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00/(126~150)2020. 12. 28. 10:11

((No.144))—1981년(신유년) 부처님오신날(81.05.11) (62분)

(1/3) 약 21분. (2/3) 약 21분. (3/3) 약 20분.

(1/3)----------------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요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요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불기(佛紀) 2525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80세를 일기(一期)로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열반에 드신 해를 1년으로, 원년(元年)으로 해 가지고 금년이 2525년이니까, 80세에 열반하신 그 해가 불기(佛紀) 1년이니까 2525에다가 79를 보태면 오늘이 부처님 탄생하신 그 햇수가 되는 것입니다.

2525에다가 79를 보태면은 2604년이 됩니다. 2604회 「부처님 오신 날」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 신자는 마땅히 부처님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기(西紀)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을 일 년으로 해서 금년이 1981년이 되지만,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일 년으로 해 가지고 불기(佛紀)를 지금 따지고 있으니까, 부처님 나신 생신으로 따진다면 2604년이라 하는 것을 우리 불자(佛子)들은 잘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불기에 대해서 경전에 따라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세계 불교학자(佛敎學者)들이 여러 가지로 깊이 연구한 결과 2525년으로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2600년 전 인도(印度) 가비라 왕국(迦毘羅王國)에 태자(太子)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가비라 왕국이 어디냐 하면 지금의 네팔(Nepal) 나라인 것입니다. 네팔 나라에 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은 탄생을 하셨습니다.

태자로 태어나셔서 그 태자의 모든 영광과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온갖 고행(苦行)을 다 겪으시고,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를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그 모진 고행(苦行)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인간 석가(釋迦)로 볼 때에는 당신의 생사(生死) 문제,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왜 늙어서 병들어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서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항시 마음속 깊이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러시다가 마침내 출가(出家)를 하셔서 '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이래 가지고 출가를 하셔서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 그 많은 무서운 고통을 견디시면서 도(道)를 닦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석가(釋迦)로 보지 아니하고, 저 구원겁(久遠劫) 이래로 진묵겁(塵墨劫) 전에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중생(衆生)들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 태어나셔 가지고, 일부러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서 대도를 성취한 그 모습을 우리 중생들에게 모범을 보이심으로써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고해(生死苦海)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이렇게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역사, 『팔상록(八相錄)』 또는 여러 가지 부처님에 대한 전기(傳記)를 읽어 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진리(眞理)의 몸으로서의 부처님 또는 일단 사바세계에 사람의 몸을 받아서 태어나신 이상은 인간 석가(釋迦)로서 보는 그러한 부처님의 역사,

각도에 따라서는, '부처님은 저 허공에 오색구름 위에 계시고 한 걸음 옮기실 때마다 그 발자죽에서는 연꽃이 피어나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위대하고 신성하고 거룩하신, 우리 중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러한 훌륭하신 부처님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각도를 바꿔서, '인간 석가(釋迦)다. 일단 인간의 세계에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신 부처님은 설사 대도(大道)를 성취한 성현(聖賢)이시지만, 우리가 언제라도 가까이 모실 수 있고 가까이 가서 무엇이라도 여쭈어 볼 수 있고 무슨 괴로움이라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따뜻하고 자애로우신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성현이다'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 그러한 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부처님' 하면 굉장히 우리하고 거리가 멀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의 할아버지시다. 언제라도 가까이 가서 여쭈어보면 무슨 일이라도 자상하게 인자하게 일러주실 수 있는 그러한 어른이다. 사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우리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존경하는 것이 훨씬 우리들에게 더 가깝고 고마우신 성현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어려운 진리를 우리에게 가리키고 설명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하고 우리하고는 아주 바탕이 달라서 도저히, 전혀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진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부처님은 그 본바탕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다.

 

옛날에 ‘양반이다’ ‘상놈이다’ 이러한 계급(階級) 의식이 강할 때, 특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 나라는 네 가지 계급이 있어서 인종(人種)의 차별(差別)이 대단히 심했습니다마는—바라문 계급이라든지, 또는 왕족 계급이라든지, 또는 일반 농민 서민 계급이나, 또는 노예 계급, 이러한 사(四) 계급이 있어서 노예들은 바라문이나 왕족의 옆을 지내가지를 못하고 옷만 스쳐가도 큰 벌을 받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계급(階級) 타파(打破)를 부르짖어서 부처님의 제자를 만들 때는 농민(農民)도 출가(出家)를 허락을 하셨고, 백정(白丁)도 출가를 허락을 하셨고, 또는 왕족(王族)이나 바라문(婆羅門)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한 것에 구애(拘礙) 없이 허락을 하셨냐 하면, 동쪽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나 서쪽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나 또는 맑은 물이나 흙탕물이나 일단 물이 바다에 흘러들어 오면, 바다는 깨끗하다고 해서 받아들이고 더럽다고 해서 거부한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에 물을 추호도 차별 없이 다 받아들였습니다.

일단 받아들이면 어떠한 종류의 물이라도 바다에 도달하면 짠맛! 짠맛으로 변하고 마는 것처럼, 어떠한 계급(階級)의 인종, 어떠한 죄(罪) 많은 사람이라도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부처님 제자(弟子)가 되면 다 부처님의 혈통을, 진리(眞理)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부처님의 진리(眞理),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해서 불제자(佛弟子)가 되었습니다. 불자(佛子)가 된 이상 우리도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죄 많은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부처님과 같은 성현(聖賢)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자격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에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옛날에 어떤 큰 부자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들을 하나를 낳아 놓고 그 아들이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렸을 때 그 장자 부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에 가장 훌륭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먹고 쓰고도 남을 만한 그러한 훌륭한 보배 구슬을 그 어린애기한테 전해 봤자 소용이 없어서 자기가 가장 믿는,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그 보배 구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그 보배 구슬을 어린아이의 옷 속에다가 넣고 잘 꿰매 놓았습니다. 그리고서 그 자기 친구에게, "이 간난애기 품 안에다가 보배 구슬을 넣고 잘 꿰매 놨으니 이 아이가 크거든 자네가 ‘이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주어 가지고 그 어린아이로 하여금 먹고 입고 사는데 궁(窮)함이 없이 잘 살도록 일러주기를 바라네" 이렇게 부탁을 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서 많은 세월(歲月)이 흘렀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에 간직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이 자기 몸안에 있는 것을 전연 인식(認識)하지를 못하고, 부모 없는 자식이 되어서 고향(故鄕)을 떠나 가지고 천하를 얻어먹고 돌아다니면서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자 어느 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그 소년이 자기의 친구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친구의 유언(遺言)에 따라서 그 어린 거지 아이의 몸안에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안에 있는 보배 구슬을 꺼내 가지고 그걸 가지고 집도 사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식량도 사고 또 부릴 사람도 사고, 이래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하는 옷 안에 구슬, 「옷 안에 구슬」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습니다.(처음~20분46초)

 

 

 

 

(2/3)----------------

 

이 비유는, 우리 안에, 우리는 이 지수화풍(地水火風)—흙으로, 흙 또 물 또 불기운, 바람기운, 이 네 가지의 원소(元素)가 모여 가지고 이 육체(肉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네 가지 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는 일단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한 무상(無常)한 존재에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 속에 영원히 쓰고 또 쓰고 쓰고 남에게 주고 그래도 끊임없이 바닥이 날 줄 모르는 그러한 보물이 이 몸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우리 몸안에 그러한 훌륭한 보배가 있다고 한 사실을 우리에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일러주시기 위해서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에 탄생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배 구슬이 우리 안에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

 

몸을,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해부(解剖)를 해 보아도 그 구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몸뚱이를 빨가벗겨 놓고 온 몸을 두루두루 다 살펴보고 눈, 코, 입, 귀, 아홉 구멍을 다 뒤져도 그 보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아홉 구멍을 다 두루 살펴봐도 없다면 대관절 어떻게 해서 우리 몸안에 그러한 위대한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보배 구슬!

여러분들은 ‘다이아몬드’라든지 무슨 그러한 오색(五色)이 찬란한 그러한 보석을 보면 굉장히 기뻐하고 부러워하고 갖고자 원하시지만, 그러한 물질로 된 보배는 언젠가는 내 몸으로부터 떠나고야만 마는 것이고, 아무리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도둑을 맞거나 불에 넣으면 타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부서지거나 또 형편이 어려워지면 내 몸으로부터 떠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일생 동안 잘, 복(福)이 있어서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칠십 년 팔십 년 이승을 다 살고 갈 때에는 그것은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왜? 죽을 때 관 속에 넣어 가지고 가면 되지 않느냐!'

관 속에 그 보배, 보석을 가지고 가 본들 썩어 가는 육체와 함께 묻어 놓은 뿐이지 내가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몸뚱이는 목숨이 끓어지자마자 십 분이 되면 벌써 내장부터 버글버글 썩어 들어 갑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몸으로부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영혼은 이미 떠나가고 없기 때문에 시체와 함께 그 보석을 묻어서 같이 묻어 놓아 봤자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물질로 된 보물을 욕심내고 간직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금생 일생 동안 실컷 쓰고 남고 또 이승을 하직(下直)하고 다시 새 몸을 받을 때에도 그 가지고 갈 수 있는 그러한, 불에 넣어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훔쳐갈 수도 없고 도둑맞을 수도 없는 그러한, 그러한 보배를 우리는 찾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화장(火葬)을 해도 타지 않는 것이냐?'

'이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안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가 있으며, 있는 증거를 내 보여라'

지금 이 송담(松潭)이 여러분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송담의 말을 귀를 기울이고 지금 듣고 계십니다. '그 듣고 있는 놈이 무엇이냐?'

'귀가 듣지 무엇이 듣느냐?'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이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

지금 이 법상에 올라와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저의 모습을 여러분들은 보고 있습니다. 눈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이 있습니다.

 

그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공부를 하는 목적, 돈을 버는 목적, 정치를 하는 목적, 모든 목적이 '보다 더 잘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행복(幸福)하게 살기 위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하고, 예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돈 많이 번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가 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궁극에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불교(佛敎)를 30년, 40년, 평생토록 절에를 다니면서 아들이나 손자나 손녀가 "불교가 무엇이냐?", "뭣 하러 절에 다니느냐?" (녹음 끊김) ...고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說)하신 팔만장경(八萬藏經) 속에서 많은 경전(經典)을 읽고 연구하고 해서 교리적으로 밝은 지식을 쌓으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전혀 교리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그저 소박한 신앙심으로 그저 절에 와서 공양을 올리고 절을 많이 하고 '어쨋든지 우리 아들 명 길고 잘살게 해 주십시오' '우리 딸 좋은 데로 시집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 신랑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손이 발이 되도록 10년 20년 30년을 한결같이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다니신 분, 참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하고 기특하고 훌륭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거기에서만 근쳐서는 아니되겠다 이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소박(素朴)한 신앙(信仰)도 대단히 좋고, 어떠한 참선을 하신 분도 또한 그러한 소박한 신심도 가지고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종교인다웁고, 또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또 겸허(謙虛)한 자세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시골 할머니와 같은 소박한 신심도 가져야 하고.

그러나 거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참나를 깨닫는 참선(參禪)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진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요새 과학 문명(科學文明)이 발달이 되어서, 물질문명(物質文明)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젊은 사람들, 지식층에서는 그러한 소박한 신앙을 강요해 봤자 잘 먹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참나를 깨닫는 참선법(參禪法)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이 불법(佛法)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보겠다. 나의 인간성을 개조하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고 우리의 인간의 본성(本性)을 찾는 그러한 수행법이라면 나도 한 번 해보겠다'

한마디에 탁! 인식을 하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귀의(歸依)한 분을 나는 많이 만났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최상승법을 널리, 그리고 높이 선양할 때가 바야흐로 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 문명의 첨단을 걷고 있는 서양사람들이 불교에, 이 참선법(參禪法)에 뜨거운 관심을 나날이 가져가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한국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젊은 분들이 이 참선을 들으려고 그러고, 알려고 그러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 옛날에는 절에 오신 분이 대부분 오십 · 육십이 넘은 할머니들만이 절에 오시고, 혹 젊은 부인들은 집안 모다 남편이나 시어른 몰래 친정어머니하고 같이 생남불공(生男佛供)하기 위해서 극히 비밀리에 살짝 왔다가, 와서 공(功)만 들이고 가시던 그러한 때가 불과 십여 년 전에까지도 그래 했었던 것을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면 거의 90%가 젊은 분들이고,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는 겨우 1할 정도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자체는 남녀노소가 없지만 이 시국이, 이 시대가 불법,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야만 이 시대를 건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때가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0억 인구 속에 이 최상승법을 믿고 적극 실천한 사람이 과연 몇 프로나 될 것인가?' 생각할 때에, 아직도 우리 불자(佛子)들이 더 신심을 내서 이 불법을 선양(宣揚)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입으로만 '불법', '참선' 하고 떠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철저하게 실천을 해서 나날이 새로와지고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우리 자신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일가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이웃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연히 따라오도록 이러한 수행, 이러한 수행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포교(布敎)의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을 하면서 인연(因緣) 있는 사람에게 권고한다면 따라오지 아니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다, 소리를 듣는 그때가 바로 참나로 돌아가야 할 때다.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요,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산을 보던지 나무를 보던지 또는 사람을 보던지 어떠한 색상(色相)을 본 바로 그때가, 그곳이 참나로 돌아가야 한, 돌아가는 그 곳이다 이것입니다.

 

'참나는 어떻게 찾는냐?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야만 있느냐, 부처님을 모신 절에만 가야만 찾느냐?'

그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든지 또는 들에서든지 또는 직장에서든지 기차나 버스 속에서든지, 어디에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릴 때 그때 '이 무엇고?'

눈으로 무엇을—산을 보고 새를 보고 기차를 보고 사람을 보고, 무슨 빛깔, 청황적백(靑黃赤白) 무슨 빛깔을 보던지, 무슨 모냥을 보던지 볼 그 찰나가 바로 '이 무엇고?'

이것이 바로 참나, 자성불(自性佛),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는 그 찰나(刹那)더라 이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일 분 일 분,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가고 닦아가고 공부해 간다면,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더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만 출세하신 것이 아니라,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무엇고?’ 할 그 찰나(刹那)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라.(20분47초~41분9초)

 

 

 

 

(3/3)----------------

 

부처님께서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 말씀하시기를,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염부제(閻浮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다음 부처님으로, 다음 교주(敎主)로 탄생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한 생각 한 생각,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에도 '이 무엇고?'를 놓치지 아니할 때, '이 무엇고?'를 관조(觀照)할 때, 그때 그때가 바로 미륵불이 하생(下生)한 때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을 듣고서 여러분 가운데에는, '아하! 내가 여태 불교를 믿어도 헛믿었구나.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태어나신 줄 알았는데, 한 생각 한 생각마다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그 부처님을 뵈올 수가 있다니, 당장 이 자리에서 부터서라도 내가 이 최상승법, 이 참선(參禪)을 하리라'

가만히 내가 눈을 감고 살펴보니까, 이를 악물고 그렇게 결심하신 분이 지금 상당히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말씀을 듣고서도, '그 소리가 뭔 소리냐,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전혀 믿지 아니하고, '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러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가야지, 다 그런 거 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고집을 부린 분도 개중(個中)에는 또 몇 분이 계신다 이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미타불만 불러야지 다른 것은 나는 안 하겠다' 그러한 철저한 결심이 있는 분은 계속해서 '아미타불'을 불러도 좋습니다. 또 '나는 부처님한테 맹세하기를, 죽을 때까지 관세음보살만을 부르겠다'고 맹세하신 분이 계시다면 좋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죽을 때까지 열심히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은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육백만 번 부른 만큼의 공덕(功德)이 있다고 한 사실을 나는 이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아니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실컷 부르세요. 부르다가, 맨 끝에 가서 떠억 마음을 가다듬고, ‘이 무엇고?~’ 이렇게 한 번 해 보시라 그 말이여. 대관절 여태까지 '관세음보살'을 내가 실컷 불렀는데, '이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한 번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시라 이 말씀입니다.

 

백팔 염주(百八念珠)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 한 번 부를 때마다 염주알을 이렇게 이렇게 굴리시는데, 다 백팔 번을 굴리면 마지막에 가서 제일 큰 염주알이 딸크닥 걸립니다.

그 염주알 걸릴 때, 그때 떡!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이 무엇고?~~~' 해 보시라 그 말이여. 그렇게만 해 보신다면, 백팔 번 염불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 백팔 번 염불하는 그 공덕을 탁! 합쳐 가지고 그 공덕을 야무지게 뭉쳐서 성불할 수 있는 단계로 비약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하시다가 나중에, 나중에는 '관세음보살'보다도 '이 뭣고?'가 더 하고 싶은 때가 꼭 올 것입니다. 그때는 여지없이 뒤도 돌아보지도 말고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은 고대로 놔 버리고—버리려고 할 것도 없어. 그냥 고대로 놔 버린 채 '이 뭣고?'만 열심히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에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열심히 한 그 공덕이 완전히 푸욱 썩어 가지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가지고 머지않아서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설해 드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많고도 많은 법문(法門)을 설하셨습니다.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나오셔서 설하신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 '이 뭣고?' 이 법 하나를 설(說)하시고 전(傳)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끔 이 용화사, 용화사를, 용화선원(龍華禪院)을 창설(創設)하신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이 주안에다가 자리를 잡으신 목적도, 바로 우리들에게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이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계속해서 이 최상승법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인 진리의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이십니다. 지금 우리 용화사 법당 이 탁자에 모셔진 부처님입니다.

다른 절 부처님은 전부 손을 이러한 모습으로 하시던지, 또는 이러한 모습으로 하시던지, 이런 모습으로 하든지, 모다 손 모습이 다른데, 용화사 부처님 모습은 딱 이렇게 손이 되어 가지고 있거든! 이 부처님의 모습은 바로 비로자나불,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이다 그 말이여.

 

말하자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화신불(化身佛)이여.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화신(化身)으로,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나신 부처님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너희들은 이 육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32상(三十二相)을 받아서 태어난 이 육체의 석가모니불을 믿지를 말아라. 진리, 여래(如來), 진리,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너희들 자신 속에 있는 부처님을 믿어라. 그것을 깨달라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진리의 표상(表象)이 바로 우리 절에 모셔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 진리의 부처님, 참나, 아트만, 그 부처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깨닫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이여. 이 법을 믿는다면 여러분들이 돈과 쌀과 떡과 꽃, 온갖 공양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뜩차도록 공양(供養)을 올린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오늘 들으심으로 해서 여러분들은 가장 훌륭한 공양(供養)을 올리신 것이고, 그것을 실천을 하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거기에서 성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많은 절을 합니다마는, 예배(禮拜)라고 하는 것은 공경진성(恭敬眞性)이요 굴복무명(屈伏無明)이다. 참된 성품, 참된 나 자신의 성품(性品)을 공경하는 것이 이것이 부처님께 예배드린 가장 가까운 예배다.

나무나 쇠나 흙으로 빚어서 만든 부처님께 절하는 공덕도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내 몸안에 있는 참부처님을 공경하고 그것을 닦기 위해서 '이 무엇고?'를 하는 이 공부야말로, 억만 배, 백억만 배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굴복무명(屈伏無明)이다', 무명(無明)을 굴복(屈伏)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다. 예배(禮拜)의 의의는, 바로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하는 이상의 예배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따라서 '이 무엇고?'를 하면서 기도도 하고, '이 뭣고?'를 하면서 공양도 올리고, '이 뭣고?'를 하면서 예배를 올린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소원을 달성을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용화사를 여기에다 창건한 목적이 그것이요, 이렇게 법당(法堂)을 크게 지어 가지고 법회 때마다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바도 바로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은 입을 통해서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법(法)을 설(說)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에서 연중무휴로 전파를 발송을 해 가지고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우리 자신이 다이알만 딱! 맞추면 그 방송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듯이, 끊임없이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 최상승법, 위대한 진리의 법문을 설하시고 계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 비로자나 부처님의 사신(使臣)으로서, 사신으로서 사바세계에 오신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열반하신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께서도 부처님으로부터 77대의 법맥(法脈)을 이으신 도인(道人)이십니다마는, 그 도인만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누구라도 부처님의 진리법(眞理法)을 전해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법을 이어받으려면, '이 무엇고?' '이 무엇고?를 함으로써 그 다이알을 비로자나 부처님과 다이알을 맞추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리해야만 진리법을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구현(具現)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604회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기어코 실천해서 금생(今生)에 이 몸으로 진리를 구현하겠다'고 하는 각오를 튼튼히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아울러서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 사부대중 여러분은 크고 작은 모든 원(願)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축원을 합니다.

최상승법을 들었기 때문에, 듣고 실천을 하려고 각오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원은 보다 더 빨리 성취가 되실 것으로 나는 믿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소원을, 다 소원을 갖지만 성취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 더디 되는 사람, 빨리 되는 사람, 왜 그 차이가 있느냐 하면 과거에 지은 업(業)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업(福業)을 많이 지은 사람,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뜻대로 잘됩니다. 부자도 되고, 높은 벼슬도 되고, 아들딸도 낳고, 오복을 다 겸비하지만, 과거에 복(福) 지은 것은 적고 죄(罪) 지은 것은 많으면, 그 지은 죄의 장애(障礙)로 인해서 우리의 소원은 그렇게 목마르게 바래지만 잘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지은 업(業)에 장애물을 녹여 없애는 방법이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염불하고 기도하고 경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한 방법보다도 훨씬 수승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언제 어데서라도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쉬운 방법,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를 드립니다.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원컨댄 법계(法界)에 모든 중생들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다.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일시(一時)에 성불(成佛)하여지이다.

 

앞으로 일주일 뒤, 음력 사월 보름날은 하안거 결제날입니다. 여름 석 달, 여름 음력 4월 15부터 7월 15일까지 석 달은 하안거(夏居)라 해 가지고 특별 수련 기간입니다.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이 특별 수련에 동참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직접 오셔서 공부를 못 하신 분도 참례를 하시면 좋고, 또 백일기도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또 법회가 있고,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천도(薦度)를 하는 법요... (녹음 끊김) (41분10초~61분3초) (끝)

 

 

 

 

[법문 내용]

 

(게송)문성시증시~ / 서기(西紀)와 불기(佛紀) / 부처님의 역사. 진리(眞理)의 몸으로서의 부처님과 인간 석가(釋迦)로서의 부처님 /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 / 부처님 제자(弟子)가 되면 차별 없이 다 부처님의 진리(眞理)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

 

『법화경(法華經)』에 '옷 안에 보배 구슬'의 비유. 우리 몸안에도 그 보배가 있다 / 그 보배를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이다. 궁극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 내가 나를 찾는,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 / 소리를 듣는 그때, 눈으로 무엇을 볼 그때 '이뭣고?' 이것이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는 그 찰나(刹那)더라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실컷 부르다가, 맨 끝에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이 무엇고?~’ 이렇게 한 번 해 보시라 /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우리들에게 최상승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 예배(禮拜)는 공경진성(恭敬眞性)이요 굴복무명(屈伏無明) / 업장소멸을 해야 소원성취가 된다. 가장 수승한 업장소멸 방법은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어려운 진리를 우리에게 가리키고 설명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 마음속에도 참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하고 우리하고는 아주 바탕이 달라서 도저히, 전혀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진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부처님은 그 본바탕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다.

 

어떠한 종류의 물이라도 바다에 도달하면 짠맛! 짠맛으로 변하고 마는 것처럼, 어떠한 계급(階級)의 인종, 어떠한 죄(罪) 많은 사람이라도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부처님 제자(弟子)가 되면 다 부처님의 혈통을, 진리(眞理)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부처님의 진리(眞理),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해서 불제자(佛弟子)가 되었습니다. 불자(佛子)가 된 이상 우리도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죄 많은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부처님과 같은 성현(聖賢)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자격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리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최상승법을 여러분께 설해 드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이라고 하는 많고도 많은 법문(法門)을 설하셨습니다.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나오셔서 설하신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 '이 뭣고?' 이 법 하나를 설하시고 전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끔 이 용화선원을 창설하신 전강선사(田岡禪師)께서 이 주안에다가 자리를 잡으신 목적도, 바로 우리들에게 이 최상승법을 설해 주시기 위해서 이 용화선원을 창설을 하셨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은 입을 통해서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법(法)을 설(說)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에서 연중무휴로 전파를 발송을 해 가지고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언제라도 우리 자신이 다이알만 딱! 맞추면 그 방송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듯이, 끊임없이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 최상승법, 위대한 진리의 법문을 설하시고 계십니다.

 

그 진리법을 이어받으려면, '이 무엇고?' '이 무엇고?를 함으로써 그 다이알을 비로자나 부처님과 다이알을 맞추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리해야만 진리법을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구현(具現)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이 최상승법을 기어코 실천해서 금생(今生)에 이 몸으로 진리를 구현하겠다'고 하는 각오를 튼튼히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아울러서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 사부대중 여러분은 크고 작은 모든 원(願)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축원을 합니다. 최상승법을 들었기 때문에, 듣고 실천을 하려고 각오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원은 보다 더 빨리 성취가 되실 것으로 나는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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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