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1~25)2020. 12. 14. 11:24

((No.004))—1975년 동안거 결제 (75.11.17) (31분)

(1) 약 16분. (2) 약 15분.

(1)------------------


을묘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법문(法門)은 무슨 이론을 배우기 위하거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 잘하기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마는,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에 가장 요긴하고 가깝고 빠르고 한 그러한 최고의 방편이 활구참선법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조실 스님께 지도 받은 그 화두(話頭)를 큰 신심과 분심으로 바탕해서 의심을 일으키는 그 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을 훨씬 더 좋게 생각합니다.

그만큼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오늘 한 시간에 걸쳐서 들으셨으면은 불같은 신심(信心)과, 불같은 분심(憤心)과, 불과 같은 그런 의심(疑心)이 마음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목탁을 세 번 칠 테니까 금방 조실 스님으로부터 들은 그 법문으로 인해서 큰 의심을 간절히 일으켜서 화두를 한번 들어 보십시다.

"목탁 세 번 치세요"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다시 그 법문을 듣고 다시 말씀할 바는 없지마는, 이 가운데에는 여태까지 다른 절에 다니시면서 이런 큰스님 법문도 많이 들어 보시지 못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오신 그러한 신참보살님네들도 계시고 해서 그러한 분을 위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이, 깊은 법문이 다문 조끔이라도 이해가 되시게 하기 위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환성지안(喚醒志安) 선사라고 한 큰 도인과 월봉 외도(外道)라고 하는, 월봉 스님이라고 하는 큰 강사 스님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월봉 스님이 처음부터 외도가 아니라 대강사 스님이요. 아주 훌륭한 국사(國師)가 될 만큼 그러한 존경을 받는, 많은 제자를 가지고 계신 그리고 설교를 그렇게 잘하실 수가 없는 그러한 고승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글을 잘하고, 얼굴이 잘생기고,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마는 바로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원각경』에 있는 말씀 한마디를 올바르게 새기지 못해서, 환성지안 선사로부터 할(喝)을 입고, 금강신장의 철퇴를 맞고 피를 쏟고 꺼꾸러졌던 것입니다.


외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고 깨달은 척하면은 그것이 바로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해 먹는 외도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 부처님께서 『백유경(百喩經)』이라고 하는 경전에 말씀하신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마음을 닦고, 부처님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참으로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로 지도를 받아야만 옳게 깨달을 수가 있지.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고 그릇 공부를 하게 되면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생명을 바쳐서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결단코 나를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평생을 허송세월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까지 모다 그르치고 결국은 불법을 망하게까지 된다고 하는 그러한 내용입니다.


백유경에 말씀하시기를, '나귀 젖을 먹으면은 대단히 맛이 좋고, 몸에 보약이 될 뿐만 아니라 수명장수하고, 온갖 병이 다 낫는다' 이러한 말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마을에 동장(洞長)이 멀리 여행을 갔다가 마침 어느 집에 나귀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가지고 바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가지고, 그 마을 사람들에게 "그 나귀의 젖을 먹으면 그렇게 좋다는데 내가 그 나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그 나귀값이 어떻게 비싸든지 내 혼자는 살 수가 없고, 온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다 모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나귀를 사다가 그 젖을 짜 먹으면은 우리가 모다 병 있는 사람은 병도 낫고, 수명장수하고 참 몸이 건강해져서 일생을 참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그 동장이 똑똑하고 인격자고 그러기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돈을 백 냥씩, 이백 냥씩 모다 돈을 내가지고 그 나귀를, 그 동장을 시켜서 나귀를 사 오게 했습니다.

동장이 나귀를 떠억 사 왔는데, 무슨 나귀를 사 왔냐 하면은 숫나귀를 사 왔어요. 숫나귀를 뜨윽 사다가 며칠을 잘 멕여 가지고, 보리와 콩을 잘 삶아 멕인 다음에 마을 가운데 공회당 앞에다가 뜨윽 멍석을 깔고, 그 앞에다 나귀를 모셔 놨습니다. 모셔 놓고는 동장으로부터 온 마을 대표들이 나와서 생전 그 나귀는 처음 본 것이라 말만, 좋단 말만 들었지 그 나귀는 정말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그 대표자가 대여섯 분 나와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대표자가 나와 가지고 구녁 있는 대로 주물러서 그 젖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주무르다가 무슨 액체가 나오면 그것이 좋은 줄 알고 입을 대고 막 빨아먹고 그랬습니다. 뒤에 가서 빨아먹다가 나귀란 놈이 처음에는 가만히 있더니 발길로 차서 동장이 대골통이 터져서 꺼꾸러졌습니다. 그래 어디 한 군데를 만지니까, 차츰차츰 늘어나더니 거기서 물이 막 나왔습니다.


하! 그러니까 나귀에 젖이 나온다고 그놈을 갖다가 바께스를 갖다 대고 그놈을 받았습니다. 받아 가지고 그놈을 서로 먼저 많이 먹으려고 달려든 것을 간신히 제지를 해 가지고 조끄만한 잔으로 조끔씩 조끔씩, 돈 많이 낸 사람은 조끔 더 멕이고, 적게 낸 사람은 조끔 멕이고 해서 그놈을 고루고루 노놔 먹었습니다.

먹으니까 쯥쯜한 것이 대관절 처음 맛본 것이라 '그래서 이것이 몸에 그렇게 좋구나'하고, 그걸 먹고서 온 마을 사람들이 '인자 나는 가슴앓이도 낫고, 이질 배아피 곱똥 설사도 낫고, 허리 아프고 엉뎅이 쑤신 디도 다 낫겠다' 해서 대단히 기분이 좋게 잠을 잤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타고 그 마을을 지내갔습니다. 그러니까 온 마을 사람들이 또 나귀가 왔다 해 가지고는 그 나귀 젖을 좀 또 돈을 내고라도 좀 짜 먹자고 달라들었습니다.

"이것은 암놈이 아니라 숫놈이라 이것은 젖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곧이를 안 들었습니다.

"접때 나귀를 돈을 많이 주고 사다 우리 짜서 온 마을 사람들이 노나 먹었는데, 내나 이 나귀도 그 나귀와 똑같은 것이 붙었는데 왜 젖이 안 나온다고 하느냐?" 절대로 곧이 안 듣고, 그 사람한테 사정을 해 가지고 나귀값 몇십 배를 주고 강제로 사다시피 해 가지고 또 그 말(나귀) 오줌을 빨아먹었습니다.


'경(經)에 무슨 그런 말이 있을까?' 하고 혹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마는 이것은 분명히 『백유경(百喩經)』이라, '일백 백(百)'자, '비유할 유(喩)'자, 백유경(百喩經)이라는 경전에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왜 내가 해필 이 말씀을 여러분께 하냐 하면은, '불법이 좋다. 불법 중에서도 참선이 참 좋다'—한국에 태어난, 한국에 지금 불교 신도가 천만 명이 된다 합니다마는 그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선 좋다'고 한 말은 다 들었을 것입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양 사람들도 지금 한참 참선에 열이 오르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이렇게 참, 불법 중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참선을 하려고 신심이 나는 것에 대해서는 자다가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하고 기쁠 도리가 없습니다마는, 행여나 이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참선을 한답시고, 나귀 오줌을 빨아먹는 그러한 식의 참선을 한다고 하면은 이건 큰일이다 이겁니다.

동장이 그 먼 데까지 가 가지고 나귀를 사 온 것까지도 대단히 고마운 일이고, 자기만 수명장수할 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을 다 같이 무병장수하고 수명장수하게 해야겠다'한 그러한 참 신심과 온 동민들을 위해서 그렇게 참 부지런히 성의껏 한 것까지는 좋으나, 아! 자기가 숫놈인지, 암놈인지를 알고 암놈을 사와야 할 텐데 숫놈을 사다가 그 오줌을 노놔 멕였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불법을 포교를 하고, 또 참선법을 포교를 하고, 참! 그런 분들이야말로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좋은 법을 가르켜 줘야겠다' 해 가지고 포교를 하고, 설교를 하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참선법을 가르킨다든지, 불교의 진리를 설할 때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이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절이라고 다 절이 아니고, 절은 다 한 부처님이다. 이 절이나, 저 절이나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다. 어느 절에 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우리를 바로 가르켜주시고, 우리를 눈뜨게 해 주시는 선지식(善知識)을 반드시 옳게 가려야만 되겠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께서는 그러한 훌륭하신 선지식을 만나 뵈옵고 법문도 많이 듣고, 설사 열반은 하셨다고 하지마는 우리는 오늘 생생하게 그 생존 시의 법문을 조금도 다름없이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러한 좋은 법문을 듣고, 우리가 실참실수(實參實修), 실다웁게 닦고, 실다웁게 깨닫지 아니한다면은 아무리 그런 좋은 법문이라 한들 백 번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처음~15분23초)





(2)------------------


참선이라 하면 덮어놓고 '어렵다. 속가에 살면서는 도저히 하기가—좋은 줄은 알지마는 하기가 어렵다' 이리 생각하시지마는.

'그리고 하려고 하면은 졸음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도저히 근기(根機)가 약하고, 아무래도 정법에 인연이 희박하고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우리는 참선은 못합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지마는, 이 참선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중생심을, 한도 끝도 없이 퍼일어나는 그 중생심을 다 띠어 버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참선을 해야 된다고 한다면은 그것은 어렵습니다.

중생심을 버리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루에면 열두 때 24시간 보고, 듣고, 느끼고, 성내고, 웃고 하는 그 물 끓듯, 불타듯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그 중생심으로 찾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남녀노소와 유식 무식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낼 중도 모르고, 웃을 중도 모르고, 좋아할 중도 모르고, 골낼 중도 모른, 또 아무 욕심도 없고 그러한 사람은 차라리 이 공부에도 역시 박력이 없기 때문에 공부에 진취가 별로 보이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욕심 많고, 심술궂고, 신경질 잘 내고, 불칼 같은 성미를 가지고 있는 그러한, 다른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사람 못되었다'고 그러한 핀잔을 받을 만한 성격의 소유자일수록에 그 생각만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열심히만 거각(擧却)한다고 하면은 오히려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번뇌가, 망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쥐가 너무나도 쥐가 번식을 해 가지고,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갔더니 어떠한 사람이 그 쥐 잡는 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냐 하면은 쥐 한 마리를 다치지 않게 잡아 가지고, 그 쥐를 항아리에다 담은 다음에 한 2~3일 굶겨라. 굶긴 다음에 다른 쥐를 쥐덫으로 잡어가지고 쥐 살을 조끔씩 띠어 가지고 그 항아리 속에 있는 쥐를 멕여라 그랬습니다.

그 쥐가 배고프니까—처음에는 쥐고기 넣어 줘도 잘 안 먹더니, 배고프니까 그놈을 먹기 시작했다. 날마다 쥐고기를 넣어 주고, 넣어 주고 하다가 나중에는 쥐 통채로 새끼 한 마리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쥐새끼 한 마리를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산 쥐새끼를 넣어 주었습니다. 산 쥐새끼도 처음에는 이리저리 놀리다 결국은 다 잡아먹었습니다. 나중에는 큰 쥐도 넣어 주니까 다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아주 쥐고기 잡아먹는데 대단히 아주 숙달이 되어서 아주 주식(主食)이 쥐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쥐를 항아리에서 내 주었습니다. 당장 그전에 자기가 다니던 쥐구녁으로 들어가서, 쥐 앵긴 대로 그놈이 다 잡아먹었습니다.


고양이가 아무리 쥐를 참 잘 잡는다 하지마는, 구멍에서 나온 놈밖에는 잡을 수가 없고 또 고양이 소리만 나면은 쥐는 미리 도망가기 때문에 고양이로서는 도저히 쥐를 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쥐를 훈련을 시켜 가지고, 쥐를 놓아서 쥐로 하여금 쥐를 잡게 하니까 못 갈 데가 없단 말이여. 구녁, 구녁이 다니면서 늙은 쥐고, 젊은 쥐고, 새끼 쥐고, 에미 쥐고, 닥치는 대로 다 잡어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주인은 마지막에 그 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에 쥐를 다 멸종을 했다고 하는 우화가 있습니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로써,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수행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열심히 아니하고, 또 하려고 해도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잘못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지도는 옳게 받아도 정말 골똘히 하지 아니한 데에서 공부가 늦어지는 것이지,


첫째,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나도 꼭! 깨달을 수 있다고 철저히 믿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진리를 깨달라서 생사해탈, 생사에 자재한 그러한 성현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 하느라고 오늘날까지 중생으로서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가? 생사에 자재 못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를 악물고 분한 마음을 내며, 그래가지고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철저하고 간절하게 거각해 나가진다고 하면은 그 사람 공부는 빠르면 사흘이요, 글안으면 일주일이요, 늦어도 삼 년.

'삼 년을 여법(如法)하게 그렇게 생명 바쳐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혀를 빼서 쟁기질하는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믿지 아니하고 공부를 열심히 아니한다면은 너는 세세생생에 호랭이 밥이 될 것이다' 4조 도신 스님은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고려 시대 보조국사는 이 법문을 듣고 너무나도 감개무량해서 가슴이 벅차서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꼭!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나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 뭣 하느라고 이 문제를 해결 못했던가? 하는 이를 악물고 분을 내는 그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 가십시오.


화두는 '이뭣고?'

대관절 지금 제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걸 듣고 계신 여러분은 귀가 듣는 게 아닙니다. 귀를 통해서 우리는 들을 뿐입니다. 대관절 무엇이 듣느냔 말이여.

들을 줄 알고, 눈으로 보면 희다 검다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듣기 싫은 욕하면은 썽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집에서 빨래를 하거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면 일곱 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지마는 간단하고 뜻은 그 가운데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 공부를 할 때는 '이뭣고?' '이뭣고?'

나중에 썽도 안 나고 무슨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현재 이 '이뭣고?'할 때 '이- 하는 놈이 무엇인고?'하는 뜻으로 '이- 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시면은—처음에는 잘 안되고 '이뭣고?'하면서도 번갯불 치듯 지내간 일들이 스쳐가고, 얼투당투않는 일이 생각이 떠오르지마는, 버쩍! 깜짝 놀래서 다시 '이뭣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마는 자꾸 하고 또 하다 보면은 그 가운데 신심이 나고, 분심이 나고, 의심이 더욱 간절해져서 나중에는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 나가다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 공부가 잘되는구나. 참 좋다' 이러한 생각 갖지 말 것.

또 아무리 하려고 해도 화두가 들리지는 않고 가슴은 답답하고 몸은 괴롭고 영 화두가 잘 들리지는 않고, 그러한 때가 옵니다. 그러더라도 조끔도 번민심을 내지 말고, 썽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돌이켜서 심호흡하고 또 산책도 하고 좀 거닐어서 정신이 개운해지면 다시 와서 또 '이뭣고?' 이렇게 해서 마음을 그렇게 잘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썽낼 때에도 그놈을 돌이켜서 '대관절 무엇이 이렇게 썽낼 줄 아나?' 썽내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시지 말고, 썽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한번 떡 들고서 그 썽내는 일을 처리를 하시게 되면은 일이 감정적으로 처리가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냉정한 이성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도 이 참선을 하게 되면은 대단히 유익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심히 하면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이것 하나 하자고 있는 것이지, 그 밖에 것은 이것을 하기 위한 방편(方便)들입니다. 배라고 하는 것은 물을 건너가기 위해서 배가 필요한 것이여.

불법에 팔만사천 가지 모든 방편은 내가 '나' 깨닫기 위한 방편들입니다. 그 방편 중에서도 이 화두참선,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정법, 활구참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 어떠한 큰스님네나 다 화두를 다 그렇게 일러 주십니다. 그러나 똑같은 화두를 지도 받아서 하면서도 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바르게 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바르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느냐?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다못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들어 가는 사람,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은 어떻게 하느냐? 또 삿된 참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된 참선이요, 죽은 참선이냐 하면은 이론으로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한—경전을 보았던지, 선지식의 또는 어록을 보았던지, 어떤 큰스님네 법문을 들었던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한 불교에 대한 지식, 상식, 교리 이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연구해 보고 비교해 보고 또 분석… (15분24초~30분47초) (끝)





[법문 내용]


법문은 내가 나를 깨닫기 위해서 듣는 것 / 최고의 방편이 활구참선법 / 환성지안 선사와 월봉 스님 / 『백유경(百喩經)』 '나귀 젖' 이야기. 올바른 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은 어렵지 않다.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 / 쥐로 모든 쥐를 잡는 법 / 화두도 중생심이지만,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


'이뭣고?' 화두 드는 법 /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참선밖에는 없다 / 참선을 바르게 하는 것은 다못 무조건하고 본참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



법문(法門)은 무슨 이론을 배우기 위하거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 잘하기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마는,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에 가장 요긴하고 가깝고 빠르고 한 그러한 최고의 방편이 활구참선법입니다.


외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고 깨달은 척하면은 그것이 바로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해 먹는 외도가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포교를 하고, 또 참선법을 포교를 하고, 참! 그런 분들이야말로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좋은 법을 가르켜 줘야겠다' 해 가지고 포교를 하고, 설교를 하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참선법을 가르킨다든지, 불교의 진리를 설할 때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이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로써,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참선, 화두를 바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느냐?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다못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들어 가는 사람,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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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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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독경>


30분55초~38분35초

금강경 독경 <지경공덕분 제 15> <능정업장분 제 16> <구경무아분 제 17> <일체동관분 제 18>


38분50초~42분6초

고왕경 독경


42분14초~45분29초

고왕경 독경

Posted by 닥공닥정
1~100/(1~25)2020. 10. 28. 09:23

(No.024)—1976년(병진년) 동안거 결제(76.10.15.음) (48분)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5분.

(1/3)----------------


방금 병진년 동안거 결제에 임해서 지금부터 4년 전, 72년도 10월 15일 바로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날 그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께서 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조실 스님께서 저 보고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라고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을 모시기 30년, 처음에 출가할 때부터서 조실 스님께서 항시 하시는 말씀이 "참선(參禪) 공부를 헐라면은, 근기(根機)가 약한 중근기 · 하근기가 참선을 바로 헐라면은 바보가 되어야 한다. 멍청이가 되어야 한다.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야 한다.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자신의 근기를 생각할 때에 하근기 중에서도 가장 못난 하근기라고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말 바보가 되어 가지고 조실 스님의 법을 철저히 믿고, 벙어리가 되어 가지고 이 세상 한 번 안 태어난 셈치고 일생을 지내보리라'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바보가 되고 쓸모없는 물건이 될라면은 벙어리가 된 것이 제일 무방하겠다' 이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자마자 바로 묵언(默言)을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가 불편한 점이 다 많지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참 제가 상좌(上佐)인지, 조실 스님이 상좌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저의 모든 일을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한 은혜로 해서 하근기로서 그래도 퇴태(退怠)하지 아니하고,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그럭저럭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10년을 지내도 아무 얻은 바가 없었습니다.

'다맛 바보가 되어 가지고 알 수 없는 화두(話頭)만 들으라'고 그렇게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다맛 그렇게만 해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제가 양말 한 켤레, 내복 하나 빨아 드리는 것을 허락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의 조실 스님께서는 자신이 다 그것을 하셨고, 제가 양말이라도 손을 댈까 전혀 대지 못하도록 이렇게까지 저를 아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도 황송했지마는 조실 스님이 빨지 못하게 하시고 발 씻을 물 한번 떠오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죄송한 생각으로 조실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제가 조실 스님의 시봉(侍奉)을 받다시피 하면서 십 년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 중간에는 방죽가에서 하꼬방 장사도 하고—사과 · 과일 그러한 것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이렇게 해서 고구마도 쪄 놓고 팔고, 수박 참외도 갖다 놓고 팔고. 이렇게 해서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조그만한 하꼬방 속에 앉아서 날새기 정진을 하고, 이리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공부는 아무것도 얻은 바도 없었지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묵언(默言)도 어느 정도까지지 그거 말 안 하는 것 자체가 무슨 공부겠느냐? 그러니 십 년을 했으니 묵언을 그만 터라"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금생에 마지막 숨 딱! 끊어질 때까지 입을 열고 싶지 안 했고, 벙어리로서 일생을 바치고 싶었지마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묵언을 트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을 열었어도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못 묵언하기 전, 그 상태로 도로 돌아갔습니다.


묵언을 트고서 조실 스님을 모시고 구례 화엄사, 인천 보각사, 또 저 군산 은적사, 김제 흥복사, 이 인천 용화사로 여기저기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저는 계속 그전이나 다름없이 정진을 했지마는,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차라리 내가 입을 열지 말고 계속해서 묵언을 할 것을, 묵언을 할 때에는 아무도 내 하는 일에 간섭하는 사람 없었고 또 나도 다른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언제나 내가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묵언을 트니까 내가 남의 일에 참견을 해야 하고, 남이 내 일에 참견해야 하고 해서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왔습니다.


그럭저럭 용주사에서 주지도 해 보고, 또 영동에서 또 주지도 해 보고 이러는 동안에 삼십 년이 지내왔습니다. 그러자 72년도에 여기에 와서 조실 스님을 또 모시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우렁차게 법문을 하시고, 지칠 줄을 모르시고 날이면 날마다 새벽같이 하루에 두 차례, 세 차례씩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열으셨습니다.

그러시던 조실 스님께서는 차츰 기력이 쇠(衰)하시고 혈압이 높아지시기 시작했습니다. 72년도 그날도 금방 여러 사부대중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그전에 그 낭랑한 음성은 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간곡한 그 마음은 그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억지로라도 큰 소리를 내셔서 목이 갈라지도록 그렇게 법문을 해 주신 것을 지금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날 조실 스님께서 억지로 법상에 올라가라고 해서 사양을 하다하다 못해서 강제로 명령을 하셔서 제가 잠깐 올라와서 말씀을 한말씀하고 내려갔었습니다. 제가 올라갔다 내려온 다음에 하신 법문이 오늘 여러분께서 들으신 법문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그날 하시던 법문—참선을 할 사람, 참선을 헐라면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냐?


첫째,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참선은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것이지마는,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하는 참선은 아무리 밤잠을 안 자고 밥을 굶으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고 해도 그 참선은 결단코 우리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무슨 깨닫게 해 준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가리켜 줄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지식한테 무엇을 배울 것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참선을 헐라고 할 때에는 바른 선지식의 지도가 없이는 천 명, 만 명 가운데에 한 사람도 바로 깨달은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배울 것도 없고 가리킬 것도 없는데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면은 바로 깨달을 수가 없느냐?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에 가리켜 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은 우리는 혼자라도 얼마든지 스승 없이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승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리켜 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은 부처님 당시에 1,250인을 비롯해서 모든 사부대중, 인천(人天) 백만억 대중이 어째서 부처님 당시에 일시에 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지 못했겠습니까?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출현을 하셔 가지고 정법을 선양(宣揚)하시고, 그동안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삼십이상(三十二相)과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나투시면서 천백억 화신(化身)으로 이 우주법계 방방곡곡에 오늘도 수없이 많은 불보살과 선지식이 출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도 설법을 잠시도 그치지 아니하고 설법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리킬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세계에 40억이라고 하는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시방법계(十方法界)에 가득차 있는 무량무변(無量無邊) 중생이 한 사람도 깨치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리켜 줄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깨닫지 못한 채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 부처님 참법에 입각해서 본다면은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이러한 말들은 잠꼬대 같은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즉 우리는 진묵겁(塵墨劫) 전에 우리는 다 성불해 마쳤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밥 먹고, 똥 싸고, 울고 웃고 한 이 모든 것이 고대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온전히 깨달은 상태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깨달을려고 하기 때문에 점점 미(迷)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깨달으려고 하지 말아야겠느냐?' 이렇게 반문을 하시겠지마는, 우리는 어떠한 법문(法門)을 들을 때라도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입니다. 어떤 법문을 들으면 항시 그 반대쪽 상대되는 말을 연상(聯想)을 하는 것이 우리 중생의 버릇입니다.

부처님 설법, 큰스님네의 설법을 들어도 그 설법을 듣는 가운데에 바로 자기에 본참화두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에 의해서 그다음 생각, 그다음 생각으로 차츰 추리해 들어가는 그러한 법문을 듣는 태도는 영리한 사람이긴 하지마는, 법문을 참으로 옳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법문을 듣더라도 그 법문을 듣자마자, 들음과 동시에 자기가 들고 있는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분명해질 때, 소소영령(昭昭靈靈)해질 때 그 법문은 참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바르게 법문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꼭 법당에만 들어와서 어떠한 법사님의 법문을 들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문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하늘을 보고도 산을 보고도 물을 보고도, 개 짖는 소리를 듣고도, 소와 말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도, ‘이놈 저놈’하고 욕지거리 하는 소리를 듣고도, 누가 나한테 어리석은 억울한 욕을 퍼붓고 달라드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목에 칼을 댈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찰나 찰나에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까지는 우리는 이러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자주자주 들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서 그 시간에 들은 법문을 졸졸졸졸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르르 옮기는 그러한 영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법문을 듣는 동안 잠깐도 귀를 팔지 아니하고, 한눈을 팔지 않고서 열심히 들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 돌아서서 한마디도 옮길 수 없지마는 들을 때나, 법문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이 자기에게 주어진 본참화두가 분명히 들려서 알 수 없는 의심이 골똘해진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비교할 때에 뒤에 사람이 앞에 사람의 몇천 배, 몇만 배 법문을 잘 제대로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해 드린 말씀을 통해서 '법문(法門)은 어떻게 듣는 것이 옳다'

또 법문은 법당 안에서만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 돌아가서 사회에 나가서 어디서 무엇을 보던지, 듣던지, 무엇을 느끼던지, 어떠한 사건을 당하던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언제라도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깊은 신심(信心)으로, 불같은 의심(疑心)으로, 분심(憤心)을 일으켜서 자기의 본참(本參)을 들고 또 들고 해서,

우리의 일상 모든 생활 속에 화두에 대한 의심이 한덩어리가 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제일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에 법문을 한 번 듣고서 하루, 한 달, 석 달, 일 년,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면 구태여 법문을 자주 들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이면 법회 때에 빠져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어쨌든지 듣던 말 또 듣고, 듣던 말 또 듣더라도 자주 자주 법회에 참석해서 본참화두가 타성일편이 될 때까지는 선지식의 법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스승을 찾는 데에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 이후로 선지식이 일양(一樣)으로 밖으로 보아서 인물이 잘나고, 법문을 들어보면 아주 변재(辯才)가 있고 말이 조리(條理)가 분명해서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만 하고.

그리고 그 행동은 대도사의 품위가 있고 몸에서는 광명이 비치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풍기며, 한 번 뵙기만 해도 모든 사람이 저절로 숭배심과 신앙심이 우러나오는 그러한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춘 그러한 도인(道人)으로만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도인은 가끔 있을 수 있을지언정, 대체로 불보살과 역대 대도사가 출현하실 때에는 여든한 가지의 그러한 가지가지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는 의심스럽고 '세상에 저게 무슨 도인인가? 저게 무슨 불법인가? 저래 가지고 무슨 중생교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사람 앞에 법문을 들어서 무엇 하겠는가?'

이렇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어찌 보면 어린애 같고, 어찌 보면 바보 같고, 어찌 보면 미치광이 같고, 그러한 양상(樣相)으로 출현하신 선지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처음~21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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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모든 중생이 한번 보고 한번 들음으로써 신심이 더욱 돈발(頓發)할 수 있는 그러한 훌륭한 양상으로 출현을 한 것이 낫지, 어찌 미치광이같이 바보같이 어린애같이 주책없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의아스럽게 맨드는 그러한 양상으로 출현을 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여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습니다.


중생은 무엇을 듣던지 보던지 단통 상(相)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자기 나름대로 저울질을 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눈에 들면은 좋다고 그러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야단입니다. 그러다가 조그만한 허물만 보였다면 대번에 손가락질을 하고 비방을 하고 "아! 큰스님인 줄 알고 큰 도인인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봤다. 어디가 도인이 그럴 수가 있느냐?" 대번에 돌아서서 욕을 하고 비방을 하고 다른 사람까지 가서 법문을 듣지 못하도록 선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相)을 보고 믿는 신도, 상을 보고—법문을 잘하니까,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참 음성 소리가 좋으니까, 참 인정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스님이 참 좋다. 이러한 식으로 믿기 시작한 그 신심은 머지않아서 변해 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서 상(相)에, 모냥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정말 진실한 돈독한 신심으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선입관, 주견을 잊어버리고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신(信)하는 그 신심은 어떠한 행동이나 어떠한 언어나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자기의 진실된 믿음은 동요가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求)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을 날마다 한 번씩 읽고 그러기를 몇십 년을 하는 그러한 신심을 가진 불자(佛子)가 금강경에 씌어 있는 단 한 구절의 게송의 뜻마저도 바로 보지 못하고, 마냥 정법을 비방하고 바로 선지식을 믿을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하는 자는 삿된 도를 행한지라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부처님은 32상과 80종호를 다 갖추셨고 그 음성은 원음(圓音)으로써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은 모든 중생이 자기의 근기에 맞춰서 각기 자기 나름대로 전부 그 법문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위대한 원음을 갖추셨으니까 나는 그분을 부처님으로 숭배한다. 그러한 거룩한 상호를 가지셨으니까 부처님을 숭배한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 앞에 머리 숙여 목숨 바쳐 귀의한다' 이러한 사람은 「참 여래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한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얼굴을 한 번만 본 사람도, 나의 이름을 한 번만 들은 사람도 결정코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대해탈도(大解脫道)를 얻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할 때는 밑을 보지 말고 저의 얼굴을 보시면서 들으십시오.

30년을 두고 발원을 하기를 '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삼도(三途)를 면하고, 나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해탈도를 증득하여지이다' 이렇게 간절히 축원을 해왔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을 자칫 잘못 들으시면은 여러분은 돌아서서 웃으시게 됩니다.

「나」라고 하니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낱낱이 「나」를 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기 이름을 한 가지 두 가지씩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임시로 붙여 놓은 이름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참 이름'을 바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 ‘참나’를 본 사람이 어찌 삼악도에 떨어지며, 여러분 자신의 '참 이름'을 들을 수 있다면 어찌 해탈도를 증득 못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드렸지마는, 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송담(松潭) 얼굴을 봐도 절대로 악도를 면하고 해탈도를 증득하리라고 저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는 저의 얼굴을 똑바로 보시면서 들어야 졸음이 안 온 것입니다. 요렇게 밑으로 참선 한 척하고 있으면은 남 봄에는 점잖하니 듣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꾸벅꾸벅 하고 계신 분이 계시거든요. 그렇게 되면은 제가 목이 아프도록 이야기한 보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병진년 삼동 결제일이고, 삼동안거 결제일이고 또 오늘부터서 내년 정월 15일까지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너 이놈!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찌 부모를 모시지 아니하고, 가정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손을 낳아서 그 가문을 번창하게 하지 아니하고, 사회에 나가서 국가 · 사회와 인류에 이바지한 바 없이, 부모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국가와 사회도 버리고 인류도 버리고서 머리를 깎고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그것 하나로써 네가 너 할 짓을 다 했느냐?

출가해서 오 년, 십 년, 삼십 년, 오십 년 내지 일생토록 머리를 깎은 부처님 제자로서 참으로 신도 피땀 흘려서 바친 신도의 밥과 옷을 정말 소화시킬 수 있는 진실한 도를 닦았느냐?


처음에 출가해서 일 년, 이 년, 삼 년은 그럭저럭 공부한 것 같이 애를 쓰더니만 사 년, 오 년, 육 년, 십 년, 이리 되니까 차츰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해태에 빠지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고, 나이는 차참 먹어가니까 거룩한 척하고 신도들의 절을 받고 시주를 받아서 '밥이 되다 질다, 반찬이 있다 없다, 방이 뜨시다 차웁다' 갖은 불평불만을 가진 채 정말 네가 출가한 목적을 달성했느냐?

그리해 가지고 정말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여의고 가정을 여의고 사회 국가를 버리고서 출가한 네 자신이 부끄럽지 않느냐?



네가 부처님을 믿는답시고 돈과 쌀을 갖다 바치고 '아들딸 잘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영감 승진하게 해 주십시오'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딸이 좋은 신랑을 만나도록 해 주십시오'

돈 · 쌀 갖다가 바치고 기도하고 불공하고, 그것이 네가 부처님 제자로서 정말 참되고 올바른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그리고서 갖다 바치고서 자기의 상(相)을 내고 '나는 이러이러하게 부처님께 바쳤다. 이렇게 나는 암만의 돈을 바쳐서 부처님께 금을 입혀 드렸고, 이렇게 돈을 많이 바쳐서 법당을 지어 드렸고, 이렇게 불양답(佛糧畓)을 시주해서 복을 지었다. 나를 봐라. 내 이름은 지금 아무 절에 가서 지금 현판에 쓰여 있다. 나를 모르다니? 너희들이 얼마나 절에다 돈을 바쳤느냐?'


부처님을 믿되 구하는 바가 있으면은 그 신심은 정말 진실하고 참된 신심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구하는 바 없이, 내가 바치되 '바쳤다'는 생각이 없이 이렇게 시주(施主)를 하면은 단돈 한푼을 시주하고, 단 쌀 한 움큼을 갖다 바치고, 물 한 그릇을 떠서 바쳐도 그 복은 무량한 것입니다.

그러나 칠보(七寶)로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차는 보물로 탑을 쌓아 올리고 불상을 조성해 모시고 절을 지어 바쳤다 하드라도 '내가 바쳤다'고 하는 그러한 상을 가지게 되면은 그 힘들여서 바친 그 시주는 맥빠진 김빠진 맥주처럼 참 가치가 찰나간(刹那間)에 가치가 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치라고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돈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형편이 넉넉하시면은 좀 많이 갖다가 내시고, 또 형편이 어려우시면 단돈 백 원도 좋고 오백 원도 좋고, 또 돈이 없으면 쌀 한 되도 좋고 두 되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물심양면으로 부처님과 법보(法寶)와 승보(僧寶)를 위해서 성의껏 여러분은 시주를 하시고, 동시에 법문을 듣고 열심히 스님네의 지도를 받아서 공부를 잘 하셔서 속세에 계시면서도 열심히 공부만 하신다면 얼마든지 머리 있는 채도 다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까 먼저 어떠한 말씀드린 그 말씀은 제가 어느 날 저녁에 꿈을 꾸니까 거룩하게 생긴 허연 노장님이 나와서 저한테 꾸지람을 그렇게 하신 것을 제가 듣고 소스라쳐 놀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꿈을 꾸었던 그 얘기는 나만 들을 얘기가 아니라 우리 용화사에 금년 삼동(三冬)에 공부하러 오신 우리 도반들, 청풍납자(淸風衲子) 우리 수좌(首座) 스님네들을 위해서도 이런 말씀은 들려드리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입재해서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를 하게 됩니다마는 석 달이라고 하면은 잠깐 사이입니다. 그러나 이 석 달 동안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느냐에 따라서는 무량겁(無量劫) 생사윤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석 달은 석 달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모여서 석 달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24시간이 된 것이고, 한 시간 한 시간은 1초 1초가 모여서 그것이 모여서 하루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석 달이라고 하는 세월도 1초 1초가 모여서 석 달이 된 것이지, 무슨 백년 속에서 석 달이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비단 석 달뿐이겠습니까.


무량겁을 오늘날까지 우리가 윤회(輪廻)해 왔고 앞으로 무량겁을 윤회해 나갈 것입니다마는 그 무량겁 윤회를 이 석 달 동안에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무량겁 생사윤회를 한 칼로 비어 끊어야 되겄습니다.

그 방법은 1초 1초를 어떻게 잘 지내 가느냐, 거기에 가서 열쇠가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느냐?


유시(有時)에는 성이 나고, 유시에는 기쁘고, 유시에는 외롭고, 유시에는 슬프고, 온갖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 속에서, 마치 저 바다에 파도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파도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합니다.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을 가라앉히려고 하시지 마십시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조금도 멀리 돌릴 것이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되돌려서 화두를 들도록 이렇게 나아가신다면은 어떠한 마음에 파도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참선을 못한다'고 걱정을 하신 분을 봤습니다마는 절대로 그런 걸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참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증거입니다.

늙었다고 여자라고 병들었다고 걱정하시지 말고, 늙었거나 여자거나 병들었거나 말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프면 누워서 하고,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하고, 걸어가거나 서서 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배가 아파서 '아이고, 아이고!' 하다가도 「이뭣고?」 이렇게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차곡차곡 되돌려 쌓을 때, 벽돌 한 장 한 장을 올바로 쌓아 올릴 때 십 층 백 층의 높은 건물이 이루어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벽돌을 삐딱빼딱해서 이리 쌓았다 저리 쌓았다 하다 보면은 얼마 안 가서 그 집은 와그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높은 고층 건물을 짓고자 할진대는 벽돌 하나하나를 바르게 쌓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헐라면은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지체 없이 되돌려서 본참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우리의 해탈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밥 먹고 옷 입는 그 사이에 있고, 똥 누는 그 사이에 있고, 손주를 무릎에다 앉혀놓고 궁둥이를 투둑투둑 한 그 속에 바로 우리가 눈뜰 좋은 기회는 있는 것입니다.


제일 공부가 잘되고 제일 중요한 것은—남편이나 자식이나 며느리나 친구나 이웃이 나에게 억울한 말을 하고 나에게 은혜를 받고서 나를 배신하고 웬수로서 나를 갚고자 할 때, 울화통이 터지고 속이 출렁여서 피가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그런 대충격을 받았을 그때야말로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힘있고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울 때에 한 번씩 자기로 돌아오는 연습을 해서 그것이 된다고 하면은 그밖에 소소한 일은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차라리 누워서 떡을 먹게 되면 눈에 티라도 들지마는,


이 참선은 어디서 언제 어떠한 일을 하면서라도 바로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한 생각 한 생각을 쌓아 올릴 때 우리에게는 축착합착(築着磕着), 일조(一朝)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날이 기어코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모든 선지식이 전부 다 한결같이 다 맹서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렇게 간절히 간절히 공부를 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겠다' 이렇게 까지 막담을 짓고 맹서를 하셨습니다.(21분35초~43분1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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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석 달, 석 달이라고 생각하시지 말고 하루하루, 하루하루라 생각하지 말고 1초 1초를 열심히 해서, 하루 딱! 지내고서 주무실 때 '내가 오늘 과연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는가?' 눈 감기 전에 반성을 한 번씩 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이튿날 새벽에 눈을 딱! 뜨면 그때부터서 또 시작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루 종일 갖은 환경 속에서 열심히 알뜰히 공부를 지어서 마지막 그날 저녁에 잘 때 또 '내가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얼마만큼 더 알뜰히 지냈는가?' 그것을 하루를 타산을 해 보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 해서 한 달 한 달이—처음 한 달 그렇게 하시고 또 그 다음달 한 달을 하시고 해서, 다음달은 첫 달보다 낫고, 끝에 달은 둘째 달보다 낫고 해서, 내년 정월 15일에는 정말 참 이 한철은 내가 참선 공부를 시작해서 정말 참 알뜰히 정진을 한 그러한 한철이었다고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환희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철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여기는 공기도 좋지 못하고 또 수용도 박(薄)하고, 방사(坊舍)도 협착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금년 겨울에는 이십 명이 넘는 전국에 선객(禪客) 스님네께서 모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용화사는 여러 가지가 어렵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스님네들은 그러한 어렵고 부족한 것을 불평과 불만으로 생각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겠지마는, 그런 어렵고 불편한 것을 그것을 우리가 공부 성취할 수 있는, 신심과 분심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계기(契機)로 삼아 주시고 공부를 알뜰히 잘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여러 신도 여러분께서는—이러한 초라한 누추한 절을 전강 조실 스님, 조실 스님이 계시던 도량이라고 해서 이렇게 먼 데서 이렇게 많은 좋은 스님네가 오셨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공부하려고 오신 스님네들을 여러분께서는 성의껏 잘 받들어 모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 천 명을 밥을 주어서 기갈을 면케 해 주는 공덕보단 소승 나한(羅漢), 한 사람 공양(供養)한 것이 낫다.

소승 나한, 천 명을 공양을 시킨 것보단 부처님 한 분 공양한 것이 낫다.

부처님 천 명을, 일천 부처님 공양한 것보단 무심도인(無心道人), 한 사람의 공양하는 복이 낫다」

이렇게 『사십이장경』에 말씀하셨습니다.


올 우리 법보선원에 공부하러 오신 선객 스님네들은 바로 그러한 무심도.... (법문 끊김)


'스님네는 머리를 깎고 공부만 전력하시지마는, 나는 세속에서 머리 기르고 자식 낳고 사는 살림하고 산다. 그렇지마는 내가 공부 열심히 하기로는 내가 스님네한테 질 수가 없겠습니다'

이러한 이를 악물고 자부심을 가지고 결심을 하셔서 스님네 뒤지지 않게 공부를 좀 열심히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43분17초~47분50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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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무용지물(無用之物 없을 무/쓸 용/어조사 지/물건·만물·사물·일·사람 물) ; 아무짝에도 쓸데[用]없는[無] 물건이나 사람.

*묵언(默言)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음.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집). 箱房. 箱(상자)의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방(房)이 결합된 말.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자지 않는 것.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선양(宣掦 베풀·널리 알릴 선/오를·나타낼 양) ; 명성이나 권위 따위를 널리 떨치게 함.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시방법계(十方法界) ; 시방세계(十方世界).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무량무변(無量無邊) ; 한없이 크고 넓음. 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진묵겁(塵墨劫)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연상(聯想 뒤를 이을 련/생각 상) ;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 '기차'로 '여행'을 떠올리는 따위의 현상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귀를 팔다 ; 귀를 딴 데로 돌리어 잘 듣지 않다.

*한눈 ;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는 눈.

*한눈을 팔다 ;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을 딴 데로 돌리다.

*걸음걸음이 ; 걸음을 걸을 적마다.

*골똘해진--->골똘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온 정신을 쏟아 딴생각이 없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불같은—> 불같다 ; 정열이나 신념, 감정 따위가 뜨겁고 강렬하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변재(辨才 말 잘할 변/재주 재) ; 말을 잘하는[辨] 능력과 재주(才操).

*조리(條理) ;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대체로 불보살과 역대 대도사가 출현하실 때에는 여든한 가지의 그러한 가지가지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는 의심스럽고 '세상에 저게 무슨 도인인가? 저게 무슨 불법인가? 저래 가지고 무슨 중생교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사람 앞에 법문을 들어서 무엇 하겠는가?' 이렇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어찌 보면 어린애 같고, 어찌 보면 바보 같고, 어찌 보면 미치광이 같고, 그러한 양상(樣相)으로 출현하신 선지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 도인(道人)의 81행(行).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양상(樣相 모양·형태·상태 양/서로·모양·바탕 상) ; 사물이나 현상의 모양이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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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단통 ; 그 자리에서 대번에 곧장.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금강경』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色見聲求 是行邪道 作麼生 不行邪道去 但知聲色本非眞 自然不被聲色惑 見盡自於玄旨會 情忘能與道相親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수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때,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사도(四道) ;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 ①가행도(加行道).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 ②무간도(無間道). 간격이나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③해탈도(解脫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④승진도(勝進道). 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불양답(佛糧畓 부처 불/양식 량/논 답) ; 부처님[佛]에게 올리는 쌀[糧]을 생산하는, 절에 딸린 논밭[畓]. 불향답(佛享畓, 佛餉畓)이라고도 한다.

*칠보(七寶) : 일곱 가지의 보배。즉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법보(法寶 부처님의 가르침 법/보배·보물 보) ; 불교도의 세 가지 귀의처,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하나.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보배[寶]에 비유한 말.

*청풍납자(淸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사람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淸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衲子]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일조(一朝) ; 주로 ‘일조에’의 꼴로 쓰여, 하루 아침이라는 뜻으로, 갑작스럽도록 짧은 사이를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그렇게 간절히 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렇게 간절히 간절히 공부를 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겠다' 이렇게 까지 막담을 짓고 맹서를 하셨습니다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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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坊舍 집·거처하는 방·절 방/집·가옥 사) ; 절에서 스님이 거처하는 방.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 11장.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백 명의 악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오계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만 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만 명의 수다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만 명의 사다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일 억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십 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백 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삼세제불 가운데, 한 분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 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분의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무심도인(無心道人) ; ①모든 번뇌망상이 사라져 더이상 추구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대하여 구하는 것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수행자.

②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 무심적적(無心寂寂)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사량계교심을 다 놓아버리고 언제나 천진무구한 본연자성(本然自性)으로 살아가는 사람.





[법문 내용]


송담스님의 묵언 정진. 전강 조실스님께서 보살펴 주신 은혜 / 참선을 하려면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 도인 81행 / 상(相)에 의지하지 아니한 진실한 신심.


금강경 사구게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꿈에 거룩하게 생긴 노장님이 꾸지람을 하심. '진실한 도를 닦았느냐? 네가 출가한 목적을 달성했느냐?' / 무주상 보시의 복은 무량하다.


1초 1초가 모여서 석 달... 백년... 무량겁이 된 것 /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 간절히 공부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겠다.



저는 제가 자신의 근기를 생각할 때에 하근기 중에서도 가장 못난 하근기라고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말 바보가 되어 전강 조실 스님의 법을 철저히 믿고, 벙어리가 되어 이 세상 한 번 안 태어난 셈치고 일생을 지내보리라'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바보가 되고 쓸모없는 물건이 될라면은 벙어리가 된 것이 제일 무방하겠다' 이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자마자 바로 묵언(默言)을 시작. 10년 묵언.


선지식(善知識)이 무슨 깨닫게 해 준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가리켜 줄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지식한테 무엇을 배울 것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참선을 헐라고 할 때에는 바른 선지식의 지도가 없이는 천 명, 만 명 가운데에 한 사람도 바로 깨달은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배울 것도 없고 가리킬 것도 없는데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면은 바로 깨달을 수가 없느냐?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에 가리켜 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은 우리는 혼자라도 얼마든지 스승 없이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가리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승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相)을 보고 믿는—법문을 잘하니까,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참 음성 소리가 좋으니까, 참 인정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스님이 참 좋다. 이러한 식으로 믿기 시작한 그 신심은 머지않아서 변해 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서 상(相)에, 모냥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정말 진실한 돈독한 신심으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선입관, 주견을 잊어버리고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신(信)하는 그 신심은 어떠한 행동이나 어떠한 언어나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자기의 진실된 믿음은 동요가 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音聲)으로써 나를 구(求)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을 믿되 구하는 바가 있으면은 그 신심은 정말 진실하고 참된 신심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구하는 바 없이, 내가 바치되 '바쳤다'는 생각이 없이 이렇게 시주(施主)를 하면은 단돈 한푼을 시주하고, 단 쌀 한 움큼을 갖다 바치고, 물 한 그릇을 떠서 바쳐도 그 복은 무량한 것입니다.


우리가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헐라면은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지체 없이 되돌려서 본참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우리의 해탈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밥 먹고 옷 입는 그 사이에 있고, 똥 누는 그 사이에 있고, 손주를 무릎에다 앉혀놓고 궁둥이를 투둑투둑 한 그 속에 바로 우리가 눈뜰 좋은 기회는 있는 것입니다.


울화통이 터지고 속이 출렁여서 피가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그런 대충격을 받았을 그때야말로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힘있고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참선은 어디서 언제 어떠한 일을 하면서라도 바로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한 생각 한 생각을 쌓아 올릴 때 우리에게는 축착합착(築着磕着), 일조(一朝)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날이 기어코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모든 선지식이 전부 다 한결같이 다 맹서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렇게 간절히 간절히 공부를 해서 3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겠다' 이렇게 까지 막담을 짓고 맹서를 하셨습니다.


'스님네는 머리를 깎고 공부만 전력하시지마는, 나는 세속에서 머리 기르고 자식 낳고 사는 살림하고 산다. 그렇지마는 내가 공부 열심히 하기로는 내가 스님네한테 질 수가 없겠습니다'

이러한 이를 악물고 자부심을 가지고 결심을 하셔서 스님네 뒤지지 않게 공부를 좀 열심히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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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100/(1~25)2017. 3. 31. 08:40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014)—76년 2월 관음재일 법문 (54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12분.


(1/3)----------------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다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참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이를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마는, 이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될 수 있으면 하나라도 더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더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병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빈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다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년, 10년, 5년, 3년 또는 몇 달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참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이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요,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그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잘 들으신 것이라고는 꼭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 시간 동안에 걸쳐서 그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한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알 수 없는 ‘이뭣고?’한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 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잘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봐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이 간단한 이 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가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참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할 그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그 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대단히 경을 떠들어 봐도 알기가 어렵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암만 읽어봐도 읽어볼수록 점점 더 어렵고 그래서 이 불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어쨌든지 경전을 쉽게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늘날에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한 것을 종종 뜻있는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마는.


아무리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자꾸 간행을 한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불법이 성황을 이루고 많은 중생이 제도를 받느냐 하면은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경을 많이 읽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육두백판으로 다 잘 안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요, 그런다고 해서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쨌든지 간단한 말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이-하는 놈이 무엇인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하지마는 생각 생각이 ‘이뭣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시간 시간이, 일 분 일 분마다, 일 초 일 초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이 잡념이 되었건, 번뇌 망상이 되었건, 성을 내건 또는 슬프건, 무슨 생각이 일어났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만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제8 뢰야식(賴耶識) 속에 고대로 다 녹음이 되어서 간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틈만 있으면 움이 터 나오고 있습니다.


무를 겨울에 땅속에다가 묻어놓으면 계속 거기서 움이 자라가지고 그 이듬해 무를 파 보면은 노랗게 싹이 터 나오고 있듯이,

우리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무량겁으로 생활해 내려오면서 그 속에 녹음되어 감춰져 갖고 있는, 쌓여져 갖고 있는 그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의 한없는 많은 그 종자(種子)들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그 종자가 무슨 기회만 있으면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움이 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움이 터 나오면서 그놈이 또 씨를 결실을 해 가지고 또다시 거기에 또 저장이 되고, 저장된 씨에서는 계속 움이 터 나오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 아니면 악한 생각,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터무니없는 생각, 10년 전, 20년 전에 있었던 일 또는 전혀 보고 듣지도 못한 뿌리도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잠시도 쉴 사이 없이 퍼일어났다 꺼졌다, 퍼일어났다 꺼졌다.


그 가운데에 울다가 웃다가 몸부림치다가 그래가지고 성내다가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러는 가운데에 그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선업도 있고, 악업도 있고, 무기업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생각이 끊일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는 육도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하게 된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그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그 행동으로 인해서 또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해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불법을 만나서 이 법보선원에 이렇게 모이셨습니다마는, 이만큼 되실 때까지는 여러분들은 과거에 한없는 정법(正法)에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다행히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기왕 오셨을 바에는 활구참선법을 올바르게 배워서, 지도 받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면은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하실 것이고,

설사 인연이 무르익지 못해서 금생에 도업을 성취 못하신다 하더라고 올바르게만 공부하신다면은 내생에 다시 몸 바꿔 나서 또 공부를 하시게 되어서 결정코 내생에는 대도사(大道士)가 되어가지고 당신 자신도 생사해탈을 하실 뿐만 아니라, 또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게 됩니다.


오직 이 길만이 자신도 해탈(解脫)하고, 남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건져낼 수가 있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떠한 착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생사해탈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찬 칠보(七寶)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를 한다 해도 그 복이 한량이 없어서 천당에 태어나고, 인도(人道)에 태어난다 해도 오복(五福)을 다 누릴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그러한 상(相)으로, 물질적으로 이룬 그러한 복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어서 타락이 있게 됩니다.


타락한 날에는 백 년 동안 복을 누리다 타락하거나, 억겁(億劫)을 누리다가 타락하거나 그 타락한 그 마당에 비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본래부터 가난했던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으면 별일이 없지마는, 한 삼사십 년 호강하고 잘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졌을 때의 그 비참한 것은 말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有漏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웬수(怨讐)’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말한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바로 유루복인데, 유루복은 그 유루복을 닦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죄 안 짓고 돈 벌 수 있습니까? 죄 안 짓고 높은 자리 올라갈 수 있습니까? 높은 자리 올라가고, 높은 큰 부자를 누릴려고 할 때에 죄 짓지 않고는 도저히 그런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복을 획득하느라고 죄를 짓고, 또 그 복을 획득한 다음에 그 복 수용 하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고 하다 보니 권리도 부려야 하고, 호강도 해야 하고, 없는 사람 업신여기며 없는 사람을 개돼지처럼 종으로 부리면서 그 복 누리느라고 죄를 짓게 되고.

마지막에 그 복을 다 받아서 망(亡)해 갈 때에 될 수 있으면 그 복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과 귀(貴)와 권리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갖은 안간힘을 쓰다 보니 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이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얻기 위해서 죄를 짓고, 얻어 가지고 누리느라고 죄를 짓고, 나중에 망해 갈 때 그놈을 안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되어서 ‘삼생(三生) 웬수(怨讐)’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지위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지마는, 그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며, 차라리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만큼 '웬수거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돈도 웬수고 명예와 권리도 웬수면 다 소용없고, 그러면 뭘 흙 파먹고 살아란 말이냐?’ 혹 이러한 의아심(疑訝心)을 가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다 필요합니다. 필요하지마는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가 생명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을 하시게 되면은, 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노력도 하시고, 그런 얻어진 것을 필요하게 적절히 사용도 하시고 또 그것들이 인연이 다해서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불행해지거나 죄를 짓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이 활구참선을 하게 되면은 하는 가운데에 돈도 벌고, 명예도 누리고, 권리도 잡고 하신다면은 그것이 죄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죄 짓지 않고 얼마든지 유효적절하게 얻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고, 마지막 그것이 나한테 떠난다 해도 모든 것을 인연에 돌리고.

그것이 떠남으로써 일반 사람은 아주 비참한 불행한 맛을 보게 되지만, 이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떠날 때에도 오히려 좋은 발심(發心)의 계기가 되어질 수가 있고, 참으로 발심할 수 있는 법문이 되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좋은 법이기 때문에 최상승 활구참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으로 혹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식해도 할 수 있고,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고,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오히려 더 하기가 좋습니다. 왜 그러냐?

경(經)을 공부한다든지 무슨 어려운 경책(經冊)을 학문을 한다고 하면은 젊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또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되겠지마는 이 활구참선은 맨주먹으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앓아누워 있는 사람은 앓아누워서도 할 수가 있고, 바쁜 사람은 바쁜 가운데도 할 수가 있고,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사람도 참선(參禪)하는 간단한 법만 지도 받으면은 어디서 언제라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이 법이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대답할 줄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꼬집어서 아픈 줄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배고파서 밥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꼬집어 뜯어서 아픈 줄 알고 “아무개야!”하고 불러서 “예”하고 대답할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만 안 사람이면은 이 참선은 능히 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딱! 꼬집었을 때 “아야!”할 줄만 알면 ‘그 아픈 줄 아는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공부를 해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처음~20분2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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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어떤 보살님은 이렇게 조실 스님이 고구정녕(苦口叮嚀)히 말씀하시고,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실 스님의 그 말씀을 더 알기 쉽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를 벌써 일 년 남짓을 해왔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전부 스님네나 또는 선방에 앉아서, 그 큰방에 앉아 계신 보살님만 하는 것이지 그밖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신 신도 여러분에게는 해당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전혀 이런 말씀을 들어도 ‘이 말씀은 당신한테는 해당된 법문이 아니라’ 이리 생각하고 여태까지 5년 동안을 다니셨다 그럽니다.

그분은 대단히 진실하고, 아주 신심이 돈독한 분으로서 대단히 좋은 진실한 신도님인데, 어떻게 이 법문을 어디로 들으셨는가? 그것이 당신한테 해당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한테만 해당된 말이요, 나한테는 해당된 말이 아니다’해 가지고 ‘나도 언제나 저런 공부를 해 볼꼬?’ 이리 생각하셨다 그럽니다.


혹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그러한 착각을 하신 분이 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말씀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해당된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고대로만 하시면 되는 것이지, 별도로 따로 지도를 받아야 하거나, 지금 자기에게는 해당된 말이 아니어서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누구라도, 지금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마는, 그 어린아이라도 다섯 살, 여섯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이 말씀만 조용히 들어서 귀담아듣고 고대로만 하면은 오히려 나이 많이 먹어서 학교도 많이 다니고, 지식도 많은 사람보단 아주 철이 하나도 안 든 다섯, 여섯 살 먹은 애라도 고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그 어린애가 훨씬 더 빨리 도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광주에서 어느 신도분의 아들이 자꾸 자기 어머니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것을 보고서 절에 따라와서 구경하고 또 자기 집에서도 어머니가 조석으로 관세음보살 부른 것을 보고는, 그 어린애가 열이 40도가 넘어 가지고 영 몸부림을 치고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대단히 곤경에 빠져 가지고 못 견디게 되니까,

그 어린애가 서서 벽에 붙여 놓은 관세음보살 사진 앞에 서 가지고는, 아 다섯 살 먹은 어린애가 합장을 하고 서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해 가지고 한 몇 분 동안을 그렇게 하더니 아! 팍 쓰러져 가지고는 쿨쿨 잠을 한숨 자고 나더니 아! 그 40도나 되던 열이 쏴악 식어 가지고.


아! 병원에서도 얘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고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온 어린애가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한 십 분 남짓을 그렇게 부르더니 아! 그 감쪽같이 그 병이 낫은 것을 제가 그 어린애를 봤습니다.


순수무구(純粹無垢)한 마음, 천진한 마음으로 할 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을 많이 안 보았다’고, ‘나는 아직 불교에 들어온 지가 얼마 안 되고 경도 한 번도 못 봤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참선해 봤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지 말고, 금방 오셨더라도 조금도 상관이 없으니까 ‘이뭣고?’


성이 날 때나 또는 슬픈 생각이 들 때나 또는 어떤 외로움을 느낄 때나, 가정 문제로 사회 문제로 자손 문제로 또는 내외간 문제로 해서, 어떠한 속이 상하고 슬프고 외롭고 또는 기쁘고 간에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 지금 당장 ‘이-하는 놈이 뭣고?’ 자꾸 생각 생각이 돌이켜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들고 또 들고, 이 생각이 생활 속에 저절로 ‘이뭣고?’하는 생각이 저절로 되어지도록까지 열심히 하십시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잠을 잘 때도 ‘이뭣고?’하면서 언제 잠이 든 줄 모르게 공부를 하시도록, 이렇게 하시면은 무식할수록 더 좋고, 철이 안 들을수록 더 좋고, 연세가 많을수록 더 좋고.


연세 많은 분은 ‘내가 인자 이 세상을, 이승을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항시 간절하게 자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무슨 미련이 있고, 못 잊을 것이 있어서 딴 생각할 겨를이 있느냐 그말이야. 그 죽음이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이뭣고?’를 할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노인은 노인대로 더 공부하기 더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련도 있고 생각도 많아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그러지마는, 벌써 육십 칠십 넘으신 할머니는 더 좋습니다. 인제 자식 걱정할 것도 없고, 자기들 지 복(福)대로 살도록 놔두고, 나는 ‘이뭣고?’ 더 좋아요.


마지막 숨질 때, 그때 참으로 마지막 5분, 3분, 2분, 1분, 1초 그때까지도 ‘이뭣고?’하는 생각으로 눈을 딱 감을 수 있다면은 그분이야말로 바로 도인(道人)입니다. 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분이 도인이여.

마지막 숨 거둘 때에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뭣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존시에 무슨 일에 애착이 있어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마지막 숨질 때, 참으로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이뭣고?’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도인입니다.


마지막 숨질 때, 그 사람이 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그 병한테 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힘을 총동원해도 그놈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죽게되는 것이니 만큼, 그 죽는 순간에 화두가 들려지고, 들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공부는 어지간한 공부입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때 정신 하나 못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줄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개 배때기, 뱀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때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그것이 그때그때 화두가 들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이 몸뚱이 숨 거둘 때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꼭 칠팔십 년 살다가 마지막 죽을 때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때 생각,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생(生)이요, 한 생각 꺼지면 그것 사(死)입니다. 생멸심(生滅心)이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는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 말씀으로 줄여서 말하면 일념단속(一念團束)하는 것, 생사심 단속해서—거기에서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사심 단속해서 생사 없는 이치를 내 몸에 체달(體達)할 때 영원한 생사윤회는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그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그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험준하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 세상 살아가는 속에 정신차려 ‘이뭣고?’ 든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하면 누가 나를 위해서닦아줍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 어린 서너 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심심하고 그러니까, 저 마을 어구에 큰 정자가 있는데 그 정자 밑에는 한 열댓 길 되는 절벽이 있습니다.

그 절벽 밑에는 새파란 강이 흐르고 있어서 대단히 경치가 좋기 때문에 그 절벽 위에다가 정자를 지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여름에는 거기 가서 놀고, 춘하추동 그 정자에 가서 모여서 놀고 시간을 지내고 그러는데, 그 할아버지도 그 어린 손자를 데리고 그 정자에 가서 놀고 있는데.


그 손자는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뛰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깡충깡충 뛰다가 심심하면 할아버지한테 가서 안겼다가, 그러다 그냥 그놈이 너무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니까 할아버지 수염을 쏙 뽑고, 쏙 뽑고 그러는데 “야! 이놈아 수염 뽑지 마라. 아프다”

또 한바탕 가서 깡충깡충 뛰다가 놀다가 와서 또 쏙 뽑으니까는 “아! 이놈아. 아퍼” 그러고 툭 밀어버린 것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가지고 그 어린 손자가 십여 길 되는 절벽 밑에 떨어져 가지고 즉사(卽死)를 했습니다.


이것은 떨어지라고 민 것도 아니고 수염을 뽑으니까 엉겁결에 무의식 중에 아파서 이리 떠민 것이 어린애가 나동그라져 가지고 절벽으로 떨어져서 죽었는데.

그래서 세상에 그 할아버지가 그 귀여운 손자를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게 했으니, 그걸 할아버지가 북북 기어 내려가 가지고 그 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 어린애를 간신히 건져내 가지고 보니 박살이 났다 이 말씀이여.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거 어린애를 끌어안고 울고불고하다가 해가 넘어갔습니다.


그래 집에서 할아버지가 안 오시니까, 그 애기 엄마가 그 할아버지가 흔히 낮에는 꼭 손자를 데리고 정자에 가신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 가서 보니까 절벽 밑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그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서,

“아, 할아버지 거기서 뭣 하십니까?” 죽은 손자를 안고 울면서 “나를 죽여 달라”고, 자부(子婦)한테 나를 죽여 달라고 막... ,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 사실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어린애를 “할아버지, 제 명이 짧아서 이렇게 죽게 된 것이니 상심 마십시오.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 않습니까?” 할아버지를 잘 위로를 해서 그 어린애를 양지바른 데다 묻어 주었습니다.


제가 그전에는 나귀에 관한 얘기를 해 드렸고, 소에 대한 얘기를 해 드렸고, 오늘은 개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해 드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집에서는 그 어린애를 갖다가 양지바른 데다 묻어주고는 계속 그 할아버지는 계속 상심해서 참 진지도 잘 못 잡숫고, 잠도 못 주무시고,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는데, 그 아들이나 며느리나 집안 식구들은 할아버지를 갖은 방법으로 위로를 해드리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런데, 그러는 가운데에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아, 그런데 밤에면.. 집에 개를 한 마리 기르는데 개란 놈이 그 할아버지 자는 문 앞에 와 가지고, 막 할아버지가 간신히 어떻게 해서 밤늦게 잠이 한숨들라고 하면은 개란 놈이 와서 문 앞에 와서 짖고, 문을 긁고 야단이라 그말이여.

도저히, 그래서 잠 좀 막 잘라다가 못 자고, 그 이튿날 저녁에도 또 12시 자정이 넘어서 간신히 잠 좀 막 잘라고 하면 또 개가 와서 짖고 문을 긁고 해서 또 그냥 또 잠을 못 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를 여러 날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개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고 참으로 큰일났다’해서 가족들이 의논을 해 가지고 그 개를 잡아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고 있는 차인데 ‘내일이면은 저 개를 죽여 없애자’ 그렇게 의논을 했는데.

‘집구석이 좋지 못하려니까 손자가 그렇게 비명(非命)에 죽더니 개마저 그런다’고. ‘저 개 때문에 재수때갱이가 없어서 이렇게 그런가 보다’고, 그 개를 죽여 없애기로 했는데.


그래서 그 개를 밤에 죽여 가지고 그것을 잡어서 삶았습니다. 삶았는데 개 속에 가서 새끼가 여러 마리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 한 마리 죽인 바람에 새끼까지 모다 죽게 되어서, 개를 가마솥에다 넣어서 푹푹 고고 있는데, 아! 그 할아버지의 딸이 머지않는 곳으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는데, 그 딸이 새벽같이 쫓아왔습니다.


“아니! 아버지 여기 개 죽였습니까?”

“오냐. 개를 죽여서 지금 고고 있다”


“아휴, 그런데 그 개 뱃속에 새끼가 들었던가요? 새끼가 세 마리 들었던가요?”

“오냐. 새끼가 세 마리 들었더라. 그런데 니가 어떻게 알고 왔냐?”


“아휴! 그 개를 왜 죽였습니까? 아니, 그 개를 죽일 개가 아닌데 왜 죽였습니까?”

“거 약하약하 해서 죽였는데 니가 그것을 대관절 어떻게 알고 왔냐? 어제 밤에 그냥 죽였는데 어떻게 알았냐?”


“다름이 아니라 내가 어젯밤 꿈을 꾸니까 우리집에서 키운 개가 나한테 와 가지고 하는 말이,

‘그 몇 달 전에 죽은 그 손자가 구랭이가 되어가지고, 그 할아버지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잠만 들막 하면은 와가지고 문구녁으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해꼬자 하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이 집의 온가족의 사랑을 받고 크는 개로써 그 구렁이가 집에 못 들어가게 갖은 방법으로 막고, 물고, 뜯고 해서 쫒으면은 그 구랭이가 도망갔다가, 또 그 다음날 저녁에 할아버지가 잠이 들만 하면 그 구렁이가 또 나와 가지고 또 들어갈라고 하면 내가 짖고, 물고, 뜯고, 그냥 막고, 그냥 발로 방해를 하고 이렇게 해서 간신히 해서 쫓고, 쫓고 해서 며칠을 두고 지금 그 구렁이하고 실갱이를 하고 지금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 집의 식구는 그것을 모르고 내가 집구석 망할라고 짖는다고 해 가지고 나를, 내가 새끼를 세 마리나 배 가지고 얼마 안 있으면 곧 낳게 되었는데 나를 죽일라고 하니 나를 좀 살려주시오’

아! 그 현몽(現夢)을 대서 그래서 밤중에 갈 수가 없어서 날이 새자마자 이렇게 왔는데, 세상에 그 개를 죽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러한 실화가 있습니다.


그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도 아니요, 귀여워하다가 무의식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그렇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한테 그 복수심을 가지고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오거든,

하물며 우리가 내가 나 잘살고, 나가 돈 벌고 나를 위해서 나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했을 때에 돌아올 과보(果報)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본래 사흘만 길러도 삼 년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고양이는 삼 년을 길러도 사흘 은공을 모른다’하는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종종 이 개라고 하는 짐승이 그렇게 주인의 은혜를 자기의 생명으로써 갚은 경우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일본 등속에 많이 있고, 서양에도 그런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개를 많이 기르시는 분들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밥도 잘 주고, 항시 그 개 듣는데 화두(話頭)도 일러주시고, ‘관세음보살’도 그 개 귀에다 대고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지 그 개가 잘 살다가 내생에는 몸을 바꿔서 참선(參禪)을 할 수 있도록 항시 축원(祝願)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를 볼 때마다 항시 ‘이뭣고?’를 간절히 들어야 합니다.(20분27초~41분20초)



(3/3)----------------


중국에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한테 “저런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조주 스님이 “무(無)”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스님이 생각하기를—부처님 경전에 보면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일체 꿈적꿈적한 그런 벌레까지라도 다 불성이 있다’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런데 어째서 조주 스님은 없다고 했는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그것이 조주 스님으로 말하면은 ‘옛날 불보살(佛菩薩)이 화현(化現)했다’고 하는, ‘중생 교화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할만큼 존경을 받을 만한 큰 도인(道人)이십니다. 그 조주 스님은 벌써 십 세 미만의 소년 때에 견성(見性)을 하신 도인이고, 일백이십 세까지 사신 그러한 대도사(大道士)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거짓말하실 리도 없고, 조주 스님이 더군다나 그런 대도사가 거짓말하실 까닭이 없거늘, ‘어째서 개가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고?’ 자나깨나 그 스님은 의심을 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앉아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옷 입을 때나, 똥 눌 때나, 걸어갈 때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어째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해서 꿈속에서까지 그 의심이 일어날 정도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을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땅을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반가운 친구가 와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어떤 속상한 일이 닥쳐와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슬픈 일이 닥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그저 날아가는 새를 봐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먼 데서 짖는 개소리를 들어도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 ‘어째서 무(無)라고 했나?’ 그 생각 하나로 이 몸과 우주법계가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홀연히 그 의심이 터지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참선을 하려고 할 때에, 과거에 많은 도인들이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 화두로써 많은 도인들이 여기서 나왔던 것입니다.

이 가운데에 그 조주 스님이 무(無)라고 한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 화두를 드시는 분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이 ‘조주 무자(無字)’도 역시 개로 인해서 나온 공안입니다.


개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껍데기만 개지 그것이 개가 아닙니다. 우리도 한 생각에 개의 껍데기를 뒤집어 몇천만 번을 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나왔을른지도 모르고, 앞으로 또 언제 얼마나 많이 개의 껍데기를 뒤집어 쓸 날이 올는지 모릅니다.

한번 개가 되면은 참 그 껍데기 벗기 어렵고, 그러니만큼 어쨌든지 우리는 이 사람 몸 받았을 때에 기어코....(녹음끊김)



몇 가지 광고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음력 3월 16일이, 매년 3월 16일은 법보재(法寶齋)로써 우리 용화사의 아주 큰 대법회가 있습니다.

그날은 여기 법당에 모셔진 법보재에 드신 법보제자 영가(靈駕)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과거에 모든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전부 이 자리에 초청해 모시고, 원근친척과 나라를 위해서 돌아가신 장병과 충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도 없는 수많은 법계(法界)의 고혼(孤魂)들을 다 이 자리에 청혼(請魂)을 해 가지고 천도(薦度)를 해 모시는 날입니다.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은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다 참여하실 것은 물론이고, 설사 이 법보재에 드시지 아니하신 분이라도 다 그날만큼은 이웃 어른이라도 다 권고해서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참석하시도록 그렇게 해주시기 바라고.

시간은 오늘과 같이 사시(巳時)에, 그러니까 아마 11시부터 12시 그 사이에부터서 시작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될 수 있으면 일찍들 오시도록 하시고, 3월 16일이에요.


그리고 3월 10일 날이 무슨 날인고 하니, 전강 조실 스님과 인연이 깊은 무주 포교당 대웅전 낙성식을 봉행하는 날입니다. 아마 이 가운데 계신 여러분께서는 그 대웅전을 창건하는 데에 성심을 다해서 시주하신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그런 분들 빠지시지 말고,

또 아직 그 시주를 안 하셨더라도 그날 거기에서 낙성식을 봉행하는 자리에 법회가 있으니 만큼, 될 수 있으면 한 분이라도 많이 참석을 하셔서 그 자리를 빛내주시고 그 공덕으로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여기 지금 그 포교당 주지스님이 와 계시니만큼 자세한 것은 그 스님이나 또는 우리 절 보경심 신도회장님과 연락을 해서 가실 때 모다 같이 가시는 것도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달 24일, 그리고 그 밖에 법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신남신녀(信男信女)께서 많이 오시는데, 이 법당에 한번 들어오시면은 부처님께 참배를 하시거나 또는 참배가 끝난 다음에 자리에 한번 딱 앉으시면은 입선(入禪)을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쨌든지 참선(參禪) 때문에 오셨고,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실라고 오신 것이지, 여기에 오신 마당에 무슨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에 들어오셨거나, 이 도량(道場)에 들어섰거나 또는 집에서 이 법회에 오시려고 하실 때부터 마음가짐이 조용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면서 오셔야 하고, 더군다나 이 법당에 딱 들어서셨다 하면은 딱! 방석을 갖다놓고 앉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집에서는 시끄럽고 복잡하고 해서 잘 안되더라도 이 자리에 오신 이 마당에서는 열 명이 앉아 계시거나, 오십 명이 앉아 계시거나, 삼백 명이 앉아 계시거나, 밖에서는 한 분도 안 계신 것처럼 그렇게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딱! 화두를 들고 입정(入定)을 하셔야 합니다.


들어오셔서 들어오신 대로, 하기는 오랜만에 만나셨으니까 모두 인사도 해야 하고, 정담도 있게 마련이고 해서 얘기하신 것이 그렇게 이해는 갈 수 있습니다마는.

다른 회의 장소도 아니고 순 참선 법회인 만큼 딱 들어오셨다 하면은 말없이 단정히 앉아서 입선을 하시도록. 대단히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 법회장이 엄숙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 자신들에게 많은 이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은 이 24일 관음재(觀音齋) 법회만큼은 11시 반에 딱 시작할 수 있도록 각별히 유의하셔서... 10시 , 실례했습니다. 10시 반에 딱 시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조금 생각을 준비하시면은 능히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법회를 거듭할 때마다 많은 신도분들이 오시면서 자꾸 친구나 친척 되시는 이웃 어른들을 모다 인도를 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한 몸만 이 법을 알고 공부하고 말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 자기가 좋아하는 언니, 동생, 조카, 딸 이러한 분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권고해서 같이 오셔서 같이 이 공부를 해 가지고 같이 행복하게 살고, 같이 생사해탈을 해야지, 자기만 좋고 말아버린다고 하면은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사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가만히 보니 오실 때마다 새로운 분을 한 분씩, 두 분씩 자꾸자꾸 이렇게 인도해서 오시는 분들이 차츰차츰 늘어나서, 그분들의 공덕(功德)은 절에다가 돈이나, 쌀이나, 무슨 그런 물질적인 보시를 하는 몇천만 배의 공덕이 그분에게는 있을 것이고, 소원을 성취하실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돈이나 물질을 희사(喜捨)한 것은 그것이 아까 말씀한 대로 한(限)이 있어서 그 복[有漏福] 받을 만큼 다 받아 버리면 그것으로써 끄터리는 비참하기가 마찬가지라고 말씀했죠.

그러나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열 사람, 스무 사람, 내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이 정법(正法)으로 인도해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성취할 수 있도록 인도한 그 공덕이, 그것은 다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남도 공부하고, 나도 공부하고, 나 공부하면서 남도 공부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해서 우리의 도반(道伴)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불어나도록 그렇게 모다 노력을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이만 이야기하겠습니다.(41분21초~53분2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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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참집(參集 참여할 참/모일 집) ; 어떤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모임.

*돋구다 ; 돋우다(감정이나 기운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다. 정도를 더 높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깨달음 ; 각(覺).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조랑조랑 ; (어린 사람이) 계속하여 똑똑하게 글을 외거나 말을 하는 소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苦].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뢰야식(賴耶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썩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말.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보(七寶) : [범]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인도(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의 네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함.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네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함.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유학(儒學) 오경(五經)의 하나인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편에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 건강),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 :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말하는데, 청나라 때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에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억겁(億劫) ; 무한이 길고 오랜 세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

*웬수 ; ‘원수(怨讐)’의 사투리.

*부귀공명(富貴功名) ;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웬수거리 ; 원수(怨讐)가 될 만한 재료. 웬수는 ‘원수(怨讐)’의 사투리. 위 법문에서는 돈, 지위, 명예, 권리 따위를 '원수거리'라고 말씀하셨다.

*의아심(疑訝心 의심할 의/의심할 아/마음 심) ;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

*최상승(最上乘)=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경책(經冊 불경 경/책 책) ; 부처님 말씀(經)의 책(冊).

*일자무식(一字無識) ;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 또는 그런 사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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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 (명사)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를 이르는 말. (부사)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때에.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순수무구(純粹無垢) ; 순수하여 몸과 마음이 때묻지 않고 깨끗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어지간하다 ; ①(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보통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한 상태이다. ②(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꽤 상당하다.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보리도(菩提道) ; 범어(梵語) bodhi 음역(音譯)인 보리(菩提)와 그 한역(漢譯)인 도(道)의 복합어. 보리와 같은 말이다.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비명(非命) ; 제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함.

*약허이약허이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현몽(現夢) ; ①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 꿈. ②꿈에 나타난 것을 이르는 말.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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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趙州)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무자(無字) 화두 ;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 전강선사 법어집]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무자(無字)화두 드는 법, 단제(單提) 전제(全提) 근제(勤提)http://emokko.tistory.com/364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근본 성품, 각성(覺性), 자성(自性).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〇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계(法界) : [범] dharmadhatu  dharma 곧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다 들어 말하고  dhatu는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란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것(萬有)을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법 성품(法性)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청혼(請魂) ; 설법할 때에,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를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같은 말)거량(擧揚).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몸·입·뜻(身口意)의 삼업(三業)을 갈무리는 것. ②수행하기 위하여 방 안에 들어앉는 일.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희사(喜捨 기쁠 희/버릴·베풀 사) ; ①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 : 깨끗하게 내놓는 것), 정시(淨施 : 깨끗하게 베푸는 것)라고도 함. ②기껍게 자기의 의견, 생각을 버리는 일.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는 일.

*끄터리 ; ‘끄트머리(맨 끝 부분)’의 사투리.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주요 내용]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다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할 그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그 한 생각 단속하는데 있다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무량겁으로 녹음되어 있는 그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의 한없는 많은 그 종자(種子) / 유루복(有漏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원수(怨讐)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법 / 마지막 숨질 때,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이뭣고?’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도인입니다 /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한 말씀으로 줄여서 말하면 일념단속(一念團束)하는 것,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사심 단속해서 생사 없는 이치를 내 몸에 체달(體達)할 때 영원한 생사윤회는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


세상 살아가는 속에 정신 차려 ‘이뭣고?’ 든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하면 누가 나를 위해서 닦아줍니까? / 할아버지와 구렁이가 된 손자의 복수심, 개의 은혜갚기 / 조주 무자(無字) 공안 / 법당에서는 항상 입선(入禪)하시도록 / 새로운 분을 정법(正法)으로 인도하는 공덕이 매우 크다.



[주요 문구]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병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빈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다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한 시간 동안에 걸쳐서 그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한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알 수 없는 ‘이뭣고?’한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 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잘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육도윤회를 하게 된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그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그 행동으로 인해서 또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해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생사(生死)가 꼭 칠팔십 년 살다가 마지막 죽을 때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때 생각,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생(生)이요, 한 생각 꺼지면 그것 사(死)입니다. 생멸심(生滅心)이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으로 혹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이뭣고?’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때 정신 하나 못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줄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개 배때기, 뱀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때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할 수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그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그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도 아니요, 귀여워하다가 무의식 중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그렇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한테 그 복수심을 가지고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오거든,

하물며 우리가 내가 나 잘살고, 나가 돈 벌고 나를 위해서 나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해롭게 했을 때에 돌아올 과보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개를 많이 기르시는 분들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밥도 잘 주고, 항시 그 개 듣는데 화두(話頭)도 일러주시고, ‘관세음보살’도 그 개 귀에다 대고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지 그 개가 잘 살다가 내생에는 몸을 바꿔서 참선(參禪)을 할 수 있도록 항시 축원(祝願)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개를 볼 때마다 항시 ‘이뭣고?’를 간절히 들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쨌든지 참선(參禪) 때문에 오셨고, 참선을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실라고 오신 것이지, 여기에 오신 마당에 무슨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에 들어오셨거나, 이 도량(道場)에 들어섰거나 또는 집에서 이 법회에 오시려고 하실 때부터 마음가짐이 조용한 청정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면서 오셔야 하고, 더군다나 이 법당에 딱 들어서셨다 하면은 딱! 방석을 갖다놓고 앉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열 사람, 스무 사람, 내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이 정법(正法)으로 인도해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성취할 수 있도록 인도한 그 공덕은 다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100/(1~25)2016. 1. 2. 12:40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016)—76 부처님오신 (76.05.06)(30)


(1/2) 약 21분.  (2/2) 약 6분.


(1/2)----------------


이천오백이십 주년 부처님 탄생하신 날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앉아 계셔서 지루하실 생각합니다마는, 잠깐 조용히 앉아 주십시오.


여태까지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부처님께서 무엇을 위해서, 무슨 목적으로 사바세계(娑婆世界) 출현하셨는가?’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부처님을 ()하는, 부처님의 진리를 믿고 나아가는 제자로서 어떻게 공부를 가야 하느냐?’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시간 여에 걸쳐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너무 말씀이 고준(高峻)해서 처음 오신 분은대관절 무슨 말씀인가?’하고, 아무리 귀를 종그리고 들어도 납득이 가신 점이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지 못할지언정, 설사 무슨 말씀인가 납득이 된다 할지라도 우리의 귀에 한번 스쳐가고, 우리의 생각에 한번 지내가기만 해도 인연으로 해서 우리는 결정코 생사해탈(生死解脫) 있는 그러한 인연작복(因緣作福) 하게 것입니다.


하물며 법문을 듣고과연 옳은 말씀이다. 나도 그러한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나도 생사해탈 해서,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대자유인(大自由人) 있겠구나!’하고 믿게 된다든지, 믿고 실천할 있게 된다면 그분이야말로 육도법계(六途法界)에서 가장 수승한 인연을 가지고 태어나신 분입니다.


오늘 초파일을 맞이해서 여러 신남신녀, 사부대중 여러분들께서는부처님이 과연 어디서 출현하셨으며, 어디서 출생하셔 가지고, 어떻게 해서 성현이 되셨는가?’ 알고 계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스승이시요, 선지식이시요, 우리의 선생님이신 어른이 어떠한 어른이라고 하는 것을 앎으로써 그분을 믿고 그분을 따라서, 그분의 말씀에 의지해서 공부할 있는 투철한 마음이 일어날 생각합니다.

다시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새기기 위해서 간단히 부처님의 약력(略歷)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삼천년 , 중인도 가비라성(迦毘羅城)이라고 하는 왕국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지금 나라로 말하면 네팔 나라입니다. 네팔 나라에 가비라성이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왕국의 임금님은 정반왕(淨飯王)이시고 왕비, 부처님의 어머니는 마야 부인(摩耶夫人)이십니다. 정반왕과 마야 부인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들이 없이, 아들을 낳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머지 드디어 아드님 분을 탄생하셨습니다.


그분은 기가 막히게 달덩어리와 같이 잘나시고, 그리고 영특하셨습니다.

모든 도인들, 선인들이 와서 관상을 보시고, ‘이분은 장차 커서 속세에 계셔서 임금 노릇을 하시게 되면은 천하를 무력을 사용하기 아니하고 덕화(德化)로써 천하를 통일할 있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되실 것이다.

만일에 속가에 계시지 아니하고 출가하셔서 도를 닦으시게 된다면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실 있는 성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높으신 거룩한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런 성인이 되실 것이다하고 전부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 내외분을 비롯해서 궁궐이나 백성들이 태자가 태어나신 것을 그렇게도 반가와 하고 경축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열두 살이 되시자, 아버님 부왕(父王) 따라서 농사짓는 축제가 있는데 나가셔서, 밭가는 것을 보시고 밭을 가는데 보습 끝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벌레들이 많이 깨져 죽고, 나와서 구물거리는 것을 보고 까막까치가 날아와서 그것을 쪼아먹는 것을 보고,


아하, 약육강식(弱肉強食)이라니! 과연 서로 목숨 있는 것끼리 서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세상도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범해서 빼앗고, 서로 죽이고 서로 죽임을 당하고, 불쌍하고 비참하구나!

어떻게 해야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서로 해롭게 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이러한 것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영원히 슬픔과 괴로움이 없는 그러한 인생은 없을까?’ 어린 나이에 영특한 그런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숲속에 혼자 들어가셔서 오랜 동안 침묵, 명상에 잠기신 그러한 일들이 종종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 어린 열두 나이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실 수가 있었겠는가?

말하기를, 부처님을 낳으시고서 이레 만에 부처님 어머니이신 마야 부인이 산후(産後) 병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자마자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이모를 계모로 맞으셔서 계모의 , 이모의 손에 의해서 부처님은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시자마자 이레 만에 어머니를 잃으신 그분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숙명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슬픔을 가지셨다고 우리는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범부(凡夫) 자기 사람의 슬픔을 자기 사람의 슬픔으로써 고민을 하다 말지마는, 성현(聖賢)들은 자기 사람의 슬픔을 확대해서 모든 중생들의 슬픔으로 아시고, 자기 사람의 슬픔을 발판으로 해서 모든 중생의 슬픔을 건지는 데까지 나아가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께서는 부왕(父王) 간곡한 명령에 의해서 '야수다라'라고 하는 이웃나라 공주를 맞이해서 아내를 삼으셨습니다. 그래가지고 '라후라'라고 하는 예쁜 아드님도 두셨습니다.


그러나 부왕의 명령에 의해서 마지못해서 결혼은 했지마는, 아내와 아들에 대해서 조금도 정을 붙여 가지고,

당신이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 인생의 고통을 벗어나서 영원히 자유로운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겠는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행복할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고민은 해소되지 아니한 , 하루하루를 지내시다가 급기야 동서남북 사문(四門) 구경하시게 되었습니다.


()에서 하루는 병든 사람을 구경을 했고, 다음날은 () 가서 늙은 노인을 보았고, () 가서는 죽은 송장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날에 가서는 아주 누데기는 입었지만 깨끗하고 청수(淸秀) 어떤 수행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과연 세상에 모든 사람은 낳으면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하는 사실을 확실히 거기서 느끼셨고, 나중에 출가해 가지고 열심히 도를 닦음으로써 생사해탈 있는,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한 () 증득할 있다고 하는 것을 마음속 깊이 결심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렇게도 어머니와 아버지 부왕께서 그렇게 붙들고 태자가 하루라도 근심스러운 그러한 안개가 얼굴로부터 가시기 위해서 삼시전(三時殿) 지어 가지고, 갖은 호강과 사치와 기쁨과 춤과 노래로서 달래고 위안을 했지마는 드디어 아내와 아들 잠들고 있는 틈을 타서 성문을 빠져나와 가지고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연세가 경전에 따라서는 열아홉 살이라고 데도 있고, 스물아홉 살이라고 되어진 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연세에 관해서는 경전에 따라서 차이가 있느니 만큼, 무엇이 옳다 그르다 우리 마음대로 경솔히 판단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가지 설이 있다고 하는 것만을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출가하셔 가지고열아홉 살에 출가하셨다고 하는 경전에는 12년간을 고행수도 하셨다고 되어 있고, 29살에 출가하셨다고 되어 있는 경전에는 6년간을 고행수도 했다고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도통(道通) 하신 연세는 서른 또는 서른다섯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통 하시고 뒤부터 오십 년간을 앉을자리 더울 없이 인도 천지를 동서남북으로 제자들을 거느리고 다니시면서 많은 국왕과 대신과 장자와 일반 서민, 천민에 이르기까지 계급을 인정을 하시지 아니하고 평등, 자유 속에 모든 중생을 한결같이, 당신의 외아들 라후라 존자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어루만지시고 제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50 동안 또는 49 동안 설하신 법문을 결집해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입니다. 팔만대장경이 지금 경상북도 합천 해인사에 한문으로 번역이 되어서 경판에다가 새겨서 지금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번역이 되어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어쨌든 방대한 팔만대장경 법문이 많지마는, 우리는 일평생을 걸려서도 법문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법문 속에서 가장 우리에게 적절하고, 우리가 금방 납득할 있고, 그대로 실천할 있도록, 우리가 이해할 있도록 말씀을 주시는 큰스님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을 설사 일평생 계획을 세워서 팔만대장경을 차례차례 읽는다 해도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사 뜻은 안다 하드라도 새긴 것만 다한다고 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사해탈 있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길은 우리보다 걸음 앞서 깨달으신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 아무리 , 경을 뒤적거리고 읽고 외우고 한다 해도 우리는 갈팡질팡 많은 시간을 헤맬 뿐입니다.


물론 부처님 경전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함으로서 우리의 업장이 소멸이 되고, 신심이 나고, 나아가서 닦을 있는 마음자세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인정은 하지마는,

우리의 목숨은 너무나도 짧고, 시시각각으로 우리는 사형 무대로뒤에서 쫓고, 앞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몽사(夢死) 모르고하루하루 죽음의 문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러한 무상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장 오늘부터서 라도 자리에서 당장 내가 마음을 깨달을 있는 가장 쉬웁고 간단한 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방법 가르켜 드리는 곳이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입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에다가 조실 스님께서 조그만한 법보선원, 용화사 선원을 이렇게 창설해 가지고 여러분에게 날이면 날마다, 새벽마다, 낮에 마다, 여러분을 위해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영원히 행복할 있는, 영원히 해탈할 있는 간단한 방법』을 목이 터지라고, 목이 쉬라고 외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셨습니다.

우리 금방 시간여에 들은 법문(法門) 바로 많은 법문 가운데 일부를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법보선원은 법보단(法寶壇)이라 가지고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원근 친척의 영혼을 모시는 영단(靈壇) 있습니다.


영단은 날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과거의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었을 것이고,

나아가서 소소영령(昭昭靈靈) 영혼이 법문에 의해서 발심을 가지고 반드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그렇지 않으면 극락세계(極樂世界), 그렇지 않으면 인도환생(人道還生)해서 머지않아서 우리와 같이 공부할 있는 가족이나 도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영혼들이 좋은 곳으로 태어나기 이전에는 반드시 우리 법보선원우리 사부대중에게 생사해탈 있는 도를 가르키는 도량, 참선도량을 옹호하는 옹호성중(擁護聖衆), 신장(神將)님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을 자리에 인도하시고, 여러분의 앞길에 모든 장애를 제거해 있는 그러한 성스러운 신장이 되어 계실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실 스님이 열반하신 뒤에도 계속 신남신녀(信男信女) 이렇게 날을 거듭하고, 달을 거듭할수록 원근에서 이렇게 많이 운집(雲集) 하시고 왕림을 하셔서, 이렇게 같이 법당에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공부할 있게 되어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선망부모만 여기에 모셔서 좋은 법문 듣고,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하고 마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도 영혼들 뒤지지 않게 참으로 영혼들을 기쁘게 드리는 방법은,

여러분 자신이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생사해탈 하는 길만이 선망부모를 위안해 드리는 길이고, 기쁘게 드리는 길이고, 나아가서는 부처님과 조실 스님의 법은(法恩)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초파일을 맞이해서, 여러분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제각기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리에 운집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공덕으로 반드시 무량겁래(無量劫來) 지어온 모든 크고 작고, 깊고 옅은 많은 죄업(罪業) 오늘을 기해서 봄눈 녹듯이 소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처음~2115)



(2/2)----------------


우리가 자리에 모인 것은 과거의 업장(業障) 소멸하고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모든 복과 지혜를 누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리에 참여하신 공덕으로 틀림없이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되어서 한량 없는 복을 누릴 것은 의심치 않지마는, 우리는 ()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복이라 하는 것은 언젠가는 다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물질적인 , 세속에서 말하는 명예, 권리, 재산 이러한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하는 것은 없어서도 안되지마는 영원한 것이 못되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에, 부처님과 조실스님과 역대 도인들이 말씀하시기는 생사해탈(生死解脫) 있는 무루복(無漏福) 닦아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이라 하는 것은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루복만을 치중을 하시고 바쁘다 핑계하고, 아들딸 시집 보내고 키운 것을 핑계대고, 가정생활에 핑계대고, 사회에 핑계대 가지고 무루복 닦는, 내가 마음을 닦는 공부를 사실상 너무나도 등한히 하고 계신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급한 것은 뒤로 미루고, 급하지 아니한 것은 집착해 가지고 그것만에 빠져서 앞길을 헤어날 모르는 그러한 어리석은 하루하루를 지내지 않는가? 각자 냉철히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기해서, 부처님이 삼계(三界) 모든 고해(苦海)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출현하신 탄생하신 부처님의 탄생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부처님이 남겨 놓으신 생사해탈법(生死解脫法) 의지해서내가 나를 닦는 참선법(參禪法)’ 철저히 닦아서 결정코 금생에 생사해탈 것을 같이 마음에 다짐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가지 광고해 드릴 말씀은, 앞으로 일주일 뒤면, 음력 4 15 결제날이 됩니다. 선방에서는 여름 한철, 겨울 한철, 차례에 걸쳐서 특별 수행기간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음력 4 15일부터서 음력 7 15일까지 , 그리고 겨울은 10 15일부터서 이듬해 정월 15일까지 겨울 달을, 이렇게 차례 특별 수행기간으로 정해서 절에 와서 참선하실 있는 분은 절에 와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고,

절에 나오시기가 어려운 분은 댁에서도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시되, 4 15일에는 백일기도 입재를 하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동안을 열심히 참선을 하면서 백일기도를 봉행하게 됩니다.


우리 사부대중 여러분은 마음으로는 참선 하고, 백일기도에 같이 동참을 하셔서 공부하고 기도가 합해서 나간다고 하면은 업장소멸되고, 생사해탈 있는 무루복과 유루복을 겸해서 닦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수행 방법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4 15일에도 이렇게 분도 빠지시지 마시고, 결제와 백일기도 입재에 동참하셔서 같이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3개월 동안 수행과 기도해 나가는데 각오를 튼튼히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앞으로 계속해서 법요식을 진행하겠습니다.(2116~2653)()



---------------(1/2)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 감인토(堪忍土), 인계(忍界)라고 한역.

*고준하다(高峻-- 높을 /높을·험할 ) ; 높고 험준하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인연작복(因緣作福) ; 좋은 인연을 짓는 .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약력(略歷 대충 추릴·줄일 /지낼 ) ; 개인이 거쳐 그간의 경력 따위를 간단하게 밝힌 기록.

*가비라성(迦毘羅城) ; 가비라(迦毘羅) 왕국.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마야 부인(摩耶夫人) ; māyā.  석가모니의 어머니인도 콜리야족(koliya선각왕(善覺王) 딸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슈도다나(Śuddhodana, 정반왕淨飯王) 결혼하였으나석가모니를 낳고 7 후에 돌아가셨다그래서 당시의 풍속으로 정반왕은 마야의 여동생 마하프라자파티(mahāprajāpatī) 재혼함.

*덕화(德化) ; 옳지 못한 사람을 어질고 선한 행동으로 바람직하게 변하게 .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 32(:신체의 특징)·7()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지배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보습 ; 쟁기, 가래 따위 농기구의 술바닥(쟁기 끝에 보습을 대는 넓적하고 삐죽한 부분) 끼워 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데에 쓰는, 넓적한 모양의 쇳조각.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청수하다(淸秀--) ; 얼굴이나 모습 따위가 깨끗하고 빼어나다.

*삼시전(三時殿) ; 석가모니 부처님이 실달 태자 시절에 그의 출가를 막으려고 아버지 정반왕이 계절(인도는 1년을 계절로 나눈다) 살기 좋게 지은 궁전을 말한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몽사(夢死) ; 헛되이 살다 죽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 사라져 없어짐.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옹호(擁護 안을 /보호할 )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킴.

*신장(神將) ; 불법(佛法)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법은(法恩) ; ①삼보(三寶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모임') 은혜. ②선지식의 가르침의 은혜.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2/2)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 () 생각().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주요 내용]


부처님의 약력(略歷) / 내가 마음 닦는 참선법(參禪法)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無漏福)



[주요 문구]


우리가 생사해탈 있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길은 우리보다 걸음 앞서 깨달으신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 아무리 , 경을 뒤적거리고 읽고 외우고 한다 해도 우리는 갈팡질팡 많은 시간을 헤맬 뿐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조그만한 법보선원, 용화사 선원을 이렇게 창설해 가지고 여러분에게 날이면 날마다, 새벽마다, 낮에 마다, 여러분을 위해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영원히 행복할 있는, 영원히 해탈할 있는 간단한 방법』을 목이 터지라고, 목이 쉬라고 외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생사해탈 하는 길만이 선망부모를 위안해 드리는 길이고, 기쁘게 드리는 길이고, 나아가서는 부처님과 조실 스님의 법은(法恩)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루복(無漏福)이라 하는 것은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100/(1~25)2015. 12. 21. 15:46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010)—76 입춘법회 법문(76.02.04)(60)


(1/3) 약 19분.  (2/3) 약 22분.  (3/3) 약 21분.


(1/3)----------------


녹음기 사정으로 조실 스님 법문을 계속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충 그전에 조실 스님께 법문 들은 것을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축융봉(祝融峰) 태전 선사(太顚禪師) 떠억 머물러 계시는데, 그때 민가에 소문이 나기를 도술을 부리고 그런 요승(妖僧) 축융봉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년이나 오지 않아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이런다.

그래 가지고 소문이 나니까 그때 원님이 말을 듣고유가(儒家)에서는 요승이라고 했지마는 그때 불가(佛家)에서는 도사라고 아주 모든 신도로부터서 신임을 받고 존경을 받고 명망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입장, 선비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도인(道人) 그렇게 계신 것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해 가지고무슨 트집을 잡어서라도 스님을, 태전 선사를 벌을 내려 가지고 없애서 불교가 흥왕하는 것을 방지를 해야겠다


이렇게 벼르고 있던 차에 마치 비가 이렇게 오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그것을 조건을 잡기 위해서 홍련(紅蓮)이라고 하는 기생을 시켜서 홍련이는 그때 당시 중국 천하에서 제일 미인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천하일색으로써 아직 한번도 정조(貞操) 뺏긴 일이 없이 고대로 정조를 지키면서 잘하고, 짓고, 노래 부르고, 추고 그런데다 천하의 일색이라 홍련이를 시켜 가지고,

백일 동안의 말미를 테니, 태전 선사한테 가서 태전 선사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기어이 파계(破戒) 시켜라.” 원님한테 그러한 특명을 받고서 비밀리 축융봉을 올라갔습니다.


올라갈 때에 처음에는 아주 태전 선사를 ()하는 신도로 가장을 가지고, 아주 가서 절을 자리를 하고, 입으실 , 잡술 , 향에다가 과일에다 갖은 정성 들인 음식, 기타 모든 물건을 마련을 가지고 가서 갖다 바치고 그야말로 생명이라도 바칠 같이 온갖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렇게 정성을 들여 가지고는 차츰차츰 스님 가까이 가지고법문을 주시라 이렇게 가지고는, 낮에 그러다가 나중에는 밤에도 방에 드나들고, 차츰차츰 익혀 가지고 , , 해서 백일이 거의 차갔습니다.

그래도 조금도 태전 선사는 한번 거들떠본 일이 없고, 처음이나 중간이나 백일이 차도록 조금도 다른 기색이 보이지를 .


그래서 홍련이라고 하는 기생은 만약에 백일 동안에 태전 선사를 파계를 시키지 못하면은 자기는 원님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일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온갖 아양을 떨고 마지막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아양을 떨고, 야수를 떨고, 꼬리를 치고 해도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새는 밤에는 울면서저를 살려 달라 하소연을 했습니다.


대관절 그대가 신심으로써 불법을 배울라고 왔다고 놓고 무슨 속에 그러한 한이 있어서 살려 달라고 그러느냐?”

다름이 아니라 저는 기생으로서 원님의 특별 비밀 명령을 받고서 스님을 파계 시킬려고 왔습니다. 만약에 오늘 스님을 파계를 시키지 못하면 저는 길로 가서 죽게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좋다


그런데 홍련이의 팔에는 앵혈(鶯血)이라고만약에 살에다가 앵혈이라고 하는 앵무새의 피를 묻혀 가지고 있으면은 정조를 뺏기면은 피가 변해 버립니다. 정조를 뺏기지 아니하면 피가 빨간 피빛깔이 변하지 않고,

그래서 앵혈을 묻혀 가지고 것을 보이면서이것을 보십시오. 제가 이대로 가면은 핏빛이 변하지 아니함으로 해서 제가 아무리 거짓말로 스님을 파계시켰다고 해도 이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사정을 하니까, 태전 선사가그러면 좋다. 내가 () 써줄 테니, 이것을 갖다가 원님한테 보이면은 생명은 것이다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祝融峰)’  동안을 축융봉을 내려가지 아니했는데,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이라. 관색관공즉색공보통 새기기를색을 보고 공을 ()하니 () ()했더라이렇게 새기지마는, ‘() 보는 () ()했으니 () ()했다이렇게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년을 축융봉을 내리지 아니하니, () 보는 () ()했으므로 () ()했더라.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 어찌 조계(曹溪)—육조(六祖) 스님이 조계산에 계셨기 때문에 육조 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모든 도인들은 조계 후손입니다.

그래서 어찌 육조 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조계(曹溪) 한방울 물이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이냐. 어찌 홍련이의 이파리 속에 떨어질까 보냐.


다시 말하자면은 육조 스님의, 달마 스님 이래로 내려오는 조계의 법통을 가진 나의 한방울 물이 홍련이 같은 기생의 몸에 어찌 떨어질 수가 있겠느냐. 어찌 내가 너한테 파계를 수가 있겠느냐 그런 뜻이지요.

그러한 글을 써서 홍련이의 옷에다가 그것을 죽죽죽죽 가지고, 그것을 네가 갖다가 바쳐라.


그래서 홍련이는 태전 선사를 파계 시킬 그런 목적으로 왔었지마는 백일 동안을 법문을 들으면서 갖은 아양을 떨었지마는 마침내 태전 선사를 극복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태전 선사의 덕행과 법력과 도력에 감화를 입어서 정말 안팎이 고대로 진실한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백배사죄(百拜謝罪) 하고 태전 선사가 적어주신 글을 갖다가 원님한테 갖다 바쳤습니다.


원님이 글을 보고는 그길로 태전 선사한테 가지고 사죄를 하고, 태전 선사의 제자가 되어서 철저히 ()하고 지도하에 공부를 가지고 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분명히 전해 내려오고 전등록에 적혀 내려오는 사실입니다.

조실 스님이 법문을 하셨으면은 실감있게 여러분에게 말씀하셨을 텐데, 제가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입춘을 기해서 마침 정월 신수기도 도중이지마는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를 믿는 분이나 불교를 믿는 분이나, 입춘을 기해서 입춘 불공(佛供) 함으로써,

모든 관재구설(官災口舌)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재앙을 전부 물리치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사대(四大) 강건하고 육근(六根) 청정(清淨)해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입춘 불공을 하는 준례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방곡곡의 모든 , 작은 절에서는 입춘 마지(摩旨) 가지고 아주 새벽부터서 시간을 맞춰서 모다 불공을 하고 그래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절에서는 새벽에 들었거나 또는 저녁에 들었거나 항시 부처님 마지 올리는 사시(巳時) 기해서 이렇게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으로써 모든 법요식을 거행해 내려오고 있느니 만큼 오늘 사시를 기해서 이렇게 입춘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태전 선사에 대한 법문 말씀이불법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기생을 보내 가지고, 기생으로 하여금 갖은 아양을 떨게 가지고, 큰스님을 파계를 시킴으로써 불법을 아주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서 아주 종자를 없앨 양으로 했던 것이,

태전 선사의 거룩한 덕행과 법력으로써 오히려 기생과 원님을 감화를 시켜 가지고, 지방에 불법을 융숭하게 그러한 역사를 들어서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서화담, 황진이, 박연폭포해서 이걸개성삼절(開城三絶)’이라 가지고 황진이 이야기가 나오면은황진이가 서화담을 그렇게 파계를 시킬랴고 갔다가 서화담은 종래에 극복을 못하고, 서화담은 끝끝내 황진이한테 넘어가지 않았는데,

불교의 지족 선사한테 가니까 지족 선사가 단박 황진이한테 넘어갔다고 하는 그러한 소설도 내려오고, 영화로도 모다 그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져 갖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고려 너무나도 불법을 국교로 모시고 임금으로부터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그렇게 돈독히 신하고,

왕자, 임금님의 아들이나 또는 고관대작, 대신들의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서민들도 가문이 좋고, 형제를 낳으면 형제 중에 제일 잘난 아들로 골라서 스님이 되도록 부처님께 바치고, 이렇게 해서 나라가 ! 속속들이 불교를 그렇게 깊이 신해 내려오다가,


고려 운이 가고 이조가 들어서게 되자, 이조에 있어서는 유교를 국교로 가지고 유교를 숭상하는 그러한 정책을 쓰게 되니 만큼,

그러기 위해서는 종래 모든 백성들이 불교를 그렇게 신해 오던 터이라, 고대로 두고 유교를 암만 포교를 하려고 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불교를 없이하고, 불교를 아주 좋지 못한 걸로 일반 백성들한테 이해를 시키고 납득을 시켜 가지고,


그래 해야만 불교에 대해서는 차츰차츰 신심이 떨어져야 유교 정책을 쓰기에 편리하게 되기 때문에 온갖 못된 이야기를 만들고, 조그만한 일도 굉장히 크게 잘못한 것처럼 모다 악선전(惡宣傳) 하고 퍼뜨려 가지고, 그렇게 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인식을 아주 좋지 않게 그렇게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리해서 신돈(辛旽)이의 역사라든지, 그것도 일양으로 신돈이란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내용은 그분의 공로도 굉장히 컸었지마는 말경(末境) 가서 조그만한 잘못도 크게 잘못한 것처럼 그렇게 모다 선전을 해서 전해 내려오고,


지족 선사에 대한 이야기도없는 얘기 그렇게유교 선비인 서화담은 그렇게 훌륭한 분으로 내세우고, 불교의 지족 선사는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선전하기 위해서 황진이를 떠억 내세워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가지고 소설도 내놓고, 모다 그래 가지고는 방방곡곡에 이야기를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아주 실화처럼 되어 가지고 영화에까지 모다 나오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없이 모다 그런 얘기들을 알고 계십니다마는,

참으로 불교의 도인들이 얼마만큼 그러한 위경(危境) 처해 있을 , 그런 유혹에 처했을 그런 것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어찌 마을의 선비에 까닭이 있겠습니까?

, 그런 지족 선사니 서화담이니 그런 말씀이 어디서 나오더라도 이것은 정책상 유교 선비들이 불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퍼뜨렸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께서 아시고, 그렇게 대응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1818)



(2/3)----------------


오늘 입춘을 기해서 법회를 거행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는 비단 입춘뿐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일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로 알고 하루하루를 지내가야 압니다.


입춘 하루 불공을 올렸다고 해서 무량겁(無量劫)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자기의 죄가 소멸이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냐?

우리는 생각 일어났다 꺼질 벌써 육도윤회(六途輪廻) 있는 종자(種子) 심고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종자를 우리 마음 속에 심으면서 동시에 자기 속에 그동안에 심어 놓았던 싹은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싹이 나오면서 동시에 하나의 종자가 우리 마음 속에 심어지게 됩니다.

싹이 한쪽으로 트면서 동시에 종자는 거두면서, 종자 거두면서 싹은 나오고 가지고,


생각, 일념지간(一念之間) 구백생멸(九百生滅) 있습니다마는, 일념 속에 구백생멸 생멸이라 하는 것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전깃불보다도 빠릅니다.

구백생멸(九百生滅) 속에 얼마나 많은 종자가 심어지며, 종자 심으면서 얼마나 많은 싹이 나오느냐 그말이여. 그것이 전부 육도윤회할 있는 죄업(罪業)이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은 한번 입춘 마지에 불공을 했다고 해서계속 종자를 심고 있고, 종자에서는 계속 죄의 싹이 나오고 있는데그것으로써 무량겁 죄가 녹아졌다고 안심할 수가 없다 말씀이여.


그러기 때문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걸어갈 때나 또는 가만히 있을 때나, 또는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하고 있을 때나, 안하고 묵묵히 있을 때나 또는 활동을 하고 있을 때나 또는 조용한 상태로 있을 때나어떠한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우리는 우리의 죄업을 소멸할 있는 그러한 방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절에 와서 부처님 앞에 불공을 드리고 그때 뿐만이 아니라 어느 ,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의 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우리의 팔식(八識) 보관되어 있는 씨가 죄의 싹으로 트지 않고 바로 거기에 깨달음의 과실(果實), 보리과(菩提果) 여물도록 하는 그러한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방법이 무엇이냐?

없이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그런 경전을 읽는 그러한 길도 있겠고, 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이나 이러한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그런 염불 방법도 있겠고,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밖의 어떠한 준제진언이나, 그런 능엄주나 그런 주문을 외우는 방법도 있겠고,


또는 절에낙산 홍련암이나, 강화 보문사나, 저기 남해 보리암 같은 그런 성지(聖地) 가서 기도하는 그러한 방법도 있겠고, 여러 가지 그런 방법이 있겠습니다마는 우리는 1년 내 그런 성지에 가서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년 내 손에서 경을 떼지 않고 경만 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은 잠깐만 쉬어도 쉬는 시간에 죄가 퍼일어나고, 퍼일어나면서 종자는 계속 우리의 마음에 저장이 되고, 저장되었던 종자에서는 계속 싹이 나오고,

보고 듣고 느끼는 쪽쪽 그것이 벌써 마음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에 비가 내리는 것이요, 거기에 태양빛이 비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에 거름 주고, 주고, 온도를 가해 주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저장되어 있던 종자로부터서는 계속해서 싹이 나옵니다.

싹이 나오면서 거기에서는 죄업의 열매가 영글어져 가지고 그것은 마음에 저장이 되어서, 계속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쟁여 놓은, 저장된 종자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증험을 보시면 당장 이해가 갑니다.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도 하고 있으려고 마음을 잡숴 보시란 말이에요.

시간을 보고 10분을 작정을 놓고내가 10 동안에 아무 생각도 하고 한번 있어 봐야겠다 가지고 한번 있어 보란 말이여. 아무 생각도 과연 일어나는가?


아마 10 동안에오히려 그러한 것을 마음을 먹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은 별로 아무 생각도 나겠지마는, 일부러 10분이나 30 시간을 정해 놓고 시간만큼은 내가 아무 생각도 하리라마음을 먹으면 뚱딴지 같은 생각이 일어날 거예요.


그것이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량겁으로 지어 내려오면서 저장해 놓은 죄업의 종자가 가득 쌓아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물질로 종자 같으면은 창고가 가득차서 이상 들어갈 데가 없어서라도 저장을 못하겠지마는 업의 종자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가득차고도 남을 만한 종자를 갖다 쟁인다 해도 가득차는 법이 없습니다.


다시 바꿔서 얘기하면은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육도윤회하는 많은 중생들이 죄를 퍼지어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서 () 받고 있는데,

만약에 지옥에 이러한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진 중생이 몸뚱이로 지옥에 가게 된다면 지옥은 벌써 만원(滿員) 되어 가지고 들어갈 데가 없어서요새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은 지옥이 만원이 되었기 때문에 들어갈 데가 없어서, 그냥 지어도 잡아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는 것은 육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래야 없고, 귀로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고, 만져 볼래야 만져 수도 없는 ()으로 몸뚱이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중생이 들어가도 지옥이 만원되는 법은 없습니다.

말이 우리의 마음속에 죄업의 종자! 종자가 가득찬다 해도 가득차서 들어갈 없을 까닭은 없다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죄업을 어떻게 해야 소멸을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해야 앞으로 죄의 종자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들어간 종자는 싹이 나지 않고 거기서 바로 보리(菩提) 종자가 되게 만드느냐?

방법은 아까 여러 가지 방법을 말씀드린 가운데에 제일 누구라도 있고, 어디서라도 있고, 아파서 죽은 찰나에서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간해서 경은 정신 없으면 읽을 수가 없고, 나이가 많아서 늙어지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읽을 수가 없고, 기운이 없으면 읽을 수가 없고, 바쁘면 읽을 수가 없고, 반드시 경을 읽으려면 그만한 장소와 그만한 시간과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경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을 잠시라도 읽으면 계속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짬을 타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무서운 죄의 종자가 저장이 되고, 저장된 종자에서는 계속 죄의 가지가 뻗어 나오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가지가 뻗어 나왔다 하면은 거기서 죄의 열매가 열려서 마음에 저장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항시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동안을 그렇게 간절히, 그렇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해 주시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방법은 무량겁으로 내려오는 열매를 녹여서 깨달음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이고,

거기 열매로 부터서 가지가 뻗어 나와 가지고 세계에 가득차도록 가지가 번지고 번져서 한량없는 죄의 종자가 주렁주렁 열려 가지고 있는 그놈마저도 한번 감았다 사이에 그놈을 소멸을 해서, 그놈을 돌려 가지고 깨달음이 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방법을 이렇게 간절히, 자세히 일러 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거나 이것을 실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사람은 세세생생에 후회막급일 것이다.

어떤 도인은 이렇게 말해 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녹음 끊김)....고마운 말씀인가! 우리가 신심으로써 말씀을 받아들인다면은 그렇게 아프게 받아들일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스님은내가 만약에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한다면은 나는 세세생생에 너희들을 대신을 해서 무간지옥(無間地獄) 가겠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거나 행하지 아니 한다면 너희들은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것이고,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 추호라도 거짓말이라면은 내가 무간지옥에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호랑이 밥이 된다 말을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들을 일이 아닙니다. 호랑이 밥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을 믿지 않고 행하지 아니한다면은 곳이 어디냐? 말씀이어요.

호랑이 밥은 그것은 육체만 물려 것이니까 금방 태어나면 그만입니다. 그까짓 놈의 , 호랑이가 물어 가지 않아도 살다가 가기 마련이지, 누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고,


말을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무량겁을 두고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는 부인(否認)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죄업 퍼지으면은 곳이 무간지옥 밖에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말이 거짓말도 아니고, 공연히 협박하고 무슨 위협을 주는 말도 아니에요, 사실대로 말씀하신 것이지!



바빠서 못한다’  ‘시간이 없어 못한다이런 말씀은 발심(發心) 못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여. 바쁠수록에 것은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바쁠수록에 있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바쁘고 시간이 없으면은 () 읽는다 해도 그것은 납득이 가는 얘기고, 다른 어디의 성지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바쁘면 가는 것이고, 그것도 납득이 가는 얘기입니다.

시간이 없거나 바쁘거나 또는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으면은 다른 것은 '관세음보살'이나 '옴마니반메훔'이나 '아미타불'이나 그런 것은 못한다고 해도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바쁠 때일수록에 밖에는 없고, 해야만 하고, 가능한 것은 활구참선입니다.


가령 누가 나한테 억울한 소리를 가지고, 간장이 활딱 뒤집어져 가지고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고, 욕이라도 퍼붓고 무엇이라도 때려 부셔야 하고, 쥐어뜯고, 물어뜯어야만 만큼 그렇게 격분을 하고, 성이 났다 하더라도,

성나는 놈이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그렇게 한번 생각할 알아야 ! 부처님 제자라고 자부할 있고, 활구참선을 한다고 자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고, 활구참선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억지로 참어지지도 않고,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은 그것은 당장 혈압이 오르거나, 위장병이 생기거나, 눈이 껌껌해지거나, 무슨 육체적인 병으로 돌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억지로 속상한 것을 참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육체적인 병으로 돌아서고만 말아요.


그러기 때문에 성이 나면은 욕도 하고, 때려 부수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하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냐 하면 그렇게 하고 나면은 조금 후련하기는 하지마는 뒷수습이 대단히 어렵게 되지 않습니까? 때려 부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창피하기가 말로 수가 없다 말씀이에요.

억지로 참으면 병이 나고, 그놈을 부회풀이대로 하면은 잠깐은 시원하지마는 돌아서서 아랫사람 보기도 되었고, 웃사람 보기도 되었고,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성이 되게 때에 심호흡을 하시란 말이에요. ~ 들어마셔 가지고 ~.


아마 속이 되게 상하고 가슴이 답답하면 참선법이 무엇인 줄도 몰라도, ~ 후유~, ~ 후유~ 자동으로 호흡이 나올 것이다 말이에요.

그것은 배우지 않아도 ~ 하고 깊은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함으로써 터질라고 하는그렇지 않으면 중풍이 터지거나, 고혈압이 터지거나 것도 그렇게 호흡을 함으로써 그것이 방지가 되는 겁니다.


무의식 중에 배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한 것을 감안해서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하고 개발을 것이 조실 스님께서 항시 참선할 때에 심호흡을 하라고 가르켜 주신 방법입니다.


방법이 인도 오천 전부터서 내려오고, 중국에 수천 전부터서 내려오는 장생불사(長生不死)— 몸뚱이의 모든 병을 소멸을 하고, 마음속의 온갖 복잡한 번뇌 망상을 깨끗이 쉬게 안정을 시켜서 몸과 마음을 맑게 해서,

그래 가지고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오래 살려고 하는 그러한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연구 개발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참선하는 데에도 방법은 필요합니다


첫째, 참선을 할라면은 몸이 건강해야 하고 정신이 건전해야건강한 ,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精進) 되어 때에 비로소 공부가 중간에 탈선이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증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고대로 우리의 마음을 깨달을 있을 때까지 시간을 단축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가지고, 그리고 호흡은 깊이 그리고 조용히 내뿜도록.

이렇게 하는데 처음에는 호흡을 할려고 하면은 (단전)에까지 기운이 내려가지를 않고 오목가슴까지 밖에는 호흡이 들어가지 가지고, 답답하고 어깨쭉지가 눌리면서 안된다 말씀이에요, 잘되는 분도 있지마는.


그래서 이것을 하면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애를 먹고 그러한 분도 더러 있는데, 그것은 아직 숙달이 안되어서 그런 것이니까,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가운데에는 아시는 분도 있지마는 여기 나오신지 얼마 되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까,

아시는 분은 그대로 들으시고, 모르시는 분은 귀담아서 집에 가셔서 당장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어서 10 내지 30분씩 이렇게 해서 열심히 열심히 해보시라 말이여.


(심호흡을) 하시면은 소화 안되는 분은 소화도 잘되고, 신경질을 내고 그러한 성미를 가진 분은 그런 신경질을 내고서 아주 마음 편히 있어서 아랫사람한테는 존경을 받고, 웃어른한테는 귀여움을 받고,

남편하고도 사소한 일에 모다 서로 애들 보는 데에서 주거니 받거니 싸움한 것처럼 그래 가지고 집안을 시끄럽게 하고, 위신 떨어지고 그러한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1819~3935)



(3/3)----------------


그리해서 이러한 방법을 열심히아주 방법은 간단하고 어디서나 누구라도 있는 그런 방법이기 때문에 문제는 열심히만 하면 되요.

아하! 그런 좋은 방법이 있구나. 그럼 나도 해야겠다이리 결심을 하고 열심히 하면은 처음에는 안되는 같아도 차츰차츰 숙달이 되어서 잘될 때가 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되어서 자기 가볍고 건강해지고 마음 편해지고, 집안이 화목해지고 그렇게 된다면은 얼마나 ! 불교를 믿게 되어서, 활구참선을 배움으로부터서 정말 얼마나 일신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보람 있고 행복해질 수가 있느냐 말씀이에요.


그것이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말이지마는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만큼 효과가 있어서 보람을 느낄 것이고,

듣고시간이 없다’ ‘바쁘다’ ‘나중에 나이 먹거든 천천히 하지’ ‘아들딸 학교 보내 놓고, 장가 들여 놓고 그때 하리이러다가 보면은 결국은 종내(終乃) 이러한 좋은 약을 받아 가지고도 먹지 않고 서랍 속에다 넣어 놓고 계속 병을 앓으며 고생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칠십 세까지 살지, 오십 세까지 살지, 팔십 세까지 살지, 그것은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자리에서부터서 하는 사람이라야 앞으로 다가올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대비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뒤로 미루다가 금방 우리 앞에 '섣달 그믐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때에아이고! 내가 그때 용화사에서 그때부터 내가 공부를 했으면 내가 이렇게 되었을 !’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 가지고아이고! 내가 그때 그때 열심히 했으면 염라대왕이 나한테 이렇게 무섭게 텐데그때 그래야 그것은 소용 없습니다.



호흡이 안되고, 여기가 막혀 가지고 있을 때에는 누워서 처음에 연습을 보세요.

편안하게 누워서 배꼽 밑에 아랫배에다가 두툼한 권을 얹어 놓고, 숨을 떠억 들어마셔요.

들어마셔 가지고 처음에 가슴에 놈을 다시 쑤욱 아랫배까지 들어마셔서 들어밀면은 아랫배가 불룩하니 이렇게 올라간단 말이에요.

올라가면은 위에 올려놓은 책도 3cm, 가량이 쑤욱 이렇게 올라가게 되요.


더이상 올라가지 못할 , 조용하니 숨을 내쉬면은 아랫배가 밑으로 이렇게 내려가며 책도 따라서 내려간다 말이에요. 책이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까지 호흡을 내뱉은 다음에, 스르르~ 하니 호흡을 들어마셔.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불룩하니 들이밀으라 말이에요. 밀면은 책이 3cm 가량 올라가요. 올라가 가지고 한참 있다가 조용하니 숨을 내쉬면은 책이 차츰차츰 밑으로 내려가서 등어리 가서 붙게 .


들어마실 때는 비교적 스르르~ 하니 쉽게 들어마시고, 내뿜을 때는 아주 아껴서 조용하게 내뿜도록.

들어마실 때는 3, 4 걸려서 들어마시고 내뿜을 때는 10여초 걸려서 내뿜도록 이렇게 해서 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것이 바로 숨을 들어마셨다 내뿜었다 것과 마찬가지 얘기인데.


눈을 가만히 감고서 책이 한번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하나

한번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책이 올라갔다가 책이 조용하니 밑으로 내려오면

들어마셨다가 내뿜으면해서, ''까지 세어 보시란 말이여.


열까지 세어 갖고는 다음에 열하나로 가지 말고, 다음에 아홉, 여덟, 일곱, 여섯...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하나까지 내려왔으면 다시 하나, , ... 해서 열까지 올라갔다가 아홉, 여덟, 일곱...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해서, 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올라갔다 내려오고, 번을 해도 계속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중간에내가 여섯, 다섯까지 했던가? 여섯까지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잊어버리게 됩니다. 때에는 무조건에이! 그냥 일곱인가 보다 가지고 일곱, 여덟 하지 말고, 다시 쏴악 씻어 버리고 하나에서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하나, , , 하다가 생각이 금방 들어오거든. 몇까지 했던고? 모르면 다시 하나서부터서 다시 해서,

무난히 번이고, 번이고, 번이고, 다섯 번이고, 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무난히 되면은 다음에는 하나에서부터 스물까지 올라갔다가 열아홉, 열여덟...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스물까지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번을 해도 아주 실수가 없이 잘되면은 다음에는 서른까지 하고, 다음에는 사십, 오십...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아흔여섯...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도록.


번도 실수 없이 조르르 하니 올라갔다가 하나까지 내려오게 사람은, 사람은 그렇게 하는 동안에 어지간한 병은 나아 갖고 있고,

그이는 그때 화두를 떠억 들고 한번 해보면은그전에는 그렇게 번뇌와 망상이 들끓던 사람이 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을 수료를 해서 졸업을 다음에 하면은기가 맥히게 공부가 잘된다 말이예요.


그렇게 사람은 공부하다가 무슨 상기병(上氣病) 생기고 공부하다가 무슨 병이 생기거나 위장병이 생기거나 그러한 법이 없습니다. 방법은 참선을 잘하고, 몸과 정신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만드는 데에 아주 요긴한 방법입니다.


제가 삼십 년을 두고 증험을 보니까 이상 요긴한 방법이 없다 말씀이에요.


처음부터 화두를 일러 주고 호흡에 대한 기초적인 것을 자세히 일러 주지 않고, 화두만 일러 주고 보니까, 상기병이 일어난다는 , 어쨌다는 , 아주 말이 많고 중간에 제대로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그런데 방법을 먼저 일러 주어서 훈련시킨 다음에화두는 아직 일러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법만 열심히 이상이 되니까 벌써 사람이 성격이 개조가 되고, 벌써 갖는 것이 의젓하고, 어디다 내놓더라도 훤출한 장부의 기상이 보인다 그말이여.


부인들도 방법을 이상 지극히 사람을 보니까 말이 많고, 잠시도 입을 모르고 지껄이던 사람이 말이 없어져 버리게 되고,

말말이 신경질을 부리고 험담을 많이 하던 사람도 이것을 하면서 부터서는 차츰차츰 험담하는 법도 없어지고, 시시비비에 들지도 않고벌써 셋만 모이면 사람하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싸움도 하게 되고, 조용하고 차분해진 것이 완전히 성격이 개조가 되더라 말씀이에요.


그런 다음에 화두를 떠억 일러 주니까 기가 맥히게 정진을 잘하더라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이러한 방법을 알아서 호흡법과 화두를 겸해서 잘하시는 분은 계속 그렇게 하시고, 아직 화두 공부에 들어가시지 아니한 , 시작한 지가 얼마 되어서 암만 해도 자리가 잡히지 않고 안되시는 분은 호흡법부터 관심을 가지시고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호흡이 잘된 다음에 화두(話頭) 드시되, 절대로 화두는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마음 단속하는 가서 인제 화두가 필요한 것인데,


화두를 들려면은 첫째,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둘째, 분심(憤心) 있어야 하고, 셋째에 가서는 의심(疑心) 있어야 합니다.


신심(信心)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절에다가 많이 가져오고 부처님 앞에 많이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무리 내가 여자고, 아무리 내가 말세에 태어났고, 아무리 내가 몸이 병이 있고 약하다 하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옳게만 공부를 하면은 나도 틀림없이 도업(道業) 성취할 있다 믿는 , 그것이 대정신(大正信)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바른 믿음!

부처님 앞에 절을 많이 하고, 불공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가지고 오시고, 그것도 좋은 일이죠. 그것도 공덕이 있고 대단히 좋은 일이고, 이호이 신도라고 하면은 스님네한테 대중공양도 형편 따라서 올리고, 부처님께도 불공을 올리고, 기도도 하시고, 절도 많이 하셔야죠.

당연히 그것도 그것은 그것대로 공덕이 대단히 말로 없이 것이지마는내가 나를 옳게 닦아서 나도 성불할 있다 믿는 믿음이야말로 온갖 믿음 중에서는 최고 가는 믿음입니다.


나도 하면 된다 믿고반드시 있다 믿고서 해야 되는 것이지, ‘ 여자니까, 말세니까, 근기가 약하니까, 나는 바쁘니까, 이리저리 해서 그저 인연이나 맺지이런 생각으로 가지고 무슨 효과가 까닭이 있습니까? ‘ 나도 있다고 믿는 이것이 대신심이여.


둘째에 가서 대분심(大憤心) 있어야 . 아무리 신심이 있어도 분심이 없으면 됩니다.

분심(憤心) 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일을,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 마쳐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건만, 무엇 때문에 나는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고생을 받고, 해탈을 못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해서 아주 분심이 나야 합니다. 몸을 부르르 떨고 입을 악물고 하는 이러한 분심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분심이 나야 용기가 솟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분심이 없고 용기가 없이 늘어져 빠져 가지고 게을러서 하다가 말다가, 남이 하면 하는 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말다가, 이래 가지고는 문제는 해결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솥에 어떤 질기고 딱딱한 것을 고을 때에 불을 화력(火力) 높여서 계속해서 때야지, 지푸라기 하나 때다가 말다가, 때다가 말다가지푸라기 같은 하나 때다 말다 계속 때되 지푸라기 하나씩 하나씩 가지고 무슨 속에 뼉따구 사각 같은 것이 무를 이유가 있겠습니까?


공부도 계속 화력을 돋구면서화력을 돋구어도 솥단지가 갈라지도록 그렇게 무섭게 불을 때면 됩니다, 공부도. 적당하게 때야지.

때되 최선을 다해서 가장 필요한 열량만큼은 계속 그것이 지속이 되어야 속의 것이 물씬하니 물러서 약이 고아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공부도 조금씩 하다 말다 형식적으로 그래 갖고는 삼십 , 년을 해도 마냥 떠먹은 자리입니다. 숟갈 떠먹으나 마나 마냥 그대로 있지요? 어쨌든지 분심, 용맹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하고.


셋째에 가서 대의심(大疑心).

나도 하면 될까 말까?’ 그것을 의심하는 아니라, ‘어째서 ()라고 했는고?’ ‘이것이 무엇인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기에게 주어진 이론으로써는 수도 없고 풀려고 해서도 되는, 없는 공안(公案) 대한 같은 의심(疑心)!


다른 문제에 관한 의심은 이리저리 따져도 봐야 하고, 책도 떠들어 보고 사전도 펼쳐 보고, 모두 여러 사람한테 물어서도 배우고 모두 그렇지마는,

이것은 책을 떠들어 갖고도 소용이 없고, 어떤 경전을 보아 가지고도 소용이 없고, 이리저리 자기가 동안에 보고 듣고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연구하고 따져 가지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만 연장을 시키고, 오히려 공부 길만 나쁜 길로 빠질 뿐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있으면 빨리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바르게 깨달으려면은 무조건(無條件),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더듬어 들어가지 것이며, 따져 들어가지 것이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지해(知解) 사리상량(邪理商量)으로 알려고 하지 것입니다.


다못 거두절미하고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갈수록 수가 없고, 갈수록 답답하고 맥힌 , 그것이 공부가 가장 잘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5, 년을 해도 아무것도 알아진 것이 없고, 밤에 눈을 감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는 것도 없고—"뭣한 이는 밤에 떠억 눈을 감고 앉았으면 부처님이 나와서 이야기도 하고, 훤하니 무엇이 보이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암만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되니, 공부가 잘된 것입니까, 공부가 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와서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갈수록 수가 없고, 맥히는 그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이고, 그렇게 나가야, 갈수록 수가 없이 맥혀야 그분은 깨달을 있는 분입니다.


솔솔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어서 재미를 거기다 붙여 가지고 무엇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이런 사람은그건 , 도저히 그런 공부는 차라리 공부 것만 못합니다. 그냥 아들딸 잘되라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훨씬 낫습니다, 그리 아시고요


없는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뭣고?’ 하시는 분은! 하는 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성날 때도이뭣고?’ 슬플 때도이뭣고?’ 집안에 근심 걱정이 있어도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이뭣고?’ 하되 그때 호흡은 계속해서 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하니 나오고, 숨을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고,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없는 화두를 거기다가 놓고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시라 말씀이에요.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가지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가운데 없는 화두가 항시 성성(惺惺)하게 드러나도록.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없는 화두가 떠억 우리의 앞에 항시 그놈이 앞서도록, 이렇게 참선을 생활화 때에 모든 생활은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냐? 화두를 놓쳐 버리고 온갖 번뇌 망상하고 있을 때에는 마구니들 하고 같이 어울려서 마구니 판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 되고,

어떠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화두를 추켜들고 화두로써 모두 생활이 되어갈 때에는 바로 자리는 불보살과 같이 생활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소원대로 이루어질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 계시는 데에 무슨 마구니가 거기에 어리댈 까닭이 있습니까? 극락세계나 또는 천당이나 지옥이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아니라, 우리 살아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대로 지옥과 천당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화두 놓쳐 버리고 그래 가지고 감정에 사로잡혀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휩쓸려 넘어갈 때에는 바로 마구니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분이 나고 성이 나고, 속이 활딱 뒤집어지더라도 그때 !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떠억 들어 보시란 말이여. 삽시간에 불같이 일어나던 생각이 스르르 꺼지면서 나의 본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만큼, 금방 1 전의 지옥이 천당으로 변하는 것이요, 극락으로 변하는 도리가 바로 활구참선법입니다


오늘 입춘을 기해서 무량겁.... (3936~6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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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승(妖僧) : 정도(正道)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승려.

*유가(儒家) : 공자의 학설과 학풍 따위를 신봉하고 연구하는 학자나 학파.

*파계(破戒) ; () 받은 사람이 계율을 어김.

*야수 ; ‘여우 사투리.

*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官災)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口舌) 아울러 이르는 .

*사백사병(四百四病) ; 인체에 일어나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 부조화로 요소에 대해서 101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 ()에서 일어나는 열병(熱病) 202가지, () ()에서 일어나는 냉병(冷病) 202가지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경전에 그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오전 9시에서 11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마지 올린다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摩旨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 오전 9 반부터 10 반까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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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구백생멸(九百生滅)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2 관공품觀空品) '九十剎那爲一念 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생각이 되고,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 () 생각().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호랑이 ; [최상승론(最上乘論)] (5 홍인대사 弘忍大師) 나오는 구절.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最上乘論) 의지해 수행하면 성불하게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최상승론(最上乘論) ; 1. 5 홍인대사(弘忍大師)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 확인하여 지키는 수심(守心)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장생불사(長生不死 / /아니 /죽을 ) ;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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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내(終乃) ; 끝까지 내내.

*섣달 그믐날 ;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 납월(臘月) 음력 섣달, 음력으로 해의 마지막 . 섣달 그믐날은 납월삼십일, 년의 마지막 날로 생애의 마지막 날을 뜻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훤출하다 ; 훤칠하다. (어떤 대상이)길고 미끈하다. (모습이)깨끗하고 시원스럽다.

*말말이 ; 한마디 한마디의 말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①깨달음과 중생제도의 중대한 부처님의 임무.

②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연. ③부처님이 정도,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인연. 일단인연(一段因緣)이라고도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라고 한다.

*지푸라기 ; ①짚의 부스러기. ②또는 낱개의 .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헤아릴 )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 서로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마구니 ; ().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주요 내용]


태전선사, 홍련, 황진이 / 일념내 구백 생멸 / 열심히 하면 숙달 / 누워서 단전호흡 수식관 / , , 의심 갈수록 막혀가야 좋다.



[주요 문구]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祝融峰)’  동안을 축용봉을 내려가지 아니했는데,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이라. () 보는 () ()했으므로 () ()했더라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  어찌 조계에육조 스님의 법통을 이어 받은 조계(曹溪) 한방울 물이,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이냐. 어찌 홍련이의 이파리 속에 떨어질까 보냐.


태전선사의 거룩한 덕행과 법력으로써 오히려 기생과 원님을 감화를 시켜 가지고, 지방에 불법을 융숭하게 그러한 역사.


입춘 하루 불공을 올렸다고 해서 무량겁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자기의 죄가 소멸이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냐? 우리는 생각 일어났다 꺼질 벌써 육도윤회(六途輪廻) 있는 종자를 심고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항시 용화선원에서 조실스님께서 동안을 그렇게 간절히, 그렇게 고구정령(苦口叮嚀)하게 말씀해 주시던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방법은 무량겁으로 내려오는 열매를 녹여서 깨달음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이고, 거기 열매로 부터서 가지가 뻗어나와 가지고 세계에 가득 차도록 가지가 번지고 번져서 한량없는 죄의 종자가 주렁주렁 열려 가지고 있는 그놈마저도 한번 감았다 사이에 그놈을 소멸을 해서, 그놈을 돌려 가지고 깨달음이 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이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말이지마는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만큼 효과가 있어서 보람을 느낄 것이고, 듣고시간이 없다’ ‘바쁘다’ ‘나중에 나이 먹거든 천천히 하지’ ‘아들 학교 보내 놓고, 장가 들여 놓고 그때 하리.’

이러다가 보며는 결국은 종래 이런 좋은 약을 받아 가지고도 먹지 않고 서랍 속에다 넣어놓고 계속 병을 앓으며 고생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심(信心)이란 것이 무엇이냐? 절에다가 많이 가져오고 부처님 앞에 많이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무리 내가 여자고, 아무리 내가 말세에 태어났고, 아무리 내가 몸이 병이 있고 약하다 하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옳게만 공부를 하면 나도 틀림없이 도업을 성취할 있다 믿는 , 그것이 대정신(大正信)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분심(憤心) 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모든 성현들은 진작 일을-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 마쳐서 생사 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건만, 무엇 때문에 나는 무량겁을 두고 육도 윤회를 하면서 고생을 받고, 해탈을 못하고 있는가?


어째서 ()라고 했는고?’ ‘이것이 무엇인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기에게 주어진 이론으로써는 수도 없고 풀려고 해서도 되는, 없는 공안(公案) 대한 같은 의심(疑心)!


오직 있으면 빨리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바르게 깨달으려면은 무조건(無條件),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더듬어 들어가지 것이며, 따져 들어가지 것이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지해(知解) 사리상량(邪理商量)으로 알려고 하지 것입니다.

다못 거두절미하고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갈수록 수가 없고, 갈수록 답답하고 맥힌 , 그것이 공부가 가장 잘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암만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되니,  공부가 잘된 것입니까, 공부가  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와서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갈수록  수가 없고,  맥히는 그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이고, 그렇게  나가야, 갈수록   수가 없이  맥혀야 그분은 깨달을  있는 분입니다.

솔솔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어서 재미를 거기다 붙여 가지고 무엇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이런 사람은그건 , 도저히 그런 공부는 차라리 공부 안 한 것만 못합니다. 그냥 아들딸 잘되라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훨씬 낫습니다.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없는 화두가 ~ 우리의 눈앞에 항시 놈이 앞서도록, 이렇게 참선을 생활화 때에 모든 생활은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냐? 화두를 놓쳐 버리고 온갖 번뇌 망상하고 있을 때에는 마구니들 하고 같이 어울려서 마구니 판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 되고, 어떠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화두를 추켜들고 화두로써 모두 생활이 되어갈 때에는 바로 자리는 불보살과 같이 생활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소원대로 이루어질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