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500/(401~425)2023. 4. 24. 10:10

 

 

(No.425)—1990년 9월 첫째 일요법회(화두·불명·십선계 법회) (80분)

 

(1) 약 40분.

 

(2) 약 40분.


(1)------------------

<육사청(六師請)>

경청 석가모니불 예위화상아사리(敬請 釋迦牟尼佛 詣爲和尙阿闍梨)
경청 문수대지사 예위갈마아사리(敬請 文殊大智士 詣爲羯磨阿闍梨)
경청 당래미륵불 예위교수아사리(敬請 當來彌勒佛 詣爲敎授阿闍梨)
경청 시방제여래 예위증계아사리(敬請 十方諸如來 詣爲證戒阿闍梨)
경청 시방제보살 예위동학반려중(敬請 十方諸菩薩 詣爲同學伴侶衆)
경청 석범제천중 예위옹호장엄중(敬請 釋梵諸天衆 詣爲擁護莊嚴衆)

수계(受戒) 받으실 분은 호궤합장(互跪合掌)하고 앉아 주십시오. 모두 앉아 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드세요. 예, 그렇게 앉으세요.


방초삼춘우(芳草三春雨)허고  단풍구월상(丹楓九月霜)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심관물변(虛心觀物變)허면  무사단평상(無事但平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방초삼춘우(芳草三春雨)허고  단풍구월상(丹楓九月霜)이다.
꽃다운 풀 우거지는 삼춘(三春)에는 비가 내리고, 단풍이 울긋불긋 물드는 구월(九月)에는 서리가 내린다.

허심관물변(虛心觀物變)하면, 빈 마음으로 온갖 삼라만상 변하는 것을 관(觀)한다면,
무사단평상(無事但平常)이다. 일 없고 다맛 그것이 바로 평상(平常)이더라.

봄에 꽃이 피고 풀이 우거지며 또 비가 내리고, 가을에 단풍 지고 서리가 내린 것은 이 세상에 모든 물건(物件)이 인연 따라서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다시 없어져. 사람도 태어났다가 죽고, 모든 물건도 생겨났다 없어지고, 저 태양이나 이 지구도 몇억만 년 뒤에는 인연이 모아서 생겨난 것이라 언젠가는 파괴가 되고 말 것이다 그 말이여. 우리 주변에 날마다 보고 듣는 것은 파괴와 생멸 · 생사 내놓고 무엇이 있느냐 그 말이여.
그러나 빈 마음으로,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할 수 있다면 그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涅槃)이요, 번뇌(煩惱)가 바로 보리(菩提)다 그 말이여. 생멸상(生滅相) 속에 열반상(涅槃相)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허겄더라.


오늘 경오년(庚午年) 9월 첫째일요법회를 기해서 십계(十戒)를 받고 또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신청한 분에게 계(戒)와 화두와 불명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신해년(辛亥年, 1971년)에 설하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이미 계도 받고 화두도 다 탔습니다. 산승(山僧)이 다시 여기서 설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 더 간절하고, 그 이상 더 분명하고 감동적으로 설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로부터 화두도 탔고 또 계도 받았다고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일단 여러분이 새로 받기를 청했으므로 불보살(佛菩薩)을 증사(證師)로 모시고 간략히 십계를 설하겠습니다.


계(戒)는, 원래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갈라면 문(門)을 통해서 들어가고 또 그 방에서 나올 때에는 문을 통해서 나오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의 길이 있고, 불자(佛子)로서 불자에 길이 있어. 길을 놔두고 길로 다니지 않고 논으로 밭으로 가시덤불 속으로 다닐 수는 없거든.
계(戒)라고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여. 마땅히 가야 할 길이여. 목적지를 향해서 반드시 좋은 길을 택해서 가야 안전하고, 그리고 빠르게, 그리고 바르게 갈 수가 있고 그래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여.
길을 잘못 잡아 가지고 이리저리 위험한 데로 또 방향을 잘못 잡아서 간다면 애만 많이 쓰고 설사 목적지에 도달한다 해도 몇 배의 시간과 공력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우리 불자(佛子)의 갈 목적이 무엇인가?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자성(自性)을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거든. 그럴려면은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할려면은 계(戒)를 가져야겄더라.

불자로서 가져야 할 행실, 첫째, 몸[身]으로 지녀야 할 세 가지. 살생,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둘째는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셋째는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다음에는 입[口]으로 지키는 네 가지.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또 기어(綺語), 기어라 하는 것은 이리저리 꾸며대고, 잡스럽고 잡탕스러운 말, 해서는 안 될 말 또 아무 뜻 없는 말, 이러한 말을 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양설(兩舌), 이간질을 하지 말아라. 그다음에는 악구(惡口), 욕을 하지 말아라. 이것이 입으로 지켜야 할 네 가지여.

그다음에 뜻[意]으로 지키는 세 가지는, 탐욕(貪欲)을 내지 말어라. 그다음에 불진에(不瞋恚), 썽내지 말어라. 그다음에 어리석은 마음, 삿된 소견을 내지 말어라.
이 어리석고 삿된 소견이라는 것은 첫째, 불자(佛子)로서는 인과법(因果法)을 부정하는 거여, 인과를 믿지 아니하고 인과의 법칙을 믿지 않고 인과를 부정하는 거, 이것이 마음으로 인과를 안 믿는 사람, 이것은 바로 불법(佛法)을 믿는 불자로서는 가장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여.

그래서 살생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 주어야 하고, 또 도둑질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내 것을 남에게 보시를 하고, 사음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행실을 청정하게 갖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진실한 말을 하고, 또 꾸며대는 말 또는 잡탕스러운 말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말을 신사답게 신사 숙녀에 어울리는 그러한 청정한 말을 해야 한다. 이간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간질을 해 가지고 두 사람의 사이를 벙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합할 수 있도록 자비스러운 말로써 화합을 붙여야 한다.
악구(惡口)—‘호랭이 물어 갈 놈, 급살 맞을 놈, 벼락 맞을 놈, 오라를 질 놈’ 이런 입에 못 담을 말을 남에게도 해서는 아니되는데 이것이 습관이 되면은 자기 형제간에도 하고, 자식한테도 하고, 아무한테라도 그런 말이 풀풀 나온 것이다 그 말이여. 이 말 한마디, 설사 꼭 미워서가 아니라 이뻐서 못 견디면 입에 못 담을 욕을 하는 수가 있거든. 이것도 불자로서는 해서는 아니된다 그 말이여.

입 밖에 한번 뚝 말이 떨어지면 그것이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낱낱이 언젠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到來)하면 그 말이 씨가 되어 가지고 그것이 현실화(現實化)되는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힘들지 않고 돈 드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말을 함부로 풀풀풀풀 해 버릇하면 망어(妄語)를 하고, 기어(綺語)를 하고, 양설(兩舌)을 하고, 악구(惡口)를 하면 그것이 낱낱이 다 그 과보(果報)로 나타나는 것이매, 참 말을 조심해야 해. 행동도 조심해야 하지만 말도 행동 못지않게 더 말조심을 해야만 불자(佛子)다운 불자다.

탐심(貪心)을 내는 거, 탐심을 내는 것은 남이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을 ‘아휴, 저걸 내가 갖고 싶다. 어떻게 해야 저것을 내 것을 삼을까? 달라고 해서 안 주면 훔치기라도 허까?’ 이러한 탐심은 아마 어린애들 어린아이들이 내는 탐심일 거고.
우리 불자(佛子)에게 해당되는 이 탐심은 비단 그러한 남의 물건을 탐심을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거여. 이것은 참 무서운 탐욕이여.

구경(究竟)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공부하다가 어떤 조끔 마음이 고요하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공안(公案)에 대해서 짐작한 바가 있으면 그것을 구경(究竟)에 깨달음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 소견을 꽈악 속에다 오그려 쥐고 자기의 속 살림을 해 나가는 거, 이런 것도 탐욕이여.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을 들어보면 자기가 그러한 얻은 소견(所見)이 분명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줄 알건마는, 그래도 자기가 자기 나름대로 애써서 얻은 소견이라 해 가지고 그것에 대한 탐욕심을 내 가지고 따악 오그려 쥐고 있으면 그것도 못쓰는 거거든.
참으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 여지없이 그러한 소견을 버려 버려야 돼. 그래 가지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순수(純粹) · 무구(無垢)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나가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여.

또 대중에 이렇게 살아가고 세속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제 생각만 옳다고 하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면 이것도 탐욕심이고, 제 생각대로만 하려고 밀어붙이다가 그것이 뜻대로 안 되고 남이 자기 뜻을 따라주지 아니하면 썽을 내거든. 이것이 진심(瞋心)이여.
참! 지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 뜻을 따라주지 아니한다고 썽을 내면 이것이 팔불출(八不出)도 못되고, 칠불출도 못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매 생각이 다른데,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을 것인데, 남의 말도 귀기울여 들을 줄 알고 또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다가 다른 사람 말을 귀기울여서 들어보면 아 자기 말보다 ’저 사람 의견이 좋다’ 생각하면 아 대번에 그 사람의 의견을 또 찬동을 찬양을 해 주고, 이리해서 서로서로 지혜를 모아서 바른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가야지 제 주장만 내세워 가지고 둘 모이면 싸움하고, 셋 모이면 싸워. 집안에서도 식구끼리 싸우고, 회사에 가서도 식구끼리 싸우고.
물론 의견을 모이는 과정에서는 서로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내세울 수가 있지만, 이렇게 해서 여러 방면으로 토론을 하다가 그중에서 가장 좋은 의견으로 일단 모아지면, 그 의견에 모두가 다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행동을 통일해 나갈 때 사회도 되어 가는 것이 있고, 나라도 되어 가는 것이 있고, 또 온 세계도 평화가 올 때가 있을 것이다.

한 번 두 번은 몰라도 일생 동안을 탐욕(貪欲)과 진에심(瞋恚心)으로 일관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중생이 아니고 무엇이냐.
지끔 온 세상이 나날이 혼란하고 시끄럽고 복잡하고, 되어 가는 일보단 참 앞날이 걱정스럽게 모든 일이 되어 가는 것은 이 사람들이 이 십선계(十善戒)를 믿고 지켜 나가지 아니하고, 그걸 지키지 아니하면 십악죄(十惡罪)가 되는 것이고, 이것을 믿고 지키고 실천해 나가면 이것이 십선계가 되는 것이여.

십선계만 지켜 나간다면 이 아무리 지금 말세(末世)라고 하지만 온 세계가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될 것이고, 온 세계가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할 것입니다. 온 세계가 그렇게 되기를 우리는 바래지만, 그렇게 되기를 진실하게 원한다면 우리 불자부터 이것을 실천해 나가자.
그래서 오늘 전강 조실 스님 계실 때도 항상 이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설하셨고 또 오늘도 이 대승십선계를 이렇게 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戒)만을 믿고 고대로 실천해도 그 사람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어느 곳에 무엇으로 태어나되 항상 왕(王)으로 태어날 것이다. 이 계를 철저하게 잘 지키면은 천상(天上)에 도솔천(兜率天)에 가서 태어날 것이다」
인자 이 경(經)에 보면 이렇게 말씀이 쓰여 있지만,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천상에 태어나 봤자 자기가 지은 복(福)만큼 다 받으면 또다시 떨어지니 계(戒)만을 집착해서 계만을 지킨다면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참다운 대승계(大乘戒)가 되지를 못한다.

오늘 이 열 가지 계(戒)를 설하되, 어떻게 하면 이 계(戒)를 영원히 타락이 없는 대승계로써에 차원 높은 계를 우리가 가질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지금부터 설할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참선법을 설하기 전에,

이상 설한 열 가지 계를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열 가지 대승십선계를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대승십선계를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편안하게 앉어요. 연비(燃臂) 먼저.

다시 호궤합장(互跪合掌).

참회진언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2분 20초 계속)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편히 앉으셔요.

십계(十戒)를 받고 연비(燃臂)를 받았습니다. 연비를 받은 뜻은 무량겁으로부터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다 참회한 것입니다. 연비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무량억겁(無量億劫) 죄가 다 소멸이 되고, 이제 금방 갓난애기처럼 몸과 마음이 청정해졌어.
앞으로 죄를 짓지만 아니하고, 이제부터 받은 화두(話頭)를 가지고 열심히 정진해 가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따끔하게 그 연비를 한 찰나에 그렇게 무량겁 동안 지은 크고 작은 그 많은 죄가 소멸이 되느냐?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될 이유가 있는 것이여.

나선 비구(那先比丘), 나가세나(Nāgasena). 나선이라고 하는 비구 스님한테 저 왕(王)이 묻기를, “평생 동안 지은 죄가 임종(臨終)할 때에 염불(念佛) 열 번만 하면 죄가 다 소멸이 되어 가지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태어난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럴 수가 있습니까? 금생 백 년 동안 지은 죄뿐만 아니라 무량겁 동안 지은 죄가 어떻게 마지막 숨 딱 거둘 때에 아미타불(阿彌陀佛) 열 번만 불러도 죄가 없어진단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나선 비구라고 하는 그 큰스님이 대답을 하기를, “큰 돌, 무거운 돌을 백 덩어리를 큰 배에다가 실으면 그 돌은 물속에 가라앉지를 않을 것이고, 조그마한 주먹텡이만한 돌 한 개도 배에다가 실지 않고 그냥 물에다가 던지면 그 돌은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의 법을 믿고 일심(一心)으로 염불을 하면 그 부처님의 그 원력(願力)으로 마치 그 무겁고도 큰 돌만한 돌을 배에다가 실으면 안 가라앉듯이 반드시 그 사람은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날 것이고, 불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부처님의 그 원력의 가피(加被)를 입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은 죄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또 이렇게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에 그렇게 말씀이 있고.

또 『지론(智論)』에 보면 ‘어째서 보통 때 열 번 한 것보단 마지막 그 죽을려고 하는 그 임종시(臨終時)에 잠깐 염불한 것이 그렇게 무서운 힘이 있을까?’
보통 때는 아무래도 생각이 그렇게 가다듬어지지를 않고, 마지막 죽을 때는 이제 막바지라, 그러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 이제 내가 숨 거두면은 지옥에 갈지—반드시 자기가 지은 죄가 많기 때문에 지옥에 갈 것이다. 다행히 열 번만 지극정성으로 불러도 극락에 간다니 일심(一心)으로 하게 된다 이것입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면 ’내가 여기서 있는 힘을 다해서 목숨을 버리고 싸우지 아니하면 적한테 죽을 것이고, 여기서 인자 도망갈 곳도 없고 차라리 죽느니 한 사람이라도 더 적을 죽이고서 기어니 이 적을 다 몰아 다 쳐죽여야겄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나라도 살겄다‘ 이러한 마음을 내면 적은 군사로도 대적(大敵)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이고.
’아이고! 적이 저렇게 많으니 싸워 봤자 죽을 거 이것 어떻게 해야 죽지 않고 도망쳐서 살꼬‘ 이런 생각을 먹으면은 눈 깜박할 새에 맞어 죽을 것입니다.

아무리 적어도 양(量)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금덩어리 한 냥과 꽃다발 백 개의 꽃다발을 처쟁여 놓으면 우선 꽃을 백 다발을 쌓아 놓으니 울긋불긋 보기도 좋고 잠시 향내도 나겠지만, 금덩어리 한 냥이면 그거 별것이 아니지만, 금덩어리 한 냥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을 것입니다.
또 숯불, 불꽃이 훨훨 타지도 않는 조그만한 숯불이 별로 보잘것없지만,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마른풀을 그 조그마한 숯불로 그것을 태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독사는 조그만한 독사 새끼라도 그 독사한테 물리면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여.

독사나 황금 덩어리는 조그만하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듯이, 정말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이 난 그 간절한 한 생각은 능히 무량겁(無量劫) 죄(罪)도 소멸할 수가 있고, 억겁(億劫)의 생사윤회(生死輪廻)도 끊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끔 이 십계(十戒)를 받고 따끔하게 이 연비(燃臂)를 받은 그 찰나에 여러분의 죄가 소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량억겁(無量億劫)의 생사윤회는 무엇으로부터서 원인(原因)한 것이냐 하면은 우리의 ‘한 생각’ 때문에 무량억겁의 생사윤회가 있는 것이고, 그동안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우리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생사윤회로부터 해탈을 하느냐?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사윤회를 하면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느냐?‘는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간절한 화두(話頭) 한 생각이 우리의 생사(生死)를 좌우하는 것이다 그거거든.

계를 지키면은 우선 우리의 양심(良心)이, 우리 사람 사람마다 다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어. 자성 ·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어. 자성의 부처님을 낱낱이 다 속에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양심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이여. 그 양심은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우리의 그 불성(佛性)에서 나오는 거여.
그래서 항상 계행(戒行)을 여법(如法)하게 지키면 양심과 서로 계합(契合)이 되기 때문에 마음에 항상 편안하고, 마음에 항상 떳떳하고, 마음에 항상 기쁨이 있는 것이여.

계율을 파하고—살생을 헌다던지, 도둑질을 헌다던지, 사음을 헌다던지, 이간질을 헌다던지, 거짓말을 헌다던지, 또 탐욕을 내고 진심을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자기 마음의 양심에 가책을 받아 가지고 항상 얼굴이 어둡고 떳떳하지를 못하며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 말이여.
마음이 어둡고 불편하면 얼굴도 어둡고, 눈도 거뭇 껌껌해진 것이다 그 말이여. 똑바로 남의 얼굴을 쳐다보지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마음이 바르지를 못하면 행동도 바르지를 못하고 밝지를 못하는 법이거든. 그러한 어둡고 바르지 못한 마음에서 어둡고 바르지 못한 행동이 나오고, 그러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안정을 얻지를 못하니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한들 일이 제대로 될 것이냐 그 말이여.
남에게 존경 받지 못할 것이고, 남에게 신용을 받지 못할 것이고,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를 못할 것이고,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하니,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존경 받지 못할 것이고, 어머니로서 존경 받지 못할 것이고, 아내로서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고, 남편으로서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이여.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전생에 지은 복이 있어서 잘산다 하더라도 남에게 존경 받지 못하면 어디다 쓸 것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세속에 사는 데 있어서도 이 계(戒)는 잘 가져야 할 것이고, 불자로서도 이 계는 잘 가져야 해. 계(戒)를 잘 가져야 그래야 정(定) 선정(禪定) 참선(參禪)을 올바르게 하고, 마음에 안정을 얻었기 때문에 참선을 하더라도 올바른 참선을 할 수가 있어. 참선을 올바르게 해야 지혜의 눈을 떠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할 것이다.
견성성불을 할려면은 선정을 닦아야 하고, 선정을 올바르게 할려면은 계행(戒行)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삼학(三學), 세 가지 배움이여. 경(經) · 율(律) · 론(論), 삼장(三藏)을 분석을 하면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으로 요약이 되는 것입니다.(처음~40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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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을 올바르게 하면 정(定)도 계(戒)도 제절로 다 그 가운데 갖추어지게 되느니라. 화두(話頭)를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한 사람이 어떻게 살생을 하며, 어떻게 도둑질을 하며, 어떻게 사음을 할 것인가. 그러니 참선 하나만을 올바르게 여법하게 잘 해 나가면 계는 지킬려고 안 해도 제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도 올바르게 참선을 해 나가시면 계는 그 가운데에 지켜져.
내가 계를—참선을 하지 아니하고, 최상승법을 믿지 아니하고—‘내가 계만을 청정하게 지켜야겄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파리 한 마리도 안 죽이고, 모기 한 마리도 안 죽이고, 그저 뭐 비린내 난 것도 안 먹고, 생선이고 뭐 고기 한 점도 먹지 않고 철저하게 아주 계를 지키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고 그렇게 실천을 하신 분이 스님 가운데도 있을 것이고, 신도 여러분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왕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계를 지킬 바에는 대승계(大乘戒)를 지켜야 하고, 최상승계(最上乘戒)를 지켜야 허겄더라.
형식으로 지키는 계(戒)는 그 잘 지킬려고 하는 그 마음은 참 갸륵하고 갸륵하나, 그러한 계는 계상(戒相)에 떨어지기 때문에 계상에 집착해 가지고 지킨 계는 기껏 지켜 봤자 천상(天上)에 태어나면 고작이여.

잘못해 가지고 길을 걸어가다가 벌레 한 마리를 밟아 죽였으면 ’아! 내가 살생을 안 할라고 했는데 저 살생을 했으니 내가 인자 어떻게 할까? 틀림없이 내생에 저 벌레가 나를 밟아 죽일 것이고, 저 벌레를 죽였으니 천상에 올라가기는 틀렸다‘ 이래 가지고 그것 한 마리 때문에 벌벌벌벌 떨고 불안초조해서 그런다면, 그러한 마음으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냐 그 말이여.

파리 모기 안 죽일려고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승화(昇華)시켜서 자꾸 화두를 들고 참선을 여법히 해 나가면, 모르는 가운데 혹 벌레가 밟혀 죽을 수도 있고, 농사를 짓다 보면 농약을 뿌리게 되고 수없는 벌레가 죽게 되고, 밥을 먹고 채소를 씻쳐서 국을 끓이다 보면 수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도 그 속에서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계상(戒相)에 집착해서 산다면 밥도 못 먹을 것이고, 국도 못 끓여 먹을 것이고, 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계를 지키라는 것이 아녀요.

물론 그 눈에 보일락말락한 그런 벌레도 그 생명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러한 생명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셨지마는, 부처님께서 그러한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그 뜻이 그 참뜻이 무엇이냐? 자비심(慈悲心)을 가져라 이거거든.
살생을 하면은 자비심을 손상하게 되니까 자비심을 함양을 해라. 항상 자비심으로 살아라. 자비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그 자비심을 가지라고 하는 그 참뜻을 우리가 깊이 명심을 해야지, 파리 한 마리 모기 한 마리에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그거여.


시라(sīla, 尸羅)가 불청정(不淸淨)하면—시라(sīla)는, 계(戒)를 인도 말로 시라(sīla)라 그러는데, ‘시라가 청정(淸淨)하지 못하면은 삼매(三昧)가 현전하지 못할 것이다. 삼매가 청정하지 못하면은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할 것이다’ 하셨어.

계(戒)로 인해서 바른 선정(禪定)을 얻을 수가 있고, 바른 선정을 인해서 지혜(智慧)를 얻는 것이다.

비유해서, 계(戒)는 그릇에다 비유하고, 계(戒)라고 하는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이라고 하는 물이 그 그릇에 온당하게 안정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 물이 온전하게 안정이 되어야 그 물에는 하늘에 떠 있는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날 것이다.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나게 하고자 하면은 선정(禪定)의 물이 맑고 조용해야 하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할라면은 계(戒)라고 하는 그릇이 온당해야 한다.

그래서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은 부득이해서 자상하게 설명을 하자니까 셋으로 노나서 말하는 것이지, 원래는 계(戒)와 정(定)과 혜(慧)는 하나요, 동시(同時)여.
바른 계(戒)를 지킬라면은 정(定)과 혜(慧)를 닦아야하고, 바른 정(定)을 얻을라면은 계(戒)와 바른 혜(慧)를 가져야 하고, 바른 혜(慧)를 얻을라면은 바른 정(定)과 바른 계(戒)가 밑받침이 되어야 얻어지는 것이다. 바로 붙이나 꺼꾸로 붙이나 동시여, 이 세 가지는 동시다.

이 계(戒) · 정(定) · 혜(慧)를 동시에 잘 닦을라면은 참선(參禪)을 잘해야 한다. 참선을 어떻게 하느냐?


<올바른 자세>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
물론 참선은 꼭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할 수 있어야 정말 참선을 제대로 하는 것이지. 그러나 기본자세(基本姿勢)라고 하는 것이 있어, 기본자세. 기본자세는 바로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여.

기본자세를, 시간과 장소가 허락하면 기본자세를 어쨌든지 철저하게 해 놓아야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어데서 무엇을 할 때라도 잘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기본자세를 항상 시간만 있으면 해야 하는 거여. 아침에 일어나서도 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한 시간씩, 한 시간이 부득이해서 못할 때에는 다문 30분이라도 하고, 30분을 할 수 없을 부득이한 때는 단 10분이라도 따악 하도록 아주 철저하게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 말이여.

그리고 낮에도 쉬는 시간, 항상 바른 자세를 가지고 의자에 앉더라도 바르게 앉고, 섰을 때에도 바르게 서고, 걸어갈 때에도 항상 바르게—꼬부리고 고개를 숙이고 걸어간다든지, 너무 뒤에로 요렇게 제치고 걸어간다든지, 좌우로 삐뚤어지게 이렇게—앉을 때 걸어갈 때도 역시 그런 거여.

자세(姿勢)를 바르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는 거여. 자세만 봐도 ‘아 저 사람이 인격자다, 아니다’ 또 ‘저 사람이 지금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느냐, 바르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느냐?’ 그런 것도 알 수가 있는 거여.
아무리 속에 지식이 들어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자세가 삐뚤어져 가지고 턱을 내고 입을 헤벌레하게 벌리고, 눈은 생선 눈처럼 그렇게 하고 있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존경할 수가 없어.
비록 속에는 별로 지식이 든 것이 없고 그렇지만 자세만 단정(端正)하니 이렇게 앉었어도 그 사람을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여. 특히 불법(佛法)을 믿는 불자(佛子)는 어디를 가나 어디서나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거여.


사리불(舍利弗)과 목련존자(目連尊者)는,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왼팔이고 좌면 제자(左面弟子)고, 사리불은 부처님의 오른팔 노릇을 한 수제자인데, 원래 사리불과 목련존자는 외도(外道)의 제자로서 백 명씩의 제자를 거느린 외도로서는 큰 사람이여.
큰 종장이였었는데 그 스승이 죽고, ‘우리가 바른 스승을 찾아가자’ 누구든지 먼저 바른 스승을 만나서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연락을 해 주기로 하고 계속해서 나름대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왕사성(王舍城)에를 들렸는데, 참 자세(姿勢)가 바르고 그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거룩해요.

그분[아설시(阿說示), Aśvajit, 마승(馬勝)]이 바로 이 오비구(五比丘) 중에 한 분이였었는데, 너무나 그 자세도 장부(丈夫)답고 흥건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눈매가 아주 바른, 아주 그 눈매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맑고 안정이 되고 한 모습이 너무너무 ‘야! 틀림없이 이분은 훌륭한 분이다, 이분은 과연 누굴까? 이분에 스승은 누굴까?’
그래 다가가 가지고 물어보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스승이란 말을 듣고 바로 그길로 따라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지혜의 눈을 얻었고 또 목련존자한테 알려서 같이 그 제자들 백 명씩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가서 제자랑 다 같이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부처님 왼팔—부처님께서 오비구(五比丘)를 제도하시고 머지않아서 삼가섭(三迦葉)을 제도하고 모다 그래 가지고 그 1,250인의 제자를 그렇게 얻어 가지고 그렇게 참 불법(佛法)을 펴셨는데, 그렇게 펴게 된 그 동기의 하나가 부처님의 그 오비구 중에 한 사람인 그분의 모습이 너무나 훌륭하고 거룩했기 때문에 사리불과 목련존자라고 하는 훌륭한 제자를 얻은 것이 그 한 원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속은 시커먼 도적(盜賊)의 마음을 가지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맑게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으로 바른 신심(信心)으로 정진을 해 나가면 자연히 자세가 바르게 되겠지만, 우선 우리 초학자(初學者)는 바르게 정진하는 법에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니 우선적으로 자세부터 바르게 함으로써 차츰차츰 바른 정진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세를 이렇게 바르게 하는 것은 너무 몸을 자지바지하니 뒤로 하고 목에다 힘을 주고 그러라는 것이 아니여. 바르게 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고, 목의 힘을 빼고, 우리 뭐 조끔 자기가 권리가 좀 있고 돈을 좀 벌면 ‘아주 목에다 힘준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러한 것은 자세를 바르게 한 것이 아니여.
단정(端正)하게 몸을 갖되 힘을 빼야 하거든.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고, 눈도 선명하게 평상(平常)으로 뜨되—눈알이 왔다갔다 눈이 깜빡깜빡깜빡하고, 눈알이 좌우로 전후좌우로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게 못쓰는 거여. 눈은 따악 안정이 되고, 그러니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거거든.


<올바른 호흡>

그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해. 숨은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는데, 단전호흡은—보통 우리는 가슴으로 호흡을 하지마는 단전으로 호흡을 해.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너무 터지도록 들어마시란 게 아니라, 8부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실 때는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까지 가도록 이렇게 눌러 대는 것이 아니고, 숨은 들어마시면 이 허파까지 밖에 안 들어가는 것이여. 안 들어가지만 의식적으로 배만 약간 볼록하게 만들면 되는 거여.
들어마신 호흡이 거까지 가도록 눌러 대면 못쓰는 거여. 그러면 여그 오목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나중에는 못쓰는 거여.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는 것이니까, 들어마신 호흡을 거까지 밀어넣을라고 하지 말고, 스르르르~ 하니 자연스럽게 들어마시되 배꼽 밑에 단전(丹田)만 약간 앞으로 볼록하게 나오게만 하는 거여. 그것을 잘 알으셔야 돼.
그래 가지고 8부쯤 들어마셨으면 잠깐 정지했다가 다시 또 숨을 내쉬되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만 하면 되어요.

그래서 들어마시면 차츰차츰차츰 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배가 나온다니까는 이만큼 나오도록 그렇게 맨들라고 하면 안 돼. 포태(胞胎)해서 열 달쯤 된 것처럼 그렇게 배를 맨들라는 게 아녀요. 조끔만 기분상으로만 조끔 볼록하게 하라는 거여. 그것을 착각하면 그 단전호흡을 하다가 병났다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기분상으로만 조끔 볼록하게 하고 약 2cm나 3cm만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2cm나 3cm만 조끔 홀쪽하게 맨드는 거여. 그래서 배가 나왔다 또 정지했다가 또 홀쪽했다 이거여. 그놈 따라서 숨이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게.

이것은 이 단전호흡이 대단히 건강에도 좋고, 피로 회복하는 데에도 좋고 또 뭐 신경을 너무 써서 열이 오르거나 혈압이 오르거나, 기운이 위로 오른 것을 내리는 데에도 대단히 좋은 것이여요.
또 학생들 공부하는 데에도 항상 공부 시작하기 전에도 하고, 공부하면서도 하고, 공부하고 나서 쉬는 시간에도 이것을 하면 대단히 좋은 것이여. 가정주부도 좋고 또 회사에 나가는 사람도 좋고, 운동선수도 이것을 하면 대단히 좋은 거여. 피로 회복이 되고 혈액 순환이 잘되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하니까 대단히 좋은 것이고.

그런데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 요가에서 하는 법도 있고, 신선도(神仙道)에서 하는 법도 있고, 또 사회에는 여러 가지 단전호흡법을 전문으로 가르키는 도장도 있고 합니다마는, 다 그 나름대로 장점이 다 있습니다.
몸에 특별한 병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도장에 나가서 그런 전문가한테 배워서 그 병을 나수는데 그런 호흡을 하는 것은 혹 가(可)커니와—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호흡법을 하다가는 언제 화두(話頭)를 드냐 그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분상(分上)에는 그러한 호흡법보다는 지끔 산승(山僧)이 말한 간단하고도 쉬운,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아무리 해도 아무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는 이런 간단하고도 쉬운, 계속해서 해도 조끔도 부담스럽지 않는 이러한 호흡법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말해도 알아들은 분은 알아듣지마는, 또 그걸 잘 못 알아들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은 이 테잎(tape), 녹음 테잎(錄音tape)이 있으니까 그 테이프를 구득(求得)을 해서 그래서 그걸 가지고 여러 번 들으면서 하면 호흡하는 법, 자세를 바르게 하는 법, 또 화두를 바르게 드는 법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의심>

화두는, 초학자(初學者)는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들어마실 때도 ‘이뭣고?’요, 머무를 때도 ‘이뭣고?’요, 내쉴 때도 ‘이뭣고?’ 항상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항상 끊어지지 않고 독로(獨露)해야 하지만, 초학자는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길게 이렇게 해보시라 그 말이여. 한결 화두가 잘 들어져.

처음에는 숨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하지만, 나중에 한 달 두 달 이렇게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뭐 ‘이뭣고?~’ 한 번 해 놓고, 호흡이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섯 번이고 몇 번 쉴 동안에도 ‘이뭣고?’ 한 번 해서 있는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을 관(觀)하면 되는 거여.
꼭 3년 10년을 두고도 계속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나중에 익숙해지면 아침에 ‘이뭣고?’ 한 번 딱! 든 화두로 하루 종일 그 화두만을, 알 수 없는 의심이 배꼽 밑에 단전(丹田)에 따~악 거기에 있도록 그렇게 관해 나가야 해.

관(觀)이라 하는 것은 그것도 일종에 생각인데, ‘생각 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생각 없는 생각, 생각하면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생각이 이렇게 이렇게 왔다갔다하는데 움직이는 것인데, 관(觀)은 움직임이 없는 생각, ‘이뭣고?’ 했을 때 전후좌우 앞뒤 생각이 다 끊어져 버리고 오직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따~악 있는 거여. ‘이뭣고?’ 한 뒤에 그 남은 그—그 생각이 앞뒷이 다 끊어졌거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독로하면 의단만을 따~악 관조(觀照)해야지, 의단이 있는 데다가 ‘이뭣고? 이뭣고?’ 하고 자꾸 덮치기로 하는 것이 아니여.

참 수백 번 들으셔서 잘 아시겠지만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이니까, 잘 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화두를 잘 들 수 있으면 그 속에 계(戒) · 정(定) · 혜(慧)도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고, 그 속에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모든 기초가 다 완성이 되는 것이여.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허고  난득양신가허과(難得良晨可虛過)리요
나무~아미타불~
무량겁래무차일(無量劫來無此日)허니  장부심지지임마(丈夫心志只恁麽)니라
나무~아미타불~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  난득양신가허과(難得良晨可虛過).
여러분께 권하노니 깊은 신심으로 이 묘한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의 화두(話頭)를 참(參)해서 얻기 어려운 이 감격스러운 이날을, 이 좋은 날을 어찌 헛되이 지내리요.

오늘 여러분은 계(戒)를 받고 또 최상승 활구참선의 화두(話頭)를 탔고 또 불명(佛名)을 타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은 무량억겁(無量億劫)의 죄가 소멸하는 날, 부처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난 날입니다. 오늘 이 시간과 같은 이 마음으로 앞으로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1초 1초를 그렇게 지내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량겁래(無量劫來)로부터 오면서 어찌 오늘날과 같은 날이 그렇게 흔했겠습니까. 물론 과거에도 이러한 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또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우리 사부대중이 같이 만났을 것입니다마는, 이런 날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이날에 이 마음이 바로 장부(丈夫)의 마음입니다. 비록 여자분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이 시간을 기해서 여러분도 장부가 되었습니다. 최상승법을 믿고, 계를 받고, 화두를 타고, 불명을 받게 되었으니, 거기에는 남녀상(男女相)이 없어.
이름하여 그것을 대장부(大丈夫)라 하느니, 불자(佛子)로서의 대장부 해탈장부(解脫丈夫)가 되었으니 영겁을 두고 우리는 대장부로서 생사요달(生死了達)을 하고, 생사요달한 장부로서 일체중생을 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입니다. 백중날은 인도 범어(梵語)로 우란분(盂蘭盆)이라 하는데, 우란분은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구도현(救倒懸), 꺼꾸로 매달려서 고를 받는 고통을 구제한다’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저 아귀도(餓鬼道)에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내일은 그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는 날이다. 지옥문이 활짝 열려서 그 고통을 쉬는 날이다.

그 유래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 아까 말씀드린 목련존자(目連尊者), 목련존자는 신통제일(神通第一)인데, 그 신통제일인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생전에 지은 죄로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어. 목련존자가 신통을 얻어 가지고 어머니 계신 곳을 살펴보니 아귀도에서 그 배고프고 목마른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어.

그래서 자기 신통술로 그것을 아무리 그 아귀도에 가 가지고 시원한 물을 드려도 불로 변해 가지고 목이 훨훨 타고, 밥을 갖다가 드려도 목이 콱 맺혀서 불이 나 가지고 더 고통을 받어. 도저히 자기 신통으로도 다 하지 못하니까 부처님께 여쭈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 그 모친을 구제(救濟)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너의 신통술로도 안 되는 것이다. 백중날 모든 대중이 해제(解制)를 할 때에 그 대중은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수행을 해서 다 도심(道心)이 맑고 청정해졌으니 부처님과 그 대중들께 대중공양(大衆供養)으로 백 가지 과일과 맛있는 음식으로 대중공양을 올리면 그 대중스님네 공양을 올린 공덕(功德)으로 너의 어머니가 그 아귀도에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것이다“

그래 가지고 목련존자는 그길로 가서 탁발(托鉢)을 해 가지고 많은 음식과 과일을 마련을 해 가지고 부처님과 대중께 백중날 대중공양을 올려 가지고 그 어머니를 그 고통으로부터 제도(濟度)를 했습니다.
그 뒤로 해마다 백중날은 그렇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대중공양을 올리고 또 그 남은 음식을 선망부모(先亡父母)에게 하는, 그런 부모를 천도(薦度)하는 그런 의식이 오늘날까지도 주욱 내려오고 있습니다.

요새 잘 모르는 분들은 ‘선망부모를 천도한다’ 해 가지고, 부처님께는 소홀히 올리고 대중스님께는 공양을 별로 안 올리고, 영단(靈壇)에다만 이렇게 쌓아 올린다. 그건 백중날의 그 근본 뜻을 잘 모르면은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영단에도 올린 것도 좋지마는, 어쨌든지 부처님과 대중공양에 더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정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는 지옥고와 아귀도 온갖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법당(法堂) 가득히 이렇게 오시고 내일은 이 핑계 저 핑계하고 혹 안 오실라고 하신 분이 있을란가 모르지만, 정말 내일은 선망부모(先亡父母), 그 선망부모가 아니면 오늘날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까?
내일, 물론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다 모셨을 것이고 안 모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선망부모는 백중날 ‘어느 자손이 나를 천도해 줄 것인가?’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친구 따라서 와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자손들이 와 있는데 내 아들 딸 며느리는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정성으로 그분도 역시 부처님의 가피(加被)와 스님네의 정진하신 그 정진력과 신심으로 그분도 좀 얻어 잡숫기는 하겠지만 얼마나 속으로 섭섭하시겠느냐 그 말이여.
그러니 오늘 오신 분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또 여러분의 가족이나 일가친척 사돈네까지라도 여기 뭐 준비할 것 걱정하시지 말고 어쩠든지 많이 오셔서 모다 참석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불명(佛名)은 이 법요식(法要式)이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 노나 드릴 테니 신청만 해 놓고 안 찾아가시면 그것이 이렇게 쌓이게 되니까 반드시 그 불명을 찾아가시기를 부탁을 하고, 그전에 신청을 해 놓고 안 가져가신 분도 다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흑운재기홀문뢰(黑雲才起忽聞雷)허고  백우시종야외래(白雨時從野外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위행인세염열(似爲行人洗炎熱)하고  우종귀로정진애(又從歸路淨塵埃)니라
나무~아미타불~

흑운재기홀문뢰(黑雲才起忽聞雷)하고, 먹구름이 일어나 문득 우뢰가 천하에 진동하고,
백우시종야외래(白雨時從野外來)라. 작달비 같은 비가 들로부터서 몰려오는구나.

사위행인세염열(似爲行人洗炎熱)하고  우종귀로정진애(又從歸路淨塵埃)라.
길 가는 나그네는 그 비를 맞고 그 더웁고 피로한 것을 비로 인해서 깨끗이 식혀 버리고, 돌아가는 길이 깨끗하게 씻어져서 문지(먼지)도 안 나고 좋구나.

지끔 온 세상은 이렇게 먹구름이 일고 우뢰가 치는 거와 같습니다. 세계 도처에는 온갖 무서운 무기를 장만하고 그것을 국경에다가 모다 하고 이웃나라를 침범하고 사람이 죽고, 지금 우리나라도 삼팔선(三八線) 모다 뭐 양쪽 뭐 총리 회의가 있다고 모다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여전히 무력(武力) 대치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걱정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우리 국내에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온갖 일이 마치 먹구름이 일고, 모다 폭풍우가 일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을 나쁘게 보면 잠을 못 잘 지경이고 그렇지만, 우리 불법(佛法)을 믿고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꼭 어둡게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고, 적극적(積極的)으로, 대승적(大乘的)으로, 최상승적(最上乘的)으로 그것을 보고 그것을 그렇게 우리가 상대해 나가야 겄더라.

‘먹구름이 일라면 일어라. 뇌성벽력이 일어날라면 일어나라. 작달비가 쏟아질라면 쏟아져라’ 더위를 식히는 것으로 우리는...
그럴 때에 우리는 신심(信心)을 가다듬고 인과법(因果法)을 믿고 우리의 자성을 갖다가 반성하고 그래 가지고 더 무상(無常)을 깨닫고 신심을 더 돈독히 해서 정진을 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비심(慈悲心)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서 우리의 앞길은 보다 더 밝게 열려 나갈 것이고, 집안도 보다 더 행복하게 나갈 것이고, 사회 · 국가 · 세계도 평화의 방향으로 열려 나갈 것입니다. (40분18초~1시간20분33초) (끝)





[법문 내용]

육사청(六師請) / (게송) 방초삼춘우(芳草三春雨)~ / 화두·불명·십선계 법회 / 계(戒)라고 하는 것은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우리 불자(佛子)의 목적지에 가는 안전하고, 빠른 길 / 십선계(十善戒) / 제 생각만 옳다고 하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면 이것도 탐욕심 / 대승계(大乘戒).

연비(燃臂)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무량억겁(無量億劫) 죄가 다 소멸 / 나선 비구의 ‘배에다 큰 돌을 싣는’ 비유 / 생사윤회의 원인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 계(戒)로 인해서 바른 선정(禪定)을 얻을 수가 있고, 바른 선정을 인해서 지혜(智慧)를 얻는 것이다 / 계(戒) · 정(定) · 혜(慧)를 동시에 잘 닦을라면은 참선(參禪)을 잘해야 한다.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화두 의심>을 잘하면 그 속에 계(戒) · 정(定) · 혜(慧)도 다 갖추어져 있고, 그 속에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모든 기초가 다 완성이 되는 것이다.

(게송)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 /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지옥고와 아귀도 온갖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는 날 / (게송) 흑운재기홀문뢰(黑雲才起忽聞雷)~ / 모든 어둡고 걱정스러운 일을 참선 수행인은 적극적(積極的)으로, 대승적(大乘的)으로, 최상승적(最上乘的)으로 그것을 보고 상대해 나가야 겄더라.


계(戒)라고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여. 마땅히 가야 할 길이여. 목적지를 향해서 반드시 좋은 길을 택해서 가야 안전하고, 그리고 빠르게, 그리고 바르게 갈 수가 있고 그래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여.

우리 불자(佛子)의 갈 목적이 무엇인가?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자성(自性)을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거든. 그럴려면은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할려면은 계(戒)를 가져야겄더라.

마음으로 인과를 안 믿는 사람, 이것은 바로 불법(佛法)을 믿는 불자로서는 가장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여.

우리 불자(佛子)에게 해당되는 이 탐심은 비단 그러한 남의 물건을 탐심을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거여. 이것은 참 무서운 탐욕이여.

구경(究竟)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공부하다가 어떤 조끔 마음이 고요하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공안(公案)에 대해서 짐작한 바가 있으면 그것을 구경(究竟)에 깨달음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 소견을 꽈악 속에다 오그려 쥐고 자기의 속 살림을 해 나가는 거, 이런 것도 탐욕이여.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을 들어보면 자기가 그러한 얻은 소견(所見)이 분명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줄 알건마는, 그래도 자기가 자기 나름대로 애써서 얻은 소견이라 해 가지고 그것에 대한 탐욕심을 내 가지고 따악 오그려 쥐고 있으면 그것도 못쓰는 거거든.
참으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 여지없이 그러한 소견을 버려 버려야 돼. 그래 가지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순수(純粹) · 무구(無垢)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나가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여.

십선계만 지켜 나간다면 이 아무리 지금 말세(末世)라고 하지만 온 세계가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될 것이고, 온 세계가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할 것입니다. 온 세계가 그렇게 되기를 우리는 바래지만, 그렇게 되기를 진실하게 원한다면 우리 불자부터 이것을 실천해 나가자.
그래서 오늘 전강 조실 스님 계실 때도 항상 이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설하셨고 또 오늘도 이 대승십선계를 이렇게 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비(燃臂)를 받은 뜻은 무량겁으로부터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다 참회한 것입니다. 연비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무량억겁(無量億劫) 죄가 다 소멸이 되고, 이제 금방 갓난애기처럼 몸과 마음이 청정해졌어.
앞으로 죄를 짓지만 아니하고, 이제부터 받은 화두(話頭)를 가지고 열심히 정진해 가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량억겁(無量億劫)의 생사윤회는 무엇으로부터서 원인(原因)한 것이냐 하면은 우리의 ‘한 생각’ 때문에 무량억겁의 생사윤회가 있는 것이고, 그동안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우리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생사윤회로부터 해탈을 하느냐?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사윤회를 하면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느냐?‘는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간절한 화두(話頭) 한 생각이 우리의 생사(生死)를 좌우하는 것이다.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참선을 올바르게 하면 정(定)도 계(戒)도 제절로 다 그 가운데 갖추어지게 되느니라. 화두(話頭)를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한 사람이 어떻게 살생을 하며, 어떻게 도둑질을 하며, 어떻게 사음을 할 것인가. 그러니 참선 하나만을 올바르게 여법하게 잘 해 나가면 계는 지킬려고 안 해도 제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戒)는 그릇에다 비유하고, 계(戒)라고 하는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이라고 하는 물이 그 그릇에 온당하게 안정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 물이 온전하게 안정이 되어야 그 물에는 하늘에 떠 있는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날 것이다.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나게 하고자 하면은 선정(禪定)의 물이 맑고 조용해야 하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할라면은 계(戒)라고 하는 그릇이 온당해야 한다.

그래서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은 부득이해서 자상하게 설명을 하자니까 셋으로 노나서 말하는 것이지, 원래는 계(戒)와 정(定)과 혜(慧)는 하나요, 동시(同時)여.
바른 계(戒)를 지킬라면은 정(定)과 혜(慧)를 닦아야하고, 바른 정(定)을 얻을라면은 계(戒)와 바른 혜(慧)를 가져야 하고, 바른 혜(慧)를 얻을라면은 바른 정(定)과 바른 계(戒)가 밑받침이 되어야 얻어지는 것이다. 바로 붙이나 꺼꾸로 붙이나 동시여, 이 세 가지는 동시다.
이 계(戒) · 정(定) · 혜(慧)를 동시에 잘 닦을라면은 참선(參禪)을 잘해야 한다

가부좌나 반가부좌, 기본자세를 시간과 장소가 허락하면 어쨌든지 철저하게 해 놓아야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어데서 무엇을 할 때라도 잘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기본자세를 항상 시간만 있으면 해야 하는 거여. 아침에 일어나서도 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한 시간씩, 한 시간이 부득이해서 못할 때에는 다문 30분이라도 하고, 30분을 할 수 없을 부득이한 때는 단 10분이라도 따악 하도록 아주 철저하게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날입니다. 백중날은 인도 범어(梵語)로 우란분(盂蘭盆)이라 하는데, 우란분은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구도현(救倒懸), 꺼꾸로 매달려서 고를 받는 고통을 구제한다’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저 아귀도(餓鬼道)에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내일은 그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는 날이다. 지옥문이 활짝 열려서 그 고통을 쉬는 날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21. 2. 5. 19:26

 

 

(No.411)—1990년 동안거 해제(90.02.10) (45분)

 

(1/3) 약 20분.

 

(2/3) 약 15분.

 

(3/3) 약 10분.


(1/3)----------------

유락천애기도왕(流落天涯幾度往)하고  아인산하기회환(我人山下幾回還)고
나무~아미타불~
은애하중홀봉사(恩愛河中忽逢師)하야  답득상락고향로(踏得常樂故鄕路)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락천애기도왕(流落天涯幾度往)하고  아인산상(我人山上)에 기회환(幾回還)고.
저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한 생각 법왕(法王)을 어긴 죄(罪)로 끝없는 하늘가에 떨어져 나와 가지고 몇 번이나 돌아쳤으며,
아인산하(我人山下)에, 아상(我相) 인상(人相)의 그 높고 높은 산 아래로 몇 번이나 돌아왔던가.

은애하중홀봉사(恩愛河中忽逢師)하고, 사랑하고, 부모자식 간에 사랑하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받는 깊고 깊은 그 강 가운데에 유랑(流浪), 떠돌아다니다가 문듯 스승을 만났어.
그 스승을 만난 그 덕으로, 답득상락고향로(踏得常樂故鄕路)다. 생사(生死) 없는 상락(常樂)에 고향(故鄕) 길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밟게 되었구나.


오늘 경오년(庚午年) 정월(正月) 대보름날, 삼동안거(三冬安居) 회향 해제일과 백일기도 회향일을 맞이해서, 용화선원 대중과 또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또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 대중, 저 의정부 회룡사 선원 대중, 그리고 전주 위봉사 대중들, 기타 저 목포 · 여수 · 광주, 원근 경향(京鄕) 각지(各地)에서 이렇게 해제(解制) 법요식(法要式)을 기해서 이렇게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방금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지난 갑인년(甲寅年) 정월 보름 해제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敬聽)을 했습니다마는,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다가 숙세(宿世)의 인연(因緣)으로 우리가 금생에 다시 이 자아를 자각(自覺)하는, 내가 나의 자성(自性)을 깨닫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는 정법(正法)을 만났습니다.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이 최상법(最上法)을 만났으니, 그 인연만 하더라도 그 경행(慶幸)하기가 한량(限量)이 없으나, 기왕 이러한 불법을 만났을진대는 정말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겄더라.

한 철, 두 철 내지 세 철,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소견(所見)이 날 수가 있습니다.
5년 10년을 해도 꽉! 맥혀서 오직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있을 뿐, 전혀 소견(所見)이 안 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무엇인가 소견이 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5년 10년 해도 소견이 안 난 사람은 공부를 잘 못하고, 한 철 두 철 해서 무엇인가 그 소견이 나면 그것이 좋으냐 하면 그것이 아니여.
'10년 30년을 해도 꽉 맥혀서 소견이 안 나도 공부를 옳게 해 간 사람은 그 사람은 바르게 공부를 한 거고, 한 철 두 철에 무슨 소견이 났으되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라면 차라리 안 나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달포 전에 어떤 젊은 수좌(首座)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 수좌는 여기서 행자노릇도 하던 사람인데, 어디 가서 중이 되어 가지고 선방(禪房)에도 다니고 여기도 와서도 한 철 지내고 그러던 사람인데, 중간에 쪼끄만한 토굴살이를 하다가, 토굴에 들어가서 정진을 하다가 연탄 불인지, 무슨 숯불인지 피워 놓고 그 가스에 중독이 되어 가지고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는데, 깨고 보니 '깨달랐다'고.
와서 '공안(公案)을 물으라?' 했습니다.

정진(精進)을 알뜰히 해서 소견(所見)이 났다면 당연히 참 물어볼 만도 하고, 또 바른 소견이 났다면은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면은 우리 이 문중에서,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얼마나 환희(歡喜) 스럽고 얼마나 경행(慶幸)한 일이겠습니까.
'가스에 중독되어서 일어나서 보니 뭐 소견이 났다' 그러니, 물어볼 가치도 없고. 하도 기가 차서.
가스 중독해서 죽었다가 깨어나서 소견이 났다면 선방에다 연탄불 잔뜩 피워 놓면 그보다 더 좋을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진을 하다가 한 철 두 철 알뜰히 하면 무엇인가 무슨 공안도 이를 것 같고, 공안을 보면은 환희 막힘이 없고, 자기 나름대로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진공(眞空)의 이치(理致), 공(空) 도리, 공의 이치를—일체(一切)가 다 공(空)하고, 돌이나 나무나 그 나름대로 '내가 돌이다' 하는 생각이 없으니 그것이 공(空)한 것이고, 저 해도 '내가 해다' 하는 생각이 없으니 그 해는 해 그대로 그 자체가 공(空)한 것이다.
부처나 중생(衆生)이 둘이 아니고, 사람과 축생이 둘이 아니고, 악(惡)과 선(善)이 둘이 아니요, 밤과 낮이 둘이 아니요, 일체가 다 둘이 아닌 이것이 바로 공(空)이 아니고 무엇이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일러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입니다"

"조주(趙州) 무자(無字)를 일러라"
"무(無)"

'무엇이든지 바로 그 자리에서 그놈이 공(空)했으니 거기에 무슨 딴 답(答)이 있을 것이냐' 이래 가지고 무슨 공안(公案)이든지 그렇게 이르기로 하면 천칠백(千七百) 공안이 무엇이 맥힐 것이 있으며, 참구(參究)할 것이 무엇이 더 있느냐?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오면, "참, 공부를 애써서 하다 보면은 그런 소견이 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러한 것을 가지고 본인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했다고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여. 착각이니, 정말 현중현(玄中玄) 도리(道理), 현중현 도리를 바로 봐야지 그런 공(空) 도리, 체중현(體中玄) 도리, 그것 가지고서는 도저히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초견성을 했느니, 한 소식을 했느니' 이러한 스스로 그런 착각 속에 집을 짓고 앉었고, 꺼뜻하면은 다른 도반이나 신도들한테 자기는 '초견성을 했다'고 이런 소리하고.
이러한 착각 속에 집을 짓고 살림을 해 간 사람은 그 사람은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그런 소견을 가지고 있는 한(限)은 바른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서장(書狀)』을 배우신 분은 다 아시겠지마는, 증시랑(曾侍郞)이 대혜선사(大慧禪師)한테 묻는 편지(便紙)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선지식(善知識)에 참(參)해 가지고 이 참선법(參禪法)을 들었는데, 이십에 결혼을 하고 또 벼슬을 하는 중에 이 공부를 철저하게 하지를 못하고 그럭저럭 이렇게 늙었습니다. 아직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참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입지(立志), 뜻을 세우고 기어코 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해야겠다고 하는 이 발원(發願)은 실로 그럭저럭한 생각이 아니고, 깨닫지 못하면 말려니와 깨달았다 하면은 바로 고인친증처(古人親證處)에 이르러야만 휴헐지지(休歇之地)를, 큰 휴헐지지를 삼을까 하나이다.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삼을까 하나이다' 이러한, 그 편지 가운데에 이런 마디가 있습니다.

'깨닫지 못했으면 말려니와, 차라리 깨닫지 못했으면 말려니와, 깨달았다 하면은 바로 구경각(究竟覺)을 얻어서 불조(佛祖)와 같은 경지(境地)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저는 깨달음을 삼지 않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입니다.

증시랑(曾侍郞)은 속가(俗家)에 선비요, 벼슬아치로서 이렇게 철저한 발원(發願)을 했습니다.
하물며 정법(正法)을 믿는 납자(衲子)가, 최상승(最上乘)을 믿는 불자(佛子)로서 정진하다가 잠깐 무슨 소견(所見) 난 거, 공안(公案)을 바로 보지도 못하고 구경(究竟)의 깨달음도 얻지 못한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어찌 '초견성'이니, '한소식'이니 하고 '알았다'는 생각을 속에 둘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은 사람은 결단코 이러한 조그만한 소견을 가지고 살림을 삼어서 되겠습니까?

『금강경(金剛經)』에도,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이나 아나함(阿那含)이나 소승사과(小乘四果) 중에 최고의 지위(地位)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했다 하더라도 '내가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또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미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에 떨어진 것이라, 어찌 그것이 참 아라한(阿羅漢)이겠느냐. 어찌 그것을 참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가를 하겠느냐.

실지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하더라도 '내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될 텐데, 하물며 바른 깨달음을 얻지도 못하고 정진하다가 슬쩍 지내가는 지나쳐 버리는 그러한 일시적(一時的)인 소견을 어찌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일 것이냐 그 말이거든.
우리가 얻지도 못한 것을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남에게 자랑하고, 증(證)하지도 못한 것을 '증했다'고 스스로 착각을 하고 남에게 뽐낸다면, 어찌 그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목표로 하고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원만(覺圓滿)을 목표로 하는 정법학자(正法學者)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온통 사기로써 업(業)을 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불법문중에서, 이 최상승(最上乘) 정법문중(正法門中)에 학자(學者)는 결단코 자기를 속이지 말 것이며, 불조를 속이지 말 것이며, 중생을 속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어떠한 소견이, 설사 자기도 기약하지 못한 가운데에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부정(否定)을 해 버리고 언제나 백지(白紙)의 초학자(初學者)의 입장에서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을 해 가야 할 것입니다.(처음~19분40초)


 



(2/3)----------------

청정법신무내외(淸淨法身無內外)하고  거래생사일진상(去來生死一眞常)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단능일념귀무렴(但能一念歸無念)하면  고보비로정상행(高步毘盧頂上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청정법신무내외(淸淨法身無內外)요, 청정법신(淸淨法身)에는 안과 밖이 없고,
거래생사(去來生死)가 일진상(一眞常)이다. 가고 오고, 생(生)하고 사(死)하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또 죽어가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는 이 거래생사(去來生死)가 일(一) 진상(眞常)이여, 한 참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진리(眞理)다.

단능일념귀무렴(但能一念歸無念)하면, 다만 능히 한 생각이 생각 없는 데에 돌아가면,
고보비로정상행(高步毘盧頂上行)이다. 높이 비로정상(毘盧頂上)을 걸어가는 것이다.

'한 생각이 생각 없는 데에 돌아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들어보면, '일념(一念)이 무념(無念)하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요, 불생(不生)이 곧 해탈(解脫)이요, 그 해탈(解脫)이 곧 열반(涅槃)이다' 경전(經典)에는 다 그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무념(無念)이 불생(不生)이요, 불생이 무심(無心)이요, 무심이 해탈(解脫)이다' 말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 무념(無念)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번뇌(煩惱)도 없고 아무 생각이 없이 고대로 무기(無記) 속에 요렇게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 내가 지금...' 흔히 한참 동안 멍청하게 시간 가는 중 모르고,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중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한참 그렇게 그런 경지에 있다가 나와서 '삼매(三昧)에 들었다가 나왔다'고 보통 그렇게 얘기들 합니다.
그런데 그 '삼매(三昧 samādhi)'를 한문으로 번역을 하면 '정(定)'인데, 그 정(定)도 '사정(邪定)'과 '정정(正定)'이 있어서, 중생이 아무 생각 없이 멍청허게 정(定)에 들어간 그런 것은 다 사정(邪定)이거든.

뱀 같은 거, 구랭이 같은 것도 가을에 개구리 잔뜩 잡아먹고, 초겨울에 잡아먹고 그리고 굴속에 들어가서 삼동내 물 한 방울 안 먹고, 개구리 한 마리, 쥐 한 마리 안 잡아먹고 고대로 삼동(三冬)을 지냈다가 그 이듬해 해동(解冬)이 되고 경첩이 지나고 그러면은 그 속에서 땅속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그것이 삼동내 아무것도 안 먹고, 물 한 모금도 안 먹고 가만 있다 나오니까 그것이 '삼매(三昧)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꺼떡하면 혼침(昏沈)에 빠져서 있다 나와 가지고 '삼매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그러한 착각을 합니다.

무념(無念).
삼세육추(三細六麤), 세 가지 미세한 생각과 여섯 가지 머트러운 생각이 다 끊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에 잠기는 것이고, 그 근본무명을 타파(打破)해야 자기(自己)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그 학자가 바른 소견을, 바른 깨달음을 얻었나 안 얻었나를 점검(點檢)하는 데에 조사(祖師)들이 사용을 했지마는, 우리 학자(學者)는 선지식으로부터 그 공안 하나를 간택 받아 가지고 그놈을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쓰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그걸 참구(參究)를 해 가는 것입니다.
해 갈수록 알 수 없어야지, 무엇이 알아지고, 말 길이 있고, 이치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이 그렇게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알 수 없어!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어야 그 공부가 옳게 해 가는 것이지, '이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저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아!' 이렇게 해서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면 그건 미륵불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따져도 참 깨달음에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여수에서 여까지 와서 화두(話頭)를 타려고 여러분이 오셨는데, 또 앞으로 선방(禪房)에 가기 위해서 또 화두를 타려고 온 수좌(首座)도 있는데, 개별적으로 화두를 일러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법상(法床)에 올라온 김에 새로 화두를 타려고 하는 분, 또 화두를 타서 하되 아직도 어떻게 화두를 참구해야 옳게 한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치 못한 분을 위해서 간단히 화두 참구(參究)하는 법을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엇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인고?' 그래서 '이 무엇고?' 이렇게 하다가,

'지금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이렇게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구쳐 나가.
그러다 나중에 가서는, '이-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도 더 다구쳐 가는 것입니다.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심뿐이여!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화두에 핵심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런가, 저런가' 따지는 의심이 아니라,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꽉! 맥힌 의심이라야 되거든.

이렇게만 말해도 벌써 알아듣는 분은 알아듣지만,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또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의 그 녹음법문(錄音法門), 녹음 테이프를 구해 가지고 가셔서 10번, 20번, 백 번, 천 번을 들으면서 자꾸 하다 보면 올바르게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일체 화두를 자꾸 들어도, 들고 있으면서도 온갖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일어나거든. 일어나되, 그 일어난다고 성화도 대지 말고, 짜증도 내지 말고, 그놈을 쫓아내려고 하지도 말고, 못 일어나게 할 것도 없어.
그냥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그냥 놔둔 채, '이 뭣고?' 하고 화두만 한번 더 추켜들면 되는 것이여. 그것이 번뇌와 망상을 물리치는 묘방(妙方)이여.
그 번뇌(煩惱)가 일어나면은 '그놈이 또 일어난다'고 성화를 대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그놈을 떨쳐 버리려고 몸부림을 치신 분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여. 그냥 놔둬 뭐. 놔 두고 '이 뭣고?' 화두(話頭)만 딱! 챙겨 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그놈이 어디서 일어나 간데.

내나 자성(自性)자리에서 그놈이 일어나거든. 그 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번뇌의 파도가 일어난 것이니까, 그냥 놔둬 버리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고, 화두를 들어버리면은 저절로 없어질 것을, 그놈을 없애려고 생각을 내니까, 없애려고 하는 그 또 한 새로운 망상(妄想)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 뭣고?'
자꾸 놓치면은 또 '이 뭣고?' 딴생각[別念]이 일어나도 또 '이 뭣고?'
'이 뭣고?' 만 챙겨버리면 그만인 거거던.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일구월심(日久月深) 그렇게 해 나가면 차츰차츰 번뇌 망상은 줄어지고 화두를 드는 시간이 많아져. 나중에는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질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아! 인자 공부가 잘되는구나. 아! 이것이 바로 무심(無心), 무념(無念)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내면, 그것이 벌써 무념(無念)이 아니고 벌써 망상(妄想)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말이여.
지지리 애써서 공부해서 공부가 좀 익숙해질만 하면은, '하! 참 좋다. 툭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내면 천길만길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일으켜서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애석하고 어리석은 짓이 어디가 있겠느냐' 이 말씀이여.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무심(無心). 무심도 오히려 벌써 무심(無心)이라고 할 때 천만리(千萬里) 멀리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

공안(公案)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아맞히는 그런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다못 꽉 맥힌 의심으로 정말 실(實)답게 참구(參究)해 나가고, 실(實)답게 정진(精進)을 해 나간 데에서 어떠한 찰나에 탁! 터지는 것이지, 정진하면서 그 공안을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렇게 따지면 맞을랑가, 저렇게 일르면 될랑가?' 이렇게 따져 가지고 공안을 보는 것이 아니야.
절대로 그렇게 해서... 그것은 알아지는 것이지, 알아진 것이 어찌...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진 것이 어찌 그것이 참 깨달음이 될 수가 있느냐 그거거든.(19분42초~34분28초)

 





(3/3)----------------

처음에는 생사 없는 도리를 믿다가—우리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꼭!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한 것이다 그 말이여.

생사 없는 도리가 있는 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참선(參禪)을 하지도 않을 것이여. 경(經)이나 보고, 염불(念佛)이나 하고, 주력(呪力)이나 하고 그러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있다고 한 것을 믿지 못한 사람은 참선 안 합니다. 아무리 참선이 제일이라고 해도 절대로 하질 않습니다.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정진을 하려고 애를 쓰고, 참선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믿기 까지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마는, 일단 믿었을진대는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하거던. 여법(如法)하게 해야 하거던.
큰 깨달음으로써 기약을 삼어야지, 조끔 뭔 소견난 거 그런 것은 챙피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누구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없었던 걸로 여겨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알뜰히 해 나가다 보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아.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랐다고 해서 그 공부가 거기서 다 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에 의지해서 오후(悟後)에 정말 참다운 보림(保任) 공부가 있는 것이여. 그것이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精進)을 한 것이여.

그렇게 해서 3년, 10년, 20년 하다 보면, 생사 없는 도리를 증(證)하게 되아. 증(證)해야만 다시는 퇴전(退轉)을 않는 것이여.
증(證)한 다음에 거기서 공부가 또 끝나냐 하면은 끝난 것이 아니라 용무생사(用無生死)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써야 하는 거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써야 그것이 참 '깨달랐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 겨우 조끔 공부하다가 스쳐가는 그러한 경계를 가지고 '깨달랐다'고 착각하고, 또 공안을 깨달랐다고 해서 그것으로서 공부가 다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야 어찌 되겄습니까.

하물며 공안을 타파하지도 못하고, 생사 없는 도리를 바로 깨닫지도 못하고서, 함부래 스스로 착각하고 남에게 입을 함부로 벌린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망하고, 불법(佛法)을 망하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눈을 멀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해제날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 한마디, 한 구절 만 들어도, 한 편 만을 들어도 해제 법문은 그것으로써 충분합니다마는, 이렇게 여러 선원(禪院)에서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모였으니 도반을 위해서 제가 이러한 노바심(老婆心)으로 이런 말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앞으로 큰 깨달음을 얻어야만 할, 또 틀림없이 얻게 될 여러 도반들을 위해서 정말 눈물을 머금고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르게만 해 가면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것인데, 조그마한 그런 스쳐가는 소견을 가지고 '알았다'는 생각을 가짐으로 해서 공부가 거기서 사견(邪見)에 빠지고, 중도에서 중단되게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하게 된 것을 정말 가슴 깊이 명심(銘心)해 주기를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화소산전누천기(花笑山前漏天機)허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하야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누천기(花笑山前漏天機)요, 꽃이 피니, 꽃이 산전(山前)에, 산 앞에 활짝 피어 웃으니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함이요.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다. 새가 숲 밖에서 노래하니 무생법(無生法)을 설(說)함이로다.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여, 꽃이 웃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 낱낱이 스스로 다 무궁(無窮)한 뜻을 가지고 있으니,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다. 그 무궁한 뜻을 바로 봐 버리면, 어디를 가나 무엇을 보나 근본도리(根本道理) 아님이 없도다. 이런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

바로 깨닫고 보면 무엇이 부처님이 아니며, 무엇이 부처님의 법(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지 못하고 자기의 면목(面目)을 바로 보지 못했으니,

꽃을 봐도 '이 뭣고?'요,
새 우는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요,
차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요,
산을 봐도 '이 뭣고?'요,
물을 흐르는 것을 봐도 알 수 없는 '이 뭣고?' 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만 나간다면 그 올바르게,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알뜰히만 공부를 지어 간다면 결정코 조사(祖師) 스님들이 우리를 속이지 안 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운집하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을 위해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와 용무생사(用無生死)에 구경(究竟)에 이를 때까지는, 어떠한 소견(所見)이 나더라도 스스로 부정해 버리고, 정말 알뜰히 정진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강조에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34분35초~44분4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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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유락천애기도왕(流落天涯幾度往)~' ; 『금강경오가해』 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因小利養 捨父逃逝 流落天涯 幾度往返我人山下 幾度出沒恩愛河中 忽逢良友 指示 踏得常樂家鄕 始知昔年生死路 虛送百千閑日月

 

작은 이익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도망가서 하늘가를 떠도니, 몇 번이나 아상(我相) 인상(人相)의 산하(山下)를 오고갔으며, 몇 번이나 은혜(恩惠)와 애욕(愛欲)의 강물 속에 출몰(出沒)했던가.

홀연히 좋은 친구의 가리킴[指示]을 만나서 즐거운(생사 없는) (마음의) 고향을 밟으니, 비로소 옛날 생사의 길에서 오랜 동안 허송세월했음을 알겠음이로다.

*법왕(法王) : [산스크리트어]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어] dharma, [팔리어]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유랑(流浪 흐를·떠돌 류/물결·떠돌아다닐 랑) ; 일정(一定)한 거처가(목적이) 없이 떠돌아다님. 정처(定處) 없이 떠돌아다님.

*상락(常樂) ; 상락아정(常樂我淨).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상/즐거울 락/나 아/청정할 정)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의 네 가지 덕(德). 『열반경(涅槃經)』에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상(常)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안락(無爲安樂)하므로 낙(樂)이고, 망집(妄執)의 아(我)를 여의고 8대자재(八大自在)가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아(我)이고, 번뇌의 더러움을 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정(淨)이다.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경오년(庚午年) ; 1990년.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갑인년(甲寅年) ; 1974년.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참고 ❶] 『서장(書狀)』 '답탕승상(答湯丞相)' 참고.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참고 ❷] 『선관책진(禪關策進)』 「제1 제조법어절요(諸祖法語節要 : 여러 조사의 법어 중에서 오직 공부 지어 가는 데에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요약함)」 '황룡사심신선사소참(黃龍死心新禪師小參)' 참고.

諸上座 人身難得 佛法難聞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상좌들이여!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듣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정진(精進) : [산스크리트어]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소견(所見 도리道理·사리事理 소/생각·견해 견)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달포 ; 한 달 조금 넘는 동안.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공안(公案) : 화두(話頭).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공안(화두)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하는 참선할 때 참구(參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현중현(玄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 • 句中玄 • 玄中玄)의 하나.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전강 스님께서는 <일대기 13호> 법문에서 <현중현은 용무생사다>라고 하심.

그리고 <체중현 도리는 자구불요(自救不了), 구중현(句中玄)은 인천위사(人天爲師), 현중현(玄中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된다>라고 하심. 삼현(三玄 현중현, 구중현, 체중현)을 『임제록』의 삼구(三句 1구, 2구, 3구)에 배대함.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 - 體中玄 • 句中玄 • 玄中玄)의 하나.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가로판 p215, p219)

[ 三玄(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역주(譯註)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206~207. (가로판 p213~214. p219)

[ 別明臨濟宗旨(별명임제종지) ]

大凡一句中에  具三玄하고  一玄中에  具三要하니  一句는  *無文綵印이요 三玄三要는  有文綵印이라  權實은 玄이요  照用은  要라.

 

따로 임제종지를 밝힘 : 일구(一句) 가운데 삼현(三玄)이 갖추어 있고, 일현(一玄) 가운데 삼요(三要)가 갖추어 있는데, 일구는 글발이 없는 인(印)이고, 삼현과 삼요는 글발이 있는 인이다. 권도와 실상은 현(玄)이며, 비침과 씀은 요(要)가 된다.

 

역주(譯註)

무문채인(無文綵印) 또는 무문인(無文印) : 선법(禪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수가 있다.

①의리선(義理禪)이란 것은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이름이니, 마치 인장으로써 진흙에 찍으면(印泥) 인발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다.

②여래선(如來禪)이란 것은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어서, 마치 인장을 물에 찍은(印水) 것 같다.

③조사선(祖師禪)이란 것은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이치나 일에 다 걸림 없는 것이 마치 인장을 허공에 찍은(印空) 것과 같은 것이다.

 

[참고 ❸]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207. (가로판 p214)

[ 三句 ]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❹] 『임제록(臨濟錄)』

師又云 一句語須具三玄門 一玄門須具三要 有權有用 汝等諸人 作麼生會 下座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한 구절[一句]에는 반드시 3현(三玄)의 문이 갖춰져 있고, 한 현[一玄]의 문에는 반드시 3요(三要)가 갖추어 있어서 방편[權]도 있고 활용[用]도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참고 ❺]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1분57초)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참고 ❻]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한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No.282)—19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No.466)—1992년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26초)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어떤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가려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No.112)—19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36초)

가끔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 ❺]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에서.(4분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미륵불(彌勒佛) :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할 것이 예정된 부처님. 현재 도솔천 내원궁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있다.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범어]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대혜종고(大慧宗杲) : (1089 – 1163) 경산 종고(徑山宗杲). 법명은 종고, 자는 대혜(大慧), 법호는 묘희(妙喜)이며, 속성은 해(奚)씨. 안휘성(安徽省)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에서 났다.

17세에 출가하여 선주의 명교(明敎)선사에게 가서, 깨친 바가 있은 뒤, 조동종의 장로들께 많이 찾아다니다가 변경(汴京)의 천녕사(天寧寺)에 가서 원오선사의 법을 받아 가지고, 경산의 능인사(能仁寺)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그 때 나라의 정사를 비평하였다는 혐의로, 형주(衡州)에 귀양갔다가 또 얼마 뒤에 매주(梅州)로 옮기게 되었다. 그를 따라갔던 백여 명의 제자 가운데 반수 이상이 그 지방의 풍토병으로 죽었다.

17년 만에 석방되어 다시 경산과 아육왕산 광리사(阿育王山廣利寺)와 전당(錢塘)의 영지사(靈芝寺), 건강(建康)의 보령사(保寧寺) 같은 여러 곳에 있다가, 송나라 효종(孝宗) 융흥(隆興) 1년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정법안장(正法眼藏)> 6권, <대혜어록(大慧語錄)> 30권, <법어(法語)> 3권, <대혜보각 선사보설(大慧普覺禪師普說)> 5권, <종문무고(宗門武庫)> 1권, <서장(書狀)> 2권 등이 있고, 법을 이은 제자가 90여 명이 있었다.

그가 교화한 가운데 특히 애쓴 것은 천동 정각(天童正覺)이 주장한 묵조선(默照禪)을 부수어 버리고 활구(活句) 참선을 강조한 것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參) ; ①수행자가 친밀하게 사가(師家, 깨달음의 인가를 받은 지도자, 선禪의 지도자)에 접하여 수행하는 것.

②선문(禪門)에서 사람을 모아, 좌선·설법·염송하는 것을 말함. 이른 아침 하는 것을 조참(早參), 해질 녘에 하는 것을 만참(晚參), 수시로 하는 것을 소참(小參)이라고 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발원(發願) ; 원(願)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숭고한 뜻을 성취하려는 결의.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증(證) ;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 adhisajbodha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증오(證悟) 또는 증득(證得).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10권. (慧遠法師 撰) 同相三道義兩門分別(釋名一 辨體二)

證是知得契會之義 心冥實性亡於分別契會平等 名之爲證

 

증(證)은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 · 증득 · 계합 · 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휴헐지지(休歇之地 쉬다·그치다 휴/쉬다·그치다 헐/~의 지/장소·자리 지) ; 모든 사량분별을 끊어 불성(佛性)을 깨닫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난 자리.

*안신입명(安身立命) ; 몸을 편안히 하고 명(命)을 세우다. 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존하다.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 생사를 벗어나 심신(心身)이 편안해졌음을 표현한 말이다.
*구경각(究竟覺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깨달음 각) ; 깨달음의 극치. 무명(無眀)이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구경각(究竟覺)은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를 가리킨다.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최상승(最上乘) ; 최상승법(最上乘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 입류라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 · 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 · 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초기불교에서 - 성문(聲聞)으로서 - 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 · 계급취견(戒禁取見) ·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사다함(斯陀含) ; 산스크리트어 sakṛd-āgāmin 팔리어 sakad-āgāmin의 음사(音寫). 일래(一來)라고 번역.

욕계의 수혹(修惑)을 대부분 끊은 성자. 그러나 이 성자는 그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천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인간계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다고 하여 일래(一來)라고 함.

이 경지를 사다함과(斯陀含果) · 일래과(一來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사다함향(斯陀含向) · 일래향(一來向)이라 함.

[수혹(修惑)—① 수도(修道)에서 끊는 번뇌라는 뜻.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는 욕계에 탐(貪)·진(瞋)·치(癡)·만(慢), 색계와 무색계에 각각 탐(貪)·치(癡)·만(慢)의 열 가지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번뇌, 곧 구생기(俱生起)를 말함.]

*아나함(阿那含)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anāgāmin의 음사(音寫). 불환(不還) · 불래(不來)라고 번역.

욕계의 수혹(修惑)을 완전히 끊은 성자. 이 성자는 색계 · 무색계의 경지에 이르고 다시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환(不還)이라 함.

이 경지를 아나함과(阿那含果) · 불환과(不還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나함향(阿那含向) · 불환향(不還向)이라 함.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音寫).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賊) · 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① 성문(聲聞)들 가운데 최고의 성자. 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하였으며, 해야 할 바를 다하였고, 윤회에서 해탈하여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② 존경받을 만한 불제자.

③ 고대 인도의 여러 학파에서,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를 일컫는 말.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이나 아나함(阿那含)이나 소승사과(小乘四果) 중에 최고의 지위(地位)인 아라한과(阿羅漢果)’ ; 사향사과(四向四果).

*사향사과(四向四果) ;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네 단계의 수행목표[向]와 그 도달경지[果]를 가리키는 말.

수다원(須陀洹 : 預流), 사다함(斯陀含 : 一來), 아나함(阿那含 : 不還), 아라한(阿羅漢 : 無學道)의 넷에 각각 향(向)과 과(果)를 배정하여 「수다원향 · 수다원과」 「사다함향 · 사다함과」 「아나함향 · 아나함과」 「아라한향 · 아라한과」의 여덟이 된다.

 

수다원향은 일체의 견혹(見惑 : 이론적인 번뇌)을 끊으며, 사다함향 · 아나함향에 의해 일체의 욕계(欲界)의 사혹(思惑 : 情意에 의한 습관적 번뇌)을 끊고, 아라한향에서는 삼계(三界 : 欲界 ·色界 ·無色界)의 사혹을 끊는다.

따라서 삼계의 일체의 견혹 · 사혹의 번뇌가 모두 끊어지면, 이 때에 아라한과(阿羅漢果)가 달성된다.

 

아라한과는 이 이상 배우고 닦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무학도(無學道 아라한)라고도 하며, 그 이전의 일곱은 아직도 상위(上位)가 있어서 배우고 닦을 필요가 있는 경지이므로 칠종유학(七種有學)이라고 한다.

예류(預流 수다원)에서 불환(不還 아나함)까지는 개울의 흐름이나 외갈래길로 상정(想定)하여, 흐름을 타고 있는 자가 예류(預流 수다원), 한 번 뒤로 돌아갈 상태에 있는 자가 일래(一來 사다함), 다시 되돌아가는 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상태를 불환(不還 아나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 ; 사상(四相).

*사상(四相) ;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된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네 가지 분별심.

①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나라는 관념 · 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 · 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 · 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②인상(人相) ; 산스크리트어 pudgala-saṃjñā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③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 · 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④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 · 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 · 생각. 생명체라는 관념 · 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육조구결(六祖口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 p135~136) (『육조 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 p98~99) 참고.

衆生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迷 卽佛是衆生 悟 卽衆生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사상(四相)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미(迷)하면 불(佛)이 곧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불(佛)입니다.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歸己 惡事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나 학문 또는 출신[族姓]이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을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신을 행할 줄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고,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분별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凡夫)의 사상(四相)이라 합니다.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故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勤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수행인도 또한 사상(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자신은 계를 지킨다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衆生相)이요, 오래 살고자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면서도 온갖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壽者相)이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생사사대(生死事大).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가장 중요한 일[一大事].

 

[참고 ❶]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 德異本) (심재열 역주 | 불국선원) '제6 참청기연(參請機緣 청법의 기연)'에서. p252~253.

현각 : 생사의 일이 크며 무상이 신속합니다.[生死事大 無常迅速]

육조 :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사무쳐 깨닫지 않으며 신속한 무상이 없음을 요달하지 않는가?[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현각 : 사무쳐 깨달으면 남(生)이 없고, 요달함에 본래로 빠름이 없나이다.[體卽無生 了本無速]

육조 : 그렇도다.[如是如是]

 

[참고 ❷]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18권 대혜보각선사보설」 '정성충이 청한 보설(鄭成忠請普說)'에서.

無常迅速 生死事大 彈指便是來生到來 但虛却心 子細推窮 窮來窮去 善念旣相續 惡念自然不生 但如實修行 時節因緣到來 自然悟去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은 크다.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곧 내생(來生)이 도래 하니, 다만 마음을 비우고 자세하게 궁구하라. 궁구하면서 오고 궁구하면서 가다 보면 좋은 생각이 이어지고 나쁜 생각은 자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맛 여실하게 수행하다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참고 ❸]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宋 온문蘊聞 編) 제19권 ‘示妙證居士(묘증거사에게 보임)(聶寺丞)’에서.

無常迅速 生死事大 衆生界中順生死底事 如麻似粟 撥整了一番 又一番到來 若不把生死兩字貼在鼻尖兒上作對治 則直待臘月三十日 手忙脚亂 如落湯螃蟹時 方始知悔則遲也 若要直截 請從而今便截斷

 

무상(無常)은 매우 빠르고 생사(生死)의 일은 큽니다. 중생계 속에서 생사에 따르는 일은 삼대나 좁쌀처럼 많아서, 한번 마치고 나면 또 한 차례 닥쳐옵니다.

만약 생사(生死) 이 두 글자를 잡아 코 끝에 붙여놓고 번뇌를 끊지[對治] 않는다면, 곧 납월삼십일 죽음을 맞이해서는 손발을 어지럽고 분주히 떠는 것이 마치 끓는 물에 게를 집어넣을 때와 같으니, 비로소 후회해야 이미 늦은 것입니다. 만약 곧장 끊고자 한다면, 청컨대 지금 곧 절단하십시오.

 

[참고 ❹]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시진선인(示眞禪人)'

汝旣出家 須立丈夫之志 發勇猛心 深信無常迅速 生死事大 行住坐臥 一切時中 單單不昧此事 切切參詳 如人墮在千尺井中 千思萬想 只是箇單單求出之心 不日內必有相應分 如是用功 若未成辦 佛法無靈驗矣

 

그대는 이미 출가하였으니 반드시 대장부의 뜻을 세우고 용맹하게 정진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큰 것을 깊이 믿고, 행주좌와 모든 때에 오로지 이 일을 잊지 말고 절실하게 참상(참구)하여야 한다. 마치 천 길 깊이의 우물에 떨어진 사람이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오로지 빠져나갈 마음만 가진다면 멀지 않은 날에 반드시 그 생각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공을 들이고도 이루지 못한다면 불법에 영험함이 없는 것이리라.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원만(覺圓滿)’ ; 삼각(三覺).

*삼각(三覺) ; 부처님의 깨침[覺]이 갖는 세 가지 양상[三相]으로 자각(自覺) ・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 : 覺滿) 등을 말한다.

[참고 ❶]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贊)』 제1권 (末). (窺基 撰)

梵云佛陀 此略云佛 有慧之主 唐言覺者 覺有三義 一 自覺 勝凡夫 凡夫不自覺故 二 覺他 勝二乘 彼不覺他故 三 覺行圓滿 勝諸菩薩 菩薩雖復修於二 覺行未滿故

 

범어 불타(佛陀)의 줄임말이 불(佛)이니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고, 각자(覺者)라고 한역한다. 각(覺)에는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자각(自覺)으로 범부중생보다 뛰어남을 말하는데 범부중생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각타(覺他)로 이승(二乘)보다 뛰어남을 일컫는데 이승은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각행원만(覺行圓滿)으로 여러 보살보다 뛰어남을 뜻하는데 보살이 비록 자각과 각타를 행하지만 그것이 원만구족하지 못하기 떼문이다.

 

[참고 ❷] 『월인석보(月印釋譜)』 권제9, 12장 앞쪽~뒤쪽.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각(覺 : 佛陀)에 갖춘 세 가지의 뜻으로 삼각(三覺)이라 한다. 자각(自覺)은 스스로 미망(迷妄)을 끊고 정법(正法)을 깨닫는 일이고, 각타(覺他)는 스스로 깨달음과 동시에 법을 설하여 남을 개오(開悟)시켜 생사의 괴로움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며, 각행원만(覺行圓滿)은 근원(根源)을 다 하며 밑에 다달아 수행이 차서 과(果)가 원만한 것임.

*자각(自覺) ; ①자신의 형편이나 처지, 본분 따위를 스스로 깨달음. ②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 ③자신의 생각과 언행에 대하여 그것이 진리성과 성실성이 있는지 자신을 반성하는 일. ④[불교] 삼각(三覺)의 하나. 스스로 깨달아 증득(證得)해 알지 못함이 없는 것 또는 중생이 자신의 미망(迷忘)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깨달음을 이른다.

*각타(覺他) ; 부처님의 3각(三覺 : 自覺 · 覺他 · 覺滿) 중의 하나. 자각(自覺)의 상대어. 다른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

[참고]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8권. (담무참曇無讖 역) 「범행품(梵行品)」 第八之四.

云何爲佛 佛者名覺 旣自覺悟 復能覺他

 

무엇을 불(佛)이라고 하는가. 불(佛)이란 각(覺)이라고 이름한다. 이미 스스로 깨달았으니, 다시 능히 타인을 깨닫게 한다.

*각만(覺滿) ; 깨달음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 곧 자기자신과 중생이 모두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 각행원만(覺行圓滿) 또는 각행궁만(覺行窮滿) 등이라고도 한다.

[참고 ❶] 『대승의장(大乘義章)』 제20권(末) (遠法師 撰) 『십호의(十號義)』

旣能自覺 復能覺他 覺行窮滿 故名爲佛

 

이미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고 다시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 깨달음과 행위가 궁극적이고 원만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라 한다.

 

[참고 ❷] 송담스님(No.196)—1983년 부처님 개금불사 점안식(83.03.10)

불사(佛事)는 그래서 아무리 작은 불사라도 버려서는 아니될 것이고, 그래서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다. 이 불사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의도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법당을 짓는 불사나, 불상를 새로 조성하거나, 개금불사를 하거나 또는 범종불사를 하거나 또는 선방을 짓거나, 어떠한 불사라도 구경(究竟)의 목적은 오직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자각(自覺) ・ 각타(覺他)・ 각만(覺滿)! 스스로 깨닫고[自覺], 모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覺他], 그래 가지고 이 우주법계에 깨달음으로써 가득차게[覺滿] 하는 자각 ・ 각타 ・ 각만의 대목적 이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불사(佛事) 하는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소원은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큰 목적을 달성을 할려면 첫째는 무주상(無住相)이라야 한다 그것입니다. 무주상! 상(相)에 머무르지 아니한다. 무심(無心)으로 보시를 하고, 무심으로 불사를 해야 제일가는 거룩한 불사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46분30초~48분47초)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백지(白紙) ; ①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②어떠한 일을 하기 이전의 상태. ③잡념이나 선입관 따위가 없는 상태.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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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청정법신무내외(淸淨法身無內外) 거래생사일진상(去來生死一眞常)’ ; 불가(佛家) 장의의례(葬儀儀禮) <시다림(尸陀林)>에서 염습(殮襲)의 목욕(沐浴)에 나오는 게송.

*(게송) ‘단능일념귀무렴(但能一念歸無念) 고보비로정상행(高步毘盧頂上行)’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冶父道川) 스님의 게송 참고.

*청정법신(淸淨法身) ;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진상(眞常) ; 진여상주(眞如常住)라는 뜻으로, 깨달음(열반)의 경지라는 뜻.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상/즐거울 락/나 아/청정할 정)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의 네 가지 덕(德). 『열반경(涅槃經)』에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상(常)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안락(無爲安樂)하므로 낙(樂)이고, 망집(妄執)의 아(我)를 여의고 8대자재(八大自在)가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아(我)이고, 번뇌의 더러움을 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정(淨)이다.

*팔대자재아(八大自在我) ; 팔자재(八自在)라고도 함. 열반(깨달음)의 4덕(四德, 常樂我淨) 중 아(我)에 8종의 대자재(大自在)의 뜻이 있는 것을 말함.

 

[참고] 『열반경(涅槃經)』 제 21권,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③(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之三)' (이운허 옮김 | 동국역경원) p514-516.

善男子 大 名不可思議 若不可思議 一切衆生所不能信 是則名爲大般涅槃 唯佛 菩薩之所見故 名大涅槃 以何因緣復名爲大 以無量因緣然後乃得 故名爲大

 

선남자여, 크다[大]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음[不可思議]을 말함이니, 만일 헤아릴 수 없어서 일체 중생들이 믿을 수 없으면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며,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보는 것이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대(大)라 하는가? 한량없는 인연으로써 얻을 수 있으므로 대라 하느니라.

 

善男子 如世間人 以多因緣之所得者 則名爲大 涅槃亦爾 以多因緣之所得故 故名爲大

云何復名爲大涅槃 有大我故 名大涅槃 涅槃無我 大自在故 名爲大我

 

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은 것을 대(大)라 하나니, 열반도 그러하여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는 것이므로 대(大)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다시 대열반이라 이름하는가? 큰 나[大我]가 있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열반에는 내[我]가 없지만 대자재(大自在)하므로 대아(大我)라 하느니라.

 

云何名爲大自在耶 有八自在則名爲我 何等爲八

一者、能示一身以爲多身 身數大小猶如微塵 充滿十方無量世界 如來之身實非微塵 以自在故現微塵身 如是自在則爲大我 <①능시일신위다신(能示一身爲多身)>

 

어떤 것을 대자재(大自在)하다 하는가? 여덟 가지 자재[八自在]가 있으므로 나[我]라 하나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한 몸으로 많은 몸을 능히 보이는 것이니, 몸의 수는 마치 미진수와 같아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며, 여래의 몸은 실재로는 미진수가 아니나 자재로써 미진수의 몸을 나타낸다. 이렇게 자재하므로 대아라 하느니라.

 

二者、示一塵身滿於三千大千世界 如來之身實不滿於三千大千世界 何以故 以無礙故 直以自在故 滿三千大千世界 如是自在名爲大我 <②시일진신만대천계(示一塵身滿大千界)>

 

둘째는 한 티끌 같은 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나니, 여래의 몸은 실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 아니지만 걸림이 없는 까닭이며, 자재함으로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대아라 하느니라.

 

三者、能以滿此三千大千世界之身輕擧飛空 過於二十恒河沙等 諸佛世界而無障礙 如來之身實無輕重 以自在故 能爲輕重 如是自在名爲大我 <③대신경거원도(大身輕擧遠到)>

 

셋째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몸으로 훨훨 날아서 이십 항하사 등의 많은 부처님 세계를 지나가도 장애가 없느니라. 여래의 몸은 가볍고 무거움이 없건만 자재한 연고로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대아라 하느니라.

 

四者、以自在故而得自在 云何自在 如來一心安住不動 所可示化無量形類各令有心 如來有時或造一事 而令衆生各各成辦 如來之身常住一土 而令他土一切悉見 如是自在名爲大我 <④현무량류상거일토(現無量類常居一土)>

 

넷째는 자재한 연고로 자재를 얻는 것이다. 어떻게 자재한가? 여래의 일심은 편안히 머물러 동하지 않지만 , 무량한 형상을 드러내어 각각에 마음이 있게 한다. 여래는 어떤 때는 한 가지 일을 짓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마련하게 하며, 여래의 몸은 언제나 한 세계에 있지만 다른 세계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나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대아라 하느니라.

 

五者、根自在故 云何名爲根自在耶 如來一根亦能見色 聞聲 嗅香 別味 覺觸 知法 如來六根亦不見色 聞聲 嗅香 別味 覺觸 知法 以自在故 令根自在 如是自在名爲大我 <⑤제근호유(諸根互有)>

 

다섯째는 근(根, 감관)이 자재한 까닭이니, 어떤 것을 근이 자재하다 하는가? 여래는 하나의 근으로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변별하고 감촉을 느끼고 법을 인식한다. 여래의 육근(六根)은 또한 색을 보지 않고 소리를 듣지 않으며 냄새를 맡지 않고 맛을 구별하지 않으며 감촉을 느끼지 않고 법을 인식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재하는 까닭으로 근으로 하여금 자재케 하나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대아라고 하느니라.

 

六者、以自在故 得一切法 如來之心亦無得想 何以故 無所得故 若是有者 可名爲得 實無所有 云何名得 若使如來計有得想 是則諸佛不得涅槃 以無得故 名得涅槃 以自在故 得一切法 得諸法故 名爲大我 <⑥득일체법무득상(得一切法無得想)>

 

여섯째는 자재한 까닭으로 일체 법을 얻거니와, 여래의 마음에는 얻었다는 생각이 없나니, 왜 그런가? 얻을 바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있는 것이라면 얻었다 이름하려니와 실제로 있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얻었다 하겠는가. 만일 여래께서 얻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모든 부처님들이 열반을 얻는다 할 수가 없지만, 얻음이 없으므로 열반을 얻었다 하느니라. 자재함으로써 일체 법을 얻고, 모든 법을 얻었으므로 대아라 이름하느니라.

 

七者、說自在故 如來演說一偈之義 經無量劫義亦不盡 所謂若戒 若定 若施 若慧 如來爾時都不生念 我說 彼聽 亦復不生一偈之想 世間之人四句爲偈 隨世俗故 說名爲偈 一切法性亦無有說 以自在故 如來演說 以演說故 名爲大我 <⑦설일게의경무량겁(說一偈義經無量劫)>

 

일곱째는 말씀이 자재하므로, 여래가 한 게송의 뜻을 연설할 때에 무량겁을 지내어도 그 뜻을 다하지 못하나니, 계행이거나 선정이거나 보시이거나 지혜 따위니라. 그러나 여래는 조금도 내가 설하고 저가 듣는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한 게송이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이 네 글귀를 한 게송이라 하므로 세상을 따라서 게송이라 말하는 것이며, 모든 법의 성품을 말할 곳이 없지만 자재로써 여래가 연설하는 것이며, 연설하므로 대아라 하느니라.

 

八者、如來遍滿一切諸處 猶如虛空 虛空之性不可得見 如來亦爾 實不可見 以自在故 令一切見 如是自在名爲大我 如是大我名大涅槃 以是義故 名大涅槃 <⑧신변제처유여허공(身遍諸處猶如虛空)>

 

여덟째는 여래가 모든 곳에 두루함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허공의 성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여래도 이와 같아 볼 수 없지만 자재로써 모든 이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자재를 대아라 이름하는 것이요, 이와 같은 대아를 대열반이라 이름하며, 이런 이치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무념(無念) ; ①망념이 없는 것. 정념(正念)을 말한다. ②모든 법을 보면서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德異本) ‘제1 오법전의(悟法傳衣, 법을 깨닫고 가사를 전해 받다)’에서.

善知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선지식들이여, 지혜로 비추어 보면 안팎이 밝게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아나니 만일 본심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며, 만일 해탈을 얻는다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또는 이것이 무념(無念)이니라.

 

何名無念 若見一切法 心不染着 是爲無念 用卽徧一切處 亦不著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 出六門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어찌하여 무념이라 이름하는가? 만일 모든 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이것이 무념이니, 작용을 일으킨 즉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六識)으로 하여금 여섯문(六門)을 나오더라도 육진(六塵) 가운데 물들고 뒤섞임이 없어서, 오고 감에 자유롭고 널리 쓰되 걸림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고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若百物 不思 當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

 

그러나 만일 백가지를 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아주 생각을 끊는 이것은 법에 얽매인 것이며 한쪽에 치우친 견해[邊見]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無念)의 법(法)을 깨달은 이는 만법에 걸림없이 통하며,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느니라.

*비로정상(毘盧頂上) ;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경지.

*비로(毘盧)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약칭.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의인화하여 형상화한 부처님.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로, 해석하면 변일체처(遍一切處), 광명변조(光明遍照),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에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

진리는 어떤 특정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므로, 진리가 곧 부처라고 하는 비로자나불의 관점에 서면 일체 모든 것이 부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두두(頭頭)가 비로(毘盧)다”는 말은 삼라만상 일체가 다 부처 아님이 없고 진리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정상(頂上) ; ①산 따위의 맨 꼭대기. ②그 이상 더없는 최고의 상태.

 

*'일념(一念)이 무념(無念)하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요, 불생(不生)이 곧 해탈(解脫)이요, 그 해탈(解脫)이 곧 열반(涅槃)이다' 경전(經典)에는 다 그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무념(無念)이 불생(不生)이요, 불생이 무심(無心)이요, 무심이 해탈(解脫)이다' ; 일념불생(一念不生).

*일념불생(一念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 불생(不生).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84, p103 참고.(가로판 p88. 107~108)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것’은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고 이름하고, ‘나지 않는 것(不生)’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주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410)—1990년 2월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6분10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등지고 난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사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한 몸뚱이, 한 마음이여. 그런데 그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한 생각' 동(動)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과 같이 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한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지옥, 아귀, 삼악도(三惡途)를 몇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몇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이 세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칠 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를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를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을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그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의 번뇌염(煩惱染)이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가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처음~6분27초)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무기(無記) : [산스크리트어]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 ②[산스크리트어]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 · 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집중 · 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정정(正定, 바른 집중) ; 선(善)한 면에서, 마음을 더 높은 보다 더 순수한 알아차림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적인 시도의 결과로 생겨난 ‘마음이 한 곳을 향해 겨냥되어 있음’.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삼세육추(三細六麤 석 삼/가늘 세/석 삼/거칠 추)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망동하여 유전하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으로의 3가지 미세한 마음 상태[三細]와 이어지는 거칠은 6단계의 마음 상태[六麤]를 설명하는 「대승기신론」에서 밝힌 교설.

*근본무명(根本無明) ; 모든 번뇌(煩惱)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깨닫지 못하고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마음을 가리킨다. 곧 진여(眞如)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한 생각으로 가장 미세하게 움직이는 마음이며, 생사윤회의 근본이 된다.

지말무명(枝末無明)의 상대어. 무시무명(無始無明), 근본혹(根本惑), 근본불각(根本不覺), 근본번뇌(根本煩惱), 원품무명(元品無明) 등과 같은 뜻이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 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공안(화두)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그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그 학자가 바른 소견을, 바른 깨달음을 얻었나 안 얻었나를 점검(點檢)하는 데에 조사(祖師)들이 사용을 했지마는’

 

 

 

[참고] 송담스님(No.058)—1977년 동지차례(77.12.22)(3분40초)

참선을 하는 것은 화두를 항시 의심을 해서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지마는, 정말 바로 말하자면 찾음으로 해서 자기를 잃게 되는 소치인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찾되 선지식의 지도에 의해서 찾아야만, 찾음으로써 잃어버리는 그것을 보게 되는 까닭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물속에 떠억 앉아서 물을 찾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물속에 풍덩 주저앉아 가지고 목이 마르다고 물을 찾는 거와 같은 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 공안은 문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요, 천칠백 화두라 합니다마는 그 공안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좋은 열쇠요, 나침반입니다.

그러나 무슨 소견이 났을 때에는 그 공안은 바로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사람이냐?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냐?'를 시험해 보기 위한 좋은 시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랐다' 할 때에 그 사람에게 공안을 하나 턱 물어보면은 그 공안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떠한 표정을 짓느냐?

입 벌리기 전에 벌써 '저 사람은 바로 본 사람이다. 바로 못 본 사람이다.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하는 것을 입 벌리기 전에 선지식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마는 짐짓 입을 벌리게 해 보는 것입니다.

 

입을 벌려 봤자, 입 벌리기 전에 알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물속에—묻는 사람도 물속에 떠억 앉았고, 깨달랐다고 온 사람도 물속에 같이 들어앉아서 "어떤 것이 물이냐? 물이 어디가 있느냐?" 하고 물어본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물속에 들어앉은 줄을 모르고 물을 찾기 위해서 위로 아래로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벌써 그 사람 '아! 이 사람이 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구나' 대번에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일체 공안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벌써 찾으면 저 죽는 것이고, 찾으면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공안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깨닫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물쇠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하는 것을 깊이 인식을 하시고, 화두를 공부하다가 조금 잘 들리지 아니하고, 의심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화두가 나빠서 그런가 보다' 해 가지고 이 화두, 저 화두 이렇게 화두를 바꿀려고 쌌거나 그래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24분20초~28분)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간택(揀擇 가릴 간/가릴 택) ; 사물이나 사람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따위와 그 정체를 구별하거나 가려서 알아 선택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화(成火 이룰 성/불·화 화) ; ①매우 귀찮게 졸라 댐. ②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탐. 또는 그런 증세.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딴생각[別念] ;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의 사투리.

*지지리 애써서 공부해서 공부가 좀 익숙해질만 하면은, '하! 참 좋다. 툭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내면 천길만길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일으켜서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애석하고 어리석은 짓이 어디가 있겠느냐' 이 말씀이여 ; 대오선(待悟禪).

*대오선(待悟禪 기다릴 대/깨달을 오/고요할 선) ; 참선하는 데 있어서 깨닫기[悟]를 기다리는 것[待].

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은 화두를 참구하는데 10가지 병(病)의 하나로, 수행자는 이런 생각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본참화두를 들어야 한다.

 

[참고 ❶]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111)—1979년 동지 법회 법문에서.(2분20초)

참선하는 데 있어서 제일 몹쓸 병이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오선(待悟禪), 「어서 깨달랐으면...」

깨닫기를 바래는 그것이 설사 밤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해서 화두가 제법 일여(一如)하게 들린다 하더라도, 모든 번뇌와 망상이 다 없어지고,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찰나간이라도 「어서 깨달랐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와서 탁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셨으면..」 이러한 생각을 먹게 된다면 이것은 바로 애써서 99%까지 올라갔다가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다시 저 천길만길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깨닫기를 바래는 마음, 「어서 속히 어떠한 목적을 성취했으면..」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 무엇고?」, 공부가 잘 되어갈수록 「이 무엇고?」

조끔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 또 잘 안된다고 번뇌심이나 짜증도 내지를 말고, 오직 한 생각 한 생각, 산을 보든지, 물소리를 듣던지, 새소리를 듣던지, 기차 소리를 듣던지, 애 우는 소리를 듣던지, 문닫는 소리를 듣던지,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한 생각 한 생각 바로 거기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하는 것입니다.(8분32초~10분51초)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실답게(實-- 열매·본질·참됨·정성스러움·참으로 실) ; 다부지고 알차게. 실속 있게. 빈틈이 없이 착실하게.

 

 

 

 

 

----------------(3/3)

 

*‘생사 없는 도리’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퇴전(退轉 물러날 퇴/회전하다·바꾸다·넘어지다 전)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퇴타(退墮), 퇴태(退怠)라고도 한다.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

전강 스님께서는 <일대기 13호> 법문에서 <용무생사가 현중현이다>라고 하심.

그리고 <체중현 도리는 자구불요(自救不了), 구중현(句中玄)은 인천위사(人天爲師), 현중현(玄中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된다>라고 하심. 삼현(三玄 현중현, 구중현, 체중현)을 『임제록』의 삼구(三句 1구, 2구, 3구)에 배대함.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修德寺 能仁禪院) 「법훈(法訓)」 '나를 찾는 법—참선법(參禪法)' p262. p264~265.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 •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理無碍) • 사무애(事無碍)하게 되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나니라.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 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체달함.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 없는 경지를 내 마음대로 수용(需用)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 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참고 ❸] 전강선사(No.026)—전강선사 일대기 제13호(경술1970년 12월 22일 새벽.음) (1971년 1월 18일 새벽)(1분57초)

체중현(體中玄)은 고대로—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본래무일물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체중현이라고 헌다든지,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로 체중현이라 헌다든지, 모도 그러헌 그 법견(法見)을 가지고 체중현이라 햐.

왜 향상(向上)도 그 체중현일 것이고 뭐 그렇지 그 뭐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도 그 체중현 밖에 더 되아?

 

귀로 들을 수 있고, 뜻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헐 수 있고. 고러헌 것 가지고는, 체중현 가지고는... 불가(佛家)에 들어와서 경(經)부텀 들으면 아는 것이여. 들어가지고 아는 것이 체중현이여.

체중현 도리, 그거 가지고 뭘 혀? 그 자구(自救)도 불요(不了)여. 제 목숨 소용... 자구불요(自救不了)여. 제 목숨 구허지 못혀. 체중현이라는 건 자기를, 저를 구허지 못헌 것이고.

 

구중현(句中玄)이여. 구중현이라는 것은 처컥 들으면 벌써 그만 그 체중현 해(解)는 벗거져.

'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는디, 한 물건도 없는 그 가운데에 역무일물(亦無一物)이, 또한 일물지해(一物之解)도 없다' 요렇게 해서 고 지견(知見)까장 벗거질 수가 있지마는, 고것도 인천위사(人天爲師)는 되아. 인천의 스승은 된다 했어.

 

그러나 이 현중현은 불조위사(佛祖爲師)가 되어야지.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척, 그 현중현(玄中玄)이라는 것은 용무생사(用無生死)다. 인자 생사 없는 것을 막 쓴다 그 말이여.(32분56초~34분55초)

 

[참고 ❹]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참고 ❺]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207, p212. (가로판 p215, p219)

[ 三玄(삼현) ]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역주(譯註)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자유자재(自由自在 스스로·저절로 자/말미암을 유/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인 것.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 · 손자를 애지중지(愛之重之)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게송) ‘화소산전누천기(花笑山前漏天機)’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설의(說誼 말씀 설/도리道理·옳다 의) ; 이치를 설함.

*천기(天機 하늘·자연 천/틀·자연·조화·비밀 기) ; ①매우 중대한 기밀. ②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이나 대자연의 비밀. 또는 신비.

*누설(漏泄·漏洩 샐 루/샐 설) ; ①비밀이 남에게 은밀히 알려짐. ②기체나 액체 따위가 밖으로 새어 나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의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열반(涅槃)의 번역어.

*무궁(無窮 없을 무/다할·끝날 궁) ; 끝이 없음.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산스크리트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문 내용]

(게송)유락천애기도왕~ / 어떤 젊은 수좌(首座)의 소견 / 정말 현중현(玄中玄) 도리(道理)를 바로 봐야 인가(印可)를 할 수 있다 / 『서장(書狀)』에 증시랑(曾侍郞)의 철저한 발원(發願)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원만(覺圓滿)을 목표로 하는 정법학자(正法學者).

(게송)청정법신무내외~ / '삼매(三昧 samādhi)'는 한문으로 '정(定)' / 정정(正定)과 사정(邪定) / 근본무명을 타파(打破)해야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 / 화두에 핵심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런가, 저런가' 따지는 의심이 아니라,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꽉! 맥힌 의심이라야 되거든.

번뇌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그냥 놔둔 채, '이 뭣고?' 하고 화두만 한번 더 추켜드는 그것이 번뇌와 망상을 물리치는 묘방(妙方) / 우리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꼭!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한 것이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음--->그 깨달은 바에 의지해서 오후(悟後)에 정말 참다운 보림(保任) 공부--->3년, 10년, 20년 하다 보면, 생사 없는 도리를 증(證)하게 되아--->증(證)한 다음에 용무생사(用無生死)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써야 하는 거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써야 그것이 '깨달랐다'고 할 수가 있는 것 / (게송)화소산전누천기~.


『서장(書狀)』에서 증시랑(曾侍郞)이 대혜선사(大慧禪師)한테 묻는 편지(便紙).
'차라리 깨닫지 못했으면 말려니와, 깨달았다 하면은 바로 구경각(究竟覺)을 얻어서 불조(佛祖)와 같은 경지(境地)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저는 깨달음을 삼지 않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입니다.

삼세육추(三細六麤), 세 가지 미세한 생각과 여섯 가지 머트러운 생각이 다 끊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에 잠기는 것이고, 그 근본무명을 타파(打破)해야 자기(自己)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그 학자가 바른 소견을, 바른 깨달음을 얻었나 안 얻었나를 점검(點檢)하는 데에 조사(祖師)들이 사용을 했지마는, 우리 학자(學者)는 선지식으로부터 그 공안 하나를 간택 받아 가지고 그놈을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쓰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그걸 참구(參究)를 해 가는 것입니다.

화두에 핵심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런가, 저런가' 따지는 의심이 아니라,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꽉! 맥힌 의심이라야 되거든.

공안(公案)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아맞히는 그런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다못 꽉 맥힌 의심으로 정말 실(實)답게 참구(參究)해 나가고, 실(實)답게 정진(精進)을 해 나간 데에서 어떠한 찰나에 탁! 터지는 것이지, 정진하면서 그 공안을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렇게 따지면 맞을랑가, 저렇게 일르면 될랑가?' 이렇게 따져 가지고 공안을 보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알아지는 것이지,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진 것이 어찌 그것이 참 깨달음이 될 수가 있느냐 그거거든.

알뜰히 정진해 나가다 보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아.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랐다고 해서 그 공부가 거기서 다 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에 의지해서 오후(悟後)에 정말 참다운 보림(保任) 공부가 있는 것이여. 그것이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精進)을 한 것이여.

그렇게 해서 3년, 10년, 20년 하다 보면, 생사 없는 도리를 증(證)하게 되아. 증(證)해야만 다시는 퇴전(退轉)을 않는 것이여.
증(證)한 다음에 거기서 공부가 또 끝나냐 하면은 끝난 것이 아니라 용무생사(用無生死)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써야 하는 거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써야 그것이 참 '깨달랐다'고 할 수가 있는 것.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만 나간다면 그 올바르게,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알뜰히만 공부를 지어 간다면 결정코 조사(祖師) 스님들이 우리를 속이지 안 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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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20. 12. 4. 08:46

 

 

((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51분)

 

(1/3) 약 22분.

 

(2/3) 약 20분.

 

(3/3) 약 9분.

 

(1/3)----------------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한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한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나무~아미타불~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한데, 산당(山堂)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는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해. 적적하고 고요한 본자연이로구나.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한데, 무슨 일로 서풍이 임야를 흔드는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한 소리 차운 기러기는 긴 하늘에 우는고.

 

 

오늘 기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를 맞이했습니다. 방금 17년 전, 임자년 납월팔일에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납월팔일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삼천년 전 우리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유성출가(踰城出家)해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 고행(苦行)을 하셨습니다. 그 고행은 일찍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그렇게 무서운 고행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해서—하루에 삼씨 한 알, 좁쌀 한 알 그런 정도로 곡식 알갱이 하나씩 이렇게 잡숫고 6년을 지내셨으니 완전히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되었어. 완전히 해골(骸骨)만 남았어.

 

그러시다가 ‘이렇게 고행을 위한 고행만이 참다운 정진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가로 내려가셔서 맑은 물에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시니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에 청신녀가 유미죽(乳糜粥)을 쒀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부처님께 바치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아 잡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을 보호하면서 같이 정진하던 정반왕(淨飯王)이 보낸 다른 다섯 사람들, 실달 태자(悉達太子)와 같이 서로 약속을 하기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단코 고행을 쉬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자'고 약속을 해 가지고 6년을 고행을 하셨는데, 실달 태자가 수자타가 바친 죽을 받아 잡수신 것을 보고 “아하! 고행을 견디지를 못하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저렇게 죽을 받아 자시니 저런 의지가 박약하고 약속을 깨트리는 사람과 우리가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은 녹야원(鹿野苑)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자리를 옮겨서 깨끗하고 쇄락(灑落)한 그리고 참 오랜만에 유미죽을 공양을 하시니 한결 기운이 좋다 그말이여. 맑고 깨끗하고 생기가 도는 그러한 몸과 마음으로 정진을 하셨어. 그러시다가 납월팔일 새벽에 별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꽉 낀 날은 안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빛나는 번쩍거리는 그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다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만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팔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 그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히 지낼 수가 없어.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해. 7일 동안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팔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팔일 새벽 하늘에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자나 되는 긴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그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한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그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 하신 그 법을 가섭 존자에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조 스님까지, 6조 스님 이후로 5종 가풍이 벌어져서 전강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도리를 깨닫고 또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꼭 깨달을 것이 있고, 꼭 전할 것이 있고 또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또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그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그 칼을 잘못 놓쳐 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해 가지고, 나중에 그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그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뱃전을 쪼아 가지고 그 표(標)를 해 놨습니다. 언제라도 그 뱃전 그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그 뱃전에다가 표를 해 놔야 그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그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한 마리 보았는데, 그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그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가 있으면 그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한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퍽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날 새벽에 하늘에 뜬 그 별을 보면 혹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 가지고 그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처음~21분43초)

 

 

 

 

 

(2/3)----------------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저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아!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담 밖에 담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아! 저 담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뿔 끄터리만 보여도 담 밖에 소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척! 연기만 보고 불인 줄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줄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뿔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줄 알아야 할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용화선원에서는 납월팔일 용맹정진을 그렇게 행사로써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이 각자 자기의 신심과 분 따라서 7일 동안을 다른 때보다는 좀더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어찌하여 반드시 납월팔일뿐이리오? 결제(結制)한 날부터서 오늘날까지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그렇게 정진을 해 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용맹정진이요, 날마다 가행정진인데, 특별히 의식적으로 납월팔일을 기해서 그런 의식적인 행사로써 안 했을 뿐인 것입니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세면장에를 가거나, 소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 하게 되어.

그러면 걸어가되 가는 중도 모르고, 앉았으되 내가 앉았다는 생각도 없고, 밥을 먹되 밥맛도 모르고, 반찬을 먹되 짠지 싱거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갔는지 반 시간이 지나갔는지,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시간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는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몰라. 다맛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 해.

 

정진을 애써서 한 사람이면 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 항상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가 떠억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엿보고 있다가 한 생각만 삐끗 '딴생각[別念]'을 일으켰다 하면 바로 그 즈음을 타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침입(侵入)해 들어와!

마치 호위병이, 간수나 수위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팔거나, 그 자리를 잠깐 비우면 그 틈을 타서 도둑이나 적이 들어온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순일무잡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러한 경지에서 무슨 마음을 일으키던지 그 일으키는 마음에 따라서, 그 어떠한 마음을 내는가에 따라서 마구니가, 팔만사천 마구니 가운데에 어느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와.

 

어떤 수좌는 저 남해에서 참! 정진을 애써서 하는데, 어떤 거룩하게 생긴 모습을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설법을 하는데 장경(藏經), 경전에 있는 말씀과 똑같고, 경전에 있는 말씀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간 그러한 심오한 그런 설법을 막 설한다 그말이여.

그리고 나서 ‘네가 정말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이마를 이 기둥에다가 부딪쳐라’ 막! 그냥 그 법문 끝에 막 그렇게 강요를 하니까 거기에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막 기둥에다가 머리빡을 들이받아 가지고 유혈이 낭자해.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에는 ‘네가 참으로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고추를 끊어 버려라. 그놈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고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금생이라도 네가 결정코 도업을 성취하려면 고추를 잘라 버려라’

그 법문을 설하고 나서 막 그것을 짜르라고 하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있고, 도업 성취할 그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안 끊을 수가 없어서 고추를 잘라 버렸어. 유혈이 낭자해 가지고 참 어렵게 수습을 했다 그말이여.

 

이 정진을 애써서 하다 보면 특히 혼자 저 섬이나, 깊은 산중이나, 토굴에 들어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흔히 이런 경계(境界)가 나타나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같이 정진을 해야지, 선지식이 없는 곳에 또 좋은 도반이 없는 곳에 혼자 가서, 아직 득력(得力)을 하지 못한 분상(分上)에 혼자 가서 한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성이 수반(隨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다 경계(警戒)를 했습니다.

 

대중처소(大衆處所)에 살면 모두 대중(大衆)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또 여러 다른 대중을 위해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니 자기의 성질에는 안 맞아도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하고, 대중을 조심해야 하니까—자기 혼자 있으면 그러한 공연히 신경 쓰고 그럴 것이 없이 마음껏 잠도 안 자고 공부하려면 공부하고, 밥도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그저 뭐 정진도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꼼짝 않고 하려면 하고, 잠도 안 자고 하려면 하고, 마음껏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 대중처소에서 하니까 그런 것을 마음대로 못하고, 더 좀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되면 자야 하고 또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시간 되면 일어나야 하고, 밥도 먹기 싫어도 대중과 같이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해야 하고, 그러한 폐단을 피해서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실컷 좀 공부하기 위해서 토굴을 찾고 토굴을 마련하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공부에 득력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토굴에 들어가서 하다 보면 까딱하면은—참 그 정진을 애써서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삐끗하면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기도 하고, 뭐 부처님이라 해 가지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아까 저 남해에 가서 공부하던 그 수좌처럼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있는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 좋은 도반이 옆에 있거나 선지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백이면 백 다 그러한 마(魔)에 섭(攝)하게 되고, 사견(邪見)에 떨어지게 되고, 까딱하면 정신이상(精神異常)에까지 걸려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를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 순일무잡한 경계에서 행여나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누가 와서 자기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란다든지 또는 어떠한 조사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복탁(卜度)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신통이 나기를 바란다던지, 그러한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할 때, 시간을 잘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딱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여.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눌 때도 그렇고, 오줌을 눌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안 하면 내가 어쩌리라’고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21분46초~41분48초)

 

 

 

 

 

(3/3)----------------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여.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 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혀.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 자신이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일체에는 망(妄)이 없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으로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 있고, 그 일념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이여.

 

기사년 납월팔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9초)(끝)

 

 

 

 

 

[법문 내용]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부처님께서 새벽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 히셨다 / 전강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정진해야.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 마구니가 엿보고 있다. 딴생각[別念]을 일으켰다 하면 바로 침범해 들어온다 / 한 수좌의 잘못된 경계로 스스로 자해. 이 공부는 선지식 밑에서 좋은 도반들과 같이 대중처소에서 정진을 해야 /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

 

모든 것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모든 소리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의 설법(說法) / 화두 의단이 독로해서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어 깨닫는 것이다.

 

(게송)외외낙락적나라~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사람 사람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 ‘이뭣고?’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팔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팔일 새벽 하늘에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옛날부터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같이 정진을 해야지, 선지식이 없는 곳에 또 좋은 도반이 없는 곳에 혼자 가서, 아직 득력(得力)을 하지 못한 분상(分上)에 혼자 가서 한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성이 수반(隨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다 경계(警戒)를 했습니다.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여.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은 일체 중생에는 망(妄)이 없다 보시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중생의 생로병사 · 희로애락 · 흥망성쇠의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 있고, 그 일념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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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7. 3. 9. 06:1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423)—1990년(경오년) 하안거해제 및 8월 첫째일요법회(90.08.05) (73분)

 

(1/4) 약 21분.

 

(2/4) 약 20분.

 

(3/4) 약 19분.

 

(4/4) 약 13분.

 

 

(1/4)----------------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한데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이라. 당당(堂堂)한 대도가 밝고 분명(分明)하거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한 그 밝고 밝은 그 대도가 사람 사람마다 본래부터 원만(圓滿)하게 갖추고 있더라.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다못 한 생각 어긋진 탓으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여, 영겁토록 만 가지 모양을 나투더라.

 

아미타불(阿彌陀佛), 서방정토 극락세계(極樂世界)의 교주이신 아미타불이나,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현재 이 법당에 운집(雲集)해 계시는 사부대중 여러분이나, 당당한 그 분명한 대도(大道)는 조금도 차등이 없어. 다 똑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다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 생각 어긋진 그 탓으로 해서 서방세계(西方世界) 아미타불은—그 이전에는 법장(法藏) 스님이라고 하는 비구 스님이 서방세계의 교주 아미타불이 되어 계시고,

석가모니 부처님도 과거에 어느 때는 선혜선인(善慧仙人)이라고 하는 신선으로 계신 때도 있었고, 설산의 수행자로 그런 때도 계셨고, 또 그 이전에는 사슴의 왕이 되시기도 하고, 코끼리의 왕이 되시기도 하고, 기러기 떼의 왕이 되시기도 하고, 그러한 다생(多生)의 여행을 거쳐서 마침내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이 사바세계의 교주(敎主)로 하강을 하시게 되었더라.

 

우리 이 법당에 운집한 사부대중도 언젠가는 우리의 이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는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부처님이 되실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과 같은 그런 보살이 될 수도 있고, 가섭존자나 달마대사와 같은 그러한 조사(祖師)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정진을 게을리하고 해태(懈怠)에 빠져서 탐진치 삼독의 바람에 휘날려서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그럭저럭 지낸다면 영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할 것이다.

 

 

오늘 경오년 음력 6월 15일, 하안거 해제일을 맞이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양력 8월 5일 첫째 일요법회날인데, 원래 일요법회는 오후 2시부터 시작이 되는데 오늘 해제 법요식과 한날이 되기 때문에 땡겨서 해제 법요식과 일요법회 법요식을 아울러서 갖게 되었습니다.

 

혹 그런 줄 모르시고 오후 2시에 늦게 참석하실 분도 계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앞에 써 붙이는 안내문을 자세히 보신 분은 빠지지 안 했을 것이고, 또 안내기(案內記)을 노나서 드렸는데 그것을 자세히 보신 분은 착오가 없으시겠으나, 그걸 건성으로 보신 분은 틀림없이 오후 두 시에 일요법회가 있는 줄 알고 늦게 참석하신 분은 착오가 있을 줄 압니다.

 

금년은 5월에 윤달이 들어서 7월 15일에 해제 법회를 할 텐데 이렇게 6월 보름에 해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월복(越伏)을 하고 윤달이 들고 그래서 금년 4월 안거는 무척 비도 많이 오고, 더웁기도 하고 정진하시기에 참 어려웠을 줄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용화사에 방부 들이신 선방 스님네나 보살선방 보살님네, 그리고 용주사 중앙선원에 방부를 들인 스님네, 또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 정진하신 스님네라든지 또 회룡사 비구니 선객 스님네 또 전주 위봉사 선방 스님네가 지금 모두 오늘 이 해제 법요식에 여기에 모다 오셨습니다

비록 장소는 몇백 리씩 이렇게 떨어져서 각각 그 처소에서 정진을 하셨지만 모두가 다 전강(田岡) 대종사의,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그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신 대중이라, 네나 비록 장소는 떨어졌어도 언제나 한 회상(會上)에서, 한 화합대중(和合大衆)으로 정진을 해 왔습니다.

 

그동안에 그렇게 더웁고, 비가 많이 오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무장무애하게 원만히 안거(安居)를 성취하고, 모다 신심과 수행력이 넘쳐흘러서 그 눈은 샛별처럼 초롱초롱하고 광채가 넘치는 그러한 모습으로 이 한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운집을 해서 원장으로서 그 기쁨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비록 말세(末世)가 되어서 온 세계가 전쟁이 일어나서 피비린내 나는 그런 전쟁을 현재 하고 있고, 또 언제 터질런지 모르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버티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비록 국가와 국가 간의 전장뿐만이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정치적인 싸움, 경제적인 싸움, 온갖 종류의 경쟁 속에서 말세의 투쟁견고(鬪諍堅固) 시대의 양상을 여지없이 노출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전쟁의 투쟁의 견고 시대에 우리 정법을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여러분은 그 전쟁이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에서 우러나는 다른 사람과의 투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투쟁,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육적(六賊), 또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팔만사천의 번뇌의 적(敵)과 싸움을 해서 그 싸움에서 지지 아니하고 삼하안거를 성취한 것은 우리 수행자로서는 훈장이 있다면 어떠한 훈장이라도 받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비록 세속의 싸움은 나라를 뺏거나 또는 땅을 뺏거나 어떤 뜻을 이루면은 그 전쟁이 잠시 또 가라앉고 또 다시 몇 해가 지나면은 또 싸움이 일어나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의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야만 자신과의 싸움은 끝날 것입니다마는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을 못하면 우리의 자신과의 싸움도 영원히 계속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은 원결(怨結)을 맺지를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싸움은 설사 이겼다 하더라도 때와 시대가 바뀌면은 또 싸움이 일어나서, 그 싸움은 새로운 싸움을 또 유발시키고 끝없는 원결을 맺게 될 것입니다마는,

자신과의 싸움은 싸움을 열심히 할수록에 보람 있는 싸움이 되고, 정말 마침내는 그 싸움에 자기가 지지 않고 몸과 목숨을 바칠 때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고  시비이자막수인(是非二字莫隨人)이어다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은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하라. 수행해 나가는 데는 모름지기 그 마음씀[用心]을 참되게 해라. 진실하게 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마음이 만약 참되다면 도는 친하기 쉬우니라.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지도(至道)는 무난(無難)이나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하셨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어. 오직 간택함을 혐의(嫌疑)한다’

간택(揀擇), 간택은 이리저리 가리는 거여. 가리고 이것저것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가리는 것이 간택인데, “그 '간택을 혐의한다'고 한 말이 무서운 간택이라”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 도를 수행을 해 나가는데 그 마음씀을 참되게 해라. 그 마음씀이 참되면은 도는 친하기가 가깝다. 바로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마음 쓴다’고 하는 표현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화두를 들어 나갈 때에—그 화두(話頭), 화두는 다른 말로 하면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그 공안은 따져,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지고 분석하고 더듬어 들어가고 이런 것이 제일 공안을 참구(參究)하는 데에 주의할 것이 바로 이 따지는 것이거든.

 

공안을 분석하고 따져서 아무리 따지고 따져서 들어가 봤자, 그렇게 따져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천하 없는 그럴싸한 결론을 얻어서 수긍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으로써 얻어지는 결론이라, 그것은 망상(妄想)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어쨌든지 화두는 ‘이 뭣고?’ 화두를 하던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던지, 조주의 무자(無字)를 하던지, 화두를 드는 그 찰나에 마음길이 끊어져야 되는 거여.

‘이뭣고?’ 다못 ‘이뭣고?’ 그 의심뿐이여. 앞 생각도 끊어지고 뒷 생각도 끊어지고, ‘이것이 옳게 하는가 그르게 하는가?’ 그런 생각까지도 끊어져버리고, 다맛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해.

 

또 조주(趙州) 무자(無字), 무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뿐이지, ‘어째서 없다고 하는 것이 나은가, 어째서 무라고 하는 것이 나은가?’ 그러한 생각도 거기에는 붙어서는 안돼. ‘어째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런데 무자(無字) 화두는 자고로 대단히 논란이 많은 화두여. 논란이 많지마는 그 무자 화두에 옳게 참해 가지고 참구를 바르게만 하면 그 무자 화두를 타파함으로써 많은 큰 깨달음을 얻은 도인들이 배출을 한 것입니다.(처음~21분2초)

 

 

 

 

 

(2/4)----------------

 

몽산 스님께서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이라고 하는 법어도 설하시고 또 『몽산법어(蒙山法語)』에는 무자 화두가 많이 거론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역시 무자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는 분들이 많아서 오늘은 그 무자 화두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몽산 스님의 그 ‘무자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단제(單提)와 전제(全提)가 있는데, (단제는) 그냥 ‘무(無)~~’ 거기는 전혀 의심을 붙이지 않고 ‘무(無)~~’

『어느 스님이 조주 스님한테 ‘저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여쭈어 보니까, 조주 스님이 ‘무(無)’ 그러셨단 말이여』

 

조주 스님이 ‘무(無)’라 그랬으니 ‘무(無)’~, 그냥 ‘무(無)~’하고.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리거나 ‘무(無)~~’ 항상 무자(無字)가 끊어지지 않도록. 앉아서도 ‘무(無)’, 서서도 '무(無)’, 밥 먹으면서도 ‘무(無)’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러지 않는 거여, 단제(單提)는 그냥 ‘무(無)~’하고 무자(無字)만을 항상 생각하고, 무자(無字)만을 들어서 ‘무(無)~’ 해 가지고 그 ‘무(無)~’를 관하는 거여. 이것이 단제인데.

 

전제(全提)는 조주의 뜻, ‘조주는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가?’하고 그 조주의 뜻을 의심하는 거여.

 

그러면 단제(單提)는 어떠한 이익이 있느냐 하면은 항상 ‘무(無)~’하는 무자에다가만 자꾸 정신집중을 하기 때문에 생각이 뭐 복잡한 생각이 일어날 것이 없어. 그리고 비교적 ‘무(無)~’에 정신집중을 하기가 무난해 그저, 초학자(初學者)로서.

그런데 그 무자(無字)를 하는데 생각을 한 군데다 딱 집중하는 데에는 참 좋은 이익이 있는데, 까딱하면 그 ‘무(無)~~’ 그놈만 들여다보다가 스르르르하니 혼침(昏沈)에 빠지기가 쉽다 그말이여.

 

왜 혼침에 빠지기 쉽냐 하면은 정신집중이 잘된 반면에 생각이 조용한 데에 이렇게 빠져 가지고 스르르하니 잠이 들어버려. 계속 또 잠이 들다가 또 일어나서 또 ‘무(無)~’

평생 동안 ‘무(無)’하면 정신집중은 비교적 잘되고,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무(無)’ 하나만을 생각하니까 조금도 어려움이 없고 이 생각 저 생각이 안 일어나고 좋은데,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분(分)이 없어.

 

그저 조용하니 조용한 데에만 집중만 해서 혹 오신통(五神通)까지도 날 수가 있어.

조용하고 고요하고 고요한 데에 집중을 하다보면 저절로 망상이 끊어져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아주 무심(無心)경계에 들어가서 혹 오신통은 날른지는 모르나, 확철대오는 할 수가 없다. 누진통(漏盡通)은 할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런데 전제(全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간절히 간절히 의심을 들다보면 의심을 들어서 정신을 성성(惺惺)하게 하는데에는 대단히 좋아.

그런데 성성(惺惺)한 가운데에도 적적(寂寂)하고, 성성하면서도 적적하도록 참구(參究)하는 묘리(妙理)를 얻지 못하면은 공연히 생각이 어지러워. 적적하게 들어가지를 못하고 비교적 성성하기는 하는데 생각이 이렇게 고요해지지를 못하는 흠집이 있어.

 

그래 가지고 좀 성질이 급하고 그런 양성(陽性)을 가진,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하고 의심을 아주 힘을 써서 간절히 간절히 하다 보면 상기(上氣)가 되는 폐단이 있고, 골치가 아파지는 폐단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몽산 스님은 이 단제(單提)와 전제(全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 하고 말씀을 하셨나 하면은, 초학자(初學者)는 단제로써 공부를 지어 나가라. 다맛 ‘무(無)~’하고 단제로 공부를 해 나가면, 그걸 일구월심(日久月深)해 나가면 생각도 가라앉고 망상도 가라앉고, 좀 자리가 잡혀.

 

더군다나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무(無)~~~’ 무(無)를 길게 이렇게 하면서 숨을 내쉰다 말이여.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무~~~’ 이렇게 단제로 그렇게 일구월심 얼마동안 정진을 해 나가면 순숙(純熟)해져서 망상도 다 가라앉아 버리고 이렇게 된 다음에 전제(全提)로 들어가라 이거여.

 

단제로 계속하다 보면 너무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으니까 계속해서 단제로만 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망상도 가라앉고 그래서 순숙해지면 그때 가서 전제(全提)로 들어라.

‘무(無), 무(無)~~~’가 아니라 ‘무(無)? 어째서 무(無)?’ 그때 가서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초점을 두어 가지고 의심으로 들어가라 이거거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까지 처음에는 다 하다가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무(無)’라고 한 소리까지 안 하고 ‘어째서?’ 그렇게만 해도 벌써 의단(疑團)이 딱 나중에는 드러나게 된다 그말이여.

의단이 드러나면—‘어째서?’ 소리도 안 해도 떠억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한 그 의단이 드러나게 된다면, 뭐 자꾸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런 소리를 자꾸 뜰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처음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 해야 돼. 이렇게 해서 자꾸 의심이 끊어지면 또 하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그렇게 길게 여러 글자를 안 하더라도 의심이 들리면은 다못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만 해나가도 된다.

 

이 초학자가 단제로써 기초를 다져 가지고, 단전호흡과 아울러서 단제로 기초를 다진 뒤에는 ‘무(無)?’ ‘무(無)라니?’ 이렇게만 해도 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초학자의 단계에서는 단제로 해 가지고, 기초가 이루어져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된 다음에는 전제(全提)로써 화두를 잘 거각(擧却)해 나가면 ‘어째서?’하고 용을 쓰고 이마에다가 힘을 들여서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기초도 되지도 않고, 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어째서?’하고 어거지로 힘을 쓰고 한다면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상기가 일어나고 골치 아픈 병이 생기고, 화두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몽산법어집을 낸 그 몽산 스님의 무자 화두를 관하는 법에는 이렇게까지 참 자상하게 말씀을 해놓으셨고,

또 그렇게 해 나가되 그래도 정진하다 보면 이렇게 겨울에 문을 닫고 정진을 하면은 30분만 지나면은 사람 콧구멍에서 나오는 모다 탄산가스로 인해서 공기가 탁해지고 방안 온도가 높아지면 아무리 성성하게 잡드리를 해도 혼침에 들기가 쉽고, 또 요새처럼 여름에 날씨가 더웁고 그러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꺼벅꺼벅 졸음이 온다 그말이여.

 

그럴 때에는 전제(全提)로,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전제(全提)로 단속을 하고 또 그렇게 하다가도 워낙 산란심(散亂心)이 많으면 그때에는 또 단제로 화두를 들어보라 그말이여. ‘무(無)’ 단제로 한 번 해보고.

 

화두가 의심이 자꾸 끊어져. 잠깐 들으면 있다가 또 끊어지고, 또 끊어지고 자꾸 이렇게 단절이 되면, 그때는 근제(勤提)를 하라. ‘부지런할 근(勤)’자, 자주자주 부지런히 화두를 들어라.

 

그래서 혼침 올 때는 전제(全提)로 들어 보고, 산란심이 일어날 때에는 단제로 한번 대체를 해 보고, 자꾸 화두가 끊어져싸면 근제, ‘부지런할 근(勤)’자 근제로 단속을 하고,

이렇게 해서 전제(全提)와 단제(單提)와 근제(勤提)를 적절하게 운용을 해서 혼침과 산란과 간단(間斷)을 단절되는 것을 대처해 나가는, 스스로 그걸 잘 방편을 써서 단속을 해 나가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인(古人)이 이 정진(精進)하는 것을 말씀하시기를 마치 깨 한 말을 큰 나무 밑에다가 놓고, 깨알 하나를 들어서 나무 몸퉁이에다가 이렇게 굴려서, 굴려서 올라가 가지고 저 나무 위에다가 빈 그릇을 하나 놔두고, 굴려 올려가 가지고 그 그릇에다가 그 한 말의 깨를 다 올리는 정성.

 

그냥 평지에서 이렇게 굴린다면은 하기가 쉽겠지만, 서 있는 나무에다가 이렇게 발판을 놓고 또는 사다리를 걸치던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 깨알을 굴려서 올리다가 뚝! 땅에 떨어지면은 다시 또 그 깨를 줏어서 다시 또 올리고,

그래서 간신히 하나를 갖다 올려놓은 다음에는 또 깨알 하나를 다시 또 들어서 올리고 해서, 한 말의 깨를 저 위에 있는 꼭대기에 있는 빈 그릇에다가 다 옮기는 거와 같은 그러한 정도의 정신을 가지고 공안을 참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 아마 한 주먹 깨를 올린다 해도 몇 날 며칠이 걸릴 것입니다. 그것이 하다 보면 떨어져 버릴테니까요. 좀 굵은 것 같으면은—굵은 팥알 정도만 되어도 굴리기가 쉬울 텐데, 참깨 알이나 들깨 알 그 쬐끄만 것을 갖다가 굴리다 보면 그것이 한 자도 못 올라가서 떨어지고, 한 치도 못 올라가서는 몇십 번을 떨쿨거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한 말의 깨를 올릴라면은 3년 갖고도 안되고, 10년 갖고도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지은 그 삼세육추(三細六麤)의 그 미세한 망념과 거칠은 망념이 끝없이 일어나는데,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눈으로 들어오는 망념(妄念)으로 인해서 또 화두를 놓치고,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망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식(六識)이 일어나는데, 그 참 앞으로 컴퓨터가 발달이 되면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그 망상 일어나는 것을 아마 기록할 수 있는 때도 아마 머지않아서 오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 일어나는 망상을 기록을 해 놓고 보면 참 기구절창할 것입니다.

 

그러한 망상, 마치 저 호수나 바다에 가면 끝없이 크고 작은 물결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자리에서 또 다시 새로 일어나고 그러듯이, 우리의 진여(眞如)의, 불성(佛性)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끝없는 물결, 망상의 물결이, 그놈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오늘날까지 왔고 영겁을 두고 윤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마는.

 

그 일어나는 망상의 물결을 생각 생각이 돌이키고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그래서 처음 뭐 1년 2년 3년에 그것이...

과거에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확철대오하기도 하고, 칠 일 만에 되기도 하고, 구순(九旬) 석 달 만에 되기도 하고, 3년 안에 되기도 하고 하는, 그런 조사 스님네의 일화도 많이 전해옵니다마는 사실 그러한 분들은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가 있고, 우리도 그만큼만 참 몸과 목숨을 바쳐서 한다면 우리도 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연히 욕심을 내서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서 이 정진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순서가 있고, 자기의 힘에 따라서 알맞게 해야지, ‘뱁새가 황새 흉을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마는.

과거에 도인들, 과거에 모다 선각자(先覺者)들이 하신 일도 우리가 그 정신은 어디까지나 본받아야 하지만 그 선지식들이 하신 고대로 우리가 흉내낼 일도 있고, 흉내는 내서는 아니되고 정신만을 본받아서 해야 할 점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조급한 생각을 내서도 아니되고, 그렇다고 해서 미리 겁을 집어먹고 늘어져 쳐져가지고 그렇게 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이 공부는 지극히 간단하지만 간단하면서도 참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21분3초~40분30초)

 

 

 

 

 

(3/4)----------------

 

『우리 범부(凡夫)도 이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잘 들으면서 열심히 하면 올바른 방법을 터득할 것이고, 올바른 방법을 터득해 가지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나가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항상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마는,

 

그건 틀림이 없지만 그 공부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용맹심과 또 철저히 믿는 신심과 화두를 거각하는데 있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한 참 올바른 참구(參究), 대의단이라고 했습니다마는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는 그런 무모한 그러한 참구를 그것을 갖다가 대의단(大疑團)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대의단이어야 합니다마는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하고, 큰 의심 밑에 크게 깨닫고, 작은 의심 밑에 작은 깨달음이 있고,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고 이렇게 이 활구참선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고인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그 큰 의심이라고 하는 것을 우격다짐으로 처음부터서 막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하고 억지로 막 몰아붙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잘 익히고, 그리고 단제(單提)로 해서 그렇게 해 가지고 어느 정도 기초를 이루어가지고 그래 가지고 전제(全提)로 들어가서 그 ‘간절하면서도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지 않는’ 그러한 간절한 의심, 이건 참 말로써 간단하게 표현하기가 어렵고,

그런 단계를 거쳐서 본인이 꾸준히 일구월심 해 나가면 그 전제(全提),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가?’하는 그 의심, 간절하고도 그 간절한 의심을 거각해 나가는 그것을 반드시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의심을 터득을 해야 어디 가서 정진을 하던지 정진하다가 병나는 법이 없습니다.

 

원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력하게 잘 타고난 근기(根機)는 처음부터서 전제로 몰아붙이고, 단전호흡이고 뭣이고 그까짓 것도 소용없이 한마디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 한마디만 듣고 막 몰아붙여도 석 달 안에 또는 일주일 안에, 길어봤자 3년 안에 툭 터져버릴 그러한 근기도 있습니다.

 

있으나, 하근기(下根機)는 그렇게 몰아붙이면 흔히 상기병이 일어나기도 하고, 골치 아픈 병이 일어나기도 하고, 바른 정진의 힘을 얻기도 전에 병이 먼저 나 가지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고, 그런 분을 종종 저는 만나게 됩니다마는.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몽산 스님의 무자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지금 자상하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화두 드는 법을 잘 알아서 전제로 잘해 나가시는 분에게는 군더더기 말이 될는지 모릅니다마는, 아직도 이 화두를 드는 요령에 대해서 확연히 모르시는 분, 이제 새로 시작한 초학자들은 오늘 이 산승의 말씀을 잘 듣고 정진하는 데에 어긋짐이 없도록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 이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정진을 해 가지고 결정코 금생에 이 몸으로 확철대오를 하시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인데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인고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꿈속에서 한 알갱이 쌀을 탐착하다가 저 천상(天上) 금대(金臺)의 만겁량(萬劫糧), 만겁토록 먹고도 남을 양식을 잃어버리게 되는구나.

 

이 ‘꿈속의 한 알갱이 쌀’이라 하는 것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우리가 이렇게 몸 받아서 한평생을 사는 것이 이것이 꿈속에서 지금 몸을 받아난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식(業識)으로, 그 업식으로 지은 선악(善惡)의 업연(業緣)으로 지금 이 꿈속에 지금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가지고 꿈속에서 살면서도 꿈속인 줄을 모르고 지금 살고—시집 장가들고, 아들딸 낳고 모다 이렇게 또 사업을 하고 그러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도 꿈속에서 지금 만난 거고, 지금 이렇게 돈을 벌고 살림을 하고 산 것도 그래 가지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한 것도 꿈속에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꿈속에서도 죄를 지은 사람은 또 재판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서 복역을 하고 있고, 또 전생에 지은 복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사람도 그것도 역시 꿈속에서 지금 그러고 있는데,

자기 양에 안 차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 돈을 벌어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높은 벼슬을 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알고 보면 하나도 실다운 것이 아니고 그것이 다 꿈속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이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그것이 꿈인 줄을 아셨어. 아셨기 때문에 그러한 탐착심(貪着心)을 버리고 출가(出家)를 해서 출가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고 계신 분들이여.

또 인연이 지중(至重)해서 출가는 안했지만 또 출가는 못했지만 세속에 몸담아 계시면서도 그런 데에 퐁 빠지지 아니하고 그저 인연을 어쩔 수가 없어서 인연 속에 있으면서도 정법을 믿고 불법을 믿고 참선법에 의지해서 수행을 하고 계신 거여.

 

여러분들은 참 그런 분들이라, 그러한 데에 집착해 가지고 만겁량(萬劫糧)을 잃어버리고 다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 빠지시지는 아니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업이 지중해서 업(業) 속에서 살다 보니 아무래도 정진에 지장이 있을 것은 사실입니다.

 

결제 때 이렇게 방부(房付)를 들이고 와서 계시기도 하고, 부득이해서 가정을 아주 떠날 수가 없는 분은 출퇴근하시기도 하고, 또 출퇴근 할 형편도 못되시는 분은 가정에서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을 하신 그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 가지의 처지 속에서 그 한 생각을,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하시니 그 참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감사한지를 모릅니다마는,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그 무상(無常)하기가 잠깐이여. 헤아릴 수가 없어.

하루에도 몇천 명, 몇만 명씩이 죽어가고 또 몇천 명, 몇만 명이 이렇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태어나도 언제 죽을런지—태어나면서 죽기도 하고, 한 달 만에 죽기도 하고, 10세 이내에 죽기도 하고, 20세 이내에 죽기도 하고, 그 고통을 겪어서 공부하고 이제 살 만큼 되면은 터끄덕 교통사고로 죽고.

그 무상하기가 말로 할 수 없는데,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냐. 어찌 이 무상한 것을 철저히 깨닫고 한 생각을 돌이켜서 철저하게 자기 생사 문제를 향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안 할까 보냐.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는 세속의 오욕락(五欲樂)에다가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우리 이미 세속의 오욕락이 허망한 것인 줄 알고, 발심해서 출가해 가지고 정진한 분상(分上)에는 무엇이 ‘한 알갱이 쌀’이냐?

 

3년 내지 10년, 20년, 30년 정진을 하다보면 자기 나름대로 소견(所見)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소견이 나는 수가 있고, 자기 나름대로 수행력이 생겨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득력처(得力處)가 있을 수가 있는데,

정진하다가 어떤 그런 확철대오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 얻어지는 득력처—그것이 체중현(體中玄) 도리가 되었건, 어떤 공(空) 도리가 되었건 자기 나름대로 그 득력처, 그것이 바로 이 ‘한 알갱이 쌀’이다.

 

세속의 명예, 권리, 지위 그런 오욕락에 대한 ‘한 알갱이 쌀’은 그까짓 것 버리기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진하다가 자기 나름대로 얻어진 공 도리, 체중현 도리 이런 것은 정말 버리기가 어려워. 따악 그 자기가 얻은 그 견처(見處)를 따악 속에다 간직해 가지고 도저히 그것을 버릴 수가 없어.

 

여지없이 그것을 버려 버리고 자기 맥히는 공안에 대해서 정진을 다잽이 나가야 정진이 옳게 되고 반드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분(分)이 있지, 조그만한 견처 그놈을 속으로 간직해 가지고 자기도 ‘한소식했다’하는 그러한 생각을 떠억 지니고서 그놈을 들여다보고 앉았으면 그 사람은 세상없이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 대중 도반 가운데에 혹 그러한 견처가 있으면 탁! 털어 내놓고 여지없이 털어버리고, 정말 새로 발심(發心)한 순수한 초학자(初學者)가 되어가지고 정말 알뜰히 완전히 초학자의 자세로써 그렇게 정진을 다잽이 할 것을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 것이 무슨 큰스님이라 하고 그렇게 되어 가지고 남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지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요달해 가지고 자신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그런 대승심을 가지고 정진하는데,

그까짓 조그마한 소견을 아까워서 버리지를 못하고 그놈을 떠억 간직해 가지고 자기도 한소식했다 하는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남 앞에 으시대봤자 그것 어디다 쓰겠습니까?

 

이 가운데는 그러한 분이 없으시겠지만 행여나 앞으로라도 어떤 견처가 나오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이나 선배 앞에 탁! 털어 내놓고 깨끗이 털어버리고 그렇게 정진하시기를 바라고,

또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정진하다가 어떠한 견처가 있으면—청신사 청신녀라고 해서 그런 견처가 없으라는 법도 없고.

 

부처님 당시의 유마거사(維摩居士)라든지, 중국의 방거사(龐居士)라든지, 우리나라에는 부설거사(浮雪居士)와 같은 그러한 부처님이나 조사 스님네에 못지않은 그러한 대도사들도 있었고, 또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그러한 훌륭한 도인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비록 머리는 안 깎았지만 그 정법을 믿는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에 있어서는 스님네 못지않도록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0분31초~59분45초)

 

 

 

 

 

(4/4)----------------

 

오늘 삼하안거 해제와 또 백일기도 회향과 또 8월 첫째 일요법회, 세 가지 법요식을 아울러서 갖게 되었습니다마는.

대중이 운집해서 정진을 하다 보니 결제(結制)가 필요하고 또 이렇게 해제(解制)가 필요한 것뿐입니다. ‘해제했다’고 해서 우리의 정진에 조금도 해이(解弛)해져서는 아니 될 줄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또 7월 백중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는 법요식이 있습니다마는 그때 산철 결제 방부를 받게 됩니다. 산철 결제에도 방부를 들이고 또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해제했다’고 해서 해이하시지 말고 가정에 돌아가셔도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고.

 

또 스님네들도 산철 결제에 방부 들이실 분은 들이고, 들일지라도 어쨌든지 해제 동안에 알뜰하게—어느 산중을 가시건, 어느 바닷가를 가시건, 어디를 가시거나 산철 동안에 요중선(鬧中禪) 동중선(動中禪)을 알뜰히 다잽이를 해서,

‘지난 석 달 결제 중에 한 스스로 수행력이 과연 얼마만한가? 과연 요중(鬧中)에서도 동중(動中)에서도 여법(如法)하게 알뜰하게 정진이 되는가?’를 잘 가늠하면서 정진을 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물론 결제 중에는 말 많이 하실 필요가 없었겠으나, 인자 해제 했으니까 말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거나 누가 말할 사람도 없고, ‘인자 해제 했으니까 우리 마음껏 그동안에 못한 말을 실컷 한번 해 보자’ 그런 생각을 갖지 마시고, 어쨌든지 말을 많이 하시지 말고, 어느 사찰을 가시던지 말을 많이 하시지 말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산승(山僧)이 과거에 한 10년간 말을 안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그 일가지견(一家之見)이 있어서 말씀을 드린 건데, 입을 많이 벌리고 떠들고 난 뒤끝에는 아무래도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

말을 많이 하면 기운이 또 빠져 나가고, 말을 많이 하다보면 쓸데없는 말이 본의 아니게 또 튀겨져 나오게 되고, 그러면 스스로도 손해가 되거니와 듣는 사람에게도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또 시비가 일어날 소지가 다분히 있고 그래서 수행자는 항상 말을 적게 하고, 그렇다고 해서 다 묵언을 하시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꼭 필요한 말은 하시되 간단하게 한두 마디로 끝내버리고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신다면 해제했다고 해서 무슨 정진하기에 불편할 것도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또 금강과 같은 그 금강지(金剛志), 견고한 뜻을 분(奮)내서 일념만년(一念萬年)이 되도록 그렇게 해서 항상 행주좌와 간에 회광반조(廻光返照)하고, 살피고 또 살펴서,

 

혼침(昏沈)이 오면은 전제(全提)를 하고,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나면 단제(單提)를 하고, 간단(間斷) 자꾸 생각이 끊어지고 화두가 순일하게 연속이 안 될 때에는 부지런히 화두를 들어서[勤提],

일구월심해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고 면면밀밀해서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질 때까지.

 

화두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떠억 들어지면 그때의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고 고요하고 깨끗한 그 경지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그러나 그 쾌락안연(快樂安然)한 상태에 맛들여서 그놈을 탐착하다가 화두를 놓쳐버리면 안 되아.

그런 가운데에도 화두를 잘 거각(擧却)을 해서 그 순수무잡(純粹無雜)한 의단(疑團)이 끊어지지 않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면 수질각차(手跌脚蹉) 해서, 어떠한 찰나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많은 도인들이 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도업(道業)을 성취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잡드리 해 나간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만 명이면 만 명 다 틀림이 없이 다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사람을 만나 보면은 얘기를 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시비가 일어나고, 시비가 일어나다 보면 공부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니, 옳고 그른 것은 상대방한테다 맡겨버리고.

 

깨닫고, 못 깨닫고 하는 것은 자기한테 붙어 있어. 자기가 잘 단속해 나가면 깨달음으로 나가는 것이고, 한 생각 단속을 게을리하면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여.

그래서 깨닫고, 못 깨닫고 한 양단(兩端)의 기로(岐路)는 자기한테 있는 것이고, 시비에 끌려가냐, 안 끌려가냐 하는 것은 사람을 따라주지 말어. 그 사람한테 맡겨 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산화사금수여람(山花似錦水如藍)하니  막문전삼여후삼(莫問前三與後三)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심경확연망피차(心境廓然忘彼此)하면  대천사계총포함(大千沙界總包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화사금수여람(山花似錦水如藍)이여. 산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어 비단과 같고, 물은 푸르기가 쪽빛과 같구나.

막문전삼여후삼(莫問前三與後三)이다. 전삼(前三)과 후삼(後三)을 묻지를 말아라.

 

중국의 무착(無着) 스님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기 위해서 오대산을 찾아갔는데, 허름한 나무하는 영감님을 만났어. 그래서 그 영감님과—문수보살인 줄도 모르고 영감님을 만나 “뭣하러 왔느냐?”하니까,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왔다”

 

“어디서 왔느냐?” “저 아무데서 왔다”

 

“거기는 대중이 몇 분이나 되느냐?”하니까, “몇백 명이 이렇게 된다”

 

(무착 스님이) 영감 보고 “대중이 몇이나 되냐?” 그러니까, “전삼삼 후삼삼이다”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 이건 공안(公案)이라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숫자로 알 수 있는 말이 아니여.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을 묻지를 말아라.

 

심경확연망피차(心境廓然忘彼此)하면, 내 마음 경(境)이나 저 바깥 경계가 확연해서 저 경계라든지, 내라든지 그런 것을 잊어버리면—심경(心境)이 확연(廓然)해서 피차(彼此)를 잊어버리면,

대천사계(大千沙界)가 총포함(總包含)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항하사수(恒河沙數)와 같은 그런 세계가 다 포함되어 있다.

 

해제를 해서 어디를 가시거나, 가정으로 가시거나 어느 사찰을 가시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고 어떠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 경계(境界)에 시비심(是非心)을 내지 말고, 분별심을 내지 말고, 다맛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나아가면 반드시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것이다.(58분46초~73분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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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당당하다(堂堂-- 집·당당할 당) ; ①(모습이나 태도가)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하다. ②(형세가) 위엄 있고 훌륭하다.

*분명(分明 명백할 분, 밝을 명) : ①틀림없이 확실하게. ②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흐릿함이 없이 똑똑하고(分) 뚜렷하다(明).

*원만(圓滿) : 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서방세계(西方世界) ; 서방 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교주(敎主) ;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해태(懈怠 게으를 해, 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월복(越伏) ; 중복(中伏)과 말복(末伏)의 사이가 보통 10일인데, 20일로 늘어나는 일.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화합대중(和合大衆) ; 서로 경애하고, 서로에게 행위·견해를 같게 하여 화합하는 대중.

*안거(安居 편안할 안, 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투쟁견고(鬪諍堅固 싸움 투/다툴 쟁/굳을 견/굳을 고) ;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이천오백 년을 불법(佛法)의 성쇠(盛衰)에 따라 나눈 다섯 시기 가운데 다섯 번째 시기. 수행승들이 자기 주장만 옳다고 싸워 불법이 자취를 감추는 시기이다.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말.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간택(揀擇 가릴 간, 가릴 택) ; 사물이나 사람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따위와 그 정체를 구별하거나 가려서 알아 선택함.

*혐의(嫌疑 싫어할 혐/의심할·괴이히 여길·두려워할·의심스러울 의) ; 꺼리고 싫어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 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이뭣고?’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조주의 무자(無字)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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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

〇“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순/익을 숙) ; 완전히 익음.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산란심(散亂心 흩을 산/어지러울 란/마음 심)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간단(間斷 틈·사이 간/끊을 단)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삼세육추(三細六麤 석 삼/가늘 세/여섯 육/거칠 추)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망동하여 유전하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으로의 3가지 미세한 마음 상태[三細]와 이어지는 거칠은 6단계의 마음 상태[六麤]를 설명하는 '대승기신론'에서 밝힌 교설.

*망념(妄念) ; 망상(妄想).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 ; ‘흉내(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그대로 옮기는 짓)’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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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급불완(不急不緩) ;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32~133.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19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19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19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견처(見處) ; ①(틀린)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뜻. 집견(執見,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이 일어나는 장소. 유루법(有漏法)의 다른 이름.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견(見)은 견해, 세계관이라는 뜻.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으시대다 ; 으스대다. (사람이)어울리지 않게 우쭐거리며 뽐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유마거사(維摩居士) ; 유마힐(維摩詰). [범어]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인도 비사리(毘舍利  Vaisali)성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하였다。그 수행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제자들도 미칠 수 없었다.

그가 병들어 누우매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는데, 둘 아닌 이치(不二法)에 대하여 여럿이 돌려 가면서 말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그리하여 모두 『유마거사가 가장 둘 아닌 법을 잘 연설한다』고 칭찬하였다。이것은 <유마경>의 주요한 내용이다.

*방거사(龐居士) ; 당나라 형주(衡州) 형양(衡陽) 사람. 자는 도현(道玄)이다. 성은 방씨고, 이름은 온(蘊)이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석두(石頭)에게 선지(禪旨)를 짐작(斟酌)함. 탐욕스럽고 속된 것을 싫어해 재산을 모두 동정호(洞庭湖)에 던져 버리고 죽기(竹器)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뒤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온갖 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마조는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마셔버린 뒤면 일러주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2년 동안 정진하여 깨달음.

죽으려 할 때 딸 영조를 시켜 그늘을 보아 오시(午時)가 되거든 말하라고 부탁했다. 영조가 “지금 오시가 되었는데, 일식(日蝕)이 일어납니다.”하자, 그는 평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나가서 보는 동안, 영조가 그의 평상으로 올라가 죽어버렸다. 이를 본 그는 웃으면서 “내 딸의 솜씨가 나보다 빠르구나!”하고는 7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서울(王都, 慶州)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진광세(陳光世). 법명(法名)은 부설(浮雪). 자(字)는 천상(天祥).

어려서 불국사에 출가하였다. 영조(靈照), 영희(靈熙) 두 도반과 함께 두륜산 등지에서 10년간 정진한 뒤, 오대산 문수보살의 도량을 참배하러 북으로 향하여 가던 길에 두릉(杜陵 : 전북 만경)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신도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구무원에게 딸 묘화(妙花)가 있었는데, 부설을 흠모하여 부설과 부부가 되길 원하고, 만일 버림을 당하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니, 묘화의 부모도 부설에게 딸을 버리지 말고 제도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부설은 출가의 뜻이 견고하여 굽히지 않았으나, 또 돌이켜 보살의 자비로운 뜻을 생각하여 마침내 묘화와 결혼하였다.

그는 비록 재가(在家)에 있었으나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고 정진을 계속하여 도를 이루었다. 등운과 월명도 출가,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다.

묘화부인은 백 십세를  살았는데, 말년에 집을 내놓아 사원으로 삼아 부설원(浮雪院)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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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해이하다(解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가)긴장이 풀어져서 느슨한 상태이다.

*요중선(鬧中禪 시끄러울 뇨/가운데 중/참선 선)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조용한 가운데 하는 참선은 정중선(靜中禪)이라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일가지견(一家之見) ; 일가견(一家見). 어떤 일에 관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안목이나 견해.

*금강지(金剛志) : 금강석과 같이 견고한 뜻。 일체 번뇌를 쳐부술 수 있는 굳센 의지.

*분(奮) ; 떨치다. 분발(奮發)함(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힘쓰다. 분격하다(憤激--). 일으킴.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단제(單提) ;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단제(單提)는 그냥 ‘무~’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를 관하는 것.

*간단(間斷)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한 상태.

*쾌락안연(快樂安然) ; 쾌락하고 편안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수질각차(手跌脚蹉 손 수/거꾸러질·넘어질 질/다리 각/미끄러질·넘어질 차) ; 각차수질(脚蹉手跌). (몸이 균형을 잃고) 손과 발이 미끄러지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만일 이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와 선도(禪道)와 불법(佛法)과 평생동안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나,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벨 때, 한 번 베면 모두 다 끊어져서 그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텅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한 법도 정식(情識)에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차를 마셔도 차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먹는 줄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몰라 정식(情識)이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될 것이다.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如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뜬 것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것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이다.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恁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이 일대사만을 밝힐 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을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한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물 뿌린 듯 쇄락하고, 씻어 말린 듯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참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원문에 있는 '驀然 脚蹉手跌'은 몸의 균형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이 미끄러지고 손이 미끄러지는 것이니, 아차! 하는 순간을 말한다. 轉身移步 懸崖撒手. (원순 스님 주)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양단(兩端 두 량, 끝 단) ; 두 끝.

*기로(岐路 갈림길 기, 길 로) ; ①길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②갈림길(둘 이상의 갈래로 나누어진 길).

*(게송) ‘산화사금수여람~’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예장종경 게송 참고.

*무착 문희(無着文喜) : (820 – 899) 가화(嘉禾)땅 주(朱)씨 집에서 나서 7살에 출가하였다。처음엔 계율을 숭상하였고, 그 때 서울의 운화사(雲華寺)에 가서 징관(澄觀)법사에게서 화엄(華嚴)의 교리를 배웠고, 그 다음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오대산(五台山)에 들어갔는데, 보살의 화현(化現)이 여러 번 있었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

선지(禪旨)가 밝은 뒤에 죽 솥에서 보살이 나타나므로 『문수는 문수요, 무착은 무착이다。무슨 상관 있느냐!』하고 죽을 젓던 주걱으로 때려 주었다.

홍주(洪州) 관음원에서 앙산의 말 한 마디에 크게 깨치고 그의 법을 이었다。당나라 소종(昭宗) 광화(光化) 2년에 80세로써 입적하였다。무착이란 것은 나라에서 지어 드린 법호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이다.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룬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확연(廓然 큰·넓을·텅 빌 확/그럴 연) ; 넓고 텅 빈 모양.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항하사수(恒河沙數) ; 인도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와 같은 수(數)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주요 내용]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자기 자신과의 싸움, 자신 속에 일어나는 번뇌와의 싸움은 원결을 맺지 않는다 /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화두를 드는 그 찰나에 마음길이 끊어져야 / 무자화두 드는 법, 단제(單提) 전제(全提) 근제(勤提) / 불급불완(不急不緩)한 올바른 정진.

(게송)탐착몽중일립미~ / 초학자(初學者)의 자세로 정진 / 산철 때 요중선(鬧中禪)을 알뜰히 해야 / 수행인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 / (게송)산화사금수여람~.

 

 

[주요 문구]

 

우리 이 법당에 운집한 사부대중도 언젠가는 우리의 이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는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부처님이 되실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과 같은 그런 보살이 될 수도 있고, 가섭존자나 달마대사와 같은 그러한 조사(祖師)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정진을 게을리하고 해태(懈怠)에 빠져서 탐진치 삼독의 바람에 휘날려서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그럭저럭 지낸다면 영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할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원결(怨結)을 맺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싸움은 설사 이겼다 하더라도 때와 시대가 바뀌면은 또 싸움이 일어나서, 그 싸움은 새로운 싸움을 또 유발시키고 끝없는 원결을 맺게 될 것입니다마는,

자신과의 싸움은 싸움을 열심히 할수록에 보람 있는 싸움이 되고, 정말 마침내는 그 싸움에 자기가 지지 않고 몸과 목숨을 바칠 때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공안을 분석하고 따져서 아무리 따지고 따져서 들어가 봤자, 그렇게 따져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천하 없는 그럴싸한 결론을 얻어서 수긍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으로써 얻어지는 결론이라, 그것은 망상(妄想)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어쨌든지 화두는 ‘이 무엇고?’ 화두를 하던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던지, 조주의 무자(無字)를 하던지, 화두를 드는 그 찰나에 마음길이 끊어져야 되는 거여.

다못 ‘이뭣고?’ 그 의심뿐이여. 앞 생각도 끊어지고 뒷 생각도 끊어지고, ‘이것이 옳게 하는가 그르게 하는가?’ 그런 생각까지도 끊어져버리고, 다맛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해.

 

혼침 올 때는 전제(全提)로 들어 보고, 산란심이 일어날 때에는 단제로 한번 대체를 해 보고, 자꾸 화두가 끊어져싸면 근제, ‘부지런할 근(勤)’자 근제로 단속을 하고,

이렇게 해서 전제(全提)와 단제(單提)와 근제(勤提)를 적절하게 운용을 해서 혼침과 산란과 간단(間斷)을, 단절되는 것을 대처해 나가는—스스로 그걸 잘 방편을 써서 단속을 해 나가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는 세속의 오욕락(五欲樂)에다가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우리 이미 세속의 오욕락이 허망한 것인 줄 알고, 발심해서 출가해 가지고 정진한 분상(分上)에는 무엇이 ‘한 알갱이 쌀’이냐?

정진하다가 어떤 그런 확철대오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 얻어지는 득력처—그것이 체중현(體中玄) 도리가 되었건, 어떤 공(空) 도리가 되었건 자기 나름대로 그 득력처, 그것이 바로 이 ‘한 알갱이 쌀’이다. 여지없이 그것을 버려 버리고 자기 맥히는 공안에 대해서 정진을 다잽이 나가야 정진이 옳게 되고 반드시 확철대오할 수 있는 분(分)이 있다.

 

깨닫고, 못 깨닫고 하는 것은 자기한테 붙어 있어. 자기가 잘 단속해 나가면 깨달음으로 나가는 것이고, 한 생각 단속을 게을리하면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여.

그래서 깨닫고, 못 깨닫고 한 양단(兩端)의 기로(岐路)는 자기한테 있는 것이고, 시비에 끌려가냐, 안 끌려가냐 하는 것은 사람을 따라주지 말어. 그 사람한테 맡겨 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해제를 해서 어디를 가시거나, 가정으로 가시거나 어느 사찰을 가시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고 어떠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 경계(境界)에 시비심(是非心)을 내지 말고, 분별심을 내지 말고, 다맛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나아가면 반드시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6. 10. 6. 19:4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408)—1990 신수기도 입재(90.01.29) (30)

 

(1/2) 약 22분.

 

(2/2) 약 8분.

 

(1/2)----------------

 

오늘 경오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7 기도의 입재(入齋)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기도 입재에 대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오늘 여러분께서  들으셔서 아시겠습니다마는,

기도는, 어떻게 해서  기도를 성취를 하느냐? 업장(業障)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는 정법(正法) 믿고 정법을 실천함으로 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있다고 하는 그러한 요지(要旨)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사람에게 거기에는 어떠한 마장(魔障) 거기에는 붙지를 못합니다. 계행(戒行) 지키면서 정법을 믿는 사람은 25신장(神將), 선신(善神) 항상 전후좌우로 옹호를 하기 때문에 삼재(三災) 일체 마장이 거기에는 붙지를 못해.

그러니 삼재를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데에는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 최고다. 

 

금년은 ··(··), 돼지띠와 토끼띠와  염소띠, ··미생이 금년에는 '앉은삼재'. 작년에는 '들삼재' 올해는 '앉은삼재', 내년에는 '날삼재'인데,

 

 삼재가 들면 이상하게 여러 가지 일이 자꾸 꼬이고, 뜻밖에 일이 사고가 일어나고 자꾸 무엇을 하면은 장애가 붙고 한다고 옛날부터서 삼재가 닥쳐온 사람은 3 동안을 매사에 있어서 조심을 하고 항상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근신(謹愼) 하고 그러한 것이 일반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서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사찰에서는  정초(正初)에는  신수기도를 합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 쭈욱 정초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는데, ‘어찌 선원(禪院)에서 기도를 하느냐?’ 이러한 정법을 철저히 믿는 그러한 분들은  그러한 질문을 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기복불교(祈福佛敎) 속한 것이지, 어찌 그것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 하면 참선문(參禪門)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비록  기도도 삿된 사람이 기도를 하면  기도가 사법(邪法) 되고, 정법을 믿고 정법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면  기도도 정법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지만  칼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외적(外敵)에게 휘두르면  칼은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정의(正義) 칼이 되는 것이고,

바로  좋은 칼이지만, 정의의 칼이지만, 도적이나 악인이 휘두르면  칼은 흉기로 변해 버리고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설사 그동안에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신 분들도 오늘부터서  일간, 초아흐레까지  일간  기도 중에는 열심히 기도를 하시되,

첫째, 청정(清淨) 마음으로  바른 마음으로  정성스런 마음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서  일간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시면  기도는 지혜의 눈을 뜨고 자비를 실천할  있는 그런 마음 경계에 도달하게  것입니다.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하면 지혜로운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이 우러나냐?’하면, 지극정성으로 하다보면  마음이 내다’ ‘부처님이다’ ‘남이다하는 그러한 인아상(人我相)  떨어져 버려.

 

그리고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수가 있어.  나오냐?

 

자기가 그동안에 지은 죄에 대한 마음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참회의 눈물일 수도 있고, 그동안에 남편을 원망하고  시부모를 원망하고  다른 친척이나 친구,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한 생각이,
기도를 함으로 해서   원인이 자기가 전생으로부터 지은 ()으로 인해서 이렇게  것이지 어찌 상대방에게  모든 허물을 갖다가 전가(轉嫁)시킬 수가 있느냐. 정말 내가 지은 업이 그렇게 깊어서 그랬다 하는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나온다 그말이여. 그러고  뒤는 그렇게도 원망스럽고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져.

 

그러한 기도는 바로 참회(懺悔) 이어지고 그 참회로 인해서  마음이 정말 청정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면 거기서 나오는 모든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 밖에는 나올 것이 없고, 거기서 나오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년에 한번쯤은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께서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신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참선을 해서 여러  해가지고, 화두 한번 터억 거각(擧却) 함으로써 일체 죄업이 거기에 붙지를 못하고 바로 불보살의 청정한 마음과 찰나간에 계합(契合)  정도로 정진이 잘된 사람에게는 구태여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무슨 기도를  것이 없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정진이 그러한 순숙한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년에 한번쯤은 정성스럽게 기도를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그런데 우연히 넘어져 가지고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치료를 받아가지고 팔이 나으니까 이제는 해소병(咳嗽病) 생겨 가지고 까닭 없이 기침이 나오고 해가지고 여러 달을 고생하다가  그걸 간신히 나았습니다. 그놈을 겨우 나으니까 이제는 몸이 염증이 생기고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백약(百藥) 무효여.

 

그래서 어느  훌륭한 스님이 계시다 해서 거기를 찾아갔더니 그대는 전생의 업이 많아서 업으로 인해서 그렇다. 그러니 지장경을 많이 읽고 지장보살을 많이 불러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동안에 지장경을  열심히 읽고 그래도 병이  낫는다 어제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서 대관절 어떻게 하면  병을 나을  있으며, 업이 있다니 어떻게 무슨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가지고 하필 내가 이런 죄를 받게 됩니까? 그리고  스님 말씀하시기를 좋은 일을 많이 하라 그러니 무슨 좋은 일을 해야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와서아주 청년이 얼굴이 부성 부성하니 부어가지고,  몸뚱이가 투두룩투두룩 하니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와서 물었습니다.

 

과연  세상에 전생에  짓지 않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선업(善業) 업이요, 악업(惡業) 업인데, 선과 악은 종이  장의 안팎과 같아서 () 한다  것이 때와 장소가 바뀌면 ()  수도 있고,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일을 깊이 검토해 보면  그것이 ()으로 개념이 바뀌어지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이나 악업이나, 아상(我相), 유위(有爲) () 가지고 지으면 그것이 바로 장차 새로운 과보(果報) 받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럼으로써 빨리  병이 나을 것이다”(하니까) 그런데 무엇이 좋은 일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좋은 일은물론 방생(放生)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약을 준다던지 모다 그런 좋은 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누구나   있고 행하기 쉬운 좋은 일이라 하는 것은 첫째, 남에게 () 끼치지 말어라.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어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정진(精進), 정진하는데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

정진도 역시 불방일(不放逸), 방일하지 아니한  가장 좋은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을  열심히 하려면 밤잠을 덜 자고, 밥을 적게 먹고, 그래가지고 몸뚱이를 갖다가 구속을 하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해서 이렇게 하는 것으로써 가행정진이라고 생각하고  용맹정진이라고 대부분 생각합니다마는 「가장 좋은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여.

 

 생각,  동작,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방일하지 않는방일(放逸)이란 말은 화두(話頭) 놓치고 경계(境界) 팔려 나가고 그래가지고 게으른 생각이 나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을 보통 방일이라고 하는데,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서 () 남을 해치지 아니하면 그것이 제일가는 선이요,

거기서 조금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가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쓰는 것인데, 몸뚱이로 나의 기력을 써서, 실력을 써서 남을 도와  수도 있고,

 한마디라도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남을 위안을 해 주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말을 자비스럽고 지혜로운 방편으로  한마디라도 해 주는 , 그것도 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여.

 

 마음으로라도 항상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마음으로 그이를 위해서 축원 기도를 해 주고 잘되기를 빌어주고  남이 잘한 일이 있으면 마음으로 같이 기뻐해 주고 축복을  주는 ,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물질적으로 돈과 쌀이라든지 그밖에 그런 것을 베풀고 그런 것도 또한 착한 일이라고  수가 있으나,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모두가 , 지옥고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도 전부 나의 부모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나의 가족이요, 전부 동시에 그것이 바로  몸뚱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 떨어지고 보면 ''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全部) '' '' 전부다 그말이여.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천초목 모다 그런 자연까지도 전부가  나의 집이요, 나의 가족이요, 나의 몸뚱이, 이러한 심경(心境) 그렇게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사람은  기도를  사람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몸같이 자비로써 모두를  돌봐주고 섭수(攝受)하게   밖에는 없습니다.

심지어 들이나 산에를 가도  들국화가 같은 , 산에 진달래 같은 ,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어도 자기집에 있는 꽃병에 꽃꽂이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꺾어 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 생존시에 조실 스님과 같이 수행하던 용담 스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은 양양 군수의 아들로, 출가해 가지고 조실 스님이 젊은 나이로 견성(見性)하신 그것을 보고서 굉장히 도반이면서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존경하고 ()하고 그런데,

 

그분은 해방(解放) 되자마자 선학원(禪學院)에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해서 간행한 그러한 공로가 있는 분인데 이북(以北)으로 넘어가서 내가 공산당들을 전부 정법으로 제도를 한다 월북(越北) 해서 지금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분과 같이 산에를 놀러가셨습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은 젊어서  부잡(浮雜)하신 그런 성격도 가지셔서 산에 가면, 친구하고 같이 가면 그저 돌팔매질도 하고 돌도 떠둥글치고 이렇게 하면서 인자 즐겁게 노시는데,

 

하루는 이렇게 돌을 요렇게  떠둥글치니까  용담 스님이란 분이,

허어, 자네 견성을  도인(道人) 어찌 그런 돌을 있는 고대로 놓고 보고 자연을 고대로 놓고 요렇게 봐야지, 그놈을  떠둥글치면 자연이 손상이  뿐만 아니라 그 바위에 의지해서 개미도 살고, 벌레도 살고, 눈에  보이는 모든 짐승도 살고 있는데 그것을 떠둥글치게 되면은  벌레들이 집을 잃을 것이고  바위가 굴러가다가  많은 생명도 죽게 되지 않겠는가.

도인이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그런 숭고한 사상과 마음을 가지신 도인이 어찌 그러는가

 

! 친구가  말을  것을 듣고서 어떻게 마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셨다 것입니다.

저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친구가 그렇게도  착하고 좋은 도반이였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나를 ()하고  정법을 신하고 나를 아껴주던 친구가 이북으로 갔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처음~2132)

 

 

 

 

(2/2)----------------

 

우리  닦는 사람들은  산에를 가시더라도 행여나  같은 것을 꺾지 마시고, 무슨 바위 같은 그런 것을 떠둥글치거나 그러지 마시고 자연을 손상하는 그런 일이 없으셔야겠고,

 가지고 가서 맛있게 잡숫고 휴지조각 같은 , 깡통 같은 ,  같은 , 더러운 것을 갖다가 거기다 골짜구니에다 함부로 버리거나 쑤셔넣지 말고 반드시 오실 때는 그것을 싸가지고 오시도록.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러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아가서는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겨레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숭고한 생각과 바로 그것이 직결(直結)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천년 역사를 가진  위대한 국민이지마는 그동안에 외침을 당하고 남의 속국 노릇을 많이 하고 식민지 생활하면서 그러한 좋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런지 고쳐야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성들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도  잘할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88년도에 올림픽을 우리가 치러내서 세계 각국에  찬사를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년도 못가서 그것이  깨져 버리고 무너지고  잃어버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좋은 것은 계속해서 실천을 해 나가고 옳지 못한 것은 즉각  자리에서 참회하고 소멸해버리는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머지않아서 선진국에 들어갈  있는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고 다시 혼돈과 빈궁의 그런 국가로 전락하게 될는지, 그런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나라를 구제하는 길은 바로  국민이  가족이요, 심지어 지옥고 받고 있는,  지옥 속에 고통받는 모든 죄짓고 지옥고 받고 있는 중생들이 전부 나의 부모라고 그런 마음이 든다면 자기가 몸담아 있는  회사와 공장은 바로 그것이 자기 회사고,
  사장의 입장에서는  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직원들 노동자들이 바로  아들이요  딸이요  조카요  가족이고 바로   몸뚱이라고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노사분규는 바로 오늘 하루 동안에 전부가  끝나고 해결이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노사분규는 해결이 되지 아니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90년대에 세계에 일등 가는 국가가 되느냐? 이대로 아주 미개국으로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품느냐  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분께서는  당장  시간부터서  식구,  몸뚱이,  가족 그런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그런 인아상(人我相) 떨어지지 말고 가슴을 활짝 열고  국민이   가족이요,  세계가   몸뚱이요, 지옥 세계도  나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이러한 마음을 가지시게  것을 부탁을 드립니다.

 

 

칠 일간 기도를 하고  9일날 기도회향이 있습니다마는 그때는 바로 입춘날입니다. 그리고  일요법회 날입니다. 일요법회는 오후 2시에 거행을 하는 것이 예입니다마는, 이번 일요법회는 11시에 일요법회와 기도 회향과 입춘법회까지 아울러서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나  깊고  그런 날이기 때문에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보왕삼매론이라고 여러번 번역되어서 널리 모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알려진 글을 제가 한문으로  원문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해 가지고,
원문에 입각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번역을 잘해 가지고 글씨는  쓰지는 못하지만 손수 써서 그래가지고 그것을 복사를 해가지고 그날 새해의 선물로 나눠드리고 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  것도  써서 복사를 해 가지고 보시를 해드릴까 합니다.

 

그것을 갖다가  표구를 해서 보왕삼매론을 걸어 놓고,  보왕삼매론의 취지는 모든 역경(逆境)에서 마음에 맞지 않고, 나의 뜻에 맞지 않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거기에서 지혜와 자비로써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구경(究竟)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그런 아주 적극적인 수행 방법이요, 해탈(解脫) 나아가는 묘한 법문(法門)입니다.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고  회향 , 회향 법회에 참석하신 분께는  분도 빠짐없이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그날을 그렇게 기다리시고 일주일 동안을 어쨌든지 열심히 기도를 해서 기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2133~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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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재(入齋) ; () 시작하는 . 또는  의식.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 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요지(要旨) ; 말이나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 헤살 ; 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신장(神將) ; 불법(佛法)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선신(善神) ; 불법(佛法)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

*삼재(三災  /재앙 ) ; 사람의 태어난 (十二支) 따라 9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 하여 (水災), (火災), 바람(風災)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가지 재해(災害)  곡식이 익지 않는 (), 채소가 익지 않는 (), 과일이 익지 않는 ()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삼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없는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삼재가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항시 3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조심을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문단속을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  것이고,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생각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고 있는 것도 역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생각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정초(正初 정월 /처음 ) ; 정월(正月 : 음력으로   중의 첫째 ) 초승(初生 :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해의 처음.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 가르침.

*청정(清淨 맑을 /깨끗할 )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전가(轉嫁 돌릴 /떠넘길 )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해소병 ; 해수병(咳嗽病 : 기침을 심하게 하는 ).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 조작된 ,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 게으름)하지 않은 . ②온갖 선법(善法) 닦는 .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1.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 끊고 선법(善法)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 'pamāda'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 마음이 깨어있는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누를 / /마음 )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잡도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자비(慈悲) : []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라고 한다(悲能拔苦).

*심경(心境) ; 마음의 상태.

*섭수(攝受) ; ①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여서 보살핌. ②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 인증(認證)받았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 419,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해방(解放) ; 1945 8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서 벗어난 .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 있는 . 1921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 )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 12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이북(以北) ; 한반도의 북위 38  위쪽. 또는 휴전선 북쪽.  북한(北韓) 가리킨다.

*부잡(浮雜)하다 ; 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간섭을  하고 엉뚱한 사고를 치고 거칠다.

*떠둥그치다 ; 떠둥그뜨리다(떠둥그트리다, 물체의  부분을 들고 밀어 엎어지게 하거나 기울여 쓰러뜨리다).

 

 

 

 

 

------------------(2/2)

 

*직결(直結) ; 직접적으로 연결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묘협 스님께서 지으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22  17 십대애행(十大礙行 :  가지  장애가 되는 )’에서 여러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다.

우리 중생이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있는  가지의  장애가 되는 행동을 정리하고, 중생이  '장애 없기' 구하지 말고 장애 속에 먼저 거처하게 하여,

  가지의 장애들이 실제로는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일체 중생의 수행·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시키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진실하게 돕는 복전(福田)임을 알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장애로 인하여퇴전하지 않고, 장애 속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묘협 스님께서 경전에 의지하여 지으신 .

*역경(逆境)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역경계(逆境界),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해탈(解脫) : [범어] Vimoksa ; Vimukta ; mukti  [팔리어]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해탈이라고도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주요 내용]

 

선원에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 가장 좋은 정진.

 

 

[주요 문구]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 하면 참선문(參禪門)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 떨어지고 보면 ''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全部) '' '' 전부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6. 9. 20. 16:0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410)—1990 2 첫째일요법회, 신수기도회향, 입춘법회(90.02.04) (78분)

 

(1/4) 약 22분.

 

(2/4) 약 20분.

 

(3/4) 약 19분.

 

(4/4) 약 18분.

 

(1/4)----------------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 등지고  이후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번이나 삼도와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에 들어가서 사생을 지냈던가. 삼도(三途) 지옥·아귀·축생 삼도요. 사생(四生) ···(胎卵濕化) 사생이요.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에 모든 번뇌의 생각을 씻어 버리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本故鄕) 돌아가게 되었구나.

 

우리 모든 중생들이 원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  몸뚱이,  마음이여. 그런데  본심왕을 위배(違背)하고 거기서 배반을 하고 물러나왔다.

 

' 생각' ()하지 않았다면 영원토록 법왕(法王) 같이  수가 있을 텐데 한 생각 동(動)해 가지고,  생각 삐끗 어긋져 가지고 거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육도윤회지옥, 아귀, 삼악도를  번이나 들어갔으며 태란습화 사생을  번이나 겪었든가.

 

 

경오년 초삼일부터 오늘까지 칠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입춘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 첫째 일요법회를 맞으셨습니다.   가지의 법회가 오늘 겹쳤습니다.

 

그동안   동안 정성을 다해서 기도(祈禱) 봉행하는 가운데 우리 사부대중의 마음은 참회(懺悔) 하고, 기도를 하고, 발원(發願) 하고 그래 가지고 모든 업장(業障)  소멸이 되고, 번뇌의 생각 훨훨 타오르던 탐진치 삼독(三毒) 번뇌염(煩惱染)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번뇌(煩惱)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불생이면, 일념불생(一念不生) ' 생각 남이 없는 도리'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

 

방금 전강 조실스님의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들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갑인년 12 초이튿날 열반에 드셨는데, 오늘 우리가 경청한 법문은 갑인년 정월 초나흗날에 설하신 법문, 열반하신 그해의 정월 초나흗날에 설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기도는 본래 나름대로 각각 소원이 있어서  소원을 성취할 목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소원을 성취할라면은 첫째, 막고 있는 업장을 소멸을 해야 하고, 업장을 소멸할라면은 참회를 해야 하고, 참회를 하고 일심(一心)으로 정근(精勤) 하면  마음이 차츰차츰 번뇌가 쉬어지고 그래가지고 마음이 청정해지면 우리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버려.

 

부처님 마음은 본래부터 허공과 같이 깨끗하신데 우리는 번뇌 망상 때문에, 본래 부처님과 내가 하나였었는데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람에 부처님과 나와는 막힘이 없는 막힘으로 막혀 있다 그말이여.

 

그러다가 참회하고, 기도하고, 일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하다 보면 내 마음의 번뇌가 깨끗해지니까,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 감응(感應) 되어서 소원을 성취하는 그러한 이치다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를 일심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한 경험이 있는 분은 어려운 일만 있으면 기도를 하거든.

강화 보문사에도 가고, 양양 낙산사도 가고, 남해 보리암도 가고, 오대산 적멸보궁도 가고 이래가지고 집안에 크고 작은 어려운 , 중요한 일만 있으면 싸짊어지고 기도를 . 일심으로 하면은 소원을 성취하거든.

 

기도를 일심으로 하고 그래가지고 소원을 성취를  그러한 예는 영험록에 보면 가지가지  실화가  적혀 있는데, 불보살(佛菩薩) 위신력(威神力) 거룩하시고 신통력(神通力) 있으시기 때문에 중생들이  목이 말라서 일심으로 기도를 하면  () 따라서 소원을 성취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걸 하나도 나쁘다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도 하나부터서 백까지, 백만 () 기도로만 해결을 하려고 하는 그러한 ()  붙어 놓으면, 그것도  좋은 것이면서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참선도  그만두고, 집안 살림도 그만두고 그저 기도로써 아주 일생을 아주....’ 승속(僧俗) 간에 그렇게 되어버리면  사람한테는 화두도 소용없고, 참선도 소용없고, 가정  그런 문제도 그저 기도 하나만 가지고  밀고 나가니까,  모다 사람들은 기도에 미쳤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참선에 미쳤다 말을 차라리 들었으면 좋겠는데 기도에 미쳤다 팔도로 싸돌아다니기만 하면 그거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년에  번쯤은 이렇게 신수(身數)기도를   하는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입재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이렇게 일주일 동안  년에 연례행사로 이런 신수기도를 봉행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러한 기도가 연례행사로서 그렇게 하고 일주일 동안은 제법 정성껏 하더니 ! 회향해 버리면 그 뒤는 그냥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이  흩어져버려.

 

기도 중에는 진심(瞋心) 아니 내야 하고, 기도 중에는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하고, 생각 하나라도 조심해야 하고, 행동 하나라도 조심을 해서, 스스로도 진심을  내고,  다른 이로 하여금 진심을 내게 해서도  되고,  살생도 해서는 아니 되고, 그렇게 모두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오계(五戒)  지키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기도가  끝나면 금방   못할 ,  소리   소리,  생각   생각, 마구잡이 이렇게 한다면 부처님께서 보시면은 참 웃으실 거 그말이여.

 

기도 중에는 제법 그렇게 정성껏 하더니 기도 끝났다고 마구잡이 저렇게 하는구나. 철이  들어도  너무  들었구나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기도가 끝나더라도 항상  기도할 때의 그러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그것이 생활 속에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진심(瞋心) 내지  것이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나게 하지도  것이며,

 기도가 끝났더라도 항상 살생(殺生) 하지  것이며, 거짓말도 하지  것이며, 사음(邪淫) 하지  것이며, 이렇게 한다면 1 내내 계속해서 기도가 진행이  것이다 그말이여. 아! 그렇다면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설사 일주일 기도해서 즉각 기도의 효험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살아가면, ‘이뭣고?’하고 살아가면 차츰차츰 어려운 문제가 해결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보왕삼매론 십대애행(寶王三昧論十大礙行)’이라고 하는 그것을 산승이 붓글씨로  가지고 그것을 인자 많이 찍어 내서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어느 신심 있는 이의 발원으로 그것을 찍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께  장씩 나눠 드리는데 아마 여러분은 그것을 보시면 이거 큰며느리 하나 주고, 작은며느리 하나 주고, 시집간 큰딸 주고, 작은딸 주고 이렇게 해서 여러 장씩을 가지고 가시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장수가 이렇게 한정이 되어있어서 일단 오늘은 여기에 오신 분에 한해서  장씩만 노나 드릴려고 그럽니다.

 

그리고 워낙  원하신 분이 많으면 다시 2차로  노나 드릴 수도 있습니다마는 오늘은 일단은 일주문을 나가실   장씩만 이렇게 노나 드려야 하지, 2·3·5·10 사돈네까지 모다 노나 드릴려면  2~30장씩 가져가신다면, 오늘 오시는 분도   드리게 된다면 그건  미안하니까  점에 대해서 양해를  주시기 바랍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명나라  묘협() 스님이라고 하는 대단히 계행(戒行) 청정하시고 도력이 높으신 큰스님께서 경전 속에서   가지를 이렇게 뽑아 가지고, 십대애행(十大礙行) ‘ 가지  장애 속에서 수행을 성취하는 ()’이라  가지고 십대애행문(十大礙行門)’이라 하는 글을 창립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묘협 스님은 『보왕삼매론 십대애행』이라는 글을 쓰셨냐 하면은 거기에는 중대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평등해서 부처님과 내가 조금도 차별이 없건마는 우리 중생은  업식(業識) 속에 솜처럼 얽히고 얽켜서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고 있다 그말이여.

다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부처님의 법문(法門) 의지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고 싶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부  할려고 그러고,   할려고 하면 마장(魔障) 일어나 가지고, 그래 가지고 공부를 성취를 못해.  ,   하지마는 정말 견성성불(見性成佛) 사람은  사람이 되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일이 어긋나면은  가지 일이  어긋져. 그래 가지고 성취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뜻을 이루질 못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생사윤회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우리 부처님께서는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삼대아승지겁(三大阿僧祇劫) 무수하게 머리와 눈과 국가와 처자와 몸과 손발까지라도 전부  바치셨어.

그래 가지고 모든 보시와 지계  육바라밀(六波羅蜜) 닦으면서 정진을 하면서 선지식께 승사(承嗣) 했다 그말이여.  그러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치면서 수행을 하셨다 그말이여.

 

그런 것이 소상하게  부처님 팔상록(八相錄)  기록이 되어있는데, 우리는 () 성취할 생각은 있으면서도  크고 작은 마장이 맥히면은 그놈을 이겨낼 만한 용기와 지혜와 인내가 부족해 가지고 결국은 중도(中途) 폐지(廢止) 버려.

 

그래 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만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만났으면서도 중도에서 그럭저럭 해태(懈怠) 퇴전(退轉) 버리고서 구경(究竟)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정말 자기 자신의 몸뚱이를 끊어낸 것처럼 그렇게  안되어 했다.

 

너무너무 가련하고 너무너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막론하고   있으면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도업(道業) 성취하도록 해주기 위해서 이 십대애행(十大礙行) 장애() 속에서 도를 성취하는  부처님 경전 속에서 뽑아 가지고 이것을 만들은 것입니다.(처음~2142)

 

 

 

 

 

(2/4)----------------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상근기(上根機), 상지자(上智者)라야 능히 이것을  감당하겠지마는, 중·하근기도—중·하근기는 감히 이것을   가지 조항을  원만히 실천할  있기는 어렵지마는, 그래도   가지 법문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면,

장애 속에서 하나 하나 어떤 장애를 만날 때마다  십대애행의  구절  구절이 마음에 떠올라서 거기에서 용기를 얻고 지혜를 얻고, 거기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퇴전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루 하루를 닦고, 한달 한달을 닦고, 1, 이태를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닦아가면   뜻을 이룰수가 있으리라. 이러한 생각에서  보왕삼매론을 제정을  것입니다.

 

 보왕삼매론은 여러분이 인자 노나 드려서 그것을 읽어보시면은 다 아시겠지마는,

첫째는 몸뚱이에  없기를 바라지 마라. 둘째는 세상을 살아감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셋째는 마음 공부를 하되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이렇게 해서  가지가 나가는데.

 

몸에 병이 없어야 공부를  할텐데, 어떻게 몸에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마는, 사람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뭉쳐진  몸뚱이가 어떻게 병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무량겁을 거쳐서 금생에  때까지 좋은 일도 많이 했겠지만 알게 모르게 지은 악한 일도 많고 지은 () 많기 때문에  좋은  나쁜 ,  선업 악업 지은  결과로써 금생에 이와 같은 몸뚱이를 받아  것입니다.

 

얼굴 생긴 것도  지은 업으로 인해서 받아 나고, 몸뚱이 크고 작고  것도 지은 바로 받아 나고, 오장육부가 어떻게 받아  것도  내가 과거에 지은  업보(業報) 그걸 받아 난 거여.

 

나면서부터 눈이 멀어 나온 것도  업으로 그렇고, 귀가 어두운 것도 그렇고,  못한 것도 그렇고, 훤하니 달덩어리 같이  태어난 것도 자기가 선업(善業) 지어서 그렇게 됐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역시 그렇고, 심장이 튼튼하고 약한 것도 그렇고, 간이 약하고 튼튼한 것도 그렇고, 위장·폐장·콩팥, 일체 오장육부 사지백체(四肢百體) 받아  것이 지은 업으로 그런 거여.

 

그런데 자기가 지은 () 생각지 않고 병만 없앨려고 갖은 약을 먹는다고  병이  낫습니까?

약만 갖고  병이 없어지질 않아. 일차적으로 자기가 지은 업에 대한 참회(懺悔) 있어야 되고, 자기가 자기를 항상 참회를 하고 반성을 해보면 자기의 성격에 여러 가지 흠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남을 저주하고 미워하는 생각, 시기 질투하는 생각,  잘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픈 생각, 남이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용서 안 하는 버릇,  칭찬하기보다는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생각,

게을러 빠지면서 남이 자기에게 잘해 주기를 바라는 생각, 자기는 남한테 별로 잘한  없으면서 다른 사람은 자기한테  잘해 주기만을 바라는 생각, 그리고 욕심이 과해 가지고 부모에게나 형제간에게나 친구간에게나 남에게 턱없이 많이 요구하는 생각.

 

그러한 옳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과거에 자기가 그러한 악업(惡業) 했기 때문에 금생에 그런 못된 성격을 쓰게 되어 있어.

 원인인 성격은 고치기 아니하고 그냥 모든 욕심만 많아 가지고 자기한테 좋기만 바라고, 특히 건강하기를 바랜다고 한들,  병이 아무리 명의(名醫)한테 가서 비싼 약을 먹는다 해도  병이 그렇게 쉽게 낫지를 않습니다.

 

정말  병을 낫을라면은  옳지 않은 성격부터 개선을 해야 . 성격을 참회를 하고 개선을 하고 그러면은 그 마음이 편안해져. 마음이 편안한 뒤에사 약발도 서고 효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입니다.

 

폐결핵 같은 병도 또는 위장병 같은 병도 좋은 약만 먹는다고 낫는 것이 아니여. 계속 성질을 내고 악담을 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그러면서 약을 아무리 먹어도 위장병이 낫지 않습니다.  폐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 자기 마음이 편안할라면은 철저한 참회가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미웁고 원망스러운 사람을  용서하고, 스스로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안정을 시키고 깨끗이  때에 약을  먹어도 벌써 반은 낫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끗해지면 8,90% 병이 낫게 되고, 약은 조금 그저 보조하는 역할로 조금 먹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보왕삼매론 번역을 해서 알기 쉽게 해놨기 때문에 조항 조항을 낱낱이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마는 가서 읽어보고  읽어보고 그놈을 아침마다 날마다  한 번 두 번 이상 이렇게 읽으시면, 읽는 가운데에 저절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냐?’하면은 모든 원인을 남에게 전가를 시키지 않고, 남에게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서 찾게 되기 때문에 그냥 거기에서 참회가 되고, 성질이 났다가도 스르르 이거 한번 읽고 보면은 가라앉고, 불평 불만을 하다가도 이거 한번 읽고 나면 스르르 가라앉고, 용기가 안 나고 자신이 없고 자포자기 하다가도 이것을 한번 읽으면은 용기가 생기고 이렇게 될테니,

이것은 신년 새해에 기도한  성취를 같이 축복하고 축하하는 뜻으로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물이 되어질 것입니다.

 

글씨는 별로  쓰지 못했습니다마는 정성스럽게 썼으니 그  ,    때마다 여러분이  보왕삼매론 이것을 보시는 분은  인연으로 반드시 업장(業障) 소멸이 되시고 도업(道業) 성취해서 세세생생(世世生生) 복과 지혜가 구족(具足)하셔서, 나시는 곳마다 좋은 곳에 태어나시고 불회상(佛會上) 태어나셔서 해탈도를 증득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할  있는 대보살(大菩薩) 되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를 했으니, 기도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으니까 반드시 당장  소원이 우리 눈으로   있도록 성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마는, 기도는  소원이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훨씬  시간이 지난 뒤에 성취되기도 하고  내생에 성취되기도 하고,  () 있다가 성취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우리가 지어놓은 () 쌓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을 받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도를  뒤에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고약한 과보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심원사라는 절에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신도가 아주 외롭게 혼자 사는 할머니 보살님이   있었는데, 자식도 없고 영감도 죽고  너무너무 외로워. 그런데 재산은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절에 개금불사(改金佛事) 한다고 시주(施主)  하시라’고, ‘그러면 말년에 몸도 건강하시고 마음도 편안하고 그래서 좋은 곳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그래서  절에 개금불사를 하는데 논을  마지기를 팔아 가지고 시주를 해서 개금불사를 잘했는데, !  보살님이 눈이 ! 멀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스님이 얼마나 미안하겠냐 그말이여.

! 몸이 건강해지고  좋다 시주를 하라고 그랬는데, !  눈이 멀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가서 뭐라고 위안을  하기도  되었고, 그래도 눈이 멀었다는 말을 듣고  가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 가서 그저 용기를 가지시라’고, ‘이거 눈이 멀었다고 해서 신심이 물러져서는  됩니다. 지금 개금불사는 했는데 기와가  깨져 가지고 비가 새니, 깨끗이 개금불사 했는데 비가 새면  얼룩덜룩 하니까   기와 번와(翻瓦)  하시면은 눈이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시라 하니까,

 보살님이 워낙 신심이 있고  그런 분이라 그냥  논을 팔아서 시주를  가지고 기와 번와를 잘했습니다.

 

, 했는데, ! 멀쩡한 다리가  오그라져 가지고 앉은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 , 그거 기가 막혀서.

보통 사람 같으면은 그놈 중놈, 멀쩡한 사기꾼이라고 입에  담을 욕을  텐데.

 

그래도   주지 스님이 얼굴은  껍데기가 두터웠던지 그냥   말을 듣고 가서 위로를 하고, 그 혈액순환이 잘되고  심줄이 나긋나긋 해지는 좋은 단방약(單方藥) 여기저기서 구해 가지고 가서 요것을  잡사보라’고,  고아 가지고  오가리에다 담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잡수라고 갖다 드리니까,

 

그분이  보통 분이 아니었던지, 그냥  스님이 그렇게 약을 고아  것이 고마워서 그걸 데려서 먹고 인자  눈이 밝아질라나, 약을 먹으니까 다리 심줄도  펴지고  괜찮은 것도 같고 그래도 아직 낫지도 않은데.

 

그러면서 이제  거기다 대고 무슨 불사(佛事)하니  팔아 대라고  수는 없고 어쨌든지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부르라’고. 아무리 낯이  두껍기로서니 눈멀고 앉은뱅이가  데다  시주를 하라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자는 염불을 열심히 하라고. 고왕경(高王經)  열심히 하면 좋은 수가 있을 거라고.

부처님이 절대로 우리 중생을 속이시는 일이 없으니까 고왕경을 하루에 아주  번씩 하고, 인자 앉은뱅이라 어디 나가도 못하고 눈도 보이지 않으니 어디 나갈  없으니까 앉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고왕경을 하시라고.

 

‘근데 고왕경을 눈도  보니 어떻게 합니까?’

내가 날마다 와서  구절씩 가르켜 드릴 테니까 구전심수(口傳心授) 그렇게 외우라 가지고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불국유연 불법상인 상락아정 유연불법 나무....’ 그래가지고는  구절씩  구절씩 며칠 걸려가지고는 그놈을 외어 가지고는  구절도 틀리지 않도록 ()  받고  다음에 그것을 외우는데,

 

처음에는 몇십 (), 더듬더듬 하니까 몇십 () 하다가  다음에는 차츰차츰 익숙해져서 오십 ,  , 이백 , 삼백 독까지 했다 그말이여.

 

이거 빨리 빨리하면  분에  ,  시간에 육십 ,  시간이면 백이십  이래가지고 하루에  노인이 잠도 없고 앞도 캄캄하고 속이 터져 죽게 생겼으니까 그냥 염불이나 해서 마지막 인자 나는  하루 빨리 죽어야지, 이런 상태로 살아봤자  수도 없고, 기왕 죽을 바에 염불이나 해 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 가지고는 삼백  이상씩 하는데, 처음에는 입에 허여니 백태가 끼었어. 혓바닥이 꺼끌꺼끌 해 가지고 그래가지고는 죽도록 불렀는데.

 

! 하루 저녁에는 호랑이가  가지고 탈싹 물어 가버렸다 그말이여.

 스님이 호랑이가 물어 갔다는 말을 듣고 가 보니까 문짝이 때려 부서져 갔고 있고, 피가 줄줄줄 흘러가지고 끌려갔는데 어디로 가서 찾을 수가 있어야지.

 

‘에라,  빌어먹을 놈의 ! 나는 부처님만 믿고 개금불사를 하면은 소원을 성취하고, 기와불사를 하면 소원 성취를 하고, 고왕경을 읽으면 모든 병도  낫고 문둥병도  낫는다고 나는 믿고 그랬는데 호랭이를 물어가?  이런 불법  믿는다.

 

곳간에 가서 도끼를 가지고  가지고는 법당 문을 열어제끼고는 부처님 가슴팍에다가 여지없이 그냥 있는 힘을 다해서 도끼로 가슴팍을 ! 찍어 놓고는 그길로 가사·장삼  내동댕이쳐 버리고는 걸망이나 짊어지고 산천 구경이나 하다가 얻어먹고 다니다가 죽던지 말든지 하리라하고는 그렇게 돌아다녀.

 

1, 이태 돌아다니면서 그저 밥도 얻어먹고, 사랑방에 잠도 자고, 그러면서  20년을 그렇게 돌아댕겼어.

돌아댕기다가, 그래도 내가 살던  절은 지금 누가 다른 주지 스님이 와서 사는지, 그때 내가 도끼로 찍어  부처님 가슴에 있는 도끼는 누가 뺐는지, 아직도 박혀 있는지?  그거 궁금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살살 지팡이를 그리 돌려서  절을 찾아가니까  동구(洞口) 밖에서부터 사람이 인해인산(人海人山) 이뤘는데, 몇백 명이 아주 꾸역꾸역꾸역  절로 들어간다 그말이여.(2143~4059)

 

 

 

 

 

(3/4)----------------

 

그래서 아니 여기   굿허요?’

, 지금 원님이 새로  가지고   지금 초도순시(初度巡視) 한다고 왔는데, 지금  사람들이 구경을 그렇게 간다’고.

 

근데 지금  절이 어떻게 되었소?’하고 물어보니까,

 절은  20 전에 살던 중이 도끼로 갔다가 부처님 가슴팍에다 도끼로 찍고 어디로 도망가 버렸는데,  뒤로는   신도도  떨어져 버리고,  절은 주지도  오고,  절은 아주 쑥대밭 아주 풀이 우거지고 지붕도 아주 풀이 자욱하고 완전히 절이 폐사(廢寺) 되어가지고 귀신 나오게 생겼어요

그러냐’고, ‘ 그럴 것이라. 그래가지고 거기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따라서 올라가니까 원님 행차가 되어 가지고 육방 관속(六房官屬) 호위를 해가지고 원님이 거기를 왔는데, 그 원님이 말하기를  절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시오. 내가  알아야  일이 있으니까  절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분이 있으면 나오라’고.

 

그러니까  절의 역사 아는 사람은 마을 사람도 대충은 알긴 알지마는 제일  아는 사람이야  스님 밖에  있느냐 그말이여.

 누더기 감발하고 거지로 돌아다니다 왔으니 몰골이   수가 없게 되었는데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미친놈인가? 달친 놈인가?

 

당신이  압니까?‘  ,  압니다

어떻게 해서   역사를 그렇게  아냐?’ 하니까, ‘, 내가 20 전에   주지였습니다 그래가지고  얘기를 주욱 얘기를 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동안에 어째서  주지가 없냐 하면은, 주지 스님이  뒤로 왔는데 가슴에 찍힌 도끼를 암만 뺄라고 해도  빼져.  빼지니까 도끼 박아진 부처님한테다 대고 절도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가버려서 그래서  절이 폐사가 되었는데.

 

 둘이 가서, 원님하고  거지 스님하고 법당문을 열어제끼니까 먼지가 자욱하고 쥐똥이 아주 그냥  자는 쌓였어. 도대체가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거미줄은 이리저리 치고, 아주 그냥 박쥐 똥이 부처님 몸뚱이고 무릎이고 그냥 수북하니 쌓이고 냄새나고 도대체가 그렇게 생겼는데.

 

원님하고  주지 스님하고 탁자 위에 올라가 가지고는 그놈을 빼니까 빠듯하니 빼지는데, 거기 가서 글자가  써졌는데 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이라 이렇게 써졌다 그말이여.

 

화주(化主) 화주승(化主僧)이거든. 스님네는 가서 신도 보고 불사(佛事) 있으니 시주하십시오하고 시주 (施主冊) 가지고 댕기면서 신도들한테 모두 시주를 받는  스님을 '화주승'이라고 그래.

그러면 시주(施主) 시주한 사람이다 그말이여. 시주한 신도여.

 

그래서 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 ‘서로 만난다 그렇게 써졌거든. , 이게 무슨 소리냐?

 

 원님이 도량(道場) 수백 명이 가득찬 데서 일장 설화(一場說話) 하는데,

자기가 어젯밤에 꿈을 꾸니까 부처님이 떠억 나타나서 네가 와서  가슴에 도끼를 빼다오. 나는  때문에 20 전에  가슴에 도끼를 맞은 뒤로 내가 이렇게   그릇,   그릇도 공양을 받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있으니 네가 와서  도끼를 빼줘야  것이 아니냐? 나는 아무데, 아무데 사는 심원사 법당에 있는 부처님이다 그런 꿈을 꾸었는데.

 

어째서 부처님이 자기한테 그런 현몽(現夢) 댔는가 전혀  수가 없고, ‘그런 절이 있느냐?’ 이방한데 물어보니까 그런 절이 있다고 그래서 오늘 이렇게 왔다 이거거든.

 

 원님이 누구냐 하면은, 말을  해도 여러분은 벌써 오호,  호랑이 물어  사람이로구나!’ 아시겠는데,

 개금불사에 시주하고, 기와불사에 시주하고,  고왕경을 날이면 날마다 삼백  이상씩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했는데 눈멀고, 앉은뱅이 되고, 마지막에는 호랭이에 물려간  신도 보살님이었다 이거거든.

 

 신도 보살님이 과거에 지은 업장(業障)으로  () 눈이 멀어서 고생을 하고,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앉은뱅이로서 일평생을 고생을 했어야 했고,  다음 생에는  사람 몸을 받되 마지막에는 호랭이 물어 .

호랭이 물려  다음에,  다음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아야  그러한 삼생(三生)  업보(業報)를 그 스님 말을 듣고 개금불사에 설판재자(說辦齋者) 되고, 한번 눈이 멀었으면은 누가 다시  스님의 말을 믿겠냐 그말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이곧대로 믿고 다시 기와불사에 시주를 했다 그말이여.

 

기와불사 시주를 해 가지고 앉은뱅이가 되었으면은 누가 고왕경 하라’고 하면 고왕경, 당신이나 하시요 백이면 아흔아홉 명은 그럴 것인데,  스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고왕경을 갔다가 혀가 닳아지도록 했다 그말이여.

삼생 받을 과보를 그렇게 해서 일생 동안에  받아 버리고, 훌륭한 남자의 몸을 받아서 스무 살에 장원급제를  가지고 원님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절에  가지고 부처님 가슴에 꽂힌 도끼를 뽑아드리고. 지금 원님이라 하면은 군수나 도지사 옛날에 그런 건데, 지금은 군수도 행정관으로서의 군수고, 도지사도 행정관으로서 도지사인데, 옛날에 군수나 도지사는, 관찰사는 삼권(三權)  몸에  갖추었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그러니까 도지사와 검찰청장과  법원장  삼권을  몸에 권리를 행사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그러한 삼권을 가진 힘으로  절을 복원 불사를 하는데,  쓸어버리고 새로 하는데 가슴에 꽂힌 부처님은  바꿨어. 그거 바꾸겠습니까, 그런 인연 깊은 부처님을.

거기를 다시  보개(寶蓋) 해서 개금불사를 깨끗이  하고, 법당도 새로 지어서 단청을 하고, 요사채·객실채·선방·칠성각·산신각  해가지고 도량 축대로부터 일신(一新)을 했다.

 

여러분도 시주를 하시고  기도를 하시더라도 이만한 마음이 깊어야 하고,

조금 시주 하고서 금방 무슨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래가지고 그것이 안되면 에이! 빌어먹을  예수나 믿어버리자 조금 안되면 어디 가서 점이나 쳐볼까?’ 어떻게 그러한 얄팍한 생각 가지고.

 

 함경도 사람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오면서 좁쌀  되를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마지(摩旨) 지어서 올려놓고는 이번에  과거만 합격하게  주면 이런 일이 종종 있게 배는 곯지 않게   테니까  부탁해요 

양반은 옛날에 스님네한테  ‘~하게’하고, 절에 와도 절도 여간  안 했습니다. 이조 .   가지고 와서 굉장히 무슨 장한 것이나 올린 것처럼 이런 일이 종종 있을 테니까   부탁해요 

 

과거를 봤는데 붙겠습니까?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떨어져.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가고 절로 먼저 기어 올라가 가지고 담뱃대를 들고 탁탁 때리면서  좁쌀만  따먹고 놀놀히 앉아서 과거에도 합격도  시켜주고 인자는 좁쌀   얻어먹어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데, 여러분 가운데는 설마 그럴 분은... 설사 함경도에서 내려오신 분이  있을란가 모르지만 그럴리는 없겠지마는.

불공  하고,  시주  하고 그리고  기도  하고서  아들이 이번에 합격했으면,  딸이 합격했으면 하다가 !   안되거든.

 

‘에이, 어디  다른 데 영한 데가 있다니까 거기나 가서 한번 해 볼까?’ 이리저리  군데  봐도  되면, 재수해도  되고 삼수해도  되고 에이, 예수나 믿어버려야지  되겠다. 예수 믿으면 무엇이든지 병도 낫고 부자도 된다고 하니까 거기나 가 볼까

 

정말 시주를 하되  많이 하건, 적게 하건 정성껏 했으면 금방 그렇게 돌아오기를 바라지 말고,

시주를 하고 눈이 멀고  시주를 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그래도 마음이 변할만 해야 삼생 업도 녹여 내는 것이지, 어떻게 그게 낚싯밥 밥티 하나로  잉어 낚으려고 하는 것처럼, 좁쌀   가지고 장원 급제 할라는 것처럼, 그런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해 가지고서야 어떻게  소원을 성취할 것이냐.

 

이렇게 말하니까 소원을 성취할라면은 계속 시주를 하라고   같아서 미안한데, 그거 시주고 기도고 염불이고 무엇이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시주할 길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여. 물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精誠)이거든! 신심(信心)이거든!

 

신심이 있으면은 부처님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하나를 올리거나, 청수(淸水)  그릇을 올리거나 그냥 맨손으로 와서 절만 지극정성으로 하고 가도 업장도 소멸할  있고, 소원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몇백  , 몇천  원을 부처님께 바쳐도 요거 올렸으니까   주십시오.  주십시오 아주 간절히 그렇게 하다가,  되면  데로 싸짊어지면 그거 안되거든.  , 스무  한결같이  데에서 거기서 소원을 성취한 것이여.

 

 

참선을 하면 좋다니까 모처럼 아들 며느리한테 용돈을 타 가지고  쓰고 모이고, 모이고 해가지고 방부(房付) 들였다.

모다 보니까 꾸벅꾸벅 앉아서 졸고, ‘! 저런 것이 참선이구나 자기는 암만  잘라고 해도 잠이 안 와. 제법 갸우뚱  가지고 콜콜 코를 골면서 조는데 그렇게 맛있게 자거든.

 

어떤 스님께 참선을 어떻게 해야 잘할 수가 있을까요?’ 여쭈어보니까 많이 졸아.. 앉아서 많이 졸으라고 그러시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이제 조는 것이 확실히 공부인가 보다 가만히 보니까 구참일수록에   졸거든. 자기도  앉아서 졸라고 아무리 용을 써도  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공력을 들여 가지고 이제  조는 법을 익혔어. ‘인자 이만하면 되겠다 해 가지고는 어디든지 가서 방부를 들이면은 맨 처음에 아주  앉을 채비를 하고는 허리를 조금 꼬부린  해 가지고 앉으면 그렇게 잠이 맛있게 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어디가든지 떳떳허지. 졸지 않고 맨송맨송 있는 사람 보면 망상 끓이느라고 저렇게 잠을  자고 저렇게 앉았구나 저는 실컷 자고 나면 그때는 인자 이 사람 저 사람 자는가,  자는가 구경도 하고 1시간 때우기가 문제가 하나도 없어.

 

그러다가 어떤 훌륭한 스님을 만나 가지고 저는 선방에 나온 지가 벌써  10 되는데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는가?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십니까?’하니까,

별로 아무것도 알아진 것은 없고 앉아 죽비 치면 3 안에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니 3 안에  정도가 되다니?’

처음에는  30 걸려야 겨우 잠을 잤는데, 이제는 3 안에 자니까 그만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어떻게 참선하는데 조는 것으로써 공부를 등급을 매길  있습니까?’

아무개 스님,  스님 한국에서  큰스님이라고 하는데 많이 졸으라고 그래서 그거 익히느라고 10 적공(積功) 들였습니다하니까,

 

 조는 것이 아니라, 참선(參禪) 할라면은 성성적적(惺惺寂寂) 가지고 화두가 독로해야지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야지, 어떻게 3 안에... 말도 안된 소리를 한다 하니까, ! 깜짝 놀랐다 그말이여.

 

! 그랬다 저한테 화두(話頭) 타러 왔어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10 동안 제가 어느 큰스님  한마디를 잘못 알아듣고, 이렇게 해서 적공을 들인 것이 이것이 허사(虛事)라고 그러니 앞이 캄캄합니다. 인자 환갑·진갑  지나고 70세가 되었는데, 이제 다시 새판잽이로 공부를 헐라니  앞이 캄캄하다 그렇게 울면서...

 

그때 여기는 비구니 스님은 방부를  받는데, 와서 울면서 사정을 해서 제도를 깨고는  비구니 스님의 방부를 받았습니다.

아마  가운데는  비구니 스님과 같이 정진하셨던 분도 계실란가 모르는데, 지금 아직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고 지금 팔십 훨씬 넘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역시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지요.(4059~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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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선도  그렇게 조실스님 법문을 많이 듣고, 녹음 법문을 많이 듣고, 저도 올라올 때마다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러면서 화두를  들으라’고 일러 드려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신가를 물어보면은  이상하게 하신 분이 있어.

 

어떤 할머니는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겠는데, 여기서 법문을 듣고 가더니 밤중에 전강스님, 전강스님하고 전강스님을 불러.

 

그래서 며느리랑 아들이랑 손자손녀들이 아니 밤중에 오밤중에 어쩐다고 전강스님을 그렇게 불러 쌌습니까?’ 그러니까 송담스님이 법문을 하는데 어쨌든지 전강스님을 많이 부르라고 그래서 그런다’고 그러니까.

 

‘아 그럴 리가 있느냐?’고, ‘그렇지 않은데 할머니가 잘못 들으셨을 거라’고,

‘아니 내가  귀로, 아직 내가 눈은  침침해도 귀는  어두워야. 귀는 멀쩡한데 확실히 내가 들었다’고 해서 그래서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1소대(小隊) 몰려 왔습니다.

 

근데 와서 면회를 청해서 인사를 받고 웬일로 이렇게 오셨습니까?’하니까 할머니가 송담스님이 밤중에 전강스님을 자꾸 부르라고 하셨다고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얼토당토않고, ‘전혀 그런 일이 없다 하면 할머니가 섭섭하다고 생겼고, ‘그랬다 하자니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인자  말을 해서 올바르게 하시도록 일러드린 일도 있고 그랬는데.

 

법문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법문을 들어도 각기 듣는 사람의 입장과 수준과 근기(根機)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여.

그래서 들었던 법문도 자꾸 들어야! 그래야 처음에 잘못 들었던 법문을 나중에 가서 , 그렇구나!’하고 나중에 바르게 알아듣게 됩니다.

 

그래서 밤낮  봤자   생각 단속하라 그러고, 이뭣고?하라고 그런 소리 들으나마나 집구석에 자빠져 있지 , 가봤자 앉을 자리도 없고’ 그래서   분들이 있다고 그래요.

그분은 틀림없이 자다가 전강스님을 부르는지 어쩐지  수가 없는데, 법문(法門)이라 하는 것은 사실 설할 것이 없거든.

 

화두 하나만 제대로 ! 들을  알면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따악  생각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하게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매가리 없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고, 적적하면서도 성성한 가운데에 몸은 단정하면서도 어깨에 힘도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서 호흡은 자기의 체질에 맞춰서 적당하니 조용하게 호흡을 쉬면서,   없는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깨끗하게 들어가거든.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기가 말로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면서, 한번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까지, 점심때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까지,

저녁에   떠억 들었던 화두가 아침에   떠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도록. 이러한 지경이 오도록 끊임없이 정진을 해 가야 하거든. 반드시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되는 거여.

 

앉았을 때만 되고 서서 안 되고,  지지리 되었는데  먹다가 잊어버리고, 누가 부르면 하다 대답할  없어져 버리고, 그게 아니여. 옆에서 바스락만 하면 없어져 버리고, 그런 것이 아니어.

 

정말 화두가 독로해서 순일무잡하게 되어도 그래도 환희심(歡喜心) 내서는 아니된 거여.

 그렇게 되면은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편안하니까 화두드는 것조차 싫어져 버려. 화두가 들기 싫고 그냥  고요하고 맑은 경계를 고대로 그놈을 들여다 지키고 앉았거든, 그것도 못쓰는 거여. 그러한 가운데에도 의단이 떠억 독로하도록 화두를 들어야 하는 거여.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지에 이르러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그러는  아니어.

혀도 딸싹거리지 않고, 고대로   없는 의단(疑團) 요렇게 거각(擧却)하는 것이지, 고요한 데다 대고 너무 힘을 들여 가지고는 이뭣고’ ‘이뭣고하면  고요한 것이 깨지거든.

 

 고요한 것이 깨지지 아니하면서도 의단이 독로하고, 의단이 성성(惺惺)하고 순일(純一)하도록 잡드리해 가는 것은 그렇게 일조일석(一朝一夕)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세월 동안을 법문을 들으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하는 데에서 그런 지경에 이르는 거여.

 

그런 지경에 이르렀을  어서 빨리  깨쳤으면하고 바래는 것이 아니고 이럴  누가  떠지도록  해줬으면 그런 생각도 하는 것이 아니여. 그런 생각을 내면은 깨져버리거든.

 

그래서 내가 나를 찾는 공부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할  그러헌 정성으로 일심(一心)으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반드시 되고만 마는 것이거든.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하고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하야  유화유월유루대(有花有月有樓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이요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다.

 거듭 () 다하매   거듭 ()이로구나.  밖에 산이 있고,   넘으면 인자 산이 없을까 하면  ,   넘으면  , 가도 가도 거듭거듭 첩첩(疊疊) 산이로구나.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다. 말을  시간 이상했는데  말이 한도 끝도 없어. 산에 산에 산너머 구름이 쌓이듯이, 바다에 한없는 달빛이 부서지듯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도 한이 없습니다.

 

 한마디도  것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말이 많을까요?

여러분과 저와는 숙세(宿世)로부터서 뗄라야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이렇게 말을 하게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여.  물건도 없어. ‘이뭣고?’하는 가운데 무엇이 있겠습니까? 한마디 이뭣고?’ 속에는 재산도 명예도 권리도 인정도 탐심도 진심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할 것입니다.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속에는 아름다운 찬란한 꽃도 있고, 휘영청 밝은 달도 있고,  올라가서  데도 바라보고 () 읊을  있는 맑은 바람이 스쳐가는 찬란한 누각(樓閣) 있듯이,(有花有月有樓臺)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만히  갖추게  것입니다.(無一物中無盡藏)

 

‘어떻게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잘되어야 하고 소원이 많은데 어떻게 이뭣고?’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시겠지만,

이뭣고?’ 하나만 열심히 하면  속에 기도도  포함되어 있고, 염불도 포함되어 있고, 일체 (공덕(功德)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하십시오.

 

금생(今生) 모든 소원도 성취하실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게  것입니다.

 

 

이걸  일주문 있는 데서 점심 공양을 하시고 가실 때에는 전부 이것을  봉지씩 노나 드립니다.

 속에 있는 것은 보왕삼매론이고, 그러니까 이것은 노나 드리면 가지고 가셔서 이것 죽을  관에다 넣어가지고 가야겠다. 그렇게 좋은 것이면 내가 내생에 가지고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이렇게 표구를 해서 주무시는 방이나 거실이나 적당한 데다 이것을 거십시오.

 

그러고 여러 보살님 신도님들도 읽으시고 아들딸, 손자들도  한글로 써졌으니까  읽으면 일체 업장을 소멸하고,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있는 용기와 지혜와 인내력을 가지고 모두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넣은 봉투는 입춘대길(入春大吉)입니다.  봉지를  잘라서 띠어내고 이것을 갖다가 현관이나 어디다 갖다 붙이십시오. 그러면 금년 1 동안 삼재(三災)  들어오지를 못하고, 1 동안  편안하게 지내시게  것입니다.

 

오늘 2 일요 법회와  입춘 법회와  칠일 신수기도 회향 법회 한목 묶어서 설법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송 한마디를 읊고 내려가겠습니다.

 

 

조주공안몰심사(趙州公案沒心思)하니  은산철벽백부지(銀山鐵壁百不知)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故枝)니라

나무~아미타불~

 

조주공안몰심사(趙州公案沒心思)하니, 조주의 공안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 이뭣고?’ 역시 마찬가지.  화두 하나를 터억 거각(擧却)하면은 마음에 모든 생각이 거기서  끊어져 버려.

 

은산철벽백부지(銀山鐵壁百不知). ()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 사방이  맥힌 것처럼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 거기서 있을 수가 없어. 앞뒷이  끊어져 버렸거든.

 

  없는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의심해 가고 의심해  가지고는 의심에 사이가 없어 의심에 간단(間斷) 없으면,

그래가지고 화두가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지 않아도 들려 있고 그렇게 되면 고목(枯木) 꽃이 피어서 가지마다 꽃이 활짝 피듯이(枯木開花滿故枝), 생사(生死) 대해(大海)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하는 확철대오(廓徹大悟)  것이다.(60분5초~7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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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삼도(三途, 三塗) ; 악한 일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 아귀, 축생의 생존.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4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워함(). 나쁜 마음의 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 성냄(), 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 진심(瞋心),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 )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법왕(法王) : []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스승이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 더하도록 기도하는 .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 원을 세움.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불생(不生) ;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 일념불생(一念不生)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84, p103 참고.

斷煩惱가  名二乘이요  煩惱不生이  名大涅槃이니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나지 않는 것이 대열반(大涅槃)이니라.

 

(註解)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끊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벌어짐이요, ‘나지 않는(不生)  주체도 객체도 없느니라.

 

見境心不起가  名不生이요  不生이  名無念이요  無念이  名解脫이니라.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 나지 않는다(不生)’ 이름하고, ‘나지 않는 (不生)’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을 해탈(解脫)이라 하느니라.

 

(註解) 戒也定也慧也가  擧一具三이요  不是單相이니라.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가, 하나를 들면 셋이 갖추어 있는 것이요, 홑으로  것이 아니니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정근(精勤) ; 노력하는 . 힘써 일하는 .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敎).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힘이 나타나는 .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통할 ) : 수행을 ()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 능력.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 신도가 지켜야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 있는 것에 ()하지 말라.

*이뭣고(是甚) : 이뭣고?’ 화두는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육근(六根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참고]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묘협 스님께서 지으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22  17 십대애행(十大礙行 : 10가지  장애가 되는 )’에서 여러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다.

우리 중생이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있는 10가지의  장애가 되는 행동을 정리하고, 중생이  '장애 없기' 구하지 말고 장애 속에 먼저 거처하게 하여 그 10가지의 장애들이 실제로는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일체 중생의 수행·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시키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진실하게 돕는 복전(福田)임을 알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장애로 인하여 퇴전하지 않고, 장애 속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묘협 스님께서 경전에 의지하여 지으신 .

*묘협() 스님 ;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은현(鄞縣)에서 활동하였다고 짐작하나, 정확한 생몰연대는   없다. 저서는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 하나. 무명(無明)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 헤살 ; 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 ;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불교]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

*삼대아승지겁(三大阿僧祇劫) ; 무한하게  세월. 보살이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기까지의 시간.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 이르기 위해서 해야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이른다.

*승사(承嗣 받들 /이을 )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팔상록(八相錄) ;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 중요한 사항(八相)으로 헤아려 지은 부처님 일대기.

*팔상(八相) ;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  8가지 중에서 성도(成道) 특히 중심이므로,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생애의 모습.

①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兜率天)에서  코끼리를 타고  세상에 내려오는 모습.

②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나 일곱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선언하는 모습.

③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성문으로 나가 서문에서 각각 늙은병든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에 나가서는 스님을 보고서 출가의 뜻을 두는 모습.

④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무상(無常) 깊이 생각하고, 수행을 위해 백마를 타고 시종을 데리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⑤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⑥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6년의 고행후,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에 달하려는 것을 알고,악마가 모든 수단을 다해 석존을 방해하나, 전부 물리치고 악마의 항복을 받는 모습.

⑦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야원에서 최초로 5명의 비구에게 설법하는 모습.

⑧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팔상(八相) 경론(經論) 따라 여러 설이 있음.

*()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중도(中途) ; 어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진행 중인 상황.

*해태(懈怠 게으를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밑으로 전락(轉落).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장애(障碍 막을 /거리낄 ) ; 어떤 일의 성립, 진행에 거치적거려 방해하거나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게 . 碍는  속자(俗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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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 ; (산스크리트어 : karma카르마) ;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善惡) 소행(所行). 음역어는 갈마(羯磨)’이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구족(具足 갖출 /충족할 )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

*개금불사(改金佛事) ; 불상(佛像) 새로 금칠을 하는 것과 그때 행하는 의식.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마지기 ; 논밭 넓이의 단위.  마지기는 볍씨  말의  또는 씨앗을 심을 만한 넓이로, 지방마다 다르나 논은  백오십에서 삼백 , 밭은  백  정도이다.

*번와(翻瓦 엮을 /기와 ) ; 기와를 덮는 .

*단방약(單方藥) ;  가지 약재만으로 조제되어 병을 고치는 .

*오가리 ; '항아리' 사투리.

*고왕경(高王經) ;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내용으로 구성된 경전. 또는 《관세음보살구생경(觀世音菩薩救生經),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고 소원을 성취케 하기 위하여 설하신 경으로, 누구나 일심으로 독송하면 이루지 못할 원이 없다는 영험 많은 경전이다.

*구전심수(口傳心授) ;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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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순시(初度巡視) ;  조직의 관리자나 책임자 등이 부임한  처음으로  관할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이나 일의 형편을 살펴보는 .

*폐사(廢寺) ; 폐하여져 스님이 없는 .

*누더기 감발 ; 누덕누덕 기운  옷에다가 버선·양말 대신 발에 무명천을 감싼 거지 같은 차림새.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 얻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일장 설화(一場說話) ; 한바탕의 이야기.

*현몽(現夢) ;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

*설판재자(說辦齋者) ; 법회나 불사(佛事) 필요한 모든 물품과 비용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스님 또는 신도를 말한다. () '법회, 불사'  () '힘들이다, 주관하다' .

*곧이곧대로 ; 조금도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바로 그대로.

*보개(寶蓋) ; 불상이나 보살상의 머리 위를 가리는 일산(日傘)이나, 법당 불상 위에 장식으로 만들어 다는  모양의 닫집. 천개(天蓋)•화개(花蓋)•원개(圓蓋)•산개(傘蓋)•현개

(懸蓋)라고도 .

≪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하며,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 묘사함. 불상을 장엄하며 또한 이슬, 먼지 따위를 막는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

*방부(房付 ·거처 /부탁할 )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

*적공(積功) ; 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새판잡이 ; 새로 일을 벌여 다시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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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다 ; (일이나  따위가)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지지리 ; ‘기껏 사투리.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게송)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 ; [벽암록(碧巖錄)] 53 설두(雪竇)스님 () 참고.

*(게송) 無一物中無盡藏  有花有月有樓臺 ; 소동파  '백지찬(白紙贊)' 참고.

*첩첩(疊疊 겹쳐질 ) ;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낄 줄을 모르고 설법을 한다'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게송) 조주공안몰심사~’ ; [소요당집(逍遙堂集)] ‘증도희선인(贈道熙禪人)’ 게송 참고.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이뭣고 ; ‘용화선원법문듣기 분류 화두(공안)’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고목(枯木) ; 말라 죽어 있는 나무.

*생사대해(生死大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3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 바다(大海)' 비유함.

*해탈(解脫) : [] Vimoksa ; Vimukta ; mukti  []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해탈이라고도   있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주요 내용]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기도(祈禱)—참회발원정근(精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이뭣고?’하고 살아가야 / 보왕삼매론십대애행(寶王三昧論十大礙行)—장애() 속에서 도를 성취하는  / 참회(懺悔) / 심원사시주화주(施主化主) 상봉(相逢) / 함경도 좁쌀양반 / 기도 정성·신심 / (게송)일중산진우일중~ / (게송)조주공안몰심사~.

 

 

[주요 문구]

 

번뇌(煩惱) 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념(無念)이고, 무념이면 그것이 불생(不生)이여. 일념불생(一念不生) ' 생각남이 없는 도리'  버리면, 그것이 바로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소식이더라.

 

부처님 마음은 본래부터 허공과 같이 깨끗하신데, 본래 부처님과 내가 하나였었는데 우리는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람에 부처님과 나와는 막힘이 없는 막힘으로 막혀 있다 그말이여.

그러다가 참회하고, 기도하고, 일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하다 보면 내 마음의 번뇌가 깨끗해지니까,  마음과 부처님 마음이 하나가 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 감응(感應) 되어서 소원을 성취하는 그러한 이치다.

 

우리가 시주할 길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질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精誠)이거든!  신심(信心)이거든!

신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하나를 올리거나, 청수(淸水)  그릇을 올리거나 그냥 맨손으로 와서 절만 지극정성으로 하고 가도 업장도 소멸할  있고, 소원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되어야 하고 소원이 많은데, 어떻게 이뭣고?’   있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시겠지만 이뭣고?’ 하나만 열심히 하면  속에 기도도  포함되어 있고, 염불도 포함되어 있고, 일체 (공덕(功德)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어쨌든지 이뭣고?’ 하나만을 열심히 하십시오.

금생(今生) 모든 소원도 성취하실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게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6. 6. 11. 17:1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402)—1989(기사년)동안거 결제 법어(89.10.15.)(73)

 

(1/4) 약 21분.

 

(2/4) 약 22분.

 

(3/4) 약 16분.

 

(4/4) 약 16분.

 

(1/4)----------------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여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이 돌고 돌아서, 그렇게 더웁고 더웠던 여름철이 가고, 가을을 거쳐서 다시 엄동 겨울이 돌아왔구나.

겨울이 돌아왔는데,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恋六華村)이다. 잔나비는 피고, 피고 열매가 열던 여섯 마을, 육화촌(六華村) 그리워하는구나.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더니, 귀로는 온갖 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온갖 아름다운 색상을 보느라고 일찍이 틈이 없었어. 귀로는 온갖 새소리 바람소리 흐르는 소리요, 눈으로는 노랗고 빨갛고 모든 , 아름다운 꽃이 피고 그런 것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느라고 아무 다른 겨를이 없었다.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 그러느라고 생각 생각이 여섯 아름다운 마을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생각하느라고 겨를이 없었던 바로 그러한 것들이, 생각 생각이 죽음의 문인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잔나비가 그렇게 자연 경계, 아름다운 대자연의 경계에 취해서 그렇게 나무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바위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리저리 뛰고 건너고 그렇게 놀다가,

아주 맛있는, 제일 맛있는, 잔나비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어느 포수가 진드기거기에 닿기만 하면 ! 들어붙어 가지고 떨어지지 않어어떻게 접착력이 강한 진드기를 먼저 바위에다 발라 놓고 거기다 맛있는, 잔나비가 제일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놓으니까,

 

원숭이란 놈이 산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맛있는 것이 있으니까 그놈을 먹으러 ! 바위로 올라가니까 앞발이 ! 들어붙어. 앞발을 떼기 위해서 뒷발을 대니까 뒷발도 붙어. 그놈을 띠기 위해서 입으로 어떻게 하면 떨어질까 하고 입을 대니까 입까지 들어붙어 버렸다.

 

이것이 우리 중생들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에 빠져서, 거기에 맛을 붙여서 그놈을 탐을 내다가 그냥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를 못하고 만다 그말이여.

그러니 잔나비는 맛있는 음식 뭉텅이를 먹기 위해서 달라들었다가 진드기에 붙어서, 포수가 와서 잔나비를 잡아다가 길을 들여서 팔아먹는다 그말이여.

 

오욕락! 탐진치 삼독심으로 오욕락을 즐기다가, 오욕락(五欲樂)마왕(魔王) 파순(波旬)이가 () 닦는 사람들을 그냥 도를 닦게 두면 저마다 도를 성취해서, 진리를 깨달아서 () 깨닫게 되면 마왕 파순이의 궁전이 파괴가 되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도인(道人) 되어 버리고, 부처님이 되어 버리면 마왕 파순이가 자기의 영토가 없어지고, 자기 궁전이 없어지고, 자기의 권속들이 전부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갖은 수단으로 닦는 사람을 방해를 치는데,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마왕 파순이가 도인(道人) 올개미에 얽어 가기 위해서 모다 널어놓은 것이여. 그것이 바로 원숭이 잡기 위해서 진드기에다가 맛있는 음식을 붙여 놓은 거와 같은 것이다.

 

마왕 파순이는 눈을 통해서 탐착(貪着) 하게 하고, 귀를 통해서 탐착하게 하고, 코를 통해서 탐착하고, ·몸뚱이·생각, 육근(六根) 통해서 육진(六塵) 탐착해 가지고, 육식(六識) 발동을 하면 벌써 그게 마왕 파순이의 올개미에 걸려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우리가 육근(六根) 육진(六塵), 육식(六識), 십팔계(十八界)인데, 십팔계를 여의고 따로 진리가 있고, 따로 부처님이 있고, 따로 () 있다고 생각하면 불법(佛法)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비록 온갖 번뇌와 망상이 그놈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 것은 사실이지만 번뇌(煩惱) 나무로 지혜의 불을 피워서 열반(涅槃) 밥을 짓는다이렇게 비유를 했습니다.

 

번뇌라고 하는 나무가 있어야 지혜라고 하는 불을 피울 수가 있고, 지혜의 불을 피워야 열반의 밥을 지을 수가 있다. 그래서 열반의 밥을 나도 먹고, 모두 사람에게 열반의 밥을 먹여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煩惱)라고 하는 나무가 없으면은 결단코 지혜의 불을 피울 수가 없어.

우리가 눈으로 알고, 귀로 들을 알고, 코로 맡을 알고, 혀로 맛볼 있고, 몸뚱이로 느끼고, 생각으로 온갖 것을 생각할 알기 때문에, 바로 일어나는 번뇌를 돌이켜서 번뇌 일어나는 뿌리를 찾는 것이 참선(參禪) 아닌가.

 

정진하는 사람에게 망상이 일어나서, 화두(話頭) 순일치 못하고 의단(疑團) 독로(獨露)하지 못해서 도를 성취하지 못한다대부분 그것 때문에 많은 수행자들이 고통을 하고 괴로워하고.

혼침(昏沈) 일어나고 졸음이 오기 때문에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적적(寂寂)하지 못한다언필칭(言必稱)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말을 하지만, 다행히 잠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어.

잠이 봐요, 잠이 참으로 오면 공부도 못하고 건강도 유지가 되지를 않습니다. 잠이 오기 때문에 그만큼 건강이 유지가 되고 이렇게 생명을 유지해. 생명이 유지가 되어야 참선도 하는 것이여.

 

번뇌가 일어나고 목석처럼 되어 버린다던지, 눈으로 봐도 아무것도 분간(分揀) 못하고, 귀로 소리를 들어도 아무것도 분간을 못하고, 먹어도 아무것도 분간을 못하고, 그런 사람이 공부를 잘할 같지마는, 그렇게 되어 버린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공부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졸음이 온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것이 아니여. 졸음을 내가 어떻게 지혜롭게 단속을 하고 이겨 나가느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면, 번뇌와 망상이 일어날 때에 어떻게 그놈을 잡드리를 하고,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그놈에 ()해서 화두를 드느냐? 여기에 공부를 성취할 있는 묘한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사년 10 보름날,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活句參禪) 대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결제 법문은 이미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통해서 더이상 들을 것이 없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용주사 관내 사미(沙彌), 사미니(沙彌尼)—사미 사람과 사미니 사람에 대한 오계(五戒), 십계(十戒)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용주사에서 습의(習儀) 살림을 마치고 왔기 때문에 계목(戒目) 간략하게 설하겠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는 아주 () 설하는 최초의 계는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

중선봉행(衆善奉行)하고 제악막작(諸惡莫作)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 모든 () 받들어 행하고 모든 () 짓지 말아라. 스스로 뜻을 청정하게 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게송(偈頌) 하나만 설해 버리면 그것이 바로 () 설한 것이여. 차츰차츰 설하는 의식이 복잡해져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마는, 근본은 게송 하나에 지내지 못한 거여.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마라.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셋째, 음행을 하지 마라.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아라.

여섯째, 화만영락(鬘瓔珞), 몸에 장신구를 쓰지 것이며 몸에 향을 바르지 말아라. 일곱째, 스스로 노래 부르거나 춤추지 말며 일부러 그것을 구경하러 가지 말아라. 여덟째, 몸에 금은보화를 지니지 말아라. 아홉째, 가축을 길르지 말아라. 열째, 비시식(非時食) 하지 말아라.

 

살생을 하지 말어라. 살생을 함으로써 자비심을 손상을 . 자비(慈悲) 종자(種子) 없어지기 때문에 살생을 하지 말아라.

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하는 것은 도둑질을 하면 복덕종자(福德種子) 상실하게 되어.

셋째, 음행을 하면 청정종자(淸淨種子) 상실하게 되고.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하는 것은 진실종자(眞實種子) 잃게 되기 때문에 그런 거여.

다섯째, 술을 마시면은 지혜종자(智慧種子) 상실하게 되는 거여.

 

자비심과 복덕심과 청정심과 진실심 그리고 지혜, 다섯 가지의 성스러운 종자(種子) 개발을 하고 가꾸어야 그것이 바로 도업(道業)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러한 다섯 가지 청정한 () 지킬 수가 있는가.

 

그다음 다섯 가지는, 도를 닦는 사람은 항상 검박하고 검소해야 하는데, 몸에 화만영락(鬘瓔珞) 걸고 향수를 바르고, 금은보화를 몸에 지니고, 노래 부르고, 일부러 노래 부르고 춤추는 데를 구경하러 가고, 높고 넓은 위에 버젓이 앉거나 눕거나 하고, 이러한 것들은 수행자로서 방종한 사치에 빠진 그러한 생활을 해서는 아니 것이다 그말이여.

 

그리고 비시식(非時食). 부처님 당시로부터 사시(巳時), 사시에 끼만을 공양을 했는데, 정오를 지내서 먹는 것은 전부가 그것이 ()다운 공양이 아니여. 아침에는 하늘나라 사람들이 공양을 하고, 저녁에는 축생들이 먹고, 밤에는 귀신들이 먹는 거여.

우리 수행자, 사람 가운데에서도 수행자는 낮에 공양을 하는 거여. 그것을 ()라고 그래. 오재(午齋)! 그러나 우리의 근기(根機) 차츰차츰 약해져서 아침에도 죽을 먹고, 저녁에는 약석(藥夕)이라 해서 약으로 비공식적으로 그렇게 식사를 오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정다운 공양은 정오가 넘기 전에 낮에 끼만을 먹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처음~2031)

 

 

 

 

 

(2/4)----------------

 

이상 설한 가지 ()합장을 하고 호궤합장(跪合掌) , 오늘 받는 사람.

이상 설한 가지 계는 불자(佛子)로서 수행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청정한 계니, 능히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가지 계는 출가 수행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청정한 계니, 능히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계는 불자로서 도업(道業) 성취하고 널리 중생을 교화할 도업을 성취할 청정한 계니, 성스러운 계니, 능히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연비(燃臂)

참회진언(懺悔眞言)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법복 ().

 

 

승침상속의선마(昇沈相續蟻旋磨)하고   증애교전상익니(憎愛交纏象溺泥)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미긍현애친살수(未肯懸崖親撒手)하면   부지신고대하시(不知辛苦待何時)리오

나무~아미타불~

 

승침상속의선마(昇沈相續蟻旋磨), 올라갔다 잠겼다, 복을 지으면 천상에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 많고 적음에 따라 축생으로도 태어나고 아귀로도 태어나고, 인간으로도 태어나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천차만별로 태어나.

마치 천당으로 갔다, 인간으로 갔다, 축생이 되었다, 지옥에 갔다가, 아귀가 되었다가, 아수라가 되었다,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 개미가 맷돌 주변을 빙빙 도는 거와 같다 그말이여.

 

증애교전상익니(憎愛交纏象溺泥). 미워했다가 이뻐했다가 어제는 좋아했다가 오늘은 원수가 되고, 사랑이 원수가 되어가 원수가 다시 사랑으로 만나고, 무량겁을가사(袈裟)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돌고 돌아.

마치 모양이 뭣과 같으냐 하면 코끼리가, 육중한 코끼리가 질컥벌컥한 진흙 수렁에 빠져서, 오른다리를 들면은 왼다리가 ! 빠지고, 간신히 왼다리를 들면 오른다리가 빠져 가지고, 앞발 뒷발 다리가 겨우 하나 들면 다른 다리가 깊이 들어가고, 다리를 겨우 들면 다리가 빠져 가지고, 종래 지치고 지쳐서 진흙 수렁에서 빠져 나올 기약이 없어. 그래 갖고 지쳐 가지고는 그냥 진흙 속에 빠져서 죽는 거와 같애.

 

그것이 온통 미워하고 이뻐하고 증애심(憎愛心) 그것 때문에 만났다 헤어졌다가, 헤어졌다가 만나고,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육도윤회(六途輪廻) 증애심 때문에 그런 거여.

 

미긍현애친살수(未肯懸崖親撒手). 높은 낭떠러지에 매달렸어. 간신히 나무 뿌럭지 하나 매달려 가지고, 올라가도 못하고 내려가도 못하고 손만 놓으면 떨어져 죽을 같이 생겼는데, 그럴 때에 ! 손을 놔버려야 그게 장부(丈夫) 텐데, 손만 놓으면 떨어져 죽을 알고 벌벌 떨다가 거기서 헤어나지를 못해.

부지신고대하시(不知辛苦待何時). 윤회! 육도를 윤회한 쓰리고 쓰라린 고통,언제 거기에서 벗어날 것인가를 아지 못하겠다.

 

 

가사를, 법복을 수했으면 부처님께 자리. (목탁에 맞추어 3)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과 부모의 모든 애정을 끊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생사해탈을 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그러한 뜻으로 부처님께 절을 자리를 했어.

 

다음에 조실 스님께 자리. (목탁에 맞추어 3)

전강 조실 스님께서 도량을 창설을 해서 이렇게 법을 설하고, 이렇게 계를 받을 있는 이러한 도량을 열어 주시지 했으면, 내가 어떻게 자리에서 계를 받어서 사문(沙門) 수가 있겠습니까

 

다음에 수계 스님께 자리. (목탁에 맞추어 3)

 

다음에 대중 스님께 자리. (목탁에 맞추어 3)

 

앉어. ‘대중 스님께 자리 뜻은이렇게 오늘 대중 스님께서 지켜보아 주신 자리에서 계를 받게 되었으니, 앞으로 직접 간접으로 모든 점에 있어서 가르켜 주시고 일깨워 주시고 어쨌든지 훌륭한 수행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런 뜻으로 절을 거여.

 

우리가 몸뚱이우리의 마음자리야 생겨난 때가 없는데, 무량억겁 전에 언제 생겨난 역사가 없을 때부터서 오늘날까지 육도(六途) 돌고 돌다가 자리에까지 왔어.

 

금생에 이렇게 출가해서 사문(沙門) 있는 것은 전생, 전생, 숙세로부터 닦고 원력(願力) 세운 공덕으로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아서 출가하게 것이지 우연히 것은 아니여.

금생에 만약에 사람 몸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출가를 하지 못하고, 다시 오욕락 탐진치로 육도를 윤회하면 다시 어느 출가를 하게 될는지 모르는데, 다행히 이렇게 머리를 깎고 법복을 수하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렇게 어려운 출가를 했으니, 어찌 등한(等閒) 시간을 보낼 수가 있느냐.

 

생사(生死)! 생사 문제는 크고, 무상(無常) 신속해. 우리가 이루어야 , 해탈(解脫)해야 생사 문제는 세상에 어떠한 일보다도 막대하고 막중해.

그런데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하다 보면 1년이 지나고, 그럭저럭 하다 보면 해가 지나서, 10 20년이 금방 지나간다 그말이여. 그러니 시간을 아껴서 어쨌든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앞으로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배우고 강원에 가서 사집(四集) 사교(四敎) 대교(大敎) 배우고, 선방에 나와서 참선을 하게 되겠지마는 처음 출가할 때의 감동, 신심이 마지막 숨이 ! 때까지 그걸 놓아버려서는 아니 되는 거여.

1 뒤에나 3 뒤에나 10 뒤에나 내지 50 뒤라도, 항상 오늘 출가한, 오늘 출가한 사미승 때의 마음으로 닦아 가야 하는 거야.

항상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항상 이렇게 출가하게 그것이 경행(慶幸)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어찌 방종할 수가 있으며 해태 수가 있겠는가.

 

 

생사유이방(生死有異方)하고   열반무비결(涅槃無秘訣)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급요상응(火急要相應)인댄   일진원불격(一塵元不隔)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유이방(生死有異方) 열반무비결(涅槃無秘訣)이여. 세상에 나서 한평생 살다가 죽고,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하는데, 어느 사람이고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 없어.

길을 면치를 못하는데 모양은 사람이면 사람, 사람이면 사람, 태어나서 일평생을 살다 가는 방법이 달러. 길이 다르다 그말이여.

 

그런데 열반(涅槃)에는 무비결(無秘訣)이여. 생사해탈 하는, 생사해탈 해서 영원히 진리와 계합(契合)하는 데에는 똑같은 비결이 없어.

눈으로 보다가 깨닫기도 하고, 귀로 소리를 듣다가 깨닫기도 하고, 걸어가다 깨닫기도 하고, 또는 넘어지다 깨닫기도 하고, 자다가 ! 벼개에서 떨어지다 깨닫기도 하고, 욕하는 소리를 듣다가 깨닫기도 하고, 피는 것을 보다가 깨닫기도 하고, 주렴(珠簾) 걷다가 깨닫기도 하고, ! 깨닫는 데에도 특별한 것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깨닫게 될런지를 모른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본참공안을 여의지 않고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숙(純熟)해야만 언제 어떻게 깨닫게 될는지 모르는데, 화두를 버리고 의단이 독로하지 못하고 그냥 보면은 보는 끄달리고, 들으면 들은 데에 끄달려서 그러한 상태에서는 깨달음이 오지를 않혀.

항상 화두(話頭) 잡드리하고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숙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도록 잡드리를 하는 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말 빨리 깨닫고자 원하면 티끌도 원래 () 있지를 않다

깨달음이 데에 있고, 극락세계(極樂世界) 데에 있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티끌도 ()하지 않혀.

 

그래서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지난번 일요법회 , “바로 그놈이 끄터리에, 코밑에서 뱅뱅 돈다 조실 스님은 그러한 비유의 법문을 하셨지만, 바로 끄터리에 뱅뱅 도는눈으로 , 귀로 들을 , 코로 냄새 맡을 , 혀로 맛을 , 몸으로 느낄 , 생각 일어났다 꺼질 , 찰나찰나를 우리는 범연(泛然) 넘겨서는 안된다.(2036~4153)

 

 

 

 

 

(3/4)----------------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지금 자리에는 용주사 중앙선원 대중, 광덕사 태화선원 대중, 회룡사 회룡선원 대중과 용화사 법보선원 대중, 결제에 방부(房付) 들인 금년에 용화사 법보선원에 보살님네는 백칠십이 명이라고 하는 굉장히 많은 보살님네가 방부를 들였고, 선방에도 스물두 그리고 사무실 대중까지 하면은 삼십여 명이고.

용주사는 열여섯 스님네가 방부를 들였고, 태화선원은 열네 분이 방부를 들였고, 회룡사는 여덟 분이 큰방 대중이고 그런데, 외호(外護) 대중까지 모두 합하면은 이백여 대중이 금년 삼동(三冬) 이렇게 방부를 들이고 안거(安居)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법문은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錄音法門)법문을 통해서 들었지만, 어떻게 하면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碍)하고 정말 알뜰하고 알차게 정진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몽산법어(蒙山法語)』에서 아주 요긴한 대목을 한마디 설하고자 합니다.

 

만약 여기에 함께 도를 닦고자 하면 세상에 모든 인연을 끊어 버려라. 부모·형제·은사 일체 인연을 끊어야 .

 

그러기 때문에 옛날에 선방에서는부모가 돌아가셨다 하는 부고장(訃告狀) 와도 종무소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해제하고서사, 부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본인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결제 중에부모가 돌아가셨다 부고가 왔단 말을 전하면, 사람인데 어찌 마음의 충격을 받겠습니까. 그러니 공부하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거든.

그래서 부모의 부고도 일러 주지 아니했는데, 하물며 그밖에 무슨 인연이 중해서 결제 중에 편지가 오고 가고, 전화가 오고 가고, 그것을 낱낱이 일러 주고 연락을 것이냐 그말이여. 공부는 그러한 식으로 가지고는 하나 마나여. 그러니 세속의 인연을 끊어 버려라.

 

다음에 모든 집착(執着) 전도(顚倒) 제거(除去) 버려라.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생각들, 모든 지견(知見), 모든 견처(見處) 놔버려야 .

조금 마음에 견처가 있는 가지고나는 한소식했다, 나는 무슨 초견성을 했다, 나는 무슨 공안을 이렇게 봤다이러한 생각들은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여. 구경각(究竟覺)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그러한 소견(所見)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공부가 이상은 진척이 없는 법이여.

 

구경각(究竟覺) 얻기 전에는 어떠한 견처가 있고, 어떠한 소견이 있고, 어떠한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것을 깨끗이 제각(除却) 버려야 정말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무서운 줄을 몰라. 수행자들이 조금 견처 있는 것이 깨달음을 가로막는 무서운 장애의 요소가 된다고 하는 것을 정말 철저히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해서, 참으로 생사대사(生死大事) 위해서 선원의 규칙을 순응을 . 지켜야 한다 그말이여.

규칙을 지켜야 하느냐? 규칙은 자신의 도업(道業) 위하고, 다른 분의 도업 성취를 위해서 그러한 규칙이 설정이 만큼 그걸 지켜야지, 규칙을 지키면 자기도 도에 장애가 일어날 것이며, 나아가서는 다른 대중들의 도업을 장애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선원의 규칙을 지켜야 것이다.

 

모든 인사(人事) 절단(截斷) 버리고, 먹고 입고 자고 일하고 청소하고 하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서 고대로 수용(受用) 해라 그말이여.

 

그리고 삼경(三更) 제외하고는 잠을 자지 말아라. 저녁 9시에 취침을 하면 이튿날 새벽 3시에 일어나는데,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결단코 수면(睡眠) 허락하지 말어라.

물론 좀더 정진을 하고자 하는 분은 9시에 취침 시간이지만처음에 9시에는 가만히 다른 스님네와 다른 대중과 같이 자리에 누웠다가 가만히 조금도 바스락거리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서 시간쯤 또는 시간쯤 일어나서 조용히 정진을 하다가 자고 그럴 수는 있습니다마는,

다른 분들이 자고 있는데 문을 열고 나왔다 들어갔다 가지고 그렇게 다른 분에게 방해를, () 끼쳐서는 아니 .

 

그리고 불허출가(不許出街) 불허부청(不許赴請).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댕기는 . 무슨 핑계를 대고 이리 나가고 저리 나가고, 부득이해서 나가지 않고서는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입승(立繩) 스님의 승낙을 받아서 나갔다가 바로 돌아오도록 그러려니와, 문밖에 나가지 .

그리고 어느 신도가 공양을 올린다 하고 싶다고 해서, 청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함부로 왔다 갔다 또는 그러지를 말어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전에는 경전이나 어록 같은 것을 보지 말어라.

경전과 어록도 확철대오하기 전에는 보지 말어야 하거든 하물며 선방, 지대방 모다 그런 데에 잡지니 신문이니 그러한 것이 있어서는 된다. 그런 것을 가지고 수행하는 사람이 세상이 어떻고, 정부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그러한 것을 알아서 것이냐.

 

비공계청(非公界請)이어든 불허열경(不許閱經)이다. 대중 공개적으로 금강경을 읽는다던지, 반야심경을 읽는다던지 그러한 때를 제외하고는 경전도 보지 말아라.

 

지금 이것은 몽산(蒙山) 스님이 대중을 위해서 특별히 이렇게 설하신 법문이지만, 용화선원 조실 스님 생존 시에 항상 점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하게 대중을 단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용화선원이나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광덕사 태화선원도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아주 선원 청규(淸規)로써 지켜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금년부터서는 이것을 정식으로 아주 청규(淸規) 결정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산문(山門) 밖에 출행(出行) 하지 . 둘째, 경이나 잡지나 신문 그런 것을 보지 . (그리고 하나가 뭐지?) 선방 안이나 선방 밖이나 입선(入禪) 시간이나 방선(放禪) 시간이나 묵언(默言) .

 

말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가 마디 되고, 마디가 마디 되고, 입을 벌렸다 하면은 거기에서 온갖 시비가 일어나고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화두(話頭) 놓치게 되고, 나도 놓치고 남까지 놓치게 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공사가 있던지, 그렇지 않으면 다과(茶菓) 시간을 이용해서 필요한 말은 간단히 주고받고 하는 것은 모르지만, 그것도 필요한 말이 아니면 다과 시간에도 조용하게 화두를 들면서 잔을, 경건한 마음으로 잔을 마시고 과일을 공양을 하는 것도 그것도 또한 수행자다웁고 멋있고 운치 있는 일이라고 것입니다.

 

수행자가 () 마시면서 한화잡담(閑話雜談) 하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고, 시간에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떠억! 화두를 들면서 차를 잔을 마시면 그것도 또한 수행의 부분이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산문 밖에 들랑달랑하지 . 묵언을 . 신문 잡지 모다 경전까지라도 그런 보지 .

그리고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에도 있지마는 사무실이나 후원 출입. 그거 , 선방 스님네가 후원이나 사무실 들랑거리고 그런 것은 대단히 위신상 문제도 있고, 그러니 공부에도 방해가 되고 문란해지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조심하고.

 

이러한 대중적으로 수행인으로서 지켜야 별로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사소한 같지마는 그런 것을 여법(如法)하게 함으로 해서 대중의 법도(法度) 엄숙해지고, 공부하는 데에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정식으로 채택을 해서 그것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그렇게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방부를 들일 때부터 그러한 규칙을 엄숙히 지킬 것을 선언을 하고, 서원을 하고, 맹세를 하고, 그것을 지킬 있는 사람만 방부를 받고 방부를 들이고, 일단 방부를 받고 결제를 이상은 이러한 청규를 모두 엄숙히 지켜서 철을 무장무애하게 성만(成滿) 하도록 그렇게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4154~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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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염멸(念起念滅)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인자 생사심(生死心)이고, 생사심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게 되는 것인데,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만 잡드리 가지고 화두(話頭) 들고 나가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거든.

 

그래서 방부를 들이고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네와 보살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거나, 자리에 참석을 하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생활하시면서도 항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생사심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잡드리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그게 바로 입선(入禪)이고, 그것이 바로 방부(房付) 들이고 정진하는 것이여.

 

설사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해도,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을 잡드리하지 아니하고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잡담이나 하고 번뇌 망상 속에서 그럭저럭 지낸다면 방부들인 본의가 하나도 없는 것이여.

문제는 공부를 얼마만큼 잘하냐 하는 것은 앉어서 많이 버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요, 잠을 자고 장좌불와(長坐不臥)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고 벙어리 흉내만 내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여.

 

일체처 일체시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잡드리해 나가느냐. 바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의 즈음해서 화두를 잡드리를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가, 바로 정진을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 하는 판가름이 나는 곳이여.

그래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순일무잡해지면 생사심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기멸심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여. 기멸심(起滅心)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적적(寂寂)하다 그러거든.

 

적적한 가운데에 화두가 없으면그것이 아무리 적적(寂寂)해서 망상이 끊어졌어도 화두가 없으면, 없는 의단(疑團) 독로(獨露)하지 아니하면 그건 무기(無記) 떨어진 것이거든. 무기에 떨어져 가지고는 몇억 겁을 지내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기멸심(起滅心) 끊어져서 적적(寂寂) 가운데에도 의단(疑團) 떠억!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하거든.

 

의단이 어떻게 독로하냐?

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눈을 박어야 하되, 힘을 쓰고 용을 가지고, 이마에다가 ()’자를 가지고 그냥 머리에다 힘을 가지고 나가는....

초학자(初學者) 대부분 간절(懇切) 의심을 하라고 하니까간절히 한다 하는 것이 이마에다 힘을 주고 하거든. ‘이뭣고!’ 그러는 것이 아니여.

 

떠억! 몸은 단정하니 하되, 어깨와 목에 힘을 빼고, 눈의 힘도 빼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고서 없는이뭣고?’

화두를 단전(丹田), 배꼽 밑의 단전에다가 화두를 거기다가 두고서,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볼록했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그래서 호흡에 따라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느껴야 .

 

느끼되, 화두는 언제 드느냐 하면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배는 차츰차츰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은 스르르르 조용하니 코로 나가는데 나갈 때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숨이 나가면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되, 들어마실 너무 빵빵 하니 들어마시지 말고 칠부(七部)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셔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뭣고 의심이 단전에 가서 있어야 된다 말이여. 이마에 가서 있어서는 . 이마에다가 화두를 두고, 용을 쓰고 했다 하면은 나중에는 골이 아파지거든. 그래 가지고 상기병(上氣病) 일어나는 수도 있고 해서 큰일나는 것이니까.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 하고, 화두를 드는 가지를 처음에 그것을 알아 가지고, 그걸 지혜롭게 올바르게 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적적(寂寂) 가운데에도 화두(話頭) 불매(不昧)해여. 화두가 ()하지 않도록 나가면 그것이 바로 영지(靈知)거든.

적적(寂寂) 것은 공적(空寂) 것이고, 신령(神靈)스러운 것은 영지(靈知)거든. 신령스러웁게 알아. 적적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일무잡한 가운데에도 적적해야 하거든.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하고 하는성성한 가운데에도 적적해야 하고, 적적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순일해서 성성하도록 잡드리하는 . 이것이 바로 공부를 올바르게 지어 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이것이 유지가 되어 가면 공부가 불일성지(不日成之). 머지않아서 화두를 타파(打破)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

 

간략한 보제존자(普濟尊者) 법문(法門) !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대단히 요긴한 대목이여.

수행자가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잡드리해 나가면, 아까 몽산(蒙山) 스님께서 설하신 그러한 법규를 지켜나가면서 보제존자(普濟尊者)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나가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명이면 도업(道業) 성취하고만 것이여.

 

오늘 기사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일곱 사람이 계를 받고, 많은 대중이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결제를 하게 되니, 앞으로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진 철이 되도록 간절히 당부 말씀을 드리면서 게송 하나를 읊고 안거 설법을 마칩니다.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니   시비양자막수인(是非兩字莫隨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이라. 수행해 나가는 데에는 모름지기 마음 씀을 진실하게 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다. 마음만 만약 진실하면 도는 친하기 쉬운 것이다. 마음 하나가 진실하고 간절하면 바로 도는 친하기가 쉬워. 바로 도는 거기에서 일취월장(日就月將) 거여.

마음 하나가, 용심(用心) 하나가 참되지 못하면 아무리 걸망을 지고 선방으로 돌아댕겨 봤자, 10 20 30년을 댕겨 봤자, 도업에 성취는 어려운 것이여.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가지 단서는 오직자신에게 있어.

시비양자막수인(是非兩字莫隨人)이여. ‘네가 옳다 내가 옳다시비(是非) 글자는 다른 사람을 따르지를 말어라. 시비(是非) 미오(迷悟) 원인은 순전히 자신한테 있어.

 

대중이 모여서 이렇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날 수가 있어. ! 보살님네가 금년 겨울에 백칠십이 명이 모였으니, 동서남북 미국에서까지 모다 오시고 팔도에서 이렇게 모였으니, 연세는 칠십구 세로부터 삼십 칠십 , 육십 먹은 노보살님들이 대부분 많으시고, 젊은 분도 모다 삼십·사십·오십 모다 계시고 한데.

 

얼마나 자칫 잘못하면은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날 수가 있으나, 시비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어.

자기 자신만아까 내가 몽산 스님의 법문과 보제존자의 법문 법문을 설해 드렸는데, 그것만을 듣고 자기 단속만 잘하면 시비가 일어날 까닭이 없거든. 시비만 일어날 뿐만 아니라 공부가 잘되고,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을 것이다.

 

지금 공사가 끝마무리 단계라 집안 집밖 동서남북 사방이 온통 복잡하게 어지러졌습니다. 그래서 디딜 틈이 없어. 그리고 층계도 많고 모다 도량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고 복잡하니, 모다 보살님네들 새벽부터 저녁에까지 왕래하실 걸음 걸음을 정말 조심스럽게 옮기시고 걸음 걸음 옮기실 때마다 화두를 들고 옮기셔야 .

떠억! 화두를 들고 발부리를 살피면서 옮기셔야지, 건성으로 화두를 놓쳐 버리고 망상 잡념을 하면서 한눈팔면서 걸음 걸음을 옮겼다가는 까딱하면은 다치시고 넘어지고 그럴 것입니다. 그럴 것이니 정말 조심스럽게 걸음 걸음을 옮기시고,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잡드리를 하셔.

 

속에 무슨 생각만 가지고 진심(瞋心) 낸다든지, 원망심을 낸다든지, 불평을 한다든지, 번뇌와 망상으로 화두를 놓치는 상태에서 층계를 오르고 층계를 내렸다 하면 까딱하면 헛디디고 다치실 우려가 있어. 누구든지 넘어졌다 하면은 화두를 놓친 증거가 것입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조심을 하시기를 부탁하고, 지금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불편하더라도 그런 대로 이해를 하시고, 그럴수록에 정진을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5750~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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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잔나비 ; ‘원숭이 사투리.

*진드기 ; 진드기는 사람이나 가축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벌레인데, 사람이나 가축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특성으로 인해진드기 같은 ’ ‘진드기처럼 달라붙네라는 말로 쓰여, 물체를 서로 붙이는접착제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 제육천(第六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임금은 마왕(魔王)이니,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때에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천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 말한다. ②불과(佛果)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올개미 ; 올가미.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널어놓다 ; 펼처서 벌이어 놓다.

*탐착(貪着) ; ①만족할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 욕심부려 집착하는 . 집착하는 . 욕심부리는 .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 ②깊이 마음에 두는 .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진(六塵)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육경(六境)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 육근(六根)으로 각각 (((((() 육경(六境)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 산스크리트어 dhātu)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 제외한 12가지를 12()라고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 음사. (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안온(安穩원적(圓寂안락(安樂) 등으로 번역.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 등의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하여 평온하게 상태. 사제(四諦)에서 (),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 소멸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 깨달음의 경지.

②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 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언필칭(言必稱) ; 말을 때면 항상 일컫기를.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습의(習儀) ; 의궤(儀軌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의 본보기) 각자 갖추어야 위의(威儀 격식을 갖춘 태도나 차림새) 등을 미리 익히는 .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오계(五戒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항목(項目).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 ; 과거 칠불(七佛) 공통으로 계율의 근본으로 삼은 게송.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모든 () 짓지 말고 모든 ()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뜻을 청정하게 하면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화만( ·빛날 /영락·머리장식 ) ; 몸을 꾸미거나 불전(佛前)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만든 꽃에 실을 꿰어 만든 꽃화환(-花環), 화륜(花輪), 꽃다발, 꽃장식.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서 만든 장신구. 목이나 팔에 두른다.

*비시식(非時食) ; 적절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 비구로서 정오가 지나서 공양하는 . 정오 이후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 이전 사이에 음식을 먹는 것은 모두 비시식에 해당한다.

계율에는 그것을 금지하는데, 그것을 비시식계(非時食戒) 또는 불과중식계(不過中食戒), 불과시식계(不過時食戒), 불비시식계(不非時食戒) 라고도 한다.

*자비(慈悲) : []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라고 한다(悲能拔苦).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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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궤합장(跪合掌) ;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 받을 ,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자국.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 참회하는 진언. '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두가지가 함께 ()해져서 없어져버릴 ,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하다 ; 가사(袈裟), 장삼(長衫) 따위를 걸쳐 입다.

*(게송) 승침상속의선마~’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장부(丈夫 어른·존칭 /사내·일꾼 )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 이치를 깨달은 사람.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 음역. (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 들어 도를 닦는 사람.

*원력(願力) : ()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근본서원(根本誓願) 준말.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일으킨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 별원(別願) 있다.

①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의 공통원,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건지리이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배우리이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리이다.

②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운 (아미타불48, 약사여래12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등한(等閒)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가지의 글을 합쳐서 권으로 엮은 .

《계초심학인문》은 불교에 입문한 초심 행자가 알아야 범절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발심수행장》에는 수행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적혀 있고, 《자경문》에는 수행인이 스스로 일깨우고 경계해야 내용이 담겨 있다.

*(게송) 생사유이방~’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八'에서 '卽事十首' 게송 참고.

*벼개 ; 베개(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 밑에 괴는 물건) 사투리.

*주렴(珠簾 구슬 / ) ; 구슬 따위를 실에 꿰어 만든 (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갈대 같은 것을 따위로 엮어서 만든 가리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익을 ) ; 완전히 익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정토(極樂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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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房付 ·거처 /·부탁할 )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외호(外護) ; 불법(佛法)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

*안거(安居 편안할 ,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부고장(訃告狀) ;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전도(顚倒) ; ①바른 견해·본연의 상태의 반대인 . 우리들의 미혹하여 있는 견해. 진리에 어긋나는 . 거꾸로 생각. 그릇된 생각. ②사전도(四顚倒). 일체 세간의 무상(無常), (), 부정(不淨), 무아(無我) 진리와 배반(背反) 견해를 취하는 . ③넘어지는 . 뒤집히는 .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견처(見處) ; (틀린)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 집견(執見,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 일어나는 장소. 유루법(有漏法) 다른 이름.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 견해, 세계관이라는 .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없다. 구경각(究竟覺)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 가리킨다.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제각(除却) ;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없애 버림.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 이부자리,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몽산(蒙山) : 남송과 ()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스님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산문(山門) ; 사원(寺院 ) 말한다. 산사(山寺)라고도 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들랑달랑 ; ‘들락달락(자꾸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양)’ 사투리.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가지의 글을 합쳐서 권으로 엮은 .

《계초심학인문》은 불교에 입문한 초심 행자가 알아야 범절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발심수행장》에는 수행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적혀 있고, 《자경문》에는 수행인이 스스로 일깨우고 경계해야 내용이 담겨 있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 아울러 이르는 .

*성만(成滿) ; 원만(圓滿 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하게 성취(成就)하는 . 실현함. 달성함.

 

 

 

 

 

-----------------(4/4)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관청의 공문서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칠부(七部)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80% 정도 만큼.

* ; [주로용을 쓰다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118)—19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고려 스님。 법명:혜근(惠勤) :나옹(懶翁) 당호:강월헌(江月軒) 속성:(),영해(寧海)사람。 20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어른들께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으므로 비통한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에 가서 요연(了然)에게 중이 되다.

요연여기 것은 무슨 물건이냐?”

혜근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거니와 보려 하여도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요연나도 너와 같아서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스님은 그곳을 떠나서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 양주 회암사에서 4 동안 좌선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중국 원나라 북경(北京)에서 지공(指空) 뵙고 계오(契悟) 있었고, 2 동안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서 법의(法衣) 불자(拂子) 받다.

복룡산에서 천암(千巖) 선실(禪室) 들어갔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은 뒤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다。칙명으로 대도(大都) 광제선사에 있다가 1358 귀국하여 가는 곳마다 법을 설하고 1360 오대산에 들어가다.

공민왕이 청하여 내전에서 법요를 듣고, 신광사에 있게 하다。 1371 왕사가 되고, 대조계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大曹溪禪教都總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 호를 받다。 뒤에 회암사를 크게 중건하여 문수회(文殊會) 열어 낙성(落成)하다。 1376(고려 우왕 2) 왕명을 받아 밀양의 영원사로 가다가 여주의 신륵사에서 입적(入寂) 세수(世壽):57, 법랍:38, 시호:선각(禪覺)。이색(李穡) 지어 세운 비와 부도가 회암사에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일취월장(日就月將 /이룰·나아갈 / /얻을·나아갈 )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고 성장함.

 

 

 

 

 

[주요 내용]

 

(게송)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 / 육화촌(六華村) 오욕락(五欲樂) / 번뇌(煩惱) 나무로 지혜의 불을 피워서 열반(涅槃) 밥을 짓는다. 일어나는 번뇌를 돌이켜서 번뇌 일어나는 뿌리를 찾는 것이 참선(參禪) / (게송)생사유이방(生死有異方)~ / 깨달음이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티끌도 원래 () 있지를 않다’ “바로 그놈이 끄터리에, 코밑에서 뱅뱅 돈다” /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 / 사미 사미니 수계 / (게송)승침상속의선마~ / 생사 문제는 크고 무상은 신속해 / 항상 오늘 출가한 마음으로 정진해야 /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법문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법문.

 

 

[주요 문구]

 

우리 중생들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에 빠져서, 거기에 맛을 붙여서 그놈을 탐을 내다가 그냥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를 못하고 만다.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마왕 파순이가 도인(道人) 올개미에 얽어 가기 위해서 모다 널어놓은 것이여. 그것이 바로 원숭이 잡기 위해서 진드기에다가 맛있는 음식을 붙여 놓은 거와 같은 것이다.

 

번뇌라고 하는 나무가 있어야 지혜라고 하는 불을 피울 수가 있고, 지혜의 불을 피워야 열반의 밥을 지을 수가 있다. 그래서 열반의 밥을 나도 먹고, 모두 사람에게 열반의 밥을 먹여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이 일어날 때에 어떻게 그놈을 잡드리를 하고,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그놈에 ()해서 화두를 드느냐? 여기에 공부를 성취할 있는 묘한 길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빨리 깨닫고자 원하면 티끌도 원래 () 있지를 않다깨달음이 데에 있고, 극락세계(極樂世界) 데에 있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티끌도 ()하지 않혀.

 

생사(生死)! 생사 문제는 크고, 무상(無常) 신속해. 우리가 이루어야 , 해탈(解脫)해야 생사 문제는 세상에 어떠한 일보다도 막대하고 막중해.

그런데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하다 보면 1년이 지나고, 그럭저럭 하다 보면 해가 지나서, 10 20년이 금방 지나간다 그말이여. 그러니 시간을 아껴서 어쨌든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처음 출가할 때의 감동, 신심이 마지막 숨이 ! 때까지 그걸 놓아버려서는 아니 되는 거여. 1 뒤에나 3 뒤에나 10 뒤에나 내지 50 뒤라도, 항상 오늘 출가한 사미승 때의 마음으로 닦아 가야 하는 거야.

 

 

염기염멸(念起念滅)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인자 생사심(生死心)이고, 생사심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게 되는 것인데,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만 잡드리 가지고 화두(話頭) 들고 나가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거든.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6. 1. 15. 12:08

 

 

 

(No.422)—1990 7 첫째일요법회(90.07.01)(60분)

 

 

(1/3) 약 22분.

 

(2/3) 약 17분.

 

(3/3) 약 22분.

 

 

(1/3)----------------

 

정종소식(正宗消息) 몰자미(沒滋味)허되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니라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正宗消息) 몰자미(沒滋味). 활구참선(活句參禪), 내가 나의 면목(面目) 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正法) 재미가 없어.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 여하약하(如何若何) 따지지 말어라.

 

세속의 모든 학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지식과 이론을 총동원해서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적용하고, 그래 가지고아하! 그러므로 이렇구나이렇게 알아 들어가고 결론을 내리는데,

활구참선법은 여하약하를 따지는 것이 아니여.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 다만 은산철벽과 같은 대의단(大疑團) 타파(打破) 뿐이여.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이놈이 무엇인가?’

다맛 맥힌 의심으로눈으로 무엇을 때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혀로 무엇을 맛을 때나, 몸뚱이로 차웁고 더운 것을 느낄 때나, 생각으로 좋고 나쁜 것이 느껴질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부딪힐 , 바로 거기에 ()해서 여섯 가지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경계에 ()하자마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疑心) 거각(擧却)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어. 무엇이 아는 것이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마음에 합당한 것이 있어야 재미가 있을 텐데, 무조건하고이뭣고?’

 

이뭣고?’ 한번 드는 데에서 눈으로 무엇을 보되 바가 끊어져 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들은 바가 끊어져 버리고,

생각에무슨 지나간 생각, 미래 생각, 현재 부딪히는 생각이 일어나되, 바로 생각 일어나는 데에 집착한 바가 없이이뭣고?’ 의심을 들어 버리니 무슨 재미날 것이 있으며, 무엇이 알아질 것이 있으며, 무엇이 얻어질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화두(話頭) 들고 들고 나가면, 아무 재미없는 가운데에 의단(疑團) 독로(獨露).

의심을 자꾸 일으켜서 화두를 들려고 해도 그렇게 끊어져 버리고 달아나 버리고 하던 것이, 놓쳤다 하면 들고, 놓쳤다 하면 들고 자꾸 챙기면,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가면 어느새 그것이 길이 들고 습관이 들어서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현전(現前)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렇게 조용하고 편안하고 맑고 깨끗해. 그렇게 편안하고 맑고 깨끗해지면 화두를 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화두를 들면 오히려 고요해진 마음이 흔들릴까 두렵고, 화두를 들면 오히려 맑은 것이 흐려질까 화두를 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수가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맑고 고요하다 하더라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맹~ 하니 있으면 그것을 무기(無記) 그러는데, 무기의 상태는 지극히 편안하고 맑고 고요하기는 할지언정 무기(無記) () 떨어져 있는 한에는 확철대오는 없어.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은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그런 고요하고 깨끗한 경계에 이르렀을 화두를 거각해야 하는 거여.

고요한 가운데에도 화두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언젠가는 화두가 ! 터지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게 되는 것이여. 생사대해(生死大海) 걸음도 옮기지 않고 건너뛰는 것이여.

 

 

오늘 경오년 칠월 초하루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날씨는 차츰 더워져서 장마철에 접어들고 삼복더위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일요일이라 모처럼 그동안에 비가 개고 일요일이 돌아왔으니 산으로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 많이 있으시겠지만, 그런 데에 놀러가는 것을 그만두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을 하셔서 과연 법보제자(法寶弟子)로서 신심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수가 있어서 매우 반갑고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당나라 마조(馬祖) 스님이란,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라고 하는 도인이 계셨는데, 육조 스님 다음에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 남악회양 선사 다음에 마조도일 선사, 마조도일 선사 밑에 여러 도인들이 백삼십 명이라고 하는 도인들이 밑에서 배출하셨는데,

가운데에도 조주(趙州) 스님이라든지 백장(百丈) 선사, 대매(大梅) 선사, 염관(鹽官) 선사, 조주 스님의 법사이신 남전(南泉) 스님과 같은 그러한 대도인이 나셨고, 밖에도 백삼십 명이라고 하는 엄청난 도인들이 거기서 배출하셨어.

 

그래서 인도에서 지리와 모든 것을 몇백 , 몇천 일을 환히 내다보는 그러한 분이 나와서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이다. 망아지 새끼가 천하인을 밟아 죽일 것이다 하는 예언을 하셨는데, 바로 마조 스님을 두고 그런 천하인의 혀끝을 끊고 천하인을 밟아 죽이는 그런 망아지 새끼라고 그렇게 비유를 해서 표현을 것입니다.

 

마조 스님은 과연 어떻게 해서 깨달음을 얻었는가?

어쨌든지 좌선, 앉아서 좌선을 많이 해야 확철대오 있을 것이다 가지고 숟갈 먹으면은 앉아서 아주 방석이 몇십 개가 구녕이 나도록 그렇게 좌선을 열심히 하셨어.

 

그때 남악회양 선사, 육조(六祖)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남악회양 선사가 마조 스님이 그렇게 열심히 좌선하는 것을 보고서 마조 스님 좌선하는 앞에 가서 기왓장을 숫돌에다가 벅벅 문질렀다.

아침부터 낮에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시간만 있으면 가서 기왓장을 갖다가 숫돌에다 갈고 있으니까 처음에는무슨 필요가 있어서 기왓장을 가는가 보다이리 생각했는데, ! 종일토록 갈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아니, 헐라고 기왓장을 가십니까?” 여쭤보니까,

거울을 만들라고 그런다

 

, 기왓장을 갈아 가지고 무슨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대는 앉아서 무엇을 하는고?”

 

, 앉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라고 이렇게 앉았습니다

기왓장을 갈아 가지고 거울을 맨들지 못한다는 알면서 어디서 그렇게 앉아 가지고 부처될라고 한단 말이냐?”

 

, 참선을 할라면 앉아서 요렇게 가부좌(跏趺坐) 틀고 좌선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견성성불 하는 것인데, 그러면 앉았지 않고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래. 그렇다면 사람이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때에 수레를 쳐야 하겠는가? 소를 쳐야 하겠는가?”

! 그렇게 묻는데, 마조 스님이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소를 쳐야 하느냐? 수레를 쳐야 하느냐?’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공안(公案) 중생심,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지는 것이 아니다그러셨어.

여러분은 사람이 수레를 타고 때에 소가 가거든 수레를 쳐야 하느냐? 소를 쳐야 하느냐? 여러분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리저리 생각이 드시겠지만소를 쳐야 한다 , ‘수레를 쳐야 한다 , 중생의 사량분별로 대답해 봤자 어디까지나 분별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마조 스님이 계시는 회상(會上) 어느 서산(西山) 양좌주(亮座主)라고 하는 대강사(大講師) 마조 스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마조 스님이 양좌주라고 하는 강사에게 묻기를 좌주는, 강사는 이십사본경,

이십사본경(二十四本經)이니,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이니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의 아주 대표가 만한 경전을 일컬어서 말이여.

지금 우리가 알기 쉽게 화엄경, 법화경, 원각경, 금강경, 모다 그런 등등의 그러한 중요한 경전 이십사본의 경전을 종횡으로 맥힘이 없이 강의를 만큼 경에 통달한 강사인데.

 

양좌주 보고당신이 그런 여러 가지 경을 설한다며?” 이렇게 물어보니까, 양좌주가천만의 말씀입니다[不敢]” 그렇게 겸손해서 대답을 했는데, 사실은그렇습니다그런 말과 같은 말인데,

감히 큰스님 앞에서, 그렇습니다그렇게 말할 수가 없으니까천만의 말씀입니다이렇게 겸손의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 하는고?” 그렇게 마조 스님이 물으니까, 양좌주가 대답하기를마음을 가지고 () 하지요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마조 스님이마음이라 하는 것은 공기아(工伎兒). 마치 인형극을 뒤에서 가지고 이렇게 조종을 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고, []이라 하는 것은 조수와 같은 [和伎者]인데 어떻게 마음이 경을 설할 수가 있단 말인고?” 그렇게 물으니까,

양좌주가 대답하기를마음이 () 설할 모른다면 그렇다면 허공이 경을 설한 아닙니까?”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말이여.

 

그렇다. 허공이 () 설한 것이다.” 이렇게 마조 스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양좌주가 불끈 일어서서 소매를 흔들면서 밖으로 나가.

나가는 뒤에다 대고 마조 스님이양좌주!”하고 부르니까 양좌주가 휘뜩 돌아보니까시십마(是什)?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마조 스님이 물으셨어. 거기에서 양좌주가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양좌주는 다시 돌아와서 마조 스님 앞에 터억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했어.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얼간이 같은 놈이 절을 해서 하는고?” 말에 양좌주가 온몸에 땀이 주루룩 흘렀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길로 자기 절로 돌아가서 자기가 가르키는 학인들을 모아 놓고내가 평생 동안 () 공부를 가지고 감히 땅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내가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마조 스님의 한마디에 내가 아주 묵사발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에 내가 자신만만했던 ()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없이 되어 버렸다이렇게 말을 하고서 학인들을 전부 흩어 버렸습니다.

가거라. 너희들 데로 가거라.” 흩어 버리고 서산 깊숙이 들어가서 일생 동안을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사선(祖師禪)이요, 활구선(活句禪) 면목인 것입니다.(처음~2146)

 

 

 

 

 

(2/3)----------------

 

여러분 가운데에는 화엄경도 읽어 보고, 법화경도 읽고 외우고, 금강경도 외우고, 좋은 경전을 많이 읽기도 하고 외우기도 하고,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분이 계실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공부를 할려고 하는 분이 적지 아니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 어느 하나 훌륭하지 아니한 경이 있으리오마는, () 통해서 해석을 하고, 알고 외우고 그러면 내생에 머리가 좋은 총명을 얻는다고는 했습니다마는, () 중생의 사량분별로 따져서 외우고 해석한다고 해서참나 깨닫는 바른 길이라고 수가 없어.

 

과거의 모든 도인들이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런 경전을 통달하고도 남는 그러한 대도인들이 말세의 우리 중생들도 그러한 방편설(方便說) 떨어지지 아니하고, 근기가 약한 하근기(下根機)로서도 철저히 정법을 믿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누구나 깨달을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참나를 깨닫는 간화선(看話禪),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양좌주가 마조 스님과 같은 도인을 만나지 못하고 일생 동안을 경이나 가르치고, 경이나 읽고 있었다면 어찌 확철대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이뭣고?’ 재미가 없고 맛이 없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활구참선법을 믿고서 여하약하(如何若何) 막론(莫論)하고 따지지 말고, 자기가 무식하건, 남자 여자 , 나이가 많고 적건 그런 따지지 말고 다못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일하면서도이뭣고?’ 누고 오줌 때도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이뭣고?’ 슬플 때도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오직 신심(信心) 분심(憤心)으로 의심(疑心)만을 일으켜 () 나간다면 어찌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어째서 의심만을 일으키라고 하느냐? 아무 것이고 하나만 생각하고 거기에 우리의 정신을 집중하면, 일심으로 집중하면 깨달을 수가 있지, 의심만 거각(擧却)해야 하느냐?’ 그러한 질문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마음을 한군데 모이서, 하나만 한군데에다가 모이고 그놈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망상도 차츰 없어지고, 차츰 마음이 고요해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기는 어려워.

깨닫는다 하는 것은 조용하게 마음을 () 자리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거 깨달은 것이 아니여.

 

신선도나 외도들은 마음을 ()하게 가지고 () 자리에 떠억 머물러 있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데, 그렇게 하면 오신통(五神通) 나는 수가 있으나 누진통(漏盡通) 얻는 거여.

누진통은 ! 깨쳐야지, 고요한 경계를 지켜 나간다고 해서 깨달라지는 것은 아니여.

 

마치 풍선은 계속해서 부는데 풍선에 바늘 구녕만한 쬐그만 구녁이 있어도 풍선은 터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냐? 족족 뚫어진 구녁으로 바람이 빠져나가.

사량분별(思量分別)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은 마치 풍선에 구녁 뚫어진 것과 같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따진다든지, 또는 곳을 이렇게 그놈을 지키고 있다든지, 이런 것은 전부 구녁 뚫어진 풍선을 불고 있는 거와 같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고요한 경계만 지켜 나간 것은 불지는 않고 풍선에다 입만 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 그래 가지고서야 풍선이 어찌 터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풍선은 반드시 맥혀야 ! 그러듯이 의심으로써 맥혀야지, 맥히지 않고 무엇인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따져 들어가는 이치가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문해사상(聞解思想)—들어서 알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참구선(參句禪) 아니여.

 

참의구(參意句),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의리선(義理禪), 참의구(參意句) 그래 가지고,

참의구는 백천만 겁을 따져서 공안마다 그럴싸한 결론을 내려 가지고 환히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어 봤자, 그것은 흑산(黑山) 밑에 귀굴(鬼窟) 속에서 귀신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래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 하생(下生) 때까지 해봤자 확철대오는 못하는 거여. 정각(正覺)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아무리 재미가 없고, 무엇이 되어간 같지 않더라도 철저한 신심과 분심으로써이뭣고?’ 없는 의심, 그렇다고 해서 너무 조급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용을 쓰면서 이마에다가 ()’자를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

이건 지나치게 용을 쓰면 이것은 깨닫기도 전에풍선이 크기도 전에 처음에 느닷없이 되게 불어 버리면 찢어져 버려.

 

그놈이 불어날 대로 때는 조심스럽게 불어야 하거든. 그래서 더이상 커질 없을 때까지 이만큼 커져 가지고 거기서도 계속 조심스럽게 불어가야 그놈이 커질 대로 커진 다음에 ! 터져야 그놈이 재미가 있지, 쬐끔 요만큼 커질라다 찢어져 . 그거 무슨 풍선 부는 맛이 있는가?

 

참선을 나갈 의심을 하는 것도 묘관(妙觀)이라야 .

불급불완(不急不緩)—너무 급하고 조급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늘어져 처지지도 말게, 불급불완한 () ()이라야 되거던.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이거든.

 

없는 의심관을 불급불완하게 () 나갈 —‘, 옛날 사람은 칠일(七日)에도 깨달랐다 하니까 나도 칠일 안에 이것을 마쳐야겠다 가지고, 밥도 굶고 잠도 자고 그냥 이를 악물고 이레 동안을 보라 그말이여. 그런 아니여.

 

『소한(小限) 칠일(七日)이요 대한(大限) 구순(九旬)이라』 그러니까, 자기 생각해 보니 몸도 튼튼하고 이만하면 나도, ‘그까짓 고인(古人) 했는데 나라고 못할까! 칠일로 가지고 마쳐야겠다

그래 가지고 밤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이를 악물고 칠일 동안 하니까, 골치만 뽀개질라고 아퍼. 눈만 벌거니 살조개 놓은 것처럼 되어 가지고 골치만 더럭더럭 아퍼. ‘ 참선 아무짝에도 못쓴다고 안되거든.

 

그런 것이 아니여. 사소한 것도 선배의 지시를 받고 나가야 실수 없이 나가는 거고,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먼저 사람의 안내를 받던지, 아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눈으로 보일 수도 없는 마음공부를 갖다가 어거지로 그렇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마구잽이로 한다고 그것이 리가 있겠느냐.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한대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花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이성안색증무가(耳聲眼色曾無暇)하야  염념나지시사문(念念那知是死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서순환난부한(四序循環暖復寒)이요  미후심련육화촌(獼猴深戀六花村)이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돌고 돌아서 더워졌다 추워지고 추워졌다 더워져.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좋다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 와서 잎이 피고 삼복성염(三伏盛炎) 돌아와. ‘! 이거 더워서 못살겠다하면 어느덧 입추 처서가 돌아오면은 조석(朝夕)으로 서늘바람이 온다.

서늘해서 인제 좋다 싶으면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서 입동 소설 대한이 돌아온다. ‘! 이렇게 추워서 수가 없다, 얼어죽겠다싶으면은 입춘 우수가 돌아온다 그말이여.

 

그러는데, 사람도 나서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우는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금방 유치원을 가고, 금방 유치원을 다니는가 싶으면 얼마 후에 보면 벌써 중학생이 되고, 얼마 후에 보면은 대학생이 되고, 얼마 후에 보면 벌써 첫아들을 낳았다고 그런다 그말이여.

첫아들을 낳은 지가 엊그제인데 금방 환갑이 돌아왔다그러고손자를 봤다 그런다 그말이여. 아마 자리에 앉으신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淸信女) 분께서도 당신의 일생을 돌아다보면 이와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게 되는데, 원숭이란 놈은 꽃이 피고 꽃이 곳에는 맛있는 열매가 열려, 육화촌(六花村)—여섯 가지 꽃이 피는 마을을 항상 그리워한다 그말이여.

 

그런데무엇을 원숭이가 육화촌을 그리워한다고 비유를 했냐?’하면은 시시각각으로 이렇게 죽음을 향해서 우리는 가고 있는데,

눈으로는 예쁜 것을 보고자 하고, 귀로는 좋은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데에 정신을 쏟고, 코로는 좋은 향내를 그리워하고, 혀로는 맛있는 음식에 끄달리고, 몸뚱이로는 부드러운 옷과 가벼운 , 울긋불긋하고 좋은 옷을 입을려고 그러고, 우리의 마음으로는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를 좋아하고 명예와 권리를 탐한다.

 

이러한 것이 마치 원숭이란 놈이 육화촌의 아름다운 꽃과 향기와 맛있는 음식 과일을 그리워해서 밤낮 거기만 들락거린 거와 무엇이 다르냐 그말이여.

귀를 통해서 좋은 소리를 듣는 데에 탐착하고,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탐착하는 동안에(耳聲眼色曾無暇), 생각 생각 초가 지나가면서 우리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망각할 수가 있겠느냐?(念念那知是死門)(2147~3829)

 

 

 

 

 

(3/3)----------------

 

그래서 우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완성을 대혜종고(大慧宗) 선사는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선()이라 하는 것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응연처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때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계를 일용응연처라 그러는 거여.

사람을 만나서 얘기 하나, 일을 하나, 먹고 입고 누는 그것이 일용응연처인데 거기에도 참선은 있지 않어.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어. 과거 일을 생각하고, 미래 일을 생각하고, 현재 일을 생각하고 일체 것을 생각하고 따지는 거기에도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것이냐? 고요한 , 시끄러운 , 일용응연처, 사량분별처를 버리지도 말아라.

거기에, 고요하고 시끄럽고 일용응연(日用應緣)하고 사량분별(思量分別) 거기에 있지 아니하니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단속해 나갈 것인가? 분명하게 가운데 말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걸 버릴라고도 하지도 말고서 오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이뭣고?’ 사람은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사람은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字)’ 사람은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사람은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일체처 일체시에 떠억 거각을 나가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안되어도 안된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이뭣고?’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내지 말고이뭣고?’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잡드리 나가면 나중에 순일무잡(純一無雜) 경계가 오고야만 말아. 들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면서 순일무잡해지거든.

 

순일무잡해지더라도 조금도 좋아하는 생각도 말고, ‘! 이것이로구나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 이럴 빨리 터졌으면그런 생각도 내지 말고, ‘이럴 어느 선지식을 만나서 깨닫게 해줬으면그러한 생각도 내지 말어.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지각심(知覺心)이라 하는 거여.

애써서 잘되아 가는 데다 뿌린 거여 그게. 그런 생각을 내지 말고 잡드리 나가면 어떠한 찰나에 홀연히 축착합착(築着磕着)해서 ! 터지게 되는 거여.

 

이것이 바로 자신의 몸속에 있는 살림살이여. 자기한테 있는 것을 자기가 깨닫는 견성성불하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병이 나면 건강할 때를 기다리고, 일이 바쁘면 일이 끝나기를 바래고, 시끄럽고 복잡하면은 조용하기를 기다리고, 밤낮 기다리다가 세월이 지내간다 그말이여. 아들 대학이나 들여보내 놓고, 시집이나 보내 놓고, 인제 아들 장가나 보내 놓고 선방(禪房) 가서 하리라.

 

일이라 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어. ‘ 다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이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세상에 온갖 인연을 맺어놓고 많은 빚을 져놨기 때문에 다하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용기를 다해 가지고 ! 끊어 버리고 출가를 하던지—‘자식이고 딸이고 자기 있으면 잘살 것이고, 자기가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은 좋은 시집 장가갈 것이고, 내가 신경 없다. 살림도 자기가 있으면 잘살 거다. 내가 신경 없다

! 끊어 버리고 아주 머리를 깎아 버리던지, 선방에 와서 아주 방부(房付) 들이고 죽이 끓거나 밥이 끓거나 모르쇠 하던지, 대용기가 있으면 한번 그렇게 만한 것이고.

 

그렇게까지 용기가 없으면 괜히 있지도 못한 용기를 가지고 댕겅 머리부터 깎았다가 며칠 가서 가발 쓰고 갈라고...  , 그런 출세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끊고 들어올 수만 있으면야, 중국 청나라 순치 황제는 천자의 지위도 버려 버리고 나온 예도 있고, 부처님은 머지않아 자기가 임금이 있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태자의 신분도 버리고 출가를 했고, 달마 스님도 향지국에 3 왕자의 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버리고 출가하고,

이러한 예를 들자면은 인도, 중국, 한국에 끝도 없지마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기를 나는 여러분께 재촉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출가할 하고, 이렇게 선방에 아주 들어와서 방부를 들이고 참선 하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있는 자리에서이뭣고?’ 들으라 이거거든.

 

이뭣고?’ 눈으로 그때 들고, 귀로 소리를 들을 드는 것이지, 보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라, 듣자마자이뭣고?’ 챙기면 바로 자리가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여.

그렇게 평소에 잡드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와서 선방에 와서 달씩 있을 있게 오신다면 그때는 누워서 먹기야. 잘될 것이다 그말이여.

 

집에서 복잡한 살림살이 속에서 바로 그때 장소에서 자꾸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시간 나는 대로 30분씩 시간씩 잡드리를 나가면, 그렇게 잡드리를 놓으면 나중에 머리를 적당한 ! 깎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가발 같은 쓰게 것이다 그말이여.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어찌 머리를 깎은 스님에게만 확철대오(廓徹大悟) 있겠습니까?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한 데에나, 시끄러운 데나, 일용응연처나, 사량분별처우리 중생은 사량분별을 여의고는 1분도 지내지를 못하는데바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걸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들으라 말입니다.

 

 

, 그러면 10 동안만 죽비() 치고 입선(入禪)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셔서 반가부좌(半跏趺坐) 하고 몸을 좌우로 서너 흔들어요. 흔들어서 한가운데에다 안정을 시켜.

몸은 단정하되 어깨의 힘을 빼고, 목도 머리도 전후좌우로 삐뚤어지지 않게 단정하니 하되 목에 힘을 빼고, 눈은 부릅뜨거나 감지를 말고 평상(平常)으로 떠요. 어금니는 지긋이 물어. 너무 물지 말고 가만히 맞닿도록 그렇게 하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 갖다가 대고서...

 

(죽비입선죽비)

 

이렇게 잠시 같이 입정(入定) 뜻은, 여러분은 댁에 돌아가시면은 집에 가서 삼십 분도 하시고, 시간도 하시고, 시간도 하실 있겠고 선방에 계신 스님네나 보살님네는 하루에 여덟 시간, 시간을 얼마든지 하실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법회에 이렇게 법당에 이렇게 같이 모이셨으니 인연으로같이 죽비를 치고 같이 입선한 인연으로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도 같이 가서, 분도 낙오자가 없이 같이 가서, 거기서 같이 만나, 같이 가서 미륵(彌勒)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같이 확철대오 하고,

사바세계(娑婆世界) 인연이 있어서 다시 하강하게 되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같은 형제간이 되고, 같은 도반이 되고자 해서 일부러 이런 시간을 갖고자 것입니다.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고  불체왕래종(不滯往來)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하고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고, 흐름을 따라서, 인연 따라서 나왔다 죽었다 왔다갔다 이렇게 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이요. 가고 오는 자취에 맥힘이 없어.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 취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아라. ‘()한다 하는 것은 집착하는 것이고, ‘버린다 하는 것은 그걸 멀리 할려고 하는 거다 그말이여.

 

모든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취할려고 하지도 말고, 취하는데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려고 하지도 말아라. 그러면모든 애착을 버리라그러는데, 애착을 버리면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모두 버리고 사업도 버리면 모든 사람이 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말이여.

 

()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말은 취하되 취한 바가 없고 버리되 버린 바가 없어.

취할 것을 취하되 취한 데에 집착하지 말고, 능히 버려야 것을 버리되 버린 데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거거든.

 

친하고 성근 , 친소(親疎) 끊어 버려라그러는데, 친소를 끊어 버리면 부모자식 간은 친한 사이고 친구 간도 친한 것이고, 스승 상좌도 친한 것인데, 친한 것을 끊어 버리면은 그거 어떻게 되냐 그말이여.

친할 것을 친하되 친한 데에 집착하지 말고, 성근 것을 집착하지 않고 버리되 버린 바에 집착하지 않다이건 대단히 말로는 쉽지마는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히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아니해.

 

그러나 친한 가운데에 화두(話頭) 들면 친한 집착하지 않고, ‘취하되 취한 바에 집착하지 않는다하는 것은 취하되 화두를 들면 집착하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들고,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것으로 생활화하면, 생활 속에 충실하되 집착한 바가 없으니 그것이 바로 취사(取捨) 없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고,

인간은 친소(親疎) 속에서 친소의 인연 속에서 살아가되 화두를 들고 모든 사람을 상대해 나가면 친하다고 해서 애착에 떨어질 것이 없고, 성글다고 해서 원수처럼 원수를 맺을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오늘 가지 광고 것이 있습니다.

해마다 중고등부 학생회 어린이 학생회에서 행하는 수련대회가 있는데 중고등부는 8 6일부터서 8 9일까지 34일로 해인사로 가서 수련대회를 갖게 되고, 어린이 학생회는 8 11일부터서 8 13일까지 23일로 천안 광덕사로 수련대회를 가게 됩니다.

 

구체적인 것은 사무실이나 교무 스님께 의논을 해서, 여러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의 자녀들이 있으면 수련대회에 참석을 하도록 그렇게 권장을 합니다.

 

모두 시험, 입학 시험이다 과외공부다 모든 그런 계획이 짜여져 있어 가지고어떻게 그런 황금 같은 시간을 34, 23일씩 그렇게 수가 있겠는가? 된다. 어쨌든지 시간이라도 공부를 해야 좋은 학교에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이 드시겠지만,

방학 동안에 34일이나 23 수련대회를 갔다오면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고 신심이 돈독해서 마음속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깨끗이 씻어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불보살(佛菩薩) 가피(加被) 짊어지고 가슴 가득히 돌아오면 업장이 소멸이 되었으니 공부가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공부가 저절로 잘되어 것입니다.

 

어쨌든지 인원 초과가 되어서 교무 스님이 쩔쩔매도록, 차라도 불러야 정도로 그렇게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오늘 법회 법어를 마치겠습니다.(38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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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6) '贈淳長老' 사명대사 게송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저러하다는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 의미하는 .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생사대해(生死大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 바다(大海)' 비유함.

*육조 스님, 남악회양 선사, 마조도일 선사, 조주 선사, 백장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구녕, 구녁 ; ‘구멍 사투리.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좌주(座主) ; 학덕이 뛰어나, 어느 자리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사람을 말함.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 가르치는 스님.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십이부경(十二部經)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경문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

*불감(不敢) ; ①감히(敢히,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 따위를 넘어섯 주제넘게) 하지 못함. () 없음. ②상대편이 베풀어주는 대우(待遇)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고 황송(惶悚).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佛法僧) 삼보(三寶)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 먼저 무릎을 꿇고 팔을 땅에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묵사발 되다 ; 상대방에게 완전히 패하다. -묵사발 : ①심한 타격이나 충격을 받아 뭉개진 상태를 이르는 . ②여지없이 패망항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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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하근기(下根機 아래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소질이나 근성,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막론하다(莫論--) ; 이것저것 따지고 가려 말하지 아니하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한군데 ; 어떤 일정한 .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있고 변할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흑산(黑山) : 인도의 전설에 대철위산(大鐵圍山) 소철위산 사이에 음양(陰陽) 이르지 못하는 암흑처가 있으니 이곳을 흑산이라고 하며 이곳은 악귀(惡鬼) 서식한다고 한다.

*흑산하귀굴리작활계(黑山下鬼窟裏作活計) ; 귀굴리작활계(鬼窟裏作活計).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 정식분별(情識分別)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 선경어(博山無異禪師 禪警語)’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可避喧向寂(불가피훤향적)하야  瞑目合眼(명목합안)하고  坐在*鬼窟裏作活計(좌재귀굴리작활계)  古所謂(고소위)  *黑山下坐死水浸(흑산하좌사수침)이라하니  齊得甚麼邊事(재득심마변사)리요  只要在境緣上做得去(지요재경연상주득거)하야사  始是得力處(시시득력처)니라

一句話頭(일구화두)  頓起在眉睫上(돈기재미첩상)하야  行裏坐裏(행리좌리)  着衣吃飯裏(착의흘반리)  迎賓送客裏(영빈송객리)  只要明這一句話頭落處(지요명자일구화두낙처)  一朝洗面時(일조세면시)  摸着鼻孔(모착비공)하야  原來太近(원래태근)이니라

 

 공부를 짓되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향하야 눈을 감고 귀신 속에 앉아 살림살이를 하지 말지니, 고인이 말하기를 「흑산 밑에 앉아 썩은 물에 잠겼다」하니 무슨 일을 이루리오? 다만 경계와 반연 위에서 공부를 지어 가야 비로소 이것이 힘을 얻는 곳이니라.

귀절 화두를 몰록 일으켜 눈썹 위에 두고서 다닐 때와 앉을 때와 입고 먹을 때와 손님을 맞고 손님을 보내는 속에 다만 일구(一句) 화두의 낙처(落處) 밝힐지니, 하루아침에 세수하다가 콧구멍을 만지듯 원래로 너무 가까왔느니라.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정각(正覺) ; 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우주의 대진리를 깨닫는 .

*묘관(妙觀) ; 묘한 ().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19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8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소한(小限) 칠일(七日)이요 대한(大限) 구순(九旬)이라 ; ‘공부하는 기간은 짧게 잡으면 일이요, 길게 잡아야 구십 일이다’ [선요(禪要)] (고봉원묘) ‘結制示衆(其四)’ 참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 ①예기치 못한 말이나 행동을 불쑥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갑자기 뜻밖의 일을 당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같은 속담] 어두운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홍두깨 ; 예전에, 옷이나 옷감 따위를 방망이로 두드려 깔깔하지 않고 윤기가 나도록 매끄럽게 하는 다듬이질을 때에 쓰는, 단단한 나무로 만든 도구(방망이).

*(게송) 사서순환난부한~’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二十二首' 게송 참고.

*삼복(三伏) ; ①일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 아울러 이르는 .

*성염(盛炎 성할 /불꽃·더울 )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서늘바람 ; 첫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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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종고(大慧宗)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이라 하는 것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

 

[참고]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47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30) 【宋 온문(蘊聞)編】 19示妙證居士(묘증거사에게 보임)(聶寺丞)’에서.

禪不在靜處。不在鬧處。不在思量分別處。不在日用應緣處。然雖如是。第一不得捨卻靜處鬧處日用應緣處思量分別處參忽然眼開。都是自家屋裏事.

 

() 고요한 [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때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경계)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 정처(靜處) 요처(閙處)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자기 집안의 )입니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 ①자기 집안의 . ②자기의 내부에 갖추어져 있다는 . 가리사(家裏事옥리사(屋裏事)라고도 한다.

불법의 진리를 깨치고 보면 인간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번뇌와 보리, 부처와 중생, 모든 것이 자기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 ; 선지(禪旨) : []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타연나(駄衍那) 쓰고,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하여 닦음(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 등으로 번역한다.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중국에서는 가섭존자가 전한 선법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교법만이 유포되었었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 건너온 뒤로부터 선법이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 완성되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아래짝이 서로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선실(禪室) 같은 .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참선하러 절에 간다또는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모르쇠 ;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모른다고만 하는 .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개당보설(開堂普說)’, 거사(龐居士)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 들어가는 .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身口意) 삼업(三業) 갈무리는 . ②수행하기 위하여 안에 들어앉는 .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게송) 隨流常出沒  不滯往來 ;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25, 처인선사(蘄州靈泉山處仁禪師) 참고.

*(게송) 頭頭無取捨  處處絶疎親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17, 월암선과선사(潭州大溈月庵善果禪師) 참고.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 사라져 없어짐.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주요 내용]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마조(馬祖) 스님의 깨달음 / 마조스님과 양좌주 / 어째서 의심만을 일으키라고 하느냐? /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 / (게송)사서순환난부한~ / 대혜종고 선사 법문()이라 하는 것은~’ /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 (게송)수류상출몰~.

 

 

[주요 문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부딪힐 , 바로 거기에 ()해서 여섯 가지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경계에 ()하자마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疑心) 거각(擧却)하는 것이다.

 

이뭣고?’ 한번 드는 데에서 눈으로 무엇을 보되 바가 끊어져 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들은 바가 끊어져 버리고, 무슨 지나간 생각, 미래 생각, 현재 부딪히는 생각이 일어나되, 바로 생각 일어나는 데에 집착한 바가 없이이뭣고?’ 의심을 들어 버리니 무슨 재미날 것이 있으며, 무엇이 알아질 것이 있으며, 무엇이 얻어질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과거의 모든 도인들이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런 경전을 통달하고도 남는 그러한 대도인들이 말세의 우리 중생들도 그러한 방편설(方便說) 떨어지지 아니하고, 근기가 약한 하근기(下根機)로서도 철저히 정법을 믿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누구나 깨달을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참나를 깨닫는 간화선(看話禪),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마음을 한군데 모이서, 하나만 한군데에다가 모이고 그놈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망상도 차츰 없어지고, 차츰 마음이 고요해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기는 어려워. ‘깨닫는다 하는 것은 조용하게 마음을 () 자리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거 깨달은 것이 아니여.

신선도나 외도들은 마음을 ()하게 가지고 () 자리에 떠억 머물러 있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데, 그렇게 하면 오신통(五神通) 나는 수가 있으나 누진통(漏盡通) 얻는 거여. 누진통은 ! 깨쳐야지, 고요한 경계를 지켜 나간다고 해서 깨달라지는 것은 아니여.

 

참선을 나갈 의심을 하는 것도 묘관(妙觀)이라야 . 불급불완(不急不緩)—너무 급하고 조급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늘어져 처지지도 말게, 불급불완한 () ()이라야 되거던.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이거든.

 

집착하지도 말고 버릴라고 하지도 말아라이것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단속해 나갈 것인가? 분명하게 가운데 말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리지도 않고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걸 버릴라고도 하지도 말고서 오직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일체처 일체시에 떠억 거각을 나가라 그말이여.

 

제가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출가할 하고, 이렇게 선방에 아주 들어와서 방부를 들이고 참선 하실 하더라도 우선 당장 있는 자리에서이뭣고?’ 들으라 이거거든.

이뭣고?’ 눈으로 그때 들고, 귀로 소리를 들을 드는 것이지, 보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버리고 드는 것이 아니라, 듣자마자이뭣고?’ 챙기면 바로 자리가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여.

 

() 어찌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어찌 머리를 깎은 스님에게만 확철대오(廓徹大悟) 있겠습니까?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한 데에나, 시끄러운 데나, 일용응연처나, 사량분별처우리 중생은 사량분별을 여의고는 1분도 지내지를 못하는데바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걸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들으라 말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6. 1. 4. 15:01

 

 

 

(No.401)—1989년 11 첫째일요 법회(65)

 

 

(1/4) 약 22분.

 

(2/4) 약 18분.

 

(3/4) 약 20분.

 

(4/4) 약 6분.

 

 

(1/4)----------------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이리요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

나무~아미타불~

 

흉중(胸中)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요. 가슴 가운데에 무엇을 사랑하고 다시 무엇을 미워할 것이 있느냐.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스스로 사람 앞에  가지 능치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현성공안(現成公案)허는  밖에 이것을 () 놓고,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다. 무슨 불법의 () 계승해서 전해 내려가는 그럴 것이  있느냐? 오직 현성공안  뿐이지, 현성공안(現成公案) 하는데 전심전력을몸과 목숨을 거기에  쏟을 뿐이지, 불법의 등을 ()하고,  ()하고  거기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것이 있느냐?

 

수행자는 애착을 가지고 누구를 사랑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어. 미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벌써 생각이  닦는데 철저하지 못한 증거고,

 

 보조국사의 『진심직설(眞心直說)』에 보면 자기의 수행의 경지가 얼마만큼 왔는가? 정말 공부가 상당히 깊은 지경에 왔나  왔느냐? 그것을 스스로 점검을  볼라면 마음속에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증애심(憎愛心) 얼마만큼 심한가, 또는 그것이 완전히 떨어졌는가? 이것을 증험(證驗) 해보라 그러셨거든.

 

그러니 수행자가 오직 생사무상(生死無常)함을 요달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정진해 나가는 사람이 무슨 사랑할 것이 있으며 미워할 것이 있느냐.

다만 부끄러운 마음이 자기는  가지도 () 못해. 아무것도 () 것이 없는 . 오직 내가 나를 찾는 화두(話頭) 대한 간절(懇切) 의심을 거각하는 이외는 아무것도  줄을 모르고 누구 앞에 내세울 것이 없어야 하는 거야.

 

그래서 만공 스님께서도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도업(道業) 성취하느니라

 

무엇도 잘하고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능한 것이 많으면 자연히 그런 데에 끄달리게 되고, 그런 데에 끄달리게 되면은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니까, 아무것도 능치 못한 바보 천치.

그래서 다못 사람 앞에 부끄러워한 마음, 무량겁을 내려오면서 과거의 모든 불보살과 성현들은 진즉  일대사(一大事) 요달해 가지고 생사해탈을 해서 중생교화를 하시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도업을 성취 못했던가? 그러한 부끄러움.

 

그러기 때문에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현성공안, 현성공안(現成公案)이라 하는 것은 지금 공안이라 하면 화두를 공안이라 그러는데, 이거 문헌상에 오른 것이 지금 천칠백 공안이다, 천칠백 화두라, 이렇게 일컬어지지만 문헌에 오르지 않은 공안까지 하면은 몇만 개가 될는지 몇십  개가 될는지 모르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낱낱이 돌멩이나  포기의 풀이나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하나하나의  별들, 나무의 이파리,  벌레, 눈으로   있는 , 귀로 들을  있는 , 손으로 만질  있는 , 일체 삼라만상두두물물이 낱낱이  나름대로 하나의 공안이여.

 

근데 우리 중생은 삼라만상을  때에 그놈을 눈으로 보면은 그리 끄달려서 집착심을 낸다든지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듣는 소리로 인해서 벌써 경계에 끄달리고 망상이 일어나고,

그렇지만 정말 귀로 들을  있는 자동차 소리, 바람 소리,  짖는 소리,  우는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공안이여. 사량분별로 따질  없는 공안으로 보여야 한다 그말이여.

 

깨달은 분상에는  자체는 그것이 전부가 진여(眞如), 비로자나(毗盧遮那) 법신(法身)이요, 진리요, 깨달음의 경지겠지만,

 

깨닫지는 못했으나 정법(正法)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색상(色相) 보던지, 무슨 생각이 속에서 일어나던지,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공안으로써 현성(現成) 된다. 현성(現成) 공안()이다.

다못 그렇게 나갈 뿐이지. 거기에다 불법(佛法)이다, 무슨 조사의 전등을 계승해야 한다 그러헌 생각도  현성공안하는  자리에 와서는 그것도 번뇌요 그것도 망상이여.(942)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십우송(十牛頌)—10가지의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심우송(尋牛頌)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자리를 에다가 비유해 가지고 고인(古人)들이 게송(偈頌) 읊은 것입니다.

그런데  보리심(菩提心) 발해 가지고, 발심(發心)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 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노나서 게송으로 읊은 것인데  게송에 따라서 고인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많이 여러 가지 종류의 게송도 나오고, 여러 가지 종류의 그것에 의한 그림도 나오고, 요새는 달력 캘린더에도 그런 그림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마는,

 

첫째, 제일의 심우(尋牛)—'찾을 ()', ' ()'—‘소를 찾는다. 심우(尋牛)’  단계는 보리심을 발하는 위치여.

우리는 언제 생겨날 때가 없는, ‘언제  마음자리가 생겨났다하고 헤아려   없을 만큼 우주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마음 '인데,

 '마음 ' 부처님도 가지고 계시고, 모든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도  '마음 '  가지고 계시고, 우리의 중생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돼지·미물에 짐승·벌레까지라도  자리를  가지고 있다 그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잊어 버렸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해 모르고 살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의 , 조사의 법문에 의지해서 잃어버렸던  마음 소를 찾는다 그말이여.

 마음, 진여불성 자리를 찾는 것을  소를 찾는다 해서 심우(尋牛) 그러는데, 보리심을 ()해야 그때부터서 '마음 ' 찾기 시작한 거다 그말이여.

 

그래 아까 조실 스님께서  번째 읊으신 게송이 바로  '마음 ' 찾는 데에다가 두고 읊으신 게송인데,  게송이 중국의  곽암(廓庵) 선사라고 하는 도인이 읊으신 게송입니다.(1312)

 

 다음에 가서 견적(見跡)이거든. 자취를 . 소를 찾아서 인자 집을 떠나 가지고  소를 찾으러 그 산이 험하고 물이 넓고 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소를 찾으러 방방곡곡이 다니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이 막심을 하다그말이여.

근데 그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발자취를 발견을 했어. 발자취를 발견한 것을  번째 견적이라 그러는데,

 

그리고  번째가 견우(見牛)소를 보고,  소를  다음에는 득우(得牛)—소를 붙잡는 거여.

그리고 다섯 번째 가서 목우(牧牛). 소를 먹이는 거여. 길들여서 먹여.

 

그러니 처음에 소를 찾을랴고 하는  보리심을 발한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 50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정말  '마음 ' 찾으려는 마음을  사람이 과연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천육백  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서  고려, 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천육백 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태어난 사람은  불교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여기에까지 왔으나 그러한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런 불교와 인연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소를 열심히 찾다 보면은  자취를 발견하게 되고  자취를 따라서 나아가다 보면은 결국은 소가 거기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소를  다음에는 그놈을 붙잡을라고 하면 도망치거든.

그놈을  어떻게 해서 지혜와 인내와 방편으로써, 그놈을 잘해서 접근을  가지고 그놈을 재치있게 붙들어야지, 소를   밑으로  봤다고 해서  지혜없이 쫓아가서 어거지로 잡을라고 하면  소가 도망가 버리고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도 역시  바른 선각자의 바른 지도하에 여법하게 정진을 해야 되지,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서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를  다음에는 그것을  붙들고, 붙든 다음에도 그놈을  지혜롭게 요령있게 소를  먹여야지, 붙들어만 놨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놔두면 다시  도망쳐 버릴 것이고.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소를  다스려 나가는가? 그것을  정성을 다해서  소를 먹이고 거두어 나가야  소가 토실토실 살이 찌고 번질번질하니 기름져서,  소가 농사도 짓고 병도  나고  소를 인자 맘대로   길러 가지고,

 

여섯 번째 가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외양간에다  묶어 놓고  먹이는데, 얼마동안  먹이다 보면,

일곱 번째 가서 망우존인(忘牛存人)이거든.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어. 인자  먹여서 외양간에다  놓으니까 소가 길이 들어서 도망가질 않으니까, 소에 대한 인자 관심을  버리고  주인만 있는 거지.

'소에 대한 생각' 인자 아주 길이  들여있고, 편안하게 외양간에 길들여져서 있으니까, 이것도  공부해 나가는 절차를 거기에다 그렇게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쉬웁게 말하자면은  길을 들이는 과정에서는, 화두를 열심히 열심히 애를 써서 열심히 들다 보면은 화두를 들지  해도 제대로 의단(疑團)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리는 과정, 그놈을 거쳐서 나중에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하거든.

확철대오를 하면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깨달음의 경지가 낭연독존하며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경지에 이르르거든. 무수이수(無修而修)거든. 닦음이 없이 닦는 거거든. 

 

그리고 여덟 번째 가서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거든. 사람과 소를 완전히  잊어버리거든.

그래서 '집에 돌아와 가지고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忘牛存人]' 잊어버리고  다음에 사람과 소를   잊어버린 것은 보리(菩提) 이룬 위치다.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忘牛存人]' 소승(小乘)에서는 아공(我空) 경계를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러고,  다음에 인우구망(人牛俱忘) 자리는 대승의 경지에서 말하는 보리를 이룬 경지에다가 비유해서 그렇게 했다고 고인은그렇게 해설을 합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와서  반본환원(返本還源) 이것은 열반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것은 대승이나 소승이  같이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가서 수수입전(垂手入廛) 손을 드리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런 10가지 단계로 보리심을 () 가지고 도업(道業) 성취해서 보림(保任)  완성을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그러한 단계를 10가지로 이렇게 구분한 것인데.(처음~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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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마음 ' 찾는 경계를  '' 찾는 경계에다가 비유해서 이렇게 게송을 읊고  그림을 이렇게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를 닦아가는 데에  이해하기 쉽고 재미스럽게 표현했다고  수가 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께서는  번째 제일 심우(尋牛) 단계와  번째 자취를 보는 견적(見跡) 단계만을 게송으로 읊으시고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마음 '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 앞과 뒷이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 나가는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산승이 읊은  게송이 불법(佛法)이다. 전등(傳燈) 계승한다 그러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다못 자기의 공안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위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공부를 지어 가는데,

 

공부를 지어 가는데 있어서 고인(古人) 공안 상에 복탁(卜度)하고 망령되이 해석을 가하지 말아라. 비록 낱낱이 해석을  가지고 그럴싸한 해답을 얻었다 할지라도 '참나' 깨닫는 일과는 아무 교섭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공안을 갖다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이것은 무슨 최초구다, 이것은 말후구(末後句), 이것은 제삼구(第三句), 이것은 2구다, 이것은 () ()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 이런 식으로.. 이것은 본분이다 신훈이다.

옛날에 강사나 또는 의리선을 하는 사람들은 공안을 낱낱이 그렇게 분석하고 따져 가지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공안을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여겼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활구참선이 아니여. 그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져서 결론을 내려 봤자 그것은 생사해탈도 아니고 견성성불도 아니여.

 

고인의  말씀  말씀이 마치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렇거늘, 하물며   속에 어떻게 앉거나 누울 수가 있겠는가?

공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그래 가지고 어떤 분별심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마치 불덩어리에 훨훨 타는 무서운 불길 가까이  가지고 그것을 만져 볼랴고 그러고   속에 들어갈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거거든. 

 

 공안 속에, 크게 나누고 작게 나누고 논상논하(論上論下) 이러쿵 저러쿵 (), ()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 신훈이다, 본분이다, 일구·이구·삼구다, 이렇게 따진 것이  분대분소(分大分小)하고 논상논하  것이거든.

이러면 그것이 상신실명(喪身失命)—벌써 수행자로써 공안을 갖다가 의리(義理) 따지고 사량분별로 이렇게 따지는 짓을 하는 것은 벌써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여.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은  공안을 가지고 사량분별로 따진 것을 극히 엄격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까닭이 바로 공안은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하면은 수행자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려.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서 무슨 공안을 대하든지, 법문을 듣던지, 어록을 보던지,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이러쿵이러쿵 따져서 결론을 내려. 조실 스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기를 사견종자(邪見種子) 그랬습니다.

사견(邪見) 삿된 종자, 삿된 견해를 가진 씨알머리다 그거거든. 사견종자는 암만 해봤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러주면 “예, 알았습니다그래 놓고는 금방 다음에  사견을 내거든.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가야 그래야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그리고  하나, 공부하는 사람이 주의할 것은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글을 찾고 글귀를 쫓는 거여. 그것이 공부하다가 답답하고 암만해도  되고 하면은  전등, 염송, 기타 조사어록 모다 이런 것을 뜨적뜨적 하며 행여나 거기서무슨 좋은 해결이 나올까?

 

워낙 해도 해도  되고 가슴은 답답해서  견디게 그렇게 답답하니까  그런 것을 보면  후련하고 시원해지는 맛이 있어서 그런 것을  볼라고 그러고,

 그런 어록 속에 기언묘구(奇言妙句) 기특한 말과 묘한 글귀가 있으면 그런 것을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이런 것은 다맛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된다.

 

진실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짓을 하지 말아라.

 

 공부가  되고, 암만해도 공부가 진취가 없고,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앉아서도 답답하고 서서도 답답하고, 추호도 어떤  공부가 잘된다고 하는 그런 시원한 대목이 없으니까 대단히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마는,  답답하고 맥히고  단계가 이러한 경지가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좋은 경계라 그랬습니다.

 

대혜 스님도 그러한 경지야말로 깨달음에 나아갈  있는 아주 중요한 단계니까, 거기에서 번뇌심을 내지 말아라. 번뇌심을 내지 말고 거기에서 답답하고 답답한 그런 경지에서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잡드리를  가지고, 화두를 놓치지 말고 참구를  해가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고인이 한결같이 당부하신 말입니다.(3153)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은  비량(比量)—이것과 저것을 비교허고 공안을  공안과  공안을 비교허는 거야.

그래 가지고 마음을 가져서,  공안  공안에 대해서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서 주박(湊泊) . 그걸 따지고 그놈을 가지고 속으로  살림을  나가는 거여.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이것은 그렇게 하면은 () 하고는점점  멀어지는 거야.

 

공안을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고, 이놈과 저놈을 비교허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복탁(卜度)하고 이런 것은 56 7천만  뒤에 미륵불이 출생허실 때까지 이르러도  사람은  깨달음과는 아무 교섭(交涉) 없다.

 

그래서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 속에 갇혀 있는 거와 같애서, ‘다못 어떻게 허면  사방이 은산철벽으로 둘러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허면 여기서 빠져나갈까?’ 오직  활로(活路) 찾는  한가지 일만이 문제가 되야 .

 

그래서  활로를 찾는 방법이 「이 뭣고?」거든.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 화두를 말씀허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무자 화두를 허신 분은 「어째서 ()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허신 분은 「이 뭣고?

 

오직  화두  마디,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나가야 .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될수록에 그렇게만  나가야 .

 그렇게  나가다 보면, 머리가 개운하면서 화두를 들랴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리면서 그렇게 깨끗하고 조용하고  들릴 때가 오되, 그럴 때라 하더라도 ! 됐다. 이제 공부가 잘된다 그런 기쁜 마음을 내서는  . 그런 기쁜 마음을내면 금방  경계가  변한 거거든.

 

그래서 설사 공부가  수월허게 화두가  들리고 의심이 의단이  순일허게 된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항상 마왕(魔王) 파순(波旬) 권속이 육근문두에 와서 지키고 있거든. 그래 가지고 잠깐이라도 틈만 있으면  육근을 통해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내란을 일으킬라고 작정을 허는거여.

 

마치  국가도 이웃나라가  나라를 침범을 할라며는 항상 간첩을 보내 가지고  나라의 모든 것을 감시허다가, 감시허면서 계속 서로 이간(離間) 붙이는 거여.

정부와 백성을 이간을 붙이고, 백성과 백성을 이간을 시키고, 신하와 임금을 이간을 시켜 가지고, 이간을 시켜서 싸움만 일어나면은, 그것이 바로 침범해서  나라를 갔다가 빼앗기가 가장 좋기 때문에,

그래서  나라가 이웃나라로부터서 침범을  받고 멸망을  할랴면은 어쨌든지  나라 백성이 서로 화합을 해야 하거든.

 나라 백성이 화합이  가지고 모두가 서로 믿고, 자기의 맡은바 소임을 열심히 허고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가장 나라를 위하고 국가 민족을 위하는 것이 되어서 외부에서 침범해봤자 도저히 성공을  허는 것이여.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도 눈과 코와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서로 눈은 자기의 역할이 따로 있고, 입은 입의 역할이 따로 있고,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러니 우리의 발심한  마음으로 주재(主宰) 되아야, 육근(六根) 심왕(心王) 명령에 모두가  복종을 하고 합심해서  대사(大事) 향해서 합심이  때에 () 이룰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놈이 흩어져 가지고 오욕락(五欲樂) 빠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의 종이 된다면 도업(道業) 성취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마군(魔軍)이의 함정에 빠지고  홀랑게에 걸려서 도업 이루기 커녕은 마군이의 종자가 되고마는 것이여.

 마군이의 종자가  되고 법왕 권속이 되는 길은 마군이의 올개미가 무엇인가를  알면은  올개미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올개미가 바로 사량분별이거든.

 

우리 공부하는 분상에는 사량분별이 가장 중요헌 것이야. 일체처 일체시에   없는 의단으로 그렇게 나가면은 마군이가 거기에는 발붙이지를 못하는거여.

 맥히지 않고 알아 들어가고 이치 길이 있고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마구니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이여.(2140~3936)

 

 

 

 

 

(3/4)----------------

 

기래끽반냉첨의(饑來喫飯冷添衣)헌데   삼척지동야공지(三尺之童也共知)니라

나무~아미타불~

일개화두명역력(一箇話頭明歷歷)하면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나무~아미타불~

 

기래끽반냉첨의(饑來喫飯冷添衣). 배고픔이 오면 밥을 먹고 추워지면 옷을 껴입어.

삼척지동야공지(三尺之童也共知). 이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  함께 아는 바다 그말이여. 배고프면  먹고 추우면 더운 옷을 껴입는 것은 삼척동자도    있는 일이니,

 

일개화두명역력(一箇話頭明歷歷),   개의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역역(歷歷)하게 의단(疑團) 독로(獨露)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나가면,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어떻게 눈을 뜨고서 어리석고 어리석은 방자(放恣) 우치(愚癡) 빠질 것인가?

 

배고프면  먹을  알고 추우면 더운 옷을 껴입을  아는, 이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라 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해서 해탈도를 증득헐랴고 허는 여기에 절대 없어서는   소중한 것이 배고프면  먹을  알고 추우면은 더운 옷을 껴입을  아는 바로 거기에 있거든.

배고프면  먹을 줄도 모르고 추워도 옷을 껴입을 줄도 모른 정도가 되었다면  사람은 공부해 봤자 소용이 없어.

 

그것을 누가 모르겠느냐?’하는데,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정법(正法) 믿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확철대오(廓徹大悟)  수가 있다고 허는 증거거든, 이게.

배고프면  먹을  알고, 추울 때는 더운 옷을 껴입을  알기만 하면, 바로 거기에 바른 공부에 바로 들어갈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거야. 

 

「이뭣고? 배고프면  먹을   사람이면 어찌 「이뭣고?」를 못해. 「이뭣고?

정법을  믿고 화두를 타서 공부를 아니한 사람은 배고프면 맛있는 것을 생각하고, 무엇을 먹어야 맛있을까? 어떻게 무엇을 먹어야 배가 부를까? 어떻게 먹어야 영양을 섭취할까? 잘했다 못했다 짜다 싱겁다 그러다가 말아 버린다 그말이여.

 

그런데 공부허는 사람은 배고프면  먹을  아는 생각  ,  먹으면서 「이뭣고?」거든.

우리는  공부를 일상 생활과 띠어서 생각해서는  . 배고프면  먹을   , 바로 배고프다   「이뭣고?」거든. 춥다   「이뭣고?」거든.

「이뭣고?」부터  챙기면서 옷을 껴입고, 배고프면 즉각 「이뭣고?」를  추켜들면서 밥을 먹어.

 

하물며  밖에 성이  , 슬플 , 괴로울 , 속상할 , 억울할 , 원망스러울 , 미울 , 아까 증애심에 대한 말씀을 했지마는 사람이니까 이쁜 사람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쁜 생각이 나자마자 「이뭣고?」를 들고, 미운 생각이 들자마자 「이뭣고?」를 든다면, 이뻐하고 미운 것으로 인해서  () 짓지 아니하고,  이쁜 생각·미운 생각나자마자 「이뭣고?」를  든다면  이쁜 생각·미운 생각이 바로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발판이  것입니다.

 

미운 사람을 보고도 나는 「이뭣고?」를 드니까, 미운 사람은 웬수가 아니라 바로 잠깐  앞에 나타난 불보살(佛菩薩) 것이고,

이쁜 사람을 보고 이쁜 생각을 내고 그것으로 인해서 음심(淫心) 내고, 그것으로 인해서 업연(業緣) 맺게 되면  사람은 바로 나를 마왕(魔王)으로 끌고 가는 올개미가  것입니다마는,

 

발심(發心)해서  닦는 사람은 이쁜 사람을 보고도 이쁜 생각이 나자마자 찰나에 「이뭣고?」하고 화두를 든다면,  사람은 불보살이 잠시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어서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해서 화현신(化現身)으로 나타난 사람이  것이다그말이여.

 

그래서  세상에 모든 사람이 나와 인연 있는 사람은 미운 사람이나 이쁜 사람이나,  발심한 사람에게는  불보살 화현이여.

 

발심을 못하고 정법을 믿지 아니하고 공부를 아니헌 사람은 사랑만 했다면은 머지않아서  사람 허고는 웬수가 되고 다생원채(多生怨債) 기어친(起於親)이거든다생에 웬수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나.’ 친했다 하면은 사랑하게 되고, 사랑했다 하면은 머지않아서 웬수로 변하거든.

중생세계,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야.

 

발심을 해서 정법을 닦는 사람은  사바세계처럼 공부허기 좋은 곳은 없고, 깨달음에 나아가는데 가장 적절한 데가 없다 이거거든.

 

일개화두(一箇話頭) 명역력(明歷歷)하면 여하개안자우치(如何開眼恣愚癡)리요. 어떻게 눈을 뜨고서 어리석은 마음을 방자히  수가 있으리요.

 

화두(話頭) 하나로서 사바세계의 탐진치를 극복을 하고,  화두라고 허는  무서운 무기로써 무기는 총보다도  무섭고, 칼보다도 무섭고, 원자탄보다도 무섭고,   밖에 어떤 화학무기보다도  무서운 무기가 바로  화두인 것입니다.

아무리 화학무기가 무섭고, 원자탄이 무섭고, 수소탄이 무섭고, 총칼이 무섭다 해도  화두 하나 보다는  무서워.

 

 그러냐?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고  평범한 한마디지만 혁범성성(革凡成聖)이거든. 범부를 고쳐서 성현을 맨드는 그러헌 무서운 무기거든.

원자탄 100개를 던진들 중생을 제도할  있겠습니까? 수소탄 1000개를 던진들, 사람과 모든 것을 파괴할 것뿐이지, 그걸 가지고  세계를 평화롭게 맨들 수도 없는 것이고, 한때 잠시 두려움을  수는 있을지언정 영원한 평화는 가져오지 못하거든.

 

1945년에 원자탄을 일본에 나가사끼, 히로시마에 던져서 2 대전(大戰) 종식은 되었지만, 그래봤자    가서 다시 중생심은 계속해서 발동을  가지고  세계는 이렇게 평화를 향해서 잘되아 가는 기미는 보이지 아니하고 언제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무서운 싸움이 일어날른지 모르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법에 귀의해서 「이뭣고?  활구참선(活句參禪)  가지고,  세계가 멸망해 버릴지도 모를 그러헌 상황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구제하고, 가족을 구제하고, 국가 민족을 구제하고, 세계 인류를 구제하고,  자연계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냐? ‘ 세계가  이것이 존재허냐하면은,  각자 나의 마음의 표현이 세계거든.

  밖에 세계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으므로 해서 세계가 있어. 내게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 밖으로 나타나서 표현된 것이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야.

 

그래서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면  세계가  좋게 보이고,  마음 하나가 슬프고 괴로우면  세계가  뵈기 싫어.

아름다운 꽃이 피었거나 휘황찬 밝은 달이 하늘에  있어도  마음이 슬프면 꽃도 슬프고 하늘에 밝은 달도 슬퍼.  마음이 기쁘면  마음에 행복이 있으면  밝은 달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이쁘게  꽃도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러니  세계의 모든 것도 내가 좋아야 세계가 좋아. 친구도 내가 좋아야 친구를 보면 반갑지, 내가 불행허면 친구도 반가운 줄도 모르고  세상에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어.

그러니 세계가  나요, 내가  세계거든. 그러기 때문에 세계의 평화를 이룩헐라면은  마음이 행복해져야 .

 

어떻게 허면  마음이 행복허게 허냐?

세상 사람들은 많은 재산을 모으고 높은 벼슬을 하고 그러면은 행복헐  같지마는, 그렇게 생각해서 밖에서 그런 것을 얻을랴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거 얻는다고 해서 정말 행복해지들 않애.

그런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면  잠시  좋다는 생각이 들고 기뻐하지만  얼마 안가요. 얼마 안가면  재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벼슬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도 헌다 그말이여.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자기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가을도 가고 겨울철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음력 10 보름에 겨울철 안거(安居)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는 뒤로 미루지 말고  핑계  핑계 대다보면 한량이 없습니다.

!  마음을 내서 결단심을 내서 방부(房付) 드리고   한철을 열심히 정진을 허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새로 선방(禪房) 확장을 했으니 어찌던지 와서 정진을  허시길 바라고,

부득이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나와서 공부를 못하신 보살님네, 거사님네들도 가정에서·직장에서·생활 속에서 항상 바로 있는 디디고  있는  자리, 앉어 있는  자리 자리가 바로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뭣고?」만 들면 벌써 용화사 선원에 와서 방부를 드리고 죽비를 치고 입선(入禪)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용화사에 방부를 드리고, 와서 큰방에 앉어 계셔도 밤낮 여기 앉어서 집안 생각, 아들 생각,  생각 그러고 있으면은 그건 방부 드리나 마나 하는 거고.

댁에 계시더라도 항상 「이뭣고?」를 들고  허다가도 퍼뜩 챙기고, 앉어서 챙기고, 서서 챙기고,  먹으면서 챙기고,  누면서 챙기면은 바로 집이 용화사 선원이거든.

 

시간도 공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척지간(咫尺之間) 수천 , 수천 리가 지척이 되는 것입니다. 백년 천년허면   같지마는  찰나간이고,  찰나간이 잠깐인  같지마는 이것이 바로 무량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 외우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거든. 이것은 진리에 입각해서 허신 말씀이라고만 생각헐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래.

 

둘이 나란히 한집에서  이불 속에서 자도 벌써 생각이 틀어져 버리면은 천리(千里)거든. 부부 간도 천리 웬수여.  천리 밖에 떨어졌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있으면은 벌써 부부일신(夫婦一身)이거든.

 

시간과 공간을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야. 시간이고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거든.

공간 없는 시간이 없고 시간 없는 공간이 없어. 시간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공간이고 시간과 공간은 베의 날과 씨가 서로 이렇게 짜여져서 베를 짜듯이 시간과 공간도 역시 마찬가지여.

 

그래서 어느 , 어느 시간 무엇을 허실 때라도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 하나만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저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자리에는 부처님이 계신 자리요,  자리는 모든 조사가 계신 자리요,  자리에는 조실 스님이 계신 자리요,  자리에는 입승 스님이 ! 죽비를 들고 앉아 있는 자리다 그말이거든.

 

그러니 입승(立繩) 스님이 죽비를 들고 앉아 있고, 조실 스님이 ! 지켜보고 계시고, 모든 조사 스님이  자리에 계시고, 삼세제불이  자리에 계시는데 어느 곳이 선불장(選佛場) 아니겠습니까?(3945~5945)

 

 

 

 

 

(4/4)----------------

 

생사차무승여속(生死且無僧與俗)하고  성진나유오화미(性眞那有悟和迷)리요

나무~아미타불~

가타사기동참자(伽陀寫寄同參者)하니  두우성건일우서(杜宇聲乾日又西)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생사차무승여속(生死且無僧與俗)이요. 생로병사는 승속(僧俗) 없어. 스님네나 속가에 계신 여러 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이나 누구에게나 생사는  있다 그말이여.

 

성진나유오화미(性眞那有悟和迷)리요. 성품 참다운 것은, 진여(眞如) 성품은 깨달은 사람이나 () 사람이나, 깨달은 부처님이나 () 중생이나  똑같애.

깨달은 성현이라 해서 진여 성품이  크고 위대하고 좋고, 깨닫지 못한 중생이라고 해서 진여 성품이 작고 추하고 그런 것이 아냐.  진여 성품  자리에 가서는  똑같다 그말이여.

출가한 스님이라고 해서 생로병사가 없고 속가에 계신 분만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닌 거와 마찬가지.

 

가타사기동참자(伽陀寫寄同參者)  게송을 써서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동참 도반들에게 기증하노니,

두오성건일우서(杜宇聲乾日又西). 두견(杜鵑)이는 쉬지 않고 소쩍소쩍 울고 있는데 해는  서쪽으로 지는구나. 

 

' 생각' 일어났다 없어지고  ' 생각' 일어났다 없어진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生死)니라.

일념(一念) 속에 구백 생멸(九百生滅) 있어. ' 생각' 속에도 미세허게 보자면, 원자 현미경 같은 그런 미세한 현미경으로 일념을 갔다가 들여다보면 구백 생멸이 있다 그랬어.

부처님 말씀에는 털구먹  모공(一毛孔) 속에 구억 (九億蟲) 들었다. 구억 개의 벌레가 우글거리고 있다하셨어. 그때 당시에는 현미경도  원자 현미경도 없었는데 부처님은  알고 계셔.

 

일념 속에 구백 생멸이 있어. '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고,  생사가 결국 우리에게 육체적인 생사  육도윤회(六道輪廻) 허게 허는  원인이요 장본인이거든.

 일념 일념을 단속허는 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 자물통이여 그게, 자물쇠가 거기에 있거든.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휩쓸려 나가느냐’, ‘거기에 끌려 들어가지 않고 화두를 드느냐 따라서 삼악도(三惡道) 가느냐 해탈도(解脫道) 가느냐의 분간이 있는 것입니다.

 

소쩍새는 쉴새 없이 울고 있는데 해는 오늘도  서쪽으로 넘어가.  게송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고 알뜰히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5954~6528)()

 

 

 

 

 

----------------(1/4)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山居十首 게송 참고.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나무둥치 ;  나무의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毗盧遮那)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 대지(大智)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석가여래의 원만(圓滿) 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수심결 강의) (지눌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2/4)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본래면목(本來面目  본/ 래/ 면/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워함().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 미륵이라 한다.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  . 육근과의 경계.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 제육천(第六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임금은  마왕(魔王)이니,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때에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천마다.

*이간(離間) ;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헐뜯어 관계가 멀어지게 만듦. 또는  사람 사이에서 각각 제삼자를 헐뜯고 일러바치고 하여 사이의 정을 떨어뜨림.

*주재(主宰) ;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또는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일반상(一般相)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 구별이 있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홀랑게 ; '매듭' 사투리.

*올개미 ; '올가미' 사투리.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말씀  말씀이 마치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 바란들 어찌 가히   있으랴?

 

做工夫호대 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活路] 찾는 것같이 할지니,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3/4)

 

*(게송) 기래끽반냉첨의~’ ;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三十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삼척동자(三尺童子) ; 키가 아직  자밖에 자라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역력(歷歷) ;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방자(放恣) ; 방자하다. 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지다. 

*우치(愚癡) ; ①삼독(三毒) 하나. 사상에 의혹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른다. ②매우 어리석고 못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음심(淫心) ; 주로 남녀 사이의 성적인 일과 관계되어 먹은, 바르지 않은 마음.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인연을 부른다.

*마왕(魔王) ; 천마(天魔). 욕계(欲界) 제육천(第六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임금은  마왕(魔王)이니,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때에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천마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 오온(五蘊)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지척(咫尺) ; ' 자의 거리'라는 뜻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 30(210) 게송.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  거사(龐居士)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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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사차무승여속~’ ;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三十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주요 내용]

 

(게송)흉중하애부하증~ / 현성공안(現成公案) /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 (게송)기래끽반냉첨의~ / 발심한 사람에게는 모두가 불보살의 화현신이다 / 화두는 가장 무서운 무기 / 내가  세계 / (게송)생사차무승여속~ / 일념단속.

 

 

[주요 문구]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마음 '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 앞과 뒷이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 나가는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가야 그래야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게 되는 것이여.

 

오직  화두  마디,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나가야 .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될수록에 그렇게만  나가야 .

 

배고프면  먹을  알고, 추울 때는 더운 옷을 껴입을  알기만 하면, 바로 거기에 바른 공부에 바로 들어갈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거야.

 

발심(發心)해서  닦는 사람은 이쁜 사람을 보고도 이쁜 생각이 나자마자 찰나에 「이뭣고?」하고 화두를 든다면,  사람은 불보살이 잠시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어서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해서 화현신(化現身)으로 나타난 사람이  것이다.

 

어느 , 어느 시간 무엇을 허실 때라도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 하나만을-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저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자리에는 부처님이 계신 자리요,  자리는 모든 조사가 계신 자리.

 

 화두는 간단한 한마디고  평범한 한마디지만 혁범성성(革凡成聖)이거든. 범부를 고쳐서 성현을 맨드는 그러헌 무서운 무기거든. 원자탄 100개를 던진들 중생을 제도할  있겠습니까?

 

'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고,  생사가 결국 우리에게 육체적인 생사  육도윤회(六道輪廻) 허게 허는  원인이요 장본인이거든.  일념 일념을 단속허는 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 자물통이여.

Posted by 닥공닥정
401~500/(401~425)2015. 12. 9. 14:42

 

 

 

(No.414) — 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73)

 

(1/4) 약 17분.

 

(2/4) 약 16분.

 

(3/4) 약 20분.

 

(4/4) 약 22분.

 

 

(1/4)----------------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나무~아미타불~~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

없는 우주법계가 비고 밝은 거울인데, 거울이 무량겁 동안 거울에 쌓이고 쌓인 티끌로 밝은 빛이 나타나지를 못하는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인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역대조사와 모든 성현들은 티끌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터억 자아를 자각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했는데,

우리 중생들은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소리와 빛깔의 티끌 속에 파묻혀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고.

이러한 고인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경오년 4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처음에 선방에 나오셔서 직지사(直指寺)에서 철을 공부하시는 지경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열여덟 한참 어리신 나이에 같이 뛰어놀고, 같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친구가 병이 들어서 죽은 것을 보고 너무도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충격을 받고 있는 차에 마치 밤에 무간지옥(無間地獄) 하룻밤 하루낮에 죽고 깨어나면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놓고 톱으로 머리로부터서 쪽으로 썰어 내리고, 사람을 수십 명씩 콩나물처럼 그렇게 잡어 가지고 맷돌에다가 넣어서 맷돌로 갈아서 죽이는 모습, 그렇게 죽여 가지고 다시 살려 가지고 그와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를 하는 그러한 광경들, 그러한 꿈을 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생사(生死) 하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어서 빨리 내가 선방에 나아가서 참선을 해야겠다그러한 불같은 발심을 가지고 직지사로 나오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포구발심할 있는 많은 상황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18~9 어린 나이로 그런 친구의 죽음을 보시고, 지옥고의 꿈을 꾸시고서 포구발심을 하셨어.

 

그런데 우리는 정든 가족이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강도로 인해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사람들이 죽는 그런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보면서도 과연 생사에 대한 포구발심을 분이 분이나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닦기에 가장 좋다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하늘나라에 () 받는 천국보다도 사바세계가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있고 귀로 들을 있고 느낄 있고 노상 접할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사바세계는 '참나'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의 어린 나이로 철에 직지사 선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를 하시는데 아침공양을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입선(入禪) 방선(放禪) 상관이 없고, 큰방에서 대중 스님네와 같이 그렇게 하면 입선 시간이 있고, 방선하면 일어서야 하고, 대중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

그러기가 불편하니까 법당 뒤에다가 방석 하나를 갖다 놓고 거기서 공양시간에는 불가불 가서 공양을 드셔야 하니까 그때만 일어서시고 공양만 끝나면은 바로 자리에 와서 앉었어.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열흘, , 달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다.

대중이어린 사람이 말뚝 신심이 가지고 저런다고 며칠이나 갈까 보냐?’ 모다 수군덕거리고 그랬다고 아까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그걸 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어.

 

그러나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드는 바른 법을 알고서 하셔야 텐데, 누가 그걸 자세히 일러준 분도 없었고, 그렇게 자세히 놓은 책도 없었고,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는 제산(霽山) 스님께서 조실로 계신 때인데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하라. 생각 일어나기 이전을 관하라이렇게 화두를 일러 주셨으니,

그것이 도저히.. ‘일념미생전을 관한다어떻게 ()하며, 들은 법문에 의하면은화두는 의심을 관하는 것인데 의심도 없이 생각 이전의 상태를 관하라?’

 

도저히 바른 공부가 아닌 같아서 단독으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스스로 간택을 가지고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 했는고?’ 파고 파고 가지고 어떻게 간절히 그리고 몹시 알날신심(遏捺身心)하면서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마침내는 육단심(肉團心) () 가지고 그렇게 코로 입으로 많은 피를 토하셨다고 그럽니다.

 

결과적으로는 피를 토하셨거나 말았거나 그렇게 무섭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대도를 성취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애당초에 바른 자세법과 바른 호흡법과 바른 화두를 드는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

화두를 드는 그런 가장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는 가장 묘한 의심관(疑心觀)으로 나가셨다면은 그렇게 피를 토하시지 않고도 도를 이루셨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이 들기도 하지마는.

 

하여간 어리신 나이로 이것저것 따질 없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서운 신심과 무서운 분심으로 그렇게 밀고 나가 가지고, 병이 뒤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거기다 전부 바치고 결국은 정진을 중단하시지 않고서 마침내 대도(大道)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친구나 정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철저히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라고 분도 지금도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그렇게 발심을 하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른 선지식(善知識) 찾아서 화두를 간택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신다면은 중간에 무서운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은 어려서 그렇게 피가 넘어오는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뒷머리가 툭툭 터져서 머리에 많은 흉터가 계셨고,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시고 밤잠을 주무시고 공부를 하시고 그래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섭게 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평생 동안 후배들을 위해서 후학들을 위해서 감동적인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무량겁 동안을 수행을 하시는 가운데에 수없는 몸을 던지시고 무서운 고행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탄생하셔 가지고 팔만사천 무상법문을 그렇게 많이 남기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부는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631)

 

 

 

 

 

 

 

(2/4)----------------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있는 모든 색상(色相)—청황적백의 빛깔이나, 크고 작고 짧고 길고 하는 모든 모양이 그것이 () 아니여.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여. 모든 소리를 듣되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있는 것은그것이 색상(色相)이다. 저것은 집이요, 저것은 나무요, 저것은 바위요, 저것은 자동차다. 저것은 산이고 저것은 들이다 색상으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그것이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이렇게 그것에 대해서 자기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렇게 생각이 자꾸 생각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색상(色相) 색상(色相) 아니다』 이거거든. 중생은 그걸 보고색상이다하고 색상이라고 보고서 온갖 색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나는데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면저건 애기가 우는 소리다, 자동차 소리다, 비행기 소리다, 저건 기계 돌아가는 소리다, 저건 기침 소리다 소리를 듣고서 소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 생각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면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고, 온갖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온갖 색상, 온갖 소리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런데 거기에 걸리거든.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서보면 보는 대로 끌려 나가 가지고 그놈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무슨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고 하는, 소리의 올가미에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다녀.

 

그런데 그놈에 걸리지 아니하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친히 법왕(法王) 계시는 곳에 도달하느니라.

 

 

우리 앞에 보는 모든 , 눈으로 있는 , 귀로 들을 있는 , 코로 냄새 맡을 있는 , 손으로 만져 있는 , 생각으로 느낄 있는 , 전부가 그것이 제법(諸法)인데,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자기의 얼굴이여! 그것이.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

 

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정든 사람이 죽으면정든 사람이 죽었다 가지고 울고불고 슬픔에 잠기고 그것에 끝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일단은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의 죽음만 생각할 아니라,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알아야 한다.

 

그러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소리와 모양을 보고서 전부 그리 끌려다니고, 일생을 그러고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우리의 생각에 떠오르는 온갖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생각들,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거든.

우리가 ()하면은불법승(佛法僧) 삼보의 법하면은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스님은 삼보(三寶) 일체(一體)그러는데,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우리 눈으로 보면은 전부가 무상(無常) 것이고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있고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서 전부가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을 없는 뿐인데 그것을 어째서 거기다가 제법(諸法)이라 하냐?

그것이, 바로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이라 그런 거여.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모든 삼라만상의나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런 () 있는 모든 동물, 무정물(無情物)—산천초목, 일월성진 그런 것들이,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그것이? 그것은 법신불(法身佛)이기 때문에 그래. 법신불의 몸뚱이요, 법신불의 설법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있어야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 아니냐!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진진찰찰(塵塵刹刹)— 해나 달이나, 산이나 돌이나, 포기의 이파리나, 우는 새소리 이것이 진진찰찰인데 이것이 법신불(法身佛) 모습이요, 법신불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냐 하면 법신불은 『무설이설(無說而說)인데, 설한 없이 설하신 것』이 법신불의 설법인데 어떻게 설하시냐? 동시(同時) ()하시면서 동시에 듣는 거여.

 

포기의 풀도 간단(間斷)없이 법을 설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설법을 듣고 있어. 한덩어리의 주먹만한 , 좁쌀알 만한 모래알 하나하나라도 바로 위치에서 위없는 법을 설하면서 동시에 법을 듣고 계신 것이여.

설할 따로 있고, 들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 () 동시(同時).

 

이러한 도리(道理) 우리가 바로 깨달라야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말이나 생각으로 구할 없는 것이여. 중생의 사량분별로 헤아려서 있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거여.

 

이러한 법문은 어떻게 하면은 그러헌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느냐?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 듣자마자이뭣고~?’ 눈을 통해서 무슨 모양을 보자마자 바로 거기에 즉해서이뭣고?’

슬픈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기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붉은 것을 봐도이뭣고?’, 파란 것을 봐도이뭣고?’,  좋은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속상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모양을 보던지 그것을 듣고 봄과 동시에 그것을 인연해서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즉시이뭣고?’

이렇게 다잽이를 가면 마침내는 진진찰찰(塵塵刹刹) 설하고 들음이 동시인 법신불의 () 없이 설한 법문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신불은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수가 없다. 오직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만이 우리는 수가 있다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초보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할 밖에 없고 그렇게 말을 해야 이해할 있을 것입니다마는,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1633~3231)

 

 

 

 

 

(3/4)----------------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고,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식이 있다고 뽐낼 것도 없고, 재산과 권리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길 것도 없고,

공부를 나가는 최상승법에서는 첫째, 내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아상을 갖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으니도에 들어가는 관문이 아상(我相) 무너져야 하는 것인데, 아상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권리가 높다고 권리를 부리거나,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리고서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이뭣고?’ 화두만을 거각하고, 거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디에 아상(我相) 붙고, 아만(我慢) 붙고, 남을 경멸하는 생각이 잠시인들 어디가 붙을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이 세상의 학문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잘났다, 내가 제일이다, 아상과 아만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짓밟고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다면 정말 사람은 존경받을 없는 보잘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했습니다. 학벌이 높고 재산이 많고 권리가 높을수록에 아만심(我慢心) 없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디를 가나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은 아만심과 아상이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고,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무엇을 많이 가지고 가야 시집가서 업신여김을 받고 그런다고 부모를 졸라서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지고 무엇을 잔뜩 가지고 갈려고 그러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니까 그러한 정도의 인간으로 밖에는 취급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절대로 귀여움 받고 존경받지 못합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가정 형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를 해서 빚을 내다가 가는 것도 옳지 못하고, 형편이 넉넉하면 잘해 가지고 가는 것도 좋지,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쬐금 가지고 가고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여. 형편대로 하면 되는 거여.

 

곤란하면 곤란한 대로 가고, 넉넉하면 넉넉허니 가지고 가서 모다 선물도 하고 그게 좋지마는, 첫째는 가지고 사람도 그러려니와, 시댁에서도 그거 많이 것으로서 며느리의 점수를 매겨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형편이 어려운데 너무 많이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리서부터서 조금만 오라고 이렇게 주어야 하거든.

 

며느리가 누구입니까? 생전 사후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식구로 사람이니, 바로 호적으로 들어와 가지고 나의 혈통을 이어갈 며느리니, 얼마나 소중하냐 그말이여.

어찌든지 자기 뱃속에서 딸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주어야 하거든딸은 자기 뱃속으로 낳지마는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신랑 따라서 사람이니까.

 

며느리는 비록 남의 뱃속에서 나왔지마는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해서 자식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손자를 낳아 며느리니,

어쨌든지 처음부터서 그러헌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그러헌 마음으로 안아주면, 얼마나 시부모를 마음으로부터서 존경하고 친정 어머니보다도 좋아할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면은 아들 마음도 편하고, 시부모 마음도 편하고, 며느리 마음이 편해야 식구 마음이 편하고, 뱃속에서 나오는 손주 손녀도 이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말이여.

 

포태(胞胎) 가지고 포태하기 전부터서 썩고 한탄과 원망, 슬픔과 괴로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애기를 포태를 하게 되면 애기가 절대로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포태한 뒤에도 계속 썩고 원망하고 슬픔과 원한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달을 지내면은 바로 애기가 그런 생각을 먹고 삽니다.

 

낳아 가지고 아무리 잘먹이고 입혀 봤자 뱃속에 있는 동안에 애기의 엄마가 썩고 원망하고 신경질 내고 미워하고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은, 애기는 나중에 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태교(胎敎)라고 그러죠.

 

가끔며느리시어머니말씀을 법상(法床) 와서 하게 되는데, 여러 보살님네나 거사님네, 아직 결혼을 청년이나 처녀들, 일단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를 모시게 되고, 자기도 얼마 가면 애기를 포태하고, 애기가 나서 자라면은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에도,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六百部) 경전 속에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은 도에 들어가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사는 데에도 아상 그놈 때문에 부부간에도 싸우게 되고, 며느리와 시부모와도 싸우게 되고, 형제간에도 싸우게 되고, 세계가 아상 그놈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고, 피차 자기 마음을 비우면 사람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각자 마음을 주장을 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그런 데에서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짓밟게 되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념의 전쟁,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하는 이념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를 않고, 앞으로 언젠가는 신앙의 종교의 싸움이 있으리라고 진즉부터 그런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념의 전쟁이나, 종교 신앙의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세계로 도약할 있는 그러한 오천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그러한 세계에 도약하는 그런 좋은 계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러한 좋은 도약의 계기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노사의 관계가 공장, 회사의 경영자나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찌 따로따로 남이겠습니까?

사장이 공장을 지음으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직장을 얻어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잘함으로 해서 회사가 잘되어야 사장도 사업이 번창을 것이고, 아무리 노동자가 일을 할라고 해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망해 버리면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고,

다같이 피차(彼此)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관계이면서 어찌 자기 쪽만 생각하고 웬수처럼 미워하고, 자기 욕심만 챙겨 가지고서야 어떻게 회사가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정부와 백성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백성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잘해야 것이고, 백성은 정부가 잘되어갈 있도록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열심히 함으로 해서 나라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져야 우리나라가 잘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시 나라고 하는 아만(我慢), 아상(我相) 놈을 비움으로 해서 그것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만(我慢)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나만이 옳다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항상 사람이 얼굴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듯이, 해방 40 년이 지낸 동안 똑같은 민족이면서 체제가 다르니 만큼, 교육제도가 다르니 만큼, 이념이 다른 만큼, 많이 차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군(檀君)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38(三八線)이라고 하는 선이 가로막혔다 하드라도 남북이 우리 나라인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하고, 다시는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부터 아만심 먼저 꺾고 아상을 꺾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있고, 상대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대화할 있는 길도 트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가 옳다. 속담에방에 들어오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나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그러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해 가지고서는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은 아상(我相) 꺾느냐? 분별심(分別心),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이뭣고?’ 먼저 !

이뭣고?’ 먼저 터억 챙기고 나면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해도 저절로 챙겨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고, 직장으로 집으로 오고, 항상 그렇게 댕겨 버릇한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가지고 술을 잔뜩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그래도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냐 하면, 많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술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전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꾸이뭣고?’ 하면, ‘ 된다 하지 말고 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뭣고?’ 챙겨.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은 나중에는 챙길려고 해도 저절로 챙겨지는 거여.

! 눈에 무엇이 들어왔다 하면이뭣고?’ 먼저 나오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면은이뭣고?’ 

 

나중에는이뭣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를 아니해. 수백 수천 명이 북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가서 있어도 아무것도 보여. 하나도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옛날에는 공부하시던 도인들이 일부러 요중 공부(鬧中工夫) 시험해 보고 익히기 위해서 장날이 돌아오면은 점심밥을 가지고 장터에 가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가서 어디 한쪽에다가 방석을 하나 놓고 가만히 앉아서 정진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놈 까먹고, 그러고 저물 때까지 하다가, 장이 파하면은 토굴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그럽니다.(3232~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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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어째서 () 했는고?’ 화두를 의심한 것은 대단히 좋은데 조실 스님께서는 불급불완(不急不緩) 묘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가는 것을 모르셨어.

 

어려서 워낙 발심(發心) 철저히 놓고 분심(憤心) 솟구쳐 오르니까 목숨을 바쳐서 거기에다 아주 용맹스럽게 나가실중만 알으셨지, 불급불완한 () 의관으로 나가는 것을 그걸 선배가 있어서 그것을 일러 주셨으면 되었을텐데 그걸 못하셨어.

 

몽산법어(蒙山法語) 보면 무자(無字) 드는데 가지,

 

하나는 단제, 그냥~~’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만을 항상 들여다 보는 거여.

조주 스님이했으니까~’ 들여다 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시다 내쉬면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그런게 아니여, 그냥~’ 들여다 보는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이것은 전제인데,

~’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어째서 무라고 했는고~?’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면~’하는 데에는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너무 되게 몰아대다가 상기병(上氣病) 생기고, 생각이 끊어지질 않아 점점 어지러운 생각, 복잡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냥~’하면 생각 생각 그런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아니헌데 의심(疑心) 없어.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거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그랬어.

 

그런데~’하고 () 항상 들여다 보면 생각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하는 거여.

 

그러면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의심이 있어야 크게 깨닫는다』 그랬으니처음부터서 크게 의심을 해야겠다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여기다가 그냥 ' ()'자를 쓰고서 몰아대면,

영락없이 피가 넘어오고 상기(上氣) 되어 가지고 눈알이 튀겨져 나올려고 하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목이 뻗뻗해져. 이뭣고소리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지기 시작하는 거여.

 

그러니 몽산 스님은 처음에는 단제로~’ ‘~’하고 무만 자꾸 들어서 순일해져 순숙해져서,

순숙해진 다음에 2단계에 나아가서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을 든다면,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 가장 단제와 전제를 효율적으로 활용을 해서 폐단없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을 수가 있다. 몽산어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하고 무자만 바라만 보도록, 그렇게 하라고는 조실스님도 가르키시지 않았고 산승(山僧)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는 한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처음에는 단제 전제 할것 없이,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 하는 법을 익히고 다음에는 단전호흡(丹田呼吸) 해서 단전호흡이 되도록 익힌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하라고 지도를 왔습니다.

 

이렇게 가면 몽산 스님이 염려하시는 단제와 전제의 장단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익히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다음에 전제(全提) 공부를 나가되 탈이 없으리라고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단제(單提) 대한 것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전제(全提) 하도록 많은 설법을 하셨고, 산승도 역시 조실 스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말씀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처음에 전제로 공부를 하시되 너무 힘을 가지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헌 병이 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단전호흡에 대한 법문을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마 자리에는 앞으로 여름 안거를 위해서 방부(房付) 들이고 갈려고 하는 수좌(首座)님들이 분인가 있을 생각합니다.

따로 내가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림사 좋지마는 그러헌 시간이 없으니 법상(法床)에서 이렇게 말씀을 것을 명심해서 듣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선방에 가서 정진을 잘하기를 바래고.

 

여기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이나, 오래 전부터서 법문을 들으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나, 오늘 조실 스님의 법문이나 또는 산승의 말씀은 앞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명심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부는 복잡한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초학자(初學者) 불가불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자꾸 버릇 하면 장소도 상관이 없고 시간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설거지 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잘려고 잠자리에 누웠서도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면서 언제 잠든 모르게 잠이 들어. 꿈속에서도 화두(話頭) 그대로.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엊저녁에 들던 화두가 그대로 들어 있게 되거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항상 잡드리를 하시면, 그렇게 공부가 결국은 색을 보되 색이 아니요(見色非干色),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요(聞聲不是聲). 성색(聲色) 걸림이 없이(色聲不礙處), 그래서 법왕성(法王城)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親到法王城).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라고 법성게(法性偈)에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법화경도 읽어 보시고, 화엄경도 읽어 보시고, 원각경, 금강경, 경이란 경은 읽어 보신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경을 참으로 뜻을 옳게 알고 읽으셨다면 일념(一念) 속에 육도법계(六途法界) 있는 것이고,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불국토를 건설하느냐, 지옥을 만드느냐는 달려 있는 도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하고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이요, 봄에는 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휘황찬 밝은 달이 있구나.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다. 여름에는 맑은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구나.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만약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아니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다. 문득 이것이 인간의 좋은 시절이더라.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않는다. 무엇이 부질없는 일인가?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 아직 닥쳐오지 않은 장차 미래 일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댕겨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 끌려가 가지고 생각 생각 하는 .

 

과거의 마음, 미래의 , 현재 닥쳐 있는 모든 귀와 눈을 통해서 제출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량(思量) 분별(分別) 따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그래 가지고 스스로를 들볶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석(木石)이나 되면 모를까, 지나간 일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일도 생각 걱정도 하고, 현재 닥친 일도 생각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지나간 일도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일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럼 목석(木石) 되란 말인가? 그게 아니거든.

 

살아 있으니까 지나간 일도 불현듯 생각날 것이고 앞으로 일도 무엇인가 필요해서 생각을 수가 있고, 현재 눈으로 보고 듣고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마는, 살아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나자마자 화두(話頭) 돌리는 , 천하에 묘한 법이거든. ‘이뭣고~?’

 

아무 생각 할려고 한다고 해서 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할려고 하는 생각도 또한 생각이기 때문에, 할려고 하지도 말고 쫓아낼려고 하지도 말고이뭣고~?’ 챙기거든.

이런 간단하고도 쉽고도 묘한 법이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이제 겨울이 지내가고 입춘, 우수, 경첩, 춘분, 이제 개나리가 피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도처에 피고, 그래도 조석으로는 꽃샘추위로 춥기는 허지만, 이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헌 좋은 때에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시끌사끌하고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고 모다 그렇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중요한 때일수록 우리가 있는 일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참나 깨달라야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것이고 세계평화도 것입니다.

 

앞으로 십여 , 열흘 후에는 음력 316 법보재(法寶齋)일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 봉안한 여러 영가(靈駕),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원근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 법계 고혼(孤魂)까지도 천도(薦度)하는 대법요식이 거행되는 날입니다.

 

법보재에 들으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법보재에 들으신 분들도 서로서로 권고해서 법보재에 들으시도록 권고를 하시고, 분도 빠지시지 말고 모두 그날 참여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들을 천도하는 중대한 법요식에 빠지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설사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하신다 하더라도 법보영가들을 천도하는 데에는 차질이 없겠습니다마는 기왕이면은 참석을 하시면은 영가들도 기쁜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서 왕생을 하시게 것입니다.(514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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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전암 29번에도 게송이 있음.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가없는 시방세계가 텅비어 밝은 거울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 무량겁 동안 티끌이 쌓여도 빛은 이지러짐이 없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 종래로 모든 성인은 티끌과 함께 하지 않았는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 무슨 일로 우리는 성색의 티끌속에 죽어가느냐!

* (이지러질 ) 이지러지다. 손상됨. 그치다. 줄다.  * ( ) 가운데, 뱃속, 다스려지다. 안에 받아들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두려워할 /일어날 /마음 )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 감옥 )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 행한 자가, 사후 보답을 받는 .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도량(道場) : []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 분류화두(공안)’ 참고.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누를 / /마음 )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나오는 구절.

*육단심(肉團心) : []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 의탁한 .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19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문곡직하다(不問曲直-- 아니 /물을 /옳지 않을 /곧을·맞을 ) ; 곡직불문하다. (사람이)옳고 그름을 따져 묻지 아니하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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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울고불고 ;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영장(靈長) ; 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 티끌. () 산스크리트어 kṣetra 음사. (), (), ()라고 번역. 국토. 세계. . 장소. 영역.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세운 서원(誓願)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報身, 化身)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3/4)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오온(五蘊)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 지혜를, 바라밀(波羅蜜)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 줄임말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 뜻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내용이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 환인(桓因) 손자이며 환웅(桓雄)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단국(檀國) 세워 2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38(三八線)2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 815 맥아더가 발표한일반명령 1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요중 공부(鬧中工夫)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공부.

 

 

 

 

 

 

----------------(4/4)()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이고 속성은 ()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 법을 받고, 문하에서 이십 동안 있었다. 팔십 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사십 .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몽산(蒙山) :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 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 30(210) 게송.

*(게송) 춘유백화추유월~’ ; [무문관(無門關)] 19 '평상시도(平常是道)' 무문혜개(無門慧開) 게송 참고.

*부질없다 ; (사람의 언행이나 일의 형편이)공연하여 쓸모가 없다.

*쓸데없다 ; (무엇이)아무런 쓸모나 값어치가 없다.

*닥쳐오다 ; (일이나 시일이 무엇에)빠르게 가까이 다가오다.

*닥치다 ;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무엇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천도(薦度)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