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400/(376~400)2019. 6. 3. 21:2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394)—89년 7월 첫째일요법회 (56분)

(1/3) 약 22분. (2/3) 약 19분. (3/3) 약 16분.

(1/3)----------------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니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나무~아미타불~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어제 가지 끝에 그렇게도 곱게 피어 있던 꽃이 오늘 아침에는 벌써 땅바닥에 송이송이 떨어져 있구나.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떨어진 꽃을 아까워하다가 도리어 부끄러운 생각을 나게 하는구나.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흥망성쇠에 무심(無心)하지 못해. 흥망성쇠에, 그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것이 어찌 그대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누가 그대와 같이 무심할 수가 있겠는가.


꽃은 그렇게 화려하게 아름답게 향그럽게 곱게 피어 있으면서도 ‘나는 지금 곱게 화려하게 피어 있다’하고 조금도 자랑하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화려한 꽃이 하룻밤 새에 그렇게도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꽃 그 자신은 꽃이 떨어졌다고 해서 조금도 가슴 아파하거나 아까워하는 생각이 없어. 피어 있을 때도 무심하고, 꽃이 진 뒤에도 무심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꽃을 감상하는 사람은 피어 있을 때는 '곱다'고 '아름답다'고 야단하다가, 그 꽃이 져 버리면 그렇게도 애석하게 생각해.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돈이 잘 벌리거나 높은 자리에 영전을 하거나 하면 온통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좋아하고 참 야단이다가, 재수가 없어서 살림이 망하거나 높은 자리에서 떨어져서 파면을 당하거나 하면 그냥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속을 상한다.

그러니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靈長)이라고 하지마는 식물인 저 꽃만도 못하구나. 이러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방금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법에 대한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그 한 대목만 들으면 다시 오늘 무슨 더한 법문을 들으실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그말이여.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 데는 화두(話頭),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 가지고 공안을 타파(打破)해 버려. 의단(疑團)을 타파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달라 버리는 것인데.

화두 하나만을 제대로 참구할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참선을 바르게 하는 길이다. 그래서 법회 때마다 그 화두를 참구하는 법에 대해서 항상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론이나 지식이나 분별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여.

그러기 때문에 화두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슨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또는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교리로 온갖 지식과 상식을 동원을 해서 이렇게도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고 그래 가지고서는 깨달음, 참다운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여. 공안을 타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사용하지 않고 그 공안을 참구해.

그것이 참 아까 조실 스님 말씀과 같이 천하에 간단하고도 쉬운데, 실지로 해 나가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별을 하고 있고 따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무슨 그럴싸한 해답을 얻으면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닌가' 스스로 착각을 하고 그러한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죽비(竹篦)를 치고서 입선(入禪)을 들이고 떠억 결제 때에는 선방에서 그렇게 정진을 하지만, 참선이 꼭 죽비 치고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여.


물론 그것은 기본자세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따악 가부좌를 하고, 반가부좌를 하고 하는 것이 참 좋기는 좋지만,

꼭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의자에 걸터앉아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차 타고 가면서도 하고, 심지어는 진심(瞋心), 속이 상할 때도 하고, 슬플 때도 하고, 기쁠 때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하고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고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온갖 울긋불긋한 온갖 색상을 보되 그 색(色)에 간여하지 아니해. 간섭하지 아니하고. 그 색에 집착하거나 그 색상으로 인해서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온갖 소리를 듣되—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 이웃에서 모다 떠들고 잡담하는 소리, 어린아이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소리, 음악 소리, 새 우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온갖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여. 그 소리에도 끄달리지 않는다 그말이여.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에, 온갖 색성(色聲), 색상과 온갖 소리에 의심 없는 곳이면 바로 그것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법왕(法王)이 계신 궁성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 중생은 눈으로 온갖 색상을 보면 거기에 끄달려 끌려가서 온갖 분별심이 거기서 일어나고 번뇌 망상이 일어나거든.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로 인해서—칭찬하는 소리, 욕하는 소리, 새소리, 음악 소리, 차 소리, 시끄러운 소리, 그 소리로 인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때로는 기쁜 마음을 내고 슬픈 마음을 낸다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은 색상을 보되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온갖 소리를 듣되 거기에 분별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뭣고?’ 화두를 거각(擧却)한다.



황벽(黃檗) 스님께 여쭙기를 “어떤 것이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입니까?”


계급. 그 계급이라 하는 것은 소리를 귀로 듣거나, 온갖 색상을 눈으로 보거나,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을 상대할 때에 좋은 소리, 나쁜 소리, 고운 빛깔, 보기 싫은 빛깔, 온갖 그 차별 경계 그것을 여기서는 계급이라 그러는 거여.


“일체 차별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거기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여쭈니까,

황벽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다맛 종일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종일 행하되 종일 걸어가되 한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어”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는다’ 그 말은, 밥을 먹되 '맛이 있다 없다, 밥이 질다 되다’ 이러한 그런 생각이 벌써 일어나면 벌써 쌀을 씹고 있는 거여.

그런데 밥을 먹되 '질다 되다' 그런 생각도 없고, 맛이 있고 없는 분별심도 생기지 아니하고 다못 이 깨닫지 못한 경지에서는 화두의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종일 걸어가되 한 쪽, 조그만 한 쪽의 땅도 밟지를 안 해.

어떻게 걸어가는데 땅을 밟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땅을 밟고 걸어가되 ‘땅이 평편하다 울퉁불퉁하다’ 그러한 일체 분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러면 그것이 '종일 걸어가되 한 조각 땅도 밟지 않는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에 무인아상(無人我相)이여.

‘내’라 하는 생각, '내가 지금 걸어간다'는 생각도 없고, '내가 지금 밥을 먹고 있다'는 생각도 없어. 이것이 인아상(人我相)이 없어.


종일불리일체사(終日不離一切事)하되  불피재경혹(不被諸境惑)이여.

종일토록 일체 사물을 여의지 아니해. 일체사를 여의지 안 하되 일체 경계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해서 「자재인(自在人)」이라고 한다 그말이여.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귀를 막고, 모든 모양이 뵈기 싫다 해서 눈을 막고 그런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다 보고 귀를 막지 않고 귀를 열어 놓되,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어. 다맛 화두에 대한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자꾸 잡드리를 해 나가는 거여.

종일토록 일체 일을 여의지 아니하되 일체 경계에 현혹된 바가 없어. 이렇게 되어야 이것을 바로 「자재인(自在人)」이라고 한다 그말이여.


우리는 완전한 자재인이 될 수는 없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완전한 자재인은 될 수 없지만 자꾸 화두를 거각하고 또 화두를 거각하고, 깜박 잊어 버리면 또 챙기고, 놓쳐 버리면 또 챙기고, 자꾸 챙기고 챙겨서 챙기다 보면 나중에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된다 그말이여.


이렇게 하면 이것이 바로 일체,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똥을 누게 되면 똥을 누고, 어디를 가야할 일이 있으면은 걸어가기도 하고 차를 타고, 일이 있으면 밭도 매고 빨래도 하고 이러되, 그러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경계에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된다.


시시때때로 생각 생각이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마라. 일체상을 보지 말고 과거 · 현재 · 미래, 이 삼제(三際)를 인증하지 말아라.

앞으로 지나간 과거도 가는 것이 없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현재에 대해서도 주착(住着)함이 없고, 미래에 대해서도 오는 것을 생각하지 마.


뭐하러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고, 또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당겨서 생각하고, 현재 닥쳐 있는 일에 무엇을 거기에다가 집착을 해서 생각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나간 일도 생각할 것 없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현재 닥쳐 있는 모든, 닥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거기에 생각을 두지 말고, 오직 화두만을 거각해라 이거여.


그래 가지고 안연단좌(安然端坐), 편안히 단정하니 앉아서 임운불구(任運不拘)여. 일체 것을 터억 다 놔 버려. 긴장도 다 풀어.

마음의 긴장도 다 풀어 버리고, 몸뚱이의 긴장—어깨의 긴장도 다 풀어 버리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눈에도 힘을 주지 말고, 다못 지긋이 어금니를 물고 입을 ‘한 일(一)’자로 따악 다물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이렇게 생각 생각이 단속을 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걸어갈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어묵동정(語默動靜), 무슨 필요가 있어서 말을 할 때나, 또 말을 안 할 때나, 몸뚱이를 움직일 때나, 또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한 생각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1분 1분을 그렇게 단속을 하고 노력을 해 갈 것이다.(처음~21분22초)




(2/3)----------------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 사람 만 사람이 참선을 한다고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우 그 천 명, 만 명 가운데 겨우 세 사람이나 다섯 사람, 서너 사람, 그런 정도 밖에는 도(道)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 왜 그러냐?


안 한 것이 아니라 하기는 하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노력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조금 하다가 말다가 그렇기 때문에 한다고 해도 정말 도를 이룬 사람은 그렇게 극소수에 지내지 못한다 이거여.


이 공부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 공부가 복잡해서 그런 것도 아니여. 또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여.

다못 그 한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다가 말다가, 조금 할라고 마음먹었다가도 금방 딴 생각[別念]이 나면 그리 끄달려 가 버리고, 조금 무슨 일이 있으면 그리 끄달려 버리고,

앉어서 ‘이뭣고?’하다가 서면서 잊어 버리고, 금방 화두를 들고 있다 무슨 소리 들으면 거기에서 화두가 놓쳐 버리고.

놓치자마자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해야 할 텐데 놓치면은 놓친 데에서 그냥 그리 끌려가 버리고, 경계에 끄달려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황벽 스님은 정말 이 공부를 할려고 마음을 먹으면 정말 여기에다가 몸과 목숨을 바치고 정말 간절하게 그렇게 해야지, 공부한답시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없이 그렁저렁하면은 수앙(受殃)이 유일재(有日在)다. 재앙이, 곧 재앙이 닥쳐온다.


어떻게 닥쳐오냐?

지금 이만큼 건강할 때, 이만할 때 철저히 해 놓지 아니하면 금방 늙어서 병들어서 곧 죽게 된다 그말이여.


죽게 되었을 때, 그때 그 생사(生死)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여?

눈 한번 감으면 내생(來生)인데,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내생인데, 그때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내가 참선을 했습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선을 그렇게 했으면은 그 깨달은 도리를 일러 봐라. 생사 없는 도리를 한번 일러 봐라’할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

그러기 때문에 금생에 이 생사 문제를 결정코 요달(了達)을 할 것이니라.


금생에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누가 대신해서 그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을 대신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은 진즉 이 문제를, 이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시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한결같이 하신 말씀이 '생사, 생사, 생사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어쨌든지 무상함을 철저히 느끼고 시간을 아껴서 정진을 하도록 간곡히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생사는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하면 우리의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사윤회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견색시증시(見色時證時)요  문성시증처(聞聲時證處)니라

나무~아미타불~

염념석가출세시(念念釋迦出世時)요  보보미륵하생처(步步彌勒下生處)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시증시(見色時證時)요. 모든 색상을 보는 그때가 그것이 바로 생사 없는 참나를 증득하는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時證處)다.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를 듣는 그 찰나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을 곳이다.


그래서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볼 때 그 찰나가 바로 생사 없는 진리를 증득하는 때이기 때문에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참선(參禪) 안 한 사람은 그 무슨 색상을 보는 그 찰나가 벌써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에게 딱! 쇠고랑에 채여서 끌려가는 그 찰나고,

참선 공부를 하는 사람은 바로 무슨 색상이 눈에 띄자마자 ‘이뭣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바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바로 그 시간이다 그말이여.


일체 소리가 귀에 들릴 때에도, 귀를 통해서 일체 소리를 듣더라도 바로 그 듣는 그 찰나에 거기에 그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로 인해서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말고 그 소리가 귀에 이르자마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다그쳐 가면 생각 생각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곳이고, 걸음걸음이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하신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탄생하셨지만 이와 같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 생각 생각 그 찰나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고,

비록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출생하신다고 경전에는 쓰여 있지마는, 진짜 살아 있는 미륵 부처님은 우리가 걸음걸음이 ‘이뭣고?’ 딱! 챙기는 그 찰나에 바로 미륵불이 탄생하신 곳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실천해 나간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목전(目前)에 모든 경계 속에,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경계는 그것이 바로 자기의 얼굴인 것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쳐다볼 때에 자기의 얼굴이 보이죠. 거울 속에 나타나는 그 분명한 그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얼굴에 화장을 하면은 거울 속에 얼굴도 화장을 했고, 얼굴을 찌뿌리면은 거울 속에 얼굴도 찌뿌리고, 얼굴을 슬프게 우는 얼굴로 거울 앞에 서면 거울 속에 있는 얼굴도 슬피 울고 있을 것입니다. 웃는 얼굴로 거울 앞에 서면은 거울 속에 영상도 웃고 있을 것입니다.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허공계, 동서남북 사방 사유 상하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끝없이 펼쳐 있는 이 허공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인 것입니다. 이 거울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 거울인 것입니다.

그 거울 속에는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별도 있고 지구도 있고, 사람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가지가지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비춰져 있습니다.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돌도 있고 짐승도 있습니다.


그러한 모양들이 실지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지만 그것은 실(實)다운 상(相)이 아니고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비추어져 있는 허망한 영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영상을 실지로 있는 실(實)다운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거울을 하나 사다가 부인에게 선사를 했습니다. 그 부인이 좋은 것을 가지고 왔으니까, “정말 당신을 위해서 비싼 돈을 주고 아주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고 그러면서 주길래 그걸 쳐다봤더니 아! 그 속에서는 그 거울 속에 아주 예쁜 여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남편한테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더니 중국에 가서 무슨 여자를 하나 꿰차고 왔다”고 막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울고불고 야단이 났습니다.


시어머니가 하도 시끄러워서 “아니 왜 그러냐? 만리 타국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는데 왜 오자마자 싸움질을 하냐?” 며느리를 대단히 꾸짖었습니다.

그 며느리가 울면서 “아니에요, 어머니. 중국에 갔더니 어디서 계집년을 뀌어차고 왔지 않습니까?”


“기집이 어디가 있냐?”

“여기 있습니다” 거울을 주니까 시어머니가 그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아, '젊은 년을 뀌어찼다'고 하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구나”


시아버지가 “아니, 뭘 그렇게 시끄럽게 하는고?”

“아, 중국에 갔다 왔더니 늙은 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시아버지한테 보이니까 “아! 뭔 늙은 년을 데리고 와. 늙은 영감탱이를 데리고 왔구만”


거울이란 것을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은 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얼굴이 비친 줄을 모르고,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왔다니, 늙은 망탕구를 데리고 왔다니, 또는 영감을 데리고 왔다니,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깨면 깨뜨릴 수 있는 그 거울만 거울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마는, 그까짓 거울은 별로고 진짜 우리가 눈 여겨서 잘 알아야 할 거울은 무변(無邊) 허공계(虛空界), 이 허공계가 하나의 큰 거울인 것입니다.

그 거울을 바로 볼 줄 알고, 바로 사용할 줄 알아야 정말 이 우주법계에 펼쳐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을 바로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고, 그 거울을 바로 볼 줄 알아야 자기의 참나, 참나의 참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게에서 사 오는 그런 거울은 우리 이 껍데기밖에는 보이질 안해.

그러나 이 허공계, 무변 허공계를 체(體)로 하는 그 거울을 바로 보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거울을 어떻게 보느냐?

참으로 옳게 보는 법은 가르켜 줄 수가 없지만 우선 여러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법을 가르켜 드릴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 큰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비춘 달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물체가 아니라 그 달도 바로 자기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허공 속에 비춰 있는 꽃도 하나의 식물로써 존재하는 꽃이 아니라 그 꽃도 자기의 모습이 그 거울 속에 비춰져 자기에게 반사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면 달이나 해나 별 저런 꽃 나무 그런 것만이 꼭 그 허공계에는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도 거기에는 비춰. 아내의 얼굴도 거기에 비추고, 남편의 얼굴도 거기에 비추고, 애인의 얼굴도 비추고, 미운 사람의 얼굴도 비추고, 친구의 얼굴도 비춰.

그런데 그 아내의 얼굴이나 남편의 얼굴이 남편의 얼굴이요 아내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얼굴이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아내의 얼굴로 이렇게 비추어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그 달 자체는 좋고 나쁜 것이 없어. 그 자체가 밝되 밝다는 생각도 없고, 그 달이 가리워지되 가리워져서 안 좋다고 하는 생각도 그 달 자체는 없는 거여.

그런데 그 달을 보는 내가 기쁜 마음으로 차 있을 때에는 그 달을 보면은 기쁘고 저절로 노래가 나와. 내 마음이 슬프면, 그 슬픈 눈으로 보면, 슬픈 마음으로 그 달을 보면 그 달이 그렇게도 하염없이 슬퍼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그말이여.


그러니 기쁜 사람의 눈에는 그 달이 밝고 좋은 달로 비출 것이고, 슬픈 처지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 달을 보면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러니 그 달이 어찌 나의 마음이 아니고 나의 모습이 아니겠느냐.(21분23초~40분24초)




(3/3)----------------


그러면 어떤 내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도 내 집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오시는 손님 반갑고 그냥 잘 대접을 하고 싶은데, 내 집에 걱정스러운 일이 있거나 언짢은 일이 있어서 속이 상할 때에는 좀 반가운 손님이 와도 별로 반갑지 않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그 손님에게 반갑고 반갑지 않는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볼 때에도 아내의 마음이 기쁘고 흐뭇할 때에는 남편을 보면은 그냥 반갑고 음식도 맛있게 해 드리고 싶다 그말이여.

그런데 속에 짜증이 나고 부화가 날 때에는 남편이 와도 반갑지도 않고 맛있는 음식도 잘 채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안 난다 그말이여.


그러면 남편은 아무 속도 모르고 하루종일 직장에서 종일토록 일하고 아주 피로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아무 까닭 없이 아내가 반가워하지도 않고 저녁도 그냥 그럭저럭 있는 반찬 갖다가, 먹거나 말거나 갖다가 놔두고 만다 그말이여. 남편은 까닭을 몰라.


그런데 지혜 있는 남편 같으면 ‘아하! 아내가 무슨 속상한 일이 있구나’ 이리 생각하고 우선 밥부터 먹고 그리고 아내에게 ‘무엇이 속상한 일이 있었소?’ 그렇게 묻고서 좀 잘 그 원인을 알아서 말을 듣고서 잘 위안을 하고, ‘아!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종일 일하고 온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대번에 또 그냥 막 욕을 퍼붓고 싸움을 걸면 그냥 큰 싸움이 될 거다 그말이여.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 남매간에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래.

요새는 집안 각 가정마다 아들딸들의 교육 문제, 공부 문제, 대학 고등학교 모다 입학 문제로 해서 모두 신경을 쓰고 걱정이 태산 같지만,


이러한 문제도 허공에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비춘 도리를 알고서 지혜롭게 처리하고 딸과도 터놓고 얘기를 하고, 아들과도 터놓고 대화를 해서 그 아들딸 마음속에 있는 문제점을 부모가 관심 깊게 파고들어서 그것을 정말 지혜롭게 처리를 해 나가면 문제아도 발생을 아니할 것이고,

또 아들딸 보고 '공부해라, 해라' 안 해도 차츰차츰 공부를 잘하게 될 거고, 나쁜 친구들하고 사귀지도 아니할 것이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찍 돌아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보살님네나 거사님네나 모다 이 참선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가정 문제가 복잡하고 걱정 근심이 많으면 아무래도 이 공부에 지장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모든 것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 비추어서 내게 돌아온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 모든 허물이 나의 허물의 그림자다' 이렇게 볼 줄 알면 많은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고 풀라야 풀 수 없는 대단히 언짢은 관계도 아주 수월하게 풀어 버리고 해결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믿는 사람은, 불법의 인과(因果)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그 사람의 허물로써 미워하고 원망하고 몰아대지 아니하고,

모든 다른 사람의 허물이 바로 그 허물이, '나의 허물이 그 아내를 통해서 나에게 되돌아온 영상이다. 나의 모습이다'고 하는 도리를 믿고 그렇게 해결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법만을 철저히 믿기만 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퍽 수월할 것입니다.

인과법만 철저히 믿으면 법률도 필요 없게 됩니다. 경찰 형사도 필요 없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이 인과의 법칙만을 믿게 되면 재판도 필요 없고 형무소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을 믿는 사람은 먼저 인과의 법칙 먼저 철저히 믿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게 되면 참 우리의 남을 원망할 일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일도 없고, 부모를 원망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바로 미워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상대방과 원결(怨結)을 맺게 되고 자기 자신을 점점 괴롭게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지옥, 다 사람들은 지옥을 꺼려 하지만 자기 마음이 편안칠 못하면 이 몸뚱이 살아 있으면서 이미 지옥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지옥을 없애야 앞으로 이 몸뚱이를 버리고 저승에 가더라도 지옥에 안 가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 자꾸 지옥에 들어가서 사는 연습을 많이 해 논 사람은 숨 떨어지자마자 익힌 데로 가거든. 우리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익힌 데로 가는 것입니다.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도, 정신없는 가운데에도 자기집은 어지간하면 다 찾아옵니다. 왜 그러냐?

날이면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도 집에는 찾아오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 지옥 연습을 많이 해 논 사람은 지옥에 가기가 아주 수월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천당이나 극락에 생활을 익힌 사람은 숨이 떨어지자마자 극락세계나 천국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인 것입니다.


앞으로 날씨가 삼복에 접어들면서 장마철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웁고 무덥고 불쾌지수가 높아가겠지만 그러한 불쾌지수로 인해서 언짢은 생활을 하시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더욱 ‘이뭣고?’를 열심히 하십시오.

몸을 단정하니 척추를 펴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속이 상하고 답답하고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이것을 더 열심히 박차를 가해서 더 하시라 그말이여.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이 공부를 하십시오. 그러면 그 어려운 일로 인해서 더 신심이 돈독해지고 더 불법을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는 훈련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과거에 모든 불보살과 모든 성현들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로 오셨던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宿世)에 이 불법에 인연을 심어서 이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 났습니다. 이 사바세계는 도(道)를 성취하기 좋은 곳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은 하나의 지혜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쇠가 불 속에 들어가고 물 속에 들어가서 쇠망치를 얻어맞지를 않으면 그 쇠는 훌륭한 쇠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원망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신심을 가다듬고 공부를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내세당연한만단(來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今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곡히 일러드린 말씀을 믿고 실천하지 아니하면,

내세(來世)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내생에 그 펄펄 끓는 지옥에 빠져서 ‘하! 내가 그때, 용화사에서 송담 스님 법문을 들을 때, 그때 왜 열심히 참선을 안 했던가?’ 그때 가서 후회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두 가지 광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앞으로 7월 25일부터서 28일까지 3박4일 동안 중고등부 학생들, 김제 금산사로 수련대회를 가게 됩니다.

그리고 8월 7일부터 8월 9일까지 2박3일간 어린이 학생부는 여주 신륵사로 수련대회를 떠납니다. 회비는 중고등부나 어린이부나 칠천 원씩으로 되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학생들이 그 수련대회 참석을 하도록 주선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거기에 가서 3박4일 또는 2박3일간 스님네와 같이 그 청정도량에 가서 예불도 하고, 법문도 듣고, 참선도 하고 또 서로서로 반 활동도 하고, 그런 물 좋고 산 좋고 또 경치 좋은, 좋은 공기 청정도량에 가서 잠시 동안 생활을 하고 오면 그동안에 쌓였던 알고 모르는 사이에 쌓였던 온갖 스트레스도 다 풀어 버리고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집에서 공부하라고 억지로 붙잡기보단 한 번씩 그렇게 보내 놓으면 좋은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공부를 해야 공부도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광고 말씀 드릴 것은 여기 일주문 밖에 큰길이 있는데, 그 길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데 중간에 산이 있어서 경사가 져 가지고 저쪽에서 요쪽이 안 보이고 이쪽에서 저쪽이 안 보입니다. 그래 가지고 차 사고도 여러 번 있고 또 사람도 다쳐서 교통사고가 일 년에 여러 건이 발생을 합니다.

그래서 그걸 시(市)에다가 그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달라고 진정서를 넣을려고 그럽니다. 그 진정서를 넣어야 시에서도 그것을 알고 조만간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줄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야 우리 신도님네들이 절에 왔다갔다 하시는 길에도 교통의 위험성이 없고, 또 우리 신도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시민들과 다니는 차량들도 절 앞에서 그런 사고가 나니까 참 가슴 아픈 일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정서를 내는데 여러 신남신녀, 여러 거사님네들 보살님네들 서명 날인이 필요합니다. 성함과 주소를 적고 거기에 도장이나 지장을 찍어주시면 그것이 이 도로를 평탄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양식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서류에 서명 날인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40분25초~55분58초)(끝)




----------------(1/3)


*(게송) '작일지두개난만~' ;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진각혜심) '낙화(落花)' 참고.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게송) '견색비간색~'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범]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배휴와 황벽 스님의 문답 ; 『전심법요(傳心法要)』 (당唐의 배휴가 황벽 스님의 법문을 편집한 책)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但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 與麼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어떻게 하여야 계급(階級 : 차별 경계)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다맛 하루 종일 밥을 먹되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고, 하루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한 때에 아상(我相)·인상(人相)등의 견해(相)는 없고, 하루 종일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않아야 비로소 ‘자재한 사람(自在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努力努力.


다시는 때마다 생각 생각에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말고, 앞뒤의 삼제(三際 과거·현재·미래)를 인정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 주어진 상황에 되는 대로 맡겨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解脫)’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고 노력하라.


此門中千人萬人, 祇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만인(萬人)이 있지만 겨우 서너, 너댓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는다. 만약 이 도 닦는 일을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오랜 세월(累劫) 남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계급(階級) ; ①사물을 대립적으로 분별하는 망상. 인·아(人我), 유·무(有無), 선·악(善惡) 등으로 분별하는 의식을 말한다. ②수행의 점차적 단계. 선종에서는 점수(漸修)를 뜻하며, 반대로 계급이 없음은 돈오(頓悟)를 말한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육진(六塵)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인아상(人我相) ; 나와 남을 갈라놓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경시하는 마음.

*자재인(自在人) ; ①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8대자재(八大自在 : 8종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의 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이름이 붙었다. ②아미타불.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2/3)


*별념(別念) ; '딴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허공계(虛空界) ; ①진여(眞如)를 말함. 무색무형이고 일체 만유를 포괄하는 것이 허공같기 때문. ②허공의 영역[界]이라는 의미.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3/3)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법문 내용]


(게송)작일지두개난만~ /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 (게송)견색비간색~ / 황벽스님의 법문. '어떤 것이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입니까?'

무상함을 철저히 느끼고 시간을 아껴서 정진하라 /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


(게송)견색시증시~ /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경계는 그것이 바로 자기의 얼굴 /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비추어져 있는 허망한 영상 / 무변 허공계를 체(體)로 하는 그 거울을 바로 보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 비추어서 내게 돌아온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 모든 허물이 나의 허물의 그림자다 / 천당이나 극락이나 지옥이나 살아 있는 동안에 익힌 데로 태어난다.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참선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은 색상을 보되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온갖 소리를 듣되 거기에 분별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뭣고?’ 화두를 거각(擧却)한다.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 사람 만 사람이 참선을 한다고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우 세 사람이나 다섯 사람, 서너 사람, 그런 정도 밖에는 도(道)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 왜 그러냐?

안 한 것이 아니라 하기는 하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노력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조금 하다가 말다가, 그렇기 때문에 한다고 해도 정말 도를 이룬 사람은 그렇게 극소수에 지내지 못한다.


이 공부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 공부가 복잡해서 그런 것도 아니여. 또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여. 다못 그 한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사윤회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체 소리가 귀에 들릴 때에도, 귀를 통해서 일체 소리를 듣더라도 바로 그 듣는 그 찰나에 거기에 그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로 인해서 분별심(分別心)을 내지 말고 그 소리가 귀에 이르자마자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다그쳐 가면 생각 생각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곳이고, 걸음걸음이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하신 곳이다.


'정말 모든 것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 비추어서 내게 돌아온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 모든 허물이 나의 허물의 그림자다' 이렇게 볼 줄 알면 많은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고 풀라야 풀 수 없는 대단히 언짢은 관계도 아주 수월하게 풀어 버리고 해결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