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90))—1983년 입춘 법회(83.02.04) (69분)
(녹음상태가 좋지 않사오니 양해를 바랍니다)
(1/4) 약 19분. (2/4) 약 19분. (3/4) 약 14분. (4/4) 약 17분.
(1/4)----------------
해천공활월성륜(海天空濶月成輪)헌디 호호청파난사은(浩浩淸波爛似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막괴편주능좌우(莫怪扁舟能左右)하라 행선유재파소인(行船由在把梢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해천공활월성륜(海天空濶月成輪)한디, 바다, 넓고 넓은 저 바다 위에 하늘이 툭 틔여서 한정 없이 넓은데, 거기에 둥근달이 밝게 떠 있다.
호호청파난사은(浩浩淸波爛似銀)이로구나. 그 넓고 넓은 바다에서 맑은 물결이 마치 은(銀)을 갖다가, 은가루를 뿌려놓은 거와 같다.
바닷물이 파도를 쳐서 찰랑거리는데 휘황창 밝은 달이 비추니까 그 물결마다 마다 마치 은가루와 은편(銀片)을 갖다가 흩어놓은 거와 같이 그렇게 찬란하다 그말이여.
막괴편주능좌우(莫怪扁舟能左右)하라. 그 바닷 가운데에 조각배가 가는데 그 배가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고, 왼쪽으로도 가고 오른쪽으로도 가고, 그 배 가는 것을 조끔도 괴이(怪異)하게 여기지 말어라.
행선(行船)이 유재파소인(由在把梢人)이니라. 배 가는 것은, 배가 이리가고 저리가고 하는 것은 오직 그 키를 잡은 사람에 달려 있느니라. 배 키를 잡은 사람이 키를 조정하기에 따라서 왼쪽으로도 가고 오른쪽으로도 가고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는 것이다.
오늘은 계해년(癸亥年) 입춘(入春)날인데, 날짜로는 아직도 임술년(壬戌年) 섣달 스무이튿날, 임술년 섣달 스무이튿날이지만, 입춘 · 우수 · 경첩 · 춘분하면 그 절후(節候)로 봐서는 오늘이 입춘날이기 때문에 '봄으로 들어서는 날'이여.
새해 계해년의 봄이 오늘부터 시작하는 날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오후 6시 40분 정각부터서 계해년 첫 시간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래서 음양가(陰陽家)에서는 사주(四柱)를 본다든지 그 음양으로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따지는데 있어서는 아직도 섣달이지만 오늘부터, 오늘 또 6시 40분부터 계해년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 8일이 지나야 계해년 정월 초하루가 되지만, 절후로는 오늘부터서 정식으로 계해년이 시작이 되는 것이여.
그래 입춘날 이렇게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는 것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 지나간 한 해를 반성(反省)하고 새로 시작하는 이 해에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지기 위해서 입춘날 이렇게 법요식을 거행하는데, 보통 세속 사람들은 새해에 삼재(三災)가 뱀띠 · 닭띠 · 소띠, 이 사유축(巳酉丑), 이 해에 난 사람은 삼재(三災)가 시작이 된다.
금년에 시작이 되고 내년, 내후년까지 3년 동안 삼재(三災)가 드는데, 그 삼재를 면하기 위해서 절에 가서 불공(佛供)도 드리고 또 좋은 법문(法門)도 듣고, 또 어떤 절에 가면은 부작(符作)도 받고, 또 그 절에 가서 부작을 못 받으면 무당이나 만신집이나 사주 점쟁이 한 그런 데 가서라도 몇만 원, 몇십만 원씩을 주고 그 부작을 사 가지고 와서 몸에 지니기도 하고, 집안에 갖다 붙이기도 하고 해서 오늘 대단히 여러 군데 절을 다니기 위해서 바쁘신 분도 계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용화사(龍華寺)에서는 그러한 부작(符作)을 노놔 드리지 아니하고, 부작보다도 더 영험이 있는 그러한—삼재를 3년 동안만 막는 게 아니라, 일생 동안 내지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그 삼재(三災), 백재(百災), 천재(千災)를 다 소멸하는 그러한 불에다 넣어도 타지 않는 그러한 부작을 노놔 드리고자 합니다.
삼재를 없애려면 종이에다가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그래 가지고 그것이 참으로 삼재의 뿌리가 뽑아지냐 하면, 그것은 참 '그리하면 좋다니까' 해 보는 것이지, 참으로 그 삼재가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통사고나 무슨 그런 일이 그런 사고(事故)를 났을 때 그 사고 난 사람의 호주머니를 뒤지니까 부작이 나왔다' 이런 신문에 그런 기사도 나오고 합니다마는, 그런 것을 볼 때에 부작을 가졌다고 해서 꼭 삼재가 멸해진 것이 아니로구나. 이런 것을 우리는 또 알 수가 있습니다.
삼재(三災)를 참으로 면(免)하려면은 삼재의 원인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삼재의 원인이 무엇이냐?
삼재가 해필 뱀띠나 소띠나 닭띠에 난 사람에게만 삼재가 붙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당사주(唐四柱)를 볼 때에 포태양생(胞胎養生) 이걸 갖다가 붙여서 그래서 인자 삼재가 걸리면은 그걸 '삼재가 들었다' 해 가지고 대단히 그것은 '흉(凶)한 살(殺)이다' 이렇게 모다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마는.
그렇게 그런 말을 듣고 지내 보면 정말 삼재 든 해에는 여러 가지가 어려운 일이 있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들삼재 · 앉을삼재 · 날삼재, 이 삼재 땜을 이렇게 금년에는 했다' 이렇게 해서 틀림없이 그 삼재가 들면은 과연 그러한 좋지 않게 넘어가는 것 같이 보이기도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삼재(三災)가 안 든 사람은 전혀 그러한 어려운 일이 없고, 흉한 일이 없느냐 하면은 또 그렇지도 않죠.
그래서 삼재는 포태양생(胞胎養生)을 붙여서 걸리는 것 그것으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삼재의 그 뿌리는 우리의 생각—탐심(貪心)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삼재가 일어난다고 하는 부처님의 법문에 입각(立脚)해서 관찰하는 것이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그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돌이켜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회향(回向)을 한다면 거기에서 참으로 그 삼재의 뿌리채 소멸을 하는 길이 된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탐진치 삼독(三毒)의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삼재가 생로병사... 삼재(三災)면은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 병들어서 죽어 가지고 장사 지내는 거, 그 포태양생(胞胎養生)이 내나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과 관련이 되는 것인데,
그 십이인연법이라는 것이 낳아 가지고 늙어서 죽을 때까지의 그 과정을 갖다가 열두 가지 단계로 노놔놓은 것이 그것이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이고, 그것이 또 포(胞)는 '안을 포(胞)' 자거든. 남녀가 서로 안아 가지고 포태(胞胎), 입태(入胎)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낳아서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 단계가 그 음양가에 있어서는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 이거란 말이여.
그러면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이나 포태양생의 그 십이궁(十二宮)이 결국은 그 원인은 한 생각 무명(無明)이 일어나는 것으로 인(因)해서 태어나 가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그것이 바로 탐심과 진심과 치심—탐내는 욕심, 내 욕심껏 내 마음대로 안되면은 썽을 내고,
그 한 번 두 번 해 보면, '아하,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내 욕심껏 안되는 것이로구나.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이 안되는 것이로구나. 바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는 곳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도 안되는 일이 더 많구나' 그런 것을 알고서 자기의 분(分) 따라서 노력을 해 나가고.
또 내 마음대로 안된다 하더라도 진심(瞋心)을 내기보다는 복(福)과 지혜(智慧)를 닦아서 과거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그럼으로써 업장이 소멸이 되면 자연히 내가 하고자 하는 원(願)이 장애 없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그러한 인과법(因果法)을 분명히 인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의 모든 생활을 갖다가 여법(如法)하게 해 가도록 노력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사(生死)의 파도 속에서 생사 없는 참된 삶을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밤낮 그것을 되풀이하거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렸다가 그것이 뜻대로 안 이루어지면은 속이 상하고 썽을 내고, 그것을 평생 동안을 되풀이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중생의 어리석음’이다 그말이여.
아까 「배가, 그 달빛이 파도에 찬란하게 부서지면서 반짝거리는 그 파도 속에 배가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갈 수 있는 것은 뱃사공의 손에 달렸다」고 하는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마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우리 중생들도 마치 찬란한 달빛이 반짝거리는 파도 위를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동쪽으로 가느냐 서쪽으로 가느냐, 천당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축생으로 가느냐 아귀도에 가느냐, 온전히 우리의 마음 하나에 달렸어. 천당(天堂)에 가려 하면은 천당에 갈 짓을 하면은 천당에 가는 게고, 지옥(地獄)이나 축생(畜生)으로 가려면은 지옥이나 축생으로 갈 짓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지끔 경면주사로 종이에다 쓰는 부작을 노놔 드리는 대신에, 여러분이 천당에 가고 싶으면 천당에 가고, 극락에 가고 싶으면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그러한 길을 여러분에게 가리켜 드리는 것이 종이에다 쓴 부작 한 장 노놔 드린 것보단 훨씬 더 훌륭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귀가 있고 눈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들어보시면 알 것입니다.(처음~18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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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가운데에는 '빨리 법문이 끝나야 뭘, 부작을 사러 갈 텐데' 이러한 생각을 혹 하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그까짓 부작은 한 장뿐만이 아니라 백 장씩이라도 노놔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인쇄를 해다가 노놔 드린다면 백 장 천 장이라도 노놔 드릴 수가 있어요. 그것을 가지고 가서 참으로 삼재를 면하고 업장을 소멸한다면은 무엇이 그리 어려울 것이 있습니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저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삼재(三災)가 다른 것이 아니라—혼침(昏沈) 산란(散亂), 참선하려고 앉었으면은 혼침(昏沈)이 오고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잡담(雜談)을 하면은 눈이 초롱초롱해 가지고 조는 사람이 없는데, 죽비를 치고 참선을 하거나 또 이렇게 법문(法門)만 들으려고 하면은 눈껍데기가 천근만근 쪄 누르면서 잠이 퍼온다 그말이여.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이 세계는 불보살(佛菩薩)도 꽉 차 있지만, 팔만사천 마구니도 꽉 차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법문을 들으면, 법문(法門)을 바로 듣고 발심(發心)을 하면 마구니의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의 권속들이 발붙일 곳이 없고, 마왕 파순이의 궁전이 흔들려서 무너질 테니 어쨌든지 법문을 못 듣게 해야겠다 그 말이여. 법문만 바로 들었다 하면 그 사람은 발심을 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확철대오를 하면 마구니가 갈 곳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은 법문을 못 듣게 해.
애당초에,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나오시기까지도 대단히 신심(信心) 있는 분이 아니면 여기에 오시지를 못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못 온다 우리 아들 하나... 온갖 핑계를 대고... (녹음불량) ... 영판 핑계를 대고 못 나오는데, 그 핑계가 다른 것이 아니라 마구니들이 온갖 수단을 다 써 가지고 그렇게 해서 못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못 오는 사람은 벌써 마구니의 수단에 걸려 가지고 못 오는 것이고, 그러한 마구니의 온갖 수단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오는, 이 법회에 참석하신 것만도 대단히 참 훌륭하다고 칭찬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참석을 해 가지고서도 아까 법문 시작하기 전에 옆에 사람하고 뭐라고 무슨 잡담을 한 동안에는 단 한 사람도 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 시작할 때부터 벌써 꾸벅꾸벅 졸다가, 지끔도 지금 내가 그렇게 눈을 감고 조는 꼴이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가끔 눈을 감아 버립니다마는, 그 마구니가 그 눈뚜껑 위에 딱! 붙어 가지고 막 눈뚜껑을 눌러 내리는 것입니다.
그 눈을 뜨려고 해도 마구니 힘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눈이 막 저절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억지로 눈을 뜨고 '누가 나 잠자는 것을 본가, 안 본가?' 이렇게 뚤레뚤레 살펴보지만, 그러자마자 또 자는 수가 있어. 아무리 안 자려고 해도 법문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전히 그 마구니의 그 수단에 의해서 그렇게 졸음이 오는 것입니다마는.
혼침(昏沈) 산란(散亂), 공부를 해 본 사람이면 졸음이 오고, 졸음이 안 오면 온갖 망상이 일어나고, 망상이 좀 가라앉을만 하면 잠이 오고, 두 가지 놈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이렇게 까지 그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은 그 혼침과 산란을 이겨낼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아주 가끔 그러한 질문을 하십니다마는, 참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그 이전에 혼침 산란이 나타난 것을 보면 이미 그것은 그르친 것입니다. 또 혼침 산란이 일어나는 것을 물리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것도 또한 이미 그르친 것입니다.
또 아무리 물리치려고 해도 물러가지를 아니해서 '어떻게 해야 이놈을 물리칠 수가 있을까?' 이렇게 근심을 하면 이건 다시 또 그르치는 것입니다.
또 설사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다든지, 용을 써 가지고 그놈이 그 혼침 산란이 물러가 가지고 다 물리쳐 버리고 성성(惺惺)해서 깨끗해졌다 할지라도 그것도 또한 이미 그르친 것이다 그 말이여.
생각을 내서 물리치려고 하면 그럴수록에 점점 그르쳐 버리는 것이여.
'그러면 대관절 그렇게 말하면, 아하 생각을 내서 혼침 산란을 물리치려고 하면 그르쳐 버리는 것이니까, 그러면은 생각을 내지 말고 혼침이 오거나 산란심이 오거나 내버려두고 그저 실컷 코가 땅에 닿도록 혼침에 빠져서 잠이 오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그저 죽비를 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저 방선(放禪)할 때까지 침을 지르르르 흘리면서 그저 실컷 졸고 있으면 그러면 괜찮으겄구나. 내가 왜 진즉 그것을 몰랐던고. 이제부터서는 참선하는 것을 그렇게 하나도 그 걱정할 것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된장(똥)을 똥(된장)인 줄 알고 상추를 싸 먹을 사람이거든.
분명히 말하자면, 유심(有心) 무심(無心)으로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그 다 그르친 것이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생각을 내서 혼침 산란을 물리치려고 해도 그르치고, 또 물리치지 않으려고 해도 그르치고, 물리치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않고 실컷 자도 그르친다고 하니 이것을 내가 어떻게 해야겄냐? 참선을 하지 말라는 건가, 하라는 건가 큰일났다'
먼저 혼침 산란이... (녹음 불량) 스님들은 참선 하려고...
무량겁래(無量劫來)로,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 (녹음 불량) ... 수없이 많은 겁 동안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면서 번뇌 망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번뇌 망상과 혼침 속에서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물리치려고 해도 안 물리쳐져. 그래서 혼침과 산란이 퍼일어난 것이고, 그 혼침 산란의 뿌리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한 생각 염기(念起)해서 온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고.
또 그다음에는 지끔 우리가 눈으로 모든 색상(色相)을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듣고서 생각 생각이 모든 각각 장소와 인연(因緣)이 되어 왔어.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온 거다. 이것이 바로 혼침 산란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고.
또 그래 가지고 내 마음을 마침내 보아서, 내 마음을 친견(親見)해서, 그러므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려는 그러한 생각을 내는 것이 그것이 바로 혼침 산란의 뿌리다.
또 하나는, 최초에 '생사(生死)... 생(生)을 갖다가 뛰어넘고, 죽음을 갖다가 초월(超越)하리라' 하는 '한 생각' 내기 때문에 혼침 산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또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참선을 해 가지고 도(道)를 이룬다' 한 그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혼침 산란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가지고 조사(祖師)가 되고 성불(成佛)을 한다'고 한 그 생각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혼침 산란의 뿌리가 된다. 혼침 산란의 뿌리가 바로 성불작조(成佛作祖) 하려는 그 생각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30분52초(여기부터 음질 조금 괜찮음)
'위없는 대보리(大菩提)를 얻어 가지고 대열반(大涅槃)에 들어가리라' 그러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혼침 산란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지(乃至) '세간(世間) · 출세간(出世間)의 가지가지 법(法) 가운데에 터럭 끝만큼이라도 일어나는 어떠한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바로 혼침 산란의 근원(根源)이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혼침 산란은 번뇌(煩惱) 망상(妄想)으로부터서 성불(成佛)하려는 생각, 열반(涅槃)에 들리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이 혼침 산란의 원인이 아닌 것이 없어.
그러니 그놈을 버리려고 한 것도 그르치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놈을 버리려고 해서 물러가지 아니한다고 번뇌심을 내는 것도 그것이 그르쳐 버리는 것이고, 그놈 그 혼침 산란을 물리쳐서 깨끗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되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야 과연 우리는 올바르게 공부를 해 갈 것인가?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니라.
한가한 알음알이 배우는 것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알음알이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를 가지고 조사(祖師)의 마음을 묻어 버리지를 말아라.
산승(山僧)이 오늘 입춘 법요식을 당해서 삼재(三災)를 면(免)할 수 있는 법... (녹음불량)... 산란과 혼침을 물리치는 법,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을 돌이켜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음으로써 영원히 삼재를 멸하는 법, 이러한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것이 모두 엄격하게 말하면, 한가(閑暇)한 학해(學解)를 가지고 조사심(祖師心)을 매몰(埋沒), 묻어 버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산승이 말하는 것만이 조사심을 묻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산승의 말을 듣는 것도 또한 조사심을 매몰하는 데에 가담한 공범자(共犯者)를 면(免)틀 못할 것입니다.
왕왕(往往)이 자기의 한 생각이 진실하고 참으로 간절(懇切)하지 못한 것을 책망(責望)하지 아니하고,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혼침 산란이 장애가 되어서 도(道)를 닦을 수가 없다'고 걱정을 하는 사람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 컴컴한 방에 앉아서 '왜 모든 물상(物象)이 훤하게 보이지 않느냐?'고 한탄하는 사람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깜깜한 방에 앉어서 모든 것이, '글자나 모든 물건이 훤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노망했거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어째서 한 생각 참으로 간절하지 못해 가지고서 (간절하지) 못한 것은 책망을 하지 아니하고 혼침 산란만을 책망을 할까 보냐 이 말이여.
참으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한다면 어디에 혼침이 있으며, 어디에 산란심이 있겠느냐 그말이여.(18분30초~37분50초)
(3/4)----------------
옛날에 도반(道伴)이 죽거나 하면 거기에서 무상(無常)을 느끼고 며칠간은 잠을 안 자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며칠을 하고, 또 도반 가운데 누가 참선을 잘하거나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 거기에서 분심(憤心)이 나 가지고 며칠 동안을 모다 온 대중이 잠을 안 자고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일화도 있습니다.
우리는 근기(根機)가 약해 가지고 혹 어떠한 법문을 듣고서 분심이 좀 나고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분심이 좀 나도 며칠이 안 가서 비그르르르 허니 용맹심이 가라앉아 버리고, 다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해태심(懈怠心)이 나고 방일(放逸)을 하게 된다 이말이여. 그래서 혼자 하기보다는 좋은 도반(道伴)들과 또 선지식(善知識)을 의지해서 우리가 모여서 공부를 하고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러 대중이 모여서 살면 그 가운데는 누군가 반드시 분심과 발심을 해서 가행정진을 하고 있는 분이 있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런 분이 한두 사람만 있어도 여러 대중이 그 좋은 영향을 받아서 따라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파리란 놈은 아무리 그놈이 몸이 날래서 잘 나른다 하더라도 지가 하루에 천리(千里)를 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千里馬) 꼬리에 딱! 들어붙어 갖고 있으면, 천리마 꼬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탁! 붙어만 있으면 그 파리도 천리를 하루에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 힘으로, 지 날개로 날아가지 아니하고 천리마 꽁딩이에만 붙어 갖고 있어서 천리를 가는 것이 옳다면, 저는 공부는 아니하고 선지식이나 어느 도반 꽁딩이만 따라다니면 되겄구나' 이렇게 착각(錯覺)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셨습니다.
아란존자(阿難尊者)는 생각하기를, '좋은 도반(道伴)을 만나는 것은 도(道)에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리 생각을 하고서 그 생각이 옳은가 그른가를 부처님께 가서 판단을 받으러 여쭈어봤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니 생각이 틀렸다.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도에 절반을 이룬 거와 같은 것이 아니라 도(道) 전부(全部)를 이룬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교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좋은 도반, '선우(善友)'라 하는 말은 도반과 선지식(善知識) · 선각자(先覺者)를 다 포함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스님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같이 법문을 들으러 오고 또 자주 만나서 공부에 관한 의논(議論)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에 관해서 의논하는 동창생이나 이웃 도반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집니다.
바른 사상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가는 그러한 친구를 만나는 것은 인생을 바로 살아가고 법을 바로 믿어 가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점쟁이나 좋아하고, 사주쟁이나 좋아하고, 무당이나 만신이를 좋아하는 그러한 친구들이...(녹음불량)...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무당이나 점쟁이한테 쫓아가 가지고 모든 일이 해결이 된다면 무엇이 걱정을 할 것이 있습니까? 돈 많은 사람은 무당을 차라리 자기집에다가 모셔다 놓고, 조실 스님으로 모셔 놓고 백만사(百萬事)를 의논한다면은 무슨 소원을 성취를 못하고, 무슨 도를 깨닫지 못하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대학 합격이나 무엇이 걱정이겠느냐 그말이여. 점쟁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재앙이나 복(福) · 불복(不福)은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면서 지은 우리의 업(業)에 의해서 받어지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짓는 대로 받는 것이여.
그 여러분 가운데에는 그 말이 잘 믿어지질 않고 '우리가 별로 죄(罪) 지은 것도 없는디 왜 이러한 액난(厄難)을 당해야 하느냐. 그것은 맞지 않는 소리다' 또 '아무개는 평생 동안 법이 없어도 살 그렇게 정직하고 그렇게 착하고 한데 왜 그러한 못 당할 일을 당하느냐. 그러니 그것도 맞지 않는 말이다' 또 '아무개는 그렇게 평생을 사기를 처묵고 살고 못된 짓만 하고 살아도 그렇게 잘사는 걸 보면 그거 다 인과(因果)라는 게 멀쩡한 소리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인과(因果)의 법칙이,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당장 받는 그런 현생보(現生報)가 있어요.
그런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받는 것을 현생보(現生報)라 그러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이 다음 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라 그러고, 또 금생에 지어 가지고 저 몇 생을 가 가지고 훨씬 뒷 생에 가서 받는 그러한 것을 갖다가 순후보(順後報)라 그러는 거여.
현생보(現生報), 순생보(順生報), 순후보(順後報) 이렇게 세 가지로 지은 원인에 따라서 그 결과를 받게 됩니다.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당장 받는 예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가 있고 금생에 지어...(녹음 끊김).
삼생(三生)을 다 환히 보는 성현들의 말씀에 의지하면,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받게 되기 때문에 혹 금생에 그렇게 못된 짓을 해도 금생에 그 과보를 안 받는 경우도 있고, 금생에 그렇게 착한 일을 하고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금생에 그 좋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종류로 받을지언정 기어코 언제 받던지 자기가 지은 것은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받고, 악한 것은 악한 대로 그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터럭끝 만큼도 차이가 없습니다.
컴퓨타(computer)로 따지고, 전자계산기로 따진 것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것이 이 인과(因果)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 컴퓨타는 그 재료를 거기다가 넣는 그 범위 내에서만 나오는 것이지, 그 재료를 넣지 아니하면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과의 법칙은 자기가 지은 원인에 따라서, 이것은 행동[身]뿐만이 아니라—행동으로 살생을 하고, 행동으로 도둑질을 하고, 행동으로 음행을 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죄를 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말[口]로 짓는 죄 또 생각[意]으로 지은 것까지도 하나도 어김없이 다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죄는 소승적(小乘的)인 계율(戒律)로 보면, 속으로는 누구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만 죽이지 아니하면 그것이 죄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또 현대의 모든 법률도 마음으로 온갖 도둑질을 하고, 온갖 못된 짓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범하지만 않으면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대승법(大乘法)에 있어서는, 우리의 인과의 법칙에 있어서는 속으로 생각을, 행동으론 옮기지 안 했어도 속생각으로만 한 생각 먹었다 하더라도 이미 죄를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승법,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되는 생각을 바르게 다스려 나가도록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남을 도울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면 그 좋은 생각으로 인해서 우리는 천상(天上)에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또 생각으로 '누구를 죽이리라, 무엇을 훔치리라, 누구하고 무슨 음행을 하리라' 이러한 생각을 먹어도 이미 그 사람은 지옥(地獄)에도 갈 수가 있고, 축생(畜生)에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도 우리는 천당(天堂)에도 갈 수가 있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서도 독사가 될 수도 있고, 소가 될 수도 있고 또 지옥에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에서는 지옥에 가기를 싫어하지도 아니하고 천당에 가기를 바래지도 않습니다. 왜 그러냐?
지옥에 가면, 한 생각을 일으켜서 지옥에 가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내도 이미 한 생각이 움직였기 때문에 육도(六道) 중에 어느 곳엔가는 우리는 떨어지게 되는 것이고, 또 천당에 가기를 원하지를 않지만, 천당에를 가기를 원하나 원하지 않으나 이미 한 생각은 동(動)한 것이기 때문에 육도 중에 어느 곳엔가는 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 봤자 자기가 지은 공덕(功德) 만큼 다 받으면 다시 또 떨어지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천당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는 천당에만 가면은, 천당에 가는 것이 모든 자기 종교를 믿는 구경(究竟)에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천당에 가는 것 별로 좋지 않습니다. 천당에 가 봤자 자기가 지은 만큼 다 복(福)을 받으면 다시 떨어지는 것입니다. 활을 하늘에다 대고 쏘면 그 힘이 다하면 다시 지상에 떨어지는 거와 똑같은 것입니다.(37분51초~52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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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천상도 옅은 데로부터서 저 높은 데에 이르기까지 한량이 없습니다마는, 그 천상 가운데에 도솔천(兜率天)이라 하는 곳이 있어.
도솔천에도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외원궁(外院宮)에 가도 거기에는—이 지구가, 이 세계가 온통 불이 나 가지고 불로써 온 세계가 다 타 버리는 때가 언젠가는 옵니다마는, 그 불이 도솔천 외원궁까지는 그 불길이 닿아서 타 죽습니다. 그런데 그 내원궁(內院宮)에는 그 불길이 미치지를 못해요.
그래서 성현들이, 앞으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강림(降臨)하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이 그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서 계시는 것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도 인도(印度)에 가비라(迦毘羅 kapila) 왕국에 삼천년 전에 태어나시기 전에 그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이 사바세계에 오셨고, 앞으로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사바세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음 부처님으로 출현하실 미륵 부처님, 미륵불(彌勒佛)도 현재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지금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 참선하는 수행인들은 내생(來生)에 몸을 받아나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기를 원(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가면 바로 미륵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성현(聖賢)들을 친견(親見)할 수가 있고, 거기 가서 그러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빨리 이 사바세계에 내려와서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리라 이러한 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도솔천 내원궁을 제외하고는 다른 천상에 태어나 봤자 그것은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우리는 별로 좋아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난 것도 바래지 아니하고, 또 지옥에 태어나는 것도 싫어하지를 아니하고 무엇을 생각하느냐?
'이 무엇고?'
좋은 일을 봐도 '이 뭣고?',
궂은 일을 봐도 '이 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이 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
몸에 병이 나도 '이 뭣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도 '이 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일분일초를 등한(等閑)히 보내지 아니하고 '이 무엇고?' 우리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우리의 생각 생각을 돌이킬 때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들어붙을 틈을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들어붙지 못하는데 무슨 삼재(三災)가 우리에게 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설사 과거에 어떤 지은 업(業)에 의해서 삼재가 우리에 붙은다 하더라도 그 삼재는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를 듦으로 해서 그 삼재(三災)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변할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우리에게 붙기 위해서 전후좌우에 엿보고 있다가도 '이 뭣고?'를 들면, 그 마구니가 찰나간에 팔만사천 불보살(佛菩薩)로 변해질 것이다 그 말이여.
여러분이 잘 아신 바와 같이 부처님이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을 하고 계시는데, 잠잘 중도 잊어 버리고 밥 먹을 중도 잊어 버리고 그 설산 속에서 고행을 해 가지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境地)에 들어갔다.
어데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제행(諸行)이라는 것은 모든 행이,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든 존재와 모든 현상이 다 이것이 무상(無常)한 것이요, 무상하기 때문에 이것이 생멸법(生滅法)이다 그말이여. 나 가지고는 없어지고, 나 가지고는 변해서 없어지고 다 이것이 생로병사(生老病死)다—그러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이여.
그 노랫소리가 너무너무 맑고 아름답다 그 말이여. 그래서 눈을 번쩍 뜨고 앞 뒤 옆을 다 전후좌우(前後左右)를 다 살펴봐도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 훌륭한 노래를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
그래서 잘 살펴보니까 저만큼 그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은 세 개가 붙은 독수리 손가락을 한, 그리고 뿔이 돋힌, 사람을 생으로 막 잡어먹고 피를 빨아먹는 나찰(羅刹) 귀신이 금방 덮쳐 올 것 같이 무서운 형상을 하고 노려보고 있다 그 말이여.
저런 나찰 귀신의 입에서 그러한 아름다운 목소리, 그러한 훌륭한 법문이 울려 나올 것 같지는 않으나, 그 나찰 귀신 말고는 아무한테도 그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행여나 하고 나찰 귀신 보고 물어봤다 그 말이여.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하는 그 노래를 금방 니가 불렀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뭐라고요? 지금 나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시치미를 뚝 딴다 그 말이여.
"정말 니가 그 노래를 불렀다면 반드시 그 노래의 뒷 구(句)가 있을 테니 그 뒷 구를 한 번 나에게 일러다오" 간절히 청(請)을 했습니다.
그러니 나찰 귀신이 "나는 배가 고파 죽겄다. 나는 당장 너를 잡어먹어야겄어" 그러면서 달라들라고 그러니까,
"좋다! 니가 그 다음 구절만 일러준다면은 내 몸을 너한테 던지리라"
"내가 널 일러주면은 도망가려고 그러지?"
"아니다. 니가 그것이 의심스럽다면은 내 몸뚱이는 다 니 입에다 넣어놓고 내 귀만 내놓고 일러다오"
그러니까 나찰 귀신이,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생멸(生滅)이 다하면 적멸(寂滅)이 낙(樂)이 되느니라, 아! 그 노래를 부르는데 그 설산동자(雪山童子)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
'내가 이러한 좋은 법문을 듣고 나만 깨달라 가지고 나찰 귀신의 밥이 된다면은 안될 일이다. 나 말고도 한량없는 중생(衆生)이 있는데 나만 알고 죽어서는 안되겄다'
이래 가지고 바위에다 나무에다 그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그 법문(法門)을 갖다가 막 썼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로써 그 법문을 갖다가 써 놓고서 나찰 귀신의 입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찰나간(刹那間)에 온 하늘과 땅에서는 장엄(莊嚴)한 하늘나라의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그 무서운 나찰 귀신은 간 곳이 없고, 찰나간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모습으로 변해 가지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설산동자를 공경스럽게 두 손으로 받들어 모셨습니다.
이 말씀은 『열반경(涅槃經)』에 있는 법문인데, 설산에서 설산동자만이 그러한 경계가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도 한 생각 돌이켜서 참 진실한, 간절한 한 생각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한다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팔만사천의 불보살(佛菩薩)로 화현(化現)을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여지없이 이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재앙을 만나고 어떠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때 그 슬픔에 빠지지 말고 가슴 아픈 데에 빠지지 말고, 노여움에 빠지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그 노여움과 슬픔과 괴로움은 찰나간에 나를 깨달음에 이끄는 불보살의 따뜻한 화현으로 변할 것입니다.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헌디 석양재오서(夕陽在吾西)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헌디 월락불리천(月落不離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허니 석양(夕陽)이 재오서(在吾西)로구나.
돌아와서 빈 방에 앉었으니 석양은 이미, 태양은 내 서쪽에 있구나.
무량겁(無量劫)을 윤회(輪廻)하다가 금생에 겨우 불법을 만나 가지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이 최상승법을 만나서 이 참선 공부를 하려고 하니 벌써 나이가 육십, 칠십이 되었구나.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헌디 월락불리천(月落不離天)이여.
물은 흘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은 어떠한 물이고 흘르고 흘러서 결국은 바다로 돌아가듯이, 우리가 바른 법을 믿고 한 생각을 한 생각을 돌이켜서 열심히만 해 가면 갈 곳이 없어. 결국은 깨달음에 이르는 거여.
왜 그러냐 하면, 저 달빛이 바다에 비춰, 호수나 물에 비추어서 분명히 물속을 보면 그 달이 물에 와 있지만—천만 개의 호수, 천만 개의 물에 달이 비치지만, 달이 떨어진 것이 아니여. 달은 하늘에 조끔도, 한 걸음도 하늘을 여읜 것이 아니더라.
혼침 산란이, 혼침 산란이 전체가 본래(本來) 본지풍광(本地風光)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본지풍광인데 그놈을 버리려고 하면 버려질 것이며, 쫓으려고 하면 쫓아질 것이냐 그 말이여.
물속에 있는 달을 그놈을 건지려고 하면 건질 거여? 무슨 놈의 달이 물속에 들어와 있을 것이냐 그 말이여.
오늘부터 계해년 첫날이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중생(衆生)의 업(業)이 지중해서 육도윤회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육도윤회(六道輪廻)가 아닙니다.
조끔도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이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인 것입니다. 진묵겁(塵墨劫) 전(前)에 우리 성불이여. 그러니 찾지도 말고 버리지를 말어.(52분7초~1시간8분36초) (끝)
[법문 내용]
(게송)해천공활월성륜~ / 용화사에서 나눠 드리는 무량겁 삼재를 소멸하는 부작, '이뭣고?' / 삼재의 원인인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돌이켜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회향(回向)해야 / 유심(有心) 무심(無心)으로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다 그르친 것 / 혼침 산란은 번뇌망상으로부터서 성불하려는 생각, 열반(涅槃)에 들리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이 혼침 산란의 원인 / (게송)막장한학해~ / 자기의 한 생각이 진실하고 간절(懇切)하여 참으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한다면 어디에 혼침이 있으며, 어디에 산란심이 있겠느냐
혼자 하기보다는 좋은 도반(道伴)들과 또 선지식(善知識)을 의지해서 우리가 모여서 공부를 해야 /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 / 현생보(現生報), 순생보(順生報), 순후보(順後報) / 인과의 법칙은 어김이 없다.
참선 수행인들은 내생(來生)에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기를 원(願) /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를 듦으로 해서 그 삼재(三災)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변한다 / 『열반경』에 있는 설산동자 법문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진실한, 간절한 한 생각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한다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팔만사천의 불보살(佛菩薩)로 화현(化現)을 하는 것.
(게송)귀래좌허실~ / 우리가 바른 법을 믿고 한 생각을 한 생각을 돌이켜서 열심히만 해 가면 갈 곳이 없어. 결국은 깨달음에 이른다 /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인 것입니다. 진묵겁(塵墨劫) 전(前)에 우리 성불이여. 그러니 찾지도 말고 버리지를 말어.
〇아까 「배가, 그 달빛이 파도에 찬란하게 부서지면서 반짝거리는 그 파도 속에 배가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갈 수 있는 것은 뱃사공의 손에 달렸다」고 하는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마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우리 중생들도 마치 찬란한 달빛이 반짝거리는 파도 위를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동쪽으로 가느냐 서쪽으로 가느냐, 천당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축생으로 가느냐 아귀도에 가느냐, 온전히 우리의 마음 하나에 달렸어. 천당(天堂)에 가려 하면은 천당에 갈 짓을 하면은 천당에 가는 게고, 지옥(地獄)이나 축생(畜生)으로 가려면은 지옥이나 축생으로 갈 짓을 하면 되는 것이다.
〇어째서 한 생각 참으로 간절하지 못해 가지고서 (간절하지) 못한 것은 책망을 하지 아니하고 혼침 산란만을 책망을 할까 보냐 이 말이여. 참으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한다면 어디에 혼침이 있으며, 어디에 산란심이 있겠느냐!
〇부처님 말씀에,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셨습니다.
〇설사 과거에 어떤 지은 업(業)에 의해서 삼재가 우리에 붙은다 하더라도 그 삼재는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를 듦으로 해서 그 삼재(三災)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변할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구니가 우리에게 붙기 위해서 전후좌우에 엿보고 있다가도 '이 뭣고?'를 들면, 그 마구니가 찰나간에 팔만사천 불보살(佛菩薩)로 변해질 것이다
〇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헌디 월락불리천(月落不離天)이여. 물은 흘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은 어떠한 물이고 흘르고 흘러서 결국은 바다로 돌아가듯이, 우리가 바른 법을 믿고 한 생각을 한 생각을 돌이켜서 열심히만 해 가면 갈 곳이 없어. 결국은 깨달음에 이르는 거여.
왜 그러냐 하면, 저 달빛이 바다에 비춰, 호수나 물에 비추어서 분명히 물속을 보면 그 달이 물에 와 있지만—천만 개의 호수, 천만 개의 물에 달이 비치지만, 달이 떨어진 것이 아니여. 달은 하늘에 조끔도, 한 걸음도 하늘을 여읜 것이 아니더라.
혼침 산란이, 혼침 산란이 전체가 본래(本來) 본지풍광(本地風光)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본지풍광인데 그놈을 버리려고 하면 버려질 것이며, 쫓으려고 하면 쫓아질 것이냐 그 말이여. 물속에 있는 달을 그놈을 건지려고 하면 건질 거여? 무슨 놈의 달이 물속에 들어와 있을 것이냐 그 말이여.
우리가 아무리 중생(衆生)의 업(業)이 지중해서 육도윤회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육도윤회(六道輪廻)가 아닙니다.
조끔도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이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인 것입니다. 진묵겁(塵墨劫) 전(前)에 우리 성불이여. 그러니 찾지도 말고 버리지를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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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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