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00/(151~175)2019. 10. 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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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58)—1982년 1월 첫째일요법회(82.01.03) (64분)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21분.

(1/3)------------------


대지촬래속미립(大地撮來粟米粒)이요  일호두상현건곤(一毫頭上現乾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감소일월부도처(堪笑日月不到處)에  개중별시일건곤(箇中別是一乾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대지(大地)를 촬래(撮來)하니 속미립(粟米粒)이요. 대지. 지구덩어리. 이 지구 땅덩어리를 탁! 한 손으로 잡아오니 좁쌀 아레기, 좁쌀 한 톨밖에는 되지 아니하다.

일호두상(一毫頭上)에 현건곤(現乾坤)이로구나. 한 터럭끝에 하늘과 땅이 나타나는구나.


감소일월부도처(堪笑日月不到處)에, 우습구나, 해와 달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개중별시일건곤(箇中別是一乾坤)이로구나. 이 가운데 따로 이 하늘과 땅이 있구나.



오늘은 1982년 1월 3일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과거에 온갖 슬픔과 괴로움, 모든 업장(業障)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 없어져서, 새로운 희망과 보람으로 한 해를 맞이해서 모든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고, 특히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돈독한 신심으로 도업(道業)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축원을 합니다.


한 해가 시작했구나 싶으면 금방 봄이 지나가고, 더워졌구나 싶으면 금방 가을이 다가오고, 단풍이 졌구나 하면 벌써 백설이 휘날리고 그럭저럭 하다보면 또 한 해가 시작이 되고, 덧없는 세월이 이렇게 물 흘러가듯이 지나가노라면,

우리 인생도 아무 한 것 없이 백발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가고, 아무리 머리에 물을 들이고 화장을 해서 흰머리와 주름살을 안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해도 눈은 침침해지고, 허리는 아파지고, 몸은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리가 높고, 명예가 있고, 재산이 있다 하드라도 이 길은 막을 도리가 없고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의 모습입니다.

생사 속에서 중생의 욕심으로 아무리 생사를 면할려고 해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직 불법, 최상승법만이 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 육체가 죽는 것을 면하고 이백 년, 삼백 년, 천 년 이렇게 살려고 하는 것은 신선도에서 그러한 길을 모색을 하고 있지만, 설사 몇백 년을 산다 하드라도 결국은 죽을 때가 있고만 마는 것이고, 그 죽는 그 자리는 허망하고 괴로운 것은 매양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오래 살려고 하는 길은 외도(外道)의 길이고, 생사 속에서 바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인 것입니다.



생전부귀초두로(生前富貴草頭露)요  신후풍류백상화(身後風流陌上花)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기개남아시장부(幾箇男兒是丈夫)오

나무~아미타불~


생전(生前)에 부귀(富貴)는 초두로(草頭露)요. 풀끝에 이슬과 같은 것이고.

신후풍류(身後風流)는 백상화(陌上花)로구나. 죽은 뒤에 영화와 명예는 언덕 위에 핀 꽃과 같은 것이다.


살아생전에 큰 재산과 큰 명예 · 권리는 풀끝에 이슬과 같은 것이여. 풀끝에 이슬방울이 매달려 있을 때 햇빛이 거기에 비추면 보석처럼 찬란히 반짝거리지만 바람이 한번 휙 불거나, 사람이나 짐승에 그 풀이 닿아서 움직이면 그렇게 번쩍번쩍하던 보석 같은 이슬방울이 툭 떨어져버리면 간 곳이 없어지더라.


죽은 뒤에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세운 찬란한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서 비석을 세운다, 기념관을 세운다, 무슨 사업을 한다, 죽은 뒤에 굉장히 그분의 공적을 찬양을 하지만 아무리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10년, 20년 가지 못해서 그 사람의 이름은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마치 언덕 위에 곱게 피었던 꽃이 불과 며칠이 안 가서 시들어져 떨어져버린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한데, 망망한 우주에 그 사람의 수가 한량이 없어. 지나간 과거에 살다가 간 사람이 몇억,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40억, 앞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또 가고 할 사람이 몇백 억이 될른지도 모릅니다.

그 한량없는 수 가운데에, 기개남아(幾箇男兒)가 시장부(是丈夫)냐.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생사 문제를 해결한 남아(男兒) 대장부(大丈夫)가 되겠느냐? 남아 대장부가 그 가운데 몇 사람이나 되겠느냐?


「생사 속에서 생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문제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긴급한 숙제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을 하지 않는 한(限)은 육도(六途)에 윤회(輪廻)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낳아서 차츰 커가면서 공부를 하고 온갖 노력을 해서, 일생 동안 수없는 고생을 하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냐?

한 말로 말해서 보다 더 잘살기 위해서, 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보다 더 행복하게 잘살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자기의 목표를 설정을 하고 밤잠을 안 자고 노력을 하고 있지마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지를 못한 채 한(恨)을 남기고 눈을 감고 이승을 하직하게 됩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에는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목적을 달성을 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눈을 감는 사람도 있지마는, 엄격하게 따져 보면 정말 그것이 자기를 참으로 행복하게 할 수가 있었던가? 또 그 업적이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인가?

따져 보면 별것이 아닌 것입니다. 재산이라든지 명예 · 권리라든지 또는 어떤 학문이라든지, 어떤 인간에 필요한 기계를 연구를 했다든지, 어떤 학설을 발표를 했다든지, 인간 세상에 일시 필요한 것일런지는 모르지만 궁극의 행복,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최상승법은 모든 중생들에게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참다운 길을 가르켜 주신 것입니다.

이 길이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시 이 세상에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데에 그 길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간단한 것입니다.


금방 녹음(錄音)을 통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마는 「내가 나를 찾는 공부, 내가 나를 깨닫는 공부」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參禪法)에, 이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법에 있어서 제일 무서운 병이 무엇이냐?

고황병(膏肓病)이라 하는 병인데, 고황병이라 하는 병은 한번 들어 버리면 천하 없는 명의도 이 병은 고칠 수가 없다. 이렇게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참선에 있어서의 고황병이란 화두(話頭)를 의심(疑心)하지 않는 병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두라는 것은 내가 결정코 타파(打破)해야만 할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타파하는 데 있어서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을 사용을 해서는 아니된다. 오직 그 화두에 대한 의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 화두를 관조(觀照)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의심을 하는데, 화두를 금방 들었는데 1분도 못 가서 딴생각[別念]이 들어와 버려. 또 화두를 '이뭣고?'하고 들면 불과 1분도 못 가서 딴생각이 들어와 버려. 딴생각이 들어온 줄 알면 다시 또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해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화두를 들어서 묵묵히 의심으로 관조하고.


앉아서 들었던 화두가 서면서 깜박 잊어 버리고, 금방 들었던 화두가 누가 내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 찰나에 ”예“ 하면서 그 화두를 놓쳐 버리고.

그렇지만 끝까지 후퇴를 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해 나가면 나중에는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져 있게 된 때가 꼭 오고만 마는 것입니다.(처음~21분17초)




(2/3)----------------


공부를 해 나갈 때 화두를 들면 잘 들리고, 들렸던 화두가 고대로 주욱 의심으로 관조가 되어 갈 때에는 머리도 개운하고 가슴도 시원하고 30분, 1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모르게 휘딱 이렇게 지나가는데, 그리고 앉는 몸도 그렇게 편안하고 아무 부담이 없는데.

그렇게 잘 나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영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고 시간이 5분, 10분이 그렇게 지루하고 몸뚱이가 그렇게 뒤틀리면서 지루하고 이렇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슴은 답답하고.


이러할 때가 오는데, 이러할 때에 어떻게 이 고비를 넘겨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境界)가 왔을 때 '아하! 내가 이 마장(魔障)이 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지를 말고, 그러한 경계가 왔을 때에는 '아! 내가 이 공부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올라서기 위해서' 그러한 경계가 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계가 왔을 때 자세를 첫째,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서서히 부담없이 하면서 화두를 잘 들면 되는 것이고,

그리해도 그 가슴 답답하고 골이 아프고 지루하고 한 것이 잘 풀리지 아니하면 조용하게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포행(布行)을, 한 10m 내지 20m 직선으로 조용한 뜰이나 마당에 정해 놓고서 직선상으로 왔다갔다하면서 화두를 들고 또 그 화두를 들어서 관조하고 이렇게 5분 내지 10분을 하면 가슴이 좀 후련해지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또다시 자기 자리에 들어가서 또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서 호흡을 고르면서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해서 그러한 경계를 잘 고비를 넘기면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어 질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는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공부가 한 계단 올라서기 위해서 그러한 경계가 오는 것이라 하는 것을 잘 명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길러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설사병이 나건 또는 감기를 앓건, 병을 한번 앓고 나면 한결 키도 자라고, 살은 좀 빠진 듯하지만 키가 완연히 한 치 가량이 푹 자라고 되고, 그리고 그전에 아니하던 귀여운 재롱도 늘게 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크다가 감기를 앓는다든지 설사를 앓는다고 해서 이걸 나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때 잘 거두고 조리를 잘 시키면 그러는 가운데 아이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기 한번 앓지도 않고, 설사 한번도 앓지를 않고 갓난애기 때부터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곱게 그렇게만 자란다고 하는 것은 있기가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과수(果樹)나무라든지 또는 화초 같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불고 눈서리를 맞으면서 그렇게 자라야만 그 나무가 온전히 굳세게 자라는 것입니다. 밤낮 온실 속에서 바람 한번 찬바람 한번 쐬 보지 못하고, 눈 · 비 · 서리도 맞아보지 아니하고 온실 속에만 자란 나무는 별로 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약해 빠져서 아무짝에도 못쓰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를 하는 사람도 그러한 역경계(逆境界) · 순경계(順境界), 때로는 공부가 순풍에 돛 달듯이 그렇게 수월하게 잘되어 가기도 하고, 때로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앞으로 맞으면서 그 힘들여서 배를 저으면서 올라가는 그러한 고비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데 밤낮 걸어가기 좋은 평탄한 길만 가기보다는 때로는 물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가파른 경사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가기도 하고, 곱이곱이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하고 등산을 해야만 거기에서 몸도 건강해지고, 인상에 남는 것도 있고 그럴 것입니다.


등산이라고 하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뭐하러, 오르기 좋은 그러한 산을 부담없이 기쁜 마음으로 올라갔다가 하루 재미있게 놀다가 내려오지, 왜 하필 히말라야 같은 그 힘든 얼음산을 올라가다가 둘씩, 셋씩 떨어져 죽고, 형이 떨어져 죽으면 또 동생이 가고. 그 사람이 운동도 좋지만 목숨까지 버리면서 그런 짓을 왜 할까 보냐, 미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냐?'하고 생각이 될는지 모르지만, 등산에는 등산의 도(道)가 있는 것입니다.


예술에는 예술의 도(道)가 있고, 학문에는 학문의 도(道)가 있듯이, 우리의 참나를 깨닫는 참선에는 참선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떠한 길이건 순경계보다도 그 역경계에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역경계가 없는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무 매력도 없고 맛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이고, 또 비약적인 경계에도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인행(因行) 때의 수행을 거치셨고 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셔가지고서도 12년간이라고 하는 피나는 고행(苦行)을 겪으시면서 도를 구하셨습니다.


물론 도라고 하는 것을 고행 일변도(一邊倒)로, 지나친 고행 위주(爲主)로의 수행도 바른 수행법이 아니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도를 닦는데 고행을 완전히 없이하고 순한 경계에서만 도를 닦으려는 마음도 또한 옳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잘 잠 다 자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그러면서 참나를 깨달으려는 생각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생각인 것입니다. 도저히 대각(大覺)을 그래가지고서는 바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노두군자간(生死路頭君自看)하라  활인전재사인중(活人全在死人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기자래심호리(花氣自來深戶裡)헌디  조성장재원림중(鳥聲長在遠林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생사노두(生死路頭)를 군자간(君自看)하라. 생사 길머리를 그대는 스스로 보아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차례차례 다 저승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지 않고 영원히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팔십에 가기도 하고, 칠십에 가기도 하고, 육십 오십에 가기도 하고, 젊어서 가기도 하고, 어려서 가기도 하고, 나오다가 가기도 하고.


활인전재사인중(活人全在死人中)이라. 살아 있는 사람은 온전히 죽은 사람 가운데 있구나. 우리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 가운데 있어.

앞에서 죽고 뒤에서 죽고, 왼쪽에서 죽고 오른쪽에서 죽고, 세계에 하루에 몇천 명, 몇만 명이 병으로 죽고, 차 비행기 사고에 죽고, 배가 가라앉아 죽고, 전쟁하다 죽고, 불이 나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온통 죽은 사람 속에 산 사람이 있어.


말을 바꿔서 말하면 내 자신도 '죽을 사(死)'자, 주검 위에 지금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살다가 이 몸뚱이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것을 '죽었다'고 그러는데, 그러한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라 참으로 무서운 죽음은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면 그것이 벌써 한평생을 살다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육칠십 년을 살다 가는 게 아니라, 태어난 찰나부터 한 생각 일어나면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생각이 꺼지면 한평생을 살고 죽은 것이고, 그러자마자 또 한 생각이 일어나면 또 새로 태어난 것이고, 한 생각이 꺼지면 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1초 1초 지나가면서 수없는 생사, 생사, 생사가 되풀이되면서 생사의 수레바퀴, 생사의 수레를 타고 생사의 길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정말 발심(發心)을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칠팔십 년 살다가 죽으리라, 그러니 아직도 내가 죽을라면 몇십 년이 더 있어야 할 테니 죽음 문제 같은 것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慾樂) 속에 빠져서 참나를 깨달으려는 생각을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지내가고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생사(生死)가 코앞에 있고, 생사의 수레바퀴를 타고 죽음을 향해서 지금 끌려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낀다면 이 문제보다도 더 심각하고 급박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정도 다 버리고, 직장도 다 버리고, 사회 국가도 다 버리고 우리도 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다 출가(出家)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40억 인구가 일제히 다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실천해 나간다면 온통 이 세계가 고대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될 것이고,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될 것이고, 천당이 되어서 싸움도 거기에는 없을 것이고 그러겠지만,

그것은 모든 중생들의 업(業)이 천차만별이어서 이것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권력자의 명령으로도 될 수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각기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인간으로서 맡은 책무를 성실히 실천하면서 그 가운데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면 그것이 바로 이미 출가를 한 것입니다.


'출가'라 하는 말이 꼭 속복(俗服)을 벗고 산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어야만 출가가 아니고, 세속에 있으되 세속에 있으면서 속복을 입고 머리 기른 채 한 생각 돌이키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벌써 거기에는 출가한 사람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설사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고 절에서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화두를 놓치고 속된 생각이 일어난다면 바로 속인(俗人)이 되는 것입니다.


출가(出家)와 재가(在家)의 구별이 형식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청정하냐, 청정하지 못하느냐'로 결정을 내야 할 것입니다.

소금이 마치 '빛깔이 희냐, 검느냐'로 판별을 할 것이 아니라, 아무리 희다 하더라도 조금도 짠맛이 없다면 그것은 모양이 아무리 소금같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금이라 할 것이 못 될 것입니다.


더욱이 이 최상승법인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일정한 형식, 고정된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차를 타면서도 하고 일을 하면서도 하고, 괴로울 때도 하고 슬플 때도 하고, 외로울 때도 하고 편안할 때도 하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이요 어데서라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21분18초~42분45초)




(3/3)----------------


그래서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살림을 하면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과목 공부를 열심히 하는 그 가운데 학교 가면서, 학교 가서 교정에 있으면서,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오면서, 집으로 와서 차(茶)를 타면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면서 바로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슬플 때에 '이뭣고? 이 슬퍼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화두를 들면 슬픈 생각이 스르르르르 가라앉게 되면서 거기에서 도심(道心)이 발하게 될 것이여.

속이 상해서 가슴이 미어지려고 할 때에도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할 때에 미어질 듯한 가슴 답답함이 스르르르르 가라앉으면서 감정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그래서 우리 중생의 마음속에 일대(一大) 혁명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도 썩어 문드러져서 그 나라가 도저히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는 그러한 부패한 나약한 나라가 될 때에는 반드시 이웃나라로부터의 침범을 받게 되는 것인데, 그러할 때를 당해서 충신열사(忠臣烈士)들이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그 나라를 바로 잡는다는 예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해태(懈怠)의 구렁텅이에 빠져 가지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고 잘 먹고 잘 입고 무사안일(無事安逸)함만을 탐익(耽溺)하다가 세월은 흘러가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는 없는데,

그러한 속에서 불법을 만나서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어서, 마음속에 무상(無常)을 깨닫고 참선을 해 가지고 정신혁명을 일으킨다면 이 생사(生死)의 고해(苦海) 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고, 너무 공부하는 도장(道場)이 바로 자기 발 디디고 섰는 곳이 선방(禪房)이요 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방에 앉았으면 방이 선방이요, 부엌에 가면 부엌이 자기의 선방이요, 차를 타면 차가 바로 자기의 선방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도반(道伴)이요, 우리의 선지식이요,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시고,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다져 나가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한 분에게는 모든 재앙은 사라질 것이며, 자기의 원하는 바는 크고 작은 모든 원(願)이 차례차례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렇게 해서 모든 자기 마음속에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최상승법을 실천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항시 불보살의 따스한 자비의 눈매가 이마에 와 어루만져 질 것입니다.

그리고 법계(法界)에 모든 선신(善神)들은 그 사람을 항시 옹호(擁護)해 주고 있을 것입니다. 이십오 신장(神將)이 그 사람을 보호해 준다 했습니다.


마음속에 답답한 원이 있을 때 성지에 가서 기도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항시 이 최상승법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한 생각도 망각함이 없이 다져 나가고 다져 나간다면 그 사람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불보살과 모든 선신들의 가피(加被)와 옹호가 따르기 때문에 무슨 소원이 이루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자세를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반가부좌(半跏趺坐),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중심을 잡으십시오.


허리를 쭉 펴되, 항시 좌선할 때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자세를 잡느냐 하면 머리, 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이렇게 쭉 들어가지고 그것을 저 천장에다가 달아매서 '이 몸뚱이가 머리카락 하나에 매달려 가지고 지금 앉아 있다'하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머리, 이 정상으로부터 얼굴과 몸뚱이가 수직으로 될 것입니다. 좌우나 전후로 기울거나 넘어진 법이 없이 한 시간 두 시간을 앉아 있어도 그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자기 머리에, 정상에 있는 머리 한 올의 머리칼로써 지금 매달려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 말이 필요 없이 몸은 단정하게 될 것입니다.


어깨의 힘도 다 빼고, 목의 힘도 다 빼고, 이는 어금니부터서 지그시 물되, 너무 힘들여서 물지도 말고 지그시 물고, 입은 '한 일(一)'자로 다물되 가볍게 다무는 것입니다.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대십시오.

눈은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너무 가늘게 뜨거나 감지 말 것이며 평상(平常)으로 뜨면 됩니다.



먼저 숨을 한 점도 남김없이 완전히 다 입을 통해서 토해 내십시오.

입을 동그스름하니 조그만하니 열고서 숨을 '후~'하고 완전히 다 내뿜으십시오. 가슴이 약간 홀쪽해진듯 하면서 다 내뿜으시는 것입니다.


다 내뿜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코를 통해서 들어마십니다. 들어마실 때 가슴을 약간 드는듯 하면서 가슴에 가뜩 들어마시십시오. 가슴이 미여질 정도로 들어마셔.

더이상 들어마시지 못할 때 한참 그 상태로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또 내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또 들어마셔.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쉽니다.

이렇게 세 번쯤 한 다음에 정식 단전호흡(丹田呼吸)으로 들어갑니다.


단전호흡은 코로 들어마시되 '코로 들어마신다'하는 생각을 갖지 말고, 저 궁댕이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 단전(丹田)이 약간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들여마셔.

들어마신 호흡을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되 '코로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로 수~욱 내보낸다는 기분으로 내쉬면서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속으로 하면서 내쉬는 것입니다.


(정진)


참선을 30분이나, 한 시간 이렇게 하고 이제 그만 좌선(坐禪)을 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에는 숨을 다시 깊이 들어마셨다가 '후~'하고 또 한 서너 번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몸을 또 좌우로 서너 번 이렇게 흔들고.

그리고 인자 이 손을 요렇게 싹싹싹싹 비벼서, 손바닥이 뜨끈뜨끈한 손을 가지고 눈 위에다 이렇게 오목하니 해서 눈을 이렇게 가리고 그 속에서 눈을 딱 뜨세요. 그리고 그 손으로 또 얼굴을 이렇게 만지고요.


또 손을 비벼서.... 이 비빌 때 눈을 감고 비비고, 그래가지고 그 뜨끈뜨끈한 손을 눈 위에다 덮은 다음에 그 속에서 눈을 이렇게 뜨세요. 뜨고 난 다음에 그 손으로 얼굴과 귀와 얼굴을 잘 만지세요.


그렇게 한 다음에 다리가 저린 사람은 다리를 뻗고 다리도 좀 주무르고, 발목도 돌리고 이렇게 해서 잘 푼 다음에 조용히 일어서는 것입니다.

30분이나 1시간 또는 2시간 이렇게 앉아서 좌선을 하다가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일어설 때 갑자기 불끈 일어서고, 갑자기 나가서 달음박질을 한다든지, 뛴다든지 이것은 대단히 해로운 것입니다.


그리다가 혹 심장병이 생기기도 하고 또는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기도 하고, 그것이 앉았다가 일어설 때 함부로 해가지고 그런 병이 생기는 수가 흔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선을 많이 하신 스님네나 여러 청신사 청신녀들께서도 앉았다 일어설 때 항시 그런 준비 운동을 하고 나서 조용히 일어서도록 주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부귀일시락(人間富貴一時樂)이요  지옥신산만겁장(地獄辛酸萬劫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세유백천한일월(世有百千閑日月)인데  인무일점호신심(人無一點好身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부귀(人間富貴)는 일시락(一時樂)인데, 인간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한때의 낙(樂)에 지나지 못하는데,

지옥신산만겁장(地獄辛酸萬劫長)이다. 지옥에 쓰라린 고통은 만겁(萬劫)이나 길고 길더라.


잠깐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한 인간의 즐거움 그것을 맛보다가,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죄를 짓다가 그 잠깐 쌈박한 맛에 취해가지고 그것을 탐닉하다가 한번 지옥에 떨어지면 그 몸서리치고 쓰라리고 괴로운 그 고통은 무량겁이나 길고 지옥에서 나올 기약이 없더라.


세유백천한일월(世有百千閑日月)인데, 이 세상에 일월(日月), 해와 달, 하루하루가 가면 한 달, 한 달 한 달이 가면 일 년, 일 년 일 년이 가면 십 년, 수천 년, 만 년 이렇게 세월이 지나가는데, 그 많은 한가한 세월이 지나가는데.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몸이 아무 병이 없이 편안하고, 마음도 아무 고통이 없이 즐겁기만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더라[人無一點好身心].

오장육부 사지백체(四肢百體) 어디가 아프던지 아프고, 무슨 걱정이 있든지 걱정이 있지, 걱정도 없고 몸이 괴롭지도 않고 그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더라 그 말씀이여.



자꾸 '생사가 두렵다. 인간이 무상하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정말 그놈의 생사를 어떻게 해야 면할 것인가? 여태까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한 사람도 생사를 면한 사람이 없다니, 그럼 뭐 참선해 봤자 죽을 사람 다 죽고 그러니 뭐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는 소리가 뭔 소리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분명히 말하자면, 조금도 거짓을 붙이지 아니하고 사실 고대로 말하자면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어요. 그래서 해탈할 것도 없는 것이고.

우리가 가야 할 생사가 없는데 무슨 또 지옥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지옥도 없는 것이요, 천당도 없는 것이요, 생사도 없는 것이여. 또 우리가 증득해야 할 열반(涅槃)이라 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는 없는데, 현실적으로는 있습니다.(42분46초~63분2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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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대지촬래속미립(大地撮來粟米粒) 일호두상현건곤(一毫頭上現乾坤)' ; 『호구소륭화상어록(虎丘紹隆和尙語錄)』 '평강부호구운암선사어록(平江府虎丘雲巖禪寺語錄)' 참고. (大地撮來粟米粒 一毛頭上現乾坤 居家不離途中事 常在途中不出門)

[참고] 호구소륭(虎丘紹隆 1077~1136) : 송(宋)의 스님. 임제종 양기파. 원오극근(1063~1135)의 법을 이어받고 20년 동안 시봉함.

*(게송) '감소일월부도처(堪笑日月不到處) 개중별시일건곤(箇中別是一乾坤)' ; 『禪宗頌古聯珠通集』 제20권 '大溈行' 게송 참고. (滿滿彎弓射不著 長長揮劒斫無痕 堪笑日月不到處 箇中別是一乾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해탈(解脫) : [범] Vimokṣ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게송) '생전부귀초두로(生前富貴草頭露) 신후풍류백상화(身後風流陌上花)' ; 소식(蘇軾, 소동파)의 '陌上花(三首)' 참고.

*(게송) '망망우주인무수(茫茫宇宙人無數) 기개남아시장부(幾箇男兒是丈夫)' ; 여동빈(呂洞賓).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고황병(膏肓病) ; 고황(膏肓) · 고황지병(膏肓之病)이라고도 한다. 고황에 들어 고치기 어려운 병.

고황은 심장과 횡격막의 사이에 있는 부분으로 이 사이에 병이 생기면 낫기 어렵다고 한다. 고(膏)는 심장의 아랫부분이고, 황(肓)은 횡격막의 윗부분.

고황에 병이 들었다는 의미는 병이나 못된 버릇이 고칠 수 없도록 심하여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가벼운 것이 아닌 불치의 병, 중병 등을 말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를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등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을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공(空)하여 체성(體性)이 없음이 마치 물에 뜬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남[出]이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그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온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성(城)을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행[功行]은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絕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곧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적(寂)과 조(照)가 앞에 나타나 응(應)해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일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에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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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1분 32초)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곱이곱이 ; 길이나 강물 따위가 여러 굽이로 휘어져 구부러진 모양을 나타내는 말.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대각(大覺) ; 부처님의 깨달음. 정각(正覺) · 대오(大悟) 등과 같은 뜻이다. 스스로 깨닫고[自覺] 남들도 깨달음으로 인도하여[覺他] 각(覺)과 행(行)이 원만하게 갖추어졌으므로 대각이라 한다. 또는 부처님 자체를 가리키는 말.

*(게송) '생사노두군자간(生死路頭君自看) 활인전재사인중(活人全在死人中)' ; 『설봉공화상외집(雪峰空和尙外集)』 「송고(頌古)」에서 '亂後入黃龍途中示道伴' 참고. (羯胡如鬼馬如風 雪刃縱橫到處空 生死路頭君自看 活人全在死人中)

*'사람이 태어나서 육칠십 년을 살다 가는 게 아니라, 태어난 찰나부터 한 생각 일어나면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생각이 꺼지면 한평생을 살고 죽은 것이고.... ....1초 1초 지나가면서 수없는 생사, 생사, 생사가 되풀이되면서 생사의 수레바퀴, 생사의 수레를 타고 생사의 길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p103-104. (가로판 p101~103)

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속복(俗服 속인 속/옷 복) ; 스님이 '일반 사람[俗人]의 옷[服]'을 이르는 말.

*먹물옷 ; 검은 물[먹물]을 들인 스님의 옷. 치의(緇衣 검을·승복 치/ 옷 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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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道心) ; 불도(佛道)를 행하고 믿는 마음.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무사안일(無事安逸 없을 무/일 사/편안할 안/한가할 일) ; 어떤 일[事]에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無] 편안(便安)하고 한가하게[逸]만 지내려는 태도.

*탐닉(耽溺 즐기다·좋아하다 탐/빠지다 닉·익) ; 어떤 일을 몹시 지나치게 즐겨서[耽] 거기에 빠짐[溺].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4분 48초)

[참고 ❸] 송담스님(No.401)—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이제 가을도 가고 겨울철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음력 10월 보름에 겨울철 안거(安居)가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는 뒤로 미루지 말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보면 한량이 없습니다. 탁! 큰 마음을 내서 결단심을 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또 이 한 철을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새로 선방(禪房)을 확장을 했으니 어찌던지 와서 정진을 잘 하시길 바라고, 부득이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나와서 공부를 못하신 보살님네, 거사님네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 속에서 항상 '바로 있는—발 디디고 서 있는 그 자리, 앉어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뭣고?」만 탁 들면 벌써 용화사 선원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용화사에 방부를 들이고, 와서 큰방에 앉어 계셔도 밤낮 여기 앉어서 집안 생각, 아들 생각, 딸 생각 그러고 있으면은 그건 방부 들이나마나 하는 거고.

댁에 계시더라도 항상 「이뭣고?」를 들고 일 하다가도 퍼뜩 챙기고, 앉어서 챙기고, 서서 챙기고, 밥 먹으면서 챙기고, 똥 누면서 챙기면은 바로 집이 용화사 선원이거든.


시간도 공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척지간(咫尺之間)이 수천 리, 수천 리가 지척이 되는 것입니다. 백년 천년 하면 긴 것 같지마는 일 찰나간이고, 일 찰나간이 잠깐인 것 같지마는 이것이 바로 무량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를 외우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거든. 이것은 진리에 입각해서 하신 말씀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래.


둘이 나란히 한집에서 한 이불 속에서 자도 벌써 생각이 틀어져 버리면은 천리(千里)거든. 부부간도 천리 웬수여. 저 천리 밖에 떨어졌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있으면은 벌써 부부일신(夫婦一身)이거든.

시간과 공간을 그것이 또 다른 것이 아니야. 시간이고 곧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거든. 공간 없는 시간이 없고 시간 없는 공간이 없어. 시간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공간이고 시간과 공간은 베의 날과 씨가 서로 이렇게 짜여져서 베를 짜듯이 시간과 공간도 역시 마찬가지여.


그래서 어느 때, 어느 시간 무엇을 하실 때라도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 하나만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저 딱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그 자리에는 부처님이 계신 자리요, 그 자리는 모든 조사(祖師)가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는 전강 조실 스님이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는 입승(立繩) 스님이 탁! 죽비를 들고 앉아 있는 자리다 그말이거든.

그러니 입승 스님이 죽비를 들고 앉아 있고, 조실 스님이 탁! 지켜보고 계시고, 모든 조사 스님이 그 자리에 계시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자리에 계시는데 어느 곳이 선불장(選佛場)이 아니겠습니까?(54분57초~59분45초)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옹호(擁護 안을·지킬 옹/보호할 호)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킴.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게송) '인간부귀일시락(人間富貴一時樂) 지옥신산만겁장(地獄辛酸萬劫長)' ; 『석옥청홍선사어록(石屋淸洪禪師語錄)』 하권, '산거시(山居詩)' 참고.

*(게송) '세유백천한일월(世有百千閑日月) 인무일점호신심(人無一點好身心)'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제29권. '별우십수(別友十首)' 참고. (世有百千閑日月 人無一點好身心 知他爲甚麼邊事 添得茫茫業海深)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한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법문 내용]


(게송)대지촬래속미립~ / 생사 속에서 바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 (게송)생전부귀초두로~ / 내가 나를 깨닫는 공부, 이것이 바로 참선법.

참선에 있어서의 고황병이란 화두(話頭)를 의심(疑心)하지 않는 병 / 어떠한 길이건 순경계보다도 그 역경계에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게송)생사노두군자간~ / 살아 있는 사람은 온전히 죽은 사람 가운데 있구나 / 출가(出家)와 재가(在家) / 참선 공부는 그래서 우리 중생의 마음속에 일대(一大) 혁명을 일으키게 하는 것 / (게송)인간부귀일시락~ / 생사는 본래 없다.



이 세상에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리가 높고, 명예가 있고, 재산이 있다 하드라도 이 길은 막을 도리가 없고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의 모습입니다. 생사 속에서 중생의 욕심으로 아무리 생사를 면할려고 해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직 불법, 최상승법만이 이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불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최상승법은 모든 중생들에게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참다운 길을 가르켜 주신 것입니다. 이 길이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시 이 세상에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데에 그 길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간단한 것입니다.

금방 녹음(錄音)을 통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마는 「내가 나를 찾는 공부, 내가 나를 깨닫는 공부」 이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參禪法)에, 이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법에 있어서 제일 무서운 병이 무엇이냐? 고황병(膏肓病)이라 하는 병인데, 고황병이라 하는 병은 한번 들어 버리면 천하 없는 명의도 이 병은 고칠 수가 없다. 이렇게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참선에 있어서의 고황병이란 화두(話頭)를 의심(疑心)하지 않는 병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부가 잘되다가 뚝 변해 가지고 영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고 시간이 5분, 10분이 그렇게 지루하고 몸뚱이가 뒤틀리면서 지루하고 가슴은 답답하고 이러할 때가 오기도 하는데, 이러할 때에 어떻게 이 고비를 넘겨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境界)가 왔을 때 '아하! 내가 이 마장(魔障)이 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지를 말고, 그러한 경계가 왔을 때에는 '아! 내가 이 공부가 한 계단 올라서려는, 올라서기 위해서' 그러한 경계가 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 길이 어떠한 길이건 순경계보다도 그 역경계에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역경계가 없는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무 매력도 없고 맛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이고, 또 비약적인 경계에도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인행(因行) 때의 수행을 거치셨고 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셔가지고서도 12년간이라고 하는 피나는 고행(苦行)을 겪으시면서 도를 구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온전히 죽은 사람 가운데 있구나. 우리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 가운데 있어. 말을 바꿔서 말하면 내 자신도 '죽을 사(死)'자, 주검 위에 지금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입니다.


참선 공부는 우리 중생의 마음속에 일대(一大) 혁명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도 썩어 문드러져서 그 나라가 도저히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는 그러한 부패한 나약한 나라가 될 때에는 반드시 이웃나라로부터의 침범을 받게 되는 것인데, 그러할 때를 당해서 충신열사(忠臣烈士)들이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그 나라를 바로 잡는다는 예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해태(懈怠)의 구렁텅이에 빠져 가지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고 잘 먹고 잘 입고 무사안일(無事安逸)함만을 탐익(耽溺)하다가 세월은 흘러가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는 없는데, 그러한 속에서 불법을 만나서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어서, 마음속에 무상(無常)을 깨닫고 참선을 해 가지고 정신혁명을 일으킨다면 이 생사(生死)의 고해(苦海) 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진을 한 다음에 다리가 저린 사람은 다리를 뻗고 다리도 좀 주무르고, 발목도 돌리고 이렇게 해서 잘 푼 다음에 조용히 일어서는 것입니다.

30분이나 1시간 또는 2시간 이렇게 앉아서 좌선을 하다가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일어설 때 갑자기 불끈 일어서고, 갑자기 나가서 달음박질을 한다든지, 뛴다든지 이것은 대단히 해로운 것입니다. 그리다가 혹 심장병이 생기기도 하고 또는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기도 하고, 그것이 앉았다가 일어설 때 함부로 해가지고 그런 병이 생기는 수가 흔히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조금도 거짓을 붙이지 아니하고 사실 고대로 말하자면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어요. 그래서 해탈할 것도 없는 것이고.

우리가 가야 할 생사가 없는데 무슨 또 지옥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지옥도 없는 것이요, 천당도 없는 것이요,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증득해야 할 열반이라 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는 없는데, 현실적으로는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