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500/(451~475)2021. 4. 9. 11:34

((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79분) (수행과 일상생활, 운전 초보와 능숙자 비유)

 

 

(1/4) 약 21분.

 

(2/4) 약 19분.

 

(3/4) 약 19분.

 

(4/4) 약 20분.

 


(1/4)----------------

우후정화연야발(雨後庭花連夜發)하여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응유의향인소(花應有意向人笑)언만  만원선승공도춘(滿院禪僧空度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우후정화연야발(雨後庭花連夜發)하니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로구나.
비 온 뒤 뜰에 꽃이 밤을 이어서 피었어. 비가 오니 그 비 기운을 받아서 뜰에 꽃이 아주 만발을 했다 그 말이여.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다. 그 꽃에 맑은 향기가 나부껴서 새벽 창을 뚫고 들어왔어.

화응유의향인소(花應有意向人笑)언마는, 그 만발한 꽃은 응당 뜻이 있어서 사람들을 향해서 웃고 있건만,
만원선승(滿院禪僧)은 공도춘(空度春)이로구나. 이 선원에 가득한 모든 대중들은 그 꽃에 깊은 뜻을 모르고서 공연히 이 봄을 지내고 있구나.

편양(鞭羊) 선사의 게송입니다.


오늘은 임신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몽산법어(蒙山法語)』에 나오는 그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라고 하는 분이 그 제자를, 참선하러 떠나는 제자를 향해서 설한 법문[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금년도 벌써 5월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눈이 오고 우박이 쏟아지고 비가 오고, 벌써 꽃은 만발하고 있지마는 벌써 여름이 머지않아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입하(入夏)가 돌아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세월은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간 줄 모르게 지나가고 또 오는 소식도 없이 이렇게 오고, 그렇게 해서 재촉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흰머리가 생기게 하고 주름살이 불어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사형(死刑) 집행일이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서 잘 아시겠지마는, '미국은 민주주의 나라고, 살기 좋은 나라고, 부자의 나라고, 세계에서 제일 참 좋은 나라라고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모다 말들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나라에 흑인들 폭동(暴動)이 일어나 가지고[LA 인종 폭동(1992년)], 폭동이 일어난 피해를 입은 제일 큰 대상이 한국 사람들이라 하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좀더 잘살아 보려고 미국을 갔는데 무엇을 잘못해 가지고 흑인들이 한국 사람을 상대해서 800개에 가까운 한국 사람의 가게에다가 타거나 파괴가 되고 약탈을 당했다 하니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금생에 설사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잘살아 보려고 애썼을지언정 무슨 흑인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백인에 대한,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 대우한 그 원한을 참 애잔한 한국 사람들한테 한풀이를 한 모양인데, 우리는 인과법(因果法)을 믿기 때문에 그 인과법에 입각해서 이것을 살펴보면 '설사 금생에 잘못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전생에 잘못한 그 과보(果報)가 있어서 금생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흙으로 빚어서 구웠는데, 처음에 구운 것이 너무 불이 약해 가지고 허옇게 나왔어. 그것이 백인(白人)이고. 너무 허옇게 나와서 화력을 좀 강하게 했는데 너무 화력이 강해 가지고 시커멓게 구워진 것이 검둥이고. 그래서 세 번 만에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게 적당하게 구운 것이 황인종(黃人種)이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황인종이거든.

그런데 그러한 황(黃)이라 하는 것은 중(中)입니다. 검은 것은 북(北)이고, 빨간 것은 남쪽이고, 흰 것은 서쪽이고, 푸른 것은 동쪽이고 그리고 노란색은 중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가지 색, 오색(五色)을 동 · 서 · 남 · 북 · 중앙에다가 배대(配對)를 하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황인종은 중앙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황인종은 '가장—너무 굽지도 않고, 너무 덜 굽지도 않고—적당하게 구워진 것이 바로 동양의 황인종이다' 인자 그러한 비유의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우리 동양 사람은, 그러한 성현도 동양에서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서 진리의 개발도 동양에서 일어나고, 모든 문화도 동양에서부터 발원지(發源地)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모다 물질문명을 다투어서 발전을 시켜 가지고 모다 살기에 편리하고, 또 그것이 악용이 되면은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다 죽이고 세계를 멸망케 하는 그러한 위험한 면이 있지만,
우리 동양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본성을 개발해서 그래서 진리를 자기에게 찾아 가지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나아가서 온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느냐' 이러한 쪽으로 동양의 성현들은 공자님이나 부처님이나 또는 노자나 동양의 성현들은 전부 그러한 방향으로 문을 열어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에 나아가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가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서는 자기 자신도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 가지고 세계평화는 이룩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 와서 이 참선법(參禪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거기서 열리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백인은 유색 인종(有色人種)을 무시한다 그말이여. 이번에는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흑인들한테 피해를, 본의 아닌 참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것으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물론 백인들이 그것을 자각을 하고 유색 인종을 멸시하고 탄압하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그러한 생각들이 마음에서 없어진다면 혹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고 백인이라 해서 우월감을 가지고 유색 인종을 종 부리듯 생각하고, 법으로는 물론 평등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흑인뿐만이 아니라 황색 인종까지도 백인들은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보를 머지않아서 한국 사람이 이번에 당한 것 몇십 배, 몇백 배를 당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미국은 흑인이 지배하는 시대가 앞으로 오십 년, 백 년 후에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그러한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려면은 마음속에서 유색 인종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그런 마음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우선 법적으로 했지만, 법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실지로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없어져야만 그런 무서운 과보를 면하리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행여나 백인들이 이 동양 사람, 황색 인종을 무시하니까 황색 인종은 그 마음을 검둥이들한테 부애풀이를 한다든지, 겉으로 부애풀이는 못해도 마음속으로 천대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희거나, 검거나, 누르거나, 전혀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어서는 차등(差等)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얼굴이 희다 하더라도 마음을 검게 쓴다면 검둥이만 못할 것이고, 설사 얼굴이 누르거나 검더라도 그 마음을 부처님을 믿고 진리를 믿는 마음으로 지혜와 자비로써 모든 사람을 상대한다면 그 사람은 백인보다도 훨씬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귀의 노예가 되고, 눈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귀와 눈은 우리의 마음이 활동하는 문(門)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문(門)에 지나지 못한, 눈에 비친 색상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 그것에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다면 무서운 삼악도(三惡途)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건, 귀로 무엇을 듣건, 항상 거기에서 자기의 본심(本心)으로 돌아가고 본지(本旨)에 입각해서 행동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말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삼악도를 면할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서 가정에서, 사회 국가에서, 온 세계에서 자기의 본심을 찾는 본지에 입각한 생활을 해 나간다면 세계평화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빛깔이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싸운다면 결국은 온 세계는 원래는 다 한 집안 식구고, 한 형제간인데, 형제간끼리 싸우는 것이 되고, 집안끼리 싸우는 것밖에는 안된 것입니다.
가깝게 생각하면 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 형제간에 서로 의사가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 한 가족 안에서도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고부간(姑婦間)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운다면 그 가정이 불행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인 것입니다.

얼굴 빛깔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히 여기고, 그러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가고 언제나 근본에 의해서 근본을 향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간다면 지엽적으로 다른 점은 다 거기에서 적당하게 융화가 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철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선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참(久參)의 생각과 신참(新參)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또 남방에서 온 사람과 북방에서 온 사람이 다를 수가 있고, 다를 것이나 그 선원의 근본 규범에 서로 자발적으로 순종을 하고 개인의 의사를 지나치게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선원은 석 달 동안 아무 장애가 없이 정진을 잘해서 해제(解制)를 맞이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일을 자기의 의사만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짓밟는다면 중간에 결국은 걸망을 싸고 도망가게 되고, 서로 언쟁이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선방에 규범이 있고,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온 세계에는 인륜이라고 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러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느냐?
문제는 자기 마음 하나를 다스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의 마음만 다스릴 줄을 알고 자기의 감정만 다스릴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신사요, 숙녀요, 모범이 될 수 있는,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처음~21분3초)




(2/4)----------------

앞으로 머지않아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돌아오고 또 결제날도 또 일주일 더 지나가면 또 돌아올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제일가는 대장부(大丈夫)이십니다. 왕 가운데 왕이요, 성현 가운데 성현이신데, 정말 대장부이시거든.

부처님께서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이여. 그래서 대장부이시냐? 32상(三十二相)을 갖추셨기 때문에 대장부이시냐?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셨기 때문에 대장부이시냐?

그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이여.
어떻게 자기를 이기셨느냐?

과거 인행(因行) 때 부처님께서는 큰 힘을 가진 용의 몸을 받으신 때가 있었어. 어떻게 그 힘이 무섭고 그 안광(眼光)이 아주 태양보다도 더 밝고 그러던지, 담력이 약한 사람이 보면 그 용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담력이 큰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번만 보면 자기집에 돌아가서 죽게 되어.
그렇게 무서운 위력을 가진 용인데, 그 용이 날이 뜨뜻하니까 잠이 들었다 그 말이여. 졸았어.
푹 잠이 드니까 아무리 오색이 찬란하고 여의주를 가진 용이라도 잠이 들면은, 보통 잠이 들면 구렁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여.

잠이 푹 들은 상태에서 어떤 포수가 그 잠들어 있는 용을 보았다 그말이여. 보니까 구렁이로 보이는데, 어떻게 가죽 빛이 오색이 찬란한데 이 세상에서 그렇게 찬란하고 고운 것을 본 기억이 없어.
그래서 '저 구렁이를 잡아가지고 껍데기를 벗겨서 임금님한테 바쳐서 임금님의 옷을 만들게 하면 자기는 큰 상을 받고 큰 벼슬도 받으리라' 이러한 사견이 났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그 용을, 구렁이를 갖다가 두 갈래진 작대기로 목을 눌러 가지고 꼼짝을 못하게 딱 해 놓고는 생으로 그 구렁이 가죽을 벗겼어. 그때 그 용이 눈을 떠서 보니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용이 힘이 장사기 때문에 한바탕 꿈틀거리면 그까짓 작대기로 누른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고 무엇이고 이 지구도 갖다가 그냥 흔들어 놓을 정도로 그런 힘을 가졌지만,
'아서라! 내가 불법(佛法)을 믿는 용으로서 어떻게 내가 이러한 것 하나를 못 참을 수가 있겠느냐. 내가 저 포수도 죽여 버리고 온 세계도 갖다 발탁 뒤집어지고... 내가 한 생각을 참지 못하고 그런다면은 어찌 불법을 믿는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 가지고 그것을 꾹 참았어.

참으니까 가죽을 다 벗겼어. 벗기니까 완전히 벌건 살덤벵기가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햇빛은 쨍쨍 나지, 개미와 벌레가 달려들어서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만약에 내가 여기서 꿈틀거린다면, 아픈 것을 참지 못하고 꿈틀거린다면 저 벌레들이 다 내 몸에 치어서 죽을 것이다' 그래 가지고 꼼짝을 않고 다 뜯어 먹히고 바짝 말라서 아주 뼈만 남을 때까지 다 참은 거여.
그래 가지고 인욕(忍辱)을 하고 또 살생을 하지 않고, 진심(瞋心)을 내지 않고 그래 가지고 그 용은 결국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어.

그 용이 결국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前身)이시고, 그때 그 구렁이를 죽여서 가죽을 벗긴 포수는 조달(調達)이여. 제바달다(提婆達多). 부처님의 사촌으로 태어났지마는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의 라이벌이 되어 가지고 부처님을 갖은 방법으로 해롭게 한 조달(調達)이다 그 말이여.
그리고 부처님 몸뚱이의 피와 살을 빨아먹던 수많은 개미와 벌레들은 부처님이 최초에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憍陳如)등 오비구(五比丘)에게 법을 설하실 때 그때 팔만의 모든 제천(諸天)이 다 득도를 했는데, 그 팔만사천의 하늘나라에 선신들이었다 그거거든.

부처님께서는 과거 인행 때에 그러한 인욕을 해 가지고 그러한 무서운 일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원한심을 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것을 신심과 지혜와 자비로써 그런 과정을 능히 성취한 그러한 과보로써 결국은 거룩한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였으면서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무량겁을 해서 오늘날에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마는 그래 가지고 이 정법을 듣고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조그만한 일로 진심(瞋心)을 내고, 탐심(貪心)을 내고, 원한심을 내서 선원에서는 도반(道伴)들에 혐오감을 주고, 도 닦아가는 데 장애를 주고, 그래도 견디지 못해서 걸망을 싸고. 이러한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금년 임신년 사월 초파일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남아대장부(男兒大丈夫)가  작사막망로(作事莫莽鹵)니라
나무~아미타불~
경정철석심(勁挺鐵石心)으로  직취보리로(直取菩提路)니라
나무~아미타불~

남아대장부(男兒大丈夫)가  작사막망로(作事莫莽鹵)라.
남아대장부(男兒大丈夫)는 육체상으로 남성(男性)을 받아 난 사람만을 여기서는 남아대장부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육체상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다 하더라도 오욕락(五欲樂)이 무상(無常)한 줄 알고 발심(發心)해서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남아대장부입니다.

설사 고추가 달렸어도 정법을 믿지 않고 오욕락에 빠져서 그렇게 산 사람은 그거 대장부라 할 수가 없어. 미련하기가 한이 없고 어리석기가 한이 없어.
정말 몸뚱이야 어떻게 생겼건, 정법을 믿고 발심한 사람이면 그게 바로 남아대장부다 그 말이여.

그런 발심을 한 남아대장부(男兒大丈夫)는  작사막망로(作事莫莽鹵)여.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향해서 나아가는 데 그럭저럭하고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말이여. 한번 시작했으면, 정말 부처님이 왕궁의 부귀를 버리고 설산에 들어갔으면 거기에 그럭저럭하실 수가 있었겠느냐 그 말이여.
우리도 그 장부(丈夫)를 본받아서 발심을 한 이상 어찌 그럭저럭 등한히 하고 사소한 일에 진심을 내고, 사소한 일에 우리의 아까운 시간과 생각을 빼앗기고 흔들릴 수가 있겠느냐 그거거든.

경정철석심(勁挺鐵石心)으로, 굳고 굳은 쇠와 돌같은 마음으로,
직취보리로(直取菩提路)니라. 바로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을지니라. 한산, 한산(寒山) 습득(拾得)의 한산 성현의 게송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지은, 참 숙세(宿世)에 지은 공덕으로 원력으로 금생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한국에 태어났고 또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정말 남아대장부로서 또 참선을 시작했다면 철저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배산에 일단 들어갔으면 기어코 보배를 캐내야만 말아야지, 그럭저럭 끌적끌적하다가 돌아올 수야 있겠느냐 이거거든.

참선은 '지금 열심히 해 가지고 장차 기어코 견성성불(見性成佛)하리라' 이러한 게 아닙니다.
참선은 '이뭣고?' 이외의 어떠한 일에도 집착심을 가져선 안 돼. 어지간한 일이면은 인연 따라서 수용하고, 오직 한 생각 철석(鐵石)같은 마음으로 '이뭣고?' 하나만을 단속해 나가야 돼.

우리는 상근기(上根機)도 아니고, 중근기(中根機)도 아니고, 하근기(下根機)거든.
하근기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없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것에도 정신을 쓰고 저것에도 정신을 쓸 겨를이 없어.

그렇다고 해서 자기 소임도 안 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어디 가서 혼자 '이뭣고?'만 하고 백 가지 일을 다 버리라는 게 아니야.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하되 그 속에서 화두(話頭)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 데 전심전력을 다하라 이거거든.

"어떻게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서 공양주(供養主)를 열심히 하냐? '이뭣고?'만 열심히 하다 보면 밥이 어떻게 되겠느냐? 밥할 때에는 밥을 정성을 쏟아야지 '이뭣고?'만 하고 있으면 밥이 죽이 되는지, 떡이 되는지, 되겠느냐?"
어떤 참, 수행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단히 중요한 문제거든.

공양을 짓는데 전(全) 정성을 거기다 쏟다보면 화두가 달아나 버리고, 화두를 열심히 들다보면 밥이 다 타 버리거나, 죽이 되거나 한다 그 말이여. 틀림없이 그런 면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채소밭을 매는데 '요것이 채소냐? 요것이 잡초냐?'를 봐 가지고 가려서 뽑아야지, '이뭣고?'만 열심히 하다 보면 뽑는 것이 채소는 뽑아 버리고, 남는 것은 잡초만 남고 그렇다는 것이지.

설사 그런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화두(話頭)를 놓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화두 잘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위해서 채소도 가꾸고 밥도 짓는데.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밥이 타는 한이 있더라도 화두를 열심히 들어야 하냐?' 그렇더라도 '화두는 조금 등한히 들더라도 밥할 때는 밥할 때 정신을 쏟아야 하지 않냐?'
이것은 그 사람 사람의 견해에 따라서 이것을 옳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저것을 옳다고 주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 내가 지금 여기에 사부대중이 다 모이셨는데 '밥이 타더라도 화두를 열심히 들어야겠다' 하고 생각하신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내리세요.
'화두는 좀 등한히 들더라도 밥을 잘해야지' 그렇게 생각하신 분,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이래도 손도 안 들고, 저래도 손도 안 든 분은 뭐여?
그건 아마 '두 가지가 다 일리가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뭐라고 주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손을 안 드신 분은 손 들어봐요. 내리세요.(21분4초~40분20초)




(3/4)----------------

그런데 내가 한 예를 들겠는데, 자동차 운전을 하면 눈으로는 앞을 봐야 하고 또 앞에 걸린 거울로는 뒤를 봐야 하고, 양쪽 거울을 통해서 끊임없이 뒤도 살피고 앞도 봐야 하고.
손으로는 운전을 하고, 발로는 브레이크도 밟았다 악셀레이터도 밟았다 클러치도 밟았다 하고, 손은 요새는 뭐 노클러치가 있어서 아주 편리하게 어지간하면 다 달릴 수가 있는데.

두 손, 두 발, 눈, 그리고 귀도 항상 열어 놓고 초비상으로 살펴야 하고, 코로도 이상한 냄새가 나면 그것도 '엔진에 무슨 문제가 있냐?' 코도 있어야 하고, 이목구비와 사지백체(四肢百體)를 다 적절하게 다 활용을 해야지, 앞만 보고 가도 안 되고 뒤만 봐도 안 되고. 앞 보면서 뒤를 봐야지, 뒤 보면서 앞을 안 봐도 안 되거든. 그러니 이론상으로는 도저히 운전은 못 해 먹을 노릇이다 그 말이여.
그래도 처음에는 앞을 보면서 뒷이 잘 안 보여도 자꾸 연습을 하다 보면, 앞 보면서도 뒤도 보고, 옆에 사람과 이야기하면서도 볼 것 다 보고, 들을 것 다 듣고, 할 것 다 하고 한다 그 말이여.

그것을 입각해서 생각해 보면, 화두 들면서도 밥을 잘 지을 수가 있어요. 또 밥을 잘 지으면서도 화두를 들 수가 있는 거여.
처음에는 좀 어려울런지 모르지만, 자꾸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신심과 분심으로 열심히 해 나가면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 거여.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밥도 자꾸 열심히 하다 보면—처음에는 자꾸 뚜껑을 열어 보고 싶거든. '밥이 다 퍼졌나 안 퍼졌나? 물이 아직도 있냐 없냐?' 자꾸 열어 봐. 두 번 세 번 열어 보면 그 밥은 맛이 없어.
자꾸 하면 '거기서 나오는 김이 위에로 올라오냐, 옆으로 피식 하고 나오느냐' 그 김 나오는 것만 봐도 '물이 다 되었다, 아직도 물이 있다' 그걸 알 수 있는 거여.

문제는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이 문제지, 해보지도 않고 겉핥드기로 이론만 가지고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그것 따지다 시간 다 가는 거여.
그런 것 따지지 말고 열심히 화두를 들고, 화두를 들면서도 한눈팔지 않고 정성으로 공양주(供養主)를 하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열흘, 한 달, 두 달 하다 보면 밥도 잘되면서 화두도 터억 들리게 된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말이여.

해보지도 않고 조금 해보고서 주둥이만 까 가지고 이렇구 저렇구 따져 쌓으면 그거 안 되는 거거든.


인재선중선재수(人在船中船在水)하고  수무부재방선행(水無不在放船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천리계산수지두(고)(千里溪山隨指顧)하면  일천풍월임봉영(一川風月任逢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재선중선재수(人在船中船在水)요, 사람은 배 가운데 타고 있고, 배는 물 속에 있어.
수무부재방선행(水無不在放船行)이다. 물이, 배를 띄워서 달릴 수 없는 물은 없어. 물 있는 곳에는 배가 다 띄워서 갈 수가 있다 그 말이여.

'사람은 배를 타고 있는데, 배는 물 가운데 있다. 배를 띄워서 갈 수 없는 물은 없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에서부터 일어나. 사람이 있기 때문에 번뇌 망상이 일어난다 그 말이여. 번뇌 망상 있는 곳에는 불성(佛性)이 있어, 거기.
그래서 몸뚱이가 있으면 번뇌 망상이 있기 마련이여.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하니, 이목구비(耳目口鼻)를 통해서 끊임없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낄 수 있다 그 말이여. 느낄 수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불성(佛性)이 있다 그 말이여.

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불성(佛性)으로 인해서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내음을 맡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고, 몸뚱이를 통해서 차웁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러니 몸뚱이를 가지고 있고, 눈으로 모든 색상을 볼 수 있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틀림없이 불성(佛性)이 있는 증거거든.

그래서 몸뚱이가 이만큼 보존되어 있을 때 유지되어 있을 때, 이만큼 진심도 낼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원망할 줄도 알고 괴로워할 줄도 아는 그런 번뇌 망상 일으킬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정말 참선(參禪)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참선을 해서 자기의 불성을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거거든.

물이 있는 곳에는 배를 띄울 수가 있고 그 배 가운데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그 배를 어떻게 저어 가느냐?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서 동쪽으로도 갈 수 있고, 서쪽으로도 갈 수 있고,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가 있는 것이거든.

천리계산수지두(고)(千里溪山隨指顧)요. 그 배 양쪽으로는 천리—압록강이라든지 양자강이라든지 두만강이라든지 또는 동해라든지 태평양이라든지, 천리계산(千里溪山)은 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 방향을 틀기에 달려 있어.
일천풍월임봉영(一川風月任逢迎)이다. 배 양쪽에 모든 경치는 배 가는 대로 열려 나갈 것이다 그 말이거든.

아무리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고 또 몸뚱이를 통해서 시청언동(視聽言動)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아무리 이 좋은 몸뚱이를 가지고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욕락에 빠져서 재산 모으는데 일생을 거기다 바치고, 명예 권리 하는데 거기다가 일생을 다 바치고, 오욕락에 거기다 일생을 다 바쳐버린다면 그 사람은 삼악도(三惡途)밖에는 갈 곳이 없고, 어떻게 그 사람이 견성성불을 할 것이냐 그 말이여.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는 정말 이렇게 생각할 때에 참 다행이여.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가 감사하고, 이러한 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더군다나 불법을 믿게 된 동기가 감사하고.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좋은 기회가 앞으로 10년 동안 유지가 될 것이냐? 20년 동안 유지가 될 것이냐? 30년 동안 유지가 될 것이냐? 전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이 일대사(一大事)를 향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여기다 다 바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난 보람을 바르게 누리고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세계가 혼란하면 할수록, 사회가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만이라도 불법을 믿기 때문에 더욱 중심(中心)을 잡아가야 할 것입니다.
배 안에 탄 사람이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 배가 나무 이파리처럼 흔들려 온 배에 탄 사람이 고함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고 이리 몰렸다 저리 몰렸다 울고불고 야단일 때, 그 속에 한 사람만이라도 탁! 정신차린 사람이 있어서 키를 바로잡고 사람들로 하여금 안정하도록 해서—흔들릴수록에 사람이 이리 몰렸다 저리 몰렸다 하면 진짜 펄떡 배가 넘어가 버리거든—각자 양쪽에 탁! 앉아서, 탁! 붙잡고, 딱! 그래야만 그 배가 넘어가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 그 말이여.

우리나라도 앞으로 경제 문제, 정치 문제, 교육 문제, 많은 문제들이 대단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정치는 안 하고, 직접 나서서 사업을 안 하더라도 또 하는 사람은 하더라도 우리는 정법에 의지해서 확고하게 우리의 양다리를 버티고 서야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산이 커서 명산(名山)이 아니라, 그 안에 신선이 살고 도(道)를 닦는 수행자가 있어야 그 산이 명산」이라고 하는 옛말이 있습니다.
비록 나라가 어려운 때를 만나고 세계가 말세적인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불법을 믿고 정법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는 한은 그래도 거기에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사회가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을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는 그러한 사명감을 굳건히 가져야 합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조그만한 사람일런지 모르지만, 정법을 의지해서 진리를 향해서 수행을 해 나간 사람은 인류 가운데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르켜 주신 사람이 우리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십니다.

앞으로 칠 일 후이면 '부처님 오신 날'이 돌아옵니다. 우리 절에서도 이 '부처님 오신 날'을 향해서 이렇게 많은 등(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동참하셔서 한마음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할 뿐만이 아니라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우리도 다시 한번 또 새롭게 태어나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보름 후이면 임신년 하안거가 시작이 되는데, 그 하안거를 기해서 모두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하시고 또 이 선방에 나아가기 위해서 화두를 타고자 하는 분이 여기에 모다 참석을 했는데, 화두는 '이뭣고?'
개별적으로 만나서 이걸 일러주기가 어려워서 법상(法床)을 빌려서 말씀을 한 것이니까, 화두를 안 타신 분은 잘 듣고.

'이뭣고?'

'이뭣고?'는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여, 시삼마. "씨슴마" 중국 발음으로는.
근데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는 '이뭣고(이뭐꼬)'거든, “이뭣고?”

화두는 간결할수록 좋은 것이라, '이 것 이 무 엇 인 고' 여덟 자나 되는데, '이뭣고'하면 석 자거든.

'이뭣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거든.
근데 그런 긴 소리는 생략하고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 누면서도 '이뭣고?'
소지하면서도 '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에 이것을 놓치지 않도록.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에는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하지만, 나중에는 꼭 숨 내쉴 때마다 '이뭣고?'를 챙기지 않아도—'이뭣고?' 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따악 관(觀)해야지, 그 의심이 있는데도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주 들고 하듯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

화두가, '이뭣고?' 한 번 들어서 그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면 그때 챙기고, 딴생각[別念]이 들어와서 놓쳐 버리면 그때 챙기는 것이지, 괜히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어.
'이뭣고?'는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것이 중요한 거여. '이뭣고?'(40분23초~58분55초)




(4/4)----------------

첫째, 참선하는 데는 자세를 바르게 하거든.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떠억 하고.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해.
자세를 앞으로 숙어도 안 되고,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도 안 되고 또 단정히 한답시고 너무 지나치게 뻣뻣하니 뒤로 자지바지 이것도 못쓰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양어깨에 힘을 다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눈은 감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평상(平常)으로 뜨는 거여.

평상으로 뜨되, 앉은 자기한테로부터 약 2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는 거여.
'눈을 떨군다' 하는 것은 그 2미터 지점에다가 무슨 콩 같은 것을 놔두고 그 자리를 이렇게 그걸 쳐다보고 그렇게 하면 못쓰는 거고, 그냥 본 바 없이 평상으로 눈을 거기다 떨구라는 것이지, 그 자리를 응시(凝視)할 필요는 없어. 응시해선 안 되아.

그렇게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그렇게 평상으로 떴으면, 그다음에 호흡을 하되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는데, 단전호흡은 깊이 들어마셔서 조용히 내쉬는, 그리고 천천히 들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거여.
왜 이 단전호흡이 필요하냐 하면 사람이 살아 있는 증거는 숨을 쉬고 있으면 '살아 있다' 하고, 숨을 못 쉬면 죽은 거여. 그래서 이 호흡은 인간 생사(生死)와 즉결되는 문제여. 대단히 중요한 거여.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을 무심히 하는 거여. 그저 무심히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호흡은 바르게 하는 호흡이 있고, 바르지 못한 호흡이 있어.
바르게 호흡을 해야 몸의 노폐물이 밖으로 잘 배설이 되고, 따라서 피로도 회복이 빨리 되고 몸도 가벼워지고, 몸만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아지고 안정이 되는 거여.

그래서 어렸을 때, 어머니 뱃속에서 막 갓 태어났을 때는 저절로 이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거여. 그런데 차츰차츰 커가면서 그 단전호흡을 잊어버린 거여.
그래 가지고 잘못 호흡을 해 가지고, 요새 사람들이 어떻게 조금만 건들면 파르르르 신경질을 내고 단기(短氣)하고, 참을성이 없고 경솔하고, 신경질을 잘 내고 한 것이 전부 어렸을 때 배우지 않고도 알고 있었던 그 단전호흡을 잊어버리고 잘못 호흡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거여.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 단전호흡법을 잘 알아 가지고 서서히 그 어렸을 때 숨쉬던 단전호흡으로 돌아가면 사람이 신경질 잘 내던 사람도 안 나게 되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는 버릇도 없어지고, 한 번 속상했다 하면은 며칠씩 그것이 안 없어지고 한 것도 단전호흡을 하면 금방 속이 좀 상하려고 하다가 금방 안 상할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른 새 상했다 하더라도 금방 그 생각을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여. 그렇게 중요해.
그래서 몸도 가벼워지고 어지간한 병은 다 없어지고, 혈압이 높은 사람도 혈압 약을 안 먹어도 이 단전호흡을 잘하면 혈압도 조정할 수가 있어.
물론 오줌만 잘 먹어도[요료법(尿療法)] 혈압 같은 건 대번에 일주일이면 낫지마는, 오줌 안 먹더라도 단전호흡만을 열심히 해도 사람이 달라지는 거여. 자기의 감정을 자기가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여.

그래서 참선을 안 하는 사람도 이 단전호흡을 하면 참 좋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참선까지 한다면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하고 나아가서 확철대오해서 생사(生死)까지 해탈(解脫)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하는 법을—단전호흡하는 법을 이 자리에서 더이상 내가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이 「참선법」이라고 하는 카세트(cassette)가 이 사무실에 가서 말하면, 그것을 구해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을 들으면은 자연히 이 단전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터득을 하게 되고, 화두를 드는 법도 터득을 하게 될 것인데 오늘은 간략히만 말씀을 드립니다.

준비 호흡을 세 번, 빨리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코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입으로 '후~~~' 완전히 하나도 없을 때까지 다 내쉬고, 다 내뿜었으면 또 들어마셔.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어. 그래 가지고 입으로 '후~~~' 하고 다 내쉬어.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을 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내뿜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서 세 번을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조용하게 숨을 들어마시되 배꼽 밑에 단전, 아랫배가 차츰차츰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8부쯤만 들어마셨으면 하나, 둘, 셋,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니 숨을 내쉬되, 입으로 내쉬지 말고 코로 내쉬어. 코로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코로 조용하니 내쉬는 거여.

그러면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정지하는 시간이 약 3초, 내쉬는 시간은 조금 길게 한 4, 5초 이렇게 조용하니... 들어마시는 것도 약 8부쯤만 들어마시되, 내쉬는 것도 약 8부쯤만 내쉬어.
가뜩 너무 가뜩 들어마시고, 너무 오래 참고, 너무 완전히 내쉴라... 준비호흡은 그렇게 하지만,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8부쯤만 들어마시고, 참는 것도 약 3초 동안만 정지했다가, 내쉬는 시간도 완전히 다 내쉴라 하지 말고 8부쯤만 내쉬라 그거거든.

하되 식사를 하고, 공양을 하고 2시간 이내에는 단전호흡을 하지 말아. 하면은 위(胃)에 압박을 주니까 2시간 이내에 하지 말고, 2시간 뒤에 단전호흡을 하고.
처음으로 한 사람은 한 5분간만 하고, 또 쉬었다가 또 하고 해서 조금씩, 조금씩 해서 익혀 나가도록.

이것이 좋다 하니까 너무 무리를 해 가지고, 밥 금방 먹고 가득 위에 음식물이 들어 있는데 무리를 해 가지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이런 수가 있으니까.
아무리 좋은 것도 맛있는 음식일수록에 조그만치 먹어야지,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배탈이 나고 설사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단전호흡이 좋다니까 이걸 너무 무리하게 해 가지고 병 난 사람을 내가 가끔 보거든.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서서히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해서 익혀 나가도록 하고.

화두는 '이뭣고?'를 하되,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에는 그렇게 익혀 나가도록.

「'이뭣고?'를 하되 의심(疑心)을 간절하게 의심을 하라」 이렇게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셨고,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하고, 크게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고, 의심이 적으면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닫지 못한다」 이렇게 고인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마에다가 아주 여기다 '내 천(川)’ 자를 쓰면서 (힘을 주면서)'이뭣고? 이뭣고?' 해 가지고 막 그냥 용을 쓰고 이렇게 얼마 안 가면 그 사람은 골이 뽀개지는 병이 생기는 거여.

간절하게 하는 것과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한 것과는 전혀 다른 거여.

그래서 이 참선하는 분은 반드시 법문(法門)을 자주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르게 해 나가야지, 참선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 식으로 우격다짐으로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어거지로 막 몰아붙여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골치 아픈 병이 생기고, 소화불량이 생기고 아무짝에도 못쓴다 그 말이거든.

반드시, 그래서 달마 스님은 그 『혈맥론(血脈論)』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헛되이 일생을 보내리라' 하고 아주 탁! 못 박아서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여.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두 갈래, 세 갈래 길이 나오면은 어디로 갈 줄 모르는 것인데, 그래서 반드시 길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이 참선은 눈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거든.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어떻게 바른 스승 없이 제대로 해 갈 수가 있겠느냐?
까딱하면 병나고, 잘못하면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사견(邪見)에 빠지면 그거 미친 것이거든.

그래서 이것은 참! 바른 스승 없이는 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기왕 시작했다 하면 반드시 이것은 전신투구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해서 깨달아야 되는데, 바르게 해 나가야 한다.

오늘 화두를 새로 탄 사람은 그렇게 알고, 어쨌든지 출가한 사람은 '이거 하나 하자'고 출가를 하고, 출가법을 부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니까 어쨌든지 철저하게 바르게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사로불용행(邪路不用行)하라  행지왕신고(行之枉辛苦)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요구불과(不要求佛果)하라  식취심왕주(識取心王主)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산(寒山), 습득(拾得),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 화현(化現)이고,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화신(化身)이다' 하는데, 지금 산승(山僧)이 읊은 게송은 문수보살의 화현이신 한산의 게송입니다.

사로불용행(邪路不用行)이라, 삿된 길은 가지를 말아라.
행지왕신고(行之枉辛苦)니라, 삿된 길을 가면은 쓸데없이 쓰라림과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를 하는데, 자꾸 옆에서,
"이뭣고를 해 봤자 하근기(下根機)는 깨닫지도 못하고, 밤낮 해봤자 맛도 없고 아무것도 되는 것도 없고, 어쨌든지 지장경을 읽어라. 금강경을 읽어라. 무슨 주력을 해라. 아미타불을 불러라. 아미타불은 부르다가 마지막 죽을 때 열 번만 부르면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반야용선을 가지고 데리러 오는데 그걸 하면은 돈도 안 들고, 참 고생할 것도 없고.
이뭣고 해 봤자 결제(結制)하러 가면은 돈 내야 하고 또 잠도 마음대로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죽비(竹篦) 치고 시간 맞춰서 앉으려면 허리 아프고 그러니 그까짓 거 뭐하러 그걸 하려고 하냐? 이것을 해라. 이거 읽으면 참 좋다는데 이것을 하지, 그거 참선은 다 최상근기를 타고 나야 그 사람이 닦지, 지금 참선한다고 해 봤자 누구 견성한 사람 봤어? 하지 말고 요렇게 이거하라"고 자꾸 옆에서 속삭속삭하면,

'대체 며칠 가서 해 봤지마는 별로 얻은 것도 없고, 누구는 꿈에 무엇을 나타나고 무엇을 했다는데 나는 별로 보인 것도 없고' 솔깃하니. 그래도 와서 법문 들어보면 '참선을 해야 한다'고 그러고, 또 그 옆에 말을 들어보면은 또 그것이 좋을 것 같고 갈팡질팡 갈팡질팡해.
그러지 말고 '굿을, 아무개가 굿을 잘하는데 굿을 하면은 어쩌고저쩌고 한다'
또 '굿을 할까?' 갈팡질팡하면 그 사람이 무엇이 되냐 그 말이여.

불요구불과(不要求佛果)여.
부처님이 탄생하신 뒤에 부처님 법에 의지해서 도 닦은 스님네나 청신사 청신녀가 수백만 명이지만, 부처님 같은 사람 한 번이나 나왔냐 이거거든. '그러니까 그거 다 소용없고 어쨌든지 아미타불 불러 갖고 극락세계 가는 것이 제일이다' 들어보면 그럴싸하거든.

참선을 하는데, 부처님과 같은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불과(佛果)를 구하지 말아라 이거여.

식취심왕주(識取心王主)니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나의 주인공을 탁! 알아버려라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달아 버려야지, 거기다가 목표를 둬야지—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야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놈이 다 있거든.
바로 그놈을 탁! 식취(識取)하라 그 말이여. 딱! 알아차리라 그거거든.

성날 때, '이뭣고?'
탁! 이 성난 놈, 그놈을 챙기는 거거든.

뭘 볼 때, 탁! 볼 줄 아는 '이뭣고?' 탁! 챙겨라.
그렇게 챙겨 나갈 때 찰나찰나에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거여, 그게.
그놈 내놓고 무엇을 깨닫느냐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佛)'이여.

'불(佛)'이란 말이 인도(印度) 말인데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말이거든.
실달 태자(悉達太子)가 출가해 가지고 구담(瞿曇) 사문(沙門)이 되었는데 견성, 그걸 깨달았거든.

별을 보고 깨달으셨는데, 깨달은 뒤에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것이 아니어. 내나 깨닫기 전에 그 모습을 가지고 계셨어.

우리는 32상도 갖추지 못하고, 80종호도 갖추지 못하고, 배고프면 밥 생각나고, 때리면 아프고, 욕하면 성내니까 흉악한 박지범부(博地凡夫)지만,
성날 때 '이뭣고?' 하고, 슬플 때 '이뭣고?' 하고, 속상할 때 '이뭣고?' 하고, 원망스러울 때 탁!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이뭣고?' 한 그 찰나찰나 우리도 부처님이여. 그놈 내놓고 절대로 부처가 따로 없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부지런히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그것밖에 정법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활구참선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견성성불의 길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58분59초~1시간18분38초) (끝)





[법문 내용]

(게송)우후정화연야발~ / LA 인종 폭동(1992년). 인과법(因果法)의 과보(果報) / 참선법(參禪法)을 배워야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 / 백인이나 유색 인종(有色人種)이나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어서는 차등(差等)이 없는 것 / 자기 마음 하나를 잘 다스려야.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제일가는 대장부(大丈夫)이시고, 왕 가운데 왕이요, 성현 가운데 성현 / 부처님께서 과거 인행(因行) 때, 큰 힘을 가진 용의 몸을 받으신 때의 인욕(忍辱) 일화 /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 (게송)남아대장부~ / 정법을 믿고 발심한 사람이면 그게 바로 남아대장부 / 참선은 '이뭣고?' 이외의 어떠한 일에도 집착심을 가져선 안 돼.

수행하는 것을 운전에 비유해서 말씀하심. '자꾸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신심과 분심으로 열심히 해 나가면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하되 그 속에서 화두(話頭) 하나를 잘 들 수 있다' / (게송)인재선중선재수~ / 번뇌 망상 있는 곳에는 거기에 불성(佛性)이 있다 / 번뇌 망상 일으킬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정말 참선(參禪)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참선을 해서 자기의 불성을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세계가 혼란하면 할수록, 사회가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만이라도 불법을 믿기 때문에 더욱 중심(中心)을 잡아가야 / 「산이 커서 명산(名山)이 아니라, 그 안에 신선이 살고 도(道)를 닦는 수행자가 있어야 그 산이 명산」 / '이뭣고?'는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것이 중요한 거여.

참선 자세, 단전호흡 / 단전호흡은 식사를 하고, 공양을 하고 2시간 뒤에 하라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하고, 크게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고, 의심이 적으면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닫지 못한다」 / 간절하게 하는 것과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 / 달마 스님은 『혈맥론(血脈論)』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헛되이 일생을 보내리라' / (게송)사로불용행~ / '불(佛)'이란 말이 인도 말로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눈으로 무엇을 보건, 귀로 무엇을 듣건, 항상 거기에서 자기의 본심(本心)으로 돌아가고 본지(本旨)에 입각해서 행동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말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삼악도를 면할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서 가정에서, 사회 국가에서, 온 세계에서 자기의 본심을 찾는 본지에 입각한 생활을 해 나간다면 세계평화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얼굴 빛깔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히 여기고, 그러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가고 언제나 근본에 의해서 근본을 향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간다면 지엽적으로 다른 점은 다 거기에서 적당하게 융화가 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였으면서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무량겁을 해서 오늘날에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마는 그래 가지고 이 정법을 듣고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조그만한 일로 진심(瞋心)을 내고, 탐심(貪心)을 내고, 원한심을 내서 선원에서는 도반(道伴)들에 혐오감을 주고, 도 닦아가는 데 장애를 주고, 그래도 견디지 못해서 걸망을 싸고. 이러한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금년 임신년 사월 초파일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서 공양주(供養主)를 열심히 하냐? '이뭣고?'만 열심히 하다 보면 밥이 어떻게 되겠느냐? 밥할 때에는 밥을 정성을 쏟아야지 '이뭣고?'만 하고 있으면 밥이 죽이 되는지, 떡이 되는지, 되겠느냐?"
어떤 참, 수행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단히 중요한 문제거든.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에서부터 일어나. 사람이 있기 때문에 번뇌 망상이 일어난다 그 말이여. 번뇌 망상 있는 곳에는 불성(佛性)이 있어, 거기.
그래서 몸뚱이가 있으면 번뇌 망상이 있기 마련이여. 눈이 있고 코가 있고 귀가 있고 하니, 이목구비(耳目口鼻)를 통해서 끊임없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낄 수 있다 그 말이여. 느낄 수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불성(佛性)이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몸뚱이가 이만큼 보존되어 있을 때 유지되어 있을 때, 이만큼 진심도 낼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원망할 줄도 알고 괴로워할 줄도 아는 그런 번뇌 망상 일으킬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정말 참선(參禪)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참선을 해서 자기의 불성을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거거든.

성날 때, '이뭣고?'
탁! 이 성난 놈, 그놈을 챙기는 거거든.

뭘 볼 때, 탁! 볼 줄 아는 '이뭣고?' 탁! 챙겨라. 그렇게 챙겨 나갈 때 찰나찰나에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거여, 그게. 그놈 내놓고 무엇을 깨닫느냐 그 말이여.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佛)'이여.
'불(佛)'이란 말이 인도(印度) 말인데 '붓다(Buddha)'인데, 번역하면 '깨닫는다' 말이거든. 실달 태자(悉達太子)가 출가해 가지고 구담(瞿曇) 사문(沙門)이 되었는데 견성, 그걸 깨달았거든.

별을 보고 깨달으셨는데, 깨달은 뒤에 32상(三十二相)을 갖추고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춘 것이 아니어. 내나 깨닫기 전에 그 모습을 가지고 계셨어.

우리는 32상도 갖추지 못하고, 80종호도 갖추지 못하고, 배고프면 밥 생각나고, 때리면 아프고, 욕하면 성내니까 흉악한 박지범부(博地凡夫)지만, 성날 때 '이뭣고?' 하고, 슬플 때 '이뭣고?' 하고, 속상할 때 '이뭣고?' 하고, 원망스러울 때 탁!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이뭣고?' 한 그 찰나찰나 우리도 부처님이여. 그놈 내놓고 절대로 부처가 따로 없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부지런히 일체처 일체시에 그 경계(境界)에 팔려가지 말고, 바로 그 경계에 즉(卽)해서 '이뭣고?'를 챙겨 나가자.
그것밖에 정법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활구참선이 따로 없고, 그것밖에 견성성불의 길도 없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