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458)—1991년(신미년) 동안거 결제 법회(91.11.20)(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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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허니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어다
나무~아미타불~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데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이여. 인생, 인간 백년이라고 해 봤자 잠깐 동안에 불과해.
막파광음당등한(莫把光陰當等閒)이어다. 시간을 등한(等閒)히 보내지 말아라.
약요불경염노안(若要不經閻老案)인댄, 만약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고자 하지 아니할진댄
직수참투조사관(直須參透祖師關)이어다. 곧바로 참선을 해서 조사관(祖師關)을 뚫을지어다.
오늘 신미년 동안거 결제와 백일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들었기 때문에 산승이 더 무슨 말을 첨가해서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이렇게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 또 위봉사 대중, 세등선원 대중, 회룡사 대중, 그리고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를 들인 이백 명이 넘는 대중 이런 도반들이 결제를 위해서 이렇게 한 법보전에 운집을 했으니 우리가 금년 삼동 안거를 좀더 알차게 알뜰하게 정진을 하기 위해서 도반들에게 한마디 다짐하는 말씀을 하는 것도 도반의 도리라고 생각을 해서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결제(結制)는, 인도에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그 많이 오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 우기(雨期)에는 나무 밑에나 한데에서 정진할 수 없기 때문에 정사(精舍)에 모여서 정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제가 생긴 거고 안거(安居)가 생기는 거고, 또 중국으로 와서는 여름뿐만이 아니라 겨울은 또 추워서 한데에서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겨울 결제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여름에는 더웁고 장마철이고 겨울에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 불가불(不可不) 선원에 모여서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안거를 할 수 밖에는 없어서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결제라고 해서 공부를 더 하고, 해제(解制)라고 해서 공부를 그럭저럭 해도 좋다 그게 아니거든.
엄격히 말하면 결제는 신심(信心),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공부를 할려고 마음먹을 때 결제가 시작이 된 것이고, 확철대오해서 증오(證悟)를 하면 그것이 바로 해제라고 할 수가 있고,
더 한 계단 더 들어가서 말하면 증오(證悟)를 할 때 그때 결제가 시작이 되고, 용무생사(用無生死)해서 자유자재하게 될 때 그때 겨우 해제라고 할 수가 있고, 용무생사(用無生死)의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결제고, 중생계(衆生界)가 다할 때 그때에사 정말 해제다운 해제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여름 석 달 안거하고 또 겨울 석 달 결제 해제하고, 그런 짧게 볼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 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에서 결제를 해서 안거를 하고 계시고, 약사여래(藥師如來)는 동방 만월세계(東方滿月世界)에다가 그걸 하나의 선방(禪房)으로 한다면 거기서 안거를 하시면서 제자들과 더불어 정진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裟婆世界)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앞으로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하실 때까지 이 사바세계를 하나의 선방(禪房)으로 해 가지고 무량 중생, 무량 대중을 제자들로 해서 안거를 하고 계신다고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선방에서, 이 결제 안거 중에 정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1분 1초도 등한히 지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참선 수행인의 일용점검(日用點檢)>
그래서 고인(古人)은 참선을 할 사람은 항상 네 가지 은혜를 잠시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깊은 것을 망각해선 안 된다(還知四恩이 深厚麽).
네 가지 은혜는 국왕의 은혜요, 스승의 은혜요, 시주(施主)의 은혜요, 부모의 은혜다.
부모와 나라와 스승과 우리가 먹고 입고 살도록 물심양면으로 베풀어 준 단월(檀越)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이 몸을 받아서 정법을 믿고 그리고 도(道)를 닦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 네 가지 큰 은혜가 깊고 깊은 것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 다음에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사대추신(四大醜身)이 생각 생각이 일 초 일 초 늙어서 병들어 썩어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還知四大醜身이 念念衰朽麽).
그 다음에는 우리의 목숨은 숨 한번 내쉬고 또 내쉬었다 들어마시는 그때마다 수명이 짧아져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還知人命이 在呼吸麽).
그리고서 세상에 태어나서 불조(佛祖)를 친견을 했느냐(生來値遇佛祖麽)?
불조 생존시에 나지를 못한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정법을 믿고 열심히 하면 정말 법신불(法身佛)을 친견(親見)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상법(無上法), 최상승법을 듣고 항상 감사하고 희유하는 마음을 냈느냐(及聞無上法하고 生希有心麽)?
수행도량을 여의지 않고 항상 수절(守節)을 하고 있느냐(不離僧堂하여 守節麽)?
이웃과 한화(閑話), 잡담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不與隣單으로 雜話麽)?
십이시 중에 항상 화두가 불매하느냐(話頭가 十二時中에 明明不昧麽)?
옆에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도 화두가 간단 없느냐(對人接話時에 無間斷麽)?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할 때에도 항상 화두가 타성일편 하느냐(見聞覺知時에 打成一片麽)?
자기 주인공을 깨달라 가지고 불조의 허물처를 착패 했느냐(返觀自己하야 捉敗佛祖麽)?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수 있겠느냐(今生에 決定續佛慧命麽)?
앉고 서고 이렇게 이만큼 건강할 때에 지옥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느냐(起坐便宜時에 還思地獄苦麽)?
이 한 몸으로 결정코 생사윤회를 해탈할 수 있겠느냐(此一報身이 定脫輪廻麽)?
나를 보는 데 칭찬하고, 안 보는 데 칭찬하거나 비방을 하거나, 내 마음에 맞는 일을 보고 듣거나, 내 뜻에 거슬리는 일을 당하드라도 그 마음이 동요되지 않느냐(當八風境하야 心不動麽)? 동요되지 않을 만큼 되었느냐? 이거거든.
이상 말한 이 여러 가지 조항에 대해서 참선하는 사람은, 도를 닦는 사람은 일용(日用) 중에 항상 스스로 점검(點檢)을 해 봐야 할 것이다.(此是參禪人의 日用中點檢底道理)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하고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劫歷微塵)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이요. 욕계, 색계, 무색계—이 우리가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이 삼계(三界)는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저 깊은 우물에서 물을 품는 두레박과 같은 것이여.
두레박 두 개를 긴 끈으로 연결해서 하나를 품으면 하나가 내려가고 또 그놈을 품어 올리면 저놈이 내려가고 해서 오르락내리락, 올라갔다 내려갔다,
착한 일을 좀 하면은 좋은 곳에 천당에 태어났다가 또 악한 일을 하면은 또 지옥에 떨어지고, 또 그 죄를 다 받으면 다시 올라 왔다가, 또 복(福)을 지으면은 천상(天上)으로 올라가고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지고 하기를, 무량겁을 두레박처럼 오르락내리락해서 금생에까지 왔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백천만 겁을 미진수(微塵數) 생사(生死)를 받고 벗고, 받고 벗으면서 오늘날까지 겪어 왔는데.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이 몸뚱이를 다행히 금생에 받아 나 가지고 불법(佛法)을 만났어. 금생(今生)에 이 몸뚱이를 제도(濟度)하지 아니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냐.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가지고 이 몸을 제도할 것이냐?
고인(古人)이 읊으신 뼈에 사무치는 이 게송(偈頌)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시간을 아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온통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오욕락은 재산—요새 같으면은 국가적으로는 경제라고 하는데, 물론 나라가 부흥하고 백성이 잘살라면은 경제가 부흥을 해야 하지요.
그러나 경제가 아무리 GNP가 만 불, 백만 불, 천만 불 올라간다 하드라도 인간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에 불이 타는 한, 아무리 경제가 부흥한다 해도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말세에 정치니, 경제니, 교육이니, 일등국이니, 후진국이니 해 봤자 불법(佛法)을, 참다운 불법을 옳게 믿고 실천하지 않는 한은, 이 세상은 점점 말세적인 증상을 노출해 가지고 서로 죽이고 서로 침범하고 이웃나라끼리도 무력으로 싸우다, 사상으로 싸우다가, 경제적으로 싸우다가, 급기야는 종교로 싸우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서로 죽이고 서로 죽음을 당하고 그래 가지고 세상이 결국은 지옥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말이여.
나라와 나라뿐만이 아니라 기업체와 기업체가 싸우고, 개인과 개인이 싸우고, 정치가는 당과 당이 싸우고,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 그말이야. 이러한 싸움이 GNP가 올라간다고 그 싸움이 없어지겠습니까? 올라갈수록 싸움은 더욱 악랄해지고 피비린내 나는 지옥(地獄)세계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런 불법(佛法)을 만났는가? 세계 육십 억 인구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나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위해서 도를 닦을 수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처음~20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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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불법을 믿고 결제에 방부(房付)를 드리고 참선을 할 바에는 올바르게 해야겠다 이거거든.
‘수참활구(須參活句)언정 막참사구(莫參死句)하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할지언정 사구참선(死句參禪) 하지 말아라’
그러면 활구참선은 무엇이냐? 활구참선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불조의 스승이 되는 것이여. 불조(佛祖),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되는 거여. 사구참선을 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다고 해 봤자, 자기 스스로도 구제를 못하는 것이다. 조사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하셔.
그러면 활구(活句)는 무엇이냐 하면은 ‘경절문(徑截門) 활구’여. 마음 길이 끊어지고 뜻 길과 말 길이 끊어져. 그리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없어.
그러면 사구(死句)는 무엇이냐 하면,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어. 이렇게 따져 들어가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어. 그리고 듣고, 알고, 생각할 것이 있다 그말이야.
화엄경이나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이런 경전들이 다 일승 원교니, 대승 종교니 해 가지고 경전 중에서는 참 훌륭한 경전이고 그렇지만,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인 조사선(祖師禪)에서는 그런 경전에 있는 말씀도 의지해서는 안 돼. 따지면 벌써 그것이 사구(死句)가 되어.
이런 말은 불교학자나 교가에서 들으면 ‘불법을 비방한다’고 그렇게 말을 헐는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전을 비방한 것이 아니여.
이 활구선(活句禪)은 사교입선(捨敎入禪)이거든. 그런 경을 다 보고 알더라도 그 경을 다 버리고서 일체 이론을 떠나서, 바로 이 화두를 참구해 가지고 확철대오하는 이 조사선(祖師禪)에 있어서는 경전에 대해서 놓아라고 할 수밖에는 없는 거여.
그렇다고 해서 경 자체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야. 여러분이 그 분간을 잘 아셔야 돼.
참선을 하시기 전에는 참선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금강경도 공부를 해야 하고, 반야심경도 공부를 해야 하고, 법화경도 독송을 하고, 화엄경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해서 숙세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인연이 있어서 참선법을 믿고 알게된 때부터서는 경을 탁! 놔야 하는 거야. 놓고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턱 타 가지고—자기가 믿을 수 있는,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때부터서는 경에 있는 말씀도 탁 놔 버리고, 오직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참구(參究)해야 한다 그말이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탄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탄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타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저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그렇게 따지는 것이 아니야. 또 정전백수자는 ‘뜰 앞에 잣낭구?’ ‘뜰 앞에 잣낭구가 무엇인가?’ 그렇게 뜰 앞에 잣나무로 쫓아가서 그놈을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뜰 앞에 잣낭구라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거야.
어느 화두가 좋고 어느 화두가 나쁜 것이 아니고, 일단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하나 탔으면 아무리 공부가 안 되고 안 되더라도, 그 한 화두를 가지고 한결같이 해 나가야 해.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의심이 안 난다고 해서 또 다른 스님한테 가서 또 화두를 타 가지고 해 보고, 그놈이 안 되면 또 저 다른 스님한테 가서 해 보고, 그리하다 보면 맨 처음에 탄 화두가 좀 의심이 난 것 같으니 그놈 좀 해 봤다, 이놈 좀 해 봤다 이래 가지고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우물을 파되 열 자를 파서 안 나오면 오십 자를 파고, 오십 자를 파서 안 나오면 백 자를 파고, 백 자를 파서 안 되면은 100m를 파고, 이렇게 해서 목숨을 바쳐서 한 우물을 파야 참으로 가물어도 줄지 않고 장마에도 불지 않는 좋은 물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금 파 가지고 물이 나왔다면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건수(乾水)로써, 장마철에는 풍풍풍풍풍 넘쳐흐르고 가뭄이 들면은 물이 차츰 줄어서 결국은 물이 밭어지게 될 것이여.
조금 이리저리 해 가지고 뭐 소견이 났다고 해서 그러헌 것을 견성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불조(佛祖)의 지경(至境)에 이르기 전에는, 뭐 조금 한 소견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도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뭐 한 소식했다고 남한테 자랑하기를 좋아하고—불조의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그까짓 무슨 소견이 난 걸 그것에 만족을 해?
스스로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닌 줄 (알고) 스스로 그것을 탁 부인해 버리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의 마음으로써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불조의 지경에 이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말입니다.
세로다위험(世路多危嶮)한데 산문진적요(山門鎭寂寥)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애청산(從來愛清散)한데 황복치시요(況復値時澆)리요
나무~아미타불~
세로다위험(世路多危嶮)한데 산문진적요(山門鎭寂寥)로구나. 세상이 이렇게 정말 살아가기가 어려워. 그런데 너무너무 위태롭고 험하고 그런데 산문(山門)은 진적요(鎭寂寥)요. 도문(道門)은 정말 참 조용하고 조용한 곳이로구나.
종래(從來)로 애청산(愛清散)하야,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저 전생에 숙세부터서 이 맑고 고요한 이 도문을 사랑해 왔기에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았고 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났는데,
황복치시요(況復値時澆)리요, 하물며 이렇게 세상이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이렇게 험악할 때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원래 오욕락(五欲樂)이 허망(虛妄)한 줄 알고 정말 도를 닦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겠다’하는 그러한 생각이 전생에부터서 있어 왔기에 이렇게 또 불법을 만났거든,
하물며 이렇게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렵고 말세가 되어서 온통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그러한 탐진치 삼독(三毒)의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이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고려 대각국사의 게송(偈頌)입니다.
학인무타술(學人無他術)이여 직사대사인(直似大死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점기야무(一點氣也無)하야 방여나인합(方與那人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학인무타술(學人無他術)이여 직사대사인(直死大死人)이다. 도학자가, 참선학자가 무슨 다른 방책이 없어. 다른 길이 없다 그말이여.
직사대사인(直死大死人)이여. 바로 대사인(大死人)과 같이 되라. 아주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려라 이거거든.
만공 스님 말씀에 ‘썩은 나무둥치가 되라’ 이거거든. 칭찬해도 좋아할 줄 모르고, 잘못했다고 꾸짖어도 성낼 줄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않어. 완전히 바보 천치(天癡)가 되고 죽은 송장처럼 되어라 그거거든. 그 길 밖에는 도학자의 살아갈 방책이 없어.
일점기야무(一點氣也無)다. 한 점, 아무리 코에다가 귀를 대고 들어 봐도 숨소리조차도 안 나. 어떻게 되게 죽어 버렸던지.
그렇게 되어버려야 바야흐로 불조(佛祖)의 스승이 될 수 있는 확철대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신미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이렇게 사부대중, 여러 형제자매요, 여러 도반들이요, 또 동시에 산승(山僧)을 위해서는 도반(道伴)이면서 동시에 선지식(善知識)이십니다.
어쨌던지 올 삼동(三冬)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이 산승의 진리의 눈이 뚝! 떠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20분6초~36분3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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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년지시잠시간(百年只是暫時間)~’ ; [한가로운 도인의 길—나옹화상법어집](김달진 역주,세계사) p185에 있는 ‘警世—세상을 경계함’ 참고. *案(책상·심판 안)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등한히(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 머물면서 불도(佛道)를 닦는 집. 사원. 절.
*한데 ; 사방(四方)과 하늘을 지붕이나 벽 따위로 가리지 않은 자리.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서 머므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엄동설한(嚴冬雪寒 엄할 엄/겨울 동/눈 설/찰 한) ; 눈 내리는 한겨울의 심한 추위.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불가불(不可不 아니 불/옳을 가/아니 불) ; 어찌할 수 없이.
*증오(證悟) ; 깨달음.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여 깨달음.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이백십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약사여래(藥師如來) ;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주는 부처님. 왼손에 약병을 들고 오른손으로 시무외(施無畏)의 인(印)을 맺고 있다. 보살로서 수행하고 있었을 때에 12대원(大願)을 발했다.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대의왕불(大醫王佛)•의왕선서(醫王善逝)라고도 함. 동방정유리세계(東方淨瑠璃世界)의 교주.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불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일용점검(日用點檢) ; 참선 수행인이 일상생활에서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할 도리.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8~72 참고.
〇大抵參禪者(대저참선자)는 還知四恩(환지사은)이 深厚麼(심후마)아, 還知*四大醜身(환지사대추신)이 念念衰朽麼(염염쇠후마)아, 還知人命(환지인명)이 在呼吸麼(재호흡마)아, 生來値遇佛祖麼(생래치우불조마)아, 及聞無上法(급문무상법)하고 生希有心麼(생희유심마)아,
不離僧堂(불리승당)하고 守節麼(수절마)아, 不與隣單(불여인단)으로 雜話麼(잡화마)아, 切忌鼓扇是非麼(절기고선시비마)아, 話頭(화두)가 *十二時中(십이시중)에 明明不昧麼(명명불매마)아, 對人接話時(대안접화시)에 無間斷麼(무간단마)아,
見聞覺知時(견문각지시)에 打成一片麼(타성일편마)아, 返觀自己(반관자기)하야 捉敗佛祖麼(착패불조마)아, 今生(금생)에 決定續佛慧命麼(결정속불혜명마)아, 起坐便宜時(기좌편의시)에 還思地獄苦麼(환사지옥고마)아, 此一報身(차일보신)이 定脫輪㢠麼(정탈윤회마)아, 當*八風境(당팔풍경)하야 心不動麼(심부동마)아,
此是參禪人(차시참선인)의 日用中點檢底道理(일용중점검저도리)니 古人云(고인운), 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하면 更待何生度此身(갱대하생도차신)고 하시니라
대저 참선하는 이는 네 가지의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가지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 몸(四大醜身)이 찰나 찰나 썩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살아오매 부처님이나 조사를 만나 뵈었는가? 위 없는 법문을 듣고 희유한 마음을 냈는가?
승당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는가? 화두가 십이시(十二時) 중 어느 때나 또렷또렷 매(昧)하지 않는가?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 때에도 한 조각(打成一片)을 이루고 있는가? 자기의 본래면목을 보아서 불조의 허물을 잡아냈는가?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겠는가? 앉고 눕고 편안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八風)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니,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 이 때 못 건지면 다시 언제 건질 것인가!’하시니라.
〇주해(註解)와 평(評)
四恩者(사은자)는 父母君師施主恩也(부모군사시주은야)요
四大醜身者(사대추신자)는 父之精一滴(부지정일적)과 母之血一滴者(모지혈일적자)니 水大之濕也(수대지습야)요 精爲骨(정위골)이요 血爲皮者(혈위피자)는 地大之堅也(지대지견야)요 精血一塊不腐不爛者(정혈일괴불부불란자)는 火大之暖也(화대지난야)요 鼻孔先成(비공선성)하야 通出入息者(통출입식자)는 風大之動也(풍대지동야)라 阿難曰(아난왈), 欲氣麁濁(욕기추탁)하야 腥臊交遘(성조교구)라 하시니 此所以醜身也(차소이추신야)라
念念衰朽者(염염쇠후자)는 頭上光陰(두상광음)이 剎那不停(찰라부정)하니 面自皺而髪自白(면자추이발자백)이라 如云(여운), 今旣不如昔(금기불여석)이요 後當不如今(후당불여금)이니 此無常之體也(차무상지체야)라 然(연)이나 無常之鬼(무상지귀)가 以殺爲戱(이살위희)하니 實念念可畏也(실념념가외야)라
呼者(호자)는 出息之火也(출식지화야)요 吸者(흡자)는 入息之風也(입식지풍야)라 人命寄托(인명기탁)이 只在出入息也(지재출입식야)라 八風者(팔풍자)는 順逆二境也(순역이경야)요 地獄苦者(지옥고자)는 人間六十*劫(인간육십겁)이 *泥犂一晝夜(니려일주야)니 鑊湯爐炭(확탕노탄)과 釼樹刀山之苦(검수도산지고)를 口不可形言也(구불가형언야)라
人身難得(인신난득)이 甚於海中之鍼故(심어해중지침고)로 於此(어차)에 愍而警之(민이경지)하노라
評曰
上來法語(상래법어)는 如人飮水(여인음수)에 冷暖自知(냉난자지)라 聰明(총명)이 不能敵業(불능적업)이요 *乾慧(간혜)가 未免苦輪(미면고륜)이니 各須察念(각수찰념)하야 勿以自謾(물이자만)이어다
네 가지 은혜란 부모, 임금, 스승, 시주의 은혜요, 네 가지로 된 더러운 몸(四大醜身)이란 아버지의 정수(精)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血) 한 방울이니, 물의 젖은 기운(水大之濕)이요,
정수는 뼈(骨)가 되고 피가 가죽(皮)이 된 것은 땅의 단단한 기운(地大之堅)이며, 정기(精)와 피(血)의 한 덩이가 썩지 않고 녹아버리지도 않는 것은 불의 더운 기운(火大之暖)이요,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바람의 움직임(風大之動)이다. 아난존자가 말하기를 ‘정욕이 거칠고 흐려서 더럽고 비린 것이 어울려 뭉쳐진다(欲氣麁濁하야 腥臊交遘)’하시니 더러운 몸(醜身)이라 부른 것이다.
‘생각 생각 썩어 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도 저절로 희어가니, 옛말에 「지금 이미 옛 모습 아니네, 뒷날에 어찌 지금 같을까」한 바와 같이 과연 덧없는 몸이 아닌가! 덧없는 귀신(無常之鬼)이란 죽이는 것으로 놀이를 삼으므로, 참으로 생각 생각이 무서울 뿐이다.
날숨(呼)은 불 기운이요 들숨(吸)은 바람 기운이라,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쉬고 내쉬는 한숨에 달린 것이다. 여덟 가지 바람(八風)이란 대체로 마음에 맞는 것과 거슬리는 두 가지 경계(順逆二境)요,
지옥의 고통(地獄苦)이란 인간의 60겁(劫)이 지옥의 하루(泥犂一晝夜)가 되는데,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칼산과 창숲에 끌려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어 일깨우노라.
평해 가로되(評曰),
위에 말한 법문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운 것은 제 스스로 알 뿐이므로(如人飮水에 冷暖自知라), 총명(聰明)이 능히 업(業)의 힘을 막지 못하고, 마른 지혜(乾慧)가 고(苦)의 윤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각자 살피고 생각하여 스스로 속지 말지어다.
〇譯註(역주)
①사대색신(四大色身) : 중국에서 금(金) • 목(木) • 수(水) • 화(火) • 토 (土)의 오행(五行)을 말하듯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땅(地) • 물(水) • 불(火) • 바람(風)의 사대(四大)로써 자연계(自然界)의 온갖 것에 대한 구성요소(構成要素)로 말하였다。
②십이시(十二時) : 하루 24시간을 말함。지금 쓰고 있는 이십사시(二十四時)를 예전에는 십이시(十二時)로 썼다。
③팔풍(八風) :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여덟 가지 현상을 말한다。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 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樂) 등이다。
④겁(劫) : [범]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세한 숫자는 여러 글에 일정하게 쓰이지 않았으나, 한 세계가 생겼다가 아주 없어지는 동안을 대겁(大劫)이라 하며, 그 사이가 팔십 소겁(小劫)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⑤니려(泥犂•泥黎•泥梨) : 범어로써 지옥을 말함。그 뜻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기쁘고 즐거운 것이 도무지 없다는 뜻。십계(十界) 중 가장 하열한 곳。무간 아비지옥。
⑥간혜(乾慧) : 비록 깨쳐서 지혜가 났더라도, 정(定)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것은 마른 지혜라고 한다。마른 지혜는 죽고 나는 이치를 알더라도, 나고 죽는 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乾 = 하늘 건, 마를 간)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말세(末世 끝 말, 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리(道理) ; 이치.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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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房付 방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 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 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 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건수(乾水) ;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밭다 ; (무엇이)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지경(至境 이를 지, 지경 경) ; 대상에 도달하는 것.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경각(究竟覺) ;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켜 마침내 마음의 근원을 깨달음.
*(게송) ‘세로다위험~’ ; ‘宿伽耶山天城寺(가야산 천성사에 묵으며)’ [대각국사집’(동국대학교) p 446. ]
*산문(山門) ; 사원(寺院, 절)을 가리키는 호칭.
*도문(道門) ; 실천해야 할 도(道). 진실의 가르침. 반야진실(般若眞實)의 가르침.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가르침. 정도문(正道門)의 약어(略語).
*다생겁래(多生劫來) ; 수 없이 많은 겁이래로. 육도 윤회하면서 수 많은 생을 받은 것이 시간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
*요계(澆季)=교계(澆季) ; 교(澆)는 박(薄), 계(季)는 시대의 뜻. ①세상이 쇠하고 인정이 야박한 때를 말함. 보통 말법교계(末法澆季)라 함. 부처님 입멸 후 1천 5백년(혹은 천년 또는 2천년)을 지낸 뒤의 시대. ②정치나 도덕, 풍속 따위가 쇠퇴하여 어지러운 세상.
*허망(虛妄 빌 허, 망령될 망) ; ①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음 ②보람이 없고 허무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대각국사(大覺國師) ; 고려 중기의 스님. 우리나라 천태종의 개조 의천(義天, 1055~1101)의 시호. 속장경(續藏經)을 간행한 이. 문종의 넷째 아들로 선종의 동생.
*(게송) ‘학인무타술~’ ; [백운스님어록](무비 역주,민족사) p239에 ‘又作十二頌呈似(또 12송을 지어 올리다)’의 첫 게송.
*대사인(大死人) ; 죽음 송장처럼, 종래에 품고 있던 사량분별 모두를 버려 버리고 수행에 몰두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사저인(大死底人).
*‘어떻게 되게 죽어 버렸던지’ ; ‘되게’—> 되다 ; (무엇이) 몹시 심하거나 모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주요 내용]
(게송)백년지시잠시간~ / 중생계(衆生界)가 다할 때 그때에사 정말 해제다운 해제 / 참선 수행인의 일용점검(日用點檢) / (게송)삼계유여급정륜~ /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할지언정 사구참선(死句參禪) 하지 말아라 / 활구(活句)는 무엇이냐 하면은 경절문(徑截門) 활구여 /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의 마음으로써 불조의 지경,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해야 / (게성)세로다위험~ / (게송)학인무타술~ / 대사인(大死人) / 만공스님 말씀에 ‘썩은 나무둥치가 되라’
[주요 문구]
〇엄격히 말하면 결제는 신심(信心),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공부를 할려고 마음먹을 때 결제가 시작이 된 것이고, 확철대오해서 증오(證悟)를 하면 그것이 바로 해제라고 할 수가 있고,
더 한 계단 더 들어가서 말하면 증오(證悟)를 할 때 그때 결제가 시작이 되고, 용무생사(用無生死)해서 자유자재하게 될 때 그때 겨우 해제라고 할 수가 있고, 용무생사(用無生死)의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결제고, 중생계(衆生界)가 다할 때 그때에사 정말 해제다운 해제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〇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이 몸뚱이를 다행히 금생에 받아 나 가지고 불법(佛法)을 만났어. 금생(今生)에 이 몸뚱이를 제도(濟度)하지 아니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냐. 다시 어느생을 기다려 가지고 이 몸을 제도할 것이냐?
고인(古人)이 읊으신 뼈에 사무치는 이 게송(偈頌)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시간을 아껴야 할 것입니다.
〇세계 60억 인구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나서 생사없는 도리(道理)를 위해서, 도를 닦을 수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〇활구참선은 무엇이냐? 활구참선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불조의 스승이 되는 것이여. 불조(佛祖),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되는 거여.
사구참선을 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다고 해 봤자, 자기 스스로도 구제를 못하는 것이다. 조사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허셔.
〇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턱 타 가지고-자기가 믿을 수 있는,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때부터서는 경에 있는 말씀도 탁 놔 버리고, 오직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참구(參究)해야 한다 그말이야.
〇조금 이리저리 해 가지고 뭐 소견이 났다고 해서 그런 것을 견성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불조의 지경(至境)에 이르기 전에는, 뭐 조금 한 소견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도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을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닌 줄 (알고) 스스로 그것을 탁 부인해 버리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의 마음으로써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불조의 지경에 이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가 더 잘 알 것이다.
〇만공 스님 말씀에 ‘썩은 나무둥치가 되라’ 이거거든. 칭찬해도 좋아할 줄 모르고, 잘못했다고 꾸짖어도 성낼 줄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않어. 완전히 바보 천치(天癡)가 되고 죽은 송장처럼 되어라 그거거든. 그 길 밖에는 도학자의 살아가는 방책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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