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523)—93년(계유년) 성도재 법회(93.12.08.음)(56분)
(1/3)----------------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한데 사의순환기료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면 방호출신장부아(方號出身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한 물결이 일어나자마자 일 만 물결이 따르더라.
사의순환기료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이 끝없이 돌고 돌아서 언제 끝날 때가 있을까 보냐?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면, 오늘 그대와 더불어 옴막 잘라서 끊어버려야사만,
방호출신장부아(方號出身丈夫兒)다. 바야흐로 몸을 뛰쳐나온 대장부(大丈夫)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삼천 년 전에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싯달(siddhartha) 태자’라고 하는 태자로서 탄생을 하셨어.
그래 가지고 16세에 야수다라와 결혼을 하시고 29세에 출가를 하셔서 설산에 들어가서 6년 동안을 하루에 일마일속(一麻一粟), 삼씨 하나와 곡식 알 하나를 그것을 잡숫고 무서운 고행을 하셨다.
그때 당시 인도에는 부처님께서 탄생하기 전부터, 출가해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고행(苦行)을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는 그러한 외도(外道)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도를 닦는다’ 하면은 고행이여. 고행이 바로 수행의 전부였습니다.
온갖 종류의 고행—도저히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무서운—육체를 괴롭히는 그러한 고행을 했습니다. 가시 위에 뒹굴기도 하고, 불 속에 왔다갔다 하면서 그 뜨거운 것을 참기도 하고, 굶는 거.
부처님께서도 설산에 들어가셔서 일마일속(一麻一粟)을 잡숫고서 그 무서운—여러분도 사진을 통해서 보셨겠지마는 뼈가 완전히 드러나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그러한 고행하시는 모습을 그려 놓은 그림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행을 하셨는데, 이 고행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해탈도를 증득하는 바른 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달으시고서 니련선하(尼連禪河)에 가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Sujata)라고 하는 처녀가 갖다 바치는 유미죽(乳糜粥)을 받아서 잡쉈습니다. 그래 가지고 기력을 챙기셨습니다.
정각산(正覺山) 보리수(菩提樹) 하에 앉아서 『정각(正覺)을 얻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시고서 49일 동안을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 49일째 날이 바로 12월 8일,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에 밝은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그때가 35세였습니다.
그런 뒤에 바라나국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6년 동안을 같이 고행하던 교진여 등 오비구(五比丘)를 제도하시고, 삼가섭(三迦葉)을 제도하시고, 그런 뒤에 마갈타국 빈바사라왕 또 사리불, 목련 존자를 제도하시고,
성도(成道) 후 3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서 부왕(父王)을 제도하시고, 아란·난타·라후라 등을 차례로 다 제도하시고, 그 이후로 갠지스 강 남북 마갈타국, 코살라국, 비사리 등지를 왕래하시면서 보수 80세에 이르시도록 팔만사천(八萬四千) 무량법문을 설하셨습니다.
49년 동안 설하시고서, 한량없는 법을 설하시고서도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단 한 글자도, 한 말도 설한 바가 없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시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한 바로 거기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의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49년 동안 설하신 교설(敎說)은 활등과 같고, 활등은 이래 굽어 가지고 돌아가는 거고, 활줄은 직선이다. 교설은 활등과 같고 활구참선법은 활줄과 같이 바로 설하신 것이다’ 이런 말씀 하셨는데,
교학은 가르킬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고, 자꾸 배우고 익히고 해서 알아 들어가고 이렇게 하는 건데, 참선법은 가르켜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여.
참선하는 방법은 일러 줄지언정 바로 깨닫는 것은 자기가 깨달라야지, 가르켜서 깨닫게는 못하는 거여.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는 것이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다.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 끊어진 것을 요하느니라.
조사관, 우리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을 타파(打破)해야만 해.
‘이뭣고?’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이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의단(疑團)!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야 하고 꽉 막혀야... 그래서 의관(疑觀)이거든. 의심관(疑心觀)이여.
처음에는 자꾸 들 때만 화두가 있다가 금방 딴 생각이 일어나고, 딴 생각이 일어나서 한참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때사 정신을 차리고 다시 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하는 사람은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 ‘이뭣고?’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챙기고 또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리는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그 의단이 클 수가 없어.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기연(機緣)에 툭! 터져 버리는 거다 그말이여. 그게 바로 조사관을 뚫는 거다.
조사관을 뚫을라면은 마음 길이 끊어져서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되어야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사량분별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게 아니여. 백년을 두고 따져 봤자,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해 갈수록 재미가 없고 맛이 없고, 몇 번이나 ‘그만둘까? 이거 해 가지고 참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내가 이거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차라리 머리를 기둥이나 벼람박에다 부딪쳐서 차라리 죽어버려야 할까?’ 다리를 뻗고 고인은 통곡을 하는 이도 있고,
그러나 부처님을 믿고 조사(祖師)를 믿기 때문에 숙세에 정법의 인연을 심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잠시, 떨쳐 버리고 다시 분심(憤心)을 일으키고 화두를 거각(擧却)해.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다그쳐 나감으로 해서 결국은 타성일편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해. 목적지를 찾아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데 이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니 물도 다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인자 더이상 갈 곳이 없구나. 내가 갈 곳은 어디냐?
이렇게 물도 끊어지고 산도 콱 막혀서 이제 길이 콱 끊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러나 거기서 쉬지 않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겨서 한 고개를 넘어가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파란 버들은 그윽히 휘늘어지고 밝은 꽃은 환하니 핀 또 한 마을이 거기에 있구나.
참선이 어찌 수월할까 보냐 그말이여.
무량겁을 두고 한 생각 미(迷)한 그 원인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 속에서 업(業)을 짓고, 그 업으로 인(因)해서 점점 더 깊은 업을 짓고, 그래 가지고 삼악도(三惡道)를 돌고 돌아 육도(六途)를 윤회해 오늘에 이르렀는데 어찌 확철대오 하는 길이 그렇게 쉬울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어려운 것이 당연하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다 확철대오해서 성불한 그러한 부처님이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진즉(趁卽) 원(願)을 세워 가지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궁에 태어나 가지고 출가하셔서 6년 고행 끝에 결국은 확철대오 하셨는데,
‘왜 6년 고행을 하셨느냐?’하면은 ‘고행(苦行)을 해야만 도를 얻을 수가 있다’고 사람들이 모두가 다 믿고 있는데, 고행을 위한 고행은 정말 참다운 바른 성스러운 수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말이여.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맛있는 것 찾을 겨를이 없고, 좋은 옷을 입을 겨를도 없고, 부귀영화 언제 그런데 한눈 팔 겨를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 ‘몸뚱이를 괴롭히는 것으로써 그러한 고행을 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수행이다’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께서 몸소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여. 바로 깨달음을 여실(如實)히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성도재(成道齋)의 의의(意義)다 그말이여.
부처님이 그렇게 확철대오 하는 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서 그것을 믿고 거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우리도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말이여.(처음~21분35초)
(2/3)----------------
(도를) 닦건, 안 닦건 부처님이나 우리 중생이나 모든 꿈적꿈적한 준동함령(蠢動含靈)도 다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어. 다 본성(本性)을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미(迷)했을 뿐이거든.
미(迷)했으나, 깨달랐으나 그 본각성(本覺性)은 조금도 차등이 없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마니주(摩尼珠) 보배 구슬이 물속에 들어 있거나, 진흙 속에 들어 있거나, 똥항 속에 들어 있거나 그 마니주 자체는 변함이 없거든. 그러나 진흙 속에나 똥항 속에서는 그 마니주의 본래 가지고 있는 찬란한 빛을 발휘를 못하는 거여.
그것을 건져내서 깨끗이 닦아야 비로소 마니주의 본바탕이 여실히 드러나는 거와 마찬가지다.
이 법계(法界)는 십법계(十法界)가 있는데,
일법계는 천법계(天法界)여, 하늘나라. 십선업(十善業)을 닦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고, 인법계(人法界) 사람이 살고 있는 인법계는 5계(五戒)를 닦으면은 사람의 몸을 받아날 수가 있어.
수라법계(修羅法界)는 교만업(憍慢業)을 행하면은 수라법계에 태어나는 거고, 지옥법계(地獄法界)는 십악업(十惡業)을 지으면은 지옥법계에 떨어지는 거여.
다섯째 아귀법계(餓鬼法界)는 간탐업(慳貪業)을 지으면 아귀법계에 떨어지는 거여. 여섯 번째 축생법계(畜生法界)는 우치업(愚癡業)을 지으면, 어리석은 거 우치업을 지으면은 축생법계에 떨어지는 거여.
성문법계(聲聞法界)는 사제법(四諦法)을 증득을 하면은 성문법계에 태어나는 거여. 여덟째 연각법계(緣覺法界)는 12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달으면은 연각법계에 태어나는 거다. 아홉 번째 보살법계(菩薩法界)에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으면은 보살법계에 태어나는 거고,
열 번째 불법계(佛法界), 부처님 법계에는 평등일승법(平等一乘法)을 행하면은 부처님 법계에 태어난다.
앞에 말한 아홉 개의 법계에 대해서는 우선 그만 두고 열 번째 불법계에 태어나는 것, 불법계에 태어나는 것은 내가 바로 부처님이 되는 거여. 부처님이 될라면은 평등일승법을 행해야 부처님이 된다.
평등일승법이라는 게 무엇인가?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을 닦아야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상 말한 십법계(十法界)는 범부 성현이 다 십법계를 지은 바에 따라서, 행하는 바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무슨 세계, 무슨 법계에 태어나고자 하느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절대 권리를 가지고 있다.
누가 거기를 ‘너는 불법계로 가라’ ‘너는 지옥법계로 가라’ 무슨 절대신이 있어 가지고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지어 가지고 그 법계에 올라가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기도 한다 그말이여.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자기가 지은 바에 따라서 그것은 다르지만, 최초에 한 생각 일어나 가지고 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일으킨 뒤에 생각 생각이 그것을 상속(相續)을 해 가지고 그것을 성사를 하는 거여.
최초 한 생각이 축생도에 떨어질 생각을 해 가지고 그것을 이리저리 자꾸 그놈을 상속을 해 가지고 그것을 몸으로 행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축생이 되는 거고,
성문(聲聞)이 될라면은 성문이 될 수 있는 생각, 고집멸도(苦集滅道) 그것을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그것을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생각을 해 가지고 그것을 고집멸도로 이렇게 해서 그렇게 실천해 나가면 성문이 되는 거고,
보살이 되고 싶으면은 보살이 될 수 있는 생각을 일으켜서 원(願)을 세워 가지고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해탈로 이렇게 공부를 해 나가면 보살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금 우리는 십법계 중에서 마지막 평등일승법을 행해 가지고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그거거든. 불법계(佛法界)에 태어나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한 생각, 최초의 한 생각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그 바른 신심으로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법에 의해서 염념상속(念念相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참구(參究)해 가면 갈 곳이 없다 그말이여.
그게 저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무슨 보물을 찾는 것도 아니고, 땅속을 파고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무슨 보물을 찾는 것도 아니다.
자기에게 있는, 지금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을 줄도 알고, 혀를 통해서 맛볼 줄도 아는, 그리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춥고 더운 것도 알고, 때리면 아플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아는 바로 그놈 속에—중생은 그것이 바로 식(識)이요, 그것이 생각이고 뜻인데, 그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그 당처(當處)가 바로 그 속에 있거든.
그놈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번뇌 망상 바로 그놈을 여의고 있는 게 아니라 거기서 그놈을 찾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방법만 바르게 알면 바로 누구라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열심히, 오직 백만사(百萬事)를 다 거기에 신경을 쓰지 말고,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와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드리 해 나가면 부처님처럼 구태여 설산에 들어가서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도록 6년 고행을 안 해도 된다 그말이여.
백 년 고행을 해 봤자 이 우리의 한 생각을 돌이켜서 자기의 본성을 찾는 그렇게 공부를 해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미륵불(彌勒佛)이 하생할 때까지 56억 7천만 년이 다하도록 고행을 해 봤자 거기에서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착한 일을 하면은 즐거운 과(果)를 얻고, 악한 짓을 하면은 괴로운 과를 얻는데, 그것이 한 생 두 생에 끝난 것이 아니고, 고(苦)를 받으면서 또 새 업(業)을 짓고, 낙(樂)을 받으면서도 또 새 업을 지어서 고(苦) 받았다 낙(樂) 받았다 십법계 육도법계를 끊임없이 개미처럼 돌고 도는데, 자기가 지은 것은 털끝만큼도 거저 지내가는 법은 없어.
다맛 받는 순서는 다를지언정 다 낱낱이 다 받고 넘어가지 안 받고 넘어가는 법은 없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이 ‘심능천당(心能天堂)이요 심능지옥(心能地獄)이라’ 하셨어. 이 우리의 마음자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은 천당에도 갈 수가 있고, 지옥에도 갈 수가 있다.
어찌 천당 지옥뿐이겠습니까? 불법계에 갈 수도 있고, 보살법계에 갈 수도 있고, 연각 성문도 될 수도 있어.
부처님께서는 대승 경전에 ‘영겁(永劫)을 침륜생사(沈淪生死)한, 영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할지언정 불발소승심(不發小乘心)이다. 소승심은 발하지 말아라’
소승심(小乘心)이라는 것은 성문(聲聞) 연각(緣覺)인데, 성문은 생사를 굉장히 두려워 해.
그래서 어떻게 하면은 죽음을 면할 것인가? 태어나지 안 해야 죽음을 면한다. 그래서 태어날라면은 태중(胎中)에 들어가야 하는데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태중에 안 들어갈라면은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돼. 생각을 일으키면은 그 생각을 일으킨, 한 생각 일으킨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태중에 들어가서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면은 생로병사 또 이것을 되풀이하게 되니까 생(生)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구경(究竟) 목적이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거여. 그래서 사목고회(死木枯灰)처럼 되어 가지고 영원히 소승의 멸진정 속에 들어가 있는 거여.
이것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키시는 길이 아니여.
우리는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믿고—깨닫기 전에 분명히 우리에게는 생사가 있고 생사가 보이는데, 그 보이는 생사 속에서 생사가 없다고 믿고—생사가 없는 도리를 깨달라 증득하기 위해서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다 이거거든.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그 미(迷)하면은 거기서 일어나는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탐심(貪心) 아니면, 진심(瞋心) 아니면, 치심(痴心)이다 그말이여.
결국은 정념(正念)을 지키지를 못하면 우리도 한 생각을 미(迷)하고—정념이 무엇이냐?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그 정념을 잃어버리면 바로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연결이 되는 거여.
한 생각을 단속을 하는 거—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즉시 ‘이뭣고?’ 돌아와야 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즉각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눈으로 사람을 보나 개를 보나, 산을 보나 들을 보나 물을 보나, 이쁘게 생겼건 미웁게 생겼건, 우리는 과거에 무량겁을 오면서 많은 사람과도 인연을 지었고, 많은 곳에도 인연을 지어서, 보면은 이유 없이 까닭도 모르게 마음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사람을 보면 아무 까닭 없이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고, 보기 싫은 사람도 있고, 그건 과거에 지은 인연관계로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인연을 이대로 인연만 따라가다 보면은 삼악도(三惡道)를 면틀 못해.
어떠한 종류의 좋고 나쁜 인연을 만났을 때에도 즉각 그리 따라가지 말고 ‘이뭣고?’로 돌아와야 하거든. ‘이뭣고~?’
‘일체처에 무심(無心)하라’고 하는데, 무심을 어떻게 우리가 마음대로 무심할 수가 있냐 그말이여. 무심할려고 하면은 (무심할려고) 한 그 생각이 하나 더 일어나서 다시 무심이 안 되는 거여.
‘이뭣고~?’ 자꾸 ‘이뭣고?’로 돌리거든.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일체 경계에 끌려들어가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처음에는 참 어렵지만, 어렵기가 말로 할 수 없이 어렵지만, 사람이라는 게 되풀이해서 하면은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자꾸 익어 가면 그것이 체질화가 되어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념(正念)이라고 하는 것은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면 수행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정념이다.(21분36초~39분6초)
(3/3)----------------
불보살들은, 성현들은 비상(砒霜)이나 짐주(酖酒)로써 독을 삼지를 안 해.
여러분 비상이라는 걸 잘 아시겠지만 그건 먹으면은 사람이 죽는 거고, 짐주라고 하는 게 무엇이냐 하면은 중국 광동성에 있는 독한 새의 이름인데, 짐(酖, 鴆)새라고 하는 새가 있는데, 그 새는 그 살이나 피나 뼈나 전체가 독(毒)으로 되어 있어.
비상보다도 더 무서운 독을 품고 있는 새인데, 그 짐새의 털을 넣어서 술을 담그거나 그 짐새의 살이나 뼈를 넣어서 술을 담그면 그것을 짐주(酖酒)라고 하는 무서운 독술인데, 그거는 한 모금만 먹어도 즉사하는 무서운 독이여.
그런데 사람들은 비상이나 그런 짐주를 갖다가 무서운 독으로 알지마는 성현(聖賢)은 그런 비상이나 짐주를 독으로 삼지를 않고, 무엇을 독으로 삼느냐 하면은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미(迷)함으로써 생긴 탐심·진심·치심, 삼독심을—그래서 이것을 탐진치를 삼독심이라 그러는데,
이 탐진치,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삼독심 일어난 것을 이것을 독(毒)으로 삼는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하면은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이 일어나면 법신(法身)을 망가뜨려. 생사해탈해서 진리와 하나가 되는 그 법신을 망가트리기 때문에 이것이 그런 거고.
혜명(慧命)을 끊어 버려.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탐진치 삼독심만 일어나면 우리의 '지혜의 목숨[慧命]'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면 욕계·색계·무색계 삼계(三界)에 온갖 고통이 콱! 충만해 가지고 있어. 그 무서운 생사윤회의 고통이 최초의 한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그렇게 된 것이다 그말이여.
한 생각 그것이 간단하거든. 화두(話頭)를 들고 최상승법으로 나아가느냐? 화두를 놓쳐 버리고 바깥 경계에 끌려가느냐? 처음에는 별것이 아니여.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냥 최초에 일어날 때는 별것이 아닌데,
그것이 염념상속(念念相續)해 가지고 자꾸 번져 가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일을 저지르게 되면은 살생도 그놈이 하게 되고, 도둑질도 그놈이 하게 되고, 사음도 그놈이 하게 되고, 거짓말도 그놈이 하게 되고, 온갖 죄업을 그 한 생각 미(迷)한 데에 부터서 발족이 된 것이다 그말이여.
처음에 일어나자마자 단속하기는 대단히 쉬운데 그놈이 번져 가지고 차츰차츰 커져 버린 뒤에는 도저히 그놈을 막을 길이 없어.
담뱃불이나 성냥개비로 일어나는 불이 처음에 팍 일어날 때에는 손바닥으로 탁 누르거나 발로 비벼 꺼도 간단히 꺼지는데, 그놈이 커져 가지고 점점점점 번져 가지고 바람이 불어서 막 일어나면 그 큰 산불이 여간해서 끌 수가 없어.
몇 천 명이 달려들어서 끈다고 해도 끄지를 못하고 몇 날 며칠을 타. 그런 무서운 불이 한국에도 가끔 일어나지만 미국같이 그렇게 큰 나라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렇게 커진 다음에는 소방차 뭐 소방 비행기, 헬리콥터로 여간 뭐 좀 뿌려봤자 소용이 없다 그말이여.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지기나 하면 모를까 사람 힘으로는 여간해서는 못 끈다.
우리의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가 한 생각으로 인해서 조그만한 성냥불 하나, 담뱃불 하나로 일어나듯이 한 생각으로 인해서 결국은 그 무서운 무량겁의 생사윤회가 우리의 과거에 그렇게 왔고, 앞으로도 우리가 한 생각만 삐끗 단속을 안 하면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이 말씀마다 거룩하고 훌륭한 법문이고, 좋은 방편설(方便說)이지만 다 읽어 보고 다 뒤적거려 봐도 결국은 ‘이뭣고?’ 밖에는 없다 그말이여. ‘이뭣고~?’ 한 생각 단속하는 거, 누구든지 하면 되는 거여.
여러분은 숙세의 깊은 정법(正法)의 종자(種子)를 심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상승법을 금생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듣기도 어렵지마는 믿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렵지만 믿고서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행하기가 그것이 어려운 것이여.
그것을 행하는데 무슨 그렇게 큰 힘이 든 것도 아니고, 큰돈이 든 것도 아니여. 그냥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딴 데에 정신만 팔지 말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여. 꿈이여. 꿈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 깊이 속지를 말아야 한다 그말이여.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인데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꿈 가운데 한 톨의 쌀에 탐착(貪着)하다가 만겁 동안에 먹고도 남을 금대(金臺)의 양식을 잃어버린다.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서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그러한 것에 탐착한 것도 한 알갱이 쌀에 탐착한 거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활구 참선객에게는 본래 세속의 무슨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은 일찌감치 다 내던져버렸으니 그까짓 건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 속에 눈에 뜨인 거, 귀에 들리는 거, 일체 것이 그 찰라 찰라 그것이 한 알갱이 쌀이여.
밥을 먹을 때 밥맛이 좋다 나쁘다,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어디서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 옷을 입되 이 옷이 부드럽다 따뜻하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찰라 찰라 느끼는 그것들이 다 한 알갱이 쌀이여.
그 한 알갱이 쌀에 탐착만 했다 하면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여. 그 한 알갱이 쌀에 탐착하지 않고 터억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무량겁을 먹고도 쓰고도 남는 양식, 영원한 해탈도가 약속된다 이 말이여.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이 우리의 몸뚱이도 사대(四大)로 뭉쳐져서 허망한 것이라 언제 썩어 문드러지고 말 그런 허망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 몸뚱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여.
그런데 이 몸뚱이가 한 생각 또는 한 숨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來生)이거든. 그래서 이 무상한 것이 찰라 동안이여. 찰라 이 무상한 것이 정말 헤아릴 수가 없어. 언제 어떻게 될는지를 모른다.
언제 교통사고가 일어날지, 언제 다리가 무너질지, 언제 집이 무너질지, 미국이 살기 좋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 가지고 마냥 사람이 죽고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된다 그말이여. 언제 한국도 언제 전쟁이 터져서 여기가 불바다가 될지 아무도 전혀 헤아릴 수가 없는 거다.
언제 우리가 넘어질지 누가 알 수 있는 일이냐 그말이여. 이래 죽고 저래 죽고 그러니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어찌 뜨겁게 반성을 해서 급히 우리의 생각을 돌리지 않을까 보냐.
바깥 경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정말 우리는 믿지 못할 그러한 꿈이라고 하는 것을,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요달(了達)해야 합니다.
누가 칭찬한다고 그렇게 좋아할 것도 없고, 누가 나보고 욕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뭐 싫어할 것도 없어. 좋은 걸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뭐 흐뭇할 것도 없고, 한 끼니 잘 못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애내고 성을 낼 것도 없어.
모든 것은 인연에다 맡겨.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밥이 되면 된 대로 한 숟갈 먹고, 밥이 질면 진 대로 한 숟갈 먹고, 그저 닥치는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고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거 일체 것은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그저 우리가 단속할 것은 생각 생각이 눈에 안 보이는 매서운 회초리로 자기를 채찍하면서 ‘이뭣고?’를 단속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이 성도재를 맞이해서 사실은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용성(龍城) 큰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을 하신 그 법문을 듣고 저는 이 법상에 올라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듣고 또 들어도 들을 때마다 대신심과 대분심이 솟구쳐 올라서 제가 올라와서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역시 여러분들께서도 그러한 감격으로 법문을 들으셨을 줄로 생각을 합니다.
이 성도재를 맞이해서 정말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자신들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자기의 신심(信心)은 과연 철저했는가?
자기의 분심(憤心)은 정말 철두철미(徹頭徹尾)했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 생각 한 생각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단속해 왔는가? 다시 한번 반성을 하고, 오늘부터 새로 출가한 마음으로 정진하시기를 다짐하면서 내려가고자 합니다.(39분7초~56분19초)(끝)
----------------(1/3)
*(게송)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옴막 ; '전부(全部)'의 사투리.
*대장부(大丈夫)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음역어는 ‘실다(悉多)’, ‘실달(悉達)’, ‘실달다(悉達多)’이다.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皮]과 뼈[骨]가 맞붙을[相接]정도로 바짝 마름.
*니련선하(尼連禪河) ; 네란자라(nerañjarā) 강. 중인도 마갈타국 가야성의 동쪽에 북으로 흐르는 강으로 항하(恒河, 갠지스 강)의 한 지류
*유미죽(乳糜粥 젖 유/죽 미/죽 죽) ; 우유에 쌀을 넣어 만든 죽.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그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이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함.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가 된다. 탄생(誕生:룸비니) · 성도(成道:붓다가야) · 입멸(入滅: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오비구(五比丘)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처음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 붓다가 출가하던 때 부왕(父王, 정반왕)의 명으로 이들은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들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됨.
①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音寫).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는 이름, 교진여(憍陳如)는 성(姓).
②아설시(阿說示) :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사(馬師)·마승(馬勝)이라 번역. 사리불(舍利弗)이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설시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③마하남(摩訶男) : 팔리어 mahānāma의 음사. 대명(大名)·대호(大號)라고 번역.
④바제(婆提) : 팔리어 bhaddiya의 음사. 인현(仁賢)·소현(小賢)·현선(賢善)이라 번역.
⑤바부(婆敷) : 팔리어 vappa의 음사. 기식(氣息)·장기(長氣)라고 번역.
*삼가섭(三迦葉)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의 제자인 3형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팔리어 uruvelā-kassapa)과 나제가섭(那提迦葉, 팔리어 nadī-kassapa)과 가야가섭(伽耶迦葉, 팔리어 gayā-kassapa). 모두 불을 숭상하는 사화외도(事火外道)였으나 붓다의 성도(成道) 후, 큰형 우루빈라가섭이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오백 명의 제자와 함께 그에게 귀의하자, 두 동생도 각각 삼백 명과 이백 명의 제자와 함께 붓다에게 귀의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단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노라’ ; 서산대사의 『선교석(禪敎釋)』(淸虛 休靜撰)에서. ‘世尊偈云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此固敎外別傳之謂也 智度論’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49년 동안 설하신 교설(敎說)은 활등과 같고 ~ 활구참선법은 활줄과 같이 바로 설하신 것이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43~45 참고.
〇諸佛(제불)은 説弓(설궁)하시고 祖師(조사)는 説絃(설현)하시니 佛説無碍之法(불설무애지법)은 方歸*一味(방귀일미)어니와 拂此一味之迹(불차일미지적)하야사 方現祖師所示一心(방현조사소시일심)이니 故(고)로 云(운), 庭前栢樹子話(정전백수자화)는 龍藏所未有底(용장소미유저)라 하시니라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 없는 법이란 바로 한맛에 돌아가거니와, 이 한맛의 자취마저 털어 버려야 바야흐로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龍藏]에도 없다고 하시니라.
〇註解(주해)
説弓(설궁)은 曲也(곡야)요 説絃(설현)은 直也(직야)며 龍藏(용장)은 龍宮之藏經也(용궁지장경야)라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하되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닛고 州答云(주답운),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라 하시니 此(차)는 所謂*格外禪旨也(소위격외선지야)라
【 魚行水濁(어행수탁)이요 鳥飛毛落(조비모락)이니라
활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요,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것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묻기를 ‘조사가 서(西)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격 밖의 선지[格外禪旨]이다.
【 고기가 놀면 물이 흐리고 새가 날면 깃이 떨어지느니라.
〇역주(譯註)
①일미(一味) : 만법(萬法) 곧 온갖 일과 모든 물질들은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낱낱이 다른듯 하지마는 실상은 절대 평등하여 다르지 않고(不二) 똑 같은 것(眞如)이다.
②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을 배우려고 하였다。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③격외선지(格外禪旨) : 참선의 도리는 보통 사람의 범상한 소견에 벗어난 것이어서 있는 마음으로나, 없는 마음으로나 다 알지 못하는 것(有心無心俱透不得)이다.
*(게송)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 ; 무문 혜개 스님의 [무문관(無門關)]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 참고. *絶=絕(끊을 절).
*(게송)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豐年留客足雞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拄杖無時夜叩門。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이뭣고?’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화두(공안)’ 참고.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결같은 마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진묵겁(塵墨劫)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진즉(趁卽 좇을·뒤쫓아 따라붙을 진/곧·즉시 즉)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여실(如實)히 ; 사실과 꼭 같게.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2/3)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각성(覺性). 자성(自性).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마니주(摩尼珠) ; 마니(摩尼)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ṇi 의 음사(音寫). 주(珠), 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똥항(똥缸 항아리 항) : 재래식 화장실(칙간)의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이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법계(法界) : [범] dharmadhatu dharma 곧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다 들어 말하고 dhatu는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란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것(萬有)을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법 성품(法性)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십법계(十法界) ;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열 가지로 분류한 세계. 10가지의 생존의 영역. 지옥·아귀·축생·수라(아수라)·인간·천상·성문·연각·보살·불(佛)의 10계를 십법계라 한다.
십법계 중에서 앞의 여섯 계는 삼악도(三惡道 지옥·아귀·축생)와 삼선도(三善道 수라·인간·천상)로 나뉘는데, 모두 미혹의 세계로서 범부(凡夫)의 세계이다. 뒤의 네 계(성문·연각·보살·불佛)는 깨달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성인(聖人)의 세계이다.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교만(憍慢) ; 교(憍, mada)는 자신 스스로 자신의 장점들에 대해 그릇되이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하게 되어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성질을 뜻하고, 만(慢, māna)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과 비교하여 갖는 마음의 오만한 상태를 뜻한다.
*간탐(慳貪 아낄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음.
*우치(愚癡) ; ①삼독(三毒, 貪·瞋·癡)의 하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른다. ②매우 어리석고 못남.
*사제(四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 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 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정어(正語, 바른 말)•정업(正業, 바른 행위)•정명(正命, 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 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연기(緣起)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일어남을 이르는 말.
“만약 이것이 있으면 곧 저것이 있고(若有此則有彼), 만약 이것이 생겨나면 곧 저것이 생겨난다(若生此則生彼).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어지고(若無此則無彼), 만약 이것이 소멸하면 곧 저것이 소멸한다(若滅此則滅彼).” (중아함경)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평등일승(平等一乘) ;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는 가르침을 가리켜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을 닦아야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백만사(百萬事) ; 모든 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침륜(沈淪 잠길 침/잠길·잔물결 륜) ; 물속에 가라앉음.
*성문(聲聞) : [범] sravaka [파] savaka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모든 중생을 널리 다 건지겠다는 큰 원을 세우지 않고, 자기의 공부만을 힘쓰는 가운데 부처님이나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소승의 사제법(四諦法)을 깨쳐서 번뇌 망상을 끊고, 나(我)가 없어져서 열반에 들게는 되지마는, 그 열반은 얕고 작은 「나머지 있는 열반(有餘涅槃)」 곧 아직 덜된 열반에 들어 있는 이를 이름이다.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①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자.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자.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② 연각승(緣覺乘)의 준말.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사목고회(死木枯灰) ; 고목사회(枯木死灰).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枯木]와 불기운이 사그라진 다 식은 재[死灰]. 외형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되어 생기가 없다는 의미.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 · 멸진등지(滅盡等至) · 멸진삼매(滅盡三昧) · 상수멸정(想受滅定) ·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무심(無心) ; ①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意)이 있다.
----------------(3/3)
*비상(砒霜) ; 비석(砒石)에 열을 가하여 승화(昇華)시켜서 결정 상태로 만든 한방 약재. 비상은 그의 독성 때문에 사약(死藥)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농약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약용으로 거담제와 학질 치료제로 쓰였으나 독성 때문에 현재는 쓰지 않는다.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킨다.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아수라장(阿修羅場) ; 수라장(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〇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〇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약 12분)
[참고] 전강선사 법문(No.011) (경술 70.12.03)—'전강선사 일대기 4호'에서.
〇불가불 내가 용성 큰스님을 찾아가 또 내가 한번 또 인가(印可)도 받고, 물으면 내가 답(答)도 하고 탁마상성(琢磨相成)을 해 보리라. 그러고는 용성 큰스님 회상(會上)으로 올라갔다 그말이여.
대번 올라오니까, 소문이 앞에 가서 턱 ‘벌써 정영신(鄭永信)이가 혜봉 스님한테로 댕겨서, 혜월 스님한테로 댕겨서 올라왔다’ 모녀(먼저) ‘그렇게 알았다’는 것도 다, 법담(法談)했다는 것도 다 듣고 있고,
또 ‘왔다’ 소문이 그래 ‘정영신이가 왔다’한 말이 벌써 용성 큰스님 귀에 먼첨 들어갔네.
그러니깐 대번에 그만 나오시더니 ‘정영신이가 여기 왔다는디...’ 그런게 쫓아 들어가서 절을 헌께,
“어! 네가 정영신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너, 글안해도(그렇지 않아도) 내가 만나고저 했더니 왔구나. 자, 그려(그래) 척 만났으니 너와 나와 서로 법거량(法擧揚)을 한번 해 보자.”
“죄송헙니다. 황송헙니다.” 그러니깐,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그때 한참 제방(諸方)에 제일구가 퍼졌을 때라. 그래서 제일구 문답이 어디서부텀 시작되았는고 하니 동화사 금당에서 시작이 되었어. 그때 금당에 누가 있었든고 하니 무렴 스님이라고 있었는데, 무렴 스님이 답을 했는데, ‘제일 옳게 답을 했다’하는 제일귀(第一句) 답이 있어.
내가 그 무렵 스님 답한 제일귀 답을 듣고 “흥! 아무리 제일귀 답을 무렴 스님이 옳게 했다고 판단은 났다마는 아니니라!” 내가 그래 버린 거여.
그러면 그 제일귀 답은 어떻게 일렀는고 하니, “여하시제일구냐?” 물으니까, 답이 “하불문제일구(何不問第一句)냐?” 요렇게 나왔어. “어찌 제일구를 묻지 못하느냐?” 이렇게 나왔어.
그 답이 제일이라고 했거든. 나 “아니니라” 해 버렸어.
그렇게 해서 모도 인자 제방에 제일구 답이 많이 모도 있을 때인디, 나한테 용성 큰스님께서 제일구 답을 묻거든. “여하시제일구(如何是第一句)냐?” 묻길래, 내 답을 좀 보란 말이여 응.
또 저번에 다 해 놓은 놈이지마는 이번에는 이걸 내 그저 과거 모도 역사를 저렇게 야(얘)들이 깨끗이 잘혀. 이번에는 아주 그대로 결집을 허는구만.
모도 결집해서 저 일러주는(읽어주는) 것 다 봤지만 어저께 그 청암거사도 아주 듣고는 공찬(公讚)을 혀. “그 참 잘했다”고. “어저께 일대기(一代記) 중에서 뭐 얼마를 일렀는데 참 좋다”고.
아, 나는 녹음기에다 내가 넣어 놓고 들을라니, 듣기 싫어! 맨 놈이 법문이 모도 그만 내 법문이 그려. 모도 그만 그 사투리에 뭣에 잉, 듣기 싫어! 내가 해 놓고도.
그런데 인자 야(얘)는 그대로 써 가지고, 인자 그대로 읽으니깐 아, 그런게 없드구만. 그런데 그 나는 잘 듣는구만. 야가 읽으면 잘 들어, 끝까장. 안되아 버리면 그만 안 듣는디.
용성 큰스님께서 “여하시제일구냐?”
영신 : “예?”(높은 음성으로)
그 왜 대답이 그려? “예”허든지 그러지, “예?” 그려? 「“예?”는 왜 “예?”그려?」 그것 좀 잘... 「왜 “예?” 그려?」 참 그거, 언하대오(言下大悟)다. 세상에...
“예?” 그러니까, ‘여하시제일구여?’ 또 묻거든 “여하시제일구여?”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내가 그랬다 그말이여. 응. 그 어른 답 가운데 좀 불사스럽지마는 헐 수 없어, (손뼉을 치며) “허허!” 그러니깐,
용성 : “아니다, 아니니라.” 용성 큰스님께서 그래서,
영신 : 다시 절을 척 허고서는 “큰스님 일러 줍소사, 큰스님 일러 줍소사. 여하시제일구입니까?”
용성 : “영신아!”
영신 : “예.”
그때는 “예”제. “예?” 그것 아니여. “예.” 그러니까,
용성 : “제일구를 일러 마쳤느니라.” 내가 또
영신 : (손뼉을 치며) “허허!” 이랬다 그말이여.
세상에 법전(法殿)에, 큰스님 앞에 요렇게 했다는 것을, 그 대중이 그때 오십 명 대중(大衆)이여,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중이. 봉익동이여, 고때가 봉익동 시방 2번지인데, 1번지인가 그려. 거그 계셨는디.
그러니깐 내가 또 박장가가대소(拍掌呵呵大笑)를 했는데 그건 그만두고,
용성 : “네가 전신(轉身)을 못 했느니라. 전신을 못했구나.”
전신(轉身)—‘구를 전(轉)’자, ‘몸 신(身)’자, “전신을 못했느니라” 몸뚱이를 옮기지 못했느니라 그말이여. 구르지 못했느니라.
영신 : “그러면 전신구(轉身句)를 물어 줍소사.”
용성 : “응, 그러제. 여하시제일구냐?” 거기에 내가 답하기를... 어?, 전신구냐? 전신구여! 전신구를 물어 내가 답하기를
영신 :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입니다.(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
그러고는 더니깐 그 끝에 그 큰스님 말씀은, 귀방장(歸方丈) 방장으로 들어가셨거든. 그냥 돌아가셔. 뭐 인가(印可)야, ‘옳다’야, 가부여하(可否如何) 없고는 가셨다 그말이여.
그러면 뭐 ‘옳다, 그르다’한 것을—내가 무슨 뭐 인가를 맞으러 갔다고 하지마는 내가 인가해 주기를 뭐 ‘옳다, 그르다’한 걸 바래는 법인가? 법문만 딱 해 놓으면 거그서 인자 까달(까닭)이 나는 것이지.
그대로 나는 나왔지. 나와 버렸는데, 사흘 되던 날이여. 그 뒤 사흘 되던 날이여. 3일 되던 날에 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했어.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대중께다가.
그때 대중 입승(立繩)은 경봉 스님인디, 시방 양산 통도사 경봉이 아니여. 또 그때 노인 경봉이 있었어. 눈하나 미영씨(무명씨) 백히고, 그때인디.
“아! 내가 영신이한테 속았다.” 그러니까,
“아, 영신이가 그 뭘 어떻게 일렀다고 속았다 하십니까?” 하동산 스님은 그랬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은 “아, 영신이가 뭐 어째서 그렇게 속았다고 그런 말씀하십니까?”
그 어른 말이 “자네가 영신이 이른 도리를 알겠는가?” 이랬다 그말이여.
나는 못 들었는데, 대중에 그랬다 그말여. 그때 그 대중에는 누가 있었냐 하면은 장설봉도 있었고, 저 죽은—다 죽었구만 둘 다 다 인자, 윤세호라고 있었어. 갑장사 많이 지낸 윤세호가 있었는데, 윤세호가 그 소리를 듣고 만공 스님한테 내려와서 그 말을 했어.
“아, 제일귀 답에 영신이한테 속았다고 큰스님께서, 용성스님께서 대중께 공포했답니다.”
“허! 속은 줄을 아시니까 용성 스님일세.” 만공 큰스님이 그랬다 그말이여.
나 떠나 버린 뒤에 인가한 것이여! 그게 다, 속은 줄을 알고, 속은 것이 인가(印可)지 무엇이여! 어디 꼭 옳다는 게 인가인가? 방맹이 맞고 방맹이 맞은 줄 아는 것이 인가고, 꼼짝 못헌 것이 인가여.
속은 줄 알았다 이거여. 대중께 공포를 안 했으면은 그 안 되아. 공포를 했기 때문에 벌써 척 당신이 속은 줄 알어. 학자한테는 속지 않나? 허, 이거.
거그서 내가 그 문답을 터억 마쳤어. 그러면 저 윤세호가 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그런 말을 전허니깐, 만공 스님은 거그서 듣고 당신이 “속은 줄을 아셨으니 용성 스님일세.”
그 내가 거가서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고 뒤에 그러고 갔는데 거그 확 그 말이 팍 퍼져 버렸제. 뭐 다 퍼진 것이제 어디.
시방(지금) 내가 이렇게 ‘견성했다’하고 돌아 댕기면서지마는, 선지식을 이렇게 친견해 나가는데 용성스님까장 밖에 시방 안 했다 그말이여. 그러고는 지금 인자 만공 스님은 아직 안 봤거든. 안 봤는디 고놈이 먼첨 벌써 다 들어가서 환히 알고 계신다 그말이여.(67분26초~79분31초)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철두철미(徹頭徹尾) ;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주요 내용]
(게송)일파재동만파수~ / 석가모니 부처님의 팔상성도(八相成道) / 諸佛說弓 祖師說絃 / (게송)참선수투조사관~ / 성도재(成道齋)의 의의(意義) / 십법계(十法界) / 심능천당(心能天堂) 심능지옥(心能地獄) /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 한 생각 단속 / 정념(正念) / (게송)탐착몽중일립미~.
[주요 문구]
〇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한량없는 법을 설하시고서도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단 한 글자도, 한 말도 설한 바가 없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법문을 설하시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한 바로 거기에 활구참선(活句參禪)의 뿌리를 두는 것입니다.
〇조사관을 뚫을라면은 마음 길이 끊어져서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되어야 조사관을 뚫는 것이지, 사량분별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게 아니여. 백년을 두고 따져 봤자,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〇부처님께서 몸소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여. 바로 깨달음을 여실(如實)히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성도재(成道齋)의 의의(意義)다.
부처님이 그렇게 확철대오 하는 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거기에서 그것을 믿고 거기에서 용기를 가지고 우리도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모든 욕락을 버리고 도를 닦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말이여.
〇지금 우리는 십법계 중에서 마지막 평등일승법을 행해 가지고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그거거든. 불법계(佛法界)에 태어나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한 생각, 최초의 한 생각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그 바른 신심으로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법에 의해서 염념상속(念念相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참구(參究)해 가면 갈 곳이 없다 그말이여.
〇우리는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믿고—깨닫기 전에 분명히 우리에게는 생사가 있고 생사가 보이는데, 그 보이는 생사 속에서 생사가 없다고 믿고—생사가 없는 도리를 깨달라 증득하기 위해서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다 이거거든.
〇정념(正念)이라고 하는 것은 경계(境界)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자기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오면 수행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정념이다.
〇사람들은 비상이나 그런 짐주를 갖다가 무서운 독으로 알지마는 성현(聖賢)은 그런 비상이나 짐주를 독으로 삼지를 않고, 무엇을 독으로 삼느냐 하면은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탐진치 삼독심 일어난 것을 이것을 독(毒)으로 삼는다.
〇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면 욕계·색계·무색계 삼계(三界)에 온갖 고통이 콱! 충만해 가지고 있어. 그 무서운 생사윤회의 고통이 최초의 한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그렇게 된 것이다.
〇모든 것은 인연에다 맡겨.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밥이 되면 된 대로, 질면 진 대로 한 숟갈 먹고, 그저 먹는 거, 입는 거, 사는 거 일체 것은 인연에다 맡겨 버리고, 그저 우리가 단속할 것은 생각 생각이 눈에 안 보이는 매서운 회초리로 자기를 채찍하면서 ‘이뭣고?’를 단속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501~600 > (501~5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512))—1993년 하안거해제 및 백종, 백일기도회향(93.09.01) (59분) (0) | 2021.06.30 |
---|---|
(No.521)—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 (81분) (0) | 2019.07.09 |
(No.513)—93년 9월 첫째일요법회(93.09.06) (63분) (0) | 2019.04.08 |
(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 (60분) (0) | 2018.09.13 |
(No.508)−93년 6월 첫째 일요법회(93.06.06)(54분) (0) | 201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