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전암(1~73)/(1~25)2023. 6. 6. 22:28

 

 

(복전암No.17)—1988년 관음칠성회 기도 입재(1988.10.01) (68분)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소음이 다소 많고 끊김이 있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1) 약 36분.

 

(2) 약 33분.



(1)-------------------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하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다.
개개(個個)이, 낱낱이 모든 사람의 얼굴 앞에 밝은 달이 희고, 사람 사람이 다리 밑에, 다리 아래에 맑은 바람이 불어. 하늘에 뜬 휘황찬 밝은 달이 누구 앞이라고 해서 특별히 밝게 비춰 주고, 어떤 사람 앞에는 비춰 주지 않고 한 그런 법이 없고,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누구 앞에나 똑같이 다 환히 밝혀 주고 있더라.
봄이나 가을에 맑은 바람이 불 때에는 누구 앞 다리 밑에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 불어 주지, 이쁘다고 해서 더 시원한 바람을 불어 주고, 나쁜 사람이라 해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고 그렇지를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 맑은 바람이 불고 있더라.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하니, 거울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그 그림자와 자취가 없어지면,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아름답게 핀 꽃가지에 새가 올라가 울더라.

무슨 거울을 타파(打破)해서 그림자와 자취가 없어졌냐?
그 거울이라 하는 것은 모든 반연(攀緣)을 따라서, 반연 따라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가지고 육식(六識)의 무명(無明) 망상(妄想)이 동요하는데, 그 경계(境界) 따라서 경계를 반연해 가지고 육식이 발동하는 것이 마치 거울 앞에 나타난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같다 그 말이여.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비추이는 그 거울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거울도 없어져 버리고 또 거기에 비추던 청황적백(靑黃赤白) 삼라만상 모든 밖에 경계도 다 없어져 버리면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이 말이여.

저 부처님으로부터 모든 보살(菩薩)과 일체중생(一切衆生) 내지는 짐승과 꿈적꿈적한 벌레에 이르기까지 그 본 성품은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어. 다 똑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불성(佛性)이여. 그러건만 경계에 반연해서 번뇌망상으로 인해서 그 원만구족한 불성이 가리워져 가지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이여.


오늘 무진년(戊辰年) 시월 초하루, 이 복전암에 매년 거행하는 행사로 칠성회 관음기도가 봉행되는 그 입재날입니다. 40년, 40년 전부터서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오늘날까지 거행한 법요식입니다. 그전에는 고봉 스님께서 설법을 해 주시고, 그다음에는 전강 선사께서 설법을 해 주시고, 전강선사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는 부득이 산승(山僧)이 와서 해마다 이 법상에 올라왔습니다.
해마다 거행하게 되면 사람들은 만성(慢性)이 되어 가지고 ‘으레히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무런 마음에 감동도 없고, 마음을 가다듬는 어떤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예사로 그날그날을 지내게 됩니다.

사람의 목숨은 이 세상에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 나 가지고 오래 살면 칠팔십 년, 그렇지 않으면 육칠십 년, 빨리 죽으면 삼사십 내지 열살 미만에도 죽고, 나와서 어려서도 죽고, 천하에 믿지 못하고 무상(無常)한 것이 이 사람의 목숨입니다. 이 무상한 세계에 우리가 몸을 받아서 태어나서 숙세(宿世)의 수승한 인연으로 해서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났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은 이 허망한 목숨이 영원한 줄 알고,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무상하고도 짧은 인생에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났으면서도 그 불법의 위대함과 감사함을 아지를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참나를 깨닫지 못한 채 그럭저럭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근기(根機) 따라서 이 세간(世間)을 보게 되는데, 이 세상은 똑같이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고, 아침에는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고, 춘하추동 사시절 따라서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오곡백과가 결실을 합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립니다. 이 똑같은 세계를 보고서 근기에 따라서 그 관점이 다릅니다.

마치 물은 한 물인데, 고기는 그 물을 보고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사는 집. 조끔도 그 물속에 헤엄을 치고 오르락내리락 다니면서 숨이 맥힌 줄을 모르고 아주 편안합니다. 자기 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여.
그 다음에 아귀(餓鬼)는 물을 보고서 불인 줄 알고 겁을 냅니다. 아귀는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처음에는 물로 알고 그놈을 먹는데, 물을 먹기만 하면 목구녁에서 불이 훨훨훨훨 타 가지고 몸뚱이가 타 죽어 갑니다. 그래 몇 번이고 그렇게 해보다가 확실히 ‘아하, 저것은 불이로구나’ 이렇게 경험을 통해서 알게 돼. 그래서 아귀는 물을 보고 불인 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 하늘나라에서는, 하늘나라에 모다 신(神)들은 지상(地上)의 물을 보고서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리(琉璃)라고 생각을 해. 번쩍번쩍 훤히 그러니까 하늘나라 있는 사람들은 물을 보고서 유리로 생각을 한다 그 말이여.

사람은 물을 보고서 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귀는 아귀대로 달리 보고, 하늘나라에 하늘나라 사람은 하늘나라 사람대로 달리 보고, 고기는 고기대로 달리 보듯이, 이 세계에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 온 세계를 갖다, 세간(世間)을 갖다가 범부(凡夫)는 세간낙(世間樂)을 보고 그것을 낙(樂)이라고 생각한다.
오욕락(五欲樂)을 보고서 참 기쁘게 생각하고, 그 오욕락이 참 좋은 것인 줄 알고 그 오욕락에 젖어서 거기에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하고 거기서 유희(遊戲)를 하면서, 오욕락이 진짜 괴로움에 원인인 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재산에 대한 거, 명예 권리에 대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편안한 그 안락에 대해서 그리고 잠자는 거,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이 다섯 가지의 오욕락을 그것이 인간으로서 최고에 목적이라 생각을 하고,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쇠고랑 찰 줄도 모르고, 감옥에 갈 줄도 모르고, 그것을 마음껏 무제한으로 즐기다가 지옥에 갈 줄을 몰라.

불법(佛法)을 믿고, 인과법(因果法)을 믿고, 나아가서 확실히 도(道)를 닦아서 깨달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과법만 믿어도 그런 짓을 아니할 텐데, ‘아 그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재산, 명예, 권리, 먹을 거, 잠자는 거, 그러고 이런 것들이 그것 없이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이리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누리고 욕심을 안 내도 될 텐데, 무제한으로 욕심을 내 가지고, 장관한 사람은 장관한 대로, 대통령한 사람은 대통령한 사람, 무제한으로 욕심을 내 가지고 온 세계를 자기 혼자 다 차지하고, 다 누리기 위해서 법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백성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막 그냥 긁어 담다가 쇠고랑을 찬 사람이 지금 우리 이 현재에 얼마나 많냐 그 말이여.


소승(小乘), 이승(二乘)들은,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 이승들은 ‘이 삼계(三界)를 고(苦)라’ 이렇게 생각한다 그 말이여. 정말 이 삼계는 괴로운 것이다그러기 때문에 ‘이 삼계는 불집이다(三界火宅)’ 이렇게 생각을 해. 소승에 있어서 성문과 연각들은 불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은 이 삼계에서 벗어날까?’

삼계(三界)라 하면은 생사인데, 생로병사(生老病死)인데, 늙어서 병들어서 죽는 전체가 이 생로병사요, 이 모든 세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요,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요, 우리의 마음 생각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낳다 하면은 늙고, 늙었다 하면 병들고, 병들었다 하면 죽게 되니까 그러니까 전부가 고통이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안 죽는 사람이 누가 있냐 그 말이여. 이 세상에 생겨난 물건치고 결국은 부서져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가 있느냐 그 말이여.

그래서 늙어서 병들어서 죽으니 이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니, 어떻게 하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지 않느냐? 따져보면은 태어나지 아니해야만—태어나지 아니하면, 생겨나지 아니하면 늙을 것도 없고, 병들 것도 없고, 죽을 것도 없다. 그래서 소승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어. 그래서 생각도 일어나면 없애 버리고, 일어나면 없애 버리고 해 가지고 생각도 안 일어나게 맨들고, 몸뚱이도 태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평생 적공(積功)을 들여서 이룬 것이 소승사과(小乘四果)다 그 말이여.

그러면 보살(菩薩), 모든 보살들은 이 삼계(三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삼계는 공(空)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그 말이여. 모든 반연(攀緣)해서 일어나는 생각도 그것도 본래 공(空)한 것이요, 우리가 보는 모든 삼라만상 두두물물도 전부가 다 공(空)한 것이다.
공(空)한 것이 본래는 공한 것인데, 중생이 망령된 생각으로 보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될 뿐이지 그 자체는 공(空)한 것이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자면, 눈병 난 사람이 이 허공에 아무것도 없건마는, 마치 무슨 허공에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눈병 난 사람이 볼 때는.
눈병이 없는 사람이 보면 말간히 깨끗하니 아무것도 없는데, 허공에. 눈병 난 사람이 보면은 침침해 가지고 무슨 꽃이 피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눈병 든 사람의 눈으로 보듯이, 망령된 중생(衆生)의 무명심(無明心)으로 보기 때문에 이 세계가 모두 실지로 있는 것처럼 보여. ‘생로병사(生老病死)도 본래 없건마는, 본래 공한 것이지만 중생의 망령된 무명 번뇌로 보기 때문에 이렇게 생사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지는 모두가 다 공(空)한 것이다’ 이렇게 보살들은 보는 거여.

그러면 모든 부처님은 이 삼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면은 ‘이 삼계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묘(妙)한 것이다. 다 묘하게 밝은 마음이다. 오직 한마음이다’ 이렇게 보는 거여. ‘묘(妙)하게 밝은 한마음이다’ 이렇게 보는 거여.

우리 중생들은 ‘마음’하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뭘 보면 눈을 통해서 뭣을 볼 줄도 알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도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을 줄도 알고, 혀를 통해서 모든 맛을 볼 줄도 알고, 몸뚱이를 통해서 차웁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느낄 줄을 알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것, 이놈이 마음인 줄 안다 그 말이여.
그러나 부처님이 보실 때에는 이 몸뚱이 끌고 댕기는 그놈 뿐만이 아니라 이 몸뚱이도 마음이요, 이 하늘도 마음이요, 태양도, 별도, 달도, 산천초목, 두두물물이 전부가 오직 한마음 뿐이다 이것이여.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따로 없다’ 이렇게 부처님은 보시는 것이여.

그러니 우리 범부(凡夫)가 보는 것과 소승, 성문(聲聞) 연각(緣覺)이 보는 것과 또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그런 보살들이 보는 것과 모든 부처님이 보는 바가 그렇게 다 다르다 그 말이여. 똑같은 삼계를 두고서 보는 바가 달러. 그렇게 달러.

그런데 부처님은 왜 때로는 ‘삼계(三界)가 화택(火宅)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고, ‘삼계(三界)가 다 공(空)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삼계가 다 오직 한마음이다’ 이렇게도 말씀하셨냐 그 말이여.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부처님은 중생에게는 중생이 알아들을 말로써 설하셨고, 소승에게는 소승이 알아들을 말로써 설법을 하셨고, 보살에게는 보살이 알아듣는—보살도 대승보살, 또 중승보살, 그 보살도 여러 계층이 있어서 그 각기 그 계층의 보살에 맞춰서 설법을 하셨고, 근기 따라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하셨어. 그래 놓은 것이 49년 동안 설하신 12부 경전이요, 팔만사천 경전이다 그 말이여. 그것이 모두가 다 방편설(方便說)이여.

아무리 훌륭한 법(法)을 설한다 하드라도 자기 근기(根機)에 맞지 아니하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 그 근기에 맞춰서 법을 설해 주어야 일단 알아듣고, 그놈을 알아들은 다음에는 또 조끔 더 깊은 법문을 하고, 또 그 법문을 알아들으면 또 저 더 높은 법문을 설해서 차츰차츰 그 근기에 맞춰서 법을 설하시다 보니 팔만사천(八萬四千)의 그 많은 법을 설하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궁극에 가서는 부처님은 무슨 법을 설하셨냐 하면은 「나는 한 법(法)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법을 설하셨어. 그렇게 많은 설법을 하시고서도 「한 법(法)도 설한 바가 없다」

그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신 분이 아니고, 헛된 말씀을 하신 분이 아니고, 실답지 않은 바를 설하신 바가 없는데, 그렇게 많은 설법을 하시고서도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신 이게 무슨 말씀일까?
중생의 생각으로는 많은 법을 설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부처님 분상(分上)에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면 우리 중생들은 어떻게 부처님의 법문을 알아듣고, 어떻게 마음을 닦아 가서 우리도 해탈도(解脫道)를 증득을 해야 할 것인가?


부용산(芙蓉山), 중국에 부용산에 영훈(靈訓) 선사가 처음으로 귀종(歸宗) 선사라고 하는 큰 도인을 가서 친견을 했습니다.
그 귀종 스님께 묻기를 “어떤 것이 이 부처입니까?”
귀종 선사가 대답하기를 “내가 너에게 부처님을 말해 주기는 어렵지 않지마는, 니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할까 두렵다”

그러니까 그 영훈 선사가 “큰스님은 가장 진실한 말, 실다운 말을 하시는 도인으로 내가 믿고 있는데, 감히 어찌 제가 큰스님의 법문을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귀종 스님이 “곧 니가 바로 부처님이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영훈 선사가 “그러면 어떻게 보림(保任)을 해 가겠습니까?”
귀종 스님 대답하기를 “일예(一翳)가 재안(在眼)에 공화(空花)가 난타(亂墮)니라. 한 티가 눈에 있으니 공화(空花)가 어지러히 떨어지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영훈 선사는 그 ‘니가 바로 부처라’ 한 귀종 스님의 한마디 말씀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버렸고, 확철대오한 뒤에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난타(空花亂墮)라’ 한 그 말 한마디에 깨달은 뒤에 보림(保任)을 하는 법을 여지없이 알아 버렸습니다. 터득을 해 버렸습니다.

지금 이 복전선원 법당 안과 마당에 천 명에 가까운 신남신녀(信男信女)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였습니다. 영훈 선사는 ‘니가 바로 이 부처다’ 한 귀종 선사의 한마디에 확철대오를 했거니와 금일 이 자리에 모인 사부대중은 과연 이 법문을 듣고서 과연 확철대오를 했겠느냐, 말았느냐?
이 가운데에는 반드시 ‘니가 바로 이 부처라’ 한 이 한마디에 여지없이 바로 봐 버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법문을 여지없이 바로 봐 버린 사람이 있건마는, 어째서 이 가운데에는 아직도 그 말은 알아들으면서도 왜 바로 그 말을 바로 깨닫지를 못했을까? 신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 영훈 선사는 여지없이 귀종 스님의 그 말을 조끔도 의심 없이 바로 믿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이 바로 자기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버렸어. 조끔도 의심이 없기 때문에 ‘바로 자기 자신이 부처다’
믿음 하나가 철저해 버리면 긴 법문이 필요 없고, 많은 경전이 필요가 없어. ‘네가 바로 부처다’ 하고 그 말 한마디면 무슨 더 구구한 법문이 필요할까?

「삼계가 곧 한마음이다.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다」 『화엄경』에 첫머리에 있는 게송(偈頌)인데, 입으로는 우리는 수없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날마다 외우고, 귀에 따껭이가 앉도록 떠껭이가 앉도록 읽고 외우고 들었지만 우리는 신심(信心)이 부족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아집(我執)이 있고,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입으로 외우고 귀로 들으면서도 그 말이 마음에 와서 계합(契合)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애(我愛) · 아만(我慢) · 아치(我癡)는 중생의 살림살이여. ‘내 것이다, 나다, 내 몸뚱이다, 내 재산이다, 내 남편이다, 내 자식이다’ 무엇이든지 보면은 자기와 관련을 시켜. 그래 가지고 내 것을 삼을려고 그러고, 내 것이다하고 그놈을 붙잡고, 그놈을 붙들고 늘어져. ‘내 몸뚱이, 내 재산, 내 집’

어찌 그것이 내 몸뚱이여?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서 잠시 이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데, 어찌 그것이 내 것이냐 그 말이여. 재산도 잠시 자기가 관리만 하고 있는 거여. 자기 집도 자기가 잠시 관리하고 있는 것이지, 자기가 죽을 때 그것을 짊어지고 가겠습니까? 수백억 되는 재산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재산이겠습니까? 잠시 자기가 관리만 하고 있는 거여.
자기가 그것 다 먹지도 못하고, 먹어 봤자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등기를 자기 앞으로 해놨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여. 잠시 자기가 관리하고 있다가 이 몸뚱이에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영혼은 떠나 버리는데 재산을 어디로 가지고 가겠습니까? 등기 문서 관 속에다 넣어 가지고 간다고 해서 그것이 저승에 가서 그것이 자기 재산 되겄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신라 · 고려 · 백제 · 이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임금님이 계셨습니다마는, 그 시대 그 나라에 임금 노릇만 했지 그 재산 하나도 못 가지고 가고, 산이나 들이나 논, 고대로 있습니다. 그 임금이 죽을 때 못 가지고 갔습니다.
해방 후로 여러 대통령이 있었습니다마는, 제1 · 제2 · 제3 · 제5 · 지금 6공화국까지 왔습니다마는 대통령 자기 앞으로 해 놔 봤자 못 가지고 갑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을 뭐하러 그렇게 욕심을 부려 가지고 그 백성들한테 지탄을 받고 쫓겨가냐 그 말이여. 발 디딜 곳이 없어져 버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밤잠 못 자고, 먹을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못 입고, 아끼고 아껴서 재산을 모아 놔 봤자 못 가지고 갑니다. 못 가지고 갈 것을 자기 먹을 만큼 그날그날 먹으면 족하지, 뭣하러 그렇게 잔뜩 해 놓고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벌벌 떨다가 죽어가.
그래 가지고 자식들이 그놈을 서로 먹을려고 웬수가 돼 가지고, 재판하고 싸우네. 차라리 없었으면 형제간이 화목하게 살 것을, 재산 많이 냉겨 놨기 때문에 그놈 서로 차지할려고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싸워.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정말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깨달라야 되겄습니다. 그것 하나만 깨달라서 불같은 욕심만 버려 버리면, 그날로 다리 뻗고 잘 수가 있습니다.(처음~35분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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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목구녁에 거미줄 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자기 평생 먹을 것은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욕심을 내 가지고 산데미처럼 쌓아 올릴려고 하니까 서로 웬수가 되고 싸움이 되지, 적당한 방, 좋은 방, 바른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먹을 만큼 살면, 그래도 전생(前生)에 복(福)을 짓는 사람은 큰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면은 자기 먹을 만큼 내놓고는 자꾸 보시(布施)를 해야 됩니다. 절에도 보시하고, 사회에도 보시를 하고, 없는 사람에게 장학금도 주고, 병든 사람 병도 낫궈 주고 해서 자꾸 쓰면 쓴 만큼 또 생깁니다. 그래 가지고 금생에도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에 쓰고 남은 것입니다.
금생에 다 재수(財數)가 있어서 사업이 잘된 사람은 전생에 다 그만큼 복(福)을 지어서, 복(福)에 종자(種子)를 심어 놨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생(來生)에도 잘될라면 금생에 많은 보시를 하고 복에 씨를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상(我相) · 아만(我慢) · 아애(我愛), 이것을 갖다가 버려 버리면 거기서 비로소 도(道)의 제일 계단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아상! 아상이 무너져 버려야 도(道)의 제일 관문(關門)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애(我愛) · 아만(我慢) · 아상(我相)이 있어 가지고서는 세상없는 짓을 해도 도(道)에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놈을 없애 버려야 ‘니가 바로 부처다’ 해도 그 말이 탁! 와서 마음에 계합(契合)이 되어 버려. 아는 것이 아녀. 아는 것과 마음에 계합이 되어서 깨닫는 것과는 천양지판(天壤之判)인 것입니다.
‘꿀을 먹으면 달다’ 하고 아는 것과 꿀을 직접 입에다가 한 숟갈 탁! 넣어 놓고 먹은 것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좋다하고 아는 것과 실지로 밥 한 그릇을 먹고 나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다’ 아는 것과 실지로 아상(我相)이 무너져 가지고 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그 뜻을 확실히 그 뜻을 깨달라서 계합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아상(我相)을 없앨려고 아무리 해도 그것이 안 없어져. 어떻게 해야 그것이 아상이 없어지냐 그 말이여.
그 아상 없애는 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수백만 번을 불러. 부르다 보면은 제절로 번뇌 망상이 끊어지면서 아상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허공과 같이 비어진다 그 말이여. 그런 염불(念佛)하는 방법도 있고, 그보다 더 수승한 방법이 ‘이뭣고?’다 그 말이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썽이 날 때 ‘이 썽내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하고 있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해서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썽날 때도 이뭣고?
속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도 이뭣고?

천하 맛없는 소리지만 콱! 믿고 부처님이 왜 우리를 속일 리가 있겠는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왜 우리를 속일 리가 있겠는가, 전강(田岡) 조실 스님이 왜 우리를 속일 리가 있겠는가, 송담(松潭) 스님이 왜 우리에게 거짓말할 것인가 확실히 믿고서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이뭣고?

밤낮 이뭣고?, 법문 인자 그 소리 벌써 수백 번 들었으니까 그만하고 법상에서 내려가 주었으면, 빨리 가서 밥을 먹어야 할 텐데그런 생각을 하지를 말고, 지금 이 법문을 들으면서도 ‘이뭣고?’ 이렇게 하시라 그 말이여.
아들딸 모다 대학 졸업시키고 장가보내 논 다음에 그다음에 참선을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지끔 이 자리에서부터 이뭣고?~ 이뭣고?~’ 하면서 법문을 들으시라 이 말이여.

그러면 법문이 끝난 다음에 또 밥상을 향해서 가면서도 ‘이뭣고?’를 하라 그 말이여. 또 밥상을 따악 만나서 한 숟갈 떠먹으면서도 ‘이뭣고?하라 그 말이여.
법문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저 뒤안에 가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 지끔 있다 그 말이여. 지끔 이 자리에 따악 앉어서 법문 듣고 계신 것만 해도 지금 저 뒷채에 가서 법문이고 뭣이고 밥부텀 먹고 보자 틀림없이 지금 뒤안에 가면 몇 명인가는 지금 밥을 먹고 계신다 그 말이여. 나 여기서도 환히 다 보여.

그러면 이 자리에 계신 분은 그분보다는 조끔 나은데, 법문이 끝나기가 바쁘게 똥이 빠지게 지금 뒤로 쫓아갈 판인데, 그냥 그 밥상을 보고서 이뭣고?가 어디 벌써 도망가 버리고, 그저 그냥 밥이 그냥 숟가락 잡기가 무섭게 밥을 입에다 떠놓고 씹기도 전에 반찬 막 집어넣고 꿀떡꿀떡 샘킨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 가슴이 체해 가지고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어째서 그렇게 서둘지 안 하고 ‘이뭣고?’를 하면서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어도 다 그 밥 다 먹을 수가 있고, 그렇게 부리나케 쫓아가지 안 해도 다 넉넉히 밥을 다 지어 놨습니다.

밥 먹을 때나, 똥 눌 때나, 집을 향해서 걸어갈 때나, 집에 가서 옷을 벗을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이뭣고?’를 챙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도 어려울 일이 아닙니다. 그게 뭐 머리가 좋다고만 해서 할 수가 있고, 지식이 있다고만 할 수가 있고, 뭐 젊다고만 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바보처럼 ‘이뭣고?’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 어렵습니까?

‘망상(妄想)이 일어나서 못한다’ 그러지만, 망상 일어난 거 겁낼 거 없습니다. 망상이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그 망상이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님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그 우리 그 마음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로부터 망상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망상이 일어난 것은 천만다행인 것입니다. 그놈이 안 일어나면 도(道)를 못 닦습니다.
그러니 그 일어나는 놈을 그냥 고대로 놔두고, 그냥 그 일어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합니다. 그 망상 일어나는 그 근본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일어나는 망상을 가지고 그 망상 일어나는 그 뿌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이뭣고?이 망상 일어나는 그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일어나는 거 갖고 일어나는 놈을 생각하는 거여. 그러니까 그 뭐 못할 거 없어요. 바보도 망상은 일어나고, 천재도 망상은 일어나.(녹음 끊김)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이뭣고?인지 망상인지 뒤범벅이 되어 가지고, 되다가 말다가, 엎어졌다가 뒤집어졌다 야단이지만, 그까짓 거 상관없어요.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아!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될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말이여.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이태, 3년, 지극히 하다 보면 할려고 안 해도 떠억 되어져 버려. 그냥 제절로 되어져 버린다 그 말이여.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되어질 때는 기가 맥히거든. 아! 그때는 누가 뭐 욕 좀 해도 썽도 안 나게 되어 버리고, 뭐 누가 좀 내 것 좀 가져갔다 해도 뭐 그렇게 그냥 억울할 것도 없고. 그냥 옛날에 자기와는 영 딴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별로 썽도 안 내고, 별로 그렇게 내 것에 대해서 그렇게 애착심도 없고, 그전에는 자식이라 하면은 벌벌 떠는데 자식에 대해서도 담담해져. ‘저는 지 복(福) 있으면 잘살겠지, 부모니까 부모 도리로써 가리킬 만큼, 키울 만큼 키워서 가리킬 만큼 가리켜 놓으면 지가 지 복 있으면 잘살지, 뭐 내가 저를 위해서 내가 구태여 종노릇 할 것 없어’ 아주 자식이지만 담담해.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식을 사랑할 줄을 알아야 혀.

지금 여러분들은 ‘내 자식, 내 새끼’ 하면 벌벌 떨지마는, 실지는 자식을 참되게 사랑할 줄 모릅니다. 중생심으로 잔뜩 애착심만 갖고 벌벌 떨지, 참으로 자식을 옳게 기를 줄도 모르고, 자식을 옳게 사랑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식을 옳게 사랑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자식 밖에는 모르고, 키워 놓으면 그 자식이 웬수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놈이 커서 장가들면 지 지집밖에 모르고, 저도 자식새끼 낳아 놓으면 지 자식새끼만 이뻐한 줄 알지, 부모는 뭐 행랑(行廊) 할머니 정도 밖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늙으면 공원으로 가서 갖다 버려 버리고, 양로원 앞에다 데리고 가서 내버리고 오는 자식이 지금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은 옳게 가르킬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거든요.
그거 뭐 이뻐서 맛있는 것은 자식 멕일라 그러고, 좋은 것은 자식 입힐라 그러고, 논밭 팔아서 자식만 가리키면 되는 줄 알지만, 어리석은 마음으로 자식을 키워 놓으면 그 자식은 웬수를 길러 논 것이거든.

여러분이 참으로 불법(佛法)을 믿고 부처님의 말씀을, 법문을 옳게 들어야 자식도 옳게 기를 줄을 압니다. 옳게 길러 놔야 저도 옳은 사람이 되고, 지가 장가를 가던가 자식을 낳고 나중에 크게 훌륭하게 될수록에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태까지 자식을 옳게 기를 줄을 모르고 오늘날까지 살아오신 것입니다. 다 그것 탁! 털어서 없애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식,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애착심(愛着心) 그것 털어 없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자식을 옳게 기를라면 ‘이뭣고?’를 하셔야 합니다.
‘이뭣고?’를—진짜 자식은 인자 저만큼 놔두고, ‘이뭣고?’를 지극정성으로 하시면 자식을 옳게 사랑할 줄도 알고, 옳게 기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재산도 옳게 벌 줄도 알고, 옳게 관리할 줄을 압니다.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도 이 ‘이뭣고?’를 해야 옳은 장관 노릇도 하고, 옳은 대통령을 합니다. ‘이뭣고?’를 하는 대통령, ‘이뭣고?’를 하는 장관 같으면 저렇게 하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참 옳은 대통령을 했다면 대통령하고 내놓으면 국부(國父)가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하고 난 뒤에도 호위병도 필요 없고, 경비병도 필요가 없습니다. 맨 손으로 맨 몸뚱이로 팔도강산을 돌아다녀도 간 곳마다 ‘우리 국부님 오셨다’고 남녀노소가 모다 떠받들고 받들 것입니다. 서로서로 이리 오셔서 하룻밤 쉬고 가라고 할 것입니다.
왜 대통령을 하면 그렇게 못합니까? 그런 대통령을 해버려야 바로 그 대통령이 세계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는 것입니다. 아쇼카(aśoka)왕, 아육왕(阿育王) 같은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아육왕도 처음에는 백 명이나 되는 그 태자(太子)를 죽이고 자기가 왕자가 되었고, 그 궁중에 있는 모든 왕족들 백 명을 다 때려죽였습니다. 그리고서 이웃나라 수십만 명을 다 때려죽이고 이웃나라를 모다 뺏으고 그렇게 무서운 왕이었었지마는, 불법(佛法), 어느 스님의 법문을 듣고서 깊이 참회(懺悔)하고부터서 그리고 믿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가지고, 팔만사천 탑(塔)을 세우고 불법(佛法)으로써 정치를 해 가지고 전륜성왕이 되었습니다.

아사세(阿闍世)왕도 자기 아버지 빈바사라(頻婆娑羅)왕을 굶겨 죽여 가지고 자기가 왕이 되었지마는 그래 가지고 왕이 된 뒤에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 가지고 잠도 못 자고 밥을 못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 참회하고서 그 병이 낫고, 그래 가지고 전륜성왕이 되어 가지고 평생토록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받들고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는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結集)을 할 때에 모든 잡술 것, 입을 것, 약(藥)과 모든 것을 그 오백성승(五百聖僧)에 모든 것을 시봉(侍奉)을 해 가지고 제1회 결집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평생토록 전륜성왕으로서 정치를 잘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인도를 싸움을 하지 아니하고 인도를 통일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왕과 이러한 대통령이 우리 금수강산(錦繡江山), 이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태어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부처님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우리 대한민국에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에는 반드시 머지않은 장래에 전륜성왕과 같은 그러한 훌륭한 대통령이 태어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반드시 세계를 통일하게 될 것입니다. 원자탄, 수소탄, 그러한 무서운 무기로써 세계를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으로써 평화로써 진리로써 세계를 통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 서해(西海)가 육지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일본은 바닷속에 잠겨 버리고 이 서해가 육지가 되어 가지고 그때 거기에는 전륜성왕이 왕이 되어 가지고 세계평화를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나는 그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끔 우리 대한민국에 태어난 우리 모든 백성들이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너도나도 ‘이뭣고?’를 해서 확철대오한 불보살(佛菩薩)들이, 살아 있는 불보살이 태어날 때에 우리의 후손들에 그러한 평화로 전륜성왕이 될 그러한 자손들이 대대손손(代代孫孫)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뭣고?를 아니하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재산을 모이고,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악법을 맨들아 가지고 남을 죽이고 그래 가지고 될 것입니까?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하고  천지인정몰양반(天地人情沒兩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고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이다. 내 마음에 거슬리면 썽을 내고, 내 마음에 순(順)하면 기뻐한다 그 말이여.
천하인정(天下人情)이 몰양반(沒兩般)이여. 온 천하 사람이 다 이 두 가지에 다 빠져 있드라 그 말이여.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라고 사는 사람은 제 마음에 안 들면 썽내고, 제 마음에 합당하고 자기를 칭찬해 주고 자기의 모든 좋은 것을 주면 좋아한다 그 말이여.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 누구가 있냐 그 말이여.

그러나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여, 정말 확실히 믿어야 할 것이 있다 그 말이여. 내 마음에 들고, 내 마음에 순(順)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것이 머지않아서 다시 그것이 내 마음에 거슬러진 것으로 변해 버리고 말더라 그 말이여.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명예나 권리나 할 것 없이, 인간적으로나, 내 마음에 들었고 내 마음에 합당하고 좋다 하더라도 몇 조금 못 가서 다시 변해 버려. 확실히 영원성이 없고, 허망한 것이고, 무상한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믿어 버려라.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여, 똑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바로 뜨고서 스스로 자기의 마음, 자기 스스로 속고 있고, 속이고 있는 것을 분명히 깨달라 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만 깨달라 버리면 우리는 그날부터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 밖에는 없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7일간 정성스럽게 7일 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여기에 날마다 절에 오셔서 하실 분은 하시고 일이 바뻐서 사정상 못 나오시는 분은 댁에서 일을 하시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시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다 자기 정성들인 만큼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크고 작은 소원, 멀고 가까운 소원, 반드시 소원은 정성들인 만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일 날에는 불명(佛名)을 아직 타시지 아니하신 분은 불명을 타시고, 5계(五戒)를 받게 되십니다. 불명을 이미 조실 스님께 탔거나, 산승한테 타신 분은 다시 또 타실 필요가 없습니다. 해마다 보면 불명을 드리면 거저 준다 해 가지고는 불명 타신 분이 너도나도 해 가지고 봉투를 둘, 셋, 넷씩 받어 가지고 자기 불명이 뭣인 중도 모르고 농 속에다 넣어 놓고. “불명이 뭣입니까?” 하면 “모릅니다”

“아! 왜 안 탔습니까?”
“예, 그것 다섯 장이나 있어요”

“다섯 장이나 있으면서 불명을 모릅니까?”
“그것이 뭣이던가? 문수심이던가?”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미 타신 분은 오늘 가셔서 댁에 가서 봉투를 꺼내 보시고 ‘아하 이것이로구나’ 그것을 염불하듯이 오늘 수백 번 해 갖고 확실히 자기 불명(佛名)을 알고, 그래 가지고 도반(道伴)들이나 친구들이나 딸이나 며느리한테,

“내 불명은 약허약허한데 앞으로 나를 부를 때는 ‘아무개할머니’ 부르지 말고 불명을 불러라. 불명을 불러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니 불명을 불러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데 불명을 부르지 왜 ‘아무개 엄마 그것은 세속의 이름이니 세속적인 것은 불러 봤자 업(業)밖에는 안 되는 거고, 불명을 불러야 업장이 소멸이 되고 공덕이 된다고 하니, 우리야 그 말을 믿고 그렇게 부르자이렇게 하시라 그 말씀이여.

그래서 불명이 없는 분에 한해서 불명을 타시고자 하는 분은 오늘 이 주소, 성명(姓名)을 적어서 사무실에다가 내놓고 가십시요.
그렇게 신청도 안 하고 막 하니까 공것은 양잿물도 먹는다고, 막 그러니까는 두서(頭緖)가 없고 이 존엄성이 없어. 그래서 반드시 신청을 한 분에 한해서 계첩(戒牒)을 노나드릴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돈을 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행여나 돈 받을라고 저런가보다?
돈은 안 내도 좋습니다. 돈 안 내도 좋으니까 분명히 신청을 하고 소중하게 받아 가셔서, 그리고 불명을 타신 분은 또 5계(五戒)를 받고, 불명(佛名)을 타시고 그렇게 해서 화두(話頭)까지 타서 이제 금년부터서는 정말 이 복전암 칠성회원 여러분들은 불명도 타고, 5계도 받고, 또 화두도 탄 최상승 보살(最上乘菩薩)이 된다 그 말이여.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참석하신 분은 7일간을 열심히 정진, 정근을 해서 기도를 해서 반드시 소원성취하시게 될 것을 저는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제가 보증을 서겠습니다.
그 대신 열심히 하십시요.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하십시요. 7일간 오대산이나, 저 설악산이나, 저 남해 보리암, 그런 데 간 것처럼 이 복전암도 그렇게 아시고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게송을 읊고 내려가겠습니다.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하고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하고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이요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다.
한 등불이 능히 백천 등(燈)에다가 불을 댕겨서,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다. 한 등불만 있으면 다른 등에도 계속 그 등불을 댕기고 또 댕기고 하면 백천 등이 다 환히 밝을 수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이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탄생하셔 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하시더니, 그 부처님이 출세하셔 가지고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출현하시고, 이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그 불법(佛法)의 등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오늘날까지 내려와 그 등(燈)으로 인해서 온 세계가 환히 밝게 된다 그 말이여.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일구(一句)가 결국 오늘 이 복전선원 7일 기도 입재일에 낱낱이 여러분께 이 법을 설해 드리게 된다 그 말이여. 이것이 바로 한 등불을 여러분의 마음의 등불에 불을 댕겨 드리는 소식이드라.

한번 깊이 바로 믿어버리고 믿어버리면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여, 모든 성현도 전할 수 없는 그 등(燈)—우리가 초파일에 켜는 등은 바람이 불면 꺼져버릴 수 있고, 전깃불이 나가버리면 꺼져버릴 수 있는데, 모든 성현이 전할 수 없는 등(燈)이 있어.
폭풍우가 불어도 꺼지지 않는 그 등이 그 불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놈을 봐 버리면 그 불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환하니 비춰. 그 불은 저 태양보다도 더 밝은 등불인 것입니다. 그 등불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등불 바로 밝은 도리를 ‘이뭣고?’를 하면 그것을 바로 봐 버리게 되는 것이여. 바로 그 등불에 그 심지에 불을 댕기는 것이여.

이 칠성회를 조직을 해서 이렇게 7일 기도를 해마다 하는 것은 형식 껍데기로는, 가장 가까웁게 쉽게 우리의 눈에 보이기에는 우리의 중생으로서에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는 목적으로 이 기도를 한 것처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근본 뜻은 여러분의 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허망한 몸뚱이 속에 영원불멸(永遠不滅)한 마음의 등불에 불을 댕겨 드리기 위해서 칠성회 법요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35분43초~1시간8분10초) (끝)





[법문 내용]

(게송)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 / 이 무상한 세계에 우리가 몸을 받아서 태어나서 숙세(宿世)의 수승한 인연으로 해서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났습니다 / 똑같은 세계를 보고서 근기에 따라서 그 관점이 다르다 / ‘물’을 보고 고기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아귀(餓鬼)는 물을 보고 불인 줄 알고 겁을 냅니다. 하늘나라에 신(神)들은 지상(地上)의 물을 보고 유리(琉璃)라고 생각을 해.

범부(凡夫)는 오욕락(五欲樂)을 보고 좋은 것인 줄 알고, 오욕락이 진짜 괴로움에 원인인 줄 깨닫지를 못합니다 / 성문(聲聞) 연각(緣覺), 이승(二乘)들은 ‘이 삼계는 괴로운 것이다 ‘이 삼계는 불집이다(三界火宅)’ 이렇게 생각을 해 / 보살(菩薩)은 이 삼계(三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삼계는 공(空)한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도 본래 없건마는, 본래 공한 것이지만 중생의 망령된 무명 번뇌로 보기 때문에 이렇게 생사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지는 모두가 다 공(空)한 것이다’

부처님은 ‘이 삼계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묘(妙)한 것이다. 다 묘하게 밝은 마음이다. 오직 한마음이다’ ‘묘(妙)하게 밝은 한마음이다’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따로 없다’ 이렇게 보는 거여.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부처님이 49년 동안 설하신 12부 경전, 팔만사천 경전이 모두가 다 방편설(方便說)이다 / 궁극에 가서는 부처님은 무슨 법을 설하셨냐 하면은 「나는 한 법(法)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법을 설하셨어.
귀종(歸宗) 선사와 영훈(靈訓) 선사의 법담 / 믿음 하나가 철저해 버리면 긴 법문이 필요 없고, 많은 경전이 필요가 없어.

재산 뿐만 아니라, 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다 /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정말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깨달라야 되겄습니다 / 아상(我相)이 무너져 버려야 도(道)의 제일 관문(關門)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 아는 것과 마음에 계합이 되어서 깨닫는 것과는 천양지판(天壤之判).

아상(我相)을 없애는 가장 수승한 방법이 ‘이뭣고?’다 / 밥 먹을 때나, 똥 눌 때나, 집을 향해서 걸어갈 때나, 집에 가서 옷을 벗을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이뭣고?’를 챙기는 것입니다 / 망상이 일어나면 그 일어나는 놈을 그냥 고대로 놔두고, 그냥 그 일어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불법(佛法)을 믿고 부처님의 말씀을, 법문을 옳게 들어야 자식도 옳게 기를 줄을 압니다. 진짜 자식을 옳게 기를라면 ‘이뭣고?’를 하셔야 합니다 / 아쇼카(aśoka)왕, 아육왕(阿育王)과 아사세(阿闍世)왕 이야기.

(게송)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 / 서로서로 불명(佛名)을 불러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공덕이 된다 / (게송)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하니, 거울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그 그림자와 자취가 없어지면,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아름답게 핀 꽃가지에 새가 올라가 울더라.

무슨 거울을 타파(打破)해서 그림자와 자취가 없어졌냐? 그 거울이라 하는 것은 모든 반연(攀緣)을 따라서, 반연 따라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가지고 육식(六識)의 무명(無明) 망상(妄想)이 동요하는데, 그 경계(境界) 따라서 경계를 반연해 가지고 육식이 발동하는 것이 마치 거울 앞에 나타난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같다 그 말이여.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비추이는 그 거울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거울도 없어져 버리고 또 거기에 비추던 청황적백(靑黃赤白) 삼라만상 모든 밖에 경계도 다 없어져 버리면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이 말이여.

저 부처님으로부터 모든 보살(菩薩)과 일체중생(一切衆生) 내지는 짐승과 꿈적꿈적한 벌레에 이르기까지 그 본 성품은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어. 다 똑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불성(佛性)이여. 그러건만 경계에 반연해서 번뇌망상으로 인해서 그 원만구족한 불성이 가리워져 가지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이여.

모든 부처님은 이 삼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면은 ‘이 삼계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묘(妙)한 것이다. 다 묘하게 밝은 마음이다. 오직 한마음이다’ 이렇게 보는 거여. ‘묘(妙)하게 밝은 한마음이다’ 이렇게 보는 거여.

우리 중생들은 ‘마음’하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뭘 보면 눈을 통해서 뭣을 볼 줄도 알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도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을 줄도 알고, 혀를 통해서 모든 맛을 볼 줄도 알고, 몸뚱이를 통해서 차웁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느낄 줄을 알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것, 이놈이 마음인 줄 안다 그 말이여.
그러나 부처님이 보실 때에는 이 몸뚱이 끌고 댕기는 그놈 뿐만이 아니라 이 몸뚱이도 마음이요, 이 하늘도 마음이요, 태양도, 별도, 달도, 산천초목, 두두물물이 전부가 오직 한마음 뿐이다 이것이여.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따로 없다’ 이렇게 부처님은 보시는 것이여.

아상(我相) · 아만(我慢) · 아애(我愛), 이것을 갖다가 버려 버리면 거기서 비로소 도(道)의 제일 계단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아상! 아상이 무너져 버려야 도(道)의 제일 관문(關門)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애(我愛) · 아만(我慢) · 아상(我相)이 있어 가지고서는 세상없는 짓을 해도 도(道)에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놈을 없애 버려야 ‘니가 바로 부처다’ 해도 그 말이 탁! 와서 마음에 계합(契合)이 되어 버려. 아는 것이 아녀. 아는 것과 마음에 계합이 되어서 깨닫는 것과는 천양지판(天壤之判)인 것입니다.
‘꿀을 먹으면 달다’ 하고 아는 것과 꿀을 직접 입에다가 한 숟갈 탁! 넣어 놓고 먹은 것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좋다하고 아는 것과 실지로 밥 한 그릇을 먹고 나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다’ 아는 것과 실지로 아상(我相)이 무너져 가지고 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그 뜻을 확실히 그 뜻을 깨달라서 계합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아상(我相)을 없앨려고 아무리 해도 그것이 안 없어져. 어떻게 해야 그것이 아상이 없어지냐 그 말이여. 그 아상 없애는 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수백만 번을 불러. 부르다 보면은 제절로 번뇌 망상이 끊어지면서 아상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허공과 같이 비어진다 그 말이여. 그런 염불(念佛)하는 방법도 있고, 그보다 더 수승한 방법이 ‘이뭣고?’다 그 말이여.

한번 깊이 바로 믿어버리고 믿어버리면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여, 모든 성현도 전할 수 없는 그 등(燈)—우리가 초파일에 켜는 등은 바람이 불면 꺼져버릴 수 있고, 전깃불이 나가버리면 꺼져버릴 수 있는데, 모든 성현이 전할 수 없는 등(燈)이 있어.
폭풍우가 불어도 꺼지지 않는 그 등이 그 불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놈을 봐 버리면 그 불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환하니 비춰. 그 불은 저 태양보다도 더 밝은 등불인 것입니다. 그 등불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등불 바로 밝은 도리를 ‘이뭣고?’를 하면 그것을 바로 봐 버리게 되는 것이여. 바로 그 등불에 그 심지에 불을 댕기는 것이여.

이 칠성회를 조직을 해서 이렇게 7일 기도를 해마다 하는 것은 형식 껍데기로는, 가장 가까웁게 쉽게 우리의 눈에 보이기에는 우리의 중생으로서에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는 목적으로 이 기도를 한 것처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근본 뜻은 여러분의 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우리 허망한 몸뚱이 속에 영원불멸(永遠不滅)한 마음의 등불에 불을 댕겨 드리기 위해서 칠성회 법요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