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39))—1981년 동안거 해제 법문(81.02.19) (44분)
(1/3) 약 14분.
(2/3) 약 14분.
(3/3) 약 16분.
(1/3)----------------
이상으로써 해제 법문(解制法門)을 다 설(說)해 마쳤습니다.
여러분은 전강 조실 스님의 고구정녕(苦口叮嚀)한 법문을 녹음(錄音)을 통해서 잘 들으셨고, 그 위에 조실 스님께서 여러분께 직접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만을 금방 송담(松潭)이 올라와서 주장자(柱杖子)를 들어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그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쳐서 그 소리를 들려 드림으로써 경신년 삼동결제(三冬結制) 해제 법문을 다 설해 마쳤습니다.
'빨리 법문이 끝나서 점심을 오늘 빨리 먹겠다' 하고 기대를 하실는지 모르지만,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을 위해서 말씀을 좀 더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에다가 삼동결제 해제를, 해제 법회를 겸한 뜻깊은 법회입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결제요, 결제 때마다 되풀이되는 백일기도입니다. 사람은 같은 일이 되풀이될 때에 그것이 하나의 습관으로 여겨져 가지고 그러한 행사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만 좀 관심을 새롭게 하고, 별로 새로운 것이 없고 마냥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때에는 아무 느낌도 없이 범연(泛然)하게 지나쳐 버리는 그러한 수가 허다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몇억만 년을 두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또 그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이렇게 똑같은 일이 되풀이됨으로 해서 아무도 해가 동쪽에서 떠 가지고 서쪽으로 진 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생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은 서쪽에서 떠 가지고 동쪽으로 지는 수가 있으면 그때는 야단법석을 하겠지만, 어김없이 똑같은 일이 일어날 때에는 설사 그 일이 굉장히 어마어마한 일이라 할지라도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무슨 일이 크고 무슨 일이 엄청난다 하더라도, 설사 그 일이 세계적으로 세계를 깜짝 놀랄만한 그러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해가 동쪽에서 떠 가지고 서쪽에서 진 일에다가 비교하면 큰 바다 속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넘어진 거기에도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조그마한 일에 지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 이 일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하고 하나도 조금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보다도 더 엄청나고 무섭고 큰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서 숨을 쉬고 있지만, 우리가 몸담아 있는 이 허공 속에 공기, 이 공기를 한푼도 돈도 요금도 지불하지 아니하고 아무도 방해한 사람도 없고 시비한 사람도 없이 제절로 숨을 들어마시고, 들어마셔 가지고 산소는 흡수하고 그리고서 탄산가스를 배출하면서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공기야말로 이 공기 속에서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일만큼 우리 인생에 있어서 더 중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사실에 대해서 그렇게 중대시하고 중대한 큰 일로 생각한 사람은 또 별로 없습니다.
만약에 이 찰나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공기가 없어져 버린다면 그보다도 더 무섭고 중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해제(解制)가 오늘 돌아왔는데, 사실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하고 오늘 해제를 하게 되고, 백일 동안 기도를 하고 오늘 회향을 맞이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오늘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지고, 오늘도 우리는 아무 부담 없이 숨을 들어마셨다가 또 내쉬고 계속해서 신진대사(新陳代謝)를 하고 있습니다.
이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에서 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고 있는 이 사실이 정말 이 우주 법계(法界)에 있어서 또 우리의 인생 일대에 있어서 정말 엄청나고 위대한 사건이요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에서 잠깐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봐야 할 그 시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정반왕궁(淨飯王宮)을 하직하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12년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자발적으로 목숨 바쳐 고행하신 끝에 드디어 납월팔일(臘月八日) 샛별 반짝거린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아침마다 새벽마다 그 샛별은 번쩍거리고 있었겠지만, 그 평범한 그 사실을 보시자 부처님께서는 확철대오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깨닫는다, 확철대오를 한다, 견성성불을 한다' 한 것은 무슨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특별한 어떠한 그러한 사건을 만나야 깨닫게 되고, 그러한 깊고 깊은 어떠한 그러한 데에서 깨닫게 된다고 생각을 하신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다맛 그 반짝거리는 그 샛별을 보신 것입니다.
'깨달랐다' 하니까 무슨 굉장한 것처럼, 여러분들은, '현재 이 현실을 떠나서 무엇을 깨달랐을까?' 굉장히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하시겠지만, 그 깨달은 사실을 깨달은 그 현황을 말씀을 드리자면 부처님께서는 다못 그 별을 보신 보셨던 그것뿐인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포대화상(布袋和尙) 법문 가운데에 '부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대는 다못 이 말하는 이 말소리 이놈이니라' 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눈으로 청황적백(靑黃赤白), 산과 나무, 물과 물소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귀로 듣는 것,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앞에 제출되는 모든 빛깔과 모든 소리와 육식(六識)을 통해서 접하는 모든 상황이 그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낱낱이 우리로 하여금 눈뜰 수 있는, 깨닫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던지, 귀로 무엇을 듣던지, 손으로 무엇을 만지던지, 우리의 생각에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던지, 우리의 몸으로 무엇을 느끼던지,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낱낱이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곳이요,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契機)인 것입니다.(처음~13분50초)
(2/3)----------------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모든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들은 그렇게 해서 다 일대사(一大事)를 해결을 하고, 일대사를 요달(了達)을 하고 나아가서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濟度)를 하고 계십니다. 법(法)에 수레바퀴를 끊임없이 굴리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이 시간까지도 깜깜한 채 나를 보지 못하고, 불성(佛性)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와 계합(契合)이 못한 채 지금도 답답한 가슴을 안고 하루하루를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지끔은 참선을 해봤자 깨닫기가 어렵다. 우리는 근기(根機)가 약해서 해봤자 소용이 없다. 과거에 업(業)이 많아서 우리는 금생에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자포자기한 말 외에는 아무 뜻이 없는 소리인 것입니다.
지끔도 삼천년 전이나 다름없이 하늘에서는 별이 반짝거리고 산은 높고 물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도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도 다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밥을 먹을 수 있고 발로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우주 법계에 삼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있으시다면 우리도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들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끔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해서 우리는 여태껏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원인이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쓸데없는 일에는 자존심을 가지고, 중대한 일대사(一大事) 문제에 있어서는 자포자기를 하고 있는 까닭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에 온갖 아만(我慢)과 자존심(自尊心)을 다 버릴 때에 참으로 가장 중대한 위대한 일에 있어서 목숨을 바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집착(執着)을 해 가지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있는 동안에, 큰 중대한 일에 대해서 등한히 하게 되고 망각(忘却)을 하게 되는 까닭에, 우리는 할 말이 없으니까 말세(末世)를 내세우고 근기(根機) 약함을 핑계하는 그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부처님, 부처님 간 곳이 어데냐? 다못 이 말하는 이놈이다'
조끔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계합하지 못한다면 『화엄경』 『법화경』을 천만 번을 읽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간단한,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이 단적(端的)인 한 말씀에 계합할 수가 있느냐?'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 우리가 들어서 이해하고 있는 모든 이치,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사량심(思量心)을 가지고 이러한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호리지차(毫釐之差)에 천지현격(天地懸隔)인 것입니다.
이 말은 중생의 사량심으로 이해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량심으로 '아하, 그런 뜻이다' 하고 알았다면 이미 천만리(千萬里) 멀리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소리 이놈이라' 한 그 말씀 자체는 조끔도 거짓이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가 무엇입니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에 꽈악 맥혔을 때, 꽈악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할 때, 바로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에 계합(契合)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56억 7천만 년 뒤에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석가여래 부처님 다음 부처님으로 출세하실 미륵(彌勒) 부처님께서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 한 어찌 보면 거지 같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그러한 모습으로 화현(化現)으로 출세(出世)하신 그러한 선지식(善知識), 그러한 선지식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세계에도 수없이 많이 출현을 하고 계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선지식, 그러한 화신불(化身佛)이 출현하신 것을 그때 사람들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러한 화신불, 그러한 선지식이 우리 주변에 우리 가정에 수없이 많이 계실는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눈뜨지 못한 탓으로 그러한 선지식과 화신불을 매일같이 친견하고 있으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남편이 부처님의 화신일는지도 모르고,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아내가 그런 화신일는지도 모르고, 이웃에 사는 고약한 사람이 화신불일는지도 모르고, 일가친척 친구 가운데에 화신불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화신불은 누가 보던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모습이 거룩하고, 행동이 거룩하고 그렇게만 꼭 출현을 하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도인(道人)이 출현할 때에 81가지, 81가지의 행동 행실 모습으로 출현을 하시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누구나 보면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거룩하고 훌륭하고 점잖하게만 출현하셨으면 참 좋겠지만, 그러한 모습으로만 출현을 하시지 않고, 오히려 중생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믿음이 가지 않게, 오히려 중생의 마음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그러한 모습으로 출현한 경우가 90프로(%)가 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의원(醫員)은 중생이 병이 날 때 그 병을 고치는 데 목적이 있듯이 선지식과 불보살이 화현하실 때에는 중생의 사견(邪見), 중생의 삿된 소견(所見)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병을 낫을라면 침으로 찌르고 불로 지지고 칼로 수술을 하고 쓴 약을 먹여서 치료하듯이—어린애들이 쓴 약은 먹기 싫어하고, 달고 맛있는 그런 과자만을 좋아한다고 해서 마냥 단 과자만 먹일 수가 없는 것처럼—중생의 못된 버릇, 삿된 소견을 고칠려면 중생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크고 작은 온갖 충격을 가하지 않고서는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척사현정(斥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소견을 깨뜨려버리고 바른 소견을 나타나게 하는 데에 바로 불보살과 선지식의 화현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불 역경계(逆境界)로써 채찍을 가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서 자기를 좀 칭찬해 주고 부드럽게 해 주면 '좋다' 그러고, 조끔 자기의 뜻에 거슬리고 까끄랍고 하면 '싫다'고 토라지고, 이래가지고서는 무량겁 생사업장(生死業障)이 녹을 까닭이 없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탈(解脫)할 가망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13분54초~27분42초)
(3/3)----------------
벌써 신유년을 맞이해서 15일이 지났습니다. 하루하루가 흐르는 물같이,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금년도 온 세계가 또 우리 국내도 여러 가지로 큰 일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온통 큰 일들이 일어나고, 온 나라가 큰일을 맞이해서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그럴수록에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발심(發心)만 한 사람이면 어렵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공부하는 데에 힘을 얻게 되는 법입니다. 편안하고 무사(無事)하고 모든 여건이 좋기만 하면 대단히 공부가 잘될 것 같지만, 우리는 중생이요 우리는 너무 편안하고 좋으면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져서 진취가 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나라들이 외부로부터 침공해 들어올려고 하는 적이 없고, 국내에서는 계속 충간(忠諫)하는 그러한—왕과 국가정책에 대해서 계속 힐난한 충고를 하고 자극을 주는 그러한 사람이 없을 때 그 나라는...(녹음 끊김) 나라에 대해서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상감마마에 소장을 올리고 진정서를 올리고 이럴 때에 그 나라는 더욱 발전을 하고 개선되어 가고 그런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일신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직장 · 회사 · 국가 · 사회 모든 면에 있어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이런 때야말로 우리가 참으로 정신차려서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이 과학 문명이 발달이 되어서 여러 가지로 잘 먹고 잘 입고, 편리하게 왕래하고 참 살기가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 반면 우리는 많은 것을 망각하고 많은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차만 타고 다니기 때문에 다릿심이 없어지고, 사람 건강은 발로 걸어 댕겨야만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게 되어 있는데 걷지를 아니하니까 점점점점 오장육부가 퇴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잡곡 채소 모다 그런 것을 잘 먹어야 하는데, 우유다 계란이다 고기다 또 무슨 종합비타민이다, 좋다고 한 것은 다 고루고루 잘 먹고 하지만 그러한 것들 때문에 또 그렇게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이 자연은 오염이 되고, 그러한 안일한 자세에서 그런 것을 자꾸 섭취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우리의 혈액도 오염이 되고, 몸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속으로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우리의 몸은 고혈압이다, 중풍이다, 동맥경화증이다, 간암이다, 자궁암이다, 이러한 당뇨병이다, 온갖 현대 의학으로서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그러한 무서운 병들이 우리의 생명을 좀먹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갈 길은 첫째,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정진을 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될 수 있으면 많이 걷고 음식도 너무 호의호식에 빠지지 말고 잡곡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고, 이렇게 생활을 개선해 나간다면 반드시 건강한 육체로 건전한 정신으로 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나서 반드시 우리의 소원,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성취할 것입니다.
우리 불자(佛子)로서 해 나갈 길은 식생활 개선 또 우리의 정신자세를 바로잡고 그래가지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건강이 안 좋을 때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고, 한 시간 한 시간을 이렇게 살아가고, 하루하루를 이렇게 단속을 해 나가기를 당부해 마지않습니다.
앞으로 석 달간 춥도 덥지도 않는 그러한 좋은 계절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좋은 계절을 십분 활용을 해서 아침에는 조끔 일찍 일어나서 30분 동안, 1시간 정진은 참선하시고, 낮에도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계시던지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밤에 주무시기 전에도 떠억 앉아서 30분, 한 시간 정진을 하시다가 자리에 들어가시고, 자리에 들어가서도 누운 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 하면서 언제 잠든 중 모르게 잠이 들도록 이렇게 석 달 동안을 열심히 공부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결제 동안에 절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규칙 생활을 하시면서 정진을 하신 것은 산철에 공부를 잘하기 위한 특별 수련 기간인 것입니다. 결제 때는 공부하고 산철에는 여기저기 구경이나 다니고 그럭저럭 지내도 괜찮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공부는 때와 장소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 어데서 불보살(佛菩薩)을 친견할는지 모르고, 언제 어데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마치 언제 중대한 뉴스가 나올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라디오나 TV 그 다이얼을 꼭 거기다가 맞추어 놓고 있어야 한 것처럼, 중대한 국가적으로 중대한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어떠한 중대한 뉴스가 있을는지 모를 때에는 다이알을 항시 맞춰 놓고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데서 불(佛), 진신불(眞身佛)을 친견할는지 모르고, 언제 무엇하다가 툭! 터질는지를 모르니까, 항시 우리는 화두(話頭)를 떠억 들고 거기에다가 다이알을 딱!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이알을 맞추고 있지 않다가 중대한 뉴스가 지내가 버리면 듣지를 못한 것처럼, 화두를 들고 있지 아니하면 깨달음은 오지를 아니한 것이고, 화두를 들고 있지 아니하면 불보살이 수없이 우리의 눈앞에 지내가도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허고 도로성색본가풍(徒勞聲色本家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헌디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 앉아서 흰구름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도로성색(徒勞聲色)이 본가풍(本家風)이로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귀로 듣는 물소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흰구름이나 온갖 것이 다 본가풍(本家風)이더라.
일륜상월(一輪霜月)이 만공산(滿空山)헌디, 한 바퀴 서릿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헌디,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로구나, 차운 기러기는 하늘에 울면서 북(北)으로 날아가는구나. (27분50초~43분50초) (끝)
[법문 내용]
사람은 같은 일이 되풀이될 때에 그것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 이 일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하고 하나도 조금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보다도 더 엄청나고 무섭고 큰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 공기 속에서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일만큼 우리 인생에 있어서 더 중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다맛 그 반짝거리는 그 샛별을 보신 것입니다 /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낱낱이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곳이요,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契機)인 것입니다.
아만(我慢)과 자존심(自尊心)을 다 버리고, 쓸데없는 일에 집착(執着)하지 말고, 중대한 일대사(一大事) 문제에 목숨을 바쳐라 / '부처님 간 곳이 어데냐? 다못 이 말하는 이놈이다'
조끔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설파(說破)하신 것 / 꽈악 맥혀서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할 때, 바로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에 계합(契合)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되는 것 / 도인 81가지의 행동 모습 / 척사현정(斥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 불가불 역경계(逆境界)로써 채찍을 가하는 것.
중생은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지기 쉽다 / 모든 면에 있어서 어렵고 복잡한 때야말로 우리가 참으로 정신차려서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 / 우리의 공부는 때와 장소가 없는 것, 항상 화두(話頭)를 들라 / (게송)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 도로성색본가풍(徒勞聲色本家風)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
〇여러분은 전강 조실 스님의 고구정녕(苦口叮嚀)한 법문을 녹음(錄音)을 통해서 잘 들으셨고, 그 위에 조실 스님께서 여러분께 직접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만을 금방 송담(松潭)이 올라와서 주장자(柱杖子)를 들어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그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쳐서 그 소리를 들려 드림으로써 경신년 삼동결제(三冬結制) 해제 법문을 다 설해 마쳤습니다.
〇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에서 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고 있는 이 사실이 정말 이 우주 법계(法界)에 있어서 또 우리의 인생 일대에 있어서 정말 엄청나고 위대한 사건이요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에서 잠깐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봐야 할 그 시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〇부처님께서 정반왕궁(淨飯王宮)을 하직하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12년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자발적으로 목숨 바쳐 고행하신 끝에 드디어 납월팔일(臘月八日) 샛별 반짝거린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아침마다 새벽마다 그 샛별은 번쩍거리고 있었겠지만, 그 평범한 그 사실을 보시자 부처님께서는 확철대오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깨닫는다, 확철대오를 한다, 견성성불을 한다' 한 것은 무슨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특별한 어떠한 그러한 사건을 만나야 깨닫게 되고, 그러한 깊고 깊은 어떠한 그러한 데에서 깨닫게 된다고 생각을 하신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다맛 그 반짝거리는 그 샛별을 보신 것입니다.
〇눈으로 무엇을 보던지, 귀로 무엇을 듣던지, 손으로 무엇을 만지던지, 우리의 생각에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던지, 우리의 몸으로 무엇을 느끼던지,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낱낱이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곳이요,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契機)인 것입니다.
〇'무슨 까닭으로 해서 우리는 여태껏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원인이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쓸데없는 일에는 자존심을 가지고, 중대한 일대사(一大事) 문제에 있어서는 자포자기를 하고 있는 까닭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에 온갖 아만(我慢)과 자존심(自尊心)을 다 버릴 때에 참으로 가장 중대한 위대한 일에 있어서 목숨을 바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집착(執着)을 해 가지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있는 동안에, 큰 중대한 일에 대해서 등한히 하게 되고 망각(忘却)을 하게 되는 까닭에, 우리는 할 말이 없으니까 말세(末世)를 내세우고 근기(根機) 약함을 핑계하는 그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〇척사현정(斥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소견을 깨뜨려버리고 바른 소견을 나타나게 하는 데에 바로 불보살과 선지식의 화현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불 역경계(逆境界)로써 채찍을 가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서 자기를 좀 칭찬해 주고 부드럽게 해 주면 '좋다' 그러고, 조끔 자기의 뜻에 거슬리고 까끄랍고 하면 '싫다'고 토라지고, 이래가지고서는 무량겁 생사업장(生死業障)이 녹을 까닭이 없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탈(解脫)할 가망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〇우리의 공부는 때와 장소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 어데서 불보살(佛菩薩)을 친견할는지 모르고, 언제 어데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마치 언제 극가적으로 중대한 뉴스가 나올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라디오나 TV 그 다이얼을 꼭 거기다가 맞추어 놓고 있어야 한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데서 불(佛), 진신불(眞身佛)을 친견할는지 모르고, 언제 무엇하다가 툭! 터질는지를 모르니까, 항시 우리는 화두(話頭)를 떠억 들고 거기에다가 다이알을 딱!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이알을 맞추고 있지 않다가 중대한 뉴스가 지내가 버리면 듣지를 못한 것처럼, 화두를 들고 있지 아니하면 깨달음은 오지를 아니한 것이고, 화두를 들고 있지 아니하면 불보살이 수없이 우리의 눈앞에 지내가도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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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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