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52))—1984(갑자)년 동안거 결제 (84.12.07) (65분)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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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한데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한데 지위무명불요절(只爲無明不了絶)이라.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이 삼계(三界) 가운데에 가루 날으듯이 윤회(輪廻)를 하는 것은—지옥으로 떨어졌다, 천당에 올라갔다, 축생(畜生)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아귀(餓鬼)가 되었다가, 이렇게 해서 삼계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하면, 한 생각 남이 없어서 마음이 맑으면,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이여.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
오늘 갑자년(甲子年) 윤(閏) 10월 보름날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을 맞이해서 도봉산 원효암(元曉庵) 대중과 회룡사(回龍寺) 대중도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 대중과 함께 이 법요식(法要式)에 참석을 했습니다.
해마다 10월 15일에 동안거 결제를 하는데, 금년에는 윤달이 들어서 본 10월에는 하지 아니하고 윤 10월 15일에 결제를 해 가지고 내년 을축년(乙丑年) 정월(正月) 15일, 지금으로부터 석 달 뒤에 해제(解制)를 하게 됩니다.
여름이 되면 여름 결제, 겨울이 되면 겨울 결제, 연례행사(年例行事)로 해마다 결제를 거듭하고 해제를 거듭하건마는, 마냥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으로 지고 또 동쪽으로 뜨는 해가 서쪽으로 지고 아무 특별한 것이 없어. 아무 특별한 것도 없고 기특한 것도 없는 가운데에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하루 지내면 하루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이틀 지나면 이틀 지낸 만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 지내다가 보면 한 달이 지내고, 한 달 한 달이 지내다 보면 일 년이 지내서, 일 년을 지낼 때마다 나이가 한 살씩 불어나는데, 일 년 일 년 지내다 보면 어언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서, 엊그제가 청년, 청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젖 먹고 밥 먹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이러는 가운데에 아무것도 마음에 얻은 것은 없고 업(業)만 짓고 나이만 먹으면서 죽음을 향해서 지옥으로 가는 벌이만 하고 있어서야 이것이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출가해서 사문(沙門)이 되어가지고 선방에 나와서 참선(參禪)을 하는 출가납자(出家衲子)들도, 철철이 선방에 나와서 결제를 하고 안거(安居)를 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지만, 처음에 발심(發心)해서 출가할 때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완되어 버리고.
그때의 그 열렬한 발심과 분심(憤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르~ 하니 가라앉어 버려서, 그러다가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또 용맹심(勇猛心)을 내나 그것이 사흘이 못 가서 또 스르르르르~ 하니 또 꺼져 버리고.
생각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도 실지로 허리를 쭉 펴고 정진(精進)을 해 보면 혼침(昏沈) 아니면 산란(散亂), 산란 아니면 혼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퍼뜩 석 달이 지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도인(道人)은 잠이 오면 그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무거운 바윗돌을 짊어지고 저 지리산을 하룻밤에 백 리(百里) 이상을 걸어 고개와 골짜구니를 넘고 넘으면서 밤새 길을 걷고.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반들반들하니 닳아져서 쌍계사(雙磎寺) 육조 스님 정골탑(頂骨塔) 앞에 그 돌이 놓여있는데. 그렇게 애를 쓰고.
자명(慈明) 스님 같은 이는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정진을 하고 한,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 그 많은 도인들이 혼침과 산란을 이겨내고 해태(懈怠)로부터 벗어나서 정진을 하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친 그러한 사례가 수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혼침과 산란은 번갈아가면서 우리 수행할라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 두 가지 몹쓸 것만 없으면 정진이 저절로 될 것이고 정진하는 데 아무 괴로울 것이 없건마는.
유시(有時)에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퍼일어나고, 그 번뇌와 망상이 좀 잠잠해질만 하면은 혼침이 와 가지고 눈뚜껑이 천 근이나 무겁게 쪄 누른다 그 말이여. 아무리 눈을 뚝 부릅뜨고 애를 써도 그 눈팅이 내려누르는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어.
그래서 옛날 중국 천목산(天目山)에 고봉 선사(高峰禪師), 고봉 스님은 '내가 삼 년 동안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견성을 못하면 자살을 해 버리리라' 이러한 결의를 하고서 정진을 하는데.
역시 그 고봉 스님도 혼침, 어떻게 앉기만 한면 혼침이 와 가지고 밥 먹는 시간,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는 마냥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했습니다. 포행을 해 가지고 조끔 졸음이 달아날만 하면 들어와서 또 앉으면, 앉기만 하면 금방 또 혼침이 와.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앉을 수가 없어.
그렇게 도량을 포행으로 포행으로 애를 쓰는 가운데 3년이란 기한이 어언간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안 되면은 3년 기한이 차는데 착잡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어.
장부(丈夫)가 한 번 결심을 했는데, 3년 만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자결(自決)을 해 버릴라고 결의(決意)를 했는데 며칠이 안 남았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날마다 참 착잡한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며칠간을 정진을 하는데, 하룻밤 꿈에 단교(斷橋) 스님이 나타나서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를 떠억 주신다 그 말이여. 꿈에 그 단교 스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탔는데 눈을 뜨고 보니 너무 소소(昭昭)하고 영령(靈靈)하다 그 말이여.
그렇게 화두를 들면 들었을 때뿐이지 금방 딴생각이 들어오고, 또 새로 화두를 들면은 일 분도 못 가서 또 딴생각이 들어오고. 그렇게 애를 쓰기를 3년을 했는데.
꿈에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를 단교 스님으로부터 딱 받고서는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제절로 터억! 현전(現前)하는데 혼침도 간 곳이 없고, 번뇌 망상 산란심(散亂心)도 간 곳이 없어.
앉아도 화두요, 서서도 화두요,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 누고 오줌을 누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제절로 화두가 드러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는데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말씀을 하면 '나도 꿈에 그런 누구한테 화두를 한 번 타 봤으면' 혹 그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란가 모른지만, 꿈에 그 화두를 타게 되는 데에는 3년이라고 한 세월을 단 일분일초도 범연(氾然)히 지내지 안 했다 이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가지고 일 분도 못 되어서 화두가 없어져 버리면 또 들고, 일 분도 못 되어서 없어지면 또 들고, 혼침이 오면은 포행하고 산란심이 일어나면 화두를 들고.
그래서 혼침과 산란과 그 두 놈들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오는데, 그러한 사이에서도 일분일초도 그냥 혼침에다 맡겨 둔 채 지내지 아니하고, 산란심이 일어난 채 그냥 그놈에다 맡겨 두고 지내지를 안 했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애를 쓰고 이를 악물고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면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기 때문에 몽중(夢中)에 화두를 타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 말이여.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그 고봉 스님이 꿈속에서 단교화상으로부터 '만법귀일'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하는데 애써서 할 것이 없어. 제절로 의단이 독로하는데,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고 그러한 가운데 화두가 드러나는데, 앉으나 서나 누우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조끔도 털끝만큼도 힘을 들일 것이 없고 일부러 지어서 할 것이 없어.
지나간 3년 동안에는 온전히 억지로 지어서 했는데 이제는 지을 것이 없어. 애쓸 것이 없어. 제절로 화두가 독로하는데.
일부러 딴 생각을 좀 해 볼라고 해도 되지를 안 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옆에서 잡담을 해도 상관이 없고, 사람이 수십 명, 수백 명 있는 대중 가운데에 앉아서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를 안 혀.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대중 따라서 밥을 먹을 뿐이지, 밥 먹는 것에는 아무 상관이 없어. 다맛 따라서 그저 밥 먹고 그저 똥 마려우면 똥 누고 그러지 화두에는 추호(秋毫)도 관계가 없어. 그렇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그러한 상태로 일주일이 갔는데.
일주일 만에 달마(達磨) 스님 제삿날에 탑전(塔殿)에, 대중과 합해서 그 탑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 오조 법연(五祖法演) 화상의 탱화(幀畵)에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다' 한 글이 쓰여 있는데 그 글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백년이면은 날수로 치면은 삼만육천 일인데, 그 '백년 삼만육천 일에 반복하는 놈,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갔다 왔다 하는 이 반복하는 놈이 바로 이놈이다' 한 그 게송(偈頌)에 화두를 타파(打破)했어. 천칠백 공안(公案)을 어느 공안을 들어봐도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비단 중국에 고봉 선사 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다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러분들도 3년을 기한을 정해 놓고 정진을 열심히 하신 것은 좋으나, 3년 지내고도 깨치지 못하면 꺼떡하면 자살 같은 거 하고 그러한 것을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3년도 길고 하루씩, 항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처음~21분33초)
(2/3)----------------
중생은 근기(根機)가 약해서 석 달이나 3년 길게 잡아 놓면,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벌써 사흘째 가면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늘어지게 되고 열흘이 지내가면 더 늘어지거든. 또 정신을 차려도 또 며칠 안 가면 또 풀어지고 이러니까 하루씩을 단속을, 작정을 하고 하면 풀어질 수가 없거든.
농사를 지어 보면 곡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면은 그것을 하지(夏至) 전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심을수록에 수확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일찍 심어 가지고 한참 날씨가 뜨겁고 그럴 때에 그때 필요한 만큼 그 벼가 자라게 해 주어야 제대로 수확을 보는 것이지, 그 자라야 할 때에 날씨가 춥거나 너무 오랫동안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비가 오지 안 해서 가물어 가지고 바짝 말라서 논바닥이 갈라지고 해서 수분이 없어서 자라지를 못하거나, 또 비료가 부족해서 자라지 못하거나, 논을 세 번 이상 매 주어야 하는데 논을 매 주지 못해 가지고 잡초 속에 우거져 있거나, 이리해서 자라야 할 그 시기에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지 아니하면 그 농사는 볼 것이 없습니다.
이 수행(修行)도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할 때에, 할 그 시기(時機)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그때에 채찍을 가해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그 시기에 참 알차게 공부를 해놔야 하는 것이지,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기름 참선이 되어서 나중에는 늙발에 가서 좀 할라고 해봤자 별 볼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님도 말씀하시기를 '삼십에 서지 아니하면 그 뒤에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별로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정진(精進)도 할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으면 10년 20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기름 참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연세가 많으신 보살님네들은, '하이고! 시기가 있다는데 인자 늙어서 선방에 와 봤자 나도 별 볼 일이 없겠구나' 혹 그렇게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젊어서 발심한 사람은 젊어서 발심한 대로 시기가 있고, 연령(年齡)이 많아 가지고 선방에 오셔서 발심한 분은 또 연령이 많은 그날부터서 첫 철이니까 한 살인 것입니다. 오십에 들어오시면 오십 세에 들어온 해가 법(法)의 나이로서는 그날이 한 살이고, 육십에 들어오셨으면 육십 살이 이 법의 나이로서는 한 살이여. 그것을 법랍(法臘)이라 그러는데.
한 살 되었으니 세속적(世俗的)인 나이 많은 것을 여기서 따질 것이 못됩니다. 그날 한 살로 생각하고 정말 나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세속에서 잘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식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간 세월에 절에 오래 댕겼다고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발심한 그날부터 부처님 제자(弟子)로 새로 태어났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대부분 오래 전부터서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정진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또 일부는 참선이 좋단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선방에 와서는 한 번도 지내보시지 아니한 그런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 참선은 꼭 선방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계시면서도, 가정생활하면서도 올바른 방법만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선방에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하시되 시비(是非)나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내고, 옆에 사람하고 말다툼이나 하고, 밤낮 앉어서 속 바글바글 썩고 앉어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참선커녕은 오히려 업(業)만 더 짓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금년 겨울에 한 팔십여 명이 방부를 들였습니다마는 그분들은 정말 스님네 못지않게, 출가한 스님네 못지않게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주실 줄 생각을 합니다. 그 팔십여 명 가운데에는 칠십을 훨씬 넘은 그런 노보살님네들도 상당수 계신 줄 생각합니다.
칠십 이상 넘어 놓면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혈압이 높거나 혈압이 너무 낮아서 어지럽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서 모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시고 모다 씻고, 법당(法堂)에 올라오시고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대중과 더불어 행동을 같이 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줄 생각하지만, 연세가 많다고 누가 나를 위해서 특별히 시봉(侍奉)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이고, 어쨌든지 몸조심하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중(寺中) 형편이나, 대중의 규칙 생활상으로는 연세가 많으면은 행동을 같이 따라서 하기가 퍽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마는, 연세가 조끔 많다고 해서 방부를 안 받아 놓면 인자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아니한데, 모처럼 이런 선방에 오셔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이 청정한 도량(道場)에서 정진할라고 오신 그 갸륵한 신심이 훌륭해서 연세가 좀 많아도 대중과 같이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이 없기만 하면 연령 가지고는 너무 심하게 하지 않도록 그렇게 배려를 해서 방부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보다도 노인일수록에 더 정진을 알뜰히 하셔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잡담을 하더라도 '나도 그럭저럭 잡담하다 내가 이렇게 늙어버렸소.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덜 먹어서 어쨌든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경책(警策)을 해 주신다면 젊은 분들도 거기서 참 발심(發心)을 해서 감동이 되어 가지고 정진을 잘할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지금 선방이 옛날 지대방을 털어 가지고 큰 방을 만들고, 지대방은 저 뒤채에다가 해 놨으니, 이쪽 선방에서는 아무 잡담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쪽 지대방에서라도 잡담을 하라고 그렇게 방을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여기 공부하러 오셨지 잡담하러 오신 것이 아니거든. 그러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잡담은 해서는 아니 되려니와 특히 이쪽 선방에서는 전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선 시간에,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이쪽 선방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떠억 앉어서 방선 시간이라도 각기 앉어서 묵묵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야지, '방선했다' 해 가지고는 대고 벌떡벌떡 드러눕고, 옆에 사람하고 수군순수군수군 뭔 얘기를 하고 그래 쌓면,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도 옆에서 떠들어 쌓는 통에 정진을, 공부를 못하거든.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어.
남을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남 목숨을 해롭게 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데, 도 닦는 것을 못 닦게 방해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크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 봤자 육체밖에는 죽일 수가 없어서 다시 뭐 새로 몸 받아나면 그만이고, 자기도 살생(殺生)하는 죄의 죄값만 받으면 되지만, 도(道) 닦는 것을 방해를 쳐 가지고 도를 못 닦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것을 못하게 한 죄가 되고, 그 사람 한 사람만 못하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그러한 대도인(大道人)이 되고 부처님이 될 텐데, 그것을 못하게 방해를 쳤으니 사람을 몇천만 명 죽인 죄보다도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선방에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좀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이해를 하시고 사소한 일에 말다툼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지를 말고서, 어쨌든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석 달 동안이 하루처럼 엄숙하고 경건하게 정진을 하시도록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이 선방에, 스님네 선방도 지대방을 털어서 큰 방을 만들고, 그 옆에 작은 방 두 개를 벽을 허물어서 또 합쳐서 거기를 지대방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진하는 스님네에게 좀 더—너무 방이 좁아 가지고 불편하기 때문에 지대방을 그렇게 했으니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어쨌든지 스님네도 열심히 정진을 하시되 '다른 선방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 여기는 이렇게 한다', '다른 선방은 이러는데 여기는 이렇게 안 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 꼭 다른 선방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자꾸 들춰내 가지고 불평을 하시지 말고, 이 용화사 법보선원은 법보선원 나름대로에 특성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선원은 다른 선원 나름대로 그 선방 나름대로에 또 가풍(家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선방이나 모든 것이 다 똑같으란 법은 없습니다. 이런 데는 이런 데를 만나면 그 법도(法度)에 따라서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그 속에서 정진을 알뜰히 하고, 또 다른 선방에 가면 그 선방 나름대로 법도가 있으면 그 법도에 순응하면서 거기에 적응하면서 정진을 할 따름인 것입니다.
마치 저 남방(南方)에 더운 데에 가면 더운 데에 따라서 옷을 입고, 저 북방(北方)에 추운 데로 가면 추운 데에 따라서 거기에 알맞는 더운 옷을 입으면서 지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음식도 또한 그렇고 모든 규칙과 법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거기에 적응할 때에 이(理)와 사(事)가 한목 병진(竝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 어디를 가거나, 동서남북 어디를 가거나 온통 자기 정진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도 거기에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꾸 자기는 경계(境界)에 속고 얽매임을 받아 가지고 계속 정진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헌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헌디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寒山頂上)에 월륜고(月輪孤)한데, 한산 산꼭대기에 둥근달이 밝았는데,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저 맑은 하늘에 그 달이 밝게 비추어서 한 물건[一物]도 없구나. 구름 한 점 없는 달이 휘황창 밝으니 무엇이 있느냐.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귀하고 귀한 그 천연에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사대(四大)로 뭉쳐진 육신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얽혀진 우리의 마음, 이 오음(五陰)의 몸뚱이 속에 그 무가(無價), 값없는 보배가 매장(埋藏)되어 있구나.
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한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쓰지를 못하고一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지는 삼천년이 되었지마는,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21분34초~43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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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無價寶)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은 삼동 결제(三冬結制)와 아울러서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입재(入齋) 날입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은—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기도도 한 생각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기도가 되지 아니한 것이고, 참선(參禪)도 한 생각을 단속 못하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댁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정진하신 분,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모두가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알뜰히 정진을 하심으로 해서 기도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댁에 계셔도 항시 이 선방에 와서 정진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진을 하신다면 그 생활 속에서, 밥 하면서 빨래 하면서 애를 길르면서 생활하면, 그 가운데에 한 생각만 단속하면, 앉어 있어도 상관이 없고, 누워 있어도 상관이 없고, 서 있어도 상관이 없고, 걸어 다녀도 상관이 없고, 차를 타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뒤로 미루고, 지금 이 시간 이 시간을 단속을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공부를 못하고 말 것이고,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고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라도 그때그때를 단속해 나가면 차츰차츰 공부가 익숙해질 것이고.
복잡하고 어렵고 바쁜 속에서 공부를 단속해 버릇하면 그 다행스럽고—처음에야 어렵지마는, 어려웁다고 핑계 대지 아니하고 자꾸 해 버릇하면 나중에는 되어진 때가 오는 것이고, 나중에는 차츰차츰 자기의 성격이라던지, 자기의 공부하는 정진 힘이라던지를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가늠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옛날의 자기와 달라진,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해 갈수록 이 공부는 정진력(精進力)이 증장(增長)이 되는 것이고, 자꾸 핑계 대고 아니하면 1년 가도 그 모냥이요, 3년 가도 그 모냥이요, 일이 다 끝날 때가 없습니다.
'아들딸만 결혼시켜 놓으면 인자는 그때서 참선을 좀 하리라' 해도 아들 낳아 놓으면은 손자 손녀가 또 튀겨져 나오고.
'딸만 인자 여워 버리면 내가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때는 내가 선방에 가 참선하리라' 하지마는, 딸도 가기만 했다 하면은 일 년도 못 가서 뒤집어엎고 오게 되고. 또 가서 또 해산(解産) 수발해야 하고.
일이라는 것은 한(限)이 없고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 끝내 놓고 하리라' 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벌써 종자가 틀린 종자여.
일 속에서 할라고 마음을 먹어.
인생으로 태어났으니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시어머니 노릇도 해야 하고, 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고 해서 공부는 안 해봤자, 내 공부를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지를 안 하기 때문에, 딸 일 잘 봐주고 아들 일 잘 봐주고 살림 잘해 줬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조끔도 그건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거 하니라고 애썼으니까 빨리 천당에 가라' 절대로 그런 염라대왕은 아직 안 태어났습니다.
그런 것은 자기가 과거에 지은 업(業)이요, 과거에 지은 빚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되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공부 안 해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피할 수가 없으니 그것 해야 하고, 그거 하면서 자기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 생사(生死) 문제가 그것이 본업(本業)이 되고, 그밖에 일은 전부 빚 갚는 일인 것입니다. 빚 잘 갚었다고 누가 칭찬 안 해 줍니다.
그 자식을 키우는데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피나게 그 고생을 하면서 자식을 길러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그 자식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효도(孝道)를 하냐 하면 별로 그러한 속에서는 큰 효자가 나오질 않습니다.
아무것도 전해 줄 것이 없이 그래야지, 그 자식을 위해서 참 평생을 다 바친 자식일수록에 결혼해 놓고 보면 지 지집 밖에는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자식을 이렇게 애써서 길렀으니, 길러서 장가만 보내주면 내가 효도를 받아서 늙발에는 내가 호강을 좀 하리라' 하고 기대를 했다면 백 명이면 백 명, 그건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길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잘 길르되 그 자식한테 바래서는 아니 됩니다. 바래지 말고 자기 공부 자기가 해 나가야 합니다.
또 돈도 자기가 늙발에 쓸 것을 좀 준비를 해 놓은 것이 좋습니다. 탁! 털어서 자식한테 다 해 놓은즉슨은 늙발에 용돈이 없어서 그 참! 피나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늙발에 쓸 돈도 준비를 해 놔야 하고.
또 자식한테는 부모의 의무는 할지언정 자식에게 아무것도 바래지 말아야 합니다. 효도해 주기도 바래지 말고, 돈도 늙발에 잘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바랬다' 하면은 그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래지를 아니해야 그런대로 불효는 안 하게 되는 것이고, '많이 바랬다' 하면 반드시 불효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은 여러분이 이해를 잘 못하면 '그 자식 길러 봤자 소용이 없고, 잘해 줘 봤자 소용없으니까 어쨌든지 외봉을 많이 쳐놨다가 늙발에 내가 써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고.
자식한테 바래서는 아니 됩니다. 바랜즉슨은 뒤에 가서 참 피눈물 나는 불효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이만큼 젊었을 때, 이만큼 건강할 때, 내가 내 마음 공부해서 수행을 해서 업(業)을 소멸(消滅)을 해 놔야 자식도 그런대로 괜찮하고, 며느리도 그런대로 괜찮한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따라서 며느리가 좋은 며느리도 되고 자식도 좋은 것이 되지, 내가 업(業)이 꽉 차 갖고 있으면 멀쩡한 자식도 불효자식이 되고, 멀쩡한 며느리도 아주 고약한 며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도 자기 친정에서 부모 밑에서 잘 배우고 잘 자라서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내 집에 왔는데, 그게 어찌 못쓸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시어머니 눈에는 눈에 안 차고 못쓰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업이 차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집가서 시어머니와 뜻이 안 맞아서 속이 상하고 원망을 하고 '시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또는 '다른 아들네 집으로 가버렸으면' 혹 그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고약한 심보를 가지면 자기는 복 받기는 틀린 것입니다.
자기가 마음속에 업(業)이 차 있기 때문에 멀쩡한 시부모가 고약한 시어머니로 비추는 것이지, 자기가 정말 업이 없어서 청정하고 어질고 착한 마음으로 시부모를 상대한다면은 시부모가 생전(生前) 사후(死後)를 그 자식 며느리한테 의탁(依託)을 할 판인데, 왜 그 며느리를 고약하게 들볶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 며느리한테도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서 스스로 자꾸 향상되어 갈라고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그 잘못된 점을 스스로 자기에게서 찾아야, 찾아서 자기를 갖다가 향상을 시키고,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착한 마음으로 며느리를 상대한다면 그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친정어머니와 친딸과의 사이처럼 그렇게 오손도손하고 서로 그렇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로 들었지만,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선방에 80명이 지내시는데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다 오셨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 · 젊은 분, 김 씨 · 이 씨 · 박 씨 뭐 별별 성(姓)바지가 다 모이시고, 별별 모다 성격이 다른 분들이 모이셨지만, 공연히 달란 것 없이 미운 사람 있고, 나를 뭘 자꾸 나한테 잘해 주고 뭘 잘 주어도 그거 싫은 사람, 이거 중생계(衆生界)에서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뭘 달라고 해도 주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로 좋은 사람도 있고.
그런데 이게 다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의 소치(所致)인 것입니다. 업으로 된 것을 업에만 맡겨 버리고 업에 따라서 행하면 언제 그 업을 소멸(消滅)하겠습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도 화두를 들고, 뵈기 싫은 사람을 만나도 화두를 들고 해서, 화두를 듦으로 해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상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방(禪房)이란 데는 자기 마음 맞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가지고서는 그 정진(精進)에 별 도움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와 안 맞은 사람하고 한 철을 지낼 때에 거기에서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자기에게 채찍을 가하고. 그래 가지고 자꾸 자기를 갖다가 갈고 닦아서 그래서 향상(向上)을 시켜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는 놀라울 만한 발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팔십 명이 모여 놨으니 참! 별별 성격의 소유자도 있겠지만, 그 자기 마음에 안 맞은 분을 미워하지 말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흘겨보면서 미워하고 그러지를 말고.
항시 자비(慈悲)스러운 눈매로 지켜 주며, 남 잘못한 것을 보고 허물로 생각하지 말고, 남 잘못한 것을 보고서 자기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신다면, 대중 가운데 몇 사람이 본의(本意) 아니게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중에 아무 해(害)가 되지를 아니할 것이고, 또 한두 번 잘못하다가 스스로 자기를 깨우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선방 스님네도 한철 아무 장애 없이 잘 지낸다고 하는 것은—사실은 아직까지 우리 용화사에서는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10년 동안 중간에 별 탈이 없이 잘 지냈습니다마는, 그것은 조실 스님을 신(信)하는 철저한 그런 신심으로 지내시기 때문에 별 장애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지 금년 겨울 석 달 동안도 지난 어떠한 결제 동안보다도 훨씬 알차고 짬진 한철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원효사나 회룡사 대중들도 거기 서로 비구니(比丘尼) 수좌(首座)끼리 모다 지내고 있지만, '항시 전강 조실 스님을 모시고 산다'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도 날짜를 정해 놓고 꼭 엄숙한 마음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 어쨌든지 여법하게 알차고 짬지게 정진(精進)을 하기를 부탁을 합니다.
본자허명절점하(本自虛明絶點瑕)한디 육창한월변하사(六窓寒月徧河沙)니라
나무~아미타불~
기간나유한장단(其間那有閑長短)하야 법계함용공일가(法界含容共一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자허명절점하(本自虛明絶點瑕)여,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서 조그마한 티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육창(六窓)에 한월(寒月)이 변하사(徧河沙)여. 여섯 창에 차운 달이 환히 비추어서 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다 비추고 있다 그 말이여. 자성(自性)의 달이 본래 밝고 밝아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육창(六窓)을 통해서 삼천대천세계를 환히 비춘다 그 말이여.
기간나유한장단(其間那有閑長短)하야, 그 사이에 무슨 길고 짧은 그런 쓸데없는 것이 있겠느냐 그 말이여. 무슨 시비(是非)가 있고, 무슨 선악(善惡)이 있고, 친소(親疏)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법계함용공일가(法界含容共一家)여. 육도법계(六道法界)와 삼천대천세계가 온통 한 집이다 그 말이여.
내가 미(迷)한 생각으로 보니까, 중생의 업식(業識)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시비(是非)요, 차별(差別)이요, 죄악(罪惡)이요, 빈부귀천(貧富貴賤)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원근친소(遠近親疏)요 그런 것이지,
한 생각 비워져 버리면 눈으로 무엇을 봐도 그것은 불세계(佛世界)요, 귀로 무엇을 들어도 그것이 다 부처님 법문이요, 무슨 냄새를 맡아도 그것은 전단향(栴檀香)이요, 무엇을 먹어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금년 겨울 이 안거(安居) 결제일(結制日)을 맞이해서 이렇게 여러분과 더불어 법요식(法要式)을 갖게 된 인연으로 한 철이 정말 알뜰하고 짬진 한 철이 되어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자아를 철견(徹見)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이번 철에 각자 이루어지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43분12초~64분39초) (끝)
[법문 내용]
(게송)삼계지중분요요~ / 『선관책진(禪關策進)』에 수행에 몸과 목숨을 바친 기록 / 중국 고봉선사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 / 하루 결제, 하루 정진.
수행도 할 시기가 있다 / 기름 참선 / 선방에서 잡담 금지 /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다 /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라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우리는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다.
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기도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 / '일 끝내 놓고 하리라' 하지 말고, 일 속에서 참선하라 / 자기 생사(生死) 문제가 본업(本業)이 되고, 그밖에 일은 전부 빚 갚는 일 / 어쨌든지 이만큼 젊었을 때, 건강할 때, 내가 내 마음 닦는 수행을 해서 업(業)을 소멸해야 / 자기와 안 맞은 사람하고 지낼 때에 거기에서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자기를 갈고 닦아서 향상(向上)을 시켜야 / (게송)본자허명절점하~ /
〇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 지위무명불료절(只爲無明不了絶)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
삼계,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다못 무명(無明)을 요달(了達)해 끊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한 생각 남이 없어서[一念不生] 마음이 맑으면, 갈 것도 없고 올 것도 없어서 생멸(生滅)이 없는 것이다.
〇중국 고봉선사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
〇항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〇농사를 지어 보면 곡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면은 그것을 하지(夏至) 전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심을수록에 수확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정진(精進)도 할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으면 10년 20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기름 참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〇방선 시간이라도 각기 앉어서 묵묵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야지, '방선했다' 해 가지고는 대고 벌떡벌떡 드러눕고, 옆에 사람하고 수군순수군수군 뭔 얘기를 하고 그래 쌓면,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도 옆에서 떠들어 쌓는 통에 정진을, 공부를 못하거든.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어. 남을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남 목숨을 해롭게 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데, 도 닦는 것을 못 닦게 방해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크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 봤자 육체밖에는 죽일 수가 없어서 다시 뭐 새로 몸 받아나면 그만이고, 자기도 살생(殺生)하는 죄의 죄값만 받으면 되지만, 도(道) 닦는 것을 방해를 쳐 가지고 도를 못 닦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것을 못하게 한 죄가 되고, 그 사람 한 사람만 못하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그러한 대도인(大道人)이 되고 부처님이 될 텐데, 그것을 못하게 방해를 쳤으니 사람을 몇천만 명 죽인 죄보다도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〇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거기에 적응할 때에 이(理)와 사(事)가 한목 병진(竝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 어디를 가거나, 동서남북 어디를 가거나 온통 자기 정진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도 거기에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꾸 자기는 경계(境界)에 속고 얽매임을 받아 가지고 계속 정진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〇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한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쓰지를 못하고一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지는 삼천년이 되었지마는,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역대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無價寶)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〇기도와 정진이 궁극에 가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기도도 한 생각 단속을 하지 아니하면 기도가 되지 아니한 것이고, 참선(參禪)도 한 생각을 단속 못하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댁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정진하신 분,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모두가 그 한 생각을 단속(團束)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알뜰히 정진을 하심으로 해서 기도도 성취하고, 도업(道業)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〇내가 미(迷)한 생각으로 보니까, 중생의 업식(業識)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시비(是非)요, 차별(差別)이요, 죄악(罪惡)이요, 빈부귀천(貧富貴賤)이요,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원근친소(遠近親疏)요 그런 것이지,
한 생각 비워져 버리면 눈으로 무엇을 봐도 그것은 불세계(佛世界)요, 귀로 무엇을 들어도 그것이 다 부처님 법문이요, 무슨 냄새를 맡아도 그것은 전단향(栴檀香)이요, 무엇을 먹어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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