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선원No.40)—임술년 하안거 해제 법어(82.06.17)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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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허니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구름이 꽉 덮였다가 그 구름이 활짝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열리니까 툭 트인 파란 하늘이 무한히 끝없이 열렸다.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구나. 하늘에 낀 구름이 열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고, 가을이 되어서 잎이 떨어지면 그 이파리는 뿌리가 있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한데,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했고.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에 기대서 졸음에 잠겼는데 해는 이미 기울어졌구나.
지난 7월 17일에 통도사 호국선원 경봉대종사(鏡峰大宗師)께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이와 같이 가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 선지식(善知識)도 이렇게 가셨습니다. 우리가 신(信)하고 존경하던 수많은 선지식이 이렇게 가셨습니다.
역대조사와 천하 선지식과 삼세제불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자리에서 때로는 탄생의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때로는 닦을 것 없는 곳을 향해서 고행(苦行) 수도하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생사가 없는 자리에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기도 하고.
선지식 자기 분상에는 전연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즐거울 것도 없고, 이승을 하직했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는 것이지만 중생들은 태양처럼, 어두운 밤에 달처럼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던 선지식을 잃었을 때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한다 할지라도 그 슬픔이 위안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도 나의 생사 문제가 달려 있는, 일대사(一大事) 문제가 거기에 매달려 있는 등불을 잃었을 때의 슬픔은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수행인은, 불자(佛子)는 그러한 일시적인 감상으로 슬픔에 잠긴다든지, 또는 인사차례로 문상을 가는 것으로써 여기서 저기서 많이 모여든 것으로써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출가를 해야 할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수 있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임술년 여름안거(安居)의 해제날입니다. 원래 7월 15일, 이 세등선원은 7월 17일에 해제를 해왔습니다마는, 금년에는 4월에 윤달이 들어서 6월 15일에 전국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해제를 하고 또 세등선원도 6월 17일에 해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해제를 기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15일에 해제를 하고 이 세등선원에 구름처럼 수행한 납자(衲子)들이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도 해제날에는 멀고 가까운 데에서 정진을 하던 수행자들이 전부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모여서 자자(自恣)의 법요식을 거행을 했던 것입니다.
보름마다 계율의 계목(戒目)을 읽으면서 대중에 잘못을 참회(懺悔)하는 의식을 포살(布薩)이라 그러고, 해제 때 부처님으로부터 차례차례 대중을 향해서 호궤합장(互跪合掌)하고 “그동안 안거 기간 동안에 행여나 본인에 있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을 여러 대중스님이 보신 점이 있으면 자비심으로 기탄(忌憚)없이 지적을 해주십시오”
이렇게 대중을 향해서 합장하면 대중도 자비심으로 기탄없이, 스님이 그 동안에 어떠 어떠한 잘못이 있었다.
“대중 잡담이 너무 많아 가지고 본인 자신도 정진을 열심히 아니하고, 대중의 수행을 방해한 점이 많으니 그 점을 조심하시오”
또는 “뒷방에서 입선(入禪)시간에 입선도 하지 아니하고 너무 한만(汗漫)히 지내고 해태를 부려 가지고 수도원의 선방의 분위기를 곤란하게 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특별히 어떤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고 그래가지고 대중에 화합을 깨트렸으니 그 점을 조심하시오”
“패당(牌黨)을 지어 가지고 사소한 일에 물의(物議)를 일으켜 가지고 대중 전체의 수행을 방해를 했으니 그 점에 대해서 주의를 하시오”
“지나치게 외출을 심히 해 가지고 대중의 법도를 어겼으니 그 점에 대해서 조심을 하시오”
이러한 식으로 차례차례 잘못된 점을 지적을 하기를 대중이 많으면 초저녁부터서 자정을 지내서 새벽에 이르도록 그러한 의식이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원시경전(原始經典)에는 소상하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해제일을 맞이해서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선방과 암자나 토굴에서 수행했던 수좌(首座)님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마치 부처님 당시에 자자의 법요식을 거행했던 그 원시경전에 쓰여 있는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여러 수행납자들이 모이니 얼굴마다 일대사 문제를 결정코 금생에 해결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의연한 결의가 보이고, 그 눈에는 생기가 넘쳐 흐르는 것을 볼 때에 너무너무 감개가 무량하고, 기특하고, 신통하고, 고맙기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 현사 사비(玄沙師備)라고 하는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현사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설하시기를, 제방(諸方)에 노숙들이—노숙(老宿)은 조실(祖室) 스님, 선지식(善知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방에 노숙이 접물이생(接物利生)을 하는데 '물건을 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접물이생이라 하는 말은 ‘중생을 제도를 한다’
제방에 여러 큰스님들이 중생을 제도하시는데,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문득 세 가지의 병자(病者)를 만나면 어떻게 교화를 할 것인가?
그 세 가지의 병인(病人)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눈먼 장님. 눈먼 장님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장자를 들어도 보지를 못할 것이고 또는 불자(拂子)나 그밖에 어떤 죽비같은 것을 법(法)으로 들어 보인다 해도 볼 수가 없으니, 어떻게 그 장님을 교화를 하며.
(둘째는) 귀를 꽉 먹은, 귀 먹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최상승법을 대사자후(大獅子吼)를 부르짖어서 부처님 이상 가는 설법을 한다 하드라도 귀가 꽉 먹었으니 어떻게 귀 꽉 먹은 사람을 교화를 하며.
셋째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 그 벙어리를 만나서는 무슨 법을 묻고 물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하니,
어떻게 이 눈먼 사람과 귀를 꽉 먹은 사람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 이 3가지 종류의 병자를 만나서는 어떻게 그것을 제도할 것인가?
참불법이라면 이 세 가지 종류의 벙어리를 제도할 수 있어야 참으로 불법(佛法)이 영험(靈驗)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법문을 현사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어떤 납자가 설봉(雪峰)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운문(雲門) 선사에게 가서 이 현사 스님이 설하신 법문을 전하고, “스님께서는 이 세 가지 종류의 병신을 만났을 때 어떻게 그 세 가지 종류의 병신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여쭈어 봤다 이 말씀이여.
그러니까 그 운문 스님이 ‘예배착(禮拜著)하라. 절을 해라’ 그러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납자가 절을 떠억 했다 그말이여.
절을 하고 일어서니까 주장자로 이렇게 툭 이렇게 했다 그말이여. ‘저리 뒤로 물러가라’고. 그러니까 그 납자가 뒤로 물러섰습니다. 물러서니까 운문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눈먼 장님은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러니 가까이 왔어. 가까이 오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가까이 오라고 하니까 말을 알아듣고 왔으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 도리를 알겠느냐?’하고 물으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벙어리는 아니로구나’ 아! 그 말 한마디에 이 승려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처음~21분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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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중 가운데는 눈멀고, 귀먹고, 또 말 못한 벙어리는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장님이 아니었을진대는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주장자(拄杖子)를 들었을 때 그 주장자를 보았을 것이고, 귀머거리가 아니었으니 산승이 주장자를 쳐서 법상을 한번 쳤으니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벙어리가 아니면 여기서 확철대오한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년(不如緘口過殘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해를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
부처님을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부처님을 훼방을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은 방해를 치고—마지막에 부처님이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가비라(迦毗羅) 왕국에 태어나실 때는 그 사람이 사촌동생으로 왕실에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렸을 때부터서 적대(敵對)해.
처음에 왕실에 사촌이니 서로가 사촌 형제간으로 태어났는데, 까닭없이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에는 반대를 하고 미워하고 훼방을 놓고, 못살게 굴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될 때에도, 부처님이 야수다라와 혼담이 있으니까, 자기도 그 야수다라를 지가 마누라로 차지할라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온갖 무술—씨름도 하고 활쏘기도 하고, 무슨 무거운 것을 역기를 들기도 하고, 말타기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힘겨루기를 해 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이 이기셔서 야수다라를 부처님께서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계속 부처님을 갖다가 훼방을 놓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출가 하시니까, 자기도 또 이후에 출가를 해서 자기도 또 중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데, 부처님 제자는 자꾸 수효가 불어나고.
자기도 참 무서운 고행 정진을 해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안되니까 아사세왕(阿闍世王)이 태자로 있을 때, 그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빨리 부왕을 죽이고 당신이 신왕(新王)이 되시오. 그러면 나도 부처님을 어떻게든지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해 가지고 나는 신불(新佛)이 될테니까, 당신은 신왕이 되고 나는 신불이 되어서 이 불법을 펴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면 얼마나 좋겠오”
이래가지고 그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결국은 그 부왕(父王)을 갖다가 감옥에다가 때려 가두었습니다. 가둬서 어떠한 사람도 면회를 할 수가 없어. 면회를 탁! 제한을 하고 일체 밥을 넣어주지 아니하고 굶겨서 죽게 헐랴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하루하루 날짜가 지내가면서 살이 빠져 가지고 피골이 상접을 했는데 벌써 15일이 되고, 20일이 되고 한 달이 되었어도 죽지를 안 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오직 그 어머니만을 면회를 허락을 했는데, 그 대신 음식물을 일체 못 들어가게 했는데도, 단단히 문지기를 세워 가지고 절대 먹을 것을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잠깐 면회만 하고 나오게 했는데 이상하게도 죽을 때가 되어도 안 죽는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드나드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한 사람 뿐인데, 그래서 나중에 몸수색을 자세히 하고 보니까,
그 어머니가 몸에다가 밀가루나 쌀가루를 갖다가 몸에다가 바르고 들어가서 그놈을 긁어 가지고 그놈을 먹겄게 해 가지고 안 죽은 사실이 드러나서 나중에는 어머니의 출입도 금지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아사세 태자의 부왕이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기 전에 ‘아! 부처님을 한번 친견하고 내가 숨을 거두었으면...’하고 옥중(獄中)에서 지극정성으로 죽기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떠억 그것을 아시고 옥중에 몸을 나투셔서, 신통력으로 몸을 나투셔서 죽어가는 왕에게 법을 설해 가지고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그 아사세 태자가 왕이 되어 가지고 조달(調達)이 한테 그렇게 귀의를 했는데, 조달이가 그 부처님 회상(會上)에 와 가지고, 그때 마치 목련존자(目連尊者)나 사리불(舍利弗) 같은 수제자는 밖에 중생교화를 하러 떠나고 없고 다른 대중만 있었는데,
조달이가 부처님 회상에 와 가지고 연설을 해 가지고 “부처님은 아침밥을 먹어도 좋다. 또는 병들고 어리고 늙은 사람은 저녁에도 약석(藥夕)이라 해 가지고 저녁공양도 할 수가 있다. 정 아퍼서 죽게 된 사람은 약(藥)으로 마늘이나 파도 먹을 수가 있다. 또는 정 아퍼서 건강이 유지가 되지 않는 사람은 약으로 생선이나 오정육(五淨肉)을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계율이 엄정허지를 못하고 법도가 문란해서 이렇게 해 가지고는 무슨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겠느냐. 내 회상으로 오면 털끝만큼도 틈이 없고 서릿발 같이 법도가 엄격하고 그러니 내 회상에 와서 공부를 하면 백발백중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요달(了達)하니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한 어리석은 사람이 일어서니까 또 다른 사람도 우물쭈물하면서 일어서고, 여기서 일어서고 저기서 일어서고 해 가지고 수백 명이 조달이를 따라가 버렸어. 그리고 몇 사람이 안 남았어.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얼마 있다가 돌아와 보니 대중이 다 흩어져 버리고 없다 그말이여.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당신 방으로 돌아오셔서 한참 돌아와 계시는데, 목련존자 사리불존자 돌아와서 보니 대중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사연을 알아보니까 '조달이가 와서 끌고 갔다'
목련존자와 사리불이 그길로 조달이 회상에 가서 다시 설법을 해 가지고 다시 쏵 다 끌고 와 버렸어.
끌려가서 보니까 정말 계율이나 법도가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서 계율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위한 계율'을 주장을 하고, '규칙을 위한 규칙'을 까닭없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내세워 가지고 대중을 갖다가 꼼짝을 못하게 다루는데,
거기 가서 그러한 생활을 해 보니까, 과연 부처님이야말로 대성현이시고 위대한 스승이시라 하는 것을 내심으로 짐작을 하고 있던 판에 목련존자가 가서 설법을 하니까 다시 다따라와 버렸다.
조달이가 부애가 나가지고 이제는 이러한 미적지근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해가지고, 코끼리한테 술을 잔뜩 먹여서 흥분을 시켜가지고 미친 코끼리를 술을 먹여 가지고 부처님 어디를 가시는 데다 막 몰아댔다 그말이여.
미친 코끼리가 쏜살같이 부처님을 향해서 가 가지고는 밀어붙여 가지고 짖밟게 그렇게 헐랴고 했는데, 부처님이 돌아보시고는 떠억 손을 내밀고 작관을 하시니까, 그렇게 미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를 쫓아가다가는 부처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는 조용허니 엎드려 있다 그말이여. 그래 항복을 해.
또 미친 코끼리 가지고도 안되게 생겼으니까,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못된 사람들과 같이 부처님이 어디를 가시는 길목에 절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큰 바윗돌을 갖다가 굴려가지고 부처님이 답싹 거기에 치이도록 그렇게 계획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그것을 아시고 저리 돌에 다치지 아니할 만한 자리로 조금 피해서 가셨다.
그러니까 더 약이 올라 가지고는 또 다시 다음날 인자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을 만한 장소를 선택해 가지고 또 바윗돌을 굴렸는데, 부처님께서는 다 아셨지만 짐짓 피하지 아니하시고 발뒤꿈치를 조금 다치셨어. 그래 가지고 피가 조금 났는데.
부처님께서 왜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시고 피하지 아니하고 결국 다치셨냐 하면 '이것이 다 전생에 맺어진 업연(業緣)으로 저러는 것을, 내가 신통력으로 피했다한들 그 업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여. 차라리 금생에 곱게 받아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래가지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으신 것입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이지만, 외도(外道)들의 돌팔매에 맞아서 몸이 산산이 부서진 채 열반에 드셨고, 비구니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인 연화색 비구니도 신통이 제일이라 미리 다 알고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조달이에 의해서 맞아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4조 사자존자(師子尊者)도 제자 하나를 잘못 두어 가지고 그 제자의 잘못으로 인해서 계빈국왕에 의해서 목이 짤려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그러한 예가 있지만, 혹 이 대중 가운데 조달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면서 다른 대중스님네마저 도를 닦지 못하도록 방해를 친 사람이 없었는가?
응당 오늘은 자자일(自恣日)이 되아서 본인이 대중을 향해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애원을 해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대중의 이 성스러운 수도장에서 부모와 고향과 청춘을 다 버리고 생사문제를 요달(了達)하기 위해서 모인 이 성스러운 대중에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고 남까지 도를 닦지 못하게 방해를 치는 조달이와 같은 물건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회(懺悔)를 해야 할 것입니다.
조달이는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생명을 앗을라고 하고, 드디어는 부처님의 몸에 피가 나게 하고 그러한 죄로써 조달이가 서 있는 땅이 쩍 갈라지면서 화염이 솟구치는 불구뎅이 속으로 생함지옥(生陷地獄)을 했습니다.
정법(正法)을 비방하고,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도 닦는 스님네를 도를 못 닦도록 방해를 치고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달이는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훼방을 치고 그러한 오역죄(五逆罪)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떨어졌는데, 부처님께서 아란존자를 시켜서 지옥에 가서 조달이한테 이렇게 물어봐라.
‘지옥고 맛이 어떤고? 이렇게 가서 물어봐라’하고 시켰습니다.
아란존자가 지옥에 가서, ‘지옥고 맛이 어떠냐고 부처님께서 물어보라고 허시드라’
‘지옥고(地獄苦) 맛이 천상락(天上樂)보다도 더 좋다’ 아! 조달이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 지옥에서 나오느냐?고 물어봐라’고 시켰습니다.
‘언제 지옥에 나오느냐?’하고 물어보니까, ‘석가(釋迦)가 지옥에 들어오면 내가 나가겠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는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오실 분(分)이 있겠느냐’ 그러니까,
조달이 대답이 ‘석가가 지옥에 들어올 분(分)이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 나갈 분(分)이 있겠느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조달이는 부처님으로 하여금, 석가여래로 하여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大道)를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보다도 훨씬 먼저 성불을 한 옛 부처님이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서, 그렇게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갖은 수단과 방편을 통해서 부처님을 경책(警策)을 해 드렸던 것입니다.
조달이의 분상(分上)에는 천당에 올라가나 지옥에 가나 조금도 차등이 없습니다.(21분21초~42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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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되 오늘 세등선원에서 전국 방방 선방에서 조달이와 같은 고불 화현(古佛化現)이 대중을 경책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신심과 분심과 대의단을 돈발(頓發)케 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자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또한 가하거니와,
그렇지도 아니하면서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은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량겁을 두고 지옥에 나올 분이 없을 것입니다.
산승의 이와 같이 설한 말씀을 듣고, 직접 자기가 그러한 조달이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은 자기가 고불 화현인가 아닌가를 반성을 해야 할 것이고,
대중은 ‘아무래도 그분이 조달이의 화현이나 고불 화현이 아닌가, 불보살의 화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 때문에 진심(瞋心)을 냈다면 참회를 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냈다면 참회를 하고,
‘틀림없이 그 사람이 불보살의 화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미운 생각을 다 풀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진을 앞으로 백배 열심히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지지 말고,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 의단(疑團).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어째서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의단이 독로(獨露)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앞으로 산철이 넉달 반이나 되는데, 그 넉달 반을 그렁저렁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擧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요달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연전에 모래찜을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말을 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스님네와 신도들이 많은 모래찜질을 해서 그 가운데 참 효험을 본 사람도 수없이 많고, 또 외래 모래찜을 잘못해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고 그러는데,
모래찜을 해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은 다른 게 아니고, 몸에 독이 쩔으다 쩔으다 못해서 아주 병주머니가 된 사람이 모래찜을 조금 하니까, 그 독기가 쪼끔 빠져나오다가 말아 가지고, 모래찜을 한 뒤에도 계속해서 그 독이 나오다 보니 허벅지나 궁뎅이가 그 지금 독이 빠져나올라고 그 피부 구녁이 열려 가지고 가려움증이 있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모래찜을 잘못해서 피부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지금 독이 덜 빠져나온 독이 빠져나오느라고 그렇게 가려운 것이니까, 혹 그러헌 가려운 증상이 일어나면 더운 물에 목욕을 몇 차례하면 피부약을 바르지 안 해도 저절로 낫게 될 것입니다.
‘아침 8시부터서 저녁 5시까지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8시간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은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그렇게 해도 또한 괜찮지만, 노인이나 너무 병약한 노인이나 너무 병에 걸려서 탈진한 사람은 그렇게 무리하게 할 것이 아니고,
아침도 가볍게 죽을 쒀서 먹고 한 1시간이나 2시간 가볍게 하고, 또 점심도 가볍게 먹고 좀 쉬었다가 오후에 또 한 1~2시간이나 3시간 이렇게 하고, 저녁도 또 죽을 쒀서 먹을만큼 먹고.
그렇게 해서 살살 자기의 근력과 연령과 모든 상태를 감안해서 지혜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너무 고지식해 가지고 8시간씩 사흘씩 연거퍼 하거나, 닷새 일주일씩 그렇게 연거퍼 해 가지고 탈진이 되어가지고 “아이고, 그놈의 모래찜 하다가 내가 꼭 죽을뻔 봤다”고. 다시는 그게 할 것이 아니라고 악선전을 하고 돌아다닌다.
아무리 좋은 약도 그 체질에 맞춰서 지혜롭게 먹어야 하는 게고, 아무 운동도 그 체질에 따라서 적당하니 해야 하는 것이지,
참선(參禪)이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해 가지고 어리석게 이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언제 그 말씀을 하셨냐 하면 부처님이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명성(明星)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교진여(憍陳如) 등 5비구(五比丘)를 위해서 맨 처음에 설하신 법문이 바로 지나치게 호의호식을 하고 그러한 정진을 한 것도 옳은 정진이 못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못살게 구는 고행을 위한 고행, 고행 일변도의 수행은 올바르지 못하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적당하게 모래찜을 한 번이나 두 번쯤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래찜에만 또 빠지지 말고 춥도 덥지도 않은 이 산철 동안을 잘 이용을 해서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헌디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 곡(曲)을 타고 두 곡을 타는데도 아무도 알아 듣는 사람이 없구나.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비 개인 뒤 밤 연못에는 가을 물만 깊구나.(43분1초~54분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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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제4권 115칙 신주(新州)’ 송원(松源) 송(頌) 참고.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廻首煙波裏 漁歌過遠村’
*(게송) ‘回首看山醉霞流 倚樹沈眠日已斜’ ; 『전당시(全唐詩)』 540권 이상은(李商隱)의 시 ‘화하취(花下醉)’ 참고.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의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납자(衲子 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자자(自恣 스스로자/마음대로 자) ; 여름 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 · 오계(五戒) · 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계(戒)의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 항목(項目).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포살(布薩) ; 산스크리트어 poṣadha, 산스크리트어 upavāsa, 산스크리트어 upavasatha, 팔리어 uposatha의 음사. 단식(斷食)·정주(淨住)·선숙(善宿)·근주(近住)·장정(長淨)이라 번역.
출가자들은 음력 매월 15일과 29일(또는 30일)에 한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을 독송하면서 그 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재가(在家)의 신도는 육재일(六齋日) 곧 음력 매월 8·14·15·23·29·30일에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는 일. 포사타(布沙陀,哺沙陀), 포쇄타(褒灑陀)라고도 쓴다.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기탄(忌憚)없이 ; 꺼림칙하거나 마음에 걸림이 없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한만(汗漫 땀 한/흩어질 만) ;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등한함.
*패당(牌黨 패 패/무리 당) ; 서로 어울려 다니는 사람의 무리.
*물의(物議) ;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여)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처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상태.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및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 – 908) 속성은 사(謝)씨。복건성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젊어서는 낚시질을 좋아하였는데, 30세에 출가하여 공부하는 길을 얻어 가지고는 고향에 돌아가서 음식을 겨우 목숨이 붙어 있을 만큼 먹어 가면서, 바위 밑과 산꼭대기에서 늘 좌선(坐禪)하였다.
설봉 화상이 그에게 선지식을 찾아보라고 권하였으나, 듣지 않고 혼자 공부하여 깨친 바 있었고, 또 <능엄경(楞嚴經)>을 보다가 크게 깨쳤다. 설봉의 법을 이어 가지고, 매계장(梅鷄場) 보응원(普應院)에서 교화하다가 얼마 안 가서 복주의 현사원에 옮기었다。후량(後梁) 태조(太祖) 개평(開平) 2년에 74세로써 입적하였다.
그의 저술은 <현사어록(玄沙語錄)> 3권,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고, 그의 제자 천룡 중기(天龍重機)에게서 고려의 설악 영광(雪岳令光)선사가 나왔다.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운문의 가르침 ;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9권 제88칙 ‘현사 삼종병 접물이생(玄沙 三種病 接物利生)’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숙(老宿) ; ①오랫동안 수행하여 덕이 높은 스님. 조실스님, 선지식을 말함. ②나이가 많아 경험이 풍부한 사람. ③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불자(拂子 먼지떨이 불/접미사 자) ; 짐승의 털이나 마(麻)를 묶어서 자루 끝에 매어 달은 것으로 벌레를 쫓는 데 쓰는 생활용구이었으나,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번뇌를 떨어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로 사용되고 있다. 주로 설법할 때 손에 지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설봉 의존(雪峰義存) : (822 – 908) 속성은 증(曾)씨。복건성 천주부 남안현에서 여러 대로 불법을 진실하게 믿어 오는 집에서 났다. 나면서부터 종소리를 듣거나 불전에서 쓰는 물건을 보게 되면 곧 즐거워하는 표정이 나타났고, 파 마늘 냄새를 꺼리었다. 12살에 아버지를 따라 옥간사(玉澗寺)에 갔다가 그 길로 집에 오지 않고 중이 되었다.
참선을 시작한 뒤에 먼저 염관(鹽官)에 갔고, 투자(投子)에 세 번, 동산에 아홉 번 갔으나 얻은 바가 넉넉지 못하였는데, 덕산에게 법을 묻다가 한 방망이 맞고서 깨쳤으나 아직 훤칠하지 못하다가, 그 사형 암두(巖頭)가 크게 꾸짖는 데서 비로소 크게 깨쳤다.
뒤에 복주(福州)의 상골산(象骨山)에 들어가서 그 이름을 설봉산으로 고치고 40년 가까이 교화하니, 모인 대중이 어느 때나 1500명을 넘었고, 법을 이은 제자가 56인이 있었다.
그 중에는 신라의 대무위(大無爲)선사와 고려의 현눌(玄訥)과 영조(靈照)선사가 있었고, 그 제자 장경 혜릉(長慶慧稜)에게서 신라의 구산(龜山)화상이 나왔다。후량(後梁) 태조(太祖) 2년에 87세로써 입적하였다.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인가(印可) 받은 제자.
*운문(雲門)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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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 89년 3월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
〇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이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참 ‘생사문제를 해결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때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시(詩)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분40초~64분24초)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아사세(阿闍世) ; 고대 인도 마가다 국(Magadha國)의 왕인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의 한자식 이름.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목련존자(目連尊者), 사리불(舍利弗)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약석(藥夕) ; 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말.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나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는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것(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것(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것(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것(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것(鳥殘).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아란(아난阿難)존자와 지옥고를 받는 조달의 대화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제1권 17칙 조달(調達)’ 참고.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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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판치생모(版齒生毛), 마삼근(麻三斤)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화두(공안)’ 참고.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위산(潙山)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이르기를 『평생에 듣고 본 것을 떠나서, 네가 세상에 나오기 전 너의 본래 면목에 대하여 한마디 말하여 보라』하는데,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서 몇 마디 대답하여 보았으나 모두 아니라고만 하는 것이다.
자기 방에 가서 가지고 다니던 여러 가지 책들을 내어놓고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듣고 본 것을 여의고는 말할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기를 『그림의 떡으로는 배를 불릴 수 없다』하고 다시 위산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소견이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하기에 모든 서적을 다 불살라 버리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할 것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여 남양(南陽)에 가서 혜충(慧忠)국사의 유적을 보고 거기에 있었다.
하루는 그 산중에서 큰 역사가 있어서 그도 같이 일하는데, 돌멩이를 주워 던진 것이 대숲에 맞아서 「딱」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나서, 목욕하고 향을 사르고 멀리 위산을 바라보면서 절하고 게송을 지었다.
『한 번 치는데 모두 잊었네。더 다시 애써 닦을 것 없네......(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그리고 곧 위산에 가서 법을 받고는, 등주(鄧州)의 향엄사에서 교화하였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한 상태.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그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이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함.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가 된다. 탄생(誕生 : 룸비니) · 성도(成道 : 붓다가야) · 입멸(入滅 : 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교진여(憍陳如) ; 산스크리트어 ājñāta-kauṇḍinya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 요본제(了本際) · 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오비구(五比丘)의 한 명.
우루벨라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다섯 명이 고행했으나 싯다르타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긴 여행을 하여 그곳을 찾아 설한 중도(中道)의 이치와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곧 붓다에게 귀의하였으며, 교진여는 그 자리에서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오비구(五比丘)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처음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 붓다가 출가하던 때 부왕(父王, 정반왕)의 명으로 이들은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들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됨.
①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音寫).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는 이름, 교진여(憍陳如)는 성(姓).
②아설시(阿說示) :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사(馬師)·마승(馬勝)이라 번역. 사리불(舍利弗)이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설시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③마하남(摩訶男) : 팔리어 mahānāma의 음사. 대명(大名)·대호(大號)라고 번역.
④바제(婆提) : 팔리어 bhaddiya의 음사. 인현(仁賢)·소현(小賢)·현선(賢善)이라 번역.
⑤바부(婆敷) : 팔리어 vappa의 음사. 기식(氣息)·장기(長氣)라고 번역.
*(게송)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 ①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4권 제37칙 ‘반산삼계무법(盤山三界無法)’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 송(頌) 참고. ‘三界無法 何處求心 白雲爲蓋 流泉作琴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② 『선문염송』 (혜심 지음) 7권 253칙 ‘삼계(三界)’ 설두현송(雪竇顯頌) 참고.
[주요 내용]
(게송)운개공자활~ / 경봉대종사 열반 /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선지식의 열반상 / 포살(布薩) /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대한 운문 선사의 가르침
조달의 역행, 고불화현 / 아난존자와 조달의 지옥에서의 대화 / 모래찜은 자기의 건강상태에 맞게 지혜롭게 해야 / 참선도 올바르게 정진해야.
[주요 문구]
〇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수 있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〇참선(參禪)이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해 가지고 어리석게 이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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