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600/(501~525)2019. 4. 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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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13)—93년 9월 첫째일요법회(93.09.06) (63분)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20분.

(1/3)----------------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하고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하니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다.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의 진로(塵勞), 생사와 시비와 흥망성쇠와 빈부귀천과 일체 진로(塵勞)가 바다와 같이 넓어. 한량이 없다 말이여.


끝없이 넓은 바다에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파도가 일어났다 꺼졌다. 한 파도가 일어나서 꺼지기 전에 다음 파도가 일어나서 온 바다가 온통 파도로써 끊일 때가 없어. 이 지구상에 동서고금의 역사가 바로 그와 같다.

세계 방방곡곡에 나라와 나라끼리 싸우고, 한 나라에서도 종교가 달라서 싸우고, 사상이 달라서 싸우고, 이념이 달라서 싸우고.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이여. 다 자기, 자가의 마음의 생각 일어나는 곳을 향해서,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이 동(動)한 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그래 가지고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차츰차츰 그것이 번지고 번져서 결국은 이러한 양상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기를 현재 세계 60억 인구가 다 그래 가지고 그놈이 서로 맞부딪쳐. 마치 바다에 파도가 쉴 새 없이 일어나듯이 그렇다. 그러다가 가끔 폭풍우가 간간이 일어나서 강탈을 하고,

그러니 이러한 세계를 만난 것, 이러한 시대를 만난 것, 이러한 지구상에 우리가 몸을 받아서 태어난 것이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속에서 한 생각 망념(妄念)이 동(動)한, 무명(無明)이 동(動)한 탓으로 해서, 그 무명에 또 무명이 생기고, 무명에 또 무명이 발전을 해 가지고 이러한 세상을 만나게 되었고, 이러한 세계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원인이 되어서 이렇게 번졌으면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한 생각이 불생(不生)하도록, 한 생각 남[生]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면 억겁다생에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해탈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거거든.



오늘 9월 5일, 9월 첫째 일요법회 날인데, 며칠 전에 전국 선원에서 모다 여름 안거 해제를 마치고 형제자매 도반들이 많이 오시고 또 일요법회를 기해서 청신사 청신녀들께서도 많이 오셨습니다.

여름 한 철 동안 비도 많이 오고 덥고 무더운 그러한 속에서 석 달을 무사히 성만(成滿)을 하고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니 참 오랫동안 헤어졌던 고향의 친구를 만난 것 같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석 달 동안 그 더위와 싸우고 모기와 싸우고 비에 갇혀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입니까? 한 생각 남이 없는 곳을 철견(徹見)을 하기 위해서다 그거거든.


우리는 가만히 앉았어도 끝도 없이 생각이 일어나거든. 이 생각 저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 세 번으로 자꾸 요렇게 번져 가. 그 생각이 가라앉을 만하면 또 일어나거든.

수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한 것이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수없는 생사윤회(生死輪廻)와 연결시켜 주는 그 도화선(導火線)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나, 한 회사에 사업의 흥망성쇠나, 한 가정에 흥망성쇠나, 일신상에 흥망성쇠가 근원은 다 같은 거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생각을 돌이켜서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여.

그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흥망성쇠 속에 나부끼는 일엽편주(一葉片舟)의 신세를 면틀 못해. 언제 배가 훌떡 엎어져 버릴지 모른다 그말이여.


다행히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고 평생 제창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믿고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이 이 험악한, 괴로운 그리고 무상한 세계를 바르게 살아가고 그 고해(苦海)를 벗어나는 길은 그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바세계는—'사바(娑婆)'란 말이 감인(堪忍), '견딜 감(堪)’ '참을 인(忍)’—견디고 참는 참아야만 살 수가 있는 세계다 해서 사바세계(娑婆世界)거든.



부처님 당시에 빈두로(賓頭盧) 존자라고 하는 아라한(阿羅漢)이 있었는데, 그 빈두로 존자는 여러분들이 나한전(羅漢殿)에 가면 제일 첫자리에 앉아 있는 머리가 허옇고 하얀 눈썹이 긴, 눈썹이 요렇게 뻗쳐 있는 거룩한 나한님이 빈두로 존자여.

그 빈두로 존자는 원래 우전왕 밑에서 있는 참 충성스런 신하였었는데, 무슨 일을 하던지 열심히 하고 그런 가운데에도 충성심이 있고 그러면서 신심이 있어서 자기 밑에 있는 수족과 같은 왼팔 오른팔과 같은 신하인데도 그이를 권고해서 출가를 시켜 가지고 부처님 제자가 되게 했다.


출가해 가지고 워낙 신심이 돈독하고 용맹정진을 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을 해서 대성현이 되었어. 그분은 신통술이 능해 가지고 그랬었는데.


어느 날 그 어느 바라문이 전단향(栴檀香)나무로 발우(鉢盂)를 잘 깎아 가지고 저 높이 그놈을 매달아 놨어. 자루에다 담아 가지고 높이 매달아 놓고.

'장대나 사다리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서 그 바리때를 가져간 사람에게 그 바리때를 준다'하고 현상(懸賞)을 붙였어.


온갖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신통을 부리고 기술을 부려 가지고 그걸 가져가려고 하다하다 못 가져갔다 그말이여.

그 소문을 이 빈두로 존자가 듣고서 목련 존자 보고 "그대는 신통이 십대제자(十大弟子) 중에 신통(神通)이 제일이니까 그 신통술로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얼마든지 그걸 가져갈 수가 있지 않느냐? 그 전단향나무로 만들었으니 향내가 풀풀 나고 참 좋으니 그걸 한번 해 봐라"하니까,

목련 존자는 "싫다. 부처님께서 계를 받지 않은 사람 앞에서 함부로 신통술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부처님한테 꾸지람을 듣기가 싫으니까 싫다" 그러니까.


그 빈두로 존자가 좀 장난기가 있었던지, 따악 손을 길게 뻗쳐 가지고는 발우를 딱 띠어 왔다 그말이여.

그래서 소문이 자자해 가지고 결국은 부처님 귀에까지 들어가서 부처님한테 크게 꾸지람을 듣고 "너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있지 말고 딴 데로 가거라" 그래 가지고 추방을 당했어.


그래서 서구야니(西瞿耶尼)라고 하는 저 먼 지방으로 쫓겨가 가지고 거기 있으되, '열반에 들지 말고 중생을 교화를 해라' 그렇게 특명을 붙여서 추방을 당했는데.

결국은 사부중(四部衆)들이 모두가 빈두로 존자를 사모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부처님한테 간청을 해서 다시 이 남섬부주로 불러오게 하되 조건을 붙였어. '너는 열반에 들지 말고 고대로 이 경계에서 불법을 영원히 전통해라'


인자 그런 당부를 받으셔서 지금도 나한전에는 빈두로 존자를 모셨는데, 그 빈두로 존자가 처음에 아라한이 되어 가지고 자기 고향에 가서 그 고향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방에 불법을 펴야겠다고 하는 원력을 세우고 그 고향에 가 가지고 산중에 가서, 산중에 그 어느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 가서 딱 좌선하고 있는데, 어느 왕이 궁녀와 왕비와 모다 거느리고 와서 그 공원으로 놀러왔어.


놀러왔는데 그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잡히고 노래를 불리고 춤을 추고 모다 그러다가 왕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왕비를 비롯한 궁녀들이 같이 잘 수도 없고 무료하니까 슬슬 공원을 이렇게 거니는데 한 구석에 가니까 터억 어느 도인(道人)이 좌선을 하고 있다 그말이여. 그이가 바로 빈두로 존자여.


그런데, 가 가지고 절을 하고 "좋은 법문을 좀 해 주십시오"하고 공경하게 말하니까 빈두로 존자가 눈을 뜨고서 여러 가지 법문을, 갖은 방편설도 설해 주고 법문을 해서 그이들이 아주 너무너무 그 법문에 심취해 가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


왕이 한참 자고서 눈을 떠 보니까 왕비도 간 곳이 없고 궁녀들도 간 곳이 없어.

'아, 이거 어디를 갔나?'하고 그걸 찾아서 이리저리 하다보니까 위~하니 모여 가지고, 그 가서 보니까 가운데 한 승려가 앉았는데 그 궁녀들이 빙 둘러앉아 가지고 그렇게 얘기 소리를 듣고 좋아하고 그러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왕이 괘씸한 생각이 들어 가지고 호령을 하면서 '명색이 수행한다는 사람이 여자들을 모아 놓고 잡담이나 하고 히히덕거리고 한다'고, 그 칼을 가지고 빼 가지고는 목에다 대고 '이런 수행자는 가짜 수행자다' 해 가지고 그냥 죽이려고 하니까 빈두로 존자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고대로 가만히 있어.

두려운 생각을 내거나, 피하려고 하거나, 잘못했다고 빌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너무 태연자약해 가지고 가만히 있으니까 칼로 칠 수는 없고 그래 가지고는 근처에 개미가 버글버글버글하는 개미집이 있으니까 그놈을 파다가 빈두로 존자 몸 위에다 갖다가 쏟아 버렸다.


그놈의 개미가 눈으로 코로 귀로 몸뚱이로 다니면서 물고 가려워서 도저히 못 견딜 정도인데, '제가 그래 못 견뎌서 움직일 거다' 해 가지고 한데, 눈 하나 깜짝 않고 몸뚱이 하나 깜짝 않고 가만히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거기서 왕이 '야! 이분이 보통 분이 아니로구나' 해 가지고 '참 내가 사람을 몰라봤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속으로 두려운 생각도 나고 또 참회심도 나고 그래 가지고 인자 물러갔는데.


며칠 있다가 빈두로 존자를 찾아와 가지고 여러 가지 법에 대해서 묻고 법문을 듣고 해 가지고, 그 빈두로 존자가 참고—그 왕의 무례하고 혹독한 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 정념을 흐트러트리지 아니한 그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인해서 크게 왕이 신심을 내고 그 고향 나라에 불법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말씀이 경전에 있는데.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고 세속의 흥망성쇠가 무상한 이 세상에서 불법을 믿고 그리고서 바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만큼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또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아 가는데도 그러한 참을성이 있고 요지부동한 그러한 심성과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보시 지계 인욕, 세 번째에 인욕이라고 하는 과목이 있는 것도 반드시 그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인욕(忍辱)이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을 참고, 욕된 것을 참고, 부당한 핍박을 당하고 모략 중상을 당하고 그럴 때에도 정념을 잃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보복을 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없어야 한다 이거거든.(처음~21분21초)




(2/3)----------------


빈두로 존자는 아라한과를 증득했기 때문에 삼명(三命)과 육통(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한 대성현이라 그까짓 왕이 칼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것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고, 그 팔을 끊어 버릴 수도 있고,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수도 있겠지마는 까딱도 않고 그걸 움직이지 안 했다 이거거든.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도 주변 여러 가지 환경이라든지 여러 가지 여건이 내 마음과 같지 못하는 수가 많고, 몸 밖에서 오는 것도 그러려니와 자기 몸안에서 일어나는 건강 문제,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팔만사천의 번뇌 망상, 심지어는 전생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어떤 그러한 영가(靈駕)가 와서 또 장난을 치는 수도 있고, 삿된 마구니 같은 것들이 와서 우리 정진해 나가는 데에 방해를 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말이여.


그런 수많은 마음 밖에 또는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마구니들을 정념으로써 그것을 이겨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한 생각 동(動)하면 벌써 그 올가미에 걸려들어 가는 거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정념을 잃지 아니한다면은 이기지 못할 마구니가 없어.

마구니는 내 마음이 움직거리고, 내 마음이 동(動)한 틈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이 동하지 아니하면은 아무리 팔만사천 마구니가 주변에 엿보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그말이여.



백년부환수중구(百年浮幻水中漚)요 부지종일위수망(不知終日爲誰忙)고

나무~아미타불~

약지망리진소식(若知忙裏眞消息)하면 일타연화생불탕(一朶蓮花生沸湯)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부환수중구(百年浮幻水中漚)요. 백 년 동안에 모든 흥망성쇠의 사건이, 일신상이나 또는 사회 국가나 모든 것이 뜬구름과 같고, 실지는 있는 것 같지마는 헛것인 환상이여. 그리고 물 가운데서 일어나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여.

하나도 영원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말이여. 잠시 일어났다 얼마 동안 좋게 변천하건 나쁘게 변화하건 그러다가 또 꺼져 버리고.


부지종일위수망(不知終日爲誰忙)고. 아지 못거라, 종일토록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평생 동안을 바쁘게 몸부림을 치는가.

중생들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 몸뚱이 · 가정 · 사회 · 국가 · 세계 그밖의 빈부귀천 또는 재산 · 명예 · 권리 모든 것들이 영원한 것이고 실다운 것으로 착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인해서 크게 좌우가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무상한 것이요, 허망한 것이요, 물거품 같은 것이고, 그림자와 같은 것인 줄 안다면 그리고 그 꿈과 같은 것이요, 환상과 같은 것인 줄 확실히 안다면 흥하면 흥한 대로 거기에 맞춰서 살고, 망하면 망한 대로 거기에 맞춰서 살고, 거기에 적절히 적응하면서 사는 거여.


6·25 때 전 국토가 공산당들에 의해서 짓밟힐 때는 그때는 그때대로 살 수밖에는 없는 것이요, 5·16이 일어나면 5·16이 일어난 대로 그대로 사는 것이고, 지금은 새로운 신한국 건설의 시대가 돌아오면 그때에 맞춰서 자기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여법하게 열심히 살면 되는 거여.

설사 정책이 자기 마음에 안 맞더라도 자기도 이 대한민국에 국민의 한 사람이니까 국민으로써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법에 맞추어서 충실히 살아가는 거여.


혹 정책이 잘못될 수도 있고, 잘할라고 한 것이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고, 최고 책임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밑에 사람들이 잘못 무엇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더라도 그런 대로 또 맞춰서 사는 거여.

입으로 그것을 불평하고 불만하고 그 반감을 가지고 이리저리 고통을 하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거여. 법이 그렇게 정해지면 그 법에 따라서 국민은 따라가야 하는 거고.


그러면서도 꼿꼿하게 지켜야 할 것이 하나가 있어. 나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일러 드리고 싶어요.



(첫째는) 신심(信心), 자기 몸 가운데 주인공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조금도 손색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고, 자기 마음속에 진짜 부처님이 들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거야.

부처님은 십 생을 온갖 행하기 어려운 것을 다 행하셨다 그말이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행하기 어려운 것 당하기 어려운 것을 다 행하고 최선을 다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끝없는 진리를 위해서 바쳐 왔다 그말이여. 그래서 손바닥만한 땅도 불보살이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평범한 범부(凡夫)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고, 풀끝에 이슬과 같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서글프고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몸 가운데에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主人公)은 삼세제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존재라고 믿을 때 우리는 얼마나 든든하고 보람이 있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흥망성쇠가 하나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어.

바람이 좀 거센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조금 더운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차운 바람이 들어갈 수가 있어서 바람 부는데 따라서 더우면 시원한 옷을 입고 추우면 두터운 옷을 입는 거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말이여.



둘째는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오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모든 일들과,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일과, 누구를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일과, 우리가 익힌 모든 습성과 그런 것들이 전부가 다 한 생각 생사심(生死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들이라, 그 원인이 전혀 다른 사람한테 원인이 없어.


다 자기 자신이 지은 업(業)으로 그렇게 된 것이고, 자기의 한 생각으로 인해서 벌어진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아무도 미워할 것도 없고 원망할 것도 없어. 한탄할 것도 없고.

다맛 당장 이 시간부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속에서 살라면은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도 얻어야 하고, 권리도 있어야 하고, 예쁜 마누라도 있어야 하고, 자식도 있어야 하고, 별의 별별 호강도 해야 하고, 좋은 차도 좋은 집도 있어야 하고, 너무너무 근심 걱정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은데,

출가해서 떠억 계(戒)를 받고 중이 되면 아무것도 걱정이 없고, 비가 오면은 신발에 물 들어가나 고거 하나만 걱정하면 된다 이거여.


끼니때 되면 밥 지어주고, 아무것도 걱..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듣고 다 가정을 버리고 '에잇! 나도 중이 되어 버려야겠다' 그러면 안 되고.

여러분도 세속에 살면서 기왕 아버지면 아버지 책임을 해야 되아. 자기가 그렇게 업을 지었기 때문에. 어머니로 있다면은 어머니 책임을 해야 하고, 며느리면 며느리 책임을 해야 하고, 아들이면 아들 책임을 해야 하고, 학생이면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여. 그러면서 '이뭣고?'만 하면 되어.


그러면 세속에서 사는 동안에는 어쩔 수가 피할 길이 없어. 그것이 전부 자기가 과거에 지어 놓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요, 만난 일이기 때문에 다 해야 하는 거여.

그것만 열심히 하면 다 되냐 하면 그게 아니어. 살 수가 없어. 할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거여.


그걸 이겨내는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 힘이 '이뭣고?'에서 나오는 거다 그말이여.


'이뭣고?'를 안 하고는 세속에서 아무리 잘살라고 마음을 먹고, 잘할라고 마음을 먹고, 아 미워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이를 악물고 결심을 해도 일에 딱! 부딪치면 안 되는 거여. 속에서 일어나서 안 되는 거여.

'이뭣고?'를 해야 자연히 봄이 돌아오면 반드시 눈이 녹고 얼음이 녹고 뜨뜻해서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나듯이, '이뭣고?'를 해야 맺힌 덩어리가 녹는 거고, '이뭣고?'를 해야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생겨. 마구니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 번째는, 고인(古人)의, 고불(古佛)과 고조사(古祖師)의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법문이라 하는 것이 마치 긴 칼과 같아서 잘 갈아 논 칼과 같아서 함부로 만지고, 함부로 그놈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함부로 접근하다가는 손을 베고 몸을 베고 다치는 거다 그말이여. 함부로 그것을 내두르다 멋도 모르고 그놈을 내두르다 보면 여러 사람을 다치게 만들어.


그래서 이 참선을 하는 사람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어떻게 지혜가 있고 혜(慧)가 빠르던지 천칠백 공안을 맥힘이 없이 다 통달을 해 가지고 어느 선지식하고 가서 법담(法談)을 해도 다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말이여. 오직 원오극근(圜悟克勤) 선사 앞에 가서, 그런데 인가를 받지 못했어.


"내가 무슨 공안에 맥혔길래 인가를 안 하십니까?"

"공안에 맥히지 않았다. 네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공안을 알았기 때문에 너는 인가를 할 수가 없다. 너는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증험(證驗)을 해 봐라"


공안을 가지고 의리(義理)로 따져서 이렇다 저렇다 무슨 문제, 수학 문제 풀듯이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사량분별로 따져 가지고 알아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선(禪)에 관한 많은 책들이 한국에도 많이 나오고 번역된 책도 있고 그런데, 행여나 그런 걸 보고 공안에 대해서—자기가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참(參)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선지식의 인가를 받았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분상에서 그러한 책 나부랭이 봐 가지고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아라 그말이여.


천칠백 공안을 다 알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생사 문제 해결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그러헌 것을 자기가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면 자기 신세도 망치고, 자기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불법까지 망하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여러분들이 지금은 잘 못 보지만 옛날에 홍콩 영화에 이소룡이란 사람은 십팔계인가? 태권도인가? 뭘 해 가지고 어떻게 잘해 가지고 풀풀 나는 영화를 많이 찍어 내 가지고 엄청나게 흥행을 했다 그말이여.

영화를 찍을 때에 하는 그것 가지고 실지로 자기에게 그런 태권도 실력이 있는 걸로 착각해 가지고 진짜 태권도 잘하는 깡패하고 대결해 가지고는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사실이 있었는데, 영화는 얼마든지 풀풀 날으는 영화를 찍을 수가 있고 백 번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나게 찍을려면 찍는 거다 그말이여.


공안이라는 것을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라고 하지 말아라. 아무 소용없는 거야!

10년, 20년, 30년 내지 평생을 참선을 했어도 한 공안도 짐작이 안 가고 꽉 맥혔다 하더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확!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으로 나간다면 설사 언젠가는 깨닫게 되고 설사 금생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라도 그 사람은 결정코 확철대오하고만 마는 거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한 것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지, 이리저리 엉터리로 사량분별로 따져서 공안을 열 개, 아니 백 개를 알면 뭐 하는 거냐 말이여.

일본 선원에서는 백 개를 통달하면 조실 자격을 준다나 어쩐다나. 백 개 아니라 천칠백 개를 다 통달해서 조실 노릇하면 뭐 하는 거냐 그말이여.


그래서 고인의 일언반구를 마치 큰 칼과 같이 생각하라 이거여. 등한히 그것을 가까이하고 만지고 가지고 흔들다가는 자기 목숨 잃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일상생활 속에 항시 간단없이 화두를 챙겨라.

공부를 하되, 하다 보면 앉아서 하다 서면서 잊어버리고, 하다가 눈으로 무엇을 보면 잃어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놓쳐 버리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놓쳐 버리는데,

'놓쳤다 아휴! 이놈의 공부가 왜 안되냐, 좀 할라고 하면 시끄러워서 못 하겠다. 뭣 좀 할라고 하면 전화가 와서 못하겠다' 그러지 말고.


귀로 무슨 소리가 나면 오히려 거기서 화두를 한번 더 챙기고, 눈으로 무슨 경계가 나타나면 그때 한번 다시 또 챙기고, 전화가 따르르릉 오면은 거기서 다시 정신을 챙기고, 아들 손자가 "어머니, 할머니"하고 달려들면 "오냐, 오냐"하면서 생각은 탁! 챙기고.


일체 경계가 바로 나의 공부를 방해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체 경계가 바로 나로 하여금 정신차리게 하고, 화두를 들게 하고, 공부 단속하게 하는 채찍으로 생각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해서 또 들고 또 들고 해서 중단하지 말고 생각 생각이 알뜰히 단속을 해 가시라 이거거든.


지금 해제, 가을 산철인데, 더운 여름도 참 정진할려면 힘드는 계절이고, 그런데 그 여름이 지나가서 인자 앞으로 서늘한 때가 되었으니 이러한 좋은 때를 잘 이용을 해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21분22초~42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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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우리의 생각이 생사심이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생사도 또한 끝이 없어. 이 끝이 없는 이 생사가 적은 일이 아니다 그말이여.

다행히 금생에는 사람 몸을 받아서 불법을 만나 가지고 이만하기 천만다행이지만, 금생에 이 몸뚱이 놓쳐 버리면 내생에 어디 가서 무엇으로 태어날는지 모른다 그말이여.


비록 금생에 나쁜 일 안 했다고 해서 내생에 꼭 좋은 곳으로 태어나라는 보장은 없어.

금생 말고 전생, 저 전생에, 무량억겁에 무슨 짓을 했는가 한량이 없기 때문에 내생에 무엇으로 또 태어날란가, 어느 삼악도(三惡途)에 태어날란가 알 수가 없거든.


그래서 정말 분심을 내고 결정신(決定信)을 가져야 해. 금생에 이만한 환경 속에 태어나고, 이만한 여건 속에 태어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정법에, 활구참선에 철저한 뜻을 거기다 세워라 그거거든.

그래가지고 그렇지 아니하면 무서운 삼악도의 고통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을 가져야 한다 그거거든.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하여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요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이라 출신방호장부아(出身方號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한 물결 일어나면 그 한 물결로 인해서 만 개의 파도가 따라서 일어나는 거여.

여러분이 호수에 가서 돌멩이 한 개를 던져 봐. 그 돌멩이 한 개로 처음에 한 물결이 일어나 가지고 거기에 또 두 개, 세 개, 네 개 해 가지고 저 호수 끄터리까지 몇천만 개의 물결이 일어나는 거여.


그런데 이 태평양, 동해 이쪽에서 파도를 던지면은 그 파도가 저만큼 가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없어지지 않고 저 태평양 저쪽에까지 그 물결이 영향이 간다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내가 확실히 시험을 해 봐서 알 수가 없으나 하여간 우리의 한 생각의 파도가 일어남으로 해서 몇억 겁의 인연이 거기서부터 이렇게 발전해 간다는 것은 그것은 내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실을 봐도 역시 그렇거든.


그래 가지고 한 물결로 인해서 만 개의 물결이 따라서, 그래 가지고 생사윤회 하는 것이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개미가 이렇게 쳇바퀴를 돌듯이 이리저리 돌고 이리 가고 저리 돌고 이리 돌고 해서 끝도 없이 돌면 끝난 줄 아는데 또 돌고 또 돌고 하는 거와 같아서 끝이 없더라 그거거든.


그러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세속의 한 물결로 인해서 만 개의 물결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일체 경계에 끌려들어 가지 말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딱! 그 자리에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로 돌아오라 그거거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출신방호장부아(出身方號丈夫兒)다. 그래야 그것이 대장부(大丈夫)여.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대장부가 딴 게 아니여. 기운 세고 말 잘하고 수단 좋은 게 아니고, 어떠한 경계에서도 한 생각 딱! 돌이키는 거야. 그 사람은 팔만사천의 마구니도 하나도 두려울 것이 없고 이 세상의 흥망성쇠도 하나도 겁날 것이 없어.



화두를, 개별적으로 화두(話頭)를 신청하는 분이 있어서 시간 관계로 개별적으로 화두를 설해 주지 못하고 이 법상에 올라온 기회를 타서 간단하게 화두 드는 법을 일러드리겠습니다.

이미 화두를 타신 분은 화두를 들고서 떠억 들으시고, 화두를 안 타신 분은 이럴 때에 정식으로 화두 드는 법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화두는 참선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과제여. 과제라고 하면 좀 어폐(語弊)가 있지만.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 또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그냥 처음에 화두를 타기 전에는 다만 그렇게만 주욱 해 나가지만 본격적으로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려면 화두를 자기기 믿는, 믿어지는 선배로부터 딱 지정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책에는 화두 드는 법이 얼마든지 있어서 책을 보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책을 보고 자기가 화두를 간택을 하면 문제가 무슨 문제가 일어나는고 하니 조금 하다 잘 안되면은 이거 화두가 자기한테 안 맞아서 그런가보다. 다른 화두를 또 가지고 하고. 이 화두 저 화두, 세 개, 네 개, 다섯 개, 몇 개를 자꾸 바꿔간다 그말이여.


그리고 공부가 잘 안될 때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화두를 잘못 드는지 스스로 자꾸 그런 것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서 공부를 순일하게 할 수가 없어.

그래서 화두는 자기가 스스로 간택하기보다는, 물론 스스로 간택해서도 잘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어요. 있을 수가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러기보다는 믿는 선배한테 탁! 지적을 받아서 해야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간에 그 화두를 자꾸 바꾸려고 하는 그런 가벼운 생각이 안 나는 거다 그말이여.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면 누구나 처음부터 잘된 사람은 없어.

처음에는 곧잘 잘된 것 같은데 한 며칠 지나가나 몇 달 지나면 뚝 변해 갔고 영 안되고, 한 일 년 지나면 또 되다가 안되다가 자꾸 그런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법문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써야 흔들림을 받지 않고 서로서로 울타리가 되어서 중단하거나 퇴태(退怠)하지 않게 되는 것이여.



천칠백 화두가 있지마는 가장 최초에 생긴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설사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어떠한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해도 궁극에 가서 깨닫는 것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主人公)이여.

그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이기 때문에 그놈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시삼마(是甚麽)화두여. “시삼마”


“시삼마”를 우리말로는 '이 · 뭣 · 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이것이 무엇인고?'인데, 그것을 경상도 말로는 '이 뭣 고'거든.

'이 것 이 무 엇 인 고' 일곱 자인데,  '이 뭣 고'하면 석 자로 간단해서 옛날부터 화두를 들 때에는 '이것이 무엇인고?' 그래서 나쁠 것은 없으나 다 옛날부터 '이뭣고?' 선지식들이 다 그렇게 가르치셨어.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뭣고?' 그래도 괜찮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그래도 되고.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 몸뚱이고 저 몸뚱이 따질 것 없고 그냥 '이뭣고?' 그렇게만 해도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이놈이 뭣고?' 그 뜻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여. 그동안에 많이 했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하는, 나중에 가서 또 한 걸음 더 다그쳐 들어가려면 지금 '이뭣고?'해 놓고 '지금 이뭣고?하는 바로 이놈이 뭣고?' 이렇게도 다그쳐 들어가고.


'이뭣고?'할 때 「‘이’ 하는 이놈이 뭣고?」 그런 뜻으로 '이뭣고?~' 이렇게만 하는 거야.


처음에는 화두를 '이뭣고?'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을 동안에는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고.

'이뭣고?'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화두를 새로 안 들어도 되어요. 알 수 없는 의심을 따악 이렇게 관(觀)하거든.


그러다가 뭔 소리가 들리거나, 무엇이 눈에 띄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그 의심이 없어져 버리면 그때 다시 '이뭣고?~' 이렇게 챙기는 거여. 자꾸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하도 잊어버려 싸니까, 이놈이 안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이놈을 잠시 일초 동안도 틈을 안 주기 위해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런 게 아니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


따악 반가부좌를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허리를 펴라니까 너무 또 뒤에로 자지바지해서 이렇게 하면 못쓰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그리고서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


눈을 너무 잠이 오니까 눈을 뒤집어 까고 그래 못쓰는 거고. 또 눈을 뜨고 이것저것이 보여 싸니까 '아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편하겠다' 해 가지고 눈을 감고 하면 안 돼.

눈을 감으면 좀 조용한 것 같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눈을 감고 하면은 나중에 차츰차츰 생각이 조용해 지다 보면 혼침(昏沈)에 떨어지고, 혼침에 떨어진 줄 모르게 혼침에 빠져 갔고 자기 딴에는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데 삼매하고 혼침하고는 다른 거여.


그래서 눈은 평상으로 뜨고서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항상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이놈을 다루어 나가야 하는 거여.


참선을 하려면, '집에서 참선을 하려면 뭔 전화가 오고 애들이 뭐라고 하니까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얼마든지 전화 오면 전화도 받고, 애들이 와서 응석을 하면 투덕투덕 하면서 그러면서도 자기가 흔들리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는 거여.


봄에 시원할 때는 바람이 시원한 바람이 들어가면 아 바람 분다고 공부를 못하며, 산중에서 하다 보면 시냇물이 줄줄줄 흘러가는데 그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공부 못한다고 그건 말이 안 돼.

시냇물 소리는 시냇물 소리대로 그것이 다 법문(法門)이고, 새 우는 소리는 새 우는 소리 고대로 그냥 법문으로 들어. 그 소리 들으면서 터억 화두를 챙겨보라 말이여.


그렇게 하다가 자동차 소리는 또 뭐냐 그말이여. 자동차 소리가 붕붕 뻥~ 하니, 붕붕 뻥~ '이뭣고?' 딱 하면 그만인 거란 말이여. 그것 때문에 공부 못한다 소리는 그거 참선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거여.


이제부터서는 자동차 소리는 자동차 소리대로 놔 둬. 기차 소리는 기차 소리대로 놔 둬. 비행기는 비행기, 연전에 용주사에서 들었는데 입선 시간에 그 젯트기가 무엇이 어떻게 머리 위로 지나가면서 부르릉~ 정말 그건 안 좋드만 안 좋아.

안 좋아도 그 처음에는 대단히 귀에 거슬리고 안 좋더니 그러거나 말거나 졸다가 그 소리 나서 깨니까 아주 그 소리가 고맙더라 그말이여.


그래서 가정에서 살라면은 가정에도 여러 가지 식구끼리 모다 마찰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나 '이뭣고?'를 한 사람은 그런 소리를 무던히 그냥 적당히 받아들이고, '예, 예,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탁 '이뭣고?'


시천장 뭔 말하면 요리 돌아서 가지고 그러면 그건 골낸 것이 당장 드러나니 '저것이 배 째라고 저런다'고 그럴 거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지 말고 뭔 말하면 그 사람을 쳐다보면서 화평한 얼굴로 속으로는 따악 '이뭣고?'하면서 '예, 알았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것을 왜 요리 둘러서고 모른 척하냐 그말이여.


'이뭣고?'라 하는 것은 참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보살의 육바라밀(六波羅蜜), 십바라밀, 팔만사천 묘방편(妙方便)이 다 '이뭣고?'하는데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다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뭣고?' 하나만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하고, 법회에 한 달에 한두 번 갖고 안되면은 전강 조실 스님 녹음 테이프를 구해 가지고 가서 항상 틀어놓고 들으면서 공부를 해라 말이여. 잠도 안 오고 공부하는데 좋은 채찍질이 될 것이다.


앞으로 석 달, 또 산철 결제가 있으니까 산철에 방부(房付) 들이고 공부하실 분은 하고 또 가정에서 계실 분은 가정에서, 가정에서 자기가 떠억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해 보시면 참 좋을 것이다 그말이여.

직장에서 한 분은 직장에서 죽비는 못 치고 마음의 죽비를 딱! 치고, 쉬는 시간에도 떠억 일하면서도 '이뭣고?' 이렇게 해서 산다면은 세상이 살기가 힘이 드는 세상도 그런대로 살 만하는 거고.


세상이 살기가 어렵더라도 어려운 대로—보살이 수행해 나가는 데에 많은 어려운 지경에 일부러 들어가서 그 어려운 것을 이겨내면서 공부하려고 들어가기도 하는데,

자동으로 세속에서 이 일 저 일이 일어난다면야 아 그런대로 그놈을 잘 적응을 해서 살아간다면 신심이 저절로 솟구치고 환희심이 일어나고, 자기를 와서 예쁘다고 해 준 사람이나, 자기를 와서 몽둥이로 때린 사람이나, 얼굴에다 더러운 것을 발라 주거나 향수를 쳐 주거나 다 똑같은 거여, 그게.


받아들이는 마음에 달려서는 좋게 해 줘도 진심(瞋心)을 낼 수도 있고, 자기를 해롭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나도 오히려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전부가 자기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거여.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정치를 원망하기보다는 그런 여러 가지 상황 속에 자기가 적응할 수 있도록 자기를 단련을 하고 그러한 경험에서 더 신심(信心)을 내고 분심(憤心)을 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하라.


그러면서도 이미 자기가 지은 빚은 갚아야 해.

남편에 대한 빚, 아내에 대한 빚, 자식에 대한 빚, 부모에 대한 빚, 사회에 대한 빚, 국가에 대한 빚, 모든 중생에 대한 빚, 불보살에 대한 은혜는 다 갚으면서 한평생을 이 짧은—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리도.

인자 내일 모레 죽게 될는지 언젠지 모르지만 다 마찬가지입니다. 늙고 젊고가 없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이 서늘한 가을을 정말 알뜰하게 잘 지내시기를 다짐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겠습니다.(42분53초~63분8초)(끝)





[법문 내용]

(게송)삼계진로여해활~ / 빈두로 존자의 신통과 부처님의 꾸지람 / 빈두로 존자의 인욕 / 화두를 들고 정념을 잃지 아니하면 모든 마구니를 이긴다.
(게송)백년부환수중구~ / 천목 중봉선사의 다섯 가지 신심[五種信心].
(게송)일파자동만파수~ / 화두 드는 법 / 설사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어떠한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해도 궁극에 가서 깨닫는 것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主人公)이여. '이뭣고?' / 모든 경계에 즉해서 '이뭣고?' / 이미 자기가 진 빚은 갚아야 해.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여.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원인이 되어서 이렇게 번졌으면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한 생각이 불생(不生)하도록, 한 생각 남[生]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면 억겁다생에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해탈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거거든.

우리는 가만히 앉았어도 끝도 없이 생각이 일어나거든. 이 생각 저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 세 번으로 자꾸 요렇게 번져 가. 그 생각이 가라앉을 만하면 또 일어나거든.
수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한 것이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수없는 생사윤회(生死輪廻)와 연결시켜 주는 그 도화선(導火線)이다.

사바세계는—'사바(娑婆)'란 말이 감인(堪忍), '견딜 감(堪)’ '참을 인(忍)’—견디고 참는 참아야만 살 수가 있는 세계다 해서 사바세계(娑婆世界)거든.

한 생각 동(動)하면 벌써 그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가는 거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정념을 잃지 아니한다면은 이기지 못할 마구니가 없어.
마구니는 내 마음이 움직거리고, 내 마음이 동(動)한 틈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이 동하지 아니하면은 아무리 팔만사천 마구니가 주변에 엿보고 있다 하더라도 내게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대장부가 딴 게 아니여. 기운 세고 말 잘하고 수단 좋은 게 아니고, 어떠한 경계에서도 한 생각 딱! 돌이키는 거야. 그 사람은 팔만사천의 마구니도 하나도 두려울 것이 없고 이 세상의 흥망성쇠도 하나도 겁날 것이 없어.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면 누구나 처음부터 잘된 사람은 없어. 처음에는 곧잘 잘된 것 같은데 한 며칠 지나가나 몇 달 지나면 뚝 변해 갔고 영 안되고, 한 일 년 지나면 또 되다가 안되다가 자꾸 그런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법문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써야 흔들림을 받지 않고 서로서로 울타리가 되어서 중단하거나 퇴태(退怠)하지 않게 되는 것이여.

천칠백 화두가 있지마는 가장 최초에 생긴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 설사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어떠한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해도 궁극에 가서 깨닫는 것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主人公)이여.
그것이 바로 자성불(自性佛)이기 때문에 그놈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시삼마(是甚麽)화두여. “시삼마”를 우리말로는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이미 자기가 지은 빚은 갚아야 해. 남편에 대한 빚, 아내에 대한 빚, 자식에 대한 빚, 부모에 대한 빚, 사회에 대한 빚, 국가에 대한 빚, 모든 중생에 대한 빚, 불보살에 대한 은혜는 다 갚으면서,

우리도 인자 언제 죽게 될는지 모르고, 늙고 젊고가 없는 것이니까 어쨌든지 이 서늘한 가을을 정말 알뜰하게 잘 지내기를 다짐합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