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선원(1~73)/(26~50)2020. 12. 30. 20:07

 

 

((세등선원No.27))—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80.04.17.음) (83분)

(1/4) 약 21분. (2/4) 약 22분. (3/4) 약 19분. (4/4) 약 21분.

(1/4)----------------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이상으로써 경신년(庚申年) 하안거(夏安居) 결제(結制) 법어(法語)를 다 마쳤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중이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주장자(柱杖子)를 한 번 들어서 보이고, 그리고 법상을 한 번 치고 무슨 게송(偈頌)을 한 번 읊더니, 인자 이제 겨우 법문(法門)이 시작한가 보다 했는데 다 마쳤다고 하니, 공연히 여기를 왔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주장자를 들어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그리고 그 주장자로 법상을 쳐서 그 소리를 여러분께 들려드렸습니다. 주장자를 들어서 보이고, 쳐서 소리를 들려드리면 그것으로써 그 이상 더 불법(佛法)을 설(說)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입을 벌려서 그 이상 더 법을 설한다고 할 것 같으면 모가지가, 머리가 목 위에 하나가 있는데 다른 데서 목을 하나 갖다가 그 머리 위에다가 하나를 더 포개 놓은 거와 같을 것이고, 닭다리를 떼어 버리고 오리다리를 갖다가 이어서 짬매 놓은 거와 같을 것입니다.

 

'대관절 주장자(柱杖子)를 들어서 보이는 것이, 무엇이 그것을 갖다가 법(法)이라고 할 것인가? 누구는 손이 있는 사람은 주장자를 들어서 보이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으며, 들었던 주장자로 책상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가 있겠는가. 그러한 법이라면 나는 하루에 천 번이고 만 번이라도 설할 수가 있다. 구태여 바쁜 시간을 내서 절에 갈 필요가 무엇이 있나?

할머니 지팽이를 갖다가 자기도 한 번 들어서 한 번 쳐 보면, 그러면 그것으로써 그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 있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묘법(妙法)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다고 할진대는, 구태여 절에까지 갈 것이 무엇이 있나?'

 

이러한 생각이 들어서, 이 자리에서 분연(奮然)히 일어서서 법상을 때려 엎고 그길로 활개를 치고 집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다 한다면 과연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이 가운데 과연 그러한 대장부는 없는가? 이 자리에 오신 분은 점잖하시고 자비(慈悲)가 있으셔서 참고 계시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금방 조실(祖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세등선원 조실 스님은 정 전강(鄭田岡) 선사(禪師)이십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은 다 알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어떻게 6년 전에 열반(涅槃)하신 스님을 조실(祖室)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이미 돌아가셨을 때... 설사 돌아가시기 전에는 세등선원 조실로 계셨다 하더라도 돌아가신 뒤야 자동으로 조실(祖室) 책임을 벗으신 것이 아니냐?'

그렇게 혹 생각하신 분이 간혹 계신 것 같애서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탄생(誕生)하시되 오신 바가 없고, 설사 80세를 일기(一期)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셨다고 해서 가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시고 가시고 한 것이 있다면 여래(如來)가 아닌 것입니다. 오시고 가신 바가 없기 때문에 여래(如來)라 부르는 것입니다.

 

전강(田岡) 스님께서도 6년 전에 77세를 일기(一期)로 열반을 하셨지만, 우리는 전강 큰스님의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생존해 계실 때와 똑같이 그렇게 분명하게, 성성(惺惺)하게 법문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설사 한마디 녹음을 해 놓으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말씀도 생존시(生存時)에 육성(肉聲)을 들을 수가 없다 하더라도, 오시고 가신 것이 없는 그러한 경지를 체달(體達)하신 스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조실(祖室)로 모셔도, 모시고 생존해 계신 듯, 계신 것처럼 믿고 그 법(法)에 의지해서 도(道)를 닦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스님을 조실로 모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법회(法會) 때마다, 일상(日常) 언제 어데서라도 그 육성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습니다. 조실로 모셨다고 해서 조끔도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그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듣고 우리의 공부를 바로 해 갈 수가 있고,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갈 수도 있고, 해태(懈怠)한 마음 분발(奮發) 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천 용화사(龍華寺)나, 세등선원이나, 복전암이나 또 스님을 존경하는 많은 불자(佛子)들이 언제 어데서 공부를 할 때라도 살아계신 걸로 믿고 조실 스님으로 모시고 방방곡곡에서 정진(精進)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연히 세등선원에 용상방(龍象榜)에도 조실(祖室)에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라고 딱! 붙여 있습니다.

그것을 잘 모르시고 산승(山僧)을 갖다가 세등선원 조실이라고 착각(錯覺)을 하고 그렇게 말을 하시는 분이 가끔 있는 것을 듣습니다. 산승은 조실이 아니고 세등선원 선감(禪監)입니다.

 

전강 대종사를 조실로 모시고, 그 전강 대종사에 법을 받들어서 여러분이 정진(精進)하시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선감(禪監)이라고 하는 책임을 띄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확실히 말씀을 드리니 착오가 없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오늘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은 온전히 공안, 공안(公案)에 대한 법문(法門)을 해 주셨습니다.

공안이라 하는 것은—공립(公立) · 관공서(官公署), · 공립학교(公立學校), 그것 '공(公)' 자입니다. 그리고 '안(案)' 자는 안건(案件)이라 해서—공안(公案), 공안을 화두(話頭)라 그럽니다마는.

어째서 공안이라 하냐 하면, 공(公)이란 말은 '관가(官家)'라 그 말입니다. 관청(官廳), 관법(官法). 관청에 법안(法案), 관청에서 직원들이 어떠한 사무를 볼 때에, 일을 처리할 때 반드시 그 법(法)에 의존해서 모든 사무를 처리하게 됩니다. 그 관청(官廳)에 법(法)과 같은 것이다.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올바르게 해 나가자면 이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바로 깨달랐는가 바로 깨닫지 못했는가를 점검(點檢)해 보려면 이 공안을 갖다가 들여대 가지고 그 공안에 대한 답(答)을 하는 것을 보면은 그 사람이 어떠한 경지(境地)에 도달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관청에서 어떠한 일을 처리했을 때에 그 일이 바로 되었나, 잘못 처리했는가를 보려면은 그 법률에 비추어서 제 몇 조 몇 항에 비추어서 '이것은 타당(妥當)하다' '이것은 부정(不正)이다' 그것을 아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공안이 문헌(文獻)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나 됩니다. 하물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까지 하면 수없이 많은 공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육법(六法)이 있고, 육법은 이미 성문화(成文化)—글로 된, 글로 표시된 법률은 성문, 성문화된 것을 보통 말합니다마는, 불문율(不文律)이라 해서 책에는 육법전서(六法全書)에는 올라 있지 안 해도 우리는 모두가 지켜야 할 일들이 수없이 많은 것입니다. 법률에, 법률(法律) 조항(條項)에 오르지 않다고 해서 그 밖에 일은 우리가 어떠한 일이라도 마구잽이 해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영국 같은 데는 헌법(憲法)이 아주 몇백 년 전부터서 불문율로 되어 내려오는 법률이 참 많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불문율로 되어 있어도 워낙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실천한 지가 오래고, 민도(民度)가 높아서 모두가 다 법률을 잘 지켜 가지고, 온 백성에 질서가 유지되어 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문헌에 오른 천칠백 공안 외에도 수없이 많은 공안이 있어서 눈 밝은 대종사(大宗師)는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법(法)을 갖다가 사용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말로써 설할 수 없는 최고에 법을 자유자재로 쓰시고, 또 그 법으로써 학자(學者), 모든 도(道)를 배우려는 수행자들을 눈을 뜨게 하고 경책(警策)을 하고 또 점검(點檢)을 해서 그렇게 교화(敎化)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안은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그 공안(公案)의 원리(原理)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높고 경전을,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해설을 한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공안의 도리(道理)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연구한 모든 이론을 동원을 해 가지고 이 공안을 분별(分別)을 하고, 천착(穿鑿)을 하고, 분석(分析)을 한다 하더라도 이 공안의 참뜻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질수록에 참 진리(眞理)로부터서는 멀어가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분별심(分別心)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심을 사용하고 있는 동안에는 깨달음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공안에 대해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또는 '마조(馬祖)에 원상(圓相)'이라든지, 또는 서산(西山) 스님의 게송 가운데에 나오는 '어생일각(魚生一角)', 어생일각이라든지 그러한 공안에 대해서, 세계불교도대회(世界佛敎徒大會)가 한국에서 열렸을 때 그 불교도대회에 참석한 세계에 불교 지도자들에게 이 공안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세계 각국에 저명한 승려 · 거사(居士) · 불교학자(佛敎學者)들이 참석을 했지만 아무도 이 공안에 대해서 답을 한 사람이 없었고, 오직 말레이지아(Malaysia) 승정(僧正) 한 분이 '무답(無答)이 시답(是答)이다, 대답 없는 것이 이 답이다' 이렇게 글자 넉 자를 써 놓고 갔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에 능히 이 공안(公案)에 대해서 답(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안 했는지, 참으로 아지를 못해서 답을 안 했는지, 그것은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마는, 이 공안은 정말 깨닫지 못했다면 이르려고 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따져 갖고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척! 이 공안을 접(接)했을 때 바로 이를 수 없으면 다못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성성(惺惺)하게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어떠한 공안을 큰 스님네로부터 물음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되지 못한 소리를 이를 까닭도 없는 것이고, 다른 고인(古人)들이 답(答)한 흉내를 낸다든지, 어떠한 행동으로써 옛날 스님네가 한 흉을 내서 보인다든지, 이러한 것은 도저히 용납(容納)될 수 없는 대죄(大罪)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처음~21분25초)

 

 

 

 

(2/4)----------------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지금 깨닫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분상(分上)으로서는 다못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일으킬 따름인 것이고,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을 일으킬 따름인 것입니다.

 

 

맨 마지막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괴밥을, 고양이 밥을 먹었다'고 한 공안(公案)에 대해서 일부러 의리(義理)로 따져서 설파(說破)를 해 주셨습니다.

따질 수 있는 것이고, 또 따져서 이해가 안 가는 데까지만 말씀을 하셨고, 설사 의리(義理)로 따져서 그 부분에 대해서 설파를 해 주셨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해(害)를 입을 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에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을 해 주신 걸로 생각합니다.

 

이 가운데 혹, 「쥐는 바로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고 사니까 쥐는 바로 고양이 밥이다. 그런데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하는 것은 '쥐가 쥐를 먹었다'는 말이다. 중생이 번뇌 망상 분별심(分別心)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생인데, 그 중생인 '나'가 번뇌와 망상이 다 없어졌으니까, 바로 번뇌(煩惱)가 번뇌를 다 잡아먹고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사람과 경계(境界)가 다 몰록 공(空)한 것이고 산이 다하고 물이 다했다는 그런 경계다」

이렇게 그런 식으로, 혹 다른 공안을 접했을 때에도 그러한 식으로 공안을 분석해서 알아맞추려는 그러한 생각을 낸다면, 이것은 조실 스님의 참뜻을 바로 안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삼근(麻三斤)이다'

'불법적적지대의(佛法的的之大意)가 무엇이냐?'

'마삼근(麻三斤)이다' 이렇게 대답했으니,

 

'불법(佛法)은 이 우주법계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 진신체(眞身體)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돌맹이도 비로자나불이요, 산도 비로자나불이요, 흘러가는 물도 비로자나불이요, 거지도 비로자나불이요,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삼[麻]도, 삼 뭉탱이도 그것도 비로자나불이다. 그러니 그 마삼근(麻三斤)이라는 게 그것이 아니냐'

 

이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져 가지고 자기도 '한소식 했다’ 이러한 생각을 갖는다면, 그러한 사람은 정법(正法)을 비방(誹謗)한 죄(罪)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쏜살같이 떨어져 들어갈 사람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공안은 절대로 그러한 의리(義理) · 분별심(分別心) · 이론(理論)으로 따져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공안(公案)은 그렇게 따져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대답하니까,

'미지(未知)하니 갱도(更道)하라. 틀렸으니 다시 일러라'

 

다시 대답하기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옳다, 옳다' 쾌히 인가(印可)를 하셨던 것입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한 데에 대해서 인가를 아니하고, '밥그릇은 이미 깨졌다'고 대답한 데에 인가를 했습니다.

우리의 분별심(分別心)으로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의리로 따져볼 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는데 무슨 밥그릇이 깨졌나?' '밥그릇이 깨졌다'고 하는 대목에 가서는 우리는 아무리 분별심으로 따져 보려고 해도 거기는 이빨이 들어가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가 받지도 못할 것을 따져 보면 무슨 소용이 있어? 따져서 공안을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은 이미 바른 공부에 노선(路線)을 버리고 그릇된 데에 빠져서 허매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공부를 차라리 아니헐지언정—염불(念佛)이나 하고, 주력(呪力)이나 하고, 무슨 경(經)이나 읽고 그럴지언정, 참선(參禪)을 한다고 할진대에는 결단코 분별심으로, 의리(義理)로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삿된 그릇된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해 주시기 위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반기이파(飯器已破)'의 공안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거듭거듭 강조를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마는, 이 공부는 내가 해야 하고, 오직 내 공부는 내 자신이 함으로써 자신의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되는 것이니 만큼, 남 봄에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 것도 없고, 자기도 무슨 공부를 해서 한소식 했다고 하는 것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전연(全然) 자기 일신상(一身上)의 문제일 따름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기의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만이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수가 있고, 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교화(敎化)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철두철미(徹頭徹尾) 참되게 닦아서 참되게 깨닫지 않는 한은 아무리 인물이 잘나고, 아무리 학식(學識)이 높고, 아무리 언변(言辯)이 좋고, 아무리 많은 사람에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또는 남을 위해서, 불법(佛法)을 위해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선전을 하고 과대 선전을 해 가지고 널리 사람에게 알려서, 그래 가지고 어떠한 효과를 또는 이익을 얻어낼 수가 있지만, 이 깨달음만은 자기가 참되게 깨닫고, 참되게 남[生]이 없는 도리를 증득(證得)하지 못하는 한에 있어서는 남이 따르고 남이 알아주고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인(古人), 부처님과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선지식(善知識)의 경지에 여지없이 이르기 전에는 스스로 조끔 공부를 해서 조끔 무슨 소견(所見)이 났다 해서 그것으로써 만족을 삼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내가 조그만한 것을, 조그만한 무슨 경계를 맛보았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자기의 살림을 삼고, 얻었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남에게 인증(認證) 받기를 바래고 그러한 행위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참으로 자기를 위해서, 불법을 위해서 대단히 가련하고 불쌍한 신세(身世)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차라리 꽉 맥힌 바보와 같은 그러한 수행인(修行人)으로서 일생을 마칠지언정, 결정코 그러한 조그만한 경지를 가지고 만족함을 삼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거듭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경신년 여름 결제(結制)가 시작이 됩니다. 금년(今年)에 얼마나 또 더울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설사 아무리 덥다 하더라도 지옥에 화탕지옥(火湯地獄)보다는 덜 더울 것입니다. 화탕지옥에 더위라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하지 않고 그럭저럭 지내는 한에는 화탕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래도 여기는 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여기가 아무리 덥다고 해도 화탕지옥에 백분의 일도, 천분의 일도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덥다고 해서 그럭저럭 지낼 분은 안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 더우면 더운 그때를 향해서 오히려 더 분심(憤心)을 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서 하루하루를 정말 알차게 단속(團束)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옛날에 어떤 납자(衲子)가 산중(山中)에 토굴을 묵고 또 그래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하루는 나물 캐는 부인이 해 저물게 들어왔습니다.

언젠가 말씀을 드린 기억도 있습니다마는, 나물 캐는 부인이 와서 하루쯤만 자고 가자고 그럽니다. 자고 가자고 그래서 그걸 안 받을 수도 없고, 깊은 이 산중이라서—나물을 캐러 온 게 아니라 나무를 하러 왔다고 그럽니다. 나무를 하러 왔다가...

그래서 그 춥기는 하고 날은 저물고 그래서—도저히 더군다나 부인을 갖다가 한 방에서 자기도 그렇고 그래서, 그렇다고 그냥 밖으로—거절할 수도 없고.

 

"그러면 여기서 오늘 저녁에 하룻밤 새고, 그리고 내일 날이 새거든 돌아가라"

그래 인자 부인을 앉혀 놓고 잘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스님은 떠억 앉은 채, 그날 저녁을 앉은 채, '잘되었다, 부인 덕분에 하룻저녁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 수밖에는 없다' 이래 가지고 떠억 정진하는데.

 

아! 부인 보고는, "아, 고달픈데 그리 좀 비끼라"고 그래도,

"스님이 안 주무시는데 어떻게 내가 자겠습니까? 나도 그냥 앉어서 밤을 새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둘이 떠억 앉어서 정진(精進)하는데, 아! 그 이튿날 새벽부터서 눈개비가 내리더니 한 치 두 치 쌓여 가지고, 두 자 석 자 넉 자, 삽시간에 아! 눈이 질을 넘게 눈이 퍼붓었다 그 말이여.

아! 깊은 산중은 눈이 일찍 내리고 또 그 이듬해 늦게 또 그 까지 눈이 내리고 눈이 녹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 그 눈이 그렇게 기인한께 와 가지고, 아! 부인이 도저히 그 이튿날 가기로 했는데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아! 스님, 그 앉어서 무슨 공부를, 앉어서 대강 오래 앉어 있으면 그것이 공부입니까?"

"아니요. 앉어서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따로 있다"고.

 

"그러면 나도 좀 가르켜 주십시오. 이렇게 눈이 와서 나도 가지도 못하고 그러니, 공부를 하면 어떻게 좋으냐?"고 이리저리 물어서,

"이 참선(參禪)을 하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그래 가지고 큰 도인(道人)이 되면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참, 생사(生死)에 윤회(輪廻)를 벗어난다" 그래 딱 하니, 그 스님이 아는 대로 잘 일러주고, '이 뭣고?' 그렇게 생각하라고 가리켜주니까.

 

"그러면 기왕이면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나도 스님 따라서 같이 하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가만히 어제저녁에 보니까 스님이 앉아서 밤낮 꾸벅꾸벅 조는데, 기왕이면 그게 조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안 졸고 성성(惺惺)하게 해야 한다고 할진대는, 그러면 스님이 졸면 내가 죽비(竹篦)로 스님 머리빡을 때리고 또 스님이 졸면 내가 때리고, 내가 졸면 스님이 나를 때려서 잠을 깨우게 그렇게 약속을 하고 공부를 합시다"

아! 그것, 같잔허게 보살이 죽비로 때린 것을 맞은 것도 챙피하고, 그거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그럼 한 번 그렇게 해 보자"고.

 

그래서 그 스님은 정신을 바짝 채려 가지고 '어쨌든지 이 보살한테 안 맞아야겄다' 이리 생각하고 죽비를 가운데다 떠억 놔 놓고는 마주앉아서 참선을 하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이 보살이 잘 조는지 꺼떡하면 탁! 쳐 버리면 그냥 번쩍 눈을 뜨고 또 하고 하고, 며칠날은 보살이 아주 그냥 맡어 놓고 죽비를 맞더니,

한 일주일이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보살이 잘 잠을 안 자는데, 이 스님은 긴장이 좀 풀렸던지 아! 영 졸다가 한 대 터지면 번쩍 눈을 뜨고, 불과 10분도 안 되면 또 졸다가 얻어맞고 해서, 한 철 내 어떻게 뚜드러 맞았던지 이마빡에 아주 혹이 아주 수십 개가 솟아나 가지고, 아니 인자는 뭐 챙피한 것도 뭣도 없고.

 

그렇게 하다가 한 달이 지내고 두 달이 지내고 석 달이 지내고, 그 산중은 늦게까지 눈이 녹질 안 해서 넉 달 동안을 뚜드러 맞으면서 정진을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 보살이 법문(法門)을 하는데, 그 법문 한마디에 눈을 번쩍 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다. 하고서, 일어서서 그 보살한테 절을 하고서 말을 하려고 하니까, 얼굴을 들어보니까 보살이 간 곳이 없어졌다 그 말이여.

그 보살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그 스님이 그 계행(戒行)이 청정(淸淨)하고 생사(生死)를 바치고 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을 갖다가 기특하게 생각하시고, 문수보살이 떠억 나무하러 온 아주머니로 변장을, 화현(化現)으로 나타나 가지고 와서 그 한 해 겨울을 그렇게 경책(警策)을 하고 법문을 해 주셨다 이 말이여.

 

금년 여름에 우리 세등선원에서 40여 명이 모여서 정진을 하는데, 모두가 전국 각 사찰에서 대신심(大信心)을 낸 발심(發心)을 한 납자(衲子)들이 아주 이를 악물고 정진(精進)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였습니다.

지난 겨울철, 또 그 지난 여름철, 철철이 세등선원이 창설(創設)이 된 이후로 철을 거듭할수록 모다 발심한 비구니(比丘尼) 수좌(首座)님네들이 모여서 밤을 패가면서 이렇게 정진들을 하고 있어서, 참 이 세등선원을 창설한 원장(院長) 스님, 세등 스님은 몸은 이렇게 너무 과로하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몸은 불편하지만, 다 이렇게 전국에서 좋은 수행인들이 모여서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그것을 하나의 유일한 기쁨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외호(外護)를 잘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승이 출가해 가지고 30여 년 동안 경험을 비추어서 생각해 보면, 어느 선방(禪房) 어느 회상(會上)을 가도 반드시 그 회상에는 그 대중에, 대중(大衆)을 소란케도 한다든지 신경을 쓰게 한다든지 그래 가지고 꼭 그 말썽을 부리는 괴각(乖角)이 하나둘 씩은 꼭 있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만 오면 그 사람이 뵈기 싫어서 방부(房付)를 안 들이고 가 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 괴각(乖角)이 어느 선방에 간다 하면은, '아이구, 나 거기 안 간다'고 그래 가지고 안 와 버리고 딴 데로 간 사람도 있고, 때로는 그 괴각 바람에 중간에 도망간 사람이 있고, 중간에 전 대중이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선방을 아주 문을 닫아 버리는 그런 데도 있었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 세등선원에 다행히 아까 그 나무하러 온 아주머니와 같은 그러한 보살화현(菩薩化現)이 혹(或) 이 철에 우리 선원에도 와서 계셨으면' 내 속으로 그걸 지금 간절히 지금 축원(祝願)을 하고 있는데, 어디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이라고 어디 무슨 도민증(道民證) 같은 것을 가지고 있던지, 신분증이 있으면 대번에 그 사무실에도 알텐데, 그런 것이 없고 그냥 아주 그 전혀 표가 없이 오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 스님이, 아까 산중에서 토굴에서 공부하던 스님이 발심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지 안 했다면, 하나의 평범(平凡)한 나무하러 오는 아주머니에 지내지 안 했을 것이고, 또 그러한 보살화현이 와 주실 까닭도 없었을 것입니다.(21분26초~43분4초)

 

 

 

 

(3/4)----------------

 

우리 이 세등선원에 다행히 이 대중이 그렇게 정진을 하기 위해서 이를 갈아붙이고 '죽을 사(死)' 자를 갖다가 이마빡에 써 붙이고 가행정진 용맹정진한 대발심(大發心)한 납자(衲子)가 계신다면, 반드시 그러한 보살화현(菩薩化現)이 우리 대중 가운데에 숨어서 지금 계시지 않을란가, 반드시 그런 분이 와 주실 것이다 하는 것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 보살화현으로 와 가지고, 꼭 그 아까 그 나물 캐러온 아주머니, 나무하러 온 아주머니처럼 꼭 그러한 형태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듣기 싫은 소리를 얼마든지 해서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고, 괴각(乖角)을 부려 가지고 대중의 신경을 곤두서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계속 어떤 시비(是非)를 일으켜 가지고 옆에 사람하고 싸움을 걸을 수도 있는 것이고, 자기가 이 대중에 규칙을 잘 지키지 아니하고 밤낮 대중을 갖다가 소란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거야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다못 대중 각자가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憤心)을 돈발(頓發)해 가지고 정말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할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러한 괴각이 고대로 문수(文殊) · 보현(普賢)과 같은 그런 보살화현(菩薩化現)이 되어 줄 것이고, 발심을 못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공부 대중을 소란케 하는 하나의 마구니로 밖에는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똑같은 보살화현을, 발심한 사람은 보살화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발심하지 못한 사람은 보살화현도 마구니의 종자(種子)로 밖에는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 대중들은 모두가 철저히 발심을 해가지고 그래 가지고 여기에 공부하러 온 분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중 가운데에 보살화현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는 한 생각 한 생각, 일 초 일 초...(녹음 끊김)

 

이 몸을 함부로 그럭저럭 보내다가 죽음의 문을 맞이하겠습니까?

부디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이 몸으로 대도(大道)를 성취(成就)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도, 설사 이 선방에서 결제를 아니하셨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은 공부를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도 된다고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세속(世俗)에 살면서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다 보면 본의(本意) 아니게 많은 죄(罪)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전생(前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이러한 불법(佛法)을 만나시게 된 것입니다. 금생에 어쨌든지 정법(正法)을 믿고 몸은 비록 세속에 담겨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더 이를 갈아붙이고 생활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또 내생(來生)에 정법을 만나고, 내생에는 보다 더 큰 복(福)과 큰 지혜(智慧)를 받아 타고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세속에서도 유족하게 살고 좋은 환경에서 사시고, 불법을 만나서 이렇게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보시(布施)를 하셔서 이렇게 선원(禪院)이 잘 유지되어 가도록 뒷받침을 하시면서 동시에 또 여러분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어쨋든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질은 아무리 그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내생에 한푼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라 하더라도 죽을 때에는 한푼을 가지고 가지 못하고, 관 속에다가 칠보(七寶)를 갖다가 가뜩 채워서 가지고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가(靈駕)가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체와 더불어 묻혀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일생 동안에 지은, 그러한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모이는 동안에 본의 아니게 지은—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지은 죄업(罪業)만을 한 짐 짊어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갈 따름인 것입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 가지고 보시(布施)를 하리라'

'돈을 많이 번다면 내가 선방을 하나 지으리라'

'돈을 많이 벌면 내가 법당을 내가 단독으로 지으리라'

'돈을 많이 벌면 내가 양로원을 하나 하리라'

 

돈 많이 벌 때를 기다려서, 그때를 기다려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의(誠意)껏 하고,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성의껏 보시를 하고 희사(喜捨)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유경(百喩經)』에 보면 어떤 사람이 집에 염소를 길렀는데, 날마다 그 염소의 젖을 짜 가지고 식구대로 한 공기씩을 먹고 먹고 해서 아주 그 잘살고 있었는데, 앞으로 한 일주일 있으면 큰, 그날 무슨 생일잔치가 있어서 손님들이 많이 오게 되었어.

그래서 '그때 그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위해서는 지금 양을 날마다 짜 먹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짜 먹지 말고 그동안 저장을, 염소 뱃속에다가 저장을 시키자' 그래 가지고 젖을 짜지 않고 며칠 동안을 그렇게 놔뒀습니다.

 

그래 가지고 손님이 온 날, 그날 새벽같이 큰 그릇을 준비를 해 가지고 아무리 젖을 주물러도 젖이 삘삘 쪼끔 나오다가 나오지는 않고, 염생이는 죽는다고 아프다고 펄쩍펄쩍 뛰고,

"아! 어떻게 젖을 짜 가지고 그렇게 젖은 안 나오고 염소가 죽을라고 하냐? 저리 지내라. 내가 짠다" 아버지가 달라들어서 되게 갖다가 주물러 짜도 나오질 안 해.

 

"아니 무슨 젖을 그렇게 짜느냐"고. 엄마가 달라들어서 짜도 나오지 않고, 식구대로 달라들어서 힘을 들여서 쥐어 짜는데 젖이 벌게져 갖고 나중엔 피만 삐죽삐죽 나오는데, 젖은 한 방울도 안 나온다 이 말씀이여.

젖이라 하는 것은 짤수록 매일 적당하게 짜 주어야 젖이 계속 나오는 것이지, 젖을 안 짜면 잔뜩 불었다가 결국은 밭아 버린 것입니다.

애기에게 젖을 먹여 봐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매일 매일 젖을 빨려야 그 젖이 적당히 불어서 잘 나오지, 젖을 안 먹이면 하루 이틀은 터지도록 불어 가지고 아프다가 나중에는 결국은 그 젖은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산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의(誠意)를 다해서 보시(布施)를 해야, 그래야 또 돈이 또 벌려서 사업도 잘되고 계속 또 재산이 윤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여. 지금은 한참 지금 장사를 한다, 무슨 사업을 하기 위해서 돈이 아쉬워서 빚을 내다 쓸 판인데, 단 한푼이라도 애껴야지 무슨 희사(喜捨)를 하고 보시를 하느냐. 거지에게도 못 주고 양로원 · 고아원 · 형무소 어림도 없다. 또 군인에게 위문 어림도 없다. 내 자신 들일 것도 없는데 어떻게 주느냐. 더군다나 절에 안 된다. 나중에 많이 벌어 가지고 하리라'

그러다 보면은 늙어 버리고, 그러다 보면 별로 사업도 별로 보잘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생기는 대로 먹고살고, 그 가운데에도 조끔씩 거기서 마련을 해서 성의껏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께도 보시를 하고, 스님네에도 보시를 하고, 양로원이나 고아원이나 또는 형무소, 또 그 우리의 아들딸들이 나라를 위해서 가서 목숨을 바쳐서 싸우고 있는 군인들에게도 겨울 철철이, 여름 더울 때, 명절에 모다 모두 정성을 모여서 희사(喜捨)를 하고.

이렇게 하면 자기가 천석꾼이 할 만한 복을 진 사람은 보시를 해도 천석꾼이고, 아무리 피가 나게 애껴도 천석꾼을 넘지를 못하고 결국은 천석꾼 받을 만큼 복 받으면 다 내 몸으로부터서 떠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과거에 천석꾼 할 만큼 복(福)을 지어서 천석꾼을 하게 된 사람이, '금생에 그 돈이 전부가 자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주 진리(眞理)가, 천주교(天主敎)나 유교(儒敎)의 말을 빌리면 '하느님이 자기에게 임시 맽긴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돈을 어쨌든지 나와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적당히 쓰지만, 그리고서도 이것은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또는 삼보(三寶)에 보시를 적당히 하고 이런 사람은 천석꾼이 복(福)을 누리면서 동시(同時)에 앞으로 복을 더 받을 수 있는 복(福)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복(福)을 받기만 하고, 전생에 쌓은 복을 금생에 받기만 하고 새로 복(福)을 심지 아니한 사람은 그 복이 다해 버리면 금생에 가난뱅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손 대에, 자손(子孫) 앞에 넘겨준다 하더라도 머지않아서 그 복이 바닥이 나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금생에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복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복을 심고, 넉넉한 사람은 넉넉한 대로 복을 심어야, 또 그 심은 복의 씨가 싹이 트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지 않겠습니까?

 

부자가 보시(布施)를 아니하고 그렇게 해서 복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당대(當代)에 망(亡)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갖다가 자기 혼자만 쓰지 아니하고 온 마을 사람, 이웃, 불쌍한 사람, 거지, 절, 돈 없어서 공부 못한 사람, 또 사회 복지시설 그런 기관, 그런 데다가 막 풀어서 쓴 사람은 9대를, 만석꾼이로 9대를 내려간 사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대전에 그런 사람이 있어요.

 

만석꾼이는 절대로 당대(當代)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석꾼이가 9대(代)를 내려간 사람이 있어. 그래도 그 사람은 계속 망하지 아니할 텐데 토지개혁으로 말미암아서, 자유당 때 토지개혁으로 만나서 그 논을 갖다가 다 뺏겼습니다.

그래서 어려워졌지, 그러지만 안 했으면 그 만석꾼이가 계속 그 선조(先祖)에 유언(遺言)을 따라서 그렇게 보시를 하면서 살았다면은 9대뿐만이 아니라 90대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시(布施)는 나무지가 아니라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이여.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요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 년 동안 재물을, 불같은 욕심으로 재물(財物)을 탐(貪)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는 띠끌에 지내지 못하고, 3일 동안 발심(發心)을 해서 이 세상 인생(人生)이 무상(無常)한 것을 철저히 깨닫고 3일 동안 도(道)를 닦은 것은 천년(千年)에 보배가 되는 것이다.

 

부디 금년 한 철 석 달을, '석 달 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 '오늘 하루 결제(結制)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 하루를 알뜰히 정진(精進)을 하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떠억 자리에 누워서, '내가 과연 오늘 하루를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는가?' 따악 하루를 간단하게 한번 점검(點檢)을 하고,

또 '그 이튿날,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알뜰히 공부를 해야겄다. 오늘은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지고 시비(是非)를 했지. 오늘은 공연히 부질없이 오늘은 하루가 지내갔구나. 내일은 더 알뜰히 해야겠구나' 그러면서 화두(話頭)를 떠억 들고 하루저녁을 하루를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 떠억 일어나서 '오늘 하루는 더 열심히 해야겄다'고 딱! 한 생각 각오를 하고서 하루 정진을 하고. 그날 저녁에 또 그날 하루 자기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이웃 사람과 잡담(雜談)을 하지 안 했나?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지고 옆에 사람 신경을 건드리지 안 했나?'

 

참을성 없고 잡담하기 좋아하고 시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음 인자 되았어.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나를 문수보살로 생각해 줄 테니까' 이리 생각하고, 시비와 잡담으로 대중에 괴각(乖角)을 부린 사람은 진짜 문수보살(文殊菩薩)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문수보살이 아닌 사람이 공연히 문수보살인 척하고 대중에 시비를 일으키고 했다면 그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옥에 갈 것은 분명할 것이여.

부디 열심히 공부를 하고 금년 한 철이 출가(出家)한 목적(目的)을 달성하는 그러한 중대한 한 철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은 입재(入齋) 결제일(結制日)인 만큼 처음으로 선방(禪房)에 나온 분, 또 처음으로 이 참선(參禪)을 앞으로 해 보고자 한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점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첫째, '자세(姿勢)'를 바르게 하고, 둘째는 '호흡(呼吸)'을 바르게 할 것이며, 셋째는 '생각'을 바르게 해.

 

자세와 호흡과 그리고 생각,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잘 알고 참선(參禪)을 해야지 이걸 잘 모르고 하면, 자기 딴은 애를 써서 한다는 것이 까딱하면 몸에 병이 생기기도 하고, 까딱하면은 정신이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사도(邪道)에 빠지게 되어 가지고, 본의 아니게 '참선을 하다가 그 사람은 잘못되었다. 그 참선이란 건 대단히 몹쓸 것이다' 그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많은 사람을 참선을 못 하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여.(43분5초~62분24초)

 

 

 

 

(4/4)----------------

 

자세(姿勢)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냐 하면 가부좌(跏趺坐).

가부좌는 처음에 오른다리를 꼬부리고 그 위에 왼다리를 딱 올려놔. 왼다리를 오른다리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그다음에 오른발을 갖다가 다시 들어서 왼 무릎 위에다가 이렇게 꼬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가부좌인데, 이렇게 안 앉아 버릇한 사람은 다리가 그 5분도 못 가서 다리가 저리고 아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반가부좌. 왼발 하나만 오른 무릎 위에다 이렇게 올려놓는 것이여. 이렇게 딱 앉아서 하되, 이렇게 해도 다리가 저리면 또 그 왼다리는 내려놓고 오른다리를 갖다가 왼쪽 무릎 위에다가 이렇게 올려놓아도 됩니다.

 

그렇게 하고, 손은 그 올려놓은 복사뼈 위에다가 딱 오른손을 갖다가 오른손을 손바닥을 위로 해서 딱 올려놓고, 그 위에다가 왼손을 갖다가 이렇게 해서 딱 포갭니다. 포개서 놓고서 엄지손을, 엄지손 끝에 배를 서로 이렇게 맞대는 것입니다.

맞대되 이 (엄지)손이 너무 되게 눌러서 이렇게 위로 솟구쳐 올라도 안 되고, 또 이렇게 삐뚤어지게 해도 안 되고, 이렇게 동그스름하니 보기 좋게 이렇게, 떨어지지도 말고 너무 되게 붙이지도 말고 아주 가볍게 이렇게, 이렇게 대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고.

 

고개는, 자세는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니 앉았다 하고 참선을 잘한 척하고 투기로 버티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크게 잘못한 것이어요. 단정하게, 두 귀가 어깨 위에 놓이도록.

 

코끝은,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丹田)과 코가 수직상(垂直上)에 놓이도록. 조끔 앞으로 기울어도 수직이 아니고, 뒤로 자지바지해도 안 되고,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져도 안 되고, 단정하게 하면서도 조끔도 전후좌우(前後左右)에 기울어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어깨에 힘을 다 빼야 합니다. 어깨에다 힘을 이렇게 주면 안 되는 거여.

어깨에 힘을 다 빼고, 목에 힘도 다 빼고, 팔에 힘도 다 빼고, 전신(全身)에 힘은 다 빼는 것입니다. 다 빼되 아주 단정(端正)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을 다 빼되, 배꼽 밑에 단전(丹田)에만 아주 가볍게 지그시 그렇게 힘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 힘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다 미어터지도록 거기다가 용을 써 힘을 주는 것이 아니어요. 아주 힘을 주는 둥 마는 둥 하게 가볍게 힘을 줘.

 

이렇게 하고서, 좌우로 이렇게 서너 번 흔들어요.

서너 번 이렇게 궁뎅이가 뜰썩뜰썩하도록 요렇게 해 가지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정도에 가서 저절로 한 중심(中心)에 가서 딱 안정(安定)이 되도록. 그것은 궁뎅이 밑에 옷 같은 것이 혹 요렇게 구겨진 채 이렇게 있는 수가 있고 그래서, 너댓 번 이렇게 흔들흔들하면 옷이 싹 펴지도록.

옷 그렇게 해서, 그러면서 저절로 딱 하면 전후좌우에 기울어짐이 없이 딱! 중심이 요렇게 딱 잽히도록.

 

그리고 턱은, 너무 요렇게 하지도 말고, 앞으로 빼서도 안 되고, 단정하게 딱! 이렇게 붙이고.

 

이는, 저 아금니부터서 지그시 물어요. 너무 콱 다물어서도 안 되고, 이가 이렇게 떨어져서도 안 되고, 지그시 아금니부터서 이렇게 문다 말이여.

 

혀는 위로 꼬부려서,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 안에다 갖다 딱 갖다 대.

될 수 있으면 꼬부려서 저 안에다 갖다 대. 대고.

 

눈은, 감아서는 아니 되어요. 그렇다고 눈을 뚝 부릅떠서도 안 되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떠서 평지에 약, 거기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3m 지점에다가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한 점(點)을 갖다가 주시(注視)하거나 응시(凝視)해서는 안 되고.

어떤 사람은 참선 할 때 콩알을 갖다가 떠억 3m 에다 갖다 놓고 계속 그것을 들여다보는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봤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3m 지점에다 떨구되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본 바가 없이 그저 평상으로 떠억 뜨고서,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하는데, '호흡(呼吸)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냐?' 하면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한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는 것입니다.

들어마시는 시간이 3초, 머무는 시간이 3초, 내쉬는 시간이 약 5초 가량 되도록. 그렇게 해서 한 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는, 한 번 하는 시간이 약 10초나 11초 이렇게 되도록.

 

들어마실 때에 코로 쑤욱 들어마시지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를 말고 저 뒤에서, 저 뒤에서 쭈우욱 이렇게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 배꼽 밑에, 아랫배에 가서 이렇게 담기도록.

 

다 들어마셨으면 3초 동안을 딱 정지를 했다가, 내쉴 때 물론 코로 내쉬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코로 내쉰다'고 생각하지 말고, 또 쑤욱 배를 차츰차츰 차츰차츰 뒤로 잡아당기면서 '그 호흡을 저 뒤에로 쭈욱 밀어버린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또 다 내쉬었으면 그때 배가 홀쪽해져 갖고 있을 테죠? 또 쑤욱 들어마시되 저 뒤에서 들어마시거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셔.

 

근데 주의할 것은, 볼록하게 들어마시라니까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 얼굴이 벌게져 가지고 한 번 두 번 하고는, "숨이 가뻐서 못 하겄다" 그래 가지고는 "후~ 이렇게 쉬어 갖고 다시 해야 하니 이렇게 해도 되냐?"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들어마실 때 100프로(%) 가뜩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팔부(80%)쯤만 들어마십니다.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팔부쯤만 들어마셨다가 3초 정지했다가 내쉬는데, 내쉴 때도 아주 등어리가 완전히 배가 등어리에 붙도록 다 내쉬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은 숨이 가뻐서 안 되어요.

팔부, 다시 또 더 내쉴 수 있지만 팔부(80%)쯤만 내쉬는 거여.

 

팔부(八部)쯤만 내쉬고서 또 스르르 들어마셔. 팔부쯤만 또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에는 내쉬는 시간이 약 5초니까—들어마시는 시간은 그냥 수르르~ 하니 부담 없이 들어마시는데 약 3초가 걸려요. 내쉴 때는 의식적으로 조끔 애끼면서 조용하게 천천히 내쉬어 보라 그 말이에요.

이것이 바로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단전호흡(丹田呼吸)이라 하는 것이여.

 

 

<준비호흡>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를 말고, 처음에 본(本) 단전호흡 들어가기 전에 준비호흡이 있습니다.

준비호흡은 어떻게 하냐? 하면, 숨을 가뜩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을 요렇게 위로 들어올리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입으로 '후~~' 이렇게 내쉬는 거야.

'후~~' 하고 이렇게 내쉬어. 다 내쉬되 가슴을 약간 이렇게 홀쪽하게 하는 듯하면서 다 쥐어짜면서 이렇게 내쉬는 거여. 다 내쉬어요. 이건 100프로(%) 다 내쉬는 거여.

 

다 내쉰 다음에 또 한 번 100프로(%) 들어마셔.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후~~' 이렇게 내쉬는 거여.

이렇게 두 번 또는 세 번을 이렇게 하는 것, 이것을 '준비호흡'이라 해서 허파 속에 가뜩—허파가 이 어깨 위로부터 여기까지 이렇게 가슴에 요렇게 딱 있는데, 숨을 조끔 들어마셨다 내쉬고 조끔 들어마셨다 내쉬면 허파 가운데 부분만이 호흡이 이렇게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고,

지끔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가뜩 어깨를 들면서 이렇게 가뜩 들어마셨다가 다 내쉬면 허파의 구석구석까지, 허파의 그 뾰족한 부분까지 구석구석까지 새로운 공기가 들어갔다가 완전히 허파 속을 소지[掃除]를 해 가지고 깨끗이 요렇게 소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을 한 다음에 허파 소지를 해 놓고서 떠억 정식으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야 호흡이 제대로 되고 아주 그 공부 잘되는 것입니다.

 

이 준비호흡을 하지 않고서 처음부터서 단전호흡을 하면, 얼마 안 가서 여기가 답답해지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여기가, 가슴이 앞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반드시 언제라도 딱 앉어서 좌선(坐禪)을 시작할 때는 준비호흡을 먼저 하고서 단전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 단전호흡은 참선을 하지 아니한 사람도 항시 일상생활(日常生活) 속에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몸안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바로바로 배출을 시키기 때문에 피가 맑아지고, 피가 맑아짐으로 인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몸만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안정이 되고 깨끗해져서, 자연히 그 사람은 도(道)를 닦을 수 있게, 도를 닦는데 가장 좋은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나, 관공서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 요새는 너무너무 피로가 겹쳐서 견디기가 어려울 만큼 그렇게 세상이 일이 많고 복잡해졌습니다.

이럴 때 이 단전호흡을 항시 하면 그때그때 피로를 해소하게 되기 때문에 학생도 공부를 더욱 잘하게 될 것이고, 일반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도 그날그날 피로를 그때그때 풀어버렸기 때문에 건강하게 그렇게 능률 있게 일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하면 혈압도 내려가게 되고, 모든 노이로제 현상도 예방하고 치료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니, 이 단전호흡 하는 법을 잘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고, 그래도 해 보면 또 의심이 나는 것이 있으면 또 물어보시고 해서 어쨌든지 이것을 열심히 하시기를 권장합니다.

 

특히 참선(參禪) 하는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이 단전호흡을 잘 알아서 해야 상기병, 선객(禪客)에 있어서 사형언도나 마찬가지인 그 상기병(上氣病)을 예방(豫防)을 하고 또 그러한 기운이 있는 사람도 치료(治療)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단전호흡(丹田呼吸) 밖에는 없습니다.

 

한번 상기병이 걸려 놓으면 약을 맞고 뜸을 뜨고 침을 아무리 맞어도 좀체 낫지를 않습니다마는, 이 단전호흡 하는 법을 알아 가지고 잘하면 백발백중(百發百中)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미리 이 법을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면 그런 상기병에 걸리지 아니하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도 잘되고, 그래서 마음도 안정이 되고, 화두(話頭)도 잘 들리게 되어서 결정코 금생(今生)에 도업(道業)을 성취(成就)하게 될 것입니다.

 

 

<화두 의심>

 

그다음에는 '생각을 어떻게 가져 나가느냐? 화두(話頭)를 어떻게 들어가느냐?'

이 문제인 것이여.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 '이 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 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뭣고?~~'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숨을 들어마시고,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두 시간 이내에는 이 단전호흡을 아니하는 것이 좋습니다. 밥에다 숭늉에다 국에다 가뜩 먹고서 배가 부른 데다가, 숨을 들어마시고 아랫배에다 숨을 밀어넣으면 위가 늘어나고 위하수 같은 그런 병(病)이 생기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시간 정도 되면, 밥이 다 삭아서 배가 꺼지니까 두 시간 뒤부터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두 시간 이내에는 낮잠이나 자고 공부를 아니해도 되냐 하면은 그게 아니고, 단전호흡만을 하지 말고 그냥 호흡을 보통 호흡(呼吸)으로, 그냥 예사 호흡으로 하면서 화두(話頭)는 역력(歷歷)히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할 것,

둘째, 호흡을 바르게 할 것,

셋째, 화두를 바르게 드는데, 호흡을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쉴 때 '이 뭣고?~~'

 

다 내쉬면 써억~ 들어마실 때에도 지금 '이 뭣고?~~' 한 끄터리가 지금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의 꼬리가 지금도 지금 계속 요렇게 나가고 있는 거여.

3초 머무를 때에 까지도 그 아까 들었던 그 화두 '이 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여운(餘韻)이 그때까지 오는 거여.

 

그래 가지고 새로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머무를 때까지 그 여운이 갔다가, 내쉴 때 또 '이 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그러면 '언제까지라도 그렇게만 하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고,

나중에는 숨 한 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고, 또 한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고, 세 번 할 때까지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의 여운'이 있으면은 새로 안 해도 괜찮어요.

 

아침에 들었던 화두(話頭)가 점심 먹을 때까지 고대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눈앞에 있으면은 자꾸 거기다가 '이 뭣고? 이 뭣고?'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익숙해지면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까지도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 가운데에는 반드시 그런 경지를 맛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에까지, 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아침에 그 이튿날까지도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그 몸이 가볍고 편안하고, 그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하고 그 경계는 뭐라고 이게 표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 편안하고 좋구나' 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다못 알 수 없는 화두(話頭)만이 독로(獨露)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 누가 이런 때 누가 툭!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었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善知識)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었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돼. 천길만길 올라갔다가 그 한 생각에 툭! 떨어지고 마는 것이여.

공부가 잘되어 갈수록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오직 화두(話頭)만이 독로(獨露)하도록 단속(團束)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가 좀 잘되어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영 화두가 잘 안되고, 가슴이 미어지고 시간이 지루하기를 5분이 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질 때가 있고 몸부림이 쳐질 때가 있지만, 조끔도 번뇌심(煩惱心)을 내지를 말고 허리를 쭉 펴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 것입니다.

 

대중처소(大衆處所)에서는 일어섰다 앉었다 하기가 대단히 미안하지만, 가만히 일어서서 나가서 포행(布行)을 한 5분 내지 10분을 하고 정신이 깨끗해지면 또 자리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그 대중처소(大衆處所)에서는 참 그 일어섰다 앉었다 하기가 대단히 미안해서 그런 것도 지혜 있게 도반(道伴)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로 인해서 남에게 피해(被害) 가는 것이 대중처소에서는 제일 조심(操心)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정말 간절(懇切)히 공부를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62분25초~1시간22분48초) (끝)

 

 

 

 

[법문 내용]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주장자를 들어서 보이고, 쳐서 소리를 들려드리면 그것으로써 그 이상 더 불법(佛法)을 설(說)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인천 용화사(龍華寺)나, 세등선원 조실(祖室)은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 공안(公案) 화두(話頭)의 뜻. 천칠백 공안. 공안은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그 공안(公案)의 원리(原理)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다.

 

반기이파(飯器已破) 공안 / 깨달음은 부처님과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선지식의 경지에 여지없이 이르러야 / 산중 납자(衲子)의 수행을 위해 아주머니로 화현하신 문수보살(文殊菩薩).

 

발심(發心)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문수(文殊) · 보현(普賢)과 같은 그런 보살화현(菩薩化現)이 되어준다 / 백유경(百喩經)의 염소 젖 이야기 / 보시, 희사(喜捨)로 복(福)의 씨를 심어라 /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 하루 결제(結制) / 자세, 단전호흡, 화두 드는 법에 대한 자세한 법문.

 

 

주장자를 들어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그리고 그 주장자로 법상을 쳐서 그 소리를 여러분께 들려드렸습니다. 주장자를 들어서 보이고, 쳐서 소리를 들려드리면 그것으로써 그 이상 더 불법(佛法)을 설(說)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입을 벌려서 그 이상 더 법을 설한다고 할 것 같으면 모가지가, 머리가 목 위에 하나가 있는데 다른 데서 목을 하나 갖다가 그 머리 위에다가 하나를 더 포개 놓은 거와 같을 것이고, 닭다리를 떼어 버리고 오리다리를 갖다가 이어서 짬매 놓은 거와 같을 것입니다.

 

전강(田岡) 스님께서도 6년 전에 77세를 일기(一期)로 열반을 하셨지만, 우리는 전강 큰스님의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생존해 계실 때와 똑같이 그렇게 분명하게, 성성(惺惺)하게 법문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설사 한마디 녹음을 해 놓으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말씀도 생존시(生存時)에 육성(肉聲)을 들을 수가 없다 하더라도, 오시고 가신 것이 없는 그러한 경지를 체달(體達)하신 스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조실(祖室)로 모셔도, 모시고 생존해 계신 듯, 계신 것처럼 믿고 그 법(法)에 의지해서 도(道)를 닦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스님을 조실로 모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올바르게 해 나가자면 이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야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바로 깨달랐는가 바로 깨닫지 못했는가를 점검(點檢)해 보려면 이 공안을 갖다가 들여대 가지고 그 공안에 대한 답(答)을 하는 것을 보면은 그 사람이 어떠한 경지(境地)에 도달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공안을 접(接)했을 때 바로 이를 수 없으면 다못 의심(疑心)이 돈발(頓發)해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성성(惺惺)하게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반기이파(飯器已破)'의 공안에 대한 법문.

 

우리는 고인(古人), 부처님과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선지식(善知識)의 경지에 여지없이 이르기 전에는 스스로 조끔 공부를 해서 조끔 무슨 소견(所見)이 났다 해서 그것으로써 만족을 삼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산중 납자(衲子)의 수행을 위해 아주머니로 화현하신 문수보살(文殊菩薩).

 

다못 대중 각자가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憤心)을 돈발(頓發)해 가지고 정말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할 그러한 사람에게는 괴각(乖角)이 고대로 문수(文殊) · 보현(普賢)과 같은 그런 보살화현(菩薩化現)이 되어 줄 것이고, 발심을 못한 사람에게는 공부 대중을 소란케 하는 하나의 마구니로 밖에는 보이지 아니할 것입니다.

 

『백유경(百喩經)』의 염소 젖 이야기

 

백 년 동안 재물을, 불같은 욕심으로 재물(財物)을 탐(貪)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는 띠끌에 지내지 못하고, 3일 동안 발심(發心)을 해서 이 세상 인생(人生)이 무상(無常)한 것을 철저히 깨닫고 3일 동안 도(道)를 닦은 것은 천년(千年)에 보배가 되는 것이다.

 

부디 금년 한 철 석 달을, '석 달 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 '오늘 하루 결제(結制)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 하루를 알뜰히 정진(精進)을 하라.

 

참선의 자세와 호흡과 화두 드는 법을 상세히 말씀하심.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첫째, '자세(姿勢)'를 바르게 하고, 둘째는 '호흡(呼吸)'을 바르게 할 것이며, 셋째는 '생각'을 바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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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