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800/(701~725)2017. 6. 30. 19:0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48분)

(1/3) 약 18분. (2/3) 약 20분. (3/3) 약 10분.

(1/3)----------------


인인자유충천기(人人自有衝天氣)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막도염화소식단(莫道拈花消息斷)하라  우후산조갱상호(雨後山鳥更相呼)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인자유충천기(人人自有衝天氣)  일념회광시장부(一念廻光是丈夫).

사람 사람이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으니  생각 빛을 돌이키면[廻光] 이것이 대장부(大丈夫).


막도염화소식단(莫道拈花消息斷)하라. 부처님께서 염화(拈花) 드시는데 가섭존자가 미소를   염화 소식이 끊겼다고 말하지 말아라.

우후산조갱상호(雨後山鳥更相呼).  개인 뒤에 산새들이 서로 부르고 있지 않느냐.


고조사(古祖師) 게송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용주사 선원 대중, 인제 용화사 대중  세등선원 대중  위봉사 선원 대중, 승련사 선원 대중, 그밖에 여기저기 수행하는 납자(衲子) 그리고 금년에 참선 수행하려고 하는 청신사 ・ 청신녀 여러분이  자리에 전부 참석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결제 법문은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이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으나 실지로 살아 계신 몸으로 설법을 하신  법문을 우리가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녹음시설이 없어서 한번 열반(涅槃)에 드시면 법어집(法語集)을 읽기 전에는  조사 큰스님네의 육성을 들을 수가 없었으나, 지금은 녹음시설이  되어서 실지로 설하신 육성 법문을 우리는 들을 수가 있어서 비록 말세에 태어났으나 복을  많이 가지고 우리는 태어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조실 스님께서 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데 필요한 조목 조목을 낱낱이 설해 주셔서 산승이 여기서  보태서 여러분께  말은 없으나,  자리에 올라왔으니 여러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청신사 청신녀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결제 ・ 해제, 의례히 관행으로 법요식을 갖고 () 짜고 안거(安居) 들어갑니다.

그러나 산승이 지금 간곡히 말씀드리고자  것은 선방에 나온지  년이 되었거나,  년이 되었거나, 또는 이십 , 삼십 년이 되었거나 언제든지  철에 선방에 나온 초발(初發) 행자(行者)와 같은, 초발 납자와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결제를 하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철에 나온 사람은 긴장도 하고 흥분도 하고, 항상 조마조마 두려우면서도 모든 법과 선배 스님을 공경하는 그러한 외경심(畏敬心)으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십이시(十二時)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그런 근신하고 하심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수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며칠 간은 그러다가 차츰 익숙해지면 금방 그러한 외경심이 없어지고 긴장감도 없어지고 그래가지고 잡담하고 희소(戱笑)하고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이 풀려서  지나고,   지내면 벌써 해제가 가까워지면 해제하면 어디를 갈까, 어떻게 해제 동안에 살까?’ 그런 생각으로 그럭저럭 지내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오늘 산승이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첫날부터 마지막 해제  때까지도 그러한 풀어지지 않고 경건하게 그렇게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發心)을 했으며, 얼마만큼 정진하기 위해서 신심(信心)과 공안(公案)에 대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과 분심(憤心)이 철저한가 그것이 바로 거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 대중이 같이 지내다보면은 그러한 분이 선배 가운데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모범이 될만한 그런 선배가 있으면 항상  선배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심있게 보고 좋은 점을 본받고.

 여러 대중 가운데는 여법(如法)하게 못한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것을 비방하고 시비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는  그런 점이 없는가 자기를 반성하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향해서 채찍을 가하면서 그렇게 알뜰히 하루하루를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까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 내용을 충실히 마음으로 받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그런 수행자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하신지 삼천년이 되었다고 해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한다면 말세(末世)라고 해서 하등 걱정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발심한 사람은  우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활구(活句)법문이  것이고,  짖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활구법문이  것이고,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자기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그런 법문이  것이고.

여기서 저기서 사람이 죽고, 이리 죽고, 죽었다는 그런 것을 봐도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분심을 내게 하는 그런 훌륭한 살아있는 법문이  것입니다.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흉중하애부하증(胸中何愛復何憎)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가슴 가운데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누구를 미워하고 무엇을 싫어할 것인가. 스스로 자기가 옛날 불보살(佛菩薩)과 옛날 고조사와 여러 선지식들과 같이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을 항상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 자기가 받은 화두, 공안에 대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거각(擧却)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단속하는  그것밖에는 계승하고 전등(傳燈)해야  불법(佛法)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불법을 전수받고,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것은 오직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철저하게 참여해서 그것을 단속하는 외에는 전해야  불법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부처님께서 많은 설법을 하셨지마는  경전을 옳게 믿고, 옳게 읽고, 옳게 안다면은 마지막에는 일념(一念) 단속을 해서 본참공안을  잡드리해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불성(佛性)을 깨닫는  일밖에는 불법(佛法)이 없다 이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 그러한 마음으로 앞으로   동안을 한결같이, 하루같이 그렇게 철저하게 단속하며 정진을 해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가운데에는 구십이 넘으신 노스님도 계시고, 육십・오십・삼십・이십 그런 젊은 분도 있습니다마는 생사에는 늙고 젊은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생사(生死)어느 때에 있는고?’ 하고 물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루 동안에도 생사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  닦기가 어렵겠구나


그다음 사람이 대답하기를 일향간(一餉間)에도 있습니다. 아침 ・ 점심  한나절에도 있습니다

너도  닦기가 어렵겠구나


마지막  사람은  호흡지간(呼吸之間) 생사(生死) 있습니다

너는 도를 닦을  아는구나


이러한 법문이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있습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생각  생각을 어떻게 단속해야  것인가에 대해서 그렇게 뼈아프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출가한 제자가  도를 아직 모르는구나,  닦기 어렵겠구나 이렇게 말한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을 믿고 부모형제 고향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에게  한마디 생사에 대해서 잘못 대답한 것을 보시고, ‘ 도를 모르는구나, 도를 못닦겠구나하신 말씀은 몽둥이로 패는 것보다도, 칼등으로 목을 때리는 것보다도  뼈아픈 법문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은  한마디에  닦기 어렵겠구나, 도를 모르는구나 그렇게 말씀하신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일념 단속을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처음~1726)



(2/3)----------------


오늘 결제(結制)일이므로, 결제날이므로   나온 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화두(話頭)에 대한 말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앉고, 아무렇게나 숨을 쉬고, 아무렇게나 이뭣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합니다. 가부좌(跏趺坐)나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

억지로  가부좌를  것은 없고 가끔 시간이 있으면 가부좌도 하고서  분씩,  분씩 그렇게 앉아보는 것도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옛날에  가부좌를 하셨기 때문에 가부좌를 평소에 익히고 앉도록 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부좌는 그렇게 오래 앉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반가부좌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반가부좌는 보통 우리가 행감친다’고 이렇게 표현합니다마는 자세히 설명을 안 해도, 한 다리를 오그리고 다른 다리를  위에다가 포개는 것입니다. 그렇게 포개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반듯이 드는 것입니다.

너무 뒤로 자지바지할 것도 없고, 앞으로 너머 숙여도 아니되고 반듯하되 어깨나 허리나 목에 너무 힘을 주어서는  됩니다. 정당(正當)하게 앉되  긴장을  풀고 앉는 것입니다.


눈은 너무 뚝 부르떠도 안되고 눈을 감어서도 안되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쳐다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2~3m 정도가 보일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거기다가 어떤 사람은 콩이나  그런 것을 갖다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보되  바가 없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2m 3m 지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로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자세를 그렇게 했으면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보통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도록 권장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호흡에 대해서 말씀이 있었습니다마는 호흡은 대단히 참선(參禪)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참선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살아있다하는 것은 숨을 쉬고 있다’는 얘기고, ‘숨을  쉰다 것은 죽었다’고  말과 똑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밥은 며칠도 굶을 수가 있고,  달도 굶고,  달도 굶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호흡은   분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주일 동안을 물통 속에 들어가서 있다가 나온 그런 특수한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숨을  ,  분도  못 견디는 것입니다.


기왕 호흡을  바에는 바른 호흡을 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바른 호흡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깊이 들어쉬었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는 것입니다.


호흡은 슬플 때는 자연히 호흡이 제대로  되고, 흥분해도 호흡이   되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을 내도  되고, 병이 나도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호흡을 제대로 하면 혈액순환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에 노폐물은 밖으로  배설해버리고 맑은 피를 몸으로 고루고루 순환시켜서 그래서 있는 병도 낫고 따라서 건강도 좋아지는 것입니다.


참선은, 아프면 아플수록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고,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수록에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을 해야 하고,

사업이  안되고 가정에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나더라도 오히려 몸을 가다듬고 호흡을, 깊은 호흡을 하면서 참선을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안정을 시켜야 하는 것인데.


더욱이 부모와 형제와 가정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참선을 할려면, 첫째 건강해야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이  좋아가지고서는 절대로 정진을 충분히 잘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밤낮 보약을 먹고 그래가지고 건강을 회복해야 정진해야 된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첫째, 건강을 유지할라면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여법(如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여법하게 하는 데는 별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시간도 필요가 없습니다. 보약을 먹거나 특별한 운동을 할려면은 시간이 따로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그러겠지만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가 없고, 올바르게 하는데.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은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진 것을 느끼고, 내쉴 때는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나중에 하루 이틀 열흘 한  하다보면 무의식중에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르게 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화두를 옳게 든다고 하는 것은조실 스님께서 아까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 화두를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화두를  것이고,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山僧)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의 근본 화두라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화두 공안을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뚱이 끌고 다니는 , 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 그러한 주인공이 우리 사람마다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수가 있고 사람이라  수가 있습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性品)이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불성이라 하는 것은 짐승이나 지옥중생이나 벌레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성현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안했고, 축생이 되지 않고 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 몸을 금생에 받아났습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아난 것만 해도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며 부모에게 감사를 해야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니였으면  육체는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우리는 갚어야 합니다. 세속에서 효자로서 장가가고 아들딸 낳아서 살면서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길도 있겠습니다마는  자리에는  부모와 가정과 인생을 버리고 출가를  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보시 돈이 모이면 부모에게 갖다 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리고 그러한 효도는 우리는 허락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효도는 어쨌든지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서 철저하게 정진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조그만한 좁쌀만한 효도가  것이나, 우리가  생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으로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철저한 의단(疑團)을 단속을 해서 수행해 나가는 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고, 그렇게 단속해 나간 것이 효도 중에서 최고의 효도가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부모에게 물질적으로 옷이나 음식을 해 드린 것은 그것은 잠시 편안하게 해 드린 것뿐이나 우리가 일념 단속을 해서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최고의 법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을  온갖 방법을 다해도  어머니를 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니까 해제날 대중공양(大衆供養)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제날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하면은 아무때나 스님네에게 공양한 것도 좋으나,

 닦는 스님네께 공양하는 일체 욕심을  버리고, 온갖 생각을  버리고서 오직 일념 단속해서  일념 단속하는  수행자,   내내  공부를   수좌(首座)에게 대중공양을 해라

그래가지고 목련존자가 탁발을 해가지고 해제날 대중공양을 해가지고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 청제(靑提)부인을 지옥을 벗어날  있도록 해 드린 것입니다.


절에 법당을 짓도록 부처님을 모신다 하면 서로서로 시주금(施主金)을 많이 냅니다. 그러나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절을 지어서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셔야 도 닦는 스님네가 거기서  수행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게  정성껏 시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나, 참선 수행하는 스님네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수행하는 사람은   있으면 시은(施恩)을  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을 갚을려면은 시주것만 잔뜩  먹고 입고  먹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은 그것을 갚어야 하니 그것을좁쌀 서너  때문에 버섯이 되어가지고  은혜를 갚고.


부처님 말씀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떼가 가는데  소가 무엇인줄 아느냐? 왕년에 중들이 저렇게 소가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이 경전에 있습니다.  소가 되냐 하면은 소가 되어야  은혜를 빨리 갚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소가 되어야 몸이 성할 때는 일을 해가지고 갚고, 살아서 똥을 누면은  똥을 비료로 갚고, 죽게 되면은 가죽은 벗겨서 옷이나 신발이나 그런 것을 만들고, 고기는 오장육부를 다 해서 사람들에게 먹여서 갚고.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가 도를 철저히  닦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소가 되어서,  생(生)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    빚을  갚을 때까지 수십 생, 수백 생을 소가 되어서 갚어.


그래서 중은 시주것을 독약보다도  무섭게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절대로 소가  그런 분은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라도 시주것을 참으로 무서운  안다면  먹거나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말고.

무엇이, 보리밥이 들어오거나 찰밥이 들어오거나 국수가 들어오거나 들어온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그것을 맛있게 공양하고,  공양을  때에는 그것을 시주한 신도님들에 대한 간단한 축원(祝願)을 하면서 공양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시면 소화도 잘될 것이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나 원주(院主) 도감(都監)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런 소임을 맡으신 스님네들은 수행하는 도반(道伴)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마련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지금 그런 소임을 맡고 있어도 자기도 참선을 하는 분이고  다음 철이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수행을  것이고, 금생에 안 하더라도 내생에  출가해서  참선하게  것이니.

우리는 서로서로 혼자만 밤낮 하기가 어려우니까 금생에는 내가 공양주 사마 다음 생에는 지금 수행을 하시는 분이 내생에  원주도 살고, 주지도 살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  나만 이렇게 어렵게 공양주를 살고, 어떤 사람은 큰방에 가만히 앉아서 잘만 먹고 편안히 한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이라고 하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네도 전부 선배나 후배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고, 머리는  깎고 청신사 청신녀 신도 여러분도 비록 멀리 가까이 살고 있어도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날을 기해서 법당 안이나 법당 밖에 많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1728~3717)



(3/3)----------------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화두가 정말 참선하는 데에 껌껌한 밤에 가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화두를 자기가 정말 믿는 선지식(善知識)한테 화두를 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자기가 책을 보고 화두를 간택할 수도 있고  아무한테라도 화두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냐? 화두 자체는 별것이 아니나,  나가다가 잘못되면 자기가 믿는 선지식이 아니면 가다가  바꾸게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바꿔싸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맞으면 바꿀 수가 있으나 화두는  되거나  되거나  화두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화두 가지고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보면은  화두가   들리기도 하고 영판 그럴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녹음법문을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애로점, 문제점이 있는 것이 그때 가서 바로 잡아지는 것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떠억 ()하는 것입니다. ‘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이뭣고?’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없는 의심이 단전에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여러분이 무위(無爲) 이치를 깨닫고자 할진대는 천차만별 가운데를 여의지 말지어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 하는 것은 육체가 처해 있는 모든 상황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리고 마음으로는 희로애락, 육체적인 정신적인 모든 상황이 천차만별인 것입니다.  천차만별 중을 여의지 말아라.

눈으로 무엇을 들어도 이뭣고?’ 코로 무슨 냄새를 맡어도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바로 그놈을 여의고 찾을 것이 아니라, 무슨 소리가 들리면  소리에 즉(卽)해서 이뭣고?’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떠억 거각(擧却)을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의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것입니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라. 다못 허공에 달이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여.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를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원숭이는  속에 달이 비치니까  하늘에 있는 달이 떨어졌다고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달을 건질라고 하다가 빠져 죽은 설화가 있습니다. 달은 못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여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번뇌나 망상이나 슬픔이나 기쁨이나  세계의 흥망성쇠나 생로병사가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니 경제니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마는 고구려나 고려 ・ 이조 ・ 신라 · 백제나 해방되어 가지고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은 적고 걱정스러운 일들은 끊임없이 옛날과 다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들이 꿈속에 일어나는 일이요,  중생(衆生)의 지은 업(業)으로 일어나서 일어나는 일이니, 설사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이라도 참으로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되면 우리로서는 화두를 단속하고 정진하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너무 말을 많이   같습니다.  철을 오늘 이러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지내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719~4733)()



----------------(1/3)


*(게송) 인인자유충천기~’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次鐘峯’ - 종봉의 시에 차운(次韻)하다. *차운(次韻)하다 ; 남이 지은 시에서 운자(韻字)를 따서 시를 짓다.

*회광(回光, 廻光) ; 회광반조(廻光返照) 준말.

*회광반조(廻光返照)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생각 일어날 때에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 모두 동자(同字).

*대장부(大丈夫 ·훌륭할 /어른·존칭 /사내·일꾼 )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 이치를 깨달은 사람.

*염화미소(拈花微笑) ;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범어의  Grdhrakuta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분。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납자(衲子) :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초발(初發) ; 초발심(初發心).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 처음으로 일으킴.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 수행하는 사람 ②계()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십이시(十二時) : 하루 24시간을 말함。지금 쓰고 있는 이십사시(二十四時) 예전에는 십이시(十二時) 썼다.

*희소(戱笑 희롱할 희/웃음·웃을 소) ; 희롱으로 실없이 웃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없다[].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 중봉명본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권29 ‘山居十首’ 게송 참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전등(傳燈) ; ‘()불을 ()한다 뜻으로,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에게 서로 전하여 가는 것을 전등(傳燈)이라 한다. 법맥(法脈) 서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가는 일을 마치 등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하는  비유한 .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 생각 단속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일향간(一餉間  /식경食頃·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사이 ) ; ‘  먹을 사이, ‘짧은 시간 동안 뜻한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내쉬고[] 들이쉬고[]  사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2/3)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줄임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행감치다 ; ‘양반다리 하고 앉다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자지바지 ; 좌선(坐禪)  몸에 너무 힘을 주어,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때는 몸을 단정(端正)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정당(正當)하다 ;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참고.


(63)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불자여。그대의   옷과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 옛날 어떤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 하니라.


(64)故로   要識披毛戴角底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 이르기를  수도인이 다섯  좁쌀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66)故로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15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정원 가운데 나무에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생겼다.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가나제바 존자께서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집에 가셨다. 장자가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비구는 도안(道眼)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있을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감(都監) ;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독하는 소임.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3/3)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상기(上氣) ; [한의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발한두통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무심(無心) ; ①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 ②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무위(無爲)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 조작(造作: 만들다)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삼독(三毒) 소멸된 열반의 상태.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어리석은 원숭이가  속에 떨어져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설화 ; 정중로월(井中撈月 우물 정/가운데·속 중/잡을·건질 로/달 월)  ‘우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진다’

[참고]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7 (東晉天竺三藏佛陀跋陀羅共法顯譯) ‘明僧殘戒之餘

佛告諸比丘  過去世時  有城名波羅奈  國名伽尸  於空閑處有五百獼猴  遊行林中  到一尼俱律樹  樹下有井  井中有月影現  獼猴主見是月影  語諸伴言  月今日死  落在井中  當共出之  莫令世間長夜闇冥  共作議言  云何能出  獼猴主言  我知出法  我捉樹枝  汝捉我尾  展轉相連  乃可出之  時諸獼猴卽如主語  展轉相捉  小未至水  獼猴重  樹弱枝折  一切獼猴墮井水中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세에 가시(伽尸)라는 나라에 파라나(波羅奈)라는 성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숲속을 유행 중에  니구율나무 밑에 이르렀을 , 나무 밑에 있는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이때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우물   그림자를 보고 무리들에게 말했다. “지금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꺼내줘야 하겠다 함께 의논했다. “어떻게 해야 꺼낼  있을까?”

우두머리가 말했다. “내가 꺼내는 방법을 안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꼬리를 잡고 그렇게 서로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있다 원숭이 무리가 우두머리의 말에 따라 서로의 꼬리를 잡고 늘어뜨렸는데 물에 이르기 전에 이어진 원숭이들이 너무 무거워 나뭇가지가 부려져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중생(衆生) :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정식(情識)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주요 내용]


(게송)인인자유충천기~ / 초발 행자와 같은 근신하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수행 / (게송)흉중하애부하증~ / 일념(一念) 단속 /  호흡지간(呼吸之間) 생사(生死) 있다.

호흡은 단전호흡을 권장 /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은 권한다 / 이뭣고? 천칠백 공안의 근본 화두. 어느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해야 부모에 대한 최고의 효도 / 참선하는 스님께 대중공양 / 시주것이 무서운  알아 열심히 정진하라 / 스님, 신도 모두  형제자매 / 의심을 ()하라.

전강 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라도 자주 듣다 보면 공부해 나가다가 문제점이 있는 것이 바로 잡아진다 /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은 의심(疑心)입니다 / (게송)군금욕식무위리~.



[주요 문구]


진실로 발심한 사람은  우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활구(活句)법문이  것이고,  짖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활구법문이  것이고,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바로 자기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그런 법문이  것이고.

여기서 저기서 사람이 죽고, 이리 죽고, 죽었다는 그런 것을 봐도 정말 무상(無常) 깨닫고 분심을 내게 하는 그런 훌륭한 살아있는 법문이  것입니다.


불법을 전수받고,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것은 오직 본참공안(本參公案) 철저하게 참여해서 그것을 단속하는 외에는 전해야  불법이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부처님께서 많은 설법을 하셨지마는  경전을 옳게 믿고, 옳게 읽고, 옳게 안다면은 마지막에는 일념(一念) 단속을 해서 본참공안을  잡드리해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불성(佛性) 깨닫는  일밖에는 불법(佛法) 없다 이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생사해탈을 해야 진실로 중생도 제도(濟度) 수가 있는 것이고, 참다운 부모에 대한 효도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될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입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    없는 의심,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한다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 것을 ()한다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버리고 찾는 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 하면 천차만별이 바로 조사(祖師) 설법이고, 부처님의 설법이 되고, 선배의 채찍질이 될것입니다.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모든 것이 우리의 한마음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즉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요,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 끄달린 사람은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속에 비추는 달을 건질라고 하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51~73)2017. 6. 26. 15:14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55)

(1/3) 약 20분. (2/3) 약 19분. (3/3) 약 16분.

(1/3)----------------


노종평처험(路從平處險)하고  인향정중망(人向靜中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멱화화란득(覓火和爛得)하고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노종평처험(路從平處險)하고  인향정중망(人向靜中忙)이다.

길은 평평한 곳으로부터 험악해지고, 사람은 고요한 곳을 향해서 바빠지더라. 평평한, 평탄한 곳이 있기 때문에 험악한 험난한 길이 있지, 본래 평탄한 길이 없었다면 험악한 길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나차운 데가 있으니까 높은 데가 있고, 높은 데가 있으니까  나차운 데가 있는 것이지, 본래부터서 전부가 높다면 구태여 험(險)하다고  것이 없어.


평탄한 평지가 있기 때문에, 평지를 걸어 가다가 길이 험악해지니까 !  길이 험악해졌구나하고 느끼는 것이지, 평탄할 것도 없고 본래  높은 고지에서만 있다면은 어디가 험악하다는 소리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에 있다가, 고요한 데에 집착해 가지고 고요한 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바빠지고 시끄럽고 그런 것이지, 본래 고요한 데에 있지 아니하고, 고요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 구태여 시끄럽고 바쁘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처음부터서 고생을 하고  사람은 구태여 고생이다, 고생스럽다’한 것을 느끼지 않지만, 처음에 호강을 하고 살던 사람이 조금 형세가 어려워지면  곤란한 것을 배(倍)나 느끼고  곤란한 것을 견디기가 심히 어려운 법이고.


공부도 처음부터서 시끄러운 속에서 공부를 익히고, 생활하는 속에서 공부를 익힌 사람은  주변이 시끄럽고 일을 하고 복잡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공부가 그것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것을 느끼지를 않는 것입니다.

밤낮 고요한 데에만 집착해 가지고 고요한 데에서만 공부를 익힌 사람은 조금 누가 발걸음 소리만 나고,  열었다 닫었다 하는 소리만 나고, 옆에서 무슨 말하는 소리 또는  지내가는 소리, 비행기 다니는 소리, 이런 소리만  나도 화두(話頭)가 달아나 버리고 신경질이 나면서 공부가 안된다고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평지라고 평탄한 것만을 좋아하고, 고요한 것만을 좋아해서 그런 데에서만 생활을 하고, 그런 속에서만 공부를 익힌 사람은 그것이 참으로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가 어려운 거여.

화초도 밤낮 온실에서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광선만을 쬐면서 자란 화초는 밖에다 내다 놓면 조금 햇빛이 따가우면은 시들어버리고, 조금 바람이 세고 그러면은 견디지를 못하고 얼어죽고 이러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이  고요한 데서만 하라는 것이 아니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간에 어떠한 경계 속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아니하고, 희로애락과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떠한 경계(境界)를 만나더라도 그러한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그러한 경계에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조용한 데를 만나면 조용한 대로 좋고, 시끄러운 데를 만나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변화무쌍한 그러한 복잡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성성(惺惺)하고, 이렇게 공부가 되어 가도록 우리는 공부를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멱화화란득(覓火和爛得)이요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

불을 찾음에 데기를 쉽고, 불을 찾아서 불을 가까이하면은 옷을 태우거나 살을 데거나, 불을 가까이하면  경우가 많고,

담천대월귀(擔泉帶月歸). 물을, 샘을 짊어지면 달을 띠고 돌아가. 물을 떠 가지고 가면은 달이  물에 비추니까 달도 따라온다 그말이여.


제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불을 가까이하고 항상  속에서 불을 가까이하게 되면은 옷을 태우거나 살을 데거나 까딱하면 타 죽기도 하고 그런 것이고,

물을 가까이 하면은 항상  있는 곳에는 달이 비치기 마련이니까  가까이 있으면은 달도 거기에 따라 있는 것이다.


‘불’이라는  무엇인가?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오욕락(五欲樂) 이런 것들이 모다 불과 같은 것이어서 그런 것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구렁텅이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고,


물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윤택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씻어서 깨끗이 하는 것이니까 선지식(善知識), 좋은 도반, 그리고 법문(法門), 그리고 항상 염불을 하던지 참선을 하던지,

우리 참선하는 대중은 항상 선지식과 도반을 가까이 하고, 청정도량을 여의지 아니하고, 대중처(大衆處)를 여의지 아니하고, 그리고 항상 화두를 들고 수행을 하면 달이 거기에 따라온다’는 것은 깨달음이 내게 돌아온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승단(僧團) 제도를 맨들어서 발심한 사람이 출가해 가지고 좋은 도반들과 함께 도를 닦도록 하신 그런 제도를 만드신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은 병인년 4 17 세등선원 하안거 결제 법요식을 맞이했습니다. 방금 사부대중이 전강(田岡) 대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었습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화두를 들고 참선(參禪)해 나가는 데 요긴한 법문을 들었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그리고 화두를 거각(擧却)하되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쓰지 말고 다맛  없는 의심,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져 일체 사량분별이 끊어져, 끊어진 상태에서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화두를 단속해 나가는 활구참선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동안 대중이 방(榜)을 짜고 이렇게 인자 왕래를 ()하고 이렇게 결제를 하게 되는데, 선방(禪房)마다  선방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고 가풍이 있어서, 경상도에 있는 선방에는 거기 나름대로의 규범이 있고,  여기에 오면 여기의 규범이 있어.


그러나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모두가  공통하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그말이여. 전부가  똑같다면 그게 별로 좋을  같지마는 재미가 없는 것이여.


밤낮 똑같은옷도 똑같은 옷만 입는다든지, 음식도 밤낮 똑같은 것만 먹는다든지, 그러면은 그게 재미가 없는 것이고, 계절도 춘하추동 사시절이 있어서 변화가 있어야지, 밤낮 여름만 있다든지 밤낮 겨울만 있다든지 한다면 그건 세계에는 그런 곳도 있기는 하지마는 그게  좋은 것이 아니여.


계절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기상도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해가 뜨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고, 구름이 끼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하고 해야지, 밤낮 햇빛만 쨍쨍 난다든지, 밤낮 비만 온다든지, 밤낮 눈만 온다든지 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여. 농사도  되지도 아니하고, 건강도 좋지 못하고, 인간성도 좋지를 못하는 것이여.


그래서  선방도 여러 선방들이 있는데, 선방 나름대로 규범이 다르고 법도(法度)가 다르고 가풍(家風)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른 것은 그것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 대단히 좋은 것이지, 그것이 하나도 나쁠 것이 없는 것이여. 여기는 여기대로의 독특한 가풍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

그런데 혹자는 다른  선방에는  그런데 여기는 이런다’고, 그래 가지고 그것을 삭이지를 못해 가지고 불평불만을 하고, 그렇게 되면  사람이 벌써 수행인으로서의 바탕이 덜된 사람이여.


여기에 오면은 여기의 법도에 따르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다른 선방에 가면 거기 선방의 규범에 따라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기의 뜻에   맞더라도 그놈을  인욕(忍辱)을 하면서  그놈을 소화를 시키면서 순응하면서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공부가 잘되도록.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법이고, 자기를 갖다가 조복(調伏) 받는 것이거든.


눈이 오는 겨울이 오면은  겨울에도  적응을 하고  여름에 삼복더위가 오더라도  더위도 이겨낼  있어야  사람의 건강이 정상적인 것이지, 여름은  견디는데 겨울만 돌아오면은 견디지를 못한다면  사람의 건강이 온당한 사람이 아니거든.


특히   닦는 데 있어서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로애락, 일체처 일체시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걸림이 없어야 그래야  사람이 정진하는 데 힘을 얻은 사람이고, 앞으로 그러한 자세로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이라야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육도법계(六途法界) 중생을 제도할 만한 그러한 도인(道人)이 되고 성현이  수가 있는 것이지,


밤낮 조용한 것만 좋아하고 손발 까딱 안 하고 앉아서만 하기만을 좋아하고, 이렇게 처음부터서 공부를 익혀 나간 사람은 벌써  그릇 되기는 틀려 버린 사람이거든.  사람이 어쩌다가 설사  소식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보나마나   볼일 없는 사람이거든.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그런 속담이 있지마는, 우리는 최상승법을 닦는 도학자여.


그래서 불법(佛法)에는 소승법도 있고 중승법, 대승법도 있는데, 우리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우리 선객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이여.

 최상승법이라 하냐 하면은 최상승법에서는 소승, 중승, 대승도 전부  안에  녹여서  속에  포함되어 버린 거여. 그렇기 때문에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최고의 불법이거든.


조용한 것만 좋아하고, 조금 시끄러우면  견디는 것은 그것은 소승(小乘)의 경지여. 소승에 의지해서 닦아 가는 그런 사람이거든. 그건 부처님 말씀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지언정 소승심을 발하지 말아라 그러셨거든.

소승심! 소승심이라는  사상 자체가 그것은 못쓰는 거여. 소승심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설사 소승법의 구경(究竟)에 도달을  봤자 그것은 못쓰는 것이다 그말이여.


마음가짐이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짐으로써 사상이 그렇게 되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잘못되면 사상이 비틀어지기 때문에 사상이 비틀어져 버리면 그것이 온갖 행동이 거기에 따라서 비틀어지는 것이고, 행동이 비틀어지면은  도(道) 수행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은 삿된 데에 굴러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여.


정든 고향을 버리고,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사람으로서 태어나서 온갖 것을  버리고 출가한 우리들이 기왕이면은 바른 사상으로 바른 목표를 향해서 수행을  가지고 바른 도를 깨달라야지,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출가해 가지고서 기껏 한다는 것이 삿된 데에 떨어지고,  볼일 없는 곳을 향해서 일생을 닦아간다면  아니 안타깝고 가련할 수가 있겠느냐  말씀이여.(처음~1951)



(2/3)----------------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한데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허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거품)이 일어났더라.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  맑고 평평한 바다 위에  버큼이 떠있는 것이 부끄럽구나.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이 일어나 가지고,  더러운 버큼이  맑고 평평한 깨끗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니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러울 일이냐 그말이여.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하니, 오늘 홀연히  바람과 물결이 쉬어 버리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 맑고 밝은 원래 그대로의  강(江)의 가을이더라.

가을이 돌아와  하늘은 맑고 공기도 맑은데, 바람과 물결이 잔잔히 가라앉어 버리니까  맑고 밝은 강이 본래 그대로더라 그거죠.


출가해서 10, 20 내지 평생을 참선을 한다고 했건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고 어제도 이럭저럭 오늘도 이럭저럭 이렇게 늙어간다면, 그것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거나, 바른 선지식을 만났으되 용기가 부족했거나, 용기를 가지고 했으되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이 틀렸거나,

또는 금생에는 자기 나름대로 선지식을 만났고  용기도 가졌고  바른 방법으로 했건마는 전생에 워낙 닦아 놓은 것이 없거나,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서  도업(道業) 성취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한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말하자면은 어떠한 좋은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은  그릇에 담겨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려야 되거든.

 안에 들어있는 무슨 음식이 되었건, 음식 찌꺼기가 되었건, 기름기가 묻었건,  반찬 냄새가 묻었건, 일단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  안에 어떠한 맛있는 물건이라도  버려 버리고 깨끗이  다음에라야  맑은 물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지, 거기에 본래 어떠한 것이 담어져 있는 상태에다가 아무리 맑은 물을 부어 봤자  물은 구정물이 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 그러한 음식과도  달라서, 음식은 다른 것이 담아 있어도  옆에다  곁들여서 담어서  가지  가지도 담을  있지만, () 영판  .


천하 없는 경전에 있는 말씀이라도 속에 담어져 있으면 그것은  되는 거여.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외우고,  풀이를   알아도  생각이 속에 들어있으면은 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천하 없이 십계, 십중대계, 48경계와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를 낱낱이  실천을 해서 청정하기가 말로   없다 하드라도,  청정한 데에 맥혀 갖고 있으면 도는 이루지를 못하는 것이여.


심지어  보다 더한 것이 속에 있다 하드라도 얻은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러한 것이 () 갖고 있으면은 도는 통할 수가 없는 것이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으되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하는 생각을 가지면 벌써 아라한이 아니고, 보살도를 증득했으되 내가 보살도를 증득했다하면은 벌써 그것이 보살이 아니여.


깨달았으되 깨달았다’는 생각에 () 있으면은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이여.


그렇거든 이제 공부하려는 사람이 선지식을 구할 때에 내로라하는 생각을 속에 가지고 있어 가지고  선지식이 믿어지냐 하면 믿어지지도 않는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법문을 들어봤자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여.


그래서  ()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 문제가 없는 것이여.

 아상(我相), ‘내’라고 하는 이놈 하나 때문에 결국은 무량겁 생사윤회도 거기에서 원인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도 거기에 원인이 되는 것이고, 육도법계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온갖  태란습화(胎卵濕化) 그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웬수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탐진치(貪瞋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대중생활 하는 데에도 내’라 하는 생각 있는 데에서 온갖 불평이 일어나고, 온갖 서로 다툼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장애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입선(入禪) 시간만 죽비()를 치고 입선하면은 그때만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방선(放禪) 죽비만 치면 치기가 무섭게 벌써 입을 벌리고 잡담을 하고 그렇게 지낸다면 미륵하생(彌勒下生), 56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선방에서 지낸들 그건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여.


편의상 대중이 살다보니까 그러한 규칙적인 시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비를 쳐서 입선도 하고 방선도 하고 거기에 따라서 공양(供養)도 하고, 모다 운력(運力)도 하고 그런 것이지,

공부 자체는 죽비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전혀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방선을  때도 화두(話頭)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똥을  때도 화두가 순일(純一)해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때에도 바로 그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성성해야 하고, 일체처 일체시가 그저 입선할 때나 똑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단속을  나가.

그래서 겉으로 보면은 모다 대중들이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말도 아니하고,  화두가 현전(現前) 때에 보면은 밖에서 봐도 환히  알거든. 경건하고 엄숙한 눈매가 그냥 고대로 있단 말이여.


그렇게 야무지게 단속을 한다면 9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어났다 하면은 하루 종일이 그냥 그대로,

구태여 밤에 10, 11, 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앉아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해도 정말    시간 5시간이면 5시간,   시간  자 주고 그리고서   때는 성성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어. 그렇게 해야 정말 알찬 공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밤에 잠을 안 자고 설쳐 놓으면은 잠을 안 자고 애쓰는  뜻은 내가 충분히 인증을 하고 대단히  고맙고 기특하지만,  잠을 안 자 놓으면  이튿날 낮에 정신이 흐리터분해 가지고 밤낮 꾸벅꾸벅 잠을 자는 것인지, 참선을 하는 것인지  수가 없거든.

입선만  놓으면 벌써 그냥 5분도 못되어서 그냥  지르르르 흘리면서 꼬부려 가지고 꾸벅꾸벅, 그렇게  가지고는 정진(精進)이라  수가 없어.


그래서  시간, 최소한도 5시간은 딱! 자 주고, 그래야  이튿날 깨끗한 정신으로 정진을  수가 있고,  건강도 좋다 그말이여. 잠을 설쳐 놓고 밤이나 낮이나 그냥 그렇게 해 놓으면은 건강도  좋고  정진도 정진답지를 못혀.

한번 ! 허리를  펴고 정진을 했다 하면은 성성하게 뽑아 나가야지, 노상 끄벅끄벅 벌써 혼침(昏沈)에 빠졌다 하면은 화두가 성성허들 못하는 법이고, 화두가 성성하지 못해 가지고 어찌 그것을 정진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쨌든지    동안 입선 ·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짰는가 모르겠는데, 접때 들으니까 전국 선방을 입선 · 방선 시간을 똑같이  정(定)하자 것을  입승 회의에서 결의를 했단 말을 들었는데,

‘전국 선방 규칙을 똑같이 입선 시간을 정하자 뜻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좋지 못한 것을 정했다고 생각을 나는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방마다 법도(法度)가 다른 것이 아까 무방(無妨)하다고 했는데, 입선 시간도 한번 앉았으면 3시간씩 하자, 4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2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또 아침에 일어나면은 저녁에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하자 이런 선방도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계속   동안을 앉아서 정진을 하자 이렇게  정한 선방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

3시간이나 4시간을 전국 선방이 똑같이 하기로 결의를 하자 것은  좋은 규칙을 정한  같은데, 사실은 대단히 좋지 못한 법을 정한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것이 적절히 맞아야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근기를 무시하고  여러 가지 여건을 무시하고서 똑같이 정하자고 하는 것은 그것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법이 아니고 그것은 어리석은 법입니다.(203~3843)



(3/3)----------------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부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해꼬자했는데, 부처님은  조달이의 그러한 해꼬자하는 데에 조금도 끄달리지 아니하시고, 더욱 지혜롭게 수행을 하셔 가지고 성불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실 때에 조달이도 부처님 사촌으로 왕궁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시자 조달이도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 못지않게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계율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서 승단의 통솔권을 자기가 인수를 받을라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부처님한테 “부처님, 인자 연세도 많으시고 그러니까  통솔권을 저한테 넘겨주십시오”하니까 부처님이 넘겨주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곳에다가 자기 회상(會上)하나 꾸몄습니다.

꾸며 가지고 부처님 회상으로  가지고서그때 목련존자  사리불존자와 같은 수제자들이 어디 다른 데로 포교를 하러 가시고 없을 때에  가지고서 대중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계율이 물러서 늙은 사람이나 병든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승낙을 하시고,  병든 사람은  오신채(五辛菜)도 먹을  있다고 하시고 또 어린 사람이나 늙은 사람은 사시공양(巳時供養)뿐만이 아니라, 아침도 먹을 수가 있고 저녁도 약으로 먹을 수가 있다고 이렇게 하셨으니 이러한 청정한  승단(僧團)에서 이렇게 법도가 물러 가지고 이래 가지고 무슨 견성성불을 할까 보냐?

 회상은 늙었거나 어리거나 병들거나를 막론하고 일체 어육을 금하고, 오신채도 금하고, 사시공양 이외에는 절대로 승낙을  한다. 그러니  회상의 법도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니까 아직 불법(佛法)이 무엇인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  아직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니까 확실히 조달이의 법이  엄격하고 훌륭한  같거든. 그래서 “내 의견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하니까,  사람 들고  사람 들고 이리 뚤레뚤레 하다가 ~ 하니 거의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부처님께서도  자리에 앉아 계셨지마는 아무 말씀도  하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셨어. 그러니까 조달이가 “나를 따라 오라” 그러니까는 위~ 하니 수백 명이  따라가 버렸어.


따라가서 조달이 밑에서 인자 조달이 법문을 듣고,   추상같은 법도 아래서  그냥 용맹정진 가행정진을 하는데, 처음에는 가서 보니까  이대로만  나간다면은 머지않아서 전부 그냥  견성 도통할  같이 느껴지고 모다 좋았었는데, 일주일을 지내,  이 주일을 지내, 삼 주일을 지내다 보니까, 차츰차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옳은 법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 법이 우리 부처님의 법도가 정말 옳은 법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씩  사람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데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 부처님 회상에  시자  사람하고  사람  남고  어디로 가버렸다 그말이여.

“다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까, 조달이가 약하약하 해서 전부 다 선동을  가지고 끌고 갔다 그러니까 그길로 조달이한테 쫓아가 가지고는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대중들아!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정법(正法) 사법(邪法) 분간을 못한다는 말이냐?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어린 사람에게 아침을 먹게 하고 저녁을 먹게 하는 것은 근기에 맞추어서 열어주신 부처님의 눈물겨운 자비를 모르고 어찌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병든 사람에게 오신채와 오정육(五淨肉) 허락을 하신 것은 너무나도 넓고 넓으신 부처님의 자비심이지, 어찌 그것이 도업을 깨트리는 잘못된 법일까 보냐? 부처님의 자비가 거룩한  사람은  길로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 와~ 따라서 모다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를 하고  따라 왔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서 팔만사천 방편법(方便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계율법이 어찌 엄정허지 아니하리요마는, 계율 자체를 위한 계율이 아니라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계율이여. 그래서 병든 사람에게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신채를 허락을 하셨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정육도 허락을 하신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 시간을  시간이 좋으냐?  시간보다  시간이  좋고,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24시간을 계속 용맹정진을 하면  좋을  같지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여.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정진 시간은  시간씩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하고 방선 시간도, 어찌 방선 시간이라고 해서 잡담을 하고 섣불리 지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방선 시간도 포행(布行)할 사람은 포행을 하고,  큰방에 앉아서 정진할 사람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정진을 하라 이거여.


큰방에서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 도저히 그것은  .

큰방에는 언제라도 묵언(默言) 구역으로 정해 놓고, 자기가 정진하고 싶으면은 마음껏 정진을 하라 이거여. 누가  어떻게 .


어찌 입선 시간을  시간,  시간 정해 놓고 강제로 갖다가 꿇어앉아 주리를 틀게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시간은 누구라도  수가 있는 것이니까  시간 ! 정해 놓고  시간은  하고,  시간 지낸 뒤에는 계속해서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 공양 목탁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을 .  대신 앉아서 꺼벅꺼벅 조는 사람은 나가야 . 나가서 포행을 하고 잠을  가지고 들어와.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 내고 속이 곯아 버린다면겉으로만 사치스런 집을 짓고, 속은 빚만 잔뜩  가지고 그러한 부자가 요새 많은데 그러한 것은  부자가 아니여.

겉으로는 수수하게 살되 빚이 없고 속으로 살림이 알차야  것이고, 지식도  소문만 나가지고 속은 실상은 실력이 없는 지식은 그건 진짜 훌륭한 지식이 아니여.


계율도 겉으로는 지키는 상이 없지마는 정말 안과 밖이 청정하다면  사람이야말로 율사(律師)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하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하고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이요. 강호(江湖)에는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지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해는 저무는데 한가한 구름이 푸른 하늘로 지내가는구나.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이요. 그것을 인해서강호에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버리고,  저무는 푸른 하늘에는 한가한 구름이 지내간 그러한 것을 의지해 가지고 인간 세상이 허망한 것을  수가 있겠더라.


봄이 돌아오면 꽃이 그렇게 화려하게 피었건만 봄이 다하니 시들어서  보기 흉하게  시들어  떨어져 버리고,  구름 모양을 보면  구름 모양이 별의별 모양이  있어.

사람같이 생긴 구름, 소같이 생긴 구름, 집같이 생긴 구름, 별별 모양으로 생긴  기기묘묘한 구름 모양이 해가 저물어 바람이 불어버리니까  모양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져 버리는 이 참, 그 꽃과 구름의 변화해서 없어진 것을 보고서 인간 세상이 명예와 권리, 부귀영화, 누가  생기고  생기고, 이런 것들이 전부가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어.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여. 비긋이 한번 웃는 가운데  만사를  잊어버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나라의 은혜를 갚고, 부모의 은혜를 갚고, 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 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자리에 내려가고자 합니다.(3844~543)()



----------------(1/3)


*(게송) 路從平處險  人向靜中忙’ ; 卍新纂續藏經 제 71책 《요당유일선사어록(了堂惟一禪師語錄)》 권2 참고. 大正藏 《철옹화상어록(徹翁和尙語錄)》 상권 참고.

*(게송) ‘覓火和爛得  擔泉帶月歸’ ; 大正藏 제 47책 《허당화상어록(虛堂和尙語錄)》 1권 참고.

*나찹다 ; ‘낮다’의 사투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樂,五欲,五慾)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 ; 용상방(龍象榜)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가풍(家風) ; ①종풍(宗風)—종문(宗門) 풍규(風規 풍습상의 규정). 문풍(門風)—선문(禪門) 있어서의 종풍(宗風). ②선림(禪林, 선종禪宗)에서의 행위의 규범. 청규(淸規, 선원에서 일상의 생활규정). 선종에서 가르침을 나타낼 경우, 각자가 갖는 독자적인 방식, 또는 지도의 방법을 말함. ③그 ()만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방식. 지도의 방법. ④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생활 습관이나 규범

*인욕(忍辱) : [] Ksanti  욕되는 것을 견디어 참는 것이다。여섯 가지 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하나。무슨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고통과 곤란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야 한다.

*조복(調伏) ; ①산스크리트어 nigraha 몸과 마음을 조절하여 온갖 악행을 다스림. ②산스크리트어 vinaya 출가자가 지켜야 하는 규정.  () 말함. ③온갖 장애를 굴복시킴.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 그릇 ; 큰일을  만한 뛰어난 인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소승심(小乘心) ; 소승(자신의 해탈만을 추구하는 협소하고 하열한 근기의 중생을 실어 소과小果에 도달하게 하는 교법) 추구하는 마음. 성문심(聲聞心) 같은 뜻이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2/3)


*(게송) 잉풍기랑낭생구~’ ; 《허응당집(虛應堂集) (허응당 보우) ‘시부상인(示膚上人)’ 참고.

*버큼 ; ‘거품 사투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아견(我見) ; ①나라는 견해. 자아(自我)라는 견해. ②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여겨서 집착하여 분별하는 잘못된 견해. 신견(身見)이라고도 한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7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나머지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내로라하다 ; (주로 내로라하는 꼴로 쓰여)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지거나 대표할 만하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깨달음의 경지.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가장 윗자리이다.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선업(善業) ; ①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 ②탐진치(貪瞋癡) 감소시켜 없애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깨달음 ; (). ()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 가리킴. ⑤본성. ⑥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상(四相) ;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가지 분별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 · 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 · 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 · 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 · 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 · 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 · 생각. 생명체라는 관념 · 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태란습화(胎卵濕化) ; 사생(四生).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짬지다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이란 우리말 '울력'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 가르침.



----------------(3/3)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오신채(五辛菜) ; 우리나라 절에서 냄새가 강하고 독특해 음욕과 분노를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특별히 먹지 않는 다섯 가지 채소. 마늘··부추·달래·흥거. 경론(經論) 따라  종류가 달라 일정하지 않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승단(僧團) ; 승가(僧伽). (산스크리트)(팔리) saṃgha(상가)에서 유래하였다. (화합중(和合衆)이라 번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 화합하고 있는 불교 교단을 뜻한다. 보통은 출가자의 집단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재가(在家) 신도도 포함한다.

*약하약하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주리(周牢)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주리(죄인의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개의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 형벌을 주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율사(律師) ; () ()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게송) 강호춘진낙화풍~’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부휴선수) ‘일편한운과벽공(一片閑雲過碧空)’ 참고.

*강호(江湖) ; ①은자(隱者) 시인(詩人), 묵객(墨客) 등이 현실을 도피하여 생활하는 시골이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세상(世上)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강과 호수를 아울러 이르는 .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주요 내용]


(게송)노종평처험~ / 어느 선방을 가든 인욕하며 자신을 조복(調伏)해야  사람이 정진에 힘을 얻은 사람 / (게송)잉풍기랑낭생구~ / 도를 성취하려면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  ()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 / 첫째, 아상(我相) 없애라.


용맹정진이란?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 / 부처님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팔만사천 방편법을 설하셨다 / ()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주요 문구]


공부라는 것이  고요한 데서만 하라는 것이 아니고 희로애락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黙動靜) 간에 어떠한 경계 속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아니하고, 끄달리지 아니하고, 그러한 경계에 장애를 받지 아니하고,

조용한 데를 만나면 조용한 대로 좋고, 시끄러운 데를 만나면 시끄러워도 상관이 없고, 변화무쌍한 그러한 복잡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성성(惺惺)하고, 이렇게 공부가 되어 가도록 우리는 공부를 익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헌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다생겁래(多生劫來)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 문제가 없는 것이여.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나라부모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 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합시다.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선원(1~73)/(26~50)2017. 6. 20. 22:25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선원No.40)—임술년 하안거 해제 법어(82.06.17) (54)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11분.

(1/3)----------------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허니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운개공자활(雲開空自濶)이요. 구름이  덮였다가  구름이 활짝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열리니까  트인 파란 하늘이 무한히 끝없이 열렸다.

엽락즉귀근(葉落卽歸根)이로구나.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구나. 하늘에  구름이 열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것이고, 가을이 되어서 잎이 떨어지면  이파리는 뿌리가 있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회수간산취하류(回首看山醉霞流)한데, 머리를 돌이켜 산을 보니 흐르는 안개에 취했고.

의수침면일이사(倚樹沈眠日已斜)로구나. 나무에 기대서 졸음에 잠겼는데 해는 이미 기울어졌구나.


지난 7 17일에 통도사 호국선원 경봉대종사(鏡峰大宗師)께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이와 같이 가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 선지식(善知識)도 이렇게 가셨습니다. 우리가 신(信)하고 존경하던 수많은 선지식이 이렇게 가셨습니다.


역대조사와 천하 선지식과 삼세제불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자리에서 때로는 탄생의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때로는 닦을  없는 곳을 향해서 고행(苦行) 수도하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고, 생사가 없는 자리에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기도 하고.


선지식 자기 분상에는 전연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서 즐거울 것도 없고, 이승을 하직했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는 것이지만 중생들은 태양처럼, 어두운 밤에 달처럼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던 선지식을 잃었을 때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한다 할지라도  슬픔이 위안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도 나의 생사 문제가 달려 있는, 일대사(一大事) 문제가 거기에 매달려 있는 등불을 잃었을 때의 슬픔은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수행인은, 불자(佛子)는 그러한 일시적인 감상으로 슬픔에 잠긴다든지, 또는 인사차례로 문상을 가는 것으로써 여기서 저기서 많이 모여든 것으로써 도리를 다했다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출가를 해야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있는 계기를 삼아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임술년 여름안거(安居) 해제날입니다. 원래 7 15,  세등선원은 7 17일에 해제를 해왔습니다마는, 금년에는 4월에 윤달이 들어서 6 15일에 전국 선방에서 대체적으로 해제를 하고  세등선원도 6 17일에 해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제를 기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15일에 해제를 하고  세등선원에 구름처럼 수행한 납자(衲子)들이 운집(雲集) 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에도 해제날에는 멀고 가까운 데에서 정진을 하던 수행자들이 전부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모여서 자자(自恣) 법요식을 거행을 했던 것입니다.


보름마다 계율의 계목(戒目) 읽으면서 대중에 잘못을 참회(懺悔)하는 의식을 포살(布薩)이라 그러고, 해제  부처님으로부터 차례차례 대중을 향해서 호궤합장(跪合掌)하고 그동안 안거 기간 동안에 행여나 본인에 있어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을 여러 대중스님이 보신 점이 있으면 자비심으로 기탄(忌憚)없이 지적을 해주십시오


이렇게 대중을 향해서 합장하면 대중도 자비심으로 기탄없이, 스님이  동안에 어떠 어떠한 잘못이 있었다.

대중 잡담이 너무 많아 가지고 본인 자신도 정진을 열심히 아니하고, 대중의 수행을 방해한 점이 많으니  점을 조심하시오


또는 뒷방에서 입선(入禪)시간에 입선도 하지 아니하고 너무 한만(汗漫) 지내고 해태를 부려 가지고 수도원의 선방의 분위기를 곤란하게 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특별히 어떤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고 그래가지고 대중에 화합을 깨트렸으니  점을 조심하시오


패당(牌黨) 지어 가지고 사소한 일에 물의(物議) 일으켜 가지고 대중 전체의 수행을 방해를 했으니  점에 대해서 주의를 하시오

지나치게 외출을 심히  가지고 대중의 법도를 어겼으니  점에 대해서 조심을 하시오


이러한 식으로 차례차례 잘못된 점을 지적을 하기를 대중이 많으면 초저녁부터서 자정을 지내서 새벽에 이르도록 그러한 의식이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원시경전(原始經典)에는 소상하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해제일을 맞이해서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선방과 암자나 토굴에서 수행했던 수좌(首座)님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마치 부처님 당시에 자자의 법요식을 거행했던  원시경전에 쓰여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여러 수행납자들이 모이니 얼굴마다 일대사 문제를 결정코 금생에 해결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의연한 결의가 보이고,  눈에는 생기가 넘쳐 흐르는 것을  때에 너무너무 감개가 무량하고, 기특하고, 신통하고, 고맙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 현사 사비(玄沙師備)라고 하는 선지식이 있었는데,  현사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설하시기를, 제방(諸方) 노숙들이노숙(老宿) 조실(祖室) 스님, 선지식(善知識)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방에 노숙이 접물이생(接物利生) 하는데 '물건을 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접물이생이라 하는 말은 중생을 제도를 한다


제방에 여러 큰스님들이 중생을 제도하시는데,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문득  가지의 병자(病者) 만나면 어떻게 교화를  것인가?


  가지의 병인(病人)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눈먼 장님. 눈먼 장님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주장자를 들어도 보지를 못할 것이고 또는 불자(拂子) 그밖에 어떤 죽비같은 것을 ()으로 들어 보인다 해도  수가 없으니, 어떻게  장님을 교화를 하며.


(둘째는) 귀를  먹은,  먹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최상승법을 대사자후(大獅子吼) 부르짖어서 부처님 이상 가는 설법을 한다 하드라도 귀가  먹었으니 어떻게   먹은 사람을 교화를 하며.


셋째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  벙어리를 만나서는 무슨 법을 묻고 물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하니,

어떻게  눈먼 사람과 귀를  먹은 사람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  3가지 종류의 병자를 만나서는 어떻게 그것을 제도할 것인가?


참불법이라면   가지 종류의 벙어리를 제도할  있어야 참으로 불법(佛法) 영험(靈驗) 있다고  것이다. 이러한 법문을 현사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어떤 납자가 설봉(雪峰)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운문(雲門) 선사에게 가서  현사 스님이 설하신 법문을 전하고, “스님께서는   가지 종류의 병신을 만났을  어떻게   가지 종류의 병신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여쭈어 봤다  말씀이여.


그러니까  운문 스님이 예배착(禮拜著)하라. 절을 해라 그러셨습니다. 그러니까  납자가 절을 떠억 했다 그말이여.

절을 하고 일어서니까 주장자로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그말이여. ‘저리 뒤로 물러가라’고. 그러니까  납자가 뒤로 물러섰습니다. 물러서니까 운문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눈먼 장님은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러니 가까이 왔어. 가까이 오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가까이 오라고 하니까 말을 알아듣고 왔으니까 귀머거리는 아니로구나


그리고 나서  도리를 알겠느냐?’하고 물으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벙어리는 아니로구나 !   한마디에  승려가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어.(처음~2120)



(2/3)----------------


 대중 가운데는 눈멀고, 귀먹고,   못한 벙어리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장님이 아니었을진대는 산승(山僧)이 법상에 올라와서 주장자(拄杖子) 들었을   주장자를 보았을 것이고, 귀머거리가 아니었으니 산승이 주장자를 쳐서 법상을 한번 쳤으니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벙어리가 아니면 여기서 확철대오한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  불여함구과잔년(不如緘口過殘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해를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


부처님을 10(十生) 따라다니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부처님을 훼방을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은 방해를 치고마지막에 부처님이 정반왕(淨飯王) 태자로 가비라(迦毗羅) 왕국에 태어나실 때는  사람이 사촌동생으로 왕실에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렸을 때부터서 적대(敵對).


처음에 왕실에 사촌이니 서로가 사촌 형제간으로 태어났는데, 까닭없이 사사건건이 부처님 하시는 일에는 반대를 하고 미워하고 훼방을 놓고, 못살게 굴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때에도, 부처님이 야수다라와 혼담이 있으니까, 자기도  야수다라를 지가 마누라로 차지할라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온갖 무술씨름도 하고 활쏘기도 하고, 무슨 무거운 것을 역기를 들기도 하고, 말타기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힘겨루기를  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이 이기셔서 야수다라를 부처님께서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계속 부처님을 갖다가 훼방을 놓고 그러다가 부처님이 출가 하시니까, 자기도  이후에 출가를 해서 자기도  중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데, 부처님 제자는 자꾸 수효가 불어나고.


자기도  무서운 고행 정진을 해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안되니까 아사세왕(闍世王) 태자로 있을 ,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빨리 부왕을 죽이고 당신이 신왕(新王)이 되시오. 그러면 나도 부처님을 어떻게든지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가지고 나는 신불(新佛)이 될테니까, 당신은 신왕이 되고 나는 신불이 되어서  불법을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면 얼마나 좋겠오


이래가지고  아사세 태자를 꾀수어 가지고 결국은  부왕(父王) 갖다가 감옥에다가 때려 가두었습니다. 가둬서 어떠한 사람도 면회를  수가 없어. 면회를 ! 제한을 하고 일체 밥을 넣어주지 아니하고 굶겨서 죽게 헐랴고 계획을 세웠는데.


그래서 하루하루 날짜가 지내가면서 살이 빠져 가지고 피골이 상접을 했는데 벌써 15일이 되고, 20일이 되고  달이 되었어도 죽지를 안 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오직  어머니만을 면회를 허락을 했는데,  대신 음식물을 일체  들어가게 했는데도, 단단히 문지기를 세워 가지고 절대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잠깐 면회만 하고 나오게 했는데 이상하게도 죽을 때가 되어도  죽는다 그말이여.


그래서  드나드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사람 뿐인데, 그래서 나중에 몸수색을 자세히 하고 보니까,

 어머니가 몸에다가 밀가루나 쌀가루를 갖다가 몸에다가 바르고 들어가서 그놈을 긁어 가지고 그놈을 먹겄게  가지고  죽은 사실이 드러나서 나중에는 어머니의 출입도 금지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사세 태자의 부왕이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기 전에 ! 부처님을 한번 친견하고 내가 숨을 거두었으면...’하고 옥중(獄中)에서 지극정성으로 죽기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떠억 그것을 아시고 옥중에 몸을 나투셔서, 신통력으로 몸을 나투셔서 죽어가는 왕에게 법을 설해 가지고 죽기 전에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아사세 태자가 왕이 되어 가지고 조달(調達) 한테 그렇게 귀의를 했는데, 조달이가  부처님 회상(會上)  가지고, 그때 마치 목련존자(目連尊者) 사리불(舍利弗) 같은 수제자는 밖에 중생교화를 하러 떠나고 없고 다른 대중만 있었는데,


조달이가 부처님 회상에  가지고 연설을  가지고 부처님은 아침밥을 먹어도 좋다. 또는 병들고 어리고 늙은 사람은 저녁에도 약석(藥夕)이라  가지고 저녁공양도  수가 있다.  아퍼서 죽게  사람은 ()으로 마늘이나 파도 먹을 수가 있다. 또는  아퍼서 건강이 유지가 되지 않는 사람은 약으로 생선이나 오정육(五淨肉)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계율이 엄정허지를 못하고 법도가 문란해서 이렇게  가지고는 무슨 생사해탈을  수가 있겠느냐.  회상으로 오면 털끝만큼도 틈이 없고 서릿발 같이 법도가 엄격하고 그러니  회상에 와서 공부를 하면 백발백중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요달(了達)하니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어리석은 사람이 일어서니까  다른 사람도 우물쭈물하면서 일어서고, 여기서 일어서고 저기서 일어서고  가지고 수백 명이 조달이를 따라가 버렸어. 그리고  사람이  남았어.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얼마 있다가 돌아와 보니 대중이  흩어져 버리고 없다 그말이여.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당신 방으로 돌아오셔서 한참 돌아와 계시는데, 목련존자 사리불존자 돌아와서 보니 대중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사연을 알아보니까 '조달이가 와서 끌고 갔다'


목련존자와 사리불이 그길로 조달이 회상에 가서 다시 설법을  가지고 다시   끌고  버렸어.

끌려가서 보니까 정말 계율이나 법도가 도업(道業) 성취하기 위해서 계율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위한 계율' 주장을 하고, '규칙을 위한 규칙' 까닭없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내세워 가지고 대중을 갖다가 꼼짝을 못하게 다루는데,


거기 가서 그러한 생활을  보니까, 과연 부처님이야말로 대성현이시고 위대한 스승이시라 하는 것을 내심으로 짐작을 하고 있던 판에 목련존자가 가서 설법을 하니까 다시 따라와 버렸다.


조달이가 부애가 나가지고 이제는 이러한 미적지근한 방법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해가지고, 코끼리한테 술을 잔뜩 먹여서 흥분을 시켜가지고 미친 코끼리를 술을 먹여 가지고 부처님 어디를 가시는 데다  몰아댔다 그말이여.

미친 코끼리가 쏜살같이 부처님을 향해서  가지고는 밀어붙여 가지고 짖밟게 그렇게 헐랴고 했는데, 부처님이 돌아보시고는 떠억 손을 내밀고 작관을 하시니까, 그렇게 미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를 쫓아가다가는 부처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는 조용허니 엎드려 있다 그말이여. 그래 항복을 .


 미친 코끼리 가지고도 안되게 생겼으니까,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못된 사람들과 같이 부처님이 어디를 가시는 길목에 절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윗돌을 갖다가 굴려가지고 부처님이 답싹 거기에 치이도록 그렇게 계획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처음에는 그것을 아시고 저리 돌에 다치지 아니할 만한 자리로 조금 피해서 가셨다.


그러니까  약이 올라 가지고는  다시 다음날 인자는 피할래야 피할  없을 만한 장소를 선택해 가지고  바윗돌을 굴렸는데, 부처님께서는  아셨지만 짐짓 피하지 아니하시고 발뒤꿈치를 조금 다치셨어. 그래 가지고 피가 조금 났는데.

부처님께서  피할  있었음에도 불구하시고 피하지 아니하고 결국 다치셨냐 하면 '이것이  전생에 맺어진 업연(業緣)으로 저러는 것을, 내가 신통력으로 피했다한들  업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여. 차라리 금생에 곱게 받아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래가지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으신 것입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이지만, 외도(外道)들의 돌팔매에 맞아서 몸이 산산이 부서진  열반에 드셨고, 비구니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인 연화색 비구니도 신통이 제일이라 미리  알고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조달이에 의해서 맞아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4 사자존자(師子尊者) 제자 하나를 잘못 두어 가지고  제자의 잘못으로 인해서 계빈국왕에 의해서 목이 짤려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그러한 예가 있지만,   대중 가운데 조달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면서 다른 대중스님네마저 도를 닦지 못하도록 방해를  사람이 없었는가?


응당 오늘은 자자일(自恣日) 되아서 본인이 대중을 향해서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애원을 해야  것이지만,

그러한 대중의  성스러운 수도장에서 부모와 고향과 청춘을  버리고 생사문제를 요달(了達)하기 위해서 모인  성스러운 대중에서 자기도 정진을 아니하고 남까지 도를 닦지 못하게 방해를 치는 조달이와 같은 물건이 있다면,  사람은 참회(懺悔) 해야  것입니다.


조달이는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생명을 앗을라고 하고, 드디어는 부처님의 몸에 피가 나게 하고 그러한 죄로써 조달이가  있는 땅이  갈라지면서 화염이 솟구치는 불구뎅이 속으로 생함지옥(生陷地獄) 했습니다.

정법(正法) 비방하고,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고,  닦는 스님네를 도를  닦도록 방해를 치고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달이는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훼방을 치고 그러한 오역죄(五逆罪) 지어가지고 지옥에 떨어졌는데, 부처님께서 아란존자를 시켜서 지옥에 가서 조달이한테 이렇게 물어봐라.

지옥고 맛이 어떤고? 이렇게 가서 물어봐라하고 시켰습니다.


아란존자가 지옥에 가서, ‘지옥고 맛이 어떠냐고 부처님께서 물어보라고 허시드라

지옥고(地獄苦) 맛이 천상락(天上樂)보다도  좋다 ! 조달이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언제 지옥에서 나오느냐? 물어봐라 시켰습니다.

언제 지옥에 나오느냐?’하고 물어보니까, ‘석가(釋迦) 지옥에 들어오면 내가 나가겠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 삼계(三界) 대도사(大導師), 사생(四生) 자부(慈父)이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오실 () 있겠느냐 그러니까,

조달이 대답이 석가가 지옥에 들어올 ()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 나갈 () 있겠느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조달이는 부처님으로 하여금, 석가여래로 하여금 보다  빨리, 보다  크게 대도(大道)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처님보다도 훨씬 먼저 성불을   부처님이 화현(化現)으로 나타나서, 그렇게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갖은 수단과 방편을 통해서 부처님을 경책(警策)  드렸던 것입니다.

조달이의 분상(分上)에는 천당에 올라가나 지옥에 가나 조금도 차등이 없습니다.(2121~4259)



(3/3)----------------


그러되 오늘 세등선원에서 전국 방방 선방에서 조달이와 같은 고불 화현(古佛化現) 대중을 경책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신심과 분심과 대의단을 돈발(頓發) 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자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또한 가하거니와,

그렇지도 아니하면서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은 생함지옥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량겁을 두고 지옥에 나올 분이 없을 것입니다.


산승의 이와 같이 설한 말씀을 듣고, 직접 자기가 그러한 조달이와 같은 일을  사람은 자기가 고불 화현인가 아닌가를 반성을 해야  것이고,


대중은 아무래도 그분이 조달이의 화현이나 고불 화현이 아닌가, 불보살의 화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 때문에 진심(瞋心) 냈다면 참회를 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냈다면 참회를 하고,

틀림없이  사람이 불보살의 화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미운 생각을  풀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진을 앞으로 백배 열심히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지지 말고,  맥혀서   없는 의심, 의단(疑團).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어째서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향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의단이 독로(獨露)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앞으로 산철이 넉달 반이나 되는데,  넉달 반을 그렁저렁 헛되이 보내지 말고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擧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요달을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연전에 모래찜을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말을 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스님네와 신도들이 많은 모래찜질을 해서  가운데  효험을  사람도 수없이 많고, 외래 모래찜을 잘못해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고 그러는데,

모래찜을  가지고 병을 얻었다는 사람은 다른  아니고, 몸에 독이 쩔으다 쩔으다 못해서 아주 병주머니가  사람이 모래찜을 조금 하니까,  독기가 쪼끔 빠져나오다가 말아 가지고, 모래찜을  뒤에도 계속해서  독이 나오다 보니 허벅지나 궁뎅이가  지금 독이 빠져나올라고  피부 구녁이 열려 가지고 가려움증이 있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모래찜을 잘못해서 피부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지금 독이  빠져나온 독이 빠져나오느라고 그렇게 가려운 것이니까,  그러 가려운 증상이 일어나면 더운 물에 목욕을  차례하면 피부약을 바르지 안 해도 저절로 낫게  것입니다.


‘아침 8시부터서 저녁 5시까지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8시간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은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그렇게 해도 또한 괜찮지만, 노인이나 너무 병약한 노인이나 너무 병에 걸려서 탈진한 사람은 그렇게 무리하게  것이 아니고,

아침도 가볍게 죽을 쒀서 먹고  1시간이나 2시간 가볍게 하고,  점심도 가볍게 먹고  쉬었다가 오후에   1~2시간이나 3시간 이렇게 하고, 저녁도  죽을 쒀서 먹을만큼 먹고.

그렇게 해서 살살 자기의 근력과 연령과 모든 상태를 감안해서 지혜스럽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너무 고지식해 가지고 8시간씩 사흘씩 연거퍼 하거나, 닷새 일주일씩 그렇게 연거퍼  가지고 탈진이 되어가지고 아이고, 그놈의 모래찜 하다가 내가  죽을뻔 봤다”고. 다시는 그게  것이 아니라고 악선전을 하고 돌아다닌다.

아무리 좋은 약도  체질에 맞춰서 지혜롭게 먹어야 하는 게고, 아무 운동도  체질에 따라서 적당하니 해야 하는 것이지,


참선(參禪)이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가지고 어리석게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언제  말씀을 하셨냐 하면 부처님이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명성(明星)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가지고,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교진여(憍陳如)  5비구(五比丘)를 위해서  처음에 설하신 법문이 바로 지나치게 호의호식을 하고 그러한 정진을  것도 옳은 정진이 못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못살게 구는 고행을 위한 고행, 고행 일변도의 수행은 올바르지 못하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적당하게 모래찜을 한 번이나  번쯤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래찜에만  빠지지 말고 춥도 덥지도 않은  산철 동안을  이용을 해서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일곡양곡무인회(一曲兩曲無人會)헌디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곡(曲)을 타고 두 곡을 타는데도 아무도 알아 듣는 사람이 없구나.

우과야당추수심(雨過夜塘秋水深)이로구나.   개인   연못에는 가을 물만 깊구나.(431~547)()



----------------(1/3)


*(게송)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4 115 신주(新州)’ 송원(松源) () 참고. ‘雲開空自濶  葉落卽歸根  廻首煙波裏  漁歌過遠村’

*(게송) 回首看山醉霞流  倚樹沈眠日已斜 ; 『전당시(全唐詩) 540 이상은(李商隱)  화하취(花下醉)’ 참고.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납자(衲子 옷을 꿰맴 /사람 ) ; 남이 버린  옷이나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 자신을 가리킬  사용.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자자(自恣 스스로자/마음대로 ) ; 여름 안거(夏安居)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 · 오계(五戒) · 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 항목(項目).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포살(布薩) ; 산스크리트어 poṣadha, 산스크리트어 upavāsa, 산스크리트어 upavasatha, 팔리어 uposatha 음사. 단식(斷食정주(淨住선숙(善宿근주(近住장정(長淨)이라 번역.

출가자들은 음력 매월 15일과 29(또는 30) 한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을 독송하면서  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재가(在家) 신도는 육재일(六齋日)  음력 매월 8·14·15·23·29·30일에 하루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 지키는 .  포사타(布沙陀,哺沙陀), 포쇄타(褒灑陀)라고도 쓴다.

*호궤합장(跪合掌) ;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기탄(忌憚)없이 ; 꺼림칙하거나 마음에 걸림이 없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한만(汗漫  /흩어질 ) ;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등한함.

*패당(牌黨  /무리 ) ; 서로 어울려 다니는 사람의 무리.

*물의(物議) ;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여)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처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상태.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 – 908) 속성은 ()씨。복건성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젊어서는 낚시질을 좋아하였는데, 30세에 출가하여 공부하는 길을 얻어 가지고는 고향에 돌아가서 음식을 겨우 목숨이 붙어 있을 만큼 먹어 가면서, 바위 밑과 산꼭대기에서  좌선(坐禪)하였다.


설봉 화상이 그에게 선지식을 찾아보라고 권하였으나, 듣지 않고 혼자 공부하여 깨친  있었고,  <능엄경(楞嚴經)> 보다가 크게 깨쳤다. 설봉의 법을 이어 가지고, 매계장(梅鷄場) 보응원(普應院)에서 교화하다가 얼마  가서 복주의 현사원에 옮기었다。후량(後梁) 태조(太祖) 개평(開平) 2년에 74세로써 입적하였다.

그의 저술은 <현사어록(玄沙語錄)> 3,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고, 그의 제자 천룡 중기(天龍重機)에게서 고려의 설악 영광(雪岳令光)선사가 나왔다.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운문의 가르침 ;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9권 제88칙 ‘현사 삼종병 접물이생(玄沙 三種病 接物利生)’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숙(老宿) ; ①오랫동안 수행하여 덕이 높은 스님. 조실스님, 선지식을 말함. ②나이가 많아 경험이 풍부한 사람. ③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불자(拂子 먼지떨이 /접미사 ) ; 짐승의 털이나 () 묶어서 자루 끝에 매어 달은 것으로 벌레를 쫓는  쓰는 생활용구이었으나,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번뇌를 떨어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 사용되고 있다. 주로 설법할  손에 지님.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설봉 의존(雪峰義存) : (822 – 908) 속성은 ()씨。복건성 천주부 남안현에서 여러 대로 불법을 진실하게 믿어 오는 집에서 났다. 나면서부터 종소리를 듣거나 불전에서 쓰는 물건을 보게 되면  즐거워하는 표정이 나타났고,  마늘 냄새를 꺼리었다. 12살에 아버지를 따라 옥간사(玉澗寺) 갔다가  길로 집에 오지 않고 중이 되었다.

참선을 시작한 뒤에 먼저 염관(鹽官) 갔고, 투자(投子)  , 동산에 아홉  갔으나 얻은 바가 넉넉지 못하였는데, 덕산에게 법을 묻다가  방망이 맞고서 깨쳤으나 아직 훤칠하지 못하다가,  사형 암두(巖頭) 크게 꾸짖는 데서 비로소 크게 깨쳤다.


뒤에 복주(福州) 상골산(象骨山) 들어가서  이름을 설봉산으로 고치고 40 가까이 교화하니, 모인 대중이 어느 때나 1500명을 넘었고, 법을 이은 제자가 56인이 있었다.

 중에는 신라의 대무위(大無爲)선사와 고려의 현눌(玄訥) 영조(靈照)선사가 있었고,  제자 장경 혜릉(長慶慧稜)에게서 신라의 구산(龜山)화상이 나왔다。후량(後梁) 태조(太祖) 2년에 87세로써 입적하였다.

*수법제자(受法弟子) ; 스승으로부터 () 인가(印可) 받은 제자.

*운문(雲門)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2/3)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주장자(拄杖子 버틸 /지팡이 /접미사 )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 때나 설법(說法) 때에 지니는 지팡이.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 1 1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 89 3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생사문제를 해결하라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입니다.


지금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40~6424)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 아버지.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 아버님 정반왕(淨飯王)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석존(釋尊) 태어난 .

*아사세(闍世) ; 고대 인도 마가다 (Magadha) 왕인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 한자식 이름.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목련존자(目連尊者), 사리불(舍利弗)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약석(藥夕) ; 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는 .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

*아란(아난阿難)존자와 지옥고를 받는 조달의 대화 ; 『선문염송·염송설화』 (혜심·각운 지음) ‘1 17 조달(調達)’ 참고.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 대한 존칭. 여래(如來) 부처님 10(十號)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 ()이다.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 중생을 열반(涅槃)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①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 사용하는 막대기[].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 : 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 뜻을 더하는 접미사. 추상적인 공간에서의  위치 뜻을 더하는 접미사.



----------------(3/3)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판치생모(版齒生毛), 마삼근(麻三斤) ;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화두(공안)’ 참고.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위산(潙山) 선사가 향엄(香嚴)에게 이르기를 『평생에 듣고  것을 떠나서, 네가 세상에 나오기  너의 본래 면목에 대하여 한마디 말하여 보라』하는데,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서  마디 대답하여 보았으나 모두 아니라고만 하는 것이다.


자기 방에 가서 가지고 다니던 여러 가지 책들을 내어놓고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듣고  것을 여의고는 말할 수가 없으므로 탄식하기를 『그림의 떡으로는 배를 불릴  없다』하고 다시 위산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소견이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하기에 모든 서적을  불살라 버리고, 다시는 불법도 배우려   없이 되는 대로 지내기로 하고,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여 남양(南陽) 가서 혜충(慧忠)국사의 유적을 보고 거기에 있었다.


하루는  산중에서  역사가 있어서 그도 같이 일하는데, 돌멩이를 주워 던진 것이 대숲에 맞아서 「딱」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나서, 목욕하고 향을 사르고 멀리 위산을 바라보면서 절하고 게송을 지었다.

『한  치는데 모두 잊었네。더 다시 애써 닦을  없네......(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그리고  위산에 가서 법을 받고는, 등주(鄧州) 향엄사에서 교화하였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명성(明星)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 이르는 .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별이 돋을 , 정각(正覺) 이루었다고 한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 35세에 성도(成道)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5명의 비구(比丘)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 유적이  녹야원의 . 사슴동산(녹야원),  사르나트(Sarnath)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200㎞가 된다. 탄생(誕生 :  룸비니) · 성도(成道 : 붓다가야) · 입멸(入滅 : 쿠시나가라)하신 곳과 더불어 불교(佛敎) 4 성지의 하나.

*교진여(憍陳如) ; 산스크리트어 ājñāta-kauṇḍinya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 음사. 요본제(了本際) · 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오비구(五比丘)  .

우루벨라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다섯 명이 고행했으나 싯다르타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여행을 하여 그곳을 찾아 설한 중도(中道) 이치와 팔정도(八正道) 사성제(四聖諦)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붓다에게 귀의하였으며, 교진여는  자리에서 아라한(阿羅漢) 되었다.

*오비구(五比丘)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 붓다 buddha) 깨달음을 성취한 , 처음으로 교화한 다섯 비구. 붓다가 출가하던  부왕(父王, 정반왕) 명으로 이들은 우루벨라(uruvelā)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고행했으나 그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그들을 찾아가 설한 사제(四諦)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제자가 .

①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 음사(音寫).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아야(阿若) 이름, 교진여(憍陳如) ().

②아설시(阿說示) : 팔리어 assaji 음사. 마사(馬師마승(馬勝)이라 번역. 사리불(舍利弗) 왕사성(王舍城)에서 아설시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목건련(犍連)함께 붓다의 제자가 .

③마하남(摩訶男) : 팔리어 mahānāma 음사. 대명(大名대호(大號)라고 번역.

④바제(婆提) : 팔리어 bhaddiya 음사. 인현(仁賢소현(小賢현선(賢善)이라 번역.

⑤바부(婆敷) : 팔리어 vappa 음사. 기식(氣息장기(長氣)라고 번역.

*(게송)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 ① 『벽암록(碧巖錄)』 (佛果圜悟禪師) 제4권 제37칙 ‘반산삼계무법(盤山三界無法)’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 송(頌) 참고. ‘三界無法  何處求心  白雲爲蓋  流泉作琴  一曲兩曲無人會  雨過夜塘秋水深’  ② 『선문염송』 (혜심 지음) 7권 253칙 ‘삼계(三界)’ 설두현송(雪竇顯頌) 참고.



[주요 내용]


(게송)운개공자활~ / 경봉대종사 열반 /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선지식의 열반상 / 포살(布薩) / 현사사비 선사의 삼종병(三種病) 중생제도 말씀을 어떤 스님이 운문에 물음에 대한 운문 선사의 가르침

조달의 역행, 고불화현 / 아난존자와 조달의 지옥에서의 대화 / 모래찜은 자기의 건강상태에 맞게 지혜롭게 해야 / 참선도 올바르게 정진해야.



[주요 문구]


이러한 때를 기해서 다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발심(發心)해서 출가한 그러한 마음가짐이어야  것이고, 발심이 미약하고 침체한 사람은 아픈 채찍을 스스로 가해서 재발심할  있는 계기를 삼아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식의 열반을 맞이한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참선(參禪) 좋다 하니까, 참선도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참선이 최상승법이요, 정법이라  가지고 어리석게  몸뚱이를 달달 볶아서 짓눌러 가지고 피를 짜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정진, 정진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한다면 도업을 성취하기커녕은 병만 처져가지고 나중에 한숨만 나오게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어리석게 공부를  가지고 무슨 도업을 성취할 것이냐.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좋다. 반드시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해야 하지만, 육체를 못살게 굴고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해서는 그것은 성스럽고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01~700/(651~675)2017. 6. 17. 09:36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663)—2002년 동안거해제 법어(02.02.6) (29분)

(1) 약 13분. (2) 약 17분.

(1)------------------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하야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라. 한산(寒山)의 산봉우리에 외로운 달이 밝았는데, 맑은 하늘에 비추되 한 물건도 없구나.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가히 귀(貴)엽다 천연의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다. 오음(五陰)으로 뭉쳐진 이 육체 속에 파묻혀 있구나.


밝은 달이 한산(寒山) 봉우리에 둥그랗게 떠있는데, 그 달이 온 허공을 비추되 한 물건도 없다 그거여.

우리 육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 이 육체 속에 이 알 수 없는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묻혀 있다. 그 한 물건이 온 법계(法界)를 두루 비추고 있건마는 그 우리의 주인공을 알 수가 없다 이거거든. 한산(寒山)의 시(詩)입니다.


방금 해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해제날인데 결제 법회 때에 들을 만한 그러한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마땅히 해제(解制)에는 해제 법문을 선택할 것이 결제(結制) 때 들을 만한 법문을 들은 것은, 석 달 동안 결제를 해서 안거(安居)를 했으되 해제 ・ 결제라 하는 것은—우기(雨期), 여름철에 우기에 석 달 안거를 하고, 또 겨울철에 추울 때는 그래서 겨울 안거를 하겠지마는—그것은 부득이해서 기후에 따라서 결제 ・ 해제가 있을 뿐 우리의 정진을 하는 데 있어서는 결제 ・ 해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정진하는 데에 무엇이 다 끝나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해제날 정식으로 다시 우리의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참회(懺悔)를 하고 그리고 해제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각오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초학자(初學者)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만한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시작하는 그런 마음으로 듣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선택을 했습니다.


아까 마지막 무렵에 조실 스님의 법문에 ‘정진을 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그 사람이 올바르게 정진을 한 것이지. 정진을 해 가지고 무엇이 알아진 것이 있다든지, 무엇이 나타난 것이 있다면 정진을 바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말씀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옳게 정진하고 있는 것이고, 해제를 하고 나서도 정말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그 사람이 한 철을 올바르게 정진한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분명히 이 몸뚱이 속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밤낮없이 그놈이 작용을 하고 있고, 활동을 하고 있고, 눈을 통해서 온갖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온갖 소리를 듣고, 앉고 서고 눕고 거닐고 한 그러한 소소영령한 놈이 있건마는 찾아보면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또 손으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진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공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인의 말씀에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다맛 알 수 없어. ‘다맛 알 수 없는 것이 이것이 자기의 성품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신 법문도 있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성(自性)을 보는 것이, 깨닫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양이 있고 색상이 있는 것이라면 응당 눈으로 볼 수가 있겠고 손으로 만져볼 수가 있겠으나 본래 모양이 없는 것이고 색상이 없는 것이라 그릴 수도 없고 표현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나가야 올바르게 정진을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기(根機)가 약하고 그래서 해 갈수록 어렵고 참지 못해 가지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마는, 그래도 숙세(宿世)의 정법에 대한 인연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이 어렵고 해 갈수록 재미가 없는 이 길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취택(取澤)을 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대한 숙세의 선근 종자(善根種子)가 없다면 아무나 이 공부를 믿게 되기도 어렵고 또 이 공부에 착수를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숙세의 깊은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이 공부를 믿게 되고 또 이 공부를 하겠다고 착수를 했고, 그래서 일 년 이태 삼 년 십 년을 우리는 오직 이 한 길을 향해서 정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다행한 일이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것 자체를 우리는 원망하는 바가 없고,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이 공부를 만나게 되고 이 법을 실천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겸허하게 생각할 따름인 것입니다.


설사 공부를 하다가 힘이 들고 지쳐서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해도 우리는 이 길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고, 설사 병이 나서 꿍꿍 앓게 되더라도 우리는 앓는 가운데에서도 생각만큼은 이 화두(話頭)에 대한 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꿍꿍 앓다가 숨을 거둔 그 찰나에도 우리는 화두를,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들면서 눈을 감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신심이 아니고서는 이 최상승법을 믿고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2분48초)



(2)------------------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인데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하야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이다. 내가 이 절에 머물고 있으되, 이 암자(庵子)에 머물고 있으되 나도 또한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왜 여기에 머물고 있는가를 알 수가 없다 이거거든.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여. 깊고 깊고 밀밀해서 옹색(壅塞)함이 없다. ‘옹색함이 없다’고 한 것은 아무 부족하고 부자유한 것이 없다 이것입니다.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요. 하늘과 땅이 앞과 뒤가 없고,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다. 동서남북에 주착한 바도 없다.


이 게송은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당신이 주석하고 계시었던 태고암에서 ‘태고암가(太古庵歌)’라고 하는 시를 읊은 한 구절입니다.

여기에 표현한 암자(庵子)라고 하는 것은 태고암에 대한 말이겠으나, 산승이 이 게송을 볼 때에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사바세계가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삼동(三冬)에 지냈던 자기의 그 선원 그곳이 바로 자기의 암자요, 가깝게 말하면 우리가 머물러 입고 있는 이 육체가 각자 자기의 조그마한 암자가 될 것입니다.


그 암자에 왜 자기가 지금 이 육체를 짊어지고 다니며, 왜 이 한 철에 자기의 석 달 동안 지낸 그 선방에 지내게 되었는가? 물론 이래저래 해서 이러한 인연으로 거기에 산다고 말은 할 수가 있겠으나 사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금생에 이 몸뚱이를 뒤집어쓰고 나왔는가? 이 조그만한 육체의 암자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한 생각 한 생각이 왜 이 한 생각, 생각 자체를 우리는 암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되 그 생각이 밀밀(密密)하고 깊고 깊어서, 그 생각이 일어나는 생각을 어떻게 자기가 왜 그 생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래도 아무 걸림이 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생각 일 분 일 초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의 육체도 한 생각으로 인해서 이 육체를 받아났으나, 그 육체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갈는지 모릅니다.


물론 분석을 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고 또 죽게 되면은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가겠으나, 지수화풍 그 자체를 우리는 또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이 일어나는 생주이멸(生住異滅)도 알 수가 없고, 육체를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도 사실은 그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지마는 우리는 또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일 분 일 초를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고 땅은 다리 밑에 있으나, 어디를 두고 앞이라고 하고 어디를 보고 뒤라고 하겠으며, 동서남북을 우리는 나침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마는 동서남북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경도(經度)다, 위도(緯度)다 해 가지고 동서남북을 지도상에 그려 놓고 있습니다마는 이름이 동(東)이고, 이름이 서(西)지 원래 동서남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또 오늘을 살고 있고,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불법을 만나지 못하고 또 정법을 만나지 못해서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은 우리는 나침반 없는 조각배로 저 태평양 속에 던져져 있는 거와 같은 신세일 것입니다.

이 끝없는 우주법계 속에 이 몸뚱이는 태어났으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물거품처럼 떠돌다가 언제 꺼져버릴는지도 모를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만났고 또 정법을 만나서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의관(疑觀)이라고 하는 화두를 가지고 우리는 분명히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서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서, 정처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신세로 일생을 살다가 육도(六途)를 또 윤회(輪廻)하게 될 그러한 처절하고도 외로운 영혼이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갈 곳이 있고 분명히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한 중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뚜렷이 목표가 있고, 우리 몸뚱이 속에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이 상주하고 계신 그 법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설사 말세에 태어났고, 온 세계가 성주괴공과 흥망성쇠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싸우고 있고, 언제 불바다가 될는지도 모르는 이 사바세계에 살지마는 우리는 결단코 그러한 생사 속에 영원을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하고 행복한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행복하고 경행(慶幸)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영원히 바르게 살려면은 우리는 한 생각 속에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단속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한 편을 듣고, 산승은 우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러한 다행한 인연을 만난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있는것입니다.


비록 석 달 동안에 용화사 또 중앙선원 또 인제 법보선원 또 저 전주의 위봉사 선원 또 승련사 선원, 대전에 또 이 복전암 선원 또 세등선원, 방방곡곡에서 정법을 믿는 목숨을 걸고 수행하던 정진하던 도반들이 모였으니 두서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할 것은 오직 이 한 생각을 단속하는 일뿐입니다.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이 되고, 우리의 이 한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또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를 했다고 해서—다음 산철결제 또 여름결제를 우리는 또 결제를 하게 됩니다—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 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하니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라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파사노년(怕死老年)에 친석가(親釋迦)로다. 죽음이 두려운 노년(老年)에사 석가(釋迦)를 친했다. 억만 겁을 윤회를 하다가 겨우 금생에사 이렇게 불법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두상광음(頭上光陰)은 전두비(轉頭飛)여. 머리 위의 광음(光陰)은, 세월은 번갯불처럼 지내가고 있다.


제득혈루(啼得血淚)라도 무용처(無用處)다. 밤새도록 울고 울어서 피눈물이 난다 하더라고 쓸 곳이 없구나.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다.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런 고인의 시를 읊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처님 열반하신지 삼천년이요 이 말세에 태어났고, 무량겁을 유전(流轉)을 하다가 금생에 이렇게 불법을 만났는데, 그런데도 세월은 번개처럼 흘러가서 엊그제가 젊었을 때인데 벌써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혔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생사는 늙었다고만 해서 금방 죽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해서 또 앞으로 몇 백 년을 산다고 아무도 보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상(無常)하지마는 우리는 한 생각 단속한다면 그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고, 무상할수록에 더욱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 초 일 초를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정진을 할 것을 다짐하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2분49초~29분10초)(끝)



------------------(1)


*(게송) ‘한산정상월륜고~’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의 시.

*오음(五陰) ; 오온(五蘊).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의 무더기,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수·상·행·식)을 합쳐 부르는말.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한산(寒山) ;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천태(天台) 당흥현(唐興縣)의 서쪽 70리에 한암(寒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대개 그 바위굴 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하고, 때로는 국청사(國淸寺)에 가기도 했다.

몸은 바싹 마르고, 꼴은 거지와 같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국청사 절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습득(拾得)에게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가지고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사람을 보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하면서 바위굴로 물러났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각각 노력해라!”하면서 바위굴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 한산, 습득, 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보살, 습득을 보현보살 화현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참고]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부터 다음해 1 15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취택(取擇 가질 취/뽑을 택) ; 택취(擇取).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취(取)하여 골라 뽑음[擇].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 · 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게송) ‘오주차암오막식~’ ;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태고암가(太古庵歌)’ p90 참고.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무주고혼(無主孤魂) ; 이름없는 또는 천도주체가 없는 외로운 영혼. 천도(薦度) 및 시식(施食)을 행할 때 재(齋)를 올려주는 생존하는 인연주체가 없는 영가(靈駕)를 일컫는다. 이에 대하여 천도재를 모시는 주체가 있는 영혼을 유주혼(有主魂)이라 한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태양처럼 일체법을 비추어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

한역어로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삼독(三)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게송) ‘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162.

怕死老年에  親釋迦로다.  好向此時明自己어다  百年光影이  轉頭非로다.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야 부처님을 가까이 함이로다.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파사노년(怕死老年) :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의 글에 「이름 구할 젊을 적 공자님만 따랐고, 죽기 싫은 늙으막 부처님께 나가네(求名少日慕宣聖 怕死老年親釋迦)」라고 하였다.

*(게송) ‘啼得血淚無用處  不如緘口過殘年’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 1권 1칙 도솔(兜率)’ 취암열상당거차화운(翠嵓悅上堂擧此話云) 참고.

[참고] 송담스님(No.385) 89년 3월 첫째일요법회(89.03.06)에서.

제득혈루무용처(啼得血淚無用處)여.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낸 것만 같지 못하구나.(不如緘口過殘春)

어느 고인(古人)이 중생들을 위해서 목이 쇠도록 그렇게 참 ‘생사문제를 해결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어도 중생은 들을 때 뿐이고, 돌아서면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이요. 그러니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여생을 남은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탄하는 그러한 고인의 시(詩)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고인의 게송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각부터 정말 철저한 신심과 분심과 대의심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 가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본래 산중에 사는 사람이기에 항상 산중 얘기를 하기를 좋아하더라.(62분40초~64분24초)

*유전(流轉) ; 생사유전(生死流轉). 깨달음(붓다)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이 무명, 번뇌에 의하여 생사 인과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삼계육도(三界六道)를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 윤회(輪廻)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주요 내용]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해제날 다시 정진을 시작하는 각오 / 단지불회 시즉견성 / 이 공부 만나 실천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 숨을 거두는 찰나에도 본참화두를 들어야

(게송)오주차암오막식~ / 이 육체, 생각 자체가 우리의 암자 / 한 생각 단속에 무상 속에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다 / (게송)怕死老年親釋迦  頭上光陰轉頭飛.



[주요 문구]


해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정진하는 데에 무엇이 다 끝나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해제날 정식으로 다시 우리의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참회(懺悔)를 하고 그리고 해제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시 시작하는 그런 각오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나가야 올바르게 정진을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알아진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다면은 그 사람은 공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갈 곳이 있고 분명히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는 한 중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뚜렷이 목표가 있고, 우리 몸뚱이 속에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이 상주하고 계신 그 법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설사 말세에 태어났고, 온 세계가 성주괴공과 흥망성쇠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싸우고 있고, 언제 불바다가 될는지도 모르는 이 사바세계에 살지마는 우리는 결단코그러한 생사 속에 영원을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하고 행복한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행복하고 경행(慶幸)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이 되고, 우리의 이 한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또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01~700/(626~650)2017. 6. 9. 08:12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No.627)—99년 6월 첫째 일요법회(99.06.06) (61분)

(1/3) 약 22분. (2/3) 약 22분. (3/3) 약 17분.

(1/3)----------------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한 번 본심왕(本心王)을 어기고 등지고 떠난 뒤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몇 번이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으며 몇 번이나 사생(四生)을 겪어 왔던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을 겪어 왔던가.


삼도(三途)를 수천만 번, 태란습화 사생의 몸을 수억만 번을 거쳐서 이렇게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말이여.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煩惱)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제(除)하고 보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본고향(本故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방금 우리는 임자년에, 임자년이라고 하면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 섣달 초이튿날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임자년은 갑인년보다 3년 전입니다. 임자, 계축, 갑인, 열반하시기 3년 전에 설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비록 녹음 테이프(tape)를 통해서 들었지만, 금방 이 법상에 올라오셔서 그 열렬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우리는 실지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 법문은 조실 스님 법문 한 편 턱 들으면 그것으로서 족하겠지마는, 산승(山僧)이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여러 도반(道伴)들에게 일요일이라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실 수도 있고 쉬실 수도 있건마는, 날씨도 더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회에 나오셨으니 원장으로서 인사 말씀 한마디 하고 우리가 다 같이 정진을 잘하자고 하는 다짐하고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에 ‘내가 나 찾는 공부, 철저한 신심으로 그것밖에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요지, 그 공부해 나가는 구체적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또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다 같이 저 근본에 올라가서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한 몸이요, 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 무명(無明)이 동(動)함으로 해서, 이것이 ‘본심왕을 어겼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 말입니다. 본심왕을 어기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한 생각 무명심이 발동함으로 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 못하고 삼도와 사생을 돌고 돌면서 갖은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할 일은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었다고 하는 사실과 그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몸안에 있는 법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불이나 똑같은 그 법신불이 우리 안에 역력히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은 업연(業緣)에 따라서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고, 아귀도에도 태어나고 그러고 있지마는,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이 법신불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손상됨이 없이 고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철저히 믿는 것이 정법(正法)을 믿는 것이고 그것이 불법(佛法)을 믿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월초파일에 이천육백 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신 뜻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어떻게 제도합니까?

‘모든 중생들에게 다 같이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거,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중생, 너희들이 부처다’고 하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그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시기를 ‘중생이 곧 부처니, 바로 내가 나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하시는 거고.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이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 하면 거기서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었다 하면은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없는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그 번뇌를 여의지 않고 거기에 보리가 있다는—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보리라고 하는데—그 번뇌를 여의지 않고 깨달음이 거기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다고 하면 좀 어폐(語弊)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바로 그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대승법(大乘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을 때, 그 파도는 물이 곧 인연 따라서 움직거리면 그것이 파도인데, 파도는 물을 여의고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파도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기에 물이 있는 거고, 물이 있으면은 물결이 파도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는 한에는 물속에 들어앉어서도 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을 수가 없는 거고,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는 한에는 깨달음 속에 있으면서 깨달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한 것은 깨닫기 위해서 한다’하지만 깨달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선 해 본 사람이면 끊임없이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마는, 그 번뇌를 여의고 참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몸뚱이가 바로 부처님 몸뚱이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수없는 번뇌가 바로 그것이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에서는 아까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인도에서 28대,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오셔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6대, 그래서 육조 스님까지 해서 33대를 삽삼이라고 합니다마는 삽삼조사(卅三祖師).

그 삽삼조사로 육조 스님 때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금방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조사들에 의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오늘날까지 최상승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최상승법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부처도 내 몸 밖에서 찾지 말 것, 참선도 번뇌를 여의고 찾지 말 것,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여.


탐심이 일어날 때도 그 탐심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딱! 즉해 가지고 ‘이뭣고?’여. 미운 생각이 일어나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생각을 버리고 따로 참선을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는 그놈에 즉해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간다면 바로 이렇게 살아 있는 참선을 해 버릇하면 번뇌가 일어날수록 더 좋은 것이고, 탐진치 삼독심이 치열하게 일어날수록에 바로 거기에다 발판을 두고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를 한다면 혼침(昏沈)이 일어날 수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그래서 이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入禪), 방선(放禪)의 시간을 두고 선방(禪房)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용한 곳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다 같이 죽비(竹篦)를 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이고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지 진짜 살아 있는 공부는 꼭 선방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권도나 검도나 유도나 기본자세를 철저히 익힘으로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본의 살아 있는 응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을 철저히 익힌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기는 하나, 언제나 기본에만 입각해서 딱 틀어박힌 참선이 그것은 진짜 살아 있는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쩌다가 업(業)에 걸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감옥에서도 탁! ‘이뭣고?’를 할 수 있다면 감옥이 바로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부간에 사랑하고 부부간에 싸우고 부부간에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을 한 바로 그곳이 바로 그곳이 살아 있는 선원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참선에 대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무척 살기가 교통이라든지 모든 생활이 편리하게는 되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행복해졌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점점 사는 것이 더 복잡하고 더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일체가 간 곳마다 더 복잡해지고 다단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때일수록 이 살아 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이것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인생을 바로 살기가 어렵고, 이 어려운 고비를 극복해 나가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 오늘 이 번뇌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제(除)한다고 하는 것은 활구참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르게 활구참선하는 그 근본을 딱! 알고 보면 삼도고(三途苦)니,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이니 그것 버릴 것이 못됩니다.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지옥은 현실 속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형무소 교도소가 꼭 지옥이냐 하면 그게 아니고,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 바로 우리 몸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육도(六途)가 들어있다고 봐야 정말 육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 생각 뒤집어지면 지옥도 되고, 독사도 되고, 아귀도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탁! 바로 잡으면 아까까지 지옥에 있었던 사람이 한 생각으로 인해서 천당에도 갈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죽은 뒤에, 금생에 살아서 악업(惡業)을 지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하는 그 말씀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살아서 우리가 들어가는 지옥도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우리가 인식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내나 살아서 지옥 가는 연습을 한 사람이 죽어서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기 때문에 살아서부터서 지옥에 안 가는 행위를 한다면 지옥 그렇게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지옥이 무엇인가를 알고, 이 마음속에 있는 지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살아서 지옥 갈 짓을 안 하게 되고, 살아서부터 지옥 가는 연습을 안 한다면 죽어서 지옥 갈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많이 먹고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은 술을 안 먹을 때는 성현 군자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술만 들어갔다 하면은 자기 자신을 자제를 못하고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용케도 자기집은 찾아갑니다. 가서 꺼꾸러져도 자기집 문 앞에 가서 꺼꾸러져 가지고 거기서 쓰러져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꺼꾸러져서 잡니다.

왜 그러냐?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항상 자기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술에 취해가지고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도 자기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도 살아서 지옥 가는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은 틀림없이 이 몸뚱이를 버리고 영혼이 갈 때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서 지옥에 안 가는, 천당에 가는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은 숨 떨어지자마자 천당에 가는 거고, 살아서 극락(極樂) 가는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은 숨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극락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극락에 가는 연습,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라 이것입니다.


탐심이 나도 바로 거기서 ‘이뭣고?’ 해 버리면, 탐심의 한 생각 일어날 때 그것이 구체화되기 전에 탁! ‘이뭣고?’를 해 버리면 영락없이 지옥으로 갈 차를 타려다가 안 타버리고 극락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면 물어 볼 것도 없이 극락에 간 거여.(처음~21분39초)



(2/3)----------------


그래서 ‘이뭣고?’는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가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라고 하는 것을 믿고 고대로 실천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하고 그래도 한탄할 거 없습니다.

어려운 고비고비 만날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거기서부터서 이 지상에 극락이 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엄동설한(嚴冬雪寒) 소한, 대한 때는 이대로 가다가는 다 얼어죽을 것 같지만 그 시간에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고 잘 하다보면 금방 또 입춘, 우수가 돌아와서 봄이 온 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그래도 탁! 정신만 차리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머지않아서 우리도 또 잘살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마음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드라도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보면 반드시 또 살아 갈 길이 있습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노력할 때 우리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 죽을 것 같지마는 또 살길이 열리고 좋은 세상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누가 눈에 안 보이는 어떤 존재가 있어서 역사를 만든 게 아니라 내나 인간이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좋은 역사도 만들고, 어려운 시대를 좋은 시대로 맨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각자 주인이 자기 살림을 잘 돌보고 자기 일을 잘할 때 그 집안도 잘되고 회사도 잘되고 사회도 올바르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주가 이렇게 광활하고 넓고, 그 넓은 속에 지구라고 하는 것이 조그만한 존재에 지내지 못하지만, 그 지구에 60억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각 여러 가지 인종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욕락(五慾樂)이 인간의 행복의 조건인 줄 대부분 그렇게 알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재산이나 부귀영화나 명예 권리라 하는 것은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화능기일(榮華能幾日)이며  권속편시친(眷屬片時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유천근금(縱有千斤金)이라도  불여임하빈(不如林下貧)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영화능기일(榮華能幾日)이며  권속(眷屬)이 편시친(片時親)이다.

한산(寒山) 습득(拾得),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화현(化現)이고,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현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산시(寒山詩)」를 여러분이 보시면은 그 안에는 마음에 참 새겨둬야 할 만한 아주 핍절하고 요긴한 법문이 들어있습니다. 그 속에 방금 읊은 게송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榮華)가 그 부귀영화(富貴榮華), 왕이나 대신이나 대통령이나 천자나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영화죠. 영화라고 하는 것이 능히 며칠이나 갈 것이냐 그말이여.

일평생을 산다 해도 오육십 년 전이요 오육십 년 간에 불과하고, 천자가 되어 갖고도 얼마 안 되어서 맞아죽기도 하고, 왕이 되어 갖고도 얼마 안 있다 죽기고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렀습니다. 잠깐 꿈 한 번 꾼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해방 전 이조 때 그 역대 임금들을 보십시오. 고려 때나 신라 때를 보십시오. 중국 역사를 보십시오. 세계 모든 역사를 보십시오. 그 영화라 하는 것이 잠깐 꿈 한 번 꾼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다 그말이죠.


권속(眷屬)이 편시친(片時親)이다. 그 권속이, 부모가 훌륭하고 자식이 훌륭하고 형제간이 훌륭하다고 해서 다 그것을 배경 삼아서 목에다 힘주고 모다 그렇지마는 잠시 잠깐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그런 인연으로 태어난 것일 뿐이지 그것도 잠깐 지나가 버리면 별것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자기 형이 청와대에 가 있고, 뭐 자기 처남에 외삼촌에 동생의 친구가 청와대에 있다고 해가지고 그런 것을 해 가지고 사기(詐欺)를 치고 모다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마는 그다, 그 자기 친형이 있다 해도 별것이 아닌데 처남에 외삼촌에 친구에 뭣이 뭡니까 그게.

그게 다 권속이 편시친이라는 거, 잠깐 동안에 친한 것에 불과하시니, 그러한 것을 가지고 큰소리 칠 것도 없는 거고.


종유천근금(縱有千斤金)이라도, 비록 천근이나 되는 금덩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큰 석숭(石崇)이와 같은 그런 큰 부자라 하더라도, 한무옥당(漢武玉堂)과 같은 그러한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 별것이 아니고.


불여임하빈(不如林下貧)이다. 그런 큰 부귀영화를 가졌다 하더라도 수풀 속에 임하(林下), 수풀 아래에 가난한 것만 같지 못하다.

수풀 아래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산중에 숲속에 들어가서 풀뿌리를 캐 먹고, 약 뿌리를 캐 먹고, 더덕을 캐 먹고 또 없으면 또 걸식을 하고, 솔잎을 썰어서 먹고, 그렇게 가난하고 가난하게 사는 그 속에 그 가난한 맛보다 못하다 그거죠.


나물을 뜯어서 삶아 먹고, 풀뿌리를 캐 먹고, 솔잎을 썰어서 먹고, 흘러가는 물을 마시고 그리고 졸리면은 팔을 베고 자도 낙(樂)이 그 속에 있다 이거거든.

도 닦는 낙(樂)이라 하는 것은 팔풍경계(八風境界)가 오지를 않거든. 세속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그렇게 굉장한 것 같지마는 하루도 다리를 뻗고 자들 못하는 것입니다.


그 권리를 지키고, 명예를 지키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나가야 하고, 누가 그것을 침범할까 봐서 미연에 그것을 차단해야 하고, 누가 자기 것을 빼앗아 가려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저지를 시켜야 하고 악랄한 방법을 써서 상대방을 역적으로 몰고 그래 가지고 상대방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간들 그것이 지옥에 갈 일을 남겨 놓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내동댕이쳐 버리고 숲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

이 말씀을 하면 여러분이 다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사업도 버리고, 너도 나도 숲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런 뜻은 전혀 아닙니다.


세속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과거에 지은 인연으로 가족도 맺어지고, 어떤 직장도 갖게 되고, 나라에 나가서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지은 인연입니다.

빚이요, 인연이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처럼 왕궁에 부귀도 버리고 출가하신다면 그거야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일이나, 그렇게 철저히 발심(發心)도 못하면서 도피처로 알고 느닷없이 다 버려버리고 어디로 산중에 들어가, 그건 별로 권장할 말한 일은 못됩니다.


발심을 하려면 진실하게 발심을 해야 하고, 버리려면은 깨끗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지, 섣불리 임시 잠시 괴로움을 책임 회피로 버릴 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임하(林下)에 숲 아래 가난한’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에 살면서도 그런 것에 너무 지나친 집착을 갖지 말 것이며, 그 속에서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숲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연꽃에다가 많이 비유를 합니다마는, 연꽃은 저 깊은 산중에 맑은 석간수(石間水) 속에는 연꽃이 되질 않습니다. 저 밑으로 내려가서 흙탕물 속에다 뿌리를 박고 거기서 연꽃이 필 때 연꽃도 잘 자라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세속에, 부모형제 오욕락이 있는 그 세속에서도 거기서 바로 ‘이뭣고?’를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어려운...


세속에 살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힘이 들고, 직장을 유지해야 하고 사업을 하는데도 보통 힘이 든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로써 중심을 잡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상근대지(上根大智)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유마거사(維摩居士)와 같은 그런 부처님과 맞먹는 대도사(大道士)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방거사(龐居士)와 같은 그러한 거사로서 대도인(大道人)이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도 부설거사(浮雪居士)와 같은 그런 대도인도 있는 것입니다.


이건 특별히 최고로 훌륭한 분을 세 사람을 말한 것뿐이지, 지금도 역시 속가에 계신 거사님으로서 속가에 계신 보살님으로서 스님네 못지않게 열심히 도 닦는 분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 가운데에도 다 그런 훌륭한 스님네보다도 더 훌륭한 수행자가 있을 줄 믿습니다.


도(道)라고 하는 것이 꼭 산중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머리를 깎은 스님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산이나 들이나 섬이나 육지나 어디서도 도는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옷을 먹물 옷을 입었건 어떠한 빛깔의 옷을 입었어도 그것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대승(大乘)이라고 하고, 최상승(最上乘)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육도(六途)가 우리의 한 생각 속에 있는 것처럼 도(道)도 역시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이어서, 오죽하면 보현보살이 돼지가 되어 가지고 부잣집 돼지우리 속에 가서 꿀꿀하고 있었습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항상 부처님의 왼팔이요 부처님의 오른팔이 되어가지고 조불양화(助佛揚化)를 하시지만, 두 분은 형제간이요 바로 도반인 것입니다. 문수보살 있는 곳에 보현보살이 계시고, 보현보살 있는 곳에 항상 문수보살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문수보살이, 그 보현보살이 장자(長者) 집에 돼지가 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서 그 장자 집에 가니까 꿀꿀 돼지가 되어가지고 누워있거든.

‘구재진로중(久在塵勞中)이면, 너무 오랫동안 진로(塵勞) 가운데 있으면은 혹망본래사(惑忘本來事)니, 혹 본래사(本來事)를 잊어버릴까 두려우니, 속히 행장을 거두어가지고 이 산중으로 돌아오라[收拾行裝裡 速還靑山來].


게송 금방 생각이 안 나는데, 그런 뜻의 게송을 글씨에다 써 가지고 돼지우리에다 던져 줬습니다.

보현보살이 눈을 꺼먹꺼먹 뜯어보니까 ‘너무 오랫동안 진로 가운데 있으면 혹 본래사를 잊어버릴까 두려우니 행장을 거두어 가지고 속환청산래(速還靑山來)하라. 속히 청산으로돌아오라’ 게송이 써졌거든. 요리 쳐다보니까 문수보살이거든.


비록 돼지 탈을 쓰고 ‘꿀꿀‘하고 있어도 다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것이라. 알아보고는 그 게송 써진 그 쪽지를 덥석덥석 씹어서 꿀떡 삼켰다 그말이여. 그랬는데 그 돼지가 죽었어.

죽으니까,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쪽지를 던져 주니까 그 쪽지에 독약이 묻었던지 돼지가 죽었다‘ 해 가지고 그 사람을 관가에다 고발해 가지고 잡혀 갔어.


“나, 독약 한 일 없고 게송만 하나 써줬다”

“무슨 게송이냐?”

“죽었으니까 배를 갈라보면 알 것 아니냐”


배를 갈라보니까 아직도 그 종이에 글씨가 써졌는데 그 게송이 쓰여 있다 그말이여. 뭐 조사해 봤자 아무 독도 안 묻어 있고. 그러니 그냥 ‘이상한 일도 있다’해 가지고 무혐의로 풀려났는데.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비단 돼지로만 나오겠습니까? 때로는 소 탈을 뒤집어 쓸 수도 있고.


뭐 부처님 말씀에는 ‘저 소가 누군 줄 아느냐? 왕년에 시주것만 먹고 도를 열심히 안 닦은 것이 시주 은혜 갚으려고 해서 소가 된 것이다. 저 소들은 모다 전생에 다 중이다’

이런 말씀을 내가 봤습니다마는, 그 말은 ‘시주것을 먹고 열심히 도 닦으라’고 하는 그런 간곡한 말씀을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표현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스님네는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오직 시주것만 먹고 오직 도 하나만을 위해서 목숨 바쳐서 일심(一心)으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도만 닦으라고 해서 ‘장사도 하지 말아라, 농사도 짓지 말아라. 일체 오직 걸식(乞食)을 해가지고 한 끼씩만 먹고 도를 닦으라’고 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형편은 걸식할 형편이 잘 못되고, 한 끼만 먹고는 도저히 도를 닦을 수 없을 만큼 지금 우리 근기(根機)가 약해서 세 때도 먹고 또 이 신도님네들이 갖다 주는 걸로 밥을 해 먹고 요렇게 참선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딴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실 때에는 ‘과연 그만 하면 되겠다’고 하실는지 어쩔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참 부모형제 다 고향을 다 버리고, 일체 세속의 오욕락을 다 버리고 일생을 수절(守節)을 하면서 먹물 옷을 참 입고, 못난 척 바보같이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부귀영화를 일찍이 부러워해 본 적도 없고, 다 그런 것이 다 허망한 줄 알았기 때문에 출가해서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부처님께 바치고 시주(施主)를 하시고 그래서 이 절도 짓고 선방도 짓고 이렇게 했습니다.(21분40초~42분58초)



(3/3)----------------


우리 승려로서 여러분께 부탁할 것은, 물론 여러분이 갖다 줘서 감사합니다마는 ‘감사하다’는 말을 잘 안합니다. 왜 그러냐? ‘감사합니다’하면은 여러분의 공덕(功德)이 그만큼 소실이 되어 버려.

‘감사하다’는 말로써 그것이 여러분 공덕이 이렇게 때워져 버리기 때문에 여간해서 ‘감사하다’고 안 합니다. ‘잘 수용하겠습니다’ 그뿐인 것입니다.


‘시주를 했는데 왜 스님네가 우리한테 굽신굽신을 안 혀? 중들이, 왜 용화사를 가면은 스님네들이 왜 데데해. 불친절해’ 그런 말을 한 분이 있다고 그럼니다.


용화사 스님네는 별로 스님네가 오시면 그저 수수하니,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을 업신여기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불친절이 한다고 해서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화두 드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맞이할 뿐이지 그렇게 굽신굽신 안 한 것을 데데하고 건방지고 아만통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주를 하고 보시를 하더라도 무주상(無住相)으로 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했다. 했으니까 나를 알아 줘야 하고, 나한테 굽신거려야 하고, 우리를 최고로 대우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안 하시겠습니다마는, 그런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을 것이고. 오셔서 열심히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여러분을 공부 잘 하시라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을 뼈아프게 듣고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서 유마거사와 같은 그리고 방거사와 같은 그리고 소동파... 보살님 가운데에도 훌륭한 도인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금생에 그것이 바뀌어져 갖고 신도와 스님으로 또 바뀌어졌을는지 모릅니다. 내생에는 우리가 또 신도가 되고 여러분이 스님이 되어서 선방에 와서 참선(參禪)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보현보살이 돼지가 되어가지고 장자 집에 가서 돼지우리에 있을 줄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다 도반이고, 서로가 다 부처님의 제자고 부처님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 할 것도 없습니다.


신도면 신도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거고, 스님이면 스님의 도리를 다해서 열심히 도 닦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이 세계를 부처님 세계로 만들고, 우리가 모두가 다 부처님이 되는 최후의 목적까지 우리는 그렇게 가야 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인연이요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이여. 만 가지 의심을 모두 다 한 의심 덩어리로 다 그리 몰아붙이라 이거여.

우리는 살다 보면은 여러 가지 의심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경전에 대한 의심, 공안에 대한 의심, 세속의 모든 일에 대한 의심, 정치 경제 모든 의심, 학교의 과학 학문에 대한 의심, 모든 의심이 있을 수가 있으나, 그 모든 의심을 전부 다 ‘이뭣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그 하나의 의단(疑團)에다 다 몰아붙이라 이거거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여.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며, ‘이뭣고?’한 의심을 스스로 또 다시 되돌이켜 관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가 자기의 본참화두인데, ‘이뭣고?’

‘이뭣고?’할 때 ‘이-’  ‘이-하는 이놈이 뭣고?’ 이것이 의자간(疑自看)이여.


의심나는 것을 물어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 가지고 그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무슨 의심이 나던지 바로 그 의심을 즉(卽)해 가지고 자기의 본참화두 ‘이뭣고?’로 돌아오라 이거거든.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 모름지기 용을 때려잡고 봉(鳳)을 잡는 그러한 용기와 수단을 가진 사람이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다. 한주먹으로 철성관을 쳐서 꺼꾸러뜨릴 수가 있을 것이다. ‘쇠[鐵]로 만든 성(城)에 관문(關門)’이라 한 것은 조사관(祖師關)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參禪)을 하는 것은 이 조사관을 깨뜨려야 하거든. 알 수 없는 이 의심관, 조사관, 이놈을 팍!...


‘이뭣고?’를 자꾸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잊어버리고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고 하지만 잊어버리면 또 ‘이뭣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 딴 생각 버리고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자꾸자꾸 하다보면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가지고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거든.


그래가지고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까지, 저녁에 누워서 ‘이뭣고?’하면서 들고 있는 화두가 아침에 일어나면 고대로 들어져 갔고 있거든. 이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거든.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고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툭! 그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여.


열심히 열심히 하고, 자기 근기(根機)도 따지지 말고 아무것도 따질 것이 없어.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해 나가면 반드시 되는 것이 바로 이거여.

세속의 사업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되는 것이 아니여. 되기도 하고 실패하기.. 실패율이 더 많고. 이것은 좀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어도 꼭 되고만 마는 것이 바로 이것이여. 왜?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다 보증을 서셨어.


우리가 모든 인연에 따라서,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빠르면은 7일이요, 늦으면은 3년이요’ 이렇게 말씀하셨지마는, 그 기한은 전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빨리 되어도, 빨리 공안을 타파해도 그것에 끝난 것이 아니고, 더디 되어도 더디 되었다고 해서 허송세월한 것이 아니어.


여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빨리 공안을 타파할 수도 그리고 또 할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원만구족(圓滿具足)하려면은 깨달은 뒤에도 계속해서 우리는 닦아 가야 하는, 닦을 것 없이 닦아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는 비록 이 사대(四大)로 뭉쳐진 허망하고 더러운 이 몸뚱이지만 이 속에 법신불(法身佛)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는다면 이 몸뚱이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거고. 이 몸뚱이를 소중히 여기고.

애착심을 가지고 집착(執着)하라는 게 아니고, 지혜롭게 잘 관리를 해야 공부도 할 수가 있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비록 검소하게 먹고 할지언정, 꼭 고기만 많이 먹고 그 영양가 있는 것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꼭 건강이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나물에 검소하게 이렇게 먹어도, 보리밥에 잡곡밥에 이렇게 먹어도 잘 씹어서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저작(咀嚼)을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하면서 먹으면 고기에다가 진수성찬에 잘 안 먹더라도 건강은 유지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대신 황룡탕(黃龍湯)을 꼭 잡순 것을 내가 권고를 하고.


황룡탕은 내 몸에서 나온 것을 내가 다시 섭취하는데, 그것이 전혀 더러운 노폐물이 아니고 우리 몸안에 있는 피와 거의 같을 정도로 여러 가지 영양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의사들이 다 조사를 해보면 전혀 균이 없는 무독지제(無毒之劑)라고 하는 것이 다 밝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학대사전에도 보면 ‘무독(無毒)’이라고 딱 나와 있고 여러 가지 병에 좋다고 하는 것도 옛날 성현들이 다 말씀을 하셨고.


오죽하면 부처님께서도 걸식(乞食)을 할 것이며, 분소의(糞掃衣)를 입을 것이며, 수하(樹下) 나무 밑에서 잘 것이며, 그리고 약은 예약(穢藥)을 써라. 예약이라 하는 것은 대변이나 소변으로 만들어진 약, 병이 나면 소변을 먹으라고 하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혈압이 높으신 분도 좋고, 각종 암도 좋고, 요새 모다 발표한 것을 보면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병도 소변을 장기적으로 복용을 하면 낫을 수 있다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마는.


‘이뭣고?’를 하면서 황룡탕을 먹으면서 잡곡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산다면,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한다면 이 세상이 비록 오탁악세(五濁惡世)요, 말세(末世)라고 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법하게 정법을 믿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말세를 다시 정법시대(正法時代)로 다시 돌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도 닦고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모든 생활을 해 나간다면은 우리는 이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수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우리 앞마당에는 대장경 전산화 불사(佛事)를 하기 위해서 동참불자(同參佛子)를 받는 대장경연구소 분들이 책상을 놓고 계십니다. 신청하신 분들은 지로를 통해서 다 성의껏 다하고 계신다는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용화사에서 그 불사에 좋은 촉매가 되고, 탄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모다 감사한 인사를 듣고 있습니다마는, 드신 분은 열심히 다달이 보내시고 안 들으신 분은 인연 따라서, 분 따라서 모다 동참을 하신다면, 그리고 요새 그 나오는 책을 보니까 전국 모두 여러 사찰들에서도 모다 다 동참하자고 하는 그런 법회를 모다 여기서 저기서 가지신 걸로 봤습니다.


대단히 좋은 현상이고, 이러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어려울 때 이러한 불사를 우리 불교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이 대장경 불사를 한다면 틀림없이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를 입어서 우리나라도 잘되고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좋은 공덕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오늘이 입하 · 소만 · 망종일이고, 얼마 안 있으면 또 하지에다 소서 · 대서 하면은 삼복성염(三伏盛炎)이 또 돌아옵니다. 날씨가 더워질 때 모다 몸조심 하시고 건강한 몸과 건전한 마음으로 열심히 ‘이뭣고?’를 하시기를 다시 부탁 말씀을 드리면서 말을 맺고자 합니다.(42분59초~60분8초)(끝)



----------------(1/3)


*(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참고]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에서.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여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고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니라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背反)한 이래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몇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몇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그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억만 겁을 겪어 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그 번뇌염을 깨끗이 다 씻어 버리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로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참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이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한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것 생각해 보면 참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그 왕이 그 본심왕을 갖다가 등져 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돌고 돌면서 가진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또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나고 정법(正法)을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참 50억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 것입니다.


이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잘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갈 곳도 없고, 가 봤자 별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잘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한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것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21분20초~27분13초)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 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를 말한다.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①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②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③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사나불(盧舍那佛) ;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에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은 (1)영원불변의 진리[法]를 몸[身]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인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身]으로 변하는[化] 화신불(化身佛, 應身)을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이 중 보신불이다.


이들 삼신(三身)의 상호관계는 흡사 달의 체(體)와 그 빛, 그리고 그 그림자와 같다고 하며, 이것을 일월삼신(一月三身)이라고 한다.

곧 법신(法身)의 이체(理體)가 유일상주불변(唯一常住不變)인 것을 달의 체(體)에 비유하고, 보신(報身)의 지혜가 법신의 이체(理體)에서 생겨 일체를 비치는 것을 달의 빛에 비유하며, 응신(應身)은 변화하는 작용으로서 기연(機緣)에 따라서 나타나는 불신(佛身)이므로 달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念佛三昧寶王論卷中).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業]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깨달음 ; 각(覺).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 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육조 스님 때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 ;

[참고] 송담스님(No.264)—1985년 4월 첫째 일요법회에서.

흔히 화두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를 많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이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더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더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이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못 되겠다’


이 불교(佛教)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를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겠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한 물음에 대해서 꽉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몸을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그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꽉 맥혀 가지고 몸 둘 바를 몰라. 그 뒤로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8년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그 생각, 서서도 그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일을 하면서도 그 생각, 똥을 누면서도 그 생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하기를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할 것이 있느냐?’하니,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證)할 것이 없지를 않지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꽉 맥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때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꽉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그 공부를 옳게 해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61분31초~67분22초)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선(禪).

[참고] 송담스님(No.299)—1986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신 분은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정진(精進)이여.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거든. ‘어느 곳이고 선(禪) 아닌 곳이 없고, 어느 때고 참선 아닌 때가 없다’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라 하는 것이여.

그래서 ‘걸음 걸음이 미륵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요, 생각 생각이 석가여래가 탄생하신 곳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이러한 도리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30분19초~31분2초)


[참고] 송담스님(No.152)—1981년 10월 첫째일요법회(참선법B)에서.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요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니라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요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니라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요. 어떤 색상을 보는 그때가 바로 ‘참나’를 깨달을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라. 어떤 소리를 듣는 그때가 ‘참나’를 증득(證得)할 바로 그 곳이드라.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무엇을 볼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화두를 들고) 다져 나가면,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미륵 부처님이 하강하시든 바로 그것이더라.(41분22초~44분9초) - (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도고(三途苦, 三塗苦)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지옥•아귀•축생)에서의 고통.

*고주망태 ; 술을 많이 마셔 취하여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인사불성(人事不省 사람 인/일 사/아니·못할 불/살필 성) ; 사람[人]으로서 지켜야 할 일[事]을 살피지[省] 못함[不].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극락(極樂) ;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이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2/3)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엄동설한(嚴冬雪寒 혹독할 엄/겨울 동/눈 설/찰 한) ; 혹독하게[嚴] 추운 겨울[冬]에 눈[雪] 내린 뒤의 추위[寒].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게송) ‘영화능기일~’ ; 『한산자시(寒山子詩)』에서 한산(寒山)의 시.

〇我見世間人  茫茫走路塵  不知此中事  將何爲去津  榮華能幾日  眷屬片時親  縱有千斤金  不如林下貧

*한산(寒山) ;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성명은 알 수 없고, 천태(天台) 당흥현(唐興縣)의 서쪽 70리에 한암(寒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대개 그 바위굴 속에 있었으므로 ‘한산’이라 하고, 때로는 국청사(國淸寺)에 가기도 했다.

몸은 바싹 마르고, 꼴은 거지와 같고 보기에 미친 사람 비슷한 짓을 하며, 국청사 절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습득(拾得)에게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어서 댓통에 넣어가지고 한산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미친 짓을 부리면서도 하는 말은 불도(佛道)의 이치에 맞으며 또 시를 잘하였다.

어느날 태주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사람을 보내 한암(寒巖)에 찾아가서 옷과 약 등을 주었더니, 한산은 큰 소리로 “도적놈아! 이 도적놈아!”하면서 바위굴로 물러났고 “너희들에게 말한다, 각각 노력해라!”하면서 바위굴로 들어간 뒤에는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 한산, 습득, 풍간(豊干)을 3성(聖)이라 부르며, 또 한산을 문수보살, 습득을 보현보살 화현이라 한다. 『한산시』 3권이 있다.

—[참고]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寒山子詩集序)’

*습득(拾得) ;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사 국청사에 있던 이. 천태산 국청사 풍간(豊干) 선사가 산에 갔다가 적성도(赤城道) 곁에서 주어 온 작은 아이라 이렇게 이름. 한산(寒山)과 친히 사귀었고 풍간선사가 산에서 나온 뒤에 한산이 바위굴로 들어가 소식을 알 수 없는 뒤로 습득도 어디론가 사라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한산시(寒山詩) ; 『한산자시(寒山子詩)』. 중국 당나라 때의 한산자라는 전설적인 은자(隱者)가 천태산의 나무, 바위 그리고 촌가의 벽에 써놓은 시를 국청사(國淸寺)의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시집. 또 한산의 시 3백여 수(首)외에 습득(拾得)의 시 50여 수, 풍간(豊干) 선사의 시 2수가 실려 있으므로 『삼은시집(三隱詩集)』이라고도 불린다.

『한산시(寒山詩)』의 내용은 꽤 다양하여 여러 가지이나 전형적인 부분인 자연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한 것 외에 허망한 삶을 깨치고 진정한 도를 구하라는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석숭(石崇) ; 중국 서진(西晉)의 부호(富豪)(二四九~三OO). 항해와 무역으로 거부가 되었다.

*한무옥당(漢武玉堂) ; 중국 한무제(漢武帝)가 머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玉堂]을 이르는 말.

*팔풍경계(八風境界) ; 팔풍(八風). 팔경(八境).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함<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리/약할 쇠) :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예훼(譽毀 기릴 예/비방할 훼) : 나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칭기(稱譏 일컬을 칭/나무랄 기) :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고락(苦樂 괴로울 고/즐거울 락)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樂).

[참고] 팔풍, 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 : 세간(世間, 중생의 세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利衰),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譽毀), 칭찬과 비난(稱譏), 고통과 행복(苦樂)<칠각지 p57, 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유마힐(維摩詰) : [범]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인도 비사리(毘舍利  Vaisali)성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하였다。그 수행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제자들도 미칠 수 없었다。그가 병들어 누우매 부처님 제자들이 모두 가서 문병하는데, 둘 아닌 이치(不二法)에 대하여 여럿이 돌려 가면서 말하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그리하여 모두 ‘유마거사가 가장 둘 아닌 법을 잘 연설한다’고 칭찬하였다。이것은 <유마경>의 주요한 내용이다.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썩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방거사(龐居士) ; 당나라 형주(衡州) 형양(衡陽) 사람. 자는 도현(道玄)이다. 성은 방씨고, 이름은 온(蘊)이다. 당나라 정원(貞元) 때 석두(石頭)에게 선지(禪旨)를 짐작(斟酌)함. 탐욕스럽고 속된 것을 싫어해 재산을 모두 동정호(洞庭湖)에 던져 버리고 죽기(竹器)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뒤에 마조(馬祖)에게 가서 묻기를 “온갖 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마조는 “네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마셔버린 뒤면 일러주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말에 깨달은 바가 있어 2년 동안 정진하여 깨달음.


죽으려 할 때 딸 영조를 시켜 그늘을 보아 오시(午時)가 되거든 말하라고 부탁했다. 영조가 “지금 오시가 되었는데, 일식(日蝕)이 일어납니다.”하자, 그는 평상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나가서 보는 동안, 영조가 그의 평상으로 올라가 죽어버렸다. 이를 본 그는 웃으면서 “내 딸의 솜씨가 나보다 빠르구나!”하고는 7일 뒤에 숨을 거두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라 후기의 스님으로, 서울(王都, 慶州)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진광세(陳光世). 법명(法名)은 부설(浮雪). 자(字)는 천상(天祥).

어려서 불국사에 출가하였다. 영조(靈照), 영희(靈熙) 두 도반과 함께 두륜산 등지에서 10년간 정진한 뒤, 오대산 문수보살의 도량을 참배하러 북으로 향하여 가던 길에 두릉(杜陵 : 전북 만경) 구무원(仇無寃)이라는 신도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구무원에게 딸 묘화(妙花)가 있었는데, 부설을 흠모하여 부설과 부부가 되길 원하고, 만일 버림을 당하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니, 묘화의 부모도 부설에게 딸을 버리지 말고 제도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부설은 출가의 뜻이 견고하여 굽히지 않았으나, 또 돌이켜 보살의 자비로운 뜻을 생각하여 마침내 묘화와 결혼하였다. 그는 비록 재가(在家)에 있었으나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고 정진을 계속하여 도를 이루었다. 등운과 월명도 출가,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다.

묘화부인은 백 십세를  살았는데, 말년에 집을 내놓아 사원으로 삼아 부설원(浮雪院)이라 하였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조불양화(助佛揚化 도울 조/부처 불/날릴·나타낼 양/가르칠 화) ; 부처님[佛]을 도와[助] 교화(敎化)를 드날리다[揚].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본래사(本來事) ; 본래의 일. 본분사(本分事).

*본분사(本分事) ; ①본분(本分)을 깨우치는 일. 깨달음. ②인간이 부처라고 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일.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행장(行裝 갈 행/꾸밀·행장 장) ; 길을 떠나거나 여행(旅行)할 때에 사용하는 물건과 차림[裝].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일심불란(一心不亂) : ①두 생각이 없이, 딴 생각이 없이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 ②마음을 흩어지지 않게 함.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3/3)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게송) ‘만의도취일의단~’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5) '贈蘭法師' 게송 참고.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별념(別念) ; ‘딴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이 깰 오/잠잘 매/하나 일/같을 여) ; 자나깨나 언제나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다 보증을 서셨어 ; 


[참고]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황룡탕(黃龍湯) ; 황탕(黃湯), 용탕(龍湯)이라고도 한다. 약용으로서 저장한 인간과 가축의 대변과 소변을 말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써 이용하는 오줌을 말함. 요료법(尿療法).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분소의(糞掃衣 똥 분/버릴 소/옷 의) ; 똥이나 먼지구덩이 속에 쓰레기로 버려진 낡은 옷과 찢어진 헝겊 조각을 깨끗이 씻은 다음 조각조각 기워서 만든 가사(袈裟). 납의(衲衣), 백납의(百衲衣) 등이라고도 한다.

*예약(穢藥) ; 부란약(腐爛藥). 대변, 소변등의 배설물로 만든 약.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들이 버려서 아무도 쓰지 않는 재료로 만든 약도 포함한다.

악취가 나고 부패한 것이라는 뜻에서 부란약이라 하고, 버려진 것이라는 뜻에서 진기약(陳棄藥), 잔기약(殘棄藥) 등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행법[사의법 四依法 : 乞食, 糞掃衣, 樹下住, 陳棄藥] 중 하나와 관련된 것으로, 수행자는 병이 들었을 때 부란약을 제조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주요 내용]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중생이 곧 부처니, 바로 나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 번뇌가 곧 보리(菩提)이니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최상승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 극락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게송)영화능기일~ /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도 닦을 수 있다 / 보현보살의 돼지 화현, (게송)久在塵勞中~ / 스님의 인사 ‘잘 수용하겠습니다’ /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 시주·보시는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전부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하나의 의단에다 몰아붙이라 /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될수 있다 / 황룡탕 / 여법하게 열심히 도 닦으면 정법시대.



[주요 문구]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그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 방선의 시간을 두고 선방(禪房)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용한 곳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다 같이 죽비를 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지 진짜 살아 있는 공부는 꼭 선방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쩌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감옥에서도 탁! ‘이뭣고?’를 할 수 있다면 감옥이 바로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부간에 사랑하고, 싸우고,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을 한 바로 그곳이 살아 있는 선원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참선에 대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뭣고?’는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가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


세속에 살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도 힘이 들고, 직장을 유지해야 하고 사업을 하는데도 보통 힘이 든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로써 중심을 잡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상근대지(上根大智)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는 우리가 신도였었고 여러분이 스님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금생에 그것이 바뀌어져 갖고 신도와 스님으로 또 바뀌어졌을는지 모릅니다. 내생에는 우리가 또 신도가 되고 여러분이 스님이 되어서 선방에 와서 참선(參禪)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원래 부처였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하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고—다 보증을 서셨어.


‘정법이다, 말세다’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되는 것이고, 지옥 천당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면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법을 믿고 열심히 도 닦고 모든 생활을 해 나간다면은 우리는 이 21세기를 진짜 정법시대로 돌릴 수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