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선원(1~73)/(26~50)2023. 4. 16. 10:34

(세등선원No.42)—임술년(壬戌年) 동안거 반산림 법어(1982.11.30.음) (63분)

 

(1) 약 26분.

 

(2) 약 37분.


(1)------------------

황앵(黃鶯)이 상수일지화(上樹一枝花)허고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임술년 삼동 안거(三冬安居)에 반산림(半山林) 법회날입니다.
산승(山僧)이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주장자(柱丈子)를 들어 보이고, 그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고서 게송(偈頌)을 읊기를,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다, 흰 해오라비가 들에 내리니 천점(千點)에 눈송이더라.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현재 이 세등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50여 명에 선객(禪客)들과 여러 청신사와 청신녀 뿐만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우리에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들도 이 자리에,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특히 비구니 정인 복위(伏爲) 망모(亡母) 고성이씨 인화 영가(靈駕)와 망부(亡父) 진주강씨 화엄 영가와, 고영훈 복위(伏爲) 망(亡) 성주배씨 귀남 영가가 사십구재(四十九齋)를 기해서 이 자리에 모시고 이 법문을 듣고, 무량겁 죄업이 눈 녹듯이 다 녹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生死) 없는 열반(涅槃)의 언덕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언제 미(迷)한 때가 없건마는, 우리 중생은 그 진여불성을 미(迷)해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미(迷)한 때가 없는데 육도윤회를 하느냐?
‘이 도리는 모든 부처님들이 서로 보지 못하고, 석가(釋迦)도 오히려 아지를 못하고, 삼세제불(三世諸佛)도 벽(壁)에다가 입을 걸었으며, 일천 성현(一千聖賢)도 또한 아지를 못한다’ 하셨습니다.

이 향상일로(向上一路), 석가(釋迦)도 아지 못하고 천성(千聖)도 아지 못한 이 도리를 어떻게 설(說)하며 어떻게 이 도리를 들으며, 가히 설할 수가 없고 가히 들을 수가 없건마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는 대자비(大慈悲)를 일으켜서 이 도리를 설하셨고, 역대 모든 성현들도 인행시(因行時)에 이 도리를 위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쳐 왔으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사부대중도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정진(精進)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說)할라야 설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설해야 하는 것이며, 들을라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정성을 바쳐서 들을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대매법상(大梅法常) 선사(禪師)에 법을 이어받으신 천룡선사(天龍禪師)가 계셨는데, 그 천룡화상에 법을 이어받은 구지화상(俱胝和尙)이라 한 도인(道人)이 계셨습니다.
그 도인은 처음에 금화산(金華山), 금화산에 암자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 암자에서 지내시면서 준제주(准提呪)를,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하는 그 준제주를 어떻게 열심히 그 주력을 해서 얼마를 했는지 몇 해를 했는지 하여간 수없이 많은 세월 동안을 준제주를 해서 '나무칠구지불모(南無七俱胝佛母) 대준제보살(大准提菩薩)' 그 칠구지(七俱胝), 구지라고 해서 그 준제주를 어떻게 많이 했던지 그 스님의 별명이 구지(俱胝) 스님이 되었어.
본래 불명(佛名)도 있었고 그랬겠지만, 법명(法名)도 있었겠지만, 너무너무 그 준제주를 했기 때문에 구지화상이라, 그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 말이여.

그런데 하루는 실제(實際)라고 하는 비구니(比丘尼) 스님이여, 실제 스님이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 떠억 갓을 삿갓을 쓰고, 방갓을 쓰고 턱 그 암자에 찾아와서, 그 구지 스님이 앉아 있는 승상(繩牀)을 한바꾸 삥 돌고서 떠억 그 앞에 뻣뻣허니 서 가지고서는, “한마디를 일러야, 스님이 한마디를 일러야 내가 이 머리에 쓴 삿갓을 벗겠습니다. 어서 한마디 일러주시죠”
구지 스님이 아 입이 딱! 붙어 갖고 뭐라고 답을 못했어. 또 빨리 이르라고 재촉을 해도 또 못 일르고. 세 번을 일르라고 재촉을 했지만, 종래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실제(實際) 비구니가 팔을 흔들며 소매를 흔들면서 나가는데, 그 구지 스님이 “날도 저물고 그러니까 하루밤 쉬어 가지 그냥 가냐”고. “한마디를 일르면 내가 쉬어 가겠지만 이르지를 못하면은 가겠노라”고. 그래 또 구지 스님이 답을 못했어.

그래서 그 실제(實際)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 떠났는데, 그 비구니가 떠난 뒤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명색이 대장부(大丈夫)로서 여승(女僧)이 묻는 말에 한마디를 답을 못하고 이러한 분통 날 노릇이 있느냐, 내가 어찌 장부라고 누구 앞에 고개를 들을 수가 있겠는가’ 탄식을 하고, ‘이 암자를 불질러 버리고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나서서 도를, 행각(行脚)을 하면서 도를 닦을 수밖에는 없다’ 이리 마음을 먹고서 그날 저녁에 잠을 자는데,
그 금화산 산신(山神)이 꿈에 떠억 나타나 가지고 ‘절대로 스님이 이 도량(道場)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며칠 안 있으면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찾아와서 법(法)을 설해 주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할테니까 이 절을 떠나지를 마시오’ 깜짝 놀래서 눈을 떠 보니 꿈이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며칠이 지난 다음 어떤 스님이 떠억 왔는데, 그 스님이 누구냐 하면 아까 말한 대매법상(大梅法常) 선사에 법을 이어받은 천룡화상(天龍和尙)이라 하는 큰스님이여. 그 스님이 와서 아 그 실제 비구니가 물어서 대답을 못한 그 말씀을 고대로 말씀을 드렸어.
그러니까 그 천룡 스님이 “그러면 그 실제 비구니가 물은 대로 그대가 나에게 물어라”

“도득(道得)하면 내가 이 삿갓을 벗겠으니 한마디를 일러주시지요” 그렇게 천룡 스님께 떠억 물으니까, 천룡 스님이 손가락만 이렇게 탁! 들어서 세웠어. 그 거기에서 이 구지 스님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평생 동안 어떤 사람이 와서 무슨 법을 묻든지—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를 묻던지, 어떤 것이 불법적적지대의(佛法的的之大意)냐고 묻던지, 어떠한 것이 도(道)냐고 묻던지, 어떠한 것이 생사(生死)냐고 묻던지, 어떠한 것이 보리(菩提)냐고 묻던지, 어떠한 것이 열반(涅槃)이냐고 묻던지, 무엇을 묻던지 간에 손가락만 한번 딱!—평생 동안 법문을 입으로 설하지 아니하고, 무슨 법을 묻던지 손가락만 한번 딱 들어.

그래 가지고 많은 사람이 그 구지(俱胝) 스님을 찾아와서 그 손가락 법문만을 듣고 가고, 듣고 가고 했는데, 하루는 그 구지 스님이 어디를 출타를 하고 안 계실 때에 어떤 스님이 왔어.
그런데 그 구지 스님을 시봉(侍奉)하던 어린 사미승(沙彌僧)이 하나 있었는데, 그 “큰스님이 어디 출타를 하고 안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그 큰스님께서 평소에 어떠한 법(法)을 설하셨는가? 그걸 큰스님 대신 그 법문을 좀 한마디 해 달라고 그러니까, 그 사미승이 손가락을 요렇게 딱 들어 보였어.

그래서 그분이 갔는데, 얼마 있다가 그 구지 스님이 돌아오셨다 그 말이여. 그래서 “오늘 무슨 일이 없었더냐?”
“어떤 객스님이 와서 법을 묻길래 제가 법을 스님 대신 설해 줬습니다”

“니가 무슨 법을 어떻게 설해 주었단 말이냐?”
“아, 내 그까짓 것 제가 모르겠습니까? 여러 해 동안을 내가 스님 밑에 있었는데 스님 법을 제가 잘 압니다“

”어떻게 설했느냐?“
”손가락 탁! 들어 보였습니다” 아 그러거든.

그 다음에도 어디서 누가 와서 법을 물으러만 오면 지가 손가락을 딱! 들어 보였던 거여. 그래서 그 구지 스님이 품에 잘 든 칼을 하나 따악 가지고 있다가 손가락 탁 드는 놈을 갖다가 탁! 쳐서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미승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인제 중노릇 안 하고 나 간다‘고 막 달아나. 울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큰소리로 부르니까, 아 그래 울면서 그놈이 뒤를 요렇게 홱 돌아다본다. 구지 스님이 손가락을 탁 들어 보였습니다. 아! 거기에서 그 어린 사미승이 확철대오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내서 그 구지 스님이 인자 열반(涅槃)에 드시게 되었습니다.
대중을 모아 놓고 마지막 열반 법문을 하시는데, “내가 천룡화상으로부터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었는데, 한 손가락 참선을 얻었는데 일생 동안을 이것을 받아 쓰되 이것이 다하지를 못했어” 아직도 일생 동안을 썼건마는 바닥이 안 났다 그 말이여. “일생 동안을 수용을 해서 다하지 못했노라” 그렇게 떠억 한마디를 하시고 고대로 앉아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실제(實際)라고 하는 비구니로 인해서 대분심(大憤心)이 발(發)해 가지고 결국은 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단(大疑團)이 돈발(頓發)을 해 가지고 일주일이 되었던지 열흘이 되었던지, 그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돈발한 상태에서 천룡 스님의 손가락 한번 탁! 드는데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또 관계(灌溪) 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이 말산요연(末山了然) 비구니한테 맥혀 가지고 3년 동안을 그 비구 스님이 말산이라고 하는 비구니 시봉을 했습니다. 원두(園頭)를 보면서 그 비구니 밑에서 3년 동안을 시봉을 하면서 도를 닦아 가지고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인도에서도 부처님 당시에 연화색(蓮花色) 비구니라고 하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 비구니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광명을 발하고 대신통을 얻고 그러한 불법(佛法)을 빛낸 비구니가 있었고, 중국에도 이 말산요연이라든지 이 실제 비구니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비구니가 있었어.
한국에도 월명각시라든지, 또 근자에는 덕숭산에 법희 스님이라든지 또 범어사에서 일생을 지내던 만성 스님이라든지, 그밖에도 여러 비구니로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참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선양을 하고, 많은 이익을 후배들에게 끼친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는 승속(僧俗)이 있고 남녀(男女)가 있지만, 불법(佛法)에는 승속과 남녀가 없어. 누구라도 철저하게 수행을 하면 다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고, 확철대오를 하면 부처님에 법등(法燈)을 이어받어서 빛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짓달 그믐날이 돌아와야 반산림(半山林)이 되겠습니다마는, 이 세등선원(世燈禪院)은 매년 동짓달 스무이튿날 반산림 법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세등선원을 창건한 세등 스님이 그 생일이 바로 이 동짓달 스무이튿날이라, 당신 생일을 기해서 이 대중스님네께 공양(供養)도 올리고 또 그 아울러서 법회를 갖는다면 참 좋겠다' 해서 그 문인(門人)들도 그렇게 원하고.
또 그래서, 참 대단히 좋은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선원(禪院)을 창설을 해서 제방(諸方)에 선객(禪客) 스님네들을 이렇게 모시고, 이렇게 이 선원을 경영을 하고 정진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출가한 사람으로서 자기도 정진하고 다른 선객 스님네도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고, 사부대중이 모여서 이렇게 법회를 갖는 것은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수가 없고, 참 대단히 환희에 넘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처음~25분39초)





(2)------------------

이 금년에는 모다 여러 군데서 처음 오신 분들, 오신 수좌(首座)님네들이 많이 있어서...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에는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둘째는 호흡을 바르게 하고, 셋째에는 화두(話頭)를 올바르게 참구(參究)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자세, 호흡>

‘자세를 바르게 한다’고 하는 것은, 가부좌(跏趺坐)나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는데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앞으로 숙거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몸이 일직선으로 수직으로 딱 하되 단정(端正)하게 앉되 목이나 어깨나 이런 데 힘을 너무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은 다 빼야 하는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인자 호흡을 바르게 하는 건데,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 부처님 때부터서 이 단전호흡, 수식관(數息觀) 단전호흡은 아주 철저하게 지도를 하셨습니다.
단전호흡을 잘하면 몸 안에 있는 독소(毒素), 노폐물(老廢物) 이런 것이 다 이 단전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다 배설이 되고, 몸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사지백체(四肢百體) 속에 구석구석이 숨겨 있는 모든 노폐물이 다 이 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배설이 돼.
따라서 몸이 가벼워지고 피가 맑어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면서 정신이 맑아져서 그래서 참선을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되 이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상기병(上氣病)도 미연에 방지를 하고, 설사 상기 증세가 좀 있다 하더라도 단전호흡을 잘 해 나가면 결국은 이 상기병도 나을 수가 있습니다. 소화불량, 위장이 좋지 못해서 소화가 잘 안된 사람도 이 단전호흡을 잘 해 나가면 소화도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전호흡이 좋다’ 한 말은 다 듣고 알고 있지만, 실지로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기는 썩 어렵습니다. 덮어놓고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오래 참았다가 숨을 내쉬고 이렇게 무리하게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납니다.
부작용이 어떻게 나냐 하면, 가슴이 콱 맥혀서 답답하고 오히려 소화가 잘 안되고, 또 목이 뻣뻣하게 해져서 더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나. 따라서 이 단전호흡을 하되 정말 올바르게 알아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러면 올바르게 하는 것이냐 하면, 숨을 들어마실 때에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 것. 또 들어마신 상태에서 호흡을 정지를 하는데, 딱 근치고 한참 동안 있는데, 그 정지하는 시간을 너무 오래하지 말 것. 또 정지를 한 다음에 다시 또 숨을 내쉬되, 내쉬는 시간도 너무 오랫동안 걸려서 내쉬지 말 것.

들어마시는 시간도 자기 호흡 형편에 적당하도록, 처음에는 한 3초 동안에 걸쳐서 들어마시고, 머무르는 시간도 약 3초 동안 그런 정도만 머무르고, 또 내쉬는 시간도 약 3~4초 동안, 그러니까 한번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쉴 때까지 한 그 호흡을 약 10초 정도로만 걸려서 하도록. 그러면 누구라도 별로 그렇게 무리가 가지 않기 때문에 별탈이 없습니다. 숨이 가쁘거나 답답하거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이태 이렇게 해 가다 보면, 차츰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숨이 조끔씩 조끔씩 길어질 것입니다. 길어지면 길어진 대로 하고, 숨이 길어지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그런 정도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3초, 3초, 3초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러한 정도로 처음에 시작을 하면, 길어지면 길어진 대로 하고 또 짧으면 짧은 대로, 꼭 길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니까 억지로 길게 하지 말어라 그 말이여.


그런데 이 단전호흡, 본격적으로 본(本) 단전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호흡이 있어.
그 준비호흡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본호흡으로 들어가는데, 그 준비호흡이라 하면, 처음에 이렇게 따악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 이렇게 앉으면, 좌우로 서너 번 이렇게 몸을 끄떡끄떡 궁둥이가 뜰썩뜰썩 하도록 몸을 이렇게 서너 번 이렇게 흔드는 거여. 이렇게 서너번 흔들다가 한가운데다가 몸을 따악 안정을 하는 거여.

이렇게 안정이 되었으면 어깨의 힘도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눈은 감지를 말고 평상(平常)으로 따악 떠요. 너무 눈을 이 코 끄터리를 본답시고 너무 가늘게 뜨면, 처음에는 좀 조용하니 좋은 것 같애도 머지않아서 혼침(昏沈)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까, 그렇게 눈을 너무 절대로 감어서는 안되고, 또 감지는 안 해도 너무 가늘게 떠도 못써요.
눈을 평상으로 떠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부터 약 3m 지점에다 눈을 떨구면 되는 것이여. ‘떨군다’고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응시(凝視)를 하거나 주시(注視)를 하지 말고, 평상으로 뜨되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 그렇게 하고, 아금니는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대고. 이게 인자 자세를 바르게 하는 거여.

준비호흡은 어떻게 하냐 하면, 숨을 될 수 있으면 가뜩 그리고 빨리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실 때는 가슴을 약간 드는 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한참 동안 참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 거여. 10초가 되었건, 20초가 되었건, 참었다가 더이상 못 참을 때, 입을 조끔 벌리고서 입으로 후~ 하고 이렇게 숨을 내뿜는 거여. 아까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던 가슴이 내쉬면서 차츰차츰차츰 가슴이 홀쪽해지면서 완전히 다 내뿜어 버려.

다 내뿜었으면 또 들어마셔. 가뜩 들어마셨다가 한참 동안 참었다가 또 입을 조끔 벌리고 후~ 하고 내쉬는 거여. 다 내쉬었으면 또 세 번째 또 들어마셔. 가뜩 들어마셨다가 한참 참은 뒤에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입으로 후~ 하고 내쉬는 거여. 이렇게 세 번을 하는 것이 이것이 준비호흡이라 하는 거여.
이렇게 준비호흡을 세 번 하고 나면, 가슴 구석구석에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고, 새로운 공기가 가슴 안에 들어가 있는 거여.

그렇게 한 다음에 인자 본(本)호흡으로 들어가는데, 수르르르~ 허니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셨으면, 아까 준비호흡을 할 때는 가슴을 약간 드는 듯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는데, 본호흡으로 들어가서는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볼록하도록 하면서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셨으면, 아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이 준비호흡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뜩 들어마셨지만, 이 본호흡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가뜩 들어마시는 게 아녀. 8부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8부쯤만 들어마시되 아랫배 단전(丹田)이 볼록하도록 느끼면서 8부쯤만 들어마셔.

8부쯤 들어마셨으면, 하나 · 둘 · 셋 약 3초 동안을 정지를 했다가 내쉬는데, 아까 준비호흡을 할 때는 입으로 후~ 하고 내쉬었는데 이 본호흡에 들어가서는 입으로 내쉬는 게 아녀.
입은 가만 놔두고 코로 내쉬는데, 내쉬면서 단전(丹田), 아까 볼록해졌던 단전이 차츰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조용하게 코로 내쉬어요. 내쉬되 너무 하나도 없이 완전히 내쉴라 하지 말고, 내쉴 때도 또한 8부 정도만 내쉬어.

내쉬었으면 또 수르르르~ 허니 들어마시되, 코로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는데, 이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물론 코로 들어가는 것은 틀림이 없어.
뭐 그 코로 들어가지 다른 데로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 기분으로는 우리 생각으로는 ‘코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를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신다’ 이런 기분으로 들어마시라 그 말이여.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거든.
또 내쉴 때도 물론 코로 나가지만 ‘코로 나간다’는 기분을 갖지 말고 ‘저 뒤로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저 뒤로 내보낸단 말이여.

호흡은 뒤에서 들어왔다가, 또 저 뒤에로 나가 버려. 일직선(一直線)으로 뒤에서 들어왔다가, 또 뒤로 나가고 이런 기분으로 호흡을 해보라 그 말이여.

그러면 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그 호흡이 저 단전 밑에까지 들어간다고 억지로 할라고 하니까, 가슴에 꽉 맥혀 가지고 저 밑에까지 내려가지를 않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느끼거든.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호흡은 허파까지 밖에는 안 들어가요. 허파 밑에 가서 또 횡격막(橫隔膜), 가로막이 있는데, 가로막에 딱 걸려 가지고 절대로 호흡이 저 단전(丹田) 밑에까지 내려가지 안 혀. 내려가지 않는데 억지로 그 내려 보낼라고 하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못 견디게 되는 거여. 꽈악 여가 맥혀 가지고 얼마를 애를 먹게 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준비호흡을 할 때는 가슴을 들면서 가뜩 들어마셨다가 완전히 내뿜고 해서 이 가슴 속에 있는 공기를 소지[掃除]를 해야 하지만, 준비호흡이 끝난 다음에 본호흡으로 들어갈 때에는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렇게 내보낸다’고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저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뒤에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하도록, 기분으로 그렇게 맨들어라 그 말이여. 바람이야 그리 들어가건 말건.
그러면은 의식적으로 배를 볼록이 하니까, 실지로 바람이 거기까지 들어간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들어마셨으면, 8부쯤 들어마셨으면 정지를 했다가, 정지하는 시간도 약 3초, 나중에 익숙해지면 뭐 3초 4초 5초 좀 늘궈도 상관이 없지만, 처음에는 약 3초 동안만 해요, 부담이 없이. 그래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차츰 홀쪽이 하면서 ‘저 뒤로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하라 그 말이여. 그러면 조끔도 가슴이 답답한 게 없어.


<화두는 언제 드느냐>

그러면 화두는 언제 드느냐 하면,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질 때 그때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하면서 숨을, 배를 차츰차츰 홀쪽이 하면서 숨을 내쉰단 말이여.
또 다 내쉬었으면 또 수르르르~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라 그 말이여. 또 다 내쉬었으면 또 수르르르~ 들어마셨다가 또 3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초학자(初學者)는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하지만, 차츰차츰 공부가 익숙해지면 숨 내쉴 때마다 화두를 안 들어도 상관이 없어요. 두 번, 세 번 내쉴 때까지도 화두(話頭)는 한번만 드는 상태에서 숨을 그렇게 하고.
나중에 참으로 화두가 익숙해지면 아침에 떠억 한번 화두를 들고서, 계속해서 호흡은 하면서도 화두는 한번만 들고서, 그 한번만 들어 가지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면 그 의단만을 관조(觀照)해 나가면 되는 거여.

자꾸 뭐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부르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 아녀요. 드문드문 화두를 놓쳐버렸거나, 딴생각이 들어왔거나, 또는 화두를 놓치진 안 했건만 의단(疑團)이 희미해졌을 때 가끔 한번씩만 챙겨줘도 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따악 현전(現前)해 있으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는 거여, 그게. 그러기 때문에 들어져 있는 데다 자꾸 덮치기로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된다 그 말이여.

‘이뭣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마삼근(麻三斤)을 하는 사람은 ‘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이 따악—앉아서도 그 의심이요, 서서도 그 의심이요, 밥을 먹으면서도 그 의심이요, 똥을 누면서도 그 의심이요,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면서도 그 의심, 알 수 없는 의심이 항시 들려져 있도록.

조끔도 조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해태심(懈怠心)을 낼 것이 없어.
앉었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밥을 먹거나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 있으면 그 사람이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있는 사람이여, 그 사람이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있는 사람이여.

억지로 잠을 안 자고 그냥 막 해댄다고—화두가 성성(惺惺)허니 들려져 있지 아니하면은 잠을 안 잔다고 공부 되는 것이 아니여.
화두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잘 들려져 있으면 일을 해도 그것이 정진(精進)이요, 포행(布行)을 해도 그것이 정진이요, 몸이 괴로워서 조끔 누워 있어도 그것이 정진이여. 꿍꿍 앓으면서도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만 독로해 있다면 그 사람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사람이여.

앞으로 한 열흘이 지내면, 7~8일이 지내면 납월팔일(臘月八日), 섣달 초하루가 돌아오는데, 섣달 초하루가 돌아오면 옛날부터 선방(禪房)에서는 가행정진이나 용맹정진을 하는 것이 한 준례가 되어 있는데.
참 이 출가(出家)한 분상(分上)에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서,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신 그날을 기해서 우리도 밤잠을 안 자고 정진을 해보자는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또 그날을 우리가 평범하게 지낼 수가 없지요.

그런데 만공(滿空) 큰스님이나 또 이 전강(田岡) 조실 스님이나, 여러 그 구참 선지식(善知識) 스님네들의 말씀을 들으면 용맹정진을 하는 것도 그것이 일리가...(녹음 끊김) 바 있는 사람보단 오히려 상기병을 얻거나 무슨 정진상에 부작용이 일어나서 역효과를 내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거여. 이건 경험상으로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거여.

그래서 만공 스님께서도 ‘참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려면 한 시간씩을 더 자 줘라’ 이런 역설적인 법문도 설하셨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 시간을 더 자 줌으로써 정신이 깨끗해지니까, 그 이튿날 낮에 참으로 성성(惺惺)하게 정진을 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잠을 안 자 놓으면 화두도 간 곳이 없고, 그저 잠만 안 잘라고 일주일 동안 그 경책(警策)을 안 맞을라고, 그저 잠 안 잘라고 하는 데 온 신경이 곤두서 가지고 맑은 정신은 하나도 없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자기는 꾸벅꾸벅 이렇게 졸면서도 장군죽비(將軍竹篦)로 때리면은, ‘안 잤는데 왜 때리냐?’고, 이래 가지고 신경질을 내고 쌈을 하고.

뭐 선방에서 이 납월팔일(臘月八日) 용맹정진하면 가끔 그 쌈이 벌어지고, 정신이 없어 가지고는 이상한 짓을 하기도 하고.
시계, 덜렁덜렁 하는 시계추를 갖다가 뜨윽 갖다가 빼 가지고는 부처님 탁자 앞에다 갖다 놓고 절을 하는 사람이 없는가, 옆에 사람보고 왜 때리냐고 그냥 쌈을 거는 사람이 없는가, 어떻게 잠이 오던지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옷을 벗고 오줌을 눈 채 한 시간 두 시간을 그냥 자버린 사람이 없는가, 그래서 많은 모다 그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세등선원에는 그전부터서 용맹정진보다는 가행정진을 하는 것이 좋다 해서 해마다 이 가행정진을 해 오고 있습니다. 시간은 인자 그 준례에 따라서 10시나 11시나 적당한 시간에 자서, 3시나 2시, 이렇게 해서 한 서너 시간 재워 주고, 그리고서 정진을 하되 그 7일 동안은 일체 묵언(默言)을 하도록.
이렇게 하고, 마지막날, 7일 날 저녁에는 그때는 정말 용맹정진해서 잠을 자지 않고 그 이튿날 예불할 때까지 떠억 정진하도록. 이렇게 해서 가행정진이지만 용맹정진이나 거의 같지요. 그렇지만 서너 시간 재워 주기 때문에 정말 참 알차게 정진을 하게 되죠.

혹 여러 대중이 모였으니까, ‘그 가행정진보다도 용맹정진하자,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가지신 분도 있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또 이 세등선원에 와서는 또 세등선원에 준례에 순응하는 것도 그것도 또한 수행인으로서 참 좋은 일이니 만큼 그렇게 모다 가행정진을 하도록 부탁을 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화두 하나만 제대로 떠억 들 수 있다면 깨닫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깨닫기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반드시 그 사람은 별 장애가 없이 육체상으로나 정신상으로나 정진상에 아무 부작용과 장애가 없이 대도를 성취하고만 말 것입니다.
공부는 성취하지 못한 채 중간에 몸에 병이 생긴다든지, 상기병이 생긴다든지, 무슨 위장병이 생긴다든지, 혈압병이 생긴다든지 이리 되면 가뜩이나 근기(根機)는 하열(下劣)하면서 그런 장애가 일어나면 여간해서 그러한 고비를 극복하기가 힘이 듭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은 상기병이 나거나, 위장병이 나거나, 뭐 피가 목구녁에서 넘어오거나 그까짓 것을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기에서 더 신심을 내고 분심을 내고, 그것을 그 병(病)을 도반(道伴)으로 알고 선지식으로 알고 그저 앉아서 못 견디면 포행(布行)을 하고, 포행을 해서 못 견디면 또 앉아서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조끔도 정진을 늦추지 아니하고, 계속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겨 가지고 대도를 성취하면서 그 병까지도 굴복을 받아 버리는 그러한 예가 많습니다.

병이 났다고 해서 그까짓 것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기왕이면 처음부터서 올바른 수행법으로 수행을 해 가지고 그러한 장애에 걸리지 않도록 한다면은 그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이여. 상기병 무서워서 공부 못하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법을 알아서 한다면야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 말이여.


이 가운데 만성 스님이나, 법희 스님이나, 또 월명각시나 또는 말산요연 비구니나 또는 아까 말한 그 실제 비구니나 연화색 비구니와 같은 그러한 도인(道人)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어. 반드시 나는 이 가운데 많은 도인이 나오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우리 이 세등선원에서 수없는 도인(道人)이 나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도인이 얼마만큼 나오냐 하는 것은 여러 대중스님네들의 분심(憤心)과 신심(信心)과 의단(疑團)으로 정진을 어떻게 하느냐 온전히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등선원을 창건한 이 창건주와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그 시주(施主), 화주(化主)한 여러 청신사 청신녀들의 그 원력과 신심에 보답을 하고 마침내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제자로서에 우리의 도리를 다해서 나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하는 것이 우리의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할 일대사(一大事)라 할 것입니다.


오늘 이옥희라고 하는 보살님이 당신의 칠순일을 맞이해서 여러 대중스님네께 이렇게 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양을 여러 사부대중께서는 맛있게 공양을 하시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시고 아울러서 이 이옥희 보살의 수명장수하고 금생에 이 불법에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세세생생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나서 내생에는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의 지혜의 법등(法燈)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축원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이 고성이씨 인화 영가, 진주강씨 화엄 영가, 성주배씨 귀남 영가는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山僧)에 설한 이 간곡한 말씀을 듣고, 무량 영겁(永劫)에 죄업이 다 소멸이 되어서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왕생을 하셔서 다시 이 사바세계에 환생(還生)을 해 가지고 일체중생을 제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소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며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하는 것을 머리털, 귀밑털 희어지는 것을 희어지기를 기다리지를 말어라. ‘늙은 뒤에 하리라. 좀 더 있다 하리라’ 뒤로 미루지를 말어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니라. 저 쑥대밭 속에 무덤이 다 소년에 무덤이니라.
주검이 어찌 늙어서만 죽으라는 법은 없어. 어려 뱃속에서 죽기도 하고, 나다가 죽기도 하고, 어려서 죽기도 하고, 소년 청년에 죽기도 하고, 젊어서 죽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꼭 늙은 70, 80 먹은 뒤에만 죽는 것이 아녀. 그러니까 늙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만 할 때에,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 할 때에 정진을 해라 이것이여.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며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사람 몸 한번 잃어버리면 언제 돌아올 것이여? 사람 몸 받아 나기가 눈먼 거북이가 천 년만에 한번씩 바다 위에 올라와서 숨을 쉬는데, 그때 마치 구멍 뚫어진 나무토막을 만나야 그 나무토막에 의지해서 숨을 쉬고 들어가는데, 눈 뜬 거북이가 나와서도 그 나무토막 만나기가 어려울텐데, 더욱이 그 매일같이 올라와도 혹 모르는데, 천 년만에 한번씩 눈먼 거북이가 바다 위에 떠올라 가지고 구멍 뚫어진 나무토막을 만나기 만큼 어렵다 이것입니다.

그렇게 사람 몸 받아 나기가 어려운데, 이 몸뚱이 한번 잃어버리면, 도를 이루지 못한 채 잃어버리면 언제 사람 몸을 받아 날 것이냐 이 말이여.
그리고 지옥이라는 데는 한번 떨어지면은 나올 기약이 없어. 억만겁을 그 안에서 지내야 하는데 나올 기약이 없어. 그러니 사람 몸 받아 났을 때 그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야겄드라 이 말씀이여.


아까 산승이 주장자를 드는데 같이 주먹을 들었는데, 할 말씀이 있습니까?

니우입해성룡거(泥牛入海成龍去)로구나. (주장자를 치시고)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서 용이 되아 갔다 했습니다. (25분44초~62분55초) (끝)





[법문 내용]

(게송) 황앵상수일지화~ / 어째서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미(迷)한 때가 없는데 육도윤회를 하느냐? / 구지(俱胝) 스님의 일지두선(一指頭禪).

참선 자세. 단정하면서도 힘은 다 빼야 하는 것입니다 / 단전호흡(준비호흡, 본호흡) / 화두는 언제 드느냐? / 무엇을 하건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해 있으면 그 사람이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있는 사람 / 만공 스님께서도 ‘참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려면 한 시간씩을 더 자 줘라’ /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화두 하나만 제대로 떠억 들 수 있다면 깨닫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늙어서만 죽으라는 법은 없어. 그러니까 늙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만 할 때에,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 할 때에 정진을 해라.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현재 이 세등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50여 명에 선객(禪客)들과 여러 청신사와 청신녀 뿐만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우리에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들도 이 자리에,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언제 미(迷)한 때가 없건마는, 우리 중생은 그 진여불성을 미(迷)해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미(迷)한 때가 없는데 육도윤회를 하느냐?
‘이 도리는 모든 부처님들이 서로 보지 못하고, 석가(釋迦)도 오히려 아지를 못하고, 삼세제불(三世諸佛)도 벽(壁)에다가 입을 걸었으며, 일천 성현(一千聖賢)도 또한 아지를 못한다’ 하셨습니다.

이 향상일로(向上一路), 석가(釋迦)도 아지 못하고 천성(千聖)도 아지 못한 이 도리를 어떻게 설(說)하며 어떻게 이 도리를 들으며, 가히 설할 수가 없고 가히 들을 수가 없건마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는 대자비(大慈悲)를 일으켜서 이 도리를 설하셨고, 역대 모든 성현들도 인행시(因行時)에 이 도리를 위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쳐 왔으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사부대중도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정진(精進)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說)할라야 설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설해야 하는 것이며, 들을라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정성을 바쳐서 들을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는 승속(僧俗)이 있고 남녀(男女)가 있지만, 불법(佛法)에는 승속과 남녀가 없어. 누구라도 철저하게 수행을 하면 다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고, 확철대오를 하면 부처님에 법등(法燈)을 이어받어서 빛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호흡을 바르게 하는 건데,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 부처님 때부터서 이 단전호흡, 수식관(數息觀) 단전호흡은 아주 철저하게 지도를 하셨습니다.
단전호흡을 잘하면 몸 안에 있는 독소(毒素), 노폐물(老廢物) 이런 것이 다 이 단전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다 배설이 되고, 몸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사지백체(四肢百體) 속에 구석구석이 숨겨 있는 모든 노폐물이 다 이 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배설이 돼.
따라서 몸이 가벼워지고 피가 맑어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면서 정신이 맑아져서 그래서 참선을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되 이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상기병(上氣病)도 미연에 방지를 하고, 설사 상기 증세가 좀 있다 하더라도 단전호흡을 잘 해 나가면 결국은 이 상기병도 나을 수가 있습니다. 소화불량, 위장이 좋지 못해서 소화가 잘 안된 사람도 이 단전호흡을 잘 해 나가면 소화도 잘되는 것입니다.

호흡은 코로 들어가지 다른 데로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 기분으로는 우리 생각으로는 ‘코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를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신다’ 이런 기분으로 들어마시라 그 말이여.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거든.
또 내쉴 때도 물론 코로 나가지만 ‘코로 나간다’는 기분을 갖지 말고 ‘저 뒤로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저 뒤로 내보낸단 말이여.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지도록)
호흡은 뒤에서 들어왔다가, 또 저 뒤에로 나가 버려. 일직선(一直線)으로 뒤에서 들어왔다가, 또 뒤로 나가고 이런 기분으로 호흡을 해보라 그 말이여.

화두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잘 들려져 있으면 일을 해도 그것이 정진(精進)이요, 포행(布行)을 해도 그것이 정진이요, 몸이 괴로워서 조끔 누워 있어도 그것이 정진이여. 꿍꿍 앓으면서도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만 독로해 있다면 그 사람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사람이여.

만공 스님께서도 ‘참으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려면 한 시간씩을 더 자 줘라’ 이런 역설적인 법문도 설하셨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 시간을 더 자 줌으로써 정신이 깨끗해지니까, 그 이튿날 낮에 참으로 성성(惺惺)하게 정진을 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세등선원을 창건한 이 창건주와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그 시주(施主), 화주(化主)한 여러 청신사 청신녀들의 그 원력과 신심에 보답을 하고 마침내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부처님의 제자로서에 우리의 도리를 다해서 나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하는 것이 우리의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할 일대사(一大事)라 할 것입니다.

아까 산승이 주장자를 드는데 같이 주먹을 들었는데, 할 말씀이 있습니까?
니우입해성룡거(泥牛入海成龍去)로구나. (주장자를 치시고) 진흙소는 바다에 들어가서 용이 되아 갔다 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