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500/(426~450)2021. 4. 7. 07:18

((No.430))—1990년 12월 첫째 일요법회(90.12.02) (78분)

 

 

(1/4) 약 20분.

 

(2/4) 약 18분.

 

(3/4) 약 20분.

 

(4/4) 약 21분.


(1/4)----------------

부처님 말씀에 중생이 10가지 일로써 선(善)을 삼기도 하고, 또한 10가지 일로써 악(惡)을 삼기도 하나니, 무엇 무엇이 10가지인가? 몸[身]으로 3가지요, 입[口]으로 4가지요, 뜻[意]으로 3가지니,
그 몸으로 3가지라고 하는 것은 살생(殺生)이요, 투도(偸盜)요, 사음(邪淫)이요.
입으로 4가지는 양설(兩舌)이요, 악구(惡口)요, 망어(妄語)요, 기어(綺語)다.
뜻으로 3가지는 탐심(貪心)이요, 진심(瞋心)이요, 어리석음[癡心]이다.

이와 같이 10가지 일을 성현(聖賢)의 도(道)에 따르지 아니하면 그것은 십악행(十惡行)이라 그러고, 그것이 열 가지 악(惡)이고, 그 악을 행하지 아니하면 악을 그치면 이것을 십선행(十善行)이라고 한다.

그러면 몸으로 3가지는 산목숨을 죽이는 거, 또 도둑질을 하는 거, 또 사음을 하는 것이고.
입으로 4가지는 첫째, 두 가지 말로 이간질하는 것이요[兩舌]. 욕을 하는 것이요, 악한 말을 하고, 저주하고 하는 거고[惡口].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妄語]. 또 잡된 말, 음탕한 말, 모다 그런 꾸며 대는 말을 하는 것이다[綺語].
뜻으로 3가지는 탐심, 탐욕심. 그리고 진심을 내는 거. 어리석은 마음, 또 삿된 소견을 내는 것이다.

십선과 십악은 어떻게 다르냐? 내나 그 십선과 십악은 대상은 같은데, 그런 악한 짓을 하면은 십악(十惡)이 되고, 악한 짓 안 하면 그것이 십선(十善)이 되는 거여.

산목숨을 죽이는 것'은 생명을 끊는 것인데, 사람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 크고 작은 축생들 이게 다 들어가는데, 그 살생(殺生) 가운데에—가장 내 몸 밖에 다른 살생을 하는 것도 살생이지만,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끊는 것도 살생이여.
요새 노인들도 자식에게 버림받고 갈 곳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국민학교 어린 학생이 자살을 하는 예도 엊그제 모다 뉴스에 나왔습니다. 남을 죽인 것도 나쁘지마는, 자기가 자기를 죽인 것도 살생(殺生)이다 그거거든.

그러면 살생이라 하는 것은 꼭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체만을 죽인 것만이 살생이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타격을 주어가지고 생(生)의 의욕을 잃게 하는 것도 그런 것도 살생이고, 또 자기 스스로도 삿된 생각, 급한 생각,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육체에 대한 자포자기, 인생의 삶에 대한 자포자기, 그러한 것도 일종의 살생에 들어가고.

살생 가운데 제일 좋지 못한 살생은 무엇이냐?
'자기는 성불할 수 없다. 도를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도(道)에 대해서 자포자기하는 살생이야말로 살생 가운데 가장 무섭고도 옳지 못한 살생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는,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 누구 다른 사람을 죽일 리가 있습니까?
그러한 살생보다는 자기의 도를 닦는 데에 대한, 견성성불하는 데에 대한 자포자기 그것이 참으로 무서운 살생이라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도둑질하지 말아라.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이야 계(戒)를 받았건 안 받았건, 누구 것을 훔치겠습니까? 그런 일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러한 도둑질을 하실 리는 없겠고.
자기의 분(分)이 아닌 것을 형제간이라던지, 친구 간이라던지, 분이 아닌 것을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챙기는 거, 이러한 것도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촌쯤 되는 도둑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 때문에 형제간에 재판도 하고, 모다 싸우기도 하고 또 정을 손상을 하게 됩니다.

요새는 어떻게 세상이 험해졌던지 청소년들도 사람을 죽이고 강도질을 하고, 날이면 날마다 강도 절도가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해서 강도를 없애는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온 세상이 아주 강도 절도로 우글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 불자(佛子)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남이 주지 아니한 것을 몰래 훔치거나, 알게 훔치거나, 이런 훔치는 일이 없어야겠다.

또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자기 아내, 자기 남편이 아닌 사람과 서로 사랑하지 말아라.
사음은 자기 스스로 몸을 더럽히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마음을 더럽히고, 몸과 마음을 더럽히면 항상 마음이 괴롭고 불안하고 언젠가는 자기 스스로를 멸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에 이끌고 불화(不和)로 인해서 행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짓는 네 가지는 거짓말, 허황된 소리, 허망한 소리, 속이는 소리 그런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이간질해서 서로 싸움을 붙이고, 이간질은 아첨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인데—여기 가서는 그 사람에게 '저 사람은....' 또 딴소리해 가지고 상대방한테 아첨을 하다 보니 이간질이 되고.
이간질이라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는 자기가 무슨 이득을 얻은 것 같이 느껴질런가 모르지만, 얼마 안 가면 금방 그것이 발로(發露)가 되어서 결국은 인격적으로 매장이 되고, 양쪽에서 다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진실하고, 질직(質直)하고, 속임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악구(惡口)를 하지 마라. 악한 말, 추악한 말, 저주하는 말, 욕설을 퍼붓고 하는 그런 악한 말을 하지 마라.
자기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절을 못하면 조금 자기 비위에 틀리면은 막 사정없는 입에 못 담을 욕설이 터져 나오는데,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자기 뜻에 어기는 일을 당할지라도, 주먹 같은 놈이 속에서 틀어 오르고, 곧 목구멍까지 욕이 나올려고 할 그러한 찰나에도 떠억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생각을 돌려.
'아, 내가 십선계(十善戒)를 받았는데 이래서야 되겠느냐?' 심호흡을 하면—심호흡을 깊이 숨을 마셨다가 잠깐 참았다가, '후~' 하고 숨을 내쉬면 그 주먹같이 틀어 오르는 격분(激忿)이 스르르르 가라앉게 되는 것이여.

그 추악한 욕은, 지금은 어떻게 사람들이 성질이 급해져 가지고 조금만 건드리면 눈에 살기(殺氣)를 띠고, 입에서 막 욕이 터져 나오거든. 택시를 타도 운전사가 그러고, 도처에서 사람들이 노상 사람마다 칼을 품고 다니는 것 같이 살기가 등등하다 그 말이여.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장애 없이 살아가려면 항상 스스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을 해야지, 까닥하면 그런 사람한테 만나면은 부딪치게 된다 그말이여.
상대방이 좀 험하게 나오더라도 나는 항상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자비심으로 상대하면, 상대방이 험하게 나오다가도 그냥 그 사람 얼굴을 보면 스르르르 하니 상대방도 가라앉게 되는 것이여.

손뼉도 두 손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지, 한 손이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반대쪽 손이 맞서지 아니하면 소리가 날 수가 없는 것이니,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항상 화두를 들고 그렇게 살아가면 저절로 감정이 순화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을 필요도 없고, 또 자기도 욕을 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불기어(不綺語), 꾸며 대는 말을 하지 말아라.
이 기어(綺語)에 대해서는 '진실치 못한 것을 아주 그럴싸하니 입담 좋게 꾸며 대 가지고 번드르르 하니 하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이렇게도 풀이를 하거니와,
'잡되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라. 또 허튼소리를 하지 마라. 또 옳지 못한 말을 하지 말아라. 또 음탕한 말을 하지 마라'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해져서 '비단같이 꾸며 대지 말아라. 그런 꾸며 대는 말을 해 가지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음심(淫心)을 내게 하지 말아라' 그렇게도 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뜻으로 세 가지는 탐심(貪心), 탐욕을 내지 말아라.
중생은 자칫하면 그 탐심을 내게 돼. 탐심이란 게 물건에 대한 탐심만 탐심이 아니라, 무엇이고 자기의 의사만을 고집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려고 그러고 그런 것도 정신적인 탐욕이여.

물질적인 탐욕만 나쁜 게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무엇이든지 자기주장(自己主張)만 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내세우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것, 이것도 참 탐욕 중에도 대단히 중요한, 몹쓸 탐욕인 것입니다.

진심(瞋心)은 무엇이냐? 자기 뜻대로 안되면 진심을 내거든.
진심을 낸 사람은 반드시 탐욕이 심한 사람이야. 탐욕이 없는 사람은 진심을 낼 필요가 없어.

자기 뜻과 좀 안 맞더라도 상대방 말을 귀담아 듣고, 상대방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 그래서 양보할 일은 양보하고 상대방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이러면 어디를 가던지 화합을 할 수가 있고 일이 파탄이 되지 않고, 일이 성사가 될 것인데—지금 야당, 여당 모두 국회에서도 자기 당 말만 옳다고 내세우고 자기 당에 이로운 쪽으로만 몰고 가고 한 데에서 국회도 저렇게 자꾸 정회(停會)가 되고 모다 그런 거고.

상대방의 말을 존중히 여기고, 자기의 사욕을 버리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피차 똑같이 입으로만 국가만 내세울 게 아니라, 정말 양심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어찌 사사건건이 반대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 되는 일도 있고, 합해지는 일도 있겠지만 근본 목적이 같고 또 사심 없이 대한다면 반대하다가도 다시 또 화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집안에서도 부부간도 그렇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탐욕과 진심 이것 때문에 모든 미움이 생기고 싸움이 생기고, 결국은 불화가 생기고 해서 혼돈이 오고, 원결(怨結)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사견(邪見)을 내지 마라.
사견은 어리석은 데에 나와. 그래서 '치심(癡心)을 내지 말라'나, '사견을 내지 말라'는 다 같은 말이여. 어리석기 때문에 사견을 내고, 사견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여.(처음~20분11초)




(2/4)----------------

불자(佛子)로서 가장 어리석고 삿된 생각은 무엇이냐?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것이여.
인과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인과를 믿지 않고 마구잡이 한 사람은 반드시 삿된 소견을 가지고 삿된 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거거든.

인과법은 우주의 질서입니다. 원인이 없이 어떤 결과가 나타난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에는 그 원인이 있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 쉬운 말로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입니다.
행동에 있어서나, 말 한마디에 있어서나, 아무도 몰래 속으로 잠깐 일어났다가 꺼져 버리는 생각까지라도 반드시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든 육체적인 병도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어. 그 마음에 그러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이 육체적인 병으로 표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인과의 법칙을 철저하게 믿고 그러면 앞에 말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이나, 망어 · 양설 · 악구 · 기어 · 탐욕 · 진심, 이런 앞에 아홉 가지의 죄과(罪過)를 자연히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인과의 법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철저하게 실천하게 되면 이 세상에 싸움은 없어질 것이요, 미움도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감옥도 필요가 없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감옥만 없어질 뿐만 아니라, 지옥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현세에 감옥이 없어지고 내생에 지옥이 없어진다면 온 세상이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佛子)는 인과를 철저하게 믿어 버려야 돼.
인과를 믿으면은 첫째,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 하는 행동과 말과 생각이 다 십선법(十善法)에 맞도록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선법을 잘 지키면, 십선계(十善戒)를 지키면은 다 천상에 태어나고, 인간 세계에 태어나되 최고의 좋은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십선(十善)을 행하지 않고, 십악(十惡)을 행하면 지옥과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진다 그거거든. 십악을 행할 때 이미 금생에 삼악도의 고(苦)를 받게 되는 거고, 십선을 행하면 죽기 전에 이미 천상락(天上樂)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시간적으로는 그것이 동시(同時)인 것입니다. 금생을 떠난 전생도 없고, 금생을 떠난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도 '전생사(前生事)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고, 내생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짓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느니라' 그러셨어.

그래서 금생 속에는 전생도 물려 있고, 내생도 물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생 속에는 삼생(三生)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십선(十善)도 상품(上品)으로 닦느냐, 중품(中品)으로 닦느냐, 하품(下品)으로 닦느냐에 따라서, 사람으로 태어나냐, 하늘나라의 과(果)를 받느냐, 또는 삼승(三乘)의 과를 받느냐, 또는 불과(佛果)를 받느냐? 이렇게 그 지키는 차원에 따라서 이렇게 많은 차등이 있고.
십악(十惡)을 행하는 데 있어서도 그 강약에 따라서 강한 사람은 지옥에, 중으로 그 십악을 한 사람은 축생, 또 아주 약하게 한 사람은 아귀, 이렇게 태어난다고 『화엄경』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선을 제일 잘 닦으면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 도솔천은 욕계육천(欲界六天) 가운데 제사천(第四天)인데, 거기는 상족천(上足天) · 묘족천(妙足天) · 희족천(喜足天) · 지족천(知足天), 이렇게 이런 말로 번역을 할 수가 있는데, 인간 세계에 있어서 사백세(四百歲)가 도솔천에 있어서는 일주야(一晝夜)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솔천에 태어나면 수명이 사천세를 살 수가 있어.

그리고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십이만 유순(由旬)의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 도솔천은 칠보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이 있고, 도솔천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외원은 일반 하늘나라 사람들이 욕락(欲樂)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56억 7천만년 뒤에 이 염부제(閻浮提)에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출세(出世)하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지금 거기에 대기하고 계신 곳이다.

그리고 이 하늘 바로 아래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그 다음에 도리천(忉利天)이 있고, 야마천(耶麻天)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 온갖 욕정에 잠겨 있는 곳이고, 그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는데 거기는 들뜬 마음이 많은 그러한 세계여.
그러면 도솔천 내원궁은 욕락에 잠기지도 않고, 또 그러한 들뜨지도 않으면서 천상락에 만족한 마음을 낸다. 들뜨지도 않고 또 잠기지도 않는 아주 그런 경계로 모두 살아가기 때문에 앞으로 부처님으로 출세할 그런 보처보살(補處菩薩)들이 항상 도솔천에 계시다가 부처님으로 이렇게 하강(下降)을 하시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마음이 어떤 기쁨에 들떠 있지도 않고, 어떤 탐욕 · 욕락에 잠겨 있지도 않고, 그러한 마음이라야 도를 올바르게 닦을 수가 있는 거여. 또 그렇게 닦아 가면 마음이 그런 상태로 되는 것이여.

그래서 실지로 로켓트 같은 것을 타고 올라가면 정말 도솔천이 있는가? 얼마나 타고 올라가면 성층권을 지나서 진공권을 지내 가지고 얼마나 올라가면 있는가?
그것은 아직 과학적으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우리 참선하는, 최상승(最上乘)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극락세계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철저히 믿고 공부하면서도 내생에 우리가 십선계를 닦느냐, 십악을 범하느냐에 따라서 극락세계도 가고, 도솔천에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자기 이 짧은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없다'고 부정을 해서는 안돼.
부처님께서 '있다'고 하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신 것이고, 자기가 부처님 말씀을 믿고 열심히 올바르게 닦아 가면 바로 도솔천이나 극락세계가 일단은 제일차적으로는 자기 마음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고, 미륵 부처님이나 아미타불도 자기 마음속에서 친견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이미 생사(生死)가 없기 때문에, 있는 곳이 바로 불세계(佛世界)이기 때문에, 바로 그 찰나에 부처님을 친견한다고 하는 이러한 진리를 철저히 믿어야 하고, 죽어서 극락세계나 도솔천에 가는 것도 부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지옥이 있는 것입니다. '지옥과 천당이 공(空)했다'고 한 것은 깨달은 견지(見地)에서 볼 때 공한 것이지, 깨닫지 못한 사람에는 자기의 지은 업(業)에 따라서 분명히 지옥이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인과를 함부로 부정을 하고 '지옥이 어디가 있느냐?'고 하다가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과법을 함부로 부정한 사람은 그건 못쓰는 사람이야. 불법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그 사람은 올바른 길을 가기 어렵게 된 사람이여. 그래서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선계, 이상 설한 십선계는 재가 불자(在家佛子)로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대중) 능지(能持)!

이상 설한 십선계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믿고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대중) 능지(能持)!

이상 설한 십선계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대중) 능지(能持)!

연비(燃臂)해 드려.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부처님 말씀에 '죄가 있거든 스스로 참회(懺悔)하고 그 마음을 몰록 쉬어 버리고 그걸 고치라' 그랬어.
참회하고, 하던 악을 중단하고 마음을 고쳐 버리면, 마치 무엇과 같으냐? 병을 앓다가 한약을 지어다가 먹고 푹 취한(取汗)을 하면, 땀을 푹 싸 버리면 아주 몸이 가뿐하고 병이 낫는 거와 같다.
참회를 하지 아니하고 고치지 아니하면, 지은 허물이 죄가 되어 가지고 그 마음에 따라붙어. 그래 가지고 물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듯이, 바다에 들어가면 점점점점 바닷물이 불어나서 깊어진 거와 같다.

사람이 중생이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허물을 저지를 수도 있고, 큰 허물, 작은 허물, 또 자기의 생각이 좁아 가지고 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고, 남의 꾀임에 빠져서 허물을 저지를 수가 있고, 그러나 항상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또 절에 와서 하다보면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 염불도 하고, 경도 읽고, 참선을 하다 보면 금방 자기를 반성하게 되거든.

'허물이 있는 줄을 알고, 그 허물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면 지은 죄가 스스로 소멸이 된다' 그랬어.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여.

참회법이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20분13초~38분33초)




(3/4)----------------

그런데 참회를 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옛날에 잘못한 것을 자꾸 들추어내 가지고 '저 사람이 그런 나쁜 사람이다' 또 본의 아니게 형무소에 들어갔다가 한번만 나오면 취직도 안되고, 모두가...

형무소에서 참회를 하고, 그러고 인자 새사람이 되려고 나와도, 한번 형무소만 갔다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아주 도둑놈이라고 해서—모르고 취직을 해서 일을 하다가도 누가 '아, 저 사람 형무소 갔다온 사람'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대번에 쫒아내버리거든. 그러니 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또 도둑질을 하고 강도를 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죄는 미워할지언정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라' 그런 말도 있는데, 실지 일를 당하고 보면 형무소 갔다 나왔다 그러면은 사람들이 모두 꺼리게 된다 그말이여.
또 형무소는 안 가더라도 내가 어떤 잘못을 한번만 하면 항상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한 사람이다. 무슨 짓을 한 사람이다' 모두가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수군수군하고 모다 그 사람을 모다 멀리하고 그러는데.

내가 한번 과거에는 그랬을망정 그것을 참회하고 그 허물을 고치면, 사람들이 그러더라도 그것을 미워하지 말고 '아, 내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으니까, 내가 참회하고 고친 줄을 모르고 저러는구나'
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런다고 해서 자기도 같이 그 사람을 또 미워하면 자기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착한 마음으로 옳게 살려고 하고, 자비심을 가지고 살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시기를 하거나, 까닭 없이 아니꼽게 생각해 가지고 비방하고 욕을 하더라도 그 사람과 같이 싸우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부처님이 마치 어디를 가셨는데, 외도(外道)가 되었던지, 바라문(婆羅門)이 되었던지, 아! 부처님한테 입에 못 담을 욕을 퍼붓는다 그거거든.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욕한 사람보고,
"내가 한마디 당신에게 물어보겠소. 당신이 나한테 맛있는 음식과 패물로써 나에게 갖다가 대접을 했을 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양을 한다면 그 맛있는 음식과 예물은 누구한테 돌아가겠소?"
"당신이 안 받으면 도로 내 것이지, 그것이 누구한테 돌아가겠느냐"고.

"그러냐"고. "그렇다면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욕을 퍼부었는데 나는 그걸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내가 안 받아들이니까 그 욕은 당신한테 다 돌아가겠구려"
그러니까 그 외도가 얼굴이 빨개져 갖고 꼼짝도 못했다.

여러분도 가정에서나 어디서나 누가 전생의 업연(業緣)으로 그랬던지, 금생에 무슨 그 사람이 감정이 나서 그랬던지, 공연히 시비를 붙이고 나한테 친절치 못하게 군다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어.
동요하지 말고, 떠억 화두를 들고 마음만 편안하게 하면 그렇게 시비를 걸던 사람도 그냥 별수 없이 입이 딱 붙어 버릴 것이고, 다음에는 그러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저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내가 대꾸를 해 가지고 싸우면 옆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둘이 다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을 할 것이다 그말이여. '또 싸운다'고, '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남 공부 못하게 한다'고, 다 그럴 거라 그 말이여.
그런데 한 사람이 자꾸 시비를 붙여도 나는 동심(動心)이 안되고, 같이 맞서서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옆에 사람들이 '아, 저 분이 참 훌륭한 분이로구나, 참 얌전한 분이로구나, 정말 보살이로구나' 모두가 다 존경할 것이라 그 말이여.

그래서 대중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사시니, 모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피차가 서로 하심(下心)하고, 서로 양보하고, 자비심으로 대한다면, 참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도 잘하시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가정도 참 화평하게 살게 되고, 화평한 가정에는 복이 굴러들어 올 것입니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이 이 속상하는 것입니다. 오장이 확 뒤집어지면 여간해서 화두를 좀 챙길려고 해도 잘 안 들어지거든.
'이뭣고?' '이뭣고?' 해도 영 입으로만 되지 속으로는 안되어. 자꾸 속에서 이런 놈이 틀어 오르기 때문에 잘 안되거든. 그래도 자꾸 심호흡,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한 서너 번만 하면은 그냥 스르르르 가라앉게 돼.
그래서 참선해 나가는 데 이 심호흡이 대단히 중요하고 또 몸의 피로 회복하는 데에도 심호흡이 중요하고 또 자기감정을 스스로 잘 조정하는 데에도 심호흡이 대단히 중요해.

사람들은 '참으라, 참으라' 하지만, 참는 것이 그렇게 경우에 따라서는 참는 것이 대단히 참 중요할 때도 있지만, 매양 억지로 참다 보면 한도가 있어서 쌓이고 쌓이다 보면은 언젠가는 폭발을 하는데 그때는 걷잡을 수 없이 큰 사건이 일어나거든.
그리고 계속 참고 참다 보면 그놈이 속이 화(火)가 쌓여 가지고 적(積)이 되어서 소화가 안되고, 눌러 보면 주먹 덩이 같은 놈이 속에가 있거던. 그게 다 소시(少時) 때부터서 참고 참아 가지고 적이 된 거거든.
그것이 엑스레이를 찍어 보면 그것이 무슨 뭉텅이가 나올란가 어쩐가는 모르겠는데, 분명히 누르면 무엇이 있다고 그러거든. '그런데 어째서 그것이 생겼습니까?' 하면 '내가 화를 많이 끓여서 그런다'고.

며느리로 가 가지고 시어머니한테 당해 가지고 그러기도 하고, 남편 때문에 속상해 가지고 그러기도 하고, 모다 이리저리 해서 화를 많이 끓인데다가 그것을 터뜨리지를 못하고 속으로 참고 참다 보면 속이 적(積)이 들어앉는 거라 말이여. 그건 여간해 약 먹어도 낫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참으라고—육바라밀(六波羅蜜) 속에 인욕(忍辱)이라는 항목이 있기는 있지만, 진짜 잘 참으려면은 억지로 쪄누르기 보다는 그 일어나는 생각을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로 돌려야 한다 그거거든.

돌리면은 그놈이 풀어지면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화두(話頭)를 드니까 업(業)을 짓지 아니하고, 깨달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되는데, 화두를 들지 않고 억지로 참다 보면 큰일이거든. 병이 나고, 결국은 언젠가는 참다 참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어서 터질 때는 무섭게 터지는 거라 그말이여.
그래서 앞으로는 억지로 참을라고 하지 말고, 그냥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하시라 말이여.

남편이나 아내나 또는 친구나 또는 어른이 억울한 소리를 하시면, 숨을 들어마시면서 '이뭣고?', 소리는 내지 말고 속으로 하라 그말이여. 어른이 뭐라 그러는데 '이뭣고? 이뭣고?' 하면 그 될 거냐.
속으로 '이뭣고?' 조용하게 '이뭣고?'를 하다보면 그 억울한 소리 하다가도 그냥 쑥 들어갈 거라 말이여.

그런데 '이뭣고?'를 안 하고, 그냥 눈을 휘번덕거리면서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그냥 잔뜩 골내고, 말하는데 뒤돌아서서 중얼중얼한다던지, 무슨 그릇 같은 것을 쾅쾅 놓는다던지, 절대로 그래도 안 되거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그 억울한 소리한 사람이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설하신 것이 되고 만다 그말이여.
아! 그 소리를 듣고 화두를 드니 그것이 법문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말이여.

칭찬을 하면 우선 귀에는 듣기 좋지마는 화두가 잘 안 들려. 좋은 생각으로 들뜬 생각이 되어 가지고, 그래서 칭찬하는 소리는 도둑놈이요, 나를 충고하는 소리는 약으로 감로수(甘露水)처럼 받아들이라 그거거든.
칭찬하는 소리에 까닥 잘못하고 우쭐대다가는 큰일나는 법이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꾸짓는 말, 험담하는 말을 그 말을 잘 새겨서 받아들이고 고맙게 받아들이면,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가 바로 감로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칭찬도 듣게 되지마는, 흔히 어디를 가나 본의 아니게 욕을 먹기도 하고 비방을 듣기도 하는데, 그 칭찬하는 소리 별로 좋아할 것이 못되어.
그래서 공자님도 '칭찬하면 대단히 좋아하고,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하고는 장래 두고 봤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하고는 친구를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공자님도 세계의 삼대(三大) 성현의 한 분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표현은 달라도 부처님 말씀과 다 통하고 영가(永嘉) 스님의 증도가(證道歌)에도 다 그와 같은 뜻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한 걸 절대로 좋아해서는 안돼. 누구한테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부끄러운 생각을 가져야—'과연 내가 저런 칭찬을 들을 만한 것인가? 참, 너무 과분한 말을 하시는구나'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거나 충고를 해 주는 말은 척! 듣는 순간에는 조금 귀가 입맛 없다 그러거든. 그렇지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참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또 그 이튿날쯤 또는 그날 저녁에 잘 때쯤 가만히 '어째서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아, 확실히 나한테 그런 말 들을 만한 요소가 있구나' 그렇게 참회를 하면 그때사 '아, 그 사람을 미웁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참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많이 해서 찰나간에 자기의 감정을 돌릴 수 있는 훈련이 쌓아진 사람은 듣는 찰나에 바로 감로수처럼 받아들여질 것이고, 참선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고 수행이 옅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잘 때쯤 또는 그 이튿날쯤 가면은 그런 생각이 들거여.

저기 저 북극지방에 에스키모인은 어떻게 둔하던지, 뭔 욕을 하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안 해. 조금도 눈빛 하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있다가, 그 이튿날에사 도끼를 갖고 쫒아온다 이거여. 그때사 와서 닿는 거여. 두텁띠 두터워 가지고 금방 말해도 못 알아들어.

그 사람들은 아주 다정한 손님이 오면 자기 부인을 데리고 자라고 대접을 한다 그러는데, 그 사람들 풍속이 그러니까, 그리고 신부가 거기를 갔다가 그 부인을 갖다 데리고 자라고 하는 통에 '그거 안됩니다. 나 그 못합니다'
도저히 그 사람들은 못 알아들어. '어째서 우리의 친절을 거부한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여.
욕을 해도 아무렇지도 안 해. 골낼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다가 그 이튿날에사 느닷없이 도끼를 가지고 와서 '어제 왜 욕했냐' 이거거든.

중생들은 자기를 위해서 충고를 해 주고, 자기를 위해서 지적을 해 주어도 금방 고마운 줄을 못 알아듣는다 그말이여. 업(業)이 두터워서 금방 못 알아듣는 거여.
지금 에스키모인 얘기를 하니까 웃으셨지만, 중생은 어떻게 욕하는 소리는 금방 잘 알아듣는데, 자기를 위해서 충고를 해 주는 말은 거꾸로 알아듣는다 그 말이여. 에스키모 사람들하고는 조금 오장이 조금 다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참 그게 묘하거든.
그이를 위해서 좋은 말을 해 준 것은 잘 못 알아듣고. 그게 아마 오장육부가 다른 것은 아닐 것이고.

어린애기들 병에 좋으라고 약을 주면 '쓰다'고 안 먹으라고 그러고, 단것은 이에도 해롭고 몸에 해로와도 자꾸 단것만 먹을려고 하는 어린애기들이 무엇이 나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서 그런 거와 마찬가지죠.
나이는 40, 50 먹었어도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인지, 이제 법문을 자꾸 듣다 보면 반드시 '이것이 나한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은 첫째, 항상 자기의 마음을 항상 그 중심(中心)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수행이여.
참선 안 한 사람은 노상 중심이 잡혀 있지 않거든. 눈으로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귀로 뭘 들으면 듣는 데에 끌려가고, 코로 뭔 냄새를 맡으면 냄새에 끌려가고, 항상 중심을 잃고.
예를 들자면 주부가 집을 비워 놓고 밤낮 밖으로 싸다니는 거와 마찬가지여. 그러면 집안 살림이 무엇이 되겠느냐 그 말이여. 하나도 집안도 소지도 안 되어 있을 것이고, 애들한테나 남편한테나 아내로서 해야 할,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전혀 안 되어 갖고 있으니 엉망진창이다 그 말이여.

항상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정돈하고 주부로서 할 일을 하고, 밖에 일이 있어도 냉큼 가서 일을 보고는 바로 또 집에 오고 해야지, 해가 다 넘어가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집에는 벌써 애들은 학교 갔다오고, 남편도 퇴근해 가지고 있는데 주부가 없으니, 끼니 밥 차려 줄 사람도 없고, 밥도 안 하고 이렇게 되어 있는 그러한 것과,
참선을 안 하고 밤낮 외부로 끌리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끄달리고 산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그런 내 자신의 마음 살림이 그 집 비워 놓고 다닌 주부의 가정 살림과 똑같은 형상일 것이다 그 말이여.(38분33초~58분18초)




(4/4)----------------

그래서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항상 '이뭣고?'
'이뭣고?' 할 때 벌써 자기로 돌아온 거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이뭣고?'
벌써 소리나는 데로 갈 듯하다가 냉큼 돌아온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부처님도 자기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지 말아라 그러셨거든.

소승, 중승, 대승, 최상승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빨리 자기로 돌아오는 법문이여, 전부가.
이 참선법은 철저하게 찰나찰나, 한 생각 한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가 바로 참선이요, '이뭣고?'다 이거거든.

'이뭣고?'

처음에는 누구나 잘 안돼. 잘 안되고.
'이뭣고?' 해도 그렇게 간절하게 의심이 안 나지만, 자꾸 하면 되거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자세를 단정히 하고 심호흡,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들어마신 호흡 약 3초, 들어마셔 가지고 머무르는 시간이 약 3초, 내쉬는 시간은 약 4-5초 조금 길게, 이렇게 하되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 말고, 8부(八部)쯤만 들어마시고.
또 머무르는 것도 너무 오래 참을라 하지 말고, 또 내쉬는 시간도 너무 길게 시간을 잡지 말어.

지금 3초 · 3초 · 5초 이렇게 말했지만, 그것도 본인한테 길다고 느껴지면 2초 동안 들어마시고, 2초 동안 머무르고, 내쉬는 것은 약 3초, 모두 합해서 한 8초나 9초 이렇게 되는데. 자기에게 조금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범위 내에서 하라 그 말이여.
그래서 차츰차츰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하고, 짧으면 짧은 대로, 언제나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해야지 억지로 하면은 안되거던. 몇 번 안 해서 된숨을 쉬어야 하고 너무 힘이 들고 이러면 안되거던. 무리 없이 할 것.

그리고 자세는 단정하니 하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어깨에다 힘을 주고 그리고 용을 쓰고 그러면 안되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너무 어깨나 목이나 그런데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이런 자세를 가져야 돼.

오늘 불명(佛名)을 타고 또 십선계(十善戒)를 받고 또 화두를 타는 법요식(法要式)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해 드리는데, '참선을 하는데 단전호흡(丹田呼吸)을 꼭 해야 합니까?' 그러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호흡하는 법을 잘 올바르게 터득을 해서 잘하면 참선하는데 대단히 효과가 있고, 참선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에도 좋아.

왜 그러느냐?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되므로 해서 몸안에 있는 노폐물이 잘 배설이 되어.
뿐만 아니라 피로 회복도 잘되고 또 마음도 안정이 되고, 정신도 깨끗해지고, 또 감정도 자기가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침착한 성격으로 되고, 이 단전호흡을 하면 그 이익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대단히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래서 참선을 하는 데 이것을 곁들여서 하면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람에 따라서 수식관(數息觀), 수식관을 시켜.
수식관은 자기가 자기의 호흡을 세는 거여. 들어마셨다 내쉬고 '하나' 또 들어마셨다가 잠간 머물렀다가 내쉬고 '둘' 이렇게 해서 호흡을 이렇게 세는 거여.
그래서 그것이 수식관인데, 수식관을 시키기도 하고 또 백골관(白骨觀)이라는 그런 관(觀)을 시키기도 하고 또 사념처관(四念處觀)을 시키기도 하고, 그 사람의 근기(根機)와 체질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편(方便)을 쓰셨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오늘날 차츰차츰 그런 것도 다 구체화되고 체계화가 되어 가지고, 여러 가지 운동하는 사람, 무술 하는 사람까지라도, 이 요가하는 사람, 전부 다 호흡법을 통해서 육체적인 건강, 정신적인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 호흡법이 널리 개발이 되어 있는데.
참선하는 사람은 그런 여러 가지 복잡한 호흡보다는 지금 산승(山僧)이 말한 간단한 방법을 쓰면서 그 호흡을 하면서도 화두를 드는데 지장이 없도록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단전호흡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여기가 콱 맥힌 것같이 느껴져서 도저히 단전호흡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호소를 하는 분을 또 가끔 만납니다.
그것은 '너무 무리하게 했지 않는가? 무리하게 호흡을 해 가지고 그러한 결과가 오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무리하게 한다'는 것은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그 호흡이 저 밑에 단전까지 가도록 막 눌러 댄다 말이여. 절대로 눌러 대서는 안돼.
또 '들어마셔 가지고 오래 참을수록 좋다'고 어디서 들어 가지고는 한 30초씩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있다가 '후 ~' 하고 내쉬고, 그렇게 하면 백이면 백 다 병납니다. 절대로 억지로 쪄 누르지 말 것이며, 그래 가지고 또 억지로 오래 오래 참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들어마실 때 그럼 어떻게 하느냐? 스르르르 들어마실 때 배만 볼록하게 만들지, 여기서부터 눌러 대지 말라 이거여. 이것을 잘 알으셔야 되아.
들어가는 호흡을 여기까지 누르면 그 호흡이 여기까지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는 횡격막(橫膈膜), 가로막이라는 막이 허파 밑에 요리 있어 가지고 그 이상은 바람이 절대로 안 내려가.
허파까지 밖에 안 가는 것을 억지로 눌러서 배꼽 밑에까지 보낼려고 하니, 가지도 않고 결국은 답답하기만 하고 소화만 안되고, 안 내려가니까 기운이 부딪쳐 가지고 거꾸로 위로 올라오니까 상기병(上氣病)이 오히려 더 생길 수가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단전호흡이 좋다고 하지만 절대로 무리하게 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어거지로 하지를 말아라.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보통 호흡을 해야지, 억지로 알지도 못하는 단전호흡을 무리하게 할라 하지 말고 보통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만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거여.

그리고 앉아서 이 참선을 시작할 때는 미리 입선(入禪) 시간 전에 따악 와서 다리를 발목 운동도 하고, 발가락 운동도 하고, 다리 운동도 하고, 그리고는 앉아서 몸을 좌우로 한 서너 번 이렇게 흔들다가 한 가운데다가 딱 안정을 하고는 단전호흡을 서서히 해서 안정을 해 가지고 입선 시간을 맞이해야 돼.

어디서 잡담을 하면서 있다가 목탁을 치니까 헐레벌떡 쫒아와 가지고는 시근덕시근덕 하면서 그냥 할라고 하니 공부가 되냐 그 말이야.
항상 입선 시간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이 이미 죽비(竹篦) 친 뒤에사 그때서 '드르럭' (문을 열고) 들어오고, 와서 부시럭거리고 절대로 그러면 안되거든.
저 옛날에는 입선 죽비 딱! 치면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딱! '발'을 쳐 버렸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렇다고 하는데, 어쨌든지 시간을 잘 지키고.

또 방선(放禪)을 하고 일어설 때, 갑자기 불끈 일어서지 말고 몸을 좌우로 흔들고, 다리도 뻗고, 발목 운동도 하고, 그래 가지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나가고.
그래서 입선 시간만 화두를 드는 게 아니라, 방선하고서도 그 화두를 들도록 하고, 방선하고 나가서 화장실에 가면서도 화두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도 화두가 놓쳐지지 않도록. 또 화장실에서 오는 길에도 화두를 들도록, 이렇게 까지 해 나가야 한다.

중국 선방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 그 입승(立繩) 스님이 죽비를 갖고 따라다닌다는 말도 들었어요. 요리 따라가다가 화두를 놓치고 딴전 보는 성 싶으면 죽비로 그냥 등짝을 후려팬다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지금은 중공(中共)이 되어 가지고 다 선방도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마는.
그러한 정도까지 입선 방선을 가리지 않고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하고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도록 그러한 공력(功力)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명(佛名)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로 모다 노나 드리게 되겠습니다.
화두는 '이뭣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이 있거든.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놈이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도 알고, 이렇게 법문을 하면 듣고 '아하, 참 옳은 말씀하시는구나. 꼭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놈이 있거던.

그놈을 보통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하고,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그렇지만 이름은 알고 있지만 실지로 우리는 보지는 못하거든.
그놈이 생각을 좋게 먹으면은 천사 같기도 하고, 그놈이 독한 마음을 먹으면 찰나간에 나찰(羅刹) 귀신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는데,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거여.

어떻게 찾느냐?
'이뭣고?' 이렇게 찾는 거여.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찾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하고 '이뭣고?' 이렇게만 찾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렇게 찾으면 되는 거여. 이것을 화두(話頭)라 그래.
처음 불명을 타고, 처음 화두를 타고 하시는 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십선계도 받았고, 화두도 받았고, 이제는 인자 불명(佛名)은 이 자리에서 낱낱이 다 일러드릴 수가 없으니 계첩(戒牒)을 법회가 끝나고 노나 드릴테니까 순서 있게 그것을 받아 가지고.
불명이 무엇인가 한번 보고는 갖다 어디다 쳐 놓고는 불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러면 안되거든. 자기의 불명이 확실히 무엇인가를 딱 마음속에 넣고, 계첩을 드리면 그것을 액자를 해서 딱 갖다 걸어놓고 밤낮으로 쳐다볼 때마다 내 불명이 무엇이다, 알고.

또 '이뭣고?'가 거기 한글로 딱! 쓰여 있으니까, 볼 때마다 '이뭣고?'
속상할 때 '이뭣고?'
기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근심걱정 있을 때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겨.

오며 가며 챙기고, 앉으며 서며 챙기고, 또 친구들이 놀러오면 '이뭣고?'에 대해서 얘기도 해 주고, 또 '같이 가서 참선을 하자'고 권고도 하고.
이렇게 해서 명실공히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가 되었습니다.


계(戒)를 받고 연비(燃臂)를 했으니 과거에 지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모든 죄는 찰나간에 깨끗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새로 부처님의 아들로 부처님의 딸로 새로 태어났으니, 이제 몸도 마음도 깨끗해졌어. 그러니 과거에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국집(局執)할 것도 없고.
깨끗한 몸이 되었으니까, 깨끗한 마음으로 이제 '이뭣고?'만 열심히 하고, 앞으로 십선계만 잘 지키면 여러분은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시는 것은 이미 표는 다 끊어놨어. 노나 드리는 계첩이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계첩입니다.

이 내원궁에 가는 그 표를 끊어 놓은 것이니까 그것을 잘 간직을 하시고, 어쨌든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될 수 있으면 금생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악성공여반장(善惡性空如反掌)하니  지악행선순성도(止惡行善順聖道)니라
나무~아미타불~
자성본무살불살(自性本無殺不殺)하니  탐진치심본공(貪瞋癡心本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선악성공여반장(善惡性空如反掌)이여. '선이다 악이다, 저 사람은 착하다 악한 사람이다' 모다 그래 쌓지마는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이나 그 본바탕은 똑같은 사람이고, 다맛 업(業)에 따라서 습기(習氣)에 따라서 잠시 그런 것인데.

선(善)의 성품이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악(惡)의 성(性)의 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내나 진여자성(眞如自性)에서 나오는 물결에 지나지 못한 것이지, 그 근본에 들어가서는 조금도 선도 악도 없는 것이니,
그래서 착한 사람도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손바닥 뒤집듯이 악한 짓을 할 수도 있고, 어제까지 악한 짓을 했어도 한 생각 탁! 돌이키면은 선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악한 짓하던 사람은 그것을 딱! 참회하고 그쳐 버리고, 착한 일을 행해서 성현의 가르침을 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止惡行善順聖道)

자성(自性)이 본래 공(空)한 것이니, 그 공한 자성에서 나오는 선악(善惡)의 물결이 그것이 어디가 뿌리가 있을 것인가?
없는 뿌리를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남을 미워해서도 아니된 것이고, 설사 과거에 자기 성질이 좀 나뻤거나, 나쁜 성질을 썼고,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어쨌든지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생각을 돌이켜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해서 마음의 안락을 찾고, 영원한 행복을 누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58분19초~1시간18분34초) (끝)




[법문 내용]

십선행(十善行). 십악행(十惡行) / 자기의 도를 닦는 데에 대한, 견성성불하는 데에 대한 자포자기, 그것이 참으로 무섭고도 옳지 못한 살생 / 불법(佛法)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진실하고, 질직(質直)하고, 속임이 없어야.

불자(佛子)로서 가장 어리석고 삿된 생각은 바로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것 / 불자(佛子)는 인과를 철저하게 믿어야 / 인과를 믿으면 자기 하는 행동과 말과 생각이 다 십선법(十善法)에 맞도록 행하게 된다 / 부처님 말씀에 '전생사(前生事)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고, 내생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짓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느니라' / 십선을 제일 잘 닦으면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태어나게 된다 / 우리 참선하는, 최상승(最上乘)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극락세계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된다.

대중생활은 서로 하심(下心)하고, 서로 양보하고, 자비심으로 대한다면, 참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도 잘하시게 될 것이다 / 속상할 때는 억지로 참으려고 쪄누르기보다는 그 일어나는 생각을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로 돌려야 한다 / 칭찬하는 소리는 도둑놈이요, 나를 충고하는 소리는 약으로 감로수(甘露水)처럼 받아들이라 / 참선(參禪)은 첫째, 항상 자기의 마음을 항상 그 중심(中心)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수행이다.

참선법은 철저하게 찰나찰나, 한 생각 한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로 돌아오는 공부가 바로 참선이요, '이뭣고?'다 / 참선할 때 단전호흡을 하면 여러 가지 이익이 있으니 참선을 하는 데 이것을 곁들여서 하면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 어쨌든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될 수 있으면 금생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게송)선악성공여반장~.


살생이라 하는 것은 꼭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체만을 죽인 것만이 살생이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타격을 주어가지고 생(生)의 의욕을 잃게 하는 것도 그런 것도 살생이고, 또 자기 스스로도 삿된 생각, 급한 생각,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육체에 대한 자포자기, 인생의 삶에 대한 자포자기, 그러한 것도 일종의 살생에 들어가고.

살생 가운데 제일 좋지 못한 살생은 무엇이냐? '자기는 성불할 수 없다. 도를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도(道)에 대해서 자포자기하는 살생이야말로 살생 가운데 가장 무섭고도 옳지 못한 살생이다.

중생은 자칫하면 그 탐심을 내게 돼. 탐심이란 게 물건에 대한 탐심만 탐심이 아니라, 무엇이고 자기의 의사만을 고집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려고 그러고 그런 것도 정신적인 탐욕이여.
물질적인 탐욕만 나쁜 게 아니라, 정신적인 탐욕—무엇이든지 자기주장(自己主張)만 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내세우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것, 이것도 참 탐욕 중에도 대단히 중요한, 몹쓸 탐욕인 것입니다.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시간적으로는 그것이 동시(同時)인 것입니다. 금생을 떠난 전생도 없고, 금생을 떠난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도 '전생사(前生事)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고, 내생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으면 금생에 자기가 어떻게 짓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느니라' 그러셨어.
그래서 금생 속에는 전생도 물려 있고, 내생도 물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생 속에는 삼생(三生)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은 욕락에 잠기지도 않고, 또 그러한 들뜨지도 않으면서 천상락에 만족한 마음을 낸다. 들뜨지도 않고 또 잠기지도 않는 아주 그런 경계로 모두 살아가기 때문에 앞으로 부처님으로 출세할 그런 보처보살(補處菩薩)들이 항상 도솔천에 계시다가 부처님으로 이렇게 하강(下降)을 하시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마음이 어떤 기쁨에 들떠 있지도 않고, 어떤 탐욕 · 욕락에 잠겨 있지도 않고, 그러한 마음이라야 도를 올바르게 닦을 수가 있는 거여. 또 그렇게 닦아 가면 마음이 그런 상태로 되는 것이여.

우리 참선하는, 최상승(最上乘)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은 '도솔천 내원궁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극락세계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철저히 믿고 공부하면서도 내생에 우리가 십선계를 닦느냐, 십악을 범하느냐에 따라서 극락세계도 가고, 도솔천에도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생이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허물을 저지를 수도 있고, 큰 허물, 작은 허물, 또 자기의 생각이 좁아 가지고 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고, 남의 꾀임에 빠져서 허물을 저지를 수가 있고, 그러나 항상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또 절에 와서 하다보면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 염불도 하고, 경도 읽고, 참선을 하다 보면 금방 자기를 반성하게 되거든.
'허물이 있는 줄을 알고, 그 허물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면 지은 죄가 스스로 소멸이 된다' 그랬어. 참회를 하면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여. 참회법이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화두는 '이뭣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이 있거든.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놈이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도 알고, 이렇게 법문을 하면 듣고 '아하, 참 옳은 말씀하시는구나. 꼭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놈이 있거던.

그놈을 보통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하고,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그렇지만 이름은 알고 있지만 실지로 우리는 보지는 못하거든.
그놈이 생각을 좋게 먹으면은 천사 같기도 하고, 그놈이 독한 마음을 먹으면 찰나간에 나찰(羅刹) 귀신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는데,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거여.

어떻게 찾느냐?
'이뭣고?' 이렇게 찾는 거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