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10)—1983년 칠석법회(83.08.15) (66분)
(1) 약 40분.
(2) 약 26분.
(1)------------------
가련억만인천중(可憐億萬人天衆)이여 부지황엽경비전(不知黃葉竟非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사인천지본심(若使人天知本心)하면 하용애애측이청(何用獃獃側耳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가련억만인천중(可憐億萬人天衆)이여 부지황엽경비전(不知黃葉竟非錢)이로구나.
가련(可憐)하다, 인천(人天)의 억만 대중이여. 하늘나라나 이 인간 세상에 백만억 대중이여, 가련하구나! 노란 이파리가 마침내 돈이 아닌 줄을 아지 못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셔 가지고, 출가하셔서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시다가 대도(大道)를 깨치시고 80세를 일기로 열반(涅槃)에 드실 때까지 49년간을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는데, 그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사천 법문이 어린아이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노란 단풍잎을 어린아이에게 쥐어주면서 “이것이 돈이다. 여기 있다 돈, 여기 돈 많이 있다” 이러면서 어린아이에게 준 것이다 그 말이여.
약사인천(若使人天)으로 지본심(知本心)하면, 인천(人天), 하늘나라나 인간 세상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의 마음, 근본 본성(本性)을 깨닫게 해 버린다면, 하용애애측이청(何用獃獃側耳聽)이냐. 어찌 바보같이 귀를 기울이고 듣게 할 필요가 있느냐.
자기 본성만 탁! 깨달아 버린다면 구태여 어린아이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준 노란 이파리 같은 것에 왜 속을까보냐 그 말이여.
오늘은 계해년 7월 칠석날입니다. 칠석(七夕)이라 하는 것은 원래 칠성님, 칠성(七星)을 숭배하는 토속 신앙인데, 원래 도교(道敎)에서 칠성을 섬기고 또 칠성님께 치성(致誠)을 드리면 수명을 연장하고, 인간의 오복(五福)을 모다 성취하고 그런다 해서, 『삼국지(三國志)』에도 보면 제갈공명이 그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칠성단(七星壇)을 모아 놓고 기도를 하다가 잘못해 가지고 기도를 성취 못하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마는.
그러한 토속 신앙이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고 우리나라로 오면서 그런 도교에서 들어온 그런 토속 신앙을 불교에서 흡수를 해서 사찰 내에서도 다 큰 절, 작은 절에 가면 모두 칠성각, 산신각이 다 있고 그럽니다마는.
불교는 너무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교법(敎法)이 넓고 크고 깊어서, 마치 바다와 같아서 동서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는 어떠한 종류의 강물이라도 일단 바다에 들어오고 보면 전부 짠맛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떠한 종교도 불교가 들어가면 다 흡수해 버려. 불교 내에는 어떠한 종교의 교리도 원래 그 안에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불교는 어떠한 종교라도 다 흡수해서 녹여서 ‘한맛’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 말이여.
종교가 좁고, 교리가 옅고 그러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싸우고 비방을 하고 피를 흘리고 그러는데, 불교는 너무 높고 넓고 깊고 커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어떠한 종교를 만나더라도 싸울 것이 없어요. 다 받아들여 가지고 그냥 다 소화를 시켜 버려. 그래 이 칠성을 믿는 사상도 그렇게 해서 흡수를 하게 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원래 원시 종교(原始宗敎)는 태양이라든지, 달이라든지, 별이라든지, 바다라든지, 이런 우주 천체와 대자연을 두려워하고, 두려운 나머지 공경하고 이래 가지고 하나의 원시 종교의 발상이 자연을 숭배하는 데서부터서 시작한 것입니다.
저 북두칠성(北斗七星), 북극성(北極星)은 그래서 다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다. 칠원성군(七元星君)이다’ 모다 이렇게 해서 해는 일광보살(日光菩薩)이라 그러고, 달은 월광보살(月光菩薩)이라 해서, 불보살의 명호(名號)를 붙여 가지고 그래서 숭배하게 되고 오늘날까지도 칠성을 숭배하는 사상은 거의 모든 불자(佛子)들 속에 깊이 뿌리가 박혀서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산신단(山神壇)이나 칠성단(七星壇)은 비불교적이다’ 해 가지고 절에서 그러한 신앙은 없애고 철저하게 이 정법만을 믿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어나고 있습니다마는, 넓은 눈으로 보면 해도, 달도, 별도, 우주세계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표현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신불을 대일여래(大日如來)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 毘盧遮那佛)을 대일여래라고도 부릅니다마는 대일여래가 바로 태양이다. 태양과 같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 태양으로 인해서 모든 동물과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삼라만상이 태양의 힘을 가자(假藉)하지 않고서는 생성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그러한 칠성을 믿는 신앙을 불교에 받아들였냐 하면 바로 그러한 이치로 해서 칠성 신앙을 받아들여 가지고 완전히 불교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칠성을 믿는 신앙을 통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차츰차츰 정법을 믿는 그러한 불자로 승화(昇華)시켜 온 것입니다.
민간에서는 오늘 칠석날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은하수(銀河水)를 통해서 1년에 오늘 저녁 한번 만난다고 그러한 설화가 있습니다.
1년 동안 서로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이 떨어져서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하루 까막까치가 놓아준 오작교(烏鵲橋)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고 하는 설화는 대단히 재미있는 설화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 세상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는 고통이 있고, 미워하는 사람과는 자주 만나게 되는 고통이 있고, 구하고 원하는 것은 얻어지지 않는 그래서 그러한 고통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나아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러한 고통이 있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러한 작용이 지나치게 성(盛)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것이 다시 자기에게 괴로움을 갖다 주는 오음성고(五陰盛苦), 이리해서 인간에게는 ‘여덟 가지의 고통[八苦]’이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여덟 가지의 고통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고 밤낮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가, 단 한번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아준 오작교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어떠한 숙세의 인연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자기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또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분 자신들은 그동안 이루지 못한 뜻을 오늘 법문을 듣고 마음속에 괴로움이 사라지고,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구했던 소원을 이루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러한 원(願)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를 데리고 무능적국(無能敵國)에 들어가셔서 항하사(恒河沙) 강변을 지나고 계실 때에, 마치 한 수행승이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그 수행승에게 무슨 법문을 해 주셨냐 하면은 마치 그때에 갠지스 강 가운데에 큰 나무 기둥 하나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기둥을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면서, “저 기둥을 봐라! 저 나무 기둥이 이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또 강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며, 또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도 들어가서 뱅뱅 맴돌지 아니하면, 결국은 저 나무 기둥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는 저 바다로 도달하고 말 것이니라”
그러면 ‘이쪽 언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뚱이로 감각하고, 생각으로 알고 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걸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게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한다’는 말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상대가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깥 경계에도 집착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중간에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어떠한 색(色)을 보면 속에 안식(眼識)이라 하는 것이 생기고, 귀로 바깥 경계 소리를 들으면 속에 이식(耳識)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식(六識)이 생기기 때문에 '그 육식에도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소용돌이 속에 걸리지 아니한다’ 하는 것은 학문이나 경전이나 그러한 것을 보다가 알음알이에 집착을 한다고 하는 데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
요새 불자 가운데에 지성인 측에서 교리적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는데, 무슨 경전이나 다 부처님의 소중한 진리가 담겨 있는 법문이기는 사실이나, 그러한 경을 올바르게 보지를 못하고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데에 맛을 붙여 가지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그 나무토막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뱅뱅뱅뱅 도는 그 소용돌이 속에 한번 들어가면 밤낮 그 자리에서 돌기만 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다에는 도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이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에도 머꾸지를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법문을 그 수행승에게 해 주셨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고 떠났습니다.(20분52초)
그 법문을 설하실 때에 그 곁에서 소를 치는 목동(牧童)이 어떻게 열심히 그 법문을 들었던지,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목동을 그만두고 당장 그 자리에서 출가할 결심을 하고 부처님께 허락을 해 주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네가 지금 목동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남의 소를 기르고 있으니 그 소를 갖다가 주인한테 갖다가 인계를 하고 주인한테 인사를 하고 그리고서 오너라”
목동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소들은 전부 송아지들이기 때문에 소 어미는 주인한테 있으므로 그냥 놔두어도 송아지들은 제 어미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럴 필요도 없이 당장 이 자리에서 계를 설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아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저 송아지를 주인한테 정식으로 인계를 하고, 너도 네 몸도 그 주인한테 고용이 되어 있으므로 정식으로 하직(下直) 인사를 하고 와야지 그럴 수가 있느냐”
그래서 그 목동은 그 송아지 떼를 몰고 그 주인한테로 달려갔습니다. 송아지는 자기의 목동이 달려가니까 덩달아서 달려가는데, 목동은 달려가면서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계속 달려갔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목동들도 "무엇이 무서우냐?"고 하면서 달려갔습니다.
‘무엇이 무서우냐? 하면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무섭고, 늙은 것이 무섭고, 병든 것이 무섭고, 죽는 것이 무섭다’
이런 뜻으로써 계속 “무섭다. 무섭다” 하면서 주인한테 쫓아가 가지고 송아지를 인계하고 그리고 하직 인사를 하고 되돌아오면서 계속 “무섭다”고 또 오니까, 5백 명의 다른 목동들도 그 목동을 따라서 같이 부처님 처소로 와 가지고, 그 목동과 다른 5백 명의 목동이 일시에 출가를 해 가지고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동이 법문을 들을 때에 가지고 있던 지팽이가 있었는데, 그 지팽이 끝에 꽂혀서 죽은 두꺼비가 한 마리 있었던 것입니다.
목동은 부처님 법문 듣는 데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자기 작대기가 두꺼비의 등어리에 놓아져 있는 것도 모르고 계속 열심히 듣다 보니까 힘을 계속 그 작대기에다 힘을 주어 가지고, 작대기가 두꺼비 등어리를 뚫고 창자를 꿰뚫어서 맞창이 났던 것입니다.
그 두꺼비는 작대기가 자기 등어리에 닿을 때에 비명을 질렀으면 그 목동이 깜짝 놀라서 그 작대기를 치웠을 텐데, 그 두꺼비라는 놈은 ‘자기가 만약에 빽빽 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 목동이 깜짝 놀라 가지고 부처님 법문 듣는 데에 방해가 될까봐 차라리 내가 이대로 죽을지언정 어찌 부처님 법문 듣는 그것을 방해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가지고 그 두꺼비도 보통 두꺼비가 아니라 이상한 두꺼비가 되어 가지고 두꺼비 저도 법문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서 목동의 작대기에 찔려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두꺼비는 죽어서 바로 사천왕(四天王)에 태어나 가지고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천자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너무 부처님 은혜가 지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천자의 옷차림을 떠억 하고서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을 뵈옵고, 전생(前生)에는 두꺼비의 몸으로 법문을 들었지만, 금생에는 내가 천자의 옷을 입고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리라. 그리고 감사한 예배를 올리리라’
이래 가지고 달밤에 달은 휘황창 밝은데 하늘나라에서 꽃비를 내리면서 찬란한 모습으로 천상에서 부처님 처소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께 무수배례(無數拜禮)를 올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다시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천상에를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꽃비가 내리고 장엄한 하늘나라의 음악이 울린 것만 보았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내려온 것은 보지를 못해서 그 이튿날 부처님께 “어젯밤에 부처님께 무슨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까?”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그 목동이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이렇게 자기뿐만이 아니라 5백 명의 목동을 데리고 이렇게 와서 출가해 가지고 부처님 법문에 의지해서 이렇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 여쭈니까 부처님께서 그 목동의 전생과 두꺼비의 전생에 대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전생에 가섭파여래(迦攝波如來)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에 목동이 그 부처님을 뵈옵고 발심을 해 가지고 출가한 사실이 있었는데, 그 목동이 수행을 하다가 어느 절에서 다른 경(經) 공부를 하는 스님과 같이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동으로 있다 출가를 한 그 수행인은 참선이 좋아서 계속 참선만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함께 그 절에서 머무른 여러 스님들은 모두 경(經) 공부를 해서 밤새도록 경을 큰 소리로 읽고 외우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해서 마음을 고요히 집중을 해 가지고 정(定)에 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너무너무 경 읽는 소리가 크고 시끄러워서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이튿날 너무너무 부애가 나니까, 욕을 하기를 “밤새 두꺼비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참선을 못했다”고 이렇게 욕설을 한 그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몸을 받으면서 내려오다가, 금생에 이렇게 참 자기 몸뚱이에 그 작대기가 꽂혀서 죽게 됨에도 불구하고 법문, 법(法)을 존중하고 아끼는 그러한 신심과 보살심을 냄으로 해서 두꺼비의 몸을 벗고 천상에 태어나서 사왕천(四王天) 궁의 천자가 되었다고 하는 원인을 말씀을 하시고.
또 이 목동이 이렇게 도를 얻은 인연은, 전생에 한 수행인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수행을 잘하고 덕(德)이 있어서 대중 가운데 누가 싸움을 하기만 하면 이 스님이 말을 몇 마디 하면 금방 싸움이 가라앉고 화해를 잘 시켰던 것입니다.
마치 그 가섭파여래 회상에서 있을 때인데, 두 사람이 싸움을 해 가지고 며칠째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냈습니다.
지금 이 보살선방에도 가끔 옛날에는 사소한 일에 타시락거리면 며칠씩 속으로 꽁해 가지고 말도 안 하고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요새는 그런 일이 거의 없고 모두가 다 화합하고 합심해서 석 달 동안을 하루같이 그렇게 엄숙하고 거룩하게 그렇게 정진들을 잘해 오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그렇게 싸움을 해 가지고 말을 안 하는데, 그 스님한테 화해를 시켜 달라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당장 그 자리에서 화해를 붙여 주지 아니하고,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까 다른 스님한테 요청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안 되거든 나한테 오너라’ 이렇게 미뤘습니다.
그렇게 미룬 것은 ‘다른 사람한테 가서 해도 안 되어 가지고, 그때 자기한테 와 가지고 화해가 되어야 자기의 권위가 설 것이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외출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까 벌써 다른 스님한테 말을 해 가지고 화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화해가 되었느냐?”고 내막을 물으니까 “약허이약허이 해서 화해가 되었다. 그 스님이 이러 이러한 말씀을 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양치기 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식으로 화해를 붙이지, 어찌 수행승이 그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욕설을 했습니다. 그 ‘양치기 같은 짓을 했다’ 하는 그러한 속으로 신경질을 내면서 그러한 퉁명스런 말 한마디를 뱉은 그 인연으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아까 두꺼비는, 경 읽는 소리를 갖다가 “두꺼비 우는 소리를 하는 통에 시끄러워서 참선을 못했다’고 한마디 욕을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과보를 받았고, 이번에는 “양치기 같은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식으로 화해를 붙이지 어찌 수행승이 그럴 수가 있느냐” 그렇게 신경질을 내면서 욕설을 한 그 과보로 양치기를 5백 생 동안을 양치기를 했다 이것입니다.
‘한 생각’ 불쑥 신경질을 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도 하고, 또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노릇을 하게 된 그 인과(因果)를 우리가 살펴본다면 한 생각,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부모자식 간에 또는 친구간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한마디씩 툭툭 내뱉은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마는, 우리는 오늘 이 부처님의 설화를 통해서 한 생각 움직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롭게 하고, 나 살기 위해서 남을 상처내고 남을 죽인다고 할 때에 그 과보는 비단 5백 생이 문제가 아니라, 무량 아승지겁(阿僧祇劫)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고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들이 이렇게 많이 정성스러운 공양구(供養具)를 가지고 법보선원에, 불전(佛前)에 이렇게 동참(同參)을 하셨습니다.
과거 한량없는 생(生) 동안 깊은 불법의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이렇게 모다 한자리에 모이셨습니다마는, 앞으로 다시는 퇴전(退轉)하지 아니하고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려면, 우리의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뼈아프게 단속해 나가서 다시는 일어나는 한 생각을 섣불리 흘려보내지 말 것이며,
눈으로 한 가지 일을 보거나, 귀로 어떤 한 소리를 듣거나,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물샐틈없이 단속을 해 가지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처음~39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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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수성빙신유지(滴水成氷信有之)로되 녹양방초색의의(綠楊芳草色依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월춘화무한의(秋月春花無限意)여 불방한청자고제(不妨閑聽鷓鴣啼)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적수성빙신유지(滴水成氷信有之)나, 되게 강추위 할 때는 물 한 방울 톡! 떨어지면은 그 물 한 방울이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얼음이 딱 되어버립니다. 물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쩍 들어 앵깁니다. 수도꼭지에서 계속해서 물이 똑똑 떨어져도 떨어진 쪽쪽 땅바닥에서는 계속 얼음산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말로써 그 진리를 표현할 수가 없고, 귀로써 들어서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설할 것도 없이 이미 사람마다 다 진묵겁(塵墨劫) 전에 완전무결하게 성불(成佛)해 마쳐져 갖고 있는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지금 인류가 45억을 추산하고 있습니다마는, 45억 인구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소나 돼지나 말이나 벌레나 모기나, 꿈적꿈적한 것은 전부가 다 이미 다 있어. 원만하게 다 성불을 해 마쳐 가지고 있는 것이고.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나무나 산이나 바윗돌이나, 길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모래알,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성불(成佛)해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몸뚱이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대중 가운데에는, ‘그렇다면은 왜 나도 부처라면은 왜 내가 지금 이렇게 범부(凡夫)로서 깜깜한 상태에서 이렇게 중생으로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가?’ 모두가 다 의심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마는.
틀림없이 부처님은 부처님이나, 부처님이 잠시 졸고 있다가—졸고 있는 상태에서는 분명히 졸고 있다고 해서 죽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이 꼬박 들어서 잠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다고 해서 죽은 것도 아니요,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님니다. 분명히 살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지만, 잠깐 잠이 들어가지고 꿈을 꾸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꿈만 깨 버리면 생시(生時)가 된 것처럼, 우리 그 중생의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아서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參禪)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각(正覺)이다, 대각(大覺)이다, 본각(本覺)이다’ ‘깨달을 각(覺)’ 자를—‘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선문(禪門)에서는 ‘견성(見性)’이라 그러거든. ‘성품(性品)을 본다[見]’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어디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탁! 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녹양방초(綠楊芳草)가 색의의(色依依)여. 녹양(綠楊), 푸른 버드나무 휘영청 늘어지고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달은 가을달대로 운치가 있고, 봄의 꽃은 꽃대로 아름다워서, 가을꽃도 깨달음의 경지요, 봄꽃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한없는 깊은 뜻을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입니다.(秋月春花無限意) 그러기 때문에 깨달은 눈으로 보면 가을꽃도 설법(說法)이요, 가을달도 부처님의 얼굴이요, 봄에 핀 꽃도 부처님의 설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고새가 우는 소리를 한가히 듣는 것도 또한 방해롭지 않다(不妨閑聽鷓鴣啼)’ 한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낱낱이 그것들이 다 ‘참나’로 돌아오는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고, 파란 것이나 붉은 것, 풀에서는 풀 냄새, 아카시아꽃에서는 아카시아꽃 냄새, 장미꽃에서는 장미꽃 냄새, 그 꽃마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가 다 다르지만,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낱낱이 다 나로 하여금 지혜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좋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說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여러분은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집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고, 우리 남편이 승진하기를 바라고, 우리 아들과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혼기를 맞이한 우리 딸이 좋은 신랑감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금 간절하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러한 소원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의 조그마한 너무너무 작은 일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세상은, 사람이 사람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그것도 또한 중대한 일일시 분명합니다.
그러한 원(願)을 성취하려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콩을 많이 수확한 사람이 바늘에다 그 콩을 꿰어가지고 등잔불에 구워 먹고, 계란을 많이 구해 가지고 계란 알맹이는 쏟아 버리고 그 계란 속에다가 쌀 한 숟갈을 씻어서 넣고, 그래 가지고 그 계란을 젖은 종이로 싸 가지고 부엌 불속에다 넣어서 계란밥을 해 먹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릴 적을 추억을 하실 것입니다마는, 농사지어 가지고 바늘에다 콩을 구워 먹고, 양계(養鷄)를 해 가지고 알맹이는 쏟아 버리고 거기다 계란밥을 해 먹기 위해서, 그래 양계를 하고 콩 농사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은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불법을 믿으면서, 정말 불법(佛法)의 근본 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 높은 벼슬을 하고, 재수(財數) 대통(大通)하고,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한 일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저절로 이루어지냐 하면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업(業)이 소멸(消滅)이 되기 때문에 업이 소멸이 되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한 생각 원하면, 인간 세상에 제일 큰 원(願)이 천자(天子)가 되는 원이라면 천자도 가능하거든 그밖에 조그마한 원(願)이야 물어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칠성불공을 하고 산신기도를 하고, 좋다는 데는 강화 보문으로, 양양 낙산사로, 남해 보리암으로 발이 닳아지도록 쫓아다녀도 여간 소원이 잘 성취가 안 되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과거에 지은 업(業)이 꽉 쩔어 가지고 그놈이 장애가 되어가지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말이여.
그 원(願)을 성취하려면 그러한 성지(聖地)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나, 그보다도 더 빠르고 더 요긴한 방법은 강화까지 안 가고 자기 있는 가정에서 일하면서, 밥 지으면서, 빨래하면서, 차를 타면서, 절에 오면서, 절에 가면서, 법회날은 절에 오면서, 절에 와서 또 법문을 다 듣고 가면서,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돌이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도 ‘이뭣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속상하면서 ‘이뭣고?’
슬퍼하면서 ‘이뭣고?’
기뻐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법신불(法身佛)이 계신 법당(法堂)이요, 강화 보문이요, 양양 낙산사요, 오대산 적멸궁이요, 남해 보리암이다 이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만약에 오대산 적멸궁에만 계시고, 양양 낙산사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남해 보리암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불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 성지(聖地)를 마련한 것은 거기에 정성스럽게 감으로써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신심을 내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절이 필요한 것이지,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일어날 때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무슨 파란 나무나 빨간 꽃 한 송이를 볼 때 거기에서 바로 법신불을 친견할 줄을 알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화사는 여러분에게 그러한 부처님을 깨닫게 하는 길을 가르켜 드리는 도량(道場)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러한 최상승법을 듣고 한 생각도 옮기지 아니하고,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불법을 깨닫고 부처님을 친견할 길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틀림없이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될 것을 나는 자신 있게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대도(大道)도 틀림없이 성취하시고, 인간 세상의 크고 작은 소원도 반드시 성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보증을 하는 바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서 속에다 따 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불법(佛法)을 올바르게 닦아가는 것이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속으로 그것을 따 담고, 귀로 뭔 소리를 들으면은 그 소리를 속에다 따 담고 해 가지고, 속에는 일생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한 것들이—선(善) · 악(惡) · 무기(無記), 좋은 일, 악한 일, 좋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는 그러한 무기(無記)의 일들, 수수(數數) 백억만 가지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차곡차곡 쟁여져 갖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은혜스러운 일과 원망(怨望)한 웬수스러운 일들이 비빔밥이 되어가지고 얽히고설켜서, 그것들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 거기서 다 싹이 나가지고 또다시 새로운 은혜를 맺고, 또다시 새로운 웬수를 맺으면서 무량겁을 두고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렵고 지겹기 한이 없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일들이 되풀이되어서 무량겁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몸서리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난 이 기회를 결단코 놓치지 말고 철저하게 최상승법을 믿어서 열심히 닦아 간다면 반드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59분22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말씀드리는 바를 명심을 하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내생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음력 7월 보름날 백종날이 돌아옵니다. 그날은 백일기도 회향날이며, 여름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그날을 기해서 지옥문이 열려 가지고 우리의 다생(多生)에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우리와 인연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이 하루 동안 특별휴가를 맡아 가지고 오시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우리 법보전에서도 선망부모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이 거행이 됩니다.
그날은 여러분께서도 잘아신 바와 같이 목련(目連) 존자가 그 죄를 짓고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천도하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날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어머니를 천도했느냐 하면,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들 스님네께 만 가지 온갖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과일 공양(供養)을 올려서, 그 석 달 동안 청정한 마음으로 도를 닦으신 스님네께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청제부인, 목련 존자의 어머니를 천상(天上)에 태어나시게 한 그러한 날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또 가족이라든지 친척이라든지 이웃 친구들 모다 권고해서 오셔서 동참을 하시고,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만년위패에 모시지 아니한 분도 임시위패라도 모셔서 선망부모를 천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날 모다 지옥문이 열려서 오셨다가 내 아들, 내 며느리, 내 딸이 안 왔나 하고 두루 찾아보아도 다른 사람은 다 왔는데 자기의 아들딸들이 안 왔으면 얼마나 섭섭하고 서운하게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영가(靈駕)의 세계나, 우리 이 살아 있는 우리 인간 세계나 그 정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 그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번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뭐 영가고 뭐 그런 게 소용 있느냐?’ 이러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영가의 세계는 살아 있는 이 세계나 쪼끔도 다름이 없고 오히려 더 정확하고 더 영특하고 그런 것입니다.
오늘은 칠석날에 한 생각 일으키고, 말 한마디 하는 그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화를 말씀을 드리고, 그러기 때문에 그 한 생각, 한마디를 조심할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해 나가면은 생사해탈(生死解脫)도 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법문을 해 드렸습니다.
이어서 칠석의 법요식이 진행이 되겠습니다.(39분45초~65분3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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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가련억만인천중~’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21,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가련하다(可憐-- 가히 가/불쌍히여길 련) ; 가엾고 불쌍하다.
*노란 이파리[黃葉] ; 황엽(黃葉). 어린 아기가 울 때에, 버드나무의 누런 잎[黃葉]을 돈[金]이라 하여 어린 아기에게 주어서 울음을 그치게 한 것.
부처님이 33천이 항상[常]하고 즐겁고[樂] 나[我]이고 깨끗함[淨]과, 단정하고 자재하여 훌륭한 궁전에서 오욕락(五欲樂)을 받는 일과, 육근(六根)으로 상대하는 것이 모두 즐거운 일이라 말하여 중생이 악업을 짓지 아니하고 33천에 태어날 선업을 짓게 하는 것에 비유한 것.
그러나 실제로는 나고 죽는 것이며 무상(無常)하고 낙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常樂我淨]’고 방편(方便)으로 말[說]하는 것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권 25품』 (宋代沙門慧嚴等依泥洹經加之) 제18권. 제21 영아행품(嬰兒行品).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6권 25품』 (宋代沙門慧嚴等依泥洹經加之) 제18권. 제21 영아행품(嬰兒行品), 『열반경(1)』 (이운허 옮김 | 동국역경원) p453~454.
〇又嬰兒行者 如彼嬰兒啼哭之時 父母卽以楊樹黃葉而語之言 莫啼莫啼我與汝金 嬰兒見已生眞金想便止不啼 然此楊葉實非金也 木牛木馬木男木女嬰兒見已 亦復生於男女等想卽止不啼 實非男女以作如是男女想故 名曰嬰兒
또 어린 아기의 행[嬰兒行]이라 함은 어린 아기가 울 때에는, 그 부모가 누른 버들잎[楊樹黃葉]을 주면서 달래기를 “너에게 돈[金]을 줄 터이니 울지 말라”하는데, 아기가 보고는 참말 돈인 줄 생각하고 울지 않으니 그것은 버들잎이지 참말 돈이 아니니라.
나무로 만든 소와 나무 말과 나무 남자와 나무 여자를 어린 아기가 보고는 참으로 남자나 여자인 줄 생각하고 울지 않는데, 참으로 남자와 여자가 아닌 것을 남자와 여자인 줄 생각하므로 어린 아기라 이름하느니라.
如來亦爾 若有衆生欲造衆惡 如來爲說三十三天常樂我淨端正自恣 於妙宮殿受五欲樂 六根所對無非是樂 衆生聞有如是樂故 心生貪樂止不爲惡 勤作三十三天善業 實是生死無常無樂無我無淨 爲度衆生方便說言常樂我淨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지으려 하면,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33천이 항상[常]하고 즐겁고[樂] 나[我]이고 깨끗함[淨]과, 단정하고 자재하여 훌륭한 궁전에서 오욕락(五欲樂)을 받는 일과, 육근(六根)으로 상대하는 것이 모두 즐거운 일이라 말하는데, 중생들은 이러한 즐거움을 들은 까닭으로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고 33천에 태어날 선한 업을 짓거니와,
실제로는 나고 죽는 것이며 무상(無常)하고 낙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常樂我淨]’고 방편(方便)으로 말[說]하는 것이니라.
〇又嬰兒者 若有衆生厭生死時 如來則爲說於二乘 然實無有二乘之實 以二乘故知生死過見涅槃樂 以是見故 則能自知有斷不斷有眞不眞有修不修有得不得
또 어린 아기라 함은 어떤 중생이 나고 죽음을 싫어할 때에는 여래가 2승(二乘)의 도를 말하거니와, 실제로는 2승의 실상이 없는 것이며, 2승의 법으로 인하여서 나고 죽는 허물을 알고 열반의 낙을 보는 것이며, 이런 소견으로 말미암아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이 있으며. 참된 것과 참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닦을 것과 닦지 않을 것이 있으며, 얻을 것과 얻지 못할 것이 있음을 아느니라.
〇善男子 如彼嬰兒於非金中而生金想 如來亦爾 於不淨中而說爲淨 如來已得第一義故則無虛妄
如彼嬰兒於非牛馬作牛馬想 若有衆生於非道中作眞道想 如來亦說非道爲道非道之中實無有道 以能生道微因緣故 說非道爲道
선남자야, 저 어린 아기가 돈이 아닌데 돈이란 생각을 내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 말하거니와, 여래는 제일의(第一義)를 얻었으므로 허망함이 없느니라. 어린 아기가 소와 말이 아닌데 소와 말이라 생각하듯이 어떤 중생이 도(道)가 아닌데 도라는 생각을 하는데, 여래도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말하나니 도가 아닌 데에 실로 도가 없지만 능히 도를 내는 작은 인연이 되는 것이므로, 도가 아닌 것을 말하여 도라고 하느니라.
如彼嬰兒於木男女生男女想 如來亦爾 知非衆生說衆生相 而實無有衆生相也 若佛如來說無衆生 一切衆生則墮邪見 是故如來說有衆生 於衆生中作衆生相者 則不能破衆生相也 若於衆生破衆生相者 是則能得大般涅槃 以得如是大涅槃故止不啼哭 是名嬰兒行
어린 아기가 나무로 된 남자와 여자에게 참말 남자와 여자인 생각을 내듯이 여래(如來)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중생이라 말하지만 실로는 중생이란 모양이 없느니라. 만일 부처님 여래가 ‘중생이 없다’고 말하면 모든 중생이 잘못된 소견에 떨어질 것이므로 여래가 ‘중생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중생에 대하여 중생이란 모양을 지으면 곧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지 못하나니 중생에 대하여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는 이라야 능히 대반열반(大般涅槃)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렇게 대반열반을 얻으므로 울음을 그치는 것을 어린 아기의 행[嬰兒行]이라 이름하느니라.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칠성단(七星壇)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신 단.
*교법(敎法) ; ①가르치는 방법. ②부처님이 설법한 가르침.
*한맛 ; 부처님의 설법은 근기(根機, 가르침을 받는 이의 자질)에 따라 다르지만, 그 본뜻은 꼭 같다는 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북극성은 그 빛이 밤하늘의 별 중 가장 밝아 치성광(熾盛光)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도 한다.
*칠원성군(七元星君) ; 북두(北斗)의 일곱 성군(星君). 북두칠성을 말한다.
*명호(名號) ; 명자(名字), 명(名)이라고도 함. 이름. 주로 부처님과 보살의 이름이기에 존호(尊號), 가호(嘉號) 등이라고도 한다. 이 명호(名號)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것에 커다란 작용이 있다고 여기고, 여기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등의 행(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 毘盧遮那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은하수(銀河水) ; ‘은하(銀河 천구상에 남북으로 길게 보이는 수억 개의 항성 무리)’를 강물에 비유하여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오작교(烏鵲橋 까마귀 오/까치 작/다리 교) ; 음력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를 서로 만나게 하기 위하여,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을 잇대어 만든다는 다리.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의 괴로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제24책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제11 참고.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머꾸다 ; ‘멈추다’ ‘막히다’의 사투리.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하직(下直) ; ①먼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룀. ②'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지팽이 ; ‘지팡이’의 사투리.
*맞창 ; [주로 ‘나다’, ‘뚫다’ 따위의 말과 함께 쓰여] 마주 뚫린 구멍.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제석천(帝釋天) ; 제(帝)는 산스크리트어 indra의 번역, 석(釋)은 산스크리트어 śakra의 음사. 신(神)들의 제왕인 샤크라〔釋〕라는 뜻. 천(天)은 신(神)을 뜻함.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과 32천을 통솔하면서 불법(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그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그 성(城)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고 함.
*유숙(留宿 머무를 류/묵을 숙) ; (사람이 어디에)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을 풀고 묵음.
*정(定) : ①계(戒)•정(定)•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아승지겁(阿僧祇劫) ; 아승지(阿僧祇)는 산수로 나타낼 수 없는 가장 큰 수 중의 하나이고, 겁(劫)은 연•월•일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말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의 소의(所依)가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의 여섯 가지 기관(器官)을 말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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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수성빙신유지~’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제22, 야부도천 게송 참고.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윤회(輪廻) ; 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業)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生死)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 ②어떤 사물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단계에 따라 차례로 밟아 가거나 되풀이함.
*생시(生時) ; ①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②태어난 시간. ③살아 있는 동안.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설법(說法) ; 불교의 이치나 가르침[法]을 풀어 밝힘[說].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양계(養鷄) ; 닭을 먹여 기름. 또는 그 닭.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천자(天子) ;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제국의 군주를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이라고 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〇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수수(數數) ; 아주 여러.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〇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〇“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목련 (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문 내용]
(게송)가련억만인천중~ / 우주세계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표현 / 칠성 신앙을 받아들여 사람들을 차츰차츰 정법을 믿는 불자로 승화(昇華)시켜 온 것 / 부처님의 ‘큰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제24책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제11 참고 / 한 생각 한마디의 결과가 무섭고 소중하다 /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해 화두를 들고 나가라.
(게송)적수성빙신유지~ / 모든 동물 벌레, 모래알,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다 성불(成佛)해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몸뚱이 /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아서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參禪)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본성(本性)을 보게 된다 /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고, 모든 것들이 낱낱이 다 나로 하여금 지혜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좋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說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원(願)을 성취하는 빠르고 요긴한 방법은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돌이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도 ‘이뭣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뭣고?’ / 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〇불교는 너무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교법(敎法)이 넓고 크고 깊어서, 마치 바다와 같아서 동서 사방에서 흘러들어 오는 어떠한 종류의 강물이라도 일단 바다에 들어오고 보면 전부 짠맛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떠한 종교도 불교가 들어가면 다 흡수해 버려. 불교 내에는 어떠한 종교의 교리도 원래 그 안에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불교는 어떠한 종교라도 다 흡수해서 녹여서 ‘한맛’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 말이여.
〇어째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그러한 칠성을 믿는 신앙을 불교에 받아들였냐 하면 바로 그러한 이치로 해서 칠성 신앙을 받아들여 가지고 완전히 불교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칠성을 믿는 신앙을 통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차츰차츰 정법을 믿는 그러한 불자로 승화(昇華)시켜 온 것입니다.
〇‘한 생각’ 불쑥 신경질을 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과보로 5백 생 동안을 양치기 노릇도 하고, 또 5백 생 동안을 두꺼비 노릇을 하게 된 그 인과(因果)를 우리가 살펴본다면 한 생각,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부모자식 간에 또는 친구간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한마디씩 툭툭 내뱉은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마는, 우리는 오늘 이 부처님의 설화를 통해서 한 생각 움직이고, 한마디 내뱉은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〇‘정각(正覺)이다, 대각(大覺)이다, 본각(本覺)이다’ ‘깨달을 각(覺)’ 자를—‘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선문(禪門)에서는 ‘견성(見性)’이라 그러거든. ‘성품(性品)을 본다[見]’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성품을 보면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성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어디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탁! 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〇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낱낱이 그것들이 다 ‘참나’로 돌아오는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이고, 파란 것이나 붉은 것, 풀에서는 풀 냄새, 아카시아꽃에서는 아카시아꽃 냄새, 장미꽃에서는 장미꽃 냄새, 그 꽃마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가 다 다르지만,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낱낱이 다 나로 하여금 지혜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좋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說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〇불법을 믿으면서, 정말 불법(佛法)의 근본 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수행을 해 나가면 높은 벼슬을 하고, 재수(財數) 대통(大通)하고,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한 일쯤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저절로 이루어지냐 하면 참선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모든 업(業)이 소멸(消滅)이 되기 때문에 업이 소멸이 되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한 생각 원하면, 인간 세상에 제일 큰 원(願)이 천자(天子)가 되는 원이라면 천자도 가능하거든 그밖에 조그마한 원(願)이야 물어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〇원(願)을 성취하려면 그러한 성지(聖地)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나, 그보다도 더 빠르고 더 요긴한 방법은 강화까지 안 가고 자기 있는 가정에서 일하면서, 밥 지으면서, 빨래하면서, 차를 타면서, 절에 오면서, 절에 가면서, 법회날은 절에 오면서, 절에 와서 또 법문을 다 듣고 가면서,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돌이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도 ‘이뭣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뭣고?’
빨래하면서 ‘이뭣고?’ 속상하면서 ‘이뭣고?’ 슬퍼하면서 ‘이뭣고?’ 기뻐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법신불(法身佛)이 계신 법당(法堂)이요, 강화 보문이요, 양양 낙산사요, 오대산 적멸궁이요, 남해 보리암이다 이 말씀입니다.
〇성지(聖地)를 마련한 것은 거기에 정성스럽게 감으로써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신심을 내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절이 필요한 것이지,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일어날 때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무슨 파란 나무나 빨간 꽃 한 송이를 볼 때 거기에서 바로 법신불을 친견할 줄을 알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용화사는 여러분에게 그러한 부처님을 깨닫게 하는 길을 가르켜 드리는 도량(道場)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〇불법(佛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많이 알아서 속에다 따 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의 속에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불법(佛法)을 올바르게 닦아가는 것이다.
〇오늘은 칠석날에 한 생각 일으키고, 말 한마디 하는 그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설화를 말씀을 드리고, 그러기 때문에 그 한 생각, 한마디를 조심할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해 나가면은 생사해탈(生死解脫)도 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법문을 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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