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15)—1983년 10월 첫째 일요법회 (64분)
(1) 약 34분.
(2) 약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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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등공화(身世等空華)하고 이명여분토(利名如糞土)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도자합여사(道者合如斯)하면 기시과능소(豈是誇能所)리요
나무~아미타불~
신세(身世)는 등공화(等空華)요, 이 몸뚱이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허공의 꽃과 같고,
이명(利名)은 여분토(如糞土)로구나. 이끗, 재산과 명예 이러한 것은 똥 묻은 똥 덩어리와 같다.
공화(空華)라 하는 것은, 허공의 꽃이라 하는 것은 실지로는 없는 것인데, 안질병(眼疾病)이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을 보면 그 허공 속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실지는 없는 것인데 눈병이 걸린 사람에게는 꼭 무엇이 실지로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허공 속에 보이는 거 그것이 공화(空華)인데, 이 몸뚱이와 이 세계도 역시 공화(空華)다 그 말이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가합(假合)해서 임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의 깨닫지 못한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볼 때에는 이 몸뚱이가 실지로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 세계도 실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실상(實相)이 아니라 허공 속에 피어 있는 꽃처럼, 안질병(眼疾病) 환자가 볼 때에 허공 속에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무명(無明)으로 보니까 이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가 참자기, 참자기라고 느껴지고 이 세계도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지 실지는 집착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도자(道者)가 합여사(合如斯)하면, 도 닦는 사람이, 정법을 믿고 도를 닦는 사람이 합당(合當)이 이와 같이 볼 것 같으면, 자기의 몸뚱이와 이 세계 그리고 명예와 재산 이런 것들을 공화(空華)와 같이 보고 흙덩어리나 똥 무더기처럼 본다면,
기시과능소(豈是誇能所)리요. 어찌 능소(能所)를 자랑하리요. 능소(能所)라 하는 것은, 능(能)이라 하는 것은 주관을 말하는 것이요, 소(所)라 하는 것은 객관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모다 능소라 하는 것은 인아상(人我相)이거든.
‘내’라 하는 생각, ‘이것은 나다’ 하는 생각, ‘내 것이다’ 하는 생각, ‘나는 잘한다’ 하는 이러한 주관적인 생각, 그리고 ‘남이다, 내가 아니고 저것은 남이다’ 하는 그런 아상(我相)과 인상(人相),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것은 내 것은 소중하고 내가 옳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남을 헐뜯고, 내가 남을 디디고 올라서서 나만 잘살려고 하는 이러한 생각을 내 가지고 남과 다투고 이러한 생각을 어찌 가질 것이냐.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 사대로 얽혀진 허망한 것이라 하지만 먹여 주어야 하고, 입혀 주어야 하고, 춥고 더운 곳에서 이 몸을 잘 보호를 해야 하고, 병이 나면 치료를 해 줘야 하고, 또 내가 사는 집도 비가 새지 않고 차운 바람을 막아 주고 이렇게 집도 단속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명예나 재산 같은 것도 그것이 똥 덩어리와 같고, 흙덩어리와 같이 허망한 것이요 영원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지마는 당장 명예가 없으면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고, 재산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이여. 먹고 입고 거주하는 것이 온통 다 재산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아들딸을 낳아서 길러서 가리키는 데에도 재산이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런데 허공의 꽃처럼 보고, 똥 덩어리나 흙덩어리처럼 그렇게 달관을 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 몸뚱이도 허망한 것이니 병이 들어도 내싸두어 버리고, 춥거나 덥거나 얼어 죽거나 더위를 먹어서 쓰러지거나 방치를 해 버리고, 집이 쓰러져서 무너져도 내비두어 버리고, 재산을 갖다가 남이 다 가져가 버리거나 재산이 다 없어져도 관리를 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
부처님 법문을 잘못 이해하면 그러한 단상견(斷常見)에 떨어져서 중도(中道)의 뜻을 이해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아무리 좋은 법문을 들어도 단견(斷見)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상견에 떨어지지 말도록 법문을 하면 당장 찰나간에 단견에 떨어지고, 이래 가지고 단견 아니면 상견, 상견 아니면 단견, 양두(兩頭)에 걸려 가지고 중도의 뜻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중생견(衆生見)이라 하는 것입니다.
방에서 파리를 날리면,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날리면 천장에 가서 붙고, 천장에 앉은 파리를 날리면은 동쪽 벽에 가서 붙고, 동쪽 벽에 앉은 파리를 날리면 서쪽에 가 붙고, 그 파리를 종일토록 날려도 동서남북 벽 아니면 천장에나 방바닥 어딘가는 기어코 붙고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무명업식(無明業識)을 여의지 못한 중생은 아무리 좋은 법문을 설해 주어도 유무(有無) 아니면 중간에 떨어져서 중도의 뜻을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올바르게 법문을 들으면, ‘몸과 이 세계가 허공꽃과 같다’ 해도 그 말에서 깨달아 얻을 것이요, ‘명예와 재산이 똥 무더기요, 흙덩어리와 같다’ 하더라도 그 말씀을 듣고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뉘우치고, 자기의 그릇된 애착과 집착과 소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부처님 법문에 깊은 산중에 다섯 신선(神仙)이 도(道)를 닦고 있었는데, 각기 책임이 있어서 그 다섯 신선 가운데 한 신선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밥을 짓는 부목과 공양주의 책임을 맡아 가지고 있었는데,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 너무 피곤해 가지고 뜨뜻한 양지 바른 언덕에 잠깐 쉰다고 하는 것이 깊은 잠이 들어 가지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를 못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식사 시간이 다 지나 버리고 늦게 늦게사 돌아오니까 그 다른 네 분의 신선들한테 호되게 걱정을 들었습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을 지키지를 못하고 자기 멋대로 실컷 자고 때가 지내서사 이렇게 돌아오면 그러한 게으른 생각을 가지고 무슨 도를 이룰 것이냐?’
호되게 꾸지람을 당하니까 거기에서 참 미안한 생각과 자책감이 나서 강으로 가 가지고는 한 발을 딛고, 몇 시간을 한 발로 딛고 손을 들고서 발을 들고서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벌을 주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이렇게 한 발만 딛고 발을 들고 그렇게 벌을 서고 있는데, 그러다가 너무 지쳐 가지고 신발, 발에 신었던 칠보로 잘 만들어진 신이 강물에 떨어져서 흘러 내려가고 또 그러다가 몸이 쓰러져 가지고 결국은 그 사람은 물에 떠내려 가지고 기진맥진했기 때문에 헤엄쳐서 나오지도 못하고 그길로 물에 빠져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 신선이 그렇게 해서 죽은 뒤에 오랜 세월이 걸려 가지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한 여나므 살 이렇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그 소년이 신선이 죽어 가지고 태어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 마을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서 놀고 장난하고 그렇게 하면서—별로 부잣집이나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지를 못하고, 가난하고 천한 그런 집에 태어나 가지고 마을 아이들하고 섞여서 놀고 있는데, 어느 도사(道士)가 그 마을을 지나다가 놀고 있는 아이들을 이렇게 주욱 살펴보더니, 그 신선이 (다시) 태어난 그 아이를 보고서 찬찬히 그 아이를 보니 설사 옷은 남루하게 입었지만, 그 얼굴 생김새라든지 눈매라든지 모든 것이 여러 아이들에게 비교해서 특출하게 준수하게 생겼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아이를 “너 이리 좀 오너라” 하고 부르니까 다른 애들도 ‘와~’ 하니 삥 둘러섰다.
“너는 지금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너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 나라 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천한 집 아이가 무슨 왕이 된다고 그러십니까? 점잖은 어른이 왜 어린아이를 데리고 그러한 장난 말을 하십니까?”
“아니다, 후일에 반드시 네가 왕이 될 터이니 그때 왕이 되거든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랬습니다.
“만일 제가 왕이 된다면 내가 도사님을 어찌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왕이 될 까닭도 없지만, 만일에 된다 하더라도 제가 도사님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잊겠습니까?”
그래서 마을 애들도 ‘미친 영감이, 미친 사람이 저런 소리를 한다’ 해 가지고 모두 곧이듣지 않고 웃어 버리고 말았는데, 몇 해 안 가서 그 나라 임금님이 병을 앓다가 승하(昇遐)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밑에, 왕 밑에 왕자가 없어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를 왕으로 모시느냐?’ 대신(大臣)들이 모여서 여러 날을 두고 토의를 한 결과, ‘이 나라 방방곡곡을 뒤져서 임금님으로 모실 만한 그런 어진 분을 우리가 찾기로 하자’ 그래 가지고 각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 가지고 임금님이 될 만한 그런 어진 현자(賢者)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치 그 신선이 죽어서 태어난 그 애가 사람들의 눈에 띄어 가지고 추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궁에서는 칠보로 장엄한 가마를 보내 가지고 그 청년을 모셔 갔습니다. 가서 보니 만조백관이 전부 다 ‘과연 이만하면 우리가 임금님으로 모실 만하다’ 해 가지고 임금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딱 되던 날, 몇 해 전에 자기가 임금이 되리라고 수기를 준 그 도사가 찾아왔습니다.
“상감이 저 얼굴을 기억을 하시겠습니까?”
“아! 제가 기억을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도사님 말대로 임금이 되었으니 내가 도사님의 은혜를 갚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던지 다 원(願)대로 해 드리려니와 우선 당장 이 나라를 절반으로 갈라서 드릴 테니까 그 나라 임금이 되십시오” 그러니까.
“저는 그런 것도 다 싫습니다. 싫고, 임금님이 먹고 입고 잠자고 하는 모든 것은 내가 임금님으로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둘째는 모든 크고 작은 정사(政事)를 하는데 있어서 나의 자문(諮問)을 받아서 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 두 가지만 해 주신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 그것이야 내가 어찌 못하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왕궁에 특실을 만들어서 임금님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고, 똑같이 잘 수 있는 그러한 모든 시설을 다 마련을 하고, 크고 작은 모든 정사에 전부 다 문의를 해서 자문을 받아 가지고 하게 되었습니다.
몇 해 안 가서 어떻게 정치를 잘하고 잘 다스리던지 온 나라가 온통 질서가 잘 잡히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사가 차츰차츰 교만(驕慢)이 생겨 가지고 모든 대신들을 너무 짓밟고, 대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래 가지고 그 나라 모든 정치는 그 도사의 한 주먹 속에 다 들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대신이 수십 명 있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니까 대신들이 여기서저기서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을 해도 임금님은 다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그 도사(道士) 말에만 전적으로 의존을 하게 되어서 모든 대신들은 ‘저 요망한 저 도사를, 거라지놈 같은 정체를 모르는 저 도사놈을 갖다가 내쫓아야 한다’고 모다 주장을 했습니다.
임금님은 여러 차례 그것을 거절을 하고 물리치고 그랬지만, 하도 대신들이 물러가지 아니하고 연일 연좌데모(連坐demo)를 하고 그러니까 하다하다 못해서 임금님도 ’그 도사를 한번 시험해 볼 수밖에는 없다‘ 이래 가지고 그 도사가 외출을 하게 되었는데, 그전 같으면 도사가 돌아올 때까지 상감이 식사를 아니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도사가 오거든 항시 같이 했었는데, 그날은 도사가 오기 전에 더 이상 기다리지를 아니하고 임금님이 먼저 식사를 해 버렸습니다. 도사가 돌아와 보니 벌써 먼저 임금이 수라(水剌)를 다 들어 버렸다 그 말이여.
“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아니하고 임금만 먼저 식사를 했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시길래 내가 먼저 했습니다”
“벌써 상감은 나와 최초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먹고 입고 잠자는 것을 언제나 함께 하고, 똑같이 하기로 그렇게 철통같은 약속을 해놓고 조끔 배고프다고 해서 그것을 참지 못하고 나 먼저 먹다니, 당신은 의리를 배반한 사람이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 개새끼같은 놈이다” 이렇게 상감을 향해서 입에 못 담을 욕설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신들이 ‘와~’ 일어나 가지고 ‘상감님을 향해서 저러한 무례한 소리를 할 수가 있느냐? 저러한 불경스런 놈을 가만히 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저놈은 귀도 짜르고, 코도 짜르고, 혀도 짜르고 해 가지고 그리고 팔다리를 다 짤라서 항아리 속에 담아 가지고 태워 죽여야 옳다’ 이래 가지고 대신들이 강경하게 나섰습니다.
임금님은 (도사의) 소퉁이를 생각하면 마땅히 그렇게 엄벌에 처할 일이로되, 자기와의 오랜 의리가 있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느냐. 이 사람을 먹고 입고 살만한 돈과 곡식을 주어 가지고 저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내도록 해라” 이래 가지고 대신들의 연좌 항의를 갖다가 물리치고 귀양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도사(道士)는 할 수 없이 왕실에서 쫓겨나 가지고 저 먼 지방으로 추방을 당했는데, 할 수 없이 자기 받았던 돈과 곡식이 다 떨어지니까 옛날에 자기 다정한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 친구들은 그 사람을 갖다가 농토를 주어 가지고, 소와 농토를 주어 가지고 농사를 짓도록 상당한 많은 토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여러 종들을, 일꾼과 머슴을 들여 가지고 농사를 짓게 되는데, 어떻게 머슴과 종들을 갖다가 혹독하게 부리던지 그 일꾼들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사람을 갖다가 소 돼지처럼 그렇게 혹독하게 부리던지 살 수가 없어서 그 머슴 가운데 한 사람이 거기서 도망쳐 가지고 ‘물에 빠져서 차라리 자살을 해 버려야겠다’ 이래 가지고 강가로 가서, 자살하려고 강가로 갔더니 거기에 이상하게 번쩍거리는 것이 있어서 가까이 가 보니까 칠보로 장엄한 신짝 한 개가 있더라 그 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주워 가지고 이모저모로 보니까 기가 막힌 보물이여.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우리 주인한테 갖다 바치면 나와 우리 모다 동료들을 혹독하게 부리지 아니하고 잘 따뜻하게 해 줄 거다’ 해 가지고 그 신을 갖다가 바치니까, 그 도사가 대단히 기뻐하면서 ‘이 신을 갖다가 상감한테 바치면은 상감이 나의 잘못을 용서하고 귀양을 풀어주지 않을까?’ 이래 가지고 그 신발을 갖다 상감한테 바쳤습니다.
상감이 대단히 기뻐서 귀양을 풀어줄려고 했는데 대신들이 ‘와~’ 하니 일어나 가지고 모두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까짓 신발 한 짝을 가져왔다고 해서 그것을 용서할 수는 없다. 차라리 신발 두 짝, 한 켤레를 다 가져온다면은 혹 몰라도 한 짝 가지고 어떻게 용서를 해 줄 수가 있느냐?’
그래서 상감은 ‘그러면 가서 어떻게 찾던지 마지막 한 짝을 더 찾아서 한 켤레를 채운다면 용서를 해 주겠다’ 이리해서 그 도사는 다시 추방을 당해 가지고 자기 농토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여러 일꾼과 종을 거느리고 그 강가를 샅샅이 뒤졌으나 그 신발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 강을 거슬러서 거슬러서 저 산중 깊이 들어가니까, 아! 신선들 네 분이 바둑을 두면서 그렇게 놀고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그 신선들한테 인사를 하면서 “내가 신발 한 짝만 더 주운다면 내가 모든 이런 고생으로부터 풀려나고, 다시 임금님의 스승이 되어 가지고 호강을 할 수가 있겠는데, 이 신발 한 짝을 찾을 수가 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찾게 좀 해 주십시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선이 “너의 상감은 옛날에 우리와 같이 도를 닦던 우리의 친구다. 친구가 조그만한 실수가 있어 가지고 스스로 그 조그만한 실수를 깊이 뉘우치고 참회하다가 마침내 몸까지 버리게 되었어. 조그마한 허물을 깊이 뉘우친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 상감의 복록을 누리게 되었는데, 너는 큰 죄를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을 모르니 너 같은 사람을 어디다 쓸 것이냐?” 이렇게 꾸짖으니까,
“과연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임금님이 나하고 약속을 잘 지켜서 나를 그렇게 임금님과 똑같이 그렇게 명예와 권리와 모든 복록을 그렇게 잘 해 주었는데, 내가 그것에 너무 놀아나 가지고 교만심을 내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하다가 이러한 벌을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런 참회를 할 줄 모르고 오히려 대신들과 임금님을 원망했으니 참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깊이 뉘우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선이 ‘그러면 그 신발 한 짝은 저리 아무 데를 가면은 거기에 신발이 한 짝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러주어 가지고 그 도사가 거기를 찾아 가지고 신발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짝을 채워서 한 켤레를 상감한테 바치니까 상감이 그렇게 좋아하고, 대신들도 차츰 미워하는 생각이 없어져서 다시 상감의 자문에 응하면서 아주 바르게 그리고 겸허하게 그렇게 위로는 상감을 받들고, 아래로는 만조백관의 의사를 들어서 아주 정치를 잘해 가지고 그 나라가 번창을 했다고 하는 부처님의 법문이 있습니다.(처음~33분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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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명예와 재산과 권리를 누리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벼슬이 높을수록에 그 뜻을 겸허하게 갖고, 도가 높을수록에 하심(下心)을 잘해야 한다’고 하는 원효 스님의 법문도 있습니다.
작은 허물이 큰 재앙을 불러오게 되는 때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큰 저수지의 둑도 모래 구녁 하나로 인해서 물이 졸졸졸졸 그리 새 가지고 차츰차츰 구멍이 커져 가지고 열 길, 스무 길 되는 무서운 저수지 댐이 무너져 가지고 큰 물난리가 나듯이, 우리가 세속(世俗)에 살건 또는 도를 닦는 도문(道門)에서건 자기의 조그만한 허물을 크게 뉘우칠 줄 알고, 설사 자기에게 큰 공(功)이 있다 하더라도 교만(驕慢)한 생각을 갖지 아니할 때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조그만한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뉘우치는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기의 허물을 용서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존경을 받게 될 것이고, 큰 공(功)이 있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교만심이 나지 아니하면, 그럴수록에 자기의 공이 더욱 빛날 것이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지 아니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큰 지탄을 받게 되고, 아무리 큰 공이 있어도 교만심을 낼 때에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의 인격이 인증을 받게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그 공이 있음으로 해서 자기는 큰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장양(張良)이는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그 큰 공이 있었지만 스스로 자기가 세운 그 공로에 자만심을 갖지 아니하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도를 닦았기 때문에 재앙을 면했고, 한신(韓信)이도 역시 그러한 큰 공을 세웠지만 천자(天子)로부터 자기의 공로에 대한 자기가 생각한 만큼의 포상을 받지 못한 데 대해 항시 불만을 품었기 때문에 참형(慘刑)을, 참혹한 형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또는 회사에서나 또는 국가에서나 또는 이런 도문(道門)에서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건 간에 이러한 작은 허물이 있으면 크게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새로운 발전을 해 나가도록 마음을 쓸 것이고, 설사 어떠한 공(功), 작은 공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큰 공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공로에 대해서 자만심을 갖지 아니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 우리가 몸담아 있는 회사나 직장, 어디서라도 존경을 받게 되고 자기에게 모든 재앙이 닥쳐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흔히 가정에서 싸움도 자기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를 하고, 상대방의 잘못은 추상(秋霜)같이 다루려고 하는 데에서 큰소리가 나고 싸움이 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간, 형과 아우와의 관계에 있어서까지 자기의 잘못은 뉘우칠 줄 모르고 상대의 잘못은 조그만한 것도 용서를 아니하고 크게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 데에서 시비가 일어나고 큰소리가 나고 마침내는 불화(不和)가 이루어지게 되고, 부부간에도 그러한 조그만한 문제가 원인이 되어 가지고 이혼을 하게 되고, 불행한 때에는 한쪽에서 가출을 하고 자살을 하고 이러한 참 참담한 사건이 일어나는 예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상대방을 용서하고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을 하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한다면 우리의 가정, 우리가 몸담아 있는 회사, 우리가 몸담아 있는 고장과 나라, 그리고 수행하는 스님네는 그 사찰이 모든 재앙은 눈 녹듯이 다 녹아 버리고, 정말 부처님께서 그 육화(六和), 여섯 가지의 육화의 법이 실천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정법문중(正法門中)은 영원히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햇볕이 문틈이나 그런 틈으로 햇볕이 스며들 때 방안에 있는 그 수많은 먼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햇볕이 스며들지 아니할 때, 문을 닫고 방안에 있으면 그 방안에 먼지 있는 것이 보이질 않습니다마는, 햇볕이 문틈으로 스며들 때에 보면 그 방안에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먼지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환하니 보입니다. 그리고 못에, 맑은 못 그리고 조용한 못가에 섰으면, 그 못 속에 자기의 모습과 근처 산과 나무나 하늘에 떠 있는 달에 모든 것들이 그 물속에 소소(昭昭)하게 다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열심히 공부를 하면 우리 자신의 모든 크고 작은 모습이 우리의 몸가짐에 있어서나, 말씨에 있어서나, 마음가짐에 있어서 모든 것이 소상하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햇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스러운 마음으로 비추어 본다는 뜻이 되는 것이고, 「고요한 연못」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화두를 들고 정진(精進)함으로써 번뇌와 망상이 다 가라앉아서 맑고 고요한 상태에 들어간다고 하는 데에다가 비유를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진을 하지 아니하고 도(道)를 닦지 아니하면, 호수의 물이 흙탕물이 그나마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그런 상태와 같고, 방안에 있으되 햇볕이 들어오지를 않는 껌껌한 방에 있는 거와 같아서 그런 상태에서는 먼지도 보이지 아니하고 모든 영상(映像)도 보이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도를 닦지 아니한 사람은 그런 껌껌한 방이나 물결치는 흙탕물 속과 같은 그러한 마음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아니하고 밤낮 남의 잘못한 것만 살펴 가지고 그것을 피차 서로 시비(是非)를 하다가 결국은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저 사람 옷을 찢고 저 사람은 내 옷을 찢으며, 나는 저 사람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고 상대방은 내 얼굴을 갖다가 할켜 가지고, 결국은 옷은 갈기갈기 찢기고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도 닦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곳은 바로 그 세계가 부처님 세계가 되는 것이고, 도 닦는 마음이 없는 그래 가지고 자기의 이끗만을 생각하고, 자기의 명예와 권리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남을 거리낌없이 짓밟고 해롭게 하는 그러한 세계는 바로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다 그 말이여. 지옥(地獄) 세계다 그 말이여.
어느 이상한 곳이 있어서 거기를 찾아 들어가 가지고 보니까, 원숭이를 몇십 마리를 잡아넣어 논 것처럼 뭔 사람 소리도 같고 이상한 소리가 나서 괴이한 소리가 나서 이리 가 봤더니 사람들이 꼬치꼬치 말라서 뼈만 남은 앙상한 그런 꼭 귀신같은, 아직 죽지 아니한 해골같은 그러한 무리들이 그 안에 버글버글버글 하고 있다 그 말이여.
또 한쪽을 저리 갔더니 희망에 찬 노래소리가 나고,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얼굴이 포동포동하니 모다 살이 찌고 얼굴이 환히 아주 신선도골(神仙道骨)이 되어 가지고 모다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조금 있으니까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식사가 주욱 가운데 식탁이 있고 그런데 그 식탁에 바짝 가서 먹게 되어 있지를 않고 멀찌감치 앉아서, 숟가락이 기다란 해 가지고 국자같이 만들어져 가지고 먼 데서 음식을 떠먹게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러고 가운데다가 밥통을 주욱 갖다 놨기 때문에 같이 이쪽에서도 떠먹고 또 저쪽에서도 마주 앉아서 이렇게 떠먹게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런데 이렇게 뜰라고 하면 저쪽에 앉은 사람이 긴 숟가락을 탁! 때려 버리고 못 퍼가게 하고, 자기가 퍼 먹으려고 하면 또 이쪽에 앉은 사람이 또 그 숟가락을 탁! 때려 버리고는 못 떠먹게 하고 그래 가지고 또 저만 떠먹으려고 하고, 그러다가 피차 한 숟갈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음식물은 밖으로 다 쏟아지고.
그리 못 먹고 상대방이 못 떠먹게 하니까, 그 숟갈로 상대방의 얼굴이고 머리빡이고 사정없이 때리고 후려갈겨 가지고 모다 상처가 나고, 그래서 상처가 난 데다가 못 먹고 하니까 뼈만 앙상하니 되었다 그 말이여.
그래 또 한쪽에를 갔더니 아까 그 살이 찌고 신선도골과 같이 생긴 데에 식사가 나왔는데, 그 긴 숟갈로 밥을 떠 가지고 제 입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입에다가 따악 떠 넣어 주더라 그 말이여. 또 상대방에 앉은 사람은 또 긴 숟갈로 음식을 떠 가지고 또 자기 앞에 있는 상대방 입에 다 떠 주고 해서 피차(彼此) 떠먹여 주니까, 그렇게 밥은 음식물은 엎지러지지 아니하고 다 같이 살이 포동포동하니 쪘어. 얼굴도 하나도 상처가 나지 아니하고 그렇게 살이 쪄서 그렇게 참 화목한 가운데에 살고 있더라 그 말이여.
이 세계도 서로 도우면서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에 해(害)가 가지 않도록 항시 자기의 어떤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면 상대방에 어떠한 해(害)가 있을 것인가? 이 일을 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에는 어떠한 해가 있을 것인가?’ 항시 남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살 길을 찾아나가고, 자기의 사업을 해 나가는 그러한 세계가 된다면 이 나라는, 이 사회는 정말 살지고 살기 좋은 그러한 세계가 될 것이고.
자기만 잘살고 자기만 배불리 먹고 또 상대방을 못 먹게 훼방을 놓고, 그것도 상대방을 갖다가 숟갈로 사정없이 후려갈겨서 상처를 내게 하면 상대방도 역시 가만히 안 있고 나로 하여금 못 먹게 할 것이고, 나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겨서 상처를 내게 할 것이다 그 말이여.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탐심(貪心)과 진심(瞋心)과 어리석은 마음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실지로 그러한 일을 당하면—지금 법당에서 이렇게 말을 듣고 있을 때는 ‘아! 과연 그렇구나. 그래야 하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다 하시겠지만, 가정으로 돌아가고 사회에 나가면서 어떠한 명예나 권리나 이끗을 만나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졌던 그러한 생각은 간 곳이 없고 확! 눈이 뒤집혀 가지고 다시 그 숟갈로 상대방 얼굴을 후려갈기게 되지 않을란가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한 분도 그런 분이 계시지 않으리라고 생각이 되고, 그러한 참 신심(信心)을 갖으신 분이기 때문에 참 여기에 이렇게—연휴가 있어서 모두 여기저기 명승고지(名勝故址)로 모다 유쾌한 여행을 떠나실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그러한 것을 다 그만두고 이렇게 이 법회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정말 갸륵하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여러분들이야 여러분 입에 넣기 위해서 상대방을 숟갈로 후려갈기거나 그런 일이 절대로 있을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이 세상은 너무너무 살기가 어렵습니다. ‘밤낮 남의 입에만 떠 넣고 누가 내 입에 떠 넣어 주기를 기다려봤자 동서남북을 다녀봤자 아무도 내 입에다가 떠 넣어 줄 사람을 만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이 세상은 나쁜 사람도 많이 있지만, 내 마음이 착하고 보면 참 좋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어질고 착하고 항시 남을 사랑하고 애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멀고 가까운 데에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누가 나쁘다, 저 사람이 나쁘다’ 하지만, 내가 나쁘면 좋은 사람도 다 나쁜 사람으로 변하고, 내가 어질고 착하고 좋으면 모두가 ‘나쁘다’고 지탄을 받는 그 사람도 나한테는 참 좋게 상대해 주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됩니다. 좋고 나쁜 것은 객관적이기보다는 나한테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바로잡고, 내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가지면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하지만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내 마음 하나가 잘못되어 가지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한집안 내에도 모두가 미운 사람뿐이고, 이웃간에도 전부가 쓸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남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고 나의 허물을 바로잡는 공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념근본미(一念根本迷)하면 만사상상축(萬死常相逐)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타파진로옥(打破塵勞獄)하면 공창환향곡(共唱還鄕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일념근본미(一念根本迷)하면 만사상상축(萬死常相逐)이다.
한 생각 근본을 미(迷)해 버리면, 만 가지 생사(生死) 문제, 생사가 항상 뒷을 따르더라. 한 생각 삐끗 잘못 먹은 데에서 온갖 재앙이 따르고 생사의 윤회(輪廻)가 끊임없이 쫓아오더라.
타파진로옥(打破塵勞獄)하면, 진뇌(塵牢), 생사 진뇌의 감옥을 때려 부셔 버리면,
공창환향곡(共唱還鄕曲)이라. 함께, 우리 모두가 함께 본고향(本故鄕)으로 돌아가는 노래를 합창하게 될 것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이렇게 서늘한 가을철이 돌아왔습니다. 머지않아서 또 엄동(嚴冬)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세월은 이렇게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서 우리의 생사를 재촉을 합니다.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59분5초)
입선(入禪). (입선 죽비 3타)
<약 4분 동안 정진>
죽비 쳐. (방선 죽비 3타)
참선(參禪)은 무고금(無古今)이라 단물외변심(但勿外邊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타개무진장(打開無盡藏)하면 촬토시황금(撮土是黃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무고금(無古今)이요. ‘옛날에는 참선을 하면 모다 깨칠 수가 있고, 지금은 말세가 되어서 참선해 봤자 근기(根機)가 얕아서 깨칠 수가 없다’ 이러한 말들을 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러한 말을 믿는 사람이 있으나, 참선에는 예[古]와 이제[今]가 없어. 천 년 전이나,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라도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든지 다 깨칠 수가 있다.
단물외변심(但勿外邊尋)이니라. 다못 밖을 향해서 찾지를 말어라. 참선을 하는데 밖에서 찾지를 말어라. 일어나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觀照)할 뿐이지 문자상에서 책에서 찾는다든지, 귀로 듣는 데에서 찾는다든지, 눈으로 보는 데에서 찾는다든지 밖에서 찾지를 말어라.
타개무진장(打開無盡藏)하면, 다함이 없는 보배를 자기 속에서 타개(打開)를 하면 개발을 하면,
촬토(撮土)가 시황금(是黃金)이니라. 흙을 움켜쥐어도 그것이 곧 황금이 되어 버릴 것이다.
눈으로 보는데,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만 봐 버리면 눈으로 보는 것이 전판 다 진리(眞理)가 아닌 것이 없고, 귀로 듣는 모든 소리가 진리 아닌 것이 없고, 손으로 잡는 것이 흙덩이 건 돌덩어리 건 손에 쥐었다 하면 전부가 그것이 다 진리 아닌 것이 없더라. (33분39초~63분22초) (끝)
[법문 내용]
(게송) 신세등공화(身世等空華)~ / 지혜롭게 올바르게 법문을 들어야 한다 / 전생에 신선인 왕과 교만한 도사의 이야기 / 자기의 조그만한 허물이라도 크게 뉘우칠 줄 알고, 큰 공(功)이 있다 하더라도 교만(驕慢)한 생각을 갖지 아니해야.
육화(六和) / 도 닦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곳은 바로 그 세계가 부처님 세계가 되는 것이고, 도 닦는 마음이 없는 세계는 바로 아수라(阿修羅)의 세계, 지옥(地獄) 세계 / 긴 식탁의 가운데에 음식을 두고 양쪽에 긴 숟가락을 들고 식사하려는 사람들, ①서로 못 먹게 하려고 음식을 뜬 상대방의 숟가락을 치는 경우, ②음식을 떠서 상대방에게 떠 먹여 주는 경우. ‘똑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마음을 써야 모두가 좋겠는가?’의 비유 설화 / 불법(佛法)은 남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고 나의 허물을 바로잡는 공부다.
(게송) 일념근본미(一念根本迷) 만사상상축(萬死常相逐) 타파진로옥(打破塵勞獄) 공창환향곡(共唱還鄕曲) / 대중 정진 / (게송) 참선무고금(參禪無古今) 단물외변심(但勿外邊尋) 타개무진장(打開無盡藏) 촬토시황금(撮土是黃金) / 참선을 하는데 밖에서 찾지를 말어라.
〇방에서 파리를 날리면,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날리면 천장에 가서 붙고, 천장에 앉은 파리를 날리면은 동쪽 벽에 가서 붙고, 동쪽 벽에 앉은 파리를 날리면 서쪽에 가 붙고, 그 파리를 종일토록 날려도 동서남북 벽 아니면 천장에나 방바닥 어딘가는 기어코 붙고 마는 것이다 그 말이여.
무명업식(無明業識)을 여의지 못한 중생은 아무리 좋은 법문을 설해 주어도 유무(有無) 아니면 중간에 떨어져서 중도의 뜻을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올바르게 법문을 들으면, ‘몸과 이 세계가 허공꽃과 같다’ 해도 그 말에서 깨달아 얻을 것이요, ‘명예와 재산이 똥무더기요, 흙덩어리와 같다’ 하더라도 그 말씀을 듣고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뉘우치고, 자기의 그릇된 애착과 집착과 소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〇작은 허물이 큰 재앙을 불러오게 되는 때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큰 저수지의 둑도 모래 구녁 하나로 인해서 물이 졸졸졸졸 그리 새 가지고 차츰차츰 구멍이 커져 가지고 열 길, 스무 길 되는 무서운 저수지 댐이 무너져 가지고 큰 물난리가 나듯이, 우리가 세속(世俗)에 살건 또는 도를 닦는 도문(道門)에서 건 자기의 조그만한 허물을 크게 뉘우칠 줄 알고, 설사 자기에게 큰 공(功)이 있다 하더라도 교만한 생각을 갖지 아니할 때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〇내 마음을 바로잡고, 내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가지면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하지만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내 마음 하나가 잘못되어 가지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한 집안 내에도 모두가 미운 사람뿐이고, 이웃간에도 전부가 쓸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남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고 나의 허물을 바로잡는 공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〇참선(參禪)은 무고금(無古今)이요. ‘옛날에는 참선을 하면 모다 깨칠 수가 있고, 지금은 말세가 되어서 참선해 봤자 근기(根機)가 얕아서 깨칠 수가 없다’ 이러한 말들을 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러한 말을 믿는 사람이 있으나, 참선에는 예[古]와 이제[今]가 없어. 천 년 전이나,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라도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든지 다 깨칠 수가 있다.
단물외변심(但勿外邊尋)이니라. 다못 밖을 향해서 찾지를 말어라. 참선을 하는데 밖에서 찾지를 말어라. 일어나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觀照)할 뿐이지 문자상에서 책에서 찾는다든지, 귀로 듣는 데에서 찾는다든지, 눈으로 보는 데에서 찾는다든지 밖에서 찾지를 말어라.
타개무진장(打開無盡藏)하면, 다함이 없는 보배를 자기 속에서 타개(打開)를 하면 개발을 하면,
촬토(撮土)가 시황금(是黃金)이니라. 흙을 움켜쥐어도 그것이 곧 황금이 되어 버릴 것이다.
눈으로 보는데,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만 봐 버리면 눈으로 보는 것이 전판 다 진리(眞理)가 아닌 것이 없고, 귀로 듣는 모든 소리가 진리 아닌 것이 없고, 손으로 잡는 것이 흙덩이 건 돌덩어리 건 손에 쥐었다 하면 전부가 그것이 다 진리 아닌 것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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