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0/(201~225)2020. 3. 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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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9)—1983년 11월 첫째일요법회(83.11.06) (57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15분.

(1/3)----------------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 놀던 모래밭에는 그 발자죽만 남아 있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구나. 사람은 저 황천(黃泉)으로 가 버렸는데, 황천으로 간 그 사람 이름만 자기집에 남아있더라.


KAL(대한항공)기 피습으로 인해서 그 많은 아까운 사람들이 비명에 죽어갔고, 또 얼마 안 되어서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그 아까운 우리나라 인재요, 일꾼이요, 그런 참 기둥과 같은 그런 분들이 이승을 하직을 했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서 짐승만도 못한 그러한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그러한 행동으로 아까운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많이 앗아갔습니다.


6·25동란(六二五動亂) 때 남침을 해가지고 그 많은 동족(同族) 살상을 한 그들이라 무슨 일을 못할까마는, 그러한 야만적인 대죄를 퍼지어서 그 과보로 무량겁을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을 그러한 괘씸하고도 가련한 중생들이요,

다른 사람 아닌 우리와 피를 같이한 동포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 더욱 우리의 가슴은 아프고 찢어질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 까닭 없이 이러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因果)의 법칙에 비춰서 보면 반드시 그럴만한 숙세(宿世)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일이고, 아무리 바늘 끝만한 조그만한 일이라도 원인이 없이 나타난 결과란 없는 것입니다.




<미묘 비구니 설화>


부처님 당시에 미묘(微妙)라 하는 비구니(比丘尼) 스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바라문(婆羅門)의 딸로 태어났어. 그 부친이 일국에 널리 이름이 날 만큼 인격이 높고 덕망이 있는 그러한 가정에 태어났는데, 그 미묘라 한 그 여성도 절세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래, 멀지 않는 곳에 또 한 바라문이 있어서 그 미묘라고 하는 그 여성이 그렇게 좋은 집안이요, 또 그렇게 인물이 아름답고 행실이 얌전하고 그러니까 거기서 며느리로 맞아 갔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랑과 결혼을 해서 머지않아서 첫아들을 낳습니다. 첫아들을 나서 온 집안에 경사가 일어났는가 싶어서 그리 좋아했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시고 이어서 또 시아버지가 병들어서 돌아가셨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즐거운 뒤끝에는 흔히 그러한 또 슬픈 일이 뒤따르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 시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또 그러한 슬픈 뒤끝에 언제 생겼는지 또 두 번째 애기를 또 뱄습니다.

그때에 풍습으로 애기를 배면 친정(親庭)으로 돌아가서 해산(解産)을 하는—역시 지금 우리나라에도 해산할 때는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한다든지, 친정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돌봐 주신다든지 지금도 역시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하기 위해서 남편과 의논을 해가지고 첫아들은 데리고 남편과 같이 친정으로 가는 길인데, 길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가는데 갑자기 가다가 해산이 임박했었던지 배가 아프고 진통이 일어나서 할 수 없이 근처에 나무 밑에다가 자리를 펴고 거기에 뉘였습니다.


뉘여서 얼마 동안을 기다리니까 배가 아프다 가라앉다, 아프다 더하다 그러다가 인자 해가 저물어도 애기는 아직 해산을 못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서 남편은 저만큼 다른 나무 밑으로 가서 지쳐가지고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사 배가 몹시 아프더니 해산을 했습니다.


몸부림을 치면서 불러도 남편이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영 오지를 않고, 간신히 혼자 애를 낳아 놓고 그리고서 남편을 아무리 불러도 안 오니까, 금방 애를 낳아 놓고는 기어서 남편 있는 데로 가니까 남편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꼼짝도 안한다 그말이여.

막 흔들어 봐도 영 움직이지 않아서 맥을 짚어보니까 이미 죽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독사가 와서 물어가지고 그 독이 몸에 번져서 그래가지고 죽어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남편이 죽은 것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해산할 때에는 산모(産母)가 신경이 날카롭고 그런 것인데 남편이 죽은 걸 보고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해가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새벽녘에 그 어린아이가, 그 장남이 막 우는 소리에 깨 보니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을 갖다가 숲 밑에다가 그럭저럭 긁어 묻어 놓고는 장남은 걸리고, 금방 난 애기는 보자기에다 싸서 품에 안고서 친정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얼마를 걸어가니까 큰 강물을 만났다 그말이여.


그 강을 건너야겠는데, 그 서이 같이 건너갈 수는 없고 그래서 장남은 그 강둑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일러 놓고는 갓난애기만 안고서 강을 건너가는데 굉장히 깊고도 넓어서 간신히 건너가가지고,

애기를 그 강 건너 언덕에다가 가만히 뉘여 놓고 다시 그 장남을 데리러 올라고 하니까, 장남이 그걸 참지를 못하고 엄마를 부르면서 저 혼자 강을 막 건너오다가 넘어져가지고 강물에 떠내려간다.


그래서 그 부인이 쫓아가니까 벌써 급류에 휩쓸려서 저 어디로 떠내려가서 찾지를 못하고 그래서 울면서 되돌아서 이쪽 언덕 갓난애기 있는 데로 향하고 있는데,

그동안에 그 갓난애기, 그 핏덩어리 애기, 그 애기 냄새를 맡고 늑대란 놈이 와서 애기를 꿀떡 삼켜 버렸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걸 보고는 또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했다가 다시 눈을 떠서, 다시 또 슬픔과 산후(産後)의 그 무거운 몸을 끌고서 울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친정을 가다가 어떠한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자기 친정아버지의 친구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사연을 전부 다 울면서 얘기를 하고서 친정 소식을 물으니, 아! 친정부모와 동생들이 며칠 전에 자다가 화재가 일어나가지고 친정부모도 타서 돌아가시고 동생들도 모다 타 죽었다 이말이여. 그 말을 듣고는 또 기절을 했어. 몇 번을 기절을 했어.


그래가지고는 눈을 떠 보니까—그 친정아버지의 친구가 업어다가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병구완을 해주어서, 눈을 떠 보니까 그 댁에 누워있다 그말이여.

몇백 리를 걷고, 그 연거퍼—시부모 돌아가고, 남편 죽고, 큰아들 죽고, 금방 난 애기 죽고, 친정부모 · 동생 다 죽고, 산후에 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받은 그 충격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면 아주 죽지 않고 살아난 것도 기적이라 할 수가 있지요.


그래 몇 달을 그렇게 친딸처럼 돌봐주어서 그래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데, 마치 이웃집에 바라문이 있어가지고, 어떻게 그 미모(美貌)로 생겼던지 청혼이 들어와서 그래서 그분하고 또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놓고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있어보니까 흉악한 술주정뱅이여. 뭔 사업한다고 나가서는 잔뜩 술을 먹고 들어와서 그 주벽(酒癖)이 심해가지고 꺼떡하면 뚜드려 패고, 도저히 하루 이틀을 참다 참다, 한 달 두 달을 참다 못해서 거기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해서 저 멀리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을 쳐가지고 인도에 그 베나레스(Benares)라고 하는 그 성밖에 나무 밑에 앉아서 거기다가 의지를 하고. 뭐 친정도 집이 다 없어져 버리고, 시집도 없어져 버리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래놓으니 인자 천상 그런 부잣집 딸로, 부잣집 며느리로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러한 부인이었었고 일세(一世)의 미인이었었지만, 그러한 연속적인 재난을 당하고 보니 갈 곳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밑에 의지해서 얻어먹으면서 지내고 있는데 날마다 근처 무덤에 와가지고 그 무덤 앞에 절을 하고 가고, 무덤 앞에 와서 울면서 절을 하고 가고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참 부잣집이요, 좋은 사람인데 상처(喪妻)를 해가지고 너무 아내가 그리우니까 날마다 그 아내의 무덤에 와 가지고 울고 가고 울고 가고 그랬는데,

그렇게 해서 몇 번 그 나무 밑에를 지나면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여인의 얼굴과 서로 마주치고 마주치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며칠이 지나자 서로 이야기가 되어가지고 또 청혼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도 남편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으로 인해서 마음 붙일 곳이 없고, 또 그 미묘라는 여인도 친정과 시집과 온 가족이 다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해가지고 의지할 곳이 없고 피차 외로운 처지에 우리가 서로 같이 사는 게 어떠냐 해가지고, 그냥 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사랑을 하고 참 심덕(心德)이 좋고 얌전한 사람이었었는데, 아! 그 남편이 병이 들어가지고 시늠시늠하다가 백약이 무효로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남편이 죽으면 여자도 같이 무덤 속에 산 채로 들어가서 같이 죽는 그러한 인습이 있어서 이 미묘라는 여자는 두 번째 결혼한 남자와 같이 생매장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무덤 속에 들어가서 그 며칠간 먹을 양식과 음식과 그 촛불 같은 것을 켜서, 인자 그 불도 꺼지고 먹을 것도 떨어지고 하면 그 안에서 그냥 죽는 거죠.(처음~20분30초)





(2/3)----------------


그래서 인자 그 안에서 얼마를 울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 밤중에 텅텅 무덤을 누가 파 들어오는데, 아! 자기를 꺼내서 데리고 간 뒤에 가서 보니까 흉악한 도둑놈들이여.

도둑놈이 '예쁜 여자가 생매장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 그 무덤을 파가지고 여자를 데려다 제 마누라를 삼았어.


도둑놈 계집이 되었으니 죽은 것보단 나을란가 모르겠으나, 그래도 죽지 못해서 도둑놈을 남편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아! 그 얼마 안 되어가지고 그 도둑놈이 요새 같으면 형사, 무슨 죄 있는 것이 들통이 나가지고 체포가 되어서 살인강도질을 했든가 그 교수형에 처해가지고 세 번째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우리의 주변에 말로 다 못할 기구한 그러한 참 처참한 환경을 당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아무리 많다 해도 이 '미묘'라고 하는 이 사람만큼 그렇게 처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소설에도 그렇게 비참한 사람은 구경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미묘 비구니의 출가, 정진>


그래가지고 거기서 비탄에 빠져가지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러다 어디서 말을 들으니까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하는 곳에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성현이 계시는데 그분은 전생(前生) 일도 환히 알고, 내생(來生) 일도 훤히 알고 하는 그러한 성현이 계신다'하는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자살할 수도 없고, 모진 것이 목숨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네 번째 남편을 또 얻을 수도 없는 것이고, 얻어봤자 또 팔자가 빤할 것 같고 그래서 '그 석가모니라고 하는 부처님한테 가서 대관절 내 팔자나 한번 물어보고 죽어야겠다' 그래가지고는 거기를 갔어.


그 기원정사를 찾아가서 멀찌감치 서서 이래 보니까, 막 춘삼월에 꽃이 활짝 핀 것처럼 환하고, 하늘에 그 많은 별 속에 둥근달이 떠있는 것처럼 그렇게 먼 데서 봐도 그렇게 위엄스럽고 거룩하고 환한 그런 어른이 계신데, '바로 저 어른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러거든.


그러나 감히 자기와 같은 그런 비참한 여인이 찾아가서 뵈올 수는 없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니까, 그 부처님이 떠벅 떠벅 자기 가까이로 걸어오셔서 ‘어디서 왔느냐? 이리 오라’해 가지고는, 그 지난 모든 사연을 두루 다 들으시고—그거 다 말씀을 다 여쭈었는데.


여쭙고서, "저와 같은 이러한 미천한 그런 여자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도(道)를 닦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한다면 왜 못 닦겠느냐"


그래가지고 고타미 비구니를 시켜서 머리를 깎이고 계(戒)를 설해서 그래서 비구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비구니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열심히 도를 닦았던지—인자는 누가 잘했다 못했다 그런 말도,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그런 시비도 자기한테는 귀에 들리지도 않고, 누가 다른 사람이 잘하고 못하고 한 것도 그런 것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그저 대중과 같이 탁발(托鉢)을 할 때는 따라가서 탁발을 하고, 밥을 먹을 때는 같이 먹고, 소지(掃地)할 때는 같이 소지를 하고, 그저 눈을 뜨나 감으나 앉으나 서나 부처님께서 지도하신 고대로 도를 닦아 가는데 세월가는 줄을 몰라.

비가 오는지, 해가 뜨는지 지는지, 도대체 그 여러 대중 속에 살아도 대중이 하나도 눈에 보이지를 안하는 거여.


지금도 누구를 막론하고 참선을 하려면은 그렇게 해야 돼!


앞으로 음력 시월(十月) 보름이 되면 또 겨울 결제가 시작이 되지만, 보살님네가 5~60명 내지 70명 방부(房付)를 들여도 그렇게 철저히 도를 닦아야 무엇이 뚫리던지 뚫리지,


밥이 되니 지니, 반찬이 짜니 싱거우니, 네 떡이 크고 내 떡이 작으니, 왜 너만 먹고 나는 안 주느니, 방이 더웁다 차웁다, 너는 왜 저만큼 안 앉고 내 바짝 옆에 왔느냐, 너는 왜 저기 안 앉고 여기 왔느냐, 여기가 내 자리다 네 자리다,

사사건건이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참선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남의 흉보느라고 언제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참선한다고 선방에 와 가지고 자기 집안 망신하고, 자기집에서는 절로 참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와 가지고 하는 짓이 똥싸고 뭉개는 그러한 참선을 해가지고 무슨 도를 통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렇게 무섭게 도를 닦아 가지고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는데, 겸해서 숙명통(宿命通)까지 툭 뚫어졌는데, 자기의 과거를 터억 숙명통으로 비추어보니까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참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서’ 털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한 사실을 분명하게 봤다 그말이여.




<미묘 비구니의 전생(前生)>


전생(前生)에 어느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부인도 얌전하고 가정도 넉넉하고 한데 아들을 못 낳아서 할 수 없이 작은 마누라를 얻어가지고, 아들을 보기 위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작은 마누라는 별로 양갓집 규수가 아니고, 천한 집 딸을 작은 마누라로 데려왔는데 얼굴은 참 기가 막히게 예뻤다 그말이여.

속담에 재취(再娶)나, 작은 마누라한테 미치지 아니한 남자는 ‘배안에 병신’이라고 그런 말도 있는데,

아들 낳는 것이 목적이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건만, 얻어가지고 살아보니까 큰 마누라보다는 훨씬 정이 그리 쏠린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머지않아서 포태를 해가지고 애를 낳는데, 마치 다행히 옥동자(玉童子)를 낳다 그말이여. 그렇지 않아도 예뻐서 죽겠는데 아들까지 낳았으니 얼마나 좋겠느냐 그말이여.

그러니까 큰 마누라는 그저 든든하게 저만큼 놔두고 그저 점잖하게만 상대하고, 밤낮으로 작은 마누라한테 아주 퐁 빠졌어.


그러다가 아들까지 낳으니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야단이고, 이웃집에서도 모다 야단이고 그런데, 그 사람마다 다 잘했다고 그러는데, 한 사람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슬프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말이여.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게 큰 마누라여.


가만히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좋아한 척하지마는 속으로는 기가 막히다 그말이여.

이 재산도 저놈이 크면은 저놈 앞으로 다 갈 것이고, 저놈이 크면은 자기 생모(生母)만 알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남편도 작은 마누라와 자식만 좋아하지 나는 벌써 인자 저 무용지물로 취급을 하고, 지금도 그러거든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가서 생각해보면 빤하다 그말이여.


'그러니 저것을 어쨌던지 크기 전에 저것을 없애야겠다' 아! 이러한 못된 생각을 냈어.


그래가지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한 끝에 그 애기 정수리에다가 바늘을 갖다가 꽂아 넣었어.

그래놓으니 겉으로는 감쪽같은데 애가 울고 보채고, 젖도 안 먹고, 업어줘도 소용없고, 달래도 소용없고, 별짓을 해도 소용이 없어. 의사한테 별별 약을 갖다 먹여도 소용없고 열흘이 못되어서 그 애기는 결국은 죽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애기 엄마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그렇게 울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달덩어리 같은 어린아이가 왜 죽었을까?' 생각해보니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마음이 짚이는 데가 있는데, ‘틀림없이 이것은 큰엄마가 이것을 죽였지 않는가?’하는 의심이 단통 고리 간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애기는 당신이 죽인 거 아니요?"하고 물어보니까,

펄쩍 뛰면서 "자네가 그 애기를 낳지마는 그것이 바로 내 자식인데 내가 왜 죽일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면 이 애기가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병이 나서 죽을 리가 있느냐?"

"왜 내가 죽이냐? 내가 만약에 이 애기를 죽였다면, 내생(來生)에 내가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을 것이요,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이요, 친정부모와 동생은 불에 타서 죽을 것이요. 나는 생매장을 당할 것이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내가 맹세를 해도 나를 못 믿겠느냐?" 어떻게 그런 입에도 못 담을 무서운 맹세를 하고 펄쩍 뛰던지, ‘과연 큰 마누라가 죽이지는 안 했는가 보다’하고 그냥 비통하기만 하고, 큰 마누라에 대한 의심은 그런대로 그냥 일단락이 되었는데.


바로, 작은 마누라한테서 난 애기 머리에다 바늘을 꽂고 그 무서운 맹세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비구니였더라 그말이여.


그러니 그 비구니는 아무도 모르는 병을 혼자만 앓고 백방으로 약을 먹어도 안 낫는 병이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서 평생 동안 아라한과를 증득했어도 그 안 낫는 병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기가 아파! 여기가 득신득신 득신득신 정수리가 아파가지고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여, 일평생 동안을.

그게 전생에 그 애기 머리빡에다가 바늘을 꽂은 그 과보로 평생 동안을 머리 아픈 병을 면(免)치를 못했다 그거여.


소설에나 옛날 얘기에 가끔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와의 사이, 그 본마누라한테서 난 애기를 재취가 괄세하는 팥쥐 콩쥐 그런 얘기 뭐 참 많지만, 참 이러한 그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써 가만히 이 설화를 듣고 여러분도 생각해보시면 인과(因果)의 법칙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 인과는—이 여자가 지은 죄는 바늘로 애기를 하나 죽인 것 뿐인데, 그리고서 맹세를 하기를 그렇게 고약한 맹세를 했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의 혐의를 갖다가 엄폐(掩蔽)하기 위해서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했어.


그 맹세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꺼떡하면 그 맹세를 잘 하지요.

내가 뭐 모래에다 혀를 박고 죽어도 어쩌고 저쩌고 하고, 무슨 내가 당장 바가지를 차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네 돈은 안 쓰겠다는 둥—무슨 입에 못 담을 그런 독한 고약한 맹세를 하는데, 그거 하는 것 아닙니다.


설사 그러한 죄가 없을 경우라도 그런 맹세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한번 그 입에 그런 고약한 말을 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고약한 맹세, 자기의 그 혐의(嫌疑)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고약한 맹세는 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 입으로 맹세한 그것이 고대로 다 받아졌다 그말이여. 죽였기 때문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안했다 하더라도 그런 맹세를 하면 그 맹세한 그 과보로 그것이 그와 비슷한 과보를 또 받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행동으로도 죄를 안 지어야 하고, 입으로도 그러한 고약한 그러한 말은 혀나 입에 건너지를 말아야 하고, 생각으로도 그런 고약한 생각은 해서는 아니된 거다.


몸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은 다 마찬가지여.

마찬가지인데 제일 우리가 소홀히 취급한 것이 '마음으로 지은 죄'다 그말이여.


‘행동으로만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하지만 행동으로 안 해도 마음으로 이미 살생(殺生)을 할 생각을 먹으면 이미 살생죄를 범(犯)한 거여.

마음으로 ‘저것을 내가 훔쳐야겠다’하면 벌써 도둑질을 범한 것이고, '저 사람을 내가 한번 기어코 가까이 해야겠다'하는 그런 음심(淫心)을 품으면 벌써 음행(淫行)을 범한 것이다 그말이여.


이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먼저—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가지고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중대하거든.

성냥불은 성냥개비 하나지마는 그놈 하나 탁! 쳐댐으로 해서 큰 집도 태울 수 있고, 큰 공장도 태울 수도 있고, 한 도시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마음으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바늘로 찌르게 되고, 바늘로 찌른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무서운 여러 가지 맹세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그 마음에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20분31초~41분)





(3/3)----------------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이 탁! 일어나도 그 미워하는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 미워하는 생각이나, 또는 사랑하는 생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단속을 해서 화두(話頭)를 들도록 이렇게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뭣고?’해도 한번 속에서 부애가 나면은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해도 속에서 뽀글뽀글 화가 치밀어 오르지요.

그러지만 자꾸 하면은—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후우~하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2번 3번하면 그 치밀었던 화가 스르르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그렇게 해서 노여움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미운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억울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슬픈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기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면, 그것이 세월이 흘러가면,

탁! ‘이~’ 하면 벌써 턱!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면서 자취 없이 그 미웁고 노여운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해서 힘을 얻은 사람은 성도 낼라면 내고 안 낼라면 안 내고, 통곡을 하고 슬퍼할라면 하고 또 슬퍼 안 할라면 안 하고, 맘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저 버마에서 일어나는 그 통탄하고 분이 풀리지 않는 그러한 일을 참 당했지만 우리나라 백성들은 그 분통을 그 통탄의 마음을 진정을 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돌이켜 뭉쳤고, 다시 최상승법을 믿는 우리 불자(佛子)들은 그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나를 깨달아서 나와 진리가 하나가 되게 하는 불사(佛事)에 마음을 돌이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잘 지키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하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두가 다 마음을 합해서 나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해지냐 하면, 자기 마음을 비워야 해.

자기의 고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를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하거든.


독선(獨善)주의, 독단(獨斷)주의—‘내가 제일이고 나만이 옳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 그런 생각을 비워야만 내 마음과 저 사람 마음이 합해지는 것인데,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비워지냐?’하면 참선(參禪)을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거든.


아무리 내 마음을, 내 주장을 버리고 저 사람을 따라가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니다.

'내가 이제부터서는 시부모 말씀을 순종하리라. 남편 말이라 하면은 무조건하고 따르리라' 또는 '내가 남편이지만 덮어놓고 아내를 윽박지를 게 아니라 아내의 말도 내가 좀 따라주리라'하고 평소에 마음은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일을 딱! 당하면 독사대가리 같은 아만(我慢)이 탁! 추켜들고 나서거든.


그래가지고 고집을 부리고 한바탕 큰소리가 난 뒤에사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공연히 내가 그냥 참아버리면 되었을 것을 공연히 내가 그랬구나' 싶으지만, '이 다음에는 다시는 안 하리라’해도 또 얼마 지내서 일을 당하면 또 그게 안 되거든.


늙어가면서 점점 더 못되게 되어 가. 심술이 더 고약해지고.

그거 왜 그러냐 하면은 ‘나이 먹는다’고 덮어놓고 좋아질 까닭이 없거든. 마음을 자꾸 수양을 하고 닦아야 좋아지는 거지, 닦지 않고 ‘나이 먹는다’고 좋아질 까닭은 도저히 없는 것이여.

곡식을 심어 놓고 손질을 잘하고 잘 가꿔야 좋은 결실을 맺는 거지, 심어만 놓고 날수만 찬다고 해서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닌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는 참선을 열심히 해야 하고,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닦아야 하고, 내 일신을 위해서도—일신의 행복과 생사해탈을 위해서도 참선을 해야 해.

한 가지 일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 일이 좋은 이 최상승법을 금생에 이렇게 만났을 때 아니하고 언제 하려고 미루느냐.

형식적으로 조금하다가 금방 바깥 경계에 끄달려 버리고, 이래가지고서는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해도 무슨 깨달음이 있겠느냐.


부애 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괴로울 때 ‘이뭣고?’

억울할 때 ‘이뭣고?’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사정이 허락할 때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기어코 금생(今生)에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어니와  일념정진성정각(一念精進成正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떠억 정좌(靜坐)를 하고 ‘이뭣고?’를 하면, 참선(參禪)을 하면 그 공덕이 얼마만큼 훌륭하냐 하면,

칠보(七寶), 금 · 은 · 유리 · 호박 · 자거 · 마노, 이러한 칠보로써 탑을 항하사(恒河沙),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 있는 그 모래수 알과 같은 그만큼 많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공덕보다도 더 수승을 하다.


왜 그러냐 하면 아무리 훌륭한 칠보탑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천재지변이나 또는 전쟁으로 인해서 그것이 파괴되어 버릴 때가 있어.


그러나 잠깐 동안 정진(精進)한 그 공덕으로는, 그 인연공덕으로는 언젠가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입니다.

잠깐 동안 ‘이뭣고?’한 공덕으로도 언젠가는 성불(成佛)을 하거든, 하물며 밤잠을 안 자고 목숨을 바쳐서 참선을 한다면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일요법회입니다. 잠깐 동안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죽비를 치고 입선에 들거든, 처음 1분 간은 KAL기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 또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관(觀)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죽비 세번)


(정진)


(죽비 세번)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비록 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산[雲山]처럼 천만 가지 일을 설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하늘 위에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구나.(41분1초~56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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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36. (가로판 p142) 게송 참고.

*(게송)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 ;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36. (가로판 p142)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하늘갓 ; 하늘가(하늘의 끝). 천애(天涯 : 하늘의 끝.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業]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미묘 비구니 설화 ; 『현우경(賢愚經)』 제3권 제16. 「미묘비구니품(微妙比丘尼品」 (단본丹本에는 이 품이 제4권에 있으며 순번이 19이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해산(解産 풀다·가르다·떼어내다 해/낳다·나다·태어나다 산) ; 몸을 풀어[解] 아이를 낳음[産].

*서이 ; ‘셋’의 사투리.

*병구완(病구완) ; 병을 앓는 사람을 돌보아 줌.

*주벽(酒癖 술 주/버릇 벽) ; 술 마신 뒤에 나타나는 버릇.

*야반도주(夜半逃走 밤 야/가운데·한창·가장 반/달아날 도/달릴 주) ; 남의 눈을 피하여 한밤중[夜半]에 도망함[逃走].

*베나레스(Benares) ;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다. 바라나시(Varanasi) 또는 카시(Kashi)라고도 한다.

이 바라나시의 북방 약 10km에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초전법륜 初轉法輪]을 한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이 있다.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 사방 사/돌아볼 고/없을 무/친하다·가깝다·어버이·친척 친/친척·일가 척) ; 사방(四方)을 돌아봐도[顧] 친척(親戚)이라고는 아무도 없음[無]. 주위에 의지할 만한 친척이나 사람이 전혀 없음.

*심덕(心德) ; 마음이 너그럽고 착한 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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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 : 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 : 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산스크리트어)Śākya-muni (팔리어)sakya-muni의 음역. 샤카[釋迦]족의 성자(聖者, 牟尼) · 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계(戒) ; 계율(戒律).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

계는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의 뜻으로 모든 불자가 지켜야 할 불교도덕이며, 율은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깨달음의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의 통제 규범.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탁발(托鉢 맡길 탁/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는 것을 말한다.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재취(再娶 두·두 번 재/장가들다·아내를 맞다 취) ; ①아내를 여의었거나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하여 두 번째 아내를 맞음. ②아내를 여의었거나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하여 맞아들인 두 번째 아내.

*옥동자(玉童子) ; 옥(玉)같이 잘생긴 사내아이[童子]란 뜻으로 어린 사내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

*단통 ; 그 자리에서 대번에 곧장.

*엄폐(掩蔽 가릴 엄/가릴 폐) ; 보이지 않도록 가리어 숨김.

*혐의(嫌疑 싫어하다·의심스럽다·혐의하다·나쁜 일 혐/의심하다·의심스럽다 의) ; ①(법률)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봄(의심). 또는 그 가능성. 수사를 개시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 ②의심스러움. ③미심쩍음. 꺼리어 싫어함.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이것이 삼업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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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해코지(害코지) ; 해꼬자. 해꼬지.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독선주의(獨善主義) ; 남의 이해(利害)나 처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여기는 경향.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법문 내용]


(게송)안비천말적유사~ / KAL(대한항공)기 피습의 가슴 찢어지는 아픔 / 인과(因果)의 법칙, 원인이 없이 나타난 결과란 없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 / 미묘 비구니의 전생에 못된 '한 생각'의 무서운 과보.


미묘 비구니 설화(미묘 비구니의 전생에 행한 악행惡行과 그 악행을 덮기 위해 한 고약한 맹세로 인한 금생의 무서운 과보. 다행히 과거세에 연각緣覺에게 공양을 올리고 그와 같이 도를 얻게 되기를 서원한 인연으로 현생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도를 닦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미묘 비구니는 아라한이 되었지마는 (전생에 둘째 마누라의 아들 정수리에 바늘을 꽂아 죽인 그 과보로) 항상 뜨거운 바늘이 정수리로 들어가 발바닥으로 나오는 듯 밤낮으로 그런 고통을 받아 쉴 때가 없었다고 한다. (『현우경(賢愚經)』 제3권 제16. 「미묘비구니품(微妙比丘尼品」 단본丹本에는 이 품이 제4권에 있으며 순번이 19이다)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둔다 /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 / (게송)약인정좌일수유~.



밥이 되니 지니, 반찬이 짜니 싱거우니, 네 떡이 크고 내 떡이 작으니, 왜 너만 먹고 나는 안 주느니, 방이 더웁다 차웁다, 너는 왜 저만큼 안 앉고 내 바짝 옆에 왔느냐, 너는 왜 저기 안 앉고 여기 왔느냐, 여기가 내 자리다 네 자리다,

사사건건이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참선을 할 것이며, 남의 흉보느라고 언제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참선한다고 선방에 와 가지고 자기 집안 망신하고, 자기집에서는 절로 참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와 가지고 하는 짓이 똥싸고 뭉개는 그러한 참선을 해가지고 무슨 도를 통할 것이냐.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가지고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중대하거든. 성냥불은 성냥개비 하나지마는 그놈 하나 탁! 쳐댐으로 해서 큰 집도 태울 수 있고, 큰 공장도 태울 수도 있고, 한 도시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바늘로 찌르게 되고, 바늘로 찌른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무서운 여러 가지 맹세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그 마음에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이 탁! 일어나도 그 미워하는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 미워하는 생각이나, 또는 사랑하는 생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단속을 해서 화두(話頭)를 들도록 이렇게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인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조금하다가 금방 바깥 경계에 끄달려 버리고, 이래가지고서는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해도 무슨 깨달음이 있겠느냐.


부애 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괴로울 때 ‘이뭣고?’

억울할 때 ‘이뭣고?’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사정이 허락할 때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기어코 금생(今生)에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