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0/(251~275)2022. 2. 26. 23:03

 

 

(No.257)—1985년 입춘법회(85.02.04) (63분)

 

(1) 약 33분.

 

(2) 약 31분.


(1)------------------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한 뒤로 몇 번이나 삼도(三途)에 들어갔으며 사생(四生)을 겪었던가. 본 마음자리, 본심왕을 등진 이래로, 등지고서 몇 번이나 지옥 · 아귀 · 축생 삼도에 들어가서 갖은 고통을 받았으며,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의 몸뚱이를 몇 번이나 겪었더냐.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의 때를 깨끗이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고향에 돌아가리라. 본심왕의 고향에, 심왕의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더라.

오늘은 을축년 입춘날입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스님들, 그리고 보살선방 청신녀 여러분과 용화사 법보제자 여러 신남신녀가 모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마는 우리의 역대 선망부모(先亡父母), 형제자매, 원근친척과 법계에 가득찬 유주무주(有主無主) 애혼(哀魂), 고혼(孤魂) 불자들도 이 법회에 초대를 받아서 왕림을 하셨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점지로 잠시 양씨 가(家)에 태어났다가 24세를 일기로 홀연히 온 곳으로 돌아가 버린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靈駕)의 초재를 맞이해서 함께 그 영가도 이 법문을 법상 앞에서 듣고 있습니다.

인생은 한번 왔다가 잠시 꿈꾸듯, 술 취한 듯 방황하다가 속절없이 몸을 버리고 홀연히 떠나가고야만 말 그러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물론 본성(本性)을 깨달아서 진리와 계합(契合)이 된 사람은 본래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지마는, 나의 본성을 망각하고 등져 버린 입장에서는 분명히 생(生)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입춘날은, 새해가 이 입춘날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 입춘날에는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부처님 앞에 모여서 법문을 듣고 공양을 올리고 또 기도를 하는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특히 삼재(三災), 뱀띠와 닭띠와 소띠 이 사 · 유 · 축(巳酉丑)생은 금년이 날삼재[出三災]라 해서 부처님 앞에 동참(同參)을 하고, 그래서 이 1년 동안 무장무애하게 지내고,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려는 그러한 간절한 생각을 가지시고 이 자리에 오신 분이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삼재는 꼭 사 · 유 · 축(巳酉丑)생, 뱀띠와 닭띠와 소띠에만이 한정해서 닥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 · 유 · 축(巳酉丑)생이라고 해서 꼭 모든 재앙을 받으라는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부터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이 삼재를 대단히 두려워하고 삼가하고 조심해 왔습니다. 많이 경험을 통해서도 이 삼재가 참으로 두려운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왜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내 마음에 맞고, 내 뜻대로 되는 그런 좋은 일만 있으면 좋으련마는, 왜 우리의 뜻에 어긋나고 바라지도 아니했던 어려운 일이 닥쳐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야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다른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이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자기가 짓고, 자기가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는 까닭인 것입니다.


『지도론(智度論)』에 보면 옛날 부처님 인행(因行) 때에, 몸뚱이 한번 내휘저어 버리면 산과 바다도 다 넘어져 버리고 뒤엎어져 버릴 만큼 그러한 위력을 가진 독룡(毒龍)의 몸을 받으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독룡은 어떻게 무섭고 위력이 있던지 어떤 사람이 그 독룡 앞에 나타나면, 힘이 약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를 해 버리고, 배짱이 세고 담력이 있고 힘이 강하다는 사람도 가서 기운이 빠져 가지고 죽어버리는 그런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독룡이 하루에는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부처님께 계(戒)를 받게 되었습니다. 계를 받은 뒤로 고요한 숲속에 들어가서 정(定)에 들어서 좌선(坐禪)을 했던 것입니다. 좌선을 하다가 피로해서 게으른 생각이 나 가지고 잠에 들었던 것입니다. 정진을 되게 하다가 깊은 잠에 들어 버렸어.

마치 그때에 사냥을 하는 포수(砲手)가 그 독룡이 잠들어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독룡이 깊은 잠에 들을 때에는 흡사 큰 구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독룡을 발견한 포수가 깜짝 놀랬습니다. 왜 놀랬느냐 하면은 그 독룡의 몸뚱이가 너무 찬란했던 것입니다.
몸뚱이가 울긋불긋 오색이 찬란하고 칠보로 장엄한 것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이 용의 가죽을 벗겨서 상감께 바쳐서 옷을 해 입도록 하면 큰 벼슬을 받고 상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작대기로 그 용의 머리를 누르고 그리고서 다른 사람들은 칼로써 그 독룡의 가죽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용이 놀래서 눈을 떠 보니 아! 어떤 포수가 작대기로 자기 머리빡을 누르고 조그만한 칼로 껍데기를 벗기는데, 그 용이 얼마만큼 크냐 하면 태산도 꼬리로 냅다 때려버리면 태산도 와그르르 무너져 버리고, 바다도 한번 쳐 버리면 바닷물이 바짝 다 말랐다가 다시 오므라질 정도로, 그 나라, 그까짓 것도 없애 버리려면 없애 버리고, 그 달라들어서 모가지를 누르고 가죽을 벗기는 사람들도 슬쩍 쳐 버려도 가루가 되어버릴 그러한 정도로 몸뚱이도 크려니와 기운이 센데,
‘부처님께 계를 받고 도를 닦는 그런 까닭으로 내가 차마 이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 이리 생각을 하고서 그것을 꽉 참고서 껍데기를 다 벗기도록 놓아두었던 것입니다.

머리빡부터서 껍데기를 벗기는데 눈도 빠지고 차츰차츰 숨도 막히게 됐습니다. 껍데기를 벗기는데 몹시 아팠지만 차마 그 조그만한 사람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껍데기가 다 벗겨지도록 아픈 것을 참으면서도 조금도 뉘우친 바가 없었습니다.
껍데기를 다 벗겨 버리고 완전히 벌건 살 덤뱅이만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그날 구름 한 점 없는 태양이 쨍쨍 쬐어 가지고 껍데기를 활랑 벗겨 버린 독룡의 몸뚱이는 따갑고, 시시각각으로 말라비틀어지고 목이 말랐습니다.

몸뚱이를 굴려서 큰 물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그때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수천 마리 수만 마리의 조그마한 벌레며 개미떼들이 달라들어서 그 고기를 새카맣게 눌어붙어서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몸뚱이를 움직이면 그 살을 뜯어먹고 있는 개미떼들이 다 죽을 것이고, 그래서 몸을 까딱도 하지 아니한 채 참고 참다가 마침내 몸뚱이는, 차츰차츰 살 덤뱅이는 개미떼들이 다 뜯어가고 바짝 말라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그 독룡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금생에는 내가 이 몸뚱이로써 너희들에게 보시(布施)를 해 가지고 너희들을 배부르게 하려니와, 내가 성불한 날에는 법(法)으로써 너희들에게 보시해서 너희들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리라’ 한 이러한 맹서(盟誓)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자마자 그 독룡은 바로 제이 도리천(第二 忉利天)에, 도리천상에 태어나게 됐습니다.(20분1초)

이 설화는 부처님 인행(因行) 때의 설화인데, 그 독룡은 나중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시고, 그 독룡의 머리를 누르고 가죽을 벗기던 사람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태어나서 부처님을 괴롭히던 조달(調達)이었던 것입니다.
조달이는 10생(十生)을 부처님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방법으로 부처님을 괴롭히고 해꼬자하고 때로는 목숨을 앗을려고 그러고 때로는 모함을 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죽 벗겨진 독룡의 몸뚱이를 뜯어먹던 개미떼들은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고 최초로 녹야원(鹿野苑)에서 설법을 하실 때에 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팔만의 하늘나라, 팔만의 제천(諸天)들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날 그 독룡이 부처님의 계(戒)를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목을 누르고 가죽을 벗기던 사냥꾼을 때려죽였던지, 그 개미떼들을 죽거나 말거나 몸을 움직여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던지, 이렇게 했더라면 부처님은 성불(成佛)을 하시지 못했을 것이며, 그 사냥꾼도 또 그 개미떼들도 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세세생생에 원수로서 만나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남을 좋게 해 주고 또 내가 남에게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이러한 것들이 다음 순간에는 은인으로 나타나고, 다시 원수로 나타나고, 원수가 은인이 되고 은인이 원수가 되고, 이리해서 세세생생을 거듭하면서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이나 육도법계의 수없는 모든 중생들도 선(善)이 아니면 악(惡), 악이 아니면 선으로 지어서 받고, 뿌려서 거두는 그러한 유위(有爲), 유루(有漏)의 인과 관계에서 찰나간도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삼재(三災)는, 재앙(災殃)은 바로 그런 원인으로 해서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왕 과거에 지어서 금생에 돌아오는 삼재를 억지로 모면할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악(惡)의 씨를 뿌리고 선(善)의 과(果)를 거두려는 생각은,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잘못은 부처님께 진심으로 참회(懺悔)를 하고, 이미 자기에게 돌아오는 재앙은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곱게 깨끗하게 달게 그것을 받아넘기고, 그것을 달게 받아넘기면서 거기서 새로운 발심(發心)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야말로 인과법(因果法)을 믿는, 불법을 믿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다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일가친척이나 이웃간에도 우리가 아무리 그 사람이 나한테 야속하게 하고, 나를 직접 간접으로 또는 물심양면으로 해를 끼친 때가 있다하더라도 독심(毒心)을 품고 복수를 하려는 마음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싸움은 싸움으로써 끝나지 아니하고, 원수는 복수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삼재, 금년 을축년 날삼재를 안고 있는 뱀띠나 닭띠나 소띠의 가족을 가지신 분 또 직접 그 사 · 유 · 축(巳酉丑)생에 해당하신 분은 오늘 이후로 누가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험담을 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그러한 사람과 일을 만났을 때에 진심(瞋心)을 내지 말고, 바로 거기서 마음을 돌이켜서 인과법(因果法)을 관찰을 하고, 성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노력을 하신다면 어떠한 무서운 삼재도 그분 앞에는 악한 결과를 끼쳐주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재앙을 상대(相對)를 하고 모든 미운 사람, 악한 사람을 상대하신다면,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나의 스승이 되고, 나의 은인이 되고, 나의 도반으로서 나를 도와주고 나로 하여금 모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그러한 불보살(佛菩薩)로 변할 것입니다.

남을 해롭게 하면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고,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면서, 아무리 재앙을 면하려고 하고 큰 복을 받으려고 한다고 해도 이것은 소금을 많이 먹고 목마름을 낫으려고 하는 거와 같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올라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그렇게 해서 권리를 획득하고 재산을 많이 모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권리와 그러한 재산은 끝내 나를 배반하고 독사처럼 나를 물어서 나의 목숨과, 나의 명예와, 나의 모든 공덕을 하루아침에 다 빼앗아 가고 말 것입니다.(처음~31분29초)





(2)------------------

아육왕(阿育王)은 부처님 당시에 어린아이로서 길에서 소꼽장난을 하다가 모래와 흙으로 성(城)을 쌓고 길을 닦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부처님께 그 길을 터드리면서 ‘어서 이리 지나가십시오’ 하고 길을 내드렸습니다.
소꼽장난을 하면서 부처님께 길을 닦아 드리는 그 공덕으로, 부처님께서는 ‘앞으로 백년 후에 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다’ 하고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전륜성왕은 무력으로써 천하를 통일한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으로써 천하를 통일하는 위대한 왕을 갖다가 천자를 전륜성왕이라 하는데, 전륜성왕도 부처님과 똑같이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아육왕이 과연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년 만에 인도에 태어나서 전 인도를 갖다가 통일을 하고 불법으로써 인도 천지를 다스린 그러한 성군(聖君)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육왕이 국토를 순례하며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네팔(Nepal)에 들렸을 때에 부처님의 탄생지인 그 룸비니(Lumbini) 동산에 높은 돌기둥 탑을 세우고 거기에다가, 「여기는 부처님께서 탄생한 곳이니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어라」하는 그러한 칙어(勅語)를 돌에 새겨 놨습니다. 그 돌기둥 탑과 그러한 그 돌에 기록한 비문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성지 순례로 가셨던 분들은 그것을 직접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아육왕(阿育王)은 일생 동안 그렇게 많은 보시를 행하고, 불법을 옹호하고, 불법으로써 부처님 진리로써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그 아육왕은 마침내 병을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병을 앓고 눕게 되자 보시하려는 마음이 더욱 높아져 가지고 밤으로 낮으로 황금 뭉탱이를 계원사(鷄園寺)라 하는 절로 갖다가 바쳤습니다. 절을 고치시도록 보내고, 대중공양을 하시라고 보내고, 그저 계속 날이면 날마다 황금을 보내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그때에 불법을 잘 믿지 아니한 한 대신이 태자에게 권해 가지고, 그때 태자(太子)는 삼파지(三波地)라고 하는 태자인데, 그 태자에게 권해서 그 황금을 쌓아 둔 창고 문을 굳게 닫고 그 황금을 내가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그 창고 문을 갖다가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아육왕은 계속해서 그 황금을 갖다 바치라고 했지만, 그 무서운 위력을 가졌던 전륜성왕도 병이 들어 앓아눕게 되자 그 왕의 명령은 시행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때에 왕은 점점 기력은 쇠해져 갔습니다.

왕은 게송을 읊기를,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반암마륵(唯半菴摩勒)이  어아득자재(於我得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아아육왕(今我阿育王)이  무부자재력(無復自在力)이다. 이제 나 아육왕이 아무런 자재력이 없구나. 아무 힘이 없구나.
오직 암마륵 반 조각에, 암마륵 과실만이 나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손에—암마륵이라고 하는 인도에서 나는 과일인데, 그 암마륵 과일 반 조각 밖에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구나.

이러한 처량한 게송을 읊고서, (아육왕을) 모시고 있는 신하를 시켜서 그 반 조각 암마륵 과일을 계원사로 보내드렸던 것입니다. 계원사 원주 스님은 그 반 조각의 조그마한 암마륵 과일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죽을 쑤는데 그것을 섞어 가지고 여러 대중이 고루고루 그것을 공양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인도를 통일해 가지고 날으는 새도 떨어뜨리는 그러한 위대했던 아육왕도 늙어서 병이 드니까 그리고 그 권한이 태자에게로 돌아가니까 아무 힘이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고에는 산더미 같은 황금이 쌓여 있고, 칠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하더라도 늙고 병들면 이미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布施)라 하는 것은 언제나 바로 그때그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보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행하는 보시, 돈이 없어 병을 치료 못하는 그러한 사람에게 보시, 수행하는 스님네에게 보시, 그러한 보시는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자면 부자 대로 언제나 그때그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많이 돈을 벌어서 하리라’ 하면 그때는 자기의 뜻대로 되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왜 그때그때 하지를 못하고 ‘나중에 많이 벌어서 하리라’ 하는 생각을 내느냐 하면,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의 욕심인 것입니다. (녹음 끊김) ...하기보다는 이 작은 돈을 잘 굴려서 큰돈을 만들어 가지고 나도 잘살고, 그때 여유가 있으면 마음껏 보시를 하리라. 이것은 어리석고 탐심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것을 해 버리면 뭘 먹고 살며, 장사는 무엇으로 하며, 사업은 무엇으로 하느냐? 그러니 이때에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선 먹어야 하고, 장사를 해야 하고,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어 가지고 그때 해도 늦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갖기 때문에 그때그때 분(分) 따라서 할 수 있는 보시를 뒤로 미루고 못하게 되어서, 씨를 뿌리는 계절을 놓치기 때문에 정당(正當) 수확을 해야 할 가을철에 가서는 거둘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잔치 때 쓰기 위해서 우유를 짜지 아니하고 한 달 내 두었다가 잔칫날 짜려고 보니까 젖이 말라서 별로 많이 나오지 못했다'고 하는 『비유경(譬喩經)』의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젖은 매일매일 짜야 젖이 더욱 더 잘 나오는 것입니다. 짜지 않고 한 달 내 놔두면 젖이 밭아 버리고, 한 달 동안 모인 젖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할 줄을 모르고 자꾸 쌓아 모으려고만 할 때에 인정사정없이 남을 해롭게 하게 되고, 남에게 원한을 사게 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원수와 원수의 결과 재앙을 끌어드리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道)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거든.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보시는 재보시(財布施)가 있고, 법보시(法布施)가 있습니다. 재물, 자기에게 있는 금은전보(金銀錢寶)와 의복과 먹을 음식, 그러한 물질로 보시하는 법이 있고, 법을 설해서 법으로 보시하는 법이 있습니다. 또 물질로도 하고 마음으로 보시할 수도 있습니다.
보시의 형태는 크고 작은 것과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의미의 보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보시도 보시는 자기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업(業)의 종자(種子)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재앙을 미리 막는 가장 좋은 슬기로운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보시를 통해서 자기를 비우게 하는 그러한 항목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의 육바라밀의 첫째 항목에 넣어 놓은 것은 너무너무 부처님께서 설정을 잘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가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그러한 조항이지만 보시(布施)를 첫 꼭대기에다 넣은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중생은 무엇이던지 탐심과 욕심으로써 자꾸 쌓아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깨뜨려 버리고 비움으로써 지혜(智慧)로 나아가는 첫 단계가 되기 때문에 보시는...

부처님이 아무리 안 잡수어도 법당의 부처님이 배고프다고 하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떡을 갖다놔도 한 덩어리도 잡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지(摩旨)를 짓고, 공양을 올려도 잡수지 않습니다.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으로써 마음을 비우고, 탐심과 욕심을 비우고, 모든 재앙을 소멸케 하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方便)인 것입니다.(49분51초)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욕심껏 쌓아 모으다가 그 돈을 한푼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사람도 적지 않는 것입니다.

늙어서 쓰기 위해서—젊어서는 쓰더라도 또 벌게 되니까 또 쓰고 벌고 그러다가도, 나이가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으면 '이제는 내가 돈도 벌 수 없고 이 돈 떨어지면 어디서 돈이 있어서 쓸 것인가, 돈이 떨어지면 이제는 나는 물이 말라버리는 고기와 같아서 꼼짝을 못할 것이다' 이래 가지고 쌓으고 또 쌓고 해 가지고 영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르고 쓰지를 않고 있다가, 죽은 뒤에 보면 돈 뭉텅이가 10번, 20번 쌓고 쌓은 뭉텅이가 나오거든.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들장을 파고 구들장 밑에다가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갖다가 몇백만 원을 묻어 놓고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었는데, 그 구들장 위에 방석을 놔 놨는데 방석이 뜰썩뜰썩해서 보니까 큰 구렁이가—그 죽은 사람이 업이 되어 가지고, 그 업으로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자기가 묻어놨던 그 돈 항아리에 애착을 끊지를 못해 가지고, 그 방석 밑에 또아리를 틀고 혀를 널름널름, 이것은 몇십여 년 전에 어떤 절에서 있었던 실화인 것입니다.
죽은 뒤에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그 영단(靈壇), 영위(靈位) 그 위패 모신 상(床)에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며, 그 구렁이를 집어 버리니까 그 구렁이를 따라가니까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런 설화도 있습니다마는.

삼재(三災)를 면하려면 부작(符作)을 갖다가 붙이고, 무슨 액막이를 하고 그러기보다는 삼재를 든 분은 보시를 행하는 것, 그리고 방생(放生)을 하고 보시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차라리 훌륭한 지혜로운 방편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방편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근원에서 해결 짓는 방법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 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話頭)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입춘 법회가 끝나면 점심공양도 하시지 않고 어디를 가시는지 급히 문밖으로 도망치듯이 빠져나갈 분들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틀림없이 한 장에 5만 원, 10만 원, 20만 원하는 부작을 사러 점쟁이나 무당집으로 쫓아가실 것입니다.
부작 한 장으로 재앙을 막고, 자기가 지은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 있다면 우리 용화사에서도 부작은 몇만 장이라도 찍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는데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써 삼재가 면해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받게 됩니다. 기왕 받을 바에는 우리는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맺을 것이 아니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의 과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받으면서 오히려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을 만난 그러한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서 소화를 시킨다면, 깨끗이 받아서 해결 짓고서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또 이중 삼중으로 맺어 나가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이 너무너무 다행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생백년정하허(人生百年情何許)인고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 백년이 그 정(情)이 얼마나 되는가?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다. 영원히 이별한—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이별을 하는 이 광경, 다시 또 이렇게 서로 상(床)을 앞에 대하게 된다.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에, 저 아스라니 가리키는 흰구름 돌아가는 길에, 먼산은 점점(點點)하고 하늘은 푸르르구나.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 잠시 인간 세상에 태어났다가 24세를 일기로 홀연히 떠나갔는데, 잠시 와서 그 부모와 가족들에게 무상(無常)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 일가친척과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고, 인생은 허망한 것이고, 부귀와 공명도 한낱 뜬구름과 같다고 하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고,
그리고 다시 인연 따라서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기를 바라며, 다행히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다 같이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 되어줄 것을 기약하고 다짐하노라.


오늘 입춘일을 맞이해서 이 법회에 참석하신 신남신녀 여러분, 함께 이 법석(法席)을 같이 하는 인연으로 과거 무량세에 지었던 모든 죄업은 봄눈 녹듯이 소멸하시고, 앞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점심공양은 월송거사 양준호 영가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서 공양(供養)을 올리게 됩니다. 영가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맛있게 공양을 해 주시고, 일 년 내내 건강하시고, 삼재가 드신 분도 아무 탈이 없이, 오히려 모든 일이 더욱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축원(祝願)합니다.(31분31초~62분2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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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도(三途, 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 · 아귀 · 축생의 생존. 삼악도(三惡途),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愚癡 어리석음)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의구(依舊) ;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입춘(入春) ;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애혼(哀魂) ; 애처로운, 한이 맺혀 돌아가신 영가.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지도론(智度論) : 혹은 <대지도경론(大智度經論)> <대지석론(大智釋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대지론(大智論)> 또는 <대론(大論)> <석론(䆁論)>이라고도 한다.
용수(龍樹)보살이 지은 것으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해석한 것인데, 후진(後秦)때에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하면서 제일 서품(序品)만은 원문대로 번역하여 34권을 만들고, 그 나머지 제구십 촉루품(囑累品)까지를 간단하게 추려서 전부 100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온전히 번역한다면 천여 권이 되었으리라고, 구마라습의 제자인 승예(僧叡)는 말하였다.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맹서(盟誓 맹세 맹/맹세할 서) ; '맹세(盟誓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또는 그 다짐)'의 원래 말.
*도리천(忉利天) ; 욕계(欲界) 6천(六天)의 제2천. ‘도리’는 33의 음사(音寫)이며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Sumeru)의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제석천(帝釋天:Indra)의 천궁(天宮)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으며, 그 봉우리마다에 8천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하여 33천이 된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 성도(成道:붓다가야) ·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제천(諸天) ; ①모든 하늘. 욕계의 육욕천, 색계의 십팔천, 무색계의 사천(四天)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마음을 수양하는 경계를 따라 나뉜다. ②천상계의 모든 천신(天神).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유루(有漏) ; ①샘[漏]이 있는[有].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는. ②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③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구차(苟且 구차할 구/구차할 차) ; ①살림이 몹시 가난함. ②말이나 행동이 떳떳하거나 버젓하지 못함.
*모면(謀免) ; 어떤 일이나 책임을 꾀를 써서 벗어남.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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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1,000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함.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함.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함.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함.
*전륜성왕(轉輪聖王) ; 산스크리트어 cakravarti-rāja 인도 신화에서, 칠보(七寶)를 갖추고 정법(正法)으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는 대륙을 다스리는 왕.
32상(相:신체의 특징) · 7보(寶)를 갖추고, 무력에 의하지 않고 정법에 의해 세계를 정복 지배한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받은 윤보(輪寶)를 굴려 모든 장애를 물리친다고 함.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는데, 금륜보(金輪寶)를 지닌 금륜왕(金輪王)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은륜보(銀輪寶)를 지닌 은륜왕(銀輪王)은 세 대륙을, 동륜보(銅輪寶)를 지닌 동륜왕(銅輪王)은 두 대륙을, 철륜보(鐵輪寶)를 지닌 철륜왕(鐵輪王)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함.
전통적으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왕[阿育王](BC 3세기)을 세속의 전륜성왕이라고도 말한다.
*수기(授記) ;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의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다.

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는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가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은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을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이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만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 아쇼카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약 2백년 후,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269년 경에 즉위하여 36년간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치하였는데, 즉위 8년(B.C. 262)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그가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된다.


[아쇼카의 '다르마(法)'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삶 - ①바른 인간관계 : 웃어른 • 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삶: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함, 보시와 복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法)’를 근본으로 한다.]
이 다르마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이 되던 해, B.C. 250년 무렵에 룸비니를 방문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룸비니 석주(石柱)이다.

*칙어(勅語) ; 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씀. 또는 그것을 공표한 글.
*(게송) ‘금아아육왕~’ ; 『아육왕경(阿育王經)』 제5권, 반암마륵시승인연품(半菴摩勒施僧因緣品)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정당(正當) ; ‘정당하다(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의 어근.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참고] 『제경요집(諸經要集)』 10권. 18. 육도부(六度部) [육도부에는 여섯 가지 편(篇)이 있음]
제1 보시편(布施篇第一)[보시에 따로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4)법시연(法施緣).
故智度論云 佛說 施中法施第一 何以故 財施有量 法施無量 財施欲界報 法施出三界報 財施不能斷漏 法施淸升彼岸 財施但感人天報 法施通感三乘果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는 법시(法施)가 제일이다. 왜냐 하면 재물의 보시는 한량이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한량이 없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욕계(欲界)의 과보를 얻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번뇌[漏]를 끊을 수 없으나 법(法)의 보시는 저 언덕[彼岸]에 청정하게 오르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다만 인간 세계와 천상의 과보를 감득(感得)하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승(三乘)의 과보를 감통(感通)하기 때문이다.

財施愚智俱閑 法施唯局智人 財施唯能施者得福 法施通益能所 財施愚畜能受 法施唯局聰人 財施但益色身 法施能利心神 財施能增貪病 法施能除三毒

재물의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다 할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게 국한되었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오직 보시한 사람만이 복을 얻을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보시한 사람과 보시를 받은 사람이 통틀어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짐승도 받을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총명한 사람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다만 색신(色身)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법(法)의 보시는 능히 마음과 정신까지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탐욕과 질병을 증장시킬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삼독(三毒)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니라'

제6 지혜편(智慧篇第六)[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2)구법연(求法緣第二)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者 濟一世之厄 增益生死 說法敎化者 能令衆生 出世間道 得三乘果 免三惡道 受人天樂 是故佛說 以法布施 功德無量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 동안의 목숨만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는 것은 한 세대의 재액을 구제해 주고 생사에 이익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나게 하는 도(道)로써 삼승(三乘)의 과(果)를 얻고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를 면하게 하여 인간이나 하늘의 즐거움[人天樂]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法)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금은전보(金銀錢寶) ; 금은(金銀)이나 돈[錢] 패물[寶].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운수(運數) ;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 하늘이 정한 운수)과 기수(氣數 저절로 오가고 한다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운수).
* ; 업은 한 집안의 재물 신격으로서 흔히 구렁이, 족제비 등으로 상징된다. 집안에 이런 동물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있어야 가업이 번창한다고 믿고 있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영위(靈位 신령 령/자리 위) ; ①혼백[靈]의 자리[位]. ②신위(神位). 또는 위패(位牌).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단언(斷言) ; 머뭇거리지 않고 딱 잘라서 말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게송) ‘인생백년정하허~’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81 ‘원상인(圓上人)을 이별하며 드림’ 게송 참고.
*아스랗다 ; (보이는 것이)까마득하게 멀거나 아슬아슬하게 높다.
*점점(點點)하다 ; (사물이 어떤 곳에)여기저기 점을 찍은 듯이 흩어져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한낱 ;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고]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65. 4권.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波斯匿王於閑靜處 作是思惟 '佛所敎法 極有義利 能得現報 無有熱惱 不待時節 能將於人到于善處 語諸人言 <汝等來 善示汝妙法> 夫爲智者 自身取證 深得解達 須善友 須善同伴 恒應親友如是善友 不向惡友幷惡知識 遠離惡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바사닉왕이 조용한 곳에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은 지극한 뜻[義]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고, 심한 번뇌를 없애고, 때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서 좋은 곳에 이르게 하시며, 여러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오너라. 너희들에게 미묘한 법을 보여 주겠다〉고 하시니, 슬기로운 이는 몸소 증득해서 깊이 이해하고 통달한다. 그리고 착한 법과 착한 동반자를 구해서 그와 같은 착한 벗을 항상 친근케 하며, 악한 벗과 악한 지식(知識)에게 향하지 않게 하고 나쁜 도반을 멀리하게 하시는구나'

思惟是已 從坐處起 往詣佛所 在一面坐 白佛言 "世尊 我於閑處 作是思惟 '佛所敎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無諸熱惱 不待時節 乃至不與惡友交遊'" 佛告王曰 實爾 實爾 佛所敎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乃至不與惡伴交遊"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조용한 곳에서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며, 심한 번뇌를 없애고, 때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나아가 나쁜 벗과 사귀지 못하게 하신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실로 그렇고 그렇소이다. 부처가 가르치는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하며, 나아가 나쁜 벗과 사귀지 못하게 하오"

我於往時 在王舍城耆梨跋提林 爾時 阿難比丘獨在靜處 作是思惟 善知識者 梵行半體 阿難起已 來至我所 頂禮我已 而作是言 善知識者 梵行半體 非惡知識 惡伴 惡友

내가 옛날 왕사성 기리발제(耆梨跋提) 숲 속에 있었을 때, 아난(阿難) 비구가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소. '선지식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절반의 힘은 되겠다'
그러고 나서 아난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처소로 와서 나에게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소. '선지식(善知識)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절반의 힘은 되오니 그는 나쁜 지식, 나쁜 도반, 나쁜 벗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我告阿難 '止 止 莫作是語 所以者何 夫善知識 善友 善伴 乃是梵行全體 又善友伴者 不與惡知識 惡友 惡伴而爲徒黨 何以故 我以善知識故 脫於生死 是故當知 善知識者 梵行全體 如是之事 應分別知 佛所說法 有大義利 能招現報 乃至不與惡友惡伴惡知識等而爲伴黨'

나는 아난에게 이렇게 말했소.
"그만 그만,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지식과 착한 벗 착한 도반은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전체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또 착한 벗과 착한 도반은 나쁜 지식과 나쁜 벗 나쁜 도반과 무리를 짓지 않으니 왜냐 하면 나 역시 선지식 때문에 생사를 해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란 존재는 청정한 행을 닦는 데 전체적인 힘이 된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하며 그러한 일을 잘 분별해서 알아야 한다. 부처가 말한 법은 큰 뜻과 이익이 있어서 현재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나쁜 벗과 나쁜 도반 나쁜 지식들과 무리를 짓지 않게 하오"

爾時 世尊卽說偈言 '於諸善法中 不放逸最勝 若當放逸者 賢聖所譏嫌 若不放逸者 獲於天帝位 於諸天中勝 於作無作中 不放逸最勝 若不放逸者 坐禪盡諸漏 逮得於勝果 佛說是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그러고 나서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착한 법 중에서 '방일하지 않는 것[不放逸]이 으뜸이니 만약 방일한 짓을 하면 성현들이 싫어하시네. 만일 방일한 짓 아니하면 천제(天帝)의 지위를 얻으며 모든 천(天) 중에서도 뛰어나리라.
짓고 짓지 않는 일 중에서 방일하지 않음이 가장 훌륭하나니, 만약 방일하지 않는 자라면 좌선할 때 모든 번뇌 없애서 수승한 과위를 얻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명복(冥福 저승 명/복 복) ; ①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 ②(불교)죽은 뒤에 받는 복덕.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법문 내용]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자기가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다 / 『지도론(智度論)』 부처님 인행(因行) 때, 독룡의 몸을 받으셨던 때의 설화 / 과거에 지은 잘못은 참회(懺悔)하고, 인과는 달게 받고, 거기서 새로운 발심(發心)의 계기로 삼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를 가져야.

(게송)금아아육왕~, 『아육왕경(阿育王經)』 제5권, 반암마륵시승인연품(半菴摩勒施僧因緣品) /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년 뒤에 인도에 태어나서 전 인도를 통일을 하고 불법으로써 인도를 다스린 아육왕(阿育王)이 늙어서 병들어 아무 힘이 없게 되었을 때 한 마지막 '암마륵 과일 반 조각' 보시 / 보시(布施)는 언제나 바로 그때그때에 해야 / 보시는 도(道)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 /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다 / (게송)인생백년정하허~.


인생은 한번 왔다가 잠시 꿈꾸듯, 술 취한 듯 방황하다가 속절없이 몸을 버리고 홀연히 떠나가고야만 말 그러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물론 본성(本性)을 깨달아서 진리와 계합(契合)이 된 사람은 본래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지마는, 나의 본성을 망각하고 등져 버린 입장에서는 분명히 생(生)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왜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내 마음에 맞고, 내 뜻대로 되는 그런 좋은 일만 있으면 좋으련마는, 왜 우리의 뜻에 어긋나고 바라지도 아니했던 어려운 일이 닥쳐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야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다른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이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자기가 짓고, 자기가 씨를 뿌려 놓았던 것이 인연(因緣) 따라서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는 까닭인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잘못은 부처님께 진심으로 참회(懺悔)를 하고, 이미 자기에게 돌아오는 재앙은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곱게 깨끗하게 달게 그것을 받아넘기고, 그것을 달게 받아넘기면서 거기서 새로운 발심(發心)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야말로 인과법(因果法)을 믿는, 불법을 믿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수행자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이 됩니다.

금년 삼재에 해당하신 분은 오늘 이후로 누가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험담을 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그러한 사람과 일을 만났을 때에 진심(瞋心)을 내지 말고, 바로 거기서 마음을 돌이켜서 인과법(因果法)을 관찰을 하고, 성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노력을 하신다면 어떠한 무서운 삼재도 그분 앞에는 악한 결과를 끼쳐주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재앙을 상대(相對)를 하고 모든 미운 사람, 악한 사람을 상대하신다면,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나의 스승이 되고, 나의 은인이 되고, 나의 도반으로서 나를 도와주고 나로 하여금 모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그러한 불보살(佛菩薩)로 변할 것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에 첫째에 보시라고 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도(道)에 들어가는 첫 단계가 욕심을 버리는 것이거든. 보시는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보시의 형태는 크고 작은 것과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의미의 보시가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보시도 보시는 자기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업(業)의 종자(種子)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재앙을 미리 막는 가장 좋은 슬기로운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안 잡수어도 법당의 부처님이 배고프다고 하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떡을 갖다놔도 한 덩어리도 잡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지(摩旨)를 짓고, 공양을 올려도 잡수지 않습니다.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의 공덕으로써 마음을 비우고, 탐심과 욕심을 비우고, 모든 재앙을 소멸케 하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方便)인 것입니다.
보시를 행하면 죽을 운수(運數)도 때우는 것이고, 어려운 재앙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욕심껏 쌓아 모으다가 그 돈을 한푼도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사람도 적지 않는 것입니다.

삼재(三災)를 면하려면 부작(符作)을 갖다가 붙이고, 무슨 액막이를 하고 그러기보다는 삼재를 든 분은 보시를 행하는 것, 그리고 방생(放生)을 하고 보시를 하는 것, 이런 것이 차라리 훌륭한 지혜로운 방편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방편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근원에서 해결 짓는 방법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으며, 복과 죄가 없는 것이다’ 하는 정법의 말씀을 믿고서 한 생각 돌이켜서 좋은 일을 당해도 화두(話頭)를 들고, 궂은일을 당해도 화두를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話頭)를 들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재를 소멸하고 예방하는 가장 근원적인 길이라고 감히 단언(斷言)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받게 됩니다. 기왕 받을 바에는 우리는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맺을 것이 아니라, 받으면서 오히려 자기의 과거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고, 받으면서 오히려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을 만난 그러한 기분으로 그것을 받아서 소화를 시킨다면, 깨끗이 받아서 해결 짓고서 새로운 광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받으면서 새로운 원수를 또 이중 삼중으로 맺어 나가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이 너무너무 다행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