저절로 끊어지고, 망상을 일으키지 아니하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서 의심이 끊어져.

속이 상하고, 분심이 나고  때에도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꾸   하면 치밀어 오른 놈이 스르르르 가라앉아 버리거든, 이거 해보신 분은  아는 것입니다.

열심히 해서 큰 의심을 가진 사람은 결국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깨달아도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믿고 참선을  나간 사람은 오계(五戒) 지켜야 합니다.

첫째 불상생(不殺生).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산목숨을 죽이면 자비심(慈悲心) 손상(損傷).

우리가 () 닦는 것은 스스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궁극의 목적이 있는데, 어찌  닦는 사람이 산목숨을 죽일 수가 있을가.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산목숨을 죽일 수가 없어.
산목숨을 죽이지 아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줘야 한다.

둘째는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면은 복덕종자(福德種子) 손상을 . 그래가지고 세세생생에 가난뱅이가 되는 거여.

우리가 불법을 믿고 도를 닦은 것은 스스로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자비심으로써 일체 중생에 모든 것을 보시를 해야 하는데, 재물 보시도 하고 없는  밥을 주고, 목마른  물을 주고, 병든  약을 주고, 어리석은 중생에게 법보시(法布施) 해서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고 이것이 전부  복덕이거든.
그런 복덕심을 길러야 하거든, 어찌 다른 사람의 물건을 승낙 없이 내가 소유할 수가 있을까 보냐.

셋째에는 사음(邪淫) 하지 말아라. 도를 깨닫는 데에는 마음이 청정(淸淨)해야 는데,  마음을 청정하게 해서 깨달음에 나아가고, 일체 중생에게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생사해탈을 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어찌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삿된 행을 할까 보냐.

넷째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을 하면은 나의 진실종자(眞實種子) 손상을 .  마음의 진실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말이여.

도를 얻으려면은 그 마음이 진실해야 도를 얻고, 도를 얻은 다음에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도를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스스로 마음의 진실성을 잃어 가지고 어떻게 중생의 마음을 진실되게 지도할 수가 있을 것이냐.
그래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실종자를 상실하게 되니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에 가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라. 도를 닦는 것은  마음을 지혜(智慧) 얻어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은 지혜심을 상실하게 된다 그말이여.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리석고,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 윤회를 하고 있는데, 금생에 밤낮 술만 마시면 결국은 머리가 지혜를 잃어버리고 결국은 알콜 중독에 걸리게 되면은 머리가 돌대가리가 되고, 손발을 떨면서 결국은 폐인이 되는 것이여. 패가망신(敗家亡身) 하는데.
어찌 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지혜를 상실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술을 마시지 말아라.

금생에  다섯 가지 계를  지키면은 도업(道業) 성취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빨리 얻을 수가 있고, 금생에  오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은 금생에 도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부 호궤합장(跪合掌)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무릎을 세우고 합장을 하십시오.

이상 오계에 대해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5계를 설명을 했습니다.
 가운데에는 이미 오계, 십계(十戒) 비구계, 비구니계 또는 보살 십중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