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700/(651~675)2017. 6. 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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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63)—2002년 동안거해제 법어(02.02.6) (29분)

(1) 약 13분. (2) 약 17분.

(1)------------------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하야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라. 한산(寒山)의 산봉우리에 외로운 달이 밝았는데, 맑은 하늘에 비추되 한 물건도 없구나.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가히 귀(貴)엽다 천연의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다. 오음(五陰)으로 뭉쳐진 이 육체 속에 파묻혀 있구나.


밝은 달이 한산(寒山) 봉우리에 둥그랗게 떠있는데, 그 달이 온 허공을 비추되 한 물건도 없다 그거여.

우리 육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 이 육체 속에 이 알 수 없는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묻혀 있다. 그 한 물건이 온 법계(法界)를 두루 비추고 있건마는 그 우리의 주인공을 알 수가 없다 이거거든. 한산(寒山)의 시(詩)입니다.


방금 해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해제날인데 결제 법회 때에 들을 만한 그러한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마땅히 해제(解制)에는 해제 법문을 선택할 것이 결제(結制) 때 들을 만한 법문을 들은 것은, 석 달 동안 결제를 해서 안거(安居)를 했으되 해제 ・ 결제라 하는 것은—우기(雨期), 여름철에 우기에 석 달 안거를 하고, 또 겨울철에 추울 때는 그래서 겨울 안거를 하겠지마는—그것은 부득이해서 기후에 따라서 결제 ・ 해제가 있을 뿐 우리의 정진을 하는 데 있어서는 결제 ・ 해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정진하는 데에 무엇이 다 끝나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해제날 정식으로 다시 우리의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참회(懺悔)를 하고 그리고 해제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각오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초학자(初學者)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만한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시작하는 그런 마음으로 듣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선택을 했습니다.


아까 마지막 무렵에 조실 스님의 법문에 ‘정진을 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그 사람이 올바르게 정진을 한 것이지. 정진을 해 가지고 무엇이 알아진 것이 있다든지, 무엇이 나타난 것이 있다면 정진을 바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말씀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옳게 정진하고 있는 것이고, 해제를 하고 나서도 정말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그 사람이 한 철을 올바르게 정진한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분명히 이 몸뚱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밤낮없이 그놈이 작용을 하고 있고, 활동을 하고 있고, 눈을 통해서 온갖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온갖 소리를 듣고, 앉고 서고 눕고 거닐고 한 그러한 소소영령한 놈이 있건마는 찾아보면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또 손으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진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공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인의 말씀에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다맛 알 수 없어. ‘다맛 알 수 없는 것이 이것이 자기의 성품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신 법문도 있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성(自性)을 보는 것이, 깨닫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양이 있고 색상이 있는 것이라면 응당 눈으로 볼 수가 있겠고 손으로 만져볼 수가 있겠으나 본래 모양이 없는 것이고 색상이 없는 것이라 그릴 수도 없고 표현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나가야 올바르게 정진을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기(根機)가 약하고 그래서 해 갈수록 어렵고 참지 못해 가지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마는, 그래도 숙세(宿世)의 정법에 대한 인연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이 어렵고 해 갈수록 재미가 없는 이 길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취택(取澤)을 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대한 숙세의 선근 종자(善根種子)가 없다면 아무나 이 공부를 믿게 되기도 어렵고 또 이 공부에 착수를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숙세의 깊은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이 공부를 믿게 되고 또 이 공부를 하겠다고 착수를 했고, 그래서 일 년 이태 삼 년 십 년을 우리는 오직 이 한 길을 향해서 정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다행한 일이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것 자체를 우리는 원망하는 바가 없고,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이 공부를 만나게 되고 이 법을 실천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겸허하게 생각할 따름인 것입니다.


설사 공부를 하다가 힘이 들고 지쳐서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해도 우리는 이 길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고, 설사 병이 나서 꿍꿍 앓게 되더라도 우리는 앓는 가운데에서도 생각만큼은 이 화두(話頭)에 대한 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꿍꿍 앓다가 숨을 거둔 그 찰나에도 우리는 화두를,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면서 눈을 감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신심이 아니고서는 이 최상승법을 믿고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2분48초)



(2)------------------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인데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하야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이다. 내가 이 절에 머물고 있으되, 이 암자(庵子)에 머물고 있으되 나도 또한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왜 여기에 머물고 있는가를 알 수가 없다 이거거든.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여. 깊고 깊고 밀밀해서 옹색(壅塞)함이 없다. ‘옹색함이 없다’고 한 것은 아무 부족하고 부자유한 것이 없다 이것입니다.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요. 하늘과 땅이 앞과 뒤가 없고,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다. 동서남북에 주착한 바도 없다.


이 게송은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당신이 주석하고 계시었던 태고암에서 ‘태고암가(太古庵歌)’라고 하는 시를 읊은 한 구절입니다.

여기에 표현한 암자(庵子)라고 하는 것은 태고암에 대한 말이겠으나, 산승이 이 게송을 볼 때에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사바세계가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삼동(三冬)에 지냈던 자기의 그 선원 그곳이 바로 자기의 암자요, 가깝게 말하면 우리가 머물러 입고 있는 이 육체가 각자 자기의 조그마한 암자가 될 것입니다.


그 암자에 왜 자기가 지금 이 육체를 짊어지고 다니며, 왜 이 한 철에 자기의 석 달 동안 지낸 그 선방에 지내게 되었는가? 물론 이래저래 해서 이러한 인연으로 거기에 산다고 말은 할 수가 있겠으나 사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금생에 이 몸뚱이를 뒤집어쓰고 나왔는가? 이 조그만한 육체의 암자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한 생각 한 생각이 왜 이 한 생각, 생각 자체를 우리는 암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되 그 생각이 밀밀(密密)하고 깊고 깊어서, 그 생각이 일어나는 생각을 어떻게 자기가 왜 그 생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래도 아무 걸림이 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생각 일 분 일 초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의 육체도 한 생각으로 인해서 이 육체를 받아났으나, 그 육체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갈는지 모릅니다.


물론 분석을 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고 또 죽게 되면은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가겠으나, 지수화풍 그 자체를 우리는 또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이 일어나는 생주이멸(生住異滅)도 알 수가 없고, 육체를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도 사실은 그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지마는 우리는 또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일 분 일 초를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고 땅은 다리 밑에 있으나, 어디를 두고 앞이라고 하고 어디를 보고 뒤라고 하겠으며, 동서남북을 우리는 나침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마는 동서남북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경도(經度)다, 위도(緯度)다 해 가지고 동서남북을 지도상에 그려 놓고 있습니다마는 이름이 동(東)이고, 이름이 서(西)지 원래 동서남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또 오늘을 살고 있고,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불법을 만나지 못하고 또 정법을 만나지 못해서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은 우리는 나침반 없는 조각배로 저 태평양 속에 던져져 있는 거와 같은 신세일 것입니다.

이 끝없는 우주법계 속에 이 몸뚱이는 태어났으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물거품처럼 떠돌다가 언제 꺼져버릴는지도 모를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만났고 또 정법을 만나서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의관(疑觀)이라고 하는 화두를 가지고 우리는 분명히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서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서, 정처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신세로 일생을 살다가 육도(六途)를 또 윤회(輪廻)하게 될 그러한 처절하고도 외로운 영혼이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갈 곳이 있고 분명히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한 중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뚜렷이 목표가 있고, 우리 몸뚱이 속에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이 상주하고 계신 그 법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설사 말세에 태어났고, 온 세계가 성주괴공과 흥망성쇠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싸우고 있고, 언제 불바다가 될는지도 모르는 이 사바세계에 살지마는 우리는 결단코 그러한 생사 속에 영원을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하고 행복한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행복하고 경행(慶幸)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영원히 바르게 살려면은 우리는 한 생각 속에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단속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한 편을 듣고, 산승은 우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러한 다행한 인연을 만난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있는것입니다.


비록 석 달 동안에 용화사 또 중앙선원 또 인제 법보선원 또 저 전주의 위봉사 선원 또 승련사 선원, 대전에 또 이 복전암 선원 또 세등선원, 방방곡곡에서 정법을 믿는 목숨을 걸고 수행하던 정진하던 도반들이 모였으니 두서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할 것은 오직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일뿐입니다.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이 되고, 우리의 이 한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또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를 했다고 해서—다음 산철결제 또 여름결제를 우리는 또 결제를 하게 됩니다—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 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하니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로다. 죽음이 두려운 노년(老年)에사 석가(釋迦)를 친했다. 억만 겁을 윤회를 하다가 겨우 금생에사 이렇게 불법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두상광음(頭上光陰)은 전두비(轉頭飛)여. 머리 위의 광음(光陰)은, 세월은 번갯불처럼 지내가고 있다.


제득혈루(啼得血淚)라도 무용처(無用處)다. 밤새도록 울고 울어서 피눈물이 난다 하더라고 쓸 곳이 없구나.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다.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런 고인의 시를 읊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처님 열반하신지 삼천년이요 이 말세에 태어났고, 무량겁을 유전(流轉)을 하다가 금생에 이렇게 불법을 만났는데, 그런데도 세월은 번개처럼 흘러가서 엊그제가 젊었을 때인데 벌써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혔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생사는 늙었다고만 해서 금방 죽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해서 또 앞으로 몇 백 년을 산다고 아무도 보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상(無常)하지마는 우리는 한 생각 단속한다면 그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고, 무상할수록에 더욱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 초 일 초를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정진을 할 것을 다짐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2분49초~29분1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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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한산정상월륜고~’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의 시.

*오음(五陰) ; 오온(五蘊).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수·상·행·식)을 합쳐 부르는말.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한산(寒山) ;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천태(天台) 당흥현(唐興縣)의 서쪽 70리에 한암(寒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대개 그 바위굴 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하고, 때로는 국청사(國淸寺)에 가기도 했다.

몸은 바싹 마르고, 꼴은 거지와 같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국청사 절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습득(拾得)에게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가지고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사람을 보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하면서 바위굴로 물러났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각각 노력해라!”하면서 바위굴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 한산, 습득, 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보살, 습득을 보현보살 화현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참고]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취택(取擇 가질 취/뽑을 택) ; 택취(擇取).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취(取)하여 골라 뽑음[擇].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 · 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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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오주차암오막식~’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태고암가(太古庵歌)’ p90 참고.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무주고혼(無主孤魂) ; 이름없는 또는 천도주체가 없는 외로운 영혼. 천도(薦度) 및 시식(施食)을 행할 때 재(齋)를 올려주는 생존하는 인연주체가 없는 영가(靈駕)를 일컫는다. 이에 대하여 천도재를 모시는 주체가 있는 영혼을 유주혼(有主魂)이라 한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태양처럼 일체법을 비추어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

한역어로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삼독(三)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게송) ‘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162.

怕死老年에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파사노년(怕死老年)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글에 「이름 구할 젊을 적 공자님만 따랐고, 죽기 싫은 늙으막 부처님께 나가네(求名少日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고 하였다.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 89년 3월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이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참 ‘생사문제를 해결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때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시(詩)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분40초~64분24초)

*유전(流轉) ; 생사유전(生死流轉). 깨달음(붓다)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이 무명, 번뇌에 의하여 생사 인과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삼계육도(三界六道)를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 윤회(輪廻)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주요 내용]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해제날 다시 정진을 시작하는 각오 / 단지불회 시즉견성 / 이 공부 만나 실천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 숨을 거두는 찰나에도 본참화두를 들어야

(게송)오주차암오막식~ / 이 육체, 생각 자체가 우리의 암자 / 한 생각 단속에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다 / (게송)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주요 문구]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정진하는 데에 무엇이 다 끝나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해제날 정식으로 다시 우리의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참회(懺悔)를 하고 그리고 해제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각오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나가야 올바르게 정진을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진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공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갈 곳이 있고 분명히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한 중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뚜렷이 목표가 있고, 우리 몸뚱이 속에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이 상주하고 계신 그 법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설사 말세에 태어났고, 온 세계가 성주괴공과 흥망성쇠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싸우고 있고, 언제 불바다가 될는지도 모르는 이 사바세계에 살지마는 우리는 결단코그러한 생사 속에 영원을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하고 행복한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행복하고 경행(慶幸)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이 되고, 우리의 이 한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또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01~700/(651~675)2017. 4. 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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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75)—2003년 부처님오신날(03.05.08) (21분)

 

약 21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은 분이  계시다.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시방세계에 부처님께 견줄 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내가  세간(世間)  보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부처님과 같은 분은  계시다. 

 

 게송(偈頌) 무량억겁 전에 백겁(百劫) 수행을 부처님께서 하실 , 미륵 보살(彌勒菩薩) 석가모니 부처님이그때는 보살로 수행하실 때인데, 그때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석가 보살(釋迦菩薩)께서 저사불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노래로 인해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을  발을 들은   저사불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모습을 찬양하야,  공덕으로 구겁(九劫) 초월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 하신 인연이 있는 게송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할 때마다, 부처님께 공양(供養) 올릴 때마다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모든 위대함을 찬양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째서 부처님은 이렇게 거룩하시고,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부처님의 거룩함을 이렇게 찬양을 하느냐 하면은,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서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 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셨습니다.

 

견성성불을 하신다 말은 대관절 무엇을 깨달아서고,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사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 들어있습니다마는, 오늘 산승(山僧)  가장 요점만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일생 동안을 무슨 마음으로 사셨으며, 무슨 설법을 초점을 두고 하셨으며, 평생 동안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모든 것을 보실 , 모든 중생과 모든 것을  보실 때에는 망령(妄靈)되지 않다.[不妄]’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관자역무생(觀自亦無生)이다.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당신을 보셨을까? ‘남이 없다.[無生]’ 그렇게 보셨어.

 

망령되지 아니하다[不妄]’ 하는 것은 모두가  진실이요, 모두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모두가 진리다  말씀이고, 스스로를 보실  무생(無生)으로 보셨다 그말이거든.

 

보통 우리 중생으로  때는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가지고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생의 눈으로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無生]’ 그렇게 스스로를 보신 것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 중생들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서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고, 혼자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出世謌何事)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태평하다’ ‘태평(太平)하다 하는 것은, 모든 고통이 없으며 슬픔이 없으며 아무 근심 걱정   없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태평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로병사가 있고 흥망성쇠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본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똑같은 존재임을 알지를 못하고, ‘자기는 중생이고, 중생은 생로병사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본래 부족함이 없고 본래 생사가 없는 존재이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말씀을 하셨지마는 중생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원래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을 없애야 우리가 열반에 드는데 괴로움의 원인이 뭣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이고, 고통이 있는 것이고, 진리 속에서 있으면서 진리를 모른 것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말씀을 하시게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生死)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법문을 설하시다가, 나중에 법화경(法華經) 설하실  부처님은 무슨 게송을 읊으셨냐 하면은,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우주법계 삼라만상을 모두 제법(諸法)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종본래(從本來) 본래부터 상자적멸상이다. 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열반상이다. 열반상(涅槃相)이라 하는 것은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가  도리를 깨달으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도리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내세(來世)라고 하니까  몸뚱이 80, 90 살다 죽은 뒤에 성불한다고 그렇게 해설한 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는데,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고, 경전마다 생사는 본래 없다 하는 많은 법문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생사가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느냐 하면은, 비유를 들어서 물이라 하는 것은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됩니다. 고체가 됩니다. 그것을 끓여서 100도가 되면 증기가 나와 가지고 기체가 됩니다.

물로 되었을 때나 얼음으로 되었을 때나 증기로 있을 때나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 따라서 모양만 다르지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의 본성, 습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거나  자체는 언제나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있을 때나, 부자로 있으나, 가난뱅이로 있으나, 죄를 지어서 형무소에 가서 있거나 또는  무서운 죄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또는 업에 따라서 축생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본성(本性) 부처님으로 있을 때나, 조사(祖師) 있을 때나, 빈부귀천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해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가지고 잘난 사람은 잘난 , 못난 사람은 기가 죽고, 부자는 부자라 해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권리가 있으면 권리가 있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의 권리를 휘두르고, 그러다가 부정(不正) 하다가 잘못되면  다시 감옥에도 가고 그러한 흥망성쇠와 생사윤회와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오늘날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다하더라도 우리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비로자나법신불이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가지고 그것을 깨달아서 영원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우리가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며 근기(根機) 따라서 () 공부를 하거나, 주력(呪力) 하거나, 염불(念佛) 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가장 유식(有識) · 무식(無識) 막론하고 누구라도 가장 있는  자리에서  도를 닦을  있는 방법이 이뭣고?’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종파(宗派) 따라서 각기 자기가 믿는 경전에 의거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하고 교화를 하고 있지마는, 우리 용화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슬픈 생각도 일어나고 고통스러운 생각도 일어나지마는, 일어나는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하면   생각 자기의 본마음을 찾는 공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장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찾는 나의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산승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사람은 감옥에서도 이뭣고?’ 하고, 부자도 이뭣고?’ 하고  높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뭣고?’ 하고, 자기가 자신을 찾다 보면 자기의 참마음을 깨달아서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자꾸하다 보면 자꾸 잊어버리고, ‘이뭣고?’ 하지마는 망상(妄想) 일어날 것입니다마는  망상이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여불성에서 그런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래 물은 깨끗하고 조용하지마는 바람이 불므로 해서 물결이 일어나듯 물결이 일어났어도 내나  물결이 물인 것이고,

 물은 원래 본성인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고 물을 찾지 말고, 파도에 즉해서 이뭣고?’ 찾으면 진여불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망상과 번뇌를 버리고 찾지 말고 거기에서 이뭣고?’ 들어가면 가장 빨리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법에 의해서 이뭣고?’ 통해서 자성(自性)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파일에 많은 신도분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이 모이셨고  정성을 표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많은 등불을 켰습니다마는, 등불을 켜면서도 이뭣고?’ 하시고, 돌아가신 길에도 이뭣고?’ 하시고,

돌아가시면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모든 문제를 이뭣고?’ 자기가 자기의 진성(眞性) 찾는 거기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것이고, 가정에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좋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부정부패도 없어질 것이고,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가  것이고,  세계에도 극락세계(極樂世界) 변하는 길은 오직 여기에 있다고 산승은 생각합니다.(처음~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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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찬불게(讚佛偈) 한다.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거룩한 모습에 어찌   없어 - 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 -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 낮과 7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아니네.

 

 게송을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찬불게(讚佛偈) 하는데,

7 7 동안 세존(世尊)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九劫) 뛰어넘어 91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 파괴·변화, () 가운데·간격을 뜻함.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생물들의 세계.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산하대지.  세상.  세상. 세속.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게송) 관타야불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朴敬勛 , 동국대학교 역경원) p99 ‘찬불(讚佛)’ 게송 참고. *() 노래. 歌와 동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 없는 도리.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 )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법화경(法華經) ; 본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 28.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 후반부에서는 세존의 수명이 무량함을 설함.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세존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삼승(三乘)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일승(一乘,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부처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후반부에서는 세존을 법신(法身) 동일시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여 신앙의 대상을 확립함.

*(게송) 제법종본래~ ;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 사구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주력(呪力) ; 진언(眞言) · 다라니(陀羅尼) 하는 기도. 진언(眞言) · 다라니(陀羅尼) 효과.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종파(宗派) ;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갈래.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 무엇고 是甚 시심마, 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주요 내용]

 

(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 (게송) 제법종본래~ /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

 

 

[주요 내용]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서 그것을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법에 의해서 이뭣고?’ 통해서 자성(自性)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01~700/(651~675)2016. 5. 12. 16:44

 

(No.666)—20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어(34)

 

(1/2) 약 17분.

 

(2/2) 약 18분.

 

(1/2)----------------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허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하늘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은 분이 없고, 시방세계(十方世界) 견줄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세간에 있는 바를 내가 봤지만 부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게송은 찬불게(讚佛偈) 하는데—‘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이다그러는데, 게송은 누가 읊은 게송이냐 하면은 과거 저사불(底沙佛) 시대에 저사불 밑에서 석가 보살과 미륵 보살, 보살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석가 보살이 저사불을 찬양하는 게송입니다.

 

게송을 읊되 저사(底沙) 부처님의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추신 거룩하고 거룩한 찬란한 모습을 보고 읊으신 게송입니다.

 

발을 내디디고 발은 들고 있을 너무 황홀한 모습을 보고 게송을 읊기를 칠일칠야(七日七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찬양을 해서 읊었습니다.

일심불란으로 칠일칠야를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한 공덕으로 구겁(九劫) 건너뛰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 먼저 하생(下生) 하시고 앞으로 56 7천만 뒤에 미륵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시게 되는데,

게송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이 저사부처님을 찬양하는 게송인데, 부처님 열반하신 삼천년이 되도록 우리는 부처님께서 읊으신 게송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서 깊은 게송으로써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께서석가모니 부처님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셔 가지고 사문유관(四門遊觀) 하시다가 정거천인(淨居天人) 게송을 들으시고 그리고서 성을 넘어서 출가하셔 가지고 육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십이월 초팔일 동천(東天)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성불을 하신 데까지,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그런 뜻인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셔 가지고 깨달으신 진리를 열반하실 때까지 사십구 동안을 팔만사천법문으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는데,

부처님의 위대함은 게송으로 찬양하고 억만년을 두고 찬양을 해도 부처님의 위대함과 우리 중생을 위하신 자비와 중생을 위해서 설하신 지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말로써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써 삼천년을 두고 사월 초파일을 행사를 진행하는데, 절절이 등불을 켜고 육법공양(六法供養) 올리고 온갖 다양한 행사로써 초파일을 봉축을 하는데 하나의 연례행사로써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땅히 불제자(佛弟子)로서는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고, 찬양하고도 더이상 수가 없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되지마는 우리는 찬양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업장이 소멸이 되고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산승(山僧) 믿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서 우리의 소원을크고 작은 사바세계에 있어서 유루복(有漏福) 성취하는 데에 그쳐서는 진실로 정법을 믿는 불자라고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중생이 만약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삼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 수와 같은 그런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속에서부터서 능동적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라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하는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五祖) 홍인 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을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를 하고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沙羅雙樹) ()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써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줬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길로 안내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유교경(遺敎經) 있는 말씀과 오조 스님께서 인용하신 경전의 말씀과 오조 스님의 말씀을 통합해서 생각해보건대우리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이렇게 지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좋은 경전을 가지고 있고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CD롬으로 그것을 완성을 해가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가정에서도 경전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으로써 교리로써만 알고, 학문으로써만 연구하고, 실지로 그것을 깊이 믿고 실천을 해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를 못한다면 좋은 법문도 휴지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지정했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서 중생이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사해탈로 나아가는 길잡이는 될지언정 직접 우리가 안내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고행 수행하듯이, 역대조사(歷代祖師)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생사해탈을 못하고 것입니다.(처음~1641)

 

 

 

 

 

(2/2)----------------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도량 법당 안과 법당 밖에 수만 개의 등불을 찬란하게 켜서 부처님의 탄신을 이렇게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안과 밖에 많은 사부대중(四部大衆) 운집(雲集) 해서 법요식을 갖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찬양을 하고 그래야 하겠는데,

우리는 오늘을 기해서 정말 특별한 마음을 내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정말 신심을 돈독히 하고 분심을 내서 불법을 닦아가는데, 팔만대장경에 있는 수행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갖은 방법으로 설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산승은 용화사의 전강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닦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조실 스님께서 팔십 평생을 한결같이 설하시고 찬양하신 (), 그리고 산승도 역시 법을 믿기 때문에 간략히 말씀하겠습니다

 

약국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약들이 있지만 자기에게 맞는 그리고 가장 자기의 병을 낫을 있는 약은 많은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기 체질에 맞고 자기가 믿어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병에 맞춰서 약을 먹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산승이 믿는 조실 스님께서 평생에 선양하신 법을 오늘 말씀을 드리는데, 여러분들은 이미 법에 의해서 열심히 공부하신 분도 있고, 수행을 가지고 상당한 지경에까지 이르신 그런 구참 수행자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기 전에는 득소위족(得少爲足) 해서는 아니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어떤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우리는 그것에, 자기의 이르른 경지에 만족을 해서 아니 되는 것입니다. 득소위족을 하면은 공부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나 찾는 , ‘참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우리가하면은 자기의 성명(姓名) 것입니다. 성명은 임시로 붙여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고 이름은 몇십 가지를 가질 수도 있고 몇천 개의 이름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눈으로 볼래야 없고, 손으로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수가 없는 그러한 주인공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서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오면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게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사람의 몸을 받아야 도를 닦기에 가장 좋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당이 좋아도 한량없는 고통을 받지 않고 즐거운 () 받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받을 만큼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서 인간 세계에 떨어지거나,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우리의 구경의 목적지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은 분도 있습니다마는 크고 작고 간에 병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결국은 설사 건강하다 하더라도 그래서 오래 산다 하더라도 백년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부자 빈부귀천,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五欲) 마음껏 누리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꿈에 봉황새를 타고 옥황상제가 있는 천국에 올라간 거와 같아서 깨고 나면은 아주 평범한 다시 본래 자기 살던 곳으로 눈을 떠보면 자리에 있게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천상에 가면 무엇 하며, 꿈에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소유하면 그것이 어디에다 것입니까? 사바세계에서 많은 재산, 많은 명예와 권리와 지위 부귀를 누린다 하더라도 꿈에 부귀를 얻은 것이나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언젠가는 자기 몸으로부터서 재산도 떠나고 명예와 권리도 떠나게 되고, 자기 생전에 그런 것이 망하고 결국은 감옥에도 가고 사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사바세계의 오욕(五欲)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그래서 도를 닦아서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성불을 마치신 그러한 성현이지마는 우리 중생들에게 인생이 무상하다고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도를 닦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오신 그러한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경전을 통해서 알고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서 우리는 생각 생각, 걸음 걸음,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통해서 선지식(善知識) 지시에 따라서 역대조사의 법문에 의해서 이만큼 건강할 철저히 정진을 해서 목숨이 다하기 전에 생사해탈의 단계에 이르러야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거나, 머리를 깎지 아니하고 세속에서 살거나, 배고프면 먹을 알고, 몸이 아프면 끙끙 앓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알고, 발로 걸어 다니고 앉었다 섰다 있을 만큼 이만큼 건강하면,

바로이뭣고?’ 통해서 항상 자기를 찾고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찾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있다고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 선지식들이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빈부귀천을 따질 것도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따지지 말고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언제나 법상에 올라올 때마다 한결같이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렸습니다마는 오늘도 말로써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라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이라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로다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여. 모든 사람 낱낱이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환하니 떠있다 그말이여.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 사람 사람마다 다리 밑에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휘황창 밝은 밤에 어떤 사람 앞에만 달이 밝은 것이 아니고, 시원하게 바람이 때에는 모든 사람 얼굴에 바람이 부는 것이지, 특수한 사람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말은 모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부처가 있는 자성(自性) 진여불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다시 나아가서 말하면 모든 사람마다 법신불(法身佛) 몸뚱이 속에 계시다 말씀이여. 어떤 특수한 사람만 법신불이 계시고 특수한 사람만이 진여불성(眞如佛性)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이여. 거울을 타파해 버리면 거울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팔식(八識) 속에 무량겁으로부터서 오면서 거기에 녹음 녹화된 온갖 번뇌와 망상, 그리고 부처님의 경전의 말씀, 성현의 말씀, 말로써 형언할 없는 것들이 팔식 속에, 무의식 속에 녹음 녹화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이뭣고?’ 화두를 함으로써 그놈을 갖다 타파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타파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으면 나뭇가지 위에 우는 소리가 바로 진리를 설파(說破)하는 말로써 자기에게 닿게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로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서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일어나는 생각에 즉해서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이뭣고?’, ‘이뭣고?’ 챙김으로 해서 깨달음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오늘 초파일을 기해서 법을, 최상승법(最上乘法) 철저히 믿고 , 초도 생각[別念] 일어날 기회를 주지 말고 자기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심으로 해서 진정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 여기에 있고,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설산에서 도를 깨달으신 뜻이 바로 우리 몸에서 실천이 되도록 주시기를 당부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자리에 모이신 여러 법보가족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도반들!

오늘 자리에 참석해서 등불을 켜고 법요식을 같이 인연으로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 소멸(消滅)되시고, 그리고 크고 작은 유루복도 성취를 하시고, 나아가서는 참나를 깨달아서 사람도 빠짐없이 세세생생(世世生生) 불회상(佛會上)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합시다.(1651~3425)()

 

 

 

 

 

----------------(1/2)

 

*찬불게(讚佛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거룩한 모습에 어찌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 낮과 7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아니네.

 

게송을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해서 찬불게(讚佛偈) 하는데, 7 7 동안 세존(世尊)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九劫) 뛰어넘어 91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 (원만(圓滿귀숙(鬼宿)이라 번역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 밖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 수행에 뜻을 두었다.

*정거천인(淨居天人) ; 정거천(淨居天) 사는 성자, . 그냥 정거천(淨居天)이라고도 .

*정거천(淨居天) ; 불환과(不還果) () 성자가 살아야 곳으로 색계 제사선천(色界第四禪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 통틀어 일컬음. 단지 성인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정거천(五淨居天)이라고 . 여기에 사는 성자, 신들까지도 정거천(淨居天)이라고 한다.

*육법공양(六法供養) ; , , , 과일, ,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말한다. 향은 해탈향(解脫香)이라고 해서 해탈·공덕을 상징하고, () 반야등(般若燈)으로 지혜·광명을 상징하고, 꽃은 만행화(萬行花) 수행·장엄을 상징하고, 과일은 보리과(菩提果) 깨달음을 상징하고, 차는 감로다(甘露茶) 부처님의 가르침의 공덕과 이익을 상징하고쌀은 선열미(禪悅米) 수행의 기쁨을 상징한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최상승론(最上乘論) ; 1. 5 홍인대사(弘忍大師)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 확인하여 지키는 수심(守心) 강조한 저술.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바른길 ; ①이치에 맞고 정당한 참된 도리. ②굽지 않고 곧은 .

*유교경(遺敎經) ;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설한 최후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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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진묵겁(塵墨劫) ; 티끌[]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귀결(歸結) ; 의논이나 행동 따위가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

*(게송) 개개면전명월백~’ ; [소요당집(逍遙堂集)] (한글대장경169, 동국대학교역경원) p100 ‘ 상인(淳上人)에게게송 참고.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p180-181)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

 

 

 

 

 

[주요 내용]

 

찬불게(讚佛偈) / 깨달음으로 가는 정진이 우리의 / 오조(五祖) 홍인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 유교경(遺敎經) 있는 말씀 / 사람 받아야 닦기에 가장 좋다 / 사바세계의 오욕(五欲) / (게송)개개면전명월백~ / 팔만대장경도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

 

 

[주요 문구]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오조(五祖) 홍인 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을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를 하고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로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서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일어나는 생각에 즉해서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이뭣고?’ 챙김으로 해서 깨달음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Posted by 닥공닥정
601~700/(651~675)2016. 1. 13. 13:45

 

 

 

 

(No.653)—2001(신사년) 하안거결제 법회(01.5.8)(33)

 

 

(1/2) 약 20분.

 

(2/2) 약 13분.

 

 

(1/2)----------------

 

물어중노사공왕(勿於中路事空王)하고  책장수심달본향(策杖須尋達本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야인순허상일(若也因循虛喪日)하면  갱대하물답명왕(更待何物答冥王)

나무~아미타불~

 

오늘 여름 안거 결제(結制)일을 맞이해서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운집(雲集) 하셨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오늘 결제 법문을 들었습니다.

 

각자 용주사나 세등선원이나 위봉사나 각처에서 자기 있는 선방에서 결제 법요식을 하고 거기서 결제를 들어가면 되겠지만, 어째서 먼길을 이렇게 용화사까지 와서 우리가 결제 법요식을 갖느냐? 자기 있는 곳에서 조실 스님 녹음 법문을 듣고 결제를 하면 충분한 것을, 이렇게 여기에 모이셨느냐?

그것은한철 공부를 시작하는데 우리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결제 법문을 듣고 한철을 지내자 하는 결의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일부러 먼길을 와서 여기서 법요식을 갖게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조실 스님 녹음 법문은 너무도 간절(懇切)하고 간절한 법문을 주셔서 산승(山僧) 혼자 듣는 거보다는 뜻을 같이한 도반들과 법당에서 같이 들음으로 해서 더욱 감동이 되고 감개가 무량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너무 구구절절이 간곡한 법문을 다해 주셔서 산승도 너무 감동이 되어 가지고, 여러 도반들한테 무슨 말씀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기왕 자리에 올라 왔으니 게송(偈頌) 하나 읊었고, 게송의 뜻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물어중노사공왕(勿於中路事空王), 중노(中路)에서 공왕(空王) 섬기지를 말고,

책장수심달본향(策杖須尋達本鄕)이다. 주장자를 들고서 모름지기 본고향(本故鄕) 도달하도록 힘을 쓸지어다.

본고향이 어딘가? 그리고공왕(空王) 섬기지 말라 것은 무엇이며, 본고향에 도달하도록 힘써서 정진을 하라는 것은 무엇이냐?

 

, , 이렇게 정진하다 보면 차츰 망상도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화두드는 것도 잊어버리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취해 가지고 무기공(無記空) 떨어지는 거여.

그러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없이 맑고 깨끗해서, 무기공에 떨어져서 상황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면 그것이 바로 공왕(空王) 섬기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경지가 무척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좋긴 하지만, 화두를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잊어버리고 그러한 경계에 빠져서 경계를 맛보고 있다 보면 그것은 참다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고 조사(祖師) 스님네는 한결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오늘 설하신 법문이 판치생모(板齒生毛) 판치생모, 시삼마(是甚) 화두를 분은 시삼마, 없는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정진을 가도록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의심이 크면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 밖에는 얻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신 법문도 있습니다.

 

제일 도를 닦아 가는데 무서운 것이 뭣이냐?’하면, 바로 () 경지에 떨어져 갖고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殺盜淫妄) 저질러서 지옥에 갈지언정, () 떨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무서워해야 그런 경계라고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약야인순허상일(若也因循虛喪日)하면, 만약 그럭저럭 헛되이 세월을 허비를 하면,

갱대하물답명왕(更待何物答冥王). 다시 무슨 물건으로서 염라대왕한테 가서 대답을 것이냐.

 

갈수록 수가 없고, 수가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가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고 이러한 공부는 실다운 활구참선(活句參禪)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처음으로 참선방에 나오신 , 비구 스님이나 또는 비구니 스님이나 보살선방의 보살님이나 시민선방에 나오신 가운데 화두를 정식으로 타지를 못해서, 내가 개별적으로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리기는 어렵고 법상에 올라온 김에 화두에 대한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금방 조실 스님 녹음 법문에도 화두에 관한 간절한 법문이 계셨습니다마는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화두(話頭) 대한 것을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에 지나지 않지마는, 아무 재미도 없고 그러한 한마디지만, 한마디 화두가 나의 생사(生死) 명근(命根) 끊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자기의 자성불(自性佛) 깨닫는, 본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없어서는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화두를 바로 거각(擧却)하기 위해서는 기본 준비가 필요합니다.

 

<참선하는 가지 갖출 요건(三要)>

 

첫째는 신심(信心)이여.

한마디 화두를 가지고 화두에 근본은 의심(疑心)이니까, 의심을 타파(打破)함으로 해서참나 깨달을 수가 있고 견성성불(見性成佛) 수가 있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서는 참선은 바로 가지 못하는 것이고,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면 공부는 하다가 재미가 없으면은 중단할 밖에는 없는 것이니, 신심이 철저해야 하거든. 대신심(大信心) 있어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大憤心) 있어야 한다.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 모든 과거의 선지식(善知識)들은 일찍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을 해서 중생 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고 있는가. ‘나도 결정코 일대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하는 대분심이 있어야 한다.

신심을 가지고서도 분심이 약하면 공부가 중단될 밖에 없고 자꾸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것이어서 대분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셋째는) 화두에 대한 의심이, 대의단(大疑團) 독로(獨露)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이것을 고봉(高峰) 선사께서는참선하는 가지 요긴(要緊) 것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세가부좌, 반가부좌>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서, 초학자(初學者) 몸을 바르게 갖는 법을 알아야 한다.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이것이 부처님께서도 설법을 하실 때나 또는 공양을 잡술 때나 항상 가부좌를 하시고 계셨고, 탁발(托鉢) 걸식(乞食) 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부좌를 하셨는데,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도 가부좌가 가장 기본 자세이고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기 때문에 가부좌를 항상 하시게 것입니다.

 

가부좌를 하면은 저절로 허리가 주욱 펴지고, 번뇌와 망상과 혼침이 침노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좋은 자세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데는 가부좌나 또는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것입니다.

 

<호흡단전호흡>

 

다음에는 호흡(呼吸) 고르는 일인데, 호흡은 우리가 무심코 있어도 저절로 숨이 들어갔다 나갔다 해서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호흡을 하고 있냐, 하고 있느냐 그것으로써 죽고 사는 것을 정도로 호흡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참선하는데 가장 마음을 안정을 시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몸도 편안하게 하고, 안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따라서 혈액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안정이 되게 하는 데에는 단전호흡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단전호흡(丹田呼吸)만을 전문으로 가르키는 그런 수련원도 있고 학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활구참선 하는 사람은 그런 데에서 가르키는 단전호흡과는 조금 다른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단전호흡은, 호흡을 들어마시되 조용하게 들어마셔서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들어마시고, 들어마셨으면 그것을 조용허니 내쉬되,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아랫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숨을 들어마실 때나잠깐 머물렀다가숨을 내쉴 때나배만 약간 볼록해졌다가 잠깐 머물렀다 조용하게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되, 순전히 그것만을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고, 들어마셨다 내쉴 없는 화두를 드는것입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단전호흡만 하면은 이것은 도교(道敎) 신선도(神仙道) 외도(外道)들이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수단으로 단전호흡을 하는데,

 

우리 활구참선에 있어서 단전호흡은 몸을 가지고 , 이백 오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고르므로 해서 상기병(上氣病) 같은 그런 병을 예방하고,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맑아야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데 대단히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단전호흡을 이렇게 권장하는 뿐입니다. 그래서 외도들이 하는 단전호흡과는 차등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근본, () 화두를 들어서 의단이 독로해서 의단을 타파하는 데에 있지, 장생불사 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하고 그리고 단전호흡을 해서 호흡을 고르게 하며, 거기에 동시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해야 하는데, 화두를 들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나, 화두를 잘못 들면 자칫 잘못하면 골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상기병이 생겨서 공부를 지속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간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기본이 잘못되어 갖고 있고 마음만 급해 가지고 억지로 용을 쓰면서 잘못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참선을 함으로 해서 병이 생겼다하고 참선을 비방을 하고 그래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처음~2015)

 

 

 

 

 

 

(2/2)----------------

 

<화두드는 화두의심>

 

화두를 드는 있어서는,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져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말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듬어 들어가서 알아 들어가는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화두를 참구(參究)한다 하니까, 참구라고 하는 무슨 이론을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처럼 이론적으로 뭣을 따져서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이여. 이치길도 없고 말길도 없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는 것이여. 다맛 없는 의심(疑心) 의단(疑團).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일을 하고, 먹고, 입고, 똥누면서도이뭣고?’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쁠 때도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없는 의단, 의심을 자꾸 거각하는 것인데,

 

이뭣고~?’하면서도 생각은, 그런 가운데 벌써 생각[別念] 일어나는 경우도 얼마던지 있습니다.

 

일어나는 생각, 번뇌망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번뇌망상 일어났다고 성화를 하지도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드라도 생각 그냥 고대로 놔둔 , 나는 퍼뜩이뭣고?’ 이렇게 챙겨 나가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그런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일반적으로 참선을 할라면 망상이 일어나는 그리고 조금 마음이 고요해지면은 혼침이 오는 , 혼침(昏沈) 산란(散亂) 가지로 인해서 참선을 나가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느끼고, 그것 때문에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서 번뇌도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혼침도 온다면은 참선하기가 수월하고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금방 의단이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 같은데, 혼침 아니면 망상, 망상 아니면 혼침 놈이 번갈라가면서 들락거리니 그러니 공부가 한결같이 안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참선을 하는 도반들은 그것을 성화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되나,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최상승 법문에 보면은혼침이 들락거리고 망상이 들락거리는 것은 간절한 마음이 속에서부터서 솟구쳐 오르지를 않기 때문에 그렇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절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지 않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고 혼침이 나온 것이지, 정말 속에서부터서 간절한 마음이 나온다면 어디에 그런 것이 붙을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은 우리도 틀림없는 말씀이라고 인정을 수밖에 없을 같습니다.

 

화두는 없는 의심, 없는 의단잊어버리면 챙기고, 놓쳐버리면 챙기고, 생각이 일어나면 챙기고, 거각하고 거각해서, 결국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자꾸 챙기다보면, 어느날인가는 화두를 챙기지 해도 저절로 의단이 독로할 때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의단이 독로해서, 간단(間斷) 없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경계를 뭐라고 표현할 없는 그러한 경계가 온다 하더라도, ‘! 인자 내가 공부가 제대로 되아가는구나좋아하는 환희심(歡喜心) 내지 말라 이것입니다. 환희심을 내면 환희의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온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게 잘되어 가다 변해 가지고, 혼침이 오고 망상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래도 번뇌심을 내지 말라 이것입니다. 번뇌심을 내면 번뇌의 마군(魔軍)이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잘되어 간다고 좋아하는 마음 내지 것이며,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번뇌심도 내지 않고서, 한결같이 화두를 들고 들고 해서, 이렇게 간절한 '간절 ()', 글자를 놓치지 말도록 고인네들은 그렇게 간절(懇切) 당부를 하셨습니다.

오늘 산승이 자리에 올라온 것도 여러 곳에서 모이신 그리고 용화사나 용주사 밖에 여러 선원에서 오신 도반들에게 이것을 당부하고자 올라왔습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싸우면은 선방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다마는 우리가 다툴 것이 없습니다. 같이 밥이 없어서 머리를 깎고 우리가 출가한 것도 아니요, 세속에 명예나 권리나 오욕락이 허망한 알고, 버리고 들어온 그러한 도반(道伴)들이 무슨 사소한 가지고 다툴 일이 있겠습니까.

시민선방이나 보살선방에 여러 도반들도 편안한 가정을 놔두고 여기에 오실 때에는, 그래도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좋은 도반들과 정진할라고 오셨지, 사소한 일로 타시락거리고 싸울라고 오신 분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절대로 사소한 가지고 싸우고 다툰 일이 없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사람이 그런 규칙을 어김으로해서 다른 도반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게 되므로, 세속에서 다른 죄를 지은 것보다도 선방에서 다른 도반들로 하여금 공부하는 데 지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죄라고 하는 것을 깊이 인식을 하시고, 다투지 말고 서로 서로 자기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저절로 선방이 조용해져서 모든 도반들이 같이 정진을 잘할 있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문수의제아만(參問須冝除我慢)하고  수행지합거탐진(修行只合去貪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문훼예여풍과(雖聞毁譽如風過)하면  만사무심도자신(萬事無心道自新)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참문수의제아만(參問須冝除我慢)이다. 참선을 하고 도를 묻는 데에는 모름지기 마땅히 아만심(我慢心) 꺾어 버려라.

수행지합거탐진(修行只合去貪嗔)이다. 수행하는 데에는 다못 탐심과 진심을 버려야 것이다.

 

아만심을 가지기 때문에 주장을 하게 되고, 탐심과 진심을 가지기 때문에 닦는데 막대한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지. 출가해서 도를 닦고 선방에 와서 참선하는 데는 무슨 아만심을 것이 있으며 무슨 탐심과 진심을 것이 있느냐 이것입니다.

 

수문훼예여풍과(雖聞毁譽如風過).

누가 나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거나, 나를 잘못한다고 핀잔을 주거나, 그까짓 것은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그냥 내싸두어 버리면 된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 경계, 팔풍경계(八風境界) 무심(無心) 버리면 () 거기서 나날이 새로와질 것이다(萬事無心道自新). 부휴선사(浮休禪師) 게송이었습니다.

 

오늘 조실 스님의 간절한 법문을 충분히 들었고 산승이 와서 군더더기 말을 도반들을 위해서 노바심절(老婆心切) 마음으로 마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앞으로 동안 나날이 더워져서 정진하기에 어려운 삼복성염(三伏盛炎) 우리는 이겨 나가면서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

덥다고 우리가 정진을 소홀히 수도 없는 것이고, 더운 가운데에도 오히려 우리의 공부에 대한 신심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채찍질하면서 동안 장애없이 건강도 지혜롭게 관리하시면서 정진을 잘하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2016~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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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물어중노사공왕(勿於中路事空王)~’[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선백(禪伯)에게(贈一禪伯)’ 참고.

*()말다, 말아라 *()섬기다 *() (지팡이를)짚다 *()지팡이 *()찾다, 탐구하다

*()빙빙돌다, 머뭇거리다 *()잃다 *()다시, 어찌 *()기다리다, 대비하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운집(雲集) ; 구름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무자화두와 같이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어째서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 무엇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는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 무엇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명왕(冥王) = 명계(冥界) = 염마왕(閻魔王) = 염라대왕(閻羅大王) ;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재판하는자. 사자(死者) 죄를 재판하는 지옥의 주인.

[참고] 명계(冥界) ; 넓게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도(三道) 말하고 협의로서는 지옥을 가리킴.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 ; 짧거나 간단한 .

*명근(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탁발(托鉢 /바리때 )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장생불사(長生不死 / /아니 /죽을 ) ;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음().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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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성화(成火) ; ①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②매우 귀찮게 졸라 .

*일취월장(日就月將 /이룰 / /발전할 )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거나 성장함.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直頓의 , 곧바로.

*간단(間斷 사이 /끊을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 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도반(道伴 , ) ; 함께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타시락거리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는 이상의 사람이)대수롭지 않은 일로 서로 자꾸 우기거나 가볍게 다투다.

*(게송) 참문수의제아만(參問須冝除我慢)~’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상인(上人)에게(贈峻上人)’ 참고.

*()마땅하다,마땅히~하여야 한다. 宜와 동자(同字).

*()부수다,비방하다,헐뜯다나를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

*()기리다,찬양하다,명예.   —나를 보는 데서 나를 칭찬하는 .

*아만심(我慢心) ; 자신을 뽐내며 남을 업신 여기는 교만(驕慢) 마음.

*내싸두다 ; ‘내버리다 사투리.

*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내 뜻에 맞고(), 뜻에 어기는 (),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 면전에서 찬미하는 (), 면전에서 비방하는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 몸과 마음을 즐겁게 주는 () 등이다.

*노파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 아들이나 손자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고 애지중지(愛之重之)하듯이, 수행자를 따뜻하게 가르쳐 인도하는 마음이 깊고 두터운 .

 

[참고] 애지중지(愛之重之) ;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양을 나타내는 .

 

 

 

 

[주요 내용]

 

(게송)물어중노사공왕~ / 무기공(無記空) 떨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무서워해야 그런 경계참선하는   가지 갖출 요건(三要)--신심, 분심, 의심 / 화두드는 / (게송)참문수의제아만~.

 

 

[주요 문구]

 

고인이 말씀허시기를의심이 크면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 밖에는 얻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이렇게 말씀허신 법문도 있습니다.

제일 () 닦아 가는데 무서운 것이 뭣이냐허면, 바로 () 경지에 떨어져 갖고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 저질러서 지옥에 갈지언정, () 떨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무서워해야 그런 경계라고 허는 것을 부처님께서도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에 지나지 않지마는, 아무 재미도 없고 그러한 한마디지만, 한마디 화두가 나의 생사(生死) 명근(命根) 끊는, 확철대오해서 자기의 자성불(自性佛) 깨닫는, 본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없어서는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최상승 법문에 보면은,

혼침이 들락거리고 망상이 들락거리는 것은, 간절한 마음이 속에서부터서 솟구쳐 오르지를 않기 때문에 그렇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절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지 않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고 혼침이 나온 것이지, 정말 속에서부터서 간절한 마음이 나온다면 어디에 그런 것이 붙을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되어 간다고 좋아하는 마음 내지 것이며,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번뇌심도 내지 않고서, 한결같이 화두를 들고 들고 해서, 이렇게 간절한 '간절 ()' 글자를 놓치지 말도록 고인네들은 그렇게 간절(懇切) 당부를 하셨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01~700/(651~675)2016. 1. 8. 14:36

 

 

(No.661)—전강선사 27주기 추모재(02.01.14)(20)

 

 

약 20분.

 

 

지금으로부터 104 , 무술년 11 16일에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셔 가지고, 같이 공부하던 도반이 비명(非命) 죽은 것을 보고 무상을 뼈아프게 느끼시고서 직지사 선방으로 어린 나이로 가셨습니다.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 하셨던지 23세에 견성(見性) 하시고, 전국 6대선지식을 찾아가서 인가를 맡으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25세에 만공 대선사로부터 인가(印可) 받으셨습니다.

 

뒤로 60세가 되도록 전국 유명한 선원에 조실(祖室) 추대를 받아 가지고 학자 제접(提接) 하셨습니다. 63세에 여기 인천 주안 용화사조그만한 토굴인데여기에법보선원이라고 하는 선원을 개설을 하시고 학자 제접을 하셨습니다. 72세에 용주사 중앙선원을 개설하시고 학자 제접을 하셨습니다.

 

뒤로 인연 따라서 찾아오는 선객(禪客)들을 제접하시고, 77세에 갑인년 12 초이튿날 열반하실 때까지 한결같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제창을 하시고 열반을 하셨습니다.

열반하신 그날도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하시고 점심 공양을 드시고서 열반(涅槃) 드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부터서 출가하시고, 출가하셔 가지고 평생 동안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선원을 개설해서 학자 제접을 하시면서도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지어서 가난하게 사실라고 것이 아니라 그때에 경제 사정이 어려웠었고 전국에 수좌(首座) 스님네들도 모두가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속에서 정진을 했었습니다.

 

정화(淨化) 후로 수좌 스님네들이 모다 여기저기 절도 맡고 그래서 많이 스님네의 생활이 옛날에 비해서는 윤택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원래 부처님께서 출가할 이는 바리때 하나와 소가사, 중가사, 대가사가사(袈裟) 벌로 일생 동안을 나무 밑이나 바위 위에서 지내고, 걸식(乞食) 하면서 하루에 한끼씩만 먹고 수행을 하되, 병이 나면은 황룡탕(黃龍湯)자기 오줌을 도반의 오줌을 받아서 먹으면서 그것으로써 병을 고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를 의지해서 수행하는 것을 바로 성인이 종자라 해서성종(聖種)’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것이 바로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는 법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하는비구 말은 인도 말로얻어먹는 사람이다, 걸사(乞士)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얻어서 먹고, () 선지식(善知識)한테 법을 듣고 법을 빌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철저하게 무소유로 일생을 살도록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가르키셨습니다.

우리가 현재 걸식을 하면서 있는 사회가 아니라 그렇게는 못하나마 부처님의 그러한 무소유의 가난한 생활을 정신적으로는 항상 잊지 않는 가운데에 수행을 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本分)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정말 실천하신 분이 바로 전강 대종사이셨습니다. 열반을 하셨을 성한 것이 없었고, 학자를 제접을 하시면서도 그렇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식량도 넉넉허지 못하고 김장할 때도 김장할 거리가 없었고, 장을 담을 때에도 메주를 콩도 없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여기저기서 법문을 청하면 멀고 가깝고, 크고 작은 절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청하는 대로 가셔서 법문을 하시고 거기서 여비(旅費) 봉하면은 그걸 가지고 와서 살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우리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우리가 마음놓고 공부할 있고 수행할 있고,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갈 있는 그러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열반하실 때까지 십년 계속해서 조실 스님의 일대기(一代記)—일생 동안 수행하신 것과 선지식과 법담(法談) 해서 인가를 받은 것과 모든 그런 일대기 법문, 그리고 인연 따라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 새벽마다 어떤 신도가 녹음기를 기증을 해서 그것을 녹음을 놓으셨습니다.

 

녹음해 놓으신 테이프(reel tape) 지금은 시디(CD) 해서 잡음도 나고 들을 있게 되았습니다마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테이프를 가지고 녹음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열반하신지 27년이 되었지마는 녹음 법문(錄音法門) 의해서우리는 어떻게 공부를 가야 바르게 하는 것인가?’ ‘수행인은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것인가?’ 구구절절이 간곡한 법문을 남겨주신 것이 비록 열반을 허셨어도 우리는 우리의 가슴속에 그리고 우리의 도량에 조실 스님이 살아 계신 걸로 알고 수행을 있게 주신 것입니다.

 

그때 여기 용화선원은 주안 염전 가에 조그마한, 한국에 그렇게 작은 절은 지금은 찾기가 되려 어려울 것입니다. 조그마한 절에서 용화선원을 개설해 가지고 학자 제접을 시작을 하셔 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정진하고 법문 들을 있는 이러한 도량이 되도록 놓으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조실 스님의 그런 유지를 받들어서 법문에 의지해서 이렇게 이런 도량이 것뿐이고, 조실 스님의 법력(法力) 의해서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법보전(法寶殿) 안에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창설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을 지어서 스님네와 신도님네들이 공부할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시고, 만년위패 제도를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제도할 있는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 가서 왕생(往生)하실 때까지 편안한 영가(靈駕) 안주처를 맨들어 주시고.

여기에 만년위패를 모시면은 영가들이 여기에서 행해지는 모든 법요식에 직접 참석을 하시고 법문에 의지해서 영가의 몸으로서 마음을 닦아 가다가 그러다가 인연이 도래(到來)하면은 도솔천내원궁에 가서 왕생하시도록 그러한 제도를 여기에 마련해 주셨습니다.

 

선망부모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드리려는 여러 신도님네들의 정성에 의해서 그래서 용화선원은 오늘도 이렇게 부족함이 없이 이렇게 선원을 운영해 나가고 정법(正法) 선양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께서는 일생 동안을어떠헌 법을 가지고 제창(提唱) 하셨느냐?’하면은 거두절미하고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한결같이 제창을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동안은 많은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시고 테이프를 소장하고 계신 분이 많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어느 법문을 들으나 요점은활구참선입니다

 

요새 참선법이 많이 전국적으로 또는 세계적으로 선양이 되고 있습니다마는 진정한 의미의 활구참선법은 듣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근자에 비파사나다 3 수행법이다 가지고 동남아 모다 그런 데에서 그런 수행법이 흘러들어 가지고 많은 신도들 그리고 스님네 가운데에도 그런 데에 눈을 팔고 있는 분이 있단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여러분이 금강경을 보신 분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연등불 앞에서 얻은 바가 있어서 내가 석가모니불로 출세하리라고 하는 수기(授記) 받았느냐?” 수보리에게 그렇게 물으신 것이 여러분은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연등불소(燃燈佛所)에서 얻은 바가 있었다면 석가모니불로 출세할 있다고 수기를 주시지 했다 것입니다.

 

요새 비파사나니 무슨 제삼 수행법이니 것은 자꾸 가다 보면 보이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진취해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수 있어서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활구참선법은 처음부터 구경(究竟) 깨달음을 깨달을 때까지 보이는 것이 있을 수가 없고, 나타난 것이 있을 수가 없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을 수가 없고, 얻어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얻을 것이 있고, 보일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도(邪道)라고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엄격한 규정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떠한 3 수행법이니, 4 수행법이니 가지고, 보이는 것이 있고, 나타난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정법(正法) 아니라는 것을 저는 삼세제불(三世諸佛) 증명으로 모시고 강력하게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까닭은 그렇게 해서 설사 무엇이 얻어지고 알아지고 보이는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조실 스님의 추모재를 맞이해서 이런 말을 언급하게 것은 심지어 선방에도 그러한 풍조가 직접 간접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바로 정법을 망가트리고, 정법을 좀먹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강경하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실 스님께서 일생 동안 선양하신 활구참선과 직접 관련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추모재를 기해서 이런 말씀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23세의 어린 나이로 확철대오를 하시고 33세의 어린 청년의 몸으로 양산 통도사 선원에 조실로 추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한 선지식인데도 일생 동안을 몸이 불편하시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저녁 공양을 드신 뒤에로는 잠깐 쉬었다가 11 경이 되면은 그때부터서 예불(禮佛) 때까지 계속 정진 하셨습니다.

가운데는 조실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봉하신 분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조실 스님 열반하신지 27년의 세월이 지냈고 앞으로 세월이 하루하루 가다 보면 오십 년이 되고 년이 되고 오백 년이 돌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무슨 정진하다가 무슨 소견이 나거나, 보인 바가 있거나, 얻어진 바가 있거나 그러한 것은 바로 삿된 소견이요 잘못된 일시적인 경계일뿐,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라고 것을 우리는 알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가야 것입니다.

 

바로 법요식이 거행이 되고 분향이 끝나고 나면 점심 공양이 간략히 마련이 되어 있으니 조금 바쁘시더라도 전부 점심 공양을 드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숙세의 깊은 인연이 있어서 법보 가족(法寶家族) 되었습니다. 법보 가족은 정법을 믿고 오직 정법에 의지해서 살고, 정법을 실천하고 정법에 의해서 바른 수행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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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非命) ; 목숨대로 살지 못함.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 말인데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만공 대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응대할·가까이할 )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정화(淨化) ; 한국불교 정화운동. 1910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 일제는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불교 정화운동.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가사(袈裟) : [] kasaya  범어를 음대로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가지(三衣) 있어서, 다섯 폭으로 (五條)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七條) 보통 때에 입고, 아홉 (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福田)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 입고,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걸식(乞食 ·구할·청할 /·음식 )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본분(本分 근본 /분수·신분··마음가짐· ) ; ①본래의 직분에 따른 책임이나 의무. ②사람이 저마다 가진 본래의 신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시디(CD) ; 콤팩트디스크(compact disk). 광신호(光信號) 기록된 소리나 영상 따위의 정보를 재생하는 재생 기기.

*되려 ; ‘도리어(예상이나 기대 또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되거나 다르게)’ 사투리.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 . ②가르침의 . 불법의 공덕. 보살의 위신력(威神力)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 전당이라는 .
그래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모셨고,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왕생(往生)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도래(到來 이를 / )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제창(提唱 이끌 /부를 ) ; 대의(大義) 요점을 드러냄.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분리해서vi  보는 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 무상(無常)하고 ()이고 무아(無我)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마음부수[心所물질[]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무아를 통찰하는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수기(授記) ; 부처가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교설(敎說).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좀먹다 ; ①눈에 뜨이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자꾸 () 입히다. ②좀이 슬어 여기저기 구멍이 나다. '' 옷이나 나무, 곡식, 종이 따위를 못쓰게 만드는 조그마한 벌레.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차례에 걸쳐 ·보살(·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 정진 ; 보통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잠자는 시간인데, 이때 잠을 자지 않고 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