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45))—1981년(신유년) 하안거 결제(81.05.18)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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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출무생일곡가(唱出無生一曲歌)헌데 대천사계용금파(大千沙界涌金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창출무생일곡가(唱出無生一曲歌)하니, 무생곡(無生曲) 한 곡을 불러내니. 한 곡에 무생곡, 생사 없는 도리를 읊은 무생곡을 한바탕 읊으니,
대천사계용금파(大千沙界涌金波)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금물결이 출렁이는구나.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아름다운 꽃이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다. 흰 해오라비가 논에 내리니 천 점에 눈송이더라.
때는 바야흐로 첫 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산천(山川)에 모든 나무에 잎은 피어서 나날이 푸르러 가고 있고, 그 푸른 나뭇가지에 노란 꾀꼬리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저 가지에서 이 가지로 노래를 부르며 날아가는데, 그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떠억 올라앉으니까 그게 바로 한 가지에 노란 꽃송이더라.
하얀 해오라비, 백로(白鷺)가 논에 내려앉으니까 천 송이의 눈이 내린 거와 같다.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고 하얀 백로(白鷺) 떼가 논에 내려앉는 거, 이것이 바로 무생곡(無生曲)을 읊어서 대천세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금물결이 일어나는 도리입니다.
오늘은 신유년(辛酉年) 4월 15일, 하안거(夏安居) 결제(結制)날입니다. 해마다 4월 15일이 되면 여름 결제를 합니다마는, 과연 그 결제가 연례행사(年例行事)로 끝나 버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4월 15일이 되면 결제(結制)하고 7월 15일이 되면 해제(解制)를 하고, 하루하루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모든 중생들이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바로 죽음의 문을 향해서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이여.
해는 어제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오늘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져 가지만, 그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 그 24시간 동안이 다름 아닌 우리가 죽음에 문을 향해서 하루씩을 다가서 가는 것이다.
물론 참나를 깨달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契合)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화엄경(華嚴經)』에 도리(道理)요 부처님 열반(涅槃)의 경지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형장(死刑場)을 향해서 하루를 다가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찌 하루를 그럭저럭 한만히 지낼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하루 죽도록 정진(精進)을 하고 해가 넘어가면 다리를 뻗고 통곡(痛哭)을 한 분도 계시고, 그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졸음을 쫓고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쓴 스님도 계시고, 저녁에 잘 때에는 나무를 동글동글하니 깎어서 둥글둥글한 목침(木枕)을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머리가 방바닥에 툭! 내려져서 깜짝 놀랜 바람에 눈을 떠 가지고 다시 또 정진을 하고, 밤에 잠을 안 자기 위해서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밤새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봉우리에서 이 산봉(山峰)으로 걸어다니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 스님도 계셨습니다.
오늘부터 90일간, 석 달 동안 하안거(夏安居)를 하는데, 아직 요새는 추웁도 덥지도 않고 참 좋지만, 불과 한두 달이 지내면 오뉴월 삼복(三伏)이 돌아와서 앉아 있으면 오금쟁이에 땀이 줄줄줄줄 흘르고 땀띠가 솟고, 등어리에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소금물이 줄줄 흐르고, 그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위가 돌아옵니다마는,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이요, 금생(今生)에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면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축생(畜生)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 무간지옥에 떨어졌을 때를 생각해.
무간지옥에 그 펄펄 끓는 가마솥에 하루에 만 번 들어갔다 만 번 나오고, 구리쇠 물을 먹고, 무거운 돌로 눌러서 죽이기도 하고, 톱으로 위에서 밑으로 썰기도 하고, 칼이 삐쭉삐쭉한 산에 굴림을 당하기도하고, 말로써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지옥고(地獄苦), 그것이 금생에 몸뚱이 받았을 때 도(道)를 닦지 아니하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 그 지옥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한 지옥고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단 한 시간도, 단 일 분도, 일 초도 등한(等閑)히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방일을 하지 않는다.
방일(放逸)이라 하는 것은 '놓아 지내지 않는다' '해태(懈怠)를 하지 않는다'
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하면 꼭 송곳으로 무릎을 찔러야만 하느냐, 꼭 똥글똥글한 목침을 비어야만 하느냐, 꼭 해가 넘어가면 다리를 뻗고 울어야만 하느냐, 꼭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밤새 왔다갔다해야만 하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정진(精進)이더라.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는 것인고?
밥을 먹을 때에도 ‘이 무엇고?’ 세수를 할 때에도 ‘이 무엇고?’ 앉았을 때에도 ‘이 무엇고?’ 섰을 때에도 ‘이 무엇고?’ 눈으로 파랗고 노란 색상을 볼 때에도 ‘이 무엇고?’ 다맛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것 그것이 바로 방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묘(妙)한 이치가 떠오르고 교리와 부합되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법견(法見) 불견(佛見)에 떨어지면 그 찰나에 벌써 그것은 마섭(魔攝)이 되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방일(放逸)이다 그 말이여. 한 생각 삐끗해 가지고 벌써 몇 겁(劫)의 과보(果報)가 거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제일 두려워할 것이 '한 생각'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생각. 그 한 생각이 삐끗하면 바로 그 삐끗한 그 자리가 천만 길 떨어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해야 하느냐? 여기에 불방일이 있고, 가행정진이 있고, 용맹정진이 있는 것이여.
밤에 잠을 덜 자고 한다고 애를 쓰면서 낮에는 그럭저럭 잡담(雜談)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잠을 안 자고 애를 쓰면서 낮에는 온통 입선(入禪) 시간이고 할 것 없이 꾸벅꾸벅 맑은 정신은 하나도 없이 졸기만 하고, 목에 묵언패(默言牌)는 찼으면서도 온갖 의사 표시는 손으로 몸짓으로 다하고, 온갖 시비(是非)에 다 참견을 하고 '니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시비를 가리고, 이렇게 수행을 해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 까지 정진을 한다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출가한 스님네, 특히 선방(禪房)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하는 분상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에서 백까지 오직 해야 할 일은 이 한 생각 단속(團束)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채찍질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이여.
오직 그 한 일 충실하면 그 가운데 온갖 계율(戒律)도 그 가운데 다 지켜질 것이고, 육바라밀(六波羅蜜)도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고,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지혜(智慧)와 모든 복(福)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원적(根源的)인 일 하나에 충실하면 지엽적(枝葉的)인 것은 제절로 그 가운데에 다 따라온 것이요, 다 갖추어진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방편(方便)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지엽적(枝葉的)인 것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자기 딴은 애를 써서 한다고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뿌리는 썩어간 줄 모르고 저 잔가지나 이파리에 매달려 가지고 그러고 있다 그 말이여.(처음~18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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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결제에 여러 보살님네들이 방부를 들이셨는데, 해마다 결제 때는 말씀을 드린 바지만, 편안한 가정을 놔두고 절에 오셔서 새벽 3시에면 일어나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자고 싶어도 마음대로 자지 못하고, 눕고 싶어도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고, 그러한 대단히 구속(拘束)된 생활을 자진해서 선택을 하셔 가지고 절에 와서 안거를 하시는데 그만한 결심, 그만한 신심을 가지고 고생을 자초(自招)해서 들어오셨다면 정말 단 일 분도 일 초도 잡담할 시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니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밥이 어떻고’, ‘이 스님네가 어떻고 저 스님네가 어떻고’, ‘집안이 어떻고 뭐 손자가 어떻고 며느리가 어떻고’, 그러한 시비를 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환갑 잔치에 무슨 놀러가셨다던지, 어디 무슨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 관광을 가셨다던지, 놀러가셨다면은 잡담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저 뭐 춤도 추고 그저 그러시겠지만, 여기 절에 참선을 하시기 위해서 이 결제(結制)에 오셨다면 잡담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고, 시비를 할 겨를이 없는 것이여.
겨우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를 치고 앉었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망상(妄想)을 끓이다가, 방선(放禪) 죽비(竹篦)만 치면 그저 지대방에 모여서 그저 이러쿵저러쿵 잡담하고, 심한 분은 큰방에 앉아서까지 그저 잡담을 하고, 둘씩 셋씩 넷씩 모여서 잡담을 하고 무슨 남의 시비를 하고. 여러 신도님이 그러신다는 게 아니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지난 겨울, 저 지난 여름, 이 참, 해를 거듭할수록 이 선방에 오셔서 공부하신 보살님네들이 점점 모다 규칙을 잘 지키시고 정진을 잘하시고 해서 우리 용화사 선원은 참 잘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결제 때는 으레이 더 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랐다고 이렇게 이 경책(警策)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잡담도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저런 말을 한다' 하고 속으로 그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지난철에 또는 저지난철에 스스로 ‘내가 얼마만큼 정진을 열심히 했던가?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히 단속을 하고 정말 알뜰하게 공부를 했던가?’ 반성(反省)을 해 보시고, ‘금년 여름은 정말 법(法)다웁게, 간절하게, 알차게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댁에서는 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있고, 누구가 이래라 저래라 말을 들으실 분들이 아니지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으니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공부를 열심히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기에 오셔서 즉접 참선을 못하시고 댁에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 설사 절에 와서 하시지는 못하더라도 댁에서 하신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신 분일수록에 더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해서, 일하시면서 손자를 보면서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누워서도 ‘이 뭣고?’, 어디 출행(出行)을 하실 때 차를 타면서도 ‘이 뭣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이 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걸어다닐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말을 아니할 때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이 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 다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바로 돌이켜서 '이 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숨을 조용하게 깊이 들어마십니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丹田),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짐을 느끼면서 들어마셔. 다 들어마셨으면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보시라 그 말이여.
물론 여러 철을 공부를 해서 이러한 자세한 말씀을 하지 안 해도 잘하신 분이 계시겠지만, 처음으로 선방에 나오신 분, 또는 처음으로 들으신 분을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만 잘 들면 그만이지 무슨 호흡(呼吸)은, 그까짓 거 호흡하다 보면 화두가 헷갈리는데 호흡은 할 것이 뭐 있느냐'
물론 화두만 여법(如法)하게 잘 들기만 한다면 호흡은 그까짓 거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이 화두를 드는데 있어서 ‘간절(懇切)하게 의심(疑心)을 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니까, ‘간절하다’고 하는 그 뜻을 잘못 이해해 가지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온전히 이 이마에다가 화두를 모아 가지고 그 이마로 화두를 든다 이 말이여. 너무 힘을 써 가지고 억지로 화두를 막 들고서 밀고 나간다.
그렇게 한즉슨은 기운이 전부 머리로 올라가게 되고, 따라서 몸안에 있는 피도 머리로 모이게 되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골이 아파지고 목이 뻣뻣해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 말이여.
이러한 병이 바로 상기병(上氣病)이라 하는 것인데, 어리석게 공부를 하면 이러한 약(藥)으로 곤칠 수 없는 이러한 고약한 병이 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롭게 공부를 해라.
지혜롭게 공부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해서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고, 생각이 안정이 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기운은 머리로 올라가지 않고 저 배꼽 밑에 단전으로 기운이 다 내려가게, 그러한 상태에서 화두(話頭)를 들어야 머리도 개운하고 혈액순환이 잘되니까 몸안에 노폐물도 쌓이지 아니하고 밖으로 다 배출이 되고,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가행정진(加行精進)한다 해도 지치지를 아니하고, 부작용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소화도 잘되고, 공부가 지장이 없이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하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모르고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다가 까딱하면은 이 건강이 악화가 되어 가지고 엉뚱한 병이 생기게 되면, 그때에사 ‘어떻게 해야 이 병을 고칠 수가 있는가?’ 이렇게 호소를 해 옵니다마는, 물론 병을 못 고치는 것은 아니로되 상당히 힘이 들고, 이런 상기병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진을 정진답게 해 보지를 못하고 고생을 하고 있는 스님네도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반드시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스승을 잘 만나지 못해 가지고 잘못 공부를 하면 공부는 성취도 되기도 전에 병 먼저 나게 되고, 까딱하면 삿된 경계에 떨어진다던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을 스스로 깨달랐다고 착각(錯覺)을 해서 그 착각 속에 집착을 해가지고 일생을 허송세월하고, 그러한 사람이 구변(口辯)이 좋다던지 학식(學識)이 많다던지 그렇게 되면 삿된 소견(所見)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리켜서 다른 사람까지도 삿된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죄가 얼마나 되며,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이 공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 남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은 마왕(魔王)이고, 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 법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마왕(魔王)에 백성(百姓)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혈맥론』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름 석 달 동안이 하루와 같이, 처음 마음먹은 그 결심이 날이 거듭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면서 더욱 간절해지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히 공부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동시에 백일기도(百日祈禱) 입재(入齋)일입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집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시고 선방에 방부 들인 선객(禪客)이라고 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사신다면, 복(福)과 지혜(智慧)를 겸해서 닦는 것이 되어서,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성인 가운데 성현(聖賢)이신 부처님께서는 이 복(福)과 지혜(智慧), 두 가지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대성현(大聖賢)입니다. 그래서 삼귀의례(三歸依禮)를 할 때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두 가지가 족(足)하신 부처님께 귀의(歸依)합니다' 그 두 가지가 바로 복과 지혜여. 복과 지혜를 다 같이 갖추신 대성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우리도 공부를 할 때, 지혜만을 닦을 것이 아니라 복을 아울러서, 지혜와 복을 겸해서 쌍(雙)으로 닦으면 우리는 복과 지혜를 구족한 성현(聖賢)이 되는 것입니다.(18분23초~35분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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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야 산중채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인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심심송라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 세상에 명예와 권리와 재산, 그러한 세간(世間)에 공명(功名)을 원하지를 아니하고 오직 산에, 산중 청산(靑山)만을 바래가지고 산중(山中)에 살기를 바래서,
산중채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인가. 산중에서 약(藥)을 캐기 그 몇 해나 되었던가. 산중에 산다니까 약도 캐서 먹어야 하고 솔이파리도 썰어서 먹어야 하고 그러니까, 산중(山中)에서 약(藥)을 캐서 살기를 몇 해 동안이나 되었던가.
심심송라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가 자욱한 속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라. 한 곡조 지초 노래, 지초(芝草) 캐는 노래 한 곡조(曲調)에 일만경계(一萬境界)가 한가하더라.
이 ‘세상을 버리고 산중에서 약을 캔다’ 이 말은, 약(藥)이라 하는 것은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약이거든. 장생불사. 어떤 것이 장생불사인가?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 없는 도리 깨달른 것,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이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여.
이것이 바로 영원히 죽지 않는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參禪)하는 것이 장생불사하기 위해서 약(藥)을 캐 먹는 거와 같은 것이다 그 말이여.
'이 뭣고?'
솔바람 불고 안개가 자욱한 그 깊고 깊은 산중(山中). 지리산이나 태백산, 오대산이나 설악산, 이런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야만 이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회지(都會地) 자동차 소리가 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온갖 소음 잡음이 나고, 공해로 인해서 공장에서 나오는 이 시커먼 연기가 자욱한 그러한 곳이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솔바람 불고 그 안개가 자욱한 깊은 산중이나 조끔도 다른 것이 없는 것이여.
아무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앉었어도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드는 참선(參禪)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서, 산중 속에서 물소리 바람소리가 귀에 듣기 싫고 그 속에 앉어서 아들 생각 손자 생각, 명예 권리 재산 생각한다면 그 산중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느냐, 화두를 들지 아니했느냐에 따라서 지옥(地獄)이 천당(天堂)이 되기도 하고, 천당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最上乘)에 있어서 이 세간(世間)을 보는 눈이다 그 말이여.
이 최상승(最上乘)을 닦은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은 육도(六道)를 자기가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옥을 천당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당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당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지옥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이 한 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육바라밀(六波羅蜜) · 십중대계(十重大戒) · 삼천위의(三千威儀) · 팔만세행(八萬細行) 일체법(一切法), 일체 좋은 법을 한 생각 돌이켜 닦는 데에서 다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다. 한 곡조 지초(芝草)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다.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 한 번 드는 곳에 무량겁(無量劫) 죄(罪)가 거기에서 다 녹아져.
인간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없고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걱정, 재산에 대한 걱정, 남편에 대한 걱정, 자식에 대한 걱정, 딸에 대한 걱정, 외손자에 대한 걱정, 그 많은 걱정 근심 일체장애(一切障礙)가 어디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냐 하면, 과거(過去)에 우리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다 생긴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업을 녹이지 아니하고 잘살기를 아무리 바래고 아무리 재앙(災殃)이 없기를 바랜다고 해서 그것이 잘 살아진 것도 아니고 그 재앙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 재앙을 없애고 내 소원을 성취하려면 내가 지은 업(業)을 소멸(消滅)하는 것이 가장 첩경(捷徑)이다.
그 업을 어떻게 소멸하느냐? '이 무엇고?'
기도(祈禱)를 하는 것도 대단히 좋은 방법이죠.
기도도 그 이치를 분석을 해 보면,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른다던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른다던지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부른다던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부른다던지, 일심(一心)으로 부름으로 해서 내 마음이 청정(淸淨)해져서 부처님 마음과 같이 깨끗해질 때 그때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는데, 어째서 소원을 성취하냐 하면은 내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져 있는 업(業)이 녹아지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 말이여.
무슨 병이 있건, 무슨 근심 걱정이 있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른다든지, 고왕경(高王經)을 독송(讀誦)한다든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합니다.
아주 목숨 바쳐서 죽을 것을 각오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중풍과 같은 그러한 무서운 병도 낫는 것입니다. 꼭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한 사람도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것을 열심히 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어.
'이 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功德)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육백만 번 '관세음보살' 부르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것은 최상승법이기 때문에, 가장 빨리 그리고 근원(根源)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디 시간을 아껴서 정말 무상(無常)을 뼛속 깊이 깨달라서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35분24초~47분46초) (끝)
[법문 내용]
(게송)창출무생일곡가~ /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바로 죽음의 문을 향해서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 / 무서운 지옥고(地獄苦)를 생각해 등한히 시간 보내지 말아라 / 정말 훌륭한 정진은 불방일(不放逸), 불방일은 바로 '한 생각' 단속해 의단독로 하도록 하는 것.
방부 들인 보살님네들도 간절하게, 알차게 공부하시라 / 단전호흡은 상기병 예방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아야.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 /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깊은 산중, 천당 /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 / 소원성취는 내가 지은 업(業)을 소멸(消滅)하는 것이 가장 첩경(捷徑), 업을 어떻게 소멸하느냐? '이 무엇고?' /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〇참나를 깨달아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契合)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부처님 열반(涅槃)의 경지이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형장(死刑場)을 향해서 하루하루 다가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루를 그럭저럭 한만(閑漫)히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〇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것은, ‘놓아 지내지 않는다’ ‘해태(懈怠)하지 않는다’
오직 '한 생각' 단속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그것이 바로 방일하지 않는 것[不放逸]이요, 가장 훌륭한 정진(精進)인 것입니다.
〇아무리 묘(妙)한 이치가 떠오르고 교리와 부합되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법견(法見) 불견(佛見)에 떨어지면 그 찰나에 벌써 그것은 마섭(魔攝)이 되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방일(放逸)이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제일 두려워해야 할 것이 그 한 생각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 한 생각이 삐끗하면 바로 그 삐끗한 그 자리가 천만 길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해야 하느냐?’ 여기에 불방일이 있고 가행정진과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〇이 공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 남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은 마왕(魔王)이고, 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 법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마왕(魔王)에 백성(百姓)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말씀인 것입니다.
〇참나를 깨달라서 생사 없는 도리 깨달른 것,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이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여.
〇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느냐, 화두를 들지 아니했느냐에 따라서 지옥(地獄)이 천당(天堂)이 되기도 하고, 천당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最上乘)에 있어서 이 세간(世間)을 보는 눈이다.
이 최상승(最上乘)을 닦은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가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옥을 천당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당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당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지옥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〇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이 한 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육바라밀(六波羅蜜) · 십중대계(十重大戒) · 삼천위의(三千威儀) · 팔만세행(八萬細行) 일체법(一切法), 일체 좋은 법을 한 생각 돌이켜 닦는 데에서 다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〇기도(祈禱)를 해서 소원성취하는 까닭은, 일심(一心)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름으로 해서 내 마음이 청정(淸淨)해져서 부처님 마음과 같이 깨끗해질 때,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져 있는 업(業)이 녹아지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하물며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것을 열심히 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어.
〇'이 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功德)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육백만 번 '관세음보살' 부르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것은 최상승법이기 때문에, 가장 빨리 그리고 근원(根源)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디 시간을 아껴서 정말 무상(無常)을 뼛속 깊이 깨달라서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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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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