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0/(226~250)2021. 7. 2. 17:41

 

 

((No.245))—1984년(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회(84.08.11) (83분)

 

 

(1/4) 약 21분.

 

 

(2/4) 약 21분.

 

 

(3/4) 약 20분.

 

 

(4/4) 약 21분.

 

 


(1/4)----------------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한데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증위낭자편련객(曾爲浪子偏憐客)이요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多生), 무량겁(無量劫) 원수가 친한 데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말이여.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라. 그러기 때문에 다생에 사람 아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 친해지고, 친해지면 웬수가 되기 때문에 웬수를 맺고 싶지 않거든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제일이다 그 말이여.

증위낭자(曾爲浪子)라 편련객(偏憐客)이여. 일찍이 방랑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치우쳐 객(客)을 불쌍히 여긴다 그 말이여. 자기가 직접 고향을 떠나서 타향살이, 방랑자 노릇을 많이 해 봤기 때문에 객을 보면 지나치게 그 사람에게 동정심이 가고, 그 사람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라. 내가 참!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많이 먹고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어디에서 술취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사정을 내가 충분히 이해가 되고 동정이 가더라 그 말이여.

부처님께서 무량겁(無量劫)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갖은 고행(苦行)을 겪으면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으시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내 몸을 희사(喜捨)하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수없이 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 목숨을 보시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백 겁 동안을,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동안을 그렇게 많은 고행난행(苦行難行)을 겪으면서 성불하실 때까지 그러한 경험을 가지셨기 때문에 중생을 보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면서 부처님 자신이 겪었던 일이 있기 때문에 중생의 그 윤회(輪廻)하는 모습을 보면, 고해(苦海)에 빠져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치우치게 지나칠 정도로 불쌍하게 여기시더라 그 말이여.


오늘은 갑자년 7월 15일 우란분재(盂蘭盆齋) 날입니다. ‘우란분’이라 하는 말은 ‘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꺼꾸로 매달렸느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린 채 갖은 고문을 당하고,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살아나는 그러한 고통을 받고 계시는데 ’그 선망부모를 구제해 드리는 날이다’ 그래서 우란분이라 그래. '우란분'이란 말은 인도말로써 우리말로는 꺼꾸로 매달리는 것을 해방시켜 주는 날이다.

왜 오늘 그 꺼꾸로 매달린 선망부모를 해방을 시켜 드리는 날이냐 하면,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 십대제자(十大弟子)가 계시는데, 그 십대제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가는 목건련(目犍連)이라 하는 존자가 계셨는데, 그 목련존자의 속가의 어머니는 이름을 청제부인이라 했는데, 그 어머니가 행실이 좋지 못하고 또 심성이 옳지 못해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지옥문」이라 하는 영화를 보셨으면 잘 아시겠지만, 그리고 또 『목련경(目連經)』을 보시면은 잘 아시겠지마는 그 청제부인이 행실이 좋지 못하고 심성이 옳지 못하고 살생을 많이 하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청제부인의 아들 목련존자가 출가해 가지고 신통(神通)을 얻어 가지고 그 ‘어머니가 어디서 무슨 고통을 받고 계신가‘ 하고 떠억 관(觀)을 해 보니까, 지옥에 떨어져서 차마 볼 수 없는 그러한 참혹한 고통을 받고 계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신통력으로 지옥에를 가 가지고 그 어머니를 만나서, 목이 마르고 배고픈데 물을 주면 그 물이 피가 되고, 밥을 주면 거기서 불이 되어 가지고 목이 훨훨훨훨 타. 아무것을 주어도 아무 효과가 없고 오히려 더 고통만을 주게 됐더라 그 말이여.

그래서 다시 부처님 계신 데로 와 가지고 부처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모친이 생존 시에 많은 죄업을 짓고, 현재 저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니 저를 생각해서라도 그 모친을 구제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사랑하는 제자 목련의 청을 듣고서 “네가 그 모친을 구제하고저 하거든 칠월 백종날—여름 해제하는 날, 모든 선원에서 해제를 하고 대중들이 한군데 모여서 자자(自恣)회를 할 때에 그날을 기해서 백 가지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부처님과 그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해라. 그러면 부처님과 청정한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 공양을 받아 잡숫고, 그리고 그 청정한 마음으로 축원을 해 주시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무서운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그 방법을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그길로 나가서 탁발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해제날을 기해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백 가지 과일과 음식을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으로 지옥의 문이 열려서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부인은 지옥고를 벗어나 가지고 천상에 태어나시게 되었다. 여러분이 『목련경』을 읽으시면 좀 더 소상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날 목련존자가 어머니 청제부인을 천도(薦度)해 드리는 그것이 시초가 되어 가지고, 해마다 칠월 백중(백종)이 되면은 모든 불자(佛子)들이—동남아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들은 백종날을 기해서 백 가지 음식을 공양을 올린다 해서 백종(百種)이라 그러거든. 백종날 이렇게 우란분 천도재를 삼천년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것을 봉행(奉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에서도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천도된 그날을 기해서 일제히 지옥문을 열고서 목에 팔목에 발목에 모다 채워 놓았던 쇠사슬을 다 풀어주기 때문에, 오늘도 지금 이 용화사 법보선원 법보전 안에도 우리의 무량겁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이 법당에 가득히 와서 계십니다. 더군다나 이 법회가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우리의 선망부모 또 우주법계에 가득하신 모든 영가(靈駕)들을 다 이 자리에 법으로써 청해 모셨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그러한 여러분의 선망부모를 위해서 모두가 다 동참을 하셨고 또 지극정성으로 천도를 해 드리려는 그 정성이 넘쳐흐르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그러한 영가들은 다 천도가 되실 것입니다.

‘다생에 웬수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나니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이 게송을 여러분들이 들으시고 ‘과연 그렇기는 그렇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할 수가 있을까?’
알고 지내면 친해지기 마련이고 친해지면 나중에 언젠가는 웬수가 된다니—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친(親)이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며, 알고 지내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이여.
여기서 말하는 ‘친하다’고 하는 것은 중생의 오욕락(五欲樂)을 위한 정으로 얼크러진 친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을 뿌리로 해서 서로 맺어진 그 친한 것이야 친하면 친할수록 모든 업을 소멸을 하고, 마침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고(生死苦)를 해탈할 수 있는 중요한 인연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중생의 사욕(私慾)을 충당하기 위해서,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알고 지내고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그 뒤끝은 물어볼 것도 없이 웬수로 맺어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맺은 그 인연으로 금생에 부모 자식 간이 되고, 형제자매가 되고, 또 부부간이 되고, 친구 간이 되고 이렇게 해서 일가친척이 되고, 그러한 관계가 전부 과거로부터 짓고 심고 맺어온 그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만나지게 됩니다마는, 과연 그 맺은 인연이 오욕락, 중생의 정으로 얼크러진 것이냐, 또는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닦아 가는 데에 있어서 그런 청정한 인연으로 맺어졌느냐는 여러분이 잘 관찰을 해 보면 짐작이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양친(兩親), 부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참!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부모도 그 자식 밖에는 모르고, 그렇게 해서 살다가 그 자식을 결혼을 시켰습니다.

결혼을 해 가지고 며느리를 맞이했는데, 결혼을 해 가지고도—과거에 두 부모가 자식을 갖다가 너무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자식도 다 커 가지고서도 항시 어머니 품에서 자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니까, 결혼을 해 가지고도 자기 아내한테는 잠시 형식적으로 조금 자는 척하고는 금방 또 어머니한테 뽀르르 가 가지고 어머니 품안에서 자고 그러니까, 어머니는 ‘참 결혼을 해 가지고도 이놈이 마음이 변하지 않고 엄마를 그렇게 사랑하는구나’ 참 흐뭇하게 생각을 했지만,
아! 신부 입장에서는 결혼을 했는데 자기하고 같이 하룻밤을 정답게 지내지 아니하고, 시간만 있으면 시어머니 방으로 가버리고 가버리고 하니까 혼자 본의 아니게 독수공방(獨守空房)을 하게 되니, 이런 참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살다가, 참다 참다 못해 나중에는 정신병이 걸릴 정도로 정신 쇠약(精神衰弱)이 걸려 가지고, 그렇게 거의 미친 사람처럼 막 울고불고 떠들고 바가지를 긁고 그랬다.

만나기만 하면 부부간에 싸우고 그러니까, 그 신랑도 마지못해서 달래기 위해서 어머니 방에는 차츰 덜 가고 자기 아내를 위안을 해 주고 그러는데, 그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놈이 결혼을 하더니 처음에는 잘 오더니 차츰차츰 계집한테 빠져 갖고 오지도 않는다’ 해 가지고는 영 이 속에 섭섭하고, ‘그놈이 에미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에미 애비의 사랑을 배반을 한다’ 해 가지고 굉장히 노엽게 생각을 해.
너무너무 노엽게 생각하고 밤잠을 못 자고, 그 아들이 자기 방에만 오면 가슴이 조금 후련하고, 며느리 방에만 가면 주먹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면서 잠도 안 오고 부애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다가 어머니가 병이 나고, 도대체 이리 가자니 어머니가 안되었고, 저리 가자니 아내가 안되었고 중간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이 되었지마는, 그래도 우선 '자기 부모는 부모고, 아내는 아내다' 해 가지고 주로 아내와 생활을 같이 하고 그러는데, 그 어머니가 병이 나 가지고 공양도 못 자시고 그러다가 너무 속을 썩어 가지고 중풍이 걸려 가지고는 대소변을 받어 내게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도 또 병이 나 가지고, 두 분이 나란히 누워서 그러니 누가 그 병수발을 하게 되냐 그 말이여.

결국은 그 아들과 며느리가 병수발을 하게 되었는데, 아들은 자기 부모니까 성의를 다해서 할려고 그러고, 며느리는 은근히 속으로 감정이 좋지 못해 가지고, 처음에는 좀 하는 척하더니, 그 방만 들어가면 너무 대소변을 막 이부자리에다가 싸고 그래서 도대체 그 방만 들어가면 창자가 뒤틀려서 들어갈 수가 없고, 처음에는 억지로 참고 좀 했는데 나중에는 창자가 뒤틀리는 통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고. (처음~21분30초)





(2/4)----------------

‘차츰차츰 오래 앓게 되면 효자가 없다’고 옛날부터서 그런 말이 있는데, 한 달, 두 달, 반 년, 1년, 이태, 3년 하는 동안에 병 증세는 점점 악화가 되어서 꼼짝을 못하면서 먹기는 영판 많이 먹고 싸기도 많이 싸고 그런다 그 말이여.
그러니 자연히 그렇지 않아도 별로 효심이 없었던 며느리라 ‘빨리 어떻게 그냥 죽어 버렸으면, 제발 좀 빨리 죽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항시 가지고, 시부모 안 듣는 데서 신랑한테도 부애만 나면 ‘왜 죽지도 않고 똥만 퍼싸고 자빠졌다’고 그리하는데, 그것을 어찌 시부모가 병환이 나서 누워 있다고 해서 왜 그 눈치를 모를 것이냐 그 말이여.

어떻게 속이 상하지만 억지로 죽지는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아프면서도 암만 먹어도 배는 찰 줄을 모르고 밤낮 배가 고프다 그 말이여. 갖다 주면 그저 쏵쏵 쓸어 먹고 돌아서서 똥을 퍼내고 그러는데, 참 환자도 여름에 더울 때에 견디기 어렵고, 겨울에는 추워서 견디기 어렵고, 방에다가 그저 영감님과 할멈이 번갈아가면서 똥을 싸니 참 본인들도 못 견딜 일이고, 자식과 며느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 나중에는 하도 똥을 치기가 귀찮으니까 밥을 조끔씩 줄여 가 조끔씩 주는데, 인자는 배가 고파서 못살겠어. 너무너무—한 달, 두 달을 조끔씩 먹으니까 자기가 눈 똥이라도 먹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배가 고프다 그 말이여.
그래서 "밥 가져오라"고 "이년이 나를 굶어 죽일라고 그런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나중에 북북 기어 나오니까 밖으로 문을 처닫고 철창(鐵窓)질을 해서 나오지 못하게 가둬 놓고서, 똥을 싸서 뭉게거나 말거나 내비두고, 구녁으로 밥만 조금씩 넣어주고 아! 이렇게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다가 밥도 형식적으로 조금씩 넣어 주니까 배가 고파서 기진맥진하다가 소리소리 지르다가 또 쓰러지고, 그리돼 가지고 결국은 처음에 영감님이 먼저 돌아가고, 그다음에 할머니가 죽었습니다.

죽은 뒤에는 장사(葬事)는 아주 거판스럽게 마을 사람 체모(體貌)도 있고 그러니까 잘 지내서 장례를 치뤘는데, 머지않아서 그 며느리는 태기(胎氣)가 있어서 쌍둥이를 낳는데, 처음에 날 때 울음소리가 없어. 그래서 '이것이 벙어리라냐 무엇이다냐?' 의심을 했는데, 울음소리는 없었지만 이것이 차츰차츰 젖도 먹고 그래서 쌍둥이를 아주 예쁘게 낳았다 그 말이여.

예쁘게 낳아서 참! ‘금이야 옥이야’ 하고, ‘이것 두 번 낳는 수고하지 아니하고 한번에 나 버렸으니 잘 키워야겠다’ 하고, 엄마 아빠가 둘이 서로 하나씩 안고서 너무너무 귀여워서 못 견디고, ‘이런 고생 안 하고 진즉 났으면 좋았을 텐데 인제사 났다’고, 그렇게 부모가 오래오래 고생을 하다 돌아간 것을 아주 ‘그나마도 돌아가셔서 잘되었다’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애들을 기르는데,
아! 이 애가 돌이 지내가도 일어나지를 못하고, 두 살이 되어도 일어나지를 못하고 마냥 엎드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누워서 버르적거리기만 하지 일어나지를 못하고, 억지로 일으켜서 앉어도 비그르르 쓰러져 버린다 그 말이여.

척추가 어떻게 연골동물처럼, 빳빳이 서지를 못하고 마냥 누워서 비글비글 한다. ‘그것 참 이상하다’ 하고 아무리 허리를 문질러 봐도 소용없고, 일으켜 세워 봐도 소용없고, 3살, 4살, 다섯, 여섯, 일곱, 열이 되도록 종래 일어나지를 못하고, 밤낮 1년 열두 달 누워서 똥오줌을 싸고 비글비글비글 한다 그 말이여. 그러니 사람이라면은 돌이 지내가기 전에 다 일어나 앉기도 하고, 또 돌이 지나가면서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밤낮 누워서 빈들빈들 꼭 뱀처럼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도 그것을 어떻게 하냐 그 말이여.
엄마 아빠가 그나마 항시 들여다보고만 있어야지, 조금 딴 데로 가서 일을 보거나 한눈만 팔면 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고, 도대체 밖에 나가서 일도 못하고, 어디 더군다나 갈 데가 있어도 가도 못하고 참! 고약하게 되었어.

그래도 그것이 불쌍하기가 그지없지마는 자식이라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그 말이여. 죽일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참! 자식만 쳐다보면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불쌍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그 어떻게 하느냐 그 말이여.
그놈이 차츰차츰 커 가지고 10살 20살 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질까지 고약해져 가지고 조금만 비위가 틀렸다 하면은 누워서 온갖 것을 다 때려 부수고 심술을 부리는데 걷잡을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디서 손님이 와도 챙피하니 저 뒷방에다 갖다 가둬 놓고 못 나오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 또 자식을 났는데 그땐 아주 예쁘고 좋은 딸도 낳고 자식도 낳고 했는데, 그 애들도 나이가 차츰차츰 들어서 혼사 문제도 있고 그러니, 그 처음에 낳은 쌍둥이 자식 때문에 그 애들 혼사 관계도 지장이 있을 것 같고 하니까, 영판 뒷방을 하나 치워 가지고는 그 속에다가 무슨 원숭이나 짐승 키우듯이 뒷방에다 가둬 놓고 그것을 키우는데, 참!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 그것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필시 그 누워서 여러 해를 병고(病苦) 생활을 하면서 사랑하는 자식과 며느리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효도를 받지 못한 채 고생을 하고 똥오줌을 싸다가 너무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품은 채 숨을 거둔 그 부모가 죽어 가지고 바로 자기집 자식으로 태어났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원래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제일 인연 깊은 집이 바로 자기집이니까, 자기집에 저 밑에 손자로 태어나고 또는 손녀로도 태어나고, 또 때로는 다른 집에 태어나 가지고 며느리나 손주며느리로 또 그 집에 와서 살게도 되고 그러기 마련인 것입니다.


노년(老年)에 사랑하는 자식과 며느리로부터서 참 형용할 수 없는 불효를 받고 고통을 받고, 죽을 때 어떻게 해서 죽었냐 하면 앓다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 너무 음식을 많이 먹을려 그러고 똥오줌을 한없이 싸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도대체 아들 며느리가 살라야 살 수가 없어. 밤잠도 못 자고 그러니까, 너무너무 귀찮고 그러니까 밥을 쪼금씩 주어 가지고 결국은 굶겨서 죽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숨을 거두어야지, 너무 깊은 애착에 빠져서 죽거나 원한에 사무쳐서 죽으면 반드시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기가 어렵고,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 원한 때문에 그 원한을 풀기 위해서, 원수 복수를 갚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 가지고 상대방을 갖다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갖은 복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친한 데에서 원수가 생긴다' 그랬는데, 원한이 깊으면 그 깊은 원한은 반드시 친한 데에서 생겨.

부모가 어찌 자식을 미워하고 복수할 생각이 있을까마는, 지나치게 배신을 당하고 너무너무 불효를 당하고 너무너무 억울하면, 그 억울한 마음으로 ‘이놈! 이년!’ 하고 생각 생각이 속으로 그 원한을 갖다가 다지고 또 다져서 그래 가지고 눈을 거두어 보시라 그 말이여. 갈 곳 없이 그 집에 자식으로 태어나서 그 집 살림을 망해 먹거나, 부모의 속을 갈기갈기 찢어서 고춧가루와 소금을 흩여 놓은 것처럼 그렇게 부모 속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이 복을 받고 또 좋은 아들과 딸을 낳고 싶으면, 또 좋은 며느리를 맞이하고 싶거든 반드시 조상과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그래야 그 선망부모가 그 집으로 고마워서 태어날 때에는 효자와 효부로서 그 집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아주 컴퓨터에 넣어도 일호(一毫) 어김이 없을 만큼, 이것은 정확한 인과(因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서 이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서 저 몇 생 뒤에 가서 받기도 할지언정, 한번 지어 놓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기어코 받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가 ‘지은 업(業)을 면(免)하지를 못한다’ 이것입니다. ‘정업(定業)을 난면(難免)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 삼불능(三不能)의 하나입니다마는, 하물며 우리 중생이 지은 업을 어떻게 그것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지어 놓은 죄를 면할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미리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하고 선업(善業)을 짓고, 선업보다도 지은 바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닦아 간다면,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행복을 얻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지체 부자유한 어린이와 어른들이 있습니다. 손과 발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척추가 온전하지 못하거나 하고, 또 언어가 분명틀 못한 그런 사람도 있고, 참! 많습니다. 그런 수가 옛날에 비교해서 더 자꾸 나날이 불어가지 않는가 이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국가에서도 그러한 지체가 부자유하거나 또 척추가 부자유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신경을 쓰고는 있습니다마는 아무리 신경을 써 본들 한번 그렇게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말이여.
부모에게 불효하고 남에게 억울하게 손해를 끼치고 원한을 심어 놓으면, 어느 집안이고 그런 것이 생겨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생겨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을 보고 가슴이 아프고 불쌍하고 참 그러기는 그지없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추호(秋毫)도 미워하는 생각을 갖지 말 것이며, 원수 같이 생각하지 말 것이며, 남 보기에 챙피하게 생각하지 말 것이다 그 말이여. 챙피하게 생각을 할수록에 더욱 좋지 못한 결과가 오는 것이고, 그것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더군다나 '제발 좀 빨리 죽어져 없어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꿈에도 갖지 말어라 이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면 그 아이는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구나. 나를 죽기를 바래는구나. 내가 이 집에 있는 것을 챙피하게 생각하는구나’ 그 눈치가 빠르기는 육신통 난 사람보다도 더 눈치가 빠른 것입니다. 환히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생각을 갖는 한에는 그 사람은 점점 더 고약하게 굴게 되는 것이고, 점점 더 안 죽고 오래 사는 것입니다. ‘한 10년간만 애를 먹이고 가리라’ 이렇게 마음먹었다가도, 자기를 미워하고 죽기를 바래고 챙피하게 생각하면 20년, 30년으로 막 나이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빚을 받으러 왔는데 빚을 기분좋게 갚어 줘야지, 그렇게 기분을 상하게 해 주면서—내가 어거지로 돈을 뜯으러 온 것처럼, 내가 당연히 받을만 해서 받으러 온 빚을 갖다가 생판 억지 빚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빚을 받어가도 시원치 않다 그 말이여.
그래서 참으로 그 빚을 온전히 갚을라면 그러한 지체가 부자유한 불구(不具)한 가족이 있으신 분은 있는 정성을 다 거기다 쏟아야 하고, 조금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어야 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있는 정성을 다 쏟고, 항시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까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 지체가 자유롭지 못한 불구한 그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자기의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행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한 일은 없나? 행여나 내가 사람을 차별 대우를 한 일은 없나? 부모에게 잘못한 점은 없나? 형제 간이나 이웃에게 잘못한 것은 없나?’
항시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를 꾸짖고 또 채찍질을 해서 자기를 갖다가 인격을 향상시켜 나가는 데에 좋은 스승으로 삼고, 누워서 똥오줌을 싸고, 누워서 신경질을 내고 그것을 보고서 귀찮고 괴롭고 그런 마음을 내지 말고, 오히려 거기서 인내심을 배우고 자비심을 배우고 봉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거기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러한 스승은 있어서 좋은 것이지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 식구 모두가 저 애를 보고서 배우고 느끼고 서로 화합하고 그렇게 해서 나날이 향상되어 가고 그런다면 자연히 모든 식구가 그 애를 보고서 항시 흐뭇한 눈초리로 그 애를 지켜봐 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애의 시중을 들어준다면, 그 애는 신경질도 안 부리게 될 것이고, 아주 온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면서 인연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과히 오랫동안 그 집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원한을 다 풀어 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은 죄가 얼마 만큼 많은가에 따라서 시일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설사 과거에 지은 업이 많고 빚이 많으면 좀더 오래 머물러 있는다 하더라도, 집안 식구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하게 된다면 구태여 빨리 죽기를 바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21분31초~42분5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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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그러한 사람을 도처에서 그런 것을 봐 왔기 때문에 이러한 오늘 이 우란분재를 맞이해서—가족 인연 관계, 형제간 인연 관계, 부모 자식 간의 인연 관계, 이웃과의 인연 관계가 전부 다 그러한 원인으로 해서 또 그렇게 만나지기 때문에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복수를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인과법(因果法)을 깨닫고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해서 자비로써 상대하게 된다면, 웬(怨讐)가 다시 또 은인(恩人)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과거의 업으로 웬수로 만났다 하더라도 그 웬수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 도반(道伴)으로서 만나지게 되고, 스승으로서 만나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간다면, 이것이 바로 온 국민이 화합을 하게 되고, 서로 도웁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한겨레가 될 것이고, 이러한 정신을 확대해 나간다면 온 세계도 한 가정이 되고 한 가족이 될 수밖에는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7월 15일 여름 안거(安居)의 해제날입니다. 이 해제날에는 석 달 동안 참선 수행하던 모다 스님네들이 해제를 하고, 또 걸망을 지고서 스승을 찾아가기도 하고 도반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러는 날입니다.

결제 동안에는 출입 왕래를 금하고 다 한군데 모여서 규칙을 지키면서 겨울 석 달, 여름 석 달을 발을 묶어 놓고 그리고서 정진을 하다가 해제를 맞이하면 걸망을 지고 팔방 사방으로 나가는데, 원래 이 결제법(結制法)이라 하는 것은, 안거법(安居法)이라 하는 것은 인도에는 우기(雨期), 비가 많이 오늘 계절이 있어서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부득불 기원정사(祇園精舍)나 죽림정사(竹林精舍)나 이런 절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서 절에서 모두 모여 가지고 정진하다가, 우기(雨期)가 지나면 다시 그 절에서 떠나 가지고 숲속에 들어가서 숲속에서 자고 또 탁발해서 공양을 하고 숲속에서 밤새 정진을 하고, 그렇게 수도 생활을 하기 때문에 결제 · 해제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참선(參禪)을 해서 빠른 시일 내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고자 할진대는—오늘 해제를 하고서 걸망을 지고 어디를 가시건 간에 가시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그게 바로 선방(禪房)입니다.
결제 동안에는 죽비를 치고 정진을 하고, 해제 하면 여기저기 걸망을 지고 다니니까 참선을 등한히 해도 되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참으로 살아 있는 공부! 왕래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활 속에서 가다듬고 정진하는 그 참선이야말로 힘이 있고 살아 있는 공부라 할 것입니다.

공부를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마치 저 깊은 우물 속에다가 눈을 져다가 자꾸 부어 가지고 그 우물을 메울려고 하듯 해라」

우물에다가 눈을 한 짐 져다가 붓고 또 한 짐 져다가 붓고, 수십 짐을 져다 부어도 물에 들어가면 눈이 녹아 버리고 녹아 버리고 해 가지고, 암만 수백 짐을 져다 부어도 우물이 차오르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눈을 긁어서 뭉쳐서 져다가 붓고 또 져다가 붓고 그러기를 몇백 짐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땀이 나고 그렇지만 춥고 더웁고 한 것도 상관없이 계속해서 져다 부어.
하루 종일 져다 붓고, 해가 져도 져다 붓고, 밤새도록 밤잠을 안 자고 져다 붓고, 그저 동쪽에서 져다 붓고 서쪽에서 져다 붓고, 그저 이리 져다 붓고 저리 져다 붓고, 속이 상해도 져다 붓고, 기분이 좋아도 져다 붓고, 그저 배가 불러도 져다 붓고, 배가 고파도 져다 붓고. 이리 해 가지고 1년이 넘어가, 이태가 넘어가, 백 세, 천 세가 되어 가지고 몸을 바꾸어 가면서 져다 부어.

마지막까지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단 한 시간도 등한히 지낸 일이 없이, 자나깨나 그저 눈을 어쨌든지 많이 져다가 부어서, 기어코 그 우물을 갖다가 눈으로써 가득 메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져다 붓다가 보면, 어느 땐가는 자기가 눈을 퍼다 붓는다고 하는 생각도 없고, 우물 속에 눈이 올라왔나 안 올라왔나 한 것에도 그런 생각도 없고, 인제 지쳤다는 생각도 없고, 그만할려는 생각도 없고, 그저 인자 완전히 거의 아주 열중(熱中)을 하다 하다 못해 가지고 무심(無心)에 들어가 버린다 그 말이여.

조끔 몇 짐 져다 붓고 ‘인제 좀 찼나?’ 또 들여다 보고, 조끔 져다 붓고 ‘인제는 조금 더 올라왔나?’ 이런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올라오고 안 오고가 문제가 없어.
그저 죽을 둥 살 둥 눈이 무겁고 가벼운 것도 따지지 말고, 차고 안 찬 것도 따지지 말고, 계속 져다 부은다 그 말이여. 이러한 정도에 열성(熱誠)을 가지고 참선을 해야만 된다 그 말이여.

겨우 첫 철에 와서 남 흉내 좀 내고 앉아서 해 보면 처음에는 망상이 들입대 일어나더니, 나중에 망상이 조금 잠잠하니까 또 잠이 퍼 오고, 잠이 좀 깰만 하면 망상이 일어나고, 그렇게 조금 해 보고서 ‘아이고, 암만 참선을 해도 안 됩니다. 저는 인연이 없는 갑습니다. 옛날에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부를 때는 잠도 잘 안 오고 참 좋더니, 참선이 좋다고 해서 해 보니까 맨 잠만 퍼오고 망상만 더 일어나고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이러거든.

그렇게 한 철 두 철 그나마도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순일무잡하게’—한두 철 해 보고서 ‘그렇게 안된다’고 피렴심(疲厭心)을 내고, 자기는 인연이 없느니, 근기가 약하느니, 이래 가지고 스스로 자포자기를 할 마음을 낸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이 도업을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그 깊은 우물에다가 눈 몇 짐 퍼다 붓고서 ‘눈이 차오르지 않는다’고, 그 허부렁한 눈 퍼다 부어 봤자 물에 닿자마자 금방 녹아 버리고 녹아 버리고 하니, 그것이 무슨 놈의 차오를 것이냐 그 말이여.

깊은 우물에 눈 퍼다 붓듯이, 해가 넘고 백천만 겁이 지내도 차고 안 차고 하는 것도 따지지 말고 계속 퍼다 부을만한 그러한 끈기를 가지고 해 나간다면 어찌 안 될 것이냐 그 말이여.
마침내는 져다 붓는 놈이나, 우물이나, 눈이나가 전부가 다 하나가 되어서 홀연(忽然)히 어떠한 계제(階梯)를 만나면은 툭! 터져 가지고, 결국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 공부는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를 깨닫는 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문제지, '기어코 되고야만 만다'고 하는 것을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보증(保證)을 서셨고, 다 맹세를 하셨습니다. 기어코 되는 것이라고 보증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인데, 그것이 안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은 손만 집어넣으면 거기에 있는 것이고, 항아리 속에 자라를 넣어 놓은 거와 같아서, 그 자라란 놈이 아무리 버르적거려 봤자, 밤에 가봐도 그 항아리 속에 들어 있고, 낮에 가 봐도 항아리 속에 들어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나를 찾는 것이여.
오히려 보지 아니할려고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지언정, 찾을려고 하면 바로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이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이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라.
동서남북에 정착한 곳이 없어. 동쪽으로도 가서 공부하고 서쪽으로 가서도 공부하고, 동서남북 아무데라도 가서 공부를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여.

일정한 데에 정착이 없기 때문에 ‘생애(生涯)가 지재일지공(只在一枝筇)이여’ 생애가 다못 이 주장자 · 육환장(六環杖)—다 옛날에는 스님네들이 어디 행각을 할 때에는 육환장을 짚고 댕겼던 것입니다. 다못 이 지팡이 하나에 달려 있다 그 말이여.

설두(舌頭)에 세작연하미(細嚼烟霞味)여. 혀끝으로는 무엇을 먹고 사냐 하면은 구름과 안개 연기를 먹고 살아. 산중으로 들로 다니니 자연히 좋은 공기에다가 안개 연기를 마시고 살 수밖에는 없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千) 봉우리, 다시 만(萬) 봉우리를 향해서 들어가더라.

수행하는 것이 한때는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잘되어 가다가 성성(惺惺)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뚝! 변해 가지고 영 화두가 잘 안 들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이런다 그 말이여.
그놈을 포행도 하고 단전호흡도 하고 찬물로 세수도 하고 하면서 그 고비를 어렵게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하기가 수월해지는데, 수월해져 가지고 떠억 화두를 들면 화두가 성성하게 순일하게 잘 들리고, ‘이만했으면 참, 공부 이대로 주욱 되어 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먹자마자 또 뚝! 변해 가지고 영 또 공부가 안되고.

때로는 잘되다가 때로는 안되다가, 또 안되다가 또 괜찮게 되다가, 괜찮게 되다가 또 잘 안되고, 이러기를 한 봉우리 넘으면은 또 내리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을 다 가서 보면 또 오르막길이 있고,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또 내리막길이, 이것이 마치 천 봉우리를 넘어가면 다시 또 만 봉우리가 있듯이, 이 모양이 마치 길을 가는 데에 봉우리 밖에 또 봉우리가 있고, 또 봉우리 밖에 또 봉우리가 있는 것이 우물 속에다가 눈을 져다 부은 것처럼 그렇다 그 말이여.

만날 해도 무엇이 얻어지거나 나타나거나 보이는 것이 없이, 만날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고 답답할 뿐이다 그 말이여. 이 꽉 맥혀서 알 수가 없고 답답한 것이 공부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그렇게 콱 맥혀서 알 수가 없고 답답하고 그러니까, 인연이 없어서 공부가 잘 못된 줄 알고 걱정들을 하시고, 와서 호소를 하시는데 사실은 꽉! 맥혀서 알 수가 없고 답답한 그 경계가 공부 옳게 되어 가는 그 상태인 것입니다.

무엇이 환하고, 무엇이 얻어진 것이 있고 알아진 것이 있고 그러면은 그것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건 공부가 잘못 비뚤어져 들어가는 것이고, 어문간 데에 처박혀서—멧돼지 쫓아가다가 한눈 파는 거와 마찬가지여서 멧돼지를 잡으러 쫓아가면 한눈을 팔지 않고 계속 그 멧돼지 뒤를 따라서 잠깐도 한눈 팔지 않고 쫓아가야지, 멧돼지 잡으러 쫓아가다가 골마리를 까고 이를 잡고 있어야 되겠느냐 그 말이여. 그러다 보면 멧돼지는 순식간에 저 몇백 미터 도망가 버리면 멧돼지는 영영 놓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잘된다고 좋아하지 말 것이며, 잘 안된다고 짜증을 내지 말고, 잘되어도 지혜롭게 잘 단속해 나가야 하고, 답답하고 그러더라도 조금도 짜증을 내지 말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심호흡, 단전호흡을 하면서 잘 넘기면 그게 공부가 한 걸음 또 수월하게 되어가는 것이니까.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이 누누이 말씀을 하시기를 '그 꽉! 맥혀서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한 그러한 경지야말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거기에서 공부가 진취할 징조이다. 그러니까 그런 경계를 당하거든 짜증을 내고, 이 공부가 안될라나 보다 하고 자포자기하고 하지 말고, 그러한 고비를 어쨌든지 지혜롭게 잘 공부를 뽑아 나가도록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42분53초~62분4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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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를 하시고 어느 선방에를 가시던지, 다시 또 우리 용화선원에 산(散)철 결제에 들어오시던지, 또 신도 여러분들께서도 지난 석 달 동안 그 무더위 속에서 별 탈 없이 잘 정진들을 하셨습니다 오늘 해제를 하시고 댁에 가시더라도 여기서 석 달 동안 지내시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세수하시고 떠억 한 시간 두 시간씩 정진을 하시고, 낮에도 그저 손자 보면서, 가정 일 도우면서, 집에 계시거나 어디 외출을 하시거나, 걸음걸음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기를 바라고, 또 다시 금년 겨울 결제 때가 오면은 또 와서 방부를 들이시고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겨울 결제는 금년에 10월 달에 가서 윤달이 들어서 10월이 첫째 10월이 있고, 그 다음에 윤10월이 있습니다. 윤10월에 결제를 할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넉 달이라고 하는 세월이 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그러한 계절인 만큼 어쨌든지—석 달 동안 애써서 여름 석 달 동안 하시다가 그냥 팽개쳐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면 애써서 쌓아올린 탑이 다 와그르르 하니 무너져 버리거든.
10월에 가서 다시 밑에부터서 다시 쌓을라면 또 큰 힘이 들 것입니다. 그 탑을 갖다가 잘 허물어지지 않도록 간수를 하시고, 댁에 가서도 계속해서 그 탑을 쌓아올려 놓으시면 10월에 가서 그 뒷을 이어서 하신다면 훌륭한 탑을 쌓으시게 될 것입니다.

결제 때 모여서 정진하신 것은 해제 때 생활 속에서 시끄러운 속에서 잘하기 위해서 결제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도(道)에 있어서는 승속(僧俗)이 없는 것입니다. 스님네라고 해서 꼭 도를 닦아야 하고, 세속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안 닦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에 계신 분일수록에 도를 더 열심히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세속에 사시면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이리저리 얽혀서 업을 많이 짓게 되고 도 닦을 기회는 점점 희박하기 때문에, 그럴수록에 몇 배를 더 노력을 하고 애를 써야만 다소 공부가 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내생(來生) 일을 생각하고, 장차 일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지난 일요법회 때 이 용화선원에서 간행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을 그때 참석한 사부대중 여러분께 노나 드렸는데, 그때는 발견을 못해서 그냥 드렸는데, 노나 드리고 나중에 살펴보니까 176 페이지 다섯째 줄의 꼭대기에 ‘충언(忠彥)’이라 한 한문 글자 ‘충(忠)’ 자가 희미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글로 되어 있고 그 밑에 한문이 있으니까, 여러분이 간단히 잘 살펴보면 아실 수 있으니까 별 문제가 아닌데, 206 페이지 여덟째 줄에 가서 글자 석 자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글자 석 자가 ‘전(剪)’ 자—‘앞 전(前)’ 자 밑에 ‘칼 도(刀)’ 한—‘깎을 전(剪)’ 자 하고, ‘물리칠 각(却)’ 자 하고, ‘떳떳할 상(常)’ 자, 이 한문 글자 석 자가 완전히 빠졌어요.

그래서 그 석 자와 ‘충언’이라고 하는 두 글자를 인쇄를 해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글자를 얻어 가지고 가서 댁에 가셔서 그걸 붙이셔도 좋고, 이 다음 법회 때 언제라도 그 책을 가지고 오시면 사중(寺中)에서 그걸 정확하게 붙여 드릴 수가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그 책을 가지고 오시면 여기서 정확하게 그 자리를 붙여 드리고자 하니까, 이 다음에 오실 때 그 책을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맨 끝에 ‘찾아보기’라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찾아보기에 페이지 수가 2페이지가 틀려 있습니다. 지난 번에 책을 노나 드릴 때 그것은 말씀을 드려서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러니 책을 한번만 절에를 가지고 오시면, 이 세 군데 문제가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도록 교정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때 일요법회 때 참석 못하신 분은 사무실에 오시면 책을 한 권씩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노나 드릴 책은 일부 교정을 봐 놨습니다마는 아직도 다 볼라면 한번에 다 볼 수가 없어서 우선 급한 대로 봐 놨으니까, 지난 일요일 때 못 가져 가신 분에 한해서 사무실에 오시면은 한 권씩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백종날, 우란분(盂蘭盆)을 맞이해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해 드리는 그러한 날입니다. 이 법문이 끝나면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을 천도하는 법요식이 시작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선망부모가 지옥문이 열리고, 아귀도의 문이 열려서 모다 이 도량에 오셨는데, 여기에 동참을 하시지 아니하면 영가들이 왔다가 내 아들, 내 며느리, 내 가족이 안 왔을 때에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다행히 이 더움을 물리치시고 원근에서, 저 강원도 · 전라도 · 경상도 먼 데에 계신 분들이, 여기에 만년위패(萬年位牌)를 모신 만년위패 법보재자들이 이렇게 참 많이 운집을 하셔서 우리의 조상과 선망부모는 대단히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여기서 법문도 잘 들으시고 또 공양도 배불리 맛있게 공양을 드시고, 그리고서 좋은 곳으로 이고득락(離苦得樂)하시고 다시 또 인도(人道)에 환생(還生)을 하실 때에는 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돌아오시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한 선망부모를 생각할수록에 우리는 살아계신 부모님, 시부모님께 효도를 하시고, 또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나한테, 인제 봐라. 법문을 들어 봐라. 너희들이 당연히 효도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 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서, 인자 아주 큰 효도를 받을 폭을 대고 뒤로 자지바지하실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반효자 노릇을 해야 한다’ 하는 그러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효도를 안 할라야 안 할 수 없도록 어른들이 그렇게 성격을 쓰시고 행동을 하신다면, 어떠한 아들이나 어떠한 며느리라도 그 어른한테는 효도를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할 것도 없이 첫째, 좀 어른들이 마음을 아랫사람들이 받들기에 편하도록 성격을 쓰셔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성격을 까다롭게 쓴다든지, 괴팍하게 쓴다든지, 사사건건이 간섭을 해 가지고 신경을 돋군다든지 그러지를 말고, 항시 그저 해다 주는 대로 잘 잡숫고, 해다 드린 대로 잘 입고 그러면서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시고, 아들이나 손자나 손녀나 한결같이 인자한 마음으로 상대를 하신다면, 아무리 신경질이 있는 며느리라 하더라도 그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효도를 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외손자나 외손녀를 보면 속속들이 싸 두었던 돈도 주고 맛있는 과자도 주고 하면서, 자기 친손자한테는 인색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고, 그리고 무엇만 잘못한다고 사사건건이 간섭을 하고 그렇다면 어느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라며, 우리 시어머니가 좋다고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첫째,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실 것이며, 마음을 선량하고 부드럽게 가지실 것이며,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하실 것이며, 사소한 잔소리는 어지간하면 삼가해 버리고, 항시 화두를 들고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우리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요’ 그 며느리마다 다 효부(孝婦)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효부 효자가 되도록 해 주시면 당신 지내기도 좋고, 구태여 며느리를 갖다가—처음에는 양과 같은 며느리를 데려다가 찌럭찌럭 해 가지고 독사 며느리를 만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고부간(姑婦間)에 좋느니 나쁘니 할 것이 아닙니다.
꼭 원인은 며느리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어머니한테도 반(半)은 원인이 있는 것이니 만큼 시어머니도 참 이 정법을 믿고 그 정신혁명을 일으켜서 스스로 마음을 편안히 가지신다면 며느리도 효부가 되어서 잘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언제나 법회 때마다 ‘며느리 보고만 효도를 해라, 자식 보고만 효도를 하라’고 계속 강조를 해 왔는데, 오늘은 어찌 늙은이가 듣기에 큰 숙제를 준 것 같아서, '괜히 오늘 왔다' 하고 혹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노인들도 마지막 가실 길을—앞으로 사시면 10년을 사실런지, 20년을 사실런지 또는 5년 밖에 못 사실런지, 또는 금년에 해를 못 넘기고 가실런지 그건 생사는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가실 때까지 어쨌든지 자기가 평생에 써 오던 못된 성격이 있다면, 그것을 갖다가 탁! 고쳐서 '야! 참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실란가? 영판 마음이 변했다. 아이고, 어째서 돌아가실라나? 저렇게만 성질이 좋으시다면 돌아가시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주셔야 할텐데'
이렇게 마음을 갖다가 탁! 돌이켜서 혁명을 일으키셔서 여생(餘生)을 정말 성스럽고 고상한 품위를 가지시고 여생을 사시도록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듣기 좋은 말은 도적놈이요, 내 귀에 듣기 싫은 거스른 말은 나의 스승이요, 은인이다’ 하는 성현의 말씀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마음씨를 바로 먹고 정법 믿는 불자(佛子)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고, 연세가 많으신 분은 많으신 대로 ‘내가 인제 팔십이나 됐는데 내 버릇을 네 년이 고칠 줄 아느냐’ 이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아니라, 팔십 아니라 백 살이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금생에 고쳐 놓지 아니하면 내생에는 더 고약한 인간으로 태어날 거여.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면 누가 대우를 해 주며, 누가 받들어 주며, 누가 그 사람을 좋다고 할 것이냐 그 말이여. 그러니 하루 있다가 돌아가시더라도 못된 성격은 참회(懺悔)하고 고쳐야 하고, 한 시간 후에 돌아가시더라도 못된 성격은 고쳐 놓고 숨을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취면성와불귀가(醉眠醒臥不歸家)하고  일신유락재천애(一身流落在天涯)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조위중유부주(佛祖位中留不住)하고  야래의구숙노화(夜來依舊宿蘆花)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면성화불귀가(醉眠醒臥不歸家)하고, 잔뜩 술에 취해서 잠을 자고 또 겨우 잠에서 깨 가지고는 또 누워서 잔다 말이여. 그러면서 집에를 돌아가지를 안 해.
일신유락재천애(一身流落在天涯)여. 한 몸이 동서 사방으로 유랑(流浪)을 하면서 저 하늘갓—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저 하늘갓에 유랑을 하고 있더라 그 말이여.

우리가 본래는 부처님인데, 한 생각 잘못 먹은 탓으로 해서 우리의 본고향에서부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정처없이 타향살이 신세를 면치를 못하고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가 있고, 내 집이 있고 하니까 ‘내 고향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성불(成佛)을 하기 전에는 어디가 있던지 간에 타향살이여. 자기의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고 중생의 오욕락(五欲樂)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방황을 하고 있는 신세다 그 말이여.

불조위중유부주(佛祖位中留不住)하고, 부처와 조사(祖師)의 번듯한 그 자리는 마다하고 나와서,
야래의구숙노화(夜來依舊宿蘆花)여. 오늘 밤에도 또 갈대꽃 밭에서 또 밤을 지새게 되었어.

언제까지 이 타향살이 신세! 우리의 조상이 사시고 부모가 사시고, 그런 우리의 마음의 본고향으로 돌아가게 될런지. 계속 업(業)만 퍼짓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끝없이 하는 동안에 고향 땅은 잡초에 우거지고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서, 또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 우리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서 잡초에 우거진 밭과 논을 갈아 가꾸어서 영원히 쓰고도 남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62분45초~1시간23분37초) (끝)





[법문 내용]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치우치게 지나칠 정도로 불쌍하게 여기시더라 / 우란분=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 목련존자와 청제부인 / 백종의 유래 / 인과 - 불효한 아들과 며느리, 시부모가 지체 부자유 쌍둥이로 태어남.

'친한 데에서 원수가 생긴다' /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정확한 인과(因果) / 지체부자유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정성과 감사한 마음으로.

해제 후에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한 걸음, 한 걸음이 선방이다 / 공부는 '깊은 우물 속에 눈을 져다가 부어 우물을 메울려고 하듯 해라' / 참선 공부는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를 깨닫는 법'이기 때문에 '기어코 되고야만 만다'는 확신을 가져야 / 주머니 속 물건, 항아리 속에 자라, 찾을려고 하면 바로 언제나 거기에 있다 /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이 누누이 말씀을 하시기를 '그 꽉! 맥혀서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한 그러한 경지야말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도(道)에 있어서는 승속(僧俗)이 없다 / '부모가 반효자 노릇을 해야 한다' / 효도를 받으려면 어른들이 마음을, 아랫사람들이 받들기에 편하도록 성격을 쓰셔야 한다 / (게송)취면성와불귀가~ / 마음의 농사(農事).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을 뿌리로 해서 서로 맺어진 그 친한 것이야 친하면 친할수록 모든 업을 소멸을 하고, 마침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고(生死苦)를 해탈할 수 있는 중요한 인연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중생의 사욕(私慾)을 충당하기 위해서,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알고 지내고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그 뒤끝은 물어볼 것도 없이 웬수로 맺어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가 ‘지은 업(業)을 면(免)하지를 못한다’ 이것입니다. ‘정업(定業)을 난면(難免)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 삼불능(三不能)의 하나입니다마는, 하물며 우리 중생이 지은 업을 어떻게 그것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지어 놓은 죄를 면할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미리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하고 선업(善業)을 짓고, 선업보다도 지은 바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닦아 간다면,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행복을 얻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체가 부자유한 불구(不具)한 가족이 있으신 분은 있는 정성을 다 거기다 쏟아야 하고, 조금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어야 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있는 정성을 다 쏟고, 항시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까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 지체가 자유롭지 못한 불구한 그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자기의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행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한 일은 없나? 행여나 내가 사람을 차별 대우를 한 일은 없나? 부모에게 잘못한 점은 없나? 형제 간이나 이웃에게 잘못한 것은 없나?’
항시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를 꾸짖고 또 채찍질을 해서 자기를 갖다가 인격을 향상시켜 나가는 데에 좋은 스승으로 삼고, 누워서 똥오줌을 싸고, 누워서 신경질을 내고 그것을 보고서 귀찮고 괴롭고 그런 마음을 내지 말고, 오히려 거기서 인내심을 배우고 자비심을 배우고 봉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거기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러한 스승은 있어서 좋은 것이지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내가 그러한 사람을 도처에서 그런 것을 봐 왔기 때문에 이러한 오늘 이 우란분재를 맞이해서—가족 인연 관계, 형제간 인연 관계, 부모 자식 간의 인연 관계, 이웃과의 인연 관계가 전부 다 그러한 원인으로 해서 또 그렇게 만나지기 때문에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복수를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인과법(因果法)을 깨닫고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해서 자비로써 상대하게 된다면, 웬(怨讐)가 다시 또 은인(恩人)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과거의 업으로 웬수로 만났다 하더라도 그 웬수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 도반(道伴)으로서 만나지게 되고, 스승으로서 만나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참선(參禪)을 해서 빠른 시일 내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고자 할진대는—오늘 해제를 하고서 걸망을 지고 어디를 가시건 간에 가시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그게 바로 선방(禪房)입니다.
결제 동안에는 죽비를 치고 정진을 하고, 해제 하면 여기저기 걸망을 지고 다니니까 참선을 등한히 해도 되냐 하면 그게 아닙니다. 참으로 살아 있는 공부! 왕래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활 속에서 가다듬고 정진하는 그 참선이야말로 힘이 있고 살아 있는 공부라 할 것입니다.

공부를 할진대는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마치 저 깊은 우물 속에다가 눈을 져다가 자꾸 부어 가지고 그 우물을 메울려고 하듯 해라」

이 공부는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를 깨닫는 법'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문제지, '기어코 되고야만 만다'고 하는 것을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다 보증(保證)을 서셨고, 다 맹세를 하셨습니다. 기어코 되는 것이라고 보증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인데, 그것이 안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은 손만 집어넣으면 거기에 있는 것이고, 항아리 속에 자라를 넣어 놓은 거와 같아서, 그 자라란 놈이 아무리 버르적거려 봤자, 밤에 가봐도 그 항아리 속에 들어 있고, 낮에 가 봐도 항아리 속에 들어 있듯이, 내게 있는 것을 나를 찾는 것이여. 오히려 보지 아니할려고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지언정, 찾을려고 하면 바로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이 누누이 말씀을 하시기를 '그 꽉! 맥혀서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한 그러한 경지야말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거기에서 공부가 진취할 징조이다. 그러니까 그런 경계를 당하거든 짜증을 내고, 이 공부가 안될라나 보다 하고 자포자기하고 하지 말고, 그러한 고비를 어쨌든지 지혜롭게 잘 공부를 뽑아 나가도록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제 때 모여서 정진하신 것은 해제 때 생활 속에서 시끄러운 속에서 잘하기 위해서 결제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도(道)에 있어서는 승속(僧俗)이 없는 것입니다. 스님네라고 해서 꼭 도를 닦아야 하고, 세속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안 닦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에 계신 분일수록에 도를 더 열심히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세속에 사시면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이리저리 얽혀서 업을 많이 짓게 되고 도 닦을 기회는 점점 희박하기 때문에, 그럴수록에 몇 배를 더 노력을 하고 애를 써야만 다소 공부가 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내생(來生) 일을 생각하고, 장차 일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부모가 있고, 내 집이 있고 하니까 ‘내 고향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성불(成佛)을 하기 전에는 어디가 있던지 간에 타향살이여. 자기의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고 중생의 오욕락(五欲樂)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방황을 하고 있는 신세다 그 말이여.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서, 또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 우리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서 잡초에 우거진 밭과 논을 갈아 가꾸어서 영원히 쓰고도 남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