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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선원No.37)—1981년(신유년) 동안거 반살림 법문(81.11.22) (37분)

(1) 약 21분. (2) 약 17분.

(1)------------------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회수연파리(廻首煙波裏)에  어가과원촌(漁歌過遠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껌껌허게 구름이 끼었다가 그 구름이 활짝 열리니까 저 허공은 저절로 환히 열렸다.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라. 가을이 되서 단풍이 져가지고 그 이파리가 떨어지니 곧 뿌리로 돌아가더라.


회수연파리(廻首煙波裏)하니, 머리를 돌이켜, 머리를 돌려서 안개 연기 자욱한 파도 속에 돌리니,

어가과원촌(漁歌過遠村)이라. 고기잡이 노래가 먼 마을을 지내가더라.



오늘은 신유년(辛酉年) 삼동결제(三冬結制) 반살림 날입니다.

결제(結制) 때 법문을 듣고 공부를 시작하면 해제(解制) 때까지 한결같이 정진(精進)을 지어가면 되겠지만 우리의 근기(根機)가 그렇지를 못해서, 그래서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어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이 일어나도록 그래가지고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채찍을 가하기 위해서 결제 중간에 법회를 한번 갖는 것입니다.


원래 반살림은 동짓달 그믐날 갖는 것이 일반 준례(準例)지만 오늘은 동짓달 스무 이튿날, 이 세등선원을 창설한 원장 스님, 세등 스님의 생신날로써 대중스님네께 공양(供養)도 올리기 겸해서 오늘 이렇게 반살림 법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祖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가 들어야 할 법문을 남김없이 다 들었습니다.

그 법문 밖에 무슨 또 할 말이 있을까마는, 법문(法門)이라 하는 것이 원래 설(說)할 것이 없는 것이여. 들을 것이 없어.


설(說)할 바 법(法)이 없고, 들을 바 법(法)이 없는 것이 이것이 '참 설법(說法)'이여.


부처님께서 열반회상(涅槃會上)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 녹야원(鹿野苑)에서부터 오늘 이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시고서 마지막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이것이 '참 설법(說法)'인 것입니다.


설(說)할 바 법(法)이 있어서 설한다면 그 설법(說法)은 틀려버린 것입니다.

설(說)할 바 법(法)이 없다고 해서 아주 입을 꼭 다물고 법회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설(說)할 바가 없으면서도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들도 들을 바가 없어. 들을 것이 없지만, 그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법문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법문을 귀로 듣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져서 속에 기억할 것이 있고, 알아들어서 얻은 바가 있고, 이것은 법문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그 위법망구적으로 정성(精誠)을 들여서 법문을 듣되 한마디도 들은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색상(色相)을 보고 음성(音聲)을 듣고 그래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얻은 바가 있고 나를 구(求)한다면, 이것은 삿된 길을 행(行)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색상(色相)과 음성(音聲) 소리에 즉(卽)하지도 말고, 색상과 음성을 여의지도 말아야 할 것이여.



단지성색본비진(但知聲色本非眞)이요  자연불피성색혹(自然不被聲色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진자어현지회(見盡自於玄旨會)하면  정망능여도상친(情忘能與道相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불피성색혹(自然不被聲色惑)이니라.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견진자어현지회(見盡自於玄旨會)하면 정망능여도상친(情忘能與道相親)이라.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이 생각 다한 데에 이르러서, 다해가지고 생각 없는 곳에 이르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하리라.

생각이, 생각이 다해가지고 생각 없는 곳에 이르러서 참나를 확철대오를 하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하리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문(六門)으로부터 항상 자금광(紫金光)을 놓으리라. 바로 견성(見性)하야 성불(成佛)할 것이다.


정법학자(正法學者)가 이 법문을 듣고 화두(話頭)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다면 이 법문을 바로 들은 것이 될 것이여.



부모가 나를 낳아주셔서 숙세(宿世)에 불법의 인연이 있어서 출가(出家)해가지고, 출가해서 중이 되어가지고서도 '경(經)을 배운다' '주지(住持)를 한다' 온갖 다른 일에 끄달려가지고 여간해서 이 선방(禪房)에 나와서 참선(參禪)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 거여.

숙세에 철두철미한 신심(信心)에 정법(正法)의 종자(種子)를 심지 않고서는 이렇게 선방에 나와지덜 않는 것이여.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그런데 금일 대중은, 세등선원에 이렇게 모여가지고 자발적으로 대중의 규칙에 순응(順應)하면서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춥고 더운 것을 불고(不顧)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이렇게 정진을 하고 지내는 것은,


세속(世俗)에 인연(因緣)을 다 끊어버리고, '세속의 인연을 끊는다'하는 것은 오욕락(五欲樂), 오욕락을 다 끊어버리고—재산에 대한 욕심, 색욕(色欲)에 대한 욕심, 맛있는 것을 먹을려고 하는 욕심, 잘했다고 하는 명예에 대한 욕심, 명예 권리에 대한 욕심, 편안하고 호강하려는 욕심, 그런 오욕락을 다 버려버리고.

'부모다' '형제다' 그밖에 모든 애정(愛情)에 얽힌 인연을 다 끊어버리고,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사방에서 불이 훨훨훨훨 타 들어오고 있는데, 쉴 사이없이 불길이 타서 내 몸 가까이에 지금 오고있어. 그 불이 언제 내 몸에 붙어가지고 내가 죽게 될른지 모른다.

그러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타 들어오고 있는 이 불에서 탈출을 할 것인가?


그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아니하면, 그것이 바로 '발심(發心)을 했다' 하는 것이여.

지금 그 불이 타고있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忘却)하고,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잡담을 하고 시비(是非)를 하고 이러쿵저러쿵 그렁저렁 시간을 보내지, '생사(生死)의 불길이 훨훨 타서 지금 나를 향해서 곧 타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단 일분일초인들 한눈을 팔 수가 있겠느냐.


그러한 발심(發心)을 가지고 이 자리에, 이 회상(會上)에 모인 사람은 대중의 규칙에 자진해서 순응을 할 것이고, 일체 인사(人事)는 제절로 거기서 다 끊어져 버릴 것이여.



인연(因緣) 따라서 수용(受用)을 하고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떡이면 떡, 밥이 질면 진 대로, 되면 된 대로, 반찬이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고.

삼경(三更)을 제외한 밖에는 수면(睡眠)을 허락지 아니해. 해제 때까지는 외출을 허락지 아니해.


확철대오 할 때까지는 경(經)을 보는 것도 허락지 않고, 대중적으로 공계(公界)한 때를 제외하고는 『심경(心經)』이라든지 『금강경(金剛經)』이라든지 그런 경을 독송(讀誦)하는 것 마저도 금지여.


그렇게 해서 여법(如法)하게 3년을 알뜰히 공부를 해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지 못하면, 나는 대중에게 거짓말한 죄로 대중을 대신해서 지옥(地獄)에 들어가겠다.


옛날 몽산(蒙山)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께서 그렇게 법문(法門)을 하셨습니다.(처음~20분45초)





(2)------------------


비단 몽산 스님 뿐만 아니라,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大師)에 최상승 법문[最上乘論] 가운데에서도, '내가 이렇게 법을 설한 법문(法門)을 대중이 믿지 아니하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지 아니한 과보(果報)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호랑이에 물려갈 것이고, 내가 이 말이 거짓말이라면 나는 지옥에 들어갈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말 피눈물이 나올, 피눈물 없이는 설할 수 없고 피눈물 흘리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그러한 뼈아픈 간절(懇切)한 법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여법(如法)하게 공부를 하는 것이냐?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생각이 일어나는 거, 그 생각이 다시 없어지고—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났다가 또 꺼지고, 그 생각이 꺼지자마자 다시 또 생각이 일어나고.

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을 이것을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여. 이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바로 생사(生死)여.


그래서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다' 하셨어. 한 생각 속에 9백(九百)의 생멸심(生滅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진짜 생사(生死)여.



보통 생사(生死)라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이 몸뚱이가 숨이 끊어진 것을 갖다가 '죽음[死]'이라 그러는데, 그것은 육체(肉體)를 기준으로 두고 한 말이고,

진짜 생사(生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9백 번이나 미세(微細)한 생사(生死)가 있는 것인데, 그 미세한 생사까지라도 끊어져야 생사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생사(生死) 속에서 힘을 다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야 하는 것이여.


생사가, 그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번뇌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공부를 바로 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여.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바로 그곳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곳을 향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라.

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좋지 못한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또는 미래의 생각이건, 또는 주책없는 당치않는 쓸데없는 생각이건 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에 있는 말씀이건,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건 바로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에서',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공부를 지어갈 것이다.


그렇게 화두를 거각하고, 거각하다보면 또 딴생각[別念]이 일어나면 또 다시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거각하고 하면, 화두가 차츰차츰 들려고 안 해도 들어지고, 화두가 순일(純一)해진다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해지면 자연히 그렇게 퍼일어났던 망상(妄想)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그 번뇌와 망상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게 되아.


그것을 갖다가 공적(空寂)이라 그러는데.

공적(空寂). '빌 공(空)'자, '적적할 적(寂)'자, 공적(空寂)이라 그러는데.



그 공적(空寂)한 경지(境地)에서 까딱하면 화두(話頭)를 놓쳐버려.

너무 고요하고, 너무 편안하고, 너무 깨끗해서, 그 고요하고 편안하고 깨끗한 데에 취해가지고 화두를 놓쳐버리게 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을 갖다가 '무기(無記)'라 그러는 것이여.


무기(無記)에 빠지면 깨달을 분(分)이 없어.

아무리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다 할지라도 화두를 놓쳐버리면 그게 무기에 빠진 것인데, 무기에 빠졌다 하면은 깨닫지는 못하는 거여.


무량겁(無量劫)을 그 무기(無記)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지끔 이 몸뚱이가 있는 것까지도 망각(忘却)해버리고, 지금 이 세등선원에 와서 지금 방에서 참선(參禪)을 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까지도 까마득하게 망각해. 한 시간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내간 것 조차도 모르는 거야. 하루 이틀이 지내가도 전혀 모르고. 그 무기공(無記空)에 빠져있는 거야. 이건 공부를 잘못 지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승 없이 혼자 토굴 같은 데에 들어가서 생식(生食)을 하면서 그 공부를 알뜰히 한답시고 한 것이 겨우 이런 무기공에 빠져가지고 그 공적(空寂)한 맛을 탐익(耽溺)해서, 그래가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렇게 지내가다가 무엇이 좀 알아지고 그러면은 자기가 도통(道通) 했다고 착각(錯覺)을 하는 수없이 많은 부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공적한 경지에서 화두(話頭)를 매(昧)하지 말아야, 그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해야만 그것을 '신령 령(靈)'자, '알 지(知)'자, 영지(靈知)라 하는 거여.


그 공적(空寂)한 경지(境地), 적적한 그 경지에서 화두가 성성해야만 무잡무괴(無雜無壞)여.

그 경지에서 견문각지(見聞覺知)에 섞이지 말고, 그 공적한 경지에서 화두가 순일한 그 경지가 무너지지 말아야 정진(精進)을 바로 해가는 것이여.



그렇게 공부를 지어가게 되면 불일성지(不日成之)라 그랬어.

며칠 안 가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 공안을 타파해서 확철대오 할 날이 오는 것이다.



공부라 하는 것은 다못 이렇게 공부를 지어갈 따름인 거여.

여기에 무슨 깨닫기를 구할 것도 없고, 누가 와서 나를 깨닫게 해주기를 기다릴 것도 없고.



오늘이 반살림이라, 금년 삼동(三冬)에도 그 참 좋은 선객(禪客)들이 30명이 이렇게 모여가지고 정말 여법하게 이렇게 정진을 해가고 있으니 그런 다행할 도리가 없어.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


나무~아미타불~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요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흐르는 물과 같고 날으는 구름과 같은 이 꿈의 몸뚱이. 이 일몽신(一夢身), 이 한 꿈몽신.

흐르는 물과 같이 무정(無情)한 것이고, 무정한 것이기 때문에 곳을 따라서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고, 낮차운 곳을 만나면 흐르고, 절벽을 만나면 떨어지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은 고체가 되고 백 도(百度)가 넘으면 증기가 되고, 곳을 따라서 능히 모나기도 하고 능히 둥글기도 하더라.


날으는 구름과 같애서 무심(無心)혀. 동풍(東風)이 불면 서쪽으로 날아가고 서풍(西風)이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고.

권서자유(卷舒自由)여. 뭉쳐서 구름 뭉텅이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흩어지기도 하고.


이 몸뚱이, 이 꿈에 몸뚱이라 했지만,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귀로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 없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몸뚱이, 그놈 밖에 우리가 더 친(親)한 것이 어디에 있어.

부모가 친하다고 하지마는 부모는 여읠 때가 있고, 자식이 귀엽다 하지마는 자식도 여의게 되는 것이고, 이 세상에 이 일몽신(一夢身) 밖에 더 친(親)한 것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개중(箇中)에 불허용타물(不許容他物)이여. 이 낱 가운데[箇中]에 다른 물건 용납(容納)할 것을 허락할 수가 없어.

이놈 밖에 더 친한 놈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잘 때에도 같이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에 같이 일어나고,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같이 태어나고, 이 세상을 죽을 때도 같이 죽어가고.


세상에서는 '당신 죽을 때 나도 죽는다'고 해가지고 남편이 죽을 때는 홀로 떠나보내지만, 또 죽을 때 같이 죽는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자기도 약을 먹고 자살을 해서 죽음을 같이 한다 하더라도 같이 죽는 게 아녀.

업(業)에 따라서 가는 곳은 또 달리 가는 것이지, 죽을 때 같이 죽었다 해서 같이 가는 것도 아니다.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다. 황매노상(黃梅路上)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을 전송(餞送)해 보낼 때에 바로 이 도리(道理)를 분부(分付)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출가해가지고 중이 되어서 고락(苦樂)을 함께 하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위법망구적으로 공부해 나간 것이 바로 이 일몽신(一夢身)을 깨닫기 위한 것이여.

이것을 갖다가 일대사(一大事)라 하는 것이여.


이 일대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다리를 펴고 잘 수가 없어.

앞으로 남은 반살림을 다시 오늘부터서 새로운 생각으로 다져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0분46초~37분1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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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제4권 115칙 신주(新州)’ 송원(松源) 송(頌) 참고.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부처님께서 열반회상(涅槃會上)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 녹야원(鹿野苑)에서부터 오늘 이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 불설일자(不說一字).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미증(未曾), 부증(不曾) : 일찍이 ~한 적이 없다]

부처님의 교설은 언어문자로 드러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자의 틀을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원래 『반야경』이나 『능가경』 등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이 말을 선종에서 강조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참고 ❶] 『금강선론(金剛仙論)』 (세친=천친 造 | 금강선 釋 | 보리유지 한역) 제5권.

如來從得道夜 至涅槃 更不說一字者 明證法無名相 言語道斷 心行處滅 不可以名相往說 故言不說一字也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밤부터 열반에 드시는 날에 이르기까지 결코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말은 법(法)은 명상(名相)이 없어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고, 마음으로 헤아릴 방법도 소멸하여 명상으로써 설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참고 ❷] 『선교석(禪敎釋)』 (서산대사)

偈云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此固敎外別傳之謂也.<智度論>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처음 녹야원에서부터 마지막 발제하까지, 이 두 기간 사이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교외별전의 취지를 가리킨다.<『지도론』>


[참고 ❸]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제5권 (실차난타 역 | 김진철 번역 | 한글대장경) '3. 무상품 ② 無常品第三之餘'

大慧 若人說法墮文字者 是虛誑說 何以故 諸法自性離文字故 是故 大慧 我經中說 我與諸佛及諸菩薩 不說一字 不答一字 所以者何 一切諸法離文字故 非不隨義而分別說


대혜여, 만약 어떤 이가 법을 설하되 문자에 떨어진다면 이것은 허망하게 속이는 설법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자성은 문자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여, 나는 경 가운데서 '나와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은 한 자도 설하지 않고 한 자도 답하지 않았다'고 설하였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문자를 떠났으므로 뜻을 따르지 않고 분별하여 설하지 않는다.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상주(常住) ; 과거 · 현재 · 미래 등 삼세(三世)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생멸의 변화를 겪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 상(常)이라고도 하는데, 무상(無常)과 대칭한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금강경』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色見聲求 是行邪道 作麼生 不行邪道去 但知聲色本非眞 自然不被聲色惑 見盡自於玄旨會 情忘能與道相親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게송) '단지성색본비진(但知聲色本非眞)~' ; 『금강경오가해』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하리라' ;

[참고] 『한가로운 도인의 길 - 나옹화상법어집』 (김달진 역주, 세계사刊).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보임(示諸念佛人/8首)’ 게송 참고. p166.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계신고?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마음을 부딪쳐 가지고 간절히 잊어버리지 말아라.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생각이, 생각이 다해가지고 생각 없는 곳에 이르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문(六門)에 항상 자금광(紫金光)을 놓으리라. (바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이다)


*자금광(紫金光) ; 자마금(紫磨金 : 황금 중의 최고인 자색을 띈 금) 색(色)을 띄고 있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가로판 p95~97)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생사대사(生死大事) ; 생사사대(生死事大).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가장 중요한 일[一大事].

*생사사대(生死事大) 무상신속(無常迅速) ; 생사의 일은 크고, 무상(無常)은 신속하다(매우 빠르다).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 德異本) (심재열 역주 | 불국선원) '제6 참청기연(參請機緣 청법의 기연)'에서. p252~253.


현각 : 생사의 일이 크며 무상이 신속합니다.[生死事大 無常迅速]

육조 :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사무쳐 깨닫지 않으며 신속한 무상이 없음을 요달하지 않는가?[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현각 : 사무쳐 깨달으면 남(生)이 없고, 요달함에 본래로 빠름이 없나이다.[體卽無生 了本無速]

육조 : 그렇도다.[如是如是]


[참고]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18권 대혜보각선사보설」 '정성충이 청한 보설(鄭成忠請普說)'에서.

無常迅速 生死事大 彈指便是來生到來 但虛却心 子細推窮 窮來窮去 善念旣相續 惡念自然不生 但如實修行 時節因緣到來 自然悟去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은 크다.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곧 내생(來生)이 도래 하니, 다만 마음을 비우고 자세하게 궁구하라. 궁구하면서 오고 궁구하면서 가다 보면 좋은 생각이 이어지고 나쁜 생각은 자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맛 여실하게 수행하다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참고]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시진선인(示眞禪人)'

汝旣出家 須立丈夫之志 發勇猛心 深信無常迅速 生死事大 行住坐臥 一切時中 單單不昧此事 切切參詳 如人墮在千尺井中 千思萬想 只是箇單單求出之心 不日內必有相應分 如是用功 若未成辦 佛法無靈驗矣


그대는 이미 출가하였으니 반드시 대장부의 뜻을 세우고 용맹하게 정진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큰 것을 깊이 믿고, 행주좌와 모든 때에 오로지 이 일을 잊지 말고 절실하게 참상(참구)하여야 한다.

마치 천 길 깊이의 우물에 떨어진 사람이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오로지 빠져나갈 마음만 가진다면 멀지 않은 날에 반드시 그 생각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공을 들이고도 이루지 못한다면 불법에 영험함이 없는 것이리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몽산(蒙山) : 남송과 원(元)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 1298 또는 1308)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한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에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의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의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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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가겠다(떨어지리라) ;

[참고 ①]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③]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몽산법어』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용화선원刊) p97-99.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④]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가로판 p101~103)

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공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게송)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 『금강경오가해』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야부 스님의 게송 참고.

*권서(卷舒, 捲舒 돌돌 감아쌀 권/펼 서) ; ①말았다 폈다 함. ②나아감과 물러남. ③재덕(才德)의 숨김과 나타냄.

*개중(箇中) ; ①이 낱 가운데 · 이 가운데 · 낱낱 · 하나 하나 · 각각 등의 뜻. 차중(此中) · 개리(箇裏) · 저리(這裏) 등과 같다. '불법(佛法) 중에서' 또는 '이 도리 속에서'라는 뜻이기도 하다.

②개중의(箇中意) · 개중사(箇中事) · 개중소식(箇中消息) 등으로 쓰인다.

③개중인(箇中人)이라고 하면 '저간의 사정 ·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 또는 '불법에 정통한 사람'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개중사(箇中事 낱·이·이것 개/가운데 중/일 사) ; 기중사(其中事)와 같은 말. '이 가운데 일' '이 속에 참다운 도리' 근본적인 일. 불법(佛法)의 핵심적인 뜻.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오조(五祖)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麈埃)」이라 하였다。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麈埃)」라고 지었다。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76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분부하다(分付-- 나누다·나누어 주다 분/주다·맡기다·부탁하다 부) ; ①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시키거나 나누어[分] 주다[付].

②(...에/에게 ...을) (...에/에게 -고) (...에/에게 -도록)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다, 또는 당부(當付)하다.

③건네주다 · 넘겨주다. 전수(傳授) · 부촉(付囑) · 부여(付與) 등과 같은 말이다. 주로 '법을 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법문 내용]


(게송)운개공자활~ / 설(說)할 바 법(法)이 없고, 들을 바 법(法)이 없는 것이 이것이 '참 설법(說法)' / 불설일자(不說一字).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 (게송)단지성색본비진~.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게송)사수여운일몽신~ / 일대사(一大事).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시고서 마지막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이것이 '참 설법(說法)'인 것입니다.

설(說)할 바 법(法)이 있어서 설한다면 그 설법(說法)은 틀려버린 것입니다.

설(說)할 바 법(法)이 없다고 해서 아주 입을 꼭 다물고 법회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설(說)할 바가 없으면서도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들도 들을 바가 없어. 들을 것이 없지만, 그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법문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법문을 귀로 듣고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속에 기억할 것이 있고, 알아들어서 얻은 바가 있고, 이것은 법문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그 위법망구적으로 정성(精誠)을 들여서 법문을 듣되, 한마디도 들은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금강경』


그러면 어떻게 행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색상(色相)과 음성(音聲) 소리에 즉(卽)하지도 말고, 색상과 음성을 여의지도 말아야 할 것이여.


보통 생사(生死)라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이 몸뚱이가 숨이 끊어진 것을 갖다가 '죽음[死]'이라 그러는데, 그것은 육체(肉體)를 기준으로 두고 한 말이고,

진짜 생사(生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9백 번이나 미세(微細)한 생사(生死)가 있는 것인데, 그 미세한 생사까지라도 끊어져야 생사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생사(生死) 속에서 힘을 다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야 하는 것이여.


우리가 출가해가지고 중이 되어서 고락(苦樂)을 함께 하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위법망구적으로 공부해 나간 것이 바로 이 일몽신(一夢身)을 깨닫기 위한 것이여.

이것을 갖다가 일대사(一大事)라 하는 것이여. 이 일대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다리를 펴고 잘 수가 없어.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26~50)2019. 3. 28. 18:0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41)—임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82.10.17)

(1/3) 약 18분. (2/3) 약 18분. (3/3) 약 21분.

(1/3)----------------


무한심중사(無限心中事)를  평생설향수(平生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양춘탄일곡(陽春彈一曲)한디  송월만창시(松月滿窓時)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한심중사(無限心中事)를  평생설향수(平生說向誰)오. 한없는 마음 가운데 일을 평생에 누구를 향해 설할꼬?

양춘(陽春)에 탄일곡(彈一曲)하니, 양춘(陽春)에 한 곡조를 타는데,

송월(松月)이 만창시(滿窓時)로구나.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창에 가득한 때로구나.



오늘은 임술년 10월 17일 세등선원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입니다. 세등선원 삼동 결제뿐만이 아니라, 군산 흥천사 반야선원 동안거 결제도 이 자리에서 동시에 갖게 되었습니다. 그 먼 데에서 대중과 신도님네들이 이 법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고(故)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혜가(慧可) 대사가 달마(達摩) 스님을 찾아가서 눈 속에, 눈이 허리까지 찰 때까지 달마 스님 계신 굴 앞에서 달마 스님의 법(法)을 듣기 위해서 서 있다가 마침내는 신(信)을 보이기 위해서 팔을, 자기 손으로 자기의 팔을 잘라서 바쳤습니다.


그래 가지고 달마 스님의 법(法)을 이은 법문과 또 우리나라 이조 때 서산(西山) 큰스님 밑에 소요(逍遙) 스님이 대강사로 삼 년 동안을 능엄경 한 토씩을 배우면서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서산 스님 밑에 수행을 하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서산 스님을 하직하고 떠날 때에 서산 스님이 주신 때묻은 공책 하나를 가지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대관절 그 공책에 무슨 글이 쓰여 있기에 이것을 주셨나?'


3년을 위법망구적으로 서산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참선(參禪)은 가리켜 주지도 않고, 화두(話頭) 한마디도 일러주지 아니하고,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능엄경을 하루에 글자 넉 자씩만 배우라 하니 삼 년이란 세월이 너무 지루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법(法)인가 보다. 이렇게 하다 보면은, 내가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나에게 화두도 일러주실 것이고, 참선하는 법을 가리켜 주실 것이다' 이리 생각을 하고, 다 알고 있는 거지만 참고 참으면서 3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지냈습니다.

3년이 지낸 뒤에는 도저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래서 퇴태심(退怠心)이 나 가지고, 말하자면 반감이라고 할까, 배신이라고 할까, 퇴태심이 나 가지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공책을 열어 보니,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그 게송을 읊으시기만 하고 그 게송의 뜻은 해설을 해 주시지 아니했기 때문에 간단히 그 게송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우습구나, 소를 탄 자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소를 타고서 소를 찾고 있구나.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녹일지니라.


허허 참 우습구나.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내 소가 어디가 있는가?'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그것은 여러분들도 '아! 그 무슨 뜻이로구나' 상식적으로 가남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아는 것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3년 동안을 위법망구적으로, 저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그러한 신심으로 3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서산 스님 밑에서 능엄경 넉 자씩을 배우면서 그 일심으로 지낸 그러한 신심 끝에 그 글을 보니까 소요 스님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맨 처음부터 그 글을 봤다고 해서 터질 리가 없습니다.


소요 스님은 그 글을 보고 천칠백 공안을 타파(打破)해 버리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골수를 깨달라 버렸지만, 우리가 그 글을 아무리 해석할 줄을 알고 상식적으로 무슨 뜻이다 하고 아는 것 가지고는 깨닫게 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句)에 가서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를 찍어다가,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다할지니라. 물 가운데 버큼을 녹여 다할지니라' 그 무슨 말씀이여?

이것은 사량심(思量心)으로, 상식적으로, 분별심으로도 따져서 알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만이 이 글의 뜻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세등선원 삼동안거(三冬安居) 대중이 오십여 명이나 됩니다. 또 흥천사 반야선원 대중도 십여 명이고, 그리고 여기 각처에서 오신 여러 스님네와 신남신녀도 몇백 명이 오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법문을 들어서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그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가운데에는 10년 20년 내지, 30년 40년을 참선을 하신 분도 있을 것이고, 금년에 처음으로 선방에 나온 그러한 수좌(首座)도 있을 것입니다.

소요 스님은 3년 만에 글 한 수(首)를 보고서 확철대오를 했는데, 오늘 이 대중 가운데에는 이 서산 스님이 주신 이 게송,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라. 이 게송을 듣고서 과연 확철대오한 사람이 있느냐 말이여.


왜 고인(古人)은 이 한 수의 게송을 보고 확철대오를 했는데, 어째서 나는 그 게송을 듣고도 확철대오를 못하는가? 과연 법을 위해서 내 몸과 목숨을 바쳤는가?


법을 위해서 참으로 내 몸과 목숨을 바쳐 버린 사람은 이것이 바로 진발심(眞發心)인데,

진발심을 한 사람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이 일시에 돈발(頓發)해서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는 것이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고, 땅을 봐도 땅이 보이지를 아니하는 것이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오직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뿐인 것입니다.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돈발해서 번뇌 망상이 저절로 일어나지 아니하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오직 알 수 없는 의단만이 현전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세수를 할 때나, 양치질을 할 때나, 방선(放禪)을 하거나, 입선(入禪)을 하거나, 화두 하나만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일부러 화두를 들 것이 없어. 저절로 화두가 독로(獨露)해.


이렇게 해서 이러한 경계,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 화두가 현전(現前)을 하게 되는 거여. 이렇게 나가면 일주일이 못 가서 확철대오를 하는 것이여. 이것은 과거에 여러 도인(道人)들이 다 증험을 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여.


'혼침이 와서 못한다. 잡념이 일어나서 못한다. 상기(上氣)가 되어서 못한다. 소화가 안되어서 못한다' 이건 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 이 삼요(三要)가 갖추지를 못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 것이여.


오늘은 결제날이라, 삼동에 지내 가는데 있어서 대중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갈 것인가?

삼요(三要)!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이 몰록 발(發)하면 여러 가지 잔소리가 필요가 없습니다. 규칙에 대한 말도 필요가 없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저렇게 공부를 해라' 그런 말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7분44초)




(2/3)----------------


대중이 이렇게 모여서 노소가, 신참(新參) 구참(久參)과 나이가 많은 분과 나이가 적은 분, 한자리에 이렇게 50여 명 이렇게 모여서 정진하는데 나아가서는, 첫째, 세속의 인연을 다 끊어 버려.


누구 환갑이다, 누구 사십구재다, 누가 돌아가셨다, 일체 없어.

심지어는 자기의 부모가 돌아가시고 자기의 스승이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결제 중에 왕래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옛날부터서 선방에 내려오는 철저한 규칙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서 전보가 오거나 편지가 와도 결제 중에는 본인에게 전달을 하지 아니하고, 사무실에서 보관을 해 두었다가 해제한 날 그 전보와 편지를 전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간에 편지나 전보 같은 것을 전해 주면 자연히 마음이 동요가 되어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안 갈 수도 없고 그것 때문에 정진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정진을 알뜰히 잘하면 이 한 철에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할는지도 모르는데, 그 편지나 전보 한 통으로 인해서 한 철이 그럭저럭 지내가 버리면 앞으로 몇억만 겁이 지내 갈는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모든 인사(人事)를 끊어 버려라.

그리고 집착(執着)과 전도(顚倒)를 제거해.


과거에 자기가 알았던 것, 과거에 자기가 들었던 것, 과거에 자기가 배웠던 것, 느꼈던 것, 모든 것. 옳은 것이나 그른 것이나 일체 것을 다 제거를 해 버려야 돼.

완전히 초학자(初學者)가 되고, 완전히 백지(白紙) 상태가 되어 가지고 한 철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다 담아야 하는 것이고, 그림이나 글씨는 깨끗한 흰 종이에다 그려야지, 얼룩덜룩 다른 글씨나 다른 그림이 그려진 데다가 아무리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댔자 좋은 작품이 나오지를 아니하는 것이여.

언제든지 우리는 정진을 할 때 완전히 백지와 같은 마음, 완전히 아주 유치원 학생과 같은, 아주 초심자와 같은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야 공부가 진취가 있고 올바르게 되어가는 법이여.


진실(眞實)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라. 생사대사를 위하는 그 한 마음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지내갈 것이다 그말이여.


음식에 대한 문제, 자리에 대한 문제, 일체 것에 대해서는 인연 따라서 해.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찰밥이면 찰밥, 밥이 되면 되고 질면 질고, 싱거우면 간장을 더 치고, 짜면 물을 좀 더 치고, 밥이 되면 물을 말아서 먹고 꼭꼭 씹어서 먹고.

어쨌든지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수용한 인연 따라서 맡겨 버리고, 나는 일단 정성이 오직 이 생사대사 이 한 문제만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지내 가지고 석 달 동안이 하루처럼 그렇게 지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국에 선방이 여러 군데가 있지마는 각기 그 선방마다 규칙이 다르고, 가풍이 다르고, 법도가 달라서, 여러 선지식(禪知識)마다 지도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등선원은 또 세등선원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고, 가풍이 있고, 법도가 있습니다. 일단 이 선원에 들어오면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이 세등선원에서 지내는 동안은 세등선원의 모든 규칙과 법도와 가풍에 적응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수행의 자세인 것입니다.


백지 상태가 되어서 여기의 법도(法度)에 순응한다고 하는 것은 왜 그것이 소중한 것이냐 하면,

자기 마음을 비울 줄을 알기 때문에, 또 하심(下心)을 할 줄 알기 때문에, 또 아상(我相)과 아만(我慢)을 한 생각으로 스스로 꺾어 버릴 줄 알기 때문에, 당장 그때부터서 제일보(第一步)가 올바르게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것이 아집(我執)을 비우는 것, 아집을 꺾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번뇌라든지, 팔만사천 마구니가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아(我)를, 아공(我空) 아(我)를 비워 버리는 데에서부터서 도문(道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와 팔만사천 번뇌도 나를 비우게 하는 데에서 다 조복(調伏)이 되고 항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선방에 오면 이 선방의 법도에 깨끗하게 순응하고 적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수행인인 것입니다.

또 다른 선방에 가면 또 그 선방의 법도에 깨끗하게 순응을 할 줄 아는 사람, 정말 진실한 수행인인 것입니다. 그렇게 순응을 하는 진실한 수행인이라야 그 한 철 공부가 짬지고도 알뜰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경(三更)을 제외하고는 수면(睡眠)을 허락지 말 것이며, 시내 외출을 삼가할 것이다.


그전에는 너무 이 규칙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하지 말아라. 지나치게 사소한 일까지 너무 엄격하게 하면은 그것이 공연히 시비가 일어나고, 그러니 일체 규칙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지키도록 하고, 오직 근본 문제, 정진만을 알뜰히 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했더니, 자기 멋대로 온천을 가네, 또 무슨 어디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병원에를 가네.


물론 중대한 병이 일어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아야 할 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인은 병을 다스리되 「모든 병은 나의 업(業)의 원인으로 병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정진을 해서 이 업을 소멸을 해서 그래서 병이 저절로 낫도록 해야겠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자기의 병을 대치해 나가라」 이렇게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을 고칠라고 하지 말고, 의사나 약을 통해서 병을 고칠라고 하지를 말고, 병을 도반으로 알고 선지식으로 알고 공부를 해라」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병이, 그 아프고 괴로운 그때마다 무상(無常)을 느끼고 참회(懺悔)를 하고 신심을 내서 공부를 해 나간다면, 그 병이 나를 죽일려고 오는 병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발심하고 분심을 내게 하기 위한 선지식이요, 도반이요, 채찍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병을 대치하면서 정진을 한 사람은 병 때문에 더 공부를 잘하게 되고 마침내는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것입니다.


선방에서 뭣한 사람은 가끔 책을 꺼내서 읽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로 이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여.

확철대오를 하기 전에는 경(經)을 보지 말아라. 대중적으로 어떤 특별한 경우가 있어서 심경(心經)을 읽는다든지, 금강경을 읽는다든지, 이러한 때를 제외하고는 경을 보지를 말아라.


「이렇게 여법(如法)하게, 여법하게 이렇게 삼 년을 알뜰히 공부를 해서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지옥에를 가겠다」 몽산화상(蒙山和尙)께서 이렇게 맹세를 하셨습니다.


어째서 이 몽산 큰스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맹세를 하셨느냐?

정말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이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서 삼 년을 하면 깨닫지 못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선은 첫째, 신심(信心)이요.


무슨 신심? 무엇이 신심이냐?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대중 외호(外護)를 잘하고, 불사를 많이 하고, 보시를 많이 하고,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고, 이런 것도 신심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신심이지만 이 종문(宗門) 중에 있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의 참다운 신심이라 하는 것은 「나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정진만 하면 나도 결정코 확철대오 할 수가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렇게 믿는 것이 이것이 진정한 대신심인 것입니다.


「나는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나는 여자니까, 나는 무식하니까, 나는 병이 들었으니까, 참선한들 무슨 확철대오가 있을 것인가? 그저 금생에는 인연이나 맺으리라」 이러한 생각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해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여.


남녀노소도 불구하고, 말세도 불구하고,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나도 결정코 견성성불 할 수가 있다」고 믿는 것이 이것이 진정한 신심인 것입니다. 참선은 그러한 마음 없이 참선해 가지고는 되덜 않습니다. 그 생각이 아주 철저해야 합니다.

「이건 내가 양보할 수가 없다. 나도 기어코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바쳐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해.


그 다음에는 대분심(大憤心).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찌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확철대오를 못하고 생사해탈을 못했던가」 그것이 분해 가지고 그 분심(憤心)이 솟구쳐 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분심이 있어야 혼침(昏沈)도 물러가고, 산란심(散亂心)도 물러가고, 저절로 신심이 일어나는 법이고, 사소한 시비에 내가 걸려들 까닭도 없고, 사소한 불평불만이 있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그 신심과 분심이 약하기 때문에 혼침이 일어나고, 산란심이 일어나고, 사소한 시비에 걸려들고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시비가 일어나는 법이지,

밥이 맛이 있니, 지니 되니, 짜니 싱거우니 일어나고, 누가 뭔 말을 하면은 사소한 일에 진심(瞋心)이 일어나고 그러지, 참으로 신심과 분심이 돈발했다면 무슨 시비가 그 앞에 있어?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시간이 가는지를 모르고, 칭찬했다고 해도 좋아할 것도 없고, 누가 나보고 잘못했다고 억울한 소리를 해도 성이 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가서는 대의심(大疑心)이여.


시삼마(是甚麽)! 이뭣고 화두를 하는 사람은 '이뭣고?' 조주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분은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는 사람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앉아서도 화두, 서서도 화두, 밥을 먹으면서 한 숟갈 한 숟갈 밥을 떠 넣으면서도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그 생각뿐이여.

세수를 하면서, 양치질을 하면서, 똥을 누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 있느냐 이 말이여.(17분47초~35분4초)




(3/3)----------------


선방(禪房)에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면, 선방이나 강원이나 발우공양만 하면 쫓기는 사람처럼 막 국에다 반찬에다 밥에다가서 비벼 가지고 그냥, 당장 난리라도 몰아온 것처럼 그냥 후닥닥 긁어 넣는데, 그래 가지고 먹고 나면 가슴이 쓰리고, 트림이 나오고, 소화가 안되고.


금년에 반야선원이나 이 세등선원 대중은 특별히 주의할 것이 공양을 잘 씹어서, 한 숟가락을 입에다 떠 넣으면, 밥만 떠 넣고 반찬은 아직은 넣지 아니한 채 50번을 씹어.

50번을 씹은 다음에 그때사 반찬을 집어 넣고 한 20번을 씹어. 그래 가지고 최소한도로 7~80번을 씹어 가지고 따악 삼키라 그말이여. 그렇게 삼키고 또 국을 한 숟갈 떠먹어.


또 맨밥을 떠 넣고 한 50번을 씹다가, 완전히 입안에서 밥이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어 가지고 거기다 또 반찬을 또 집어 넣고 한 2~30번을 씹어. 그리고는 그놈을 삼키고 또 국 한 번을 떠먹어.

이렇게 해서 최소한도로 30분간에 걸쳐서 공양을 하라. 먹는 시간만 한 30분을 잡으라.


밥 먹는 것도 정진인데, 빨리 밥 먹고 참선 할라고?

그것은 벌써 정신이 틀려 버린 거여. 밥 먹은 것은 정진이 아닌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빨리 밥을 먹고 소화가 안되고, 그런데다 또 무슨 간식을 하고 무슨... 일평생을 끌끌.


그 사람은 정진을 바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여. 선방을 몇십 년을 당겨도 그 사람은 벌써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밥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밥이 그것이 이 몸뚱이, 법당을 잘 간수하는 그 불사(佛事)인데,

첫째, 그 법당을 잘 간수해야 부처님을 잘 모시게 되는 것인데, 법당 하나를 잘 간수를 못한 사람이 무슨 부처님을 옳게 모실 수가 있겠느냐.


입승(立繩) 스님이 단단히 알아서 죽비(竹篦)를 천천히 치고.

첫째, 어간(御間)에 앉은 구참 스님들이 느긋하게 공양을 들어야 돼. 그래야 저 탁자(卓子) 밑에서 그 진지를 하는 대중, 진지하고 들어가서 밥을 먹고 또 숭늉을 돌려야 하고 그러니 시간이 없다 그말이여.


어간에서 일찌감치 먹고 쳐다보고 있으니 밥을 빨리 먹을 수밖에 없고, 그 빨리 먹어놓으니 소화가 안되고, 그리고 또 넉넉히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 첫째, 어간에서 천천히 먹어줘야 그래야 그것이 자비고.


우리가 무슨 영양을 취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밥이라도 잘 소화를 시켜야 하거든. 또 넉넉히 먹어줘야 하고. 그리고 간식을 안 하는 것이 좋아요.

밥을 넉넉히 잘 먹고, 그놈을 흡족하게 완전히 흡수를 해서 뱃속이 편안해야 화두가 잘 들리지, 소화가 안되면은 영 호흡도 잘 안되고 화두도 잘 안 들립니다. 소화가 안되면은 또 영양을 흡수를 못하기 때문에 건강도 좋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한 근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 전국 남녀를 막론하고 선방에서 제대로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30여 년을 겪어봐서 너무나도 이 평범한 일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 잘못되어 가지고 선객(禪客)들의 건강이 좋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니까 깊이 명심을 해서 이것을 실천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양을 그렇게 50번을 씹는 동안에 무엇을 생각할거냐 그말이여. 그때 화두를 들어 보라 그말이여. 혼침은, 누가 밥 먹다 조는 사람은 없거든. 그러니 혼침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그 딱딱딱딱 씹으면서 화두를 떠억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화두를 그놈을 관조를 하면서 공양을 들어 보라 말이여. 어떻게 신심이 저절로 나거든.


밥을 먹고 나면은 그 밥 먹는 시간이 정말 정진이 옳게 되어 가는 시간이여. 그 시간이 정진이 잘되고, 그때 먹은 그 밥이 소화가 잘되고 흡수가 잘되고 그래.


밥 먹을 때 제대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또 세수할 때도 해야 하거든. 여러분이 세수할 때 화두를 들어 봐. 양치질 할 때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고, 세수를 할 때도 고대로 들어 있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변소에 가서 똥을 눌 때에도 화두가 터억 들어져 있고, 똥을 누고 나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또 들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말이여.


잠을 잘 때 자리에 들어서도 화두가 터억 들어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야 잠을 자면서 꿈에서도 화두가 들어질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설사 꿈에는 안 들어지더라도, 마지막 잠이 딱 들 때까지도 화두가 떠억 들어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면, 그 이튿날 아침에 딱 눈을 떴을 때 화두를 새로 들지 안 해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저절로 딱 들어 있어야 된다 그말이여.


이렇게 석 달을 지내 봐요. 정말 수행이란 것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 것이고.


누구를 위한 참선이여? 누구한테 자랑을 하기 위해서 참선을 한 거여?


애들은, 유치원에 댕기는 애는 짜증이 나면, '나, 밥 안 먹는다'고. 밥을 안 먹으면 엄마가 제일 걱정을 하거든. 그러니까 엄마 애 태우고 엄마를 이기기 위해서 뭔 데모할 일이 있으면, '나, 밥 안 먹는다'고 떼를 쓰거든.

그건 어릴 때는 그것이 통해서 밥을 안 먹으면 '아나, 돈 줄께 밥 먹어라' '아, 너 뭐 좋은 것 공책 사 줄께 밥 먹어라' 이렇게 달래겠지만, 우리 수좌(首座)는 정진 안 한다고 떼장 놔봤자 저만 불쌍하고 생사윤회 하지, 별 수가 없어.


어린아이는 우는 것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여자는 남편 앞에 골을 부리는 것이 자기 어떤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방법이여. 돈을 울궈낼라면 골낸 척 해 가지고 신경질을 내면 남편이 돈을 줘. 이건 경전에 있는 말이여.


『치문(緇門)』을 보니까 '치문사기(緇門私記)'에 그런 말이 쓰여 있더라 그말이여.

어린애는 우는 것으로써 힘을 과시하고, 여자는 성내는 것으로써 남편 앞에 힘을 과시하고, 임금은 교만을 부리는 것으로써 신하들 백성들 앞에 힘을 과시하고, 수행인은 정진을 잘하는 것으로써 힘을 과시해라 그랬단 말이여.


속가에서 '머슴, 일꾼을 부리는 주인이 일꾼을 잡을라면은 잘 먹이는 것으로써 일꾼을 휘어잡고, 머슴은 일을 잘하는 것으로써 주인을 휘어잡으라' 이런 속담이 있는데, 우리 수좌는 정진 잘하는 것으로써 나의 힘을 과시해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진을 잘하는 거여?

잠을 안 자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는 것이냐? 묵언을 하고 말을 안 하는 것이 정진을 잘하는 것이냐?


물론 묵언을 하면서 정진을 애를 쓰는 것도 정진 잘하는 하나 방법이 될 것이고.

또 단식을 한다든지 일종(一種)을 한다든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한다든지 그렇게라도 해서 내가 공부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되게 하자. 이러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그것도 정진의 한 방편(方便)이 될 것이고.


'내가 대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장좌불와를 해서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리라' 또는 '내가 세 시간 이상은 잠을 안 자고 정진하리라' 이러한 것도 또한 수행을 애써서 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묵언을 해서 내가 견성성불 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아니하리라' 또는 '내가 한 소식 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아니하리라' 이렇게 해서 묵언을 하는 것도 발심한 사람의 수행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 안 한 것이 정진에 전부가 아닐 것이요,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한 것이 정진에 전부가 아닐 것이요, 밥을 안 먹는 것이 정진에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말 안 한 것이 정진에 제일가는 수단이라면 어릴 때부터 벙어리는 뱃속에서부터 도통(道通)해 나와야 할 것이고, 장좌불와 한 것만이 정진에 전부라면은 앉은뱅이는 참선 안 하고도 도통을 할 것이고, 밥을 안 먹는 것이 정진에 전부라면은 목구녕에 병이 있거나 위장병이 걸려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공부가 아주 잘될 것 같지만 그렇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한 방편 하나는 될지라도 그것만이 정진에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말이여.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이 독로해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려져.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성성해. 일념만년(一念萬年) 회광반조(廻光返照) 하는 이렇게 정진이 되어 가야 해.


그렇다면은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누워서도 정진이요, 밥을 먹을 때도 정진이요.

하루 세 때 먹어. 잠도 5시간 내지 6시간 자. 자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자라 그말이여. 대신심과 대의단과 대분심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잔다면 잠도 정진이요. 삼시 세 때를 먹되 먹는 것도 정진이요.


아까 그대로 먹어봐. 그것이 그대로 정진이여.

꼭 두 끼만 먹을라고 할 것이 없어.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밥을 먹으면 세끼를 먹으되 소화가 잘돼. 그리고 속도 편안하고. 먹은 밥이 그대로 흡수가 잘돼.


그러니 한 숟갈 떠먹는 그 자체가 정진이요, 자리에 누워서도 고대로 정진이요,

구태여 자리에 눕자마자 잘라고 할 것이 없거든. 잠이 올 때까지는 떠억 화두를 들어.

자리에 누워서도 10분 20분 30분 1시간 내에 잠이 안 들어도 상관이 없는 거여. 안 들면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면서 누웠어. 그러다 언제 든 줄 모르게 들으면 그때부터 잠을 자겠지.


잠을 자되 아침에 눈을 딱 뜨면, 내가 한 십분도 안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은 한 너댓 시간이 잘 자졌다 그말이여. 하! 그런데 화두는 엊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거든. 그렇게 정신이 맑고 몸이 가벼워.


이렇게 정진을 해 가면 구태여 옆구리를 땅에 안 댈 것도 없다 그말이여. 구태여 밥을 억지로 안 먹을라고 할 것도 없다 말이여.

이렇게 정진을 하면 몸도 건강하고 정진도 잘되고 어느 사람이 도(道)를 못 통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이번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종전공주부지명(從前共住不知名)이요  금일상봉차비이(今日相逢且非爾)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연만수이물침(月娟萬水而勿沈)이요  풍랭육창이자계(風冷六窓而自啓)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전공주부지명(從前共住不知名)이요. 앞을 좇아 이전부터 함께 살아왔건만 그 이름을 아지 못하고,

금일상봉차비이(今日相逢且非爾)로구나. 오늘 서로 만났으되 또한 그가 아니더라 그말이여.


무량겁 이전부터서 언제나 같이 살아왔어. 단 일분일초도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건마는 그 이름을 알 수가 없어. 오늘 이 자리에서 방금 이 찰나에 서로 상봉을 했건만 그 사람이 아니더라 이 말이여.


달은 연연히 일만 물에 비추건만, 그 달이 물에 빠지지를 아니해.

바람은 냉랭해서 육창(六窓)에 부는데, 창이 저절로 열리더라.



오늘은 삼동결제와 아울러서 백일기도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 선방에 들어오셔서 공부는 직접 스님네와 같이 정진은 못하시지만, 여러 신남신녀께서는 각자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는 것, 일하는 그 자체가 스님네가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정진한 거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까 산승(山僧)이 말씀한 대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일할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가행정진(加行精進)이요, 용맹정진(勇猛精進)이요,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입니다.

그렇게 해 나가면 승속(僧俗)이 차별이 없는 것이며, 선방과 속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이 백일기도에 한 분도 빠짐이 없이 모두 동참을 하셔서 여러분도 같이 이 삼동결제에 방부(房付)를 들인 것으로 그렇게 믿고 알뜰히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35분5초~55분1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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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무한심중사~'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著) '사김신사래방(謝金信士來訪 김신사의 내방을 감사함)' 참고.

*양춘(陽春 볕·따뜻하다 양/봄 춘) ; 따뜻한 봄.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무영수(無影樹 없을 무/그림자 영/나무 수) ; 그림자 없는 나무.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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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삼경(三更) : 二경~四경 (밤 9시~새벽 3시)으로 불가(佛家)의 지정된 취침시간.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마삼근 (麻三斤) : 화두의 하나。『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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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이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 ‘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이 공적함을 생각하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를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어간(御間 거느릴·다스릴 어/사이 간) ; 절의 법당이나 큰방 한복판에 있는 칸.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 ; 비위에 거슬리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여 벌컥 내는 화.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치문사기(緇門私記) ; 조선 후기의 태선(太先) 스님이 『치문경훈(緇門警訓)』을 주석한 책.

사기(私記)란 경론이나 어록 또는 중요 저술 등의 깊은 뜻을 개인 견해로 풀이하여 기록한 것. 사집(私集)이라고도 한다. 사사로운 견해를 덧붙인다는 뜻이 있지만, 구절이나 대의를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놓은 주석서 혹은 참고서로서 조선 시대 이후에 많이 썼다.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①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②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③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연연히(娟娟- 예쁘다·아름답다·맑고 밝은 모양) ; ①빛이 엷고 산뜻하며 곱게. ②아름답고 어여쁘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법문 내용]


(게송)무한심중사~ / 서산 대사에 대한 소요 스님의 위법망구 / 진발심(眞發心),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을 일시에 돈발(頓發)하라.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 각 선방의 법도에 순응하는 것이 훌륭한 수행인의 자세 / 공양하는 법, 밥 먹는 것도 정진, 화두를 들고 천천히 먹어라 / 삼요를 갖추어 정진하라.

(게송)종전공주부지명~ /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용맹정진, 백일기도.



법을 위해서 참으로 내 몸과 목숨을 바쳐 버린 사람은 이것이 바로 진발심(眞發心)인데,

진발심을 한 사람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이 일시에 돈발(頓發)해서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는 것이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고, 땅을 봐도 땅이 보이지를 아니하는 것이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오직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뿐인 것입니다.


밥이 그것이 이 몸뚱이, 법당을 잘 간수하는 그 불사(佛事)인데, 그 법당을 잘 간수해야 부처님을 잘 모시게 되는 것이라, 밥을 화두를 들고 천천히 먹어야 한다.

밥 먹을 때 제대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또 세수할 때도 해야 하거든. 여러분이 세수할 때도, 양치질 할 때도,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면서도 화두가 들어져 있고, 변소에 가서 똥을 눌 때에도 화두가 터억 들어져 있고, 똥을 누고 나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또 들어 있어야 될 것이다.


속가에서 '머슴, 일꾼을 부리는 주인이 일꾼을 잡을라면은 잘 먹이는 것으로써 일꾼을 휘어잡고, 머슴은 일을 잘하는 것으로써 주인을 휘어잡으라' 이런 속담이 있는데, 우리 수좌는 정진 잘하는 것으로써 나의 힘을 과시해야 한다.


아까 산승(山僧)이 말씀한 대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일할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가행정진(加行精進)이요, 용맹정진(勇猛精進)이요,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입니다. 그렇게 해 나가면 승속(僧俗)이 차별이 없는 것이며, 선방과 속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26~50)2017. 11. 11. 18:4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26)—기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80.01.17) (60분)
(1/3)----------------

일휘상인참춘풍(一揮霜刃斬春風)헌데  설만공정낙엽홍(雪滿空庭落葉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자리시비재변료(這裏是非才辨了)인댄  반륜한월침서봉(半輪寒月枕西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휘상인참춘풍(一揮霜刃斬春風)이다. 서릿발치는 칼을 한번 휘두르니 봄바람을 비는 거와 같고, 
설만공정(雪滿空庭) 낙엽홍(落葉紅)이라. 눈이 가득한  뜰에는 이파리가 떨어져서 붉다.

자리시비(這裏是非)를 재변료(才辨了)인댄  반륜한월침서봉(半輪寒月枕西峰)이니라.
 속에 옳고 그른 도리를 알겠느냐? 반바퀴 차운 달이 서쪽 봉우리에 벼개 했느니라.

부처님으로부터서 28(二十八祖) 달마대사는 중국에 건너오셔서 선종(禪宗)에 초조(初祖) 되셨습니다. 일백사십의 고령으로 인도를 떠나 가지고 중국에 오셨습니다.
중국에 오셔서  처음에 양무제(梁武帝) 만났습니다. 양무제가 사신을 보내서 달마스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달마대사를 친견한 양무제는 중국 역대 천자 가운데에 가장 신심이 돈독한 그러한 천자였습니다. 어떻게 신심이 장했던지 자기도 몸소 가사를 수하고, 많은 절을 짓고, 불경을 인포하고 스님네를 많이 외호를 했습니다.

그래서 달마대사를 뵙자마자 ()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시고 많은 스님네를 외호를 하고 했으니,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되오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시기를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조금도 공덕이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확연(廓然)해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달마스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양무제가 그러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요?”
달마대사가 대답하시기를 불식(不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달마대사의 뜻을 양무제는 알지를 못하고 달마대사를 푸대접을 했습니다.

그길로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서 위나라 숭산 소림굴(少林窟) 들어가서 9 동안을 벽을 향하야 가부좌를 하고 면벽관심(面壁觀心) 했습니다.
9 동안을 묵무언(默無言)하신  면벽관심을 하고 계시는데, 그때 신광(神光)대사라고 하는  승려가 인도로부터서 대도인이 오셔서 소림굴에 계시다 소문을 듣고 거기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갔는데 그때가 12 초아흐레경 엄동설한이라 초저녁부터서 눈이 내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밖에 서서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받고자  있었는데, 밤새 눈이 퍼붓어 가지고 허리까지 눈이 차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광대사는 조끔도 움직이지 안 했습니다.

밤이 깊어서 삼경(三更)을 지내고 새벽이 가까웠습니다. 
달마대사가 너무 측은하게 생각을 하시고 네가  눈 속에 밤새도록  있어 무엇을 구하느냐?”
신광대사가 대답하기를 오직 큰스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널리 감로(甘露) 법문을 열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달마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묘한 도리는 무량겁을 두고 용맹정진을 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음으로써 얻어지거늘, 어찌 너와 같은 소덕소지(小德小智), 적은 덕과 적은 지혜로 가벼운 마음과 건방진 마음으로 어찌 참불법의 도리를 바랜단 말이냐. 공연히 그러한 마음으로 헛되이 수고를 해봤자 소용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광대사가  말씀을 듣고 살며시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아 들고, 자기의 왼팔을 !  가지고 스님 앞에 바쳤습니다.
그때 칼로 왼팔을 치니까,  속에서 새파란 파초(芭蕉) 이파리가 쑤욱 솟아올라 가지고 땅에 떨어지려는 팔을 받아 냈습니다. 파초에 쳐진 팔을 들어서 달마스님 앞에 바쳤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달마스님께서 , 그만하면 도를 닦을 수가 있겠구나 속으로 생각을 하시고,
모든 부처님이 최초에 도를 구할  법(法)을 위해서 몸을 바쳤느니라. 네가 이제  앞에 팔을 끊었으니 그만하면 법을 구할 수가 있겠다.  이름을 신광이라 하지 말고 혜가(慧可)라고 해라
그만했으면은 법을 구해 가지고 가(可)히 지혜(智慧)를 얻을 만하다해서 혜가라고 이름을 고쳐 주셨습니다.

혜가대사는 달마대사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법을 가히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부처님의 진리법을 저에게 일러 주십시오
달마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니라

혜가대사가 말씀하시기를 제자의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달마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너의 마음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마음을 편안케  주마

혜가대사가 가로되 아무리 마음을 찾어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해서 너의 마음을  편안해 마쳤느니라

2 혜가대사가 달마스님께 법을 구할  밤새도록 펑펑 쏟아지는  속에  있어서 눈이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마대사는 너와 같은 소지소덕(小智小德) 경심만심(輕心慢心)으로 무슨 법을 구한단 말이냐?’
여기에서 팔을 꺾어서 올리고 비로소 달마대사는 과연 그만했으면 법을 구할 만하다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라 하는 것은 남으로부터서 얻을  있는 것도 아니요, 남에게 이것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바른 스승을 만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달마대사는 혈맥론(血脈論)」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 공과일생(空過一生)이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헛되이 일생을 보내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승으로부터 얻을 것은 없지만 스승 없이 홀로 깨달은 사람은 만 명 가운데에도 희유하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승을 ()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느냐?
 스승으로부터 얻을 것도 없고, 스승이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없이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던가?

이것은 밖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기가 보는 것이기 때문에 스승을 만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다 이것입니다.
밖에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동서남북으로 찾고  찾아서 찾을 수가 있겠지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여.

마치 자기의 눈으로 온갖 세상의 것을    있지만, 자기가 자기 눈은 도저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눈은 거울을 빌리지 아니하면 자기의 눈을  수가 없습니다. 거울 없이 자기 눈은  수가 없는 것이여.

어째서 자기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은 보고, 희고 검고 붉고 누르고  것을  보면서 자기의 눈은  수가 없느냐?
거울을 가자해서만이 자기의 눈을   있는데, 거울을 통해서   있는 자기의 눈은 자기의 눈의 그림자일   자기의 눈도 아니다 이거거든.
거울에 비친 자기의 눈은 자기의 눈의 영상이요, 자기의 눈의 그림자에 불과하고, 실지 자기 눈은 아니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있는  주인공은 하늘을 보고 파란 줄을 알고, 산을 보고 높고 낮차운 것을 알고, 물을 보고 흐르고 있는 것을 알고, 소리를 듣고  소리다,  소리다,  소리다 온갖 소리를  분간하고,
냄새를 맡고 냄새가 구수하다, 구리다, 온갖 냄새를  코를 통해서 알고, 혀로써 온갖 맛을 짜고 싱거운 것을 알고, 몸으로써 춥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써 슬프고 외롭고 성낼 줄을 알면서,

성낼 줄 알고, 희고 검은 줄을 알고, 짜고 싱거운 것을 아는 그놈은 과연 무엇으로써 보며, 무엇으로써 들으며, 무엇으로써 맛보며, 무엇으로써 냄새를 맡으며, 무엇으로써 만져  수가 있는가?

눈으로 아무리 볼래야 보이지 아니하고, 귀로 아무리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고, 코로 냄새를 맡을래야 맡을  없고, 혀로 맛볼래야 맛볼  없고, 손으로 만져 볼래야 만져볼  없는 그놈을 보고 깨닫는 이것이기 때문에,
스승 없이는 아무리 밥을 굶고, 잠을  자고, 피를  번을 토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바로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여.

바른 스승의 지도가 없이 이것을 깨달을라고 몸부림을 쳐봤자 애를 쓰면 쓸수록 빨리 미치는  밖에는 없는 것이여.
스승 없이 자기 혼자 산중에 들어가 가지고 토굴에 들어가서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밤잠을  자고 곡식을 끊고  이파리와 나무 열매를 가지고 연명을 하면서 고행을 해봤자, 조금 () 맑아져서 겨우  것이 점쟁이 같은  밖에는 아니되고, 잘못되면 미치거나 삿된 종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만 만나서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만 한다면 결정코 자기를 깨닫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처음~2058)



(2/3)----------------

어렵다 어렵다하지만 사실은 무엇이 깊이 숨어갔고 있고,  데가 있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깝고 너무 쉬워서 어려운 것이여.
너무 쉽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지, 멀고 깊고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른 스승만 만나고 위법망구적으로만 한다면 마치 목마른 소를 끌어다가 맑은 시냇물에다 대주면  소는 꿀꺽꿀꺽 물만 마시면 갈증이 풀리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끌고 가는데 싫다고 뒤로 버틴다든지, 끌어다 갖다 대주어도  물이 독이 섞여 있나? 이리 의심을 하고  먹는다든지 이러면  소는 갈증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른 스승을 만나서 철저히 믿고 여지없이 자기의 선입관(先入觀)을  버리고 오직 지도한 대로만 여법(如法)하게 닦아 간다면,  사람은 바로 지혜의 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생장환주인공(一生長喚主人公)한데  불수인만회불문(不受人謾回不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일성성하처거(今日惺惺何處去)  만산송백기비풍(滿山松柏起悲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생 동안을 주인공(主人公)! 주인공아!’ 이렇게 길이 불러서, 불수인만회불문(不受人謾回不問)이라.
어떤 도인(道人) 일생 동안을 방에 들어가서 주인공아!’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사람에게 속지 말어라
아무개야!’ ‘!’ 자기가 자기를 불러 놓고 대답을 하고서 사람에게 속지를 말어라 이렇게 일생 동안을 공부를  도인이 있었습니다.

금일성성하처거(今日惺惺何處去). 오늘 성성(惺惺)한데 어느 곳을 향해서 가느냐?
만산송백기비풍(滿山松柏起悲風)이라. 만산(滿山) 소나무와 잣나무에 슬픈 바람이 일어나는구나.
만산 송백에 슬픈 바람 소리가 일어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소식입니다.

 도리는, 참선법은  멀리서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이뭣고?’ 바로 그놈을 찾는 것이여.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성이  때도  성내는 이놈이 ?’ 기쁠 때도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이놈이 뭣고?  이뭣고?’하는 놈」을 그놈을 찾는 것이거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부모한테 나기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이냐?’
부모미생전 본래면목하니까, 30  사람은 ‘30 전에 부모 배에 태어나기 전에 그놈이 무엇이냐?’ 무량겁을 윤회를  왔는데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기  본래면목이 무엇이냐?’ 이렇게 멀리 찾을 것이 아니라,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지금 당장 이뭣고?’ 거기에서 찾아야, 가깝게 찾아야 한다.

이뭣고?’ 「지금 ''하는 이놈이 ?」 언제라도 바로  이뭣고?’ 여기에서 찾어라.
이뭣고?’   없어야 하거든.   없는 곳에   없는  의단(疑團), 그놈을 묵묵히 관조(觀照)해야 한다 그말이여.

이뭣고?’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빨리 깨달을라고, 깨닫기를 기다리고 깨닫기를 바래고, 누가 나를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고, 조끔도 조급한 생각을  필요가 없다.


신라(新羅) 경덕왕 , 지금 진주에 아간(阿干) 귀진(貴珍)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은 큰부자라 많은 종들을 두고 살았는데,
여러 수십 명의 친구들과 () 모아 가지고  계로 모여진 돈으로써 미타사(彌陀寺)라고 하는 절을 하나를 딱 지었다 그말이여.

절을 지어 놓고는 스님네를 모셔다가 놓고 법문도 듣고, 또 자기 계꾼들도  절에 매일 가서 염불을 하는데,
 귀진이라고 하는 집에 여자 종이 하나 있었는데, 종의 이름은 욱면(郁面)이다 그말이여.

욱면이라고 하는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을 따라서 자기도 따라가 가지고 염불을 하는데,
자기는 종이라나서 법당에를 들어가지를 못하고, 주인과 스님네는 법당에 들어가서 정근(精勤) 하는데 자기는 마당에   정근을 한다.

어떻게 열심히 하던지 참, 마당에 서서 밤이 새도록 정근을 하는데, 그 주인이  욱면이를 보고 종의 신분으로서 건방지게 따라와서 염불한다고 당장 집으로 가라!’ 그리고는 그 이튿날부터서는 곡식을  섬씩을  가지고 , 밤새  곡식을 방아를 찧어라’

그렇게 절에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일을 시켰는데, 욱면이는 초저녁부터서 어떻게 열심히 방아를 찧던지   곡식을  찧어 놓으면 이경(二更) 되었다 그말이여.

이경이 지난 뒤에 달음박질을 해서 절로 쫓아와 가지고 절에 와서 정근을 하는데,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 12시까지  곡식  섬을  찧어 놨으니 몸이 피로할 대로 피로하기 때문에 정근을 하다가 졸음이  가지고 까딱하면 넘어질라고 그러고, 넘어졌다 다시 쓰러지고.

그래서  이튿날부터서는 마당에다가 말뚝을  개를 박어 놓고는, 자기 손바닥에다가 송곳으로 구녁을 뚫어서 노끈으로 손을 묶어 가지고  말뚝 위에다 올려 놓고, 쩜매 놓고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서운 정근을 했다 이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하고, 이틀을 그렇게 하고, 한 달을 그렇게 하고,  달을 그렇게 하고 해서 9 동안을 그렇게 무섭게 정근을 했어.

무슨 () 세웠든가? ‘금생에 결정코 불신(佛身) 이루리라. 성불(成佛) 하리라 이렇게 원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정근을 해가지고 9년만에 확철대오를 했는데, 가만히 내가 과연 전생에 무엇이었길래 금생에 이렇게 남의  종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9년만에사 이렇게 도를 통했는가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전생에 자기도 중이였었다 그말이여.

중이였었는데 그때 천수백 명의 대중과 더불어 현생(現生) 불신을 얻으리라하고, 그렇게 맹세를 하고 같이 모다 도를 닦다가자기도 따라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차츰 타락을 해가지고 안일(安逸)하기를 기다리고, 편안하기를 바래고, 그럭저럭 세월을 지내면서 파계(破戒) 하고 그러면서  무서운 시주것을 많이 소모를 했다.

그래 가지고 죽어서자기가 그때 도를 닦던 절이 어디냐 하면은 부석사, 영주에 가면 지금도 부석사가 있어서  무량수전이 국보에 잡혀 있지만 영주 부석사의 소가 되었다 그말이여.
  소가 되어 가지고 십수년간을 참,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일을 했다 그말이여.

짐은 무겁고 힘은 모자라서 어물어물하면 수없이 모진 매를 맞고, 그렇게 십수년을 고생을 하다가,
하루에는 절에서 절로 경전을  수레에다가 실어서 불경(佛經) 운반하는데 무슨 까닭인지 자기 마음이 후련하면서 눈물이 나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말이여. 그러다가 그날 저녁에  소가 죽었어.  소가 소의 몸을 벗었다 그말이여.

벗고서  다음에 어디에 태어났냐 하면은  진주 땅에 아간 귀진이라고 하는  사람 집에 태어났다 그말이여.
 귀진이란 사람은 전생에도 부자로서  영주 부석사에 많은 곡식과 의복과 약과 모다 그런 것을 많이 시주를 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귀진이라고 하는 신도가 전생에 시주한  시주것을  욱면이라고 하는 사람이 전생에 부석사 중으로 있으면서  시주것을 많이 받아먹었다 그말이여.
 많이 받아먹고 도를 끝까지  닦아서 도업(道業) 성취했으면  빚이  갚아졌을 텐데,

그놈을  먹고,  입고 그러면서 도는 철저히 닦지 않고 방일을 하고, 그럭저럭 잘못했기 때문에 소가 되어서 부석사 일을 한량없이 하고 수없는 매를 맞다가, 마지막에 그나마 경전을 실어다가   공덕으로 소의 몸을 벗고 귀진이 집에 종으로 태어났다 그말이여.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서  종으로 태어났어.

그랬다가 금생에  미타사 절에 가서 손바닥에 구녁을 뚫어 가지고 말뚝 머리에다가 짬매 놓고,  9 동안을 피나는 고생을 하고,
낮에는 주인네 일하고, 밤에는 방아를 찧고, 그리고서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끌고 가서 말뚝끝에다가 손을 짬매 놓고  9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피나는 정근을 했다 그말이여.

그랬던 일이  생각이 나는데,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전생에 자기가  일을 생각하니까 너무 부끄러워서, 부끄러운 생각 속에 잠겨 있는데.
하늘에서 욱면 낭자(娘子) 법당 안으로 들어가시오.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염불을 하라 이런 소리가 하늘에서 들리거든.
 소리를 듣고 법당에서 염불을 하던 스님이 나와 가지고, 마당에서 정근을 하는 욱면이를 법당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법당으로 들어갔다 그말이여.

들어가서 부처님 앞에 수없이 절을 하는데 법당 , 법당  도량에 이상한 향내가 풍기면서 하늘에는 장엄한 음악 소리가 풍겼다 그말이여.
그래서  욱면이는 계속해 절을 하더니, 느닷없이 몸이 솟구쳐 천장으로 올라가서 법당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올라 갔다.

그래서 대중이 모다  뚫어진 구녁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밖으로 나가서 이상한 음악 소리가 울리고  향내가 진동하는데 ! 그래 놀래고 이상스럽게 생각했는데,
며칠 있다가 보니까  산의 중턱에 욱면이가 신던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어.  얼마 있다 보니까 산기슭에 욱면이의 몸이 내려와 가지고 앉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욱면이의 신발이 떨어진 자리에는 보리사(菩提寺) 절을 짓고, 욱면이가 몸뚱이  앉아 있는 산기슭에는 제이보리사(第二菩提寺) 절을 지어서, 그것이 지금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일자무식(一字無識) 종의 신분으로 주인을 따라서 절에  가지고  우연히 그런 신심이  가지고,
방아를 찧으라고 하니까  방아를 저녁내 찧어 가지고 놓고는 새벽길로 절로 쫓아가 가지고 정근을 하는데, 잠이 오니까 손바닥에 구녁을 뚫어 가지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했다.

우리는 혜가대사가 팔을 끊어서 달마대사 앞에 바치고 법을 배우는 위법망구(爲法忘軀) 모습을 들었고, 욱면이라고 하는 일자무식의 종이 손바닥에 구녁을 뚫어 가지고 9 동안을 용맹정진을 해가지고, 육신(肉身)으로 등공(騰空) 그러한 영험담(靈驗談) 들었습니다.(20분59초~41분13초)



(3/3)----------------

방아 찧고 절에 가면 밤은 벌써 이경(二更)이라,  소리 염불마다 부처되기 원하더니,
육신 등공 해탈도(解脫道) 증득(證得)하였네,  많다 핑계 말고 욱면처럼 정진하소.
나무~아미타불~

 자리에 계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그리고 비구니 수좌 여러분.
여러분도 혜가대사처럼 위법망구하고, 여자  욱면이처럼 그러한 신심과 분심(憤心) 견고한 뜻을 가지고 정진을 하신다면,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할 것을 나는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보증을 하겠습니다.

옛날 도인(道人) 그렇게 열심히 해서 3년을 해가지고 칠통(漆桶) 타파(打破) 하고 견성(見性) 못한다면 내가 너희들 대신해서 지옥에 가리라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은 세상에서 사업하느라고 시간이 없다’ ‘집안 살림하느라고 시간이 없다’ ‘몸이 아퍼서 못한다 이러쿵 저러쿵 온갖 핑계를 대고,
병이 나으면 하리라’ ‘아들딸 여워 놓고 하리라’ ‘살림이  나아지면 하리라 이렇게 핑계를 대시지 말고, 당장  자리부터서,  시간부터서  생각  생각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일을 하면서도 이뭣고?’

아무리 일이 많다 해도 남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욱면이라고 하느 여종만큼은 일이  많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세등선원에서 한 철 동안을 가행정진(加行精進)  대중 여러분!  그리고 제방(諸方)에서 해제를 마치고 여기에 참례(參禮)하신 수좌(首座) 여러분!
신심있는 단월(檀越)들이 바친 곡석과 의복, 자기의 공부도 뒤로 미루고 우리를 외호해 주신  본방...(녹음 끊김)...용맹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신라  욱면만큼의 고생에는 미치지 못했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의 신심, 우리의 용맹정진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전부  손바닥에다가 구녁을 뚫으라는 말씀도 아니고, 모두  칼로써 왼팔을 끊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것은 그분들이   목숨을 바칠 만한  신심!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법을 위해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무서운 정진,  굳은 9 동안을 하루같이   철썩 같은 !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소신연비(燒身燃臂) 하지 아니하면 무상대도(無上大道) 깨치기 어렵다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당장 손가락에다 불을 지르고, 몸을 갖다가 장작을 쌓아 놓고 몸을 태우고, 이렇게 경전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됩니다.

 뜨거운 것을 참고 이길 만한  참을성 있는, 난행(難行) 능행(能行)하는 그런 굳은 뜻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몸을 갖다가 태울 만한 몸을 헌신짝같이 버릴 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한 정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손가락을 태우고,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태우고, 도끼를 가지고 손가락을 짜르고, 이러한 어리석은물론  신심은 물론 찬양할만 하지만,
 신심이 어떻게 신심을 내느냐? 지혜로운 신심,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 신심을 발휘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제자가 있었는데,  제자는 일생 동안에 너무 호강을 하고 귀염을 받아서, 한번도  발로 땅을 디디지 않았기 때문에 발바닥에 털이 안 났습니다.
그래서 발바닥에  안 난 사람이 있다해 가지고, 인근 마을 사람은 물론  멀리 사는 사람까지  소문을 듣고, 발바닥에  안 난 사람을 구경하기 위해서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소문이 퍼지고 퍼지고 해가지고, 부처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과 인연이 있어서  사람은 출가를 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 제자가 되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을 했던지 몸에 병이 났습니다.

몸에 병이 나가지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불법에 인연이 없어서 병만 나고 도는 이루지를 못하고, 차라리 내가 이렇게 병이 걸려 가지고 고생을 하다가 () 이루지 못하고 죽을 바에는 차라리 집에 돌아가서 편히 먹고, 편히 자고, 그러면서 내게 한량없는 많은 재산이 있으니,  재산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에 공양도 올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도 하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희사도 하고 이러면서 내가 복을 지으면서 여생을 마치리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퇴속(退俗) 마음을 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만히 정중에 살펴보니 제자 하나가 퇴속할 마음을  것을 아시고,  제자에게 가서 네가 속가에 있으면서 무엇을 잘했느냐?”
제자가 대답하기를 제가 거문고를  뜯고, 거문고에 취미와 소질이 있었습니다

, 그러냐. 그러면  거문고 줄을 되게 세게 매면 소리가 어떻드냐?”
너무 세게 매면 소리가  음가가 나오지를 아니하고 까딱하면 끊어져 버립니다

그래, 그러면 느슨하게 매면 어떻드냐?”
너무 느슨하게 매면 소리가  소리가 나지 아니하고 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닦는 것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니라. 너무 거문고 줄을 세게 매지도 아니하고, 너무 느슨하게 매지도 아니하고, 가장 알맞게 거문고 줄을 매야만 정말 아름다운 곡을  수가 있듯이, 이 (道)도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게으름을 부리고, 너무 배불리 먹고, 너무 편안하게 잠만 자고, 해태에 빠져도 도를 이룰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고행을 지나치게 하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것이라, 도는 얻기도 전에  먼저 나가지고 결국은 퇴타(退墮)  밖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출가해 가지고 온갖 설산 안에 있는 많은 신선들을 찾아다니면서  것이 무엇이었더냐.  속에도 들어가고, 가시덤불 위에도 걸어다니고, 밥도 굶고 잠도  자고, 갖은 고행을 누구 못지않게 했지만 나는 도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나친 환락에 빠진 것도 도에 장애요, 지나친 고행도 도에 장애다. 모두가 성스러운 수행이 되지를 못한다. 그것을 내가 깨달았느니라.
네가 어찌 나의 제자로서 나의 잘못된 과거를 네가 다시 밟을 수가 있단 말이냐

 제자는 부처님의 간곡한 말씀을 듣고 다시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여법(如法)하게 도를 닦아 가지고 아라한과(阿羅漢果) 증득을 했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혜가대사의 말씀,   욱면이라고 하는 신라  종의 말씀을 듣고, ‘옳다! 내가 오늘 저녁부터서는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잠을 자지 아니하고 용맹정진을 하리라 이러한 마음을 내신 분이 있을  압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혜롭게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도로 필요한 만큼은 먹어 줘야 하고, 최소한도로 필요한 만큼은 잠을 재워 줘야 합니다. 그래야 병이 난다든지 그러한 퇴타의 인연이 없이 결정코 금생에 도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닦으면 반드시 장애가 일어나 가지고 도를 얻기 전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최소한도로 서너 시간, 너댓 시간은 재워 주고, 재워 주어야  이튿날 눈을 떴을  맑은 정신이 있어서 성성(惺惺)하게 도를 닦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밥도 너무  먹고 너무 기름지게 먹은 것은 그것도 재미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먹어도 못쓰는 것이여.

적당히 먹어 주고, 적당히 재워 주고, 적당히 입혀 줘야, 장애가 없이 도를 얻는 것이니 만큼  도는 지혜롭게 닦아야지, 신심과 용맹과 지혜가 있어야만 대도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이여.
바른 스승을 만나야만 신심이 나고, 바른 신심이 나야만 분심이 나고,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어리석게 닦기 때문에 도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승의 지도를 받는 사람은 바른 지도를 받고  사람이 어찌 퇴타하며, 어찌 마장(魔障) 생기며, 어찌 도를 이룰 수가 없겠습니까.


서왕한래춘부추(暑往寒來春復秋)하고  석양서거수동류(夕陽西去水東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오고, 봄이 지나면 다시  가을이 오는구나. 석양에는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는구나.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
나무~아미타불~

 망망(茫茫) 우주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나개친증도지두(那箇親曾到地頭),  가운데  사람이 친히 대도를 성취할 사람이 나올 것이냐.(41분21~5930)()



----------------(1/3)

*(게송) ‘일휘상인참춘풍~’ ; [청매집(靑梅集)] (청매인오 스님) 상권 ‘少林斷臂’ 참고.
*벼개 ; 베개(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 밑에 괴는 물건)의 옛말. 사투리.
*선종(禪宗) ;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달마대사, 혜가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연(廓然)하다 ; 넓게 텅 비어 있다.
*감로(甘露) ;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믿으면 끝없는 공덕과 이익을 얻는다는 뜻에서 그 가르침을 다디단 이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법인(法印) ; ①묘법(妙法)의 인(印). 진리의 표시. 부처님의 가르침의 표시. 3법인(三法印)·4법인(四法印) 등이 있음. ②이치.
*경심(輕心) ; 경솔(輕率 말이나 행동이 조심성 없이 가벼움)한 마음.
*만심(慢心) ; 근본 번뇌의 하나. 자신을 지나치게 믿고 자랑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깔보는 마음. 우쭐거리는 마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부처님의 가르침. ④본성.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식(識) ; ①인식작용. 식별작용. 대상을 다르게 아는 마음의 작용. ②마음·뜻과 같음. 마음.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2/3)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게송) ‘일생장환주인공~’ ; 卍新纂續藏經 제65책 <禪宗頌古聯珠通集 31권> 불국백(佛國白) 스님 게송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이뭣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 분류 ‘화두(공안)’ 참고.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욱면 이야기 ; [삼국유사(三國遺事)] 감통편(感通篇), ‘郁面婢念佛西昇(여종 욱면이 염불하여 서쪽 하늘로 올라가다)’
*아간(阿干) ; 신라 때, 십칠 관등(十七官等) 가운데 여섯째 등급(等級)의 벼슬을 이르던 말. 육두품이 오를 수 있었던 가장 높은 관등이다.
*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이나 공부에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이경(二更) : 하룻밤을 五경으로 나눈 둘째이니, 밤 9시~ 11시를 말함.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일자무식(一字無識) ;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 또는 그런 사람.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등공(騰空 오를 등,하늘 공) ; 승천(昇天). 하늘에 오름.
*영험담(靈驗談 신령할 영,증험 험,이야기 담) ; 기원(祈願)이나 신앙에 대하여, 신불(神佛)의 불가사의한 감응(感應)이 있는 것을 말한 이야기.



----------------(3/3)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칠통(漆桶)을 타파(打破) ; 칠통(漆桶)은 옻칠을 한 통으로, 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이므로 칠통에 비유한 말이다.
‘칠통을 타파한다’는 말은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참례(參禮) ; 예식, 제사, 전쟁 따위에 참가하여 관여함.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소신연비(燒身燃臂) ; 소신공양(燒身供養).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침. 또는 그런 일.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난행(難行) ; ①행하기 어려움. ②고된 수행.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게송) ‘서왕한래춘부추~’ ; 卍新纂續藏經 제65책 <禪宗頌古聯珠通集 36권> 설암조흠(雪巖祖欽) 스님 게송.
*망망하다(茫茫-- 아득할 망) ; 넓고 멀어 아득하다.



[주요 내용]

(게송)일휘상인참춘풍(一揮霜刃斬春風)~ / 혜가대사의 위법망구 / 바른 스승의 중요성 / (게송)일생장환주인공(一生長喚主人公)~ / 화두는 가깝게 들어야 한다.
여종 욱면의 신심(삼국유사) / 공부하는데 핑계 대지 말라 / 부처님의 수행에 대한 거문고 줄 비유 / (게송)서왕한래춘부추(暑往寒來春復秋)~.


[주요 문구]

법(法)이라 하는 것은 남으로부터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남에게 이것을 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바른 스승을 만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밖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기가 보는 것이기 때문에 스승을 만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다 이것입니다.
밖에 있는 것이란 얼마든지 동서남북으로 찾고 또 찾아서 찾을 수가 있겠지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여.

바른 스승을 만나서 철저히 믿고 여지없이 자기의 선입관을 다 버리고 오직 지도한 대로만 여법(如法)하게 닦아 간다면, 그 사람은 바로 지혜의 눈을 뜰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도리는, 참선법은 저 멀리서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이뭣고?’한 바로 그놈을 찾는 것이여.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성이 날 때도 ‘이 성내는 이놈이 무엇고?’ 기쁠 때도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한 이놈이 뭣고?」  「‘이뭣고?’하는 놈」을 그놈을 찾는 것이거든.

방아 찧고 절에 가면 밤은 벌써 이경(二更)이라, 한 소리 염불마다 부처되기 원하더니,
육신등공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였네, 일 많다 핑계 말고 욱면처럼 정진하소.

이 자리에 계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그리고 비구니 수좌 여러분.
여러분도 혜가대사처럼 위법망구하고, 여자 종 욱면이처럼 그러한 신심과 분심(憤心)과 견고한 뜻을 가지고 정진을 하신다면,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할 것을 나는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보증을 하겠습니다.
옛날 도인(道人)도 ‘그렇게 열심히 해서 3년을 해가지고 칠통(漆桶)을 타파(打破)를 하고 견성(見性)을 못한다면 내가 너희들 대신해서 지옥에 가리라’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세상에서 사업하느라고 시간이 없다’ ‘집안 살림하느라고 시간이 없다’ ‘몸이 아퍼서 못한다’고 이러쿵 저러쿵 온갖 핑계를 대고, ‘병이 나으면 하리라’ ‘아들딸 여워 놓고 하리라’ ‘살림이 좀 나아지면 하리라’ 이렇게 핑계를 대시지 말고,
당장 이 자리부터서, 이 시간부터서 한 생각 한 생각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이뭣고?’

도 닦는 것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니라. 너무 거문고 줄을 세게 매지도 아니하고, 너무 느슨하게 매지도 아니하고, 가장 알맞게 거문고 줄을 매야만 정말 아름다운 곡을 탈 수가 있듯이, 이 도(道)도 역시 마찬가지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26~50)2017. 6. 20. 22:2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40)—임술년 하안거 해제 법어(82.06.17) (54)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11분.

(1/3)----------------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허니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구름이  덮였다가  구름이 활짝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열리니까  트인 파란 하늘이 무한히 끝없이 열렸다.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구나. 하늘에  구름이 열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고, 가을이 되어서 잎이 떨어지면  이파리는 뿌리가 있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한데,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했고.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에 기대서 졸음에 잠겼는데 해는 이미 기울어졌구나.


지난 7 17일에 통도사 호국선원 경봉대종사(鏡峰大宗師)께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이와 같이 가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 선지식(善知識)도 이렇게 가셨습니다. 우리가 신(信)하고 존경하던 수많은 선지식이 이렇게 가셨습니다.


역대조사와 천하 선지식과 삼세제불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자리에서 때로는 탄생의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때로는 닦을  없는 곳을 향해서 고행(苦行) 수도하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생사가 없는 자리에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기도 하고.


선지식 자기 분상에는 전연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즐거울 것도 없고, 이승을 하직했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는 것이지만 중생들은 태양처럼, 어두운 밤에 달처럼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던 선지식을 잃었을 때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한다 할지라도  슬픔이 위안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도 나의 생사 문제가 달려 있는, 일대사(一大事) 문제가 거기에 매달려 있는 등불을 잃었을 때의 슬픔은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수행인은, 불자(佛子)는 그러한 일시적인 감상으로 슬픔에 잠긴다든지, 또는 인사차례로 문상을 가는 것으로써 여기서 저기서 많이 모여든 것으로써 도리를 다했다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출가를 해야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있는 계기를 삼아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임술년 여름안거(安居) 해제날입니다. 원래 7 15,  세등선원은 7 17일에 해제를 해왔습니다마는, 금년에는 4월에 윤달이 들어서 6 15일에 전국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해제를 하고  세등선원도 6 17일에 해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제를 기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15일에 해제를 하고  세등선원에 구름처럼 수행한 납자(衲子)들이 운집(雲集) 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도 해제날에는 멀고 가까운 데에서 정진을 하던 수행자들이 전부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모여서 자자(自恣) 법요식을 거행을 했던 것입니다.


보름마다 계율의 계목(戒目) 읽으면서 대중에 잘못을 참회(懺悔)하는 의식을 포살(布薩)이라 그러고, 해제  부처님으로부터 차례차례 대중을 향해서 호궤합장(跪合掌)하고 그동안 안거 기간 동안에 행여나 본인에 있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을 여러 대중스님이 보신 점이 있으면 자비심으로 기탄(忌憚)없이 지적을 해주십시오


이렇게 대중을 향해서 합장하면 대중도 자비심으로 기탄없이, 스님이  동안에 어떠 어떠한 잘못이 있었다.

대중 잡담이 너무 많아 가지고 본인 자신도 정진을 열심히 아니하고, 대중의 수행을 방해한 점이 많으니  점을 조심하시오


또는 뒷방에서 입선(入禪)시간에 입선도 하지 아니하고 너무 한만(汗漫) 지내고 해태를 부려 가지고 수도원의 선방의 분위기를 곤란하게 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특별히 어떤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고 그래가지고 대중에 화합을 깨트렸으니  점을 조심하시오


패당(牌黨) 지어 가지고 사소한 일에 물의(物議) 일으켜 가지고 대중 전체의 수행을 방해를 했으니  점에 대해서 주의를 하시오

지나치게 외출을 심히  가지고 대중의 법도를 어겼으니  점에 대해서 조심을 하시오


이러한 식으로 차례차례 잘못된 점을 지적을 하기를 대중이 많으면 초저녁부터서 자정을 지내서 새벽에 이르도록 그러한 의식이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원시경전(原始經典)에는 소상하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해제일을 맞이해서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선방과 암자나 토굴에서 수행했던 수좌(首座)님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마치 부처님 당시에 자자의 법요식을 거행했던  원시경전에 쓰여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여러 수행납자들이 모이니 얼굴마다 일대사 문제를 결정코 금생에 해결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의연한 결의가 보이고,  눈에는 생기가 넘쳐 흐르는 것을  때에 너무너무 감개가 무량하고, 기특하고, 신통하고, 고맙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 현사 사비(玄沙師備)라고 하는 선지식이 있었는데,  현사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설하시기를, 제방(諸方) 노숙들이노숙(老宿) 조실(祖室) 스님, 선지식(善知識)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방에 노숙이 접물이생(接物利生) 하는데 '물건을 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접물이생이라 하는 말은 중생을 제도를 한다


제방에 여러 큰스님들이 중생을 제도하시는데,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문득  가지의 병자(病者) 만나면 어떻게 교화를  것인가?


  가지의 병인(病人)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눈먼 장님. 눈먼 장님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장자를 들어도 보지를 못할 것이고 또는 불자(拂子) 그밖에 어떤 죽비같은 것을 ()으로 들어 보인다 해도  수가 없으니, 어떻게  장님을 교화를 하며.


(둘째는) 귀를  먹은,  먹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최상승법을 대사자후(大獅子吼) 부르짖어서 부처님 이상 가는 설법을 한다 하드라도 귀가  먹었으니 어떻게   먹은 사람을 교화를 하며.


셋째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  벙어리를 만나서는 무슨 법을 묻고 물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하니,

어떻게  눈먼 사람과 귀를  먹은 사람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  3가지 종류의 병자를 만나서는 어떻게 그것을 제도할 것인가?


참불법이라면   가지 종류의 벙어리를 제도할  있어야 참으로 불법(佛法) 영험(靈驗) 있다고  것이다. 이러한 법문을 현사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어떤 납자가 설봉(雪峰)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운문(雲門) 선사에게 가서  현사 스님이 설하신 법문을 전하고, “스님께서는   가지 종류의 병신을 만났을  어떻게   가지 종류의 병신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여쭈어 봤다  말씀이여.


그러니까  운문 스님이 예배착(禮拜著)하라. 절을 해라 그러셨습니다. 그러니까  납자가 절을 떠억 했다 그말이여.

절을 하고 일어서니까 주장자로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그말이여. ‘저리 뒤로 물러가라’고. 그러니까  납자가 뒤로 물러섰습니다. 물러서니까 운문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눈먼 장님은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러니 가까이 왔어. 가까이 오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가까이 오라고 하니까 말을 알아듣고 왔으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도리를 알겠느냐?’하고 물으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벙어리는 아니로구나 !   한마디에  승려가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어.(처음~2120)



(2/3)----------------


 대중 가운데는 눈멀고, 귀먹고,   못한 벙어리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장님이 아니었을진대는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주장자(拄杖子) 들었을   주장자를 보았을 것이고, 귀머거리가 아니었으니 산승이 주장자를 쳐서 법상을 한번 쳤으니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벙어리가 아니면 여기서 확철대오한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  불여함구과잔년(不如緘口過殘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해를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


부처님을 10(十生) 따라다니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부처님을 훼방을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은 방해를 치고마지막에 부처님이 정반왕(淨飯王) 태자로 가비라(迦毗羅) 왕국에 태어나실 때는  사람이 사촌동생으로 왕실에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렸을 때부터서 적대(敵對).


처음에 왕실에 사촌이니 서로가 사촌 형제간으로 태어났는데, 까닭없이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에는 반대를 하고 미워하고 훼방을 놓고, 못살게 굴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때에도, 부처님이 야수다라와 혼담이 있으니까, 자기도  야수다라를 지가 마누라로 차지할라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온갖 무술씨름도 하고 활쏘기도 하고, 무슨 무거운 것을 역기를 들기도 하고, 말타기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힘겨루기를  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이 이기셔서 야수다라를 부처님께서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계속 부처님을 갖다가 훼방을 놓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출가 하시니까, 자기도  이후에 출가를 해서 자기도  중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데, 부처님 제자는 자꾸 수효가 불어나고.


자기도  무서운 고행 정진을 해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안되니까 아사세왕(闍世王) 태자로 있을 ,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빨리 부왕을 죽이고 당신이 신왕(新王)이 되시오. 그러면 나도 부처님을 어떻게든지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가지고 나는 신불(新佛)이 될테니까, 당신은 신왕이 되고 나는 신불이 되어서  불법을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면 얼마나 좋겠오


이래가지고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결국은  부왕(父王) 갖다가 감옥에다가 때려 가두었습니다. 가둬서 어떠한 사람도 면회를  수가 없어. 면회를 ! 제한을 하고 일체 밥을 넣어주지 아니하고 굶겨서 죽게 헐랴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하루하루 날짜가 지내가면서 살이 빠져 가지고 피골이 상접을 했는데 벌써 15일이 되고, 20일이 되고  달이 되었어도 죽지를 안 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오직  어머니만을 면회를 허락을 했는데,  대신 음식물을 일체  들어가게 했는데도, 단단히 문지기를 세워 가지고 절대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잠깐 면회만 하고 나오게 했는데 이상하게도 죽을 때가 되어도  죽는다 그말이여.


그래서  드나드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사람 뿐인데, 그래서 나중에 몸수색을 자세히 하고 보니까,

 어머니가 몸에다가 밀가루나 쌀가루를 갖다가 몸에다가 바르고 들어가서 그놈을 긁어 가지고 그놈을 먹겄게  가지고  죽은 사실이 드러나서 나중에는 어머니의 출입도 금지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사세 태자의 부왕이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기 전에 ! 부처님을 한번 친견하고 내가 숨을 거두었으면...’하고 옥중(獄中)에서 지극정성으로 죽기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떠억 그것을 아시고 옥중에 몸을 나투셔서, 신통력으로 몸을 나투셔서 죽어가는 왕에게 법을 설해 가지고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아사세 태자가 왕이 되어 가지고 조달(調達) 한테 그렇게 귀의를 했는데, 조달이가  부처님 회상(會上)  가지고, 그때 마치 목련존자(目連尊者) 사리불(舍利弗) 같은 수제자는 밖에 중생교화를 하러 떠나고 없고 다른 대중만 있었는데,


조달이가 부처님 회상에  가지고 연설을  가지고 부처님은 아침밥을 먹어도 좋다. 또는 병들고 어리고 늙은 사람은 저녁에도 약석(藥夕)이라  가지고 저녁공양도  수가 있다.  아퍼서 죽게  사람은 ()으로 마늘이나 파도 먹을 수가 있다. 또는  아퍼서 건강이 유지가 되지 않는 사람은 약으로 생선이나 오정육(五淨肉)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계율이 엄정허지를 못하고 법도가 문란해서 이렇게  가지고는 무슨 생사해탈을  수가 있겠느냐.  회상으로 오면 털끝만큼도 틈이 없고 서릿발 같이 법도가 엄격하고 그러니  회상에 와서 공부를 하면 백발백중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요달(了達)하니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어리석은 사람이 일어서니까  다른 사람도 우물쭈물하면서 일어서고, 여기서 일어서고 저기서 일어서고  가지고 수백 명이 조달이를 따라가 버렸어. 그리고  사람이  남았어.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얼마 있다가 돌아와 보니 대중이  흩어져 버리고 없다 그말이여.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당신 방으로 돌아오셔서 한참 돌아와 계시는데, 목련존자 사리불존자 돌아와서 보니 대중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사연을 알아보니까 '조달이가 와서 끌고 갔다'


목련존자와 사리불이 그길로 조달이 회상에 가서 다시 설법을  가지고 다시   끌고  버렸어.

끌려가서 보니까 정말 계율이나 법도가 도업(道業) 성취하기 위해서 계율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위한 계율' 주장을 하고, '규칙을 위한 규칙' 까닭없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내세워 가지고 대중을 갖다가 꼼짝을 못하게 다루는데,


거기 가서 그러한 생활을  보니까, 과연 부처님이야말로 대성현이시고 위대한 스승이시라 하는 것을 내심으로 짐작을 하고 있던 판에 목련존자가 가서 설법을 하니까 다시 따라와 버렸다.


조달이가 부애가 나가지고 이제는 이러한 미적지근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해가지고, 코끼리한테 술을 잔뜩 먹여서 흥분을 시켜가지고 미친 코끼리를 술을 먹여 가지고 부처님 어디를 가시는 데다  몰아댔다 그말이여.

미친 코끼리가 쏜살같이 부처님을 향해서  가지고는 밀어붙여 가지고 짖밟게 그렇게 헐랴고 했는데, 부처님이 돌아보시고는 떠억 손을 내밀고 작관을 하시니까, 그렇게 미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를 쫓아가다가는 부처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는 조용허니 엎드려 있다 그말이여. 그래 항복을 .


 미친 코끼리 가지고도 안되게 생겼으니까,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못된 사람들과 같이 부처님이 어디를 가시는 길목에 절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윗돌을 갖다가 굴려가지고 부처님이 답싹 거기에 치이도록 그렇게 계획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그것을 아시고 저리 돌에 다치지 아니할 만한 자리로 조금 피해서 가셨다.


그러니까  약이 올라 가지고는  다시 다음날 인자는 피할래야 피할  없을 만한 장소를 선택해 가지고  바윗돌을 굴렸는데, 부처님께서는  아셨지만 짐짓 피하지 아니하시고 발뒤꿈치를 조금 다치셨어. 그래 가지고 피가 조금 났는데.

부처님께서  피할  있었음에도 불구하시고 피하지 아니하고 결국 다치셨냐 하면 '이것이  전생에 맺어진 업연(業緣)으로 저러는 것을, 내가 신통력으로 피했다한들  업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여. 차라리 금생에 곱게 받아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래가지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으신 것입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이지만, 외도(外道)들의 돌팔매에 맞아서 몸이 산산이 부서진  열반에 드셨고, 비구니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인 연화색 비구니도 신통이 제일이라 미리  알고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조달이에 의해서 맞아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4 사자존자(師子尊者) 제자 하나를 잘못 두어 가지고  제자의 잘못으로 인해서 계빈국왕에 의해서 목이 짤려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그러한 예가 있지만,   대중 가운데 조달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면서 다른 대중스님네마저 도를 닦지 못하도록 방해를  사람이 없었는가?


응당 오늘은 자자일(自恣日) 되아서 본인이 대중을 향해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애원을 해야  것이지만,

그러한 대중의  성스러운 수도장에서 부모와 고향과 청춘을  버리고 생사문제를 요달(了達)하기 위해서 모인  성스러운 대중에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고 남까지 도를 닦지 못하게 방해를 치는 조달이와 같은 물건이 있다면,  사람은 참회(懺悔) 해야  것입니다.


조달이는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생명을 앗을라고 하고, 드디어는 부처님의 몸에 피가 나게 하고 그러한 죄로써 조달이가  있는 땅이  갈라지면서 화염이 솟구치는 불구뎅이 속으로 생함지옥(生陷地獄) 했습니다.

정법(正法) 비방하고,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닦는 스님네를 도를  닦도록 방해를 치고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달이는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훼방을 치고 그러한 오역죄(五逆罪) 지어가지고 지옥에 떨어졌는데, 부처님께서 아란존자를 시켜서 지옥에 가서 조달이한테 이렇게 물어봐라.

지옥고 맛이 어떤고? 이렇게 가서 물어봐라하고 시켰습니다.


아란존자가 지옥에 가서, ‘지옥고 맛이 어떠냐고 부처님께서 물어보라고 허시드라

지옥고(地獄苦) 맛이 천상락(天上樂)보다도  좋다 ! 조달이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언제 지옥에서 나오느냐? 물어봐라 시켰습니다.

언제 지옥에 나오느냐?’하고 물어보니까, ‘석가(釋迦) 지옥에 들어오면 내가 나가겠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 삼계(三界)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 자부(慈父)이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오실 () 있겠느냐 그러니까,

조달이 대답이 석가가 지옥에 들어올 ()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 나갈 () 있겠느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조달이는 부처님으로 하여금, 석가여래로 하여금 보다  빨리, 보다  크게 대도(大道)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보다도 훨씬 먼저 성불을   부처님이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서, 그렇게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갖은 수단과 방편을 통해서 부처님을 경책(警策)  드렸던 것입니다.

조달이의 분상(分上)에는 천당에 올라가나 지옥에 가나 조금도 차등이 없습니다.(2121~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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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되 오늘 세등선원에서 전국 방방 선방에서 조달이와 같은 고불 화현(古佛化現) 대중을 경책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신심과 분심과 대의단을 돈발(頓發) 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자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또한 가하거니와,

그렇지도 아니하면서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은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량겁을 두고 지옥에 나올 분이 없을 것입니다.


산승의 이와 같이 설한 말씀을 듣고, 직접 자기가 그러한 조달이와 같은 일을  사람은 자기가 고불 화현인가 아닌가를 반성을 해야  것이고,


대중은 아무래도 그분이 조달이의 화현이나 고불 화현이 아닌가, 불보살의 화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 때문에 진심(瞋心) 냈다면 참회를 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냈다면 참회를 하고,

틀림없이  사람이 불보살의 화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미운 생각을  풀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진을 앞으로 백배 열심히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지지 말고,  맥혀서   없는 의심, 의단(疑團).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어째서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향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의단이 독로(獨露)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앞으로 산철이 넉달 반이나 되는데,  넉달 반을 그렁저렁 헛되이 보내지 말고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擧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요달을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연전에 모래찜을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말을 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스님네와 신도들이 많은 모래찜질을 해서  가운데  효험을  사람도 수없이 많고, 외래 모래찜을 잘못해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고 그러는데,

모래찜을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은 다른  아니고, 몸에 독이 쩔으다 쩔으다 못해서 아주 병주머니가  사람이 모래찜을 조금 하니까,  독기가 쪼끔 빠져나오다가 말아 가지고, 모래찜을  뒤에도 계속해서  독이 나오다 보니 허벅지나 궁뎅이가  지금 독이 빠져나올라고  피부 구녁이 열려 가지고 가려움증이 있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모래찜을 잘못해서 피부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지금 독이  빠져나온 독이 빠져나오느라고 그렇게 가려운 것이니까,  그러 가려운 증상이 일어나면 더운 물에 목욕을  차례하면 피부약을 바르지 안 해도 저절로 낫게  것입니다.


‘아침 8시부터서 저녁 5시까지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8시간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은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그렇게 해도 또한 괜찮지만, 노인이나 너무 병약한 노인이나 너무 병에 걸려서 탈진한 사람은 그렇게 무리하게  것이 아니고,

아침도 가볍게 죽을 쒀서 먹고  1시간이나 2시간 가볍게 하고,  점심도 가볍게 먹고  쉬었다가 오후에   1~2시간이나 3시간 이렇게 하고, 저녁도  죽을 쒀서 먹을만큼 먹고.

그렇게 해서 살살 자기의 근력과 연령과 모든 상태를 감안해서 지혜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너무 고지식해 가지고 8시간씩 사흘씩 연거퍼 하거나, 닷새 일주일씩 그렇게 연거퍼  가지고 탈진이 되어가지고 아이고, 그놈의 모래찜 하다가 내가  죽을뻔 봤다”고. 다시는 그게  것이 아니라고 악선전을 하고 돌아다닌다.

아무리 좋은 약도  체질에 맞춰서 지혜롭게 먹어야 하는 게고, 아무 운동도  체질에 따라서 적당하니 해야 하는 것이지,


참선(參禪)이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가지고 어리석게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언제  말씀을 하셨냐 하면 부처님이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명성(明星)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가지고,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교진여(憍陳如)  5비구(五比丘)를 위해서  처음에 설하신 법문이 바로 지나치게 호의호식을 하고 그러한 정진을  것도 옳은 정진이 못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못살게 구는 고행을 위한 고행, 고행 일변도의 수행은 올바르지 못하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적당하게 모래찜을 한 번이나  번쯤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래찜에만  빠지지 말고 춥도 덥지도 않은  산철 동안을  이용을 해서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헌디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곡(曲)을 타고 두 곡을 타는데도 아무도 알아 듣는 사람이 없구나.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개인   연못에는 가을 물만 깊구나.(43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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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4 115 신주(新州)’ 송원(松源) () 참고.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廻首煙波裏  漁歌過遠村’

*(게송) 回首看山醉霞流  倚樹沈眠日已斜 ; 『전당시(全唐詩) 540 이상은(李商隱)  화하취(花下醉)’ 참고.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납자(衲子 옷을 꿰맴 /사람 ) ; 남이 버린  옷이나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 자신을 가리킬  사용.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자자(自恣 스스로자/마음대로 ) ; 여름 안거(夏安居)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 · 오계(五戒) · 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 항목(項目).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포살(布薩) ; 산스크리트어 poṣadha, 산스크리트어 upavāsa, 산스크리트어 upavasatha, 팔리어 uposatha 음사. 단식(斷食정주(淨住선숙(善宿근주(近住장정(長淨)이라 번역.

출가자들은 음력 매월 15일과 29(또는 30) 한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을 독송하면서  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재가(在家) 신도는 육재일(六齋日)  음력 매월 8·14·15·23·29·30일에 하루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 지키는 .  포사타(布沙陀,哺沙陀), 포쇄타(褒灑陀)라고도 쓴다.

*호궤합장(跪合掌) ;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기탄(忌憚)없이 ; 꺼림칙하거나 마음에 걸림이 없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한만(汗漫  /흩어질 ) ;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등한함.

*패당(牌黨  /무리 ) ; 서로 어울려 다니는 사람의 무리.

*물의(物議) ;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여)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처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상태.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 – 908) 속성은 ()씨。복건성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젊어서는 낚시질을 좋아하였는데, 30세에 출가하여 공부하는 길을 얻어 가지고는 고향에 돌아가서 음식을 겨우 목숨이 붙어 있을 만큼 먹어 가면서, 바위 밑과 산꼭대기에서  좌선(坐禪)하였다.


설봉 화상이 그에게 선지식을 찾아보라고 권하였으나, 듣지 않고 혼자 공부하여 깨친  있었고,  <능엄경(楞嚴經)> 보다가 크게 깨쳤다. 설봉의 법을 이어 가지고, 매계장(梅鷄場) 보응원(普應院)에서 교화하다가 얼마  가서 복주의 현사원에 옮기었다。후량(後梁) 태조(太祖) 개평(開平) 2년에 74세로써 입적하였다.

그의 저술은 <현사어록(玄沙語錄)> 3,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고, 그의 제자 천룡 중기(天龍重機)에게서 고려의 설악 영광(雪岳令光)선사가 나왔다.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운문의 가르침 ;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9권 제88칙 ‘현사 삼종병 접물이생(玄沙 三種病 接物利生)’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숙(老宿) ; ①오랫동안 수행하여 덕이 높은 스님. 조실스님, 선지식을 말함. ②나이가 많아 경험이 풍부한 사람. ③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불자(拂子 먼지떨이 /접미사 ) ; 짐승의 털이나 () 묶어서 자루 끝에 매어 달은 것으로 벌레를 쫓는  쓰는 생활용구이었으나,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번뇌를 떨어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 사용되고 있다. 주로 설법할  손에 지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설봉 의존(雪峰義存) : (822 – 908) 속성은 ()씨。복건성 천주부 남안현에서 여러 대로 불법을 진실하게 믿어 오는 집에서 났다. 나면서부터 종소리를 듣거나 불전에서 쓰는 물건을 보게 되면  즐거워하는 표정이 나타났고,  마늘 냄새를 꺼리었다. 12살에 아버지를 따라 옥간사(玉澗寺) 갔다가  길로 집에 오지 않고 중이 되었다.

참선을 시작한 뒤에 먼저 염관(鹽官) 갔고, 투자(投子)  , 동산에 아홉  갔으나 얻은 바가 넉넉지 못하였는데, 덕산에게 법을 묻다가  방망이 맞고서 깨쳤으나 아직 훤칠하지 못하다가,  사형 암두(巖頭) 크게 꾸짖는 데서 비로소 크게 깨쳤다.


뒤에 복주(福州) 상골산(象骨山) 들어가서  이름을 설봉산으로 고치고 40 가까이 교화하니, 모인 대중이 어느 때나 1500명을 넘었고, 법을 이은 제자가 56인이 있었다.

 중에는 신라의 대무위(大無爲)선사와 고려의 현눌(玄訥) 영조(靈照)선사가 있었고,  제자 장경 혜릉(長慶慧稜)에게서 신라의 구산(龜山)화상이 나왔다。후량(後梁) 태조(太祖) 2년에 87세로써 입적하였다.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 인가(印可) 받은 제자.

*운문(雲門)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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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주장자(拄杖子 버틸 /지팡이 /접미사 )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 때나 설법(說法) 때에 지니는 지팡이.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 1 1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 89 3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생사문제를 해결하라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입니다.


지금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40~6424)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 아버지.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 아버님 정반왕(淨飯王)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석존(釋尊) 태어난 .

*아사세(闍世) ; 고대 인도 마가다 (Magadha) 왕인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 한자식 이름.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목련존자(目連尊者), 사리불(舍利弗)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약석(藥夕) ; 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

*아란(아난阿難)존자와 지옥고를 받는 조달의 대화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1 17 조달(調達)’ 참고.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 대한 존칭. 여래(如來) 부처님 10(十號)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 ()이다.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 중생을 열반(涅槃)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①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 사용하는 막대기[].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 : 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 뜻을 더하는 접미사. 추상적인 공간에서의  위치 뜻을 더하는 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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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판치생모(版齒生毛), 마삼근(麻三斤)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화두(공안)’ 참고.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위산(潙山)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이르기를 『평생에 듣고  것을 떠나서, 네가 세상에 나오기  너의 본래 면목에 대하여 한마디 말하여 보라』하는데,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서  마디 대답하여 보았으나 모두 아니라고만 하는 것이다.


자기 방에 가서 가지고 다니던 여러 가지 책들을 내어놓고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듣고  것을 여의고는 말할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기를 『그림의 떡으로는 배를 불릴  없다』하고 다시 위산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소견이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하기에 모든 서적을  불살라 버리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여 남양(南陽) 가서 혜충(慧忠)국사의 유적을 보고 거기에 있었다.


하루는  산중에서  역사가 있어서 그도 같이 일하는데, 돌멩이를 주워 던진 것이 대숲에 맞아서 「딱」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나서, 목욕하고 향을 사르고 멀리 위산을 바라보면서 절하고 게송을 지었다.

『한  치는데 모두 잊었네。더 다시 애써 닦을  없네......(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그리고  위산에 가서 법을 받고는, 등주(鄧州) 향엄사에서 교화하였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명성(明星)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 이르는 .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별이 돋을 , 정각(正覺) 이루었다고 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 35세에 성도(成道)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5명의 비구(比丘)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 유적이  녹야원의 . 사슴동산(녹야원),  사르나트(Sarnath)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200㎞가 된다. 탄생(誕生 :  룸비니) · 성도(成道 : 붓다가야) · 입멸(入滅 : 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 성지의 하나.

*교진여(憍陳如) ; 산스크리트어 ājñāta-kauṇḍinya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 음사. 요본제(了本際) · 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오비구(五比丘)  .

우루벨라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다섯 명이 고행했으나 싯다르타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여행을 하여 그곳을 찾아 설한 중도(中道) 이치와 팔정도(八正道) 사성제(四聖諦)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붓다에게 귀의하였으며, 교진여는  자리에서 아라한(阿羅漢) 되었다.

*오비구(五比丘)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 깨달음을 성취한 , 처음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 붓다가 출가하던  부왕(父王, 정반왕) 명으로 이들은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들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

①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 음사(音寫).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 이름, 교진여(憍陳如) ().

②아설시(阿說示) : 팔리어 assaji 음사. 마사(馬師마승(馬勝)이라 번역. 사리불(舍利弗)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설시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목건련(犍連)함께 붓다의 제자가 .

③마하남(摩訶男) : 팔리어 mahānāma 음사. 대명(大名대호(大號)라고 번역.

④바제(婆提) : 팔리어 bhaddiya 음사. 인현(仁賢소현(小賢현선(賢善)이라 번역.

⑤바부(婆敷) : 팔리어 vappa 음사. 기식(氣息장기(長氣)라고 번역.

*(게송)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 ①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4권 제37칙 ‘반산삼계무법(盤山三界無法)’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 송(頌) 참고. ‘三界無法  何處求心  白雲爲蓋  流泉作琴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② 『선문염송』 (혜심 지음) 7권 253칙 ‘삼계(三界)’ 설두현송(雪竇顯頌) 참고.



[주요 내용]


(게송)운개공자활~ / 경봉대종사 열반 /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선지식의 열반상 / 포살(布薩) /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대한 운문 선사의 가르침

조달의 역행, 고불화현 / 아난존자와 조달의 지옥에서의 대화 / 모래찜은 자기의 건강상태에 맞게 지혜롭게 해야 / 참선도 올바르게 정진해야.



[주요 문구]


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이어야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있는 계기를 삼아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참선(參禪)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가지고 어리석게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26~50)2017. 5. 26. 19:3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 (48분)

(1/3) 약 14분. (2/3) 약 20분. (3/3) 약 14분.

(1/3)----------------


임간무사남몽두(林間無事襤頭)허고   영야청소만무회(永夜淸霄萬無懷)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월명명자상조(江月明明自相照)한데   송풍무단냉표표(松風無斷冷飄飄)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임간무사남몽두(林間無事襤冡頭)하고, 임간(林間)에서, 숲 사이, 선원 숲속에서 일없이 남몽(襤冡), 누데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누데기를 떠억 몸에 걸치고,

영야청소만무회(永夜淸霄萬無懷)로구나. 긴 밤 맑은 하늘에, 맑은 밤에 만사를  쉬어 버렸다.


출가해서  닦는 사람이 부모와 형제와 고향을  버리고,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인간의 시비를  버렸어. 그리고서 누데기 하나 걸치고 선방에서, 임간(林間)에서   맑은 밤에 무엇을  일이 있겠느냐.


강월(江月)이 명명자상조(明明自相照)한데, 강물에 하늘에  밝은 달이 떠억 비추는데,

송풍무단냉표표(松風無斷冷飄飄)로구나. 솔바람은 끊임없이 차웁게 나부낀다. 솔바람이 휘휘 불어 . 발심(發心)해서  닦는 납자(衲子)의 모습을 읊은 게송입니다.



신유년 하안거도 오늘로 반산림(半山林)을 맞이했습니다. 과연 지난 한 달 반 동안에 어떻게 정진을 했는가?

형식적으로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를 치고 앉아서 졸고, 방선(放禪)을 하고는 옆에 사람과 잡담을 하지 안 했는가? 쓸데없는 일에 진심(瞋心)을 내고 시비를 하지는 안 했는가?

정말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줄을 깊이 깨닫고 1분 1초를 헛되이 지내지 아니 했는가?


앞으로 반산림, 한 달 반 동안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닦아가기 위해서 오늘 반산림 법회를 갖는 것입니다. 지나간 절반을 돌이켜 보고 거기에서 깊이 다짐을 하고 앞으로 남은 반 철을 철저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 가운데에 공안상(公案上)에 복탁(卜度)을 하지 말아라

고인(古人)의 공안자기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이라든지, 또는 자기 본참공안 이외의 어떤 공안에 대해서 사량복탁(思量卜度)을 하지 말아라.


사량복탁을 하는 그러한 참선은 아무리 해봤자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한다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망가실업(亡家失業)이여, 집안 망하고 자기의 업을 잃어버리는 거여.


양가득죄(兩家得罪)여. 속가에서 부모와 고향을 버리고 나왔으니 불효자고, 출가해 가지고 부처님 제자로서 올바르게 수행을 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했으니 절에서도 부처님의 제자로서 죄를 지은 것이여. 그래서 망가실업이요, 양가득죄다.


차라리 참선(參禪)을 아니하고 염불을 하든지, 주문을 외우든지,  무슨 심경이나 금강경이나 몽수경을 외울지언정 명색이 참선을 한다면서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참선은 하지 말어라. 그러한 요지의 법문이 계셨습니다.

 가운데 있는 선객(禪客)이나 신도님 가운데에는 그러한 잘못된 참선을 하고 있는 분은  계시겠지만, 자기는 아니한다고 하면서도 사량분별을 하고 있는 수가 허다히 많다.


다못   없는 의심.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 어째서 무라 했는고?’ 시삼마 화두를 하는 분은 이뭣고?’  ‘'이'하는 이놈이 뭣고?’ 다못 그렇게만 공부를 지어  것이다.


다못  막혀서   없는 의심뿐이어야지, 만에 하나라도 사량심을 거기다가 붙이고 분별심을 거기다 붙이고 이론적으로, 어로()로 따져서 , 이런것이로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사량복탁이요, 사구선(死句禪)이요, 죽은 참선이라.


화두 하나만 올바르게   알면  사람은 공부를 바로  가는 것이다.


다못  맥혀서   없는 의심뿐이어야지그럴 때에는  맥혔으니 답답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나아간  같지도 않고, 하지만 꽉 맥혀서   없는 의심뿐인 사람은  공부를 정말 참되게 옳게 해 가고 있는 것이고, 공부가 옳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 오늘  사람의 수좌(首座)로부터 공부에 관한 자문을 받았는데,  정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상관이 없어.

걸어갈 때나,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말을  때나, 말을 아니하고 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분별이 없이 다못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없는 화두만을 거각(擧却)할 뿐이여.


그렇게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때도 없이, 어떠한 특정한 장소도 없이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갈 뿐이지만,

그래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앉아서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기본자세로 정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힘을 얻기 쉽다.


그래서 고래(古來)로부터 참선(參禪)을 좌선(坐禪)’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것이다. 기본자세로 앉아서 정진한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득력(得力)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래 해 온 것이다.(처음~1348)



(2/3)----------------


앉아서 다못 화두만을 거각할 뿐인데, 기왕 먹는 떡에 살을 박아서 먹어라

흰떡을 풍풍 찧어서 그냥 뭉탱이로 만들어 가지고 아무렇게 생겼거나 말았거나, 입으로 비어서  씹어서 먹으면 그만이지만. 아! 그걸 길게 길게 가래떡으로 늘여 가지고, 그것을  떡살로 눌러서 옴자나 꽃무늬나 그런 모양을 박아 가지고 그렇게 먹는다 그말이여.


뭐하러 그냥 먹으면 좋을텐데  아프고 시간 걸리고 힘들여서 떡살로 박아서 먹느냐 그말이여.

그래도 먹는 떡에 살을 박아서 먹으면 접시에다 놓아도 좋고, 봄에도 좋고  먹기도 편리하고 그렇듯이, 앉아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엎져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아무렇게 해도 상관이 없고.


그렇지만 이왕이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호흡도, 아무렇게 쉬어도 호흡을   쉬고 누가 사는 사람이 있느냐 그말이여. 누웠거나 앉았거나 숨은 전혀 의식을 하지 아니 해도 무의식 중에 콧구멍으로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살게 되어 있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숨을 아무리 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고, 심지어는  잘 때도 스스로 숨을 쉬게 되고, 잠자고 있을 때도 누가 콧구멍을 살며시 막을라고 하면은 무의식중에 손을 ! 때려서 치워 버리고 숨을 쉬는 것이다 그말이여.

갓난애기도 누가 콧구녁을 막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기도  앞을 갔다 손으로 집어 쳐 버리고 숨을 쉬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숨을 무의식중에 쉬게 되는데 구태여 무슨 단전호흡(丹田呼吸)이다, 복식 호흡(腹式呼吸)이다  그렇게  필요도 없을  같지만,


그래도 단전호흡 하는 법을  알아서 여법(如法)하게 단전호흡을 하면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됨으로써 몸안에 있는 노폐물이  밖으로 배설이 되고, 따라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기 때문에 기왕이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서 단정히 앉아서 호흡도 안정되게 단전호흡을 하면, 그러면서 화두를 거각하면 정진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첫째, 상기병(上氣病)을 예방을 하고,

까딱하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꾸 의심을 들고 들고  들고 그렇게 의심을 하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머리로 상기(上氣)가  우려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


항시 의식적으로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이 약간 볼록해진 것을 의식을 하고, 내쉴 때는 약간 홀쪽해지도록 느끼면서 하면은 우리의 의식이 하복부에 집중이 되기 때문에 몸의 기운도 하복부로 기운이 모여지게 되는 것이다.


‘기운’이라 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는 전혀 모르는 소리고, 동양 의학이나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는 기운’ 소리를 이해를 하고 말을 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기운’이란 소리를 몰라.

전혀 모르고, 아무리 신체 해부를 해도 그것이 나타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만 실지로 우리가 생활을 해 보면, 흥분을 하면 벌거니 위로 상충(上衝)이 되서 얼굴이 붉어지고, 참선을 해 보면 머리가 개운하고 상쾌하고 깨끗하게  때가 있고.


괜히 머리로 기운이 위로 올라가 가지고 얼굴이 약간 붉으면서 골치가 띵해 갔고 맑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리 공부를 헐라고 해도   안되는 것같이 기분이 나쁘고 그런 것을 느끼는데, 분명히 그게 상기의 일종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몸을 바르게 단정히 갖고, 그리고서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머리가 자연히 개운해지면서 상쾌하면서 성성(惺惺)하게 정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항시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그러는데,


 단전호흡을 잘못하면너무 억지로 힘을 쓴다든지, 너무 숨을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이 배가 빵빵해지도록 숨을 들어마시고,

그리고   있으면 오래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을 참으면서 얼굴이 벌거질 때까지 참고 있다가, 내쉴 때는 아주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을 때까지 하고 해서 너무 무리하게 단전호흡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어깻죽지가 눌린 것같이 느끼기도 하고, 오목가슴이 조여들어서 그다음에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면, 숨을 내쉴라고 해도 내쉴 숨도 없고, 들어마실라고 해도 들어마시지도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고 그러는데, 이것이 모두  단전호흡을 무리하게 잘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억지로 무리하게 해서 부작용이 일어나게  바에는 단전호흡을 아니하고 그냥 호흡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갖지 말고, 지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그말이여. 그리고 그냥 화두만을 자꾸 들면 차라리 그게 나은 것이다.


 참선도 불법(佛法)에 여러 가지 수행 방법 가운데에 최고의 방법이지만 참선도 잘못하면—아까 사량복탁을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간다든지, 또는 화두도 없이 우두거니 빈곳을 들여다보고 앉았다든지, 이런 식으로 참선을 잘못하면 차라리 참선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해.


그와 마찬가지로 단전호흡도 올바르게 잘하면 상기병도 예방을 하고, 상기병이 걸린 사람도 이것을 잘하면 상기병을 나을 수도 있고, 위장병이 있는 사람도 위장병이 나을 수도 있고, 소장이나 대장이 좋지 못한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런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온갖 병을  단전호흡을 함으로써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하는 가운데에 언제 어떻게 낫은 중도 모르게 그러한 병이 자연히 낫게도 되는데, 잘못하면 없는 병이 생길수도 있다.


그래서 욕득장생(欲得長生)이라가 반치요절(反致夭折)이다. 장생(長生)을 할려고  것이 오히려 생병(生病)이 나가지고 일찍 죽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고인은 말씀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 녹음법문 가운데에도 단전호흡에 관해서 가끔 법문을 하셨고, 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전호흡에 대해서 말했지만,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해야지 잘못하면은 그러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세등선원이 창설된 뒤로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대중이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알뜰히 해 오고 있는데, 특별히 금년 여름에는 예년에 비교해서 수효가 조금 적지만 그래도  정진을 여법하게 하고 알뜰히 하고 참되게 공부할려는 수좌님네들이 이렇게 모여서 아무 말없이 하루하루를 그렇게 진지하게 그렇게 열심히 정진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십 , 오십 , 육십 ,  , 많이 모여야만 좋은 것도 아닙니다. 너무 수효가 많으면은 장소가 협착하고, 덥기는 하는데 몸에서 일산화탄소는 풍풍 발산을 해서 방안 공기는 더운 열기와 더불어 탄산가스가  차 가지고 대단히 답답하고 그러는데.


 드문드문 앉아서 이런 때를 기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면 그것이 참으로 훌륭한 선방이요, 참으로 알뜰히 공부할  있는 좋은 여건이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석 달 가운데에 한 달 반을 정말 지난 한 달 보다도 훨씬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과연  날씨는 더웁고 모기는 들어와서 물고, 파리는 들어와서 여기 앉았다 저기 앉고, 저기 앉았다 여기 앉고, 불쾌지수가 나날이 이렇게 높아 가는데 어떻게  기간을 지혜롭게 정진을  가느냐?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죽비()만 치면 5분도  가서 등허리에 땀은 흐르고, 아랫도리에 땀이 배서 중의(中衣)를 적시고, 꾸벅꾸벅 졸음은 오고 더군다나 오후에는  심한데, 어떻게 하면은 그러한 것을  극복을 하면서 알뜰하게 공부를  것인가?


정말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정(大疑情)이 돈발(頓發)을 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정진을 가다듬도록 해야  것입니다.


입승(立繩) 스님이 가끔 가끔 죽비로써 경책(警策)을  해서 대중으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잘하도록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을 텐데,

입승 스님이 너무 조용하기만을 좋아해서   있으면 말을 아니하고,   있으면 소리를 안 내기를 좋아해서 남이 졸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그래서는 아니  것입니다.


졸고 있는 사람 한번씩 경책을 해서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하도록 해 주는 것도 자비 가운데는  이상   자비가 없는 것이니,

당신만 혼자 너무 오래오래  졸지를 말고, 다른 사람 조는 것을  깨와 주면 자기 자신의 졸음도 깨와지게 되고, 그렇게 해서 너도나도 같이 공부를 잘하게  것입니다.


깨와 주면 모다 신심이 나서 공부를 잘할 텐데, 깨와 주지 않고 마냥 졸도록 내버려두면—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한 가운데에 적적(寂寂)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성성해야지, 혼침(昏沈) 속에 빠져 가지고는 공부가 성성하다고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은 실컷 졸고, 졸다 못해서 엎드려 가지고 코가 땅에가 닿도록 코를 땅에다   코를 골면서 그렇게 있다가 일어나서도, “뭔 잠을 그렇게 자냐?” 그러면 내가 잠을 언제 자냐?”고.

아야, 코를 땅에다 대고   사람이 누구냐?”고. “삼매(三昧)에 들었지, 내가 졸기는  졸아야.

! 이래 가지고 깨우면 깨웠다고 신경질을 내고 나는 삼매에 들었는데  깨우냐?”고.


입승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해서 방선(放禪) 시간이 되어서 시계는 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죽비(竹篦)를  치고, 오줌은 매려 와서 죽겠는데 죽비는  치고 그래서 깨우면은  내가 삼매에 들었는데, 삼매에  사람을 깨우는 죄가 얼마나 큰데 깨웠느냐”고 아주 신경질을 내고.

내가 죽비를 안 치드라도 내가 삼매에  것이니까 깨우지 말고 변소에  사람은 갔다오지  깨우지 마라”고. 이렇게 신경질을 내고 하는 분이 어느 남자스님 구참스님 가운데에 있단 말을 들었는데.


삼매도 좋지만 우리가 대중이 서로 이렇게 모여서 사는 데에는 어쨌든지 성성하고 적적하게.

혼자 토굴(土窟)에 가서견성(見性)한 뒤에 혼자 토굴에 가서 보림(保任)을  때에는 앉아서 졸거나, 누워서 졸거나, 도량을 거닐거나, 밤잠을 안 자고 돌맹이를 짊어지고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댕기거나, 그거야 자기 멋대로 하겠지만.


 자리는 득도자출(得道者出)이여. ‘도를 얻은 자는 나가!

도를 얻어서 견성한 사람은 아무데라도 제멋대로 가서 토굴에 가서 살던지, 오장치를 짊어지고 댕기면서 두타행(頭陀行) 하던지, 다리 밑에서 얻어먹고 거지떼 하고 어우러서 살던지, 그거야 삼천리강산에  곳마다 자기  곳이요, 자기가  곳이요, 자기가 머무를 곳이지만.


 자리는 너나   없이    없는 화두 하나만을 거각하고, 규칙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면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공양하고, 같은 시간에 정진을 하고, 같은 시간에 운력을 하면서  같이 금방 들어온 초학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부해 나가는 그러한 수도원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도량(道場)은 도를 닦아 가는 데에는 가장 이상적인 도량이다. 너나   없이 초학자의 기분으로 도를 닦아 가는 것이다.

나는 구참(久參)이니까 그것을 안 해도 좋고, 신참(新參)이나 그런 것을 해라 그런  아니라, 모든 것을 구참이  솔선해서  .  숙식 같이 하고 무엇이던지 같이 하면서 오히려 모범을 보이면서 그렇게 하는 곳이다.


그리해야 신참이 배우기가 좋고, 신참들이 구참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기 때문에 버럭버럭 수행인으로서의 자질이 갖추어지는 것이다.(1349~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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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여.

밤잠을 안 자고 하는 것도 가행정진(加行精進)의 하나요, 오후불식(午後不食)이나 일종(一種)을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방법이요, 묵언을 하고 말을 아니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방법이지만,

말을 아니 한다든지, 잠을 안 잔다든지, 또는 밥을 굶는다든지, 이러한 것은 육체적인 면으로 가행정진이 표시된 것이고,


진짜 가행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은 그런 밖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정신적인, 마음으로 다져 나가는 채찍질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한목 돈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는 ,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억지로 잠을 안 잘라고, 억지로 밥을 굶고 억지로 말을 안하고 벙어리 흉내를 해도, 속으로 온갖 시비(是非)에 참견하고, 온갖 분별심을 내고 온갖 번뇌 망상을 하고 시비에 휩싸이고,

화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성성적적하게 들리지는 아니하고, 그러면서 잠만 안 자면 무슨 그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라  것이 있느냐.


잠을 안 자는 것으로서 가행정진을 삼는다면 불면증이 있어    사람은 벌써 진묵겁(塵墨劫) 전에 견성을 했을 것이고. 등창이 나서 앉은뱅이는 공부를 누구보다도  잘할 것이고,

나면서부터 벙어리로 태어난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도통(道通)해 가지고 나올 것이고, 위장병으로 밥을  먹은 사람은 일찍 도를 통하겠지만은 그러한 것이 아니거든.


밥을 굶는다든지, 잠을  잔다든지, 말을 아니한다든지 그것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분심을 내고 발심을 하고 보다  공부에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단식이나, 오후불식이나, 묵언이나 또는  시간  시간을 덜 자고 몸부림을 치고 애를 쓰는 , 대단히 갸륵하고  존경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근본을 망각하고 형식적인 지엽적인 데에만 치중을 하면 기본축말(棄本逐末)이여. 근본은 버리고  지엽(枝葉) 끄터리를 쫓아가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물론 뿌리도 튼튼히 하고 가지, 형식도 충실히 한다면 그거야 금상첨화(錦上添花)요,  이상  좋을 수는 없지만, 항시 근본에 대해서  충실할  알면 지엽적인 것은 자동으로 따라가는 것이 최상승(最上乘) 학자의 수행 자세다.



밥을 먹을   숟갈 떠서 입에다 넣고 그것을 씹으면서 이뭣고?’하며 화두(話頭)가 현전(現前)하도록 하면서 밥을 저작(咀嚼)을 하고,

 오십  내지 팔십  저작을 해서 밥이 완전히 죽이 되도록 씹은 다음에 거기에다가 반찬을  집어넣고   이십  이렇게 씹어서  섞어 가지고 삼키고.


 밥을  숟갈 입에다  넣어서  오육십 번, 칠팔십   씹은 다음에 거기다  반찬을 집어넣고   이십  씹어서 삼키고, 그렇게 공양(供養)을 해 보면 공양을 하면서도 화두가 떠억 들리고, 화두가 들린 상태에서 공양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도처(到處)에 선방을 보면 밥을 어떻게 빨리국에다 말아서 반찬 넣어서 뚜적뚜적 섞어 가지고는 그냥 우물우물해서 꿀떡, 우물우물해서 꿀떡 삼키고는 그냥,

다른 사람보다도 행여나 뒤질새라 거뜬거뜬거뜬 그저 집어넣고는 먹고 나서 끅끅 트림을 해쌌고, 한동안 속이 더부룩허니 소화가 안되고 그래 가지고는 항시 그저 소화제를 먹어쌌고.


그런 데다가 무슨 간식거리가 생기면은 거기다  간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는 항시 그저 선방에 몇 철만 댕겼다 하면은 위장병이  생긴 사람이 거의 없다.


밥을 빨리 먹는다고 누가 상을  것도 아니고. 느긋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공양하고, 공양하면서 화두를 놓치지 아니할 만큼 되어야 하거든!

밥만 들어왔다 하면은 허천난 거지 귀신이 붙은 것처럼 그저  우닥닥 때려넣고 화두는 어디  곳이 없고. 그래서는 수행인이라  것이 없어.


 먹으면서 화두가 들어지도록 그렇게 단속을 해 가고, 변소에 가서도 화두가 들어지도록 하고, 세수를 하러 가면서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하면서도 화두가 들어지도록 하고,

일체처 일체시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가 여일(如一)하게 들어지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가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찌 공부가 안될 것이냐 그말이여.


의심이 간절(懇切)하게 안 들린다하지만 그렇게 다잽이를 하면 머지않아서 순일하게 되는 것이여.


그런 사람에게 무슨 시비가 있을 까닭이 없으며, 무슨 잡담이  겨를이 없는 것이며, 공부가 안될라야 안될 수가 없는 거여. ! 그렇게 한철을 지내봐. 얼마나 기가 막힌가.


그렇게 공부를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죽비 치면 돌아앉고, 돌아앉아서 죽비만 쳤다 하면은 그저 졸고, 방선 죽비만 쳤다 하면 그저 잡담하고 그저 이러쿵저러쿵 해쌌고, 그런 식으로 해 봤자 3, 4, 10, 30년을 선방으로 돌아댕겨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우리가 과거에 무슨 깊은 인연을 맺어서 이렇게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정진을 하며,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공부를 하게 되었는가?

숙명통(宿命通)이 열리기 전에는  수가 없는 일이지만, 숙명통이  열렸다 하더라도 인과법(因果法)으로 미루어서 보면 숙명통으로  것이나 다름없이 짐작을 수가 있는 거여.


구체적으로는  수가 없지만 반드시 과거에  부처님 밑에서나, 같은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같이 공부한 , 두 생이 아니라 여러 생을 그렇게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회상(會上)에서 이렇게 지내게  것이다.  인연이 깊고 깊은 것을 헤아릴 수가 없어.


이러한 좋은 그리고 깊은 인연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있도록, 그러한 결과가 빠른 장래에 오도록 우리가 서로 밀고 잡아댕기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공부를 알차게 해 나가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는 공연히 조급한 마음을 낸다고 해서 그건 잘한 것이 아니여.

조급한 마음을 내면마치 거문고 줄을 고를  너무 되게 줄을 땡기면은 줄이 끊어지거나, 끊어지는 소리가 나는 게고,  끊어질까 두려워서 너무 느슨하게 줄을 매면 딩딩 해 가지고  음가가  나올 것이다 그말이여.


정진도 너무 급한 마음으로 볶아대도 오히려 병이 나고 부작용만 나지, 도업(道業)은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늘어져 빠져 가지고 행여나 병이 날까 봐서 노인 장에 가듯이 너무 그냥 몸을 애끼고 새리고 그래도, 그것도 못쓰는 게고. 그걸  알아서 지혜롭게 공부를 다그쳐 나가면 반드시 도는 이루고야만 마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한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는데, 가다가 중간에 걸리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지만 아니한다면 그리고서 계속  따라서 내려가면 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도를 중간에 가서 쉬지 않거나 또는  생각으로...(녹음 끊김)  법문이 기가 막히게  요긴하고 핍절(逼切)한 법문이다 그말이여.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해 봐! 어째서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가.  몸뚱이로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록 운산(雲山)에 천만사(千萬事)를 말한다 할지라도,  구름과 같이 산과 같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한다 할지라도  바다 위에 하늘에 떠있는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느니라.(3344~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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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 사투리.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납자(衲子) :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 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 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 미륵이라 한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화두 ;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화두(공안)’ 참고.

*사구선(死句禪) ; 사구참선(死句參禪).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고래(古來) ; ('고래에', '고래로' 꼴로 쓰여)옛날부터 줄곧.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안되던 것이 할라고  해도 저절로  되어질 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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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살로 찍은 무늬.

*떡살 ; 떡에 갖가지 무늬를 찍어 내는, 나무나 사기로 만든 . 또는 그것으로 찍어  무늬.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양의 2() ((((()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상충(上衝 위 상/찌를 충) ; 위로 치밀어 오름.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중의(中衣) ; 남자의 여름 홑바지.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疑情) :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1.5~2m  죽비.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삼매(三昧) : () ①계()•()•() 3학의 하나。②[]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 말함.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천진함을 보전하고  자재함을 따른다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오장치 ; ‘오쟁이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두타행(頭陀行) ; ‘두타의 수행 말한다. 두타(頭陀)는 산스크리트어 dhūta(흔들어 떨어뜨린다, 버리다, 씻다 등의 ) 음역(音譯)으로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고 오로지 청정하게 불도(佛道)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타행에 12종이 있는데, ①재아란야처(在阿蘭若處, 인가人家를 멀리 떠나  숲이나 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 ②상행걸식(常行乞食, 항상 밥을 빌어서 생활한다). ③차제걸식(次第乞食,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한다). ④수일식법(受一食法,  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아니한다). ⑤절량식(節量食, 발우 안에  것만으로 만족한다). ⑥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이나 사탕 따위도 먹지 아니한다).

⑦착폐납의(着弊衲衣, 헌옷을 빨아 기워 입는다). ⑧단삼의(但三衣, 重衣·上衣·內衣 밖에는 옷을 갖지 않는다). ⑨총간주(塚間住, 무덤 곁에서 살면서 무상관無常觀을 닦는다). (10)수하지(樹下止,  때에는 정자나 집을 택하지 않고 나무 밑에서 쉰다). (11)노지좌(露地坐, 나무 아래에서 자면 습기, 새똥, 독충의 피해가 있으므로 露地에 앉는 ). (12)단좌불와(但坐不臥, 앉기만 하고 드러눕지 않는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않고 도량으로 읽음.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신참(新參 ·처음 /참구할·참여할 )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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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지나면 먹지 않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금상첨화(錦上添花) ;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뜻으로, 좋은  위에  좋은 일이 더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저작(咀嚼 씹을 /씹을 )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도처(到處 이를 / ) ; 여러 .

*허천나다 ; (사람이)몹시 굶주리어 지나치게 음식을 탐하다. ②어떤 일에 염치없이 욕심을 부리다.

*여일(如一)하다 ; (사람의 언행이)처음부터 끝까지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새리다 ; ‘사리다(짐승이 겁을 먹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구부려 끼다)’ 사투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끌텅 ; ‘그루터기(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또는 그것들을 베어 내고   남은 밑동)’ 사투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한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중략)...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 『사십이장경』 27번째 장(章), '무착득도(無著得道)'


[참고] **송담스님(No.210)—83 칠석법회(83.08.15)에서.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를 데리고 무능적국(無能敵國) 들어가셔서 항하(恒河) 강변을 지나고 계실 때에, 마치  수행승이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법문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승에게 무슨 법문을 해주셨냐 하면은 마치 그때에 갠지스  가운데에  나무 기둥 하나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기둥을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면서  기둥을 봐라!  나무 기둥이 이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며,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도 들어가서 뱅뱅 맴돌지 아니 하면, 결국은  나무 기둥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는  바다로 도달하고  것이니라


그러면 이쪽 언덕에 걸리지 않는다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뚱이로 감각하고, 생각으로 알고 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걸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게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한다 말은 안이비설신의의 상대가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깥 경계에도 집착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중간에 걸리지 아니한다 하는 것은 눈으로 어떠한 () 보면 속에 안식(眼識)이라 하는 것이 생기고, 귀로 바깥 경계 소리를 들으면 속에 이식(耳識)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식(六識) 생기기 때문에  육식에도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소용돌이 속에 걸리지 아니한다하는 것은 학문이나 경전이나 그러한 것을 보다가 알음알이에 집착을 한다고 하는 데에 비유를  것입니다.


요새 불자 가운데에 지성인 측에서 교리적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는데, 무슨 경전이나  부처님의 소중한 진리가 담겨있는 법문이기는 사실이나, 그러한 경을 올바르게 보지를 못하고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데에 맛을 붙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나무토막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뱅뱅 뱅뱅 도는  소용돌이 속에 한번 들어가면 밤낮  자리에서 돌기만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다에는 도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이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에도 머꾸지를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법문을  수행승에게 해주셨습니다.  법문을 듣고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고 떠났습니다.

부처님의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24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11 참고.

*핍절하다(逼切-- 핍박할·가까이할· /정성스러울·절박할 ) ; 진실하여 거짓이 없고 매우 간절하다.



[주요 내용]


(게송)임간무사남몽두~ / 공안상에 사량복탁을 하지 말아라. 사구선(死句禪) / 올바른 자세. 좌선이 정진에 가장 효과적 / 올바른 단전호흡. 상기병 예방.

죽비 경책(警策) / 득도자출(得道者出), 초학자와 같은 마음가짐 / 근본에 충실한 참다운 용맹정진(勇猛精進) 해야 / 공양하는  / 이렇게 같이 정진하는 인연이 깊고 깊다. 서로 밀고 잡아당기면서 알차게 공부해야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법문(강에서 바다로 가는 나무 기둥).



[주요 문구]


차라리 참선(參禪) 아니하고 염불을 하든지, 주문을 외우든지,  무슨 심경이나 금강경이나 몽수경을 외울지언정 명색이 참선을 한다면서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참선은 하지 말어라.


화두 하나만 올바르게   알면  사람은 공부를 바로  가는 것이다. 다못  맥혀서   없는 의심뿐이어야지그럴 때에는  맥혔으니 답답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나아간  같지도 않고, 하지만  맥혀서   없는 의심뿐인 사람은  공부를 정말 참되게 옳게  가고 있는 것이고, 공부가 옳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하고, 기본자세로 정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힘을 얻기 쉽다. 그래서 고래(古來)로부터 참선(參禪) 좌선(坐禪)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것이다. 기본자세로 앉아서 정진한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득력(得力) 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래   것이다.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한목 돈발하도록 그렇게  나가는 ,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밥을 빨리 먹는다고 누가 상을  것도 아니고, 느긋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공양을 하고, 공양하면서 화두를 놓치지 아니할 만큼 되어야 하거든!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말씀하시기를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는데, 가다가 중간에 걸리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지만 아니한다면 그리고서 계속물 따라서 내려가면 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 어째서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가.  몸뚱이로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