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51~75)2020. 12. 20. 18:41

((No.066))—1978년(무오년) 신수기도 회향(78.01.09.음) (52분)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6분.

(1/3)----------------


무오년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사대부중(四部大衆), 법보제자 여러분들께서 더욱 몸 건강하시고, 모든 크고 작은 소원 차례로 성취하시고,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신심견고(信心堅固)하셔서 참선 공부 잘해 가지고 결정코 이 몸으로 견성해탈(見性解脫)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러한 뜻으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초삼일부터 초아흐레 날까지 7일 동안을 전강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연례행사로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해 내려왔습니다. 금년도 역시 날씨가 그렇게 강추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들께서 이 7일 기도에 참여하셔서 정말 성심성의껏 기도를 봉행했습니다. 이 공덕으로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을 저는 간절히 바라고 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도라든지, 염불이라든지 또는 경을 읽는다든지, 주력을 한다든지 이러한 것이 전부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正法)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方便)의 하나입니다. 염불 · 독경 · 기도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반드시 정법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고, 마침내는 정법에 들어가서 나를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가지나 되는 많은 법(法)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중생이 각기 자기의 근기(根機) 따라서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지 걸려들기만 하면은 드디어 정법 문안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차례차례 층계를 놔 놓으셨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는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그 문에 들어오셔 가지고 들어오시자마자 금방 정법에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듣고 참선을 하실 수 있는 그러한 선택된 부처님 제자가 되신 것을 나는 진심으로 환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법을 만나지 못하고 계속 그 방편문에만 걸려 가지고 3년, 5년, 10년 내지 일생을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그 방편의 단계에서 머물러서 계속 눈앞에 조그마한 복(福), 오욕(五慾)을 충족시키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충족시키는 그러한 데에 머물러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러한 가엾은 그러한 신도들이 아직도 한량없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설한 이 법은 강을 건널 때 사용하는 떼배와 같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떼배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는 데 꼭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소중한 기구입니다. 그 배가 없으면은 그 넓은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배는 필요한 것이지마는 일단 그 강을 건너고서는 그 배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고 나서도 그 배를 계속 버리지를 못하고, '그 배로 인해서 내가 이 강물을 건넜으니까 얼마나 고마웁고 소중한 것이냐, 그러니 나는...' 이 배를 버리지를 못하고 계속 육지를 다니면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육지를 돌아댕기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은 우습고도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계신 어느 불자(佛子)라도 전부 오늘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는 그러한 작은 배, 조끔 더 큰 배, 한량없이 여러 개의 배를 타고 또 물을 건너고 또 타고 물을 건너고 해서, 오늘 이 자리에 까지 오셨습니다. 이 자리는 배를 짊어지고 걸어 다니는 그러한 장소가 아니라, 그 많은 배들을 깨끗이 그 강가에다가 버리고서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이 맨몸으로 이 자리에 나오셔야 됩니다.


그릇 속에 물건을 담을 때, 그 그릇 속에 어떠한 물건이라도 그릇 속에 채워져 있으면 그 그릇은 다른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릇은 담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필요할 때 담고 또 그것을 바로 비워 놓아야 그다음에 더 좋은 것을 또 담을 수가 있는 거와 같습니다.


참선은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 모든 살림살이 모든 얻은 바를 깨끗이 버림으로써 바른 참선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수십 권, 수백 권의 경(經)을 다 읽어서 능히 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힘을, 그러한 능력을 속에다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은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육두 백판으로 다 외우고 다 능히 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심(衆生心)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나의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금가루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 금가루를 눈에다 집어넣었을 때에는 그 눈은 병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밥이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있을 자리 가 있어야지, 밥이 기도(氣道)로 콧구먹으로 들어간다든지 눈 속에다 집어넣어 가지고서는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한 말씀 한 말씀 다 참된 말씀이고 소중한 말씀이지마는, 그것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잠깐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하고 바로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古人)이 말씀하신 사교입선(捨敎入禪)입니다. '교(敎)를 버리고서 선(禪)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아까 순치황제가 중국에 천자(天子)로 19년 동안이라고 하는 세월을 참 훌륭하게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한 천자가 하루아침에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 순치황제의 출가하셔가지고 읊으신 시(詩)를 전강 조실 스님께서 그 일부를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그 순치황제는 전생에 인도(印度)에서 도를 닦던 한 참선하는 스님이 어쩌다가 '한 생각' 잘못 먹어가지고 중국에 천자로 태어났습니다.


도를 닦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한 생각 자칫 잘못 먹어가지고 일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한 생각 잘 먹어가지고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우습게 알고 그럭저럭한 한 생각을 우습게 알고 그럭저럭 그렇게 해서 일생을 지내가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중생의 생애이지마는 제일 소중하고 무서운 것은 이 '한 생각'인 것입니다.


금은보화,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심결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을 어떻게 잘 단속을 해 나가느냐? 하는 그 문제야말로 우리의 무량겁을 두고 윤회(輪廻)해 내려오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가깝게 봐서 일생 동안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불행하게 살 수도 있는 그러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외출을 했다가 여러 날 만에 집에를 돌아왔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등잔불이 어슴프레 켜진 가운데에 자기 아내가 어떤 스님하고 한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대번에 분이 나가지고 부엌에 쫓아가서 식칼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두 사람을 칼로 요절을 내려고 하다가 잠깐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생각을 했습니다.


오다가 길가에서 어떤 사람이 보따리를 피어 놓고 떠억 사주(四柱) 관상(觀相)을 보고 있는데, 자꾸 그 사람이 “여보시오, 여 사주 하나 보고 가시오”

“아, 나, 사주 그런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한 번만 보고 가시오”

“에! 안 본다”고.


“거저 봐줄 테니 한 번만 보고 가시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러면 좀 봐주시오”


"당신..."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별말 안 하고 ‘참을 인(忍)’ 자, 하나를 손바닥에다가 떠억 먹으로 써줬습니다. “이것을 절대로 물로 씻지 말고 닦이지 않도록 가서, 어떠한 큰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이 손바닥을 반드시 펴 보시오"


아, 그런 일이 문득 생각이 나가지고 ‘우선 칼로 목을 먼저 찌를 것이 아니라, 대관절 어떠한 사연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한번 알아보고 죽여야지, 자고 있는 놈을 다짜고짜로 목을 찌를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칼을 한 손에다 쥐고서 이불을 걷어 제끼니까, 깜짝 놀래 가지고 두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바른대로 말해라, 너는 이놈 어떤 놈이냐?”

그러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이 사람은 남자 스님이 아니라, 친정 사촌동생이 과부가 되어가지고 출가를 해서 중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여기를 지내다가 내 집에 들려서 이야기하다 오늘 하루저녁 자게 되었다”고.


아! 그래서 그 손에다가 써진 ‘참을 인(忍)’ 자를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보고, 평생토록 그 ‘참을 인(忍)’ 자를 손바닥에 써진 그 ‘참을 인(忍)’ 자를 마음속에다 새기고, 다시는 그러한 경솔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해 가지고 그렇게 신경질을 잘 내고 그렇게 경거망동을 하던 그 사람이 일생 동안을 참 신중하고 아량이 있는 그러한 인격자가 되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 생각 잘못 먹으면은 아내 죽이고, 그 스님을 죽이고, 자기도 사형을 당해가지고 그 집안이 쑥대밭이 될 그러한 중대한 문제, 그것이 바로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아! 그 사주는 보아야 하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그것은 생각을 잘못 생각하신 것이고.


신수기도를 일주일 동안 그렇게 정성스럽게 했습니다마는 이 신수기도를 우리 절에서 안 하면은 이 가운데에 계신 대부분 보살님네들은 모다 무당절, 또 가서 법문도 듣지도 못할 그러한 절에 가서 별별 이상스런 그 부작(符作) 같은 것을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하고,

그리고 겁나는 협박적인 그러한 말을 한마디씩 듣고서 돈은 빼앗기면서 일 년 동안을 전전긍긍 불안에 떨면서 살지 아니하면 안 될 그러한 구렁텅이에 빠질까 두려워서, 신수기도를 우리 법보선원에서도 봉행을 하고 그리고서 입재(入齋) 때와 회향(廻向) 때에 정말 부처님의 정법을 여러분들에게 설(說)해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러한 삿된 구렁텅이에 빠질 것을 미리 방비하고, 나아가서 일 년 동안을 정말 바른 신심으로 안심하고, 장애 없이 잘 사시는 길을 여러분들에게 열어드리기 위해서 신수기도를 봉행한 것입니다.(처음~18분30초)





(2/3)----------------


'선방에서 무슨 기도를 한가? 기도는 참선하면은 그만이지 무슨 기도를 한가?'

여러분 가운데는 오래전부터서 참선을 하셔서 어떤 것은 방편(方便)이고, 어떠한 것은 정법(正法)인가를 잘 아시는 분들은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어떠한 방편이라도 바른 법을 가지신 분이 쓰면은 그 방편이 바로 정법이 되는 것이고, 아무리 부처님이 설하신 법이라 하더라도 삿된 사람이 쓰면은 사법(邪法)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정의를 가진 사람이 들면은 사람을 살리고, 국가와 민족을 살리고 할 수 있지마는, 도적이 삿된 도적이 그 칼을 가지면은 선한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큰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법(法)도 또한 그러해서 바르게 쓰면은 좋은 법이 되지만, 악한 사람이 잘못 쓰면은 많은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7일 동안 정성스럽게 잘 마쳐서 과거에 여러분들께 조그마한 허물이라도 또는 많은 허물이라도 있으신 분은 이 기도를 통해서 깨끗하게 소멸(消滅)이 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고, 그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서 기도를 하시고 다시 일 년 동안을 정법에 의해서 수행을 잘하실 것을 다짐하셨기 때문에 새로 죄를 짓지 않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도하는 동안 십악참회(十惡懺悔)도 아울러서 계속해서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저 가을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랗게 트인 가을 하늘처럼 그렇게 숭고하고, 청정하고 깨끗한 그러한 마음자리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자리가 앞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단속만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단속해 나가는 법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인 것입니다.


달마스님 『혈맥론(血脈論)』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섭(攝)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 하는 것은 바로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선만 하면은 일체 행(行)이 그 가운데 다 제절로 갖추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대승(大乘)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 것이 대승보살의 과제입니다마는 그 육바라밀이 첫째, 보시(布施)를 할 것, 둘째, 계율(戒律)을 지킬 것, 셋째에 인욕(忍辱)을 할 것, 넷째에 정진(精進)을 할 것, 다섯째에 선정(禪定), 마음을 고요히 할 것, 여섯째, 지혜(智慧)를 닦을 것. 이렇게 육바라밀, 여섯 가지 저 언덕에 건너가는 좋은 법입니다.

그 여섯 가지 중에 무엇이 제일 소중하냐? 전부가 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맨 끝에 있는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입니다.


지혜는 어디로부터 나왔느냐? 참선(參禪)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보시라야 그 보시는 옳은 보시가 되는 것이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계율이라야 그 계율은 참으로 옳은 계율이 되는 것이여.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인욕이라야 그 인욕이 참 바른 인욕이며,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진이라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선정이라야 다 옳은 법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를 했댔자 그것은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못한 것이고, 계율을 지켜도 지혜가 없이 지킨 계율은 천상에는 태어날 수 있지마는 금방 복(福) 다 받으면 다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욕도 지혜 있는 인욕이라야지, 어리석게 억지로 참기만 위주로 해서 한다면 단박 가슴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골치가 아프고, 가슴앓이 속병이 생겨가지고 결국은 병만 쳐주고, 그 억지로 참은 것이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일생 동안을 억지로 참다 보면 나중에 여러 번 참다가 그놈이 축적이 되어가지고 터질 때는 무서운 위력을 내가지고 자기 신세 망치고, 집안을 쑥대밭을 맨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환자가 되어가지고 늙발에 한숨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우리에게 급(急)한 것은 그 지혜가 제일 급한 것입니다.

그 지혜를 얻는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 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지식의 유무(有無)도 상관이 없고,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습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면은 '꼭 절에 와서 그래가지고 조용하니 죽비(竹篦)를 치고 앉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일이 많아서 참선은 못 합니다' 이렇게 노상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참선은 일이 많고 적고 그것도 상관이 없고, 차 속이나 또는 시장 바닥이나 가정이나 또는 절이나 어디서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참선은 앉고 눕고 또는 서서 걸어 다니고 그러한 위의(威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누웠어도 생각은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앉었을 때에도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이 번갈아 드나들고, 걸어 갈 때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만큼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악한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무슨 슬픈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무슨 생각 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일어나는 생각 그놈을,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괴로운 생각, 억울한 생각, 슬픈 생각 그러한 생각이 속에 꽉 차 가지고 그 생각을 없애야만 참선이 될 텐데,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못한다' 이리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아직 참선하는 법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슬픈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무엇이 들어서 그 슬픈 생각을 하는가? 「이뭣고?」

몸이 아파도—'몸이 아파서 공부를 못합니다'—몸이 아픈 줄 아는 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여. 무엇이 그렇게 아픈 줄을 아는가? 그 아픈 줄 아는 생각만 있으면은 그 사람은 참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외롭고 괴롭고 슬프고 노여움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참선을 잘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을 합니다.

슬픈 생각도 없고, 괴로운 생각도 없고, 억울하고 분한 생각도 없는 목석(木石)처럼 그러한 사람은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가지고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이나 갖다 놓을까, 아무 쓸데가 없죠?


그러나 욕하면 썽낼 줄 알고, 신경질도 잘 내고, 슬픔에 가슴이 꽉 차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행복이 무엇인 중을 모르고, 육체적으로 온갖 병이 들어 있고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아가지고 정말 정신과 육체가 한목 병들어서 죽을 길밖에는 없다고 이렇게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일수록에 이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서 바른 스승을 만나가지고 죽을 셈 치고 대들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사람이 훨씬 더 도(道)를 깨닫기가 쉬웁고 좋은 것입니다.

그만한 인생을 전부를 아주 포기할 그러한 막바지에 도달한 그 사람은 한번 이 문에 들어와서 정법을 만났다 하면 다시는 다른 데에 정신을 빼앗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누구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면 될 수 있는 것이고, 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마는 정말 이 몸과 목숨을 다 바치고 다시는 딴 데 한눈을 팔지 아니할 만큼 그만큼 절실한 사람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 점이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할려면은 첫째, 나도 하면, 나도 옳은 법을 배워 가지고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금생에 결정코 깨달을 수가 있다. 내가 지금 울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눈으로 볼 줄도 알고, 괴로워할 줄도 아는 바로 이놈이 나의 불성(佛性)이요, 나의 마음자리다. 이것은 모든 불보살(佛菩薩)의 마음과 조끔도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까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것은 그 법을 바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더라도 열심히 도를 닦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생사(生死)에 윤회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다행히 이 법을 알았으니 이제 어디에 이 몸과 목숨을 바칠 곳이 있는가? 오직 나는 이 한 법을 위해서 이 목숨과 이 몸을 다 바칠 수가 있다. 나는 금생에 결정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굳센 신념(信念)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도 그 신념이 투철하지 못한 분은 이 자리를 기해서 철석(鐵石)같이 그 신념을 가지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그러한 신념을 가지시기를 저는 간곡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 신념이 있은 위에라야 우리의 공부는 바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서 둘째로 필요한 것은 분심(憤心)입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 과거에 부처님과 많은 성현들은 진즉 이 법에 의지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하셔가지고 중생 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찌 그러한 불보살과 성현들과 똑같은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맴돌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분심을 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도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은 분이 나서 집에 와가지고 울면서 숙제를 하고 그래가지고 밤잠을 안 자면서 공부를 해가지고 그다음에 시험 볼 때는 더 잘할려고 발버둥을 치거든, 벌써 아들과 딸을 둘씩, 셋씩, 다섯씩, 여섯씩 나서 키워 가지고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내가 내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만나가지고 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돈, 이웃집은 돈을 잘 벌고 자기는 잘 못 버는 그런 것을 보고는 입을 삐쭉빼쭉하고 시기를 낼 줄 알면서 내가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이 참선에 대해서 그러한 분심을 느낄 줄 모른다면 이것은 가엾기 그지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 참선은 언제나 저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보살님네들, 한 분이 잠을 조끔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려고 애를 쓴 분이 있으면 자기도 따라서 공부를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데에서 반드시 공부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여러분들도 자기의 친구, 이웃, 아는 분들이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을 쪼개서 정진하려고 애쓰는 분이 있으면 그이를 헐고 뜯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샘을 좀 내서 '나도 그 사람에게 지지 않고 더 공부를 잘하리라' 하는 이러한 선의의 경쟁심을 내고, 서로 충고하면서 보다 더 공부에 유익하도록 충고하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18분31초~35분40초)





(3/3)----------------


첫째, 신념. 둘째, 분심. 그리고 셋째에 가서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화두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간절하고 철저한 의심 덩이[疑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선에는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두 가지로 노나서 가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보고, 설교를 많이 듣고 하는 또 다른 또 학식이 있고 그런 사람은 노상 어떠한 문제를 당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따져서 결론을 내려야만 결론을 얻어야만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활구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참선을 다른, 사회의 어떤 수수께끼나 어떠한 문제들과 같이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지을려고 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참선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은 활구참선이 아니라 사구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아무리 따져서 훌륭한 해답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衆生)의 알음알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생의 알음알이는 아무리 좋은 그럴싸한 알음알이라 하더라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 원인이 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참선은 쉬웁게 말해서 무엇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서 많이 속에다가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심지어 불교의 교리까지 다 경전에 있는 말씀까지도 깨끗이 내쏟아 버려야 됩니다. 내쏟아 버려야만 그 마음이 정말 청정(淸淨)해지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으로 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금가루도 눈에 집어넣으면 안질(眼疾) 병이 생기는 것뿐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속에다 넣고 이리저리 중생심으로 그것을 따둑거리고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있는 동안에는 중생의 경지, 중생심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를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러한 사람은 두고두고 육도윤회를 할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해탈(解脫)하고자 하시는 분은 이론적으로 따지는 버릇을 놔야 합니다.


다못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다못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슬픈 그 마음도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이고, 썽내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갈 때 불같이 일어났던 그 썽내는 그 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해탈도로 들어가는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서 그 사람은 차츰차츰 마음이 착해지고 마음이 비워져서, 바로 속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이 가뜩 들어있는 채, 불보살의 경지에 가까와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꾸 버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을 보통 내게 있는 돈과 물질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보시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참보시'가 아닙니다. 참보시에 들어가는 껍데기 보시, 초보적인 보시에 지내지 않은 것입니다.

참보시는 물질적인 것보다도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잘 말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편안함을 얻게 하고,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라도 아는 대로 일러주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발심(發心)할 수 있는 동기가 되도록 해주는 그런 것도 역시 보시가 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보시는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좋은 생각, 나쁜 생각, 일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버릴려고 하는 그 생각 또한 중생의 마음이기 때문에—호수에 물결이 일어나는 물결을 고요하게 만들려면 그 일어나는 물결을 없애려고 손을 대서는 아니 됩니다. 손대면은 다시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모든 물결을 빨리 없애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성현들이 부처님의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에 의지해서 닦고 닦아서 오늘에 전해진 가장 훌륭한 법인 것입니다.

이 법(法), 한 법에 충실히 철저히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을 해 간다면 육바라밀도 그 속에 갖추어 있는 것이고, 팔만대장경을 독파한 읽고 또 읽고 한 그 공덕도 그 속에 바로 갖추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나가지고서도 믿지 아니하고 계속 여러 가지 방편, 크고 작은 낡아빠진 배들을 짊어지고 팔도를 돌아다니고 60, 70년 동안을 그 썩어 낡아진 배를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분이 계시다면은 당장 이 자리에서 그 배를,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놓으십시오. 벗어 놓고 간단한 「이뭣고?」 하나를 터억 마음에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 보십시오.

이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가지의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의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맨들아서 우리는 이 육신으로 대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부처님과 많은 성현과 전강 조실스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단호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7일이라고 하는 기간은 대단히 짧은 기간이지마는 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7일이라고 하는 기간은 대단히 긴 기간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기다릴 때 30분 내지 10분이라고 하는 세월이 얼마나 지루한가를 느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일 년, 이태라고 하는 세월이 얼마나 빠른 것인가를 또 느끼게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고 있는 마음에 따라서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는 것입니다.


7일 동안을 하루같이 성심으로 기도를 잘해서 마쳤습니다. 기도 법사스님께서도 정말 일심으로 기도를 봉행을 하셨고 여기에 동참하신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정말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기도를 잘 봉행을 해서 오늘 회향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소원을 마음속에 간직을 하시고 기도를 하셨건 간에 그 일들이 가장 긴박한 것부터서 차례차례 다 성취되실 것을 저는 다시 한번 빌고 또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이 초아흐레니까 앞으로 6일 후에는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그날도 사시(巳時)에 법회가 열리게 되겠습니다마는, 그날은 작년 10월 15일부터서 시작한 겨울철 결제가 그날 정월 보름날, 90일 마지막 해제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작년 10월 15일에 시작한 백일기도가 또 정월 15일에 또 회향을 하는 날입니다.

또 정월 대보름날은 우리나라 저 신라 때부터서 대보름날에는 그 찰밥, 오곡밥을 해서 천지신명과 조상과 모다 선영들에 다례를 올리는 날이고, 일체 재앙을 그래서 일체 재앙을 소멸을 하고, 소원을 또 성취하기 위한 발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서로 권고해서 법회에 참여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원컨대, 솔바람 불고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밝은 달이 비친 그러한 골에 들어가서 영원히 생사 없는 대해탈도를 증득하는 참선을 하고자 하노라. 이러한 내용에 게송(偈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게송을 들으시고 '아하! 참선을 하려면은 저 심산유곡(深山幽谷)에 그런 데에 들어가야만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신다면은 이 게송의 뜻을 정말 똑바로 아신 것이 되지 못합니다.

시장바닥에서라도, 아들과 손자가 울고 똥을 싸서 뭉게는 그 속에서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심산유곡이 되는 것입니다.


심산유곡이라야만 된다면 산중에서 사는 화전민(火田民)들은 다 도인(道人)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살아도 신념이 없고, 분심이 없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백 년을 두고 산중에서 산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시장바닥에서, 사회 가정에서, 자기 있는 일터에서, 어데서 언제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심산유곡이요, 선방(禪房)이 되는 것입니다.(35분43초~51분56초) (끝)





[법문 내용]


염불 · 독경 · 기도 · 주력, 어느 문(門)이라도 정법(正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편(方便) / 강을 건넜으면 배[방편]는 버려라 / 사교입선(捨敎入禪) / '한 생각' 단속이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 / ‘참을 인(忍)’ 한 생각.


'한 생각' 단속해 나가는 법이 바로 참선(參禪) 공부 /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參禪)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 그 지혜를 바탕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 참선은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지식 유무(有無),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이—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 / 무슨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공부에 몸과 목숨을 다 바칠 만큼 절실해야 한다 / 삼요(三要), 신념, 분심, 의심 /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라.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 빨리 버리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 /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가지의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의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만든다 / 언제 어디서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심산유곡이요, 선방(禪房)이 되는 것.



부처님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한 말씀 한 말씀 다 참된 말씀이고 소중한 말씀이지마는, 그것은 근기(根機)에 따라서 잠깐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하고 바로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古人)이 말씀하신 사교입선(捨敎入禪)입니다. '교(敎)를 버리고서 선(禪)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심결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을 어떻게 잘 단속을 해 나가느냐? 하는 그 문제야말로 우리의 무량겁을 두고 윤회(輪廻)해 내려오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가깝게 봐서 일생 동안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불행하게 살 수도 있는 그러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 『혈맥론(血脈論)』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섭(攝)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 하는 것은 바로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선만 하면은 일체 행(行)이 그 가운데 다 제절로 갖추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육바라밀(六波羅蜜), 여섯 가지 중에 무엇이 제일 소중하냐? 전부가 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맨 끝에 있는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입니다. 지혜는 어디로부터 나왔느냐? 참선(參禪)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보시라야 그 보시는 옳은 보시가 되는 것이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계율이라야 그 계율은 참으로 옳은 계율이 되는 것이여.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인욕이라야 그 인욕이 참 바른 인욕이며,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진이라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선정이라야 다 옳은 법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우리에게 급(急)한 것은 그 지혜가 제일 급한 것입니다. 그 지혜를 얻는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 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지식의 유무(有無)도 상관이 없고,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습니다.


참선은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지식 유무(有無),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이—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무슨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에 몸과 목숨을 다 바칠 만큼 절실해야 합니다.


이 공부를 할려면은 첫째, 나도 하면, 나도 옳은 법을 배워 가지고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금생에 결정코 깨달을 수가 있다. 나는 금생에 결정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굳센 신념(信念)을 가져야 됩니다.


참선은 쉬웁게 말해서 무엇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서 많이 속에다가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심지어 불교의 교리까지 다 경전에 있는 말씀까지도 깨끗이 내쏟아 버려야 됩니다. 내쏟아 버려야만 그 마음이 정말 청정(淸淨)해지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으로 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가지의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의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맨들아서 우리는 이 육신으로 대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부처님과 많은 성현과 전강 조실스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단호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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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01~200/(126~150)2020. 12. 18. 09:21

 

 

((No.145))—1981년(신유년) 하안거 결제(81.05.18) (48분)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12분.

(1/3)----------------

 

창출무생일곡가(唱出無生一曲歌)헌데  대천사계용금파(大千沙界涌金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창출무생일곡가(唱出無生一曲歌)하니, 무생곡(無生曲) 한 곡을 불러내니. 한 곡에 무생곡, 생사 없는 도리를 읊은 무생곡을 한바탕 읊으니,

대천사계용금파(大千沙界涌金波)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금물결이 출렁이는구나.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아름다운 꽃이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다. 흰 해오라비가 논에 내리니 천 점에 눈송이더라.

 

때는 바야흐로 첫 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산천(山川)에 모든 나무에 잎은 피어서 나날이 푸르러 가고 있고, 그 푸른 나뭇가지에 노란 꾀꼬리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저 가지에서 이 가지로 노래를 부르며 날아가는데, 그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떠억 올라앉으니까 그게 바로 한 가지에 노란 꽃송이더라.

하얀 해오라비, 백로(白鷺)가 논에 내려앉으니까 천 송이의 눈이 내린 거와 같다.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고 하얀 백로(白鷺) 떼가 논에 내려앉는 거, 이것이 바로 무생곡(無生曲)을 읊어서 대천세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금물결이 일어나는 도리입니다.

 

 

오늘은 신유년(辛酉年) 4월 15일, 하안거(夏安居) 결제(結制)날입니다. 해마다 4월 15일이 되면 여름 결제를 합니다마는, 과연 그 결제가 연례행사(年例行事)로 끝나 버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4월 15일이 되면 결제(結制)하고 7월 15일이 되면 해제(解制)를 하고, 하루하루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모든 중생들이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바로 죽음의 문을 향해서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이여.

해는 어제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오늘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져 가지만, 그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 그 24시간 동안이 다름 아닌 우리가 죽음에 문을 향해서 하루씩을 다가서 가는 것이다.

 

물론 참나를 깨달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契合)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화엄경(華嚴經)』에 도리(道理)요 부처님 열반(涅槃)의 경지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형장(死刑場)을 향해서 하루를 다가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어찌 하루를 그럭저럭 한만히 지낼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하루 죽도록 정진(精進)을 하고 해가 넘어가면 다리를 뻗고 통곡(痛哭)을 한 분도 계시고, 그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졸음을 쫓고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쓴 스님도 계시고, 저녁에 잘 때에는 나무를 동글동글하니 깎어서 둥글둥글한 목침(木枕)을 비고 자다가 삐끗하면 머리가 방바닥에 툭! 내려져서 깜짝 놀랜 바람에 눈을 떠 가지고 다시 또 정진을 하고, 밤에 잠을 안 자기 위해서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밤새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저 산봉우리에서 이 산봉(山峰)으로 걸어다니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 스님도 계셨습니다.

 

오늘부터 90일간, 석 달 동안 하안거(夏安居)를 하는데, 아직 요새는 추웁도 덥지도 않고 참 좋지만, 불과 한두 달이 지내면 오뉴월 삼복(三伏)이 돌아와서 앉아 있으면 오금쟁이에 땀이 줄줄줄줄 흘르고 땀띠가 솟고, 등어리에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소금물이 줄줄 흐르고, 그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위가 돌아옵니다마는,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이요, 금생(今生)에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면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축생(畜生)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 무간지옥에 떨어졌을 때를 생각해.

 

무간지옥에 그 펄펄 끓는 가마솥에 하루에 만 번 들어갔다 만 번 나오고, 구리쇠 물을 먹고, 무거운 돌로 눌러서 죽이기도 하고, 톱으로 위에서 밑으로 썰기도 하고, 칼이 삐쭉삐쭉한 산에 굴림을 당하기도하고, 말로써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지옥고(地獄苦), 그것이 금생에 몸뚱이 받았을 때 도(道)를 닦지 아니하고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하면 그 지옥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한 지옥고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단 한 시간도, 단 일 분도, 일 초도 등한(等閑)히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 방일을 하지 않는다.

 

방일(放逸)이라 하는 것은 '놓아 지내지 않는다' '해태(懈怠)를 하지 않는다'

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하면 꼭 송곳으로 무릎을 찔러야만 하느냐, 꼭 똥글똥글한 목침을 비어야만 하느냐, 꼭 해가 넘어가면 다리를 뻗고 울어야만 하느냐, 꼭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밤새 왔다갔다해야만 하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정진(精進)이더라.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는 것인고?

밥을 먹을 때에도 ‘이 무엇고?’ 세수를 할 때에도 ‘이 무엇고?’ 앉았을 때에도 ‘이 무엇고?’ 섰을 때에도 ‘이 무엇고?’ 눈으로 파랗고 노란 색상을 볼 때에도 ‘이 무엇고?’ 다맛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것 그것이 바로 방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묘(妙)한 이치가 떠오르고 교리와 부합되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법견(法見) 불견(佛見)에 떨어지면 그 찰나에 벌써 그것은 마섭(魔攝)이 되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방일(放逸)이다 그 말이여. 한 생각 삐끗해 가지고 벌써 몇 겁(劫)의 과보(果報)가 거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은 제일 두려워할 것이 '한 생각'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생각. 그 한 생각이 삐끗하면 바로 그 삐끗한 그 자리가 천만 길 떨어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해야 하느냐? 여기에 불방일이 있고, 가행정진이 있고, 용맹정진이 있는 것이여.

 

밤에 잠을 덜 자고 한다고 애를 쓰면서 낮에는 그럭저럭 잡담(雜談)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잠을 안 자고 애를 쓰면서 낮에는 온통 입선(入禪) 시간이고 할 것 없이 꾸벅꾸벅 맑은 정신은 하나도 없이 졸기만 하고, 목에 묵언패(默言牌)는 찼으면서도 온갖 의사 표시는 손으로 몸짓으로 다하고, 온갖 시비(是非)에 다 참견을 하고 '니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시비를 가리고, 이렇게 수행을 해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 까지 정진을 한다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출가한 스님네, 특히 선방(禪房)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하는 분상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에서 백까지 오직 해야 할 일은 이 한 생각 단속(團束)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채찍질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이여.

오직 그 한 일 충실하면 그 가운데 온갖 계율(戒律)도 그 가운데 다 지켜질 것이고, 육바라밀(六波羅蜜)도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고,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그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지혜(智慧)와 모든 복(福)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원적(根源的)인 일 하나에 충실하면 지엽적(枝葉的)인 것은 제절로 그 가운데에 다 따라온 것이요, 다 갖추어진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방편(方便)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지엽적(枝葉的)인 것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자기 딴은 애를 써서 한다고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뿌리는 썩어간 줄 모르고 저 잔가지나 이파리에 매달려 가지고 그러고 있다 그 말이여.(처음~18분22초)

 

 

 

 

(2/3)----------------

 

올 여름 결제에 여러 보살님네들이 방부를 들이셨는데, 해마다 결제 때는 말씀을 드린 바지만, 편안한 가정을 놔두고 절에 오셔서 새벽 3시에면 일어나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자고 싶어도 마음대로 자지 못하고, 눕고 싶어도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고, 그러한 대단히 구속(拘束)된 생활을 자진해서 선택을 하셔 가지고 절에 와서 안거를 하시는데 그만한 결심, 그만한 신심을 가지고 고생을 자초(自招)해서 들어오셨다면 정말 단 일 분도 일 초도 잡담할 시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니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밥이 어떻고’, ‘이 스님네가 어떻고 저 스님네가 어떻고’, ‘집안이 어떻고 뭐 손자가 어떻고 며느리가 어떻고’, 그러한 시비를 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환갑 잔치에 무슨 놀러가셨다던지, 어디 무슨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 관광을 가셨다던지, 놀러가셨다면은 잡담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저 뭐 춤도 추고 그저 그러시겠지만, 여기 절에 참선을 하시기 위해서 이 결제(結制)에 오셨다면 잡담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고, 시비를 할 겨를이 없는 것이여.

 

겨우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를 치고 앉었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망상(妄想)을 끓이다가, 방선(放禪) 죽비(竹篦)만 치면 그저 지대방에 모여서 그저 이러쿵저러쿵 잡담하고, 심한 분은 큰방에 앉아서까지 그저 잡담을 하고, 둘씩 셋씩 넷씩 모여서 잡담을 하고 무슨 남의 시비를 하고. 여러 신도님이 그러신다는 게 아니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지난 겨울, 저 지난 여름, 이 참, 해를 거듭할수록 이 선방에 오셔서 공부하신 보살님네들이 점점 모다 규칙을 잘 지키시고 정진을 잘하시고 해서 우리 용화사 선원은 참 잘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결제 때는 으레이 더 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랐다고 이렇게 이 경책(警策)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잡담도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저런 말을 한다' 하고 속으로 그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지난철에 또는 저지난철에 스스로 ‘내가 얼마만큼 정진을 열심히 했던가?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히 단속을 하고 정말 알뜰하게 공부를 했던가?’ 반성(反省)을 해 보시고, ‘금년 여름은 정말 법(法)다웁게, 간절하게, 알차게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댁에서는 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있고, 누구가 이래라 저래라 말을 들으실 분들이 아니지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으니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공부를 열심히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기에 오셔서 즉접 참선을 못하시고 댁에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 설사 절에 와서 하시지는 못하더라도 댁에서 하신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신 분일수록에 더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해서, 일하시면서 손자를 보면서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누워서도 ‘이 뭣고?’, 어디 출행(出行)을 하실 때 차를 타면서도 ‘이 뭣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이 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걸어다닐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말을 아니할 때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이 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 다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바로 돌이켜서 '이 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숨을 조용하게 깊이 들어마십니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丹田),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짐을 느끼면서 들어마셔. 다 들어마셨으면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보시라 그 말이여.

물론 여러 철을 공부를 해서 이러한 자세한 말씀을 하지 안 해도 잘하신 분이 계시겠지만, 처음으로 선방에 나오신 분, 또는 처음으로 들으신 분을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만 잘 들면 그만이지 무슨 호흡(呼吸)은, 그까짓 거 호흡하다 보면 화두가 헷갈리는데 호흡은 할 것이 뭐 있느냐'

물론 화두만 여법(如法)하게 잘 들기만 한다면 호흡은 그까짓 거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이 화두를 드는데 있어서 ‘간절(懇切)하게 의심(疑心)을 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니까, ‘간절하다’고 하는 그 뜻을 잘못 이해해 가지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온전히 이 이마에다가 화두를 모아 가지고 그 이마로 화두를 든다 이 말이여. 너무 힘을 써 가지고 억지로 화두를 막 들고서 밀고 나간다.

 

그렇게 한즉슨은 기운이 전부 머리로 올라가게 되고, 따라서 몸안에 있는 피도 머리로 모이게 되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골이 아파지고 목이 뻣뻣해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 말이여.

이러한 병이 바로 상기병(上氣病)이라 하는 것인데, 어리석게 공부를 하면 이러한 약(藥)으로 곤칠 수 없는 이러한 고약한 병이 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롭게 공부를 해라.

 

지혜롭게 공부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해서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고, 생각이 안정이 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기운은 머리로 올라가지 않고 저 배꼽 밑에 단전으로 기운이 다 내려가게, 그러한 상태에서 화두(話頭)를 들어야 머리도 개운하고 혈액순환이 잘되니까 몸안에 노폐물도 쌓이지 아니하고 밖으로 다 배출이 되고,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가행정진(加行精進)한다 해도 지치지를 아니하고, 부작용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소화도 잘되고, 공부가 지장이 없이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하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모르고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다가 까딱하면은 이 건강이 악화가 되어 가지고 엉뚱한 병이 생기게 되면, 그때에사 ‘어떻게 해야 이 병을 고칠 수가 있는가?’ 이렇게 호소를 해 옵니다마는, 물론 병을 못 고치는 것은 아니로되 상당히 힘이 들고, 이런 상기병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진을 정진답게 해 보지를 못하고 고생을 하고 있는 스님네도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반드시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스승을 잘 만나지 못해 가지고 잘못 공부를 하면 공부는 성취도 되기도 전에 병 먼저 나게 되고, 까딱하면 삿된 경계에 떨어진다던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을 스스로 깨달랐다고 착각(錯覺)을 해서 그 착각 속에 집착을 해가지고 일생을 허송세월하고, 그러한 사람이 구변(口辯)이 좋다던지 학식(學識)이 많다던지 그렇게 되면 삿된 소견(所見)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리켜서 다른 사람까지도 삿된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죄가 얼마나 되며,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이 공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 남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은 마왕(魔王)이고, 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 법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마왕(魔王)에 백성(百姓)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혈맥론』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름 석 달 동안이 하루와 같이, 처음 마음먹은 그 결심이 날이 거듭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면서 더욱 간절해지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히 공부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동시에 백일기도(百日祈禱) 입재(入齋)일입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집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시고 선방에 방부 들인 선객(禪客)이라고 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사신다면, 복(福)과 지혜(智慧)를 겸해서 닦는 것이 되어서,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성인 가운데 성현(聖賢)이신 부처님께서는 이 복(福)과 지혜(智慧), 두 가지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대성현(大聖賢)입니다. 그래서 삼귀의례(三歸依禮)를 할 때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두 가지가 족(足)하신 부처님께 귀의(歸依)합니다' 그 두 가지가 바로 복과 지혜여. 복과 지혜를 다 같이 갖추신 대성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우리도 공부를 할 때, 지혜만을 닦을 것이 아니라 복을 아울러서, 지혜와 복을 겸해서 쌍(雙)으로 닦으면 우리는 복과 지혜를 구족한 성현(聖賢)이 되는 것입니다.(18분23초~35분20초)

 

 

 

 

(3/3)----------------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야  산중채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인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심심송라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 세상에 명예와 권리와 재산, 그러한 세간(世間)에 공명(功名)을 원하지를 아니하고 오직 산에, 산중 청산(靑山)만을 바래가지고 산중(山中)에 살기를 바래서,

산중채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인가. 산중에서 약(藥)을 캐기 그 몇 해나 되었던가. 산중에 산다니까 약도 캐서 먹어야 하고 솔이파리도 썰어서 먹어야 하고 그러니까, 산중(山中)에서 약(藥)을 캐서 살기를 몇 해 동안이나 되었던가.

 

심심송라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가 자욱한 속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라. 한 곡조 지초 노래, 지초(芝草) 캐는 노래 한 곡조(曲調)에 일만경계(一萬境界)가 한가하더라.

 

이 ‘세상을 버리고 산중에서 약을 캔다’ 이 말은, 약(藥)이라 하는 것은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약이거든. 장생불사. 어떤 것이 장생불사인가?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 없는 도리 깨달른 것,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이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여.

이것이 바로 영원히 죽지 않는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參禪)하는 것이 장생불사하기 위해서 약(藥)을 캐 먹는 거와 같은 것이다 그 말이여.

 

'이 뭣고?'

 

솔바람 불고 안개가 자욱한 그 깊고 깊은 산중(山中). 지리산이나 태백산, 오대산이나 설악산, 이런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야만 이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회지(都會地) 자동차 소리가 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온갖 소음 잡음이 나고, 공해로 인해서 공장에서 나오는 이 시커먼 연기가 자욱한 그러한 곳이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솔바람 불고 그 안개가 자욱한 깊은 산중이나 조끔도 다른 것이 없는 것이여.

 

아무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앉었어도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드는 참선(參禪)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서, 산중 속에서 물소리 바람소리가 귀에 듣기 싫고 그 속에 앉어서 아들 생각 손자 생각, 명예 권리 재산 생각한다면 그 산중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느냐, 화두를 들지 아니했느냐에 따라서 지옥(地獄)이 천당(天堂)이 되기도 하고, 천당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最上乘)에 있어서 이 세간(世間)을 보는 눈이다 그 말이여.

 

이 최상승(最上乘)을 닦은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은 육도(六道)를 자기가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옥을 천당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당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당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지옥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이 한 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육바라밀(六波羅蜜) · 십중대계(十重大戒) · 삼천위의(三千威儀) · 팔만세행(八萬細行) 일체법(一切法), 일체 좋은 법을 한 생각 돌이켜 닦는 데에서 다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다. 한 곡조 지초(芝草)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다.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 한 번 드는 곳에 무량겁(無量劫) 죄(罪)가 거기에서 다 녹아져.

 

인간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없고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걱정, 재산에 대한 걱정, 남편에 대한 걱정, 자식에 대한 걱정, 딸에 대한 걱정, 외손자에 대한 걱정, 그 많은 걱정 근심 일체장애(一切障礙)가 어디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냐 하면, 과거(過去)에 우리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다 생긴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업을 녹이지 아니하고 잘살기를 아무리 바래고 아무리 재앙(災殃)이 없기를 바랜다고 해서 그것이 잘 살아진 것도 아니고 그 재앙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 재앙을 없애고 내 소원을 성취하려면 내가 지은 업(業)을 소멸(消滅)하는 것이 가장 첩경(捷徑)이다.

 

그 업을 어떻게 소멸하느냐? '이 무엇고?'

 

기도(祈禱)를 하는 것도 대단히 좋은 방법이죠.

기도도 그 이치를 분석을 해 보면, 일심(一心)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른다던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른다던지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부른다던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부른다던지, 일심(一心)으로 부름으로 해서 내 마음이 청정(淸淨)해져서 부처님 마음과 같이 깨끗해질 때 그때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는데, 어째서 소원을 성취하냐 하면은 내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져 있는 업(業)이 녹아지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 말이여.

 

무슨 병이 있건, 무슨 근심 걱정이 있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른다든지, 고왕경(高王經)을 독송(讀誦)한다든지 반드시 소원을 성취합니다.

아주 목숨 바쳐서 죽을 것을 각오를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중풍과 같은 그러한 무서운 병도 낫는 것입니다. 꼭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한 사람도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것을 열심히 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어.

 

'이 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功德)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육백만 번 '관세음보살' 부르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것은 최상승법이기 때문에, 가장 빨리 그리고 근원(根源)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디 시간을 아껴서 정말 무상(無常)을 뼛속 깊이 깨달라서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35분24초~47분46초) (끝)

 

 

 

 

[법문 내용]

 

(게송)창출무생일곡가~ /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바로 죽음의 문을 향해서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 / 무서운 지옥고(地獄苦)를 생각해 등한히 시간 보내지 말아라 / 정말 훌륭한 정진은 불방일(不放逸), 불방일은 바로 '한 생각' 단속해 의단독로 하도록 하는 것.

 

방부 들인 보살님네들도 간절하게, 알차게 공부하시라 / 단전호흡은 상기병 예방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 /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아야.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 /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바로 그 자리가 깊은 산중, 천당 /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 / 소원성취는 내가 지은 업(業)을 소멸(消滅)하는 것이 가장 첩경(捷徑), 업을 어떻게 소멸하느냐? '이 무엇고?' /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참나를 깨달아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 없는 도리에 계합(契合)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부처님 열반(涅槃)의 경지이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형장(死刑場)을 향해서 하루하루 다가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루를 그럭저럭 한만(閑漫)히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불방일(不放逸)이라 하는 것은, ‘놓아 지내지 않는다’ ‘해태(懈怠)하지 않는다’

오직 '한 생각' 단속해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그것이 바로 방일하지 않는 것[不放逸]이요, 가장 훌륭한 정진(精進)인 것입니다.

 

아무리 묘(妙)한 이치가 떠오르고 교리와 부합되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법견(法見) 불견(佛見)에 떨어지면 그 찰나에 벌써 그것은 마섭(魔攝)이 되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방일(放逸)이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제일 두려워해야 할 것이 그 한 생각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 한 생각이 삐끗하면 바로 그 삐끗한 그 자리가 천만 길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해야 하느냐?’ 여기에 불방일이 있고 가행정진과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 남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은 마왕(魔王)이고, 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 법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마왕(魔王)에 백성(百姓)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말씀인 것입니다.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 없는 도리 깨달른 것,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 이것이 영생(永生)하는 법(法)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이여.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느냐, 화두를 들지 아니했느냐에 따라서 지옥(地獄)이 천당(天堂)이 되기도 하고, 천당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最上乘)에 있어서 이 세간(世間)을 보는 눈이다.

이 최상승(最上乘)을 닦은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가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옥을 천당으로 만들 수도 있고 천당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당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지옥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달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이 한 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여.

육바라밀(六波羅蜜) · 십중대계(十重大戒) · 삼천위의(三千威儀) · 팔만세행(八萬細行) 일체법(一切法), 일체 좋은 법을 한 생각 돌이켜 닦는 데에서 다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도(祈禱)를 해서 소원성취하는 까닭은, 일심(一心)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름으로 해서 내 마음이 청정(淸淨)해져서 부처님 마음과 같이 깨끗해질 때,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져 있는 업(業)이 녹아지기 때문에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하물며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것을 열심히 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어.

 

'이 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功德)에 해당이 된다. 오히려 육백만 번 '관세음보살' 부르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殊勝)하다.

이것은 최상승법이기 때문에, 가장 빨리 그리고 근원(根源)에서 다스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디 시간을 아껴서 정말 무상(無常)을 뼛속 깊이 깨달라서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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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101~200/(126~150)2020. 12. 15. 11:09

 

 

((No.137))—1981년(신유년) 신수기도 입재(81.02.07) (용137) (39분)

(1) 약 21분. (2) 약 18분.

(1)------------------

 

동풍취일과(東風吹一過)한디  화란만계홍(花爛滿溪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출백운외(山出白雲外)한디  송월만창시(松月滿窓時)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동풍(東風)이 취일과(吹一過)하니  화란만계홍(花爛滿溪紅)이로구나.

봄바람이 한번 불어 지내가니 꽃이 난만(爛漫)히 피어서 시내에 가득히 붉구나.

 

산출백운외(山出白雲外)하니 송월(松月)이 만창시(滿窓時)로다.

산이 백운(白雲) 밖에 우뚝 솟으니, 솔 달이 창(窓)에 가득한 때로다.

 

주장자(柱杖子)를 들어서 여러분께 보이고 그 주장자로 법상(法床)을 한번 쳤습니다. 그리고서 이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주장자(柱杖子)를 들어 보이신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범부(凡夫)는 그 주장자의 겉모양을 보고, 도인(道人)은 그 마음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도(道)를 닦지 아니하고 참선(參禪)이 무엇인 중도 모르고 참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주장자를 들어서 법상을 칠 때에, '어째서 저 주장자는 왜 들어서 보이며 또 주장자로 법상을 치는 것이 무엇인가? 저 중이 설법(說法)을 할 때마다 주장자를 떠억 들어서 보이고 그 주장자로 법상을 쿵! 하고 치는데 저게 무슨 짓인가?'

다맛 주장자를—들어 보이는 그 주장자를 볼 뿐이고, 주장자로 법상을 치는 그 소리만을 들었을 뿐인 것입니다.

 

'어째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주장자로 법상을 쳤을까?'

이 도리는 조실 스님의 법문에서는 '도인은 그 주장자를 들어 보는... 주장자를 보는 그놈을 보고, 주장자로 법상을 치는 그 소리를 듣는 놈을, 들을 줄 아는 놈을 본다' 하셨습니다.

 

주장자를 눈을 통해서 보는 놈, 그놈을 과연 어떻게 보며, 주장자로 법상을 치는 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그 마음을 어떻게 다시 볼 것인가?

오직 화두(話頭), 공안(公案), '이 무엇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중생의 사량분별심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자기의 화두를 관조(觀照)할 때에 자기의 면목(面目)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신유년(辛酉年)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身數祈禱) 입재일(入齋日)을 당해서 사부대중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은 이 신수기도 입재에 동참(同參)함으로써 마음속에 크고 작은 간절한 소원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동참을 하셨을 것입니다.

 

과거에 한량없는 겁(劫)을 통해서 우리가 지어온 업(業)으로 인해서, 또는 원력(願力)으로 인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났습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서 무엇인가 소원(所願)이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소원이 없다고 하면 그 인간은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거나 희망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람 있게 살고자 하고 소망이... 의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소원이 부자가 되는 소원이건, 좋은 배필을 만나는 소원이건, 명예와 권리를 구하는 소원이건, 일생 동안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기를 바래는 소원이건 또는 그러한 유루(有漏)에, 인간 오욕락(五欲樂)에 관계되는 소원을 벗어난 넘어선 무루지혜(無漏智慧)를 얻고자 하는 인간에 지극히 높은 고상한 소원이건 간에, 인간으로서 반드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려면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두 가지 중 어느 하나건 또는 두 가지 다 소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조끔도 잘못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반드시 그것이 갖추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법(佛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무루복(無漏福),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대지혜(大智慧)를 얻는 그러한 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인간에 오욕락(五欲樂)이—재산이나 이성이나 명예 권리나 편안하게 사는 거, 오직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을 바래고 그것만을 얻기 위해서 일생 동안을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그 원을 다 성취하지도 못한 채 한(恨)을 품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행히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한 무루복(유루복)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르지 아니하고 '참나'를 깨달라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있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입니다. 일단 최상승법에 눈을 뜨고 그것을 믿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무루복은 그 가운데 갖추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어서 전강 조실스님께서는 매년 정월 초삼일부터 아흐레까지 7일 동안을 특별히 신수기도를 봉행(奉行)하도록 준례를 만드셨습니다.

일 년 동안을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관재구설(官災口舌)과 삼재팔난(三災八難)이 다 소멸(消滅)이 되고, 동서사방에 출입왕래(出入往來)하는데 항상 길(吉)한 일만을 만나고, 흉한 일은 멀리해서 우리가 하고자 한 모든 일이 뜻대로 되도록 간절한 소망으로 기도(祈禱)를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기도를 원만히 성취할 것인가?

그 기도를 원만히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원하는 대로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흉한 일을 원하면 흉한 일이 다가오고, 슬픈 일을 원하면 슬픈 일이 다가오고, 기쁘고 길한 일을 원하면 반드시 기쁘고 길한 일이 자기에게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죄 많은 중생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그러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바로 비로자나,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일부분(一部分)인 것입니다. 우리 몸도 법신불(法身佛)이요, 보신불(報身佛)이요, 화신불(化身佛)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이 몸 이대로 청정한 비로자나 법신불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면 여러분 가운데에는, ‘우리는 죄(罪) 많은 업(業)에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어찌 우리 몸이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이겠는가?’

이해가 안 되실는지 모르지만,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청정법신불, 비로자나(毘盧遮那)부처님인 것입니다.

 

푸른 산, 흐르는 물, 우는 새, 날으는 구름, 하늘에 태양과 달과 별, 지상에 길가에 굴르는 조그만한 잡석(雜石)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몸뚱이 아닌 것이 없거늘, 하물며 만물(萬物)에 영장(靈長)인 우리의 몸이 부처님 몸이 아닐 까닭이 없습니다.

 

다맛 우리의 믿음이 바르고 철저하지를 못하고 참나에 눈을 뜨지 못해서 우리가 스스로 인식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분명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고대로 다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우리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말은 부처님의 설법(說法)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일은 반드시 성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일 년에, 신년(新年) 초(初)에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고 간절히 소망하는데 있어서 목적을 소원을 달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주 비근한 한 예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여학교 학생들이 몇 사람이 친구를 삼았습니다. 일곱 명이, 아주 다정한 일곱 명이 회원을 맨들아 가지고 아주 다정하게 놀고, 같이 공부도 하고, 같이 어디 등산도 가고, 특히 생일날에는 서로 그 친구의 생일 집에 모여서 파티를 열고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아주 집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 어머니는 바느질 품삯을 팔아서 그 자기 딸에게 의복이며 소지품이며 학용품이며 모든 것을 어떠한 부잣집 딸 못지않게 아주 잘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그 애가 굉장히 부잣집 딸인 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본인도 친구들에게 자기집이 대단히 큰 부자인 것처럼 그렇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어느 날 그 아이의 생일날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집에서 친구들을 초청을 해가지고 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날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생일날이 돌아오기 일주일 전부터서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고민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생일날에 그 다른 여섯 명의 친구들이 자기집에 오면 자기집 가난한 것이 폭로가 될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전부터서 고민을 하다가 무슨 생각을 먹었느냐 하면 '우리집이 생일날 전날 불이 나서 다 타버렸으면' 이렇게 원을 세웠습니다. ‘불이 나서 없어져 버리면 친구들이 와서 볼 수가 없고, 우리집 가난한 것이 애들에게 폭로가 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집이 불이 나서 홀딱 타 버렸으면’ 이러한 생각을 밤낮으로 간절하게 간절하게 축원을 했습니다.

마치 생일 전날 애들은, '내일이 너의 생일이다. 너희 집에 갈 테니 맛있는 것 장만해서 우리를 기쁘게 먹고 놀게 해 달라'고 모다 참새처럼 모다 뛰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처음~21분5초)

 

 

 

 

(2)------------------

 

생일날 전날 저녁에 불이 나가지고—그 어머니는 떡을 찌고 모다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불을 피우고 하다가 그 불이 번져서 그 집이 불이 났습니다. 타 가지고 오두막집이 홀랑 타 버렸습니다. 그 어머니는 펄펄 뛰고 울었지만 그 딸은 속으로 너무너무 흡족해 했습니다.

 

이러한 어린 소녀에, 철부지 어린 소녀에 간절한 생각, 터무니없는 생각도 간절하게 바래는 데에서 그 원하는 대로 된 것을 보면, 정말 우리가 바른 원(願)을 세우고 간절히 원할 때에 소원을 성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칠 일 동안 여러분들 가장 중요한 원을 하나씩 세우고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하시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히 소원을 할 수가 있으며,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겠는가?

 

간절(懇切)하다고 하는 내용, 간절히 하는 방법,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체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이 오직 청정(淸淨)한 마음, 간절한 마음.

마음을 비워야만 마음이 청정하고, 마음이 청정한 그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이 무엇고?’

 

우리는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쓸데없는 생각, 쓸데 있는 생각,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부질없는 생각, 무슨 생각이 되었건 항시 '한 생각'은 일어나 있기 마련인데,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 무엇고?'

‘이 무엇고?’로 돌아옴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은 청정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아 놓은 사람이라야 이러한 기도 때에 정말 간절히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고, 설사 이런 신수기도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평상시에 그렇게 마음을 닦아 놓은 사람은 생활 속에 무엇인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즉각 즉각 그 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러한 일을 즉접 경험하고 확실히 그렇다고 하는 것을 여지없이 믿고 알고 계신분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우리의 원(願), 우리의 소원은 그 사람의 얼마만큼 간절하며, 얼마만큼 그 마음이 청정한가에 따라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원이 있어도 간절하지 못하고, 설사 간절하다 하더라도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그 원이 이루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 그것은 오직 간절(懇切)하는 것이고 그 마음이 청정(淸淨)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용화선원은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선양(宣揚)하는 정법도량(正法道場)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월 초에 일주일간 신수기도를 봉행하게 법을 만드신 조실스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복(福)과 혜(慧), 두 가지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복만 있고 혜가 없어도 안 되고, 혜만 있고 복이 없어도 아니된 것입니다.

혜(慧)가 밝아서 도인(道人)이 되어도 복이 없으면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떠한 조실스님이 대도를 성취해서 큰 도인(道人)이지만, 전생부터서 너무너무 복을 닦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 도인을 믿고 그 도인에게 법(法)을 배우러 제방(諸方)에서 많은 제자들, 선객(禪客)들이 모였지만 식량이 없고 그 선원(禪院)을 운영해 나갈 만한 재정이 없어서 많은 선객들을 수용을 못했던 것입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그 선원을 운영해 나갈 만한 재정이 없어서 왔다가는 다 가고 왔다가는 다 가고, 단 열 사람도 지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福)을 닦지 아니하고 혜(慧)만을 닦으면은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세속(世俗)에서 사는 사람 가운데에도 전생에 지혜(智慧)를 닦아서 머리는 천재이지만, 그렇게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지만 복(福)을 전생에 닦아 놓지 않기 때문에 너무너무 가난에 쪼들러서 자기의 그 유능한 두뇌와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평생을 가난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러한 사람들을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에 여러분 이웃에서 그러한 사람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福)을 닦아 놓지 아니하고 오직 지식 지혜만 닦은 까닭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혜(智慧)는 닦지 아니하고 복(福)만을 닦아 놓은 사람은 머리는 바보이면서,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어떻게 된 셈인지 돈은 많아 가지고 재산은 아주 불꽃 일어나듯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산은 많지마는 머리는 돌대가리여, 바보여.

부모덕에 돈은 많고 좋은 옷은 입고 그렇지만 머리가 나빠서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한 그러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福)만을 닦아서 갖추었지 지혜를 닦지 아니한 결과인 것입니다.

 

복도 필요하고 지혜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도 닦으면서도 복을 닦아야만 복과 지혜를 다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우주법계(宇宙法界)에서 최고에 지혜(智慧)를 성취하시고, 최고에 복(福)을 성취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복과 지혜를 갖추신, 두 가지를 원만(圓滿)히 구족(具足)하신 성현(聖賢)이다. 그래서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이다. 양족, '두 양(兩)'자, '족할 족(足)'자. 두 가지를 원만히 족하게 구족하신 성현이신 부처님이라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복과 지혜를 원만히 갖추신 대성현이신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제자이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 지혜와 부처님의 그 복을 본받아서 우리도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아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복혜쌍수(福慧雙修).

 

그동안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듣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대지혜(大智慧)를 성취하고, 또 대복(大福)을 성취하기 위해서 또 이렇게 신수기도를 봉행하고, 보시를...

그 복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는 보시(布施)를 닦아야 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보시가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보시는 바로 희사(喜捨)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보시, 정신적인 보시, 법보시(法布施),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간탐심(慳貪心), 원망(怨望)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도 다 버려 버리는 이것도 또한 희사이고,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을 남에게 희사(喜捨)하는 것도 보시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온갖 것을 다 깨끗이 버려 버리는 것도 하나의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주어 가지고 정법(正法)을 믿게 하는 거, 이것도 보시요 희사인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를 열심히 수행을 해서 금년 일 년 동안 여러분의 모든 재앙이 다 소멸(消滅)이 되고,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소원(所願)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반드시 소원이 성취되실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비록 천만산 구름처럼 구름 일어나듯 그렇게 많은 말을 한다 하더라도, 해천명월(海天明月)은 본무언(本無言)이니라, 저 한없는 바다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는 법이다.

 

새해 신유년(辛酉年)은 여러분의 소원성취(所願成就)하는 해입니다.

그 소원이 틀림없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한마디로 말해서 여러분 각기 마음보를 고쳐야 합니다.

 

'내가 왜 마음이 어때서 나보고 마음보를 고치라고 하느냐?'

그 마음보만 하나 탁! 고쳐 버리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무엇이 나뻐서 그래?' 내 마음이 좋다고 하는 고 마음보가 꼭 고쳐야 할 마음보인 것입니다.

 

조용히 가슴에다 손을 대고 정말 자기의 마음을 반성(反省)을 하고 참회(懺悔)를 하십시오.

남편과의 관계, 시부모와의 관계, 자식 며느리와의 관계, 형제간과의 관계, 일가친척 이웃과의 관계, 상관과 부하의 관계, 모든 관계에 있어서 '나는 잘하고 저 사람은 못하고, 나는 잘못이 없는데 저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다' 그 생각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이 마음보가 좋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을 바다와 같이 넓게 깊게, 허공과 같이 높고 넓게 크게 그리고 맑게 가진다면, 내가 옳고 저 사람이 그르고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벌써 자기 마음이 깨끗지 못한 증거인 것입니다.

'새해에는 마음보 고치는 해다. 마음보 고침으로 해서 소원을 성취하는 해다' 이 한마디를 명심(銘心)을 하시고 ‘이 무엇고?’ ‘이 무엇고?’를 열심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21분6초~39분21초) (끝)

 

 

 

 

[법문 내용]

 

(게송)동풍취일과~ / '어째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주장자로 법상을 쳤을까?' /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 우리는 비로자나불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소원성취한다 / 어느 철부지 어린 소녀의 간절한 소원 / '이뭣고?'함으로써 우리 마음이 깨끗해져서 소원을 성취 / 용화선원에서 신수기도를 봉행하는 뜻 /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아 나가야 / 보시는 바로 희사(喜捨) / 소원성취를 하려면 마음보를 고쳐야.

 

 

'어째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주장자로 법상을 쳤을까?' 이 도리는 조실 스님의 법문에서는 '도인은 그 주장자를 들어 보는... 주장자를 보는 그놈을 보고, 주장자로 법상을 치는 그 소리를 듣는 놈을, 들을 줄 아는 놈을 본다' 하셨습니다.

 

주장자를 눈을 통해서 보는 놈, 그놈을 과연 어떻게 보며, 주장자로 법상을 치는 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그 마음을 어떻게 다시 볼 것인가?

오직 화두(話頭), 공안(公案), '이 무엇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중생의 사량분별심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자기의 화두를 관조(觀照)할 때에 자기의 면목(面目)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한 유루복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르지 아니하고 '참나'를 깨달라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있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입니다. 일단 최상승법에 눈을 뜨고 그것을 믿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무루복은 그 가운데 갖추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원만히 성취할 것인가?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원하는 대로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흉한 일을 원하면 흉한 일이 다가오고, 슬픈 일을 원하면 슬픈 일이 다가오고, 기쁘고 길한 일을 원하면 반드시 기쁘고 길한 일이 자기에게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죄 많은 중생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그러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바로 비로자나,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일부분(一部分)인 것입니다.

 

다맛 우리의 믿음이 바르고 철저하지를 못하고 참나에 눈을 뜨지 못해서 우리가 스스로 인식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분명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고대로 다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우리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말은 부처님의 설법(說法)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일은 반드시 성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간절히 소원을 할 수가 있으며,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는가?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워야만 마음이 청정하고 마음이 청정한 그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해야만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항시 '한 생각'은 일어나 있기 마련인데,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 무엇고?’로 돌아옴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은 청정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그 사람이 ‘얼마만큼 간절(懇切)하며 얼마만큼 그 마음이 청정(淸淨)한가에 따라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은 단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용화선원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선양(宣揚)하는 정법도량(正法道場)인데, 신수기도를 봉행하는 법을 만드신 조실스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선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복(福)과 혜(慧) 두 가지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복만 있고 혜가 없어도 안 되고, 혜만 있고 복이 없어도 아니된 것입니다.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듣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대지혜(大智慧)를 성취하고, 또 대복(大福)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봉행하고, 보시(布施)를 닦아야 한다.

 

물질적인 보시, 정신적인 보시, 법보시(法布施),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간탐심(慳貪心), 원망(怨望)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그러한 마음도 다 버려 버리는 이것도 또한 희사이고,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을 남에게 희사(喜捨)하는 것도 보시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온갖 것을 다 깨끗이 버려 버리는 것도 하나의 보시인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주어 가지고 정법(正法)을 믿게 하는 거, 이것도 보시요 희사인 것입니다.

 

소원이 틀림없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각기의 마음보를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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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