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97)—86년 법보재 법회(86.03.16.음)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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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막축환성이(有緣莫逐還成易)로되 공인교타물주난(空忍敎他勿住難)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난이양두구참단(難易兩頭俱斬斷)인데 조정의구불상간(祖庭依舊不相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연막축환성이(有緣莫逐還成易)로되, 인연(因緣)이 있어. 있는 인연을 따라가지 아니한 것은 도리어 쉬워. 인연을 따라가지 아니한 것은 도리어 쉽거니와.
공인교타물주난(空忍敎他勿住難)이다. 공(空)한 이치, 공(空)한 도리에 머물르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더라.
수행(修行)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따라가지 아니한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거니와, 마음이 공(空)한 경지에 집착하지 않기는 오히려 어렵더라.
화두를 들고 정진(精進)을 해 가면서 망상(妄想)이 다 쉬어지고, 일체 경계(境界)가 다 자취가 없어서 이 몸뚱이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그 사실까지도 다 망각을 해 버려.
이 바로 경계와 나의 생각이 다 공(空)한 경계인데, 경지(境地)인데, 그 공(空)했을 때에 그 공(空)한 경지에 머무르지 않기가 참으로 더 어렵더라.
공(空)해 가지고 ‘아! 내가 편안하다, 너무너무 고요하구나, 너무너무 깨끗하구나,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구나’ 그런 공(空)한 경지에 다 집착을 하고 거기에서 지각심(知覺心)을 내고, 그래가지고 공부가 지지리 애써서 고비를 넘을라고 할 때에 찰나간에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되는데.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있는 인연을 따라가지도 말고, 또 공(空)한 경지에도 집착을 하지 아니해. 따라가지 아니한 것은 쉬웁고, 공(空)한 경지에 머무르지 않기는 어려운데, 이 어렵고 쉬운것, 이 두 가지를 다 끊어버리면(難易兩頭俱斬斷),
조정의구불상간(祖庭依舊不相干)이여. 우리 활구참선(活句參禪) 조사문중(祖師門中)에 있어서 예나 다름없이 상관을 하지 않더라, 상관을 하지 않는다. 쉬운 데에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어려운 데에도 떨어지지 아니한데, 그 두 쉬웁고 어려운 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정진(精進)을 해 들어가야 한다 그말이여.
오늘 병인년 3월 16일 법보재(法寶齋)를 맞이해서 원근 각지 방방곡곡에서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모이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보신 바와 같이 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 전강 조실 스님 영정과 오른쪽에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그리고 그 좌우에 9천이나 되는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위패(位牌)가 꽉 차게 모셔져 있습니다. 한 위패에 두 분 내지 세 분씩 모신 데도 있고 보면 수만의 영가(靈駕)가 여기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위패는 선망부모(先亡父母), 한 말로 말하면은 다생겁래(多生劫來) 선망부모지만 자상하게 말하면 부모님 · 조부모 · 증조부 · 고조부 그리고 남편 · 아내 또 먼저 간 아들딸 · 숙부 · 숙모 · 원근 친척,
심지어는 집안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서 그 개의 영혼을 천도(薦度)하기 위해서 모신 이도 있고, 이웃집 아이가 내 집에 놀러왔다가 비명에 다쳐서 죽은 그런 영가도 모셔져 있고, 그래서 모두 합해서 다 숙세(宿世)의 우리의 부모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비명에 간—차 사고로 죽은 이, 물에 빠져 죽은 이, 또 자살을 한 이, 병고에 죽은 이, 여러 가지 한을 다 풀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이승을 하직한 수많은 영가들이 꽉 법보단(法寶壇)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고 천년만년(千年萬年)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약을 먹고 몸을 잘 봉양을 한다 해도 불과 백세 미만에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됩니다. 조금 앞서가고 뒤서가고 한 차등만 있지, 다 한번 태어난 사람은 다 마침내는 가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한을 다 풀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우리는 태어났겠습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태어나지 아니했으면은 나을 것을 무엇하러 태어나 가지고 단 하루도 사는가 싶이, 산다 싶이 살아 보지도 못하고 몸부림치다가 마침내는 떠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고 싶어서 마음대로 오고, 가고 싶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와지기 때문에 온 것이고, 또 가지기 때문에 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한 부처님이나 보살들 그러한 성현은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그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으로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왔다갔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생사에 자유하지 못한 우리 중생은 세상없이도 마음대로 올 수도 없고,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기는 마음대로 못 와도 가기는 마음대로 하지 않는냐. 뭐 자살을 해 버리면 가는 것이지, 지가 안 가고 배기느냐’하지만, 그 자살을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옷 껍데기만 벗었지, 껍데기만 벗었지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짐승으로 태어나거나, 그 업(業)에 따라서 천상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가거나, 마냥 헌옷 벗어버리고 또 다른 옷 입고—노랑 옷 입었다가, 파랑 옷 입었다가, 검은 옷입었다, 흰옷 입었다, 옷만 갈아입었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괴롭다고 해서 자살을 하고 그런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금생에 고(苦)를 받을 업(業)을 지어 가지고 고(苦)를 받는데, 차라리 깨끗이 그 고(苦)를 받고 업(業)을, 빚을 갚아 버려야 다음 생에는 또 좋은 곳에 태어나지, 빚 안 갚고 억지로 자살했다고 해서 지어놓은 빚이 삭감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남의 빚 쓰고 도망친다고 해서 그 빚이 갚아지겠습니까? 점점 이자와 죄까지 다 가산이 되어서 더 많은 빚을 갚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미 짓고 받은 마당에는 철저하게 갚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괴로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면할 것이냐?
왜 우리는 생로병사의 구렁텅이를 면하지를 못하고 무량겁(無量劫)을 거치고 돌고 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느냐? 순전히 우리 자신이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렇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짓느냐? 우리의 마음!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생각,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무량겁을 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을 잘 잡드리를 못하고, 그 한 생각으로 온갖 업(業)을 지어 가지고, 받기는 무량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성냥 한 개비를 탁! 해서 그 불을 조심을 아니해 가지고 집을 다 태우고, 이웃집을 다 태우고, 온 도시도 다 태우고, 온 들판에 곡식을 다 태우고, 산에 붙으면은 온 그 숲을 다 태우듯이.
그 무서운 불이 최초에는 성냥불이나 담뱃불, 그 아주 참 조그마한 불로 인해서 그렇게 무서운 재난(災難)으로 번져 가는데, 우리 육도윤회(六途輪廻)도 원인은 우리의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한 생각 딱! 일어났을 때 그것을 탁! 돌이켜서 잡드리를 해 버리면 그 업을 짓지 않고 생사윤회도 벌어지지 아니할 텐데, 그 한 생각을 잡드리를 아니해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번지고 발전을 해서, 그것이 육체로 행동으로 옮겨져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쉬운 이치입니다. 한 생각을 잘못 먹어 가지고 그 무서운 고(苦)를 받는 사실에 우리가 눈을 뜬다면, 우리는 여태까지는 비록 무량겁을 생사윤회 속에서 왔지만 오늘 이 시간부터서는 자기의 무량겁 그 여행, 고해(苦海)의 그 여행을 갖다가 반대 방향으로, 해탈의 방향으로 돌이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인 것입니다.
오늘 이 법보재(法寶齋)! 법보단에 모셔진 이 만년위패(萬年位牌)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그 원한에 사무치는 영가들로 하여금 해탈도로 가게 하고, 동시에 살아있는우리들!
우리 살아있는 법보제자(法寶弟子)들로 하여금 영가가 되어서 이 위패단에 모셔지기 전에 살아 있을 때에 법(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해서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이 만년위패 법보단의 설립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열반하신 전강 선사(田岡禪師)께서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시고, 또 이렇게 법보단을 창설을 해서 살아있는 사람은 결제(結制)를 해서 참선을 하고 또 법문을 듣고 부지런히 닦아서 생사해탈하게 하고,
우리의 선망부모는 위패단에 이렇게 모시고 조석으로 축원해 드리고 명절에는 차례를 젓숩고, 또 이렇게 3월 16일이나 4월 15일 그 밖에 법회 때 천도를 해 드리고, 법회 때마다 돌아가신 분이나 산 사람이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듣고서 바르게 실천을 해서 생사해탈하게 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산 사람은 귀가 있어 법문을 듣지마는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들을 수가 있을 것인가?’ 혹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다맛 산 사람은 『몸뚱이가 있는 영가』고, 돌아가신 분은 『몸뚱이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이 생각 저 생각, 귀로 생각이 헷갈리고, 코로 생각이 헷갈리고, 입으로 헷갈리고, 몸뚱이로 헷갈리고, 이리저리 헷갈려서 말을 일심으로 듣기가 어렵지만, 돌아가신 영가는 이 몸뚱이가 없기 때문에 정신이 헷갈리지 아니해서 오히려 살아 계신 분보다 더 법문을 잘 듣는 것입니다.(처음~20분2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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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가 생존 시에 불법(佛法)을 잘 믿고 실천을 하신 그러한 영가는 말할 것도 없고, 생존 시에 불법을 믿지 아니하고, 불법이 무엇인 중도 모른다 할지라도 이 위패단에 모셔 놓으면 안 들을라야 안 들을 수가 없어.
언제든지 법회에 법문을 시작할 때에는 먼저 우리의 선망부모, 이 위패단에 모신 여러 영가들로 하여금 법문을 들으실 수 있도록 정식으로 초청을 해서 법문을 들으시도록 이렇게 법으로 그렇게 거량(擧揚)을 해서 하기 때문에 참 편안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법문을 들으시게 됩니다.
수없는 법문을 법회 때마다 듣고 또 듣고 하기 때문에 이 위패단에 모셔진 영가는 인자 ‘법문 귀’가 열려서 아무리 어려운 법문, 최상승 법문을 듣는다 해도 다 이해를 하게 되고,
그래서 생존 시에 가졌던 모든 그 원한심, 생존 시에 풀지 못한 어떠한 업연(業緣)의 원한이라 할지라도 다 봄눈 녹듯이 다 녹아져서, 업이 녹기 때문에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시는데 아무 장애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곳으로 떠나지 못한 것은 그 업의 쇠사슬에 걸려서 그래서 못 가는 것입니다.
산 사람이 몸뚱이나 발목을 갖다가 쇠줄로 묶어 놓으면 가고 싶은 데 가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것이나, 죽은 사람도 ‘업(業)의 쇠사슬’에 묶여 있으면—‘업의 쇠사슬’이라는 게 원한심, 미워하는 마음 또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 재산에 대해 집착심, 사람에 대한 집착심, 무엇이든지 집착하고 탐착하고 애착하는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쇠사슬입니다.
차라리 쇠로 만든 쇠사슬은 강한 쇠 자르는 기계로 자르면은 뚝딱 잘라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애착심 · 집착심 · 탐착심 이러한 쇠사슬은 자를라야 자를 길이 없어. 본인 스스로 업이 녹아져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산 사람은 법문을 듣고 스스로 마음에 감동이 되고 계합이 되어서 업이 스르르 녹아져 버리면은 거기서 집착이 툭툭 끊어지고 애착이 끊어지고 원한심이 끊어지고.
동시에 돌아가신 분도 그런 생전에 얽히고설킨 그런 탐착 · 애착 · 집착 그런 것이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다 녹아져 버린다면 그 영가가 천상이면 천상, 극락이면 극락, 또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으면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실 것은 너무나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용화사 법보전에 모셔진 이 수만의 영가들은 다행히 신심 있는 또 효심 있는 자손과 유족들을 가지셨기 때문에 이렇게 참 좋은 도량에 봉안이 되어서 이렇게 법문을 듣고 업을 소멸해서 좋은 곳으로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또 그 영가를 여기에다 모신 그 인연으로 또 그 유족들이 불법을 믿게 된 경우도 수없이 많습니다.
원한에 사무쳐서 돌아가시고, 비명(非命)에 가신 그 영가가 있으신 분은 집안에 우환이 끓고, 되는 일이 없고 자꾸 그러니까 ‘용화사 법보전에 모시면은 좋다’ 그 말을 듣고 불교도 믿지 않고 심지어는 다른 종교를 믿는 분까지도 여기다가 위패를 모시고서, 그 위패를 모신 그 인연으로 차츰차츰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승(殊勝) 인연이라 하는 것이여.
세속의 인연은 좋은 인연이나, 악한 인연이나 모두가 마침내는 생사의 쇠사슬 밖에는 안 되는 것인데 이 법으로 맺어진 인연! 이 법의 인연은 이것이 수승한 인연이라,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피차가 업이 소멸이 되고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속의 인연은 좋은 인연으로 얽혀져도 마침내는 그것이 원수로 변하는 것입니다. 악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참 좋은 것인데 그 좋은 인연이 결국은 악연으로 변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의 게송에도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인데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다’
다겁생래(多劫生來)로 원수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나느니. 절대로 친하지 아니한 데에서는 원수가 생길 까닭이 없어. 아지 못하는데 무슨 원수가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반드시 서로 알고 지내고 친하게 지내다가 결국은 거기에서 원수가 되는 것인데,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여’ 그렇고 보면 차라리 사람을 아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게 되는 데에서 원수가 생기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불법은,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선인(善因), 친한 인연도 해탈로 가는 도반이고, 설사 본의 아니게 맺어졌던 악한 인연도 결국은 이 정법문중에 들어오면 해탈 인연으로 승화가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최상승 법문을 듣고, 자꾸 수행을 해 나가면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을 이뻐하고 무엇을 친하고 무엇을 원수처럼 상대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나를 도와주는 사람에게도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마음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나를 욕하고 비방하고 미워하는 그러한 사람, 그러한 일을 당하더라도 미워한 그러한 거기에서 탁! 생각을 돌이켜서 인연의 그 뿌리를 관찰을 하고서 화두를 들고 ‘참나’로 돌아오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을 보고도 나는 배워 나가고, 악한 사람을 보고도 나는 거기서 법의 이익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그렇게 상대하고, 모든 일을 그렇게 상대해 나갈 때에 우리는 일취월장, 날로 달로 자꾸 승화되고 향상되어 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능생소소생능(因能生所所生能)하고 능소구망생불생(能所俱忘生不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노방흡건경해수(老蚌吸乾鯨海水)하니 산호지상월삼경(珊瑚枝上月三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능생소소생능(因能生所所生能)이요. 능(能)으로 인해서 소(所)가 생겨나고, 소(所)로 인해서 능(能)이 생겨난다. 능(能)이라 하는 것은 주체, 주관이고, 소(所)라고 하는 것은 객체, 객관을 말한 것입니다.
내가 ‘내’라고 한 이 능(能), 주체심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모든 바깥 경계가 인식되어 지는 것이고, 또 객관 세계—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그것으로 인해서 주체심(主體心)이 동(動)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만나면, 경계를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거든.
그 식(識)이 없다면 경계를 봐도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안 해. 식(識)이 없으면 경계가 있다 해도 일어날 것이 없고, 경계(境界)가 없다면은 식(識)이 있어도 발생할 계기를 갖지를 못해. 그래서 육식(六識)과 육진(六塵)은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여.
능소구망생불생(能所俱忘生不生)이여. 그래서 능(能)과 소(所)가 함께 없어져 버리면, 주체와 객체가 동시에 공(空)해 버리면 생(生)하되 생(生)할 것이 없어.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여. 뻑뻑이 머무른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항상 이 주관과 객체가 서로 어울리고 서로 얽히고 서로 뒤범벅이 되어서, 이놈이 어린애들 싸우는데 한 놈이 위에서 누르고 밑에 눌렸던 놈이 또 위로 뒤집어지고 그래가지고 위에서 누르다가 또 밑으로 깔리고 하듯이, 그 작업으로 인해서 무량겁(無量劫)토록 생사고해(生死苦海)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인데.
노방흡건경해수(老蚌吸乾鯨海水)여. 큰 조개! 조개가 있어서 온 바닷물을 한 입에 다 들어마셔 버려. 그래가지고 바닷물이 바짝 마르도록 바닷물을 다 들어마셔 버리면.
산호지상월삼경(珊瑚枝上月三更)이여. 바다 밑에 그 아름답고 찬란한 산호 가지가 삼경(三更) 달에 빛이 나더라.
여기서 이 노방(老蚌)이라고 하는 게, 늙은 조개가 얼마나 크면 그 한없이 깊은 그 넓고 깊은 그 바닷물을 쫘악 다 들어마셔 버릴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는 이 크고도 큰 늙은 조개, 인자 조개 새끼 쬐그만 것이 아니라 몇억 겁을 갖다가 커서 커 가지고 한번 쭉 들어마셔 버리면 바닷물이 그 조개 속으로 쏴악 다 들어가 버릴 만큼 그러한 늙은 조개가 어디에 있느냐?
비단 여기서는 바닷물을 둘러 마신다고 했지만 바닷물뿐만이 아니라 이 시방(十方)에 가득차 있는 무한대(無限大)한 이 허공, 해와 달과 저 끝없는 하늘나라에 있는 수많은 별까지라도 한목 다 둘러 삼킬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조개, 고조 할아버지보다도 참 더 무서운 조개가 우리 이 몸뚱이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조개는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히지도 않고,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으면서 우리의 콧구녁으로도 들락거리고, 우리의 눈으로도 드나들고, 우리의 귀로도 드나들고, 팔만사천 모공으로 드나들고 항상 우리의 눈앞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라 그말이여.
그놈이 형투리가 있는 놈 같으면, 모양과 빛깔이 있는 놈 같으면 제 아무리 큰들 한도가 있는 것이지만, 이놈은 빛깔과 모양이 없는 것이라 이것이 ‘크다’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어.
크고 작은 것을 떠나. 크기로 말하면은 우주를 다 둘러 삼키고도 한이 없고, 작기로 말하면은 바늘 꽂을 땅도 없는 것이니 그래서 이것이 신기하고도 묘하고 소소영령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도 왔다갔다하고, 무량겁 이전에 생겨난 때가 없이, 무량겁 미래에도 없어질 때가 없어. 그러한 물건을 우리는 이 똥주머니 속에, 이 가죽푸대 속에 항상 그놈이 살아 있다 그말이여.
몸뚱이를 부모한테 받아날 때에 그놈도 같이 왔고, 이 몸뚱이가 죽어도 그놈은 없어지는 법이 없이 다시 또 새 옷을 갈아입어. 생사(生死)에 걸림이 없어, 그놈은.
밤낮 옷을 갈아입지마는 그놈은 생할 것도 없고 죽을 것도 없는 것이니 그놈을 깨달아야지, 그놈을 깨닫는 것이 불법(佛法)인데 그놈을 찾는 것이 참선(參禪)이고, 그것을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그 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해탈이요, 그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거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는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생사윤회를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
위패에다가 이름을 써서 벽에다 거는 것이야 어디다 못 걸겠습니까? 한국에 수천 개 사찰이 있으니 사찰에 법당에 아무데라도 걸 수가 있고, 새로 절을 지어서 걸 수도 있고, 여러분 가정에다도 뭐 얼마든지 걸 수가 있어.
이름을 써서 거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나 또는 그렇게 위패로 모셔진 영가나 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로 우리의 그 늙은 조개를 갖다가 바로 깨달아야되거든. 바로 깨닫는 참선 법문을 듣고, 참선 수행을 해야만 이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20분24초~41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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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이 법보단을 창설을 하시고, 조실 스님 자신께서 먼저 부모님의 위패를 여기다 모셨습니다.
1번, 만년위패 제 1번이 조실 스님의 어머님, 아버님의 위패고, 조실 스님 아버님의 제삿날이 바로 3월 16일인데 그날로 법보재일을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부모님으로 인해서 조실 스님이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셨고, 그 부모님이 이 몸뚱이를 낳아주셨기에 출가를 하셔서 정법을 만나서 참선을 해 가지고 견성을 하시게 되었어.
그러니 깨닫고 보니 부처님과 불보살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은혜도 한이 없지만 그 이치를 깨닫도록 해 주신 이 몸뚱이를 낳아주신 그 부모님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에, 그 부모님을 여기 만년위패 1번에 모시고 부모님의 돌아가신 날짜로 법보재일을 지정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 인연으로, 또 조실 스님의 부모님의 그 인연으로 해서 산승(山僧)도 작고하신 부모의 위패를 여기다 모셨고, 또 여러분들께서도 부모님과 조상과 자매질손, 제형숙백, 원근친척의 인연 있는 모든 영가를 여기다가 모셔서 이 정법문중에 있어서, 법의 집안에 있어서 한 가족의 인연을 이렇게 맺게 되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의 문중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세세생생에 다시는 우리는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한 사람도 떨어진 일이 없이 부처님 회상(會上)에 다시 만나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해 마칠 때까지 우리는 항상 형제자매요, 도반이요, 한 가족으로서 우리는 나날이 향상되어 가고, 다달이 도업(道業)이 나아가서 결정코 생사해탈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지광영인등현(共知光影因燈現)이요 함위파도장수흥(咸謂波濤仗水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등멸수침파영진(燈滅水沈波影盡)하면 정감문외긱오등(政堪門外喫烏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빛과 그림자는 등불로 인해서 나타나. 누구든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등불이 켜짐으로써 그 등불로 인해서 빛이 나고, 그 빛으로 인해서 모든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여.
함위파도장수흥(咸謂波濤仗水興)이다. 파도는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은 물로 인해서 일어났다. 물이 없으면은 파도가 어떻게 일어날 것이여. 물결은 반드시 물 때문에 물이 있기 때문에 파도가 일어났다 한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알 것입니다.
등멸수침파영진(燈滅水沈波影盡)이여. 등불만 꺼져버리면 그림자도 동시에 없어질 것이고, 물만 없애 버리면 파도는 동시에 없어질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 주관이 공(空)해 버리면은 외부 경계, 객체도 따라서 없어지고. 그래서 객체니 주관이니 한 그러한 것을 둘 다 잊어버려야 한다.
늙은 조개가 온 바닷물을 둘러 마시듯이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는 바로 우리의 주인공, 마음자리 그놈 하나를 바로 깨달아 버림으로써 능소(能所)가 거기에서 끊어지고, 생사가 거기에서 끊어져 버려.
바다 밑에 그 곱고 아름다운 산호가 달빛에 찬란히 빛나듯이, 생사가 변해서 바로 열반이요, 생사고해가 바로 극락정토로 변하는 것입니다.
등불이 꺼지고 물이 없어져 버리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파도도 없어져서, 그렇게 되어야 문 밖의 오등(烏藤)채를 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오등(烏藤)이라 하는 것은 채, 나물인데, 한약으로도 쓰이는 나물인데 맛이 쓰고 독은 없지만 기운이 허약하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그것을 소화를 잘 시키지를 못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 맛이 썩 좋고 향그러운 나물이지만 그것을 능히 먹을라면은 그 맛이 있는 쌉쓰름 하면서도 맛이 있는 그 오등채를 능히 먹고 소화를 시킬라면 첫째, 기력이 허약하지 아니하고 비위가 튼튼해야 그 오등나물을 먹을 수가 있다.
오늘 법보재를 맞이해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모든 인연 있는 영가를 여기에 모시게 된 법보단의 설립 의의와 이 법보단을 모신 우리의 법보제자들이 어떻게 닦아가야 하느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법보제자가 전국에 수만 명인데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수천 명인 것 같습니다마는 전부 모이신다면은 이 도량에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컨대 법보단에 모신 영가들이 떠억 그 신령스러운 눈으로 이 법당 안과 밖을 관찰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의 유족들이 오늘 왔나 안 왔나? 아들과 딸 · 손주 · 손녀 · 며느리 · 아내와 남편 그 유족들이 오늘 이 법보재에 참석하시면 그 영가들도 얼마나 흐뭇하고 참, 이 기분이 좋으시겠습니까.
다른 영가들의 유족들은 모두가 참석을 해서 경건하게 동참을 하고 향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는데, 자기의 유족은 아무리 찾아봐도 오지를 않으면 그 영가가 얼마나 섭섭하시겠느냐 그말이여.
그 영가를 어쨌든지 마음을 편안하게 즐겁게 해 드릴라면 이런 법보재라든지, 또 백중이라든지 그러한 대(大)천도재가 있을 때에는 꼭 참석을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참석을 하시나 안 하시나 이 영가가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당신이 살아있을 때 못다한 참선 공부, 불법을 철저히 믿고 실천하는 그 공부, 그것을 당신의 유족들이 열심히 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유족들이 법회 때 빠지지 아니하고 참석을 해서 법문을 잘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온갖 잘못된 고집과 잘못된 성격과 잘못된 행실을 고쳐서 자꾸 향상되어 가면서... 따라서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함으로써 자꾸 향상되어 가고 승화되어 가.
그렇게 해서 한 가정이 화평하고 모든 사람이 화목하고, 이렇게 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면서 이미 천상이나 극락세계에 산 사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되어 진다면 그것이 영가로서 가장 바랜 바고 기뻐하는 바고, 영가가 마음 놓고 해탈길로 떠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법보재자 여러분, 앞으로 법회 때 꼭 빠지지 말고 나오시고, 다음해에 법보재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이 도량에서 만나게 되기를 기약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이 도아일체심(度我一切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하용일체법(何用一切法)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이 도아일체심(度我一切心)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 그 일체법(一切法)을 설하신 것은 나의 모든 마음을 제도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 내 마음을 제도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모든 법을 설하셨는데.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내게 모든 마음이 없는데, 내 마음이 공(空)해서 무심(無心)해 버렸는데,
하용일체법(何用一切法)이리요. 일체법(一切法)을 어디에 쓸 것이냐.(41분3초~57분1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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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유연막축환성이~’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莫逐有緣 勿住空忍’ p60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이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문중(祖師門中)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조사선(祖師禪)을 수행하는 집안.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〇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emokko.tistory.com/231)’ 참고.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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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業]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게송) ‘多生怨債起於親 莫若多生不識人’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한국불교전서 제11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인능생소구생능~’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境由能境 能由境能’ p110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육경(六境)과 같음.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진(塵)이라 함.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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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게송) ‘공지광영인등현~’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2014) ‘能隨境滅 境逐能沈’ p107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게송) ‘불설일체법~’ ; [완릉록(宛陵錄)] 황벽(黃檗) 선사 말씀.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주요 내용]
(게송)유연막축환성이~ / 만년위패 법보단은 영가와 살아있는 우리들의 생사해탈을 위해 설립 / 집착, 탐착, 애착하는 마음으로 무서운 업(業)의 쇠사슬에 묶여 있다 /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게송)인능생소소생능~ / 참선법문을 듣고 수행해야 생사문제를 해결.
전강선사와 산승의 부모님도 만년위패에 모셨다. 우리는 법의 집안에 있어서 한 가족 / (게송)공지광영인등현~ / (게송)불설일체법~.
[주요 문구]
〇열반하신 전강 선사(田岡禪師)께서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시고, 또 이렇게 법보단을 창설을 해서 살아있는 사람은 결제(結制)를 해서 참선을 하고 또 법문을 듣고 부지런히 닦아서 생사해탈하게 하고,
우리의 선망부모는 위패단에 이렇게 모시고 조석으로 축원해 드리고 명절에는 차례를 젓숩고, 또 이렇게 3월 16일이나 4월 15일 그 밖에 법회 때 천도를 해 드리고, 법회 때마다 돌아가신 분이나 산 사람이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듣고서 바르게 실천을 해서 생사해탈하게 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〇몸뚱이를 부모한테 받아날 때에 그놈도 같이 왔고, 이 몸뚱이가 죽어도 그놈은 없어지는 법이 없이 다시 또 새 옷을 갈아입어. 생사(生死)에 걸림이 없어, 그놈은.
밤낮 옷을 갈아입지마는 그놈은 생할 것도 없고 죽을 것도 없는 것이니 그놈을 깨달아야지, 그놈을 깨닫는 것이 불법(佛法)인데 그놈을 찾는 것이 참선(參禪)이고, 그것을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그 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해탈이요, 그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거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는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생사윤회를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
〇산 사람은 법문을 듣고 스스로 마음에 감동이 되고 계합이 되어서 업이 스르르 녹아져 버리면은 거기서 집착이 툭툭 끊어지고 애착이 끊어지고 원한심이 끊어지고.
동시에 돌아가신 분도 그런 생전에 얽히고설킨 그런 탐착 · 애착 · 집착 그런 것이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다 녹아져 버린다면 그 영가가 천상이면 천상, 극락이면 극락, 또 이 사바세계에 인연이 있으면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실 것은 너무나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〇전강 조실 스님의 부모님을 법보단 만년위패에 모신 그 인연으로 해서 산승(山僧)도 작고하신 부모의 위패를 여기다 모셨고, 또 여러분들께서도 부모님과 조상과 자매질손, 제형숙백, 원근친척의 인연 있는 모든 영가를 여기다가 모셔서 이 정법문중에 있어서, 법의 집안에 있어서 한 가족의 인연을 이렇게 맺게 되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의 문중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세세생생에 다시는 우리는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한 사람도 떨어진 일이 없이 부처님 회상(會上)에 다시 만나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해 마칠 때까지 우리는 항상 형제자매요, 도반이요, 한 가족으로서 우리는 나날이 향상되어 가고, 다달이 도업(道業)이 나아가서 결정코 생사해탈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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