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00/(101~125)2020. 12. 25. 22:13

((No.123))—1980년(경신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0.05.21) (42분)

(1) 약 21분. (2) 약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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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왕사일륜월(誰知王舍一輪月)이 만고광명장불멸(萬古光明長不滅)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오늘은 경신년(庚申年)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불기(佛紀) 2524년이라고 합니다마는, 2524년은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 해를 불기(佛紀) 일 년으로 쳐서 금년(今年)이 2524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탄생(誕生)하신 해부터서 금년까지 몇 해가 되었느냐 그것을 알아보려면 부처님께서는 80세까지 생존(生存)하셨으니까, 2524에다가 79를 보태면 부처님께서 오늘 탄생하신 해부터서 금년까지 2603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불교도대회(世界佛敎徒大會)에서 열반하신, 돌아가신 해를 일 년으로 쳐서 불기(佛紀)를 결정을 했기 때문에 보통 '불기 2524년' 그렇게 얘기들 합니다마는, 앞으로 여러분들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햇수를 알고자 하면 부처님은 80세까지 사셨으니까 한 살을 빼서 79를 보태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해가 나온다고 하는 것을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불기(佛紀)도 2900년대를 그동안에는 오래 전부터서 그렇게 사용을 해 오다가 2500년대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십여 년 밖에는 안 됩니다. 2900년대는 중국으로 해서 우리나라 이 북방으로 전해 내려오는 북전(北傳)으로 통해서 볼 때에는 2900년대가 되고, 남방으로 전해 내려오는 햇수로는 2500년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400년이라고 하는 차이가 나느냐 하면 워낙 오래된, 역사가 오래되어서 경전에 따라서 이렇게 쓰여진 데도 있고 저렇게 쓰여진 데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보통 불기(佛紀)를 따질 때,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아쇼카왕이 즉위(卽位)한 해에 기념탑(記念塔)을 세웠는데, 그 아쇼카왕이 즉위한 해가 바로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 뒤, 백 년 뒤다' 또는 '이백십팔 년이다' 이렇게 설(說)이 그것도 차이가 있어서 학자마다 연대(年代)가 다 일정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중성점기(衆聖點記)라고 하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부터서 손으로 쓴 경책에다가 해마다 점(點) 하나를 찍어서 쭈-욱 내려오는 중성점기라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그 점을 찍어 내려오는 그것으로 따져서 보는 것과 이렇게 남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불기에도 또 차이가 있어서 여러 학자들 간에 불기(佛紀)에 대한 설이 다릅니다.


그러나 십여 년 전에 세계불교도대회에서 2524년, 금년(今年)이 2524년으로 따지는 불기를 사용하기로 서로 결의(決意)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것에 따라서 금년을 2524년으로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불기가 2900년대가 옳으냐? 2500년대가 옳으냐? 그러한 것들은 학자들이, 사학가(史學家)들이 연구할 문제고, 우리 불자(佛子)들로서는 그러한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아니할 줄 생각합니다.


불교의 진리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부처님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으신 분이라, 생사가 없기 때문에 태어나신 때도 없고 또한 돌아가신 때도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데 무슨 '불기가 몇 년이다' 그런 것 가지고 논란을 할 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우리에게는 보다 더 급하고 중대한 것이지, '부처님께서 몇 년도에 태어나셨다' 이런 것은 저 학자들이 연구해도, 학자에게 미루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태어나셨는가?' 그것이 우리에게는 당장 급한 일이요 중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느냐?

우리 중생들도 부처님과 조끔도 다름없는 만고(萬古)에 꺼지지 않는 영원한 등(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등(燈)에 부처님께서는 불을, 불을 켜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정반왕(淨飯王), 정반왕과 마야부인(摩耶夫人),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자(太子)로 태어나셨습니다. 태자로 태어나셔서 이 세상에 영화와 부귀 그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6일 만에 부처님을 낳아 주신 어머니 마야부인은 이 세상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처님의 이모, 이모이신 대애도(大愛道) 부인께서 부처님의 계모(繼母)로 들어오셔서 당신 형이 낳아 놓으신 실달태자(悉達太子)를 잘 양육을 해서 19세에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래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해서 그 태자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거기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시고, 언제나 시간만 있으면 고요한 데, 숲속 이런 데를 찾아서 고요히 앉아서 묵상(默想)에 잠기시기를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그럴수록에 부왕(父王)이나 왕궁(王宮)에서는 그 태자로 하여금 보다 더 기쁘게, 그러한 무상한 그런 마음을 갖지 않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춘하추동에 지내기 편리하도록 삼시전(三時殿)을 짓고, 온 나라에 미인들을 모여서 춤과 노래로써 기쁘게 해 드렸지만, 그런 것에도 아랑곳없이 해가 거듭할수록 실달태자(悉達太子)는 점점 무상함을 느끼고 드디어 29세 되던 해에 '라후라(羅睺羅)'라고 하는 당신의 아들을 낳으시고 그리고서 성(城)을 넘어서 설산(雪山)으로 들어가셔서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하루같이 목숨 바쳐서 수도(修道)를 하셨습니다.


설산 안에 있는 모든 훌륭한 성자(聖者)들을 찾아서 그 성자의 지도에 따라서 식음(食飮)을 전폐하고 그 고행(苦行)을 해서 그 스승보다도 더 월등한 경지에까지 이르러서 그 스승의 귀여움과 붙잡음을 받았지만 거기에도 만족이 안 되어서 차례차례로 스승을 버리고 또 더 위대한 스승을 찾고, 이렇게 하기를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지낸 끝에 드디어 붓다가야의 그 보리수 나무 밑에서 거기에 딱!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서 “내가 이 자리에서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아니하면 죽어도 이 자리로부터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맹세를 하시고 정진(精進)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임오년(壬午年) 12월 초여드렛날, 그때가 부처님으로서는 35세 때입니다. 35세 때 동천(東天)에서 빛나는 샛별을 보시고 대도를 성취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로부터서 깨닫고 나서 일체 중생(衆生)을 살펴보니 저 죄 많고 어리석은 모든 중생들도 당신과 똑같은 본성(本性)자리,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간파(看破)를 하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부터서 80세를 일기로 열반(涅槃)에 드실 때까지 앉은 자리 더워질 겨를 없이 인도(印度)에 동서남북을 유행(遊行)을 하시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위해서 법(法)을 설하셨습니다. 일생 동안 설하신 그 법이 바로 우리나라 해인사(海印寺)에 봉안(奉安)되어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眞理), 우리가 어떻게 닦아 가야 한다고 하는 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그 일부에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일부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팔만대장경인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 부처님께서 설하시고자 한 법은 팔만대장경에 기록된 그것만이 아니고,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眞理)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태양과 달과 별, 이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중생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 암흑(暗黑)을 비추기 위해서 켜 놓으신 부처님에 등(燈)불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물소리는 중생의 때를 씻쳐 주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법으로 설해 주신 경전(經典)인 것입니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소리는 중생으로 하여금 그 소리를 언제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고 그 소리를 들음으로 해서 참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영원히 끊임없이 들을 수 있는, 연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음악(音樂)인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푸른 하늘, 푸른 산, 봄에 아름답게 피는 노랗고 빨간 모든 꽃들, 이런 것들은 우리의 눈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그 보는 그 찰나(刹那)에 그 보는 자신을 돌이켜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러한 오색이 찬란한 빛깔로 부처님의 경전을 써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 혀로 맛볼 수 있는 짜고 달고 쓰고 시고 한 이러한 맛,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부드럽고 까끄럽고 따뜻하고 차가운 모든 이러한 것들도 우리의 몸뚱이와 감각을 통해서 느끼는 찰나(刹那)에 우리의 참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모양으로 경전을 설해 놓으신 것입니다.


종이로 쓰여 있는 경전만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의 전부(全部)라고 생각하신 것은 부처님의 진리를 잘 이해를 못하신 사람에 보는 바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참으로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 가운데에는 성현(聖賢)의 말씀뿐만이 아니고, 착하고 아름다운 소리뿐만이 아니라 욕을 하는 소리, 듣기 싫은 소리, 요새 공해(公害)로 공장에서 울려 퍼지는 그런 소리까지도 전부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최고에 진리의 일면(一面)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 갈 때, 우리는 온 육도법계(六道法界)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설법(說法)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종이로 된 경전만이 경전인 줄 알고 그 경전(經典)에 집착(執著)하고 밤낮 그것을 뒤적거리고 그것을 읽고 외우는 것만이 부처님의 경전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은 코끼리의 코를 만져본 장님이 '코끼리는 구렁이같이 생긴 것이다' 하고 집착을 하고 우기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이러한 위대한 진리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몸소 저 도솔천(兜率天)에서 계시다가 지금으로부터 2603년 전에 인도(印度) 가비라왕국(迦毘羅王國)에 태자(太子)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실 때 여섯 개의 아금니를 가진 하얀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摩耶夫人)의 태중(胎中)으로 들어오셨다고 하는 말씀이 고대(古代) 경전(經典)에 쓰여 있습니다.


부처님 자신으로 볼 때에는 이미 진묵겁(塵墨劫) 전에 대각(大覺)을 성취하셔서 다시는 영원히 생사 문제에 떨어질 이유가 없으시지만, 우리 불쌍한 생사 속에서 헤매고 있는 가엾은 중생들을 건져 주시기 위해서 몸소 왕궁에 태자(太子)로 태어나셔 가지고 무상(無常)을 느끼시고 그래 가지고 귀여운 아내와 아들과 왕궁에 부귀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이 세상에 어떠한 성현도 겪지 못한 그러한 무서운, 견디기 어려운 고행(苦行)을 몸소 다 겪으시고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중생을 위해서 일부러 그러한 모냥을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처음~20분4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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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往往)이 '도(道)를 통하려면 그런 고행(苦行)을 해야 한다' 이렇게 혹 생각이 될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리고 과거에 많은 수행자들도 그렇게 고행을 위주로 해서 도를 닦은 분들도 있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는 대도를 성취하신 뒤 최초에 당신을 모시러 왔다가 결국은 당신과 더불어 같이 수행을 하고 있었던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비구들을 위해서 최초(最初)에 무슨 법문(法門)을 하셨느냐 하면은 지나치게 편안하고 사치에 빠져서 도를 닦는 것도 지혜로운 수행법이 아니지만, 동시에 지나친 고행(苦行) 위주에 수행도 지혜롭고 성스러운 수행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맨 처음에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道)는 너무 사치에 빠지고 편안한 데 빠져서 도를 닦아도 그 도는 올바른 수행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육체를 괴롭게 하는 것으로써 위주를 삼는 그러한 수행법도 지혜로운 수행법이 아닌 것입니다.

적당하게 먹여 주고, 적당하게 재워 주고, 적당하게 입혀 주는, 그러면서 우리가 정신(精神)을 차려야 할 곳은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는 우리의 그 생각,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야무지게 잘 단속(團束)을 하느냐’ 거기에다가 우리의 모든 정성을 집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 없이는 결단코 건전한 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건전한 정신이 없고서 올바르게 수행을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6년이라고 하는 긴 뼈아픈 고행 끝에 결국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고 흘러가는 강물에 가서 목욕을 하고, 목욕을 하고 나오자 마치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에 처녀가 수행인을 위해서 바치기 위해서 끓여 가지고 온 유미죽(乳糜粥) 한 그릇을 얻어 잡숫고, 그래 가지고 거기서 새 정신을 차려 가지고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서 정진을, 그 건강한 몸과 상쾌한 정신으로 도를 닦아서 드디어 대도(大道)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때 아까 말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의 비구들은 ‘대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단식(斷食)을 하고 그렇게 고행(苦行)을 하기로 해 놓고서 떠억 처녀가 갖다 바친 유미죽을 잡순 것으로 봐서 타락(墮落)을 했다. 벌써 변심(變心)을 했다. 그래 가지고 무슨 대도를 성취하겠느냐?’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러한 타락한 변절(變節)한 태자(太子)하고 우리는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이래 가지고 그이들은 태자 있는 데로부터 떠나 가지고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서 자기네끼리 공부를 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 다섯 비구들을 떠나보낸 뒤 계속해서 정진을 해 가지고 드디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 부처님 오신날은 정말 우리가 어떠한 최고의 방법으로 그날을 축복을 해 드리고 경축(慶祝)을 한다고 해도 모지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을 안 하셨다면 우리는 계속 '탐진치(貪瞋癡)와 오욕락(五欲樂)이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이다.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그것들이 전부다'고 하는 이런 데에 빠져 가지고 그것을 구하면 구할수록 탐진치에 불은 왕성히 타올라 가지고 계속 탐진치의 괴로운 불더미 속에서 헤매다가 죄(罪)를 짓고 그 죄 지은 죄로 인해서 다시 또 내생(來生)에 삼악도(三惡道), 육도(六道)를 윤회(輪廻)를 하면서 영겁(永劫)을 두고 고해(苦海)에서 헤맬 것을, 부처님께서 탄생을 하셔 가지고 그러한 위대한 묘법(妙法)을 설하셔서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백천만 겁에 몸을 바꾸어 나면서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이러한 행복의 씨를, 행복의 불을 너희들에게 주었으니 나에게 목숨을 바쳐라’ 이렇게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못 우리는 부처님께서 설해 주신, 가르쳐 주신 그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기특하게 생각하시고 기뻐하실 것이며, 그렇게 열심히 닦아 가지고 참나를 깨닫게 된다면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참아들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직 부처님께서 바라신 것은 오직 그것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이렇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등불을 모다 켜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복(福)을 받기를 소원을 하고, 소원성취하기를, 소원을 모두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빌기보다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그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날인가에 대해서 그것을 봉축하고 축하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실 것이며,

나아가서는 부처님께서 설해 주신 그 진리법, 그 진리법도 팔만대장경 팔만사천법(八萬四千法)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법인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참선법을 깊이 믿고 이것을 옳게 지도 받아서 열심히 실천을 하심으로써 우리의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완성을 해서, 영원히 생사 없는 진리를 이 몸으로 구현(具現)해서, 부처님의 등불을 이어 받아서 나 자신도 영원히 생사 없는 진리 속에서 하나가 되고, 일체 중생을 이 진리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자가 되는 것만이 오늘을 참되게 축복하고, 참되게 복을 받는 가장 올바르고 지혜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졌을 때 우리는 정말 크고 작은 모든 소원(所願)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것을 바래가지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옹졸한 원(願)을 세울 것이 아니라, 크고 두렷하고 원만하고 위대한 원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한다면 조그마한 원은 그 가운데 저절로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대승불교,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불공(佛供)하는 법이요, 기도(祈禱)하는 법이요, 축원(祝願)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불자(佛子) 여러분!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이야말로 우리가 이 몸을 새로 바꾸지 아니하면서 새로 태어날 날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생사는 육체 태어난 것으로써 생(生)을 삼고 육체 죽은 것으로써 죽음[死]을 삼는 이러한 생사관은 표면적(表面的)인 생사관(生死觀)에 지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사는 우리의...(녹음 끊김)


생사를 생사인 줄 알고 그 생사가 무섭고 중요한 것이라고 알고,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정신을 채려서 ‘이뭣고?’ 그 한 생각이 꺼질 때 퍼뜩 정신을 채려서 ‘이뭣고?’를 하고 이렇게 단속(團束)을 해 나간 사람에게는, 그이에게는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아니한 것입니다.


생사를 이 육체의 생사로만 생각하고 ‘앞으로 내가, 지금 한 이십 삼십이니까 앞으로 내가 적어도 사오십 년은 살 것이다’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생사가 두려운 줄 모르고 그럭저럭 살다가는, 정말 생사는 눈 한번 감었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때 아무리 후회를 하고 뉘우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질 때 그때 생사의 두려움을 느끼시고 생사의 무상(無常)함을 느끼시고 ‘이뭣고?’ 그때마다 ‘이뭣고’를 간절히 챙겨서 관조(觀照)를 하신다면 우리는 바로 그때그때 생사(生死)의 업(業)을 소멸(消滅)을 하고 생사(生死)의 인(因)을 짓지 않고 진리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한 생각을 단속하고 불법을 그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 참불법을 만난 사람이요, 그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 진짜 부처님 제자(弟子)요, 대복(大福) 무량(無量)한 복(福)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 진리를 믿고 이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는 아직도 참선이 좋다고 한 말만 듣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실천을 아니하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경신년 사월 초파일, 부처님 날을 기(期)해서 누구 못지않게 철저한 최상승(最上乘) 불자가 되어서 자기가 자기를 돌이켜 깨달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 있도록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부탁을 드리고자 한 말씀은, 앞으로 일주일이 지내면 음력 4월 15일, 양력으로 6월 1일 날이... 일주일이 지내면 음력 4월 15일 결제(結制)날이 됩니다. 결제는 여름 석 달 동안 특별 수련을 하는 참선(參禪) 기간입니다.

도로계획으로 이 절이 철거가 언제 될는지를 몰라서 여름결제를 망설였습니다마는, 우리는 단 한 달이라도 두 달이라도 또는 석 달이라도 우리가 모여서 열심히 정진해야만 하기 때문에 여름결제를 갖기로 결의(決意)를 했습니다.


신도 여러분들은 인연 따라서, 아마 전강 조실 스님께서 지으신 이 아래 선방(禪房)에서 결제(結制)를 갖는 안거(安居)는 금년 여름이 마지막이 되지 아니할까 생각을 합니다.

조실 스님의 법(法)을 추모(追慕)하는 불제자(佛弟子) 여러분들은 좁지마는, 좁고 어둡고 답답하지만 조실 스님의 입김이 서려 있는 그 소박한 선방에서 금년 안거를 가짐으로 해서 조실 스님의 위대한 법(法)에 은혜를 마음껏 받아서 그 가피(加被)로 대도를 성취하시게 되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매년, 매월 음력 24일에 법회(法會)를 가졌었습니다. 그 관음재(觀音齋) 법회를 가져 왔었는데 지난달부터는 양력 첫째번 일요일에 법회를 갖기로 변경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공서(官公署)나 직장에 다니신 불자님들도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機會)를 드리기 위해서 여러 신도분들의 여망(輿望)에 따라서 그렇게 변경을 하게 되았습니다. 그래서 아빠 엄마 누나 동생들 전부 손에 손을 맞잡고 이 법회에 첫째번 일요법회에 참석하셔서 온 식구가 고루고루 정법의 광명을 받아 가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혹 ‘일주일 동안 공사(公私) 간에 너무 신경을 쓰고 피로한데 나는 오늘 집에서 편안하니 쉬고 싶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렇다면 나도 법회에 못 가겠다' 이래 가지고 아빠 때문에 보살님까지 법회에 참석을 못 하신 분도 상당수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어떠한 방법을 쓰든지 어떠한 아양을 떨던지 잘 달래고 꾀수고 해 가지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법회에 같이 참석을 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남편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스럽게 받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

집에서 쉰다 해도 혹 몸은 좀 쉬어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절에 경건한 마음으로 같이 절에 와서 법문을 듣고 거기에서 좋은 말씀을 귀담아듣고서, 거기서 어떠한 인연에 맞는 감명 깊은 말씀을 듣고서 거기에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안식처(安息處)를 찾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루, 집에서 억지로 좀 침대에 누웠다 일어났다 뭐 책 좀 봤다 그러면서 쉰다면 그것이야말로 잠깐 동안 쉬는 것이 될 것이지만, 법문을 듣고 참선하는 법을 알아서 일생 동안 옳은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참나를 찾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무량겁(無量劫)을 편안하게 사는 길을 배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부인의 공덕이야말로 이 세상에 현모양처는 그 이상의 현모양처(賢母良妻)가 없을 줄 생각합니다. 남편을, 공사(公事)는 벼개공사가 제일이라는데, 법회에 모시고 나올만한 수단이 없어서 가지고야 무슨 지혜로운 주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일주일 후에 결제 때는 동시에 백일기도(百日祈禱)를 봉행(奉行)을 합니다. 백일기도에도 참석하시고 또 결제도 하시고 하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많이 오셔서 동참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등(燈)을 모다가 켜셨을텐데 연등을 켜신 분도 계시고, 또 이 주름등을 켜신 분도 계시고 합니다마는 무슨 등(燈)을 켜시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각기 인연(因緣) 따라서, 무슨 연등을 켰다고 해서 복(福)을 더 많이 받으신 것도 아니고, 주름등을 켰다고 해서 복을 적게 받은 것도 아닌 것입니다.

각기 성의(誠意)를 다해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우리의 부처님의 은혜를 보답하고 부처님의 광명을 우리 가정에, 내 가슴에 켠다고 하는 그러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등불을 켜시는 것이니까, 문제는 정성(精誠)이 중대하지 등(燈)의 모냥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부디 오늘 하루 경건한 마음으로, 유쾌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냄으로 해서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이 다 오늘로 다 소멸이 되시고, 영겁을 두고 꺼지지 않는 등불을 오늘 여러분의 가슴속에 켜신 채 오늘 하루를 뜻있게 보내시고 오늘부로 최상승(最上乘) 불자(佛子)가 되셔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을 하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20분45초~42분3초) (끝)





[법문 내용]


(게송)수지왕사일륜월~ / 불기(佛紀)에 대한 학설 /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眞理)의 모습.

지나치게 편안한 데 빠지거나, 지나친 고행의 양 극단이 아닌 지혜로운 수행 / 적당한 의식주와 '일어났다 꺼지는 우리의 그 한 생각을 어떻게 잘 단속(團束)하느냐’ 거기에다가 우리의 모든 정성을 집중해야.


부처님의 은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참나를 깨달아라' / 자신도 영원히 생사 없는 진리 속에서 하나가 되고, 일체 중생을 이 진리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자가 되는 것이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불공 기도 축원하는 법이다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질 때가 생사(生死), 그때마다 ‘이뭣고’를 간절히 챙겨라 / 법회 참석의 중요성.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무엇을 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셨는가?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느냐? 우리 중생들도 부처님과 조끔도 다름없는 만고(萬古)에 꺼지지 않는 영원한 등(燈)을 가지고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그 등에 불을 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부처님께서 설하시고자 한 법은 팔만대장경에 기록된 그것만이 아니고,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眞理)의 모습인 것입니다.


종이로 쓰여 있는 경전만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의 전부(全部)라고 생각하신 것은 부처님의 진리를 잘 이해를 못하신 사람의 보는 바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참으로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 가운데에는 성현(聖賢)의 말씀뿐만이 아니고, 착하고 아름다운 소리뿐만이 아니라 욕을 하는 소리, 듣기 싫은 소리, 요새 공해(公害)로 공장에서 울려 퍼지는 그런 소리까지도 전부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최고의 진리의 일면(一面)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 갈 때 우리는 온 육도법계(六道法界)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설법(說法)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종이로 된 경전만이 경전인 줄 알고 그 경전(經典)에 집착(執著)하고 밤낮 그것을 뒤적거리고 그것을 읽고 외우는 것만이 부처님의 경전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은 코끼리의 코를 만져본 장님이 ‘코끼리는 구렁이같이 생긴 것이다’ 하고 집착을 하고 우기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도(道)는 너무 사치에 빠지고 편안한 데 빠져서 도를 닦아도 그 도는 올바른 수행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육체를 괴롭게 하는 것으로써 위주를 삼는 그러한 수행법도 지혜로운 수행법이 아닌 것입니다.

적당하게 먹여주고, 적당하게 재와주고, 적당하게 입혀주는, 그러면서 우리가 정신(精神)을 차려야 할 것은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는 우리의 그 생각,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야무지게 잘 단속(團束)을 하느냐’ 거기에다가 우리의 모든 정성을 집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질 때 그때 생사의 두려움을 느끼시고 생사의 무상(無常)함을 느끼시고 ‘이뭣고?’ 그때마다 ‘이뭣고’를 간절히 챙겨서 관조(觀照)를 하신다면 우리는 바로 그때그때 생사(生死)의 업(業)을 소멸(消滅)을 하고 생사(生死)의 인(因)을 짓지 않고 진리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한 생각을 단속하고 불법을 그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 참불법을 만난 사람이요, 그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 진짜 부처님 제자(弟子)요, 대복(大福) 무량(無量)한 복(福)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주말에 집에서 쉬는 것은, 혹 몸은 좀 쉬어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법회 때, 경건한 마음으로 같이 절에 와서 법문을 듣고 거기에서 좋은 말씀을 귀담아 듣고서 거기서 어떠한 인연에 맞는 감명 깊은 말씀을 듣고서 거기에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안식처(安息處)를 찾는 것’이 될 것입니다.


법회에 참석을 해서 법문을 듣고 참선하는 법을 알아서 일생 동안 옳은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참나를 찾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무량겁(無量劫)을 편안하게 사는 길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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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