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600/(501~525)2019. 7. 9. 09:2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521)—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 (81분)

(1/4) 약 21분. (2/4) 약 20분. (3/4) 약 21분. (4/4) 약 19분.

(1/4)----------------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미후심연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睱)한데  염염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춘하추동 사서(四序)가 돌고 돌아서 더웠다가 다시 추워졌다 그말이여.

미후심연육화촌(獼猴深戀六華村)이여. 원숭이는 깊이 육화촌(六華村)을 그리워하더라.

육화촌은—원숭이란 놈은 여름, 가을에 산에는 온갖 맛있는 과일이 모다 익을 때 그 맛있는 과일이 익었을 그때의 일을 그렇게 그리워하더라 그말이여. 날씨가 추워져 가지고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이 그렇게 흔치 않으니까.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睱)여. 귀로 소리를 듣고 눈으로 모든 색을 보는데, 생각 생각이 그 육화촌에 맛있는 과일 그 생각만을 하느라고 아무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래 가지고 행여나 이리 가면 맛있는 것이 있을까, 이리 가면 먹음직한 것이 있을까 하고.


염염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여. 생각 생각이 죽음의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춘하추동 사시절(四時節)이라는 게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추워져. 소한 · 대한을 지나면은 다시 또 입춘 · 우수가 되어서 계속해서 춘하추동 춘하추동 끝없이 이게 돌아가는데.

'잔나비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 그 말은 우리의 심의식, 우리의 마음을 갖다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우리의 심식(心識)을 잔나비에다가 비유해서 한 말인데,


우리의 심식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창(六窓)을 통해서 귀로는 좋은 소리를 듣기를 바래고, 눈으로는 곱고 이쁜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코로는 좋은 향내를 맡고자 하고, 혀로는 맛있는 맛을 추구하고, 우리의 몸으로는 따뜻하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그 좋은 것을 항상 찾는다 그말이여.

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모든 사람, 모든 일, 모든 것들을 그렇게 추구하는 것을 잔나비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고 비유해서 읊은 시(詩)다 그말이여.


우리 중생들은 항상 잔나비가 육화촌을 그리워하듯이, 우리는 육근(六根)을 통해서 끝없이 자기의 탐진치(貪瞋痴)와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욕락(五欲樂)이라 하는 것은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여.

재산이란 게 부(富)를 말하는 것이고, 색(色)이라 하는 것은 남녀 간에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식(食)은 맛있는 음식, 명(名)에는 명예와 권리, 수(壽)는 수명인데, 안락한 것을 추구한다 그말이여.

우리가 인간이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뭐 끝없이 밖으로부터 무엇을 추구하는데 대충 분리를 해 보면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오욕락이다 그말이여.


그 오욕락을 구하기 위해서 그 어려서부터서 참 열심히 공부를 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가정교사를 들이고 해서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오욕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런 거고.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오욕락을 획득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다른 것이 없다 그 말이여.


물론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국가다, 사회다, 세계평화다 이렇게 좋은 말을 하지만 오욕락을 벗어나지를 못한 거여, 그게 다.

정말 오욕락을 벗어나서 인류를 생각하고 중생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벌써 다른 거여, 그게. 얼굴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어떠한 일을 당했을 때의 처신이 다 다르게 되어 있는 거여.


탐진치와 오욕락에 탁! 뿌리가 깊이 박혀 가지고, 오욕락과 탐진치에다 뿌리를 박고 아무리 입으로 거룩한 소리를 해봤자 중대한 일을 당하면 다 사리사욕에 다 떨어져버리고 마는 거여.


그래 놓으니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사법이나 정치나 회사나 일체가, 그 오욕락을 추구하는 사리사욕과 탐진치 삼독(三毒) 때문에 형무소가 필요하고 사정(司正)이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온 국가가 이렇게 복잡하고, 온 세계가 싸움을 끝없는 전쟁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오늘은 천구백구십사 년 1월 2일, 첫째 일요법회 날인데 양력으로는 새해가 되었습니다. 용화사에서는 구정을 쇠지마는 일반적으로는 금년 새해 1월 초이튿날인데, 금년도 최초의 일요법회 날이라.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만나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렵고, 그것을 실다웁게 닦기도 어렵다'고 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금년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참 어려운 그러한 과제를 우리는 안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치를 하는 분이나, 또는 사업을 하는 분이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모든 국민이 정말 어려운 그런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잘 해 나가기 위한 뚜렷한 방책도 없습니다. 우리 한 나라 안에서만의 일이라면 또 모르는데 온 세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일 년을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로 머리를 쓰고 연구를 하고 해서 중지(衆智)를 모아가지고 국책을 세워 나가겠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가 나름대로 다 머리를 써야겠지만 문제는 생각할수록 어렵고 복잡할 것입니다.



우리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럴 때에 어떻게 해 가야 하느냐?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또 우주법계가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고 천 가지 만 가지 얼크러졌어도 그것이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여. 그 원인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그 원인을 알지 않고서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여. 자기 개인 일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렇고, 사회나 모든 단체의 일도 그렇습니다. 원인을 모르고서는 세상 없이도 근복적으로 해결은 안 되는 거여.


가깝게 생각해서, 사람마다 살아가다 보면 병이 나고, 병이 깊어지면은 죽게 되는데 생로병사를 면틀 못하는데, 그 병 하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도 뭐 어디가 아프다 하면 약국에 가서 ‘어디가 아픕니다’해 가지고 약 사다 먹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보통 조그만한 병 같으면 몰라도 정말 깊은 병은 원인을 알아가지고 근본 치료를 해야지,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어디가 아프다’하면 금방 뭣 사먹고 지멋대로 약국에 가서 되나깨나 사다 먹어 갖고는 임시는 조금 통증이 완화될는지는 모르지만 병의 뿌리는 다스릴 수가 없어.

점점 세월이 가면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처음에는 한 번 약이 듣다가 두 번, 세 번, 네 번 먹으면 차츰차츰 약성(藥性)이 발휘가 잘 안되는 거여. 그것은 근본 치료를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건데.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믿어지는데, ‘모든 것이 나의 마음에서 이것이 나온 것이다’한 말은 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좀 믿어지지 않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가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거여.


내 한 몸에 관계되는 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와 직접 간접으로 전혀 관계없는 모든 상황도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우선 그렇게 믿어야 돼.


저 달도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서 그 달이 거가 있어 가지고 이렇게 지구를 돌면서 태양을 이렇게 돌고 있는데, 어찌 그 달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느냐? ‘그건 좀 이치가 당치않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마는.

저 달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저 태양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이 지구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지구에 태어난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과 모든 식물도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거여.


왜 그러냐?

여러분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면, 가까운 장래에 또는 먼 장래에 언젠가는 『과연 그렇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고, 스스로 의심 없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휘황찬 밝은 달이 떠 있는데, 그 달은 사실은 아무도 주인이 없어. 아무도 주인이 없어!

각자, 저것은 소유권이 누구에게도 없지마는 보고 느낀 사람 것이여, 그게. 그 달을 보고 기뻐한 사람은 자기에게는 기쁜 달의 소유자가 되는 거고, 그 달을 보고 슬퍼하는 사람은 슬픈 달로써 자기가 그 달을 소유하고 있는 거여.


태양 뜨면은 환히 밝아지는데, 해가 떠서 좋은 사람은 밝은 태양으로써의 소유자가 되는 거고, 도둑놈이나 밤에 나쁜짓을 한 사람은 해가 뜨는 것을 대단히 싫어해. 그 사람은 밝은 해의 소유자가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왜 해도 하나고, 달도 하나인데, 보는 사람마다 다 그 달이나 해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어찌 해와 달 뿐이겠습니까?

곱게 핀 한 송이 꽃도 자기가 마음이 기쁨이 있는 사람이 그 꽃을 보면 그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 아름다운 꽃을 보고 노래가 나오고 시가 나오고 춤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우선 어떠한 불상사(不祥事)가 있어서 슬픔에 잠기면 그 꽃이 조금도 곱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아니할 것이고, 오히려 그 꽃을 봄으로써 더 눈물이 나올 수도 있고. 잔뜩 성이 나 가지고 마음이 진심(瞋心)으로 가득차면 그 좋은 꽃도 막 짓밟아버리고, 그 꽃을 화병에다 담아놨거나 화분에다 담아놨으면 그것을 바닥에다가 메다쳐서 부셔버릴 것입니다.

이건 하나의 가까운 예들이지만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집니다.(처음~20분35초)




(2/4)----------------


법적으로 소유권을 자기 앞으로 등기 이전만을 해야 자기 것이 아니여. 아무리 자기 앞에 고층 건물이 몇십 개가 있고, 땅이 수백억만 평을 자기 앞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자기 소유라고 허잘 것이 없어.


자기 앞으로 하나도 소유권이 없지만 마음에 탐욕심이 없고 마음이 넓고 넓어서, 무소유를 소유로 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산이 전부 자기의 소유가 되는 거고, 부는 바람도 자기 소유가 되는 것이고, 산천초목과 모든 바위들도 다 자기 소유가 되는 거고,


자기가 이뻐하는 자식만 자기 자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 유치원으로부터 국민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모든 학생들도 다 자기 자식이 되는 것이여.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는 거여.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지마는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넉넉한 거여.


자기 앞으로 법적으로 얼마만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자고, 그것 때문에 근심이 끊어지지를 않고, 그것 때문에 가족 형제끼리 싸움질을 하고, 재판질을 하고 하는 그러한 소유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아니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새해를 맞이해서 「밖에서 무엇을 구할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우리 몸 안에서 그것을 계발을 하는 사업에 우리의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투자를 하자」 이런 말씀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니 뭣이니 해 가지고 아무리 우리가 개인적으로 근심 걱정을 해 봤자 아무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지 온 세상이 그럴수록에 우리는 우리의 자신 속에 영원한 보물을 계발을 하는 사업에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우리 정법을 믿는 학자(學者)만이라도, 정법을 믿는 불자(佛子)만이라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그래 가지고 자기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차츰차츰 그러한 사업에 그러한 행렬에 가담하게 되면 정말 우루과이라운드도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수년 전에 외국 담배가 들어왔습니다. 들어와서 조금 뜻이 있는 사람은 잘 안 사 피웠고, 정 속아지 없는 사람들이 그걸 몇 사람씩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피더니 세월이 가면서 점점 외국 담배를 피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고, 외국 담배를 파는 가게가 장사가 잘 되어간다고 그럽니다.

담배 그것 안 필수록 좋은 것이지만 부득이해서 핀다면 국산 담배도 다 필만 하고 외국 담배 못지않게 좋은 담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외국 담배를 피워가지고 우리나라의 이익에 손상이 되는 것을 걱정하질 않는 사람, 외국 쌀이 싸고도 맛이 좋은 쌀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좀 눈치를 보다가 나중에는 값이 싸고 맛이 좋은데 그걸 안 먹고 국산 우리나라 쌀만 먹을려고 하는 사람은 차츰차츰 줄어져 갈 것입니다.


속담에 『아주머니 떡도 커야 사 먹는다』 그런 말이 있는데, 나는 이 자리에 계신 법보가족(法寶家族) 여러분은 나라를 생각하고, 우리의 농가(農家)를 생각해서 좀 비싸더라도 우리나라 쌀을 사 잡술는지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은 값이 싸고 맛도 나쁘지 아니하면 너도나도 다투어서 외국 쌀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아무도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농가에서도 맛도 좋고 값이 싼 그런 쌀을 경작하는 길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맛도 별로 좋지 않고 값이 4배나 비싼데 아무리 사먹으라고 해도 그것은 막을 길이 없어. 나라에서도 막을 길이 없고.


그러나 의류라든지 모든 것이 값도 비싸고 물건도 그렇게 썩 좋지 못한데 우리나라 물건에다가 가짜 외국 상표만 붙여 놓으면 그것이 비싸게 날개 돋친 듯 팔려가거든.

그러니 중생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허영심에 꽉 차 있는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물건이 우리나라 물건보다 훨씬 좋고 값도 싸면 더욱 좋지만, 값은 좀 비싸더라도 물건이 훨씬 좋다면 그것을 사지 말라고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내나 물건이 우리나라 물건 상품도 아니고 우리나라 물건에다가 상표만 외국 상표만 붙이면 그것이 비싸게 팔린다면 그것은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나는 외제를 쓰고 있다'고 하는 헛된 허영심, 남한테 뽐내고 싶어 하는 허영심, 삐뚤어진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여.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고치고, 정말 우리나라가 농사 지어봤자 아무도 우리나라 사람이 안 사먹는다면 그 농산물을 어디다 대고 팔겠습니까? 그러니 농사 안 짓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국내에서는 쌀이 생산이 안 되고 전부 미국이나 동남아나 중국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쌀만 사먹게 됩니다. 우선은 쌉니다마는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안 짓게 되면 그 쌀값이 점점 올라갑니다. 해마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올라가서 우리나라 쌀값보다 더 비싸게 값이 올라간다 해도 우리는 그 쌀을 안 사먹고는 못배깁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농사를 안 지으니까. 그래 가지고 전쟁이 나거나 어떠한 그럴 때에는 전 국가적으로 난리가 나고, 완전히 그 식량 때문에 외국에 노예가 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농촌은 피폐가 되어 가지고 농토는 완전히 폐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국민이 '우루과이라운드는 안 된다. 쌀은 절대로 수입해서는 안 된다'고 모다 아우성을 치지만, 이것은 누구의 힘으로도, 세계의 대세 때문에 우리는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마는 그것은 결국은 틀 수밖에는 없게 되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농촌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도회지 사람도 농촌을 살리는 마음으로 도회지 사람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이 대단히 어려운 길이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우선 우리는 활구참선 최상승법을 의지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몸속에서 영원한 보물을 계발을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생활을 해 나가고 그렇게 살아가면 탐욕심이 없어지고, 허영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담박하고 청정해지면 그러한 문제들도 차츰차츰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하면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연화근발어니리(蓮花根發淤泥裏)하니  각소거진불염진(卻笑居塵不染塵)하리라

나무~아미타불~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하면  연생식득본래신(緣生識得本來身)하리라.

우리의 마음자리를 몰록 깨달라서 우리의 몸속에 있는 영원히 써도 써도 끝이 없는 보물을 계발을 하면, 우리가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생로병사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끝없는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고 있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연화근발어니리(蓮花根發淤泥裏)한데, 그 연꽃을 보라 그말이여. 그 연꽃이 그렇게 이파리도 때가 묻지 않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그 꽃도 그렇게 곱고 아름다운데, 대관절 그 연꽃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차츰차츰 그 밑에로 줄기로 내려가 보면 더러운 흙탕물 흐리 속에다가 뿌리를 박고 있다 그말이여.


저 높은 산간에 깨끗한 석간수(石間水)에는 연꽃이 살들 못해.

연꽃은 저 들녘으로 내려가서 하수도 물이 내려가고 더러운 시커먼 흐리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말이여. 그 뿌리를 그렇게 더러운 데다가 박고 있으면서도 그 잎과 꽃은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參禪)을 해서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다’고 말씀을 하셔.


‘아무개야!’ 그러면 ‘예’하고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추우면 더운 옷을 입을 줄 알고, 눈으로 모든 색상을 볼 줄 알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린애로부터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있건 없건,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그럴 줄 안다 그거거든.

그놈이 온갖 성도 낼 줄도 알고, 탐심도 낼 줄 알고, 희로애락 모든 의식이 거기서 나오는데, 그럴 줄 아는 그놈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눈으로 꽃을 보고 '저게 곱다'하는데, 꽃을 보는 놈이 눈이 아니야. 눈으로 보는 것이지, 눈이 보는 것이 아니거든. 눈이 아무리 있어도 다 보는 것이 아니여.

속에서 눈으로 보는 놈이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지, 눈 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다른 일에, 몹시 골똘하게 다른 일을 생각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을 때에는 앞에 사람이 왔다갔다해도 하나도 안 보이는 거여. 뭐라고 말을 하고 갔어도 그 소리도 잘 안 들리는 거여.

다른 일에 골몰하고 있을 때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을 잘 모르는 거여.


대답도 다 해놓고는 나중에 와서 말하면 ‘나 언제 그런 말 했냐?’고 완전히 아주 뚝 잡아떼는데, 들을 때에 듣는 놈이 딴 짓을 하고 있을 때에는 들어도 들리지 않어.

봐도 분명 보는 그놈이 딱! 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지, 생각은 딴 데에 있고 그냥 눈은 뜨고 있어도 하나도 안 보이는 거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어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니여. 뒤죽박죽으로 하루를 사는 거여.

봐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들어도 제대로 듣는 것이 아니고, 먹어도 제대로 먹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을 해도 제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여.


마치 뱀, 여우, 악어, 새.. 그런 여러 가지 그런 다섯 마리의 짐승을 묶어서 한군데에다 묶어 놓은 거와 같아서, 이놈은 이리 갈라고, 저놈은 하늘로 날아갈라고, 한 놈은 땅구녁으로 들어갈라고, 한 놈은 물로 들어갈려고 그러고, 한 놈은 산으로 도망갈려고 하듯이 뒤죽박죽이거든.

우리는 그러한 상태에서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그것을 인생을 바로 살았다고 할 수가 없고,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

물론 그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많고 훌륭한 인격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말인데.


「그 모든 사람들이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주인공(主人公)은 부처님이나 우리나 다 똑같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어.(20분37초~40분57초)




(3/4)----------------


그런데 똑같은 우리의 본래 주인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엉망으로 살아가고 있다.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살아가고 있어. 오욕락(五慾樂)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깨끗한 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어.


그러나 그런 더러운 곳에 때 묻지 않는 연꽃처럼, 우리 자신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

무엇을 눈으로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어도 그 듣는 소리 쪽으로 따라가지 말고, 듣자마자 즉각 ‘이뭣고?’로 돌아오라.


할려고 마음을 먹어도 경계(境界)가 닥치면은 금방 깜박 잊어버리고 그리 따라가는데, 그런다고 해서 중단을 하지 말고, 그런다고 해서 짜증도 내지 말고 포기를 해서는 안 돼.

또 챙기고 또 챙기고 자꾸 챙기다보면, 차츰차츰 그것이 되풀이해서 똑같은 일을 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은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질 때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새해가 돌아오면 토정비결을 본다든지, 어디 또 만신이나 점쟁이한테 가서 신수도 보고 해서 금년 운수가 어떤가? 뭔 일이 좀 잘될란가?

답답해서 가시는 분도 있고, 누가 '족집게 점쟁이다, 잘 맞춘다' 하니까 호기심으로 따라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좋다'고 하면은 좋아가지고 복채도 많이 주고 돌아오지만, ‘대주(大住)가 금년에 대단히 안 좋다'고.. 굿을 몇 번을 해야 하고, 무슨 몇십만 원 짜리 부적(符籍)을 사서 몸에 지녀야 하고. 이거 참 겁나는 소리를 하면 그 말을 듣고는 속이 편틀 못하다 그말이여.


아무리 여기서는 이런 말을 들어도 집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금방 생각을 내신다 말이여. 이건 지식이 있건 없건 여자분은 여간해서 그런 데에 속지 않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남편한테 해롭고 자식들한테 해롭다’하는 데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 나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그것이 별로 그렇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거 왜 그러냐?


점쟁이는 혹 지내간 일은 더러 맞추는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못 맞춰. 점쟁이한테는 삿된 귀신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삿된 귀신이 돌아다니면서 봐서 일러주면은 지내간 일은 잘 맞추는데, 귀신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잡귀는 모르거든.


부처님처럼 삼명육통(三明六通)이 나서 육신통(六神通)으로 보신다면은 과거 현재 미래를 손바닥 안에 보듯 환히 아시지만, 점쟁이는 육신통이 난 게 아니여.

잡신(雜神)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잡신의 힘으로 지내간 일 뭘 좀 아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 가지고 미래 일까지는 다 혹 맞추기도 하고 안 맞추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말을 믿고 우리가 중대한 일을 추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거 정신병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거와 같아서 그놈이 언제 어디다 끌박을지 모르거든.


우리는 아무리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슬픈 일도 만나고, 괴로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한테도 3불능(三不能)이 있어. 3능(三能)과 3불능이 부처님한테 있다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능한 것은 무엇이냐?


일체 상(相)이 다 공(空)해서 그래 가지고 만법의 지혜를 이루시는 것이 부처님이 능하는 일이여.

두 번째는 모든 중생의 성품을 환히 다 알고, 억겁의 모든 일을 다 맥힘이 없이 다 아시는 거여.

셋째는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가 있어. 이것이 부처님의 세가지 능하신 것인데,


그러한 삼명육통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하신 그러한 부처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당신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시면서 지으신 정업(定業)은 멸(滅)할 수가 없어.

그 모든 것을 환히 다 아시고 육신통이 자재(自在)하시고 팔해탈이 자재하신데, 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하실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정업을 멸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어. 셋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혀.

이 세상에 한 중생도 없이 다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가 완전히 다 없어지도록 하실 수는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한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신통력(神通力)으로서도 부처님의 고국인 가비라(迦毗羅) 왕국이 멸망할 때 그걸 번연히 알고 계셨고 보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으신 것이여.

과거의 삼천불, 현겁 삼천불, 미래 삼천불 삼천(三千)의 부처님이 계셔도 중생계는 다하지 못하는 거여.


부처님의 자비는 인연이 있고 없고 간에 다 똑같이 베풀어지지만, 인연(因緣) 있는 중생이라야 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부처님과 맺음으로 해서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듣게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믿게 되고, 믿고서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도 그런 삼불능(三不能)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처님께서 능(能)치 못한 3가지도 우리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보다도 수수 백만 가지가 능치 못한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우리가 과거에 지은 그런 정업(定業)을 우리가 점쟁이 말 듣고 그것이 면(免)해 질 수가 없어.

방법은, 이미 우리가 지어 가지고 받는 것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것이고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받아 넘기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여.



공자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국을 이렇게 유행을 하시는데, 관리한테 붙잡혀 가지고 큰 난을 당했어.

그것은 양호(陽虎)라고 하는 악인이 있었는데, 공자님이 그 양호란 놈하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 가지고 양호인줄 알고 체포를 당해 가지고 참 억울한 어려운 일을 당하다가 간신히 풀려났는데, 그 제자가 묻기를 "성현(聖賢)도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 제자들은,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을 숭배하듯이 공자님을 그렇게 숭배하는데, '어찌 공자님과 같은 성현이 이런 참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의심이 나서 여쭈어 본 건데.


성현이라고 해서 어려운 일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의 그 마음은 다를지언정—중생이나 범부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은 당황하고 겁을 내고, 마음이 동요가 되어서 겁에 질려서 자기의 마음을 지닐 수가 없어. 그런데 성현은 당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당할 때의 그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거여.


범부(凡夫) 같으면 당신의 고국이 그렇게 망할 때 신통력으로 그 적군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때려 부수고 죽이고 물리치고 혹 그런 마음을 냈을런지도 모르는데, 부처님은 환히 알고 그 광경을 다 보시면서도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았어.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그 고국의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 가지고 발우대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을 시켰어.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가라앉은 다음에 가서 바리때 가지러 가니까 속에서 다 죽어 갖고 있어.

과거에 죽을 업(業)을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걸 받게 될 때에는 피할 길이 없어.


목련존자도 5백 생을 결국은 타살(打殺)을 당했는데 과거에 업연(業緣)으로 그랬는데,

마지막 5백 생도 결국은 당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외도(外道)들이 자꾸 불법(佛法)이 흥왕을 하니까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을 끊어야만 되겠다’ 그래 가지고 목련존자가 숲속에서 터억 이렇게 좌선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수백 개의 돌팔매질을 해 가지고 결국은 몸이 부서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목련존자의 같은 고향에서 같이 출가한 도반인 사리불(舍利佛)존자가 『왜 그대는 신통이 제일인데 왜 신통술을 어디다 두고 그렇게 맞었냐?』 그러니까,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렇게 경전에 쓰여 있는 데도 있고, 『내가 불자(佛子)로서 인과법(因果法)을 아는 사람이 피해서 되겠느냐』 또 그렇게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씀이고.


점쟁이 말 듣고 재앙을 면할려고 해서는 안 돼.

그런데 점쟁이가 가끔은 절에 가서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치성(致誠)을 드리라고 그렇게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와서 절에 와서 천도재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께 시주(施主)도 하고, 치성도 드리고, 또 조상의 천도재(薦度齋)도 지내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천도재를 지내 가지고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 그런 경우도 나는 많이 봤습니다. 많이 보기는 했으나,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인 것입니다.

받되 정법(正法)으로써 마음이 딱! 기둥이 서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바른 마음으로, 바른 정신으로, 신심과 원력으로, 지혜와 인내로써 그런 일을 잘 처리해 나가고 그 일을 소화를 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 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각본을 쓴 작가가 따로 있고, 그 각본에 의해서 감독이나 연출이 그것을 연출을 해 가지고 배우나 탤런트를 잘 선정을 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연극을 하게 하는데, 그것은 배우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각본에 의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길 밖에는 없는 것이고 배우, 지 맘대로 이리저리 못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무량겁이라고 해도 좋지만, 가깝게 금생 일생 이렇게 사는 것만을 우선 생각을 해 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어렸을 때를 살고, 어떻게 유치원으로 국민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을 다녀 가지고,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했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고 어떤 자식을 낳냐? 그리고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느냐?


생로병사, 일생만을 생각해 본다 하면 그것이 무슨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제석천왕(帝釋天王)이나, 또 어떤 뭐 염라대왕이나, 어떠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켜 갖고 되는 일이 아니여.


전부 우리 자신이 그러한 각본을 썼어. 각본을 써 가지고 자기가 그 각본에 의해서 지금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각본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여.

하나도 부모를 원망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선생을 원망할 것도 없고, 사회를 원망할 것도 없고, 국가를 원망할 것도 없어. 부부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어.


도둑질하다가 감옥을 가도 검사나 판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거여. 지가 그 죄를 지어 가지고 판결을 받아 가지고 징역을 사는데, 감옥에 들어가서 내나 자기를 잡아넣은 형사를 '내가 나가기만 하면은 그놈의 형사 가만 안 놔둔다'고 이를 갈아붙이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것이냐.

자기를 무기 징역을 청구를 하고, 무기(無期)를 갖다가 판결을 내리는 검사와 판사를 원망하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거냐 그말이여.


가끔 전혀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징역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자기를 억울하게 그 징역을 살게 하는 형사나 검사나 판사를 정말 중생으로서는 참 원망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억울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과거가 없는 금생(今生)은 없어. 전부가 금생에는, 금생에 우리가 지은 업과 과거에 지은 업이 다 연관성 있게 우리의 모든 것이 전개되어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40분57초~61분54초)




(4/4)----------------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은 거기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야단들이여.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은 작가한테 막 편지질을 하고 전화질 하고 방송국에다 그래가지고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렇게 하두 전국에서 들어오면은 처음에 작가의 생각은 죽일라고 했다가도 하도 그래싸면 그거 바꾼다고 그래요. 근데 그까짓 TV에 나오는 거 죽이면 어떻고 살리면 어떻고 별 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가지고 금생에 불행하게 이렇게 불행한 일만 당하게 되었다 하면, 그 각본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썼기 때문에 금생에 각본을 달리 쓸 수는 있다 그말이여.

달리 써 가지고 어쨌든지 좋은 방향으로 요렇게 틀으면 좀 힘은 들랑가 모르지만, 자기가 쓴 각본을 자기가 방향을 바꿔 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

과거에 지은 업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지만, 금생에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꿔 쓰면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이게 인과, 인과의 법칙을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활용을 해 나가야 한다.

인과법을 잘못 믿으면 완전히 숙명론 · 운명론에 떨어져 가지고 그러고, 그렇지 않으면 까딱하면 인과법을 믿지 않고, 발무인과(撥無因果) '에잇!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고.


못된 짓을 하면 응당 잘 못살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극악무도하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고 정직하고 착하고 참 그런데 사사건건이 불운(不運)을 당하고 못살고 억울하게 그렇게 일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그런 걸 보면 '그것 인과법 소용 없다'고, 안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


금생에 것만 갖고 우리의 앞이 그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지은 것까지 합해져서 되기 때문에 과거에 워낙 좋은 복을 지어놓으면 금생에 못된 짓을 해도 우선 괜찮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금생에 나쁜 짓 한 건 또 언젠가는 꼭 받게 되지만, 우선 과거에 지어놓은 것이 워낙 많으면 그것이 금생에 좀 나쁜 짓 해도 그럭저럭 잘사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그것 믿을 것이 못되는 거고.

금생(今生)에 착하고 부지런히 해도 못 당할 일 많이 당하는 것은 전생(前生)에 지은 나쁜 악업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좀 잘해도 별로 좋은 꼴을 못 보는 거여.


그래서 인과의 법칙에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바로 현실적으로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바로 이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가지고 다음 생, 저 다음 생, 몇 생을 건너뛰어 가지고 가서 받는 수가 있어.

현생보(現生報) · 순생보(順生報) · 순후보(順後報), 이것이 세 가지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지 안 받는 것은 아니여, 언젠가는 다 받게 되는데.


그렇게 지어서 받는 것은 면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우리의 마음으로 지어서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이라,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이요, 물거품 같은 것이다』 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범부는 모든 것이 환(幻)인데 환인 줄을 모르고서 환(幻)의 업(業)에 집착을 해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는 거고.


성문(聲聞)은 모든 환(幻)을 그것을 굉장히 두려워 해. 생로병사를 굉장히 두려워 해가지고 어떻게 하면—죽음이 무서우니까, '죽음을 안 당할라면은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태어나기만 하면 늙어서 병들어서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니까, 죽음이 없을라면은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멸진정은 영원히 아주 정(定)에 들어가 버린 거여. 그러면 태어나지를 않기 때문에 죽음도 없다. 이게 소승(小乘)의 생각이다.


보살(菩薩)은 이 세상의 모든 경계는 환(幻)의 경계여. 본래 없는 것이고 본래 남[生]이 없는 거여.

눈병 든 사람에게 이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우리는 눈동자를 옆에서 요렇게 눌루고 보면 해도 둘로 보이고, 달도 둘로 보이고, 뭔 물건도 둘로 보입니다. 여러분 댁에 가서 시험을 해 보세요.

그냥 보면 하나인데, 눈동자를 요렇게 눌러가지고 압력을 가해 가지고 보면 삐뚤어지게 보이고 둘로 보인다 말이여.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허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 난 사람은 뭣이 이상한 것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불이 켜진 것처럼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는 꽃이 안 보이거든.


눈병이 나기 전에도 없었던 거고, 눈병이 난 뒤에도 허공에는 꽃이 없는 거고.

그러다가 눈병이 나은 뒤에도—허공의 꽃은 원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눈병 난 사람은 보이니까 그 눈병 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할거라 그말이여.

눈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공의 꽃이 원래)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은—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거,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은 명상(名相)이여 그게. 명상(名相).


명상(名相)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여 그것이.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어린애들은 크레용이나 무슨 연필을 가지면 벼람박이고 어디고 마구잽이 막 그려 젖히거든.

철없는 중생이 우리의 마음으로 일체 경계(境界)를 당해서 온갖 것을 정말 미친 사람이 어떠한 연극에 각본을 쓰듯이 종잡을 수 없이 쓰거든.

죽일라고 했다가 살리고, 살릴라고 했다가 죽이고, 그저 도둑놈을 갖다가 착한 사람을 만들고, 착한 사람을 어떤 때는 또 도둑놈으로 만들고 해 가지고는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끝이 없는 각본을 써 가는데.


우리 중생이 하는 짓이 바로 미친 아주 정신병자가 연극 각본을 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우리의 무량겁을 그렇게 그런 각본을 써 왔고.


앞으로 정법(正法)을 믿고 바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계발하고 그놈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간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모르는 거여. 그래 가지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해 갈 거다 그말이여.

조금 착한 짓 한 사람은 좋은 곳에 태어날 거고, 악한 짓 한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고, 천당에 좋은 곳으로 가봤자 받을 만큼 복을 받으면 또 떨어지는 거고, 삼악도에 떨어지면 그 받는 기한이 길고 길어서 언제 나올 기약 있을런지 모르나, 나와 봤자 또 마찬가지여. 언제 무슨 짓을 또 하냐.


그래서 무슨 소리를 듣든지 '이뭣고?', 무슨 것을 눈으로 보든지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를 하시라 그말이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등창을 앓거나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이라 하지마는 실지로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퍼. 무서운 걸 보면 무섭고, 괴로운 것을 보면 괴롭고, 아플 때는 정말 꿈에도 아퍼요.


아프다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누가 와서 꿈을 깨거나 잠을 깨주면 눈을 뜨고 보면, 깨고 나서도 한참 아퍼. 아퍼도 정신을 차려서 보면 진짜는 안 아픈 거여 그게.

정말 눈 딱 떠서 정신만 차려버리면 그렇게 아프던 종기가 깨끗이 낫어 버리는 거여. 몰록 낫어, 몰록.


세속의 사전에는 ‘몰록’이란 말이 있는가 어쩐가 모르는데, 이 불가(佛家)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이래서 ‘몰록 깨닫고 몰록 닦는다’는 것이 전기 스위치를 탁! 올리면 찰나(刹那) 간에 탁 켜지고 탁 내리면은 찰나 간에 깜깜해지듯이, 그 꿈에 앓던 몸의 종기가 잠을 깨자마자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방편(方便), 점차(漸次)가 없어. 점차(漸次)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여.

차츰차츰 요렇게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 간에 탁!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이궁어시(理窮於是)다. 모든 이치가 여기에서 다해 버린 거여.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고 차츰차츰 깨달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뭣고?'를 해 가면,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계속 의심(疑心)으로 참구(參究)를 해 가면,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그 의심이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우리의 속도 의심으로 가득차고, 온 세계의 무엇을 보나 듣거나 산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꽃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이뭣고?’를 ‘이뭣고?’들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고 한 게 아니라, 들고 놓고 할 것이 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온 법계(法界)에 가득차게 되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을 때는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지게 되는 거여.


그래 가지고 의단(疑團)을 갖다가 통 밑구녁 빠지듯이 의단이 탁! 터지는 거여. 그러면서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여.


비록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30년 만에 깨달은 사람, 마지막 죽을 때까지 못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나,

다른 모든 것은 하다가 안 되면 그것은 실패고 소용이 없는데, 이 공부는 끝까지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도 깨닫지 못했어도 그것이 헛일이 아니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놓은 것은 고대로 그 공덕이 거기에 다 있어서 금방 새로운 몸을 받아가지고,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젊어서 정법을 만나게 되고, 그 믿어지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젊어서 툭 3일 만에 깨닫고, 언하(言下)에 깨닫고, 한철 만에 깨닫는 것이 그 까닭이 있는 거여.

전생에 그렇게 하다가 몸을 바꿔났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툭 깨닫게 되는 거여.


그래서 ‘하! 내가 이렇게 아무리 할라고 해도 안 된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도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믿음이 적기 때문에 그렇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해야 혀.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하고, 허다가 말다가 하고, 그래 갖고는 언제 그것이 될 거냐 그말이여.


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믿은 데에서 열심히 하면은 거기서 또 분심(憤心)이 나고, 분심 있는 곳에 신심이 더욱 깊어지고 해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여.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는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이것이 삼요소(三要素)인데, 이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새해에 우리의 법보가족은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어떠한 종류의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써 단속해 나가기를 우리는 1994년의 첫 번째 법회날을 맞이해서 다 같이 다짐을 합시다.(61분55초~1시간20분30초)(끝)




----------------(1/4)


*(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심식(心識) ; ①영혼. ②마음. ③모든 차별적 인식. ④심의식(心意識). ⑤단순히 식(識)을 말함.

*육창일원(六窓一猿) ; 여섯 창문이 있는 집에 한 마리의 원숭이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이리저리 여섯 개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다는 비유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육창(六窓)에 비유하고 심식(心識)을 한 마리의 원숭이에 비유한 것.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대증요법(對症療法) ; 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 열이 높을 때에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리게 하는 따위가 이에 속한다.

*되나깨나 ; '도나캐나(하찮은 아무나)'의 사투리.

*약성(藥性) ; 약재나 약품의 성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당치않다 ; (무엇이)이치에 어그러져 합당하지 아니하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4)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법보가족(法寶家族)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게송) '돈오심원개보장(頓悟心源開寶藏)~' ; 無異元來禪師廣錄 第十九 에서 '示余愼爾居士'.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흐리 ; 수렁의 뜻을 가지고 있다. 늘 물이 고여있어 발을 디뎠을 때 푹푹 빠지는 논의 흙이나 방죽의 바닥에 오랫동안 쌓인 무른 흙을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석간수(石間水) ; 바위틈에서 나는 샘물.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골똘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온정신을 쏟아 딴생각이 없다.

*골몰(汨沒)하다 ; (사람이 한 가지 일에)정신을 다 기울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3/4)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이뭣고?(이 무엇인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대주(大主) ; ①무당이, 굿하는 집이나 단골로 다니는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②여자가 자기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육신통(六神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⑥누진통(漏盡通)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잡신(雜神) ; 온갖 잡스러운 귀신.

*삼능(三能)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정업(定業) ;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果報).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석가족의 멸망 ; BC 6세기에 코살라국(Kosals國) 사위성(舍衛城)의 왕인 파사닉왕(波斯匿王)이 석가족 사람과의 혼인을 청해 왔는데, 석가족은 파사닉왕이 낮은 신분 출신의 왕이어서, 왕의 청을 거만하게 생각하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나, 파사닉왕의 세력이 워낙 강했으므로 왕족 하녀의 딸을 석가족의 처녀라 속여 파사닉왕에게 보냈다.

이 하녀의 딸과 파사닉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유리(琉璃)태자가 8세 때 어머니의 나라인 석가족의 카필라국(Kapila國)을 방문했는데, 석가족의 사람들은 유리태자를 무시하고 ‘종년의 자식’이라 하며 천대하고 모욕을 주었다. 이에 태자는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 마음 먹었다.


한 신하의 계략으로 파사닉왕이 죽고 유리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지난날 석가족에게 당한 모욕을 보복하고자 출병을 하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유리왕(琉璃王)과 그 군사들이 카필라국으로 가는 길목에 말라 죽은 고목 밑에 앉아 계셨다.

유리왕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앉지 않으시고, 말라 죽은 고목 아래 계십니까?’하고 여쭙자 ‘친족의 그늘은 나무의 잎과 같이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니, 유리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고 군대를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석가족에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카필라국으로 향했다.


이런 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는 석가족을 구하고자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저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의 군대를 타방 세계로 던져버리거나, 카필라국을 허공에다 옮겨 놓거나, 카필라국 위에 쇠그물을 덮을 수 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전생 인연도 타방 세계에 던져 버릴 수 있겠느냐, 전생 인연도 허공에 옮겨 둘 수 있겠는가, 쇠그물로 전생 인연을 덮을 수 있겠는가’ 되물으시고, ‘지금 석가족들의 전생 인연이 이미 다 익었으므로, 이제는 그 갚음을 받아야 한다.’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저 허공을 이 땅으로 만들고, 또 이 땅을 허공으로 만들려 해도, 그것은 다 본디 인연에 매었나니, 그 인연은 영원히 안 썩느니라.”

목련존자가 그 석가족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시키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지나고 나서 바리때 속을 보니 다 죽어 있었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진군하다 돌아오고 진군하다 돌아왔으나 네 번째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리하여 유리왕과 그 군대는 석가족을 잔인하게 짓밟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사위성(舍衛城)으로 되돌아 갔다.


부처님은 비구들과 함께 유리왕과 그 군대가 휩쓸고간 불태워진 카필라국을 보시고 곧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현상은 덧없는 것이니, 한 번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네. 나지 않으면 곧 죽지 않나니, 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씁하셨다. “지금 저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부터 일주일 뒤에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과연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일주일 뒤에 강가에서 밤에 비바람이 몰아쳐 물에 떠내려가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또 하늘 불이 내려와 궁전을 모두 불살랐다.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유리왕과 그 군사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악(惡)을 행하되 못내 심한 것, 그것은 모두 몸과 입의 행(行)이다. 지금의 몸으로도 고통 받지만, 타고 날 목숨도 짧을 것이다. 만일 집에서 살게 될 때는 그 집은 모두 불에 살리고, 만일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부처님께서는 석가족과 유리왕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 이 왕사성에 한 어촌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는데, 그 촌에 큰 못이 있었고 또 거기는 물고기가 많았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그 못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물고기중 하나가 `우리는 전에 이 사람들에게 아무 허물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와서 우리를 잡아먹는다. 다음에 원수를 갚자.`하였다.

그 촌에는 어떤 어린애가 있었는데,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또 목숨을 죽이지도 않았으나 물고기들이 죽는 것을 보고 매우 재밌어하였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그 왕사성의 사람들이 석가족이고, 그 물고기중 하나가 지금의 저 유리왕이요, 그 때에 죽는 물고기를 보고 웃던 어린애는 바로 나이니라.

그 물고기를 잡아먹은 과보로 무수한 겁을 걸쳐 지옥에 떨어졌고 또 지금에 그 갚음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때에 물고기 죽는 것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아파 돌로 치는 것 같고 또 머리에 수미산을 인 것처럼 무겁다.

이것이 이른바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잘 단속하고 범행을 닦는 이를 생각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도록 하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번연하다 ;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분명하다.

*삼천불(三千佛) ; 과거세(過去世)의 천불(千佛), 현재세(現在世)의 천불, 미래세(未來世)의 천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목건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입적함.


*목련존자의 과거 업연(業緣) ; 전생에 목건련은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를 모시고 나이가 들도록 결혼도 미룬 채 살고 있었는데, 부모가 성화를 하는 바람에 그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시집온 여인은 처음에는 별 불평없이 정성스럽게 앞을 못 보는 시부모를 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에게 괴로움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때 남편이 며칠간 지방에 일을 보러 간 사이에 며느리는 두 노인을 학대하고 일부러 대소변을 가져다 방 벽에 발라 두었다. 이렇게 해 놓고 돌아온 남편에게 자기는 이제 노망 든 시부모를 더이상 모시지 못하겠으니 이혼을 하든지 부모를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대들었다.

이에 남편은 대소변으로 더럽혀진 부모님 방을 보고, 아내의 말만 믿고 부모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튿날 부모님께 바람 쐴 겸 놀러가자 하고 숲속에 들어가서, 도둑떼를 만나듯이 위장하여 비명을 지르니까, 부모는 놀라면서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 ‘너라도 어서 도망가라’고 하였다.

아들은 못 이긴 척하면서 도망치는 인기척을 내다가 이번에는 자기가 도적 행세를 하여 부모를 살해했다. 그러자 부모들은 자식이 무사히 도망친 것만을 다행으로 여길 뿐 자기들이 자식 손에 죽는 줄은 몰랐다.


이 악업으로 그는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 때 그는 미래 세상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자기는 그 부처님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공덕 바라밀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의 태어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외도들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라한을 이룬 성자였기 때문에 중생처럼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적멸(寂滅)을 실현했던 것이다.

이같이 목련존자의 전생과 그에 따른 과보를 말씀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을 읊으시었다.

“허물이 없고 악하지 않은 자에게, 무기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다음 10가지 중 하나에 떨어지리라.

①심한 고통을 당함. ②아주 가난해짐. ③몸의 상해. ④중병이나 정신이상을 일으킴. ⑤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김. ⑥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함. ⑦가족이 생명을 잃음. ⑧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됨. ⑨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탐. @그런 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리.”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의 가르침(道). 또는 그 신봉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자, 사리불은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치성(致誠 이룰 치/정성 성) ;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천도재(薦度齋)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각본(脚本) ; ①[연극][영화] 연극이나 영화, 방송극을 만들기 위해 배우의 대사나 동작, 장면 순서, 무대 장치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글. ②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사전에 꾸민 계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석천(帝釋天) ; 제(帝)는 산스크리트어 indra의 번역, 석(釋)은 산스크리트어 śakra의 음사. 신(神)들의 제왕인 샤크라〔釋〕라는 뜻. 천(天)은 신(神)을 뜻함.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천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고 함.




----------------(4/4)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숙명론(宿命論) ;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견해나 학설. 같은말-운명론(運命論).

*발무인과(撥無因果) ;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것. 연기(緣起)의 근거를 부정하는 삿된 견해이며, 모든 것은 단멸하여 상속되지 않는다는 단견(斷見)이다.

[참고] 『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 12권(小參五)에서.

若撥有歸無 杳杳冥冥 墮在豁達空撥無因果處 則永劫出他地獄三塗因果不得 若眞實徹證 到眞淨明妙實際理地 則四聖六凡 三世諸佛 天下祖師 有情無情 悉於是中流出顯現


만일 유(有)를 없애고 무(無)로 돌아가 겹겹이 어둡고 아득하여 아무것도 없는 공적한 경계에 떨어져 인과의 도리를 부정한다면 영원토록 저 삼악도로부터 벗어날 인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실하게 철저히 깨달아 참되고 청정하며 밝고 미묘한 실제 도리의 경지에 이른다면 사성과 육범, 삼세의 부처님과 천하의 조사, 그리고 유정과 무정이 모두 이 안에서 나타날 것이다.

*현생보(現生報) ; 현세(現世)에서 업(業)을 지어 현세에서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순현보(順現報). 현보(現報).

*순생보(順生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인과응보를 이른다. 생보(生報), 순차보(順次報).

*순후보(順後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삼생(三生) 이후에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후보(後報).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①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② 성문승(聲聞乘)의 준말.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 · 각유정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육경(六境) ; (=육진六塵=육적六賊)[불교]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공(空) ; ①모든 존재는 여러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항상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자성이 없음(無自性).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공은 전혀 없다는 무(無)나, 결국 사라져 덧없다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또 공(空)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 · 본질이 아니라, 존재의 무실체성 · 무자성 등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표이다.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것은 공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참된 공[眞空]이 아니라 무기공(無記空) · 편공(偏空) · 악취공(惡取空)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의 병[空病]에 대한 약으로 '공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차별과 분별로써 인식된 대상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 가치나 감정이 부여된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이 조작한 허구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은 허구라는 뜻.

③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 ; '몰록(단박·문뜩·갑자기·곧바로) 깨닫고 몰록 닦는다' 오(悟)와 수(修)를 한순간에 모두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도서(都序) 卷下之一』 (종밀 宗密)

頓悟頓修者 此說上上智根性 樂欲俱勝 一聞千悟 得大總持 一念不生 前後際斷 <斷障如斬一綟絲 萬條頓斷 修德如染一綟絲 萬條頓色也>

돈오돈수자는 상상지(上上智)의 사람을 말함이니 그 근성과 바라는 바가 함께 수승하여 하나를 듣고도 천 가지를 깨달아 대총지를 얻으며, 한 생각도 생함이 없고 전후가 모두 끊어진다 <장애를 끊음은 한 타래의 실을 끊음에 모든 실줄이 단박 절단되는 것과 같고 덕을 닦음에는 한 타래의 실을 물들임에 모든 실줄이 몰록 물들여 지는 것과 같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국사)

雖曰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後修之機也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근기가 들어가는 문이라 하지만 만약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다생에 걸쳐 오(悟)에 의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는 즉시 깨달아 일시에 단박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또한 선오후수(先悟後修 먼저 깨닫고 뒤에 닦음)의 근기인 것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단(疑團)을 갖다가 통 밑구녁 빠지듯이 의단이 탁! 터지는 거여' ; '의단(疑團) 타파(打破)'.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문 내용]


(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오욕락(五欲樂)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내 안에 있는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투자하자.

(게송) 돈오심원개보장~ /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參禪)해서 내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다.’

부처님의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심, 분심, 의심(信憤疑) 삼요.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만나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렵고, 그것을 실다웁게 닦기도 어렵다'


여러분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면, 가까운 장래에 또는 먼 장래에 언젠가는 『과연 그렇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고, 스스로 의심 없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밖에서 무엇을 구할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우리 몸 안에서 그것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우리의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투자를 하자.


그 모든 사람들이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주인공(主人公)은 부처님이나 우리나 다 똑같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어.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도 부모를 원망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다.

과거에 지은 업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지만, 금생에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꿔 쓰면 된다.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이게 인과, 인과의 법칙을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활용을 해 나가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은—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거,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은 명상(名相)이여 그게. 명상(名相).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우리 중생이 하는 짓이 바로 미친 아주 정신병자가 연극 각본을 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우리의 무량겁을 그렇게 그런 각본을 써 왔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그래 가지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해 갈 거다 그말이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을 꾸는 동안에는 정말 아프지만 꿈을 깨자마자 꿈에 앓던 종기가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간에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참선 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믿은 데에서 열심히 하면은 거기서 또 분심(憤心)이 나고, 분심 있는 곳에 신심이 더욱 깊어지고 해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여.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는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이것이 삼요소(三要素)인데, 이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