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00/(101~125)2021. 1. 21. 08:26

 

 

((No.102))—1979년 하안거결제 법회(79.06.09) (62분)

 

 

 

 

 

 

(1/3) 약 22분. (2/3) 약 20분. (3/3) 약 20분.

(1/3)----------------

 

오늘은 기미년 여름 안거에 결제(結制)날입니다. 본래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를 하는 것이 준례였지만, 금년에는 유월에 윤달이 들어서 한 달을 늦추어서 5월 15일에 결제를 해 가지고, 음력 7월 15일에 해제(解制)를 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2월 28일에 본인은 미국 뉴욕주립대학에 초청으로 일 년간 학생과 교수 직원들에게 참선을 지도해 줄 것을 목적으로 해서 초청을 받아 가지고 미국을 갔다가 지난 6월 3일 날, 지난 일요일 날 귀국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여러 법보제자님들께 인사를 하고 그리고 떠나야 할 것이었지마는 공연히 번폐스러운 것을 막기 위해서 조용하게 갔다가 지난 일요일에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께 이렇게 보고에 인사를 하더라도 별 번폐스러울 것이 없기 때문에 간략히 인사를 아울러서 드릴까 합니다.

 

뉴욕주립대학에 불교학 교수로 있는 박성배 박사의 주선으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뉴욕주립대학은 미국에 있는 많은 대학 가운데에 가장 불교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대학으로써 대학 내에 불교 도서관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그러한 대학입니다.

더군다나 대학 근처에 120에이카(acre, 약 14만7천평)나 되는 광대한 숲을 가지고 있는, 땅을 가지고 있는 그 안에 보리정사라고 하는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은 중국인 실업가인 시티쉔 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 절을 세우고 그 절에 세계에 고승을 초빙해다가 이 학생들과 그 교수 그리고 스토니브룩 주변에 있는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불교를 선양하기 위해서 그 마련된 사원입니다.

 

일 년간 초청을 받았지마는 내 사정이 한국을 너무 오래 떨어져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사정이 있으므로 겨우 석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몇 차례 강의를 하고 그리고 그 보리정사에서 그 학생과 교수들이 와 가지고 3일 동안 특별수련대회를 가졌습니다. 수련대회를 갖는 동안 좌선과 또 참선에 대한 설법(說法)과를 잘 시간을 짜 가지고 적절히 수련대회를 진행을 해서 그 사람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이들은 이미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발간된 선(禪)에 관한 서적들을 읽은 사람도 많았었고, 실지로 그런 일본 승려들에 의해서 참선을 해 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마는, 대부분 사람들이 다리가 오그라지지 않아서 대단히 고생들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무릎과 허리, 몸의 아픔을 참으면서 너무나도 진지하게 3일 동안의 수련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 3일을 마치고 마지막 시간에는 그동안 강의와 수련대회를 통해서 느낀 그 소감을 적어 내라고 해서 그것을 보고, 그리고 가지고 왔습니다마는 전부 그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목이 아프고 그랬지마는 일생 동안 인격을 도야하기 위한 바른길을 알게 된 데에 대해서 모다 감명 깊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 법회 때마다 말씀드린 그러한 요지를 간추려서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또 그것을 실천하도록 했습니다마는 그 사람들은 의식구조라든지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너무 동떨어진 바가 있어서 여간해서 이해시키기가 곤란했습니다.

또 한 가지 애로점은 내가 하고자 한 말을 직접 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통역(通譯)을 통해서 말을 하게 됨으로 해서 그것이 퍽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마는, 박 교수가 잘 통역을 해서 상당히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마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그 사람들에게 심어 주고 온 것을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몇 차례 더 수련대회를 갖고 더 많은 설법을 해 준다면 자기네들은 보다 더 깊이 참선을 이해하고 또 실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더 오래 머물러 줄 것을 모두 다 요청을 했고, 또 다른 과 학생들도 자기네들에게 참선에 대한 강의를 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나름대로 여기서 떠날 때 그렇게 오래 있을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결제 안에 가볍게 돌아올 것을 예상을 하고 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간절한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채 귀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이들은 내년이나 내후년(來後年)이라도 또 와서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아직 현재로써는 그러한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보고 있지 않습니다마는, 바닷물을 온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만 바닷물이 짠 것을 바닷물의 맛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만 찍어서 혀끝에다 대 봐도 바닷물의 맛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짧은 설법을 들었지마는 그것이 최상승 활구법이요, 불교에 진수라고 하는 것을 성의를 다해서 말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정말 밤중에 기둥에다가 이마를 부딪친 것처럼 눈이 번쩍 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관절 이 기둥이냐? 벼람박이냐? 몽둥이냐? 무엇이 와서 느닷없이 마빡을 갈겼는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하지도 말라. 이론적으로 따지지도 말라. 알려고 하지도 말라. 더듬어 볼려고 하지도 말라. 망상도 일어나는 망상을 없애려고 하지도 말아라. 또 망상을 따라가지도 말아라'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만 하라고 하니 그 사람들로서는 도대체 그런, 수수께끼도 아니고, 무슨 철학도 아니고, 도대체 그런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이렇게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탈(解脫)해서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역설했지마는 '도대체 그렇게 해 갖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 이렇게 질문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배불리 밥 먹고, 뜨뜻하게 입고, 그리고 주말이면은 배를 타고 바다로 호수로 놀러가고, 등산을 하고, 춤을 추고, 인간으로서 아무런 부러울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는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참선을 하나의 취미로 오락으로 재미로 그렇게 해 보려고 하는, 경험 삼아서 한번 좋다니까 해 보려고 하는 그런 사람도 한두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고 강의와 법회가 진행이 되고 수련대회 하루 이틀이 지내는 동안 처음에는 장난으로 취미로 오락으로 했던 사람들까지도 정말 그 부러질 것 같이 아픈 다리와 허리의 아픔을 참으면서 진지하게 마지막까지 버텨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태어날 때부터서 1600년 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로 신라, 백제, 고려, 이조를 통해 오면서 면면(綿綿)히 불법(佛法)이 이 땅에서 커 왔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에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는 불교에 향내가 배어 있고, 우리의 몸안에는 명명(明明)히 뛰고 있는 우리의 피속에 불법(佛法)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법을 나면서부터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크면서 몇 번 안 들어서 불교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게도 됩니다마는, 그러나 앞으로는 물질문명의 최첨단에 있는 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목이 마르도록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불법이였습니다. 또 그렇다고 하는 것을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 선구자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이 이제 들어가 가지고 겨우 초기에 지나지 못하지만 머지않아서는 우리보다도 오히려 더 열렬하게 불법을 믿고 목마르게 받아들이면서 깨달음으로, 깨달음으로 달려가리라고 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선조(先祖)에 유산으로써 간직하고 있을 뿐, 정말 목마르게 이것을 찾고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반가운 중을 모르고 있지 않나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제 새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정말 한 번 맛봤다 하면은 목숨 바쳐서 실천을 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오십 년이나 백 년 뒤에는 미국 사람들이 우리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나올 때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정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문명(物質文明)에 있어서도 그 사람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상 때부터서 가지고 있는 불교의 정신, 불교의 진리를 그것마저도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주지를 못하고, 가르키지를 못하고, 어름어름하고 지내다가 마침내는 그 사람들이 또 그것마저도 우리를 가르키기 위해서 온다면 우리는 어디다가 얼굴을 들고 살 것인지, 우리는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서 부처님 제자로서 실참실오(實參實悟), 실다웁게 참선을 하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나 자신의 생사해탈(生死解脫)은 물론 온 세계 인류,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데 앞장을 서야 할 줄 생각합니다.

 

 

금방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원래 우리가 갖추어 있는 진여불성, 본래 생사 없는 그 해탈 도리, 어째서 우리는 미(迷)했나? 왜 미(迷)해 가지고 이렇게 생사윤회를 하고 있나? 어떻게 하면 본래 가지고 있는 진여불성을 깨달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간곡한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석 달 동안 하안거(夏安居) 정진(精進)이 시작이 됩니다. 여름 석 달은 비가 오고, 너무 더웁고 해서 행각(行脚)을 하면서 수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름 석 달 동안, 그리고 겨울 석 달은 너무 춥고 그래서 또 숲속이나 산에서 도를 닦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이러한 선원(禪院)에 모여서, 정사(精舍)에 모여서 정진을 하도록 마련된 것이 하안거, 동안거입니다.

 

오늘부터서 하안거가 시작됩니다마는 날씨는 더워서 찌고, 죽비(竹篦)를 치고 앉았다 하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땀이 등으로 줄줄줄줄줄 흘러내려서 궁딩이가 척척하니 젖는 날이 계속이 될 것입니다. 궁딩이에는 땀띠가 더덩캥이가 지고,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한 생각 놓칠 새라 칼끝을 턱 밑에다 괴우듯이, 그런 이를 갈아붙이고 정진을 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혼침(昏沈)에 빠지고, 혼침에서 겨우 깨어날 만하면 천 사량(思量), 만 가지 망상(妄想)이 퍼일어나서 산란(散亂) 속에서 살림을 하다가 또 그 생각이 겨우 가라앉을 만하면 또 혼침에 빠지고, '어떻게 했으면 이런 혼침과 산란 속에서 여일(如一)하게 정진을 할 수가 있는가?' 이것이 오늘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중대한 숙제가 될 것입니다.(처음~21분27초)

 

 

 

 

(2/3)----------------

 

어떻게 하면 혼침 속에서 혼침을 이겨낼 수 있느냐?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일직선으로 코스를 정해 놓고 왔다갔다하면서 5분 내지 10분 동안 포행(布行)을 하면 혼침도 달아나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후련해지고, 다시 또 그 자리에 가서 또 정진을 할 것이여.

정진을 하다가 또 혼침이 오면 허리를 쭉 펴고—혼침이 올 때에는 언제든지 허리가 꾸부러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허리가 꾸부러지므로 해서 혼침이 오는 것이고, 혼침이 왔다 하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허리가 꼬부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벼운 혼침은 허리를 쭉 척량골(脊梁骨)을 버티고, 정신을 바짝 차림으로 해서 달아나지만, 워낙 혼침이 무거운 놈이 오면은 천상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포행을 하거나, 찬물에 세수를 하거나, 이렇게 해서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일어나기가 수선스럽다 해서 앉아서 계속 코를 골면서 혼침 속에서 한 시간 두 시간을 지낸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또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이겨나야 하냐?

 

일어나는 생각을 안 할려고 하고, 누를려고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입니다. 일어나는 생각, 그 생각은 별별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내간 이야기, 어렸을 때 이야기, 지금 집에 애가 학교서 왔냐, 안 왔냐? 출장간 남편이 돌아왔냐, 안 왔냐?' 별별 생각이 납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차츰차츰 생각 따라서 파고 들어가다 보면 정말 재미가 꽤 있는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차츰 차츰 차츰 더듬어 들어가다 보면 정말 시간이 10분, 20분은 어떻게 간 중 모르게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퍼뜩 정말 그 생각을 그만두기가 아까울 정도로 지나간 자미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퍼뜩 '아! 내가 또 속았구나' 한 생각도 할 겨를도 없이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을 떠억 하면서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생각을 쫓을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생각은 고대로 그냥 놔두고 화두만 척! 추켜든다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버릴려고 하지 말고, 누를려고 하지 말고, 다못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 든다고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지혜스럽게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을 처리해 버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참선 중에 지나간 인상 깊었던 일이 생각난 것은 차라리 어떨런지 모르지만, 지나갔던 아주 기분 나빴던 고약한 사건들이 떠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척량골을, 등뼈를 쭉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한다면 혼침도 거기에는 붙지 못할 것이고, 아까 일어났던 그러한 생각들도 자취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어도 그러한 생각들이 잘 물러가지를 않고 집요하게 그런 생각이 퍼일어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자꾸자꾸 한 달, 두 달, 일 년, 삼 년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진지하게 정진을 계속해 나가면 간단하게 화두가 거각이 되면서 그러한 산란심, 망상심, 번뇌심은 쉽게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함으로 해서 거기서 습관이 되고, 습관이 장차는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무의식 속에 되어지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기술도 역시 마찬가지고, 운동도 마찬가지고, 어떠한 생활상에 있어서의 습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되어지게끔 되는 것입니다.

 

역시 참선(參禪)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어도 금방 화두는 간 곳이 없고 온갖 생각이 퍼일어나고, 또 들어도 또 그렇고 이렇지마는 차츰차츰 오랜 세월 동안 해 나가면 반드시 제절로 되어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은 이것을 말하기를 '숙처(熟處)는 생(生)하고, 생처(生處)는 숙(熟)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익은 것은 설어지고 생(生)해지고, 생한 것은 익어진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이 익은 것이 생(生)해지냐?

무량겁으로 익혀 온 번뇌 망상은 익어 있는 것이고, 지끔 시작해서 하는 참선 화두는 설어 있다 그 말이여. 생(生)해 있다. 생소(生疏)하다 이 말이여.

그 아주 익어 있던 번뇌 망상은 차츰차츰 안 해지게 되니까 생소해지고, 지끔 시작한 참선은 우선은 생소하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렇게 애써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익숙해진다 이것입니다. 익숙해지면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단계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 처음 시작할 때처럼 그렇게 답답하고, 맛없고, 못 견디게 괴로운 것이라면 어떻게 이것을 「안락(安樂)의 묘문(妙門)」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해 가면서 차츰차츰 습관이 되고, 그래서 체질화가 되면 할려고 안 해도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어지고, 화두가 성성적적하게 들어지므로 해서 번뇌와 망상도 자취 없이 수그러지게 되고, 나아가서는 몸도 가벼워지고, 오랜 만성병(慢性病)도 약도 별로 먹지도 아니했는데 언제 낫은 중 모르게 차츰차츰 낫어지게 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바빠서 못 한다. 아직은 애들을 다 가르켜 놓고 다 결혼을 시켜 놔야지, 아직은 그런 일들이 복잡해서 할 겨를이 없다' 이런 말씀들을 하십니다마는 그런 말씀은 참선에 대해서 아직 잘 이해를 못 하신 탓으로 해서 그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모든 일 끝내 놓고, 병 다 고쳐 놓고 그리고 늙발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은 한 숨, 호흡 들어마셨다 내쉬었다—'일평생 동안 너는 몇 번 동안 숨을 쉬다가 죽어라', '나는 몇 반 동안 호흡을 쉬면 죽는다'고 하는 것이 결정이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숨 한 번 쉴 때마다 자기의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통해서 될 수 있으면 호흡을 천천히 쉬어서 횟수를 줄일 것이고, 그 호흡이 한 호흡, 한 호흡 줄어질 때마다 헛되이 지내지 말고, 그 호흡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잊어버리지 말고 화두(話頭)를 잘 거각(擧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화두를 놓쳐 버리고 공연히 숨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면 피땀 흘려서 벌어 논 돈, 한 군데도 쓸모 있게 쓰지 못하고 돈을 갖다가 풀풀풀풀풀 바람에 날려 버리는 미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억지로 참아 가지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있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제 말뜻을 잘 못 알아들으신 분입니다.

 

단전호흡은 어디까지나 무리가 없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깊이 수르르르르~ 들어마셨다가, 억지로 시계를 보고 20초, 30초, 50초, 1분 이렇게 손바닥으로 콧구먹을 막고 참으라는 게 아닙니다. 들어마신 호흡을 2-3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호흡이 길어져야지, 억지로 호흡만 참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호흡만 참을려고 하는 사람은 뭔 사람과 같으냐 하면은 '내가 이 피땀 흘려서 번 돈이니까 이것은 남편이 죽어도 이 돈은 못 쓴다' 꽉! 오그려 쥐고 금고 열쇠를 열지 아니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번 것은 요긴한 데 쓸려고 버는 것이여. 아무리 애끼고 싸 놔 봤자 죽을 때 한푼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여. 아무리 애끼고 오그려 싸도 돈이 나갈 때가 되면 이상한 이유가 생겨 가지고 내 몸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부자가 될라면 오그려 쥐면 부자가 될 것 같지만 아무리 오그려 쥐어도 돈은 나갈 때 되면 나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쓸 때 올바르게 쓰면 바로 그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 될 것입니다. 올바르게 쓰면 다시 그것이 자본이 되어 가지고 또 돈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좀 있기는 있지마는, 나중에 많이 벌어 가지고 내가 솜씨 있게 돈을 좀 쓰리라' 그래서 우선 좀 생긴 돈이 있지마는, 나중에 크게 쓰기 위해서 오그려 싸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던지 이러한 법문(法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젖을 짜 먹는 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젖을 짜서 식구대로 노나 먹고, 노나 먹고 해서 아주 맛있는 우유를 짜 먹었는데, 며칠 후에 큰 잔치가 있어서 많은 손님들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짜 먹다가는 그때 손님이 왔을 때 충분히 대접을 할 수가 없으니까 며칠 동안을 젖을 짜 먹지 아니하고, 그 젖이 소 뱃속에 많이 고여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지난 뒤에 잔칫날이 돌아와서 큰 널벅지를 몇 개를 갖다가 놓고 식구대로 달라들어서 젖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짜도 평소에 나오는 양 이상은 별로 나오지를 안 했습니다. 그 젖은 짜야, 짜야 또 고이고 짜야 또 고이고 하는 법이지, 짜지 않고 놔둔다고 해서 널벅지로 그렇게 많은 젖이 소 뱃속에 고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번 재산도 번 쪽쪽 작게 벌면 작게, 많이 벌면 많게,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보시를 하던지, 돈 없어서 공부 못한 사람에게 학비를 대주던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돈 없어서 고치지 못한 사람을 곤쳐 주던지, 또는 어떤 불사(佛事)에 시주(施主)를 하던지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적게 하고, 또 부자는 부자대로 넉넉히 하고, 많고 적은 것은 그 사람 형편에 있는 것이지 그 정성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이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한 등(燈),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이라는 말씀도 있는 것입니다.

 

참선하는 데 있어서 호흡도 한번에 오랫동안 참을려고 할 것이 아니라, 숨이 가쁠 때는 가쁜 대로 또 오랫동안 조용하게 앉았으면 상당히 호흡이 조용하고 안정이 되면 그때는 그런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조끔도 부담 없이 부담 없이 호흡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길게 그리고 조용하게 호흡을 하면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 번 들어마셨다 내쉬는 시간이 10초 또는 8초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걸어 다니거나 달음박질하고 난 뒤에는 5초도 못 되게 가슴이 헐근헐근합니다. 그때는 그런 대로 하고. 또 숨이 긴 사람은 15초, 20초 내지 30초까지도 가는 사람도 있고, 요가를 평생 동안 한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을 숨 한 번도 안 쉬고 있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가의 전문가, 요기(yogi)들은 일주일 동안을 큰 물통 속에다 넣고 그 뚜껑을 단단히 닫아 놓고 나서 일주일 동안 뒤, 일주일이 지난 뒤에 그 뚜껑을 열고 꺼내니까 조끔도 상관이 없이 나와서 다시 숨을 쉬는 그러한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책에서 봤습니다.

 

호흡은 자기의 분(分) 따라서, 체질 따라서 하되 수루루루 들어마셨다가 잠깐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공부를 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뭣고?' 다 내쉬었으면 또 수루루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진 상태에서 2-3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시작한 사람은 숨 내쉴 때마다 화두를 한번씩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여러 날, 여러 달 해서 익숙해지면 숨을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쉴 때 들어 가지고, 그다음 들어마실 때도 고대로 '이뭣고?~'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하는 가운데, 몇 차례고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고, 들어마셨다 내쉬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화두가 고대로 들려 있기만 한다면 자꾸자꾸 들어쌀 필요가 없습니다.

숨을 한 열 번, 스무 번, 들어마셨다 내쉬고, 들어마셨다 내쉬면서도 한 번 들은 화두(話頭)가 고대로 딱 들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21분28초~41분34초)

 

 

 

 

(3/3)----------------

 

그렇게 해서 정진을 해 가면 나중에는 아침에 새벽에 한 번 따악 들었던 화두가 종일 화두가 들어져 있는 수가 있습니다. 밥 먹을 때도 고대로, 자꾸 들지 않아도 들어져 있어요.

저녁에 잘 때도 화두가 따악 들어져 있는 채로 잠을 자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딱! 떠도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들고 자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알뜰히 알뜰히 정진하신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러한 경지(境地)가 오게 됩니다. 그러한 경지가 와서 일주일이 그런 상태로 계속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됩니다.

비로소 자기에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불조(佛祖)에 패궐처(敗闕處)를 보게 됩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에 안목을 일시에 투탈(透脫)하게 됩니다.

 

할 수가 있고, 반드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조사(祖師)들이 한결같이 그렇게도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라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불보살(佛菩薩)이 자비(慈悲)가 넘쳐흐르신다 해도 이것만은 우리 대신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공부하는 이 길만을 일러주실 뿐 우리 대신 깨달라 주실 수가 없습니다.

불보살이 아무리 자비가 있으시다 해도 우리가 지어 놓은 업(業)을, 업으로 받아야 할 무간지옥(無間地獄)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우리 대신 벗어 주실 수는 없습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만을 길만을 우리에게 가리켜 주실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그 우리가 지은 업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소멸을 해야 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간지옥에 옥문(獄門)을 때려 부셔야 합니다.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또 저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내가 나를 깨닫는 가장 간단하고 요긴한 길」에 대해서, 방법에 대해서 잘 이해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이 석 달 동안 선방에서 공부하신 스님네나 보살님네는 그동안에 일어나는 좋은 일, 나쁜 일, 기뻤던 일, 속상했던 일, 우리 뜻에 맞는 일을 순경계(順境界)라 하고, 우리 뜻에 맞지 않는 일을 역경계(逆境界)라 합니다. 우리 뜻을 거슬리는 경계라 합니다.

순경계를 만났을 때 좋아하지 말고 오히려 아픈 채찍을 자기에게 가하면서 정진을 가다듬을 것이며, 어떠한 종류에 역경계를 만나더라도 이것이 바로 불보살(佛菩薩)이 우리로 하여금 정신차리도록 하시기 위한 채찍이라 이렇게 생각하시고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서 화두를 거각해 나가실 것입니다.

 

가정에서 계시는, 공부하시는 보살님네들은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꼭 절에 와서 선방에만 앉아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선은 때와 장소가 없습니다. 참선하는 방법을 옳게만 알고 있다면 오히려 역경계, 역경계가 더 많이 있는 가정이 훨씬 더 공부하기에 좋은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가정이 살기가 편안한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 늦게 일어나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고,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도 없고, 괴로우면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낮잠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아무리 침대가 편안하다 해도 숨, 자꾸 나도 모르는 새에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자꾸 지내가 버리면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한숨 잘 자고 났더니 죽음만 성큼 다가선 결과가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오히려 이를 악물고 그 시간 시간,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내지 1시간 또 일하면서 애들 돌봐주면서, 남편 돌봐 드리면서, 어디 일이 있어서 출타하면서, 차중(車中)에서, 걸어가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그때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들어가기 전에 첫째 생각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오히려 좁은 방에 푹푹 뜨는 방에 앉아서 억지로 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졸다가 망상을 부리다가 하기보다는, 정 더울 때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워도 한 번 하고, 그러고 나와서 시원하니 선풍기도 틀어 놓고 앉아서 터억 '이뭣고?'를 한번 해 보시란 말씀이여.

 

'선방에서 금년에는 가서 좀 왔다갔다하면서 하려고 했더니 석 달 한 사람만 받는다고 인자 인심이 많이 고약해졌구나'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분하거들랑 '나는 차라리 이 좋은 데서 선풍기 틀어 놓고 한바탕, 절에 계신 분 몇 배의 능률을 올리신다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시다가 한 소식 하시거나,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선지식을 찾아서 점검을 받으실 것이고.

 

별일이 없으면 집에서 하루하루 카렌다에다가 오늘부터서 똥그래미를 하나씩 딱딱 치시거든. 저녁에 주무실 때 '오늘 하루는 내가 얼마만큼 단속을 했던가? 정말 헛되이 보냈던가? 내게 지정된 호흡을 몇 번 쉬는 동안에 그만큼 효과적으로 투자를 했나? 낭비를 했나?' 똥그래미와 사각과 삼각과 가위표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표를 정해 놓고,

백점 만점 잘했을 때는 똥그래미를 표하고, 아조 잘못했을 때에는 가위표를 하고, 오늘은 그래도 조끔 괜찮게 되었다 싶을 때는 세모꼴 삼각으로 딱하고, 조끔 더 잘하면 사각으로 하고, 조끔 더 잘하면 아주 잘했으면 똥그래미를 하고.

이렇게 해서 표를 딱 해 놓고 하루하루 표를 해 나가면서 공부를 다잽이하신다면 정말 금년 여름철이 무량겁을 통해서 정말 보람 있는 한 철이 될 수 있을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요긴한 말씀, 언제나 법회 때마다 해 드리는 말씀, 들을 때는 '아, 그렇게 해야겄다'

금방 문밖에 나가면 밥부텀 잡술라고 쫓아가시고, 절에 있는 동안에는 조끔 괜찮다가 금방 문밖에 나가면 '곗돈이 어쪘고, 무슨 어쩌고저쩌고...' 집에 가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그렇게 세월을 보내시다가는 정말 뒷날 통곡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오늘 이렇게 들은 말씀을 여러분들이 믿지를 않고 실천을 아니한다면, 내생에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아무리 한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이것으로써 오늘 말씀을 마치고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 중대한 알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 생존 시부터 조실 스님 밑에서 조실 스님 상좌로 그 총무의 직책을 맡아서 정말 위법망구적(爲法忘軀的)으로 정말 진실하게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사중 일을 잘 보다가 또 조실 스님이 열반을 하신 뒤에도 5년간 계속해서 조실 스님 계실 때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일을 봐 오신 상법 스님이, 그동안에 조실 스님 계실 때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안 했고, 신도님네들도 별로 그렇게 많지를 않고 그래서, 그리고 또 대부분 또 그 머리 아픈 일은 조실 스님이 스스로 다 그런 일들을 다 처결을 하시고 해서 그저 간단한 것만 이렇게 말씀대로 해 드리면 되았었습니다마는,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이렇게 조실 스님의 법력을 추모해서 이렇게 신도님들이 많이 불어나시고 그래서 일이 몇십 배가 불어났습니다.

 

더군다나 내가 이름만 원장(院長)을 띠고 있었지, 모든 원장이 해야 할 일을 전부를 총무 스님이 독으로 짊어지고 그 일을 주야를 가리지 아니하고 동분서주하면서 그 일을 잘 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나는 이름만 띠고도 이렇게 용화사 일이, 용화사가 이만큼 아무 지장이 없이 이렇게 잘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온전히 말 한마디 없이 묵묵한 가운데에 그 복잡한 사중에 일을 잘 처리해 준 상법 스님의 그 공로라고 높이 치하를 하고, 여러분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너무 지쳐서 총무에다가, 원장에다가, 총무에다가, 재무에다가, 원주에다가, 별좌에다가, 서기에다가,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 맡아서 해 왔었습니다. 너무 지쳐서 병이 났습니다. 열이 오르고 머리는 툭툭툭툭툭 열이 상충해서 터지고, 골치가 뽀개질라고 그러고, 신경통이 생겨서 무릎은 저리고, 그래서 식사도 잘 못할 정도로,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그렇게 지나치게 지쳤습니다.

벌써 작년 그러께부터서 '제발 나를 좀 쉬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정말 이 일은 총무 스님이 아니고서는 누구한테 적당한 사람한테 맽길 수가 없고 그래서 차츰 '누구 적당한 사람 생길 때까지 조끔만 더 참아라. 조끔만 더 참아라' 한 것이 한 철 두 철 하다가 이렇게 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본인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내가 들어주지는 않고 조끔만 참으라 하니, "니가 조실 스님을 생각해서라도 좀 참아야지, 그런 것 하나를 못 참아 갖고 그래 조실 스님의 제자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도저히 내가 응하지를 안 하니까,

내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 일을 대충대충 모다 다 봐서 다 작성을 다 해서 마무리를 해 놓고는 내가 오자마자 살모시 도망가다가, 비오는 날 도망가다가 나한테 붙잡혔습니다. 강제로 여러 사람이 띠미다시피 해서 방에다 모셔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얘기를 하고 간신히 가라앉혀서,

"결제 때까지만 기달려라. 지지리 애쓰고 애쓴 뒤에 밥 다 먹고 마지막에 콧방울 떨어지듯이 그렇게 애써 놓고 갈 때, 가면 니가 무슨 허물이 있어서 도망갔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한테 단단히 감정이 있어 가지고 간 사람 밖에 더 되냐? '내가 괄세하고 잘못해 가지고 갔다'고 신도마다 다 나한테 원망을 할 테니, 내가 그 인사 받기 싫으니까 결제 때까지 참아서 결제 때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가면, 가더라도 내가 그때야 왜 내가 막으며, 가면 조실 스님 상좌가 아니고 용화사 스님이 아니겠냐? 가서 쉬어 가지고 다시 와서 또 여기 와서 공부해야지 어디를 갈 것이냐?" 이렇게 해서 할 수 없이 오늘 이 날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임으로는 용화사 대중으로 조실 스님 계실 때, 조실 스님의 법은을 입은 지끔은 저 경기도 여주 그 서래암에 조용한 데서 그 산 좋고, 물 좋고 거기는 신도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아니한 그런 조용한 절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조실 스님의 제자, 우리 권속입니다.

그저 급히 사람을 보내 가지고 오게 해 가지고,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내가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명령을 하니까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와서 일을 좀 보도록 했습니다. 총무 스님의 후임으로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10년간 너무나도 진실하고, 착실하고, 말도 잘 하지도 않고 삐긋이, 얼굴 벌게 갖고 삐긋이 웃으면 그만인 그런 총무 스님에 정이 들을 대로 들었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좀 쉬러 가는 것이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또 후임이 똑 쑥떡 같은 사람이 하나가 왔습니다. 아조 진실하게 일을 잘 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전과 다름없이 무엇이던지 잘 의논을 하시고 하신다면 용화사는 앞으로 그전과 다름없이 잘 선방이 되어 갈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두 분이 앞으로 나와서 인사... 박수로써 환영을... (41분35초~61분36초) (끝)

 

 

 

 

[법문 내용]

 

미국 뉴욕주립대학에 박성배 교수의 추천으로 초청을 받아 약 3개월간 미국 스토니브룩에서 학생 교수에게 불교의 진수인 활구참선법을 가르치신 말씀 / 미국 사람들은 목마르게 불법(佛法)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50년 100년 뒤에는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우리들을 불법을 가르키기 위해 오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혼침을 이겨낼 수 있느냐? 가벼운 혼침은 허리를 쭉 려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무거운 혼침은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포행을 하거나, 찬물에 세수를 한다 /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하냐? 일어나는 생각을 버릴려고 누를려고 쫓을려고 하지 말고, 다못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 든다. 이것이 가장 지혜스럽게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을 처리해 버리는 방법.

 

고인(古人)은 '숙처(熟處)는 생(生)하고, 생처(生處)는 숙(熟)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익은 것은 설어지고 생(生)해지고, 생한 것은 익어진다'--->아주 익어 있던 번뇌 망상은 생소해지고, 참선은 우선은 생소하지만 애써 해 나가다 보면 익숙해져서 저절로 되어진다.

화두순숙, 의단독로가 일주일이 그런 상태로 계속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고, 반드시 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

 

순경계(順境界), 역경계(逆境界) / 참선은 때와 장소가 없습니다. 참선하는 방법을 옳게만 알고 있다면 오히려 역경계가 더 많이 있는 가정이 훨씬 더 공부하기에 좋은 것 / 총무 스님의 소임 잘 본 것에 대한 공로 치하와 새 총무 스님과의 교대 인사.

 

 

일어나는 생각을 쫓을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생각은 고대로 그냥 놔두고 화두만 척! 추켜든다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버릴려고 하지 말고, 누를려고 하지 말고, 다못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 든다고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지혜스럽게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을 처리해 버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역시 참선(參禪)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어도 금방 화두는 간 곳이 없고 온갖 생각이 퍼일어나고, 또 들어도 또 그렇고 이렇지마는 차츰차츰 오랜 세월 동안 해 나가면 반드시 제절로 되어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은 이것을 말하기를 '숙처(熟處)는 생(生)하고, 생처(生處)는 숙(熟)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익은 것은 설어지고 생(生)해지고, 생한 것은 익어진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수가 있고, 반드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조사(祖師)들이 한결같이 그렇게도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라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불보살(佛菩薩)이 자비(慈悲)가 넘쳐흐르신다 해도 이것만은 우리 대신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공부하는 이 길만을 일러주실 뿐 우리 대신 깨달라 주실 수가 없습니다.

 

순경계를 만났을 때 좋아하지 말고 오히려 아픈 채찍을 자기에게 가하면서 정진을 가다듬을 것이며, 어떠한 종류에 역경계를 만나더라도 이것이 바로 불보살(佛菩薩)이 우리로 하여금 정신차리도록 하시기 위한 채찍이라 이렇게 생각하시고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서 화두를 거각해 나가실 것입니다.

 

집에서 하루하루 카렌다에다가 오늘부터서 똥그래미를 하나씩 딱딱 치시거든.

저녁에 주무실 때 '오늘 하루는 내가 얼마만큼 단속을 했던가? 정말 헛되이 보냈던가? 내게 지정된 호흡을 몇 번 쉬는 동안에 그만큼 효과적으로 투자를 했나? 낭비를 했나?' 똥그래미와 사각과 삼각과 가위표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표를 정해 놓고,

백점 만점 잘했을 때는 똥그래미(O)를 표하고, 아조 잘못했을 때에는 가위표(X)를 하고, 오늘은 그래도 조끔 괜찮게 되었다 싶을 때는 세모꼴 삼각으로 딱하고, 조끔 더 잘하면 사각으로 하고, 조끔 더 잘하면 아주 잘했으면 똥그래미를 하고.

이렇게 해서 표를 딱 해 놓고 하루하루 표를 해 나가면서 공부를 다잽이하신다면 정말 금년 여름철이 무량겁을 통해서 정말 보람 있는 한 철이 될 수 있을 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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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