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24)—83년 동지법회(83.12.22)(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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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응중연수처적(外應衆緣隨處寂)하고 내명일적응무휴(內冥一寂應無虧)니라
나무~아미타불~
토리회회여해대(肚裏恢恢如海大)하고 일임천차유여무(一任千差有與無)니라
나무~아미타불~
외응중연수처적(外應衆緣隨處寂)하고,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응(應)허되 응하는 그곳을 따라서 적적(寂寂)하고,
내명일적응무휴(內冥一寂應無虧)로구나. 안으로는 한 적적한 데에 계합해 가지고 뻑뻑이 이지러짐이 없더라.
토리회회여해대(肚裏恢恢如海大)하고, 뱃속은 넓고 넓어서 저 바다와 같이 크고 큰데,
일임천차유여무(一任千差有與無)로구나. 천 가지, 만 가지 모든 있고 없는 차별에 일임(一任)해 버리더라.
12월 16일날 저 전라도 송광사 구산(九山) 방장(方丈)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큰스님 분상에는 오고가는 것이 없으시겠지만, 우리 종단이나 우리 국가나 인류를 위해서는 큰 손실이라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세계가 나날이 위태로운 곳을 향해서 치닫고 있고, 우리 종단도 계속해서 분규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때에 그런 큰스님이 계셔야만 육신으로 보라도 계셔야만, 우리 종단의 쓰러지는 것을 받쳐 주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시고 이끌어 주실 텐데,
아직도 십 년이나 이십 년을 더 살으셔야 하고, 더 살아 계실 수 있는 그러한 대종사(大宗師)가 갑자기 이렇게 사바세계를 하직을 하셨습니다.
삼천 년 전에 부처님께서도—보통 사람의 정명(正命)도 백 살이고, 부처님은 모든 과덕(果德)이 구족(具足)하셔서 120세까지는 사실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말세(末世) 중생이 박복(薄福)해서, 도 닦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수용하실 복을 물려주시기 위해서 미리 열반에 드셨다’ 이렇게 말도 하지마는,
그것보다는 중생들이 ‘부처님은 언제라도 우리가 친견할 수가 있고 법문을 들을 수가 있다’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셔서 살아계신 것을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무섭게 정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열반에 드심으로 해서 무상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고,
‘여래(如來)는 그렇게 아무나, 아무데서라도 친견을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하는 경책(警策)을 주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 열반을 보이셨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구산 대종사의 열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무때라도 친견할 수 있고, 아무때라도 법문을 들을 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한 줄 망각하고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이럭저럭, 허송세월하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발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열반을 보이셨는지도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미 생사 문제를 요달(了達)한 분상(分上)에는 생사를 두려워 할 것도 없고, 오고가는 것에 얽매일 것이 없겠지만, 생사 문제를 요달하지 못한 분상에는 정말 생사는 두려운 것이며, 무상한 이 몸뚱이는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계해년(癸亥年) 동짓날입니다. 동짓날은 일 년 중에 밤이 제일 긴 날이고, 낮의 시간이 제일 짧은 날입니다. 기상대 발표에 의하면 금년 동지는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 보다 4시간 52분이 더 길다고 그랬습니다.
옛날부터 동지에는 속가에서도 팥죽을 쒀서 조상 사당(祠堂)에 올리고 차례를 젓수고, 중국의 총림 선원에서도 동짓날에는 도량신(道場神)과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선사(先師)들의 영단(靈壇)에 목욕재계하고 재(齋)를올려왔습니다.
금년에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에 법요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마는, 밤과 낮의 길이가 여름 하짓날에는 낮이 제일 길고 밤이 제일 짧은데, 동지에는 그와 반대로 밤이 제일 길고, 낮이제일 짧은 날인 것입니다.
춘분과 추분은 밤 길이와 낮 길이가 똑같은 날입니다. 춘분에는 밤낮의 길이가 똑같은데 하루에 일 분씩 차츰차츰 낮의 시간이 일 분씩 길어져. 그래가지고 추분이 돌아오면 똑같아졌다가 다시 또 밤과 낮의 길이가 반대로 일 분씩 차이가 나다가, 오늘 동지에는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입니다.
하루에 일 분씩 길어지다가 더이상 길어지지 못하면 다시 또 그 다음부터서는 또 반대로 일 분씩이 줄어져 가는 것입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짧아졌다가 길어졌다가 하는 것이 그 음양(陰陽)의 이치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느냐?
추위와 더위도 덥다 덥다 못해서 더이상 더울 수가 없으면 그 다음부터서는 차츰차츰 서늘해지고,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추워지기 시작해 가지고 더이상 추워질 수가 없으면 다시 차츰차츰 따뜻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춘하추동의 절서(節序)의 양상이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가난한 사람이 노력을 해 가지고 차츰차츰 부자가 되어서 더이상 부자가 될 수 없을 만큼—자기 분상에 부자가 될 만큼 되면 다시 또 가난해집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더이상 가난해질 수 없을 만큼 가난해지면 그때부터서는 또 차츰차츰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 년의 절서와 기후 변동을 통해서 인생 문제를, 인생에 있어서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해졌다고 해서 낙망(落望)할 필요도 없고,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교만을 뺄 필요도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가난하되 기가 죽지 아니하고, 부자로되 교만하지 아니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쫌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실패하고 가난해지면 그 한탄에 사무쳐서 못 견디고 실망에 빠져서 자기의 갈 바를 찾지를 못하고,
또 좀 재수가 있어서 돈을 좀 벌고 남부럽지 않게 살면 오만불손(傲慢不遜)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고, 거만에 빠져서 남을 업신여기고, 이건 다 어리석은 사람의 취할 바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일 년 절서와 기후, 춘하추동의 변동에 따라서—그것은 바로 유위법(有爲法)의 세계의 양상이지마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그러한 허망한 경계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리의 양상(樣相)을 보고도 분별(分別) 망상(妄想)을 일으켜서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수레바퀴 속에 말려들어 가는 것이고.
오늘 동짓날을 맞이해서 오늘이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지마는, 내일부터서는 일 분씩 다시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밤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밖으로 모든 인연을 응하되 곳을 따라서 적적하다(外應衆緣隨處寂). 안으로 한 적적한 데에 명합(冥合)이 되되, 뻑뻑이 이지러진 바가 없는 것이다(內冥一寂應無虧). 모자란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이 길거나 낮이 길거나, 부자가 되거나 가난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마음속은 넓고 넓어서 바다와 같이 크고(肚裏恢恢如海大), 인간 세상에 생로병사와 희로애락과 성주괴공의 그 천차만별의 양상 속에 일임해 버리되, 한 바가 없는 것입니다(一任千差有與無).(처음~18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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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빈두로타사(賓頭盧埵闍)라 하는 바라문(婆羅門)이 있었는데, 그 바라문은 아내가 어떻게 독하고 모질며 사납고, 생긴 것도 참 억세고 보기 싫게 생긴 것이, 두 눈은 생 살조개를 짜 놓은 것처럼 벌개 가지고 사사건건이 남편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그 빈두로타사는 아들은 없고 딸만 칠 형제가 있었는데, 그 딸을 다 여우살이를 했습니다.
딸을 여울 때마다 있는 재산을 다 털어서 주고, 있는 재산 논과 밭과 임야와 모든 재산을 있는 대로 다 털어 가고, 그리고서 시집을 가 가지고도 번갈아가면서 그 딸과 사위가 와 가지고 앙탈을 부리고 그래 가지고 눈에띄는 대로 훑어갔습니다. 그래서 안 주면은 포악(暴惡)을 하고.
그렇게 시달리면서 여생(餘生)을 살고 있는데,
그해는 가을이 되어서 밭에다가 농사를 지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추수(秋收)를 할라니 손대는 없고, 그래서 이웃집에 소 있는 집에서 소를 빌려다가 그 농사 지은 추수한 것을 갖다가 소에 실려서 집으로 가져 나르고, 일이 다 끝나서 인자 해가 저물어서 그 소를 주인집의 문 앞에다 갖다 놓았습니다.
그 소를 그 주인집 문 앞에다 갖다 놓았을 때 주인이 보았습니다. 주인이 보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주인이 나중에 그 소를 들이 맬라고 가 보니까 그 소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이 그 빈두로타사 집에 와서 “왜 내 소를 다 썼으면 갖다 주지 않고 안 갖다 주냐?” 그러니까, “아! 내가 아까 소를 갖다가 당신 집 앞에다 갖다 놓았을 때 당신이 보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가지고 온 것은 봤지마는 나한테 다 썼단 말을 아니 해서 아직도 덜 쓴 줄 알고 그냥 놔뒀는데, 그 무슨 소리냐? 왜 다 썼으면 소를 다 썼다고 나한테 말을 해야지, 말을 아니 하니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 그래가지고 “내 소를 물어내라”
“내가 당신 집에 갖다 준 것을 당신이 버젓이 봐 놓고 그러느냐?” “말을 안 해서 나는 몰랐다” 이리 옥신각신 싸우다가 기어이 내 소를 찾아오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온 마을을 다 찾고, 온 들을 다 찾고, 여기저기 다 찾아다니다가 어느 숲속을 가니까, 거기에 마치 부처님께서 숲속에 떠억 앉아 계신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빈두로타사 바라문이 부처님이 그리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고,
‘저 고타마, 구담사문(瞿曇沙門)은 얼마나 마음이 편안할까? 나처럼 그 악독한 아내한테 시달리지도 아니할 것이며, 딸과 사위 놈들한테 들볶이지도 아니할 것이며, 농사짓느라고 고생할 것도 없고, 인간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실고?’ 그런 생각을 속으로 먹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벌써 그 빈두로타사 바라문의 마음을 아시고서 “네가 생각한 바와 같으니라. 나는 인간의 부귀영화(富貴榮華)와 빈궁(貧窮)과 그러한 생사열뇌(生死熱惱)에 아무 고통도 괴로움도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너도 그러한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고자 하거든 출가해서 도를 닦는 것이 어떠한고?” 빈두로타사가 “아! 저 같은 사람도 출가를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네가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다면 어찌 허락을 아니할까 보냐” 그래서 소 찾다가 소도 그만두고, 그 고약한 아내로부터 떠나고 싶은 생각에 그길로 집으로 가지도 않고 부처님을 따라서 출가를 해 버렸습니다.
계(戒)를 받고 출가를 했는데 ‘자기는 늦게 출가했다’한 관계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용맹정진을 해서 머지않아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습니다.
그러니 아란존자가 “저 빈두로타사 바라문은 늦게 출가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짧은 시일에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를 증득 했습니까? 과거에 무슨 인연으로 그렇습니까?”하고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무량겁 전에 단정왕(端正王)이라 하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정법을 신(信)하고, 정법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렸기 때문에 온 나라 백성들이 그렇게 모다 편안하게 행복하게 잘 살았더니라.
그때 그 나라에 단니기(檀膩羈)라 하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 바라문은 가난하기가 말로 할 수 없이 가난했었어.
그래서 참 이 빈두로타사처럼 가을에 추수를 할 때에 일꾼을 살 수도 없고, 자기가 그것을 하자니 힘이 들고 그러니까 남의 집에서 소를 빌려다가 그 추수 짐을 다 실어나르고 그리고서 그 소를 임자 집 앞에다 갖다 놔뒀는데,
그 주인한테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 소를 집 앞에다 갖다만 놓고 왔는데—주인이 봤기 때문에 그냥 왔는데, 그 소가 어디로 가버렸어. 그래서 소를 찾아오라고 하니까, 암만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그 소 주인이 “내 소를 빨리 물어내라”하니 돈이 없으니 사 낼 수도 없고, 그래서 임금님한테 단정왕이라고 하는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하러 가는 도중에 말이 막 뛰어오는데—그 말은 왕궁의 말인데, 그 왕궁의 말을 기르는 책임자가 그 말을 놓쳐 가지고 말이 막 달아나니까 “저 말을 좀 붙잡아 달라”고.
붙잡아 달라고 해서 앞을 가로막으니까 그 말이 막 도망간다 그말이여. 그래 급하니까 못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 돌맹이를 주워 가지고, 말 도망가지 못하게 위협하느라고 던진 것이 말 다리에 맞아 가지고 다리가 때깍부러져 버렸다.
그러니까 그 마부가 “그 말을 못 가게 붙잡으라고 그랬지 누가 내 말을 갖다가 다리를 분지르라고 했느냐? 말을 내놓아라”
“내가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고 당신이 붙잡아 달라고 그래서 못 가게 하느라고 돌을 던진 것이 맞았지, 내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니 물어줄 수도 없고, 물어줄 돈도 없다”
“너는 나쁜 놈이다.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해야겠다” 그래서 그 마부도 따라붙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디만큼 가니까 강을 건너서 가야 하는데 어디가 얼마만큼 깊은지, 어디가 얼마만큼 옅은지 그걸 모르는데, 저쪽에서 목수가 두 손에 짐을 들고 또 옷을 걷어붙이고, 입에다가 끌을—나무에 구멍을 뚫는 끌을 물고 오는데,
“어디로 가면 물이 옅으고 가기가 좋소?”하고 물어보니까, ‘저리 가라’고 입으로 가리키다가 입을 쪼끔 뻥긋 벌린 것이 끌이 빠져 가지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어.
그러니까 “내 끌을 내놓으라” “당신이 입을 벌리다 끌이 빠졌는데 왜 나보고 물어달라고 하냐?”
그러니 그 목수도 “그러면 너 상감마마한테 재판을 해야겠다” 그래 목수가 따라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물을 건너서 어디만큼 가니까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그래서, 마치 주막이 있길래 주막에서 술을 한 잔을 먹으려고 평상에 앉은데, 이불이 있어서 이불에 그냥 이렇게 걸터앉았는데, ‘빽!’ 소리가 났어.
그래서 보니까 이불 속에 어린아이를 넣고 덮어 놨던가 애기가 창자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 주막 주인이 “왜 남의 애기를 갖다가 깔고 앉아 가지고 터지게 죽였느냐? 내 애기를 물어내라”
그러니 물건도 돈이 없어서 못 물어주는데, 어떻게 산 애기를 물어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주막 주인도 “너 같은 놈은 상감마마한테 소송을 제기해 가지고 너를 벌을 주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또 주막주인도 따라붙었습니다.
또 그 얼마를 가다가 담장이 있는데 담장 밑에를 지내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죄가 한 가지 죄만 지어도 살아나기가 어려울 텐데 ‘남의 소를 잃어 버려, 돌을 던져서 말 다리를 부러뜨려, 남의 끌을 갖다가 물에 빠뜨리게 해, 주막집의 애기를 깔고 뭉개 가지고 터져 죽게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러 가지 죄로 상감마마 앞에 끌려가면 영락없이 자기는 징역을 살아도 무기징역을 살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사형도 받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러느니, ‘끌려가 가지고 벌을 받기보다는 내가 이럴 때 어디로 도망을 칠 수 밖에는 없다’해 가지고 그 담을 훌떡 뛰어서 푹! 내려가니까 노인이 거기서 무슨 엎드려서 일을 하고 있던가, 노인이 꺼꾸러지면서 뇌진탕을일으켜 가지고 노인이 뻐르적뻐르적하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노인의 아들이 “너 웬 놈이 남의 담 너머로 뛰어와 가지고 우리 아버지를 갖다가 돌아가시게 했느냐?” 그래 가지고 “이런 놈은 상감마마한테 가서 재판을 해 가지고 이놈도 벌을 주어야겠다” 그래서 그 사람도따라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여섯 사람이 꼼짝을 못하게 에워싸면서 상감마마 계신 데로 가는데, 숲속을 지내는데 나무가 하나가 있는데 그 나무 위에 꿩이 앉아서 “여보시오, 당신 단니기(檀膩羈), 내가 당신한테 부탁할 말이 있는데,
내가 이 나무에 앉아서 울면 그렇게 내 목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답고 잘 나는데, 다른 데에서 울면 그렇지를 못하니, 무엇 때문에 이 나무에 앉아서만 울면 그렇게 내 목소리가 좋은가? 그것을 갖다가 지금 당신이 상감마마한테 간다 하니, 상감마마한테 가면 그 사유를 좀 여쭈어 봐 달라”
“알았다. 내가 가서 상감마마한테 그 말을 여쭈어 보고 죽지 아니하면 내가 너한테 이곳에 와서 일러주마”
그렇게 승낙을 하고 또 얼마만큼 가다가 또 쉬는데, 숲속에서 독사 한 마리가 나오더니 “당신이 어디를 가요?” “나는 이러 이러한 여섯 가지 죄를 지어 가지고 나는 상감마마한테 끌려간다”
그러니까 그 독사가 하는 말이 “내가 참 의심나는 것이 있는데, 그 훌륭한 상감마마한테 가거든 이 말을 좀 물어봐라.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내 굴속에서 아침에 나올 때에는 그렇게 기분이 좋고 참 날아갈 듯한, 그렇게가볍게 나오는데 하루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저녁때에 내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너무너무 몸이 커지고 무겁고 그래 가지고 그 굴속에 잘 안 들어가진다.
그러니 왜 아침에 나올 때에는 그렇게 나오는 데에 아무 불편이 없고 가볍고 좋은데, 해가 저물어 집으로 들어갈 때에는 그렇게 잘 안 들어가지고 아프고 무겁고 그런가? 그것을 좀 여쭈어 봐 달라”
“오냐, 알았다. 내가 죽지 않고 돌아오면 너한테 그것을 일러주마”(36분14초)
그래 가지고 상감마마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첫째, 소를 잃어버린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소 임자가 “저 놈이 내 소를 갖다 잃어버리고 갚지를 안 합니다. 그러니 그 소를 갖다가 찾아 주십시오”
상감마마가 그 단니기 보고 “네가 정말 남의 소를 갖다가 부려먹기만 하고 안 갚았느냐?”
“그런 것이 아니라 갖다가 일을 하고 그 사람 집 앞에다가 갖다가 놨는데, 주인이 보고 있길래 그냥 두고 왔습니다. 주인이 안 보았다면은 주인을 불러서 ‘여기 소를 갖다 놨습니다’하겠지만, 주인이 보았기 때문에 아는줄 알고 그냥 왔습니다”
그러니까 상감마마가 재판을 하기를 “너희들 두 사람 다 죄가 다 있다. 눈으로 봤으면 네 소를 갖다가 네가 받아서 외양간에다 갖다 넣을 일이지, 눈으로 봤으면서도 내버려두었으니 네 죄는 눈에가 있어. 그러니 네 눈을파 버려야겠다.
그리고 너는 남의 소를 갖다 썼으면 그 소를 갖다가 써서 참 고맙다고, 여기 소를 가져왔다고, 아! 말을 해야지 말을 안 했으니 네 혓바닥을 빼 버려야겠다” 이렇게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소 임자가 “아! 정말 상감마마 말씀을 들으니, 그렇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소 달란 말은 안 할 테니 제 눈 빼는 것, 저 사람 혀 빼는 형벌은 용서를 해 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18분37초~38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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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돌을 던져서 말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재판을 하게 되는데,
“네가 저 사람보고 그 말을 갖다가 못 도망가게 해 달라고 네가 부탁을 했으니, 너는 네 입으로 했으니 네 혀를 빼야겠고, 너는 왜 돌을 던졌냐? 그러니 네 팔을 갖다가 꺾어야겠다. 두 사람이 다 죄가 없지 못하니 두 사람 다 벌을 해야겠다”
그러니 그 말 임자가 “그 말을 물어 달라고 안 할 테니 저 혀 빼는 것과, 저 사람 팔목을 꺾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래서 또 화해를 했습니다.
또 강을 건너다가 끌을 빠트리는 재판을 하게 되는데 “네가 길을 묻고, 또 저 사람은 끌을 가지고 가면 당연히 손으로 들고 가야 할 텐데, 웬 끌을 입에다 물고 갔느냐? 그러니 너는 앞니 두 개를 빼야 하겠고, 너는 입으로 길을 물었으니 너에게도 허물이 있어. 그래서 두 사람 다 벌을 내려야겠다”
그러니까 끌 임자가 “내가 끌을 물어 달라고 하지 아니 할 테니 제 이빨 빼는 것과 저 사람 혀 빼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서 또 화해를 했습니다.
주막에서 애기를 깔고 앉아 가지고 터져 죽게 한 재판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너희 집은 주막집이 되어서 손님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왕래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웬 애기를 손님이 없는 방에다가 재울 것이지 어찌 손님이 앉는 평상에다가 애기를 뉘어 놓으며, 애기를 뉘어 놓으면 머리를 내놓고뉘어야지 어찌 이불로 푹 싸서 덮어놨느냐? 그랬으니 너한테도 허물이 있고.
또 앉을라면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 물건이 있으면 치워 놓고 앉아야지, 마구잽이 앉는 법이 어디가 있느냐? 니 두 사람이 다 허물이 있어.
그러니 애기는 이미 죽었으니 어떻게 물어줄 도리는 없고, 저 단니기를 애기 하나 날 때 까지 네 남편으로 맞이해라. 그러면은 애기를 물어주는 것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재판을 내렸습니다.
그 주막집 주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애기를 기어이 물어 달라고 하다가는 영락없이 저 아무것도 없는 건달 놈을 남편으로 맞아들이자니 혹을 떼려다 붙이게 됐다 그말이여.
그리고 가난할 뿐만 아니라 백수건달(白手乾達)을 남편으로 맞이했다가는 자기 신세가 오그라질 수 밖에는 없고, 그래서 “제발 애기 물어 달라고 안할 테니 저놈을 남편으로 삼으란 말씀을 거둬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그 재판이 화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담을 뛰어넘다가 늙은이를 죽이게 해서 자기 아비를 물어 달라고 한 사람에게는 “네 아비는 이미 죽었고, 그러니 아비를 어떻게 물어주겠느냐? 저 백수건달을 네 아비로 삼아라” 그렇게 재판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슬픈 데에, 아비를 죽인 웬수 놈을 아비로 모실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재판도 화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다른 사람들은—다 재판을 해서 자기 잃어 버린 물건도 찾고, 그놈을 갖다가 벌을 주려고 왔던 원고(原告)들은 다 가 버리고, 이 단니기만 상감마마 앞에 남아 있습니다. “너는 왜 안 가고 있는고?” “제가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오다가 꿩한테 들은 말을 여쭙고 “어째서 그 꿩이 그 나무에서 울면 그 소리가 잘 납니까?” 여쭈어 봤습니다. “그 나무 밑에는 황금으로 만든 솥이 묻혀 있느니라. 그래서 그 황금 솥에 울려서 그 소리가 아름답게 나느니라” 이렇게 일러 주셨고.
독사가 아침에 나갈 때에는 그렇게 몸이 가볍고 좋은데, 해가 저물어서 올 때는 어째서 그렇게 몸이 무겁고 그렇게 문턱을 넘기가 어렵습니까?” 그걸 물어보니까,
“아침에 나갈 때에는 저녁에 편안하니 쉬었기 때문에 몸에 독소가 다 풀리고, 피로가 풀려서 그렇게 몸이 가볍고.
하루 종일 낮에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까막까치가 좃고 괴롭히며 모든 짐승도 잡어먹으려고 그러고, 자기도 또 자기를 해꼬자한 것이 있으면 그놈과 싸우고 하느라고 진심(瞋心)을 많이 냈기 때문에 진심을 냄으로해서 혈압이 오르고 따라서 몸도 커지고, 몸도 무거워지고 거칠어져서 그래서 몸이 무겁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부드럽지 않고 무거운 것이다.
비단 그러한 독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도 마음을 편안히 하고 안정을 하면, 피도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정신도 맑아지려니와,
진심(瞋心)을 내고—크고 작은 일에 볼쏙볼쏙 진심을 내 싸면 혈압이 오르고 피가 탁해지고, 오장육부를 갖다가 메겡이로 치는 거와 같아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이래 가지고 병이 나는법이니라”
이렇게 일러 주시고 “네가 그 꿩이 울면 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답게 들린다는 그 나무 밑에 있는 황금으로 만든 솥은 응당 나의 소유려니와 네가 그 나무 밑을 파서 그 황금 솥이 나오거든, 그 솥을 파 가지고 그것으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집도 새로 짓고 해서 잘살아라” 그렇게 임금님이 일러 주셨습니다.
“그때에 그 단정왕이라고 하는 임금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석가모니 부처요, 그때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은 오늘 저 악독한 아내를 버리고, 딸과 사위를 버리고 늦게 출가했으나 도를 닦아 가지고 그렇게 아라한과를 증득한 저 빈두로타사가 바로 그 옛날에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인 것이다.
옛날에도 내가 단정왕으로 있을 때에 그 다섯 가지 재판을 잘 판결을 지혜롭게 내려줌으로 해서 저 사람을 살려 주었고, 황금 솥 있는 곳 그것까지 일러 주어서 저 사람을 도와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금생에도 저의 무서운고통을 덜어 주어 가지고 마침내 해탈도를 얻게 했느니라” 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사부대중, 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도 무량겁 인연으로 업연(業緣)으로 해서 크고 작은 천 가지, 만 가지 양상을 띤 많은 업연들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고통도 받고 또 은혜도 입고, 남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또 은혜를 베풀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남편, 아내, 아들, 딸, 며느리, 손자손녀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은인으로 상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웬수로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고의적으로 지은 업연은 고의적으로 받게 되고, 전혀 고의성이 없이 무의식중에 은혜를 입히거나 해를 입히면 또 무의식중에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법에는 제재(制裁)를 면했다 하더라도 인과 관계는 그것으로써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그 다섯 가지 죄로 큰 벌(罰)을 받아야 할 것을, 다행히 현명한 상감마마의 판단으로 해서 법의 벌은 면했지만, 전생에 지은 그 업으로 금생에 다시 그 빚쟁이들이 아내로 태어나고, 딸로 태어나고, 또 사위로 태어나 가지고, 기둥뿌리가 안 남을 정도로 샅샅이 훑어가고,
그 중의 제일 고약한 웬수는 아내가 되어 가지고 일생 동안을 한솥밥을 먹으면서, 한 지붕 밑에 살면서 날이면 날마다 오장을 뒤집어 놓고 바가지를 긁고 이렇게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업(業)이 두터운 사람도 다행히 부처님을 친견하고 출가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를 벗어나게 될 수 있다고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52분18초)
도본무언상적멸(道本無言常寂滅)한데 호호선양비본심(浩浩宣揚非本心)이라
나무~아미타불~
약지황엽경비전(若知黃葉竟非錢)하면 하용애애측이문(何用獃獃側耳聞)이리오
나무~아미타불~
도본무언상적멸(道本無言常寂滅)이여. 이 도(道)라고 하는 것은 본래 말이 없어. 항상 적멸(寂滅)할 뿐이다 그말이여.
호호선양비본심(浩浩宣揚非本心)이여.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을 그 팔만 법문(八萬法門)을 설하셨지마는 그것은 본심이 아니여.
설할 것이 있어서 설한 것이 아니여. 그러나 자비로써—중생이 고(苦)를 받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해서, 자비로써 설할 바 없는 곳을 향해서 그 많은 법을 설하신 것이다.
약지황엽(若知黃葉)이 경비전(竟非錢)이면,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팔만사천 방편 법문이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집어 주면서 ‘아, 돈 여기 있다! 돈 여기 있다!’하고, 그렇게 그 황엽(黃葉)이라고 하는 것이 돈이 아닌 줄을 알아버린다면,
하용애애측이문(何用獃獃側耳聞)이냐. 어찌 멍청하게 귀를 기울이고 들을 것이 있겠느냐.
동지를 맞이해서 구산 방장 스님의 열반이 결정적으로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참으로 무상한 줄을 깨닫고,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라’하는 살아 있는 법문으로 우리는 그 열반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동지, 낮과 밤이 제일 길고 짧은 이 기후의 변동을 통해서 우리의 생사 무대, 무상한 생사 무대에서, 무상한 생사 속에서 영원을 깨달으라.
지혜스럽게 관찰하면 일월성진과 산천초목과 생로병사와 성주괴공 속에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언제 어디서라도 위없는 대해탈 법문을 우리는 보고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태진 영가를 위해서 어느 불자가 대중공양을 올리니, 공양을 드시고 그 영가의 해탈이 되도록 작관(作觀)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어서 동지, 우리의 선망부모의 차례 법요식이 계속이 되겠습니다.(38분17초~58분5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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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외응중연수처적~’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일임(一任) ; 모두 다 맡김.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와 같다.
*정명(正命) ; 타고난 수명.
*과덕(果德 나무의 열매·해낼 과/좋은 품격·공덕 덕) ;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공덕.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박복(薄福 엷을·적을 박/복 복) ; 복이 별로 없음. 또는 팔자(八字,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가 사나움.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경책(警策 깨우칠 경, 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의 수호신.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〇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악업(惡業)을 짓지 않아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절서(節序 마디·철·절기 절/차례 서) ; 절기(節氣,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15일 내지 16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의 차례. 또는 차례로 바뀌는 절기.
*낙망(落望) ; 희망을 잃음.
*오만불손(傲慢不遜 거만할 오/거만할 만/아니 불/겸손할 손) ;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고 공손하지 못함.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양상(樣相 모양·형태·상태 양/서로·모양·바탕 상) ; 사물이나 현상의 모양이나 상태.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명합(冥合 어두울·깊숙할·그윽할 명/합할·들어맞을·일치함 합) ; 계합(契合).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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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두로타사 인연 이야기 ; [현우경(賢愚經), 제 11권] 제46 단니기품(檀膩羈品) 참고.
[참고] [현우경(賢愚經)] ‘단니기품’에 있는 단정왕의 또 다른 명판결.
〇見二母人,共諍一兒,詣王相言。時王明黠,以智權計,
그때에 어떤 두 어머니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왕에게 와서 제각기 제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왕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방편으로 그 두 여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아이는 하나인데 두 어머니가 서로 제 아이라고 주장하는구나. 너희들 둘은 각기 그 아기 한 팔씩 잡고 당겨라. 누구나 빼앗는 이가 바로 그 어머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이는 아들을 사람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기면서 아이가 상할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끌려가면서도 아이를 아껴 보호하려 차마 잡아당기지 못하였다.
왕은 그 진위(眞僞)를 판단하고, 그 힘을 다해 마구 잡아당긴 여자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실로 네 아들이 아니다. 억지로 남의 아이를 욕심낸 것이다. 지금 내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하라’
그는 곧 머리를 조아리고 왕에게 아뢰었다. ‘실로 거짓이었습니다. 남의 아이를 억지로 제 아이라 하였습니다. 대왕님의 존엄하신 판결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왕은 아이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각기 놓아 보내었다.
또 어떤 두 사람이 흰 천을 가지고 와서 서로 제 것이라 시끄러이 다투었다. 왕은 또 지혜로써 위와 같이 판결하였다. —[현우경] (몽산 관일 번역 | 두배의 느낌) p259~260 참고.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여우살이 ; ‘결혼 생활’을 말하는 옛 우리말. 여기서의 결혼 생활이란 남자측을 말하는게 아니고 여자측의 결혼 생활을 말한다.
*여우다 ; ‘결혼을 시키다’의 사투리.
*훑어가다 ; ①있는 대로 빡빡 뺏어가다. ②(사람이 어디를)어느 한쪽에서부터 더듬거나 살피어 가다.
*포악(暴惡 사나울 포/악할 악) ; 사납고 악독함.
*추수(秋收) ;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임. 가을걷이.
*손대 ; 일을 할 사람.
*고타마(Gotama) ; 인도의 크샤트리야 계급에 속하는 여러 성(姓)가운데 하나. 석가모니의 성(姓). 구담(瞿曇)이라 음역.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빈궁(貧窮 가난할 빈/빈곤 궁)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생사열뇌(生死熱惱) ; 생사의 매우 심한 괴로움.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아난존자(阿難尊者) : [범] Ananda 음을 따라 아난타(阿難陀)로 쓰고, 줄여서 아난(阿難) 또는 아란이라 하며, 뜻으로 번역하여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라고 하니, 「기쁘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사촌이며 조달(調達)의 친 동생이다。부처님 성도하시던 날 밤에 났고, 스물 다섯 살에 출가하여 25년 동안 부처님의 시자(侍者)로 있었으며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로 그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주관으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畢鉢羅窟 Vaibhara)에서 오백 성승(聖僧)이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데 아난존자는 그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에 금란가사(金襴袈裟)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읍니까?』『아난아』『예?』『문 밖에 찰간(刹竿)대를 꺾어 버려라! 』하였다。그러나 아난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맹정진 사흘 만에야 비로소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다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하여 경의 결집이 완성된 것이다。그 후 가섭존자로부터 법통(法統)을 받았다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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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건달(白手乾達) ;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건들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
*원고(原告) ;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의 사투리.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메겡이 ; ‘메(묵직하고 둥그스름한 나무토막이나 쇠토막에 자루를 박아 무엇을 치거나 박을 때 쓰는 방망이)’의 사투리.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게송) ‘도본무언상적멸~’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팔만(八萬) ; 팔만사천(八萬四千).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주요 내용]
(게송)외응중연수처적~ / 송광사 구산(九山) 방장 스님 열반 /무상한 허망한 경계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깨달라야 / 빈두로타사, 그리고 그의 무량겁 전생 때의 단니기 이야기[현우경(賢愚經)] / 단정왕(端正王)의 명판결 / (게송)도본무언상적멸~.
[주요 문구]
〇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일 년 절서와 기후, 춘하추동의 변동에 따라서—그것은 바로 유위법(有爲法)의 세계의 양상이지마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그러한 허망한 경계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리의 양상(樣相)을 보고도 분별(分別) 망상(妄想)을 일으켜서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수레바퀴 속에 말려들어 가는 것이고.
〇업(業)이 두터운 사람도 다행히 부처님을 친견하고 출가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를 벗어나게 될 수 있다고 하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〇동지를 맞이해서 구산 방장 스님의 열반이 결정적으로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참으로 무상한 줄을 깨닫고,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라’하는 살아 있는 법문으로 우리는 그 열반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동지, 이 기후의 변동을 통해서 우리의 무상한 생사 무대에서, 무상한 생사 속에서 영원을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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