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선원(1~73)/(1~25)2021. 12. 1. 17:46

 

((세등선원No.08))—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17) (39분)

 

 

(1) 약 21분.

 

(2) 약 19분.

 


(1)------------------

금방 전강 조실 스님께서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법문 설하신 것을 들었는데, 조사(祖師) 공안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나 되는 가운데에 이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는 옛날부터 가장 많이 논란되고, 또 많은 스님네들이 이 무자(無字)를 통해서 정진을 하고 무자(無字)를 통해서 많은 참 깨달은 분들이 나왔는데.

그만큼 이 무자(無字)는 공안(公案) 가운데에서도 힘을 얻어간 그런 공안이라, 그래서 이 몽산 스님께서도 무자에 관해서 이렇게 자세히 설을 하셨지마는, 우리 정진하는 참선학자의 분상에서는 이렇게 10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해 놓으신 것이 잘 들으면은 약이 될 수도 있고, 잘못 들으면은 오히려 긁어서 부스럼을 내는 그러한 위험성도 있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에게 화두를 타 가지고 무조건하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가면 아무 병폐가 없는 것이여.

유(有)니 무(無)니, 이 선지식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 선지식은 저렇게 말씀하시고, 그러니 어떤 것이 옳으냐 마냐 하고, 여기 가서 물어보고 저기 가서 물어보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해서 공연히 분별심(分別心)을 내 가지고 자기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고대로 해 나가지를 않고, 공연히 이리저리 따져보고 의심하고 분별심을 내고 거기에서 화두에 병(病)은 생기는 것이다.

오늘 아침 들은 이 법문도 옳게 들으면은 그러한 분별 내지 아니하고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라고 이렇게 자세히 법문하신 것이지, 여기에 나오는 10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하신 거, 그것을 낱낱이 무슨 듣고 외와서 따지라고 하신 법문이 아니다 그 말이여.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다못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疑心)이 돈발(頓發)을 해서 꽉! 맥혀 가지고, 맥힌 그 의심 하나만이 현전(現前)을 한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법문을 참 옳게 들은 것이고, 그렇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사리상량을 붙여서 따지고 이런다면은 그것은 법문을 옳게 들은 사람이 못되는 것이여.

화두(話頭)는 의심(疑心)이라, 자기가 과거에 경을 보았거나 또는 어떠한 법문을 들었거나,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 그러한 지식 · 교리 · 상식 그러한 것을 동원을 해 가지고,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생각해 보고 이리 분석하고 저렇게 종합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런 것으로 살림을 삼고, 또 이 선지식한테 가서 법문을 듣고 가서 이러쿵저러쿵, 저 선지식한테 들은 것과 비교해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이러한 식으로 공부를 삼는다고 하면은 그 공부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해도 점점 중생 알음알이만 더 조장이 될 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이여.

법문(法門)은 많이 들어서 머리 속에다 넣어 놓고 많이 듣고 많이 알고 있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고서 자기에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일체 지식 · 알음알이를 놔버리고, 다못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현전해야만 그것이 법문을 옳게 들은 것이다 그 말이여. 천 번, 만 번을 법문을 듣고 해도 다못 알 수 없는 한 생각뿐이라야 된다 그 말이여.

세상의 공부는 많이 듣고 알고 있어서 많이 기억을 하고 머릿속에 많이 알고 있어야 그 사람이 유식하다 그러고 참 훌륭한 학자라고 그러지마는, 이 참선 공부는 많이 알고 있는 그러한 것은 오히려 병(病)이요,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비유를 해서 말하자면은 세속의 공부는 병 속에다가 많은 것을 담는 공부라 하겠지마는, 이 불법(佛法)에 참선 공부는 이미 들어 있는 것도 다 쏟아 내버려야, 될 수 있으면 싹 쏟아서 추호(秋毫)도 냄새까지도 나지 아니할 정도로 깨끗이 부셔 내는 공부다 그 말이여.

그래서 고인(古人)네가 말씀하시기를 ‘불조(佛祖)가 나와서 설법을 해도 깨닫자 생각도 아니하고, 염라대왕이 잡으러 와도 두려워할 중도 모르고 철두철미(徹頭徹尾) 똥멍청이, 천치에 바보가 된다면은—깨달을 중도 모르고, 죽인다고 해도 두려울 중도 모르고 그렇게 철저히 바보가 된다면은 내가 너를 인가(印可)하리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다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 가지고—나무둥치가 썩지 아니한 나무둥치는 나무꾼이 불을 때기 위해서 끌텅을 캐 가기라도 하지마는, 완전히 버근버근이 썩어 문드러져 버린 그러한 나무둥치는 나무꾼도 그것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 말이여.
그러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가지고 오직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만을 간절(懇切)히 지어가야, 그래야 그 사람에게는 깨달을 분(分)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잘난 척하고, 똑똑한 척하고, 유식한 척하고, 이런 것은 우리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될 뿐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이여.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 무엇을 잘난 척하고, 유식한 척하고, 말 잘한 척하고, 그것이 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 말이여.


한 숟갈 먹으면은—먹지 아니하면은 공부를 못하니까 잘 먹거나, 잘 못 먹거나 그저 한 숟갈 먹으면은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번뇌 망상이 일어난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일어나는 생각을 없앨라 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일어난 줄 알면 퍼뜩 그 생각으로 '이뭣고?'를 들면 되는 것이여.

번뇌 망상 일어나는 놈이나, '이뭣고?' 드는 놈이나, 내나 그놈이 깨닫지 못했으면 그것이 중생심(衆生心)이고.
버리려고 하면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버리려고 한 그 생각도 역시 번뇌 망상이여. 중생심이여. 그래서 버리려고 하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어떤 사람이 쥐를 잡기 위해서 쥐를 한 마리를 산 채로 잡아 가지고 그 쥐를 통에다가 가둬 놓고는 2~3일을 굶겼다. 굶겨 놓으니까 이 쥐란 놈이 배가 고파서 발광을 하는데, 거기다가 다른 쥐를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는 그 쥐고기를 썰어서 넣어 줬는데, 워낙 이놈이 쥐가 배가 고프니까 쥐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 또 조끔 있다 또 조끔 주고 주고 해서 완전히 그 쥐로 하여금 쥐고기를 먹는 것을 습관을 들여 가지고 나중에는 산 쥐를 갖다가 넣어 줬다 그 말이여. 그러니 배가 고프니까 산 쥐도 잡아먹었어. 그래서 여러 마리를 쥐를 잡아먹고는 아주 쥐 잡아먹는 아주 선수가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런 다음에 그 쥐를 밖으로 해방을 시켜 줬는데, 그 쥐란 놈이 이제는 쥐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쥐구녁으로 들어가서 잡아먹고, 그래 가지고는 온 집안에 있는 쥐를 다 잡아먹었다 그 말이여.

고양이는 쥐가 구녁에서 나와야 잡아먹지마는, 쥐구녁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 말이여. 몸뚱이가 크고 쥐구멍은 작어서. 그래서 고양이도 잘 못 잡아먹은 쥐를, 쥐는 지 몸뚱이가 작으니까 맘대로 쥐구녁으로 이 구녁 저 구녁 다니면서 쥐는 쥐는 다 잡아먹어 버렸다. 다 잡아먹고 더 잡아먹을 것이 없으니까 배가 터져서 죽었어.

그런데, 이 화두도 내나 이 화두 들고 있는 놈이 지가 깨닫지 못했으니 중생심이지, 화두(話頭) 든다고 해서 그것이 별것이냐 그 말이여. 그러나 이 '무자(無字)' 또는 '이뭣고?' 또는 '판치생모' 이 화두는 중생심으로 화두를 들지마는 오직 이 화두로써 일체 망상(妄想) 일어나는 놈을 이놈이 다 잡아먹거든.
그래 가지고 다 잡어먹고 더이상 일어날 망상이 없고 이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으로 가득차게 되면은 밥을 먹어도 '이뭣고?' 옷을 입어도 '이뭣고?' 똥 눌 때도 '이뭣고?' 걸어갈 때도 '이뭣고?' 차를 탈 때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간절해서 산을 보나 물을 보나 전체가 이 세계가 자기 이 화두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차서 더이상 이 의심이 커질 수가 없고, 간절할 수가 없을 때에 이 화두가 툭! 터질 것이다 그 말이여.

마치 쥐란 쥐는 다 잡어먹고 더 잡어먹을 쥐가 없고 그래 가지고는 배 터져 죽듯이, 이 화두도 의심이 커지고 커지고 해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게 되면은 지가 터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조주(趙州)의 뜻을 깨닫고, 무량겁래(無量劫來)로 내려오는 나의 마음을 깨닫고, 불조(佛祖)의 뜻을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는 것이다 이 말이여.


화두는 이론으로 따지지 말어라. 이론으로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어라. 다못 '이뭣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만 하라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것은 이론으로 따지지 말라는 것이니까 다못 정신을 한군데로 모이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것이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물론 화두를 들고 자꾸 정진하게 되면은 정신도 집중이 되고 정신이 통일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정신 통일하는 그것은 중간에 그러한 통일도 되는 것뿐이지,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여.

그렇다면은 시계를 보고는 '시계, 시계' 그렇게만 해도 그것도 정신이 한군데 모여지니까, 그러면 '시계 시계' 하고 앉었어도 될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그러는 것이 아니여.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의심에 가서 문제가 달려 있는 것이여. 의관(疑觀)! 알 수 없는 의심관(疑心觀)이라야지, 무엇이고 한군데만 정신을 집중하면 되는 것은 아니여.

의심이라야, 그 의심(疑心)이 간절해서 전체가 의심이 되었을 때, 의심이라야 의심(疑心) 아래에 깨닫는 것이지, 화두를 들되 의심 없는 화두는 그게 옳게 공부한 것이 아니여.
무자(無字) 화두도 덮어놓고 '무~~ 무~~' 하고 무자(無字)만 들여다보라고 가르키는 선지식이 있거든. 그것은 화두를 옳게 지도하는 선지식이 아니다 그 말이여.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 '어째서?' '어째서?' 에다가 눈을 박어야지, '무~' 무(無)만 항시 무(無)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화두를 옳게 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어째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가?' 그 '어째서?' 라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거기에다가 우리의 생각의 초점을 거기다가 두어야 한다 그 말이여. '어째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뭣고?' 한 그 '이 무엇? 무엇이냐?' 하는 그 알 수 없는 의심, 일체 화두는 다 그 의심(疑心)에 가서 요점이 있는 것이여.

그 말 자체를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따져 들어가는 건 못쓰는 것이여. 일체 따지지 말고 무조건 하고 '어째서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알 수 없는 생각이래야 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꽉 맥혀서 알 수 없어야지, '오!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알아 들어가면 벌써 아닌 것이여, 그것이. '아! 이것이로구나!' 하고 자기 나름대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면 그건 아닌 것이여. 다못 알 수 없어야지.(처음~20분29초)





(2)------------------

그런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고 '어째서? 어째서?' 하고 해 가다 보면은, 너무 힘을 써 가지고 하다 보면은 기운이 자연히 머리로 모여져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고 골치가 아프고, 이렇게 되어 가지고 공연히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혈액순환이 잘못되고, 소화가 잘못되고, 잘못 이 혈기(血氣)가 고르지 못한 그러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참선(參禪)을 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가지고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해야 하거든.
복식 심호흡이라 하는 것은 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저 아랫배까지 호흡을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시니까 자연히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다음에는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니까 배가 홀쪽해지는, 숨을 마셨다 내쉬었다 하는데 따라서 아랫배가 볼록해졌다가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하면은 우리의 기운은 자연히 아랫배로 내려가 가지고 머리가 시원해져서 그래서—이 사람 몸에는 불기운과 물기운이 있는데, 화(火)와 수(水) 있는데, 우리의 모든 생각은 불기운에 해당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생각은 아래로 써야 혀.

그래서 단전에다가 생각은 거기다가 집중을 해야 불기운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단전 있는 데에는 우리의 그 콩팥, 신장(腎臟)이 있는데 신장은 그것이 수(水)인데, 그 콩팥에다가—우리의 생각은 화(火)인데, 생각의 불을 거기다가 지져 댐으로 해서 콩팥, 콩팥은 솥에 물이 담어진 거와 같아서 그 솥 밑구녁에다가 밑바닥에다가 불을 갖다가 지져 대니까 그 솥에 물이 끓어 가지고 수증기가 위에로 올라간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몸) 앞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수증기는 밑에서 (몸) 뒤로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불기운은 (몸) 앞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가고, 물기운은 (몸) 뒤로 해서 위에로 올라가니까 물기운과 불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서 수승화강이 잘되어 가지고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함으로 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져서 그래서 정진해 나가는 데 부작용이 없이 잘되어 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못되기 때문에 그놈이 수승화강이 아니라, 까꾸로 불은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기 때문에 물기운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물기운은 내려가고 불기운은 올라가서 수승화강이 아니라, 수화(水火) 승강(昇降)이 까꾸로 돌아가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맑은 정신이 없어 가지고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골치는 뽀개질라고 그러고, 정신이 안정이 안 되어 가지고 화두만 생각했다 하면 골치부텀 아프고 공부가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 공부를 참으로 밤잠을 안 자고 열심히 공부를 해도 몸에 지장이 없이 할라면은 호흡법을, 호흡법을 잘 알아 가지고 단전호흡, 복식 심호흡을 제대로 익혀 가지고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런 위에 화두를 떠억 든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아무리 용맹정진한다고 해도 몸에 병이 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을 모르고서 덮어놓고 말뚝 신심을 내 가지고서 억지로 파고들다 보니까,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안 되어 가지고 상기병(上氣病)이라고 하는 그런 병에 걸리는, 상기병은 약으로는 안 고쳐지는 것이여. 결국은 그 상기병은 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잘해 가지고 참선을 잘하므로 해서 그 병이 낫는 것이지, 상기병은 약 먹어 가지고 병이 고쳐지질 안 혀.

그래서 그전에도 이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 누차 말을 했지마는, 몸을 단정히 가지고 이 호흡을 하되 처음에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 호흡을. 가슴이 터지도록 그리고 빨리 호흡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는 잔뜩 들어마신 다음에 입으로 '후~' 하고 내쉬란 말이여. 다 가슴을, 아주 이 가슴 속에 있는 호흡이 한 점도 남김없이 다 내쉬어 버려.(한 번)
다 내쉰 다음에 다시 한번 또 들어마셔.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참어. 참었다가 또 '후~' 하고 다 내쉬어 버려.(두 번)

그렇게 두 번을 하고서 세 번째부터서는 조용히 들어마셔.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지 말고 들어마신 호흡을 아랫배까지 내려가도록 들어마시란 말이여. 아랫배까지.
그래서 좌선을 하려면은 허리띠를 느슨하게 매야 해. 너무 꽉 허리띠를 짬매 노면 안 돼. 그래서 느슨하게 매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까지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이렇게 눌러 보면 빵빵하도록 그러되 100%로 다 들어마시지 말고 80%까지만 들어마셔.
들어마신 상태에서 한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호흡을 내쉬되, 호흡을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쪽해지도록. 그러니까 뱃속에 가득찬 호흡을 이렇게 눌러 가지고 (배) 뒤로 밀어 버리란 말이여. 뒤로 그 차츰차츰 (배를) 홀쪽이 맨들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돌아 나가도록.

들어마신 호흡은 앞으로 해서 그 아랫배까지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신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뒤로 밀어. 살모시 아조 아껴서 뒤로 밀면은 그놈이 뒤로 해서 이렇게 나가도록.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뒤로 밀어 버리면은, 배를 홀쪽이 하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요렇게 이 코로 나간다 그 말이여. 이것을 계속 되풀이하되 우리의 생각은 항시 아랫배 단전 거기에 가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생각을 두고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의심, 의심하는 마음, 의심이 거기에다가 거기에 가서 항시 있도록 그렇게 화두를 해 나가면 저절로 수화...(녹음 끊김)
이대로 잘해 나가면은 아랫배는 뜨뜻해지고, 온기가 아랫배에서 생겨 가지고 차츰차츰 그 온기가 커지면은 온몸이 훈훈해지는 것이여. 그러고는 머리는 아조 뒤통수가 시원해져 가지고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것만 열심히 잘해도 '신선(神仙)이 되어 간다'고, 도교에서는. 도교에 신선들은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는 것이여. 일체 몸이 다 낫고, 밥을 먹지 아니하고 그 솔잎만 먹고 맹물만 마시고도 칠백 세, 천이백 세까지도 사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중국에 도교에 팽조 같은 신선은. 이 심호흡을 잘하면은 그렇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하고, 수명까지도 연장을 하고, 오신통(五神通)도 난다는 것이여.

우리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그러한 무슨 신통이 나고, 무슨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건강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참선을 잘하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도(外道)가 하는 목적과 우리가 이 호흡을 하는 목적은 다른 것이다 그 말이여.
이러한 그 기초를 모르고서 덮어놓고 해 가지고서는 우리의 목적인 깨달음은, 깨달음의 목적지에는 도달하기 전에 중간에 부작용이 생겨 가지고 병이 나 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인생을 참 헛되게 보내게 되는 그러한 안타까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상기(上氣)가 있거나 없거나 이 호흡을 어쨌든지 잘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출가해 가지고 몸이 건강해야 공부를 하지, 몸이 아파 놓으면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 그 말이여.

이 호흡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와서 의논을 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호흡이 옳은가 그른 것인가를 잘 알아 가지고, 잘 호흡법을 알아 가지고 해야—이 호흡만 잘되면은 추운 것도 잘 바우고, 더운 것도 잘 바우고 또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잘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머리가 깨끗해서 화두를 들어도 정진이 깨끗하게 잘 나가지는 것이니까 그걸 좀 잘하도록.

그리고 이 호흡은 어디까지나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方便)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참선은 어디까지나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하고 의심이 커야만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궁극은 '참선'하면 화두(話頭)지마는 그 화두를 잘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골라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되도록 그러한 기초 위에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해야 한다.
'의심(疑心)이 간절하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무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무엇고?'

자기 화두(話頭) 해야 혀. 이 화두 좀 해봤다, 이것이 좀 안된다고 해서 다른 화두 좀 해봤다 그런 게 아니라,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되면 잘되는 대로 화두를 관(觀)해 나가고, 잘 못되면 못되어도 그 화두를 계속 들고 나가야 하는데,
'잘 못된다' 하는 것은, 화두를 들면은 금방 든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이 생각, 저 생각이 아무 주책없는 생각이 지내간 생각, 현재 닥치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또는 얼토당토않는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리고 시간은 지루하고 몸은 뒤틀리고 애를 먹게 되는데 그러한 경지가 오더라도 그것이 나쁜 경지가 아니여.

짜증을 내지 말고 조용히 일어서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가지고는 정신이 맑아지면 또 앉아서 하고. 하다가 또 몸이 뒤틀리고 혼침(昏沈)이 졸음이 와 가지고 영 맑은 정신이 안 나면은 다시 또 살모시 일어나 가지고 나가서 왔다갔다 정신을 좀 채려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또 하고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은 또 한결 수월하게 또 잘되는 것이니, '잘된다'고 해서 또 좋아하지 말고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여법(如法)하게 화두만 들고 나가면은,
그렇게 해서 잘될 때도 있다가, 또 잘 안될 때도 있다가 하는 그런 많은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도 한결같이 퇴전하지 말고 번뇌심을 내지 말고, 여법히 화두를 들고 나가면은 반드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말이여.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을 받아야지,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 해 가지고는 선지식을 찾지 아니하면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라」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맛있는 음식이 변해 가지고 독약이 되는 격이 되아.
그 애써서 얻은 그 깨달음이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을 해 가지고 살림을 해 가면은 그 좋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독약이 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깨닫기 전에도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참 옳게 닦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해제(解制) 때까지 한 보름 남었는데 보름 동안, 정초(正初)가 되어서 좀 어수선한 점도 있겠지마는, 어수선하거나 말거나 언제든지 우리는 처음보다도 중간, 중간보다도 끝으로 가면서 공부가 알뜰하게 되어져야, 알뜰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그 사람은 참으로 발심한 사람이고, 옳은 사람이여.
처음에는 근사하니 아주 발심한 것처럼 하다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그 신심(信心)이 식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그런 것을 용두사미(龍頭蛇尾)라 그러는데, 용두사미로 된 사람은 백사(百事)가 불성(不成)이여.

보통 납월팔일(臘月八日)이 지내면은 해제만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수가 있는데, 우리 대중은 해제가 가까워질수록에 더욱 채찍을 가하면서 알뜰히 정진을 해 가지고 그렇게 참 용두사미가 아니도록 끝으로 갈수록 점점 공부가 충실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20분30초~39분30초) (끝)





[법문 내용]

선지식(善知識)에게 화두를 타 가지고 분별심 내지 아니하고 무조건하고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라. 이렇게만 해 가면 아무 병폐가 없는 것이여 / 화두(話頭)는 의심(疑心) /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오직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만을 간절(懇切)히 지어가야 그 사람에게는 깨달을 분(分)이 있는 것이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일어나는 생각을 없앨라 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일어난 줄 알면 퍼뜩 그 생각으로 '이뭣고?'를 들면 된다 / 쥐가 쥐 잡아먹는 비유 / 화두는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의관(疑觀)! 알 수 없는 의심관(疑心觀)이라야지, 무엇이고 한군데만 정신을 집중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 의심(疑心)이 간절해서 전체가 의심이 되었을 때, 의심(疑心) 아래에 깨닫는 것 / 알 수 없는 의심, 일체 화두는 다 그 의심(疑心)에 가서 요점이 있는 것.

참선(參禪)을 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가지고 단전호흡(丹田呼吸),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해야 한다 / 수승화강(水昇火降) / 상기병(上氣病) / 호흡은 어디까지나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方便) /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을 받아야.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


법문(法門)은 많이 들어서 머리 속에다 넣어 놓고 많이 듣고 많이 알고 있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고서 자기에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일체 지식 · 알음알이를 놔버리고, 다못 자기 본참화두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이 현전해야만 그것이 법문을 옳게 들은 것이다 그 말이여. 천 번, 만 번을 법문을 듣고 해도 다못 알 수 없는 한 생각뿐이라야 된다 그 말이여.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 가지고—나무둥치가 썩지 아니한 나무둥치는 나무꾼이 불을 때기 위해서 끌텅을 캐 가기라도 하지마는, 완전히 버근버근이 썩어 문드러져 버린 그러한 나무둥치는 나무꾼도 그것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 말이여.
그러한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가지고 오직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만을 간절(懇切)히 지어가야, 그래야 그 사람에게는 깨달을 분(分)이 있는 것이다.

번뇌 망상 일어나는 놈이나, '이뭣고?' 드는 놈이나, 내나 그놈이 깨닫지 못했으면 그것이 중생심(衆生心)이고.
버리려고 하면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버리려고 한 그 생각도 역시 번뇌 망상이여. 중생심이여. 그래서 버리려고 하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으로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마치 쥐란 쥐는 다 잡어먹고 더 잡어먹을 쥐가 없고 그래 가지고는 배 터져 죽듯이, 이 화두도 의심이 커지고 커지고 해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게 되면은 지가 터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조주(趙州)의 뜻을 깨닫고, 무량겁래(無量劫來)로 내려오는 나의 마음을 깨닫고, 불조(佛祖)의 뜻을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는 것이다 이 말이여.

호흡은 어디까지나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方便)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참선은 어디까지나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하고 의심이 커야만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궁극은 '참선'하면 화두(話頭)지마는 그 화두를 잘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골라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되도록 그러한 기초 위에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해야 한다.
'의심(疑心)이 간절하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무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무엇고?'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을 받아야지,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 해 가지고는 선지식을 찾지 아니하면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라」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맛있는 음식이 변해 가지고 독약이 되는 격이 되아.
그 애써서 얻은 그 깨달음이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을 해 가지고 살림을 해 가면은 그 좋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독약이 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깨닫기 전에도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참 옳게 닦는 것이 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1~25)2020. 10. 29. 22:37

(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 (60분)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0분.

(1/3)----------------


오늘 삼동(三冬) 구순 안거(九旬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고(故)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에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전강 대종사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잘 들으신 바와 같이 몽산 화상(蒙山和尙)에 출가 동기와 중국에 고봉 선사(高峰禪師)께서 3년을 기한을 하고 ‘3년 동안 열심히 도를 닦아 가지고 견성(見性)을 못하면 내가 죽어 버리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고,

3년 동안 밥 먹고 옷 입고, 일체 생활을 다못 화두(話頭) 하나 들고 정진하는 것으로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건마는 조그만큼도 공부가 진행이 없어서, 3년 기한은 머지않았는데 도는 성취를 못해서, ‘이제 나는 죽는 수밖에는 없구나’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그러던 차에 꿈에 화두를 얻어 가지고 일주일 만에 대도를 성취한 고봉 스님의 도를 통하신 설화를 말씀을 해 주시고,

그러는 가운데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러한 화두 드는 법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조실 스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마다 참선 이야기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느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머지않아서 우리는 죽음의 마당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니 됩니다.

단명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죽어서 나오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10년 또는 30년, 많이 살아 봤자 육칠십 세 혹은 칠팔십 세까지 살다가 죽는 이도 있지마는, 한번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아니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死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執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코앞에 ‘죽을 사(死)’자를 딱 써서 붙여 놓은 이 마당에 사소한 일로 시비, 인간으로 태어나서 크고 작은 어떠한 일이라도 ‘죽을 사(死)’자 앞에는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도(道)를 닦을라면은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깨닫지 아니하고서는 그 사람은 도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맨 처음에 말씀하신 몽산 화상도 애당초에는 유교 사상(儒敎思想)에 철저히 젖어 있는 선비였습니다.

‘불교’ ‘스님’하면은 진절머리를 내고, 절 근처에는 지나가다가도 보지도 아니하고, 목탁 소리가 나면 귀를 막을 정도로, 중을 보면은 어제 먹은 밥이 꺼꾸로 넘어올 정도로 비위가 상하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반대하던 그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선영(先塋)에 성묘(省墓)를 갔다가 오는 길에 비가 쏟아져서 잠깐 절 일주문(一柱門)에서 비를 피하다가, 거기서 절에서 화엄경을 설하는 법문을 한마디 듣고 그리고 집에를 와서 낮잠이 들었다가,

꿈에 어떤 노인이 와 가지고 흰 옷을 입힐라다, 검은 옷을 입힐라다 이러는 가운데에 그런 싱갱이를 하고 있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 노인을 꾸짖으면서 ‘금방 오늘 절에서 화엄경 법문을 들었는데 그 사람에게 어찌 그런 옷을 입힐 수가 있느냐’고 꾸짖어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깨서 보니까, 그 꿈에 본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강아지 새끼가—개가 새끼를 나았는데 흰 새끼가 죽어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서 ‘아하, 내가 틀림없이 이 흰 강아지로 태어날 것을 오늘 절 일주문에 비를 피하다가 화엄경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그 공덕으로 강아지 보(報)를 받을 것을 면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절에 가서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를 만나 가지고 참선법(參禪法)을 배워 가지고, 그래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고 하는 그러한 법문이 계셨습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한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출가(出家)한 스님만 할 수 있는 것이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속가(俗家)에 있어도 정말 생사가 두려운 줄 깊이 느끼고, 생활 속에서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만을 올바르게 단속할 줄만 안다면 어디서나 바로 그 자리가 참선하는 도량(道場)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하더라도 무상을 철저히 느끼지 못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한량없는 무명업식(無明業識) · 번뇌(煩惱) 망상(妄想) 일어나는 놈을 단속할 줄을 모르고, 일어나는 한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을 훨훨 피우며 오욕락(五欲樂)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하면은 아무리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고 가사(袈裟)를 몸에 걸쳤을망정 견성성불은 막연하고 요원한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단속(一念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출가해서 10년, 20년, 30년을 ‘이뭣고?’를 하고 선방(禪房)에 다니시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참선을 해도, 나를 깨닫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 그러한 스님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심성(心性)도 얌전하고 인자하고, 행동도 바르고 깨끗하고, 철저히 참선할라고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10년, 20년, 30년이 되도록 나를 깨닫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문제는 화두(話頭), 화두를 어떻게 단속해서... (녹음 끊김)... 마음의 눈을 박느냐?

이러한 구체적인 곳에 들어가서 자기의 정진을 지어 나갈 줄 모르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 입으로만 관세음보살 부르듯이 ‘이뭣고’를 천만 번을 찾아 봤자, 그 ‘이뭣고~?’하는 골똘한 그리고 간절한 의심의 뭉침이 없다고 하면은 아무리 입으로 ‘이뭣고’를 백 번 천 번을 해도 그것은 입 껍데기로만 하는 것이지, 옳게 화두를 관(觀)할 줄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금년은 해 · 묘 · 미(亥·卯·未), 돼지띠 · 토끼띠 · 염소띠 이 세 가지 띠를 가진 사람이 삼재(三災)를 맞는 해입니다.

인천 용화사에 신도들이 많이 와 가지고 '금년에 삼재가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삼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입춘일을 기해서 보통 평상시 오시는 신도보다도 훨씬 많은 신도들이 와 가지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불공(佛供)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서 삼재 면할 부작(符作)을 달라고 모다 그럽니다.


그러나 다른 절에서는 많이 부작을 모다 찍고 마련해서 노나 드리기도 하는 절이 많은 모양입니다마는 인천에서는 그러한 종이로 이루어진 부적(符籍)을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그런 것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부적을 드린 것도 신도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나아가서 정법(正法)에 발심해서 복과 혜를 닦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지마는 용화사에서는 그러한 종이로 된 부적을 노나 드리지 안 했습니다.


그리고서 삼재 소멸하는 기도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는 것으로써 삼재 소멸하는 불공 기도를 삼고, 또 앞으로 3년 동안 삼재 액난(厄難)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부적은 무엇으로서 드렸느냐 하면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의 화두(話頭)를 분명히 일러 드렸습니다.

이 화두 하나만을 옳게 듣고 옳게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삼재 뿐만이 아니라 무량겁(無量劫) 죄업(罪業)도 거기에서 녹아지는 것이며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마구니도 이 화두 앞에는 머리를 싸매고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재(三災)는 저 밖에서 뿔 돋친 귀신이 나한테 달라드는 것도 아닌 것이고, 무슨 대가리만 있고 아랫도리는 없는 이상스럽게 생긴 더벅머리가 나한테 달라드는 것도 아닙니다.

「삼재는 어디서부터 일어나느냐」 하면은 내 마음으로부터 좇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설사 병고(病苦)라든지 손재(損財)라든지 또는 생명을 잃는다든지, 관재구설(官災口舌)이라 하드라도 그것이 전부 과거에 내가 마음으로 지은 그 죄의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받는 것이고, 금생에 내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을 못함으로서 그것이 악한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앞으로 받을 삼재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지은 삼재의 원인을 소멸하고, 앞으로 삼재를 물리치고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죄를 지을 수 있는 근원을 다스린다고 하면은 이 방법 이상 더 좋은 삼재소멸 기도는 없는 것이며, 삼재소멸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부적은 없는 것입니다.



'참선, 참선' 요새 굉장히 승속을 막론하고 외국에까지도 이 참선에 붐이 일어나 가지고 입으로는 아니한 사람이 없고, 말로는 이 참선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에는 크게 노나서, 두 가지를 노나서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구(死句) 참선—죽은 참선 또 하나는 활구(活句) 참선—산 참선, ‘죽은 참선’과 ‘산 참선’이 있습니다.


‘죽은 참선’은 아무리 해봤자 점점 삼재를 불러 일으키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점점 충동이 쳐 가지고 마구니의 권속으로 떨어져 가지고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佛法)을 망하는 마구니로 떨어지는 길이고,

‘산 참선’, 활구참선을 해야만 나를 생사로부터 건져내고 다른 사람을 생사의 윤회로부터 건져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영원히 이어 나가는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죽은 참선’이냐?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고, 교리로 따져 들어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렇게 자꾸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는, 그리고 차츰차츰 알아지는 것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고, 이러한 참선은 이것이 바로 ‘죽은 참선’, 죽음으로 들어가는 생사윤회로 떨어지는 참선입니다.


제가 아무리 경을 많이 읽고 교리에 무불통지(無不通知)하고, 일체 철학·문학·과학 그런 학문에 맥힘이 없다 하드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지식이요, 지식은 중생심(衆生心)으로 알아 들어가는 것이요, 중생심으로 전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해도 그것은 중생심 안에서 있는 일입니다.

많이 알수록 중생심만 더욱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까닭으로 해서—중생심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여, 생사심을 치성하게 함으로서 생사윤회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은 알아 들어가고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나 교리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알고 연구해서 얻어져 갖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그러한 것을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동원를 해 가지고 그러한 것으로 더듬어 들어간다면은 그것은 활구참선이 아닙니다.(처음~20분57초)





(2/3)----------------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믿어지는 선각자(先覺者)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공부를 시작해야 하고, 공부를 진행해 나가야 하고, 공부를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라」


달마 스님은 인도에서 향지국(香至國)이라고 하는 나라의 제3 왕자로 태어난 분으로 일찍이 출가해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140세가 되도록 서인도 천지을 다니시면서 대법(大法)을 선양을 하시다가 인연이 중국에 있는 것을 짐작을 하시고 말년에 중국으로 건너오셨습니다.

중국에 건너오셔 가지고 맨 처음에 양무제(梁武帝)라고 하는 천자(天子)가 불교에 신심이 장하다는 말씀을 듣고 양무제를 찾아가 면회를 했습니다.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향해서 묻기를 “짐(朕)이 많은 경을 인쇄해서 널리 보시를 하고, 많은 절을 짓고 많은 승려들을 득도를 해서 절을 짓고 탑을 많이 세우고 했으니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기를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조끔도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뜻입니까?”

“확연(廓然)해서 조끔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은 짐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不識]”


이렇게 대화가 오고 감으로 해서 달마대사는 양무제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그길로 물러나와서 위(魏)나라 숭산에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사람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했습니다.


양무제는 그 뒤 훌륭한 의인으로부터서 “대관절 그 왔다간 달마대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요?”

“그이는 불(佛) 후신(後身)으로서 생불(生佛)과 같은 어른으로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이어받은 대도사입니다”


“하 그러냐”고, “그러면 그이를 다시 모셔 오도록 하자”

“아닙니다. 그이는 천하의 사람이 다 가서 청한다 해도 그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리해서 양무제는 정말 자기가 그런 대도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푸대접한 것을 깊이 뉘우치고 그 뒤로 부터서는 정말 마음으로부터 달마대사를 숭배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던 것입니다.


드디어 달마대사는 그러한 천자의 귀위(歸依)를 받고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마는, 그것을 시기하는 다른 율사의 무리들의 무고로 인해서 독약을 여섯 번이나 받았으나 번번이 토해 버림으로써 죽음을 면했습니다.

일곱 번째 독약이 또 왔습니다. 그때는 이미 당신이 인연이 그것인 줄 알고 독약을 토하지 아니하므로 해서 조용히 열반을 맞이했습니다.


그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셔서 어떻게 법을 선양하셨느냐?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시기 전에 이미 많은 불경(佛經)이 중국에 들어왔었고 불상(佛像)도 들여왔었고 많은 강사, 율사들이 건너와서 굉장히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달마대사는 ‘불입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바로 그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이 말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그것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은 어찌 달을 보라고 하는 것인데,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면 그것이 말이 될 말이냐?

팔만대장경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못하거늘 어찌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볼 수가 있느냐? 이것은 불법(佛法)이 아니다. ‘참 불법’은 달을 보는데 있는 것이지 손가락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사(講師)들의 비위를 건드렸고, 율사(律師)들의 비위를 건드려서 달마대사는 정말 죽음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은 ‘내가 나를 깨닫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경을 읽고 교리에 밝고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에 밝은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면은 그 경을 옳게 본 사람이라면은 반드시 나를 깨달을 수 있는 참선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경을 잘 못 보기 때문에 일생을 경만 뒤적거리고 경만 읽고 있지, 경을 옳게 본 사람이면 바로 참선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참선(參禪)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입니다. ‘내’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일어나는 곳에 ‘나’는 있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 중생심 이것이 바로 ‘참나’가 있는 증거입니다. 그놈을 버리고 나를 찾아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큰 강물이 흘러갈 때에 그 강물이 대관절 어느 수원(水源)으로부터서 그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는가? 그 근원을 알고자 하면은 그 강물을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흘러가고 있는 그 강물을 떠나서 다른 데를 아무리 방황을 해봤자 그 근원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며, 그 강물을 따라서 밑으로 내려가 봤자 바다밖에는 나오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면 반드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여.

성냈다 · 웃었다 · 근심 · 걱정 · 번뇌 · 망상 일어나는 그것을 강물에다 비교한다면 그 일어나는 곳, 그것이 바로 근원이 ‘참나’요, 그것이 나에 ‘본 성품(本性品)’이요, 진여자성(眞如自性)이요,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이뭣고?’

성이 날 때나, 슬플 때나, 근심 걱정이 있을 때나, 언제 어디에서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려서 ‘이뭣고?’


화두(話頭)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있지마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요, 생겨나기 이전에 노상 있었던 화두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이전에도 이 ‘이뭣고?’ 화두는 온 법계(法界)에 노상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지혜스러운 부처님께서는 먼저 어릴적부터서 이 화두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12년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녹음 끊김)... 납월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서 솟아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하늘에 뜬 별의 원리가 아니라, 바로 ‘나’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나! ‘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우주에 근본이요, 우주인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우주는 존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주라고 하는 것은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없는 허공을 커다란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면은 그 거울에 나의 모습이 비추어서 반사해서 돌아온 것이 바로 이 우주에 가득찬 삼라만상(森羅萬象)인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꽃이 피어 있어도 그 마음이 슬픈 자는 그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보다는 슬픔에 눈물이 흘르는 것입니다. 밝고 밝은 하늘의 달을 보고도 마음이 기쁜 사람은 흥겨워 노래가 나오지만, 마음이 슬픈 자는 그 달을 보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입니다.

달은 슬픔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꽃도 자체가 슬프거나 기쁜 것도 또는 자체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비단 달과 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요, 일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자식, 일가 친척, 모든 사람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마음이 기쁘고 내 마음이 착하면 모든 사람이 다 착한 법입니다. 내 마음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내 마음이 뒤숭숭하면 그렇게 사랑하던 자식도 귀찮고 뵈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 마음 하나 바르고, 안정되고, 맑게 유지한다고 하면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해(苦海)가 아니라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니가 너를 깨달어라!’ ‘너의 참마음을 깨달어라’ 이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많은 말씀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이렇게도 말씀하시고 저렇게도 말씀하셨을 뿐, ‘니가 너를 깨달어라’하는 그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佛敎)’라고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불교(佛敎)의 ‘불(佛)’자는 인도의 ‘붓다(Buddha)’라 하는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해서, 그것이 불타(佛陀)가 한국에서는 ‘붇텨, 붇텨님, 붇텨님’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 ‘부처님’하면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닫는 길이다, 깨닫는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여.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 신도(信徒)가 된다」고 하면은 「깨닫기 위한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깨닫기 위한, 나를 깨닫기 위한 참선! 이것 말고 다른 어떠한 훌륭한 일을 하고 어떠한 남의 이목을 끄는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무공덕(小無功德)’인 것입니다.


왜 ‘소무공덕’이냐?

절을 짓는데 시주(施主)를 하고, 부처님 금(金)을 입히는데 시주를 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돈과 옷을 많이 보시를 하고, 병든 사람 약을 사주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인 방법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생사(生死)를 끊는 무루복(無漏福)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는 어디까지나 착한 일이고, 그런 착한 일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니지마는, 궁극적으로 볼 때에는 그것으로 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는 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끊는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별로 큰 공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무공덕(小無功德)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착한 공덕을 지었다고 해서 ‘나는 이런 좋은 일을 했다’하고 그러한 자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뽐내고 이러한 것은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양무제가 경을 그렇게 많이 찍어서 보시를 하고, 절을 많이 짓고 탑을 많이 세우고, 스님네에게 그렇게 많은 공양구(供養具)를 올려서 보시 공덕을 지은 것을 크게 자랑을 세워 가지고,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에게 “내가 이러한 착한 일을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대사가 너무나 점잖으셨기 때문에 ‘소무공덕(小無功德)’이라고 간단히 한마디하셨을 뿐, 참으로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정말 자비심으로써 상대를 하셨다면은 그 자리에서 양무제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이여.

일년 이태 삼년의 삼재(三災),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삼재, 과거의 죄(罪)를 소멸하고 금생의 업(業)을 소멸하고,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부적이요, 불공(佛供)이요, 공덕이 되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선만 한다’ 해 가지고 다른 어떠한 착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써야 할 최소한도의 액수를 내놓고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보시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쌍으로 닦아야만 내가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이고, 도를 성취한 뒤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만 닦고 복을 짓지 아니하면, 혜(慧)는 밝지마는 너무나 모든 여건이 맞지를 안해서 자기와 남을 생사로부터 건져내는 데에 필요한 여건이 갖추지를 못해서 중생 교화하는 데에 막대한 장애에 부닥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복도 지어야 하는 것이고 복만 짓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찾는 참선 공부, 활구참선 그것이 오히려 선행(先行)되어야 하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어서 그 위에 복을 닦는 행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20분58초~40분48초)





(3/3)----------------


참선은 첫째, 몸을 바르게 가져라.

둘째에 호흡을 바르게 해라.

셋째에 생각을 바르게 가져라.


‘몸을 바르게 갖는다’고 하는 것은 가부좌(跏趺坐), 가부좌가 어려우면 반가부좌(半跏趺坐)도 상관이 없습니다. 반가부좌를 떠억 하고.

그리고서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심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몸을 혈액순환을 촉진을 시켜서 몸의 노폐물을 빨리 배설을 시키고, 몸을 가볍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그러한 묘방(妙方)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데에는 복식 심호흡을 잘 그 방법을 알아 가지고 복식 심호흡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식 심호흡이 잘된 연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지도 받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옳게 단속해 나간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만 명이면 만 명 다 반드시 대도(大道)를 성취하고 마는 것입니다.

몸을 바르게 갖지를 못하고, 호흡을 바르게 갖지 못하고서, 화두만 열심히 들고 나간다고 하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골치가 아픈 병이 생기고, 그래서 상기병(上氣病)으로 공부는 성취하기도 전에 병에 걸려서 일생을 한숨 속에서 지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하고자 하면은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지고, 둘째에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리고서 화두를 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화두(話頭)입니다.


화두는 ‘알 수 없는 것’이 그 화두에 핵심입니다. 화두를 아무리 들되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몰록 드러나지 아니한다고 하면, ‘알 수 없는 의심’에 마음이 꽂히지 않는다고 하면은 그건 옳은 화두가 아닙니다.


「화두를 의심한다」고 하는 것은 의심(疑心),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 하시는 분은 ‘이뭣고?’ ‘이~ 이뭣고 하는 놈이 뭣고?’

‘이~?’하는 놈이 무엇이냐 말이야?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도 여기에는 끌어들여서는 아니됩니다. 화엄경의 말씀도 이 ‘이뭣고?’하는 데에는 끌어들여서는 아니됩니다. 자기가 팔만대장경을 육두 백방으로 외우고 꿴다 하더라도 ‘이뭣고?’하는 데에는 그것를 등장시켜서는 아니됩니다.


다못 바보 천치가 되고, 멍청이가 되어 가지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무조건으로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똥누면서도 ‘이뭣고?’

불칼 같은 신경질이 볼쏙 솟아 나올 때도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배가 아퍼서 몸부림을 칠 때도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차를 타고 갈 때도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루에 만독(萬讀)이나 십만독 채우기 위해서 염주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런 염불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뭣고~?’ 깊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면서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이 꽂히도록, 알 수 없는 생각에 눈을 박고.


그 화두를—복식 심호흡을 하면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생각을 거기에다 붙여서 하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복식 심호흡을 시작하면 벌써 ‘이뭣고?’가 거기 붙어가고, ‘이뭣고?’하면 벌써 복식 심호흡이 되도록. 이 심호흡과 화두가 동시에 나아가도록.


처음에는 ‘이뭣고?’하면 호흡이 잘 안되고, 호흡을 하면 ‘이뭣고?’가 잘 안되고 이러는 수가 있지마는 자꾸 훈련을 쌓아서 자꾸 간절히 간절히 해 가다 보면은 ‘이뭣고?’하면 벌써 호흡이 되고, 복식 심호흡을 떠억 하면 화두가 저절로 터억 들려지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화두와 호흡이 한목 나아가도록.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처음에는 ‘이뭣고?’해도 금방 ‘딴생각[別念]’이 들어오지마는 딴생각이 들어온 것을 성화대지 말고, 들어온 줄 알면 벌써 ‘이뭣고?’로 돌아오면 그뿐이여.

그래서 천 생각, 만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을 그것을 싫어하고 성화를 대지 말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놈을 되잡아서 ‘이뭣고?’로 돌아오면 백만 번 일어났자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뭣고?’ 자꾸 화두를 해 가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조용하고 그러면은 혼침(昏沈)에 떨어지기가 쉬운데, 허리를 쭈욱 펴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이뭣고?’하되 그래도 잠이 달아나지 아니하면은 조용하니 일어서서 밖에 나가 가지고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좀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은 다시 정신이 깨끗해지면 다시 또 방석으로 돌아와 가지고 또 허리를 쭈욱 펴고 ‘이뭣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 무엇인고?


화두는 어느 화두나 다 마찬가지여. 어느 화두가 좋고, 어느 화두가 나쁘고 한 것은 없지마는 화두는 간략(해야) 하고, 이런가 저런가 사리상량(邪理商量)을 붙일 수 있는 소지가 있는 화두는 좋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따질 수 있는 그런 꼬타리 붙일 만한 그런 가능성이 있는 화두는 까딱하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사량심(思量心)이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화두는 자기 멋대로 골라잡는다든지, 올바르게 화두 간택을 해 줄 수 없을 만한 사람한테 화두를 간택을 받는다고 하면은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더듬거리게 됩니다.


그러니만큼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선지식, 또 내 자신이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간택을 받고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공부를 하다가 어떠한 이상한 경지가 나타나면 바로 그 선지식한테 가서 감정을 받어서 옳은 것이면 옳은 대로, 그른 것이면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 가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해 지어 가는 가운데 부처님이 나타난다든지, 관세음보살 모습이 나타난다든지, 어떠한 신기한 것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환(幻)입니다. 실상(實相)이 아니라 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두 번 다시 눈여겨볼 필요도 없고, 생각을 거기다가 쏟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나타나건, 어떠한 것이 보이건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로 돌아와서, 들고 또 들고 이렇게 간절히 공부를 지어 간다고 하면은 시비(是非)에 걸려서 속상할 까닭도 없고, 계행(戒行)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날 까닭도 없는 것이고, 그 가운데에 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단속하는 가운데에 무량겁 업장(業障)은 거기에서 소멸이 돼.


앞으로 그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에게 무슨 삼재팔난(三災八難)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있을 경우는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 나타난 경우가 있습니다.


불보살은 화현으로 나타날 때에 마냥 거룩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나찰(羅刹)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달(調達)이와 같은 그러한 무도(無道)한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 가지고 수행인으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게 하고, 신심(信心)을 일어나게 하고, 분심(憤心)을 일어나게 해서 해태(懈怠)로부터 벗어나고 하루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그렇게 화현하신 수가 너무 많습니다.


착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化身)은 순행보살(順行菩薩)이고, 마왕 파순이나 조달이나 나찰 귀신으로 나타난 불보살은 역행보살(逆行菩薩)인 것입니다.

순행보살보다는 오히려 역행보살로 나타나 가지고 나의 육체와 정신에 자극을 주고 충격을 주어서 대발심, 대분심을 일으키게 해 준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바른 신심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서 정말 발심을 해서 대도를 성취하는 것이고, 바른 신심이 없는 사람은 거기에서 중생심,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일어나 가지고 그 불보살이 주는 약을 바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꺼꾸러져 가지고 무간(無間) 악도(惡途)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역행보살로 나타난... (녹음 끊김) 불보살의 역행으로 나타난 화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 인행(因行) 시에 나찰 귀신이 나타나 가지고 부처님을 깨닫게 해 주신 열반경(涅槃經)의 설화를 잘 아실 것이고, 조달이가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부처님을 해롭게 함으로 해서 부처님으로 하여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 바로 조달입니다.


조달이는 역행으로 나타나신 불보살의 화현인 것입니다.


만일에 부처님이 나찰 귀신이라 해 가지고 미워하고 배격을 함으로 해서 법문을 듣지 아니 했다든지, 10생을 따라다니면서 해꼬자하는 조달이를 미워하고 웬수로서 상대를 하셨다면은 부처님은 대도를 성취하시기커녕은 악도에 떨어질 길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부처님은 그 나찰 귀신에게 몸을 바쳤어.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이 반 구절을 듣기 위해서 몸을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이웃에 여러분을 험담하고, 여러분을 해롭게 하고, 여러분의 돈을 가져다 쓰고 갚지 아니하고, 갖은 방법으로 여러분을 해꼬자한 사람을 원수로서 상대하지 말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더욱 발심을 하시고 신심을 내서 ‘이뭣고?’를 하십시오.

그러면은 여러분을 해꼬자한 그 마구니들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현으로서 여러분에 훌륭한 스승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나간다면은 이 세상에 나의 원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채찍질해 주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불보살 화현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불보살 화현을 웬수를 만들고 자기는 따라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느냐?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느냐는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석 달 안거가 끝나는 해제일로써 앞으로 석 달 동안은 산철이 됩니다.

석 달 동안 외출을 금지하고 결제(結制)를 하는 것은 앞으로 돌아오는 자유롭게 지내는 산철 동안을 철저히 공부가 잘되게 하기 위한 기본 수련기간입니다.

석 달 동안 외출을 끊고 구속된, 제한된 규칙 내에서 정진을 한 그 기초 공부를 자유기간 동안에 훌륭히 활용을 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도업(道業)을 하루속히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제(解制)했다'고 해서 여기저기 싸다니면서 구경으로 한철을 보내고, 히히닥거리고 시비(是非)로써 세월을 보낸다고 하면은 그동안 애써서 석 달 동안 닦아 놓은 공부가 다시 쑥대밭이 되고,

그렇게 해서 쪼끔 병이 나을 듯하다가 함부로 조리(調理)를 잘못해 가지고 팍! 악화가 되고, 또 그다음 석 달 동안 쪼끔 치료를 해서 나을 성하다가 또 다시 해제가 돌아오면 조리를 잘못해 가지고 팍! 악화가 되고, 그러다가 종내(終乃) 병을 낫으지를 못하고 한(恨) 많은 일생을 마치는 그런 환자가 있다면은,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마는.


결제 동안에 쪼끔 공부를 애써서 하다가 해제가 되면은 뿔뿔거리고 돌아다니고, 시비와 탐진치 삼독을 불태우면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또 그다음 결제가 돌아오면 또 결제에 앉어서 공부한 척하다가, 이러한 식으로 공부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한 선지식은 없습니다.

고봉 선사(高峰禪師)가 확철대오를 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에는 3년 동안의 피나는 정진, 죽음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3년이 하루같이 지낸 데에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 그리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오늘을 기해서 더욱 마음을 가다듬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서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빌고 오늘은 이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렇게 말씀해 드린 이 말씀을 명심해서 듣지 아니한다면은 후생(後生)에 지옥고(地獄苦)에—지옥에 떨어져서 하루에 만 번 죽고, 만 번 살아나서 한없는 고통을 받을 때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40분50초~60분16초)(끝)





[법문 내용]


우리는 이미 사형 언도를 받은 신세, 다만 그 집행일만 모른다. 무상을 철저히 느끼고 도를 닦아야 / 몽산화상의 출가 인연 /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일념단속(一念團束) / 화두를 옳게 관(觀)해야 한다 / 삼재(三災)는 내 마음으로부터 좇아 일어나는 것. 삼재소멸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부적은 활구참선의 화두(話頭) / 활구참선(산 참선)과 사구참선(죽은 참선).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라」 / 달마 스님과 양무제(梁武帝)의 대화 / 불입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 참선(參禪)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 /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


참선은 몸을 바르게, 호흡을 바르게, 생각을 바르게(알 수 없는 의심) / 심호흡(단전호흡)과 화두가 동시에 한목 나아가도록 /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 순행보살(順行菩薩)과 역행보살(逆行菩薩) / 조달이는 역행으로 나타나신 불보살의 화현 /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나를 채찍질해 주는 선지식이요, 불보살 화현이 되는 것이다 / 자유롭게 지내는 산철 동안에도 철저히 공부해야.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한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단속(一念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삼재 소멸하는 기도는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는 것으로써 삼재 소멸하는 불공 기도를 삼고, 또 앞으로 3년 동안 삼재 액난(厄難)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부적은 무엇으로서 드렸느냐 하면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의 화두(話頭)를 분명히 일러 드렸습니다.

이 화두 하나만을 옳게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삼재 뿐만이 아니라 무량겁(無量劫) 죄업(罪業)도 거기에서 녹아지는 것이며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마구니도 이 화두 앞에는 머리를 싸매고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〇‘죽은 참선’은 아무리 해봤자 점점 삼재를 불러 일으키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점점 충동이 쳐 가지고 마구니의 권속으로 떨어져 가지고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佛法)을 망하는 마구니로 떨어지는 길이고,

‘산 참선’, 활구참선을 해야만 나를 생사로부터 건져내고 다른 사람을 생사의 윤회로부터 건져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영원히 이어 나가는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있지마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요, 생겨나기 이전에 노상 있었던 화두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이전에도 이 ‘이뭣고?’ 화두는 온 법계(法界)에 노상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하늘에 뜬 별의 원리가 아니라, 바로 ‘나’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나! ‘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우주에 근본이요, 우주인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우주는 존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주라고 하는 것은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없는 허공을 커다란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면은 그 거울에 나의 모습이 비추어서 반사해서 돌아온 것이 바로 이 우주에 가득찬 삼라만상(森羅萬象)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니가 너를 깨달어라!’ ‘너의 참마음을 깨달어라’ 이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많은 말씀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이렇게도 말씀하시고 저렇게도 말씀하셨을 뿐, ‘니가 너를 깨달어라’하는 그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佛敎)’라고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 ‘부처님’하면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닫는 길이다, 깨닫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 신도(信徒)가 된다」고 하면은 「깨닫기 위한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깨닫기 위한, 나를 깨닫기 위한 참선! 이것 말고 다른 어떠한 훌륭한 일을 하고 어떠한 남의 이목을 끄는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무공덕(小無功德)’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이여. 일년 이태 삼년의 삼재(三災),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의 죄(罪)를 소멸하고 금생의 업(業)을 소멸하고, 영원히 생사해탈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부적이요, 불공(佛供)이요, 공덕이 되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화두는 ‘알 수 없는 것’이 그 화두에 핵심입니다. 화두를 아무리 들되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몰록 드러나지 아니한다고 하면, ‘알 수 없는 의심’에 마음이 꽂히지 않는다고 하면은 그건 옳은 화두가 아닙니다.알 수 없는 생각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도 여기에는 끌어들여서는 아니됩니다. 화엄경의 말씀도 이 ‘이뭣고?’하는 데에는 끌어들여서는 아니됩니다. 자기가 팔만대장경을 육두 백방으로 외우고 꿴다 하더라도 ‘이뭣고?’하는 데에는 그것를 등장시켜서는 아니됩니다.

다못 바보 천치가 되고, 멍청이가 되어 가지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무조건으로 ‘이뭣고~?’


처음에는 ‘이뭣고?’하면 호흡이 잘 안되고, 호흡을 하면 ‘이뭣고?’가 잘 안되고 이러는 수가 있지마는 자꾸 훈련을 쌓아서 자꾸 간절히 간절히 해 가다 보면은 ‘이뭣고?’하면 벌써 호흡이 되고, 복식 심호흡을 떠억 하면 화두가 저절로 터억 들려지게 된다. 그래서 이 화두와 호흡이 한목 나아가도록.


불보살은 화현으로 나타날 때에 마냥 거룩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나찰(羅刹)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왕(魔王) 파순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달이와 같은 그러한 무도(無道)한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 가지고 수행인으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게 하고, 신심(信心)을 일어나게 하고, 분심(憤心)을 일어나게 해서 해태(懈怠)로부터 벗어나고 하루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그렇게 화현하신 수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에, 이웃에 여러분을 험담하고 해롭게 하고, 여러분의 돈을 가져다 쓰고 갚지 아니하고, 갖은 방법으로 여러분을 해꼬자한 사람을 원수로서 상대하지 말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더욱 발심을 하시고 신심을 내서 ‘이뭣고?’를 하십시오.

그러면은 여러분을 해꼬자한 그 마구니들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현으로서 여러분에 훌륭한 스승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나간다면은 이 세상에 나의 원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채찍질해 주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불보살 화현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불보살 화현을 웬수를 만들고 자기는 따라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느냐?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느냐는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결제 동안에 쪼끔 공부를 애써서 하다가 해제가 되면은 뿔뿔 돌아다니고, 시비와 탐진치 삼독을 불태우면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또 그다음 결제가 돌아오면 또 결제에 앉어서 공부한 척하다가, 이러한 식으로 공부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한 선지식은 없습니다.

고봉 선사(高峰禪師)가 확철대오를 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에는 3년 동안의 피나는 정진, 죽음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3년이 하루같이 지낸 데에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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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1~25)2017. 11. 28. 09:31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03)—병진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76.05.29)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동산 숭장주가 행각을 떠나는 제자에게 하신 법어.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18분.

(1/3)----------------

진로형탈(塵勞逈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

 게송은 황벽(黃檗스님께서 읊으신 게송으로서진로형탈(塵勞逈脫) 사비상(事非常)이라.
진로(塵勞)  그것이 생사(生死)인데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삼복(三伏)  더위를 무릅쓰고 정진을 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설산에 들어가서 6 또는 12년을  고행을 하시면서 수행을 하신 것도 그것도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 무량(無量보살이 출현하셔서 애를 쓰신 것도 또한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하라긴히 승두(繩頭)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해라.
승두는 화두(話頭) 그말이여화두를 터억 잡고서 한바탕 해봐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한번 차운 것이 뼛속에 사무치지 아니할진대는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매화꽃이   속에서 매화꽃이 피는데되게 강추위를 한바탕  뒤라야강추위를 겪어야만  매화꽃이 피게 되는데 추위를 지내지 아니하고서는 어떻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수가 있겠느냐?

정진을 한바탕 되게 해야 그래야 깨달을 수가 있다.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있어야 도업(道業) 성취할 수가 있다그러한 게송(偈頌)이었습니다.


오늘은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라고 하는 분이  제자를 행각으로 내보내면서  주는 법문(法門)을 말씀하겠습니다.

대저 행각(行脚)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목적으로 하는 것이냐?
도로써 ()로써 회포(懷抱) 삼아야  것이니라생사해탈 하기 위한 수행을 하기 위해서  행각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피땀 흘려서 지은 농사농부가 피땀을 흘리고  농사짓는 가운데에 얼마나 많은 방생(傍生)들이 피해를 입었냐 그말이여.
요새는 더군다나 농사짓는데  해충이 옛날과 달라서 그 심해서  년이면 한번 농사짓는데  번씩을  독한 농약을 뿌려서  많은 중생을 모다 죽이고 그래 가지고 얻은  곡식이다.

그리고  곡식이 우리한테  때까지  피땀 흘려서 참,  먹고  입고 해서   돈으로 신도가 시주(施主) 해서 그래 가지고 우리 입에 먹을 것이 들어오고입을 것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공양(供養) 받고서그런 무서운 공양그것이 낱낱이 우리가 도업을 성취하거나 못하거나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갚아야 됩니다.
도업을 성취 못하면은 소나 말이나 돼지나 또는 종이 되어 가지고  은혜를 갚아야  것이고우리가 도업을 성취하면은 ()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무서운  공양을 받고서 등한(等閒) 시간을 보내지 말아라.

모름지기 ‘ ()’ ‘죽을 ()’생사(生死  글자를 이마빡에다가 못을 쳐서 박어서 붙여 놓고,
열두  가운데에지금 24시간이지만 옛날 시간으로는 (), (), (), (), (), (), (), (), ()(), (), () 12시간으로그것이 옛날  시간이 지금  시간과 마찬가지여.

12시간 가운데에 얼굴 껍데기를 폈다 오그렸다 하면서그러니까 화두를 들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 무엇고?’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간절히 화두에 의심하는 거동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얼굴 가죽을 폈다 오그렸다 하면서  화두를 타파(打破) 이거 하나를 밝히기 위해서 간절히 간절히 이것을 밝히고야만 말아야 옳은 것이다.

어째서  ‘ ()’, ‘죽을 ()’  글자를 이마빡에다  붙이냐?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벌써 그것이 내생(來生)인데우리 인생이 부모 뱃속에 들어갈  사형선고를 이미 받아 놓은 사람들이다 그말이여우리는.

천고(千古만고(萬古) 생겨났다  죽은 사람 없으니까우리도 조만(早晩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것이여밤낮 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젊다고  죽고 늙어서만 죽는 것도 아니여. 젊은 사람도 천하 허망하게 죽는 것이고.
다맛 언제 죽을   사형집행일만 모를 뿐이지우리 언도(言渡)  받아 놓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처지(處地)마치 우리의 처지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여름에 물웅덩이에 있는 물이 거의  밭아져서 조금 남은데,
여름에 가물고 비가   때에는 물웅덩이에 물이 차츰 차츰 차츰 말라 가지고는 거의 물이  떨어진 상태에서   웅덩이 속에 크고 작은 송사리붕어 모다 그런 고기들이 호닥호닥호닥 호닥호닥호닥호닥,

물이 넉넉하면은  안에서 물속에서 자유스럽게 헤엄을 치면서 물을 마시고  텐데,
 물이 거의  떨어져 가고 없기 때문에 목은 마르고 서로 저희끼리  물웅덩이 밑바닥에서 바글바글바글바글 호닥호닥호닥 팔닥팔닥팔닥팔닥 뛰면서 그러다가, 완전히 물이 말라질 때에는 그놈들이 시들시들시들  가지고는 말라비틀어 죽는데,

 조그만한 웅덩이에서 물이 밭아져 갖고 고기들이 팔닥팔닥팔닥 호닥호닥호닥 부글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러한 상태에우리 인생이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조금  가면 그날이라도 비가 쏟아지거나 그날이라도 물을 대주면은 그놈이 살아나겠지마는 그날 하루만 불과  시간  있으면 그놈이   늘어져서 뻐드러지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의 인생의 처지가  그와 같은 처지라 그말이여.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우리가 무슨 정황이 있어서 히히닥거리고 잡담하고 또는 사소한 일에 시비하고, 무슨 니가 잘했네내가 잘했네잘못했네 먹었네잘 못 먹었네추호(秋毫) 그럴 정황(情況) 없고 여지(餘地)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 ‘죽을 ()’생사(生死 글자를 이마빡에다  붙이라』  말은 ‘ 생사에 대한  무상(無常) 생각이 우리의 머리에 떠나서는 된다 생사 무상을 철저히 염두(念頭) 두라 뜻이여『이마빡에다가 못을 치라』는 말은.

염두에 두고그저 자나깨나 하루에면 열두 시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입선(入禪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시간이라도, 정 몸이 괴로우면은 방선 시간에 지대방에서 허리를 잡는다 하더라도  시간에도 누워서라도 화두를 간절(懇切) 들을지언정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을 하지 말아라.

떼를 따르고 떼를 따라서 둘씩 셋씩넷씩 다섯씩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앉아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잡담을 하면서 헛되이 보내는 사람은 얼마  가서  한번 나갔다 들어오지 못하면 내생인데,
내생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네가  무섭고  무서운 시주의 밥을 먹고서 도업을 성취하지 못했으니, ‘ 밥값을 내라 밥값이 얼마냐?’하고 밥값을 따지는 날이  텐데그때에 가서 내가 너의 스승으로서 ‘이러한 참, 당부하는 말을 일러주지 않았다 염라대왕 앞에서 말을 하지 말아라.

스승이 나를 채찍질을   주시고꾸짖어주지 아니했기 때문에이렇게 ‘ 염라대왕 앞에 가서  밥값을 따질 것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라 하는 이러한 간절한 말을 내가   주었다고,
스승이 그때 나를 그렇게  주었으면 내가 오늘날  염라대왕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할 텐데, ‘스승이 말을  해주고 내싸두기 때문에 내가 이러한 신세가 되었다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만약 공부를 할랴고 하는 데에는 날마다 자기의 공부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야  것이다.
날마다 뿐만이 아니라 시시(時時) 잡담하다가 히히닥거리다가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내가  속았구나’ 시시때때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시시때때로 타산을 . ‘ 공부가 옳게 하고 있나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아침에 도량석(道場釋) 시작할 때부터서 저녁에 취침할 때까지 잠시도 헛되이 보낸 일이 없이그렁저렁 보낸 일이 없이 생각 생각에 자기를 반성하고,

이게 내가  웬일이냐!’ 히히닥거리고 잡담을 하다가도 퍼뜩 돌이켜서 뉘우치고 화두를 들고, ‘내가 이럴려고 여기를 왔던가내가 이럴려고 중이 되었든가?’ 퍼뜩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라.

이렇게 공부를  간다고 할진대는 반드시 집에 이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반드시 도업을 성취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말이여.


어떠한  닦는 사람어떠한 사람들은 참선한답시고 () 보지 않고부처님께 예불(禮佛) 하지도 않고,
좌복 위에 앉아서 꾸벅꾸벅 그저 졸음이나 자고좌복 위에 앉았다 하면은 꾸벅거리고꾸벅거리다가 조금 잠이 나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면은 번뇌 망상과 쓸데없는 생각으로 번뇌 망상 속에서 사로잡혀 있고.
번뇌(煩惱망상(妄想) 조금 가라앉을만 하면  꾸벅꾸벅 혼침(昏沈속에 빠지고혼침이 조금 나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면 그때부터서는 번뇌 망상으로 세월을 보낸다.

입선 시간에는 그렇게 하고  방선 시간이 되어서 죽비() 치고 방석에서 일어서면은 그때부터서는  옆에 사람하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이러한 식으로 지낸다고 하면은 56 7천만년 후에 미륵불(彌勒佛) 출세하시게 되는데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참선을 한다고 해도 도업을 성취 못할 것이다.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데과거에 부처님 역대조사들이 그런 식으로 지내 갔고 도업을 성취한 분들이 아니여.
 공부를 해서 힘을 얻고  생사해탈하는 그런 불보살이나 역대조사들이  우리보다도 몇십  수승한 근기(根機) 가지시고 태어나셨건만 생명을 걸고  도를 닦은 분들이다 그말이여.(처음~2035)



(2/3)---------------

시시때때로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려서 자기에게 주어진  화두 하나  개의 화두를 들되,
밤이나 낮이나 어디서 무엇을 하거나밥을 먹을 때나세수를  때나빨래를  때나소제를  때나입선 시간 방선 시간을 막론하고  화두를 들고  들고.

들고  들으라 하니까 어떤 분은 ‘관세음보살’ 주력(呪力)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신 분이 있다 그말이여.
 화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것이 무엇이냐?’ 말이여.
이것이 무엇인고?’ 그렇게 화두를   들어 가지고   없는 생각이 떠억 있는 동안에는  들고  들고  해도 

   화두가 2분이나 3분이나 5분이나    없는 의심이 나타나 들려져 갖고 있는 동안에는  들고들어져 있는   없는 의심(疑心)을 ()해야 .
그러다가  화두가 그냥 무력(無力)해진다 말이여의심이 또록또록 하지를 못하고그냥 스르르 하니 무력해지면은 다시 그때 가서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화두를 그렇게 들되 생각[別念]이 어느 틈에 들어오는지  생각이 들어와 가지고  생각  생각 하고 있다가 그런  알면  그때 가서 ‘이뭣고?’ 그러고.
화두는 들고 있는데  생각이 와서 자리는 잡지 않고 생각이 슬쩍 그냥 스쳐만 가버린 경우에는 그것은 겁날 것이 없는 것이여.
그건 문제시 하지 말고 계속 아까부터 들고 있던  화두만을 간절히묵묵히골똘히  의심을 관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화두를 간절히   없는 의심을 ()할지언정, 방석 위에 우두거니 아무 매카리 없이 화두를  것도 아니고  것도 아니고입선했으니까는 그저 시간만 지키기 위해서 일없이 그렇게 앉아 있어서는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석에만 오래 앉아 있는 것으로 장기를 삼어 가지고 노상...
참선이라 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 의심하는 데에 가서 있는 것이지, 화두 놓쳐 버리고 방석 위에 우두거니 앉었거나 또는 졸기만 한다거나무엇을 어떻게 지내든지 화두 놓치고 앉었는 것은 그것은  공부가 온당하니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있으면 앉어서 하는 것이 가장 공부 득력(得力)하기가 쉬웁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앉었는 데에만 집착을 해서도 되는 것이여.

입선 시간에는   있으면 앉아서 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으니만큼 앉어서 하되입선 시간에도 너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혼침에 빠져 가지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그런 때에는 살며시 옆에 공부하는 대중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나가서  5분 바람을  가지고 그리고서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방선 시간에도 시간 나는 대로 앉아서 정진을 하되 앉었기로만 작정을 하지 말고, 졸음이 오거나 그 공부가 깨끗하지를 못하고 몸이 비틀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해서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살며시 나가서 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고  5분만 바람을 쐬고서  들어와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포단(蒲團위에 죽은 사람처럼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들지 아니하고 우두거니 앉었는 것으로 공부를 삼지 말어라.
어쨌든지 공부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하고적적(寂寂)하면서 성성(惺惺)해야지,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허들 못하면은  공부는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허들 못해도 그것은 옳은 공부가 아니다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동시에 겸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나갈  주책없이 잡념이  분분(紛紛) 일어나.
삼동(三冬) 눈이    수천 송이 송이 눈이 펄펄펄펄 내리듯이 먼지가 퍼일어나듯이 그렇게 잡념이 일어나서 그럴 때에는 잡념 그놈을 물리치기 위해서  애를 쓰고그놈 일어난 것을 짜증을 내고 심술을 내고 일어나는 것에  ‘일어난다고 신경질을 내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어라.

그놈을  일어나게 할려고 그놈하고 싸우고 몸부림치고 짜증을 내고 그러지를 말어라그럴수록에 무장  일어나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과 혼침이 일어날 그놈 일어나는 놈을 없이 할려고 갖은 애를 쓰고 그놈과 더불어 싸움을 하는데많은 사람들이 그놈 물리칠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을 간단하게 물리쳐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거 물리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병이 생겨 가지고 가슴이 답답한 소화가 안되는 골치 아픈 온갖 병이 그놈 처리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루같이 일어나는   가지 가지 지내간 과거의 현재 닥치는 앞으로 다가올 또는 지내간 일도 아니요현재에 닥치는 일도 아니요미래로 닥칠 가망성 일도 아닌 천하에 허무맹랑한 생각까지도 퍼일어난다 그말이여.
지내간  생각했다앞으로 다가올  생각했다얼토당토않은 일을 생각하다가.

그놈을 어떻게 해야 물리치느냐그것만 물리치는 방법만 알면은 공부 안된다고 한탄할 것이 없어.

천하 간단한 것이일어난 생각 그놈은 고대로 놔둬 버려야 .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를 말고 고놈은 고대로 놔둬버리고 화두만 들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만 ! ‘어째서 무라 했는고?’ 버리면 아까 퍼일어난 생각은 자취가 없어.
화두를  들어버리면 아까 그렇게 주책없이 일어난 생각이 어디로  곳이 없는데.

 그렇게 해도 화두는  들리지를 않고혼침은 퍼일어나 가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왔다갔다 포행(布行) 하는 것이 제일인 것이다.
그렇게 하면은 졸음도 달아나고 답답하고 그런 가슴속도 시원해지고 머리도 깨끗해진다 그말이여.

그러면 다시  방석 위로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공부를 하는데, 오른다리를 놓고 왼다리를 거기다 포개 놓고손을 오른손을 놓고 왼손을 포개 놓고 하는 것이 보통 정식이지마는,
 번뇌 망상이 퍼일어나고 혼침이 일어날 때는 그렇게 하지를 말고, 엄지손(가락) 먼저 오그리고  다음에  손가락을  위에다 포개서 쥐고서 주먹을 엎어서  무릎 위에다가  놓고 그리고서 공부를  보라 그말이여훨씬 정신이 나고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등어리만 꼬부라지고 허리만 꼬부라졌다 하면은 혼침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등뼈를  펴야 한다 펴고서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정진을 하면은,
언제든지 떠억 새로 앉아서 정진을 할려고  때는 숨을 깊이 빨리 들어마셔 갖고 한동안 참았다가 입으로 ‘—’하고 입으로  내뿜어. 또   그렇게 하고 번을 그렇게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앉으면은 정신이 깨끗하다 그말이여.

펄펄 끓는 물에다가 차운   바가지를 퍼부순 거와 같애.
아까  졸음과 산란심이 퍼일어날 때에 밖으로 나가서 바람 쐬고 포행 좀 하고 그러고 들어와서   주먹을 쥐고 허리를 쭉 펴고 호흡을 2번을 그렇게 하고  앉어 보란 말이여정신이 깨끗해져.

이렇게 처음부터서  이야기한 대로 그렇게 정진을  가면은하루를 그렇게 이틀을 그렇게 열흘을 그렇게  달을 그렇게 ,
날이 가고 달이 가고그렇게 하루하루를 착실히간절히여법(如法)  가면은 반드시 집에 이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향(他鄕)으로 타향으로고향(故鄕) 잃어버리고 타향으로 타향으로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객지(客地생활하고 있는 그러한 사람과 같애.

우리도 불보살(佛菩薩), 역대조사와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지 못하고우리의 본성(本性) 아지를 못하고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자기의 부모와 형제와 정든 고향을 어떻게 625동란과 같은 그러한 피난 통에 부모를 잊어버리고어릴  말이여부모를 잃어버리고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고 객지 신세로 떠돌아다니는 그러한 신세와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러다가 갖은 노력을 하고 백방(百方)으로 알고 수소문(搜所聞)  가지고 자기의 고향이 어디며 자기의 부모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거와 같이,
이렇게 가행정진 용맹정진열심히 정진을  끝에 결국은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집에 이른 데에고향에 돌아가는 데에다 비교한 것이다 말이여고향에 돌아가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공부가 잡히지를 않고화두가  들리지를 않고공부가   같지가 않다 그말이여그러되 번뇌심(煩惱心) 내지를 말아라.
이게 아주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공부가 안되면은 누구를 막론하고 번뇌심이 나기 마련이고 짜증이  것이다 그말이여그러나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여.

벌써 번뇌심, 짜증을 내면은  짜증이 무엇이여 짜증은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날이면 벌써 마구니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여그것이.
일체 번뇌 망상을 하다가도 화두 들어버리면은 마구니한테 붙잡혀 있다가 마구니를 뿌리쳐 버리고 도망해 나온 것이여안전지대로 오는 것이여.

그런데 ‘화두가  들린다 번뇌심을 내면은 그것은 벌써 마구니한테 벌써 잡혀 갖고 있는 것이다. ‘번뇌의 마구니한테 그것이 잡혀 갖고 있는 것이여.

 그 화두가   들리고 혼침 산란 속에 빠져 있다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공부가 잘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고머리도 쾌청하고 가슴도 후련하니, 아주 몸도 뒤틀리고 괴로운 것이 없어지고 깨끗하니 공부가 잘되어 간다고 해서 그렇게  때에그렇게 된다고 해서  환희심(歡喜心) 내지 말아라.

환희심을 내면은 벌써 ‘환희의 마구니 끌려가고 있는 것이여환희의 마구니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그놈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벌써 번뇌의 마구니가 들어와 있거나환희의 마구니가 들어와 있거나화두 놓쳐버리면 모두가 마구니여.
화두 하나 추켜들면은 일체처가 바로 정진 도량이고화두 하나 놓쳐버리면은 아무리 방석 위에 앉았어도  자리가 벌써 마구니에 붙잡혀 있는 자리다.

그래서 어쨌든지 화두를 들어야 하는데, 그 사실은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라 했는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말은 한마디에 지내지 못하지마는,
 화두 하나 옳게   아는 사람은 공부가  걸음  걸음 되어가고 있는 사람이고, 화두 하나를 옳게   모르면은 아무리 방석에서 30 40년을 방석에 앉았고그래서 궁둥이로  방석을 7개를 방석을 뚫어도 공부 옳게  것이 아니다.

앉았거나 섰거나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화두 하나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옳게   아는 사람이면은  사람이야말로  옳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2038~403)



(3/3)----------------

어떻게 드는 것이 옳게 드는 것이냐?

화두는 제일 못쓰는 것이 따지는 것이 제일 못쓰는 것이여.
따져이리저리 따져서 들어가. ‘이런 것인가저런 것인가?’

무자(無字) 다맛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따지지 말고 ‘어째서 () 했는고?’ 고렇게만 해야지,
없다는 말인가있다는 말인가?’ 무자를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경전에 있는 조사의 어록에 있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가지고 그러한 상식 지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파고 들어가고 하는  절대로 금물(禁物) 것이여.

다맛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이뭣고?’ 화두 하는 분은 ‘이뭣고?’ 그저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없는 의심(疑心)! 그거라야지, ‘이것이 불성(佛性)인가이것이 자성(自性)인가?’ 이리저리 자꾸 따지면 못쓰는 것이여.

따지면 벌써  따지는 것도 그것도 화두가 아니요따지면은 중생심(衆生心)이여중생심만  조장(助長) 하는 것이여.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 따지거나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으로 따지거나그동안에 큰스님네한테 들은 법문 그러한  가지고 따져도따지면 벌써 지(자기) 생각이여따지는 생각은 지 생각이여. 지 생각으로 따진 것은 번뇌 망상이여그것이.

우리가 여기 앉아서 참선 하는 것은 화두 의심(疑心), 그놈을 간절히 들고  들어야 공부가 되어 가는 것이요마구니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내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마구니를 몰아내는 방법은 화두 드는 데에 있는 것이여.

화두 놓쳐버렸다 하는 것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나침판(羅針판) 잃어버린 거와 마찬가지여.
항시   운전대 앞에는 나침판이 붙어 갖고 있는데그것이 수시로  바늘이 움직이면서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말이여.

그놈에 의지해서 선장이 운전하는 것이지그놈이 고장이 났거나 그놈이 없어졌다고 하면은  배는 어디가 동쪽인지 어디가 남쪽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저히 도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화두가  생사(生死) 바다를 건너서 생사 없는 열반(涅槃) 언덕에 도달하는 ‘내가 나를 깨닫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나침판이여화두가.
그래서  나침판을 잠시도 놓치는 날에는 어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환희마(歡喜魔) 마음에 들어오거나번뇌(煩惱) 마구니가 마음에 들어오거나그밖에 병을 잡아내기로 하면은 한량이 없어.
일체 () 다못 화두 하나 드는 것으로써 일체 병이 물러서는 것이고화두 하나 옳게 들면은 병이  이유가 없는 것이여.

번뇌가 일어나도 또는 신경질이 나거나몸이 아프거나골치가 아프거나일체 망념이 일어나거나다맛 화두 하나 화두 한번 들어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찰나에 없어지는 것이여.


시시때때로  번이고  번이고 간절히 간절히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라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 하루빨리 칠통(漆桶)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  가지고 돌아와서  등어리를 밀어다오

등어리를 밀어달라하는 말은 옛날에 상좌(上佐) 나가서 행각(行脚)  가지고  선지식 밑에 가서 공부를  가지고 확철대오 해서 돌아왔다 그말이여. 은사(恩師스님한테 돌아왔는데.
밤낮  스님은 () 보고 있어강사(講師스님이라 경만 보고 있어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저  보는 것으로써 그저 공부를 삼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옆에서 게송(偈頌) 읊으기를방에 들어왔던 벌이 창문이 환하니까  창문 환한, 창호지 발라진 환한 데로 나갈라고  부딪쳐갖고  떨어지면  다시 자꾸  창문 있는 데로만 나갈라고 그런다 말이여.
열어놓은 문으로 열어놓은 데로는 나갈라고  하고창문이 환하니까  창문이 나가는 문구녁인  알고 그리 자꾸 부딪쳐 갖고   맥히면   부딪치고 부딪치고 하니까,

 문으로는 나갈라고 하지 아니하고   발라진 데로 나갈라고 하니 년을  구녁을 뚫을려고  문에다가 부딪친들 언제 나갈 겨를이 있겠느냐?”하는 내용의 글을 읊으니까,
 스승이 ‘뭔 소리인고  이상한 글을 지었구나’ 그러고.

 다음에  목욕탕에 스님이 목욕을 하시는데목욕탕에 들어가서 등을 밀어드리면서 등어리를   치면서 “법당은 좋다마는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 그랬다 말이여.
요리 돌아보면서 “ 이놈 무슨 소리냐?”하고 성을  내니까, “영험 없는 부처가 방광(放光)   아네” 이랬다 말이여 스님 등어리를 치면서.

이놈이 어제는 내가 경을 읽고 있는데 이상한 글을 짓더니오늘은  등을 치면서 건방진 소리를 한다 그말이여.
이놈이 평소에 조벽없는 놈도 아니요나가서 공부한다고 그래서  공부하더니 이놈이 미쳤나?’ 암만 생각해도 그냥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동안에 다니면서 무슨 스님한테 가서 공부했냐?”
아무아무 큰스님한테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 밑에서 공부를 어떻게 했냐?”
약허이약허이 해서  스님한테 인가(印可) 맡어 갖고 왔습니다

그래야네가 정말 그렇다면은 아무리 네가  상좌라지마는 벌써 도업을 먼저 성취했으니 법을 청해야지
그래 가지고 법을 정식으로 청해 가지고  상좌의 법문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스승이.

단리망연(但離妄緣)하면 즉여여불(卽如如佛)이다. 다만 망연만 여의면  여여한 부처다하는  법문을 듣고서 스승이 상좌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  그러한 역사가 있는데,
어서 칠통을 타파하고 확철대오 해서 돌아와 가지고  등어리를 밀어다오 말이  출처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공부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고참선을 10 20  사람이나, 1 이태한 사람이나 오래오래 했다고 해서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고출가한 지가 얼마  된다고 공부가 미숙하고 그런 것도 아닌 것이여 이것은.

어쨌든지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은 일주일 만에 깨달은 사람도 있고열흘 만에 깨달은 사람  만에 깨달은 사람, 3 만에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지,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또는 올바르게는 해도 간절하지를 못해 가지고 그렁저렁 한다고 하면은 아까 말한대로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56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해도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고, 올바르게 하면은 오늘 어떻게 될는지 그건 모르는 것이여.

우리는 언제 깨달을는지 모르기 때문에 1 1초도 헛된 생각을 하고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많이 하는 것도 그것도 습관이라말을 해야 소화가 되고말을 해야 조금 기운이 나고나중에는 그렇게 되어서 말을  하면 소화도 안되고 답답하고 상태가  좋고 이렇게까지 되는 것이여.
그래서 그러한 습관이 되기 전에이렇게 생사(生死) 무상(無常)하고 우리 출가해서  자리에 와서 이렇게 지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부모를 모시고처자 권속을 거느리고 가정을 이루면서 동시에 사회 국가에도 자기의 기술과 능력껏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인데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보편타당한 생활 태도인데,

부모도 모시지 아니하고자식도 낳아 길르지 아니하고사회 국가에 무슨 봉사하는 것도 없고이렇게 농사도 짓지 않고 무서운 시주 밥을 먹고시주가 갖다준 옷을 입고 그리고서 도를 열심히  닦으면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깎고먹고 싶은 것도  먹고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아니하고 일생을 이렇게 지내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루 때인들, 1 1초인들 우리가 그렁저렁 지낼  있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말이여.
 아프게 느끼고 아프게 무상을 느끼고 우리의 처지가 그러헐 처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정말 깊이깊이 느껴서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1 1초가 모여서 1 1분이요, 1 1분이 모여서  시간이요, 한 시간  시간이 모여서 하루하루 하루가 모여서  , 한   달이 모여서 1년이요,
1 1년이 모여서 일생이 되고, 그 일생 일생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니까 무량겁 무량겁 하지마는 사실은 1 1초여.

1 1초가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량겁 생사를 면할려면은 1 1 단속하는 길이 가장 요긴한 것이다.
1 1 생각  생각 단속 잘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해탈을 하는 것이고 생각  생각을 단속 아니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있을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야기  때마다  말을 내가 강조를 하지마는 너나   없이이건 내가 여러분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내가 나한테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여. 여러분은  덕분에 듣게 되는 것이지사실은 이것은 내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여.

내가 무슨 ()  성취를 해서 선지식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한테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수행의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자신에게 일르는 말을 여러분은 그저 덕분에 듣게 되는 것이니까,

너나   없이 깊이깊이 명심을 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간절히어제까지 잡담 많이 하는 사람 오늘부터서는  잡담이 절대로 없어질 것이고어제까지 그렁저렁 무상한  모르고 지내던 사람도 오늘  시간부터서는 새로운 마음새로운 사람이 되어가지고 간절히 간절히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금생(今生)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말을 듣지 아니하면 말대로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 당연 () 만단(萬端)이나  것이다.(404~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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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선사 게송 참고.
*황벽(黃檗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해탈(生死解脫)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삼복(三伏)①일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 아울러 이르는 .
*역대조사(歷代祖師)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무량(無量)①많아서 이루  헤아릴  없음[불교가히 비유할  없을 정도로 많은 《화엄경》에 나오는 백이십 (  수의 이름이다.
*승두(繩頭)()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불조의 계법(戒法규칙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화두(話頭)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되게 ; 아주 몹시.
*가행정진(加行精進)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깨달음()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진리의 실천.
*게송(偈頌)(),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장주(藏主)경장(經藏) 관리하는 직위。  선원(禪苑)에서 대장경을 2부로 나누어 동과 서에 비치하므로 동장주(東藏主) 서장주(西藏主) 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대저(大抵 크다·대개 대/이르다·해당하다 저) ; 대체로 보아서.
*행각(行脚)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 ②스승의 슬하(膝下) 떠나서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또는 운수(雲水)라고 .
*회포(懷抱 품을 /안을 )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
*방생(傍生 · / ) ; 몸을 옆으로 누이고 다니는 생물벌레날짐승물고기 따위를 이른다.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또는 그런 사람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단월(檀越)이라고도 .
*공양(供養)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②공경함찬탄함칭송함예배함③봉사함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공덕③부처님의 가르침.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화두(話頭) 타파(打破)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더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더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안되면   화두   보고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천고(千古)①아주 오랜 세월②아주  옛날.
*만고(萬古)[‘만고의’, ‘만고에 꼴로 쓰여]오랜 세월을 통해 변함이나 유례가 없음②매우  옛날③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만(早晩 일찍 /늦을 ) ; 이름과 늦음을 아울러 이르는 .
*언도(言渡)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처지(處地)당하고 있는 사정이나 형편.
*밭다 ; (무엇이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뻐드러지다 ; (부드럽던 것이)굳어서 뻣뻣하게 되다.
*추호(秋毫 가을 /가는  ) ; ‘추호도’, ‘추호의 꼴로 쓰여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 비유적으로 이르는 .
*정황(情況 사정·형편 /하물며 ) ; 어떤 사물이 처해 있는 조건이나 상태.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말할 필요가 없다.
*무상(無常)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변해감덧없음영원성이 없는 .
*염두(念頭)마음속마음의 .
*입선(入禪)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좌선(坐禪) 시작하는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이부자리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내싸두다 ; ‘내버리다(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돌보지 아니하다)’ 사투리.
*시시(時時) ; 때때로(경우에 따라서 가끔).
*시시때때 ; 시시(時時지나가는 시각 시각) 강조하는 시간이 흐르는  순간.
*도량석(道場釋)목탁석(木鐸釋). 절에서아침 예불 하기 전에 천지 만물을 깨우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는 뜻으로 목탁을 치면서 주위를 도는 의식주로 천수경을 소리 내어 외우거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등을 부름.
*예불(禮佛)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②절에서 아침·저녁  차례에 걸쳐 ·보살(·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煩勞煩擾괴롭혀 고뇌케 [逼惱惱亂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 일으키게 되면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생각() 또는  생각②잘못된 생각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안의 용화수(龍華樹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 미륵이라 한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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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무력(無力)하다 ; (무엇이)위세나 영향력이 없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우두거니 ; 우두커니정신없이 또는 얼빠진 듯이 멀거니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
*매카리 ; 매가리맥아리( 기운이나 ) 속되게 이르는 .
*득력(得力)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처음에는  안되던 것이 할라고  해도 저절로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포단(蒲團)좌선할  까는 방석.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주책없이 ; 일정한 줏대가 없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이.
*분분히(紛紛- 어지러울 ) ; ①떠들썩하고 뒤숭숭하게②무엇이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게.
*무장 ; ‘더욱한사코 사투리.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 준말.
*등어리 ; ‘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보살(佛菩薩)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불타(佛陀) 준말각자(覺者) 번역한다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성(本性)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본래의 모습본체불성(佛性).
*육도윤회(六途輪廻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피난 통에 ; 피난하는 판국에. *명사 뒤에서 ‘통에 꼴로 쓰여어떤 일이 벌어진 환경이나 판국(판局일이 벌어져 있는 형편이나 국면) 뜻을 나타내는 .
*백방(百方) ; [주로 ‘백방으로’, ‘백방의 꼴로 쓰여]온갖 방법이나 방면.
*수소문(搜所聞 찾을 / /들을 ) ; 세상에 떠도는 소문을 두루 찾아 알아봄.
*번뇌(煩惱)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마구니 ; ().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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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去頭截尾)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금물(禁物)해서는  되는 .
*중생심(衆生心)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조장(助長)일이나 경향이  심해지도록 도움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쓴다.
*나침판(羅針판)나침판(羅針盤). 항공항해 따위에 쓰는 지리적인 방향을 알아내는 계기의 하나.
*열반(涅槃)()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어문 ; '', '다른', '엉뚱한' 사투리.
*칠통(漆桶) 타파(打破)칠통(漆桶) 옻칠을  통으로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속과 같은 상태이므로 칠통에 비유한 말이다.
칠통을 타파한다 말은 ‘참나 깨닫게 되고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
*상좌(上佐  /도울 ) ; 윗사람을 도운다는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은사(恩師)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스승.
*강사(講師)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 가르치는 스님.
*게송(偈頌)().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약허이약허이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귀래위아개배(歸來爲我揩背)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 행각하야 백장(百丈)선사를 만나서 깨달은 후에 돌아오거늘,
은사스님이 목욕하며  밀게 하니() 등을 만지며 이르되 ‘좋은 불당(佛堂) 부처 성스럽지 못하다하거늘 스승이 돌아보니() 이르되 ‘부처 비록 성스럽지 못하나 능히 방광(放光)하는구나하고,

 스승이 경을  때에 벌이 창에  나가려 하거늘 () 보고 () 읊되,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鑚故紙 何日出頭期
 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창문에 부딪히니 어리석구나. 백 년을  종이를 비벼댄들 어느 날에 나갈 기약이 있으리오?

스승이 경을 놓고 묻되 ‘ 행각하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 이르되 ‘백장화상(百丈和尙) 가르치심을 받아 이제 스승덕을 갚고저 하옵니다’ 스승이 재계(齋戒)하고 () 청하야 설법하라 하거늘 () () 올라 이르되,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영광(靈光)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 멀리 벗어나며() 진상(眞常)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진성(眞性)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다만 망연(妄緣) 여의면  여여불(如如佛)이라
하니스승이  말에 깨달았다.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후생(後生)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



[주요 내용]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동산 숭장주가 행각을 떠나는 제자에게 하신 법어 / 성성적적(惺惺寂寂) / 화두를 옳게 들어야 한다. 다맛 거두절미하고 알 수 없는 의심 / 올바르게 하면은 오늘 어떻게 될는지 그건 모르는 것이여 /  생각 단속 잘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해탈을 하는 것.


[주요 문구]

대저 행각(行脚)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목적으로 하는 것이냐? 도로써 ()로써 회포(懷抱) 삼아야  것이니라생사해탈 하기 위한 수행을 하기 위해서  행각을 하는 것이다

 ()’ ‘죽을 ()’생사(生死 글자를 이마빡에다  붙이라』  말은 ‘ 생사에 대한  무상(無常) 생각이 우리의 머리에 떠나서는  된다 생사 무상을 철저히 염두(念頭) 두라 이다.

생사해탈 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공부를 해서 힘을 얻고  생사해탈 하는 그런 불보살이나 역대조사들이  우리보다도 몇십  수승한 근기(根機) 가지시고 태어나셨건만 생명을 걸고  도를 닦은 분들이다.

  있으면 앉어서 하는 것이 가장 공부 득력(得力)하기가 쉬웁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앉었는 데에만 집착을 해서도  되는 것이여.
포단(蒲團위에 죽은 사람처럼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들지 아니하고 우두거니 앉었는 것으로 공부를 삼지 말어라.
어쨌든지 공부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하고적적(寂寂)하면서 성성(惺惺)해야지,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허들 못하면은  공부는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또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허들 못해도 그것은 옳은 공부가 아니다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동시에 겸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분가루같이 일어나는 번뇌 망상 그놈을 어떻게 해야 물리치느냐그것만 물리치는 방법만 알면은 공부 안된다고 한탄할 것이 없어.
천하 간단한 것이일어난 생각 그놈은 고대로 놔둬 버려야 .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를 말고 고놈은 고대로 놔둬버리고 화두만 들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화두 놓쳐버리면 모두가 마구니여! 화두 하나 추켜들면은 일체처가 바로 정진 도량이고화두 하나 놓쳐버리면은 아무리 방석 위에 앉았어도  자리가 벌써 마구니에 붙잡혀 있는 자리다.

 화두가  생사(生死) 바다를 건너서 생사 없는 열반(涅槃) 언덕에 도달하는 ‘내가 나를 깨닫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나침판이여. 그래서  나침판을 잠시도 놓치는 날에는 어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환희마(歡喜魔) 마음에 들어오거나번뇌(煩惱) 마구니가 마음에 들어오거나그밖에 병을 잡아내기로 하면은 한량이 없어. 일체 () 다못 화두 하나 드는 것으로써 일체 병이 물러서는 것이고화두 하나 옳게 들면은 병이  이유가 없는 것이여.
번뇌가 일어나도 또는 신경질이 나거나몸이 아프거나골치가 아프거나일체 망념이 일어나거나다맛 화두 하나 화두 한번 들어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찰나에 없어지는 것이여.

 공부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고참선을 10 20  사람이나, 1 이태한 사람이나 오래오래 했다고 해서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고출가한 지가 얼마  된다고 공부가 미숙하고 그런 것도 아닌 것이여 이것은.
어쨌든지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은 일주일 만에 깨달은 사람도 있고열흘 만에 깨달은 사람  만에 깨달은 사람, 3 만에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지,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또는 올바르게는 해도 간절하지를 못해 가지고 그렁저렁 한다고 하면은 56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해도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고, 올바르게 하면은 오늘 어떻게 될는지 그건 모르는 것이여.
우리는 언제 깨달을는지 모르기 때문에 1 1초도 헛된 생각을 하고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1 1초가 모여서 1 1분이요, 1 1분이 모여서  시간이요, 한 시간  시간이 모여서 하루하루 하루가 모여서  , 한   달이 모여서 1년이요, 1 1년이 모여서 일생이 되고, 그 일생 일생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니까 무량겁 무량겁 하지마는 사실은 1 1초여.
1 1초가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량겁 생사를 면할려면은 1 1 단속하는 길이 가장 요긴한 것이다.
1 1 생각  생각 단속 잘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해탈을 하는 것이고 생각  생각을 단속 아니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있을  밖에는 없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1~25)2017. 11. 16. 06:30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8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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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여우인막측(大智若愚人莫測)이라  수래방거역비구(收來放去亦非拘)니라
나무~아미타불~

 지혜는 흡사 어리석은 거와 같다. 아주 지혜가 출중한 사람은 보통 사람이 보기에  바보 비슷하니 그렇게 보인다 그말이여.

적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재주 기운이 밖으로 나타나서 !  사람은 영리하다 똑똑하다 금방 남의 눈에 띄지마는 참으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바보 같으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사람들이 도대체 헤아릴 수가 없어.

욕을 해도 성낼 줄도 모르고, 칭찬을 해도 기뻐할 줄도 모르고, 무엇을 주어도 좋아할 줄도 모르고,  사람의 것을 빼앗아 가도 싫어할 줄도 모르고 이것이 바로  지혜를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오욕락(五欲樂) 빠져서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말초 신경(末梢神經) 자극해서 잠깐 재미스럽기는 할지언정 마침내는 그것은 나의 몸을 상하고 나의 목숨을 앗아가는 그러한 것들인데,
우선 달콤하니까  달콤한 맛에 그러한 오욕락의 재미에 빠져 가지고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죄만 잔뜩 퍼짓고 가는 곳은 삼악도(三惡途)밖에는  곳이 없다.

그런데 우리 불법을 믿는 부처님 제자들은 오욕락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 아니라, ‘참으로 영원한 평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은 내가 나를 깨닫는 데 있다 하는 그러한 진리법을 믿는 것만 해도 벌써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바로 그것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우선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인과(因果) 믿기만 해도 그러한 물질적인 손해, 명예와 권리의 손해, 그까짓 것에 그렇게 크게 상심(傷心)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러한 일을 당했을 때 더욱 발심(發心) 해서 지혜와 자비로써 모든 일을 처리할  있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니  사람이 바로 세상 사람이  때에는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서 싸우고 상대방을 해롭게 하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취하고 자기를 보호할라고 하지를 아니하고, 그저 담담하니 양보해 버리고 그러니까 어찌 보면 바보같지마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 최상승법(最上乘法)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써 따져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공안,  화두(話頭)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가지고,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동안 결제(結制)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 오더라도  부고장(訃告狀)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 죽이면 , 짜면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9시부터서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가만히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에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외출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 하열(下劣)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점에 도업(道業)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관건(關鍵)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운데 계신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시삼마(是甚) ‘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좋고, 판치생모가  좋고, 시삼마가  좋고,  공안 자체에 있어서  좋고 나쁘고  것은 없습니다.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 가서 그렇게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고비를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이상 공부를 지속할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5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고비를 넘기면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처음~20분23초)



(2/5)----------------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생사(生死) 하는 것이 무엇이냐?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이요, ‘일어났던   생각이 없어지는  그것이 바로 죽음[死]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그것이 ()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몸뚱이를 표준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몸뚱이를 표준할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시간에는 불가불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成]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住] 그것이 파괴(破壞)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空]. 우리 눈으로   있는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가지 것도 영원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가서 10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습니다.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새로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내려왔습니다.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끊임없이 거듭되는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나는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있나? 「애기가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때에 「아!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생각이 났을  이뭣고?’

무엇이 금방   생각을 했나? 이거여. ‘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생각이  가지고 속에서 화가 ! 치밀어 오를 , 바로  생각을 버리지 말고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법문이요, 경책(警策)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마음에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  사람이라야 어느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소멸이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 기도를 한다든지 7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 마음으로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간절히  하나 올리고,   그릇 올리고 소원을    마음이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20분24초~35분5초)



(3/5)----------------

 생각,  생각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생각 생각마다 들고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나,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때라도 이뭣고?’

! 공부가 안된다,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필요가 없어.

화두를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 슬퍼하는 , 기뻐하는 , 원망하는 , 아퍼하는 ,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 이것이 전부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거동  모습을 버릴려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특전(特典)이라,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웬수,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가는 수요 도적놈이다 그말이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생각  생각을 이뭣고?’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뭣고?’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뭣고?’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산승도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절로 들을  알면  사람은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참선을 하려면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궁뎅이를  뒤로 밀어버리고, 단전 밑의 배는 앞으로 이렇게 밀고서, 24 척추 척량골(脊梁骨) 쭈욱 펴고, 고개는 앞으로 숙이지도 말고 뒤로 젖히지도 말고,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고,  귀가  어깨 위에 수직으로  놓이도록 몸을 단정히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뒤로 자지바지 허니 버티지도 말고, 단정하면서도 목에 힘을 빼야 합니다.

요새 조금 자리가 올라가면 목에다 힘을 준다 합니다마는 목에 힘주는  대단히 좋지 못합니다.
특히 참선하는 사람은 목에 힘을 빼고서 그리고 어깨의 힘을 빼고 그리고 단정하니 앉되, 눈을 감아서는 안됩니다. 눈을 감으면 앞의 것이 보이지를 않아서 아주 조용해진  같아서 공부가 잘된  같지마는 눈을..(녹음끊김) 

가득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없을 만큼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쉽니다.  내쉽니다.
 내쉰 다음에 다시 한번    있으면 빨리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득 들어마십니다. 가득 들어마신 호흡을 더이상 참을  없을 만큼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쉽니다.

이것은 허파 속에 있는 묵은 공기를 깨끗이 소지(掃地) 내는 준비 호흡이 되는 것입니다.

가슴속의 허파는 풍선처럼 속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벌집처럼 생겼습니다. 벌집처럼 생겨 가지고, 보통 가볍게 숨을 짧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가지고서는 허파의  구석구석까지 새로운 공기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없을 만큼 참았다가  내쉬고, 이렇게 해서  2 내지 3번을 해야 허파 속의 묵은 더러운 공기가 깨끗이 대청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음에 정식으로 단전호흡(丹田呼吸) 하는데 단전호흡은 배꼽과 불두던과의 중간에 단전(丹田)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단전이라고 하는 곳은 사람의 삼백육십 골절과 오장육부와 팔만사천의 경락(經絡) 총중심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시 거기다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거기다 중심을 잡아야 하고, 우리의 의식도 거기다 중심을 잡아야  몸의 균형이 잡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시 궁둥이를 뒤로  빼고, 아랫배를 앞으로 내민듯한 기분으로 그리고 허리를 쭈욱 펴고 앉으면 그것이 바로 중심이 단전에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에도 그러한 기분으로 걸어가고, 누구와 이야기할 때도 그런 기분으로 이야기를 하고, 참선할 때도 그러한 기분으로 참선하게 되면, 몸의 중심이  잡히기 때문에 저절로 혈액순환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도 가벼워지고 피도 맑아지고 정신도 안정이 되고 정신도 깨끗해지기 때문에,
참선할려면은 몸이 건강하고 혈액순환이 잘되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깨끗해져야 참선도 잘할  있는 것은 당연한 도리여.

그래서 단전호흡 자체가 참선이라고  수는 없습니다.
참선을 성취하는 데에는 화두(話頭) 올바르게 참구(參究) 해서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써 자아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장애가 없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몸이 건강해야 하고, 몸이 건강하려면 혈액순환이 잘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전호흡을  익혀서, 단전호흡을 참선의 기초공사라 이리 생각을 하고.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지어진 집이 벽이 벌어지지도 아니할 것이며, 집이 쓰러지지 아니할 것이다.
기초공사 없는 곳에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봤자 와우(臥牛) 아파트처럼 그러한 대춘사(大椿事)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초공사 없이 어떻게 발심(發心)했다고 해서 억지로 밤잠을  자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애쓴다고 해봤자, 까딱하면 상기병(上氣病) 걸리고, 소화불량이 걸리고, 혈액순환이 안되어 가지고 밤낮 아프다고 약만 다려 먹고 해봤자 낫어야지.

약을 먹지 아니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 그러한 법이 바로  단전호흡을 하면서 생수를 마시고  자연식(自然食) 하고,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사람의 건강관리에 있어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35분6~5112)



(4/5)----------------

병에 쪼들려 가지고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밤낮 병에 아주 빠져가지고 , , ’,
()  놓는다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가서 몸을 좃고 쑤시고, 1 12 약을 다려 놓고 마시고 한약을 먹고 별별  해봤자 낫지를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공부가  수도 없는 것입니다.

첫째,  ()이라고 하는 것이 조그마한 병을 낫기 위해서 약을 먹어가지고  병을 들이게 하는 것이 바로 약입니다.
 가운데는 약국을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한약방 의원 하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말씀을  들으시면 참으로 훌륭한 의원이 되실 것이고, 참으로 사람 병을 낫을  있는 의원이  것입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八萬四千法門) 바로 약과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鹿野苑)에서부터서 열반(涅槃) 드실 때까지 팔만사천 법문을 49 동안에 걸쳐서 설하셨으면서도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신다면, 약방에 있는  많은 약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만 된다면  약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병에 따라서 올바르게 진찰을 해가지고  약을 투여해야만 되듯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염불도 설하시고, 소승법도 설하시고, 대승법도 설하시고, 최상승법도 설하시고.

 활구참선 최상승법은 한마디도 설할  없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근기에 따라서  많은 법을 설하시고도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 하신 말씀은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설하신 소식인 것입니다.

약이라고 하는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속담에 『부자가 병으로 죽는  아니라  때문에 부자가 죽는다』 이런 말을 여러분들도 들으신 분이 많을  생각합니다.
 없어 굶어서 죽는  아니라 너무 많이 먹고 부어서 죽는 것입니다. 흉년(凶年) 들면은 부황(浮黃) 나서 죽는다고 합니다마는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   굶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으로  ,  달을 물만 마시고 굶는다면  사람은 만병통치(萬病通治)입니다. 모든 있는 병이  나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백이십 살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영국에서 데모를 하기 위해서감옥에 갇혀가지고 밥을 줘도 먹지 아니하고, 죽을 줘도 먹지 아니하고 아주 죽기로 맹세를 하고  달반,  달을 굶었습니다.  사람이 굶었는데 기절을 했습니다.
기절을 하니까 의사가 겁을 집어먹고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고 모두 그랬습니다. 주사 놓고  먹인 사람은 죽고, 끝까지 그것을 거부를 하고  맞은 사람은 백이십 살을 넘게 살았다고 합니다.

흉년이 들어서 굶어 죽는  아니라, 며칠 굶다가 먹을 것을 보면 환장을  가지고 눈이 뒤집혀가지고는 잔뜩 모가지까지 차게 먹고서 그날로 몸이 띵띵 부어가지고는 부어터져 가지고 죽는 것입니다.
굶어 갖고는 절대로  죽습니다. 굶은 뒤에 허기가  가지고 잔뜩 먹고 부어터져 가지고 위장이 터져서 죽는 것이지, 절대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먹어서 죽기 보다는  병을 낫기 위해서    ,     먹다가 결국은  약독(藥毒)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저의 말씀을 옳게 이해한 분은 위장병이 되었건, 간장병이 되었건, 당뇨병이 되었건, 심장병이 되었건 오늘부터서 약을  끊고서 맹물만 마셔요.
맹물 마시고 아침밥을 굶고 그리고서 주로 인자 당근즙이라든지, 채식이라든지  무우즙이라든지 그러한 채소의 즙을 내서 먹고, 주로 채소를 먹고 이렇게 해서 나가면은 서서히  고혈압 또는 간장병 또는 당뇨병 이러한 병들도  ,  ,  , 다섯  하다보면은 기적적으로 낫게  것입니다.

이건 내가 그렇게 나은 사람을  많이 보았고, 그런 계통의 책을 많이 봤습니다.

참선 법문한다더니 무슨 쓰잘데 없는 소리를 하고 앉았나 하지만,  자연식이 부처님 때로부터서 내려오면서 역대조사가  그렇게 채식을 하고 오셨고, 맑은 공기 속에서 무얼 자시면서  공부를 하셨습니까? 우리 조상들도 560 전에는  그렇게 자연식(自然食) 했습니다.

그때는 가난해서 고기를  먹었고, 가난해서 약을  사먹었으니까 , 배추 같은 것이나 먹고 풀뿌리나 먹고,  디딜방아에다 찧어서 먹다보니까 저절로 현미밥을 먹었지,
오늘날같이 발달한 시대에 고기도 얼마든지 먹으면 좋고 9분도 , 맛있는 , 부드러운  먹어 좋고, 조미료도 온갖 맛있는 조미료가 나왔으니 그걸 먹어서 좋고, 음료수도 코카콜라다 환타다 모다 맛있는 음료수가 나왔으니까 냉장고에다 넣어 놓고 그저 계속 들어 마시고 하면 좋지, 없어서  먹지  그걸  먹겠느냐 하시겠지마는,
결국은 그러한 것들로 인해서 당뇨병, 간경화증, 동맥경화증, 위암, 자궁암, 온갖 암이 생겼고 고혈압, 중풍이 그런 것으로 인해서 생긴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해 가지고 편리하게  것은 좋지마는 현대 의학으로 고칠  없는 그러한 무서운 병이 여기서 저기서 생겨 가지고 턱턱턱 꺼꾸러 죽는다 그말이여.
 원인이 아까 말한 흰쌀밥, 흰설탕, 고기,  각종 조미료, 각종 화학 음료수 이러한  때문에 그러한 병이 생긴다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걸 모르고 한사코 그런 것을 먹기를 즐겨하지만, 오늘부터서  말을 믿는 사람은 『그런 것들이 그런 무서운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비로소 오늘에사 알았구나』 그런 것을 이해를 하시고,

너무 조금만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양쪽 궁뎅이, 양쪽 팔에다가 맞고 약을  가지를 그저  먹기 전에 먹고,  먹고 먹고, 새참에 먹고, 자다가 먹고, 일어나서 먹고, ‘이건 비타민C, 이건 비타민A 이래 가지고 약을 잔뜩 뻘건 , 파란 , 노란 ,     없이 그렇게 약을 보따리로 싸가지고 다니면서 약을 먹고, 그러다가 결국은  쓰러져 죽는 것입니다.

대도(大道) 성취하는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야심경이 좋다니까 반야심경을 읽고, 천수경이 좋다니까 천수경을 냅다 틀어제끼고, 관세음보살이 좋다면 아들을 위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죽은 영감을 위해서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그러다 참선이 좋다니까  앉아서 참선 흉내  내고,
입춘이 되면은  무당집에 가서 5만원 10만원짜리  부작을 사고, 좋다는 데는  쫓아다니고, 그러다가 결국은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입니다.

이리저리 좋다는 것은  인연을 맺고 공덕을 지었으니까 악도(惡途)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나도 바래고, ()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 가실 것을 나는 다같이 바래기는 하지마는 과연 그분이 극락세계에   것인가? 나는 보증을 못합니다.

복을 짓고 착한 일을  만큼 내생에 천당에도 가고  사람이 되더라도 부자도 되고 인물도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나도 믿습니다마는,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알아야 .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을  있도록. 이것이야말로 샘이 없는 [無漏福]이요, 함이 없는 [無爲法]이라.  복이야말로 영원한 것입니다.

 보고 하라고만 하고  자기는 안 한 사람이 있거든. 자기만 하고  보고는 별로 권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법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새에  날개가 있는 거와 같고, 수레에  수레바퀴가 있는 거와 같아서, 새가 날개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하나만 가지고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리이타,  세등선원을 짓는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요,  세등선원을 짓는데 여러 신남신녀가 시주(施主) 하고 화주(化主) 하는 것도 이것 또한 자리이타를 하는 것이여.

부처님 출현하신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있어서야 원래 생사 없는 본각(本覺)자리에 계시는데 무엇이 다시  사바세계(娑婆世界) 태어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지마는 중생을 위해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것이다.

 글자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다.
 글귀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역대조사(歷代祖師) 많은 어록(語錄) 남기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한 자비심에서 나오신 소식이다.

오늘 산승이 나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수행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시간도 바쁘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올라와서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중언부언 두서없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

부처님께서 다겁(多劫) 두고 스스로 생사 속에서 윤회하신 그런 뼈아픈 경험이 계셨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나오셨어.

 자신도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 정진을 해봤기 때문에 선지식한테 들은 말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바를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림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정진을 잘할  있는, 발심하실  있는 채찍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하는 그러한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진즉부터서 공부를 해서 이런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도  정진을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처음으로 공부를 하러 오셔서 이러한 말씀이  필요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알고 공부를 잘하고 계신 분은 증명을 하시면 되는 게고, 처음 와서 들으신 분은 뼈에 사무쳐서 명심해서 듣고 발심을 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선배 후배 도반들의  돈독한 정의가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소식입니다.  맛입니다.

그러나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도리,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 경지에 이르렀다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없고, 따질라야 따질  없고,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 했는고?’   없는  맥힌 상태에서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51분14초~1시간11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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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좌선을 해서, 딱 참선 시작할 때에는 준비 호흡으로 숨을 가득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없을만큼 참었다가 입으로 —’하고  내쉬어 버리고 나서, 그렇게 2번을 하고서,

3번째는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를 말고 가슴과 윗배는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불어나도록, 볼록해지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숨을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윗배와 가슴은 약간은 움직이겠지만 거의 가만히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진다 말이여.

들어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3, 3 동안에 스르르르 하니 아주 수월하게 들어마시는 거여. 너무 오랜 시간을 걸려서 들어마실라고 하지를 말고,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으면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를 말고, 아까 준비 호흡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인자 () 호흡, 단전호흡에 들어가서는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면 안된다.

8부쯤만 들어마셔.  들어마실수 있지마는 8부쯤만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을 머물러.
 정지한 상태에서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홀쪽해지기 시작할  그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이것은 아주 초보자를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이러한 방법을 써서 하면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단전호흡도 잘되고, ‘단전호흡 했다하면 화두도 거기에 붙여서 함께 잘되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익숙해진 사람은 숨을 들어마시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그까짓 것도 구애 없이 항시 화두의 의단(疑團) 항시 목전(目前) 상주해서, 눈앞에 항시 나타나서 일여(一如)하겠지만,
처음  사람은 이뭣고?’해도, 금방 이뭣고?’ 사이에 생각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어렸을 때로 날아갔다, 집으로 날아갔다, 야단이거든. 그러다 보면 화두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다시  챙길라면은 힘이 들거든. 그러다 억지로 이뭣고?’ ‘이뭣고?’하다 보면은 모가지만 뻣뻣해 가지고 골만 빠개질라고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고.
! 이러니 할려고 마음은 내는데, 할려고 하면은  안되니 그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여러 가지로  경험을  보고 연구를  결과  단전호흡을 겸해서 하도록 이렇게 모다 지도를  오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 오늘 유독 결제날이기 때문에 단전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넘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만 했으면 이러시겠지만 굶어서 돌아가시지를 않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야 말이 들어가지, 잔뜩 먹고 쌕쌕거리게 되면은 졸음만 오지 법문이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장한 다음에 잡숴야 밥이 맛이 있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서 내쉬는데,
숨을 들어마실  어떻게 들어마시냐 하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이렇게 하지를 말고, 물론 코로는 들어가겠지만 우리의 기분으로는  궁둥이 뒤에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이렇게 볼록해지도록 그런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머물렀다 내쉴 때는 ‘이리 해서 코로 내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쉴 때도 저리 뒤로 해서, 궁둥이 뒤로 해서  뒤로 쑤욱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내쉬어 보시라 그말이여.

 뒤에서 쑤욱 들어마셨다, 들어마신 호흡을 3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뒤로 쑤욱 배꼽을 뒤로 잡어당기면서 뒤로 내쉬는 거여.

그런데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를 말어. 너무 억지로  가지고는 그냥  두어 번만 하면 숨이 가쁘게 이렇게 하시다가 아이고! 그거 되아서 못하겠다' 그러는데 그렇게 하시는  아니예요.

아주 수월하게들어마시는데 3 걸리고, 3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4~5 걸리게 조용하게 내쉬고,
이렇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없는 의단을 거기다가, 배꼽밑에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관심을 두고서 화두를 거각(擧却) 보시라 그말이여.

 명이면  , 몸도 차츰 건강해지고 가벼워지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병이 낫거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있는 사람도 그게 낫고, 집안에서 무슨 일로 속이 상해서 가슴앓이 속병이 있는 사람도 이것을 하면  병이 낫는다 그말이여.

이것을 하면서 화두까지 거기다 겸해서 하면은 결정코 깨달음까지 이르른다 이말이여.
화두는 아니하고 밤낮 고것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병을 고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 갖고는 그건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여.

거기에다 화두를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렇게  나가면 선방에 방부(房付) 들이지 아니하고 가정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고 낮에도 시간 있는 대로 그렇게 하시고,
 공부는  앉어서만 하는  아니라 일하면서, 말하면서, 걸어가면서,  타면서, 행주좌와 간에   있는 것이라, 오늘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모두가   세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못 장소가 형편상  세등선원일 수도 있고,  보문사일 수도 있고, 군산일 수도 있고,  시내일 수도 있고, 조치원일 수도 있고, 청주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생각 ! 챙겨 가지고 이뭣고?’  바로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 있는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생각  생각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생각 일어나는 그자리에서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
업장(業障) 거기에서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지거든. 업장이 녹아지면은 소원성취는 거기에 있거든.


내가 그전에는 얼굴이 아주 시커먼 사람인데, ! 30년을 참선을 하니까,  얼굴보고 검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이여.
성질이 아주 불같아 가지고 신경질을 잘내기로 아주 유명하고, 고집이  사람인데, ! 참선을 했더니  보고 마음보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여러분 가운데  얼굴이 검어서 고민인 사람,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나서 고민인 사람,  신경질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다고 욕을 먹고 그러한 평판이 있는 ,
오장육부에 병이 많은내가  병주머니여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내지  달은  결석을 했다.

아, 그런데 출가해 가지고 참선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그런는데, 내가 별로 약도 많이 먹지도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렇게 죽기보다  싫어한 사람이어서 병원에   가고 그러는데, 참선을 해서 이렇게 몸도 건강해진  같어.

여러분들도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제가 금방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식주 문제라든지, 일상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하는 이러한 법을 명심을 해서 실천에 옮기신다면 얼굴도 예뻐질 것이고 오장육부의 병도  나아질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 평판이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스승, 상좌   없이  불보살과 같이나는 워낙 고약한 사람이라 그렇지, 보통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금생에 불보살과 같이  것을 나는 맹세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나도 역시 몽산 스님과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가지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여러분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꼈고,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법문을 여지없이 믿기 때문에 추호(秋毫)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결제일을 기해서 여기에 모이신 출가한 스님네나 마을에 계신 신도 여러분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생각  생각을 단속해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 주시기를 간곡(懇曲) 부탁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름 일어나듯이, 산에 구름 일어나듯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가지,  가지 말을 이렇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바다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여러분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1시간11분36초~1시간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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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大智若愚人莫測  收來放去亦非拘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16 627 예배(禮拜)’ 해인신(海印信) 게송 참고.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말초 신경(末梢神經) ; 피부, 근육, 감각 기관  온몸의  부분으로 퍼져 있으면서 중추 신경계와 이어지는 신경을 통틀어 이르는 .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심은  팥이 나서,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 • () • () • ()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보응(報應)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즉시로 곧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 짓는  즉시에 받지 않고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 있다.
  가지 과보(果報)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多生) 통하여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상심(傷心 다칠 상/마음 ) ; 슬픔이나 근심, 절망 따위로 마음이 ().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실참(實參), 실답게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을 말한다.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관념에 그치거나 들어서 아는 지식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실천하는 선수행을 말한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더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차고,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①(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부고(訃告 부고 /알릴 )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전하는 조사(禪師)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 또는  .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  ,   ). 사람의 혀를 길게  늘여 놓고,  혓바닥을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못할·낮을 )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염/ )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 헤살 : 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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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조사(祖師) : ①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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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도장 )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로서 전혀 구제받을  없다 .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척량(脊梁 등마루 척/대들보 량) ; 등마루의 거죽 부분. *등마루 ; 등골뼈가 있어서 울룩불룩하게 줄진 등의 가운데 부분.
*자지바지 ; 좌선(坐禪)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端正)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소지(掃地) ; ①마당() 쓸다. ②청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불두던 ; 불두덩(남녀의 바깥 생식기 주위에 볼록하게 솟은 부분) 사투리.
*경락(經絡  /맥락 ) ; 우리 몸의 안에서 기혈(氣血) 순환하는 통로.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 ; 1970 4 8 서울 마포구 창천동에 있던 와우시민 아파트 건물 1동이 낮은 공사비, 기초공사 허술, 짧은 공기등의 부실 공사로 인해 무너져 대형 참사를  사건.
*춘사(椿事 신기할 / ) ;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기/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자연식(自然食) ; 인공의 첨가물을 사용하여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성분을 유지하고 있는 식품. 또는 그런 식품을 먹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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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이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가 된다. 탄생(誕生:룸비니) · 성도(成道:붓다가야) · 입멸(入滅: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51초)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존재(·)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 다른 명칭.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 얻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 말함.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자비(慈悲) ; ()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 () 연민동정 원의(原義),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종사(宗師) 같다.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전하는 조사(禪師)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 또는  .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 : 體中玄 • 句中玄 • 玄中玄)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가운데 (體中玄) 삼세가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가운데 (句中玄) 지름길 말들이며,  가운데 (玄中玄) 양구와 방망이와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 진공(眞空)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 없다.
구중현(句中玄) 뜻길이 없는 말로써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  버려도 맞고, ()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공안에 여지없이 () () !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 가운데에 ()’—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 봐도 모두가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 이치를 , 겨우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마누라나 형수가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 시설을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 1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수가 없는 아주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 있어서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 있어서의 납자(衲子) 지조(志操)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 스스로 부정을  버리고 부인을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 11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학자가 깨달은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 내가 깨달았다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현중현 도리를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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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선실(禪室) 같은 .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  거사(龐居士)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병주머니 ; 갖가지 병이 많은 사람 또는  사람의 몸을 이르는 .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추호(秋毫 가을 /가는  ) ; ‘추호도’, ‘추호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 비유적으로 이르는 .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절할 )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주요 내용]

(게송)대지여우인막측~ / 큰 지혜는 흡사 어리석은 거와 같다 / 수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화두 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 단전 호흡은 참선의 기초공사.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자리이타(自利利他) /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수가 없는 도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이다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 있는 선방.


[주요 문구]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절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단전 호흡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1~25)2017. 9. 20. 15:4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18)—무오년 하안거 결제 법어(78.04.17) (60분)

(1/3) 약 22분. (2/3) 약 18분. (3/3) 약 21분.

(1/3)----------------


승춘고하진선연(承春高下盡鮮姸)헌데  우후교림규두견(雨後喬林叫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정화루명월야(人靜畫樓明月夜)  취가환주낙화전(醉歌歡酒落花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봄이 오니 높고 낮은 데가 모두가  잎이 피고 꽃이 펴서 곱디도 곱구나. 더욱이 어젯밤 비가 내린 뒤끝이 교림(喬林)에는 두견새가 울고 우는구나.

사람 고요한 곱게 단청한 누각에는 달이 밝고, 한잔  먹고 노래를 부르며  떨어진 앞에서 춤을 추는구나.


 게송(偈頌) 부처님께서 이천육백  ,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신  도리(道理) 두고서 고인(古人) 읊으신 게송입니다.

이천육백 년 전에 무엇 때문에 (悉達) 태자께서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태어나셨느냐? 무슨 목적으로 태어나셨느냐?


실달 태자는 진묵겁(塵墨劫) 전에 이미 자아를 대각(大覺)하신 부처님으로서 어떻게 했으면 고해(苦海) 빠져서 갖은 고생 속에서 몸부림치는  불쌍한 중생들을 제도할  있을까?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인도 가비라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부처님 태어나시기 이전에도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이 계셨고, 부처님 태어나신 뒤로도 많은 불보살의 화현(化現) 종종 출현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출현허셔서  진리법을 전수해 오면서 한량없는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건만 아직도  사바세계(娑婆世界) 40억이 넘는 우리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고, 사람 수효 뿐만이 아니라 육도법계에 축생 · 아수라 · 아귀 · 지옥 등, 천상 · 인간에 가득차 있는 일체 영혼까지 하면은 천문학적 숫자로도 비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을 제도허셨건만  이렇게 중생이 한량없이 많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중생이 낳다, 죽었다, 낳다, 죽었다, 이것을 되풀이할 것을 생각하면,  중생수만큼의 부처님이 출현하셔야만 중생이  바닥이  것입니다.

중생수만큼 부처님이 출현을 허셔야 한다 허는 것은 일체 중생이  성불(成佛) 마칠  중생은 하나도 없어진다 말이 되겠습니다.


우선  세등선원 삼보전에 오늘 결제 법문을 듣기 위해서 오신  사부대중 먼저 견성성불(見性成佛) 해야만 되겠습니다. 이렇게 철철이 결제(結制)를 하는 목적도 또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금방 우리는 열반(涅槃)하신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祖室)로 모신  전강대종사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하늘보다도  높은 법문으로부터  바다보다도  깊은 법문, 유치원 학생도 들어서   있을 만큼 그러헌 쉬운 법문으로부터 역대조사의 위치에서도   없는 그러헌 깊은 법문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대사자후(大獅子吼) 우리의 마음을 울려 주셨습니다.


대관절 법문은 부처님께서 49 동안을 설허시고 열반에 드셨지마는  49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대장경에 법문이 그렇게 부수(部數)가 많지마는,

 가운데에는 방편설(方便說)로부터서 입으로 가히 설할  없는 법문(法門) 이르기까지,  많은 법문이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이뭣고?’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  한마디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낳아서부터서 울고,  먹고,  누고,  먹고,  입고, 울다가 웃다가 성내다가, 앉었다 섰다 달음박질허다,  타고, 자고, 이런 가운데에 수없이 많은 () 짓다가,  한번 내쉬고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죽게 됩니다.


대관절  몸뚱이를 끌고 다니면서 온갖 좋은 , 나쁜 , 갖은 업을 짓는 이놈이 대관절 무엇인고?

아무한테도 배우지 아니해도 갖은 업을 지을  아는 이놈! 무엇이 들어서 이렇게 성냈다, 웃었다, 울었다, 앉었다, 섰다, 왔다갔다 하느냐?


내가 나를 몰랐으니 그것이 중생이여.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한 그것이 바로 중생이고, 내가 나를 깨달으면 그것을 부처 하는 것이여.


깨닫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원인만 바로 안다면 우리는 결정코 금생에  몸뚱이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탐진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탐진치 삼독으로 오욕락(五欲樂) 즐기는데, 오욕락은 재산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심, ‘아무개’하는 명예와 권리를 누리려는 욕심, 편안히 놀고 잠잘려는 욕심.

 다섯 가지 욕심을 즐기는 가운데에 죄를 짓게 되고  죄로 인해서 짐승이 되았다, 지옥에 떨어졌다, 나찰(羅刹) 귀신이 되았다, 아귀(餓鬼) 되았다,  가운데 좋은 일을  하면은 천상(天上)에도 갔다.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 무량겁을 두고 계속해 내려오고 있고, 앞으로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참선(參禪) 공부 아니하면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육도윤회를 끊기 위해서 오늘 결제(結制) 법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육도윤회, 어떻게 했으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가장 빨리 육도윤회, 생사윤회를 벗어날 것인가,  점에 대해서 강조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은 철저히 발심(發心) 해가지고 오직 몸과 목숨을 바쳐서 참선하는  돈독한 마음 하나밖에는 없었습니다.

선방에도 지내고, 전국 방방곡곡에 선지식(善知識)  친견허고, 여기저기 좋은 선방  다니면서 참선을 했지마는, 아무리 애를 써서 해도 바닥이 나지를 않어.


그래서   없이  지리산 칡덩쿨 우거진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토굴(土窟) 하나 지어가지고 거기서 공부를 는데, 늦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그해도 탁발(托鉢) 해다가 보리쌀   얻어다 놓고, 나무를 줍고 산에 과일도  따고 해서 준비를  놓고 삼동(三冬) 공부를 들어갈라고 허는데,

해가 저물었는데 어디서 부인  분이 광주리에다가 산에 모다 과일도 산초도 따고 나물도 캐고 더덕도 캐고 그래 가지고 한 바구니 해가지고는 들어와서해가 저물었으니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 그날부터서 결제에 들어가서 삼동을 들어갈려고 허는데 부인이 떠억 와서 자자고 허니,  깊은 산중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자고 가자고 허니  재울 수도 없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서 공부하시는 비구(比丘) 스님인데, ! 부인하고 같이  수도 없고.


방이나 하나, 조그만한 됫박 방에 천상 같이 몸을 맞대고 같이   밖에는 없게 되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재우면은 산중에서 호랭이는 더글더글하고,

부처님 자비심으로 오늘 저녁에 천상 날새기를  수밖에는 없구나 이리 생각하고그러면 하루 저녁을 여기서 지내십시오


그날 저녁에 같이 한방에서 지내게 되는데  스님은 앉은 채 떠억 참선을 허고, 부인도 스님이  주무시는데  수는 없고, 앉어서 그저 벽에다 대고 졸다가 눈을 떴다가  갖은 몸부림을 치면서 하루저녁을 지내는데, 밤중 자정(子正) 넘으면서부터서 눈이 퍼부섰습니다.

눈이 와가지고 눈이 어떻게 많이 왔던지 도저히  이튿날 해가 떴지마는 길이 맥혀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지를 못하고 하루를 지내고 이틀 사흘이 되아도 눈이 녹지를 않고 길이  막혀서,   겨울을 같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이 지내고 봄이 되아도 눈이 녹지를 않고 그래서 천상 2 · 3 · 4월이  때까지 눈이  녹아서   속에서 여섯 달을 같이 지내는데.


,  부인도 대관절 스님 앉어서  무얼 생각합니까?”

참선을 헌다”고.

, 그러면 나도  가르쳐 주시쇼. 나도  앉어서 심심허니 나도 참선을  가르켜주시오


앉은 자세허리를  펴고, 고개를 반듯허게 들고, 아금니를 지긋이 물고서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갖다가 대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서 몸을 그렇게 단정허게 가진 다음에 심호흡을 허는데.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셔. 들어마신 다음에는  정지를 . 3 동안 정지를 했다가 조용허니 숨을 내쉬는데, 숨을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내쉰 다음에는  수르르르 숨을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셨으면  들어마신 상태로  정지를  상태로 3 동안을 머물렀다가  조용허니 숨을 내쉬어.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고.


이렇게 몸을 단정히 허고  다음에는 배로 숨을 심호흡을 하고.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 동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어.

 내쉬었으면  수르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셨다 3 동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러면은 우리가, 나는 부인 여자고, 스님은 남자 스님이고 그러니  좁은 방에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수도 없는 것이고, 기왕 우리가 자지 않고 앉어서  바에는 참선을 용맹정진(勇猛精進) 허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쪽에,  사람은 저쪽에 앉아서 가운데에다 기다란한 작대기를 하나 갖다 놓고, 스님이 졸면은 부인이 작대기로 스님 대골통을  때리고, 또 부인이 졸면은  스님이 작대기로 부인 머리빡을  때리고. 이렇게 해서 피차 잠을 깨워주면서 참선을 허기로 했습니다.


아, 그 부인이 처음에는  산중을 다니면서 더덕도 캐고 나물도 캐고 산초도 따고 허면서, 산과 산골짜기를 헤맸으니  졸음이 오겠어요? 스님한테 밤새도록 얻어맞았습니다.

맞었는데 이틀, 사흘, 열흘, 보름 이렇게 지내가면서 차츰차츰  보살은 잠을  자고, ! 스님이 자꾸 조는데 어떻게 맞었던지 대가리가 뿔이 많이 돋아났습니다.(처음~21분26초)



(2/3)----------------


“거 스님! 나는 인자 참선법을 처음 배웠는데, 나가 처음에는 많이 맞았지마는 스님이 그렇게 맞으니  안되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맞기로 약속을 했으니  때릴 수도 없고 단단히 정신을 채려야 겠습니다 ! 이러면서 때리는데, 어떻게 되게 때려 부리던지 기가 막혀서.

, 그러는 가운데 스님도 정신을 바짝 차려가지고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참선을 허는데, 그러다가 석달이 지내고, 석달이 되아도 눈이  녹아서 다시 석달해서 6개월이 되는데.


, 하루는 달이 훤허니 밝은데 같이 이를 악물고 용맹정진을 허는데,

! 졸음도  오는데, 깜빡할 사이에 분명히 졸지  했는데 깜빡허는데, !  보살이 ! 대골통을 때려부렸네. 깜짝 놀랜 바람에  깨쳐 버렸거든.

깨쳐 놓고 보니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냥 어떻게 감개무량(感慨無量)해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면서 일어서서  보살 앞에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했습니다.


절을 허며 내가 깨달았오

무엇을 깨달았냐? 깨달은 도리를 일러라. 대관절 스님이 깨달랐다니 옳게 깨달랐는지, 잘못 깨달랐는지 나도 한번 들어 봅시다.  깨달은 도리(道理) 한번 일러 보시오

 

답착평추경사철(踏著秤鎚硬似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답착평추(踏著秤鎚)하니 경사철(硬似鐵)입니다. 저울대 추를 밟으니 굳기가 쇠와 같습니다 ,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울대 추를 밟으니 굳기가 쇠와 같다고 허니  도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르시오


무수호손(無鬚猢猻) 도상수(倒上樹)니다.  나무~아미타불~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거꾸로 올라갑니다


 보살이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스님, 출가해서 30 수고 많이 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인데, 스님이 목숨 바쳐서 정진헐랴고 허는  신심(信心) 장해서 내가    겨울을 결정코 스님으로 하여금 견성성불(見性成佛)허도록 허기 위해서 내가 화현(化現)으로 나타났소. 그러니 행여나 어디 나가서 관세음보살을 보았다고 말을 허지 마시오


그러니까  스님이 일어서서 다시 절을 허고 얼굴을 드니까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목숨 바쳐서, 목숨 바쳐서 용맹정진을 허게 되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文殊菩薩)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 같은 그러헌 성현이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달을 수밖에 없도록 경책(警策)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세등선원이 창건된 이래로 4~5년이 지내갔는데, 한철 한철 지내갈수록 발심(發心)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날로 달로 수효가 불어서,

처음에는  세등선원을 조그마한 가족 선원을 헐까?하고 조그맣게 지을라다가, ‘가족만  것이 아니라 다른  스님네들도 오셔서 공부를 해야지 어찌 우리 식구만   있느냐 그래서 조끔 크게 지었습니다.


너무 크게 지었지 않냐?’하고 이렇게 걱정을 했는데,  30 지낼 정도로 지은다고 지은 것이, 지어 놓고 한 철 두 철 지내니까 40 · 50, 방부(房付) 들이러 오신 스님네를  받기로 허면 70 · 80명을 받아도 한이 없게 되았습니다. 이제는 방이 좁아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스님네가 오시니  받을 수도 없고,  받자니 받은 스님네까지 너무 불편을 느끼게 되겄, 이렇게 해서  즐거운 비명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방도 문제지마는,  스님네가 잡숫고 지내야  여러 가지 수용 문제도 중대하고, 겨울철에는 보이라 시설을  놨으니 천상 비싼 값으로 많은 기름을 사서 보이라를 때야  좋은 선방에서 참선을 허실 수가 있는데,  절을 짓느라고 너무 힘을 쓰고 아직도 초창기에 준비는  되아갔고 있고,

그러니 비싼 기름을 때서 불을 땔 수가 없어서 겨울철은 오시는 스님을 방부를 받지 아니하고, 겨우  10여명만 받아가지고  앞에 관음전 법당에서  명은 허고,  명은  옆에 조그만헌씩 방에서...(녹음 끊김)


.....부담은 적으면서도 신도님네들은 복을 짓게 하고  공덕(功德)으로 선방은 충분히 운영해 나갈 수가 있겠다. 이리해서 천일기도(千日祈禱) 지난 3 24일에 입재(入齋) 허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얼마만큼 참, 공덕이 장하다고 허는 것은 내가 설명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옛날에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 보조국사(普照國師)라고 허는  도인(道人) 계셨습니다.

여러분도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아시리라고 믿습니다마는.


 깊은 산중에서 어떤 스님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있다가, 연기가 폴폴 나서  연기를 찾어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니 허연 영감님이 숯을,  옆에다가 숯불을 해놓고 숯을 굽는 할아버지가  분이 있었습니다.


 가니까 쬐끄만 오두막을 하나 해놓고 거기서 자면서 좁쌀밥을 해먹으면서 숯을 굽고 있는데,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렇게 허시라”고. “ 산중에 여기 아니고 어디를 가시겠느냐”고.


그래 좁쌀을 벅벅 씻어가지고 좁쌀밥을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그릇을 삶아가지고 드렸는데 어떻게 배가 고픈지 그것을 맛있게 잡숫고, 그날 저녁에 거기서 자는데 방바닥이 울퉁불퉁해 가지고는 하룻밤을 그저 등어리가 아픈지 마는지 하두 대간하니까 하룻밤을 자고서  이튿날 떠났는데.

 2~3일을 지나니까 등어리가 근질근질 아프고 이상해서 다른 사람보고 등어리가 무슨 까시가 백혔나 어떻나  보라니까, 갈자리 까시가 백혀 가지고는 등어리가 곪아서 그래서  까시를 빼고 며칠 동안을 치료를 해서 낫기는 나았으나  고생을 했습니다. 했는데,  스님이 누구냐 하면은 과거에 보조국사여.


보조국사는  도인으로 고려 말기에 보조국사하면  대도사인데,  도인은 너무나도 () 훌륭허시기 때문에  나한전(羅漢殿) 나한(羅漢)님허고 가끔 이야기도 하고 그런데,  나한님이 가끔 보조국사를 골리기도 허고 놀리기도 허고 그러는데, 하루는 나한이 나와 가지고는,

큰스님,  떡을 좋아허시는데 제가 오늘은 떡을 잡숫게  드릴까요?”

그래, 어디 떡을  가져오라”고.

가져올 게 아니라  등에 업히십시오.  있는 데로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나한의 등에 떠억 업혔는데, “눈을 감으십시오 떠억 업혀 가지고 눈을 감으니까,      날아 가지고는 한참 날아가서 ! 내려 놓는데, 눈을  떠보니까 거기가 어디 절인지도  수가 없고,

 나한전의 탁자 위에다 내려 놨는데지금 한창 제대성중(諸大聖衆)! 제대성중!”허면서 목탁을 치면서 기도를 허고 있는데,  탁자 위에다 떠억 내려놨는데 탁자에는 김이 물씬물씬 나는 떡이  시루가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떡을 먹을라고 그러니까 나한이 손을  잡으면서 이것은 안됩니다.  떡은  먹으라고 지금 채려 놨으니까 내가 먼저 먹어야지, 아무리 큰스님이라도 큰스님이 먼저 잡수면 안됩니다

에이, 뭐라고 허냐 이놈. 큰스님 먼저 먹어야지 니가 먼저 먹어서 되냐

먹을라고  집어서 입에다 넣으니까, “스님이  말을  듣는다면 나는 가버립니다. 스님이  말을  듣기나, 내가 스님   듣기나 마찬가지. 나는 갑니다. 스님  많이 잡수시오 나한이  날아가 버렸는데.


나한이  옆에 있을 때에는  탁자 위에 떠억 앉았는데도  기도하는 스님네도 보지를 못하고,  기도하러  궁녀(宮女)들이 와가지고,  울긋불긋한 원삼 족두리를  궁녀들이 여러 명이 와가지고 기도를 같이 하는데, 궁녀들도 보지도 못하고 그러더니,

! 나한이 골을 내가지고  떠나 버리자마자, 보조국사가 탁자 위에 앉아 가지고 떡을 울근불근 먹고 있는 것이 떠억 보이는데,  부전(副殿) 스님이랑 궁녀들이 깜짝 놀랬다 그말이여.

온데간데없는데 어떤 스님이 떠억 탁자 위에 앉아 가지고 떡을 먹고 있으니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날이 다른 날이 아니고 중국에 황후(皇后) 등창이 나가지고  나라의 명의(名醫) 명의는  불러대다가 침을 놓고, 쑥을 뜨고, 우황 사향으로 맨드는 종기약을 넣고 해도 백약(百藥) 무효해서   없이 등창이 점점 커져가지고 고름이  나와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한숨을 못 자고 허는데, 영  등창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한전이 하도 나한님이 영특하다 말을 듣고 거기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는데, 그날이 백일기도 회향날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하여간 스님을 갖다가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고, 기도 회향(回向) 중에 큰소리 소란을  수도 없고, 그런대로 놓고는 기도 회향을 마치고 축원(祝願)  했는데,

 축원허는 소리를 듣고서 보조국사는, ‘아하, 오늘이  황후의  등창  낫으라는 백일기도 회향날이로구나!’ 그것을  알았는데, ‘이거  난리났구나, 이거   먹다가 이거 된통 걸렸구나


기도 끝나고는 부전 스님이 대관절 스님이 어디 절에서 이리 오셨습니까?”

나는 한국에 순천 송광사에서  보조(普照)입니다

대관절 떡을  잡쉈으니 이리 내려 오십시오


그래 내려 모셔서 밑에 객실에다 갖다 앉혀 놓고는, 바로 사람을 보내 가지고 천자(天子)한테  사실을 보고를 했습니다.

오늘 백일기도를 회향을 마쳤는데, 기도 중에 한국 순천 송광사에 있는 보조 스님이라는 스님이 온데간데없이 탁자 위에 나타나가지고 떡을 먹고 있다 들켰습니다. 그러니  스님을 주리를 틀까요, 그냥 내보낼까요?”

!  무슨 말이냐. 이거 백일기도 회향에 반드시 기도성취할 그러헌 징조다. 그러니 바로  스님을 가마에다 모시고 궁중으로 모시고 오너라 궁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21분27초~3843)



(3/3)----------------


“인자 한국에 보조 스님이 어떻게 해서  나한전에 오셔서 떡을 잡숫게 되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한님 등에 업혀서 왔단 말을  수도 없고, “그럭저럭  중국으로 와서 행각(行脚) 허다가 배가 고파서 그냥 가만히 들어가서 떡을 먹었습니다  거짓말을 슬쩍 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오셨으니 등창 낫는 무슨 좋은 약을  모르십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등창을  낫어 줘야겠는데, “그러면 내가 목욕재계(沐浴齋戒) 허고  연구를 해야겠으니 일주일 동안 말미를 주시오

, 그러시라”고.


일주일 동안을 목욕을 떠억 하 향을 피고 정진을 하는데 암만 생각해도  수가 없단 말이여.

등창이 쬐끄만 등창도 아니고, 아주 그냥  달을 걸려 가지고 중국 천지에 명의는 명의는  불러 가지고도  낫은 등창인데, 도저히 낫을 길이 없어서 향을 피고는 이런 때는 나한을  불러가지고 꾀를 물어   밖에는 없겠다


향을 떠억 피고 참선을 허는데 나한이 떠억 나타나 가지고  병은 약이 없습니다. 스님이 한번만 만지기만 해도  병은 낫습니다. 그러니 「만져 갖고 나쉈다」고 하면은 중국 천지, 한국 천지에서 등창쟁이는  몰려들어 가지고 스님 보고 만져 달라고 헐테니   수가 없는 일이고,

찹쌀밥을 해가지고 입에다가 넣고 오래오래 씹어가지고 그놈으로 개떡을 맨들어 가지고 등에다 스님 손으로 붙여 주십시요. 그러면 영낙없이 고름 덩어리가 빠져 가지고는 새살이 차오를 것입니다


아, 그래서 그말대로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찹쌀밥을 해가지고 씹어서 개떡을 맨들어 가지고는  보조국사 손으로  만져 거기다가 붙여서 줬는데, ! 시원헌 것이, 고름 덩어리가 당장 붙일 때부터서  욱씬욱씬허고 벌건 것이 시원해지면서,

그날 저녁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하룻밤을 자고 나니까 고름 덩어리가 쑤욱 밖으로 삐죽허니 나오더니 이틀 사흘만에 주먹탱이 같은 고름 덩어리가  빠지면서, 자꾸  개떡을 해서 붙이고 붙이고 해가지고는 며칠  가서 새살이 차올라서 낫었습니다.


보조국사는 갈라고 해도, “, 기왕 오신  여기서  쉬어서 가시라”고. “우리도  좋은 인연을 맺게 쉬어서 가시라”고. “낫은 것을  보고 가시라”고. 이래 가지고는 며칠을 쉬었는데, 그래서 인자 영낙없이 낫게 되었는데.


무엇이고 원하는 대로 좋은 것 하나를 드릴테니 말씀을 허십시오

그거 뭐 스님이 되어 가지고 무슨 보물을 욕심을 내겠습니까? 금은보화를 욕심을 내겠습니까? 생각을 해보니, “, 나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필요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무엇이던지 말씀만 허시라”고.


그런데 천자로부터 황후로부터서  왕자 왕녀들이 주욱 와서 꿇어 앉어서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허고 앉았는데, 아무것도 욕심나는 것은 없고  셋째 왕자를 보니까  생겼는데,  셋째 왕자를 상좌(上佐) 주면은  도인(道人) 되게 생겼다 그말이여.


그래서 무엇이던지 내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요?”

!  무슨 말씀 입니까? 드리고 말고요


 황후 보고도 무엇이던지 내가 말하는 대로 듣겠습니까?”

! 무엇이던지 드리겠습니다. 생명에 은인인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왕자들 보고도  낱낱이 물어보니까 그러겠다”고.


그러면은  셋째 왕자를 저를 주십시오 ! 가슴이 덜커덕 앓은다 그말이여.

말허기 전에는 모가지라도 떼어 달라면 드릴  같은데, ! 아들 하나를,  아들이 자기네들 생각에도 제일 잘난 아들인데 그놈을 달라 하니, 쪽제비 잡아서 꽁뎅이 빼준 것처럼 도저히  주겠는데, 그렇게  다짐을 해놨으니  드릴 수도 없고.


 주겠습니까?”

,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마는 황후가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


황후는 어떻습니까?”

저는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본인이 어쩔란가 모르겠습니다


왕자 보고 그대는 생각이 어떻소?”

어머님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인데  제가 마다하겠습니까? 저도 출가해서 스님과 같은 도인이  수가 있다면 제가 출가를 허겠습니다

! 본인이 간다는데야 아무리 부모 속이 쓰리고 린들, 마다할 수가 없어서 보조국사를 딸려서 한국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때는 나한님 등에 업혀서  한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갔지마는  때는  나한의 신세를  수도 없고, 걸어서 걸어서 중국 천지를 구경허면서 요동 평야를 건너서 압록강을 넘어오는데, 배를 타고 오는데  둘이에다 사공(沙工)하고 이렇게,

그리고 호위병은 압록강까지만 따라 보내고는 거기서부터서는 되돌려 보내고는강을 건너서 순천 송광사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호위병들 딸려 보냈는디, 보조국사가 안된다. 여기서는 돌아가거라해서  보내고는 배를 타고 오는데.


배에다  짐도 싣지도 않고 그랬는데, 배가 그냥 어떻게 무거운지 넘실넘실 넘실넘실 해가지고 강물이  넘어오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거 , 왕자라고 같이 오는데 물에 빠져 죽었다하면 이러헌  난리가 없게 되어서,  가만히 생각한 결과 이거 큰일났다, 이거


그래서 왕자 보고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이어라 인자 상좌인데 뭐, 왕자고 뭣이고  그까짓 거 상좌인데  높일거... “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이어라

머리에다  버선을 입니까?”

그럴 일이 있다 스님의 명령이라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떠억 이니까,   가라앉게 생긴 배가 벌떡 일어서가지고  떠올랐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버선을 내려 놓으니까 그때부터서는 문제 하나없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어째서 버선을 머리에다 이니까 배가 가벼워졌습니까? 그걸 좀 가리켜 주십시오

니가 과거에 () 너무 많이 지어가지고 복을 잔뜩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복이 너무 무거와서 그렇게 배가 가라앉을라고  것이다. 그러니  버선짝이나 신발이나  하복, 치마나 아랫바지 같은 것을 머리에다 이면 박복(薄福)해지는 것이다. 복이 없어지는 것이다. 복이 없어지니까 감소가 되니까 가벼워져서 이렇게 배가  가라앉게  것이다” “! 그렇습니까


절에서는 양말이나  고의나 하복(下服) 그런 것은 절대로 빨랫줄에다가 널어가지고  밑으로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양말 같은 , 고의 같은 ,  속가(俗家)  보면은 고쟁이를 사람 다니는 데다  벌려서 널어 놓고는 아빠도  밑으로 들락날락, 엄마도 들락날락, 귀여운 아들도 들락날락 그러헌 것을 흔히 보고 아주 기분 나쁜 것을 많이 봅니다마는.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런 하복을 널라면은  한쪽으로 사람 다니지 아니헌 데다 너시고, 그리고 방에다가도 치마 같은 그런 것을 머리 위에다가 떠억 벽에다가 걸어 놓고  밑에 앉아서 꺼떡꺼떡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남자 분의 바지도   있으면 한쪽으로 너는 것이 좋은데, 여자  아랫도리 옷을 가지고 걸어 놓고 그건 아무리 안방이라도 그런 것은  조심허셔야 하고, 주무실  버선 양말짝 같은 것도 머리 위에다 놓지 말고   밑에다 놓고.

 세숫대야에다가 발도 씻고 걸레도 빨고 그러지 말고, 세숫대야와 양말이나  씻는 대야는 별도로 표를   놓고서 세숫대야는 세수만 하고, 발이나 걸레 그런 거 닦는 대야는 별도로 하고 이래야 됩니다.


 밥그릇에다가 오줌 싸고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아무리 깨끗허게 씻어 줄지라도 요강에다  담아 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밥그릇에다 오줌 누고 그래서도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분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소한  같지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오늘부터 당장 가셔서 세숫대야와 하복대야를 ! 갈라서 표를 아주  하셔야 돼. 빛깔을 달리 한다든가.  집안 식구들 조심하시고, 하복  널고 그러는 걸 조심하시고.


지금은 제가 말을 하는 시간이니까 제가 하고,  말씀이 끝나거든 실컷 허셔요.


이렇게 해서  왕자를 무난히 압록강을 배를 타고 같이 건너오셔서 순천 송광사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왕자가 어떻게 열심히 공부를 했던지 대도(大道) 견성(見性) 해서  왕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되었습니다. 스님도 국사가 되고,  왕자도  상좌도 국사가 되어서  도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산중에서  굽던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다니던그때  스님은 국사가 아니고, 걸망짐 짊어지고 다니는 일개 초라한 수좌(首座) 스님에 지내지 못했습니다 공부하러 다니는 수좌 스님에게 좁쌀밥  그릇 대접헌 공덕으로 황후가 되았고,  황후 뱃속에서 국사(國師) 낳게  것이여.

 좁쌀밥  그릇으로는 황후가 되고  뱃속에서 왕자를 낳았지만,  울퉁불퉁한 방바닥에 하룻밤 재워 보내다가  갈자리 까시가 등에 백힌  과보로는, 중국 천지에 명의가 들어도 낫으지 못할 만한 어마어마한 등창을 앓게 되었다 이 말씀이예요.


가만히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시면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얼마나 과학적인 것인가를  아실 수가 있을 것이예요.

 심은 데  나고,  심은 데  나는  무서운 인과법. 부처님 법을 믿는 부처님 제자들은  인과법을 올바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믿고 알아야 합니다.


인과의 법칙! 인과의 법칙을  이해하시고 실천하신다면은  세상에 법률도 필요 없고, 형무소도 필요 없습니다. 재판소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알아서  일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착한 일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을 눈꼽만큼이라도 남을 해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인과가 금방 돌아오는 것인데 어떻게 남을 해롭게 허냔 말여.  잘살기 위해서  욕심 챙기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법률이 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방 스님네 참선 잘하시고, 겨울에는 큰방에다가 뜨뜻허니 불을 때서 공부 잘하시게 허시기 위한 방법으로 선방이 되아서 한시라도 빨리 공부 잘해서  도인 스님이 나와서 우리 모두를 제도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얼마나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으며, 성취해야 할 소원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말이여. 그러한 목적을 달성허기 위해서라도  선방 천일기도에  분도 빠지시지 말고 여러분 가정에도  드실뿐만 아니라 일가친척 사돈까지라도 두루두루 권고해서  천일기도에 다같이 동참(同參) 하시기를 바랍니다.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신심이 있는 분이라면, 설사 신심이 없다 하드라도 오늘  법문을 들으신 분이라면 점심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권고를 허실 것이고, 다  천일기도에 들으실  믿습니다.


오늘은 결제일로서 오늘부터 앞으로 석달 동안  오뉴월 삼복 성염(三伏盛炎)  무더운, ‘쇠도 무르고 나무도 무르고 바위도 물러 빠진다 삼복 성염을 덥다 생각 아니하시고,  몸에 땀띠기가 더덩캥이가 져도 그것을 두려워허지 아니하고 밤잠을  자고 정진허시는 스님네,

여러분들 형편 닿는 대로 서로서로 대중공양(大衆供養) 모다 내시고 그리해서 여러분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소원성취허시고.


 공덕으로 스님네는 열심히 열심히  건강하게 정진허셔서, 정진에  힘을 얻어서 대도(大道) 성취허시는 그 금년 한철이 되도록 사부대중이 일심 협력해서 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참선허는 법은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도 간곡한 법문이 들어 있고,  제가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게송 한마디를 읊고 내려가겠습니다.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고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냐

나무~아미타불~


참선 수행하는데 머리털 희기를 기다리지 말어라.  공동묘지에 무덤이, 젊어서 죽은 무덤이 한량없이 많은 것이다.


‘아직은 내가 젊으니까, 아들딸 키워서  가르켜서 장가 보내 놓고, 막내딸까지 여워 놓고 그리고서 늙발에 참선을 나도 허리라 이리 생각하지 말어라 이 말씀이여.

사람은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녀. 젊은 사람도 언제 죽을는지를 모르는 것이여.


늙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장  자리서부터서 참선을 열심히 허되,

 선방에만 나와야만 참선을 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밥 짓고, 빨래하고, 소지하고, 오고가고  타고 허면서, 시장에 갔다왔다허면서, 집안 살림허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앉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 누면서도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 들을  팔만대장경을 한번  읽은 공덕과 맞먹는 것이고, 오히려  보다도  공덕이 장해.


성이 날 때 이뭣고?’ ‘이뭣고?’하면서 성이... (녹음 끊김) (38분46~6013)(끝)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냐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는지  기약을  수가 없으니, 한번  사람 몸띵이 잃어버리고 지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언제 나올는지 모르니 어찌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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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승춘고하진선연~’ ; [선문염송 · 염송설화 1] (혜심 · 각운 지음, 김월운  | 동국역경원) ‘1 2 주행(周行)’ p28 정엄수(淨嚴遂) 게송 참고.

*교림(喬林 높을 교/수풀 림) ; 줄기가 굵고 높은 교목(喬木)으로 우거진 산림(山林).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룸비니(Lumbinī) ;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탄생한 곳으로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지방, 바이라와(Bhairawa) 서방에 있다. 석가족(샤카족)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16km 서쪽에 있다.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19세게 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던 , 1896 독일의 고고학자 앨로이스 휘러(Alois Anton Führer) 오늘날의 네팔 테라이 지역에 있는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는 아쇼카왕 석주(石柱) 발견했다.


석주에 새겨진 내용은, ‘자비로운 삐야다시 (아쇼카 왕의 다른 이름)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이곳을 방문하고 참배하였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 Buddha)께서 이곳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에 돌담을 쌓고 돌기둥(石柱) 세우게 했다.

부처님께서 여기 룸비니 마을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마을에 세금을 면제하였고, 단지 생산의 8분의 1  내도록 하였다.’ 이로써 부처님의 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 아쇼카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백년 ,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3 왕으로서 기원전 269 경에 즉위하여 36년간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인도를 통치하였는데,

즉위 8(B.C. 262)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그가 무력의 정복 버리고 다르마() 정복으로 전환하는 이정표가 된다.


[아쇼카의 '다르마()' 개념은 직접적인 불교의 특징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윤리적인 바른  바른 인간관계 : 웃어른 · 이웃에 대한 존경, 수행자에 관대함, 노예나 종의 바른 처우, 모든 교단의 화합과 비난 금지. ②계행과 바른  : 살생금지, 동물 희생제 금지, 적게 소비. ③다르마의 수행과 백성의 복지 :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7가지의 경전을 듣고 명상하도록 , 보시와 복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이익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부처님의 다르마()’ 근본으로 한다.]


 다르마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 칙령(勅令) 새겨 세웠다.  가운데 하나가 아쇼카 왕이 즉위 20년이 되던 , B.C. 250 무렵에 룸비니를 방문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룸비니 석주(石柱)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의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 ③깨달음을 여는 .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의 많은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 ; (산스크리트어 : 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 되었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 · 무색계의 여러 () 통틀어 일컬음. ()들이 사는 . () 세계.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참선(參禪) ; 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 거처 말함.

*탁발(托鉢 맡길 탁/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

*비구(比丘) ;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 받은 남자 승려. 걸식하는 남자 수행승.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 음사. 걸사(乞士파번뇌(破煩惱파악(破惡포마(怖魔)라고 번역.

*됫박 ; '' 속되게 이르는 . * ; 곡식, 가루, 액체 따위를 담아 분량을 헤아리는  쓰는 그릇. 주로 사각형 모양의 나무로 되어 있다.

*천상 ; 천생(天生). 어쩔  없이.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때까지 자지 않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대골통, 머리빡 ; ‘머리 격이 낮게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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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개무량(感慨無量) ; 마음에 깊이 사무치는 느낌이 그지없음(이루  말할  없음).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 번역, 보살(菩薩)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 준말.

세간(世間)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 그의 이름을 부르면  음성(音聲) 듣고()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준다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 왼쪽 보처(補處).

 자재롭게 보는 (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 길상(吉祥, 상서로움)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 손에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천일기도(千日祈禱) ;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동안 드리는 기도.

*입재(入齋) ; () 시작하는 . 또는  의식.

*보조국사(普照國師) ; (1158~1210) 고려의 스님. 스님의 휘(諱)는 지눌(知訥)이니 경서(京西)의 동주(洞州 : 황해도 서흥) 출신이다.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며, 속성은 정씨(鄭氏)이다.

의종(毅宗) 19년(1165) 8세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에 속하는 종휘(宗暉)에게 출가하였으나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오직 도덕이 높은 스님이면 곧 찾아가서 배웠다. 명종 12년(1182) 25살 때인 임인(壬寅)에 대선고시(大選考試)에 합격하였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전남 창평군 청원사(淸源寺)에 이르러 주석하던 중 하루는 육조 혜능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켜서 육근(六根)이 비록 견문각지(見聞覺知)하나 삼라만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진여(眞如)의 성(性)은 항상 자재(自在)하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스스로 얻은 바가 있었다.

명종 15년(1185 乙巳)에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서 대장경을 열람하다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가 지은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을 보다가 거듭 신심(信心)을 일으켜 화엄경의 오묘한 이치를 찾아내고 난해한 뜻을 드러내어 제가(諸家)의 설(說)과 비교하여 더욱 정통하였다.


1190년 팔공산 거조암(居祖庵)에서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지어 정혜쌍수(定慧雙修)할 것을 권하였다. 신종(神宗) 1년(1198 戊午) 몇 사람의 도반과 함께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은거하였다.


스님께서 일찍이 말씀하되 “내가 보문사(普門寺)에서 지낸 이후 10여년이 경과하였다. 비록 뜻을 얻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허송한 적이 없으나 아직 정견(情見)이 사라지지 아니하여,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어 원수와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항상 꺼림직 하였다.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주석하면서 정진하는 여가에 대혜보각선사(大慧普覺禪師 1089-1163)의 어록(語錄)을 보다가,

‘…… 선(禪)은 고요한 곳[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분요한 곳[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에 정처(靜處)와 요처(閙處)와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와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를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참(參)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자기 집안의 일)입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뜻이 딱 들어맞아 마음에 깨달으니, 자연히 가슴이 후련하며, 원수와 멀리한 것 같아서 곧 마음이 편안하였다”고 하였다.


1200년(신종 3, 庚申)에 조계산 길상사(吉祥寺), 곧 지금의 송광사(松廣寺)로 옮겨 11년간 대중을 지도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대중에게 송지(誦持)하기를 권함에는 항상 『금강경(金剛經)』으로써 법을 삼도록 하고, 교의(敎義)를 연설함에는 『육조단경』을 강설하며, 통현장자(通玄長者)의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으로써 주장을 펴고, 『대혜어록(大慧語錄)』으로써 함께 우익(羽翼)을 삼았다.

수행에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경절문(徑截門)을 세워 수행자들을 지도함.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역설하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상수(定慧雙修)를 권하고 간화선(看話禪)으로 증오(證悟)할 것을 주창하였다.


1210년(희종 6년) 3월 27일 53세의 나이로 입적(入寂).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그의 묘탑에도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다.

3월 27일 아침, 스님께서 세수와 양치질을 한 다음, “이 눈은 조사(祖師)의 눈이 아니고, 이 코도 조사의 코가 아니며, 이 입은 어머니가 낳아주신 입이 아니고, 이 혀도 어머니가 낳아준 혀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법고(法鼓)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여 설법을 하고 문답을 하신 다음, 마지막으로 어떤 스님이 묻기를 “옛날 유마거사가 비야리성(毘耶離城)에서 시질(示疾)한 것과, 오늘 조계산에서 목우자(牧牛子)가 작병(作病)한 것이 같은가? 다른가?” 하니, 스님께서 이르되 “너희들은 같은지 다른지를 배워라” 하고, 주장자(柱杖子)를 잡고 몇 번 내리치고 말하되 “천가지 만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하고, 주장자를 잡고 법상에 걸터앉아 고요히 입적하였다.


저서 :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수심결(修心訣)·진심직설(眞心直說)·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염불요문(念佛要門) 등.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대간하다 ; ‘고단하다(지쳐서 피곤하다)’의 사투리.

*갈자리 ; 삿자리(갈대를 여러 가닥으로 줄지어 매거나 묶어서 만든 자리).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부전(副殿) ; 불전(佛殿)을 돌보고 의식(儀式)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하는 스님.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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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세숫대야(洗手--) ; 세수(洗手 낯을 씻음)할 때 물을 담아 쓰는 대야.

*고의 ; ①남자의 여름 홑바지. ②속곳—속속곳(예전에, 여자가 아랫도리의 맨 속에 입던 속옷을 이르던 말)과 단속곳(여자들이 치마 안에 입는 속옷의 하나)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하복(下服) ; 버선이나 걸레같은 깨끗치 못한 옷. 하복을 빨래하는 그릇을 하복통 또는 하복대야라 한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땀띠기 ; ‘땀띠(땀구멍에 습기가 고여 피부에 자극을 주어 생기는, 좁쌀 같은 얌증)’의 사투리.

*더덩캥이 ; 더뎅이(부스럼 딱지나 때 따위가 거듭 붙어서 된 조각).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〇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무덤이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  이루면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 구하여라.

*늙발 ; 늙은 무렵. 늙었을 때.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1~25)2016. 4. 3. 09:1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61분)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법문(法門)이라고 허는 것이 입으로 설헐 것이 있고, 귀로 들을 것이 있는 법문은참법문이라고 수가 없어.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설() 없이 법을 설해야 하고, 들은 바가 없이 들어야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대중스님네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자주자주 들으면서 정진을 애써서 오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이기 때문에 법문을 설사 설한 있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설한 없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자주 듣고 자주 채찍질을 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신심을 일깨우고, 나태(懶怠) 빠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을 가해 나가야 우리의 목적 달성을 단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진(精進) 하는데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써야 하며, 정진을 여법(如法) 나가면은 차츰 우리의 경계(境界) 어떻게 진취있게 나가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가지고 좋은 경계가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계를 살려 나갈 모르고, 애써서 도달한 좋은 경계를 살리지 못하고서 거기에서 그릇 빗나가 버리는 애석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경지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알고 거기에 집착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벌써 결제(結制)—어떻게 지냈는지 반살림을 지내고, 앞으로 해제도 20여일 밖에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러헌 말씀을 택해 왔습니다.



정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에 의심(疑心)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종(一種) 하고, 말을 하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애를 쓴다고 해도 본참공안,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본참화두에 의심이 없다고 하면은 정진은 옳은 정진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에 의심이 있어야 반드시 크게 깨달을 수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 문제라든지 그밖에 천칠백 공안은 말할 것도 없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루에는 수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있어서 의심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심을 허기로 하면은 보고 듣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의심 아닌 것이 없어. 의심, 의심, 한량없는 의심을 똘똘 하나로 뭉쳐서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면서 정진을 하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본참화두에 간절(懇切)하고 돈독(敦篤) 의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간절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다.


법문이 비단 녹음된 조실 스님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것만이 법문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발심을 하고 신심을 일으킨 사람은 바람 부는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고,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건 또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흔들어 놓는 일이건, 그러헌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올 있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일으킨다면은 법문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아니한 , 이것이 우리 정진에 있어서 가장 병이다.

모든 인연세속에 대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중생활 나가는데 있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일체 인연을 놔버려. 누가 잘하건 못허건 그것에 말려들어서는 벌써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못허는 것을 봐도 화두를 들고, 누가 아픈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일체 인연을 놔버리고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하루 종일 다맛 자기 화두를 들고 들고, 생각[別念] 일어난 알면 생각 버릴려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으로 화두를 ! 들면 되는 것이다.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해야 하지마는 있으면은 앉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져나가는 것이 가장 힘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면 앉어서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느냐? 지나치게 눈을 ! 부릅뜨고 억지로 힘을 써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지나치게 몸뚱이를 억제하고 구속하고 무리하게 몸뚱이를 다루어도 되는 것이다.

공연히 헛심을 들여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치게 몸을 억누르고 구속을 가하면은 혈액이 혈액순환 하는 데에 이상이 생겨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그밖에 혈기(血氣) 고르지 못한 병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맛 단정(端正)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무자(無字) 허는 이는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혼침(昏沈) 가지고 꾸벅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한두 소리내어) 화두를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5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5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 소멸(消滅) 되고. ‘마가 소멸된다 것은 혼침도 그것이 (), 산란심(散亂心) 그것도 ()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 안에서 일어나는 (), 모든 것이 (), ()라고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


그러니 ()라는 놈이 북적북적하고 그러면은 눈이 안정이 되는 것이고, 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뚱이도 안정이 되아서 괴롭고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때에 이렇게 () 들어갔을 때에, 정에 들어간 고요한 것으로서 능사(能事) 삼아서는 안되아. ‘ 좋다. 이러헌 경지가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벌써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렇게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되고 해서 말로 없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화두를 잊어서는 된다. 그럴 때에 화두를 깨끗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만약에 그러한 고요해진 경지에서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 데에 잠기고, 적적한 데에 () 가지고서 아무리 그러한 경지로 오래오래 나간다고한들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 되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다맛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리만을 말씀을 하셨지, 이렇게 고요한 () 들어가지고 신통(神通) 나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일체 말씀을 하시지 했다.


선정에 들어가지고 오래 오래 지내면은 뭣이 알아지기도 하고 신통도 나고 틀림없이 그런 것은 그렇지마는 견성(見性) 하지 못하고 신통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러헌 신통이 먼저 나는 사람은 그것은 외도(外道), 그것은 벌써 삿된 길에 떨어진 사람이라, 자기도 생사해탈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까지 그르치고 외도 마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목 고요하고 조촐해질 화두를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놓지 아니허되,

있으면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는 것이 아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앉어서 하루에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밖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항시 앉어서 단정히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고, 그러다 잠이 오면 일어나서 바람 쐬고 들어와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혼침에 떨어져 가지고도 계속 일어나지도 않고 앉어서 조는 것으로서 정진을 삼고, 앉아 있는 것에 집착을 가지고 그러헌 정진도 옳은 정진이 아니다.(처음~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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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부를 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공부가 잘된 같지 아니하고, 계속 몸도 괴롭고 마음도 답답하고 이래서그런데 그럴 때에 공부가 안되는 알고 대단히 번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데,

깨끗이 깨끗이 잘되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맑지를 못하고 몸도 뒤틀리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럴 때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좋은 중요한 고비인데,

좋은 고비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서 공부가 못된 알고 몸부림을 치고 번민을 하는데, 고비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막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그럴 때에 아까 말한 대로 살며시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서 맑은 공기도 쐬고 그렇게 포행(布行) 거니는 가운데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야 고비를 참으로 올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되지,

공연히 번민하고 화두도 놓쳐 버리고 몸부림치고 공부를 그럭저럭 번민으로써 넘어간다면은 애써 공부해 가지고 참으로 좋은 고비 넘어갈 데에 가서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 된다 그말이여.


아주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러한 고비를 수없이 차례를 그러헌 고비를 넘기고 나면은 인자 수월하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가 되아가.

그렇게 얼마 동안 나가다가 ! 변해 가지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에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가지고 지혜스럽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서 고비를 넘기고.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성성적적하게 순일하게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 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답답허고 지루하고 몸과 마음이 덤덤하고 답답하고 멍멍하고 이러헌 고비가 오드라도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고 그래야 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 다져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를 못하고,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공부는 옳은 공부가 아니여.

어쨌든지 성성한 가운데에 공부를 나가야 하는데, 성성하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 수밖에는 없고, 고요해지면은 그것이 ()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에 가서 가지가 있는데삿된 ()’바른 ()’ 있다 그말이여.

삿된 ()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삿된 정이여. 고요하고, 일체 마음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진 가운데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 나가야 그것이 바른 ()이지, 화두만 놓쳤다 하면은 그것은 벌써 삿된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명심을 .


그렇게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일체 혼침과 산란심이 끊어져서 그렇게 고요하고 정한 데에 들어갔다가 일어설 때에 몸과 마음이 경청(輕淸)해서,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 화두를 들려고 하지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일체처에 공부를 애써서 단속할라고 하지 해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때에 함부로 몸을 거동을 한다든지, 함부로 큰소리로 웃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들어갔던 좋은 경지가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경지에서 아주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자세히 지혜스럽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고요하고 조촐한고요 ()’, ‘조촐헐 ()’, 정정(靜淨) 글자를 여의어서는 되는 것이다. 고요한 것이 고요할수록 고요해지면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조촐한 것이 지극(至極) 경지에 도달하면은 (), 빛이 통달(通達)하게 된다.


기운(氣韻) 엄숙해지고 맑아지면은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 우리의 움직임일체 행동, 생활 경계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은 가을 하늘과 같아서, 새파란 가을 하늘에 구름 없는 상쾌하고 깨끗하고 새파란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은 그러헌 경지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첫째 과정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경지를 타서 공부를 단속해 나가야 한다.


가을 들에 가면은 농사도 짓고 맑은 물이 출출출출 출출출, 깨끗한 가을 들에 나가면은 가을 들물이 흘러가는데 그러한 가을 들물과 같고, 오래된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그러한 경지, 그래서 적적하고 성성해서 우리의 마음길이 끊어진다 그말이여.

일체 번뇌 망상이 저절로 끊어져 버리고, 일체 혼침도 거기에서는 물러가 버리고, 심지어 우리의 육신이... (녹음 끊김)(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들려 있다 그말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체 우리의 중생의 티끌이 쉬어 없어지고 (), 빛이 발하게 된다. 이것이 둘째 과정이다.


만약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가지고 지각심(知覺心) 내면은—‘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깨닫기를 기다리는, 생각이라도 그러헌 생각을 일으키면은, 알기를 기대한다든지, 깨닫기를 기대한다든지 이렇게 되면은 순일(純一) () 끊어버린 것이 되어서 ()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이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지각심을 일으키는깨닫기를 기다린다든지, 뭣이 알아지기를 기다린다든지, 무슨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그러헌 지각심만 내지 아니하고,

오직 동정(動靜) 일여(一如)하고, 오매(寤寐)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해서 마치 깨끗한 물에 달빛이 비치면은 아무리 물결이 일어나도 활발발(活潑潑) 달빛이 변함이 없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흔들어도 우리의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해.


외부로부터 어떠헌 충격을 받드라도 순일무잡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보고 듣고 느끼고 간에 경지가 조금도 지장 없게 되어서, 안으로도 적적해서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면 이것이 셋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 터지면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날이 머지않다 그말이여.


셋째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자기 자신도 공부 지어 나가는데 있어서 지혜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공부를 나가야 하지마는 주변에 있는 대중들도 역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벌써 밖으로 보면은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면은 밖으로도 보면은 아무라도 보면은 아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을 자꾸 찝쩍거려서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도록 하면은 죄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서로서로 서로서로 보호를 하고 아끼고 조심하면서 공부를 닦아 나가야 된다.


그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일으킬라 해도 일으켜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어떤 충격을 가해도 동요함이 없이, 이렇게 저절로 그렇게 되아 가는 , 그것이 셋째 과정인데, 셋째 과정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주일, 오래가도 일주일 가서 결국은 의단(疑團) ()하면서 확철대오 한다.

과거에 고봉(高峰) 스님도 그러헌 과정을 겪으셨고 그밖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러헌 경지를 거쳐서 깨달으신 분이 많은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마치 계란이, 닭이 알을 21 동안을 품고 있게 되면은 안에서 병아리가 차츰차츰차츰 거의 병아리가 되었을 때에 기일이 ! 차면은 밖에서 애미가 좃고,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 좃고 것이동시에 안에서 좃고, 밖에서 좃고 해서 ! 터지게 되면서 병아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맷돌을 무거운 맷돌을 아래짝과 위짝과 맞추는데 있어서 좀해 맞는다 그말이여. 이리 쪼금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허다가 찰크닥! 우아래짝이 맞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 자기를 깨닫게 되고 불조(佛祖) 득인증처(得人憎處) 잡아 ()하게 된다.


불조(佛祖)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일대사(一大事)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지마는 불조의 허물이 하나가 있다.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제호를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오후(悟後)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외도 마구니가 되어 수도 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2052~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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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 해야 하고, 불조의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 보림(保任)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한바탕 거쳐서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허지 아니하고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있는 면이 있고,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헌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그러헌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 일으키게 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말해 주어도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근기와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경지에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아따, 도인이다. 거리낌이 없고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 줄을 모르고, () ()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죽고,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


그리고 공부는 () 없는 것이여.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하고 인자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더이상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끝났으니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세계에 육도법계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가 자리(自利) 이타(利他) 둘이 아니고, 동시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것도 없고 () 것도 없고, () 없고 ()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등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차등(差等)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금년 겨울에 이렇게 좋은 스님네와 좋은 보살님네들이 모여서 이렇게 처음부터서 열심히 열심히 정진을 허더니마는 중간쯤에 와서 더욱 신심이 돈발(頓發)하고 여법히 정진을 하고 해제가 이렇게 가까워 올수록에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원장 스님이나 입승 스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봐도 능히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벌써 ()살림 지내면은 공부할 마음이 풀어져 가지고 공부가 되지를 않고, 하루하루가 빨리 해제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가서 애를 먹고 흔히 그러헌 것인데,

금년에 세등선원에 모인 대중은 전혀 그러헌 기색(氣色) 보이지를 않고 날짜 가는 것이 오히려 애닯고 너무 어떻게 시간 날짜가 지내간지 모르게 벌써 이렇게 지내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만큼 신심(信心) 분심(憤心)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간절해서 공부가 여법허게 잘되어간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여일 남았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지내간 동안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공부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진로해탈(塵勞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라

나무~아미타불~


생사해탈(生死解脫)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보통 마음으로 보통 수행해 가지고 성취할 있는 그러한 보통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話頭) 정말 알뜰히 간절히 다잽이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죽을 ()’자를 이마빡에다 붙이고 정말 철저히 단속을 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것이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매화 몽우리가 열려서 향취가 우리의 코에 들어올 수가 있다. 강추위를 허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매화꽃이 피기는 펴도 향취가 없는 것이여. 되게 강추위를 가운데에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에 피어야 매화꽃이 배나 향기로운 것이다.

우리가 되게, 간절히 그리고 골똘히 애써서 정진한 뒤끝이라야 확철대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렁저렁 그저 시시비비와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그렁저렁 지내는 가운데에 어찌 하늘과 땅을 놀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울리게 있는 그러헌 확철대오가 어찌 얻어질 수가 있겠느냐?


금생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 받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 헐랴면은 그만큼 철저하게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철두철미하게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간 데에서 목적 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여.(4005~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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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나태(懶怠 게으를 /게으를 ) ;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그릇 ; 옳지 않고 잘못되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p164-166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헛심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혈기(血氣) ; ①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元氣) 이르는 . ②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 ③혈액과 기식(氣息 숨을 쉬는 기운) 아울러 이르는 .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

*단정히(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흐트러짐이 없이 얌전하고 바르게.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살모시 ; 살며시(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 ; 마구니.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

*산란(散亂 흩을 ,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 : ①계()•()•() 3(三學) 하나. []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능사(能事 능할·잘할 / ) ; ①잘하는 . ②쉽게 잘해 있는 .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 곧바로[] 가리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 ②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 ③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 ④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 ⑤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 ⑥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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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煩悶 번거로울·괴로워할·어지러울 /번민할·마음이 답답할·걱정할 ) ; 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 ; ‘울타리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수월하다 ;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아 하기가 쉽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투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지극하다(至極-- 이를·매우·궁극·극진히 ·깊을 /·다할·막다른 지경·매우 ) ; (마음이나 정성이)더없이 극진(極盡)하다(매우 정성스럽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 모셔 놓은 .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

*향로(香爐 /화로 ) ; 향을 피우는 쓰는 작은 화로.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활발발(活潑潑) : 고기가 기운 좋게 위로 뛰노는 모습.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단(疑團) ()하다 ;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의 덩어리[疑團]’ 깨지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참선법 A’ 에서.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봉(高峰) 스님 ;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담법문http://emokko.tistory.com/73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애미 ; ‘어미 사투리. *어미 ; 어머니 낯춤말. ②새끼를 낳은 암컷의 동물.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우아래 ; 위아래(위쪽과 아래쪽).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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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보살이 근기(根機)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 /인연·이유·연줄 ) ; ①시기인연(時機因緣)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묘할·신묘할·젊을 )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 하며, 학파들을 백가(百家) 부른다. 음양가(陰陽家) 추연, 유가(儒家)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 묵자, 법가(法家) 한비자, 도가(道家)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 설함에, 교묘하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다리 )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 디딤[]( 입장에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 ; [주로없다’, ‘않다’, ‘못하다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기색(氣色 기운 /모양··얼굴 ) ; ①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얼굴빛[]으로 드러나는 기운[]). 얼굴빛. ②어떠한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할 있게 하여 주는 눈치나 낌새.

*애닯다 ; 애달프다. *애달프다 : (마음이나 사연 따위가)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 닳도록 쓰리고 아프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게송) 진로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다잽이하다 ; 다잡이하다.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몽우리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아직 피지는 않고 망울만 맺혀 있는 ).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